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집자료 ▒

가정집 제8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13. 01:31

 

가정집 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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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년(同年) 조 중서(趙中書)와 최 헌납(崔獻納)에게 준 글

 


한 미한 가문과 궁벽한 마을 출신의 선비는 원래 자기 힘만으로는 출세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반드시 청운(靑雲)의 귀한 신분에 오른 지기(知己)가 있어서 그를 끌어당겨 주어야만 굽히고 있다가 펼 수 있고 움츠리고 있다가 활동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본래 노둔하고 겁이 많아서 진퇴할 적에 부끄러워하며 머뭇거리곤 합니다. 그리하여
주문(朱門)을 바라보기라도 하면 함정처럼 느껴져서 발이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고, 높이 쓴 고관의 관을 쳐다보기라도 하면 마치 귀신처럼 느껴져서 머리를 감히 들지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뭇사람들에게 뒤처진 채 여태까지 일명(一命)의 은혜도 입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두 분 공의 지우(知遇)를 받은 이래로 이제는 이 몸도 청운의 귀한 신분에 오른 지기가 끌어당겨 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런데 조화(造化)가 행해진 지 오래됨에 미쳐 천홍(千紅) 백자(百紫) 등 온갖 꽃들이 수하(手下)에서 여러 차례나 거듭해서 활짝 피어나는데도, 음지를 등진 채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곳의 가지 하나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푸른빛만 띠고 있을 뿐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광경을 목도한 뒤에야 지우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과 조화도 혹 빠뜨리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
옛날
원찬(袁粲)이 단양 부윤(丹陽府尹)으로 있을 적에 언젠가 들 사이를 산보하다가 한 선비를 만나자 그를 불러서 흥겹게 술을 마셨습니다. 그 다음 날에 이 사람이 지우를 얻었다고 생각하고서 원찬의 집에 찾아가 자기를 천거해 주기를 원하자, 원찬이 말하기를어제 술을 마신 것은 마침 짝이 없어서 애오라지 서로 어울린 것일 뿐이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그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가 지우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이 사람의 경우와 비슷하지 않을 줄 또 어찌 알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세상에서 집정(執政)을 조화에 비유하는 것은 그가 빠뜨림이 없고 사정(私情)을 품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입니다
. 남쪽 가지의 꽃이 북쪽 가지보다 먼저 피는 것은 조화가 그렇게 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연하게도 가지가 의탁한 형세가 그러해서 선후의 차이가 있게 것일 뿐입니다. 어찌 남쪽 가지는 이미 꽃이 피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고 열매를 맺어 천신(薦新)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도, 북쪽 가지만 아직도 예전처럼 푸른빛만 띠고 있을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른바 사람들이 오히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에 해당되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나 는 일찍부터 생각하기를사람의 곤궁(困窮)과 영달(榮達)에는 운명이 개재한다. 구하는 것도 운명이요 구하지 못하는 것도 운명이라면, 구했다가 얻지 못해서 얼굴이 달아오르기보다는 차라리 구하지 않고서 얻지 않은 채 태연자약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구하지 않고서 오늘의 이 시점에까지 이른 것인데, 급기야 구하던 자들 모두가
나보다 먼저 채찍을 잡고 달려가는 을 본 뒤에야, 나의 생각이 너무도 오활했다는 것과 운명을 운위할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삼가 굽어살펴 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대저 사람이 행하고자 하는 것은 충과 효입니다. 옛사람은 집안이 빈한하고 어버이가 연로한데도
녹사(祿仕)하지 않는 것은 불효라고 하였는데, 내가 벼슬을 구하는 누()를 면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구해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 운명이라고 할 것이니, 내가 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황공하고 황공할 따름입니다.
태정(泰定) 4(1327, 충숙왕 14) 6월 일에 절하고 올립니다.

 

[주D-001]주문(朱門) : 붉은색으로 치장한 대문으로, 귀족이 사는 고대광실(高臺廣室)을 말한다.
[주D-002]일명(一命) :
주관(周官) 9()에서 나온 것으로, 최하위 품계인 종 9 품의 관직을 말하는데, 보통 처음으로 관직에 출사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3]원찬(袁粲) :
남 조 송나라 명종(明宗) 태시(泰始) 연간에 관직이 상서령(尙書令)에 이르렀고, 태종(太宗)의 임종 때에 고명(顧命)을 받기까지 하였는데,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끝내 외물에 동요하지 않고 한가히 거하면서 집안에 잡객을 일절 들이지 않는 풍도를 보였다. 《宋書 卷89 袁粲傳》
[주D-004]남쪽 …… 뿐입니다 :
《백공육첩(白孔六帖)》 매부(梅部)대동령의 매화는 남쪽 가지의 꽃이 떨어질 때쯤에야 북쪽 가지의 꽃이 피니, 이는 춥고 더운 날씨의 차이 때문이다.〔大東嶺上梅 南枝落北枝開 寒暖之候異〕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5]사람들이 …… 생각한다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 12 장에하늘과 땅처럼 위대한 것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오히려 치우친 점이 있다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天地之大也 人猶有所憾〕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6]나보다 …… :
()나라 유곤(劉琨)이 어려서부터 자부심이 대단하였는데, 친구인 조적(祖逖)과 중원(中原)을 수복할 뜻을 서로 맹세하고는 경쟁하면서조적이 나보다 먼저 채찍을 잡고 중원으로 치달릴까 봐 항상 걱정이다.〔常恐祖生先吾着鞭〕라고 말했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賞譽》
[주D-007]녹사(祿仕) :
한유(韓愈)의 쟁신론(爭臣論)벼슬은 가난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지만 가난 때문에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맹자(孟子)가 말했는데, 이러한 벼슬을 녹사라고 한다.〔古之人有云 仕不爲貧 而有時乎爲貧 謂祿仕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

 

 

 

중국의 언관(言官)을 대신해서 글을 지어 고려(高麗)의 동녀(童女)를 데려오는 것을 그만두도록 청한 글 지원(至元) 3(1337, 충숙왕 복위 6)에 청한 대로 일이 시행되었다.

 


운운(云云). 옛날의 성왕(聖王)에 대한 일을 삼가 듣건대, 그분들이 천하를 다스릴 적에는 일시동인(一視同仁)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힘이 미치는 어느 곳에서나 반드시 같은 문자와 수레를 쓰면서도, 그 풍토에 적합한 것과 그 인정이 숭상하는 것에 대해서는 꼭 바꿔서 똑같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방에 퍼져 있는 먼 변방 지역의 풍속은 각각 다른 점이 있는 만큼, 그들의 풍속을 우리 중국과 똑같이 바꾸려고 할 경우에는, 인정상으로도 따르기 어렵고 형세상으로도 행해질 수 없을 것이니, 인정상으로도 따르기 어렵고 형세상으로도 행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잘 다스린다는 것은 비록 요순(堯舜)이라고 할지라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에 우리 세조황제(世祖皇帝)께서 천하에 임어(臨御)하실 적에 인심을 얻으려고 힘쓰셨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풍속이 다른 먼 지방에 대해서는 그 습속에 맞춰서 순리대로 다스리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천솔토(普天率土)가 환희하고 고무(鼓舞)하는 가운데 머나먼 길을 거듭 통역을 바꿔 가며 천자에게 조회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남보다 뒤늦을까 걱정하였으니, 요순의 치세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고 려는 본래 해외에서 하나의 독립국으로 존속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중국에 성인이 나온 때가 아니면 아득히 떨어진 채 서로 왕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 태종(唐太宗)처럼 위엄과 덕망을 갖춘 제왕으로서도 두 번이나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였지만 아무 공도 세우지 못하고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국조(國朝 원()나라)가 처음 일어났을 적에 고려는 맨 먼저 신복(臣服)하여 왕실에 공훈을 현저히 세웠습니다. 이에 세조황제께서 공주(公主)
이강(釐降)하는 한편, 조서(詔書)를 내려 장유(
)하시기를고려의 의관과 전례는 그들 조상의 풍도를 떨어뜨리지 말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의 풍속이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전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 늘날 천하에 임금과 신하가 있고 백성과 사직이 있는 곳은 오직 삼한(三韓)뿐입니다. 따라서 고려의 입장에서 헤아려 본다면, 당연히 밝은 조서를 받들어 선조가 행한 대로 따라 정교(政敎)를 제대로 닦아 밝히고 조빙(朝聘)을 제때에 행하면서
천자의 나라와 함께 복을 받을 있도록 노력해야 것입니다. 그런데 고려는 그만 부시(婦寺 내시) 와 같은 무리로 하여금 중국에 근거하고서 그 도당을 번성하게 한 결과, 은총을 믿고 의지하여 거꾸로 본국을 뒤흔들게 만들었는가 하면, 심지어는 내지(內旨)라고 사칭하고는 다투어 역마를 급히 치달려 해마다 동녀(童女)를 빼앗아 잇따라 수레에 싣고 오게까지 만들었습니다.
대저 남의 딸을 빼앗아 윗사람에게 아첨하며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게 한 이 일이 비록 고려가 자초한 일이라고는 하더라도, 일단 내지가 있었다고 칭했고 보면 이 또한 어찌 국조(國朝)의 누가 되지 않겠습니까. 옛날에 제왕이 한 번 호령을 내려 시행할 때마다 천하 사람들이 우러러 바라보며 덕택을 입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조지(詔旨)를 일컬어 덕음(德音)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누차 특지(特旨)를 내렸다면서 남의 집안의 딸을 빼앗아 오게 하다니, 이는 너무나도 옳지 않은 일입니다
.
무릇 사람이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키우는 것은 장차
반포(反哺) 보답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존귀한 자와 비천한 자의 구별이나 혹은 중화와 이적의 차이가 없이 누구나 똑같이 하늘로부터 품부받은 본성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려의 풍속을 보면, 차라리 아들을 별거하게 할지언정 딸은 내보내지 않으니, 이는 옛날
진(秦)나라의 데릴사위〔贅壻〕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봉양하는 일은 전적으로 딸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딸을 낳으면 애정을 쏟고 근실히 돌보면서 얼른 자라나 자기들을 봉양해 주기를 밤낮으로 바라 마지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딸을 품 안에서 빼앗아 4000리 밖으로 내보내고는, 그 발이 한번 문밖으로 나간 뒤에는 종신토록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그 심정이 과연 어떻다고 하겠습니까.
지금 고려 출신 부녀 중에 후비(后妃)의 반열에 선 이도 있고, 왕후(王侯) 같은 귀인(貴人)의 짝이 된 이도 있으며, 공경 대신 중에도 고려의 외생(外甥) 출신인 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우는 본국의 왕족 및 벌열과 부호의 집안에서 특별히 조지(詔旨)를 받았거나 아니면 자기의 소원에 따라서 스스로 온 것이요, 또 매빙(媒聘)의 예법도 이미 갖췄으니, 통상적으로 있는 일이 본래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인데, 이익을 탐내는 자들은 이를 끌어다가 자기들의 행위를 변호하는 하나의 통상적인 사례로 삼고 있습니다
.
지금 고려에 사신으로 가는 자들을 보면 모두 처첩을 욕심내고 있으니, 동녀만 뺏어 오려고 할 뿐이 아닙니다. 대저 사방에 사신으로 나가는 목적은 장차 황상의 은혜를 선포하는 동시에 백성의 고통을 물어서 파악하고 그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서입니다
. 《시경》에서도 “두루 묻고 강구한다.”라고 하였고, 또 “두루 묻고 의논한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만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서 재물과 여색만을 탐욕스럽게 구하고 있으니, 이런 일은 금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옆 에서 얻어들은 바에 의하면, 고려 사람들은 딸을 낳으면 곧바로 비밀에 부치고는 오직 소문이 날까 걱정하기 때문에 비록 이웃집 사람이라 할지라도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사신이 올 때마다 아연실색하여 서로 돌아보면서무엇 때문에 오는 것인가? 동녀를 데려가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처첩을 데려가려고 하는 것인가?”라고 말한답니다. 이윽고 군리(軍吏)들이 사방으로 나가서 가가호호를 돌아다니며 수색을 하는데, 혹시라도 숨길 경우에는 그 이웃집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그 친족들을 밧줄로 동여매고서 치고 때리고 곤고(困苦)하게 하여 숨겨 놓은 딸을 내놓게 한 뒤에야 그만두곤 하니, 한 번 사신의 행차를 당하기만 하면 온 나라가 소란스러워져서 비록 닭과 개들이라고 할지라도 조용히 있을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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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동녀를 모아서 선발할 때가 되면 각자 미추(美醜)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혹 사신에게 뇌물을 먹여서 그의 욕심을 채워 주면 비록 용모가 아름답더라도 놓아주곤 합니다. 이런 식으로 놓아주고는 다른 곳에서 다시 찾기 때문에 동녀 하나를 취할 때마다 수백 집을 뒤지기 일쑤인데, 오직 사신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야지 혹시라도 감히 어겨서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내지가 있다고 칭하기 때문입니다
.
이와 같은 일이 한 해에 한두 번씩 일어나기도 하고 격년(隔年)으로 일어나기도 하는데, 데려오는 동녀의 숫자가 많을 경우에는 4, 5십 명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일단 선발이 되면 부모와 종족이 서로 모여 통곡하면서 울기 때문에 밤낮으로 곡성이 끊이지 않으며, 급기야 국문(國門)에서 떠나보낼 적에는 옷자락을 부여잡고 땅에 엎어지기도 하고 길을 막고서 울부짖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비통하고 분개한 심정에 우물에 몸을 던져 죽기도 하고, 목을 매어 자결하는 자도 나오며, 근심과 걱정에 혼절하여 쓰러지는 자도 있고, 피눈물을 쏟다가 실명(失明)하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동녀 대신 처첩으로 데려오는 경우는 비록 이와 같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인정을 거역하고 원망을 사는 점에 있어서는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필부필부가 자신의 성의를 바치지 못하게 하면, 백성의 임금 자가 자기의 공을 더불어 이룰 없게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국조의 덕화가 미치는 곳마다 만물이 모두 뜻을 이루고 있는데, 고려 사람들만 유독 무슨 죄가 있기에 이런 고통을 받게 한단 말입니까. 옛날 동해에 원부(冤婦) 있자 3 동안 가뭄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고려에는 얼마나 많은 원부가 있겠습니까. 근년에 그 나라에 홍수와 가뭄이 서로 잇따라서 굶어 죽는 백성들이 매우 많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들의 원망과 탄식이 화기(和氣)를 상하게 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당당한 우리 천조(天朝)에서 후정(後庭 후궁) 이 뭐가 부족하기에 굳이 외국에서 데려온단 말입니까. 비록 아침저녁으로 은총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부모와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지극한 정리(情理)라고 할 것인데, 지금은 그만 궁중에 안치하고는 꽃다운 시절을 다 놓친 채 헛되이 늙어 가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간혹 궁중 밖으로 내보내어 시인(寺人)에게 시집을 보내기도 합니다만, 끝내 후사도 없이 생을 마치는 경우가 열에 대여섯이나 되니, 그 원기(怨氣)가 화기를 상하게 하는 것이 또 어떠하다고 하겠습니까
.
일에 폐단이 조금 있더라도 국가에 이익이 되는 경우라면 한번 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도 일에 폐단이 전혀 없는 것보다는 못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국가에는 아무 이익도 없고 먼 지방 사람들에게 원망만 사는 일로서, 그 폐단이 결코 적지 않은 일인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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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바라옵건대 덕음(德音)을 반포하시어 감히 내지라고 사칭하며 위로 성청(聖聽)을 모독하고 아래로 자기의 이익을 꾀하여 동녀를 취하는 자 및 그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처첩을 취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금하는 법률 조목을 명시하시어 앞으로는 그들이 기대하는 마음을 아예 끊어 버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일시동인(一視同仁)하는 성조(聖朝)의 덕화를 밝게 드러내어 의리를 사모하는 외국의 심정을 위로해 주는 동시에, 원기를 소멸하고 화기를 불러들여 만물이 제대로 자라나게 해 주신다면, 더 이상의 다행이 없겠습니다.

 

[주D-001]일시동인(一視同仁) :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여겨 똑같이 사랑한다는 뜻이다. 한유의 원인(原人)성인은 일시동인한다.〔聖人一視而同仁〕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사람의 …… 쓰면서도 :
중국의 문화권에 속한 나라들 모두가 제도와 문물을 통일해서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중용장구》 제 28 장의지금 온 천하가 같은 수레를 타고 같은 문자를 쓰게 되었다.〔今天下車同軌 書同文〕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3]보천솔토(普天率土) :
천 하의 모든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시경(詩經)》 소아(小雅) 북산(北山)하늘 아래 모든 곳이 왕의 땅 아님이 없으며, 땅의 모든 물가에 이르기까지 왕의 신하 아님이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4]이강(釐降) :
() 임금이 딸을 순()에게 시집보낸 《서경(書經)》 요전(堯典)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왕녀를 신하에게 시집보내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원 세조(元世祖)가 자기의 딸인 홀도노게리미실공주(忽都魯揭里迷失公主)를 세자 신분이었던 충렬왕(忠烈王)에게 출가시킨 것을 가리킨다.
[주D-005]천자의 …… 것입니다 :
《서경》 미자지명(微子之命)천자의 나라와 복을 함께 받는 가운데, 영원토록 끝없이 이어지게 하라.〔與國咸休 永世無窮〕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6]반포(哺) 보답 :
자식의 효도를 뜻한다. 반포는 까마귀 새끼가 다 크고 나서 자기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것을 말하는데, 예로부터 까마귀는 효조(孝鳥)로 알려져서 자오(慈烏)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拾遺記》
[주D-007]진(秦)나라의 데릴사위 :
전 국 시대 진나라의 풍속에 자식이 장성하면 부잣집은 분가를 시켜 따로 살게 하였고 가난한 집은 처가살이를 시켰다. 이때 데릴사위는 장인과 장모를 자기의 부모로 삼고 자녀도 모성(母姓)을 따르게 하였으며 대체로 노비와 같은 천인(賤人)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註》《漢書 卷48 賈誼傳》
[주D-008]시경에서도 …… 않았습니까 :
사신을 보낼 때 불렀던 《시경》 소아(小雅) 황황자화(皇皇者華)달리고 또 달리며 두루 묻고 강구하네.〔載馳載驅 周爰咨詢〕라는 말과, “달리고 또 달리며 두루 묻고 의논하네.〔載馳載驅 周爰咨諏〕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9]필부필부가 …… 것이다 :
《서 경》 함유일덕(咸有一德)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부릴 사람이 없고,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섬길 사람이 없으니, 임금 스스로 크다 하여 남을 편협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필부필부가 자신의 성의를 다 바치지 못하게 하면, 백성의 임금된 자가 자기의 공을 더불어 이룰 수 없게 될 것이다.〔后非民罔使 民非后罔事 無自廣以狹人 匹夫匹婦 不獲自盡民主罔與成厥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0]옛날 …… 합니다 :
()나라 때 동해군(東海郡)의 효부(孝婦)가 자식도 없이 일찍 과부가 되었는데, 개가를 권해도 거절하고는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그 뒤 시어머니가 노쇠하여 누를 끼치고 싶지 않은 생각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는데, 시누이의 무고로 관아에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받고는 거짓 자복을 하여 사형을 받았다. 그 뒤 3년 동안 동해군 전역에 큰 가뭄이 들자, 후임 태수가 그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는 소를 잡아서 효부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비()를 세우니 큰 비가 내렸다고 한다. 《漢書 卷71 于定國傳》《說苑 貴德》

 

 

 

 

 

 

본국(本國)의 재상(宰相)에게 부친 글

 


()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여러 상공(相公) 각하에게 글을 올립니다. 내가 병든 탓으로 좌우에 나아가 얼굴을 뵙고서 소회(所懷)를 진달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끝내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는다면 나의 마음이 항상 앙앙불락(怏怏不樂)하여 답답하게 막힌 채 풀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제공(諸公)도 필시 나를 아무 것도 모른다고 치부하고는 사람으로 대접해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침묵만 지키고 있을 수 없어서 한마디 말씀을 토해 내게 되었으니, 제공이 잘 들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생 각건대 우리 삼한(三韓)이 나라다운 나라가 되지 못한 지가 또한 오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풍속은 무너지고 형정(刑政)은 문란해져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처럼 무엇을 믿고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지금은 국왕이 천조(天朝)의 승상(丞相) 신분으로 새로 명을 받은 나라가 되었으므로, 백성들이 큰 가뭄에 단비를 바라는 것처럼 잔뜩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왕 승상이 춘추는 젊어도 겸허하고 침착하시어 한 나라의 정사를 제공을 통해서 행하려 하시니, 사직의 안위와 인민의 이병(利病)을 비롯해서 사군자(士君子)의 진퇴 등이 모두 제공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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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군자를 진출시키면 사직이 안정되고 군자를 퇴거시키면 인민이 괴롭게 되는 것이야말로 고금의 변하지 않는 이치이니, 그러고 보면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또 정치를 행하는 근본이 된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쓰기는 쉬워도 사람을 알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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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邪正)을 묻지 않고 고하(高下)를 논하지 않은 채 오직 재물만을 중시하고 권세만을 의지하면서, 나에게 빌붙는 자는 간사한 아첨꾼이라도 진출시키고 나와 다른 사람은 청렴하고 근실해도 퇴거시킨다면, 사람을 쓰는 것이 너무도 쉽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쉽게 쓰기 때문에 정치가 날로 어지러워지고, 정치가 어지러워지기 때문에 국가도 따라서 위망(危亡)에 처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굳이 멀리 고대에서 찾을 것도 없이 실제로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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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사람을 진퇴시킬 때마다 반드시 그 소행과 소종래(所從來)를 살피면서, 오직 재물에 오염될까, 권세에 흔들릴까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줏빛이 붉은빛의 자리를 빼앗고 보옥과 막돌이 뒤섞이는 폐단을 면치 못하였으니, 그러고 보면 사람을 안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 늘날 본국의 습속을 살펴보건대, 재물이 있으면 능력이 있다고 하고 권세가 있으면 지혜가 있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조복(朝服)과 유관(儒冠)을 배우가 잡극의 놀이에 쓰는 도구 정도로 간주하는가 하면, 직언과 정론을 민간의 허튼소리 정도로나 여기고 있으니,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된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친척과 이별하고 고향을 떠나 오래도록 연곡(輦轂 연경)에서 객지 생활을 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
요 즈음 제공(諸公)이 정치를 보좌하며 개혁한다고 하는 일을 들어 보건대, 전일과 크게 다른 점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원로를 공경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연소자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형식적으로는 청렴을 숭상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탐욕스러운 자가 권세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악(小惡)을 물리쳤다고는 해도 대악(大惡)은 여전히 고치지 않고 있으며, 구신(舊臣)을 교체했다고는 해도 신참들이 거꾸로 구신에게 빌붙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처럼 사람을 알아보는 일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사람을 쓰는 일을 쉽게 하고 있으니, 이는 국왕 승상이 제공에게 위임한 뜻이 아닐 듯합니다. 조정에서 이런 일을 듣는다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
어떤 이가 나에게 말하기를제공에게 꼭 글을 부칠 것이 있겠는가. 그들이 보면 화만 낼 것이니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라고 하기에, 내가 응답하기를사직을 안정시킬 수 있고 인민을 이롭게 할 수만 있다면, 장차 본말을 갖추어 조정에도 이야기하고 천자에게도 진달드릴 것인데, 어찌 제공이 화내는 것을 내가 무서워해서 아무 말도 못 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감히 되는대로 허튼소리를 들려 드리게 되었으니, 오직 제공은 굽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주D-001]자줏빛이 …… 빼앗고 : 《논 어(論語)》 양화(陽貨)잡색인 자줏빛이 원색인 붉은빛의 자리를 뺏는 것을 미워하며, 정나라의 음란한 음악이 바른 아악을 문란하게 하는 것을 미워하며, 말만 잘하는 입이 나라를 뒤엎는 것을 미워한다.〔惡紫之奪朱也惡鄭聲之亂雅樂也 惡利口之覆邦家者〕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보옥과 …… 폐단 :
《포박자(抱朴子)》 백가(百家)진실과 허위가 뒤바뀌고, 보옥과 막돌이 뒤섞였다. 그래서 이 점을 슬퍼하는 것이다.〔眞僞顚倒 玉石混淆 故是以悲〕라는 말이 나온다.

 

 

 

정당(政堂)에게 올린 글

 


어떤 존재이든 간에 마음이 평정하지 않으면 뭔가 소리를 내게 마련이니,
이는 내면의 동요가 외면으로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생각건대 때라는 것은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쉬운 것인데, 어설픈 자는 뒤처지는 반면에 약빠른 자는 선점하는 법입니다. 이에 감히 평소의 생각을 토로하여, 맑으신 귀를 귀찮게 해 드릴까 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사람의 출처(出處)는 세상의 장부(臧否 치란(治亂))와 연관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 사람이 어려서부터 배우는 까닭 장성해서 그것을 행하기 위함이니, 이것이 바로 유학(儒學)에 종사하는 사람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물이 깊으면 입은 채로 건너가고 물이 얕으면 바지를 걷고 건너가는 법이니, 이 또한 자기 몸을 간수하는 방법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만나기 어려운 것은 기회인데, 더군다나 지금 행하려고 하는 것이 바른 도()인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겠다고 은 원래 선성(先聖)의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예물을 싣고 국경을 나간 을 통해서 우리는 옛사람의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흔두 번이나 점을 쳐서 맞춰 보기도 하였고, 3000독(牘)이나 되는 상소문을 올려 아뢰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감노(監奴)에게 절을 달라고 요구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름을 도둑질하는 처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행색은 황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도 같습니다만, 마음은 여유작작하여 느긋하기만 합니다.
설류(泄柳) 목공(繆公) 신하가 되는 것을 수치로 여겼을 때에, 맹자는 그가 문을 닫고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기롱하였고, 염구(冉求) 계씨(季氏) 가신이 되었을 때에, 공자는 북을 울려 성토하며 공격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의리와 이욕을 구분하는 일이야 어찌 신중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마는, 취사선택을 타당하게 하여 구차하다는 말을 듣지는 말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한유(韓愈) 재상에게 차례나 올린 글에서도 있듯이, 9품과 같은 말단의 직위도 오히려 구할 있다고 하겠습니다마는, 소진(蘇秦) 일단 제후에게서 육국(六國) 정승의 인수(印綬) 이상에는, 마지기 정도의 전지(田地) 따위야 자뢰할 것이 뭐가 있다고 하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곡직의 차이에 따라서 받는 대우도 혹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운운. 세상에 드문 영특한 재질을 인정받고서 이 시대에 큰 쓰임이 되셨으니, 우리 임금님에게 잘못이 없게 하려면 선비들을 빠짐없이 거두어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선 아는 이를 천거하면
군자가 잔디 뿌리 뽑히듯 나올 것이요, 그 은혜를 확대해서 적용하면 노인이 풀을 묶어서 보답할 것입니다.
이 기회에 청류(淸流)를 끌어올려 선을 장려하고 탁류(濁流)를 밀어 내보내 악을 물리치면서, 참으로 잡색인 줏빛이 원색인 붉은빛의 자리를 빼앗지 못하도록 해야 것입니다. 이는 악공이 악기의 소리를 잘 구별해서 금()ㆍ석()ㆍ사()ㆍ죽()ㆍ포()ㆍ토()ㆍ혁()ㆍ목()이 각각 제 음조를 지켜 남의 음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고, 장씨(匠氏)가 집을 지을 적에 재목의 용도를 잘 구별해서 부()ㆍ노(
)ㆍ주()ㆍ유()ㆍ외()ㆍ얼()ㆍ거()ㆍ설()이 각각 자기 위치에서 온당하게 쓰일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몸에 모든 것이 갖추어지기를 요구하지만 않는다면, 천리마와 같은 준재를 초치하는 또한 어려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낭서(郞署)에는 백수(白首) 탄식이 없어질 것이요, 국풍(國風)에는 치의(緇衣) 시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조화(造化)의 용광로 안에는 넓고 좁고 모나고 둥근 것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겠습니다마는, 사람을 추천하는 붓끝에는 억누르고 드날리고 높이고 낮추는 정도가 다른 법입니다.
삼가 생각해 보건대, 오랜 세월 동안 싫증 나도록 진흙탕 속에 똬리를 틀고서
항상 물결을 치며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희망하였지만, 사해(四海) 안에서 아직 지기(知己)를 만나지 못한 채 10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수재(秀才)의 신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헌면(軒冕) 뜻밖에 우연히 나에게도 찾아온다면, 행여 나이가 더 늦어지기 전에 왔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뒤에 자가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면, 참으로 뒤로 물러나서 옛사람의 법도를 따르는 것이 온당할 것입니다.
물고기가 아니니 물고기를 어떻게 알겠습니까마는,
나의 처지는 장주(莊周) 학철(涸轍)과도 흡사하다고 할 것입니다. 천리마가 없는 것인지 천리마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지, 응당 백락(伯樂) 수레를 멈추게 하고서 물어보아야 것입니다.
기뻐할 만한 것은 명군(明君)의 시대를 만난 것이요, 슬퍼할 만한 것은 집에 노모가 계신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하늘이고 무엇이 명인 줄을 알고 있는 만큼, 내가 구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이 구하는 방식과는 다르다고 것입니다.
머리에 바르는 기름이 어찌 없으리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화장을 하겠습니까. 비록 지혜가 있다고 하더라도, 좋은 형세를 이용하는 것만은 못한 법입니다.
나아가나 물러가나 이룬 바가 없으니, 어떤 좌우에 있는 이가 아름답게 꾸며 주겠습니까. 도끼를 휘두르는 일을 사양하지 않으신다면, 영인(郢人) 짝이 것을 보증하겠습니다. 만약에 옥을 바쳐서 팔리려고만 한다면, 초왕(楚王) 의심하리라고 의심할 것이 있겠습니까.
외람되게 범을 그리는 재주를 가지고 정() 구별하는 안목을 귀찮게 해 드렸습니다만, 행여 은택의 물결을 드리워서 침체된 이 몸을 조금 구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자에도 짧은 곳이 있고 치에도 곳이 있으니, 반드시 보람 있는 일을 하여 이 은혜에 보답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저울은 사사로움 없이 공평하고 거울은 사사로움 없이 비춰 주니, 사사로움 없이 선발해 주리라는 나의 믿음을 감히 저버리시기야 하겠습니까.

 

[주D-001]어떤 …… 마련이니 : 한유(韓愈)가 지은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의 첫머리에대범 만물이 평정을 얻지 못하면 울림의 현상이 있게 마련이다.〔大凡物不得其平則鳴〕라는 유명한 명제(命題)가 나온다.
[주D-002]때라는 …… 것인데 :
《사 기(史記)》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공이라는 것은 이루기는 어려워도 망치기는 쉽고, 때라는 것은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쉽다. 지금과 같은 좋은 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夫功者難成而易敗時者難得而易失也 時乎時乎不再來〕라고 괴통(蒯通)이 한신(韓信)을 설득하는 내용이 나온다.
[주D-003]사람이 …… 위함이니 :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사람이 어려서부터 배우는 까닭은 장성해서 배운 그것을 행하기 위함이다.〔夫人幼而學之 壯而欲行之〕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물이 …… 법이니 :
《시경》 패풍(
) 포유고엽(匏有苦葉)허리에 찰 정도로 물이 깊으면 옷을 입은 채로 건너가고, 물이 무릎 아래 정도로 차면 바지를 걷고 건너간다.〔深則厲 淺則揭〕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5]뗏목을 …… :
《논어》 공야장(公冶長), 공자(孔子)가 난세를 개탄하면서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나 나갈까 보다.〔道不行 乘桴浮于海〕라고 말한 내용이 실려 있다.
[주D-006]예물(禮物)을 …… :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공자는 3개월 동안 섬기는 임금이 없으면 마음이 다급해져서 국경을 나갈 적에 꼭 새 임금을 만나 볼 예물을 싣고 갔다.〔孔子三月無君則皇皇如也 出疆必載質〕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7]일흔두 번이나 …… 하였고 :
《장자(莊子)》 외물(外物), 송 원군(宋元君)이 거북을 잡아서 점을 치라는 말을 듣고는, “거북을 죽여서 일흔두 번이나 점을 쳤는데, 그때마다 길흉이 모두 점괘와 들어맞았다.〔乃刳龜 七十二鑽 而無遺
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D-008]3000독(牘)이나 …… 것입니다 :
《사기》 권126 골계열전(滑稽列傳), 동방삭(東方朔)이 처음 장안(長安)에 들어와 공거(公車)에 이르러서 무려 3000독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주문(奏文)을 올렸다는 말이 나온다.
[주D-009]감노(監奴)에게 …… 않지만 :
후 한(後漢) 영제(靈帝) 때에 환자(宦者) 장양(張讓)이 중상시(中常侍)로 자리를 옮기고 열후에 봉해졌다. 부풍(扶風) 사람 맹타(孟佗)가 장양의 감노와 하인들을 극진히 대접하며 선물을 많이 주었다. 감노가 그의 소원을 물으니, 맹타가 말하기를나의 소망은 너희들이 나에게 절 한 번 해 주는 것이다.〔吾望汝曹爲我一拜耳〕라고 하였다. 장양에게 청탁하려는 빈객들이 잔뜩 모였을 때 맹타가 뒤늦게 도착하자, 감노가 하인들을 이끌고 맹타에게 절을 하며 모시고 들어오니, 빈객들이 장양보다 더 위세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맹타에게 다투어 뇌물을 바쳤다. 이에 맹타가 그 뇌물을 장양에게 나누어 주니, 장양이 크게 기뻐하여 맹타를 양주 자사(涼州刺史)로 삼았다. 《後漢書 卷78 宦者列傳張讓》
[주D-010]이름을 …… 되겠습니까 :
제 선왕(齊宣王)이 피리 연주를 좋아하여 항상 300인을 모아 놓고 합주하게 하자, 남곽 처사(南郭處士)가 자격도 없이 슬쩍 끼어들어 이름을 도둑질하며 국록을 타 먹었는데, 선왕이 죽고 민왕(湣王)이 즉위한 뒤에 한 사람씩 연주를 하게 하자 처사가 허명(虛名)만 지닌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기의 본색이 탄로 날까 두려워서 도망쳤다는 남곽 취우(南郭吹竽)의 고사가 전한다. 《韓非子內儲說上》
[주D-011]설류(泄柳)가 …… 기롱하였고 :
설 류는 노()나라 목공(繆公) 때의 사람이다. 목공이 그를 신하로 영입하기 위하여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에 그가 문을 닫고 받아들이지 않았는데〔閉門而不內〕 맹자가 여기에 대해 너무 심한 행위라고 논평하고, 찾아온 정성이 간절하면 만나 주어야 한다고 했다. 《孟子 滕文公下》
[주D-012]염구(冉求)가 …… 하였습니다 :
공 자의 제자 염구가 권력자인 계강자(季康子)의 가신이 된 뒤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 그의 재산을 늘려 주자, 공자가 크게 노하여 제자들에게그는 더 이상 우리 무리가 아니니, 자네들은 북을 울려 성토하며 그를 공격해도 좋다.〔非吾徒也小子鳴鼓而攻之可也〕라고 말하였다. 《論語 先進》
[주D-013]한유(韓愈)가 …… 하겠습니다마는 :
한 유가 과거에 급제하고도 벼슬길이 순탄치 못하자, 그의 나이 28세 때인 당 덕종(唐德宗) 정원(貞元) 11년 정월부터 3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당시 재상인 가탐(賈耽)과 노매(盧邁)에게 글을 올려 관직을 요청했으나, 끝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부득이 동쪽으로 돌아갔는데, 당시에 올린 그의 상재상서(上宰相書)예부의 과거 시험에 네 번 응시해서 겨우 한 번 급제하였다. 그 뒤 이부에 세 번 천거되었으나 끝내 이루어진 것이 없다. 그러니 9품의 말단 직위인들 바라볼 수가 있겠으며, 1묘의 허름한 누옥인들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사해 안에 돌아갈 곳이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배고파도 먹을 수 없고 추워도 입을 수 없는 걱정에 휩싸여 있다.〔四擧於禮部乃一得三選於吏部卒無成 九品之位 其可望 一畝之宮 其可懷 遑遑乎四海無所歸 恤恤乎饑不得食寒不得衣〕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4]소진(蘇秦)이 …… 하겠습니까 :
전 국 시대 낙양인(洛陽人) 소진이 합종책을 주장하며 연()ㆍ제()ㆍ초()ㆍ조()ㆍ위()ㆍ한() 등 육국(六國)의 제후를 설득하여 종약장(縱約長)이 된 뒤에가령 내가 낙양성 교외에 좋은 땅 두 마지기만 가지고 있었다면, 어떻게 여섯 나라 정승의 인을 꿰찰 수 있었겠는가.〔且使我有洛陽負郭田二頃 吾豈能佩六國相印乎〕라고 말했던 고사가 있다. 《史記 卷69 蘇秦列傳》
[주D-015]군자(君子)가 …… 것이요 :
뜻 을 같이하는 현인들이 때를 만나 한꺼번에 나아올 것이라는 말이다. 《주역(周易)》 태괘(泰卦) 초구(初九)서로 뒤엉켜 있는 잔디 뿌리를 뽑아 올리듯, 어진 사람들과 어울려서 함께 나아오니 길하다.〔拔茅茹 以其彙 征吉〕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16]노인이 …… 것입니다 :
춘 추 시대에 진()나라 위무자(魏武子)가 병이 들자 아들 위과(魏顆)를 불러 말하기를내가 죽거든 나의 첩을 다른 곳으로 개가시켜라.”라고 하였는데, 병이 위독해서 죽기 직전에는 다시 유언하기를, “내가 죽거든 첩을 순장하라.”라고 하였다. 위무자가 죽은 뒤에 위과가 말하기를개가시키라는 것은 부친의 정신이 정상일 때의 명령이요, 순장하라는 것은 정신이 비정상일 때의 명령이니, 나는 앞의 명령을 따르겠다.” 하고는 첩을 개가시켰다. 그 뒤에 위과가 진()나라 장수 두회(杜回)와 싸울 적에, 한 노인이 풀밭의 풀을 묶어서 두회를 쓰러지게 한 덕분에 두회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나는 그대가 개가시킨 첩의 아비이다. 그대가 나의 딸을 순장하지 않고 개가시킨 그 은혜를 갚으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고사가 전한다. 《春秋左氏傳宣公15年》
[주D-017]잡색인 …… 것입니다 :
《논 어(論語)》 양화(陽貨)잡색인 자줏빛이 원색인 붉은빛의 자리를 뺏는 것을 미워하며, 정나라의 음란한 음악이 바른 아악을 문란하게 하는 것을 미워하며, 말만 잘하는 입이 나라를 뒤엎는 것을 미워한다.〔惡紫之奪朱也惡鄭聲之亂雅樂也 惡利口之覆邦家者〕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8] 사람의 …… 않는다면 :
《논어》 미자(微子)한 사람의 몸에 모든 것이 갖추어지기를 요구하지 않는다.〔無求備於一人〕라는 주공(周公)의 말이 나온다.
[주D-019]천리마와 …… 있겠습니까 :
전 국 시대 연()나라 소왕(昭王)에게 곽외(郭隗)죽은 말 한 마리의 뼈를 500()에 사들였더니, 1년도 채 안 되어서 살아 있는 천리마 세 마리가 찾아왔다.”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자기부터 우선 대우를 잘해 주면 천하의 현사들이 저절로 모여들 것이라고 말하자, 소왕이 연경(燕京)에 황금대를 세우고 인재를 초빙하니, 악의(樂毅)와 극신(劇辛) 등의 명사가 대거 찾아왔다는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燕策》
[주D-020]낭서(郞署)에는 …… 것이요 :
한 무제(漢武帝)가 낭서에 와서 백발의 낭관(郞官)인 안사(顔駟)를 보고 불쌍하게 생각하며 언제 낭관이 되었느냐고 묻자, 안사가 문제(文帝) 때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무제가 늙도록 불우하게 된 이유를 묻자, 안사가문제는 문()을 좋아했는데 나는 무()를 숭상했고, 경제(景帝)는 노인을 좋아했는데 나는 그때 아직 젊었고, 폐하는 젊은이를 좋아하는데 나는 이미 늙었습니다. 그래서 삼세(三世)에 걸쳐서 불우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文選 思玄賦註 漢武故事》
[주D-021]국풍(國風)에는 …… 것입니다 :
치 의(緇衣)는 《시경》 정풍(鄭風)의 편명으로, 현사(賢士)를 예우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예기(禮記)》 치의(緇衣)현인을 좋아하기를 치의편처럼 하고, 악인을 미워하기를 항백편처럼 하면, 벼슬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도 백성들이 조심할 줄 알게 될 것이며, 형벌을 시험하지 않고도 백성들이 모두 복종할 것이다.〔好賢如緇衣惡惡如巷伯 則爵不瀆而民作愿 刑不試而民咸服〕라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주D-022]항상 …… 희망하였지만 :
대 붕(大鵬)이 남명(南冥) 즉 천지(天池)를 향해 날아갈 적에 삼천 리에 걸쳐 바다 물결을 치고 앞으로 나아가다가〔水擊三千里〕, 때마침 불어 오는 회오리바람을 타고서 구만 리 위로 날아오른다는 이야기가 《장자》 소요유(逍遙遊) 첫머리에 나온다.
[주D-023]헌면(軒冕)이 …… 찾아온다면 :
헌 면은 수레와 면류관이라는 말로, 관작과 봉록 등 높은 벼슬을 뜻하는데, 《장자》 선성(善性)헌면이 몸에 있는 것은 본래 성명처럼 내 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외물이 뜻밖에 우연히 와서 잠시 붙어 있는 것이다.〔軒冕在身 非性命也 物之儻來寄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24]뒤에 …… 한다면 :
()나라 급암(汲黯)이 공손홍(公孫弘)이나 장탕(張湯) 등 자신의 후배들이 자기보다 높은 지위로 계속 승진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는 한 무제(漢武帝)에게폐하가 신하들을 임용하는 것을 보면 마치 장작더미를 쌓는 것 같아서, 뒤에 온 자들이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陛下用群臣如積薪耳 後來者居上〕라고 불평하며 호소한 고사가 있다. 《史記 卷120 汲鄭列傳》
[주D-025]참으로 …… 것입니다 :
한 유(韓愈)가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나서 오랫동안 벼슬을 구했지만 뜻을 얻지 못하자 동쪽으로 돌아갔는데, 그로부터 12년째 되던 해에 겨우 변주(汴州)의 보좌역으로 나갔다가 이듬해 병을 이유로 사직한 뒤에 이소체(離騷體)로 지은 복지부(復志賦)참으로 뒤로 물러나서 전인(前人)의 법도를 따르려고 하였으나, 그 흐름에 몸을 적셔 가까이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더욱 멀어지기만 하였다.〔諒却步以圖前兮 不沈近而愈遠〕라는 말이 나온다.
[주D-026]물고기가 …… 알겠습니까마는 :
장 자(莊子)가 친구인 혜시(惠施)와 더불어 물고기의 즐거움〔魚之樂〕에 대해서 서로 토론을 벌인 이른바호량(濠梁)의 대화가 《장자》 추수(秋水)에 실려 있는데, 그 토론 중에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의 낙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子非魚安知魚之樂〕라고 혜시가 반박하는 대목이 나온다.
[주D-027]장주(莊周) 학철(涸轍) :
동해의 물고기가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에 있으면서, 한 말이나 한 되 정도의 물만 부어 주면 살아나겠다고 애원한 학철부어(涸轍鮒魚)의 고사를 인용해서 장자가 다급하게 구원을 요청한 내용이 《장자》 외물(外物)에 나온다.
[주D-028]천리마가 …… 것입니다 :
백 락(伯樂)은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 때에 준마를 잘 감별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손양(孫陽)의 별명이다. 전국 시대 종횡가(縱橫家)인 소대(蘇代)가 순우곤(淳于髡)에게준마를 팔기 위해서 사흘 동안이나 시장에 내 놓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다가 백락이 한 번 돌아보자 하루아침에 그 말의 값이 10배나 뛰어올랐다.”라고 말한 내용이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 2에 나온다. 그리고 한유의잡설(雜說) 4’세상에 백락이 있은 뒤에야 천리마가 있게 된다.〔世有伯樂 然後有千里馬〕라고 전제한 뒤에, 보통으로 말을 먹여 기르는 자들이 채찍을 손에 쥐고 말을 굽어보면서 천하에 천리마가 없다고 말한다고 하고는, 바로 이어서, 참으로 천리마가 없는 것인가, 참으로 천리마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嗚呼其眞無馬邪 其眞不知馬也〕라고 물으면서 결론을 맺는 내용이 나온다.
[주D-029]무엇이 …… 만큼 :
《맹자》 만장 상(萬章上)사람이 그렇게 하려 하지 않는데도 그렇게 되는 것은 하늘이요, 그렇게 되도록 한 것이 없는데도 그런 결과가 온 것은 명이다.〔莫之爲而爲者 天也 莫之致而至者 命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30]내가 …… 것입니다 :
《논 어》 학이(學而)에 공자(孔子)가 국가의 정사에 참여하는 방식과 관련한 대화가 나오는데, 그중에 자공(子貢)선생님은 온화하고 순량하고 공경하고 검소하고 겸양하는 덕을 바탕으로 해서 구해 얻으시는 것이니, 선생님이 구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이 구하는 방식과는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라고 말한 내용이 있다.
[주D-031]머리에 …… 하겠습니까 :
《시 경》 위풍(衛風) 백혜(伯兮)낭군이 동쪽으로 출정한 뒤로부터, 나의 머리칼은 바람에 날리는 쑥대와 같아라. 머리에 바르는 기름이 어찌 없으리오마는, 내가 누구를 위하여 곱게 화장을 하겠는가.〔自伯之東 首如飛蓬 豈無膏沐 誰適爲容〕라는 말이 나온다.
[주D-032]비록 …… 법입니다 :
《맹 자》 공손추 상(公孫丑上)비록 지혜가 있다고 하더라도 좋은 형세를 이용하는 것만은 못하고, 비록 농사지을 연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농사지을 때를 기다리는 것만은 못한 법이다.〔雖有智慧 不如乘勢 雖有鎡基不如待時〕라는 말이 나온다.
[주D-033]어떤 …… 주겠습니까 :
전 한(前漢) 추양(鄒陽)의 옥중상서(獄中上書)뿌리와 가지가 구불구불 휘어진 나무도 임금의 총애를 받는 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좌우에서 모시는 신하가 먼저 그 나무를 아름답게 꾸며 주기 때문이다.〔蟠木根柢 輪囷離奇 而爲萬乘器者 何則 以左右先爲之容也〕라는 말이 나온다. 《史記 卷83 鄒陽列傳》
[주D-034] 번 …… 보증하겠습니다 :
()이라는 지역의 장석(匠石)이 도끼를 휘둘러서 사람의 코끝에 살짝 묻힌 하얀 흙만 교묘하게 떼어 내고 사람은 절대로 다치지 않게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흙을 묻힌 사람은 가만히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뒤에 송 원군(宋元君)이 그 말을 듣고는 장석을 불러 시연(試演)을 청하자, 장석이예전에는 잘했지만 지금은 나의 짝이 오래 전에 죽어서 더 이상 솜씨를 발휘할 수가 없다.〔臣則嘗能斲之 雖然 臣之質死久矣〕라고 대답한 이야기가 《장자》 서무귀(徐无鬼)에 나온다. 이는 장자가 자기 친구인 혜시(惠施)의 묘소를 지나가다가 종자에게 들려준 이른바 운근성풍(運斤成風)의 고사로, 흔히 지기(知己)를 뜻하는 비유로 인용되곤 한다.
[주D-035]만약에 …… 한다면 :
공 자의 제자 자공이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고 할 때, 이것을 상자 속에 그냥 보관해 두어야 합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받고 팔아야 합니까?〔有美玉於斯 韞櫝而藏諸 求善賈而沽諸〕하고 묻자, 공자가팔아야지, 팔아야 되고말고. 나 역시 제값을 주고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고 대답하였다. 《論語 子罕》
[주D-036]초왕(楚王)이 …… 있겠습니까 :
춘 추 시대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진귀한 옥돌을 초나라 임금에게 바쳤다가 임금을 속인다는 누명을 쓰고 두 차례나 발이 잘리는 형벌을 받았으나, 나중에 왕에게 진가를 인정받고서 천하제일의 보배인 화씨벽(和氏璧)을 만들게 되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韓非子 和氏》
[주D-037]범을 그리는 재주 :
뜻 만 높을 뿐 성취하는 바가 없어서 남의 조롱만 받는 미천한 재주라는 뜻의 겸사이다. 후한(後漢) 마원(馬援), 호협(豪俠)하여 의리를 중시하는 두보(杜保)를 자기가 애지중지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제대로 본받지 못할 경우에는 그지없이 경박한 사내가 되고 말 것이니, 이는 이른바범을 그리다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거꾸로 개같이 되고 마는 것이다.〔畫虎不成反類狗〕라고 조카들을 경계시키면서 아예 그를 본받지 말라고 훈계한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주D-038]정() 구별하는 안목 :
박 학다식하여 인재를 알아보는 감식안의 소유자라는 말이다. 정은 다람쥐의 일종인 정서(
)의 준말로, 쥐와 비슷한 크기에 얼룩무늬가 있으며 깊은 산속의 나무 위에서 서식한다. 한 무제(漢武帝)가 표범 무늬의 쥐 비슷한 동물을 잡고 나서 군신에게 물었으나 아무도 답변을 못 할 적에 종군(終軍)이 《이아(爾雅)》의 기록을 인용하며 정서라고 대답하자, 무제가 박학하다고 칭찬하면서 비단 100필을 하사하는 한편 여러 왕자들에게 조칙을 내려 종군에게 《이아》를 배우게 했다는 고사가 《이아》의 주()에 나와 있다. 또 진()나라 두유(竇攸)도 세조(世祖)의 똑같은 물음에 종군처럼 대답해서 은상(恩賞)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는데, 보통 박식한 사람을 비유할 때 정서필대(鼠必對)라는 사자 성어를 쓰곤 한다. 《太平御覽卷215 總敍尙書郞》
[주D-039] 자에도 …… 있으니 :
누 구에게나 단점과 장점이 있다는 말이다. 《초사(楚辭)》 복거(卜居)한 자에도 짧은 곳이 있고, 한 치에도 긴 곳이 있으며, 어떤 물건이라도 부족한 곳이 있고, 어떤 지자(智者)라도 밝지 못한 곳이 있다.〔夫尺有所短 寸有所長 物有所不足 智有所不明〕라는 말이 나온다.

 

 

 

()

 

 

 

수정 장로(水精長老)를 전송한 시의 서문

 


중니(仲尼 공자(孔子)) 가 세상을 떠나고 부도(浮圖)의 학술을 신봉하는 무리가 출현하여 유교와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그들의 교설을 보면 공적(空寂)하고 고원하여 인간 세상의 도리에 오활한 면이 있기 때문에 공씨(孔氏)의 학술을 신봉하는 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당(唐)나라의 이부(韓吏部) 같은 이는 더더욱 힘을 기울여서 불교를 배척하였다. 하지만 그의 글을 보노라면 간혹 승려들과 교유하며 대화하는 사이에 친근하게 여기는 정이 자주 나타나곤 하는데, 이는 어쩌면 그 승려들 모두가 뜻이 맑고 품행이 조촐하여 영욕(榮辱)을 도외시하고 사생(死生)을 하나로 여기는 이들이라서, 잃어버릴까 걱정하며 이욕(利欲)에 골몰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아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뛰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가 그의 시를 외우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 승려들의 사람됨을 혼자서 상상해 보곤 하였다.
지금 수공(修公)은 삭발하고 출가한 뒤로부터, 명예와 이욕의 길에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고서 산과 물 가운데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용의(容儀)가 소쇄(蕭洒)할 뿐만 아니라 장구(章句) 역시 청절(淸絶)하기만 하니, 가령 문공(文公 한유의 시호(諡號)) 이 다시 세상에 나온다고 하더라도 수공과의 교유는 반드시 끊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더군다나 나와 같은 불초는 수공의 높은 풍도에 나름대로 경의를 표하면서 일찍 알지 못한 것을 오히려 한스럽게 여기고 있는데, 유불(儒佛)의 사이를 따질 겨를이 어디에 있겠는가
.
, 수공과 교유한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지금 갑자기 그가 영남(嶺南)으로 떠난다는 기별이 왔다. 영남의 장관(壯觀)은 동국(東國)에서 첫 손에 꼽히는데, 영남 중에서도 두류산(頭流山)에 그 장관이 모두 모여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두류산 속에 바로 수정(水精)이 대총림(大叢林)으로 자리하고 있으니, 이곳에 석장(錫杖)을 머물게 하여 쉴 수 있으려면 석교(釋敎)를 두루 통달하여 대중의 추대를 받는 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번의 걸음은 산과 물을 즐기려는 고아한 지취에 걸맞을 뿐만 아니라, 실로 석자(釋子)가 평소에 바라던 대로 도를 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이 구구하게 느끼는 이별의 한스러움 따위야 돌아보고 말고 할 것이 있겠는가. 이에 동쪽 교외에 자리를 펴고 운()을 나누어 전송하는 시를 짓게 되었는데, 나에게 서문을 지으라고 해서 이렇게 적게 되었다.

 

[주D-001]당(唐)나라의 …… 배척하였다 : 한 이부(韓吏部)는 당 헌종(唐憲宗) 때 이부 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를 말한다. 헌종이 서역(西域)에서 부처의 사리를 들여와 경배하자, 한유가 불골표(佛骨表)를 올려 강력하게 배척했다가, 헌종이 크게 노하는 바람에 겨우 죽음을 면하고서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쫓겨난 고사가 있다.

 

 

 

상국(上國)으로 유학(遊學)하러 떠나는 동년(同年) 김동양(金東陽)을 전송한 시의 서문

 


초(楚)나라 왕이 박옥(璞玉) 의심한
은 박옥 자체가 아름답지 않아서 왕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든 것이 아니요, 노(魯)나라 사람이 원거(爰居) 제사 지낸 은 원거 자체에 덕이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제사 지내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예나 이제나 사군자(士君子)의 진퇴를 보면, 대개는 또 이와 같은 점이 있다.
동 년(同年) 김 수재(金秀才)는 군자다운 사람이다. 그는 행동과 문장 면에서는 모두 넉넉하여 여유가 있는데, 단지 진퇴하는 사이에 있어서만은 자신의 뜻에 차지 않는 점이 있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노나라에서 환대를 받는 원거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초나라에서 낭패를 당하는 박옥이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그러고 보면 그의 진퇴가 어찌 여유작작하지 않겠으며
, 위험한 짓을 행하면서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어찌 하늘과 땅처럼 현격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 군은 시를 읊으며 술을 마실 때면 언제나 개연(慨然)히 탄식하기를지금 우리 황원(皇元)은 그지없이 드높고 그지없이 휘황하다. 처음에는 무공(武功)으로 천하를 평정하였으나, 지금은 문리(文理)로 해내(海內)를 교화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조축(釣築)에 서 일어나서 국정을 담당하고, 초야를 떠나와서 도의(道義)를 이야기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남아가 시골 한 구석을 지키면서 일 하나에 얽매어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 나는 장차 북쪽으로 중국에 가서 배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벌목편(伐木篇)깊은 골짜기에서 꾀꼬리 훌쩍 날아올라, 높은 나뭇가지 위로 옮겨 가누나.〔出自幽谷 遷于喬木〕라는 구절을 계속 반복해서 외우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식자들이 이를 듣고서는 김군의 쓸개가 몸보다 크다는 을 알았다.
내가
부신(負薪) 걱정 때문에 왕래하지 못한 지 며칠이 되었는데, 어제 어떤 이가 와서 김군이 북쪽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알려 주기에, 김군의 언행이 일치한 것을 내가 장하게 여겨 그 즉시 20()의 이별시를 짓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시서(時序)와 경물(景物)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감히 부화(浮華)한 것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실로 문사(文辭)에 졸렬해서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필마로 떠나는 중국 사천 리 길 / 匹馬四千里

친구가 권하는 두석 잔의 술 / 故人三兩盃
이별가 처창하여 애를 긋는데 / 離歌凄欲斷
떠나는 뜻 호연해서 돌이키기 어렵구나 / 去意浩難廻

 

[주D-001]초(楚)나라 …… : 박 옥(璞玉)은 순도 높은 옥의 원석(原石)을 말한다. 춘추 시대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박옥을 얻어 여왕(厲王)에게 바쳤는데 여왕은 가짜라고 의심한 나머지 그의 왼발을 베었고, 무왕(武王)도 역시 알아보지 못한 채 오른발을 베었다. 그 뒤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박옥을 안고서 3일간 주야를 피눈물을 흘리며 슬피 우니, 문왕이 옥인(玉人)에게 가공하게 하니 과연 보옥(寶玉)이었다는 고사가 있다. 《韓非子 和氏》
[주D-002]노(魯)나라 …… :
원 거(爰居)는 해조(海鳥)의 이름이다. 원거(
鶢鶋)라고도 한다. 이 새가 노나라 교외에 날아와 앉자, 임금이 그 새를 정중히 모셔다가 종묘(宗廟)에서 환영연을 베풀면서, () 임금의 소악(韶樂)을 연주하고 소ㆍ양ㆍ돼지고기의 요리로 대접하니, 그 새는 눈이 부시고 근심과 슬픔이 교차하여 고기 한 점도 먹지 못하고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한 채 3일 만에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장자》 지락(至樂)에 나온다. 또 공자가 노나라 장문중(臧文仲)이 예의에 대해서 모르는 것 세 가지를 열거하면서, 죽은 원거를 제사 지낸 것〔祀爰居〕에 대해서 거론한 기록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2년에 나온다.
[주D-003]위험한 …… 사람들 :
《중용장구》 제 14 장에군자는 평이한 도리를 행하면서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짓을 행하면서 요행을 바란다.〔君子居易以俟命 小人行險以徼幸〕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조축(築) :
때 를 만나지 못해 불우한 환경에서 뜻을 펴지 못한 채 매몰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는 주()나라 여상(呂尙)이 반계(磻溪)에서 낚시질을 한 것을 가리키고, ()은 은()나라 부열(傅說)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한 것을 가리킨다.
[주D-005]김군의 …… :
담 량이 지극히 큰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구당서(舊唐書)》 卷87 이소덕전(李昭德傳), 구음(丘愔)이 이소덕을 탄핵하면서그의 쓸개를 보았더니 몸뚱이보다도 컸다.〔觀其膽 乃大於身〕라고 한 말이 나온다. 쓸개의 크기가 말만 하다는 담대여두(膽大如斗)와 같은 뜻이다.
[주D-006]부신(負薪) 걱정 :
《예 기》 곡례 하(曲禮下)에 나오는 말로, 병에 걸렸다는 뜻의 완곡한 표현이다. 땔나무를 지고 온 피곤함 때문에 몸이 병들어서 해야 할 일을 못 하게 되었다는 해석과, 병이 들어서 땔나무를 질 수도 없게 되었다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정 참군(鄭參軍)을 전송한 시의 서문

 


한 양 참군(漢陽參軍) 정영세(鄭永世)가 한양부(漢陽府)로 떠나려 할 적에, 뜻을 같이하는 벗 10인이 동쪽 교외에 모여 전별하였다. 술잔이 돌고 나서 정군이 일어나 읍하며 말하기를붕우는 길 떠나는 사람에게 한마디 말을 선물로 주는 법이다. 어찌 단지 술잔만 건넬 뿐이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내가 선뜻 응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양은 기외(畿外)의 거진(巨鎭)이다. 예로부터 남경(南京)이라고 일컬어지면서 동경(東京 경주(慶州))ㆍ서경(西京 평양(平壤)) 과 더불어 정족(鼎足)의 형세를 이루어 왔다. 이곳은 대개 선대의 도읍지로서, 산하가 장려하고 인물이 번화한 면에서 왕경(王京)과 어깨를 견줄 만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양의 부윤(府尹)은 반드시 재능과 인망이 모두 대단해서 사람들이 신복(信服)하는 그런 인물이어야만 가능하다고 할 것이요, 그 빈료(賓僚)와 참좌(參佐)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
국가 에 변고가 많이 발생한 뒤로부터 일이 옛날과 달라져서 염치의 도()는 없어지고 위와 아래가 서로 이익만을 다투게 되었다. 그리하여 호가(豪家)는 남의 소유를 강제로 합병하고 혹리(酷吏)는 제멋대로 수탈하여, 땅은 송곳 하나 꽂을 틈이 없게 되고 집에는 곡식 한 톨도 없이 텅 비었다는 탄식이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령이 된 자들은 잠자코 보기만 하고 감히 말도 하지 못하면서 백성을 해쳐 가며 자신의 안락만 도모하고 있으니, 백성이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이 곤고해진 것이 지금보다 심한 경우는 있지 않았다
.
그중에서도 경기(京畿) 주위의 수백 리 지역이 특히 침해를 당하였는데, 이른바 남경이라고 하는 곳까지도 조폐(凋弊)가 자심(滋甚)하여 쓸쓸하게 가시덤불이 우거진 가운데 유맹(遺氓)의 집이 8, 9호 정도 남아 있을 따름이니, 기타 군현이 어떠할지는 이를 통해서 대개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중에 어찌 한두 사람 정도 백성에게 뜻을 둔 자가 없기야 하겠는가마는, 그들도 거의 모두 인습적으로 구차하게 행동하며 그저 해 오던 대로 답습하고 있을 따름이다
.
지금 정군은 재능이 뛰어나고 나이도 젊은데, 여기에 또 부윤이 인자하고 현명해서 정군이 건의하는 대로 승인하며 결재를 해 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정군이 평소의 뜻을 펼쳐 백성에게 유익한 일을 일으키고 해로운 일을 제거함으로써
, 현가(弦歌) 소리유고(袴) 노래가 한 지방의 경내에 들리며 사방으로 퍼지게 하는 일이 바로 이번 걸음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혹자는참군(參軍)은 미관말직이니, 깊이 쌓인 폐단을 갑자기 개혁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 집안이 인을 행하면 나라가 인한 마음을 일으키는 법〔一家仁 一國興仁〕’이 라고 하였다. 군자는 자기의 인을 극진히 할 따름이니, 참으로 자기의 인을 극진히 하면서 백성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기만 한다면, 비록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크게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꼭 반자(班資)의 고하(高下)나 풍속의 요박(澆朴)을 따질 것이 있겠는가.
이상과 같은 나의 말을 듣고는 참군이 불가하다고 하지 않았고, 제군 역시 그렇다고 동의해 주었다. 그래서 이 내용을 글로 써서 전송하는 시의 맨 앞에 적어 넣게 되었다.

 

[주D-001]현가(弦歌) 소리 : 거 문고와 비파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시가(詩歌)를 읊는 소리라는 뜻으로, 백성들에게 예악을 가르치며 선정을 베푸는 비유로 쓰이는 표현이다.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수령으로 있는 무성(武城) 고을에 현가의 소리가 울려 퍼지자, 공자가 흐뭇하여 빙그레 웃으면서닭을 잡는 데에 어찌하여 소 잡는 칼을 쓰느냐.”고 농담을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論語 陽貨》
[주D-002]유고(袴) 노래 :
백 성들이 어진 정사에 감복하여 부르는 송가(頌歌)라는 뜻이다. ()가 숙도(叔度)인 동한(東漢)의 염범(廉范)이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부임하여, 금화(禁火)와 야간 통행금지 등 옛 법규를 개혁하여 주민 편의 위주의 정사를 펼치자, 백성들이우리 염숙도여 왜 이리 늦게 오셨는가. 불을 금하지 않으시어 백성이 편케 되었나니, 평생 속옷도 없다가 지금은 바지가 다섯 벌.〔廉叔度 來何暮 不禁火 民安作 平生無
今五袴〕이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後漢書 卷31 廉范列傳》
[주D-003] 집안이 …… :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을 논하는 《대학장구(大學章句)》 전() 9장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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