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중후한 몸가짐과 맑은 인품으로 훌륭하다는 칭송을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다만 이번에 부임하신 완산 부윤이란 관직은
병권(兵權)까지 겸해야 하는 자리. 엄격한 군율로 군사를 통솔해야 할 텐데 워낙 관대한 인품 탓에 그러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관대만 고집하신다면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부디 관대와 엄격을 두루 갖추셔서 맡은 바의 소임을 잘 수행하시길 바랍니다.
위 시는
춘정(春亭) 변계량이 완산 부윤에 부임한 박경(朴經, 1350~1414)을 위해 쓴 시입니다. 『태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박경은 태조
이성계에게 극간(極諫)을 할 정도로 강직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평상시에는 신중하고 순수한 인품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하였다고 합니다.
다만 너무 관대하였던 탓이었을까요? 1411년(태종 11), 손흥종(孫興宗, ?~?)의 죄를 가볍게 처리하였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규탄을 받고
파직까지 당하게 됩니다. 완산 부윤으로 부임한 것은 그 후의 일입니다.
정치는 완벽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민주정치는 어떤가요? 국민에게는 정치인을 선발할
권리가 있고, 정치인에게는 협력과 견제를 통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할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집단의 의견이 개인의 불완전성을 보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민주정치는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 체제인 듯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릅니다.
OECD 국가 중 행복지수 최하위. 우리의 삶은 날이 갈수록 곤두박질치는데도 정치인들은 표밭만 일구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정치는 뒷전이고 당색에
편향되어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기에 바쁩니다. 국민의 삶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만 쌓여갑니다. 정치 혐오, 정치 무관심이란 말이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국회의원이 선출되었습니다. 그분들의 걸음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 부탁 하나 하겠습니다. 국민들이
정치에 실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한 이유는 정치 혐오와 무관심이 결국 가장 사악한 정치를 만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신해 법안을 만드는 자리, 어떠한 법안이 제정되느냐에 따라 국민의 삶은 달라집니다. 관엄상제(寬嚴相濟), 부디 당색을 떠나
합리적인 의사 결정과 정책 수립을 통해 국민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엄격하게 제한하고 국민을 이롭게 하는 일은 관대하게 허용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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