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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류음(簷溜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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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가 탄반할 땐 하늘이 정히 흐렸는데 / 老翁攤飯天正陰
일어나니 낙숫물 소리에 흉금이 말끔해지네 / 起聞簷溜淸塵襟
문득 생각난다 산중에서 수황을 탈 적에는 / 忽憶山中撫脩況
그윽한 계곡 물소리가 깊은 숲을 울렸는데 / 幽幽澗泉鳴深林
그때 밝은 달은 푸른 하늘에 둥실 떠 있고 / 其時明月在靑天
소나무 밑에는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지라 / 松下有風來颯然
어찌 누추한 방구석에 가만히 있을 수 있나 / 乃何袖手瓮牖底
나도 날개 달고 신선되어 등천하고 싶었지 / 亦將羽化而登仙
이 소리는 청절함이 그때보다 갑절이로다 / 其淸切也倍於昔
쇠도 돌도 아니면서 쇠와 돌 같기도 하고 / 非金非石如金石
형체 없이 드러나서 유형물과 감촉함이니 / 無形而形觸有形
자연의 소리일 뿐 누가 두드려서 난 것이랴 / 自然有聲誰拊擊
사람의 신령하고 순수함은 만물을 초월하여 / 人之靈粹出萬物
기질이 본디 밝고 맑은 것으로 쌓였는지라 / 氣質兆自輕淸積
느끼면 마침내 통함이 물 흐름과 같나니 / 感而遂通如水流
가슴속은 원래 한낱 공허한 것이고말고 / 方寸由來一空寂
후일에 누가 이 늙은이 마음과 계합할런고 / 他年誰契老翁心
한 곡조 첨류음을 낭랑하게 읊조리노라 / 一曲琅然簷溜吟
[주D-001]탄반(攤飯) : 낮 잠을 말한다. 육유(陸游)의 〈춘만촌거잡부(春晚村居雜賦)〉의 자주(自注)에 의하면 “동파(東坡) 선생은 새벽에 술 마시는 것[晨飮]을 요서(澆書)라 하였고, 이 황문(李黃門)은 낮잠 자는 것[午睡]을 탄반(攤飯)이라고 했다.” 하였다.
[주D-002]수황(脩況) : 고금(古琴)의 이름이다. 《초학기(初學記)》 악부(樂部)에 의하면, 고금의 이름 중에는 청각(淸角), 명렴(鳴廉), 수황(脩況), 남협(籃脅), 호종(號鐘)이 있다고 하였다.
[주D-003]느끼면 마침내 통함 : 《주 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역은 생각이 없고 하는 것도 없어 적막하게 움직이지 않다가, 느낌이 있으면 마침내 천하의 일을 통하나니, 천하의 지극한 신이 아니면 누가 여기에 참예할 수 있으리오.[易无思也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사람 마음의 신묘함을 말한 것이다.
곡주(谷州)의 중자(仲子) 김사충(金思忠)이 왔으므로, 그의 관직을 물어보니, 산원(散員)이라 하고, 또 그의 형제들을 물어보니, 형 염(廉)은 역시 산원이고 동생 영(詠)은 아직 벼슬하지 않았다고 하므로, 내가 그를 슬피 여겼다. 지금 화원군(花原君)의 외손(外孫) 중에 장성한 자는 모두 참관(參官) 이상에 이르렀고, 심지어 양부(兩府)에 들어갔거나 육부(六部)의 전서(典書)가 된 자도 있는데, 유독 김씨(金氏)의 자식들은 어리지도 않은데 이와 같이 한미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후일의 공명(功名)에 대해서는 감히 그 어떠하리라 기필할 수 없지만, 지금 보이는 형편으로 말하자면 어찌 걱정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내가 힘이 없어서 그를 전조(銓曹)에 천거할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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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주의 세 아들이 이미 성인이 되었건만 / 谷州三子已成人
아직 조관의 반열에 나가 끼이질 못했네 / 未向朝行厠搢紳
나는 이미 쇠하여 못 끌어준 게 한스럽고 / 恨我已衰難汲引
그들은 다 장성하여 불우함이 가련하구나 / 憐渠皆壯尙沈淪
물줄기는 맑거나 흐리거나 같은 근원이요 / 派淸派濁同源水
꽃은 이르건 더디건 한 봄을 같이하나니 / 花早花遲一相春
아득한 천운을 어느 누가 알 수 있으랴 / 天運悠悠誰領得
마제처럼 의당 보전을 잘 배워야 하리라 / 馬蹄須要學全身
[주C-001]곡주(谷州)의 중자(仲子) 김사충(金思忠) : 화 원군(花原君) 권중달(權仲達)의 사위가 다섯인데, 그 첫째가 전분(全賁), 둘째가 유혜방(柳惠芳), 셋째가 민근(閔瑾), 넷째가 이색(李穡), 다섯째가 김윤철(金允轍)인바, 김사충은 바로 김윤철의 아들 3형제 중에 둘째 아들이다.
[주C-002]산원(散員) : 고려 시대에 이군(二軍), 육위(六衛)와 의장부(儀仗府) 등에 두었던 정8품의 무관직(武官職)을 가리킨다. 또는 일정한 사무의 분담(分擔)이 없는 관원을 말하기도 한다.
[주C-003]참관(參官) : 고려 시대에 6품 이상의 관직, 또는 그 벼슬아치를 가리킨다.
[주C-004]양부(兩府) : 고려 시대 문하부(門下府)와 밀직사(密直司)를 합칭한 말이다.
[주D-001]마제(馬蹄)처럼 …… 하리라 : 마 제는 《장자(莊子)》의 편명인데, 그 내용은 바로 백락(伯樂)은 말[馬]을 잘 다룸으로써 말의 진성(眞性)을 잔해(殘害)한 것이니, 자연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곧 천성(天性)대로 유유자적하여 몸을 잘 보전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두보(杜甫)의 〈과소수서작사북과림(課小豎鋤斫舍北果林)〉 시에 “야박한 풍속은 사람 만나길 회피하나니, 몸 보전하려면 마제를 배워야 하리.[薄俗防人面 全身學馬蹄]” 하였다.
새소리를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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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가 기쁨 알리고 작은 창은 밝으니 / 雀聲報喜小窓明
홀로 앉은 늙은이의 흥취가 청쾌하여라 / 獨坐衰翁興況淸
시월의 첫추위는 너무 이른 것도 아닌데 / 十月初寒非大早
산 중턱의 가랑비는 완전히 개질 않았네 / 半山微雨未全晴
가슴속의 잡념들을 씻기에 넉넉한지라 / 剩敎査滓胸中盡
문득 새로운 시가 눈앞에서 나오는구나 / 忽有新詩眼底生
누각 아래 산봉우리들 그림 같은 이곳엔 / 樓下峯巒如畫處
다시 긴 젓대 두세 소리가 필요하련만 / 更消長笛兩三聲
[주D-001]새소리가 기쁨 알리고 : 인가(人家)에서 아침에 까치가 울면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누각 …… 필요하련만 : 당(唐)나라 때 시인(詩人) 조하(趙嘏)의 〈조추(早秋)〉 시에 “성긴 별 몇 점 아래 기럭은 변새를 비껴 날고, 긴 젓대 한 소리에 사람은 누각을 기대었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 하였다.
흥취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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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갈수록 신세 더욱 희미하기만 해라 / 老來身世轉依依
편히 누워서 시비를 관섭할 마음이 없네 / 高臥無心管是非
창 가득 비바람 소리는 졸기에 좋거니와 / 風雨滿窓宜就睡
집 둘러싼 강산엔 돌아감만 못하고말고 / 江山遶屋不如歸
누런 먼지 도성 거리엔 말굽 소리 들레고 / 黃埃紫陌馬蹄鬧
단풍 잎새 푸른 이끼엔 인적이 드물지만 / 紅葉蒼苔人跡稀
한가함만 얻으면 나머진 물을 것 없어라 / 只得一閑餘莫問
인간 가는 곳마다 위기는 있으니 말일세 / 人間到處有危機
내 가 성균관비(成均館碑)의 일로 동정(東亭)을 번거롭게 오라고 청했더니, 오후에 오겠다는 회답이 왔다. 그러나 비는 그치지 않고 몸은 더욱 피곤하여 응접(應接)하기 어려운 것이 두려운지라, 단율(短律) 한 수를 읊어 보내서 공(公)을 오지 말도록 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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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행차 왕림 허락이 얼마나 다행인가만 / 高軒何幸許光臨
비 가득한 유촌엔 진흙탕길이 벌컥거리니 / 雨滿柳村泥已深
그댄 우산 나막신 챙겨 왕래하기 귀찮겠고 / 傘屐頗嫌勞陟降
나는 환약 먹고 앓는 병 조리도 하고 싶네 / 丸丹尙欲救呻吟
봉군도 똑같이 한가하여 일이 없거니와 / 封君等是閑無事
교우는 예로부터 믿음이 맘에 있고말고 / 交友由來信在心
갑자기 미친 말 낸 게 도리어 우스워라 / 忽發狂言還自笑
적막한 천지 사이에 백아의 거문고여 / 寂寥天地伯牙琴
[주D-001]적막한 …… 거문고여 : 옛 날에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는데, 백아가 일찍이 높은 산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듣고 말하기를 “좋다, 높다란[峩峩]것이 마치 태산(泰山)과 같구나.” 하였고, 또 백아가 흐르는 물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또 말하기를 “좋다, 광대한[洋洋]것이 마치 강하(江河)와 같구나.”라고 하여, 백아가 생각한 것은 종자기가 반드시 다 알아들었으므로, 종자기가 죽은 뒤로는 백아가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 하여 마침내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종신토록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고사서 온 말로, 전하여 둘도 없는 지기지우(知己之友)의 관계를 의미한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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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저물어가는 강산에 노쇠한 한림은 / 歲暮江山老翰林
병든 나머지 회포가 배나 침중해지네 / 病餘情思倍沈沈
만종록과 예의 어느 것이 더 소중할꼬 / 萬鍾禮義誰輕重
백대의 과객 광음은 고금에 뻗치었네 / 百代光陰自古今
떠도는 건 바람 앞의 버들개지 같았고 / 飄蕩曾如風裏絮
숨어 지냄은 되레 광 속의 금 같았어라 / 韜藏還似鑛中金
출처가 하늘에 달렸음을 이미 알거니 / 已知出處關天數
왜 수고로이 한 자 굽혀 여덟 자를 펴랴 / 枉尺何勞更直尋
[주D-001]만종록(萬鍾祿)과 …… 소중할꼬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 “사는 것도 내가 원하는 바이며, 의리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두 가지를 겸하여 얻지 못할 바엔 사는 것을 버리고 의리를 취할 것이다.……만종록에 이르러서는 전혀 예의를 분별하지 않고 받나니, 만종록이 과연 나에게 무슨 보탬이 되는가. 궁실의 아름다움과 처첩의 받듦과 평소에 알던 궁핍한 사람이 나에게 힘입어 나를 고마워하게 하는 따위를 위해서일 것이다.[生亦我所欲也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萬鍾則不辨禮義而受之 萬鍾於我何加焉 爲宮室之美 妻妾之奉 所識窮乏者得我與]”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告子上》
[주D-002]왜 …… 펴랴 : 맹 자(孟子)의 제자인 진대(陳代)가 말하기를 “제후를 만나 보시지 않는 것이 작은 지절인 듯합니다. 지금 한번 만나 보시면 크게는 왕천하를 이룰 수 있을 것이요, 작게는 패제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옛 기록에 이르기를 ‘한 자를 굽혀서 여덟 자를 편다.’ 하였으니, 의당 해볼 만하다고 봅니다.[不見諸侯 宜若小然 今一見之 大則以王小則以覇 且志曰枉 尺而直尋 宜若可爲也]”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적게 손해보고 많이 얻는 것을 의미하는데, 맹자는 그의 말에 대하여 정도(正道)를 떠나서 이끗만 취하려고 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하다는 뜻으로 역설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아득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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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여라 상고 시대 사람이여 / 邈哉上世人
남긴 풍도를 들을 길이 없었는데 / 遺響無從聞
갑자기 마음의 창이 활짝 열리어 / 忽然心孔開
서로 즐기며 은근한 정 나누었네 / 交懽接殷勤
만류하여도 머물게 할 수는 없고 / 挽之不可留
내게 높은 덕행 흠모케만 하누나 / 使我歆淸芬
내 몸은 이 불결한 세속으로부터 / 我身自塵滓
자분을 뛰어오를 길이 없는지라 / 末由超紫氛
허리 굽히매 땀은 등에 흠뻑 젖고 / 磬折汗洽背
세상은 흡사 뜬구름처럼 보이네 / 視世如浮雲
중화는 떠나간 지 이미 오래라서 / 重華去已遠
창오엔 공연히 석양만 비치누나 / 蒼梧空夕曛
[주D-001]자분(紫氛) : 천상(天上)에 떠 있는 자색(紫色)의 운기(雲氣)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천상을 가리킨다.
[주D-002]중화(重華)는 …… 비치누나 : 중화는 순(舜) 임금의 별칭인데, 순 임금이 남쪽으로 순수(巡狩)하다가 창오산(蒼梧山) 밑에서 붕어(崩御)하여 그곳에 장사 지냈으므로 이른 말이다.
홍 이상(洪二相)이 방문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이름은 영통(永通)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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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을러서 문병이 더딘 게 부끄러워라 / 愧殺疏慵問疾遲
방문해서는 또 입조한 때에 당했었는데 / 登門又値坐朝時
높은 행차가 홀연히 궁항을 들러주시매 / 高軒忽爾過窮巷
망가진 붓으로 유연히 서툰 시를 쓰노라 / 敗筆悠然題拙詩
아침 해는 막 돋았는데 구름 한 점 없고 / 曉日曈曈無靄隔
광대한 갠 하늘엔 바람이 솔솔 불어오네 / 晴天蕩蕩有風吹
퇴청하여 식사하면서 술자리를 열거든 / 請公退食開樽酒
쇠한 늙은이 불러서 꼭 한 잔 권해주소나 / 須喚衰翁勸一巵
앞의 운을 사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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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떠나서도 아직 더딘 게 가련하여라 / 自憐去國尙遲遲
노쇠한 몰골은 시속에 부합 안 되고말고 / 潦倒形容不入時
만에 하나 회포 풀자면 오직 술뿐이지만 / 萬一開懷唯得酒
보통으로 말만 내면 바로 시를 이루누나 / 尋常吐語卽成詩
안막이 있어도 금비로 제거할 수 있나니 / 雖然有膜爲鎞刮
굳이 예리한 칼을 기다릴 필요가 없으리 / 不必將毛向劍吹
강산이 그림 같은 곳에 홀로 서 있노라니 / 獨立江山如畫處
한 동이 술로 누구와 함께 잔을 기울일꼬 / 一樽誰與共傾巵
[주D-001]나라 …… 게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 “공자가 제나라를 떠날 때는 인 쌀을 건져서 급히 떠났고, 노나라를 떠날 때는 ‘더디기도 해라 나의 떠남이여.’라고 하였으니, 이는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도리인 것이다.[孔子之去齊 接淅而行 去魯曰遲遲吾行也 去父母國之道也]”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 나라를 떠난다는 것은 곧 벼슬을 그만두고 조정(朝廷)을 떠난 것을 의미한다. 《孟子 萬章下》
[주D-002]안막(眼膜)이 …… 있나니 : 금 비(金鎞)는 금으로 만든 젓가락으로, 본디 고대(古代) 인도(印度)의 의사(醫師)가 맹인(盲人)의 안막을 제거해 주는 도구였는데, 전하여 후세에 불가(佛家)에서 중생(衆生)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무지(無智)의 막(膜)을 금비로 제거해 준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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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 아래서 낮잠 자니 지기가 혼매하여라 / 攤飯南窓志氣昏
흑첨향 속에도 하나의 별천지가 있네그려 / 黑甜鄕裏一乾坤
유쾌하여라 홍시가 흡사 용맹한 장수같이 / 快哉紅柹如飛將
적진 격파하여 천군만마를 도망치게 하네 / 破陣能令萬馬奔
[주D-001]흑첨향(黑甜鄕) : 흑첨은 낮잠을 말하는데, 특히 북방(北方) 사람들이 낮잠을 흑첨이라 칭한다고 한다.
[주D-002]유쾌하여라 …… 하네 : 가을이 되어 낙엽이 다 진 가운데 유독 홍시만 높다랗게 달려 있는 것을 미화하여 이른 말이다.
대서(代書)하여 무설(無說) 장로(長老)에게 받들어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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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 뒤에 서신 받으니 기쁨이 그지없는데 / 亂後書來喜可知
더구나 한 편의 시까지 보여 주었음에랴 / 況蒙垂示一篇詩
애써 병든 눈 닦고 다시 남쪽을 바라보니 / 強揩病目更南望
아득한 흰 구름은 어느 곳으로 가는지 원 / 渺渺白雲何所之
인하여 승거(僧居)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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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감정과 생각을 다 잊고 / 洒落忘情想
한적하게 지낸 지 그 몇 해이던고 / 蕭條度歲年
한가이 잠잘 땐 아침 식사 뒤이요 / 閑眠朝飯後
조용히 섰을 땐 저녁 종이 울리네 / 寂立暝鐘邊
물을 토하는 용은 바리때에 엎드리고 / 吐水龍藏鉢
꽃을 머금은 새는 하늘에서 내려오리 / 含花鳥降天
높이 찾을 뜻이야 어찌 없으랴만 / 高尋豈無意
세상 인연 끊지 못한 게 한스럽네 / 恨未息諸緣
[주D-001]물을 …… 엎드리고 : 인 도(印度)의 나제가섭(那提迦葉)이 석존(釋尊)에게 귀의(歸依)하기 이전, 불[火]을 섬기는 외도(外道)에 속해 있을 때, 한번은 석존을 만나서 함께 자기를 요청하여 석존을 대룡 석굴(大龍石窟)로 들여보내니, 한밤중에 용(龍)이 불을 토해 내서 석존을 해치려고 하므로, 석존이 자비심(慈悲心)을 일으켜 삼매화(三昧火)로 현신(現身)하자, 그 화룡(火龍)이 마침내 굴복하여 석존의 바리때 속으로 들어갔다는 고사가 있고, 또는 진(晉)나라 때의 고승(高僧) 섭공(涉公)이 부견(苻堅)의 요청으로 기우(祈雨)를 행할 때에 한 용을 굴복시켜 자신의 바리때 속으로 들어오게 해서 큰비를 쏟아 내리게 했다는 고사도 있는데, 이는 모두 고승의 신통한 법력(法力)을 의미하는바, 전자의 고사에 해당할 경우, 원문의 ‘수(水)’ 자는 의당 화(火) 자의 착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주D-002]꽃을 …… 내려오리 : 불교에서 새는 불타(佛陀)의 화신(化身)으로 쓰이고, 또는 불법(佛法)을 수호(守護)한다는 금시조(金翅鳥)나, 기타 공작(孔雀) 등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어느 새를 말하는지 자세하지 않다.
[주D-003]높이 …… 없으랴만 : 두 보(杜甫)의 〈망악(望岳)〉 시에 “점차 가을바람이 서늘해지기를 기다려, 높이 백제를 찾아서 진원을 물으련다.[稍待秋風涼冷後高尋白帝問眞源]”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백제(白帝)는 화산(華山)의 신령인 서방신(西方神)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가을을 의미한다
기사(紀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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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도는 참으로 빈마의 곧음과 같아서 / 地道眞如牝馬貞
하늘의 우로를 받아 신묘하게 생성하나니 / 承天雨露妙生成
아들이건 딸이건 무슨 경중이 있을쏜가 / 弄璋弄瓦誰輕重
천지 사이에 해와 달은 똑같이 밝고말고 / 俯仰乾坤日月明
만물이 음양 조화 입어 보합할 줄 알거니 / 萬物絪縕知保合
한 집안이 질서가 바르면 태평을 이루리라 / 一家位育致升平
백발에 아손들 성한 것만이 기쁠 뿐이네 / 白頭只喜兒孫盛
마사의 이름이 응당 천재에 전해지겠지 / 馬史流傳千載名
[주D-001]땅의 …… 같아서 : 《주역》 곤괘(坤卦)에 “곤은 원하고 형하고 이하고 암말의 곧음이다.[坤 元 亨 利 牝馬之貞]”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에서 곧음이란 바로 유순(柔順)함을 의미한다.
[주D-002]만물(萬物)이 …… 알거니 : 《주역》 건괘(乾卦) 단사(彖辭)에 “건도가 변화하매 각각 성명을 바루나니, 대화를 보합하여 이에 이하고 정하니라.[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大化 乃利貞]”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마사(馬史)의 …… 전해지겠지 : 마 사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가리키는데, 사마천이 죽은 이후 선제(宣帝) 때에 이르러 그의 외손(外孫)인 평통후(平通侯) 양운(楊惲)이 비로소 그 글을 천양(闡揚)하여 선포(宣布)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외손이 있음을 의미한다.
권 개성(權開城)에게 축수를 드리다. 이름은 주(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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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향기와 푸른 솔은 추위를 능가하고 / 菊香松翠傲風寒
깨끗하게 선 연잎엔 이슬이 흠뻑 내렸네 / 淨植亭亭碧露漙
사시가 교대로 운행하여 단절됨이 없기에 / 四序迭行無斷絶
다시 봄 경치를 장안에 가득하게 했네그려 / 更敎春色滿長安
[주D-001]국화 …… 능가하고 : 권주(權鑄)의 증조부(曾祖父)인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 권보(權溥)의 호가 국재(菊齋)이고, 조부(祖父)인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의 호가 송재(松齋)이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깨끗하게 …… 내렸네 : 염 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 속에서 나왔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맑은 잔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 속은 텅 비어 통하고 겉은 곧으며, 덩굴도 가지도 뻗지 않고,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이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만 있고 가까이 가서 가지고 놀 수 없음을 사랑하노라.[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 濯淸漣而不夭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可遠觀而不可褻翫焉]”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권주(權鑄)의 아버지인 현복군(玄福君) 권렴(權廉)이 일찍이 개성(開城) 숭교리(崇敎里)의 연지(蓮池) 곁에 누대를 지어 운금루(雲錦樓)라 편액(扁額)을 걸고, 매양 연꽃이 필 때마다 성찬(盛饌)을 마련하여 빈료(賓僚)들을 초대해서 풍류를 즐겼으므로 한 말이다.
성대한 연회(宴會)를 추후에 기술하여 희안(希顔) 좌하(座下)에 바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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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계씨 어진 형이 화려한 집에 모이니 / 季強昆令集華堂
창가 소리에 구름 멈추고 무수도 향기롭네 / 歌遏行雲舞袖香
분수 밖에 우연히 생일 잔치에 참여했는데 / 分外偶參生日會
술이 취해서는 도리어 미친 소년 같았었지 / 醉中還似少年狂
높은 화염에 꽃 꺾여라 은촉은 활활 타고 / 花摧高焰燒銀燭
가는 물결에 바람 일어라 술잔은 출렁이네 / 風動微波灩羽觴
세상의 태평 회복 어려움은 점차 깨닫지만 / 漸覺世途難復泰
국재의 남긴 행복은 아직 다하지 않았구려 / 菊齋餘慶未渠央
[주C-001]희안(希顔) : 권주(權鑄)의 자(字)이다.
[주D-001]강한 …… 모이니 : 후 배가 선배보다 더 훌륭하다는 뜻으로, 송(宋)나라 때 유반(劉攽)이 소식(蘇軾)의 동생인 소철(蘇轍)이 지은 〈훈사(訓辭)〉를 보고는 소철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지은 문장이 어진 형보다 강하다.[君所作強於令兄]”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형제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주D-002]창가 …… 향기롭네 : 무수(舞袖)는 미인(美人)의 춤추는 소맷자락을 말하는데, 구름이 멈춘다는 것은 곧 창가 소리가 하도 아름다워서 무심(無心)한 구름도 가던 길을 멈추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높은 …… 타고 : 소식의 〈무창서산(武昌西山)〉 시에 “어찌 알았으랴 백발로 함께 숙직하면서, 연촉의 높은 꽃이 꺾이는 걸 누워서 볼 줄을.[豈知白首同夜直 臥看椽燭高花摧]”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두 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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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멍덩한 이 몰골은 늙고 또 쇠했는데 / 鶻突形容老且衰
치성한 권세 이끗은 하 넓어 가없어라 / 鴟張勢利浩無涯
창 반쯤 해 돋았을 제 분향하고 앉아서 / 半窓朝日焚香坐
종이 가득 새로운 시를 붓 놓고 생각하네 / 滿紙新詩輟筆思
이기는 반근착절 만난 걸 걱정 않거니와 / 利器不憂逢錯節
행운은 어찌 맑은 못 지날 것을 생각하랴 / 行雲豈念度淸池
여전히 출처 두 가지를 모두 잊어버리고 / 依然出處兩忘了
홀로 읊조림을 하늘만이 스스로 알리라 / 獨詠寥寥空自知
뭇 악인을 내쫓고 임금님 잘 받들었으니 / 竄逐羣邪奉大君
남풍가 한 곡조에 요순을 상상케 하누나 / 南風一曲想華勛
도유의 융성한 때에 한창 계통 드리웠고 / 都兪盛際方垂統
선왕 계승한 큰 계책은 또 문을 지켰어라 / 繼述丕謨又守文
태양은 중천에 올라 사해를 환히 비추고 / 白日當中明四海
끝없는 푸른 하늘은 구름 한 점도 없으니 / 碧天無畔絶纖雲
재물 많고 노염 풀기가 그리 안 어렵거늘 / 阜財解慍非難甚
구구하게 촌분만 아끼는 게 부끄럽구나 / 愧殺區區惜寸分
[주D-001]이기(利器)는 …… 않거니와 : 이 기는 예리(銳利)한 연장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뛰어난 재능을 비유하고, 반근착절(蟠根錯節)은 나무의 서린 뿌리와 엉클어진 마디를 말한 것으로, 매우 복잡해서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장인이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연장을 예리하게 해야 한다.[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하였다. 《論語 衛靈公》
[주D-002]행운(行雲)은 …… 생각하랴 : 기약 없이 우연히 서로 조우(遭遇)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3]뭇 …… 하누나 : 뭇 악인(惡人)을 내쫓았다는 것은 순(舜) 임금이 일찍이 사흉(四凶) 즉 공공(共工), 환두(驩兜), 삼묘(三苗), 곤(鯀)을 죽이거나 내쫓았던 일을 가리키고, 〈남풍가(南風歌)〉는 순 임금이 처음으로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지어 불렀다는 노래로, 즉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노염을 풀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할 만하도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한 것을 말한다.
[주D-004]도유(都兪) : “훌륭하다, 옳다.”라는 감탄사로서, 이는 곧 순(舜)과 우(禹)와 고요(皐陶)가 군신(君臣) 간에 서로 화합하여 좋은 말을 주고받은 가운데서 나온 말이다. 《書經 益稷》
[주D-005]선왕(先王) …… 지켰어라 : 《춘 추좌전(春秋左傳)》 문공(文公) 9년 조(條)에 “문왕의 몸을 계승하고, 문왕의 법도를 지킨다.[繼文王之體 守文王之法度]” 한 데서 온 말로, 본래는 문왕의 법도를 준행하는 것을 가리킨 것이지만, 뒤에는 일반적으로 선왕의 법도를 준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6]촌분(寸分)만 아끼는 게 : 진(晉)나라 때 명장(名將) 도간(陶侃)이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대우는 성인인데도 촌음을 아꼈으니, 보통 사람들은 의당 분음을 아껴야 한다.[大禹聖人 乃惜寸陰 至衆人 當惜分陰]” 한 데서 온 말이다.
물이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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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있어 바위 머리에 떨어져라 / 有水落巖頭
폭포는 천 길 남짓이나 되는데 / 飛流千丈強
아래는 백 이랑의 깊은 못이 있어 / 下有百頃潭
폭포 소리가 산을 찢을 것만 같네 / 雷鳴如裂岡
절벽 주위엔 풀이 나지 않았고 / 緣崖草不生
깊은 못에는 용이 숨어 있는데 / 中爲龍所藏
어이해 누운 채 일어나지 않아서 / 如何臥不起
주민들에게 저축이 없게 하는고 / 居者無積倉
곳집이 가득 차야 예절을 아나니 / 倉實知禮節
제발 이 백성들 잘사는 걸 보았으면 / 願覩斯民康
[주D-001]곳집이 …… 아나니 : 《관자(管子)》 목민(牧民)에 “곳집이 가득 차면 예절을 알게 되고, 의식이 풍족하면 영욕을 알게 된다.[倉廩實則知禮節衣食足則知榮辱]”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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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한가롭고 조그만 방은 텅 비고 밝아서 / 身閑小室儘虛明
단정히 앉아 읊조리니 기가 더욱 맑아지네 / 端坐吟哦氣轉淸
문밖엔 조마의 발자국이 아직 남았는데 / 門巷尙留朝馬跡
마을에선 새벽닭이 요란하게 울어대더니 / 里閭相聞曉雞聲
나무 끝엔 아침 해가 징같이 떠오르고 / 樹頭日色銅鉦掛
집 밖엔 산 빛이 푸른 병장 두른 듯하네 / 樓外山光翠障橫
말년에야 점입가경의 맛은 점차 알겠는데 / 末路漸知如啖蔗
다만 이름 도피할 곳 없는 게 혐의롭구나 / 只嫌無處可逃名
베개맡에서 비 오는 소리를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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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도 전원 못 간 게 매양 상심되는데 / 老不歸田每自傷
동짓달에 비 오는 것 또한 상도가 아니로다 / 仲冬陰雨亦非常
와상 옆 등잔불은 읊는 가운데 썰렁하고 / 夜牀燈影吟中冷
베개맡의 낙숫물 소리는 꿈속에 길어라 / 曉枕簷聲夢裏長
원기는 어느 때나 순조로워질 수 있으며 / 元氣底時能得順
남은 생애엔 무슨 계책이 가장 좋을런고 / 殘年何策最爲良
붓 뽑아서 처량한 뜻을 쓰려고 하노니 / 抽毫欲寫凄涼意
깊고 얕음은 바닷물로나 헤아려야 하리 / 深淺須將海水量
또 한 수를 짓다.
새벽에 듣자니 낙숫물 소리 닭 우는 소리에 / 曉聞簷溜雜雞鳴
풍로 위에선 물이 막 펄펄 끓어오르는데 / 煮水風爐沸有聲
어린애는 옷 끌어당기며 늘 밥 달라 보채고 / 稚子牽衣頻索飯
늙은이는 붓 휘둘러 실컷 심정을 서술하네 / 老翁揮筆爛陳情
주렴 걷고 낭랑히 읊어 종이에 시 쓰는데 / 捲簾高詠濕繭紙
우산 받고 분주한 이는 도성에 가득하구려 / 張傘疾驅盈鳳城
가장 사랑스러운 건 녹사의 한 구절이라 / 最愛綠簑衣一句
지금까지도 그림같이 눈앞에 환하구나 / 到今如畫眼中明
[주D-001]녹사의(綠簑衣) 한 구절이라 : 녹 사(綠簑)는 푸른 도롱이를 말한 것으로, 당(唐)나라 때 은사(隱士)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대삿갓 쓰고 푸른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것 없고말고.[靑箬笠 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 한 데서 온 말이다.
11월 2일에 가랑눈이 공중에 펄펄 날리기만 하고 땅에는 떨어지지 않다가 이윽고 그치더니, 바람이 몹시 일어나므로, 방에 들어와 조용히 앉아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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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눈이 공중을 날아서 내려오려 하는데 / 微雪飄空欲下來
거센 바람이 땅을 몰아와 문득 시샘을 하네 / 狂風卷地忽相猜
목옹은 매우 한가하여 남쪽 창 조용하여라 / 牧翁閑甚南窓靜
앉아 생각하니 풍년이 지금 그 몇 번이던고 / 坐念豐年今幾迴
적적한 문정은 이내 명승지를 이루었고 / 寂寂門庭成勝地
아득한 천지 사이엔 먼지가 하나도 없네 / 茫茫天地絶輕埃
은염이나 옥서는 다 진부한 말이거니와 / 銀鹽玉絮皆陳腐
나는 사물 묘사하는 재주 없음이 부끄럽네 / 愧我曾無賦物才
[주D-001]은염(銀鹽)이나 옥서(玉絮) : 은 (銀)과 옥(玉)은 모두 눈의 흰빛을 형용하는 말로서, 예전에 문인(文人)들이 흔히 눈을 은세계(銀世界), 은봉(銀峯), 은배(銀盃), 옥사(玉沙), 옥진(玉塵) 등으로 형용했던 것을 말한다. 염(鹽)과 서(絮) 역시 눈이 내리는 것을 형용한 말로서, 진(晉)나라 때 사안(謝安)이 일찍이 자기 집안의 자질(子姪)들과 모여 앉았을 적에 갑자기 눈이 펄펄 내리므로, 사안이 자질들에게 눈 내리는 모양이 무엇과 같으냐고 묻자, 조카인 사랑(謝郞)은 말하기를 “공중에서 소금을 뿌리는 데 비길 만합니다.[撒鹽空中差可擬]” 하니, 질녀(姪女)인 사도온(謝道韞)은 말하기를 “버들개지가 바람에 일어나는 것보다 못합니다.[未若柳絮因風起]” 하므로, 사안이 크게 기뻐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하사한 토전(土田)에 대하여 조세(租稅)를 거두는 사람이 길을 떠나려고 하므로, 앉아서 한 수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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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의 은혜가 두루 미쳐 하늘같이 크기에 / 聖恩周徧大如天
쓸모없는 늙은이도 토전의 하사를 입었네 / 老物猶蒙賜土田
총재가 연명하여 면제해 주길 허락했지만 / 冢宰聯名許蠲貸
군수 장부 점검이야 감히 늦출 수 있으랴 / 軍須案籍敢遷延
태평성대 만나긴 응당 억지로 안 되련만 / 致身昭代應難強
남은 생애의 호구책은 참으로 가련하구나 / 糊口殘生儘可憐
다시 가동 시켜 침범하는 일 막게 하노니 / 更戒家童勿侵擾
내가 장차 내년에는 묵은 땅을 개간하련다 / 墾荒吾欲待來年
여강(驪江)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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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 가에 살 계책이 언제나 이뤄질런고 / 驪江活計幾時成
눈 속의 외론 낚싯배는 강가에 비꼈으리 / 釣雪孤舟傍岸橫
또 이 금년에도 여강엘 돌아가지 못한 채 / 又是今年歸不得
벌써 벌창한 도화수가 시야에 질펀하구나 / 桃花春漲望中平
사시의 물상들은 읊조림을 제공하건만 / 四時物像供吟嘯
만고의 영웅들은 명리에 고난을 겪었지 / 萬古英雄困利名
나는 점차 앉은뱅이 중과 아주 같아져서 / 漸與躄浮屠酷似
말로만 들먹일 뿐 끝내 실천을 못 하누나 / 徒能動舌竟難行
목은 늙은이는 오늘날 흡사 승려와 같이 / 牧翁今日似緇流
다만 여강으로 마냥 화두를 삼는구나 / 只把驪江作話頭
망상은 참으로 공과를 이룸과 같거니와 / 妄想眞同結空果
부생은 도리어 빈 배에 뜬 모양이로세 / 浮生還是泛虛舟
자리 위에 향기 풍겨라 꽃이 나무에 피었고 / 香飄席上花開樹
그림자는 강물에 들어라 달은 누각에 있네 / 影入江中月在樓
의문 타파할 날이 응당 머지는 않으련만 / 打破疑團應不遠
안락할 곳에 아직 안락하질 못하네그려 / 可休休處未休休
[주D-001]눈 …… 비꼈으리 : 유 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 시에 “모든 산에는 새들도 날지를 않고, 오만 길에는 인적도 끊어졌는데, 외로운 배에 도롱이 삿갓 쓴 늙은이가, 홀로 차가운 강 눈 속에 낚시질을 하네.[千山鳥飛絶 萬逕人蹤滅 孤舟簑笠翁 獨釣寒江雪]”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도화수(桃花水) : 복숭아꽃이 필 무렵에 봄비가 오고 눈이 녹아서 벌창해진 강물을 말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중춘의 달에는……비로소 우수 절기가 이르고, 복숭아꽃이 비로소 핀다.[仲春之月……始雨水 桃始花]” 하였다.
[주D-003]망상(妄想)은 …… 같거니와 : 불 교에서 결과(結果)란 원인으로 인하여 얻어진 효과를 말한 것으로, 즉 올바른 수행(修行)을 통하여 진리를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바, 여기서 공과(空果)를 이룬다는 것은 역시 망상으로 인하여 진리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만생(晚生)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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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생이 도리어 옛 도를 좋아하기에 / 晚生還好古
바른 법도로 시속에 적응코자 하여 / 矩步欲趨時
학문의 힘은 마음으로 징험하건만 / 學力將心驗
사귀는 정은 일을 당해서 알게 되네 / 交情遇事知
강산은 원래 한계가 있거니와 / 江山元有界
천지는 절로 사정이 없고말고 / 天地自無私
고요한 남쪽 창에 햇살 비출 제 / 日照南窓靜
유연히 또 시를 읊조려 얻었네 / 悠然又得詩
식후의 낮잠을 막 깨고 나서 / 攤食眠初罷
유연히 낮닭 소리를 듣노라니 / 悠然聽午雞
문정은 어찌 그리도 적적하며 / 門庭何寂寂
신세는 어찌 그리도 허둥대는고 / 身世竟栖栖
누각은 가없는 하늘에 높다랗고 / 樓逈天無際
창문은 석양 아래 환히 밝아라 / 窓明日欲西
백발로 자주 거울을 보노라니 / 白頭頻攬鏡
귀거래만 실천 못 했을 뿐이로다 / 只欠去來兮
쇠한 용모는 남들이 다 놀라지만 / 衰容人共駭
호기는 스스로 제거하기 어렵네 / 豪氣自難除
다만 현빈에 참여하고플 뿐이지 / 祗欲參玄牝
어찌 소서에 무릎 꿇은 적 있으랴 / 何曾跪素書
산은 왕찬의 집 위에 높다랗고 / 山高王粲宅
뽕나무는 공명의 집에 무성해라 / 桑暗孔明廬
거마의 소리 없어 적적한 가운데 / 寂寂無車馬
소리 높여 읊으니 흥이 넘치누나 / 高吟興有餘
[주C-001]만생(晚生) : 후배가 선배에 대한 자신의 겸사(謙辭)로 쓰는 말이다.
[주D-001]귀거래(歸去來)만 …… 뿐이로다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돌아가리라, 전원이 황폐해져가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 한 데서 온 말로, 사직하고 전원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주D-002]현빈(玄牝)에 참여하고플 뿐이지 : 현 빈은 우주(宇宙)의 만물을 생성하는 본체(本體) 즉 천지(天地)의 원기(元氣)를 말하는데, 현(玄)은 사람에 있어 코[鼻]에 해당하고, 빈(牝)은 사람에 있어 입[口]에 해당하는 것으로, 즉 천지의 도(道)를 지켜서 심신(心身)을 수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3]어찌 …… 있으랴 : 한 고조(漢高祖)의 모신(謀臣) 장량(張良)이 일찍이 하비(下邳)의 흙다리 위[圯上]에서 황석공(黃石公)을 만나, 그가 짐짓 다리 밑으로 떨어뜨린 신을 주워다가 그의 명에 따라 공손히 꿇어앉아서 신겨주고, 그로부터 태공(太公)의 병서(兵書)를 받아 익힌 다음, 한 고조의 모신이 되어 마침내 진(秦)나라를 멸하고 한업(漢業)을 세웠던 데서 온 말인데, 《소서(素書)》는 바로 황석공이 장량에게 준 병서를 가리킨다. 소식(蘇軾)의 〈화도독산해경(和陶讀山海經)〉 시에 “소서가 황석공에게 있었으니, 무릎 꿇고 신 신기길 어찌 감히 사양하리.[素書在黃石 豈敢辭跪履]” 하였다.
[주D-004]산은 …… 높다랗고 : 후한(後漢) 말기에 위(魏)나라의 왕찬(王粲)이 난리를 피해 남방(南方)으로 가서 양양현(襄陽縣) 서쪽 현산(峴山) 기슭에 집을 짓고 임시로 거주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뽕나무는 …… 무성해라 : 후 한(後漢) 말기에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남양(南陽)의 초려(草廬)에서 몸소 농사짓고 살면서 세상에 영달(榮達)하기를 구하지 않다가, 뒤에 촉한(蜀漢)의 선주(先主) 유비(劉備)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한 정성에 감동하여 나가서 마침내 장상(將相)이 되었는데, 그가 일찍이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말하기를 “신은 성도에 뽕나무 팔백 그루와 척박한 전토 십오 경이 있으니, 자손들의 의식은 절로 넉넉합니다.……그러니 신이 죽은 뒤에라도 곡식 창고에 남은 곡식이 있거나, 재물 창고에 남은 재물이 있어 이런 것으로 폐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成都有桑八百株 薄田十五頃子孫衣食 自有餘饒……若死之日 不使廩有餘粟 庫有餘財 以負陛下]”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새벽에 한 수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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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에 두부 튀겨 잘게 썰어서 국을 끓이고 / 豆腐油煎切作羹
여기에 다시 총백을 넣어서 향미를 도와라 / 更將蔥白助芳馨
난질난질 멥쌀밥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 爛炊粳米流脂滑
깨끗이 닦은 그릇들은 눈에 환히 빛나누나 / 淨洗盤盂照眼明
날마다 만 전을 먹는 건 물욕에 빠진 것이요 / 日食萬錢酣物欲
조반에 한 가지 맛으로도 심령을 기른다오 / 晨飡一味養心靈
다행히 문자는 뱃속에 가득 담겨 있거니 / 幸敎文字撑腸在
배부르고 나서 태평 기리길 왜 꺼릴쏜가 / 旣飽何嫌誦太平
[주D-001]날마다 …… 것이요 : 진 무제(晉武帝) 때 벼슬이 태위(太尉)에 이른 하증(何曾)은 본디 호사(豪奢)하기를 좋아하여 궁실(宮室), 거마(車馬), 의복, 음식 등에 있어 모두 왕자(王者)보다 지나칠 만큼 극도로 사치를 부렸는데, 그는 특히 날마다 만 전(錢)어치씩의 음식을 차려 먹으면서도 오히려 “젓가락을 내려 집을 것이 없다.[無下箸處]”고까지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안석에 기대앉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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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석에 기댄 채 해는 한낮이 돼가고 / 几坐日將午
높이 읊노라니 하늘은 정히 흐려라 / 放歌天正陰
높이 옛 군자의 행적을 찾다 보니 / 高尋君子跡
우연히 성인의 마음과 계합하누나 / 偶契聖人心
먼 후예는 유가 경적을 탐구할 게고 / 遠裔探儒籍
고결한 정신은 사림에서 습취하리 / 孤芳掇士林
지금 당장 달게 물러나 자숙한다면 / 卽今甘退縮
천재에 내 마음 알아줄 이 있으련만 / 千載有知音
동풍(東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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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풍이 땅을 말아와 그 형세 아득하여라 / 東風捲地勢茫茫
초목들은 때를 만나 세차게 일어나는데 / 草木逢辰欲發揚
하늘은 갑자기 맑아 구름 한 점도 없고 / 天宇忽淸無點綴
태양은 중천에 떠서 배회하는 듯하구나 / 日輪當午似彷徨
송도엔 육익이 지나간 일을 기록하였고 / 宋都持筆過六鷁
한조는 일찍이 사방 지킨 걸 노래하였네 / 漢祖曾歌守四方
백발의 쇠한 늙은이는 깊이 문 닫고 앉아서 / 白髮衰翁深閉戶
때로 쓸데없는 생각을 붓끝에 부치노라 / 有時閑念寄毫鋩
[주D-001]송도(宋都)엔 …… 기록하였고 : 익 (鷁)은 일종의 물새이다. 《춘추(春秋)》 희공(僖公) 16년 조(條)에 “여섯 익새가 바람에 밀려 뒤로 날아서 송나라 도읍을 지나갔다.[六鷁退飛過宋都]”고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의하면, 이때가 바로 주(周)나라 내사(內史) 숙흥(叔興)이 송(宋)나라를 방문한 때였으므로, 송 양공(宋襄公)이 숙흥에게 익새가 뒤로 날아간 일이 무슨 징조이며, 길흉(吉凶)은 어느 나라에 있는 것이냐고 묻자, 숙흥이 대답하기를 “금년에 노나라에는 큰 상사가 여러 번 있을 것이고, 명년에 제나라에는 난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군주께서는 앞으로 제후들을 거느리겠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입니다.[今玆魯多大喪明年齊有亂 君將得諸侯而不終]”라고 하였다.
[주D-002]한조(漢祖)는 …… 노래하였네 :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는 고향인 패(沛)에 들러 부로(父老)와 자제(子弟)들을 패궁(沛宮)으로 초대하여 주연(酒宴)을 크게 베풀고 술이 거나해지자, 스스로 대풍가(大風歌)를 지어 친히 축(筑)을 치면서 노래하기를 “큰 바람이 일어나니 구름이 날리었도다. 위엄이 천하에 입혀져서 고향에 돌아왔네. 어떻게 하면 용사들을 얻어서 사방을 지킬꼬.[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歸故鄕 安得猛士兮守四方]” 한 데서 온 말이다.
이웃 늙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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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이웃 늙은이가 있어 / 田舍有鄰翁
자식을 보내와서 말을 전하기를 / 遣子來致言
경작하는 땅이 척박하긴 하지만 / 所耕地雖薄
주인이 하나라 일이 안 번잡했는데 / 主一事不繁
금년에는 땅이 수사에 귀속되어 / 今年屬收司
부사가 내 집에 와서 조사를 하고 / 副使臨吾門
창고지기 또한 그를 시샘하는 듯 / 倉家欲爭之
나에게 진술서를 속히 올리라 하니 / 令我供狀奔
분주한들 끝내 무엇이 유익하리오 / 奔馳竟何益
조세 바치는 일 밖에 무얼 논하랴 / 納稅餘何論
내가 내 힘으로 농사지어 먹어서 / 吾農自食力
처자식이 다 배부르고 등 다스우니 / 妻兒同飽溫
진정 나를 귀찮게 하는 이만 없다면 / 苟無擾我者
내가 바로 희헌 시대 백성이거늘 / 卽是民羲軒
어찌하여 이렇게 괴롭힌단 말인가 / 奈何至此極
하늘은 혹 백성을 슬피 여길까 하기에 / 天或哀黎元
내가 답하길 너는 곧 그만두거라 / 答言汝且止
바닷가에는 묵은 토전도 많은데 / 濱海多荒田
너는 다행히도 적현에 살고 있어 / 汝幸居赤縣
안심하고 조석을 지낼 뿐만 아니라 / 安心度朝昏
너를 위하여 왜적을 방어하느라 / 爲汝禦倭賊
장상들이 스스로 몸을 낮추거니 / 將相自屈尊
조세 내서 왕의 군대에 공급하여 / 出租供王賦
너는 의당 국은에 보답해야 하거늘 / 汝當酬國恩
어찌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는고 / 胡爲出怨言
네 죄는 결코 용서할 수 없겠구나 / 汝罪不可原
너는 돌아가 네 아비에게 고하여 / 汝其告汝父
다시는 허튼소리 말도록 할지어다 / 勿用更云云
[주D-001]수사(收司) : 《고 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충혜왕(忠惠王) 후사년(後四年) 7월에 오교(五敎) 양종(兩宗)의 없어진 절[亡寺]의 토전(土田) 및 선대(先代)의 공신전(功臣田)을 모조리 내고(內庫)에 귀속시키게 하였고, 10월에는 좌우도 수사판사(左右道收司判事) 최우손(崔雨孫) 등이 경기(京畿)의 모든 사급전(賜給田)을 모조리 빼앗아 유비창(有備倉)에 귀속시켰다.”고 한 내용으로 보아, 수사는 곧 조세(租稅) 거두는 일을 관장하던 기관이었던 듯하다.
[주D-002]희헌(羲軒) 시대 : 희헌은 상고 시대 제왕(帝王)인 태호 복희씨(太昊伏羲氏)와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를 합칭한 말로, 전하여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주D-003]적현(赤縣) : 경도(京都) 관할(管轄)의 고을을 이른 말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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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새는 날개를 쳐보지만 / 籠中鳥鼓翼
천지는 어찌 그리도 아득하며 / 天地何茫茫
못 안의 고기는 비늘을 떨치지만 / 池中魚縱鱗
강해는 어찌 그리도 광대한고 / 江海何洋洋
군자는 처한 곳에 편안하나니 / 君子安所處
즐거워라 상도를 지키는 일이여 / 樂哉守天常
중니는 진에서 곤경을 당하였고 / 仲尼困在陳
주공은 명당에 앉아 다스렸지만 / 周公坐明堂
시운이 마침 그렇게 된 것일 뿐 / 時運適然耳
어디나 요순 시대 아님이 없었지 / 無處非虞唐
고성방가 소리 하늘에 들리련만 / 高歌聲聞天
하늘은 더욱더 푸르기만 하구나 / 天也逾蒼蒼
[주D-001]우리 …… 광대한고 : 진 (晉)나라 반악(潘岳)의 〈추흥부(秋興賦)〉에 “비유하자면 마치 못 안의 물고기와 우리 안의 새가 강호와 산림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譬猶池魚籠鳥 有江湖山藪之思]”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몸이 한정된 곳에 속박받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중니(仲尼)는 …… 당하였고 : 공 자(孔子)가 일찍이 위(衛)나라를 떠나 진(陳)ㆍ채(蔡)의 사이에 있을 적에 초(楚)나라에서 사자(使者)를 보내 공자를 초빙하려 하자, 진ㆍ채의 대부(大夫)들이 공자가 초나라에 등용되면 자기들의 비행이 알려질 것을 염려한 나머지, 공자 일행을 들판에서 포위하여 오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마침내 양식이 떨어져 종자(從者)들이 병이 나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衛靈公》 《史記 卷47 孔子世家》
[주D-003]주공(周公)은 …… 다스렸지만 : 주공은 천자(天子)가 되지는 못했지만, 조카인 어린 성왕(成王)을 도와서 섭정(攝政)을 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성균시원(成均試員) 서 승제(徐承制)가 낙명지(落名紙)를 보내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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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는 붙여 연결하여 넓다란데 / 名紙粘連闊
종공은 고열을 정밀하게 하였네 / 宗工考閱精
뛰어난 이 뽑아서 후진을 압도하고 / 拔尤傾後進
옛일 기억하여 선생에게 보냈구려 / 記舊遺先生
방 위에선 풍운이 제회하였고 / 牓上風雲會
붓끝에선 월로가 청신하였네 / 毫端月露淸
앞으로는 악곡의 성률을 배워서 / 從今學聲律
곡을 만들어 태평을 노래하련다 / 制曲寫升平
[주C-001]낙명지(落名紙) : 명지(名紙)는 고시(考試)의 답안(答案)을 써 놓은 종이를 말한 것으로, 낙명지는 곧 고시 낙제지(考試落第紙)를 의미한다.
[주D-001]종공(宗工) : 문학(文學)의 종사(宗師)를 일컫는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고시(考試)의 시관(試官)을 가리킨다.
[주D-002]방(牓) …… 제회(際會)하였고 : 《주 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 한 데서 온 말로, 즉 과거(科擧) 시험을 통하여 많은 인재를 뽑음으로써,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만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주D-003]붓끝에선 월로(月露)가 청신(淸新)하였네 : 월로는 시문(詩文)의 한 체(體)로서, 내용은 없으면서 겉만 화려한 미사여구의 시문을 말한 것으로, 즉 고시생(考試生)들의 답안을 가리킨다.
듣자니, 용부(庸夫) 오재(五宰)가 동문(東門)을 나가는 도중에 복고(腹藁)와 행리(行李)가 가뿐하여 물외(物外)에 초연(超然)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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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의 산수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여 / 東門山水淨無塵
뛰어난 인재 얻어서 조관을 압도하였네 / 扶得英材壓縉紳
-원문 빠짐- / □□□□□□外
나의 종적을 이을 이가 그 누구란 말인가 / 繼吾蹤跡是何人
[주C-001]복고(腹藁) : 마 음속으로 미리 작성해 둔 문장을 말한다. 초당(初唐) 시대 왕발(王勃)은 매양 비문(碑文)을 지을 때마다 먼저 묵(墨)을 두어 되쯤 갈아 놓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웠다가 갑자기 일어나 대번에 써내려 가서 한 자도 고치는 일이 없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이를 복고라고 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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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몸은 쑤시고 아파 어찌할 수 없지만 / 病骨酸辛不奈何
양심이 발현하는 것은 역시 많다 하겠네 / 良心發見亦云多
일양이 동하려 하매 음은 한창 치성한데 / 一陽將動陰方盛
만사의 거리낌 속에 귀밑털은 벌써 희었네 / 萬事相牽鬢已皤
유유한 천지 가운데 현빈을 지키는데 / 天地悠悠守玄牝
빠른 세월은 황하를 내리쏟듯 하누나 / 光陰袞袞倒黃河
유랑하여 돌아갈 줄 모르는 게 슬퍼라 / 自悲流蕩猶忘返
어서 돌아가잤구나 나의 집 안락와로 / 歸去來兮安樂窩
[주D-001]일양(一陽)이 …… 치성한데 : 일양이 처음 생기는 동지(冬至)의 직전인 육음(六陰)의 달, 즉 10월의 절기를 이른 말이다.
[주D-002]현빈(玄牝)을 지키는데 : 현 빈은 우주(宇宙)의 만물을 생성하는 본체(本體) 즉 천지(天地)의 원기(元氣)를 말하는데, 현(玄)은 사람에 있어 코[鼻]에 해당하고, 빈(牝)은 사람에 있어 입[口]에 해당하는 것으로, 즉 천지의 도(道)를 지켜서 심신(心身)을 수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3]안락와(安樂窩) : 본디 낙양(洛陽)에 있었던 소옹(邵雍)의 거실(居室) 이름인데, 여기서는 목은이 자기의 집을 소옹의 거실에 견주어 말한 것이다.
술을 가지고 방문해 준 우 평장(禹平章)에게 받들어 사례하다. 이름은 제(磾)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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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막 개어 푸른 이끼는 촉촉한데 / 冬雨初晴濕綠苔
문 닫고 앉았자니 생각을 가눌 길이 없어 / 閉門危坐思難裁
낡은 붓 휴대하고 시 쓰러 나가려던 차에 / 欲携敗筆題詩出
술 싣고 오는 높은 행차를 갑자기 만났네 / 忽値高軒載酒來
칠순에 아직 송아지 같은 몸을 과시하니 / 七秩尙誇身似犢
백세 누리어 응당 복어의 등을 이루겠지 / 百年應致背如鮐
목동은 오십이 된 것만도 다행스러워라 / 牧童自幸知天命
취한 가운데 옛 정의를 잠시 펴게 되었네 / 醉裏往懷得暫開
[주D-001]칠순에 …… 과시하니 : 늙어서도 아이들처럼 매우 건강함을 뜻한다. 두보(杜甫)의 〈백우집행(百憂集行)〉에 “내 나이 십오 세 때도 마음은 아직 어려서, 송아지처럼 튼튼해 달려서 갔다왔다 하였네.[憶年十五心尙孩 健如黃犢走復來]” 하였다.
[주D-002]백세 …… 이루겠지 : 노인(老人)이 되면 등에 복어의 무늬와 같은 점이 생기는데, 이것을 수징(壽徵)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003]목동(牧童) : 목은(牧隱) 자신의 겸칭(謙稱)으로 쓴 말이다.
사문(斯文) 복성군(福城君) 권 선생(權先生)의 서신을 받다. 이름은 사복(思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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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에서 드날리어 일찍 명성이 있었는데 / 臺省飛揚早有名
한가히 지내면서 성상의 후한 은총 입었네 / 閑居厚渥荷明王
칠십삼 세 높은 연세에 아직도 강건하니 / 行年七十三強健
편안히 기이 누리며 태평을 노래하리라 / 坐享期頤詠太平
[주D-001]기이(期頤) : 《예기》 곡례(曲禮)에 “백 세를 기라 하는 것이니, 잘 봉양해야 한다.[百年曰期頤]” 한 데서 온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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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은 구름이 해 가리어 새벽하늘 나직한데 / 輕陰蔽日曉天低
적적한 처마 앞에서 새들만 절로 지저귀네 / 寂寂簷前鳥自啼
만세에 스승된 이는 참으로 공맹이거니와 / 萬世爲師眞孔孟
삼공으로 지조 굽히면 어찌 이제가 되리오 / 三公易介豈夷齊
의심난 계책은 길가에 집 짓기와 같지만 / 謀疑如作道傍舍
고요함 지키면 되레 천하의 골짝이 된다오 / 守靜却爲天□谿
늙은 목은은 근래에 마음이 더욱 괴로워 / 老牧邇來心更苦
형체와 그림자만 아직도 허둥지둥한다네 / 獨携形影尙栖栖
[주D-001]삼공(三公)으로 …… 되리오 : 이제(夷齊)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합칭한 말이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유하혜는 삼공의 작위를 얻기 위하여 의리의 분변을 굽히지 않았다.[柳下惠不以三公易其介]”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盡心上》
[주D-002]의심난 …… 같지만 : 《시 경》 소아(小雅) 소민(小旻)에 “슬프다 꾀하는 이들이여, 옛 성현을 본받지 않으며, 큰 도를 떳떳이 따르지 않고, 오직 천근한 말만 들으며, 천근한 말을 가지고 다투나니, 집 지으며 길 가는 사람과 꾀하는 격이라, 이 때문에 일을 이루지 못하도다.[哀哉爲猶 匪先民是程 匪大猶是經 維邇言是聽 維邇言是爭 如彼築室于道謀 用是不潰于成]”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고요함 …… 된다오 : 《노 자(老子)》 제28장에 “남성의 강함을 알면서도 여성의 유순함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될 수 있다.[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남자다운 큰 힘을 지니고도 여성스러운 유화로움을 겸한다면 천하 사람이 모두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이 열세 폭(幅)을 사천대(司天臺)의 장방(長房)에 보내서 역일(曆日)을 베껴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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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제조며 제점으로 서운관에 재직하면서 / 提調提點忝書雲
몇 번이나 용안 마주해 비문을 읽었던고 / 幾對龍顔讀祕文
늙고 병들어 은거지에 모종을 하려 하노니 / 老病幽居親種蒔
제군들이 기일을 자세히 살펴 주기 바라네 / 細分宜忌望諸君
[주C-001]사천대(司天臺)의 장방(長房) : 사천대는 고려 시대에 천문(天文), 역수(曆數), 복서(卜筮)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官衙)이고, 장방은 각 관아에서 서리(胥吏)들이 일을 보는 방을 말한다.
[주D-001]제조(提調)며 …… 재직하면서 : 서운관(書雲觀)은 고려 시대 사천대의 옛 이름이고, 제점(提點)은 서운관의 정3품 관직이다.
[주D-002]비문(祕文) : 예언서(豫言書)인 도선(道詵)의 《비기(祕記)》 같은 것을 말한다.
[주D-003]기일(忌日) : 여기서는 오행(五行)의 원리에 입각하여, 나무나 약초(藥草) 등을 심는 데 있어 꺼려야 할 불길한 날을 말한다.
천관(天官)이 찰밥[粘飯]을 보내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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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절기라 때는 인월의 절반이요 / 雨水寅今半
천관에서 자식은 아직 안 옮기었네 / 天官子未遷
유기 사발에 담겨져 아직 따스워라 / 鍮盂封尙煖
끈끈한 밥 씹으니 점액이 생기누나 / 秫飯嚼生涎
예로 먹임은 시절에 따르거니와 / 禮食隨時節
시골 풍속은 나이를 중히 여기네 / 鄕風重歲年
두 어버이 다행히 아무 탈 없으니 / 雙親幸無恙
너희들은 예절을 삼가 지킬지어다 / 爾輩愼周旋
[주D-001]우수(雨水) …… 절반이요 : 인월(寅月)은 곧 음력 정월을 가리키는데, 우수 절기가 마침 정월 대보름경에 들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2]천관(天官)에서 …… 옮기었네 : 천관은 이부(吏部)를 가리키는데, 이때 목은의 아들이 이부의 관직에 아직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기침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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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이 연일 밤을 계속 발작하여 / 咳嗽連宵作
기거가 나날이 어려워만 가는데 / 興居逐日難
한갓 목구멍만 요란할 뿐 아니라 / 非徒擾喉吻
점차 내장까지 넘어오려 하누나 / 漸欲吐心肝
문밖엔 가랑눈이 조용히 내리고 / 門巷霏微雪
강산엔 봄추위가 제법 쌀쌀한데 / 江山料峭寒
가련도 해라 높은 흥취 없어지고 / 自憐高興廢
게다가 의관도 차리지 못한 꼴이 / 亦復懶衣冠
구정(毬庭)에서 풍악(風樂)을 구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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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의 관원이 나란히 시신들을 압도하여 / 兩府相聯壓侍臣
남면하고 큰 띠 드리우고 높이 앉았노라니 / 面南高坐儼垂紳
배우들이 높고 낮게 나누어 기예를 바쳐라 / 倡優效技分高下
만세토록 영원한 송도에 또 소춘이 되었네 / 萬世松都又小春
예악을 닦아 밝힘은 해로운 일 아니거니와 / 禮樂修明無弊事
강산은 깨끗하고 화려해 티끌 하나 없구나 / 江山淨麗絶纖塵
부계에서 헌수한 일이 참으로 꿈만 같아라 / 浮堦獻壽眞如夢
백발만 까칠하게 나날이 새로워지네그려 / 白髮蕭然日日新
[주D-001]소춘(小春) : 본래는 음력 10월의 별칭인데, 여기서는 11월 동지(冬至)의 뜻으로 쓰였다.
[주D-002]부계(浮堦) : 특정한 행사(行事)를 하기 위하여, 장나무나 널빤지를 사용해서 고가(高架)처럼 높다랗게 얽어매어 설치한 일종의 구조물을 말한다.
가랑눈이 내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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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눈 살살 날리고 빗방울 듬성듬성 듣는 / 微雪飄飄雨點疏
세밑에 한가한 사람 오두막에 누웠노라니 / 幽人歲暮臥窮廬
멀리 애처로운 건 총총히 길 가는 사람이요 / 遙憐路上悤悤去
홀로 한스러운 건 공중에 돌돌을 씀이로세 / 獨恨空中咄咄書
병든 뒤의 세월은 어찌 그리도 적막한고 / 病後光陰何寂寞
늘그막의 학문은 갈수록 거칠어만 가네 / 老來學問轉荒虛
눈이 뚫려라 여강 굽이를 다시 생각하노니 / 眼穿更想驪江曲
도롱이 삿갓 외론 배에 낚시질하기 좋으리 / 簑笠孤舟好釣魚
[주D-001]공중에 돌돌(咄咄)을 씀이로세 : 돌돌은 돌돌괴사(咄咄怪事)의 준말로, 즉 뜻밖의 놀랄 만한 괴이쩍은 일이란 뜻인데, 진(晉)나라 때 은호(殷浩)가 일찍이 조정에서 쫓겨난 뒤로는 집에서 종일토록 공중에다 ‘돌돌괴사’ 네 글자만 쓰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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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인의 높은 풍도는 세상에 뛰어나거니와 / 廉藺高風絶世無
서로 공격함은 모두 위태로운 길이고말고 / 相傾相軋盡危途
한 배 타면 호월도 마음이 하나가 되거늘 / 同舟胡越心猶一
한집안 형제 싸움은 얼마나 어리석은고 / 兄弟鬩牆何至愚
한실의 수다한 이는 준예로 표방되거니와 / 漢室紛紛標俊乂
우정의 수많은 현신은 도유를 상상케 하네 / 虞庭濟濟想都兪
남창 아래 낮잠 한숨이 유독 감미로운데 / 南窓午睡偏酣美
꿈속에 이웃집 닭 우는 소리를 또 듣누나 / 又聽鄰雞夢裏呼
[주D-001]염인(廉藺)의 …… 뛰어나거니와 : 염 인은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명장(名將) 염파(廉頗)와 명신(名臣) 인상여(藺相如)를 합칭한 말인데, 일찍이 인상여가 재상(宰相)에 임명되었을 때, 염파가 여기에 승복하지 않고 인상여에게 모욕을 주려고 했으나, 인상여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으로 여겨 염파의 행위를 전혀 계교(計較)하지 않자, 염파가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인상여에게 정중히 사과한 다음, 둘이 서로 목이 잘리는 한이 있어도 교정(交情)은 변치 않겠다는 이른바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한 배 …… 되거늘 : 오월동주(吳越同舟)와 같은 뜻으로, 아무리 서로 적대 관계인 호(胡)와 월(越)의 경우일지라도, 그들이 한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風浪)을 만났을 경우에는 서로 협력하여 구해 주려고 하게 된다는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한실(漢室)의 …… 표방되거니와 : 한실은 전한(前漢), 후한(後漢)을 통틀어 말한 것이고, 준예(俊乂)는 재덕(才德)이 출중(出衆)한 사람을 가리킨다.
[주D-004]우정(虞庭)의 …… 하네 : 우정은 순(舜) 임금의 조정을 가리키고, 도유(都兪)는 “훌륭하다, 옳다.”라는 감탄사로서, 이는 곧 순 임금이 여러 현신(賢臣)들과 군신 간에 서로 화합하여 좋은 말을 주고받은 가운데서 나온 말이다.
고풍(古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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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은 목이 말라도 마시지 않고 / 盜泉渴不飮
악목은 암만 더워도 쉬지 않기에 / 惡木熱不息
위태한 나라나 어지러운 나라엔 / 危邦與亂邦
성인의 발길을 만류치 못하나니 / 聖轍留不得
나를 써준다면 동주를 하겠다던 / 用我爲東周
그 말씀은 어찌 그리도 비참한고 / 出語何惻惻
안자는 누추한 시골에 살았지만 / 顔子居陋巷
하늘이 낸 덕에 은연중 계합했고 / 默契天生德
천하가 그의 인함을 허여한 것이 / 天下歸其仁
지금까지도 찬란하게 빛나거늘 / 至今猶煥赫
어찌하여 스스로 길을 헤매다가 / 奈何自迷路
저문 날에 가시밭길로 빠져드는고 / 落日沈荊棘
어느 때나 별들이 총총 나올런고 / 何時望星出
사방 하늘이 깜깜하기만 하여라 / 四方天正黑
[주D-001]도천(盜泉)은 …… 않고 : 도 천은 산동성(山東省) 사수현(泗水縣)에 있었던 옛 천명(泉名)인데, 《시자(尸子)》에 “공자는 도천을 지나다가 목이 말랐으나 샘물을 마시지 않았으니, 그 이름을 미워해서 그런 것이다.[孔子過於盜泉 渴矣而不飮 惡其名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악목(惡木)은 …… 않기에 : 《관 자(管子)》에 “개결한 마음을 품은 선비는 악목의 그늘에서는 쉬지도 않는다.[夫士懷耿介之心 不蔭惡木之枝]” 한 데서 온 말이다. 육기(陸機)의 〈맹호행(猛虎行)〉에도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고, 더워도 악목의 그늘에서는 쉬지 않는다.[渴不飮盜泉水熱不息惡木陰]” 하였다.
[주D-003]위태한 …… 못하나니 : 여 기서 말한 성인은 바로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공자가 이르기를 “성인을 독실히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죽기로써 지켜 도를 착하게 해야 한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말아야 한다.[篤信好學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泰伯》
[주D-004]나를 …… 비참한고 : 동 주(東周)는 곧 동쪽 노(魯)나라에 주(周)나라의 도를 일으키겠다는 뜻으로,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인 공산불요(公山弗擾)가 일찍이 공자를 불렀을 때 공자가 가려고 하자, 자로(子路)가 하필 공산씨(公山氏)에게 갈 것이 있느냐고 못마땅하게 여기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공연히 불렀겠는가. 만일 나를 써주는 이만 있으면 나는 동주를 하고 싶구나.[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陽貨》
[주D-005]안자(顔子)는 …… 계합했고 : 안 자가 누추한 시골에 살았다는 것은, 공자가 이르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시골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근심을 견디지 못하거늘,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데서 온 말이고, 하늘이 낸 덕이란, 환퇴(桓魋)가 일찍이 공자를 해치고저 했을 적에 공자가 이르기를 “하늘이 나에게 이런 덕을 태워 주셨거니, 환퇴가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 한 데서 온 말이고, 은연중 계합했다는 것은 곧 공자가 안자를 허여했음을 의미한 말이다. 《論語 雍也, 述而》
[주D-006]천하가 …… 것이 : 안 연(顔淵)이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이르기를 “사욕을 극복하여 예로 회복하는 것이 인을 행함이니, 하루라도 사욕을 극복하여 예로 회복한다면 천하가 그 인함을 허여하는 것이다.[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顔淵》
수일 동안 기침을 계속하던 중에 고통스러움이 조금 우선해지자, 두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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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는 치올라서 화개에 들러붙고 / 痰逆粘華蓋
목구멍은 커져라 옥루가 치솟누나 / 喉張聳玉樓
가래침 그릇은 가득 차 넘치려 하고 / 唾壺盈欲溢
잠자리는 축축해 물이 흐를 듯하네 / 寢席濕如流
팥죽은 공연히 마시기만 할 뿐이요 / 豆粥徒能啜
산삼탕은 쉽게 구할 수가 없네그려 / 蔘湯不易求
평생에 내 다행히 천명을 알거니 / 平生幸知命
어찌 다시 부휴를 생각하려 하랴 / 肯復念浮休
병이 발작함은 몸이 약한 때문인데 / 病發緣身弱
내가 지금 어찌할 도리가 있겠는가 / 吾今無奈何
일생 동안은 몸 섭양을 잘못했고 / 百年違攝養
수일 동안은 읊조림을 폐하였는데 / 數日癈吟哦
이끗 욕심은 바다도 메울 듯하고 / 利欲如塡海
세월은 황하를 터내린 것 같구나 / 光陰似決河
그 누가 알리오 내 마음가짐만은 / 誰知用心處
곧장 희와 시대에 이르고픈 줄을 / 直欲到羲媧
[주D-001]화개(華蓋) : 도가(道家)에서 인체의 오장(五臟) 가운데 폐장(肺臟)을 일컫는 말이다.
[주D-002]옥루(玉樓) : 도가에서 사람의 어깨를 일컫는 말이다.
[주D-003]부휴(浮休) : 《장자》 각의(刻意)에 “성인의 삶은 물 위에 떠 있는 것과 같고, 그가 죽었을 때는 쉬고 있는 것과 같다.[其生若浮 其死若休]”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의미한다.
[주D-004]희와(羲媧) 시대 : 희와는 태고 시대 제왕(帝王)인 복희씨(伏羲氏)와 여와씨(女媧氏)를 합칭한 말로, 전하여 태곳적의 매우 순수(純粹)한 시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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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예습할 땐 온종일 비 오더니 / 習儀終日雨
하례 올릴 땐 하늘이 활짝 개었네 / 賀禮滿天晴
진흙탕은 시냇가의 길에 미끄럽고 / 泥滑緣溪路
바람은 강 위의 성에 솔솔 부누나 / 風微壓水城
용사는 깃발 그림자에 움직이고 / 龍蛇動旗影
원로는 가죽신 소리에 모여드네 / 鴛鷺集靴聲
내 일찍이 성상을 모시던 곳에선 / 玉輦曾陪處
놀이 무대에 밤기운이 맑았었지 / 輪臺夜氣淸
[주C-001]소회일(小會日) : 고려 때 개경(開京)에서는 팔관회(八關會)를 11월 15일에 열었던바, 팔관회의 바로 전날을 소회일, 그 당일을 대회일(大會日)이라고 했다.
[주D-001]용사(龍蛇)는 …… 움직이고 : 용사가 그려진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원로(鴛鷺)는 …… 모여드네 : 원로는 원추새와 백로를 합칭한 말인데, 이 두 새의 의용(儀容)이 한아(閑雅)하다 하여, 조정에 늘어선 백관(百官)의 질서 정연한 모습에 비유한다.
대회일(大會日)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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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과 백관이 오늘 구정에 가득 모여라 / 起居今日滿毬庭
붉은 관복 반열 밖으론 청산이 둘러쌌네 / 紫色齊班外裹靑
석목은 비춰 임하여 기개를 나눠 주는데 / 析木照臨分氣槪
선도는 진헌하여 신령들을 다 모으누나 / 仙桃進獻集神靈
바람은 온 밤을 차가워라 천시가 순조롭고 / 風寒一夜天時順
산대는 팔방을 진동해라 곤도가 편안하네 / 臺振八方坤道寧
백발로 거년엔 외람되이 헌수를 했는데 / 白髮去年叨獻壽
병중에 지금 또다시 천세를 축복하노라 / 病中時復祝千齡
[주D-001]석목(析木)은 …… 나눠 주는데 : 석목은 십이지(十二支)의 인(寅)에 해당하는 성차(星次)의 이름으로, 즉 동방(東方)인 우리나라에 해당하는 성차를 말한 것이다.
[주D-002]선도(仙桃)는 …… 모으누나 : 선 도는 당악 정재(唐樂呈才)의 하나인 헌선도(獻仙桃)를 상연(上演)할 때에 쓰는 무구(舞具)의 한 가지로, 즉 헌선도를 출 때에 드리는 복숭아를 말하는데, 그 제도로 말하자면, 복숭아 세 개는 나무로 만들고, 가지와 잎은 모두 구리[銅]로 만들어 구리 철사로 매어 달아서 규화(葵花) 모양의 은쟁반[銀盤]에 담는다고 한다.
[주D-003]산대(山臺) : 산 대잡극(山臺雜劇)의 약칭으로, 고려 시대에 국가(國家)의 특별한 경사(慶事)로서, 즉 팔관회(八關會)나 연등회(燃燈會)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채붕(綵棚)을 진설하고 그 위에서 가무 백희(歌舞百戲)를 상연(上演)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산대잡극이라 이름한 것은 산형(山形), 또는 산과 같이 높은 채붕을 산붕(山棚), 산대(山臺)라고 부른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최 계장 원유(崔契長元儒)가 전(前) 전주 목사(全州牧使)로 충주(忠州)에 퇴거(退居)했었는데, 오늘 내 집에 들러서 말하기를 “나도 은혜를 입어 승진 제수되었으므로, 지금 판사(判事)에 제수된 것을 인하여 사은하고 오는 길이다.” 하므로, 내가 매우 기뻐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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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순하게 간고하긴 그대만 한 이 없으리 / 淸醇幹蠱少如君
예성에 흰 구름 많음을 몹시 사랑하거니 / 酷愛蘂城多白雲
어찌 먼지 속에 깨끗함을 과시하려 하랴 / 肯與塵埃誇皓皓
응당 조석으로 분잡스러움만 피할 뿐이지 / 只應朝暮避紛紛
명성은 도성에 날려라 허직을 제수받았고 / 名騰輦轂霑虛職
은혜는 사림에 입혀라 우문을 창성케 하네 / 恩洽衣冠盛右文
다만 우리 계에 기강 해이함이 한스러우니 / 獨恨契中綱紀少
혹 고상한 모임에 함께 취할 수 있을는지 / 儻能高會共微醺
[주D-001]간고(幹蠱) : 《주 역》 고괘(蠱卦) 초육(初六)에 “초육은 아버지의 일을 주관함이니, 자식이 있으면 돌아간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되리라.[初六幹父之蠱 有子 考无咎]”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자식이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하여 아버지가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사업을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2]예성(蘂城)에 …… 사랑하거니 : 예 성은 충주(忠州)의 옛 이름이다. 남조(南朝) 시대 양(梁)나라 도홍경(陶弘景)의 〈조문산중하소유부시이답(詔問山中何所有賦詩以答)〉 시에 “산중에는 무엇이 있는고 하면, 봉우리 위에 흰 구름이 많답니다. 하지만 나 혼자만 즐길 수 있을 뿐, 임금님께는 부칠 길이 없답니다.[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只可自怡悅 不堪持寄君]”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은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3]어찌 …… 하랴 : 굴 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차라리 상강에 빠져 죽어서 물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어찌 이 깨끗한 몸으로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는가.[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우문(右文) : 문치(文治)를 숭상하는 것을 말한다.
동년(同年) 곽충수(郭忠守)를 방문하려고 하는데, 여러 날을 몸이 경쾌하지 못하므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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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아량은 세상을 경시하는데 / 雅量已輕世
내 여생은 하늘에 물을 것 없다네 / 殘生休問天
문 나서면 겨울인데도 비가 오고 / 出門冬亦雨
베개 베면 하룻밤이 일 년 같아라 / 欹枕夜如年
시냇물은 오두막을 둘러 흐르고 / 澗水遶茅屋
산 구름은 돌더렁밭을 덮었거니 / 山雲侵石田
찾으려 들면 어찌 길이 없으랴만 / 相尋豈無路
병중에 생각만 유유할 뿐이로구려 / 病裏思悠然
[주D-001]내 …… 없다네 : 두 보(杜甫)의 〈곡강(曲江)〉 시에 “스스로 이 생애 결단해 하늘에 물을 것 없어라, 두곡에 다행히 상마의 전지가 있으니.[自斷此生休問天 杜曲幸有桑麻田]” 한 데서 온 말인데, 생애를 결단한다는 것은 곧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田園)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서린(西鄰)의 대부인(大夫人)을 곡(哭)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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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응당 도피할 곳 없고말고 / 死也逃無處
아득한 하늘에 기관이 달렸는걸 / 冥冥自有機
현우는 원래 서로 다를 게 없지만 / 賢愚元不異
늙어 병든 이도 근래엔 드물구려 / 老病近來稀
부인의 덕은 참으로 소중하건만 / 女德誠爲重
타고난 명은 어길 수 없는 법이라 / 天年不可違
동쪽 이웃 백발 성성한 나그네가 / 東鄰白頭客
아침 햇살에 쇠한 눈물 뿌리노라 / 衰淚洒朝暉
추위를 무서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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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두려워 손을 사절해 보내고 / 畏寒麾客去
화로 곁에서 고양이와 친하노라니 / 向火與猫親
얻고 잃음이 정히 서로 절반이로다 / 得失政相半
중화의 원기를 스스로 새롭게 하네 / 中和方自新
후안무치야 우리가 할 바 아니지만 / 強顔非我輩
성을 다한 이는 바로 이 누구던고 / 盡性是何人
조용히 지켜 뭇 활동을 생하나니 / 靜守生羣動
절기는 또 소춘에 가까워졌구려 / 天時近小春
[주D-001]성(性)을 …… 누구던고 : 성 인(聖人)의 경지를 말한다. 《주역》 설괘(說卦)에는 “도덕에 화순하고 의리에 명석하며, 이치를 궁구하고 성을 다하여 천도에 이르는 것이다.[和順於道德而理於義 窮理盡性 以至於命]” 하였고, 《중용장구》 제22장에는 “오직 천하에 지극히 진실한 성인만이 그 성을 극진히 할 수 있나니, 그 성을 극진히 할 수 있으면 남의 성도 극진히 해 줄 수 있고, 남의 성을 극진히 해 줄 수 있으면 물의 성도 극진히 해 줄 수 있고, 물의 성을 극진히 해 줄 수 있으면 천지의 변화 육성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변화 육성을 도울 수 있으면 그 공덕이 천지에 참여하여 천지와 같아질 수 있나니라.[唯天下至誠 爲能盡其性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하였다.
[주D-002]조용히 …… 생하나니 : 동 지(冬至)에 일양(一陽)이 처음 생긴 것은 아주 미약하기 때문에 그것을 안정시켜 기르기 위한 뜻에서, 《주역》 복괘(復卦) 상사(象辭)에 “우레가 땅속에 잠재한 것이 복이니, 선왕이 그것을 인하여 동지일에 관문을 닫아서, 장사꾼도 다니지 못하게 하고, 임금은 사방을 시찰하지도 않는다.[雷在地中復 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소춘(小春) : 여기 역시 동지(冬至) 절기를 말한다.
동지(冬至)에 팥죽을 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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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에는 음이 극도에 이르러서 / 冬至陰乃極
이 때문에 일양이 생기는 것이라 / 故有一陽生
성인이 그것을 대단히 기뻐하여 / 聖人喜之甚
괘상을 살펴 복괘로 이름하였네 / 考卦以復名
이것을 하늘의 봄이라 하나니 / 是曰天之春
만물이 싹트게 되는 바이로다 / 萬物所由萌
사람 마음도 욕심에 가려졌다가 / 人心敝於欲
착한 단서가 수시로 드러나는데 / 善端時露呈
그것을 기름은 군자에 달렸으되 / 養之在君子
다름 아니라 성실함이 우선이니 / 匪他先立誠
예 아닌 것을 부지런히 버려야만 / 勤勤去非禮
비로소 밝은 본성을 보게 되리라 / 始見本然明
팥죽 먹어 오장을 깨끗이 씻으니 / 豆粥澡五內
혈기가 조화 이루어 평온하여라 / 血氣調以平
유익함이 참으로 적지를 않으니 / 爲益信不淺
성인의 마음을 진정 알 만하구려 / 可見聖人情
세도는 점차로 내려가기만 하니 / 世道漸以降
이공이 어느 날에나 이뤄질런고 / 理功何日成
[주D-001]동지(冬至)에는 …… 이름하였네 : 10월에 이르러 순음(純陰)이 되었다가 동지가 되면 처음으로 일양(一陽)이 생기므로, 《주역》에서 여기에 회복한다는 뜻을 붙여 복괘(復卦)로 명칭한 것을 말한다.
[주D-002]이공(理功) : 세상을 잘 다스린 공적(功績)을 말한다.
동 지일(冬至日)에 지신사(知申事) 이존성(李存性), 대언(代言) 반복해(潘福海)가 교지(敎旨)를 전해 왔는바, 표문(表文)을 지으라 하시고, 인하여 주과(酒果)를 하사하였으므로, 다음 날 대내(大內)에 나아가 사은(謝恩)하고 물러 나와서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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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한 필력은 이미 처음 같지 못한데 / 老衰筆力已非初
애써 글 지으라는 전지를 매양 받드네 / 每奉宣傳勉強書
내 변려문에 어긋남이 많음은 가소롭지만 / 自笑騈儷多齟齬
뛰어난 이 넉넉한 이가 섞임은 누가 알랴 / 誰知卓犖雜紆餘
소반 가득 과일에다 어사주는 넘실거리고 / 滿盤仙果黃封灩
윤택해진 춘풍 얼굴에 백발은 듬성하여라 / 睟面春風白髮疏
숙배사은하는 일을 어찌 감히 늦출쏜가 / 肅拜謝恩何敢後
점차 거칠어진 문학이 부끄러울 뿐이네 / 只慚文學漸荒虛
[주D-001]뛰어난 …… 알랴 : 한 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밝고 공정한 사람을 등용 선임하고, 기교 있는 자와 졸렬한 자를 골고루 등용해서, 학식이 넉넉한 사람을 능숙하다고 하고, 뛰어난 사람을 준걸이라 하여, 길고 짧은 점을 자세히 헤아려서 오직 그 자격에 알맞은 직책을 임명하는 것은 재상의 도리이다.[登明選公 雜進巧拙 紆餘爲硏 卓犖爲傑 較短量長 惟器是適者 宰相之方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윤택해진 춘풍 얼굴 : 술을 마심으로 인하여 얼굴에 훈훈한 기운이 오르는 것을 이른 말이다.
들으니, 재비(宰批)를 내려서 최 판삼사사(崔判三司事)를 수시중(守侍中)에 제배(除拜)했다고 하므로, 병을 무릅쓰고 최 시중(崔侍中)을 알현하러 갔는데, 시중이 이미 출타하였는지라, 여러 재추(宰樞)들 중에는 뜰 가운데 앉아서 공(公)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이도 있으므로, 나 역시 그 자리의 끝에 앉아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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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들고 철마 타고 전장만 분주했어라 / 檀槍鐵馬事驅馳
충의 어린 간담은 늙어도 쇠하질 않았네 / 義膽忠肝老不衰
다시 사방에 아무 일 없는 때를 얻었으니 / 更得四方無一事
재상 자리에 앉아서 백세 장수 누리리라 / 具瞻廊廟到期頤
[주C-001]재비(宰批) : 관직(官職) 임명 등의 일에 관해서, 재상(宰相)들이 임금에게 주청(奏請)하여 윤허(允許)의 비답(批答)이 내려진 것을 말한다.
[주D-001]철마(鐵馬) : 철갑(鐵甲) 입힌 전마(戰馬)를 말한다.
밀직(密直)에 제배된 정포은(鄭圃隱)에게 받들어 하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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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의 흥망은 저 하늘에 달려 있는 거라 / 斯文興喪在蒼天
병중에 오직 후현을 기대할 줄만 안다네 / 病裏唯知望後賢
노포는 본래부터 주역 이치에 밝았으니 / 老圃自來明易理
권도를 행할 만하면 곧 권도를 행하겠지 / 可行權處卽行權
먼지 쌓인 서책의 벽엔 비가 많이 스미고 / 塵埋聖籍壁多雨
풀 무성한 유관의 뜰엔 연기가 절반일세 / 草茂儒官庭半煙
병폐의 뿌리는 내 힘으로 해낼 수 없으니 / 剗去弊根非我力
우리의 도가 그 어느 때나 중흥이 될는지 / 中興吾道是何年
[주D-001]노포(老圃)는 …… 밝았으니 : 노포는 채소(菜蔬)를 가꾸는 데 경험이 많은 농부를 가리키는데, 정몽주(鄭夢周)의 호가 포은(圃隱)이고 그는 특히 《주역》에 밝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이 이상(李二相) 댁에서 취하여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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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 파도 없으니 기쁨을 알 만하여라 / 東海無波喜可知
군왕께서 태평한 때에 상사를 거행하였네 / 君王行賞太平時
봄바람에 복사꽃 오얏꽃은 비단 같은데 / 春風桃李花如錦
다시 술동이 앞에서 한 잔을 기울이누나 / 更向樽前倒一巵
[주D-001]동해(東海)에 …… 만하여라 : 세상이 태평함을 뜻한다. 주공(周公) 때에 월상씨(越裳氏)가 3년 동안이나 바다에 파도가 일지 않은 것을 보고는 중국(中國)에 성인(聖人)이 있는 줄을 알고 조회(朝會)를 왔던 데서 온 말이다.
나가 놀았던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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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많은 연래엔 나가 노는 일 드물어서 / 多病年來少出游
나갔다 우연히 만난 이가 다 공후였는데 / 出游邂逅盡公侯
동가에서 반쯤 취했다 서가에서 다 취하고 / 東家半醉西家醉
북리에서 잠시 쉬었다 남리에서 또 쉬었네 / 北里暫休南里休
일편단심 아직 연연함이야 누가 알랴만 / 誰識丹心猶繾綣
백발에도 풍류 있음은 스스로 알다마다 / 自知白髮亦風流
깰 때에는 도리어 화서몽을 꾼 것 같아 / 醒時却擬華胥夢
눈동자 가운데 한 점의 시름도 없네그려 / 阿堵中無一點愁
[주D-001]화서몽(華胥夢) : 황제(黃帝)가 일찍이 낮잠을 자다가 꿈에 화서국(華胥國)이란 나라에 가서 그 나라가 이상적(理想的)으로 잘 다스려진 것을 보고 왔다는 데서, 즉 태평성대, 또는 낮잠을 말하기도 한다.
전주(全州)의 황보 병마사(皇甫兵馬使)가 노루포[鹿脯]를 보내 준 데 대하여 받들어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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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사 위엄은 바다를 군림하는데 / 兵馬威臨海
나는 충어 주석만 집에 가득한데 / 蟲魚註滿家
선물 나머지를 노물에게 보내 주니 / 膳餘霑老物
분수 밖에 깊은 은혜 듬뿍 입었네 / 分外沐恩波
서로 이별한 지 이미 오래이거늘 / 久矣違顔範
어찌하여 나를 언급했단 말인가 / 胡然掛齒牙
졸렬한 시로 애오라지 사례하노니 / 拙詩聊拜謝
혹 호가하는 데 도움이나 될는지 / 倘或助壺歌
[주D-001]충어(蟲魚) 주석 : 한 유(韓愈)의 〈독황보식공안원지시서기후(讀皇甫湜公安園池詩書其後)〉 시에 “《이아》는 충어를 주낸 것이니, 정히 뜻이 큰 사람이 아니로다.[爾雅注蟲魚定非磊落人]”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문자(文字)의 번쇄(繁碎)한 일에 종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호가(壺歌) : 투호(投壺) 놀이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말한다.
세모(歲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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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이라 마음은 더욱 비장하고 / 歲暮心彌壯
날이 흐리니 삭신은 또 쑤셔대네 / 天陰骨更酸
단전이 오랫동안 황폐해졌기에 / 丹田久蕪穢
대낮에도 의관을 차리지 못하네 / 白晝懶衣冠
시주는 삼생에 즐기는 물건인데 / 詩酒三生樂
운산은 사면에 널리 둘러 있구나 / 雲山四面寬
조용히 읊으며 성실함 지니어라 / 微吟抱眞素
깊은 골짝이 지란을 가리건 말건 / 深谷翳芝蘭
[주D-001]삼생(三生) : 불가(佛家)의 용어로, 과거, 현재, 미래 즉 전생(前生), 금생(今生), 후생(後生)을 합칭한 말이다.
[주D-002]깊은 …… 말건 : 지 란(芝蘭)은 두 향초(香草)인 백지(白芝)와 난초(蘭草)를 합칭한 것으로, 이는 모두 선인(善人)에 비유하는데,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지란은 깊은 숲 속에 나서 사람이 없다 하여 향기를 풍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芝蘭生於深林 不以無人而不芳]”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군자(君子)의 굳은 지조(志操)를 비유한 것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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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기도 해라 예전의 군자여 / 邈矣古君子
어찌하여 나는 늦게 태어났는고 / 胡然晚我生
쑤셔대는 뼈는 속으로만 아픈데 / 骨酸方自疾
초췌한 얼굴은 남을 놀라게 하네 / 顔悴使人驚
처마 밖에는 바람 소리가 급하고 / 簷外風聲急
창문에는 햇빛이 환히 비치는데 / 窓間日色明
표문 사이에 권점을 다 찍고 나서 / 表文圈點畢
앉았노라니 자취가 더욱 깨끗하네 / 深坐迹尤淸
외 구(外舅) 화원군(花原君)의 내외손(內外孫)들이 모든 경조(慶弔)나 영전(迎餞)의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모이는 것을 사촌회(四寸會)라 이름하고, 해마다 두 사람이 그 일을 관장하게 하여 그들을 유사(有司)라 이름하며, 유사는 세말(歲末)에 모임을 소집하여 그 일을 내년의 다음 유사에게 넘겨주곤 하는데, 이는 가법(家法)인 것이다. 그리고 모임을 가질 때에는 반드시 부항(父行)이 되는 한두 사람을 맞이하여 그 좌석을 주관하게 한다. 경신년 동짓달 24일에 민중립(閔中立)과 내 자식 종학(種學)이 그 모임을 마련하였으므로, 내가 민 판사(閔判事), 권 판서(權判書)와 함께 그 자리에 참여하여 몹시 취해 돌아왔다가, 다음 날 한낮에야 비로소 일어나서 한 수를 읊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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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사람이 이제는 세 사람만 남았는데 / 七人今日只三人
당에 가득한 자제들은 풍채가 새롭구나 / 諸子滿堂風彩新
노인이 긴 소매로 춤추는 뜻을 누가 알랴 / 誰識老翁長袖舞
성주께서 어진 신하를 얻은 때문이라네 / 只緣聖主得賢臣
타고난 천성이 우애하여 가문은 창성하고 / 因心以友家門盛
효도를 옮겨 충성하니 세도는 순박해지리 / 移孝爲忠世道淳
겨울 다스움 압도해 추위가 잠시 극성해라 / 壓盡冬溫寒乍極
화기가 조화를 회전시킨 걸 비로소 알겠네 / 始知和氣轉洪鈞
[주D-001]일곱 …… 남았는데 : 화 원군(花原君) 권중달(權仲達)의 아들인 판종정시사(判宗正寺事) 권사종(權嗣宗), 전법 판서(典法判書) 권계용(權季容)과 사위인 전분(全賁), 유혜방(柳蕙芳), 판사(判事) 민근(閔瑾), 이색(李穡), 김윤철(金允轍)까지 모두 일곱 남매(男妹) 중에 이때는 오직 아들 권계용과 사위 민근ㆍ이색만이 생존해 있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용 부(庸夫)가 명일에 출발한다는 말을 듣고 저물녘에 그 문정(門庭)에 가서 장차 교외(郊外)에 나가 전송할 수 없는 사정을 사과하려 하는데, 마침 주육(酒肉)을 가지고 찾아온 이가 있어, 나도 그 곁에서 취하고 배부르게 먹었다. 이때 용부가 말하기를 “상부(相府)에서 더 머무르게 하여, 다음 달에 길을 떠나게 되었으니, 돌아오면서 시를 짓겠다.”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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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무릅쓰고 작은 장인 댁에 막 당도하니 / 力疾方參小丈人
사행 전송의 주연에 훌륭한 손들 모였는데 / 餞行樽酒會嘉賓
곁에 앉아 노자표를 유쾌히 기울이어라 / 從傍快倒鸕鶿杓
상석은 마치 호표 자리를 독점한 듯하네 / 居右如專虎豹茵
상부는 행차 보류해 의식을 다시 갖추어라 / 相府留行儀更備
역정에선 시 읊조려 신통한 시구를 얻으리 / 驛程發詠句如神
돌아올 기약이 정히 매화 떨어질 시절이니 / 歸期政趁梅花落
응당 강남 만리의 봄을 띠고 오겠네그려 / 應帶江南萬里春
[주D-001]작은 장인[小丈人] : 장인의 아우를 가리킨 말로, 여기서는 곧 목은의 장인 권중달(權仲達)의 아우로서 자(字)가 용부(庸夫)인 권중화(權仲和)를 가리킨다.
[주D-002]노자표(鸕鶿杓) : 옛날 술 그릇 이름이다.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 “노자표며, 앵무배로, 백 년이라 삼만하고도 육천 일을, 날마다 모름지기 삼백 잔씩 기울여야지.[鸕鶿杓鸚鵡杯 百年三萬六千日 一日須傾三百杯]” 하였다.
[주D-003]호표(虎豹) 자리 : 스승이 호피(虎皮)를 깔고 앉은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상석(上席)을 의미한다.
풍성(風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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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소리가 내 마음을 흔들어서 / 風聲搖我心
펄럭펄럭 요동치는 깃발 같아라 / 翻翻如旌懸
내 또한 본디 움직이는 물건이라 / 由我本動物
때에 따라서 변천하는 게 많지만 / 隨時多變遷
다행스러운 건 방탕하지 않아서 / 所幸不流蕩
조용히 나의 천성을 보존함일세 / 湛然存我天
이끗 욕심은 바다같이 광대하여 / 利欲浩如海
서로 공격하는 형세가 끝없는데 / 舂撞勢無邊
부끄러워라 나 홀로 자취 감추고 / 愧我獨屛跡
석천에서 나오는 잔잔한 물결에 / 微瀾生石泉
얼음 깨고 조석으로 물 길어다가 / 敲氷日夕汲
끓여 먹는 걸 만족히 여기는 것이 / 足以供烹煎
양의 기운이 땅 밑에서 움직이니 / 陽氣地下動
오래지 않아서 물이 졸졸 흐르리 / 不久流涓涓
행색(行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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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위에 뜬 해는 나그네 옷을 비추고 / 扶桑海日照征衣
역마는 만수 천산을 나는 듯이 달리는데 / 萬水千山驛馬飛
님 향한 일편단심은 대궐에 매달리어라 / 一片丹心懸魏闕
아마도 가는 행색이 연연해 마지않으리 / 想看行色正依依
반공중에 우뚝 솟은 첨리산 꼭대기는 / 尖利山頭揷半空
흰 구름이 갈고 닦아 빛이 영롱할 텐데 / 白雲磨了色玲瓏
만 겹 시름겨운 마음은 언제나 다할는지 / 愁心萬疊何時盡
시옹의 한 시구 가운데 지워 없애려무나 / 抹去詩翁一句中
첨리산(尖利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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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중에 우뚝 솟은 첨리산 꼭대기는 / 尖利山頭揷半空
흰 구름이 갈고 닦아 빛이 영롱할 텐데 / 白雲磨了色玲瓏
만 겹 시름겨운 마음은 언제나 다할는지 / 愁心萬疊何時盡
시옹의 한 시구 가운데 지워 없애려무나 / 抹去詩翁一句中
신흥 즉사(晨興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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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로의 물은 끓고 새는 처마에서 지저귀고 / 湯沸風爐雀噪簷
늙은 아내는 세수하고 음식을 장만하는데 / 老妻盥櫛試梅鹽
한낮이 다 되도록 명주이불 다습게 덮고 / 日高三丈紬衾暖
한 조각 천지를 깊은 잠 속에 붙였네그려 / 一片乾坤屬黑甜
오천(午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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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에 햇살 비춰라 한낮이 가까운 때에 / 日照南窓近午天
아이 불러 돌솥에 샘물을 끓이라 했노니 / 呼童石鼎煮山泉
창자를 깨끗이 씻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 滌淸腸內非他事
빙설 같은 새로운 시를 얻고자 해서라네 / 欲得新詩氷雪聯
개모 별가(蓋牟別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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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모 별가는 늙을수록 광기가 심해져서 / 蓋牟別駕老逾狂
사람 만나면 한바탕 욕을 퍼붓곤 했는데 / 遇著時人罵一場
검속 안 하는 호탕한 기개를 자부한 거지 / 自負氣豪無檢束
어찌 나만 문장이 있다고 여긴 때문이랴 / 肯緣吾獨有文章
쓸쓸한 안탑에는 가을 풀이 더부룩하고 / 蕭蕭鴈塔埋秋草
썰렁한 예산에는 석양만이 걸쳐 있구나 / 淡淡猊山掛夕陽
천재에 높은 명성 닳아 다하진 않으련만 / 千載高名磨不盡
후생이 누가 다시 그 후광을 우러를런고 / 後生誰復望餘光
[주D-001]개모 별가(蓋牟別駕)는 …… 했는데 : 개 모는 요령성(遼寧省) 개주(蓋州)의 고호이고, 별가는 통판(通判) 즉 판관(判官)의 이칭으로, 개모 별가는 곧 고려 말기의 문장가로서 일찍이 원(元)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요동로 개주 판관(遼東路蓋州判官)을 지냈던 최해(崔瀣)를 가리키는데, 그는 본디 성품이 매우 강직하여 세속에 타협하지 않고 사람들의 선악을 기탄없이 지적하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그는 이 때문에 끝내 당시 조정(朝廷)으로부터 소외되어 벼슬길이 순탄하지 못했다고 한다.
[주D-002]안탑(鴈塔) : 당(唐)나라 때 진사(進士)에 급제한 사람들이 자은사(慈恩寺)의 안탑 밑에 이름을 적었던 데서, 즉 최해(崔瀣)가 원(元)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한 것을 의미한다.
[주D-003]예산(猊山) : 최해의 호인 예산농은(猊山農隱)의 약칭이다.
중동(仲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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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이 거의 다해 해는 저물어가는데 / 仲冬將盡歲將闌
쌓인 눈이 깊지 않아 날이 차지를 않네 / 積雪未深天未寒
들으니 강남엔 매화가 망울져간다는데 / 聞道江南梅欲動
어느 날 거룻배 타고 용만을 지나 볼꼬 / 小舟何日過龍灣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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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항에 사람은 없고 새들만 떠들어 대니 / 門巷無人鳥雀喧
찬 구름 고목나무가 황폐한 마을 같구나 / 寒雲老樹似荒村
다시 어디로 가서 참다운 은자를 찾으랴 / 更從何處尋眞隱
아직도 남은 생은 지존을 받들 뿐이라네 / 猶向殘生奉至尊
신병은 낫지 않아서 약을 먹어야 하지만 / 身病未痊須藥餌
대낮에야 일어나선 천지에 감사하노라 / 日高方起謝乾坤
한나라 국운을 산처럼 중하게 한 이론 / 能令漢鼎如山重
그때 기리계 동원공이 멀리 생각나누나 / 遙憶當時綺與園
[주D-001]한(漢)나라 …… 생각나누나 : 한 고조(漢高祖)가 말년에 이미 세운 태자(太子)를 폐하고 척 부인(戚夫人)의 소생인 조왕(趙王) 여의(如意)를 태자로 삼으려고 할 적에 대신(大臣)들이 극력 간쟁(諫諍)하여도 듣지 않자, 장량(張良)의 주선에 의해 당시 상산(商山)에 은거하던 네 노인 즉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을 초빙해서 태자를 극력 보필하게 한 결과, 고조가 마침내 이 네 노인이 태자를 보필하는 모습을 보고는 척 부인을 불러서 네 노인을 가리켜 보이면서 이르기를 “나는 태자를 바꾸려고 했지만, 저 네 사람이 태자를 보필하고 있어 우익(羽翼)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이제는 움직이기 어렵게 되었다.” 하고, 끝내 태자를 바꾸지 않음으로써, 한나라가 무사하게 되었던 것을 이른 말이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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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가 왕명 전하여 표문을 지으라 하니 / 承旨傳宣撰表章
늙은이는 생각이 말라 땀만 줄줄 흐르네 / 老翁思渴汗翻漿
꿈속엔 아직도 연촉 태운 게 의아스런데 / 夢中尙訝燒蓮燭
병든 뒤엔 옥당 주관함이 더욱 놀랍구려 / 病後尤驚領玉堂
나막신 신고 등산한 건 왜 그리 요원한고 / 蠟屐登山何杳邈
구름 돛에 바다 건넌 일도 아득기만 하네 / 雲帆濟海亦蒼茫
눈이 올 듯 추운 날에 깊이 들앉았노라니 / 天寒欲雪方深坐
망가진 붓에 하사주의 향기가 풍기는구나 / 敗筆猶熏內醞香
[주D-001]연촉(蓮燭) 태운 게 : 당 (唐)나라의 영호도(令狐綯), 송(宋)나라의 왕흠약(王欽若)ㆍ소식(蘇軾) 등이 모두 일찍이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있을 적에 천자(天子)의 부름을 받고 대궐에 입시(入侍)했다가 밤이 깊어지자, 임금이 사용하는 금련촉(金蓮燭)을 하사하여 각각 한림원으로 돌아가게 했던 고사에서 온 말로, 문학지사(文學之士)가 임금으로부터 최상의 대우를 받는 명예로움을 의미한다.
[주D-002]나막신 …… 요원한고 : 남조(南朝) 때의 문인(文人)으로 풍류가 뛰어났던 사영운(謝靈運)은 특히 명산(名山)에 오르기를 좋아하여 매양 나막신을 신고 등산을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구름 …… 하네 : 이 백(李白)의 〈행로난(行路難)〉 시에 “긴 바람에 풍랑 헤쳐 나갈 기회가 오거든, 곧장 구름 돛 걸고 큰 바다를 건너련다.[長風波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장부(丈夫)의 큰 포부를 한번 펴보려는 뜻에서 한 말이다.
눈을 읊다.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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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눈은 뜰에 가득고 날은 이미 밝아져서 / 微雪滿庭天已明
늦게 일어난 늙은이 그윽한 정 발동하누나 / 老翁徐起動幽情
갖옷 입으니 추위는 두려울 게 없거니와 / 披裘肯怕侵肌冷
시구 얻으니 문득 철저히 맑은 게 놀랍네 / 得句俄驚徹骨淸
채색 선명한 강산을 홀로 가기 어려워라 / 罨畫江山難獨往
낚싯줄 도롱이 삿갓 평생 소원 저버렸네 / 釣絲簑笠負平生
고심하여 다만 매화가 피기를 기다려서 / 苦心只待梅花發
달빛 아래 산보하며 오경까지 심방하련다 / 踏月相尋到五更
산재(山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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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에 한 해가 또 저물어가니 / 山齋歲云暮
산중 사람은 마음 다시 적적해지네 / 山人心更寂
찬 계곡 물은 절벽에서 떨어지고 / 寒磵滴石崖
눈 밑에는 진기한 풀이 새파랗고 / 雪底瑤草碧
늙은 학은 장송에 둥지를 틀었고 / 老鶴巢長松
북풍은 쌀쌀하게도 불어오는데 / 朔風吹淅瀝
문 닫고 앉아 현빈을 지키노라니 / 閉戶守玄牝
텅 빈 방에 절로 흰빛이 생기누나 / 虛室自生白
나는 그 산재의 거처로 말미암아 / 我欲從其居
이 유유한 세월을 보내고 싶으나 / 傲此百代客
다만 내 초심을 저버릴까 두려워 / 只恐負吾初
돌아와서 안택에 거주하노니 / 歸來居安宅
어찌 알리오 단 하루 동안이라도 / 那知一日間
천하가 그 은택을 입게 될 줄을 / 天下被其澤
[주D-001]현빈(玄牝) : 현 빈은 우주(宇宙)의 만물을 생성하는 본체(本體) 즉 천지(天地)의 원기(元氣)를 말하는데, 현(玄)은 사람에 있어 코[鼻]에 해당하고, 빈(牝)은 사람에 있어 입[口]에 해당하는 것으로, 즉 천지의 도(道)를 지켜서 심신(心身)을 수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텅 …… 생기누나 : 《장자》 인간세(人間世)에 “텅 빈 방에는 흰빛이 있고 거기에는 좋은 징조가 깃든다.[虛室生白吉祥止止]” 한 데서 온 말로, 즉 청허(淸虛)하여 욕심이 없으면 도심(道心)이 절로 생겨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3]안택(安宅)에 거주하노니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 “인은 하늘의 높은 작위이며, 사람의 편안한 집이거늘, 못 하게 막을 자가 없는데도 인을 하지 않으니,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夫仁 天之尊爵也 人之安宅也 莫之禦而不仁 是不智也]” 하였다. 《孟子 公孫丑上》
하사한 토전(土田)에 조세(租稅)를 거두어 돌아오다.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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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석에 누워 국은 입는 데에 깊이 놀라라 / 臥病深驚荷國恩
여강의 양쪽 언덕에 전원을 하사하였네 / 驪江兩岸賜田原
집에 앉아 녹 먹는 것도 스스로 부끄러운데 / 居家食祿已自愧
농사 안 짓고 거두는 덴 무슨 말을 더 하랴 / 不稼取禾何更言
누워 글 읽고 나면 산은 베개맡에 가득고 / 臥讀書殘山滿枕
앉아 낚싯줄 드리우면 물은 문에 비치리 / 坐垂鉤罷水侵門
모르겠도다 평생 소원을 언제나 이룰는지 / 未知素願何時遂
비녀 가득 백발에다 두 눈까지 어두운걸 / 白髮盈簪兩眼昏
한홍(韓弘) 동년(同年)에게 받들어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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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저문 송악산에 한창 눈 내리는 이때 / 歲暮松山雪落時
늙은이는 하얀 귀밑털 드리우고 앉았는데 / 老翁危坐鬢垂絲
삼사의 소식은 어찌 그리 뜸하단 말인가 / 三司音耗何疏闊
천리 멀리 생각하는 맘을 저 달은 알걸세 / 千里相思月犻知
조용히 앉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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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땅 가운데 조용히 들앉아서 / 靜坐乾坤裏
읊조리는 속에 여생을 보내노라니 / 殘生嘯詠中
산 빛은 처음으로 흰 눈을 띠었고 / 山光初帶雪
구름 그림자는 절로 바람을 따르네 / 雲影自隨風
동복들은 모두 제 친구만 아는데 / 僮僕知親友
아손들은 제 할아비를 옹위하누나 / 兒孫擁祖翁
흥겨워서 필연을 가져오게 했지만 / 興來呼筆硯
좋은 시구 얻기가 점차 어렵구나 / 漸覺語難工
손님이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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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오자 내 머리에 두건을 쓰고 / 客至巾吾頂
반가워서 허겁지겁 맞이하고 나니 / 欣然倒屐迎
처마 바람은 좌석을 썰렁케 하고 / 簷風吹座冷
뜨락의 눈은 옷을 환히 비추는데 / 庭雪照衣明
시골 흥취는 때때로 발동하고요 / 野興時時發
고향 얘기는 일마다 청아하구려 / 鄕談事事淸
문 안에서 보내고 다시 방에 드니 / 送畿還入室
저녁 해가 서성으로 내려가누나 / 斜日下西城
판삼사(判三司) 홍 영공(洪令公)이 방문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이름은 영통(永通)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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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하늘에 해가 점차 길어짐을 깨닫겠어라 / 天春漸覺日行遲
천둥소리가 동천에서 분발하려는 때로다 / 雷在東泉欲奮時
사물에 감회 붙임은 좋은 일이 아니거니와 / 遇物興懷非好事
사정 열거해 덕 칭송하는 덴 시뿐이고말고 / 陳情頌德只憑詩
눈은 대지 덮을까 꺼려서 살살 떨어지고 / 雪嫌包地微微落
바람은 가지 울릴까 저어해 솔솔 부누나 / 風恐鳴條細細吹
나라 다스리는 가전의 솜씨를 감추지 마소 / 莫縮家傳醫國手
세정은 강해가 잔에서 새는 것과 같다네 / 世情江海漏於巵
[주D-001]천둥소리가 …… 때로다 : 동 천(東泉)은 곧 동녘의 지하(地下)란 뜻이다. 《예기》 월령(月令)에 이르기를 “중춘의 달에는……낮과 밤의 길이가 균평하게 나누어지고, 천둥소리가 비로소 울리고 번개가 요란하게 친다.[仲春之月……日夜分 雷乃發聲 始電]” 하였고, 도잠(陶潛)의 〈의고(擬古)〉 시에는 “중춘에는 제철의 비가 내리고, 비로소 동녘 구석에서 천둥소리가 울린다.[仲春遘時雨始雷發東隅]”고 하였다.
[주D-002]세정(世情)은 …… 같다네 : 《회 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에 “지금 낙숫물 방울도 충분히 항아리를 채워 넘칠 수 있지만, 강하의 큰물도 새는 술잔은 채울 수 없나니,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은 것이다.[今夫霤水足以溢壺榼 而江河不能實漏巵 故人心猶是也]” 한 데서 온 말이다.
경 시중(慶侍中)에 대한 만시(挽詩). 이름은 복흥(復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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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한 직임은 삼한의 업적이요 / 鼎重三韓業
얼음처럼 맑은 건 일편단심일세 / 氷淸一片心
신하의 절조는 한평생 우뚝했고 / 百年臣節聳
임금님 은혜는 천재에 깊었도다 / 千載主恩深
태양은 임진강 물을 밝게 비추고 / 日映臨津水
구름은 서곡 봉우리에 걸쳤는데 / 雲連瑞谷岑
병중이라 상여 끈 잡기가 어려워 / 病中難執紼
슬피 바라보며 애처로이 읊노라 / 悵望動哀吟
스스로 의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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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이라 마음 또한 적적하여 / 病中心更寂
세세하게 내 몸을 점검해 보니 / 細細檢吾身
과제 취하길 배우진 않았거니와 / 不學收科第
조정 반열에 참여할 재주도 없어 / 無才列搢紳
세상 피하듯이 두문불출하다가 / 杜門如避世
고삐 놓아 문득 사람을 찾았으니 / 縱靶忽尋人
내 처신이 나도 의혹되긴 하지만 / 自處吾猶惑
비난 평판도 꼭 진실하진 못하리 / 譏平未必眞
[주D-001]고삐 …… 찾았으니 : 고 삐를 놓는다는 것은 한유(韓愈)의 〈현재유감(縣齋有感)〉 시에 “비록 대궐의 시종신이 되긴 했지만, 어찌 청운을 향해 고삐 놓아 달리랴.[雖陪彤庭臣 詎縱靑冥靶]”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영달(榮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믿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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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몸은 지칠대로 지쳤는데 / 病中身已憊
묵묵히 내 마음을 반성해 보니 / 默默省吾心
형체 갖춘 건 천연의 오묘함이요 / 具體天然妙
본원 만남은 자득이 깊어서일세 / 逢原自得深
저문 날 봄엔 증점의 비파요 / 暮春曾點瑟
흐르는 물엔 백아의 거문고로다 / 流水伯牙琴
내가 좋아하는 걸 그 누가 알랴 / 所樂誰能識
고절 청풍이 고금을 뒤덮고말고 / 淸風蓋古今
[주D-001]본원(本原) …… 깊어서일세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 “군자가 방도에 따라 학문에 깊이 나아가는 것은 스스로 얻고자 함이니, 스스로 얻은 것이 있으면 거기에 처하는 것이 견고해지고, 처하는 것이 견고해지면 그것에 자뢰한 바가 깊어지고, 자뢰한 바가 깊어지면 몸의 좌우에서 찾아보아도 학문의 본원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 則居之安 居之安 則資之深 資之深 則取之左右逢其原]” 한 데서 온 말로, 즉 학문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孟子 離婁下》
[주D-002]저문 …… 비파요 : 공 자(孔子)가 일찍이 여러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증점(曾點)이 쟁그랑 소리와 함께 타던 비파를 자리에 놓고 일어나서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리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하여, 자기의 고상한 뜻을 피력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주D-003]흐르는 …… 거문고로다 : 옛 날에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는데, 백아가 일찍이 높은 산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듣고 말하기를 “좋다, 높다란[峩峩]것이 마치 태산(泰山)과 같구나.” 하였고, 또 백아가 흐르는 물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또 말하기를 “좋다, 광대한[洋洋]것이 마치 강하(江河)와 같구나.”라고 한 것을 이른다.
느낌이 있어 짓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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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을 누가 정밀하게 구명할 수 있으랴 / 祕錄誰能考究精
청룡 줄기 산 빛이 꿈속에도 밝게 빛나네 / 靑龍山色夢中明
당시에 그 자리 잡은 뜻이 깊기도 하여라 / 當時卜築非無意
오늘 아침 당 북쪽에 분묘가 덩그렇구려 / 堂北今朝馬鬣橫
만고에 영웅치곤 포부를 다 펴지 못하나니 / 萬古英雄未了心
헤아리자면 강해도 그보다는 깊지 못하리 / 算來江海亦非深
시중은 칠십이요 아들은 황각에 들었고 / 侍中七十兒黃閣
또 온전히 돌아감은 고금에 드문 일일세 / 又得全歸罕古今
세속 좇는 내 문장은 너무나도 광대 같은데 / 殉世文章太類俳
나이 겨우 오십 넘어서 이미 시들어버렸네 / 年過知命已摧頹
공연히 덕행 흠모해 애써 바라만 보았을 뿐 / 謾歆淸德勞瞻望
지척에 있는 신경을 왕래 한번 못 했네그려 / 咫尺新京莫往來
[주D-001]비록(祕錄) : 지리(地理)에 관한 도참서(圖讖書), 즉 도선(道詵)의 《비기(祕記)》를 말한다.
[주D-002]시중(侍中)은 …… 일일세 : 황 각(黃閣)은 재상(宰相)이 집무하는 관서(官署)를 말하고, 온전히 돌아간다는 것은 곧 《예기》 제의(祭義)에 “부모가 온전히 낳아주셨으니, 자식이 온전히 돌아가야만 효도라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육체를 훼손시키지 않고, 자기 몸을 욕되게 하지 않아야만 온전히 했다고 이를 수 있는 것이다.[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可謂孝矣 不虧其體不辱其身 可謂全矣]”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말한 시중은 바로 위의 〈경 시중(慶侍中)에 대한 만시(挽詩)〉에 나온 경복흥(慶復興)을 가리킨다. 경복흥의 나이는 자세하지 않으나, 그가 우왕(禑王) 6년(1380), 좌시중(左侍中)으로 죽었을 때, 당시 신경(新京)이 있던 백악(白嶽)의 근처, 즉 장단군(長湍郡) 임진현(臨津縣) 서곡(瑞谷) 마을 뒷산에 그를 장사 지냈고, 또 그의 두 아들 경보(慶補), 경의(慶儀)가 당시에 모두 높은 관직에 있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흥취를 풀다.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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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신은 쑤셔대고 밤기운은 엄숙하니 / 肌骨酸辛夜氣嚴
이 마음은 괴로우나 도심은 농후하네 / 此心良苦道情甘
아무리 이끗 욕심은 낙엽지듯 했다지만 / 雖然利欲如黃落
아직도 백념적 같은 교사함이 있고말고 / 尙有機關似白拈
시 속의 미친 회포엔 군색한 운율이 없고 / 詩裏狂懷無窘律
술 마시는 진미는 약간 거나함에 있구나 / 酒中眞味在微酣
누가 알리오 자부심은 아직도 적지 않아 / 誰知自負猶非淺
나가나 물러가나 근심하는 범중엄인걸 / 進退俱憂范仲淹
[주D-001]백념적(白拈賊) : 맨 손으로 남의 물건을 흔적도 없이 훔쳐가 버리는 도적을 말한다. 《전등록(傳燈錄)》에 의하면 “어떤 승려(僧侶)가 임제 선사(臨濟禪師)에게 묻기를 ‘어느 것이 곧 무위진인입니까?[如何是無位眞人]’ 하자, 임제 선사가 문득 후려치면서 이르기를 ‘무위진인이란 게 이 무슨 똥 씻는 막대기더냐?[無位眞人是甚麽乾屎橛]’ 하였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본래의 뜻은 불교 선종(禪宗)에서 학인(學人)들의 망상(妄想)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키는 것을 비유한 것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도적의 뜻만을 취한 것이다.
[주D-002]나가나 …… 범중엄(范仲淹)인걸 : 북 송(北宋) 때의 명상(名相) 범중엄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묘당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 그 백성을 걱정하고, 강호의 먼 곳에 있으면 그 임금을 걱정하는지라, 이는 나가서도 걱정, 물러가서도 걱정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어느 때에 즐거울 수 있겠는가. 그는 반드시 천하의 걱정은 남보다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남보다 뒤에 즐긴다고 할 것이다.[居廟堂之高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是進亦憂 退亦憂 然則何時而樂耶 其必曰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한 데서 온 말이다.
가산(家山)을 생각하다.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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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 밖 고향 산천은 꿈속에만 들어오는데 / 萬里家山入夢中
풍진은 눈에 가득고 귀밑털은 쑥대강이 같네 / 風塵滿目鬢如蓬
강 하늘 흐린 달빛 아래 봉화는 끊겼건만 / 江天煙月無烽火
도롱이 삿갓에 언제나 낚시 노인 벗 삼을꼬 / 簑笠何時伴釣翁
치통(齒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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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통으로 내가 너무 쇠해졌는데 / 齒痛吾衰甚
연래에는 치아가 많이 빠졌으니 / 年來脫去多
통째로 삼킬 만한 건 그렇다 쳐도 / 全呑聊爾耳
꼭 씹어야 할 건 어찌한단 말인가 / 大嚼欲如何
양념 넣은 국엔 면발이 보드랍고 / 麵滑羹初絮
출렁이는 술은 잔에 가득하여라 / 杯深酒似波
단단한 것 씹을 희망 없어졌으니 / 攻堅已無望
늙어갈수록 묵은 병만 지니겠구나 / 老將抱沈痾
어제 판사(判事) 최언문(崔彦文)이 술을 가지고 찾아왔는데, 치통 때문에 시를 읊지 못했다가, 명일에 치통이 조금 우선하므로 세 수를 기록하여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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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릉의 당일엔 사문을 극진히 숭상하여 / 玄陵當日右斯文
태학의 유생들이 구름처럼 들렜었는데 / 泮水靑衿鬧似雲
병 앓은 지 십 년 동안 태학 출입 어려워 / 憂病十年難入學
소나무만 남겨서 석양이 걸리게 하누나 / 只留松樹掛斜曛
상종하며 강습하고 고문을 토론하던 / 講肄相從討古文
제공들이 지금은 구름처럼 흩어졌기에 / 諸公今日散如雲
정겨운 술자리를 병으로 사양 못 한 채 / 一尊情重難辭病
또 저 서산에는 저녁 해가 걸렸네그려 / 又是西峯帶夕曛
충신이 의당 먼저요 행문은 다음이니 / 忠信須先行與文
예로부터 부귀란 뜬구름과 같고말고 / 由來富貴是浮雲
자네들이 두려울 뿐 우리는 늙었도다 / 吾生可畏吾儕老
읊노라니 강산엔 날이 어둑어둑해지네 / 坐詠江山日欲曛
[주D-001]충신(忠信)이 …… 같고말고 : 《논 어(論語)》 술이(述而)에 “공자께서는 네 가지로 가르치셨으니, 문과 행과 충과 신이었다.[子以四敎文行忠信]” 하였고, 또 공자가 이르기를 “거친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구부려 베개로 삼을지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나니, 의롭지 못하게 부귀를 누리는 것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으니라.[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자네들이 …… 늙었도다 : 공자가 이르기를 “후생이 두려움직하거니, 후배들이 지금 사람만 못할 줄을 어떻게 알겠는가?[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치 통이 다시 발작하여 고통스러움을 참을 수가 없으므로, 의원(醫員)을 시켜 뽑아버렸더니, 비로소 편히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러나 단단한 음식물을 끊는 용도는 또 많이 감소되었다. 기쁘기도 하고 한편 슬프기도 하여 한 수를 읊어 이루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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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는 맹장처럼 주로 견고한 걸 공격하여 / 齒如猛將主攻堅
사람의 입속에서 큰 권력을 행사하는데 / 口吻中間柄大權
장성할 땐 강한 것도 거침없이 이겨 내지만 / 壯抑強剛無齟齬
노쇠해지면 약한 걸 만나도 더디기만 하네 / 老逢小弱亦遷延
입술은 들썩임 때문에 뜻밖의 화를 입고 / 脣因微反値奇禍
혀는 아주 부드러워서 천수를 누리나니 / 舌以至柔能永年
품부한 게 명명하게 다 법칙이 있는지라 / 稟賦明明皆有則
세상사 득실 속에 나도 몰래 눈물이 흐르네 / 乘除不覺一潸然
[주D-001]입술은 …… 입고 : 한 무제(漢武帝) 때 금전(金錢)은 많아질수록 천해지고, 물품(物品)은 적어질수록 귀해짐으로 인하여 천자(天子)가 당시 정위(廷尉)인 장탕(張湯)과 상의하여 일종의 화폐(貨幣)로서 값이 무려 사십만에 달하는 백록피폐(白鹿皮幣)를 만들어서 이것을 왕후(王侯)나 종실(宗室)의 조근(朝覲)과 빙향(聘享) 등의 예식에 반드시 사용하도록 법제화하고 나서, 당시 대농(大農)이었던 안이(顔異)에게 그것이 타당한지를 물으니, 안이가 말하기를 “지금 왕후(王侯)가 조하(朝賀) 때 바치는 창벽(蒼璧)은 값이 수천(數千)인데, 그 피폐(皮幣)는 도리어 사십만이나 되니, 본말(本末)이 서로 걸맞지 않습니다.”라며, 그 부당성을 말하였는데, 바로 그 후 안이가 혹자와 얘기를 나누던 중 혹자가 그 조령(詔令)을 불편하게 여기는 말을 하자, 안이는 입으로 말은 하지 않고 살며시 입술만 들썩거려서 그 제도에 대한 불만의 표시를 한 일이 있었으므로, 마침내 장탕이 안이에게 ‘입으로 말하지 않고 속으로만 조령을 비방했다’는 죄목을 씌워서 그를 사형(死刑)에 처했던 데서 온 말이다. 이때부터 복비(腹誹)의 법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 《史記 卷30 平準書》
[주D-002]혀는 …… 누리나니 : 혀 는 유순(柔順)함으로써 오래도록 보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공총자(孔叢子)》 항지(抗志)에 의하면, 노래자(老萊子)가 말하기를 “그대는 치아를 보지 못했는가. 치아는 견강함으로 인하여 끝내 다 닳아지게 되고, 혀는 유순함으로 인하여 끝까지 해지지 않는 것이다.[子不見夫齒乎齒堅剛 卒盡相磨 舌柔順 終以不弊]”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유(韓愈)의 〈부강릉도중기…(赴江陵途中寄…)〉 시에 “치아가 모두 빠져버림으로부터, 비로소 유순한 혀를 그리게 되었네.[自從齒牙缺 始慕舌爲柔]”라고 하였다.
내 가는 길 서둘지 않고 천천히 가거늘 / 我行匪棘自逶迤
과연 그 누가 나더러 허둥댄다 하는고 / 謂我栖栖果是誰
입으론 시 읊느라 그 얼마나 괴로운가만 / 口爲吟詩何太苦
마음엔 도가 있어 온전히 쇠하진 않았네 / 心因存道未全衰
봉황 노래는 이미 주류하던 날에 드러났고 / 鳳歌已表周流日
기린은 원래 필삭의 때를 인해서 나왔었지 / 麟出元因筆削時
인풍을 사모하여 우러르는 천재 뒤에서 / 景仰仁風千載下
그 자취 잇는다는 게 참으로 비통하구려 / 比肩繼踵儘堪悲
[주D-001]내 …… 하는고 : 허 둥댄다는 것은 공자(孔子)가 도(道)를 행하기 위해서 매우 애썼던 일을 가리킨 것으로, 미생묘(微生畝)란 사람이 일찍이 공자를 보고 말하기를 “구는 어찌하여 그렇게 허둥지둥하는가, 아당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丘何爲其栖栖者與 無乃爲佞乎]” 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감히 아당을 부리려는 것이 아니라, 숨는 것만 고집하는 것을 싫어해서이다.[非敢爲侫也 疾固也]”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憲問》
[주D-002]봉황 …… 드러났고 : 춘 추 시대 초(楚)나라의 광인(狂人) 접여(接輿)가 난세(亂世)에 도(道)를 행하려고 애쓰는 공자를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공자의 곁을 지나면서 노래하기를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 그리도 덕이 쇠했느뇨? 지나간 일은 탓할 수 없거니와 앞으로의 일은 고칠 수 있으니,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鳳兮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已而]”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微子》
[주D-003]기린은 …… 나왔었지 : 공자가 노(魯)나라의 기존 역사(歷史)에 필삭(筆削)을 가하여 《춘추(春秋)》를 저술했는데, 노 애공(魯哀公) 14년 봄에 이르러, 서쪽으로 사냥을 나가서 기린을 잡은 일[西狩獲麟]이 있었으므로 한 말이다.
병 때문에 교외(郊外)에 나가서 용부(庸夫)를 전송할 수 없으므로, 두 자식을 보내서 내 뜻을 표하고, 앉아서 세 수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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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서쪽에 수많은 기병 구름처럼 모여들고 / 城西萬騎似雲煙
푸짐한 안주며 술통들을 앞뒤로 나열해라 / 太胾長甁列後前
서쪽 교외에 곧장 이르러 잠깐 휴식할 제 / 直到金郊方小歇
예천군의 손자가 또 주연을 베푸는구나 / 醴泉孫子又開筵
병든 나머지 억지로 시속 좇기가 어려워 / 病餘難強逐時趨
증처는 연래에 전혀 행해보질 못하였네 / 贈處年來斷所無
공은 간다고 안 고하고 나는 전송 않거니 / 公不告行吾不送
우리의 담박한 교분을 누가 안 부러워하랴 / 淡交誰不羨吾徒
두 자식이 멀리 늙은 아비 마음 전했으니 / 二子遙傳老父心
용부의 두 귀로 응당 잘 알아들었으리 / 庸夫兩耳未應深
백발로 가장 꺼리는 건 이정의 눈물이라 / 白頭最忌離亭淚
속히 돌아와 함께 취해 읊기만 바란다네 / 只願遄歸共醉吟
[주D-001]예천군(醴泉君)의 손자 : 예천군은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진 권한공(權漢功)을 말하는데, 그의 장자(長子)는 권중달(權仲達)이고, 계자(季子)는 권중화(權仲和)인바, 여기서 말한 손자가 누구의 아들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주D-002]증처(贈處) : 《예 기》 단궁(檀弓)에 의하면, 자로(子路)가 노(魯)나라를 떠날 적에 안연(顔淵)에게 말하기를 “떠나는 나에게 무엇을 주어 전별하겠는가?[何以贈我]” 하였고, 안연은 또 자로에게 말하기를 “남아 있는 나에게는 무엇을 남겨 주겠는가?[何以處我]”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친구 간에 헤어질 때 서로 권면(勸勉)하는 말을 주고받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3]이정(離亭) : 옛날 성곽(城郭) 밖의 길가에 세웠던, 행인(行人)이 잠시 휴식할 수 있는 정자(亭子)를 말하는데, 옛사람들이 모두 여기에서 서로 송별하였으므로, 전하여 길 떠나는 사람에 대한 송별의 자리를 의미한다.
조용히 앉아서 한 수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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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 속에 천지가 천진한 본체를 얻어라 / 靜裏乾坤體得眞
길이 쌓인 눈 속에 절로 봄을 갈무리했네 / 永堆雪積自藏春
종식으로 황당무계함 지을 것 없고말고 / 不須踵息來荒怪
살아서 순하고 죽어 편안한 게 사람인걸 / 生順死安名曰人
익혀져서 평상시에도 도덕이 조화되고 / 習矣尋常和道德
고요함 속에 마음에선 경륜이 일어나네 / 湛然方寸起經綸
한낮의 밝은 창 아래 향 연기 피어오를 제 / 午窓日照爐香細
고금사 유유한 가운데 흥미가 새롭구나 / 今古悠悠興味新
[주D-001]종식(踵息) : 도 가(道家)의 양생법(養生法) 가운데 하나로서 즉 호흡을 아주 천천히 하여 깊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을 말한다.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진인의 호흡은 발꿈치로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호흡은 목구멍으로 한다.[眞人之息以踵 衆人之息以喉]”고 하였다.
[주D-002]살아서 …… 사람인걸 :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살아서는 내가 하늘을 순히 섬기고, 죽어서는 내가 편안하리라.[存吾順事沒吾寧也]” 한 데서 온 말이다.
무제(無題)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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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방에서 경서 보며 양파를 모실 땐 / 看經靜室侍陽坡
용부가 사랑을 많이 받는다 다들 말했지 / 共說庸夫見愛多
사신의 일이 하도 급해 사양치 못했으니 / 使事悤悤辭不得
늙은 부인의 마음이 정히 그 어떠하리오 / 老夫人意定如何
장원인 나는 늙고 병들어 몹시 돌아가고파 / 狀元衰病苦思歸
형체도 잊은 지 오래인데 더구나 시비이랴 / 久已忘形況是非
다만 한스러운 건 출발할 때 치아가 아파서 / 只恨臨分牙齒痛
문 닫고 앉아 달리는 말만 상상할 뿐임일세 / 閉門空想馬如飛
때에 따라 경중이 있는 게 바로 인정인데 / 隨時輕重是人情
나는 이미 병든 나머지 내 생을 잊었지만 / 我已病餘忘我生
다만 산중의 늙은 모영이 있기 때문에 / 獨有山中老毛穎
내 심중을 동이로 쏟아 붓듯 써내린다네 / 寫他心曲似盆傾
[주D-001]고요한 …… 말했지 : 양 파(陽坡)는 홍언박(洪彦博)의 호이고, 용부(庸夫)는 권중화(權仲和)의 자이다. 공민왕(恭愍王) 2년 계사년(1353)에 지공거(知貢擧) 이제현(李齊賢), 동지공거(同知貢擧) 홍언박이 주관하는 과거(科擧)에서 목은과 권중화가 다 급제했는데, 목은은 특히 장원(狀元)이었다.
[주D-002]산중(山中)의 늙은 모영(毛穎) : 토끼의 털로 붓을 만들기 때문에 한유(韓愈)의 〈모영전(毛穎傳)〉에서 붓을 의인화(擬人化)하여 모영이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늙은 모영은 곧 낡은 붓을 의미한다.
벽운공(碧雲公)에게 박주(薄酒)를 올리려고 했으나, 마침 몸이 경쾌하지 못하여 바람을 쐴 수가 없어 감히 나가지 못하고, 두 자식을 시켜 예(禮)를 행하게 하고 두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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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운이 나의 병을 안타깝게 여겨 / 碧雲憐我病
마음을 십분 깊이 써주어서 / 用意十分深
아침저녁 할 것 없이 왕래하느라 / 往來無朝暮
궂은 날의 어려움도 가리질 않네 / 艱難犯雨陰
일편단심은 임금님 생각뿐이요 / 丹心對君陛
백발 나이는 온 유림의 영수로다 / 白髮領儒林
후일 병 속의 별천지에서 / 異日壺中地
신선 술이나 함께 마시게 해주오 / 仙醪許共斟
두 자식이 내 탕약 시중을 드는데 / 二子侍湯藥
공에게 감사하는 마음 깊고말고 / 於公感也深
약은 후일까지 저장하기 어렵지만 / 藥難儲異日
의술은 잠시나마 지속시킬 만하네 / 術可駐分陰
어제는 구름 낀 골짝처럼 흐리더니 / 昔似雲埋谷
오늘은 낙엽진 숲처럼 가뿐하구나 / 今如葉脫林
송료 만드는 법을 새로 알았으니 / 松醪新得法
머잖아 그대 마주해 마시련다 / 早晚對君斟
[주C-001]벽운공(碧雲公) : 목은의 글 가운데 양벽운(楊碧雲), 또는 양벽운 노선생 등으로 수차 나오는 인물인데, 그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당시 도사(道士)로서 특히 의약(醫藥)에 밝았던 사람인 듯하다.
[주D-001]병 속의 별천지 : 후 한(後漢) 때 시장에서 약(藥)을 파는 한 노인이 있어, 자기 점포 머리에 병 하나를 걸어 놓고 있다가 시장을 파하고 나서는 매양 그 병 속으로 뛰어들어갔는데, 그때 시연(市掾)으로 있던 비장방(費長房)이 그 사실을 알고는 그 노인에게 가서 재배(再拜)하고 인하여 노인을 따라서 그 병 속에 들어가 보니, 옥당(玉堂)이 화려하고 좋은 술과 맛있는 안주가 그득하여 함께 술을 실컷 마시고 나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송료(松醪) : 송진(松津)이나 송화(松花)를 넣어서 빚은 술을 말한다.
꿈을 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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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깨니 닭이 울어라 밤이 하마 얼마런고 / 夢廻雞唱夜如何
누호의 물이 이미 많이 줄은 데에 놀랐네 / 漏刻初驚減已多
봄 경치에 고뇌할 때는 응당 안 멀거니와 / 春色惱人應不遠
천심은 간 곳마다 절로 치우침이 없다오 / 天心到處自無頗
우선 동창을 향하여 귀연이나 배우다가 / 且向東窓學龜嚥
장차 상원의 꾀꼬리 소리를 꼭 들으련다 / 行當上苑聽鶯歌
한 덩어리의 좋은 중화가 여기 있는지라 / 一團好箇中和在
사시 절기가 안락와에 두루 유행하누나 / 四序周流安樂窩
[주D-001]귀연(龜嚥) : 도가(道家)의 양생법(養生法) 가운데 하나로서, 즉 거북처럼 호흡 조식(呼吸調息)을 잘하여 음식을 먹지 않고 장생(長生)한다는 것을 말한다.
[주D-002]상원(上苑) : 대궐(大闕) 안의 동산을 말한다.
[주D-003]안락와(安樂窩) : 본디 낙양(洛陽)에 있었던 소옹(邵雍)의 거실(居室) 이름인데, 여기서는 목은이 자기의 집을 소옹의 거실에 견주어 말한 것이다.
남창(南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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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하고만 오래 상대하다 보니 / 久病偏相對
여생을 스스로 잘 관찰하는지라 / 殘生好自觀
형체건 그림자건 논할 것도 없이 / 不論形與影
속 창자를 들여다보는 것 같네 / 如見肺兼肝
서책에선 말라진 좀이 떨어지고 / 蠹簡乾魚落
갠 하늘엔 송골매가 빙빙 도누나 / 晴空野鶻盤
누가 알리오 밝고 깨끗한 곳에 / 誰知明淨處
세도를 만회하기 어려운 실정을 / 世道挽回難
작자(作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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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가 지금은 애당초 없거니와 / 作者今無有
중니께선 일곱 사람을 말했지만 / 仲尼言七人
당시에도 누군 줄을 몰랐었는데 / 當時猶不識
후세에 다시 무슨 수로 알겠는가 / 後世更誰因
소허는 건곤처럼 위대하였고 / 巢許乾坤大
이제는 일월처럼 광명했기에 / 夷齊日月新
아득한 천재 뒤에서 / 悠悠千載下
늘 감탄하며 그 자취 사모하노라 / 三歎慕芳塵
[주D-001]작자(作者)가 …… 알겠는가 : 작 자는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숨어 버린 사람을 가리킨 것으로, 공자(孔子)가 일찍이 이르기를 “일어서서 가버린 이가 일곱 사람이다.[作者七人矣]” 한 데서 온 말인데, 공자가 그들의 성명(姓名)을 밝히지 않아서 누군 줄 알 수 없으므로 이른 말이다. 《論語 憲問》
[주D-002]소허(巢許) : 요 (堯) 임금 때의 은사(隱士)인 소보(巢父)와 허유(許由)를 합칭한 말이다. 요 임금이 일찍이 허유에게 천하(天下)를 양여(讓與)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기산(箕山)에 들어가 은거하였고, 또 뒤에 요 임금이 그를 불러서 구주(九州)의 장(長)으로 삼겠다고 했을 적에는 그가 그런 말을 들어서 귀를 더럽혔다 하여 영수(潁水)에 가서 귀를 씻었는데, 이때 마침 소보는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려고 나왔다가 허유가 귀를 씻는 것을 보고는 그 물조차 더럽다고 여겨 송아지에게도 그 물을 먹이지 않고 상류(上流)로 올라가서 물을 먹였다고 한다.
[주D-003]이제(夷齊) : 은 (殷)나라 말기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합칭한 말인데, 그들은 주 무왕(周武王)에 의해 은나라가 멸망된 뒤에는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 먹다가 마침내 굶어 죽었다.
노경(老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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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아무런 일도 없는지라 / 老境身無事
외로이 읊고픈 뜻은 내리질 않네 / 孤吟志不降
창자 우레는 새벽 와탑을 울리고 / 腸雷鳴曉榻
흰 귀밑털은 갠 창에 비치는구나 / 鬢雪照晴窓
시골 흥취는 뫼에서 구름 나오듯 하고 / 野興雲生岫
고상한 회포는 강에 달 가득하듯 한데 / 高懷月滿江
무슨 수로 이것을 다 쏟아 써낼꼬 / 何從盡傾寫
긴 장대 같은 붓이나 얻었으면 / 願得筆如杠
처마 밑의 해가 한낮이 되어갈 제 / 簷下日將午
백발 늙은이 햇볕 쬐고 있노라니 / 負暄翁白頭
애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등쌀에 / 苦遭童稚聒
문득 군부에 대한 근심을 잊었네 / 頓忘君父憂
유유히도 세대는 늘 바뀌어가고 / 悠悠世代改
하염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는데 / 苒苒光景流
스스로 다행함은 천명을 즐김이니 / 自幸樂天命
이로써 족한데 또 무얼 구하리오 / 足矣何所求
[주D-001]창자 …… 울리고 : 창자 우레란 바로 배가 잔뜩 고플 적에 창자에서 쪼르륵대는 소리가 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긴 …… 얻었으면 : 긴 장대 같은 붓이란 곧 웅건(雄健)한 문장력을 비유한 말이다. 구양수(歐陽脩)의 〈여산고(廬山高)〉 시에서 그곳 여산(廬山)에 은거한 유환(劉渙)의 고상한 절조(節操)를 찬미한 끝에 “장부의 장절치고도 그대만 한 이 드물테니, 아, 내가 그걸 말하려도 장대 같은 큰 붓을 어떻게 얻으랴.[丈夫壯節似君少 嗟我欲說安得巨筆如長杠]” 하였다.
임 동년(任同年)이 와서 말하기를 “수원부(水原府)의 전묘(田畝)를 답험(踏驗)하고 인하여 상주(尙州)로 가겠다.”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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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으로 가서 전묘를 답사하고 / 欲向水原去
인하여 상주로 달려간다 하거니 / 因從沙伐騰
두 소매 바람에 수염엔 고드름 얼고 / 髥氷風兩袖
외론 등불 아래 마음은 철석 같으리 / 腸鐵夜孤燈
대식의 계책도 졸렬하지 않거니와 / 代食謀非拙
공전에 대한 명은 절로 중하고말고 / 公田命自凝
후일에 우리 경락에서 노닐 때는 / 他年游洛上
서로 마주하여 실컷 마셔나 보세 / 相對酒如澠
[주D-001]대식(代食) : 벼 슬하여 녹봉(祿俸)을 먹는 대신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산다는 뜻으로, 《시경》 대아(大雅) 상유(桑柔)에 “저 모진 바람을 받고 선 듯이, 또한 몹시도 숨이 막히도다. 사람마다 나갈 마음은 있지만, 다들 난세라 안 된다 하고, 이 농사짓기를 좋아하여, 백성들과 농사지어 녹봉을 대신하노니, 농사짓는 것이 보배로우며, 녹봉 대신한 게 좋기만 하도다.[如彼遡風 亦孔之僾 民有肅心 荓云不逮 好是稼穡 力民代食 稼穡維寶 代食維好]”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주 여왕(周厲王) 때 예백(芮伯)이 여왕의 학정(虐政)을 풍자하여 부른 노래라 한다.
스스로 읊다.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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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진 세상 유유하기 그지없지만 / 塵世悠悠甚
나의 생애는 자유롭게 되었는데 / 吾生得自由
늙어갈수록 속은 좁아짐을 알겠고 / 老知中漸狹
가난하니 외물 요구를 안 한 듯하네 / 貧似外無求
산은 세 갈래의 길을 둘러쌌고 / 山擁三叉路
하늘은 백척의 누각에 나직한데 / 天低百尺樓
다만 가련한 건 시흥은 아직 남아 / 只憐詩興在
읊조리는 걸 그만두지 못함일세 / 吟詠不能休
봉황이 조양(朝陽)에서 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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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은 어디로 좇아 날아와서 / 鳳凰從何來
양지쪽에서 평화로이 울어 댔던고 / 喈喈鳴朝陽
길사가 천자로부터 총애받으니 / 吉士媚天子
이에 주나라의 도가 창성하였네 / 維時周道昌
적막한 천재 뒤에서도 / 寥寥千載下
나는 오히려 그 광휘를 바라노니 / 我尙望其光
어찌 천지 만물이 제자리 얻어 / 豈不致位育
요순처럼 천하 일가를 안 이루랴 / 一家如虞唐
부끄러운 건 비색한 운수를 만나 / 所愧値運蹇
은택이 사방에 미치지 못함일세 / 澤不施四方
아 예로부터 다 그러는 것이거니 / 嗚呼自古然
더 탄식하며 상심할 것 없고말고 / 不用增嘆傷
[주D-001]봉황(鳳凰)은 …… 창성하였네 : 길 사(吉士)는 어진 선비를 가리킨 것으로, 《시경》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이 훨훨 날아, 날개깃을 탁탁 치며, 앉을 자리에 앉는도다. 왕에게는 길사가 하 많으시니, 군자가 부리는지라, 천자께 사랑을 받는도다. 봉황새가 울어 대니, 저 높은 뫼이로다. 오동나무가 자라니, 저 볕바른 곳이로다. 무성한 오동나무에, 봉황새 노래 평화롭도다.[鳳凰于飛 翽翽其羽 亦集爰止 藹藹王多吉士 維君子使 媚于天子 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菶菶萋萋 雝雝喈喈]”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바로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을 따라 꼬부라진 언덕에서 노닐 때 성왕을 위하여 부른 노래라 한다.
[주D-002]천지 …… 얻어 : 《중용장구》 제1장에 “중화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하고, 만물이 길러진다.[致中和 天地位焉萬物育焉]”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내가 고인(古人)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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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 / 我思在何許
아스라이 먼 옛적 사람이라네 / 悠悠古之人
요순 시대만 주나라보다 성하여 / 唐虞斯爲盛
성명한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 / 聖主仍聖臣
도유하여 광채가 널리 입혀졌고 / 都兪致光被
넷을 죄주니 천하가 일신되었네 / 四罪天下新
나는 천재 뒤에 태어났지만 / 我生千載下
요순의 신하 직설과 이웃했거니 / 如與稷契鄰
어떻게 하면 덕교를 드러내고 / 何以德敎著
어떻게 하면 풍속을 순박게 할꼬 / 何以風俗醇
생각하며 앉아 길이 탄식하노니 / 念之坐長嘆
하얀 머리털에 검은 의관이로다 / 白髮皁簪紳
[주D-001]요순(堯舜) …… 성하여 : 무 왕(武王)이 이르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신하가 열 사람이 있다.[予有亂臣十人]”고 하였는데,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인재를 얻기 어렵다는 말이 옳지 않는가. 요순 시대만이 주나라보다 인재가 많았을 뿐이었으나, 주나라의 인재 열 사람 중에도 부인이 한 분 끼어 있었으니, 실상은 아홉 사람뿐인 것이다.[才難不其然乎 唐虞之際 於斯爲盛 有婦人焉 九人而已]”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泰伯》
[주D-002]도유(都兪)하여 …… 입혀졌고 : 도 유는 “훌륭하다, 옳다.”라는 감탄사로서, 이는 곧 요순(堯舜) 시대에 우(禹), 고요(皐陶) 등 현신(賢臣)들과 서로 화합하여 좋은 말을 주고받은 가운데서 나온 말이고, 광채가 널리 입혀졌다는 것은 《서경》 요전(堯典)에 “옛 요 임금을 상고하건대 방훈이시니, 공경하고 밝고 문채롭고 생각이 깊고 편안하시며, 진실로 공손하고 능히 겸양하시어, 광채가 사방 끝까지 입혀졌으며 상하에 이르셨다.[曰若稽古帝堯曰放勳 欽明文思安安 允恭克讓 光被四表 格于上下]”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넷을 …… 일신되었네 : 순(舜) 임금 때에 사흉(四凶)으로 불렸던 공공(共工), 환두(驩兜), 삼묘(三苗), 곤(鯀)을 처벌하자 천하가 다 복종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書經 舜典》
대신(大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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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같은 대신이여 높기가 태산 같아라 / 大臣柱石屹如山
천하의 안위가 실로 관계되는 바이로다 / 天下安危實所關
홀로 겸광 품어서 국운을 연장시키는데 / 獨抱謙光長國步
또 듣자 하니 천안엔 희색이 가득하다네 / 又聞喜色上天顔
육룡이 해 받드니 의용은 왜 그리 엄숙한고 / 六龍奉日容何肅
만마가 신속히 달려라 뜻은 절로 한가롭네 / 萬馬馳風意自閑
시험 삼아 눈 씻고 능연각을 꼭 보련다 / 試向凌煙須洗眼
그림 사이에 우뚝이 빼어난 그 풍채를 / 英姿颯爽畫圖間
[주D-001]겸광(謙光) : 《주역》 겸괘(謙卦) 단사(彖辭)에 “겸은 존대하면서 광명하고, 낮아도 넘을 수 없는 것이니, 군자가 유종의 미가 있음이니라.[謙 尊而光 卑而不可踰 君子之終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육룡(六龍)이 해 받드니 : 육룡은 어가(御駕)에 채우는 육마(六馬)를 가리키고, 해는 곧 임금을 가리킨다.
[주D-003]능연각(凌煙閣) : 당 (唐)나라 때 전각(殿閣) 이름인데, 태종(太宗) 연간에 국가에 공로가 가장 큰 신하로 장손무기(長孫無忌), 두여회(杜如晦), 위징(魏徵), 방현령(房玄齡), 이정(李靖) 등 스물네 훈신(勳臣)의 초상을 그려서 이 전각에 걸어 놓게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공신(功臣)에 책록(策錄)되는 것을 의미한다.
새벽에 눈이 내리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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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날리는 눈발이 뜰 앞에 떨어질 제 / 曉來飛雪落庭前
들 밖의 하늘엔 넓다란 구름이 나직하구나 / 浩浩雲低野外天
진포엔 외론 배 도롱이 삿갓이 있는지라 / 鎭浦孤舟簑笠在
또 돌아갈 생각이 새로운 시에 들어오네 / 又挑歸思入新聯
실바람은 들길의 성긴 대나무를 울리고 / 風微野徑鳴疏竹
저녁 해는 띠처마의 찬 연기를 비추누나 / 日落茅簷照冷煙
그 누가 알리오 파릉 다리 위의 나그네가 / 誰識灞陵橋上客
나귀 등에 채찍 세우고 시상에 젖은 줄을 / 豎鞭驢背思悠然
눈 맞고 오는 도중에 소리 높여 노래했으니 / 冒雪途中發浩歌
병신년 정월달 요하를 건너던 때이로세 / 丙申正月渡遼河
길은 평탄하여 수레 몰기 어려움 몰랐지만 / 路平不覺驅車苦
비탈은 미끄러워 굴대 흔히 꺾임에 놀랐네 / 崖滑方驚折軸多
대세는 아득히 북방 변새를 널리 휩싸고 / 大勢茫茫包鴈塞
남은 눈발은 점점이 장가로 들어왔었지 / 餘聲點點入牂柯
당시의 흥취를 아득히 생각에 떠올리며 / 杳然拈起當時興
머리털 하얀 채로 남창 아래 앉아 읊노라 / 坐詠南窓兩鬢皤
[주D-001]진포(鎭浦) : 목은의 고향인 한산(韓山)에 있는 포구(浦口) 이름이다.
[주D-002]그 누가 …… 줄을 : 장 안(長安) 동쪽의 파수(灞水)에 놓인 다리를 파교(灞橋)라 하는데, 당(唐)나라 때 정계(鄭綮)가 본디 시(詩)를 잘했으므로, 혹자가 정계에게 “상국(相國)이 요즘에 새로운 시를 짓는가?”라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시상(詩想)이 눈보라치는 파교(灞橋)의 나귀 등 위에 있는데, 어떻게 시를 얻을 수 있겠는가.”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병신년 …… 때이로세 : 목은이 공민왕 3년 갑오년(1354)에 원(元)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한림원(翰林院)에 보직되었다가, 공민왕 5년 병신년(1356) 1월에 원나라를 떠나서 고려로 돌아왔던 일을 말한다.
[주D-004]장가(牂柯) : 강가에 배를 정박(碇泊)시키기 위해 잡아매는 말뚝을 말한다.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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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도를 마음 밖에 방치하고 / 吾道在心外
구구한 언어 사이에서 찾다 보니 / 區區言語間
아무리 만권의 글을 읽었다 해도 / 讀書破萬卷
기습은 흡사 어리석은 아이 같네 / 氣得如童頑
시문 지으면 화려하고 풍부하여 / 吐詞麗而富
왕왕 간교함을 극도로 부리지만 / 往往窮神姦
우리 명교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 何與我名敎
염송에 향반을 섞었을 뿐이로다 / 艷宋雜香班
말이 적어야 맛이 절로 두텁나니 / 辭寡味自厚
그 누가 요순 시대를 만회할런고 / 誰挽唐虞還
앉아서 명량가를 완미하다 보니 / 坐玩明良歌
어쩌면 그리 천지처럼 넉넉했던고 / 天地何寬閑
[주D-001]염송(艷宋)에 …… 뿐이로다 : 염송과 향반(香班)은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문인(文人) 송옥(宋玉)과 후한(後漢) 시대 문장가인 반고(班固)가 모두 사부(辭賦)를 잘하여 사부가 특히 부려(富麗)하기로 일컬어졌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명량가(明良歌) : 순 (舜) 임금이 노래를 지어 부르기를 “신하들이 기꺼이 일하면 임금의 다스림이 흥기되어 백관이 기뻐할 것이다.[股肱喜哉元首起哉 百工煕哉]” 하자, 고요(皐陶)가 이어 노래하기를 “임금이 밝으시면 신하들이 어질어서 모든 일이 편안해질 것입니다.[元首明哉股肱良哉 庶事康哉]” 하여,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하기를 권면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益稷》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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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내리기 전에 바람이 또 불어오니 / 雪未包荒風又呼
하얀 봉우리가 언제나 도성 거리를 비출꼬 / 玉峯何日照天衢
다슨 겨울이 좋아라 궁한 신세는 가련한데 / 冬溫得意憐窮漢
저문 해를 상심하는 건 썩은 선비 몫이로세 / 歲暮傷心屬腐儒
야외의 구름은 캄캄해 산이 온통 묻혔는데 / 野外雲昏山盡沒
연못엔 봄기운 동하여 만물이 소생하누나 / 池中春動物潛蘇
그윽한 생활이 절로 속세와는 다르기에 / 幽居自是非塵世
소나무 가지로 불때서 찻물을 끓이노라 / 燎得松枝瀹茗甌
새벽에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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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이 맑은 새벽에 밥 달라고 울어대자 / 敬僕淸晨索飯啼
유모가 허둥지둥 이리저리 달리는구나 / 蒼黃乳母走東西
샘물은 타는 불로 솥 안에서 설설 끓고 / 新泉活火鐺中沸
썰렁한 햇살 찬 구름은 옥상에 나직하네 / 冷日寒雲屋上低
한번 배부르려 버둥대는 너도 가련하지만 / 一飽憐渠殊草草
반생을 여태껏 허둥대는 나도 비참하구나 / 半生悲我竟栖栖
스스로 철명받긴 진정 기필키 어려워라 / 自貽哲命誠難必
품부 받음은 예로부터 제각기 다르고말고 / 稟賦由來萬不齊
[주D-001]스스로 …… 어려워라 : 철 명(哲命)은 곧 어진 명이란 뜻으로,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고하기를 “왕께서 처음 일을 시작하시니, 아, 마치 막 태어난 자식이 처음 태어날 때는 스스로 어진 명을 품부받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늘이 어짊을 명할지, 길흉을 명할지, 오랜 국운을 명할지는 지금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데에 달렸습니다.[王乃初服 嗚呼 若生子 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今天其命哲命吉凶 命歷年 知今我初服]”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召誥》
해가 부상(扶桑)에 떠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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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에 해 솟아올라 사해를 밝게 비춰라 / 日上扶桑四海明
다시 그 가운데 구름 한 점도 생기질 않아 / 更無纖靄自中生
백발의 늙은 목은은 길이 휘파람 불면서 / 白頭老牧舒長嘯
뛰는 고기 나는 솔개와 태평을 함께하네 / 魚躍鳶飛共太平
[주D-001]뛰는 …… 함께하네 : 《중 용장구》 제12장에 이르기를 “《시경》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뛴다.’ 하였으니, 이는 천도가 위아래에 드러난 것을 말한 것이다.[詩云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천하가 태평함을 의미한다.
구름이 태산(泰山)에서 나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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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태산에서 나는 일산처럼 나와서 / 雲出泰山如蓋飛
태양이 갑자기 밝은 광휘를 거두더니 / 陽烏忽爾斂光輝
아침나절도 안 가서 천하에 비 내리고 / 不崇朝已雨天下
문득 긴 바람 따라 어디로 돌아가느뇨 / 却逐長風何處歸
가동(家童)을 보내서 나잔자(懶殘子)에게 차(茶)를 얻어 오게 하고, 가동이 떠난 뒤에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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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깎은 꼬챙이에 메밀떡을 꿰가지고 / 削竹串穿蕎麥餻
거기에 간장을 발라서 불에 구워 먹다가 / 仍塗醬汁火邊燒
옥천자의 차를 얻어 마시고만 싶어라 / 玉川欲得茶來喫
어찌 향적반이 소화 안 될까 걱정하랴 / 香積何憂食不消
땀 흐르는 한여름에 처음 씨 뿌릴 텐데 / 汗滴火雲初下種
상서로운 납설이 또 곡식을 보호했으니 / 呈祥臘雪又藏苗
명년엔 가서 농촌의 즐거움을 맛보면서 / 明年往試田家樂
배 두들기고 노래하여 성조에 감사하련다 / 鼓腹長歌謝聖朝
[주D-001]옥천자(玉川子)의 차 : 옥천자는 당(唐)나라 때 시인(詩人) 노동(盧仝)의 호인데, 그는 특히 차(茶)를 아주 좋아하여 그가 지은 〈다가(茶歌)〉가 또한 유명하다.
[주D-002]향적반(香積飯) : 불 가(佛家)의 용어로, 향적여래(香積如來)가 먹는다는 식물(食物)을 말하는데, 《유마경(維摩經)》에 의하면, 향적여래가 뭇 바리때에 향반(香飯)을 가득 담아서 보살(菩薩)들에게 주어 교화시켰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향적은 승사(僧舍)의 주방(廚房)의 뜻으로 쓰이고, 향적반은 또한 승려(僧侶)들의 재반(齋飯)의 뜻으로 쓰인다.
[주D-003]상서로운 …… 보호했으니 : 납 설(臘雪)은 일반적으로 동지(冬至) 이후, 입춘(立春) 이전 사이에 오는 눈을 말하는데,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동지 이후 셋째 술일(戌日)이 납일(臘日)인데, 납일 이전까지 세 차례 눈이 내리면 그해의 채소와 보리[菜麥]가 아주 잘되고, 또 살충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나잔자가 차를 보내왔으므로, 또 한 수를 읊어서 삼가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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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 먹을 것 탐하기 그 누가 나만 하랴 / 老去口饞誰似吾
좋고 나쁨과 정밀하거나 거칢도 문득 잊고 / 頓忘宜忌與精麤
먹을 것 만나면 구덩이 채우듯 배불리지만 / 逢場大飽如塡塹
호구책은 평생토록 전혀 융통성이 없었네 / 謀食平生似守株
내장의 열은 차로 씻을 수 있음을 알거니와 / 內熱只知茶可洗
하초의 허함은 오직 술로만 치유가 되는데 / 下虛唯遣酒相扶
아침에 연꽃의 이슬을 한번 마시고 나니 / 朝來一吸蓮花露
두 겨드랑이 청풍을 외칠 것도 없네그려 / 兩腋淸風不用呼
[주D-001]연꽃의 이슬 : 승사(僧舍)에서 보낸 차(茶)이므로, 차를 특별히 예찬하여 일컬은 말이다.
[주D-002]두 …… 없네그려 : 노 동(盧仝)의 〈다가(茶歌)〉에 “첫째 잔은 목과 입술을 적셔 주고, 둘째 잔은 외로운 시름을 떨쳐주고,……일곱째 잔은 다 마시기도 전에 두 겨드랑이에 청풍이 이는 것을 깨닫겠네.[一椀喉吻潤 二椀破孤悶……七椀喫不得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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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 자자한 제공은 조정 반열에 가득한데 / 諸公藉甚滿朝行
산야의 외로운 자취 나만 홀로 미치광일세 / 山野孤蹤獨也狂
자신은 유연한 옥과 같은 미인에 비기지만 / 自擬佳人如幼玉
못생긴 부인도 혼자보단 나음을 누가 알랴 / 誰知醜婦勝空房
단표의 지극한 낙으로 마음은 담담하나 / 簞瓢至樂心如水
기두의 허명 속에 귀밑은 이미 희어졌네 / 箕斗虛名鬢已霜
흥겨워서 시를 쓰되 좋이 꾸미지 않으니 / 有興題詩不點綴
노년에 요순 칭송키엔 참으로 넉넉하구나 / 老年眞足誦虞唐
[주D-001]못생긴 …… 알랴 : 공 방(空房)은 부인이나 남편이 없이 외로이 홀로 사는 홀아비나 홀어미를 가리킨 것으로, 소식(蘇軾)의 〈박박주(薄薄酒)〉 시에 “맛없는 술도 차보다는 낫고, 거친 베옷도 치마 없는 것보다는 나으며, 못생긴 아내 악한 첩도 공방보다는 낫다네.[薄薄酒勝茶湯 麤麤布勝無裳 醜妻惡妾勝空房]”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단표(簞瓢)의 지극한 낙(樂) : 안 자가 누추한 시골에 살았다는 것은, 공자가 이르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시골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근심을 견디지 못하거늘,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D-003]기두(箕斗)의 허명(虛名) : 기 두는 두 별 이름인데, 《시경》 소아(小雅) 대동(大東)에 “남쪽엔 키라는 별이 있으나, 까불어 날릴 수 없고, 북쪽엔 말이라는 별이 있으나, 술과 물을 뜰 수가 없도다.[維南有箕 不可以簸揚維北有斗 不可以挹酒漿]”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유명무실한 것을 의미한다. 소식(蘇軾)의 〈차운삼사인성상(次韻三舍人省上)〉 시에 “아 그대들 좋은 자질은 다 호련 같은 그릇인데, 나의 헛된 이름은 남기성 북두성과 똑같구려.[嗟君妙質皆瑚璉 顧我虛名俱箕斗]” 하였다.
면주(沔州)의 미선(米船)이 당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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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머리 좌우측으로 방앗공이가 셋이 있어 / 船頭左右碓搥三
밟으니 얼음 깨져서 쪽빛 같은 물이 보이네 / 踏碓氷開水似藍
내포에서 출발할 땐 전장에 나가듯 했다가 / 內浦發程如上陣
서강 언덕에 닿아서는 즉시 닻을 내리누나 / 西江下岸卽停驂
생계를 위한 너희들은 종신토록 고생이요 / 營生若等終身苦
녹봉 먹는 나는 지금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 食力吾今滿面慚
고마워라 늙은 하인은 마음이 꽤나 깊어서 / 爲謝老奴能用意
그림자 비치는 죽사발에 걱정을 않네그려 / 不愁粥鉢影相涵
[주D-001]내포(內浦) : 충청남도 가야산(伽倻山) 주위에 십현(十縣), 즉 아산(牙山), 당진(唐津), 면천(沔川), 홍주(洪州), 덕산(德山), 해미(海美), 결성(結城), 보령(保寧), 서산(瑞山), 태안(泰安) 일대를 총칭한 말이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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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창에 햇살 비쳐 거울같이 밝은데 / 日照南窓似鏡明
백발로 앉았자니 덧없는 인생 느꺼워라 / 白頭危坐感浮生
동이엔 술 있고 산도 문에 당해 있건만 / 尊中有酒山當戶
문밖엔 사람 없고 눈만 성에 가득하네 / 門外無人雪滿城
병이 맘과 함께 안주함은 큰 걱정 아니나 / 病與心安非大患
늙어서 몸의 누가 된 건 바로 허명이로다 / 老爲身累是虛名
한 줄기 향 연기 아래 석 자 거문고 속의 / 香煙一燧琴三尺
유유한 만고의 정회를 누가 안단 말인가 / 誰識悠悠萬古情
근 래에 지은 시 두어 수를 기록하여 용부(庸夫)의 행헌(行軒)에 부쳐 올려서 여로(旅路)의 회포를 위로하려고 했는데, 서장관(書狀官)이 독촉을 받고 급히 가느라, 미처 내게 와서 하직 인사를 못하고 달려갔으니, 나는 여기에서 더욱 몹시 소홀하고 게으름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한 수를 읊어 나의 허물을 기록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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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병들어 시대의 버림받았는데 / 老病爲時棄
게으름은 사리 판단도 더디어라 / 疏慵見事遲
이미 천리 길을 가버린 뒤에야 / 已行千里路
비로소 두어 편 시를 기록하다니 / 始錄數篇詩
역사는 밤에 시 읊조리는 곳이요 / 驛舍夜吟處
도성은 방금 퇴청하는 때이로다 / 鳳城朝退時
함께 한바탕 웃을 길이 없는지라 / 無緣共一笑
초고 불태우고 쇠한 몰골 탄식하네 / 焚藁嘆吾衰
공백공(孔伯共)이 내게 와서 말하기를 “장차 사재(四宰)의 행막(行幕)에 가서 정문(呈文)을 쓰려 한다.”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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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에 붓 한 자루를 담아 차고서 / 佩得囊中筆一枝
추위 무릅쓰고 멀리 의주로 달려가누나 / 衝寒遠向義州馳
말의 장부만 분명히 보이도록 해놓으면 / 只敎馬籍分明見
문득 여룡의 보주가 차례로 드리워지리 / 便是驪珠次第垂
북계의 산천 경계는 시고에 가득찰 게고 / 北界山川詩滿藁
서경의 눈보라 속엔 술이 잔에 그득하리 / 西京風雪酒盈巵
돌아와서 변성의 일을 나에게 알릴 쯤은 / 歸來報我邊城事
집집마다 일상생활이 편안한 때이겠지 / 煙火家家奠枕時
[주C-001]공백공(孔伯共) : 백 공은 고려 말기의 문신(文臣) 공부(孔俯)의 자이다. 그는 우왕(禑王) 때 문과에 급제한 이후, 예조 총랑(禮曹摠郞), 집현전 태학사(集賢殿太學士) 등을 역임하고,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서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에 이르렀다. 그는 특히 초서(草書), 예서(隸書)를 잘 썼다고 한다.
[주D-001]여룡(驪龍)의 보주(寶珠) : 검은 용의 턱 밑에 있다는 귀중한 구슬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진귀한 사물을 비유하는데, 여기서는 특히 준마(駿馬)를 의미한다.
물 끓이는 소리를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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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가 서로 공격기는 형세 매우 어려운데 / 水火相攻勢甚艱
다행하여라 금석이 그 중간에 처한 것이 / 幸哉金石處其間
기가 합해서 쓰임을 이루는 걸 본디 알거니 / 故知氣合竟成用
종류가 다르대서 가치도 다르다 말을 마소 / 莫道類殊非是班
맛은 여기에서 나와 내 배를 채워 주는데 / 味自此生充我腹
소리는 어디서 나와 내 낯을 웃겨주는고 / 聲從何出破吾顔
공후의 집에서 음식은 걸게 차려 먹더라도 / 侯家列鼎雖方丈
반드시 몸과 마음이 다 한가롭진 못하리 / 未必身心摠得閑
눈이 밤에 내린 것을 전혀 몰랐다가, 새벽에 일어나니 눈이 뜰에 가득하므로, 동복(僮僕)을 명하여 다니는 길만 쓸고 나머지는 다 그대로 두게 하고 보니, 매우 기뻐서 인하여 한 수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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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엔 여러 해를 연해서 겨울이 다스워 / 邇來冬溫連數年
천둥 치고 안개 낀 것이 봄이나 똑같았으니 / 雷鳴霧滃如春天
가장 기쁜 건 섣달이 절반을 지난 지금에 / 最喜臘月已過半
눈이 밤중에 내려 산천을 다 덮은 거로세 / 有雪夜落埋山川
나는 병든 삭신이 하도 쑤시고 아파서 / 而我病骨多辛酸
등불 흐린 깊은 밤에야 곤히 잠들었는데 / 燈殘更闌方困眠
새벽에 문을 열어보니 온 뜰이 하얀지라 / 曉來開戶滿庭白
정신 맑고 몸도 경쾌해 고질이 나은 듯하네 / 神淸身健沈痾痊
썩은 선비는 항상 천지의 원기가 조화되어 / 腐儒恒願元氣調
우양 욱한이 조금도 차질 없길 바라는데 / 雨暘燠寒無少愆
더구나 백성 가난하고 창고 텅 빈 지금에 / 況今民貧倉廩竭
명나라의 세폐는 예전같이 징수함에랴 / 金陵歲幣徵如前
눈을 대해 높이 읊음은 깊은 뜻이 있으니 / 高吟對雪有深意
염서 은배는 아름다움만 겨룰 뿐이었네 / 鹽絮銀杯徒爭姸
진실로 나라와 백성이 잘살게만 된다면 / 足國裕民苟自得
도롱이 삿갓 쓰고 가서 여강 배를 사련다 / 簑笠往買驪江船
일부러 쓸지 않아도 해는 또 비춰오겠지 / 雖然不掃日又照
시편으로 사실 그려서 기쁨을 기록하노라 / 寫眞志喜憑詩篇
[주D-001]우양 욱한(雨暘燠寒) : 절기에 따라서 제때에 비 오고, 개고, 다습고, 춥고 하는 기후를 말한다.
[주D-002]염서 은배(鹽絮銀杯) : 염 서는 눈이 내리는 것을 형용한 말로서, 진(晉)나라 때 사안(謝安)이 일찍이 자기 집안의 자질(子姪)들과 모여 앉았을 적에 갑자기 눈이 펄펄 내리므로, 사안이 자질들에게 눈 내리는 모양이 무엇과 같으냐고 묻자, 조카인 사랑(謝郞)은 말하기를 “공중에서 소금을 뿌린다고 비길 만합니다.[撒鹽空中差可擬]” 하니, 질녀(姪女)인 사도온(謝道韞)은 말하기를 “버들개지가 바람에 일어난다기보다 못합니다.[未若柳絮因風起]” 하므로, 사안이 매우 기뻐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고, 은배는 한유(韓愈)의 〈영설시(詠雪詩)〉에 “수레바퀴 밑에선 흰 띠가 뒤집히고, 말발굽 자국에선 은 잔이 흩어지네.[隨車翻縞帶 逐馬散銀杯]” 한 데서 온 말이다.
홀로 앉아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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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녹은 낙숫물이 뜰 앞에 뚝뚝 떨어질 제 / 雪消簷溜滴階前
백발의 쇠한 늙은이 낮잠을 막 깨고 나니 / 白髮衰翁罷午眠
파산에서 밤비 소리를 들은 것 같긴 하나 / 似向巴山聞夜雨
서창의 촛불똥 자르긴 아득하기만 하구나 / 西窓剪燭已茫然
[주D-001]파산(巴山)에서 …… 하구나 : 당 (唐)나라 때 시인(詩人) 이상은(李商隱)의 〈야우기북(夜雨寄北)〉 시에 “그대에게 물으니 돌아올 기약은 없고, 파산의 밤비만 가을 못에 넘치는구나. 어찌하면 함께 서창의 촛불똥을 자르면서, 파산의 밤비 내리던 때를 얘기해 볼꼬.[君問歸期未有期巴山夜雨漲秋池 何當共剪西窓燭 却話巴山夜雨時]”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정의(情誼)가 두터운 친구를 그리는 뜻으로 쓰인다.
무제(無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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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은 끝없고 바다엔 파도가 없으니 / 碧天無際海無波
기러기 고니가 어찌 그물 피할 줄을 알랴 / 鴻鵠何知避罻羅
참새들은 뜰에서 주워 먹는 게 길들었으니 / 得食庭除馴鳥雀
탄환이 날아오거든 장차 그 어찌하려는고 / 彈丸飛至欲如何
아침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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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나는 한가한 삶에 흥취 또한 맑은데 / 老我閑居興況淸
문전의 산 빛은 비단병풍을 두른 듯하네 / 門前山色錦屛橫
척서는 한의 사호를 굽힐 수 있었지만 / 尺書可屈漢四皓
면체는 노의 양생을 부르기 어려웠었지 / 綿蕝難招魯兩生
섣달 눈이 대지를 다 덮을지 모르겠어라 / 臘雪不知包地盡
아침 해가 또다시 창을 밝게 쏘아 비추네 / 朝暾又復射窓明
이불 쓰고 앉아서 세수하기도 망각한 채 / 擁衾危坐忘巾櫛
우연히 새로운 시 여덟 구를 이뤘네그려 / 偶爾新詩八句成
문밖의 발자국 소리가 누군 줄 몰랐더니 / 靴聲門外不知誰
문득 최옹이 알현하려 왔다고 아뢰는구나 / 忽報崔翁入謁來
금년의 추위는 지난해와 같지 않거니와 / 今歲天寒非舊歲
언제나 서로 허여함은 전보다 나아질런고 / 何時心與勝前時
나이 많은 그는 아직도 술을 즐긴다는데 / 年高自道猶耽酒
병중에 있는 나는 능히 시나 지을 뿐이네 / 病間吾能爲賦詩
집이 가난해 묵은 술만 있는 게 부끄러워 / 愧殺家貧舊醅耳
묵묵히 보내고 나서 턱 받치고 누웠노라 / 默然相送臥支頤
[주D-001]척서(尺書)는 …… 있었지만 : 척 서는 서신(書信)을 가리킨 것으로, 한 고조(漢高祖)가 말년에 이미 세운 태자(太子)를 폐하고 척 부인(戚夫人)의 소생인 조왕(趙王) 여의(如意)를 태자로 삼으려고 할 적에 대신(大臣)들이 극력 간쟁하여도 듣지 않자, 장량(張良)이 태자로 하여금 폐백(幣帛)과 서신을 정중히 마련하게 하여, 일찍이 한 고조의 부름을 누차 거절하고 상산(商山)에 은거했던 네 노인[四皓]인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을 초빙한 결과, 그들이 마침내 궁중(宮中)에 들어가서 태자를 극력 보필하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면체(綿蕝)는 …… 어려웠었지 : 면 체는 띠풀을 묶어 세운 것을 이른 말로, 한(漢)나라 초기에 숙손통(叔孫通)이 조정(朝廷)의 의례(儀禮)를 제정하기 위해 노(魯)나라의 유생(儒生) 30여 인을 불러 들여서 그들과 함께 야외(野外)에서 띠풀을 묶어 세워 존비(尊卑)의 차례를 표시해 놓고 예(禮)를 강론했던 데서 온 말이고, 양생(兩生)은 곧 두 유생을 말한 것으로, 숙손통이 앞서 노나라 유생들을 불렀을 때, 숙손통의 행위가 고도(古道)에 합치하지 않는다 하여, 두 유생만은 그의 부름에 끝내 응하지 않았던 데서 온 말이다.
적적(寂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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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한 삼한의 땅에서 / 寂寂三韓地
연연하는 한 썩은 선비로다 / 依依一腐儒
비파의 강함은 용맹 좋아함이 싫고 / 瑟明嗔好勇
단표누항은 미련한 듯함이 그립네 / 瓢巷慕如愚
정욕은 연래에 담담해졌지만 / 情欲年來淡
형용은 날로 더욱 말라가누나 / 形容日尙枯
누가 알리오 소란스러운 땅이 / 誰知擾攘地
필경 이게 바로 요순의 땅인지 / 畢竟是唐虞
[주D-001]비파(琵琶)의 …… 싫고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유의 비파를 어찌 구의 문에서 탈 수 있겠느냐.[由之瑟 奚爲於丘之門]” 한 데서 온 말인데, 유(由)는 자로(子路)의 이름으로, 자로는 성격이 급하고 용맹을 좋아한 나머지, 비파를 타도 북방(北方)의 살벌(殺伐)한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論語 先進》
[주D-002]단표누항(簞瓢陋巷)은 …… 그립네 : 공 자가 이르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 물로 누추한 시골구석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그 걱정을 견디지 못하건만,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변치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하였고, 또 이르기를 “내가 회와 더불어 종일토록 이야기를 했으나, 내 말에 이의를 하지 않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듯했는데, 물러간 뒤에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매 내가 해 준 말을 충분히 발명하고 있으니, 회는 어리석지 않도다.[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雍也》
권 판서(權判書)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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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이라 하순에 천기 또한 하 맑아서 / 臘月季旬天氣淸
산천의 상서론 기운이 정영을 탄강시켰네 / 鬱䓗佳氣降精英
예산은 적막하여 비록 자식이 없었지만 / 猊山寂寞雖無子
마사는 유전하겠네 또 외손을 얻었으니 / 馬史流傳又得甥
문탄의 끼친 풍도는 응당 다시 떨칠 게고 / 文坦遺風應復振
명위의 남긴 경사는 그와 함께 나오리라 / 明威餘慶與俱生
이 늙은 고모부는 더욱 놀랍고도 기뻐서 / 姑夫老矣尤驚喜
너 순탄하게 상경에 이르기만 바랄 뿐이다 / 願汝優悠到上卿
[주D-001]예산(猊山)은 …… 얻었으니 : 예 산은 호가 예산농은(猊山農隱)인 최해(崔瀣)를 가리키고, 마사(馬史)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가리키는데, 사마천이 죽은 이후 선제(宣帝) 때에 이르러 그의 외손(外孫)인 평통후(平通侯) 양운(楊惲)이 비로소 그 글을 천양(闡揚)하여 선포(宣布)했던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바로 판서(判書) 권계용(權季容)이 최해의 사위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문탄(文坦) : 판서 권계용의 조부(祖父)인 권한공(權漢功)의 시호(諡號)이다.
[주D-003]명위(明威) : 고려 시대 무산계(武散階)의 하나로, 29계(階) 가운데 제9계인 종4품의 품계 이름인데, 이를 명위장군(明威將軍)이라 호칭하는바, 여기서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자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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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일이 금년에는 일기가 좋아서 / 人日今年好
춘광이 팔방 끝까지 펼치었는데 / 春光遍八垓
녹패가 조정으로부터 내려와서 / 祿牌天上墜
창고의 자물쇠가 동내서 열리자 / 倉鐍洞中開
맑은 새벽에 수레를 몰고 갔다가 / 淸曉驅車去
땅거미에 쌀을 싣고 돌아오누나 / 黃昏載米來
나라의 은혜는 바다같이 깊건만 / 國恩深似海
문묵의 재주 부족함이 부끄럽네 / 文墨愧非才
날이 새자마자 낯 씻고 머리 빗고 / 天明初盥櫛
백발 나이로 시서만 숭상하노라니 / 白髮尙詩書
성곽엔 봄의 풍광이 어우러지고 / 城郭煙光合
강산엔 햇빛이 화창하기만 한데 / 江山日色舒
난봉들은 모두 대각에 모이었고 / 鸞凰集臺閣
참새들은 뜰가에서 지저귀누나 / 鳥雀噪庭除
홀로 앉아서 깊이 반성하게 된 건 / 獨坐發深省
남양에 있는 제갈량의 초려로다 / 南陽諸葛廬
[주C-001]인일(人日) : 음력 정월 초이렛날을 가리키는데, 동방삭(東方朔)의 점서(占書)에 의하면, 인일의 일기(日氣)가 청명하고 온화하면 안태(安泰)의 조짐이 되고, 일기가 흐리고 쌀쌀하면 질병의 조짐이 된다고 하였다.
[주D-001]녹패(祿牌) : 옛날 조정(朝廷)에서 녹봉(祿俸)을 받는 벼슬아치에게 증표(證標)로 내려 주던 패(牌)를 말한다.
[주D-002]난봉(鸞鳳)들은 …… 모이었고 : 난봉은 현사(賢士)를 비유한 말이고, 대각(臺閣)은 조정(朝廷)을 가리킨 것으로, 현사들이 조정에 모인 것을 의미한다.
[주D-003]남양(南陽)에 …… 초려(草廬)로다 :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한 소열제(漢昭烈帝)를 만나기 전에 일찍이 고향인 남양의 초려에 은거했던 데서 온 말이다.
길창군(吉昌君)의 부인(夫人) 홍씨(洪氏)에 대한 만사(挽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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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문은 어찌 그리도 엄숙했던고 / 閨門何肅肅
소나무는 도성 거리에 기대섰네 / 松樹倚天衢
근검의 미덕인들 누가 그만할까만 / 勤儉誰雙美
비의는 절로 세상에 둘도 없었지 / 非儀自兩無
찬바람은 북쪽 변새서 불어오고 / 寒風來北塞
새벽 해는 동녘에서 떠오르는데 / 曉日出東隅
해로가는 멀리 구름에 다다르고 / 薤曲連雲遠
시마는 넓은 길을 꽉 메웠네그려 / 緦麻擁坦途
[주D-001]소나무는 …… 기대섰네 : 길창군(吉昌君) 권적(權適)은 고려 말기에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고 길창군에 봉해졌는데, 그의 정원(庭園)에는 특히 소나무가 많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그의 아버지인 권준(權準)의 호는 송재(松齋)이기도 하다.
[주D-002]비의(非儀) : 비 는 잘못하는 것을 말하고, 의는 잘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사간(斯干)에 “여자를 낳아서는, 방바닥에 잠재우고, 포대기로 덮어 주며, 길쌈 도구 갖고 놀게 하니, 잘하고 잘못함도 없는지라, 오직 술과 밥이나 알아서 하여, 부모님께 걱정 안 끼치리로다.[乃生女子 載寢之地 載衣之裼 載弄之瓦 無非無儀 唯酒食是議 無父母詒罹]” 한 데서 온 말로, 즉 여자는 순종(順從)하는 것을 정도(正道)로 삼는 것이므로, 부인이 꼭 해야 할 음식이나 길쌈 등의 일을 제외한 기타의 일에 대해서는 잘못하는 것도 훌륭한 부인이 아니지만, 잘하는 것도 훌륭한 부인이 아니라는 뜻에서 한 말이다.
[주D-003]해로가(薤露歌) : 사람의 생명은 마치 부추 잎에 내린 이슬처럼 허무하다는 뜻에서, 상여(喪輿)가 나갈 때에 부르는 만가(輓歌)를 일컫는 말이다.
[주D-004]시마(緦麻) : 상복(喪服)의 오복(五服) 중에서 석 달 동안만 입는 가장 가벼운 복인데, 이 복은 현손(玄孫), 종증손(從曾孫) 등이 고조(高祖), 종증조(從曾祖)를 위하여 입는다.
만흥(漫興)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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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는 건 과녁을 맞히기와 같고 / 讀書如破的
활쏘기는 우리 유자와 같은지라 / 射有似吾儒
다투는 것이 참으로 군자다워서 / 爭也眞君子
자질이 속 좁은 남자가 아니로다 / 才非小丈夫
붕새는 먼 바다 위에 높이 나는데 / 雲鵬搏海上
와작은 당 모퉁이에 모이는구나 / 瓦雀集堂隅
크고 작은 걸 이미 다 포함했으니 / 細大已包盡
이제부턴 오활한 자를 비웃으리 / 從此嘲闊迂
내 처음부터 태학에서 배웠거니 / 初從冑子學
어찌 소인유를 사모하려 했으랴 / 肯慕小人儒
중년에는 명사의 열에 끼었었고 / 中歲厠名士
말년에는 늙은이 호칭을 얻었네 / 末年稱老夫
백구는 채마밭 콩잎을 뜯어 먹고 / 白駒食場藿
황조는 높은 언덕에 내려앉아라 / 黃鳥止丘隅
반드시 명분을 바르게 할 뿐인데 / 必也正名耳
중니를 그 누가 오활하다 했던고 / 仲尼誰謂迂
나는 뛰어난 남자라 자부하건만 / 自負奇男子
남들은 썩은 선비라 기롱하거니 / 人譏眞腐儒
서책은 팽개치고 낮잠이나 자고 / 抛書就黃嬭
거북처럼 태양 정기나 마시련다 / 嚥日效玄夫
상석 앉을 이 없음이 한스러울 뿐 / 祗恨居無右
어찌 구석을 향해 운 적이 있던가 / 何曾哭向隅
시문 지어 스스로 평점을 치노니 / 爲文自評點
서재를 우재라 명명함이 합당켔네 / 齊舍合名迂
[주D-001]활쏘기는 …… 군자다워서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군자는 다투는 일이 없으나, 반드시 활쏘기에서만은 다투게 된다. 그러나 활을 쏘려고 당에 오를 때는 서로 읍하고 사양하며 올랐다가, 쏘고 내려와서는 술을 마시나니, 그 다투는 것이 군자다우니라.[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八佾》
[주D-002]소인유(小人儒) : 공 자(孔子)가 자하(子夏)에게 이르기를 “너는 군자유가 될 것이요, 소인유가 되지 말라.[女爲君子儒 勿爲小人儒]”고 한 데서 온 말인데, 군자유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힘쓰는 학자를 말하고, 소인유는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써 명성만을 추구하는 학자를 말한다. 《論語 雍也》
[주D-003]백구(白駒)는 …… 먹고 : 《시 경》 소아(小雅) 백구(白駒)에 “깨끗한 저 흰 망아지가, 내 밭의 콩잎 먹었다 핑계 대고, 발과 가슴을 얽어매 놓고, 오늘 저녁을 더 머물게 하여, 귀한 우리 이 손님을, 더 놀다 가시게 하리라.[皎皎白駒 食我場藿 縶之維之 以永今夕 所謂伊人 於焉嘉客]”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는 본디 어진 은사(隱士)가 왔다가 돌아가려고 하자,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워서 조금이라도 더 놀다 가게 하려는 정(情)을 노래한 것인데, 여기서는 다만 모든 사물이 제자리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4]황조(黃鳥)는 …… 내려앉아라 : 《시 경》 소아(小雅) 면만(綿蠻)에 “꾀꼴꾀꼴 꾀꼬리가, 높은 언덕에 그쳤다.[綿蠻黃鳥 止于丘隅]” 한 것을 두고, 공자가 이르기를 “그침에 있어 그 그칠 곳을 아나니, 사람으로서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사람이 제가 할 도리(道理)에 최선을 다하여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大學章句 傳3章》
[주D-005]반드시 …… 했던고 : 자 로(子路)가 말하기를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의뢰하여 정치를 하게 된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하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반드시 명분부터 바로잡을 것이다.[必也正名乎]” 하니, 자로가 말하기를 “이러한 점이 있도다, 선생님의 오활하심이여.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비속하구나, 유여. 군자는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鄙哉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路》
[주D-006]상석(上席) …… 뿐 : 한 (漢)나라 때 양 효왕(梁孝王)이 일찍이 토원(兔園)에서 노닐면서 주연(酒宴)을 성대하게 베풀고 추양(鄒陽), 매승(枚乘) 등 여러 빈우(賓友)들을 초청했을 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맨 나중에 와서 가장 상석에 앉아 있었는데, 이윽고 눈이 펄펄 내리자, 왕이 사마상여에게 간찰(簡札)을 내려 주면서 눈에 대하여 부(賦)를 짓게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문사(文士)들 가운데 가장 높은 대우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7]어찌 …… 있던가 : 《설 원(說苑)》 귀덕(貴德)에 “가령 사람들이 당에 가득 모여서 술을 마실 경우, 그중에 한 사람이 홀로 쓸쓸히 구석을 향하여 운다면 온 당에 모인 사람들이 다 즐겁지 않을 것이다.[今有滿堂飮酒者 有一人獨索然向隅而泣 則一堂之人皆不樂矣]”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홀로 곤경에 처한 것을 의미한다.
대서(代書)하여 장 서경(張西京)의 궤세(餽歲)에 받들어 사례하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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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경이 얼마나 아득한 곳인가만 / 鎬京何杳邈
궤세가 궁한 집까지 미쳤네그려 / 餽歲及窮廬
한창 더운 때엔 또 응당 보내 주리 / 炎熱應相惠
조천석 아래서 헤엄치는 고기를 / 朝天石下魚
과지에 은거한 나그네는 있으나 / 有客棲苽地
초려를 찾아 주는 사람은 없는데 / 無人顧草廬
병든 뒤로 식탐이 더욱 심해져서 / 病餘饞更甚
웅장에 생선까지 겸하고 싶구나 / 熊掌欲兼魚
[주C-001]궤세(餽歲) : 세말(歲末)에 음식물을 선사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1]호경(鎬京) : 본래 서주(西周) 국도(國都)의 이름인데, 여기서는 기자(箕子)의 고도(古都)인 서경(西京), 즉 평양(平壤)을 서주의 국도에 비유하여 일컬은 것이다.
[주D-002]조천석(朝天石) …… 고기를 : 조 천석은 평양(平壤)의 대동강(大同江) 가의 부벽루(浮碧樓) 곁에 있던 바위 이름이다.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이 부벽루 아래 기린굴(麒麟窟)에서 기린마(麒麟馬)를 길러 이 말을 타고 기린굴에서 조천석으로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온 것이다.
[주D-003]과지(瓜地)에 …… 있으나 : 과 지는 오이를 심은 땅이란 뜻으로, 진(秦)나라 때 동릉후(東陵侯)에 봉해진 소평(邵平)이 진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스스로 포의(布衣)가 되어, 한(漢)나라 장안성(長安城) 동쪽 청문(靑門) 밖에 오이를 심어 가꾸며 조용히 은거했는데, 특히 그 오이가 맛이 좋기로 유명하여 당시 사람들로부터 동릉과(東陵瓜)라고 일컬어지기까지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초려(草廬)를 …… 없는데 : 후 한(後漢) 말기에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남양(南陽)의 초려(草廬)에서 몸소 농사짓고 살면서 세상에 영달(榮達)하기를 구하지 않다가, 뒤에 촉한(蜀漢)의 선주(先主) 유비(劉備)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한 정성에 감동하여 나가서 마침내 장상(將相)이 된 것을 이른다.
[주D-005]웅장(熊掌)에 …… 싶구나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 “생선 요리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이요, 곰 발바닥 요리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지 못할 바엔 생선을 그만두고 곰 발바닥을 취하리라.[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告子上》
흥취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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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평생에 호연지기 기른다 자부했건만 / 謾負平生養浩然
쇠하기도 전에 몸은 이미 고질을 붙들었네 / 未衰身已抱沈綿
새 시는 이루려고 읊고 또 휘파람을 부는데 / 新詩欲就吟仍嘯
장대한 뜻은 다 사라져 앉으면 졸기만 하네 / 壯志全銷坐卽眠
매실 솥으로 감히 옥식을 조리하려 하랴 / 梅鼎敢思調玉食
강 하늘 눈 속의 배에 낚시질이나 했으면 / 雪舟方欲釣江天
인생의 출처를 과연 그 누가 관섭하는고 / 人生出處知誰管
쓸쓸한 백발만 절로 이마에 가득하구나 / 白髮蕭蕭自滿顚
[주D-001]매실(梅實) …… 하랴 : 매 실 솥이란 은 고종(殷高宗)이 일찍이 현상(賢相) 부열(傅說)에게 이르기를 “내가 만일 국을 요리하려 하거든 그대가 바로 소금과 매실이 되어달라.[若作和羹 爾惟鹽梅]”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어진 재상이 임금을 잘 보좌하는 것을 의미한다. 《書經 說命下》
[주D-002]강 …… 했으면 : 유 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 시에 “모든 산에는 새들도 날지를 않고, 오만 길에는 인적도 끊어졌는데, 외로운 배에 도롱이 삿갓 쓴 늙은이가, 홀로 차가운 강 눈 속에 낚시질을 하네.[千山鳥飛絶 萬逕人蹤滅 孤舟簑笠翁 獨釣寒江雪]”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은거(隱居)를 의미한다.
세시행(歲時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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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엔 세시 때마다 거마가 모여드는데 / 正陵歲時馬蹄集
현릉엔 세시 때마다 인적이 끊기는구나 / 玄陵歲時人跡絶
푸르고 푸른 소나무는 쌍분을 옹위하고 / 蒼蒼松樹擁雙墳
궁전 모서리 풍경에선 눈발을 뿌리는데 / 殿角風琴洒飛雪
당시 임금님께서 자주 거둥하시던 곳에 / 當時重瞳屢廻處
사객이 읊노라니 간장이 찢어질 듯하네 / 詞客謳吟肝欲裂
이곳 중은 세상 오시하여 빙그레 웃으며 / 居僧玩世莞爾笑
저절로 생멸하는 뜬구름을 가리키누나 / 笑指浮雲自生滅
아침 종 저녁 북소리에 범패가 섞이어라 / 朝鐘暮鼓雜梵唄
끝내 어찌 나를 위해 결정할 수 있으리오 / 畢竟那能爲吾決
만조백관은 모두 지난 조정 사람이지만 / 滿朝俱是前朝人
누가 주지를 향해 옛길을 찾아오는고 / 誰向酒池尋舊轍
산비탈의 와비는 새긴 지 이미 오래인데 / 山崖臥碑刻已畢
천한 이름 앞줄에 쓰인 게 몹시 부끄럽네 / 深慚賤名冠前列
감은의 옛 정회에 콧구멍이 시큰하여라 / 感恩懷古鼻孔酸
천지간에 이 한 몸 어찌 이리 고독한고 / 天地一身何孑孑
[주D-001]정릉(正陵) : 고려 공민왕의 비(妃)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능호인데, 공민왕의 현릉(玄陵)과 함께 개성(開城)의 봉명산(鳳鳴山) 기슭에 있다.
[주D-002]주지(酒池) : 개성(開城)의 봉명산(鳳鳴山) 무선봉(舞仙峯) 아래에 있었던 못 이름이다.
[주D-003]와비(臥碑) : 개 성의 광암사(光巖寺)에 세운 광통보제선사비문(廣通普濟禪寺碑文)을 가리킨다. 광암사는 본디 공민왕과 그의 비(妃) 노국대장공주의 원찰(願刹)이었으므로, 공민왕이 일찍이 이 절에 광통보제선사(廣通普濟禪寺)라 사액(賜額)했었고, 또 공민왕이 생전에 이 절에 비(碑)를 세우기 위해 중국(中國)에서 빗돌까지 구해 놓았으나, 미처 비를 세우지 못하고 공민왕이 갑자기 승하하자, 공민왕을 이 절에 장사 지내고, 우왕(禑王) 때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그 비를 세우게 되었는데, 바로 이 비문을 목은이 지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또 이 비문의 글씨는 한수(韓脩)가 썼다.
새벽에 일어나서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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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이 환히 밝아서야 천천히 일어나니 / 南窓白晝起來遲
정히 당년에 대궐에 들어가던 때이로다 / 政是當年赴闕時
벼룻물은 얼지 않아라 응당 밤은 짧은데 / 硯水不氷應夜短
귀밑털은 눈 같아라 나이는 이미 쇠했네 / 鬢絲如雪已年衰
공 세우고 덕 세움이 내게 무슨 상관이며 / 立功立德何關我
명 알고 하늘 앎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고 / 知命知天果在誰
세모의 정회는 항상 늙을수록 강장하여 / 歲暮情懷常益壯
한가함 속에 아직도 국가 안위 염려하네 / 閑中尙爾念安危
[주D-001]공 …… 세움 : 춘 추 시대 노(魯)나라 대부(大夫) 숙손표(叔孫豹)의 말에 “가장 높은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요, 그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이요, 또 그다음은 훌륭한 말을 남기는 것이라, 아무리 오래되어도 폐해지지 않으면 이것을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太上有立德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 雖久不廢 此之謂不朽]”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襄公24年》
[주D-002]명 …… 앎 : 《주 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천리를 즐기고 천명을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樂天知命 故不憂]” 하였고,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마음의 전체를 다 통한 자는 그 성을 알게 되니, 그 성을 알면 천리를 알게 되느니라.[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則知天矣]” 한 데서 온 말이다.
눈을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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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하늘 음참하여라 장차 어찌하려는고 / 臘天陰慘欲如何
눈발은 위세 떨치고 주인은 크게 노래하네 / 滕六揚威主大訶
천지의 원기도 자연히 폐색을 이루나니 / 元氣自然成閉塞
남은 생애는 불우함 탄식할 것 없고말고 / 殘生不用嘆蹉跎
엉성한 집 어둔 등 앞에 괴로이 시를 읊는데 / 屋疏燈暗詩腸苦
다스운 휘장 화로 곁엔 술 취한 뺨이 붉으리 / 帳暖爐紅酒臉酡
어디 물어보자 몇 사람이나 천명을 믿느뇨 / 試問幾人能信命
세월은 만고에 세차게 흐르는 강물 같거늘 / 流光萬古似奔河
[주D-001]천지의 …… 이루나니 : 《예기》 월령(月令)에 “시월이 되면 천기는 위로 올라가고, 지기는 아래로 내려가서 천지가 서로 통하지 않아 꽉 막혀서 겨울을 이룬다.[孟冬之月 天氣上騰 地氣下降 天地不通 閉塞而成冬]” 하였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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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배부른 지금은 응당 족하지만 / 一飽今應足
세 번 옮기던 옛날엔 꽤나 바빴었지 / 三遷昔似忙
높이 읊으니 솔에 쌓인 눈은 떨어지고 / 高吟松雪落
홀로 섰으니 바다 하늘은 멀기만 하네 / 獨立海天長
곧은 사필은 금궤서로 편찬했고 / 直筆修金匱
웅걸한 시편은 옥당에 빛났는데 / 雄篇耀玉堂
전현의 행적을 계승할 길이 없어 / 無蹤繼前躅
묵묵히 구곡간장만 시름겨울 뿐이네 / 默默九回腸
[주D-001]세 번 …… 바빴었지 : 세 번 옮겼다는 것은 바로 1년 중 세 차례나 벼슬이 승천(升遷)되었던 일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태평성대에 등용되어 벼슬살이에 매우 바빴음을 의미한다.
[주D-002]곧은 …… 편찬했고 : 금궤서(金匱書)란 곧 국가에서 엄중히 보존한 서적(書籍)을 말한 것으로, 한(漢)나라의 태사령(太史令) 사마천(司馬遷)이 일찍이 석실 금궤(石室金匱)의 서적들을 모두 참고하여 《사기》를 편찬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웅걸한 …… 빛났는데 : 당 송팔가(唐宋八家)의 한 사람으로, 시(詩)는 특히 송대에 으뜸으로 일컬어졌던 소식(蘇軾)이 일찍이 한림학사(翰林學士), 용도각 학사(龍圖閣學士), 단명전 학사(端明殿學士) 등을 역임하면서 시문(詩文)으로 세상에 명성을 널리 떨쳤던 것을 이른 말이다.
절구(絶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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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는 산 낮아라 섣달 눈이 그득하고 / 門外山低明臘雪
화로에는 불 꺼지고 향 연기도 흩어졌네 / 爐中火冷散香煙
누가 능히 나의 시 읊조리는 곳을 그려내서 / 誰能畫我吟詩處
높은 당 위에 유월의 더운 하늘을 걸어줄꼬 / 掛向高堂六月天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과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이 함께 누추한 내 집에 왕림해 준 데 대하여 받들어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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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원로가 서로 더불어 길창군을 방문하고 / 二老相將訪吉昌
누추한 곳까지 들러주니 문득 광채가 나네 / 因過陋巷忽生光
태평 재상의 풍채는 우리 삼한의 복이니 / 太平風采三韓福
단청 솜씨 빌려서 내 당에 꼭 걸어야겠네 / 須借丹靑掛我堂
침상음(枕上吟)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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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아파 눕기 어렵고 누워도 잠 못 이룰 제 / 骨酸難臥臥難眠
등불은 창 새에 있고 바람은 담요에 이는데 / 燈在窓間風在氊
갑자기 새벽 알리는 닭 울음소리를 들으니 / 忽聽一聲雞報曉
완연히 죽을 사람이 생명을 연장한 것 같네 / 宛如當死得延年
쓸쓸한 백발에 등에는 검버섯이 얼룩얼룩 / 白髮蕭蕭背欲鮐
혈해가 영대를 계속 적셔줄 길이 없으니 / 無由血海浸靈臺
비록 다시 꿈에 주공은 만나지 못하지만 / 雖然不復周公夢
시가의 단련하는 재간은 경지를 얻고말고 / 嬴得詩家鍛煉才
[주D-001]혈해(血海)가 …… 없으니 : 혈해는 한의학(漢醫學)에서 인체에 피가 모이는 곳을 말하고, 영대(靈臺)는 도가(道家)에서 사람의 두뇌, 또는 심장을 가리킨 것으로, 즉 혈기가 쇠했음을 의미한다.
[주D-002]비록 …… 못하지만 : 공 자(孔子)가 젊은 시절에는 주공(周公)의 도를 행하려는 굳은 의지 때문에 꿈속에 가끔 주공을 보았었는데, 늙음에 미쳐서는 의지 또한 쇠약해져서 다시는 꿈속에도 주공을 만나지 못하자, 이를 탄식하여 이르기를 “심하다, 나의 쇠함이여. 내가 다시 꿈속에 주공을 만나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둔촌(遁村)에게 받들어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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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늙은이는 매우 많이 쇠하여 / 牧翁衰也甚
출처 관계를 잊은 지 이미 오래라 / 久已忘行藏
눈의 흥치는 안도를 인해 생기고 / 雪興因安道
꽃 정신은 멀리 조창을 생각하네 / 花神憶趙昌
쇠함 붙드는 데는 오직 술뿐이요 / 扶衰唯有酒
유희 펴는 건 늘 장소에 따른다네 / 作戲每逢場
좋은 말씀에 깊은 뜻 감하하여라 / 贈策荷深意
그대 아직도 강직함을 알겠네그려 / 知君猶崛強
[주D-001]눈의 …… 생기고 : 안 도(安道)는 진(晉)나라 때의 처사(處士) 대규(戴逵)의 자이다. 당시 대규와 왕휘지(王徽之)는 서로 각별한 친구 사이였는데, 산음(山陰)에 살던 왕휘지가 어느 날 밤 눈이 막 개고 달빛이 휘영청 밝은 광경을 보고는 갑자기 섬계(剡溪)의 친구 대규가 생각나서 즉시 거룻배를 명하여 타고 밤새도록 가서 다음날 아침에야 섬계에 당도했던바, 대규의 집 문 앞까지 이르러서는 흥(興)이 다했다 하여 그의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되돌아가버렸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꽃 …… 생각하네 : 조창(趙昌)은 송(宋)나라 때의 화가로서 특히 화과(花果)의 그림에 뛰어났는데, 《선화화보(宣和畫譜)》에 의하면, 조창의 사생(寫生) 법칙은 매우 핍진(逼眞)하여 곧장 꽃에 정신(精神)을 전해 준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쇠함 …… 술뿐이요 : 백 거이(白居易)의 〈은궤증객(隱几贈客)〉 시에 “누워 있을 때는 한 권의 책을 베고, 일어나서는 한 잔 술을 마시노니, 서책으로는 깊은 잠을 끌어오고, 술로는 쇠약한 몸을 붙든다네.[臥枕一卷書 起嘗一盃酒 書將引昏睡 酒用扶衰朽]” 하였다.
[주D-004]유희 …… 따른다네 : 《전 등록(傳燈錄)》에 “막대기를 몸에 지니고 장소에 따라 유희를 펼친다.[竿木隨身 逢場作戲]” 한 데서 온 말로, 원래의 뜻은 사장(師匠)이 학인(學人)을 교화하는 데 있어 자유자재로 펼치는 기략(機略)에 비유한 것인데, 전하여 세속에 따라 임기응변하는 뜻으로 쓰인다.
대서(代書)하여 계림 영공(雞林令公)에게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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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없이 한가함이 다행이지만 / 幸我閑無敵
공은 친구를 떠난 게 애석하겠지 / 知公惜離羣
한 봉서가 어찌 그리도 정중한고 / 一封何鄭重
천리 멀리 맑은 덕을 흠뻑 입었네 / 千里揖淸芬
바다는 계림 달빛 아래 광활하고 / 海闊雞林月
하늘은 곡령 구름 위에 나직한데 / 天低鵠嶺雲
명원의 매화가 이제 피려고 하니 / 名園梅欲動
다시 글 논하기만 고대 기다리노라 / 蹺足更論文
[주D-001]다시 글 논하기만 : 두 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시에 “위수 북쪽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엔 해 저문 구름이로다. 어느 때나 한 동이 술을 두고서, 우리 함께 글을 자세히 논해 볼꼬.[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친구를 그리워하는 뜻으로 쓴 것이다.
남창(南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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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 아래 낮잠 자다 해 그림자 옮긴 뒤에 / 攤飯南窓日影移
다시 붓대를 잡고 새로운 시를 쓰노라니 / 更携毛穎寫新詩
점차 기미가 평담한 데로 돌아가게 할 뿐 / 漸敎氣味廻平淡
이미 꾀를 써서 기괴함 부리긴 싫어졌네 / 已厭機關逞怪奇
만 겹의 산들은 하늘 다한 곳에 둘러 있고 / 萬疊山橫天盡處
두어 가지 매화는 눈 녹은 때에 피었으니 / 數枝梅動雪殘時
폭건 쓰고 곧장 봄 경치 감상하러 가고파라 / 幅巾直欲尋春去
우연히 얻은 게 애써 생각한 것보다 낫고말고 / 偶得由來勝苦思
동정(東亭)이 사위를 들이는데, 나는 가난해서 혼례를 도울 수가 없어 황두(黃豆) 두 섬으로 뜻을 표하고, 인하여 한 수를 읊어서 바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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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이 요즘에 신랑을 맞아들이었는데 / 東亭近日納新郞
끌어온 말 또한 훌륭하다고 모두 말하네 / 摠說牽來馬亦良
한 섬 곡식을 응당 한 번에 먹일 터이니 / 一石粟應供一食
후일 만리 머나먼 길을 좋이 잘 달리리 / 他年萬里好騰驤
[주D-001]한 섬 …… 터이니 : 한 유(韓愈)의 〈잡설(雜說)〉에 “세상에 백락이 있은 다음에야 천리마가 있음을 알게 된다.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명마가 있다 할지라도 노예들의 손에 곤욕을 치르면서 마구간 사이에서 보통 말들과 나란히 죽어갈 뿐, 천리마로 일컬어지지 못한 것이다. 천리를 가는 말은 한 번에 혹 한 섬 곡식을 다 먹기도 하는데, 말을 먹이는 자는 그것이 천리를 갈 수 있는 말인 줄을 알아서 먹이지 못하는지라, 이 말이 비록 천리를 갈 능력이 있다 해도 먹은 것이 배부르지 않고 힘이 부족하여, 훌륭한 재능이 밖에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선 보통의 말들과 같기만 하려도 역부족이거니, 어떻게 천리를 가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世有伯樂 然後有千里馬 千里馬常有 而伯樂不常有 故雖有名馬 秖辱於奴隸人之手 騈死於槽櫪之間 不以千里稱也 馬之千里者 一食或盡粟一石 食馬者 不知其能千里而食也 是馬也雖有千里之能食不飽 力不足 才美不外見 且欲與常馬等 不可得 安求其能千里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훌륭한 인재를 의미한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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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이라서 마을 안은 조용하고 / 新年閭巷靜
병든 나그네도 기거가 편안하네 / 病客起居安
적적한 집에 해는 곧 낮이 돼가고 / 寂寂日將午
쌀쌀한 바람은 다시 차가워지는데 / 颼颼風更寒
고관 행차 잦은 방문은 놀랍지만 / 高軒驚屢入
빈 상탑에 앉기는 더욱 어려워서 / 虛榻坐尤難
읍하여 보내고는 속으로 부끄러워 / 揖送有慚色
소리 높이 읊어 스스로 위로하노라 / 高吟聊自寬
정 월 10일에 염동정(廉東亭)이 나와 한유항(韓柳巷)을 불러서 함께 현릉(玄陵)을 참배하였다. 그곳에 이르니 이 이상(李二相), 변 삼재(邊三宰), 임 상의(林商議), 왕 상의(王商議), 도 우사(都右使), 유 판추(柳判樞), 김 숭경(金崇敬)이 와 있었다. 행사(行事)를 마치고는 들어가서 당두(堂頭)를 뵈니, 차(茶)를 내왔다. 돌아오는 길에 국청사(國淸寺)에 이르니, 주찬(酒饌)을 매우 성대히 차려 내왔다. 도성(都城)에 들어와 임공(林公)의 댁에서 베푼 주연(酒宴)에 이르러서는 몹시 취하였다. 명일에 두 수를 읊어서 기록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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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의 용이 멀리 흰 구름 가로 올라가매 / 鼎湖龍去白雲邊
수염 붙잡고 절망하여 하늘에 눈물 뿌렸네 / 望絶攀髥淚洒天
그 당시의 재신은 얼마 남지 않았거니와 / 當日宰臣無幾箇
소년 사객 이 몸도 이미 머리가 희었구려 / 少年詞客已華顚
운암의 종경 소리는 산이 병장처럼 둘렀고 / 雲巖鐘磬山如障
연사의 진수성찬엔 술이 흡사 샘물 같았지 / 蓮寺珍羞酒似泉
석양에는 임공 노인 댁에서 마시다 보니 / 晚向老林堂上飮
잔뜩 취하매 속세도 한가롭기 그지없었네 / 醉來塵世更悠然
신년에 고관들을 따라 교외로 나가 보니 / 新年郊外逐鳴珂
눈에 가득한 구름 연기가 하늘에 비추이네 / 滿眼雲煙照碧羅
종은 주머니 속의 시구 적음을 의아해하고 / 奴訝囊中詩句少
아내는 옷에 묻은 술 자국을 짜증내누나 / 妻嗔衣上酒痕多
천원엔 눈이 다 녹아 봄 기운이 완연하고 / 川原雪盡春浮地
성궐엔 하늘 나직고 바다 물결도 잔잔커니 / 城闕天低海息波
노력하여 여생이나 즐겁게 지낼 뿐이로다 / 努力餘生行樂耳
김장과 허사가 나에게 무슨 상관 있으랴 / 金張許史奈吾何
[주D-001]정호(鼎湖)의 …… 뿌렸네 : 정 호는 하남성(河南省) 형산(荊山) 아래에 있는 지명(地名)이다. 황제(黃帝)가 일찍이 형산 아래서 솥[鼎]을 다 주조(鑄造)하고 나서 용(龍)을 타고 승천할 적에 군신(羣臣)과 후궁(後宮)으로서 함께 따라 올라간 자는 70여 인이었고, 여기에 함께 따라가지 못한 소신(小臣)들은 모두 용의 수염을 잡고 있다가 용의 수염이 빠지는 바람에 모두 떨어져 버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곧 이미 돌아간 공민왕(恭愍王)을 애모(哀慕)하는 뜻에서 한 말이다.
[주D-002]종은 …… 의아해하고 : 당(唐)나라 때 시인(詩人) 이하(李賀)가 날마다 명승지(名勝地)를 다니면서 해노(奚奴)에게 금낭(錦囊)을 지고 따르게 하여 시(詩)를 얻는 족족 써서 금낭에 담았던 고사에서 온 말인데, 해노는 곧 종을 가리킨다.
[주D-003]김장(金張)과 허사(許史) : 김 장은 한(漢)나라 때 김일제(金日磾)와 장안세(張安世)의 두 집안을 가리키는데, 특히 이 두 집안은 7대 동안이나 자손들이 대대로 시중(侍中), 중상시(中常侍)가 되어 왕(王)을 가까이 모시면서 부귀영화를 누렸고, 허사는 한 선제(漢宣帝)의 외척(外戚)인 허백(許伯)과 사고(史高)를 합칭한 말인데, 허백은 선제의 장인이었고, 사고는 선제의 외가(外家)로서, 모두 권귀(權貴)가 극에 달했다.
성 장원(成狀元)이 와서 말하기를 “세전(歲前)에 합덕(合德)에 가서 외구(外舅)의 분묘(墳墓)에 성묘하고 돌아왔다.”고 하므로, 인하여 사암(思菴)을 생각하여 붓을 달려 써서 일애(一哀)를 부치는 바이다. 성 장원의 이름은 석연(石珚)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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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공을 이루면 오래 있기 어렵나니 / 功成自古久居難
충성이 쇠해서야 사퇴하는 게 아니라네 / 不是忠衰始掛冠
비록 취간이 손을 쓰려는 걸 알았더라도 / 縱認鷲姦將下手
짐독이 스스로 슬퍼하게끔은 어려웠으리 / 難敎鴆毒自摧肝
비파 한 곡조엔 슬픈 가락이 몹시 급했고 / 琵琶一曲哀調急
달빛 흐린 오호엔 돌아갈 흥이 무르녹았지 / 煙月五湖歸興闌
당일에 임금 따르던 이들은 다 몰락하고 / 當日隨龍盡凋喪
적적한 광암사에 저녁 구름만 차갑구나 / 光巖寂寂暮雲寒
[주C-001]사암(思菴) : 고 려 말기의 문신(文臣)인 유숙(柳淑)의 호이다. 그는 여러 관직을 거쳐 첨의 평리(僉議評理),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이르렀는데, 평소 그의 충직(忠直)한 성품을 두려워했던 신돈(辛旽)의 모함으로 시골에 내려가 있다가 뒤에 신돈이 보낸 자에게 교살(絞殺)당했다고 한다.
[주D-001]자고로 …… 어렵나니 : 춘 추 시대 월(越)나라의 대부(大夫) 범려(范蠡)가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도와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는 말하기를 “큰 명성을 누리는 자리에는 오래 있기 어려운 것이다. 또 구천의 사람됨은 환난(患難)을 함께할 수는 있지만, 안락(安樂)함을 같이 누리기는 어렵다.” 하고, 구천을 하직하고 오호(五湖)에 배를 띄워 떠나 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취간(鷲姦) :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취성부원군(鷲城府院君)에 봉해진 간신(姦臣) 신돈(辛旽)을 가리킨다.
[주D-003]짐독(鴆毒) : 짐 조(鴆鳥)의 깃을 술에 담가 마시면 그 독이 사람을 죽인다는 데서, 사람이 유흥(遊興)이나 일삼는 것은 짐독과 같이 사람을 해친다 하여, 예로부터 유흥을 일삼는 것을 짐독에 비유하는데, 여기서는 곧 간신(姦臣)의 흉계(凶計)로 임금의 총명이 흐려진 것을 짐독에 비유한 것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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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 이른 봄 동풍이 차갑게 부는지라 / 門外東風料峭寒
백발로 의관도 정제 않고 깊이 들앉았노니 / 白頭深坐懶衣冠
한가함 속의 이 맛을 아무도 알 이 없으리 / 閑中有味無人識
새로운 시를 써내니 글자마다 안온하구려 / 寫出新詩字字安
일을 기록하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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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 산에 올라 팔선궁에 예배 올리고 / 踏月登山禮八仙
돌아오니 새벽빛이 아직도 어둑하구나 / 歸來曉色尙蒼然
기원함은 남편의 영화만 위해서가 아니라 / 有祈不獨榮夫耳
자손들의 오복이 온전케 하기 위해서라네 / 要使兒孫五福全
병든 몸 수척하여 봄추위가 겁이 나서 / 病餘身瘦怯春寒
밤에 송악산 오르기는 참으로 어렵겠네 / 夜上松山自覺難
제비 춤추고 꾀꼬리 우는 다스운 봄날에는 / 燕舞鸎歌春日好
장안 가득한 복사꽃 오얏꽃을 굽어보련다 / 俯看桃李滿長安
20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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