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을 거지라고 하는데, 이들도 무례하게 주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자기 소유가 아닌 재물을 취하는 자를 도둑이라 부르는데, 이들도 마구잡이로 남의 재물을 취하지는 않고 분배할 때가 되면 반드시 공평하게 나눈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거지와 도둑이 염치와 인지(仁智)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간교하게 윗선에 아부하고 마구잡이로 남의 재물을 취하여, 일신의 부귀만을 구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말이다. 1, 2구(句)는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의 “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국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을지라도, 혀를 차고 꾸짖으며 주면 길 가는 사람도 받지 않으며, 발로 밟고 주면 걸인도 좋게 여기지 않는다.[一簞食一豆羹 得之則生 弗得則死 嘑爾而與之 行道之人弗受 蹴爾而與之 乞人不屑也]”라는 구절에서 온 말이다. 이 구절의 주(註)에서는 “이것이 사람이 가진 수오(羞惡)의 본심(本心)이다.[是其羞惡之本心]”라고 하였다. 3, 4구에서는 도둑의 처지를 억지로 이해하여 미화한 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아마도 이는 남의 물건을 마구잡이로 취하는 무뢰배들에 견주어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이언진의 생애와 의식, 그리고 당시 그가 지니고 있었던 재능으로 유추해 보면, 위의 시는 신분 사회의 모순을 절감하게 된 중인(中人) 신분의 한 천재 시인이, 당시 기득권층의 파렴치하고도 몰지각한 행태를 목도한 뒤에 그에 대한 반감으로 지은 작품일 것이다. 염치를 논하자니 비유로 드는 거지에게조차 미안하고 인지를 이야기하자니 좀도둑만도 못한 기득권층의 부조리를 직접 보고 느꼈을 때, 그의 가슴은 회의와 분노로 먹먹한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여기서 말한 거지나 좀도둑만도 못한 사람들이 더러 있고, 그들에 의해 수많은 부정과 부패가 자행되고 있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진댄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가르쳤던 맹자(孟子)가, 그리고 그 의리를 가슴에 새기고 구차한 삶 보다는 차라리 의로운 죽음을 택하겠다며 비장하게 목숨을 바쳤던 의인(義人)들이 이런 상황을 본다면, 회의와 분노를 넘어 허탈감과 자괴감에 허허로운 웃음을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