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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일(重九日)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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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중구일 국화주 마시는 날 / 九日黃花酒
고당에 계시는 백발의 모친 그리워라 / 高堂白髮親
원유하는 몸 괜히 서글퍼질 수밖에 / 遠遊空悵望
시시한 벼슬에 마냥 끌려 다니기만 / 薄宦且因循
세 오솔길 거칠어질 가을날의 비요 / 秋雨荒三逕
사방에 넘쳐흐르는 서울의 먼지로다 / 京塵漲四隣
언덕에 올라갈 엄두도 내지 못하나니 / 登高猶未暇
눈에 보이는 것마다 마음이 상할까 봐 / 極目恐傷神
[주D-001]원유(遠遊)하는……수밖에 : 《논어》〈이인(里仁)〉에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는 멀리 나가서 노닐지 말 것이요, 나가서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처소가 있어야 한다.〔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주D-002]세……비요 :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오솔길이 거칠어졌으나, 솔과 국화는 아직 남아 있네.〔三逕就荒 松菊猶存〕”라는 표현이 있다.
[주D-003]사방에……먼지로다 : 연 경(燕京) 생활의 고달픔을 말한 것이다. 진(晉)나라 육기(陸機)의 시에 “집 떠나 멀리 나와 노니는 생활, 유유하여라 삼천 리 머나먼 길이로세. 서울에는 바람과 먼지가 어찌 많은지, 흰옷이 금방 새카맣게 변하누나.〔謝家遠行游悠悠三千里 京洛多風塵 素衣化爲緇〕”라는 표현이 있다. 《文選卷24 爲顧彦先贈婦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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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일(重九日)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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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중구일 국화주 마시는 날 / 九日黃花酒
고당에 계시는 백발의 모친 그리워라 / 高堂白髮親
원유하는 몸 괜히 서글퍼질 수밖에 / 遠遊空悵望
시시한 벼슬에 마냥 끌려 다니기만 / 薄宦且因循
세 오솔길 거칠어질 가을날의 비요 / 秋雨荒三逕
사방에 넘쳐흐르는 서울의 먼지로다 / 京塵漲四隣
언덕에 올라갈 엄두도 내지 못하나니 / 登高猶未暇
눈에 보이는 것마다 마음이 상할까 봐 / 極目恐傷神
[주D-001]원유(遠遊)하는……수밖에 : 《논어》〈이인(里仁)〉에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는 멀리 나가서 노닐지 말 것이요, 나가서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처소가 있어야 한다.〔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주D-002]세……비요 :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오솔길이 거칠어졌으나, 솔과 국화는 아직 남아 있네.〔三逕就荒 松菊猶存〕”라는 표현이 있다.
[주D-003]사방에……먼지로다 : 연 경(燕京) 생활의 고달픔을 말한 것이다. 진(晉)나라 육기(陸機)의 시에 “집 떠나 멀리 나와 노니는 생활, 유유하여라 삼천 리 머나먼 길이로세. 서울에는 바람과 먼지가 어찌 많은지, 흰옷이 금방 새카맣게 변하누나.〔謝家遠行游悠悠三千里 京洛多風塵 素衣化爲緇〕”라는 표현이 있다. 《文選卷24 爲顧彦先贈婦二首》
겨울의 초입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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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남창을 쏘네 텅 빈 하나의 방 / 日射南窓一室虛
사 년의 광음 그리고 다시 맞은 겨울 / 四年光景又冬初
오래 머무니 옆방의 하숙생도 바뀌고 / 久留旁舍居人換
타향에서 늙어 가니 소식도 뜸하기만 / 漸老他鄕信字疎
좋은 술만 산다면야 몇 끼 걸러도 그만 / 倂食不妨沽美酒
돈을 빌려서라도 기서를 사고 싶은 마음 / 借錢猶欲買奇書
부귀와 빈궁은 똑같이 마음에 누가 되는 것 / 富貧等是爲心累
평소에 나는 여유 있다 스스로 생각했건마는 / 自揣平生己有餘
기숙사는 사방의 벽 휑한 걸 인정한다 해도 / 心與僑居四壁虛
졸렬한 생계는 여전히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 理生猶似十年初
벼슬길이 얼마나 박정한지도 잘 알면서 / 自知宦路情何薄
권문에는 자취가 또 성글기만 하다나요 / 曾與權門迹也疎
속물이 때로 와서 흥치를 깨기도 하고 / 俗物有時來敗意
창가에 진종일 앉아 책을 보기도 하고 / 明窓盡日坐看書
뒷날 전원에서 머리 돌려 추억하면 / 他年林下如廻首
바로 하나의 황량의 꿈이라 하련마는 / 正是黃粱一夢餘
[주D-001]햇빛이……방 : 방 안으로 뚫고 들어오는 빛살 속에 부유하는 먼지와 같은 것이 아지랑이처럼 하얗게 빛나며 움직이는 광경을 《장자》〈인간세(人間世)〉에서 “저 빈 공간을 잘 볼지어다. 텅 빈 방 안에서 흰빛이 생겨나나니.〔瞻彼闋者 虛室生白〕”라고 묘사한 말이 나온다.
[주D-002]속물(俗物)이……하고 : 삼 국 시대 때 위(魏)나라의 혜강(嵇康), 완적(阮籍), 산도(山濤), 유령(劉伶) 등이 죽림(竹林)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적에 왕융(王戎)이 그곳에 뒤미처 도착하자, 완적이 “속물이 또 와서 사람의 흥치를 깨뜨린다.〔俗物已復來敗人意〕”라고 핀잔을 준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排調》
[주D-003]황량(黃粱)의 꿈 : 노 생(盧生)이 도사(道士) 여옹(呂翁)의 베개를 베고 잠을 자는 동안 한평생의 부귀영화를 한껏 누렸는데, 잠을 깨고 보니 아직도 메조밥〔黃粱〕이 덜 되었더라는 꿈 이야기로, 인간 세상의 영욕(榮辱)이 한바탕 꿈처럼 부질없음을 가리킨다.
눈 내린 밤에 술을 조금 마시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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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이 가까워서야 내린 서설 / 臘近纔呈瑞
동온을 보호해 화기를 잃지 않도록 / 冬溫不失和
누군가 일찍도 일어났군 뽀드득 신발 소리 / 履聲人起早
새가 많이도 남겨 놓았네 꼬부랑 발자국들 / 篆迹鳥留多
해묵은 살림살이 남은 것은 서탑뿐 / 舊業餘書榻
낚시터로 돌아갈 기약도 허사가 됐네 / 歸期誤釣蓑
화로를 낀 사람 하나같이 나그네들 / 擁爐俱是客
술 사 올 돈 모자라니 이를 어떡한담 / 奈乏酒錢何
[주D-001]동온(冬溫)을……않도록 : 눈 이 내려서 겨울에 온화한 기운을 잃지 않도록 살포시 덮어 준다는 말이다. 참고로 소식의 시에 “눈이 겨울의 온기를 조금 덮어 주었으니 그런대로 탈은 없겠지만, 가을 가뭄을 해소해 주지는 못했으니 밭갈이를 어떻게 할꼬.〔稍壓冬溫聊得健 未濡秋旱若爲耕〕”라는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14 雪夜獨宿柏仙菴》
치통(齒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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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병이 나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 到今成病奈如何
돌멩이도 씹었다며 자랑할 것 도시 못 돼 / 挫硬攻堅未足多
수석 선생은 그래도 이를 갈 수 있었고 / 漱石先生猶自厲
방사 광객 역시 노래를 부를 수 있었지 / 防梭狂客亦能歌
입 놀리는 부드러운 혀에겐 안 되고말고 / 已輸柔舌時還掉
철석간장이라고 늙어도 갈리지 않을 수야 / 豈以剛腸老不磨
양생하는 독자적 비방이 한 가지 있나니 / 唯有養生方獨妙
동파에게 배운 대로 질척하고 물렁하게 / 軟炊爛煮學東坡
[주D-001]수석 선생(漱石先生) : 진 (晉)나라 손초(孫楚)를 가리킨다. 그가 장차 숨어 살려고 하면서,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하련다.〔枕石漱流〕”라고 말해야 할 것을 “물을 베고 돌로 양치질하련다.〔枕流漱石〕”라고 잘못 말했는데, 왕제(王濟)가 그 말을 듣고서 잘못을 지적하자 손초가 “물을 베는 것은 ‘속진에 찌든 귀를 씻어 내기 위함이요〔洗其耳〕’, 돌로 양치질하는 것은 ‘연화(煙火)에 물든 치아의 때를 갈아서 없애려 함이다.〔礪其齒〕’”라고 대답했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排調》
[주D-002]방사 광객(防梭狂客) : 진 (晉)나라 사곤(謝鯤)을 가리킨다. 그가 이웃집 여인을 유혹하려고 하다가, 그녀가 길쌈을 하면서 던진 베틀의 북을 얻어맞고 치아 두 개가 부러졌는데, 사람들이 “제멋대로 계속 경솔하게 굴더니 유여가 끝내 이를 부러뜨렸다.〔任達不已 幼輿折齒〕”라고 놀리자, 사곤이 이 말을 듣고는 오연(傲然)히 휘파람을 길게 불면서 “나는 그래도 나의 휘파람 부는 일을 계속해야겠다.〔猶不廢我嘯歌〕”라고 응수했던 고사가 있다. 유여(幼輿)는 사곤의 자이다. 《晉書 卷49 謝鯤列傳》《世說新語賞譽》
[주D-003]입……되고말고 : 강한 치아가 부드러운 혀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노자(老子)가 상종(商樅)의 병문안을 가서, 치아가 모두 없어진 것은 강하기 때문이요, 반면에 혀가 아직도 건재한 것은 부드럽기 때문이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說苑敬愼》
[주D-004]동파(東坡)에게……물렁하게 : 소 식(蘇軾)의 필적 중에 “밥은 질척하게, 고기는 물렁하게. 국물은 따뜻하게, 담요는 두꺼웁게.〔軟蒸飯 爛煮肉 溫羹湯 厚氈褥〕”라고 쓴 글이 《산호망(珊瑚網)》 권4〈소옥국 양로편 묵적(蘇玉局養老篇墨蹟)〉에 나온다. 옥국(玉局)은 송나라의 유명한 도관(道觀) 이름인데, 소식이 일찍이 옥국관(玉局觀)의 제거(提擧)를 지냈기 때문에 소식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혹독한 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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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풍이 공중을 뒤흔드는 세모의 하늘 / 朔吹搖空歲暮天
담요 덮고 독서하는 낡은 집 오슬오슬 / 颼颼老屋讀書氈
뼈에 스미는 추위를 무슨 수로 녹일 수 있나 / 一寒到骨那能解
만사가 마음에 걸려 그저 혼자서 애태울 뿐 / 萬事關心只自煎
이불이 쇳덩이 같은 밤은 깊어 쌓인 눈만 환한데 / 衾鐵夜深明積雪
나무하는 산이 저자와 가깝건만 취연도 끊겼구나 / 樵山市近絶炊煙
시인이 추위 참는 것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 / 詩人耐冷今猶古
아무래도 매화 보러 시냇물 가로 가야 할까 봐 / 擬訪梅花澗水邊
[주D-001]나무하는……끊겼구나 : 나무 시장이 가까이 있건만 물가가 뛰어오르는 바람에 장작을 사지 못해서 밥 짓는 연기마저 끊길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입춘(立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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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에는 돌아갈 기약도 없이 / 江海歸無日
경사에서 죽치고 있는 이 몸 / 京華滯此身
금마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 未驚金馬夢
토우가 밭 가는 봄을 다시 맞았네 / 又打土牛春
삼통으로 추산하는 역법이라면 / 曆法推三統
오신에서 확인하는 인정이로세 / 人情見五辛
나는 세월을 다툰 적이 없건마는 / 不曾爭歲月
무슨 일로 흰머리가 새로 났는지 / 何事鬢毛新
[주D-001]금마(金馬)의……채 : 조 정에 들어가 출세하려는 미련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금마는 한나라 궁궐 문인 금마문(金馬門)의 준말로, 동방삭(東方朔)ㆍ주보언(主父偃)ㆍ엄안(嚴安) 등 문인들이 황제의 조서(詔書)를 기다리던 곳인데, 뒤에는 조정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주D-002]토우(土牛)가……맞았네 : 입 춘이 다시 돌아왔다는 말이다. 토우는 진흙으로 빚은 소를 말한다. 옛날 입춘 날에 토우를 만들어 멍에를 씌우고 채찍으로 때리면서 관청 뜰에서 밭 가는 시늉을 하며 풍년을 기원하던 풍속이 있었는데, 이를 타춘(打春)이라고 한다. 후대에는 진흙 대신 짚이나 갈대 혹은 종이로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를 총칭하여 ‘춘우(春牛)’라고 하였다.
[주D-003]삼통(三統) : 하 (夏)ㆍ상(商)ㆍ주(周) 삼대(三代)의 정삭(正朔)을 말한다. 하(夏)나라는 인월(寅月)로 세수(歲首)를 삼아 인통(人統)이 되고, 은(殷)나라는 축월(丑月)로 세수를 삼아 지통(地統)이 되고, 주(周)나라는 자월(子月)로 세수를 삼아 천통(天統)이 되는데, 고려 때나 지금 쓰는 음력은 하력(夏曆)에 근거한 것이다.
[주D-004]오신(五辛) : 파ㆍ마늘ㆍ생강 등 다섯 가지 매운 맛 나는 채소로 이른바 오신채(五辛菜)이다. 이를 오신반(五辛盤)이라는 소반에 담아서 새해를 축하하며 오장(五臟)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먹던 풍습이 있었다.
을유년(1345, 충목왕1) 원일(元日)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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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에서 벼슬하며 어느덧 노년으로 / 游宦將成老
황경에 체류하며 봄을 또 맞았네 / 淹留又見春
인사가 거의 없는 나그네 생활 / 客中人事少
도하에 새롭게 시절이 돌아왔네 / 都下歲華新
황상에게 달려와 귀의하는 만국이요 / 萬國歸皇極
대궐을 에워싸고 옹위하는 천관이라 / 千官拱紫辰
초주를 오래도록 올리지 못한지라 / 椒觴久未奉
북당의 늙은 어머님이 더욱 뵙고 싶어라 / 倍憶北堂親
[주D-001]초주(椒酒) : 새해 아침에 다례(茶禮)를 지내고 나서 웃어른에게 축수(祝壽)하며 올려 하례하는 술 이름이다.
인일(人日)에 두시(杜詩)를 읽으며 그 운을 그대로 써서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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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로부터 인일에 이르기까지 / 元日至人日
아동에게는 이레가 모두 설 명절 / 兒童數歲時
앞으로 살 나이에서 한 해가 또 줄었으니 / 一年行又減
백 년을 산다 한들 어찌 길다고 말하리오 / 百歲豈云遲
사업도 알고 보면 남가의 한 꿈이요 / 事業南柯夢
영웅도 결국에는 상채의 비극이라 / 英雄上蔡悲
꽃 버들 찾는 것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 何當問花柳
비 실실 내리는 곳 말이 끌고 가는 대로 / 信馬雨絲絲
[주C-001]두시(杜詩) : 두 보(杜甫)의 〈인일(人日)〉이라는 제목의 시 두 수 가운데 첫 번째 시인 오언율시를 가리키는데,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권21에 수록되어 있다. 인일은 음력 1월 7일의 별칭이다. 동방삭(東方朔)의 점서(占書)에 의하면, 1월 1일부터 6일까지 각각 차례로 닭ㆍ개ㆍ양ㆍ돼지ㆍ소ㆍ말을 점치고 나서 7일에 사람을 점치고 8일에 곡식을 점치는데, 기후가 청명하고 온화하면 번식과 안태(安泰)를 미리 알 수 있고, 기후가 음한(陰寒)하고 참렬(慘烈)하면 질병과 쇠모(衰耗)를 미리 알 수 있다고 하였다. 《事物紀原 天生地植 人日》
[주D-001]사업도……꿈이요 : 인 생의 부귀영화가 모두 덧없는 한바탕 꿈과 같다는 말이다. 순우분(淳于棼)이란 사람이 괴목(槐木) 아래에서 술 취해 잠깐 누워 잠든 사이에 괴안국(槐安國)의 부마(駙馬)가 되어 남가(南柯)의 태수로 삼십 년 동안 있으면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꿈을 깨고 보니 괴안국은 바로 괴목의 남쪽 가지 밑에 있는 개미구멍이었다는 이야기가 당나라 이공좌(李公佐)의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에 나온다.
[주D-002]영웅도……비극이라 : 걸 출한 인물도 정쟁(政爭)에 휘말려서 비극적인 말로를 걷곤 한다는 말이다. 진(秦)나라 승상 이사(李斯)가 무함을 받고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 그의 아들을 돌아보며 “내가 너와 함께 다시 누렁이를 이끌고 상채의 동문으로 나가서 약빠른 토끼를 쫓으려고 한들 어떻게 될 수 있겠느냐.〔吾欲與若復牽黃犬 俱出上蔡東門 逐狡兎豈可得乎〕”라고 탄식했던 고사가 있다. 《史記 卷87 李斯列傳》
귀향하는 국정(菊庭) 기 참정(奇參政)을 전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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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에서 춘풍을 세 번 보내는 동안 / 輦下春風三度別
눈앞의 세상일 몇 번이나 바뀌었소 / 眼前世事幾番新
동갑인데 내 얼굴 먼저 늙다니 원 / 怪予同甲顔先老
타향에서 전송만 하니 그럴 수밖에 / 無奈他鄕慣送人
낙제하고 동쪽으로 돌아가는 윤 정언(尹正言)을 전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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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내가 낙제하고 황성을 나갈 적에 / 憶曾落第出京塵
시주가 흥건했던 흥치 지금도 새로워라 / 詩酒淋漓興尙新
오늘 그대의 감정도 옛날의 나와 같을 텐데 / 此日此情應似我
뒷날 황갑의 신분이면 잘 봐주려 하실는지 / 他年黃甲肯饒人
[주D-001]황갑(黃甲) : 황색 종이에 쓴 과거 갑과(甲科) 급제자의 명단으로, 문과(文科)에 급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안근재(安謹齋)에게 축하하는 시를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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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과거 급제 예로부터 어려운 일 / 三子登科古所難
모친의 한번 웃음소리 삼한을 울렸도다 / 高堂一笑動三韓
황조의 과거에 많은 이가 급제를 하였지만 / 皇朝射策知多少
단계의 연지는 또 다름 아닌 안씨 성이로세 / 丹桂連枝又姓安
[주C-001]안근재(安謹齋) : 근재는 안축(安軸 : 1287~1348)의 호이다.
[주D-001]세 아들 : 안축과 그 동생 안보(安輔), 안집(安輯)을 가리킨다.
[주D-002]단계(丹桂)의……성이로세 : 안 축이 1324년(충숙왕11)에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하였는데, 안보가 1345년(충목왕1)에 그 뒤를 이어서 다시 급제한 것을 말한다. 진 무제(晉武帝) 때 극선(郤詵)이 현량 대책(賢良對策)에서 장원(壯元)을 하였는데, 소감을 묻는 무제의 질문에 “계수나무 숲의 가지 하나요, 곤륜산의 옥돌 한 조각입니다.〔桂林之一枝 崑山之片玉〕”라고 답변한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52 郤詵列傳》
홍양파(洪陽坡) 제거(提擧)가 정동 유학(征東儒學)으로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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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경사에 와서는 무작정 오래 체류하며 / 偶到京華却久留
등불 심지 돋우고서 밤마다 귀휴를 얘기했네 / 挑燈夜夜說歸休
청산을 꼭 돈을 주고 살 것이 있으리오마는 / 靑山不必將錢買
단지 두려운 것은 홍진이 흰머리 만드는 것 / 只恐紅塵白了頭
고고하기론 다른 이들을 능가한다 여겼는데 / 曾謂孤高出輩流
연래엔 함께 어울려 부침을 얘기했소그려 / 年來且與說沈浮
모르겠소 산림으로는 누가 먼저 떠날는지 / 不知林下誰先去
그대는 벼슬을 구해도 나는야 쉬고 싶소 / 君政求官我欲休
[주C-001]홍양파(洪陽坡) : 양파는 홍언박(洪彦博 : 1309~1363)의 호이다.
전송하는 시를 거듭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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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길에서 상봉한 한식 명절 날 / 客路逢寒食
이별하는 정자에서 마주한 저녁 햇빛 / 離亭對夕暉
벼슬하며 떠도는 인생 쉽게도 늙어 가고 / 宦游人易老
마음으로 꾀하는 계책 많이도 어긋나네 / 心計事多違
사해에 지음이 어찌 많으리오 / 四海知音少
삼한에 신사도 보기 드물어라 / 三韓信使稀
청산과 맺은 약속 지키기 위해 / 靑山有成約
먼저 돌아가는 그대가 부러워라 / 羨子得先歸
청명(淸明)에 내리는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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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에 들어서면 눈도 보기 드물다는 / 雪入春分省見稀
설당의 시를 금년에 이미 읊었었는데 / 今年已賦雪堂詩
춘풍 속의 궁중 버들 한식을 갓 지났건만 / 東風御柳經寒食
경각간에 꽃 피웠네 바로 지금 한꺼번에 / 頃刻花開此一時
꽃 없는 봄나무에 눈이 꽃을 만들었다만 / 春樹無花雪有花
청명의 천기엔 당연히 어울리지 않는 것 / 淸明天氣未應和
귀족들의 술 취한 귀에야 어찌 들리리오 / 侯家醉耳寧聞此
얼어 죽은 유민의 뼈가 또 많다는 말이 / 凍死流民骨又多
[주D-001]춘분(春分)에……읊었었는데 : 금 년 춘분에 희귀하게 여겨지는 눈을 이미 접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눈이 내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는데 뜻밖에도 눈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설당(雪堂)은 소식(蘇軾)의 별칭으로 그가 황주(黃州)로 유배된 뒤에 그곳에 설당이라는 초가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그의 〈설당기(雪堂記)〉에 “동파(東坡) 옆에 버려진 밭이 있기에 집을 짓고 담을 두른 뒤에 설당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큰 눈이 내리는 가운데 그 집을 지었으므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사방 벽에다 설경을 그린 그림을 빈틈없이 걸어놓고는 앉거나 눕거나 이를 쳐다보면서 감상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시에 “춘분에 들어서면 눈도 보기 드문데, 반쯤 핀 도리가 눈의 위엄을 견디지 못하누나.〔雪入春分省見稀 半開桃李不勝威〕”라는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9 癸丑春分後雪》
청명 뒤에 성 남쪽으로 나가서 서산(西山)의 눈을 바라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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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연히 제삼교 위에 올라가니 / 今朝偶上第三橋
봄날이 지는데도 서산엔 눈이 안 녹았네 / 春晩西山雪未消
괴이한 것은 봄바람이 힘차게 불어오지 못해 / 怪底東風吹不力
산 가까운 기름진 땅에 보리가 봄싹 그대론걸 / 近山麰麥有春苗
높은 곳은 고기의 숲 깊은 곳은 술의 못 / 肉林高處酒池深
봄눈의 위세도 그런 곳은 감히 침범을 못하나 봐 / 春雪餘威不敢侵
하늘은 본래 사람에게 차별을 두지 않는데 / 天本於人無厚薄
백성이 지금 서로 잡아먹으니 이 무슨 마음인고 / 民今相食是何心
차운하여 가형(家兄)에게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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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하직하고 또다시 연경의 나그네 신세 / 辭親又復客燕都
모친 봉양에 애쓰시는 형님이 못내 그리워라 / 苦憶庭闈侍奉勞
공연히 시편 펴 들고 척기 장을 읊으면서 / 謾把詩篇吟陟屺
운산의 동쪽 바라보네 하늘 저 너머까지 / 雲山東望際天高
소싯적에 고생하면서 송도에 우거할 적에 / 少年辛苦寓松都
짚신 삼는 자친의 노고가 항상 부끄러웠소 / 常愧慈親織屨勞
오늘날에 와서도 청빈함은 옛날과 비슷하니 / 此日淸貧猶似舊
이름과 비례해서 관직이 높아지지는 않는 모양이오 / 官高不必與名高
다행히 풍운의 시대에 제도에 들어와서 / 幸際風雲入帝都
뜻을 봉양하며 구로에 보답하려 하였소만 / 擬將志養慰劬勞
자친은 점점 늙어 가고 영원과도 떨어져 있으니 / 慈顔漸老鴒原隔
단란하게 함께 웃고 얘기하는 것이 훨씬 낫겠소 / 何似團圝笑語高
만리 멀리 고향 산천 오래도록 소식 없어 / 家山萬里久無書
늙고 병든 나머지 꿈속엔 언제나 어머님 / 夢想高堂老病餘
옛사람 많이 양지했다는 말을 잘못 믿었나니 / 誤信古人多養志
겨울 죽순과 얼음 잉어가 참으로 부끄러워라 / 頗慙冬筍與氷魚
일찍이 띳집 짓고 고서를 모으면서 / 曾構茅齋聚古書
당시에 심은 나무 지금 어언 십여 년 / 當時栽種十年餘
일산 같은 뜰의 솔에는 학이 둥지 틀고 / 園松偃蓋應棲鶴
휘늘어진 시내 버들은 물고기 꿸 만하리 / 溪柳垂絲可貫魚
이별하고 해 넘기며 그저 글만 부쳤으니 / 一別經年謾寄書
아우의 머리 남김없이 흰 것을 아실 리야 / 那知弟鬢白無餘
관을 벗어서 걸어 놓고 곧장 집에 돌아가서 / 掛冠直欲還家去
물가에 거룻배 띄우고 조어 마주하고 싶네 / 野艇苔磯對釣魚
[주D-001]공연히……너머까지 : 멀 리 나가 있는 자식이 부모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시경》〈위풍(魏風) 척호(陟岵)〉는 효자가 부역을 나가서 어버이를 잊지 못하는 심정을 노래한 것인데, 그 둘째 장에 “저 민둥산에 올라가서 어머님 계신 곳을 바라본다.〔陟彼屺兮 瞻望母兮〕”라는 말이 나온다. 또 당나라 적인걸(狄仁傑)이 병주(幷州)의 법조참군(法曹參軍)으로 부임할 적에 태항산(太行山)에 올라가서 멀리 남쪽으로 흰 구름 하나가 떠가는 것을 보고는, 저 구름 아래에 부모님이 계실 것이라면서 한참 동안 바라보며 사념에 젖다가 구름이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떠나갔다는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卷115 狄仁傑列傳》
[주D-002]짚신……노고 : 한 나라 적방진(翟方進)이 서쪽으로 경사(京師)에 가서 경서(經書)를 수업하려고 할 적에, 그가 아직 어린 것을 모친이 가엾게 여긴 나머지 함께 장안(長安)에 따라가서 ‘짚신을 삼아〔織屨〕’ 방진에게 대 주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84 翟方進傳》
[주D-003]풍운(風雲) : 풍운제회(風雲際會)의 준말로, 임금과 신하가 의기투합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건괘(乾卦) 문언(文言)〉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雲從龍風從虎〕”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주D-004]뜻을 봉양하며 : 어 버이의 뜻을 제대로 알고서 그대로 따르는 양지(養志)의 효도를 행한다는 말이다. 의식(衣食)을 풍족하게 하는 등 부모의 육신만을 위하는 구체(口體)의 봉양(奉養)과 상대되는 말인데, 《맹자》〈이루 상(離婁上)〉에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주D-005]구로(劬勞) : 낳아 주고 길러 주신 부모님의 은덕을 말한다. 《시경》〈소아(小雅) 육아(蓼莪)〉에 “슬프고 슬프도다 부모님 생각, 낳고 길러 주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던가.〔哀哀父母 生我劬勞〕”라고 하였다.
[주D-006]영원(鴒原) : 우 애 있는 형제를 뜻하는 말이다. 《시경》〈소아(小雅) 상체(常棣)〉의 “저 할미새 들판에서 호들갑 떨 듯, 급할 때는 형제들이 서로 돕는 법이라오. 항상 좋은 벗이 있다고 해도, 그저 길게 탄식만을 늘어놓을 뿐이라오.〔鶺鴒在原 兄弟急難 每有良朋 況也永歎〕”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7]옛사람……부끄러워라 : 어 버이 뜻을 받드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는 말만 믿고서, 멀리 떠나와 어버이 곁에서 직접 봉양하지 못하는 불효를 자책한 말이다. 효자로 유명한 삼국 시대 오나라 맹종(孟宗)과 진(晉)나라 왕상(王祥)이 각각 모친을 위해 겨울철 눈 속에서 솟아 나온 죽순과 얼음을 뚫고 나온 잉어를 바쳐 올린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吳書 卷48 三嗣主傳 孫晧》《晉書 卷33 王祥列傳》
[주D-008]관을……놓고 : 벼 슬을 그만두는 것을 말한다. 동한(東漢)의 봉맹(逢萌)이 왕망(王莽)의 정사에 환멸을 느껴 인륜이 끊어졌다고 탄식하면서 관을 벗어서 동쪽 도성 문에다 걸어 놓고 곧장 시골로 돌아갔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逢萌》 또 남조(南朝) 제(齊)의 도홍경(陶弘景)도 관복을 벗어서 신무문(神武門)에 걸어 놓고 사직소를 남긴 뒤에 고향으로 떠나갔던 고사가 있다. 《南史卷76 隱逸列傳 陶弘景》
[주D-009]조어(釣魚) : 조어옹(釣魚翁)의 준말이다. 참고로 당나라 왕유(王維)의 시에 “강물에 양치질하고 발을 씻나니, 앞에 마주한 이는 낚시하는 노인장.〔潄流復濯足 前對釣魚翁〕”이라는 명구가 있다. 《王右丞集卷4 納凉》
가형(家兄)의 시운(詩韻)을 써서 아자(兒子) 눌회(訥懷)에게 부쳐 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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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는 제왕의 도읍에서 벼슬을 해야 하고말고 / 男兒須宦帝王都
벼슬하려면 고생하기는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 / 若欲致身均是勞
너도 알다시피 선니가 천하를 작게 여겼던 것도 / 汝識宣尼小天下
단지 몸이 높은 태산 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느니라 / 只緣身在泰山高
삼십 년 전에 독서를 게을리 했던 탓으로 / 三十年前懶讀書
백두가 된 뒤에 와서 허명을 탄식하노라 / 虛名却嘆白頭餘
너는 지금 분음을 아껴 공부해야 할지니 / 汝今當惜分陰學
연목어 같은 부귀도 구할 수가 있느니라 / 富貴可求緣木魚
[주D-001]너도……때문이었느니라 : 《맹 자》〈진심 상(盡心上)〉에 “공자가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를 작게 여겼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라는 말이 나온다. 선니(宣尼)는 공자의 별칭으로, 한 평제(漢平帝) 원시(元始) 원년에 공자를 추시(追諡)하여 포성선니공(褒成宣尼公)이라고 하였다.
[주D-002]삼십 년……탄식하노라 : 가 정이 36세라는 늦은 나이에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한 것을 자탄(自歎)한 말이다. 가정은 원나라 영종(寧宗) 원통(元統) 원년 계유년(1333)의 회시(會試)에 급제한 다음 전시(殿試)에서 제2갑(第二甲)으로 뽑혀 한림국사원 검열관(翰林國史院檢閱官)을 제수받았다.
[주D-003]분음(分陰) : 얼 마 안 되는 매우 짧은 시간을 말한다. 진(晉)나라의 도간(陶侃)이 항상 사람들에게 “대우는 성인인데도 촌음을 아꼈으니,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응당 분음을 아껴야 할 것이다.〔大禹聖者 乃惜寸陰 至於衆人 當惜分陰〕”라고 한 말이 있다. 《晉書 卷66 陶侃列傳》
[주D-004]연목어(椽木魚)……있느니라 : 가 정의 가문에서는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세상의 부귀영화도 제과 급제라는 신분 상승을 통해서 한껏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연목어는 《맹자》〈양혜왕 상(梁惠王上)〉의 연목구어(緣木求魚) 고사에서 나온 말로, 공상(空想)과 같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비유하는 말이다.
이행촌(李杏村)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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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는 혹 하얗게 만들 수 있어도 / 烏頭容可白
속안을 어찌 종내 푸르게 할 수야 / 俗眼豈終靑
멀리서도 부러워라 밝은 창 아래에서 / 遙羡明窓下
향 피우고 불경을 베끼는 그대 생활이 / 焚香寫佛經
[주C-001]이행촌(李杏村) : 행촌은 이암(李嵒 : 1297~1364)의 호이다.
[주D-001]오두(烏頭)는……있어도 : 전 국 시대 연나라 태자 단(丹)이 진(秦)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귀국시켜 줄 것을 호소하자, 진왕(秦王)이 “까마귀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말에 뿔이 돋아나면 돌아가게 해 주겠다.〔烏頭白 馬生角 乃許耳〕”라고 했는데, 이에 태자가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을 하자 금세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전설이 전한다. 《史記 卷86 刺客列傳論贊》
[주D-002]속안(俗眼)을……수야 : 속 인을 대하는 눈빛을 다정하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완적(阮籍)이 속된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 즉 흰 눈자위를 드러내어 경멸하는 뜻을 보이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청안(靑眼) 즉 검은 눈동자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드러낸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簡傲》
차운하여 동년(同年) 김천조(金天祚)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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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결정했소 돌아가 쉬기로 / 已決歸休計
가을바람에 말발굽도 가뿐하게 / 秋風馬足輕
그대에겐 십 년이나 아래이건만 / 於君十年弟
벌써 탄식하오 반백의 머리를 / 已嘆二毛生
옛날 은거하던 수려한 계산으로 / 舊隱溪山好
돌아가면 모든 일이 가벼워지리 / 歸來萬事輕
낚시 통 그리고 그 옆에는 술통 / 釣筒幷酒榼
서로 마주하며 여생을 보내려오 / 相對送餘生
동년 안원지(安員之)가 등제(登第)하고 귀향하는 것을 전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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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땅 근재의 아우님께서 / 三韓謹齋弟
극위의 봄을 또 차지했도다 / 又占棘闈春
빼어난 계수나무 이어진 가지 / 丹桂連枝秀
새로 출발하는 청운의 벼슬길 / 靑雲發軔新
백년에 걸친 우리 교분 친밀도 한데 / 百年交契密
만리 길 이별을 빈번하게 하다니요 / 萬里別離頻
그대 뒤를 마냥 따라가고 싶어라 / 甚欲隨君去
나도 고당에 어머님이 계시니까 / 高堂共有親
[주C-001]안원지(安員之) : 원지는 안보(安輔 : 1302~1357)의 자이다.
[주D-001]삼한(三韓)……벼슬길 : 근 재(謹齋) 안축(安軸)의 아우인 안보가 형의 뒤를 이어서 원나라 제과에 또 급제한 것을 말한다. 진 무제(晉武帝) 때 극선(郤詵)이 현량 대책(賢良對策)에서 장원(壯元)을 하였는데, 소감을 묻는 무제의 질문에 “계수나무 숲의 가지 하나요, 곤륜산의 옥돌 한 조각입니다.〔桂林之一枝 崑山之片玉〕”라고 답변한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52 郤詵列傳》 극위(棘闈)는 경비가 삼엄한 과거 시험장을 말한다.
김경선(金敬先) 부령(副令)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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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한번 변하면 선유의 경지에 가까울 분 / 文章一變近儒先
좌주의 글 편편마다 모두 후세에 전할 만하오 / 座主篇篇儘可傳
오늘날 삼한의 한 이부에게 부탁 하나 한다면 / 此日三韓韓吏部
이한 한 사람에게만 편집을 맡기지 마시라고 / 莫敎李漢獨能編
[주D-001]문장이……만하오 : 김 경선(金敬先)이 한종유(韓宗愈 : 1287~1354)의 문생이자 사위로서, 그의 뛰어난 문장과 사업을 충분히 이을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참고로 《논어》〈옹야(雍也)〉에 “제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한번 변하면 노나라의 경지에 이르고, 노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한번 변하면 선왕의 도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齊一變至於魯 魯一變至於道〕”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주D-002]오늘날……마시라고 : 한 이부(韓吏部)는 당 헌종(唐憲宗) 때 이부 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를 가리키는데, 한종유가 같은 성씨이고 또 그의 이름에 유(愈) 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삼한의 한 이부라고 말한 것이다. 이한(李漢)은 한유의 사위로서 그의 유문을 수집하여 문집을 발간하였는데, 《고문진보(古文眞寶)》에 그가 지은 〈창려문집서(昌黎文集序)〉가 수록되어 있다.
극례(克禮) 주판(州判)이 대언(代言)을 제수받았다는 말을 듣고 시를 지어 축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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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살이 어찌 꼭 만리 밖에서 해야 할까 / 游宦何須萬里行
삼한의 내상이면 족히 영예가 되고말고 / 三韓內相足爲榮
인생은 뜻만 맞으면 남북이 상관없는 것을 / 人生適意無南北
경사에 체류한 광부가 혼자 탄식하오이다 / 自嘆狂夫滯玉京
[주C-001]극례(克禮) : 이인복(李仁復 : 1308~1374)의 자이다.
[주D-001]내상(內相) : 한림학사(翰林學士)의 신분으로 국정에 직접 참여하여 정승처럼 국사를 좌우하는 인물이라는 말이다. 당 덕종(唐德宗) 때 한림학사 육지(陸贄)가 내상이라고 일컬어졌던 고사가 있다. 《舊唐書 卷139 陸贄列傳》
사명(使命)을 받들고 동쪽으로 돌아가는 순암(順菴)을 전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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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간 연경에서 요행히 이웃 되어 / 數載燕都幸作隣
멋진 유람 있으면 아침이고 저녁이고 / 勝游不問暮兼晨
금대의 남쪽 성곽에서 산을 보기도 하고 / 金臺南郭看山客
화선(畫船)에 술을 싣고 서호에 띄우기도 하고 / 畫舫西湖載酒人
[주D-001]금대(金臺) : 전국 시대 연나라 소왕(昭王)이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역수(易水) 동남쪽에 건립했던 황금대(黃金臺)의 준말로, 흔히 연경(燕京)의 대명사로 쓰인다.
전송하는 시를 거듭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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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의 오랜 타향살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 燕山久客已知非
공을 또 전송하며 정작 이 몸은 못 가누나 / 又送公歸且未歸
서글퍼라 성 동쪽의 일만 그루 버들이여 / 惆悵城東萬株柳
여전히 휘늘어진 채 행인들에게 꺾이누나 / 行人折盡尙依依
안겸재(安謙齋)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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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시사는 모두 간담이 떨어질 일 / 時事去年皆破膽
지금은 현재가 경쟁적으로 반린하는 날 / 賢才此日競攀鱗
공을 기용한 게 평소의 기대엔 덜 차는데 / 起公未滿平生望
공의 행장 옛사람과 비슷해 오히려 기쁘오 / 却喜行藏似古人
[주C-001]안겸재(安謙齋) : 겸재는 안목(安牧 : ?~1360)의 호이다.
[주D-001]반린(攀鱗) : 제왕 혹은 명사(名士)에게 몸을 의탁해서 공명(功名)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양웅(揚雄)이 지은 《법언(法言)》〈연건(淵騫)〉의 “용의 비늘을 그러잡고 봉의 날개에 달라붙는다.〔攀龍鱗 附鳳翼〕”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최덕림(崔德林) 정윤(正尹)이 운남왕(雲南王)을 따라서 서남이(西南夷)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전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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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기상 호쾌하여 몸을 돌아보지 않고 / 少年豪氣不顧身
하늘가 그리고 바닷가까지 두루 돌아다녔지 / 行遍天涯與海濱
농산에 올랐으면 높다고 하련만 다시 촉을 바라보고 / 登隴雖高還望蜀
연 지역에서 놀았으면 멀다고 하련만 또 진을 거쳤다네 / 游燕已遠又經秦
검각의 산이 모인 곳엔 밟을 땅도 없을 것이요 / 山攢劍閣疑無地
장가의 길로 들어서면 사람도 보이지 않으리 / 路入牂牁不見人
다행히 왕의 신하 중에 준걸이 많이 있으니 / 賴是王門多俊彦
옷자락 끌고 담소하며 여독을 가라앉히리라 / 曳裾談笑靜風塵
난경기행(灤京紀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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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용관(居庸關)
연경을 지키는 천험의 요새 옛 관문 / 天限燕雲有古關
두 개의 산 사이에 높고 험한 오솔길 / 崎嶇細路兩山間
태평한 지금의 길은 수레 두 채가 나란히 / 太平此日車方軌
임금님 수레가 해마다 이곳을 왕래한다오 / 黃屋年年此往還
길 가는 도중에
여름날 운주로 향하는 이 길 / 夏日雲州道
새로운 시상도 떠오르지 않네 / 新詩未用尋
서늘바람이 무더위를 쫓아 주는데 / 風凉能却暑
구름은 얇아서 그늘도 지지 않네 / 雲薄不成陰
용문에 급히 쏟아지는 물이라면 / 水注龍門急
역로를 깊이 숨겨 놓은 산이로세 / 山藏驛路深
이따금 만나는 시골 마을 집 / 時逢村舍好
고향 생각이 홀연히 일어나네 / 忽起故園心
이릉대(李陵臺)
나라에 몸을 바치는 것을 어려워했겠는가마는 / 許國身何有
공을 이루게 하는 하늘의 명이 같지 않았도다 / 成功命不侔
한나라 황제가 무를 비록 좋아했어도 / 漢皇雖好武
비장은 제후에 미처 봉해지지 못했어라 / 飛將未封侯
원군 없이 고전한 것이야 인정한다 하더라도 / 苦戰知無賴
살아서 항복했던 것은 그래도 수치스러운 일 / 生降亦可羞
지는 햇빛 담고 있는 높은 무덤 앞에서 / 高臺銜落日
이런저런 생각으로 못 떠나고 서성이네 / 爲爾故遲留
난경에서 지은 시 2수
황제의 신모에 거북점도 맞아서 확정한 양도 / 龜協神謀定兩都
난경처럼 상개한 곳도 이 세상에 없으리라 / 灤京爽塏世間無
사해의 수레와 문자가 같게 된 것은 다들 알지만 / 已知四海車書混
한 하늘 아래 추위와 더위가 다른 것은 누가 믿으리 / 誰信一天寒暑殊
소와 양들은 저물녘에 대지 가득 떼 지어 있고 / 滿地牛羊屯落日
매와 개들은 거친 평원에서 바람 좇아 사냥하네 / 逐風鷹犬獵平蕪
호쾌한 기운이 천하를 삼킨 것이 고금의 역사 / 古今豪氣呑夷夏
필마로 시나 읊다니 부유인 내 신세 부끄러워 / 匹馬吟詩愧腐儒
성인이 당일 여기에서 용으로 날아오른 뒤에 / 聖人當日此龍飛
신경의 터를 잡아서 만세의 기틀을 마련했네 / 得卜神京萬世基
대가가 주기적으로 순행하며 머무시는 곳 / 大駕時巡駐淸蹕
군공이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시를 짓는다오 / 群公景從賦新詩
북쪽 부락은 쾌청한데 남쪽은 비가 주룩주룩 / 北隣晴了南隣雨
늦여름 유월 날씨가 마치 팔월 중추 같네 / 六月天如八月時
괴이해라 하늘은 왜 이렇게 변화가 심한지 / 怪底上蒼多變化
연경은 지금 무더위로 한창 푹푹 찔 터인데 / 燕山暑氣正蒸炊
종전(椶殿)의 대회(大會)
밝은 조정 활짝 열고 정종을 나열하였나니 / 大闢明廷列鼎鍾
종전이 우뚝 솟구쳐서 높은 성벽 압도하네 / 巍巍椶殿壓崇墉
씨름을 하는 무부는 씩씩하기가 범과 같고 / 武夫角力雄如虎
공중을 휘젓는 사마는 선명하기 용과 같네 / 詐馬跑空炳若龍
대가를 받들어 모시는 일색의 의관이요 / 一色衣冠扶鳳輦
타봉을 바쳐 올리는 팔진미 성찬이라 / 八珍羞膳進駝峯
바라건대 태평의 낙을 위에서 길이 누리면서 / 願君永享升平樂
집집마다 여러모로 표창받을 수 있기만을 / 比屋多方儘可封
난경에서 송별 시 한 수를 민급암(閔及菴)의 시운을 써서 짓다
성 동쪽 이슬 젖은 새벽의 전별연 / 曉餞城東露浥筵
난경 백리에 펼쳐진 멋들어진 풍경 / 灤京百里好風煙
어느 집이나 준마에다 능란한 활 솜씨요 / 家家駿馬便弧矢
곳곳마다 고루에 요란한 풍악 소리로세 / 處處高樓鬧管絃
유보가 살던 집엔 구름만 골에 가득하고 / 劉保舊居雲滿谷
이릉의 유적지는 잡초만 하늘에 잇닿았네 / 李陵遺迹草連天
급암은 옛것을 좋아하여 시가 무적이니 / 及菴好古詩無敵
이 장관을 놓치지 않고 자세히 전하렷다 / 壯觀應須子細傳
난경을 출발하며
세조가 천명을 받아 즉위하신 곳 / 世祖膺圖處
유공이 계획하여 도읍을 건설했네 / 劉公定鼎謀
하늘의 북쪽 끝에 위치한 고원 지대에서 / 地高天北極
물이 동으로 흐르듯 행사가 모두 끝났네 / 事往水東流
구름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비로 쏟아지고 / 雲出便行雨
가을을 기다릴 것도 없이 서리가 날리누나 / 霜飛那待秋
유자가 입는 옷 원래 얇게 만들어져서 / 儒衣元自薄
빨리 떠나야지 머물러 있을 수가 없네 / 早去不堪留
[주D-001]거용관(居庸關) : 거용은 연경(燕京)에 있는 산 이름인데, 험준하기로 이름이 높다.
[주D-002]태평한……나란히 : 그동안에는 거용관으로 가는 길이 비좁기만 하였는데, 지금은 도로 공사를 하여 수레가 서로 비킬 수 있을 정도로 큰길이 되었다는 말이다.
[주D-003]임금님……왕래한다오 : 난 경(灤京)은 지금의 내몽고(內蒙古) 지역에 해당하는 난하(灤河) 북안(北岸)의 개평부(開平府)에 위치하였는데, 상도(上都) 혹은 난도(灤都)라고도 한다. 원 세조(元世祖) 때에 도읍으로 삼아 대도(大都)인 연경(燕京)과 함께 양도(兩都)로 일컬어졌으며, 1년에 한 번씩 천자가 순행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주D-004]이릉대(李陵臺) : 이 릉의 묘(墓)를 말한다. 이릉은 한 무제(漢武帝) 때에 기도위(騎都尉)의 신분으로 흉노(匈奴)를 정벌하기 위해 5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출전했다가, 8만 기병(騎兵)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8일 동안이나 밤낮으로 계속 싸워 승리했으나,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화살과 식량도 다 떨어진 끝에 흉노의 선우(單于)에게 투항한 뒤, 그곳에서 20여 년 동안이나 우대를 받으며 장가들어 살다가 병사(病死)하였다. 《漢書 卷54 李廣蘇建傳》
[주D-005]비장(飛將)은……못했어라 : 비 장은 흉노가 ‘한나라의 비장군〔漢之飛將軍〕’이라고 부르면서 두려워했던 명장 이광(李廣)을 말한다. 그는 한 무제 때에 흉노와의 전투에서 누차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그의 부하 장수들 모두가 제후로 봉해졌는데도 정작 그만은 끝내 높은 관작에 봉해지지 못했으므로, 운명의 탓으로 돌리며 탄식을 금하지 못했다는 ‘이광미봉(李廣未封)’의 고사가 전한다. 이릉은 이광의 손자이다. 《史記 卷109 李將軍列傳》
[주D-006]상개(爽塏) : 시원스럽게 툭 트인 건조한 고원 지대를 말한다.
[주D-007]사해(四海)의……것 : 온 세상이 하나로 통일되어 중국의 문화권에 편입된 것을 말한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8장에 “지금 온 천하가 같은 수레를 타고 같은 문자를 쓰게 되었다.〔今天下 車同軌 書同文〕”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8]성인(聖人)이……마련했네 : 세조(世祖)가 개평(開平)에서 즉위한 뒤에 국호를 대원(大元)이라 하고, 연경을 대도(大都)로, 개평을 상도(上都)로 삼았다는 말이다. 신경(神京)은 수도를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상도를 의미한다.
[주D-009]종전(椶殿) : 원나라의 상도(上都)에 있던 별전(別殿)의 통칭이다.
[주D-010]공중을……같네 : 사 마연(詐馬筵)에서 화려하게 장식한 말이 허공에 앞발을 들고서 재주를 부리는 모양을 묘사한 것이다. 몽고 풍속의 일종인 마희(馬戱)를 사마(詐馬)라고 한다. 황제가 상도에 도착한 뒤에 보통 6월의 길일을 택해서 숙위(宿衛)하는 대신(大臣)과 근시(近侍)에게 말을 한껏 치장하여 묘기를 보이게 하고 각종 연희를 행하면서 사흘 동안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고 파하는데, 이를 사마연이라고 한다.
[주D-011]일색의(一色衣) : 사 마연과 같은 원나라 조정의 대연회 때에는 고관들이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붉은색 관복을 착용하고, 어깨와 등과 가슴 부위에 큰 구슬을 꿰어 장식하곤 하였다. 그 관복의 몽고어인 jisun을 음역(音譯)하여 지손(只孫), 지손(只遜), 혹은 제손(濟遜)이라고 하였으며, 번역하여 일색의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마연을 지손연(只孫筵)이라고도 한다.
[주D-012]타봉(駝峯) : 낙타의 등 위에 불룩 솟은 육봉(肉峯)으로, 옛날에 매우 진귀한 식품으로 여겼다고 한다.
[주D-013]집집마다……있기만을 : 한 (漢)나라 육가(陸賈)의 《신어(新語)》〈무위(無爲)〉에 “요순의 백성들은 집집마다 표창을 해 주어야 될 사람이 나오는 데 반하여, 걸주의 백성들은 집집마다 죽여야 될 자들이 나오니, 이는 임금의 교화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堯舜之民 可比屋而封 桀紂之民 可比屋而誅者 敎化使然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4]민급암(閔及菴) : 급암은 민사평(閔思平 : 1295~1359)의 호이다.
[주D-015]유보(劉保) : 미상이다. 황태자에서 폐위되어 제음왕(濟陰王)으로 있다가 환관들에 의해 옹립되어 즉위한 후한(後漢) 순제(順帝)의 성명이기도 하나, 이 시에는 해당되지 않을 듯싶다. 아마도 오자(誤字)가 아닐까 한다.
[주D-016]이릉(李陵) : 한 (漢)나라 장군 이광(李廣)의 손자로 자는 소경(少卿)이다. 무제(武帝) 때에 기도위(騎都尉)의 신분으로 흉노(匈奴)를 정벌하기 위해 5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출전했다가, 8만 기병(騎兵)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8일 동안이나 밤낮으로 계속 싸워 승리했으나,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화살과 식량도 다 떨어진 끝에 흉노의 선우(單于)에게 투항한 뒤, 그곳에서 20여 년 동안이나 우대를 받으며 장가들어 살다가 병사(病死)하였다. 《漢書 卷54 李廣蘇建傳》
[주D-017]급암은……무적이니 : 급 암이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노력한 결과 시의 대가가 되었다는 말이다. 《논어》〈술이(述而)〉에 “나는 나면서부터 저절로 잘 알게 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서 배운 사람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18]유공(劉公) : 유병충(劉秉忠)을 가리킨다. 그가 원 헌종(元憲宗) 6년(1256)에 지금의 내몽고 지역에 길지를 택해서 개평성(開平城), 즉 뒤의 상도(上都)를 건설하였다. 《元史 卷157 劉秉忠列傳》
아침 일찍 떠났다가 길을 잃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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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는 나 자신도 웃음이 나와 / 失道自堪笑
한평생을 기로에서 헤매곤 한다니까 / 一生岐路中
단지 길을 잘못 든 것이 멀지 않아서 / 只緣迷不遠
궁도곡의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뿐 / 未至哭途窮
공자도 욕속을 경계했건만 / 尼父戒欲速
지금은 이 말이 진부하다나 / 斯言今謂陳
빨리 가려다가 오히려 뒤에 처지다니 / 早行還落後
날이 밝길 기다린 사람에게 정말 부끄러워 / 深愧遲明人
[주D-001]궁도곡(窮途哭) : 막 다른 길에서 통곡한다는 뜻으로, 삼국 시대 위(魏)나라 완적(阮籍)이 울분을 달래려고 혼자 수레를 타고 나갔다가 길이 막히면 문득 통곡하고 돌아왔다고 하는데, 보통 곤경에 떨어져서 희망이 전무한 상태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晉書卷49 阮籍列傳》
[주D-002]공자도 욕속(欲速)을 경계했건만 : 무 슨 일이든 급하게 하려다 보면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논어》〈자로(子路)〉에 “급히 하려고 하지 말고, 조그마한 이익을 보려 하지 마라. 급히 하려다 보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조그마한 이익을 보려다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利則大事不成〕”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중부(仲孚) 사의(司議)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형인 정 판사(鄭判事)에게 증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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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슬프다 사림의 옥수가 그만 쓰러지다니 / 嗟嗟玉樹倒詞林
시주로 당년에 얼마나 뜻이 서로 맞았던가 / 詩酒當年託契深
어째서 한창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렸는고 / 豈倚少年仍得疾
어쩌면 걱정이 많아서 마음을 상했는지도 / 却因多慮故傷心
곽박에게 꿈속에서 붓을 돌려주기도 전에 / 未還郭璞夢中筆
왕돈에게 허리춤의 금을 넌지시 가리켰네 / 謾指王忳腰下金
하늘 끝에서 다시 못 보는 처지는 똑같지만 / 同是天涯不重見
영원의 낙조의 한이 더욱 침중하기만 하여라 / 鴒原落照恨沈沈
[주C-001]중부(仲孚) : 정포(鄭誧 : 1309〜1345)의 자이다.
[주D-001]곽박(郭璞)에게……전에 : 정 포가 젊은 나이로 문단에서 명성을 날리면서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는 말이다. 남조(南朝)의 문학가 강엄(江淹)이 송(宋)ㆍ제(齊)ㆍ양(梁) 3조(朝)에 걸쳐서 문명(文名)을 떨쳤는데, 만년에 이르러 꿈속에서 곽박이라고 자칭하는 이에게 오색필(五色筆)을 돌려주고 난 뒤로는 문재(文才)가 감퇴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南史 卷59 江淹列傳》
[주D-002]왕돈(王忳)에게……가리켰네 : 정 포가 갑자기 요절했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왕돈이 객사에서 병으로 신음하는 서생(書生)을 보고 불쌍히 여겨 간호를 해 주었는데, 서생이 “허리춤에 있는 황금 10근을 줄 터이니 내가 죽은 뒤에 묻어 주면 좋겠다.〔腰下有金十斤願以相贈 死後乞藏骸骨〕”라고 부탁한 뒤에 성명을 물어볼 사이도 없이 절명하였으므로, 왕돈이 황금 1근으로 장례 비용을 마련하고 나머지 황금은 관 속에 넣어서 함께 묻어 주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81 獨行列傳王忳》
[주D-003]영원(鴒原)의……하여라 : 인 생의 황혼에 접어든 정 판사(鄭判事)의 입장에서 젊은 동생의 죽음을 접하고 느끼는 슬픔은 가정이 느끼는 슬픔보다 훨씬 더 깊고 클 것이라는 말이다. 영원은 우애 있는 형제를 뜻하는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의 “저 할미새 들판에서 호들갑 떨 듯, 급할 때는 형제들이 서로 돕는 법이라오. 항상 좋은 벗이 있다고 해도, 그저 길게 탄식만을 늘어놓을 뿐이라오.〔鶺鴒在原 兄弟急難 每有良朋 況也永歎〕”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추(中秋)의 밤에 앉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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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 밤이 되면 짓는 몇 편의 시 / 年年此夜幾篇詩
풍로가 싸늘하게 얇은 옷 속에 스며드네 / 風露凄迷透薄衣
이미 예정된 고달픈 삶 언제나 나그네 신세 / 已分勞生長作客
가절을 만날 때마다 더욱 돌아가고픈 생각 / 每逢佳節倍思歸
부운이 달님을 가리다니 이 무슨 심보인고 / 浮雲礙月底心性
미주가 동이 그득하면 시비도 없어지련마는 / 美酒盈樽無是非
생각건대 고향에선 바야흐로 추수를 하고 / 想得故山秋正熟
자손들이 담소하며 어버이 모시고 있겠지 / 兒孫笑語侍庭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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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의 교제는 예로부터 궁해지기 쉬운 것 / 勢利從來道易窮
시종일관 담담하게 사귀는 이들이 또 있으랴 / 淡交誰復有初終
한 시대의 모범 생각나네 춘헌 어르신 / 一時模楷懷春叟
천 수의 문장 그리워라 졸재 노인장 / 千首文章憶拙翁
문정도 옛날과 달리 적적하기만 한데 / 寂寂門庭非舊日
천지에 또 망망하게 가을바람 불어오네 / 茫茫天地又秋風
그중에서 정자가 가장 나이 어리니 / 箇中鄭子最年少
이 한은 우리가 모두 품을 수밖에요 / 此恨知公與我同
[주C-001]평생에……부쳐 드리다 : 졸재(拙齋)는 최해(崔瀣 : 1287~1340)의 호이고, 춘헌(春軒)은 최문도(崔文度 : ?~1345)의 호이고, 치암(恥菴)은 박충좌(朴忠佐 : 1287~1349)의 호이다. 급고당(汲古堂)은 미상이다.
[주D-001]시종일관……있으랴 : 참고로 《장자》〈산목(山木)〉에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단술과 같다.〔君子之交淡若水 小人之交甘若醴〕”라는 말이 나온다.
의령(宜寧)의 남 동년(南同年)이 조정에 복관(復官)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지난날의 추억을 서술하며 애오라지 단편을 지어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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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령에 함께 급제하고 근무도 함께 하였는데 / 妙齡同榜又同僚
동쪽 서쪽 세상일에 어느새 세월이 멀찌감치 / 世務東西歲月遙
극위에서 기예를 겨룬 것도 이제는 지나간 꿈 / 戰藝棘闈成一夢
송경의 이웃에 터를 잡고 어울리지도 못하였소 / 卜隣松逕阻相邀
십 년 동안 운산이 고와를 제공하였다면 / 雲山十載供高臥
오경의 풍우가 조조에 자욱할 것이외다 / 風雨五更迷早朝
고금에 걸쳐 영웅의 마음속 생각을 요량해 보건대 / 料得英雄今古意
필경은 어부와 나무꾼의 한이 남아 있으리라 / 到頭遺恨在漁樵
[주D-001]극위(棘闈) : 경비가 삼엄한 과거 시험장을 말한다.
[주D-002]송경(松逕) : 소나무 숲 속의 오솔길이라는 말로, 야인(野人)의 거처를 뜻한다.
[주D-003]십 년……것이외다 : 그 동안에는 산촌에서 유유자적하며 한가롭게 세월을 보낼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새벽에도 일찍 조회에 나가야 하는 만큼 편히 누워 있지 못하고 급히 서둘러야 할 것이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고와(高臥)는 벼슬하지 않고 시골에 물러나 편히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오경(五更)은 동트는 새벽 시간이고, 조조(早朝)는 아침 일찍 열리는 조회를 뜻한다.
유 정언(兪正言)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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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문물 자랑하는 오래된 송도에서 / 千年文物舊松都
오늘날 활로 초빙하며 석유를 일으켰네 / 此日弓招起碩儒
백발의 낭관을 지금은 더욱 보기 드무니 / 白髮郞官今更少
선생은 부디 수염을 검게 물들이지 마오 / 先生且莫染髭須
[주D-001]오늘날……일으켰네 : 조 정에서 유감스럽게도 겨우 빙사(聘士)하는 예를 써서 거유(巨儒)를 불러들였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20년에 “옛날 우리 선대의 군주가 사냥을 할 적에는 깃발을 가지고 대부를 불렀고, 활을 가지고 사를 불렀고, 가죽 모자를 가지고 산지기를 불렀다.〔昔我先君之田也 旃以招大夫 弓以招士 皮冠以招虞人〕”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백발의……마오 : 백 발랑(白髮郞)의 고사를 인용하여 익살을 부린 것이다. 한 무제(漢武帝)가 낭서(郎署)에 와서 머리칼과 수염이 모두 하얗게 센 안사(顔駟)를 보고는 불쌍하게 생각하여 언제 낭관이 되었느냐고 묻자, 안사가 문제(文帝) 때부터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무제가 늙도록 불우하게 된 이유를 묻자, 안사가 “문제는 문(文)을 좋아했는데 저는 무(武)를 숭상했고, 경제(景帝)는 노인을 좋아했는데 저는 아직 젊었고, 폐하는 젊은이를 좋아하는데 저는 이미 늙었습니다. 그래서 삼세(三世)에 걸쳐서 불우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文選 卷8 思玄賦註》
백화보(白和父) 간의(諫議)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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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황봉 마시고 술에 곤죽이 되었나니 / 日飮黃封醉似泥
때때로 말에 오르면 닭이 홰에 오르려 했다네 / 時時騎馬欲鷄棲
한자의 쟁신론도 이 세상에 없는 터에 / 世無韓子爭臣論
온공의 간원제를 누가 보려고나 할까 / 誰見溫公諫院題
[주C-001]백화보(白和父) : 화보는 백문보(白文寶 : ?~1374)의 자이다.
[주D-001]황봉(黃封) : 황봉주(黃封酒)의 준말로, 관청에서 빚어 황색 비단이나 종이로 봉한 술이다.
[주D-002]때때로……했다네 : 관 청에서 술을 마시다가 자신의 집무실에 가려고 말에 올라타면 닭이 홰에 올라가 쉴 저녁 무렵이 되기도 했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남의 눈을 피하여 간원의 초고를 사른 뒤에, 말에 올라타고 돌아가면 닭이 홰에 오르려 했네.〔避人焚諫草 騎馬欲鷄棲〕”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6 晩出左掖》
[주D-003]한자(韓子)의 쟁신론(爭臣論) : 한자는 당나라 한유(韓愈)에 대한 경칭이다. 당 덕종(唐德宗) 때 간의대부(諫議大夫) 양성(陽城)이 시사에 대해서 제대로 직간(直諫)을 올리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간관(諫官)의 도리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주D-004]온공(溫公)의 간원제(諫院題) : 송 나라 사마광(司馬光)이 지은 〈간원제명기(諫院題名記)〉를 말한다. 이 글은 간원에 간관의 이름을 쓴 기문으로, 역시 간관의 중한 사명을 강조하는 짤막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온공은 온국공(溫國公)의 준말로, 사마광의 봉호(封號)이다.
홍 총관(洪摠管)이 회안(淮安)의 둔전관(屯田官)으로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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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가 강 머리에서 화선을 대기시킨 가운데 / 候吏河頭艤畫船
고인이 문밖에 송별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네 / 故人門外敞離筵
죽부(竹符) 나눈 이천석과 응당 같으리니 / 應同剖竹二千石
벼 삼백 단 거두는 걸 부끄럽게 여길 리야 / 肯愧取禾三百廛
지역은 강회에 접하여 좋은 경치가 넉넉하고 / 地接江淮饒景槪
인망은 낭묘를 기울여 유능한 인재 고대하네 / 望傾廊廟佇才賢
친한 벗이 도성에서 많이 그리워할 것이니 / 親交輦下多相憶
때때로 술값 부치는 일 부디 잊지 마시기를 / 莫忘時時寄酒錢
[주D-001]죽부(竹符)……리야 : 신 분이 군수(郡守)와 동급의 고위 관원으로 승격된 만큼 기분이 좋아서라도 둔전의 일을 맡은 것을 창피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한나라 때 지방 장관을 내보낼 적에는 죽부(竹符)를 나눠 주어 신표(信標)를 삼게 하였는데, 군수의 봉록은 연봉 2000석이었다. 그리고 《시경》〈위풍(魏風) 벌단(伐檀)〉에 “심지 않고 수확하지 않으면, 어떻게 벼 삼백 다발을 거두리오.〔不稼不穡 胡取禾三百廛兮〕”라는 말이 나온다.
삼장(三藏)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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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역마 타고 길을 떠나려다 보니 / 因今乘馹去
옛날 기수하고 왔던 일이 떠오르네 / 憶昔棄繻來
우정의 관리에게 한마디 해 드릴까 / 爲報郵亭吏
서생을 절대 우습게보면 안 되느니 / 書生豈小哉
삼장은 불경을 바리로 싣고 가고 / 三藏馱經去
나는 지금 책력을 반포하러 가고 / 吾今送曆來
때를 알리는 일과 가르침을 펴는 일 / 授時幷布敎
모두 왕사이니 더욱 공경히 행해야지 / 王事更欽哉
[주D-001]지금……떠오르네 : 가 정이 1346년(충목왕2)에 고려에 반삭(頒朔)하기 위해 연경을 떠나려다 보니, 옛날 일개 서생의 신분으로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 시험을 보러 왔던 때가 새삼 생각난다는 말이다. 기수(棄繻)는 비단 종이를 둘로 나눠서 만든 증명서를 버렸다는 뜻으로, 한(漢)나라 종군(終軍)의 고사이다. 종군이 젊어서 장안(長安)으로 갈 적에 걸어서 관문에 들어서니, 그곳을 지키는 관리가 수(繻)를 지급하면서 다시 돌아올 때 맞춰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종군이 앞으로 그런 증명서는 필요 없을 것이라면서 버리고 떠났는데, 뒤에 종군이 알자(謁者)가 되어 사신의 신분으로 부절(符節)을 세우고 군국(郡國)을 돌아다닐 적에 그 관문을 지나가자, 옛날의 관리가 알아보고는 “이 사자는 바로 예전에 증명서를 버린 서생이다.〔此使者乃前棄繻生也〕”라고 말했다 한다. 《漢書 卷64下 終軍傳》
[주D-002]삼장(三藏) : 삼장법사(三藏法師)의 명호를 하사받은 승려 조의선(趙義旋)을 가리킨다. 그는 조인규(趙仁規)의 아들로 순암(順菴) 혹은 선공(璇公)으로 많이 일컬어졌다.
녹(鹿)이라고 표시해 놓은 움집을 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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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에 숨긴 사슴 찾아볼까 하니 / 擬尋藏窖鹿
수주인과 비슷할까 켕기기도 하고 / 恐類守株人
역참의 관리가 이상하게도 보겠기에 / 郵吏應相怪
난간에 기대어 한번 씩 웃고 말았네 / 憑欄一笑新
[주D-001]구덩이에……하고 : 남 이 애써 잡아서 감춰 놓은 사슴을 몰래 가지려고 하는 것은 요행수를 바라는 짓이나 진배없으니 하지 않겠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사슴을 잡은 나무꾼이 남이 볼까 봐 얼른 구덩이 속에 숨기고 파초 잎으로 살짝 덮어 놓고서 혼자 기뻐하다가, 나중에는 그 장소를 잊어버리고는 꿈을 꾸었던 것이 아닌가 여기고 말았는데,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근거로 해서 사슴을 찾아내자, 나중에 둘이 소송을 벌이면서 꿈 얘기를 주제로 다투었다는 심초복록(尋蕉覆鹿)의 설화가 《열자(列子)》〈주목왕(周穆王)〉에 상세히 나온다. 또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을 적에 토끼 한 마리가 달아나다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서 목이 부러져 죽자, 이때부터 일손을 놓고 그 그루터기만 지켜보며 토끼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으나 토끼는 끝내 다시 오지 않았다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가 《한비자(韓非子)》〈오두(五蠹)〉에 나온다.
신산배면도(神山背面圖)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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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이 얼굴과 같다는 / 人心如其面
이 말이 예로부터 전해 오나니 / 此言傳自古
얼굴 보고도 마음을 보지 못한다면 / 見面不見心
차라리 돌아보지 않느니만 못하리라 / 不如不廻顧
의주(義州) 신루(新樓)에 차운하여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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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 유유해라 누대에 기댄 사람 / 身世悠悠人倚樓
이 누대 더구나 나라의 서쪽 끝에 / 此樓更在國西頭
한번 보소 객지 생활 빠른 세월 속에 / 請看客裏光陰疾
곤곤히 흐르는 누대 아래 이 장강을 / 樓下長江袞袞流
[주D-001]누대에 기댄 사람 : 참 고로 당나라 시인 조하(趙嘏)의 〈조추(早秋)〉 시에 “몇 점 남은 별빛 아래 기러기는 변방을 질러가고, 한 가락 피리 소리 속에 사람은 누대에 기대 있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두목(杜牧)이 이 표현을 좋아한 나머지 그를 ‘조의루(趙倚樓)’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唐摭言 知己》
우인(友人)에게 달력을 기증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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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지난 십 년의 이별 / 倏爾十年別
표연히 떠난 만리 여행길 / 飄然萬里行
애오라지 새 달력 하나로 / 聊將新曆日
멀리 벗에게 정을 부치오 / 遠寄故人情
차운하여 장눌재(張訥齋)가 거처하고 있는 야운장(野雲莊)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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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운장은 세 칸짜리 오두막이지만 / 三間白屋野雲莊
황량의 꿈속에서는 여기가 정사당 / 一夢黃粱政事堂
장한 뜻을 편할 대로 꺾을 수 있으리오 / 壯志豈能隨手縮
높은 이름 죽어서도 없어지지 않으리라 / 高名終不與身藏
솔 심어 오래되니 그늘이 이제 겹치고 / 栽松歲久陰初合
벼농사도 기름진 논에 이삭이 다시 튼실 / 種稻田腴穟更長
초야에서 나라 잊으면 우리 무리 아닌지라 / 畎畝忘君非我輩
지팡이 짚고 뒷동산 올라 자주 바라본다오 / 杖藜頻上後山岡
[주C-001]장눌재(張訥齋) : 눌재는 장항(張沆 : ?~1353)의 호이다.
[주D-001]황량(黃粱)의 꿈속 : 노 생(盧生)이 도사(道士) 여옹(呂翁)의 베개를 베고 잠을 자는 동안 한평생의 부귀영화를 한껏 누렸는데, 잠을 깨고 보니 아직도 메조밥〔黃粱〕이 덜 되었더라는 꿈 이야기로, 한단지몽(邯鄲之夢)과 같은 말이다. 인생의 부귀영화가 꿈처럼 허망한 것을 가리킨다.
차운하여 안 조마(安照磨)가 요양(遼陽)으로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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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지금 홀연히 멀리 떠나오만 / 君今忽遠適
나도 타향살이에는 이력이 났소 / 我亦慣僑居
벼슬길은 이별도 많게 마련이고 / 宦路多離別
사람의 속성 역시 헐뜯기 일쑤라오 / 人情足毁譽
맑은 관직은 봉록이 적은 법이지만 / 官淸須薄俸
노친에게는 평안 소식 전하겠지요 / 親老要安書
감히 헌개를 머물게 할 수 있으리까 / 敢望留軒蓋
민간에 체류해서 매우 부끄럽소이다 / 深慙滯里閭
[주D-001]감히……부끄럽소이다 : 가정이 민간인 신분인 자기 집에 그를 머물러 있게 하기가 부끄럽다는 말이다. 헌개(軒蓋)는 고관이 타는 수레를 말한다.
병술년(1346, 충목왕2) 제야(除夜)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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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의 벼슬살이 몇 번이나 봄을 보내면서 / 游宦皇都幾見春
세시마다 언제나 북당의 모친을 생각했네 / 歲時常憶北堂親
가련타 오늘 저녁 등불 앞의 그림자여 / 可憐此夕燈前影
당년에 대궐 아래 있던 몸과 똑같구나 / 正是當年闕下身
초각과 황각은 귀한 점에서 응당 같겠지만 / 草閣應同黃閣貴
금의보다는 채의의 새 옷이 훨씬 좋은걸 / 錦衣爭似綵衣新
내일 아침엔 오십이라 명을 아는 나이이니 / 明朝五十行知命
동서남북 떠도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 / 莫作東西南北人
[주D-001]초각(草閣)과……좋은걸 : 어 버이를 모시는 초당의 효(孝)와 국가를 경륜하는 승상부의 충(忠)을 가치 면에서 따진다면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똑같이 귀하겠지만, 가정의 입장에서는 조정에서 현달한 고관의 복장을 착용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색동옷을 입고 어버이에게 재롱을 떠는 것이 훨씬 좋다는 말이다. 한나라 때에 승상이 집무하는 청사의 문은 황색으로 칠했다. 춘추 시대 초나라의 은사(隱士)인 노래자(老萊子)가 70의 나이에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었다는 고사가 있다. 《初學記 卷17 引 孝子傳》 금의(錦衣)는 현귀(顯貴)의 화려한 복장을 뜻한다.
[주D-002]오십이라……나이이니 : 《논어》〈위정(爲政)〉에 “나는 나이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3]동서남북 떠도는 사람 : 《예기》〈단궁 상(檀弓上)〉에 “지금 나는 동서남북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다.〔今 丘也東西南北之人也〕”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정해년(1347, 충목왕3) 정단(正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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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바로 오늘은 중국의 도성에서 / 去年此日在皇州
조복에 홀 쥐고 반열 따라 면류에 절했었지 / 袍笏隨班拜冕旒
어버이 뵈러 온 고향 땅 너무도 적막하다만 / 覲省桑鄕殊寂寞
북당에 초주 올리면 됐지 또 무슨 걱정이랴 / 北堂椒酒又何憂
[주D-001]초주(椒酒) : 새해 아침에 다례(茶禮)를 지내고 나서 웃어른에게 축수(祝壽)하며 올려 하례하는 술 이름이다.
오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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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는 / 五十而知命
성인의 말씀이 느껴지는 금년 / 今年感聖言
구구하게 한 자 한 치를 다투느라 / 區區爭尺寸
죽을 고생을 해 가며 허비한 아침저녁 / 役役度晨昏
그저 이 한 몸 위하는 계책일 뿐 / 祗是爲身計
언제 나라 은혜 갚은 적 있었던가 / 何曾報國恩
지금부터는 요절했다 말하지 않을 테니 / 從玆不稱夭
만 가지 일을 한잔 술에 부쳐 보련다 / 萬事付山尊
오십이 되도록 알려짐이 없으니 / 五十而無聞
성인의 지적이 부끄러운 금년 / 今年愧聖言
참으로 손에 서툰 문장을 가지고서 / 文章眞手拙
결국은 이욕에 마음이 어두워졌다네 / 利欲竟心昏
자리를 훔쳐 빈번히 녹봉을 받고 / 竊位頻霑祿
온 집안이 거저 은혜를 입었을 뿐 / 渾家謾被恩
후생은 정말 두려워해야 할 존재 / 後生誠可畏
한 바가지 막걸리 함께 들려 할는지 / 肯伴擧匏尊
[주D-001]오십이……금년 : 《논 어》〈자한(子罕)〉에 “후생을 두렵게 여겨야 할 것이니, 앞으로 후생들이 지금의 나보다 못하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40세나 50세가 되도록 세상에 알려짐이 없는 사람이라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하겠다.〔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신년(新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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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왕래도 끊어 버린 신년의 눈보라 / 新年風雪斷人來
사흘 동안 닫힌 채 열리지 않는 사립문 / 三日山扉掩不開
납주에 흰개미 둥둥 방 안에 봄기운 가득 / 臘酒浮蛆春滿室
색동옷 입고 당상에서 넘치게 올리는 술잔 / 綵衣堂上獻深杯
이번 길에 귀거래사 아예 읊고 싶어 / 此行眞欲賦歸來
승경에 띳집 지으면 얼마나 좋을까 / 便好茅堂勝處開
나무뿌리 반쯤 잘라 그대로 베개 삼고 / 半斷樹根仍作枕
냇물 둥글게 흘려보내 술잔 둥둥 띄우고 / 曲防溪水爲流杯
[주D-001]납주(臘酒)에 흰개미 둥둥 : 설에 마시기 위해 섣달에 빚어 놓은 술이 막 익어서 금방 걸러 냈을 때 술의 표면에 흰개미나 구더기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 쌀알이 떠 있는 것을 말한다.
정 대언(鄭代言)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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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소원이 조각배 타고 노니는 것인데 / 百年心事一扁舟
백발이 되어 돌아왔으니 내가 봐도 우스워 / 自笑歸來已白頭
그럼에도 황조의 옥당을 꿈꾸고 있다니 / 猶有皇朝玉堂夢
지금 몸이 적화주에 있는 줄도 모르고서 / 不知身在荻花洲
백화보(白和父)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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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저문 강산에서 재현한 옛 놀이 / 歲晩江山復舊遊
이제부턴 단지 고깃배만 타고 싶어 / 從今直欲理漁舟
선생은 나에 비해 연령과 용모가 젊으니 / 先生比我年顔少
흰머리 되도록 노력하여 시대 바로잡도록 / 努力匡時到白頭
홍양파(洪陽坡)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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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거 선생은 의리를 최고로 여길 뿐 / 提擧先生義最高
가문을 가지고 호사를 다투지 않는 분 / 不將門戶鬪奢豪
몇 년 동안 병가도 아마 자주 냈겠지 / 料應移病年來數
시주는 원래 조회에 게으른 법이니까 / 詩酒從來懶笏袍
[주D-001]제거(提擧) 선생은……분 : 제 거 벼슬의 홍언박(洪彦博)이 물질적인 부(富) 대신 의리와 같은 정신적인 가치를 더 중시한다는 말이다. 홍언박은 남양부원군(南陽府院君) 홍규(洪奎)의 손자이고, 삼사사(三司使) 홍융(洪戎)의 아들이며,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나유(羅裕)의 외손이고, 찬성사(贊成事) 권준(權準)의 사위이다. 옛날 중국의 진(晉)나라 왕개(王愷)와 석숭(石崇)의 가문이 호사를 서로 다투었는데, 왕개가 무제(武帝)로부터 하사받은 2척(尺)짜리 산호(珊瑚) 한 개를 석숭에게 자랑하자, 석숭이 철여의(鐵如意)로 때려 부수고는 그 대신 3척짜리 산호 여섯 개를 집에서 가져와 보여 주니 왕개가 망연자실했다는 고사가 《진서(晉書)》 권33 석숭열전(石崇列傳)에 나온다.
남촌(南村)의 박 판서(朴判書)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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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서는 유수를 보고 누워서는 구름을 보고 / 行看流水臥看雲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유독 그대가 생각났소 / 得句時時獨憶君
출처는 원래 우연히 그런 것일 뿐이니 / 出處從來偶然爾
어찌 북산의 글을 돌려 새기게 해서야 / 爭敎移勒北山文
[주D-001]북산(北山)의 글 : 남 조(南朝) 송(宋)의 공치규(孔稚珪)가 지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말한다. 공치규가 북산(北山)에서 함께 은자 생활을 하다가 변절을 하고 벼슬길에 나선 주옹(周顒)을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산신령의 이름을 가탁하여 신랄하게 풍자하면서 다시는 그를 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김경선(金敬先) 대언(代言)에게 축하하는 시를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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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할 데 없어라 내상의 영광 / 內相榮無比
끝이 없으시리 고당의 기쁨 / 高堂喜莫涯
여기 산촌은 인사가 끊어진 곳 / 山村人事絶
축하 시 오지 않아 괴이했겠지 / 應怪賀書遲
조사(詔使) 김 성사(金省舍)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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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노닌 십 년 / 西游十載不還鄕
성명 세 글자 향기롭게 홀연히 미원으로 / 忽入薇垣姓字香
절역에 와서 천자의 조서도 반포하고 / 玉詔頒恩來絶域
고당에 올라 색동옷 입고 축수도 하리 / 綵衣稱壽上高堂
[주C-001]김 성사(金省舍) : 원나라 중앙 관서에 근무한 김씨 성의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데 상세하지 않다. 성사는 성(省)의 사인(舍人)이라는 뜻이다.
[주D-001]미원(薇院) : 원나라 행중서성(行中書省)의 별칭이다.
기 참정(奇參政)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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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친 연세 팔순에 비로소 돌아온 길 / 慈親八十始來歸
혼정신성 그 뜻을 어떻게 어길 수야 / 定省晨昏志莫違
꿈속에서도 홍진이 백발을 날릴 텐데 / 夢裏紅塵吹白髮
가정 남쪽 물가에 낚시터가 있소이다 / 稼亭南畔有漁磯
[주D-001]혼정신성(昏定晨省) : 어 버이를 정성껏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곡례 상(曲禮上)〉에 “자식이 된 자는 어버이에 대해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려야 하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 인사를 올려야 한다.〔冬溫而夏凊昏定而晨省〕”라는 말이 나온다.
차운하여 기 참정의 초정(草亭)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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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베풀 심산으로 새로 지어 놓은 정자 / 爲緣淸讌作新亭
봉이 춤추고 용이 서린 지형을 보듬었네 / 鳳舞龍蟠抱地形
산이 가까워 이내가 마치 장막을 두른 듯 / 山近煙嵐濃似幄
텅 빈 처마엔 꽃들이 겹으로 병풍을 쳤네 / 簷虛花卉疊成屛
지금부터 멋진 모임 송악 기슭에 전해질 터 / 從今勝集傳松麓
예전부터 국화 뜰에 고상한 생각을 두셨지요 / 自昔高懷在菊庭
분분한 이 세상일은 응당 귀를 막으시고 / 世事紛紛當掩耳
손이 오면 통음하고 부디 깨지 마시기를 / 客來痛飮不須醒
홍양파(洪陽坡) 제거(提擧)가 작약(芍藥)을 감상한 시에 차운하여 화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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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군 깃발 거두고서 돌아가는 걸 보았는데 / 曾見東君卷旆廻
요염한 꽃 남겨 두어 정원 가득 피게 했군 / 却留妖艶滿園開
벼슬길에서 그 누가 꽃구경 함께 해 줄까 / 宦途誰是看花伴
아무리 불러도 기꺼이 오려 하지 않을걸 / 縱使招呼不肯來
꽃 찾아 통음하고 꽃 꽂고 돌아오는 것은 / 尋花痛飮戴花廻
금년엔 다시 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 / 爲是今年不再開
붉은 꽃잎 아마도 땅에 가득 졌을 텐데 / 料得殘紅應滿地
속인이 문 두드리면 혹 열어 주실는지 / 豈容俗子扣門來
[주D-001]동군(東君)……보았는데 : 절 기로 보면 봄철이 이미 지났다는 말이다. 동군은 봄을 맡은 신 이름이다. 동제(東帝)ㆍ동황(東皇)ㆍ청황(靑皇)ㆍ청제(靑帝)라고도 한다. 참고로 목은(牧隱)의 시에 “병들고 나니 어떤 일도 한가함보다는 못한데, 동군이 깃발 거두고 돌아감을 또 보겠네.〔病餘萬事不如閑 又見東君卷旆還〕”라는 구절이 보인다. 《牧隱藁 卷21 柳巷樓上》
백화보(白和父)와 함께 매화 시를 지으면서 동파(東坡)의 운을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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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밑에 미세한 양의 기운 돌아오니 / 井底微陽廻
가지 사이 들썩거리는 매화의 뜻이여 / 枝間花意動
옥 떨기 꽃망울 쉬 터지지 않더니 / 瓊苞不易坼
흰 서리 꽃송이 이제는 감상할 만 / 霜蘂已堪弄
봄보다 일찍 앞서 드러낸 선명한 빛 / 的皪早偸春
엄동설한 잘도 참아 낸 가냘픈 몸매 / 輕盈巧耐凍
성품은 빙설의 맑은 기운이 한데 모였고 / 性鍾氷雪淸
장소는 거마의 시끄러움을 벗어났어라 / 境絶輪蹄鬨
그런데 웬 일이지 궁중에 거하면서 / 頗訝玉皇居
때때로 달님을 뒤따르게 하는 것은 / 時令月姊從
화심(花心)이 납월에 맞추어 열렸나니 / 芳心趁臘開
결백한 모습은 선천적으로 타고났도다 / 皓態出天縱
작은 살구는 손자로나 간주한다 할까 / 小杏視兒孫
선도 복숭아 정도라야 형제가 될 수 있지 / 蟠桃爲伯仲
솔이 봉작을 받은 것도 못마땅하고 보면 / 故譏松得封
귤을 싸서 바치는 것도 비루하게 여기리 / 應鄙橘包貢
달 위의 그림자는 더욱 성글고 / 月上影彌疎
눈 밑의 가지는 저절로 무겁고 / 雪低枝自重
나비가 꽃가루 묻히는 걸 어찌 용납하랴 / 那容粉蝶媒
꾀꼬리가 노래하는 것도 보지 못했는걸 / 未見黃鶯哢
본래 모든 꽃들의 앞자리에 있는 만큼 / 本在衆芳先
요염하다는 비평이 있을 수 없고말고 / 宜無妖艶諷
물감 섞어 그림으로 표현할 수도 없는 일 / 和鉛畫莫當
자리에 끼어서 술만 자꾸 들이켤 수밖에 / 綴席飮堪痛
그 절물 서촉에서 보던 것과 흡사하고 / 節物似西蜀
그 풍광 남경의 벽옹(辟雍)을 연상시키네 / 風光想南雍
완연히 고야의 자태를 만난 듯 / 宛逢姑射姿
황홀히 무산의 꿈결에 얽힌 듯 / 怳結巫山夢
누가 산꼭대기에 있던 것을 옮겨 와서 / 誰自嶺頭移
이 정원 안에서 볼 수 있게 하였는가 / 幸玆園裏種
오희는 다투어 화장법을 배우고 / 吳姬競學粧
월사는 멀리 말을 치달렸도다 / 越使遠飛鞚
그동안 신공이 많이 들어갔으니 / 旣費神功多
감히 다른 초목과 함께 논할 수야 / 敢將凡卉共
대나무가 용이 됐다지만 허튼 소리요 / 脩竹謾成龍
오동에 봉이 머문다지만 공연한 말씀 / 孤桐空遲鳳
얕은 시내를 건너가는 매화의 맑은 향기 / 淸香度淺溪
썰렁한 동구를 밝히는 매화의 수려한 빛 / 秀色明寒洞
그윽하고 기특한 자태 모두 묘사하려면 / 欲盡寫幽奇
다 쓰고 버린 붓이 항아리 채워야 하리라 / 方知筆塡甕
[주C-001]동파(東坡)의 운 : 〈차운이공택매화(次韻李公擇梅花)〉라는 시인데,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권19에 보인다.
[주D-001]우물……돌아오니 : 순 음(純陰)의 달인 10월을 지나 복괘(復卦)에 해당하는 동짓달에 이르러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월령(月令)〉에 “동짓달에 우물물이 일렁이기 시작한다.〔仲冬之月 水泉動〕”라는 말이 나오고, 《일주서(逸周書)》〈주월(周月)〉에 “동짓달에 미세한 양의 기운이 황천에서 움직인다.〔微陽動于黃泉〕”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솔이……것 : 진 시황(秦始皇)이 태산에 올라가 봉선(封禪)의 제사를 올리고 나서 홀연히 폭풍우를 만나자 소나무 아래로 피했는데, 그 소나무가 공을 세웠다고 하여 오대부(五大夫)의 작위를 내려 봉했다는 ‘대부송(大夫松)’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주D-003]귤을……것 : 《서경》〈우공(禹貢)〉에 “귤과 유자는 싸 두었다가 천자가 바치라 하면 바친다.〔厥包橘柚 錫貢〕”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달……성글고 : 북송(北宋)의 은사(隱士) 임포(林逋)가 매화를 읊은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맑고 얕은 물 위에 성근 그림자 가로 비끼고, 황혼 녘 달빛 속에 은은한 향기 떠도누나.〔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라는 명구가 나온다.
[주D-005]완연히……듯 : 매 화를 묘고야산(藐姑射山)의 신인(神人)에 비유한 것이다. 《장자》〈소요유(逍遙遊)〉에 “묘고야산에 신인이 사는데 ‘살결은 빙설과 같고〔肌膚若氷雪〕’ 오곡을 먹지 않으며 바람을 호흡하고 이슬을 마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빙설과 같다는 말에서 유래하여 매화를 비유하는 시어로 고야(姑射)가 많이 쓰인다.
[주D-006]황홀히……듯 : 매 화를 무산(巫山)의 신녀(神女)에 비유한 것이다. 초 회왕(楚懷王)이 고당(高唐)에서 노닐다가 대낮의 꿈속에서 무산의 신녀를 만나 하룻밤의 인연을 맺고 서로 작별했다는 양대(陽臺)의 꿈 이야기가 전국 시대 초나라 시인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에 나온다. 《文選 卷19》
[주D-007]오희(吳姬)는……배우고 : 오 희는 오나라 땅의 미녀를 가리키는데,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은근하게 말 건네는 작은 매화여, 오희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구나.〔殷勤小梅花 髣髴吳姬面〕”라는 말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25 王伯敡所藏趙昌花二首梅花》 또 가정과 동시대 사람인 원나라 시인 살도라(薩都刺)의 시에 “월나라 미녀는 회수 지방의 말을 잘하고, 오나라 미녀는 초나라 화장법을 배운다.〔越女能淮語 吳姬學楚粧〕”라는 구절이 나온다. 《雁門集 卷4 江館寫事》
[주D-008]월사(越使)는……치달렸도다 : 월 나라 사신 제발(諸發)이 일지(一枝)의 매화를 가지고 가서 양왕(梁王)에게 증정하자, 양왕의 신하인 한자(韓子)가 열국(列國)의 임금에게 일지매를 주는 법이 어디 있느냐면서 제발과 토론을 벌이다가 낭패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한나라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 권12〈봉사(奉使)〉에 나온다.
[주D-009]그동안……들어갔으니 : 다 른 보통 꽃들과는 달리 매화 시를 짓느라고 무진 애를 쓰며 노심초사하다가 뜻밖의 영감을 얻어서 완성하곤 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말이다. 신공(神功)은 신령(神靈)의 공력이라는 뜻이다. 남조(南朝) 송(宋)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다가 꿈에 족제(族弟)인 사혜련(謝惠連)을 만나 보고 ‘지당생춘초(池塘生春草)’라는 명구를 얻은 뒤에 “이 시구는 신령이 도와준 덕분에 나온 것이지 나의 말이 아니다.〔此語有神功 非吾語也〕”라고 술회한 고사가 전한다. 《南史 卷19 謝惠連列傳》
[주D-010]대나무가……소리요 : 후 한(後漢)의 비장방(費長房)이 선인(仙人) 호공(壺公)에게 도를 배운 뒤에 대나무 지팡이를 타고 멀리 떨어져 있는 집까지 순식간에 날아갔는데, 호공이 지시한 대로 그 지팡이를 언덕에 던졌더니 푸른 용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神仙傳 壺公》
[주D-011]오동에……말씀 : 원추(鵷鶵)라는 봉황새가 남해에서 북해로 날아갈 적에 오동나무가 아니면 내려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莊子秋水》
안강(安康) 이 선생(李先生)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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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를 찰 자격이 있는지 나 자신도 우스운데 / 自笑豈宜紆紫綬
청전을 또 뽑으려 하니 사람들이 비판할 밖에요 / 人譏又欲選靑錢
선생은 당일에 유독 이 몸을 알아주신 분 / 先生當日獨知我
항상 생각은 선생 뵈러 해변으로 달립니다 / 每憶相尋到海邊
단경의 등불 아래 닦는 백년의 사업 / 百年事業短檠燈
인재 뽑는 중한 임무 부끄럽기 그지없네 / 任重掄才愧不勝
세상맛 잊고 날마다 승려를 찾아가서 / 却羡先生忘世味
삼승을 배우는 선생이 얼마나 부러운지 / 尋僧日日學三乘
관직은 기대 이상이라 마음이 항상 부끄럽지만 / 官班過望心常愧
생계는 변한 것 없이 늙으며 더욱 가난할 뿐 / 計活如初老更貧
어떡하면 표연히 옷자락 떨치고 훌훌 떠나 / 安得飄然拂衣去
계산 멋진 곳에서 고인을 모시고 살아갈꼬 / 溪山勝處伴高人
관직은 높아졌어도 가난은 예전과 같고 / 官大貧如舊
몸은 바쁜 가운데 늙음이 이미 침노했네 / 身忙老已侵
어느 때나 산을 마주하고 앉아서 / 何時對山坐
정겹게 마음을 세세히 논해 볼지 / 款款細論心
[주D-001]자수(紫綬) : 고관이 차는 보라색 인끈이다. 한나라 때에는 공후(公侯)와 구경(九卿)이 각각 자수와 청수(靑綬)를 찼다고 한다.
[주D-002]청전(靑錢)을……밖에요 : 가 정이 과거 고시의 시관(試官)이 되려 하자 사람들이 비난한다는 말이다. 가정은 1347년(충목왕3) 겨울에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김인관(金仁琯) 등 33인을 시취(試取)하였다. 청전은 재능이 출중한 급제자를 일컫는 말로, 당나라 장작(張鷟)이 진사(進士)에 등제(登第)하자,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 건미도(騫味道)가 그의 문장을 마치 청동전(靑銅錢) 같다고 칭찬한 뒤로 그를 ‘청전학사(靑錢學士)’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61 張薦列傳》
[주D-003]단경(短檠) : 짧은 등잔대를 말한다. 단경 아래에서 열심히 공부하다가 일단 과거에 급제하기만 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담장 모퉁이에 단경을 내버린다는 내용으로 지은 한유(韓愈)의 〈단경가(短檠歌)〉가 있다.
[주D-004]삼승(三乘) : 초 근인(初根人)을 위해 사제법(四諦法)을 행하게 하는 소승(小乘) 즉 성문승(聲聞乘)과, 중근인(中根人)을 위해 십이인연(十二因緣)을 깨닫게 하는 중승(中乘) 즉 연각승(緣覺乘)과, 상근인(上根人)을 위해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게 하는 대승 즉 보살승(菩薩乘)을 뜻하는 불교의 용어로, 보통 불법(佛法)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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