양촌 권근이 2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막 과거에 급제했을 때, 양촌의 할아버지인 성재(誠齋) 권고(權皐) 선생이 양촌에게 아래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네 증조할아버지인 문정공(文正公 권보(權溥))은 충렬왕 때 과거시험을 주관하신 분인데, 이 시험에서 익재공(益齋公 이제현(李齊賢))도 너처럼 젊은 나이에 급제하였단다. 문정공은 학문에 힘쓰는 익재공의 모습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사위를 삼기까지 하셨지. 익재공은 과거에 급제한 뒤에도 학문에 힘써 어떤 사람이 어느 책에 정통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반드시 찾아가서 배웠고, 누구에게 좋은 책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그 책을 빌려다 밤을 낮 삼아 날마다 부지런히 읽곤 했단다. 어느 날인가 집에 문정공의 손님이 찾아왔는데, 마침 익재공이 옆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단다. 그런데 책 읽는 소리가 좀 컸는지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데 방해가 되었다는구나. 그래서 문정공이 책을 그만 읽으라고 했다지. 그런데도 익재공은 목소리를 낮추고 계속 읽었단다. 이렇게 밤낮으로 부지런히 노력한 결과 나라의 큰 인재가 되었듯이, -중략- 너도 과거 급제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익재공을 본받아 부지런히 노력하도록 하여라.” [先君菊齋文正公爲貢擧時。益齋李文忠公。年未冠擢高科。好學不已。公嘉之。遂舘甥焉。文忠聞某有善治某書。必往受業。聞某有某書。必借讀之。日孜孜而夜繼晷也。往往先君有賓客。隔壁讀書。聲亂賓主之言。則命止之。而猶低其聲而未嘗輟也。學以日進。華問以日播。大爲宣廟器重。-中略- 汝毋安於小成。以效文忠之所爲毋怠。] |
네 증조할아버지께서 주관한 과거에 급제한 익재공이 부지런히 공부해서 나라의 큰 인재가 되었듯이, 너도 자만하지 말고 익재공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큰 인재가 되라는 축원을 젊은 손자에게 전하신 셈입니다. 과연 열심히 공부하여 큰 인재가 된 양촌에게 이번에는 웬 스님이 세 번씩이나 찾아와, 자질이 훌륭한데다 공부도 열심히 하는 젊은이의 앞날을 위해 보탬이 될 만한 글을 지어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다름 아닌 익재 이제현의 손자 이반(李蟠)이었습니다. 양촌은 이반에게 자신이 옛날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익재공의 일화를 전해주었습니다. 이어 “아름다운 자질을 타고난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만, 학문이 몸에 배어 이루어진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는 말씀을 하고, 마지막으로 부탁의 말을 덧붙였습니다. “자네가 자네 할아버지를 모범으로 삼아 학문에 힘쓴다면, 훗날 조정에 나가 배운 것을 마음껏 펼쳐 도덕(道德)이든 공업(功業)이든 자네 할아버지에 부끄럽지 않게 될 걸세.” 얼핏 보면 양촌 선생의 말씀은 ‘타고나는 것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일반적인 교훈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분들의 관계입니다. 양촌 증조할아버지의 사위가 익재이니, 익재의 손자인 이반은 양촌과 사돈 사이입니다. 양촌이 젊은 시절 이 얘기를 듣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익재 같은 대학자로 성장하였는데, 이제는 거꾸로 그 손자에게 이 얘기를 전해주게 되었으니, 양촌으로서는 옛날 일이 생각나 가슴이 뭉클했을 것입니다. 이반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생생한 얘기를 전해 듣게 되었으니 남다른 감동이 일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증조할아버지 얘기를, 증조할아버지 사위의 손자에게 다시 전해 주는 이런 아름다운 이어짐에 가슴 뭉클한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자녀교육은 가정교육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어린아이는 어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따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정교육의 범위가 집에서 함께 사는 가족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돌아가셔서 뵐 수 없게 된 선조(先祖)들의 일화를 자손들이 전해 들을 수 있다면, 이 또한 훌륭한 가정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집안 어른이나 가까운 지인들을 통해 이런 가정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데, 이제는 가족의 범위가 너무 좁아져버려 이런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복잡하게 꼬여버린 교육 문제의 원인 중에 이런 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