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집자료 ▒

가정집 제17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13. 01:55

 

가정집 제17

 

 

 율시(律詩)

 

 

 

7 17일에 법가(法駕)를 보고 남교(南郊)에서 돌아오다

 


아침 해 둥실 떠오르며 안개가 걷히자 / 初日曈曈瑞霧開
오늘 따라 더욱 서기(瑞氣)가 감도는 듯 / 今朝陡覺氣尤佳
구름은 어장에 따라 움직이며 쌍궐에 이어지고 / 雲移御仗連雙闕
바람은 천향을 불어 보내 구가에 가득하게 하네
/
風送天香滿九街
창생을 염려하는 마음이 간절하신지라 / 爲念蒼生心有切
옥색을 다투어 우러르며 기쁨이 한량없네 / 爭瞻玉色喜無涯
몸이 있었던 당요와 같은 성군 / 此身得見唐堯聖
어찌 띠풀 집에 흙섬돌이어야 하리
/
未必茅茨覆土階

 

[주D-001]구름은……하네 : 제 왕의 행차를 형용한 것이다. 임금이 나올 때는 두 개의 부채를 합쳐서 임금의 모습을 가렸다가 일단 좌정하면 부채를 떼어서 모습이 보이게 하는데, 본문의 구름은 그부채 그림자〔扇影〕를 형용한 것이다. 두보(杜甫)의 시에구름이 움직이며 꿩 꼬리로 만든 궁중의 부채가 양쪽으로 열린다.〔雲移雉尾開宮扇〕라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7 秋興八首》 쌍궐(雙闕)은 궁전 앞 양쪽에 높이 세운 누관(樓觀)으로, 중국 도성의 대궐을 뜻한다. 천향(天香)은 궁중에서 쓰는 향이라는 뜻으로, 어향(御香)과 같은 말이다. 구가(九街)는 도성의 넓은 거리를 가리킨다. 참고로 포조(鮑照)의 악부시(樂府詩)잔잔한 물처럼 잘 닦인 장안 거리, 높은 궁궐이 구름 속에 떠 있는 듯.〔九衢平若水雙闕似雲浮〕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文選 卷28 結客少年場行》
[주D-002] 몸이……하리 :
《사 기》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 임금과 순() 임금은흙으로 섬돌을 세 칸 올렸고, 띠풀로 지붕을 얹으면서 가지런하게 자르지도 않았다.〔土階三等茅茨不剪〕는 묵자(墨子)의 평가가 나온다. 당요(唐堯)는 당()에 봉해진 요 임금이라는 뜻이다.

 

 

 

 

교제(郊祭)를 지내고 대사면령(大赦免令)을 내린 일에 대해 조하(朝賀)했다는 말을 병중(病中)에 듣고

 


태평천자께서 겸허한 풍도를 지니시고 / 太平天子挹謙虛
다시 옛날과 같이 보본하고 추은하셨네
/
報本推恩復似初
새벽에 활짝 열린 단봉의 대궐 문이요 /
丹鳳曉開靑瑣闥
하늘에서 내려온 금계의 조서(詔書)로세 /
金鷄天降紫泥書
오운의 채색 의장 앞에 현면이 도열하고 /
五雲彩仗羅玄冕
만수무강의 옥배(玉杯)를 조정에서 바쳤다오 / 萬壽瑤觴進玉除
팔이 아파서 지팡이 짚고 듣지는 못했으나 / 臂病未能扶杖聽
임금님 힘을 모르는 것이야 어떻다 하리오 /
不知帝力又何如

 

[주D-001]태평천자(太平天子)께서……추은(推恩)하셨네 : 중 국 황제가 옛날에 처음 행했을 때의 순수한 자세를 지니고서 교제를 지내고 대사면을 행했다는 말이다. 보본(報本)은 교제(郊祭)를 가리키고, 추은은 널리 은혜를 베풀었다는 뜻으로 대사면령을 가리킨다. 《예기》 〈교특생(郊特牲)〉에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본원을 잊지 않고 보답하기 위해서 거행하는 큰일이다.〔郊之祭也 大報本反始也〕라는 말이 나온다. 태평천자는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잘하여 태평 시대를 이룬 제왕이라는 말이다.
[주D-002]새벽에……문이요 :
교 제를 지내기 위해 황제가 아침 일찍 출행(出行)했다는 말이다. 단봉(丹鳳)은 단봉성(丹鳳城)의 준말로, 황제의 궁성을 가리킨다. 진 목공(秦穆公)의 딸인 농옥(弄玉)이 피리를 불면 진나라 서울인 함양(咸陽)에 단봉이 내려왔다는 전설과, 한 무제(漢武帝)가 세운 봉궐(鳳闕) 위에 구리로 만든 봉황이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列仙傳 卷上 蕭史》 《史記 卷28 封禪書》 참고로 조선에도 창덕궁(昌德宮)의 돈화문(敦化門) 좌측에 단봉문(丹鳳門)이 있었다.
[주D-003]하늘에서……조서(詔書)로세 :
사 면령을 반포하는 조서를 내렸다는 말이다. 금계(金鷄)는 머리를 황금으로 장식한 닭을 가리킨다. 천계성(天鷄星)이 사면을 주관한다는 설에 의거해서, 사면하는 조서를 반포할 적에는 대나무에 금계를 매달아서 의장(儀仗) 남쪽에 세워 두었던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48 百官志3
[주D-004]오운(五雲)의……도열하고 :
공 경(公卿) 등 백관이 예복을 입고 황제의 의장 앞에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말한다. 오색 채운(彩雲)은 상서(祥瑞)를 뜻하는 말로, 보통 제왕의 거소를 나타낼 때 쓰는 표현이다. 현면(玄冕)은 임금 혹은 공경의 예관(禮冠)을 가리킨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장막을 친 행재소(行在所) 앞에 예복을 입은 공경들이 도열하고, 군영의 문에는 원군(援軍)인 회흘(回紇) 병사의 흰옷이 눈에 비친다.〔帳殿羅玄冕 轅門照白袍〕라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5 喜聞官軍已臨賊境》
[주D-005]임금님……하리오 :
태 평 시대를 이룬 황제의 성덕(聖德)에 대해서는 가정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 임금 때 어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에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면서, 내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내 밭을 갈아서 밥 먹나니,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는 말이 나온다.

 

 

 

 

병중에 회포를 읊다

 


삼 년 타향살이 중에 또 무엇을 하였는고 / 三年作客又何爲
반절은 공심이요 나머지 반절은 사심이라 / 半是公心半是私
바라건대 어머님이 무양하신 날에 미쳐 / 願及北堂無恙日
동방이 태평 시대를 다시 만나게 되기만을 / 更逢東國太平時
생계는 매우 졸렬해서 가난함이 병자와 같고 / 理生甚拙貧如病
도는 성취함이 없이 늙을수록 바보가 되네 / 學道無成老漸癡
애 타는 이 심정을 누구와 더불어 얘기할까 / 耿耿此懷誰與說
남창에 병을 무릅쓰고 억지로 시를 지을밖에 / 南窓力疾强題詩

타향살이 일 없는데 누구를 또 찾겠는가 / 客居無事孰相求
병 때문에 문을 닫자 방이 더욱 으슥하네 / 因病關門室轉幽
가난하니 알겠는가 돈으로 귀함 사는 / 貧訝黃金能買貴
늙어 가며 알겠도다 백발은 시름 아님을 /
老知白髮不緣愁
화표의 학은 만에야 돌아가고 / 歸來華表千年鶴
연파의 갈매기는 만리 멀리 호탕해라
/
浩蕩煙波萬里鷗
예나 이제나 유유함이 모두 이와 같거늘 / 今古悠悠盡如此
중선은 고달프게 등루부를 읊었는고 /
仲宣何苦賦登樓

땅이 없으면 어때서 무엇을 다시 구하는가 / 無田亦可有何求
집이 강촌에 있으면 일마다 유한(幽閒)하고말고
/
家在江村事事幽
관리야 원래 세금 독촉하니 짜증 낼 것 있나 / 吏自催錢休苦厭
아이가 농사지을 줄 아니 걱정할 것도 없지 / 兒能學稼不須愁
학을 태울 듯 불처럼 타오르는 동산의 꽃이요 / 園花似火疑燒鶴
갈매기도 물들일 듯 쪽빛 같은 시내의 물이라 / 溪水如藍欲染鷗
어부와 나무꾼 제외하면 다시 짝할 이 없겠지만 / 除却漁樵更無伴
그렇다고 오성의 누대에 머리 돌리고 싶겠는가 / 肯重廻首五城樓

구할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
所好從吾不可求
누가 나를 일으켜 산골에서 나오게 할까 보냐 / 何人起我出巖幽
어디에도 머물 곳 없이 날리는 쑥대 같은 신세 / 斷蓬到處無留迹
방초가 내년엔 수안(愁顔)을 바꾸게 해 줄지도 / 芳草明年又換愁
생각대로 되지 않아 범을 그린 것처럼 되었는데 /
謬算不成同畫虎
기심이 없어지지 않아 갈매기 놀랄까 두려워라 /
機心未盡怕驚鷗
지금 돌아간다 해도 아마 길 잃고 헤매겠지 / 縱然歸去應迷路
꽃나무 잔뜩 우거져 작은 누대 뒤덮고 있을 테니 / 花木如今礙小樓

그림자 짝하며 떠돈 것은 단지 이 몸 하나 / 伴影羈遊只此身
지금 서울 먼지로 새까맣게 변한 흰옷 /
素衣今復化京塵
구름을 쳐다보며 날마다 고조에 부끄럽고 /
望雲日日慙高鳥
달을 대하며 때때로 옛 친구를 떠올리네 / 對月時時憶故人
까치 소리 늘 들어도 기쁜 소식은 없다마는 / 慣聽鵲鳴虛報喜
자벌레 굽힘이 펴려고 함인 누가 알랴 /
誰知
屈是求伸
동쪽 하늘 삼천 리 그 너머 고향 산천 / 故山東望三千里
내일쯤엔 매화 피어 봄소식 또 전하련만 / 明日梅花又一春

마음 편하게 함이 약이라는
거짓이 아냐 / 安心是藥語非虛
병을 더 치료하지 않아도 점점 예전의 상태로 / 病不加醫漸復初
술을 마시게 될지 내일의 일을 알 수는 없어도 / 把酒未知明日事
우선은 심지 돋우고서 고인의 글이나 읽어야지 / 挑燈且讀古人書
청산은 미리 약속한 항상 줄지어 있는데 /
靑山有約常排比
백발은 쓸고 닦으며 청소할 방도가 전혀 없네 / 白髮無方可掃除
옛 친구들 몇 년 사이에 반절은 세상을 버렸나니 / 故舊年來半凋喪
뜬구름 같은 부귀야 정녕 어떻다고 해야 하리 / 浮雲富貴定何如

 

[주D-001]돈으로…… : 당 나라 이하(李賀)가 부귀한 집안의 호기 부리는 자제들을 풍자하면서이자들은 태어나서 반 줄의 글도 읽지 않은 채, 오직 황금을 가지고서 귀한 신분을 사들인다네.〔生來不讀半行書 只把黃金買身貴〕라고 비꼰 구절이 나온다. 《昌谷集4 嘲少年》
[주D-002]늙어……아님을 :
흰 머리는 근심과 걱정 때문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 속에서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공평하게 생기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이백(李白)의 시에나의 백발 보소 무려 삼천 장, 시름 속에 이처럼 자라났다오.〔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李太白集 卷7 秋浦吟》 그리고 위에 인용한 이하의 시 바로 뒤에소년이 어떻게 언제나 소년일 수 있으랴, 바다 물결도 뽕나무 밭으로 변하는 것을. 영고성쇠가 화살처럼 급히 뒤바뀌나니, 하늘이 어찌 너희들만 특별히 봐주려 하겠는가. 항상 청춘 시절에 눌러 있으리라고 말하지 말라, 너희들 기다리는 것은 오로지 백발에 주름살뿐이리니.〔少年安得長少年 海波尙變爲桑田 枯榮遞傳急如箭 天公豈肯爲君偏 莫道韶華鎭長在白頭面皺專相待〕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화표(華表)의……호탕(浩蕩)해라 :
고 향에 빨리 돌아가려고 굳이 서두를 것이 있겠느냐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요동(遼東) 사람 정 영위(丁令威)가 신선이 되고 나서 천 년 만에 학으로 변해 다시 고향을 찾아와서는 요동 성문의 화표주(華表柱) 위에 내려앉았는데, 소년 하나가 활을 쏘려고 하자 허공으로 날아올라 배회하면서옛날 정 영위가 한 마리 새가 되어,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 처음 돌아왔소.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은 모두 바뀌었나니, 신선술 왜 안 배우고 무덤만 이리도 즐비한고.〔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
纍纍〕라고 탄식하고는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搜神後記 卷1》 그리고 두보(杜甫)가 자신을 갈매기에 비유하면서호탕한 연파 사이에 출몰하는 흰 갈매기를, 만리 밖 어느 누가 순치(馴致)할 수 있으리오.〔白鷗沒浩蕩萬里誰能馴〕라고 표현한 말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 奉贈韋左丞丈》
[주D-004]중선(仲宣)은……읊었는고 :
왜 그다지도 고향을 못 잊어 하며 슬퍼했느냐는 말이다. ()가 중선인 후한 말 위()나라 왕찬(王粲)이 동탁(董卓)의 난리를 피하여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가서 몸을 의탁하고 있을 적에, 유표에게 그다지 중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고향 생각이 절실해지자, 강릉(江陵)의 성루(城樓)에 올라가서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등루부(登樓賦)〉를 지은 고사가 있다. 《三國志 卷21 魏書 王粲傳》 《文選 卷11
[주D-005]땅이……유한(幽閒)하고말고 :
두 보의 시에맑은 강물 한 굽이 마을을 보듬고 흐르는 곳, 해 긴 여름날 강촌에는 일마다 유한해라. 혼자 왔다 갔다 하는 들보 위의 제비요, 서로 친근하게 노니는 물속의 갈매기라. 늙은 아내는 종이에 그려 바둑판을 만들고, 어린아이는 바늘을 두들겨 낚싯바늘 만드네. 친구가 녹미를 대 주니 그러면 됐지, 미천한 몸이 이 밖에 무엇을 다시 구하리오.〔淸江一曲抱村流 長夏江村事事幽 自去自來梁上燕相親相近水中鷗 老妻畫紙爲棊局 稚子敲針作釣鉤 但有故人供祿米 微軀此外更何求〕라는 말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9 江村》
[주D-006]오성(五城) 누대 :
도성의 궁궐을 뜻하는 시어이다.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다섯 곳의 금대(金臺)와 열두 곳의 옥루(玉樓)가 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인데, 동방삭(東方朔)이 지은 《십주기(十洲記)》에 그 내용이 나온다.
[주D-007]구할……해야지 :
《논 어》 〈술이(述而)〉에부가 만약 인위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이라도 내가 또한 하겠다마는, 만약 인위적으로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종사하겠다.〔富而可求也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8]생각대로……었는데 :
뜻 만 높이 세웠을 뿐 성취한 것이 없어서 남의 조롱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후한 마원(馬援), 호협(豪俠)하여 의리를 중시하는 두보(杜保)를 자기가 애지중지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제대로 본받지 못할 경우에는 그지없이 경박한 사내가 되고 말 것이니, 이는 이른바범을 그리다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거꾸로 개처럼 되고 마는 것〔畫虎不成 反類狗〕이라고 조카들을 경계시키면서 아예 그를 본받지 말라고 훈계한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주D-009]기심(機心)이……두려워라 :
기 심은 자기의 사적(私的)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교묘하게 도모하는 마음을 말한다. 바닷가에서 아무런 기심도 없이 날마다 갈매기와 벗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부친의 부탁을 받고 갈매기를 잡으려는 마음을 갖게 되자 갈매기들이 벌써 알아채고는 그 사람 가까이 날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列子 黃帝》
[주D-010]지금……흰옷 :
()나라 육기(陸機)의 시에집 떠나 멀리 나와 노니는 생활, 유유하여라 삼천 리 머나먼 길이로세. 서울에는 바람과 먼지가 어찌 많은지, 흰옷이 금방 새카맣게 변하누나.〔謝家遠行游悠悠三千里 京洛多風塵 素衣化爲緇〕라는 표현이 있다. 《文選卷24 爲顧彦先贈婦二首》
[주D-011]구름을……부끄럽고 :
하 늘 높이 떠서 구름 사이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보면 꼼짝 못하고 있는 자신의 옹색한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참고로 도잠(陶潛)의 시에구름을 쳐다보면 높이 나는 새 보기 부끄럽고, 물을 굽어보면 노니는 물고기 보기 계면쩍다.〔望雲慚高鳥 臨水愧游魚〕라는 말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3 始作鎭軍參軍經曲阿作》
[주D-012]자벌레……알랴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자벌레가 몸을 굽혀 움츠리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요, 용과 뱀이 숨는 것은 자신의 몸을 보전하기 위함이다.〔尺
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3]마음…… :
소식(蘇軾)의 시에병 때문에 한가하게 된 것은 별로 나쁘지 않나니, 마음 편하게 함이 약이지 다른 처방이 있겠는가.〔因病得閒殊不惡 安心是藥更無方〕라는 말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0 病中遊祖塔院》
[주D-014]청산은……있는데 :
소식의 시에청산은 미리 약속한 듯 항상 문 앞에 서 있고, 유수는 무정하게 혼자서 못으로 들어가네.〔靑山有約長當戶 流水無情自入池〕라는 말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1 刁同年草堂》

 

 

 

 

첫 추위

 


아침노을 변하면서 하늘 모습 참담해라 / 天容慘變朝霞
처음 동온을 억누르며 눈꽃이 떨어지네 /
始壓冬溫有雪華
북에서 불어온 바람은 지붕 모서리 울어대고 / 風自北來鳴屋角
남에 이르려 하는 태양
은 처마에 걸려 있네 / 日將南至掛簷牙
사람들 따스한 불 가까이하니 어디나 똑같고 / 人皆附熱思同俗
아이들 춥다고 아우성치니 고향 집도 그러겠지 / 兒正呼寒憶在家
백년 인생 대부분이 이처럼 을씨년스러운데 / 生活百年多冷淡
언 붓 호호 불어 종이창에 쓰려니 삐뚤빼뚤 / 紙窓呵筆字橫斜

 

[주D-001]처음……떨어지네 : 참고로 소식의 시에눈이 겨울의 온기를 조금 덮어 주었으니 그런대로 탈은 없겠지만, 가을 가뭄을 해소해 주지는 못했으니 밭갈이를 어떻게 할꼬.〔稍壓冬溫聊得健 未濡秋旱若爲耕〕라는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14 雪夜獨宿柏仙菴》
[주D-002]남에……태양 :
동 지(冬至)에 가까운 시절의 태양이라는 말이다.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5년 기사에태양이 남에 이르렀다.〔日南至〕라는 말이 나오는데, 두예(杜預)의 주()동짓날에는 태양이 남쪽 끝에 있게 된다.〔冬至之日 日南極〕라고 하였다.

 

 

 

 

동지(冬至)

 


남쪽 이웃에서 팥죽 보내며 문을 두드려 / 扣門送粥自南隣
주공의 꿈속에 있던 몸이 깜짝 놀랐다네 /
驚倒周公夢裏身
석과가 뒤집혀 우레가 땅속에서 울리고 /
雷在地中翻碩果
우물 밑에서 양기가 나와 홍균을 돌리도다 /
陽生井底轉洪鈞
떠돌이 생활의 지겨움이 늙은 가슴에 점점 느껴지고 / 老懷漸覺羈遊惡
시절의 경물 새롭게 바뀜에 병든 눈 새삼 놀라워라 / 病眼偏驚節物新
길거리에서 들리나니 새해의 달력 파는 소리 / 聽取街頭賣新曆
만년 천자
께서 또 새봄을 반포하셨나 봐 / 萬年天子又頒春

 

[주D-001]주공(周公)의……놀랐다네 : 잠을 자다가 깬 것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에내 꿈에 주공이 다시는 보이지 않은 적이 오래되었으니, 내가 너무도 쇠해졌나 보다.〔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라고 탄식한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2]석과(碩果)가……울리고 :
순 음(純陰)의 달인 10월을 지나 동지가 되면 밑에서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는 지뢰복괘(地雷復卦)를 이루게 되는데, 이는 땅속에서 우레가 울리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주역》 〈산지박괘(山地剝卦) 상구(上九)〉에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고 하였는데, 이는 다섯 개의 효()가 모두 음()인 상태에서 맨 위의 효 하나만 양()인 것을 석과로 비유한 것으로, 하나 남은 양의 기운이 외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이 박괘를 거꾸로 뒤집으면 바로 복괘(復卦)가 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3]우물……돌리도다 :
《예 기》 〈월령(月令)〉에동짓달에 우물물이 일렁이기 시작한다.〔仲冬之月 水泉動〕라는 말이 나오고, 《일주서(逸周書)》 〈주월(周月)〉에동짓달에 미세한 양의 기운이 황천에서 움직인다.〔微陽動于黃泉〕라는 말이 나온다. 또 두보(杜甫)의 시에사방 팔방에 인수(仁壽)의 세계가 열리는 가운데, 하나의 양기가 홍균을 돌리기 시작했다.〔八荒開壽域 一氣轉洪鈞〕라는 말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3 上韋左相》 홍균(洪鈞)은 도자기를 만들 때 돌리는 큰 물레라는 뜻으로, 대자연이 원기(元氣)를 조화시켜 만물을 생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임금이나 재상이 훌륭한 정치를 행하는 비유로 흔히 쓰인다.
[주D-004]만년 천자(萬年天子) :
만년토록 강녕한 복을 받을 천자라는 뜻이다. 《시경》 〈대아(大雅) 강한(江漢)〉에소호(召虎)가 엎드려 절하고 천자의 만년을 빌었다.〔虎拜稽首 天子萬年〕라는 말이 나온다.

 

 

 

 

 

견흥(遣興) 5

 


천인이 상승한다는
어찌 꼭 그렇다 하리 / 天人相勝豈其然
아직 정해지기 전엔 세상일 판단하지 말 일 / 世事休看未定前
세객도 집에 돌아올 허리에 인끈 두르고 /
說客還家腰有印
농신도 총애 잃으면 손에 없는 /
弄臣失主手無錢
오침에 밀려오는 시장 소음 강 물결 뒤집히듯 / 市聲午枕江翻浪
찬 등불 아래 돌아갈 계책 하룻밤이 일 년인 듯 / 歸計寒燈夜似年
읊는 목적이 뜻을 말하려 함이 아니라 /
不是吟詩是言志
뒷날 어린 자식에게 그냥 전해 줄까 하고 / 他時只與小兒傳

하늘에 새 사라지면 다시 아득한 허공 / 長空鳥沒更茫然
인류 역사의 흥망도 만고 전의 일이로다 / 靑史興亡萬古前
늦게 먹는 선생은 항상 고기 먹듯 했고 /
晩食先生常當肉
큰소리 정장은 돈을 지니지 않았어라 /
大言亭長不持錢
시비는 뒷날의 평을 기다려야 할 것이나 / 是非且待評他日
젊은 시절엔 빈천한 경우가 많았느니라 / 貧賤多應在少年
유취 유방
을 따지는 것도 모두 한가한 일 / 遺臭流芳等閑事
그보다는 성명을 아예 전하지 않음이 나으리라 / 不如名字未曾傳

엷은 얼음 밟고 가듯 위태로운 인간 세상 / 重足人間履薄氷
마음을 이해하는 좋은 벗 있어서 다행일세 / 知心賴是有良朋
금년에는 꽃구경할 벗들이 또 줄어들었지만 / 今年又減看花伴
이웃 절에 그래도 쌀 보내 주는 스님 있다오 / 隣寺猶存送米僧
눈보라 치는 도성 거리엔 긴 자루 삿갓이요 / 風雪九街長柄笠
도서로 들어 찬 사방 벽엔 짧은 등잔대로다 / 圖書四壁短檠燈
소원을 이루고 돌아가려면 아무래도 늦을 텐데 / 待成志願歸應晩
남산 대하며 드는
그만둘 수 있겠는가 / 把酒南山謝未能

필진은 봉망(鋒芒)이 꺾이고 연적은 물이 언 가운데 / 筆陣摧鋒硯水氷
이따금 회심의 구절 얻고서 마음의 벗을 생각하네 / 時時得句憶心朋
취하면 비녀장 던지는
이 지금 있을 리야 / 醉來投轄今無客
식사 뒤에 울리는
은 옛날에도 있었지 / 飯後鳴鍾舊有僧
짧은 꿈속에 불어오는 남포의 내 낀 물결이요 / 南浦煙波吹短夢
화려한 등불 비치는 북린의 노래와 춤이로다 / 北隣歌舞照華燈
하늘이 우리를 모두 이처럼 되게 하였으니 / 天敎我輩皆如此
청빈은 내가 잘 한다고 어떻게 감히 말하리오 / 敢道淸貧是我能

따스한 겨울 싫다 마오 내 방은 얼음장 같은걸 / 莫嫌冬暖室如氷
거처가 서남에 있는지라 벗을 얻어서 기쁘기도 /
居在西南喜得朋
평소 지닌 야인(野人)의 생각 그것은 학을 사는 것 / 雅有野懷思買鶴
오래 시상이 막힐 때는 승려를 찾고도 싶은 심정 /
久無秀句擬尋僧
가인은 봄 술 담아 놓고 까치 소리 점칠 텐데 / 家人祝鵲
春釀
객자는 밤 등불 태우며 새벽닭 소리 듣는구나 / 客子聽鷄燼夜燈
시비 일으킬 것 없이 귀향할 수만 있었으면 / 但得還鄕休惹事
농사짓는 일 말고 내가 또 무엇을 잘하리오 / 我除農圃更何能

 

[주D-001]천인(天人) 상승(相勝)한다는 : 《사 기》 권66〈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는 경우도 있지만,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역시 사람을 능히 이기는 법이다.〔人衆者勝天天定亦能破人〕라는 말이 나오는데, 소식(蘇軾)이 이를 인용하여人衆者勝天天定亦勝人이라는 시구로 표현하면서 더욱 유명한 격언이 되었다. 《蘇東坡詩集卷45 用前韻再和孫志擧》
[주D-002]세객(說客)도……두르고 :
전 국 시대 유세객인 소진(蘇秦)이 합종책(合縱策)을 주장하며 연()ㆍ제()ㆍ초()ㆍ조()ㆍ위()ㆍ한() 등 육국(六國)의 제후를 설득하여 종약장(縱約長)이 된 뒤에 고향에 돌아와서가령 내가 낙양 성 교외에 좋은 땅 두 마지기만 가지고 있었다면, 어떻게 여섯 나라 정승의 인을 꿰찰 수 있었겠는가.〔且使我有洛陽負郭田二頃 吾豈能佩六國相印乎〕라고 말했던 고사가 있다. 《史記 卷69 蘇秦列傳》
[주D-003]농신(弄臣)도…… :
농 신은 임금이 심심풀이로 데리고 노는 신하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한 문제(漢文帝)가 자기의 농신이라면서 감싸며 총애한 등통(鄧通)을 가리킨다. 황제에게 아첨하며 섬겨서 후하게 재물을 하사받은 결과 거부(巨富)가 되었으나, 나중에는 면직되어 재산이 모두 관아에 몰수된 채 돈 한 푼도 없이 굶어 죽는 신세가 되었다. 《史記 卷125 佞幸列傳》
[주D-004]시……아니라 :
《예 기》 〈악기(樂記)〉에시는 그 뜻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고, 노래는 소리의 형태로 나타내는 것이고, 무용은 동작으로 형용하는 것이다.〔詩言其志也 歌咏其聲也舞動其容也〕라는 말이 나오고, 《장자》 〈천하(天下)〉에시경의 시는 뜻을 말한 것이고, 서경의 글은 일을 말한 것이다.〔詩以道志書以道事〕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5]늦게……했고 :
배 가 고플 때에는 거친 음식을 먹어도 고기를 먹는 것처럼 좋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말로, 시장이 반찬이라는 우리말과 같은데, 채소와 나물이나 먹는 담박한 생활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전국 시대 제나라 은사(隱士) 안촉(
)늦게 먹음으로써 고기 맛과 진배없게 하고, 천천히 걸음으로써 수레에 앉은 것과 진배없게 한다.〔晩食以當肉 安步以當車〕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戰國策 齊策4
[주D-006]큰소리……않았어라 :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정장(亭長)의 신분으로, 장차 장인이 될 여공(呂公)을 처음 만날 적에, 돈이 없으면서도 만전(萬錢)의 축하금을 내겠다고 호언장담하고는 들어가서 상좌(上座)에 앉았는데, 그때 패현(沛縣)의 관리였던 소하(蕭何)유계는 본시 큰소리만 많이 칠 뿐 약속을 지키는 일이 거의 없다.〔劉季固多大言 少成事〕라고 빈정거린 기록이 《사기》 권8〈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온다. 유계(劉季)()’는 유방의 자이다.
[주D-007]유취(遺臭) 유방(流芳) :
후세에 냄새나는 악명(惡名)을 남기는 것과, 향기로운 미명(美名)을 전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8]남산(南山)…… :
한 유(韓愈)요란스럽게 명성을 치달리는 자들이야, 어느 누가 하루라도 한가할 수 있으리오. 나는 여기에 와서 어울릴 사람 없으니, 술잔 들고 한가롭게 남산의 경치를 대하노라.〔擾擾馳名者 誰能一日閒 我來無伴侶 把酒對南山〕라는 시를 인용한 것이다. 《韓昌黎集 卷9 把酒》
[주D-009]취하면…… :
한 나라 진준(陳遵)이 술을 좋아해서 주연을 크게 벌이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손님들이 가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고 손님들의 수레바퀴에서 비녀장을 빼내어 우물 속에 던져 넣었으므로,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끝내 가지 못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92 陳遵傳》 비녀장은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굴대 머리 구멍에 지르는 큰 못이다.
[주D-010]식사…… :
당 나라 왕파(王播)가 어려서 가난하여 양주(楊州) 혜소사(惠昭寺) 목란원(木蘭院)의 객이 되어 글을 읽으며 승려들을 따라 잿밥〔齋食〕을 얻어먹었는데, 승려들이 염증을 내어 재가 모두 파한 뒤에야 종을 치곤 하였다. 그 뒤 20여 년이 지난 뒤에 왕파가 중한 지위에 있다가 이 지방에 출진(出鎭)해서 그 절을 찾아갔더니, 지난날 자기가 벽에다 써 놓은 시를 벌써 푸른 비단으로 감싸 놓고 있었으므로, 그 시의 뒤에이십 년 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오늘에야 푸른 깁으로 장식되었구나.〔二十年來塵撲面 如今始得碧紗籠〕라고 써넣은 고사가 있다. 《唐摭言 起自寒苦》
[주D-011]거처가……기쁘기도 :
《주역》 〈곤괘(坤卦) 괘사(卦辭)〉에서남으로 가면 벗을 얻고, 동북으로 가면 벗을 잃는다.〔西南得朋 東北喪朋〕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2]오래……심정 :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우리 사 스님이 계신 띳집 아래에서는, 새로운 시를 지을 만한 기분이 드네.〔巳公茅屋下 可以賦新詩〕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1 巳上人茅齋》

 

 

 

제야(除夜)에 홀로 앉아서

 


아동들 오늘 밤 이웃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 兒童此夕鬧比隣
봄빛이 황도에 들어오니 기쁜 기색이 완연해라 / 春入皇都喜氣新
먼지 낀 책 홀로 열람하며 야반을 넘기노라니 / 獨閱塵編過夜半
하나의 등불이 두 해의 사람을 나누어 비춰 주네 / 一燈分照兩年人

 

 

 

 

갑신년(1344, 충혜왕 복위5) 원일(元日)

 


황제의 도성에서 지낸 지 어언 삼 년 / 都下經三歲
새봄을 만날 때마다 저절로 서글퍼져 / 逢春却自悲
어버이 늙으셨는데도 멀리 떠나오고 / 親衰猶遠別
아이는 어려서 따라오지도 못하였네 / 兒弱未相隨
조물의 뜻은 만물의 생장에 귀결되겠지만 / 物意歸生長
사람의 정은 세시를 중히 여기게 마련 / 人情重歲時
도소주(屠蘇酒)
를 혼자서 마실 수 있나 / 屠蘇可獨飮
시를 짓노라니 만 가지 생각이 드는구나 / 萬慮入新詩

 

[주D-001]도소주(屠蘇酒) : 설 날에 마시는 약주(藥酒) 이름이다. 귀기(鬼氣)를 도절(屠絶)하고 인혼(人魂)을 소성(蘇醒)한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화타(華佗)의 비방(秘方)이라고 한다. 새해 아침에 가족 모두가 의관을 정제하고 모여서 차례로 도소주 술잔을 어른에게 올린 뒤에 나이 어린 사람부터 일어나서 나가는 풍습이 있었다. 《荊楚歲時記》

 

 

 

정단(正旦)의 눈

 


섣달 그믐날부터 새해 아침까지 내리는 눈 / 雪從除夜到正朝
봄바람 속으로 빨려 들어 금세 녹아 버리네 / 旋入春風不禁消
쌍궐의 의장(儀仗) 나뉘지 않은 선영이요 /
扇影未分雙闕仗
오문의 다리에 일찍 모여드는 구두 소리라 /
靴聲早集五門橋
축하 반열 조관(朝官)의 옷은 젖게 하더라도 / 從敎賀列朝衣濕
소용
의 춤추는 소매에는 어울리며 나부끼리 / 好傍昭容舞袖飄
새해엔 상서로운 일이 많을 줄 벌써 알겠나니 / 便是新年多瑞氣
초주
함께 민간의 가요도 바쳐 올리고 싶네 / 願隨椒酒進民謠

 

[주D-001]쌍궐(雙闕)의……선영(扇影)이요 : 황 제의 행차를 말한 것이다. 쌍궐은 궁전 앞 양쪽에 높이 세운 누관(樓觀)으로, 중국 도성의 대궐을 뜻한다. 포조(鮑照)의 악부시(樂府詩)잔잔한 물처럼 잘 닦인 장안 거리, 높은 궁궐이 구름 속에 떠 있는 듯.〔九衢平若水雙闕似雲浮〕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文選 卷28 結客少年場行》 선영은 임금이 나올 때는 두 개의 부채를 합쳐서 임금의 모습을 가렸다가 일단 좌정하면 부채를 떼어서 모습이 보이게 한 형상을 형용한 것이다. 두보(杜甫)의 시에구름이 움직이며 꿩 꼬리로 만든 궁중의 부채가 양쪽으로 열린다.〔雲移雉尾開宮扇〕라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7 秋興八首》
[주D-002]오문(五門)의……소리라 :
백 관이 조하(朝賀)하기 위해 아침 일찍 입조하는 것을 말한다. 오문은 고대에 천자의 거소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했던 고문(皐門)ㆍ치문(雉門)ㆍ고문(庫門)ㆍ응문(應門)ㆍ노문(路門) 등 다섯 개의 문으로, 보통 황궁(皇宮)을 가리킨다. 《周禮天官 閽人》
[주D-003]소용(昭容) :
고대 궁중 여관(女官)의 이름이다.
[주D-004]초주(椒酒) :
새해 아침 다례(茶禮)를 지내고 웃어른에게 바쳐 축수하며 하례하는 술 이름이다.

 

 

 

 

인일(人日)

 


왕춘
이 좋아서 기쁜 것은 물론이요 / 已喜王春好
인일이 좋은 것을 다시 확인하겠도다 / 更知人日佳
삼한의 오래된 풍속을 떠올리는 / 三韓舊風俗
만리타향 늘그막의 이 심정이여 / 萬里老情懷
고깔에는 은승이 흔들거리고 /
星弁搖銀勝
조관의 옷에는 녹패가 비취리라 / 朝衣映祿牌
고당에 일곱 번 술과 적을 바쳐야 할 텐데 / 高堂七觴炙
하늘 끝에 떨어져서 너무도 유감스럽도다 / 最恨隔天涯

 

[주C-001]인일(人日) : 음 력 1 7일의 별칭이다. 동방삭(東方朔)의 점서(占書)에 의하면, 1 1일부터 6일까지 각각 차례로 닭ㆍ개ㆍ양ㆍ돼지ㆍ소ㆍ말을 점치고 나서 7일에 사람을 점치고 8일에 곡식을 점치는데, 기후가 청명하고 온화하면 번식과 안태(安泰)를 미리 알 수 있고, 기후가 음한(陰寒)하고 참렬(慘烈)하면 질병과 쇠모(衰耗)를 미리 알 수 있다고 하였다. 《事物紀原 天生地植 人日》
[주D-001]왕춘(王春) :
《춘 추(春秋)》 은공(隱公) 원년의원년 봄 왕의 정월〔元年春 王正月〕이라는 기록에 대한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의 해설에서 연유하여, 천하를 통일한 제왕의 봄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는데, 보통은 새해의 봄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D-002] 고깔에는……흔들거리고 :
별 고깔은 솔기를 오색 구슬로 장식하여 별처럼 빛나는 관()을 가리킨다. 《시경》〈위풍(衛風) 기욱(淇奧)〉에 위 무공(衛武公)을 칭송하면서고깔에 장식한 오색 구슬이 별처럼 빛난다.〔會弁如星〕라고 하였는데, 가정이 은연중에 고려 국왕을 여기에 비유한 듯하다. 은승(銀勝)은 머리 장식품으로, 은박지를 잘라서 사람 모양으로 만든 채화(綵花)를 말한다.

 

 

 

 

입춘(立春)에 회포를 적다

 


유자는 별 뜻 없이 어버이 그리워하게 마련 / 遊子思親無別意
소인은 땅을 생각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 /
小人懷土是眞情
찾아온 푸른 봄을 토우가 이미 싣고 왔는데 / 土牛已載靑春至
돋아나는 흰 머리칼은 차녀도 막기 어려워라 /
女難禁白髮生
한배
아직 열지 않아 입술이 마르던 차에 / 未撥寒
唇尙燥
새로 돋은 봄나물 보니 눈이 번쩍 뜨이누나 / 忽看新菜眼還明
벼슬길에서 전원의 즐거움을 함께 맛볼 수야 / 宦途不倂田家樂
당년에 대경을 배운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네 / 愧殺當年學代耕

 

[주D-001]소인은……심정이라 : 《논어》 〈이인(里人)〉에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한다.〔君子懷德 小人懷土〕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2]토우(土牛) :
진 흙으로 빚은 소를 말한다. 옛날 입춘 날에 토우를 만들어 멍에를 씌우고 채찍으로 때리며 관청 뜰에서 밭 가는 시늉을 하여 풍년을 기원하던 풍속이 있었는데, 이를 타춘(打春)이라고 한다. 후대에는 진흙 대신 짚이나 갈대 혹은 종이로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를 총칭하여 춘우(春牛)라고 하였다.
[주D-003]차녀(女) :
불로장생할 목적으로 도가(道家)에서 연단(煉丹)할 때 쓰는 수은(水銀)의 별칭이다.
[주D-004]한배() :
봄에 마시기 위해 겨울에 미리 담가 둔 술을 말한다.
[주D-005]대경(代耕) :
벼슬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 〈왕제(王制)〉의제후의 하사를 상농부에 비교해 보더라도, 그 녹봉을 가지고 농사짓는 일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諸侯之下士視上農夫 祿足以代其耕也〕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대서(代書)하여 중시(仲始) 사예(司藝)에게 답하다

 


화와 복은 항상 마주하는 것 / 禍福常相對
은혜와 원수를 모두 잊을 일 / 恩讎要兩忘
남촌은 우리가 독서하던 곳 / 南村讀書處
그때가 바로 희황의 시대 / 便是一羲黃

 

[주C-001]중시(仲始) : 김대경(金臺卿)의 자이다.
[주D-001]희황(羲黃) 시대 :
희황은 고대 전설에 나오는 복희씨(伏羲氏)와 황제(黃帝)의 병칭으로, 이상적인 태평 시대를 뜻한다.

 

 

 

 

극례(克禮) 주판(州判)에게 부치다

 


구름은 모습도 다양해서 어느새 푸른 개로 /
須臾蒼狗雲多態
백구는 호탕한 연파(煙波)사이에 절로 한가해라 /
浩蕩白鷗波自閑
벼슬길에 투신했으면 빈틈을 보이지 말아야지 / 宦路投身無罅隙
사람의 속성은 배면하며 기관이 원래 많으니까 /
人情背面足機關

 

[주C-001]극례(克禮) : 이인복(李仁復 : 13081374)의 자이다.
[주D-001]구름은……개로 :
지 조 없이 변덕을 부리는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비유한 것이다. 두보(杜甫)의 시에하늘 위의 뜬구름 백의 같더니, 어느새 푸른 개로 바뀌어졌네. 예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있었을 이 한때여, 인생 만사 이와 같지 않았던 적 없었나니.〔天上浮雲似白衣 斯須改變如蒼狗 古往今來共一時 人生萬事無不有〕라는 표현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21 可歎》
[주D-002]백구(白鷗)는……한가해라 :
두보(杜甫)가 자신을 갈매기에 비유하면서호탕한 연파 사이에 출몰하는 흰 갈매기를, 만리 밖 어느 누가 순치(馴致)할 수 있으리오.〔白鷗沒浩蕩 萬里誰能馴〕라고 표현한 말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 奉贈韋左丞丈》
[주D-003]사람의……많으니까 :
보 는 앞에서는 따르는 척하다가 뒤에서는 헐뜯고 욕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말이다. 참고로 두보의 시에늘그막에 젊은 친구와 사귀어 보려 하였더니, 얼굴 앞에선 마음을 주다가도 얼굴 돌리면 비웃는구나.〔晩將末契託年少當面輸心背面笑〕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4 莫相疑行》 기관(機關)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교묘하게 기교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

 

 

 

 

홀로 앉아서

 


오늘 따라 찾아오는 손님도 없는데 / 今日無來客
타향이라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네 / 他鄕少故人
처마에는 잠자던 새의 울음소리가 머물러 있고 / 簷聲留宿鳥
창에는 떠다니는 먼지 그림자가 장난을 치네 /
窓影弄遊塵
시사에 느낀 점이 있어 들춰 보는 사책이요 / 感事看前史
한 해 더 나이가 들수록 생각나는 노친이라 / 添年憶老親
혼자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누가 말하는가 / 誰言能自斷
출처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을 / 出處不由身

 

[주D-001]창에는……치네 : 참고로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의 시에주렴 친 장막 안은 음침해서 사람이 보이지 않고, 해 비낀 창에는 떠다니는 먼지 그림자가 장난을 친다.〔簾幕陰陰不見人日斜窓影弄遊塵〕라는 구절이 나온다. 《山谷集 外集 卷13 睡起》

 

 

 

소원(小園)에 오이를 심고 느낀 점이 있어서 2

 


세든 집에 몇 길 깊이 우물도 하나 없어 / 賃屋曾無數丈深
공터에 오이 심으려니 남몰래 속이 상해 / 種瓜隙地暗傷心
돌아갈 손꼽으며 가을 덩굴 기다리는 마음이여 /
歸期屈指看秋蔓
심어 그늘을 기다리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만 /
不比栽松欲待陰

당시에 농사 계획한 뜻 깊기도 하였는데 / 農圃當年着意深
초심이 잘못되어 만년에 그만 시서로세 / 詩書晩歲誤初心
행화촌
너머엔 하마 쟁기질하기 좋은 봄비 / 杏花村外一犁雨
구부
의 급한 외침에 하늘이 바로 흐려지네 / 鳩婦急呼天正陰

 

[주D-001]돌아갈……마음이여 : 제 후(齊侯)가 규구(葵丘)를 수비하는 대부(大夫) 1년 동안 파견할 적에, 그때 마침 오이가 익을 때였으므로 이듬해 오이가 익을 때에 후임자를 보내어 교체시켜 주겠다고 약속한 급과(及瓜)의 고사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莊公8年》
[주D-002]솔……되지만 :
당 나라 이단(李端)의 〈이웃 노인이 소나무 심는 것을 보고〔觀隣老栽松〕〉라는 오언절구에노인의 집에 들르긴 해도, 노인의 마음은 알 수가 없어. 무슨 일로 석양 속에서, 솔 심어 그늘을 기다리려 하는지.〔雖過老人宅 不解老人心 何事殘陽裏栽松欲待陰〕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행화촌(杏花村) :
술집을 가리킨다. 두목(杜牧)의 〈청명(淸明)〉 시에한번 물어보세 술집이 어디 있는지, 목동이 멀리 가리킨 곳 살구꽃 핀 마을.〔借問酒家何處在 牧童遙指杏花村〕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주D-004]구부(鳩婦) :
암 비둘기의 별칭이다. 하늘이 흐려지면서 비가 내릴 조짐이 보이면, 비둘기 수컷이 암컷을 둥지 밖으로 내쫓고, 하늘이 맑아지면 다시 불러들인다고 한다. 그래서하늘이 비를 내리려 하면 비둘기가 암컷을 내쫓는다.〔天將雨 鳩逐婦〕라는 속담이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암컷이 쫓겨날 때에는 분노와 원망이 뒤섞여서 목청껏 크게 부르짖으며 운다고 한다.

 

 

 

 

의무려(醫巫閭)에 대신 제사 지내러 가는 기 집현(奇集賢)을 전송하며

 


기운이 무지개 같은 우리 집현 학사 / 集賢學士氣如虹
손수 천향 받들고 구중궁궐 나가시네 / 手捧天香出九重
우리 황상 대신 하늘 제사를 잘 지내실 분 / 好爲吾皇代禋祀
성조는 원래 동봉 따위는 의논하지 않으니까 / 聖朝元不議東封

 

[주C-001]의무려(醫巫閭) : 만주(滿洲) 요녕성(遼寧省) 북진현(北鎭縣) 서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의무려(醫無閭) 혹은 어미려(於微閭) 등으로 쓰기도 하고, 줄여서 의려(醫閭)라고도 한다.
[주D-001]동봉(東封) :
황 제가 직접 태산(泰山)에 가서 봉선(封禪)의 의식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임종 직전에 지은 봉선문(封禪文)에 의거해서 한 무제(漢武帝)가 동쪽 노나라 지역의 태산에 가서 봉선을 행했던 유명한 고사가 있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봉()은 태산 위에 흙으로 단을 쌓고 하늘의 은공에 보답하는 제사를 말하고, ()은 태산 아래 양보산(梁父山)의 땅을 깨끗이 쓸고 땅의 은덕에 보답하는 제사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가랑비 내리는 새벽에 일어나서

 


그동안 아침에도 일어나지 못한 채 / 朝來未能起
나의 시골집처럼 문 닫고 있었어라 / 閉戶似吾廬
청명이 지난 뒤에 내리는 가랑비요 / 細雨淸明後
화려하게 활짝 핀 뒤끝의 꽃들이라 / 群花爛

병이 드니 명절이 다가와도 언짢고 / 病嫌佳節迫
가난하니 벗들이 드문 것을 알겠네 / 貧覺故人疎
그저 햇빛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 只待陽暉出
처마 앞에 누워서 책이나 말려야지 / 簷前臥曝書

 

 

 

 

연성사(延聖寺)에서 노닐며

 


봄바람은 범왕의 에도 찾아올 줄 아는데 / 春風解到梵王家
객자만 유독 놀랍게도 좋은 시절 등졌네 / 客子偏驚負歲華
담장 모서리에 몇 치 깊이로 쌓인 새벽 눈 / 曉雪墻
深數寸
간밤 내내 비바람이 배꽃을 지게 하였구먼 / 夜來風雨落梨花

 

[주D-001]범왕(梵王) : 부처를 모신 집이라는 뜻으로, 사찰을 말한다.

 

 

 

봄비 2

 


단비는 제때에 잘도 내리는데 / 好雨時能至
유인은 밤새도록 잠 못 이루네 / 幽人夜不眠
토양이 기름진 몇 이랑의 싹들이요 / 畝鍾膏土脈
부엌 연기 축축한 계수나무 장작이라 / 薪桂濕廚煙
제비집은 축 늘어져서 이제 막 보수하고 / 燕壘低初補
꽃잎은 무게를 못 이겨 거꾸로 매달렸네 / 花房重倒懸
돌아가 농사짓는 것이 무엇이 어렵기에 / 爲農豈難事
나는 올해도 약속을 다시 저버리는가 / 吾又負今年

꽃과 버들 한가로이 유혹하는 계절 / 花柳閑相引
풍광이 노곤해서 잠 속으로 떨어질 듯 / 風光困欲眠
봄이 저물려고 하여 시름이 깊던 차에 / 已愁春向晩
안개처럼 내리는 비를 다시 만났어라 / 更値雨如煙
세상 어디나 보통 있는 외상 술값이요 /
酒債人間有
말 머리 드높이 돌아가고픈 마음이라 / 歸心馬首懸
좋은 시절 만났어도 혼자 즐길 따름 / 良辰自樂耳
단지 소원은 풍년이나 자꾸 들었으면 / 但願屢

 

[주D-001]계수나무 장작 : 물 가가 비싼 도시에서의 어려운 생활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전국 시대 소진(蘇秦)초나라의 곡식은 옥보다도 귀하고, 장작은 계수나무보다 비싸다.〔楚國之食貴于玉薪貴于桂〕라고 불평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戰國策楚策3
[주D-002]세상……술값이요 :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외상 술값이야 세상 어디나 보통 있는 일이지만, 일흔까지 사는 사람은 예로부터 드물기만 하다네.〔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라는 명구가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6 曲江》

 

 

 

회산(黃檜山)을 전송하며

 


득의한 제공들 여기에 한꺼번에 / 得意諸公此一時
황금 술잔에 비치는 이정의 옥비 / 離亭玉轡映金巵
남아의 출처를 어찌 말로 할 수야 / 男兒出處那容說
나그네의 심사를 그냥 시 한 수로 / 客裏乾坤一首詩

 

[주C-001] 회산(黃檜山) : 황석기(黃石奇 : ?1364)를 가리킨다. 회산은 창원(昌原)의 옛 이름이다.
[주D-001]이정(離亭) 옥비(玉轡) :
이별하는 정자에 모여든 귀인들의 거마(車馬)라는 뜻이다.

 

 

 

 

상국(韓相國)을 전송하며 2

 


인재 얻기보다는 쓰기가 어려운 법인데 /
不是才難用是難
신정이 유관에 속했다니 듣고서 얼마나 기뻤는지 / 喜聞新政屬儒冠
지금 동방의 예악은 당시의 노나라라 할까 /
朝鮮禮樂今時魯
옛날 이부의 문장은 성이 바로 한씨였지요 /
吏部文章舊姓韓
어린 임금 맡은 오늘 더욱 붉을 그 마음이여 / 此日托孤心更赤
변란을 누차 당했어도 언제 무서워하였던가 / 幾回臨變膽曾寒
재상은 백발이 당연하다고 모두들 말하지만 / 皆言鼎軸宜蒼髮
사람들에게 이르노니 눈 씻고 잘들 보시라고 / 爲報時人洗眼看

동방의 민막은 누구도 고치기가 어렵나니 / 東方民
著醫難
당년에 상하가 거꾸로 뒤집혔기 때문이라 / 爲是當年倒屨冠
원외 이의 강직한 말을 부디 혐의하지 마오 /
直語莫嫌員外李
시중 한에게 중흥을 정녕 부탁하려 하니까요 / 重興正賴侍中韓
가죽이 있어서 터럭이 그래도 붙을 있는 만큼 / 只緣皮在毛猶附
입술이 없어서 치아가 시릴 걱정은 해도 되리
/
不待唇亡齒已寒
정사를 처음 펼 때에는 더욱 쉽지 않은 법이니 / 發政之初尤未易
귀는 다투어 기울여 듣고 눈은 다투어 살펴보시기를 / 耳爭傾聽眼爭看

 

[주C-001] 상국(韓相國) : 한종유(韓宗愈 : 12871354)이다. 가정보다 11년 연상으로, 충목왕(忠穆王)을 잘 부탁한다는 충혜왕(忠惠王)의 유조(遺詔)를 받았다. 충목왕이 8세로 즉위하자 좌승상(左丞相)으로 보필하였는데, 당시 나이가 58세였다.
[주D-001]인재……법인데 :
《논 어》 〈태백(泰伯)〉에인재 얻기가 어렵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맞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才難 不其然乎〕라는 공자(孔子)의 말이 나온다. 또 두보(杜甫)의 시에지사와 유인들이여 원망하지 마오, 예로부터 재목이 크면 쓰이기 어려웠나니.〔志士幽人莫怨嗟 古來材大難爲用〕라는 말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5 古柏行》
[주D-002]지금……할까 :
《논 어》 〈옹야(雍也)〉에제나라를 한 번 변화시키면 노나라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고, 노나라를 한 번 변화시키면 선왕의 도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다.〔齊一變至於魯 魯一變至於道〕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황음무도했던 충혜왕의 자취를 말끔히 씻고 다시 새롭게 개혁해 나가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뜻으로 가정이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다.
[주D-003]옛날……한씨(韓氏)였지요 :
당 헌종(唐憲宗) 때 이부 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와 같은 성씨이고, 또 그의 이름 중에 유() 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4]원외(員外)……마오 :
가 정이 재상들에게 내정 개혁을 촉구한 내용을 오해하지 말고 양찰해 주기 바란다는 말이다. 원외는 가정의 중국 관직인 정동행중서성 좌우사원외랑(征東行中書省左右司員外郞)을 말한다. 한국문집총간 3집에 수록된 《가정집》 권8의 〈본국(本國)의 재상(宰相)에게 부친 글〉 참조.
[주D-005]가죽이……되리 :
한 종유(韓宗愈)가 재상으로 버티고 있어 국가가 그래도 의지할 언덕이 있는 만큼 순망치한의 위험한 상황은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14년 기사에가죽이 없다면 터럭이 어디에 붙을 수 있겠는가.〔皮之不存 毛將安傅〕라는 말이 나온다. 또 춘추 시대 진()나라가 우()나라에게 괵(
)나라를 칠 테니 길을 좀 빌려 달라고 요청하자, 우나라의 현신(賢臣)인 궁지기(宮之奇)가 우나라와 괵나라는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輔車相依〕와 같고입술이 없어지면 치아가 시린 관계〔脣亡齒寒〕와 같으니 그 요구를 들어주면 안 된다고 임금에게 간했으나 이를 듣지 않다가, 끝내는 괵을 멸망시키고 돌아오는 진나라 군대에게 우나라까지 멸망을 당한 고사가 희공 5년에 전한다.

 

 

 

 

 

다시 중시(仲始) 사예(司藝)에게 부치다

 


구슬 감추려고 몸을 절개하기도 하고 /
身爲藏珠剖
이사하다가 처를 놔두고 오기도 하고 /
妻因徙室忘
마음가짐이 만약 담박하기만 하다면야 / 處心如淡泊
무슨 일을 당하든 창황망조(蒼黃罔措)할 리야 / 遇事豈蒼黃

 

[주D-001]구슬……하고 : 서역(西域)의 외국 상인이 미주(美珠)를 얻으면, ‘배를 째고서 그 구슬을 몸 안에 감추기까지 한다〔剖身以藏之〕는 이야기가 《자치통감(資治通鑑)》 당 태종(唐太宗) 정관(貞觀) 원년에 나온다.
[주D-002]이사하다가……하고 :
노 애공(魯哀公)이 공자(孔子)에게,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이사하면서 처를 데려오는 것도 잊는다.〔徙而忘其妻〕고 하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공자가 그보다 더 심한 사람은 자기 몸도 잊어버리는데, 걸주(桀紂)가 바로 그들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공자가어(孔子家語)》〈현군(賢君)〉에 나온다.

 

 

 

 

이 정랑(李正郞)에게 답하다

 


칼날은 대부분 주하에서 나오고 /
刃多生肘下
적인이 같은 안에 있을 수도 /
敵或在舟中
세태는 문밖에 그물을 정도 /
世態門羅雀
심기는 사냥꾼이 소망하는 기러기 /
心期弋慕鴻

 

[주D-001]칼날은……나오고 : 뜻 밖의 환란이팔꿈치나 겨드랑이〔肘腋〕처럼 가까운 신변에서 발생한다는 말이다. 참고로 소식의 시에 양자(養子)인 여포(呂布)가 동탁(董卓)을 죽인 것을 두고흰 칼날이 느닷없이 주하에서 나왔나니, 황금만 공연히 산처럼 쌓아 두었구나.〔白刃俄生肘 黃金謾似丘〕라고 표현한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3 壬寅二月有詔令……
[주D-002]적인(敵人)이……수도 :
환 란은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다는 뜻으로 전국 시대 오기(吳起)가 위 무후(魏武侯)에게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참고로 전국 시대 위()나라 무후(武侯)가 배를 타고 서하(西河)의 중류(中流)를 내려가다가 오기를 돌아보고는 산천이 험고한 것이야말로 위나라의 보배라고 자랑하자, 오기가사람의 덕에 달려 있지, 산천의 험고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통치자가 덕을 닦지 않으면 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적국의 사람이 될 것이다.〔在德不在險 若君不修德 舟中之人盡爲敵國也〕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65 孫子吳起列傳》
[주D-003]세태(世態)는……정도 :
세 력이 있으면 빌붙고 권세가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염량세태(炎凉世態)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나라 책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때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다가 관직을 그만두자대문 앞에 새 잡는 그물을 칠 정도가 되었는데〔門外可設雀羅〕’, 다시 정위로 복귀하자 사람들이 예전처럼 몰려오니 책공이 대문에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친구의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함에 친구의 태도를 알고, 한 번 천하고 한 번 귀해짐에 친구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라고 써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史記 卷120 汲鄭列傳》
[주D-004]심기(心期)는……기러기 :
난 세에 화를 피해서 속세를 떠나 멀리 숨어 살고 싶다는 말이다. 한나라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문명(問明)〉에군자는 마치 봉황처럼 처신하여 치세(治世)에는 출현하고 난세에는 숨어야 할 것이니, 기러기가 저 보이지 않는 하늘 속으로 높이 날아가면 사냥꾼이 어떻게 쏘아 맞출 수 있겠는가.〔鴻飛冥冥 弋人何簒焉〕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송나라 소철(蘇轍)의 시에산에 숨은 표범은 무늬가 얼룩덜룩, 사냥꾼이 소망하는 기러기는 하늘 높이 까마득.〔文縟山藏豹 飛高弋慕鴻〕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欒城集 卷11 次前韻觀試進士呈試官》

 

 

 

 

차운하여 최심보(崔深父)에게 답하다

 


나라의 토대가 많이도 흔들흔들 / 邦基多臲卼
관원의 인사도 그동안 들쭉날쭉 /
人事亦參差
장차 솔처럼 무성한 기쁨을 맛보리니 / 且喜如松茂
어찌 서리를 노래할 걱정이 있으리오
/
曾憂賦黍離

 

[주C-001]최심보(崔深父) : 심보는 최강(崔江)의 자이다. 한국문집총간 3집에 수록된 《가정집》 권7에 그를 위해 가정이 지어 준 〈심보설(深父說)〉이 수록되어 있다.
[주D-001]관원의……들쭉날쭉 :
참 고로 《고려사(高麗史)》 권109〈이곡열전(李穀列傳)〉에이곡이 충혜왕(忠惠王) 복위 2년에 표문(表文)을 받들고 원나라에 갔다. 그리고는 6년 동안이나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중서사 전부(中瑞司典簿)의 원나라 관직을 수여받았다. 그때 본국에서는 관작을 함부로 수여하여 노예까지도 고위 관직을 얻을 정도였다. 당시에 전중(殿中) 최강(崔江)이 관직을 구해서 정윤(正尹)이 되었다는 말을 가정이 듣고서생전에 정윤을 얻은 것이 무슨 상관이랴, 사후에 중서를 가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나은걸.〔不妨正尹生前得 猶勝中書死後加〕이라는 시를 지어 부쳤다. 이는 안취(安就)와 조명(趙溟)이 죽은 뒤에 모두 중서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주D-002]장차……있으리오 :
고 려가 앞으로 혼돈과 침체의 위기를 벗어나서 다시 중흥의 계기를 맞게 될 것이니 혹시라도 나라가 멸망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말이다. 주나라 여왕(厲王)이 포학하게 굴다가 체()로 쫓겨나 죽은 뒤에, 그의 아들 선왕(宣王)이 즉위하여 정치를 개혁하고 덕정(德政)을 펴서 중흥을 이루었는데, 선왕이 새 궁실을 낙성한 것을 축하한 《시경》 〈소아(小雅) 사간(斯干)〉에, 그 건물을 형용하여대나무가 총생(叢生)하듯, 소나무가 무성하듯.〔如竹苞矣如松茂矣〕이라는 말이 나온다. 서리(黍離)는 《시경》 〈왕풍(王風)〉의 편명인데, 동주(東周)의 대부(大夫)가 행역(行役)을 나가는 길에 이미 멸망한 서주(西周)의 옛 도읍인 호경(鎬京)을 지나가다가 옛 궁실과 종묘가 폐허로 변한 채 메기장과 잡초만이 우거진 것을 보고 비감에 젖어 탄식하며 부른 노래이다.

 

 

 

 

제비

 


처마 앞에서 마주하고 얘기 나누며 / 簷前相對語
객지에서 친구처럼 서로 의지했지 / 客裏故相依
염량세태에 쫓기는 나의 신세 / 身世炎凉迫
세상 천지에 우익이 어디 있나 / 乾坤羽翼微
둥지를 만들고도 버리고 떠나다니 / 巢成還棄去
새끼가 자라니까 각자 날아가는구나 / 雛長却分飛
너를 보니 더욱더 북받치는 슬픔이여 / 見爾增悲慨
금년에도 이 몸은 고향에 가지 못하니 / 今年又未歸

 

 

 

 

 

사명을 받들고 동방으로 돌아가는 김 동지(金同知)를 전송하며

 


조서 받들고 대궐 하직한 뒤 / 捧詔辭丹陛
삼한 땅 먼 길을 떠나가실 분 / 三韓去路長
고당엔 주금이 환히 비칠 것이요 /
高堂明晝錦
보배 사찰엔 천자의 향이 뿌려지리 / 寶刹散天香
창해 위에는 선경이 있고 /
滄海浮仙境
청산은 고향의 저 하늘 위에 / 靑山出故鄕
백성의 병폐 위문할 것도 없으리니 / 無勞問民

성상의 은택이 변방까지 미칠 테니까 / 聖澤及遐荒

 

[주D-001]고당(高堂)엔……것이요 : 낮에 비단옷을 입고 어버이를 뵙는다는 뜻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과 같은 말이다.
[주D-002]창해(滄海)……있고 :
창해는 동해(東海) 혹은 발해(渤海)를 가리킨다. 이 창해 안에 봉래(蓬萊)ㆍ영주(瀛洲)ㆍ방장(方丈) 등 이른바 삼신산(三神山)이 있다고 전해졌다.

 

 

 

 

 

병에서 일어나서 지기(知己)에게 증정하다

 


병석에 누운 뒤로 겨울 지나 다시 봄 / 一臥經冬復歷春
요즘 시주 덕분에 기분이 좀 좋아졌소 / 近憑詩酒暢精神
평소의 뜻이 원수를 갚지 않는 것인데 / 恩讎未報平生志
지금 이 몸에 노환이 침노할 줄이야 / 老病還侵見在身
죽마 타고 신나게 달렸던 어린 날이요 / 狂走昔年騎竹馬
동인의 비방을 검증하는 오늘날이라 /
秘方此日按銅人
용감하게 병 무릅쓰고 함께 담소한 자리 / 不辭力疾陪談笑
청산만 빼놓으면 모두가 새로운 일이었소 / 除却靑山事事新

 

[주D-001]동인(銅人)의……오늘날이라 : 침구(鍼灸) 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이다. 동인은 동인경(銅人經)의 준말이다. 송나라 왕유일(王惟一)이 천성(天聖) 5(1027)에 조칙을 받고 동()으로 만든 인체 모형에 침구의 경혈(經穴)을 그려 넣어 해설한 것이 최초이다.

 

 

 

 

내일이 단오 명절이라 다시 앞의 운을 써서 시를 짓다

 


병들어 신음하느라 봄도 그냥 보내다가 / 爲緣抱病失靑春
오늘 따라 흥이 나며 마음이 들썩이네 / 便覺今朝興有神
언제 각서의 맛을 못 본 적이 있었던가 / 角黍何曾負此腹
채사
도 나의 몸을 묶을 줄 잘 아는 듯 / 綵絲如解繫吾身
자식을 키우지 못하게 한 정곽의 의심도 풀렸고 / 遠嫌靖郭妨生子
영균
은 아직도 감동시키며 해마다 사랑받는다네 / 每愛靈均尙感人
지금은 바로 하나의 음이 다시 용사하는 /
正是一陰還用事
천기는 그동안 몇 번이나 새로 작동하였던가 / 天機袞袞幾回新

 

[주D-001]각서(角黍) : 고 엽(菰葉)에 찹쌀을 싸서 찌는 떡으로 편수와 비슷한데, 삼각 모양으로 만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각반(角飯)이라고도 한다. 초나라 사람들이 5 5일에 멱라수(汨羅水)에 투신 자결한 굴원(屈原)의 죽음을 슬퍼하며, 대통에 쌀을 담아 강에 던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단오절마다 이 떡을 만들어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주D-002]채사(綵絲) :
단옷날에 악귀나 병마를 물리치기 위해서 어깨나 팔에 묶었던 오색실을 말하는데, 장명루(長命縷), 속명루(續命縷), 벽병증(辟兵繒) 등의 별칭이 있다.
[주D-003]정곽(靖郭) :
정 곽군(靖郭君)의 준말로, 전국 시대 제()나라 재상인 전영(田嬰)의 시호(諡號)이다.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은 그의 천첩 소생으로, 5 5일에 출생하였다. 그런데 그날에 태어난 자는 아들은 부친을 해치고 딸은 모친을 해친다는 속설에 따라 전영이 키우지 말고 버리라고 하였는데, 어미가 남몰래 키운 뒤에 성년이 된 아들을 전영에게 보였다. 전영이 화를 내면서 그 어미를 나무라자 전문이 그 이유를 물으니, 그날 태어난 아들은 키가 문 높이에 닿을 무렵이 되면 부모를 해친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에 전문이 만약 그 이유 때문이라면 문의 높이를 더 높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니, 전영이 그 말을 듣고 퍼뜩 깨닫고는 더 추궁하지 못했다고 한다. 《史記 卷75 孟嘗君列傳》
[주D-004]영균(靈均) :
굴원의 자이다. 그가 지은 〈이소(離騷)〉에돌아가신 아버님이 나의 이름을 정칙이라고 지어 주셨고, 자를 영균이라고 지어 주셨다.〔名余曰正則兮 字余曰靈均〕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5]지금은…… : 5
월은 순양(純陽)인 건괘(乾卦)를 막 지나서 하나의 음()이 초효(初爻)에 생기는 구괘(姤卦)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항주(杭州)를 유력하며 승상(丞相)을 만나려는 정중부(鄭仲孚)를 떠나보내면서 지은 시 5

 


승상
이 새로 교화 펴려고 남쪽 땅으로 / 丞相南轅政化新
천성에서 우러나와 백성을 자식 대하듯 / 愛民如子出天眞
무더위가 화기를 상할까 그것이 걱정이지만 / 只嫌暑濕傷和氣
그래도 집집마다 축수하는 사람 있을 테니까 / 賴有家家祝壽人

강남에 가까이 갈수록 경물은 새로워도 / 行近江南景物新
육조
의 유적들은 하마 본모습 잃었으리 / 六朝遺迹已迷眞
성원이 통일한 뒤로 지금 고압아가 없어서 / 聖元混一今無古
당시에 할거한 인사들을 우습게 본다네요
/
笑殺當時割據人

서호는 예나 이제나 새롭게 꾸며지고 있지만 /
西湖今古
粧新
그대가 한번 보면 참다운 면목을 파악하리 / 一見應知面目眞
옛날에 시선의 발길이 한번 머물렀던 곳 / 舊日詩仙曾到處
풍악 소리 분분하게 유인을 심란하게 하리 / 紛紛歌吹惱遊人

소항
의 경치가 지금도 새롭게 그려지지만 / 蘇杭景入畫圖新
진면목은 잃고서 전문만 하는 게 한스러워 / 每恨傳聞摠失眞
그대가 돌아오기 전에 나도 떠나갈까 봐 / 及子未還吾亦去
계림 출신은 상인도 모두 시인 아니던가 / 鷄林賈客盡詩人

매화의 풍격이 번이나 새로워지는 동안 / 梅花風格幾番新
속물이 어떻게 자리에 끼일 수나 있었으리
/
俗物何曾解混眞
나 대신 화정의 댁이나 한번 들러 주오 / 爲我一過和靖宅
시를 잘하는 분은 매화도 아낄 터이니까 / 能詩便是愛梅人

 

[주C-001]정중부(鄭仲孚) : 중부는 정포(鄭誧 : 13091345)의 자이다. 충혜왕(忠惠王) 때에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의 신분으로 내정(內政)을 개혁하려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면을 당하였다.
[주D-001]승상(丞相) :
별가불화(別哥不花)를 가리킨다. 그가 정포(鄭誧)를 한번 보고는 무척 아끼면서 황제에게 추천하려고 하였는데, 정포가 그만 37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말았다는 기록이 《고려사》 권106〈정포열전〉에 나온다.
[주D-002]육조(六朝) :
양자강 남쪽의 건강(建康)에 도읍을 정한 삼국 시대의 오()와 동진(東晉), 그리고 남조(南朝)의 송()ㆍ제()ㆍ양()ㆍ진()을 가리킨다. 건강은 즉 남경(南京)으로 항주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주D-003]성원(聖元)이……본다네요 :
과 거 몽고(蒙古)에 대한 처절한 항전의 역사를 지금에 와서는 사람들이 모두 망각하고서 한낱 웃음거리로 치부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원문의 금무고(今無古)는 금무고압아(今無古押衙)를 줄인 말이다. 고압아는 당나라 설조(薛調)가 지은 《무쌍전(無雙傳)》에 나오는 인물 이름인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사생취의(捨生取義)하는 의사(義士)의 대명사로 쓰이곤 한다. 송나라 부마도위(駙馬都尉) 왕진경(王晉卿)이 귀양을 가면서 가희(歌姬) 전춘앵(囀春鶯)과 헤어진 뒤에 돌아와서 보니 남의 집에 억류되어 있었으므로, “가인은 사타리의 손아귀에 들어갔는데, 고압아 같은 의사가 지금은 없구나.〔佳人已屬沙
利 義士今無古押衙〕라고 읊었다는 시화(詩話)가 유명하다. 사타리()는 타인의 처첩이나 민간의 부녀자들을 멋대로 강탈하여 소유하는 권귀(權貴)를 가리킨다. 여기서 사타리는 몽고 군대를, 고압아는 몽고 군대에 대항하여 분투했던 의사를 은연중에 비유하고 있다. 당시에 할거(割據)한 인사들이란 임안(臨安) 즉 항주(杭州)가 서울이었던 남송(南宋)에서 몽고를 상대로 항거하며 끝까지 혈투를 벌였던 인사들로, 예컨대 애해(崖海)의 삼충(三忠)으로 불리는 문천상(文天祥)ㆍ장세걸(張世傑)ㆍ육수부(陸秀夫)와 같은 의사들을 가리키는데, 이렇게 말하는 이면에는 30년에 걸친 고려 삼별초(三別抄)의 피어린 대몽 항쟁의 역사가 가정의 의식 속에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주D-004]서호(西湖)는……있지만 :
예로부터 지금까지 시인 묵객들이 각자 독특한 시각으로 서호를 소재로 해서 다양한 시문을 짓고 있다는 말이다.
[주D-005]시선(詩仙) :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하지장(賀知章)이 이백의 문장을 한 번 보고는 감탄한 나머지인간 세계에 귀양을 온 신선〔謫仙〕이라고 극찬한 데에서 유래한 별칭이다.
[주D-006]소항(蘇杭) :
소주(蘇州)와 항주(杭州)의 병칭이다.
[주D-007]매화의……있었으리 :
매 화에 대해 고상하게 읊은 시인 묵객의 대열에 가정은 감히 끼일 수도 없다는 뜻의 겸사이다. 제 선왕(齊宣王)이 피리 연주를 좋아하여 항상 300인을 모아 합주하게 하자, 남곽처사(南郭處士)라는 사람이 그 자리에 슬쩍 끼어들어 국록을 타 먹곤 하였는데, 선왕이 죽고 민왕(湣王)이 즉위한 뒤에 한 사람씩 연주를 하게 하자 본색이 드러날까 겁낸 나머지 도망쳤다는 이른바제우혼진(齊竽混眞)’의 고사가 전한다. 《韓非子內儲說上》
[주D-008]화정(和靖) :
북 송의 은사(隱士)인 임포(林逋)의 시호(諡號)이다. 항주(杭州) 전당(錢塘) 사람으로,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초막을 짓고는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숨어 살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일컬었는데, 그가 매화를 읊은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맑고 얕은 물 위에 성긴 그림자 가로 비끼고, 황혼 녘 달빛 속에 은은한 향기 떠도누나.〔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라는 명구가 나온다.

 

 

 

 

비 오는 가운데 홀로 앉아서

 


성주의 뜻이 신년 들어 하늘을 감동시켜 / 聖主新年格上蒼
오늘 아침 단비가 혹독한 더위 씻어 주네 / 今朝甘澍洗愆陽
습기가 괘석에 번지면서 조금 눅눅해지고 / 氣侵几席微生潤
형세는 풍뢰를 동반하며 슬슬 객기 부리네 / 勢帶風雷稍作狂
도롱이 걸치고 조각배 비껴 타 볼거나 / 擬着蓑衣橫小艇
네모진 못을 연꽃잎이 뒤덮고 있으리니 / 想看荷蓋偃方塘
병객이라 무료할 것이라 단언하지 마오 / 莫言病客無聊賴
성긴 발 베갯머리에 시원함 넘쳐나니까 / 剩得疎簾一枕凉

 

 

 

 

 

죽순을 먹으며 지은 시 3

 


고향에는 대나무가 섶나무처럼 너무 흔해 / 故山篁竹賤如薪
봄 죽순이 밥상에서 귀한 대접 못 받는데 / 春筍堆盤不甚珍
홀연히 눈 밝아지는 이곳의 푸른 묶음이여 / 忽此眼明靑玉束
경진의
은 장아찌에 오래 싫증이 났으니까 /
久厭客京塵

듣자니 귀인의 집에선 밀초가 땔감이요 / 聞說侯家蠟代薪
어주의 진미로 타봉이 자주 나온다 하는데 / 駝峯屢出御廚珍
나물과 죽순도 이때쯤 맛 좋은 줄을 아는 터라 / 也知蔬筍味方永
소진 속에서 크는 놈도 옥안에 올리게 한다나요 /
玉案有時棲素塵

나무를 심어도 재목이 못 되면 모두 땔나무 / 種木不材皆可薪
소채를 심어도 푸른 옥 묶음이 최고의 보배 / 種采蒼玉最堪珍
어린 싹이 군침 흘리는 객을 만나지 않는다면 / 免敎蒙稚逢饞客
모두 된서리 뚫고 티끌 벗어난 대가 되련마는 / 摠是凌霜不受塵

 

[주D-001]푸른 묶음 : 죽순의 별명이다. 보통 창옥속(蒼玉束)이라고 한다.
[주D-002]경진(京塵) :
원 나라 서울에서 타향살이하는 나그네라는 말이다. ()나라 육기(陸機)의 시에집 떠나 멀리 나와 노니는 생활, 유유하여라 삼천 리 머나먼 길이로세. 서울에는 바람과 먼지가 어찌 많은지, 흰옷이 금방 새카맣게 변하누나.〔謝家遠行游 悠悠三千里京洛多風塵 素衣化爲緇〕라는 표현이 있다. 《文選 卷24 爲顧彦先贈婦二首》
[주D-003]귀인(貴人)의……땔감이요 :
()나라의 부호 석숭(石崇)의 생활이 지극히 사치스러워서 땔나무 대신 밀초를 사용하여 밥을 짓기까지 했다는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汰侈》
[주D-004]타봉(駝峯) :
낙타의 등 위에 불룩 솟은 육봉(肉峯)을 가리키는데, 옛날에 매우 진귀한 식품으로 여겼다고 한다.
[주D-005]소진(素塵)……한다나요 :
죽순이 계절의 별미로 귀인의 밥상에 오르기도 한다는 말이다. 소진은 설화(雪花)의 시어이고, 옥안(玉案)은 옥으로 장식한 발이 달려 있는 진귀한 식기(食器)를 뜻한다.

 

 

 

 

 

순암(順菴)의 원숭이를 읊은 시 2

 


조물의 뜻이 워낙 기괴하니 / 造物足奇怪
부생의 미래를 알 수나 있나 / 浮生無定期
그중 가장 불쌍한 것은 인면의 짐승 / 最憐人面獸
법신의 스님 곁에 와서 따라다니누나 / 來伴法身師
심심풀이로 재주 부리는 구경도 하고 / 破悶看呈技
손님 초대해 시 지어라 강요도 하고 / 邀賓索賦詩
도토리를 굳이 분배할 필요 있으랴 /
何須强分栗
이 세상도 서로들 속고 속이는데 뭘 / 世俗自相欺

숲 속으로 돌아갈 희망은 없다고 해도 / 林棲無復望
우리에 갇혀 살 줄은 생각도 못했으리 / 檻束本非期
옥환(玉環) 남긴
과는 소식도 끊어진 채 / 信斷留環處
검술을 가르 스승
의 이름만 전하누나 / 名傳學劍師
팔이 길쭉하니 활을 익힐 만도 하고 /
臂長堪習射
어깨가 솟았으니 시를 읊을 듯도 하고 /
肩聳似吟詩
괴이하도다 너처럼 유독 속임수가 많은 놈이 / 怪汝偏多詐
사람을 만나면 도리어 기만을 당하곤 하니 / 逢人却被欺

 

[주D-001]도토리를……있으랴 : 조 삼모사(朝三暮四)의 우언(寓言)을 말한다. 송나라 저공(狙公)이 원숭이들에게 아침에 도토리를 세 개 주고 저녁에 네 개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성내더니, 아침에 네 개 주고 저녁에 세 개 주겠다고 하자 모두 기뻐하더라는 내용이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나온다.
[주D-002]옥환(玉環) 남긴 :
협 산사(峽山寺)를 가리킨다. 당나라 손각(孫恪)이라는 자가 원씨(袁氏)의 딸을 부인으로 맞고 나서 10년이 지나 두 아들을 데리고 협산사에 갔다. 원씨가 단장을 하고 노승(老僧)을 찾아가 벽옥환(碧玉環) 하나를 바치면서이 사원의 옛 물건〔院中舊物〕이라고 하였는데, 노승이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하였다. ()가 끝난 뒤에 야생 원숭이 수십 마리가 슬피 울부짖자, 원씨가 이를 측은하게 여겨 시 한 수를 짓고 나서는 옷을 찢고 늙은 원숭이로 몸을 바꿔 그 원숭이들의 뒤를 따라갔다. 노승이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고는 말하기를이 원숭이는 빈도(貧道)가 사미(沙彌) 시절에 기르던 것이다.……그리고 이 벽옥환은 본래 가릉(訶陵)의 호인(胡人)이 시주한 것인데, 당시에 역시 원숭이 목에 걸어 두었다가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당나라 배형(
)이 지은 《전기(傳奇)》 〈손각(孫恪)〉에 나온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가인 원씨(袁氏)는 검술의 명인인 백원옹(白猿翁)의 자손으로서, 유희하며 잠시 인간 세상에 나와 손각(孫恪)의 아내가 되었는데, 홀연히 야생 원숭이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고는, 시를 한 수 짓고 옥환을 남겼다네.〔佳人劍翁孫 游戲暫人間 忽憶嘯雲侶賦詩留玉環〕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38 峽山寺》
[주D-003]검술(劍術) 가르친 스승 :
백 원(白猿)을 가리킨다. 춘추 시대 월인(越人) 처녀가 월왕(越王)에게 검술을 가르치려고 길을 가던 도중에흰 원숭이〔白猿〕가 변신한 원공(袁公)이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요청을 받고는 검술 시합을 하였는데, 원공이 그녀를 상대하다가 나무 위로 날아올라 다시 흰 원숭이로 몸을 바꿔 사라졌다는 전설이 동한 조엽(趙曄)이 지은 《오월춘추(吳越春秋)》 권9〈구천음모외전(句踐陰謀外傳)〉에 나온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후대에 검술의 명인을 백원공(白猿公) 혹은 백원옹(白猿翁)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주D-004]팔이……하고 :
한나라의 명장 이광(李廣)이 원숭이처럼 팔이 길어서 천성적으로 활을 잘 쏘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09 李將軍列傳》 그래서 활의 명인을 지칭할 때 원비(猿臂)라는 말을 흔히 쓴다.
[주D-005]어깨가……하고 :
성 당(盛唐)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은 눈발이 휘날리는 파교(
) 위를 나귀 타고 지나갈 때 가장 멋진 시상(詩想)이 떠올랐다고 하는데, 소식(蘇軾)의 시에그대는 또 못 보았는가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을, 시 읊느라 찌푸린 눈썹 산처럼 솟은 두 어깨를.〔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이라는 명구가 있다. 《蘇東坡詩集 卷12 贈寫眞何充秀才》

 

 

 

 

 

비 때문에 길이 막힌 소회를 써서 정중부(鄭仲孚)에게 부치다

 


갤 기미 보이지 않고 반달이나 흐린 하늘만 / 半月天陰未肯晴
도성 거리 질퍽질퍽 걸어 다닐 수도 없네 / 九街泥濘不堪行
어디에 집 있는지 아득한 변방의 산하요 / 關山杳杳家何處
밤부터 새벽까지 불어오는 비바람 소리라 / 風雨蕭蕭夜復明
초빙할 말도 없어 애달프게 바라볼 뿐 / 無馬相邀成悵望
혼자 술잔 홀짝이며 아쉬운 정 머금노라 / 有尊獨酌謾含情
그대는 이런 날에 새 시구 많이 지으련만 / 知君此日多新句
나의 귀에는 빈 뜰에 듣는 빗방울 소리만 / 客耳空階一樣聲

 

 

 

 

 

중부(仲孚)가 화답했기에 다시 지은 시 6

 


비 왔으면 하던 농가 이제는 또 날 갰으면 / 欲雨農家又欲晴
하늘이 말하지 않아도 사시는 운행하는 /
皇天不語四時行
강물은 호호하게 불어 창해까지 잇따르고 / 水生浩浩連滄海
구름은 망망하게 일어 태양을 가리고 있네 / 雲起茫茫掩大明
섭리
가 이미 현상의 손에 돌아갔으니 / 燮理已歸賢相手
도견
하는 성인의 은택을 모두 입었네 / 陶甄共荷聖人情
남풍이 부는 궁궐에 아직 바치지 않은 시 / 詩成未獻南熏殿
오현금에 화답하여 소리 높이 부르시기를
/
願和五絃琴上聲

오래도록 개지 않는 지겨운 비 미친바람 / 苦雨狂風久未晴
문밖에 나 있는 길 보행하기도 어려워라 / 出門有路覺難行
서책도 게을러 팽개치고 하릴없이 보내는 날 / 懶抛黃卷閑消日
청등 아래 꿈 깨고 나면 앉아서 그냥 새벽까지 / 夢斷靑燈坐徹明
저력
이 밝은 시대의 쓰임을 감히 기약할까 / 樗櫟敢期昭代用
고향 동산 솔과 대로 이 마음 마냥 달려가오 / 松筠不阻故園情
그대여 이웃집 닭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 보소 / 請君聽取隣鷄唱
비바람 소리에 잠시라도 멈추려 한 적 있는지 / 肯爲蕭蕭暫廢聲

가동이 아침에 일어나서 날이 활짝 갰다고 / 家童曉起報天晴
남쪽 이웃 들르려다 다시 뒤로 미루기로 / 欲訪南隣還未行
자미 탄식했던 분분히 내리는 장맛비요 /
伏雨紛紛愁子美
연명이 생각했던 제자리 맴도는 뭉게구름이라 /
停雲靄靄憶淵明
꾀가 엉성해 떠나지 못하니 정말 무용지물 / 計疎不去眞無賴
서로 만나 담소하고 싶은 오직 이 마음뿐 / 交淡相逢只此情
상서가 신발 없을 것도 알고말고 / 也識尙書妨曳履
신발 소리야말로 가문의 소리가 아니던가
/
履聲便是舊家聲

흐렸다 다시 개는 것을 처음엔 기뻐하였는데 / 始喜乍陰還乍晴
점점 장맛비가 되어 사람의 왕래 끊기게 했네 / 漸爲霖潦斷人行
시 읊느라 나그네 귀밑머리 눈처럼 세어지겠기에 / 應敎客鬢吟成雪
빈 뜰에 빗방울 소리만 새벽까지 들리게 했는지도 / 故向空階滴到明
오 리밖에 안 되는 거리도 소식 통할 수 없으니 / 五里未能通信字
시 몇 수로 애오라지 한가한 이 마음 풀 수밖에 / 數詩聊復遣閑情
그대가 부쳐 온 엄한 시율 정말 화답하기 어려워 / 寄來嚴律誠難和
양춘곡
몇 번째 소리쯤은 너끈히 되고도 남겠네 / 知是陽春第幾聲

고향 땅도 요즈음은 날이 맑지 못할 텐데 / 故山此日未應晴
옷 젖은 채 대숲 주위 돌던 일 생각나네 / 憶昔衣霑繞竹行
젖은 장작이 계수만큼 비싼 믿지 않을 테니 /
不信濕薪如桂貴
관솔 대신 관촉으로 그 누가 불을 밝히려 할까 / 肯將官燭代松明
밤이 깊으면 아녀자들의 오순도순 이야기들 / 夜深兒女團欒語
술이 익으면 이웃 간의 끈끈하게 얽히는 정 / 酒熟隣家繾綣情
누가 나를 경사에서 오래도록 나그네 되게 하여 / 誰使京華長作客
장맛비 낙숫물 소리만 지겹게 듣도록 하였는가 / 厭聞陰雨滴簷聲

흐렸다 갰다 반복하는 음산한 장맛비 / 久雨陰陰陰復晴
반걸음도 문밖으로 나가지 못했다네 / 未成跬步出門行
침침한 외로운 등불 아래 백년의 수취 / 百年愁醉孤燈暗
밝은 새벽의 거울 속에 쌍빈의 시반이라 / 雙鬢詩斑曉鏡明
내가 봐도 우스워라 세태를 따를 마음이 없으니 / 自笑無心隨世態
그대가 봐도 인정에 걸맞은 무슨 일이 있던가요 / 君看何事稱人情
서로 어울려 통음하는 것이 참으로 좋은 계책 / 相從痛飮眞良計
귀가 달아올라서 오엽성이 아예 들리지 않도록 /
耳熱不聞梧葉聲

 

[주D-001]하늘이…… : 《논어》 〈양화(陽貨)〉에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시가 운행하고 만물이 자라난다.〔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2]섭리(燮理) :
음 양의 변화 등 정()과 반()의 양 측면을 조화롭게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재상의 직무를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서경》 〈주관(周官)〉에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 등 삼공(三公)을 세워도를 논하고 나라를 경륜하며 음양을 섭리하게 한다.〔論道經邦 燮理陰陽〕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도견(陶甄) :
도공(陶工)이 녹로(轆轤)를 돌려서 각종 질그릇을 잘 만들어 내는 것처럼, 성군(聖君)이 선정을 펼쳐 천하를 잘 다스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D-004]남풍(南風)이……부르시기를 :
()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처음으로 만들어 남풍가(南風歌)를 지어 부르면서훈훈한 남쪽 바람이여, 우리 백성의 수심을 풀어 주기를. 제때에 부는 남풍이여, 우리 백성의 재산을 늘려 주기를.〔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이라고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禮記 樂記》
[주D-005]저력(樗櫟) :
크기만 할 뿐 아무 쓸모가 없어서 어떤 목수도 돌아보지 않는 산목(散木)이라는 뜻의 겸사로, 《장자》 〈소요유(逍遙遊)〉와 〈인간세(人間世)〉에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주D-006]자미(子美)가……장맛비요 :
두 보(杜甫)의 〈추우탄(秋雨歎)〉 시에지루하게 바람과 비 분분히 내리는 이 가을철, 사방팔방에 구름은 똑같이 옅은 먹빛. 오고 가는 말과 소도 구분할 수 없는데, 탁한 경수 맑은 위수 어떻게 구별하랴.〔闌風伏雨秋紛紛 四海八荒同一雲 去馬來牛不復辯 濁涇淸渭何當分〕라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3 秋雨嘆》 자미는 두보의 자이다.
[주D-007]연명(淵明)이……뭉게구름이라 :
도연명(陶淵明)이 친우를 생각하며 지은 〈정운(停雲)〉이라는 제목의 사언시에뭉게뭉게 제자리에 서 있는 구름이요, 부슬부슬 제때에 내리는 비라.〔靄靄停雲 濛濛時雨〕라는 말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1
[주D-008]상서(尙書)가……아니던가 :
고 위 관원인 상서를 대대로 지낸 세가(世家)의 후예인 정포(鄭誧)가 한미(寒微)한 가문 출신의 가정을 만나 보기 위해 신발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진흙탕 길에 빠지면서 가죽신을 끌고 찾아올 수는 없을 것이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한나라의 정숭(鄭崇)이 상서 복야(尙書僕射)로 발탁된 뒤에 아무도 못 하던 말을 감히 직간하곤 하였는데, 그가 가죽 신발을 끌고 오는 소리를 들으면 애제(哀帝)가 곧바로 그가 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77 鄭崇傳》
[주D-009]양춘곡(陽春曲) :
백 설곡(白雪曲)과 함께 따라 부르기 어렵기로 유명한 옛날 초나라의 고아(高雅)한 가곡 이름이다. 춘추 시대에 초나라에서 어떤 나그네가 하리(下里)와 파인(巴人)의 노래를 부르니 수천 명이 따라 불렀고, 양아(陽阿)와 해로(薤露)의 노래를 부르니 몇백 명이 따라 불렀는데, 양춘(陽春)과 백설(白雪)의 노래를 부르니 몇십 명밖에는 따라 부르지 못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文選 宋玉對楚王問》
[주D-010]젖은……테니 :
물가가 비싼 도시 생활을 말한다. 전국 시대 소진(蘇秦)초나라의 곡식은 옥보다도 귀하고, 장작은 계수나무보다 비싸다.〔楚國之食貴于玉薪貴于桂〕라고 불평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戰國策楚策3
[주D-011]수취(愁醉) :
마치 술에 취한 듯 깊은 시름 속에 빠진 것을 뜻한다.
[주D-012]시반(詩斑) :
고심하며 시를 짓느라 생긴 흰 머리털이라는 뜻이다.
[주D-013]귀가……않도록 :
세 월의 흐름도 잊고 실컷 취해서 시름을 잊어 보고 싶다는 말이다. 술에 대취(大醉)한 것을 형용할 때두 귀가 달아오른다〔耳熱〕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오동나무 잎사귀 하나가 떨어지면, 천하 모두가 가을이 온 것을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라는 말이 있다. 나무 중에서는 오동나무가 가장 먼저 잎이 진다고 한다. 《詩傳名物集覽卷12 梧桐生矣》

 

 

 

 

중부(仲孚)가 날이 개어 기쁘다고 재차 화답하며 서호(西湖)에 놀러 가자고 약속하기에 다시 지은 시 4

 


모진 바람 찌푸린 하늘 홀연히 맑게 개었으니 / 風盪窮陰忽放晴
누대 경치 좋은 곳에 한가히 놀러 가 볼거나 / 樓臺好處擬閑行
천표
로 씻어 내니 산과 강이 수려하고 / 天瓢洗出山河秀
옥촉
이 조화되매 해와 달이 빛나도다 / 玉燭調來日月明
남은 구름이 비 내릴 생각 품었는지 모르지만 / 猶恐殘雲含雨意
날 갠 경치 나눠 주어 시상 북돋울 모양일세 / 要分霽景助詩情
그냥 신나 읊은 시에 화답 귀찮게 생각 마오 / 新篇漫興休煩和
끙끙대며 읊을 때는 아예 죽는 소리를 낼 테니까 / 吟苦還嫌作乞聲

이웃집 웃는 소리 맑게 갰다고 시끌벅적 / 比隣笑語鬧初晴
얼른 청려장 짚고서 신발 신고 집 밖으로 / 急取靑藜着履行
고둥 점 박힌 먼 산은 구름 가로 나오고 / 螺點遠岑雲際出
까마귀 뒤치는 석양에 나무 허리 밝아라 / 鴉翻夕照樹腰明
곤곤히 낳고 길러 주는 하늘의 뜻을 보겠고 / 生成袞袞看天意
분분히 감정이 뒤바뀌는 세상의 정을 알겠도다 / 憂喜紛紛見世情
이처럼 서늘한 저녁에 함께 취할 이 없을는지 / 及此晩凉同一醉
문밖에 말 우는 소리 들리나 귀 기울여 보네 / 佇聞門外馬嘶聲

넘실대는 서호의 물 말끔히 씻긴 북산 모습 / 西湖水滿北山晴
산 아래에서 배를 타고 호수 위로 두둥실 / 山下乘舟湖上行
사면엔 천기가 드러나 찬란한 채색 노을이요 / 四面天機雲錦爛
한복판 선인의 누각엔 선명한 임금의 의장이라 / 中心仙閣翠華明
흰 구름 아득해라 활을 남긴 이라면 / 白雲杳杳遺弓恨
붉은 해 유유해라 기둥에 기댄 이로세 / 紅日悠悠倚柱情
이 사이에 멋진 시구 없으면 안 될 텐데 / 不可此間無好語
진작 명성 높은 그대가 다행히 있으니까 / 喜君自昔有詩聲

물빛과 산색이 농담(濃淡)을 희롱하는 이때 / 水光山色弄微晴
서호로 술 싣고 가는 것도 좋고말고요 / 好向西湖載酒行
아득히 물 위에 뜬 연주에 몸을 눕히고서 / 已臥蓮舟浮滉瀁
계즙으로 공명을 치는 소리를 듣는 멋이라니 /
更鳴桂楫擊空明
함께 노닐 약속을 그대 혼자 저버릴까 두려워 / 恐君孤負同遊約
온 세상이 분망하니 각자 사정이 있을지 아나 / 擧世奔忙各有情
뒷날 우리 만나면 허풍 쳤다고 웃을지도 몰라 / 他日相逢空大笑
이 시도 껄끄러워 제대로 읊어지지 않는구먼 / 此詩荒澁不成聲

 

[주D-001]천표(天瓢) : 천신(天神)이 비를 내릴 때 사용한다는 바가지이다.
[주D-002]옥촉(玉燭) :
촛불이 온윤(溫潤)하게 밝게 비치듯 사시의 기후가 화창한 것을 말한다. 옥촉이 조화롭다고 하는 것은,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서 계절에 따라 알맞은 기후가 펼쳐지듯이, 성군(聖君)이 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을 가리킨다.
[주D-003]활을 남긴 :
세 상을 떠난 제왕에 대한 추모의 정을 뜻하는 말이다. 황제(黃帝)가 형산(荊山) 아래에서 솥을 주조하고 나서 용을 타고 승천할 적에 신하와 후궁 70여 인을 함께 데리고 갔는데, 여기에 참여하지 못한 소신(小臣)들이 용의 수염을 잡고 있다가 용의 수염이 빠지는 바람에 모두 떨어졌고, 이때 황제의 활도 함께 떨어졌으므로, 백성들이 그 활을 안고 부르짖으면서 울었다고 하여 그 활을 오호궁(嗚呼弓)이라고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史記 卷28 封禪書》
[주D-004]기둥에 기댄 :
어 버이를 옆에서 모시지 못하고 객지에 나와 벼슬을 구하는 자식의 안타까운 심정을 뜻하는 말이다. 전국 시대 제나라 맹상군(孟嘗君)의 문객인 풍훤(馮諼)기둥에 기대어〔倚柱〕장검의 칼자루를 치면서 불만 섞인 노래를 부른 결과, 밥상에 고기가 놓이게 하고 외출할 때 수레가 있게 하였으며, 나아가 그의 노모를 부족함이 없게 봉양하도록 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戰國策 齊策4
[주D-005]계즙(桂楫)으로……멋이라니 :
계 즙은 계수나무로 만든 화려한 노라는 뜻이고, 공명(空明)은 달빛이 부서져 내리는 투명한 강물 빛을 의미한다. 소식(蘇軾)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강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치며 달빛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擊空明兮泝流光〕라는 말이 나온다.

 

 

 

 

정중부(鄭仲孚)가 거년(去年)에 울주(蔚州)에서 지은 동래(東萊)의 시 십 수를 나에게 보여 주기에 그 시에 차운하다

 


하늘은 삼신산 저 너머로 툭 트이고 / 天闊三山外
땅은 동해 바닷가에 외따로 구석졌네 / 地窮東海湄
사람이 이곳에 산 것은 먼 태곳적부터 / 民生自太古
세상의 운세는 바야흐로 중광(重光)이라 / 世運屬重熙
고을 원님들 사랑을 많이 남겼나니 / 作郡多遺愛
관풍하려면 여기에서 시를 채집해야지
/
觀風要採詩
객이 와서 지은 시가 벽에 가득하다마는 / 客來題滿壁
좋은 시구는 세상에서 응당 알 것이로다 / 佳句世應知

이 지역은 가는 곳마다 그대로 멋진 풍류 / 勝遊仍處處
즐거운 일도 어느 때나 벌어지곤 한다오 / 樂事亦時時
나 혼자 꽃 찾아 떠나온 유람 길에 / 我自尋花去
사람이 술 싣고 따라와 함께 노니네 / 人遊載酒隨
강물이 잔잔해서 노 젓는 일도 느릿느릿 / 江平移棹晩
산 경치가 좋아서 다리 건너다 멈춘다오 / 山好渡橋遲
평보는 비록 시를 짓지 않았다지만 /
平甫雖無作
중부는 응당 시가 있어야 하겠지요 / 仲孚宜有詩

왔다 갔다 하며 객 노릇하기 싫으니 / 行邁嫌爲客
아예 죽치고 앉아서 눌러 살아 볼거나 / 淹留擬卜居
난간에 기대면 듣지 못했던 새소리요 / 憑軒聞怪鳥
그물을 올리면 입맛 당기는 생선이라 / 擧網得嘉魚
서복도 여기에서 신선을 찾아갔고 /
徐福尋仙處
신라도 그 뒤에 공물을 들였다지 / 新羅入貢餘
외로운 성 그리고 높이 치솟은 고목들 / 孤城與喬木
눈에 온통 들어오니 자꾸 돌아볼 수밖에 / 極目故躊躇

산 앞에 있는 고색창연한 관사 / 山前官舍古
적취라는 이름의 그윽한 정자 /
積翠有幽軒
일단 매화로 담장을 두른 뒤에 / 旣以梅爲塢
내처 대나무로 사립을 달았구나 / 仍將竹作門
이만하면 그림 속의 풍속임을 알겠노니 / 故知圖畫俗
번거롭게 관현을 필요나 있겠는가
/
不借管絃繁
어떡하면 시 잘하는 나그네를 만나 / 安得能詩客
공무의 여가에 술잔을 주고받을까 / 公餘共置尊

평보는 이른 나이부터 이름을 날렸는데 / 平甫知名早
상상컨대 그 인품도 필시 단아했으리라 / 其人想必端
그 당시에 회자된 멋진 시구들 / 當時傳秀句
이 고을 전설 역시 청렴결백하였다고 / 此郡說淸官
하늘의 뜻을 누구를 통해 물어볼거나 / 天意憑誰問
벼슬할 생각이 이로부터 멀어지기만 / 宦情從此闌
돌아간 수레 다시는 멍에를 메지 못했으니 / 歸軒不復駕
예나 이제나 인재 얻기 어렵다는 탄식이여 /
今古嘆才難

홍간(洪侃)이 일찍이 이 고을의 수재(守宰)가 되었는데, 재직 중에 그만 작고하였다.


이곳은 옛날에 이 몸이 노닐었던 곳인데 / 昔我曾遊地
그대 지금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가다니 / 君今恣意行
선인의 거처는 바다에 들어가 궁벽하고 / 仙居入海僻
사람은 떠나서 유대의 태평이 되는도다 /
人去有臺平
산승과 함께 간다면야 즐거운 일이지만 / 喜伴山僧往
현령을 만나 영접받는 건 부담스러워 / 愁逢縣令迎
늘푸른나무 중에 모르는 품종도 많은데 / 冬靑多異卉
본토박이들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네 / 土俗不知名

욕실이 어느 해부터 있게 되었는지 /
浴室何年有
깨진 비석에도 다시 남아 있지 않네 / 殘碑無復存
땅이 신령스러워 샘이 마르지 않고 / 地靈泉不渴
물이 끓어올라 돌이 항상 따스하네 / 湯沸石常溫
뻔질나게 왕래하는 행락객들이요 / 行客往來數
영송하느라 수고하는 주민들이라 / 居人迎送煩
누가 부싯돌 그어서 땅속의 불을 지폈는지 / 誰敲發陰火
이 도리도 자세히 논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 / 此理亦難論

대나무 사이에 이상한 새들도 많은데 / 竹間多異鳥
객에게 이력이 나서 놀라 날아가지 않네 / 慣客不驚飛
홍속
은 아예 쪼아 먹을 줄도 모르나 봐 / 未解啄紅粟
취의
에게 아까워한 적은 없었으련만 / 何曾惜翠衣
맑은 낮 시간엔 울지 않고 고요하다가 / 晝晴啼寂寂
달빛 차가운 밤에 들리나니 조잘대는 소리 / 月苦聽依依
활 쏘는 사람도 없으니 또 얼마나 좋을까 / 更喜無彈射
그래서 네가 피할 뜻이 아예 없는 게로구나 / 爾生心莫違

부상
이 멀리 있다 그 누가 말하는가 / 扶桑豈云遠
바다가 온통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걸 / 一望海天長
구름을 헤치고 가서 확인할 필요 있나 / 不待披雲去
일출의 광경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걸 / 先瞻出日光
근처 해변에 부유하는 소금 굽는 연기요 / 鹽煙浮近渚
높은 언덕에 깜박이는 파수하는 불빛이라 / 戍火耿高岡
지금 다행히 태평 시대를 만났으니 / 幸値升平代
황상의 은혜를 어찌 감히 잊으리오 / 皇恩安敢忘

듣건대 십 년 전만 하더라도 / 聞說十年前
의창
에 썩는 곡식이 많았다고 / 義倉多腐陳
군왕이 재물을 욕심내지 않는다면 / 君王不好利
향리에 유랑하는 백성이 없을 터 / 鄕里少游民
선보에서는 거문고 타며 노래했고 / 單父彈琴日
내무에서는 시루에 먼지 가득했지
/
萊蕪滿甑塵
높은 누대에 송덕비를 세운다면 / 高臺表遺愛
주령
이 어쩌면 적임자가 아닐는지 / 周令豈其人

 

[주C-001]정중부(鄭仲孚) : 중 부는 정포(鄭誧 : 13091345)의 자이다. 충혜왕(忠惠王) 때에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의 신분으로 내정(內政)을 개혁하려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면을 당하였다. 이때 원나라로 망명하려 한다는 참소를 받고 울주(蔚州)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도 장부의 기개를 굽히지 않고서 태연히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주D-001] 고을……채집해야지 :
이 지역에 와서 백성을 다스린 사람들이 선정을 베풀어 그들이 떠난 뒤에도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풍속을 관찰하기 위해 시를 채집하는 사람들은 응당 여기에 와서 수집해 가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예기》 〈왕제(王制)〉에천자가 5년에 한 번씩 천하를 순수(巡守)할 적에, 태사(太史)에게 명하여 시를 채집하게 한 뒤에, 백성의 풍속을 관찰하는 자료로 삼았다.”라는 내용이 나오고,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옛날에시를 채집하는 관원〔采詩之官〕을 두고서 왕자(王者)가 그 시들을 통해 풍속을 관찰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주D-002]평보(平甫)는……않았다지만 :
평 보는 홍간(洪侃 : ?
1304)의 자이다. 언사(言事) 때문에 동래 현령(東萊縣令)으로 좌천되어 1304(충렬왕30)에 그곳에서 죽었다. 당시 송나라의 시인들을 추종하는 풍조 속에서 유독 성당(盛唐)의 시풍(詩風)을 견지하며 명성을 날렸는데, 그가 시를 한 수 지을 때마다 사람들이 다투어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10세손 홍방(洪滂)이 여러 문헌에 흩어져 전하던 유고를 모아서 1608(선조41)에 초간본을 간행하였고, 그 뒤 12세손 홍만조(洪萬朝) 1688(숙종14)에 중간본을 간행하였는데, 한국문집총간 2집에 《홍애유고(洪崖遺槀)》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정포의 문집인 《설곡집(雪谷集)》 하() 〈동래잡시(東萊雜詩)〉에당시에 우리 홍평보로 말하면, 붓끝에서 파란이 일어났었지. 세상을 만나지 못한 높은 그 재주, 만년에 여기에 와서 원님이 됐다네. 초췌한 육신은 병이 들었어도, 시를 읊조리는 흥은 아직 다하지 않았다오. 그런데 벽 사이에 한 자도 남기지 않다니, 어쩌면 화운하기 어렵게 여길까 그랬는지도.〔當日洪平甫 波瀾起筆端 高才不遇世 晩歲此爲官 憔悴身仍病 吟哦興未闌 壁間無一字 豈爲和詩難〕라는 시가 있다.
[주D-003]서복(徐福)도……찾아갔고 :
방 사(方士) 서복이 동해(東海)의 삼신산(三神山)에 불사약이 있다고 진 시황(秦始皇)을 속인 뒤에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가 소식이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에 도착했더라는 전설이 전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주D-004]적취(積翠)라는……정자 :
동래(東萊) 객관(客館) 뒤에 적취헌(積翠軒)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주D-005]이만하면……있겠는가 :
이 쯤 되면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상적인 광경이라고 할 것이니, 굳이 예악의 교화를 펼치면서 어렵게 정사를 행할 것도 없으리라는 말이다.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으로 있을 적에, 조그마한 고을에서 현가(弦歌) 소리를 울리며 예악의 정사를 펼치자, 닭을 잡는 데에 소 잡는 칼을 쓴다고 공자가 웃으면서 농담을 한 고사가 전한다. 《論語 陽貨》
[주D-006]예나……탄식이여 :
《논어》 〈태백(泰伯)〉에인재 얻기가 어렵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맞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才難 不其然乎〕라는 공자(孔子)의 말이 나온다.
[주D-007]사람은……되는도다 :
정 포(鄭誧)가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왔으니, 앞으로 태평의 기틀을 다지는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시경》〈소아(小雅)〉에 〈남산유대(南山有臺)〉 장이 있는데, 모서(毛序)남산유대는 현인을 얻은 것을 기뻐한 시이다. 현인을 얻으면 국가를 잘 다스려서 태평의 기틀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기뻐한 것이다.〔南山有臺 樂得賢也 得賢則能爲邦家 立太平之基矣〕라고 하였다.
[주D-008]욕실(浴室)이……되었는지 :
《설곡집》 〈동래잡시〉에온천이 옛날부터 전해 오나니, 욕실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오.〔溫泉傳自昔浴室至今存〕라는 구절이 있다.
[주D-009]홍속(紅粟) :
큰 창고에 듬뿍 쌓여서 빨갛게 썩어 가는 곡물을 말한다.
[주D-010]취의(翠衣) :
파랑새라는 뜻의 시어이다.
[주D-011]부상(扶桑) :
해 뜨는 동쪽 바다 속에 있다는 전설상의 신목(神木) 이름이다.
[주D-012]의창(義倉) :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세운 곡물 창고를 말한다. 흉년 또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풍년 또는 추수기에 거두어들였는데, 고려 태조 때의 흑창(黑倉) 986(성종5)에 의창으로 개칭하여 각 주부(州府)에 설치하였다.
[주D-013]선보(單父)에서는……가득했지 :
어 진 정사를 베푼 청백한 수령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공자의 제자 복자천(宓子賤)이 선보 고을의 수령이 되었을 적에 마루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 없이 거문고만 연주했는데도 잘 다스려지며 교화가 이루어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呂氏春秋 察賢》 또 내무(萊蕪) 고을의 수령으로 임명되었던 후한의 범염(范冉)이 가난하게 살면서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자, 사람들이범사운의 시루 속에서는 먼지만 풀풀 나고, 범 내무의 가마솥 속에는 물고기가 뛰논다네.〔甑中生塵范史雲 釜中生魚范萊蕪〕라고 노래를 지어 찬미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81 范冉列傳》
[주D-014]주령(周令) :
정 포(鄭誧)의 시에 나오는 인물로, 동래에서 선정을 행했던 수령이다. 《설곡집》 〈동래잡시〉에주령에 대해서 그 누가 안다 할까, 강변의 누대에 자취도 이미 묵었는걸. 그 분이 어진 원님인 것을 아다마다요, 지금도 은덕을 말하는 유민이 있는걸요.〔周令誰相識 江臺跡已陳 知渠是循吏 說德有遺民〕라는 구절이 나온다.

 

 

 

 

 

객사(客舍)

 


객사가 큰길가에 있는 탓으로 / 客舍臨官道
밤이고 낮이고 수레 달리는 소리 / 輪蹄日夜行
내가 아직도 간록을 배우려 하며 / 吾猶學干祿
치명에 함께함을 스스로 슬퍼하노라
/
自惜共馳名
세상일은 구름이 변하듯 모두 바뀌고 / 世事雲俱變
돌아가고픈 마음은 달처럼 유독 밝아라 / 歸心月獨明
고향의 가을도 지금은 날이 개어서 / 故山秋已霽
잠자리에 조금씩 서늘 기운 생기련만 / 枕簟嫩凉生

 

[주D-001]내가……슬퍼하노라 : 벼 슬 때문에 매일 여유도 없이 쫓기는 심정을 술회한 말이다. 간록(干祿)은 《논어》 〈위정(爲政)〉에 나오는 자장(子張)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녹봉을 구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치명(馳名)은 명성을 치달린다는 뜻으로, 한유(韓愈)요란스럽게 명성을 치달리는 자들이야, 어느 누가 하루라도 한가할 수 있으리오. 나는 여기에 와서 어울릴 사람 없으니, 술잔 들고 한가롭게 남산의 경치를 대하노라.〔擾擾馳名者 誰能一日閒 我來無伴侶 把酒對南山〕라는 시에서 나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9 把酒》

 

 

 

 

두 분의 김 지평(金持平)에게 축하하며 부치다

 


술잔 앞에서 세월을 취해 보내고 / 醉度尊前歲月
붓끝에서 풍상을 불러일으키는 분 / 起來筆下風霜
사직은 반석 위에 안정시켰다마는 / 盤石已安社稷
강상은 고황처럼 다스리기 어려워 / 膏盲難理綱常

 

[주D-001]풍상(風霜) : 준엄하고 엄숙하게 시문을 짓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한나라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홍렬(鴻烈) 21편을 편찬하고는글자마다 모두 풍상의 기운을 담고 있다.〔字中皆挾風霜〕라고 자부한 고사가 있다. 《西京雜記 卷3

 

 

 

신초정(辛草亭)에게 부치다

 


이미 자후의 뒤를 따라 징구를 생각하는 터에 / 已從子厚思懲咎
감히 양웅을 편들며 해조를 지으려 하겠는가
/
敢與楊雄作解嘲
벼슬길에선 백년의 우호가 일찍이 없었어도 / 宦路曾無百歲好
사람의 정리는 십 년 우정을 잊으면 안 되겠지 / 人情莫忘十年交

 

[주C-001]신초정(辛草亭) : 초정은 신예(辛裔 : ?1355)의 호이다. 그는 《고려사》 〈간신열전(奸臣列傳)〉에 나오는 인물이다.
[주D-001]이미……하겠는가 :
중 앙의 고위 관직에 몸담고서 국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려고 했던 지난날의 잘못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으니, 누가 조롱하며 비웃더라도 자신을 변호하며 해명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뜻이다. 자후(子厚)는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자이다. 〈징구(懲咎)〉는 그가 굴원(屈原)의 〈이소(離騷)〉를 본떠서 지은 부()의 이름으로 과거의 잘못된 생각을 후회하며 징계한다는 뜻이다. 유종원이 당 순종(唐順宗) 때 잠깐 권력을 장악했던 이른바 왕숙문(王叔文)의 당에 속해서 예부 원외랑(禮部員外郞)의 신분으로 국정에 참여하다가, 헌종(憲宗)이 즉위하면서 소주 자사(邵州刺史)를 거쳐 영주 사마(永州司馬)로 좌천되고 다시 유주 자사(柳州刺史)로 나가 그곳에서 죽었는데, 이 부는 영주 사마 때에 지은 것이다. 《신당서(新唐書)》 권168〈유종원열전(柳宗元列傳)〉에지난날의 잘못에 대해서 민망하게 여기고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후회하는 뜻에서 스스로 경계하는 부를 지었다.〔閔悼悔念往咎作賦自儆〕라고 하고 이어서 전문(全文)을 소개하고 있다. 〈해조(解嘲)〉는 한나라 양웅(揚雄)이 벼슬길에서 승진하지 못하는 자기를 비웃는 혹자의 조롱에 대해서 이를 해명하기 위해 지은 글 이름이다.

 

 

 

 

안강(安康) 이 선생(李先生)에게 부치다

 


늙음이야 운명이니 어떻게 막으랴만 / 有命那禁老
구하지 않고도 저절로 높아지시는 분 / 無求自得高
산림에서 누리시는 백년의 낙이라면 / 山林百歲樂
헌면
을 구하려 고생하는 이 한평생 / 軒冕一生勞

이 몸은 압록강을 건너 삼천 리 / 我經鴨淥三千里
공은 계림에 누워 어언 이십 년 / 公臥鷄林二十年
출처와 한망은 달라도 모두 백발인데 / 出處閑忙俱白髮
한잔 술 바칠 길 없어 한스러울 뿐 / 一尊相對恨無緣

 

[주D-001]헌면(軒冕) : 헌 면은 수레와 면류관이라는 말로, 관작과 봉록 등 높은 벼슬을 뜻하는데, 《장자》 〈선성(善性)〉에헌면이 몸에 있는 것은 본래 성명처럼 내 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외물(外物)이 뜻밖에 우연히 와서 잠시 붙어 있는 것이다.〔軒冕在身 非性命也 物之儻來寄也〕라는 말이 나온다.

 

 

 

 

병술년(1346, 충목왕2) 중추(中秋)에 한양부(漢陽府)에 제()하다

 


만리 길 돌아온 것은 노친이 그리워서 / 萬里歸來爲老親
올해 들어 부쩍 늘어난 하얀 귀밑머리 / 今年剩得鬢絲新
타향에서 중추의 달을 또 보다니 / 他鄕又見中秋月
부세의 백세인
은 그저 허풍일 뿐 / 浮世徒誇百歲人
적막해라 명절에 얘기 나눌 사람도 없고 / 寂寞良辰誰與語
황량해라 고관에 혼자 마음만 상할 따름 / 荒凉古館暗傷神
벽 위에 남긴 시들 쉽게도 닳아 없어져서 / 留題壁上易磨滅
애써 일어나 등불 켜고 소매로 먼지 닦노매라 / 强起呼燈袖拂塵

 

[주D-001]부세(浮世) 백세인(百歲人) : 불 교의 전설에 의하면, 수미산(須彌山) 남쪽의 염부제(閻浮提)라는 곳에서는 사람의 수명이 100세라는 기록이 있다. 참고로 수미산 동쪽의 불우건(弗于建)에서는 수명이 300, 서쪽의 구타니(瞿陀尼)에서는 200, 북쪽의 울단월(鬱丹越)에서는 1000세라고 한다. 《震澤長語 卷下 仙釋》 염부제는 염부주(閻浮洲) 혹은 섬부주(贍部洲)라고도 하는데, 원래는 인도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인간 세상의 총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듬해에 또 한양부에 제하다

 


친한 사람 하나 없이 쓸쓸하게 텅 빈 관소 / 空館寥寥誰見親
혼자서 읊노라니 시상이 더욱 청신하네 / 獨吟詩思更淸新
산을 대하 언제나 부끄러운 떠돌이 신세 /
對山長愧作行客
대나무가 있으니 주인이 없어도 무방하이 /
有竹不妨無主人
일시의 훼예 때문에 절조를 바꾸기도 하고 / 毁譽一時移節操
백세의 공명 때문에 정신을 허비하기도 하고 / 功名百歲費精神
작년의 시는 황토를 발라서 말소해야 할 것이니 / 舊題只合黃泥埽
애써 먼지 묻지 않게 사롱을 할 것이 있으리오 / 安用紗籠强護塵

 

[주D-001]산을……신세 : 아 직도 세상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이록(利祿)을 추구하며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처지가 부끄럽기만 하다는 말이다. 남조 송나라의 공치규(孔稚珪)가 북산(北山)에서 함께 은자 생활을 하다가 변절을 하고 벼슬길에 나선 주옹(周顒)을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산신령의 이름을 가탁하여 신랄하게 풍자하면서 다시는 그를 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북산이문(北山移文)〉이라는 글을 지은 고사가 있다.
[주D-002]대나무가……무방하이 :
()나라 왕휘지(王徽之)가 주인이 없는 빈집에 잠시 거처할 적에 대나무를 빨리 심도록 다그치자,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니, “어떻게 하루라도 차군이 없이 지낼 수가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耶〕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왕휘지는 명필 왕희지(王羲之)의 아들이고, 차군(此君)은 대나무의 별명이다.
[주D-003]사롱(紗籠) :
벽 사롱(碧紗籠)의 준말로, 먼지가 묻지 않도록 푸른 깁으로 감싸서 벽에 쓴 시문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왕파(王播)가 어려서 가난하여 양주(楊州) 혜소사(惠昭寺) 목란원(木蘭院)의 객이 되어 글을 읽으며 승려들을 따라 잿밥〔齋食〕을 얻어먹었는데, 승려들이 염증을 내어 재가 모두 파한 뒤에야 종을 치곤 하였다. 그 뒤 20여 년이 지난 뒤에 왕파가 중한 지위에 있다가 이 지방에 출진(出鎭)해서 그 절을 찾아갔더니, 지난날 자기가 벽에다 써 놓은 시를 벌써 푸른 비단으로 감싸 놓고 있었으므로, 그 시의 뒤에이십 년 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오늘에야 푸른 깁으로 장식되었구나.〔二十年來塵撲面 如今始得碧紗籠〕라고 써넣은 고사가 있다. 《唐摭言 起自寒苦》

 

 

 

여흥(驪興)의 객사(客舍)에서 차운하다

 


이 경치를 붓끝 안에 들여놓는다면 / 如將此景入毫端
글은 소황이요 글씨는 안이어야 하리 /
文要蘇黃字要顔
지금은 바로 주민들이 부역에 시달리는 때 / 政爲居民愁賦役
과객이 강산을 감상할 여유가 어디 있으랴 / 寧容過客賞江山
여염 안에 있는 흰 물결 푸른 산은 / 白波靑嶂閭閻裏
적안 은하
와 백중의 사이라고 할까 / 赤岸銀河伯仲間
누에서 하루 묵은 것으론 아무래도 부족하니 / 一宿樓中猶未足
조각배 타고 뒷날 느긋하게 유람을 해야 할 듯 / 扁舟他日辦長閑

 

[주D-001]글은……하리 : 소황(蘇黃)은 송나라 문장가인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의 병칭이고, ()은 당나라의 명필 안진경(顔眞卿)이다.
[주D-002]적안(赤岸) 은하(銀河) :
당 나라 화가 왕재(王宰)가 그린 곤륜방호도(崑崙方壺圖)를 보고 해학적으로 지은 두보(杜甫)의 시에파릉의 동정호와 일본의 동해, 그리고 은하수와 통하는 적안의 물까지.〔巴陵洞庭日本東 赤岸水與銀河通〕라는 말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9 戲題王宰畫山水圖歌》 적안(赤岸)은 산 이름으로 양주(揚州) 강도현(江都縣)에 있다.

 

 

 

성 안렴(成按廉) 여안(汝安)에게 부치다

 


황도의 오랜 벼슬살이에 못내 어버이 그리다가 / 久宦皇都苦憶親
돌아와 정성하는 이 기쁨 형언하기 어려워라 / 朅來定省喜難言
산촌이 영락해서 감지의 봉양은 못하오만 / 山村冷落無甘旨
단란하게 담소하는 자손의 즐거움은 있다오 / 笑語團
有子孫
복랍
은 이웃 노인과 함께하기로 하였소만 / 已與隣翁同伏臘
안부 묻는 과객의 대접은 항상 미안하기만 / 常嫌過客問寒暄
내년 봄 순행 끝내고 장차 귀환할 때가 되면 / 明春巡罷將還旆
낚시터 정리하고 술 한잔 나눠 볼 생각이오 / 擬掃漁磯共一尊

 

[주D-001]정성(定省) : 혼 정신성(昏定晨省)의 준말로, 어버이를 정성껏 모시는 것을 말한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자식이 된 자는 어버이에 대해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려야 하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 인사를 올려야 한다.〔冬溫而夏凊昏定而晨省〕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감지(甘旨) 봉양 :
어 버이에게 맛 좋은 음식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예기》 〈내칙(內則)〉에새벽에 어버이에게 아침 문안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올리며, 해가 뜨면 물러나 각자 일에 종사하다가, 해가 지면 저녁 문안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올린다.〔昧爽而朝 慈以旨甘日出而退 各從其事 日入而夕 慈以旨甘〕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복랍(伏臘) :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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