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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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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우 때에 천지의 섞임을 이미 끊었나니 / 唐虞已絶地天通
전례가 밝아지며 공경을 위주로 했느니라 / 典禮明明敬在中
떳떳한 법도 펼쳐진 게 하루가 아니거니 / 敍得彝倫非一日
감히 항상 춤추면서 삼풍과 같게 해서야 / 敢敎恒舞似三風
엷은 구름 자욱해라 산빛은 어둑어둑 / 輕陰漠漠山光暗
작은 눈발 휘날려라 술기운 얼근덜근 / 小雪霏霏酒氣融
순경이 많아짐을 점차 느끼는 늙은 나이 / 漸覺老年多順境
신명은 정직하니 고충을 보살펴 주시리라 / 神明正直保孤忠
[주D-001]당우(唐虞) …… 끊었나니 : 요 순(堯舜) 시대에 벌써 하늘과 땅이 각각 제자리를 잡게 하는 가운데, 인간 사회에도 일정한 기강과 질서가 자리 잡도록 예법(禮法)을 제정하였다는 말이다. 《서경(書經)》 여형(呂刑)에 “요 임금이 희(羲)와 화(和)에게 명하여, 하늘과 땅이 혼란스럽게 뒤섞이지 않도록 금함으로써, 잡신들이 함부로 강림하는 일이 없게 하였다.[乃命重黎 絶地天通 罔有降格]”는 말이 나온다.
[주D-002]감히 …… 해서야 : 조 정에 기강이 무너져서 왕과 신하들이 항상 먹고 마시며 즐기기만 하는 것을 개탄한 말이다. 삼풍(三風)은 무풍(巫風)ㆍ음풍(淫風)ㆍ난풍(亂風)을 가리키는 말로, 《서경》 이훈(伊訓)에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그 첫 대목에 “감히 궁전에서 항상 춤을 추거나 궁실에 들어앉아 술에 취한 채 노래를 부르는 자가 있으면, 이것을 무당 바람이라고 한다.[敢有恒舞于宮 酣歌于室 時謂巫風]”는 말이 보인다.
[주D-003]순경(順境)이 …… 주시리라 : 나 이가 노년에 접어들면서 목은 자신도 모르게 세상일을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그런 중에서도 근심할 수밖에 없는 외로운 신하의 충성심을 천지신명만은 굽어 살펴 주리라는 뜻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장공(莊公) 32년 조(條)에 “신명은 총명하고 정직하며 전일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소망에 따라서 복과 벌을 내린다.[神聰明正直而壹者也 依人而行]”는 말이 나온다.
여강(驪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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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 봄바람이 날마다 불어오니 / 門外東風日日吹
여강도 하마 눈 녹을 때가 됐으렷다 / 驪江已近雪消時
강물 거슬러 돌아가기도 어렵지 않다마는 / 泝流直上非難事
나를 위해 말을 잘해 줄 자는 누구일까 / 善爲我辭知是誰
누각의 달 구경하며 실컷 술도 취해 보고 / 賞月郡樓仍醉甚
절간의 매화 찾아 밤 늦게 올 수도 있으련만 / 尋梅野寺得歸遲
올해도 아마 이루지 못할 소망이 될는지도 / 今年又恐成虛語
나의 속마음을 시로나 묘사해 낼 수밖에 / 描出心聲賴有詩
눈 내리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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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한 남창 가에 기쁘도다 새소리여 / 寂寂南窓喜雀聲
늙은이 빗질 하니 온몸이 다 개운하군 / 老翁梳髮遍身淸
뜻밖에 해코지 당할 일도 다시 없으리니 / 更無非意相干事
다하지 못한 정을 읊을 일만 남았노라 / 只有吟詩不盡情
세시의 풍속이야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 / 風俗歲時今似古
눈 내리는 강과 산은 어두웠다 밝아졌다 / 江山雨雪晦還明
슬며시 일어나는 봄나들이 그 흥치여 / 悠然便起尋春興
연녹색 잎 선홍빛 꽃 서울 가득 찼으리니 / 嫩綠鮮紅滿鳳城
강 정당(姜政堂) 군보(君輔) 의 죽음을 애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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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이 되려는 나이에 노모를 봉양하며 / 年將七十侍慈顔
성재의 뜨락에서 노래자의 춤을 춘 분 / 省宰庭中舞袖班
이는 예나 이제나 실로 보기 드문 일 / 此是古今稀有事
고향 산천 비추었던 늠연한 그 풍채여 / 凜然風采照鄕山
대각에서 영채 날리며 빙옥의 얼굴 비췄나니 / 蜚英臺閣耀氷顔
능수능란한 그 솜씨 한갓 관표반 아니었소 / 諳練非徒管豹班
만년에 정당에 제수되며 식읍을 또 받으신 분 / 晚拜政堂封食邑
한 시대의 높은 그 의논 태산보다도 중했지요 / 一時高議重於山
내 나이 겨우 약관에 공의 얼굴을 알았는데 / 我生甫冠識公顔
거울에 비친 내 얼굴 이젠 머리가 희끗희끗 / 鏡裏吾今兩鬢班
천리 길 달려가서 상엿줄 잡지는 못하오만 / 千里未由親執紼
운산 울리는 슬픈 노래 귀로 듣는 듯하오이다 / 如聞薤曲動雲山
[주D-001]성재(省宰)의 …… 분 : 나 이 칠십이 다 된 재상의 신분으로 모친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하여 잔치를 베풀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떨었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현인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칠십에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부려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렸다는 고사가 전한다. 《初學記 卷17 孝子傳》
[주D-002]관표반(管豹班) : 대롱의 작은 구멍을 통해 본 표범의 무늬라는 뜻으로, 식견이 적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화원(花園)의 영사(令史)와 관련한 도목장(都目狀)의 서명(署名)을 청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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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도 사람 손에 길러지는 줄 누가 알까 / 花木誰知養在人
봄을 숨긴 꽃동산의 조물의 공과 비슷한 걸 / 功侔造化塢藏春
성대한 조정이 검소하여 유람하는 일 적은지라 / 盛朝儉素游觀少
옛날의 그 정원사가 지금 흰머리 다 됐구려 / 當日園丁白髮新
자영(自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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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옹의 이 흥취를 어떻게 남에게 전하리요 / 牧翁興味自難傳
유거에 봄이 스며들어 벌써 화기애애해라 / 春入幽居已靄然
산이 숫돌로 변할 공은 남길 것이 없다 해도 / 身後無功山可礪
술이 샘처럼 솟는 듯 눈앞이 마냥 즐거운걸 / 眼前得意酒如泉
꽃밭의 꾀꼬리 노래가 또 태평 시대의 기상이니 / 鶯花又近昇平日
물고기 뛰고 벼 익는 마을 올해는 분명 풍년이리 / 魚稻仍期大有年
광막한 하늘과 땅 사이에 나도 어느새 늙었나니 / 天地茫茫吾已老
향 피우고 귀거래사(歸去來辭) 자세히 읽어보노매라 / 焚香細讀去來篇
[주D-001]산이 …… 공 : 국 가의 공신(功臣)으로 기념될 만한 위대한 공을 말한다. 한 고조(漢高祖)가 공신에게 나라를 봉(封)해 주면서 “황하가 말라 붙어 허리띠처럼 되고 태산이 닳아 없어져 숫돌처럼 될 때까지 후손에게 영원히 이 나라를 전하리라.[黃河如帶 泰山若礪 國以永存 爰及苗裔]”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史記 卷18 高祖功臣侯者年表序》
[주D-002]술이 …… 듯 : 진 (晉)나라 요복(姚馥)이 술을 무척 좋아하였는데, 무제(武帝)가 그를 조가(朝歌)의 읍재(邑宰)로 발탁했을 때에는 거절했다가, 샘물이 마치 술 맛과 같다는 주천(酒泉)의 태수로 옮겨 주자 냉큼 부임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拾遺記 卷9》
바람 소리를 듣고는 감회가 일기에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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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소리 귀에 드니 저절로 쓸쓸해져 / 風聲入耳自蕭蕭
마음 깃발 견딜 수 없이 온종일 흔들리네 / 不耐心旌盡日搖
천지를 휩쓸어 옥엽을 모두 거두고 나서 / 已掃玄黃收玉葉
홍록을 재촉해 화조를 들레게 하려나 봐 / 欲催紅綠鬧花朝
십년 세월 애원하는 애달픈 피리 소리인 듯 / 十年哀怨怜□笛
일천년 전 순소가 또 아련하게 연상되네 / 千載依俙想舜簫
하지만 아예 문 닫고서 귀도 닫아버릴까 봐 / 甚欲塞聰深閉戶
조양봉명을 아무래도 불러올 수 없을 테니 / 朝陽鳴鳳竟難招
[주D-001]옥엽(玉葉) : 시어(詩語)로 구름을 뜻한다.
[주D-002]홍록(紅綠)을 …… 봐 : 꽃 피는 아침에 맞춰서 푸른 잎새 붉은 꽃잎을 터뜨리려고 봄바람이 급히 불어오는 것 같다는 말이다. 옛날에 음력 2월 15일을 백화(百花)의 생일이라고 하여 화조절(花朝節)이라고 불렀던 풍속이 있었다.
[주D-003]십년 …… 듯 : 빠 진 글자는 ‘向’ 자인 듯하다. 진(晉)나라 상수(向秀)가 혜강(嵇康)과 산양(山陽) 땅에서 절친하게 지냈는데, 혜강이 죽은 뒤에 그곳을 지나다가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를 듣고는 옛 추억을 생각하며 〈사구부(思舊賦)〉를 지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49 向秀列傳》
[주D-004]순소(舜蕭) : 순(舜)의 악곡(樂曲) 이름인 소소(簫韶)를 말한다. 《서경》 익직(益稷)에 “소소를 아홉 번 연주하자 봉황이 와서 춤을 추었다.[簫韶九成 鳳凰來儀]”는 말이 나온다.
[주D-005]조양봉명(朝陽鳳鳴) : 《시 경(詩經)》 대아(大雅) 권아(卷阿)의 “봉황새가 우네, 저 높은 언덕에서. 오동나무 자라네, 해 뜨는 저 동산에서. 무성한 오동나무 숲과 봉황새 소리 어울리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于彼朝陽 菶菶萋萋 雝雝喈喈]”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덕이 출중하여 조정에서 직언을 하며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인사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1월 23일에 도목장(都目狀)을 받고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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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따지고 근원을 맑히는 선발을 지체시키다니 / 聲罪淸原說選遲
올해로 넘겨 또 오늘까지 얼마나 때가 지났는고 / 今年此日是何時
병중의 몸이라 새로운 일은 듣고 싶지도 않아 / 病中不願聞新事
시름하는 외에 아는 것은 그저 시나 짓는 일 / 愁外唯知賦小詩
어관은 부끄럽다 해도 근거가 있다고 하겠지만 / 魚貫足羞猶有據
악서는 기뻐할 일이지만 혹시 사욕을 이룰지도 / 鶚書甚喜或成私
도유하고 읍양하던 당우의 시대는 머나먼 일 / 都兪揖讓唐虞遠
해 비치는 남창 가에 머리만 하얗게 세어 가네 / 日照南窓兩鬢絲
또 한 수 읊다.
머리 돌려 생각건대 전조의 이십오 년 / 回首銓曹卄五年
조랑말에 채찍질하며 부지런히 치달렸고 / 小驄馳疾不勞鞭
서행 안비로 인망을 한 몸에 모았던 분 / 徐行按轡收人望
이미 신선 되신 우리 원공이 아쉬워라 / 却恨元公已上仙
[주D-001]죄를 …… 지났는고 : 작년 12월에 끝냈어야 할 도목정사(都目政事)를 지금까지 미뤄 온 것을 탄식하는 말이다.
[주D-002]어관(魚貫) : 《주역(周易)》 박괘(剝卦) 육오(六五)에 나오는 말로, 여기서는 인사 규정에 의거하여 순서에 따라 관직에 임명되는 것을 가리킨다.
[주D-003]악서(鶚書) : 추 천에 의해서 특별히 발탁되는 것을 가리킨다. 후한(後漢) 공융(孔融)이 예형(禰衡)을 추천하면서 “수백 마리의 사나운 새들보다 한 마리의 독수리가 나으니, 예형이 조정에 있게 되면 분명히 볼만한 점이 있을 것이다.[鷙鳥累百 不如一鶚 使衡立朝 必有可觀]”라고 말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後漢書 卷70 文苑列傳 禰衡》
[주D-004]도유(都兪)하고 …… 일 : 임 금과 신하가 동심 협력하며 국정을 토론하던 요순(堯舜) 시대의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이미 다시 볼 수 없는 옛날의 일이 되었다는 말이다. 《서경》 요전(堯典)과 익직(益稷) 등에, 상대방의 의견에 찬성할 때는 도(都)ㆍ유(兪)라고 하고, 반대할 때는 우(吁)ㆍ불(咈)이라고 탄사(歎辭)를 발한 대목이 나온다. 읍양(揖讓)은 삼읍삼양(三揖三讓)의 준말로, 서로 만나 볼 때의 예의 있는 행동을 말한다.
[주D-005]머리 …… 아쉬워라 : 원 공(元公)은 원송수(元松壽)를 가리키는데, 목은이 현재 전조(銓曹)의 기강이 무너져 극도로 문란해진 것을 목도하고는, 옛날의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읊은 것이다. 그는 인사 행정을 관장하면서 조금도 사(私)를 개입시키지 않고 공정하게 처리하였으며, 비록 왕명이라 하더라도 구차하게 따르지 않았으므로, 공민왕이 그를 공경하여 그가 오는 것을 보면 반드시 일어나 대접하면서 예우하였다고 한다. 목은보다 4년 연상으로 서로 친하게 지내다가 43세에 요절하였는데, 호는 매계(梅溪)이고,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東史綱目 第15上 恭愍王15年 6月》 서행 안비(徐行按轡)는 말이 치달리지 못하도록 제어하면서 천천히 가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원송수가 왕의 요청도 거절하면서 인사 행정을 공정하게 행한 것을 뜻한다. 한 문제(漢文帝)가 장군 주아부(周亞夫)의 세류영(細柳營)에 도착했을 때, 군령(軍令)에 따라 서행 안비한 뒤에 주아부를 만나 보고는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장군이다.[此眞將軍也]”라고 찬탄한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57 絳侯周勃世家》
어제 일본(日本)의 사자(使者)가 도성에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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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멀리 떨어진 바다 밖의 나라로서 / 日本遙遙海外天
섬 오랑캐 도발한 것이 벌써 오래된 일 / 島夷竊發已多年
우호 관계 끝내 이루어질는지 미지수나 / 不知講信終成否
어려운 시대 가고 태평한 때가 올는지도 / 艱極泰來非偶然
풍백을 앞장 세웠으니 걱정이 있었겠나 / 風伯前驅自無患
운황의 후예가 그래도 소식을 전했구만 / 雲皇末裔尙相傳
이리 새끼의 야심이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 雖然狼子野心在
대의를 사모해 귀순하다니 실로 가상하도다 / 慕義歸仁誠可憐
[주D-001]운황(雲皇) : 소위 일본의 천황(天皇)을 목은이 이렇게 바꿔 부른 것이다.
[주D-002]이리 …… 하더라도 : 일 본은 원래 흉포하고 잔인한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교화하여 길들이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춘추좌전》 선공(宣公) 4년 조(條)에 “이리의 새끼는 마음이 늘 산야(山野)에 있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 아이는 바로 이리와 같다. 그러니 어떻게 기를 수가 있겠는가.[諺曰 狼子野心 是乃狼也 其可畜乎]”라는 말이 나온다.
베개를 베고 누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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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베고 누우니 몇 겹의 구름 산 / 枕上雲山知幾重
마음속에 걸린 일 어느새 말끔해져 / 已無餘事掛心胷
창문을 엿보시려는가 하현달 그림자요 / 影如窺戶下弦月
침상을 또 울리누나 남쪽 절간 종소리 / 聲欲殷床南寺鍾
나의 시 잗달아도 홀로 읊조릴 만한데 / 瑣碎詩篇供嘯咏
찾아오는 사람 적어 골목길도 조용해라 / 寂寥門巷少過從
인적 끊겨 더욱더 적막한 이 한밤중 / 夜深人境更蕭灑
이웃집 키 큰 소나무에 바람만 불어 대네 / 風動西隣千尺松
바람이 거세게 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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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말아 올릴 듯 위세 부리는 동풍이여 / 東風卷地勢何雄
골방의 창가에 늙은이 주저앉혀 놓았나니 / 小室明窓坐老翁
바다에 돛배 띄울 엄두는 아예 못 내려니와 / 濟海雲帆非自擧
굽이진 바위에 삿갓을 또 누구와 써 보리요 / 隈巖蒻笠與誰同
삼생에 걸쳐 부평처럼 이합집산하는 것도 / 浮萍聚散三生外
대괴의 일희 속에서 성내며 울기 때문이라 / 大塊□□一噫中
동정(動靜)이 둘이 아닌 것을 그 누가 알까 / 誰識動時元是靜
사방 한 치 마음속에 허공이 담겨 있는데 / 靈臺方寸裹虛空
[주D-001]굽이진 …… 보리요 : 바 람이 너무 심하게 불기 때문에 낚시하는 흥취도 즐길 수 없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삿갓 쓰고 초록색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굳이 돌아갈 것 없네.[靑蒻笠 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라는 명구가 나온다.
[주D-002]삼생(三生)에 …… 때문이라 : 과 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계속 모였다 흩어지는 현상을 반복하는 것 역시 불가(佛家)의 이른바 ‘무명(無明)의 바람’에 의한 것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첫머리에 바람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면서 “거대한 땅덩어리가 기운을 내뿜으면 그것을 이름하여 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불었다 하면 온갖 구멍들이 여기에 응해서 성내며 부르짖기 시작한다.[夫大塊噫氣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怒號]”라고 표현한 대목이 나온다
정원재(鄭圓齋)가 얻은 두 분 은문(恩門)의 시권(詩卷) 뒤에 차운하여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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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에 식견 탁월하여 삼책을 진달하고 / 少年卓識陳三策
중년에 재질 고명하여 양도를 읊으신 분 / 中歲高才賦兩都
오십 가까운 나이에 조정을 사직하고는 / 還笏彤庭近知命
약 화로에 불경을 든 향도가 되셨구려 / 藥爐經卷是香徒
[주C-001]정원재(鄭圓齋) : 원재는 목은과 동년(同年)인 정추(鄭樞)의 호인데, 정추는 그의 자(字)인 공권(公權)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주D-001]삼책(三策) : 한(漢)나라 동중서(董仲舒)가 무제(武帝)에게 올린 〈천인삼책(天人三策)〉처럼 국가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의문을 말한다.
[주D-002]양도(兩都) : 후한(後漢) 반고(班固)가 서도(西都)와 동도(東都)를 읊은 〈양도부(兩都賦)〉처럼 뛰어난 재능을 보인 사부(詞賦)를 말한다.
보법(報法) 노승(老僧)이 자기 몸을 불살랐다는 말을 듣고서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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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년에 시 얘기하며 한바탕 웃은 일 새로운데 / 詩話當年一笑新
좌선 하던 자기 몸을 불사르다니 우습도다 / 笑他焚却坐禪身
살아 있는 화상을 태워 죽인 게 분명하니 / 分明燒殺活和尙
모르겠도다 제자는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 弟子不知何等人
사대의 이합(離合)이 고신을 따르는 것이라면 / 四大合離因故新
똑바로 볼지어다 어떤 물건이 내 몸인지를 / 正觀何物是吾身
몸을 불태워 공양하다니 너무도 어리석은 일 / 燒成供養應癡甚
요요히 깨치면 부처와 중생이 원래 없는 것을 / 了了元無佛與人
병든 중에도 몇 번이나 청춘을 새로 찾으려고 / 病裏靑春幾度新
인삼 복령(茯苓) 보약 먹고 쑥 찜질을 하였노라 / 蔘苓浹髓艾熏身
큰 골칫덩어리는 육신인 줄을 잘 안다마는 / 明知大患非他物
사람들 함께 빠져들어 잔인해질까 두렵도다 / 只恐陷爲殘忍人
[주D-001]사대(四大)의 …… 것이라면 : 고 (故) 즉 인연이 오래되어 다하면 사대도 부서져 흩어지게 마련이고, 신(新) 즉 새로운 인연이 도래하면 사대가 다시 화합하여 새로운 틀을 조성하게 된다는 불교의 설을 말한다. 사대는 불교의 이른바 우주를 구성하는 4대 요소로,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을 말하는데, 불교에서는 인간의 육신도 이 사대가 일시적으로 모여서 조성된 하나의 가화합물(假化合物)이라고 본다.
배 고파 우는 아이를 보고서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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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가 울며불며 먹을 것을 졸라대니 / 稚子啼呼索點心
할머니가 돌솥 걸고 불을 호호 불어 대네 / 老婆吹火石鐺深
장국이며 부침개를 먹음직스럽게 데워 오자 / 醬湯油餠烹來軟
울던 아이 평소처럼 귀엽게 재롱을 떠는구나 / □□尋常驕語音
도의 참맛 느낄 때를 스스로 징험해야 할 터 / 道味生時須自驗
천기가 발동하는 곳을 그 누가 찾아보았을까 / 天機動處有誰尋
노옹은 날마다 살아가며 진정 일이 없는지라 / 老翁日用眞無事
흥이 일면 유연히 시 한 수 읊조려 보노매라 / 遇興悠然試一吟
나잔자(懶殘子)가 찾아 준 것을 감사하며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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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전심 묘법을 담은 연화를 독송하시는 분 / 心傳妙法誦蓮花
바다 속의 모래알을 세려고 한 적이 있었던가 / 入海何曾更筭沙
산문의 영수로 독보의 경지 펼치고 계시나니 / 領袖山門方獨步
하늘 바람에 적성의 운무가 말끔히 걷히누나 / 天風吹動赤城霞
시와 술에 미친 이들이 모임을 결성하였는데 / 結社詩魔與酒顚
나잔자는 그때부터 빈털터리로 이름이 났지 / 懶殘當日號無錢
비처럼 구름처럼 모두 뿔뿔이 흩어진 지금 / 諸生雲雨皆離散
백발이 어찌 미소년 때보다 넉넉하다 하리 / 白髮寧饒美少年
닭 소리에 해님도 쫓겨 부상에서 얼른 나와 / 雞聲催日出扶桑
우리 집에 먼저 와서 환히 비춰 주려는 듯 / 似是先來照我堂
내 머리 눈처럼 흰 것도 이젠 한스럽지 않아 / 不恨吾頭已如雪
밝은 창가에 홀로 앉아 조용히 분향하였노라 / 明窓獨坐靜焚香
[주D-001]이심전심 …… 분 : 나 잔자(懶殘子)가 《법화경(法華經)》 즉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하는 천태종(天台宗)의 판사(判事)로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을 때 모두 침묵을 지켰으나 오직 가섭(迦葉)만이 미소를 짓자, 석가가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ㆍ열반묘심(涅槃妙心)ㆍ실상무상(實相無相)ㆍ미묘법문(微妙法門)ㆍ불립문자(不立文字)ㆍ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부촉하노라.”라고 했다는 고사가 전하는데, 《법화경》은 다른 불경과는 달리 불타(佛陀)가 제법 실상(諸法實相)의 도리를 직설적으로 설명한 경전이라고 일컬어진다. 《聯燈會要 卷1》《景德傳燈錄 卷1 摩訶迦葉付法條》
[주D-002]바다 속의 …… 있었던가 : 아무 유익함이 없이 괜히 수고만 하는 자질구레한 공부 따위는 일체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주D-003]하늘 …… 걷히누나 : 나잔자가 한번 설법을 하면 불가(佛家)의 심오한 경지가 남김없이 드러나 밝혀진다는 말이다. 적성(赤城)은 도교(道敎)의 전설에 전하는 36동천(洞天) 중의 하나이다.
[주D-004]백발이 …… 하리 : 나잔자는 늙어서도 돈 한 푼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인데, 무소유(無所有) 정신으로 살아가는 승려로서의 생활 자세를 높이 평가하는 은근한 정이 아울러 담겨 있다.
[주D-005]닭 소리에 …… 분향하였노라 : 나잔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날 아침 일찍부터 향을 피우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렸다는 말이다.
칠원(漆原) 시중(侍中)과 철원(鐵原) 시중과 공산(公山) 시중과 길창군(吉昌君)과 진천군(晉川君)을 따라 도당(都堂)에 가서 회의하였으니, 이는 입공(入貢)하는 길을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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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정에 조회하는 중한 예법을 두신 것은 / 朝覲天庭大禮存
소방을 보존해 주려는 성상의 따뜻한 마음이라 / 保全國海聖心溫
우리는 은혜를 품고 가서 덕에 귀의해 마땅한 일 / 故宜懷惠仍歸德
중국도 마음을 보려 하리니 어찌 폐언을 하겠는가 / 政欲察情寧廢言
바닷길은 하늘과 맞닿아 하늘이 천막이 될 것이요 / 水路連天天似幕
배 위엔 달이 또 찾아와 달빛이 술잔에 비치리라 / 舡窓納月月臨樽
돌이켜 생각하면 요동 벌판을 달리던 그날 / 回思當日馳遼野
먼지만 잔뜩 뒤집어쓴 채 사방이 캄캄했더니라 / 滿面風塵四塞昏
[주D-001]중국도 …… 하겠는가 : 명 나라에서도 고려에 대해 그동안의 나쁜 감정을 계속 품고서 고려의 정당한 건의를 묵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폐언(廢言)은 이인폐언(以人廢言)을 줄인 말로,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군자는 말만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의 좋은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君子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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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자리 차지하면 교만을 버리기 어렵나니 / 據亢驕難禁
완전함을 구하다 보면 비방을 받기 마련이라 / 求全毁必來
늙은 환관 따위야 꾸짖고 말 것이 있겠냐만 / 老璫何足責
우리 무리도 끝내는 시기를 받고 말았도다 / 吾黨亦遭猜
욕망을 덜어 가면 도의 참맛이 우러나고 / 寡欲生道味
마음가짐을 조심하면 화근이 사라지는 법 / 小心消禍胎
꽃도 피는 계절이요 할 일도 없는 이때 / 花開又無事
그저 날마다 입에다 술잔을 대는 게 좋으리라 / 只合日銜杯
[주D-001]완전함을 …… 마련이라 : 《맹 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유구전지훼(有求全之毁)’라는 말이 나오는데, 주희(朱熹)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완전하게 하려고 노력하다가 뜻밖에 비방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풀이하였으나, 목은은 고주(古註)의 “남의 행동을 완전하게 해 주려고 하다가 끝내는 그 사람으로부터 거꾸로 비방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는 해석을 취하여 이 시에서 인용하고 있다.
[주D-002]늙은 …… 말았도다 : 꾸 짖을 가치도 없는 인간에게 충고를 해 주다가 어처구니 없이 비방을 듣고 말았다는 말이다. 원문의 노당(老塘)은 늙은 환관이라는 뜻을 지닌 노당(老璫)의 잘못이 아닌가 한다. 참고로 《목은시고(牧隱詩藁)》 제2권 〈박중강을 생각하다.[憶朴仲剛]〉에 “늙은 환관 무릎 꿇린 그 자리엔 바람만 일고, 깨진 거울빛 묻힌 누대엔 달빛만 가득해라.[老璫屈膝風生座 破鏡埋光月滿樓]”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이상(李二相)에게 붓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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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영이 몇 년 동안 내 시를 도와주었는데 / 毛穎年來伴我吟
이젠 늙고 쇠해서 글씨도 뜻대로 안 되나 봐 / 老衰區畫不如心
문하에 신진들이 많다고 들은 듯도 하니 / 似聞邸下多新進
한림에 들어가 보라고 지시한들 어떠하리 / 指示何妨入翰林
[주D-001]모영(毛潁) : 붓의 별칭이다. 당나라 한유(韓愈)가 붓을 의인화(擬人化)하여 〈모영전(毛穎傳)〉을 지은 데에서 유래하였다.
붓과 대화를 나눈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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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의 붓을 장대 같다고 부르나니 / 人呼我筆如長杠
의기가 특출해서 아무도 꺾을 수 없음이라 / 意氣穎脫無由降
석벽에 남긴 자취 보소 그 형세 높고도 가파르고 / 留蹤石崖勢岌岌
산마루까지 튀는 바닷물 짓찧고 부딪는 소리라니 / 摩頂海水聲舂撞
현묘한 천심에 대해서도 남김없이 다 썼나니 / 天心淵微盡張皇
힘이 달려 하늘까지 오르지 못했을 뿐이라오 / 力所未到唯蒼蒼
전모 훈고는 물론이요 풍아를 쓸 그때에는 / 典謨訓誥曁風雅
마치 문장을 소유한 듯 얼마나 찬란하였을까 / 煥乎似有其文章
위로는 획괘로부터 서계를 짓는 데 참여했고 / 上從畫卦作書契
아래로는 만세토록 삼강과 오륜을 밝혔나니 / 下至萬世明綱常
이에 성군과 현신들이 간책에 가득하게 되고 / 聖主賢臣溢簡策
좋은 말과 바른 정치가 흘러넘치게 되었도다 / 嘉言善政何洋洋
주나라가 쇠하면서 사설이 마구 일어난 끝에 / 周之弊也邪說興
이단의 장교가 무더기로 구릉처럼 쌓였는데 / 異端藏敎堆丘陵
금박 입힌 황색 백색 하늘에 빛을 쏘아대자 / 泥金黃白光射天
해내 해외가 뒤질세라 서로 베끼곤 했더라오 / 海內海外皆相謄
국가가 관직을 설치한 건 정사를 중히 여김이니 / 國家設官重吏事
무문 농법을 재능 있다고 일컫는다면 되겠는가 / 舞文弄法稱才能
필진(筆陣)이나 짓게 하면 나의 부끄러운 바요 / 名我作陣吾所恥
필경(筆耕)이나 하라 하면 나의 혐오하는 바라 / 借我以耕吾所憎
분분해라 오늘날 세상 눈물을 흘릴 일 있으니 / 紛紛至今可流涕
유학이 가을 파리처럼 오래전부터 시들한 것 / 儒學久矣如秋蠅
주정에서 위로 거슬러 수사의 근원에 올라가서 / 周程上遡洙泗流
올바른 학술을 막힘없이 쏟아내야만 하리로다 / 寫出正學無□留
내 말을 듣고는 다행이라며 붓이 자축하는 말 / 筆於是自慶曰幸
중니가 나를 끊었지만 내 어찌 그것을 걱정하랴 / 仲尼絶我予何憂
진나라 한나라 음기(陰氣)가 저절로 사라지며 / 秦漢群陰自消散
밝은 태양이 찬란하게 천하를 비추게 되었는걸 / 白日明明照九州
삼한에 지기가 있다면 오직 그대 한 사람뿐 / 三韓只有一知己
시종을 함께 보전하며 친하게 지내길 원하노라 / 願得相從保終始
그대의 음풍농월 역시 우연한 일이 아니리니 / 吟風弄月非偶然
노송과 더불어 길이길이 전해지기를 바라노라 / 欲與魯頌同流傳
[주D-001]사람들은 …… 부르나니 :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여산고(廬山高)〉 시에 ‘장대같이 큰 붓[巨筆如長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D-002]전모 훈고(典謨訓誥)는 …… 찬란하였을까 : 《서 경》이나 《시경》과 같은 고대의 문자를 기록할 당시에는 붓 자신이 그러한 경지를 소유한 것처럼 신바람이 나서 써 내려갔을 것이라는 말이다. 전모 훈고는 요전(堯典)ㆍ순전(舜典)의 전(典)과 대우모(大禹謨)ㆍ고요모(皐陶謨)의 모(謨)와 이훈(伊訓)의 훈(訓)과 탕고(湯誥)ㆍ강고(康誥) 등의 고(誥)를 합칭한 말로 《서경》을 뜻하고, 풍아(風雅)는 국풍(國風)과 소아(小雅)ㆍ대아(大雅)가 들어 있는 《시경》을 뜻한다. 또 《논어》 태백(泰伯)에, 요(堯) 임금을 찬탄하면서 “높고 높은 그 성공이여, 찬란히 빛나는 그 문장이여.[巍巍乎其有成功也 煥乎其有文章]”라고 한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문장은 글이 아니라 예악과 법도 등을 가리킨다.
[주D-003]위로는 …… 참여했고 : 상고 시대에 복희씨(伏羲氏)가 나와서 처음으로 팔괘(八卦)를 긋고 문자의 부호인 서계(書契)를 만들어서 결승(結繩)의 정사를 바꾸었다고 한다. 《周易 繫辭傳下》
[주D-004]주(周)나라가 …… 쌓였는데 : 유 가(儒家)에서 주장하는 양주(楊朱), 묵적(墨翟) 등 각종 삿된 주장이 일어나더니 급기야는 그보다 심한 불교(佛敎)의 교설이 온 세상을 휩쓸게 되었다는 말이다. 장교(藏敎)는 보통 삼장교(三藏敎)의 약칭으로 소승교(小乘敎)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대장경(大藏經)에 수록된 불교 일반의 교설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주D-005]금박 …… 했더라오 : 불 교의 가르침이라는 것이 대부분 허망하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사람들이 그저 앞 다투어 복을 받기 위해 몰려들었다는 말이다. 옛날에 선인(仙人)에게서 얻은 황금 덩어리를 가지고 집에 돌아와 보니 가치 없는 암석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를 소재로 해서 지은 소식(蘇軾)의 시에 “황금을 가지고 돌아와서 해진 담요에 싸 두었더니, 밤에 초가집 지붕 뚫고 빛을 하늘에 내 쏘더라. 마을 사람이 와서 보니 이제는 황금이 바뀌어서, 돌인 듯 돌 아니요 납인 듯 납도 아니더라.[持歸包裹敝席氈 夜穿茆屋光射天 里閭來觀已變遷 似石非石鉛非鉛]”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8 李公擇求黃鶴樓詩 因記舊所聞於馮當世者》
[주D-006]무문 농법(舞文弄法) : 붓을 함부로 놀려서 법규를 농락하며 고의로 왜곡 적용하여 폐단을 끼치는 것을 말한다.
[주D-007]필진(筆陣) : 붓을 휘둘러 멋있게 글씨를 쓰는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의 〈필진도(筆陣圖)〉에 “종이는 진(陣)이요, 붓은 창검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8]필경(筆耕) : 붓으로 밭 가는 일을 대신한다는 말로,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것을 말한다.
[주D-009]분분해라 …… 있으니 : 한 (漢)나라 가의(賈誼)가 문제(文帝)에게 글을 올려 대책을 진달한 내용 중에 “오늘날의 상황을 살펴보건대, 통곡할 일이 하나요, 눈물을 흘릴 일이 둘이요, 장탄식할 일이 여섯입니다.[竊惟事勢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0]주정(周程)에서 …… 올라가서 : 송 대(宋代) 성리학(性理學)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근원인 공맹(孔孟)의 사상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유학을 한번 집대성해 보겠다는 뜻이다. 주정은 ‘주장정주(周張程朱)’의 준말로, 주돈이(周敦頤), 장재(張載), 정호(程顥)ㆍ정이(程頤) 형제, 주희(朱熹)를 가리키고, 수사(洙泗)는 공자의 고향으로 유학의 발원지를 뜻한다.
[주D-011]중니(仲尼)가 …… 걱정하랴 : 공 자가 《춘추(春秋)》의 집필을 거의 마무리할 즈음인 노(魯)나라 애공(哀公) 14년 봄에 사냥에서 기린이 잡힌 것을 보고 절필(絶筆)한 것을 말한다. 《춘추》는 사관(史官)이 기록한 노나라의 역사를 공자가 윤리적인 측면에서 비판하며 선악의 가치 판단을 내린 책인데, 맹자가 이에 대해서 “공자가 《춘추》를 만들어 내면서부터 난신적자들이 두려움에 떨기 시작하였다.[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고 말하기도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주D-012]그대의 …… 바라노라 : 목 은 자신의 시도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의 순수한 시 정신에 입각해서 지음으로써 《시경》의 시들처럼 후대에 길이 전해지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논어》 위정(爲政)에 “시경에 있는 삼백 편의 시를 한마디로 평한다면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라는 공자의 말이 나오는데, 《시경》 노송(魯頌) 경(駉)에 사무사(思無邪)라는 이 말이 나온다.
손님이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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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골목을 손님이 찾아오셨기에 / 有客來窮巷
너무 기뻐 신발도 거꾸로 신고 맞았어라 / 欣然倒屐迎
거센 바람에 무너질 듯한 초가집이요 / 風顚茅屋破
지는 햇빛에 붉게 물든 종이창이라 / 日薄紙窓明
소반의 과실은 깨물자마자 떨떠름한데 / 盤果嚼來澁
촌 막걸리는 따르고 보니 다시 맑아져 / 村醪斟更淸
유연한 가운데 기분이 절로 풀어지니 / 悠然便陶寫
평소의 시름 위로받기에 또한 족하도다 / 亦足慰平生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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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개가 짖으니 내 집 닭도 꼬끼오 / 隣家犬吠我雞呼
해 비치는 창가에 화로 끼고 앉았어라 / 日照南窓對火爐
샘물 길어 세숫물 바치는 어린 계집종 / 小婢汲泉供盥洗
한 덩어리 화기가 바로 요순의 시대로세 / 一團和氣是唐虞
문밖의 염불 소리 끊어졌다 이어졌다 / 門外經聲斷復連
평등하게 자비 행한 금선의 일이 생각나네 / 行慈平等憶金仙
하지만 처자를 먹여 살릴 생각이 혹 있다면 / □□或有妻兒計
한집안 구제하는 것도 못난 일이 아니련만 / 濟得一家非不賢
나는 지금 병이 많아 시나 읊조릴 뿐 / 我今多病只吟詩
뭐가 있고 없는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 何有何亡摠不知
조물주의 무진장한 보배는 얻었나니 / 轉得化工無盡藏
청풍명월이 내 뒤를 절로 따른다오 / 淸風明月自相隨
[주D-001]금선(金仙) : 금빛 나는 신선이라는 뜻으로 불타의 별칭이다. 당 무종(唐武宗) 때 부처의 호를 대각금선(大覺金仙)으로 고쳤고, 송 휘종(宋徽宗) 때 석가는 금선으로 보살은 대사(大士)로 승려는 덕사(德士)로 고친 일이 있다.
[주D-002]조물주의 …… 따른다오 : 소식(蘇軾)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강 위에 불어오는 맑은 바람과 산 사이에 뜨는 밝은 달만은 우리가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도록 조물주가 선물한 무진장한 보배”라는 말이 나온다.
동년(同年)인 한홍(韓弘)을 생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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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에 험한 산은 없다고 하더라도 / 全義山雖淺
신창 한번 가려면 길이 워낙 멀어 / 新昌路已賖
물질적인 생활이야 불편함이 없겠지만 / 起居應自在
정신적인 안식은 또 정녕 어떠할지 / 將息定如何
적적해라 구름만 가득 메운 골짜기요 / 寂寂雲埋谷
망망해라 달빛만 부서지는 모래사장 / 茫茫月照沙
요즘에 와선 봉홧불도 끊어졌으니 / 邇來烽火絶
정가를 바라보며 얼굴 활짝 펴시겠지 / 遙想眄庭柯
[주D-001]요즘에 …… 펴시겠지 : 나 라에 급한 경보(警報)도 울리지 않고 있으니, 마음 놓고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술병 들고 술잔에 부어 혼자 마시면서, 뜨락의 나무들 바라보며 얼굴을 활짝 펴네.[引壺觴以自酌眄庭柯以怡顔]”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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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에 잣 열매 다닥다닥 별처럼 반짝거리는데 / 松實如星聚柏枝
털모자에 비칠 때가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군 / 暎於氈帽最相宜
머리칼은 희끗희끗 예전의 모습 아니지만 / 鬢毛颯颯非前日
풍속은 옛 시대인 양 변한 것이 전혀 없네 / 風俗依依似舊時
거울에 비친 병든 얼굴 내가 보아도 안쓰러워 / 對鏡自觀憐病我
잣 먹겠다고 조르는 아이 꾸지람만 당하누나 / 牽衣欲啖止嬌兒
삼한의 제도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는 않았나니 / 三韓制度未墜地
은 태사의 조선 시대 다시금 돌아보게 되네 / 重憶朝鮮殷太師
[주D-001]거울에 …… 당하누나 : 노쇠한 목은에게 잣죽이라도 끓여 주기 위해, 잣을 달라고 보채는 아이를 나무라면서 잣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D-002]은 태사(殷太師)의 조선 : 기자 조선(箕子朝鮮)을 말한다.
민 판사(閔判事)가 설행한 장인의 기재(忌齋)에 참석하고 돌아와서 몹시 피곤한 중에 지은 한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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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의 자손들이 재승을 불러 모은 곳 / 花原子姓聚齋僧
국신봉 산마루에 해가 벌써 솟았도다 / 國贐峯頭日已升
신종 추원이 원래 효우(孝友)에서 나왔다면 / 追遠愼終由孝悌
한산한 직책에 있는 것도 재능이라 하리 / 投閑置散亦才能
독경 소리 울리면서 정성이 더욱 간절하니 / 經聲出口誠彌切
신령도 배불리 흠향하고 복을 듬뿍 내리시리 / 食氣堆腸福自凝
거듭 바라건댄 태평 무사한 이 시대에 / 更願太平無事際
한집안의 남은 경사 자자손손 받기만을 / 一門餘慶永承承
[주D-001]화원(花原) : 권한공(權漢功)의 아들로서, 목은의 장인인 화원군(花原君) 권중달(權仲達)을 가리킨다. 민 판사는 목은의 윗동서인 민근(閔瑾)을 말한다.
[주D-002]재승(齋僧) : 불공(佛供)을 올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승려라는 뜻이다.
[주D-003]신종 추원(愼終追遠) : 예 법과 정성을 다해서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 학이(學而)에 “어버이 상을 당했을 때 신중하게 행하고 먼 조상님들을 정성껏 제사 지내면 백성들의 덕성이 한결 돈후하게 될 것이다.[愼終追遠民德歸厚矣]”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한 집안의 남은 경사 :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행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이 받을 남은 경사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積善之家必有餘慶]”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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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갈 곳 어디에다 잡을까 / 我處何所擇
인심이 인후한 곳 거기가 좋고말고 / 有仁斯爲美
난초 있는 방에서는 향취에 젖어 들고 / 化馨在蘭室
생선 가게 들어가면 악취가 배는 법 / 化臭在鮑肆
사는 곳이 얼마나 중요하다 하겠는가 / 則知居乃重
그래서 군자는 거처를 신중히 하느니라 / 愼之在君子
유유하여라 목옹의 이 마음이여 / 悠悠牧翁心
세상에 드러내 보여 줄 것은 없다마는 / 無以表於世
파람 불고 읊조리며 벗으로 지내는 건 / 嘯咏與爲徒
오직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있을 뿐 / 淸風明月耳
듣고 보는 것이 거치적거리긴 하더라도 / 聲色雖相累
담박하게 이욕(利欲)에선 멀어졌나니 / 淡然遠於利
이는 바로 우리 동네 인후하기 때문이라 / 是爲里有仁
이렇게 시를 지어 내 뜻을 부쳐 보노매라 / 相將寄吾意
[주C-001]이인위미(里仁爲美) : 인심이 인후한 동네가 아름답다는 뜻으로, 《논어》 이인(里仁) 첫머리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주D-001]난초 …… 법 : 《공 자가어(孔子家語)》 제4권 육본(六本)에 “선인과 함께 지내는 것은 난초 향기 그윽한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오래 있다 보면 난초 향기가 나지 않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그 향기와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악인과 함께 지내는 것은 생선 가게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오래 있다 보면 그 악취가 나지 않는 것은 또한 자기 자신이 그 악취와 동화되었기 때문이다.[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與不善人居 如入鮑魚之肆久而不聞其臭 亦與之化矣]”라는 말이 나온다.
인재를 선발할 적에 청탁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기에 느껴지는 점이 있어서 시 한 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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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하늘 위의 일은 소리도 냄새도 없다지만 / 無聲無臭上天高
만물을 낳아 기르자면 그 형세 또한 피곤할 듯 / 萬物生成勢似勞
누가 알기나 하였을까 답안지 채점하는 곳에 / 誰識筆端題品處
우루루 몰려드는 이들 온통 영웅호걸일 줄 / 一時趨走盡英豪
시를 읊으면 이따금씩 삼발의 경지도 맛본다만 / 吟詩往往兼三鉢
거울을 대하면 변함없이 비쳐 오는 반백의 머리 / 對鏡依依照二毛
그저 앉아서 휘파람 불며 세정을 떨쳐버릴 밖에 / 消遣世情聊坐嘯
고래로 분수를 지키는 이가 우리 무리였느니라 / 古來安分是吾曹
[주D-001]높은 …… 듯 : 온 갖 피조물(被造物)들이 투정을 부리며 떼를 쓰다 보면 조물주도 얼마나 귀찮고 짜증이 나겠느냐는 뜻으로, 청탁에 시달리는 목은의 심정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경》 대아(大雅) 문왕(文王)에 “저 하늘이 하시는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上天之載 無聲無臭]”는 말이 나온다.
[주D-002]삼발(三鉢) : 삼마발제(三摩鉢提)의 준말로, 삼매(三昧)와 같은 뜻의 불교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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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私心)을 이름하여 인욕이라 하나니 / 私意名人欲
사심을 잊으면 천리(天理)가 곧 밝아져서 / 忘私理卽明
나뉜 구역도 자연히 없어지게 될 것인데 / 自然無畛域
이를 비유하자면 저울과 같다고나 할까 / 譬則是權衡
바윗돌에 부딪치며 급해지는 물소리요 / 觸石水聲急
바람 따라 가뿐하게 떠다니는 구름이라 / 隨風雲影輕
마음 비우고 매사를 객관적으로 대한다면 / 虛心能泛應
이 세상도 저절로 태평 시대가 되련만은 / 世道本升平
[주C-001]공생명(公生明) : 《순자(荀子)》 불구(不苟)에 나오는 말로, 공정하면 밝게 된다는 뜻인데, 옛날 이 세 글자를 돌에 새겨 관청의 정면에 세워 놓고 관원들을 경계시켰다고 한다.
[주D-001]자연히 …… 할까 : 천리의 차원에서 매사를 대하게 되면, 주객(主客)의 대립으로 인한 당파(黨派) 의식이 사라져서, 마치 저울로 경중(輕重)을 재는 것처럼 모든 일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이른 봄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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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하나 제대로 조섭하지도 못한 채 / 榮衛乖調養
공명을 바라고 죽치고 있는 게 부끄러워 / 功名愧滯留
먼지에 묻혔나니 서유가 앉을 걸상이요 / 塵埋徐孺榻
하늘도 아득해라 중선이 기댄 누대로세 / 天遠仲宣樓
매화 언덕 꽃봉오리 여기저기 맺히고 / 梅岸花交結
얼음 벼랑 녹은 물 줄줄 흘러내리는 때 / 氷崖水逬流
점점 무르익어 가는 봄나들이 흥이 일어 / 春游將爛熳
자꾸만 설레는 마음 도시 달랠 길 없어라 / 欲止竟無由
[주D-001]먼지에 …… 걸상이요 : 오 래도록 반가운 손님이 하나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진번(陳蕃)이 서치(徐穉)가 찾아올 때마다 그를 위해 특별히 걸상을 내려놓고 환담을 나누다가 그가 가고 나면 걸상을 다시 올려놓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53 徐穉列傳》
[주D-002]하늘도 …… 누대로세 : 고 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객지의 고달픈 생활을 표현한 말이다. 후한 말에 왕찬(王粲)이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 적에, 누대에 올라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등루부(登樓賦)〉를 지어 고향 생각을 달랬는데, 중선(仲宣)은 그의 자(字)이다. 《三國志 卷21 魏書王粲傳》
명마 한 필의 가치가 있는 금강산의 나무 지팡이를 얻고 나서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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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위에서 자란 이 나무 / 金剛山上木
지팡이 만드니 등나무보다 낫네 / 作杖勝烏藤
가치를 따지자면 명마 한 필 값 / 論價同名馬
쇠한 몸 버티라는 야승의 선물일세 / 扶衰荷野僧
밤 깊어 천록각(天祿閣)은 조용하였고 / 夜深天祿靜
번개 치는 사이에 갈파가 깨끗해졌다던가 / 電滅葛坡澄
괴이한 일이 인간 세상 놀라게도 한다마는 / 異事驚人世
나는 아직 공중에 떠다닐 줄을 모른다네 / 飛騰我未能
금강산 위에서 자란 이 나무 / 金剛山上木
목옹을 위로하러 멀리서 찾아왔네 / 遠慰牧翁心
참찬하는 공이야 뉘에게 바랄 수 없다 해도 / 參贊從誰望
이 한 몸 일으켜 주는 일은 자신이 있다나요 / 支持領自任
맑은 하늘 아래 툭 터진 도성 거리라든가 / 天晴紫陌闊
흰 구름 잠겨 있는 깊숙한 골짜기라든가 / 谷密白雲深
지팡이를 벗 삼고서 왔다갔다하고픈 / 兩地相從處
백발 노인의 회포를 억누르기 어려워라 / 難禁雪滿簪
금강산 위에서 자란 이 나무 / 金剛山上木
언제부터 태어나 이렇게 커졌을까 / 生長自何年
적적하여라 연하의 동천(洞天)에서 / 寂寂煙霞洞
망망하여라 우로를 듬뿍 받았겠지 / 茫茫雨露天
시냇물 건너느라 얼마나 어려웠고 / 碧溪難揭厲
바위를 타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 靑壁費夤緣
너를 얻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 / 得爾誠非易
높이 읊조리노라니 생각이 묘연해지누나 / 高吟思渺然
[주D-001]밤 …… 조용하였고 : 한 성제(漢成帝) 말년에 유향(劉向)이 매일 밤 늦게까지 천록각(天祿閣)에서 서책을 교열하고 있었는데, 황의(黃衣)를 입은 노인이 청려장(靑藜杖)을 짚고 찾아와서 지팡이 끝에다 불을 일으켜 어두운 방을 밝히고는 홍범 오행(洪範五行) 등 고문(古文)을 전수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拾遺記 卷6》
[주D-002]번개 …… 깨끗해졌다던가 : 선인(先人) 비장방(費長房)이 호공(壺公)에게서 얻은 죽장(竹杖)을 타고 하늘을 날아 고향에 돌아온 뒤에 그 지팡이를 갈파(葛坡) 언덕에다 던졌더니 순식간에 용으로 변해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後漢書 卷82下費長房列傳》
[주D-003]시냇물 …… 힘들었을까 : 지팡이에 적당한 이 나무를 구하려고 무진 애를 썼을 것이라는 말이다.
금방 목욕을 시키고 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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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아이를 이제 막 씻기고 나니 / 三郞新沐罷
부정한 기운 물러가고 화기가 만발이라 / 和氣郤陰邪
윤기나는 머리칼에 몸은 더욱 건실하고 / 髮潤身彌健
머리도 가뿐해라 기운이 절로 피어나네 / 頭輕氣自華
봄바람에 흐늘거리는 버들가지요 / 春風吹柳樹
아침 이슬에 함초롬히 젖은 연꽃이라 / 曉露濕荷花
천금 같은 아들을 제대로 키워 내어 / 善保千金子
문장으로 얼른 집을 일으켜 세워야지 / 文章早起家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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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다리 쑤셔대니 꿈인들 제대로 이루겠나 / 腰脚酸辛夢不成
여아가 콩콩 밟아도 너무 가벼워 효과 없네 / 小娃急踏奈身輕
돌냄비 끓는 찻물 홀연히 솔바람 소리인 듯 / 忽聞石鼎松聲沸
봉창엔 또 아침 해 비쳐 붉게 물들이누나 / 又見蓬窓日色明
외물 따라 생각도 바뀌어 아픈 것은 잊었다만 / 逐物意移忘所痛
시 읊으며 일어난 흥취 가라앉히기 어려워라 / 吟詩興動恐難平
그저 이렇게 세월 보내는 목옹의 만년 생활 / 牧翁晚景只如許
유유한 이 마음 속뜻을 아는 이 뉘 있으랴 / 誰識悠悠方寸情
성주(省珠) 대선(大選)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편에 보성(甫城)의 이 판사(李判事)와 김 좌윤(金左尹) 형제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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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술로 서로들 어울려 노니는 곳 / 詩酒相從處
바다와 산도 지금 아무 일 없으렷다 / 海山無事時
성주 스님이 역마 타고 달려가는 길 / 珠師馳馹去
손잡고 헤어지려니 마냥 아쉽도다 / 握手惜分離
이른 봄날의 즉흥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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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골의 얼음도 녹으려 하고 / 陰壑氷將泮
양지바른 비탈엔 풀이 솟아날 듯 / 陽崖草欲抽
산빛은 벌써 문을 밀치고 들어오고 / 山光已排闥
물기운은 배를 띄우길 원하는 듯도 / 水氣欲浮舟
기쁜 소식 전하는 까치 소리 들리는데 / 喜報聞丹雀
물새와 맺은 약속 저버리자니 부끄러워 / 寒盟愧白鷗
절로 와서 옮겨 다니는 봄바람 속에 / 春風自流動
우리들의 마음 역시 덩달아 싱숭생숭 / 我輩亦優然
권 사재(權四宰)의 심경을 대신해서 짓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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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에서 봄철을 반이나 보내면서 / 客中春欲半
머물러 있는 그 회포 얼마나 애틋할꼬 / 留滯思依依
동쪽을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달이 떠오르고 / 東望俄明月
서쪽을 쳐다보노라면 다시금 해가 떨어지리 / 西瞻又落暉
종산으로 에워싸인 연곡의 하늘 아래에서 / 鍾山圍輦轂
기역에 멀리 떨어진 정위가 아련하리로다 / 箕域隔庭闈
사명을 받드는 일 어느 때나 끝이 날까 / 使事何時畢
바람결에 눈물 방울 옷자락을 적시리라 / 風前淚滴衣
요양에서 관문을 열어 주지 않는 통에 / 遼陽閉關處
평양으로 수레바퀴 돌리기도 하였지만 / 平壤返輪時
사대하려는 충성심 더욱 격렬해지면서 / 事大忠彌激
원만하게 수습할 뜻 줄어들지 않았도다 / 求全志不衰
나무 숲엔 봄기운이 발동하려 하고 / 樹林春欲動
산과 바다에 해가 이제 길어지는 때 / 山海日初遲
나그네 길에 유유한 흥취 일어나련마는 / 客路悠悠興
그저 시나 지어 뒤에 남길 도리밖에 / 流傳只有詩
모친께서 비록 건강하시다 할지라도 / 母也雖強健
연세가 얼마인지 내가 잘 알고말고 / 行年我自知
자식 된 자의 심정 얼마나 쓰라릴까 / 子心何苦楚
사람의 일은 왜 이다지 어긋나는지 / 人事足乖離
산은 멀어라 구름이 또 길을 막고 / 山遠雲遮路
하늘은 높아라 달이 다시 못에 지네 / 天高月入池
이충을 해야만 우리 무리라 할 것이니 / 移忠是吾輩
아무쪼록 노력해서 잘 부지하기만을 / 努力善扶持
[주D-001]종산(鍾山)으로 …… 아련하리로다 : 명 (明)나라와 교섭하기 위해 현재 남경(南京)에 가서 체류하는 동안 고향 땅의 부모 생각이 간절하리라는 말이다. 종산은 남경에 있는 산 이름이고, 연곡(輦轂)은 제왕의 도성을 가리키며, 기역(箕域)은 기자(箕子)의 강역이라는 뜻으로 고려를 말하고, 정위(庭闈)는 어버이가 계신 곳을 뜻한다.
[주D-002]이충(移忠) : 부 모에 대한 효심을 나라에 대한 충성심으로 바꿔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효경(孝經)》 광양명(廣揚名)의 “군자는 어버이를 모시는 효심이 깊기 때문에, 그 효심을 임금에게 바꿔 적용하여 충성심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君子之事親孝故忠可移於君]”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어제 한 청성(韓淸城)이 음식을 풍성하게 마련해 와서 나를 불러내기에 함께 나잔자(懶殘子)를 찾아갔다. 거기에서 취토록 마신 뒤에 집에 돌아와서 아침까지 곯아떨어졌다가 시 한 수를 지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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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속에 천태의 나잔자를 찾아가서 / 夢向天台訪懶殘
석양에 나는 새와 함께 단란한 때를 가졌다오 / 夕陽飛鳥共團圝
잠에서 깬 뒤에도 몸에 감도는 삽상한 기운 / 覺來身世猶蕭爽
향탁에선 몽개몽개 한 가닥 맑은 향연이라 / 一炷淸香起篆盤
나무 숲 옆의 구름장은 흡사 해질 녘 모습이요 / 雲傍樹林疑日暮
화류를 재촉하는 비에 추워진 봄이 겁나도다 / 雨催花柳怯春寒
풍광이 갈수록 바뀌면서 그지없이 유유한데 / 風光流轉悠悠甚
어느 때나 밤 깊도록 우화를 마주 대해 볼꼬 / 芋火何時坐夜闌
[주D-001]어느 때나 …… 대해 볼꼬 : 언 제 다시 나잔자와 만나서 정겨운 시간을 가져 보겠느냐는 말이다. 당(唐)나라 형악사(衡岳寺)의 승려 명찬(明瓚)의 성격이 게으른 데다 남이 먹다 남긴 밥만 먹기 때문에 나잔(懶殘)이라는 호를 얻게 되었는데, 이필(李泌)이 일찍이 그 절에서 독서를 하다가 심야에 그를 찾아가자, 마침 쇠똥으로 불을 지펴 구워 먹고 있던 토란을 나눠 주면서 이필이 앞으로 재상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高僧傳卷19》
장인인 화원군(花原君)의 여러 손자들이 갓 결혼한 권 정랑(權正郞)의 신방(新房)을 차려 주는 의식을 행하자, 정랑이 장막을 치고 연회를 베풀면서 기악(妓樂)을 매우 성대히 하였다. 이때 부친의 항렬에 해당하는 여러 어른들에게 자리를 빛내 달라고 청하였으므로, 소장인(小丈人)인 밀직공(密直公)이 주인의 자리에 앉은 가운데, 권 판서(權判書)와 민 판사(閔判事)와 내가 같은 반열에 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상의(李商議)와 염동정(廉東亭)과 임 대간(任大諫)과 염 대경(廉大卿) 등도 모두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의 외손으로서 빈위(賓位)에 자리를 정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동정의 경우는 또 정랑의 좌주(座主)였기 때문에 특별히 초청을 받은 것이었다. 여기에 또 박 밀직(朴密直)까지 이 자리에 왔고 보면 두 분의 은문(恩門)을 모두 모신 셈이요, 이와 함께 숙부(叔父)와 고부(姑夫)와 내외 형제가 모두 참석하였으니, 정랑으로서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자리였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밤이 되도록 술을 마시다가 취해 돌아와서는, 이튿날 시 한 수를 지어 이 밀직(李密直)과 이 상의와 염동정과 박 밀직에게 증정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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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 무덕장군(武德將軍)은 나와 동갑인데 / 妻兄武德我同庚
중자가 지금 벌써 유명하게 되었구나 / 仲子如今已有名
처가에 든 소년 신랑 아내도 아름답고 / 入贅少年居室美
친목의 성대한 모임 예절도 깍듯해라 / 睦親高會節文明
병추렴하는 목옹도 이런 땐 즐겨야 하고말고 / 牧翁久病隨時樂
좌주도 모두 오셨으니 이런 영광이 또 있을까 / 座主偕臨絶代榮
저녁엔 또 푸른 장막 적셔 주는 가랑비에 / 微雨晚來霑翠幕
시의 흥치가 그지없이 더욱 맑아졌더라오 / 更敎詩興十分淸
[주C-001]화원군(花原君) :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권한공(權漢功)의 아들인 권중달(權仲達)을 가리킨다.
[주C-002]권 정랑(權正郞) : 아마도 권중달의 장자로서 무덕장군(武德將軍)으로 불리다가 40세를 갓 넘기고 죽은 목은의 맏처남의 아들인 듯하다.
[주C-003]소장인(小丈人) : 권 정랑의 장인으로 이 밀직(李密直)을 가리킨다.
[주C-004]민 판사(閔判事) : 목은의 윗동서인 민근(閔瑾)을 가리킨다.
동년 김군필(金君弼)의 시를 받고 나서 이에 차운하여 답하며 붓을 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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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익정에서 날마다 시를 읊조리시는 분 / 六益亭中日日吟
고저 강약의 그 음운 문단을 울렸어라 / 抑揚聲韻動詞林
그 속에 깃든 무궁한 회포 뉘라서 알까 / 誰知自有無窮意
당년에 낙제한 심정으로 채워져 있는 것을 / 盡是當年落第心
나는 물러나겠다고 이제야 상소를 하려는데 / 乞退吾今欲上章
그대는 구름 속 영남 길 길이 돌아가시는가 / 嶺南歸路入雲長
석전이며 모옥이 있는 상산 북쪽 고향 땅 / 石田茅屋商山北
뽕나무엔 꾀꼬리 울고 감은 서리를 띄었으리 / 桑帶倉庚柿帶霜
[주D-001]육익정(六益亭)에서 …… 것을 : 진 사시(進士試)에 함께 합격했으나 그 뒤에 계속 대과(大科)에서 낙방하여 고향으로 돌아간 그의 심정을 대변해 준 말이다. 《목은문고(牧隱文藁)》 제5권에 목은이 그를 위해서 써 준 〈육익정기(六益亭記)〉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속에 이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주D-002]석전(石田)이며 …… 땅 : 상 산(商山) 즉 상주(尙州)에 있는 그의 고향 집을 묘사한 말이다. 참고로 두보(杜甫)가 친구인 정건(鄭虔)에게 지어 준 시 중에 “선생도 빨리 귀거래사 읊는 것이 어떨는지, 돌밭이며 초가집 모두 이끼로 뒤덮였으리니.[先生早賦歸去來 石田茅屋荒蒼苔]”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3 醉時歌》
유감(有感)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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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소병우하휴라는 말도 분명히 있건마는 / 諂笑明言病夏畦
가련하도다 궁중에 대고 꼬리를 흔들다니 / 可憐搖尾向中閨
농촉의 욕심이 원래 끝도 없다고 한다마는 / 由來隴蜀茫無際
닭장까지 쫓아와서 또 다른 닭을 엿보다니 / 走到雞栖又候雞
봄 눈이 새로 녹아 약초밭을 적셔 주니 / 春雪新消潤藥畦
조정도 봄바람 불어 점점 따스해지겠지 / 春風漸暖入金閨
목옹이 늘그막에 한가히 거처하는 이곳 / 牧翁垂老閑居處
몸 기대고 읊노라니 한낮에 우는 닭소리 / 隱几微吟聽午雞
병이와 나환이 언덕과 두둑에 무성히 자라는 때 / 餠餌羅紈隴與畦
음식상 질펀히 차려 놓고 떵떵 울리며 노는구나 / 著橫高案拆鳴閨
주인은 그저 기름 끓듯 혼자 애를 태우면서 / 主人心地煎膏火
아들 손자들 닭싸움 놀이 가끔씩 바라보노매라 / 時見兒孫共鬪雞
[주D-001]첨소병우하휴(諂笑病于夏畦) :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어깨를 웅크리고 아첨하며 웃는 것은 여름에 밭일하는 것보다도 고된 일이다.[脅肩諂笑 病于夏畦]”라는 증자(曾子)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주D-002]가련하도다 …… 흔들다니 : 마 치 개가 꼬리를 치며 주인을 따르듯이 궁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비굴하게 아첨하는 것을 말한다. 한유(韓愈)의 〈응과목여시인서(應科目與時人書)〉에 “머리를 조아리고 귀를 늘어뜨린 채 꼬리를 치며 애걸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若俛首帖耳 搖尾而乞憐者 非我之志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농촉(隴蜀) : 득 롱망촉(得隴望蜀)의 준말로, 탐내는 마음이 한이 없는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가 잠팽(岑彭)에게 농서(隴西) 땅을 공격해서 뺏게 한 뒤에 다시 계속해서 촉 땅으로 진격하도록 하자, “농서를 평정하였는데 또 촉 땅까지 원하는가.[旣平隴復望蜀]”라고 탄식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東觀漢記 岑彭傳》
[주D-004]몸 기대고 …… 닭소리 : 새벽의 닭소리를 듣고 조정에 출근하는 관원으로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한낮의 닭소리를 느긋하게 들을 만큼 한가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D-005]병이(餠餌)와 나환(羅紈) : 병 이 즉 떡의 재료인 보리와, 나환 즉 비단의 재료라 할 수 있는 뽕을 비유한 말이다. 권농(勸農)을 주제로 한 소식(蘇軾)의 시 〈남원(南園)〉에 “뽕밭에 비가 지나가니 비단의 윤기가 흐르고, 보리밭에 바람이 부니 떡 향기가 풍기누나.[桑疇雨過羅紈膩 麥隴風來餠餌香]”라는 표현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4》
어 제 청성군(淸城君) 한맹운(韓孟雲)과 함께 술을 가지고 정포은(鄭圃隱)을 찾아갔다. 이는 그가 밀직(密直)에 제수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는데, 도중에 현임 정당(政堂)인 우공(禹公)을 만났으므로 함께 동행하였다. 그러고는 이웃에 사는 이호연(李浩然)을 불러내어 잔을 주고받고 하던 차에, 이번에는 또 첨서(簽書) 이공(李公)이 술과 과일을 싸들고 찾아왔다. 그리하여 다 함께 어울려 담소하고 시를 읊조리며 멋있게 보냈으니, 참으로 한 시대의 성대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이에 그다음 날에 시 한 수를 지어 읊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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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제학을 다 함께 축하하였나니 / 共賀新提學
좋은 시절에 우리 임금님 보좌함이라 / 逢辰佐我君
부름 받고 모인 분들 모두 오도요 / 招邀盡吾道
우연히 만난 사람 역시 사문이로세 / 邂逅亦斯文
길가의 버들 황금색은 햇빛에 반사되고 / 街柳黃浮日
뜨락의 솔 푸르른 빛은 구름을 뚫었어라 / 園松翠拂雲
한 잔 술에 서로의 마음 알 수 있었는걸 / 一杯情可見
하필 다시 뭐라고 말할 것이 있었으리 / 何必更云云
어 제 청성군(淸城君) 한맹운(韓孟雲)과 함께 술을 가지고 정포은(鄭圃隱)을 찾아갔다. 이는 그가 밀직(密直)에 제수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는데, 도중에 현임 정당(政堂)인 우공(禹公)을 만났으므로 함께 동행하였다. 그러고는 이웃에 사는 이호연(李浩然)을 불러내어 잔을 주고받고 하던 차에, 이번에는 또 첨서(簽書) 이공(李公)이 술과 과일을 싸들고 찾아왔다. 그리하여 다 함께 어울려 담소하고 시를 읊조리며 멋있게 보냈으니, 참으로 한 시대의 성대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이에 그다음 날에 시 한 수를 지어 읊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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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제학을 다 함께 축하하였나니 / 共賀新提學
좋은 시절에 우리 임금님 보좌함이라 / 逢辰佐我君
부름 받고 모인 분들 모두 오도요 / 招邀盡吾道
우연히 만난 사람 역시 사문이로세 / 邂逅亦斯文
길가의 버들 황금색은 햇빛에 반사되고 / 街柳黃浮日
뜨락의 솔 푸르른 빛은 구름을 뚫었어라 / 園松翠拂雲
한 잔 술에 서로의 마음 알 수 있었는걸 / 一杯情可見
하필 다시 뭐라고 말할 것이 있었으리 / 何必更云云
용두사(龍頭寺)의 생공(生公)이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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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의 대사원이 금애를 환히 비치나니 / 龍頭梵刹照金崖
마실 물 땔나무 걱정하실 필요 있으랴만 / 搬運何憂水與柴
서울에 들어와도 산야의 뜻이 있으신지라 / 縱是入京猶野意
가랑비 흥을 타고 홀로 산방을 찾았다오 / 獨乘微雨訪山齋
잔생(殘生)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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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인생 입과 배만 생각하니 / 殘生唯口腹
먹을 것만 찾는다는 평을 매양 받을밖에 / 謀食每遭譏
서해의 등 푸른 생선이야 얼마든지 구하지만 / 西海靑魚賤
동해의 보랏빛 게는 어찌나 맛보기 힘드는지 / 東溟紫蟹稀
욕심을 어찌 모두 쉽게 채울 수 있으리요 / 慾心寧易滿
아무거나 잘 먹고 몸만 살지면 그만이지 / 支體可長肥
한 번 먹을 때마다 만전을 소비했던 자도 / 一食萬錢者
이마를 찡그렸다 하니 부러울 게 뭐 있으랴 / 勞勞何足□
[주D-001]먹을 …… 받을밖에 :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군자는 도를 추구할 뿐 먹을 것을 도모하지는 않는다.[君子謀道不謀食]”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2]한 번 …… 있으랴 : 진(晉)나라 하증(何曾)이 왕보다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끼니 때마다 만전(萬錢)의 값이 나가는 음식상을 받곤 했는데도 먹을 것이 없다면서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33 何曾列傳》
울적한 마음을 달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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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훌쩍 지난 백년의 반절 / 倏忽百年半
동해 구석에서 허겁지겁 보낸 세월 / 蒼黃東海隅
나의 인생 원래 움츠리며 살았다만 / 吾生元跼蹐
세상 길은 또 얼마나 험하였던고 / 世路亦崎嶇
백발이야 어쩌다 있다 하더라도 / 白髮或時有
청산이야 어디인들 없다 하리요 / 靑山何處無
나직이 읊노라니 생각이 끝이 없어 / 微吟意不盡
마른 나뭇등걸처럼 오똑 앉았노라 / 兀坐似枯株
화원(花園)의 임 도령(林都領)이 매화를 가지고 와서는 박 영공(朴令公)이 보낸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내가 뛸 듯이 매우 기뻐하면서 한나절이나 마주 대하고 앉아 있다가 천천히 한 편의 시를 읊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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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산군이 한산군을 사랑하는 것은 / 陟山君愛韓山君
무리를 떠나 고고하게 지내서가 아니요 / 不爲介特離於群
광암사에서 인적을 끊고 병든 몸으로 / 祗憐光巖絶人跡
눈물 떨구며 비문 지은 걸 어여삐 여김이니 / 力疾墮淚修碑文
이 몸이 매화 아끼는 걸 마음으로 알고서는 / 心知是箇愛梅者
분매(盆梅) 한 가지를 이렇게 보낸 것이리라 / 盆中一枝時見分
목옹이 몸은 비록 병마에 얽혀 있다 해도 / 牧翁雖則病纏身
눈은 높아서 사해가 텅 빈 채 사람 없더니 / 眼高四海空無人
청초한 이 꽃을 홀연히 얻어 보고 나서는 / 忽然得見此粲者
뜻이 같고 기운이 합해 정신이 융화되는구나 / 志同氣合融精神
온종일 마주 대하면서 나직이 읊조리노라니 / 微吟竟日對之坐
처마 끝에 교교하게 매달린 얼음 수레바퀴 / 簷牙皎皎懸氷輪
깊은 밤 형체와 그림자 싸늘히 엉긴 모습이여 / 夜深形影冷相雜
어울려 노닐 수 있는 자는 오직 성지청자뿐 / 聖之淸者堪同倫
사람의 다라운 마음 저절로 사라지게 하여 / 令人自然鄙吝消
무첨과 무교를 동시에 체험하게 해 주건만 / 驗得無諂仍無驕
고방은 중목을 싫어하는 천성을 타고났는지라 / 天敎孤芳厭衆木
세속을 멀리 떠났으니 불러 보기가 쉽겠는가 / 迥脫流俗難招邀
낙양의 상군이 요황의 꽃을 임금에게 바치다니 / 洛陽相君姚黃花
충효의 관점에서 보면 어떻다고 해야 하리 / 在於忠孝爲如何
광평은 철석 같았어도 매화를 읊을 줄 알아서 / 廣平鐵石亦能賦
문단을 환히 비추며 덕화(德化)를 널리 펼쳤도다 / 照耀文苑敷英華
인간 세상 별의별 비평이 끝없이 난무하는 이때 / 人間譏評無盡時
아무 말 없이 얼음 눈 속의 꽃만 마주 대하련다 / 默默且看氷雪葩
[주D-001]척산군(陟山君) : 박원경(朴元鏡)의 봉호이다.
[주D-002]광암사(光巖寺)에서 …… 여김이니 : 목 은이 공민왕(恭愍王)과 노국공주(魯國公主)의 명복을 비는 광암사의 비문을 지은 것을 말한다. 이때 박원경이 그 사찰의 동역관(董役官)으로 있었는데, 《목은문고》 제14권 〈광통보제선사비명(廣通普濟禪寺碑銘)〉에 이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주D-003]눈은 …… 없더니 : 함 께 노닐어 볼만한 경지를 지닌 자를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뜻으로, 목은 자신의 강한 자부심을 드러낸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이태백은 눈이 하도 높아서 사해를 다 찾아보아도 인정할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眼高四海空無人]”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37 書丹元子所示李太白眞》
[주D-004]얼음 수레바퀴 : 차갑게 보이는 달을 뜻하는 시어(詩語)이다.
[주D-005]성지청자(聖之清者) : 성인 중에서도 청렴결백한 분이라는 뜻으로 백이(伯夷)를 가리키는 말이다. 《孟子 萬章下》
[주D-006]무첨(無諂)과 무교(無驕) :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 것[貧而無諂 富而無驕]’에 대해서 묻는 대목이 《논어》 학이(學而)에 나온다.
[주D-007]고방(孤芳)은 …… 쉽겠는가 : 매 화처럼 홀로 맑은 향기를 지닌 꽃은 천성적으로 잡목(雜木)과 뒤섞여 있기를 싫어하는 까닭에 쉽사리 접할 수가 없다는 말인데, 한유(韓愈)가 친구인 맹동야(孟東野)에게 준 시에 “워낙 자질이 남달라서 뭇 소인들 속에 끼어 있기를 싫어하나니, 홀로 맑은 향기 지닌 매화가 잡목들 속에 몸을 부치기 어려운 것과 같도다.[異質忌處群 孤芳難寄林]”라는 표현이 나온다. 《韓昌黎集 卷5 孟生詩》
[주D-008]낙양(洛陽)의 …… 하리 : 요 황(姚黃)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새로운 품종의 모란을 말하고, 낙양의 상군(相君)은 소식(蘇軾)이 〈표충관비(表忠觀碑)〉에서 일컬은 충효의 가문 출신인 재상 전유연(錢惟演)을 말한다. 임금의 욕심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탄식한 소식의 시 〈여지탄(荔支嘆)〉 마지막 부분에 “낙양의 재상은 충효로 유명한 집안의 출신인데, 그도 요황의 꽃을 바치다니 가련하도다.[洛陽相君忠孝家 可憐亦進姚黃花]”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39》
[주D-009]광평(廣平)은 …… 알아서 : 광 평은 당 현종(唐玄宗) 때의 명재상으로 광평공(廣平公)에 봉해진 송경(宋璟)을 가리킨다. 그가 25세 때에 지은 〈매화부(梅花賦)〉 한 편이 유명한데, 이에 대해서 당(唐)나라 피일휴(皮日休)가 “그는 워낙 철장(鐵腸) 석심(石心)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섬세한 글을 짓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 〈매화부〉를 보건대 청편(淸便)하고 부염(富艷)하여 남조(南朝)의 서유체(徐庾體)를 얻었으니, 정말 그 사람답지가 않다고도 하겠다.”라고 평한 글이 그의 〈도화부서(桃花賦序)〉에 나온다.
[주D-010]인간 세상 …… 대하련다 : 송 (宋)나라 황정견(黃庭堅)이 소식을 매화에 비겨서 읊은 시 〈증동파(贈東坡)〉에 “홀로 향기로운 매화가 하도 희고 깨끗해서 시기만 당하는지라, 아무도 없는 얼음과 눈 속에서 부질없이 혼자 향기를 내뿜고 있구나.[孤芳忌皎潔 氷雪空自香]”라는 표현이 나온다.
까치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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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집 마주 대했나니 동쪽과 남쪽이요 / 鵲巢相對在東南
백발의 쇠한 늙은이 누웠나니 소암이라 / 白髮衰翁臥小菴
기쁜 소식은 평소에 가끔 체험을 한다마는 / 報喜平時頻有驗
들여다 보는 치세는 멀어서 끼이기 어려워라 / 俯窺治世遠難參
바람을 아니 마름꽃이 움직이는 것도 알 듯 / 知風如見蘋花動
달빛에 놀라니 계수나무 그림자에 숨어야 하리 / 驚月應從桂影涵
익살스럽게 읊다 보니 나도 웃음이 나온다만 / 詠物滑稽還自笑
원래 각자 좋아하는 기호는 다른 법이니까 / 由來嗜好異酸甘
[주D-001]기쁜 …… 한다마는 : 예로부터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靈鵲報喜]’고 알려져 왔는데, 《서경잡기(西京雜記)》 권3에 “까치가 울면 길 떠난 사람이 돌아오고, 거미가 집을 지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乾鵲噪而行人至 蜘蛛集而百事喜]”는 말이 나온다.
[주D-002]들여다 보는 …… 어려워라 : 성 군(聖君)의 덕치(德治)가 이루어진 가운데 만물과 동화되어 살았던 상고 시대는 까마득히 멀어서 쫓아가기 어렵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마제(馬蹄)에, 옛날 지덕(至德)의 세상에서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까치집을 들여다 보며 놀 수도 있었다.[鳥鵲之巢 可攀援而闚]”는 말이 나온다.
[주D-003]바람을 …… 듯 : 까 치는 바람이 부는 것을 잘 알아서 미리 방비한다고 하니, 그렇다면 바람이 처음 일어날 때에도 충분히 감지할 것이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회남자(淮南子)》 무칭훈(繆稱訓)에 “까치집을 보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안다.[鵲巢知風之所起]”고 하였고, 전국 시대 초(楚)나라 송옥(宋玉)의 〈풍부(風賦)〉에 “대저 바람은 땅에서 생겨나서는, 푸른 마름꽃 끝에서부터 작동하기 시작한다.[夫風生于地 起于靑蘋之末]”는 말이 나온다.
[주D-004]달빛에 …… 하리 : 까 치가 환한 달빛에 놀란다고 한다면, 달 속에 있다는 계수나무의 그늘 밑에라도 몸을 숨겨야 할 것이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하늘이 조용한데도 화살에 맞은 경험이 있는 기러기는 날개를 접고, 환한 달빛에 놀란 까치는 가지에서 편히 쉬지를 못한다.[天靜傷鴻猶戢翼月明驚鵲未安枝]”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1 杭州牡丹開時云云》
염 대언(廉代言) 정수(廷秀) 을 축하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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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아들 등과하여 일찍 명성을 날렸는데 / 三子登科早有名
어버이 사랑을 독차지한 건 바로 막내였더라오 / 愛鍾於季是萱庭
흰머리 날리는 양친 모두 건강하게 계신 이때 / 高堂鶴髮俱無恙
성대의 용후가 되었으니 세상에 드문 영광이라 / 盛代龍喉罕比榮
옥수와 같다고나 할까 맑고 깨끗한 그 풍채요 / 蕭洒風儀同玉樹
푸른 하늘과 가까워라 높고도 높은 금직일세 / 岧嶢禁直近靑冥
목옹이 얼마나 기쁜지 굳이 물어볼 것 있나 / 牧翁驚喜何須問
성군을 보좌하는 문생 눈으로 보고 있는걸 / 眼見門生佐聖明
[주D-001]세 명의 아들 : 염제신(廉悌臣)의 아들인 염국보(廉國寶)와 염흥방(廉興邦)과 염정수(廉廷秀)를 말하는데, 염정수는 그중 막내이다.
[주D-002]용후(龍喉) : 용(龍)은 임금을 뜻하는 말로 임금을 보좌하는 후설지신(喉舌之臣), 즉 대언(代言)이 되었다는 말이다.
[주D-003]푸른 하늘 : 제왕의 지위를 뜻하는 시어이다.
맑게 갠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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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가득 온화한 기운이 넘쳐흐르면서 / 和氣融融滿洛城
뭇 음기 사라지고 맑은 하늘이 펼쳐졌네 / 群陰自散放新晴
우리 동방 강과 산도 한결 아름다운 속에 / 倍增東國江山麗
중천의 해와 달을 보니 가슴이 트이누나 / 快覩中天日月明
지작에게 기쁜 소식 이미 전하게 하였으니 / 一喜已敎鳷鵲報
봉황이 우는 중흥의 시대 다시 기대해 봄 직도 / 重興更待鳳凰鳴
병든 끝에 이런 광경을 지금 보게 되었건만 / 病餘光景今如此
태평가 지어 부를 재주 없는 것이 한스럽네 / 只恨無才頌太平
[주D-001]지작(鳷鵲) : 후한 장제(後漢章帝) 때 조지국(條支國)에서 공물로 바쳤다는 새의 이름으로, 나라가 태평하면 무리를 지어 난다는 전설이 있는데, 후대에 와서는 보통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拾遺記 後漢》
[주D-002]봉황이 …… 시대 : “주나라가 일어날 때 기산에서 봉황이 울었다.[周之興也 鶩鷟鳴于岐山]”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국가가 좋은 운세를 맞아 떨쳐 일어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國語 周語上》
종학(種學)이 전의 부령(典儀副令)을 새로 제수받고 오늘 숙배(肅拜)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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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십팔 세에야 소태상이 되었는데 / 卄八曾叨少太常
너는 겨우 약관이니 내가 당연히 놀랄밖에 / 汝今甫冠我驚惶
재명 성복하는 일에 감히 조차를 하랴마는 / 齋明盛服敢造次
인효 지성에 입각하면 아득한 일도 아니리라 / 仁孝至誠非渺茫
중문에서 숙배하노라면 태양을 가깝게 뵐 것이요 / 肅拜中門天日近
갑제를 찾아다니느라 도성 거리 바람이 일겠지 / 徧參甲第陌風狂
꽃다운 나이에 이처럼 벌써 화려한 경력 쌓았으니 / 芳年揚歷猶如此
저 푸른 하늘에 붕정 만리 너의 앞길이 보이도다 / 萬里鵬程在彼蒼
[주D-001]소태상(少太常) : 전의 부령(典儀副令)이라는 말과 같다. 태상시(太常寺)는 전의시(典儀寺)의 별칭이다.
[주D-002]재명 성복(齋明盛服)하는 …… 아니리라 : 경 건하게 제사를 담당해야 하는 전의시의 일이 지금은 엄두가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지극한 효성에 입각해서 일을 해 나가다 보면 차츰 완전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말이다. 재명 성복은 재계(齋戒)를 하여 심신을 정결하게 하고 성대하게 의관을 갖추어 입는다는 뜻으로, 《중용장구》에 “재명 성복하여 제사를 받든다.[齊明盛服 以承祭祀]”는 말이 나온다. 조차(造次)는 ‘조차필어시(造次必於是)’를 줄인 말로, 《논어》 이인(里仁)에 “군자는 밥 한끼를 먹는 동안이라 할지라도 인(仁)을 어기는 일이 없어야 하니, 아무리 다급한 때라도 반드시 이 인에 입각해서 행해야 할 것이다.[造次必於是]”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천심(天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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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마음을 알기가 어렵다 말을 마오 / 天心非窈冥
백성을 깨우쳐 주심이 이처럼 찬연한걸 / 牖民何粲然
밝지 못한 자가 스스로 길을 헤매면서 / 昧者自迷路
항상 정신 못 차리고 엎어지고 넘어질 뿐 / 數數倒且顚
만고토록 한결같이 인애한 하늘의 마음이여 / 仁愛亘萬古
하늘이 명한 사람의 도리 완전하게 해야 하리 / 綱常當百全
두렵도다 어찌 감히 태만할 수 있으리요 / 悚然不敢怠
경서 속의 성현의 뜻 가슴에 새겨야 하리로다 / 黃卷陪聖賢
술회(述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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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하늘에 뜬구름이 말끔히 걷힌 이때 / 卷盡浮雲天四陲
태양 수레 올라와서 천천히 바퀴를 굴리도다 / 日輪初上輾行遲
티끌 하나 붙을 곳이 없는 걸 이미 알고말고 / 已知無處容纖翳
나도 덩달아 작은 시 얻으니 한층 더 기쁘도다 / 更喜隨時得小詩
음양을 섭리하는 일은 황각에 있다 할 것이니 / 燮理陰陽在黃閣
태평을 누리는 노랫소리 궁궐을 에워싸리로다 / 太平歌頌擁丹墀
홀로 앉은 남쪽 창가에 향 연기 곧추 몽개몽개 / 南窓獨坐香煙直
누가 말씀하셨더라 내 지금 너무도 쇠했다고 / 誰道吾今甚矣衰
[주D-001]음양을 …… 것이니 : 음 과 양의 두 기운을 조화시켜 제대로 다스리는 일은 바로 재상의 책임인데, 그 덕분에 하늘이 티끌 하나도 없는 청명한 경지를 이루어냈으리라는 뜻이다. 《서경》 주관(周官)에 “태사(太師)와 태부(太傅)와 태보(太保)를 세워 삼공(三公)으로 삼는데, 이들 재상은 도를 논하고 나라를 경륜하며 음과 양의 두 기운을 조화시켜 다스리는 일을 맡는다.[論道經邦 燮理陰陽]”는 말이 나온다. 황각(黃閣)은 한(漢)나라 때에 승상부(丞相府)를 황색으로 칠했던 데에서 유래하여, 재상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주D-002]누가 …… 쇠했다고 : 《논어》 술이(述而)에 “내가 너무도 쇠했구나, 이처럼 오래도록 꿈속에서 다시 주공을 뵙지 못하다니.[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며칠 전에 곡성부(曲城府)를 찾아가 뵈었을 때, 난(蘭)은 있었으나 매화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얻은 분매(盆梅)가 활짝 피었는데 감히 오셔서 감상하시라고는 못하겠기에 종학(種學)에게 특별히 명해서 갖다 바치도록 하면서 절구 세 수를 지어 올렸다. 이날은 바로 춘분(春分) 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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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꽃 벙실벙실 산속의 정자를 비춰 주니 / 梅花粲粲照山亭
흡사 대유와 나부인 듯 눈 아래가 푸르러라 / 大庾羅浮眼底靑
황혼의 가지에 걸린 달을 유독 좋아하였는데 / 獨愛黃昏枝上月
남극의 노인성을 지금 또 만나게 되다니요 / 更逢南極老人星
매화가 피려고 설날 전부터 들썩거리더니 / 梅花意動臘前天
춘분이 되자 청수한 기운 온전히 피워냈네 / 開到春分秀氣全
하지만 두려워라 도리의 무리에 치일까 봐 / 却恐不如桃李輩
호기 부리고 부를 뽐내며 권세를 독점할 테니까 / 爭豪競富盡當權
이 매화 나하고 비슷한데 왜냐 하면요 / 梅花似我問何哉
한 점 티끌 없는 청고함 때문이 아니오라 / 不爲淸高絶點埃
그저 소년 때 세상 사람 놀라게 하였을 뿐 / 只取少年驚衆耳
품평을 하자면 실로 똑같이 범재이니까요 / 在於題品實凡才
[주C-001]곡성부(曲城府) : 곡성부원군 염제신(廉悌臣)을 말한다.
[주D-001]대유(大庾)와 나부(羅浮) : 대 유령(大庾嶺)과 나부산(羅浮山)을 말한다. 당(唐)나라 장구령(張九齡)이 대유령에 새 길을 뚫을 때 매화를 심어 매령(梅嶺)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일화가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강서(江西) 중험(重險)에 전하고, 수(隋)나라 조사웅(趙師雄)이 나부산의 매화나무 아래에서 잠들었다가 매화 선녀를 꿈에 보았다는 전설이 유종원(柳宗元)의 《용성록(龍城錄)》에 전한다.
[주D-002]황혼의 …… 달 : 참 고로 송(宋)나라의 고사(高士) 임포(林逋)가 매화를 읊은 시 〈산원소매(山園小梅)〉에 “맑고 얕은 물에 성긴 그림자 가로 비끼고, 황혼 녘 달빛 속에 은은한 향기 떠도누나.[疏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라는 명구(名句)가 나온다.
[주D-003]남극의 노인성(老人星) : 수성(壽星)으로서 보통 노인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인데, 염제신에게 보낸 시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4]도리의 무리 : 복사꽃 오얏꽃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소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5]그저 …… 범재(凡才)이니까요 : 소년 시절에 원(元)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해서 재주를 한번 반짝 보인 목은 자신이나, 자연 속에서 피어나지 못하고 좁은 화분 속에서 키 작은 매화로 피어난 이 매화나, 사실은 모두가 변변치 못하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여러 아들에게 보여 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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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마음은 자식을 항상 사랑하나니 / 父母常懷愛子情
부디 몸 다치지 말고 공경이 되었으면 / 願無災害到公卿
겸겸자목의 뜻과 겸산괘의 의미를 새겨 / 謙謙自牧兼山卦
항상 속에 간직하고 좌우명으로 삼을지라 / 畫出須爲座右銘
입을 세 겹 봉하고서 말조심했다는 사람이여 / 三緘其口愼言人
천년토록 전하는 얘기 지금도 그 뜻이 새롭고녀 / 千載流傳面目新
좌중에서 한마디라도 경솔히 내뱉지 말지어다 / 莫向座中輕一語
추기와 영욕은 입술을 놀리는 데에 달려 있나니 / 樞機榮辱在搖脣
[주D-001]부디 …… 되었으면 : 자 기의 총명함을 자랑하다가 중도에 몸을 상하는 일 없이 원만하게 처신하여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자식 키우는 사람마다 총명하기를 바란다만, 나는 총명 때문에 일생을 그르친 사람이라. 바라건대 내 아이가 바보스럽고 어리숙하여, 하나도 다치지 않고 공경이 되었으면.[人皆養子望聰明 我被聰明誤一生惟願孩兒愚且魯 無災無難到公卿]”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蘇東坡詩集卷22 洗兒戲作》
[주D-002]겸겸자목(謙謙自牧)의 …… 새겨 : 겸 손한 자세로 일관하며 자신의 분수를 넘지 말라는 말이다. 《주역》 겸괘(謙卦) 초육(初六) 상(象)에 “지극히 겸손한 군자는 자신을 낮추어 몸가짐을 단속한다.[謙謙君子 卑以自牧也]”는 말이 나온다. 겸산괘(兼山卦)는 곧 간괘(艮卦)인데, 그 상사(象辭)에 “산이 중첩된 것이 바로 간괘이니, 군자는 이 점괘를 보고서 자신의 분수를 넘지 않으려고 다짐한다.[兼山 艮 君子 以 思不出其位]”는 말이 나온다.
[주D-003]입을 …… 사람이여 : 공 자가 주(周)나라 태묘(太廟)에 들어갔다가 금인(金人)을 보았는데, 그의 입이 세 겹으로 봉해져 있었고, 그의 등에 또 “옛날에 말조심했던 사람이다. 이를 보고 경계하여 말을 많이 하지 말지어다. 말이 많으면 잘못되는 일이 많으니라.[古之愼言人也 戒之哉 無多言 多言多敗]”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한다. 《孔子家語 觀周》
[주D-004]추기와 …… 있나니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언행은 군자의 자격 요건이다. 그 언행을 어떻게 발하느냐에 따라 영욕이 대체로 결정된다.[言行 君子之樞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는 말이 나온다.
동경(東京)의 윤공(尹公)이 전운(前韻)에 화답하면서 문어(文魚)를 보내왔기에 붓을 달려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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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부릴 때는 지조를 연상시킨다면 / 用兵同鷙鳥
적을 소탕할 땐 맹호가 양 떼를 습격하듯 / 掃賊似羊群
한 경내가 그 그늘에 의지함은 물론이요 / 一境皆承蔭
삼한이 모두 그 공적에 고개를 숙인다오 / 三韓共揖芬
해가 떠오르나니 하늘이 바다에 잇닿았고 / 日生天接海
산이 가깝나니 나무가 구름에 떠 있는 곳 / 山近樹浮雲
전쟁을 종식할 계기가 이제 마련됐는지라 / 偃革今茲兆
보내오신 고기 이름도 바로 문이로구려 / 來魚號曰文
[주D-001]군대를 …… 연상시킨다면 : 만 반의 준비를 갖추고 신중하게 기회를 살피다가 한 번 공격하여 적에게 치명타를 가한다는 말이다. 지조(鷙鳥)는 독수리나 매와 같은 맹금(猛禽)을 말하는데, 《육도(六韜)》 발계(發啓)에 “지조가 공격할 때에는 먼저 낮게 날면서 날개를 거두는 법이다.[鷙鳥將擊 卑飛斂翼]”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전쟁을 …… 문(文)이로구려 : 무비(武備)를 그만두고 문교(文敎)에 중점을 둔다는 뜻의 ‘언혁상문(偃革尙文)’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하늘이 맑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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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청명하고 땅도 안정됐는지라 / 天淸地又寧
사해에서 황령을 우러러보는 이때 / 四海仰皇靈
비와 이슬 속에 주초도 움터 자라나고 / 雨露生朱草
산과 강엔 경성이 또 환하게 비치리라 / 山川照景星
쓸모없는 선비는 태평성대를 만났어도 / 腐儒遭盛代
병이 많아 남은 목숨만 겨우 유지할 뿐 / 多病引殘齡
태평의 노래 가득 울려 퍼져야 할 곳에 / 歌詠太平處
이끼 가득한 뜨락에는 그저 새소리만 / 鳥啼苔滿庭
[주D-001]주초(朱草) : 태평성대에만 나온다는 상서로운 풀이름이다.
[주D-002]경성(景星) : 덕성(德星) 혹은 서성(瑞星)이라고도 하는데, 왕도정치가 펼쳐지는 시대에만 나타난다고 한다.
군자(君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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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스스로 지킬 것을 중히 여겨 / 君子重自守
나아가고 물러남에 모두 여유 있도다 / 出處皆有餘
문지기의 직분도 떳떳하게 행할 텐데 / 抱關亦常職
재상이라 하여 헛된 명예만 구하겠나 / 秉鈞豈虛譽
자신이 해야 할 일 극진히 할 것이니 / 盡其所當爲
교훈이 될 말씀은 시서에 다 있느니라 / 質之在詩書
머리 들어 쳐다보면 하늘 위의 일월성신 / 仰觀敞玄象
고개 숙여 굽어보면 대지 위의 삼라만상 / 俯察陳黃輿
몸뚱이는 미미해서 창해일속(滄海一粟)이나 / 身微海一粟
마음만은 광대해서 우주를 모두 휩싸는걸 / 心廣同大虛
자포자기하는 마음 과연 어찌 된 것인고 / 自棄果何意
시시때때로 한숨 쉬며 탄식만 하노매라 / 時時但欷歔
이 이상(李二相)이 물고기와 기러기를 보내 준 것에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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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치솟은 국신리 앞 봉우리요 / 國贐前峯入碧天
맑은 샘물 흐르는 고양동 뒷 고개로세 / 孤楊後嶺漏淸泉
영공의 소식이 언제 끊긴 적 있으리요 / 令公音信何曾斷
물고기도 전해 주고 기러기도 전했는걸 / 魚亦相傳雁亦傳
병든 뒤로 한가한 생활 저 하늘 어찌 고마운지 / 病後閑居謝彼天
팔 굽혀 베고 물 마시니 감천보다도 낫소그려 / 曲肱飮水勝甘泉
이따금씩 흥치가 나면 동각을 찾아도 보오마는 / 時時發興尋東閣
새 시를 지어도 전해질 수 없는 것이 한스럽소 / 只恨新詩不足傳
[주D-001]푸른 …… 고개로세 : 국 신리(國贐里)는 이 이상(李二相)의 집을, 고양동(孤楊洞)은 목은의 집을 가리킨다. 《목은시고》 제11권 〈우중유작(雨中有作)〉에 “병들어 고양동에 우거하면서, 새로 초당 하나 마련했다오.[病寓孤楊洞 新開一草堂]”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물고기도 …… 전했는걸 : 서신을 뜻하는 어서(魚書)와 안서(雁書)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주D-003]팔 …… 마시니 : 《논어》 술이(述而)에 “거친 밥 먹고 물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다.[飯疏食飮水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4]이따금씩 …… 한스럽소 : 가 끔 경치를 접하고서 시흥(詩興)이 동하면 누대에 올라가 시를 지어 보기도 하지만, 후세에 전해질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이 유감이라는 말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동쪽 누각의 관청 매화에 시흥이 동하나니, 하손이 양주에 있을 때도 아마 이러하였을 듯.[東閣官梅詩興動 還如何遜在揚州]”이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양(梁)나라 하손(何遜)이 양주(揚州)에 있을 때 지은 〈조매시(早梅詩)〉가 유명하다. 《杜少陵詩集 卷9 和裴迪登蜀州東亭云云》
고풍(古風)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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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이 서로들 뒤따라 날 적에 / 鳳凰相追飛
아침 햇살이 높은 언덕 비췄다네 / 高岡被朝暉
하나가 울면 또 하나가 화답했건마는 / 一鳴復一和
적막해라 지금은 아는 이가 드물도다 / 寥寥知者稀
어쩌면 오동꽃도 이미 다 떨어지고 / 梧桐花已落
축축한 이슬 역시 말라 버렸다고 할까 / 湛露亦云晞
지금도 전해 오는 권아의 그 노래여 / 卷阿有遺音
천년토록 마음속에 아직도 아련한데 / 千載猶依依
봉황처럼 날을 뜻 이어 볼 수 없음이여 / 有志不得繼
내가 장차 누구와 더불어 돌아갈거나 / 吾將誰與歸
주공이 소공을 머물러 있게 했던 / 周公留召公
그 충성 그 의리 지금도 새로워라 / 忠義至今存
소자는 재위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 小子同未位
이 말을 꺼낼 때 얼마나 고심하였을까 / 苦哉吐此言
봉황새 소리를 나는 듣지도 못한다며 / 鳴鳥我不聞
유인하신 그 말씀 얼마나 또 지론인가 / 引誘誠至論
이로써 알겠나니 주공 소공의 그 마음은 / 乃知周召心
사령과 근원을 같이하고 있는 것을 / 四靈同其源
그래서 우리 부자께서 장탄식을 하시면서 / 所以我夫子
자존의 일을 비통하게 여긴 것이 아니겠나 / 浩嘆悲自尊
[주D-001]봉황이 …… 비췄다네 : 《시경》 대아(大雅) 권아(卷阿)는 임금이 현신(賢臣)을 구하는 시인데, 그중에 “봉황이 우는구나, 저 높은 언덕에서. 오동나무 자라났네, 산 동쪽 저 기슭에.[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어쩌면 …… 할까 : 지 금은 임금과 신하가 제대로 만나 멋진 정치를 펼쳐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인데, 목은과 의기투합했던 공민왕이 죽고 난 뒤의 허탈한 심정을 토로한 표현인 듯하다. 《시경》 소아(小雅) 담로(湛露)는 군주의 은택을 이슬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인데, 그중에 “축축히 젖은 이슬이여, 햇볕 나기 전에야 마르겠는가. 흐뭇하게 펼쳐진 밤의 술자리여,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으리라.[湛湛露斯 匪陽不晞 厭厭夜飮 不醉無歸]”라는 구절과, “오동나무와 가래나무에, 탐스러운 열매 주렁주렁 매달리듯, 여기 모인 아름다운 군자들이여, 그 자태 훌륭하지 않음이 없도다.[其桐其椅 其實離離 豈弟君子 莫不令儀]”라는 구절이 보인다.
[주D-003]주공(周公)이 …… 새로워라 : 주 성왕(周成王)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을 적에, 소공(召公) 석(奭)이 늙었다면서 은퇴하려 하자, 주공이 적극 만류한 것을 가리키는데, 《서경》 군석(君奭)에 이 내용이 상세히 나온다.
[주D-004]소자는 …… 같다는 : 어린 임금이 비록 즉위하였어도 왕위에 있지 않은 것과 같으니, 주공과 소공 두 사람이 모름지기 힘을 합쳐서 정치를 보좌해야 한다는 뜻인데, 군석에 ‘소자동미재위(小子同未在位)’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5]봉황새 …… 못한다며 : 주공 자신은 태평성대를 이루어 낼 자격이 없으니, 소공과 같은 현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 소공을 이끌어 들인 말인데, 군석에 ‘아즉명조불문(我則鳴鳥不聞)’이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6]이로써 …… 것을 : 태평성대에만 출현한다는 네 가지 신령스러운 동물의 마음처럼, 주공과 소공이 추구하는 뜻도 태평성대의 실현에 있다는 말이다. 사령(四靈)은 기린, 봉황, 거북, 용을 가리킨다.
[주D-007]그래서 …… 아니겠나 : 자 존(自尊)은 아무 때나 자기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사령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기린을 뜻한다. 공자가 《춘추》를 저술할 적에 기린이 잡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절필(絶筆)한 고사가 전하는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애공(哀公) 14년 조(條)에, 공자가 “누구를 위해서 기린이 이 세상에 나왔단 말인가.[孰爲來哉]”라고 거듭 탄식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서린(西隣)의 청성군(淸城君)과 함께 곡성(曲城)과 칠원(漆原) 두 분 시중(侍中)을 따라 이어(移御)하시는 임금님을 호가(扈駕)한 뒤에 돌아와서 홀로 읊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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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늠연한 충숙왕의 위엄이여 / 忠肅天威尙凜然
이 몸이 태어나기 이전의 일이로세 / 逆推臣穡未生前
이곳에서 일찍이 과거를 실시하였나니 / 曾於此地賜科第
그때는 바로 연우 경신년이었다오 / 實是庚申延祐年
신손이 궁궐 문을 새로 활짝 여신 오늘 / 今見神孫開紫闥
현상이 국정을 담당할 줄 원래 알았도다 / 故知賢相幹洪鈞
서연에서 전대할 일도 응당 멀지 않을 텐데 / 書筵轉對應非遠
모시고 앉는 자리에 두 노인이 또 없으리요 / 侍坐那無二老人
[주D-001]연우(延祐) 경신년 : 1320년(충숙왕7)으로, 목은이 태어나기 8년 전이다. 이해 6월에 이제현(李齊賢)과 박효수(朴孝修)가 과거를 관장하였는데, 이때부터 시부(詩賦)를 혁파하고 책문(策問)으로 인재를 뽑기 시작하였다. 《東史綱目 第13下》
[주D-002]신손(神孫) : 우왕(禑王)을 가리킨다. 충숙왕의 아들이 공민왕이고, 공민왕의 아들이 우왕이다.
[주D-003]두 노인 :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과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 윤환(尹桓)을 가리킨다.
소나무를 대하고서 감회에 젖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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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봄이 찾아와서 눈도 이미 녹았는데 / 春入山林雪已乾
노송만은 의구해라 푸르름 아직도 찬 빛일세 / 老松依舊翠生寒
당시 암학에 들어앉아 절차탁마하던 이곳 / 當時巖壑雕鎪處
눈여겨보는 이 없는 것이 유독 한스럽네 / 獨恨無人着眼看
이엉을 얻어다가 지붕을 덮을 목적으로 서한을 띄울 즈음에 시 한 수를 지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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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에 초가집이 무너졌다는 자미의 노래 / 子美秋風破屋歌
오늘에 와서 목옹이 다시 읊조려 보노매라 / 牧翁今日更吟哦
주모를 모르겠다만 누가 길을 가르쳐 줄까 / 晝茅未識誰指路
우산을 미리 걱정해야지 집가하는 사람처럼 / 雨傘預憂如執柯
강변에서 지붕을 일 땐 모두 대를 사용하고 / 江上葺時皆用竹
산속에서 보수할 땐 덩굴을 끌어 와도 그만 / 山中補處或牽蘿
도성 거리 들쭉날쭉 일만 채 푸른 기와집들 / 鳳城萬瓦參差碧
흰머리에 오두막집 내가 보아도 우습고녀 / 自笑窮廬兩鬢皤
[주D-001]갈바람에 …… 노래 :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권10에 나오는 두보(杜甫)의 〈모옥위추풍소파가(茅屋爲秋風所破歌)〉를 가리킨다.
[주D-002]주모(晝茅)를 …… 사람처럼 : 어 디에 가서 띠풀을 베어 와야 할지도 모르니, 가까운 이웃에서 띠풀을 얻어 비가 새지 않도록 대처해야겠다는 말이다. 주모는 ‘주이우모(晝爾于茅)’의 준말로,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낮에는 띠풀을 베어 오고, 밤에는 새끼를 꼬아, 빨리 지붕을 이어야만, 내년에 곡식을 파종하리.[晝爾于茅 宵爾索綯 亟其乘屋 其始播百穀]”라는 말이 나온다. 집가(執柯)는 먼 곳까지 갈 필요 없이 가까운 곳에서 취하면 된다는 뜻으로, 《시경》 빈풍 벌가(伐柯)에 “도끼 자루를 잡고서 나무를 베어 도끼 자루를 새로 만드는 사람이여, 자기가 잡은 도끼 자루를 본받으면 되니 먼 데서 찾을 필요가 없도다.[伐柯伐柯 其則不遠]”라는 말이 나오는데,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 다시 이 시를 인용하면서 “도끼 자루를 잡고 도끼 자루를 베면서도 겨냥해 보고서는 오히려 멀다고 생각한다.[執柯以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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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과는 같지 않은 오늘날의 붕우의 도 / 友道如今不似初
친했다가 멀어지는 걸 나도 체험하였어라 / 吾猶驗得數斯疏
의리와 이욕의 경계선을 누가 제대로 구분할까 / 誰將義利能分界
현불초를 막론하고 어려서 독서를 했으련만 / 自是賢愚少讀書
주소의 깊은 우정은 지금도 심금을 울리는데 / 周召深情依舊大
진장이 남긴 냄새는 아직껏 악취를 풍기누나 / 陳張遺臭至今餘
나 홀로 애태우는 이 마음 누가 알아 줄까 / 寸心耿耿誰能識
문밖의 청산이 초막을 말 없이 감싸 주네 / 門外靑山擁草廬
[주D-001]주소(周召) : 어린 성왕(成王)을 함께 보좌하여 태평 시대를 연 주공(周公) 단(旦)과 소공(召公) 석(奭)의 합칭인데, 소공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은퇴하려 할 적에 주공이 간절히 만류한 우정 어린 대화 내용이 《서경》 군석(君奭)에 나온다.
[주D-002]진장(陳張) : 초 한(楚漢) 시대의 진여(陳餘)와 장이(張耳)의 합칭으로, 처음에는 친밀했다가 나중에는 원수가 된 경우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두 사람 모두 대량(大梁)의 명사(名士)로서 처음에는 문경지우(刎頸之友)로 지냈는데, 나중에 권력을 쟁탈하는 와중에 진여가 장이의 손에 죽고 말았다. 《史記卷89 張耳陳餘列傳》
염동정(廉東亭)의 술자리에 초대를 받고 이날 동정이 거문고를 타고, 홍상(洪相)이 중금(中笒)을 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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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병 끝에 아는 것은 그저 배 채울 일만 / 久病方知口腹謀
누룩 실은 수레만 보아도 입에서 침이 질질 / 麴車猶費口涎流
벗이 술자리 불러 주니 이 얼마나 다행인고 / 故人招飮眞多幸
돌아갈 줄도 모른 채 맑은 밤 오래 머물렀네 / 淸夜忘歸得久留
아직도 귓속에 가득한 북조의 유음이요 / 北操遺音尙盈耳
모두들 머리 숙인 남양의 급한 피리였네 / 南陽急管盡低頭
일체가 운명이라고 할 인간의 만나고 헤어짐 / 人間聚散皆天數
이제부터는 병촉유를 다시 약속들 하십시다 / 更約從今秉燭游
[주D-001]누룩 …… 질질 : 두 보(杜甫)의 시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여양왕(汝陽王) 이진(李璡)은 술을 세 말은 마셔야 조정에 나갔고, 길에서 누룩을 실은 수레만 보아도 입에서 침을 흘렸다네.[汝陽三斗始朝天道逢麴車口流涎]”라는 구절이 보인다. 《杜少陵詩集 卷2》
[주D-002]북조(北操)의 유음(遺音) : 북조는 중국 음악의 곡조라는 말인데, 동정(東亭) 염흥방(廉興邦)의 부친인 염제신(廉悌臣)이 원(元)나라에서 자라나 황제의 총애를 받고 벼슬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인 듯하다.
[주D-003]남양(南陽) : 홍씨(洪氏)의 본관이 남양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4]병촉유(秉燭游) : 밤 에 촛불을 밝히고 노닌다는 뜻으로, 덧없는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즐겨 보자는 의미로 흔히 쓰인다. 고시(古詩)에 “사는 나이 백년도 채우지 못하는데, 항상 천년의 시름을 품고 있도다. 낮은 짧고 밤이 긴 것이 괴로우니, 어찌 촛불 손에 잡고 노닐지 않을쏜가.[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晝短苦夜長何不秉燭游]”라는 구절이 나온다. 《文選 卷29 古詩十九首》
저번에 사양할 수가 없어서 오천군(烏川君)의 묘지명을 지어 주었더니, 그의 아들인 전교 부령(典校副令) 정홍(鄭洪)과 사위인 내부 부령(內府副令) 안경공(安景恭)이 성찬(盛饌)을 장만해 가지고 나를 찾아와서 대접하였다. 그러고는 사례하는 뜻으로 자포(紫袍)를 또 선물하였는데, 그 뜻이 근실하고 예의를 깍듯이 지키려고 하였으므로 일단 받아 두었다가 나중에 기회를 봐서 돌려주기로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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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하도다 오천군 일찍 영화를 누림이여 / 藉甚烏川早享榮
나이 겨우 서른 살에 문형을 관장하였도다 / 年方三十典文衡
얼마 뒤엔 추부로 옮겨 총애가 답지했고 / 俄遷樞府寵沓至
늙어서는 정당으로 공을 완전히 이루셨네 / 老拜政堂功已成
한월과 사편 양쪽 모두 모범을 보이신 분 / 韓鉞謝篇皆得體
동북면과 합포에서도 물론 이름을 남기셨지 / 朔方合浦盡留名
묘지명을 쓴 사례로 선물한 자색 도포 / 紫袍潤筆銘幽隧
종신토록 사모하는 풍수의 정때문이리 / 風樹終身思慕情
[주C-001]오천군(烏川君) : 정사도(鄭思道)의 봉호인데, 《목은문고》 제19권의 〈오천군 시 문정 정공 묘지명(烏川君諡文貞鄭公墓誌銘)〉에 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나온다.
[주D-001]한월(韓鉞)과 …… 분 : 정 사도가 문무(文武)를 겸비하여 출장입상(出將入相)의 자질을 발휘했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사조의 멋진 시와 한신의 무서운 도끼, 그대처럼 두 가지 모두 지닌 사람 또 있을까.[謝脁篇章韓信鉞 一生雙得不如君]”라는 구절이 나온다. 《白樂天詩集卷7 宣武令狐相公以詩寄贈云云》
[주D-002]풍수(風樹)의 정 : 돌아가신 어버이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자식의 마음을 뜻하는 말로, “나무는 조용하려 하나 바람이 가만히 있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유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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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빈낙도가 원래 나의 뜻인지라 / 安貧是吾志
물처럼 맑으리라 스스로 여겼는데 / 自謂淸如水
무슨 일이 생겨서 뭔가 부족해지면 / 遇事物不及
고요한 물위에 파도가 또 일어나네 / 還如浪波起
알겠노라 내 마음을 단속하지 못해 / 乃知守不約
바로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 所以致如此
정정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 靜定妄施工
마구 치달리며 그칠 줄을 모를밖에 / 驅馳不知止
늙어서 병든 몸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 老病猶未歸
동분서주하며 무엇을 또 기다리나 / 栖栖復何竢
자책하다 다시금 스스로 용서해 주나니 / 自責復自恕
이름 때문이요 이욕 때문은 아니라나 / 爲名非爲利
[주D-001]정정(靜定) : 《대학장구》에 “그칠 줄 알게 된 뒤에야 정해지고, 정해진 뒤에야 고요해지고, 고요해진 뒤에야 편안해질 수 있다.[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는 말이 나온다.
우 상의(禹商議) 현보(玄寶) 가 술을 가지고 찾아 준 것에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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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넓은 천지간에 봄이 또 돌아오니 / 蕩蕩乾坤春又廻
새소리며 따스한 바람 하루가 다르도다 / 鳥聲風暖自相催
늙고 쇠해서 종일토록 문 닫고 앉은 때에 / 老衰終日閉門坐
옛 벗이 마침맞게 술병 들고서 찾아왔네 / 舊故有時携酒來
나는 호시절 맞았어도 약이나 먹고 사는 여생 / 藥餌殘生逢景運
강과 산의 빼어난 기운 우리 영재의 몫이로세 / 江山秀氣屬英材
반쯤 얼근해지니 더욱 느끼는 한없는 정 / 半酣倍覺情無盡
꽃이 피면 우리 다시 술잔 들어 보십시다 / 準擬開花更擧杯
병 중(病中)이라서 대가(大駕)를 호종(扈從)하며 사냥 구경을 할 수 없기에, 짧은 시 한 편을 지은 다음에 일기(一騎)를 치달리게 하여 이 이상(李二相)이 탄 말 앞에 봉정(奉呈)하게 하였는데, 다행히 염 정당(廉政堂)과 고삐를 나란히 하여 한번 보고 나서는, 사냥터의 남은 고기라도 나누어 주는 은혜를 내려 준다면 나 또한 사양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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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교외의 화렵은 이미 관례로 굳어진 일 / 南郊火獵案成規
무위(武威)를 드날려 보는 것도 태평의 기틀이라 / 講虎揚威保泰基
용맹이 군중에 으뜸이니 적들이 꼼짝을 못하고 / 勇冠軍中工挫敵
말 타고 공을 세웠나니 군대 지휘도 자유자재 / 功成馬上習行師
시순하며 기뻐하시는 용안을 항상 모시는 분 / 時巡長奉天顔喜
주접을 하니 국체가 위험해질 것을 걱정하랴 / 晝接何憂國體危
흰머리로 병든 나머지 대가를 호종도 못하다니 / 白髮病餘難扈駕
나물 밥상 대하면서 나의 쇠함을 탄식하노라 / 菜盤相對嘆吾衰
[주D-001]화렵(火獵) : 불을 놓아 짐승을 쫓으면서 사냥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2]시순(時巡)하며 …… 분 : 임금이 밖에 거둥할 때마다 수행을 하며 보좌한다는 말이다. 시순은 임금의 순수(巡狩)를 뜻하는 말로, 《서경》 주관(周官)에 “임금은 철 따라 순수하면서 사악의 제도를 고찰한다.[王乃時巡 考制度于四岳]”는 말이 나온다.
[주D-003]주접(晝接)을 …… 걱정하랴 : 임금이 유능한 신하를 신임하면서 총애하니, 나라가 위태해질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주접은 하루에 세 번이나 접견한다는 ‘주일삼접(晝日三接)’의 준말로, 《주역》 진괘(晉卦) 단(彖)에 나온다.
어제 계당(溪堂) 선생이 성찬(盛饌)을 가지고 나를 찾아 주셨는데, 내가 병이 심해서 곧장 감사를 드리지 못하겠기에,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는 대신에 졸렬한 시 한 수를 지어 올리게 되었으니, 그저 한번 웃어 주시기만을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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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학술은 연원이 분명하다 할 것이니 / 先生學術有淵源
세상의 존경받는 중암을 본받으셨어라 / 模楷中菴世所尊
유풍을 크게 떨치면서 일찍이 과거를 주관했고 / 大闡儒風曾掌試
선의 세계를 탐구하여 망언의 경지를 얻었다오 / 早探禪窟已忘言
계당에 대해 지은 내 글은 부끄럽게도 졸렬한데 / 溪堂作記慚文拙
술 들며 논하는 선생의 회포는 도존을 알겠도다 / 尊酒論懷見道存
뉘 알았으리 술 마시다 가슴이 다시 아파올 줄 / 誰識半酬心更苦
광암 생각이 아련해서 눈앞이 침침해졌으니 / 光巖杳杳眼昏昏
[주C-001]계당(溪堂) : 이무방(李茂芳)의 당호(堂號)인데, 목은보다 9년 선배이다. 《목은시고》 제25권에 〈광양군 이 선생을 위하여 계당에 대한 글을 짓다.[爲光陽君李先生記溪堂]〉라는 시가 보인다.
[주D-001]중암(中菴) : 호가 중암거사(中菴居士)인 채홍철(蔡洪哲)을 가리킨다.
[주D-002]선(禪)의 …… 얻었다오 : 채 홍철이 자기 집 북쪽에다 전단원(旃檀園)이라는 정사(精舍)를 세우고 선승(禪僧)을 기거하게 할 정도로 불교에 심취하였는데, 이무방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는 선불교(禪佛敎)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말이다.
[주D-003]도존(道存) : 《장자》 전자방(田子方)에 “그런 사람은 언뜻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그 속에 도가 들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若夫人者 目擊而道存]”는 말이 나온다.
[주D-004]뉘 …… 침침해졌으니 : 술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생전의 공민왕 생각이 나서 목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셨다는 말이다. 광암(光巖)은 공민왕의 명복을 빌던 절 이름인데, 《목은문고》 제14권 〈광통보제선사비명(廣通普濟禪寺碑銘)〉에 그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어제 자은종(慈恩宗)의 도승통(都僧統)인 우세군(祐世君)이 새로 밀직(密直)에 임명된 종덕(種德)을 축하하러 와서는 성찬(盛饌)을 또 베풀었다. 내가 비록 병으로 고생하는 중이었으나 감히 사양할 수 없기에 술을 흠뻑 마시고 취하기까지 하였다. 이날 저녁 무렵에 비가 내렸다. 이튿날 일어나서 시 세 수를 지어 읊은 다음에 이를 기록해서 그에게 증정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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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복전을 일구시는 종문의 최고 어르신네 / 領袖宗門大福田
봉군의 특별한 총애받아 한층 더 빛나시네 / 封君寵異更光前
오직 아침저녁으로 군왕을 축수하시나니 / 朝昏只祝君王壽
한 가닥 향불 연기 속에 일만 년은 더 사시리 / 一炷香中一萬年
어린애들 가르칠 때 내 아이도 끼워 주며 / 擊蒙當日及愚兒
높이 올라 한때 빛냈던 일을 보셨던 분 / 眼見飛騰耀一時
이제는 밀직에 승진하여 늙은 애비를 놀래키니 / 進拜鴻樞驚老父
누구와 기쁨을 나누리요 바로 우리 스님이지 / 有誰同喜是吾師
진수성찬이 산이라면 술은 회수 같은데 / 珍饌如山酒似淮
비단 장삼 찬란하게 띠풀 집을 비췄어라 / 錦袍燦爛照茅齋
등불 앞에 하고 술잔을 어떻게 안 들 수야 / 奈何不向燈前酌
적막한 밤에 빗소리가 섬돌에 또 떨어지니 / 淸夜沈沈雨滴堦
[주C-001]우세군(祐世君) : 법명은 종림(宗林)으로, 법천대사(法泉大師)라고도 일컬어졌다.
[주D-001]어린애들 …… 분 : 도승통(都僧統)인 우세군이 종덕(種德)을 가르쳐 준 덕분에 종덕이 문과(文科)에 장원 급제하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는 뜻의 찬사이다.
[주D-002]진수성찬이 …… 같은데 : 술 과 음식이 푸짐하게 마련되었다는 말이다. 《춘추좌전》 소공(昭公) 12년 조(條)에 “술은 회수(淮水)처럼 많고, 고기는 모래섬처럼 쌓였다.[有酒如淮 有肉如坻]”는 말과 “술은 민수(澠水)처럼 많고, 고기는 언덕처럼 쌓였다.[有酒如澠 有肉如陵]”는 말이 나온다.
[주D-003]적막한 …… 떨어지니 : 남조(南朝) 시대 양(梁)나라의 시인 하손(何遜)의 시에 “밤에 내리는 빗소리는 빈 섬돌 위에 떨어지고, 새벽의 등잔 빛은 여관방에 흐릿해라.[夜雨滴空階 曉燈暗離室]”라는 명구가 전한다. 《何水部集 卷2 臨行與故游夜別》
날이 맑게 개었으니 교궁(郊宮)에서 얼마나 흐뭇해할까 삼가 상상이 되었다. 신이 비록 늙긴 하였으나 나름대로 정회(情懷)를 가눌 수가 없기에 짧은 노래를 지어 읊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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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수할 때를 당하여 봄 그늘 짙더니만 / 時當春蒐春陰濃
봄비가 부슬부슬 밤 들어 그치지 않아 / 春雨入夜仍濛濛
옥당의 글 맡은 신하 교궁을 멀리 바라보며 / 玉署詞臣望郊宮
새벽까지 애태우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 達旦不寐焦心胸
동쪽에서 해 솟으며 하늘이 말끔히 개어 / 天晴白日生於東
온통 푸르른 만리 속에 섬농이 모두 잠겼어라 / 一碧萬里涵纖穠
질펀히 펼쳐진 광야 전체가 오늘의 사냥터 / 平川廣野盡牢籠
편 갈라 소리 지르면서 마치 자웅을 겨루듯 / 曹呼隊叫如爭雄
아래에선 꼭대기까지 도망치는 짐승을 쫓고 / 下以驅走獸於危峯
위에선 푸른 하늘 위의 박붕을 떨어뜨리고 / 上以墜搏鵬於碧空
중간에선 구름 기운이 비룡을 따르고 있는지라 / 中有雲氣隨飛龍
희열에 잠겨 용안도 한번 활짝 웃고 계시리라 / 怡然一笑開天容
사냥의 뜻은 희생을 갖춰 육종에 제사드리는 것 / 志在備物禋六宗
조야에 기쁜 기색 퍼져 어느새 화기가 감돌 테니 / 朝野喜氣俄融融
추우의 노래에서도 오종이라 하지 않았던가 / 騶虞之歌歌五豵
작소의 아름다운 교화를 누가 막을 수 있으리요 / 鵲巢美化誰能終
병중에 시 지어 읊는 이 뜻 무궁하다 할 것이니 / 病中謳吟意無窮
빈풍의 헌견을 본받는 것과 방불하다고나 할까 / 獻豜髣髴追豳風
[주C-001]교궁(郊宮) : 임금이 희생(犧牲)을 잡아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는 곳을 말한다.
[주D-001]춘수(春蒐) : 농한기를 이용한 임금의 봄 사냥을 말한다.
[주D-002]온통 …… 잠겼어라 : 하늘도 땅도 온통 푸른색으로 뒤덮인 가운데 섬세하고 풍만한 온갖 봄 경치[纖穠]가 그 속에 함초롬히 빗물을 머금고 젖어 들어 있다는 말이다.
[주D-003]박붕(搏鵬) : 상상 속의 붕(鵬)처럼 큰 새를 말한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의 “붕새가 때마침 불어오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 하늘 위로 날아올라 간다.[搏扶搖而上者九萬里]”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4]중간에선 …… 있는지라 : 백관이 임금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주역》 건괘(乾卦) 구오(九五)에 임금을 지칭하여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飛龍在天]”고 하였고, 그 문언(文言)에 또 “구름이 용을 따른다.[雲從龍]”고 하였다.
[주D-005]육종(六宗) : 옛날에 임금이 제사를 올렸던 여섯 종류의 신(神)으로 그 해석이 다양한데, 《서경》 순전(舜典)에 “순 임금이 즉위하고 나서, 육종에 제사를 올렸다.[禋于六宗]”는 기록이 나온다.
[주D-006]추우(騶虞)의 …… 않았던가 : 추우는 《시경》 소남(召南)의 편명으로, 임금의 사냥을 찬미한 노래인데, 그중에 “저 무성한 다북쑥 밭을 보소, 화살 한 대 쏘려니 새끼 돼지 다섯일세.[彼茁者蓬 一發五豵]”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7]작소(鵲巢)의 아름다운 교화 : 작 소는 《시경》 소남 첫머리에 나오는 편명인데, 모시(毛詩) 서(序)에서 “추우는 작소의 효험이 나타난 것으로서, 작소의 교화가 행해짐에 따라 인륜이 바르게 되고 조정이 잘 다스려진 것이니, 천하가 문왕(文王)의 교화를 순일하게 받은 것을 노래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D-008]빈풍(豳風)의 헌견(獻豜) : 헌 견은 큰 돼지를 잡으면 임금님에게 바친다는 뜻으로, 《시경》 빈풍 칠월(七月)에 “섣달엔 모두 사냥 나가, 무예를 닦아 익히나니, 새끼 돼지는 내가 갖고, 큰 돼지는 임금님에게.[二之日其同 載纘武功 言私其豵 獻豜于公]”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주(註)에 “윗사람을 사랑해 마지않는 뜻이 들어 있다.[愛其上之無已也]”고 하였다.
자영(自詠)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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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로 송경에서 홀로 문 닫고 사는 동안 / 白髮松京獨掩門
광음은 어찌나 빠른지 흐르는 물과 같네 / 光陰袞袞似川奔
동쪽 변두리 치우친 땅엔 봄에도 추운 때가 많고 / 地偏東極春多冷
서쪽 봉우리 가까운 집엔 날이 빨리도 저무누나 / 家近西峯日易昏
어찌 감히 절의를 세워 도를 높일 수 있으리요 / 節義敢期能善道
문장도 꼭 말할 줄 안다고 자신할 수 없는걸 / 文章未必盡知言
나이 쉰 넘어서도 마음은 갈수록 고달파져 / 年過五十心逾苦
그저 때때로 술 가득 채워 회포를 푸노매라 / 賴是時時酒滿樽
무제(無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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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내내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 濛濛春雨夜來零
게다가 풍광이 또 답청과 가까운걸 / 又是風光近踏靑
난정의 계음 생각에 흥이 마구 동하는 때 / 禊飮蘭亭狂興動
괜히 기다려지누나 누가 혹 불러 줄까 하고 / 有誰招喚苦丁寧
[주D-001]게다가 …… 가까운걸 : 들판의 풀이 파랗게 자라났다는 말이다. 삼월 삼짇날에 들판의 풀을 밟는 풍속을 답청(踏靑)이라고 하였다.
[주D-002]난정(蘭亭)의 계음(禊飮) :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 등 명사 42인이 회계산(會稽山)의 난정에 모여 재앙을 쫓는 계사(禊事)를 행하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지은 일을 말하는데, 왕희지가 지은 〈난정기(蘭亭記)〉에 그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다.
매세(每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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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상마다 모두 젖는 해마다 겪는 이 일이여 / 每歲床床漏
지겨운 장마 막으려 한들 어찌 될 일이겠나 / 愁霖撥不開
이엉을 이으려고 해도 지금 와선 늦은 일 / 于茅今晚矣
세찬 빗줄기 때를 만나 벌써부터 퍼붓는걸 / 其雨已時哉
창문은 부서져 나가 밝은 달빛 맞기 좋고 / 窓破宜明月
뜨락은 마냥 한가해서 푸른 이끼 돋기 좋아 / 庭閑可綠苔
다만 부끄러운 것은 축축이 젖은 곳 피하려고 / 只慚霑濕處
우산 받치고 혼자서 어슬렁거리는 꼬락서니 / 持傘獨低廻
[주D-001]침상마다 …… 일이여 : 두보(杜甫)의 시에 “침상마다 지붕 새어 마른 곳 하나 없는데, 삼대 같은 빗발은 끊일 줄 모르고 쏟아지네.[床床屋漏無乾處 雨脚如麻未斷絶]”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0 茅屋爲秋風所破歌》
아수(我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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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지없이 가난하게 산다 해도 / 我雖貧陋甚
조석의 끼니만은 거르지 않았다오 / 不斷朝暮炊
그저 배를 채울 수 있으면 그만이지 / 祗以謀充腹
읍지를 바란 적은 한번도 없었지요 / 何嘗望泣脂
진미를 혹 보내 주어 맛보기도 하오마는 / 珍飱時或送
만식인 걸 누구에게 속일 수나 있으리요 / 晚食有誰欺
방장이야 배부르게 먹을 줄만 알겠지만 / 方丈應徒飽
굶은 배는 시를 토해 낼 줄도 아는걸요 / 飢腸解吐詩
[주D-001]읍지(泣脂) : 기름진 음식을 가리킨다. 당(唐)나라 이하(李賀)의 〈장진주(將進酒)〉에 “고기 삶고 닭 구우니 옥 같은 기름이 지글지글, 비단 병풍과 장막에는 향긋한 바람이 에워쌌네.[烹龍庖鳳玉脂泣 羅屛繡幙圍香風]”라는 시구가 나온다.
[주D-002]만식(晚食) : 만식당육(晚食當肉)을 줄인 말로 시장이 반찬이라는 뜻인데, 보통 담박한 생활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주D-003]방장(方丈) : 음식을 사방 열 자 되는 상에 늘어놓는다는 식전방장(食前方丈)의 준말로, 보통 사치스러운 생활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수여(誰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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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고 바야흐로 유유자적하며 / 誰歟方自適
긴 파람 불다가 높이 노래하는 이는 / 長嘯或高歌
앉았을 땐 흰 해가 한없이 길다가도 / 白日坐時永
일어나면 푸른 산 갈 곳이 또 많다오 / 靑山行處多
서래와 백수를 깊이 연구하다 보면 / 西來參柏樹
내경이 연라를 생각하게도 되오마는 / 內境想煙蘿
필경엔 한 가지 큰 욕심이 있나니 / 畢竟有大欲
그것은 바로 오두막집 안락와라오 / 一區安樂窩
[주D-001]서래(西來)와 …… 되오마는 : 선 리(禪理)에 침잠하다 보면 아예 절간으로 거처를 옮겨서 본격적으로 탐구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는 말이다. 서래는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의 준말로, 달마(達磨)가 서쪽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불법(佛法)을 전한 진의(眞意)가 무엇인지를 묻는 선종(禪宗)의 화두(話頭)인데, 당(唐)나라의 조주 종심 선사(趙州從諗禪師)에게 어떤 승려가 이 화두를 거론하여 묻자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라고 대답했던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聯燈會要 卷6 趙州從諗條》 내경(內境)은 내심의 경계를 뜻하고, 연라(煙蘿)는 불교 사원의 별칭으로 쓰이는 시어이다.
[주D-002]안락와(安樂窩) : 송 (宋)나라의 철인(哲人) 소강절(邵康節)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즐겼던 오두막집의 이름이다. 그가 처음 낙양(洛陽)에 왔을 적에 비바람도 제대로 막지 못하는 허름한 집 하나를 지어 놓고는, 가끔 쌀독이 비어 굶는 생활을 하면서도 유유자적하며 스스로 안락 선생(安樂先生)이라고 일컬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史 卷427 邵雍列傳》
답청가(踏靑歌) 1수(一首) ○ 나와 유항(柳巷) 모두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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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에 모래 깔린 물빛이 맑고 / 東門沙水淸
동문에 산색이 밝게 비치는 때 / 東門山色明
대암 북쪽 깎아지른 산 아래 평탄한 곳 / 臺巖之北斷山平
갠 날 어른거리는 풀빛이 멀리 어여뻐라 / 遙憐草色浮新晴
오늘은 바로 삼월 삼짇날이니 / 今年三月又三日
어찌 찾아가서 회포를 풀지 않을쏘냐 / 盍往觀乎舒我情
내가 예전엔 잠심하여 시우의 교화를 받으면서 / 我嘗潛心時雨化
봄철에 초목이 무럭무럭 자라나듯 하였는데 / 發榮滋長如春生
중간에 그만 물욕의 해침을 받게 되었으니 / 中爲物欲所椓喪
눈과 귀가 있다 한들 귀머거리요 소경이라 / 雖有耳目聾而盲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 所以自暴與自棄
뿌리가 뽑히고 싹도 모두 타 버린 듯하였나니 / 如撥根本焦芽萌
생각하면 조석으로 속으로만 애태울 뿐 / 念之朝夕五內熱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명성의 길을 헤맸노라 / 年過知命迷明誠
초목이 싹터 자라나는 지금이 어떤 시절인고 / 草之生兮夫何時
하늘의 인덕(仁德)이 바야흐로 흘러넘치는 때 / 天之仁兮方流行
나는 몸이 쇠해서 흰머리 날리고 있소마는 / 我之衰兮鬢髮白
동행한 인아들 보소 영재가 모두 모였는걸 / 携姻婭兮集群英
음식 소반에 술동이를 좌우에다 벌여 놓고 / 盤飡樽酒列左右
담소하는 저 의기 보소 얼마나들 씩씩한지 / 談笑意氣何崢嶸
땅을 뚫고 삐죽삐죽 솟아나는 저 새싹들 / 草微抽兮新茁
행동거지 함부로 하여 감히 짓밟으면 될까 / 不敢蹴踏擧趾輕
한 덩어리 화기가 서서히 발동하는 이곳 / 一團和氣發動處
만물과 하나 되어 마음껏 노닐지 않을쏜가 / 胡不游衍元而亨
장안과 회계도 지금은 모두 적막 강산 / 長安會稽兩寂寞
시편과 필진의 이름만 부질없이 남았느니 / 詩篇筆陣空留名
[주D-001]시우(時雨)의 교화 : 공 자와 같은 성인의 가르침을 뜻하는 말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공자의 교육 방식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면서 첫 번째로 “제때에 내리는 단비처럼 교화시키는 경우가 있다.[有如時雨化之者]”고 하였는데, 그 주(註)에 “공자가 안자(顔子)와 증자(曾子)를 가르칠 때가 바로 그렇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주D-002]명성(明誠) : 유 가(儒家)에서 말하는 하늘과 사람의 도를 가리킨다. 《중용장구(中庸章句)》에 “하늘의 참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밝아지는 것을 성이라 하고, 인간이 밝아짐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참됨을 회복하는 것을 교라고 하니, 참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참되게 되는 것이다.[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장안(長安)과 회계(會稽) : 삼 월 삼짇날 물가에 나와 풍류를 즐긴 옛날 중국의 명소를 가리킨다. 두보(杜甫)의 〈여인행(麗人行)〉 첫머리에 “삼월 삼짇날 날씨도 맑게 갠지라, 장안 물가에 미인들 많이도 놀러 나왔네.[三月三日天氣新 長安水邊多麗人]”라는 구절이 보이고,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가 삼짇날에 42인의 명사와 노닐면서 지은 〈난정기(蘭亭記)〉의 무대가 바로 회계산(會稽山) 북쪽 물가였다.
이튿날에 또 한 수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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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삐 나란히 동문을 나선 답청 놀이 / 踏靑聯騎出東門
끝없이 부는 봄바람에 들판은 어른어른 / 浩蕩春風野外昏
얼근히 취했는데 붓 잡는 일을 사양하랴 / 半醉寧辭揮老筆
남은 인생 이런 술자리 얻기도 어려울걸 / 餘生難得對芳樽
극석에 이어진 산엔 구름과 연무 뒤섞이고 / 山連戟石雲煙合
대암을 에워싼 물줄기는 해와 달을 달리도다 / 水繞臺巖歲月奔
활짝 핀 진달래 꽃에 새들의 노랫소리까지 / 躑躅花開掛啼鳥
비단 병풍 아래에서 다시 할 말을 잊었노라 / 錦屛風下更忘言
요동(遼東)에서 돌아온 용부(庸夫) 사재(四宰)를 늦게 찾아가 위로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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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물 받들고 경광을 뵈러 조정에 가시다가 / 奉幣趨朝覲耿光
돌아온 흰 머리카락 고당을 환히 비추도다 / 歸來鶴髮照高堂
뜻처럼 되지 않는 일이 열에 여덟아홉이라 / 不如意事十八九
중도에 돌아오게 된 일 하늘에 호소할 수밖에 / 廻自半途呼彼蒼
사람 얼굴이 검게 된 거야 감히 싫어하랴마는 / 敢憚吾人面黧黑
누렇게 색깔 변한 말이 그저 애처로울 따름 / 只愛我馬色玄黃
뒷날 고려와 명나라의 우호가 돈독해졌을 때 / 他年上下交孚際
그 누가 알까 오늘날 길게 탄식한 이 사실을 / 誰識如今嘆息長
[주C-001]용부(庸夫) : 목은의 처삼촌인 권중화(權仲和)의 자(字)이다.
[주D-001]경광(耿光) : 임금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명 태조(明太祖)를 가리킨다. 《서경》 입정(立政)에 “문왕의 밝은 빛을 뵙는다.[覲文王之耿光]”는 말이 나온다.
[주D-002]사람 …… 따름 : 사 신의 입장에서야 감히 고생했다는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고달픈 길을 헛되이 왕래한 말을 보면 괜히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마주 보니 슬프도다 검게 변한 얼굴, 처창한 기색으로 간난신고를 얘기하네.[會面嗟黧黑 含悽話苦辛]”라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3 贈王二十四侍御契》 또 《시경》 주남(周南) 권이(卷耳)에 “저 높은 산등성이 어떻게 올라갈까, 내 말이 피곤해서 누렇게 변했으니.[陟彼高岡 我馬玄黃]”라는 말이 나온다.
예 천군(醴泉君)의 내외손이 모여서 술을 마시며 이름을 사촌회(四寸會)라고 하였는데, 해마다 두 사람씩 번갈아 가며 술과 음식을 마련하곤 하였다. 그런데 내가 근심과 병으로 지낸 십여 년 동안 이 모임도 거의 열리지를 않았는데, 이 오성(李鼇城)이 무너진 기강을 다시 세울 목적으로 삼월 초하룻날에 빈객을 많이 초청하고 크게 풍악을 연주하면서 예전보다 열 배나 더 성대하게 잔치를 마련하였다. 이에 다음 날에 시 한 수를 추록(追錄)하여 오성 좌하(座下)에 증정하면서 한번 웃어 보도록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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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옷 무더기 속에 울려 퍼지는 관현악 / 羅綺叢中絃管聲
주인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 오성이시라네 / 主人云是李鼇城
난리 끝에 이 모임을 누가 또다시 마련했노 / 亂餘此會誰重辦
병든 뒤에 상봉하니 이 몸도 살아날 것 같네 / 病後相逢我再生
광달하다고 일컬어지는 왕사의 풍류라면 / 王謝風流稱曠達
태평 시대 구가하는 최로의 벌열이라 할까 / 崔盧閥閱値升平
백발로 누차 춤 춘 것을 비웃질랑 말아 주오 / 白頭屢舞莫嘲笑
야반에 취해서 돌아가니 닭이 벌써 울었습디다 / 夜半醉歸雞已鳴
[주D-001]비단옷 무더기 : 수 많은 기녀(妓女)들을 가리킨다. 기녀를 표현한 소식(蘇軾)의 시에 “소도가 봉우리 터뜨리니 봄을 못 이기는 듯, 비단옷 무더기 속에 단연코 으뜸일세.[小桃破萼未勝春 羅綺叢中第一人]”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3 答陳述古》
[주D-002]광달하다고 …… 풍류라면 : 왕사(王謝)는 세상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함께 어울려 노닐었던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와 사안(謝安)의 합칭으로, 목은 자신을 가리킨다.
[주D-003]태평 시대 …… 할까 : 최 로(崔盧)는 위진(魏晉) 시대 때부터 당대(唐代)까지 장기간 조정에서 현달한 산동(山東)의 최씨(崔氏)와 노씨(盧氏) 집안의 합칭으로,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권한공(權漢功)의 가문을 가리킨다. 목은은 권한공의 아들인 권중달(權仲達)의 사위이다.
서향화(瑞香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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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화가 움 속에서 흐드러지게 피었기에 / 窨中開遍瑞香花
청명일에 받들고 나오니 향기가 집안 가득 / 擎出淸明香滿家
우선 코를 대고 나서 두 눈을 닦고 다시 보니 / 鼻觀先通揩兩眼
연분홍 물든 가지 위에 다른 꽃잎이 여기저기 / 淡紅枝上散餘花
왜송(矮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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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솔도 높은 언덕에서 머리에 눈을 듬뿍 이고 / 松在高岡雪壓低
바위에 뿌리내린 채 절벽에 기대어 섰으련만 / 根盤頑石倚雲梯
가련토다 소나무 역시 아녀를 따를 줄 알다니 / 可憐亦解隨兒女
어쩌면 익살을 부리려고 이렇게 처신하는 듯도 / 用舍行藏似滑稽
자영(自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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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멀고 먼 삼한 땅에서 / 迢遞三韓地
을씨년스러워라 목옹의 생활이여 / 蕭條一牧翁
하늘에 순응하며 명이 있음을 안다마는 / 樂天知有命
공도 없이 국록을 축내는 것이 부끄러워 / 食祿愧無功
얼굴이 두껍기는 쇠가죽보다 더하고 / 顔厚牛皮讓
몸이 가볍기는 매미 날개와 같다 할까 / 身輕蟬翼同
항상 읊조리는 소리 어디서 끝나는가 / 謳吟音何竟
그저 빈풍의 노래 잇고 싶은 마음뿐 / 祗欲繼豳風
[주D-001]하늘에 …… 안다마는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하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명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는다.[樂天知命故不憂]”는 말이 나온다.
[주D-002]그저 …… 마음뿐 : 고 향에 돌아가 농촌에서 살고 싶다는 말이다. 《시경》 빈풍(豳風)에 농촌 생활을 노래한 시 ‘칠월(七月)’이 나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인데, 원(元)나라 조맹부(趙孟頫)가 사계절 농사의 일을 그림으로 그린 빈풍도(豳風圖)가 유명하다.
즉사(卽事)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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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 깊은 곳에 하루해도 길고 긴데 / 海山深處日行遲
백발의 나는 지금 너무나도 쇠했어라 / 白髮吾今甚矣衰
문빗장 걸어두는 것도 자중해서가 아닌걸 / 門設常關非自重
시를 고치고 또 고친들 결국 무슨 소용이리 / 詩成又改竟何爲
새싹은 벌써 푸릇푸릇 대지를 뒤덮으려 하고 / 句萌已達將包地
꽃봉오리는 바짝바짝 나뭇가지를 다 채울 듯 / 蓓蕾相粘欲滿枝
일년 중에 가장 좋은 봄 경치를 맞고서도 / 占得一年春好處
혜련의 지당 꿈을 아직도 꾸지 못하다니 / 依然夢斷惠連池
들판에는 봄 그늘 바람결엔 새소리 / 春陰垂野鳥呼風
동산에 산보 나온 백발 노인 한 사람 / 散步東山白髮翁
세상일 분분하니 떠맡고 나서야 되겠다만 / 世事紛紛當自任
시인의 마음 끝없으니 누가 또 막으리요 / 詩情浩浩有誰窮
이두의 오묘한 문장 미친 듯 좇아가면서도 / 狂追李杜文章妙
소조의 성대한 공업 함부로 견주려 하시는가 / 妄擬蕭曹功業豐
예나 이제나 한 몸에 겸비한 자는 드문 터에 / 今古一身雙美少
늘그막에 어린애처럼 구는 모습이 가련토다 / 却憐臨老似童蒙
끝없이 부는 봄바람 천지간에 가득해서 / 東風浩蕩滿乾坤
늙은이 한 사람도 사립문 열어젖혔다오 / 一箇老翁開蓽門
병 끝에 괜히 향리를 시름없이 바라보다 / 鄕里病餘空悵望
조용히 시서를 들추면서 음미해 보기도 / 詩書靜裏或尋溫
산빛은 푸르름 쌓여 하늘로 뻗쳐 올라가고 / 山光積翠高凌漢
버들색은 누렇게 떠서 마을을 엷게 비추는 때 / 柳色浮黃淡映村
몸도 점점 한가해지고 시대도 태평해지는걸 / 身漸得閑時漸泰
장편이고 단율이고 많은 말 할 것이 있으리까 / 長篇短律豈多言
[주D-001]혜련(惠連)의 …… 못하다니 : 봄 풍경에 걸맞은 멋있는 시구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남조(南朝) 시대 송(宋)나라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시상(詩想)에 골몰하다가 꿈속에서 족제(族弟)인 사혜련(謝惠連)을 만나 보고는 ‘지당생춘초(池塘生春草)’라는 명구(名句)를 지어냈다는 일화가 전한다. 《南史 卷19 謝惠連列傳》
[주D-002]이두(李杜) : 시선(詩仙)과 시성(詩聖)으로 각각 일컬어지는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병칭이다.
[주D-003]소조(蕭曹) :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도와 난세를 평정한 개국 공신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의 병칭이다.
[주D-004]예나 …… 가련토다 : 이두와 소조의 재질을 겸비한 인물은 드문 법인데도, 목은 자신은 마치 어린애처럼 두 가지 모두를 갖추려고 하니 생각해 보면 딱한 일이라는 뜻의 자조적(自嘲的)인 표현이다.
한 상서(韓尙書)에게 서간을 띄우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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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와 내 몸은 단지 하나의 마음이니 / 天地吾身只一心
다른 물건이 감히 침노할 수 없느니라 / 更無餘物敢相侵
뜬구름이 허공에서 멋대로 일어난다 해도 / 浮雲縱向虛空起
일월은 여전히 위에서 온 누리를 비추도다 / 率土猶蒙日月臨
당상에서 바라보시는 부모님 얼마나 존엄하며 / 父母尊嚴堂上看
거울을 들여다보는 신명은 또 얼마나 정직한가 / 神明正直鏡中尋
향 피우고 고요히 앉아 충효를 생각하며 / 焚香靜坐思忠孝
공명이 사림에 으뜸이 되도록 해야 하리 / 當使功名冠士林
[주C-001]한 상서(韓尙書) : 유항(柳巷) 한수(韓脩)의 아들이다.
[주D-001]천지와 …… 없느니라 : 사람이 태어날 때 품부받은 천지의 공명정대한 마음을 항상 몸에 지니면 삿된 것들이 감히 범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불범정(邪不犯正)’의 뜻을 함축한 말이다.
[주D-002]거울을 …… 정직한가 : 천지신명이 마치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환히 살필 것이라는 말이다. 《춘추좌전》 장공(莊公) 32년 조(條)에 “신은 총명하고 정직하여 한결같이 변함이 없는 존재이다.[神 聰明正直而壹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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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합창 소리에 새벽 꿈을 깨고 보니 / 百鳥聲中曉夢驚
날은 완전히 개지 않고 봄 그늘만 자욱해라 / 春陰漠漠未全晴
공명은 충분하니 무심히 지낸 지 오래다만 / 功名足矣無心久
고율만은 예전대로 손 가는 대로 짓노매라 / 古律依然信手成
황조도 머물 곳을 안다고 인정을 받았으니 / 黃鳥容他共知止
백구가 맹세 어겼다고 나를 또 탓할밖에 / 白鷗嗔我又寒盟
평생 소원이 무엇인지 누가 알 수 있을까 / 平生志願誰能識
해 뜨는 동산의 봉황 소리 듣고 싶은 것을 / 欲向朝陽聞鳳鳴
[주D-001]황조(黃鳥)도 …… 탓할밖에 : 꾀 꼬리도 자기가 머물러 있을 곳을 아는 터에, 목은 자신은 고향에 돌아가서 물새와 노닐겠다는 옛날부터의 약속을 저버리고 있다는 말이다. 《시경》 소아 면만(緡蠻)에 “예쁜 꾀꼬리가 언덕 모퉁이에 머물렀네.[緡蠻黃鳥 止于丘隅]”라는 말이 나오는데, 공자가 이 시를 해설하면서 “꾀꼬리도 자기가 머물러 있을 곳을 아는데, 사람이 새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於止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라고 한 말이 《대학장구》에 나온다.
[주D-002]해 뜨는 …… 것을 : 어 진 신하가 밝은 임금을 만나 태평 시대를 이뤄 보고 싶은 소망을 말하는데, 《시경》 대아(大雅) 권아(卷阿)의 “봉황새가 우네, 저 높은 언덕에서. 오동나무 자라네, 해 뜨는 저 동산에서. 무성한 오동나무 숲과 봉황새 소리 어울리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菶菶萋萋 雝雝喈喈]”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사전(賜田)의 경작을 권하면서 감회가 일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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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안양 땅에 농토를 하사받았는데 / 老向安陽受賜田
개간이 안 된 채 황폐해진 이유를 물었더니 / 田荒不闢問胡然
군량으로 내 준 곡식이 그동안 소출의 절반이요 / 軍興收稅嘗居半
아전의 세금 독촉이 또 예전의 갑절이라 하네 / 吏酷催科又倍前
너희가 우선 내 뜻을 따라 널리 땅을 간다면 / 汝且廣耕如我志
나도 응당 적게 거둬 어깨를 가볍게 해 주리니 / 吾當薄斂息渠肩
끝내는 배를 두드리며 함께 안락을 누리면서 / 終期鼓腹同安樂
성군이 천만년 사시도록 축원을 하자꾸나 / 上祝聖君千萬年
문생(門生)인 김 소경(金少卿)이 임주(林州)에서 왔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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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은 바로 마산 동쪽 가까이에 있는 고을 / 嘉林近在馬山東
최근 몇 년 사이에 마을이 텅 비긴 하였지만 / 近歲閭閻一掃空
적을 피해 살아남은 백성이 그래도 있건마는 / 尙有殘民工避賊
농사를 잘 짓게 보살펴 주는 관리는 볼 수 없다네 / 更無修吏或明農
희미한 안개와 달빛 속에 풍악 울리던 용연이요 / 龍淵絃管迷煙月
단비 내리면 쟁기 매고 밭에 나갔던 학야로세 / 鶴野鋤犁逐雨風
소년 시절 눈으로 본 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 記得少年親目擊
지금은 괜히 늙은이를 시름에 잠기게 하는구나 / 如今惱殺白頭翁
[주D-001]가림(嘉林)은 …… 고을 : 문생(門生)이 떠나온 임주(林州)는 목은의 고향인 한산(韓山)과 바로 지척에 있다는 말이다. 가림은 충청도 임천(林川)의 옛 이름으로 임주라고도 하며, 마산(馬山)은 한산의 옛 이름이다.
유유(悠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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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과 이 세상 얼마나 유유하며 / 悠悠身與世
하늘이 주신 품성 또 얼마나 호호한가 / 浩浩性其天
자공은 말을 하면 자주 적중하였지만 / 賜也言猶中
도를 전해 받은 것은 증삼이었다네 / 參乎道已傳
거문고 소리 드문드문 저문 봄날의 일과 / 瑟希春已暮
일년이 하루 같았던 누항의 그 생활이여 / 巷陋日如年
만고토록 전하는 풍류 멀기만 해서 / 萬古風流遠
이 몸 지금 혼자서 실의에 잠겼다오 / 吾今獨惘然
[주D-001]자공(子貢)은 …… 증삼(曾參)이었다네 : 《논 어》 선진(先進)에 “자공은 불행히도 말을 잘해서 억측을 하면 자주 들어맞았다.[億則屢中]”는 공자의 말과 “증삼은 노둔한 편이다.[參也魯]”라는 공자의 평이 나오고, 《근사록(近思錄)》 위학(爲學)에 “증삼은 노둔하기 때문에 마침내 도를 얻었다.[參也竟以魯得之]”는 정명도(程明道)의 말이 나온다.
[주D-002]거문고 …… 일과 : 저 문 봄날[暮春]에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쐰 뒤에 돌아오겠다고 말한 증점(曾點)의 유유자적(悠悠自適)한 기상을 가리킨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소망을 묻자, 증점이 거문고 타기를 드문드문하다가[鼓瑟希] 그렇게 대답한 내용이 《논어》 선진에 나온다.
[주D-003]일년이 …… 생활이여 : 안 빈낙도(安貧樂道)를 한 안회(顔回)의 생활을 말한다. 《논어》 옹야(雍也)에 공자가 “한 그릇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누항(陋巷)에서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한결같이 변치 않으니, 안회는 참으로 어질다.”고 칭찬한 말이 나온다.
자영(自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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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기러기 전송하며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 目送飛鴻滅沒間
세월은 어느새 흘러 귀밑머리 희끗희끗 / 年光荏苒鬢毛斑
가난해 약도 조제 못해 병은 이미 골수에 / 貧難合藥病入髓
늙어도 고향에 못 가는 몸 얼굴이 화끈화끈 / 老不歸田慚滿顔
그래도 가끔씩 대낮부터 술 들면서 소일하고 / 樽酒時時消白日
누대에 오르면 곳곳마다 푸른 산이 비치나니 / 樓臺處處映靑山
어디 한번 보세 이런 풍류 또 있는지 / 看來却是風流甚
나처럼 한가한 사람 이 세상에 없으리라 / 更有何人似我閑
우연히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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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그늘이 자욱하게 교외 들판에 드리운 때 / 漠漠春陰野外低
서린의 높은 가지 위엔 금비둘기 노랫소리 / 西隣高樹錦鳩啼
여기저기 번져 가는 궁항의 이끼 자국이요 / 苔痕點綴生窮巷
희미하게 비쳐 오는 소계 너머 산빛이라 / 山色稀微隔小溪
적멸이 절로 묘한 마음을 어떻게 용납하랴 / 寂滅不容心自妙
소요 또한 제물한다면 아무래도 곤란할 듯 / 逍遙又恐物難齊
우리 집안 사업을 아는 이 누구 있으리요 / 吾家事業無人識
소세하고 분향하고 노처를 마주하는 생활 / 盥櫛焚香對老妻
[주D-001]적멸(寂滅)이 …… 생활 : 불 교(佛敎)와 도교(道敎)는 목은의 마음과 생활을 담아내기에는 유교(儒敎)에 비해서 미흡한 면이 있다는 말이다. 적멸은 열반(涅槃)과 동의어로 불교를 가리키고, 소요(逍遙)는 《장자》의 편명으로 도교를 가리키고, 우리 집안 사업은 바로 유교를 가리킨다. 장자는 이 세상의 상대적인 차별성을 지양하여 만물 일체를 완전히 평등한 세계로 인식해야 한다는 제물(齊物)의 사상을 주창하는데,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는 이와 반대되는 뜻으로 “각 존재가 똑같지 않은 것이야말로 존재 일반의 속성이다.[夫物之不齊 物之情也]”라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왜적이 영해(寧海)를 침범했으므로 강릉도 원수(江陵道元帥)를 급히 떠나게 했다는 말을 듣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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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국의 바다 물결 노하면 하늘을 차는지라 / 蘂國鯨濤怒蹴天
큰 배 띄울 곳 없다고 예부터 일컬어졌으니 / 古稱無處泛樓船
왜적들이 어찌 감히 함부로 쳐들어 오랴마는 / 豈容賊輩敢輕犯
민생이 행여 불안하게 여기지 않을까 두려워라 / 祗恐民生難自全
경진의 못가 누대에는 풍월이 홀로 갇혀 있고 / 慶晉池臺鎖風月
등화의 봉홧불이 산천을 잇따라 비추는 때 / 登和烽火照山川
언제쯤에나 묘당에서 근심 걱정을 안 해도 될꼬 / 廟堂憂念何時已
지금 또 장수 보내면서 동문의 송별연 열었구나 / 遣率東門又敞筵
[주D-001]예국(蘂國) : 강릉(江陵)의 옛 이름이다.
[주D-002]경진(慶晉) : 경주(慶州)와 진주(晉州)를 말한다.
[주D-003]등화(登和) : 함경도 안변(安邊)의 옛 이름인 등주(登州)와 영흥(永興)의 옛 이름인 화주(和州)를 가리킨다.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이 화공(畫工)에게 명하여 원암연집도(元巖讌集圖)를 그리게 하였으니, 이는 현릉(玄陵)을 추모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고는 승지인 막내아들 정수(庭秀)를 시켜서 이 그림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며 그 뒤에 글을 써넣게 하였다. 내가 살펴보건대, 산야(山野)의 나무 숲이 야외의 막사에 어리어 비치는 광경이 완연히 눈에 들어오는 가운데, 여러 원로들이 그 옆에서 연회를 베풀며 노니는 풍채가 그야말로 한 시대를 압도하면서 후세를 고무시키기에 충분하였으므로 그 일을 곧장 써서 돌려주고는, 나 역시 감회를 가눌 수가 없기에 긴 노래를 지어 부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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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릉이 남으로 몽진했다 하늘 끝에서 돌아오며 / 玄陵南幸天涯廻
원암에 잠시 머물렀던 산의 형세 높기도 한데 / 元巖駐蹕山崔嵬
광활한 벌판에 나무 숲 그림자 어리비치고 / 樹林掩映原野闊
그 속에 티끌 하나 없이 야외 막사 우뚝해라 / 氈廬中峙無纖埃
당시 좌우에 있던 일곱 분 원로로 말하면 / 當時七老在左右
덕도 높고 재능도 뛰어난 출중한 어르신들 / 嵬然碩德兼雄才
사람들 모두 주석처럼 중하게 의지하였나니 / 群情倚重似柱石
단청에 찬연히 빛나는 국가의 동량이셨어라 / 丹靑煥赫梁棟材
송악을 향하는 기쁜 기색 흔연히 넘쳐흐르면서 / 欣欣喜色向松岳
이제는 능묘를 참배하며 먼지 떨고 물 뿌릴 때 / 汛掃陵廟眞時哉
풍악 울리는 술자리 얼마나 즐거우셨을까 / 樂矣飮酒聞絃歌
태평의 화기가 바야흐로 한데 모여들었어라 / 太平和氣方鼎來
회산이 맨 먼저 지은 시가 주옥처럼 떨어지자 / 檜山首題珠玉落
뒤이어 휘황한 시들 금쟁반 구슬이 쌓이는 듯 / 璀璨似向金盤堆
제공이 잇따라 화운한 시 모두 절창인 가운데 / 諸公賡和皆絶唱
익재의 노련한 붓이 삼태를 또 환히 비췄어라 / 益齋老筆輝三台
곡성의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의미심장한고 / 曲城用意何深長
운대처럼 그림으로 후세에 모범을 보였는걸 / 圖形垂範如雲臺
목은 소년은 당시의 풍류에 끼이지도 못했는데 / 牧童不在絲竹列
서문을 짓자니 와부로 괜히 시끄럽게 떠드는 듯 / 作序瓦缶鳴如雷
그림 뒤에 이름 넣는 걸 바란 게 또 아니거니 / 掛名圖後又非望
당대의 문장의 대가들은 시기하지 마시기를 / 當世大手休相猜
대신은 바로 한 나라의 원기가 되는 만큼 / 大臣於國是元氣
혈맥을 유통시켜 재앙의 싹을 없애야 할 터 / 流通血脈消禍胎
뒷사람들은 이것을 그림으로만 보지 말고 / 後人莫作繪事看
무너진 삼강 일으키는 절의를 유념할지어다 / 節義扶起三綱頹
더구나 자제의 입장에서 감히 자포자기해서야 / 況於子弟敢自棄
뜨락 속의 무성한 느티나무 돌아봐야 할지니 / 歸視鬱鬱庭中槐
[주C-001]그 뒤에 …… 하였다 :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이 《목은문고》 제9권 〈원암의 연회에서 창화한 시의 서문[元巖讌集唱和詩序]〉에 이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주D-001]단청(丹靑) : 공신(功臣)의 초상화를 뜻하는 말이다.
[주D-002]회산(檜山) : 회산부원군(檜山府院君) 황석기(黃石奇)를 말한다.
[주D-003]운대(雲臺) : 한 명제(漢明帝)가 공신의 초상화를 그려서 걸어 놓은 누대(樓臺)의 이름이다.
[주D-004]서문을 …… 듯 : 훌 륭한 사람도 많을 텐데 자격도 없는 목은 자신이 외람되게 서문을 짓게 되었다는 뜻의 겸사이다. 《초사(楚辭)》에 나오는 굴원(屈原)의 〈복거(卜居)〉에 “웅장한 소리를 내는 황종은 내팽개치고, 질그릇 두드리는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黃鍾毁棄 瓦釜雷鳴]”는 표현이 보인다.
[주D-005]뜨락 …… 할지니 : 주 (周)나라 궁정에 삼공(三公)을 상징하는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어 놓은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부친처럼 자제들도 재상의 지위에 올라서 국가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 송(宋)나라 왕호(王祜)가 자기 집 뜨락에 세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어 놓고는 “내 자손 중에 반드시 삼공이 되는 자가 있을 것이다.[吾之後世 必有三公者]”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의 아들인 왕단(王旦)이 명재상이 되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宋史 卷282 王旦列傳》
맑게 갠 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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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하도 맑아 나가서 노닐까 하였는데 / 天晴欲游眺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이 너무도 세차기에 / 拂面有狂風
문을 닫고 방에 들어와 도로 틀어박힌 채 / 閉戶還深坐
시나 읊고 있으려니 근공 같은 생각이 드네 / 吟詩似近攻
육신은 한가해서 세월도 모두 잊고 살고 / 身閑忘歲月
마음은 드넓어서 허공도 감쌀 수 있건마는 / 心廣裹虛空
봄나들이 흥취가 시시때때로 일어나서 / 愧底尋春興
병든 늙은이 속 썩이니 낯이 화끈거리누만 / 時時惱病翁
[주D-001]시나 …… 드네 : 뜻 은 다른 나라에 두고서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려고 한 전국 시대 진(秦)나라 범수(范睢)의 책략인 ‘원교 근공(遠交近攻)’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인데, 여기서 나가서 노니는 것을 원교(遠交)에 비유하고 시 읊는 것을 근공(近攻)에 비유한 목은의 착상이 기발하다.
백발(白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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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머리칼 봄바람에 나부끼는데 / 白髮散春風
나는 새가 병든 노인 뒤따라 오네 / 飛禽隨病翁
나와 만물 모두가 자연의 변화 따라 / 物我共乘化
호연한 천지 사이에 함께 살아가도다 / 浩然天地中
벗 찾으며 정답게 노래하는 새들이여 / 嚶嚶求友聲
너희도 서로들 느껴서 아는 모양이지 / 爾復相感通
나에게도 촌노인이 말 건네 오며 / 野老來致言
자기 집에 감칠맛 나는 술이 있단다 / 吾家酒味濃
손에 손을 잡고 향초를 깔고 앉아 / 相携藉芳草
대작하노라니 어느새 불콰해진 뺨 / 對酌顔浮紅
해질 녘에 우리 각자 헤어졌다가 / 黃昏各辭去
달 뜨면 앞산에서 다시 모이세 / 明月當前峯
[주D-001]벗 …… 새들이여 : 《시경》 소아(小雅) 벌목(伐木)에 “새들이 정답게 지저귀나니, 각자 자기 벗을 찾는 소리로다.[嚶其鳴矣 求其友聲]”라는 말이 나온다.
특별히 유항(柳巷)의 집에 들러서 자제인 상서(尙書)의 병세가 어떤지 물어보고는 너무 늦게 찾아왔다고 사과를 하였더니, 벌써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하면서 술자리를 베풀기에 얼근히 취해 돌아와서 시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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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린에 문병하며 나의 무례를 사과하고 / 問疾西隣謝我頑
누대에서 술잔 들며 함께 얼굴 활짝 폈네 / 登樓擧酒共怡顔
청명의 뒤라 푸른 봄날도 반쯤 지난 시절 / 靑春過半淸明後
흐릿한 날씨에 흰 해가 중천에 오르는 때 / 白日將中暗淡間
화사한 얼굴 감추고서 꽃봉오리 가지에 가득 / 蓓蕾滿枝藏粉面
트레머리 과시하며 안개 낀 봉우리 문 앞으로 / 峯巒當戶逞煙鬟
얼근히 취해 언제 다시 봄나들이 또 가자고 / 醉來更約尋芳去
푸른 반지 모양으로 물이 휘두른 대암으로 / 水遶臺巖似碧環
내원당(內願堂)에서 광평(廣平) 시중(侍中)의 글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산수화 병풍의 시를 청하기에 이를 인하여 세 수의 시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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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사미가 내원당에서 찾아왔을 때 / 昨日沙彌芮院來
그림을 보고 오랜만에 함박웃음이 번졌다오 / 眼中一笑粲然開
광평의 산수화 병풍 어찌나 마음에 드는지 / 廣平山水屛風好
공손히 붓 잡고 시를 써서 상공에게 바쳤다오 / 筆法詩聯照上台
아침에 소세하니 세상 밖으로 벗어난 듯 / 朝來盥櫛思飄然
송산으로 늙은 선승 문득 찾아가고 싶네 / 欲向松山訪老禪
지금 세상에 고륙과 같은 단청 솜씨 없으니 / 當世丹靑無顧陸
뒷날 이런 그림 누가 또 전할지 모르겠네 / 不知他日有誰傳
병든 뒤로 높이 노닐며 매양 자부하였나니 / 病後高游每自誇
푸른 산 어딜 가든 간에 범왕의 집이라고 / 靑山到處梵王家
조계의 한 방울 물 참으로 얻기 어려우니 / 曹溪一滴眞難得
귀옹이나 찾아가서 함께 차 한 잔 마셔 볼까 / 欲問龜翁共喫茶
[주D-001]고륙(顧陸) : 동 진(東晉)의 화가 고개지(顧愷之)와 남조(南朝) 시대 송(宋)나라의 화가 육탐미(陸探微)의 병칭이다. 고개지는 화절(畫絶)ㆍ치절(癡絶)ㆍ재절(才絶)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육탐미는 인물 및 산수화에 독보적(獨步的)인 존재로 일컬어졌는데,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에서 장회관(將懷瓘)이 “고개지는 정신을 얻었고 육탐미는 골수를 얻었다.[顧得其神 陸得其骨]”고 평하였다.
[주D-002]푸른 …… 집이라고 : 청 산 전체가 하나의 사찰이라는 뜻으로, 산하대지(山河大地) 모두가 부처의 화신이라는 말과 같은데, 목은 자신의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발을 딛는 곳 모두가 불국토로 변하는 불교 최고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말이다. 범왕의 집은 불교 사원을 가리킨다.
[주D-003]조계(曹溪)의 …… 볼까 : 이 세상에서 경지가 높은 진정한 선승(禪僧)을 찾아보기 어려우니, 목은 자신이 믿는 귀옹을 찾아가서 한번 호흡을 나누고 싶다는 말이다. 귀옹은 귀곡 각운(龜谷覺雲)을 가리키는데, 목은이 환암 혼수(幻菴混修)와 함께 그의 선(禪)의 경지를 높이 평가하면서 친하게 교류한 인물이다. 육조대사(六祖大師)로 불리는 당(唐)나라 혜능(慧能)이 조계산(曹溪山) 보림사(寶林寺)에서 선종의 정통으로 일컬어지는 남종(南宗)을 개창하였기 때문에 조계가 선종의 별칭으로 쓰이게 되었는데, 오대(五代)의 고승인 법안(法眼)에게 승려가 찾아와서 “어떤 것이 조계의 한 방울 물[曹溪一滴水]이냐.”고 물었다가 “이것이 바로 조계의 한 방울 물이다.”라는 대답을 듣고는 활연 대오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釋氏通鑑 卷12 韶國師》 또 당나라의 조주 종심 선사(趙州從諗禪師)가 누구에게나 “차 한 잔 마시고 가라.[喫茶去]”고 하여, 일상생활 속에 선(禪)의 묘리(妙理)가 들어 있음을 보여 준 선종의 화두(話頭)가 전한다. 《五燈會元 卷4 趙州從諗》
광평 이 시중(李侍中)이 소장한 열두 폭 산수화 병풍을 보여 준 것에 감사드리며 지은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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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春)
구름은 쌓이고 쌓이고 물은 또 돌고 돌고 / 雲重重又水洄洄
붉고 하얀 산꽃들 흐드러지게 피어 있네 / 紅白山花爛熳開
술병 들고 떠나고 싶은 봄나들이 흥취여 / 便欲尋春携酒去
새들의 노래 속에 두세 잔 기울여 봤으면 / 鳥啼聲裏兩三杯
하(夏)
나무 숲은 어둑어둑 전각은 밝은 단청빛 / 綠樹沈沈殿閣明
백운 깃든 청산에는 여름에도 서늘 기운 / 白雲靑嶂夏涼生
행인들 무슨 일 있어 골짜기로 들어오나 / 行人入谷緣何事
도성 거리 한증막 같은 무더위 때문이렷다 / 政是蒸敲滿鳳城
추(秋)
가을이 산 숲에 들어오니 어느새 엷은 황색 / 秋入山林著淡黃
구름 모습 물의 자태 갈수록 처량해지누나 / 雲容水態轉凄涼
전원에 아직도 못 돌아가는 나의 이 인생이여 / 吾生尙未歸田去
살진 물고기 누런 벼이삭 고향에 가득하련마는 / 魚稻今應滿故鄕
동(冬)
옥 같은 몇 봉우리 차가운 하늘에 비치고 / 數峯如玉照寒天
눈에 눌리는 장송이요 얼어붙은 돌샘이라 / 雪壓長松凍石泉
더구나 지금은 노승이 선정(禪定)에 든 때 / 況是老僧方入定
교교해서 속세의 인연 찾아볼 곳이 없어라 / 皎然無處覓塵緣
강월(江月)
강물은 동으로 흐르고 달은 서쪽을 향하고 / 江水東流月向西
오래된 절간에는 사방에 솔바람 소리로세 / 松風四面古招提
위와 아래 서로들 사귀는 곳을 한 번 보소 / 請看上下相交處
찬 빛과 냉한 그림자 본래 하나의 달이라오 / 冷影寒光本自齊
폭포(瀑布)
반공 중에서 떨어지는 태백의 은하라면 / 太白銀河落半天
어여쁘게도 그려낸 서응의 계파라 할까 / 徐凝界破儘堪憐
생각하면 우스워라 땀 흘리는 한산자여 / 汗流自笑韓山子
시 한 편 짓느라고 병풍만 자꾸 대하다니 / 更對屛風賦一篇
송정(松亭)
솔 아래 띳집에 앉아 있는 몇 사람 / 松下茅齋著幾人
평평한 반석은 표범 가죽 방석인 듯 / 石盤平淨豹皮茵
목옹은 그저 안개와 놀만 생각할 뿐 / 牧翁謾抱煙霞想
몇 년 새에 흰머리만 새로 희끗희끗 / 種種年來白髮新
회암(檜巖)
회나무 울창하건마는 바위는 계절을 아예 몰라 / 檜樹蒼蒼石勢頑
하늘도 차가운데 나뭇잎 사이로 비바람 소리 / 葉間風雨半天寒
노승은 삼매에서 나와 성색을 모두 잊었어도 / 老僧出定忘聲色
머리 위의 광음은 총알같이 줄행랑 놓네 / 頭上光陰走似丸
범찰(梵刹)
몇 겹의 누각이 구름 사이로 솟았는데 / 重重樓閣出雲間
대웅전이며 산문이며 눈빛이 차가워라 / 大殿三門雪色寒
저잣거리처럼 산 아래 왕래하는 사람 / 山下往來人似市
모르겠네 몇 분이나 유관을 쓰셨는지 / 不知幾箇是儒冠
선궁(仙宮)
허공을 기대고 벽처럼 서 있는 벼랑 위에 / 壁立危峯倚半空
푸른 창 붉은 문은 바람도 없이 고요해라 / 綠窓朱戶靜無風
장생이 어찌 꼭 비결(祕訣)처럼 되겠는가 / 長生未必如眞訣
물외에 소요하면 낙이 그 속에 있는 것을 / 物外逍遙樂在中
등왕각(滕王閣)
강물이 하늘과 맞닿은 곳 낙하와 고목이요 / 落霞孤鶩水浮空
구름 날고 비 오는 속의 화동과 주렴이라 / 畫棟珠簾雲雨中
그 당시의 강 귀신이 나를 혹 알아줄지 / 當日江神知我否
언제 다시 돛배에 잠깐 바람을 빌려 줄까 / 何時更借半帆風
황학루(黃鶴樓)
내 생각 유유해라 백운과 황학이여 / 白雲黃鶴思悠悠
눈 가득 시름일세 방초와 청천이라 / 芳草晴川滿眼愁
최호의 시 하나가 천지를 비웠나니 / 崔顥一題天地闊
적선의 사조 또한 풍류라 하리로세 / 謫仙詞調亦風流
[주D-001]위와 …… 달이라오 : 찬 빛은 위로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냉한 그림자는 아래로 강물에 비친 달을 가리키는데, 본체와 현상이 둘이 아닌 묘리(妙理)를 시적으로 비유한 절묘한 표현이다.
[주D-002]반공 …… 은하라면 : 이백(李白)의 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에 “날리며 곧장 내려오는 삼천 척의 물줄기여, 어쩌면 공중의 은하수가 떨어지는 건 아닐는지.[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라는 장쾌한 표현이 나온다.
[주D-003]어여쁘게도 …… 할까 : 당(唐)나라 서응(徐凝)의 시 〈여산폭포(廬山瀑布)〉에 “예나 이제나 길게도 흰 비단처럼 날리나니, 한 가닥이 경계 나눠 청산의 색을 부수누나.[今古長如白練飛 一條界破靑山色]”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4]생각하면 …… 대하다니 : 여산폭포와 같은 곳에 가서 시원하게 무더위를 쫓지는 못하고 그저 병풍의 폭포 그림만 보면서 시를 짓다니 자기가 생각해도 우스운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주D-005]강물이 …… 주렴이라 : 당 (唐)나라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나오는 “저녁노을은 짝 잃은 따오기와 나란히 떠서 날고, 가을 강물은 드넓은 하늘과 한 가지 빛이로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는 말과, “채색 기둥 위에는 아침마다 남포의 구름이 날고, 붉은 주렴을 저녁에 걷어올리면 서산의 비가 내린다.[畫棟朝飛南浦雲朱簾暮捲西山雨]”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D-006]그 …… 줄까 : 왕 발의 배가 마당(馬當)에 정박하고 있을 때, 중원의 강물을 맡고 있다는 노인이 나타나서 “내일 홍주(洪州)의 등왕각에서 글을 지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라.”고 하고는, 바람을 불어 주어 700리나 떨어진 홍주까지 하룻밤 사이에 닿게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類說 卷34 摭遺 滕王閣記》
[주D-007]내 …… 청천(晴川)이라 : 당 나라 최호(崔顥)의 〈등황학루(登黃鶴樓)〉에 나오는 “한 번 떠나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황학이요, 천년을 두고 부질없이 유유히 흘러간 구름이라. 맑은 냇물 저 너머엔 한양의 나무 숲 역력하고, 봄풀은 무성해라 앵무주에 가득하네.[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晴川歷歷漢陽樹 春草萋萋鸚鵡洲]”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D-008]최호(崔顥)의 …… 비웠나니 : 최 호가 너무도 뛰어난 황학루의 시를 지었으므로, 그 뒤에는 이에 필적할 만한 시가 나오지 않아, 마치 천지에 시인이 없어져서 텅 빈 것처럼 되었다는 말이다. 송(宋)나라 엄우(嚴羽)는 그의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당나라의 칠률(七律)은 마땅히 최호의 황학루를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고 극찬하였다.
[주D-009]적선(謫仙)의 …… 하리로세 : 시 선(詩仙)으로 불리는 이 적선(李謫仙) 즉 이태백(李太白)도 최호의 황학루 시를 보고는 너무도 감탄한 나머지 이것과 견줄 만한 명시(名詩)를 지으려고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 시를 지었다는 일화가 전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봉황대 시 역시 황학루의 운(韻)을 차용하면서 시상(詩想)과 시구(詩句)까지도 이를 본뜬 흔적이 보인다.
늦게 돌아오는 말 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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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시 다 지었지만 산천이 너무 좋아 / 屛風賦罷好山川
아직도 시정이 넘쳐 눈앞에 가득하네 / 尙有詩情滿眼前
우스워라 나의 삶은 특별한 흥치도 없는데 / 自笑吾生無逸興
그 누가 말했던가 신이 도와 시 지었다고 / 誰言神助得新聯
밥상에 부족한 것은 단지 연명의 술이요 / 盤飡只欠淵明酒
차를 마시노라면 육우의 샘물 맛이로세 / 茗飮眞同陸羽泉
뒷날 조계에 들러 하룻밤을 자고 나면 / 他日曹溪如一宿
허깨비 몸 굴리는 것도 천연이 되련마는 / 幻身流轉亦天然
[주D-001]그 …… 지었다고 : 남 조(南朝) 시대 송나라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꿈에 족제(族弟)인 사혜련(謝惠連)을 만나 보고 ‘지당생춘초(池塘生春草)’라는 명구(名句)를 얻은 뒤에 “이 시구는 신이 도와준 덕분이지 나의 말이 아니다.[此語有神功非吾語也]”고 술회한 고사가 전한다. 《南史 卷19 謝惠連列傳》
[주D-002]연명(淵明)의 술 :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은 진(晉)나라의 은자(隱者) 도연명(陶淵明)이 너무도 술을 좋아해서 술과 관련된 일화가 즐비하고 또 〈음주(飮酒)〉 시 20수를 짓기까지 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3]육우(陵羽)의 샘물 맛 : 육 우는 당(唐)나라의 은자로 《다경(茶經)》 3편의 저술을 남겨 다신(茶神)으로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그가 강소성(江蘇省) 오현(吳縣)의 호구산(虎丘山)에서 나오는 샘물로 차를 끓였는데, 뒤에 그 샘의 이름을 육우천(陸羽泉) 혹은 관음천(觀音泉)이라고 불렀다 한다.
[주D-004]뒷날 …… 되련마는 : 깨 달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부처와 중생이 따로 없이 허깨비 같은 이 몸으로 행하는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법신(法身)의 현현(顯現)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당나라 선승(禪僧) 영가 현각(永嘉玄覺)이 조계산(曹溪山)으로 육조대사(六祖大師) 혜능(慧能)을 찾아가서 하룻밤을 자고 떠났기 때문에 일숙각(一宿覺)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그가 지은 〈증도가(證道歌)〉 첫머리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배움이 끊어져 하릴없이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하지 않나니, 무명의 참성품이 바로 불성이요, 허깨비 같은 빈 몸이 바로 법신이로다.[君不見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無名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라는 말이 나온다.
아생(我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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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의 삶을 뭐라고 표현할까 / 我生今如何
뿌리 잘린 쑥대처럼 나부낀다고 할까 / 飄飄如斷蓬
바람 불면 곧장 어디론가 날아가서 / 風來卽飛去
동쪽이고 서쪽이고 일정한 방향 없네 / 所向無西東
저번에는 북쪽 산의 구름을 쫓아가다 / 昨逐北山雲
홀연히 천 길 높은 솔 위에 내려앉아 / 忽上千丈松
여라와 한 몸 되어 서로 끌어당기면서 / 女蘿一相牽
청춘의 모양새를 함께 짓기도 하였었지 / 共作靑春容
그러다가 또다시 땅 위로 떨어져서 / 俄而又下墜
완연히 홍진 속에 파묻히게 되었나니 / 宛在紅塵中
어떡하면 길게 부는 바람을 이용해서 / 願乘長風力
봉래궁에 날아가 서식할 수 있을거나 / 直棲蓬萊宮
정 사예(鄭司藝)가 도로 남경(南京)으로 향했다는 말을 듣고서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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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그야말로 나의 좋은 친구인데 / 司業吾良友
남경 땅으로 옮겨 간 지 벌써 여러 해 / 南遷閱歲多
적막한 생활도 감수하는 도심의 소유자라 / 道情甘寂寞
세상일이 자기 뜻과 어긋나도 그저 그만 / 世事任蹉跎
화악에는 구름이 골마다 가득 메워 주고 / 華嶽雲埋谷
양강에는 달이 또 물결을 비추고 있겠지만 / 楊江月照波
벗들이 바야흐로 크게 출세하였으니 / 親朋方大用
서찰로 한번 물어봄이 어떠할는지 / 書札問如何
목옹은 바야흐로 병으로 누워 있고 / 牧翁方臥病
우리 벗님은 오래도록 떠도는 신세 / 吾友久流離
대성에도 동료가 많이 포진했으니 / 臺省多同列
의관이 지금 대우받는 때가 아닌가 / 衣冠際盛時
쓸쓸하게 허구한 날 문을 쳐 닫고 / 蕭條長閉戶
강개하며 고독하게 시만 읊다니 / 慷慨獨吟詩
세상에 공평한 건 오직 봄바람뿐 / 公道東風在
간들간들 흰 머리칼 불어 주누나 / 依依吹鬢絲
[주C-001]남경(南京) : 지금의 서울을 말한다.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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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을 이 세상에 살려낼 수 없으니 / 古人不可作
남기신 맑은 향기 천년을 두고 읍할밖에 / 千載揖淸芬
두 공부(杜工部)의 시는 바로 역사책이요 / 工部詩爲史
한창려(韓昌黎)의 운문 또한 문장이로세 / 昌黎韻亦文
하늘이 내린 재주 그 얼마나 우뚝한데 / 天才何卓卓
비평하는 말이 또 얼마나 분분하였던가 / 物議亦紛紛
한산자의 마음을 누가 참으로 알아줄까 / 誰識韓山子
갱장을 대할 때마다 방훈을 떠올리는 줄을 / 羹墻對放勳
[주D-001]갱장(羮墻)을 …… 줄을 : 목 은이 선왕(先王)인 공민왕을 못내 그리워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갱장은 국 그릇과 담장을 뜻하는데, 요(堯) 임금이 생전에 허름한 궁실에서 거처하고 음식도 조촐하였으므로, 요 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이 3년 동안이나 사모하면서 “앉으면 담장에 요 임금이 나타나고, 밥상을 대하면 국 그릇에 요 임금이 보였다.[坐則見堯于墻 食則覩堯于羹]”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53 李固列傳》 방훈(放勳)은 지극한 공이라는 뜻으로, 요 임금의 이름이다.
유거(幽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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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나의 집에 해가 장차 중천으로 / 幽居日將午
맑은 흥치 솟아나서 억누를 길 없어라 / 淸興欲裁難
땅도 적시지 못하는 가랑비 부슬부슬 / 微雨滴不濕
건듯 부는 동풍에 날은 다시 으슬으슬 / 東風吹更寒
꽃이 피려 하자 두 눈이 활짝 뜨이는데 / 眼明花意動
지겨운 세상살이 머리는 자꾸 빠지누나 / 髮短世情闌
조물이 사람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마는 / 造物戲人耳
더하고 빼면 그런대로 위로도 받는다오 / 乘除聊自寬
아역(我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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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사리에 밝지를 못한지라 / 我亦不曉事
술잔도 못들고 앞산만 마주하며 / 對山無酒杯
때때로 미친 듯 흥취가 발동하면 / 時時發狂興
붓끝에서 비바람을 일으킨다네 / 筆端風雨來
금년에도 술 담을 수수 심지 못한 채 / 今年不種秫
돌밭은 푸른 이끼 뒤덮여 황량할 뿐 / 石田荒蒼苔
얼른 한번 얼근하게 취해 봤으면 / 徑欲謀一醉
뉘 집 술동이가 이제 막 익었을까 / 誰家初發醅
멋진 흥치 느끼는 날 항상 있지 않은 터에 / 好懷儘有數
앞으로 몇 번이나 얼굴을 펼 수 있을는지 / 未知開幾廻
덧없이 흘러가는 백년 안쪽 인생에서 / 悠悠百歲內
황금대가 과연 무슨 필요 있다 할까 / 何必黃金臺
[주D-001]나 …… 마주하며 : 목 은 자신도 전한(前漢)의 문학가인 양웅(揚雄)의 신세와 비슷해서, 늙도록 사리를 살피지 못한다는 비평을 받는가 하면, 술을 좋아하는데도 집이 빈한해서 제대로 마시지 못한다는 말이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양수(楊修)가 조식(曹植)에게 보낸 〈답임치후전(答臨淄侯箋)〉에 “우리 집안 사람인 자운은 늙도록 사리에 밝지를 못하였다.[修家子雲 老不曉事]”는 말이 나오고, “양웅의 집안이 본래 가난해서 술을 좋아하는데도 그 집에 술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었다.[家素貧 耆酒 人希至其門]”는 말이 《한서(漢書)》 권87 양웅전(揚雄傳) 논찬(論贊)에 나온다. 자운(子雲)은 양웅의 자(字)이다.
[주D-002]금년에도 …… 채 :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팽택 영(彭澤令)이 되었을 때, 너무도 술을 좋아한 나머지 공전(公田)에다 모두 술 담을 수수를 심게 했던 일화가 전한다. 《宋書 卷93 隱逸列傳 陶潛》
[주D-003]돌밭은 …… 뿐 : 두보(杜甫)가 친구인 정건(鄭虔)에게 지어 준 시 중에 “선생도 빨리 귀거래사 읊는 것이 어떨는지, 돌밭이며 초가집 모두 이끼로 뒤덮였으리니.[先生早賦歸去來 石田茅屋荒蒼苔]”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3 醉時歌》
[주D-004]황금대(黃金臺) : 유 능한 신하가 임금으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고 국정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전국 시대 연 소왕(燕昭王)이 곽외(郭隗)의 말을 듣고서 연경(燕京)에 황금대를 세우고는 천하의 현사(賢士)를 초빙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戰國策 燕策1》
삼월 열나흗날 닭이 울 무렵에, 비를 맞고 있는 뜨락의 보리를 얼른 거두어 들이라고 계집종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동이 트고 보니 지붕 위에 온통 눈이 쌓였고 산도 모두 은백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 눈을 보고는 지난 계사년 청명일(淸明日)에 한산(韓山)에서 눈을 읊었던 옛일이 떠올랐는데, 지금으로부터 어언 29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청명이 지난 지 십여 일이나 되어 살구꽃이 이미 피었는데도 이렇게 눈을 보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에 시 한 수를 지어 이 일을 기록하기로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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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네 옛날 계사년 청명일에 / 憶昔癸巳淸明節
한산 남쪽에 싸락눈이 내렸던 일 / 韓山之陽見微雪
그때가 이십하고 구 년 전인데 / 廻頭二十又九年
지금 곡우철에 눈이 또 내렸도다 / 雪入穀雨還依然
본래 조물은 예측하기 어려운 법 / 由來造物未易測
갸우뚱 목을 빼고 시나 읊을 밖에 / 老牧謳吟鶴頭側
닭 울 때 빗소리에 홀연히 잠을 깨고 보니 / 雞鳴雨聲忽驚吾
뜨락의 보리 잠길세라 계집종 부산하였는데 / 恐漂庭麥馳女奴
동틀 녘에 문을 열자 어느새 눈이 산에 가득 / 天明開戶雪滿山
생각지도 못한 변화 잠깐 사이에 일어났네 / 變化在於俄頃間
가련토다 담장 옆의 살구꽃 몇 가지여 / 可憐墻東數枝杏
등륙을 만났으니 무슨 얼굴을 보여 줄꼬 / 邂逅滕六施何顔
이 또한 하늘이라 순순히 따라야 하겠지만 / 是亦天也當順受
아무래도 한 잔 술로 위로를 받아야지 / 慰解須憑一樽酒
망망한 음양의 조화 속에 만물이 생성 소멸하니 / 茫茫氣化自推移
무엇을 있다 할 것이며 무엇을 없다 할 것인가 / 萬事何亡復何有
꽃을 보고 눈을 대하며 무궁해지는 이 뜻이여 / 看花對雪意無窮
그때는 소년이었는데 지금은 흰머리 노인일세 / 當日少年今白首
[주C-001]계사년 : 1353년(공민왕2)으로, 당시 목은의 나이 26세였다.
[주D-001]등륙(滕六) : 전설에 나오는 눈 귀신의 이름이다.
성균관(成均館)에 경신년 동당시(東堂試)의 낙제 시권(試卷)이 있기에, 내가 학관(學官)을 직접 만나서 한 무더기를 가져오라고 하고는, 시 한 수를 읊어서 염동정(廉東亭)과 박 밀직(朴密直)에게 증정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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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당시 행한 일도 어느덧 옛날의 일 / 回首東堂已渺茫
산처럼 쌓여 거미줄 친 낙제 시권들 / 山堆落紙網絲長
일년이나 놔두다니 윗분도 너무하셨지만 / 期年不散屯膏甚
호기 부리며 빼앗다니 나도 지금 엉뚱하이 / 豪奪吾今亦破荒
늦게 돌아와서 권희(權僖) 판서를 찾아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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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채도 아름다운 성재의 막내아들 / 誠齋季子美風儀
부친 생각에 눈물을 또 흩뿌리누나 / 感慕嚴顔涕淚揮
황금을 개어서 쓴 불경의 제목이여 / 泥得黃金寫題目
민간의 대장경은 근래 희귀하였는데 / 民間大藏比來稀
[주D-001]성재(誠齋) : 권보(權溥)의 아들인 권고(權皐)의 호이다.
어 제 동정(東亭)의 집을 찾아갔더니 문밖에 타고 온 말들이 많이 서 있었고 술과 음식을 나르는 하인들이 또 줄을 잇고 있었는데, 나는 병든 뒤끝이라 술 마시기가 겁이 나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런데 저녁나절에 말을 들으니 동정의 생일이라 하기에, 그다음 날에 시 한 수를 지어서 결례를 사과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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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하늘을 비추는 신령스러운 대춘 나무 / 一樹靈椿照海天
상서로운 바람과 이슬 몇천 년이나 적셨을까 / 祥風瑞露幾千年
그 나무 아래 우리 동정 홀로 앉아 계시나니 / 東亭獨坐於其下
수명 역시 그 나무와 나란히 할 줄 알겠도다 / 壽算端知也並傳
[주D-001]대춘(大椿) 나무 :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상고 시대에 대춘 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무는 팔천 년을 봄으로 삼고 팔천 년을 가을로 삼았다.[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以八千歲爲秋]”는 말이 나온다.
합좌소(合坐所)에서 제군(諸君)을 불러 각사(各司)의 일을 의논하였는데, 나는 뒤따라 다니면서 나아가고 물러가기만 하였을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것이 스스로 부끄럽게 느껴지기에 혼자 말없이 생각하다가 시 한 수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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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 있으면 두루 물어야 할 것이니 / 大事當謀及
의견을 모아 길한 쪽으로 따라야 할 터 / 群情在吉從
이 몸은 병든 끝에 정력이 고갈되었는데 / 病餘精力耗
분수에 넘치는 은총을 융숭하게 받았도다 / 分外寵光融
유동의 노란 버들 싹은 아직도 여린데 / 柳洞黃猶嫩
송산의 푸른 솔은 언제 보아도 장중해라 / 松山翠自重
하느님이 바야흐로 편안하도록 이끄시니 / 上天方引逸
나는야 호호탕탕 봄바람이나 맞아야지 / 浩蕩對春風
[주D-001]큰일이 …… 터 : 《서 경》 홍범(洪範)에 “크게 의심나는 점이 있거든, 자기 마음에 물어보고, 관원들에게 물어보고, 일반 대중에게 물어보고, 거북과 시초 점을 쳐서 물어보아야 한다.[有大疑 謀及乃心 謀及卿士謀及庶人 謀及卜筮]”는 말과, 모든 의견을 합쳐서 길한 쪽으로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주D-002]하느님이 …… 이끄시니 : 나라가 흥성할 운세를 맞았다는 말이다. 《서경》 다사(多士)에 “하느님이 편안해지도록 이끌어 주셨는데도, 하나라는 그쪽으로 따라가지를 않았다.[上帝引逸有夏不適逸]”는 말이 나온다.
내가 한유항(韓柳巷)과 함께 곡성(曲城)의 초청을 받고 찾아갔더니, 칠원(漆原) 시중(侍中), 길창군(吉昌君), 강 평장(姜平章), 김 원사(金院使) 광수(光秀) 와 정 월성(鄭月城) 휘(暉), 윤 해평(尹海平) 지표(之彪), 이 광양(李光陽) 무방(茂芳), 한 정당(韓政堂) 천(蕆), 이 정당(李政堂) 인(韌) 이 모두 자리에 있었다. 진수성찬이 차려지고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곡성이 수정환(水精環)과 다합(茶合) 사대(絲帶)를 나에게 주고 대모(玳瑁) 필초(筆鞘)를 한유항에게 주면서, “원암(元巖)에서 모인 하나의 자리가 후세에 전해질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경들의 힘이다. 그래서 내가 감히 이것을 가지고 나의 성의를 표하려고 한다.” 하였다. 이에 나와 유항이 감히 사양하지 못한 채 절을 하고 받았는데, 그다음 날에 세 수의 시를 지어서 이 일을 기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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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암의 연회에 모인 일곱 원로 중에 / 七老元巖會
하늘이 남겨 두신 우리 두 분 시중 / 天留兩侍中
그림 속의 모습도 말씀을 나누실 듯한데 / 肖形如欲語
지금 또한 손을 잡고 매번 서로 만나시네 / 握手每相逢
임금님 연모하는 간절한 그 충성심과 / 戀主忠誠切
시대를 바로잡은 풍요로운 그 덕업을 / 匡時德業豐
졸문으로 어떻게 죄다 묘사했으랴만 / 拙文描不盡
빛나는 그 풍채는 끝없이 전해지시리라 / 風采耀無窮
수정 고리는 희고 깨끗하고 / 水精環皎潔
다합 사대는 칭칭 휘감기고 / 茶合帶縈廻
거북 등 필통의 은색 붓대라면 / 玳瑁藏銀筆
포돗빛 영롱한 옥술잔이라네 / 葡萄艷玉杯
함께 선물받은 우리 둘에다가 / 兩生同拜賜
모두 재주 겸비한 여러 손님들 / 衆客盡兼才
이런 모임 참으로 얻기 어려우니 / 此會眞難得
뒷날 누가 그림으로 전해 줬으면 / 丹靑望後來
슬슬 취하면서 미친 듯 이는 흥취 / 醉來狂興發
밤 깊도록 울리는 관현악 연주 소리 / 絃管夜深深
이 몸의 졸렬한 춤 다른 분이 웃든 말든 / 舞拙從他笑
나는야 시만 지어 매양 혼자서 읊는다오 / 詩成每自吟
비원까지 이어지는 맑은 바람결이요 / 淸風連鳳沼
우리 동방 가득 환히 비치는 달빛이라 / 明月滿鯷岑
태평 시대 기상을 알아보고 싶다면 / 欲識太平像
여기말고 어디에서 또다시 찾으리요 / 更於何處尋
[주D-001]원암(元巖)의 …… 시중(侍中) : 당 시의 일곱 사람 중에서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과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 윤환(尹桓) 두 사람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말이다. 《목은문고》 제9권 〈원암의 연회에서 창화한 시의 서문[元巖讌集唱和詩序]〉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한 유항과 함께 척산군(陟山君)을 방문하였다. 그때 마침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는데, 공이 술자리를 베풀고는 현릉(玄陵)이 연회를 하사하였을 때 이 꽃을 꽂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에 내가 그리워지는 마음이 북받쳐 오르기에 시 한 수를 지어서 감회를 적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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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의 광암은 기억이 모두 흐릿한데 / 西望光巖儘渺然
척산의 정원에는 샘솟듯하는 술이로다 / 陟山庭院酒如泉
가련토다 철쭉꽃은 비단을 펼쳐 놓았건만 / 可憐躑躅花披錦
머리에 꽂지 못한 지 칠년이나 되었으니 / 不上人頭已七年
[주D-001]광암(光巖) : 공민왕의 원찰(願刹)인 광암사를 말하는데, 현릉(玄陵)이 그 부근에 있다.
척산군이 데리고 간 화원(花園)에서 난을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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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난초를 보자마자 / 蘭也吾所愛
홀연히 두 눈이 번쩍 뜨였나니 / 忽然雙眼明
연녹색 이파리는 자연스레 흩어지고 / 淺碧自散葉
담황색 꽃망울은 이제 막 터졌어라 / 淡黃初發榮
가만히 앉아 향기가 스며들기만 기다리며 / 靜坐待香來
마음속이 속속들이 맑아지려니 하였는데 / 心地方寸淸
내 코가 혹시 막혔는가 한참 동안 의심하다 / 頗訝吾鼻塞
향기가 없는 걸 알고 스스로 깜짝 놀랐어라 / 久之方自驚
생각건대 땅 힘이 워낙 척박한 까닭에 / 念言地力薄
너의 삶을 온전히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니 / 不得全爾生
모습을 보면 아주 비슷하게도 생겼다만 / 形似已逼眞
허명을 지녔다는 평은 면할 수 없으리라 / 無從免虛名
너의 모습 살피다가 자신을 다시 돌아보면 / 觀物還自觀
똑같은 처지인 걸 무슨 차이가 있으리요 / 悠悠誰重輕
아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 선비들은 / 嗟彼古來士
명성이 실제와 다른 것을 부끄러워했느니라 / 聲聞恥過情
너를 대하고는 장탄식을 발하노니 / 對之發浩歎
나의 마음 어느 때나 평온해질 수 있을는지 / 我心何時平
[주D-001]명성이 …… 부끄러워했느니라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그렇기 때문에 명성이 실제보다 지나친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하는 것이다.[故聲聞過情 君子恥之]”라는 말이 나온다.
나잔자(懶殘子)를 찾아가서 그가 복리군(福利君)에 새로 봉해진 것을 축하하고는 실컷 먹고 취해서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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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잔자는 진짜로 세상일엔 게을러도 / 懶殘眞懶者
시를 읊는 것은 우리 유자와 비슷하이 / 吟詠似吾儒
마음에 둘이 없이 성상을 기도했는지라 / 禱聖心無二
덕이 외롭지 않게 군으로 봉해 주셨도다 / 封君德不孤
맑기가 물과 같은 향기로운 술이라면 / 香醪淸似水
우유보다 부드러운 꿀을 탄 죽이로세 / 蜜粥軟於酥
우리들이 어떻게 적막하다 말하리요 / 我輩豈牢落
봄바람이 좌우에 불어와 주시는걸 / 春風吹座隅
비를 노래하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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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아직 이르다고 필 생각을 안 하는데 / 花意猶嫌早
하늘은 너무 늦었다고 유감으로 생각해서 / 天心却恨遲
비를 내려 보내 계절에 맞게 해 주시니 / 雨師和順序
늙은 목옹 기뻐서 이렇게 시를 읊노매라 / 老牧喜吟詩
끝도 없이 아스라이 펼쳐진 정경 속에 / 浩浩迷情境
듬성듬성 비치나니 실 같은 흰 머리칼 / 疏疏映鬢絲
남쪽 이랑 쟁기질하는 멋진 흥치여 / 一犂南畝興
이 몸은 어느 때나 고향에 돌아갈꼬 / 歸去是何時
비가 쏟아질 듯 하늘은 점점 어둑어둑 / 雨氣漸昏昏
내 집 뜨락에는 한낮의 닭 울음소리 / 午鷄啼我園
춘풍이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불어 주니 / 春風不擇物
늙은 이 몸 또한 문을 닫고만 있을 수야 / 老境可關門
사방 들판에는 불태운 흔적도 사라지고 / 四野燒痕沒
일천 숲 속에선 꽃들이 활짝 피어날 듯 / 千林花意繁
하늘이 맑게 개면 교외 들판 찾아가서 / 新晴郊外去
멋들어진 곳에서 술 한번 실컷 들어야지 / 佳處倒芳樽
돌밭이라서 절반도 거두지 못하지만 / 石田收未半
금년에는 풍년을 기대해도 좋겠구먼 / 豐稔望今年
한번의 비로 이미 촉촉이 적셨는지라 / 一雨已潤物
일만 집에서 하늘에 감사를 드리도다 / 萬家方謝天
너른 들판 위에 낮게 드리운 구름이요 / 雲容低曠野
떠다니는 안개 속에 아스라한 풀빛이라 / 草色杳輕煙
이제는 점점 신나는 봄 경치가 보이리니 / 漸見春光好
꽃이 피면 멋진 술자리 한번 열어야지 / 花開敞錦筵
[주D-001]사방 …… 사라지고 : 들 불을 놓은 곳에서 다시 파란 싹이 돋아나 태운 흔적들을 모두 지워버렸다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얼음 골짜기에서는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고, 푸른 풀 죄다 돋아나서 불태운 흔적도 사라졌네.[稍聞決決流氷谷 盡放靑靑沒燒痕]”라는 표현이 보인다. 《蘇東坡詩集 卷22 正月二十日往岐亭云云》
원재(圓齋)가 정당(政堂)에 제수된 것을 봉축하다. 3월 20일에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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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만나게 해 준 계유생과 무진생 / 癸酉天敎合戊辰
원재는 풍채가 홀로 깨끗하고 산뜻했지 / 圓齋風采獨淸新
영광스러운 정당문학 아무나 임명될 수 있나 / 政堂榮拜無多子
간원에서 함께 노닌 이 몇 사람도 되지 않네 / 諫院同游問幾人
늙은 나는 지금 오직 병을 안고 살건마는 / 老我如今唯抱病
선생은 어려서부터 가난이란 걸 몰랐다오 / 先生自少不知貧
언제쯤이나 서쪽 창가 등잔불 심지 돋우면서 / 何當更剪西窓燭
귀신도 울릴 현묘한 대화 다시금 나눠 볼까 / 語入玄微動鬼神
성대한 이 시대에 더욱 빛나는 정당문학 / 政堂文學耀昌辰
춘풍을 대하고 앉음에 웃음꽃이 피어나리 / 坐對春風一笑新
열흘만 지나면 구십일 세 되시는 모친이요 / 九十一春餘十日
삼십삼 인 급제 중에 세 사람 남은 동기로세 / 卅三人牓只三人
강산의 준주에 늘상 취하는 분은 누구신고 / 江山樽酒誰長醉
도리의 문정에 이 몸만 유독 초라하도다 / 桃李門庭我獨貧
태평가 부르는 일 어찌 양보를 하겠소만 / 歌頌大平非所讓
붓에 힘이 빠진 것이 다만 애처롭소이다 / 只憐毛穎欠精神
[주C-001]원재(圓齋) : 원재는 목은과 동년(同年)인 정추(鄭樞)의 호인데, 정추는 그의 자(字)인 공권(公權)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주D-001]계유생과 무진생 : 충숙왕(忠肅王) 복위 2년 계유년(1333)에 태어난 정추와 그보다 5년 전인 무진년(1328)에 태어난 목은을 가리킨다.
[주D-002]언제쯤이나 …… 볼까 : 언 제 한번 만나서 밤이 깊도록 고담준론을 나눠 보고 싶다는 뜻으로 애틋한 우정을 표현한 말이다. 당(唐)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시 〈야우기북(夜雨寄北)〉에 “언제쯤이나 서쪽 창가 등잔불 심지 돋우면서, 파산의 밤비 내리는 정경 함께 얘기해 볼거나.[何當共剪西窓燭 却話巴山夜雨時]”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3]춘풍을 …… 피어나리 : 정 추의 임명 소식을 듣고 모친이 기뻐하며 웃으실 것이라는 말이다. 한(漢)나라 준불의(雋不疑)가 경조 윤(京兆尹)에 임명된 뒤에, “예전의 판결을 뒤엎고 억울한 사람을 살려 준 일이 많으면 그의 모친이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多有所平反 母喜笑]”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71 雋不疑傳》 또 송(宋)나라 주광정(朱光庭)이 정호(程顥)를 찾아보고는 “춘풍 속에서 한 달간을 앉아 있었다.[在春風中坐了一月]”고 회고한 일화가 있는데, 이후 훌륭한 어른으로부터 훈도를 받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伊洛淵源錄 卷4》
[주D-004]삼십삼 인 급제 : 1353년(공민왕2)의 문과(文科)에 목은과 정추가 함께 급제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5]강산의 …… 초라하도다 : 문 생(門生)이 성대하여 그들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는 정추와는 달리 목은 자신은 초라하기 그지없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적인걸(狄仁傑)의 문생 출신인 요원숭(姚元崇) 등 수십 인이 모두 명사(名士)가 되었으므로, “천하의 복사꽃과 오얏꽃이 모두 공의 문에서 나왔다.[天下桃李 悉在公門矣]”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도리(桃李)가 문생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資治通鑑 唐紀23》
생질 박은(朴訔)이 방학을 맞아 나를 찾아왔기에 기뻐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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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몽의 수업 마치고 방학을 맞아 / 課罷童蒙學
기쁜 기색 듬뿍 안고 돌아왔구나 / 歸來喜氣濃
옛날과 달리 제법 말도 잘하는데 / 能言非舊日
길이 느껴지는 것은 또 춘풍이라나 / 永感又春風
성인의 예법은 우선 차치하고라도 / 且置成人禮
성인이 될 공부의 기초를 다져야지 / 須基作聖功
외삼촌이 충심으로 고해 주노니 / 舅翁忠告處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느니라 / 頭上有蒼穹
[주D-001]길이 …… 춘풍이라나 : 그 동안 배운 내용 중에서도 특히 《논어》 선진(先進)에 나오는 “늦은 봄날에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쐰 뒤에 노래 부르며 돌아오겠다.”고 한 증점(曾點)의 기상이 가슴에 와 닿는다고 목은에게 이야기한 것인 듯하다.
자영(自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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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전해 오는 요동 조모의 기풍이여 / 遼東皁帽有遺風
요도해라 삼한에는 하나의 목옹이 있도다 / 潦倒三韓一牧翁
가을날 밤에 시를 읊나니 달그림자 아래요 / 秋夜高吟蟾影下
봄날 아침에 꼿꼿이 앉나니 새소리 속이로세 / 春朝危坐鳥聲中
서역 승려의 눈을 보면 날 때부터 푸르스름 / 胡僧眼是天生碧
신선 되려는 객의 얼굴 술 없이도 불그스레 / 仙客顔非酒借紅
여기서 빠져나온다면 즐거움 또한 많으리니 / 逃出兩端多樂處
꽃 찾고 버들 따르는 곳 흥치가 무궁하리로다 / 傍花隨柳興無窮
[주D-001]지금도 …… 있도다 : 후 한(後漢) 말에 고사(高士) 관녕(管寧)이 요동 땅에서 37년을 살면서 항상 검은 모자[皁帽]를 쓰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유유자적했던 고사가 있다. 《三國志 卷11 魏書 管寧傳》 여기서는 목은 자신도 삼한 땅에서 세상의 예법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潦倒] 관영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주D-002]여기서 …… 무궁하리로다 : 진 정한 생활의 낙은 불교나 도교에서가 아니라 바로 유교 속에서 찾아야 하리라는 말이다. 송(宋)나라 성리학자 정호(程顥)가 호현(鄠縣)의 주부(主簿)로 있을 때 시 춘일우성(春日偶成)을 지으면서 “엷은 구름 상큼한 바람 정오가 다 되는 때, 꽃 찾아 버들 따라 앞 시내를 건너도다. 사람들은 나의 마음 즐거운 것을 모르고서, 틈만 나면 소년처럼 나돌아 다닌다 말하리라.[雲淡風輕近午天 傍花隨柳過前川時人不識予心樂 將謂偸閒學少年]”라고 하였는데, 이 시를 두고 성리학자들은 《논어》 선진에 나오는 증점의 기상과 비슷하다고 평가를 해 왔다. 《伊洛淵源錄 卷3》
나잔자가 새로 복리군(福利君)에 봉해진 것을 봉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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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한 봉우리 푸르른 빛이 문 앞에까지 / 龍山一朶碧當門
조용히 연경을 대하시니 도가 절로 높아질밖에 / 淨對蓮經道自尊
옛날 이름은 나잔자라 세상일 모두 잊었는데 / 舊號懶殘忘世事
새 봉호는 복리군이라 하늘의 은혜를 입었구려 / 新封福利荷天恩
시마에나 흔들릴까 신기(神氣)가 마냥 청랑한 분 / 神淸只有詩魔擾
외물 따위에 끌리리요 업장(業障)을 소멸하셨는걸 / 業白寧容物累昏
더구나 하나의 구름으로 비를 잘도 내리시어 / 況是一雲能普雨
언덕마다 약초가 두루 자라게 해 주심이리이까 / 時看藥草偏丘原
[주D-001]연경(蓮經)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줄인 말인데, 나잔자가 《법화경》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하는 천태종(天台宗)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가빈(家貧) 사촌회(四寸會)를 내가 주관해 보려고 하다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는 이 시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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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가난해 모임 한번 주선하지 못한 채 / 家貧難辦會
병든 틈틈이 늘상 초대만 받고서 참석하니 / 病間每承招
낯가죽 두꺼운 것이 나 자신도 우스운데 / 自笑顔之厚
사람들도 내 머리칼 이미 쇠했다 기롱하리 / 人譏鬢已凋
모두가 바람 맞고 서 있는 옥 나무라면 / 臨風皆玉樹
나는 산 위의 묘목처럼 나이만 많다 할까 / 序齒似山苗
복사꽃 오얏꽃이 천지에 가득한 이 계절에 / 桃李花開遍
나는 작약 캐어다가 조리나 해야 할까 보다 / 須將芍藥調
[주D-001]사람들도 …… 기롱하리 : 젊은 사촌들의 모임에 끼이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사람들이 놀릴 것이라는 말이다.
[주D-002]모두가 …… 할까 : 사 촌들은 모두 의젓하게 풍채가 빼어난 젊은이들인데 반하여, 목은 자신은 연치만 높아 염치없이 어른 대접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잔 들고 흰 눈으로 푸른 하늘 바라볼 땐, 깨끗하기 옥 나무가 바람 맞고 서 있는 듯.[擧觴白眼望靑天 皎如玉樹臨風前]”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진(晉)나라 좌사(左思)의 〈영사시(詠史詩)〉에 “골짜기 속엔 울창하게 소나무가 서 있고, 산 위엔 늘어진 채 묘목이 서 있는데, 직경 한 치에 불과한 저 묘목이, 백 척의 소나무 가지에 그늘을 드리우네.[鬱鬱澗底松離離山上苗 以彼徑寸莖 蔭此百尺條]”라는 말이 나온다.
욕출(欲出)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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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을 하려 해도 허리가 하도 욱신거려 / 欲出腰酸甚
창문 열고서 무릎 안은 채 읊조리노라니 / 開窓抱膝吟
먼 산봉우리에선 외로운 구름이 일어나고 / 孤雲生遠岫
높은 나무 숲에선 온갖 새들이 지저귀네 / 百鳥噪高林
필묵 속에 어느덧 시간도 훌쩍 지나가니 / 翰墨光陰迅
천지간에 우로의 은혜 이렇게 깊을 수가 / 乾坤雨露深
어물쩍거려 넘기고 덩달아 맞장구치면서 / 悠悠復唯唯
마음 편한 경지를 나는 이미 얻었다오 / 我已得安心
봄도 늦은 날 약간 온기가 돋아나며 / 春晚生微暖
엷은 구름 흩어지고 하늘이 개었으나 / 天晴散薄陰
떠가는 구름은 아직도 비 내릴 뜻이 있고 / 行雲猶雨意
누운 나무 역시 꽃 피울 마음을 지녔어라 / 臥樹亦花心
적막 속에 경서를 마주 대하기도 하고 / 寂寂對黃卷
청랑하게 거문고를 울려 보기도 하나니 / 冷冷調素琴
공자님이 매우 즐거워하신 그 생활을 / 孔子深樂處
이 속에서 다시금 찾을 수도 있으리라 / 更向此中尋
바람은 뜨락의 나무 속에 잠겨 있고 / 風在園中樹
구름은 창밖의 하늘 위에 떠가는 때 / 雲行窓外天
나의 마음 역시 덩달아 나부낀다마는 / 吾心亦飜動
병마는 여전히 나의 몸을 휘감았는걸 / 病勢却纏綿
술잔 속에 찾아오는 밝은 달님이요 / 樽酒邀明月
향로 위에 흩어지는 푸르른 안개로세 / 香爐散碧煙
세상 걱정 유유히 떨쳐버릴 수 있으니 / 悠悠可消遣
신선을 또다시 찾을 필요 있으리요 / 不用更求仙
[주D-001]마음 편한 경지 : 불 교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안심 법문(安心法門)’의 경지를 가리키는 말로, 목은이 곧잘 인용하는 표현 중의 하나인데, 여기서는 자조적인 뜻으로 바꿔 사용하였다. 안심 법문은 중국 선종의 2조(祖) 혜가(慧可)가 초조(初祖)인 달마(達磨)에게 “내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니 스승께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我心未安請師安心]” 하자, 달마가 “그 마음을 가지고 와라. 너에게 편안함을 주겠다.[將心來與汝安]” 하였는데, 혜가가 한참 뒤에 “그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覓心了不可得]” 하니, 달마가 “내가 너에게 이미 안심의 경지를 주었다.[吾與汝安心竟]”고 한 고사를 말한다. 《景德傳燈錄3》
[주D-002]공자님이 …… 생활 : 안 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말한다. 《논어》 술이(述而)에 “나물 밥에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눕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나니, 떳떳하지 못한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고 한 공자의 말이 나온다.
3월 22일에 유후덕(柳厚德)이 막내아들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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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늦은 봄 삼월이 되면 / 年年三月暮
낙양 사람들 맞고 보내는데 / 迎送洛陽人
막내아들 장가 보내는 이곳 / 之子于歸處
복사꽃이 또 새로이 피었도다 / 桃花今又新
하늘은 흐려 비가 올 듯도 한데 / 天陰疑欲雨
먼지 없어 기쁘도다 조용한 길이 / 路靜喜無塵
오래 쉬었건만 이다지도 피곤하니 / 久歇猶疲甚
병이 몸에 있는 것을 새삼 알겠도다 / 方知病在身
즉사(卽事)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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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하는 풍광과 나는 뗄 수 없는 사이인데 / 風光流轉共依依
병든 노인 한거하며 아직도 못 돌아가는구나 / 老病閑居尙未歸
밤비 내리니 고향 산천 더욱 그리워지는 터에 / 夜雨江山思轉苦
늦봄에 눈이 또 내리니 실로 희한한 일이로세 / 暮春霜雪見來稀
시 읊는 거야 어떤 소재든 끌어오지 못하리요 / 吟詩何物不比興
때때로 술을 마주 하고 시비도 모두 잊노매라 / 對酒有時忘是非
목옹은 전혀 쓸모없다 행여 말일랑 하지 마오 / 莫道牧翁無用甚
나도 옛날 조정에서 수의를 도운 적 있었느니 / 也曾廊廟贊垂衣
올해 봄날의 일은 지난해와 영 다른데 / 今年春事異前年
절로 쇠한 늙은이 흰 머리칼은 의구해라 / 依舊霜毛自颯然
어찌할 도리 없으니 운명이나 기다려야지 / 無可奈何方竢命
이유를 알 수 있나 하늘에 호소할 수밖에 / 不知所以但呼天
수레도 내팽개친 진짜 한적한 나의 생활 / 小車高閣眞閑適
잔치에도 못 끼는 걸 취할 수나 있으리요 / 急管長甁豈醉顚
꿈결 속에 아련해라 노래하고 춤추던 곳 / 記得夢中歌舞處
향 냄새가 살랑살랑 바람 타고 전해 오네 / 香塵細細逐風傳
[주D-001]유전(流轉)하는 …… 사이인데 :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말 전하노니 풍광이여 나와 함께 유전하며, 잠시 서로 음미하면서 떨어지지 말자꾸나.[傳語風光共流轉暫時相賞莫相違]”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6 曲江2》
[주D-002]수의(垂衣)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의 “요순이 의상을 드리우고 천하를 다스렸다.[堯舜垂衣裳而天下治]”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제왕의 덕정(德政)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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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새만 지저귈 뿐 찾는 사람도 드문데 / 鳥啼門巷少來人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갈건의 먼지를 털었나니 / 早起吹塵整葛巾
깊고 깊은 칠원부원군 저택을 찾아가서 / 欲赴漆原深府第
진수성찬 차린 잔치 끼이려고 함이러라 / 叨陪方丈盛羞珍
옛날보다 일편단심 두 배는 더한 상군이요 / 相君視昔丹心倍
지금부터 흰 머리칼 새로워지는 동자로세 / 童子從今白髮新
돌아보면 원암의 모임 얼마나 가물가물한지 / 回首元巖何縹渺
가련하도다 봄에 혼자 꽃 피었을 초목들이 / 可憐花木自知春
가랑비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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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천둥소리 집이 무너질 듯 / 半夜驚雷破屋
아침까지 가랑비가 실처럼 부슬부슬 / 崇朝細雨如絲
이제 난만하게 꽃들도 피려 하는지라 / 花意方將爛熳
흰머리로 꼿꼿이 앉아 시를 읊노매라 / 白頭危坐吟詩
자욱하게 터럭 비는 봄 못을 가득 덮고 / 漠漠毛空春澤
아스라이 물빛은 빈 마루를 비춰 주리 / 依依水面虛堂
풍진을 만 길이나 홀로 우뚝 솟구쳐서 / 獨立風塵萬丈
언제나 인끈 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갈꼬 / 何時投紱還鄕
내 머리칼 빠짐없이 하얗게 세든 말든 / 白髮從他白盡
나를 위해 청산이 푸른빛을 띠우는걸 / 靑山爲我靑浮
아득해라 나의 수심 일만 겹 둘렸으니 / 渺渺愁心萬疊
왕찬처럼 높은 누대 또 올라갈까 보다 / 又登王粲高樓
[주D-001]왕찬(王粲)처럼 …… 보다 : 누 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면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시름을 풀어 보고도 싶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년에 왕찬이 객지를 떠돌아다니다가 형주(荊州)의 성루(城樓)에 올라가서 〈등루부(登樓賦)〉를 지어 읊으며 고향 생각을 달랜 고사가 있다.
삼가 장구(長句) 사운(四韻) 세 수를 지어서 철원(鐵原) 시중(侍中) 좌하에 봉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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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를 환히 비추는 진공의 공업을 세우신 분 / 晉公功業照山河
종고 울리는 동산에서 즐거운 일도 많으셔라 / 鐘鼓園林樂事多
오늘날 공의 막료 중에 누가 이부라 하리이까 / 今日幕中誰吏部
뜻만 높은 제가 나서서 노래를 돕고도 싶나이다 / 疏狂直欲助吟哦
요리사가 차려 낸 식탁엔 먹음직스러운 쑥떡이요 / 廚人設食蒸靑艾
재상들도 말고삐 나란히 말 방울 소리 몰려드네 / 國相聯鞍簇玉珂
그저 넋 놓고 바라보는 목동의 모습 우스워라 / 自笑牧童空悵望
거울에 비친 귀밑머리 벌써 하얗게 변했는데 / 鏡中鬢髮已皤皤
황하가 맑은 시대 황하를 또 한번 맑게 한 분 / 河淸盛旦一淸河
뜻과 기운 하늘을 찔러 결판낸 일이 또 많도다 / 志氣衝天辦又多
도처에 적진을 박살내어 진정 위용을 보여 주며 / 到處斫營眞大勇
때때로 창을 비껴 잡고 나직이 노래도 읊으셨지 / 有時橫槊或微哦
흰 비단 날개 번득이며 송골매 하늘로 솟구치고 / 鷹翻白錦凌蒼昊
푸른 고삐에 영롱한 말 방울 서로 비치는 말이로세 / 馬控靑絲映紫珂
조금 안정되었다고 무비(武備)를 어찌 잊으시랴 / 肯爲小康忘虎事
나라 걱정에 일찌감치 머리가 온통 세었다오 / 早因憂國鬢毛皤
조칙을 받고 국위 날리러 변하를 건너신 분 / 奉詔宣威過汴河
중국의 대장들도 전공이 많다고 탄복했지요 / 中朝大將嘆功多
돌아와서는 혼자서 군대의 일을 맡으면서도 / 歸來獨任干戈事
한아하게 달과 이슬을 여전히 노래하였다오 / 閑雅仍將月露哦
틈날 때마다 술자리 모실 생각도 하였지만 / 暇日每思陪飮酒
병든 몸이라 귀인의 뒤를 따를 길 없었네요 / 病軀無計逐鳴珂
오늘 아침 또 듣자니 성을 쌓기로 했다는데 / 今朝又聽修城議
불거진 눈에 불룩한 배는 옛날에 누구였더라 / 睅目何人腹更皤
[주D-001]진공(晉公) : 당 헌종(唐憲宗) 때의 승상 배도(裴度)를 가리킨다. 채주(蔡州)의 오원제(吳元濟)가 회서(淮西)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원화(元和) 12년(817)에 토벌군을 이끌고 출전하여 평정한 공로로 진국공(晉國公)에 봉해졌다.
[주D-002]이부(吏部) : 이 부 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배도가 출정할 때 한유가 행군 사마(行軍司馬)로 따라갔다가 돌아와서 황제의 명을 받고 배도의 공을 중심으로 하여 〈평회서비문(平淮西碑文)〉을 지었다. 송(宋)나라 강단우(江端友)가 지은 시 〈한비(韓碑)〉의 “당나라에서 으뜸인 회서의 공업, 이부의 문장이 일월처럼 빛나도다.[淮西功業冠吾唐吏部文章日月光]”라는 구절이 유명하다.
[주D-003]황하가 …… 분 : 철 원부원군 즉 최영(崔瑩)이 성군(聖君)을 모시고 더 나은 태평 시대를 이루기 위하여 분투하였다는 말이다. 언제나 흐리기만 한 황하의 물이 맑게 변하면 성군이 출현할 상서로운 조짐으로 받아들이던 고사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拾遺記 卷1》
[주D-004]때때로 …… 읊으셨지 : 최 영이 무략(武略)과 문재(文才)를 겸비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조조(曹操)와 조비(曹丕)ㆍ조식(曹植) 부자가 전장(戰場) 속에서도 창을 비껴 잡고 말 위에서 시를 읊었다는 〈횡삭부시(橫槊賦詩)〉의 일화가 당(唐)나라 원진(元稹)의 〈두보(杜甫) 묘지명〉 서문에 나온다.
[주D-005]불거진 …… 배 : 패 전하여 퇴군한 뒤에 축성 작업을 관장했던 옛날의 장수를 가리키는 말인데, 그런 사람은 아예 최영의 위대함과 비교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당시에 최영과 필적할 만한 군대의 지위에 있으면서 최영과 일종의 정적(政敵)이 되었던 어떤 인물을 폄하하여 지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춘추 시대 송(宋)나라의 총사령관인 화원(華元)이 정(鄭)나라와 전투를 벌이던 중에 포로로 잡혔다가 도망쳐 돌아와서 축성 작업을 지휘하자, 성을 쌓는 사람들이 “눈은 불거져 툭 튀어나오고 배는 불룩 솟았는데 갑옷을 버리고 돌아왔다네.[睅其目 皤其腹 棄甲而復]”라고 노래 부르면서 빈정거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春秋左傳 宣公2年》
어제 정포은(鄭圃隱) 제학공(提學公)이 이 판각(李判閣) 사위(士渭) 과 이 판사(李判事) 집(集) 와 김 대간(金大諫) 구용(九容) 과 나의 문생 최(崔) 숭겸(崇謙) 와 함께 술을 들고 찾아와서는, 전례(前例)에 따라서 꽃구경을 하러 왔다고 말하였다. 이에 청사 북쪽에 배꽃이 반쯤 피어 있는 곳으로 가서 시 짓고 노래 부르며 매우 즐겁게 노닐었는데, 이튿날에 시 한 수를 지어서 이 일을 기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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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술 차고 와서 꽃구경을 하였는데 / 去歲看花佩酒來
올해에도 그 날짜에 서로들 또 모였어라 / 今年此日又相陪
사문들 모두가 다생의 인연을 맺은 이들 / 斯文盡是多生契
내가 병들었어도 몇 잔은 들 수 있고말고 / 我病猶能數擧杯
구름 잎사귀 희미해라 하얀 해를 가리고 / 雲葉稀微遮白日
해맑은 꽃잎 선명해라 푸른 이끼 비춰 주네 / 晴葩的歷照蒼苔
살포시 취하면서 새삼 느끼는 임금님 은혜 / 微酣更覺君恩重
하늘 마음 받들어 인재를 기쁘게 길러야지 / 願奉天心樂育才
대장경(大藏經)을 인출(印出)하러 해인사(海印寺)로 떠나는 나옹(懶翁)의 제자를 보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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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사리 영롱하게 온 누리를 비치는데 / 舍利光芒照刹塵
일 맡은 제자 역시 신기 감도는 풍채로세 / 門生幹事有精神
가야산 해인사로 대장경 찍으러 떠나면서 / 伽倻海印印全藏
스스로 할 일 없는 한가한 도인을 말하누나 / 自道無爲閑道人
하늘 멀리 뻗친 봄빛 끝도 없이 펼쳐지고 / 天闊春光方浩蕩
구름 걷힌 산의 자태 더욱 우뚝 솟았으리 / 雲收山勢更嶙峋
돌아오면 분명한 효과 어찌 보기 어렵겠소 / 歸來明效非難見
기주의 구오를 듬뿍 대궐에 바쳐 올리리니 / 九五箕疇獻紫宸
[주D-001]가야산(伽倻山) …… 말하누나 : 그 가 비록 교종(敎宗)에서 숭봉하는 《대장경(大藏經)》을 인출하기 위해 떠나기는 하지만, 그의 면모를 보건대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는 선종(禪宗)의 승려로서 과연 나옹의 제자답다고 하는 말이다. 당(唐)나라 선승(禪僧) 영가 현각(永嘉玄覺)의 〈증도가(證道歌)〉 첫머리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배울 것도 없어져서 아무 할 일 없이 한가한 도인은, 굳이 망상을 없애려 하지도 않고 진리를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君不見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이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기주(箕疇)의 구오(九五) : 기자(箕子)가 지은 홍범구주(洪範九疇) 가운데 아홉 번째로 나오는 오복(五福), 즉 수(壽)ㆍ부(富)ㆍ강녕(康寧)ㆍ유호덕(攸好德)ㆍ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
천수사(天水寺)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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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사에서 스님을 떠나보내면서 / 送僧天水寺
감개의 눈물을 봄바람에 씻노매라 / 感淚洒春風
대장경의 무한대를 알고는 있다마는 / 海藏知無外
세상 인연이 그 속에 또 들어 있다니 / 塵緣怪在中
치문에는 골짜기마다 꽃이 가득하고 / 鴟門花滿谷
용수산엔 푸른빛이 공중에 비꼈는데 / 龍岫翠橫空
지금의 나의 뜻을 아는 이 누구일까 / 誰識此時意
저녁 해만 구름 가를 붉게 물들이네 / 夕陽雲際紅
아로(我老)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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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은 거야 기뻐할 만하더라도 / 我老雖堪喜
사람들 만나는 장소에선 부끄럽기만 / 逢場愧有餘
눈은 침침한데 잔 글자를 봐야 하고 / 眼昏看細字
이는 쑤시는데 건어를 깨물어야 하니 / 齒病嚼乾魚
연포를 참으로 이어 가기 어렵기에 / 軟飽眞難繼
시만 부질없이 혼자 지어 쓴다마는 / 新聯謾自書
정다운 벗님들이 때때로 찾아 주시는걸 / 親朋時見訪
머리칼 성긴 거야 한탄할 게 있으리요 / 不恨鬢毛疏
내가 늙어 가는 것도 꽤나 기쁜 일 / 我老頗自喜
오랜 벗님네도 이제는 모두 늙은이 / 舊交皆老翁
술잔 들면 나무에 꽃들이 가득하고 / 樽前花滿樹
등불 마주하면 오동을 울리는 빗소리 / 燈下雨鳴桐
하늘이 어둑해질 때면 귀가 어지럽다가도 / 耳亂天方暗
무르익은 경치를 보면 눈이 번쩍 뜨이나니 / 眸明景自融
감정은 외물을 따라 자꾸 옮겨 가면서도 / 情懷隨物轉
흐르는 물은 날마다 또 동으로 향한다오 / 流水日歸東
이 몸 늙어 가면서 또 그지없이 한가하니 / 我老又閑甚
봄이 오면 내키는 대로 노닐 수 있다마다 / 春來隨意游
꽃 사이에서 멋진 술잔 기울여도 보고 / 花間傾美酒
버들골 밖 높은 누대 기대기도 한다오 / 柳外凭高樓
홍작약꽃 읊조리는 학사와도 어울리고 / 學士吟紅藥
막부에 우뚝 선 원융과도 스스럼없나니 / 元戎立碧油
유유하여라 하늘과 땅 사이에서 / 悠悠宇宙內
그 누가 나처럼 풍류를 즐기리요 / 誰似我風流
[주D-001]연포(軟飽) : 술 을 마시는 것을 뜻한다. 소식(蘇軾)의 시에 “석 잔을 연거푸 연포한 뒤에, 베개 하나 베고 달콤한 꿈나라로.[三杯軟䬲後 一枕黑甛鄕]”라는 구절이 있는데, 자주(自註)에 “절강(浙江) 사람들은 음주(飮酒)를 연포라 한다.”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38 發廣州》
[주D-002]하늘이 …… 어지럽다가도 : 저물녘부터 귀에 울려 오는 풍악소리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장자》 천지(天地)에 “다섯 가지 현란한 소리가 귀를 어지럽게 하여 들어야 할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게 한다.[五聲亂耳 使耳不聰]”는 말이 나온다.
[주D-003]감정은 …… 향한다오 : 앞 구절은 외물(外物)에 감응하는 마음의 용(用)을, 뒷구절은 불변하는 마음의 체(體)를 말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시경》 소아(小雅) 면수(沔水)에 “넘실넘실 흘러가는 저 강물이여, 날마다 동으로 향해 바다로 돌아가네.[沔彼流水朝宗于海]”라는 말이 나오는데, 보통 천태만상으로 변하는 현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체를 뜻하는 비유로 쓰이곤 한다.
꽃을 보고 느낌이 있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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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경치 구경하며 시 읊을 곳도 없다니 / 賞春無處可吟詩
올해는 서리와 눈이 나를 희롱하려나 봐 / 霜雪今年似我欺
조물은 보상해 줄 뜻을 가지고 있으리니 / 造物乘除應有意
녹음방초 시절은 꽃 시절보다야 낫겠지 / 綠陰芳草勝花時
꽃 시절보다 나은 녹음방초 여름철에 / 綠陰芳草勝花時
한 덩어리 청한함을 뉘에게 안겨줄까 / 一段淸閑付與誰
생각건대 병든 노인 환약을 빚을 적에 / 坐想病翁丸藥處
뜰 가득 가랑비에 꾀꼬리 소리 구르리라 / 滿庭微雨囀黃鸝
뜰 가득 가랑비 꾀꼬리 소리 구를 적에 / 滿庭微雨囀黃鸝
적막한 집엔 하루 해가 유난히 더디겠지 / 寂寂門庭日正遲
도정이 흘러 움직인 곳을 알고 싶으면 / 欲驗道情流動處
봄날의 시와 여름 시를 비교해 볼지로다 / 春間詩與夏間詩
20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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