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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첩(霞帔帖)과 매조도(梅鳥圖)

천하한량 2016. 2. 24. 20:26
하피첩(霞帔帖)과 매조도(梅鳥圖)

  저 남녘땅 강진 백련사는 갈 때마다 늘 좋다. 찻집 만경다설(萬景茶說)에서 바라본 배롱나무, 그 너머로 펼쳐지는 강진의 바다, 다산초당(茶山艸堂)으로 넘어가는 아늑한 산길. 이 길을 두고 소설가 한승원은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했다. 그 길을 걸을 때면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그림 한 폭이 생각난다. 다산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다산은 몇 편의 그림을 남겼다.

  다산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한 지 10년째 되던 1810년, 남양주에 있던 부인 홍씨가 다섯 폭짜리 빛바랜 치마를 다산초당으로 보내왔다. 부인 홍씨가 시집올 때 입었던 치마였다. 그 치마를 보자 깊은 곳에서 그리움이 사무쳤다. 다산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다산은 치마폭을 오려 거기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하피첩』(보물 1683-2호, 국립민속박물관 소장)과 <매조도(梅鳥圖)>(고려대박물관 소장)다.

  『하피첩』은 두고 온 두 아들을 위해 1810년 교훈이 될 만한 글을 적어 책자 형식으로 만든 3권짜리 서첩이다. 하피는 노을빛 치마라는 뜻으로, 부인이 보내준 붉은 치마를 가리킨다. 지난해 9월 한 미술품 경매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이 7억5000만 원에 사들여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서첩이다. 머리말을 보자.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는데 병든 아내가 다섯 폭짜리 헌 치마를 보내왔다. 그것은 시집올 때 가져온 훈염(纁袡, 시집갈 때 입는 붉은 활옷)이었다. 붉은빛은 이미 바래 담황색이 되어 서본으로 쓰기에 알맞았다. 이를 잘라 마름질하고 작은 첩을 만들어 손 가는 대로 훈계의 말을 지어 두 아들에게 전한다. 훗날 이를 보고 감회를 일으켜 어버이의 자취와 흔적을 생각한다면 뭉클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余在耽津謫中 病妻寄敝裙五幅 蓋其嫁時之纁袡 紅已浣而黃亦淡 政中書本 遂剪裁爲小帖 隨手作成語 以遺二子 庶幾異日覽書興懷 挹二親之芳澤 不能不油然感發也]

  유배 생활을 하면서 다산이 가장 걱정한 것 가운데 하나는 폐족(廢族)이었다. 자신과 자신의 형들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된다면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을까.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아들 학연과 학유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늘 근면과 수양, 학문을 독려하는 편지를 보냈고 이렇게 『하피첩』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이 글은 다산의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도 실려 있다. 문학작품 같은 글이 아니라 짧은 머리말 글이지만 오랜 세월 다산의 마음이 전해지면서 고전 같은 분위기로 다가온다.

  『하피첩』을 만들고 3년 뒤인 1813년 다산은 남은 치마폭을 오려 딸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매조도>로 불리는 이 그림은 참 단순해 보인다. 매화꽃 핀 나뭇가지에 참새 두 마리…. 하지만 사연을 들여다보면 그 애잔함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다산은 그림 아래쪽에 시 한 편을 적었다.

                              ▶ <매조도(梅鳥圖)>(고려대박물관 소장)

저 새들 우리 집 뜰에 날아와
매화나무 가지에서 쉬고 있네
매화향 짙게 풍기니 그 향기
사랑스러워 여기 날아왔구나
이제 여기 머물며
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거라
꽃도 이미 활짝 피었으니
주렁주렁 매실도 열리겠지

翩翩飛鳥
息我庭梅
有烈其芳
惠然其來
爰止爰棲
樂爾家室
華之旣榮
有蕡其實

  이어 그 옆에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도 함께 써넣었다.

  강진에서 귀양살이한 지 몇 해 지나 부인 홍씨가 해진 치마 6폭을 보내왔다. 너무 오래되어 붉은색이 다 바랬다. 그걸 오려 족자 네 폭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그 나머지로 이 작은 그림을 그려 딸아이에게 전하노라.[余謫居康津之越數年 洪夫人寄敝裙六幅 歲久紅渝剪之爲四帖 以遺二子 用其餘爲小障 以遺女兒]

  이 사연은『하피첩』의 머리말과 흡사하다. 부인이 보내온 해진 치마, 그걸 오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던 다산. 유배 전부터 치마를 오려 표지 장정으로 사용하기를 즐겨했던 다산이었지만, 그럼에도 『하피첩』과 <매조도>엔 유배객의 쓸쓸하고 곤궁한 삶이 그대로 전해온다. 곤궁한 삶 때문인지 그리움은 더욱 진하게 묻어난다. 다산은 아홉의 자식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여섯을 어린 나이에 병으로 잃고 두 아들과 딸 하나만 남았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 갈 때, 막내 딸아이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 아비로서 다산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여덟 살짜리 딸을 남겨 두고 기약도 없이 이어지는 유배생활. 그런데 때마침 얼마 전 그 딸이 출가를 했다. 아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도 딸아이는 잘 커서 혼인까지 했다. 미안하고 고맙고, 다산의 가슴은 미어지고 또 미어졌을 것이다. 다산은 그런 마음을 담아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보면, 매화와 참새는 참 맑으면서 처연하다. 참새는 얼마 전 출가한 딸의 부부를 상징하는 것 같다. 먼 데를 바라보는 참새의 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의 모습이 그렇지 않았을까. 그 그리움은 곧 딸에 대한 아버지의 그리움이기도 하다. 애틋한 부정(父情)이다. 매화와 새 그림은 다소 처연하지만, 시의 메시지는 희망적이다. 딸 부부가 매화향 가득한 집에서 자식 잘 낳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되어 붉은 색이 다 바랬다[歲久紅渝]’는 표현에선 한없이 처연해지는데, ‘이제 여기 머물며 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거라[爰止爰棲樂爾家室]’는 표현에선 끝내 가정의 화목을 꿈꾸게 된다. 그 대비 또한 오래오래 머리에 남는다.

  <매조도>의 글씨체도 인상적이다. 약간 기우뚱한 여성적 분위기의 서체는 이 그림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림과 글씨 모두 단아하고 깔끔해서 보는 이를 더 슬프게 한다.

  1813년 다산초당의 봄날 풍경은 그러했다. 한 폭의 그림처럼 시정(詩情)이 가득했다. 그 풍경을 바라본 다산의 눈이 해맑고 차분하다. 백련사에서 초당으로 오르는 길, 지금쯤 동백이 선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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