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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

천하한량 2016. 3. 26. 19:56
유비무환
행동을 제때에 하지 않으면 지난 뒤에 후회하고
일을 처음에 살피지 않으면 그르쳤을 때 후회하네

行不及時後時悔
행불급시후시회
事不始審僨時悔
사불시심분시회

- 이익(李瀷, 1681~1763)
『성호전집(星湖全集)』 권48 명(銘)
「육회명(六悔銘)」중에서

 

  
  이 글은 성호(星湖) 이익이 송(宋)나라 때 명상(名相)인 구준(寇準, 962~1023)의 「육회명」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이어 지은 명에서 1구와 4구를 옮긴 것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로 손꼽히는 성호 이익은 소전주(小田主)들을 몰락시켜 빈부 격차를 심화시켰던 소수 권문세가(權門勢家)들의 토지 독점을 제한해야 한다는 한전제(限田制)를 주장하였다. 또 실속 없이 고담준론만 일삼아 지탄받지 말고 선비들도 농업이나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사농합일(士農合一)을,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평가는 신분적 또는 족벌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개인의 재능과 실적을 준거로 삼아야 한다는 양천합일(良賤合一)도 주장하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 증대’와 정당한 노력에 따른 ‘사회계층 간의 원활한 이동’을 정책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되는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반향을 불러일으킨 『21세기 자본론』과 같은 세계적인 경제석학들의 현대적 견해와 견주어보더라도 그 핵심에 있어 손색없다 하겠다.

  며칠 새 나온 언론 보도를 보니 우리나라의 연명줄이라 할 수 있는 수출에 문제가 생겼나 보다. 우리나라는 지난달까지 역사상 최장기간인 14개월 연속으로 수출이 감소하여 글로벌 금융위기에 휩싸였던 2009년 이후 감소율이 최고치에 달했고 부채도 자꾸 늘어 가계부채만 전년 대비 122조 원 늘어난 1천207조 원에 달했다고 한다. 빚은 늘고 소득은 감소하는 추세가 점차 가팔라져서인지 국내외의 권위 있는 경제연구소들은 우리나라의 2016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3%대에서 1%까지 한결같이 하향 조정하였다고 한다. 정부통계와는 달리 가용 외환 보유고가 자칫 외채 상환에 부족할 수 있다는 분석 보도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전대미문”의 경제위기가 곧 닥칠 것을 우려하는 민간 연구소의 주장들도 보인다.

  우리는 이미 1997년의 외환위기로 “양을 잃고 나서 우리를 고쳐야 했고, 말을 잃고 나서 마구를 지어야 했던[亡羊牢可補, 失馬廐可築]” 감내키 어려웠던 고통을 겪었다. 지금 경제위기라고들 하지만 아직은 대비할 수 있는 때인 듯하니 성호선생의 이 명(銘)이 예사롭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아울러 그가 평생을 바쳐 가다듬었던 사상도 작금에 필요한 정책들 속에 계승되고 담겨지길 기원해 본다.

 

글쓴이 : 김형욱(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