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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 잡록 번역

천하한량 2010. 1. 13. 02:04

 

가정집 잡록

 

 

 

이중보(李中父)가 정동행성(征東行省)에 사신으로 나가는 것을 전송하며 지은 서()

 


고 려는 아조(我朝)에서 옛날 봉건제도가 행해지던 때의 제후국과 같은 특별한 대우를 받고 직접 사람을 뽑아 관원으로 임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질이 우수한 인재들 모두가 그 나라에서 설행하는 과거 시험을 통해 그 나라에서 벼슬할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황경(皇慶) 연간에 천하의 인재를 대상으로 과거 시험을 보이라는 조칙이 내려졌다. 이로부터는 고려에서도 예부에서 실시하는 과거에 응시하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말단으로 급제하는 대열에 끼이곤 하였으므로 동성(東省)의 재속(宰屬)에 임명되거나 가까운 주군(州郡)에서 벼슬하거나 하였는데, 일단 귀국하고 나면 곧바로 그 나라의 현관(顯官)이 되었을 뿐 다시 서쪽으로 압록강을 건너오는 경우는 보기 드물었다.
봉건제도가 없어진 뒤로 천하의 벼슬하려는 자들이 천자의 조정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된 것은 형세로 볼 때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 고려의 경우는 그 나라에서 직접 사람을 뽑아 관원으로 임명할 수가 있기 때문에, 자질이 우수한 인재들이 왕왕 그 나라에서 설행하는 과거 시험을 통해 그 나라에서 벼슬할 수가 있는데도, 다시 수천 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경사(京師)에 와서 응시하고 있으니, 그 이유는 아마도 그 나라에서 인정을 받는 것보다는 조정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훨씬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비록 말단으로 급제하여 시시한 관직을 얻는다고 할지라도 그 나라에서는 매우 영광스럽게 여기는 터인데, 더군다나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하여 화려한 근시(近侍)의 직책을 차지함으로써 천하 사람들이 모두 영예로 여기는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
원통(元統) 원년(1333, 충숙왕 복위2)에 천자가 친히 책문(策問)으로 진사를 뽑을 적에, 내가 외람되게
염내(簾內)의 신분으로 시권(試券)을 검토하였는데, 고려의 이곡(李穀)이 답한 대책문(對策文)이 독권관(讀券官)의 인정을 크게 받아 을과(乙科)로 뛰어올라 급제하였고, 마침내는 재상이 천자에게 아뢰어 한림국사원 검열관(翰林國史院檢閱官)을 제수하기에 이르렀으니, 이 또한 영예로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 이듬해에 황상(皇上)이 크게 학교를 일으킬 적에, 중보가 제서(制書)를 받들고 동방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회에 조정에서 인정을 받은 것을 가지고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림은 물론이요, 나아가 향당까지 영광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내가 그의 출행을 장하게 여겨 고하기를,

그대가 돌아가서 방인(邦人)과 제우(諸友)를 보거든 다음과 같이 말하라. ‘황상은 문명(文明)한 덕을 지니신 분으로, 유능한 인재는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등용하시기 때문에 원방(遠方)의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법이 없다. 이는 마치 증청(曾靑) 단안() 중국에서 생산되지 않지만 중국이 실제로 쓰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선비는 자기가 쓰이기에 적합하지 못할까 걱정해야지 중국이 자기를 쓰지 않을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를 일으키는 조서를 무엇 때문에 멀리 이 땅에까지 반포하겠는가.’”

하였다.
《주역》의 〈점괘(漸卦)〉에
기러기가 공중으로 날아간다. 깃털을 의식에 있으니, 길하다.〔鴻漸于逵 其羽可用爲儀 吉〕”라고 하였다. 동방의 빼어난 인재가 중보와 함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와서 봉황처럼 춤추는 광경을 내가 장차 보게 될 것인가.
원통(元統) 2(1334, 충숙왕 복위3) 4 18, 국자감 조교(國子監助敎) 보전(
) 진려(陳旅)는 서()한다.

송시(送詩)


그림보다 더 나은 진도의 연화를 떠나 / 珍島煙華畫不如
백암성
아래의 길 구불구불 돌아서면 / 白巖城下路縈紆
수레 타신 사신을 향인이 모두 알아보리 / 鄕人盡識乘軺使
압록강 머리에서 예전에 기수한 그분임을
/
鴨綠江頭舊棄


얘기 듣건대 삼한은 당나라를 본받아서 / 聞說三韓學李唐
백포를 입고 해마다 과장으로 모인다고
/
白袍歲歲集科場
중조에서 고선하고 귀가하는 분을 보면 / 中朝高選歸家看
섬궁의 계자 향기가 특별히 풍긴다네요
/
別樣蟾宮桂子香

동국 출신으로 등과한 여섯 번째 인사 / 東國登科第六人
아름다운 그 자취 금림의 봄을 독점했네 / 芳蹤獨占禁林春
모쪼록 원통의 임금님 은혜가 막중하다고 / 好將元統君恩重
고당에 계신 학발의 모친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 說向高堂鶴髮親

오성
의 문생이 비단옷 입고 돌아감에 / 鰲省門生衣錦還
백발의 좌주가 떠나는 말을 전송하네 / 白頭座主送征鞍
내가 지은 시는 한 푼의 가치도 없으니 / 新詩價不一錢直
계림의 상인에게 부디 보이지 마시기를 / 莫遣雞林賈客看
송본(宋本)
지음

원방의 귀한 황곡 한 마리가 / 黃鵠遠見珍
동쪽 바닷가에서 날아왔다네 / 飛來東海濱
붉은 해 떠오르는 상림원의 새벽이요 / 上林紅日曉
푸른 물결 넘실대는 태액지의 봄이었다오 / 太液碧波春
나래 떨치는 것이 어쩌면 그리도 빨랐던지 / 振翮一何迅
은혜를 받드는 것이 이로부터 새로우리라 / 承恩從此新
우의는 하늘의 길에 가까운 한림원이요 / 羽儀近天路
가송은 천자의 신하들을 뒤흔들었다네 / 歌頌動王臣

과거 급제 늦었다고 걱정할 것 뭐 있으랴 / 中擧寧愁晩
높이 뛰어올라 이미 티끌세상 벗어난걸 / 孤騫已絶塵
공작과 난새도 문채를 빌리려 할 것이요 / 孔鸞應借彩
봉황도 이웃 되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리 /
鸑鷟許爲隣
역마 타고 어버이 뵈러 돌아가면서 / 省覲歸乘傳
조칙 받들고 높이 날아가누나 /
翔出捧綸
중국의 상서로움이 이미 되었으니 / 已爲中國瑞
이제는 고향 사람을 빛내 주셔야지 / 宜耀故鄕人
기군(冀郡) 구양현(歐陽玄) 지음

상국에 건너온 바다 동쪽 진사에게 / 海東進士來上國
선홍색 물들인 옷 누가 내려 주셨던가 / 何人賜袍染猩紅
재화는 한림원에 입직함이 적격이요 / 才華正宜鰲禁直
언어는 통역관과 대화해도 무방하리 / 話言何妨象胥通
그대 지금 역마 타고 고향에 돌아가면 / 君今乘軺故鄕去
아마도 길 양쪽에서 곡포가 영접하리라 / 想見鵠袍迎夾路
황명이 문교를 숭상하여 조서를 내렸으니 / 皇明右文開詔書
명년에 녹명을 부르며 충부할 있으리라 /
明年鹿鳴早充賦
사단(謝端) 지음

교문에 흐르는 넘실거리는 늦은 봄날 / 橋門流水漾餘春
휘황하게 석진을 비춘 계수나무 달빛이여
/
桂月輝輝照析津
하늘 밖에 승사해도 이 또한 나그네 길 / 天外乘槎還是客
조정 안에 증책할 사람이 어찌 없으리오 /
朝中贈策豈無人
기북의 말을 비게 글이 아직 마르지 않고 /
馬空冀北文猶濕
요동의 학이 떠나고 바다에 먼지가 일지 않은 /
鶴去遼東海未塵
몸을 보중해 돌아와 밝은 임금님에게 보고하고 / 珍重歸來報明主
섣불리 하얀 귀밑머리 돋아나지 않게 하기만을 / 莫敎容易鬢毛新
선보(單父) 초정(焦鼎) 지음

이군이 조서 받들고 역마 달려 돌아가니 / 李君捧制馳馹歸
바다 어구에는 유월의 구름이 뭉게뭉게 / 海門六月雲霏霏
채찍 날려 고삐 들고 사천 리 길 치달려 / 揚鞭擧
四千里
동쪽 압록강 건너가면 광휘가 뻗치리라 / 東過鴨綠生光輝
지난해 금문 과거에 응시했을 적에 / 去年射策金門裏
문장으로 중조의 인사를 경악하게 했지 / 文章驚起中朝士
붉은 조복 상아홀을 영광스럽게 내려 받고 / 緋衣象笏錫恩光
한림에서 붓 쥐고서 국사를 닦게 되었다오 / 執筆翰林修國史
군은 송골매처럼 날개 떨치고 뛰어올라 / 君如海鶻騰羽翰
일거에 분연히 구름 위로 솟구쳤다네 / 奮然一擧凌雲端
변방에서 명인이 나왔다 이상하게 보지 마오 / 勿訝邊州有奇士
예로부터 군자는 계속 삼한에서 나왔느니 / 古來君子出三韓
동평(東平) 악지(岳至) 지음

작별하는 자리에 아침 해 밝게 비치는데 / 朝暾明祖幄
기쁘게 보내면서 시 한 수 길게 읊조리네 / 芳餞賦長吟
채색 깃발 휘날리며 역마를 치달리면 / 騎置虹旌下
조서가 임했다고 사람들이 전하리라 / 人傳鳳詔臨
안탑에 남겨질 향기로운 이름이요 /
香名留雁塔
계림을 지나갈 수놓은 비단옷이로세 / 繡服過鷄林
성교가 동쪽으로 바다에까지 번졌으니 /
聲敎東漸海
이제는 해마다 구목의 이 올라오리라 / 年登九牧金
사관(史官) 왕사점(王士點) 지음

원통은 천년토록 이어질 운세라면 / 元統千年運
삼한은 만고토록 전해질 풍교로세 / 三韓萬古風
강은 압록이라 흐름이 맑기도 한데 / 江流明鴨綠
옷은 선홍빛 조복을 하사받았다네 / 袍色賜猩紅
쇠뇌를 지닌 향인이 나와서 구경하고 /
負弩鄕人出
수레를 타면 역로가 곧바로 뚫리리라 /
乘軺驛路通
새로운 짓거들랑 측리에 부디 써서 / 新詩書側理
나를 위해 기러기 편에 부쳐 주시기를
/
爲我寄飛鴻
양음(襄陰) 왕기(王沂) 지음

모래 더미 헤치고 찾은 자금이라고나 할까 / 披盡叢沙見紫金
거편을 보고 주사가 외경심을 일으켰다오 / 鉅篇曾動主司欽
동방이 은총 받음에 산천도 함께 빛이 나나니 / 東方寵耀山川麗
조정이 적셔 준 은혜가 우로처럼 깊기만 해라 / 西掖恩霑雨露深
하직하는 연저의 황화 / 輦底皇華辭鳳闕
계림에 내려가는 일변의 단조로다 / 日邊丹詔下鷄林
고향에 가거든 향인들에게 자세히 말해 주오 / 還家細向鄕人說
문명이 지금보다 성한 때는 과거에 없었다고 / 亘古文明莫盛今
대명(大名) 반적(潘迪) 지음

이군이 해동에서 몸을 일으켜 / 李君起海東
천자의 뜰에서 책문에 응했나니 / 射策天子廷
글은 곤륜에서 발원한 물이 / 文如崑崙源
지붕 위에서 거꾸로 쏟아지는 듯하였고
/
倒建高屋

그런가 하면 상산의 뱀과 같아서 / 又如常山蛇
수미를 감히 멈추게 수가 없었다네
/
首尾不敢停
을과로 낮춰서 배치하긴 하였지만 / 乙科已屈置
첫째로 뽑는 것이 바로 해당하는
/
首擢乃所丁
천자가 보고서 놀라워하였음은 물론 / 天子見之駭
동렬의 안색 역시 빨갛게 변했나니 / 同列顔亦

이에 백옥의 당으로 올려 보내고 / 進之白玉堂
봉황의 날개로 감싸게 하였다오
/
翳以鳳皇翎
북신이 드높이 제자리를 지키매 / 巍巍北辰居
별들이 에워싸고서 향한다 할까
/
奕奕環衆星
적임자는 본래 출신을 따지지 않고 /
立賢本無方
인재를 뽑는 것도 법도가 서 있나니 / 取士亦有經
중국의 위대함을 이를 통해 알고서 / 始識中國大
만방이 이를 본받으려고 하는도다 / 萬邦此儀刑
성인이 학교를 일으킬 마음으로 / 聖人興學心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이 없으시다 / 夙夜靡遑寧
하루아침에 천하에 조서를 내려 / 一日詔天下
원방에 날랜 수레를 달리게 하였는데 / 萬里馳飛軨
이군 역시 사신의 대열에 끼었으므로 / 李君亦在行
이 기회에 어버이도 뵐 수 있게 되었어라 / 因之拜親庭
멀리서 그리워했던 압록강 동쪽의 땅 / 遙憐鴨綠東
갈수록 눈에 보이리 고향의 푸르른 산 / 冉冉鄕山靑
조서가 왔다는 말을 국왕이 들으면 / 其王聞詔來
예의를 갖추어 교외에서 맞을 것이요 / 旂旄擁郊坰
하늘은 맑고 바다엔 해일이 없는지라 / 天淸海無波
부로들도 지팡이 짚고 경청하리니 / 父老扶杖聽
덕화가 성함을 거듭 보고서는 / 再覩德化盛
온 천하가 황령을 우러르리라 / 普天仰皇靈
그대의 나라는 절친한 사위의 나라 / 爾國甥舅親
우리의 동쪽을 지키는 관문으로서 / 爲我東戶扃
사천 리의 거리가 떨어져 있긴 하지만 / 相距四千里
몸과 그림자처럼 뗄 수 없는 관계로다 / 不異影與形
그대여 돌아가 오래도록 체류하여 / 爾歸勿久留
나의 마음을 애태우게 하지 말라 / 使我心熒熒
영양도 원래 것이 없나니 / 迎養固不惡
어찌 치병이 없다고 말하리오
/
豈曰無輜輧
나의 노래를 그대여 시험 삼아 듣고서 / 我歌爾試聽
상로 내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지어다 / 莫待霜露零
게혜사(揭傒斯) 지음

기자가 끼친 풍교(風敎) 어언 이천 년 / 箕子餘風二千載
책구루
아래에 글 읽는 소리 이어졌네 / 幘溝
下有書聲
공사의 신분으로 압록강 멀리 건너와서 / 貢士來經鴨綠遠
등과하여 아비의 영광을 안고 가는구나
/
登科去被牙緋榮
중조가 명을 나눠 보내는 새 조사요 / 中朝分命新詔使
동인이 다투어 영접할 옛 서생이라 / 東人爭迎舊書生
덕음을 선포하여 성교를 넓힌 뒤에는 / 德音宣布聲敎廣
아들을 데리고 와 태학에 들여보내시기를 / 遣子入學同趨京
한림 수찬(翰林修撰) 송경(宋褧) 지음

중보로 말하면 동방의 현인이라 / 中父東方彦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벌써 수그러지네 / 聞名心已降
과장에서 으뜸으로 추대되신 분 / 科場推第一
그 재기 본래 겨룰 자가 없는지라 / 才氣本無雙
기쁨이 아래로 탐라국까지 넘쳐나고 / 喜溢耽羅國
은혜가 위로 압록강까지 입혀졌다오 / 恩浮鴨綠江
백운이 집에 비록 가득 찼다고 하더라도 / 白雲雖滿舍
좋은 계책으로 경륜해 보지 못하다니
/
長策未經邦
그런 분과 동년으로 함께 근무하는 것은 / 同年復同仕
천 년에 한 번 있을 기이한 인연이라 하리 / 千載一奇逢
그대야 고향을 생각해서 간다고 하더라도 / 君念故鄕去
사람들은 말하리 우리 역이 동으로 간다고 / 人言吾易東
교화를 멀리 펴는 임금님의 덕음이요 / 綸音宣化遠
얼굴을 붉게 비치는 사신의 복색이라 / 袍色映顔紅
시험 삼아 명정의 대책문 읽어 보시게 / 試讀明廷策
격양하는 늙은이의 모습 잊을 없으리니
/
難忘擊壤翁
역산(歷山) 정익(程益) 지음

바다 물결이 해님을 씻기는 부상의 동쪽 / 海波浴日扶桑東
삼한을 밝게 비춰 주는 수많은 도서들 / 三韓照耀圖書叢
대지 어디이든 멀고 가까운 곳을 막론하고 / 始知輿地無遠邇
인풍과 화우가 똑같이 적셔 줌을 알겠도다 / 仁風化雨沾濡同
지난번 과거에 공을 따라 나도 응시하였는데 / 憶昨射策來趨風
황상이 친히 유리궁에 거둥하신 자리에서 / 袞衣親御琉璃宮
운연처럼 떨어지고 용사처럼 달아난 글로 / 雲煙落紙龍蛇走
성성이 핏빛처럼 붉은 복을 하사받았지요
/
猩猩血染恩袍紅
황궁에서 조서를 삼가 받들고 나와 / 紫泥擎出蓬萊裏
진사의 신분으로 금의환향하시는 분 / 進士榮歸耀鄕里
자개 상에 맛있는 해물 한껏 차려 올리면 / 雕盤海錯隨意陳
백발의 자친도 안색이 기쁘게 펴지시리라 / 白髮慈親顔色喜
성명한 천자께서 바야흐로 유자를 중히 여기시니 / 聖明天子方嚮儒
산에 돌아가 불러도 오지 않는 일은 없으시기를 / 愼勿還山呼不起
뒷날 도성 문에 명추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 都門他日候鳴騶
수정 술잔에 장밋빛 술 가득 따라 올리리다 /
杯灩薔薇水
정겸(程謙) 지음

아름다운 풍속이 기자 덕분이라면 / 俗美以箕子
문교가 일어남은 황상의 은덕이라 / 敎興維聖明
이역에서 그 누가 배우지 않았으랴만 / 殊方誰不學
우리 그대가 홀로 이름을 이루었도다 / 吾子獨成名
성은이 우악해서 빛나는 붉은 조복이요 / 恩渥緋衣潤
바람이 맑게 개어 잠잠한 푸른 바다로다 / 風淸碧海平
조서 받들고서 비단옷 입고 돌아가면 / 錦還擎鳳詔
환영하는 소리가 도성을 진동하리라 / 歡迓定傾城
대명(大名) 곽가(郭嘉) 지음

 

[주D-001]황경(皇慶) : 원나라 인종(仁宗)의 첫 번째 연호(13111313)이다.
[주D-002]염내(簾內) :
과거 고시의 성적을 매기는 관원을 말한다. 시험장에서 감독하는 관원은 염외(簾外)라고 한다.
[주D-003]문명(文明) :
《서경》〈순전(舜典)〉에깊고 지혜롭고 문채가 나고 환하게 밝다.〔濬哲文明〕라는 말로 순 임금의 덕을 표현한 대목이 있다.
[주D-004]유능한……때문에 :
《맹자》〈이루 하(離婁下)〉에탕왕은 중도를 잡고 행하였으며, 유능한 인재는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등용하였다.〔湯 執中 立賢無方〕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5]증청(曾靑)과……같다 :
《순 자(荀子)》〈왕제(王制)〉에남해에서는 우핵과 치혁과 증청과 단간이 나오는데, 이것을 중국에서 얻어서 재화로 삼고 있다.〔南海則有羽翮齒革曾靑丹干焉 然而中國得而財之〕라는 말이 나온다. 증청은 청색 안료(顔料)이고, 단간(丹干)은 단안(
)이라고도 하는데, 주사(朱砂)이다.
[주D-006]기러기가……길하다 :
상구(上九)의 효사(爻辭)이다.
[주D-007]진도(珍島) :
중국 서호(西湖) 속의 섬 이름이다.
[주D-008]백암성(白巖城) :
요동(遼東)의 양수(梁水) 서북쪽 40리 지점에 있다. 안시성(安市城)이 그 근처에 있으며, 암주(巖州)라고도 한다.
[주D-009]수레……그분임을 :
옛 날에 가정이 일개 서생의 신분으로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압록강을 건넜다가 이제는 중국 사신의 신분으로 금의환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기수(
)는 비단 종이를 둘로 나눠 만든 증명서를 버렸다는 뜻으로, 한나라 종군(終軍)의 고사이다. 종군이 젊어서 장안(長安)으로 갈 적에 걸어서 관문에 들어서니, 그곳을 지키는 관리가 수()를 지급하면서 다시 돌아올 때 맞춰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종군이 앞으로 그런 증명서는 필요 없을 것이라면서 버리고 떠났는데, 뒤에 종군이 알자(謁者)가 되어 사신의 신분으로 부절(符節)을 세우고 군국(郡國)을 돌아다닐 적에 그 관문을 지나가자, 옛날의 관리가 알아보고는이 사자는 바로 예전에 증명서를 버린 서생이다.〔此使者乃前棄生也〕라고 말했다 한다. 《漢書 卷64下 終軍傳》
[주D-010]얘기……모인다고 :
당 나라 때에는 관직을 지닌 자는 조포(皁袍)를 입고, 관직이 없는 유생은 백포(白袍)를 입고, 서민은 포포(布袍)를 입었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백포가 거인(擧人) 즉 입시생(入試生)의 복장으로 쓰이게 되었다. 《說
44上 臣庶許服紫袍》
[주D-011]중조(中朝)에서……풍긴다네요 :
가 정이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하고서 영광스럽게 귀향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중조는 중국 조정을 가리키고, 고선(高選)은 높은 성적으로 합격한 것을 말하고, 섬궁(蟾宮)은 두꺼비가 산다는 월궁(月宮)이고, 계자(桂子)는 계수나무 꽃을 말한다. 현량 대책(賢良對策)에서 장원을 한 극선(
)에게 진 무제(晉武帝)가 소감을 묻자, 극선이계수나무 숲의 가지 하나를 꺾고, 곤륜산(崑崙山)의 옥돌 한 조각을 쥐었다.”라고 답변하였는데, 섬궁 즉 월궁에 계수나무가 있다는 전설을 여기에 덧붙여서, 과거 급제를섬궁절계(蟾宮折桂)’로 비유하곤 한다. 《晉書 卷52 詵列傳》
[주D-012]금림(禁林) :
금원(禁苑)의 숲이라는 뜻으로 상림(上林)과 같은데, 한림원의 별칭으로 쓰인다.
[주D-013]원통(元統) 임금님 :
연호가 원통인 원나라 순제(順帝)를 가리킨다.
[주D-014]오성(鰲省) :
한림원의 별칭이다.
[주D-015]송본(宋本) : 1281~1344.
가정의 좌주(座主)이다. 지치(至治) 원년(1321) 고려의 최해(崔瀣)가 제과(制科)에 급제할 때, 40세의 나이로 장원급제하였다.
[주D-016]구양현(歐陽玄) : 1273~1358.
허겸(許謙)의 제자로, 게혜사(揭傒斯)와 함께 허문사걸(許門四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목은이 20세에 원나라에 들어가서 3년 동안 원나라의 국자감 생원으로 있을 당시에 그를 종유하면서 학업을 닦았고, 또 제과(制科)에 응시했을 때에는 좌주(座主)가 된 인연이 있다.
[주D-017]곡포(鵠袍) :
흰 도포라는 뜻으로 과거 응시생이 입던 옷인데, 여기서는 유생(儒生)을 뜻한다.
[주D-018]명년에……있으리라 :
다 음 해부터 벌써 고려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어 원나라 조정에 천거되는 등 순제(順帝)의 흥학(興學) 정책의 효과가 일찌감치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녹명(鹿鳴)〉은 《시경》〈소아(小雅)〉의 편명으로, 본래는 임금이 신하를 위해 연회를 베풀며 연주하던 악가(樂歌)인데, 후대에는 군현의 장리(長吏)가 향시(鄕試)에 급제한 거인들을 초치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베풀어 주며 그들의 전도(前途)를 축복하는 뜻으로 이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송양소윤서(送楊少尹序)〉에양후(楊侯)가 향리에서 과거에 급제한 뒤에 녹명을 부르면서 올라왔다.〔擧於其鄕 歌鹿鳴而來〕라는 대목이 나온다. 충부(充賦)는 관원의 천거를 받고 조정에 진출하는 것을 말한다.
[주D-019]교문(橋門)에……달빛이여 :
동 방의 고려 출신인 가정이 황제가 임석한 제과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한 것을 말한다. 교문은 주위에 물이 흐르고 다리를 통해 네 개의 문으로 들어가는 태학을 가리킨다. “향사례가 끝나고 천자가 정좌하여 직접 강을 하면 제유가 경서를 지니고 그 앞에서 토론을 벌이는데, 관디를 한 진신들을 비롯해서 교문을 에워싸고 구경하는 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饗射禮畢 帝正坐自講 諸儒執經問難於前 冠帶搢紳之人 圜橋門而觀聽者蓋億萬計〕라는 말이 《후한서》 권79상 〈유림열전(儒林列傳)〉 서문에 보인다. 계수나무는 진()나라 극선(
)이 장원급제한 뒤에계림의 가지 하나〔桂林一枝〕를 꺾었다고 한 고사를 암시한 것이고, 석진(析津)은 석목진(析木津)의 준말로 고려를 가리킨다. 석목은 12성차(星次) 중의 하나인데, 십이지(十二支)의 인()에 해당하여 동방인 우리나라와 요동 일대를 비춰 준다고 여겨졌다.
[주D-020]승사(乘槎) :
천 자의 명을 받들고 해외에 사신으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장건(張騫)이 한 무제의 명을 받고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나가 황하의 근원을 찾았는데, 이때배를 타고〔乘槎〕은하수로 올라가 견우와 직녀를 만났다는 전설이 남조(南朝) ()의 송름(
)이 지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나온다.
[주D-021]조정……없으리오 :
가 정이 표면상으로는 사신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떠나가지만, 실제로는 고향에 돌아가서 어버이를 뵙고자 하는 평소의 소원을 이루게 된 것이 아니냐는 해학의 뜻이 섞여 있다. 증책(贈策)은 선물로 준다는 말로, 전송하면서 한마디 말을 해 주는 것을 뜻한다. 춘추 시대 진()나라 대부 사회(士會)가 진()나라에 망명했다가 다시 귀국할 적에, ()나라 요조(繞朝)가 채찍을 증정하면서 사회의 진짜 의도를 다 알고 있다는 뜻으로그대는 진나라에 사람이 없다고 하지 말라. 나의 계책이 마침 채용되지 않았을 뿐이다.〔子無謂秦無人 吾謀適不用也〕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春秋左氏傳 文公13年》
[주D-022]기북(冀北)의……않고 :
가 정이 제과에 급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라는 말이다. 기북은 준마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인데, 한유의 〈송온처사부하양군서(送溫處士赴河陽軍序)〉에백락이 기북의 들판을 한번 지나가자 말들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伯樂一過冀北之野 而馬群遂空〕라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여기서 백락은 시관(試官)을 뜻한다.
[주D-023]요동의…… :
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천자의 사신으로 다시 금의환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요동 사람 정 영위(丁令威)가 신선이 되고 나서 1천 년 만에 학으로 변해 다시 고향을 찾아와서는 요동 성문의 화표주(華表柱) 위에 내려앉았다는데, 소년 하나가 활을 쏘려고 하자 허공으로 날아올라 배회하다가 탄식하면서 떠나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搜神後記 卷1》 또 선녀 마고(麻姑)가 신선 왕방평(王方平)을 만나서, “저번에 우리가 만난 이래로 동해가 세 번이나 뽕밭으로 변한 것을 이미 보았는데, 저번에 봉래에 가 보니까 물이 또 과거에 보았을 때에 비해서 약 반절로 줄어들었으니, 어쩌면 다시 땅으로 변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接侍以來 已見東海三爲桑田 向到蓬萊 水又淺于往者會時略半也 豈將復還爲陵陸乎〕라고 말하자, 왕방평이 웃으면서바다 속에서 또 먼지가 날리게 될 것이라고 성인들이 모두 말하고 있다.〔聖人皆言 海中復揚塵也〕라고 말했다는 신화 속의 이야기가 전한다. 《神仙傳 卷7 麻姑》 먼지가 아직 날리지 않았다는 말은 시간이 아직 많이 흐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주D-024]금문(金門) :
한나라 궁문인 금마문(金馬門)의 약칭으로 보통 대궐이나 조정을 가리킨다.
[주D-025]안탑(雁塔)에……이름이요 :
가정이 원나라의 제과에 급제한 것을 말한다. 당나라 때 진사과에 합격한 사람들이 자은사(慈恩寺)의 대안탑(大雁塔) 아래에다 이름을 기록해 넣은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唐摭言 慈恩寺題名游賞賦詠雜記》
[주D-026]성교(聲敎)가……번졌으니 :
중 국의 문교 정책이 고려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말이다. 《서경(書經)》 〈우공(禹貢)〉 맨 마지막의동쪽으로는 바다에까지 번져 갔고, 서쪽으로는 유사 지역에까지 입혀졌으며, 북쪽과 남쪽의 끝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의 풍성(風聲)과 교화가 사해에 다 미치자, 우가 검은 규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순() 임금에게 그의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東漸于海 西被于流沙 朔南曁 聲敎訖于四海 禹錫玄圭 告厥成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27]구목(九牧) 금(金) :
구 주(九州)의 지방 장관이 중앙 조정에 올리는 금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원나라 조정에 진출하기 위해 올라오는 고려의 인재라는 의미로 쓰였다. “옛날 하()나라의 덕이 한창 성대할 적에는 먼 지방에서 기이한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 올리고 구주의 지방에서 금을 바쳤다.〔昔夏之方有德也 遠方圖物貢金九牧〕라는 말이 《춘추좌씨전》 선공(宣公) 3년 기사에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금은 구리와 같은 금속을 가리킨다.
[주D-028]쇠뇌를……구경하고 :
가 정이 고향에서 환영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중랑장(中郞將)이 되어 고향인 파촉(巴蜀) 땅에 사신으로 갔을 적에 촉군 태수(蜀郡太守) 이하가 모두 교영(郊迎)하였으며, 현령(縣令)몸소 쇠뇌를 등에 지고 앞장서서 달림으로써〔負弩矢先驅〕존경하는 뜻을 보였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주D-029]수레를……뚫리리라 :
가 정의 수레를 맞기 위해 길이 뚫릴 것이라는 말이다. 한나라 주매신이 만년에 영달하여 회계 태수(會稽太守)로 부임할 때 누더기 차림에 인수(印綬)를 허리에 차고 군저(郡邸)에 가자 아전이 인수를 발견하고는 경악하여 상관에게 보고하였으며, 마침내 그를 영접하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여 길을 치우게 하였는데, 그중에는 주매신을 경멸하며 버렸던 옛날의 아내와 그 남편도 끼어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64上 朱買臣傳》
[주D-030]새로운……주시기를 :
참 고로 왕기(王沂)의 문집인 《이빈집(伊濱集)》 권7〈고려에 돌아가는 식 스님을 전송하며〔送式上人還高麗〕〉라는 칠언율시 미련(尾聯)새로운 시 짓거들랑 부디 측리에 써서, 벽운의 멋진 시구 사람이 전하게 하시기를.〔好把新詩書側理 碧雲佳句要人傳〕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측리(側理)는 측리지(側理紙)라는 종이를 가리킨다. 남쪽 지방에서 해태(海苔)를 재료로 해서 만드는데, 그 결이 종횡으로 이루어져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벽운(碧雲)의 멋진 시구란, 남조(南朝) 송의 시승(詩僧)인 탕혜휴(湯惠休)해가 지면 푸른 구름도 서로 만나는데, 가인은 왜 이렇게 오지 않는지.〔日暮碧雲合 佳人殊未來〕라는 구절을 말한다.
[주D-031]자금(紫金) :
적동(赤銅)과 황금을 배합한 것과 같은 진귀한 광물이라고 한다.
[주D-032]주사(主司) :
고시(考試)를 주관하는 사람, 즉 시관을 말한다.
[주D-033]연저(輦底) 황화(皇華) :
중 국의 사신이라는 말이다. 연저는 연곡하(輦轂下)의 준말인 연하(輦下)와 같은 말로, 황제의 도성을 가리킨다. 황화는 황화사(皇華使)의 준말로, 임금의 명을 받들고 멀리 사방으로 가서 아름다움을 선양하는 사신이라는 뜻인데, 《시경》〈소아(小雅) 황황자화(皇皇者華)〉에서 나온 말이다.
[주D-034]일변(日邊) 단조(丹詔) :
황 제의 조서라는 말이다. 일변은 동진(東晉)의 명제(明帝)가 어렸을 적에 부왕인 원제(元帝)에게 장안과 태양 사이의 거리를 답변한 고사에서 나온 말로, 도성의 별칭이다. 《世說新語 夙惠》 단조는 주필(朱筆)로 쓴 황제의 조서를 말한다.
[주D-035]그……듯하였고 :
가 정이 책문에 답한 문장을 비유하자면, 서쪽 끝의 곤륜산(崑崙山)에서 발원한 황하가 마치 물병을 들고 지붕 위에 올라가 쏟아 붓는 것처럼 막힘없이 힘차게 흘러내리는 것과 같았다는 말이다. 한나라 전긍(田肯)이 고조에게 용병의 유리한 형세에 대해 진언을 하면서, 마치지붕 꼭대기에 앉아 물병을 거꾸로 들고 아래로 쏟을 때처럼〔居高屋之上建
水〕막힘이 없을 것이라는 뜻으로 비유한 고사가 《사기》 권8〈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온다.
[주D-036]그런가……없었다네 :
전 후좌우의 글이 서로 응하여 지적할 만한 허점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상산(常山)의 뱀은 수미(首尾)가 상응한다는 전설상의 뱀으로, “머리를 치면 꼬리가 응원하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응원하며, 중앙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응원한다.〔擊其首則尾至 擊其尾則首至 擊其中則首尾俱至〕라는 말이 《손자(孫子)》〈구지(九地)〉에 나온다. 제갈량의 팔진도(八陣圖) 역시 이 뱀으로부터 암시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주D-037]을과(乙科)로…… :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서 제2(第二甲)으로 급제시키긴 하였지만, 사실은 장원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주D-038]이에……하였다오 :
가정이 한림국사원 검열관(翰林國史院檢閱官)을 제수받은 것을 말한다. 백옥당(白玉堂)은 한림원의 별칭이다.
[주D-039]북신(北辰)이……할까 :
원 나라 황제가 덕정을 펴고 있다는 말이다. 《논어》〈위정(爲政)〉에임금이 덕정을 펴게 되면,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북극성 주위로 뭇별들이 향해 오는 것처럼 될 것이다.〔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共之〕라는 말이 나온다.
[주D-040]적임자는……않고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탕왕은 중도를 잡고 행하였으며, 유능한 인재는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등용하였다.〔湯 執中 立賢無方〕라는 말이 나온다.
[주D-041]바다엔 해일이 없는지라 :
중 국의 황제가 성덕(聖德)을 발휘하여 태평한 정치를 펴고 있다는 말이다. ()나라 성왕(成王) 때에 주공(周公)이 섭정하여 천하가 태평해지자, 월상씨(越裳氏)가 와서 주공에게흰 꿩〔白雉〕을 바치며우리나라 노인들이 말하기를하늘에 풍우가 거세지 않고 바다에 해일이 일지 않은 지 지금 3년이 되었다. 아마도 중국에 성인이 계신 듯한데, 어찌하여 가서 조회하지 않는가.〔天之不迅風疾雨也海不波溢也 三年於玆矣 意者中國殆有聖人 盍往朝之〕라고 하기에 조공을 바치러 왔다.”라고 하였다는 말이 《한시외전(韓詩外傳)》 권5에 나온다. 월상씨는 교지(交趾)의 남쪽에 있던 고국(古國)의 이름이다.
[주D-042]영양(迎養)도……말하리오 :
고 향에 계신 노모를 아예 안락한 수레에 모시고 연경에 와서 편히 봉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이다. 영양은 관원이 자기가 벼슬하는 곳에 어버이를 모시고 와서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치병(
軿)은 치거(輜車)와 병거(軿)의 병칭으로, 비바람이나 남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의거(衣車)처럼 사방을 병풍처럼 막고, 또 누워서 쉴 수 있도록 안락하게 꾸민 수레를 말하는데, 보통 귀족의 부녀자들이 탑승한다. 참고로 《목은시고(牧隱詩藁)》 권3〈귀래(歸來)〉에그래서 우강 게 문안 선생이, 영양이라는 한마디 말로 의관을 놀라게 한 것이라오.〔所以盱江揭文安 迎養一語驚衣冠〕라는 말이 나오는데, 바로 이 시의 구절을 두고 한 말이다. 문안(文安)은 원나라에서 시의 4대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게혜사(揭傒斯 : 1274~1344)의 시호이다.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이문(理問)으로 고려에 나와 가정과 친하게 지냈던 게이충(揭以忠)이 그의 아우이다.
[주D-043]책구루(幘溝) :
고 구려의 성() 이름이다. 고구려는 성을 구루라고 하는데, 이 성에서 한나라의 의책(衣幘)과 조복(朝服) 등을 받은 뒤에 이곳에 보관해 두었다가 세시(歲時)에 와서 가져다 썼기 때문에 책구루라고 했다는 기록이 《삼국지》 권30〈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나온다. ‘(
)’()’로 쓰기도 한다.
[주D-044]공사(貢士)의……가는구나 :
고 려에서 응시생의 신분으로 연경에 와서 제과에 급제한 뒤에 당당히 중국 조정의 관원이 되어 금의환향한다는 말이다. 공사는 지방이나 외국에서 중국 조정에 인재를 천거하는 것, 혹은 천거된 인재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고려의 향시에 합격하고 나서 원나라의 전시(殿試)에 응시하기 위해 올라온 수험생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아비(牙緋)는 상아홀(象牙笏)과 홍포(紅袍)의 합칭으로, 조관(朝官)을 뜻한다.
[주D-045]송경(宋褧) :
송본(宋本)의 아우이다. 형제가 이송(二宋)으로 이름을 떨쳤다.
[주D-046]탐라국(耽羅國) :
제주도를 말하는데, 《원사(元史)》 권208〈외이열전(外夷列傳)〉에 고려의 속국으로 하나의 전()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
[주D-047]백운(白雲)이……못하다니 :
가 정이 고려에서 흰 구름만 집에 가득 내려앉을 정도로 고독한 상태에서 칩거한 채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좋은 계책을 발휘하여 국가를 경영할 기회를 가져 보지 못하게 한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는 말이다.
[주D-048]우리……간다고 :
한나라 정관(丁寬)이 전하(田何)에게 《주역》을 다 배우고 나서 동으로 낙양에 돌아갈 적에, 전하가 문인에게우리 역이 그를 따라 동으로 간다.〔易以東矣〕라며 탄식한 고사가 있다. 《漢書 卷88 儒林傳 丁寬》
[주D-049]시험……없으리니 :
요 임금 때와 같은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는 방책이 가정의 책문 답안지 속에 모두 들어 있다는 말이다. 격양(擊壤)은 땅을 두드린다는 뜻인데 요 임금 시대에 어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가 전한다. 《논형(論衡)》〈예증(藝增)〉에, “나이 50이 된 어떤 사람이 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이를 본 사람이 말하기를, ‘위대하도다, 요 임금의 덕이여.’ 하자, 땅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하고 있던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쉬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서 밥 먹을 뿐이니, 임금님의 힘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상관이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하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주D-050]화우(化雨) :
제때에 내려 만물을 화육(化育)하는 비라는 뜻으로, 《맹자》〈진심 상(盡心上)〉의시우화지(時雨化之)’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51]유리궁(琉璃宮) :
방장산(方丈山) 위에 있다는 신선의 궁전으로, 동방삭(東方朔)이 지은 《십주기(十洲記)》에 그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전시(殿試)가 행해진 궁전을 말한다.
[주D-052]운연(雲煙)처럼……하사받았지요 :
가 정이 웅건한 필세로 막힘없이 답안지를 작성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한 뒤에 한림원의 관직을 제수받았다는 말이다. 참고로초성(草聖)’으로 전해지는 장욱(張旭)의 글씨에 대해서 두보가한번 붓을 휘갈겨 종이 위에 쓰면 마치 구름이나 연기와 같다오.〔揮毫落紙如雲煙〕라고 묘사한 구절이 나오고, 초서(草書)를 노래한 이백의 시에때때로 용과 뱀이 달아나는 것만 보인다.〔時時只見龍蛇走〕라고 표현한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2 飮中八仙歌》《李太白集 卷7 草書歌行》
[주D-053]명추(鳴騶) :
귀인(貴人)의 수레 앞에서 잡인(雜人)의 통행을 소리쳐서 금하는 기졸(騎卒)을 말한다.

 

 

 

 

 

이중보(李中父)가 사명을 완수하고 원나라 조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 지은 서

 


한림 이중보가 정동행성에 사명을 받들고 왔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 할 즈음에 나에게 들러 하직을 고하기에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진사과(進士科)의 시험을 통해서 인재를 뽑는 것은 본래 당나라 때에 성행하였다
. 장경(長慶) 초기에 김운경(金雲卿)이 최초로 신라 빈공(賓貢)의 신분으로 두사례(杜師禮)가 주관한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로부터 시작해서 천우(天祐) 말년에 이르기까지 빈공을 대상으로 실시한 과거에 급제한 자는 모두 합쳐서 58인이었고, 오대(五代)의 양()과 당() 때에는 또 32인이 나왔는데, 대개 발해(渤海)의 제번(諸蕃) 출신인 10여 인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사람들 모두가 동방의 인사들이었다.
우리 고려에서도 일찍이 송나라에 인재를 천거하여 과거에 응시하게 하였다. 그 결과
순화(淳化) 연간에 손하(孫何)가 주관한 과거에서 왕빈(王彬)과 최한(崔罕)이 급제하였고, 함평(咸平) 연간에 손근(孫僅)이 주관한 과거에서 김성적(金成績)이 급제하였고, 경우(景祐) 연간에 장당경(張唐卿)이 주관한 과거에서 강무민(康撫民)이 급제하였다. 정화(政和) 연간에는 또 황제가 친히 시험을 보여 권적(權適)과 김단(金端) 4인에게 특별히 상사 급제(上舍及第)를 내렸다. 이를 통해 동방에 대대로 인재가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른바 빈공과(賓貢科)라는 것은 본래 과거를 거행할 때마다 별도로 치르는 시험으로서 급제자 명단의 끄트머리에 이름을 덧붙일 뿐 정식으로 급제한 사람 축에 끼이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제수하는 것을 보더라도 낮고 한산한 관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어떤 때는 관직도 없이 그냥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거룩한 원나라에서는 천하의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며 똑같이 사랑하기 때문에, 인재를 등용할 때에도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 동방의 인사들이 중원의 준수한 인사들과 나란히 응시하여 급제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자가 이미 여섯 명이나 된다
.
중보가 맨 마지막에 나오긴 하였으나 우수한 성적으로 뽑혀서 조정의 관직을 제수받았고, 그 영예가 양친에게까지 미쳐서 모두 은명(恩命)을 입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영광스럽게 조서를 받들고 고국에 사신으로 와서 고당(高堂)의 모친을 뵙고 선영(先塋)
분황(焚黃)을 하여 살아 계신 분이나 돌아가신 분 모두에게 영예가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고 보면 중보가 득의양양하게 고향에 돌아온 것이야말로, 장경(長卿)이나 옹자(翁子) 촉(蜀) 월(越)에서 뻐기던 정도일 뿐만이 아니라고 해야 것이다.
우리 집안의 문창공(文昌公) -()는 치원(致遠)으로, 본국에서 추봉(追封)한 것이다.-은 나이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18세이던 함통(咸通) 15(874, 신라 경문왕14)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리하여 중산위(中山尉)를 거쳐 회남(淮南) 고 시중(高侍中 고변(高騈))의 막좌(幕佐)가 되었으며 관직이 전중시어사 내공봉(殿中侍御史內供奉)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28세에 사명을 받들고 귀국하였으므로, 고향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미담으로 전해 오고 있다.
그 러나 당시의 상황으로 말하면 당나라 말기로 사방에서 병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공이 사방으로 외롭게 떠돌아다니며 번진(藩鎭)에서 기식(寄食)하였으며, 또 어사의 직질(職秩)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직(實職)이 아니었다. 그리고 동쪽으로 돌아와서도 나라가 또 크게 혼란한 가운데 길이 막혀서 복명(復命)을 하지도 못하였다. 그러니 그 평생을 논해 본다면 고생만 하였을 뿐 영화를 누린 것은 별로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이와 반대로 우리 중보는 아름답고 밝은 세상을 만나 화려한 근시(近侍)의 지위에 올랐다. 여기에 또 나이가 바야흐로 장년(壯年)인 데다가 뜻이 갈수록 겸손하기만 하여 그 양양한 전도(前途)를 쉽게 헤아릴 수 없고 보면, 집안을 드러내고 나라를 영예롭게 하는 것이 어찌 지금 한때로 그치겠는가. 필시 부귀를 한껏 누리고 공명을 천하에 가득 떨치는 가운데
주금(晝錦) 당우(堂宇)를 동한(東韓)에 크게 짓는 것을 보게 되리니, 모르겠다마는 후세 사람들이 중보를 옛날 동방의 사람들과 비교해서 어떻게 평하겠는가.
이와 함께 기억나는 것이 또 있다. 나도 지치(至治) 원년(1321, 충숙왕8)에 외람되게 연경에 가서 회시(會試)에 응시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해에는 거자(擧子)가 정액(定額)을 채우지도 못해서
좌방(左榜)에 오른 자가 겨우 43인이었는데 나는 요행히 21번째에 끼이게 되었다. 그리고 개모 별가(蓋牟別駕)의 임명을 받았으나 그 관직에 부임한 지 몇 개월 만에 병을 이유로 면직을 청하였다. 지금 향리에 물러나 살아온 지 어언 13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동안 품었던 장한 뜻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 이제는 다시 날고뛰는 기세를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요즈음 중보를 보노라면 내가 끝내는 자포자기하여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게 되었음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 성명(聖明)하신 임금님의 기대를 저버린 부끄러움을 또 어떻게 말로 다할 수가 있겠는가. 중보는 아무쪼록 더욱 힘쓸지어다. 그리하여 삼태기의 흙이 부족해서 아홉 길의 산을 만들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할지어다. 나는 중보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다. 그래서 그의 행실을 칭송한 다음에 나의 졸렬한 과거의 행적을 스스로 비판함으로써 그를 다시 북돋우려고 하였다.
원통 을해년(1335, 충숙왕 복위4) 3 1일에 계림(鷄林) 최해(崔瀣)는 서()한다
.

송시(送詩)


모골이 범류와 다른 것을 진작 알고서 / 早知毛骨異凡流
청운의 뜻 이룰 날을 눈 비비고 기다렸지 / 刮目靑雲得意秋
삼급의 풍뢰가 봉필에서 일어나 /
三級風雷起蓬蓽
구천의 우로가 송추에 흡족하였도다 /
九天雨露洽松楸
이별의 정 일으키는 압록강의 짙은 버들이요 / 鴨江柳暗牽離思
멋진 놀이 기다리는 한림원의 만개한 꽃이로다 / 鰲禁花開待勝遊
한잔 술로 회포를 풀 날 다시 언제일까 / 尊酒論懷更何日
흰머리 이 몸의 일은 창주에 부칠 수밖에 / 白頭身事付滄洲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지음

설창
에서 십 년 내내 열심히 공부했다 해도 / 雪窓雖積十年勤
기예 겨루는 과장에서 손쉽게 공을 세우다니 / 戰藝場中易策勳
이번에 가면 공명은 지푸라기 줍듯 할 터 / 此去功名如拾芥
그대를 허용치 않을 대각이 어디 있으리오 / 有何臺閣不容君
정승(政丞) 권한공(權漢功) 지음

푸른 시냇가에 성대하게 차려 놓은 송별 자리 / 祖席高張碧澗濱
서쪽 교외에 날 저물며 황사 먼지 자욱해라 / 西郊日薄藹黃塵
올해는 눈이 한식까지 계속해서 내리는데 / 今年雨雪連寒食
곳곳마다 불을 피워 명절 맛이 나지 않네 / 觸處煙火阻令辰
방초도 떠나는 말을 머무르게 할 수 없는데 / 芳草未堪留去馬
푸른 버들이 어떻게 가는 사람을 매어 두랴 / 綠楊豈解繫行人
남아는 사방을 경영할 뜻을 가져야 하는 법 / 男兒自有四方志
갈림길에서 그토록 상심할 것이 뭐 있으랴 / 安用臨岐苦愴神
창정(昌定) 안진(安震) 지음

규벽
이 우리 동방을 비추어 / 奎璧照東方
선리
가 향곡에서 태어났나니 / 仙李生鄕曲
온후한 얼굴에 영특한 기상 / 睟面氣英奇
미옥을 속에 감춘 원석이었다네 / 璞中藏美玉
머리 묶고 나를 따라 노닐 그때에 / 結髮從我遊
오경이 이미 뱃속에 들어 있었는데 / 五經已在腹
진정한 재질을 아는 이 누가 있었으랴 / 無人識眞才
뜬소문만 믿을 뿐 목격한 사실은 무시했다오 / 貴耳而賤目
하루아침에 계리(計吏) 함께 가서 / 一朝與計偕
황제를 뵙고 장옥에서 겨룬 결과 /
謁帝戰場屋
차례 이기는 뛰어난 공을 세웠나니
/
三捷收奇功
조정은 금원의 파목을 얻었더라오 / 禁苑得頗牧
가슴에는 적선의 문사를 안고서 / 謫仙詞
연촉을 대하며 고상하게 노래했고
/
高詠對蓮燭
손에는 태사의 붓을 쥐고서 / 手持太史筆
한청의 죽간에 올곧게 기록했지요
/
直書汗靑竹
지난해 금의환향한 것은 / 去年錦還鄕
상여가 사신으로 서촉에 것 /
相如使西蜀
사마가 광휘를 발하는 가운데 /
駟馬生光輝
훤당 앞에 색동옷을 걸쳤더라오
/
萱堂披綵服
양지의 효도는 입양에 있는지라 / 養志在立揚
할애하며 국육을 하직한다마는
/
割愛辭鞠育
그대를 위해 봄을 아쉬워하나니 / 爲君惜芳辰
연못 둑에 지금 봄풀이 푸르니까
/
池塘春草綠
나는야 좋은 계책 그르쳤으니 / 伊我誤良圖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 悔之不可復
하사받은 관복을 그냥 상자 안에 놔둔 /
賜袍在篋閑
구름 사이 날아가는 황곡을 부러워하노라 / 坐羨雲間鵠
죽계(竹溪) 안축(安軸) 지음

천자가 구언하며 만방에 조서를 내리매 / 天子求言詔萬方
선생이 수계하여 현량에 응했다네
/
先生隨計應賢良
급제자 명단에 높이 올라 화려한 직질에 옮겨지고 / 高登桂榜遷華秩
조칙을 받든 사신의 신분이 되어 고향을 빛냈다오 / 光捧芝綸耀故鄕
우악한 은총이 가문에 드리워지고 / 優渥異恩垂蕊闥
기쁜 기색이 훤당에 넘쳐흐르도다 / 氤氳喜氣滿萱堂
편히 놀며 즐기는 것이 어찌 남아의 일이리오 / 宴安不是男兒事
어서 가서 공경이 되어 성황을 보좌하시기를 / 往取公卿佐聖皇
여강(驪江) 민자이(閔子夷) 지음

한림원의 이후는 우리 동방의 인걸 / 翰苑李侯東方傑
문장의 근원 호호하여 측량하기 어려워라 / 浩浩詞源固難測
기둥에 쓰고 황조에 것이 엊그제인데 / 纔看題柱入皇朝
어느새 사신 수레 타고 고국에 오셨구려
/
已見乘軺歸故國
노모를 즐겁게 해 드린 지도 얼마 되지 않는데 / 高堂綵戲未幾何
왕사에 일정이 있어서 더 머물 수 없다네 / 王事有程留不得
요수 건너 연경에 가는 기나긴 여행길에 / 遼水燕山去路長
못 잊어 하는 우리를 기억이나 해 주실는지 / 能記吾曹苦相憶
내군(萊郡) 정천유(鄭天濡) 지음

옛날 내가 관을 아직 쓰기도 전에 / 昔吾方未冠
오래 두문불출하는 그대 소식 들었지요 / 聞子久閉門
몸을 수사 사이에 허락한 이상에는 / 許身洙泗間
헌상
따위를 논할 것이 있으리까 / 軒裳安足論
만리 밖으로 드높이 날아가는 저 학을 /
昂昂萬里鶴
구름 너머로 어떻게 쫓아갈 수 있으리오 / 雲表誰能攀
유자는 진부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
爲儒孰云腐
오늘 다 함께 파안대소할 일이로세 / 今日共破顔
기분 좋게 풍운이 서로 만난 시대에 / 快哉風雲會
동방에 돌아와 자리를 어찌 따뜻하게 할까
/
東歸席豈溫
평소에 그래도 서로 언약한 바가 있으니 / 平生還有約
그대에게 한마디 안 해 줄 수 있으리까 / 贈子得無言
계림(鷄林) 이달존(李達尊) 지음

생각하면 지난 경신년 가을에 / 伊昔庚申秋
똑같이 동사의 방에 올랐고
/
同登東士榜
빈흥과에 외람되게 끼어 /
又忝賓興科
중조에 함께 갈 수 있었다네 / 中朝得偕往
극위
에서 더불어 격전을 치르면서 / 棘闈與酣戰
창을 들고 삼엄하게 서로 향할 적에 / 矛戟森相向
하나의 화살이 벌써 어긋났는지라 /
一箭已不勝
아직도 분한 마음에 앙앙불락하는데 / 含憤猶怏怏
그대는 몇 겹의 포위망을 뚫었다 하니 / 聞子透重甲
높은 산을 더더욱 우러러볼 수밖에 / 高山益瞻仰
천자가 바야흐로 유자를 중히 여겨 / 天子方重儒
온화한 안색으로 은혜롭게 장려하며 / 溫色垂恩

백옥당에 그대의 자리를 배치하였나니 / 置之白玉堂
성대한 식탁에 상아로 된 걸상이라 / 綺食而象牀
게다가 조명으로 귀근을 허락받았나니 / 詔命許歸覲
휘황하게 빛나는 사신의 행차여 / 使華耀皇皇
은전이 부모님에게까지 미쳐 / 寵典及父母
두 분을 봉한 교지가 향기로우니 / 兩封芝牒香
구천의 아버님도 물론 감격하시겠지만 / 九泉感已徹
살아 계신 어머님 기쁨이 또 어떠하리오 / 存者喜可量
고당에서 색동옷 입고 춤을 추면서 / 高堂舞綵衣
정성을 기울여 축수의 술잔을 바쳤다오 / 瀝懇稱壽觴
남아가 한번 문장을 토해 내면 / 男兒吐文章
일월과 빛을 다투어야 하고말고 / 日月須爭光
돌아보건대 나는 풍진 속에 떨어져서 / 顧余落風塵
평소의 업도 스스로 힘쓰지 못하는데 / 素業不自强
그대가 청자를 줍듯 하는 것을 보고 /
看君拾靑紫
기러기 날개를 더위잡고 싶기도 하오마는 /
且願攀鴻翔
운니처럼 길이 완전히 달라진지라 /
雲泥旣異途
부드럽게 쳐다보며 괜히 배회할 뿐이라오 / 翹首空徊徨
직산(稷山) 백문보(白文寶) 지음

한림의 호기 호탕해서 거두기 어렵나니 / 翰林豪氣浩難收
호해의 선비 원룡의 백척루라고나 할까
/
湖海元龍百尺樓
나도 공을 따라 상국에 노닐고 싶어라 / 我欲從公遊上國
시골구석은 답답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 安能鬱鬱在荒陬
서원(西原) 정포(鄭誧) 지음

책문에 답하던 당년에 왕의 손님이 되더니 /
答策當年利用賓
올 때에는 비단옷 입고 조서를 받들었네 / 來時衣錦捧絲綸
동관에서는 기수의 선비임을 알아차렸고 / 東關竊識棄

남군에서는 단직의 어버이를 영광되게 했네 / 南郡歸榮斷織親
떠나는 발걸음 더딘 것은 날을 아끼는 마음 때문 /
去國行遲因愛日
조회할 기한이 박두해서 봄날을 따라 가려 한다네 /
朝天期迫欲隨春
그대가 청운에 뛰어올라 성공한 것을 보니 / 見君騰躍靑雲興
시서가 사람을 저버리지 않음을 믿겠도다
/
始信詩書不負人
죽계(竹溪) 안보(安輔) 지음

 

[주D-001]장경(長慶) : 당나라 목종(穆宗)의 연호이다.
[주D-002]빈공(賓貢) :
타국에서 중국의 조정에 천거한 인재를 가리킨다.
[주D-003]천우(天祐) :
당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애제(哀帝)의 연호이다.
[주D-004]순화(淳化) :
송나라 태종(太宗)의 연호이다.
[주D-005]함평(咸平) :
송나라 진종(眞宗)의 연호이다.
[주D-006]경우(景祐) :
송나라 인종(仁宗)의 연호이다.
[주D-007]정화(政和) :
송나라 휘종(徽宗)의 연호이다.
[주D-008]분황(焚黃) :
선조에게 증직(贈職)이 내려졌을 때 그 임명장을 누런 종이에 복사하여 무덤 앞에 가지고 가서 고한 뒤에 불태우는 것을 말한다.
[주D-009]장경(長卿)이나……것이다 :
금 의환향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한나라의 사마상여(司馬相如)나 주매신(朱買臣)의 경우보다도 훨씬 더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말이다. 장경과 옹자(翁子)는 각각 사마상여와 주매신의 자인데, 이들의 고사는 다음과 같다. 사마상여가 중랑장(中郞將)이 되어 고향인 파촉(巴蜀) 땅에 사신으로 갔을 적에 촉군 태수(蜀郡太守) 이하가 모두 교영(郊迎)하였으며, 현령(縣令)몸소 쇠뇌를 등에 지고 앞장서서 달림으로써〔負弩矢先驅〕존경하는 뜻을 보였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한나라 주매신이 만년에 영달하여 회계 태수(會稽太守)로 부임할 때 누더기 차림에 인수(印綬)를 허리에 차고 군저(郡邸)에 가자 아전이 인수를 발견하고는 경악하여 상관에게 보고하였으며, 마침내 그를 영접하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여 길을 치우게 하였는데, 그중에는 주매신을 경멸하며 버렸던 옛날의 아내와 그 남편도 끼어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64上 朱買臣傳》
[주D-010]주금(晝錦) 당우(堂宇) :
주 금은 낮에 비단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가는 금의환향을 의미한다. 송나라의 명신(名臣) 한기(韓琦)가 일찍이 재상으로 무강군 절도사(武康軍節度使)가 되어 자기 고향인 상주(相州)를 다스리면서 그곳에 주금당(晝錦堂)을 세우고 또 시를 지었는데, 구양수가 그 시에 의거해서 〈상주주금당기(相州晝錦堂記)〉라는 기문을 지어 한기의 뜻을 칭송한 고사가 있다.
[주D-011]좌방(左榜) :
원 나라는 과거 급제자를 두 개의 방()으로 나누어 게시하였다. 우방(右榜)에는 몽고인과 유럽 계통의 색목인(色目人)을 게시하였고, 좌방에는 화북(華北)의 한인(漢人)과 강남(江南)의 남인(南人)을 게시하였는데, 고려인은 좌방에 속하였다. 《元史 卷81 選擧志1》 원나라는 우측을 중시하며 숭상하였다. 양증(梁曾)이 안남(安南)에 사신으로 가서 이른바우측을 숭상하는 새 조정의 예법〔新朝尙右之禮〕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元史 卷178 梁曾列傳》
[주D-012] 삼태기의……할지어다 :
《서 경》〈여오(旅獒)〉에밤낮으로 부지런하지 못한 점이 혹시라도 있지 않게 해야 한다. 자그마한 행동이라도 신중히 하지 않으면 끝내는 큰 덕에 누를 끼칠 것이니, 이는 마치 아홉 길의 산을 만들 적에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하여 그 공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다.〔夙夜 罔或不勤 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
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3]삼급(三級)의……일어나서 :
가 정이 용문(龍門)의 폭포처럼 넘기 어려운 3()의 시험을 통과하여 급제의 영광을 안았다는 말이다. 원나라의 과거는 몽고ㆍ색목인(色目人)에게는 2장을, 한인(漢人)ㆍ남인(南人)에게는 3장의 시험을 부과하였는데, 고려 출신은 한인과 남인 부류에 속하였다. 1장에서는 명경(明經)과 경의(經疑) 2()을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註) 내에서 출제하고, 또 오경(五經) 중 하나에서 경의(經義)를 택하게 하였으며, 2장에서는 고부(古賦)ㆍ조()ㆍ고()ㆍ장()ㆍ표() 중 하나를 시험하고, 3장에서는 경사(經史)와 시무(時務)에 관한 책문에 대해 1000자 이상의 직설적인 답변을 요구하였다. 《元史 卷81 選擧志1》 황하 상류 용문에세 계단〔三級〕으로 된 폭포가 있는데, 대어(大魚)가 이 밑에까지 와서 이 폭포를 뛰어올라야만 용이 된다는 고사가 있기 때문에, 과거 시험장의 정문을 용문이라고도 한다. 봉필(蓬蓽)은 오두막의 사립문을 뜻하는 봉문필호(蓬門蓽戶)의 준말인데, 여기서는 여건이 너무나 열악해서 제과(制科)에 급제하기가 무척 어려운 고려 출신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주D-014]구천(九天)의……흡족하였도다 :
선조가 추증(追增)되는 은혜를 받았다는 말이다. 구천은 궁중을 뜻하고, 송추(松楸)는 선영을 뜻한다.
[주D-015]창주(滄洲) :
삼 국 시대 위()나라 완적(阮籍)이 지은 〈위정충권진왕전(爲鄭沖勸晉王箋)〉의창주를 굽어보며 지백에게 사례하고, 기산에 올라가 허유에게 읍을 한다.〔臨滄洲而謝支伯 登箕山而揖許由〕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경치 좋은 은자의 거처로 흔히 쓰인다. 《文選 卷20
[주D-016]설창(雪窓) :
()나라 손강(孫康)이 가난해서 등불을 밝힐 기름이 없자 눈빛에 비추어서 책을 읽으며 고학(苦學)했다는손강영설(孫康映雪)’의 성어가 있다.
[주D-017]규벽(奎璧) : 28
(宿)에 속하는 규수(奎宿)와 벽수(璧宿)의 병칭으로, 옛날에 문운(文運)을 주관한다고 여겼다.
[주D-018]선리(仙李) :
이 씨(李氏) 성을 지닌 걸출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자(老子)가 이수(李樹) 아래에서 태어나서 성을 이()로 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당나라 왕실에서 노자의 후손이라고 자처하였으므로 그 종족을 선리라고 지칭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참고로 두보의 시에선리의 서린 뿌리 크기도 하여, 걸출한 후손들 대대로 빛났어라.〔仙李蟠根大 猗蘭奕葉光〕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2 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
[주D-019]하루아침에……세웠나니 :
가 정이 3()을 모두 통과하고서 제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하였다는 말이다. 계리(計吏)와 함께 간다는 말은 지방의 거자가 중앙의 시험에 응시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한나라 공손홍(公孫弘)이 학관(學官)의 제도를 만들면서, 지방의 인재들을계리와 동행하게 해서 태상으로 보내 박사 제자(博士弟子)들처럼 수업 받게 해야 한다.〔當與計偕 詣太常 得受業如弟子〕라고 건의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史記 卷121 儒林列傳》 장옥(場屋)은 과거 시험장을 가리킨다. 원나라의 과거는 몽고ㆍ색목인(色目人)에게는 2장을, 한인(漢人)ㆍ남인(南人)에게는 3장의 시험을 부과하였는데, 고려 출신은 한인과 남인 부류에 속하였다. 1장에서는 명경(明經)과 경의(經疑) 2()을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註) 내에서 출제하고, 또 오경(五經) 중 하나에서 경의(經義)를 택하게 하였으며, 2장에서는 고부(古賦)ㆍ조()ㆍ고()ㆍ장()ㆍ표() 중 하나를 시험하고, 3장에서는 경사(經史)와 시무(時務)에 관한 책문에 대해 1000자 이상의 직설적인 답변을 요구하였다. 《元史卷81 選擧志1
[주D-020]금원(禁苑) 파목(頗牧) :
문 무를 겸비하고 재략(才略)이 탁월한 조정의 시종신(侍從臣)을 뜻하는 말이다. 파목은 전국 시대 조나라의 명장인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을 병칭한 말인데, 당 선종(唐宣宗) 때 한림학사 필함(畢諴)이 강족(羌族)을 격파할 대책을 상세히 올리자, 황제가우리 조정의 시종신 중에 염파와 이목 같은 명장이 있을 줄 어떻게 생각이나 했겠는가.〔孰謂頗牧在吾禁署〕라고 하고는, 필함을 절도사로 임명해서 공을 세우게 했던 고사가 있다. 《新唐書卷183 畢諴列傳》
[주D-021]가슴에는……노래했고 :
가 정이 이백(李白)처럼 황제의 앞에서 시가를 읊는 기회를 얻었다는 말이다. 적선(謫仙)은 인간 세계에 귀양을 온 신선이란 뜻으로, 당 현종 때 하지장(賀知章)이 이백을 처음 만나서 그의 글을 보고는 붙여 준 별칭이다. 연촉(蓮燭)은 황금 연꽃 모양의 촉등(燭燈)으로, 신하에 대한 왕의 특별 예우를 표현할 때 곧잘 쓰이는 말이다. 당나라 영호도(令狐
)가 궁궐에서 밤늦게까지 황제와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갈 무렵에 촛불이 거의 다 꺼지자, 황제가 자신의 수레와 황금 연촉을 주어 보냈는데, 관리들이 이것을 보고는 황제의 행차로 여겼다는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66 令狐列傳》
[주D-022]손에는……기록했지요 :
가 정이 한림국사원 검열관(翰林國史院檢閱官)에 임명된 것을 말한다. 한청(汗靑)은 옛날에 청죽(靑竹)을 불에 구워서 그 속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오게 해서 쓰기에 편리하고 좀이 슬지 않게 한 것을 말하는데, 보통 사책(史冊)을 뜻한다.
[주D-023]지난해……걸쳤더라오 :
한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처럼 사신의 신분으로 금의환향한 뒤에 모친을 위해 수연(壽宴)을 벌이며 즐겁게 해 드렸다는 말이다. 사마상여가 중랑장(中郞將)이 되어 고향인 파촉(巴蜀) 땅에 사신으로 갔을 적에 촉군 태수(蜀郡太守) 이하가 모두 교영(郊迎)하였으며, 현령(縣令)몸소 쇠뇌를 등에 지고 앞장서서 달림으로써〔負弩矢先驅〕존경하는 뜻을 보였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또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 사마상여가 일찍이 촉군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가는 길에 성도의 성 북쪽에 있는 승선교(昇仙橋)에 이르러 그 다리 기둥에고거사마를 타지 않고서는 다시 이 다리를 건너지 않겠다.〔不乘駟馬高車 不復過此橋〕라고 써서 기필코 공명을 이루겠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혔는데, 뒤에 그의 뛰어난 문장 실력을 한 무제(漢武帝)에게 인정받고 출세한 고사가 진()나라 상거(
)의 《화양국지(華陽國志)》에 전한다. 색동옷을 걸쳤다는 말은 춘추 시대 초나라의 은사(隱士)인 노래자(老萊子) 70의 나이에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初學記 卷17 引 孝子傳》
[주D-024]양지(養志)의……하직한다마는 :
가 정이 입신양명을 하여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계속 머물러 있고 싶은 어버이의 곁을 떠난다는 말이다. 양지는 어버이의 뜻을 제대로 알고서 그대로 따르는 정신적인 효도로, 의식을 풍족하게 하는 등 부모의 육신만을 위하는 물질적인 봉양과 상대되는 말인데, 《맹자》〈이루 상(離婁上)〉에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입신양명은 《효경(孝經)》〈개종명의(開宗明義)〉의이 몸은 모두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요, 자신의 몸을 바르게 세우고 바른 도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에 드날림으로써 부모님을 드러나게 해 드리는 것이 효의 마지막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는 말을 요약한 것이다. 할애(割愛)는 친애의 정을 떼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국육(鞠育)은 《시경》〈육아(蓼莪)〉의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네.〔父兮生我 母兮鞠我〕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어버이를 뜻한다.
[주D-025]그대를……푸르니까 :
시 상이 샘솟을 찬란한 봄을 뒤에 놔두고서 고생스러운 먼 여행길을 떠나야 하는 가정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는 말이다. 남조(南朝) ()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다가 꿈에 족제(族弟)인 사혜련(謝惠連)을 만나 보고지당생춘초(池塘生春草)’라는 명구를 얻은 뒤에이 시구는 신령이 도와준 덕분에 나온 것이지 나의 말이 아니다.〔此語有神功 非吾語也〕라고 술회한 고사가 전한다. 《南史 卷19 謝惠連列傳》
[주D-026]하사받은…… :
안축도 1324(충숙왕11)에 제과(制科)에 제3(第三甲)으로 급제하여 요양로 개주판관(遼陽路蓋州判官)을 제수받았다.
[주D-027]천자가……응했다네 :
가 정이 원나라 황제가 친히 시험하는 책문에 응시했다는 말이다. 수계(隨計)는 계리(計吏)를 따라간다는 말로, 지방의 거자가 중앙의 시험에 응시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한나라 공손홍(公孫弘)이 학관(學官)의 제도를 만들면서, 지방의 인재들을계리와 동행하게 해서 태상으로 보내 박사 제자(博士弟子)들처럼 수업 받게 해야 한다.〔當與計偕 詣太常 得受業如弟子〕라고 건의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史記 卷121 儒林列傳》 또 한유의 시에처음에 향공진사(鄕貢進士)의 신분으로 계리를 따라 상경해서, 택궁에서 활쏘기를 시험하는 것처럼 과거 시험장에 몇 번이나 들어가 응시했다.〔初隨計吏貢 屢入澤宮射〕라는 말이 나온다. 《韓昌黎集 卷2 縣齋有懷》 현량(賢良)은 한 문제 때부터 시작된 과거 제도로, 책문을 통해 직언과 극간(極諫)을 잘하는 사람을 뽑았는데, 현량문학(賢良文學) 혹은 현량방정(賢良方正)이라고도 한다.
[주D-028]기둥에……오셨구려 :
촉 군(蜀郡) 성도(成都) 사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촉군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가는 길에 성도의 성 북쪽에 있는 승선교(昇仙橋)에 이르러 그 다리 기둥에고거사마를 타지 않고서는 다시 이 다리를 건너지 않겠다.〔不乘駟馬高車 不復過此橋〕라고 써서 기필코 공명을 이루겠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혔는데, 뒤에 그의 뛰어난 문장 실력을 한 무제(漢武帝)에게 인정받고 출세한 고사가 진()나라 상거(
)의 《화양국지(華陽國志)》에 전한다.
[주D-029]수사(洙泗) :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개의 강물 이름으로, 이곳이 공자의 고향에 가깝고 또 그 강물 사이의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보통 유가(儒家)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주D-030]헌상(軒裳) :
수레와 관복을 뜻하는 말로, 출세하여 고관대작이 되는 것을 말한다.
[주D-031]유자(儒者)는……말했던가 :
남 송 고종 때 한림학사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진여의(陳與義 : 1090~1138)의 시에도를 늦게 배운 것이 지금 새삼 한스러워, 유자치고 어느 누가 진부하지 않으리오.〔學道始恨晩 爲儒孰非腐〕라고 탄식한 구절이 나온다. 《簡齋集 卷5 別岳州》 그는 시에 능했는데, 시대를 상심하며 세상일에 비분강개한 작품들이 많다.
[주D-032]기분……할까 :
성 군과 현신이 만나 서로 의기투합하는 시대를 만난 만큼, 앉은 자리가 따뜻해질 정도로 고향에 머물러 쉴 틈이 없으니 어서 서둘러 조정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풍운이 서로 만났다는 것은 《주역》〈건괘 문언〉의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雲從龍風從虎〕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또 동한(東漢) 반고(班固)의 〈답빈희(答賓戱)〉에공자가 앉은 자리는 따스해질 틈이 없었고, 묵자의 집 굴뚝은 검게 그을릴 틈이 없었다.〔孔席不暖 墨突不黔〕라는 말이 나온다. 《文選 卷23
[주D-033]이달존(李達尊) :
가정의 좌주(座主)인 이제현(李齊賢)의 아들이다. 1340(충혜왕 복위1) 28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는데, 《가정집》 권11에 그의 묘표가 실려 있다.
[주D-034]생각하면……올랐고 :
백문보(白文寶) 1320(충숙왕7)에 이제현이 주관한 수재과(秀才科)에서 18세의 나이로 가정과 함께 급제한 것을 말한다.
[주D-035]또……끼어 :
백 문보가 정동행성(征東行省) 향시에 급제하여 제과에 응시할 자격을 얻었다는 말이다. 빈흥(賓興)은 빈객으로 예우한다는 뜻으로, 주나라 때에 향대부가 소학에서 현능한 인재를 천거할 적에 그들을 향음주례(鄕飮酒禮)에서 빈객으로 예우하며 국학에 올려 보낸 것에서 유래하여, 향시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주례》〈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에향학(鄕學)의 삼물, 즉 세 종류의 교법을 가지고 만민을 교화하는데, 인재가 있으면 빈객의 예로 우대하면서 천거하여 국학에 올려 보낸다.〔以鄕三物敎萬民而賓興之〕라는 말이 나온다.
[주D-036]극위(棘闈) :
경비가 삼엄한 과거 시험장을 말한다.
[주D-037]하나의……어긋났는지라 :
과목(科目) 3장 중 제1장에서 이미 그르치고 말았다는 말이다.
[주D-038]그대가……보고 :
가 정이 제과에 급제한 뒤에 마치 지푸라기를 줍는 것처럼 쉽게 존귀한 관직을 얻었다는 말이다. 《삼국지》 권25〈위서(魏書) 고당륭전(高堂隆傳)〉에, 선비가 경술에 밝지 못한 것이 흠이지 만약 경술에 밝기만 하다면존귀한 관직을 얻는 것은 마치 땅에 떨어진 지푸라기를 줍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其取靑紫如俯拾地芥耳〕라는 말이 나온다. 한나라 때에는 공후와 구경(九卿)이 각각 자수(紫綏)와 청수(靑綬)를 찼다고 한다.
[주D-039]기러기……하오마는 :
참 고로 한나라 왕포(王褒)의 〈사자강덕론(四子講德論)〉에천리마 꼬리에 붙어 있으면 천리를 함께 치달릴 수도 있고, 기러기 날개를 더위잡으면 사해를 날아갈 수도 있으니, 내가 비록 우둔하긴 하지만 그대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附驥尾則涉千里 攀鴻翮 則翔四海 僕雖頑嚚 願從足下〕라는 말이 나온다. 《文選卷26
[주D-040]운니(雲泥)처럼……달라진지라 :
한 사람은 하늘 위의 구름에 올라타고, 한 사람은 땅 위의 진흙탕을 밟고 다닌다〔乘雲行泥〕라는 뜻으로, 이제는 두 사람의 지위가 예전과 현격히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주D-041]한림(翰林)의……할까 :
세 상을 구하려는 호걸스러운 기상이 가정의 몸 전체에서 우러나온다는 말이다. 원룡(元龍)은 삼국 시대 위()나라 진등(陳登)의 자이다. 국사(國士)의 이름을 지니고 있던 허사(許汜)가 유비(劉備)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진원룡(陳元龍)은 호해지사(湖海之士)로서 아직도 호기가 없어지지 않았더라. 나를 손님으로 대하려는 뜻도 없이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자기는 큰 침상 위에 드러눕고 나는 그 아래 침상에 눕게 하더라.”라고 불평을 하자, 유비가구전문사(求田問舍)나 하는 당신에게는 그 정도라도 대접을 잘해 준 것이다.”라고 진등을 옹호하면서만약 소인 대접을 했더라면 자기는 백척루(百尺樓) 위에 올라가 눕고 당신은 땅바닥에 눕도록 했을 것이다. 어찌 위아래 침상의 차이만 두었겠는가.”라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三國志 卷7 魏書 陳登傳》
[주D-042]책문(策問)에……되더니 :
가정이 제과에 급제하여 한림원의 관원이 된 것을 말한다. 《주역》〈관괘(觀卦) 육사(六四)〉에나라의 휘황한 빛을 봄이니, 왕에게 나아가 손님 노릇을 하며 벼슬하는 것이 이롭다.〔觀國之光利用賓于王〕라는 말이 나온다.
[주D-043]기수() :
비 단 종이를 둘로 나눠서 만든 증명서 즉 통행 증명서를 버렸다는 말로, ()나라 종군(終軍)의 고사이다. 종군이 젊어서 장안(長安)으로 갈 적에 걸어서 관문에 들어서니, 그곳을 지키는 관리가 수(
)를 지급하면서 다시 돌아올 때 맞춰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종군이 앞으로 그런 증명서는 필요 없을 것이라면서 버리고 떠났는데, 뒤에 종군이 알자(謁者)가 되어 사신의 신분으로 부절(符節)을 세우고 군국(郡國)을 돌아다닐 적에 그 관문을 지나가자, 옛날의 관리가 알아보고는이 사자는 바로 예전에 증명서를 버린 서생이다.〔此使者乃前棄生也〕라고 말했다 한다. 《漢書 卷64下 終軍傳》
[주D-044]단직(斷織) :
베 틀의 베를 잘랐다는 말로, 자식에 대한 현모의 철저한 교육을 뜻한다. 맹자가 어려서 공부를 중단하고 집에 돌아오자, 맹자의 어머니가 베틀에서 짜던 베를 칼로 자르고는네가 공부를 중단한 것은, 내가 이 베를 자른 것과 같다.〔子之廢學 若吾斷斯織也〕라고 하였는데, 맹자가 이 말을 듣고 분발하여 대유(大儒)가 되었다고 한다. 《列女傳 鄒孟軻母》
[주D-045]떠나는……때문 :
노 모의 곁을 차마 떠날 수가 없기에 떠나면서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는 말이다. 한나라 양웅(揚雄)의 《법언(法言)》〈효지(孝至)〉에이 세상에서 오래 가질 수 없는 것은 어버이를 모실 수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효자는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는 동안 하루하루 날을 아낀다.〔不可得而久者 事親之謂也 孝子愛日〕라는 말이 나온다.
[주D-046]조회할……한다네 :
고국에 머물러 시주(詩酒)를 즐기면서 봄날을 보내고도 싶지만, 중국 조정에 돌아가야 할 기한에 쫓긴 나머지 어쩔 수 없이 길에서 봄을 보내게 되었다는 말이다.
[주D-047]그대가……믿겠도다 :
가 정이 36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 것을 말한다. 송나라 왕십붕(王十朋)이름 이룸 늦다고 한탄하지 마오, 시서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니까.〔莫恨成名晩 詩書不負人〕라는 시구가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梅溪集 前集 卷2 至樂齋讀書》

 

 

 

 

가정기(稼亭記)

 


이 군 중보(李君中甫)는 대대로 삼한(三韓)의 산양(山陽)에서 살아왔다. 거주하는 곳에 뽕과 삼과 벼 곡식 등이 넉넉해서 손님 접대와 혼인과 잔치와 제사 등의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정자를 가()라고 이름 짓고는 나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삼 한은 경사(京師)에서 수천 리 떨어진 곳에 있다. 강과 산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는 가운데, 바다 모퉁이 외진 변두리에 취락을 형성하고 있다. 기름진 들판에서 도롱이를 걸친 채 밭을 갈고 김을 매면서, 아침과 저녁을 살펴 일하고 그치며, 추위와 더위를 살펴 가꾸고 수확하는데, 때에 알맞게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논밭에서는 갑절이나 더 곡식이 생산된다. 이처럼 경보(警報)를 알리는 북소리가 들리는 일 없이 집에서 편안하게 즐기고 있으니, 그렇다면 이런 낙을 누리게 된 그 이유를 알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더군다나 쟁기를 손에서 놓고서 수레를 타고 관을 쓴 벼슬아치라면 더더욱 그 이유를 모른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
성조(聖朝)는 해내와 해외 어느 곳이든 신첩(臣妾)으로 삼지 않은 곳이 없다. 그리고는 은덕으로 모두 포용하여 보살펴 주고 은택으로 적셔 길러 주면서
, 풍성과 교화가 세계 끝까지 번져 가고 입혀지게 하였다. 자기 밭을 갈아서 밥을 먹고 자기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는 자들이야 원래 초목, 곤충과 똑같이 태화(太和)의 기운 속에서 유영하면서 왜 그렇게 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선비로서 수레를 타고 관을 쓴 벼슬아치가 된 자라면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를 알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대 저 왕사(王事)는 오직 농사를 제대로 짓게 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는 바이다. 왜냐하면 제사에 올리는 자성(粢盛)이 여기에서 나오고, 생활하게 하는 물자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 이렇게 함으로써 협동하고 화목하는 기풍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요, , 이렇게 함으로써 돈후하고 순일한 풍속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천조(天朝)에 대한 의리를 사모할 줄 아는 자라면 바로 여기에 입각해서 보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
저 번방(藩邦)에서 광주리에 담고 전대에 싸서 배를 띄우고 부교(浮橋)를 건너 조공하는 직분을 수행하는 것은 단지 위를 섬기는 일상적인 의전(儀典)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따라서 반드시 쇠로는 낫이나 호미 등 농기구를 만들게 하고 무기는 만들지 말게 해야 할 것이요, 백성들은 밭에서 일하는 것을 숭상하고 그 이외의 말기(末技)는 수치로 여기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비의 경우는, 아직 벼슬하지 않았을 때에는 농사를 경건하게 여기며 힘쓰고, 일단 벼슬한 뒤에는 반드시 백성의 힘을 아끼고 백성의 농사철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에게 곡록(穀祿)이 돌아올 때에는 김매고 거두어들인 농부의 수고를 생각해야 할 것이요, 사람들에게 정령(政令)을 행할 때에는 논밭의 이해관계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엄한 법도로 자신을 단속하면서 사람들을 이롭게 해 주려는 정신으로 일을 행한다면 거의 옳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중보(中甫) 당초에 향리에서 녹명(鹿鳴) 부르며 올라왔다.
그리하여 춘관(春官 예부(禮部)) 에서 기예를 겨루고 천자의 뜰에서 책문에 응한 결과 을과(乙科)에 급제하여 승사랑(承事郞) 한림국사원 검열관(翰林國史院檢閱官)을 제수받았다. 그리고 조금 뒤에 장고 휘정원(掌故徽政院)으로 옮겨졌으며, 얼마 있다가 정동행승상부 원외랑(征東行丞相府員外郞)에 발탁되었다. 아름다운 시대를 만나 그동안 배운 실력을 발휘하면서 시종으로 들어왔다가 번방으로 나가게 되었으니, 이 또한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만하다. 그리고 그가 정자를 이름 지은 것을 보건대, 장차 밭두둑 위에서 김매는 농부나 꼴 베는 늙은이와 서로 어울려 지낼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니, 그렇다면 농사짓는 어려움 같은 것이야 어찌 잊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만하면 보답할 바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지원(至元) 3(1337, 충숙왕 복위6) 9월 보름에 승직랑(承直郞) 국자감 박사(國子監博士) 왕기(王沂)는 신주(神州)의 관사(官舍)에서 쓰다.

 

[주D-001] 풍성과……하였다 : 중 국의 문명이 고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다. 《서경(書經)》 〈우공(禹貢)〉 맨 마지막의동쪽으로는 바다에까지 번져 갔고, 서쪽으로는 유사 지역에까지 입혀졌으며, 북쪽과 남쪽의 끝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의 풍성(風聲)과 교화가 사해에 다 미치자, 우가 검은 규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순() 임금에게 그의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東漸于海 西被于流沙 朔南曁聲敎訖于四海 禹錫玄圭 告厥成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2]자기……자들 :
태 평 시대를 누리는 일반 서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 임금 때에 어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에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면서, 내 샘을 파서 물 마시고 내 밭을 갈아서 밥 먹을 뿐이니, 임금님의 힘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상관이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고 하였다.
[주D-003]중보(中甫)는……올라왔다 :
가 정이 정동행성의 향시에 합격하고서 제과에 응시하기 위해 연경에 왔다는 말이다. 〈녹명(鹿鳴)〉은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본래는 임금이 신하를 위해 연회를 베풀며 연주하던 악가(樂歌)인데, 후대에는 군현의 장리(長吏)가 향시(鄕試)에 급제한 거인들을 초치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베풀어 주며 그들의 전도(前途)를 축복하는 뜻으로 이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송양소윤서(送楊少尹序)〉에양후(楊侯)가 향리에서 과거에 급제한 뒤에 녹명을 부르면서 올라왔다.〔擧於其鄕 歌鹿鳴而來〕라는 대목이 나온다.

 

 

 

 

 

 

가정사(稼亭詞)

 


농상이 신정할 때에 이르면 /
詹農祥之晨正兮
구호
가 서로 부르며 정답게 노래하나니 / 嚶九扈其和鳴
농기구 손에 들고 밭으로 나가면서 / 躬錢
以俱往兮
날마다 닭 소리와 함께 일어난다오 / 日與鷄而俱興
단비가 제때에 알맞게 내리면 / 甘雨至而及時兮
곡식 싹들이 푸릇푸릇 돋아나는데 / 嘉苗起而懷新
잡초를 제거하고 양곡을 세우노라면 / 乃芟蕪而立良兮
진창에서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흐뭇하다오 / 寧塗潦之勞吾身
곡식이 영글어서 한번 배불리 먹을 때까지는 / 竢堅實以一飽兮
아직도 가뭄과 홍수의 걱정이 있나니 / 猶有虞於乾溢
서징이 때에 맞아 어긋나지 않아야만 /
庶徵時而不忒兮
힘들게 노력한 공이 헛되지 않게 된다오 / 始不負其勤力
기장과 벼를 모두 거두어들인 뒤에야 /
黍稌坌其登場兮
추수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터 / 信秋成之可樂
반드시 열심히 수고한 뒤에야 얻는 법이니 / 必勞
而後得兮
하루라도 일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 可一日之不作
내가 옛날 시골집에 칩거할 적에 / 余昔偃於田廬兮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맛보았는데 / 樂與苦其相參
어찌하여 쟁기를 버리고 인끈을 두르고서 / 何釋耒而紆綬兮
농부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는고 / 視力田而有慙
치아와 두발이 모두 쇠한 늘그막에 와서 / 齒髮颯其衰莫兮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곳이 없어라 / 蓋欲歸而無所
그대는 이제 몸 일으켜 세상의 쓰임이 되는 때에 / 子方興而致用兮
이렇게 빨리도 고향의 전원을 멀리 생각하시는가 / 遽遐思於農畝
농가 옆에 정자를 높이 우뚝 세운 것은 / 屹環堵之危亭兮
직접 농사지으며 살겠다는 결의일 터 / 期作勞以自營
숙수의 봉양을 하며 기쁘게 드리노라면 /
奉菽水而怡顔兮
커다란 창고가 가득 차서 넘칠 수도 있으리 / 或高廩之可盈
노농이 가진 지식보다도 / 彼老農之爲智兮
성인이 못한 것이 결코 아니었나니
/
非聖人之不如也
농사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생각하면 / 念民事之艱難兮
감히 무시하며 편히 지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네 / 不敢怠而逸居也
또 가정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 又爲之歌曰
동쪽 바다 저 토지는 / 東海之

그대가 농사짓는 곳 / 子所田兮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쉬면서 / 出作入息
풍년의 즐거움을 장차 누리리라 / 樂有年兮
임금님의 힘이 아니고서야 / 非帝之力
어떻게 이 몸이 편안하리오 / 孰我安兮
우리를 다스리는 저 사람이여 / 彼君子兮
하는 일 없이 얻어먹지 않는도다 / 不素餐兮
사단(謝端) 지음

 

[주D-001]농상(農祥)이……이르면 : 농 사지을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국어(國語)》〈주어 상(周語上)〉에농상신정(農祥晨正)’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위소(韋昭)의 주에농상은 방성이다. 신정은 입춘 날 새벽에 방성이 남쪽 하늘 한복판에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농사를 시작할 시기를 알려 주기 때문에 농상이라고 한 것이다.〔農祥房星也晨正謂立春之日晨中於午也 農事之候 故曰農祥〕라고 하였다.
[주D-002]구호(九扈) :
농사철을 알려 준다는 새 이름인데, 농관(農官)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주D-003]서징(庶徵)이……않아야만 :
기후가 농사에 알맞게 펼쳐져야 한다는 말이다. 서징은비 오고 볕들고 덥고 춥고 바람 부는〔雨
燠寒風〕등의 좋고 나쁜 자연 현상을 관찰하여 징험한다는 뜻으로, 《서경》의 홍범구주(洪範九疇) 중 여덟 번째로 나오는 항목이다.
[주D-004]기장과……뒤에야 :
《시 경》〈주송(周頌) 풍년(
)〉에풍년이 들어 기장도 많고 벼도 많다.年多黍多稌〕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주에기장은 높고 건조하며 추운 곳에서 잘되고, 벼는 낮고 축축하며 더운 곳에서 잘되니, 기장과 벼가 모두 잘 익었다면 백곡 모두가 잘 익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D-005]숙수(菽水)의……드리노라면 :
집 안이 비록 가난하더라도 어버이를 정성껏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집안이 가난해서 효도를 제대로 못한다고 탄식하자, 공자가콩죽을 끓여 먹고 물을 마시더라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극진히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효이다.〔啜菽飮水盡其歡 斯之謂孝〕라고 위로했던 고사가 전한다. 《禮記 檀弓下》
[주D-006]저……아니었나니 :
노 농(老農)은 경험이 풍부한 농부를 뜻한다. 《논어》〈자로(子路)〉에, 번지(樊遲)농사일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자〔請學稼〕”, 공자가그 일은 내가 노농보다 못하다.〔吾不如老農〕라고 대답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와 관련하여나는 노농보다 못하다고 말했고 보면, 성현의 지식에도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할 것인데, 하물며 범상한 자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吾不如老農 然則聖賢之智 猶有所未達 而況於凡庸者乎〕라는 해설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도연명(陶淵明)의 시구를 모아서 가정(稼亭)에 봉제(奉題)하다

 


동방에서 온 선비 한 사람 / 東方有一士
객지에서 천금의 몸을 기르면서 / 客養千金軀
관복 차림으로 새벽닭 울기 기다리다가 / 束帶候鳴鷄
나가서는 임금님 수레를 모시고 따르는데 / 出則陪文輿
대경
은 본디 바라던 바가 아닌지라 / 代耕本非望
전원과 잠깐 동안 떨어져 있다가 / 暫與園田疎
전원이 날마다 꿈속에 그리워서 / 園田日夢想
관을 던지고 옛 동산으로 돌아간다네 / 投冠旋舊墟
그가 하는 말이 올봄이 되면 / 興言在玆春
신주도 다시 여가 되려 하는데 /
新疇復應

전부는 생각하는 것이 모두 좋아서 / 田父有好懷
문 앞을 지나면 불러서 술도 마시고 / 過門更相呼
풀숲을 헤치고서 함께 왕래도 하고 / 披草共來往
옛날 동네를 두루 돌아다니기도 하고 / 履歷周故居
유유히 추수할 때를 기다리면서 / 悠悠待秋稼
이따금 나의 책을 읽고도 싶으니 / 時還讀我書
농사가 잘될지는 미리 알 수 없지만 / 雖未量歲功
전원생활이 참으로 즐거울 것이라고 하네 / 棲遲固多娛
아무렴 이 일이야말로 더욱 즐겁고말고 / 此事眞復樂
아무렴 이 말이야말로 거짓이 아니고말고 / 此語眞不虛
황조의 사람들 모두 나와 전송하고 / 餞送傾皇朝
귀자
는 앞으로 갈 길을 생각하는데 / 歸子念前塗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되는가 하면 / 前塗當幾許
동해의 모서리로 곧장 가면 된다네 / 直至東海隅
옛날에 공명을 다투던 인사들은 / 古時功名士
경도(京都)에서 모두 활동하였는데 / 事事在中都
멀고 먼 저닉의 마음을 지니다니 / 遙遙沮溺心
그대의 마음은 정녕 어떻다 할까 / 君情定何如
동양(東陽) 황진(
) 지음

 

[주D-001]대경(耕) : 자기가 직접 농사짓지 않고 벼슬아치가 되어 곡록을 받는 것을 말한다.
[주D-002]신주(新疇)도……하는데 :
밭을 일궈서 수확한 지 2년이 지났다는 말이다. 개간한 지 2년 된 밭을()’이라 하고, 3년 된 밭을(
)’라고 한다.
[주D-003]귀자(歸子) :
고향의 모친에게 돌아가는 자식이라는 뜻이다.
[주D-004]저닉(沮溺) :
춘추 시대 초나라 은자인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의 병칭이다.

 

 

 

 

《시경》의 구절을 뽑아서 가정(稼亭)에 제하다

 


문왕 무왕을 이은 성스러운 원나라 / 下武維聖元
문덕으로 성교가 널리 미치게 했네 /
思文溥漸被
은나라의 광대한 땅을 차지하여 / 宅殷土芒芒
해외에서 문궤를 같이하게 되매 /
海外同文軌
두릅나무 가지 무성하게 우거지고 / 樸枝芃芃
길가의 갈대 잎도 윤택이 난다네
/
行葦葉泥泥
더부룩이 다북쑥 옹에 가득하고 / 菁莪盛辟廱
미나리며 마름풀 반수에 넘치나니
/
芹藻彌泮水
많고 많은 상서로운 인재들이여 / 藹藹多吉人
모두 임금님이 등용할 만하다네 / 共惟君子使
실로 저 삼한산으로 말하면 / 信彼三韓山
푸른 바다 물결이 밀려오는 곳 / 宛在滄溟沚
잘 일군 양지쪽 언덕의 전지 / 畇畇陽坡田
구획하여 두둑과 고랑을 냈다네 / 迺場迺彊理
밭 가운데 새로 세운 하나의 정자 / 中田有新亭
처마가 발꿈치 들고 양팔을 편 듯 / 簷宇翼如跂
어떤 분이 거기에 살고 계시는가 / 其居何人斯
명성도 아름다운 준걸스러운 선비 / 有美譽髦士
그 선비는 바로 동방의 영걸로서 / 士也東方英
사립문 안에서 한가히 소요한다네 /
考盤衡門裏
집안이 대대로 가색을 좋아하여 / 家世好稼穡
대식하는 이것을 보배로 겼나니
/
代食維寶此
청학
이 그들의 할 일은 아니었지만 / 請學匪其功
소찬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지라 / 素餐是所恥
농민과 함께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하면서 / 力民務昏作
애면글면 애쓸 뿐 벼슬길은 꺼려했다네 / 黽勉畏從仕
황제가 이르기를 아 그대 신하들이여 / 帝曰咨臣工
간모
처럼 향리의 인재를 천거하라 하시자 / 干旄擧鄕里
빈객의 예우 받고 녹명의 노래 부르면서 /
賓興歌鹿鳴
압록강 물가에서 전별의 술잔을 들었다네 / 飮餞鴨江

거침없이 상국으로 들어올 적에 / 奔然來上國
머리에 의젓이 쓴 절풍의 가죽 관이여 / 折風弁有頍
수륙의 길이 험난하고도 멀어서 / 川陸阻且長
길 가는 것이 날마다 더디기만 하였다네 / 行邁日靡靡
남궁
에 숲처럼 모인 인사들 속에서 / 南宮士如林
장기를 발휘하여 삼장을 연승하였나니 / 三捷獻長技
책문을 쏘아 하늘의 아름다움을 선양하고 / 射策揚天休
버들잎 꿰뚫는 솜씨로 사시를 거듭 맞혔다네 /
穿楊反四矢
이름난 명망이 급제자 중에 으뜸이요 / 聞望冠黃甲
비범한 재능이 천자를 감동시킨 결과 / 龍光動丹

시종으로 옥당에서 근무하면서 / 從祿毗玉堂
경건히 국사를 살피게 되었다네 / 靖恭閱國史
추위와 더위를 겪으며 몇 해가 지나면서 / 載離幾寒暑
아련히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 / 悠悠憶桑梓
부인은 채록을 노래할 것이요 / 婦兮賦采綠
모친은 척기의 탄식을 하시리 / 母也嗟陟屺
성랑
에 임명되어 동으로 가게 되었나니 / 徂東拜省郞
찬란하게 빛나는 저 비단옷이여 / 錦衣爛
玼玼
과하구
에게 꼴을 먹이고서 / 言秣果下駒
돌아가는 수레에 행리를 실었다네 / 還車載行李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들이 / 有暳列宿光
휘황하게 비춰 주는 동쪽 변두리 / 煌煌照東鄙
생각하면 구도의 사람들이 / 維彼九都人
첨언을 오래도록 서서 기다렸는지라
/
瞻言佇相俟
이에 동방에서 잠깐 소요하며 / 於焉暫逍遙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동의하였다네 / 畫諾聊與爾
본디 진실한 왕도를 바탕으로 / 王猶固允塞
원대한 경륜을 끊임없이 이룩하고 /
謀成亹亹
퇴근하면 농업을 밝힐 일을 강구하리니 / 退公思明農
민로
의 뜻이 어찌 끝이 있으리오 / 民勞曷其已
칠월
의 시편을 반복해 읽으면서 / 三復七月篇
의식의 근본을 길이 생각한다네 / 永言衣食始
봄철에 단비가 일단 내리면 / 方春靈雨零
일찍 멍에 얹고 일을 재촉해야
/
夙駕催擧趾
초자는 바로 재삼을 하고 /
楚茨斯載芟
대전은 양사로 갈아엎는다네 /
大田有良

좋은 곡물의 종자를 얻었으니 / 嘉種得黃茂
심고 덮는 것도 신중히 해야 하고말고 / 耰播亦勤止
생기 머금고서 쑥쑥 자라나더라도 / 厭厭實含活
구석구석 꼼꼼히 김매고 북돋워야지 / 綿綿或耘耔
들밥을 광주리에 담아서 가져오면 / 野餉載筐筥
좌우의 것을 취하여 맛을 보기도 한다네
/
左右嘗旨否
아 풍성해라 신과 의 사이에 / 於皇新

원근을 막론하고 끝내 좋게 되었나니 / 終善無遠邇
벼도 있고 보리도 있고 / 有稻有來牟
검은 기장 붉은 기장 흰 차조도 있고 / 有秬有
穈芑
오이와 콩과 들깨도 있고 / 有瓜有菽荏
늦벼와 올벼도 있다네 /
稑䄫
메기장 바야흐로 의젓하게 자라나고 / 有黍方與與
찰기장도 따라서 꿋꿋하게 자라나고 / 有稷又
薿薿
무성하게 우거지며 열매도 잘 여물어 / 幪幪旣堅好
차곡차곡 쌓아 가니 쭉정이도 별로 없다네 / 栗栗少糠秕
농기구 갖추어 가을걷이할 적에 /
秋穫
錢鎛
잠깐 들러서 구경을 하노라면 / 薄言往觀視
산더미처럼 높이 쌓여 있기도 하고 / 或積若丘崇
빗살처럼 빽빽이 늘어서 있기도 하고 / 或密若

타작마당에 천상을 들여놓고서 / 築場納千廂
곳간을 열어 억자의 곡식을 저장도 하네 / 開室儲億

염소를 구워 빈객을 접대하고 / 炮羔御賓客
술을 걸러서 조비를 즐겁게 하며 / 釃酒衎祖妣
장중과 같은 효성과 우애로 / 張仲齊孝友
잔치하며 기뻐함이 길보와 같으리
/
吉甫同燕喜
바라건대 계속 풍년이 들어 / 所願屢

상제의 복을 많이 받는 가운데 / 多受上帝祉
부모님 건강하게 오래도록 사시어 / 父母壽而康
머리도 검어지고 치아도 새로 나시기를 / 黃髮更兒齒
그리고 부지런히 떠맡은 짐을 도와 / 勉勉佛仔肩
한 방역의 기강이 됨은 물론이요 / 一方是綱紀
나아가 바닷가의 이 백성을 인도하여 / 率時海隅氓
대대로 밝은 천자를 떠받들게 하시기를 / 世奉明天子
노군(魯郡) 왕사성(王思誠) 지음

희중이 공손히 맞이하여 / 羲仲賓出日
농사를 고르게 다스렸었지
/
平秩東作事
이군은 바로 조선 사람이니 / 李君朝鮮人
가정이라 명명한 것도 연유가 있다 하리 / 稼亭名有自
근본을 두터이 하고 예교를 숭상하는 일을 / 敦本崇禮敎
몇 년 안에 금방 이룰 수도 있을 터 / 有年可立致
농사를 지을 마음이 없지 않아서 / 負耒非無心
뗏목 타고 나갈 뜻을 밝혔는지도
/
乘桴或有志
경사(京師) 송경(宋褧) 지음

화성의 낭관께선 머리카락 새카만데도 / 畫省郞官鬢髮靑
돌아가 신정 짓고 농사를 배우려 한다네 / 歸來學稼葺新亭
옥당에서 시초하며 연촉(蓮燭) 나눠 받은 /
玉堂視草曾頒燭
녹야에서 김맬 때도 여전히 경서를 휴대하리 /
綠野耘苗尙帶經
연무가 자욱해도 부상에서 해는 뜨고 / 日出扶桑煙漠漠
물은 차가워도 고도에 봄빛이 일렁이네 / 春生孤島水冷冷
옷자락 떨치고 그대 따라 곧장 가고 싶어 / 拂衣便欲從君逝
조모의 풍류로 유명한 관녕도 찾아뵐 겸 / 皁帽風流謁管寧
조군(趙郡) 소천작(蘇天爵) 지음

사군이 서주 옆에 띳집을 엮어 놓고 / 使君結屋傍西疇
고관의 신분으로 때때로 촌로와 어울린다네 / 冠蓋時從野老遊
동작을 소중히 여겨 양곡에 관원을 두었나니 /
暘谷官因東作重
신농의
을 원방에서 지금도 거두어들인다오 / 神農書自遠方收
상마 심는 땅이 더워서 농사철이 이른 곳 / 桑麻地燠民時早
가을에 익는 벼 곡식 향내가 해도에 그윽하리 /
稻秋香海島幽
봉각의 고인을 하늘 위에서 바라보니 / 鳳閣故人天上望
신주와 격한 삼한의 푸른빛 속에 있네 / 三韓蒼翠隔神州
안성(安成) 유문(劉聞) 지음

돌아가 농사짓기 좋은 삼한의 구름 낀 산기슭이요 / 三韓雲麓好歸田
바다의 하늘 맞아들이는 우리 원외의 새 정자라 / 員外新亭納海天
북성의 청쇄객
으로 더 이상 머물기 어려워서 / 北省難留靑瑣客
압록강의 배에 오르니 동인이 다투어 환영하네 / 東人爭迓綠江船
백제 땅 봄날의 산속에서 활짝 피는 꽃이라면 / 花開百濟春山裏
부상의 해 뜨는 해변에서 새벽을 알리는 닭이로세 / 鷄唱扶桑曉日邊
농사일을 급히 여겨 보국할 줄만 알았을 뿐 / 報國但知農務急
귀향한 뒤에야 세월의 변천을 비로소 알았다네 / 還鄕始覺歲華遷
잡초를 모조리 제거하고 장포를 가꾼 뒤에 / 盡鋤蔓草修場圃
좋은 모종 많이 심어 죽거리를 마련해야지 / 多種良苗備粥

기러기 쏘러 왕자 모시고 간혹 나가기도 하고 / 射雁偶陪王子出
소에 걸터앉은 김에 목동처럼 채찍질도 해 보고 / 跨牛仍學牧童鞭
뽕나무 숲에서 쟁기를 지고 비에 옷도 적시고 / 桑陰負耒衣沾雨
솔 밖 난간에 기대어 모자로 연무도 털어 내고 / 松外憑闌帽拂煙
동산 숲에 제계가 올까 항상 걱정이지 /
長恐園林
鶗鴂
창호에 길고가 걸리는 거야 상관없다네 /
不妨窓戶桔槹懸
아손은 삼동에 배우기를 달가워하고 /
兒孫喜向三冬學
부녀는 칠월의 시편 노래를 잘한다오 / 婦女能歌七月篇
찬 이슬 젖은 부용꽃에 상원이 생각날 것이요 / 露冷芙蓉懷上苑
누런 구름 뒤덮인 벼 곡식에 풍년을 경축하리 / 雲黃
䆉稏
때때로 가양주 개봉하여 손님을 접대하고 / 時時款客開家釀
해마다 봉록 떼 내어 관아에 또 보내겠지 / 歲歲輸官割俸錢
그리고 웃으리라 마지기의 땅이 어서 / 却笑蘇秦無二頃
초구가 진토 되도록 삭풍을 맞았던 소진을
/
貂裘塵土朔風前
안성(安成) 유열(劉閱) 지음

삼한의 산 아래에서 생산된 황금이요 / 三韓山下黃金産
오색구름 뒤덮인 궁궐의 서금과로세 / 五色雲中瑞錦窠
게다가 가을에 벼 익으면 더더욱 좋을시고 / 好是秋來粳稻熟
시대가 태평하니 길상가 불러야 하고말고 / 安時應有吉祥歌

봄바람에 정자에는 눈처럼 붉은 꽃 휘날리고 / 春風臺榭飛紅雪
간밤의 비로 연못에는 녹색 물결이 일렁이네 / 夜雨陂塘生綠波
현량방정의 대책문
을 이제 다 읽고 / 讀罷賢良方正策
사람 만나면 역전과를 또 이야기한다오 / 逢人又說力田科

흰 말에 황금 안장 그리고 자줏빛 옥 굴레 / 白馬金鞍紫玉珂
봄날에 찾는 정자 여기가 바로 행와로세 / 春來亭上是行窩
국인이 신 원외를 두고 공통으로 하는 말 / 國人共說新員外
중원에서 배웠는지 말씀이 자상해지셨다나 / 學得中原語較多

당년에 소골을 중대하는 일이야 많겠지만 /
重戴當年蘇骨多
어느 날에나 국왕이 한아를 내려 주실는지 / 國王何日賜韓娥
봄바람 속에 말을 타고 한가히 왔다 갔다 하며 / 春風馬上閒來往
천산곡
답답가를 배워서 불러도 보련마는 / 學唱天山踏踏歌

경성에서 우리 서로 이별한 뒤에 / 底是京城離別後
소식 묻는 글자 하나 없다니 이럴 수가 / 更無一字問如何
고인과 천상에서 어울려 노닐던 추억이여 / 故人天上相從處
헤어진 기간의 반절에도 훨씬 못 미치오그려 / 不及當年一半多
정익(程益) 지음

삼한의 산 앞에 봄풀이 푸르른데 / 三韓山前春草綠
여지(
)는 촌에 가득 뽕은 골에 가득 / 柘枝連村桑滿谷
소는 밥을 먹자 뿔을 비비대고 /
大牛飯罷礪雙角
송아지는 신이 나서 사슴처럼 팔짝팔짝 / 小犢跳梁野如鹿
밤사이에 동쪽 언덕 흡족하게 내린 비 / 夜來東原雨新足
구호는 사람들에게 포곡처럼 재촉하네 /
九扈向人催布穀
고급 수레 타고 오신 화성의 낭관 /
畫省郎官朱兩轂
명왕을 보좌하여 번방을 다스린다오 / 歸佐明王理藩服
쟁기를 대자 눈 녹듯 풀어지는 기름진 땅 / 土膏初起如雪沃
얕게 심고 깊이 가는 건 고루 잘 익으라고 / 淺種深耕貴勻熟
어찌 유독 근신하여 풍속을 바꿀 뿐이리오 /
豈獨勤身化成俗
동방이 모두 풍족하게 먹고 살게 함이로세 / 要使扶餘皆菽粟
푸른 바다 물가에 우뚝 선 신정이여 / 新亭翼翼滄海濱
손에 술과 고기 들고 친히 어루만지면서 / 手持酒肉親撫循
피리 불고 치고 다시 빈시를 연주하네 /
鳴竽擊鼓更吹豳
넓은 들에 사람 키보다 높이 자란 기장들 / 大田多黍高過人
수레에 실어 나르나니 바퀴 소리 덜컹덜컹 / 車載輦負聲轔轔
고지대 저지대 곡식들 한데 뒤섞인 가운데 / 汙邪錯雜陳
밖에는 노적이요 안에는 곳집에 가득
/
露處有積居有囷
울금으로 달인 술 감치면서도 순수하고 / 鬱金煮酒旨且醇
나물국에 향긋한 밥 온갖 양념 다 맞췄네 / 葵羹香飯調酸辛
동방은 전준 귀신에게 창가하겠지만 / 句驪唱歌田畯神
나는야 고기 구워 귀한 손님 드려야지 / 我有炰炙供嘉賓
취하면 모자 삐딱한 채로 다시 번갈아 춤추리니 / 醉來欹帽更迭舞
산이 달을 토하면 한아도 손뼉을 치며 웃으리라 / 韓娥拍手山月吐
선성(宣城) 공사태(貢師泰) 지음

천문 관원은 이제 막 해그림자 재려고 / 天官初候景
들판에 머물며 날이 맑기를 기다리는데 / 稅野待新晴
바닷가의 사람들은 일찌감치 밭을 갈아 / 海上人耕早
눈 속에서 봄풀이 벌써 돋아난다나요 / 雪中春草生
호미나 메고 공무는 모두 잊어버린 채 / 荷鋤忘吏役
문을 닫고 향청을 즐기고 계실 터인데 / 掩戶愛香淸
도성에 돌아와 조정에 복귀하는 그날에는 / 還省京華日
조복 차림에 창정을 제사해야 하겠네요 / 朝服祀蒼精

동년은 바야흐로 높이 출세하건마는 / 同年方貴顯
은자의 정을 언제나 품고 있는지라 / 常懷隱者情
틈만 나면 분성에서 뛰쳐나와서 / 時從粉省出
혼자 꾀꼬리 찾아 밭을 간다나요 / 自尋黃鳥耕
따사로운 봄볕이 들판에 떠돌기 시작하고 / 春陽初泛野
멀리 성을 가리며 자욱이 가랑비 내릴 때 / 小雨逈遮城
궁금하오 쟁기 놔두고 돌아와서는 / 想子還釋耒
누구와 더불어 술잔을 기울일는지 / 芳尊誰與傾
무위(武威) 여궐(余闕) 지음

나의 집이 있는 곳은 양광도 시골 / 我家楊廣道
농촌을 떠나 왕경에서 벼슬하다가
/
釋耒仕王京
책을 끼고 서쪽으로 유학을 가서 / 挾策西游去
오래도록 황제의 도성에 머물렀다오 / 久住鳳皇城
대군이 변방의 신하를 어루만져 주어 / 大君懷遠臣
한림원의 관원으로 봉직하게 하였는데 / 令臣官玉署
내성에서 세월 보내며 체류하다 보니 / 內省聊淹留
다시 고향에 가고 싶은 간절한 생각 / 還思故鄕去
계림에 중서성의 분성이 있는지라 / 鷄林分省治
그곳의 원외랑으로 임명을 받았다오 / 拜詔作新郞
고향의 전원도 물론 멀지 않아서 / 田園應不遠
틈을 내어 날마다 소요하나니 / 乘暇日旁皇
관사 주위로는 푸른 산이요 / 靑山環館舍
밭두둑 사이로는 맑은 물이라 / 淥水界溝塍
내 집 옆에 사는 많은 이웃들이 / 我宇多隣竝
내가 농사를 전혀 짓지 못하자 / 耕耘殊未能
소 끌고 와서 보리밭을 쟁기질하고 / 牽牛耕麥隴
수확까지 해 주는데 감히 말릴 수야 / 穫刈敢妨功
농부들은 워낙 오래전부터 부지런해서 / 佃夫勤已久
농사일을 끝까지 자기 일처럼 해 주는데 / 登場我稼同
나는야 아동 시절에는 경사를 읽고 / 束髮讀經史
조정에 벼슬하면서는 화언을 익혔을 뿐이라오 / 入仕習華言
경전착정이 임금님 힘임을 생각하고서 /
耕鑿思帝力
높은 언덕에 가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세웠는데 / 新亭立高原
황궁 안에는 각종 꽃나무들이 많아 / 蘭省多花卉
무더기무더기 향기와 색깔을 뽐내는 것과는 달리 / 叢叢香色殊
새로 지은 나의 정자 아래에서는 / 那知新亭下
음식 마련에 힘이 많이 들 줄 어찌 알았으리오 / 飮食多所需
나도 이제 고서를 보고서 씨도 뿌리고 / 播種效古書
버려진 밭도 날마다 조금씩 개간하면서 / 閒田日以墾
말방울 소리 울리며 성부에 출근하더라도 / 鳴珂趨省府
종용히 농업을 감히 망각하지 않으리다 / 從容敢忘本
동평(東平) 왕사점(王士點) 지음

입조하는 말방울 소리 해마다 울리다가 / 朝馬年年響佩珂
고향에 돌아가 밭갈이하는 즐거움이 어떠하오 / 歸耕故里樂如何
해 뜨는 부상과 가까우니 수확도 이르고 / 扶桑日近收成早
압록강 물이 깊어서 관개하기도 쉬운 곳 / 鴨綠江深灌漑多
푸른 솥의 향긋한 밥알은 낱낱이 옥 구슬이요 / 翠釜香粳瓊作粒
금낭 안의 봄고치는 눈빛 물결로 출렁이리 / 錦囊春繭雪生波
낭관의 사무실이 또 신정의 곁에 있으니 / 郞官署在新亭側
쟁기 놓고서 하루에 한 번씩 들러도 무방하리라 / 釋耒無妨日一過
남양(南陽) 성준(成遵) 지음

 

[주D-001]문덕(文德)으로……했네 : 원 나라가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서경(書經)》 〈우공(禹貢)〉 맨 마지막의동쪽으로는 바다에까지 번져 갔고, 서쪽으로는 유사 지역에까지 입혀졌으며, 북쪽과 남쪽의 끝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의 풍성(風聲)과 교화가 사해에 다 미치자, 우가 검은 규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순() 임금에게 그의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東漸于海 西被于流沙 朔南曁聲敎訖于四海 禹錫玄圭 告厥成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2]해외에서……되매 :
천하가 통일되어 중국의 문화권 안으로 모두 편입되었다는 말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에지금 온 천하가 같은 수레를 타고 같은 문자를 쓰게 되었다.〔今天下車同軌 書同文〕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두릅나무……난다네 :
통치자의 덕이 초목에까지 미칠 정도로 훌륭하여 인심이 귀의한다는 말이다.
[주D-004]더부룩이……넘치나니 :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말이다. 벽옹(辟廱)과 반수(泮水)는 모두 학교를 의미한다.
[주D-005]사립문……소요한다네 :
산 림에 은거하며 안빈낙도하는 은사의 생활을 즐긴다는 말이다. 고반(考盤)은 고반(考槃)과 같다. 《시경》〈위풍(衛風) 고반(考槃)〉에산골 시냇가에서 한가히 소요하나니, 현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考槃在澗 碩人之寬〕라는 말이 나오고, 〈진풍(陳風) 형문(衡門)〉에사립문 아래에서 충분히 쉬고 노닐 수 있다.〔衡門之下 可以棲遲〕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6]집안이……여겼나니 :
가 정의 집안은 벼슬하여 녹봉을 받기보다는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말이다. 가색(稼穡)은 심고 수확하는 것으로 농사짓는 것을 뜻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가정이라는 호도 그렇지만, 아들의 이름이 색()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대식(代食)은 농사짓는 소득으로 녹식(祿食)을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대아(大雅) 상유(桑柔)〉에가색을 좋아하여, 농민과 함께 일하면서 대식하노니, 이는 가색을 보배로 여기고, 대식하는 것을 좋아함이로다.〔好是稼穡 力民代食 稼穡維寶 代食維好〕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7]청학(請學) :
농사일 배우기를 청한다는청학가(請學稼)’의 준말이다. 《논어》 〈자로(子路)〉에, 번지(樊遲)농사일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자〔請學稼〕”, 공자가그 일은 내가 노농보다 못하다.〔吾不如老農〕라고 대답한 내용이 나온다.
[주D-008]소찬(素餐) :
시위소찬(尸位素餐)의 준말로, 자격도 없이 벼슬자리를 차지하고서 국록을 축낸다는 뜻인데, 흔히 겸사로 쓰인다.
[주D-009]간모(干旄) :
《시경》〈용풍(
)〉의 편명인데, 현군인 위 문공(衛文公)의 신하가 쇠꼬리로 장식한 간모를 수레에 꽂고서 현인의 훌륭한 말을 듣기 위해 만나러 가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주D-010]빈객의……부르면서 :
가 정이 정동행성 향시에 급제하고 원나라의 제과에 응시하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다는 말이다. 주나라 때에 향대부가 소학에서 현능한 인재를 천거할 적에 그들을 향음주례(鄕飮酒禮)에서 빈객으로 예우하며 국학에 올려 보낸 것에서 유래하여, 향시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주례》 〈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에향학(鄕學)의 삼물, 즉 세 종류의 교법을 가지고 만민을 교화하는데, 인재가 있으면 빈객의 예로 우대하면서 천거하여 국학에 올려 보낸다.〔以鄕三物敎萬民而賓興之〕라는 말이 나온다. 〈녹명(鹿鳴)〉은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본래는 임금이 신하를 위해 연회를 베풀며 연주하던 악가(樂歌)인데, 후대에는 군현의 장리(長吏)가 향시(鄕試)에 급제한 거인들을 초치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베풀어 주며 그들의 전도(前途)를 축복하는 뜻으로 이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송양소윤서(送楊少尹序)〉에양후(楊侯)가 향리에서 과거에 급제한 뒤에 녹명을 부르면서 올라왔다.〔擧於其鄕 歌鹿鳴而來〕라는 대목이 나온다.
[주D-011]절풍(折風) :
모 자의 이름이다. 《북사(北史)》 권94〈고려열전(高麗列傳)〉에사람들 모두 머리에 절풍을 착용하는데, 모양은 변과 같으며, 사인은 새의 깃털 두 개를 더 꼽는다. 귀한 자들의 경우는 그 관을 소골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보라색 비단으로 만들고, 금은으로 장식한다.〔人皆頭著折風 形如弁 士人加揷二鳥羽貴者 其冠曰蘇骨 多用紫羅爲之 飾以金銀〕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2]남궁(南宮) :
상서성의 별칭으로, 여기서는 회시를 거행하는 예부의 뜻으로 쓰였다.
[주D-013]버들잎……맞혔다네 :
춘 추 시대 초 공왕(楚共王)의 장군인 양유기(養由基) 100보 떨어진 거리에서 버들잎을 활로 쏘아 백발백중시켰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4 周本紀》 그리고 옛날에 활을 쏠 때에는 네 개의 화살을 발사하는 것이 예법이었는데, 《시경》〈제풍(齊風) 의차(猗嗟)〉에쏘기만 하면 과녁을 꿰뚫으며, 네 개의 화살을 한곳에 거듭 맞혔네.〔射則貫兮四矢反兮〕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4]채록(采綠) :
《시경》〈소아(小雅)〉의 편명으로, 멀리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부인의 심정을 읊고 있다.
[주D-015]척기(陟屺) :
효 자가 부역을 나가서 어버이를 잊지 못하는 심정을 노래한 《시경》〈위풍(魏風) 척호(陟岵)〉에저 민둥산에 올라가서 어머님 계신 곳을 바라본다. 어머님은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 내 막내아들이 부역에 나가서 밤낮으로 잠도 자지 못할 터인데, 부디 몸조심해서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기만 해라.〔陟彼屺兮 瞻望母兮 母曰嗟予季行役 夙夜無寐 上愼旃哉 猶來無棄〕’”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6]성랑(省郞) :
정동행성의 원외랑을 가리킨다.
[주D-017]과하구(果下駒) :
과일나무 밑으로 타고 지나갈 수 있는 작은 망아지라는 말이다.
[주D-018]생각하면……기다렸는지라 :
동 방의 사람들이 가정과 같은 경륜지사(經綸之士)를 오래전부터 고대하였다는 말이다. 구도(九都)는 동이(東夷)를 뜻하는 구이(九夷)의 도회지라는 말로, 요동 일대를 포함한 옛 고구려의 땅을 가리킨다. 참고로 당 태종의 〈요성망월(遼城望月)〉 시에잠시 머물러 구도를 굽어보나니, 서서 보는 사이에 요망한 기운이 사라지네.〔駐蹕俯九都 佇觀妖氛滅〕라는 말이 나온다. 첨언(瞻言)은 식견이 원대한 사람을 가리킨다. 《시경》〈대아(大雅) 상유(桑柔)〉에이 성스러운 사람은 멀리 백리 밖을 내다보고 말을 한다.〔維此聖人瞻言百里〕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9]민로(民勞) :
권신을 책망하고 동료를 서로 권면하며 고생하는 백성을 위로하려는 뜻이 담겨 있는 《시경》〈대아〉의 편명이다.
[주D-020]칠월(七月) :
《시경》〈빈풍(豳風)〉의 편명으로, 농민의 생활을 반영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국풍(國風) 중 가장 긴 시편이다.
[주D-021]봄철에…… :
《시경》〈용풍(
) 정지방중(定之方中)〉에단비가 일단 내리거든, 저 관인에게 명하여, 별을 보고서 일찍 멍에를 얹게 하고는, 뽕나무 밭에 나아가 멈춘다.〔靈雨旣零 命彼人 星言夙駕 說于桑田〕라는 말이 나온다.
[주D-022]초자(楚茨)는……하고 :
〈초 자〉와 〈재삼(載芟)〉은 각각 《시경》〈소아〉와 〈주송(周頌)〉의 편명인데, 초자는 가시덤불을 뜻하고, 재삼은 잡초를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참고로 〈초자〉에무성한 찔레꽃 밭, 그 가시덤불 제거함은, 예로부터 무엇 때문이었는가, 우리가 곡식을 가꾸려 해서라오.〔楚楚者茨 言抽其棘 自昔何爲 我藝黍稷〕라는 구절이 나오고, 〈재삼〉에풀을 베고 나무를 벤 뒤에, 밭갈이를 하니 흙이 잘 풀어지네.〔載芟載柞 其耕澤澤〕라는 말이 나온다.
[주D-023]대전(田) 양사() 갈아엎는다네 :
〈대전〉과 〈양사〉 역시 각각 《시경》〈소아〉와 〈주송〉의 편명인데, 대전은 큰 밭이라는 뜻이고 양사는 날카로운 쟁기라는 뜻이다.
[주D-024]들밥을……한다네 :
참고로 《시경》〈소아(小雅) 보전(甫田)〉에저 남녘 두렁에 들밥을 내니, 권농관이 와서 기뻐하며, 좌우의 것을 취해서, 맛이 있는지 없는지 맛을 보네.
彼南畝 田畯至喜 攘其左右 嘗其旨否〕라는 말이 나온다.
[주D-025]신(新) 여() :
개 간한 지 2년 된 전답과 3년 된 전답을 말한다. 《시경》〈주송 신공(臣工)〉에아 보개여, 저물어 가는 이 봄날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며, 신과 여는 어찌해야 하는가.〔嗟嗟保介 維莫之春 亦又何求 如何新
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26]농기구……적에 :
참고로 《시경》〈주송 신공(臣工)〉에너희 농기구를 갖추어라, 곧 낫으로 추수함을 보리니.
乃錢鎛 奄觀艾〕라는 말이 나온다. ()은 가래인데 지금의 삽과 같고, ()은 호미 등의 농기구를 가리킨다.
[주D-027]장중(張仲)과……같으리 :
주 나라 선왕(宣王) 때 윤길보(尹吉甫)가 북방의 험윤(
)을 정벌하여 큰 공을 세우자, 시인이 시를 지어서 그의 공로를 찬양하고, 아울러 그가 잔치를 벌일 적에 효성과 우애로 유명한 장중을 불러서 함께 즐긴 것을 찬미한 내용이 《시경》〈소아(小雅) 유월(六月)〉에 나온다.
[주D-028]부지런히……도와 :
고려의 왕을 잘 보필하여 선정을 행하라는 말이다. 《시경》〈주송 경지(敬之)〉에임금인 내가 떠맡은 이 짐을 도와주어, 나에게 밝은 덕행을 보여 주기를 바란다.〔佛時仔肩示我顯德行〕라는 말이 나온다.
[주D-029]희중(羲仲)이……다스렸었지 :
《서 경》〈요전(堯典)〉에희중에게 따로 명하여 동쪽 바닷가에 살게 하니 그곳이 바로 해 뜨는 양곡인데, 해가 떠오를 때 공손히 맞이하여 봄 농사를 고르게 다스리도록 하였다.〔分命羲仲 宅嵎夷 曰暘谷 寅賓出日 平秩東作〕라는 말이 나온다.
[주D-030]농사를……밝혔는지도 :
공 자가 동방에 와서 살면서 농사지으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논어》〈공야장(公冶長)〉에 공자가 난세를 개탄하며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나 나갈까 보다.〔道不行 乘桴浮于海〕라고 말한 내용이 실려 있다. 또〈자한(子罕)〉에는 공자가 구이(九夷) 즉 동이족의 지역에서 살고 싶다는 뜻을 표명한 대목이 나온다.
[주D-031]옥당(玉堂)에서…… :
황 제의 측근에서 근무하며 총애를 받았다는 말이다. 연촉(蓮燭)은 황금 연꽃 모양의 촉등(燭燈)으로, 신하에 대한 왕의 특별 예우를 표현할 때 곧잘 쓰이는 말이다. 당나라 영호도(令狐
)가 궁궐에서 밤늦게까지 황제와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갈 무렵에 촛불이 거의 다 꺼지자, 황제가 자신의 수레와 황금 연촉을 주어 보냈는데, 관리들이 이것을 보고는 황제의 행차로 여겼다는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66 令狐列傳》 시초(視草)는 문서를 검토하고 수정한다는 뜻이다.
[주D-032]녹야(綠野)에서……휴대하리 :
밭 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독서를 좋아한다는 말인데, 한나라의 예관(倪寬)과 삼국 시대 위()나라의 상림(常林)과 진()나라의 황보밀(皇甫謐) 등이 모두경서를 휴대하고〔帶經〕농사를 지으면서 쉴 때마다 독서했던 고사가 있다.
[주D-033]관녕(管寧) :
후 한 말의 고사(高士)이다. 황건적의 난리를 피해 요동 땅으로 건너간 뒤 조정의 거듭된 부름에도 일절 응하지 않은 채 37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청빈하게 살면서 언제나검은 모자〔
帽〕를 쓰고 유유자적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11 魏書 管寧傳》
[주D-034]서주(西疇) :
농지를 뜻하는 시어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다고 말해 주니, 서쪽 밭에 장차 할 일이 있으리라.〔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于西疇〕라는 말이 나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주D-035]동작(東作)을……두었나니 :
옛 날 동방의 바닷가에 농관을 두게 된 연유를 말한 것이다. 《서경》 〈요전(堯典)〉에희중에게 따로 명하여 동쪽 바닷가에 살게 하니 그곳이 바로 해 뜨는 양곡인데, 해가 떠오를 때 공손히 맞이하여 봄 농사를 고르게 다스리도록 하였다.〔分命羲仲 宅嵎夷 曰暘谷寅賓出日 平秩東作〕라는 말이 나온다.
[주D-036]신농(神農) :
농사에 관한 서적을 말한다. 태곳적에 신농씨가 백성들에게 쟁기 사용법 등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주D-037]북성(北省) 청쇄객(靑瑣客) :
궁중에 출입하며 황제의 측근에서 청요(淸要)의 직책을 수행하는 신하를 말한다. 북성은 대궐 북쪽의 상서성을, 청쇄는 궁중의 문을 가리킨다.
[주D-038]동산……걱정이지 :
굴 원(屈原)의 〈이소(離騷)〉에제계가 먼저 울까 걱정일세, 온갖 풀이 향기롭지 못하게 될 테니까.〔恐
鶗鴂之先鳴兮 使夫百草爲之不芳〕라는 말이 나온다. 제계(鶗鴂)는 두견이라고도 하고 때까치라고도 하는데, 이 새가 춘분에 앞서 미리 울면 초목이 시든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에 충직한 인사를 모함하는 보통 참인(讒人)의 대명사로 쓰이곤 한다.
[주D-039]창호(窓戶)에……상관없다네 :
길 고(
)는 두레박틀이다. 길고를 이용하면 쉬운 줄을 알면서도 굳이 우물 속으로 들어가 어렵게 항아리에 물을 퍼 담아 밭에 물을 주면서기계가 있으면 기교를 부리는 일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일이 있으면 기교 부리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有機械者必有機事 有機事者必有機心〕하고, 자공(子貢)의 권유를 뿌리친, 이른바 한음 장인(漢陰丈人)의 이야기가 《장자》〈천지(天地)〉에 나온다.
[주D-040]아손(兒孫)은……달가워하고 :
겨 울철 농한기에 학문에 매진하는 것을 말한다. 동방삭(東方朔)이 한 무제에게 올린 글에나이 13세에 글을 배워 겨울 석 달간 익힌 문사의 지식이 응용하기에 충분하다.〔年十三學書 三冬文史足用〕고 하였다. 《漢書 卷65 東方朔傳》
[주D-041]칠월(七月) :
《시경》 〈빈풍(豳風)〉의 편명으로, 농민의 생활을 반영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국풍(國風) 중 가장 긴 시편이다.
[주D-042]상원(上苑) :
상림원(上林苑) 즉 궁중의 비원(秘苑)이다.
[주D-043] 마지기의……소진(蘇秦) :
전 국 시대 낙양인(洛陽人) 소진(蘇秦)이 합종책(合縱策)을 주장하면서 제후를 설득하러 돌아다닐 적에, 조나라의 대신 이태(李兌)로부터검은 담비 가죽옷〔黑貂之裘〕과 황금 100()을 받고서 진()나라에 들어갔는데, 오래도록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가죽옷도 모두 해지고 황금도 다 떨어져서 꾀죄죄한 몰골로 초라하게 돌아온구폐금진(裘敝金盡)’의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趙策1, 秦策1》 또 소진이 산동 6국의 종약장(縱約長)이 된 뒤에 고향에 돌아와서가령 내가 낙양성 교외에 좋은 땅 두 마지기만 가지고 있었더라면, 어떻게 여섯 나라 정승의 인을 꿰찰 수 있었겠는가.〔且使我有洛陽負郭田二頃 吾豈能佩六國相印乎〕라고 말했던 고사도 전한다. 《史記 卷69 蘇秦列傳》
[주D-044]서금과(瑞錦窠) :
당나라 때에 성중(省中)의 문한을 맡는다고 해서 예부의 원외랑이나 낭중을 부르던 호칭이다. 남궁 사인(南宮舍人)이라고도 하였다.
[주D-045]현량방정(賢良方正) 대책문(對策文) :
가정이 정시(廷試)의 책문에 응한 답안지를 말한다. 현량방정은 한 문제 때부터 시작된 과거 제도로, 책문을 통해 직언과 극간(極諫)을 잘하는 사람을 뽑았는데, 현량문학(賢良文學)이라고도 한다.
[주D-046]역전과(力田科) :
농 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경작에 힘쓰는 사람을 대상으로 관리를 선발하던 과거 고시 과목의 하나이다. 참고로 당나라 때에는 무재이행(茂才異行), 안빈낙도(安貧樂道), 효제역전(孝悌力田), 고도불사(高蹈不仕) 등의 사과(四科)로 관원을 뽑기도 하였다. 《舊唐書 卷11 代宗本紀》
[주D-047]행와(行窩) :
소 옹(邵雍)이 처음 낙양에 와서 비바람도 가리지 못할 정도의 누옥(陋屋)에 살면서도 그곳을 안락와(安樂窩)라고 이름 짓고는, 가끔씩 자그마한 수레를 타고 외출하여 즐기곤 하였는데, 사람들이 서로 접대하려고 안락와와 비슷한 집을 지어 놓고는 행와(行窩)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史 卷427 邵雍列傳》
[주D-048]당년에……많겠지만 :
가 정이 현재 고려에서 중하게 대접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소골(蘇骨)은 옛날 우리나라에서 귀인이 쓰던 모자의 이름이다. 《북사(北史)》 권94 〈고려열전(高麗列傳)〉에사람들 모두 머리에 절풍을 착용하는데, 모양은 변과 같으며, 사인은 새의 깃털 두 개를 더 꼽는다. 귀한 자들의 경우는 그 관을 소골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보라색 비단으로 만들고, 금은으로 장식한다.〔人皆頭著折風 形如弁 士人加揷二鳥羽 貴者 其冠曰蘇骨 多用紫羅爲之 飾以金銀〕라는 말이 나온다. 중대(重戴)는 절상건(折上巾) 위에 다시 관을 쓰는 식으로 머리에 이중으로 모자를 착용한다는 말인데, 송나라 때에 어사대(御史臺)의 관원은 모두 이런 식으로 모자를 썼다고 한다. 《宋史 卷153 輿服志5
[주D-049]한아(韓娥) :
고대 한국(韓國)의 가곡을 잘하는 명인으로, 한번 노래를 부르면 그녀가 떠난 뒤에도 3일 동안이나 여음(餘音)이 건물 안에 감돌았다고 한다. 보통 가기(歌妓)의 뜻으로 쓰인다.
[주D-050]천산곡(天山曲) :
당 나라 설인귀(薛仁貴)가 천산(天山)의 돌궐(突厥)을 공격할 적에 화살 세 발을 발사하여 세 명을 잇달아 사살하자 10여 만이나 되는 돌궐의 군사들이 사기가 꺾여 모두 항복하였는데, 이에 군중(軍中)장군이 화살 셋으로 천산을 평정하니, 장사들이 길이 노래하며 한관에 들어가네.〔將軍三箭定天山壯士長歌入漢關〕라고 노래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卷111 薛仁貴列傳》 이 노래로 가정이 과거 고시의 삼장을 통과하여 제과에 급제하였음을 비유한 것이다.
[주D-051]답답가(踏踏歌) :
전설상의 팔선(八仙)의 하나인 당인(唐人) 남채화(藍采和)가 항상 취해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걸할 때마다 불렀다는 노래 이름이다. 《續神仙傳踏踏歌》
[주D-052]큰……비비대고 :
공 사태(貢師泰)의 문집인 《완재집(玩齋集)》 권2〈제고려이중보원외가(題高麗李衆甫員外稼)〉에는()’(
)’으로 되어 있다. ‘으로 고쳐서 번역하면 두 뿔이 온순하다고 해야 할 텐데, 이 뜻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참고로 《시경》〈소아 무양(無羊)〉에너의 양이 오니, 그 뿔이 온순하고, 너의 소가 오니, 그 귀가 촉촉하도다.〔爾羊來思 其角濈濈 爾牛來思 其耳濕濕〕라는 말이 나오는데, “양은 잘 떠받는 것이 걱정이다. 그래서 온순하다고 말한 것이다.〔羊以善觸爲患故言其和〕라는 해설이 나와 있다.
[주D-053]구호(九扈)는……재촉하네 :
구호는 사람들에게 농사철을 알려 준다는 새 이름인데, 농관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포곡(布穀)은 뻐꾸기의 별칭으로, 봄철에 우는 소리가씨앗을 뿌려라〔布穀〕라고 재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주D-054]고급……낭관(郎官) :
가정이 정동행성의 원외랑으로 고려에 온 것을 말한다. 원래 《가정집》에는 이 구절이 없고 《완재집》에 들어 있는데, 포함해서 번역하는 것이 더 좋겠기에 삽입하였다.
[주D-055]어찌……뿐이리오 :
《완재집》에는()’()’로 되어 있다.
[주D-056]피리……연주하네 :
《완 재집》에는()’()’으로 되어 있다. 빈시(豳詩)는 농민의 생활을 읊은 《시경》〈빈풍(豳風) 칠월(七月)〉의 시를 가리키는데, 《주례》〈춘관(春官) 종백(宗伯)〉에중춘이 되면 낮에 토고를 치고 피리로 빈시를 연주하여 더위를 맞는다.〔中春晝擊土鼓吹豳詩以逆暑〕라는 말이 나온다.
[주D-057]고지대……가득 :
대 풍(大豊)이 든 것을 형용한 말이다. 《사기》 권126〈골계열전(滑稽列傳)〉에고지대 밭의 수확도 그릇에 가득, 저지대 밭의 수확도 수레에 가득, 오곡이 모두 잘 여물어서, 집 안에 가득 차게 해 주시기를.〔甌
滿篝 汙邪滿車 五穀蕃熟 穰穰滿家〕이라는 말이 나온다.
[주D-058]전준(田畯) 귀신 :
《주 례》〈춘관 종백〉에나라에서 전조에게 풍년을 기원할 때에는 빈아를 피리로 연주하고 토고를 쳐서 전준을 기쁘게 한다.〔凡國祈年于田祖 則吹豳雅 擊土鼓 以樂田畯〕라고 하였는데, 이 전준은 바로 농신(農神)을 말한다. 참고로 《주례》에 나오는 전준은 귀신 즉 후직(后稷)을 가리키고, 《시경》에 나오는 전준은 관원을 가리킨다.
[주D-059]한아(韓娥) :
고대 한국(韓國)의 가곡을 잘하는 명인으로, 한번 노래를 부르면 그녀가 떠난 뒤에도 3일 동안이나 여음(餘音)이 건물 안에 감돌았다고 한다. 보통 가기(歌妓)의 뜻으로 쓰인다.
[주D-060]향청(香淸) :
보통 난초와 같은 꽃이나 청주와 같은 술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꽃을 비유한 말이 아닐까 한다.
[주D-061]창정(蒼精) :
창정지제(蒼精之帝)의 준말로, 봄을 맡은 신을 가리킨다. 참고로 여름을 맡은 신은 적정(赤精), 가을은 백정(白精), 겨울은 흑정(黑精)이다.
[주D-062]나의……벼슬하다가 :
이 시는 작자가 가정의 입장에서 술회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양광도(楊廣道)는 지금의 경기도 남부 지역과 충청도 대부분을 차지한 고려의 행정 구역이다. 왕경(王京)은 개경을 가리킨다.
[주D-063]경전착정(耕田鑿井)이……생각하고서 :
오 늘날 태평성대를 구가하게 된 것은 모두 황제의 덕분이라는 말이다. 요 임금 때에 어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에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면서, 내 샘을 파서 물 마시고 내 밭을 갈아서 밥 먹을 뿐이니, 임금님의 힘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상관이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는 말이 나온다.

 

 

 

 

이중보(李中父)가 정동행성(征東行省)에 사신으로 나가는 것을 전송하며 지은 서

 


우리 원나라가 대일통(大一統)을 달성하여 해내와 해외의 모든 나라가 신하로 복속하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고려에도 사신을 보내 책력을 주면서 정삭(正朔)을 반포하고 있다.
지 정(至正) 병술년(1346, 충목왕2) 1월에 이군 중보(李君中父)가 중서 전부(中瑞典簿)의 신분으로 그 사명을 실제로 받고 떠나게 되었다. 이에 고사(故事)에 의거해서 조사(朝士) 중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시를 지어 야차(野次)에서 다투어 전별하며 증정하였는데,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듣건대, 바다 동쪽에 옛날부터 세워진 나라들이 땅을 서로 접하며 교착(交錯)된 가운데 고려의 영토가 가장 크다고 하고, 제실(帝室)의 부마(駙馬)가 된 제후 왕들의 성씨가 한둘이 아닌 가운데 왕씨(王氏)와의 관계가 가장 친밀하다고 한다. 이처럼 영토가 크고 또 가장 친밀한 까닭에 윗사람을 섬기는 예도 가장 경건해서, 조정의 사신이 오기만 하면 그들이 긴장을 풀지 않고 주도면밀하게 받들어 모시며 주선한다고 한다. 그런데 더구나 중보의 경우는 천자의 명력(明曆)을 받들고 가는 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사신의 일 중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
그들 은 국경에서 사신을 기다리고 있다가 교외에서 영접할 것이다. 관원들이 분주히 오가는 가운데 말은 땀을 흘려 언치를 적실 것이요 수레바퀴의 굴대에는 기름이 흥건할 것이다. 정여(
)는 바람에 휘날리고 당개(幢蓋)는 태양을 가릴 것이며, 사죽(絲竹)의 소리가 지축을 흔들고 탁고(鐸鼓)의 소리가 사방에 진동할 것이다. 그리고 척월(戚鉞)과 검극(劍戟)과 시궁(矢弓)을 손에 든 무부(武夫)들이 물고기를 꿴 듯 차례로 질서정연하게 전진하면서 앞뒤로 옹위(擁衛)할 것인데, 이렇게 해서 일단 도착하고 나면 신명을 모시듯 명력을 공경히 받들어 경건히 고유(告由)한 다음에 감히 반행(頒行)할 것이니, 예가 이 정도는 되어야 공경하는 것이 비로소 지극하다고 할 것이다.
한산(韓山)으로 말하면 고려의 근교에 자리하고 있는데
, 중보의 상재(桑梓) 이곳에 심겨 있으니, 이번의 행차 역시 이곳을 영예롭게 빛내고도 남음이 있다 할 것이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나는 중보가 아침저녁으로 사모해 오다가 수천 리 머나먼 길을 달려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그저 집으로 돌아가서 자모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이요, 사신의 영광을 빙자하여 고향 마을에 빛을 내면서 일시적으로 사람들에게 멋진 구경거리를 제공하며 과시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가령 자모를 봉양하는 여가에 가정의 지팡이를 짚고 한산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한없이 넓은 푸른 바다를 굽어보노라면, 곤붕(鯤鵬)이 탈바꿈하고 경예(鯨鯢)가 신속히 오가는 가운데 기괴한 파도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것이니, 그냥 서 있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질 것이다. , 얼마나 외경스러운 광경인가,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때에
서생(徐生)의 옛 자취를 돌아보고, 황홀한 가운데에서 삼신산(三神山)을 바라보노라면, 표연히 망묘(莽渺)를 타고 홍몽(鴻濛)의 위에 올라서서 진세(塵世)를 버리고 홀로 우뚝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니, 이 또한 얼마나 즐겁겠는가.
나는
왕사(王事)가 없는 관계로 함께 따라가 직접 눈으로 보고서 답답하게 막힌 가슴을 어느 때고 활짝 트이게 할 수 없는 것이 유감스럽기만 하다. 그러니 중보가 돌아와서는 나에게 이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마침내 말한 내용을 그대로 써서 이별 선물로 주었다.
지정 병술년(1346, 충목왕2) 1월에 진정(眞定) 주선(周璿)은 서()하다
.

송시(送詩)


도성 문 동쪽 아래로 길고 긴 역로 / 都門東下驛途長
봉력의 봄 반포하고 고향을 또 찾으리 / 鳳曆頒春過故鄕
나루터 관리가 배를 대어 직접 대기하고 / 津吏艤舟躬候迓
배신이 역마 타고 멀리 맞고 배웅하리라 / 陪臣乘馹遠迎將
땅을 떼어 봉한 나라에 두루 행하는 은위요 / 恩威普洽分封國
이성인 임금에게 균등하게 내리는 덕택이라 / 德澤均霑異姓王
원방이 성군 사모함을 앉아서 알 수 있나니 / 坐見遠人懷聖化
성교가 부상에까지 흡족히 미치게 해야 하리 / 要令聲敎徹扶桑
화봉(華峯) 장기암(張起岩) 지음

어버이 그리워하는 마음 어언 몇 해런가 / 思親懷着幾年心
말에 올라 이마 펴며 기쁨을 금하지 못하누나 / 上馬眉舒喜不禁
나루터 관리 배 끌고 압수에서 마중하리니 / 津吏挐舟迎鴨水
번왕에게 반포한 책력이 계림에 왔으니까 / 藩王頒曆到鷄林
동쪽 끝에 외진 땅이라 봄 경치 한창일 것이요 / 地偏東極春容盛
남쪽 해변에 조수 밀려와 바다 기운 음산하리 / 潮長南邊海氣陰
중국 조정의 관원들 중에도 준걸이 많으니 / 軒冕天廷多俊傑
향리에서 마냥 어울려 지내려고 하지 마오 / 莫從里社便浮沈
주선(周璿) 지음

좋은 시절 맞이한 지정 황제 이 시대 / 天王至正好年華
사자가 새봄을 반포하러 바다 끝까지 / 使者頒春竝海涯
당나라에 들어가 급제한 치원이요 /
致遠入唐能及第
촉을 효유하고 집에 돌아간 상여로세 /
相如喩蜀就還家
선인의 누각은 비를 많이 머금고 있고 /
仙人樓閣多藏雨
부마
의 성지에는 일찌감치 피는 꽃들 / 駙馬城池早見花
말을 듣자니 한산에 자모가 계시다는데 / 聞道韓山有慈母
행여 요순 떠나 연하를 짝하지 마시기를 / 莫辭堯舜伴煙霞
임희광(林希光) 지음

압록강 머리에 봄날의 물이 맑기도 한데 / 鴨綠江頭春水淸
강을 환히 비치며 유유히 떠가는 깃발이여 / 悠悠旌旆照江明
배신은 사마를 영접하며 길을 온통 가로막고 /
陪臣擁道迎司馬
선실에서는 가생에게 중한 은혜를 내리리라 /
宣室承恩重賈生
흰 비단에 시 지으면 고흥이 발동할 것이요 / 素繭題詩發高興
소라에 술을 잔질하며 고향의 정을 느끼리 / 翠螺酌酒見鄕情
그대 편에 장 사간에게 안부를 전하노니 / 憑君問訊張司諫
주옥같은 시를 좀 봉성에 부쳐 주시라고 / 還有珠璣到鳳城

고려의 재신(宰臣)눌재(訥齋) 장공(張公)은 염정(廉正)한 데다 글을 잘하는데, 오래전부터 나와 사귀었으므로 아울러 언급하였다.

구장(句章) 섭항(葉恒) 지음

후의를 태사가 금란에 세우고서 /
候儀太史立金鑾
보력이 완성되자 비단으로 다시 쌌네 / 寶曆新成錦作

천자가 의상을 드리우고 정삭을 반포함에 / 天子垂衣頒正朔
중랑이 사신의 부절 쥐고 삼한에 간다네 /
中郞持節使三韓
부상의 아침 환히 밝히는 바다의 해 둥실둥실 / 團團海日扶桑曙
차가운 약수 건너는 운한의 가물가물 /
渺渺雲槎弱水寒
만국이 말을 치달려 경성을 떠나는 그중에서도 / 萬國驅馳去京國
원방의 사람이 더더욱 관대한 성은을 느끼리라 / 遠人逾覺聖恩寬
남양(南陽)
지음

부절 쥐고 경성을 나와 동쪽으로 향하는 길 / 持節東行出帝京
수의의 광채가 바다 노을에 눈부시게 빛나리 / 繡衣光射海霞明
천자의 교화에 젖어서 계림의 햇볕도 따스하고 / 鷄林日暖霑王化
나그네 마음 유쾌하게 학주의 바람도 맑으리라 / 鶴柱風淸快客情
계자는 구름 사이에서 우로에 깊이 젖고 / 桂子雲間深雨露
훤화의 마루 뒤로 난형의 향기 이어지네
/
萱華堂背接蘭

멀리 정삭을 반포하고 모쪼록 얼른 돌아오소 / 遙頒正朔歸須早
지금은 인재를 구해 태평을 이루는 때이니까 / 政爾求才致太平
부형(傅亨) 지음

사화가 동쪽으로 백암성을 향하노니 / 使華東望白巖城
사승이 달리는 곳마다 도로에서 영접하리 / 駟乘駸駸道路迎
봉력을 멀리 반포하나니 주나라의 정삭이요 / 鳳曆遠頒周正朔
계림에서 더욱 빛나나니 한나라의 과명이라 / 鷄林增重漢科名
탁금
의 선물 받을 것 있나 집에 가까이 왔는걸 / 橐金辭贈還家近
궁중 비단 하사받고 모친을 뵙는 이 영광이여 / 宮錦承恩拜母榮
가장 기쁜 것은 사마의 격문이 필요 없이 / 最喜不煩司馬檄
부상 만리에 바다 물결이 맑게 빛나는
/
扶桑萬里海波淸
방도예(方道叡) 지음

천자가 책력을 반포하여 고려에 반사함에 / 九重頒曆賜高麗
중서
가 은혜 입어 사신의 깃발을 세웠도다 / 中瑞承恩建使旗
우주에 요순의 일월이 오래 빛나는 가운데 / 宇宙久行堯日月
산하가 다시 중국의 위의를 보게 되었어라 / 山河又覩漢威儀
부상의 나라 먼 하늘은 눈이 이미 개고 / 遙天雪霽扶桑國
압록의 강변에는 대지의 봄빛이 돋아나리 / 大地春生鴨綠池
쇠뇌를 지고 앞장선 것도 옛날부터 뻐기는데 / 弩矢前驅誇自昔
색동옷 입고 자친을 뵙는 그대야 말을 하랴
/
況君綵服拜親慈
번이(番易) 주돈(周暾) 지음

 

[주D-001]대일통(大一統) : 천 하의 모든 나라가 원나라 천자에게 귀의하여 이를 중심으로 통일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은공(隱公) 원년 기사에왜 왕정월이라고 하였는가. 대일통을 표시하기 위해서이다.〔何言乎王正月大一統也〕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인데, 왕정월(王正月)춘추 시대 주나라 왕이 쓰는 달력으로 정월이라는 뜻으로, 《춘추》의 전형적인 연대 표기 방식이다.
[주D-002]정삭(正朔) :
연시(年始)와 월초(月初)라는 뜻으로, 역성혁명을 이룬 제왕이 새로 반포한 역법을 가리킨다.
[주D-003]중보(中父)의……있으니 :
한 산(韓山)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가정의 고향이라는 말이다. 상재(桑梓)는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뜻하는데, 《시경》〈소아(小雅) 소변(小弁)〉에어버이가 심어 놓으신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하물며 우러러 뵐 분으로는 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이 없으며, 의지할 분으로는 어머니 말고 다른 사람이 없는 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維桑與梓 必恭敬止 靡瞻匪父 靡依匪母〕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서생(徐生) :
진 시황 때의 방사(方士) 서복(徐福)을 가리킨다. 서복이 동해(東海)의 삼신산(三神山)에 불사약이 있다고 진 시황(秦始皇)을 속인 뒤에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가 소식이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에 도착했더라는 전설이 전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주D-005]왕사(王事) :
왕명을 받들고 사신으로 나가는 공적인 일을 말한다.
[주D-006]당나라에……치원(致遠)이요 :
최치원은 당나라에 가서 급제하였다. 잡록 〈이중보(李中父)가 사명을 완수하고 원나라 조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 지은 서〉 참조.
[주D-007]촉(蜀)을……상여(相如)로세 :
한 무제 때 낭중장(郎中將) 당몽(唐蒙)이 야랑(夜郞)의 사신으로 임명된 뒤에 파촉(巴蜀)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일을 시키면서 전시(戰時)의 군흥법(軍興法)을 적용하자 파촉 전역이 공포에 떨며 동요하였다. 이에 무제가 파촉 출신인 사마상여를 보내 당몽을 꾸짖고 민심을 안정시키도록 하니, 사마상여가 효유(曉諭)하는 격문을 지어 사태를 진정시키고 향리에 돌아간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주D-008]선인(仙人)의……있고 :
전 국 시대 초나라 시인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에, 초왕과 무산(巫山) 신녀(神女)의 연애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서로 작별할 적에 무산 신녀가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를 내리면서 언제까지나 양대 아래에 있겠다.〔旦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文選 卷19
[주D-009]부마(駙馬) :
통상적으로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는 고려의 왕을 지칭한 말이다.
[주D-010]배신(陪臣)은……가로막고 :
가 정이 사마상여(司馬相如)처럼 금의환향한다는 말이다. 사마상여가 중랑장(中郞將)이 되어 고향인 파촉(巴蜀) 땅에 사신으로 갔을 적에 촉군 태수(蜀郡太守) 이하가 모두 교영(郊迎)하였으며, 현령(縣令)몸소 쇠뇌를 등에 지고 앞장서서 달림으로써〔負弩矢先驅〕존경하는 뜻을 보였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주D-011]선실(宣室)에서는……내리리라 :
고 려 국왕의 예우가 극진할 것이라는 말이다. 선실은 한나라 미앙궁(未央宮)에 속한 궁전 이름으로, 황제가 재계하던 곳인데, 한 문제가 이곳에서 가의(賈誼)를 접견하고 깍듯이 예우하며 자문을 구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48 賈誼傳》
[주D-012]눌재(訥齋) :
장항(張沆 : ?~1353)의 호이다.
[주D-013]후의(候儀)를……세우고서 :
후 의는 천문 관측기구로, 혼천의(渾天儀)와 같은 말이다. 태사(太史)는 천문과 역법을 담당하는 관원이다. 금란(金鑾)은 금란전(金鑾殿)의 준말로, 당 덕종(唐德宗) 때 금란파(金鑾坡) 위에 세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보통은 관각을 가리킨다.
[주D-014]의상을 드리우고 :
성군의 덕치를 뜻하는 말이다. “황제와 요순 시대에는 임금이 의상을 드리우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만 있어도 천하가 그 덕에 힘입어 잘 다스려졌다.〔黃帝堯舜 垂衣裳而天下治〕라는 《주역》〈계사전 하(繫辭傳下)〉의 말에서 유래하였다.
[주D-015]중랑(中郞)이……간다네 :
한 나라 사마상여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사마상여가 중랑장(中郞將)이 되어 고향인 파촉(巴蜀) 땅에 사신으로 갔을 적에 촉군 태수(蜀郡太守) 이하가 모두 교영(郊迎)하였으며, 현령(縣令)몸소 쇠뇌를 등에 지고 앞장서서 달림으로써〔負弩矢先驅〕존경하는 뜻을 보였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주D-016]차가운……가물가물 :
요 동을 거쳐 고려로 가는 사신의 행차라는 말이다. 약수(弱水)는 원래 삼신산의 하나인 봉래산이 있는 섬으로부터 약 30만 리쯤 떨어져서 인간 세상과 격리시키며 그 섬을 둘러싸고 있다는 전설 속의 물 이름인데, 《후한서》 권115〈동이전 부여국(夫餘國)〉 조에그 북쪽에 약수가 있다.〔北有弱手〕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운한(雲漢)의 배는 사행(槎行)을 뜻한다. 한나라 박망후(博望侯) 장건(張騫)이 한 무제의 명을 받고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나가서 황하의 근원을 찾을 적에 뗏목을 타고 달포를 지나 운한 즉 은하수 위로 올라가서 견우와 직녀를 만나고 왔다는 전설이 전한다. 《天中記卷2
[주D-017]남양(南陽) :
이 뒤에 성준(成遵)이라는 글자가 생략된 듯하다. 그는 가정이 정동행성의 좌우사원외랑을 제수받고 귀국할 때에도 송별시를 지어 주었다. 그는 가정과 함께 제과에 급제한 동년인데, 《가정집》 권15에 〈동년 성의숙(成誼叔)에게 부치다〉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의숙은 그의 자이다.
[주D-018]학주(鶴柱) :
학 이 와서 앉은 기둥이라는 말로, 여기서는 요동을 가리킨다. 요동 사람 정 영위(丁令威)가 신선이 되고 나서 1천 년 만에 학으로 변해 다시 고향을 찾아와서는 요동 성문의 화표주(華表柱) 위에 내려앉았다는데, 소년 하나가 활을 쏘려고 하자 허공으로 날아올라 배회하다가 탄식하면서 떠나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搜神後記卷1
[주D-019]계자(桂子)는……이어지네 :
아들인 가정이 천자의 은총을 받아 모친에게 영광을 안겨 드렸다는 말이다. 계자는 남의 자제에 대한 미칭이고, 훤화(萱華)는 남의 모친에 대한 경칭이다. 난형(
)은 난초, 두형()과 같은 향초이다.
[주D-020]백암성(白巖城) :
요동(遼東)의 양수(梁水) 서북쪽 40리 지점에 있다. 안시성(安市城)이 그 근처에 있으며, 암주(巖州)라고도 한다.
[주D-021]과명(科名) :
과거 급제를 뜻한다.
[주D-022]탁금(橐金) :
행 장에 금을 싸 준다는 말로, 한나라 육가(陸賈)의 고사이다. 그가 남월(南越)에 사신으로 갔을 적에, 월왕 위타(尉他)가 그를 무척 좋아한 나머지 몇 달 동안 함께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다가, 귀환할 무렵에는그의 행장에 천금의 가치가 있는 보물을 싸 주며 선물했던〔賜陸生橐中裝直千金〕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97 陸賈列傳》
[주D-023]사마(司馬)의…… :
동 요하며 불안에 떠는 민심을 안정시킬 필요 없이, 현재 태평성대를 한껏 누리고 있다는 말이다. ()나라 성왕(成王) 때에 주공(周公)이 섭정하여 천하가 태평해지자, 월상씨(越裳氏)가 와서 주공에게흰 꿩〔白雉〕을 바치며우리나라 노인들이 말하기를하늘에 풍우가 거세지 않고 바다에 해일이 일지 않은 지 지금 3년이 되었다. 아마도 중국에 성인이 계신 듯한데, 어찌하여 가서 조회하지 않는가.〔天之不迅風疾雨也海不波溢也 三年於玆矣 意者中國殆有聖人 盍往朝之〕라고 하기에 조공을 바치러 왔다.”라고 하였다는 말이 《한시외전》 권5에 나온다. 월상씨는 교지(交趾)의 남쪽에 있던 고국(古國)의 이름이다. 사마의 격문은 파촉(巴蜀)의 사신으로 나가서 지은 한나라 사마상여의 글을 말한다. 한 무제 때 낭중장(郎中將) 당몽(唐蒙)이 야랑(夜郞)의 사신으로 임명된 뒤에 파촉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일을 시키면서 전시(戰時)의 군흥법(軍興法)을 적용하자 파촉 전역이 공포에 떨며 동요하였다. 이에 무제가 파촉 출신인 사마상여를 보내 당몽을 꾸짖고 민심을 안정시키도록 하니, 사마상여가 효유(曉諭)하는 격문을 지어 사태를 진정시키고 향리에 돌아간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주D-024]중서(中瑞) :
가정이 원나라에서 맡고 있는 관직인 중서사 전부(中瑞司典簿)의 약칭이다.
[주D-025]쇠뇌를……하랴 :
향 리에서 금의환향하는 가정을 부러워하는 정도를 넘어서, 모친을 뵙고 어리광을 부릴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겠느냐는 뜻이다. 쇠뇌와 색동옷은 각각 사마상여(司馬相如)와 노래자(老萊子)의 고사로 다음과 같다. 사마상여가 중랑장(中郞將)이 되어 고향인 파촉(巴蜀) 땅에 사신으로 갔을 적에 촉군 태수(蜀郡太守) 이하가 모두 교영(郊迎)하였으며, 현령(縣令)몸소 쇠뇌를 등에 지고 앞장서서 달림으로써〔負弩矢先驅〕존경하는 뜻을 보였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또 춘추 시대 초나라의 은사(隱士)인 노래자가 70의 나이에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었다는 고사가 있다. 《初學記 卷17 引 孝子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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