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집자료 ▒

가정집 제16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13. 01:51

 

가정집 제16

 

 

 율시(律詩)

 

 

 

기 재상(奇宰相)이 새로 정승에 임명되어 신정(新正)을 축하하러 황궁에 들어가는 것을 축하하다 2

 


하늘이 구가의 풍도를 크게 떨치게 해 주려고 / 天敎大振舊家風
강사의 나이
에 시중의 임명을 받게 하였도다 / 强仕之年拜侍中
물어보세 지금 누가 이와 같을 수 있는지 / 借問如今誰得似
황조의 척원으로 저궁을 접견하는 이분
/ 皇朝戚
接儲宮

새벽바람 속에 의장(儀仗)이 동서로 늘어서고 / 玉仗東西立曉風
만국의 의관이 모두 모여 궁정에 도열하리라 / 衣冠萬國在庭中
오늘 황궁에 조회하러 떠나는 그대 부러워라 / 羨君此日朝元去
나도 조관(朝官)의 명단에 올라 양궁에 숙직했었느니 / 通籍吾曾直兩宮

 

[주D-001]강사(强仕) 나이 : 40세를 말한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나이 사십을 강이라고 하니, 이때에 벼슬길에 나선다.〔四十曰强而仕〕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황조(皇朝)의……이분 :
기 철(奇轍)을 말한다. 그의 누이동생이 원나라 순제(順帝)의 제2 황후가 되어, 황태자 아이유시리다라〔愛猶識理達臘〕를 낳았다. 척원(
)은 척리(戚里)와 같은 말로, 황제의 인척을 뜻한다. 저궁(儲宮)은 동궁(東宮)과 같은 말로, 태자를 뜻한다. 기철이 외숙의 신분으로 황태자를 만난다는 말이다.

 

 

 

신사년(1341, 충혜왕 복위2) 원일(元日)에 감회에 젖어

 


노모 위해 귀가한 뒤로 네 번째 맞는 봄 / 爲母還家四見春
금년 원일에는 남몰래 가슴이 아파 오네 / 今年元日暗傷神
거울 속에 백발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 鏡中不獨添華髮
감지
대신 약물만 자꾸 올려야 했으니까 / 甘旨供疎藥餌頻

어버이 연세가 칠십 하고 삼 세라서 / 親年七十又三春
깊이 희구하며 신명에 묻는 심정이라 /
喜懼情深却問神
단지 소원은 안락하게 기이의 을 누리시며 / 但願期
安且樂
금화 탕목의 은혜를 계속 받으시기만을 /
金花湯沐賜頻頻

올봄에 임기가 끝나 원조(元朝)로 돌아갈 몸 / 秩滿還朝在此春
늙으신 어버이 생각하면 마음이 서글퍼지네 / 爲緣親老愴精神
백년 동안 이유를 다하여 봉양할 수만 있다면 / 百年儻盡怡愉養
천리 길 자주 왕래한들 무슨 상관 있으리오 / 千里何妨往返頻

아이들 너도나도 새봄 맞아 기뻐하며 / 兒童共喜見新春
폭죽과 도부로 나쁜 귀신들 쫓아낸다네 /
竹爆桃符辟鬼神
우스워라 나도 옛날엔 너희들과 같았는데 / 笑我異時如汝輩
지금은 자꾸 나이만 먹는 게 겁이 난단다 / 而今却怕得年頻

 

[주D-001]감지(甘旨) : 어 버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말이다. 《예기》〈내칙(內則)〉에새벽에 어버이에게 아침 문안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올리며, 해가 뜨면 물러나 각자 일에 종사하다가, 해가 지면 저녁 문안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올린다.〔昧爽而朝 慈以旨甘日出而退 各從其事 日入而夕 慈以旨甘〕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깊이……심정이라 :
노 모의 연세를 떠올리면 기쁜 한편으로 두려운 생각이 들면서, 언제까지 사실 수 있을는지 신명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이다. 《논어》 〈이인(里仁)〉에부모의 연세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나니, 한편으로는 오래 사셔서 기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살아 계실 날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3]기이() :
백 년의 수명을 누리면서 자손의 봉양을 받는 것을 뜻한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백 년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최고의 수명이니, 자손들은 최대한으로 봉양을 해야 마땅하다.〔百年曰期
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금화(金花)……받으시기만을 :
노 모를 영광스럽게 봉양할 수 있는 일만 계속해서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언젠가는 금화의 조서를 보게 될 것이니, 탕목읍(湯沐邑)을 하사받고 조청을 받들 수 있으리라.〔會看金花詔 湯沐奉朝請〕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27 送程建用》 이에 대해서 해설한 송나라 왕십붕(王十朋)의 주에, 군부인(郡夫人)에게는 금화의 나지(羅紙)를 사용해서 탕목읍을 하사하고 조청(朝請)을 받들게 하는데, 이는 그야말로 어버이를 받드는 영광스러운 일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東坡詩集註 卷16 送程建用》 조청은 봄과 가을의 조회를 뜻한다.
[주D-005]이유(怡愉) :
어버이를 옆에서 모시면서 기쁘고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을 말한다.
[주D-006]폭죽과……쫓아낸다네 :
섣 달 그믐날 밤과 새해 아침에 폭죽을 터뜨리면 질병을 옮기는 악귀가 그 소리를 듣고 달아난다고 하였다. 도부(桃符)는 두 개의 복숭아나무 판자에다 신도(
)와 울루(鬱壘)의 두 귀신 이름을 써서 만든 부적으로, 사기(邪氣)를 막을 목적으로 정초에 이것을 문간에 걸어 두었다. 《說12 鬱壘》

 

 

 

 

신사년(1341, 충혜왕 복위2) 원일(元日)에 감회에 젖어

 


노모 위해 귀가한 뒤로 네 번째 맞는 봄 / 爲母還家四見春
금년 원일에는 남몰래 가슴이 아파 오네 / 今年元日暗傷神
거울 속에 백발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 鏡中不獨添華髮
감지
대신 약물만 자꾸 올려야 했으니까 / 甘旨供疎藥餌頻

어버이 연세가 칠십 하고 삼 세라서 / 親年七十又三春
깊이 희구하며 신명에 묻는 심정이라 /
喜懼情深却問神
단지 소원은 안락하게 기이의 을 누리시며 / 但願期
安且樂
금화 탕목의 은혜를 계속 받으시기만을 /
金花湯沐賜頻頻

올봄에 임기가 끝나 원조(元朝)로 돌아갈 몸 / 秩滿還朝在此春
늙으신 어버이 생각하면 마음이 서글퍼지네 / 爲緣親老愴精神
백년 동안 이유를 다하여 봉양할 수만 있다면 / 百年儻盡怡愉養
천리 길 자주 왕래한들 무슨 상관 있으리오 / 千里何妨往返頻

아이들 너도나도 새봄 맞아 기뻐하며 / 兒童共喜見新春
폭죽과 도부로 나쁜 귀신들 쫓아낸다네 /
竹爆桃符辟鬼神
우스워라 나도 옛날엔 너희들과 같았는데 / 笑我異時如汝輩
지금은 자꾸 나이만 먹는 게 겁이 난단다 / 而今却怕得年頻

 

[주D-001]감지(甘旨) : 어 버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말이다. 《예기》〈내칙(內則)〉에새벽에 어버이에게 아침 문안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올리며, 해가 뜨면 물러나 각자 일에 종사하다가, 해가 지면 저녁 문안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올린다.〔昧爽而朝 慈以旨甘日出而退 各從其事 日入而夕 慈以旨甘〕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깊이……심정이라 :
노 모의 연세를 떠올리면 기쁜 한편으로 두려운 생각이 들면서, 언제까지 사실 수 있을는지 신명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이다. 《논어》 〈이인(里仁)〉에부모의 연세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나니, 한편으로는 오래 사셔서 기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살아 계실 날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3]기이() :
백 년의 수명을 누리면서 자손의 봉양을 받는 것을 뜻한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백 년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최고의 수명이니, 자손들은 최대한으로 봉양을 해야 마땅하다.〔百年曰期
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금화(金花)……받으시기만을 :
노 모를 영광스럽게 봉양할 수 있는 일만 계속해서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언젠가는 금화의 조서를 보게 될 것이니, 탕목읍(湯沐邑)을 하사받고 조청을 받들 수 있으리라.〔會看金花詔 湯沐奉朝請〕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27 送程建用》 이에 대해서 해설한 송나라 왕십붕(王十朋)의 주에, 군부인(郡夫人)에게는 금화의 나지(羅紙)를 사용해서 탕목읍을 하사하고 조청(朝請)을 받들게 하는데, 이는 그야말로 어버이를 받드는 영광스러운 일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東坡詩集註 卷16 送程建用》 조청은 봄과 가을의 조회를 뜻한다.
[주D-005]이유(怡愉) :
어버이를 옆에서 모시면서 기쁘고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을 말한다.
[주D-006]폭죽과……쫓아낸다네 :
섣 달 그믐날 밤과 새해 아침에 폭죽을 터뜨리면 질병을 옮기는 악귀가 그 소리를 듣고 달아난다고 하였다. 도부(桃符)는 두 개의 복숭아나무 판자에다 신도(
)와 울루(鬱壘)의 두 귀신 이름을 써서 만든 부적으로, 사기(邪氣)를 막을 목적으로 정초에 이것을 문간에 걸어 두었다. 《說12 鬱壘》

 

 

 

신사년(1341) 여름 연경(燕京)에 들어가면서 장눌재(張訥齋)에게 부치다

 


청명한 시대에 성곽 남쪽 별장에 높이 누우신 분 / 淸時高臥郭南莊
추진
이나 하며 귀밑머리 허예진 나를 웃으시겠지 / 笑殺趨塵兩鬢蒼
강변의 길 따라 돌아갈 생각이 어찌 없으리오마는 / 豈不懷歸江上路
시랑이 막고 있는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 却嫌當道有豺狼

 

[주C-001]장눌재(張訥齋) : 눌재는 장항(張沆 : ?1353)의 호이다.
[주D-001]추진(趨塵) :
비 굴한 태도로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나라 반악(潘岳)세상의 명리를 좇은 나머지〔趨世利〕’, 석숭(石崇) 등과 함께 당시의 권신인 가밀(賈謐)에게 아첨하면서, 가밀이 외출할 때마다수레가 일으키는 먼지를 바라보며 절을 했다〔望塵而拜〕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55 潘岳列傳》
[주D-002]시랑(豺狼)이…… :
포 학하고 간사한 자들이 국정(國政)을 제멋대로 농락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 순제(順帝) 때 장강(張綱)이 지방 풍속을 순찰하라는 명을 받자, 타고 갈 수레의 바퀴를 낙양(洛陽) 도정(都亭)의 땅에 묻고서승냥이와 늑대가 지금 큰길을 막고 있으니, 여우와 살쾡이 따위야 굳이 따질 것이 있겠는가.〔豺狼當路 安問狐狸〕하고 가지 않았던 데서 온 말이다.

 

 

 

 

절성(浙省)의 검교(檢校)로 나가는 동년(同年) 달겸선(達兼善)을 전송하며

 


경림에서 처음 빼어난 경지 /
瓊林初見秀瓊枝
황궁에서 함께 노닌 그때가 다시 떠오르오 / 更憶同遊玉禁時
화로의 향 하늘 가까이 바람은 산들산들했고 / 天近爐香風細細
촛불 그림자 가을 깊어 밤은 길고 길었지요 / 秋深燭影夜遲遲
수레 먼지 자욱한 도성 거리 다시 이별하고 나면 / 車塵九陌還相別
지붕의 쳐다보며 년을 그리워하리이다 /
梁月三年有所思
뜻대로 된 남행 길 부러워할 만도 하오마는 / 得意南行雖可羨
어떻게 또 송별하는 시를 지을 수 있으리까 / 那堪又作送行詩

 

[주D-001]경림(瓊林)에서……경지(瓊枝) : 가 정이 달겸선(達兼善)과 함께 제과(制科)에 급제한 뒤에 축하연에서 그를 처음으로 만나 보았다는 말이다. 경림은 경림원(瓊林苑)의 준말로, 송나라 때 새로 급제한 자들에게 축하 연회를 베풀어 주었던 장소이고, 경지는 옥수(玉樹)와 같은 말로, 재질이 우수한 인재를 비유하는 말이다.
[주D-002]지붕의……그리워하리이다 :
멀 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추억에 잠길 때 쓰는 표현이다.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을 그리워하며지는 달이 지붕을 가득히 비추나니, 그대의 밝은 안색 행여 보는 듯.〔落月滿屋梁 猶疑見顔色〕이라고 노래한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杜少陵詩集 卷7 夢李白》

 

 

 

중시(仲始) 사보(思補)에게 부치면서 박 판사(朴判事)에게도 증정하다

 


산림에 부쳐 숨어 곳을 구할 수도 없으니 /
山林無處着幽棲
압록강 서쪽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이 한스럽네 / 恨不身生鴨水西
만촉의 전쟁
과 같은 덧없는 세상의 명리라면 / 浮世利名蠻戰觸
초인(楚人)들이 떠들어대는 낯선 땅의 언어로세 /
他鄕言語楚咻齊
우연히 들은 최근의 소식에 가슴이 또 에이는 듯 / 忽聞新事心還折
친한 분들 언제나 잊지 못해 꿈속에 더욱 헤매오 / 長憶親交夢轉迷
두 분 집안에도 물론 자제들이 있을 텐데 / 幸有兩家兒子在
혜계
와 같은 습관이 들게 하지는 않겠지요 / 休敎習慣似醯鷄

 

[주C-001]중시(仲始) 사보(思補) : 중시는 김대경(金臺卿)의 자이고, 사보는 정언(正言)을 개칭(改稱)한 정6품 관직 이름이다.
[주D-001]산림(山林)에……없으니 :
권세를 부리는 자들이 산천을 모두 겸병(兼幷)하는 바람에 은거할 만한 조그마한 땅도 구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주D-002]만촉(蠻觸) 전쟁 :
와우(蝸牛) 즉 달팽이의 두 뿔에 만()과 촉()이라는 나라가 각기 자리 잡고서 하루가 멀다 하고 피를 흘리며 서로 싸운다는 이야기가 《장자》 〈칙양(則陽)〉에 나온다.
[주D-003]초인(楚人)들이……언어로세 :
고 국과 달리 생소한 중국 말만 주위에서 시끄럽게 들린다는 말이다. 초나라 사람이 제나라 말을 아들에게 가르치려고 제나라 사부를 영입하더라도, 많은 초나라 사람들이 옆에서 떠들어 댄다면 제나라 말을 제대로 습득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나온다.
[주D-004]혜계(醯鷄) :
술 단지에 생기는 초파리 종류의 하루살이 벌레로, 주색(酒色) 등 향락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자들의 비유로 흔히 쓰인다.

 

 

 

 

식무외(式無外)의 염주(念珠)에 대해서 장난삼아 짓다

 


항하의 모래
숫자만큼 다 돌리려 한다 해도 / 數到恒沙欲盡頭
일어나는 생각만은 여전히 없애기 어려울 터 / 須知此念尙難周
그보다는 차라리 마음과 손을 모두 잊고 / 不如心手渾忘了
술잔 숫자나 세도록 우리들에게 주셨으면 / 付與吾曹當酒籌

끝과 시작은 분명히 꼬리와 머리라 할 것인데 / 終始端如尾與頭
돌리면 돌릴수록 어디가 꼬리이고 머리인지 / 循環轉覺未能周
없이 많은 날을 스님이 염불한 뒤에야 / 待師數盡微塵日
우리에게 일백 주나 아래인 것을 면하리라
/
可免輸吾一百籌

삼라만상이 실상(實相)의 도리를 드러내고 있으니 / 塵塵刹刹露頭頭
한 생각 초연하면 자연히 원만구족(圓滿具足)하리 / 一念超然已自周
있을 때마다 염주 쥐고 세어야 한다면 / 逐物若須枚數去
종일 아주를 손에 것과 무엇이 다르리오
/
何殊終日執牙籌

 

[주D-001]항하(恒河) 모래 : 인도 항하의 모래로, 곧 무량(無量)의 수를 이른다.
[주D-002]셀……면하리라 :
식 무외(式無外)가 시를 무척 좋아하여 시인을 찾아다니곤 하는데, 염주를 수없이 돌리며 공덕을 쌓은 뒤에야 시를 짓는 실력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질 것이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소식(蘇軾)의 시에흰머리는 그대가 나보다 삼천 장이나 위이고, 시율은 내가 그대보다 일백 주나 아래이다.〔鬢霜饒我三千丈 詩律輸君一百籌〕라는 표현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17 九日次韻王鞏》 식무외가 시를 모은 것에 대해서는 한국문집총간 3집에 수록된 《가정집》 권7〈복산(福山) 시권(詩卷)의 발문(跋文)〉 참조.
[주D-003]일……다르리오 :
기 분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염불을 하며 염주를 돌려서 감정을 조절하려고 한다면, 이는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재물이 들어올 때마다 수판(手板)을 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뜻의 익살스러운 표현이다. 아주(牙籌)는 상아(象牙)로 만든 수판을 가리키는데,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이 한때 재물 모으기를 좋아하여 아주를 손에 쥐고 밤낮으로 돈을 계산했다는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儉嗇》

 

 

 

구운(舊韻)을 써서 우생(友生)에게 답하다

 


오늘이 있을 줄 그 사람이 생각이나 했으리오 / 他人豈意有今日
이자들은 예나 이제나 변한 것이 없는걸 / 此輩依然如舊時
투서기기(投鼠忌器)
를 먼저 고려해야 하겠지만 / 投鼠要須先忌器
냉담하게 방관만 해도 위험천만한 일이라오 / 傍觀眼冷已多危

 

[주D-001]투서기기(投鼠忌器) : 돌을 던져서 쥐를 잡고 싶어도 곁에 있는 그릇을 깰까 걱정된다는 뜻의 속담으로, 임금의 곁에 있는 간신을 제거하고 싶어도 임금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서 손을 쓰지 못할 때의 비유로 흔히 쓰인다.

 

 

 

강 헌납(康獻納)에게 부치다

 


예전에 남후와 다행히 이웃해서 살았는데 / 昔與南侯幸卜隣
벼슬에 쫓겨 풍진을 못 뵈어 유감이었소 / 宦途常恨隔風塵
지금은 또 반갑게도 그대의 집과 가까운데 / 如今又喜君家近
어느 때나 삼경에서 두 사람과 어울릴지 / 三逕何時着兩人

 

[주D-001]풍진(風塵) : 고풍청진(高風淸塵)의 준말로, 인품이 고결한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주D-002]삼경(三逕) :
은사(隱士)의 뜨락을 가리킨다. 서한(西漢) 말에 장후(蔣詡)가 은거한 뒤 집 안 뜨락에오솔길 세 개〔三逕〕를 만들어 놓고는 오직 양중(羊仲)과 구중(求仲) 두 사람과 교유하며 두문불출했던 고사가 있다. 《三輔決錄 逃名》

 

 

 

 

귀향하는 벗을 전송하며

 


명리가 사람을 들볶아 조금도 못 쉬게 하며 / 名利馳人不少休
어버이 곁을 떠나 만리타향에 떠돌게 하네 / 辭親萬里作羈遊
하지만 또 귀향 객을 어떻게 차마 보낼 수야 / 那堪又送還鄕客
성곽 주위 가을 산에 주루가 꽉 차 있으니 / 繞郭秋山滿酒樓

 

 

 

 

장생(張生)의 〈칠석(七夕)〉 시에 화운하다

 


일 년에 한 번 보는 것도 늦지는 않나니 / 一年一見未應遲
멋진 모임은 정녕 시기가 따로 있으니까 / 嘉會丁寧自有時
인간 사회의 일을 천상과 비교해 본다면 / 若把人間比天上
약속 저버리는 일이 어찌 한이 있으리오 / 紛紛何恨負前期

다리 위 이별의 시간도 질질 끌 것 있나 / 分手河梁尙恐遲
환락 끝에는 슬픔이 따르기 마련인걸 /
應知樂極有哀時
왜 그리 뜸하게 만나냐고 비웃지 마오 / 世人莫笑間何闊
신선들은 약속 시간을 멀리 잡으니까 /
此是神仙久遠期

이별은 쉬운 반면에 재회는 더디기만 한데 / 別何容易會何遲
오직 일편단심은 변함없이 예전과 같네 / 只有丹心似舊時
일수영영
은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하겠지만 / 一水盈盈猶可望
장문
은 지척이라도 볼 기약이 없다고 하리 / 長門咫尺見無期

운무의 깃발이 서서히 다리를 건너고 / 雲旗霧旆渡橋遲
이제는 또 은하수에 먼동이 트려 하네 / 又是皇河欲曙時
설사 해마다 칠월에 윤달이 든다 해도 / 縱使年年七月閏
처음 맺은 굳은 약속 꼭 변하지 않으리 / 貞心未必變初期

촘촘히 짜며 베틀에서 내려오지 않고 / 纖纖扎扎下機遲
끊임없이 날줄 씨줄 직조하는 옷감들 / 霧緯雲經無斷時
비단 금침 만들어도 딱히 쓸 곳이 없나니 / 縱得成章何所用
직녀 나는 만나는 일 별로 신경 안 쓰니까 / 儂家本不買佳期

해님 낭군 빨리 가고 달님 낭자 늦게 가도 / 日君行速月妃遲
한 달에 그래도 한 번씩은 만나는 때가 있는데 / 一月猶存一合時
괴이하도다 천손은 무슨 뜻이 있기에 / 頗怪天孫有何意
유독 오늘 저녁에만 만나기로 하였는지 / 獨將今夕以爲期

견우가 물 먹이고 늦게 돌아갈 때면 / 牽牛飮水每歸遲
물 위에 항상 운환이 비치곤 하는데 / 政値雲鬟照水時
서로 보고 어째서 말을 하지 않느냐면 / 借問相看何不語
작년에 마음 터놓고 모두 얘기했다나요 / 去年曾與說心期

마음이 졸렬해야 만사를 느긋이 할 수 있지 / 一拙能令萬事遲
시류에 영합하는 일은 쉰이 넘도록 게을렀소 / 百年强半懶趨時
천손이 인간에게 기교를 빌려 준다고 하던데 / 天孫乞與人間巧
서생의 평소 목표와는 아무 상관 없소이다
/
不管書生素所期

 

[주D-001]환락……마련인걸 : 《회 남자(淮南子)》〈도응훈(道應訓)〉에어떤 존재이든지 성하면 쇠하고 환락이 극하면 슬픔이 따르기 마련이다.〔夫物盛而衰 樂極則悲〕라는 말이 나오고, 한 무제(漢武帝)의 〈추풍(秋風)〉 시에환락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많다.〔歡樂極兮哀情多〕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신선들은……잡으니까 :
선 녀 마고(麻姑)가 신선 왕방평(王方平)을 만나서, 그동안 동해가 세 번이나 뽕밭으로 변한 것을 봤다고 말하자, 왕방평이 웃으면서앞으로는 또 바다 속에서 티끌이 날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신화 속의 이야기가 전한다. 《神仙傳 卷7 麻姑》
[주D-003]일수영영(一水盈盈) :
견우와 직녀를 읊은 고시(古詩) 중에찰랑찰랑 은하수 물 사이에 두고, 애틋하게 바라볼 뿐 말 한마디 못 건네네.〔盈盈一水間 脈脈不得語〕라는 표현이 있다. 《文選 古詩十九首》
[주D-004]장문(長門) :
장문궁(長門宮)을 가리킨다. 진 황후(陳皇后) 아교(阿嬌)가 처음에는 한 무제(漢武帝)의 총애를 듬뿍 받다가 나중에는 폐후(廢后)되어 장문궁에 유폐된 고사가 있다.
[주D-005]천손(天孫) :
천제(天帝)의 손녀라는 뜻으로, 직녀성(織女星)의 별칭이다.
[주D-006]운환(雲鬟) :
구 름 같은 쪽머리라는 뜻으로 미인을 비유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직녀를 가리킨다. 송나라 장뢰(張耒)의 〈칠석가(七夕歌)〉에직녀가 견우에게 시집간 뒤로는 베 짜는 일을 그만두고, 구름 같은 검은 쪽머리만 아침저녁으로 빗질하였다네.〔自從嫁後廢織 綠鬢雲鬟朝暮梳〕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D-007]천손이……없소이다 :
칠 월 칠석날 밤에 부녀자들이 과일과 떡을 차려 놓고 직녀와 견우에게 길쌈과 바느질 솜씨가 좋아지게 해 달라고 빌던 풍속이 있었는데, 이를 걸교(乞巧)라고 하였다.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자기의 졸()을 없애 주기를 기원하며 지은 〈걸교문(乞巧文)〉이 《초사(楚辭)》 〈후어(後語)〉 권5에 실려 있는데, 가정 자신은 오히려 졸()을 추구하는 만큼 걸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중구일(重九日)에 제공(諸公)의 방문을 받고 술을 조금 마시다

 


병든 가운데 벗들이 찾아왔나니 / 病裏故人至
타향살이 속에 명절을 맞았음이라 / 客中佳節來
잠시나마 부들자리를 펴고 앉아 / 暫披蒲葉席
모두 함께 국화 술을 들었다네 / 共擧菊花杯
돌아갈 뜻을 말할 수야 있으랴만 / 歸意豈堪說
웃는 얼굴들을 그나마 보였다오 / 笑顔聊與開
서로 만나서 통음도 하지 못하다니 / 相逢不痛飮
절물은 어서 마시라고 재촉하는데 / 節物苦相催

 

 

 

 

신 대언(辛代言)이 동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

 


백년 인생에 마음과 일이 곧잘 틀어져서 / 百年心事巧相違
올해도 두 번이나 귀향 객 전송만 하는구나 / 兩度今年此送歸
헤어지고 술 깨어 맑은 밤 꿈을 꿀 때쯤엔 / 別後酒醒淸夜夢
정녕 날랜 역마 타고 고향 집 당도했으리라 / 定知飛馹到庭闈

몇 년 동안 아침저녁 문안도 못 드린 채 / 年來定省已多違
돌아가겠다 말만 하고 돌아가지 못하였네 / 謾說懷歸自不歸
처창하여라 산과 강 사천 리 먼 길이여 / 惆悵關河四千里
자친 뵈러 역마 탄 사람 전송만 하다니 / 送人乘傳覲慈闈

 

 

 

 

 

소 백수(蘇伯脩) 참의(參議)의 자계서당(滋溪書堂)에 제하다. 소씨(蘇氏) 5대에 걸쳐 각 대마다 서책을 불린 결과 무려 만 권을 소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좌주(座主)인 송 상서(宋尙書) 성부(誠夫)가 맨 위에 기문(記文)을 쓰고, 제공(諸公)이 모두 시를 지었다.

 


오세의 훌륭한 명성은 학문에 연원이 있음이니 / 五世流芳學有源
물이 불어남에 따라 여울이 날로 늘어났네 /
勢隨滋水日增瀾
글을 짓는 것은 남에게 독촉을 받듯 하였고 / 著書政似求書急
자식에게는 황금보다 경서를 려주었다네 /
遺子何如敎子難
성대한 업적이 지금 사해에 들리게 되었으니 / 盛業卽今聞四海
꽃다운 이름이 이로부터 삼한까지 전해지리 / 令名從此到三韓
춘관인 좌주께서 일찍이 기문을 지으신 곳 / 春官座主曾題處
수택이 아직도 새로워서 차마 보지 못하겠네 / 手澤猶新不忍看

 

[주D-001]물이……늘어났네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물을 관찰하는 방법이 있다. 반드시 여울을 보아야 할 것이니, 그러면 그 물의 근원이 있음을 알 것이다.〔觀水有術 必觀其瀾〕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자식에게는……물려주었다네 :
한 나라 때 추로(鄒魯)의 대유(大儒)라고 일컬어졌던 위현(韋賢)이 네 아들을 잘 가르쳐 모두 현달(顯達)하게 하였으므로, 당시에황금이 가득한 상자를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경서 한 권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훨씬 낫다.〔遺子黃金滿
不如一經〕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漢書 卷73 韋賢傳》

 

 

 

 

홍문야(洪文野) 이문(理問)에게 부치다

 


옛날과 달라진 동방도 정말 싫지만 / 剛厭東方異古初
서쪽에 와도 내 집 같질 않으니 원 / 西來還不似吾廬
인간 세상에 편한 곳이 본래 있으련만 / 人間自有安身處
서생이 내는 꾀란 것이 워낙 엉성해서 / 自是書生作計疎

 

[주C-001]홍문야(洪文野) : 문야는 홍빈(洪彬 : 12881353)의 자이다.

 

 

 

 

최춘헌(崔春軒)이 새로 전법 판서(典法判書)에 임명된 것을 축하하는 시를 지어 부치다

 


남포에서 한가로이 이십 년 세월을 보내면서 / 南浦閑居二十年
꿈속에서도 명리 쪽엔 관심을 두지 않으신 분 / 夢魂不到利名邊
판서는 제조의 중망인에게 돌아가는 직책이요 / 判書望重諸曹選
봉익은 이품의 반열에 서는 고위 관계(官階) / 奉翊官高二品聯
지금의 일을 어찌 가볍게 손댈 수 있으리까 / 時事豈堪輕出手
후생이 또 어깨를 감히 나란히 하게 됐나이다 / 後生聊復與齊肩
춘헌기를 어떻게 써서 부쳐야 할는지요 / 何當寫寄春軒記
출처가 지금껏 우연의 소산일 뿐이외다 / 出處從來只偶然

 

[주C-001]최춘헌(崔春軒) : 춘헌은 최문도(崔文度 : ?1345)의 호이다. 한국문집총간 3집에 수록된 《가정집》 권2에 〈춘헌기(春軒記)〉가 실려 있다.

 

 

 

 

김중시(金仲始) 사보(思補)에게 부치다

 


예전의 물의도 나를 어떻게 하지 못했는데 / 異時物議奈吾何
오늘의 공명을 대단하게 여길 것이 있으리오 / 此日功名未足多
가랑비 내리는 남강보 멋진 곳이 있을까 / 誰似南江煙雨裏
천금으로도 어부의 도롱이와 바꾸지 않으리니
/
千金不換一漁蓑

 

[주D-001]가랑비……않으리니 : 참고로 당나라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푸른 삿갓 쓰고 초록색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굳이 돌아갈 것 없네.〔靑蒻笠綠蓑衣 斜風細雨不須歸〕라는 명구가 나온다.

 

 

 

동국(東國)에서 관광하러 온 제생(諸生)과 함께 서산(西山)에서 노닐다

 


이 세상에 보기 드문 호산의 승경 안에서 / 湖山勝景世間稀
천리 길에 함께 노닐 줄은 생각도 못하였소 / 千里同遊本不期
말이 야위고 나귀가 전들 따질 게 또 있으리오 / 瘦馬蹇驢誰復數
맑은 바람 밝은 달은 주인이 따로 없는 것을 / 淸風明月自無私
만부가 힘을 모두 쏟은 동쪽과 서쪽의 사원이요 / 萬夫力盡東西寺
이성
의 마음이 보존된 좌측과 우측의 비석이라 / 二聖心存左右碑
이번 여행은 하늘이 내려 준 선물임이 확실한데 / 須信此行天所賦
저물녘의 구름과 비가 또다시 시를 재촉하네 / 晩來雲雨更催詩

이날 나귀를 탄 자가 있었는데, 못을 지키는 자에게 욕을 들으며 저지를 당하였다.

 

[주D-001]이성(二聖) : 서 산(西山) 즉 수양산(首陽山)에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고사리만 뜯어 먹다가 죽었다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가리킨다. 《맹자》〈만장 하(萬章下)〉에백이는 성인 가운데 맑은 분이다.〔伯夷聖之淸者也〕라는 말이 있다.

 

 

 

요동(遼東)의 최()와 홍(), 두 염방(廉訪)에게 부치다. 그들은 모두 동향인이다.

 


풍성(風聲) 교화(敎化) 남북이 없지만 / 聲敎無南北
시대를 만나는 것은 난이의 차이가 있다네
/
遭逢有易難
성스러운 조정이 만국을 포용하매 / 聖朝來萬國
아름다운 선비가 삼한에서 나왔다네 / 佳士出三韓
범방의 고삐를 똑같이 손에 분들 / 同按范滂轡
공우처럼 갓의 먼지를 자주 털었다네
/
頻彈貢禹冠
서생은 어쩌면 유독 이다지도 졸렬한지 / 書生獨何拙
여관 밥 먹으며 오래도록 배회하고 있으니 / 旅食久盤桓

 

[주D-001]풍성(風聲)과……있다네 : 중 국의 선진 문명이 전 세계에 퍼져 동방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끼쳤지만,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시운(時運)이 작용해서 각 시대마다 차이가 있었다는 말이다. 참고로 《서경》 〈우공(禹貢)〉 맨 마지막에동쪽으로는 바다에까지 번져 갔고, 서쪽으로는 유사 지역에까지 입혀졌으며, 북쪽과 남쪽의 끝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풍성과 교화가 사해에 다 미치게 되었다.〔東漸于海 西被于流沙 朔南曁 聲敎訖于四海〕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범방(范滂)의……털었다네 :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가운데 똑같이 안찰(按察)하러 나가게 되었다는 말이다. 후한 범방이 어지러운 기주(冀州)의 정정(政情)을 안찰하라는 명을 받고 출발할 적에, “수레에 올라 고삐를 손에 쥐고서는 천하를 정화시킬 뜻을 개연히 품었다.〔登車攬轡慨然有澄淸天下之志〕라고 하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67 范滂列傳》 서한 왕길(王吉)이 관직에 임명되자 친구 공우(貢禹)도 덩달아 갓의 먼지를 털고 벼슬길에 나설 준비를 했다는왕양재위 공공탄관(王陽在位貢公彈冠)’이란 말이 《한서》 권72 〈왕길전(王吉傳)〉에 나온다. 왕양은 왕자양(王子陽)의 준말로, 왕양의 자가 자양이다.

 

 

 

 

임오년(1342, 충혜왕 복위3) 한식(寒食)

 


벼슬길은 예로부터 시비가 하 많은 법인데 / 宦路從來足是非
노친 계신 고향 떠나 멀리 왔으니 또 어떡하겠나 / 更堪親老遠庭闈
나그네 길에서 한식을 이미 만난 터수에 / 已從客路逢寒食
서울 먼지가 흰옷을 물들여도 없지 /
也任京塵染素衣
홀연히 오는 가랑비에 절기가 바뀜을 깨닫고 / 細雨忽來驚節換
비로 쓴 듯한 낙화에 가는 봄을 아쉬워하네 / 落花如掃惜春歸
가난을 참는 생활에도 명절엔 취해야 할 터인데 / 忍貧要趁良辰醉
이 나이에 다정도 병이라 마음과 일이 어긋나니 원 / 鬢髮多情心事違

 

[주D-001]서울……없지 : 명 리를 각축하는 원나라 서울에서의 고달픈 타향살이에 원래 지녔던 순수한 감정마저 각박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나라 육기(陸機)의 시에집 떠나 멀리 나와 노니는 생활, 유유하여라 삼천 리 머나먼 길이로세. 서울에는 바람과 먼지가 어찌 많은지, 흰옷이 금방 새카맣게 변하누나.〔謝家遠行游 悠悠三千里 京洛多風塵 素衣化爲緇〕라는 표현이 있다. 《文選 卷24 爲顧彦先贈婦二首》

 

 

 

 

김경선(金敬先)이 낙제하여 동쪽으로 돌아가려 할 적에 한식(寒食)에 창화(唱和)한 시의 운을 써서 만류하다

 


글에 있어서 지난날의 잘못이 더욱 드러나는데도 /
於文益見昨之非
밤에 꿈을 꾸면 놀랍게도 여전히 극위에 앉아 있네 / 夜夢猶驚坐棘圍
주금
을 과시하는 부귀야 감히 기대하겠소만 / 富貴敢期誇晝錦
조의를 내려 받는 영광은 일찍이 누려 봤소이다 / 恩榮曾得賜朝衣
기둥에 쓰고 들어온 그대의 얼마나 씩씩하오 /
喜君壯節題橋入
낙제하고 돌아가던 당년의 나보단 훨씬 낫소그려 / 饒我當年落第歸
삼동의 문사가 있으면 응용하기에 충분하니 /
足用三冬文史在
내 곁을 떠나지 말고 단경을 서로 마주합시다 / 短檠相對莫予違

 

[주D-001]글에……드러나는데도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길을 잘못 들긴 했어도 아직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나니, 지금이 옳고 지난날은 잘못된 것을 깨달았네.〔寔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라는 명구가 나온다.
[주D-002]극위(棘圍) :
과거 시험장의 별칭이다. 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 낙방한 응시자들의 난동을 방지하기 위하여 가시나무 울타리를 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舊五代史 卷127 周書 和凝列傳》
[주D-003]주금(晝錦) :
낮에 비단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금의환향(錦衣還鄕)과 같은 말이다.
[주D-004]기둥에……씩씩하오 :
촉 군(蜀郡) 성도(成都) 사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촉군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가는 길에 성도의 성() 북쪽에 있는 승선교(昇仙橋)에 이르러 그 다리 기둥에고거사마를 타지 않고서는 다시 이 다리를 건너지 않겠다.〔不乘駟馬高車 不復過此橋〕라고 써서, 기필코 공명을 이루겠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혔는데, 뒤에 그의 뛰어난 문장 실력을 한 무제(漢武帝)에게 인정받고 출세한 고사가 진()나라 상거(
)의 《화양국지(華陽國志)》에 전한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기둥에 글을 썼던 당초의 장한 그 뜻이여, 지금은 생애가 유독 굴러다니는 쑥대로세.〔壯節初題柱 生涯獨轉蓬〕라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3 投贈哥舒開府翰二十韻》
[주D-005]삼동(三冬)의……충분하니 :
동방삭(東方朔)이 한 무제에게 올린 글에나이 13세에 글을 배워서 겨울철 석 달 동안 익힌 문사의 지식이 응용하기에 이미 충분하다.〔年十三學書三冬文史足用〕라는 말이 나온다. 《漢書 卷65 東方朔傳》
[주D-006]단경(短檠) :
짧 은 등잔대라는 뜻인데, 한유(韓愈)의 〈단등경가(短燈檠歌)〉에여덟 자 긴 등잔대는 공연히 길기만 할 뿐이요, 두 자의 짧은 등잔대가 밝고도 편리하다.〔長檠八尺空自長 短檠二尺便且光〕라는 말과, “하루아침에 부귀를 얻으면 도리어 방자해져서, 긴 등잔대 높이 걸어 미인의 머리를 비추게 하네. 아 세상일이 그렇지 않은 것이 없나니, 담장 모퉁이에 버려진 짧은 등잔대를 그대여 보지 않았는가.〔一朝富貴還自恣 長檠高張照珠翠 吁嗟世事無不然 牆角君看短檠棄〕라는 말이 나온다.

 

 

 

 

차운하여 순암(順菴)에게 답하다

 


반평생 나의 생활 그야말로 이군삭거(離群索居) / 半生光景屬離居
여관 밥이면 충분하지 다른 건 원래 원치 않소 / 旅食從來不願餘
창밖엔 지난밤 비에 흠뻑 젖은 파초 잎이요 / 窓外芭蕉饒夜雨
소반엔 봄에 지천으로 나는 목숙 무침이라 / 盤中苜
富春蔬
집안이 가난하니 단표의 즐거움을 절로 누릴 밖에 / 家貧自有簞瓢樂
생계가 졸렬한 것은 필묵이 서툰 때문이 아니라오 / 計拙非因翰墨疎
선탑 가에 화려한 봄꽃의 시절이 찾아왔는데 / 時到煙花禪榻畔
몸과 세상을 좌망한 채 여인숙처럼 보내실지 / 坐忘身世蘧廬

 

[주D-001]이군삭거(離群索居) :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나오는 말로, 친지나 벗들과 헤어져서 혼자 외로이 사는 생활을 가리킨다.
[주D-002]목숙() :
거 여목이라는 소채(蔬菜)의 일종으로, 빈약한 식생활을 비유할 때 흔히 쓰인다. 당나라 설령지(薛令之)가 동궁 시독(東宮侍讀)으로 있을 적에 초라한 밥상을 보고는 슬픈 표정으로아침 해가 둥그렇게 떠올라, 선생의 밥상을 비추어 주네. 소반엔 무엇이 담겨 있는고, 난간에서 자라난 목숙 나물이로세.〔朝旭上團團 照見先生盤盤中何所有 苜
長欄干〕라는 내용의 〈자도(自悼)〉 시를 지은 고사가 있다. 《唐摭言 卷15
[주D-003]단표(簞瓢) 즐거움 :
안 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가리킨다. 《논어》 〈옹야(雍也)〉의어질다, 안회(顔回).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을 마시며 누항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근심하며 견뎌 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낙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賢哉 回也〕라는 공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4]좌망(坐忘) :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나오는 말로, 주객(主客)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와 합일된 정신의 경지를 뜻하는데, 불가(佛家)의 삼매(三昧)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6 15일에 서호(西湖)에서 노닐며

 


뱃사람들이 객을 보고 다투어 영접하며 / 舟人見客競來迎
연꽃 구경 갈 곳 많다 웃으며 가리키네 / 笑指荷花多處行
오늘 거슬러 올라가면 경치 더욱 멋있겠지 / 此日泝流應更好
밤새 산에 내린 비에 물이 또 불어났을 테니 / 夜來山雨水添生

청풍이면 됐지 굳이 명월(明月)까지야 / 淸風不用玉壺迎
붉은 해가 대신 떠서 뱃길 재촉하는 듯 / 紅日如催畫舸行
하지만 서호의 기막힌 풍류를 알고 싶다면 / 欲識西湖奇絶處
꽃도 잠들고 향기 은은한 깊은 밤이어야 하리 / 夜深花睡暗香生

용주
가 몇 번이나 여기서 임금을 영접하였을꼬 / 龍舟幾向此中迎
옥장
이 위풍당당하게 양 언덕 끼고서 갔으리라 / 玉仗
摐摐夾岸行
그저 황금을 쏟아 부어 범찰을 세울 줄만 알았지 / 但道側金開梵刹
전석
하여 창생의 일 물을 줄 그 누가 알았으리 / 誰知前席問蒼生

어떻게 허리 꺾어 어린아이 영접할 있나 /
小兒安可折腰迎
고사는 대부분 팔 내젓고 미련 없이 떠나리라 / 高士多應掉臂行
호숫가엔 가을이 되자 꽃이 쉽게도 떨어지고 / 湖上秋來花易落
인간 세상엔 해가 뜨면 일이 자꾸만 생기누나 /
人間日出事還生

아침엔 뱃사람이 기쁘게 맞는 듯하더니 / 曉日舟人似喜迎
저녁엔 무슨 일로 빨리 가자고 재촉하누 / 晩來何事却催行
인정은 이익이 다하면 모두 이와 같은 것 / 人情利盡皆如此
서산의 붉은 저녁놀만 창연히 바라보노매라 / 悵望西山暮靄生

 

[주D-001]용주(龍舟) : 임 금이 타는 큰 배를 말한다. 수 양제(隋煬帝)가 운하를 통해 강남(江南)을 순행할 적에 변하(汴河)에 이르러 타던 배로, 소후(蕭后)는 봉모()에 태운 뒤에, 돛과 닻줄을 모두 비단으로 만들게 하고는, 장장 200여 리에 걸쳐 수백 척의 배로 자신을 뒤따르게 했던 고사가 전한다. 《隋書 卷24 食貨志》
[주D-002]옥장(玉仗) :
임금의 의장(儀仗)을 가리킨다.
[주D-003]전석(前席) :
임 금이 신하의 이야기를 더 잘 들으려고 앞으로 나와 바짝 다가앉는 것을 말한다. 진 효공(秦孝公)이 상앙(商鞅)과 대화를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와 앉았다는 고사와, 한 문제(漢文帝)가 선실(宣室)에서 가의(賈誼)와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짝 다가앉아 경청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68 商君列傳》 《漢書 卷48 賈誼傳》
[주D-004]어떻게……있나 :
()나라 도잠(陶潛)이 팽택 현령(彭澤縣令)으로 있을 적에, ()에서 파견한 독우(督郵)의 시찰을 받게 되었는데, 아전이 도잠에게 의관을 갖추고 독우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고 하자, 도잠이 탄식하면서내가 쌀 다섯 말 때문에 허리를 꺾어 향리의 어린아이에게 굽실거릴 수는 없다.〔我不能爲五斗米折腰向鄕里小兒〕라고 하고는, 즉시 수령의 인끈을 풀어 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94 陶潛列傳》
[주D-005]인간……생기누나 :
당 나라 무원형(武元衡)이 〈하야작(夏夜作)〉이라는 제목으로밤이 깊어지니 소란도 잠시 멈추고, 못가의 누대에는 밝은 달빛만 비치누나. 맑은 안색 유지할 틈이 어디 있어야지, 해가 뜨면 일이 자꾸만 발생하니.〔夜久喧暫息 池臺有月明 無因駐淸景 日出事還生〕라는 내용의 오언절구를 지었는데, 이 시를 지은 다음 날 아침에 우연치 않게 자객의 습격을 받아 절명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당백가시선(唐百家詩選)》 권14와 《당음(唐音)》 권6에 수록되어 있다.

 

 

 

칠석(七夕)

 


이 명절에 누가 내 집을 찾아오려고나 할까 / 佳節無人肯見過
인간 세상에 세월만 북처럼 빨리도 내달리네 / 人間歲月逐飛梭
아득히 하늘의 신선들 합환하는 짧은 시간에 / 神仙杳杳合歡少
아녀자들은 분분하게 걸교하기에 바빠라 / 兒女紛紛乞巧多
맑기가 물과 같은 객사의 가을빛이라면 / 客舍秋光淸似水
물결 없이 고요한 은하의 밤 색깔이로다 / 天河夜色淨無波
일어나서 시구 찾다 괜히 머리만 긁적긁적 / 起來覓句空搔首
풍로 어린 뜨락의 이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 奈此一庭風露何

 

[주D-001]걸교(乞巧) : 칠월 칠석날 밤에 부녀자들이 과일과 떡을 차려 놓고 직녀와 견우에게 길쌈과 바느질 솜씨가 좋아지게 해 달라고 빌던 풍속이다.

 

 

 

도중에 비를 피하며 느낀 바가 있어서

 


거리에 임한 저택에 녹음 드리운 느티나무 /
甲第當街蔭綠槐
높은 대문도 응당 자손을 위해서 세웠으리 /
高門應爲子孫開
몇 년 사이 주인 바뀌고 거마의 자취도 없이 / 年來易主無車馬
오직 길 가는 사람만이 비 피하러 오는구나 / 唯有行人避雨來

 

[주D-001]거리에……느티나무 : 왕 년에 재상의 저택이었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주나라 때 삼공(三公)이 궁정의 느티나무 세 그루를 정면으로 향한 위치에서 조회를 하곤 하였으므로 삼괴(三槐)가 삼공(三公)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또 송나라 왕우(王祐)가 자기 마당에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어 놓고는 자기의 자손이 반드시 삼공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는데, 뒤에 과연 그의 둘째 아들 단()이 재상에 올랐던 내용을 소재로 해서 소식(蘇軾)이 〈삼괴당명(三槐堂名)〉을 지은 일화가 유명하다.
[주D-002]높은……세웠으리 :
한 나라 우공(于公)이 옥사(獄事)를 공정하게 처리하여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구제하였으므로 사람들에 의해 생사(生祠)가 세워지기까지 하였는데, 그가 일찍이 집을 수리하면서내가 음덕을 많이 쌓은 만큼 우리 자손 중에 고관이 많이 나올 테니 좁은 문을 개조해서 사마(駟馬)의 수레가 드나들 수 있도록 크게 만들어야 하겠다.”라고 하고는 대문을 높이 세웠다. 그런데 과연 그의 아들 우정국(于定國)이 승상이 되고 나서 그 뒤를 이어서 대대로 자손들이 봉후(封侯)우공고문(于公高門)’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71 于定國傳》

 

 

 

 

중추절에 달을 구경하며

 


객로에서 상봉한 기쁨 알 만하고말고 / 客路相逢喜可知
더구나 이 명절에 함께 시를 읊음에랴 / 況當佳節共吟詩
각기 고향 떠나 천리 타향 객지에서 /
他鄕異縣各千里
지금 사람이 달을 함께 보는 /
古月今人此一時
밤새 뚝뚝 듣는 듯한 맑은 가을빛이요 / 徹夜秋光淸欲滴
내일은 기약 어려운 호한한 세상일이라 / 明朝世事浩難期
별 뜻 없이 잠깐 동안 밝은 달 옆에 서서 / 無端頃刻冰輪側
욕심껏 쳐다보는 일 어찌 감히 사양하리 / 仰面貪看豈敢辭

 

[주D-001]각기……객지에서 : 고 악부(古樂府)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에꿈속에서는 내 곁에 있었는데, 홀연히 깨어 보니 타향에 가 있네. 각기 다른 타향과 객지에서, 이리저리 떠돌며 만나지 못하누나.〔夢見在我旁忽覺在他鄕 他鄕各異縣 展轉不相見〕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지금…… :
이백(李白)의 〈파주문월(把酒問月)〉 시에지금 사람은 옛날의 달을 보지 못하지만, 지금의 달은 일찍이 옛사람을 비췄으리.〔今人不見古時月 今月曾經照古人〕라는 명구가 나온다. 《李太白集 卷19

 

 

 

8 20일에 새 운하에 물을 방류하는 것을 구경하며

 


운하의 물을 굽어보며 돌아갈 줄 몰랐나니 / 臨河望水久忘還
몇 개월 사이에 만세의 공적이 이루어졌네 / 萬世功成數月間
이미 선박을 내보내 사해에 통하게 한 위에 / 已遣舟航通四海
다시 성시를 굴착하여 서산에 이르게 하였다오 / 更穿城市抵西山
탁류가 미친 듯 쏟아져도 끄떡없는 제방이요 / 濁流狂
隄防密
수문은 크게 입을 벌려 조절하면서 토해 내네 / 金口高呀呑吐慳
이제는 거상이 운하로 다투어 배 타고 들어와서 / 共說巨商爭道入
도성의 관문까지 날아오리라 누구나 말을 하네 / 檣烏飛到五門關

 

 

 

 

9 15일 밤에 〈중추절〉의 운을 써서 시를 짓다

 


오늘 밤에는 나도 모르게 감회가 일어나서 / 遇物興懷不自知
한가로이 달 아래 거닐며 앞 시에 화운하네 / 婆娑步月和前詩
의연히 만리에 똑같이 비치는 보름달 밤 / 依然萬里同光夜
흡사 중추에 그림자 대하던 때와 같네 / 政似中秋對影時
오경에 명월이 못 가게 붙잡을 수 없어 / 五鼓難留淸景駐
한 동이 술을 오직 고인과 기약했다오 / 一尊唯與故人期
오늘 밤 이러하니 어찌 말이 없으리오 / 今宵如此寧無語
이 책임을 우리들이 면할 수 없으리라 / 此責吾曹安可辭

 

[주C-001]중추절(仲秋節) : 16권에 실린 〈중추절에 달을 구경하며〉 시를 말한다.

 

 

 

 

문야(文野) 낭중(郞中)에게 부치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대부분 싫어하는 세상 사람들 / 世俗多嫌逆耳言
그대 지금 용퇴하는 것이야 무슨 어려움 있으리오 /
君今勇退有何難
어떠한 상황을 당해도 미혹되지 않으리니 / 不應當局皆迷着
사람이 보고서 훈수할 틈도 없으리라
/
未及旁人自在觀

 

[주C-001]문야(文野) : 홍빈(洪彬 : 12881353)의 자이다.
[주D-001]그대……있으리오 :
용 퇴(勇退)는 급류용퇴(急流勇退)의 준말로, 벼슬자리에서 과감하게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송나라 전약수(錢若水)에 대해서 어떤 도승(道僧)급류 속에서 용감하게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다.〔是急流中勇退人也〕라고 평하였는데, 과연 그가 추밀 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을 때 40세도 안 된 나이로 관직에서 물러났다는 일화가 송나라 소백온(邵伯溫)이 지은 《문견전록(聞見前錄)》 권7에 나온다. 참고로 송나라 대복고(戴復古)의 시에오자서(伍子胥)처럼 날이 저물자 거꾸로 행했던 패도(覇道)는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전약수처럼 급류 속에서 용감하게 물러나는 것이야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日暮倒行非我事 急流勇退有何難〕라는 구절이 나온다. 《石屛詩集 卷5 曾雲巢同相勉李玉澗不赴召》
[주D-002]어떠한……없으리라 :
옛 속어에당사자는 갈피를 못 잡고 헷갈리기 쉬운 반면에, 국외자가 주도면밀하게 잘 살피게 마련이다.〔當局者迷 傍觀者審〕라는 말이 있다.

 

 

 

가을비 속에 밤에 앉아서

 


찬 구름 찌푸린 채 저녁 까마귀 보낼 적에 / 寒雲作色送昏鴉
홀로 서창에 기대어 경물을 감상하였노라 / 獨倚書窓感物華
가을이 깊어 강산은 정히 요락의 계절인데 / 秋晩江山正搖落
이슥한 밤에 비바람이 다시 가로 비끼누나 / 夜深風雨更橫斜
맛도 없는 명리 때문에 괜한 나그네 생활 / 利名少味徒爲客
꿈조차 무정해서 집에 데려다 주지 않네 / 魂夢無情不到家
내일 아침 거울 속에 더 늘었을 흰 머리칼 / 曉鏡定應添鬢髮
여윈 말로 어떻게 다시 모래 먼지 따르리오 / 羸驂肯復傍塵沙

 

[주D-001]요락(搖落) 계절 : 숙 살지기(肅殺之氣)가 몰아쳐서 나뭇잎이 다 떨어지는 가을철을 말한다. 전국 시대 초나라 시인 송옥(宋玉)이 지은 〈구변(九辯)〉 첫머리의슬프다, 가을 기운이여. 쓸쓸하게 초목은 바람에 흔들려 땅에 지고 쇠한 모습으로 바뀌었도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 草木搖落而變衰〕라는 유명한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순암(順菴)의 운을 써서 한성재(韓誠齋) 정승의 죽음을 애도하다

 


도성 문에 붉은 만장 휘날리는 속에 / 都門丹想飛飛
천리의 눈물 흔적 오래 마르지 않으리 / 千里啼痕久未晞
모두 세신으로서 고국을 슬퍼하였는데 / 共爲世臣悲故國
홀로 남은 교목 위에 석양이 걸렸어라 / 獨留喬木掛斜暉
임금이 원로를 존중하여 기대들을 하였건만 / 吾王尙老人猶望
나라 일으킬 정승의 일 이미 어긋나 버렸도다 / 彼相扶顚事已違
풍월 어린 연장에서 만나기로 했던 우리 약속 / 風月蓮莊曾有約
공 또한 돌아보며 못 잊어 할 줄 알겠도다 / 知公廻首更依依

 

순암의 동지 팥죽을 고마워하며 아울러 박경헌(朴敬軒)에게도 증정하다

 


동지에 얼음이 언 것은 일이 잘못되었지만 / 陽復堅氷事已非
새벽 창가에 동지 팥죽은 그대로 어김이 없네 / 曉窓冬粥莫予違
돌차간에 마련한 금곡의
이 비록 좋다 하지만 / 咄嗟金谷味雖好
창졸간에 올린 호타의
도 결코 작지 않았네 / 倉卒
沱功不微
감우
에서 나눠 받아 맛보는 이 향적이여 / 香積共分來紺宇
주비
에서 나온 후청을 누가 부러워하랴 / 侯鯖誰羨出朱扉
어떡하면 남산 아래 콩밭의 김을 매고 / 何當鋤豆南山
이슬에 적시면서 달빛 띠고 돌아올꼬
/
草露霑衣帶月歸

 

[주D-001]돌차간(咄嗟間)에…… : 금 곡(金谷)은 진()나라 부호(富豪) 석숭(石崇)의 원명(園名)인데, 석숭이손님을 위해 팥죽을 대접하면서 한 번 호흡하는 사이에 마련하게 하였다.〔爲客作豆粥 咄嗟便辦〕는 기록이 《진서(晉書)》 권33〈석숭열전(石崇列傳)〉에 보인다.
[주D-002]창졸간에…… :
광 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칭제(稱帝)하기 전에 요양(鐃陽) 무루정(無蔞亭)에서 풍이(馮異)에게 팥죽을 대접받아 배고픔을 면하고, 또 남궁(南宮)에 이르러서 보리밥을 대접받은 뒤에 호타하(
沱河)를 건너갔는데, 제위에 오르고 나서 풍이에게창졸간에 무루정에서 대접받은 팥죽과 호타하의 보리밥에 대한 후의를 오래도록 보답하지 못했다.〔倉卒無蔞亭豆粥 沱河麥飯 厚意久不報〕라고 하면서 값진 물건을 하사한 고사가 있다. 그래서 후대에 팥죽과 보리밥에 호타()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後漢書 卷17 馮異列傳》
[주D-003]감우(紺宇) :
불교 사원의 별칭으로, 감원(紺園) 혹은 감전(紺殿)이라고도 한다.
[주D-004]향적(香積) :
향적여래(香積如來)의 식물(食物)인 향적반(香積飯)의 준말로, 승려의 음식을 가리킨다.
[주D-005]주비(朱扉) :
대문을 붉은색으로 치장한 집으로, 귀족이 사는 고대광실을 가리킨다.
[주D-006]후청(侯鯖) :
오 후청(五侯鯖)의 준말이다. 고기와 생선을 합쳐서 만든 요리를 청()이라고 하는데, 서한 성제(成帝) 때 누호(樓護)가 왕씨(王氏) 가문의 다섯 제후들이 준 진귀한 반찬을 한데 합쳐서 요리를 만들고는 오후청이라고 칭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西京雜記 卷2
[주D-007]어떡하면……돌아올꼬 :
도 잠(陶潛)의 시에남산 아래에 콩 심으니, 풀은 무성하고 콩 싹은 드문드문. 새벽에 일어나 잡초를 김매고, 달빛 띠고서 호미를 메고 돌아오네. 좁은 길에 초목이 자라나니, 저녁 이슬이 내 옷을 적시네. 옷 젖는 것이야 아까울 것 있으랴, 그저 농사만 잘됐으면.〔種豆南山下 草盛豆苗稀 晨興理荒穢 帶月荷鋤歸 道狹草未長 夕露沾我衣 衣沾不足惜 但使願無違〕이라는 말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2 歸田園居》

 

 

 

 

수세(守歲)

 


광음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데 / 流景不曾駐
멀리 떠나온 나그네 누구와 함께하리 / 遠遊誰與群
하나의 등불과 애오라지 지키는 이 밤 / 一燈聊共守
가는 해 오는 해가 나뉘려 하네 / 兩歲欲平分
더욱 그리워지는 훤배의 자모요 / 萱背憶慈母
지금 곁에 없는 초반의 세군이라 / 椒盤違細君
아침부터 좋은 기운이 감돌고 있으니 / 朝來有佳氣
붓을 들고 구름 보며 한번 기록해 볼거나 /
試筆看書雲

 

[주D-001]훤배(萱背) : 모 친이 기거하는 곳을 뜻하는 말로, 《시경》 〈위풍(衛風) 백혜(伯兮)〉에어떡하면 원추리를 얻어서 북쪽 뒤꼍에 심어 볼까. 떠난 사람 생각에 내 마음만 병드누나.〔焉得萱草 言樹之背 願言思伯使我心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2]초반(椒盤) 세군(細君) :
초 반을 마련해 주던 아내라는 말이다. 초반은 산초 열매를 담은 소반이라는 뜻으로, 술에다 이 열매를 타서 새해의 술로 썼던 풍속이 있다. 세군은 원래 제후(諸侯)의 부인을 뜻하였는데, 동방삭(東方朔)이 자신의 처를 세군이라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뒤로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주D-003]붓을……볼거나 :
옛 날에 중요한 절기마다 천문 현상을 관찰하여 길흉을 점치고 이를 기록해 두었던 풍속이 있었다.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5년 정월 신해일 초하루 기사에, “희공이 마침내 망루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며 운물을 기록하게 하였으니, 이는 예에 맞는 일이었다.〔遂登觀臺以望 以書雲物 禮也〕라는 기록이 있다.

 

 

 

계미년(1343, 충혜왕 복위4) 원일(元日)에 숭천문(崇天門) 아래에서

 


대명궁 활짝 열어 놓은 새해 첫날 아침 / 正朝大闢大明宮
만국의 의관들이 조회하러 모여드는 곳 / 萬國衣冠此會同
무사가 궁문을 지켜 내외가 엄숙하고 / 虎豹守閽嚴內外
백관이 대열을 나눠 동서가 숙연하네 / 鴛鴦分序肅西東
봄빛이 넘실거리는 축수하는 술잔이요 / 壽觴
灔灔浮春色
새벽바람에 의젓이 선 황제의 의장이라 / 仙仗
摐摐立曉風
나도 예전에 조복 입고서 반열에 끼었는지라 / 袍笏昔曾陪俊彦
천문을 쳐다보매 별의별 생각이 끝이 없네 / 天門翹首思難窮

 

 

 

 

정월 보름날 밤에 석진교(析津橋) 위에서

 


대보름날의 풍속이 서로 같지 않은데 / 節到元宵便不同
황도의 춘색이 더욱 넘쳐흐르는 듯 / 皇都春色更融融
황혼이 지나면 만가의 연등 불빛이요 / 萬家燈火黃昏後
암담한 가운데 도성 거리의 풍연이라 / 九陌風煙暗淡中
시인의 채찍 조용히 쥐고 야윈 말 따르다가 / 靜着吟鞭從瘦馬
노니는 기마 우연히 만나 무지개다리 건넜네 / 偶隨游騎過垂虹
금오의 검문 따위는 겁을 내지 말고서 / 若爲不怕金吾問
천진을 여기저기 쏘다녀 보면 어떠할꼬
/
繞遍天津西復東

 

[주D-001]금오(金吾)의……어떠할꼬 : 금 오는 야간 통행금지 등 수도의 치안을 담당했던 관직 이름이다. 한나라의 명장 이광(李廣)이 삭직(削職)을 당하고 나서 야간에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패릉(覇陵) 현위(縣尉)의 검문을 받았는데, 함께 따라갔던 사람이전임 이 장군이시다.”라고 설명을 하자, 현위가현임 장군도 야간 통행을 못하는데, 하물며 전임 장군이겠는가.”라고 하면서 패릉정(覇陵亭) 아래에 억류하였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09 李將軍列傳》

 

 

 

가까이 거하면서 순암(順菴)에게 증정하다

 


나의 거처가 청련사와 가까워서 / 居近靑蓮宇
틈만 나면 뻔질나게 드나든다네 / 偸閑步

바람 소리에 풍경이 대꾸를 하고 / 風聲鈴對語
달밤에는 탑 그림자 몸이 나뉘네 / 月影塔分身
연하와 벗하는 방은 예전과 똑같은데 / 室邇煙霞古
물상이 자라나는 봄 뜰은 늘 새로워라 / 園春物象新
우리 스님은 진속은 싫어하지만 / 知師厭塵俗
오직 시인만은 피하지 않는다오 / 唯不避詩人

 

 

 

 

서교(西郊) 도중(途中)

 


머리 위의 광음은 예로부터 봐주지 않는데 /
頭上光陰故不饒
봄이 오자 물색이 다투어 서로 불러대는구나 / 春來物色苦相招
우연히 한식 만나 산사에 노닐러 가 / 偶逢寒食遊山寺
함께 혼하 굽어보며 석교를 건넜다오 / 共瞰渾河度石橋
옛 은덕을 사모하는 길 북쪽의 커다란 비석이요 / 道北
碑懷舊德
전조의 역사를 알게 하는 언덕 위의 높은 탑이라 / 岡頭高塔認前朝
아무렴 취해서 서교를 두루 답청(踏靑)해 봐야지 / 要須醉踏西郊遍
초원의 푸른 싹에 말도 점점 신바람을 내니 / 原草初靑馬漸驕

길 북쪽에 유 태보(劉太保)와 백안 승상(伯顔丞相)의 묘가 있다.

 

[주D-001]머리……않는데 : 두목(杜牧)의 시에세간에 공정한 것이 있다면 오직 백발뿐, 귀인의 머리라고 해서 봐준 적이 없다오.〔公道世間惟白髮 貴人頭上不曾饒〕라는 구절이 있다. 《樊川詩集 卷4 送隱者》
[주D-002]답청(踏靑) :
봄에 파랗게 난 풀을 밟고 거닌다는 뜻으로, 보통 청명절(淸明節)에 야외에 나가서 산책하며 노니는 것을 말한다.

 

 

 

 

서산(西山) 영암사(靈巖寺)에 제하다. 그 사원의 승려는 모두 동향인이다.

 


동우 처음 세울 때 모두 기록을 했으련만 / 棟宇何時不記初
단비에는 오직 태강의 글씨만 남았을 뿐 / 斷碑唯載太康書
일천 봉우리 통하는 구불구불 오솔길이요 / 曲通小逕千峯裏
일백 자 남짓 새로 판 차가운 샘물이라 / 新鑿寒泉百尺餘
속객이 진토의 자취를 감히 남기리오 / 俗客敢留塵土迹
향승도 행운유수(行雲流水)의 생활 좋아하는걸 / 鄕僧猶愛水雲居
아무쪼록 정상(頂上)에 올라 다시 내려다봐야지 / 要登絶頂須重看
내일은 이 몸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으니까 / 明日不知身所如

 

[주D-001]태강(太康) : 서진(西晉) 문제(文帝)의 연호로, 기원후 280~289년에 해당한다.

 

 

 

 

3 14일에 성남(城南)에서 노닐다

 


봄날이 가려 하기에 서로 손을 이끌고서 / 春知將去故相牽
수레들 모여드는 곳에 야윈 말 몰고 갔네 / 策過羸蹄織轍邊
성남 삼십 리를 한눈에 바라보니 / 一望城南三十里
지는 꽃은 흡사 비요 버들은 안개 / 落花如雨柳如煙

아침 내내 가랑비에 어느새 땅이 질퍽질퍽 / 朝來細雨易成泥
거리에 들어서자니 말발굽 빠질까 겁이 덜컥 / 怯送街頭瘦馬蹄
남창에서 책을 덮고 잠깐 꿈속을 찾았더니 / 掩卷南窓尋短夢
한낮을 알리는 몇 마디 이웃집 닭 울음소리 / 數聲隣舍午時鷄

 

 

 

 

례(克禮) 주판(州判)에게 부치다

 


객지에서 오래도록 함께 거처하였으니 / 客裏久同處
이별한 뒤로 혼자서 탄식할 수밖에요 / 別來成獨嘆
밤에 침상 맞대고서 다정한 얘기 나누었고 / 夜床饒晤語
시장할 적에 밥 권하며 누차 양보하였지요 / 晩食屢加餐
고향 집이 가까워 옴을 점점 느끼면서 / 漸覺趨庭近
고국을 떠나기 어려움을 실감한다오 / 終知去國難
하지만 황은을 어떻게 저버릴 수야 / 皇恩那可負
우리도 탄관할 준비를 해야 하겠지요 / 我輩佇彈冠

 

[주C-001]극례(克禮) : 이인복(李仁復 : 13081374)의 자이다.
[주D-001]탄관(彈冠) :
관 의 먼지를 턴다는 뜻으로, 뜻에 맞는 친구와 함께 벼슬길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서한 왕길(王吉)이 관직에 임명되자 친구 공우(貢禹)도 덩달아 갓의 먼지를 털고 벼슬길에 나설 준비를 했다는왕양재위 공공탄관(王陽在位 貢公彈冠)’이란 말이 《한서》 권72 〈왕길전(王吉傳)〉에 나온다. 왕양은 왕자양(王子陽)의 준말로, 왕양의 자가 자양이다.

 

 

 

송경(松京)의 친우(親友)에게 부치다

 


제공이 권세를 차지하고 희희낙락하면서 / 諸公袞袞且欣欣
다투어 재능 바쳐 성군을 만들려 하는 판에 / 競效才能欲致君
한번 물어보세 무슨 일로 몇 사람 데리고서 / 且問因何將數子
지팡이 끌고 종일토록 함께 구름 봤는지를 / 杖藜終日共看雲

 

 

 

 

가랑비에 느낌이 있어서

 


구름은 짙건만 내리는 비는 아직도 보슬보슬 / 密雲作雨尙纖纖
가뭄에 타는 벼 싹 적시지 못해 안타까워라 / 病旱禾苗未足霑
부끄럽게도 용들을 후려쳐 일으킬 힘이 없으니 / 鞭起群龍愧無術
빈 처마 옆에서 읊조리며 머리만 긁적일 수밖에 / 沈吟搔首傍虛簷

 

 

 

 

6 1일에

 


뜨거운 태양도 오늘 아침엔 두 푼이 꺾였는데 / 畏景今朝減二分
가뭄을 업고 다시 불태우는 듯한 염제의 위세 / 炎威挾旱更如焚
맨손으로 빙수를 조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 恨無素手調氷水
수심 어린 이마만 찡그리며 불 구름 바라보네 / 空皺愁眉望火雲
광음이 새처럼 날아간다고 누가 말했던고 /
誰道光陰如過鳥
모기만 왱왱거리는 어두운 밤 참기 어려워라 / 不堪昏夜足飛蚊
가는 곳마다 피서하기에 적당한 고향 산천 / 故山處處宜逃暑
솔바람 소리 샘물 소리 어디선가 들리는 듯 / 松響泉聲彷彿聞

 

[주D-001]광음(光陰)이……말했던고 : 송 나라 유자환(劉子寰)의 〈옥루춘(玉樓春)〉 시에부들꽃은 쉽게 지고 갈대꽃은 일찍 지고, 객지의 광음은 마치 새처럼 날아가네.〔蒲花易晩蘆花早 客裏光陰如過鳥〕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송나라 황승(黃昇)이 편집한 《화암사선(花菴詞選)속집(續集)》 권10에 수록되어 있다. 유자환은 자가 기보(圻父), 주희(朱熹)의 문인이다.

 

 

 

 

6 6일 밤에 비가 오기에

 


벌겋게 타들어 가는 사방 천리 땅 / 赤地方千里
서쪽 교외에 뭉게뭉게 짙은 먹구름 / 西郊且密雲
군공이 섭리하는 일을 근실히 하여 / 群公勤燮理
한바탕 비로 찌는 무더위 씻어 냈도다 / 一雨洗蒸熏
하늘의 뜻이 민생을 보존시키려 하여 / 天意存黔首
우리 백성이 성군을 받들게 하였어라 / 吾生戴聖君
서창에서 베개에 기대어 음미하노니 / 書窓欹枕耳
빗소리를 등한히 들을 수가 없어서 / 不作等閑聞

 

[주D-001]섭리(燮理) : 음 양의 변화 등 정()과 반()의 양 측면을 조화롭게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재상의 직무를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서경》〈주관(周官)〉에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 등 삼공(三公)을 세워도를 논하고 나라를 경륜하며 음양을 섭리하게 한다.〔論道經邦 燮理陰陽〕라는 말이 나온다.

 

 

 

 

가형(家兄)의 글을 받고

 


천한 이 몸이 무슨 일을 한답시고 / 賤子成何事
해마다 멀리 나와 이렇게 노니는지 / 年年作遠遊
아가위 곳이 많이 있으리오 / 棣華開處少
자형(紫荊) 나무 그윽이 정원에 있도다
/
荊樹得庭幽
황이
가 수고하며 전해 준 서신이요 / 信字煩黃耳
모두 백발로 변한 남은 생애로다 / 餘生共白頭
편지를 덮고 괜히 슬피 바라보나니 / 置書空悵望
강물은 날마다 동쪽으로 흘러가는데 / 江海日東流

 

[주D-001]아가위 꽃……있도다 : 가 정(稼亭) 형제의 정의(情誼)가 남다르게 두터움을 비유한 것이다. 형제간의 우애를 읊은 《시경》〈소아(小雅) 상체(常棣)〉에아가위 꽃송이 활짝 피어 울긋불긋, 지금 어떤 사람들도 형제만 한 이는 없지.〔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莫如兄弟〕라는 말이 나온다. 또 옛날에 전진(田眞) 형제 3인이 분가(分家)하려고 재산을 나눈 뒤에 정원의 자형(紫荊) 나무 한 그루까지도 삼등분할 목적으로 쪼개려고 하였는데, 그 이튿날 자형 나무가 도끼를 대기도 전에 말라 죽어 있자, 형제들이 크게 뉘우치고 분가하기로 한 결정을 철회하니 자형 나무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남조 양나라 오균(吳均)의 《속제해기(續齊諧記)》에 나온다.
[주D-002]황이(黃耳) :
()나라 육기(陸機)의 애견(愛犬) 이름이다. 총명하여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었으므로 육기가 편지를 넣은 죽통(竹筒)을 그 개의 목에 걸어서 낙양(洛陽)과 오지(吳地)의 몇천 리 길을 오가며 소식을 전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남조 양나라 임방(任昉)의 《술이기(述異記)》에 나온다.

 

 

 

 

거리에서 서산(西山)을 바라보며

 


성안에서 어쩌다가 서산을 바라보니 / 却從城裏望西山
희미하게 성 머리로 드러난 푸른 뫼들 / 隱約城頭露翠鬟
어째서 보면서도 안 보이듯 하였을까 / 爲底相看如不見
그것은 단지 명리에 마음이 개재해서 / 只緣心在利名間

 

 

 

 

오랜 비로 물이 넘치는 바람에 성안에서 물고기를 많이 잡다

 


밤부터 새벽까지 주룩주룩 낙숫물 소리 / 浪浪簷溜夜連明
담장은 모두 무너지고 뜰은 온통 진흙탕 / 環堵皆頹泥滿庭
사방팔방에 구름은 옅은 먹빛 한가지요 / 四海八荒雲一色
탁한 경수 맑은 위수 형색이 다르지 않네
/
濁涇淸渭水同形
어느 때나 공중의 태양을 볼 수 있을까 / 何時得見當空日
달은 오히려 호우의 별을 따르나 /
彼月猶從好雨星
가뭄에 병든 농부들 지금 또 눈물짓는데 / 憂旱老農今又泣
물고기 실컷 잡았다는 성시의 괜한 소문들 / 謾傳城市厭魚腥

 

[주D-001]사방팔방에……않네 : 참 고로 두보(杜甫)의 시에지루하게 바람과 비 분분히 내리는 이 가을철, 사방팔방에 구름은 똑같이 옅은 먹빛. 오고 가는 말과 소도 구분할 수 없는데, 탁한 경수 맑은 위수 어떻게 구별하랴.〔闌風伏雨秋紛紛 四海八荒同一雲 去馬來牛不復辯 濁涇淸渭何當分〕라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3 秋雨嘆》
[주D-002] 달은…… :
《서 경》 〈홍범(洪範)〉에별에는 바람을 좋아하는 것이 있고, 비를 좋아하는 것이 있다. 해와 달의 운행에도 겨울이 있고 여름이 있다. 달이 별을 따르는 것을 보고서 비와 바람을 알 수 있다.〔星有好風星有好雨 日月之行 則有冬有夏 月之從星 則以風雨〕라는 말이 있는데, 채침(蔡沈)의 주에달이 동북쪽으로 가서 기성(箕星)에 들어가면 바람이 많이 불고, 달이 서남쪽으로 가서 필성(畢星)에 들어가면 비가 많이 온다.〔月行東北 入于箕則多風 月行西南 入于畢則多雨〕라고 하였다.

 

 

 

 

순암(順菴)의 육순음(六旬吟)에 차운하다

 


밝은 시대에 허명이 요행히 용납을 받아 / 昭代虛名幸見收
반백이 되려는 나이에 돌아가 쉬지도 못하네 / 年將半百未歸休
사책에 주묵(朱墨)을 가한들 끝내 무슨 소용이리 / 硏朱汗竹終安用
백발을 뽑으며 꽃을 보니 문득 스스로 부끄러워 / 鑷白看花却自羞
속인의 눈 놀라게 할 재주도 없음을 알았거니와 / 已分無才驚俗眼
사람의 머리 짓누르는 운명이 있음을 또 알았네 / 更諳有命壓人頭
육순을 읊으신 시 참으로 노래할 만하니 / 六旬盛作眞堪詠
백옥 지비
의 경지를 알아볼 수 있겠네 / 伯玉知非庶可求

 

[주D-001]백옥 지비(伯玉知非) : 춘 추 시대 위()나라의 현대부(賢大夫) 거백옥(蘧伯玉)이 나이 육십이 되었을 때 그동안의 잘못을 깨닫고 고쳤다는 고사를 말한다. 《장자》 〈칙양(則陽)〉에거백옥은 나이 육십이 되는 동안 육십 번이나 잘못된 점을 고쳤다.〔蘧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라는 말이 나온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는나이 오십에 사십구 년 동안의 잘못을 깨달았다.〔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라고 하였다.

 

 

 

진주(晉州) 안 판관(安判官)에게 부치다

 


예전에 동남의 제일 고을을 지나가면서도 / 曾過東南第一州
벽 사이에 한 글자도 남기지 못해 아쉬웠네 / 恨無一字壁間留
그대 부임 소식 듣고 더욱 생각날 것이니 / 聞君出倅倍相憶
밤 꿈속에 강변의 누대로 자주 날아가리라 / 夜夢屢飛江上樓

 

 

 

 

연성사(延聖寺)의 옥잠화(玉簪花) 시에 차운하다

 


돈 주고 사서 심은 그 뜻 얼마나 깊은지 / 靑錢買種意何深
비바람 몰아치면 정을 가누지 못하누나 / 雨打風翻不自任
어찌 국색을 과시하는 화왕에 비기겠소만 / 豈比花王誇國色
천녀를 따라 선심을 시험하는 듯싶소이다 /
似隨天女試禪心
향 사르며 문 닫고서 누구와 함께 감상할까 / 燒香閉閣誰同賞
지팡이 짚고 문 두드려 혼자서라도 찾아야지 / 拄杖敲門擬獨尋
나는 꽃 마주하여 이 노래를 부를 테니 / 我欲對花歌此曲
스님은 줄 없는 거문고나 한번 타시오 / 請師一撫沒絃琴

 

[주D-001]국색(國色) 과시하는 화왕(花王) : 모란을 가리킨다. 모란의 비범한 향기와 색깔을 국색천향(國色天香)이라고 한다.
[주D-002]천녀(天女)를……듯싶소이다 :
중 인도(中印度) 비사리성(毘舍離城)의 장자(長者) 유마힐(維摩詰)이 여러 보살(菩薩)과 사리불(舍利佛) 등의 대제자(大弟子)들을 대상으로 설법할 적에 천녀가 나타나서 천화(天花)를 뿌렸는데, 이때 일체의 분별상(分別想)을 끊어 버린 보살에게는 이 천화가 달라붙지 않은 반면에, 아직 분별상을 단절하지 못한 대제자 등의 옷에는 이 천화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유마경(維摩經)》 〈관중생품(觀衆生品)〉에 나온다.

 

 

 

칠석(七夕)에 조촐하게 술자리를 갖고

 


평생의 발자취 뜬구름 같은 처지에서 / 平生足跡等雲浮
만리 밖에서 만나다니 실로 기연(奇緣)일세 / 萬里相逢信有由
하늘나라는 견우 직녀의 멋스러운 저녁이요 / 天上風流牛女夕
인간 세계는 멋지고 화려한 제왕의 고을이라 /
人間佳麗帝王州
정다운 담소 속에 술동이는 바다처럼 넘실넘실 / 笑談款款尊如海
깊숙한 주렴 밖으로 비가 가을을 보내누나 / 簾幕深深雨送秋
걸교
말리는 은 내가 알 바 아니니 / 乞巧曝衣非我事
그저 시구에 의지해서 괜한 시름이나 잊으려네 / 且憑詩句遣閑愁

 

[주D-001]인간……고을이라 : 남조 제나라의 시인 사조()의 〈고취곡(鼓吹曲)〉 중에강남의 멋지고 화려한 이 땅, 금릉이라 제왕의 고을이라네.〔江南佳麗地金陵帝王州〕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D-002]걸교(乞巧) :
칠월 칠석날 밤에 부녀자들이 과일과 떡을 차려 놓고 직녀와 견우에게 길쌈과 바느질 솜씨가 좋아지게 해 달라고 빌던 풍속이다.
[주D-003] 말리는 :
칠 석에는 옷을 뜰에 내어 햇볕에 쬐어 말리는 풍속이 있었는데, ()나라 때 부잣집에서 비단옷을 내어 말리자 완함(阮咸)이 이에 대항하여 쇠코잠방이〔犢鼻褌〕를 장대에 걸어 마당 가운데에서 말렸던 고사가 유명하다. 《世說新語 任誕》

 

 

 

황도(皇都)의 가을날

 


유자의 정회가 오래도록 편할 날이 없나니 / 遊子情懷久未安
자친이 어렵게 조석으로 문에 기대실 테니까 /
慈親朝暮倚門難
시름겨우면 배낭 속의 옛 붓을 손에 쥐고 / 篋中舊筆愁時援
얼근해지면 머리 위의 먼지 낀 갓을 턴다오 / 頭上塵冠醉後彈
석목진은 청명해라 달빛이 많이도 내려앉고 / 析木津淸多月色
거용산이 가까워서 가을의 한기가 물씬 풍기네 / 居庸山近足秋寒
오래 죽치고 있는 뜻을 아는 이 뉘 있을까 / 無人認得淹留意
남창에 베개 높이 아직도 남은 한 꿈이여 / 高枕南窓一夢殘

 

[주D-001]자친(慈親)이……테니까 : 모 친이 자식을 간절히 생각하며 안부를 걱정할 것이라는 말이다. 전국 시대 제나라 왕손가(王孫賈)가 나이 15살에 민왕(閔王)을 섬겼는데, 그 모친이네가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올 때면 내가집 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고,〔倚門而望〕네가 저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을 때면 내가마을 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다.〔倚閭而望〕’”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戰國策 齊策6

 

 

 

 

귀국하는 홍의헌(洪義軒)을 전송하며

 


만리 길 황궁에 조회한 뒤로 / 萬里朝天後
나그네살이 어언 삼 년째 / 三秋作客中
매년 시절마다 다정히 지냈는데 / 歲時還款款
지금 다시 총총히 이별을 하다니 / 此別更悤悤
고향 생각이 어찌 끝이 있으리오 / 鄕國情何極
출세할 꿈도 이미 공허해졌어라 / 軒裳夢已空
뒤따라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 / 追隨且未可
가을바람 속에 말을 돌려 세우네 / 跋馬立西風

 

[주C-001]홍의헌(洪義軒) : 의헌은 홍탁(洪鐸 : ?1356)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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