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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고 비 오는 것을 탄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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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의 정황이 쇠퇴하기 그지없어라 / 老年光景若頹波
문에 찾는 이 없어 새그물을 칠 만하네 / 門巷人稀雀可羅
도정이 끊겼다 이어졌다 함은 한스럽지만 / 恨殺道情猶斷續
세상일과는 스스로 불우하거나 말거나 / 從敎世事自蹉跎
비가 잦으니 뜰 이끼는 두루 자라나고 / 雨頻庭蘚生將遍
거센 바람에 정원 배는 많이도 떨어졌네 / 風急園梨落已多
농가의 늙은 부부들을 앉아서 생각하니 / 坐念田家老夫婦
마음 고통 육체 노고를 끝내 어찌할거나 / 苦心霑體竟如何
꿈에서 깨니 정원에 날은 밝으려 하는데 / 夢回庭院欲天明
백발의 정회가 우울하여 편하지를 않네 / 白髮情懷鬱不平
나무숲은 부르짖어라 바람 한창 거세고 / 萬木怒號風有力
오만 산은 캄캄한 채 빗소리는 안 나다가 / 千山暗淡雨無聲
베개맡에 낙숫물 소리가 점차 들려오고 / 漸聞枕上來簷語
창 사이 -원문 빠짐- 강하게 짓누르네 / 剛壓窓間□□□
곧장 구름돛 걸고 창해를 건너고파라 / 直掛雲帆濟滄海
한림의 호기는 아직도 우뚝기만 하다오 / 翰林豪氣尙崢嶸
구름 귀신 바람 귀신 또한 무슨 맘이던고 / 雲師風伯亦何心
우리 벼와 우리 묘금에 피해를 입히다니 / 損我嘉禾減畝金
호부들은 예로부터 축적한 게 많거니와 / 豪富由來多積畜
빈궁한 이는 괴로움을 위로할 길이 없네 / 貧窮無以慰呻吟
백발은 고기가 물에 의지함을 자신하지만 / 白頭自信魚依水
충정은 학이 그윽한 데 있음을 누가 알랴 / 丹懇誰知鶴在陰
폭우와 폭풍 몰아친 지 지금 이미 오래라 / 破塊鳴條今已久
사람에게 오현금을 거듭 생각게 하누나 / 令人重憶五絃琴
[주D-001]문에 …… 만하네 : 한(漢)나라 때 책공(翟公)이 정위(廷尉)가 되었을 때는 찾아오는 빈객(賓客)이 문에 그득했는데, 그가 정위에서 물러난 뒤에는 찾아오는 이가 전혀 없어 문밖에 새그물을 칠 만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곧장 …… 건너고파라 : 이백(李白)의 〈행로난(行路難)〉에 “긴 바람에 물결 부술 기회가 오거든, 곧장 구름돛 걸고 창해를 건너련다.[長風破浪會有時直掛雲帆濟滄海]”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큰 포부를 한 번 펴고자 하는 뜻을 의미한다.
[주D-003]묘금(畝金) : 《한서(漢書)》 동방삭전(東方朔傳)에 “풍호(酆鎬)의 사이는 토지가 비옥하다고 일컬어져서 그 값이 이랑[畝]당 일금(一金)씩이다.” 한 데서 온 말로, 좋은 토지를 의미한다.
[주D-004]고기가 물에 의지함 : 촉 한(蜀漢)의 선주(先主) 유비(劉備)가 일찍이 이르기를 “나에게 공명이 있는 것은 마치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다.[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군신(君臣) 간에 서로 믿고 의지하는 깊은 교계(交契)를 의미한다.
[주D-005]학(鶴)이 …… 있음 : 《주 역(周易)》 중부괘(中孚卦) 구이(九二)에 “우는 학이 그윽한 데 있거늘,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 나에게 좋은 벼슬이 있어, 내 너와 더불어 가지고자 한다.[鳴鶴在陰 其子和之 我有好爵 吾與爾靡之]” 한 데서 온 말로, 군신 간에 지성(至誠)이 서로 감통(感通)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6]오현금(五絃琴) : 순 (舜) 임금이 일찍이 오현금을 손수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南風詩)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노염을 풀어 줄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할 만하도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우순 풍조(雨順風調)를 의미한다.
바람 귀신에게 고하다. 일장(一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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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불고 몰아치지 말아서 / 徐而勿馳兮
우리 찰벼 메벼를 흔들지 마오 / 無撼我稌秔
아무쪼록 큰 풍년이 들어야만 / 庶幾歲大熟
우리 백성이 오래오래 살리라 / 吾民延其生
햇밤을 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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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촌의 깊은 곳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어 / 柳村深處雨霏微
가을이 깊기도 전에 밤이 벌써 여물었네 / 秋未深時栗已肥
바람을 맞아 가지 하나 갑자기 떨어져서 / 風打一枝俄下墜
벗겨 먹거니 치아 드문 걸 어찌 걱정하랴 / 剝來何患齒牙稀
늙은 농부의 말을 기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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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자고 하늘 가득히 비가 내리자 / 風停雨作勢包空
농가의 백발 노인들 일어나 춤을 추면서 / 起舞田家白髮翁
벼이삭 안 수습해도 응당 풍년이 드리니 / 不待築禾應大熟
바다 같은 성은에 즐거움이 끝없다 하네 / 聖恩如海樂無窮
[주D-001]벼이삭 …… 드리니 : 《서경(書經)》 금등(金縢)에 “뽑혀 넘어진 큰 나무들에 눌려 쓰러진 벼이삭들을 모두 일으켜 수습하여 북돋아 주니, 해가 크게 풍년이 들었다.[凡大木所偃 盡起而築之 歲則大熟]” 한 데서 온 말이다.
배나무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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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텅 빈 배나무는 그 몇 해나 살았는지 / 梨樹中空知幾年
꽃 피고 잎 피는 것은 항상 그대로인데 / 開花發葉□如前
하루아침 거센 바람에 허망히도 꺾여서 / 一朝風急俄摧朽
하반신만 남았으니 하늘에게 물어보련다 / 留得半身將問天
문득 새들은 다시 앉기 어렵게 했거니와 / 忽使啼禽難□在
개미들도 타오르기 두려울 줄 정히 알겠네 / 定知行蟻㥘夤緣
명년 봄 오만 나무가 한창 싱그러울 땐 / 明春萬木欣欣處
당시의 백설 같은 꽃을 다시 보게 될런가 / 倘見當時雪色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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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사가 와서 밝은 조서 반포하니 / 北使頒明詔
동방 사람은 옛 은혜에 감격하네 / 東人感舊恩
해산엔 천자 은택이 흠뻑 내렸고 / 海山多雨露
빙설 같은 지조는 천지가 하나라 / 氷雪一乾坤
충의야 어찌 폐한 적 있으랴마는 / 忠義何嘗廢
천하의 나뉨은 차마 말도 못 하지 / 分崩可忍言
백발 나이에 병까지 든 몸으로 / 白頭身又病
머리 들어 귀인 행차 생각하노라 / 矯首想行軒
[주C-001]북사(北使) : 고려 말기에 명(明)나라에 의해 북으로 쫓겨간 북원(北元)의 사신(使臣)을 말한다.
가을 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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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더위에 쇠한 노인 지쳤는데 / 秋暑困衰翁
서늘한 비가 한번 쏵 씻어 주누나 / 凍雨一洗之
죽죽 내리매 오장이 서늘한지라 / 劃時五內涼
우뚝이 앉아 조용히 생각해 보니 / 兀坐靜言思
한 치의 이 밝은 마음자리는 / 靈臺方寸地
외물이 요동시킬 수 없는 건데 / 外物莫能移
어찌하여 추위 더위 만날 적마다 / 奈何觸寒熱
형세가 군박해 버티기 어려운고 / 勢窘難支持
머리 조아려 감사하는 건 천군이 / 稽首謝天君
태연하게 이 자리에 있음이로세 / 泰然其在玆
[주D-001]천군(天君)이 …… 있음이로세 : 천군은 심(心)의 별칭인데, 범준(范浚)의 〈심잠(心箴)〉에 “군자가 정성을 보존하여 능히 생각하고 공경하면, 천군이 태연해져서 백체가 그 명령을 따르리라.[君子存誠 克念克敬天君泰然 百體從令]” 하였다.
가을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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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은 그 어인 까닭으로 / 秋風胡爲哉
나에게만 유독 잘 찾아오는고 / 與我偏相尋
나는 외물에 끌리는 욕심을 끊고 / 我欲絶知誘
조용히 내 마음 보존하려 하는데 / 湛然存我心
갑자기 운물의 경지가 변화하여 / 忽爾雲物變
서늘한 바람이 황혼에 일어나서 / 涼風生夕陰
나에게 창주취를 동하게 하니 / 動我滄洲趣
나는야 백운편으로 화답하련다 / 和之白雲吟
산중에 아름다운 그님이 있어 / 山中有美人
완연히 송계의 숲에 있는 듯한데 / 宛在松桂林
혜초꽃은 절벽에 드리워 있고 / 蕙花垂石崖
폭포수는 하얀 거문고와도 같네 / 飛泉如素琴
하 멀어서 부여잡을 수가 없거니 / 邈哉不可攀
미더울사 금옥 같은 덕음이여 / 信哉金玉音
[주D-001]창주취(滄洲趣) : 창주는 물가에 위치한 은사(隱士)의 거처를 말한 것으로, 즉 은사의 정취(情趣)를 의미한다.
[주D-002]백운편(白雲篇) : 도잠(陶潛)의 〈화곽주부(和郭主簿)〉 시 가운데 “아득히 흰 구름을 바라본다.[遙遙望白雲]”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을 인하여 후세에 ‘백운편’을 은사(隱士)의 시(詩)로 일컬은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금옥(金玉) 같은 덕음(德音) : 《시 경》 소아(小雅) 백구(白駒)에 “그대의 덕음을 금옥같이 아껴서, 나를 멀리하지 마소나.[毋金玉爾音 而有遐心]”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은사를 만나서 못 가게 만류하여도 듣지 않으므로, 헤어지기를 매우 아쉽게 여겨 부른 노래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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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선 사퇴 청함이 바로 진정이거니와 / 老而求退是眞情
더구나 지금은 세상도 태평치 못함에랴 / 況此多艱世失平
대신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 / 尙念大臣宜在位
젊은이가 감히 이름 겨룸은 듣지 못했네 / 未聞諸子敢齊名
국가 기맥은 인재 배양을 생각해야 하고 / 國家氣脈思培養
가문 명성은 가득참을 경계해야 하고말고 / 門戶聲名戒滿盈
수년만 더 지나면 나이가 팔십이 되거니 / 更過數年年八十
성정을 편안히 기르는 것 또한 광영이련만 / 安閑頤養亦光榮
7 월 27일에 계내(契內)의 여러 형(兄)들과 서로 광암사(光巖寺)의 당두(堂頭) 환암공(幻菴公)을 함께 방문하기로 약속했으나, 제공(諸公)은 모두 일이 있어 못 나오고 우윤(右尹) 이서원(李舒原)만이 나와 함께 갔고, 민자복(閔子復)과 종학(種學)은 우리를 뒤따라 이르렀는데, 이 우윤 또한 일로 인하여 석양에 도성(都城)으로 들어가므로, 늙은 나만 거기서 하룻밤을 묵게 되어 앉은 채로 새벽 종소리까지 듣고 잠시 쉬었다가 일어났다. 그런데 감역(監役) 밀산군(密山君) 박공(朴公)이 나에게 환암의 화상(畫像)에 찬(讚)을 하라고 청했으므로, 돌아오는 길에 읊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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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 친구들은 늙어갈수록 드문데 / 少年交契老來稀
한나절 함께 노는 일도 절로 어긋나누나 / 半日同遊亦自違
오경까지 앉았자니 도의 맛이 우러나서 / 坐到五更生道味
두어 구절 읊조리어 화상을 예찬하노라 / 吟成數句讚眞儀
푸르른 산마루엔 구름이 서로 어울리고 / 山光蒼翠雲相媚
청황빛 들판에는 벼가 가장 살쪘네그려 / 野色靑黃稻最肥
다시 영빈루로 가서 술을 마시다 보니 / 更向迎賓樓作飮
고금의 감회에 그리운 생각 간절하구나 / 感今懷古思依依
집에 돌아와 피곤하여 눕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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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 밖의 맑은 놀이가 꿈인지 생시인지 / 物外淸游夢也非
환암의 경지는 벌써 희미에 이르렀거늘 / 幻菴境界已稀微
이 맘은 오감이 없다고 말만 하는 가운데 / 此心謾道無來去
또 이 연기 낀 처마엔 석양이 걸렸네그려 / 又是煙簷掛落暉
[주D-001]희미(稀微) : 소 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도의 경지를 가리킨다. 《노자(老子)》 제14장에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라 하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을 미라 한다.[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한 데서 온 말이다. 희(稀)는 희(希)와 통용한다.
29일은 익재 시중(益齋侍中)의 기단(忌旦)이다. 동년(同年) 정 첨서공(鄭簽書公)과 함께 원명사(圓明寺)의 재석(齋席)에 나갔는데, 송 동년(宋同年)은 또 자서(子壻)의 열(列)에 있으므로, 비록 좌석은 함께했다 할지라도 동년으로 지목할 수가 없고 보면, 익재의 문생(門生)은 우리 두 사람뿐인 것이다. 그러나 정공은 지위가 추밀(樞密)이고, 나도 성재(省宰)로서 봉군(封君)에 올랐으니, 다른 이가 아무리 많은들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다만 용부 상의(庸夫商議)가 유고하여 오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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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늙어서 덧없는 인생이 느꺼워 / 我今老矣感浮生
경계 만나면 때때로 실정을 토로하노니 / 對境時時吐實情
하늘같이 큰 은혜야 어찌 다 갚으랴만 / 恩大如天那可報
돌처럼 굳은 마음은 맹세를 같이한다네 / 心堅似石是同盟
가을바람은 쓸쓸하여 유관이 차가웁고 / 秋風瑟瑟儒冠冷
아침 해는 돋아올라 불전이 밝아오누나 / 曉日曈曈佛殿明
승려들 먹이고 나서 우리 또한 배불러라 / 飯罷緇流吾亦飽
자손들이 창성하고 광영 또한 끝없으리 / 子孫逢吉更光榮
[주C-001]정 첨서공(鄭簽書公) : 당시 첨서 밀직사(簽書密直事)였던 정공권(鄭公權)을 가리키는데, 그 또한 공민왕(恭愍王) 2년 계사년(1353)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주관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목은과는 동년이었다.
[주C-002]용부 상의(庸夫商議) : 용부는 당시 상의찬성사(商議贊成事)였던 권중화(權仲和)의 자이다. 그는 공민왕 2년에, 이제현이 주관한 문과에 급제했다.
역대 과거(科擧)의 장원(壯元)이 연회(讌會)를 베푸는 것을 용두회(龍頭會)라 하는데, 모든 영접하고 전별하고 경하하고 위문하는 일에 있어 예(禮)대로 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요행히도 상헌(常軒) 선생이 수년 동안 무양(無恙)하셨으나 일찍이 한번도 연회를 마련한 적이 없었는데, 염동정(廉東亭)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 연석을 마련했었다. 그러나 동정이 과시(科試)를 주관한 뒤에 그의 좌주(座主)인 송 선생 밀직(宋先生密直)의 부름을 받고 가서 동정이 수상(壽觴)을 올리고 이것을 용두회라 이름했으니, 실상은 영친(榮親)의 관례인 것이다. 지금 순중(純仲)은 회장(會長)인 동정의 전(前) 문생(門生)인데, 그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 나와 동정 및 정 판서(鄭判書), 윤 부령(尹副令), 정 정언(鄭正言)이 각각 주과(酒果)를 가지고 모여서 그를 전별하였는바, 회장은 바로 가장 높은 이라서 각기 한 잔씩을 올리고 파하였으니, 그 한아(閑雅)한 풍류는 또한 한 시대의 성사(盛事)라 하겠다. 나는 병든 지 오랜 몸으로 이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어찌 하늘이 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집에 돌아와서는 그대로 자고 명일에 한 수를 읊어 이루어서 회장 좌하(座下)에 기록하여 바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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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의 한 소리 천둥에 고기들 뛰어라 / 禹門魚躍一聲雷
높이 올라서 뭇 용으로 변화하여 왔네 / 矯矯羣龍變化來
높낮이 가지고 두미만 정했을 뿐이지 / 只把高低比頭尾
영이함 논하자면 근본을 같이했고말고 / 若論靈異共胚胎
밭에 있으니 문명한 운을 만나려니와 / 在田政値文明運
만물에 은택 입힘은 음양 섭리 같으리 / 澤物還同燮理才
가장 기쁜 건 병든 몸이 이 모임 참여해 / 最喜病餘參此會
예전의 풍류를 눈으로 다시 보게 됨일세 / 風流往事眼中回
[주C-001]상헌(常軒) : 안진(安震)의 호이다. 그는 충숙왕(忠肅王) 때 문과에 급제하고 이어 원(元)나라 제과(制科)에도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안산군(安山君)에 봉해지고, 공민왕 때에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다.
[주C-002]순중(純仲) : 김자수(金子粹)의 자이다. 그는 공민왕 23년 갑인년(1374)에, 동정(東亭) 염흥방(廉興邦)이 주관한 문과에 장원하였고, 뒤에 벼슬이 형조 판서에 이르렀다.
[주D-001]우문(禹門)의 …… 왔네 : 우 문은 황하(黃河)의 상류에 위치한 용문(龍門)의 폭포(瀑布)를 가리키는데, 하우씨(夏禹氏)가 개착(開鑿)한 곳이라 하여 이렇게 부른다. 이곳의 폭포는 세 단계로 이루어져서 매우 급하게 쏟아져 내리기 때문에, 강해(江海)의 대어(大魚) 수천 마리가 그 밑에 모여서 그 위로 뛰어올라간 놈은 용(龍)이 된다고 하므로, 과거(科擧)의 급제자를 여기에 비유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밭에 …… 만나려니와 : 《주 역》 건괘(乾卦) 구이(九二)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음이니, 대인을 만나 보는 것이 이롭다.[見龍在田利見大人]” 하였는데, 그 문언전(文言傳)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천하가 문명하다는 것이다.[見龍在田 天下文明]”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비록 야(野)에 있지만 이미 대인(大人)의 덕(德)을 갖춘 인재를 비유한 것이다.
왜구(倭寇)가 금주(錦州)에 있다는 소식을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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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깊은 곳이 변방 성에 닿아 있어 / 錦州深處接關城
해적들이 연래에 방자히 출몰하는지라 / 海賊年來得恣行
대장의 지휘는 바야흐로 뜻을 얻었는데 / 大將指揮方得意
병든 썩은 선비는 감정만 품을 뿐이로세 / 腐儒衰病獨含情
산천의 형세는 금성 탕지처럼 견고하고 / 山川形勢金湯固
종사의 신령 위광은 일월처럼 밝거니와 / 宗社威靈日月明
사람 계책도 꼭 다 오국만 하진 않으련만 / 未必人謀皆誤國
진작 용병술 안 배운 게 가련할 뿐이로다 / 自憐曾不學談兵
절구(絶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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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이끼는 섬돌 위에 연하였고 / 苔痕連砌上
나무 그림자는 창 안에 들오는데 / 樹影入窓中
조용히 앉아 세상일 잊은 가운데 / 靜坐忘機事
아침 해는 또 붉게 솟아 올랐네 / □□日又紅
8월 2일에 상(上)이 친히 행행하여 농사 작황을 관찰하는데, 신(臣) 색(穡)은 행차를 아무리 바라보아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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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기병 구름처럼 몰려 도성을 나가고 / 萬騎如雲出鳳城
군왕께서 친히 고삐 잡고 천천히 가실 새 / 君王按轡政徐行
겹쳐 푸른 산 빛에 새벽빛은 밝아오고 / 山光疊翠曙光淡
반쯤 누런 들 빛에 가을빛은 청쾌하네 / 野色半黃秋色淸
가만히 앉아 요순의 덕에 오르길 다 바랐지 / 共願垂衣躋帝德
농사 살펴 민생 염려할 줄을 누가 알았으랴 / 誰知觀稼念民生
늙은 신하는 병이 많아 달리기 어려워서 / 老臣多病難馳騁
문 닫고 조용히 읊어 태평을 칭송하노라 / 閉戶微吟頌太平
중동으로 하늘 가닿은 들판을 주시하시고 / 重瞳凝睇野連天
금년에 큰 풍년 든 걸 매우 기뻐하시리 / 大喜今玆大有年
띄엄띄엄 누런 들판은 어가를 쫓는 듯하고 / 陣陣黃雲如逐輦
주렁주렁 흰 쌀알은 이미 어연에 올랐겠지 / 纍纍玉粒已登筵
모두들 매와 개의 높낮이를 논할 터인데 / 共將鷹犬論高下
나는 앞뒤로 옹위하는 군사들만 상상하네 / 獨想貔貅擁後前
적막한 여생에 다행스레 편안히 앉아서 / 寂寞殘年幸安坐
발돋음해 바라보니 망연자실할 뿐일세 / 跂予瞻望意茫然
[주D-001]중동(重瞳) : 눈동자가 한 눈에 둘씩 있는 것을 말하는데, 순(舜) 임금이 중동이었므로, 전하여 임금을 가리킨다.
새벽에 일어나니 천기(天氣)가 조금 서늘하므로, 갑자기 관동(關東)의 흥취가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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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이라 갠 하늘에 일기 조금 서늘하고 / 八月天晴氣稍涼
관동 일대는 쌀과 어물이 풍부한 고장이라 / 關東一帶稻魚鄕
유람하긴 이때가 좋다고 모두들 말하는데 / 游觀共道此時好
구속받는 건 무슨 일이 바쁜지 모르겠네 / 局束不知何事忙
강릉 바다 파도는 바람이 형세를 이루고 / 蘂國波濤風作勢
금강산 골짜기엔 백설이 향기를 풍기리라 / 楓山巖壑雪生香
뜻 있으면 성공한단 말 허언이 아니거니 / 竟成有志非虛語
후일에 돌아가거든 저 하늘에 감사하련다 / 他日歸來謝彼蒼
[주D-001]뜻 …… 말 : 후 한(後漢) 때 대장군(大將軍) 경감(耿弇)이 축아(祝阿)를 공격하여 성공을 거두자, 광무제(光武帝)가 그에게 이르기를 “장군이 앞서 남양(南陽)에 가서 이 대책(大策)을 세운 데 대하여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뜻이 맞지 않으리라고 여겼었는데, 뜻이 있는 사람은 일을 끝내 성취하는구려[有志者事竟成也].”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쌍청정(雙淸亭)에 받들어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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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금은 깨끗하여 뭇 의혹을 끊어 버렸고 / 胸襟皎潔絶羣疑
어사대의 위엄은 한 시대를 진동시켰네 / 烏府霜威動一時
방상의 상부엔 두의 결단을 겸했거니와 / 房相閤中兼杜斷
합공의 당 위엔 조가 따른 걸 보았었지 / 蓋公堂上見曹隨
솔은 풍월 머금어 소리 오히려 조용하고 / 松涵風月聲猶靜
가을은 산에 들어 경치 더욱 기이하구나 / 秋入峯巒景轉奇
맘과 자취 둘 다 깨끗한 걸 누가 그릴꼬 / 心跡雙淸誰畫得
칠언시 일곱 구절 목은 늙은이 시이로세 / 七言八句牧翁詩
[주C-001]쌍청정(雙淸亭) : 고 려 말기의 문신 안종원(安宗源)의 정자 이름이다. 그는 안렴사(按廉使), 사헌 시사(司憲侍史), 대사헌(大司憲) 등 여러 내외직을 거쳐 벼슬이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에 이르고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에 봉해졌다. 특히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주D-001]방상(房相)의 …… 겸했거니와 : 당(唐)나라 초기의 명상(名相)이었던 방현령(房玄齡)은 모책(謀策)에 뛰어났고, 두여회(杜如晦)는 결단(決斷)에 뛰어났던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곧 모책과 결단이 모두 뛰어났음을 의미한다.
[주D-002]합공(蓋公)의 …… 보았었지 : 한 효혜제(漢孝惠帝) 때 조참(曹參)이 제상(齊相)이 되었을 때 그곳의 가장 뛰어난 유자(儒者) 합공을 초빙하여 치도(治道)를 물으니, 합공이 청정(淸靜)함으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저절로 진정될 것이라고 말해 주자, 조참이 마침내 자기가 정당(正堂)을 피해서 합공을 그곳에 모시고 그에게 치도를 자문함으로써 끝내 제나라가 잘 다스려졌던 데서 온 말이다.
어 제 유항(柳巷) 맹운(孟雲) 선생과 함께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길창군(吉昌君)을 모시고 대내(大內)에 나아가니, 내관 김실(金實)이 내지(內旨)를 전하여 술을 내리었다. 이어서 시중(侍中) 윤 칠원(尹漆原)이 여러 재추(宰樞)들과 함께 또 곡성부원군, 길창군을 초청하여 합좌소(合坐所)로 가게 되어 나와 맹운이 그 뒤를 따랐는데, 합좌소에 가서는 또 간소한 주연(酒宴)을 가졌다. 이윽고 모두 함께 이어소(移御所)로 가서 수리관(修理官)을 위로하고, 또 민천관(旻天觀)에 이르니, 정전(正殿)의 개와(蓋瓦) 공사가 거의 끝나가므로, 그 감역관(監役官)을 위로하고는 각기 해산하였다. 그런데 정당(政堂) 안 선생(安先生)이 나와 맹운 선생을 초청하므로, 그의 집에 가서는 임정(林亭)에 앉아서 주식(酒食)을 차려 놓고 온종일 담소(談笑)를 즐기었다. 이때 주인(主人)이 자기 정자(亭子)의 이름을 청하므로, 내가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두 공부(杜工部)의 심적 쌍청(心迹雙淸)이란 구절을 취하여 그의 요청에 답하고, 그다음 날에 〈쌍청정시(雙淸亭詩)〉를 지었는데, 이제 또 그 운(韻)을 사용하여 전일의 일을 추후에 기록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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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같은 나의 삶 스스로 놀랍고 의아해라 / 吾生如夢自驚疑
분수 밖에 원로를 수행한 게 또 이때로세 / 分外追攀又此時
두 원로는 태평의 기상을 드러내거니와 / 二老能形太平出
제군 중에선 누가 길창군 뒤를 따를런고 / 諸君誰踵吉昌隨
새 궁전은 우뚝 솟아 푸른 하늘에 가깝고 / 新宮拔地靑天近
넓다란 길엔 티끌 없고 해는 길기만 하네 / 廣陌無塵白日遲
석양엔 죽계에 가서 정흥이 발동하여 / 晚向竹溪情興發
쌍청정 위에서 좋이 시를 읊었네그려 / 雙淸亭上好吟詩
[주C-001]두 공부(杜工部)의 심적 쌍청(心迹雙淸) : 일찍이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낸 두보(杜甫)의 〈병적(屛迹)〉 시에 “백발로 명아주 지팡이를 끌으니, 맘과 자취 둘 다 깨끗함이 기쁘구나.[杖藜從白首 心迹喜雙淸]”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1]두 원로 : 여기서는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과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 윤환(尹桓)을 가리킨다.
[주D-002]길창군(吉昌君) : 고려 말기의 문신(文臣)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의 아들로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고 길창군에 봉해진 권적(權適)을 가리킨다. 그는 특히 두 차례나 공신(功臣)에 책록되었다.
[주D-003]죽계(竹溪) : 순흥부(順興府)에 딸린 지명(地名)인데, 순흥 안씨(順興安氏)가 대대로 여기에서 살았으므로, 전하여 여기서는 본관이 순흥인 정당(政堂) 안종원(安宗源)을 가리킨 말이다.
대서(代書)하여 햅쌀을 보내 준 이둔촌(李遁村)에게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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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강가에 또 가을바람이 불어올 제 / 漢江江上又秋風
누런 들판 아스라한 속에 편안히 누워서 / 高臥黃雲靄靄中
햅쌀을 보내줬으니 묻노라 무슨 뜻인고 / 玉粒分來問何意
다만 못 돌아간 늙은이를 괴롭힌 거로세 / 祗應惱殺未歸翁
한 상당(韓上黨)과 함께 윤 밀직(尹密直)을 방문하여 취해 돌아와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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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개척한 공신의 후손이요 / 拓地功臣後
때는 상신이 된 처음을 만났네 / 逢辰入相初
손에게는 죽엽주를 대접하는데 / 邀賓竹葉酒
주인에게선 추산도가 그립구나 / 戀主秋山圖
숲은 빽빽해 새소리가 적적하고 / 樹密鳥聲寂
하늘은 높아 사람 뜻도 평온한데 / 天高人意舒
조용한 풍일 속에 한 동이 술로 / 一樽風日靜
세속 초월해 맑은 놀이 즐기었네 / 物外得淸娛
[주D-001]영토 …… 후손이요 : 이 시의 제목에 나오는 윤 밀직(尹密直)은 바로 당시 밀직사 사(密直司使)인 윤호(尹虎)를 가리키는데, 그가 곧 고려 중기의 명장(名將)으로 일찍이 원수(元帥)가 되어 여진(女眞)을 정벌해서 함주(咸州), 영주(英州), 웅주(雄州), 복주(福州), 길주(吉州), 공험진(公嶮鎭), 숭녕(崇寧), 통태(通泰), 진양(眞陽) 등 9성(城)을 개척하고 그 공으로 척지진국 공신(拓地鎭國功臣)에 책록되었던 윤관(尹瓘)의 후손이므로 한 말이다.
[주D-002]주인에게선 추산도(秋山圖)가 그립구나 : 여 기서 주인은 바로 윤호를 가리키는데, 공민왕이 일찍이 윤호에게 추산도를 친히 그려서 하사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목은시고》 제25권 〈현릉께서 친필로 그려서 밀직(密直) 윤호(尹虎)에게 하사한 추산도(秋山圖)에 받들어 제하다.〉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오늘 어가(御駕)가 환궁(還宮)한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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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사람들 수일 동안 어가를 기다릴 제 / 數日都人望翠華
서쪽 들녘 아스라이 석양만 비끼었더니 / 西郊縹渺夕陽斜
오늘 아침엔 갑자기 기쁜 기색 넘치어라 / 今朝忽有欣欣色
유독 보통 백성들 집뿐만이 아니로구려 / 不獨尋常百姓家
학문 폐하고 나이만 늙은 걸 놀랄 뿐인데 / 廢學自驚年老大
재주도 없이 요행히 태평성대를 만났네 / 無才幸値運亨嘉
어떻게 하면 다시 이 몸을 건강케 하여 / 何由更得身強健
매와 사냥개 앞에서 오파를 읊조려 볼꼬 / 鷹犬前頭詠五豝
[주D-001]오파(五豝) : 다 섯 마리의 암퇘지를 말한다. 이는 《시경》 소남(召南) 추우(騶虞)에 “저 무성한 갈대밭 사냥꾼은, 다섯 암돝을 단번에 쏘아 잡으니, 아 참으로 어진 추우로다.[彼茁者葭壹發五豝 于嗟乎騶虞]”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문왕(文王)의 덕이 남국(南國)에 두루 미치고 또 이것이 초목금수(草木禽獸)에까지 널리 미쳐서 초목이 무성하고 짐승도 많았으므로, 시인(詩人)이 이것을 보고 아름답게 여겨 부른 노래이다.
삼가 상(上)이 신궁(新宮)에 입어(入御)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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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교에 농사 살피던 어가 행차 상상타가 / 觀稼江郊想六飛
신궁에 엄연히 입어하심을 기뻐하노니 / 新宮已喜儼垂衣
깃발 그림자는 맑은 가을빛에 흔들리고 / 旌旗影動秋光淡
패옥 소리는 희미한 새벽빛에 드높아라 / 環佩聲高曙色微
해와 달은 정히 두 봉궐을 굽어 임하고 / 日月政臨雙鳳闕
하늘땅은 바야흐로 한 융의를 감싸네 / 乾坤方繞一戎衣
병든 몸은 추창하는 반열을 주시하면서 / 病餘注目趨蹌列
홀로 시편을 읊조려 붓을 또 휘두르노라 / 獨詠詩章筆又揮
[주D-001]한 융의[一戎衣] : 융의는 곧 군복(軍服)을 가리킨 것으로, 이는 곧 임금이 교외(郊外)에 행행할 때 착용했던 군복 차림을 말한 것이다.
명일(明日)에, 상이 신궁에 입어했다가 곧바로 어가(御駕)를 명하여 시좌소(時坐所)로 환어(還御)했다는 소식을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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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이 말을 달려 서쪽 물가를 따라라 / 大王走馬率西江
풍채가 새로워서 내 마음 놓이게 하네 / 風采如新使我降
당일에 비 사랑해 시집 장가 못 간 이 없고 / 當日愛妃無曠怨
칠백 년을 점쳐서 주나라 기반 열었도다 / 卜年七百啓周邦
경륜은 피상처럼 겉치레함이 아니거니와 / 經綸彼相非謀面
충의는 어느 누가 몸속 가득하지 않으랴 / 忠義何人不滿腔
생각건대 향로의 향불 곧게 피어오를 제 / 想見獸爐香穟直
용수산은 정히 푸른 깁창을 마주했으리 / 龍山政對碧紗窓
[주D-001]태왕(大王)이 …… 없고 : 《시 경》 대아(大雅) 면(綿)에 “고공단보님이, 아침에 말을 달리어, 서쪽 물가를 따라서, 기산 아래에 이르러, 이에 강씨 부인과 함께, 새로 살 집터를 둘러보았다.[古公亶父 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岐下 爰及姜女 聿來胥宇]”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는 곧 주 태왕(周太王)이 일찍이 빈(邠)에 있다가 적인(狄人)의 침략을 피해 기산(岐山) 아래로 옮겨 가기 위해서 비(妃) 강씨(姜氏)와 함께 기산 아래의 터전을 둘러본 일을 노래한 것이다. 고공은 태왕의 호이고, 단보는 그의 이름이다.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일찍이 제 선왕(齊宣王)의 호색(好色)한다는 말에 대하여 맹자는 태왕의 이 고사를 인용하여, 태왕도 여색을 좋아하여 자기의 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백성들을 헤아려 주었기 때문에 이때에는 시집 못 간 처녀나 장가 못 든 남자가 없었다고 하였다.
[주D-002]칠백 년을 …… 열었도다 :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겹욕(郟鄏)을 도읍으로 삼고 점을 쳐본 결과, 대수(代數)는 30대요, 연수(年數)는 700년이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 宣公3年》
[주D-003]피상(彼相) : 저 런 따위 보좌하는 신하란 뜻으로, 공자(孔子)가 일찍이 계씨(季氏)의 비행을 간하여 막지 못한 염구(冉求)를 책망하여 이르기를 “구야, 주임이 말하기를 ‘힘을 다하여 반열에 나아가서 능히 할 수 없겠거든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으니, 위태로운데도 굳게 지키지 않고, 넘어지는데도 붙들지 않는다면 저런 상신을 어디에 쓰겠느냐.[求 周任有言曰 陳力就列 不能者止 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哉]”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季氏》
새벽에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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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쓸쓸히 내리는 빗소리를 들었는데 / 夜聽蕭蕭雨有聲
낙숫물을 못 이룬 채 날이 이미 밝았구려 / 不成簷語已天明
뜨락 이끼의 물방울은 눈을 맑게 해주고 / 庭苔綠泫淸人眼
창밖의 푸른 산들은 객정을 격동시키네 / 窓岫靑攢動客情
거울에 비친 백발은 나이 이미 늙었는데 / 霜落鏡中年已暮
붓 밑엔 바람 일어라 새벽은 맑기도 하네 / 風生筆底曉來晴
여강엔 도롱이 입은 나그네 되기 좋거니 / 驪江好著簑衣客
언제나 외론 배 띄워 자유로이 다녀 볼꼬 / 何日孤舟自在行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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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저에 무지개 흐르고 두견도 우는 때에 / 華渚虹流杜又鳴
천지의 정기 축적되어 때맞춰 탄생하니 / 儲精天地應時生
스스로 어진 명 받아 재해가 응당 없기에 / 自貽哲命無災害
탄신에다 또 태평까지 함께 축하를 하네 / 共賀昌辰更泰平
역력한 산하는 대장으로 붙들거니와 / 歷歷山河扶大壯
밝디밝은 일월은 정명으로 비추나니 / 輝輝日月照貞明
소신은 붓 잡고 하얀 귀밑털 드리운 채 / 小臣珥筆垂絲鬢
절하고 시편을 올려 하례의 정 바치노라 / 拜獻詩章效賀情
[주D-001]화저(華渚)에 무지개 흐르고 : 상고 시대 제왕(帝王) 소호씨(少昊氏)의 어머니가 일찍이 무지개 같은 별이 화저에 흐르는 것을 보고 느낌이 있어 임신하여 소호씨를 낳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제왕의 탄생을 의미한다.
[주D-002]스스로 …… 받아 : 소 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고하기를 “왕께서 처음 일을 시작하시니, 아, 마치 막 태어난 자식이 처음 태어났을 때는 절로 어진 명을 품부받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늘이 어짊을 명할지, 길흉을 명할지, 오랜 국운을 명할지는 지금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데에 달렸습니다.[王乃初服 嗚呼 若生子 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今天其命哲 命吉凶 命歷年 知今我初服]”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대장(大壯) : 《주역》의 괘 이름인데, 이 괘는 양(陽)이 장성(壯盛)한 상(象)이므로, 전하여 시운(時運)이 태평함을 의미한다.
[주D-004]정명(貞明) : 해와 달이 운행(運行)의 법칙을 굳게 지킴으로써 항상 밝게 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일월의 도는 정하여 밝은 것이다.[日月之道 貞明者也]” 하였다.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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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나이와 함께 커져만 가건만 / 病將年兩大
가을이 새벽과 함께 서늘해지매 / 秋與曉俱涼
문득 정신의 빼어남이 상쾌하고 / 忽快精神秀
잠시 몸의 튼튼함을 회복하였네 / 暫蘇支體強
흰 구름은 북쪽 봉우리에 연했고 / 白雲連北巘
붉은 태양은 동쪽 뫼에 오르누나 / 紅日上東岡
다만 유연한 흥취를 얻을 뿐인데 / 只得悠然興
어찌 미치광이 행태를 발하리오 / 何曾發出狂
동년(同年) 곽 판서(郭判書)가 술을 가지고 방문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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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때문에 한가함이 좋기는 하나 / 因病閑來好
친구들은 늙을수록 드물어만 가네 / 同盟老漸稀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쁘거니 / 跫然已可喜
더구나 오래 못 만난 사람에게랴 / 況此久相違
두 항아리 술은 춘기를 돌이키고 / 朋酒回春氣
손 맞은 대청은 석양을 마주했네 / 賓軒對夕暉
소년 시절의 흥취가 발동했으니 / 少年情興動
꿈속에서도 옛 추억을 못 잊으리 / 夢裏亦依依
민형(閔兄)에게 부쳐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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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러 해 동안 누웠다 보니 / 我臥經年久
편지 한 장 전해 온 이도 없구려 / 人來尺字無
언제나 내가 그 이웃이 될는지 / 卜鄰何日是
풍월은 마냥 강호에 가득할 텐데 / 風月滿江湖
새벽에 안개가 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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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내 베개맡에 잠 못 이룬 가운데 / 枕上夜無夢
귀뚜라미 소리에 천지가 서늘한데 / 蛩聲天地涼
일찍 일어나서 먼 데를 바라보니 / 早起便縱目
고향 산천은 어이 그리 아득한고 / 鄕山何渺茫
때때로 안개가 자욱이 일어나서 / 時時霧也作
담장 마주한 듯 깜깜하게 하더니 / 使我如面牆
조물주는 나를 놀리기라도 한 듯 / 造物戲我耳
밝은 태양이 동쪽 뫼에 오르는지라 / 白日生東岡
안개 안 걷고도 하늘을 보게 되어 / 睹天不待披
만물이 모두 광명을 입게 되었네 / 萬物皆蒙光
생각 잊고 출처를 자연에 맡기련다 / 忘懷任出處
어느 곳인들 요순 시대가 아니랴 / 何處非虞唐
추흥(秋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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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도다 천지의 인함이여 / 大哉天地仁
우리 백성을 쌀밥 먹여 살리시니 / 粒我生我民
이 때문에 우리 백성 오래 살아서 / 所以引性命
이를 인해 인륜을 밝히게 되었네 / 因之明彝倫
여기서 진리가 남김없이 드러나 / 及玆盡呈露
굳이 순순히 말할 것도 없는지라 / 不必更諄諄
성인이 하늘 대신 법칙을 세우니 / 聖人代立極
정치와 교화가 찬연히 베풀어졌네 / 政敎粲以陳
옛 성인을 감개히 생각하면서 / 慨念古作者
지금 사람에게 더욱 기대하노니 / 益望今之人
천지의 은혜를 갚으고자 할진댄 / 欲報天地恩
과실을 알아서 스스로 개선해야지 / 知過當自新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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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야로 돌아가지 못하고 / 我不向田野
농사를 남의 손에만 맡기었는데 / 終畝徒責人
흰 쌀밥이 문득 밥상에 오르니 / 玉粒忽在案
맑은 향기가 건에 가득 풍기네 / 淸香吹滿巾
일 년 내내 직접 농사를 지은 자는 / 終年沾體者
새것만 먹고 묵은 건 안 먹는지라 / 食新不食陳
갑자기 마음이 즐겁지 않았다가 / 忽然心不樂
생각 끝에 내 자신을 책망하노라 / 念之責我身
백성들이 벼슬아치를 먹이면서 / 野人養君子
바라는 건 어진 정사뿐이거늘 / 所望其政仁
조정에서 은택도 내리지 못하고 / 立朝不降澤
오늘날 오늘의 백성을 잊은 채 / 今日忘今民
시위소찬에 먹을 것만 탐하면서 / 素飡與徒餔
나만 홀로 오히려 머뭇거리다니 / 我獨猶逡巡
[주D-001]일 년 …… 먹는지라 : 《시 경》 소아(小雅) 보전(甫田)에 “헌칠한 저 큰 밭에, 해마다 만 이랑 곡식을 걷도다. 묵은 곡식은 헐어다가, 우리 농부를 먹이니, 자고로 내리 풍년일세.[倬彼甫田 歲取十千 我取其陳食我農人 自古有年]” 하였는데, 그 전(傳)에 의하면 “높은 이는 새 곡식을 먹고, 농부는 묵은 곡식을 먹는다.[尊者食新 農夫食陳]” 하였다.
새벽에 안개가 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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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아침 안개가 자욱이 하늘을 가리어라 / 連朝霧暗蔽靑天
쑥대문 닫고 앉았으니 생각이 아득하네 / 深閉蓬窓思渺然
강가의 두어 산봉우리 그림 같은 곳엔 / 江上數峯如畫處
응당 낚싯줄 드리우던 자리를 잃었으리 / 也應迷失釣絲前
만물 생육은 예부터 하늘에 달렸거니와 / 生育由來有彼天
산중의 표범은 원래 모두 알록달록한데 / 山中豹也儘斑然
누가 알랴 이 안개가 공연한 게 아니라 / 誰知此霧非徒爾
딴 문채로 변화해 되레 전보다 나아질 줄 / 變得他文却勝前
밝디밝은 해와 달이 구중천에 둥실 떠서 / 明明日月九重天
구름 안개가 다시 자욱해질 길이 없거니 / 雲霧無從更鬱然
괜히 자고로 헤치는 손이 있다고 하지만 / 謾道古來披有手
간서를 누가 다시 상께 진달할 것 있으랴 / 諫書誰復更陳前
[주D-001]산중(山中)의 …… 줄 : 《열 녀전(列女傳)》에 의하면, 남산(南山)에 검은 표범이 있는데, 안개가 낀 날은 밖에 나와 먹이도 먹지 않는 까닭은 바로 자기 모문(毛文)을 더럽히지 않고 윤택하게 잘 보전하기 위해서라고 하였고, 반면 《주역》 혁괘(革卦) 상륙(上六)에는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君子豹變]” 하였는데, 이는 곧 어린 표범이 자라면서 점차로 모문이 더욱 빛나고 윤택해짐을 말한 것으로, 이는 또한 사람의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성행(性行)이 일신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른 말이다.
느낌이 있어 한 수 지어서 백지 염사(伯至廉使)에게 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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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을 세우긴 하늘에 오르기 같고 / 立德如登天
공을 세우자면 내가 이미 쇠했고 / 立功吾已衰
말은 남겨도 전할 만하지 못한데 / 立言不足傳
가을 벌레도 스스로 때를 알아서 / 秋蟲自知時
서리와 이슬이 날로 차가워지매 / 霜露日以嚴
요란히 울어 사람을 슬프게 하네 / 喞喞令人悲
방금 내 번민이나 풀 따름이지 / 方將遣吾悶
어찌 후손 위할 계책을 생각하랴 / 豈念孫謀貽
봉황새는 이미 멀리 떠났거니와 / 鳳鳥去已遠
기린은 어찌 그리도 더디 오는고 / 麟也來何遲
유유하여라 군자의 이 마음을 / 悠悠君子心
후세에 알아줄 이가 그 누구일꼬 / 後來知者誰
[주C-001]백지 염사(伯至廉使) : 백지는 당시 안렴사(按廉使)였던 전오륜(全五倫)의 자이다. 그는 공양왕 때 벼슬이 형조 판서에 이르렀고, 고려가 망한 뒤에는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은거했다고 한다.
[주D-001]덕을 …… 못한데 : 춘 추 시대 노(魯)나라 대부(大夫) 숙손표(叔孫豹)의 말에 “가장 높은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요, 그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이요, 또 그다음은 훌륭한 말을 남기는 것이라, 아무리 오래되어도 폐해지지 않으면 이것을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太上有立德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 雖久不廢 此之謂不朽]”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襄公24年》
[주D-002]봉황새는 …… 떠났거니와 : 가 의(賈誼)의 〈조굴원부(弔屈原賦)〉에 “봉황새는 훨훨 높이 날아가서, 본디 스스로 제 몸 이끌어 멀리 떠난다.[鳳縹縹其高逝兮夫固自引而遠去]”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난세(亂世)를 피해 은거하는 현자(賢者)를 비유한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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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잠을 쉬이 깨었는데 / 疇昔夢易破
내 삭신이 하도 쑤시고 아픈지라 / 我骨多辛酸
가을밤이 길다는 걸 점차 알겠네 / 漸知秋夜永
이슬 속에 풀벌레들 요란스럽게 / 蟲聲叢露溥
몹시 슬프게 울고 또 울어대어라 / 惻惻復惻惻
사를 위한 건가 관을 위한 건가 / 爲私其爲官
군자가 은둔의 회포를 깊이 안고 / 君子抱幽貞
송백과 함께 추운 겨울을 나면서 / 松柏歲將寒
호연히 긴 탄식을 발하노니 / 浩然發長嘆
천지가 넓다고 그 누가 말했던고 / 誰謂天地寬
아침 해가 돋아 내 뜰에 비칠 제 / 朝日照我庭
홀로 앉아 의관을 정제하고 나니 / 獨坐整衣冠
사람과 경계가 다 조용한 가운데 / 人與境俱靜
흰 구름이 용수산에서 일어나누나 / 白雲生龍巒
[주D-001]이슬 …… 건가 : 진 혜제(晉惠帝)가 천성이 혼암(昏暗)하여, 일찍이 태자(太子)로 있을 때 밖에 나갔다가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는 옆 사람에게 “저것이 관(官)의 개구리냐, 사가[私]의 개구리냐?”라고 묻자, 시신(侍臣) 가윤(賈胤)이 대답하기를 “관의 땅에 있는 놈은 관의 개구리이고, 사가의 땅에 있는 놈은 사가의 개구리입니다.” 하니, 명하여 이르기를 “관의 개구리에게는 늠료(廩料)를 지급하라.” 하였고, 그가 즉위한 뒤에는 또 일찍이 화림원(華林園)에서 놀다가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좌우 신하들에게 묻기를 “저 개구리가 관을 위해서 우느냐, 사가를 위해서 우느냐?” 하자, 혹자가 대답하기를 “관의 땅에 있는 놈은 관을 위해서 울고, 사가의 땅에 있는 놈은 사가를 위해서 우는 것입니다.”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송백(松柏)과 …… 나면서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해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에 시듦을 아는 것이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한 데서 온 말로, 온갖 어려움에도 변치 않는 군자(君子)의 꿋꿋한 절조(節操)를 의미한다.
장 서경(張西京)이 건어(乾魚)를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붓을 달려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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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더위에 가난한 살이 물에 밥 말면서 / 炎熱貧居水飯時
얼린 생선 말린 것이 매양 생각났는데 / 凍魚乾者每相思
가을에 얻어 먹어도 역시 좋기만 하군 / 秋來得賜亦不惡
긴 허리 살살 씹으며 짧은 시를 읊노라 / 細嚼長腰吟短詩
오찬(午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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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껍질은 동실동실 콩 껍질은 기다란데 / 栗殼團團豆甲長
쪄서 밥상 위에 올리니 빈 당이 훤하구려 / 烹呈案上照虛堂
법래는 일찍부터 유가의 맛을 잘 알기에 / 法來早識儒家味
소순을 주어봤자 향기론 걸 모르고말고 / 蔬笋與之無別香
노쇠하여 구미 맞추고픈 게 마음 아파라 / 潦倒自傷謀適口
기름진 음식으로 배 채우길 누가 꺼릴꼬 / 膏腴誰忌得充腸
점심 들면서 천지 은혜에 다시 감사하고 / 午窓更感乾坤惠
배 두드리며 석양까지 소리 높여 읊노라 / 鼓腹高吟到夕陽
[주D-001]법래(法來)는 …… 모르고말고 : 법래는 목은과 서로 잘 아는 승려인데, 승가(僧家)에서는 본디 채소나 죽순[蔬笋] 등을 위주로 하여 소식(蔬食)을 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관군(官軍)이 왜선(倭船)을 나포했다는 소식을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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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꺾는 덴 꾀가 제일이거니와 / 挫敵謀爲最
군사를 내는 덴 율법이 착해야지 / 行師律要臧
다만 걱정되는 건 필사만 알다간 / 祗憂知必死
피해가 보통보다 갑절 커짐이로세 / 爲害倍於常
쌓인 죄악은 하늘이 초멸하겠지만 / 稔惡天用勦
잔폭한 자 이겨야 나라가 번창하리 / 勝殘邦乃昌
밝디밝은 종사의 영령이 계시거니 / 明明宗社在
우리의 위무를 떨쳐야 하고말고 / 我武政惟揚
[주D-001]군사를 …… 착해야지 : 《주역》 사괘(師卦) 초육(初六)에 “초육은 군사를 내되 율법으로 할 것이니, 착하지 않으면 흉하리라.[初六師出以律 否臧 凶]” 한 데서 온 말이다.
재 추(宰樞)가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숙배(肅拜)하였으니, 세자의 탄생을 하례한 것이다. 그들이 물러 나온 다음에는 제군(諸君)이 숙배하는데, 마침 부원군(府院君)들이 모두 나오지 않았으므로, 색(穡)의 품계가 삼중(三重)인 까닭에 사양하지 못하고 반항(班行)의 맨 앞에 서게 되었다. 예(禮)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부끄럽기 그지없어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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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대 가운데 번창한 즈음이요 / 百世繁昌際
삼한에 경하하는 처음이로다 / 三韓喜慶初
조관의 반열에선 축하를 올리고 / 朝班陳燕賀
봉군들은 기뻐서 팔짝팔짝 뛰네 / 封邑效鳧趨
칭송하는 시가는 유자들이 짓고 / 頌什諸儒撰
세자 탄생은 사관이 기록하겠지 / 生辰太史書
못난 자신이 그지없이 부끄러운데 / 粃糠深自愧
우졸한 나까지 상부를 열다니 원 / 開府到迂愚
가랑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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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가을이 지금 벌써 절반이라 / 淸秋今已半
가랑비 또한 많이 내리질 않누나 / 微雨又無多
태평성대에 버려짐은 다행하나 / 自幸明時棄
노년의 신세를 어찌한단 말인가 / 其如老境何
공명은 수주대토의 꼴이거니와 / 功名守株兔
신세는 흡사 등불 범한 나방일세 / 身世撲燈蛾
가자면 어찌 갈 곳이 없을까보냐 / 欲去豈無地
푸른 도롱이에 비낀 바람 불겠지 / 斜風吹綠簑
푸른 도롱이 입긴 어디가 좋을꼬 / 綠簑何處好
가랑비 자욱이 내리는 강촌이라네 / 微雨滿江村
이끼 낀 오솔길은 한창 미끄럽고 / 滑却莓苔逕
버들 드리운 마을은 어둑하겠지 / 暗於楊柳村
낚시터는 아직도 대낮 같을 텐데 / 釣磯猶白晝
시 읊는 자리는 또 황혼이로구나 / 詩榻又黃昏
다만 이 몸 한적하게 지내는 건 / 只是身閑適
모두가 성명한 임금의 은혜로세 / 無非明主恩
임금 은혜가 뼛속 깊이 사무쳐라 / 主恩深到骨
문을 닫고 그저 한가로이 졸다가 / 閉戶且閑眠
갑자기 비 뿌리는 광경을 만나니 / 忽得雨洒地
가을 기운이 하늘 가득 서늘하네 / 颯然秋滿天
돈 있으면 즉시 술을 받아 마시고 / 有錢卽沽酒
시구 얻으면 이내 편을 이루어라 / 得句旋成篇
다만 성정이나 즐겁게 할 뿐이지 / 陶寫性情耳
어찌 애써 성현 되기를 희망하랴 / 何勞希聖賢
[주D-001]푸른 …… 불겠지 : 당(唐)나라 때 은사(隱士)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대삿갓 쓰고 푸른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것 없고말고.[靑箬笠 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 한 데서 온 말이다.
8월 15일에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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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가 하늘을 찌르는 곳에 / 豪氣凌雲處
어찌 천지가 너른 줄을 알랴 / 那知天地寬
병들어도 내 붓은 던지기 어렵고 / 病難投我筆
늙어도 벼슬은 그만두지 못하네 / 老不掛吾冠
추흥은 고향 생각과 함께 동하고 / 秋與鄕情動
밤은 주방 말소리에 깊어 가누나 / 夜從廚語闌
향 사르니 신명이 강림한 듯해라 / 焚香如降格
우리 처자를 단란하게 해주소서 / 妻子願團欒
중 추일(中秋日)에 흐리고 비가 오는데, 날이 개기를 기도하자니 하늘이 스스로 갤까 염려되고, 하늘이 만일 비를 내리려고 한다면 기도해 봤자 또한 응험이 있기를 기필할 수 없으므로, 이에 어찌할 바를 몰라서 다만 하늘의 명을 따르기로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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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우뚝 앉아 잦은 음청을 겪었거니 / 病中危坐數陰晴
더구나 중추의 밝은 달빛을 기대할쏜가 / 況待中秋月色明
장맛비가 손을 놀라게 할 뿐만이 아니요 / 宿雨非徒驚客耳
하늘이 혹 인정에 순응할지도 모를레라 / 老天終或順人情
수시로 흥겨우면 경물 완상도 하거니와 / 隨時發興亦玩物
경계 만나 생각 잊으면 양생도 함직하네 / 遇境忘懷堪養生
유독 사랑스러운 건 의루의 장구가 있어 / 獨愛倚樓長句在
젓대 소리 울린 곳에 기러기 떼 비낌일세 / 笛聲飄處鴈行橫
[주D-001]유독 …… 비낌일세 : 당 (唐)나라 때 시인 조하(趙嘏)의 〈조추(早秋)〉 시에 “성긴 별 몇 점 아래 기러기는 변새에 비껴 날고, 긴 젓대 한 소리에 사람은 누각에 기대었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 한 데서 온 말인데, 두목(杜牧)이 일찍이 조하의 이 시를 보고는 몹시 좋아하여 끝없이 음미하면서 조하를 ‘조의루(趙倚樓)’라 호칭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스스로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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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바람 소리는 창문을 움직이고 / 樹聲風動窓
가을 벌레 소리는 당에 가득한데 / 蟲聲秋滿堂
그 가운데 시 읊는 소리가 있으니 / 中有吟詩聲
끊겼다 이어졌다 음률과는 다르네 / 斷續非宮商
천지간엔 지극한 음악이 있으니 / 天地有至樂
자연 그대로 억양이 하도 많아서 / 自然多抑揚
사람을 감동시키기 매우 용이해 / 感人也甚易
사물에 부쳐 금석 소리를 내나니 / 寓物以鏗鏘
시를 읊조려서 악보를 만들고 / 詩以作爲譜
그것을 기록해 짧은 문장 이루면 / 寫之成短章
하늘 아래 넓고 적막한 공간이 / 太空寂寥處
바로 군동의 고장이 되고말고 / 乃爲羣動鄕
누가 알리오 내 마음이 고요하여 / 誰知我心靜
위아래 하늘땅과 똑같은 줄을 / 上下同玄黃
걱정이 없음은 바로 성인이요 / 無悶是聖人
걱정을 푸는 건 현자의 일이요 / 遣之賢者事
종신토록 마냥 걱정만 하는 건 / 戚戚以終身
이것이 바로 소인일 뿐이라네 / 斯爲小人耳
나의 학문은 본래부터 거칠고 / 我學本空疏
나의 행동은 어긋남이 많거니 / 我行多乖異
무슨 소리가 귀에 닿기만 하면 / 有聲觸于耳
망녕된 행동을 어찌 다시 그치랴 / 妄動寧復止
꾀꼴 소리는 내 정신 융화시키고 / 鶯語融吾神
벌레 울음은 내 뜻을 슬프게 하네 / 蟲鳴悽我志
나는 곧 내 자취만 밟는 동안에 / 我則踐我迹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만 가누나 / 歲月其逝矣
억의 경계가 태양처럼 빛나거니 / 抑戒皎如日
아직 자포자기 않기를 기약하노라 / 尙期無自棄
[주D-001]군동(羣動) : 각종 사물이 다 같이 활동하는 광경을 이른 말이다.
[주D-002]걱정이 …… 성인(聖人)이요 : 《주 역》 건괘(乾卦) 초구(初九)에 “초구는 숨은 용이니 쓰지 말 것이다.[初九 潛龍勿用]” 한 데 대하여, 문언(文言)에서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용의 덕을 지니고 숨은 자이니, 세상 따라 뜻을 바꾸지 않고 이름을 이루지 않아서, 세상을 피해 숨어 살되 걱정함이 없으며, 남에게 알아줌을 받지 못해도 걱정함이 없어, 즐거우면 행하고 근심스러우면 피하여, 결단코 그의 뜻을 흔들 수 없는 것이 숨은 용이다.[龍德而隱者也不易乎世 不成乎名 遯世無悶 不見是而無悶 樂則行之 憂則違之 確乎其不可拔 潛龍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나는 …… 동안에 : 성 인의 자취를 본받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만 살아왔음을 의미한다. 자장(子張)이 선인(善人)의 도(道)를 묻자, 공자가 이르기를 “성인의 자취를 본받지 않으면 또한 성인의 지경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不踐迹 亦不入於室]”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주D-004]억(抑)의 경계 : 억 은 《시경》 대아(大雅)의 편명인데, 춘추 시대 위 무공(衛武公)이 친히 이 시를 지어서 악공(樂工)에게 날마다 곁에서 이 시를 노래하게 하여, 스스로 위의(威儀)와 공경(恭敬)을 다하여 조금이라도 방심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경계했던 데서 온 말이다.
오후에 날이 과연 개므로 매우 기뻐서 장차 제정(霽亭)을 찾아뵙고 함께 달을 완상하려면서 앞의 운(韻)을 사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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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가 무슨 맘으로 갑자기 개게 했나 / 眞宰何心忽放晴
흰 구름은 조각조각 태양은 밝기도 하네 / 白雲片片日輪明
늙고 병든 쇠퇴한 나를 응당 불쌍히 여겨 / 應憐老病摧頹物
아침저녁 답답한 정을 위로코자 함이리 / 欲慰朝昏鬱結情
술 대해선 가을 기운 깃듦을 이미 알았고 / 對酒已知秋氣集
누각에 올라선 또 달 나오기를 기다리네 / 登樓更待月華生
제정을 누가 혹 불러갔는지 모르겠어라 / 霽亭未識誰招去
물 건너 연정 마을 동산이 제정 댁인데 / 硯井東山隔水橫
경상 염사(慶尙廉使)가 은어(銀魚)를 보내 준 데 대하여 받들어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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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으로 친밀한 마음 전했는데 / 素鯉傳心密
은어는 두 눈을 환히 비추누나 / 銀魚照眼明
영남의 풍경이 아무리 좋다 한들 / 嶺南風日好
어찌 이곳 도성만이야 할라던가 / 何似鳳凰城
어 제 술을 준비하여 제정(霽亭) 선생을 찾아뵈려고 미리 사람을 보내서 동정을 살피게 하였는데, 선생이 성묘(省墓)를 가서 아직 안 돌아왔다고 하였다. 밤이 되어서는 날이 또 흐리고 흥취도 다하여 앉아서 졸다가 깨어 보니, 밝은 달이 창에 가득하였다. 그래서 나가보자 하니 야금(夜禁)을 범하게 되고, 또는 선생이 초청을 받아서 출타를 했거나, 혹은 자서(子壻)들이 후당(後堂)에서 연회(燕會)를 하느라 외부의 손님을 맞기가 어려울까도 싶어서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책력(冊曆)을 가져다 보니, 16일 밑의 주(註)에 보름[望]이라고 쓰여 있어 또 매우 기뻐하였다. 어제의 불행은 곧 하늘이 시킨 것이었다. 달은 반드시 보름이 되어야 둥글어지는 것이요 둥글어지면 지극히 밝은 것이므로, 흔연히 그 사실을 기록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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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절을 맞아 제정을 알현코자 했으나 / 欲向中秋謁霽亭
뜬구름이 나를 붙잡아 산문을 닫았네 / 浮雲留我掩山扃
장군 또한 패릉위의 물음을 두려워했는데 / 將軍亦怕覇陵問
종사는 되레 초택의 깬 이를 성내게 했지 / 從事還嗔楚澤醒
공연히 팽선의 정 친후함만 부러워할 뿐 / 空羨彭宣情昵厚
처지는 태백의 외론 그림자와 흡사하네 / □如太白影伶仃
다행히도 오늘 밤엔 달이 지극히 둥그니 / 幸哉今夕圓之至
그림 병풍에 밝은 촛불 비출 것 없고말고 / 銀燭何須照畫屛
산중 집과 물가 정자엔 가을이 가득하고 / 秋滿山堂與水亭
태평성대라 바깥 문도 잠그지 않은 채 / 太平外戶不曾扃
향인들은 기뻐하며 서로 부르고 따르고 / 里閭詡詡相徵逐
술잔은 연달아 마셔 함께 취하고 깨누나 / 樽酒翩翩迭醉醒
오늘 밤따라 달은 유독 밝고 깨끗한데 / 月向此宵偏皎潔
나만 홀로 이 세상에 외롭기 그지없네 / 我於斯世獨伶仃
인생의 만나고 헤어짐도 다 운명이거니 / 人生聚散非無數
앞으로는 우리 서로 담장을 철거하세나 / 且願從今撤障屛
한 그루 큰 소나무는 계정을 표하는데 / 一樹長松表繼亭
달은 중천에 이르러 사립문을 비추누나 / 月中天處照柴扃
뜬구름 흐르는 물은 사람과 함께 가는데 / 浮雲流水人俱逝
조용히 앉아 읊조리는 나만 홀로 깨었네 / 靜坐高吟我獨醒
제비 기럭은 각각 날아 만나기 어렵지만 / 燕鴈各飛難邂逅
토끼 두껍은 함께 있거니 어찌 외로우랴 / 兔蟾相守豈伶仃
사물 이치는 아득하여 분석하기 어려운데 / 冥冥物理難分析
향 연기만 피올라 짧은 병풍에 썰렁하네 / 香篆煙生冷短屛
[주D-001]장군(將軍) …… 두려워했는데 : 한 (漢)나라의 장군 이광(李廣)이 일찍이 득죄(得罪)하여 서인(庶人)이 되어서 자기 집에 있을 때, 어느 날 밤에 한 기병(騎兵)을 데리고 남을 따라 전간(田間)에 나가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도중 패릉정(覇陵亭)에 이르렀을 적에 패릉위(覇陵尉)가 취하여 이광을 못 가게 하므로, 이광의 기병이 패릉위에게 “옛 이 장군[故李將軍]이시다.” 하자, 패릉위가 말하기를 “지금 장군[今將軍]도 밤에 다닐 수 없는데, 어찌 옛 장군이 밤에 다닐 수 있단 말이냐.” 하고, 끝내 이광을 패릉정 아래에 재웠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종사(從事)는 …… 했지 : 종 사는 본디 관명(官名)인데, 여기서는 곧 술의 별칭인 청주종사(靑州從事)의 약칭이고, 초택(楚澤)의 깬 이란 바로 전국 시대 초 회왕(楚懷王)의 충신(忠臣)으로 일찍이 참소를 입고 쫓겨나 택반(澤畔)에 행음(行吟)하면서 울분을 토로했던 굴원(屈原)을 가리키는데, 그의 〈어부사(漁父辭)〉에 “뭇사람이 다 취했거늘 나 홀로 깨었다.[衆人皆醉我獨醒]”는 말이 있으므로, 그의 본의(本意)와는 달리 이 말을 가지고 그가 술을 싫어했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3]팽선(彭宣)의 정 친후함 : 한 (漢)나라 때 경학자(經學者)인 장우(張禹)의 제자 중에는 팽선이 가장 뛰어났는데, 그가 매양 스승을 뵈러 갔을 때마다 장우는 그를 맞이하여 공경히 대하면서 종일토록 경의(經義)를 강론하고, 술과 고기를 접대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태백(太白)의 외론 그림자 : 자가 태백인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 시에 “술잔 들고 밝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 마주해 세 사람 이루었네.[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태평성대라 …… 채 : 대 도(大道)가 행해지는 요순(堯舜) 같은 시대를 말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대도가 행해질 때에는 천하를 천하 사람의 것으로 하여……모략이 일어나지 않고 도적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바깥 문도 잠그지 않고 살았으니, 이것을 대동이라 하는 것이다.[大道之行也 天下爲公……謀閉而不興 盜竊亂賊而不作 故外戶而不閉 是謂大同]” 한 데서 온 말이다. 《禮記 禮運》
[주D-006]계정(繼亭) : 길창군(吉昌君) 권적(權適)의 정자 이름이다.
[주D-007]제비 …… 어렵지만 : 제 비와 기러기는 모두 철새로서, 제비는 춘분(春分) 때에 오고 기러기는 춘분 때에 북쪽으로 날아가며, 제비는 추분(秋分) 때에 가고 기러기는 추분 때에 남쪽으로 날아와서, 가고 오는 것이 때와 장소가 각각 다르므로, 양쪽에 떨어져 있어 서로 만날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8]토끼 …… 외로우랴 : 토끼와 두꺼비는 모두 ‘달 속의 정기[月中精]’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이날에 이 판사(李判事)의 아들이 문밖에서 제정(霽亭)을 전송하고 인하여 누추한 내 집에 왔으므로, 이에 몹시도 서로 만나기 어려움을 스스로 탄식하면서 한 수를 읊어 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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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이 의당 노선생을 섬겨야 하는데도 / 後生當事老先生
이렇게 못 만나니 문득 감정이 격동되네 / 値此乖離忽動情
행차가 구름 그림자 따라 멀어졌으니 / 行李自隨雲影遠
오늘 밤의 달빛 밝음을 어디에 물을꼬 / 今宵誰問月華明
선생은 칠순이 넘어도 아직 강건하거늘 / 已過七秩尙強健
나는 겨우 오십에 눈이 장님만 같다네 / 才到五旬如晦盲
비록 십분 둥근 달을 본들 어디에 쓰랴 / 縱得十分圓底用
삼인 이룬 태백하고나 뜻을 같이하련다 / 成三太白却同盟
[주D-001]삼인(三人) 이룬 태백(太白) : 자가 태백인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 시에 “술잔 들고 밝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 마주해 세 사람 이루었네.[擧杯邀明月對影成三人]” 한 데서 온 말이다.
맹균(孟畇)에게 글을 읽히러 해안사(海安寺)로 보내면서, 앞서 장손 맹유(孟㽥)에게 글을 읽히러 진관사(眞觀寺)로 보낼 때에 지은 시운(詩韻)을 사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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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응의 법칙 가운덴 두 마음이 없나니 / 相應法中無二心
대현들이 당일에 이걸 애써 찾았었는데 / 大賢當日苦相尋
누가 우세군으로 하여금 교화를 행해서 / 誰敎祐世君行化
해안사의 공덕 숲을 만들어 내게 했는고 / 化出海安功德林
[주D-001]상응(相應)의 …… 없나니 : 상응은 불교에서 상등 화합(相等和合)의 뜻으로, 즉 마음[心]과 마음 작용[心所]의 관계가 서로 화합하여 분리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주D-002]우세군(祐世君) : 자은종(慈恩宗)의 선승(禪僧) 종림(宗林)의 호칭인데, 그가 일찍이 해안사(海安寺)에서 불법(佛法)을 강설(講說)하였다.
어제 우세군(祐世君)의 유가 도장(瑜伽道場)을 보고 돌아와서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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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성 서쪽 해안사에 가서 노닐었는데 / 昨向城西游海安
유가종 교주의 입이 파도가 치는 듯했네 / 瑜伽敎主口翻瀾
명사들은 운집하여 오묘한 진리 탐구하고 / 名師雲集探微奧
불법은 바람처럼 행해져 험난을 소멸하네 / 大法風行掃險難
이끼엔 비가 뿌리어 얼룩덜룩 젖어 들고 / 雨洒苔痕斑更濕
산빛엔 구름 걷히어 푸르고도 차가웠지 / 雲收山色翠仍寒
늘그막까지 자손 위한 계책을 못 면한 채 / 老來不免兒孫計
머리 위의 세월만 공처럼 급히 달리누나 / 頭上光陰如走丸
[주C-001]유가 도장(瑜伽道場) : 유가는 불교에서 말하는 상응(相應)의 뜻으로, 즉 상응의 법칙을 강설하는 도량을 말한다.
부생(浮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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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인생을 어찌 족히 믿으랴 / 浮生安足恃
늙음과 병이 다투어 침범하는걸 / 老病競侵尋
두 귀밑엔 세월이 쌓여가거니와 / 日月環雙鬢
이 한 마음은 천지에 맹세하노라 / 乾坤矢一心
맑은 소매 바람엔 지팡이를 짚고 / 袖風晴倚杖
밤이슬 맞으며 거문고도 타노니 / 衣露夜鳴琴
오만 생각이 이로부터 조용해져라 / 萬慮自此靜
아득한 하늘땅 깊디깊은 이곳에 / 渺然天地深
선비로 천하 통일 만나 나갔더니 / 士値同文出
스승이 일찍이 나를 찾아 주었는데 / 師曾命駕尋
미처 천하를 주유해보지 못한 채 / 未周天下迹
다시 해동으로 올 마음 품었었네 / 還抱海東心
홀로 앉으니 산은 문 앞에 당했고 / 獨坐山當戶
시 읊으니 달은 거문고를 비추네 / 高吟月照琴
뿌연 먼지가 날아들지 못하거니 / 紅塵飛不到
하필 그윽한 곳 의탁할 것 있으랴 / 何必托幽深
[주D-001]밤이슬 …… 타노니 : 두보(杜甫)의 〈야연좌씨장(夜宴左氏莊)〉 시에 “바람 숲엔 초승달이 떨어졌는데, 옷에 이슬 맞으며 거문고를 타네.[風林纖月落 衣露淨琴張]”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백지 염사(伯至廉使)를 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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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에 수레와 기마 구름처럼 모이어라 / 東門車騎鬧如雲
위풍이 바닷가에 떨쳤음은 벌써 알았네 / 已見威風振海濆
비웃지 마소 목은 늙은이 몹시 노쇠해 / 莫笑牧翁衰老甚
공연히 흥폐를 갖고 사문에 기대한다고 / 謾將興廢望斯文
말[馬]이 없어 나가지 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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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이 편히 앉았긴 쉬우나 / 貧家安坐易
급한 때엔 문득 당황하게 되나니 / 緩急却蒼黃
그 누가 사공의 말을 보내줬던고 / 誰送司空馬
창려도 뜻이 아주 큰 이는 아닐세 / 昌黎非大狂
문 닫으면 그대로 풀빛이고요 / 閉門從草色
안석 기대면 또한 산 빛이로다 / 隱几亦山光
본래부터 속진의 누가 없거늘 / 自是無塵累
어찌 일찍이 묘향을 맡았던가 / 何曾聞妙香
[주D-001]그 …… 아닐세 : 창 려(昌黎)는 곧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진 한유(韓愈)를 가리키는데, 한유가 일찍이 비서(祕書) 장적(張籍)이 사공(司空) 배도(裴度)로부터 말[馬]을 선사받은 것을 하례하는 시를 지어, 그것을 무척이나 부러워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韓昌黎集 卷10》
[주D-002]묘향(妙香) : 사찰에 풍기는 미묘한 향기를 가리킨다.
민자복(閔子復)이 와서 말하기를 “이미 묘학(廟學)의 비석을 얻었으니, 곧 관중(館中)에 비치할 것이다.”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조정에서 문(文)을 숭상하는 아름다움이 이와 같으니, 사문(斯文)이 흥기하겠구나.” 하고, 한 수를 읊어 이루었으니, 8월 19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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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암의 동쪽은 물이 성처럼 둘러 있고 / 馬巖東畔水如城
한 산봉우리 앞엔 지세가 편평도 하지 / 一朶峯前地勢平
우리 도의 성쇠는 국체에 관계되고요 / 吾道興衰關國體
왕풍의 오르내림은 민정에 근본하나니 / 王風升降本民情
시서 예악은 하늘땅처럼 거대하거니와 / 詩書禮樂乾坤大
일월성신을 살펴야만 정교가 밝아지리 / 日月星辰政敎明
글 숭상한 때 만나서 몸은 다 늙었으니 / 幸値右文身已老
다시 병든 눈 닦고 제생을 가르치련다 / 更揩病眼敎諸生
[주C-001]묘학(廟學) : 문묘(文廟) 안에 있는 학교를 말한다.
아이들의 장난을 보고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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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를 걸터타고 당으로 올라오려다 / 竹馬驕騰欲上堂
또 뜰 가로 돌아가서 다시 방황하더니 / 又還庭際更彷徨
갑자기 죽마를 달려 동산으로 가서는 / 忽然馳向東山去
그곳에서 배와 밤을 얻어서 먹는구나 / 梨栗從他乞得嘗
좋은 자질 타고난 데다 물욕도 겸했지만 / 美質稟來幷物欲
양지 양능 발휘한 곳은 바로 강상이로세 / 良知發處卽綱常
대인이나 어린애가 처음은 똑같은 건데 / 大人赤子初非二
병 앓는 연래에 귀밑털이 희어져버렸네 / 抱病年來鬢似霜
돌아가기를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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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옥 벗어던진 번천이 만청부를 지어라 / 落佩樊川賦晚晴
반쯤 닫은 이끼 낀 사립 청고함이 넘치네 / 苔扉半掩有餘淸
몸은 병과 맞서서 오래 버티기 어렵지만 / 身爲病敵難持久
마음은 가난과 편안해 꾸준히 지켜왔었지 / 心與貧安已守成
웅포의 양쪽 가엔 산빛이 어우러졌겠고 / 熊浦兩邊山色合
여강의 몇 굽이엔 달빛이 휘영청 밝으리 / 驪江幾曲月華明
어찌하면 남은 생에 벼슬 버리고 떠나서 / 何當乞得殘生去
도롱이 삿갓 외론 배로 자유로이 다녀 볼꼬 / 簑笠孤舟自在行
가을 기운 엄한 데다 새벽 또한 맑으니 / 秋氣稜稜曉更晴
방촌의 밝은 마음이 십분 청쾌도 해라 / 靈臺方寸十分淸
이미 백발은 소원처럼 달게 여겨왔는데 / 已甘白髮如情願
더구나 청산은 나와 서로 친해졌음에랴 / 況是靑山與目成
사물 이치는 고래로 둘 다 클 수 없거니 / 物理古來無兩大
풍류는 근세에 쌍명재가 으뜸이고말고 / 風流近世有雙明
작은 창 앞에 하루 종일 유연한 흥취는 / 小窓終日悠然興
또 일엽편주 띄워 만리를 가고픔일세 / 又在扁舟萬里行
유포에 가을 기운 깊고 비가 잠깐 개니 / 柳浦秋深雨乍晴
수촌과 산중 별장 경치가 더욱 깨끗하네 / 水村山墅景彌淸
천심은 다 드러나서 나락 풍년이 들었고 / 天心盡露嘉禾熟
시 짓는 눈은 말끔하여 산 그림 이루어라 / 詩眼無塵活畫成
언덕 너머 끊긴 연기는 풀 위에 멀리 떴고 / 隔岸斷煙浮草遠
구름 새나온 석양빛은 강을 밝게 비추네 / 漏雲殘日照江明
나가 노는 게 정히 어려운 일도 아니거늘 / 出游定是非難事
다만 이끼 낀 뜨락을 홀로 거닐 뿐이로세 / 只向苔庭獨自行
[주D-001]패옥 …… 지어라 : 번 천(樊川)은 당(唐)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호이다. 그가 가을날에 지은 〈만청부(晚晴賦)〉에 “나 같은 사람은 그 어떻다고 할까. 관과 패옥 벗어던져서, 세상과 서로 소원해지고, 세상 오시하며 한가로이 지내서, 참으로 그 어리석음을 좇아 은거하는 자인저.[若予者謂何如 倒冠落佩兮 與世疏闊 敖敖休休兮 眞徇其愚而隱居者乎]”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쌍명재(雙明齋) : 고 려 중기의 문신(文臣) 최당(崔讜)의 호이며, 또는 같은 연대의 문신인 이인로(李仁老)의 호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자세하지 않다. 최당은 일찍이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수태위(守太尉)로 치사(致仕)했는데, 그는 풍류가 매우 뛰어나서 치사한 뒤에는 당대의 명사인 장자목(張自牧), 고형중(高瑩中), 백광신(白光臣), 이준창(李俊昌), 현덕수(玄德秀), 이세장(李世長), 조통(趙通) 등과 함께 기로회(耆老會)를 결성하여 시주(詩酒)로써 즐겼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이들을 지상선(地上仙)이라 호칭하고 이들의 도형(圖形)을 돌에 새겨서 후세에 전했다고 한다. 이인로는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벼슬이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에 이르렀는데, 그 역시 풍류가 뛰어나서 벼슬을 떠난 뒤에는 당대의 명사인 오세재(吳世才), 임춘(林椿), 조통(趙通), 황보항(皇甫抗), 함순(咸淳), 이담(李湛)과 망년우(忘年友)를 맺어 시주를 즐기면서 중국의 강좌칠현(江左七賢)을 본받아 해좌칠현(海左七賢)으로 자처했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모두 뛰어났다고 한다.
나(羅), 심(沈), 최(崔) 세 원수(元帥)의 수군(水軍)이 개선(凱旋)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병 때문에 교외(郊外)로 마중나가지 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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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배는 가볍고 작아 나는 듯이 빨라서 / 賊舡輕小疾如飛
우리 변방 어지럽혀 잦은 기근 들게 하자 / 擾我邊民致荐饑
조정 의론은 정명하여 그지없이 적중했고 / 廟論精明如破的
군대 위엄은 정숙하고도 기회를 잘 타서 / 兵威整肅又乘機
배에 불질러 이미 도망 못 가게 하였으니 / 焚舟已使難逃去
회군할 땐 의당 개가 부르며 돌아와야지 / 返旆還須奏凱歸
짐승이란 궁하면 움킨다는 걸 생각하면서 / 坐念獸心窮則攫
축하시 쓰고 나니 생각이 자꾸 연연해지네 / 賀篇題了思依依
몸이 아파 강가에 친히 마중 못 나가니 / 江頭迓勞病難親
개선 축하연에 어떻게 산인을 끼워 주랴 / 飮至何從著散人
또 집이 가난해 말 술 없는 게 한스러워 / 又恨貧家無斗酒
공연히 시구 읊으며 윤건만 바라보노라 / 謾吟長句望綸巾
위엄 명성은 동녘의 태양을 진동시키고 / 威聲震動扶桑日
기쁜 기운은 온 누리의 봄을 이루는구려 / 喜氣熏成撲地春
앞으로는 바닷가 다 안정을 찾으리니 / 從此海濱皆奠枕
높다란 능연각이 우뚝하게 솟을 거로세 / 凌煙高閣聳嶙峋
내가 장성하기 전에는 전쟁이 많았기에 / 我未壯時多甲兵
백발의 오늘까지 매양 마음이 상하는데 / 白頭今日每傷情
천지의 주인이 바뀌고 백성도 안정된 이때 / 乾坤易主丘民定
섬 지방에 백성은 없고 해적만 횡행하다니 / 島嶼無人海賊行
가을 가득한 하늘엔 기러기 그림자 아득고 / 秋色滿空□鴈影
휘영청 달빛 아랜 귀뚜라미 소리 들레는데 / 月華流地起蛩聲
초연히 홀로 앉아 사사로운 일 잊은 곳에 / 悄然獨坐忘私處
진퇴 간에 다 걱정함이 바로 좌우명일세 / 進退俱憂座右銘
[주D-001]짐승이란 궁하면 움킨다 : 《순자(荀子)》 애공(哀公)에 “새가 궁하면 부리로 쪼고, 짐승이 궁하면 움키며 덤벼든다.[鳥窮則喙獸窮則攫]” 하였다.
[주D-002]산인(散人) : 한산(閑散)한 사람이란 뜻으로, 즉 세상에 쓸모가 없는 사람임을 의미한다.
[주D-003]윤건(綸巾)만 바라보노라 : 진 (晉)나라 도잠(陶潛)이 항상 갈건(葛巾)을 쓰고 다니다가 술을 만나면 즉시 갈건을 벗어서 술을 걸러 마시고는 다시 그 갈건을 쓰곤 했다는 고사가 있으므로, 소식(蘇軾)의 〈구양회부혜금침(歐陽晦夫惠琴枕)〉 시에서 이 고사를 빙자하여 “몇 군데나 유전하다가 도연명에게 왔는고, 누워서는 윤건을 베고 술도 걸러 마신다네.[流傳幾處到淵明 臥枕綸巾酒新漉]” 한 데서 온 말로, 술 생각이 아주 간절함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4]능연각(凌煙閣) : 당 태종(唐太宗)이 능연각에 공신(功臣) 장손무기(長孫無忌), 두여회(杜如晦), 위징(魏徵), 방현령(房玄齡) 등 24인의 초상(肖像)을 그려서 걸게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공신에 책록(冊錄)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5]진퇴(進退) …… 걱정함 : 범 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묘당(廟堂)의 높은 곳에 있을 때는 백성을 걱정하고, 강호(江湖)의 먼 곳에 있을 때는 임금을 걱정하는지라, 이것이 바로 나아가서도 걱정하고 물러나서도 걱정하는 것[進亦憂 退亦憂]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추일(秋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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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점점 서늘코 하늘 점점 높아지매 / 秋日漸涼天漸高
때때로 동고에 올라 길이 휘파람 부노니 / 時時舒嘯上東皐
번화함은 좋긴 하나 한바탕 꿈일 뿐이요 / 繁華雖美不旋踵
이욕은 몹시 가벼워 터럭 태우기 같은걸 / 利欲□輕如燎毛
생각하니 젊을 적엔 죽원에서 놀았는데 / 閑憶少年游竹院
늙어서는 병이 많아 송료만 좋아하누나 / 老因多病愛松醪
회상컨대 험난하던 세상살이 어제 같아라 / 回頭行路難如昨
거센 바람 성난 파도가 꿈에도 놀랍구려 / 夢愕狂風激怒濤
새벽에 높은 다락 올라 홀로 기대 있자니 / 曉上高樓獨自憑
흰 구름 푸른 산봉이 모두가 층층이로세 / 白雲靑嶂共層層
한 정원엔 비 지나서 이끼가 더욱 자라고 / 一庭雨過苔逾長
만리 멀리 갠 하늘엔 해가 또 떠오르네 / 萬里天晴日又昇
담력은 기고만장인데 몸은 이미 늙었고 / 膽氣崢嶸身老大
형용은 수척한 데다 귀밑털도 헝클어졌네 / 顔容枯槁鬢鬅鬙
천지간에 추풍이 몇 번이나 일어났던고 / 乾坤幾度秋風起
저 강동에 머리 돌려 계응을 생각하노라 / 回首江東憶季鷹
[주D-001]동고(東臯)에 …… 부노니 : 동고는 동쪽 언덕이란 뜻인데,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동쪽 언덕에 올라 길이 휘파람 불고, 맑은 물을 임하여 시를 짓기도 하네.[登東皐以舒嘯臨淸流而賦詩]” 하였다.
[주D-002]죽원(竹院) : 정원(庭園)에 대를 심은 서원(書院)을 말하는데, 혹은 승사(僧舍)를 가리키기도 한다.
[주D-003]송료(松醪) : 송지(松脂)나 송화(松花)를 넣어서 빚은 술을 말한다.
[주D-004]천지간에 …… 생각하노라 : 계 응(季鷹)은 진(晉)나라 때 강동(江東)의 오중(吳中) 사람 장한(張翰)의 자이다. 그가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서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 오중의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鱠]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어찌 수천 리 밖에서 벼슬에 얽매여 명작(名爵)을 구할 수 있겠는가.” 하고, 즉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데서 온 말이다.
역암(易菴) 성 장원(成壯元)을 곡(哭)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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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에 공후 집에서 이인이 나와서 / 辛巳公侯出異人
장원의 풍채가 조정 반열에 우뚝했으니 / 壯元風彩照簪紳
필력은 굳세고 곧아서 빛이 쏘는 듯하고 / 筆鋒勁直光如射
시법은 평화로워 맛이 절로 순진하였네 / 詩法平和味自醇
연경의 청고한 생활은 꿈 따라 멀어졌고 / 燕邸氷霜隨夢遠
추밀원의 임명은 은혜와 함께 새로웠지 / 鴻樞雨露與恩新
지하에서 아직 한을 품을 게 가련하여라 / 只憐地下猶含恨
백발의 늙은 어버이가 고당에 계심일세 / 白髮高堂有老親
[주C-001]성 장원(成壯元) : 고 려 충혜왕(忠惠王) 2년 신사년(1341)에, 송당(松堂) 김광재(金光載)가 관장한 성균시(成均試)에 목은과 함께 응시하여 장원으로 뽑혔던 성사달(成士達)을 가리키는데, 그는 뒤에 벼슬이 대제학(大提學)에 이르고 창산부원군(昌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주D-001]이인(異人) : 비범(非凡)한 인물이란 뜻으로 한 말이다.
손 밀양군(孫密陽君)을 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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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시절엔 풍채가 정숙하였고 / 壯歲風儀整
쇠한 나이엔 기미가 순진했는데 / 衰年氣味眞
공손한 말은 세상을 오시한 듯했고 / 遜言如玩世
겸손한 덕으론 짐짓 정신을 길렀네 / 謙德故頤神
들 밖에는 가을 풍광이 말끔하고 / 野外秋光淡
성 남쪽에는 새벽빛이 청신한데 / 城南曉色新
만가 소리 갈수록 점점 멀어지니 / 挽歌行漸遠
괜히 눈물로 건을 적시게 하누나 / 空使淚沾巾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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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거품 같은 인생이 출몰하는 이 속세에 / 塵世浮漚出沒間
사문이 점점 쇠하니 눈물 자주 흐르누나 / 斯文漸減淚頻潸
까마득한 바람 먼지는 백발에 불어오고 / 風塵漠漠吹華髮
아득한 황천길은 푸른 산을 둘러 있네 / 泉路茫茫繞碧山
일평생이 참으로 꿈 같음은 잘 알거니와 / 自信一生眞似夢
만사가 한가함이 제일임은 누가 알런고 / 誰知萬事不如閑
수많은 시비의 견해가 다 옳다 할지라도 / 恒河沙見雖然是
이 신세는 끝내 의당 팔환에 부쳐지리 / 身世終當付八還
[주D-001]팔환(八還) : 불 교에서 여덟 종류의 변화한 상(相)이 각각 그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이르는 말로, 《능엄경(楞嚴經)》에 “밝음은 태양으로 돌아가고, 어두움은 흑월로 돌아가고, 통함은 창문으로 돌아가고, 가려 막힘은 담장으로 돌아가고, 인연은 분별로 돌아가고, 형상이 없는 것은 텅 빈 데로 돌아가고, 막혀 답답함은 먼지로 돌아가고, 청명함은 갬으로 돌아간다.[明還日輪 暗還黑月 通還戶牖 壅還牆宇 緣還分別頑虛還空 鬱
군자(君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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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너그러운 도량이 있기에 / 君子有雅量
시속 붙좇음은 백성을 위함이니 / 趨時爲斯民
산수를 찾아 훌쩍 떠나간다 해도 / 飄然丘壑去
어찌 제 몸만 편히 할 수 있으랴 / 亦豈安其身
평생에 의리 하나만 좇는 것으로 / 平生義所在
풍속을 순박하게 할 수 있고말고 / 可使風俗淳
유유하여라 광활한 천지 가운데 / 悠悠天地闊
아득히 옛사람을 사모하노니 / 邈哉思古人
높은 풍도는 세상에 드물거니와 / 高風不世有
늙은 나는 그 이웃이 되고만 싶네 / 老我願卜隣
부운(浮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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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이 남쪽에서 오더니 / 浮雲從南來
또 어느 곳을 향하여 가는고 / 又向何處歸
본래 무심한 물건이라곤 하지만 / 雖然本無心
머뭇거리는 뜻이 있는 듯도 하니 / 似乎有依違
누가 알랴 저 적막 공허한 곳에 / 誰知泬寥處
주선하는 기관이 절로 있는 줄을 / 旋轉自有機
바람이 그 사이에서 일어나거든 / 風生於其間
움직임이 어찌 그리도 미묘한고 / 動也何玄微
때로 큰 바람이 거세게 불거든 / 有時太怒號
밀려나서 의지할 곳 잃기도 하나 / 見斥失所依
제때에 단비를 내려만 준다면 / 時哉降以雨
천하를 살찌게 할 수도 있으련만 / 庶令天下肥
유언(流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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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는 본디 부실한 거지만 / 流言本不實
때론 사람을 그르치기도 하는데 / 或時能誤人
일과 형세로써 세밀히 헤아리면 / 度以事與勢
분명하게 진위가 판명되고말고 / 瞭然分僞眞
짐승이 궁하면 반드시 덤벼들고 / 獸窮必至攫
사람이 굴하면 꼭 펴려고 하나니 / 人屈必求伸
슬프도다 우리 애꿎은 백성들만 / 哀哉我赤子
해독 입어 더욱 고통을 당하다니 / 被毒尤苦辛
여러 장수들이 도성에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도 병 때문에 즉시 나가서 치하(致賀)하지 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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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왕의 명령으로 군대 위엄 떨치어 / □王休命耀兵威
갠 하늘 바다에서 적 쳐부수고 돌아오니 / 海上天晴破賊歸
온 조정이 마중나가 모두 기뻐서 뛰는데 / 傾國出迎皆躍躍
병석에 누운 나는 홀로 그리울 뿐이로세 / 閉門病臥獨依依
궁한 짐승이 덤비는 건 경계해야 하지만 / 獸窮則攫宜相戒
우리 무력은 떨칠 때마다 적을 무찌르네 / 我武惟揚動中機
남은 적을 지금까지 다 소탕했을 터이니 / 餘寇至今應掃盡
원컨대 순 임금 간무 추고 옷 드리웠으면 / 舞干深望舜垂衣
[주D-001]순(舜) 임금 …… 드리웠으면 : 간 무(干舞)는 방패를 손에 들고 추는 무무(武舞)를 가리키는데, 간무를 춘다는 것은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순 임금이 문덕을 널리 펴고, 방패와 새 깃을 들고 두 섬돌 사이에서 춤을 추니, 그렇게 한 지 칠십 일 만에 묘족이 귀복해왔다.[帝乃誕敷文德舞干羽于兩階 七旬有苗格]” 한 데서 온 말이고, 옷을 드리웠다는 것은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황제와 요순은 의상을 드리우고 있으매 천하가 다스려졌다.[黃帝堯舜垂衣裳而天下治]”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하는 일 없이 가만히 앉았어도 천하가 잘 다스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홀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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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읊으며 한창 흥취를 푸는데 / 獨吟方遣興
뜻밖의 일이 갑자기 침범해오네 / 非意忽相干
한가하게 편히 앉았긴 익숙하지만 / 箕踞閑中熟
병신이 반열 추주하긴 어렵고말고 / 規趨病後難
가을 경치는 천리가 탁 트이었고 / 秋光千里闊
새벽 기운은 사방 산이 차가운데 / 曉氣四山寒
합좌소에서 사람 보내 날 부르니 / 合坐來招喚
아내가 내 의관을 정제해 주는구나 / 山妻爲整冠
세 원수(元帥)를 차례로 배알하여 공훈 세운 것을 치하하고 돌아와서 홀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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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바람 타고 해적들이 자주 왕래하면서 / 帆風海賊往來頻
강촌을 습격하여 우리 백성 해치는지라 / 掩擊江村害我民
삼십일 년 동안 해독을 끼쳐온 가운데 / 三十一年流毒螫
그 몇천만 인이 고통을 호소해왔던고 / 幾千萬口訴艱辛
외환을 제거하여라 군대 위엄은 성대하고 / 剗除外患兵威盛
중흥을 계도하니 국가 운명은 새로워졌네 / 啓迪中興邦命新
남은 무리가 지금 다시 함부로 날뛴다면 / 餘黨如今更猖獗
군대 출동을 어찌 잠시나마 머뭇거리랴 / 師行焉得暫逡巡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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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뒤 고상한 정이 늦가을에 충천하여라 / 病後高情漲素秋
뜬구름 같은 부귀는 다 부질없기만 하네 / 浮雲富貴儘悠悠
청산에서 술 대하니 산 빛은 듣는 듯하고 / 靑山對酒光如滴
밝은 달밤 누에 오르니 달빛은 흐르누나 / 明月登樓影暫流
다리에 쓰고 촉군 효유함은 다 부러워하나 / 共羨題橋還喩蜀
신 신긴 게 유에 봉할 만했음은 누가 알랴 / 誰知跪履可封留
사직하고 후일 집에 돌아가서 보노라면 / 乞身他日歸家看
문밖의 맑은 물결에 백구가 널려 있으리 / 門外波晴點白鷗
[주D-001]뜬구름 같은 부귀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의롭지 못하면서 부하고 또 귀함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느니라.[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 한 데서 온 말로, 부귀가 덧없음을 뜻한 말이다. 《論語 述而》
[주D-002]다리에 …… 효유(曉喩)함 : 한 (漢)나라 때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촉군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가는 길에 성도의 성(城) 북쪽 승선교(昇仙橋)에 이르러 교주(橋柱)에 쓰기를 “고거사마(高車駟馬)를 타지 않고는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고 하여, 공명(功名)을 꼭 이루겠다는 포부를 갖고 떠났다가, 과연 그의 뛰어난 문장(文章)으로 한 무제(漢武帝)에게 인정을 받아 낭(郞)이 되었는데, 그로부터 수년 뒤에 마침 중랑장(中郞將) 당몽(唐蒙)이 야랑(夜郞) 등처와 교통(交通)하기 위해 촉군의 이졸(吏卒) 1000여 명을 징발하면서 포학한 행동을 자행함으로 인하여 촉군의 백성들이 매우 놀라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르자, 무제가 특별히 사마상여를 보내서 당몽 등을 책망하고 촉군의 백성들을 효유하여 진정시키도록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신 …… 만했음 : 초 한(楚漢) 시대 장량(張良)이 일찍이 하비(下邳)의 다리 위에서 황석공(黃石公)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이 짐짓 자기 신을 다리 밑으로 떨어뜨리고는 장량더러 주워 오라고 하므로, 장량이 마지못해 내려가서 신을 주워 오자, 그 노인은 또 장량에게 그 신을 자기 발에 신기라고 하므로, 장량이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그 신을 신겨 주었더니, 그 노인이 “아이를 가르칠 만하다.” 하고, 장량에게 《태공병법(太公兵法)》 한 책을 주므로, 장량이 그때부터 열심히 읽어 뒤에 한 고조(漢高祖)를 보좌하여 천하를 통일한 다음에는 마침내 유후(留侯)에 봉해지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판삼사사(判三司事)가 여러 원수(元帥)들을 거느리고 왜적(倭賊)을 추격하기 위해 곧 길을 떠나려 하는데, 나는 병 때문에 말을 타기가 어려우므로, 망연자실하여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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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국충정 견실하고 용맹도 뛰어나서 / 腹心堅實爪牙長
국맥이 화평하여 국체가 튼튼해졌네 / 國脈和平國體強
막부의 생소 소리는 전진에 임한 때이고 / 蓮幕笙簫臨戰陣
철성의 부원은 조정 기강을 진작시키네 / 鐵城府院振朝綱
한 몸에 지닌 편월은 무지개를 토한 듯 / 一身篇鉞虹霓氣
만고에 전할 단청은 일월같이 빛나리 / 萬古丹靑日月光
불시에 병이 발작해 문 닫고 들앉아서 / 病發不時深閉戶
동녘에 빛날 풍채만 상상할 뿐이로세 / 想看風彩爍扶桑
[주D-001]한 몸에 …… 듯 : 한 몸에 문무(文武)를 겸했음을 뜻한다. 편월(篇鉞)의 편은 남제(南齊) 때의 시인 사조(謝脁)의 시편(詩篇)을 가리키고, 월은 한 고조(漢高祖)의 명장 한신(韓信)의 뛰어난 무용(武勇)을 가리킨 것으로, 백거이(白居易)가 영호 상공(令狐相公)에게 답한 시에 “사조의 편장과 한신의 무용을, 일생에 둘 다 얻은 이는 그대만 한 이 없으리.[謝朓篇章韓信鉞 一生雙得不如君]” 한 데서 온 말이고, 무지개를 토한 듯하다는 것은 곧 문재(文才)가 풍부함을 의미한다.
[주D-002]단청(丹靑) : 여기서는 곧 공신각(功臣閣)에 걸리는 공신들의 초상을 가리킨다.
치재(致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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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하게 세상 도피한 곳이요 / 幽閑逃世處
정숙하게 재계하는 때이로다 / 端肅致齋時
일천 생각에 득실을 잊어버리니 / 得失忘千慮
사지 육체가 기거하기 편하여라 / 興居適四支
맑은 향 연기는 거의 다 타가고 / 淸香燒欲盡
밝은 태양은 빠짐없이 비추니 / 白日照無遺
누각 아래 나열한 푸른 산들이 / 樓下山橫翠
그대로 좋은 시를 이루는구려 / 依然是好詩
마음을 재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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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이 아니로되 시동처럼 앉고 / 非尸坐如尸
손이 없으되 손을 본 듯이 하고 / 無賓如見賓
수렴하여 한 사물도 용납 않고 / 收斂不容物
날 가려 제기 닦고 정결 다하나 / 吉蠲致精純
아 도를 배운 게 아직도 얕아서 / 嗟哉學道淺
위선만 하고 본심을 손상했기에 / 就僞仍斲眞
분노하여 속된 잡념이 일어나니 / 忿然塵慮生
성인 훈계는 곡진만 했을 뿐이네 / 聖謨徒諄諄
[주D-001]시동(尸童)이 …… 앉고 : 시동은 제사 때 신위(神位) 대신으로 앉히던 동자(童子)를 가리키는데, 《예기》 곡례(曲禮)에 “앉는 것은 시동처럼 하고, 서는 것은 재계할 때처럼 한다.[坐如尸 立如齊]”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손이 …… 하고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문밖을 나가서는 큰 손님을 뵙는 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해야 한다.[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顔淵》
[주D-003]수렴(收斂)하여 …… 않고 : 공경하는 것을 뜻한다. 송(宋)나라 때 정이(程頤)의 제자 윤돈(尹焞)이 말하기를 “공경이란 그 마음을 잘 거둬들여서 한 가지 사물도 용납하지 않는 것을 이른 말이다.[敬者 其心收斂 不容一物之謂也]” 하였다.
이광보(李光輔) 판사(判事)가 배[梨]를 요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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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늙은이 비록 몹시 가난하나 / 牧老貧雖甚
산돌배가 늦게 다시 푸짐한지라 / 山梨晚更繁
조용히 빈객들을 접대도 하고요 / 從容享賓客
천진한 아손을 먹이기도 한다네 / 爛熳啖兒孫
우물엔 옛날 비녀장 던졌거니와 / 井舊曾投轄
정원엔 지금 문을 안 달았다오 / 園今不設門
남은 놈 따먹으면 더욱 맛있거니 / 摘殘尤有味
왕림하기만을 다시 바랄 뿐이네 / 更望枉高軒
[주D-001]우물엔 …… 던졌거니와 : 한 (漢)나라 때 진준(陳遵)이 술을 매우 좋아하여, 빈객(賓客)들을 당(堂)에 가득히 초청해서 연음(宴飮)할 때마다 대문을 걸어 잠그고 빈객들의 수레 비녀장을 뽑아 우물에 던져 버리곤 하였으므로, 빈객들이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떠나지 못하고 끝까지 함께 술을 마셨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정원엔 …… 달았다오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정원은 날로 거닐어 정취를 이루고, 문은 비록 달았지만 항상 닫혀 있네.[園日涉以成趣門雖設而常關]” 하였다.
회포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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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앉았음은 눕기가 어려워서이고 / 夜坐因難臥
아침에 읊음은 회포를 풀기 위함일세 / 朝吟爲遣懷
연기 놀은 산골짜기에 뿌옇고 / 煙霞鎖巖壑
바람 달은 강회에 가득하여라 / 風月滿江淮
내 생애는 담박하다 여겼거니와 / 自分生涯淡
끝내 세상일과는 어긋나버렸네 / 終敎世事乖
자손 위하는 생각만은 있지만 / 只餘兒子念
감히 삼괴를 심으려고 할쏜가 / 敢擬植三槐
남이야 날 우활타 하거나 말거나 / 迂闊爲他鄙
곤궁함은 내 또한 달게 여긴다오 / 酸寒亦自甘
떠나면 장차 초야인이 되련마는 / 逝將成野服
아직도 벼슬은 사퇴하지 못했네 / 尙未謝朝簪
교유는 물과 더불어 담박하고 / 水與交遊淡
담소는 바람 속에 젖어드는데 / 風將笑語涵
지금은 또한 가을이 저물어가서 / 祗今秋欲老
물고기와 벼가 띳집을 둘러쌌네 / 魚稻擁茅菴
늙어갈수록 세속 인연은 엷어지고 / 垂老塵緣薄
한가로우니 도의 맛은 더해 가지만 / 閑居道味增
잗단 일들은 낮은 벼슬아치 같고 / 米鹽眞作吏
채식만 먹음은 승려와 흡사하네 / 蔬筍鄙如僧
짧은 처마엔 가을 산이 들어오고 / 簷短秋山入
창은 밝아라 아침 해가 돋는구나 / 窓明曉日升
유연히 마음속을 써내다 보니 / 悠然寫心曲
또 좋은 종이를 더럽혔네그려 / 又汚剡溪藤
[주D-001]삼괴(三槐) : 세 그루의 괴나무를 말한다. 송(宋)나라 때 음덕(陰德)을 쌓은 일로 세인(世人)의 칭송을 받았던 왕호(王祜)가 일찍이 자기 마당에 괴나무 세 그루를 심고서, 후일 자기 자손 중에 반드시 삼공(三公)의 자리에 오를 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었는데, 뒤에 과연 그의 아들 왕단(王旦)이 진종(眞宗) 연간의 명상(名相)으로 18년 동안이나 재상(宰相)의 자리를 누리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교유(交遊)는 …… 담박하고 : 《예기》 표기(表記)에 “군자의 사귐은 물같이 담박하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君子之接如水 小人之接如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담소(談笑)는 …… 젖어드는데 : 담론하고 웃고 하는 가운데 풍취(風趣)가 왕성하게 일어나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삼 가 들으니, 분부를 내려 판삼사사를 도성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이 상의(李商議), 변 사재(邊四宰) 등 여러 원수(元帥)들만 길을 떠난다고 하는데, 나는 병이 발작하여 친히 배송(拜送)하지 못하고 한스러운 마음에 다시 앞의 운(韻)을 사용하여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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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결단한 조정의 계책이 훌륭한지라 / 決勝廟堂籌策長
교외의 전송에 군율 또한 정강해졌으니 / 餞郊軍律已精強
서로 의지함은 흡사 수레와 덧방나무요 / 相依恰似車將輔
문란치 않음은 진정 그물과 벼릿줄 같네 / 不紊眞如網與綱
여러 장수의 용맹은 다 기가 넘치거니와 / 諸將爪牙皆有氣
두 원수의 지휘권은 유별히 광채가 나네 / 兩公旄鉞別生光
알건대 남은 종자 없이 다 섬멸할 테니 / 遙知禽獮無遺類
망할까 하여 다시 뽕나무에 매주었으면 / 願把其亡更繫桑
[주D-001]서로 …… 덧방나무요 : 덧방나무는 수레 위의 양편에 짐이 떨어지지 않도록 세운 나무를 가리킨 것으로, 옛 속담에 “덧방나무와 수레의 몸은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게 된다.[輔車相依 脣亡齒寒]”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 僖公5年》
[주D-002]문란치 …… 같네 : 《서경》 반경(盤庚)에 “그물에 벼릿줄이 달려 있어야만 조리가 있어 문란해지지 않는 것과 같다.[若網在綱有條而不紊]”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망할까 …… 매주었으면 : 《주역》 비괘(否卦) 구오(九五)에 “구오는 비운을 그치게 하는 것이라, 대인의 길함이니, 그 망할까, 그 망할까 걱정해야만 떨기진 뽕나무에 매놓은 듯 튼튼해지리라.[九五休否 大人吉 其亡其亡 繫于苞桑]” 한 데서 온 말이다.
행삼군가(行三軍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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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로(子路)가 묻기를 “부자께서 삼군을 인솔하고 전장에 나가시게 된다면 누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子行三軍則誰與]” 하니,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범을 맨손으로 잡으려 하고 하수를 맨몸으로 건너려다가 죽어도 뉘우침이 없는 자를 나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일을 당하면 두려워하고, 계책을 내기를 좋아하여 성공하는 자라야 할 것이다.[暴虎憑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하였다. 천재(千載) 아래까지 성인의 훈계가 마치 일성(日星)처럼 빛나게 드리우고 있다. 이에 행삼군가 한 편을 지은 것은 느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천지가 폐장하면 의당 봄이 돌아오고 / 天地之閉回其春
용사의 칩복은 제 몸 보존키 위함인데 / 龍蛇之蟄存其身
힘을 기르되 때로 숨겨서 겁내지 않고 / 遵養時晦不爲㥘
널리 밝아서 갑옷 쓴 이는 성인이었네 / 純煕大介稱聖人
혈기의 용맹은 고작 일당백에 그치지만 / 血氣有勇一當百
의리가 지극하면 천하의 신하가 된다오 / 義理作至天下臣
양 몰아 범을 침은 상대가 안 되고말고 / 驅羊格虎勢非匹
군사 착함은 율로 내는 데 있을 뿐이네 / 師臧只在出以律
이공과 변군은 용맹 지혜 다 갖춘 데다 / 李公邊君勇智俱
의리는 하늘 닿아라 어이 그리 우뚝한고 / 高義薄天何嵂屼
일 당해 두려워하고 계책 내서 성공하니 / 臨事而懼好謀成
유독 군법에만 모두 정명한 게 아니로다 / 不獨軍法皆精明
상산은 지대가 낮고 큰 고개는 험준한데 / 商山地低大嶺峻
고기들이 솥 안에서 살려고 버둥대거니 / 羣魚在鼎方偸生
붕궤되는 형세가 반드시 급격할 테지만 / 橫流奔潰勢必激
함정만 있고 견고한 성 없음이 한스럽네 / 陷穽只恨無堅城
가을바람 썰렁해지면 몸은 움츠러들지만 / 秋風漸冷筋骨緊
가을밤 점차 길어지면 꿈은 맑아지리니 / 秋夜漸長魂夢淸
원컨대 우리 주장이 높은 공렬을 세워서 / 願我主將樹功烈
일거에 요기의 뿌리를 모두 절멸시키고 / 一擧畢使祅氛絶
백만의 창생이 다 안정을 되찾게 하여 / 百萬蒼生皆按堵
다시 여생에 풍월을 즐기게 해주었으면 / 更向殘年弄風月
[주D-001]자로(子路)가 …… 하였다 : 이 글은 《논어》 술이(述而)에 있는 것이다.
[주D-002]천지(天地)가 …… 돌아오고 : 겨울철은 원래 천지가 폐장(閉藏)하는 시기인데, 《예기》 월령(月令)에 의하면, 특히 일양(一陽)이 처음 생기는 중동(仲冬)의 달에 궁궐(宮闕)과 여염(閭閻)의 파손된 곳을 보수하고 감옥을 축조하여 천지의 폐장을 돕는다고 하였다.
[주D-003]용사(龍蛇)의 …… 위함인데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자벌레가 굽히는 것은 장차 펴기 위함이요, 용과 뱀이 칩복한 것은 제 몸을 보존하기 위함이다.[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힘을 …… 성인(聖人)이었네 : 《시 경》 주송(周頌) 작(酌)에 “아 성대한 왕사로, 힘을 길러서 때로 더불어 숨겼다가, 널리 밝아진 다음에야, 이에 큰 갑옷을 쓰셨도다.[於鑠王師 遵養時晦 時純煕矣 是用大介]” 한 데서 온 말인데, 이것은 무왕(武王)의 무공(武功)을 칭송한 노래이다.
[주D-005]군사 …… 뿐이네 : 《주역》 사괘(師卦) 초육(初六)에 “초육은 군사를 내되 율법으로 할 것이니, 착하지 않으면 흉하리라.[初六師出以律 否臧 凶]”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이공(李公)과 변군(邊君) : 이 상의(李商議)와 변 사재(邊四宰)를 가리킨다.
[주D-007]고기들이 …… 버둥대거니 : 백성들이 위급한 때를 당하여 목숨을 구하기 위해 서로 발버둥치는 상황을 비유한 말이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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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다행함은 태평성대 만나 / 自幸逢昭代
초려에 누워서 길이 노래함일세 / 長歌臥草廬
일평생 생활은 절로 졸렬커니와 / 百年生理拙
병 많아 권세의 사귐도 멀어졌네 / 多病勢交疏
변소의 배는 곧 오경의 상자요 / 邊腹是經笥
장욱의 마음은 초서를 잘 썼지 / 旭心能草書
나의 생애에 다시 무엇을 바라랴 / 吾生復何望
머리털 이미 남김없이 희었는걸 / 髮白已無餘
[주D-001]변소(邊韶)의 …… 상자요 : 후 한(後漢) 때 문인(文人) 변소의 자는 효선(孝先)인데, 그가 일찍이 수백 인의 문도(門徒)를 교수(敎授)할 적에 한번은 낮잠을 자는데 제자 한 명이 선생을 조롱하기를 “변효선은 똥똥한 배로, 글 읽기는 싫어하고 잠만 자려고 한다.[邊孝先 便便腹 懶讀書 但欲眠]” 하자, 변소가 그 말을 듣고 즉시 대구하기를 “똥똥한 내 배는 오경의 상자이고, 잠만 자려고 하는 것은 오경을 생각하기 위함이다.[腹便便 五經笥但欲眠 思經事]”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경학(經學)에 정통함을 의미한다.
[주D-002]장욱(張旭)의 …… 썼지 : 장욱은 당(唐)나라 때 사람으로, 술을 매우 즐겼고 특히 초서(草書)에 뛰어나서 초성(草聖)으로 일컬어지기까지 했었다.
삼가 마필(馬匹)의 반사(頒賜)를 받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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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중궁궐로부터 준마를 끌어 오니 / 駿馬牽來自九重
악와의 용마에게 흑운이 흠뻑 물들었네 / 黑雲熏染渥洼龍
이름은 기야에 전해 뛰어난 자태 헌칠하고 / 名傳冀野英姿暢
방성의 정기 내려와 빼어난 기운 농후해라 / 精降房星秀氣濃
대궐에 조회갈 땐 낮 시각을 재촉하는데 / 魏闕朝回催晝漏
마른 콩대기 다 먹으면 새벽종 울린다오 / 枯萁齕盡近晨鐘
말 타고 나가 놀아라 장차 어이 보답할꼬 / 駕言出游將何報
화봉 본받아 응당 삼축이나 올려야겠네 / 三祝應須效華封
[주D-001]악와(渥洼)의 …… 물들었네 : 악와는 물 이름으로, 한 무제(漢武帝) 때에 악와에서 용마(龍馬)가 나왔다는 데서 온 말이고, 흑운(黑雲)은 검은 머리를 비유한 것으로, 전하여 여기서는 말의 검은 털을 가리킨 것이다.
[주D-002]이름은 기야(冀野)에 전해 : 기야는 기주(冀州) 북쪽의 들판을 가리키는데, 예로부터 이곳에는 양마(良馬)가 많이 생산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방성(房星)의 정기 내려와 : 예로부터 방성의 네 별[四星]을 천사(天駟)라고 일컬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화봉(華封) …… 올려야겠네 : 요 (堯) 임금이 일찍이 화(華)를 시찰할 적에 화의 봉인(封人)이 말하기를 “아, 성인께 축복 드리기를 청하노니, 성인께서 수(壽)하고 부(富)하고 다남자(多男子)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했다는 데서 온 말로, 화봉은 바로 화의 봉인이란 뜻이고, 삼축(三祝)은 수, 부, 다남자를 축원한 것을 이른 말이다.
지신사(知申事)가 상(上)의 분부를 전해 왔는데, 신(臣) 색(穡)에게 명하여 반궁수조비(泮宮修造碑)를 찬진(撰進)하라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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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릉의 성덕은 유학을 숭상하는 데 있어 / 玄陵盛德在崇儒
해 뜨는 동녘에 성균관을 크게 지었으니 / 大作芹宮日出隅
공자의 제사는 진한 시대를 능가하였고 / 宗祀宣尼跨秦漢
주자를 가르침은 요순 시대를 본받았네 / 敎成冑子法唐虞
문밖의 구경꾼들은 감개가 깊을 터인데 / 環門觀者皆深感
강석 치운 병든 신하만 유독 어리석구려 / 倚席慚臣獨至愚
병든 뒤에 외람히 글 짓는 게 다행하여라 / 自幸病餘叨秉筆
성은이 천지처럼 모두를 품어준 때문일세 / 聖恩天地共涵濡
[주D-001]주자(冑子) : 제왕(帝王)이나 경대부(卿大夫)의 맏아들을 가리키는데, 옛날에 이들이 15세가 되면 모두 태학(太學)에 입학(入學)하였으므로, 전하여 태학생(太學生)을 이른 말이다.
[주D-002]강석 치운[倚席] : 태학(太學)의 박사(博士), 경사(經師) 등의 좌석(坐席)을 한쪽으로 치워버리고 강좌(講座)를 베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명일(明日)에 자문(紫門)에 나아가 사은숙배하고 돌아와서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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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 은총 입어서 삼중 품계에 오르니 / 叨承異睠拜三重
어구에서 잇따라 한 필 용마를 하사했네 / 御廏仍分一匹龍
성주가 즉위하시니 오만 상서 모여들고 / 聖主天臨嘉貺集
강후를 낮에 접견해라 성은이 후하구려 / 康侯晝接睿恩濃
구슬은 창해에서 나와 명월을 품었는데 / 珠生滄海涵明月
서리 내린 풍산에선 종소리가 들려오네 / 霜降豐山響巨鐘
상하가 서로 신임하면 태평이 오는 건데 / 上下交孚機自妙
어찌 의봉인에게 목탁을 물을 것 있으랴 / 何須木鐸問儀封
[주D-001]강후(康侯)를 …… 후하구려 : 강 후는 나라를 잘 다스리는 제후(諸侯)라는 뜻인데, 《주역》 진괘(晉卦) 괘사(卦辭)에 “진은 강후에게 말을 많이 하사하고 낮에 세 번씩 접견하는 상이로다.[晉 康侯用錫馬蕃庶 晝日三接]”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대신(大臣)이 임금으로부터 각별한 은총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구슬은 …… 품었는데 : 구슬이 창해(滄海)에서 나왔다는 것은 대단히 얻기 어려운 인재(人材)나 진귀(珍貴)한 사물을 가리킨 말이고, 명월(明月)을 품었다는 것은 또한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주D-003]어찌 …… 있으랴 : 목 탁(木鐸)은 옛날 정교(政敎)를 베풀 때에 흔들어서 사람들을 경계시키던 도구인데, 전하여 세인(世人)을 가르쳐 인도할 만한 성인을 가리킨 것으로, 춘추 시대 의(儀)의 봉인(封人)이 일찍이 공자(孔子)를 뵙기를 청하여 말하기를 “군자가 이곳에 이르면 내가 일찍이 만나 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君子之至於斯也吾未嘗不得見也]” 하므로, 종자(從者)가 공자를 뵙도록 주선해 주자, 봉인이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하기를 “그대들은 어찌 부자가 벼슬자리 잃은 것을 걱정할 것 있겠는가.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이거니,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을 것이다.[二三子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八佾》
들은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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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이 상주목을 침범한지라 / 賊犯尙州牧
아군은 대원산을 차단했으니 / 兵遮大院山
함창은 그 안에 포위되어 있는데 / 咸昌圍在內
원수는 틈 엿보길 중히 여긴다네 / 元帥重乘間
진의 풍속이 어찌 전쟁을 알며 / 秦俗那知戰
묘의 백성이 어찌 다 완악하랴 / 苗民豈是頑
어찌하면 하늘이 재앙을 그칠꼬 / 何當天悔禍
늙은이 눈물이 줄줄 흐르는구나 / 老淚逬潺湲
[주D-001]진(秦)의 …… 알며 : 전 국 시대 진나라는 일찍이 부국강병을 이룩하여 강대국이 된 이후로는 특히 호시탐탐 천하(天下)를 병탄(幷呑)하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로 산동(山東)의 6국(國)과 전쟁을 수없이 치른 끝에 결국 천하를 병탄했지만, 이는 곧 그 나라 풍속이 전쟁을 좋아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위정자(爲政者)의 탐욕에 의해서 그토록 많은 전쟁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2]묘(苗)의 …… 완악하랴 : 묘 는 요순(堯舜) 시대 삼묘국(三苗國)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그 나라의 군장(君長)을 가리킨다. 순 임금 때에 묘나라 군장이 완악하여 천자의 명을 자주 거역하므로, 마침내 그를 삼위(三危)로 내쫓았으니, 이 또한 묘나라 백성이 완악한 것이 아니라 군장이 완악했었음을 의미한 말이다.
예 천군(醴泉君)의 부인 채씨(蔡氏)의 기단(忌旦)에 유 승제(柳承制)의 부인이 수정사(水精寺)에서 재(齋)를 올리는데, 나도 가서 참여하였다. 재를 마치고 나서는 성균관에 들어가 알성(謁聖)을 했는데, 그곳에 한 흑립(黑笠) 쓴 사람이 있었으나 그의 성명은 묻지 않았다. 비석을 보니 귀부(龜趺)가 없었다. 김경지(金敬之)를 방문하여 밀탕(蜜湯)을 마셨는데, 그의 아들 명선(明善)이 탕 그릇을 받들고 왔다. 이어서 권용부(權庸夫) 상의(商議)를 알현했는데, 판서(判書) 박원상(朴元祥)이 뒤따라왔고, 염정수(廉廷秀)는 나를 수행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간단히 술 한 잔 마시고 물에 밥을 말아 먹고 취포(醉飽)하여 돌아왔다. 박공(朴公)은 신선술(神仙術)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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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상례 제례는 불교를 숭상하기에 / 東方喪祭尙浮屠
채씨의 재연에 이 늙은이도 참여케 했네 / 蔡氏齋筵著老夫
돌아올 때는 돌다리에서 서로 헤어졌고 / 歸向石橋分馬首
나는 성균관에 들러 귀부도 물어보았지 / 入趨槐市訊龜趺
꿀물 공손히 올려라 천금 같은 아들이요 / 蜜湯跪進千金子
진수성찬 대접받아 종에게도 밥 먹였네 / 珍饍仍霑白飯奴
우연히 만난 박군은 도의 맛을 즐기어서 / 邂逅朴君耽道味
산택을 좇아 파리한 신선 배우려 한다지 / 欲從山澤學仙癯
[주D-001]천금(千金) 같은 아들이요 : 부귀한 집의 자제들은 매우 삼가서 몸을 보호한다 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2]진수성찬 …… 먹였네 : 두보(杜甫)의 〈입주행(入奏行)〉에 “그대 위해 술 사서 자리 가득 준비하고, 종에겐 흰밥 주고 말에겐 푸른 꼴 먹이리.[爲君酤酒滿眼酤 與奴白飯馬靑芻]” 하였다.
[주D-003]산택(山澤)을 …… 한다지 : 한 (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천자(天子)에게 아뢰기를 “여러 신선들이 서로 전하여 산택 사이에 거주한 이들은 형용이 매우 파리하나니, 이것은 제왕이 하고자 하는 신선이 아닙니다.[列仙之傳居山澤間 形容甚癯 此非帝王之仙意也]”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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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보존하러 용이 오래 칩복했으니 / 存身龍久蟄
작은 집을 기린으로 이름하고 싶네 / 小室欲名麟
썩은 쥐를 서로 다퉈 으르대는데 / 腐鼠方爭嚇
뻐꾸기만 유독 골고루 먹이누나 / 尸鳩謾獨均
이리 같은 탐욕은 왜 끝이 있으랴만 / 狼貪何有極
원숭이처럼 속임은 원래 기발도 하지 / 狙詐自來新
봉황은 천 길을 날아 안 내려오나니 / 千仞鳳不下
[주C-001]연아(演雅) : 시 체(詩體)의 하나이다. 이것은 송(宋)나라의 시인 황정견(黃庭堅)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시체는 새, 짐승, 곤충 등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소재로 삼아서 각 구절마다 한 종류, 혹은 두 종류의 동물 이름을 넣어서 지은 것이 특징이다.
[주D-001]몸 …… 칩복했으니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자벌레가 굽히는 것은 장차 펴기 위함이요, 용과 뱀이 칩복한 것은 제 몸을 보존하기 위함이다.[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썩은 …… 으르대는데 : 전 국 시대 혜자(惠子)가 양(梁)나라의 재상(宰相)으로 있을 때, 혹자가 혜자에게 “장자(莊子)가 와서 당신 대신 재상이 되려고 한다.” 하자, 혜자가 몹시 두려워한 나머지 전국에 수배를 내려 3일 밤낮 동안 장자를 찾아내게 했는데, 장자가 마침내 스스로 혜자를 찾아가서 말하기를 “남방(南方)에 원추(鵷鶵)라는 새가 있는데, 자네는 아는가? 원추는 남쪽 바다를 출발하여 북쪽 바다로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쉬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단물이 나는 샘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았다네. 그러나 올빼미는 썩은 쥐를 얻어 가지고 있으면서 그 위를 날아가는 원추를 쳐다보면서 행여나 원추에게 썩은 쥐를 빼앗길까봐 으르댔다네. 그와 마찬가지로 자네도 양나라 재상 자리 때문에 나를 으르대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莊子 秋水》
[주D-003]뻐꾸기만 …… 먹이누나 : 《시 경》 조풍(曹風) 시구(尸鳩)에 “뻐꾸기가 뽕나무에 있으니, 그 새끼가 일곱이로다. 숙인 군자여, 그 위의가 한결같도다. 그 위의가 한결같으니, 그 마음이 변함없도다.[尸鳩在桑 其子七兮 淑人君子 其儀一兮 其儀一兮心如結兮]” 한 데서 온 말인데, 뻐꾸기는 본디 새끼를 먹이는 데 있어 아침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고 저녁에는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서 여러 새끼들을 똑고르게 먹이는 것이므로, 이것을 들어서 균평(均平)하고 전일(專一)한 군자(君子)의 용심(用心)을 찬미한 것이다.
[주D-004]봉황(鳳凰)은 …… 내려오나니 : 가 의(賈誼)의 〈조굴원부(弔屈原賦)〉에 “봉황은 천 길 높이 날다가, 성군의 덕이 빛남을 보고 내려오도다. 부덕하여 험악함을 보거든, 멀리 날개를 쳐서 떠나 버리도다.[鳳凰翔于千仞兮 覽德輝而下之 見細德之險微兮 遙增擊而去之]”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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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마음속에 있기는 하지만 / 道在心中地
근원은 하늘로부터 비롯되었네 / 原從頭上天
바름으로 몽매 기르긴 글렀는데 / 已違蒙養正
사가 현인 희망함만 괜히 말하네 / 謾道士希賢
시 흥취는 선배에 대적할 만하나 / 詩興敵先輩
술에 미침은 참으로 소년이로다 / 酒狂眞少年
유유히 오래도록 길을 헤매어라 / 悠悠久迷路
산천에 운무가 자욱하니 말일세 / 雲霧暗山川
[주D-001]도(道)가 …… 비롯되었네 : 한(漢)나라의 대유(大儒) 동중서(董仲舒)가 말하기를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온 것이니, 하늘이 변하지 않으면 도 또한 변하지 않는 것이다.[道之大原出於天 天不變道亦不變]”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바름으로 몽매 기르긴 : 《주역》 몽괘(蒙卦) 단(彖)에 “몽매한 이를 바름으로 기르는 것이 성인을 만드는 공이다.[蒙以養正 聖功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사(士)가 현인(賢人) 희망함 :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에 “성인은 하늘을 희망하고, 현인은 성인을 희망하고 선비는 현인을 희망한다.[聖希天賢希聖 士希賢]” 한 데서 온 말이다.
현릉(玄陵)께서 친필(親筆)로 그린 파평군(坡平君) 윤해(尹侅)의 초상(肖像)에 받들어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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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군의 손자인 파평군이여 / 鈴平之孫坡平君
엄격한 풍채에 깨끗한 덕행 풍기어라 / 風彩峭勁流淸芬
현릉의 친필 초상은 생존한 것 같건만 / 玄陵摹畫如生存
정호의 용은 가고 흰 구름만 떠 있구나 / 鼎湖龍去空白雲
[주D-001]영평군(鈴平君)의 손자인 파평군(坡平君)이여 : 영 평군은 고려의 문신(文臣)으로 일찍이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수문전 학사(修文殿學士) 등을 거쳐 벼슬이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에 이르고 영평군에 봉해진 윤보(尹珤)를 가리키고, 파평군은 바로 윤보의 손자로서 일찍이 공민왕 연간, 홍건적(紅巾賊)의 침입 때 공민왕을 복주(福州)에 호종(扈從)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었고, 뒤에 벼슬이 전법 판서(典法判書)에 이르고 파평군에 봉해진 윤해(尹侅)를 가리키는데, 공민왕이 일찍이 그의 초상(肖像)을 그려 주었었다.
[주D-002]정호(鼎湖)의 …… 있구나 : 황 제(黃帝)가 일찍이 형산(荊山) 아래 호수(湖水) 가에서 솥을 주조하고 나서는 군신(羣臣)과 후궁(後宮) 70여 인만을 데리고 용(龍)을 타고 승천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이미 돌아간 임금과 신하를 두고 이른 말이다.
현릉께서 친필로 그려서 밀직(密直) 윤호(尹虎)에게 하사한 추산도(秋山圖)에 받들어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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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에 일 아뢰는 일도 드물거니 / 宮中奏事稀
현묵으로 다시 그 무엇을 하랴 / 玄默更何爲
산 빛은 밝기가 마치 대낮 같고 / 山色明如晝
가을 경치는 맑기가 시와도 같네 / 秋光淡似詩
푸른 하늘엔 구름 한 점도 없고 / 碧天雲去盡
평야에는 물이 더디 흐르는구나 / 平野水流遲
참다운 은자를 찾을 길이 없어라 / 無路尋眞隱
그 누가 흰 망아지를 잡아 맬꼬 / 白駒誰縶維
[주D-001]현묵(玄默) : 청정 무위(淸靜無爲)와 같은 뜻으로, 즉 아무 일 없이 있는 것을 말한다. 양웅(揚雄)의 〈장양부(長楊賦)〉에 “임금은 현묵을 정신으로 삼고 담박함을 덕으로 삼는다.[人君以玄默爲神 澹泊爲德]” 하였다.
[주D-002]그 누가 …… 맬꼬 : 《시 경》 소아(小雅) 백구(白駒)에 “깨끗한 저 흰 망아지가, 밭 곡식 먹었다고 핑계 대고, 발과 가슴을 얽어매 놓고, 오늘 아침을 길게 늘여서, 귀한 우리 이 손님을, 더 놀다 가시게 하리라.[皎皎白駒 食我場苗 縶之維之 以永今朝 所謂伊人 於焉逍遙]”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어진 은사(隱士)가 왔다가 돌아가려고 하자,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워서 조금이라도 더 놀다 가게 하려는 정(情)을 노래한 것이다.
상당군(上黨君)이 누상(樓上)에 주식(酒食)을 베풀었는데, 김경지(金敬之)가 마침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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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 화려해라 송경은 장엄하고 / 翼翼松京壯
적막하여라 유동은 깊기만 한데 / 寥寥柳洞深
두 사람이 막 마주해 술 마실 새 / 兩人方對酌
육우가 또 갑자기 찾아오누나 / 六友忽相尋
기럭 그림자는 문득 가을빛이요 / 鴈影俄秋色
닭 우는 소리는 또 저녁이 되었네 / 雞聲又夕陰
누각 거주가 이게 바로 선경이라 / 樓居卽仙境
백운시를 서로 부르고 화답하네 / 唱和白雲吟
[주D-001]육우(六友) : 김구용(金九容)의 당호(堂號)이다. 그의 자는 경지(敬之)이다.
[주D-002]누각 …… 선경(仙境)이라 : 한 무제(漢武帝) 때에 방사(方士) 공손경(公孫卿)이 무제에게 아뢰기를 “선인은 누각에 거주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仙人好樓居]” 하였다.
[주D-003]백운시(白雲詩) : 진(晉)의 은사(隱士)인 도잠(陶潛)의 〈화곽주부(和郭主簿)〉 시 가운데 “아득히 흰 구름을 바라본다.[遙遙望白雲]”는 구절이 있었던 데서, 전하여 은사의 시를 의미한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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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비추니 남쪽 창은 희어지고 / 日照南窓白
시 이루니 다섯 글자는 청신하네 / 詩成五字淸
도정은 흔히 끊겼다 이어지는데 / 道情多斷續
야사는 비평할 사람이 드물구나 / 野史少譏評
구름은 엷어 하늘 모습 고요하고 / 雲淡天容寂
가을은 깊어 산 빛이 헌칠한지라 / 秋深山色明
유연히 고상한 흥취가 발동하여 / 悠然高興發
머리 쳐들고 삼신산을 바라보네 / 矯首望蓬瀛
일찍 일어나서 들으니, 재추소(宰樞所)에서 회의(會議)할 제군(諸君)을 서린(西鄰)의 길창군(吉昌君)이 모두 초청하여 함께 간다고 하는데, 무슨 일을 의논할는지 모르겠다.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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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평의사가 여러 영걸들을 회집하면서 / 都評議使集羣英
봉군된 나까지 정밀한 의논에 참여시키네 / 更著封君議事精
병든 뒤로 나는 이미 매우 혼미해졌지만 / 病後耗昏吾已甚
부름 받고 즐거워라 참으로 광영이로세 / 揚揚赴召儘光榮
재 추소에 이르니 제군들은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고, 판문하(判門下)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이하 제위(諸位)는 모두 와 있었다. 오늘 의논하려는 것은 진헌(進獻)에 관한 일이었는데, 곡성부원군 이하 제위가 각사(各司)의 장관(長官)들을 불러서 앞으로 다가오게 하여 그 뜻을 유시하고 그들로 하여금 좌이관(左貳官)들과 함께 그 일을 의논하여 그 결과를 올리도록 하였다. 그러고는 이에 당식(堂食)을 간략히 베풀었는데, 나는 의논한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물어보지도 않고 약간 취하여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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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 받고 입궐하니 광채는 찬란한데 / 承召趨朝爛有光
그릇 가득 흰 쌀밥에 술도 향기로워라 / 滿盂玉粒酒生香
입들 다무니 좋은 계책은 누가 내놀꼬만 / 含糊誰吐奇謀出
밥 먹을 제 나는 맛난 음식 달게 먹었네 / 喫飯吾甘雋味嘗
문견은 부족해 고루 과문이 부끄럽지만 / 淺見謏聞慙寡陋
널리 자문하는 명군 양신의 덕택 입었네 / 廣恣博訪荷明良
약간 취해 문득 나와 사람을 찾아갈 제 / 微酣便出尋人去
가랑비가 바람 따라 두어 방울 뿌리누나 / 微雨隨風數點涼
오 육화(吳六和) 판서가 나에게 자기 아들 이름을 지어달라고 청하면서 연회를 크게 베풀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임 오재(林五宰)가 또 자기 아들 이름을 고쳐 주기를 청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영제(令第)로 가서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그다음 날에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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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늙은이는 글자 아는 게 적으니 / 老夫識字少
영물을 이름 짓기는 어렵고말고 / 英物命名難
풍악 울리니 비구름이 들레는 듯 / 樂作雨雲鬧
술 마시니 천지는 너르기만 하네 / 酒行天地寬
유생에겐 지금 책임을 메꿨는데 / 柳甥今已塞
임상에겐 또 무슨 자를 찾을거나 / 林相更求安
옥편을 익숙하게 읽어 두었거니 / 讀得玉篇熟
목숙의 쟁반을 어찌 걱정하리오 / 何憂苜蓿盤
[주D-001]영물(英物) : 진 (晉)나라 때 환온(桓溫)이 태어난 지 한 돌도 되기 전에 온교(溫嶠)가 그를 보고 말하기를 “이 아이에게 기골(奇骨)이 있으니, 시험 삼아 울려보라.”고 하여 우는 소리를 들어 보고는 또 말하기를 “참으로 영물(英物)이다.”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똑똑한 아이를 의미한다.
[주D-002]목숙(苜蓿)의 쟁반 : 목 숙은 채소의 일종인데, 당(唐)나라 때 설영지(薛令之)가 일찍이 동궁 시독(東宮侍讀)으로 있을 적에 식생활이 하도 빈약하므로, 시를 지어 스스로 슬퍼하기를 “아침 해가 둥그렇게 돋아 올라, 선생의 식탁을 비추어 보이네. 쟁반에는 무엇이 있는고 하니, 난간에서 자란 목숙나물이로세.[朝日上團圓 照見先生盤盤中何所有 苜蓿長欄干]”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선생의 빈약한 식생활을 의미한다.
오 육화(吳六和) 판서가 나에게 자기 아들 이름을 지어달라고 청하면서 연회를 크게 베풀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임 오재(林五宰)가 또 자기 아들 이름을 고쳐 주기를 청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영제(令第)로 가서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그다음 날에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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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늙은이는 글자 아는 게 적으니 / 老夫識字少
영물을 이름 짓기는 어렵고말고 / 英物命名難
풍악 울리니 비구름이 들레는 듯 / 樂作雨雲鬧
술 마시니 천지는 너르기만 하네 / 酒行天地寬
유생에겐 지금 책임을 메꿨는데 / 柳甥今已塞
임상에겐 또 무슨 자를 찾을거나 / 林相更求安
옥편을 익숙하게 읽어 두었거니 / 讀得玉篇熟
목숙의 쟁반을 어찌 걱정하리오 / 何憂苜蓿盤
[주D-001]영물(英物) : 진 (晉)나라 때 환온(桓溫)이 태어난 지 한 돌도 되기 전에 온교(溫嶠)가 그를 보고 말하기를 “이 아이에게 기골(奇骨)이 있으니, 시험 삼아 울려보라.”고 하여 우는 소리를 들어 보고는 또 말하기를 “참으로 영물(英物)이다.”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똑똑한 아이를 의미한다.
[주D-002]목숙(苜蓿)의 쟁반 : 목 숙은 채소의 일종인데, 당(唐)나라 때 설영지(薛令之)가 일찍이 동궁 시독(東宮侍讀)으로 있을 적에 식생활이 하도 빈약하므로, 시를 지어 스스로 슬퍼하기를 “아침 해가 둥그렇게 돋아 올라, 선생의 식탁을 비추어 보이네. 쟁반에는 무엇이 있는고 하니, 난간에서 자란 목숙나물이로세.[朝日上團圓 照見先生盤盤中何所有 苜蓿長欄干]”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선생의 빈약한 식생활을 의미한다.
보성(甫城) 이자수(李子修) 판사에게 부치다. 《대장경(大藏經)》으로 연화(緣化)하고자 하는 비구(比丘)의 청에 의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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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귀밑은 응당 희어졌을 테지만 / 公鬢應垂白
내 얼굴 또한 붉은빛이 줄었다오 / 吾顔亦減紅
서로 만날 곳에 그 어드멘가 하면 / 相逢何處是
다만 이 대장경 속에 있을 뿐이네 / 祗在藏經中
[주C-001]연화(緣化) : 권화(勸化)와 같은 뜻으로, 불법(佛法)을 들을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공덕(功德)을 쌓도록 권하여 인도하는 일을 말한다.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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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을 훔치는 자는 저자를 못 보고 / 攫金不見市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하고 / 逐鹿不見山
이끗을 탐하는 자는 친척을 잊나니 / 放利卽忘親
세 가지는 응당 한 치의 차이고말고 / 三者應寸間
천군은 어찌 그리도 태연한가만 / 天君何泰然
아래는 등설 무리가 있기도 하지 / 下有滕薛班
가련도 하여라 -원문 빠짐- / 可憐□□□
나는 지금 두 귀밑이 반백이로세 / 吾今雙鬢斑
주공이 만든 제도가 남아 있건만 / 周公制度在
천재에 그 누가 이를 만회할런고 / 千載誰追還
[주D-001]금(金)을 …… 보고 : 옛 날 제(齊)나라 사람이 금을 가지고 싶어서 아침 일찍 의관(衣冠)을 정제하고 저자에 가서 금 파는 곳에 들러 그 금을 훔쳐가지고 가다가 시리(市吏)에게 붙잡혔는데, 그에게 묻기를 “사람이 다 보고 있는데, 그대가 남의 금을 훔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금을 훔칠 때에는 사람은 보지 못했고 금만 보았을 뿐이다.”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列子 說符》
[주D-002]이끗을 …… 잊나니 : 《장 자(莊子)》 도척(盜跖)에 의하면, 도척은 9000명의 졸개를 거느리고 천하(天下)를 횡행(橫行)하면서 남의 우마(牛馬)를 몰아가고, 남의 부녀(婦女)를 강탈하며, 이끗을 탐하여 친척도 잊어서 부모 형제를 돌아보지 않고 선조(先祖)에게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고 하였다.
[주D-003]천군(天君)은 …… 태연한가만 : 천 군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데, 마음은 한 중앙에 있으면서 오관(五官)을 다스린다 하여 이렇게 일컫는다. 범준(范浚)의 〈심잠(心箴)〉에 “군자가 정성을 보존하여 능히 생각하고 능히 공경하면, 천군이 태연해져서 온몸이 그 명령을 따르나니.[君子存誠 克念克敬天君泰然 百體從令]” 하였다.
[주D-004]등설(滕薛) : 춘추 시대 작은 두 제후국(諸侯國)인데, 그들은 일찍이 노(魯)나라에 내조(來朝)하여 행례(行禮)의 선후(先後)를 놓고 서로 자기 지위가 위임을 다투었었다. 《春秋左傳 隱公11年》
새벽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지붕 위의 서리를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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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여니 기와 지붕이 하얀지라 / 開窓屋瓦白
서리가 벌써 온 것을 문득 놀랐네 / 忽驚霜已落
앉아서 아손들 추위를 염려타 보니 / 坐念兒孫寒
내 옷도 오히려 터지고 갈라졌구려 / 吾衣猶裂拆
작은 여종이 꿇어앉아 말하기를 / 小婢跪吐語
서리가 벌써 수일 밤을 내렸지만 / 霜落已數夕
심정을 감히 말씀드리지 못한 건 / 心懷不敢言
춥기는 서로 그리 안 달라서랍니다 / 忍凍匪懸隔
택주의 은혜를 입지 않았더라면 / 不蒙宅主恩
목숨을 누가 보전해 주겠습니까만 / 性命誰見惜
새벽에 얼음 깨고 물을 긷노라면 / 敲氷晨汲泉
내 다리는 간혹 벌겋게 벗은 채로 / 我脚或時赤
몸뚱이만 겨우 가린 때도 있는지라 / 支體僅免露
내 맘은 진정 몹시 슬프답니다 하네 / 我心誠惻惻
그 말 들으니 맘은 더욱 비통하나 / 聞之益傷悲
나는 실로 축적해 둔 것이 없거니 / 我實無蓄積
축적 없어 너를 다습게 못 하면서 / 蓄積不煖汝
무슨 마음으로 너를 부린단 말이냐 / 何心食汝力
[주D-001]택주(宅主) : 외명부(外命婦)의 봉작(封爵)의 하나로, 특히 공신(功臣)의 처(妻)를 이렇게 일컬었는데, 여기서는 바로 목은의 처를 이른 말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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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엔 이르기를 군자로서 / 始也謂君子
장차 인귀관을 뚫으리라 했더니 / 將透人鬼關
중간에는 의리와 이끗이 뒤섞여 / 中焉雜義利
소인과 군자의 중간이 돼버렸고 / 小人君子間
그 후론 점점 물욕이 치성해져서 / 漸漸物欲熾
이제는 완둔한 돌처럼 되었기에 / 乃今如石頑
속여 열 짐승 잡을 줄만 알거니 / 但知詭獲十
어찌 다시 험난한 것을 피하리오 / 寧復避險艱
아 우리 후손들은 / 嗟嗟我後昆
삼가서 네 얼굴을 종처럼 말거라 / 愼勿奴爾顔
종의 얼굴 하기야 쉽지 않으랴만 / 奴顔豈不易
두려운 건 간악한 데 빠짐이란다 / 所懼流於姦
[주D-001]처음엔 …… 했더니 : 인 귀관(人鬼關)은 군자(君子)가 되느냐, 소인(小人)이 되느냐의 관문을 의미한다. 《심경(心經)》 성의장(誠意章)에 “성의는 바로 인귀의 관문이니, 이 한 관문을 통과하여야만 바야흐로 진취할 수가 있다.[誠意是人鬼關 過此一關 方會進]” 하였다.
[주D-002]속여 …… 알거니 : 춘 추 시대 조 간자(趙簡子)가 왕량(王良)으로 하여금 폐신(嬖臣)인 해(奚)와 함께 수레를 타고 사냥을 하도록 했을 때, 왕량이 법도(法度)에 따라서 말을 달렸을 때는 종일토록 짐승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가, 왕량이 법도를 무시하고 짐승을 속여서 몰래 만나도록 해 주었을 때는 하루아침에 열 마리나 잡았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끗만 탐하는 것을 의미한다. 《孟子 滕文公下》
[주D-003]삼가서 …… 말거라 : 얼굴을 종처럼 한다는 것은 곧 마치 노예처럼 언어와 기색(氣色)을 바싹 움츠려서 비굴하게 제 몸을 낮추어 갖은 아양으로 세력 있는 자를 받들어 섬기는 것을 말한다.
익랑(翼廊)의 벽(壁)에 흙을 바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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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면이 텅 빈 당에 창문들을 활짝 열고 / 八面虛堂戶牖開
다시 벽을 발라서 먼지 없이 깨끗하니 / 更加塗墍淨無埃
남쪽서 비추는 짧은 해는 머물리기 좋고 / 好留短晷從南照
북쪽서 불어온 찬 바람은 두렵지도 않네 / 不怕寒風自北來
눈가림하는 고서는 천 권이요 만 권이요 / 遮眼古書千萬卷
창자 적시는 좋은 술은 두서너 잔이로다 / 澆腸美酒兩三盃
앞으로는 마음을 안정하여 앉았으리니 / 從今秪得安心坐
어찌 이 집을 운대나 조대에 비교하랴 / 誰較雲臺與釣臺
적적한 추당은 낮에도 문을 열지 않고 / 寂寂秋堂晝不開
창문 햇살이 먼지 놀리는 것만 보노라니 / 坐看窓日弄輕埃
같은 조정의 선비들만 공연히 생각날 뿐 / 同朝羣彦空相憶
수업하는 제생들도 또한 오지를 않는구나 / 受業諸生亦不來
누가 돈 얻어 나에게 술을 받아주려 하랴 / 誰肯得錢沽我酒
스스로 바다 이룬 술잔 잡을 줄만 안다네 / 自知就海執吾杯
앞으로는 그만인데 또 무엇이 한스러워 / 從今已矣夫何恨
황금대 다시 설치하길 아직도 바랄쏜가 / 尙冀黃金更置臺
[주D-001]눈가림하는 …… 만 권이요 : 《전 등록(傳燈錄)》에 의하면, 한 중이 약산(藥山) 유엄 선사(惟儼禪師)에게 묻기를 “화상(和尙)께서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는 경(經)을 보지 못하게 하시면서 어찌하여 스스로는 경을 보십니까?” 하자, 유엄 선사가 대답하기를 “나는 다만 눈가림을 하기 위해 보는 것이다.[我只圖遮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마음을 안정하여 앉았으리니 : 마 음을 안정한다는 것은 역시 불교 용어로서, 즉 마음을 한 곳에 안주(安住)시켜 안정 부동(安定不動)의 경계(經界)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속고승전(續高僧傳)》 보리달마전(菩提達摩傳)에 의하면 “꼼짝 않고 앉아서 벽을 향해 좌선하여, 나도 없고 남도 없어 범인과 성인이 똑같아진 경지가 이게 바로 안심인 것이다.[凝住壁觀 無自無他 凡聖等一 是爲安心]” 하였다.
[주D-003]어찌 …… 비교하랴 : 운 대(雲臺)는 후한 명제(後漢明帝) 때에 전대(前代)의 공신(功臣)들을 추모하기 위해 등우(鄧禹) 등 장수(將帥) 28인의 초상(肖像)을 걸었던 대명(臺名)이고, 조대(釣臺)는 낚시터를 말한 것으로, 특히 후한 때의 은사(隱士) 엄광(嚴光)이 낚시질하던 곳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곧 운대의 공신이 되는 것도, 조대의 은사가 되는 것도 모두 부럽지 않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주D-004]추당(秋堂) : 가 을날의 청당(廳堂)이란 뜻으로, 일반적으로 서생(書生)들이 일과(日課)를 습독(習讀)하는 곳을 의미한다. 당(唐)나라 원진(元稹)의 〈함풍석(含風夕)〉 시에 “여름옷은 약간 가벼워지고, 가을 청당은 이미 적막해졌네.[夏服稍輕淸秋堂已岑寂]”라고 하였다.
[주D-005]바다 이룬 술잔 : 큰 술잔을 해배(海杯)라 칭하는 데서 온 말로, 즉 큰 술잔을 의미한다.
[주D-006]황금대(黃金臺) 다시 설치하길 : 전국 시대 연 소왕(燕昭王)이 역수(易水)의 동남쪽에 황금대를 짓고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초빙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중구일(重九日)이 벌써 가까워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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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가 살며시 터져라 중양이 다가오니 / 黃花微綻近重陽
임정의 가을 풍경은 한껏 서늘하다마는 / 秋色林亭滿意涼
모르겠노라 다시 어느 높은 산을 오를꼬 / 未識登高更何處
용산서 모자 떨군 호광만 상상할 뿐이네 / 龍山落帽想豪狂
귀뚜라미 소리 멎고 달빛은 밤에 흐를 제 / 蛩聲已斷月流夜
기러기 처음 날아가고 이른 서리 내렸네 / 鴈影初飛天早霜
고금 역사 흐르는 속에 한껏 취해나 보자 / 古往今來須酩酊
나와 함께 변천하는 게 바로 풍광이거니 / 共吾流轉是風光
[주D-001]높은 산을 오를꼬 : 옛날에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이면 사람들이 붉은 주머니에 수유(茱萸)를 담아서 팔뚝에 걸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菊花酒)를 마심으로써 재액(災厄)을 소멸시켰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용산(龍山)서 …… 호광(豪狂) : 호 광은 호탕하고 방자함을 가리킨 것으로, 즉 뛰어난 풍류를 의미하는데, 진(晉)나라 때 맹가(孟嘉)가 일찍이 정서장군(征西將軍)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이 되었을 때, 한번은 중양일(重陽日)에 환온이 용산에서 연회를 베풀어 막료들이 다 모여서 술을 마시며 한창 즐겁게 놀 적에 마침 바람이 불어서 맹가의 모자가 날려갔으나 맹가는 그것도 모른 채 풍류를 한껏 발휘했던 데서 온 말이다.
한유항(韓柳巷)과 함께 전경선(全敬先) 판사(判事)를 방문한 자리에서 취하여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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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빠짐-
문생(門生) 평장(平章) 안집지 인기(安集池鱗起)로부터 ‘노루포[乾獐]를 보낸다.’는 내용의 서신을 받고, 인하여 애밀(崖蜜)을 요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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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치아로 깡말린 포 먹길 꺼려왔지만 / 病齒曾嫌腊最乾
잘 삶으면 궁한 생활 위로할 만도 하지 / 爛烹猶足慰酸寒
시 짓는 창자 깡말라 늘 적셔 주고팠노니 / 詩腸枯槁常思潤
산중에선 석청 찾기가 어렵지 않으련만 / 崖蜜山中覓不難
새벽에 비가 와서 높은 산에 오르고픈 흥취를 저버릴까 염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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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뜰의 밤비 소리 귀에 번뜩 들리어라 / 夜雨空階觸耳新
더구나 문인 숭상하는 가절을 만났음에랴 / 況當佳節尙文茵
잠깐의 흐리고 갬을 누가 능히 헤아릴꼬 / 陰晴數刻誰能算
고금의 영웅들도 모두 티끌이 되었는걸 / 今古英雄總化塵
중추의 밝은 달 아랜 홀로 우뚝 섰었더니 / 明月中秋立於獨
황화절 중구일엔 술 취할 거리가 없네그려 / 黃花九日醉無因
게다가 용수산 길을 미끄럽게까지 하니 / 更敎泥滑龍山路
조물주는 예부터 사람을 놀릴 뿐이로다 / 造物由來只戲人
중양절이라 내일은 누가 나를 불러줄꼬 / 重陽明日有誰呼
도성 거리에 가득 가랑비가 자욱하구나 / 小雨濛濛滿九衢
날만 갠다면 말을 타고 갈 수는 있으니 / 只得天晴騎馬去
진흙탕길에 남의 부축 안 받아도 되련만 / 不愁泥滑倩人扶
한 마음은 울 밑의 국화만 보고 싶은데 / 一心政欲看籬菊
두 귀는 정오 소리를 안 듣기가 어렵네 / 兩耳難禁屬井梧
모르겠다 효성으로 초제를 지내고 나면 / 未識孝思修醮禮
혹 남은 제주로 이 늙은이 위로해줄는지 / 倘分餘瀝慰衰夫
[주D-001]더구나 …… 만났음에랴 : 문 인(文茵)은 호피(虎皮)로 만든 자리 또는 화려한 무늬가 있는 자리를 가리킨 것으로, 특히 예로부터 중양절(重陽節)에는 문사(文士)들이 등고회(登高會)를 열어서 시문(詩文)을 짓고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면서 풍류를 한껏 발휘했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두 귀는 …… 어렵네 : 정 오(井梧)는 우물가의 오동나무를 가리키는데, 입추(立秋)가 되면 오동(梧桐)의 한 잎이 가장 먼저 떨어진다 하여, 옛말에 “오동의 한 잎새가 떨어지면, 천하 사람이 다 가을임을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가을 풍경에 대한 감회를 의미한다.
날이 맑아짐을 기뻐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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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구름 흩어져 날씨가 쾌히 맑으니 / 向午雲飛快放晴
사방 산천 가을 기운이 십분 청쾌하구나 / 四山秋氣十分淸
곧 들어갈 매미 소리는 목이 메는 듯하고 / 寒蟬短景聲初澁
하늘 멀리 기럭 그림자 또한 가로질렀네 / 霜鴈遙空影又橫
청예는 일찍이 자미의 시를 읊었거니와 / 靑蘂昔曾吟子美
백의 보고 이젠 연명처럼 춤추고 싶다네 / 白衣今欲舞淵明
높은 데 올라 글 짓는 건 우리 집 일이라 / 登高能賦吾家事
새로운 시가 벌써 눈앞에서 나오는구나 / 已有新詩眼底生
[주D-001]청예(靑蘂)는 …… 읊었거니와 : 청 예는 푸른 꽃술을 말하고, 자미(子美)는 두보(杜甫)의 자이다. 두보의 〈탄정전감국화(歎庭前甘菊花)〉 시에 “뜰 앞의 감국은 옮겨 심은 철이 늦어서, 푸른 꽃술을 중양절에도 따 먹질 못하겠네.[庭前甘菊移時晚 靑蘂重陽不堪摘]”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백의(白衣) …… 싶다네 : 연 명(淵明)은 도잠(陶潛)의 자이다. 도잠이 한번은 중양일(重陽日)에 술이 없어 집 가의 국화 떨기 가운데 들어가 한참 동안 앉았노라니, 마침 강주 자사(江州刺史) 왕홍(王弘)이 백의 입은 사자(使者)를 시켜 술을 보내오므로, 그 자리에서 바로 술을 마시고 취하여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소식(蘇軾)의 〈장질부송주육호…(章質夫送酒六壺 …)〉 시에 “백의로 술 보낸다기에 연명처럼 춤추면서, 바람 난간 급히 쓸고 깨진 술잔 씻어놓았네.[白衣送酒舞淵明 急掃風軒洗破觥]”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높은 …… 일이라 : 《한 시외전(韓詩外傳)》에 의하면, 공자(孔子)가 일찍이 경산(景山) 위에 올라가 노닐 때에 자로(子路), 자공(子貢), 안연(顔淵)이 시종(侍從)했었는데, 이때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군자가 높은 데에 올라서는 글을 짓는 것인데, 소자들의 원하는 것은 그 무엇인고?[君子登高必賦 小子願者何]”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중양일에는 특히 등고회(登高會)를 하는 풍습이 있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중구일(重九日)에 아무도 초청하는 이가 없으므로, 서린(西隣)의 유항공(柳巷公)에게 가동(家僮)을 달려 보내서 물어보았더니, 그 역시 갈 데가 없다고 말하였다. 이에 장난삼아 한 수를 지어서 기록하여 바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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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이웃은 초대해 주는 이 없고 / 東鄰無相邀
서쪽 이웃은 아무 데도 갈 곳 없어 / 西鄰無所適
유동의 두 선생이 / 柳洞兩先生
적적하게 국화만 마주해 있자니 / 黃花對寂寂
가을은 한 마음을 좇아서 맑고 / 秋從一心淸
산은 두 눈과 더불어 푸르구나 / 山與雙眼碧
울타리 밑을 쓸고 노닐 만하여라 / 籬下可掃地
국화 떨기에 찬 이슬방울졌거니 / 芳叢寒露滴
우선 의기양양한 나비와 함께 / 且與蝶揚揚
애오라지 오늘 밤을 길게 늘이리 / 聊以永今夕
왜 굳이 내 모자를 떨어뜨리고 / 何必落吾帽
배반이 낭자하게 할 것 있으랴 / 杯盤共狼藉
[주D-001]울타리 …… 방울졌거니 : 도 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면서,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가을 국화는 빛깔도 좋으니, 이슬 머금은 그 꽃을 따다가, 이 시름 잊게 하는 술에 띄워서, 내 세상 잊은 정을 더 멀리하련다.[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秋菊有佳色 裛露掇其英 汎此忘憂物 遠我遺世情]”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의기양양한 나비 : 한 유(韓愈)의 〈추회(秋懷)〉 시에 “곱디고운 서리 속의 국화는, 철 늦은 때에 무슨 좋을 것 있으랴만, 꽃 희롱하는 의기양양한 나비야, 너의 삶도 또한 이르지 않구나.[鮮鮮霜中菊 旣晚何用好 揚揚弄芳蝶 爾生還不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애오라지 …… 늘이리 : 《시 경》 소아(小雅) 백구(白駒)에 “깨끗한 저 흰 망아지가, 우리 콩잎 먹었다 핑계 대고, 발과 가슴을 얽어매 놓고, 오늘 밤을 길게 늘이어, 저 훌륭한 사람을, 내 좋은 손이 되게 하련다.[皎皎白駒 食我場藿 縶之維之 以永今夕 所謂伊人 於焉嘉客]”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서로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뜻으로 한 말이다.
[주D-004]왜 …… 있으랴 : 진 (晉)나라 때 맹가(孟嘉)가 일찍이 정서장군(征西將軍)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이 되었을 때, 한번은 중양일(重陽日)에 환온이 용산에서 연회를 베풀어 막료들이 다 모여서 술을 마시며 한창 즐겁게 놀 적에 마침 바람이 불어서 맹가의 모자가 날려갔으나 맹가는 그것도 모른 채 풍류를 한껏 발휘했던 데서 온 말이다.
삼 가 중방(重房)의 제장(諸將)이 보내 준, 보은사(報恩寺) 조진전(祖眞殿)의 초주(醮酒) 두 병을 받아서 보니, 그 겉에 “봉상대부 친어군 호군 신하는 삼가 봉하다.[奉常大夫親禦軍護軍申夏謹封]”라고 쓰여 있으므로, 신(臣) 색(穡)이 마치 전정(殿庭)에서 음복(飮福)하는 것 같아 매우 다행스럽게 여긴 나머지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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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은 깊어라 울창한 숲이 둘러쌌는데 / 眞殿深沈擁鬱蒼
중방의 관원들이 삼삼 구구로 모이었네 / 三三九九集重房
상제가 남긴 술잔을 해마다 나눠줬지만 / 帝觴每歲分餘瀝
두 병 술이 금년엔 특별히 광채가 나누나 / 朋酒今年別有光
푸른 버들은 무성해 아직 빛을 희롱하고 / 碧柳依依猶弄色
노란 국화는 다시 향기를 두루 풍기는데 / 黃花泛泛更吹香
봉함은 신밀하게 관함은 자세하게 썼어라 / 題緘謹密官銜細
재배하고 은혜 입으니 흥취가 무량하구나 / 再拜承恩興自長
한유항(韓柳巷)이 자기 아우 판서공(判書公)과 함께 술을 가지고 내 집에 들러 주었다. 그래서 함께 동산(東山)에 올라가 앉으려다가 그곳은 오히려 지대가 낮다 하여 원장(園墻)을 나가서 고(故) 만호(萬戶) 박공(朴公)의 동산[園]에 이르니, 조그마한 언덕이 있었다. 이곳은 천마산(天磨山) 등 여러 산과 송악산(松嶽山), 용수산(龍岫山) 등이 사방으로 빙 둘러 있고 남쪽으로는 삼각산(三角山)에 이르는 곳으로서 참으로 승지(勝地)였다. 이곳에 앉으려다가 또 생각해 보니, 산 밑의 마을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게 될 것이라, 높은 곳에 있는 것이 마음에 불안한 바가 있으므로, 이에 바로 길창원(吉昌園)의 북쪽이며 유 재상(柳宰相)고택(故宅)의 동쪽이며 양파(陽坡)의 동북쪽이며 우리 동산의 서북쪽에 위치한, 언덕 남쪽에 의지하여 자리를 깔고 앉아서 놀았다. 유항의 아들 좌랑(佐郞) 및 내 자식 종덕(種德), 종학(種學), 종선(種善)이 모두 자리에 있어 서로 갈음하여 술을 따라 올리므로, 두 늙은이는 두 다리를 개고 앉아서 길이 읊조리며 놀다가 달밤에야 서로 송별하였다. 그다음 날에 두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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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군과 유항이 중양 명절을 즐기려고 / 韓山柳巷賞重陽
함께 동강에 오르니 국화가 향기로운데 / 共上東岡菊有香
형 어질고 아우 강해 풍채는 빼어나고 / 昆令季強風采秀
하늘 높고 산은 멀어 들 흥취 진진했지 / 天高山遠野情長
머리털 헝클어져 내 백발은 한스러우나 / 鬅鬙鬢髮嗟吾白
배반이 낭자함은 저 하늘에 감사하노라 / 狼藉杯盤謝彼蒼
두 노인 대통 운수 회복함을 증험했어라 / 驗得兩翁艱復泰
좋은 때 좋은 경치에 애들까지 모였었네 / 良辰美景集兒郞
송재 댁 유상 댁은 양파를 끼고 있었고 / 松齋柳宅夾陽坡
역수 댁 빙옹 댁과 박 만호의 댁이로다 / 櫟叟氷翁萬戶家
높은 가문 잘 계승해 광채만 더할 뿐이요 / 繼述高門增煥赫
유산으로 분쟁하는 위가는 전혀 없구려 / 紛爭遺址絶撝訶
삼한의 교목들은 가을빛이 절반이요 / 三韓喬木半秋色
구일의 국화꽃은 이슬 듬뿍 머금었네 / 九日黃花多露華
한스러워라 고인들을 다시 뵐 수 없어 / 惆悵古人難可作
후생의 슬픈 심정 새 노래에 부치노라 / 後生悲慨寄新歌
[주C-001]한유항(韓柳巷)이 …… 판서공(判書公) : 여기서 말한 판서공은 바로 유항 한수(韓脩)의 동생으로, 고려 공민왕 때에 벼슬이 예의 판서(禮儀判書)에 이르고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해진 한리(韓理)를 가리킨다.
[주C-002]고(故) 만호(萬戶) 박공(朴公) : 고 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무신(武臣)으로, 일찍이 일본(日本) 정벌 등에서 많은 공을 세웠고, 좌익 만호(左翼萬戶), 판삼사사(判三司事), 경상전라도 도순문사(慶尙全羅道都巡問使), 좌군 만호(左軍萬戶) 등을 역임했던 박지량(朴之亮)을 가리킨다.
[주C-003]길창원(吉昌園) : 고려 충선왕(忠宣王), 충숙왕(忠肅王) 연간에 벼슬이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에 이르고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진 송재(松齋) 권준(權準)의 동산을 가리킨다.
[주C-004]유 재상(柳宰相) : 고려 공민왕 때의 재상(宰相)으로, 벼슬이 첨의찬성사,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이른 유숙(柳淑)을 가리킨다.
[주C-005]양파(陽坡) : 본디 지명(地名)인데, 홍언박(洪彦博)의 호로도 쓰인다.
[주D-001]형 …… 빼어나고 : 후 배가 선배보다 더 훌륭하다는 뜻으로, 송(宋)나라 때 유반(劉攽)이 소식(蘇軾)의 동생인 소철(蘇轍)이 지은 〈훈사(訓辭)〉를 보고는 소철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지은 문장이 어진 형보다 강하다.[君所作強於令兄]”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유항(柳巷) 한수(韓脩)의 동생인 한리(韓理)를 칭찬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2]역수(櫟叟) 댁 빙옹(氷翁) : 역수는 호가 역옹(櫟翁)인 이제현(李齊賢)을 가리키고, 빙옹은 처부(妻父)의 별칭이다.
[주D-003]위가(撝訶) : 소식(蘇軾)의 〈차운장전도희우(次韻章傳道喜雨)〉 시에 “상산의 산신은 참으로 맹렬하여, 천둥을 지휘해 타고 번개를 호령하였네.[常山山神信英烈撝駕雷公訶電母]”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강렬한 기세를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10일의 국화를 두고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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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열흘의 국화가 깊은 골짝을 비출 제 / 十日黃花照窮谷
백발의 늙은 주인은 홀로 우뚝이 서서 / 主人白髮立於獨
국화 따서 손에 쥐고 머리 위에 꽂으니 / 採之手中揷其頭
동쪽 울은 유연하고 산색은 푸르구나 / 東籬悠然山色綠
주인은 이른 나이에 매화처럼 일찍 피어 / 主人早歲似梅花
뭇 나무가 꽃피우길 감히 못 겨루었는데 / 衆木不敢爭開葩
지금은 참으로 계곡 밑의 소나무 같아서 / 如今眞同澗底松
첩첩 산중에 원숭이 학만 의지할 뿐이네 / 猿攀鶴宿山萬重
알건대 하룻밤에 향이 줄진 않았으리니 / 明知一夜香不減
꽃향기로 쇠한 얼굴 펴주길 어찌 아끼랴 / 弄芳何惜逞衰容
다만 두려운 건 풍상이 점차 매서워져서 / 只恐風霜漸刻骨
천지가 꽉 막히어 겨울이 되는 거로세 / 天地閉塞將成冬
[주D-001]동쪽 …… 푸르구나 : 도 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면서,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가을 국화는 빛깔도 좋으니, 이슬 머금은 그 꽃을 따다가, 이 시름 잊게 하는 술에 띄워서, 내 세상 잊은 정을 더 멀리하련다.[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秋菊有佳色 裛露掇其英 汎此忘憂物 遠我遺世情]”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천지(天地)가 …… 거로세 : 《예기》 월령(月令)에 “시월이 되면 천기는 위로 올라가고, 지기는 아래로 내려가서 천지가 서로 통하지 않아 꽉 막혀서 겨울을 이룬다.[孟冬之月天氣上騰 地氣下降 天地不通 閉塞而成冬]” 하였다.
광양군(光陽君) 이 선생(李先生)을 위하여 계당(溪堂)에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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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서 함께 놀던 때가 그 몇 해이던고 / 三角同游問幾秋
구름 비 흩어지듯 물 동으로 흐르듯 했네 / 雲離雨散水東流
성당으로 봉읍된 이는 두 사람뿐이지만 / 省堂封邑二人耳
가장 연소한 목옹도 이제는 백발이라오 / 最少牧翁今白頭
구름 걷힌 삼각산엔 찬 달빛이 스며들고 / 雲卷華山寒月浸
비 내린 자하동엔 떨어진 꽃이 둥둥 떴네 / 雨餘紫洞落花浮
냇물 임해 탄식한 게 아직 귀에 쟁쟁커니 / 臨川有嘆猶盈耳
고요함 속 천지조화 외에 무엇을 구하랴 / 靜裏乾坤不外求
[주D-001]구름 …… 했네 : 구름 비가 흩어지듯 했다는 것은 동배(同輩)들이 서로 죽거나 헤어진 것을 의미하고, 물이 동으로 흐르듯 했다는 것은 끝없이 흐르는 세월을 가리켜 한 말이다.
[주D-002]성당(省堂)으로 …… 사람뿐이지만 : 성당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정당문학(政堂文學)을 가리킨 것으로, 이 무렵을 전후하여 이무방(李茂芳)은 정당문학으로 광양군(光陽君)에 봉해지고 목은 역시 정당문학으로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003]냇물 …… 게 : 공 자(孔子)가 일찍이 냇가에서 흐르는 냇물을 보고 이르기를 “가는 것이 이러하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구려.[逝者如斯夫 不舍晝夜]” 한 데서 온 말인데, 공자는 바로 잠시도 쉴 새 없이 운행하는 천지(天地)의 조화를 두고 탄식했던 것이다. 《論語 子罕》
칠원부(漆原府)에 나아가서 앞서 고헌(高軒)이 내 집에 들러준 데 대하여 사례하고, 간단하게 술을 마시고 밤에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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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한 총재 지위는 삼한을 압도하는데 / 巍巍冢宰壓三韓
국화 이슬 흠뻑 젖은 구일의 퇴청 길에 / 九日朝回菊露漙
높은 행차가 잠시 궁벽한 시골 왕림하자 / 暫枉高軒顧窮巷
맹광은 놀라 기뻐하며 배 쟁반을 올렸네 / 孟光驚喜進梨盤
뜨락의 이끼 위엔 갑자기 발자국 남기고 / 半庭蒼蘚俄留迹
팔순에도 춘풍은 아직 얼굴에 넘치었네 / 八秩春風尙溢顔
사례드리고 또 당상에서 술대접 받고는 / 拜謝又蒙堂上飮
돌아와서 저녁에는 용수산을 마주하노라 / 歸來薄暮對龍巒
[주D-001]맹광(孟光) :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 양홍(梁鴻)의 아내 이름으로, 전하여 은사의 아내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곧 목은의 부인을 가리킨다.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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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령엔 승상의 집이 있는 곳이요 / 梨嶺丞相廬
유동은 군자가 사는 마을이로다 / 柳洞君子居
어제 마신 술이 아침까지 취하여 / 昔酒朝尙醺
호기가 아직도 사라지질 않누나 / 豪氣猶未除
물들인 양 붉은 낯에 술잔 내려라 / 錫爵顔渥丹
옛사람의 풍도가 절로 넘치었네 / 古人風韻餘
공경들 사이에 서로 종유하면서 / 遨遊公卿間
흐르는 세월을 보낼 만하고말고 / 可以送居諸
[주D-001]물들인 …… 내려라 : 《시경》 패풍(邶風) 간혜(簡兮)에 “왼손에는 피리를 잡고, 오른손에는 꿩깃을 잡아라, 그 얼굴 물들인 양 붉거늘, 공께서 한잔 술을 내리시네.[左手執籥 右手秉翟 赫如渥赭 公言錫爵]” 한 데서 온 말이다.
회포를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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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아직도 나를 젊게 여기고 / 前輩尙少我
후생은 벌써 나를 늙게 여기나니 / 後生已老吾
늙게 여김엔 절로 소외를 받거니와 / 老吾自見疏
젊게 여긴 곳엔 그 누구와 즐기랴 / 少吾與誰娛
이 때문에 홀로 앉아 휘파람 불면 / 所以獨坐嘯
그 소리가 동해 구석을 흔든다네 / 聲搖東海隅
흰 구름은 갠 봉우리에서 나오고 / 白雲生晴峯
밝은 달은 -원문 빠짐- / 明月□□□
고상한 생각은 아득한 데 부치고 / 遐想寄縹渺
여생은 졸렬한 생활 감수하는데 / 餘生甘拙迂
서쪽 이웃에 다행히 동지가 있어 / 西鄰幸同嗜
왕왕 요순 시대를 노래도 하지만 / 往往歌唐虞
요순 시대는 끝내 아득기만 하네 / 唐虞竟寥闊
노년(老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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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엔 참으로 내 오두막 사랑하면서 / 老年眞箇愛吾廬
홀로 동고에 올라 한 번 휘파람 부노라니 / 獨上東皐一嘯舒
풍일은 한창 맑아서 천지가 광활하고요 / 風日淸酣天地闊
산봉은 말쑥이 빼어나 수림이 듬성하네 / 峯巒淨秀樹林疏
강남의 구름은 궁전 섬돌을 옹위하고 / 江南雲擁螭頭陛
새북의 서리는 소식을 따라 내리누나 / 塞北霜隨鴈足書
선을 힘써 이어지게만 하라고들 하거니 / 強善共言爲可繼
마음에 두고 태평의 처음을 노래하노라 / 有心歌詠太平初
[주D-001]늘그막엔 …… 부노라니 : 도 잠(陶潛)의 〈독산해경(讀山海經)〉 시에 “새들도 의탁할 데 있음을 기뻐하거니, 내 또한 내 오두막을 사랑하노라.[衆鳥欣有托 吾亦愛吾廬]” 한 것과 그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동쪽 언덕에 올라 길이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한다.[登東皐以舒嘯臨淸流而賦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강남(江南) : 양자강(揚子江) 남쪽 지방을 가리킨 것으로, 여기서는 바로 당시 명(明)나라의 수도였던 금릉(金陵)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주D-003]새북(塞北) : 변새(邊塞)의 북쪽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바로 당시 명나라에 의해 북으로 쫓겨간 북원(北元)을 가리킨다.
[주D-004]선(善)을 …… 하거니 : 전 국 시대 등 문공(滕文公)이 제(齊)나라에서 등나라와 아주 가까운 설(薛)에 성(城)을 쌓으려 한 것을 매우 두렵게 여겨,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맹자(孟子)에게 묻자, 맹자가 이르기를 “진실로 선을 한다면 후세에 자손이 반드시 왕천하할 자가 있을 것이니, 군자는 업을 창조하고 계통을 드리워서 이어져가게만 할 뿐입니다. 성공을 하는 것은 천명에 달린 것이니, 군께서 저 제나라에 대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선을 하기에만 힘쓸 뿐입니다.[苟爲善 後世子孫 必有王者矣 君子創業垂統爲可繼也 若夫成功則天也 君如彼何哉 彊爲善而已矣]”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梁惠王下》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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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은 은밀한 데 감춰져 있다가 / 人心藏於密
느낌을 받으면 육합에 가득 차거늘 / 感則彌六合
어찌하여 정도를 알지 못하고 / 奈何不知正
늙어서도 오히려 그리 답답한고 / 老矣猶沓沓
더구나 요망한 말에 현혹이 되니 / 況爲祅所惑
우가 납제를 못 지낼까 염려로다 / 政恐虞不臘
아 한집에 사는 가족 사이에도 / 嗟哉同室居
희로가 어지러이 서로 섞이지만 / 喜怒紛相雜
공경 의리가 그 사이에 행해지면 / 敬義行其間
본연의 도리가 절로 펴지느니라 / 樞機自開闔
나는 지금 조용히 앉았노라니 / 我今但靜坐
가을 기운이 빈자리에 가득하네 / 秋涼滿虛榻
[주D-001]인심은 …… 가득 차거늘 : 육 합(六合)은 천지(天地)와 사방(四方)을 가리킨 것으로 우주 전체를 의미하는데, 정자(程子)가 《중용(中庸)》의 의의를 가지고 이르기를 “그 글이 처음에는 한 이치를 말하였고, 중간에는 흩어져서 만사가 되었고, 끝에 가서는 다시 합하여 한 이치가 되었으니, 내놓으면 육합에 가득 차고 거두어들이면 물러가 은밀한 데에 감추어져서, 그 의미가 무궁하니, 이는 다 진실한 학문이다.[其書始言一理 中散爲萬事 末復合爲一理 放之則彌六合卷之則退藏於密 其味無窮 皆實學也]” 한 데서 온 말이다. 《中庸章句》
[주D-002]답답(沓沓) : 예 예(泄泄)와 같은 뜻으로, 게으르고 완만함을 말하는데,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임금을 섬기는 데에 의리가 없으며, 나가고 물러가는 데에 예가 없고, 말만 하면 선왕의 도를 비방하는 자가 바로 답답한 자와 같으니라.[事君無義 進退無禮 言則非先王之道者 猶沓沓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上》
[주D-003]우(虞)가 …… 염려로다 : 나 라가 곧 망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가 괵(虢)나라를 치기 위하여 우(虞)나라에 길을 빌려달라고 요구했을 때, 우나라의 신하인 궁지기(宮之奇)가 자기 임금에게 절대로 길을 빌려 주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극력 간(諫)하였으나, 임금이 끝내 들어주지 않으므로, 궁지기가 마침내 자기 가족을 거느리고 타국으로 떠나면서 말하기를 “우나라는 세말의 납제를 지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진나라는 이번 길에 우나라를 멸망시킬 것이요, 우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다시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虞不臘矣 在此行也 晉不更擧矣]” 했는데, 그 후 과연 그렇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 僖公5年》
아침 햇살이 남쪽 창을 비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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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남쪽 창을 비추니 / 朝日照南窓
환히 밝아라 마음이 말끔해지네 / 炯然方寸淸
방훈은 광채가 상하에 이르렀고 / 放勳被上下
홀로였던 분은 집대성을 하였네 / 獨也集大成
내게도 또한 천명이 있는 건데 / 在我亦天命
어이해 괴로이 영리를 꾀하랴만 / 奈何苦營營
저 물욕에 가리운 바가 되어서 / 物欲所叢翳
언뜻 어두웠다 밝아졌다 하나니 / 乍暗還乍明
언뜻 밝아짐을 어찌 족히 믿으랴 / 乍明豈足恃
돌아보면 뜬구름이 생겨나는걸 / 顧眄浮雲生
[주D-001]방훈(放勳)은 …… 이르렀고 : 방 훈은 공(功)이 커서 사방에 입혀졌다는 뜻으로, 요(堯) 임금을 예찬한 말인데, 《서경》 요전(堯典)에 “요 임금을 상고하건대, 바로 방훈이니, 공경하고 통명하고 문채가 빛나고 생각이 깊고 자연스러우며, 진실로 공손하고 능히 겸양하여 광채가 사표에 입혀지고 상하에 이르렀다.[曰若稽古帝堯 曰放勳欽明文思安安 允恭克讓 光被四表 格于上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홀로였던 …… 하였네 : 홀 로였던 분이란 곧 성인(聖人)으로서 세상에 도를 행하지 못했던 공자(孔子)를 가리킨 말이고, 집대성(集大成)은 여러 성자(聖者)의 지덕(智德)을 한 몸에 모아서 크게 이루었다는 뜻으로, 맹자가 이르기를 “백이는 성인의 청한 분이요, 이윤은 성인의 자임한 분이요, 유하혜는 성인의 화한 분이요, 공자는 성인의 시중한 분이다. 공자 같은 분을 집대성했다고 하는 것이다.[伯夷 聖之淸者也 伊尹聖之任者也 柳下惠 聖之和者也 孔子 聖之時者也 孔子之謂集大成]”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下》
서쪽 이웃의 길창공(吉昌公)을 알현하고 간단하게 술을 마시고는 돌아와서 소리 높여 읊조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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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재 송재는 대대로 의범이 되었거니와 / 菊齋松齋世儀刑
아상으로 습봉된 이는 지금 계정이로세 / 亞相襲封今繼亭
두어 가지 국화는 황금을 흩어 놓은 듯 / 數枝菊花如散金
한 그루 소나무는 공중에 우뚝 푸른데 / 一株松樹凌空靑
이것은 초목 중에 천품이 유독 다르니 / 是於草木稟獨異
사람이 그와 같으면 바로 군자이고말고 / 人而如之是君子
송재의 아들 중엔 유독 서린옹이 있어 / 嗣之獨有西鄰翁
몸이 국화 향기 솔 그림자 속에 있구려 / 身在菊香松影中
풍류와 부귀는 본디 소유한 것이거니와 / 風流富貴固所有
연세가 이미 선고 송재공을 초과하였네 / 行年已過松齋公
하늘이 만물을 냄엔 자질을 따라 돕나니 / 天之生物因材篤
조옹의 수에 미칠 건 의심할 바 아니요 / 壽至祖翁非所惑
검소해도 안 누추하고 풍부해도 사치 않고 / 儉而非陋豐非奢
빼어난 풍채에 생각도 사특함이 없고말고 / 神彩秀發思無邪
나의 집은 다행히 동쪽 담장 곁에 있어 / 我幸卜居在東牆
때로 길창군 모시고 시의 광기 더하노니 / 時陪杖屨添詩狂
반쯤 거나해 붓 잡고 소리 높여 읊노라면 / 半酣把筆放高歌
두 귀밑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서늘하다네 / 兩鬢颯颯秋風涼
[주D-001]국재(菊齋) …… 되었거니와 : 국 재는 고려 후기의 학자이며 문신으로 벼슬이 영도첨의사사(領都僉議司事)에 이르고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에 봉해진 권보(權溥)의 호이고, 송재(松齋)는 바로 권보의 아들로서 벼슬이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에 이르고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진 권준(權準)의 호이다.
[주D-002]아상(亞相)으로 …… 계정(繼亭)이로세 : 아 상은 곧 선인(先人)을 이어서 재상(宰相)이 된 사람을 가리킨 것으로, 두보(杜甫)의 〈곡위대부지진(哭韋大夫之晉)〉 시에서, 한(漢)나라 때 위현(韋賢)이 일찍이 명경(明經)으로 승상(丞相)이 되었는데 그의 현성(玄成) 또한 명경으로 승상이 된 고사를 인용하여 “한나라 도가 중흥하여 융성할 제, 위현의 경학은 아상으로 전하였네.[漢道中興盛 韋經亞相傳]”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바로 호가 계정(繼亭)인 권적(權適)이 송재 권준의 아들로서 그 역시 벼슬이 첨의찬성사에 이르고 길창군(吉昌君)에 봉해졌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송재(松齋)의 …… 있어 : 서린옹(西鄰翁)은 바로 송재 권준의 아들 중에 그 당시 홀로 생존한 길창군 권적을 가리킨다.
[주D-004]하늘이 …… 돕나니 : 《중 용장구(中庸章句)》 제17장에 “하늘이 만물을 내는 데는 반드시 그 자질에 따라서 도와주는 것이니, 그러므로 스스로 뿌리를 땅에 내리는 놈을 북돋아 살게 해 주고, 스스로 기울어져 가는 놈을 엎어뜨려 버리는 것이다.[天之生物 必因其材而篤焉故裁者培之 傾者覆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조옹(祖翁)의 수(壽) : 여기서 말한 조옹은 곧 권적(權適)의 조부인 권보(權溥)를 가리키는데, 권보는 향년(享年)이 85세였다.
시를 막 읊고 났는데, 길창공이 또 배[梨]를 보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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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얻어 마시고 막 붓 휘두르는데 / 得酒方揮筆
나누어 준 배가 또 상에 가득하네 / 分梨又滿床
듬성한 건 담장 모서리 그림자요 / 疏疏牆角影
풍기는 건 쟁반 머리의 향기로다 / 浥浥□頭香
폐병에 감히 통음이야 할까마는 / 肺病敢痛飮
이는 흔들려도 잠깐 맛볼 만하네 / 齒搖猶乍嘗
이웃 좋은 게 매우 다행스러워라 / 卜鄰深自□
즐거운 일이 곧 다하진 않을걸세 / □事未渠央
권 소윤(權少尹)의 여묘시권(廬墓詩卷)에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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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 넘은 나이에 비로소 친상을 당하여 / 年過六十始丁憂
은천의 비바람 가을에 앉았다 누웠다 하네 / 坐臥銀川風雨秋
목은 늙은이 무한한 뜻을 이끌어내는 건 / 惹起牧翁無限意
석양은 서로 가고 물은 동으로 흐름일세 / 夕陽西去水東流
[주C-001]권 소윤(權少尹) : 배 천(白川) 사람으로 소윤 권거의(權居義)를 가리키는데, 그는 우왕(禑王) 때에 60세가 넘은 나이로 모상(母喪)을 당하여 여묘(廬墓)살이를 하면서 매우 애통해 하였으므로, 조정에서 그의 효행을 가상히 여겨 효자 정문(孝子旌門)을 세워주었다 한다.
[주D-001]은천(銀川) : 배천(白川)의 옛 이름이다.
[주D-002]석양(夕陽)은 …… 흐름일세 : 한 번 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한 말이다.
효무(曉霧) 전편(前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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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태양이 땅속으로부터 올라올 제 / 曉來日從地中出
지기가 펴려고 하매 천기가 꺾였는지라 / 地氣欲伸天見屈
그 속에서 안개란 게 무성히 피오르는데 / 鬱然其中名曰霧
긴 바람이 오질 않으니 누가 충돌하리오 / 長風不來誰衝突
도성 거리 지척도 분간할 수가 없거니 / 天街咫尺亦相迷
오만 산이 평지처럼 묻힘은 당연코말고 / 莫怪萬山平地沒
중양의 장인 태양에 음이 침범한 거라 / 日衆陽長陰來干
잠시 뒤엔 물상을 다 볼 수 있게 되었네 / 須臾物像皆相觀
가리움은 잠시인데 뭐 탄식할 것 있으랴 / 蔽也暫兮何足嘆
원기가 두루 유행해 천지가 관하는걸 / 元氣周流天地官
여생에 가장 즐거움은 선을 함에 있기에 / 殘生最樂在爲善
신지가 청명해지고 거처도 편키만 한데 / 神志淸明居處寬
바깥 사기가 공격해와서 질병이 발작해 / 外邪攻擊疾病作
머리털은 듬성해지고 치아도 빠졌지만 / 鬢髮漸稀牙齒落
한 덩이의 중화는 조금도 결함이 없기에 / 中和一團正無缺
때때로 방자히 읊고 농지거리도 하노라 / 時時狂吟亦戲謔
질병도 새벽 안개 같음을 바로 알겠으니 / 卽知病也如曉霧
남김없이 걷어 가기를 서서 기다리련다 / 立待卷去無所著
안심하고 천명 기다림을 왜 또 의심하랴 / 安心竢命復奚疑
통색과 고락이 오직 때가 있을 뿐인 것을 / 通塞憂喜惟其時
[주D-001]중양(衆陽)의 …… 거라 : 중 양은 우주 간의 만물을 생장(生長)시키는 양기(陽氣)를 가리킨 것으로, 《한서》 이심전(李尋傳)에 “태양은 중양의 어른이라, 휘광이 비치는 곳에 만리가 휘광을 같이하는 것이니, 인군의 표상이다.[夫日者衆陽之長 輝光所燭 萬里同晷 人君之表也]” 한 것과, 한유(韓愈)의 〈중운(重雲)〉 시에 “하늘의 운행이 상도를 잃으면, 음기가 와서 양기를 침범한다.[天行失其度 陰氣來干陽]”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천지(天地)가 관(官)하는걸 : 《예 기》 악기(樂記)에 “성인이 악을 만들어 하늘에 응하고, 예를 제정해서 땅에 짝지우니, 예악이 밝게 갖추어짐으로써 천지가 관하게 되었다.[聖人作樂以應天 制禮以配地 禮樂明備 天地官矣]”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주석에 의하면, 관(官)은 곧 사(事) 자와 같은 뜻으로, 천지의 일이 각각 그 마땅함을 얻은 것이라고 하였다.
효무(曉霧) 후편(後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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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를 하늘이 응하지 않으면 무가 되고 / 地氣天不應爲霧
천기를 땅이 응하지 않으면 무가 되지만 / 天氣地不應爲霧
서로 응하면 비를 또 제때에 내려 주나니 / 相應則雨又以時
이것은 홍범의 좋은 징조에 나왔느니라 / 在於洪範其徵休
천지의 건함과 순함으로 만물을 화생하되 / 乾健坤順化萬物
음양이 서로 작용하여 주도면밀하거늘 / 絪縕舒卷密以周
혹 여기를 일으켜 본성을 잃게 됨에는 / 使之或沴失本性
나는 그 누구 때문인지 까닭을 모를레라 / 我不知兮誰之由
나는 그 누구 때문인지 까닭을 모르기에 / 我不知兮誰之由
장구 단구 읊조리다 이제는 백발이로세 / 長吟短吟今白頭
[주D-001]지기(地氣)를 …… 되지만 : 《이아(爾雅)》 석천(釋天)에 의하면 “천기가 하강했을 때 지기가 응하지 않아서 생긴 현상을 몽이라 하고, 지기가 발동했을 때 천기가 응하지 않아서 생긴 현상을 무라 한다.[天氣下地不應曰雺 地氣發天不應曰霧]”고 되어 있다.
[주D-002]서로 …… 나왔느니라 : 《서경》 홍범(洪範)에 “좋은 징조는 엄숙함으로 인하여 제때에 비가 내리는 것이다.[曰休徵曰肅時雨若]”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여기(沴氣) : 기후가 고르지 못함으로 인하여 재화(災禍)나 병마(病魔) 따위를 가져오는 악기(惡氣)를 말한다.
청신한 새벽에 국화를 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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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기운은 아직 청량함이 남았는데 / 夜氣尙餘淸
새벽빛은 벌써 희미하게 밝아오네 / 晨光已熹微
국화가 찬란하게 서로 비추일 제 / 菊花粲相照
내 마음은 본디 기심이 없는지라 / 吾心本忘機
담담하게 물아가 일체를 이루니 / 淡然物我共
참으로 성현도 기대할 만했는데 / 聖賢端可希
깨끗한 흥취는 오래 갖기 어려워 / 淸興持久難
잠시 뒤에 아 이미 글러져버렸네 / 少選嗟已非
국화의 참 모습을 그리고는 싶으나 / 對之欲寫眞
그림 잘한 이도 지금은 드물고말고 / 善畫今又稀
연명이 가버린 지 이미 오래거니 / 淵明去已遠
나는 장차 누구에게로 돌아갈꼬 / 吾將誰與歸
[주D-001]연명(淵明)이 …… 오래거니 : 연명은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자인데, 그가 평소에 국화(菊花)를 유독 사랑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가랑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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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을 마주해 빈 당에 앉았노라니 / 對僧坐虛堂
가랑비가 뜨락 이끼에 뿌리는데 / 微雨洒庭苔
중이 일어나 읍하고 문을 나가기에 / 起揖出門去
그를 불러도 돌아오려 하지 않누나 / 呼之不肯回
내 또한 나의 방으로 들어와서 / 我亦入我室
즐거이 묵은 술을 기울이노라 / 怡然傾舊醅
각각 제 좋은 걸 좋아할 뿐인데 / 各適其適耳
세상 길엔 의심하는 자도 많아라 / 世路多疑猜
의심하여 서로 해치는 자들이여 / 疑猜胥斨虐
저들은 참으로 무슨 마음이던고 / 彼誠何心哉
홀로 앉아서 조용히 향을 사를 제 / 獨坐靜焚香
가랑비가 내 당에 환히 비치어라 / 微雨映我堂
실실 내릴 땐 수를 셀 것도 같더니 / 絲絲如可數
몰아갈 땐 어찌 그리도 아득한고 / 卷去何杳茫
국화는 동쪽 울타리에 가득하여 / 黃花滿東籬
빼어난 빛이 더욱 광채가 나는지라 / 秀色滋有光
나비가 와서 제 머물 곳을 얻어 / 蝶來得其所
양양하게 때로 꽃을 희롱하누나 / 揚揚時弄芳
꽃 희롱하는 것 또한 늦었고말고 / 弄芳亦晚矣
금년엔 서리가 일찍 내렸으니까 / 今年天早霜
가을날의 회포가 여강에 있으니 / 秋思在驪江
자욱한 가랑비 속에 도롱이를 입고 / 微雨暗綠簑
흐르는 물 따라 배 저어 가노라면 / 隨流颺舟去
서늘한 기운이 흰 물결에서 생기리 / 涼意生白波
가려고 한 지는 또한 오래이건만 / 欲往亦云久
가지 못하니 장차 어찌한단 말인가 / 不去將如何
강산은 절로 적막하기만 하고 / 江山自寂寞
속세는 어긋나는 일도 많아서 / 塵世多蹉跎
백발이 한 줌도 다 안 되는 이때 / 白髮不滿掬
유연히 짧은 노래 지어 읊조리네 / 悠然成短歌
[주D-001]각각 …… 뿐인데 : 의도적으로 남을 위하거나 명예를 위하는 일에 급급하지 않고 자기의 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을 의미한다. 《莊子 大宗師》
[주D-002]국화(菊花)는 …… 내렸으니까 : 한 유(韓愈)의 〈추회(秋懷)〉 시에 “곱디고운 서리 속의 국화는, 철 늦은 때에 무슨 좋을 것 있으랴만, 꽃 희롱하는 의기양양한 나비야, 너의 삶도 또한 이르지 않구나.[鮮鮮霜中菊 旣晚何用好 揚揚弄芳蝶 爾生還不早]” 한 데서 온 말이다.
20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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