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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의역(興義驛)에서 묵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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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차갑고 인가도 드문 퇴락한 역사(驛舍) / 天寒破驛少人煙
언치 위에서 꾸벅꾸벅 몽롱한 눈으로 말 내렸네 / 下馬昏昏睡馬韉
한밤중에 술 깬 뒤로는 그대로 뜬눈으로 / 夜半酒醒仍夢覺
벼슬살이와 고향 생각 둘 다 끝이 없어라 / 宦情離思共悠然
자비령(慈悲嶺)을 넘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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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돌려 송도를 보니 이미 까마득 / 廻首松都已杳然
훤당은 거기서 다시 바다 남쪽 편에 / 萱堂更在海南邊
내 생애 몇 번이나 자비령 넘었던가 / 吾生屢度慈悲嶺
지금은 또 소년이나 장년도 아닌걸 / 此去還非少壯年
쌓인 눈 속에 파묻힌 꼭대기 승방이요 / 絶頂僧房埋積雪
찬 연무에 갇힌 황량한 숲의 역사로다 / 荒林驛舍鎖寒煙
시를 지어 심우에게 부치려 하였더니 / 題詩欲寄諸心友
언 붓이 송곳 같아 종이에 붙질 않네 / 凍筆如錐不著牋
순암(順菴)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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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마다 느끼나니 갈수록 주는 지인의 숫자 / 重來轉覺舊游稀
옷을 쉽게도 더럽히는 도성 거리 자욱한 먼지 / 九陌塵埃易滿衣
허정당 앞에 서 있는 몇 그루 잣나무가 / 虛淨堂前數株柏
세한의 계절에 주인님 오기를 고대하더이다 / 歲寒忙待主人歸
[주D-001]허정당(虛淨堂) : 순암(順菴)이 거처하던 곳의 당호(堂號)인데, 《가정집》 권4에 가정이 그를 위해 지어 준 기문(記文)이 있다.
눌재(訥齋)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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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 겪다 보니 눈빛도 차갑게 바뀌고 / 世事看來眼冷
변하는 세월 속에 얼굴도 검게 야위는데 / 年光變處顔緇
탐진치의 계를 지키지 못하는 까닭에 / 爲破貪嗔癡戒
귀거래의 시를 읊지 못하고 있소이다 / 未成歸去來辭
[주C-001]눌재(訥齋) : 장항(張沆 : ?~1353)의 호이다.
[주D-001]탐진치(貪嗔癡) : 불가에서 말하는 이른바 삼독(三毒)으로, 일체 번뇌를 일으켜서 독사처럼 중생에게 해를 끼치는 세 가지 대표적인 잘못된 마음을 말하는데, 계정혜(戒定慧)의 삼학(三學)을 통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박 판서(朴判書)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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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살이 때문에 다시 도착한 제왕의 서울 / 宦游又到帝王都
박봉에 한가한 관직 술 사서 마실 수는 있네 / 薄俸官閑酒可沽
지금 고향은 가을 들어 벼 곡식이 익지 않아 / 正是故山秋不熟
배고파 울고 있을 테니 처자가 또 걱정일세 / 啼飢時復念妻孥
김 장원(金壯元)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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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에서 벼슬할 뜻 다함이 없어 / 游宦皇都意未闌
하늘 가득 풍설 뚫고 찾아온 연경 / 滿天風雪到燕山
그대에게 청하노니 삼동의 과업에 힘쓰기를 / 請君且勉三冬學
뒷날 공명 이루면 한가한 틈을 못 낼 테니 / 他日功名不放閑
[주D-001]삼동(三冬)의 과업 : 겨 울철 석 달간의 농한기에 독서하며 학문에 매진하는 것을 말한다. 동방삭(東方朔)이 한 무제에게 올린 글에 “나이 13세에 글을 배워 겨울 석 달간 익힌 문사의 지식이 응용하기에 충분하다.〔年十三學書 三冬文史足用〕”고 하였다. 《漢書 卷65 東方朔傳》
방 상서(方尙書)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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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의 지관은 곧 선인이 거하는 집 / 城南池館卽仙家
청산도 마음에 들고 꽃도 눈에 들고 / 滿意靑山滿眼花
한스러운 것은 어르신 모시지 못하고서 / 恨我未能陪杖屨
연경을 치달리며 홍진에 백발 날리는 것 / 紅塵白髮走京華
민급암(閔及菴)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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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떠나며 더딘 걸음 지금도 그러한데 / 去國遲遲又此時
선생은 무슨 이유로 송별시 하나 아끼시오 / 先生何惜送行詩
노부 모두 하찮은 일이라 귀찮기도 하겠지 / 應嫌老簿渾閑事
시시한 벼슬 동쪽 서쪽 걸핏하면 이별이니 / 薄宦東西慣別離
[주C-001]민급암(閔及菴) : 급암은 민사평(閔思平 : 1295~1359)의 호이다.
[주D-001]조국……그러한데 : 옛 날에 공자가 조국 노나라를 떠날 때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지금 가정이 고려를 떠나는 심정도 그러하다는 말이다. 《맹자》〈만장 하(萬章下)〉에 “공자가 노나라를 떠날 때 ‘더디고 더디도다, 나의 이 걸음이여.’ 하셨다. 이는 부모의 나라를 떠날 때의 도리가 그러했기 때문이다.〔孔子之去魯曰遲遲吾行也 去父母國之道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노부(老簿) : 부서(簿書)나 처리하며 늙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벼슬살이에 대한 겸사이다.
전운(前韻)을 써서 홍양파(洪陽坡)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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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제거 선생은 의리가 한 단계 높아져서 / 提擧先生義更高
새 시가 왕왕 영웅호걸의 기색을 띠기도 / 新詩往往帶雄豪
대작하며 단란하게 얘기는 해 주면서도 / 也應對酒團圝語
눈 맞으며 중국 가는 건 우습게 본다나요 / 笑殺朝天雪滿袍
[주C-001]홍양파(洪陽坡) : 양파는 홍언박(洪彦博 : 1309~1363)의 호이다.
김 좨주(金祭酒)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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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그 누가 국생만큼 진실할까 / 世間誰似麴生眞
그를 보내 나의 가난함 위로해 주었는데 / 曾遣渠來慰我貧
취해서 정신 못 차린 채 감사드릴 틈도 없이 / 醉裏悤悤未暇謝
여창에서 술 단지 속의 봄을 또 몽상한다오 / 旅窓空夢甕頭春
[주D-001]국생(麴生) : 누룩으로 빚은 술을 의인화하여 말한 것으로, 국선생(麴先生) 혹은 국수재(麴秀才)라고도 한다.
이 총랑(李摠郞)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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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 년 전 대궐 안에서 이루어진 그 놀이 / 十五年前淸禁游
당대 문사의 모임으로는 가장 풍류스러웠지 / 一時文會最風流
취한 광기도 어쩔 수 없이 점점 감소되는데 / 醉狂漸減知無奈
더구나 흰머리 생기기 쉬운 타향에 있음에랴 / 況在他鄕易白頭
원지(員之)가 본국의 관직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시를 지어서 안 총랑(安摠郞)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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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 소식 어찌 모두 참말이기야 하겠소만 / 東來言語豈皆眞
오늘 아침엔 나도 모르게 쓴웃음 한번 지었소 / 不覺今朝一笑新
후진 중엔 중씨 같은 인물 결코 없을 텐데 / 後進決無如仲氏
어떤 이가 관직 뺏어 어떤 이에게 주었을꼬 / 何人奪職與何人
[주C-001]원지(員之) : 안보(安輔 : 1302~1357)의 자이다.
기국정(奇菊庭)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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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공 기용하면 많이 의지할 것이요 / 國若起公多所賴
공이 나라 맡으면은 또한 공로 세우리라 / 公如當國亦應勞
초정엔 꽃 만발하고 술은 바다와 같고 / 草庭花發樽如海
만좌한 벗과 손님들 웃음소리 높으리라 / 滿座賓朋笑語高
차운하여 남의춘(南宜春)에게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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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고 성대한 잔치 못 간 것이 한스러워 / 恨不相邀到錦筵
못 잊어 하는 이 심정을 하늘은 알아주리 / 此心耿耿有蒼天
성산의 풍속이 여러 해 이래 험악해졌는데 / 星山風俗年來惡
정사가 공황과 같으니 금세 불식하시리라 / 政似龔黃却拂然
내 생에 문연을 주관할 줄이야 생각이나 했으랴 / 吾生豈意辦文筵
암암리에 안배한 데에는 하늘의 뜻이 있을지도 / 暗裏安排有老天
이 세상일 그동안 더욱 혐오스럽게 변한지라 / 世事邇來尤可厭
그저 서로 마주하고 얼근히 취하고 싶을 뿐 / 只思相對醉陶然
[주D-001]공황(龔黃) : 한나라 때 지방 장관으로 선정을 베풀어 치민(治民)이 으뜸으로 꼽혔던 발해 태수(渤海太守) 공수(龔遂)와 영천 태수(潁川太守) 황패(黃覇)를 아울러 일컬은 말이다.
이 밀직(李密直)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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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감의 문물이 요순 때보다 성대하니 / 胄庠文物盛唐虞
자식 둔 부모가 본국서만 교육시키려 하리이까 / 有子爭敎守海隅
듣자 하니 선생께서 북궐 조회 가신다니 / 聞說先生朝北闕
제 자식이 말고삐 잡게 해 주실 순 없을지요 / 可令豚犬執鞭無
[주D-001]듣자니……없을지요 : 참 고로 《목은시고(牧隱詩藁)》 권2에 “지난 무자년에 이 정승(李政丞) 능간(凌幹)과 이 밀직(李密直) 공수(公秀)를 모시고 천수성절(天壽聖節)을 진하(進賀)하기 위해 갔었다.……”의 시 제목이 나온다. 무자년은 1348년(충목왕4)이다.
이초은(李樵隱)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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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에 거듭 와서 다시 보게 되는 봄 / 重到皇城又見春
홍진은 의구한데 귀밑머리 희끗희끗 / 紅塵依舊鬢絲新
번운 복우는 어느 때나 없어질지 / 翻雲覆雨何時歇
권세와 이익 지금 또 사람을 그르치누나 / 勢利如今更誤人
[주C-001]이초은(李樵隱) : 초은은 이인복(李仁復 : 1308~1374)의 호이다.
[주D-001]번운 복우(翻雲覆雨) : 인정세태가 반복무상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두보(杜甫)의 “손 젖히면 구름 일고 손 엎으면 비 오게 하는, 경박한 세상 인심 따질 것이 뭐 있으랴.〔翻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라는 시구에서 나왔다. 《杜少陵詩集 卷2 貧交行》
복건(福建)으로 부임하는 최 염사(崔廉使)를 전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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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엔 구십 모친 무양하시고 / 高堂九十親無恙
고국은 삼천 리 길 까마득하고 / 故國三千路已賖
고삐를 잡고서 다시 민월의 먼 오지까지 / 按轡又窮閩粤遠
역정에 꽃잎 날리지 않는 곳이 없으련만 / 驛程無處不飛花
안강(安康) 이 선생(李先生)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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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갚지 못했으니 혐의 없을 수 있으리까 / 有恩未報可無嫌
선생과 같은 도 지니고 아직 전첨이라니요 / 道似先生尙典籤
영웅이 처한 고금의 일 간취해 본다면야 / 看取英雄古今事
송국 사이 취한 도잠이 훨씬 낫겠지요마는 / 不如松菊醉陶潛
[주D-001]영웅이……일 : 걸 출한 인물도 정쟁(政爭)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뜻한다. 참고로 《가정집》 권18 〈인일(人日)에 두시(杜詩)를 읽으며 그 운을 그대로 써서 시를 짓다〉에 “사업도 알고 보면 남가의 한 꿈이요, 영웅도 결국에는 상채의 비극이라.〔事業南柯夢 英雄上蔡悲〕”라는 구절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가의 한 꿈’은 순우분(淳于棼)이란 사람이 괴목(槐木) 아래에서 술 취해 잠깐 누워 잠든 사이에 괴안국(槐安國)의 부마(駙馬)가 되어 남가(南柯)의 태수로 삼십 년 동안 있으면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꿈을 깨고 보니 괴안국은 바로 괴목의 남쪽 가지 밑에 있는 개미구멍이었다는 이야기가 당나라 이공좌(李公佐)의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에 나온다. 또 ‘상채의 비극’은 진(秦)나라 승상 이사(李斯)가 무함을 받고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 그의 아들을 돌아보며 “내가 너와 함께 다시 누렁이를 이끌고 상채의 동문으로 나가서 약빠른 토끼를 쫓으려고 한들 어떻게 될 수 있겠느냐.〔吾欲與若復牽黃犬俱出上蔡東門 逐狡兎 豈可得乎〕”라고 탄식했던 고사가 있다. 《史記卷87 李斯列傳》
[주D-002]송국(松菊)……도잠(陶潛) : 명 리를 떠나 자족하는 사람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도잠은 술과 송국을 좋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지은〈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오솔길이 거칠어졌으나, 솔과 국화는 아직 남아 있네.〔三逕就荒 松菊猶存〕”라는 표현이 있다.
강천모설도(江天暮雪圖)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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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자욱한 도성 거리 한낮의 뜨거운 태양 / 九陌紅塵午日烘
문 닫고 그림 보니 한없이 생각이 펼쳐지네 / 閉門看畫意無窮
어느 때나 외로운 배에 이 몸을 싣고 가서 / 何時着我孤舟去
강천의 저녁 눈발 속에 혼자 낚시해 볼거나 / 獨釣江天暮雪中
[주D-001]어느……볼거나 : 당 나라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이라는 오언절구가 회자되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일천 산에 새들의 날갯짓도 끊어지고, 일만 길에 인적도 보이지 않는데,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 외로운 배에 몸을 싣고,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홀로 낚시질하누나.〔千山鳥飛絶萬逕人蹤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감창(監倉) 유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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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치 저축하는 방도 있나니 / 十年儲有道
양계에서 관세를 바치게 해야 / 兩界會相關
내주고 받아들일 때도 인색이 필수 / 出納當須吝
거두고 보관하는 것부터 본래 어려워 / 收藏本自艱
지모는 장부 이외의 곳에서 생겨나고 / 智生朱墨外
계산은 금은 사이에서 맞추어 나가네 / 計在白黃間
이끗을 따지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니 / 言利非吾事
고향에 내려가서 직접 농사나 지었으면 / 躬耕憶故山
묵은 곡식 날마다 늘어만 가고 / 紅腐相因日
청렴한 관원이 일제히 나오는 때 / 淸廉竝進時
서모를 다투는 아전이 있으리오 / 吏無爭鼠耗
황제도 백성의 기아를 염려한다오 / 帝亦念民飢
황하가 넘쳐서 공전이 물에 잠기고 / 河溢公田沒
양기가 기승을 부려 농사는 지지부진 / 陽驕農事遲
홍양이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건만 / 弘羊死已久
하늘의 뜻은 아득해서 알 수 없어라 / 天意杳難知
[주D-001]서모(鼠耗) : 작서모(雀鼠耗)의 준말이다. 관가에서 곡식을 보관하던 중 참새와 쥐가 먹어서 손실이 발생한 곡식을 작서모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정식으로 거두는 세금 이외에 작서모라고 핑계 대고 백성에게 더 징수하는 양곡을 말한다.
[주D-002]홍양(弘羊)이……없어라 : 백 성을 못살게 괴롭히는 관원도 없건만, 하늘이 무엇을 징벌하려고 홍수와 가뭄의 재해를 이처럼 잇따라 일으키는지 모르겠다는 뜻의 풍자 섞인 말이다. 홍양은 한 무제(漢武帝) 때 국가의 재정을 풍부하게 확보하기 위해 염철(鹽鐵)과 술의 전매(專賣)를 처음으로 시행한 상홍양(桑弘羊)을 말하는데, 뒤에는 이익을 독점하고 백성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고위 재무 관료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당시에 날이 가물자 무제가 백관에게 비를 청하게 하였는데, 복식(卜式)이 상홍양을 미워하여 “홍양을 삶아 죽여야만 하늘이 비로소 비를 내릴 것이다.〔烹弘羊 天乃雨〕”라고 상주(上奏)하기도 하였다. 《漢書卷58 卜式傳》
자영(自詠). 백낙천(白樂天)의 시체(詩體)를 본떠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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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 지났으면 잘못된 걸 알 만한데 / 年過五十可知非
아직 허명 고집하니 얼마나 큰 바보인가 / 尙爾馳名何大癡
똑똑했던 총명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 了了聰明隨日減
꼬장꼬장한 행동거지는 시속과 어긋나기만 / 凉凉行止與時違
술 욕심낸 탓이라고 딸기코를 놀리는데 / 人譏鼻赤因耽酒
흰 수염은 어쩌면 시 때문이라 나도 인정하오 / 自識髥霜豈爲詩
집마저 가난하고 어버이 역시 늙으시니 / 更是家貧親亦老
그 어떤 계획도 고향에 돌아감만 못하리 / 百般心計不如歸
[주D-001]나이……만한데 : 《회남자(淮南子)》〈원도훈(原道訓)〉에 “거백옥이 나이 오십에 49년 동안의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蘧伯玉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라는 말이 나온다.
차운하여 죽헌(竹軒)을 애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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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한에 있는 교목의 세신들 / 喬木東韓有世臣
연래에 자주 발하는 불은의 탄식 / 年來不憖嘆何頻
죽헌에서 읊은 삼천 수의 풍월이요 / 竹軒風月三千首
철권에 기록된 오백 춘의 산하로다 / 鐵券山河五百春
분명한 언설로 상대를 제압하였나니 / 自是銛鋒能挫物
큰 도량으로 포용한 것도 무방했어라 / 不妨偉量解容人
연경에서 부음 듣고 이미 애도하였지만 / 燕臺聞訃已成哭
오늘 시를 지으려니 한이 더욱 북받치네 / 此日題詩恨轉新
예의를 지키면서 시주의 풍류를 즐기시고 / 禮義門中詩酒場
흑두의 공업 세우면서 풍당을 냉소하신 분 / 黑頭功業笑馮唐
조물의 뜻이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네 / 不知造物將何意
공보다 못한 사람들은 늙을수록 강해지니 / 人不如公老更强
[주D-001]교목(喬木) : 몇 대에 걸쳐서 크게 자란 나무라는 뜻으로, 누대에 걸쳐 경상(卿相)을 배출한 명가(名家)를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주D-002]불은(不憖)의 탄식 : 하 늘이 국가를 위해서 원로를 이 세상에 남겨 두려 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소아(小雅) 시월지교(十月之交)〉에 “원로 한 분을 아껴 남겨 두어서 우리 임금을 지키게 하지 않는구나.〔不憖遺一老 俾守我王〕”라는 말이 나온다. 또 공자(孔子)가 죽었을 때에 노나라 애공(哀公)이 내린 조사에도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구나. 나라의 원로를 조금 더 세상에 있게 하여 나 한 사람을 도와 임금 자리에 있게 하지 않는구나.〔旻天不弔 不憖遺一老俾屛余一人以在位〕”라고 탄식한 구절이 있다. 《春秋左氏傳哀公16年》
[주D-003]철권(鐵券)에……산하(山河)로다 : 철 권은 옛날에 임금이 공신에게 내려 주어 면죄(免罪) 등의 특권을 누리게 한 증명서를 말하는데, 철제(鐵製)의 계권(契券)에 단사(丹砂)로 썼으므로 보통 단사철권(丹砂鐵券)이라고 부른다. 한 고조 유방(劉邦)이 개국 공신들을 책봉하면서 “황하가 변하여 허리띠처럼 되고, 태산이 바뀌어 숫돌처럼 될 때까지, 그대들의 나라가 영원히 존속되어 후손들에게 전해지도록 할 것을 맹세한다.〔使河如帶 泰山若礪 國家永寧 爰及苗裔〕”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史記 卷18 高祖功臣侯者年表》 김륜(金倫)은 심왕(瀋王) 왕고(王暠)를 옹립하려는 조적(曺頔)의 난을 평정하고 처리할 때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고, 충혜왕이 원나라에 잡혀갔을 때에도 군신의 의리를 강조하며 구명 운동에 앞장섰는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일등공신에 추성찬리 공신(推誠贊理功臣)의 호를 하사받고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졌다.
[주D-004]분명한……제압하였나니 : 원 나라에 잡혀간 충혜왕을 구명하기 위해 청원 운동을 벌일 적에 김륜이 “신하는 임금에게, 아들은 아비에게, 처는 지아비에게 마땅히 그 은의(恩義)를 다할 뿐이다. 그 아비가 처벌을 받는데 아들 되는 자가 차마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황제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겠다는 말은 또 무슨 말이냐.”라고 하여, 반대 의견을 제압하고 여론을 주도했던 것을 말한다. 《高麗史 卷110 金倫列傳》
[주D-005]큰……무방했어라 : 조적의 당여(黨與)를 신문할 적에 혹형(酷刑)을 없애고 형신(刑訊)을 완화하며 부드럽게 대하자, 수인(囚人)들이 감복하여 죄상을 자수함으로써 옥사가 원만히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을 가리킨다.
[주D-006]흑두(黑頭)의……분 : 김 륜이 목숨이 위태로운 불리한 상황에서도 강인한 의지로 극복하여 난국을 잘 수습했다는 말이다. 송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선화(宣和) 4년(1122) 12월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사람들과 높은 누각에 둘러앉아 차를 달여 마시고 있었으며, 좌우에는 돈이 쌓여 있었다. 차를 다 마신 뒤에는 함께 시집을 읽었는데, 시는 선현이 지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맨 처음에 영숙(永叔)이 읽으라고 쓰여 있었으므로 읽기 시작하였는데, 3수를 읽고는 퍼뜩 꿈에서 깨었다. 그 시들 중에서 단지 한 구절만 기억났는데, 그것은 “동야(東野)가 늙고 병들어 초록색 옷을 입고 돌아가네.”라는 것이었다. 이 구절에 대해서 의논하는 자들이 길조가 아니라고 하였으므로, 구양수가 동야의 의사에 의거해서 불길한 그 뜻을 뒤집어서 절구 4수를 지었는데, 그중의 한 수가 “동야가 늙고 병들어 초록색 옷을 입고 돌아가니, 분주히 치달리는 일에 지쳐서 평릉으로 은퇴하려 함이라네. 머리가 검은 나는 공명을 세우려고 하니, 백발을 드리운 풍당은 냉소한다네.〔東野龍鍾衣綠歸 平陵投老倦奔馳 黑頭我欲功名立冷笑馮唐白髮垂〕”라는 것이었다. 《歐陽脩撰集 卷6 宣和四祀季冬夢與人環坐……》 영숙은 구양수의 자이다. 동야는 한유(韓愈)의 절친한 친구로 불우한 일생을 보낸 맹교(孟郊)의 자이다. 초록색 옷은 하급 관원의 복장이다. 풍당(馮唐)은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부터 이미 장년의 나이로 벼슬하여 계속해서 세 조정을 섬기다가 무제(武帝) 때에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었으나 이때는 그의 나이가 90여 세나 되었으므로 다시 임용될 수 없었던 불우한 사람이다.
동년(同年) 장 시승(張寺丞)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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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을 타고야 알았지 내리기 어렵다는 것을 / 騎虎方知却下難
나귀 등에서 시나 읊지 벼슬은 왜 구했는고 / 吟詩驢背苦求官
괴이해라 조물은 어째서 그렇게 장난이 심하신지 / 怪哉造物多機變
사람의 모자와 신발을 슬쩍 뒤바꾸어 놓으니 / 暗裏敎人倒屨冠
경제는 때에 따라 난이의 차이가 있는 반면 / 經濟隨時有易難
인심은 한결같이 고관이 되기를 원할 따름 / 人心只願作高官
지금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쓸모없는 몸 / 如今自揣眞無用
당시에 일찍 괘관을 못한 것이 후회스럽소 / 悔不當時早掛冠
[주D-001]범을……구했는고 : 관 직 생활에 환멸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당초에 벼슬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진서(晉書)》 권67〈온교열전(溫嶠列傳)〉에 “오늘날의 사세를 보건대 의리상 도저히 발을 뺄 수가 없다. 이는 마치 맹수의 등에 올라탄 것과 같으니, 어떻게 중도에서 내릴 수가 있겠는가.〔今之事勢 義無旋踵 騎猛獸 安可中下哉〕”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기호난하(騎虎難下)’라는 성어가 유래하였다. 또 당나라 정경(鄭綮)이 “나의 시상(詩想)은 눈보라 치는 파교 위에서 나귀 등에 올라타고 있을 때 가장 잘 우러난다.〔詩思在灞橋風雪中驢子上〕”라고 술회한 고사가 송나라 손광헌(孫光憲)이 지은 《북몽쇄언(北夢瑣言)》 권7에 나온다.
[주D-002]사람의……놓으니 : 위에 있어야 할 현인(賢人)이 비천한 아랫자리에 있고, 아래에 있어야 할 불초자(不肖者)가 고귀한 윗자리에 있는 불합리한 현실을 개탄한 것이다.
[주D-003]괘관(掛冠) : 관을 벗어서 걸어 놓는다는 말로, 벼슬을 그만두는 것을 뜻한다.
김맹견(金孟堅)의 시권(詩卷)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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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莊子)》라는 책의 의미에 대해서는 제공(諸公)의 서(序)에 빠짐없이 언급되어 있으니, 내가 감히 췌언(贅言)할 성격의 것이 못 된다. 그렇긴 하지만 우곡(愚谷)이 상령(湘靈)의 구절을 거론하였고, 초은(樵隱)이 의발(衣鉢)의 말을 하였고 보면, 나로서도 한마디 말이 없을 수 없기에 노력하라는 뜻으로 이렇게 쓰게 되었다.
말은 꽤나 황당하여 자못 불경스러우나 / 語涉荒唐頗不經
자세히 살피면 이 심령을 어둡게 할 리야 / 細觀寧昧此心靈
장주가 꼭 나비가 아니라곤 할 수 없으되 / 莊周未必非胡蝶
자거나 깨거나 잔등은 밤이 되면 푸르리라 / 夢覺殘燈入夜靑
경서에 능통하다고 소싯적부터 이름난 김군 / 金君自少號通經
연래에는 글 짓는 힘이 거령과 흡사하다고 / 筆力年來似巨靈
모쪼록 연산의 계수나무 가지를 꺾기만을 / 好折燕山一枝桂
모발이 완전히 검지 않다 혐의하지 말고 / 莫嫌鬢未十分靑
[주D-001]장주(莊周)가……없으되 : 《장 자》〈제물론(齊物論)〉 마지막에 “언젠가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나풀나풀 잘 날아다니는 나비의 입장에서 스스로 유쾌하고 만족스럽기만 하였을 뿐 자기가 장주인 것은 알지도 못하였는데, 조금 뒤에 잠을 깨고 보니 엄연히 장주라는 인간이었다. 모를 일이다. 장주의 꿈속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의 꿈속에 장주가 된 것인가. 하지만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분명히 구분이 있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물의 변화라고 한다.〔昔者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與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라는 유명한 ‘호접몽(胡蝶夢)’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D-002]연래에는……흡사하다고 : 하 늘에 우뚝 꽂혀 있는 화산(華山)을 거령(巨靈)이 한번 손을 들어서 쪼개는 것과 같은 막강한 필력을 느끼게 한다는 뜻의 찬사이다. 거령은 황하(黃河)의 신 이름이다. 황하의 물줄기가 화산에 가로막혀 휘돌아 갈 수밖에 없자, 거령이 손을 들어 산의 머리를 쳐서 둘로 쪼갠 다음에 그 사이로 직진해서 흘러가게 했다는 ‘거령비희(巨靈贔屭)’의 전설이 후한(後漢) 장형(張衡)이 지은 〈서경부(西京賦)〉의 주(註)에 나온다.
[주D-003]모쪼록……꺾기만을 :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우곡(愚谷)이 은배(銀杯)를 보시(布施)한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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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배를 보시하자 꽃비의 상서를 내리는 하늘 / 銀杯施與雨花天
용궁에 숨겨졌던 보배 이제는 영원히 여기에 / 藏在龍宮定不遷
나는 나무바가지가 오히려 진솔해서 좋으니 / 還我木瓢眞率好
황금 술잔은 부자들이나 실컷 가지라지 뭐 / 任他金椀富豪全
청빈할수록 느끼나니 물처럼 맑은 이 마음 / 淸貧更覺心如水
술 취한들 어떠리 샘물에 얼굴 씻으면 되는걸 / 爛醉何妨面洒泉
단지 시마 하나만은 쫓아도 물러나지 않고 / 唯有詩魔推不去
감회에 젖을 때마다 질기게 들러붙으니 원 / 感時懷古苦相緣
김 이문(金理問)의 부인(夫人) 대흥현군(大興縣君)의 죽음을 애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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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국의 이름 일찍부터 알려졌는데 / 相國知名早
이에 짝하여 부인의 덕도 빛났어라 / 夫人配德光
사생은 모두 명이 있는 것이지만 / 死生皆有命
부귀할수록 슬픔을 더 느끼는 법 / 富貴更堪傷
붉은 만장은 봄바람에 펄럭이고 / 丹旐春風拂
화장 경대는 새벽 달빛 잠겼으리 / 香奩曉月藏
은혜로운 봉작 천자로부터 받았나니 / 恩封自天子
적현에서 멀리 꽃다운 향기 전해지리 / 赤縣遠流芳
[주D-001]적현(赤縣) : 중국을 가리킨다. 전국 시대 제(齊)나라 추연(鄒衍)이 중원(中原) 지방을 ‘신주적현(神州赤縣)’이라고 일컬은 데에서 유래하였다.
김 동년(金同年)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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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서로 만나서 천진한 면모 보였나니 / 忽然相會見天眞
옛 놀이 한번 얘기할 때마다 술이 한 순배 / 一話前游酒一巡
강산을 주의 깊게 보면 어디를 가나 명승지요 / 着眼江山隨處好
세상일 관심거리 몇 번이나 새롭던고 / 關心世事幾番新
흰머리로 만리 길 고향에 돌아가는 이날 / 白頭萬里還鄕日
홍분이 석 줄이라 자리 가득 봄기운일세 / 紅粉三行滿座春
가정이 왜 그리 못났느냐고 비웃질랑 마소 / 莫笑稼亭偏老拙
예전부터 돈 귀신은 부릴 줄을 몰랐으니까 / 從來不解使錢神
[주D-001]홍분(紅粉)이……봄기운일세 : 홍 분은 곱게 치장한 기녀(妓女)를 가리킨다. 당나라 두목(杜牧)이 낙양(洛陽)의 분사(分司)에 어사(御史)로 근무할 적에 이원(李愿)의 연회에 초청을 받고 가서는, 자운(紫雲)이라는 기녀가 누구냐고 묻고서 그녀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이며 ‘명불허득(名不虛得)’이라고 극찬하자, 다른 기녀들이 머리를 돌리고 웃었는데, 이에 두목이 시를 짓기를 “화당에서 오늘 성대한 잔치 개최하면서, 누가 분사의 어사님을 오라고 불렀는가. 홀연히 광언을 발하여 만좌를 놀라게 하니, 두 줄로 앉은 홍분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누나.〔華堂今日綺筵開 誰喚分司御史來忽發狂言驚滿座 兩行紅粉一時廻〕”라고 했다는 일화가 송나라 계민부(計敏夫)가 지은 《당시기사(唐詩紀事)》 권56〈두목(杜牧)〉에 나온다.
연아(演雅) 한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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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잡을 욕심에 어찌 당랑이 뒤를 돌아볼까 / 螗欲捕蟬寧顧後
매가 참새 쫓을 때라면 과감히 밀고 나가야지 / 鷹如逐雀要當前
사자가 한번 포효하면 백수가 꼼짝 못하는데 / 一聲師子百獸廢
그중에서도 사서와 성호가 더욱 가련하여라 / 社鼠城狐尤可憐
[주C-001]연아(演雅) : 시체(詩體)의 하나로,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각 구절마다 동물을 한 가지 이상씩 넣어서 짓게 되어 있다.
[주D-001]매미……돌아볼까 : 후 환은 생각하지도 않고서 눈앞의 작은 이익만을 좇는 세상 사람들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산목(山木)〉에, ‘당랑은 매미를 잡으려 하고, 까치는 당랑을 잡으려 하고, 사람은 까치를 잡으려 하는데, 각자 자기를 노리는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D-002]매가……나가야지 : 《춘 추좌씨전》 문공(文公) 18년 기사에 “자기 임금에게 예를 지키는 자를 보거든, 효자가 부모를 봉양할 때처럼 그를 섬기고, 자기 임금에게 무례하게 구는 자를 보거든, 매가 참새를 모는 것처럼 사정없이 처벌해야 한다.〔見有禮於其君者事之如孝子之養父母也 見無禮於其君者 誅之如鷹鸇之逐鳥雀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사서(社鼠)와 성호(城狐) : 사람들이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하는 사직단과 성곽 밑에 굴을 파고 지내는 쥐와 여우라는 뜻으로, 국가 권력의 비호를 받으면서 온갖 장난을 치고 농간을 부리는 간사한 소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정 안렴(鄭按廉)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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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푸른 산 자그마한 초가집에서 / 海上靑山小草堂
국화 술잔 함께 들 줄 생각이나 했으랴 / 豈期同擧菊花觴
백발에도 귀향 계획 세우지 못한 채 / 白頭猶未成歸計
벼슬길에 지인 만나 장탄식하노매라 / 宦路逢人感嘆長
허 낭중(許郞中)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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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다한 황량한 숲에 꽃도 보이지 않건마는 / 秋盡荒林不見花
놀랍게도 거기가 홀연히 산촌의 집에 이르렀네 / 忽驚車騎到山家
갈도는 살풍경인 것을 아무렴 알아야 하고말고 / 須知喝道殺風景
대숲 너머 사립문 있는 조금 비탈진 길에서는 / 竹外柴門小逕斜
문생이 탐화에 뽑힌 것을 보는 것도 기쁜 일 / 喜見門生有探花
공이 오늘 왔으니 함께 집에 돌아온 것일세 / 公來此日共還家
막걸리에 누런 국화 숭문동의 오늘이여 / 白醪黃菊崇文洞
나도 모르게 소맷자락 휘저으며 덩실덩실 / 不覺僛僛舞袖斜
나 와 허공(許公)은 지난해 이날 숭문관(崇文館)에서 숙직을 하였다. 내가 근친(覲親)하러 한산(韓山)의 가정(稼亭)에 와 있는 때 허공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오다가 내 집에 들렀으니, 이 어찌 천행(天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가 있는 곳을 숭문동(崇文洞)이라고 불렀다.
[주D-001]갈도(喝道)는……하고말고 : 살 풍경(殺風景)은 풍경을 손상한다는 말로, 경물을 감상하는 격조가 낮아서 남의 흥치를 깨는 행위를 말한다. 참고로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이 달밤에 산보하고 있을 적에, 장지기(蔣之奇)가 발운사(發運使)가 되어 집에 들러 매우 호기를 부리며 전호(傳呼)하자 불쾌하게 여겼는데, 장지기가 선(禪)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왕안석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뜻밖에 보게 되었네 전호하는 살풍경을, 선객이 밤에 찾을 줄은 전혀 몰랐구려.〔怪見傳呼殺風景 不知禪客夜相投〕”라고 풍자했다는 일화가 송나라 소백온(邵伯溫)이 지은 《문견후록(聞見後錄)》 권17에 보인다. 전호는 소리를 전해 가며 고함을 친다는 뜻으로, 구종(驅從)이 소리를 질러서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하는 갈도와 같은 말이다.
[주D-002]탐화(探花) : 탐화랑(探花郞)의 준말로, 문과(文科)에서 제3위에 급제한 자를 일컫는 말이다. 수석 합격자는 장원(壯元), 차석 합격자는 방안랑(榜眼郞)이라고 하는데, 이들 3인을 갑과 급제자(甲科及第者)라고 한다.
두 분 곽씨(郭氏) 동년에게 부치다. 모두 나주(羅州)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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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이 중함은 놔두고라도 시록이 부끄러워 / 任隨責重慙尸祿
몸과 마음 한가하게 은거하는 분들 부러워라 / 身與心閑慕隱居
어떡하면 남쪽에서 몇 명의 객과 더불어 / 安得南游携數客
바닷가 경치 좋은 곳에 띳집을 엮어 볼꼬 / 海邊佳處結茅廬
[주D-001]시록(尸祿) : 자격도 없이 벼슬자리를 차지하고서 국록(國祿)만 축낸다는 뜻의 겸사로, 시위소찬(尸位素餐)과 같은 말이다.
주행(舟行)을 기록하여 송정 거사(松亭居士)에게 봉정(奉呈)하고 아울러 임주(林州)에게도 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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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사영이 사방에 널리 전해졌나니 / 扶餘四詠四方傳
그 고적 답사하려면 술 실은 배를 저어야지 / 訪古應須棹酒船
저버리지 않았나니 송정거사의 약속이요 / 不負松亭居士約
다시 마중 나왔나니 임주의 어진 사군이라 / 更邀林邑使君賢
강가의 대관은 도화를 펼쳐 놓은 듯하고 / 傍江臺館開圖畫
밤들어 어룡은 관현에 춤을 추는 듯하네 / 入夜魚龍舞管絃
농사철에 지금 설령 요홀령이 없다고 하더라도 / 農月縱無腰笏令
배를 돌려야지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지체하리오 / 廻橈豈敢小留連
[주D-001]부여(扶餘)의 사영(四詠) : 낙화암(落花岩)ㆍ조룡대(釣龍臺)ㆍ호암(虎岩)ㆍ천정대(天政臺)를 가리키는데, 《가정집》 권5〈주행기(舟行記)〉에 상세한 내용이 나온다.
[주D-002]요홀령(腰笏令) : 홀 을 허리에 찬 수령이라는 뜻으로, 당나라 하이우(何易于)를 가리킨다. 그가 익창(益昌)의 수령으로 있을 때 자사(刺史) 최박(崔朴)이 봄에 뱃놀이를 나와 백성들에게 배를 끌게 하자 그가 ‘홀을 허리에 꽂고〔腰笏〕’ 자신이 직접 배를 끌었는데, 자사가 놀라서 그 이유를 묻자, “백성들은 밭 갈고 누에 치느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고 오직 수령만 할 일이 없다.”라고 대답하니, 자사가 부끄러워하면서 얼른 물러갔다고 한다. 《新唐書 卷197 何易于列傳》
도원역(桃源驛)에서 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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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이라는 역 이름은 아무래도 맞지 않아 / 驛名不合作桃源
무너진 지붕 황량한 숲에 문패도 없다니 원 / 破屋荒林不記門
지나는 길손이 풍악에 영험을 빌러 가노니 / 過客乞靈楓岳去
백성들과 복을 함께 나눠 가질 수 있었으면 / 可能分福與黎元
중추(中秋)에 오계역(五溪驛)에서 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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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중추절은 한양부에서 지내면서 / 去歲中秋漢陽府
홀로 마시고 홀로 읊고 정말 무료했지 / 孤斟獨詠正無聊
매번 말 위에서 명절 맞는 것이 싫어 / 每嫌馬上逢佳節
누구나 이 밤만은 즐길 줄 알 터인데 / 共識人間有此宵
의건에 이슬 젖어 오슬오슬 추워지고 / 露濕衣巾寒縮縮
귀밑머리에 바람 불어 백발이 소소해라 / 風吹鬢髮白蕭蕭
내년엔 달을 보며 금년을 또 떠올리겠지 / 明年見月還相憶
저 멀리 관동의 산과 물로 향하던 이 길 / 路指關東山水遙
충 숙왕(忠肅王)이 철원(鐵原)에서 사냥할 적에 고석정(孤石亭)에 올라 절구 한 수를 남겼는데, 이때 안부(按部) 정공 자후(鄭公子厚)가 객관(客館)에 썼다. 그리고 뒤에 삼장법사(三藏法師) 조순암(趙順菴)도 그 운에 의거해서 응제(應製)하였다. 이에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기에 삼가 절구 두 수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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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어진 앞 수레를 누가 제대로 경계할까 / 覆轍誰能後戒前
여기는 바로 태봉의 유적 옛날의 그 산천 / 泰封遺跡舊山川
왕이시여 먼 사냥은 좋은 계책이 못 된다오 / 勸王遠狩非良策
이유는 하나 간신은 하늘을 겁내지 않으니까 / 只爲姦臣不畏天
산을 등진 관사 그 앞에 펼쳐진 그림 병풍 / 背山官舍畫屛前
반걸음 오르면 백리천이 또 내려다보인다오 / 跬步登臨百里川
술자리에서 다시 만난 우리 어진 태수님 / 置酒更逢賢太守
명절날의 멋진 유람 그야말로 가을 하늘 / 勝遊佳節正秋天
[주D-001]엎어진……산천 : 철 원(鐵原)에 도읍을 정한 궁예(弓裔)의 태봉국(泰封國)이 망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앞에 가는 수레가 엎어졌는데도 뒤에 가는 수레가 경계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뒤에 다시 엎어지는 것이다.〔前車覆而後車不誡 是以後覆也〕”라는 말이 한(漢)나라 때 한영(韓嬰)이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 권519장에 나온다.
김화역(金化驛)에서 묵는데 밤에 비가 내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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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에워싼 옛 고을 가을 기운 더욱 물씬 / 山圍古縣增秋氣
성긴 숲을 바람이 때려 빗소리를 북돋우네 / 風打疎林助雨聲
한밤중에 잠이 깨어 새벽까지 뜬눈으로 / 夜半夢驚仍不寐
여정 중에 이제 겨우 철원경을 지났구먼 / 計程纔過鐵原京
금성현(金城縣)에서 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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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금성에 드니 비단도 이보단 못해 / 秋入金城錦不如
일천 단애 일만 나무 처음 서리 맞는 때 / 千崖萬樹得霜初
주인은 떠나고 없는 숲 사이의 낡은 집이요 / 林間老屋流亡外
세금에 뺏기고 남은 산 위의 척박한 땅이로세 / 山上磽田賦稅餘
뻔질나게 다니는 사자들 굳이 짜증 낼 것 있소 / 莫厭使華紛傳遽
교묘하게 침탈하는 아전의 행패가 더욱 싫다오 / 惟嫌吏弊巧侵漁
한가히 노니는 나 같은 자도 폐 끼치긴 마찬가지 / 閑遊似我猶相擾
유독 오두막 사랑한 연명에게 부끄럽기 그지없네 / 深愧淵明獨愛廬
[주D-001]유독……연명(淵明) : 도 잠(陶潛)의 시에 “초여름에 풀과 나무 무성하게 자라나서, 집을 에워싸고 나뭇가지 우거졌네. 새들도 깃들 곳이 있어서 좋겠지만, 나도 내 오두막을 사랑한다오.〔孟夏草木長 繞屋樹扶疎 衆鳥欣有托 吾亦愛吾廬〕”라는 표현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4 讀山海經》
천마령(天磨嶺)에 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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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통구를 지나면서 경치가 점점 기이해져 / 路過通溝境漸奇
힘 빠진 말이 꾀를 내어 느릿느릿 가는 대로 / 任敎羸馬故遲遲
고개 위를 걷는 사람 허공을 밟는 신선인 듯 / 人行嶺上步虛處
구름도 산허리에 머물러 아래만 비를 내리네 / 雲在山腰行雨時
늘그막에 시도한 험한 산행 스스로도 부끄러워 / 自愧老來還試險
한가할 때 위태로움을 또 생각해야 할 터인데 / 却從閑裏更思危
왕존은 나라의 충신이요 왕양은 집안의 효자 / 王尊忠國王陽孝
나는 경치만 찾을 줄 아니 또한 큰 바보로세 / 只解尋幽也大癡
[주D-001]한가할……터인데 : 《춘 추좌씨전》 양공(襄公) 11년 기사에 “편안하게 거할 때에 위태로운 상황을 미리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미리 생각하면 대비를 하게 되고, 대비를 하면 환란을 당하지 않게 된다.〔書曰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왕존(王尊)은……바보로세 : 가 정 자신은 효자도 못 되고 충신도 못 되면서 오직 좋은 경치만을 찾기 위해서 험한 고개를 넘으려고 하니 바보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한나라 때 왕양(王陽)과 왕존이 앞뒤로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었는데, 왕양은 험준하기로 유명한 구절판(九折坂)을 넘을 때 “어버이가 주신 소중한 이 몸을 받들고서 어떻게 자주 이 고개를 넘어 다닐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서 돌아갔고, 왕존은 이와 반대로 “왕양은 효자이지만 나는 충신이다.〔王陽爲孝子 王尊爲忠臣〕”라고 하면서 마부를 재촉하여 급히 넘어갔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卷76 王尊傳》
천마령 위에서 금강산(金剛山)을 바라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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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르는 흰 눈빛이 신광을 발하나니 / 攙天雪色放神光
천자가 해마다 이 때문에 향을 내리시느니라 / 天子年年爲降香
한번 보고서 평생의 소원을 이미 다 풀었으니 / 一望平生心已了
깊이 파묻혀 승상에 앉아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 不須深處坐繩床
[주D-001]승상(繩床) : 호상(胡床) 또는 교상(交床)이라고도 하는 의자의 일종으로, 간편하게 접을 수 있도록 윗부분을 노끈으로 얽어 만들었는데, 보통 관원들이 하인에게 갖고 다니게 하거나 사찰에서 승려들이 사용하였다.
금강산 정양암(正陽菴)에 올라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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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은 볼수록 기괴하기 그지없어 / 玆山怪怪復奇奇
시인과 화가를 수심에 잠기게 하네 / 愁殺詩人與畫師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보고도 싶다마는 / 更欲登臨最高處
다리 힘 좋을 때를 놓쳤으니 어떡하누 / 噬臍脚力未衰時
장안사(長安寺)에서 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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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안개에 반걸음 앞도 분간하기 어렵다가 / 曉霧難分跬步前
해님이 둥실 떠 환해지니 용천이 얼마나 고마운지 / 日高淸朗謝龍天
구름으로 이어진 산맥은 멀리 서남북으로 치달리고 / 雲連山遠西南北
눈 속에 서 있는 봉우리는 일만 이천 봉이라 / 雪立峯攢萬二千
한번 보고서 곧바로 참다운 면목을 알았나니 / 一見便知眞面目
수많은 생애에 좋은 인연을 맺은 덕분이리라 / 多生應結好因緣
저물녘에 다시 승방 찾아 하룻밤 묵을 적에 / 晩來更向蓮房宿
냇물 소리 솔바람 소리가 모두 선을 설하더라 / 溪水松風摠說禪
[주D-001]용천(龍天) : 불 법(佛法)을 수호하는 신인 천룡팔부(天龍八部)를 가리키는데,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법기보살(法起菩薩)이 금강산을 주처(住處)로 삼는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천룡팔부는 천(天)ㆍ용(龍)과 야차(夜叉)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 등이다.
[주D-002]냇물……설하더라 : 참 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시냇물 소리는 바로 부처의 광장설이요, 산 빛 또한 청정한 법신이라고 하리.〔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라는 표현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23 贈東林摠長老》 광장설(廣長舌)은 부처의 이른바 32가지 대인상(大人相) 가운데 하나로, 얼굴을 다 덮고 머리까지 올라간다는 긴 혀를 말하는데, 설법을 뛰어나게 잘하는 것을 말한다. 장광설(長廣舌)이라고도 한다.
천마(天磨)의 서령(西嶺)에 오르다 세속에서는 발단령(髮斷嶺)이라고 하는데, 그 고개 위에 서면 풍악(楓岳)을 바라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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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재 허공 가로질러 새도 날기 어려운 곳 / 絶嶺橫空雁過難
고개 위에서 머리 돌려 한번 장탄식하노매라 / 嶺頭廻首一長歎
이제는 구름과 안개가 풍악을 파묻든 말든 / 從敎雲霧埋楓岳
나는 일단 올라와서 마음껏 굽어봤으니까 / 我已登臨恣意看
재차 통구현(通溝縣)에서 묵으며 느낀 점이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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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 가며 두 번째 묵는 통구 고을 / 往來二度宿通溝
주민 고생뿐 아니라 객도 부끄러워 / 不獨民勞客亦羞
다만 하나 기쁜 것은 주인의 말씀 / 唯有主人言可喜
근산의 수확이 작년보다 낫다네요 / 近山禾稼勝前秋
산은 풍악(楓岳)을 가리킨다. 고을 사람의 말에 의하면, 산이 가까운 척박한 땅이기 때문에 뺏기지 않아 수확이 가능했다고 한다.
회양부(淮陽府)에서 묵으며 벽 위에 있는 허 집의(許執義)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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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가 척박하니 권세가의 손에 들어가랴 / 田薄何曾入勢家
추수도 올해는 기후가 더욱 알맞군그래 / 西成今歲氣尤和
땅이 외지니 과객이 응당 적게 와야 할 터인데 / 地偏過客應來少
산이 좋아 많이들 오니 주민은 짜증이 날밖에 / 山好居人却厭多
철문으로 굳게 닫힌 북령의 중한 관문이요 / 北嶺重關牢鐵鎖
푸른 비단 하나의 띠로 굽이도는 남강이라 / 南江一帶漾靑羅
정녕 남은 민가라도 생업이 안정되기만을 / 丁寧遺戶且安業
성덕으로 지금 바다도 해일이 일지 않으니 / 聖德如今海不波
[주D-001]성덕(聖德)으로……않으니 : 성 군(聖君)인 중국의 황제가 지금 덕정(德政)을 펴고 있다는 말이다. 주(周)나라 성왕(成王) 때에 주공(周公)이 섭정하여 천하가 태평해지자, 월상씨(越裳氏)가 와서 주공에게 ‘흰 꿩〔白雉〕’을 바치며 “우리나라 노인들이 말하기를 ‘하늘에 풍우가 거세지 않고 바다에 해일이 일지 않은 지 지금 3년이 되었다. 아마도 중국에 성인이 계신 듯한데, 어찌하여 가서 조회하지 않는가.〔天之不迅風疾雨也海不波溢也 三年於玆矣 意者中國殆有聖人 盍往朝之〕’라고 하기에 조공을 바치러 왔다.”라고 하였다는 말이 《한시외전》 권5에 나온다. 월상씨는 교지(交趾)의 남쪽에 있던 고국(古國)의 이름이다.
3.
윤 학사(尹學士)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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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에서 으뜸가는 이 고을 풍물 / 此州風物冠東州
일도의 산천이 종언을 고하는 끝머리라 / 一道山川欲盡頭
자고로 민심은 낙토를 그리워하게 마련이니 / 自古民心思樂土
철령관이 막아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으리오 / 鐵關雖鎖豈能留
철령(鐵嶺)에 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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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이 궁지에 몰리면 더욱 날뛰며 덤비는 법 / 獸窮則搏更猖狂
그런 범과 늑대를 문 열고 맞다니 개탄스럽도다 / 可歎開門納虎狼
허리에 찬 황금 부절은 또 어디에 쓸 것인고 / 腰下金符亦安用
사나이 한 명이 지킬 수 있는 험한 관문인데 / 險關只合一夫當
나라에 본래 사람이 없어서 적이 마음을 먹었나니 / 國本無人賊有心
직선으로 몇천 길이나 높이 솟은 관문을 버렸다오 / 關門直下幾千尋
연기의 핏물에 절굿공이가 떠내려가게 했다 해도 / 縱然漂杵燕岐血
결국엔 양민이 지금까지 원한을 갖게끔 만들었네 / 竟使良民怨至今
[주D-001]짐승이……관문인데 : 1290 년(충렬왕16)에 반란을 일으킨 원나라 대왕(大王) 내안(乃顔)의 무리인 합단(哈丹) 등의 적도(賊徒)가 관군에게 패하여 동쪽으로 도망쳐서 고려의 관동(關東) 지방으로 난입하여 화주(和州)와 등주(登州) 이서(以西)의 여러 고을의 인민들을 살육하고 겁탈하고 노략질하였다. 이때 조정에서 만호(萬戶) 나유(羅裕) 등을 파견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철령관(鐵嶺關)을 방호(防護)하게 하였는데, 적이 가까이 왔다는 말을 듣고는 철령관을 포기하고 도주함으로써 적도가 마치 무인지경을 달리듯 국토를 유린하게 하였다. 《高麗史 卷30 世家》 화주는 영흥(永興)이고, 등주는 안변(安邊)이다.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에 “검각이 험난하게 우뚝 솟아 버티고 있으니, 한 사나이가 관문을 지키면 일만 명이 공격해도 열지 못할 것이다.〔劍閣崢嶸崔嵬 一夫當關 萬夫莫開〕”라는 표현이 나온다. 《李太白集 卷2》
[주D-002]연기(燕岐)의……해도 : 1291 년 5월에 고려의 군대가 원나라 군대와 연합하여 연기의 원수산(元帥山) 아래에서 적도를 대파한 결과 쓰러진 적의 시체가 무려 30여 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때 적의 정예 1천여 기병(騎兵)이 도하(渡河)하여 도망쳤으나 다시 추격하여 6월에 또 대파하였다. 《朝鮮史略 卷9 高麗紀 忠烈王17年》 주 무왕(周武王)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여 목야(牧野)에서 싸울 적에 “적의 피가 흘러서 절굿공이가 떠내려가게 했다.〔血流漂杵〕”는 표현이 《서경》〈무성(武成)〉에 나온다.
화주(和州) 벽 위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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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뜻밖에 변란이 일어나게 하였는가 / 誰令變起不虞中
다리 앞에서 허망한 과거사 탄식하노라 / 拊髀橋前往事空
천하가 새로운 교화 바라보게 된 오늘날 / 宇內已瞻新化日
동방에는 아직도 순박한 옛 풍속 있다오 / 海隅猶有古淳風
사선(四仙)이 노닌 곳은 모두 현포와 같고 / 仙遊處處同玄圃
민속은 어느 집이나 부처님을 섬긴다네 / 俗尙家家事梵雄
백성이 인수의 영역에 오를 줄 믿고말고요 / 須信民躋仁壽域
태평천자는 군대 일으키는 일을 싫어하시니까 / 太平天子厭興戎
[주D-001]현포(玄圃) : 위 로 천계(天界)와 통한다고 일컬어지는 곤륜산(崑崙山)의 정상에 있다는 신선의 거처를 말한다. 그 위에는 금대(金臺), 옥루(玉樓)와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만발해 있다고 하는데, 보통 선경(仙境)의 뜻으로 쓰인다. 현포(懸圃) 혹은 현포(縣圃)라고도 한다.
[주D-002]인수(仁壽)의 영역 : 인 수는 《논어》 〈옹야(雍也)〉의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장수를 한다.〔仁者壽〕”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누구나 천수(天壽)를 다하며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태평성대를 뜻한다. 또, 참고로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한 세상의 백성들을 몰아서 인수의 영역으로 인도한다면, 풍속이 어찌 성강 때처럼 되지 않을 것이며, 수명이 어찌 고종 때처럼 되지 않겠는가.〔驅一世之民 濟之仁壽之域 則俗何以不若成康 壽何以不若高宗〕”라는 말이 나온다.
국도(國島) 관광 소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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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창파 위에 한 조각 배 띄웠더니 / 萬頃蒼波一葉舟
순풍이 불어 나를 영주에 이르게 했네 / 好風吹我到瀛洲
총총히 지나간다 괴이하게 생각 마오 / 傍人莫怪悤悤過
아직 선골도 아닌데 감히 머물겠소이까 / 骨未仙時不敢留
[주D-001]영주(瀛洲) : 동해에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이다.
학포(鶴浦)의 원수대(元帥臺)에 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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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의 호수 한복판에 외로워라 푸른 섬 / 百頃湖心孤嶼靑
시인들이 증손하여 새 정자를 만든다오 / 詩人增損作新亭
다음에는 천섬 술을 싣고 와야 하겠네 / 重來載酒須千斛
바람도 불기 전에 정신이 벌써 멀쩡하니 / 不待風吹骨已醒
[주D-001]시인들이……만든다오 : 정 자의 현판에 실려 있는 시들보다 더 좋은 시를 지어 보려는 시인들의 노력 덕분에 정자의 남다른 면모가 날로 새롭게 밝혀진다는 말이다. 증손(增損)은 문자를 고치는 것을 말한다. 여불위(呂不韋)가 이른바 《여씨춘추(呂氏春秋)》를 만들어 놓고는, “한 글자라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자에게는 천금을 주겠다.〔有能增損一字者 予千金〕”라고 현상금을 걸었던 고사가 있다. 《史記 卷85 呂不韋列傳》
학포현(鶴浦縣)의 정자에 안근재(安謹齋)의 시가 있는데, 그 말구(末句)에 “어떡하면 동해의 물이 불어나게 해서, 좋은 경치 모두 잠겨 이 고통 면하게 할꼬.〔若爲添得東溟水 沒盡奇觀免此勞〕”라고 하였다. 이는 대개 구경하려고 놀러 온 자들이 백성을 괴롭히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그 뜻을 반대로 해서 절구(絶句) 한 수를 지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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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윈 말 지친 동복 갈 길은 또 머나먼데 / 瘦馬羸童路更長
외로운 마을 무너진 역 정말 황량하기만 / 孤村破驛正荒凉
어떡하면 관동 지방 부유하게 만들어서 / 若爲富庶關東路
좋은 경치 볼 때마다 한바탕 취해 볼꼬 / 每遇奇觀醉一場
[주C-001]안근재(安謹齋) : 근재는 안축(安軸 : 1287~1348)의 호이다.
고성(高城)의 벽 위에 있는 삼일포(三日浦)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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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은 가는 곳마다 방장(方丈) 아니면 영주(瀛洲) / 關東到處是方瀛
바닷가 가을 산은 비단 병풍을 펴 놓은 듯 / 海上秋山列錦屛
여기는 옛날에 사선(四仙)이 노닐던 곳 / 此是神仙舊遊地
긴 물가 옆으로 조각배 타고서 살금살금 / 扁舟緩緩傍長汀
귀한 신분 당상은 이미 영주에 올랐나니 / 貴人堂上已登瀛
그곳에는 기라 향훈에 공작의 병풍까지 / 羅綺香熏孔雀屛
야윈 말 탄 서생은 좋아할 일이 많아서 / 瘦馬書生多好事
산에 오르기도 하고 물가를 돌기도 하고 / 攀緣疊嶂與廻汀
삼일포(三日浦) 사선정(四仙亭)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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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승경이라도 집대성할 수가 있으리오 / 勝景安能集大成
이 호수는 응당 백이의 맑음과 같다 하리 / 此湖應似伯夷淸
하늘 풍경 담은 물은 마음을 푸르게 맑혀 주고 / 水涵天宇澄心碧
가을 하늘 의지한 산은 눈을 환하게 씻어 주네 / 山倚秋空刮眼明
구름 사이로 강절의 그림자 어른거리는 듯 / 如見雲間絳節影
달빛 아래 옥퉁소 소리 그 당시에 들렸으리 / 時聞月下玉簫聲
단서를 깎아 냈어도 그 글씨 예전 그대로 / 丹書斲了還依舊
선인의 자취 마주하고 세상 얘길 하다니 원 / 羞對仙蹤說世情
[주D-001]어떤……하리 : 《맹 자》〈만장 하(萬章下)〉에 백이(伯夷)를 청성(淸聖)이라 하고 이윤(伊尹)을 임성(任聖)이라 하고 유하혜(柳下惠)를 화성(和聖)이라고 한 뒤에, 공자를 시성(時聖)이라고 하면서 “공자야말로 여러 성인의 특성을 한 몸에 모두 갖추어 크게 이룬 분이라고 할 것이다.〔孔子之謂集大成〕”라고 한 맹자의 평이 나온다.
[주D-002]강절(絳節) : 상제(上帝)나 신선이 사용하는 의장용 붉은 깃발을 말한다.
[주D-003]단서(丹書)를……그대로 : 단 서는 신라 시대의 이른바 사선(四仙)이 사흘 동안 머물며 노닐었다는 곳의 석벽(石壁)에 새겨진 ‘술랑도남석행(述郞徒南石行)’이라는 붉은색의 여섯 글자를 말하는데, 옛날에 그 고을 사람이 유람 온 자들을 접대하기가 괴로워서 이 글씨를 깎아 내려고 하였지만, 5촌(寸)가량이나 깊이 새겨져 있던 까닭에 자획(字畫)을 없애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가정집》 권5〈동유기(東遊記)〉에 나온다.
흡곡(歙谷) 객사(客舍)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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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의 직함은 으레 권농을 겸하게 마련인데 / 縣官銜必勸農兼
전야는 많이 황량하고 인구는 늘어나지 않네 / 田野多荒口不添
성곽 밖의 청산이 뭔가 호소하려는 듯 / 郭外靑山如欲訴
객이 오자 기웃기웃 앞 처마에 들어오네 / 客來故故入前簷
열산현(列山縣) 객사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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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로 국가에 보답할 날 그래도 남았을 터 / 白頭報國日猶長
한가한 기회에 중향을 찾게 된 이 기쁨이여 / 喜及身閑訪衆香
관동의 승경 탐방하러 이곳을 지나가는 길에 / 因過關東探勝景
중양이 가까워 덤으로 길가의 국화 감상까지 / 道邊黃菊近重陽
[주C-001]열산현(列山縣) : 간성(杆城)에 속한 고을 이름이다. 열산(烈山)이라고도 한다.
[주D-001]중향(衆香) : 불교의 향적여래(香積如來)가 다스린다는 중향국(衆香國)의 준말로, 금강산을 가리킨다. 《화엄경(華嚴經)》의 법기보살(法起菩薩)이 금강산을 거처로 삼기 때문에, 금강산을 흔히 불국토에 비유한다.
간성(杆城)의 판상(板上)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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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산촌과 이어진 곳 일마다 그윽한데 / 城接山村事事幽
산 능선은 물결치고 숲은 길게 벋었어라 / 峯巒邐迤樹林脩
길이 막힌 데다가 천길 바다가 옆에 있고 / 路窮更傍千尋海
동헌은 높아서 백 척 누대를 오르는 듯 / 軒逈如登百尺樓
묘부의 관리는 느슨해서 항상 일찍 흩어지고 / 卯簿吏閑常早散
사신의 수레는 다급해서 멈춘 적이 없다네요 / 星軺驛急未曾休
고과가 비록 하하라도 무슨 상관 있으리오 / 考雖下下庸何害
도주를 돌보며 마음고생 했으면 그만이지 / 撫字心勞一道州
[주D-001]묘부(卯簿)의……흩어지고 : 출퇴근 등의 근무 자세를 점검하는 것이 각박하지 않고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묘부는 묘시(卯時)의 출근 장부라는 뜻으로, 관원의 연령ㆍ관적(貫籍)ㆍ주소ㆍ경력 등을 자세히 기재한 일종의 인사 기록 카드를 말한다.
[주D-002]고과(考課)가……그만이지 : 하 하(下下)는 관원의 성적을 상상(上上)ㆍ상중(上中)ㆍ상하(上下)ㆍ중상(中上)ㆍ중중(中中)ㆍ중하(中下)ㆍ하상(下上)ㆍ하중(下中)ㆍ하하의 아홉 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는 이른바 구품전최(九品殿最) 중에서 가장 아래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당나라 양성(陽城)이 도주 자사(道州刺史)로 나가서 선정(善政)을 베풀며 부세(賦稅)를 거두는 데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으므로 관찰사로부터 여러 차례나 질책을 당했는데, 고과를 행해서 위에 올려야 할 때가 되자 스스로 평가하기를 “백성을 돌보느라 마음고생 하였을 뿐 부세를 징수하는 정사는 졸렬하였으니, 성적을 매기면 하하에 해당한다.〔撫字心勞 徵科政拙 考下下〕”라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舊唐書 卷192 陽城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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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永郞湖)에서 안근재(安謹齋)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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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의 정회가 달빛 아래 황학이라면 / 安相情懷黃鶴月
이생의 행지는 물결 위의 백구라 할까 / 李生行止白鷗波
다시 오리라 기필하기 정말 어려운데 / 重來此地誠難必
무심결에 들리는 관동별곡 노랫소리 / 空聽關東一曲歌
근 재(謹齋) 선생이 강릉도(江陵道)를 존무(存撫)하던 날에 이 영랑호에서 노닐며 절구 한 수를 짓기를 “저녁 구름 반쯤 걷히고 산은 그림 같은데, 가을비 막 갠 속에 물은 혼자서 출렁이네. 여기서 다시 노니는 일 기필하기 어려운데, 다시 귀에 들리는 배 위의 노랫소리.〔暮雲半卷山如畫 秋雨初晴水自波 此地重遊難可必 更聞船上一聲歌〕”라고 하였고, 또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짓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 그 노래를 듣고 그 시를 읊게 되었으므로, 처연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이렇게 말하였다.
[주D-001]안상(安相)의……할까 : 재 상을 지낸 안축(安軸)은 당시에 한 지방을 다스리는 방백(方伯)의 신분으로 성대하게 베푼 연회를 즐겼던 데 반해서, 가정은 갈매기처럼 물결 따라 부침하는 일개 야인의 신분으로 관광차 들르게 되었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유량(庾亮)이 자사(刺史)로 나가 무창(武昌)을 다스릴 적에, 달 밝은 밤에 부하들이 풍월을 즐기고 있는 누대에 올라가서 자리를 함께하며 마음껏 회포를 풀었던 고사가 있는데, 송나라 고저(高翥)의 시에 “유량이 황학루 달빛 아래 피리를 불었다.〔庾亮笛吹黃鶴月〕”라는 구절이 나온다. 황학루(黃鶴樓)는 무창 부성(府城)의 서남쪽 모퉁이에 있다.
만경대(萬景臺)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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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옆에 절승이 있나니 바위가 바로 누대 / 道傍奇絶石爲臺
과객이 언제 특별히 찾아온 적 있으리오 / 過客何嘗特地來
기뻐라 나는 한유하며 오래 올라 구경하니 / 喜我閑遊登覽久
게다가 주인이 술잔을 또 나에게 권함에랴 / 主人況復勸深杯
이때 동년(同年)인 육군(陸君)이 간성(杆城)의 수재(守宰)로 있었다.
양주(襄州) 누대 위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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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이 중건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리니 / 李君起廢事超前
깨어진 기왓장에 천경의 연호가 있었다네 / 敗瓦書存天慶年
동우가 전성기와 같게 됨은 물론이요 / 棟宇已同全盛日
여염도 다시 태평연월을 누리게 됐네 / 閭閻還有太平煙
산이 집을 에워싸 주렴에 가득한 가을 기운 / 滿簾秋氣山圍屋
물결이 하늘에 잇닿아 언덕 너머 파도 소리 / 隔岸濤聲浪接天
새로 임명된 어진 태수님에게 한 말씀 부치노니 / 寄語新除賢太守
은지야 탐천의 물을 마신들 무슨 해가 있으리오 / 隱之何害酌貪泉
이 객사(客舍)는 고(故) 주수(州守) 이군 임종(李君林宗)이 중건한 것이다. 천경(天慶)의 연호에 관한 일은 이군의 기문(記文)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지금 듣건대 부령(副令) 최재(崔宰)가 이 고을의 수령으로 나간다고 하기에, 아울러 시에 드러냈다.
[주D-001]은지(隱之)야……있으리오 : 중 국 광주(廣州) 땅에 한번 마시면 돈만을 알게 된다는 탐천(貪泉)이란 샘이 있었는데, 이곳의 자사(刺史)로 부임한 진(晉)나라의 청백리 오은지(吳隱之)가 자신의 마음을 재삼 굳게 다지면서, 아무리 탐천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곧은 마음이야 어떻게 변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뜻으로 〈탐천(貪泉)〉 시를 지은 고사가 있다. 참고로 그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이곳의 이 샘물은, 한번 떠 마시면 천금만을 생각한다나. 하지만 백이(伯夷) 숙제(叔齊)에게 마시게 해 본다면, 끝내 그 마음 바꾸지 않으리라.〔古人云此水 一歃懷千金 試使夷齊飮 終當不易心〕” 《晉書 卷90 良吏列傳 吳隱之》
동행했던 유 소경(柳少卿)이 마병(馬病)으로 뒤에 처졌는데, 양양(襄陽)에 도착해서 머무르며 기다려도 오지 않기에 누대 위의 시를 차운해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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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나는 재주는 없어도 뜻밖에 앞에 있고 / 老我才疎偶在前
날랜 기백 꽃다운 나이인 선생은 뒤에 있네 / 先生氣銳更芳年
바다처럼 깊은 국은은 아직 못 갚았어도 / 國恩未報深如海
연무처럼 묽은 세상맛은 진작에 알았다오 / 世味先知淡似煙
꿈속에 보던 한송정과 총석정의 길이요 / 夢裏寒松叢石路
시 속에 나오는 가랑비와 국화의 경치였네 / 詩中細雨菊花天
몇 번이나 승경 만나 애타게 기다렸던가 / 幾廻遇勝苦相待
내일은 서로 헤어져서 주천으로 가야겠네 / 明日分程向酒泉
상운역(祥雲驛)의 정자에 올라 보니 정자의 경치가 좋은데도 시가 없기에 절구 한 수를 남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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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경에 붓을 대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 絶景由來下筆難
말안장 내려놓을 틈이 없어서 그럴 수도 / 或因未暇卸征鞍
이 정자는 한송정보다 결코 못하지 않은데도 / 此亭不在寒松下
단지 사람이 주의해서 살펴볼 틈이 없었을 뿐 / 自是無人着眼看
동선역(洞仙驛) 관란정(觀瀾亭)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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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밖 산봉우리는 현문을 에워싸고 / 亭外峯巒擁縣門
난간 앞 모래펄은 어촌을 품에 안고 / 檻前洲渚抱漁村
푸른 물결은 쇠해서 흰 수염을 물들일 듯 / 碧波可染衰髥白
맑은 풍경은 병들어 흐린 눈을 낫게 할 듯 / 淸景能醫病眼昏
망망해라 삼신산은 하늘과 함께 아득하고 / 三島茫茫天共遠
호호해라 백천은 바다가 모조리 삼키누나 / 百川浩浩海幷呑
어떡하면 이를 마주해 기심(機心) 잊고 앉아서 / 若爲對此忘機坐
인간 세상의 달존 따위 따지지 않고 살아 볼꼬 / 不校人間有達尊
금포 화극의 문 찾는 일은 게으름을 피우더니 / 懶踵金鋪畫戟門
푸른 대 흰 모래 있는 마을 한가로이 찾아왔소 / 閑尋翠竹白沙村
동쪽 바다 물결이 자니 하늘이 더욱 푸르르고 / 東溟浪靜天逾碧
서쪽 요새 산이 높으니 날이 쉽게 어두워지네 / 西塞山高日易昏
우연히 가진 멋진 유람 참으로 기쁘다마다 / 偶作勝遊殊可喜
세상일 말하려다가도 번번이 삼켜 버린다오 / 欲談時事却成呑
고래로 바다를 본 이에겐 물 되기 어려운데 / 古來觀海難爲水
우물 밑에서 그 누가 함부로 잘난 체하는고 / 井底何人妄自尊
[주D-001]금포(金鋪) 화극(畫戟)의 문 : 귀족과 고관의 저택을 가리킨다. 금포는 황금 문고리이고, 화극은 당나라 때 3품 이상 고위 관원의 저택 문 앞에 세워 두었던 채색(彩色)한 목창(木槍)이다.
[주D-002]고래로……어려운데 : 《맹자》〈진심 상(盡心上)〉에 “바다를 본 이에게는 웬만한 물은 물 되기가 어렵다.〔觀於海者難爲水〕”라는 말이 나온다.
강릉(江陵) 객사(客舍)의 동헌(東軒)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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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차 때마침 가절인 데다 또 풍년 / 我行佳節更豐年
임영에 취해 쓰러지니 세상 밖 선경일세 / 醉倒臨瀛別洞天
산은 북에서 내려와 푸른빛 끝이 없고 / 山自北來靑未了
바다는 동쪽 끝에서 가없이 넓고 넓네 / 海爲東極浩無邊
경호에 술 싣고 가니 밝은 달빛 출렁출렁 / 鏡湖載酒搖明月
돌 아궁이 차 달이니 자색 연기 모락모락 / 石竈煎茶颺紫煙
맹호보다 사나운 정사 만나지만 않는다면 / 但自不逢苛政虎
고을 백성은 원래의 신선으로 되돌아가리라 / 州民元是一群仙
임영(臨瀛)은 강릉의 별호(別號)이다. 경포(鏡浦)와 한송정(寒松亭)에는 모두 옛날 선인들이 차를 달였던 돌 아궁이가 있다.
[주D-001]맹호보다 사나운 정사 : 공 자가 제자들과 태산(泰山)을 지나가다가 어떤 아낙네가 묘(墓) 옆에서 통곡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더니, 예전에 시아버지와 남편을 호랑이가 잡아먹었는데 이제는 아들까지 잡아먹었다고 하였으므로, 공자가 그렇다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느냐고 묻자, 여기는 가혹한 정사가 없어서 그렇다고 대답하니, 공자가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사는 맹호보다도 사나운 것이니라.〔小子聽之 苛政猛於虎〕”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예기》〈단궁 하(檀弓下)〉에 보인다.
한송정(寒松亭)에서 예천군(醴泉君)이 제한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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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경을 찾을 단 하나의 목적으로 / 意專尋勝景
아침 일찍 고성의 문을 나섰다네 / 早出故城門
선인이 떠난 뒤 철거된 한송정이요 / 仙去松亭廢
산이 숨겨 놓아 보존된 돌 아궁이라 / 山藏石竈存
인정에 오늘과 옛날의 차이가 있듯이 / 人情有今古
물상도 아침 다르고 저녁이 다르다오 / 物像自朝昏
여기에 일찍이 와 보지 않은 사람은 / 不是曾來此
말만 듣고서 황당하다고 말할는지도 / 聞言謂不根
[주C-001]예천군(醴泉君) : 권한공(權漢功 : ?~1349)의 봉호(封號)이다.
[주D-001]선인(仙人)이……돌 아궁이라 : 한 송정(寒松亭)은 신라 때 술랑(述郞) 등 네 명의 선인이 노닐었다고 하는 곳인데, 유람객이 많이 찾아오는 것을 고을 사람들이 싫어해서 그 건물을 철거하였으며, 오직 ‘돌 아궁이〔石竈〕’와 ‘돌 못〔石池〕’과 두 개의 ‘돌 우물〔石井〕’ 등 사선(四仙)이 차를 달일 때 썼던 유적만 그 옆에 남아 있더라는 기록이 《가정집》 권5〈동유기(東遊記)〉에 나온다.
경포대(鏡浦臺)에서 안근재(安謹齋)의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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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로 좌우 에워싸고 돌아오는 화성 / 夾擁紅旗返火城
사화는 유람도 인정에 걸맞았다오 / 使華遊賞稱人情
야복이 유독 처량한 것이야 감수해야지 / 自甘野服偏蕭散
노성한 분의 시를 접해 그래도 기쁘다네 / 猶喜詩編及老成
긴 여름날 바람 맞으며 난간에 기대서고 / 夏永倚風攀檻立
깊은 밤 달빛 타고 배 가는 대로 맡긴다오 / 夜深乘月信舟行
어떡하면 이 호수의 경치를 독점하며 / 安能擅此湖中景
사명광객의 미친 이름 이을 수 있을꼬 / 狂客狂名繼四明
[주D-001]화성(火城) : 밤 에 불을 밝힌 고관의 의장(儀仗) 행렬을 말한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사군이 풍악을 즐길 수 있음을 다 함께 기뻐하고, 화성이 돌아오는 것을 만인이 다투어 구경하네.〔共喜使君能鼓樂 萬人爭看火城還〕”라는 표현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0 與述古自有美堂乘月夜歸》
[주D-002]사화(使華) : 강릉도 존무사(江陵道存撫使)였던 안축(安軸)을 가리킨다.
[주D-003]어떡하면……있을꼬 : 사 명광객(四明狂客)은 당 현종(唐玄宗) 때에 시문과 글씨에 뛰어나고 술을 무척 좋아했던 하지장(賀知章)의 호이다. 장안(長安)에서 이백(李白)을 처음 만났을 때 이백을 적선인(謫仙人)이라고 부르면서 허리에 찬 금 거북을 풀어 둘이서 함께 실컷 술을 마셨던 고사가 유명한데, 그가 죽은 뒤에 이백이 술잔을 대하고 그를 추억하며 지은 〈대주억하감(對酒憶賀監)〉 시 2수가 전한다. 《李太白集卷22》 하지장이 생전에 도사(道士)가 되어 향리로 돌아가겠다고 청하자, 황제가 그에게 경호(鏡湖)를 하사하였으므로, 가정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강릉(江陵) 등명사(燈明寺) 시에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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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경치 찾으려고 험한 봉우리 넘어오니 / 爲尋佳景度危峯
넓은 바다 먼 하늘에 눈앞이 환히 트이누나 / 海闊天長眼界空
멋진 유람도 마음은 항상 부족감을 느끼는데 / 心與勝遊常不足
절경에 막상 당하면 시가 잘 지어지지 않네 / 詩當絶景却難工
해 뜨는 부상의 새벽 바다 굽어보는 누대라면 / 臺臨出日扶桑曉
바위를 휘도는 고목의 바람 스쳐 가는 절이랄까 / 寺在廻巖古木風
모르긴 해도 밤이 깊어 스님이 선정에 들고 나면 / 想見夜深僧入定
용왕이 다가와 붉은 불등 바라보지 않을는지 / 龍王來看佛燈紅
사찰 안에 관일대(觀日臺)가 있고, 관일대 위에 석탑(石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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