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집자료 ▒

가정집 제10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13. 01:37

 

가정집 제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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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부(化平府)에 부임하는 김회옹(金晦翁)을 전송한 시의 서문

 


내가 도하(都下 연경(燕京)) 에 있을 적에, 듣자니 새로 수령에 제수된 자들이 대개모주(某州)는 장기(瘴氣)가 있어서 거할 수 없다.”라고 하거나모현(某縣)은 풍속이 완악하고 어리석어서 다스릴 수가 없다.”라고 말하였고, 그 다음으로는향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기 곤란하다.”라고 하거나봉급이 박해서 청렴하게 생활하기 어렵다.”라고 하였다. 반면에전임 관원이 임소에서 죽었으니, 어떻게 이 주를 맡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하거나전임 관원이 벼슬길에서 현달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이 현의 수재로 갈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것은 들어 보지 못하였다. 대저 중국의 인사라고 해서 어찌 또한 현우(賢愚)의 차이가 없겠는가마는, 사생(死生)과 궁달(窮達)을 밖에서 오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였다. 이는 대개 습속이 그나마 바른 데에서 연유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중국이 중국답게 된 이유라고 할 것이다.
나의 벗 회옹(晦翁)이 광주(光州)로 가게 되자,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예전에 광주에 임명된 자들은 전임 관원이 임소에서 죽었기 때문에 피혐(避嫌)해서 면직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옹도 필시 그곳에 부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회옹은 말하기를, 광주에는 장기가 없으니 내가 거할 수 있고, 백성이 비록 완악하고 어리석다 하더라도 원래 갖추어진 법조문이 있으니 내가 다스릴 수 있다. 또 향리와 거리도 가까우니 내가 어찌 가는 것을 꺼리겠는가. 그리고 봉급이 비록 박하다고 할지라도
, 날마다 태창(太倉)에서 쌀을 먹는 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겠는가. 천하 고금에 오래 살지 못한 자들은 모두 광주에서 벼슬살이를 한 자들이었던가? 벼슬길에서 현달한 자들은 또 모두 광주에 임명되었을 때 부임하지 않은 자들이었던가?”라고 하였다.
회옹의 말이 얼마나 정대(正大)한가. 도하에서 내가 들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치며 일어나서 말하기를회옹의 이번 걸음에는 다섯 가지 유익한 점이 있을 것이다
. 남이 버리는 것을 내가 취한 만큼 반드시 그곳에서 오랜 기간 정사를 있을 것이니, 이것이 번째 유익한 점이다. 선정(善政)을 오랜 기간 펼치게 되면 백성들이 그 복을 받을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유익한 점이다. 정사의 성적이 최고를 기록하여 영광스럽게 조정의 소명(召命)을 받게 될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 유익한 점이다. 회옹이 부름을 받고 돌아온 뒤에는 후임자도 반드시 현능(賢能)한 인재일 것이니, 이것이 네 번째 유익한 점이다. 이처럼 현능한 인재가 계속해서 부임하게 되면 광주가 반드시 부흥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다섯 번째 유익한 점이다. 회옹은 기억해 둘지어다.”라고 하였다.

우리 동네 예전과 달리 쓸쓸하기만 한데 / 井邑蕭條異舊時

원님 전송하며 시만 괜히 읊조리네 /
送人作郡謾吟詩
흥이 일면 마실 짝이 어찌 없으리오 /
興來飮酒寧無偶
그다지 어리석지 않은 나의 동년이 있느니 / 我有同年不甚癡

 

[주C-001]화평부(化平府) : 전 라도 광산현(光山縣)의 고려 때 이름이다. 원래 백제의 무진주(武珍州)였는데, 고려 태조(太祖) 23년에 광주(光州)로 고쳤다. 1258(고종 45)에 공신 김인준(金仁俊)의 외가의 고향이라서 승격하여 익주 지사(翼州知事)의 고을이 되었고, 뒤에 또 승격하여 무진주가 되었다. 1310(충선왕 2)에 화평부로 강등되었다가, 1362(공민왕 11)에 무진주로 다시 회복되었고, 1373년에 다시 광주라고 칭하였다.
[주C-002]김회옹(金晦翁) :
회옹은 김연(金曣)의 호이다.
[주D-001]날마다 …… :
두보(杜甫)의 시에날마다 태창에서 닷 되의 쌀을 사 먹는다.〔日糴太倉五升米〕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3 醉時歌》
[주D-002]남이 …… 점이다 :
백거이(白居易)의 시에지방 장관으로 오랜 기간 정사를 편 뒤에야 풍교를 돈후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長吏久於政 然後風敎敦〕라는 표현이 있다. 《白樂天詩集 卷2 贈友》
[주D-003]원님 …… 읊조리네 :
가 정(稼亭) 자신은 고을 하나 맡아서 나가지 못하고, 친구가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며 시를 짓기나 한다는 뜻의 해학적인 말이다. 동진(東晉)의 나우(羅友)가 성격이 호방하고 구속을 받기 싫어하는 탓으로 환온(桓溫)에게 중용(重用)이 되지 않던 중에, 어느 날 태수(太守)로 부임하는 어떤 사람의 송별연에 뒤늦게 참석하여 환온에게 질책을 받자, “길에서 만난 귀신이 나를 보고는나는 당신이 태수로 부임하는 다른 사람을 전송하는 것만 보았지 다른 사람들이 태수로 부임하는 당신을 전송해 주는 것은 보지 못했다.〔我只見汝送人作郡 何以不見人送汝作郡〕라고 야유하였다.”고 해학적인 답변을 하였는데, 이때 속으로 꽤나 부끄러움을 느낀 환온이 나중에 그를 양양 태수(襄陽太守)로 임명했다는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任誕》
[주D-004]흥이 …… 없으리오 :
광 주에 가 있는 김연이 불현듯 생각나서 찾아가고 싶어지는 때가 있으리라는 말이다. ()나라 왕휘지(王徽之)가 눈 덮인 달 밝은 밤에 산음(山陰)에서 홀로 술을 마시다가, 불현듯 섬계(剡溪)에 있는 벗 대규(戴逵)가 보고 싶어지자, 밤새도록 배를 몰고 그 집 앞에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와서는, 흥이 일어나서 찾아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왔다고 말한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任誕》

 

 

 

 

계림부(雞林府) 공관(公館) 서루(西樓)의 시서(詩序)

 


내가 동경(東京 경주(慶州)) 의 객사에 도착한 뒤에 동루(東樓)에 올라가 보았더니 아름다운 경치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서루에 올라가 보았더니 꽤나 장려하였음은 물론 앞이 툭 틔어서 성곽과 산천이 한눈에 모두 들어왔다. 그런데 삼장법사(三藏法師) 선공(旋公)이 의풍루(倚風樓)라고 큰 글자로 쓴 현판만 붙어 있을 뿐, 제영(題詠)한 것은 볼 수가 없었다.
생 각건대 이 계림부는 1000년을 이어 온 왕도(王都)로서 고현(古賢)의 유적이 가는 데마다 남아 있고, 본국에 편입되어 동경이 된 뒤로 또 장차 500년이 되려고 하니, 번화하고 가려(佳麗)한 면에서 동남 지방의 으뜸이 되는 곳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부절(符節)을 나누어 받고 이곳에 와서 풍속을 관찰하고 교화를 선양한 자들 또한 시인 묵객이 많았을 것이니, 짐작건대
홍벽(紅壁) 사롱(紗籠)은구(銀鉤) 옥저()가 그 사이에서 휘황하게 비쳤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것이라곤 빈헌(賓軒)에 걸린 절구 한 수가 유일한데, 이 시는 선유(先儒) 김군수(金君綏)가 수창한 것이었다.
이 에 대해서 혹자는 말하기를과거에 관사에 화재가 났을 적에 시판(詩板)도 함께 없어지고 말았다.”라고 한다. 그러나 김공의 시만 어째서 유독 불타지 않았으며, 화재가 난 뒤의 시들은 또 어째서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이렇게 본다면 혹자의 말도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하겠다
.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향교의 어떤 유생이 말하기를,

김 공의 시가 지금 우연히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100년 전의 풍류 인물(風流人物)을 상상해 볼 수가 있다. 대개 그 당시에는 백성이 순박하고 정사가 간편해서 일이 생기면 선뜻 처리하고 흥이 일면 곧장 풀곤 하였다. 그래서 심지어는 문서를 앞에 벌여 놓고 이와 함께 악기를 뒤에 진열해 놓더라도 남들이 그르게 여기지 않았고 자기 자신도 혐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뒤에는 스스로 겉모양을 닦는 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한 번 찡그리고 한 번 웃는 것조차 때에 맞지 않을까 겁내고 있으니, 어떻게 감히 등림(登臨)하여 소영(嘯詠)함으로써 부유(腐儒)의 시빗거리를 제공하려고 하겠는가.

지금 선생으로 말하면 풍속을 관찰하고 교화를 선양할 책임도 없이 자연의 승경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일을 삼고 있다. 그리하여 만 길 높이의 풍악과 설산(雪山 설악산(雪嶽山))을 마음껏 관람하고, 다시 철관(鐵關 철령(鐵嶺))을 넘어 동해로 들어와서 국도(國島)의 기이한 비경을 끝까지 돌아보았으며, 마침내는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총석정(叢石亭) 비갈(碑碣)삼일포(三日浦) 단서(書) 여섯 글자를 어루만져 보았다. 그리고는 영랑호(永郞湖)와 경포(鏡浦)에 배를 띄우고 사선(四仙)의 유적을 탐방하였는가 하면, 성류굴(聖留窟)을 촛불로 밝혀 그 유괴(幽怪)한 모습을 빠짐없이 구경한 뒤에 드디어 이곳에 이르렀으니, 선생의 유람이야말로 원하는 대로 실컷 구경했다고 이를 만하다. 그렇긴 하지만 신라 고도(古都)의 장관과 조망이 모두 이 누대 안에 모여 있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난다면 이는 선생에게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하였다. 이에 내가 응답하여 말하기를,

그래서 내가 이미 앞에서 운운하지 않았던가. 다만 나는 시인 묵객의 무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일 뿐이다.”

하였다.
그러나 제생(諸生)의 말에 깊이 느껴지는 점이 있었고, 또 이를 통해서 세상의 변천도 살펴볼 수가 있었으므로, 장구(長句) 사운(四韻)의 시 한 수를 지어서 이 누대에 오르는 자들에게 보여 주기로 하였다
.

동쪽 서울 풍물이 아직도 번화한데 / 東都風物尙繁華

다시 고루 일으켜 자하를 떨쳤어라 / 更起高樓拂紫霞
성곽은 천 년을 이은 신라의 건축이요 / 城郭千年羅代樹
여염은 반절이나 부처 모신 집들일세 / 閭閻一半梵王家
구슬발 다 걷으니 마치 그림 같은 산들 / 珠簾捲盡山如畫
옥피리 다 불어도 아직 날은 기울기 전 / 玉笛吹殘日未斜
기둥에 기대어 시 읊자니 혼자 우스워 / 倚柱吟詩還自笑
다시 와도 벽사롱(碧紗籠)은 필요없다오 / 重來不必要籠紗

 

[주D-001]선공(旋公) : 승 려 조의선(趙義旋)을 가리키는데, 순암(順菴)으로 많이 알려졌다. 《가정집》 권3 ‘조 정숙공(趙貞肅公) 사당(祠堂)의 기문정혜원통 지견무애 삼장법사(定慧圓通知見無礙三藏法師)의 호를 특별히 하사받고, 천원연성사(天源延聖寺)의 주지(主持)와 본국 영원사(瑩原寺)의 주지를 겸하였으며, 복국우세 정명보조 현오 대선사(福國祐世靜明普照玄悟大禪師)로서 삼중대광(三重大匡)의 품계에 오르고 자은군(慈恩君)에 봉해졌다.”고 소개되어 있다. 정숙공은 그의 부친 조인규(趙仁規)이다.
[주D-002]홍벽(紅壁) 사롱(紗籠) :
붉 은 칠을 한 벽에 푸른 깁으로 장식해 놓은 시문이라는 뜻이다. 홍벽에 대해서는 당()나라의 시인 허혼(許渾)의 재유고소옥지관(再游姑蘇玉芝觀) 시에달빛 어린 푸른 창은 오늘 밤의 술자리요, 비 자욱했던 붉은 벽엔 거년의 글씨로다.〔月過碧窓今夜酒 雨昏紅壁去年書〕라는 구절이 있다. 사롱은 즉 벽사롱(碧紗籠)으로, 옛날 귀인과 명사가 지어 벽에 걸어 놓은 시문을 청사(靑紗)로 덮어서 오래도록 보존하며 존경의 뜻을 표한 것을 말한다. 당나라 왕파(王播)가 어려서 가난하여 양주(楊州) 혜소사(惠昭寺) 목란원(木蘭院)의 객이 되어 글을 읽으며 승려들을 따라 잿밥〔齋食〕을 얻어먹었는데, 승려들이 염증을 내어 재가 모두 파한 뒤에야 종을 치곤 하였다. 그 뒤 20여 년이 지난 뒤에 왕파가 중한 지위에 있다가 이 지방에 출진(出鎭)해서 이 절을 찾아갔더니, 지난날 자기가 지어 놓은 시를 벌써 푸른 비단으로 감싸 놓고 있었으므로, 그 시의 뒤에이십 년 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오늘에야 푸른 깁으로 장식되었구나.〔二十年來塵撲面 如今始得碧紗籠〕라고 지어 넣은 고사가 있다. 《唐摭言 起自寒苦》
[주D-003]은구(銀鉤) 옥저() :
초 서(草書)와 전서(篆書) 등의 멋진 필법으로 써넣은 글씨를 말한다. ()나라 색정(索靖)이 서법(書法)을 논하면서멋지게 휘돌아 가는 은빛 갈고리〔婉若銀鉤〕라는 표현으로 초서를 형용한 고사가 있다. 《晉書 卷60 索靖傳》 옥저는 진()나라 이사(李斯)가 창안한 소전(小篆)의 서체를 말한다.
[주D-004]국도(國島) :
고성(固城) 위에 위치한 안변(安邊) 앞바다의 작은 섬 이름이다.
[주D-005]총석정(叢石亭) 비갈(碑碣) :
사선봉(四仙峯) 동쪽 봉우리 위에 비면(碑面)이 떨어져 나가고 닳아 없어진 채 남아 있는 비갈을 말한다.
[주D-006]삼일포(三日浦)의 …… 글자 :
신라 시대의 이른바 사선(四仙)이 사흘 동안 머물며 노닐었다는 곳의 석벽에 새겨진술랑도남석행(述郞徒南石行)’이라는 붉은색의 여섯 글자를 말하는데, 사선의 이름과 관련하여 이 비문의 해석이 다양하여 아직 정설이 없다.
[주D-007]그리하여 …… 이를 만하다 :
《가정집》 권5 동유기(東遊記)에 이상의 여러 곳을 유람한 내용이 상세히 나온다.

 

 

 

 

 표전(表箋)

 

 

 

책립(冊立)한 뒤에 올린 하표(賀表)

 


, 황도(皇圖 중국의 판도(版圖))를 빛내며 울연히 건원(乾元)의 운세가 열림에, 곤제(制 후비(后妃))를 새롭게 하여 천작(天作)의 상서를 성대히 밝히게 되었으므로, 종사(宗社)는 안영(安榮)하고 신민(臣民)은 흔열(欣悅)합니다. 운운(云云).
엄숙하고 조리가 있으며〔曰肅曰乂〕 무와 문의 덕을 모두 구비하신 가운데〔乃武乃文〕
우근(憂勤)하여 중흥을 이룸으로써 조종(祖宗)의 덕업을 빛내실 수 있을 것이요, 풍화(風化)는 실로 곤전(坤殿)의 내치에 도움을 받아 인륜을 두텁게 하실 것인바, 때마침 창신(昌辰)을 만나 성대히 환호(渙號)를 반포하셨습니다. 운운.
외람되게 화려한 직질(職秩)을 차지하고서 성대한 의식을 볼 수 있었기에, 나름대로
화봉(華封) 본받아 다남(多男) 축원을 삼가 올리는 동시에, 주아(周雅) 노래를 불러 만수무강하시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주D-001]건원(乾元) : 하 늘의 뜻을 대행하며 만물을 다스리는 위대한 존재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새로 즉위한 천자를 말한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위대하다 건원이여, 만물이 여기에서 비로소 나오나니, 이에 하늘의 일을 총괄하게 되었도다.〔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2]천작(天作) :
천 생배필(天生配匹)의 뜻과 같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대명(大明)문왕이 일을 시작하심에 하늘이 배필을 내리셨으니 그분은 누구신가. 흡수 북쪽 위수 가의, 문왕이 어여삐 여긴 대국의 따님이셨다네.〔文王初載 天作之合 在洽之陽 在渭之
文王嘉止 大邦有子〕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3]엄숙하고 조리가 있으며 :
《서 경(書經)》 홍범(洪範)좋은 징조들이 있다. 첫째 엄숙함이니 그것은 제때에 비가 내리는 것으로 표상되고, 둘째 조리가 있음이니 그것은 제때에 날이 개는 것으로 표상된다.〔曰休徵 曰肅 時雨若 曰乂 時
若〕라는 등의 말이 나온다.
[주D-004]무와 …… 가운데 :
《서 경》 대우모(大禹謨), 훌륭하다. 임금의 덕이 광대하게 운행되어 거룩하고 신묘하며 무와 문의 덕을 모두 구비하자, 황천이 돌아보고 명하여 사해를 다 소유하고 천하의 군주가 되게 하였다.〔都 帝德廣運 乃聖乃神 乃武乃文 皇天眷命 奄有四海 爲天下君〕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5]환호(渙號) :
《주역》 환괘(渙卦) 구오(九五)에 나오는 환한대호(渙汗大號)의 준말로, 땀이 한 번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다시 번복할 수 없는 제왕의 호령을 뜻한다.
[주D-006]화봉(華封)을 …… 동시에 :
화 땅을 지키는 사람〔華封人〕이 요() 임금에게 수()와 부()와 다남(多男)을 축원한 이야기가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나온다.
[주D-007]주아(周雅)의 …… 바입니다 :
주아는 주나라 아악(雅樂)이라는 뜻으로, 《시경》의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산처럼 언덕처럼〔如山如阜〕 하는 식으로, 아홉 가지의 예를 들어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소아 천보(天保)의 시를 가리킨다.

 

 

 

 

태후(太后)에게 같은 뜻으로 올린 하표(賀表)

 


모의(母儀)
동조(東朝)에 성대히 보이셨을 때 일찍이 휘호를 올려 숭봉(崇奉)하였습니다만, 부순(婦順)이 이제 내치에 드러나게 되어 새로 덕음을 선포하게 되었으므로, 이에 성대한 예식을 모두 거행함에 자애로운 풍화가 멀리까지 퍼지게 되었습니다. 운운.
정 심(靜深)하게 만물을 비춰 주고 충담(沖澹)하게 심신을 기르시는 가운데, 우리 선제(先帝)의 슬기로운 계책을 협찬하여 대화(大化)를 경장(更張)하시고, 우리 황제의 성스러운 덕성을 길러 태평을 순치(馴致)하셨기에, 경사가 중위(中圍)에 흡족하고 환성이 제하(諸夏)에 비등합니다. 운운
.
요행히 근신의 반열에 끼어 진작부터 크나큰 사은(私恩)을 입어 왔는바, 진실로 지인(至仁)을 넓혀
육궁(六宮) 정사를 펴게 되셨으므로, 미천한 정성이나마 바쳐서 만세의 휴명(休命)을 대양(對揚)하고자 합니다.

 

[주D-001]모의(母儀) : 태후(太后)의 의표(儀表)라는 뜻이다.
[주D-002]동조(東朝) :
태후가 거하는 궁전을 말한다. ()나라 때에 태후가 거처하던 장락궁(長樂宮)이 황제의 거처인 미앙궁(未央宮)의 동쪽에 있었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3]부순(婦順) :
부녀가 순종하며 효성과 공경을 바치는 미덕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태후의 며느리 즉 후비(后妃)의 덕을 가리킨다.
[주D-004]육궁(六宮) 정사 :
황후의 내치(內治)라는 말과 같다. 고대 황후의 침궁(寢宮)이 정침(正寢) 하나와 연침(燕寢) 다섯으로 이루어진 데에서 나온 말이다.

 

 

 

 

황후(皇后)에게 올린 하전(賀箋)

 


은총을 받고 지존의 배필이 되어 일찍이 건곤의 질서를 밝게 드러내시다가, 영광스럽게 성대한 전례에 응하여 궁곤()의 의표를 더욱 성대히 하셨으므로, 조야(朝野)가 모두 환성을 올리고 신인(神人)이 서로 기뻐합니다. 운운.
순의(純懿)한 덕성을 온전히 갖추고 유가(柔嘉)한 성품을 품부받으시어, 궁중에서 안의 일을 주관하며
장추(長秋)의 자리를 바르게 하시고, 인덕을 아랫사람들에게 베풀어 바야흐로 규목(樛木)의 시를 노래하게 하셨던바, 이번에 떳떳한 장전(章典)을 거행하며 조칙을 반포하게 되었습니다. 운운.
외람되게
액성(掖省)을 맡은 신이 다행히 청명한 시대를 만나 궁중 섬돌의 반열에서 가까이 모시게 되었으니 무도(舞蹈)할 이 기쁨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습니까. 멀리 관저(關雎)의 교화가 퍼져서 함께 생성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주D-001]장추(長秋) : 황후가 거하던 한()나라 궁전의 이름인데, 흔히 황후의 대칭(代稱)으로 쓰인다.
[주D-002]규목(樛木) :
후 비(后妃)의 훌륭한 덕을 읊었다고 하는 《시경》 주남(周南)의 편명이다. 그 시에아래로 늘어진 남산의 나뭇가지, 칡덩굴이 의지하고 얽혀 있구나.〔南有樛木 葛
纍之〕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나뭇가지는 문왕(文王)의 후비를 가리키고, 칡덩굴은 후궁들을 가리킨다. 후비가 투기하지 않고 미천한 후궁들에게 두루 은혜를 베풀자, 후궁들이 그 덕에 감복하여 이렇게 노래했다고 한다.
[주D-003]액성(掖省) :
문하성(門下省)이나 중서성(中書省)의 별칭인데, 고려 국왕의 직책이 행중서성(行中書省)의 승상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4]관저(關雎) :
《시경》 주남의 맨 처음에 나오는 편명으로, 문왕의 후비의 덕을 노래한 시이다.

 

 

 

활과 무기와 마필(馬匹)을 원상회복해 준 데 대해 사은한 표문(表文)

 


기거(起居). 지난번에 황궁에서 폐하를 뵙고 하직한 뒤로 한 해의 별이 벌써 하늘을 일주하였습니다. 신은 그동안 기자(箕子)가 봉해진 나라에 멀리 처하면서 항상 만년토록 장수하시기를 축원하였습니다. 운운.
조령(詔令)이 우레처럼 행해지자 만방이 다시 새롭게 변화되고, 덕음(德音)이 하늘에서 내리자 일국이 광채를 발하게 되었습니다. 삼가 사은(私恩)을 받고 보니, 감격스러우면서도 부끄러운 심정이 더할 뿐입니다
.
삼가 생각건대, 신이 지난번에
술직(述職)하는 일 때문에 입조하는 행운을 얻었는데, 그때 마침 황극(皇極)을 펼쳐 지원(至元 원 세조(元世祖)의 연호)의 치세를 회복하는 시절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지원(至元 원 순제(元順帝)의 연호) 3(1337, 충숙왕 복위 6) 4 3일에 삼가 조서를 받들고 보니, 그 안에한인(漢人)과 남인(南人)과 고려(高麗)는 군기(軍器)를 은닉하거나 궁전(弓箭)을 소지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관원에게 지급한 마필 이외에 그 나머지는 모두 조사하여 단속하도록 하라.”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
소방(小邦)은 멀리 동토에 떨어져 있는 까닭에, 구속(舊俗)이 중원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하지만 태조(太祖)께서 창업하실 때를 당하여서는 소방이 실로 제일 먼저 귀부(歸附)하였습니다. 그리고 세황(世皇 세조(世祖))께서 등극하신 시절을 만나서는 더욱 공로를 세워
석마삼접(錫馬三接)의 영광과 관생이실(館甥貳室)의 경사를 받는 가운데, 약속(約束)은 성제(聖制 원나라의 법제)를 따르더라도 전장(典章)은 조풍(祖風 고려의 풍속) 을 바꾸지 말게 하라는 특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변경한다면 삼한이 경동할 염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 조회하지 않는 야만족들과 가까이 있는 만큼 그들이 대비책이 없는 소방을 엿볼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물 파서 물을 마시고 갈아서 밥을 먹으니 백성들이 임금님의 힘을 어떻게 알기나 하겠습니까. 말을 치달리고 검을 시험하는 것은 절역(絶域)에서 황상(皇上)의 위엄을 빛내기 위한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으로 호소를 하자, 황상께서 과연 윤허해 주셨습니다. 이는 대개 태평성대를 삼가 만났기 때문입니다. 운운.
폐하께서는 건곤(乾坤)의 도량을 넓히고 일월의 밝음을 드리우시어, 신이 대대로 충정(忠貞)한 직분을 독실히 이행했다고 생각하시고 신이 직접 조근(朝覲)한 것을 어여삐 여겨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전에 하던 그대로 모두 행하라고 곡진하게 큰 복을 내려 주셨으니, 신이 어찌 감히 봉강(封疆)을 근실히 지키면서 직공(職貢)을 깍듯이 봉행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동방 백성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정시키면서 황상에게 보답하는 정성을 더욱 바치겠습니다.

 

[주D-001]술직(述職) : 제후가 천자에게 정기적으로 조회하고 직무를 보고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2]석마삼접(錫馬三接) :
제 후인 고려가 천자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는 말이다. 《주역》 진괘(晉卦) 괘사(卦辭)진괘는 강후에게 말을 많이 하사하고 낮에 세 번씩 접견하는 상이다.〔晉 康侯用錫馬蕃庶 晝日三接〕라는 말이 나온다. 강후는 나라를 잘 다스리는 제후라는 뜻이다.
[주D-003]관생이실(館甥貳室) :
고려가 원나라의 사위 나라가 되었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 임금이 사위인 순()을 이실에 머물게 하였다.〔帝館甥于貳室〕라는 말이 나온다. 이실은 별궁이다.
[주D-004]우물 …… 하겠습니까 :
중 국 황제의 은혜 덕분에 태평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 임금 때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면서, 내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내 밭을 갈아서 밥 먹나니,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는 말이 나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조(正朝)를 하례하기 위해 태후에게 올린 표문 국왕(國王)의 명의(名義)로 보낸 것이다.

 


기거(起居). 동해의 외딴 곳에서 번방(藩邦)을 지키고 있느라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뵙지는 못합니다마는, 내조(內朝)의 반열에 생각이 치달리면서 오직 첨의(瞻依)하는 마음이 간절하기만 합니다.
삼양(三陽) 조화롭게 질서를 이루니
상위(象魏 대궐)에서는 바야흐로 화기 어린 교서를 반포하고, 만국이 원단(元旦)에 조회하니 자위(慈闈 태후)의 경사가 더욱 불어나니, 그 빛은 일월보다 더하고 그 기쁨은 온 누리에 흘러넘칩니다. 운운.
건강(乾綱) 도에 짝하고 곤순(坤順) 덕을 본받으시어,
정신을 연의(淵懿)하게 길러 여성 중의 요순(堯舜)이라는 이름을 얻으셨고, 성상을 우근(憂勤)하게 보우하여 천하를 희헌(羲軒)의 세상으로 인도하셨으니, 이에 가신(佳辰)이 돌아오는 때를 맞아 온갖 복을 듬뿍 받으실 것입니다. 운운.
마침 창성하는 시기를 만나 외람되게 크나큰 복을 받았는데도, 축하하는 반열에 참여하지 못한 채 멀리 동토(東土)의 봉강(封疆)에 있습니다만, 마음만은 충성을 바치면서
남산(南山) 축수(祝壽)를 올리고자 합니다.

 

[주D-001]첨의(依) : 어버이처럼 항상 바라보고 의지하며 사모한다는 말인데, 《시경》 소아(小雅) 소반(小弁)눈에 뜨이느니 아버님이요, 마음에 그리느니 어머님일세.〔靡瞻匪父 靡依匪母〕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2]삼양(三陽)이 …… 이루니 :
음 양(陰陽)의 기운이 조화되어 천지 만물이 질서를 찾고 형통하게 되는 삼양 개태(三陽開泰)의 정월 초하루를 맞았다는 말이다. 음력 11월에 하나의 양효(陽爻)가 처음으로 생겨났다가, 1월이 되면 세 개의 양효가 하괘(下卦)에 자리하고 세 개의 음효가 상괘에 자리하는 태괘(泰卦)를 이루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3]건강(乾剛)의 …… 본받으시어 :
제왕의 배필이 되어 내조를 잘했다는 말이다. 《주역》 잡괘(雜卦)건은 강건하고, 곤은 유순하다.〔乾剛坤柔〕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헌(羲軒) :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와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의 합칭으로,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주D-005]남산(南山) 축수(祝壽) :
《시경》 소아(小雅) 천보(天保)초승달처럼, 아침 해처럼, 변함없는 저 남산처럼, 이지러지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으리.〔如月之恒 如日之升 如南山之壽 不騫不崩〕라는 말이 있다.

 

 

 

정조(正朝)를 하례한 표문 행성(行省)의 명의로 보낸 것이다.

 


기거(起居). ()을 다스리는 권한을 나눠 받고 아득히 해 뜨는 한쪽 구석에 거하면서, 멀리 조정의 의식을 상상하여 바라보며 하늘과 같은 수명을 누리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운운.
정사는 선기옥형(璿璣玉衡 천문 관측기구인 혼천의(渾天儀))을 살펴 태괘(泰卦)의 형통한 운세를 성대히 맞고, 서기(瑞氣)는 보불(黼黻) 무늬 병풍에 엉겨 원단에 조회하는 의식을 엄숙히 거행하니, 만상이 모두 봄인 가운데
사람에게 경사가 있게 되었습니다. 운운.
제장중정(齊莊中正)
하고 준철문명(濬哲文明)하시어, 어진 이를 높이고 유능한 자를 부려서 세황(世皇 원 세조(元世祖))의 도를 다시 일으키고, 뜻을 잇고 사업을 계승하여 선제(先帝)의 마음을 밝게 빛내셨으니, 마침 창신(昌辰)을 만난 이때에 천복을 배나 더 받으실 것입니다. 운운.
요행히 재신의 반열에 끼어 성원(省垣)을 나누어 다스리는 몸으로, 상부(相府)를 오래 비워 둔 채 정동(征東)의 중한 위임을 임시로 맡고 있는바
, 북신(北辰) 거소가 비록 멀지만 옹위하는 미천한 정성만은 더욱 간절해집니다.

 

[주D-001] 사람에게 …… 되었습니다 : 한 사람은 임금을 말한다. 《서경》 여형(呂刑)위로 임금 한 사람이 선정을 베풀어 경사가 있게 되면, 아래로 만백성이 그 은택을 받게 되어, 그 편안함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一人有慶兆民賴之 其寧惟永〕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제장중정(齊莊中正) :
《중용장구》 제 31 장에서 지성(至誠)의 덕을 표현한 말로, 엄숙하고 장엄하고 중도에 맞고 바르다는 뜻이다.
[주D-003]준철문명(濬哲文明) :
《서경》 순전(舜典)에서 순 임금의 덕을 표현한 말로, 깊고 지혜롭고 문채가 나고 환하게 밝다는 뜻이다.
[주D-004]북신(北辰)의 …… 간절해집니다 :
제 후국의 하나로서 천자에게 귀의하여 충성을 바치겠다는 말이다. 《논어》 위정(爲政)덕정(德政)을 펴게 되면, 북신(北辰)이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뭇별들이 옹위하는 것처럼 될 것이다.〔爲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共之〕라는 말이 나온다.

 

 

 

 

 

사은(謝恩)한 표문

 


기거(起居). 습봉(襲封)한 지 3년이 되도록 백성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정시키는 정치의 공을 드러내지는 못했습니다만,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마음만은 언제나 수공(垂拱)하시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운운.
사신을 거듭 보내어 은혜를 누차 드리워 주셨으니, 배사(拜賜)한 이래로 감명(感銘)한 것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
삼 가 생각하옵건대, 연령은 바야흐로 어리고 학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외람되게 성주(聖主)의 홍은(洪恩)을 받고 조선(祖先)의 서업(緖業)을 일찍 잇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동방을 다스리는 위임을 받은 지 이미 3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황상에게 보답하려는 마음을 언제 하루라도 잊은 적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자그마한 공로도 바치지 못한 터에 부끄럽게도 하늘로부터 진귀한 선물을 받았으니, 궁의(宮衣)의 빛은 찬란히 빛나고 내온(內醞)의 향기는 은은히 감돕니다. 이는 대개 태평성대를 삼가 만났기 때문입니다. 운운
.
폐하는 제장중정(齊莊中正)하고 준철문명(濬哲文明)하신 가운데
, 살리기 좋아하는 순(舜) 임금의 보다도 뛰어나고 곳을 회유하는 고요(皐陶) 계책을 체현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신이 대대로 상국(上國)에 충성을 다한 것을 양찰하시고, 신이 외생(外甥)의 자손임을 어여삐 여기시어, 어리석음을 꾸짖는 대신에 은혜를 더해 주셨습니다.
이에 신은 삼가 우악(優渥)한 은택에 깊이 잠겨서 사방이
이미 흠뻑 취했다〔旣醉〕는 노래로 화답하고, 총애와 영광을 듬뿍 받고서 만물이 모두 봄인 덕화에 향하려고 합니다.

 

[주D-001]수공(垂拱) : 《서경》 무성(武成)에 나오는 말로, 성군이 옷을 늘어뜨리고 팔짱을 낀 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이 잘 다스려지게 하는 무위지치(無爲之治)를 뜻하는 말이다.
[주D-002]살리기 …… :
법 관인 고요(皐陶)가 순() 임금의 살리기 좋아하는 덕〔好生之德〕을 찬양하면서죄가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가벼운 쪽으로 처벌하고, 공이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중한 쪽으로 상을 주었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형법대로 집행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감수하려고 하였다.〔罪疑惟輕 功疑惟重 與其殺不辜 寧失不經〕라고 일컬은 말이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나온다.
[주D-003] 곳을 …… 계책 :
《서경》 순전(舜典)먼 곳은 회유하고 가까운 곳은 위무하였다.〔柔遠能邇〕라는 말이 나오는데, 고요(皐陶)와는 관계가 없다. 가정의 착오인 듯하다.
[주D-004]이미 흠뻑 취했다 :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이미 술에 흠뻑 취하였고 이미 덕에 배가 불렀도다. 군자께선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시기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이라는 말이 나온다.

 

 

 

소어(疏語)

 

 

 

불정 도량(佛頂道場)에 올린 소

 


범웅(梵雄 부처)은 멀리 떠났지만 천고의 세월을 거치면서 갈수록 존숭을 받고, 신주(神呪 다라니)는 가장 존엄하여 온갖 재앙을 매우 쉽게 물리치기에, 우러러 황각(皇覺 부처)에게 귀의하노니 굽어살펴 큰 복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생각하면 잔약한 자질로 외람되게 크나큰 서업(緖業)을 계승하였는데, 묘년(妙年)에 학문을 게을리 한 탓으로 금일에 제대로 정치를 행하지 못한 채, 귀에 거슬리는 말을 용납하지도 못하고 마음속의 탐욕을 버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
봄 사냥이 비록 무예를 익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농사를 방해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천변(天變)이 거듭하여 재앙을 보여 주는 것도 대개는 정사를 잘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몸을 돌이켜 반성하면서 전전긍긍해야 옳을 터인데, 여전히 일을 대하면 머뭇거리기만 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생을 영위하지 못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많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정의 기강이 점차 해이해져서 이 지경에까지 이른 데다가 해마다 또 흉년을 계속 당하는 등 걱정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렇긴 하지만 지나간 일이야 어떻게 해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장래의 일이야 잘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재앙을 물리칠 좋은 방법을 강구해 보았습니다마는, 아무래도 비전(秘典)을 선양하는 것보다는 못하리라고 여겨졌습니다
.
이에 금우(禁宇)를 깨끗이 치우고 향연(香筵)을 공경히 마련하였으니, 미언(微言)을 진달하기만 하면 그 즉시 진정으로 느껴 감통하리라고 믿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 홍범(洪範) 오복(五福)을 향유하여 몸이 강강(康强)해지도록 해 주시고, 은반(殷盤) 일심(心)에 맡겨 두어 백성들이 화목해지게 해 주소서.

 

[주D-001]홍범(洪範) 오복(五福) : 기자(箕子)가 지었다는 홍범구주(洪範九疇) 가운데 아홉 번째로 나오는 다섯 가지의 복, 즉 수()ㆍ부()ㆍ강녕(康寧)ㆍ유호덕(攸好德)ㆍ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
[주D-002]은반(殷盤) 일심(一心) :
은 나라 반경(盤庚)이 말한 백성들의 한마음이라는 뜻이다. 반경은 은나라 중엽에 엄()에서 은()으로 천도하여 중흥을 이룬 어진 임금이다. 백성들을 설득하여 천도하고 민심을 수습한 과정이 《서경》 상서(商書) 반경에 상ㆍ중ㆍ하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맨 마지막에백성들을 위하는 덕을 공경히 펼지어다. 그리고 임금을 섬기는 일은 백성들의 그 한마음에 영원히 맡겨 두도록 할지어다.〔式敷民德永肩一心〕라는 반경의 당부가 실려 있다.

 

 

 

 

외원 도량(外院道場)에 올린 소

 


옥호상(玉毫相)
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는 큰 위덕(威德)의 상징이요, 금륜왕(金輪王)이 지닌 길상(吉祥)의 주문(呪文)은 온갖 재앙을 소멸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선조께서 후손을 위한 계책으로 서건(西乾 서천(西天) 즉 서역(西域))의 상교(像敎 불법(佛法))를 깊이 신봉하였습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내가 덕이 없는 몸으로 마침 말세의 시운을 만났는데, 스스로 돌아보아도 무능하기만 하여 제왕의 기업을 보전하기 어려운데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
그래서 다만 영구불변의 불법을 준행하여 진정한 비호를 받으려는 심정으로, 이 마음속의 작은 정성이나마 바쳐서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사방이 한 사람의 훌륭함 덕분에
진서(秦誓) 영회(榮懷)를 누리는 것처럼 되게 해 주시고, 이기(二氣)가 상도(常道)를 좇아 희경(羲經) 교태(交泰)를 이룰 수 있게 해 주소서.

 

[주D-001]옥호상(玉毫相) : 여래(如來) 32()의 하나로, 미간(眉間)에 있다는 백옥과 같은 흰 털을 말하는데, 거기에서 대광명(大光明)을 발산하여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비춘다고 한다. 옥호(玉豪)라고도 한다.
[주D-002]금륜왕(金輪王) :
금 륜보(金輪寶)를 지닌 왕이라는 뜻으로, 3000년에 한 번 꽃이 피는 우담발화(優曇鉢花)가 필 적에 함께 나온다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다. 금륜보는 바퀴 모양의 무기(武器)로 칠보(七寶)의 하나인데, 이것이 향하는 곳마다 모두 귀복(歸伏)한다고 한다. 주문(呪文)과의 관련성은 미상이다.
[주D-003]진서(秦誓) 영회(榮懷) :
《서 경》 진서의 맨 마지막에나라가 위태하고 불안해지는 것이 한 사람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나라의 번영과 안정 역시 어쩌면 한 사람의 훌륭함 덕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邦之
杌陧 曰由一人 邦之榮懷 亦尙一人之慶〕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희경(羲經) 교태(交泰) :
복 희씨(伏羲氏)가 팔괘(八卦)를 처음 그었다고 해서 《주역》을 희경이라고도 한다. 《주역》 태괘(泰卦)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통하는 것이 태괘이다. 제왕은 이로써 천지의 도를 지나침 없이 이루고 천지의 일을 모자람 없이 도와서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한다.〔天地交泰 后以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라는 말이 나온다.

 

 

 

팔관재(八關齋)에 올린 소

 


각황(覺皇 부처) 불법을 설한 것은 삼유(三有) 묘한 인연이라고 모두 칭송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리를 모르고 헤매는 말세의 속인으로서는 팔관의 정계(正戒)를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러므로 창업 수통(垂統)하신 선조들께서 이미 신령한 불법을 숭봉하여 큰 기업을 보전하였으며 오묘하게 구원을 받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나처럼 무능한 자가 후사가 되어 제대로 정치를 행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그 법도를 준행하여 기업을 유지하고 지킬 방도를 강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이에 시월에 의식을 거행할 길일을 잡아 서도(西都)에서 성대한 법회를 개최하게 되었으니, 불성(佛聖)이 증지(證知)하실 것이요 신룡(神龍)이 환희할 것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사방이 업신여기지 않는 가운데 상국의 위무를 받아 더욱 안정되도록 해 주시고
, 육부(六府) 크게 닦여 동인(東人)이 다시 풍요와 번영을 누리게 해 주소서.

 

[주C-001]팔관재(八關齋) : 팔 관은 8()를 지킨다는 뜻으로, 재가(在家) 불자가 하루낮 하룻밤 동안 출가하여 절에 가서 8계를 받고 승려의 생활을 학습하면서 율의(律儀)를 익히는 것을 말한다. 8계는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 불이화만장식자신(不以華鬘裝飾自身) 및 불가무관청(不歌舞觀聽), 불좌와고광화려좌상(不坐臥高廣華麗床座), 불비시식(不非時食)이다.
[주D-001]각황(覺皇)이 …… 있습니다 :
부 처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세상에 출현하여 개()ㆍ시()ㆍ오()ㆍ입()의 사불지견(四佛知見)을 설법했다는 내용이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에 보인다. 삼유(三有)는 인과율의 적용을 받으면서 생사를 반복하는 세 종류의 세계라는 뜻의 불교 용어로,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 즉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킨다.
[주D-002]육부(六府) 크게 닦여서 :
《서경》 우공(禹貢)육부가 크게 닦이고 모든 지역이 서로 바르게 되었다.〔六府孔修 庶土交正〕라는 말이 나온다. 육부는 사람의 생활에 필수적인 수()ㆍ화()ㆍ금()ㆍ목()ㆍ토()ㆍ곡()을 말한다.

 

 

 

청사(靑詞)

 

 

 

하원(下元) 초제(醮祭) 때의 청사(靑詞)

 


초헌(初獻). 진정(秦正)의 보름을 맞은 오늘이 마침 조원(朝元)하는 때에 해당되기에 주로(周潦)를 부어 정성을 바치며 감히 복을 듬뿍 받기를 바라노니, 부디 굽어살피시어 우악(優渥)하게 경사를 내려 주소서.
아헌(亞獻). 창창(蒼蒼)하게 끝없이 펼쳐져 다함이 없는 도는 혼돈 이전부터 이미 있었고, 꿈틀거리는 이 생물들의 명은
도견(陶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니, 감히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다하여 하민을 보우하는 사은(私恩)을 받았으면 합니다.
삼헌(三獻). 원기(元氣)를 머금고서 생성의 편의를 곡진히 도모하시고 공과(功過)를 기록하여 화복의 권세를 몰래 행하시는 분에게 어찌 미천한 정성이나마 다 바쳐서 우러러 들어주시기를 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삼가 생각건대, 덕이 부족하여 일에 임해도 오직 번거롭게 될까 두렵기만 한데, 선조들이 후손을 위해 남몰래 쌓은 여경(餘慶)을 외람되게 받아서 백성의 목자가 될 수는 있었습니다만, 천심(天心)을 향유할 만한
측수(側修)의 효과는 아직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행실을 바로잡아 기록하는 날을 당하여
, 천외비침(天畏棐忱)의 뜻을 깊이 생각하면서, 삼가 학려(鶴侶 도사(道士))를 영접하여 공경히 용장(龍章 임금의 글)을 아뢰는 바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잘못된 허물을 관대히 용서하여 스스로 새롭게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고, 수록(壽錄)을 넉넉히 가하여 늙지 않는 수명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주C-001]하원(下元) : 절일(節日)의 이름으로, 음력 10 15일을 말한다.
[주C-002]청사(靑詞) :
도사(道士)가 상제에게 아뢰거나 신장(神將)을 불러들일 때 쓰는 부록(
)인데, 청등지(靑藤紙) 위에 주필(朱筆)로 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주D-001]진정(秦正) :
진나라 정월이라는 말인데, ()나라 달력으로는 10월에 해당한다. 고려 때나 지금이나 음력은 하력(夏曆)이다.
[주D-002]조원(朝元) :
도교(道敎) 신도들이 노자(老子)를 참배하는 것을 말한다. 노자는 당()나라 때에 태상현원황제(太上玄元皇帝)로 추존되었다.
[주D-003]주로(周潦) :
길 가에 흘러 고인 물이라는 뜻의 항로(行潦)와 같다. 《시경》 대아(大雅) 형작(泂酌)저 길가에 고인 빗물을 멀리 떠다가, 저기에서 떠내고 다시 여기에다 붓는 정성만 지극하다면, 제사에 올리는 밥도 만들 수 있다.〔泂酌彼行潦 挹彼注茲 可以
饙饎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성만 있을 뿐 변변찮은 제사 음식이라는 뜻의 겸사로 흔히 쓰인다.
[주D-004]도견(陶甄) :
도공(陶工)이 녹로(轆轤)를 돌려 각종 질그릇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는 말로, 조화 혹은 자연을 뜻하는 말이다.
[주D-005]측수(側修) :
측신수도(側身修道)의 준말이다. 재앙을 당했을 때에 백성을 걱정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닦아 나가는 제왕의 자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詩經 大雅 雲漢 序》
[주D-006]천외비침(天畏棐忱) :
《서경》 강고(康誥)에 나오는 말로, “천명은 두려워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참되면 하늘이 돕는다.”라는 뜻이다.

 

 

 

동지(冬至)에 가까운 갑자일의 초제에 올린 청사

 


갑자의 날을 맞았나니 일양(一陽) 시생(始生)하는 가 이미 박두하였고, 건원(乾元) 만물을 비로소 내게 되었나니 하늘이 덮어 주는 인덕(仁德)이 더욱 빛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경건히 제향하는 정성을 다 바치면서 곡진히 이루어 주시는 은혜를 삼가 기다리는 바입니다.
생 각건대 선조의 기업을 이어받아 외람되게 왕위를 습봉(襲封)하였습니다만, 이미 박덕한 탓으로 수재와 한재가 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였으므로, 앞으로는 세시가 바뀌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남몰래 부호(扶護)해 주시는 은덕을 바라고자 합니다
.
이에 좋은 시절을 맞이하여 법식에 맞게 초제를 거행하게 되었으니, 높으신 신령께서는 하강하시어 모든 복이 이곳에 모이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열흘 비와 닷새 바람이 이르게 하는 가운데 순후한 풍속이 오늘날에 회복되도록 해 주시고, 3 경작에 1 양식이 비축되게 하는 가운데 먹고 남는 양식이 전년보다 항상 많게 해 주소서.

 

[주D-001]일양(一陽) 시생(始生)하는 : ()나라의 철학자 소 강절(邵康節)이 동짓날 한밤중 자시(子時) 반에 하나의 양기가 처음으로 나온다는 학설을 주창하였는데, 그 뒤로 이 설이 정설로 자리잡았다.
[주D-002]건원(乾元)이 …… 되었나니 :
《주 역》 건괘(乾卦)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만물이 여기에서 비로소 나오나니, 이에 하늘의 일을 총괄하게 되었도다.〔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 건원은 천도의 작용을 뜻하는데, 양은 천도를 상징한다.
[주D-003]열흘 …… 가운데 :
()나라 왕충(王充)의 《논형(論衡)》 명우편(明雩篇)열흘 만에 한 번 비가 오고 닷새 만에 한 번 바람이 불어야 한다. 비가 그보다 오래 내리면 홍수의 조짐이라고 할 것이요, 볕이 그보다 오래 들면 가뭄의 조짐이라고 할 것이다.〔十日者一雨 五日者一風 雨頗留 湛之兆也 暘頗久 旱之兆也〕라는 말이 나온다. 또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그대도 알다시피 대풍이 드는 해는, 닷새와 열흘에 한 번씩 바람 불고 비 온다오.〔君看大熟歲 風雨占十五〕라는 구절이 보인다. 《蘇東坡詩集 卷18 答郡中同僚賀雨》
[주D-004]3년 …… 가운데 :
《예 기》 왕제(王制)나라에 9년의 저축이 없으면 부족하다고 하고, 6년의 저축이 없으면 급하다고 하고, 3년의 저축이 없으면 그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3년을 경작하면 반드시 1년 양식의 저축이 있어야 하고, 9년을 경작하면 반드시 3년 양식의 저축이 있어야 한다.〔國無九年之蓄曰不足 無六年之蓄曰急 無三年之蓄曰國非其國也 三年耕必有一年之食九年耕必有三年之食〕라는 말이 나온다.

 

 

 

소왕(小王)본명(本命)에 초제를 지내면서 올린 청사

 


초헌(初獻). 날이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 소왕(小王)이 명()을 받은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이에 한마음을 극진히 하여, 상제에게 참된 마음으로 제향하는 것과 같은 의식을 거행하게 되었는데, 빈번(蘋蘩) 같은 물풀도 올릴 있는 것이요 서직(黍稷) 같은 곡식이 향기로운 것은 아닙니다.
아헌(亞獻).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으니, 도주(陶鑄) 을 누가 알 수나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느끼게 되면 천하의 일을 통하는 법이니, 밝게 강림하는 은혜를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거듭하여 밝게 고하게 되었으니, 이 조촐한 제사를 흠향해 주셨으면 합니다.
삼헌(三獻
). 하늘은 특별히 친한 사람이 없이 덕이 있는 사람을 도와줄 뿐이니, 천명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자(父子)간에는 은애(恩愛) 위주로 하니, 마음속으로 서로 친애해야 하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원사(元嗣 왕세자)가 그동안 비도(丕圖 왕업(王業))를 이어 받았는데, 겸퇴(謙退)하는 마음 때문에 끝내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만, 우려하는 생각이 거꾸로 화기(和氣)를 해칠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
이에 원신(元辰)을 택하여 특별히 맑은 초례를 거행하게 되었으니, 부디
영연(泠然) 바람을 몰고 왕림하시어, 작피(酌彼) 의례(儀禮)를 흠향해 주소서.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마음을 보존하고 정성을 보존하여 끝까지 효도하며 화합하게 해 주시고, 부귀와 수명을 누리게 하여 영원히 그리고 확실하게 행복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주C-001]본명(本命) : 태어난 해의 간지(干支)를 말한다. 그 간지와 같은 날을 본명일(本命日)이라고 하고, 그 간지와 같은 해를 본명년(本命年)이라고 한다.
[주D-001]빈번(蘋蘩)과 …… 아닙니다 :
《춘 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3년에진실로 확실한 신의만 있다면 …… 빈번과 온조 같은 변변치 못한 야채와 나물이라도 …… 귀신에게 음식으로 올릴 수가 있고, 왕공에게도 바칠 수가 있는 것이다.〔苟有明信 …… 蘋蘩薀藻之菜 …… 可薦於鬼神 可羞於王公〕라는 말이 나온다. 또 《서경》 군진(君陳)지극한 정치를 하면 향기로워서 신명에게도 감응이 되는 법이니, 서직과 같은 곡식의 제물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밝은 덕의 제물이 향기로운 것이다.〔至治馨香 感于神明 黍稷非馨明德惟馨〕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보려고 …… 않으니 :
도가(道家)의 도를 해설한 《도덕경(道德經) 14장에도는 형체가 없기 때문에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이라고 한다.〔視之不見 名曰夷〕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도주(陶鑄) :
도 공(陶工)처럼 만물을 빚어내는 조화의 솜씨라는 말이다. 《장자》 소요유(逍遙遊)그분은 먼지와 때 그리고 쭉정이와 겨 같은 것을 가지고도 도공처럼 요순을 빚어낼 수 있는 분인데, 뭣 때문에 외물을 일삼으려고 하겠는가.〔是其塵垢粃糠將猶陶鑄堯舜者也 孰肯以物爲事〕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느끼게 …… 법이니 :
《주 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역은 생각도 없고 하는 것도 없다. 하지만 고요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일단 느끼게 되면 마침내 천하의 일을 통하게 된다. 천하의 지극히 신령스러운 자가 아니면 그 누가 여기에 참여할 수가 있겠는가.〔易 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5]하늘은 …… 뿐이니 :
《서경》 채중지명(蔡仲之命)황천은 특별히 친한 사람이 없다. 덕이 있는 사람을 도와줄 뿐이다. 민심은 일정하지 않다. 은혜를 베푸는 자를 사모할 뿐이다.〔皇天無親 惟德是輔 民心無常 惟惠之懷〕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6]부자(父子)간에는 …… 하니 :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부자간에는 은애(恩愛)를 위주로 하고, 군신 간에는 공경(恭敬)을 위주로 한다.〔父子主恩 君臣主敬〕라는 말이 있다.
[주D-007]영연(泠然)히 …… 왕림하시어 :
신 선처럼 가뿐하게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달라는 말이다. 《장자》 소요유에, 열자(列子)바람을 몰고 하늘 위로 올라가서 가뿐하게 보름 동안쯤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땅 위로 내려오곤 하였다.〔御風而行 泠然善也 旬有五日而後反〕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8]작피(酌彼) 의례(儀禮) :
변 변치는 않지만 정성을 다하여 올리는 제사라는 뜻이다. 《시경》 대아(大雅) 형작(泂酌)저 길가에 고인 빗물을 멀리 떠다가, 저기에서 떠내고 다시 여기에다 붓는 정성만 지극하다면, 제사에 올리는 밥도 만들 수 있다.〔泂酌彼行潦挹彼注茲 可以
饙饎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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