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집자료 ▒

가정집 제7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13. 01:27

 

가정집 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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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갱(杯羹)에 관한 설

 


천명(天命)은 지모(智謀)를 가지고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민심은 무력을 가지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삼대(三代)의 혁명을 보더라도 모두 공을 쌓고 덕을 쌓은 결과 하늘이 명하고 백성이 마음을 준 것이었다. 그러므로 싸우지 않으면 모르지만 싸우기만 하면 반드시 일거에 천하를 얻었던 것이다.
필 부가 미천한 백성의 신분에서 일어나 갑자기 천하를 소유하는 것과 같은 일은 어려운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라의 천하도 삼대의 그 천하와 다를 것이 없다. 하늘이 명하고 백성이 마음을 주는 것이 어찌 고금(古今)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겠는가
.
그렇다면 유씨(劉氏)가 항우(項羽)와 천하를 다툰 것은 지모와 무력으로 한 것인가, 아니면 공과 덕으로 한 것인가. 유씨는 관후하고 인자하였으며 도량이 컸다고 예로부터 평해 오고 있다. 그러나 내가 배갱이란 말을 살펴보건대, 그러한 평에 의심이 없을 수가 없다
.
진나라의 학정으로 인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고통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에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타도하려는 것을 백성들이 보고는, 메아리처럼 호응하고 구름처럼 모여들면서 오직 자기들을 빨리 구해 주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런데 유씨는 이와 반대로 빨리 구해 주기를 바라는 백성들을 데리고 수없이 많은 전쟁터를 돌아다니면서 해치고 죽였으니, 유씨의 행위가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 항우가 태공(太公)을 삶아 죽이려고 할 때에는 유씨가 또 말하기를나에게도 한 그릇의 고깃국을 나눠 주면 좋겠다.”라고 하였다
.
그가 천하를 다투는 목적은 백성 때문이라고 할 것인데 지금은 그만 백성을 해쳤고, 그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부모 때문이라고 할 것인데 지금은 그만 부모를 호구(虎口)에 놔둔 채 조금도 돌아보지 않고서 오직 승부에만 집착하였다. 만약에 항백(項伯)이 입을 다물고 있었거나 항우가 분노를 참지 못했더라면, 도마 위의 고기가 그릇 속의 국이 되지 않았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비록
남몰래 업고 도망을 치지는 못할망정,한 그릇 고깃국이라는 말이 사람의 자식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유씨는 그래도 예의(禮義) 가탁하고서, 의제(義帝) 죽인 항우를 역적이라고 성토하며, 스스로 흰옷을 입고 제후들에게도 그렇게 것을 청했던 사람이다.
이 일을 자기 아버지의 고깃국 사건과 비교해 본다면 너무도 차이가 난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유씨는 관후하고 인자한 자가 아니라고 내가 말하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고조(漢高祖) 일개 포의(布衣) 신분으로 일어나서 자의 칼을 쥐고 5 만에 천하를 차지하였으니, 이보다 훌륭한 사람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때 만약 어버이를 위해서 자기 뜻을 굽혔다가 그 좋은 기회를 잃었더라면 집을 교화시키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고조처럼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은 항우가 자기 부친을 해칠 수 없다는 사실도 필시 예측했을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런 주장은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 당시에 항우와 같은 강포한 자가 태공을 죽이지 않은 것은 요행이었다. 더구나 유씨는 항우와 본래 형제의 의리가 없는데, 항우에게 태공을 제 부친으로 여겨 주기를 기대할 수나 있었겠는가. 얼마 전에
홍문(鴻門) 연회에 서 빠져 나온 뒤에 한중(漢中)으로 돌아와서 왕이 되었고 보면, 응당 정교(政敎)를 닦고 사졸을 기르면서 인의로써 굳게 결속하여 그 근본을 배양했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는 천명과 민심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더라면 진나라의 천하가 유씨를 놔두고서 누구에게로 갔겠는가.
그렇게 했더라면 100리의 땅을 가지고 400년 종주(宗周)의 기업을 닦은 문왕(文王)의 업적도 유씨에게 기대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니, ()나라 정치의 성대함이 어찌
성강(成康)의 시대와 비슷한 정도로만 끝났겠는가. 삼대 이후로는 한당(漢唐)을 칭하지만, 한당의 훌륭하다는 임금들도 부자간에 내심 부끄러운 점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전적으로 지모와 무력만 힘쓴 데에 진짜 이유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 유감스러운 일이다.

 

[주C-001]배갱(杯羹) : 한 그릇의 고깃국이라는 말이다. 유방(劉邦)이 항우(項羽)와 천하를 다툴 적에 항우가 유방의 부친인 태공(太公)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삶아 죽이려고 하면서 항복하라고 다그치자, 유방이 회왕(懷王) 앞에서 명을 받을 적에 형제가 되기로 약속한 일을 상기시키면서나의 부친은 바로 너의 부친이니, 기필코 너의 부친을 삶으려고 한다면 나에게도 고깃국 한 그릇을 나눠 주면 좋겠다.〔吾翁則若翁 必欲烹而翁 則幸分我一杯羹〕라고 하였다. 이에 항우가 노하여 태공을 죽이려고 하자, 항백(項伯)천하를 위하는 자는 집안일을 돌아보지 않는 법이다. 죽여 봤자 이익은 없고 단지 화만 부추길 뿐이다.〔爲天下者不顧家 雖殺之無益 祗益禍耳〕라고 충고하니, 항우가 그 말을 따라 죽이지 않았다는 내용이 《사기(史記)》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온다.
[주D-001]삼대(三代) :
()ㆍ은()ㆍ주()의 시대를 말한다.
[주D-002]남몰래 …… 못할망정 :
혹 자가 맹자(孟子)에게()이 천자가 되고 고요(皐陶)가 법관이 되었을 적에, 순의 부친인 고수(瞽瞍)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하였겠는가?”라고 묻자, 맹자가체포할 따름이다.”라고 대답하였고, “그러면 고요가 체포하는 것을 순이 금하지 않았을까?”라고 묻자, 맹자가순이 어떻게 금할 수가 있겠는가. 고요는 그러한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이다.”라고 대답하였고, “그러면 순은 어떻게 하였겠는가?”라고 묻자, “순은 천하를 버리기를 마치 헌신짝 버리듯 하는 사람이니, 부친을 남몰래 빼내어 업고 도망쳐서 먼 바닷가에 숨어 살며 종신토록 흔연히 즐기면서 천하를 잊었을 것이다.”라고 대답한 내용이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온다.
[주D-003]유씨는 …… 사람이다 :
한 고조(漢高祖) 유방이 군대를 출동시켜 항우를 칠 적에 제후들에게항우가 의제(義帝)를 죽여 대역무도한 죄를 지은 만큼 과인이 친히 발상(發喪)을 할 것이니, 제후들도 모두 흰색의 상복으로 갈아입도록 하라.”고 명했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8 高祖本紀》 의제는 항우가 회왕(懷王)을 높여 추대한 칭호로, 가제(假帝)와 같은 뜻이 들어 있다.
[주D-004] 고조(漢高祖)는 …… 차지하였으니 :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내가 포의의 신분으로 일어나서 석 자의 칼을 쥐고 천하를 차지하였으니, 이것이 하늘의 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吾以布衣提三尺劍取天下 此非天命乎〕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8 高祖本紀》
[주D-005]홍문(鴻門) 연회 :
유 방이 진나라 도성인 함양(咸陽)을 공격하여 점령한 뒤에 군대를 파견하여 함곡관(函谷關)을 지키게 하면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항우가 격분한 나머지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신풍(新豊) 홍문에 진주(進駐)하여 유방을 공격할 준비를 하였는데, 항우의 숙부인 항백(項伯)의 조정으로 서로 화해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유방이 직접 홍문으로 찾아가서 사과하니, 항우가 연회를 베풀어 유방을 접대하였다. 이때 항장(項莊)이 범증(范增)의 명을 받고 칼춤을 추며 유방을 죽일 기회를 엿보자, 장량(張良)이 번쾌(樊噲)를 들여보내 그 위기를 수습하게 한 뒤에 유방과 함께 도망치게 하였다. 《史記卷7 項羽本紀》
[주D-006]성강(成康) :
()나라 성왕(成王)과 그 아들 강왕(康王)의 병칭이다. 이 시대에 약 40년 동안 천하가 안정되고 죄수가 없어 감옥이 텅 비는 등 태평 시대를 이루었다고 한다. 한나라 문제(文帝)와 그 아들 경제(景帝)의 이른바 문경(文景)의 시대가 성강의 시대와 곧잘 비견되면서 지치(至治)의 시대로 회자되곤 한다. 《한서(漢書)》 권5 경제기 찬(景帝紀贊)주나라는 성강을 운위하고 한나라는 문경을 말하니, 얼마나 아름다운가.〔周云成康 漢言文景 美矣〕라는 말이 나온다.

 

 

 

차마설(借馬說)

 


나 는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서 타곤 한다.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 말을 얻었을 경우에는 일이 아무리 급해도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넘어질 것처럼 전전긍긍하기 일쑤요, 개천이나 도랑이라도 만나면 또 말에서 내리곤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얻었을 경우에는 의기양양하여 방자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삐를 놓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모두 평지로 간주한 채 매우 유쾌하게 질주하곤 한다. 그러나 간혹 위험하게 말에서 떨어지는 환란을 면하지 못한다.
,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뒤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빌려서 잠깐 동안 쓸 때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진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
그 렇긴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 또 뭐가 있다고 하겠는가.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요,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서 총애를 받고 귀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비복(婢僕)은 주인에게서 각각 빌리는 것이 또한 심하고도 많은데, 대부분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기만 할 뿐 끝내 돌이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
.
그러다가 혹 잠깐 사이에 그동안 빌렸던 것을 돌려주는 일이 생기게 되면
, 만방(萬邦) 임금도 독부(獨夫) 되고 백승(百乘)의 대부(大夫)도 고신(孤臣)이 되는 법인데, 더군다나 미천한 자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접하고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차마설을 지어서 그 뜻을 부연해 보았다.

 

[주D-001]만방(萬邦)의 …… 되고 : 만 승(萬乘)의 천자도 포악무도하게 굴면 백성들의 따돌림을 받는 외로운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독부(獨夫)는 하늘도 버리고 백성도 버려 외롭게 된 통치자라는 뜻인데, 《서경(書經)》 태서 하(泰誓下)에 폭군 주()를 독부로 명명하고 그의 죄악상을 나열한 내용이 나온다.
[주D-002]오래도록 …… 알았겠는가 :
《맹 자》 진심 상(盡心上)요순은 인의(仁義)의 성품을 타고났고, 탕왕과 무왕은 몸에 익혔고, 춘추 오패는 차용하였다.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았으니,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았겠는가.〔堯舜性之也 湯武身之也 五覇假之也 久假而不歸 烏知其非有也〕라는 맹자의 말이 나온다.

 

 

 

경보설(敬父說)

 


우봉(牛峯)
이군(李君)이 스스로 양직(養直)이라고 이름 붙이니, 그의 우인(友人)인 마읍(馬邑 한산(韓山))의 이운백(李云白 가정의 초명(初名))이 불곡(不曲)이라고 자를 지어 주었다.
어떤 사람이 이를 문제 삼아 말하기를,

()에 대해서 불곡(不曲)이라고 말한다면, 논리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직의 의미가 어찌 이 정도로만 그치겠는가. 대저 사물의 이치란 한 번 곧게 펴면 한 번 굽혀야 하는 법이니, 곧게 펴는 하나만을 고집해서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천지처럼 거대한 것 역시 움직일 때도 있고 고요할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다.〔尺之屈 以求伸也〕’라 고 한 것이다. 굽히기만 하고 펴지 않는다면 고요함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요, 펴기만 하고 굽히지 않는다면 움직임을 존속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곧게 펴기만 하고 굽힐 줄을 모른다면 그 곧음을 기를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직일곡(一直一曲)의 의미라고 할 것이다. () 임금과 같은 분은 대성인(大聖人)이시니, 그런 분이 마음을 보존하고 몸을 세우는 요체로 말한다면, 어찌 곧게 펴고 굽히지 않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그런 분도 어버이에게 알리지 않고 장가를 들었다. 이는 때로는 굽힌 연후에야 곧게 펼 수 있는 이치가 필연적으로 있기 때문이니, ()과 직()의 관계도 이를 통해서 유추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한쪽에만 얽매인다면, 그 곧음이라고 하는 것이 자기 부친이 훔쳤다고 아들이 고발하며 증거하는 것’과 같은 추한 결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 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천지의 도가 움직이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면서 조금도 차질이 없는 것은 오직 성() 때문이요, 사물의 이치가 한 번 굽혀지고 한 번 펴지면서 조금도 잘못이 없게 되는 것은 오직 경() 때문이다. 성과 경이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그 도리는 똑같은 것이다. 《주역(周易)》에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면을 곧게 한다.’라 고 하였다. 이는 대개 곧게 하는 것은 소당연(所當然)의 이(), 공경하는 것은 곧게 함을 기르는 도구가 됨을 말한 것이다. 이를 미루어 자기의 밝은 덕을 밝히고〔明明德〕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新民〕에 적용한다면, 어떤 상황에 처하든 간에 천리 아닌 것이 있겠는가.”

하였는데, 이 말을 듣고는 불곡을 고쳐서 경보(敬父)라고 했다 한다.

 

[주D-001]우봉(牛峯) : 《가정집》 권1 ‘절부(節婦) 조씨전(曺氏傳)’에 의하면, 그는 전임 감찰 규정(監察糾正)으로서 가정과 동년(同年) 수재(秀才)라고 하였다. 2 의재기(義財記)에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D-002]자벌레가 …… 위함이다 :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나온다.
[주D-003]어버이에게 …… 들었다 :
《맹 자》 이루 상(離婁上)순이 어버이에게 알리지 않고 장가를 든 것은 후사가 없게 될까 염려해서였다. 그래서 군자는 그것을 어버이에게 알린 것과 같다고 여기는 것이다.〔舜不告而娶 爲無後也 君子以爲猶告也〕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순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에 대해서는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주D-004]자기 …… :
《논어(論語)》 자로(子路), 그런 것은 정직한 일이 못 된다고 공자가 비평한 내용이 실려 있다.
[주D-005]공경하는 …… 한다 :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 육이(六二)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외면을 방정하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라는 말이 나온다.

 

 

 

 

심보설(深父說)

 


계림(雞林)의 최군(崔君)이 그의 이름을 고치고는 나에게 자()를 청하며 말하기를,

우 리 동방의 선비들이 자식의 이름을 짓거나 자기 이름을 지을 때면 모두 인()ㆍ의()ㆍ예()ㆍ지(), ()ㆍ봉()ㆍ귀()ㆍ린()이나, ()ㆍ경()ㆍ보()ㆍ필()이나, ()ㆍ국()ㆍ주()ㆍ석() 등 수십 개의 글자를 쓰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열 사람이 모이면 그중에 비슷한 사람이 7, 8명이나 되고, 또 간혹 사건이 발생하면 이름이 서로 저촉이 되어 분쟁을 면하지 못하기도 한다. 당초에 나의 이름이 지()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구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래에 흉인의 이름을 보니 나의 성명과 소리가 서로 비슷하였다. 그래서 강()이라고 다시 이름을 고쳤으니, 이는 사람들이 흔히 쓰지 않는 글자를 택한 것이다. 그대는 한마디 좋은 말을 해 주기 바란다.”

하기에,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름을 일단 이렇게 지었다면, 자를 짓는 것이야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산은 높기 때문에 우러러 볼 수가 있는 것이고, 물은 깊기 때문에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대저 강이라는 것은 물 중에서도 큰 것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 근원이 멀고 그 흐름이 길다. 강은 또 온갖 물줄기를 받아들여 동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그처럼 크게 될 수가 있는 것이요, 크기 때문에 그처럼 깊게 될 수가 있는 것이요, 깊기 때문에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요,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범할 수가 없는 것이다. 원타(黿鼉)와 교룡(蛟龍)과 어별(魚鼈)이 여기에서 살고 있으니, , 이를 통해서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하늘이 강으로 인해 남과 북의 한계를 짓게 되었으니, , 이를 통해서 범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무릇 만물의 이치란 깊어서 헤아릴 수 없게 된 연후에야 범할 수가 없는 것인데, 처심(處心)과 행사(行事)에 있어서도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감히 언심보(彦深父)라는 자로써 나의 책임을 메우려 한다.”

 

 

 

 

 

사설(師說)을 지어 전정부(田正夫)에게 작별 선물로 주다

 


스 승에 대한 설은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그 도()가 하나가 아니고 그 지위도 같지 않다는 것 또한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도를 가지고 말한다면 성인과 현인과 우인(愚人)의 스승이 있을 수 있고, 지위를 가지고 말한다면 천자와 제후와 경과 사와 서인의 스승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스승이 하는 일은 덕의(德義)를 높이고 술예(術藝)를 가르치고 구두를 익히게 하는 것 등이다.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이름을 이룬 자는 있지 않다. 천자와 제후와 경과 사와 서인의 그 지위는 비록 같지 않고, 성인과 현인과 우인의 그 도는 비록 하나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업을 연마하고 기질을 변화시키려면 아무래도 스승의 도움이 필요한 만큼 덕의와 술예와 구두의 가르침을 받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할 것이다. 즉 구두를 가르쳐서 글을 익히게 하고, 술예를 교습해서 적절히 활용하게 하고, 덕의를 전수해서 바른 마음을 갖게 해야 하니, 그러고 보면 스승이 제대로 스승 노릇을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겠다
.
우선 서인의 스승을 예로 들어서 말해 보겠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효제와 충신의 도리를 가르쳐서 어버이를 친애하고 어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줄 알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루는 무의(巫醫)와 악사(樂師)와 백공(百工)의 기예가 그 규모는 비록 작다고 하더라도 역시 전심치지(專心致志)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인 만큼, 그들을 가르치는 스승의 입장에서는 무섭게 대할 수도 있고 나아가 회초리로 때릴 수도 있는 것이며 그러다가 잘 안 되면 아예 버리고 떠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제대로 가르치는 도리를 행할 수 없게 되면, 강한 자는 반드시 거칠어지고 약한 자는 반드시 나태해져서 하던 일도 집어치우고 해야 할 일도 폐기한 채, 부모를 욕되게 하고 동네에서 행패를 부리며 불법 행위를 도발하다가 옥송(獄訟)만 뻔질나게 일으키곤 할 것이다
.
여기에서 경과 대부와 사의 단계로 더 올라가면 해를 끼치는 것이 필시 서인들보다 갑절은 더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제후의 단계로 올라가고 다시 천자의 지위에 이르게 될 경우, 그 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임무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요, 그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책임은 더욱 심대해질 것이다
.
대저 천자와 제후는 부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안락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다. 그래서 뜻이 거만하여 위세를 부리면서 사부(士夫)를 멸시하게 마련이요, 따라서 엄격한
외부(外傅)보 다는 좌우의 친압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게 마련이다. 어떤 이는 성색(聲色)과 구마(狗馬)를 바치고 어떤 이는 진기한 물건과 특이한 음식을 제공하여, 천자와 제후의 귀와 눈을 멀게 하고 마음과 뜻을 현혹시키곤 하니, 이처럼 덕의(德義)를 해치는 것들이 계속해서 밀어닥치는 상황에서, 천자와 제후로서는 이것들을 응접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헐렁한 옷에 큰 띠를 맨 차림으로 벼슬에 나아오기는 어려워하고 물러나기는 쉽게 여기는 선비의 입장에서 볼 때, 아첨하여 총애를 받고 꼬리를 치며 애걸하는 자들과 친소(親疎)를 따지고 득실을 다툰다는 것은 참으로 격에 맞지 않는 어려운 일이라고도 할 것이다.
옛날에 행한 교육을 보면, 천자와 제후의 아들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학교에 들어가게 하여 날마다 단정한 인사(人士)와 함께 하루 종일 생활하면서 덕성을 도야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연치(年齒)를 높이고 덕성을 귀하게 여기는 의리를 알게 함으로써
관(冠) 오줌을 누는 이나 방석에 침을 꽂는 이 없게 하였기 때문에 사도(師道)가 행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남의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바르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바르지 못하고서 남을 바로잡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담 양(潭陽)의 전정부(田正夫)는 나와 함께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한 인연이 있다. 지금의 국왕께서 연경(燕京)에 들어가 숙위(宿衛)할 적에 정부가 실로 수행하였다. 당시에 왕은 세자의 신분이었는데, 정부가 구두를 가르쳐서 글을 익히게 하였다. 지금은 임금의 자리에 정식으로 오르셨지만 나이가 아직도 젊으시고 보면, 지금이야말로 옛사람들이 외부(外傅)에 나아가 공부했던 시기라고 할 것이다
.
그러니 구두를 가르치고 술예(術藝)를 교습하고 덕의를 전수하는 일을 한 가지라도 폐하면 더욱 안 될 것이다. 이 일을 서인과 비교해 보거나 경ㆍ대부ㆍ사에 비교해 보면 더욱 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나아가 성인이나 현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니 더더욱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요, 위로는 천자가 있고 아래로는 경ㆍ사ㆍ서인이 있으니 더더욱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스승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또한 어렵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
정부는 반드시 자기를 먼저 바르게 한 뒤에 왕의 마음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성색(聲色)과 구마(狗馬)와 진기한 물건과 특이한 음식 등이 앞지르지 못하게 하고, 아첨하며 총애받는 자들의 유혹에 정신을 뺏기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은 그 도가 큰 만큼 임무도 막중하다고 할 것이요 그 덕이 높은 만큼 책임도 심대하다고 할 것이니, 어찌 서인의 스승처럼 무섭게 하고 회초리로 때리다가 아예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성격의 것이겠으며, 어찌 단지 경과 사의 스승처럼 그 폐해가 서인의 경우보다 갑절 정도로만 그치겠는가
.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오직 대인(大人)만이 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을 있다. 한번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면 나라가 안정되는 것이다.”라 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한 대인이란 아마도 사도(師道)를 존엄하게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정부가 왕을 따라 본국으로 떠날 즈음에 나에게 한마디 말을 해 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내가 사설(師說)을 지어 주면서 맹자의 말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정부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다.

 

[주D-001]외부(外傅) : 밖에 나가서 배우는 스승이라는 뜻으로, 보모(保姆) 즉 내부(內傅)에 상대되는 말이다. 《예기(禮記)》 내칙(內則)남자가 10세가 되면 집 밖에 나가서 스승에게 배운다.〔十年 出就外傅〕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관(冠)에 …… :
한 고조 유방이 유사(儒士)를 업신여기며 모욕을 가한 고사를 말한다. 《사기》 권97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패공은 유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객 가운데에 유사의 관을 쓰고 오는 자가 있으면, 그때마다 패공이 그 관을 벗기고는 그 안에 오줌을 누곤 하였다.〔沛公不好儒 諸客冠儒冠來者 沛公輒解其冠 溲溺其中〕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방석에 …… :
《진 서(晉書)》 권53 민회태자전(愍懷太子傳), 사인(舍人) 두석(杜錫)이 태자에게 덕을 닦고 선행을 쌓으며 참소하고 비방하는 자들을 멀리하라고 권면하자, “태자가 노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두석이 항상 앉는 방석에 바늘을 꽂게 해서 그가 앉을 때 찔리게 하였다.〔太子怒 使人以鍼著錫常所坐氈中而刺之〕라는 기록이 나온다.
[주D-004]오직 …… 것이다 :
《맹 자》 이루 상(離婁上)오직 대인만이 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 임금이 인하면 인해지지 않는 일이 없고, 임금이 의로우면 의롭지 않은 일이 없고, 임금이 바르면 바르게 되지 않는 일이 없으니, 한번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면 나라가 안정되는 것이다.〔惟大人爲能格君心之非 君仁莫不仁 君義莫不義 君正莫不正 一正君而國定矣〕라는 말이 나온다.

 

 

 

 

신설(臣說)을 지어서 귀국하는 이 부령(李府令)을 전송하다

 


()에 이르기를 신하 노릇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라 고 하였다. 그러니 어찌 조심해서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임금에게 총애를 받을지라도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작록(爵祿)을 풍성하게 소유할지는 몰라도 백성의 원망을 사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지금은 칭찬을 받을지라도 후세에 영예롭게 되지 못한다면 공업(功業)을 많이 세울지는 몰라도 후세의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옛날에 신하 노릇을 제대로 한 자들을 보면, 차라리 임금의 총애를 받지 못할지언정 감히 백성의 원망은 사지 않으려고 하면서 작록을 급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차라리 지금 칭찬을 받지 못할지언정 감히 후세에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 하면서 공업을 계교하지 않았다. 백성의 원망을 사고 후세의 비난을 자초하면서 오직 작록과 공업만을 급하게 여기고 계교한다면, 이는 이미 신하 노릇을 제대로 하는 도가 못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더군다나 이른바 작록이라는 것도 꼭 풍성하게 소유한다는 보장이 없고, 공업이라는 것도 꼭 많이 세운다는 보장이 없는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대범 신하의 명목을 말해 본다면, 중신(重臣)과 권신(權臣)이 있고, 충신(忠臣)ㆍ직신(直臣)과 간신(姦臣)ㆍ사신(邪臣)이 있다
.
중 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알고 있다. 예컨대 임금은 어리고 나라는 위태로운데 여러 사람들의 뜻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혹 변고가 창졸간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걱정스러운 사태가 전개될 때에, 우뚝이 확고하게 하나의 절조를 견지하고 대의(大義)를 주장하며, 자기 한 몸의 사생(死生)이나 화복(禍福)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이 그 덕분에 안정을 찾고 사태가 그 덕분에 수습이 되는 그런 신하를 중신이라고 할 것이다. 옛사람 중에 이렇게 행한 신하가 있으니
, 이윤(伊尹)ㆍ주공(周公)진평(陳平)ㆍ주발(周勃)이 바로 그들이라고 하겠다.
권 신으로 말하면, 세력을 의지하여 자기의 사욕을 채우고, 임금을 끼고서 사적으로 은혜를 베풀어 남의 환심이나 사며, 몰래 칼자루를 거꾸로 쥐고서 협박하며 압제하는 자이다. 비록 사람들이 분개하며 원망하면서도 감히 말을 하지는 못하니, 그도 한 시대의 안위를 좌우하며 사태를 진정시킬 수는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중신과 그 자취는 비슷해도 마음은 같지 않은 차이가 있는데, 국가의 이해관계를 따진다면 하늘과 땅처럼 서로 다르다. 그래서 선유(先儒)가 일찍이 이것을 논한 바가 있었다
.
그리고 충신은 나랏일만 생각할 뿐 자기 집안일은 잊으며, 공적인 일만 생각할 뿐 사적인 일은 잊는다. 그래서 임금이 우환을 당하면 자신은 오욕을 감수하고,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자신은 목숨을 버리면서, 분발하여 자기 몸은 돌아보지 않은 채 오직 의리만을 따른다. 옛사람 중에 이렇게 행한 자가 있으니, ()나라의
기신(紀信)과 진()나라의 혜소(紹)가 바로 그들이다.
간 신은 이와 정반대이다. 번지르르하게 꾸며 대는 말과 알랑거리는 낯빛으로 몰래 흉계를 꾸미고 속임수를 써서 임금을 기만하고 백성을 우롱한다. 이익은 자기가 차지하고 원망은 위에 돌리면서, 졸지에 급박한 사태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임금을 앞세우고 자기는 뒤로 빠진다. 그리고는 뒤에서 떠밀어 구덩이에 빠뜨리고는 돌을 또 굴려서 떨어뜨리기까지 하니, 자기가 직접 손에 칼을 쥐고서 해치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겨우 한 사람을 그 사이에 두고서 간접적으로 해친 것이다. 이런 자는 반드시
동호(董狐)의 직필(直筆)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직 신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임금에게 과오가 있으면 극력 간쟁을 하고, 일에 허물이 있으면 숨김없이 직언을 하며, 오직 임금을 불의에 빠뜨릴까 두려워하고 오직 백성을 억울하게 죽음으로 몰까 걱정하는 신하이다. 거리낌 없이 과감하게 올곧은 발언을 하다가 죽은 뒤에야 그만두나니, 직신으로는
용방(龍逢)비간(比干)을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사 신(邪臣)은 이와 같지 않아서 대도(大道)를 따르지 않고 정로를 향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교묘하게 영합하고 불법으로 결탁하면서 종기의 고름을 빨고 치질을 핥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리하여 결국은 화란이 일어나면서 위망(危亡)이 뒤따르게 하는데, 아첨하여 총애를 구하고 탐욕을 부리며 부정을 일삼는 자는 모두 간사한 무리라고 할 것이다
.
참 으로 임금이 현명하게 듣고 널리 받아들이면서,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의 단점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사람의 장점을 알지 못한다면, 충신과 직신을 간신과 사신으로 여기거나 간신과 사신을 충신과 직신으로 간주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 옛날 덕종(唐德宗)이 “사람들은 노기(盧杞) 간사하다고 말하지만, 짐은 그가 애교를 부리는 것으로만 보인다.”라고 하자, 그것이 바로 그가 간사하다는 증거라고 말한 일화가 있다. 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치란과 민생의 휴척(休戚 행불행)은 이를 잘 살피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
, 사람의 재질이란 이처럼 일정하지 않고, 비태(否泰 성쇠(盛衰))와 진퇴의 운세 또한 이처럼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임금이 어떠한 것을 숭상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중(管仲) 제(齊)나라를 패자(覇者) 만들었고, 정공(鄭公) 당(唐)나라를 일으켰으며, 발제() 공을 세워 속죄할 있었고, 배구(裴矩) 아첨하다가 끝내는 충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임금이 숭상한 것에 의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글을 읽을 때마다 이 점에 대해서 미상불 개연(慨然)한 심정이 들곤 하였다.
영 주(永州)의 이군(李君)은 나의 친구이다. 질박하여 꾸밈이 없으며 평탄하든 험난하든 간에 지조를 변하는 일이 없다. 그가 비록 중신의 명목에 감히 자신을 끼워 넣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충신의 아래에 있는 것은 또한 스스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간신과 사신이 하는 일을 보면 개나 돼지로 여길 뿐만이 아닌데, 다만 그는 그동안 불우한 세월을 보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 분의 임금을 차례로 섬겼어도 자기 내면에 온축한 경륜을 발휘할 길이 없었다. 지금 새로 계승하는 왕께서 본국으로 가게 되어 이미 길 떠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는 종신(從臣) 중에서 엄선하여 이군에게 명하되, 먼저 본국에 달려가서 국인(國人)에게 장차 경장(更張)하려는 뜻을 유시(諭示)하게 하는 동시에, 왕이 와서 소생시켜 주리라고 기대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도록 하였다
.
이 에 이군과 같이 노닐던 자들이 모두 시를 짓고는 나에게 서문을 쓰라고 청하기에 내가 신설(臣說)을 지어서 그를 격려하였다. 그리고는 그에게 물어보면서 말하기를우리 백성들이 마치 굶주린 자가 밥을 찾고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이, 새 임금님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새 정치를 눈을 비비고 고대하고 있다. 그대는 장차 작록을 풍성하게 소유하려고 힘쓰고 공업을 많이 세우려고 힘쓸 것인가? 그대에게 기대하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고 저기에 있다. 그러니 어찌 조심해서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주D-001]신하 …… 않다 : 《논어》 자로(子路)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우며, 신하 노릇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爲君難 爲臣不易〕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이윤(伊尹)ㆍ주공(周公) :
이 윤은 탕왕(湯王)을 도와 하()나라 걸왕(桀王)을 멸망시키고 난세를 평정한 뒤에 선정을 베푼 상()나라의 명상이다. 뒤에 탕왕의 적장손인 태갑(太甲)이 포학하게 굴자 동궁(桐宮)으로 축출했다가 그가 개과천선하자 3년 뒤에 다시 영입하여 복위시켰다. 주공은 주()나라 문왕(文王)의 아들이요 무왕(武王)의 동생으로서,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뒤에 예악(禮樂)과 문물(文物)을 정비하였다. 또 성왕(成王) 때에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무경(武庚)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 왕명을 받들고 동정(東征)하여 평정하였다.
[주D-003]진평(陳平)ㆍ주발(周勃) :
한 고조 유방의 창업 공신으로, 뒤에 여씨(呂氏)의 난을 평정하고 문제(文帝)를 영입한 승상(丞相)들이다.
[주D-004]기신(紀信) :
()나라 초기의 장군이다. 유방이 형양(滎陽)에서 항우에게 포위당해 위급해졌을 적에, 그가 한왕의 행세를 하며 항우에게 항복을 하고 그 틈에 유방을 탈출하게 하였는데, 항우가 그 사실을 알고는 불태워 죽였다. 《漢書卷1 高帝本紀上》
[주D-005]소(紹) :
죽 림칠현(竹林七賢)의 하나인 혜강(
)의 아들이다. 진 혜제(晉惠帝) 영안(永安) 원년(304)에 동해왕(東海王) ()이 혜제를 받들고 성도왕(成都王) ()과 싸우다가 탕음(蕩陰)에서 패하였다. 이때 혜소가 시중(侍中)의 신분으로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 엄호하다가 황제 옆에서 쓰러져 죽으며 그 피가 어의(御衣)를 적셨다. 사태가 안정된 뒤에 좌우의 측근이 그 옷을 세탁하려 하자, 혜제가이것은 혜 시중의 피이니, 없애지 말라.〔此侍中血 勿去〕라고 하며 그 충성심을 잊지 않는 뜻을 보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89 紹傳》
[주D-006]동호(董狐) :
춘 추 시대 진()나라의 사관(史官)이다. 진 영공(晉靈公)이 조둔(趙盾)을 죽이려 하자 조둔이 도망갔다가, 조천(趙穿)이 영공을 죽인 뒤에 조둔이 돌아오자, 동호가조둔이 그 임금을 죽였다.〔趙盾弑其君〕고 기록하여 조정에 보였다. 조둔이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강변하자, 동호가그대는 일국의 정경으로 도망을 하면서 국경을 넘지도 않았고, 돌아와서는 역적을 토벌하지도 않았으니, 그대가 죽인 게 아니고 누구인가.〔子爲正卿 亡不越境 反不討賊 非子而誰〕라고 하였는데, 이 일과 관련하여 공자가동호는 옛날의 훌륭한 사관이었다. 그의 서법은 숨기는 일이 없었다.〔董狐 古之良史也 書法不隱〕라고 찬양한 고사가 전한다. 《春秋左氏傳 宣公2年》
[주D-007]용방(龍逢) :
관룡방(關龍逢)으로, 직간을 하다가 걸왕(桀王)에게 살해된 하()나라의 현인이다.
[주D-008]비간(比干) :
()나라 왕실의 종친으로, 포학하고 음란한 주왕(紂王)에게 간하다가 살해당하였다.
[주D-009]옛날 …… 있다 :
당 덕종(唐德宗)이 이면(李勉)에게사람들 모두 노기가 간사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간사한 것을 모르는 것인가? 경은 그 정상을 아는가?〔衆人皆言盧杞姦邪 朕何不知 卿知其狀乎〕라고 묻자, 이면이천하의 사람들 모두가 그의 간사함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폐하만은 모르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간사하다는 증거입니다.〔天下皆知其姦邪 獨陛下不知所以爲姦邪也〕라고 대답하였다. 당시에 사람들이 그가 정직하게 대답한 것을 대단하게 여겼으나, 이로부터 소외를 당했다는 기록이 《구당서(舊唐書)》 권131 이면전(李勉傳)에 나온다.
[주D-010]관중(管仲)이 …… 만들었고 :
관중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재상으로 환공(桓公)을 도와 제후 중에 최초로 패업을 이루게 하였다.
[주D-011]정공(鄭公)이 …… 일으켰으며 :
정 공은 정국공(鄭國公)에 진봉된 위징(魏徵)을 가리킨다. 그는 당 태종(唐太宗)을 도와 정관(貞觀)의 치세를 이룬 명신인데, 망한 수()나라를 귀감으로 삼아 성현의 정치를 행하라고 누차 권하자, 태종이 그를 득실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에 견주기까지 하였다.
[주D-012]발제()는 …… 있었고 :
발 제는 춘추 시대 진 헌공(晉獻公) 때의 환자(宦者)이다. 헌공의 아들 중이(重耳)를 몇 차례나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하였는데, 나중에 중이가 19년의 망명 끝에 귀국하여 문공(文公)으로 즉위하자 여성(呂省)과 극예(
) 등의 음모를 고발하여 그 죄를 용서받았다.
[주D-013]배구(裴矩)는 …… 것이다 :
수 양제(隋煬帝)가 서역(西域)을 욕심내는 것을 배구가 알고는 서역의 풍속과 산천 등을 자세히 소개한 《서역도기(西域圖記) 3권을 바치니 양제가 크게 기뻐하여 매일 인견하며 서방의 일을 물어보았다. 이에 배구가 서역을 병탄하면 보물을 차지할 수 있다고 누누이 아뢴 결과 서역을 경략(經略)하는 임무를 맡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당()나라에 귀순하여 충성을 바치며 민부 상서(民部尙書)를 지내기도 하였다.

 

 

 

내옹설(乃翁說)을 지어 동쪽으로 돌아가는 배군 윤견(裵君允堅)을 전송하다

 


내 가 내옹(乃翁)을 알고 지낸 것이 오래되었다. 내가 예전에 국시(國試)에 급제하고 나서 관례에 따라 외방으로 나가 사록 참군(司錄參軍)이 되었는데, 임기를 마치고 돌아왔을 적에도 내옹은 여전히 제생(諸生)의 신분으로 있었다. 제생 중에서는 내옹이 나이가 비교적 많았고 재능도 우수하였으므로 제생이 모두 내옹을 추대하며 심복하였다. 내옹은 또 술을 좋아하는 성미라서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못하면 뭔가 잃어버린 것처럼 느꼈는데, 제생이 그런 까닭에 그를 따라 노닐기를 좋아하였다. 나도 때때로 그와 상종하며 어울리곤 하였는데, 그는 진솔한 사람으로서 다른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뒤에 내가 향거(鄕擧)에 합격하고 나서 중국에서 벼슬하게 되었으므로 오래도록 서로 만나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원(至元) 정축년(1337, 충숙왕 복위 6)에 내가 정동성(征東省)의 막좌(幕佐)로 본국에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내옹은 이미 중국의 과거에 급제하여 성가(聲價)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때였다. 그런데 그의 인품이 제생 시절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가 진솔한 사람임을 더욱 확인할 수가 있었다
.
지금은 내가 또 연경(燕京)에 와 있는데, 본국에서 배신(陪臣)을 보내어 천수절(天壽節)을 축하할 즈음에, 내옹이 또 문한(文翰)에 선발되어 표문(表文)을 받들고서 대궐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마침 거가(車駕)가 순행하는 때라서 이미 관()을 넘어갔으므로 내옹이 사신 일행과 함께 험난한 길을 따라 고생을 하며 북상하여 장막을 친 행궁에서 황제를 알현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난경(
)까지 따라가서 몇 개월 동안 머물렀으며, 연경에 돌아온 뒤에도 다시 몇 개월 동안 머물렀다. 그래서 내가 또 그와 함께 노닐게 되었는데, 내옹의 사람됨은 옛날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사신 일행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내옹은 또 혼자 남아서 뭔가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몇 개월 동안이나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는 나를 찾아와서 말하기를지난밤에 꿈을 꾸니
어버이께서 문에 기대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데 내가 떠나올 적에 오래 있다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지도 못했다. 따라서 내가 집에 돌아가면 이제는 어버이의 명령대로 따라야만 할 것이니, 여기에 다시 오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니 그대가 어찌 한마디 말을 해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의 생김새가 어깨가 구부정하고 키가 크다고 해서 사람들이 내옹(乃翁)이라고 불렀으므로 나도 그대로 내 호칭으로 삼게 되었다. ‘()’라는 글자는 어조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고서 아무 의미도 없는 글자라고 생각하는데, 그대라면 이에 대해서 무슨 말인가 해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물론 오래 전부터 내옹을 알아 온 터라서 그 즉시로 승낙하며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무릇 호명(號名)은 남이 칭하기도 하고 자기가 칭하기도 한다. 남이 칭할 때에는 으레 좋은 글자를 붙여 주게 마련이지만, 자기가 칭할 때에는 겸손하게 짓게 마련인데, 겸양하는 뜻을 보이는 까닭에 어리석을 우()가 아니면 노둔할 노()를 붙이고 졸렬할 졸()이 아니면 오활할 우()를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이란 실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나오는 것이니, 만약 그 이름이 사실에 기초한 것이라면, 비록 악명이 덧붙여졌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나쁜 이름을 감추고 싶어 해도 더욱 드러나게 한다.”고 하는 것이다.
제(齊)나라의 부로(父老) 소를 길렀는데 소가 송아지를 낳자 송아지를 팔아서 망아지를 왔다. 그러자 젊은 사람이 소는 망아지를 낳지 못한다면서 마침내 망아지를 데리고 갔으므로, 이웃 사람들이 그를 우공(愚公)이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있다.
이 부로가 스스로 해명하지 못할 것도 없을 텐데 우공이라는 이름을 그냥 받아들이고 피하지 않은 이면에는 뭔가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그 런데 처음에 글자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을까. 혹자는 일()과 대()가 천()이 되고, ()와 야()가 지()가 되고, ()과 언()이 신()이 되고, ()와 심()이 노()가 되니, 이런 식으로 유추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맨 처음에 그런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알 수 없는 점이 있다. 대개 글자가 물건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물건이 글자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물건이 글자와 비슷하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물건이 뒤늦게 생겨난 경우에는 그런 글자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군다나 인물의 형체를 글자의 점획(點畫)과 맞춰 보려고 한다면, 또한 어설픈 짓이 아니겠는가
.
비록 그렇긴 하지만 강물의 형태가 파()라는 글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파강(巴江)이 라고 부르는 것처럼, 사람의 생김새가 내()라는 글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내옹(乃翁)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언짢게 여길 것이 뭐 있겠는가. 그리고 내라는 글자가 어조사이긴 하지만,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해서 또한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저 문장에 어조사를 넣지 않으면 글을 지을 수가 없으니, 이는 씨줄 없이 날줄만 가지고는 보불(黼黻)의 무늬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것과 같다. 또 그 훈()으로 볼 때 상대방에게 말하기 어려운 글자를 든다면 그것은 너라는 뜻의 이()와 여()라는 글자라고 할 것이니, 이런 글자는 말하기 곤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꺼내어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이여(爾汝)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또한 스스로 낮추며 겸양하는 자의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가령 오()나라와 촉()나라의 사신이 국명(國名)을 가지고 서로 흠을 잡은 일이나, 사씨(謝氏)와 석씨(石氏)의 집안에서 성씨를 가지고 서로 시비를 건 일과 같은 것은, 글자를 매개로 해서 익살을 부려 본 것인데, 내가 내옹에 대해서 감히 그런 식으로는 답하지 못하겠다.

 

[주D-001]어버이께서 …… 계셨다 : 자 식의 안부를 걱정하는 어버이의 간절한 심정을 말한 것이다. 전국 시대 제()나라 왕손가(王孫賈) 15살의 나이에 민왕(閔王)을 섬겼는데, 그 모친이네가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올 때면 내가 집 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고, 네가 저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을 때면 내가 마을 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다.”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戰國策 齊策6
[주D-002]나쁜 …… 한다 :
《춘 추》의 경문에 나오는 이름을 보면, “혹 좋은 이름을 얻고 싶어 해도 그렇게 되지 못하게끔 하고, 혹 나쁜 이름을 감추고 싶어 해도 그 이름이 더욱 드러나게 하는데, 이는 모두 불의를 징계하기 위함이다.〔或求名而不得 或欲蓋而名章 懲不義也〕라는 말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31년에 나온다.
[주D-003]옛날 …… 있다 :
이른바 우공곡(愚公谷)의 고사로, ()나라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 정리(政理)에 나온다.
[주D-004]파강(巴江) :
중국 낭주(閬州) 서쪽으로 흐르는 가릉강(嘉陵江)의 별명이다. ()는 고대 전설에 나오는 파사(巴蛇)라는 뱀으로, 몸통이 엄청나게 크고 길어서 코끼리도 삼키는데 3년 뒤에나 그 뼈를 내놓는다고 한다.

 

 

 

 

시사설(市肆說)

 


상고(商賈)가 모여서 있고 없는 것을 무역하는 곳을 시사(市肆)라고 한다.
처음에 내가 연경(燕京)에 와서 위항(委巷)에 들어가 보았더니
, 예쁘게 치장하고서 간음하라고 가르치는 가 그 용모의 고운 정도에 따라서 값을 올리고 내리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이 공공연히 거래하고 있었다. 이런 곳을 여사(女肆)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서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관부(官府)에 들어가 보았더니, 붓을 함부로 놀려 법규를 농락하는 자가 그 사건의 경중에 따라서 값을 올리고 내리면서 조금도 의구(疑懼)하는 마음이 없이 공공연히 거래하고 있었다. 이런 곳을 이사(吏肆)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서 형정(刑政)이 문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지금에 와서는 또 인사(人肆)를 보게 되었다. 지난해부터 홍수와 가뭄으로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진 나머지 강한 자는 도적이 되고 약한 자는 유리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입에 풀칠할 길이 없게 되자, 부모는 자식을 팔고 남편은 아내를 팔고 주인은 하인을 팔 목적으로, 저자에 늘어놓고는 헐값으로 흥정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개나 돼지만도 못한 짓이라고 할 것인데, 유사(有司)는 이런 일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
, 앞의 두 시장은 그 정상이 가증스러우니 통렬히 징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뒤의 한 시장은 그 정상이 가긍(可矜)스러우니 이 또한 빨리 없어지도록 조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 시장이 없어지지 않는 한, 내가 알기에 여사로 인해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게 되고 이사로 인해 형정이 문란해지는 것이 장차 이 정도로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주D-001]예쁘게 ……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허술하게 보관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도적질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되며, 용모를 예쁘게 치장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음욕을 부추겨 간음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된다.〔慢藏誨盜 冶容誨淫〕라는 말이 나온다.

 

 

 

 

제발(題跋)

 

 

 

근설(勤說)의 뒤에 제()하다

 


호군 중연(胡君仲淵)부지런함에 대한 설〔勤說〕을 지어서 홍수겸(洪守謙)에게 주었다. 그리고 게군 이충(揭君以忠 게혜사(揭傒斯)의 동생) 이 그 뒤를 이어서 그에게 권면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천지 음양의 변화에 뿌리를 두고, 이를 왕()ㆍ공()ㆍ사()ㆍ서()의 도와 농()ㆍ공()ㆍ상()ㆍ고()의 일에 유추하였으며, 가르치고 배우는 설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말이 간결하면서도 뜻이 곡진해서 실로 배우는 자를 보익하는 점이 있었다.
대저 부지런함이란 게으름과 반대되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게으른 자이다. 그래서 그 설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부지런하지 못한 점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다음과 같이 스스로 비판해 보았다
.
부 지런하면 군자가 되고, 게으르면 소인이 된다. 부지런하면 부귀에 이를 수 있고, 게으르면 결국 빈천에 이르고 만다. 이는 변할 수 없는 이치이다. 나는 어려서 부친을 잃고 모친을 섬겼는데, 사지를 게을리 하여 맛있는 음식을 봉양하지도 못했으니, 이것이 부지런하지 못한 첫 번째 일이다. 급기야 학문에 뜻을 둘 나이에 이르러서도 시서를 게을리 하면서 어울려 노는 일만 좋아했으니, 이것이 부지런하지 못한 두 번째 일이다. 바야흐로 벼슬길에 들어서서도 사무는 게을리 하면서 국록만 축냈으니, 이것이 부지런하지 못한 세 번째 일이다. 공경의 집을 찾아가 문후하는 일을 게을리 하면서 퇴축(退縮)하는 일을 달게 여겼으니, 이것이 부지런하지 못한 네 번째 일이다. 친우와 사귈 즈음에 왕래하는 일을 게을리 하면서 도움만 받고 보답은 뒤로 미뤘으니, 이것이 부지런하지 못한 다섯 번째 일이다. 게으름 병이 한 가지만 있어도 문제라고 할 것인데, 벌써 다섯 가지나 지니고 있으니, 군자가 되려 하고 부귀에 이르려고 한들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
수겸(守謙)은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여 응당 부지런함에 힘쓰고 게으름은 없앴을 터이니 그러고 보면
내가 사람 가운데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 속에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부지런함 속에도 의()와 이()의 구분이 있는 법이다. 새벽에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서 부지런히 행하는 것은 순(舜) 임금의 무리나 도척의 무리나 공통적인 일이라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경()을 위주로 해야 하니, 수겸은 이 점을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주D-001]내가 …… 것이다 : 자 기의 게으름 병을 보고 경계하여 고치라는 뜻의 겸사이다. 《논어》 술이(述而)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더라도 그 가운데에는 내가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선한 자에 대해서는 그를 본받으면서 따를 것이요, 불선한 자에 대해서는 그를 경계하여 고칠 것이다.〔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2]새벽에 …… 것이다 :
새 벽에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서 부지런히 선행을 힘쓰는 자는 순 임금의 무리요, 새벽에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익을 구하는 자는 도척(盜蹠)의 무리이다. 순 임금과 도척의 구분을 알고 싶은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단지 이익을 탐하고 선행을 좋아하는 그 사이에 있을 뿐이다.〔雞鳴而起 孶孶爲善者 舜之徒也雞鳴而起 孶孶爲利者 跖之徒也 欲知舜與跖之分 無他 利與善之間也〕라는 말이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온다.

 

 

 

 

복산(福山) 시권(詩卷)의 발문(跋文)

 


식 무외(式無外)는 시를 좋아하는 자이다. 일찍이 경사(京師)에 달려와서 공경들 사이에서 시를 구하니, 지금의 중서(中書) 허공(許公)과 한림(翰林) 사공(謝公)을 비롯해서 이름이 알려진 진신(搢紳)들 모두가 그에게 시를 지어 주었다. 이로부터 시를 잘 짓는다는 소문만 들으면 길이 멀고 가까운 것을 따지지 않고 반드시 찾아가서 시를 구하였다. 동국의 사대부들도 이 때문에 그를 사랑하였다.
어제 저녁에 그가 복산의 시권을 소매 속에 넣고 나를 찾아와서 발문을 청하였다. 나는 복산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복산이 심산궁곡(深山窮谷)에서 그 형체를 마른 나뭇등걸처럼 만들고 그 마음을 차디찬 재처럼 만들어 이른바 적멸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그야말로 의술에 뜻을 두고 만리 길을 치달리면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을 급선무로 알 뿐이요 자기를 이롭게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고 보면, 그 인품이 어떠할지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니 부역을 도피하고 인륜을 어지럽히기만 할 뿐 세상에 어떤 유익함도 주지 못하는 저들 무리와는 결코 같은 차원에서 논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지금 강남으로 돌아갈 즈음에 시인이 그 일을 서술하였는데, 내가 식무외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그의 청을 거절하기도 어렵기에 그의 시 뒤에다 한마디 적어 넣게 되었다.

 

 

 

 

 

명찬(銘讚)

 

 

 

영암사(靈巖寺) 새 우물의 명()

 


누가 여기에다 집을 지었는고 / 孰室于玆
부처 아니면 신선이렷다 / 匪佛則仙
산은 푸른 옥이 둘러쳐 있고 / 山環碧玉
땅엔 푸른 연꽃이 솟아났도다 / 地湧靑蓮
물이 땅속에 들어 있지만 / 水在地中
막히고 통함은 하늘에 달린 일 / 窮通自天
우물이 바짝 마른 것도 / 維井之

바로 혹독한 가뭄 때문이라 / 維陽之愆
물을 구하려면 산 아래에 가서 / 求之山下
나귀 등에 싣고 사람 어깨에 메고 / 驢背人肩
삼십 리 길을 왕래하다 보니 / 往來一舍
한 말 물 값이 무려 일백 전 / 斗水百錢
사람들이 복을 구한다면서 / 人求其福
물 긷는 이 복전을 가꾼다마는 / 養此福田
말은 비록 복전이라 할지라도 / 雖則福田
먹는 물이 어찌 목에 넘어가리오 / 食可下咽
힘 있는 어떤 신도 한 분이 / 有大檀越
이런 사실을 목도하고는 / 乃見其然
훌륭한 기술자를 데리고 와서 / 乃募良匠
동쪽 우물 터를 살펴보았다오 / 乃相東偏
그런데 그 아래에 바위가 있어 / 其下惟石
파면 팔수록 더욱 단단한지라 / 鑿之彌堅
사람들이 처음에는 비웃으면서 / 人初指笑
낙숫물로 바위 뚫는 식이라 하였다네 / 有類溜穿
하지만 백 자쯤 깊이 파 들어가 / 其深百尺
이 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거쳐 / 其久二年
어려운 고비 넘기고 일단 성공하자 / 旣難旣獲
맑게 솟아 나오는 차디찬 샘물이여 / 有冽寒泉
원근에서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들어 / 遠近聚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달음질 쳤나니 / 奔走後先
근원이 있는 샘물 퐁퐁 솟아나서 /
其源混混
졸졸 막힘없이 끝없이 흘러 퍼지리라 /
其達涓涓
맑게 고인 깊은 우물 속에 / 泓澄涵泳
하늘의 별자리 거꾸로 걸렸나니 / 顚倒星躔
외물이 숨고 드러나는 / 物之隱現
그 도리 온전히 지녔도다 / 其理則全
그 누가 마무리 짓지 않고 / 孰無其後
시작만 하고서 놔두리오 / 而有其前
아홉 들어갈 때까지 / 掘至九仞
솟지 않으면 놔두지 않았노라
/
不泉勿捐
나의 이 명을 벽돌에 새겼나니 / 我銘在甃
사람들이여 부디 권면할지어다 / 凡百勉旃

 

[주D-001]복전(福田) : 봄에 씨 뿌리고 가꾸면 가을에 수확할 수 있는 것처럼, 공양하고 보시(布施)하며 선근(善根)을 심으면 그 보답으로 복을 받는다는 뜻의 불교 용어이다.
[주D-002]근원이 …… 솟아나서 :
공 자(孔子)가 물의 덕을 칭찬한 이유에 대해서 맹자(孟子)의 제자 서자(徐子)가 물어보자, 맹자가근원이 있는 샘물은 퐁퐁 솟아 흐르면서 밤이고 낮이고 멈추는 법이 없다. 그리고 구덩이가 파인 곳 모두를 채우고 난 뒤에야 앞으로 나아가서 드디어는 사방의 바다에 이르게 되는데, 학문에 근본이 있는 자도 바로 이와 같다.〔源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라고 대답한 말이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나온다.
[주D-003]졸졸 …… 퍼지리라 :
《순자(荀子)》 법행(法行)졸졸 흐르는 근원이 있는 샘물이여, 막힘없이 끝없이 흘러 퍼지리라.〔涓涓源水不雝不塞〕라는 일시(逸詩)가 나온다.
[주D-004]아홉 …… 않았노라 :
《서 경》 여오(旅獒)자그마한 행동이라도 신중히 하지 않으면 큰 덕에 끝내 누를 끼칠 것이니, 이는 마치 아홉 길 산을 만들 적에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공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다.〔不矜細行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
라는 말이 나오는데, 가정이 산 대신에 우물 공사를 비유하면서 이 표현을 인용한 것이 재미있다.

 

 

 

 

새로 만든 십이현(十二弦)의 명()

 


고아하지도 않고 비속하지도 않고 / 不雅不俗
옛날식도 아니고 현대식도 아니라네 / 匪古匪今
이미 슬이 아닐진댄 / 旣非其瑟
또 어떻게 금이라고 말하리오 / 孰謂之琴
쟁과 축의 제작에 버금가고 / 亞於箏筑之製
소와
의 소리의 중간이라 / 間于韶
之音
하늘 제사와 군신 연회에 쓰기는 부족해도 / 蓋未足薦郊廟而讌君臣
속진(俗塵)의 귀와 답답한 가슴을 세척할 수는 있으리라 / 亦可以洗塵耳而滌煩襟者也

 

[주D-001]소(韶) 말() : ()의 음악과 말갈(靺鞨)의 음악이라는 뜻으로, 아악(雅樂)과 속악(俗樂)을 가리킨다.

 

 

 

 

순암(順菴)의 진영(眞影)에 대한 찬()

 


한가한 도인이여 / 彼閉道人
배움도 끊어지고 일도 없어라
/
絶學無爲
이 크나큰 복전이여 / 此大福田
삼장법사란 일컬음을 받았도다 / 稱三藏師
비단 도포에 빨간색 모자 / 錦袍茜帽
굳이 먹물 옷을 고집하리오 / 安用緇衣
기괴한 일을 행하지도 않거니와 / 不行其怪
시대에 어긋나게 하지도 않았노라 / 不違于時
황왕의 권속으로 / 皇王之眷
불조에 귀의한 분 / 佛祖之依
모습을 보면 이렇다마는 / 視貌則然
그 마음 아는 자는 누가 있을꼬 / 知心者誰
아아 /

 

[주C-001]순암(順菴) : 조 의선(趙義旋)을 가리킨다. 《가정집》 권3 ‘조 정숙공(趙貞肅公) 사당(祠堂)의 기문정혜원통 지견무애 삼장법사(定慧圓通知見無礙三藏法師)의 호를 특별히 하사받고, 천원연성사(天源延聖寺)의 주지(主持)와 본국 영원사(瑩原寺)의 주지를 겸하였으며, 복국우세 정명보조 현오 대선사(福國祐世靜明普照玄悟大禪師)로서 삼중대광(三重大匡)의 품계에 오르고 자은군(慈恩君)에 봉해졌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는 조정숙(趙貞肅) 즉 조인규(趙仁規)의 아들인데, 이 밖에 선공(旋公)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주D-001]저 …… 없어라 :
순 암이 스스로 도를 깨우쳐 불교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당나라 선승(禪僧) 영가 현각(永嘉玄覺)이 지은 증도가(證道歌) 첫머리에그대는 배움의 길도 끊어진 채 아무 할 일도 없이 그저 한가하기만 한 도인을 보지 못했는가. 그는 굳이 망상을 없애려 하지도 않고 참된 진리를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는 무명의 참 성품이 바로 불성이 되고 허깨비 같은 빈 몸이 바로 법신이 된다.〔君不見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라는 말이 나온다.

 

 

 

 

식무외(式無外)의 송석헌(松石軒)에 제한 명()

 


정고(貞固)하지 아니한가 그 바탕이여 / 匪貞其質
고상하지 아니한가 그 신념이여 / 匪高其節
대지가 무거워도 짓누르지 못하고 / 地厚而不能壓
혹한이 몰아쳐도 빼앗지 못하도다 / 歲寒而不能奪
이것이 솔이냐 바위냐 / 松耶石耶
아니면 도를 얻은 식무외냐 / 得其道者式耶

 

 

 

 

새로 주조한 연복사(演福寺) ()의 명() 병서(幷序)

 


지 정(至正) 6(1346, 충목왕 2) 봄에 자정원사(資政院使) 강공 금강(姜公金剛)과 좌장고부사(左藏庫副使) 신후 예(辛侯裔)가 천자의 명을 받들고 황금과 폐백을 가지고 와서 금강산에서 종을 주조하였다. 당시에 금강산 근방의 제군(諸郡)에 기근이 들었는데, 그곳 백성들이 다투어 공사장에 달려와 먹을 것을 얻은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종이 완성되자 강공이 장차 조정에 돌아가려 하였다. 국왕과 공주가 신료에게 이르기를금강산은 우리나라의 영역 안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성천자(聖天子)께서 근신을 보내어 불사(佛事)를 크게 일으키시어 후세에 무궁한 은혜를 드리운 것이 이와 같은데, 우리는 털끝만큼도 도운 것이 있지 않다. 어찌 위에 보답할 도리를 강구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고 하니, 제신(諸臣)이 아뢰기를연복사에 대종(大鍾)이 있습니다만, 오래도록 폐기되어 쓰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훌륭한 기술자가 온 기회에 다시 새롭게 종을 만든다면, 황상(皇上)의 뜻을 체득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불후(不朽)의 공을 이루는 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강공에게 이 일을 말하니, 강공이 흔쾌히 승낙하고는 갈 길을 멈추고서 종을 만들어 주었다. 이에 왕이 신 곡()에게 명()을 지으라고 명하였다. 명은 다음과 같다.

대중이 일제히 들으려면 종을 쳐야 하고말고 / 齊一衆聽當聲金

삼군도 능히 정돈하고 팔음도 조화시킨다오 / 克整三軍諧八音
구담 노인
말씀이 매우 심오하다마는 / 瞿曇之老言甚深
지하에 있는 감옥은 얼마나 침침할꼬 / 地下有獄何沈沈
만번 죽고 만번 사는 그 고통 견디기 어려운데 / 萬死萬生苦難堪
귀머거리에 벙어리로 취한 듯 꿈꾼 듯하다가 / 如醉如夢聾且

한 번 종소리 듣고 나면 모두 마음 깨우치리 / 一聞鍾聲皆醒心
왕성에 있는 연복사는 거대한 총림 / 王城演福大叢林
새 종이 한 번 포효하니 진동하는 남염 / 新鍾一吼振南閻
위로 하늘 끝까지 아래로 땅속 끝까지 / 上徹寥廓下幽陰
묘장엄의 정복을 함께 받아 누리리라
/
共資淨福妙莊嚴
동한의 군신이 화봉(華封) 삼축을 올려 / 東韓君臣華祝三
천자께서 만년토록 수와 다남 누리시고
/
天子萬年多壽男
무궁한 행복을 나라와 함께 받으시게 하면서 /
無彊之休與國咸
명을 지으라 신에게 명하여 새기게 하였다네 / 命臣作銘令鐫

 

[주D-001]구담(瞿曇) 노인 : 부처를 가리킨다. 구담은 범어 Gautama의 음역으로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성씨이다.
[주D-002]남염(南閻) :
불 교 용어인 남염부제(南閻浮提)의 준말로, 수미산(須彌山) 사대주(四大洲)의 남주(南洲)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남염부주(南閻浮洲) 혹은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도 한다. 원래는 인도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인간 세상의 총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長阿含經 卷18 閻浮提洲品》
[주D-003]위로 …… 누리리라 :
이 종소리를 들으면 모든 중생들이 극락정토(極樂淨土)의 행복을 다 함께 향유할 것이라는 말이다. 묘장엄(妙莊嚴)은 극락정토 29종 장엄(莊嚴) 중의 하나이다. 《大阿彌陀經 卷下》《無量壽經 卷上》
[주D-004]화봉(華封)의 …… 누리시고 :
화 땅을 지키는 사람〔華封人〕이 요() 임금에게 수()와 부()와 다남(多男)을 축원한 이야기가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나온다.
[주D-005]무궁한 …… 하면서 :
《서경》 미자지명(微子之命)우리 천자의 나라와 함께 모두 행복해진 가운데, 영원히 대대로 무궁히 이어지게 할지어다.〔與國咸休 永世無窮〕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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