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글은
정약용이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들에게 사치로 인해 생기는 허물이 없도록 경계하기 위해 지어준 사잠(奢箴)의 일부이다.
정약용은 다 같은 사람인데도 누구는 춥고 굶주림에
허덕이는데 누구는 비단옷에 귀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 손수 짠 비단이 아닌데 오색 비단을 입거나, 손수
사냥한 짐승이 아닌데 살진 고기를 도마에 가득 놓고 먹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시키고 있다. 이에 더해 보리밥이 맛없다거나 삼베옷이 거칠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보리밥조차 못 먹는 집이 있고 삼베옷도 없어서 살이 다 보이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약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잘
먹고 잘 입을 때에는, 네가 어깨를 으쓱일 것이니, 남들이 말하기를 저 사람은 어쩌면 저리 잘나고 영리할까 하겠지만, 네 옷이 떨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누구에겐들 감히 다시 교만을 부리겠나. 거친 여미(糲米) 밥을 먹으며, 남루한 옷이 바람결에 나부끼면, 남들이 말하기를 저 사람이,
어쩌면 갑자기 저토록 고달픈가 하고, 그들의 아내와 자식을 밀치면서 손가락질하며 경계로 삼게 한다.[方粲方錯 汝乃昂肩 民曰彼哉 何佻何儇 旣落旣散
疇敢復驕 疏糲其饞 襤褸其飄 民曰彼哉 今何卒憊 拓厥婦子 指以爲戒]”
돈을 물 쓰듯 쓰는 사람 주변에는 사람이 모인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떠나간다. 돈으로 사람과 사귄 것이지, 사람 대 사람이 사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행여나 나에게 돈이라도 빌려달라고 할까 봐 지레 겁을 먹고 사귀고자 하지 않는다.
자린고비가 아닌 이상 검소해서 생기는 문제는 없다. 사치를
하다 보면 점점 더 큰 호사를 누리고 싶은 게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요즘엔 먹거리가 넘쳐난다. 집집마다 유행이 지났다고 버리는 옷들도
넘쳐난다. 못 먹고 못 살던 때를 기억하는 노인들은 사라져가고 처음부터 풍족했던 것으로 알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가? 거리에는 여전히 비가 오는 날에도 파지를 주워야만 연명하는 노인들도 있다. 그렇다고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고, 어려운 때만 기억하며
궁상을 떨며 살라는 말은 아니다.
즐거움은 늙어서까지 누릴 수 있도록 천천히 누리도록 하고,
복은 후손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나누어 받도록 하라는 정약용의 말을 되새기며, 여유로울 때일수록 사치를 경계하는 삶을 가꿔나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