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전,
차가운 어둠이 짙게 깔린 조선의 밤. 보이는 것이라고는 달빛, 별빛 그리고 그림자밖에 없는 삼경의 밤은 사람들의 어깨를 쭈뼛쭈뼛 서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방 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만큼은 한낮인 양 밝습니다. 등불 혼자서 어둠을 밀어낸 덕분입니다. 밝다 못해 따뜻하기까지 한
등불 아래 막연한 무서움도 떨쳐내고 마음을 편히 뉘일 수 있을 듯합니다.
존재(存齋)가 이 시를 지었을 때의 나이는 고작
8살이었습니다.「연보」에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선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고, 효성스럽지 않으면 자식이 아니다.[不善非人, 不孝非人子.]’라는
구절을 종이에 써서 지니고 다닐 정도로 근엄한 도학자의 풍모를 지녔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도 어린 존재는 삼경의 밤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밤을 무서워하지 않는 어린아이가 있을까요? 등불이 없었다면 8살 어린아이가 이렇게 담담하게 시를 쓸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존재는 자기에게 따뜻한 불빛을 선사해 준 등불에게 고마움을 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밤.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빛을 뿌립니다. 찬란한 야경 앞에 어둠은 물러가고 달빛과 별빛도 빛을 뿌리지 못합니다. 고요한 밤이란 말이 무색하게 거리에는 온갖 소리가
가득합니다. 우리의 밤은 낮보다 화려해졌습니다. 어두운 밤은 옛이야기가 된 듯합니다. 허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요? 높이 걸린 등불 아래 야근하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 설움을 잊으려 술 마시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삶의 무게에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경쟁은 도무지 끝나지 않습니다. 온갖
매체에서 내보내는 소식은 비관적이기만 합니다. 밤은 화려해졌지만, 밤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삶은 300년 전 조선의 밤보다 적막하고 어둡습니다.
삶에 지친 우리의 마음은 삶보다 어둡습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터라 주저앉고만 싶습니다.
그러나 푸념과 탄식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어둠에 깊숙이 빠질 뿐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자그마한 빛도 밝은 법입니다. 10년 전 어느
가수가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주저앉지 말고 희망을 가지자. 별거 아니라는 생각일랑 말고 촛불 하나를 켜자.’라고 노래하였듯 삶이 힘들고
지칠수록 꿋꿋하게 이겨내고 있는 자신을 위로해야 합니다.
설날, 우리는 또 한 번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섣달 그믐밤이 언제였나
싶게 새 해는 떠올랐습니다. 2016년의 새 해가 2015년 마지막 어둠을 밀어냈던 것처럼, 300년 전 방안의 등불이 삼경의 어둠을 밀어냈던
것처럼, 어둠이 자욱한 우리 마음에도 등불 하나 켜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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