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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서루 팔영(三陟西樓八詠)〉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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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장고사(竹藏古寺)
대를 사랑한다면 경위를 물을 필요 있으랴 / 愛竹何須問徑圍
차군이라고 일컬은 말도 잘못됐다 못 하리라 / 此君稱謂未應非
대숲이 우거져 절간은 어딘지 알 수가 없고 / 招提翠密不知處
석양에 홀로 돌아가는 중의 모습만 보이누나 / 唯見斜陽僧獨歸
암공청담(巖控淸潭)
바위 밑에 이룬 연못 여기서부터 대천 / 巖底成潭是大川
바위 머리 바로 아래 보기에도 아슬아슬 / 巖頭直下視茫然
고을 사람 연못 속의 달을 잡으려 하니 / 州人欲取潭心月
변치 않는 순박한 풍속 있음을 알겠도다 / 知有淳風不變遷
의산촌사(依山村舍)
강 위에는 청산 산 아래는 마을 / 江上靑山山下村
태평연월이라 문도 닫지 않았네 / 太平煙火不關門
주민들이야 강산이 좋은 줄 알 턱이 있나 / 居民豈識江山好
새벽에 일어나 저녁까지 줄곧 일만 하는데 / 早起營生直到昏
와수목교(臥水木橋)
십 리의 인가가 하나의 여울을 끼고 있어서 / 十里人家挾一灘
횡목으로 왕래하며 광란의 물결을 건넌다네 / 往來橫木渡狂瀾
벼슬길은 헛디디면 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데 / 宦途失脚危於此
발이 있어 언제 서서 구경할 수나 있었던가 / 有足何曾却立看
우배목동(牛背牧童)
저 집 자매는 나방이 눈썹을 한 미인으로 / 渠家姊妹有娥眉
밤에 죽어라 길쌈하여 결혼 의상 지으면서 / 夜績辛勤作嫁衣
생래로 근심 걱정 없이 도롱이나 걸칠 뿐 / 愛汝生來無念慮
피리 불며 소 타고 오는 너를 사랑한단다 / 披蓑橫笛任牛歸
농두엽부(隴頭饁婦)
그리워하는 남녀가 어찌 또 더 먹으라고 권할 수야 / 相思寧復勉加飧
아내는 먹이고 남편은 밭 갈고 세상일 완결되었도다 / 婦餉夫耕了世間
미색을 내세워 섬기다 보면 대부분 버림을 받나니 / 以色事人多見棄
아름다운 얼굴도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느니라 / 顔華一去不曾還
임류수어(臨流數魚)
흰 깁 같은 장강 그 위에 복사된 가을 하늘 / 長江如練寫秋空
굽어보며 시 읊노라니 날은 어느새 석양 녘 / 俯瞰吟詩日已紅
물고기 셀 만큼 맑다고 말하면 그만이지 / 但道游魚淸可數
한 마리 두 마리 센다면 천치나 마찬가지 / 區區屈指與癡同
격장호승(隔墻呼僧)
관사와 승방은 겨우 벽 하나 사이인데 / 官舍僧房纔隔壁
섬돌의 꽃과 창가의 대 다 함께 더부룩 / 砌花窓竹共成叢
누대에 오를 짝이 없어 그냥 불렀을 뿐 / 上樓無偶聊相喚
전 스님처럼 도풍이 있어서가 아니라오 / 非爲顚師有道風
[주C-001]삼척 서루 팔영(三陟西樓八詠) : 안축(安軸)의 시로, 한국문집총간 2집에 수록된 《근재집(謹齋集)》 권1에 실려 있다. 서루는 죽서루(竹西樓)를 말한다.
[주D-001]차군(此君)이라고 일컬은 말 : 진 (晉)나라 왕휘지(王徽之)가 대나무를 사랑하여 차군이라 불렀다. 왕휘지가 주인이 없는 빈집에 잠시 거처할 적에 대나무를 빨리 심도록 다그치자,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니, “어떻게 하루라도 차군이 없이 지낼 수가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耶〕”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주D-002]전(顚) 스님 : 당나라 한유(韓愈)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있을 적에 친하게 지냈던 노승 태전(太顚)을 말하는데, 한유가 그와 작별하면서 자신의 의복을 남겨 주기까지 했던 이야기가 〈여맹상서서(與孟尙書書)〉에 실려 있다.
울진(蔚珍) 객사(客舍)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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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머리 향한 관동 길 이젠 끝나려 하는데 / 馬首關東路欲窮
절경도 지나고 나면 언제 내가 보았는지 / 奇觀過眼旋成空
하나의 등불 고관에 강 가득 빗줄기요 / 一燈古館連江雨
만추의 계절 황성에 낙엽 지는 바람이라 / 九月荒城落木風
피리 소리 듣자니 적막해라 옛 친구들 / 寂寞舊交聞笛裏
누대에 기대노니 뜻 같지 않은 세상일 / 蹉咜世事倚樓中
진토에서 청아한 정취 느낄 자 몇이나 될까 / 幾人塵土懷淸賞
연못 속의 물고기요 새장 속의 학과 같은걸 / 魚在深池鶴在籠
[주D-001]피리……친구들 : 진 (晉)나라 상수(向秀)가 혜강(嵇康)과 산양(山陽) 땅에서 절친하게 지냈는데, 혜강이 죽은 뒤에 그곳을 지나다가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를 듣고는 옛 추억을 생각하며 〈사구부(思舊賦)〉를 지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49 向秀列傳》
[주D-002]누대에 기대노니 : 당나라 시인 조하(趙嘏)의 〈조추(早秋)〉 시에 “몇 점 남은 별빛 아래 기러기는 변방을 질러가고, 한 가락 피리 소리 속에 사람은 누대에 기대 있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3]연못……같은걸 : 세 상살이에 속박을 받아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진(晉)나라 반악(潘岳)이 몸이 구속당하는 벼슬살이를 비유하여 “연못 속의 물고기와 새장 속의 새가 강호와 산림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譬猶池魚籠鳥 有江湖山藪之思〕”라고 한 말이 그의 〈추흥부(秋興賦)〉에 나온다.
영희정(迎曦亭)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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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에서 해가 떠서 천지를 비추는데 / 日上扶桑照兩間
한쪽 편에는 북두성이 아직도 난간에 / 一邊星斗尙闌干
바람과 비가 갈고 닦아 터럭 끝까지 깨끗하고 / 風磨雨洗毫端淨
안개와 구름이 걷히고 흩어져 눈앞이 툭 트였네 / 霧散雲收眼界寬
스스로 우스워라 세정은 측해와 같다고 생각해서 / 自笑世情思測海
학술을 통해 관란하는 방법을 알려고 했던 것이 / 仍敎學術解觀瀾
분분히 남으로 북으로 다니는 많은 사신들이여 / 紛紛南北多星使
이 역정(驛亭)을 심상한 전사로 간주하지 마시기를 / 莫作尋常傳舍看
[주D-001]스스로……것이 : 세 상을 아는 것은 마치 바다를 아는 것처럼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차라리 여울물을 관찰하는 학술적인 방법을 통해서 근원적인 지식을 터득해 보려고 과거에 시도하였는데, 지금 영희정에서 일출 광경을 보건대 깨끗한 풍경 속에 바다 전체가 한눈에 들어와 오히려 바다를 아는 것이 쉽다고 느껴지기도 하니, 그동안의 생각이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워진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한(漢)나라 동방삭(東方朔)의 〈답객난(答客難)〉에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바가지로 퍼서 바닷물을 재며, 풀줄기로 종을 치는 격이다.〔以筦窺天 以蠡測海 以莛撞鍾〕”라는 말이 나오는데,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무모하게 덤빈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文選 卷45》 또 《맹자》〈진심 상(盡心上)〉에 “물을 관찰하는 방법이 있다. 반드시 여울을 보아야 할 것이니, 그러면 그 물의 근원이 있음을 알 것이다.〔觀水有術 必觀其瀾〕”라는 말이 나온다.
월송정(越松亭)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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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적을 찾으러 추풍 속에 말 머리를 동쪽으로 / 訪古秋風馬首東
울창하게 그늘진 정자의 소나무 보는 기쁨이여 / 喜看鬱鬱蔭亭松
진경을 찾고 싶어 몇 년이나 마음을 졸였던가 / 幾年心爲尋眞切
도를 묻기 위해 천 리의 양식을 미리 찧었다네 / 千里糧因問道舂
한위를 거치면서 부근의 재앙이 끊어졌나니 / 厄絶斧斤經漢魏
낭묘를 감당할 재목으로 기룡에 비견되었다오 / 材堪廊廟擬夔龍
난간에 기대 나도 몰래 오래 침음하였나니 / 倚欄不覺沈吟久
졸필이라 만에 하나도 형용하기 어려워서 / 拙筆難形萬一容
[주D-001]고적을……기쁨이여 : 북 에서 남으로 평해군(平海郡)에 도착하기 전 5리 지점에 소나무 일만 그루가 서 있고 그 가운데에 월송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는데, 이는 사선(四仙)이 유람하다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갔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말이 《가정집》 권5〈동유기(東遊記)〉에 나온다.
[주D-002]천 리의……찧었다네 : 《장 자》〈소요유(逍遙遊)〉에 “가까운 교외에 가는 자는 세 끼 밥만 가지고 갔다가 돌아와도 배가 여전히 부르고, 백 리를 가는 자는 전날 밤에 양식을 찧어서 준비해야 하고, 천 리를 가는 자는 삼 개월 전부터 양식을 모아야 한다.〔適莽蒼者三飡而反 腹猶果然 適百里者 宿舂糧 適千里者 三月聚糧〕”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부근(斧斤)의 재앙 : 도 끼로 벌목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회남자》〈주술훈(主術訓)〉에 “초목이 낙엽 지기 전에는 도끼를 산림 안에 들여놓으면 안 된다.〔草木未落 斧斤不得入山林〕”라는 말이 나온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길이 막혀 도끼와 자귀가 끊어졌는지라, 솔과 계수가 하늘을 찌를 수 있었다네.〔路窮斤斧絶 松桂得干霄〕”라는 구절이 보인다. 《蘇東坡詩集 卷5 南寺》
[주D-004]낭묘(廊廟)를……비견되었다오 : 월송정의 송(松)을 기룡(夔龍)에 비유하여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룡은 순(舜) 임금의 악관(樂官)이었던 기(夔)와 간관(諫官)이었던 용(龍)의 병칭으로, 임금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신하를 뜻한다. 《書經 舜典》
평해(平海) 객사(客舍)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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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의 인가 그리고 대숲 밖의 저 마을 / 江上人家竹外村
좌우 모두 근원을 만나게 하는 기관일세 / 奇觀左右儘逢原
다시 찾아와 친우를 놀라게 한 백발이요 / 重游白髮驚親友
옛 동산 저 너머 의구한 몇 점 청산이라 / 數點靑山隔故園
창명을 제압하는 성은 바람이 꽤 험악한데 / 城控滄溟風頗惡
양곡과 연한 땅이라 기후가 항상 온화하네 / 地連暘谷氣常溫
우연히 제한 시구는 지워 없애야 할 것이니 / 偶題詩句宜塗抹
어찌 유전하여 사람들 입을 시끄럽게 해서야 / 豈要流傳衆口喧
[주D-001]강변의……기관(奇觀)일세 : 민 가나 마을의 심상한 풍경들도 가정에게는 모두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원형(原型)으로 작용하면서 의미 있는 경치로 다가온다는 말이다. 가정은 외가가 흥례부(興禮府) 즉 울산(蔚山)이고 처가가 영해(寧海)였던 관계로 어렸을 때나 젊은 나이에 이곳과 가까운 평해(平海) 등지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맹자(孟子)가 학문에 있어서는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몸의 좌우에서 취해 쓸 때 그 근원을 만날 수 있게 된다.〔取之左右逢其源〕”라고 논한 말이 《맹자》〈이루 하(離婁下)〉에 나오는데, 여기서는 하나의 경관이 근원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는 뜻으로 인용하였다.
[주D-002]양곡(暘谷) : 《서경》〈요전(堯典)〉에 나오는 전설 속의 해 뜨는 곳을 말한다.
[주D-003]우연히 제한 시구 : 《가정집》 권20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 〈평해(平海) 객사(客舍)의 시에 차운하여 남가자(南柯子)의 사체로 짓다〉라는 시가 아닌가 한다.
임의정(臨漪亭)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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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자의 성가가 전보다 배나 올랐나니 / 此亭光價倍於前
시로가 연우 연간에 명명했기 때문이라 / 詩老命名延祐年
전부 홀로 노닐 뿐 남은 나를 모르니 / 典簿獨游人不識
붓 잡고 운연에 답해도 부끄럽지 않네 / 不慙操筆答雲煙
[주D-001]전부(典簿) : 가정 자신을 가리킨다. 가정은 1343년(충혜왕 복위3)에 원나라에서 중서사 전부(中瑞司典簿)를 제수받았다.
영해(寧海) 북량루(北凉樓)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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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토록 부평초처럼 떠돈 발자취 / 足迹平生萍共浮
꿈속에서 이따금씩 누대에 기대기도 / 夢中時復倚樓頭
다리에 제하고 삼천 리 길 한번 떠나서 / 題橋一去三千里
이십 년 뒤에 인수(印綬) 차고 다시 찾았네 / 佩印重來二十秋
모두 일산과 같은 솔은 교외에 마중 나온 듯 / 松似郊迎皆偃蓋
조각배 물에 띄우고서 어부로 숨어 살아 볼까 / 水堪漁隱有輕舟
타년에 혹시 동산의 뜻을 이룰는지도 / 他年儻遂東山志
잘 있게 홍장이여 눈물 흘리지 말고 / 好在紅粧淚莫流
[주D-001]다리에……떠나서 : 가 정이 원나라 제과(制科)에 응시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것을 말한다. 참고로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촉군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가는 길에 성도의 성 북쪽에 있는 승선교(昇仙橋)에 이르러 그 다리 기둥에 “고거사마를 타지 않고서는 다시 이 다리를 건너지 않겠다.〔不乘駟馬高車不復過此橋〕”라고 써서 기필코 공명을 이루겠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혔는데, 뒤에 그의 뛰어난 문장 실력을 한 무제(漢武帝)에게 인정받고 출세한 고사가 진(晉)나라 상거(常璩)의 《화양국지(華陽國志)》에 전한다.
[주D-002]이십 년……찾았네 : 출 세해서 고향을 다시 찾은 것을 말한다. 한나라 주매신(朱買臣)이 불우한 환경에서 독실하게 공부하다가 50세의 늦은 나이로 입사(入仕)하여 구경(九卿)의 지위에까지 올랐는데, 회계 태수(會稽太守)에 임명되었을 때 인수(印綬)를 차고 고향에 가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64上朱買臣傳》
[주D-003]타년에……말고 : 진 (晉)나라 사안(謝安)이 회계(會稽) 땅 동산(東山)에 은거하면서 계속되는 조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유유자적했던 ‘고와동산(高臥東山)’의 고사가 전하는데, 동산에서 20여 년 동안 한가로이 산수(山水) 간에 노닐 적에 항상 가무(歌舞)에 능한 기녀(妓女)를 대동하였다고 한다. 《世說新語排調》 홍장(紅粧)은 기녀를 뜻한다.
영해부(寧海府) 객사(客舍)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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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주금을 가지고 구양에게 부탁하랴 / 敢將晝錦託歐陽
돌아오긴 했어도 바삐 또 가야 하는걸 / 縱得歸來去又忙
촉군에서는 부노 전구의 광경을 보았고 / 蜀郡前驅看負弩
회계에서는 요장 제도의 옛일을 웃었지 / 會稽除道哂腰章
북쪽 누대는 툭 트인 시야에 검푸른 바다요 / 北軒天闊滄溟黑
서쪽 고개는 깊은 가을 누렇게 물든 초목이라 / 西嶺秋深草樹黃
이별하는 정자에서 먼저 눈물 뿌리지 마오 / 休向離亭先洒淚
감회에 젖어서 애가 다 닳아 없어졌으니까 / 感時懷舊已無腸
[주D-001]감히……부탁하랴 : 주 금(晝錦)은 낮에 비단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가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을 의미한다. 송나라의 명신(名臣) 한기(韓琦)가 일찍이 재상으로 무강군 절도사(武康軍節度使)가 되어 자기 고향인 상주(相州)를 다스리면서 그곳에 주금당(晝錦堂)을 세우고 또 시를 지었는데, 구양수가 그 시에 의거해서 〈상주주금당기(相州晝錦堂記)〉라는 기문을 지어 한기의 뜻을 칭송한 고사가 있다.
[주D-002]촉군(蜀郡)에서는……보았고 : 사 마상여(司馬相如)가 중랑장(中郞將)이 되어 고향인 파촉(巴蜀) 땅에 사신으로 갔을 적에 촉군 태수(蜀郡太守) 이하가 모두 교영(郊迎)하였으며, 현령(縣令)은 ‘몸소 쇠뇌를 등에 지고 앞장서서 달림으로써〔負弩矢先驅〕’ 존경하는 뜻을 보였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주D-003]회계(會稽)에서는……웃었지 : 한 나라 주매신이 만년에 영달하여 회계 태수(會稽太守)로 부임할 때 누더기 차림에 인수(印綬)를 허리에 차고 군저(郡邸)에 가자 아전이 인수를 발견하고는 경악하여 상관에게 보고하였으며, 마침내 그를 영접하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여 길을 치우게 하였는데, 그중에는 주매신을 경멸하며 버렸던 옛날의 아내와 그 남편도 끼어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64上朱買臣傳》
흥해현(興海縣) 객사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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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옥한 토지에 이로운 지형 여기에 또 어염까지 / 田腴地利帶魚鹽
단지 걱정은 백성을 공정치 못하게 대하는 것 / 只恐臨民頗不廉
오래된 관소는 어떤 이가 중건할 수 있을는지 / 古館何人能起廢
썩은 기둥 깨진 기왓장 앞 처마에 떨어지는데 / 腐椽殘瓦落前簷
다염으로 괴롭히는 왕안석의 신법도 없는 데다 / 國無新法撓茶鹽
유능한 관원을 파견하여 안찰하고 염문하게 하는데 / 更遣才能按且廉
백성들이 지금 고통 받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 民病如今在何處
침음하다 보니 떨어지는 햇빛이 빈 처마에 들어오네 / 沈吟落照入虛簷
누 대(樓臺)에 제영(題詠)을 한 것은 어디를 가나 모두 그러하였다. 그런데 영덕(盈德) 이남은 강산이 똑같이 수려한데도 누대가 없기 때문에, 시인 묵객이 지나가면서도 흥치를 부칠 곳이 없으니, 어찌 이에 대해 개연(慨然)한 심정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다 흥해(興海)에 와서 고을 형편을 살펴보건대, 양전(良田)이 눈앞에 가득한 데다 산해(山海)에서 나오는 이익도 많았는데 마을은 쓸쓸하고 관사(館舍)는 퇴락하였으니, 소위 누대라는 것을 어떻게 감히 바랄 수나 있었겠는가. 그래서 슬픈 생각이 들기에 벽 사이에 절구 두 수를 남겨 민풍(民風)을 관찰하는 자에게 보이기로 하였다.
영주(永州) 객사에서 전현(前賢)이 제한 죽시(竹詩)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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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꼭 음악을 구성해야 봉황이 오겠는가 / 鳳來何必九成音
대에서 용이 그래도 낫네 쇠에서 금보다는 / 龍化還勝點鐵金
무단히 벽을 뚫고 왕성히 자라는 봄날의 죽순 / 春筍無端穿壁去
담이 낮아 남북으로 그림자 너끈히 나눠 주네 / 短墻南北剩分陰
[주D-001]어찌……오겠는가 : 《서경》〈익직(益稷)〉에 “순 임금이 창작한 음악인 소소 음악 아홉 악장을 연주하자, 봉황이 듣고 찾아와서 춤을 추었다.〔簫韶九成 鳳凰來儀〕”라는 내용이 나온다.
[주D-002]대에서……금보다는 : 후 한(後漢)의 비장방(費長房)이 선인(仙人) 호공(壺公)에게 도를 배운 뒤에 대나무 지팡이를 타고 멀리 떨어져 있는 집까지 순식간에 날아갔는데, 호공이 지시한 대로 그 지팡이를 언덕에 던졌더니 푸른 용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神仙傳 壺公》 또 선가(仙家)에는 철석(鐵石)을 변화시켜 황금으로 만든다는 ‘점철성금(點鐵成金)’의 이야기가 전한다.
팔거(八莒)의 동년(同年) 배 규정(裵糾正)의 초당(草堂)에 제하다 2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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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벼슬이 어찌 우리의 뜻이랴 / 薄宦非吾志
만년은 한가로이 보내야 하고말고 / 閑居在晩年
산을 마주 바라보며 세월을 잊고 / 對山忘歲月
대를 심어 풍연을 끌어들인다오 / 栽竹引風煙
준치의 밭을 적셔 주는 맑은 이슬이요 / 淸露蹲鴟圃
몰학의 밭에 일렁이는 누런 구름이라 / 黃雲沒鶴田
부끄러워라 나는 허명에 잘못되어 / 愧予名所誤
말안장 위에서 흰머리로 변했으니 / 鞍馬到華顚
얼굴을 맞대니 놀랍게도 모두 백발 / 白頭驚會面
청안으로 일찌감치 맺은 망년지교 / 靑眼早忘年
세상일이 동쪽으로 흘러가는 물이라면 / 世事東流水
친구들은 사방으로 흩어진 연무라 할까 / 親朋四散煙
이웃에 집 짓고 살 땅이 좀 있겠지요 / 卜隣應有地
늙어서 돌아갈 땅도 나는 아직 없다오 / 歸老尙無田
지금도 떠오르는 것은 송악 아래에서 / 每憶松巒下
서로 어울리며 술 취해 발광하던 일 / 相尋發酒顚
[주C-001]팔거(八莒) : 칠곡(漆谷)의 옛 이름이다.
[주D-001]준치(蹲鴟) : 토란의 별칭으로, 올빼미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D-002]몰학(沒鶴)의……구름이라 : 벼와 보리 등 곡식이 잘 자라서 누렇게 익은 것을 가리킨다. 몰학은 황새나 왜가리가 안 보일 정도로 곡식이 무성하게 자라난 것을 말하고, 누런 구름은 황금 들판과 같은 말이다.
[주D-003]청안(靑眼) : 다 정한 눈길이라는 뜻이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완적(阮籍)이 속된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 즉 흰 눈자위를 드러내어 경멸하는 뜻을 보이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청안 즉 검은 눈동자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드러낸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簡傲》
경산부(京山府) 백화헌(百花軒)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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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고 질 때마다 더 늘어나는 흰머리 / 花開花落鬢絲加
백년의 봄빛도 한 번 새가 지나가는 것 / 百歲春光一鳥過
오늘 따라 이 누대 왜 이리도 적막한지 / 此日此軒還寂寞
뜰 가득 소목 위에 저녁 햇빛만 쏟아지네 / 滿園疎木夕陽多
[주D-001]백년의……것 : 진 (晉)나라 장협(張協)의 시에 “사람이 이 세계 안에서 사는 것은 새가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잠깐 사이이다.〔人生瀛海內 忽如鳥過目〕”라는 말이 나온다. 《文選 卷15 雜詩10首》 또 소식(蘇軾)의 시에도 “세월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는가, 백년도 눈앞을 지나가는 새와 같다.〔流光安足恃 百歲同過鳥〕”라는 말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49 和寄天選長官》
경산부 남루(南樓)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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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의 형승이 정녕 여기로 날아왔나 봐 / 星山形勝定飛來
산색이 고루에 가득하고 물이 누대를 둘렀으니 / 山滿高樓水遶臺
교목과 구려는 세가의 덕을 생각하게 하고 / 喬木舊廬懷世德
낙하와 고목은 평범한 재주를 부끄럽게 하네 / 落霞孤鶩愧凡才
관직이 한가하니 미녀를 상대로 취해 본들 어떠리 / 官閑不害紅裙醉
재부가 풍족하니 백지 독촉 걱정할 것이 있으랴 / 賦足何愁白紙催
백화헌 속에서 하룻밤 다시 머물고도 싶어라 / 更擬百花軒裏宿
주렴은 향 안개에 젖고 비단이 무더기 이룬 곳 / 一簾香霧錦成堆
[주D-001]교목(喬木)과……하고 : 높 이 치솟은 나무와 오래된 옛 저택을 통해서 여러 대에 걸쳐 경상(卿相)을 배출한 명가(名家)의 덕을 상상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양혜왕 하(梁惠王下)〉에 “이른바 고국이란 대대로 커서 높이 치솟은 나무가 있다는 말이 아니요, 대대로 신하를 배출한 오래된 집안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所謂故國者 非謂有喬木之謂也 有世臣之謂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낙하(落霞)와……하네 : 당 나라 왕발(王勃)이 지은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지는 놀은 짝 잃은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끝없는 하늘과 한 색이로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깊은 가을날의 저녁 경치를 절묘하게 묘사한 표현으로 회자되어 왔다.
[주D-003]백지(白紙) 독촉 : 지 방 관원의 혹독한 세금 징수를 말한다. 옛날에 포흠(逋欠)한 부세(賦稅)에 대해서 조정에서 견감(蠲減)하는 은혜를 베풀어도 외방에서는 교묘하게 명목을 붙여서 거둬들였으므로 “중앙에서는 누런 종이로 면제해 주고, 지방에서는 하얀 종이로 독촉을 한다.〔黃紙放 白紙催〕”라는 말이 민간에 유행하였다.
신초정(辛草亭)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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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지난 뒤에야 시비가 바야흐로 정해지고 / 事過是非方有定
때가 이른 뒤에야 만물이 각각 모습을 갖추는 법 / 時來品物各流形
금인은 치의의 시편을 노래하려고는 하지 않고 / 今人不賦緇衣什
도리어 금인으로 하여금 초정을 얘기하게 하는구나 / 還使今人說草亭
심지 돋우고 당년의 뜻을 얘기하려 하였는데 / 挑燈擬話當年意
거울에 비친 얼굴이 모두 옛날의 모습 아니었소 / 照鏡俱非昔日形
도를 굽히면 동방의 도가 썰렁해질 혐의가 있으니 / 道枉且嫌東道冷
오는 봄엔 마음먹고 강가의 정자를 찾을까 하오 / 明春特地訪江亭
하늘의 도는 순환하며 일찍이 멈춘 적 없었지만 / 天道循環曾不息
변덕 부리는 사람의 마음도 눈으로 볼 수가 없네 / 人心機變亦無形
북당에 원추리 자라고 남강에 달빛 비치는 곳 / 北堂萱草南江月
천지간 하나의 가정을 찾아 높이 드러누우려 하오 / 高臥乾坤一稼亭
[주C-001]신초정(辛草亭) : 초정은 신예(辛裔 : ?〜1355)의 호이다.
[주D-001]일이……정해지고 : 《대학장구(大學章句)》 경 1장에 “그칠 줄 알게 된 뒤에야 뜻이 정해지고, 뜻이 정해진 뒤에야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진 뒤에야 외물에 동요되지 않을 수 있다.〔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때가……법 : 《주역》〈건괘(乾卦) 단사(彖辭)〉에 “구름이 행하고 비가 내리자 만물이 각각 자기 모습을 갖추고 활동하기 시작한다.〔雲行雨施 品物流形〕”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금인은……하는구나 : 〈치 의(緇衣)〉는 《시경》 정풍(鄭風)의 편명으로, 현사(賢士)를 예우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예기》〈치의(緇衣)〉에 “현인을 좋아하기를 〈치의〉처럼 하고, 악인을 미워하기를 〈항백(巷伯)〉처럼 하면, 벼슬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도 백성들이 조심할 줄 알게 될 것이며, 형벌을 시험하지 않고도 백성들이 모두 복종할 것이다.〔好賢如緇衣 惡惡如巷伯 則爵不瀆而民作愿 刑不試而民咸服〕”라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충목왕 때에 신예(辛裔)가 전숙몽(田淑蒙) 등과 함께 권력을 휘두르며 국정을 좌지우지하자 당시 사람들이 신왕(辛王)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고려사》 권125〈열전(列傳)38 간신(奸臣) 신예〉에 나온다.
길이 성산(星山)을 지날 무렵부터 황간현(黃澗縣)에 이를 때까지 갈수록 더 황폐해지는 것이 애처롭게 느껴지기에 영동군(永同郡)에 도착해서 시 한 수를 남겨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보이기로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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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은 동남으로 통하는 두 번째 중요한 길 / 竹嶺東南第二程
이 요충이 어느 날부터 인적이 끊어졌는지 / 要衝何日斷人行
상하의 경쟁적인 세금 독촉도 이미 싫거니와 / 已嫌上下爭科歛
조석으로 보내고 맞는 것도 역시 겁나는 일 / 更怯朝昏管送迎
과객이여 가벼이 희로의 감정을 내지 마오 / 過客毋輕生喜怒
유민이 혹 요행히 승평을 볼 수 있을지도 / 遺民儻幸見昇平
시구를 남기려다 다시 끝없는 시름 속으로 / 欲留詩句還愁絶
고관의 퇴락한 처마에 석양이 밝게 비치네 / 古館頹簷夕照明
양 산현(陽山縣)에 도착해서 보니 벽 위에 시가 있었는데 그 명자(名字)가 누군가에 의해 지워졌기에 장난삼아 그 운을 써서 두 수를 지은 다음에 그 시를 판(板) 위에 함께 써 놓고는 “이 판도 누가 떼어 내지 않을지 어떻게 보장하겠는가.”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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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 년 세월 동안 여정에 몸을 부치다가 / 半百光陰寄旅亭
집에 오니 백발을 보고 마을이 모두 놀랐소 / 還家鬢髮里閭驚
또 관동의 길을 따라 고적을 찾는 기회에 / 又因訪古關東路
덤으로 해변의 성에서 시상도 얻게 됐다오 / 仍得尋詩海上城
산이 좋으면 이따금씩 잠깐 머물기도 하고 / 山好有時成小駐
풍년이 들면 가는 곳마다 환영도 받았지요 / 年豐到處喜相迎
벽 사이의 이름 석 자를 부디 지우지 마옵시고 / 壁間名字休磨去
붓으로 먹고사는 우리 일을 이해해 주셨으면 / 認取吾儕事筆耕
쓸쓸해라 작은 고을 우정과도 흡사한데 / 蕭條小縣似郵亭
벽 위의 시를 보고는 기쁘면서도 놀랐어라 / 壁上看詩喜且驚
길이 험하니 사절을 언제 맞기나 하였으랴 / 路險何曾邀使節
사람이 한가하니 주성이 먼 것을 또 알겠도다 / 人閑更覺遠州城
문 앞에 서 있는 고목은 어느 분이 심었을까 / 當門老樹知誰種
발을 걷으니 청산이 영접할 틈도 주지 않네 / 捲箔靑山不待迎
나루터 묻기 싫증 나니 집 짓고 살 생각도 든다마는 / 已厭問津思卜築
세상에 짝 지어 밭을 가는 저닉이 보이지 않는구나 / 世無沮溺耦而耕
[주D-001]나루터……않는구나 : 여 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한군데 정착해서 은거하고 싶은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은자가 사는 동네가 어디 있는지 도대체 찾을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저닉(沮溺)은 춘추 시대 초나라 은자(隱者)인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의 병칭이다. 공자(孔子)가 제자들을 데리고 천하를 주유(周遊)하다가 초나라에 들렀을 때 장저와 걸닉이 짝을 지어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로(子路)에게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게 했던 고사가 《논어》〈미자(微子)〉에 나온다.
금주(錦州)의 객사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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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꽉 막혔고 길이 또 험난하니 / 四塞路幽險
높은 분의 수레가 오려고나 하겠는가 / 高車豈肯來
가옥은 높은 나무를 의지하여 낡아 가고 / 屋依喬木老
난간은 좋은 산을 가까이하여 열렸어라 / 軒傍好山開
홍분 자국 남아 있는 관기의 명부요 / 樂籍殘紅粉
초록 이끼로 점철된 빈객의 섬돌이라 / 賓階點綠苔
흥이 떨어져 멋진 시구 나오지 않나니 / 興闌無秀句
소재가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오 / 不是乏詩材
험한 곳 무릅쓰고 승경을 찾아다니다가 / 勝游無險易
우연히 금주의 계곡에 오게 되었소 / 偶向錦溪來
험한 돌길 여행도 바야흐로 다한 곳 / 犖确行方盡
굽이를 돌자 전망이 홀연히 트이누나 / 紆餘望忽開
빗소리는 나무 서 있는 거리에 깊이 잠기고 / 雨聲深巷樹
산 그림자는 이끼 낀 뜰에 가득 내려앉았네 / 山影滿庭苔
인재를 가르쳐 기르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 敎養是誰責
땅이 신령스러워 비범한 인물을 낼 터인데 / 地靈生異材
금주는 사방으로 통하는 길이 모두 험난한데, 양산(陽山)에서 금주로 오는 길이 더욱 험난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험한 돌길〔犖确路〕’이라고 부른다.
내 가 지치(至治) 연간에 일 때문에 진동현(珍同縣)에 왔었는데, 그때 몇 안 되는 인가의 가옥이 무너져서 비바람도 피할 수 없었으므로 이미 유망(流亡)해서 다시는 인연(人煙)을 볼 수 없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보건대 영접하는 관리도 있고 응접하는 장소도 있기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어보았더니, 성은 진(陳)이요 이름은 신로(臣老)요 직책은 호장(戶長)인 자가 제대로 복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너무도 기쁜 나머지 진씨(陳氏) 집의 벽에 시를 제하여 백성의 풍속을 살피는 자에게 보이고 현감(縣監)을 일깨우는 한편, 온 마을 사람들이 진씨 집안을 본받도록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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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따라 흥폐를 통해 민정을 알 수 있는 법 / 與時興廢見民情
옛 고을에 다시 오니 눈앞이 홀연 환해졌네 / 古縣重來忽眼明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었음은 물론이요 / 已變草萊爲黍稷
가시덤불이 누대로 또 변하게 하였다네 / 更敎荊棘化軒楹
객이 시구에 화운하기를 감히 기대하리오 / 敢期有客賡詩句
성명을 아는 사람 없는 것이 또한 기쁘다오 / 却喜無人識姓名
나라와 집안도 이처럼 다스리면 될 뿐이니 / 奉國持家只如此
궁향에서 공경이 나오지 말란 법 있소이까 / 窮鄕何害出公卿
연산(連山)에 도착해서 듣건대 김 선생 광정(金先生光鼎)이 근읍(近邑)에서 생도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기에 절구 두 수를 지어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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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반궁에서 명령을 가르치시던 분 / 曾誨螟蛉在泮宮
한가히 거할 적에도 유풍을 떨치려 하시누나 / 閑居猶欲振儒風
육경을 담론하며 사설을 배격해야 하고말고 / 要談六籍排邪說
오도가 어찌 시문만 일삼게 해서야 될 말인가 / 吾道寧專筆硯功
십 리에 걸친 청산 일 묘의 비좁은 집 / 十里靑山一畝宮
무우의 바람을 쐬는 수많은 동관들 / 侁侁童冠舞雩風
이웃에 터를 잡고 오도를 논해 보았으면 / 卜隣甚欲論吾道
연래에 시소만 하다 보니 식공에 부끄러워 / 尸素年來愧食功
[주D-001]예전에……분 : 옛 날에 태학(太學)에서 유생들을 지도했다는 말이다. 반궁(泮宮)은 반수(泮水) 즉 반달 모양의 연못이 앞에 있는 제후국의 학궁(學宮)을 가리킨다. 명령(螟蛉)은 생도의 별칭으로, 《시경》〈소아(小雅) 소완(小宛)〉의 “언덕 가운데의 콩을 서민들이 거두어 가는 것처럼, 명령의 새끼를 과라가 업어 데리고 가서 키우니, 그대도 아들을 잘 가르쳐서, 좋은 방향으로 닮도록 하라.〔中原有菽 庶民采之 螟蛉有子 蜾蠃負之 敎誨爾子 式穀似之〕”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옛사람들은 과라(蜾蠃), 즉 나나니벌이 명령, 즉 뽕나무 벌레를 데려다가 자기의 양자로 삼아 길러서 과라로 만든다고 믿었다.
[주D-002]일 묘(畝)의 비좁은 집 : 청 빈한 선비의 검소한 거처를 뜻한다. 《예기》〈유행(儒行)〉의 “선비는 가로세로 각각 10보(步) 이내의 담장 안에서 거주한다. 좁은 방은 사방에 벽만 서 있을 뿐이다. 대를 쪼개어 엮은 사립문을 매달고, 문 옆으로 규(圭) 모양의 쪽문을 낸다. 쑥대를 엮은 문을 통해서 방을 출입하고, 깨진 옹기 구멍의 들창을 통해서 밖을 내다본다.〔儒有一畝之宮 環堵之室 篳門圭窬 蓬戶甕牖〕”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3]무우(舞雩)의……동관(童冠)들 : 공 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벗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을 하고 기우제 드리는 곳에서 바람을 쏘인 뒤에 노래하며 돌아오겠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자신의 뜻을 밝히자, 공자가 감탄하며 허여한 내용이 《논어》〈선진(先進)〉에 나온다.
[주D-004]시소(尸素) : 시위소찬(尸位素餐)의 준말로, 자격도 없이 벼슬자리를 차지하고서 국록만 축낸다는 뜻의 겸사이다.
[주D-005]식공(食功) : 국 가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백성의 세금을 주어서 생활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춘추좌씨전》 문공(文公) 18년 기사에 “법도를 가지고 그 사람의 덕을 관찰하고, 그 덕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게 하고, 그 일을 가지고 공을 헤아리고, 그 공을 가지고 백성의 세금으로 먹고살게 한다.〔則以觀德 德以處事 事以度功 功以食民〕”라는 말이 있다.
대안사(大安寺)의 중지(中之) 승통(僧統)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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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천 리 벼슬길 / 宦路幾千里
삼십 년 맺은 우정 / 交情三十秋
서로 만날 날 머지않을 터 / 相逢知不遠
둘 다 바다 남쪽 끝에 있으니까 / 俱在海南頭
변산(邊山)의 여러 암자를 돌아본 뒤에 소래루(蘇來樓) 위의 시에 차운하고 세월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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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의 산이 고절하다 일찍이 들었기에 / 高絶曾聞海岸山
틈을 내어 마음먹고 실컷 등반을 하였소 / 偸閑得得恣登攀
사람은 하늘로부터 천척의 사다리를 내려오고 / 人從天降梯千尺
승려는 구름과 더불어 반 칸의 집을 나누었네 / 僧與雲分屋半間
선방의 적막도 속박이 되는 줄을 원래 아는 터에 / 禪寂固知猶見縛
세상 인연이 어떻게 감히 걸리게 할 수 있으리오 / 世緣那得敢相關
푸른 산에 어느 날 나의 거처 마련하여 / 翠微何日容吾住
죽장망혜로 날마다 왔다 갔다 해 볼는지 / 竹杖芒鞋日往還
도솔(兜率)의 벽 위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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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찾는 목적이 본래 신선 때문이 아니니 / 尋山本不爲尋仙
천리를 유람한 것 또한 어찌 우연이라 할까 / 千里游觀豈偶然
영겁의 세월 인연 끝에 내원으로 돌아와 / 浩劫因緣歸內院
상방의 세계에서 제천을 두루 지도한다네 / 上方世界控諸天
학이 날아와 옛날에 세웠다는 바위 위의 암자요 / 鶴來曾構岩頭閣
용이 갔어도 여전히 솟아나는 석안의 샘물이라 / 龍去猶存石眼泉
향산의 백 거사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어 / 深愧香山白居士
결사도 하지 못했는데 머리는 벌써 백발이니 / 未能結社已華顚
[주D-001]영겁(永劫)의……지도한다네 : 미 륵보살(彌勒菩薩)이 도솔천(兜率天)의 내원(內院)에서 미래불(未來佛)로 이 땅에 하생(下生)하려고 준비하면서 천신(天神)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도솔천은 불교의 이른바 욕계(欲界) 육천(六天) 가운데 넷째 층에 있는 하늘로, 외원(外院)과 내원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외원은 천상의 중생이 살면서 욕망을 채우는 곳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이 상주하며 설법하는 정토(淨土)로서 선법당(善法堂)이라고도 한다. 미륵보살은 앞으로 56억 7천만 년 후에 이 땅에 미륵불로 내려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도(成道)하여 중생을 구원한다고 한다. 제천(諸天)은 불법을 수호하는 하늘의 신들을 말한다.
[주D-002]용이……샘물이라 : 석 안(石眼)은 물이 솟아나는 바위의 구멍을 말한다. 참고로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의 시에 “산허리 바위에서 발원하는 천년의 시냇물, 석안의 샘물은 하루도 마르는 날이 없다오. 단비의 은혜를 고대하는 천하의 창생들, 용이 이 속에 서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일세.〔山腰石有千年磵石眼泉無一日乾 天下蒼生望霖雨 不知龍向此中蟠〕”라는 구절이 나온다. 《古今事文類聚後集 卷33 偶題》
[주D-003]향산(香山)의……백발이니 : 당 무종(唐武宗) 때에 백거이(白居易)가 형부 상서(刑部尙書)로 있다가 치사(致仕)한 뒤에 향산으로 들어가서 향산거사(香山居士)라고 자호하고는 승려 여만(如滿) 등과 함께 향화사(香火社)를 결성하고 만년을 보냈던 고사가 전한다. 《舊唐書 卷166 白居易列傳》
윤 동년(尹同年)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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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마주 대할 뿐 허투루 나가진 않을 텐데 / 對山不浪出
약초를 캐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걸 깜박했나 / 採藥偶忘還
범조를 제하고 싶어 손이 마구 근질근질 / 甚欲題凡鳥
초당의 문 닫지 않고 아직 그냥 있으니까 / 草堂猶未關
[주D-001]약초를……깜박했나 : 참 고로 당나라 가도(賈島)의 〈방도자불우(訪道者不遇)〉 시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님은 약초를 캐러 나갔다네. 이 산속에 계신 것만은 분명한데, 구름이 깊어서 어딘지는 모른다네.〔松下問童子 言師採藥去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라는 표현이 있다.
[주D-002]범조(凡鳥)를……있으니까 : 윤 동년 대신 문 앞에 나온 사람을 상대로 해서 장난치고 싶은 생각이 불쑥 솟는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진(晉)나라 여안(呂安)이 천리 길을 달려 혜강(嵇康)의 집을 찾아갔다가, 혜강은 마침 외출하여 만나지 못하고 그의 형인 혜희(嵇喜)의 영접을 받게 되자, 여안이 문 안에 들어서지도 않고 문 위에다 ‘봉(鳳)’이라는 글자를 써 놓고 그냥 갔는데, 나중에 혜강이 이를 보고 궁금해하는 형에게 “봉은 범조(凡鳥)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던 ‘제봉재문(題鳳在門)’의 고사가 전한다. 봉(鳳)을 파자(破字)하면 ‘범(凡)’과 ‘조(鳥)’가 된다. 《世說新語 簡傲》
흥덕(興德)의 객사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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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을 방문하려면 이 땅을 통과해야 / 爲訪名山此地過
강 다리에서 길 나뉘어 연하 속으로 / 江橋分路入煙霞
돌아오며 죽림 아래에 말을 쉬게 하는데 / 歸來歇馬竹林下
아직 꽃 피우지 않은 한 그루 동백나무 / 一樹山茶猶未花
금산사(金山寺)의 벽 위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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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청구에 이르러 밤낮이 같아지려는 때 / 春到靑丘日欲中
멋진 유람은 농한기를 가려서 해야 하고말고 / 勝遊要及未農功
바다 위 봉래의 경내를 찾는 기회에 / 爲尋海上蓬萊境
세상 속 도사의 궁전도 들르게 됐다오 / 因訪人間覩史宮
높이 치솟은 처마 지붕은 북두와 맷돌질하고 / 危構簷牙磨北斗
법을 설하는 풍경 소리는 동풍과 얘기 나누네 / 法音鐸舌語東風
절경을 끝까지 더듬고 싶은 생각도 든다마는 / 更思杖屨窮幽絶
연하가 골에 가득해서 길이 자꾸만 막히니 원 / 滿壑煙霞路易窮
[주D-001]봉래(蓬萊) : 동해에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이다.
[주D-002]도사(覩史)의 궁전 : 미 륵보살이 있는 도솔천(兜率天)의 궁전이라는 말로, 금산사 미륵전(彌勒殿)을 가리킨다. 도사는 범어(梵語) Tuṣita를 음역한 도사다(覩史多)의 준말로, 도솔(兜率)과 같은 말이다. 신라의 진표(眞表)가 경덕왕(景德王) 때에 금산사를 중건하면서 미륵장륙상(彌勒丈六像)을 조성하여 주불(主佛)로 봉안하였고, 또 법당의 남쪽 벽에 미륵보살이 도솔천 내원(內院)에서 내려와 그에게 계법(戒法)을 전수하는 모습을 그려 놓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장 상국(張相國)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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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한가해 승경을 마음껏 찾아다니면서도 / 身閑勝景恣游尋
마음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유감이었는데 / 只恨無人可說心
어찌 생각하였으랴 보광정사에서 우리 함께 / 豈料普光精舍裏
심지 돋우고 탄 스님 거문고 듣게 될 줄이야 / 挑燈共聽坦師琴
용두동(龍頭洞)을 지나면서 전현(前賢)의 시에 차운하다. 이곳은 고(故) 상신(相臣) 조 장원(趙狀元)이 살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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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걸음 향한 장원방 동네 / 偶向狀元坊裏行
옛 거처에 석양빛이 앞 기둥에 들어오네 / 舊居斜日入前楹
용들이 겨루는 시험장에서 매번 장원하신 분 / 每魁場屋群龍鬪
월등한 재명은 종횡무진 한 마리 수리였어라 / 獨步才名一鶚橫
세상이 싫어 공은 일찍이 천상으로 돌아갔고 / 厭世公曾歸碧落
나는 이웃에 터 잡고서 황정을 캐려고 하였지 / 卜隣吾欲斸黃精
인걸은 지령이라는 말 믿어도 될 것 같아 / 地靈人傑言堪信
공경이 여기서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 / 看取公卿袞袞生
[주D-001]한 마리 수리 : 탁 월한 인재라는 뜻으로, 후한(後漢) 공융(孔融)이 예형(禰衡)을 추천하면서 “사나운 새가 수백 마리 있어도 한 마리의 독수리보다 못하니, 예형을 조정에 세우면 필시 볼만한 점이 있을 것이다.〔鷙鳥累百 不如一鶚 使衡立朝 必有可觀〕”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80下 文苑列傳 禰衡》
[주D-002]황정(黃精) : 땅의 정기를 받아서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다년생 초본(草本)의 약초 이름이다.
[주D-003]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는 말 : 당나라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걸출한 인물이 나오는 것은 그 땅이 신령스럽기 때문이다.〔人傑地靈〕”라는 말이 나온다.
탄(坦) 스님에게 증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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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스님 찾아보려고 몇 번이나 생각하였는데 / 幾度思君欲遠尋
정작 만나서는 세세히 마음도 논하지 못하였소 / 相逢却未細論心
여러 해 이래 듣기에도 짜증만 나는 세상일들 / 年來厭聽人間事
달빛 아래 거문고 소리 귀 씻고 들어야 할까 보오 / 洗耳須憑月下琴
고부군(古阜郡) 북루(北樓)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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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꿈속에 생각했던 남쪽 유람 길 / 夢想南游自昔年
등림하니 온갖 걱정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 登臨萬慮散如煙
바람에 날리는 버들개지처럼 얼마나 떠돌아다녔던가 / 幾番過客隨風絮
바다로 치달리는 강물처럼 허무한 백년 인생인 것을 / 百歲浮生赴海川
떠 마셔도 좋을 만한 도솔의 맑은 산 빛이요 / 兜率山光淸可挹
멀리 서로 이어진 봉래의 구름 기운이로세 / 蓬萊雲氣遠相連
시구를 남기려고 읊다 보니 다시금 괴로워져 / 欲留詩句吟還苦
나귀 등에 탄 맹호연은 비교도 되지 않으리 / 莫比騎驢孟浩然
[주D-001]나귀……않으리 : 당 나라 맹호연(孟浩然)은 좋은 시를 지으려고 고심하다가 나귀 등에 타고서 눈발이 휘날리는 파교(灞橋) 위를 지나갈 때에야 그럴듯한 시상이 떠올랐다고 하는데,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그대는 또 못 보았는가.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을, 시 읊느라 찌푸린 눈썹 산처럼 솟은 두 어깨를.〔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2 贈寫眞何充秀才》
은 학사(殷學士)가 홍산(鴻山)에 제한 시에 화답했기에 삼가 그 운을 써서 두 수의 절구를 봉증(奉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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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엔 봄빛 가득 머리엔 서리 가득 / 滿頰春光滿鬢霜
장창과 비슷한 만년의 풍류로세 / 風流晩歲似張蒼
선생의 낙을 이 세상에서 어떻게 얻으리 / 世間那得先生樂
더구나 청산이 또 화당을 둘러 주었으니 / 更有靑山繞畫堂
풍상에도 끄떡없는 의의한 고절이여 / 猗猗高節傲風霜
무성한 지엽이 물에 찍혀 푸르도다 / 枝葉扶疎刻水蒼
묘수로 묵희를 감히 귀찮게 부탁할 수야 / 墨戲敢煩揮妙手
가정 안에 차라리 차군의 집을 지어야지 / 稼亭中作此君堂
[주D-001]장창(張蒼)과……풍류로세 : 장 창은 한 문제(漢文帝) 때의 승상이다. 《사기》 권96〈장승상열전(張丞相列傳)〉에 “장창이 재상에서 면직된 뒤에 늙어서 입 안에 치아가 없자 젖을 먹었는데 젊은 여자를 유모로 두었다. 처첩이 백을 헤아렸는데, 한번 임신하면 다시 가까이하지 않았다. 장창은 나이 백여 세까지 살다가 죽었다.〔蒼之免相後 老 口中無齒 食乳 女子爲乳母 妻妾以百數 嘗孕者不復幸 蒼年百有餘歲而卒〕”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풍상(風霜)에도……푸르도다 : 은 학사(殷學士)의 정원에 있는 대숲을 인용하여 그의 절조를 비유한 것이다. 춘추 시대 위 무공(衛武公)이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라 사람들에게 자신을 일깨우는 좋은 말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는데, 그를 칭송했다고 전해지는 《시경》〈위풍(衛風) 기욱(淇奧)〉에 “저 기수 물굽이를 바라다보니, 푸른 대나무가 의의하도다. 아름답게 문채 나는 우리 님이여, 깎고 다듬은 위에 또 쪼고 간 듯하도다.〔瞻彼淇奧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3]묘수(妙手)로……지어야지 : 장 난으로라도 묵죽(墨竹)을 한번 그려 달라고 청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미안하니, 가정(稼亭) 안의 대숲 속에다 아예 집을 지어 놓고서 실물을 실컷 감상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차군(此君)은 대나무의 별칭으로, 진(晉)나라 왕휘지(王徽之)가 주인이 없는 빈집에 잠시 거처할 적에 대나무를 빨리 심도록 다그치자,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니, “어떻게 하루라도 차군이 없이 지낼 수가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耶〕”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왕휘지는 명필 왕희지(王羲之)의 아들이다.
죽파(竹坡) 조 선생(趙先生)의 거소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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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정자가 어찌 속객의 방문을 허용하랴 / 亭好那容俗客過
바람 부는 난간 사면에 연꽃이 가득하네 / 風軒四面滿池荷
다음에 올 때는 꽃 피는 시절에 맞추어서 / 重游要趁花時節
미녀의 노래 한 곡조를 취해서 들어야지 / 醉聽靑娥一曲歌
새로 얽은 아담한 서재 이웃도 없이 적막할 뿐 / 小齋新構寂無隣
조촐한 탁자 밝은 창가에 한 점의 티끌도 없어라 / 淨几明窓絶點塵
찻잔을 섬섬옥수에게 받들게 할 것 있소 / 茶椀莫敎纖手捧
마루 안에 진작부터 백의진이 대기하는걸 / 堂中自有白衣眞
[주D-001]마루……대기하는걸 : 아 름다운 여자 모습을 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상이 있다는 말이다. 백의진(白衣眞)은 백의진인(白衣眞人)의 준말로, 불교의 관세음보살을 가리킨다. 항상 흰옷을 걸치고 흰 연꽃 가운데에 앉아 있는 데서 유래한 말인데, 백의대사(白衣大士) 혹은 백의선인(白衣仙人)이라고도 한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해서 중생이 그의 이름을 외기만 하면 어디든 달려가서 구원해 준다고 한다.
자정대(紫汀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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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애 머리에 자석이 쌓여 누대를 이룬 곳 / 崖頭紫石疊成臺
바다색 하늘빛 어울려 만리에 열렸어라 / 海色天光萬里開
바삐 말을 달리면서 잘 볼 수가 있어야지 / 策馬悤悤看不足
조각배에 술 싣고서 다시 한번 와야겠네 / 扁舟載酒要重來
천태산(千太山) 제륜사(濟淪寺)에서 노닐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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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산이 병풍처럼 옹위한 범왕의 궁전 / 淺山屛擁梵王宮
산 너머 인가에 들려오는 저녁 쇳송 소리 / 山外人家聽暮鍾
여기에 오면 자연히 심경이 고요해지나니 / 到此自然心境靜
고생하며 고봉에 굳이 거할 필요 있겠는가 / 不須辛苦住高峯
완산(完山) 도중(途中)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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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명이 뛰어난 최 장원 이 장원의 고장 / 狀元崔李才名大
전라도의 계수로서 기상이 웅장하도다 / 界首全羅氣象雄
나그네여 금자의 귀함을 자랑하지 마오 / 過客休誇金紫貴
공경이 여기에서 셀 수도 없이 나왔으니 / 公卿多出一鄕中
주벽이 대단한 전부 선생과 / 典簿先生成酒癖
시웅의 호가 난 눌재 상국이 / 訥齋相國號詩雄
젊은 날 대낮에 벌인 완산의 추억이여 / 靑春白日完山道
만사가 한바탕 웃음 속에 그만이로세 / 萬事都休一笑中
[주D-001]계수(界首) : 서울에서 각 도(道)에 이르는 연변의, 도계(道界)가 되는 지역의 고을을 말한다.
[주D-002]금자(金紫) : 금인자수(金印紫綬)의 준말로, 고관(高官)의 별칭으로 쓰인다. 한나라 때 승상(丞相)과 태위(太尉) 등이 모두 황금 인장(印章)에 자색 수대(綬帶)를 띠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전부(典簿) : 가정 자신을 가리킨다. 가정은 1343년(충혜왕 복위3)에 원나라에서 중서사 전부(中瑞司典簿)를 제수받았다.
[주D-004]눌재(訥齋) : 장항(張沆 : ?~1353)의 호이다.
눌재(訥齋)가 화답하였기에 다시 한 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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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잃은 뒤 화복은 이미 익히 알거니와 / 失馬已曾知禍福
까마귀 중에 어떤 놈이 암컷이고 수컷인지 / 瞻烏未可辨雌雄
장상은 시단의 어른이 되시면 그만이고 / 詩壇張相能居右
이생은 주성에 가끔 걸려들면 그만이고 / 酒聖李生時復中
[주D-001]말을……수컷인지 : 새 옹실마(塞翁失馬)의 고사에서 알 수 있듯이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는 만큼 어떤 것이 좋은지 미리 헤아릴 수는 없지만, 지금 시비를 벌이고 있는 자들의 진위와 선악이 분명하지 못해서 누가 더 나은지 분간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까마귀는 서로 비슷해서 암수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소인들이 득세하는 난세를 풍자한 《시경》〈소아(小雅) 정월(正月)〉에 “모두 자기들이 최고라고 하지만, 누가 까마귀의 암수를 알 수 있을까.〔具曰予聖 誰知烏之雌雄〕”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이생(李生)은……그만이고 : 가 정 자신은 가끔씩 술을 마시고 취하면 그만이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한말(漢末)에 기근이 심해서 조조(曹操)가 금주령을 내리자 주객(酒客)들이 술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하여 청주(淸酒)를 성인(聖人)이라 하고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이라고 불렀다. 이때 위(魏)나라 상서랑(尙書郞) 서막(徐邈)이 몹시 술을 좋아한 나머지,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마시다 적발되자 “성인에게 걸려들었다.〔中聖人〕”라고 익살을 부렸는데, 뒤에 문제(文帝)가 서막을 보고는 “요즘도 성인에게 걸려드는가?〔頗復中聖人不〕”라고 묻자, “아직도 자신을 혼내지 못하고 때때로 다시 걸려들곤 합니다.〔不能自懲 時復中之〕”라고 답변한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27 魏書 徐邈傳》
경포(京浦)에서 바람에 길이 막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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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을 편력하였어도 아직 부족해서 / 遊遍名山尙慊然
다시 경포에 와서 오래도록 미적미적 / 却來京浦久留連
고찰을 찾는 중의 길을 가로막는 구름이요 / 雲遮古寺尋僧路
장강의 전송하는 배를 저지하는 바람이라 / 風阻長江送客船
닭장 같은 초가집 참으로 누추하다마는 / 草屋鷄棲眞可陋
쥐처럼 숨은 섬 오랑캐 역시 가련하기만 / 島夷鼠竄亦堪憐
자정에 꽃 피는 날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 紫汀花發無多日
화려한 배의 미인들 소년을 쫓아다니누나 / 畫舸紅粧逐少年
허 집의(許執義)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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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 관두긴 쉬워도 터 잡고 살긴 어려워 / 休官却易卜居難
내 돌아왔어도 쉴 곳은 아직 마땅치 않네 / 我縱歸來尙未安
어떡하면 선생처럼 산수를 독차지하고 / 誰似先生擅山水
세상일이 범접을 못하게 할 수 있을까 / 更無俗事敢相干
관도(官渡)를 건너면서 우스개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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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걸음 그야말로 한가로운 유람이라서 / 我行眞是作閑游
물 만나고 산 만나면 조금씩 머물곤 하는데 / 遇水逢山輒少留
나루의 관리는 인끈 내던진 객인 줄도 모르고서 / 津吏不知投紱客
청삼 차림에 백판 들고 모래 언덕에서 기다리네 / 靑衫白板候沙頭
촌사(村舍)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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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푸른 바닷가에 터 잡고 살고 싶어 / 我欲卜居滄海濱
어촌은 어딜 가나 모두 마음이 끌린다오 / 漁村到處盡堪憐
이 집엔 술도 있고 대나무 또한 많으니 / 此家有酒仍多竹
벽에 제하며 주인에게 물을 것도 없겠네 / 題壁何須問主人
[주D-001]이 집엔……없겠네 : 대 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하루도 차군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何可一日無此君〕”라고 말했던 동진(東晉)의 왕휘지(王徽之)가 어느 날 어떤 사대부의 집에 멋있는 대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집에 들르니, 집주인이 술자리를 마련해 놓고서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왕휘지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대숲으로 가서 감상을 한 뒤에 바로 떠나려 하였다. 이에 주인이 당황하면서 문을 닫아걸고 못 나가게 하며 그를 끝내 만류하자 왕휘지가 그 성의를 높이 평가하여 그 자리에 머물러서 함께 술을 마신 뒤에 떠났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차운하여 남 안렴(南按廉)에게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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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동안 풍진 속에서 낚싯배를 꿈꿨는데 / 十載風塵夢釣舟
이 몸이 지금은 백구 노니는 모래섬에 있다오 / 此身今在白鷗洲
세마에 홍분 태우고 풍류를 즐기면 그만이지 / 但將細馬駄紅粉
막사를 지키는 장수가 될 것이 뭐가 있겠소 / 安用元戎擁碧油
땅 가득 여염에 포학한 정사가 있을 리야 / 撲地閭閻無虐政
강변의 정사는 고상한 놀이에 알맞고말고 / 傍江亭榭足高游
시를 제한 것 모두가 동년인 객의 작품들 / 題詩盡是同年客
천수 시로 만호후는 가볍게 보는 분들이라오 / 千首曾輕萬戶侯
[주D-001]세마(細馬)에……그만이지 : 세 마는 몸집이 작은 좋은 말을 가리키고, 홍분(紅粉)은 곱게 치장한 미녀를 말한다. 참고로 이백(李白)의 시에 “포도주 넘치는 자그마한 황금 술잔, 십오 세 오나라 미녀 세마에 걸터앉았네.〔蒲萄酒金叵羅 吳姬十五細馬駄〕”라는 구절이 있다. 《李太白集 卷24 對酒》
[주D-002]천수(千首)……분들이라오 : 당나라 두목(杜牧)의 시에 “어떤 사람이 우리 장 공자와 같을 수 있을는지, 천수의 시로 만호의 후는 가볍게 보시는 분이라오.〔誰人得似張公子 千首詩輕萬戶侯〕”라는 표현이 나온다. 《樊川詩集 卷3 登池州九峯樓 寄張祜》
영해(寧海)에 유증(留贈)한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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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와서 어찌 유독 정회가 없으리오 / 重來烏得獨無情
당일의 가인이 지금은 백발이 돋아났구려 / 當日佳人白髮生
원망의 눈물 흘리다 못해 피눈물이 되려 하고 / 怨淚滴殘將繼血
이별의 노래 처창해서 소리가 이루어지지 않네 / 離歌凄斷不成聲
관산을 말 타고 다니는 일 멈춘 적이 있었던가 / 關山鞍馬何曾歇
그동안 거친 화월의 누대 모두 이름이 있더랬지 / 花月樓臺摠有名
지금부터는 단양을 악부에 더해야 하겠네 / 從此丹陽添樂府
청평에 의거해서 읊은 새로운 가사 한 곡조 / 新詞一曲倚淸平
[주D-001]단양(丹陽) : 영해(寧海)의 옛 이름이다.
[주D-002]청평(淸平) : 악 부(樂府)의 하나인 청평조(淸平調)를 말한다. 참고로 당 현종(唐玄宗)이 침향정(沈香亭)에서 양 귀비(楊貴妃)와 함께 목작약(木芍藥)을 완상하다가 금화전(金花牋)을 하사하며 한림(翰林) 이백(李白)을 불러 시를 짓게 하자 그 자리에서 〈청평조사(淸平調詞)〉 3장을 지어 바쳤다는 일화가 전한다. 《楊太眞外傳》
사(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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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眞州) 신기(新妓)의 이름과 관련한 사(詞)를 완계사(浣溪沙)의 사체(詞體)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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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로에 봄바람 만나 취해도 돌아가지 못해 / 客路春風醉不歸
생황 노래 느릿느릿 밤은 길고 길기만 / 笙歌緩緩夜遲遲
죽서루 저 멀리 달빛 그림자 들쭉날쭉 / 竹西樓逈月參差
행락은 본래 아무 일 없어야 제격이지 / 行樂雅宜無事地
꽃 피기 전에 찾아온 것이 못내 한스러워 / 尋芳却恨未開時
타년에 그 누가 장원의 가지를 꺾을는지 / 他年誰折狀元枝
[주C-001]진주(眞州) : 삼척(三陟)의 옛 이름이다.
[주D-001]꽃……한스러워 : 당 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호주(湖州)에서 노닐 적에 10여 세 되는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 흠뻑 빠진 나머지, 10년 안에 다시 돌아와 가약(佳約)을 맺겠다면서 폐백을 듬뿍 주고 떠나갔다가, 14년 뒤에 돌아와 보니 그 여인이 벌써 시집을 가서 두 아들을 낳기까지 하였으므로, “꽃을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이 한스러워, 그때에는 꽃봉오리 피어나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바람에 날려 꽃잎도 다 흩어진 채, 푸른 잎새 그늘 이루고 가지엔 열매만 가득하네.〔自恨尋芳到已遲 往年曾見未開時 如今風擺花狼藉 綠葉成陰子滿枝〕”라고 탄화시(歎花詩)를 읊었던 일화가 전한다. 《唐詩紀事 杜牧》
[주D-002]장원(狀元) : 장원홍(狀元紅)의 준말로, 여지(荔枝)의 품종 가운데 제일로 꼽히는 명품이다.
정중부(鄭仲孚)의 〈울주 팔영(蔚州八詠)〉에 차운하여 무산일단운(巫山一段雲)의 사체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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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루(大和樓)
강 언덕에 배치된 철갑 기병들 / 鐵騎排江岸
성곽 문을 나서는 홍색 깃발들 / 紅旗出郭門
오두가 여기 와서 귀빈의 수레 보내는데 / 遨頭來此送賓軒
수행원도 어쩌면 그렇게 많이들 붐비는지 / 賓從亦何繁
노래하는 부채 따라 일렁이는 물빛이요 / 水色搖歌扇
술동이 스치며 코를 찌르는 꽃향기로세 / 花香撲酒尊
과객이 조석으로 떠들어 대지만 않는다면 / 但無過客鬧晨昏
풍속이 순박해서 살기 좋은 산마을인데 / 淳朴好山村
장춘오(藏春塢)
이곳에 꽃은 많이도 피는데 / 是處花多少
그대의 집에 술은 좀 있는지 / 君家酒有無
인간 세상에 천홍만자(千紅萬紫) 간수하기 어려워라 / 人間紅紫已難留
저번에도 뜰 구석에 버려져 있더구먼 / 曾見襯庭隅
세상일이 머리를 희게 변하게 하니 / 世事將頭白
여생은 혀의 부드러움을 본받을지라 / 餘生業舌柔
날마다 술병 들고 시내를 건널 수 있었으면 / 携壺日日渡溪流
명아주 지팡이 굳이 짚을 필요도 없이 / 藜杖不須扶
평원각(平遠閣)
어떤 나그네는 신선의 누각에 오르고 / 有客登仙閣
어떤 사람은 술 실은 배를 저어 가고 / 何人棹酒船
벼슬살이 중에 나도 몰래 하늘 끝까지 / 宦遊不覺到天邊
강변길에 초목이 울창하게 우거졌네 / 江路草芊芊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붉은 해요 / 極浦低紅日
외로운 마을에 이는 푸른 연기로세 / 孤村起碧煙
이별의 정과 시상이 모두 유연한데 / 離情詩思共悠然
세월은 물처럼 빨리도 닫는구나 / 歲月似奔川
망해대(望海臺)
예전부터 부해의 말은 들어 왔지만 / 自昔聞浮海
내 이제 망양의 탄식을 믿게 되었네 / 吾今信望洋
이따금 바람이 자면 거울 빛 서로 부딪치며 / 有時風靜鏡磨光
푸른 하늘과 한 빛깔로 잇닿는다오 / 一色際窮蒼
외딴 섬엔 그 누가 이르기나 하였을까 / 絶島知誰到
돛단배 하나 왜 저렇게 바삐도 가는지 / 孤帆爲底忙
일본이 비록 풍속이 다른 곳이라 해도 / 從敎日本是殊方
삼만 리 땅에서 농사짓고 누에를 치겠지 / 三萬里農桑
백련암(白蓮巖)
물방울은 미인의 얼굴이요 조개 속의 구슬이라면 / 寶靨明珠顆
물무늬는 주름 잡힌 수의와 무곡의 결이라고 할까 / 銖衣霧縠紋
백련의 상서에 대한 말이 어찌 거짓이랴 / 白蓮嘉瑞豈虛言
때로 기이한 향기가 멀리 풍겨 온다오 / 時有異香聞
물처럼 청량한 나그네 잠자리요 / 客枕凉如水
어둠을 깨뜨리는 절간의 등불이라 / 禪燈耿破昏
유석은 함께 논하지 못한다 그 누가 말하는가 / 誰言儒釋不同論
여기에 오면 조석으로 함께 신앙하는 것을 / 到此任朝曛
벽파정(碧波亭)
산에 비가 내리니 꽃잎이 물 위에 둥둥 / 山雨花浮水
강이 맑게 개자 달빛이 물가에 가득 / 江晴月滿汀
고인의 시안으로 지금의 정자가 되었나니 / 古人詩眼此爲亭
누가 감히 새로 지어 바꿀 수 있으리오 / 誰敢換新銘
국도를 떠나도 여전히 붉은 마음이요 / 去國心猶赤
시대를 걱정해도 아직 검은 머리로세 / 憂時鬢尙靑
어부의 노래를 정녕 그대와 듣고 싶어 / 漁歌政欲共君聽
놀라서 일어나니 물총새 깃털이 떨어지네 / 驚起翠毛零
개운포(開雲浦)
승지라서 신선이 숨어 노닐 법도 하건마는 / 地勝仙遊密
구름이 트여서 세상길이 통하게 되었구나 / 雲開世路通
신라 시대 두 신선이 소요했을 듯도 / 依俙羅代兩仙翁
예전에 도화에서 본 모습 그대로 / 曾見畫圖中
하얀 달빛 아래 너울너울 춤을 추기도 하고 / 舞月婆娑白
흐드러지게 핀 붉은 꽃 머리에 꽂기도 하고 / 簪花爛熳紅
유적을 더듬어 보려 해도 아득히 찾을 길 없으니 / 欲尋遺迹杳難窮
아무래도 돛배에 잠깐 바람을 불러야 할까 봐 / 須喚半帆風
은월봉(隱月峯)
은한의 옥엽이 말끔히 걷히고 / 玉葉收銀漢
계화의 빙륜이 넘쳐흐르는 밤 / 氷輪溢桂華
고봉이 달을 가리려고 일부러 우뚝 솟았나니 / 高峯礙月故峨峨
달그림자 기울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는구나 / 不待影欹斜
청야의 경지를 만난 멋진 흥치요 / 逸興逢淸夜
낙하의 구절에 부끄러운 읊조림이라 / 高吟愧落霞
항아는 약을 훔쳐 집에 가지 못하고서 / 恒娥竊藥不歸家
섬아에서 바람과 이슬에 젖고 있으리라 / 風露濕纖阿
[주C-001]정중부(鄭仲孚) : 중부는 정포(鄭誧 : 1309〜1345)의 자이다.
[주D-001]오두(遨頭) : 수 령의 별칭이다. 촉(蜀) 땅 성도(成都)에서 매년 1월 10일부터 4월 19일까지 두보(杜甫)의 초당이 있는 완화계(浣花溪)에서 잔치를 열어 즐기곤 하였는데,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 나오는 태수를 고을 백성들이 오두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송나라 육유(陸游)의 《노학암필기(老學菴筆記)》 권8에 나온다.
[주D-002]여생(餘生)은……본받을지라 : 가 정이 앞으로는 강직한 기질을 앞세워서 다툼을 초래하기보다는 남을 부드럽게 대하면서 몸이 온전해지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말이다. 노자(老子)가 상종(商樅)의 병문안을 가서, 치아가 모두 없어진 것은 강하기 때문이요, 반면에 혀가 아직도 건재한 것은 부드럽기 때문이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說苑 敬愼》
[주D-003]부해(浮海) : 《논어》〈공야장(公冶長)〉에 “나의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나 나갈까 보다.〔道不行 乘桴浮于海〕”라고 탄식한 공자(孔子)의 말이 실려 있다.
[주D-004]망양(望洋)의 탄식 : 《장자》〈추수(秋水)〉에, 황하 귀신인 하백(河伯)이 “끝이 보이지 않는 북쪽 바다에 처음 이르러서 자신의 좁은 소견을 탄식하며 북해 귀신에게 심경을 고백하는〔望洋向若而歎〕” 내용이 나온다.
[주D-005]일본(日本)이……치겠지 : 바 다 건너 일본 역시 모르긴 해도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으리라는 말이다. 두목(杜牧)의 시에 “일천 년 만에 좋은 시대 만나, 삼만 리 땅에서 농사짓고 누에를 친다오.〔一千年際會 三萬里農桑〕”라는 구절이 나온다. 《樊川詩集 卷2 華淸宮三十韻》
[주D-006]물방울은……구슬이라면 : 비 가 내리면서 생기는 연못 위의 물방울을 형용한 것이다. 당나라 양형(楊炯)이 물 위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포말(泡沫)에 대해 “하나씩 관찰하면 미인이 거울을 대하여 얼굴을 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물귀신인 풍이가 조개 속의 밝은 구슬을 꺼내어 배열해 놓은 것 같기도 하다.〔細而察之 若美人臨鏡開寶靨 大而望也 若馮夷剖蚌列明珠〕”라고 묘사하였다. 《盈川集 卷1 浮漚賦》
[주D-007]수의(銖衣)와 무곡(霧縠) : 수의는 불교의 도리천(忉利天)에서 입는 매우 가벼운 옷으로, 보통 선인(仙人)의 옷을 가리키고, 무곡은 안개처럼 얇고 가볍게 만든 깁옷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각각 상의와 하의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주D-008]백련(白蓮)의……온다오 : 백 련화에는 ‘향기가 멀리까지 풍기고〔馨香遠聞〕’, ‘하나의 줄기마다 하나의 꽃이 피고〔一莖單花〕’, ‘꽃이 피면서 열매가 동시에 열리고〔花果同時〕’, ‘진흙탕에 물들지 않고〔不染淤泥〕’, ‘꿀벌이 떼로 몰려오는〔蜜蜂群聚〕’ 등 다섯 가지 미덕이 있다고 전해진다.
[주D-009]유석(儒釋)은……것을 : 유 불(儒佛)이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가정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동진(東晉)의 고승 혜원(惠遠)이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유유민(劉遺民)ㆍ뇌차종(雷次宗) 등 명유(名儒)를 비롯하여 승속(僧俗)의 18현(賢)과 함께 염불 결사(念佛結社)를 맺었는데, 그 사찰의 연못에 백련(白蓮)이 있기 때문에 백련사(白蓮社)라고 일컬었다는 고사가 있다. 《蓮社高賢傳 慧遠法師》
[주D-010]고인의……있으리오 : 지금까지 다녀간 많은 시인들의 관찰력과 감식안 덕분에 지금의 정자에 대한 영상이 아로새겨졌는데, 앞으로는 그보다 더 좋은 시를 짓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다.
[주D-011]아무래도……봐 : 당 나라 왕발(王勃)의 배가 마당(馬當)에 정박하고 있을 때, 중원의 강물을 맡고 있다는 노인이 나타나서 “내일 홍주(洪州)의 등왕각(滕王閣)에서 글을 지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라.”고 하고는, 바람을 불어 주어 700리나 떨어진 홍주까지 하룻밤 사이에 닿게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類說 卷34 摭遺 滕王閣記》 참고로 목은(牧隱)의 〈등왕각(滕王閣)〉 시에 “강물이 하늘과 맞닿은 곳 낙하와 고목이요, 구름 날고 비 오는 속의 화동과 주렴이라. 그 당시의 강 귀신이 나를 혹 알아줄지, 언제 다시 돛배에 잠깐 바람을 빌려 줄까.〔落霞孤鶩水浮空畫棟珠簾雲雨中 當日江神知我否 何時更借半帆風〕”라는 구절이 나온다. 《牧隱詩藁卷28》
[주D-012]은한(銀漢)의……밤 : 밤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어 은하수도 환히 비치고 계수나무 그림자가 보이는 달도 밝게 땅에 비친다는 말이다. 옥엽(玉葉)과 빙륜(氷輪)은 각각 구름과 달을 뜻하는 시어이다.
[주D-013]청야(淸夜)의 경지 : 송 나라의 철인 소옹(邵雍)이 〈청야음(淸夜吟)〉이라는 오언절구에서 밝힌 도의 경지를 말한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달은 하늘 한복판에 이르고, 바람은 물 위에 불어오누나. 이와 같은 청랑한 경지를, 아는 사람 아마도 많지 않으리.〔月到天心處 風來水面時 一般淸意味料得少人知〕”
[주D-014]낙하(落霞)의 구절 : 당 나라 왕발(王勃)이 지은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지는 놀은 짝 잃은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끝없는 하늘과 한 색이로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는 구절에서 나오는 말로, 깊은 가을날의 저녁 경치를 절묘하게 묘사하였다.
[주D-015]항아(恒娥)는……있으리라 : 후 예(后羿)가 서왕모(西王母)에게 불사약을 구해 얻었는데, 그가 미처 복용하기도 전에 후예의 처인 항아가 몰래 훔쳐 먹고는 달로 도망쳐서 월선(月仙)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淮南子 覽冥訓》 섬아(纖阿)는 달을 몰고 운행한다는 여신(女神)의 이름인데, 여기서는 달의 별칭으로 쓰였다.
평해(平海) 객사(客舍)의 시에 차운하여 남가자(南柯子)의 사체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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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에 많이도 일어나는 찬 바람 소리 / 古木多寒籟
빈 처마에 넘쳐 나는 저녁의 서늘 기운 / 虛簷剩晩凉
가을의 악성 어딜 가나 청상곡(淸商曲)을 울리는데 / 秋聲無處不鳴商
더구나 중양의 명절을 보내는 나그네의 길임에랴 / 況是客程佳節過重陽
푸른 비단으로 감싸서 장식한 시문의 벽이요 / 詩壁籠紗碧
춤추는 소매 향기로운 풍악 울리는 잔치로다 / 歌筵舞袖香
관노는 이미 늙었건만 아직도 새로 단장하니 / 官奴已老尙新粧
사군의 유취와 유방을 몇 번이나 맡았을까 / 幾見使君遺臭與流芳
[주D-001]청상곡(淸商曲) : 악부(樂府)의 가곡(歌曲) 이름으로, 가을에 속하는 상성(商聲)의 맑고도 슬픈 노래를 말한다.
[주D-002]푸른……벽이요 : 귀 인과 명사가 지어서 벽에 걸어 놓은 시문을 먼지가 묻지 않도록 푸른 깁으로 감싸서 보호하는 것을 벽사롱(碧紗籠)이라고 한다. 당나라 왕파(王播)가 어려서 가난하여 양주(楊州) 혜소사(惠昭寺) 목란원(木蘭院)의 객이 되어 글을 읽으며 승려들을 따라 잿밥〔齋食〕을 얻어먹었는데, 승려들이 염증을 내어 재가 모두 파한 뒤에야 종을 치곤 하였다. 그 뒤 20여 년이 지난 뒤에 왕파가 중한 지위에 있다가 이 지방에 출진(出鎭)해서 그 절을 찾아갔더니, 지난날 자기가 벽에다 써 놓은 시를 벌써 푸른 비단으로 감싸 놓고 있었으므로, 그 시의 뒤에 “이십 년 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오늘에야 푸른 깁으로 장식되었구나.〔二十年來塵撲面 如今始得碧紗籠〕”라고 써넣은 고사가 있다. 《唐摭言 起自寒苦》
[주D-003]유취(遺臭)와 유방(流芳) : 후세에 악명(惡名)을 남길 만한 고약한 냄새와 미명(美名)을 전할 만한 아름다운 향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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