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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牧隱詩藁) 제23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8. 00:49

 

목은시고(牧隱詩藁) 23

 

 

 ()

 

 

 

4 26일에 서린(西鄰)의 길창군(吉昌君)이 빈객(賓客)에게 연회(宴會)를 베풀었다. 영문하(領門下) 곡성공(曲城公)과 문하 시중(門下侍中) 칠원공(漆原公)은 한중앙에 앉아서 남쪽을 향하고, 정 계림(鄭雞林)과 연로한 한 정당(韓政堂)은 동편에 앉아서 서쪽을 향하였으며, 창녕군(昌寧君) 성공(成公)과 연소한 한 정당(韓政堂)은 서편에 앉아서 동쪽을 향하고, 주인(主人) 길창군은 남쪽에 앉아서 북쪽을 향하였는데, 나는 연소한 한 정당 아래에 앉았었으니, 이는 연치(年齒)의 차례로 앉은 것이었다. 전 개성 윤(開城尹) 권희문(權希文), 전 군부 판서(軍簿判書) 권희천(權希天), 전 판사(判事) 권희안(權希顔) 삼 형제는 주인공(主人公)의 조카들이고, 상당(上黨) 한공 맹운(韓公孟雲)과 판사(判事) 권현(權顯)은 주인공의 아들과 사위인데, 모두 자제(子弟)의 예를 갖추어 행동거지를 오직 삼가서 하였다. 이때 원로(元老)들은 모두 칠순 이상이었으나, 유독 창녕군이 63세이고 연소한 한 정당이 56세였는데, 나 또한 53세로 나이가 가장 아래였기 때문에 속으로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다음 날에 비가 오므로 기뻐서 이를 노래하는 바이다.

 


태평성대에 태어나서 장수를 누리어라 / 生於太平享高年
달존
이 됨은 천명이요 우연이 아니로다 / 天也達尊非偶然
장수 하나가 우뚝이 오복에 으뜸인데 /
一壽巍巍冠五福
명예와 관작 겸해서 어찌 그리 온전한고 / 得名得位何其全
국가의 원기는 대신에게 있는 것이라 / 國家元氣在大臣
대신의 거취는 끝내 천명에 관계된다오 / 大臣去就終關天
곡성공의 옛 호칭은 태평재상이거니와 / 曲城舊號太平相
칠원공은 정대하게 조정 반열에 임했고 / 漆原正大臨朝聯
정공은 멀리 유람해 관람한 게 풍부하고 / 鄭公遠游富觀覽
성공은 일 처리에 경권을 통달하였고 / 成公幹事通經權
노한의 청호한 기백은 하늘 높이 치솟고 / 老韓淸豪氣凌空
소한의 정명한 문장은 달천과 같고말고 / 少韓精明詞達泉
주인의 높은 덕은 벌열 가문을 빛내어라 / 主人碩德照閥閱
늙을수록 강건하여 늘상 주연을 열어서 / 老而益健長開筵
매양 원로 초치하여 함께 담소를 나누니 / 每邀元老共談笑
풍류의 한아함이 선대보다도 뛰어나네 / 風流閑雅超於先
수많은 자질들은 모두가 호걸이거니와 / 子姪詵詵盡豪傑
서원의 옥윤
풍채는 왜 그리 우아한고 / 西原玉潤何翩翩
한산의 목동은 쇠하기 이를데 없는데 / 韓山牧童衰也甚
다행히 좋은 이웃 만나 은혜를 입어서 / 芳鄰幸接蒙恩憐
높은 연회에 참여하니 기쁘기 그지없어 / 叨陪高會喜又極
참으로 천상의 신선에 합류한 것 같네 / 眞如上界參神仙
서로 즐김이 잔뜩 취함에 있지 않는지라 / 交懽未必在沈酗
대면하자마자 고운 미인들을 내치었고 / 對面斥去紅粧鮮
국생
도 명함 내밀고 알현하려 하다가 / 麴生投刺欲入謁
읍하고 물러갔네 어울리길 감히 바라랴 / 揖退敢望來磨肩
평생에 마음씀이 절로 뭇사람과 달라 / 平生用意自異衆
온 세상에 교화를 입히려고 노력하기에 / 欲令一世歸陶甄
삼가 법도 지키고 검소함을 숭상했으니 / 謹守條章尙儉素
지기가 서로 합함은 말로 다 못 전하리 / 志同氣合難言傳
분명히 알괘라 화기가 하늘을 감동시켜 / 端知和氣感眞宰
부슬비가 가문 밭을 밤에 두루 적시었지 /
霂霢夜遍黃埃田
불상에 공들인 것으론 꼭 얻진 못하리니 / 叩頭泥佛未必得
이 연회의 얻은 바와 어느 것이 나은가 / 此會所得知誰賢
자고 깨니 작은 창에 날은 이미 밝았고 / 小窓夢斷天已白
꾀꼬리 우는 푸른 나무엔 연기가 떴는데 /
碧樹浮蒼煙
부슬부슬 부슬비가 그치지 않고 내려서 / 微微映空勢不止
요즘 오골오골 타던 심장을 다 씻어 주네 / 洗盡近日心腸煎
성대한 일 형용함은 우리의 책임이건만 / 形容盛事在我輩
경색한 문장 얽는 게 부끄러울 뿐이로다 / 但愧緝綴如拘攣
회상하건대 쌍명재를 상상할 만하여라 / 回頭雙明可想見
당시에 희우의 시편을 그 누가 제했던고 / 當時喜雨誰題篇

 

[주D-001]달존(達尊) : 천하(天下)가 공통으로 높여야 할 대상을 말한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천하에 달존이 세 가지가 있으니, 관작이 하나이고, 연치가 하나이고, 덕이 하나이다.[天下有達尊三 爵一齒一德一]” 하였다.
[주D-002]장수 …… 으뜸인데 :
《서경(書經)》 홍범(洪範), “오복은 첫째는 장수함이고, 둘째는 부함이고, 셋째는 강녕함이고, 넷째는 덕을 좋아함이고, 다섯째는 정명으로 마치는 것이다.[五福 一曰壽 二曰富 三曰康寧 四曰攸好德 五曰考終命]” 하였다.
[주D-003]경권(經權) :
경은 상도(常道) 즉 원칙을 의미하고, 권은 권도(權道) 즉 임기응변(臨機應變)을 의미한다.
[주D-004]달천(達泉) :
샘물이 막 콸콸 솟아나오기 시작한 것을 말한 것으로, 아주 힘찬 기세를 의미한다.
[주D-005]서원(西原) 옥윤(玉潤) :
서 원은 상당(上黨)과 함께 청주(淸州)의 고호이고, 옥윤은 진()나라 때 장인인 악광(樂廣)과 사위인 위개(衛玠)가 똑같이 명망이 높아서 당시의 논자(論者)들이, “장인은 얼음처럼 깨끗하고, 사위는 옥같이 윤택하다.[婦翁冰淸 女壻玉潤]”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사위를 가리킨다. 《晉書 卷36 衛玠列傳》 여기서는 곧 길창군(吉昌君) 권적(權適)의 사위인 상당군(上黨君) 한수(韓脩)를 가리켜 한 말이다. 자는 맹운(孟雲)이다.
[주D-006]국생(麴生) :
술을 의인화하여 일컬은 말이다.
[주D-007]쌍명재(雙明齋) :
고 려 중기의 문신(文臣) 최당(崔讜)의 호이자, 같은 시대의 문신인 이인로(李仁老)의 호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자세하지 않다. 최당은 일찍이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수태위(守太尉)로 치사(致仕)했는데, 그는 특히 풍류가 아주 뛰어나서 치사한 뒤에는 당대의 명사(名士)인 장자목(張自牧), 고형중(高瑩中), 백광신(白光臣), 이준창(李俊昌), 현덕수(玄德秀), 이세장(李世長), 조통(趙通) 등과 함께 기로회(耆老會)를 결성하여 시주(詩酒)를 즐기며 유유자적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지상선(地上仙)이라 호칭하고 그들의 도형(圖形)을 돌에 새겨서 후세에 전했다고 한다. 이인로는 역시 여러 관직을 거쳐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는데, 풍류가 매우 뛰어나서 벼슬을 떠난 뒤에는 당대의 명사인 오세재(吳世才), 임춘(林椿), 조통, 황보항(皇甫抗), 함순(咸淳), 이담(李湛)과 함께 망년우(忘年友)를 맺어 시주를 즐기면서 중국의 강좌칠현(江左七賢)을 모방하여 해좌칠현(海左七賢)으로 자처했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다 뛰어났다고 한

느낌이 있어 짓다. 3(三首)

 


사철이 갈음하여 서로 순환하매 / 四序更相代
고독한 생이 스스로 위로가 되네 / 孤生漸自寬
북창의 바람은 정절을 본받고 /
牖風師靖節
앞의 눈은 원안을 삼노라 /
門雪友袁安
점차 여염이 조용해진 게 기뻐라 / 稍喜閭閻靜
어찌 예악이 쇠잔함을 걱정하랴 / 寧憂禮樂殘
근래에는 시력이 더욱 나빠져서 / 邇來無眼力
가장 이 글 읽기가 어렵네그려 / 最是讀書難

그윽한 살이는 참으로 깨끗하여 / 幽居儘蕭洒
마음과 자취가 모두 한가로워서 / 心與迹俱閑
스스로 희황 이전 시대 이뤘거니 / 自致羲皇上
어찌 계맹의 사이를 기다릴쏜가 / 何須季孟間
정자는 관문 밖 산봉에 임해 있고 / 亭臨關外岫
누각은 성곽 남쪽 산을 마주하여 / 樓對郭南山
때로 흰 구름 나오는 것만 볼 뿐 / 時見白雲出
난 지금 허리 다리가 다 병신일세 / 我今腰脚頑

명과 실이 서로 대를 이룬 것이 / 名與實相對
분명하거니 누가 감히 속일쏜가 / 昭然誰敢欺
가난 견딤은 천명을 안 때문인데 / 安貧知有命
흥취를 풀려면 곧 시를 읊조리네 / 遣興卽爲詩
선객은 일찍이 잣나무를 물었고 /
禪客問柏樹
어옹은 죽지가를 노래했었는데 /
漁翁歌竹枝
나는 지금 다시 한가롭기만 하여라 / 吾今更蕭散
녹음 속에서 꾀꼬리 우는 이때에 / 黃鳥綠陰時

 

[주D-001]북창(北窓)의 …… 본받고 : 정 절(靖節)은 도잠(陶潛)의 사시(私諡)인데, 도잠이 어느 여름날에 청풍(淸風)이 불어오는 북쪽 창 아래에 누워서 스스로 희황(羲皇) 이상 시대 사람이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희황은 복희씨(伏羲氏)를 가리킨 것으로, 즉 복희씨 이전 태곳적의 한가로운 백성이란 뜻이다.
[주D-002]문 …… 삼노라 :
후 한(後漢) 시대 원안(袁安)이 미천했을 적에 한번은 낙양(洛陽)에 큰 눈이 내려서 낙양 영(洛陽令)이 민가(民家)를 순행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가서 눈을 치우고 걸식(乞食)을 하는데, 원안만 유독 눈도 치우지 않고 방 안에 가만히 드러누운 채 일어나지 않았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곤궁한 처지에 절조를 굳게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3]희황(羲皇) 이전 시대 :
도잠이 어느 여름날에 청풍(淸風)이 불어오는 북쪽 창 아래에 누워서 스스로 희황 이상 시대 사람이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희황은 복희씨(伏羲氏)를 가리킨 것으로, 즉 복희씨 이전 태곳적의 한가로운 백성이란 뜻이다.
[주D-004]계맹(季孟) 사이 :
춘 추(春秋) 시대 노()나라의 삼경(三卿)인 계손씨(季孫氏), 숙손씨(叔孫氏), 맹손씨(孟孫氏) 중에 계손씨가 가장 강신(
)이었으므로, 제 경공(齊景公)이 일찍이 공자(孔子)를 대우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계씨와 같이는 내가 해 주지 못하겠고, 계씨와 맹씨의 중간 정도로나 대우하겠다.[若季氏則吾不能 以季孟之間待之]”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제 공경이 또 말하기를, “내가 이미 늙었는지라, 등용하지는 못하겠다.”고 하자, 공자가 마침내 떠나 버렸다. 《論語 微子》
[주D-005]선객(禪客)은 …… 물었고 :
선 객은 선승(禪僧)과 같은 뜻인데, 한 스님이 조주(趙州) 종심(
)에게,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하자, 조주가 대답하기를,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화두(話頭)를 의미한다.
[주D-006]어옹(漁翁)은 …… 노래했었는데 :
죽 지가(竹枝歌)는 각 지방(地方)의 풍토(風土)를 읊은 시가(詩歌)를 말한 것으로, ()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일찍이 낭주(朗州)에 폄적(貶謫)되었을 때 굴원(屈原)의 구가(九歌)를 모방하여 죽지가 구편(九篇)을 지은 데서 비롯되었는데, 소식(蘇軾)이 지은 〈죽지가의 서()〉에 의하면, 또한 죽지가는 본디 초()나라의 가락으로서 순()의 이비(二妃)인 아황(娥皇), 여영(女英)과 굴원을 몹시 애도하고, 초 회왕(楚懷王)과 항우(項羽)를 매우 가련하게 여긴 데서 깊은 원한과 비통함이 배어 있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여기서 말한 어옹은 바로 굴원과 택반(澤畔)에서 서로 만났다가 창랑가(滄浪歌)를 부르며 떠나갔던 그 어부(漁父)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흥취를 풀다.

 


푸른 하늘은 어이 그리 광대한가만 / 靑天何蕩蕩
세상 길은 위기가 하고많아라 / 世路足危機
내 마음 괴로움을 괴로이 한할 뿐 / 苦恨我心苦
우리의 도 글러짐 때문이 아니라네 / 非關吾道非
뭇 고기는 추워지면 저절로 모이고 /
魚寒自聚
외론 학은 석양에 돌아갈 줄 아는데 / 獨鶴
知歸
앉아 책 만지며 연거푸 탄식할 제 / 撫卷坐三嘆
푸른 이끼 위에 인적 또한 드물구려 / 綠苔人跡稀

 

번민하다.[悶悶]

 


번민이 오면 스스로 보내기 위해 / 悶來欲自遣
읊조리는 걸 능히 마지못하는데 / 吟詠不能休
고요함 속 흥취를 일으키다 보면 / 惹起靜中興
한가함 속 시름을 더해만 가누나 / 剩添閑裏愁
공명이야 헌신짝과 똑같거니와 / 功名同弊

신세는 한 텅 빈 배와 흡사하거니 / 身世一虛舟
내가 배운 건 정히 어디에 있느뇨 / 所學定安在
유유한 신세 이제는 백발이로세 / 悠悠今白頭

 

이 상의(李商議) 성계(成桂) 가 병으로 휴가를 얻어 집에 갔는데, 번거로움을 끼칠까 염려되어 즉시 문병(問病)하지 못했다가, 오늘에야 가 보려고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말을 타고 다닌다고 하였다. 대단히 기쁜 나머지 스스로 나의 게으름을 조소하면서 한 수를 읊어서 기록하여 바치는 바이다.

 


공이 병가 얻은 지 얼마 안 됐다 들었는데 / 聞公移病未多時
또 이제는 공이 말 타고 달린다 하네그려 / 又道公今上馬馳
문병을 늦춘 죄는 스스로 달게 받겠지만 / 問疾自甘遲慢罪
공로는 의당 태평 시기에 미쳐 쌓아야지 / 積勞須及太平期
대낮에 문 닫아라 어찌 술을 사양하리요 / 閉門白日那辭酒
청풍이 자리 가득해 시 짓기도 좋을시고 / 滿榻淸風好賦詩
늙은 목은은 병든 뒤로 아무 일도 없거니 / 老牧病餘無一事
천명을 즐길 뿐 다시 그 무엇을 의심하랴 / 樂夫天命復奚疑

 

동년(同年) 판서(朴判書) 위하여 그가 거주하는 국간(菊澗) 기록하다.

 


들국화가 가을 계곡에 꽃피울 제 / 野菊生秋澗
뭇꽃들은 시들어 떨어진 때로다 /
芳搖落天
은자 중에는 참다운 은자이고요 / 隱乎眞隱者
맑기로 말하면 지극히 맑고말고 / 淸也至淸焉

나비는 있어 추위를 견뎌 내건만 /
有蝶寒堪耐
물고기는 없어 맑은 가련하여라 /
無魚淨可憐
평생 동안 은거코자 고심한 곳을 / 平生苦心處
남겨 두어 후인에게 전할 만하네 / 留與後人傳

 

[주C-001]동년(同年) …… 기록하다 : 저 자의 동년인 판서(判書) 박재중(朴在中)이 일찍이 자기의 거소(居所)에 국간(菊澗)이란 편액을 걸고 저자에게 그 기문(記文)을 요청하여 받았었다. 저자가 쓴 그 기문에 의하면, 박 판서는 특히 효자였으며, 따라서 자기 한 몸이 세상에 현달(顯達)하기를 바라지 않고 오직 은일(隱逸)에 뜻을 두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주D-001]은자(隱者) …… 맑고말고 :
여기서 은자는 국간(菊澗)의 국화를 가리키고, 맑다는 것은 곧 국간의 계곡물을 가리킨다. 주돈이(周敦
)의 〈애련설(愛蓮說)〉에, “국화는 꽃 가운데 은자이다.[菊花之隱逸者也]” 하였다.
[주D-002]나비는 …… 견뎌 내건만 :
나비는 늦가을 국화꽃에도 날아들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3]물고기는 …… 가련하여라 :
《대대례기(大戴禮記)》에,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극히 까다로우면 무리가 없다.[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 하였다.

양화원(養花員) 임무(林茂)가 와서 원중(園中)의 화목(花木)들을 점검하다.

 


꽃나무는 저절로 나서 차례로 피는 건데 / 花木天生次第開
게다가 인력으로 공교로이 재배를 하누나 / 却將人力巧栽培
목옹 자신의 병은 누가 능히 다스려줄꼬 / 牧翁自病誰能療
꾀꼬리 우는 속에 가랑비 내리는 거라네 / 黃鳥聲中細雨來

 

세사(世事)

 


세상일은 여의치 않은 게 많은데 / 世事多非意
인정은 점차로 진실하지 못해져서 / 人情漸不眞
한창 임금을 끼고 은혜를 팔아서 / 市恩方挾主
남에게 화를 전가함이 귀신 같구려 / 嫁禍動如神
소나무 국화는 삼경에 묵어 있고 /
松菊荒三徑
바람 먼지는 온 사방에 자욱한데 / 風塵暗四鄰
백발이라 마음과 힘은 다 짧지만 / 白頭心力短
시구를 얻으면 자못 청신하구나 / 得句頗淸新

 

[주D-001]소나무 …… 있고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오솔길은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도다.[三徑就荒 松菊猶存]” 한 데서 온 말이다.

취향(醉鄕)

 


취향은 참으로 즐거운 고장이로다 / 醉鄕眞樂土
물아가 서로 형체를 잊으니 말일세 / 物我共忘形
일월은 더디거나 빠름이 없건만 / 日月無遲疾
강산은 절로 아득하기만 하구나 / 江山自杳冥
한 몸엔 임금 은혜 흠뻑 입은 듯 / 一身渾雨露
두 귀엔 천둥소리도 들리질 않네 / 雙耳絶雷霆
늘그막엔 세상을 피하려 하노니 / 老境將逃世
어떤 이가 반가운 눈을 지었던고
/
何人眼作靑

 

[주D-001]늘그막엔 …… 지었던고 :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은 난세(亂世)에 몸을 보전하기 위해 짐짓 세상일을 관여하지 않고 술만 마시고 취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았는데, 자기 모친(母親)이 작고했을 때에도 혜희()가 빈손으로 가서 조문할 적에는 반갑잖은 표정을 지었다가, 혜희의 아우인 혜강()이 술을 가지고 가서 조문하자, 그때서야 매우 기뻐하여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삭신이 아프다.

 


병든 삭신 괴로워 앉고 눕기도 어려운데 / 病骨酸辛坐臥難
새벽하늘 북두성은 벌써 난간에 닿았네 / 曉天星斗已闌干
서로 앞 다툼은 모이 쪼는 닭 주둥이인 양 / 爭先恰似爲雞口
죽음 숨김은 되레 마간을 먹은 같구려 /
諱死還如食馬肝
실바람 창 아랜 헝클어진 백발이 하얗고 / 風細一窓蓬鬢白
산은 깊어 오월에도 초당이 차가웁구나 / 山深五月草堂寒
예부터 양생하는 일은 한적함에 있기에 / 由來將息在閑適
세상과 멀어져서 관까지 벗어 던졌다오 /
與世闊疎仍倒冠

 

[주D-001]죽음 …… 같구려 : 말 의 간은 독()이 있어 사람이 먹으면 죽는다고 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 제인(齊人) 소옹(少翁)이 귀신방(鬼神方)으로 무제를 섬겨 처음에는 문성장군(文成將軍)에 봉해지고 총애를 받았다가 뒤에 그의 거짓이 탄로나 죽임을 당했는데, 그 후 무제가 다시 난대(欒大)라는 방사(方士)에게 방술(方術)을 요구하자, 난대가 말하기를, “신이 혹시라도 문성(文成)처럼 된다면 방사들이 모두 입을 닫아버릴 것이니, 어찌 감히 방술을 말하겠습니까하므로, 무제가 이르기를, “문성은 마간(馬肝)을 먹고 죽은 것이다. 그대가 참으로 그 방술을 잘 닦기만 한다면 내가 그 무엇을 아끼겠는가.” 하여, 문성이 죽게 된 내막을 숨겨 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28 封禪書》
[주D-002]세상과 …… 던졌다오 :
두 목(杜牧)의 〈만청부(
晴賦)〉에, “나 같은 사람은 어떻다고 할까? 관과 패옥 벗어 던져 세상과 서로 멀어지고, 세상 오시하며 한가로이 지내 참으로 어리석음을 좇아 은거하는 자인저.[若予者謂何如倒冠落佩兮 與世疎闊 敖敖休休兮 眞徇其愚而隱居者乎]”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벼슬에서 물러난 것을 의미한다.

광암사(光巖寺)를 생각하다.

 


저문 구름 깊은 속에 광암사는 아득한데 / 光巖迢遞暮雲深
두 귀엔 아직도 종경 소리가 들리는구나 / 兩耳猶聞鐘磬音
삼생
이 모두 꿈이란 건 스스로 알지만 / 自了三生皆是夢
누가 칠처로 좇아 다시 마음을 밝힐꼬 / 誰從七處更徵心
기심 잊음은 소일하는 데나 합당하려니와 / 忘機只合消長日
불법 강하는 데는 응당 촌음을 아껴야지 / 演法應須惜寸陰
서쪽 교외는 필마 타고 내왕하기 좋으리 / 匹馬西郊來往好
높은 숲에서 꾀꼬리는 곱게도 울어대겠지 /
恰恰囀高林

 

[주D-001]삼생(三生) : 불가(佛家) 용어로, 전생(前生), 금생(今生), 내생(來生)을 합한 말이다.
[주D-002]칠처(七處) :
석가(釋迦)가 일찍이 《화엄경(華嚴經)》을 설법한 장소를 말한다. 석가가 《화엄경》을 설법한 장소를 일곱 번 바꾸었고, 여덟 번 모여서 34품을 설법한 것을 일러칠처팔회(七處八會)’라 한 데서 온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다.

 


금년의 좋은 명절 천중절이 가까워 오매 / 今年佳節近天中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백발 늙은이로다 / 歌詠昇平白髮翁
산색은 창에 가득코 꾀꼬리 소리 고우니 / 山色滿窓鶯語滑
유유한 정흥이 절로 일어나누나 / 悠悠情興□□□
혁추가 감히 고니 생각하는 맘을 막으랴 /
奕秋敢保心思鵠
양혜는 기러기를 눈여겨봤다고 들었네 /
梁惠曾聞目送鴻
늘그막에 문 닫고 깊이 들앉아 있는 곳을 / 老境閉門深坐處
전배에 비유하자면 그 누구와 같을런고 / 比方前輩與誰同

 

[주D-001]천중절(天中節) : 음력 5 5. 즉 단오절(端午節)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주D-002]혁추(奕秋)가 …… 막으랴 :
혁 추는 전국(戰國) 시대에 바둑을 매우 잘 두었던 추() 라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맹자(孟子)의 말에 의하면, 바둑은 비록 작은 기예이지만 전심치지(專心致志)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니, 혁추가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칠 경우, 한 사람은 전심치지하여 혁추의 말만을 듣고, 또 한 사람은 혁추의 말을 들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으로 홍곡(鴻鵠)이 날아오거든 주살을 먹여서 쏘아 잡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같이 배우더라도 진취됨이 같지 못하게 된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임금이 현자(賢者)의 충언(忠言)을 전심치지해서 듣지 않고 데면데면하게 들어 넘겨버리는 데에 비유한 것이다. 《孟子 告子上》
[주D-003]양혜(梁惠)는 …… 들었네 :
양 혜는 전국 시대 양 혜왕(梁惠王)을 말한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의하면, 위 영공(衛靈公)이 일찍이 공자(孔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날아가는 기러기만 쳐다보고 공자를 주시(注視)하지 않자, 공자가 마침내 위나라를 떠나 버렸다고 하였는데, 양 혜왕은 일찍이 못가에 서 있다가 홍안(鴻雁)과 미록(麋鹿)을 돌아보면서 맹자(孟子)에게 말하기를, “어진 임금도 이런 것을 즐기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던 일 이외에는 특별히 기러기와 관계된 일은 없으나, 양 혜왕은 역시 맹자의 말을 끝내 귀담아들어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위 영공에 비유하여 이른 말인 듯하다.

왕풍(王風)

 


서리가 왕풍으로 강등되었으니 /
王風降黍離
빈아
가 어찌 그리도 쇠했는고 / 豳雅何其衰
날로 융성해지던 때를 당해서야 / 當其日進盛
어찌 지금 같은 시대를 뜻했으랴 / 豈意如今時
공자는 일찍이 춘추를 지었으니 / 仲尼作春秋
마음가짐이 어찌 그리 비참한고 / 操心一何悲
봉황새가 기왕 오지 않았는지라 /
鳳鳥旣不至
다만 모범이나 드리웠을 뿐인데 / 但將模範垂
모범은 일월같이 드리워졌건만 / 垂之如日月
앙모하는 이는 지금 그 누구인고 / 仰者今爲誰

 

[주D-001]서리(黍離)가 …… 강등되었으니 : 서 리는 《시경(詩經)》 왕풍(王風)의 편명이다. 왕풍은 주()나라 평왕(平王)이 동도(東都) 낙읍(洛邑)으로 천도(遷都)한 이후 그 지방에서 채집(採集)한 시로서 즉 서리(黍離)로부터 구중유마(丘中有麻)까지의 십편(十篇)을 가리키는바, 이때는 주실(周室)의 존엄(尊嚴)함이 강등되어 제후(諸侯)와 다를 것이 없게 되었으므로 이를 왕자(王者)의 변풍(變風)이라 하여 이렇게 일컬은 것이다. 서리의 내용은 바로 한 대부(大夫)가 부역 가는 길에 서주(西周)의 종묘(宗廟)와 궁실(宮室)이 있는 곳을 지나다가 그곳이 벌써 쑥대밭이 된 것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노래한 것이다.
[주D-002]빈아(豳雅) :
《시 경》 빈풍(豳風)의 칠월(七月)을 가리킨다. 이 시는 주공(周公)이 지은 것으로, 선조(先祖) 후직(后稷)이 일찍이 빈() 땅에 나라를 열고 백성들에게 농사를 장려하여 부강(
)을 일삼았던 풍화(風化)를 자세히 진술하여 성왕(成王)에게 잊지 말도록 이 노래를 부르게 했던 것이다.
[주D-003]봉황새가 …… 않았는지라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봉황새가 오지 않고, 황하에서 그림도 나오지 않으니, 나의 도는 그만인가보다.[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 한 데서 온 말인데, () 임금 때에는 봉황새가 조정(朝廷)에 모습을 나타냈고, 문왕(文王) 때에는 기산(岐山)에서 울었으며, 복희씨(伏羲氏) 때에는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그림을 지고 나와서 복희씨가 이것을 보고 팔괘도(八卦圖)를 그렸던바, 이들은 모두 성왕(聖王)의 상서이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論語 子罕》

느낌이 있어 짓다.

 


내 머리털은 빗을수록 짧아지고 / 我髮梳益短
내 눈은 씻을수록 더 어두워지고 / 我眼洗益昏
내 마음은 거둘수록 달아나는지라 / 我心收益放
이 때문에 길이 문을 닫고 있노니 / 所以長掩門
글을 읽다가 혹 득의처를 만나면 / 讀書若有得
조용히 앉아 말을 잊기도 하는데 / 靜坐遂忘言
유연한 방촌의 땅 마음 하나가 / 悠然方寸地
너른 천지를 다 포함할 만하구나 / 可以涵乾坤
억의 경계
가 아직도 찬란하건만 / 抑戒尙燦爛
세월은 마치 냇물처럼 내달아서 / 歲月如川奔
빠른 세월을 되돌릴 길이 없나니 / 川奔無回波
덕성을 의당 스스로 받들어야지 / 德性當自尊

 

[주D-001]억(抑) 경계 : 억은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인데, 이 시는 춘추 시대 위 무공(衛武公)이 지은 것으로, 그 내용은 스스로 위의(威儀)와 공경(恭敬)을 다하여 조금이라도 방심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꾸짖고 경계한 것이다.

탄식하다.

 


솔개가 하늘에 이르매 천기가 동하여라 /
鳶飛戾天天機動
백발 늙은이가 일상 속에서 관찰하노니 / 白髮老翁觀日用
방촌의 밝은 마음이 천지를 포함하는데 / 靈臺方寸涵乾坤
변화의 오묘한 곳을 말로 형용키 어렵네 / 闢闔妙處難言言
푸른 하늘에 구름 없어 밝은 해가 비추니 / 碧空無雲白日照
형형색색 삼라만상이 다 한 근원이로다 / 色色形形同一源
요순의 태평성대가 눈앞에 삼삼하여라 / 唐虞之際森在目
따로 명하사 양곡서 고루 다스리게 하니 /
分命平秩居暘谷
그가 봄 맡아 다스려 만물을 생장시키고 / 是司春兮生萬物
농사엔 팔정을 써서
복록을 영구히 하네 / 農用八政永天祿
늙은이는 한가함 속에 낙이 절로 있으니 / 老翁婆娑樂在中
사시의 화기가 모두 다 봄바람이로다 / 四時和氣皆春風
근년 이래 형용은 점차로 변해가지만 / 年來形容漸變去
술 마시면 가끔 낯에 홍조를 띠기도 하네 / 得酒往往顔浮紅
평생에 즐기는 건 곤궁한 맛 하나뿐인데 / 平生所嗜只一味
곤궁함은 왕공께 바칠 수 없는 것이요 / 酸寒不足供王公
때때로 근훤은 마음속에 우러나지만 / 時時芹暄在心臆
구중의 군문에 호소할 길이 없네그려 / 君門九重叫不得
지금은 소강일 대동 시대가 아니니 /
卽今小康非大同
어느 날에나 팔방 끝까지 수역이 열릴꼬 / 何日八荒開壽域

 

[주D-001]솔개가 …… 동하여라 : 천 기(天機)는 곧 천지조화(天地造化)의 작용을 말한 것으로,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2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뛴다.’ 하였으니, 천도가 위아래에 드러난 것을 말한 것이다.[詩云鳶飛戾天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따로 …… 하니 :
따 로 명했다는 것은 요() 임금이 대대로 천지사시(天地四時)를 다스리던 희씨(羲氏), 화씨(和氏)를 각자 따로 명했다는 뜻인데, 희중에게 따로 명하사 동쪽 바닷가에 살게 하시니, 여기가 바로 양곡이란 곳인데, 해가 뜨는 것을 경건히 인도해서 봄 농사를 고루 다스리게 하였다.[分命羲中宅嵎夷 曰暘谷 寅賓出日平秩東作]”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堯典》
[주D-003]농사엔 팔정(八政) 써서 :
《서 경(書經)》 홍범(洪範), “다음 세 번째는 농사에 팔정을 쓰는 것이다.……팔정은 첫째는 먹는 것이요, 둘째는 재물이요, 셋째는 제사요, 넷째는 사공이요, 다섯째는 사도요, 여섯째는 사구요, 일곱째는 손님 접대하는 일이요, 여덟째는 군사이다.[次三 農用八政……八政 一曰食 二曰貨 三曰祀 四曰司空五曰司徒 六曰司寇 七曰賓 八曰師]”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근훤(芹暄) :
미 나리와 다스운 햇볕을 합칭한 말이다. 옛날 송()나라의 한 농부가 항상 누더기옷만을 입고 겨울을 지내고는 다스운 봄날에 따뜻한 햇볕을 쬐면서, 천하에 너른 집, 다스운 방과 솜옷이나 여우갖옷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고 자기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등 쬐는 따뜻함을 아무도 알 사람이 없으리니, 이것을 우리 임금님께 바치면 후한 상()을 받을 것이다.” 하자, 그 마을의 부자(富者)가 그에게 말하기를, “옛사람이 미나리를 아주 좋아한 이가 있어 부귀(富貴)한 자에게 미나리가 맛이 좋다고 말하자, 부귀한 자가 그 미나리를 먹어본 별과, 맛이 독하고 배가 아팠다더니, 그대가 바로 그런 사람이로다.”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미력(微力)이나마 임금을 위하고자 하는 충성을 의미한다. 《列子 楊朱》
[주D-005]지금은 …… 아니니 :
소 강(小康)은 조금 편안한 세상이란 뜻이고, 대동(大同)은 공도(公道)를 천하(天下)가 함께한다는 뜻으로 태평성대를 말한다.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의하면, 요순(堯舜) 시대를 가장 태평한 시대라는 뜻에서 대동 시대라고 하고, (), (), 문왕(文王), 무왕(武王), 성왕(成王), 주공(周公)의 시대를 대동 시대보다는 못하나 조금 다스려진 세상이라 하여 이를 소강 시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어 제 가동(家僮)을 보내 이 상의(李商議)의 문에 가서 공()이 접객(接客)하는지를 물어보게 하였으니, 그것은 장차 나아가 뵙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런데 문지기가 우리 가동의 몹시 비루한 모습을 보고는 속여 말하기를, “우리 공께서는 말을 타고 나가셨다.”고 하였다. 가동이 달려와서 그 사실을 아뢰므로, 나도 역시 그 말을 사실로 믿고 즉시 팔구(八句)를 엮어서 문병(問病)이 늦어진 죄를 사과했더니, 가동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공께서 말을 타지 않았더라.” 하므로,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던 중에 공이 또 나에게 고기를 보내 주었는지라, 앞의 운()을 사용하여 또 한 수를 짓다.

 


녹음 속에 꾀꼬리 울 제 문 닫고 앉아서 / 閉門黃鳥綠陰時
특별히 가동을 고개 북쪽에 달려 보냈으니 / 特遣蠻童嶺北馳
한 촌스러운 그놈 속인 건 괴이치 않으나 / 不怪欺渠一村陋
우리 두 사람 마음이야 어떻게 알았겠나 / 何從知我兩襟期
다행일세 병든 이로 고기를 먹게 되다니 / 幸哉病齒能嘗肉
우연히 마른 창자로 시도 읊게 되었구려 / 偶爾枯腸又吐詩
다만 한스러운 건 조정이 금주령을 내려 / 只恨朝廷方禁酒
뭇사람들의 의심을 씻기 어려운 거로세 / 難澆衆難與

 

교주(交州) 박 염사(朴廉使) 의중(宜中) 회장(會長)이 말린 고기[乾腊]를 보내 준 데 대하여 받들어 사례하고 인하여 애밀(崖蜜)야물(野物)도 보내 주기를 요구하다.

 


병중이라 이로 끊어 먹기 어려워 / 病中難齒決
분수 밖에 친한 이에게 부탁하네 / 分外托情親
봄풀 향기는 왜 그리 멀리 풍기나 / 春草香何遠
송화주 맛은 가장 순수하기도 하지 / 松花味最眞
주방의 고기로는 구체를 도우고 / 充廚資口體
환약으로는 정신을 보하려 하네 / 丸藥補精神
양로에다 곤궁한 이 구제까지 하니 / 養老兼扶困
그대의 정사가 인에 있음을 알리라 / 知君政在仁

 

[주C-001]야물(野物) : , 토끼, 노루, 고라니 등 야생 동물의 고기를 가리킨다.

성긴 비가 오다.

 


엷은 구름 성긴 비에 새벽하늘 차거운데 / 淡雲疎雨曉天寒
남쪽 바라보며 유연히 홀로 난간 기대노니 / 南望悠然獨倚欄
물 위에 뾰족뾰족 푸른 모는 얼마나 자랐나 / 針水綠秧長幾許
봄 내내 벌갰던 땅은 응당 비옥하지 못하리 / 經春赤地沃應難
소년 시절엔 왕왕 던지길 생각했는데 / 少年往往思投筆
병 많은 지금은 때로 사직만 하고 싶구나 / 多病時時欲掛冠
그래도 기쁜 건 이거한 곳에 유흥이 넉넉코 / 尙喜移居足幽興
창만 열면 푸른 용수산을 대할 수 있음일세 / 開窓翠色對龍巒

 

[주D-001] 던지길[投筆] : 후 한(後漢)의 명장(名將) 반초(班超)가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항상 글씨 쓰는 품팔이 생활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한번은 붓을 던지면서 말하기를, “대장부(大丈夫)가 별다른 지략(志略)이 없을진대 의당 부개자(傅介子), 장건(張騫)이라도 본받아 이역(異域)에서 공()을 세워 봉후(封侯)를 취해야지. 어찌 오래도록 필연(筆硯) 사이에 종사할 수 있겠느냐.” 하더니, 뒤에 과연 서역(西域)에서 공을 세워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던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허리가 아프다.

 


허리는 아파 불돌 찜질 급히 하고 / 腰酸燒瓦急
맘은 괴로워 차를 늘 달여 마시네 / 心悶煮茶頻
일상생활엔 원래 무용지물이지만 / 日用元無用
천진함마저 점차 참을 잃어 가누나 / 天眞漸失眞
높은 누각은 청산과 가지런하고 / 高樓齊碧

깊은 골목은 홍진과 막히었는데 / 深巷隔紅塵
중화의 송을 지어 노래하고파서 /
欲賦中和頌
무단한 흥취가 새로이 발동하네 / 無端發興新

 

[주D-001]중화(中和)의 …… 노래하고파서 : ()나라 때 익주 자사(益州刺史) 왕양(王襄)이 천자(天子)의 풍화(風化)를 민간에 널리 선포하기 위하여 왕포(王褒)로 하여금 한덕(漢德)을 칭송하는 뜻으로 중화(中和), 낙직(樂職), 선포(宣布) 등의 시를 짓게 하고 이것을 녹명가(鹿鳴歌)의 가락에 맞추어 태학(太學)에서 노래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64下 王褒傳》

이른 아침에

 


아침에 들보의 제비가 쌍쌍이 지저귀어라 / 朝來梁燕語雙雙
처마엔 연기 가득코 비는 창에 가득한데 / 煙滿茅簷雨滿窓
너는 이 주인의 정흥을 아느냐 모르느냐 / 汝識主人情興否
백발의 풍채가 여강으로만 향할 뿐이란다 / 白頭風采向驪江

아침에는 가랑비에 옷도 젖지를 않아서서 / 朝來小雨不霑衣
구름 엷은 먼 하늘에 새가 절로 날았는데 / 雲薄長空鳥自飛
점차 처마 사이에 낙숫물 많아진 걸 보니 / 漸向簷間多滴瀝
아마도 뾰족뾰족 물 위의 모가 살찌겠네 / 想看針水稻苗肥

아침이면 단정히 앉아 시 쓰기 익숙하거니 / 朝來危坐便題詩
노년에 굳이 고심 참담할 필요 없고말고 / 未必衰年耐苦思
흥이 나면 여전히 좋은 시구 이뤄내지만 / 有興宛然成好句
단지 평담하여 풍격이 낮은 게 걱정이로세 / 只愁平淡格還卑

 

귀의(歸依)하다.

 


당일엔 성인을 의귀할 만하다고 여기어 / 聖人當日可依歸
누추한 시골 춘풍 속에 사비를 버렸건만 / 陋巷春風去四非
이제는 그만이로다 나이 오십을 넘어 / 已矣流年過知命
망연자실 홀로 서서 빠른 세월만 보내네 / 茫然獨立送飛暉

개면 산곽의 구름 속 오솔길 트인 걸 생각코 / 晴思山郭雲開路
비 오면 강촌에 사립 반쯤 물 찬 게 기억나네 / 雨記江村水半扉
봉의 덕이 쇠한 오래임을 누가 알랴 /
誰識鳳兮衰已久
혜초장막과 낚시터가 적막하기만 하구나 /
寥寥蕙帳與苔磯

 

[주D-001]사비(四非) : 안 연(顔淵)이 공자(孔子)에게 인()을 묻자, 공자가 이르기를, “사욕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다.[克己復禮爲仁]”라고 하므로, 안연이 다시 그 조목(條目)을 묻자, 공자가 이르기를, “예가 아니거든 보지를 말고, 예가 아니거든 듣지를 말고, 예가 아니거든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거든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非禮勿動]”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顔淵》
[주D-002]봉(鳳)의 …… 알랴 :
춘 추 시대 초()나라의 광인(狂人) 접여(接輿)라는 사람이 공자(孔子)가 무도(無道)한 세상에 도를 행하려고 분주하는 것을 기롱하여 말하기를, “봉이여, 봉이여, 어찌 그리도 덕이 쇠했느뇨?[鳳兮鳳兮 何德之衰]”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微子》
[주D-003]혜초장막(蕙草帳幕)과 …… 하구나 :
혜초장막과 낚시터는 은자(隱者)의 처소를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은거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성균관(成均館)에서 선비들을 시험 보이다.

 


수많은 선비 모여들어 소리 없이 고요해라 / 白袍至寂無聲
먼동이 트자마자 별을 이고 모두 모였네 / 曉色微分共戴星
제목이 갑자기 당상으로부터 내려가자 / 題目忽從堂上墜
정신은 이미 붓끝을 향하여 나오는구나 / 精神已向筆端生
흰 바탕에 단청 그려라 뭇 채색을 이루고 / 丹靑後素成

우각에 선궁 울려라
대정을 진동시키네 / 羽角旋宮振大庭
눈만 한번 스치면 절로 상하가 나뉘거니 / 過目自然分上下
거듭 검열을 안 해도 응당 정선이 될 걸세 / 不勞重閱選應精

보은사 서쪽 고개의 만송에 솔바람 불 제 / 報恩西嶺萬松聲
솔 아래 유관들 모자는 번쩍번쩍 빛나네 / 松下儒官弁轉星
기억난다 내 일찍이 오언 백자시 지어서 / 記得五言聯百字
도리어 일거에 제생 반열에 들었던 것이 / 還能一擧側諸生
과거장의 고시에서 많은 인재를 간선하고 / 持衡貢院掄多品
부계에서 헌수하니 너른 뜰이 그득하구나 / 獻壽浮階壓廣庭
팔각부
지은 이 중엔 큰 솜씨도 많거니 / 八脚賦中多大手
아지 못게라 그 누가 야호정이 될런고 / 不知誰是野狐精

 

[주D-001]우각(羽角) 선궁(旋宮) 울려라 : 선 궁은 진한(秦漢) 시대 이전의 해음(諧音) 법칙에서 나온 것인데, 즉 십이율(十二律)을 궁(), (), (), (), (), 변궁(變宮), 변치(變徵)의 칠음(七音)에 배합시켜서 율()마다 골고루 궁성(宮聲)을 내게 하여 수많은 곡조(曲調)를 이루게 했던 것으로, 전하여 훌륭한 풍악을 의미한다.
[주D-002]팔각부(八脚賦) :
여덟 운자(韻字)로 압운(押韻)하여 짓는 율부(律賦)를 말한다.
[주D-003]야호정(野狐精) :
원 래는 불교 용어로, 야호(野狐)의 정매(精魅)가 변환(變幻) 작용을 하여 사람을 속인다는 뜻에서, 견성 오도(見性悟道)했다고 자칭하여 남을 속이는 중을 비유한 말인데, 시문(詩文)의 기재(奇才)를 일컫기도 한다. 소식(蘇軾)이 일찍이 왕안석(王安石)의 〈계지향사(桂枝香詞)〉를 보고 칭하기를, “이 노인은 참으로 야호정이다.[此老眞野狐精也]” 하였다.

조용히 앉아서 읊다.

 


조용히 앉았으니 맘에 거리낌 없고 / 靜坐心無累
푸른 하늘은 백발을 비추어 주누나 / 靑天照白頭
서책으로 헛되이 세월을 보내는데 / 塵編虛度日
서늘한 와탑이 가을을 놀라게 하네 / 風榻颯驚秋
어찌 읊조리기 괴로움을 꺼릴쏜가 / 肯憚吟爲苦
바야흐로 죽고야 말기를 기하노라 / 方期死卽休
다만 부끄러운 건 작자가 아니라서 / 只慚非作者
흥취 부치는 것도 유유할 뿐임일세 / 寄興亦悠悠

 

일을 기록하다.

 


흰 구름 높은 곳에 원숭이 우는 소리 들으면 / 白雲高處聽猿吟
시골 중의 회심 또한 마음이 동하나보구려 / 野衲灰心亦動心
늙은 아내의 말이야 가장 간절하려니와 / □□老妻言最苦
차마 착한 며느리를 한이 사무치게 할쏜가 / 忍令佳婦恨彌深
고운 용모는 심신을 해치는 도끼와 같지만 / 冶容伐性如揮斧
몸 바루면 온 집안이 금슬 좋고 화목해지리 / 正己持家似鼓琴
온 세상이 어찌하여 취사선택에 어두운고 / 擧世奈何迷取舍
다만 부끄럼 없이 황음에 빠진 때문이로다 / 只緣無恥進荒淫

부끄럼 없음은 예부터 큰 누가 되는 건데 / 無恥由來大累人
종신토록 어둠 속 헤메는 걸 깨닫지 못해 / 終身不覺在迷津
생전은 바람에 날린 버들개지와 흡사하고 / 生前絶類風中絮
사후엔 한갓 소나무 밑 티끌이 될 뿐이네 / 死後徒爲松下塵
청렴 검소한 음공은 응당 보답을 받거니와 / 淸儉陰功當有報
호사하는 자는 여론이 반드시 증오하거늘 / 奢華素議必相嗔
어찌 마구 욕심 부려 손상입길 달게 여기나 / 那堪縱欲甘招損
더구나 고당의 늙은 어버이까지 받들면서 / 況是高堂奉老親

 

[주D-001]회심(灰心) : 마 음이 외물(外物)로 인하여 동요되지 않는 경지를 말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형체는 진실로 마른 나무와 같이 할 수 있고, 마음은 진실로 식은 재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인가?[形固可使如枯木 而心固可使如死灰乎]” 한 데서 온 말이다.

사리를 아는 놈이라.[解事漢]

 


우리 집의 하인은 사리를 아는 놈이라서 / 吾家蒼頭解事漢
나를 마음 억눌러 원만해지게 하는구나 / 使我摧藏去涯岸
봄바람에 정원 가득히 꽃이 떨어지거든 / 春風花落滿庭中
나는 자세히 세서 천공에 보답하려는데 / 我欲細數酬天工
날이 다 밝기도 전에 문득 쓸어버려서 / 天明未明便掃去
나를 미친 애들처럼 몹시 화나게 하고 / 使我怒甚如狂童
여름날에 마당 가득히 이끼가 나거든 / 夏日苔生滿庭中
나는 살살 거닐어 내 곤궁함 잊으려는데 / 我欲細履忘吾窮
비가 다 개기도 전에 문득 깎아 버려서 / 雨晴未晴便剗去
나를 몹시 번민하며 비홍을 생각케 하네 / 使我悶甚思飛鴻
한적한 풍류가 바로 내게 맞는 일이라 / 閑適風流是我事
조물주가 나를 예서 늙도록 용납해 주어 / 造物容老於此
때때로 읊노라면 흥미가 넉넉하거니와 / 時時謳吟足興味
시마와는 또 생사를 함께하려고 했었지 / 詩魔又欲同生死
그런데 하인은 내 머리 이미 희어지고 / 蒼頭憐我髮已白
세월이 과객처럼 빠름을 불쌍히 여기어 / 頭上光陰如過客
어찌하여 우리 어른을 서로 곤욕시키나 / 胡爲相次困我公
좋은 시구가 언제 곤궁함을 구해 줬냐며 / 秀句何曾救窮阨
깎고 쓸고 한 데에 깊은 뜻이 있었기에 / 剗去掃去有深意
첨엔 성냈다 뒤엔 기쁨을 스스로 택했네 / 初怒後喜吾自擇
인간에 사리 아는 이 누가 그만 하리요 / 人間解事誰似渠
의당 부유해져서 남에게 미침을 보리니 / 當見潤屋推其餘
너희들에 미치면 어찌 다행이 아니랴만 / 及於汝輩豈非幸
일을 아는 게 허황됨이 많을까 두렵구나 / 只恐解事多荒虛

 

[주D-001]비홍(飛鴻) : 눈 위에 남긴 기러기의 발자국[雪泥鴻爪]이란 말에서 온 것으로, 전하여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사물을 의미한다.

성균시(成均試)를 보이던 날

 


개성
부부는 기쁜 마음 한량이 없고말고 / 開城夫婦喜無涯
앉아서 성균시 보이던 때를 생각해 보니 / 坐想成均試士時
등잔 아래 읊조리며 한밤중이 되어갈 제 / 燈下吟哦夜將半
조복 입은 시관이 바로 우리 아이였었지 / 主司袍笏是吾兒

제생들 떼 지어 나가 서로 웅을 겨루어라 / 諸生
進欲爭雄
단련한 공이 사십팔 인의 합격에 높았네 / 鍛鍊功高六八中
아마도 주의 입은 머리 끄덕인 곳에 / 想見朱衣點頭處
뜨락의 소나무는 종일 청풍을 보냈겠지 / 庭松盡日送淸風

늙은 개성은 바로 나의 진사 동년으로서 / 老開城是我年兄
황금방에 이름 올리는 게 남은 한이었는데 / 遺恨黃金牓上名
자식이 등과하여 성균시까지 관장했으니 / 有子登科仍掌試
득실이 절로 평생 한을 위로키 만족하네 / 乘除自足慰平生

 

[주D-001]개성(開城) : 여 기서는 개성부(開城府)의 관직을 지낸 사람을 가리킨 것으로, 바로 이색과 신사년(1341, 충혜왕2) 진사(進士) 동년(同年)인 서영(徐穎)을 가리키는데, 그의 아들 서균형(徐鈞衡)이 우왕(禑王) 6년에 성균시(成均試)를 관장했다.
[주D-002]주의(朱衣) …… 곳에 :
()나라 구양수(歐陽脩)가 공거(貢擧)를 주관하던 때에 시권(試券)을 고사(考査)할 적마다 자기 등 뒤에서 한 주의 입은 사람이 머리를 끄덕인 것을 느낀 다음에야 그 시권이 입격(入格)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시권 고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가 오다.

 


하천 가에 비 흠뻑 와서 푸르름 그득해라 / 雨滿川原綠更多
세상일과는 스스로 맞지 않거나 말거나 / 從敎世事自蹉跎
하늘이야 어찌 창생을 그르칠 분이랴만 / 天公豈誤蒼生者
병든 나그네 이 백발을 어찌한단 말인가 / 病客其如白髮何
점점이 듣는 건 이슬을 씻기에 알맞더니 / 點點偏宜洒朝露
실실 내릴 땐 어부 도롱이에 좋이 비치네 / 絲絲更好映漁

출처가 사람의 마음을 헷갈리게 하거니 / 令人出處迷心曲
넘실대는 금술잔이나 또 기울여야겠네 / 且對金樽
綠波

 

여강(閔驪江)이 도성(都城)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다.

 


여강이 비를 맞으며 도성에 들어왔는데 / 驪江帶雨入城來
도성의 검은 구름은 아직 걷히질 않았네 / 城上重雲尙未開
환난 피해 북으로 감은 좋은 계책이고말고 / 逃難北歸眞得計
산에 걸터앉은 저택엔 이끼가 나려 하겠지 / 跨山庭宇欲生苔

 

[주C-001] 여강(閔驪江) : 화원군(花原君) 권중달(權仲達)의 사위로서 저자와는 서로 동서(同壻) 간이 되는 민근(閔瑾)을 가리킨다.

단오일(端午日)에 성묘(省墓)할 전물(奠物)을 우리 집에서 차례에 따라 삼가 준비하였고, 민형(閔兄)이 마침 환경(還京)하여 판서(權判書)와 함께 가는데, 나는 흐린 날씨 탓에 삭신이 아파서 참여하지 못하고, 앉아서 한 편을 제()하여 자손(子孫)들을 경계하는 바이다.

 


화원군의 가문에 사위가 다섯 사람인데 / 花原之門壻五人
전씨 유씨 민씨 김씨의 풍채 새로워라 / 全柳閔金風采新

당시에 모두가 호방했던 명사였었는데 / 當時豪逸皆名士
한빈하기론 유독 한산 이가가 있었으니 / 酸寒獨有韓山李
위로부터 아래로는 번째의 다음이요 /
自上而下次於三
아래로부터 위로는 번째가 되었지 / 自下而上爲第二

무덕장군
은 몹시도 술을 좋아하더니 / 武德將軍酷愛酒
백양에 가을바람이 얼마나 일었던고 /
白楊幾見秋風起
이제는 판서가 홀로 가문을 주관하고 / 如今判書獨當門
사위로는 나와 민씨가 생존할 뿐이라 / 我與老閔能生存
민씨가 돌아온 건 성묘하기 위함인데 / 閔氏歸來爲拜掃
난 병으로 못 나가니 마음이 괴롭구려 / 我病不出心中煩
깨끗이 재계하고 삼가 주식을 장만하니 / 淸齋貞愼謹爲

밝은 태양이 어두운 구름 깨뜨리어라 / 白日照破重陰昏
산꼭대기 소나무는 높이가 몇 자일꼬 / 山頭松樹高幾尺
산 가득 송화에선 이슬방울이 듣겠지 / 松花滿山露交滴
분향하고 술잔 올려 재삼배를 드리어라 / 焚香酌酒再三拜
훌륭한 자손 내린 건 적선의 응험이리 / 錫類子孫應善積
상전이 벽해됨을 아는 이가 그 누굴꼬 / 陵谷易處知者誰
벌열 가문은 예부터 성쇠가 잦았나니 / 閥閱自古多盛衰
다만 충효로써 가업을 보전할 뿐이요 / 但將忠孝保箕裘
급급하게 명리를 구할 필요 없다마다 / 不用汲汲求名馳

 

[주C-001] 판서(權判書) : 화원군 권중달의 둘째 아들인 전법 판서(典法判書) 권계용(權季容)을 가리킨다.
[주D-001]화원군(花原君)의 …… 새로워라 :
화원군 권중달의 사위가 다섯인데, 차례로 말하자면 첫째가 전분(全賁), 둘째가 유혜방(柳惠芳), 셋째가 민근(閔瑾), 넷째가 저자, 다섯째가 김윤철(金允轍)이다.
[주D-002]한빈하기론 …… 되었지 :
바로 저자 자신이 권중달의 넷째 사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주D-003]무덕장군(武德將軍) :
권중달의 다섯 사위 가운데 당시에 이미 작고한 이가 전분, 유혜방, 김윤철이었는데, 그중 어떤 이가 이 직함을 가졌었는지 자세하지 않다.
[주D-004]백양(白楊)에 …… 일었던고 :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음을 의미한다. 도잠(陶潛)의 〈만가시(挽歌詩)〉에, “황량한 풀은 어이 그리 아득한고, 백양나무 또한 쓸쓸하기만 하네.[荒草何茫茫白楊亦蕭蕭]” 하였다.

옛날에 놀던 일을 생각하다.

 


남은 생은 적막함을 달게 여기고 / 餘生甘寂寞
만사를 그만두고 돌아가 쉬련다 / 萬事只歸休
강물은 유유히 흘러만 가고 / 江水悠悠去
산 구름은 광대히 떠 있는데 / 山雲浩浩浮
머리 숙여 예전 일을 생각하면서 / 低頭思往事
손가락 꼽아 친구들을 세어 보니 / 屈指數同游
소장 시절이 다시 올 수 없어라 / 少壯無由再
고성방가로 온갖 근심 풀어야겠네 / 高歌散百憂

 

느낌이 있어 짓다.

 


성왕이 처음 즉위하였을 적에 / 成王初卽政
공단은 유언비어를 들었는데 / 公旦致流言

붉은 신엔 천심이 드러났으나 /
赤舃天心顯
금등엔 우기가 어둠침침하였네 /
金縢雨氣昏
올빼미는 사납게 지저댔지만 /
雖戞戞
봉황새는 끝내 훨훨 날아왔네 /
鳳鳥竟翩翩
보좌에 앉아 정사를 보는 곳에 /
臨朝處
치란의 근원을 그 누가 알런고 / 誰知理亂源

 

[주D-001]성왕(成王) …… 들었는데 : 공 단(公旦)은 이름이 단인 주공(周公)을 가리킨다. 주 무왕(周武王)이 죽고 나서 어린 성왕이 즉위하여 주공이 성왕을 도와 섭정(攝政)하고 있을 때, 주공의 형인 관숙(管叔), 채숙(蔡叔)이 은()나라 무경(武庚)에게 붙어서, 주공이 장차 어린 성왕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뜨림으로써 성왕 또한 주공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던 데서 온 말이다. 《書經 金縢》
[주D-002]붉은 …… 드러났으나 :
《시 경(詩經)》 빈풍(豳風) 낭발(狼跋), “이리가 앞으로 가다가 제 턱을 밟고, 뒷걸음치다가 제 꼬리 밟아 넘어지네. 공은 큰 아름다움을 사양하시니, 그 붉은 신이 편안도 하시어라.[狼跋其胡 載
其尾 公孫碩膚 赤舃几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주공이 유언비어를 듣고 성왕에게까지 의심을 받아서 마치 이리처럼 진퇴양난의 처지를 당하였지만,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상도(常道)를 잃지 않고 변()을 잘 대처해 나가므로, 시인(詩人)이 주공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노래한 것이다.
[주D-003]금등(金縢)엔 …… 어둠침침하였네 :
금 등은 금으로 봉인(封印)한 궤()를 말한다. 성왕(成王)이 주공의 〈치효(
)〉 시를 보고 주공에 대한 의심을 조금은 풀었으나 완전히 다 풀지는 못했다가, 그해 가을 곡식이 다 여물었을 때, 갑자기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쳐서 벼가 다 쓰러지고 큰 나무가 뽑히는 변이 일어나자, 성왕이 대신(大臣)들과 함께 주공이 일찍이 봉인해 놓은 금등을 열어본 결과, 앞서 무왕(武王)이 병들어 위독했을 때 주공이 무왕 대신 자기를 죽게 해 달라고 선왕(先王)께 기도한 글이 그 속에 들어 있으므로, 성왕이 그것을 보고는 울면서 말하기를, “지금 하늘은 위엄을 나타내어 주공의 덕을 밝힌 것이니, 소자(小子)가 주공을 친히 맞아들이겠다.” 하고, 그제서야 주공을 맞아들였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올빼미는 사납게 지저댔지만 :
올 빼미는 어미 새를 잡아먹는다는 악조(惡鳥)인데, 여기서는 곧 주공(周公)이 지은 《시경》 빈풍(豳風) 치효(
) 시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시의 내용은 주공이 형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의 유언비어에 의해 성왕(成王)에게까지 의심을 받기에 이르자, 주실(周室)의 위태로운 상황을 성왕에게 친히 경고한 것으로, “올빼미야, 올빼미야, 이미 내 새끼 잡아먹었거니, 내 집까지는 헐지 말지어다.……날이 흐리고 비 오기 전에, 저 뽕나무 뿌리를 주워다가, 문을 튼튼히 얽어 두면, 지금 니들아래 백성이, 혹 감히 나를 업신여길쏘냐.[ 旣取我子 無毁我室……迨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牖戶 今女下民或敢侮予]”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봉황새는 …… 날아왔네 :
봉황새는 태평성대의 상징으로서 즉 세상이 다시 태평해졌음을 의미한다.

단오일에 격구(擊毬)를 파()했다는 말을 듣고 짓다.

 


편평한 도성 거리를 말이 나는 듯 달릴 제 / 天街如砥馬如飛
해마다 장전이 저물게 파하고 돌아가는데 / 帳殿年年暮罷歸
가뭄이 깊어 농부들이 일손을 놓은 때문에 / 爲是旱深多輟耒
짐짓 날이 저물도록 엄연히 앉아 계시었네 / 故能日晏儼垂衣
경쾌하게 달리는 건 지금 중대한 일이지만 / 驅馳輕捷今爲重
절제를 정명히 함은 옛적에도 드물고말고 / 節制精明古亦稀
가장 기쁜 건 조정이 실제를 힘쓸 줄 알아 / 最喜朝廷知務實
누런 먼지 안 날린 채 또 석양이 된 거로세 / 黃埃不動又斜暉

 

[주D-001]장전(帳殿) : 옛날 제왕(帝王)이 출행(出行)했을 때 그의 휴식처로 임시 장막(帳幕)을 쳐서 만든 행궁(行宮)을 말한다.

절구(絶句)

 


석전
에 바람 일고 전투 형세 완악도 해라 / 石戰生風鬪勢頑
높은 누각서 굽어만 봐도 마음이 섬뜩하네 / 高樓俯視亦心寒
이제는 백발이라 더욱 구경하고자 하랴만 / 如今白髮尤相肯
얼굴에 술 기운 오르던 그때가 기억나누나 / 記得當時酒上顔

 

[주D-001]석전(石戰) : 고려 시대에 음력 5월 단오절에 행하던 놀이의 하나이다. 이 놀이는 넓은 들판에서 한 마을이나 한 지방이 동편과 서편으로 편을 나누어서 수백 보의 거리를 두고 서로 돌팔매질을 하여 달아나는 쪽이 진다고 한다.

단 오일에 재추(宰樞)들이 격구를 구경하였다. 큰길가에 채붕(綵棚)을 걸고 격구를 하는데, 무릇 격구하는 이들은 모두 상()께서 낙점(落點)한 사람들이고 낙점받은 이가 아니면 감히 참여할 수 없으므로, 이 때문에 재상(宰相)도 나가서 격구를 하는 이가 있었다. 나는 상당군(上黨君)과 함께 저자 옆으로 가서 신평군(新平君)을 만나 시루(市樓)에 올라가서 구경을 하였다. 그다음 날에 비가 오므로 기뻐서 노래하다.

 


성상께서 즉위하신 지 지금 칠 년 동안에 / 聖上龍飛今七年
공 날리는 걸 두 차례 눈여겨보았는데 / 二度寓目飛毬前
공을 날리는 건 월장의 힘에 달렸지만 / 飛毬只從月杖力
치는 속도 완급 조절은 괜한 게 아니로다 / 所擊緩急非徒然
처음엔 별똥별이 하늘을 지나간 듯하더니 / 初如流星度碧落
점차로 번갯불이 구름을 뛰넘는 듯하였지 / 漸似閃電超紫煙
노장은 재주 높아 절로 대중을 압도하고 / 老將才高自壓衆
후생들은 기가 예리해 서로 앞을 다투었네 / 後生氣銳皆爭先
남산의 서쪽 비탈엔 밝은 해가 비치는데 / 南山西崖照白日
날린 비 먼지에 뿌려 말발굽은 빨라지고 / 飛雨灑塵馬蹄疾
맑은 바람이 때로 누각에 가득 불어오자 / 淸風時來滿樓中
호연한 흥취는 붓으로 형용하기 어려웠네 / 浩然興逸終難筆
두건 벗어 이마 내놓고 다리 개고 앉아선 / 脫巾露頂坐盤脚
서로 술잔 기울이며 우열을 논평도 했었지 / 相與引杯論甲乙
청아 호방한 상당군과 다행히 동행했는데 / 上黨淸豪幸聯袂
뜻밖에 만난 신평군은 정이 또한 친밀했네 / 邂逅新平情更密
흥왕의 공신
중에 그가 가장 뛰어났는데 / 興王功臣蓋獨步
지금은 농사일 배운다고 스스로 말하였지 / 自道如今學農圃
그 당시의 기염이 아직도 다하지 않아서 / 當時氣焰未磨盡
내키는 대로 말할 뿐 다시 무얼 고려하랴 / 出語任情那更顧
그는 나와 동갑으로 얼굴이 붉으레한데 / 與吾同甲顔浮光
나는 또한 백발로 깨어도 미친 사람일세 / 我亦白髮仍醒狂
묘당의 친구가 우리에게 술을 보내와서 / 廟堂故人送酒來
고상한 담화에 가득찬 술잔 연거푸 마셨네 / 高談引滿連金觴
인생의 출처는 제 뜻에 맞는 게 귀하거니 / 人生出處貴適意
예법을 지키자면 땀만 줄줄 흘릴 뿐인걸 / 矩步規趨流汗漿
돌아오다간 천태의 나잔옹을 방문했으니 / 歸來入訪天台翁
그가 어찌 맘속에 우환을 머물게 했으랴 / 肯使憂患留於中
자리에 쓰러져 누워 아침까지 자고 나니 / 頹然就枕卽達旦
와상 가득 빗소리가 쇠옹을 부축해 주누나 / 雨聲滿榻扶衰翁
말굽 씻는단 말이 오늘날까지 전하거니 / 洗蹄有語至今日
명명한 태조께서 동녘 하늘에 임해 계시리 / 明明太祖臨天東
신은 지금 기뻐 춤추며 성덕을 칭송하여 / 臣今蹈舞頌聖德
악부에 올려서 무궁한 후세에 전하노이다 / 播之樂府垂無窮

또 제()하다.

가랑비 자욱이 밤부터 새벽까지 내리니 / 細雨濛溟夜達晨
파초 싹 난초 잎이 산뜻하게 싱그러워라 / 焦芽蘭葉洒然新
소생한 병골로 읊기 어찌 그리 유쾌한고 / 蘇來病骨吟何快
만분은 창생을 일분은 내 몸 위해서라네 / 萬爲蒼生一爲身

 

[주D-001]월장(月杖) : 격구(擊毬)할 때의 공의 채를 말한다. 그 채의 두형(頭形)이 마치 초승달 같이 생겼으므로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주D-002]흥왕(王) 공신(功臣) :
고 려 공민왕(恭愍王)이 안동(安東)의 행재소(行在所)로부터 환궁(還宮)하던 도중, 흥왕사(興旺寺)의 행궁(行宮)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때 역신(逆臣) 김용(金鏞)이 공민왕을 시해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이 있었는바, 아마도 신평군(新平君)이 이때에 공을 세운 사람인 듯 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3]깨어도 미친 사람일세 :
술 을 마시지 않아도 미친다는 뜻으로, 마음이 방달(放達)하여 세상을 오시(傲視)하는 것을 말한다. ()나라 때 개관요(蓋寬饒)가 일찍이 은평후(恩平侯) 허백(許伯)의 주연(酒宴)에 참석하여 말하기를, “나에게 술을 많이 따르지 말라. 내가 바로 술미치광이다.” 하자, 곁에 있던 승상(丞相) 위후(魏侯)가 말하기를, “차공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미치는데, 하필 술을 마셔야만 미치겠는가.[次公醒而狂何必酒狂]” 한 데서 온 말이다. 차공은 개관요의 자이다. 《漢書 卷77 蓋寬饒傳》

자복(子復)이 왔는데 몸이 곤하여 나가서 응접할 수가 없었다.

 


자복은 그리 고심 참담하는고 / 子復心何苦
예산의 고아한 풍도를 사모하여 / 猊山慕古風

수많은 국사의 시를 편찬하려고 / 編詩動國士
우산 받고 이웃 늙은이 찾아왔네 / 傘雨訪隣翁
나는 곤해서 방금 편히 누웠는데 / 我困方高臥
군은 한가해 근공부터 하려누나 / 君閑欲近攻
세월은 또 단오절이 이르렀는데 / 流光又重五
어느 날에나 그 일을 다 마칠런고 / 曷日竟成功

 

[주D-001]자복(子復)은 …… 사모하여 : 자 복은 민안인(閔安仁)의 자이고, 예산(猊山)은 최해(崔瀣)의 호인데, 민안인이 일찍이 최해가 편찬한 《동인지문(東人之文)》을 모방하여 본국(本國)의 여러 명현(名賢)들의 시문(詩文)을 뽑아서 《동인지문》을 이으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근공(近攻) :
천 하를 병탄(幷呑)하기 위해서는 먼 나라와는 교의를 맺고 가까운 나라부터 공격해야 한다[遠交近攻]는 전국 시대 범수(范睢)의 말에서 온 것으로, 전하여 여기서는 많은 시문(詩文)을 수집하기 위하여 가까운 곳에서부터 뽑아 모은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史記 卷79 范睢列傳》

6일에 장난삼아 제()하다.

 


스스로 기쁜 건 몸이 육일섬과 같아서 / 自喜身如六日蟾
찬 연기 성긴 빗속 띠처마에 누웠음일세 / 冷煙疎雨臥茅簷
그 속에 맛이 있음을 아는 사람 없으리 / 箇中有味無人識
천리의 순챗국엔 소금도 없는걸 /
千里蓴羹未下鹽

 

[주D-001]육일섬(六日蟾) : 세 상에 무용지물이 된 것을 뜻한다. 《세시기(歲時記)》에 의하면, 만년 묵은 두꺼비를 육지(肉芝)라 하는데, 이것을 5 5일에 취하여 말려서 몸에 지니고 다니면 병기(病氣)을 물리치는 효험이 있으나, 6일에 취한 것은 쓸모가 없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천리(千里)의 …… 없는걸 :
천리호(千里湖)에서 나는 순챗국은 맛이 본래 좋아서 소금이나 된장으로 조리할 필요가 없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54 陸機列傳》

느낌이 있어 짓다.

 


보병의 당시에 먹은 마음은 / 步兵當日意
술을 구했지 벼슬을 구한 것이랴 / 求酒豈求官

선비란 본디 범골이 아닌 것이라 / 士固非凡骨
나도 지금 부끄럽기 그지없다오 / 吾今亦厚顔
태평성대는 제회를 기뻐하건만 / 太平欣際會
쇠한 노인은 유람이 좋을 뿐이네 / 衰老喜游觀
하루 종일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 / 竟日成微醉
돌아올 제 번화가는 넓기도 해라 / 歸來綺陌寬

 

[주D-001]보병(步兵)의 …… 것이랴 : 보 병은 진()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보병 교위(步兵校尉)를 지낸 완적(阮籍)을 가리킨다. 완적은 본디 술을 매우 좋아했는데, 한번은 보병영(步兵營)의 영주(營廚)에 좋은 술이 삼백곡(三百斛)이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이에 자청하여 보병 교위가 되어 날마다 술만 곤드레가 되도록 마시고 세상일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그는 세상이 어지러운 때문에 몸을 보전하기 위해 짐짓 취중(醉中)의 세계에 의탁했다고 한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주D-002]제회(際會) :
명철한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난 것을 말한다.

회포를 서술하다.

 


백대의 과객인 광음
바삐 흐르는 속에 / 百代光陰過客忙
분분한 출처는 오직 하늘에 달렸나니 / 紛然出處有蒼蒼
감히 기대하랴 늘그막에 구조와 같이 / 敢期老境如歐趙
우리 동한 땅에 회로당을 크게 짓기를 / 大作東韓會老堂

버들 아래 문 닫으니 봄 흥취는 고요하고 / 閉戶綠楊春興靜
꾀꼬리 베니 낮잠 자긴 서늘하네 /
枕書黃鳥午眠涼
지금 여기가 세상을 초탈한 곳이긴 하나 / 卽今縱是超然處
어찌 당년의 흥미진진하던데야 미치랴 / 那及當年味最長

 

[주D-001]백대(百代) 과객인 광음(光陰) : 광음은 세월을 말한다.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광음은 백대의 과객이다.[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 하였다.
[주D-002]감히 …… 짓기를 :
구 조(歐趙)는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와 그의 친구인 조개(趙槪)를 합칭한 말이다. 구양수와 조개는 일찍이 조정에서 벼슬할 때부터 교정(交情)이 매우 돈독했었는데, 뒤에 조개는 은퇴하여 수양(睢陽)으로 돌아갔고, 구양수 또한 곧이어 은퇴하여 여음(汝陰)으로 돌아갔던바, 하루는 조개가 단거(單車)를 타고 구양수를 방문하자, 구양수가 이를 인하여 그 집을 회로당(會老堂)이라 명명했던 데서 온 말이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제8권에 〈화구양소사회로당차운(和歐陽少師會老堂次韻)〉 시와 〈제영숙회로당(題永叔會老堂)〉 등의 시가 있다.
[주D-003]꾀꼬리 …… 서늘하네 :
왕안석(王安石)의 시에, “푸른 산에 이를 문지르며 앉았고, 꾀꼬리 울 적에 책 베고 잠을 자네.[靑山捫蝨坐 黃鳥枕書眠]”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초여름의 한적한 정경을 표현한 것이다.

서해 염사(西海廉使)가 산약(山藥), 애밀(崖蜜), 등유(燈油)를 보내 준 데에 사례하다.

 


꿀벌은 온갖 맛을 조화시켜 주고 / 崖蜂和衆味
산약은 허한 삼초를 보해 주리니 / 山藥補三焦
다시 서늘한 가을이 오길 기다려 / 更待新涼入
등불 돋우고 적막함을 지키려네 / 挑燈守寂寥

 

고의(古意)

 


새벽에 간다고 너무 이르게 말라 / 早行莫太早
너무 이르면 사람을 헤매게 하리 / 太早令人迷
한밤중에 먼 길을 출발하노라면 / 夜半便發

앞길은 서로 높고 낮고 하는데 / 前途互高低
사람 사는 집이 어드메에 있는지 / 人家在何許
때로 숲 밖의 닭소리는 들리지만 / 時聞林外鷄
길을 잘못 든 지 이미 멀어졌기에 / 趨岐旣已遠
산의 동서를 분간할 수 없는지라 / 未辨山東西
날이 새자 비로소 후회할 줄 알아 / 天明始知悔
내 발길 왜 이리 허둥대나 하겠지 / 我行何栖栖

낮에 간다고 어찌 쉬지 않을쏜가 / 晝行胡不憩
쉬지 않으면 인마가 다 피곤한 걸 / 不憩人馬疲
일평생 중에 멀리 유람할 시기는 / 平生遠游者
혈기가 한창 강성한 때이거니와 / 血氣方剛時
서둘다간 힘이 계속 지탱을 못 해 / 汲汲力不繼
그 뜻마저 중도에 쇠하고 마나니 / 其志亦中衰
또 더구나 노년기에 들어가서야 / 又況年向暮
온종일 계속 달릴 수가 있겠는가 / 可以終日馳
앞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거니 / 前途尙云遠
남의 웃음거리가 되겐 말아야지 / 無爲人所嗤

늦게 간다고 너무 늦게는 말라 /
行莫太
너무 늦으면 더 많이 헤매게 되리 / 迷又多
지는 해는 아득한 들판으로 들고 / 落日入曠野
겹겹의 산은 앞 고개와 연했도다 / 重山連前坡
여관은 아직도 멀기만 하기에 / 逆旅尙云遠
하인은 슬픈 노래를 불러대는데 / 僕夫動悲歌
여우며 살쾡이는 숲 속에서 울고 / 狐狸啼林中
호랑이 이리는 산 언덕에 숨었네 / 虎狼藏山阿
후회해 본들 그만둘 수도 없나니 / 悔哉不可止
너무 늦으면 장차 어찌하겠는가 /
將如何

 

5 7일에 서 승제(徐承制)가 진사시권(進士試券)을 고열(考閱)하여 올리자, 상께서 편전(便殿)에 임어하여 봉함(封緘)을 뜯은 다음, 내시(內侍)에게 명하여 방()을 써서 이름을 부르게 하였다. ()은 피곤하여 그런 성대한 일을 가서 구경할 수 없어 한 수를 읊어 이루다.

 


천문 햇살은 번득이는 취화를 쏘아 비추고 /
天門日射翠華翻
대각의 시종신들은 예의 풍도가 존엄하니 / 臺閤詞臣禮度尊
숙배하는 시관은 더없는 광영이겠거니와 / 肅拜主司榮罕比
급제자 호명할 땐 기쁨을 형용키 어려우리 / 傳臚唱牓喜難言
부로를 따라서 함께 지팡이도 짚고 싶고 / 欲隨父老同扶杖
태평을 하례하며 같이 술도 마시고파라 / 擬賀昇平共置樽
어찌하면 예악 교화가 예전보다 빛나서 / 焉得人文光古昔
소중화
의 풍속이 중원 같아질 수 있을꼬 / 小中華俗似中原

 

[주D-001]천문(天門) …… 쏘아 비추고 : 천문은 대궐(大闕)을 가리키고, 취화(翠華)는 제왕(帝王)의 의장(儀仗) 중에 취우(翠羽)로 장식한 기치(旗幟)나 거개(車蓋)를 가리킨다.
[주D-002]소중화(小中華) :
고 려 문종(文宗) 30(1076)에 고려의 공부 상서(工部尙書) 최사량(崔思諒)이 송()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가서 사은(謝恩)하고 방물(方物)을 바쳤는데, 이때 송나라에서 고려를 예악 문물(禮樂文物)의 나라라 하여 고려의 사신을 매우 후히 접대하였고, 특히 고려 사신의 하마소(下馬所)를 소중화지관(小中華之館)이라고 제()했던 데서 온 말이다.

날이 갬을 기뻐하다.

 


나는 오늘이 맑음을 기뻐하노니 / 我喜今日晴
하늘이 후생을 불쌍히 여김일세 / 天應憐後生
대궐에서 진사 급제자 방방함은 / 金闕放蓮牓
헛된 이름 과시하자는 게 아니요 / 匪以夸虛名
바라는 것은 뛰어난 인재를 얻어 / 庶幾得英材
교양하여 큰 그릇으로 만들어서 / 敎養大器成
우리나라 정치를 보좌하게 하여 / 贊毗我政理
조야가 다 청명해지게 하는 걸세 / 朝野皆淸明
기대한 바가 하찮은 게 아니라서 / 所望非淺淺
하늘이 그 정성에 필시 감동하여 / 天公感精誠
응당 보게 되리 뭇 현재가 진출해 / 當觀衆賢進
봉황새가 태평성대에 우는 것을 / 鳳鳥鳴太平

 

내가 옛날에

 


내 그 옛날 신사년에 / 我昔歲辛巳
당시 나이 십사 세로 / 行年十又四
즉석에서 백자시를 이루어서 / 立成百字詩
요행히 진사 급제를 취했는데 / 僥倖取進士
소인이 되는 건 부끄러운 것이라 / 已恥爲小人
다만 군자가 되기를 기원했었지 / 祇願爲君子
그 후 중국에 유학함에 미쳐서는 / 及游學中華
지난날의 뜻을 더욱 면려했건만 / 益勵前日志
중간에 명리의 올가미에 빠져서 / 中爲名利蝕
세인과 그리 다르지 않게 되었네 / 與世無大異
이젠 쇠퇴하여 도와 멀어졌으니 / 頹摧去道遠
스스로의 탄식을 언제나 그칠꼬 / 自歎何日已
억의 경계
를 혹 행하지 못한다면 / 抑戒儻不擧
응당 더러운 이름을 남길 수밖에 / 甘心穢靑史

 

[주D-001]억(抑) 경계 : 억은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인데, 이 시는 춘추 시대 위 무공(衛武公)이 지은 것으로, 그 내용은 스스로 위의(威儀)와 공경(恭敬)을 다하여 조금이라도 방심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꾸짖고 경계한 것이다.

청풍(淸風)

 


맑은 바람이 높은 숲에 불어오니 / 淸風動高林
작은 비가 막 개고 난 때이로다 / 小雨初晴時
선동은 유학하는 데서 돌아왔고 /
善童游學回
늙은이는 한창 시를 읊는 중일세 / 老翁方詠詩
속마음이 얼굴에 다 나타나거늘 / 中情見於面
웃고 말하긴 어찌 그리도 더딘고 / 笑語何遲遲
늙은이와 어린애가 당 아래 서니 / 老幼立堂下
기색이 화평하고도 마냥 즐겁네 / 氣和顔甚怡
기다린 지 오래라고 서로 말하니 / 共言徯之久
부모의 기쁨을 진정 알 만하구나 / 父母喜可知
인생은 은의를 중히 여기는 건데 / 人生重恩義
이것을 풍화의 기초라 이르나니 / 是曰風化基
바라건대 경박하게 굴지 말아서 / 願言勿偸薄
타고난 본성을 잘 보전할지어다 / 保玆初秉彝

 

[주D-001]선동(善童)은 …… 돌아왔고 : 선동은 저자의 막내아들로, 일찍이 용두사(龍頭寺)에 가서 글을 읽었던 이종선(李種善)을 가리킨다.

김 사공(金司空) 속명(續命) 에게 부쳐 올리다.

 


대장경은 바다와 같이 거대하고 / 藏經如海大
강월은 사람을 밝게 비추어주네 / 江月照人明
지나는 길손 세월은 하 빠르거니 / 過客光陰疾
함께 동맹 맺음이 뭐가 해로우랴 / 何妨共結盟

 

신 급제(新及第) 진사(進士)들이 학관(學官)을 알현한 다음 문묘(文廟)의 알성례(謁聖禮)를 마치고 나면 서로 다투어 문을 나가므로, 심지어는 장원(壯元)이 막 대성전(大成殿)에 들어가 향()을 올릴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달려 나가버리는 일이 있기까지 하는데, 이는 뒤에 나가는 자는 벼슬이 현달하지 못하고 또 일찍 죽는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계사년(1353, 공민왕2) 문과(文科)에서는 내가 외람되이 장원으로 뽑혔으므로, 제공(諸公)에게 의논하기를, “우리들은 글을 읽었으니, 처신하는 데에 스스로 예가 있는 것이다. 성인(聖人)의 영령(英靈)이 마치 머리 위에 계신 듯한데, 감히 비례(非禮)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하니, 제공이 모두그렇다. 오직 시키는 대로 따르겠다.”고 하므로, 이에 전정(殿庭)으로 들어가서 일제히 한 번 쌍배(雙拜)를 올린 다음, 나 혼자 전상(殿上)에 올라가서 한 번 쌍배를 올리고 배위(配位)에 예까지 모두 마친 다음 천천히 전정으로 내려가니, 동서 편의 행례자(行禮者)들이 모두 오므로, 이에 또 한 번 쌍배를 올렸다. 그리하여 예를 다 마치고 물러 나올 때는 족적(足跡)이 질서 정연하게 서로 이어졌고 감히 한 걸음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였다. 문을 나와서는 말을 타고 천천히 연복사(演福寺)에 이르러 연치(年齒)의 차례대로 예를 행하였다. 이로부터는 진사 급제자들이 문묘를 참알(參謁)할 때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계사년의 일을 끌어대서 다시 서로 맹약을 질정하였고, 심한 경우는 약서(約書)를 만들어 거기에 서명(署名)을 해서 그 맹약을 더욱 확고히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오래되면서 점차 그 처음의 풍습으로 돌아가고 있으므로, 보는 이들이 한스럽게 여기는데, 지금 신진사(新進士)들은 문묘에 예를 거행할 적에 과연 어떻게 할는지 모르겠다. 충정을 억누를 수 없어 소리 높이 읊어서 한 편을 이루는 바이다.

 


성인은 하늘처럼 은택이 만세에 전하나니 / 聖人如天萬世垂
그 무리가 군자가 아니고 그 무엇이랴 / 其徒非君子而誰
군자는 평소에 서로 겨루는 게 없는지라 / 君子平時無所爭
걸음 걷는 법도 또한 어찌 그리 의젓한고 / 規趨矩步何委蛇
더구나 석채를 당해 마음 공경히 가지어 / 況當釋采心肅恭
궐리의 춘풍
속에 있는 것 같은 때이랴 / 如在闕里春風中
의당 삼가서 예모를 잃을까 걱정해야지 / 當憂縮縮失容止
어찌 미친 애들처럼 경박할 수 있겠는가 / 何得挑撻如狂童
내가 옛날 계사년에 외람되이 장원하여 / 我昔癸巳叨狀元
이 일을 가지고 여러 동년에게 말했는데 / 開口便與諸兄言
여러 동년들 모두 지기가 서로 부합하니 / 諸兄氣同志又合
밝은 태양이 천년 어둠을 깨뜨린 듯했었네 / 如日照破千年昏
전상에 올라 절하고 깨끗한 제사 드리니 / 上殿跪拜致精禋
동무와 서무
에도 향 연기가 새로웠었지 / 東廡西廡香煙新
반열에 돌아와 재배하고는 더욱 천천히 / 歸班再拜益徐徐
문을 나와 고삐 잡으니 먼지인들 날렸으랴 / 出門按轡那驚塵
뒤에 계승한 이는 필서로 맹약까지 하여 / 後來繼者筆書盟
우리들에게 허희 탄식을 더하게 했거니와 / 足使我輩增欷歔
또 들어 보니 두어 차례 과거는 그 옛날 / 數科又道如舊時
팔각부 육운시가 일어난 처음같이 하여 / 八脚六韻方興初
전조의 약속을 모조리 일신시켰다 하네 / 前朝約束盡更張
인재 뽑는 덴 문장을 숭상함이 합당하니 / 選士也合崇詞章
문장의 나라 빛냄이 단청보다 더하고말고 / 詞章華國甚丹靑
더구나 지금은 천지가 한창 태평하거니 / 況今天地方淸寧
바로 지금 예절을 구차하게 말아야지 / 卽今禮數勿造次
예절을 삼가면 족히 천만년을 부지하리 / 謹禮自足扶千齡

 

[주D-001]석채(釋采) : 공자(孔子)에게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주D-002]궐리(闕里) 춘풍(春風) :
궐리는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 있는 공자의 고리(故里)를 가리키고, 춘풍은 곧 공자의 어진 덕교(德敎)를 의미한 말이다.
[주D-003]동무(東廡) 서무(西廡) :
공자의 문묘(文廟) 안에서 여러 유현(儒賢)들을 배향(配享)하는 동쪽 행각(行閣)과 서쪽 행각을 말한다.

종손(宗孫)이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였으므로, 하례를 올리고 시를 지어 남겨 두다.

 


계림은 학문의 바다라 연원이 있기에 /
雞林學海有淵源
과거 시험에서 자주로 장원을 내거니 / 南省頻頻出狀元
시과가 지금 유독 열세라 말하지 마소 / 莫道詩科今獨劣
백발의 나도 또한 문단을 관령했다네 / 白頭吾亦領詞垣

 

[주D-001]계림(雞林)은 …… 있기에 : 계림은 경주(慶州)의 고호로서 즉 경주 이씨(慶州李氏)로 계림부원군(雞林府院君)에 봉해진 이제현(李齊賢)을 가리키는바, 그의 종손(宗孫)이 진사(進士)에 급제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즉사(卽事)

 


날마다 동서로 과거 급제 하례를 하면서 / 連日東西遍賀門
가는 곳마다 실컷 마셔 곤드레가 되었네 / 逢場劇飮醉昏昏
꾀꼬리 우는 녹음 속에 산은 문에 당했고 / 綠陰黃鳥山當戶
가랑비 속 청풍 아래 술은 그릇 가득해라 / 細雨淸風酒滿樽
당세의 안위도 도무지 관섭 아니하거늘 / 當世安危都不管
사문의 흥망인들 다시 무어 말하랴마는 / 斯文興喪更何言
후생이 두려움
은 지금도 예와 같으나니 / 後生可畏今猶昔
남은 생에 예절 번거로움을 감히 꺼리랴 / 敢憚餘生禮數煩

 

[주D-001]후생(後生) 두려움 : 공자가 이르기를, “뒤에 태어난 사람이 두려워할 만하니, 뒤에 난 사람이 지금 사람만 못할 줄을 어떻게 알겠는가.[後生可畏焉知來者之不如今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새 누에고치를 읊다.

 


새 누에고치 버들고리 가득해라 / 新繭滿柳笥
동실동실한 게 빛은 천황색일세 / 團團色淺黃
뽑아 짜서 주색 녹색 들이면 / 繰絲染朱綠
공자님의 옷을 지을 만하려니와 / 可爲公子裳

겨울 사냥 또한 크나큰 예이거니 / 冬狩亦大禮
솜을 놓으면 추위를 능히 견디리 / 挾光凌氷霜
수많은 가옥이 성읍에 가득하니 / 萬屋亘城邑
어느 땅에다 뽕나무를 심을 거나 / 何地堪種桑

 

[주D-001]실 …… 만하려니와 :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 “팔월에는 길쌈을 하나니, 검은 물감 노랑 물감 곱게 들여서, 우리 붉은색이 가장 빛나거든, 공자님의 옷을 만드나니라.[八月載績 載玄載黃我朱孔陽 爲公子裳]”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행단이며 괴시와 근궁에서 /
杏壇槐市與芹宮
많은 생도들 기예 닦아 고풍을 떨치는데 / 游藝詵詵振古風
일월 같은 용안을 아주 가까이 모시면서 / 日月違顔才咫尺
백발에 땀 흘리며 동서를 분주하노라니 / 白頭流汗走西東
신묘한 변화 힘입어 국운은 새로워지고 / 尙資神化新邦命
묵묵히 인륜 정하여 성인의 이루도다 /
陰騭人倫作聖功
후생들 진취가 흔히 예리하다 말들 하니 / 摠說後生多銳進
전심치지로 처음과 끝을 보전했으면 / 庶幾專志保初終

 

[주D-001]행단(杏壇)이며 괴시(槐市) 근궁(芹宮)에서 : 행 단은 공자가 일찍이 생도(生徒)들을 모아 놓고 강학(講學)하던 곳으로, 전하여 강학하는 곳을 가리키고, 괴시는 한()나라 때 장안(長安)에 제생(諸生)들이 모여서 무역(貿易)하던 시장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학궁(學宮)을 의미하며, 근궁은 바로 국학(國學)을 가리킨다.
[주D-002]묵묵히 …… 이루도다 :
《주역(周易)》 몽괘(蒙卦) 단사(彖辭), “어린이에게 바름을 기르는 것이 성인을 만드는 공이다.[蒙以養正 聖功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후생(後生)들 …… 보전했으면 :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그 나아감이 예리한 사람은 그 후퇴하는 것 또한 빠른 것이다.[其進銳者 其退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盡心上》

덧없는 인생

 


덧없는 인생 누가 명을 믿으랴만 / 浮生誰信命
만년엔 저절로 근심을 잊게 되누나 /
景自忘憂
손님 대해서는 자주 이를 문지르고 /
對客頻捫蝨
기심 잊으니 갈매기도 친할 만하네 /
忘機可狎鷗
단청 같은 산에는 비가 올 듯하고 / 丹靑山欲雨
먹을 보리는 가을이로세 /
餠餌麥將秋
매우 한가히 소리 높여 읊노라니 / 吟嘯悠悠甚
맑은 바람이 백발에 불어오누나 / 淸風吹白頭

 

[주D-001]손님 …… 문지르고 : 전 진(前秦)의 왕맹(王猛)이 소년 시절에 대장군(大將軍) 환온(桓溫)을 알현했을 때, 한편으로는 담론(談論)을 유창하게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를 문질러 잡으면서 방약무인(傍若無人)한 태도를 지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기탄(忌憚) 없이 담론하는 것을 의미한다. 《晉書 卷114 荷堅載記下 王猛》
[주D-002]기심(機心) …… 만하네 :
사람이 교사(巧詐)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동물과도 서로 가까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주D-003]떡 …… 가을이로세 :
소식(蘇軾)의 〈남원(南園)〉 시에, “뽕나무 밭둑에 비 지나니 비단은 번지르르하고, 보리밭 고랑에 바람 부니 떡 내음은 향기롭네.[春疇雨過羅紈膩 麥壟風來餠餌香]” 한 데서 온 말이다.

그만이로다.[已矣]

 


날 흐린 버들 골목 바람 없이 고요할 제 / 天陰柳巷靜無風
비둘기 참새 지저귄 속에 누워 생각하니 / 高臥鳩鳴雀噪中
도가 망함엔 누가 진작 공자를 알았으랴 /
道喪誰曾知孔子
꿈속에선 간혹 주공을 만나기도 했었지 /
夢酣時或見周公
고금의 만사는 나날이 낮은 데로 내닫고 / 古今萬事日趨下
주야로 온갖 냇물은 동으로만 흘러가누나 / 晝夜百川流向東
그만이로다 이제는 참으로 그만이로다 / 已矣乎今眞已矣
삼한 땅의 한낱 백발의 이 늙은이는야 / 三韓一箇白頭翁

 

[주D-001]도가 …… 알았으랴 : 공 자(孔子)가 일찍이 광()에서 횡포(橫暴)를 부렸던 양호(陽虎)로 오인받아 광 사람들에게 포위되었을 때는 이르기를, “문왕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도가 나에게 있지 않느냐? 하늘이 이 도를 장차 망칠 작정이면 문왕의 뒤에 죽을 내가 이 도에 참여하지 못했을 테지만, 하늘이 이 도를 망치려 하지 않으시니, 광 사람이 나에게 어찌하겠느냐.[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라고 했었으나, 뒤에는 또 이르기를, “봉황새가 오지 않고, 황하에서 그림 진 용마도 나오지 않으니, 나의 도는 그만인가보다.[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라고 하였다. 《論語 子罕》
[주D-002]꿈속에선 …… 했었지 :
공 자가 젊은 시절에는 주공(周公)의 도를 행하려는 굳은 의지 때문에 꿈속에 가끔 주공을 보았었는데, 늙어서는 의지 또한 쇠약해져서 꿈속에서도 주공을 만나지 못하자, 이를 탄식하여 이르기를, “심하다, 나의 쇠함이여. 내가 다시 주공을 만나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포어행(捕魚行)

 


송악산에 밤비 내려 시냇물이 벌창하자 / 松山夜雨溪水漲
강물의 고기 떼가 물을 거슬러 올라오니 / 江中
魚泝流上
힘센 종이 두 언덕에 그물 가로질러 몰 제 / 豪奴細網卷兩岸
모래는 희고 물은 맑아 손바닥 보기 같구려 / 沙白水淸如指掌
양념 찧고 회 치는 걸 어찌 더디 할쏜가 / 搗辛斫膾那肯遲
소반 가운데 이미 아가미가 서로 향했네 / 盤中已見
相向
인생은 구복 채우는 것도 작은 일이 아니라 / 人生口腹非小物
타고난 본심과 서로 갑을로 논할 수 있나니 / 得與天君相甲乙
백이와 도척은 서로 양극을 이루었지만 /
伯夷盜跖雖兩端
몸 보전함이 꼭 다 간사함이 되진 않으리 / 保身未必皆爲奸
홀로 앉아 생각하면서 재삼 탄식하노니 / 念之獨坐再三歎
다행한 것은 내 머리에 조관이 없음일세 / 幸哉頭上無朝冠
청풍이 옷에 불어오고 하늘 또한 흐려라 / 淸風吹衣天又陰
야외의 어둔 연기가 푸른 숲에 나직거니 / 野外煙暗低靑林
소년들 놀음판에 달려간들 뭐 해로우랴만 / 何妨馳入少年場
다만 질병이 온몸을 싸고 있어 못 하겠네 / 只被疾病相侵尋
생각하니 사물의 이치를 터득한 듯하여라 / 翻思物理若有得
익기 손인
을 덕이 박하다고 칭하거니와 / 益己損人稱薄德
고기가 못에서 뛰어 생동감 넘치는 것도 / 魚躍于淵活潑潑
이 또한 찬란한 인수 지역의 상징이거니 / 是亦粲然仁壽域
제군은 행여 놀이에만 팔리지 말지어다 / 諸君且莫玩細娛
백발 늙은이는 슬픈 마음 금할 길이 없구려 / 白髮不禁心惻惻

 

[주D-001]백이(伯夷)와 …… 이루었지만 : 백 이는 은()나라 사람으로서 은나라가 망한 뒤에는 청절(淸節)을 굳게 지켜 끝내 굶어 죽었고, 도척(盜跖)은 춘추 시대 노()나라의 큰 도적으로서 대단히 포학하여 수천 명의 졸개들을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하면서 날마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곤 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2]익기 손인(益己損人) :
자기만 유익하게 하고 남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을 말한다.

도적이 이르다.

 


도적이 오면 스스로 떠나야 하는데 / 寇至可自去
백발이라 도보로 가긴 어렵거니와 / 白頭徒步難
집안에는 또 노약자가 가득하니 / 老幼又滿室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네 / 念之心不安
하지만 다행한 것은 묘당에 앉은 / 所幸廟堂上
장상들이 다 같이 노심초사하여 / 將相焦肺肝
국가를 유지할 좋은 계책을 내서 / 維持有長策
국운을 반석처럼 영구히 함일세 / 國步如鼎盤
고향의 진강 굽이를 슬피 바라보니 / 悵望鎭江曲
백구와의 맹세는 이미 저버렸지만 / 白鷗盟已寒
높은 절벽은 만여 길이나 되어 / 懸崖萬餘仞
또 상심만 하기에 족할 뿐이네 / 又苦足心酸
피난을 가자도 끝내 길이 없는지라 / 避地竟無路
소리 높이 읊어 스스로 위로하노라 / 高吟聊自寬

 

신진사(新進士) 3인이 와서 참알(參謁)하는데, 공장(公狀)만 있고 관디[冠帶]는 없이 융복(戎服) 차림으로 왔으니, 이는 예()가 겨우 조금 있는 것이요, 예의 큰 변()이기도 하다. 대체로 방방(放榜)한 다음 날에는 관디[冠帶]를 정제하고 참장(參狀)을 갖추어 숙배하고, 그다음은 승선(承宣)과 중방(重房)을 참알하고, 그다음은 성대(省臺)를 참알하고, 그다음은 성균관에 가서 알성(謁聖)을 하여 모두 3일 만에 마친다. 그러고 나서는 조삼()을 입고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어 두 대열(隊列)을 만들어서 문반(文班)제군(諸君)과 재추(宰樞)들을 알현하는 것이 바로 일정한 규정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열을 3인으로 그쳤으니, 3인으로 나눌 경우 그 전체 숫자가 30여 대열에 이를 수 있을 터인즉, 문반의 제군과 재추들이 어찌 이렇게 많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동서(東西)의 두 대열로 나누어 온 사람이 겨우 3인뿐이라면 이는 또 선진(先進)을 어찌 이렇게까지 경멸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다 못해 한 수를 읊어서 후과 진사(後科進士)들에게 선진을 예로 알현하는 법이 되게 하는 바이다. , 내가 우리 무리들에게 기대하는 지극한 정을 그 누가 알아줄꼬.

 


사문의 골육을 예가 유지해 주는 것인데 / 斯文骨肉禮維持
죽더라도 어찌 구차히 훼손할 수 있으랴 / 寧死寧容造次虧
융복으로 참알하는 걸 어디에 근거했나 / 戎服參門何所本
공장에나마 전규 있는 게 가련할 뿐이네 / 尙憐公狀有前規

 

[주C-001]공장(公狀) :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알현(謁見)할 때에 자신의 신분을 소개하는 문서이다. 다음에 나오는 참장(參狀)도 이와 같다.
[주C-002]제군(諸君) :
여러 군이란 뜻으로, 종친(宗親)이나 훈신(勳臣)으로 봉군(封君)된 사람들을 합칭한 말이다.

5 12일 조반(朝飯) 때에 점군색(點軍色)의 공함(公緘)을 받고 보니, 이달 10일에 연복사(演福寺)에서 점군(點軍)을 한다는 것이었다. 벌써 2, 3일이 지난 뒤이니 장차 누구를 책망한단 말인가. 국가의 대사(大事)를 이렇게 해서야 되겠는가.

 


기한이 지금 삼 일이나 지나서야 / 限今過三日
비로소 공함을 열람하게 되었네 / 始得閱公緘
명령을 내린 이미 느슨했으니 / 出令旣云慢
기한은 응당 엄하게 다그치겠지 / 致期應更嚴

허둥지둥 황급히 무딘 칼을 갈고 / 蒼黃磨鈍劍
헝겊을 갖고 출정할 옷을 짓다니 / 片段補征衫
다만 나에게 붓 한 자루가 있어 / 只有管城子
늙어도 끝은 아직 예리할 뿐이네 /
老尙銛

 

[주D-001]명령을 …… 다그치겠지 : 공자가 이르기를, “명령은 느슨하게 내려놓고 기한을 다그치는 것을 해치는 것이라 한다.[慢領致期 謂之賊]”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堯曰》

비가 오다.

 


가랑비 내려 절로 흙에 스며드니 / 細雨自入土
남녘 들 백성들을 위로할 만하네 / 可慰南畝氓
마침 오월 보름에 다다랐는지라 / 屬玆仲夏望
즐거운 맘이 저절로 우러나누나 / 油然樂自生
줄기와 잎이 나날이 더욱 커가니 / 莖葉日益大
이미 풍년을 보기에 넉넉해졌네 / 已足觀秋成
전야에 물러가서 배불리 밥 먹고 / 鼓腹退田野
이제부터는 태평이나 노래하련다 / 從玆歌大平

 

화엄종(華嚴宗)의 혜침(惠砧) 대선(大選)이 종선(種善)에게 부탁하여 시를 요구하다.

 


혜침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 / 砧也不識面
작은 아이가 사람됨을 잘 말해 주네 / 小童能道之
화엄의 교법을 한창 설법하면서 / 華嚴方演敎
풍월 읊는 시까지 또 즐기는구나 / 風月又耽詩
곡령의 구름 활짝 걷힌 곳이며 / 鵠嶺雲收處
여강의 강물 한창 벌창할 때랑 / 驪江水漲時
상인은 이런 곳을 자주 왕래하거늘 / 上人來往數
아직껏 못 떠난 내 자신이 부끄럽네 / 愧我乞身遲

 

즉사(卽事)

 


여름날에 시를 길이 읊으노라니 / 夏日吟來永
그윽한 삶의 맛이 절로 기름지네 / 幽居味自腴
시서에는 즐거운 곳이 많거니와 / 詩書多樂處
천지는 일개 조물의 용광로로다 / 天地一洪爐
정원에선 꾀꼬리가 벗을 부르고 /
園裏鶯求友
들보에선 제비가 새끼를 먹이네 / 梁間燕乳雛
멀리 가련한 건 송백만 먹으면서 / 遙憐啖松柏
산택에 거주한 파리한 신선일세 /
山澤有仙癯

 

[주D-001]정원에선 …… 부르고 : 《시 경》 소아(小雅) 벌목(伐木), “꾀꼬리가 꾀꼴꾀꼴 욺이여, 제 벗을 부르는 소리로다. 저 새를 보아도, 서로 벗을 부르는데, 더구나 우리 사람으로서, 벗을 찾지 않을쏜가.[嚶其鳴矣 求其友聲 相彼鳥矣 猶求友聲 矧伊人矣不求友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송백(松柏) 먹으면서 :
속세(俗世)를 떠나서 선도(仙道)를 배우는 이들이 소나무 잎이나 잣나무 열매만 먹고 사는 것을 말한다.
[주D-003]산택(山澤)에 …… 신선일세 :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천자(天子)에게 아뢰기를, “서로 전해가면서 산택 사이에 거주한 역대 신선들은 형용이 몹시 파리하나니, 이것은 제왕이 하고자 하는 신선이 아닙니다.[列仙之傳居山澤間 形容甚癯此非帝王之仙意也]”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형용이 파리한 은자(隱者)를 가리킨다. 《史記卷117 司馬相如列傳》

스스로 탄식하다.

 


나는 늙었으나 생각은 한창 건장해 / 我老思方壯
가지에서 아직 안 떨어진 꽃인 양 / 如花未辭枝
나는 병들었으나 생각은 무양하여 / 我病思無恙
한창 제때를 만난 새인 양 하지만 / 如鳥方得時
소리나 빛은 믿을 것 못 되고말고 / 聲色不足恃
나는 쇠한 지 이미 오래되었는걸 / 久矣吾之衰
냇가에서 공자가 탄식한
까닭은 / 川上夫子嘆
우리 도에 이반된 게 많아서이니 / 吾道多乖離
차라리 오늘 버림을 받을지언정 / 寧甘今日棄
후일의 비웃음은 받지 말아야지 / 莫受他年嗤
이 한 몸은 저절로 없어지겠지만 / 一身自澌盡
명예 절개는 끝내 훼손키 어려우리 / 名節終難虧

 

[주D-001]냇가에서 공자가 탄식한 : 공 자가 일찍이 냇가에서 흐르는 물을 가리켜 이르기를, “가는 것이 이와 같은저,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잠시도 쉴 새 없이 운행하는 도체(道體)의 본연(本然)을 감탄한 것이다. 《論語 子罕》

참치가(參差歌)

 


물정은 들쭉날쭉 가지런하지 못한 거지만 /
參差物情雖不齊
내 지금 노래 짓자니 마음이 처량해지네 / 我今作歌情悽悽
상산의 김군은 나의 옛날 동년으로서 / 商山金君我同年
함께 놀고 함께 배우며 서로 제휴했는데 / 同游同學相提携
김군은 시에 능하여 일찍 이름이 있었으니 / 金君能詩早有名
그의 의지만 따를 뿐 어찌 감히 겨뤘으랴 / 我隨作計那敢爭
허나 나는 요행히 삼중대광에 이르렀고 / 我則僥幸至三重
김군은 아직까지 제생을 면치 못했는데 / 金君尙爾爲諸生
나는 지금 백발이 머리에 가득한 데다 / 我今白髮已滿頭
십 년의 근심 고통이 얼마나 지루했는가만 / 十年憂病何悠悠
김군은 아직 한 가닥의 흰 수염도 없고 / 金君鬚無一莖白
맑은 노래 느슨한 춤에 풍류가 뛰어나니 / 淸歌緩舞長風流
조물주가 사람에게 어찌 후박이 있으랴 / 造物於人豈厚薄
우리들을 배우처럼 우롱하기만 한 거로세 / 愚弄我輩如倡優
그 당시 학창 시절 한이불 덮고 잘 적엔 / 當時螢窓共被眠
누가 출처 가지고 후일을 논하려 했던가 / 肯將出處論他年
아무쪼록 끝까지 친구의 우정 보전하여 / 庶幾終始保交誼
후진에게 우리 어짊 흠모케 하려 했었지 / 要令後進歆吾賢
하늘인지 운명인지 조만은 서로 달라도 / 天耶命耶早

준마는 정히 먼 길 달리기에 알맞거니와 / 逸足政好馳長途
앞서 지쳤다 뒤에 회복함은 당연한 이치라 / 前疲後健勢所至
예부터 굳이 현우를 논하지 않는 법이요 / 自古未必論賢愚
더구나 이젠 조정에서 개혁하는 일이 많아 / 況今廟堂更事多
마음 가다듬어 방금 시부과를 일으켰다네 / 銳意方興詩賦科
김군은 시에 능하고 사륙문도 잘 지어서 / 金君能吟善四六
비탈에 공 굴리듯 황하를 터내린 듯했건만 / 如丸走坂如決河
선비가 때 만나기 어려움을 이제 알았네 / 乃知士也遭遇難
응시하고 몇 번이나 헛되이 갓을 털었던고 / 策科幾度虛彈冠
지금은 피리 불어 제나라 문에 왔으니 / 如今吹竽向齊門
그대 풍채가 삼한을 경도할 줄 알고말고 / 知君風采傾三韓
내 쇠한 몸 일으켜 연회 자리에 가거들랑 / 扶衰如赴宴會中
그대 불러 놓고 옥술잔에 술 가득 따라서 / 喚君大酌玻璃鍾
좌주 면대하여 우리 결활했던 걸 말하고 / 面對大賓說契闊
위하여 원래 공평한 조물주께 사례하려네 / 爲謝造物由來公
매화는 절로 일찍 피고 국화는 늦게 피지만 / 梅開自早菊自

하늘땅 어느 곳인들 춘풍이 아니 불쏜가 / 乾坤何處非春風

 

[주D-001]물정(物情)은 …… 거지만 : 맹자가 이르기를, “대저 모든 물건이 서로 가지런하지 않은 것은 물건의 실정이다.[夫物之不齊物之情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주D-002]갓을 털었던고 :
갓에 먼지를 털어서 벼슬에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3]피리 …… 왔으니 :
그 시대에 유용(有用)한 재능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한유(韓愈)의 〈답진상서(答陳商書)〉에 의하면, 제왕(帝王)은 본디 피리[]를 좋아하는데, 제나라에 벼슬을 구하는 자가 있어 비파[]를 가지고 가서 제왕의 문에 3년 동안이나 서 있었지만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결활(契闊) :
오랫동안 서로 헤어져 있는 일, 또는 근고(勤苦)의 뜻으로도 쓰인다.

회포를 너그러이 하다.

 


자고 일어나서 삭신은 하도 아픈데 / 睡起肌骨酸
계집애의 밟는 힘은 시들어만 가네 / 小娃踏欲殘
알괘라 애가 짜증이 몹시 났으니 / 知渠嗔恚甚
힘을 쓰기가 참으로 어려울 테지 / 用力誠爲艱
제 몸 하나도 잘 보전하지 못하여 / 身體尙不保
마침내 질병이 침범하게 했지만 / 竟使邪氣干
천하는 또한 워낙 거대한 것이라 / 天下亦云大
요순도 인재 얻길 어렵게 여겼지 /
唐虞猶才難
나의 회포를 호연히 풀어버려서 / 浩然寬我懷
애간장이 타도록 하질 말아야겠네 / 無令催肺肝

 

[주D-001]요순(堯舜)도 …… 여겼지 : 공 자가 이르기를, “인재 얻기가 어렵다는 것이 옳은 말이 아니겠는가. 당우 시대만이 주나라보다 성하였다. 그러나 주나라도 부인이 끼었으니 아홉 사람일 뿐이다.[才難 不其然乎 唐虞之際 於斯爲盛 有婦人焉 九人而已]”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泰伯》

새벽에 일어나다.

 


구름 맑고 바람 차서 가을과 흡사한지라 / 雲淡風寒酷似秋
남창 아래 앉았노라니 생각이 유유하네 / 南窓趺坐思悠悠
뼈를 녹일 무더위 가까워옴을 이미 알아 / 已知爍骨炎蒸近
온몸에 땀 줄줄 흘릴 게 미리 두렵구나 / 預怕全身瀋汗流
참찬의 신묘한 공은 누가 알 수 있을꼬 / 參贊神功誰得識
굴신의 묘리는 스스로 찾기 어렵고말고 / 屈伸妙理自難求
아지 못게라 꾀꼬리는 무슨 뜻을 가지고 / 不知黃鳥將何意
꾀꼴꾀꼴 울어서 쉬러 들지 않는 걸까
/
啼送綿蠻不肯休

 

[주D-001]꾀꼬리는 …… 걸까 : 《시 경》 소아(小雅) 면만(綿蠻), “꾀꼴꾀꼴 꾀꼬리가, 무성한 산 숲에 그쳤다.[綿蠻黃鳥 止于丘隅]” 한 것을 두고 이르기를, “그침에 있어 그 그칠 곳을 아나니, 사람으로서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사람이 제가 할 도리(道理)에 최선을 다하여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大學章句 傳3章》

맷돌을 읊다.

 


위는 하늘처럼 움직이고 아래는 땅과 같아 / 上動如乾下似坤
어지러이 쏟는 보릿가루 비유키 어려워라 / 紛紜麥屑比難言
고금의 인물들 끝없이 나오는 이치거니 / 古今人物無窮盡
이게 바로 성을 보존한 도의의 문이로세 / 便是存存道義門

 

[주D-001]성(性)을 …… 문이로세 : 《주 역》 계사전 상(繫辭傳上), “천지의 위치가 베풀어지거든 역이 그 가운데에 행해지나니, 이루어진 성을 끊임없이 보존하는 것이 도의의 문이다.[天地設位 而易行乎其中矣 成性存存 道義之門]”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사물이 끊임없이 생겨나서 마지않는[生生不已] 뜻으로 쓰인 것이다.

방아를 읊다.

 


누런 벼를 거두어다 방아에 넣어 찧으니 / 卷盡黃雲入碓來
찧어진 하얀 쌀이 겨와 함께 그득 쌓여라 / 舂餘白玉雜糠堆
향기론 밥 짓게 한 건 종시 내 힘이길래 / 爛蒸香滑終吾力
체와 키는 공 사양하고 감히 시샘 못 하네 / 篩簸推功不敢猜

 

솥을 읊다.

 


상제의 향사 어진 기름에 무얼로 삶는고 / 享帝養賢何以烹
복희씨가 그어놓아서 비로소 이름 알았네 / 庖羲畫了始知名

구금
한번 주조하니 산처럼 옮기기 어려워 / 九金一鑄山難轉
문득 국가를 영원토록 태평하게 하였도다 / 便使邦家永大平

 

[주D-001]상제(上帝)의 …… 알았네 : 복 희씨(伏羲氏)가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그림을 보고 팔괘(八卦)를 그어서 처음으로 《주역》을 만들었는데, 《주역》 정괘(鼎卦) 단사(彖辭), “나무로 불을 때는 것이 삶는 것이니, 성인이 여기에 음식을 삶아서 상제를 향사하고, 또 크게 삶아서 성현을 기르나니라.[以木巽火烹飪也 聖人烹 以享上帝而大烹 以養聖賢]”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구금(九金) :
구정(九鼎)을 말한다. () 임금이 구주(九州)의 쇠를 거두어서 구정을 주조했으므로 이렇게 일컬은 것인데, 이 구정은 하(), (), () 시대에 전국(傳國)의 보배가 되었었다.

들꽃[野花]을 읊다.

 


간 곳마다 핀 들꽃 이름은 알 수 없지만 / 野花隨處不知名
초동 목수들의 시야는 환히 빛나고말고 / 蕘叟樵童眼界明
어찌 반드시 상림원 꽃들만 부귀할쏜가 / 豈必上林爲富貴
하늘의 마음 쓰는 것이 절로 균평하구려 / 天公用意自均平

 

김 동년(金同年)을 위하여 명지(名紙)를 구해 얻었는데, 정언 최함(崔咸)이 그 겉봉에 희() 자를 써서 보내다.

 


육순 다 된 나이로 과거장에 나가거든 / 年將六十赴文圍
읊조리는 소리가 대궐을 진동하겠네 / 吟嘯餘聲動紫微
문하의 제공들이 명지까지 보내줬으니 / 門下諸公送名紙
주의 입고 머리 끄덕인 이가 있으리 /
點頭當必有朱衣

나와는 동맹이라 처음 마음 간직했지만 / 自我同盟抱素襟
노인 동정한 제공 또한 어진 마음이로다 / 諸公愍老亦仁心
더구나 그는 시부에 본래 익숙했거니 / 況渠詩賦由來熟
몇째 가지가 계림에서 가장 빼어나던고 / 第幾瓊枝秀桂林

나이 젊은 이 동년은 늙어서 은퇴하여 / 年少同年老退休
삼중에다 봉군되고 춘추관도 영관했는데 / 三重封邑領春秋
다시 과거장에 오게 된 게 무슨 뜻일꼬 / 更游場屋知何意
혹시나 하늘이 그대에게 장원을 주려나 / 或者天公與狀頭

 

[주C-001]명지(名紙) : 과거(科擧) 시험에 쓰는 종이를 말한다.
[주D-001]주의(朱衣) …… 있으리 :
()나라 구양수(歐陽脩)가 공거(貢擧)를 주관하던 때에 시권(試券)을 고사(考査)할 적마다 자기 등 뒤에서 주의 입은 사람이 머리를 끄덕인 것을 느낀 다음에야 그 시권이 입격(入格)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시권 고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점군색첩(點軍色貼)에 의하여 좌창(左倉)에서 제군(諸君)과 재추(宰樞)들에게 봉록(俸祿)을 지급하였다. 이런 일은 전에 들어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기록하는 바이다.

 


재상들은 조정에서 국사를 주관하거니와 / 宰相當朝秉國鈞
제군은 모두가 이 훈구의 명신들이거니 / 諸君皆是舊名臣
점군이 국록 반사와 무슨 상관이 있던고 / 點軍何與頒王賜
노년에야 세상일 새로운 걸 알게 되었네 / 老境方知世事新

 

내 가 병석에 누운 이래 후한 봉록을 받는 것은 벼슬이 높은 소치라고 스스로 생각하여 이에 치사(致事)를 했는데, 이윽고 또 봉군(封君)이 되어 지금까지 봉록을 받아왔다. 그래서 이것을 사양하고 받고 싶지 않았으나, 또 남들의 비난을 받을까 염려되어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억지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른 지 오래였다. 그런데 경신년(1380, 우왕6) 5 13일에는 봉록을 반사(頒賜)하는 창관(倉官)이 점군색첩에 의하여 봉록을 지급하므로, 나는 받지 못하였다. 이것이 실로 나의 본심에 합치하므로, 시를 지어 그 사실을 기록하는 바이다.

 


다년간 후한 봉록 시위소찬이 부끄러워 / 厚祿多年愧素飧
사양하려도 비난받을까 되레 염려했는데 / 欲辭還恐被譏彈
지금 다행히 새로운 조례를 행하게 되니 / 今來幸得新條例
내 마음 늙어서 다시 편안함이 점점 기쁘네 / 漸喜吾心老更安

 

스스로 탄식하다. 4(四首)

 


스스로 탄식하며 이와 같이 간다던 / 自嘆如斯逝
냇가에서의 말씀이 아련도 하여라 / 川上言

때로는 자주 수레 명하여 나가고 / 有時頻命駕
온종일 문 닫고 홀로 있기도 하네 / 竟日獨關門
바다에 들면 넓어서 끝이 없거니와 / 入海浩無際
산에 있으면 처음 발원지가 되는데 / 在山初發源
동으로 흐르는
을 누가 알랴 / 誰知必東意
본성이 다행히 끝없이 보존됨일세 / 成性幸存存

비록 거취를 결정함엔 어둡지만 / 雖然迷去就
또한 국가의 안위는 관섭하나니 / 亦復管安危
머리는 내가 지금 가장 희거니와 / 髮白我今最
마음 맑음은 누가 다시 알아줄꼬 / 心淸誰復知
고향 산천은 하늘 아래 아득하고 / 山川天漠漠
문항의 해는 마냥 더디기만 하니 / 門巷日遲遲
붓과는 서로 종유한 지 오래이라 / 毛穎相從久
오직 흥취 푸는 시만 쓸 뿐이네 / 唯題遣興詩

무한 광대한 이 천지 가운데 / 大哉天地中
이 백발 늙은이가 붙여 있어 / 著此白頭翁
소란스러운 공명엔 싫증이 나고 / 擾擾功名倦
한가로운 흥미만 농후해지누나 / 悠悠興味濃
학은 선탑의 달빛 아래 울어대고 / 鶴鳴禪榻月
백로는 낚싯줄 바람 앞에 섰나니 / 鷺立釣絲風
어느 곳인들 은거할 데 없을까만 / 何處不可隱
아직 오도의 궁함만 슬퍼하다니 / 尙悲吾道窮

흰 구름은 또한 무슨 뜻이 있는지 / 白雲亦何意
가벼이 나는 게 무심한 듯도 하네 / 輕擧似無心
새는 바다 하늘 저 멀리 사라지고 / 鳥沒海天遠
원숭이는 깊은 바위굴에서 우누나 / 猿吟巖洞深
말고 펴는 게 참으로 자유자재라 / 卷舒眞自得
가고 멎는 걸 아득하여 못 찾겠네 / 行止杳難尋
홀로 서서 그윽한 흥취 기탁하여 / 獨立寄幽興
머리 숙여 내 흉금을 피력하노라 / 低頭披我襟

 

[주D-001]스스로 …… 하여라 : 공 자가 일찍이 냇가에서 흐르는 물을 가리켜 이르기를, “가는 것이 이와 같은저,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잠시도 쉴 새 없이 운행하는 도체(道體)의 본연(本然)을 감탄한 것이다. 《論語 子罕》
[주D-002]꼭 …… :
《순자(荀子)》 유좌(宥坐), “물이 만번 꺾이어도 반드시 동으로 흐르는 것은 굳은 의지가 있는 것 같다.[其萬折也必東 似志]” 한 데서 온 말이다.

가동(家僮)을 보내어 군기(軍器)를 갖추어서 군선(軍船)으로 가도록 하다.

 


나라의 녹 먹고 너도 생장했으니 / 祿食渠生長
전장에 나가는 걸 감히 원망하랴 / 師征敢怨咨
한마음으로 호령에 잘 복종하고 / 一心從號令
장수들에게 안위는 맡겨버려야지 / 諸將任安危
창날과 살촉은 응당 피해야지만 / 鋒鏑自當避
풍파의 유무야 누가 알 바이더냐 / 風波誰所知
삼가고 더욱 다시 삼가란 뜻으로 / 愼之尤更愼
너를 위하여 한 수의 시를 쓰노라 / 爲汝一題詩

 

즉사(卽事)

 


땅은 외져서 산골짝과 다름없고 / 地僻如林壑
몸은 한가해라 시비가 전혀 없네 / 身閑絶是非
새로운 시를 스스로 화답하노니 / 新詩聊自和
이 좋은 일을 누가 알 수 있으랴 / 勝事有誰知
들녘 비는 누각 앞으로 지나가고 / 野雨樓前去
산새들은 책상 위로 날아가누나 / 山禽案上飛
평생에 가장 즐거운 곳이라면 / 平生最樂處
다만 필담하는 때에 있고말고 / 只在筆談時

 

[주D-001]필담(筆談) : 붓과 서로 얘기한다는 뜻에서 시문(詩文) 등의 저술을 의미한다.

가동을 군선으로 내보내고 인하여 짧은 노래를 짓다.

 


국가에서 처음으로 응양군을 설치하여 / 國家初置鷹揚軍
도부
를 통솔케 하니 구름처럼 모였는데 / 部領都府屯如雲
상령과 해령
을 무슨 의도에 근거하여 / 常領海領本何意
지금 더 설치해서 더욱 분잡하게 하는고 / 祗今添設尤紛紛
검리를 착용하고 천폐에 오르는 조관은 /
廟堂劍履天陛尊
신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으뜸 공신인데 / 不問新舊皆元勳
어찌하여 또한 대신의 군사를 내어서 / 奈何代身亦出軍
육위군과 함께 바닷가에 나가게 하는고 / 往與六衛趨海濆
배 타는 건 그가 본래 익힌 바 아니라서 / 乘舡非渠素所習
눈이 어른어른하고 애간장이 탈 터이지 / 眼花亂墜心如熏
적이 바라만 보고 도망친다면 천행이지만 / 望風賊遁是天幸
적을 만났을 땐 주유의 화공도 필요하리 / 遇賊亦可周瑜焚
한번 교전하면 반드시 손해를 입으리니 / 槍刀一交必相損
군사 온전히 돌아오면 의당 만족하련만 / 全軍而歸是十分
만에 하나 못 돌아올 자도 있을 터이니 / 萬中有一或不返
거센 파도를 어찌 강한 적 따위에 비하랴 / 怒浪豈直長鯨噴
해문은 아득하여 바라봐도 끝이 없는데 / 海門縹渺望不極
나는 새 그림자 밖에 석양이 밝게 비치네 / 飛鳥影外明斜曛
돌아오거라 돌아오거라 잘 돌아오거라 / 歸來歸來好歸來
바다가 평온해 운운한 물결 보게만 되면 / 海晏但見波沄沄
물가의 절벽에 공훈을 새길 터인데 / 鐫功水邊多石崖

행군 사마 어떤 이가 글을 잘하는지 /
行軍司馬誰能文

 

[주D-001]도부(都府) : 도회(都會)와 같은 뜻으로, 여기서는 도회의 군대를 이른 말이다.
[주D-002]상령(常領) 해령(海領) :
고 려 시대 경군 조직(京軍組織)인 육위(六衛), 즉 좌우위(左右衛), 신호위(神虎衛), 흥위위(興威衛), 금오위(金吾衛). 천우위(千牛衛), 감문위(監門衛) 중 천우위에 속한 두 영()의 부대를 말한 것으로, 한 영의 숫자는 1000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그 밖의 사항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주D-003]검리(劍履)를 …… 조관(朝官) :
본디 조관이 대궐(大闕)의 전상(殿上)에 올라갈 때는 칼을 차지 못하고 신도 신지 못하게 되어 있으나, 중신(重臣)에게는 특별히 칼을 차고 신을 신은 채로 올라갈 수 있도록 윤허하여 특별한 광영(光榮)을 보였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주유(周瑜) 화공(火攻) :
삼국(三國) 시대 오()나라 장군(將軍) 주유가 적벽(赤壁)에서 조조(曹操)의 군대를 맞아 싸울 적에 화공전(火攻戰)을 써서 조조의 군대를 크게 격파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바다가 …… 터인데 :
바 다가 평온하다는 것은황하가 맑아지고 바다가 평온해진다[河淸海晏]’는 데서 온 말로, 천하가 태평함을 형용한 말이고, 운운(沄沄)은 본디 광대한 물이 끝없이 흐르는 것을 형용한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명성(名聲)이 길이 전해지는 것을 의미한 말로, 당 현종(唐玄宗) 말기에 안녹산(安祿山)의 난리를 평정하여 당나라를 중흥시킨 숙종(肅宗)의 공적을 찬양한, 원결(元結)의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에, “훌륭한 임금의 명성과 모습이 길이 전해짐은 이 글에 있지 않겠는가. 상강의 동서쪽 한가운데 오계에 당한 곳에 돌 절벽이 높이 솟았는지라, 이 절벽을 다듬고 새길 만하여 이 송을 새기노니, 어찌 천만년만 전할 뿐이겠는가.[能令大君 聲容沄沄 不在斯文 湘江東西 中直
溪 石崖天齊 可磨可 刊此頌焉 何千萬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행군 사마(行軍司馬) …… 잘하는 :
당 헌종(唐憲宗) 때 회서(淮西)에서 반란을 일으킨 오원제(吳元濟)를 토벌하기 위해 승상(丞相) 배도(裴度)가 회서선위처치사(淮西宣慰處置使)로 토벌군을 독려하러 나갈 적에 한유(韓愈)가 행군 사마로 부름을 받고 배도를 따라갔었는데, 마침내 회서를 평정하고 돌아온 뒤에 한유가 헌종의 명에 의해 배도를 중심으로 해서 회서를 평정한 공을 서술하여 〈평회서비문(平淮西碑文)〉을 지었던 데서 온 말이다.

우중(雨中)에 과거장(科擧場)을 상상하다.

 


과거장은 엄밀하여 소리 없이 적막한데 / 棘闈嚴密寂無聲
뜰에 비 가득 내려 기가 절로 청신하니 / 雨滿中庭氣自淸
제생들 마음속의 거리낌을 깨끗이 씻어 / 洗盡諸生心上累
문장의 정채 발휘함이 더욱 정명하겠네 / 發揚詞彩更精明

기억난다 해마다 목옹이 과거장에 갇혀 / 記得連年鎖牧翁
한번은 빗소리 들으며 우뚝 앉았던 일이 / 也曾危坐雨聲中
병든 나머지 호기는 다 사라져 없어지고 / 病餘豪氣消磨盡
그 당시의 두 눈동자만 남아 있을 뿐이네 / 只有當時兩貝瞳

학사의 영화가 방면에 광휘를 발하니 / 學士榮華耀一方
가정에게 오늘에 다시 광채가 나는구나 /
稼亭今日更生光
어찌하여 팔십삼 년의 수를 누리시어 /
胡然八十三年壽
선군과 함께 축수 기울이지 못하는고 / 不與先君倒壽觴

 

[주D-001]과거장(科擧場) 갇혀 : 과거 시험의 합격자를 발표하기 전에는 시관(試官)이 과거장을 떠나지 못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시관이 되었던 것을 의미한다.
[주D-002]학사(學士)의 …… 하는고 :
여 기서 말한 학사는 고려 우왕(禑王) 6년인 경신년(1380)에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과거 시험을 주관해서 급제자를 뽑고, 영친연(榮親宴)까지 하게 된 박형(朴形)을 가리킨다. 박형은 앞서 충목왕(忠穆王) 3년인 정해년(1347)에 저자의 부친인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동지공거가 되어 과거 시험을 주관했을 때 한수(韓脩) 등과 함께 급제했는데, 그가 과거 시험을 주관한 이해가 바로 그의 좌주(座主)인 이곡이 생존했다면 83세가 되므로 한 말이다.

인하여 느낀 바가 있어 짓다.

 


나는 지금 슬픔과 기쁨이 끝없어라 / 我今悲喜兩無窮
사년 동당시가 참으로 한바탕 꿈이로다 /
乙巳東堂一夢空
거울 외로운 난새가 그림자 대했으니 /
照鏡孤鸞時對影
익재의 연세 칠십구 세가 되던 때이었네 / 益齋七十九秋風

다시 곤궁한 생활로 머리는 다 희었지만 / 更難榮養頭渾白
덧없는 인생 아직 붉은 뺨이 기쁠 뿐이네 / 只喜浮生頰尙紅
계록이랑 춘도
는 참으로 좋은 일인데 / 桂錄春圖眞好事
천한 이름을 거듭 그 가운데 넣었네그려 / 賤名重疊掛其中

 

[주D-001]나는 …… 때이었네 : 을 사년 동당시(東堂試)란 곧 고려 공민왕(恭愍王) 14년인 을사년(1365)에 이인복(李仁復)이 지공거(知貢擧)가 되고, 저자가 동지공거가 되어 주관한 과거 시험을 가리킨다. 저자는 앞서 공민왕 2년인 계사년(1353), 당시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지공거가 되고, 양파(陽坡) 홍언박(洪彦博)이 동지공거가 되어 주관한 문과(文科)에서 장원 급제했었는데, 뒤에 저자가 과거 시험을 주관하던 을사년에 이르러서는 저자의 두 분 좌주 가운데 양파는 바로 그 전년인 갑진년에 작고하였고, 익재만 외로이 79세로 아직 생존했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외로운 난새란 바로 옛날 계빈국왕(罽賓國王)이 난새 한 마리를 얻었는데, 3년 동안이나 울지 않다가 어느 날 새에게 거울을 보여 주자, 제 형체를 보고는 매우 슬피 울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짝이 없거나 짝을 잃은 데에 비유한다.
[주D-002]계록(桂錄)이랑 춘도(春圖) :
계록은 과거 급제자의 명부인 계적(桂籍)을 달리 이른 말인 듯한데, 춘도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하지 않다.

지부(李知部) 석지(釋之) 를 생각하며 짓다.

 


쓸쓸한 비바람이 작은 창밖에 가득하니 / 風雨蕭疎滿小窓
늘그막의 호기가 완전히 내리진 않누나 / 老年豪氣未全降
다만 귀에 들린 것은 도성의 관도뿐인데 / 只應聒耳都官路
꿈속에선 아직도 거센 강물결에 놀란다오 / 夢裏猶驚浪打江
갠 동산의 꾀꼬리는 왜 그리 울어대는고 / 晴苑鶯啼何恰恰
연기 낀 처마 밑 제비는 쌍쌍이 지저귀네 / 煙簷燕語自雙雙
듣건대 허직에 물러나 편히 누웠다 하니 / 似聞虛職供高臥
언제나 항아리 가득한 술로 함께 읊어 볼꼬 / 何日同吟酒滿缸

 

[주C-001] 지부(李知部) : 고려 말기에 민부 상서(民部尙書),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등을 역임하고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이른 이무방(李茂芳)을 가리킨다. 그의 자가 석지(釋之)이다.

권 상의(權商議) 중화(仲和) 를 받들어 생각하다.

 


우리 동년 재상은 다만 세 사람뿐인데 / 同年宰相只三人
유독 우리 선생만 아직 사직하지 않았네 / 獨我先生未乞身
앉았다 누웠다 세월만 많이 보낼 뿐이요 / 坐臥只多消白日
한가함과 바쁨 속에 청춘이 다 지나갔네 / 閑忙相伴過靑春
황도에서 글 읽던 때는 이미 꿈 같거니와 / 皇都書榻已如夢
승통의 약 화로는 처음부터 친했고말고 / 僧統藥爐初見親
가장 부러운 것은 지난날 널리 유람하여 / 最羨向時游歷闊
강회의 경치가 주머니 보배를 이룸일세 / 江淮景物是囊珍

 

[주D-001]주머니 보배[囊珍] : 주머니는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의 해낭(奚囊) 고사에서 온 말로, 즉 시를 짓기에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앉아서 탄식하다.

 


참새들은 어찌 그리 짹짹거리며 / 雀噪何査査
닭은 어찌 그리 꾀꾀 울어대는고 / 雞鳴何膠膠
숲 비둘기 또한 급히 울어대는데 / 林鳩啼又急
비바람은 어찌 그리도 쓸쓸한고 / 風雨何蕭蕭
숨은 사람은 방금 홀로 앉았자니 / 幽人方獨坐
백발에다 붉은 얼굴도 쇠했는데 / 白髮朱顔凋
보는 사물마다 감회를 일으키어 / 有物感其懷
절로 길고 짧은 노래를 이루누나 / 自成長短謠
자못 부끄러운 것은 덕이 쇠하여 / 所愧德之衰
뫼의 봉황을 불러올 없음일세
/
岡鳳難可招
아름답기도 하여라 영천 태수여 / 可憐穎川守
높은 풍도를 천재에 흠모하네 / 千載歆高標

 

[주D-001]덕(德)이 …… 없음일세 : 춘 추 시대 초()나라의 광인(狂人) 접여(接輿)라는 사람이 공자(孔子)가 무도(無道)한 세상에 도를 행하려고 분주하는 것을 기롱하여 말하기를, “봉이여, 봉이여, 어찌 그리도 덕이 쇠했느뇨?[鳳兮鳳兮 何德之衰]”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微子》
[주D-002]아름답기도 …… 흠모하네 :
()나라 때 황패(黃覇)가 영천 태수(穎川太守)로 있으면서 많은 선정(善政)을 베푼 결과 치적(治績)이 천하제일로 일컬어졌는데, 이때에 상서(祥瑞)의 상징인 봉황(鳳凰)이 영천에 가장 많이 날아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漢書 卷89 循吏傳 黃覇》

욕여하행(欲如何行)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는지 / 我今欲如何
온종일 바야흐로 탄식하노라 / 終日方嘆嗟
사람의 한 몸뚱이는 곧 하나의 천지라서 / 人之一身卽天地
골육은 산악과 같고 혈기는 강하와 같나니 / 骨肉山岳血氣猶江河
조금만 제 길 잃으면 질병이 바로 생겨서 / 少失其道病乃生
물이 범람하면 백성이 편치 못함 같고말고 / 如水泛溢民不寧
신우는 멀어졌고 편작은 죽은 오래이니 / 神禹旣遠扁鵲死已久
몸뚱이나 세상이 모두가 불행이로다 / 嗚呼身世俱蹉跎

나의 뜻은 날이 갈수록 슬퍼지고 / 我志日益悲
나의 몸은 날이 갈수록 쇠해가네 / 我身日益衰
노인을 소년 만든다는
허언일 뿐이요 / 返老還童虛語耳
신선의 유무도 사람들이 오히려 안 믿거니 / 神仙有無人尙疑
누가 능히 놀을 먹고 송백을 먹으며 /
誰能飧霞啖松柏
뱀과 거북처럼 일월의 정기를 마실쏜가 /
嚥日吸月如蛇龜
최선의 방도는 마음 갈앉혀 욕심 없애고 / 不如平心淡無欲
순하게 정명 받아서
내 시나 읊조림일세 / 順受其正吟吾詩

 

[주D-001]신우(神禹)는 …… 불행이로다 : 신우는 요순(堯舜) 때에 홍수(洪水)를 다스린 우 임금을 높여 일컫는 말이고, 편작(扁鵲)은 전국 시대의 명의(名醫)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노인을 …… :
도가(道家)에서 이른바, 양생법(養生法)을 인하여 노인을 소년으로 되돌아가게 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그 …… 먹으며 :
놀을 먹는다는 것은 도가 양생법의 한 가지로서 즉 아침놀을 마시는 것을 말하고, 송백(松柏)을 먹는다는 것은 역시 도가 양생법의 한 가지로서 즉 솔잎이나 잣으로 요기(療飢)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4]뱀과 …… 마실쏜가 :
일월(日月)의 정기를 마신다는 것은 역시 도가 양생법의 한 가지인데, 특히 뱀과 거북은 가장 오래 사는 동물이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5]순하게 정명 받아서 :
맹자가 이르기를, “모든 것이 천명 아닌 게 없으나, 순하게 정명을 받아야 한다.[莫非命也 順受其正]” 하였다. 《孟子 盡心上》

해상(海上)

 


바다 위의 옛 나라 우리 삼한은 / 海上三韓古
강남의 황도와는 만 리나 멀어서 / 江南萬里遙
천자 앞에 도달할 길이 없는 데다 / 無由達天陛
오래도록 사신 행차도 못 보겠네 / 久不見星軺
구름이 가니 푸른 산은 말끔해지고 / 雲去靑山淨
바람이 오니 푸른 숲은 흔들리는데 / 風來綠樹搖
우리 행차는 어느 날에나 출발해 / 吾行何日是
뱃사공이 어서 타라 불러 줄런고 / 舟子苦招招

바다 위 봉래산은 가깝기도 한데 / 海上蓬萊近
어느 때나 학을 타고 노닐어 볼꼬 / 何時駕鶴游
흰 구름은 가는 곳마다 일어나고 / 白雲隨處起
푸른 물결은 하늘가에 넘실대며 / 碧浪際天浮
명멸하는 것은 주궁의 새벽이요 / 明滅珠宮曉
청랭한 것은 패궐의 가을이라네
/
凄淸貝闕秋
허나 예로부터 찾은 이 없었으니 / 古來尋不見
지금 나도 머리만 긁을 뿐이로다 / 今我又搔頭

바다 위엔 오이만 대추가 있어 / 海上如瓜棗
안기생이 멀리 보내 주려 하나니 / 安期將遠貽

어렴풋이 서로 만날 듯하면서도 /
若相接
실망스러워라 능히 따를 수가 없네 / 惆悵莫能隨
유독 내 병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 不獨療吾病
나의 노쇠함도 붙들 수 있으련만 / 庶幾扶我衰
내가 도골이 아닌 줄을 어찌 알랴 / 那知非道骨
다시 때가 오기를 기다릴 뿐이네 / 且復待來時

 

[주D-001]명멸(明滅)하는 …… 가을이라네 : 명 멸은 밝았다 어두웠다, 또는 나타났다 숨었다 하는 광경을 형용한 말이고, 주궁(珠宮)과 패궐(貝闕)은 곧 하백(河伯)이 사는 용궁(龍宮)을 가리킨 것으로, 《초사(楚辭)》 구가(九歌) 하백(河伯), “어린옥에 용당이요, 자패궐에 주궁이로다.[魚鱗屋兮龍堂 紫貝闕兮珠宮]”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바다 …… 하나니 :
해상(海上)의 봉래산(蓬萊山)에는 안기생(安期生)이란 신선(神仙)이 살고 있어 크기가 마치 오이만 한 대추를 먹는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28 封禪書》

앉아서 자다.

 


늙은이가 탄반하고 앉았노라니 / 老翁攤飯坐
이게 바로 아득한 흑첨향이로세 / 漠漠黑

콧구멍에선 막 천둥을 치듯 하고 / 鼻孔雷初隱
마음속은 안개가 자욱한 듯한데 / 心田霧欲藏
순박으로 돌아가니 혼돈인가 싶고 / 還淳疑混沌
본질로 나아가니 변덕이 전혀 없네 / 就實絶蒼黃
세상이 거짓을 행한 지 오래이라 / 久矣世行詐
사람에게 긴 탄식을 발하게 하네 / 令人發嘆長

 

[주D-001]탄반(攤飯) : 낮 잠을 말한다. 육유(陸游)의 〈춘만촌거잡부(村居雜賦)〉의 자주(自注)에 의하면, “동파(東坡) 선생은 새벽에 술 마시는 것[晨飮]을 요서(澆書)라 하였고, 이 황문(李黃門)은 낮잠 자는 것[午睡]을 탄반(攤飯)이라고 했다.” 하였다.
[주D-002]흑첨향(鄕) :
흑첨은 역시 낮잠을 말하는데, 특히 북방인(北方人)들이 낮잠을 흑첨이라 한다고 한다.
[주D-003]혼돈(混沌) :
천지(天地)가 개벽(開闢)하기 전에 천지의 원기(元氣)가 아직 나누어 지지 않고 한데 엉겨 있는 상태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전혀 거짓이 없는 순박(淳朴)한 세상을 의미한다.

등과록(登科錄) 후미에 쓰다.

 


내가 처음 회시 보려고 중원에 유학 가서 / 我初偕計游中原
학해를 망양하면서 사원을 궁탐했더니 /
望洋學海窮詞源
규재
가 균평하게 뭇 호걸들을 추천하매 / 圭齋提衡翼

경중에 대해 호리도 비난의 말이 없었네 / 輕重毫釐無間言
돌아와선 요행히 우리 조정에 벼슬하면서 / 歸來僥倖陪廟堂
수차 과거장 열어서 선비들을 뽑았으되 / 棘闈數次開科場
등서는 구을사 같은 자도 있었거니와 /
登書或是丘乙巳
책문을 나는 위소왕과도 흡사했었지 /
發策我似韋昭王
지금 와서 생각하니 일오색부에 대해선 / 至今思之日五色
언뜻 보아 번이나 흑백이 엇갈렸던고
/
過眼幾度迷白黑
방방하고 집에 와서 문닫고 앉아 있자니 / 放牓還家閉門坐
뜰 안은 적적하여 인적이 전혀 없었네 / 庭中寂寂無人跡
급제자들은 갈도하며 도성을 경도했는데 / 綴行呵喝傾都城
은영연 석상에서 제생들을 관찰하건대 / 恩榮席上觀諸生
모두 말하길 시관이 내게 무슨 상관이랴 / 皆言主司於我何
내가 운이 좋아서 성명한 임금 만났거니 / 我生有命遭聖明
시관이 감히 조화옹의 권한을 훔칠쏜가 / 主司敢竊造化權
명이로다 주상이 바로 내 하늘이다면서 / 命也主上爲吾天
축수연도 명족도 모두 다 금절하였으니 / 祝壽名簇悉禁絶
당시 풍조요 전현을 본받은 게 아니었네 / 因時不是師往哲
사문의 흥망은 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 / 斯文興喪非人爲
절로 주재자가 있으니 그것을 누가 알랴 / 自有主者誰其知
형세 따라 오르내림은 예부터 그러나니 / 隨勢上下自古然
다만 나는 사심만 행하지 않을 뿐이로다 / 只是我不行吾私
사심 없는 게 바로 우리 상제의 명이라서 / 無私卽我上帝命
공심과 공법은 당초 두 길이 아니고말고 / 公心公法初非岐

 

[주D-001]학해(學海)를 …… 궁탐(窮探)했더니 : 학 해는 학문이 심원한 것을 이르는 말로, 전하여 학문이 심원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망양(望洋)은 곧 망양이탄(望洋而歎)에서 온 말로, 위대한 인물이나 심원한 학문을 보고 자신의 천단(淺短)함을 탄식하는 것을 말하며, 사원(詞源)은 문장(文章)의 근원을 말한다.
[주D-002]규재(圭齋) :
()나라 때의 학자인 구양현(歐陽玄)의 호인데, 벼슬은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를 지냈다. 저자가 일찍이 원나라에 갔을 때 그에게서 학업을 받았고, 또 저자가 제과(制科)에 응시했을 때는 그가 바로 좌주(座主)가 되기도 했었다.
[주D-003]등서(登書)는 …… 있었거니와 :
등 서는 등현서(登賢書)의 약칭으로, 옛날 향시(鄕試)에 합격한 사람을 일컫던 말이고, 구을사(丘乙巳)는 옛날 학동(學童)이 막 입학(入學)했을 때 선생이상대인 구을사 화삼천 칠십이(上大人丘乙巳化三千七十二)” 등의 글자를 습자용(習字用)으로 써서 학동을 가르쳤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아주 간단(簡單)하고도 천근(淺近)한 문자만 겨우 익힌 초학자를 의미한다.
[주D-004]책문(策問)을 …… 흡사했었지 :
책 문은 시무책(時務策)에 관한 문제(問題)를 말한다. 〈효경 서(孝經序)〉에, “위소와 왕숙은 선유 중의 영수이고, 우번과 유소는 또 그다음이다.[韋昭王肅 先儒之領袖 虞翻劉邵 抑又次焉]” 하였는데, 전당(錢唐)의 섭생(葉生)이란 자가 태학관(太學官)이 되었으나, 학식이 없었으므로, 한 학사(學士)가 섭생을 조롱하는 뜻에서 섭생의 효경 책제(孝經策題)를 가정하여 지었는데, 그 책제에, “효경의 서문 한 편도 뜻이 또한 알기가 어려우니, 위소왕은 어느 시대 임금이며, 선유령은 어디에 있는 산인가?[孝經一序義亦難明 如韋昭王是何代之主 先儒嶺是何處之山]”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무식한 고시관(考試官)을 의미한다.
[주D-005]일오색부(日五色賦)에 …… 엇갈렸던고 :
일 오색부는 당 덕종(唐德宗) 때 과시(科試)의 과제(課題)였다. 덕종 때에 이정(李程)이 굉사과(宏辭科)에 응시하여 일오색부를 지었는데, 그 파제(破題), “덕은 하늘의 보심을 감동시키고, 상서는 태양의 빛을 열었도다.[德動天監祥開日華]”라고 하였던바, 같은 응시자였던 양오릉(楊於陵)이 이정의 이 파제를 보고는 이정에게 말하기를, “공이 금년 굉사과에 반드시 장원할 것이다.” 하고, 그다음 날에 방명(榜名)을 보니, 이정의 이름이 빠졌으므로, 이를 몹시 불만스럽게 여겨, 그 시권(試券)에 작자(作者)의 이름을 가린 채로 시관(試官)에게 가져다 보이면서 이 글이 어떠냐고 묻자, 시관이 말하기를, “장원이 아니고는 이런 글을 지을 수 없다.”고 하므로, 양오릉이 말하기를, “참으로 그렇다면 시랑(侍郞)께서는 훌륭한 인재를 이미 놓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정이 지은 글입니다.” 하니, 시관이 급히 이정을 불러서 다시 그를 장원으로 뽑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시관의 안목이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주D-006]명족(名簇) :
과거(科擧)의 동년 급제자(同年及第者)들의 명단을 써서 만든 족자(簇子)를 말한다.

느낌이 있어 짓다.

 


변례의 단서 많은 화가 벌컥 나누나 /
變禮多端不可磯
양마저 버린
책임이 뉘에게로 돌아갈꼬 / 羊存又去責誰歸
중용지도는 정히 좋아서 다 옳다 하거니와 / 中庸政好皆言是
말감하는 거야 어찌 비난할 가치나 있으랴 / 末減何容更斥非
사문이 세교에 관계됨을 애석히 여기노니 / 只惜斯文關世敎
우리의 도가 절로 조화임을 또한 알겠네 / 亦知吾道自天機
와상에 누워 쉬노라니 되레 느낌이 많아서 / 在牀偃息翻多感
새와 함께 나는 구름을 앉아서 마주하노라 / 坐對孤雲鳥共飛

 

[주D-001]변례(變禮)의 …… 나누나 : 변례는 옛 예법(禮法)을 따르지 않고 특수한 상황에 따라 변통하여 설정한 예를 말하는데, 당시에 아마 역대로 전해 온 예법을 많이 변개(變改)하는 폐단이 있었던 듯하다.
[주D-002]양(羊)마저 버린 :
자 공(子貢)이 일찍이 곡삭(告朔)하는 희양(餼羊)을 없애고자 한 대, 공자가 이르기를, “사야, 너는 그 양을 아깝게 여기느냐? 나는 그 예를 아까워하노라.[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한 데서 온 말이다. 곡삭은 옛날 천자(天子)가 매년 섣달이면 각 제후(諸侯)들에게 내년 12개월의 달력을 반포하는데, 제후는 이 달력을 받아다가 사당(祠堂)에 간직해 두고 매월 초하루마다 숫양 한 마리[特羊]를 잡아 사당에 올리고 그달의 달력을 꺼내서 거기에 적힌 정령(政令)대로 시행했던 것을 말하고, 희양은 바로 여기에 쓰는 양을 말한다. ()나라가 문공(文公) 때부터 이 곡삭의 예를 폐해버렸으나, 유사(有司)가 아직도 그 양만은 올리고 있으므로, 자공이 예는 폐했으면서 양만 소비하는 것을 아깝게 여겨 이를 없애고자 했던 것인데, 공자는 이에 대하여 양마저 없애 버리면 곡삭의 예가 아예 근거도 없게 될까 염려해서 이른 말이었다. 《論語 八佾》

민 판서(閔判書)의 부인 안씨(安氏)에 대한 만사(挽詞)

 


문성은 문묘에 배향되었거니와 / 文成配文廟
모범 이은 겸재가 있었으니 / 模楷有謙齋

따님 자품도 어찌 그리 현숙한고 / 生女資何淑
시집을 가서 현모양처 되었네 / 歸人德竝佳
새벽 물가엔 서늘한 기운이 일고 / 曉涼生水曲
여름 산비탈은 온통 초록빛인데 / 夏綠遍山厓
장사 마치고 돌아옴에 미쳐서는 / 哭罷使當返
백년을 누구와 함께한단 말인가 / 百年誰得偕

 

[주D-001]문성(文成)은 …… 있었으니 : 문성은 고려 중기의 학자로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된 안향(安珦)의 시호이고, 겸재(謙齋)는 바로 안향의 손자인 안목(安牧)의 호이다.

김유양(金有暘)을 만류하다.

 


소년이라 기가 한창 예리하거니 / 少年氣方銳
도보의 어려움을 어찌 생각하랴 / 豈念徒步難
빠르긴 나는 원숭이와도 같지만 / 捷疾似飛猿
나무 끝은 하늘을 찌를 듯하기에 / 木杪攙雲端
오직 내 너를 친애하는 정에서 / 伊予親愛情
네 행보가 어려울 게 염려된단다 / 恐汝行甚難
한낮 열기는 이미 혹독하거니와 / 午熱已云酷
장맛비엔 산언덕도 묻혀 버렸지 / 霖雨埋岡巒
앉았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때 / 靜坐亦流汗
길을 가면서 감히 편키를 구하랴 / 道途敢求安
우선 머물러 내 글이나 읽으면서 / 且留讀我書
목숙반 함께 먹고 지내노라면 / 共此苜

절로 부모님 뵐 날이 있을 터이니 / 歸寧自有日
가을 달 둥실 뜰 때를 기다리자꾸나 / 直待秋月團

 

[주D-001]목숙반(盤) : 목 숙은 채소의 일종이다. ()나라 때 설령지(薛令之)가 일찍이 동궁 시독(東宮侍讀)으로 있을 적에 식생활이 하도 빈약하므로, 시를 지어 스스로 슬퍼하기를, “아침 해가 둥그렇게 돋아 올라서, 선생의 식탁을 비추어 보이누나. 쟁반에는 무엇이 담겼는고 하니, 난간에서 자란 목숙 나물이로세.[朝日上團圓照見先生盤盤中何所有 苜長欄干]”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선생의 빈약한 식생활을 의미한다.

고풍(古風)

 


옛길에 덩굴풀이 우거지든 말든 / 古道委蔓草
도리는 또한 말이 없는 법이거니 / 桃李亦無言

덧없는 생애를 어디에 기약할꼬 / 浮生安所期
금석과 난손
에 의지할 뿐이로다 / 金石與蘭蓀
은혜 원수는 끝내 서로 뒤섞이고 / 恩讎竟相雜
구름 비는 엎고 뒤집기에 달렸네 /
雲雨覆且翻
우리 도가 한 가닥 머리털 같거니 / 吾道如一髮
위태로워라 누가 다시 보존할꼬 / 危哉誰復存
어린애 데리고 방에 들어가고 / 携幼入吾室
소나무 만지면서 정원 거닐며 /
撫松涉吾園
스스로 만족해 천명을 즐기어라 / 自足樂天命

덕성이란 게 어찌 그리 존귀한가 / 德性何其尊
우리 도가 마치 하늘처럼 크거니 / 我道大如天
요순은 일월과 빛을 겨루고말고 / 高舜日月懸
주나라는 이대를 참작하였고 /
周監於二代
문선은 한데 모아 대성했기에 /
大成集文宣
음기
는 점차로 사라져가고 /
陰漸以消
육경이 찬연히 앞에 드러났는데 / 六經粲在前
중간에 와선 기송학을 일삼아서 / 中爲記誦學
표절을 분분히 서로 앞다투다가 / 剽竊紛爭先
염락에서 참다운 선비가 나와서 /
濂洛出眞儒
비로소 성현 희망할 줄을 알았네 /
始知希聖賢
성현이 곧 내 마음속에 있나니 / 聖賢在吾心
정성을 다해 우러러 사모해야지 / 景仰當拳拳
내가 처음 시의 의의를 배울 적엔 / 我初學爲詩
바른 성정만 구하기 위함이었기에 / 祇以求性情
선을 권면하고 악을 징계하는 곳에 / 善惡所勸戒
우리 도의 정미함을 구할 만했었네 / 足求吾道精
비흥에서 뜻이 절로 심원해지고 / 比興意自深
포진에서 마음이 절로 밝아져서 / 鋪陳心自明

넘치는 가락을 황극에 끌어들여 / 淫佚入皇極
후한 은택 아래 태평을 노래하였네 / 沐浴歌太平
이것이 흘러 음풍농월을 하다가 / 流而弄風月
과장되단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 適取浮誇名
조사해 보면 꼭 까닭이 있을 테니 / 覈實必有在
삼가서 함부로 비평을 말지어다 / 愼勿輕譏評

 

[주D-001]옛길에 …… 법이거니 : 복 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으나 꽃과 열매가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이 절로 많기 때문에 그 밑에 자연히 길이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는 고어(古語)에서 온 말로, 전하여 덕행(德行)이 있는 사람은 무언(無言) 중에 남들이 심복(心服)하게 되는 것을 비유한다.
[주D-002]금석(金石) 난손(蘭蓀) :
금석은 사람의 공적(功績)을 새겨서 후세에 전하는 종정(鐘鼎)이나 비갈(碑碣) 따위, 즉 금석문(金石文)을 말하고, 난과 손은 다 같은 향초(香草)로서 훌륭한 자손에 비유한다.
[주D-003]구름 …… 달렸네 :
두보(杜甫)의 〈빈교행(貧交行)〉에, “손 뒤집으면 구름이요 손 엎으면 비로다.[翻手作雲 覆手雨]” 한 데서 온 말로, 즉 세상 교태(交態)의 변화 무상함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4]어린애 …… 즐기어라 :
도 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어린애 데리고 방에 들어가니, 항아리에 가득 술이 있도다.……정원은 날로 거닐어 정취를 이루고, 문은 달렸으나 항상 닫혀 있도다.……해는 어둑어둑 곧 지려 하는데,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배회하네.……자연의 변화에 따라 죽음으로 돌아가리니, 천명을 즐길 뿐 다시 무엇을 의심하려.[携幼入室 有酒盈罇……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景翳翳以將入 撫孤松而盤桓……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주(周)나라는 …… 참작하였고 :
이 대(二代)는 하(), () 두 시대를 가리킨 것으로, 공자가 일찍이 문물제도(文物制度)에 대하여 이르기를, “주나라는 이대의 제도를 참작하였으니, 성대히 문채롭구나. 나는 주나라를 따르리라.[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八佾》
[주D-006]문선(文宣)은 …… 대성(大成)했기에 :
문 선은 공자의 시호인 문선왕(文宣王)의 약칭으로, 맹자가 일찍이, 여러 성인(聖人)이 각각 지닌 특성을 공자가 한 몸에 다 겸했다 하여, “공자를 일러 한데 모아 크게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다.[孔子之謂集大成]”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下》
[주D-007] 음기[陰] :
여기서는 특히 이단 사설(異端邪說)을 가리켜 이른 말이다.
[주D-008]염락(濂洛)에서 …… 나와서 :
염락은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준말로, 송조(宋朝)의 대유(大儒)인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
), 낙양(洛陽)의 정호(程顥)ㆍ정이(),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희(朱熹)를 합칭한 말이다.
[주D-009]비로소 …… 알았네 :
주돈이(周敦
)의 《통서(通書)》에, “성인은 하늘을 희망하고, 현인은 성인을 희망하며, 선비는 현인을 희망한다.[聖希天 賢希聖士希賢]”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0]비흥(比興)에서 …… 밝아져서 :
비 흥은 《시경》의 육의(六儀)인 풍(), (), (), (), (), () 가운데 두 가지로서, 즉 비의 의의는 저 사물을 가지고 이 사물에 비유한 것[以彼物比此物]을 말하고, 흥의 의의는 먼저 다른 사물을 말하여 자기가 읊고자 하는 사물을 끌어 일으키는 것[先言他物 以引起所詠之事]을 말하며, 포진(鋪陳)은 곧 육의의 포진을 말하는데, 백거이(白居易)의 〈독장적고악부(讀張籍古樂府)〉 시에 의하면, “시를 하는 뜻이 어떠한고 하면, 육의를 여기저기서 베풀어서, 풍아와 비흥의 의의를 벗어난, 일찍이 빈 글을 지은 적이 없었네.[爲詩意如何六儀互鋪陳 風雅比興外 未嘗著空文]” 하였다.
[주D-011]황극(皇極) :
제왕이 천하를 통치하는 큰 법칙을 말한다.

느낌이 있어 짓다.

 


공성이 허둥지둥하던 당시에 /
孔聖遑遑日
주나라가 위태롭기 그지없어 / 周衰似綴旒
하늘이 목탁으로 삼으려 하니 /
天將爲木鐸
나의 뜻은 오직 춘추에 있었네 /
吾志在春秋
이 도를 붙들어 통태하게 하니 / 此道扶來泰
왕풍이 전파하여 마지않았네 / 王風播不休
스스로 가련한 것은 천재 아래서 / 自憐千載下
가업이나 지키길 배우려 함일세 / 願學守箕裘

 

[주D-001]공성(孔聖) 허둥지둥하던 당시에 : 공자가 세상에 도()를 행하기 위하여 마냥 바쁘게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던 것을 말한다. 《법언(法言)》 학행(學行), “요순 우탕 문무는 급급하였고, 중니는 황황했다.[堯舜禹湯文武汲汲 仲尼遑遑]”고 하였다.
[주D-002]하늘이 …… 하니 :
춘 추 시대 위()나라 의읍(儀邑)의 봉인(封人)이 공자를 뵙고 나와서 공자의 여러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여러 제자들은 벼슬 잃고 떠도는 것을 어찌 걱정할 것 있겠는가. 천하가 무도한 지 이미 오래니,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으시리라.[二三子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天將以夫子爲本鐸]” 한 데서 온 말이다. 목탁(木鐸)은 옛날 대중에게 정교(政敎)를 선포할 때에 흔들어서 대중을 경각시켰던 것이므로, 즉 공자가 세상을 깨우치는 목탁 구실을 할 것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論語 八佾》
[주D-003]나의 …… 있었네 :
여기서라는 말은 곧 공자의 자칭(自稱)으로 쓴 말이다.

아이종[童奴]에게 뜨락의 풀을 매도록 책임 지우다.

 


목옹은 구구하게 처음 먹은 뜻 지키거니 / 牧翁區區守初志
어찌 눈에 보이는 잡초를 걱정하리요 / 肯患蕪穢干眸子
평생에 이 뜨락의 풀을 사랑하거니와 / 平生愛此庭草生
살고픈 뜻은 저나 내나 다 분명하고말고 / 生意彼此俱分明
하지만 근래에 들어선 우환과 질병이 / 比來憂患與疾病
겨루기라도 하듯 서로 다투어 침범하매 / 交攻竝至如相競
가슴속이 넓지 못하고 점점 좁아져서 / 胸中漸狹不得寬
눈에 닿은 것마다 깊은 근심의 단서로세 / 觸目動是幽憂端
판판하고 깨끗한 내 뜰을 누가 밟는고 / 我庭平淨誰所履
모두가 포의 박대 차림의 선비들인데 / 褒衣博帶皆儒士
예로부터 선비들은 친구가 적은 데다 / 古來儒士寡朋儔
거마 소리 없어 집이 더욱 조용하거니 / 無車馬喧居更幽
푸른 이끼가 자람은 진정 사랑스럽지만 / 蒼苔生兮固可愛
뿌리 얽힌 잡초야 어찌 봐줄 수 있으랴 / 惡草盤根何可貸
청신한 새벽부터 아이종 두세 사람이 / 淸晨童奴兩三人
호미로 손으로 뜯느라 땀을 뻘뻘 흘리네 / 或鋤或手汗流身
작은 노고를 어찌 널 위해 아낄 수 있나 / 微勞豈足爲汝惜
마음 깨끗한 오늘밤을 늘이고만 싶단다 / 只願心淸永今夕

 

[주D-001]포의 박대(褒衣博帶) : 품이 넓은 옷과 폭이 넓은 띠를 말한 것으로, 선비들이 입는 옷을 가리킨다.

초장(初場)의 방방일(放榜日)에 짓다.

 


응시자들이 과거장 문을 서로 바라보며 / 擧子爭瞻貢院門
삼삼오오 모여 서서 다투어 운운하기를 / 一一五五競云云
정해년처럼 되긴 끝내 기필키 어려우리 /
得如丁亥終難必
이따금 첫머리가 바로 장원이 되더구만 / 往往初頭是狀元

기억컨대 옛날 초장 중장 방방하던 해엔 / 憶昔初中放牓年
짚신 신고 부채질하며 문전에 섰었더니 / 草鞋搖扇立門前
지금은 떠나려도 참으로 계책이 없구나 / 如今欲去眞無計
백발에다 고관에다 병도 낫질 않았으니 / 白髮高官病未痊

 

[주D-001]정해년처럼 …… 어려우리 : 고려 충목왕(忠穆王) 3년인 정해년(1347)에 저자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이 과거 시험을 주관하여 급제자를 뽑았었는데, 그 밖의 내막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치화(梔花)

 


치자 꽃잎새 크고 희기는 서릿빛 같거니 / 梔花葉大白如霜
열매가 바로 황색 염료인 줄 누가 알리요 / 結實誰知色染黃
오월 보름달 아래 여기저기 두루 피어서 / 五月月圓開欲遍
목옹이 마주하여 우연히 시를 이루노라 / 牧翁相對偶成章

 

잡초를 맬 때에 푸른 이끼도 많이 깎여 나갔는데,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가, 손님 응접차 대청에 나가서 그것을 보고는 마음이 아파서 조창태(弔蒼苔) 한 편을 짓는 바이다.

 


푸르고 푸른 이끼가 권귀를 잘도 피해 / 蒼苔蒼苔善避權
내 닫힌 문 따라온 지 지금 몇 년이던고 / 從我杜門今幾年
봄이면 애교 부리며 뜨락으로 들어와서 / 春來媚
入庭中
내 나막신 굽 밑에 어이 그리 선명한지 / 迎我屐齒何鮮鮮
여름에 비 오다 개고 갰다 혹 비 오거든 / 暑雨或晴晴或雨
말끔한 채색 위에 푸른 연기 덮이기도 / 濯然采色浮蒼煙
작라문
은 적적하고 해는 길기만 한데 / 雀羅門空白日長
열흘에 한번씩 거미줄을 쓸어 내노라면 / 旬浹一掃蛛絲堂
고관들은 내 게으른 버릇을 짜증내지만 / 大官嗔我懶成癖
친구는 더 없이 한가한 나를 축하한다네 / 良朋賀我閑無適
유연한 참된 운치에 담담히 근심 잊거니 / 油然眞趣淡忘憂
더구나 우리 집은 아무것도 없음에랴 / 況是吾家徒四壁
평생에 서로 만남이 너무 늦다 여겼는데 / 平生相値苦太

갑자기 헤어질 줄을 어찌 기약했으랴 / 豈期分離忽乖隔
내 친히 간섭 못한 걸 괴로이 한하겠지 / 苦心應恨不親臨
잡초와 함께 깎였으니 얼마나 원통할꼬 / 去穢連坐冤何深
대저 명령을 내림엔 삼신이 귀중하니 / 大抵施令貴三申
봉행을 잘못했으면 금으로 속죄해야지 / 奉行有謬當贖金
푸르고 푸른 이끼여 나를 원망치 말라 / 蒼苔蒼苔勿怨我
예로부터 화복은 다 알기 어려운 거란다 / 自古禍福皆難諶
한문과 권세가에 모두 거슬림 받았는데 / 閑門要路盡相忤
낭떠러지 깊은 절벽은 찾을 길이 없어라 / 懸崖絶壁尋無路
찾을 길이 없어라 현포에 가까이 가서 / 尋無路接玄圃
사호의 옷에 자지의 이슬 젖은 모습을 /
四皓衣霑紫芝露

 

[주D-001]작라문(雀羅門) : 문밖에 새그물을 칠 만하다는 뜻으로, 권세 잃은 집안의 썰렁한 문정(門庭)을 형용한 말이다.
[주D-002]삼신(三申) :
재삼 되풀이하여 밝혀서 깊이 경계시키는 것을 말한다.
[주D-003]현포(玄圃) :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다는 신선(神仙)이 사는 곳을 말한다.
[주D-004]사호(四皓)의 …… 모습을 :
사 호는 진()나라 말기에 난리를 피해 상산(商山)에 은거했던 네 늙은이, 즉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
里先生)을 말하고, 자지(紫芝)는 선약(仙藥)의 이름인데, 사호가 일찍이 상산에 은거하여 이 자지를 캐 먹으면서 자지가(紫芝歌)를 지어 부르기도 했었다.

즉사(卽事)

 


성긴 발에 바람 가득코 해는 와상 비추는데 / 風滿疎簾日照牀
푸른 그늘 꾀꼬리 소리가 빈집을 옹위하네 / 綠陰黃鳥擁虛堂
두건 벗어 이마 내놓고 두 다리 개고 앉으니 / 脫巾露頂盤雙脚
인간이 다 허겁지겁 바쁘단 걸 못 믿겠구려 / 未信人間盡熱忙

 

주일(晝日)

 


햇빛은 깊은 골목에 환히 비치고 / 日色明深巷
천둥소리는 먼 공중에 울리더니 / 雷聲隱遠空
검은 구름이 비를 몰아오려 하매 / 黑雲將送雨
푸른 나무는 절로 바람을 띠누나 / 綠樹自含風
천명을 믿어 시운에 순히 따르고 / 信命隨時運
기심을 잊고 조화옹에 맡기노니 / 忘機付化工
우연히 흥겨운 기분 내키는 곳을 / 偶然乘興處
천재에 그 누구와 함께할거나 / 千載與誰同

 

일찍 일어나다.

 


늘그막의 그윽한 삶은 흥미가 새로운데 / 老境幽居興味新
온 강산은 또 태평의 시대에 접근하였네 / 江山又屬大平晨
맘은 맑아 때 없어 경쾌함을 점차 깨닫고 / 心淸漸覺輕無垢
눈은 어두워 먼지 안 보임이 유독 기쁘네 / 眼暗偏欣淨不塵
도주공을 따라 빨리 부자가 되기는 싫고 /
懶向陶朱謀速富
곡역후같이 길이 빈곤함을 달게 여기며 /
甘從曲逆困長貧
이웃 닭이 다 울자 내 바야흐로 일어나니 / 隣鷄唱盡吾方起
아마도 희황 이전 시대 사람인 듯하구려 / 恐是羲皇上世人

 

[주D-001]도주공(陶朱公)을 …… 싫고 : 춘 추 시대 월()나라 대부(大夫) 범려(范蠡)가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는 벼슬을 버리고 멀리 도()라는 땅으로 가서 도주공이라 자칭하고, 상업(商業)을 경영하여 거부(巨富)를 이루었던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91 貨殖傳 陶朱》
[주D-002]곡역후(曲逆侯)같이 …… 여기며 :
곡역후는 한 고조(漢高祖)의 공신(功臣) 진평(陳平)의 봉호인데, 진평이 젊었을 적에 집이 몹시 빈곤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史記 卷56 陳丞相世家》

스스로 조롱하다.

 


목은 늙은이는 평생에 문자를 즐겼지만 / 牧翁平生嗜文字
되레 좀벌레 같은 꼴이 스스로 가소롭네 / 自笑還如蠹魚耳
여기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죽어가거니 / 生於斯兮死於斯
하나의 맛 밖에 어찌 좋은 맛을 생각하랴 / 一味寧復思甘旨
문장은 영락없이 위소왕과 흡사하고 /
文章酷似韋昭王
학문은 참으로 구을사와 똑같다마다 /
學問眞同丘乙巳
동방에서 급제하여 장원을 차지했지만 / 東方及第占狀元
중국으로 보면 을과 제이에 해당하는걸 / 中國乙科居第二
소년 시절엔 오백 인 학도에 참여했었고 / 少年五百參學徒
늘그막엔 삼중으로 국사를 영관했지만 / 老境三重領國史
한마디도 보궐할 만한 말은 못 올렸고 / 未聞一言可補闕
지금은 또 오만 일이 다스려지지 않누나 / 如今萬事又不理
친구에게 버림받음은 신의가 박해서이고 / 舊故見遺信義薄
아동에게 모멸받음은 위의가 못나서로세 / 兒童見侮容止鄙
높이 발탁됨은 현릉의 지우를 입은 거라 / 飛騰只荷玄陵知
일찍이 외람되이 울며 비문을 찬했었네 /
泣撰碑文曾昧死
그 후엔 사직하고 고향엘 돌아가야 했는데 / 便可乞身歸故鄕
지금껏 녹록하게 앉았음은 무슨 연유인고 / 至今碌碌緣底事
어찌 뱁새처럼 나무 가지를 원하랴 / 豈願餘一枝
공연히 붕새처럼 만리를 가려고 함일세
/
鵾鵬漫負擊萬里
계속되는 변방의 경보를 때로 듣노라면 / 時聞邊報正絡繹
장부에게 절로 공명의 뜻이 우러나지만 / 丈夫自有功名志
이젠 늙고 쇠했는지라 스스로 조롱하노니 / 老矣衰矣時自嘲
네가 과연 소인이냐 아니면 군자이더냐 / 汝小人耶是君子

 

[주D-001]좀벌레 : 글을 읽기만 하고 활용할 줄을 모르는 고루한 학자를 조소하는 말이다.
[주D-002]문장은 …… 흡사하고 :
〈효 경 서(孝經序)〉에, “위소와 왕숙은 선유 중의 영수이고, 우번과 유소는 또 그 다음이다.[韋昭王肅 先儒之領袖 虞翻劉邵 抑又次焉]” 하였는데, 전당(錢唐)의 섭생(葉生)이란 자가 태학관(太學官)이 되었으나, 학식이 없었으므로, 한 학사(學士)가 섭생을 조롱하는 뜻에서 섭생의 효경 책제(孝經策題)를 가정하여 지었는데, 그 책제에, “효경의 서문 한 편도 뜻이 또한 알기가 어려우니, 위소왕은 어느 시대 임금이며, 선유령은 어디에 있는 산인가?[孝經一序義亦難明 如韋昭王是何代之主 先儒嶺是何處之山]”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무식한 고시관(考試官)을 의미한다.
[주D-003]학문은 …… 똑같다마다 :
구 을사(丘乙巳)는 옛날 학동(學童)이 막 입학(入學)했을 때 선생이상대인 구을사 화삼천 칠십이(上大人丘乙巳化三千七十二)” 등의 글자를 습자용(習字用)으로 써서 학동을 가르쳤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아주 간단(簡單)하고도 천근(淺近)한 문자만 겨우 익힌 초학자를 의미한다.
[주D-004]일찍이 …… 찬(撰)했었네 :
여 기서 말한 비문(碑文)은 바로 개성(開城)의 광암사(光巖寺)에 세운 광통보제선사비문(廣通普濟禪寺碑文)을 가리킨다. 광암사는 본디 공민왕(恭愍王)과 그의 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원찰(願刹)이었으므로, 공민왕이 일찍이 이 절에 광통보제선사(廣通普濟禪寺)라 사액(賜額)했었고, 또 공민왕이 생전에 이 절에 비를 세우기 위해 중국에서 빗돌까지 구해 놓았었으나, 미처 비를 세우지 못하고 공민왕이 갑자기 승하하자, 공민왕을 이곳에 장사 지내고, 우왕(禑王) 때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비를 세우게 되었으니, 바로 이 비문을 저자가 지었던 것이다.
[주D-005]어찌 …… 함일세 :
《장 자(莊子)》 소요유(逍遙游), “붕새는 남쪽 바다로 옮겨갈 적에 물결을 치는 것이 삼천 리요,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나 올라가 여섯 달을 가서야 쉬는 것이다.……뱁새는 깊은 숲에 둥지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은 고작 나무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巢於深林 不過一枝]” 한 데서 온 말로, 붕새는 포부가 아주 큰 데에 비유하고, 뱁새는 포부가 아주 작은 데에 비유한 것이다.

스스로 읊다.

 


남풍이 화기를 살살 불어와서 / 南風微扇和
정원수는 푸른 잎이 흔들리는데 / 綠葉搖庭柯
그 아래 누워 있는 늙은이는 / 其下臥老者
쓸쓸한 머리털이 이미 백발일세 / 蕭疎毛髮皤
배는 내놓어 경사를 포쇄하고 /
坦腹曬經笥
흥겨우면 때로 읊기도 하는데 / 遇興時吟哦
읊조릴수록 뜻이 더욱 원대하여 / 吟哦志益遠
명량의 갱재가
를 방불케 하네 / 明良賡載歌

 

[주D-001]배는 …… 포쇄하고 : 후 한(後漢) 때의 문인(文人) 변소(邊韶)가 일찍이 수백인의 문도(門徒)를 교수(敎授)할 적에, 한번은 낮잠을 자는데 한 제자가 선생을 조롱하기를, “변효선은 똥똥한 배로, 글 읽기는 싫어하고 잠만 자려고 한다.[邊孝先 復便便 懶讀書 但欲眠]” 하자, 변소가 그 말을 듣고 즉시 대구(對句)를 짓기를, “배가 똥똥한 것은 오경의 상자이고, 잠만 자려고 한 것은 오경을 생각하기 위함이다.[復便便 五經笥 但欲眠 思經事]”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80上 文苑列傳 邊韶》
[주D-002]명량(明良) 갱재가(賡載歌) :
명량은 명군 양신(明君良臣)을 의미하고, 갱재가는 노래를 서로 이어 부른다는 뜻으로, () 임금과 고요(皐陶)가 군신 간에 서로 권면하는 뜻으로 서로 이어서 노래를 지어 불렀던 데서 온 말이다. 《書經 益稷》

중장일(中場日)에 짓다.

 


경전 해석한 이학을 관찰해 보면 / 釋經觀理學
언어가 바로 정리에 적중하건만 / 言語是中情
의리는 커서 다 포함하기 어렵고 / 義大包難盡
의심은 깊어 정밀 분석을 요하네 / 疑深剖要精
어찌 조금인들 어긋남이 있으랴 / 毫釐那一謬
해 달처럼 경전과 쌍벽 이루었지 / 日月政雙明
중국의 높은 덕화가 원대하여라 / 齊國英風遠
연원이 바로 양정에서 나왔도다 / 淵源出兩程

 

[주D-001]양정(兩程) : 송대 이학(理學)의 중심을 이룬 정호(程顥)ㆍ정이() 형제를 말한다.

죽망 모자(竹網帽子)에 장난삼아 제()하다.

 


가늘게 쪼갠 댓조각은 검푸르고 차가운데 / 細削琅玕紺且寒
듬성듬성 결어서 위를 둥글게 만들었네 / 疎疎交結上團團
백발엔 이마 내놓기도 추한 게 꺼려운데 / 白頭露頂猶嫌醜
비스듬히 덮어 쓸 땐 역시 보기도 좋구려 / 蓋得欹時亦好看

 

()

 


아이종이 머리 빗는 걸 짜증내서 / □僮嗔櫛髮
성내어 소리치니 그 무슨 맘인고 / 叫怒問何心
아마도 악한 소년이 / 似爲惡年少
-
원문 빠짐- / □□□□□

 

회암사(檜巖寺)로부터 온 이가 있어 그를 인하여 짓다.

 


강월
은 아름답게 회암사를 비추건만 / 江月嬋姸照檜巖
스님네도 요즘에는 참소를 근심한다지 / 浮圖近日亦憂讒
이끼는 땅 가득고 찾아오는 이 드무니 / 蒼苔滿地人來少
누가 청주의 베장삼을 받을런고 /
誰領靑州舊布衫
일대에 교는 일켰으나 다시 적막해졌고 / 一代敎興還寂寞
두 비문은 졸렬한데도 억지로 새기었네 / 兩碑文拙
鐫鑱
다만 이 몸이 많은 우환 속에 있는지라 / 只緣身在多憂患
이렇듯 소금도 없는데 짠맛을 어찌 알랴 /
若是無鹽豈識

 

[주C-001]회암사(檜巖寺) : 양 주(楊州) 천보산(天寶山)에 있는 절인데, 저자가 일찍이 왕명(王命)에 의하여 지공 선사(指空禪師)에 대한 서천제납박타존자부도명(西天提納薄阤尊者浮屠銘)과 나옹 선사(懶翁禪師)에 대한 보제존자시선각탑명(普濟尊者諡禪覺塔銘)을 지어 두 비()가 이 절에 세워졌다.
[주D-001]강월(江月) :
나옹 선사의 호가 강월헌(江月軒)이기도 하다.
[주D-002]그 …… 받을런고 :
어 떤 스님이 조주(趙州)에게 묻기를,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거니와,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 겁니까?[萬法歸一 一歸何處]” 하니, 조주가 말하기를, “내가 청주에 있을 적에 베장삼 한 벌을 만들었더니, 그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我在靑州 作一領布衫 重七斤]”고 한 화두(話頭)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불제자(佛弟子)의 수업(受業)을 의미한다.
[주D-003]이렇듯 …… 알랴 :
몹시 빈곤함을 이른 말이다.

중장(中場) 방방일(放榜日)의 새벽에 읊다.

 


인의를 진술하고 중화를 강론하노라면 / 鋪陳仁義講中和
의심난 게 있더라도 별다를 게 아니련만 / 縱有疑團亦匪他
아지 못게라 중장에선 누가 제일일런고 / 未識中場誰第一
목옹은 황하부 지은 게 몹시 부끄럽네 / 牧翁深愧賦黃河

 

주인성(朱印成) 동년(同年)을 생각하다.

 


당년의 대책에선 뛰어난 재주 못 폈는데 / 當年對策屈長才
시부과가 설치되어도 오지를 않는구나 / 詩賦科興亦不來
응당 짧은 수염은 지금 이미 희었을 테지 / 應是短
今已白
저문 구름 나무 뜻을 가누기 어렵네 /
暮雲春樹意難裁
여생의 음식 거처엔 한가론 맛이 많지만 / 餘生眠食多閑味
덧없는 세상 공명은 냉소 꺼리일 뿐일세 / 浮世功名足冷咍
돌아보면 천지가 온통 먼지투성이거니 / 回首乾坤塵漠漠
한 낚대 조어대만 밝은 달이 비치겠구려 / 一竿明月釣魚臺

 

[주D-001]저문 …… 어렵네 :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億李白)〉 시에, “위수 북쪽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 해 저문 구름이로다.[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뜻으로 쓴 말이다.

강산(江山)

 


강산은 세상 먼지에 물들지 않고 / 江山塵不染
마음은 물결 없는 물과도 같아서 / 心跡水無波
아득한 높은 구름의 흥취요 /
渺渺靑雲興
그리운 건 양춘 백설의 노래로다 / 依依白雪歌
원생 앞의 눈을 치웠고 /
袁生擁門雪
도령은 정원 나뭇가지를 보았지 /
陶令眄庭柯
세상 경영의 방책은 절로 있건만 / 經世自有策
늙고 쇠한 내가 어찌한단 말인가 / 老衰吾奈何

 

[주D-001]아득한 …… 흥취요 : 두보(杜甫)의 〈북정(北征)〉 시에, “푸른 구름이 높은 흥취 일으키니, 그윽한 삶이 또한 기쁨 직하구려.[靑雲動高興幽事亦可悅]” 하였다.
[주D-002]양춘 백설(陽春白雪) :
옛날 초()나라의 두 가곡(歌曲) 이름인데, 아주 고상한 가곡으로 유명하였다.
[주D-003]원생(袁生)은 …… 치웠고 :
원 생은 후한(後漢) 때의 명상(名相) 원안(袁安)을 가리킨다. 후한 시대 원안이 미천했을 적에 한번은 낙양(洛陽)에 큰 눈이 내려서 낙양 영(洛陽令)이 민가(民家)를 순행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가서 눈을 치우고 걸식(乞食)을 하는데, 원안만 유독 눈도 치우지 않고 방 안에 가만히 드러누운 채 일어나지 않았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곤궁한 처지에 절조를 굳게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4]도령(陶令)은 …… 보았지 :
도령은 팽택 영(彭澤令)을 지낸 도잠(陶潛)을 가리키는데, 그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술잔 끌어다가 스스로 술 따라 마시고, 정원 나뭇가지 바라보며 얼굴을 펴네.[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한 데서 온 말이다.

허당가(虛堂歌)

 


내 당은 남산을 정면으로 마주해 / 我堂面南山
텅 비고 밝아 내 얼굴 기쁘게 하네 / 虛明怡我顔
위의 마룻대 아래 서까래가 가지런하고 / 上棟下宇翼如也
앞 처마 뒤 처마를 다 합해 삼 칸이로다 / 前榮後榮凡三間
상여는 그릇 닦아 남의 비웃음 받았지만 / 相如滌器笑於人
벽이나마 섰었으니 가난은 아니었네 / 尙有壁立非眞貧

목은 늙은이는 대인부도 안 좋아하는데 / 牧翁不喜大人賦
어찌 봉선문으로 제왕 공덕 과장하리요 /
何曾封禪誇聖神
안회와 원헌
은 나의 모범이 되는지라 / 顔回原憲我模範
높은 풍도 이어 펴서 천재에 새로워졌네 / 繼播高風千載新
바람이 불어오면 막힐 것이 없고 / 風來無齟齬
달빛은 들어 담소의 자리 비추네 / 月入涵笑語
사방에서는 주룩주룩 소낙비가 내리고 / 絲絲四方驟雨飛
만리 멀리 아득히는 기러기 날아가는데 / 渺渺萬里冥鴻擧
귀신이나 물여우는 수도 없거니와 /
爲鬼爲
不可知
어찌하여 산해는 겹겹으로 막히는고 /
奈何山海重相阻
임금의 남훈가를 이어 부르고 싶은데 /
欲賡高舜南薰歌
해와 달은 언뜻언뜻 빨리도 지나가누나 / 頭上倏忽雙丸過
성명한 제왕은 시기에 맞춰 나오거니와 / 聖帝明王應時出
마음을 비운 다음에야 치우침이 없으리 / 虛心然後無偏頗
백성이 배를 두드리며 태평을 즐기어라 / 黎民鼓腹樂大平
이게 바로 목은 늙은이의 안락와로세 / 卽是牧翁安樂窩

 

[주D-001]상여(相如)는 …… 아니었네 : ()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탁왕손(卓王孫)의 딸 탁문군(卓文君)을 아내로 삼아 자기 고향인 성도(成都)로 돌아갔으나, 집이 하도 가난하여 세간은 하나도 없고 오직 사면(四面)으로 벽만 둘려 있는 형편이었으므로, 탁문군과 함께 임공()으로 가서 목로 술집을 마련하여 탁문군은 술을 팔고, 사마상여는 남의 고용인(雇傭人)이 되어 쇠코잠뱅이를 입고 시중(市中)에서 그릇 닦는 일을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주D-002]대인부(大人賦) :
사마상여가 지은 부명(賦名)인데, 한 무제(漢武帝)가 신선(神仙)을 좋아하므로, 사마상여가 이 부를 지어서 무제를 풍간(諷諫)하였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주D-003]어찌 …… 과장하리요 :
〈봉선문(封禪文)〉은 사마상여가 천자의 봉선에 관한 일을 기술하여 유서로 남겨서 한 무제에게 바쳤던 문장 이름인데, 그 내용은 제왕(帝王)의 공덕(功德)을 칭송한 것이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주D-004]안회(顔回) 원헌(原憲) :
모두 공자의 제자인데, 공자의 제자 중에 가장 곤궁했었다.
[주D-005]귀신이나 …… 없거니와 :
《시 경》 소아(小雅) 하인사(何人斯), “귀신이나 물여우는, 볼 수나 없거니와, 너는 뻔뻔스레 얼굴을 들어, 끝없이 사람을 보는구나.[爲鬼爲
則不可得 有靦面目 視人罔極]” 한 데서 온 말인데, 물여우란 물속에 사는 독충(毒蟲)인데, 사람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독기(毒氣)을 쏘면 사람이 병이 든다고 하는바, 이는 곧 음모(陰謀)로써 남을 해치는 자를 비유한다.
[주D-006]어찌하여 …… 막히는고 :
이백(李白)의 〈공후요(箜篌謠)〉에, “다른 사람들 가슴속에는, 산과 바다가 그 몇천 겹인고? 친구하자고 말은 선뜻 하지만, 얼굴 대하면 구의봉과 똑같나데.[他人方寸間山海幾千重 輕言託朋友 對面九疑峯]”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순(舜) 임금의 …… 싶은데 :
남 훈가(南薰歌)는 바로 순 임금이 일찍이 오현금(五絃琴)을 손수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南風詩)〉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 노래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노염을 풀 만하다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하리로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곧 성군(聖君)을 보좌하고 싶은 뜻을 말한 것이다. 《孔子家語 辯樂解》
[주D-008]안락와(安樂窩) :
본디 낙양(洛陽)에 있던 소옹(邵雍)의 거실(居室) 이름인데, 여기서는 곧 소옹의 거실에 빗대서 은사(隱士)의 거실이라는 뜻으로 쓴 것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둔한 말로 마구간 콩만 연연하나니 /
駑馬戀棧豆
채찍질을 어찌 면할 수 있으랴만 / 鞭答寧復辭
누가 알리요 천리마는 / 誰知千里馬
머리 숙여 늘 달리기만 생각하는걸 / 俯首常念馳
말이 달림은 힘이 있기 때문이지만 / 馬馳固有力
좋은 시기를 타는 것만은 못하나니 / 不如乘其時
시기를 타서 백락을 만난다면 / 逢時遇伯樂
거공의
를 읊조릴 만하고말고 / 可賦車攻詩
여덟 준마는 목왕을 만났으니 / 八駿遇穆王
이는 또한 시기를 만난 거지만 /
亦是逢其時
서쪽에 유람하여 무엇이 유익했나 /
西遊竟何益
서왕모 요지연에 참석했을 뿐이요 / 王母宴瑤池

주궁이 서토에 비춤에 미쳐서는 / 朱弓照徐土
주나라의 도가 더욱 쇠퇴해졌네 / 周道益以衰

재능을 두고도 안 쓸 데에 썼으니 / 有才用非所
사람을 몹시도 슬프게 하는구려 / 令人悲復悲

 

[주D-001]둔한 …… 연연하나니 : 재능이 모자라는 사람이 작은 이끗에 항상 연연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백락(伯樂) :
()나라 때 사람으로 말[]의 감정(鑑定)을 아주 잘했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말이 백락을 만나면 값이 열 배로 올랐다는 고사에서, 전하여 명군(明君), 현상(賢相)의 지우(知遇)를 입는 데에도 비유한다.
[주D-003]거공(車攻) 시(詩) :
《시 경》 소아(小雅) 거공에, “우리 수레 이미 견고하고, 우리 말이 이미 가지런하여, 사마가 충실하니, 사마 타고 동녘으로 가도다.[我車旣攻 我馬旣同四牡龐龐 駕言徂東]”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옛날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도울 적에는 제후들이 동도(東都)에 와서 조회(朝會)했으나, 그 후 주나라가 점점 쇠해짐에 미쳐서는 그런 예가 없어졌는데, 선왕(宣王) 때에 이르러 안으로는 정사를 힘쓰고, 밖으로는 오랑캐를 물리쳐 나라를 회복하고, 거마(車馬)를 수리하고 기계(器械)를 갖추어서 다시 제후들을 동도에 모아 전렵(田獵)을 행해서 거도(車徒)를 선발하게 되었으므로, 시인이 그것을 찬미하여 부른 노래이다.
[주D-004]여덟 …… 뿐이요 :
주 목왕(周穆王)이 일찍이 여덟 준마(駿馬)를 얻고는 서쪽으로 유람하여 곤륜산(崑崙山)에 올라가서 선녀(仙女)인 서왕모(西王母)의 빈()이 되어 요지연(瑤池宴)에 참석하는 등 즐겁게 노닐면서 돌아올 줄을 모르다가, 이로 말미암아 이반(離叛)하는 제후들이 속출하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주궁(朱弓)이 …… 쇠퇴해졌네 :
주 궁은 붉은 칠을 한 활로서 동궁(彤弓)과 같은 것으로, 옛날에 천자가 유공(有功)한 제후나 대신에게 내려 주어 정벌을 독단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고, 서토(徐土)는 요순(堯舜) 시대 백익(伯益)의 후예인 서국(徐國)을 가리키는데, 주 목왕이 서쪽으로 유람하여 즐기는 동안에 많은 제후들이 천자를 이반하여 서국으로 향하였으므로, 주 목왕이 급히 돌아와서 초()나라로 하여금 서국을 정벌하게 하여 멸망시키긴 했으나, 결국 이때부터 융적(戎狄)들까지 모두 주나라를 이반하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제위(諸衛)의 오원(五員), 십장(十將)과 제군(諸君), 재추(宰樞)품종(品從)들이 도당(都堂)행하(行下)를 받아 모두 방환(放還)되었는데, 우리 집의 품종은 심 영공(沈令公)의 배에 있으면서 그의 돌봐줌을 입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바다 위에선 풍파가 일어나고 / 海上風波起
하늘가에는 봉화가 연달을 제 / 天涯烽燧連
장수의 권한으로 막 부월을 받고 / 將權初受鉞
방위하는 병가가 다 배에 올라서 / 兵衛盡乘船
고각 소리는 해문 달 아래 울리고 / 鼓角海門月
깃발은 민가의 연기를 떨치는데 / 旌旗沙戶煙
쇠약한 군졸을 가려 돌려보내니 / 放還衰弱卒
재상들의 어진 마음을 알 만하네 / 可見廟堂賢

 

[주C-001]품종(品從) : 국가의 역사(役事)에 충당하기 위하여 관원들의 품계에 따라 내게 하는 역부(役夫)를 말한다.
[주C-002]행하(行下) :
윗사람의 분부나 명령을 말한다.

판서(羅判書)가 상주(尙州)에서 《중순당집(中順堂集)》을 간행하기 위해 나에게 서문(序文)을 부탁하면서 빨리 지어 주기를 요구하였다. 심하다, 그의 시를 좋아하여 세상에 전하고자 함이여.

 


백발이라 생활 영위하는 걸 잊고 / 白髮忘生
아침저녁으로 시만 읊조리누나 / 朝昏只詠詩
제자는 현달한 벼슬아치도 많은데 / 擊蒙多達宦
사신으로 가서는 위기를 당했었네 /
奉使蹈危機
좋은 시구는 유림에 전송되거니와 / 佳句儒林誦
높은 풍도는 온 나라가 알고말고 / 高標海國知
바라건대 공은 의당 힘쓸지어다 / 願公宜用力
문집 이룬 이가 근래에 드물잖나 / 叢錄近來稀

 

[주C-001] 판서(羅判書) : 고려 말기의 문신 나흥유(羅興儒)를 가리킨다. 그의 호는 우수(迂叟)이고, 당호(堂號)는 중순당(中順堂)이다.
[주D-001]사신(使臣)으로 …… 당했었네 :
나 흥유가 우왕(禑王) 1(1375)에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가 되어 일본과 화친(和親)할 것을 진언하고 통신사(通信使)를 자청하여 일본에 가서 왜구(倭寇)의 출몰을 금지할 것을 요구했으나,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고려와 국교가 끊어져 있던 터라, 도리어 간첩으로 오인받아 구속되었는데, 그 후 중 양유(良柔)의 주선으로 석방되어 돌아왔었다.

첫더위[初熱]를 읊다.

 


오늘이 바로 오월 스무날인데 / 五月二十日
오후에 열기가 처음 찌는 듯하네 / 午後熱初蒸
병든 몸은 피곤함을 절로 알지만 / 病骨自知困
쇠한 낯은 누가 불쌍히 여겨줄꼬 / 衰顔誰見矜
돌샘에선 흰 눈발을 뿌려댈 거고 / 石泉洒雪片
빙실엔 얼음이 겹겹 쌓였을 테지 / 凌陰積氷層
나는 여기서 지내기가 하도 어려워 / 此間難置我
청산에 누운 중에게 마냥 부끄럽네 / 永愧臥雲僧

 

지지당가(知止堂歌) 병서(幷序)

 

 

우 리 집 간방(艮方)에 세 칸으로 된 남향의 당() 하나가 있는데, 서쪽으로 주방(廚房) 한 칸을 부치고 서쪽으로부터 꺾여져서 남쪽으로 향한 동쪽 두 칸을 합해서 총칭하여 이를 별실(別室)이라고 한다. 내가 하루는 이를 혼연히 지지당이라 명명하고 단가(短歌)를 부르는 바이다.


중하에 상도를 펼치매
인륜이 밝아지고 / 陳常時夏彝倫明
생각이 지위 넘으매
천하가 평해졌네 / 思不出位天下平
고부간에 다투고 부자간에 서로 상하고 / 婦姑 磎父子夷
형제간에 싸우고 친구 간에 서로 반목해 / 兄弟
牆朋友離
서로 해치고 학대하면 대단히 불길하나니 / 胥戕胥虐大不祥
그 설을 추구하자면 말이 길어지겠거니와 / 欲究其說言之長
화의 근원은 다만 사욕을 부림에 있고말고 / 禍源只在逞其私
사욕을 극복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 克己寡欲爲良方
사욕은 먼지와 같고 마음은 거울 같나니 / 私如塵垢心似鏡
먼지만 제거하면 거울은 금세 환히 밝아져 / 垢去鏡明在俄頃
형형색색 모든 사물을 찬연히 보게 되리니 / 形形色色粲可覩
누가 다시 안개가 끼듯 깜깜하게 되리요 / 誰復溟濛似煙霧
환연히 서로 접하면 은혜가 절로 깊을 텐데 / 歡然相接恩自深
어찌 거짓된 행위로 마음을 수고롭히랴 / 何嘗作僞勞其心
목옹이 노래 지어 방금 길이 탄식하는데 / 牧翁作歌方永嘆
마침 꾀꼬리가 있어 꾀꼴꾀꼴 우는구나 /
時有黃鳥鳴綿蠻

 

[주D-001]중하(中夏) 상도(常道) 펼치매 : 《시경》 주송(周頌) 사문(思文), “이 경계와 저 경계 할 것 없이, 중하에 상도를 펼치셨도다.[無此疆爾界陳常干時夏]”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주나라 선조 후직(后稷)을 제사 지낼 때의 악가(樂歌)이다.
[주D-002]생각이 …… 넘으매 :
《주 역》 간괘(艮卦)는 그칠 곳에 그치는 것을 의미하는바, 간괘의 상사(象辭), “겸한 산이 간이니, 군자가 그것을 인하여 생각을 그 지위에 벗어나지 않게 한다.[兼山艮 君子以 思不出其位]”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자기 직분을 벗어나지 않게 처신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이색의 당()이 간방(艮方) 즉 동북쪽에 있으므로, 이 간괘의 의미를 부여하여 지지당(知止堂)이라 명명하고 이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D-003]마침 …… 우는구나 :
이 또한 당연히 그칠 곳에 그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시경》 소아(小雅) 면만(綿蠻), “꾀꼴꾀꼴 꾀꼬리가, 무성한 산 숲에 그쳤다.[綿蠻黃鳥 止于丘隅]” 한 것을 두고 이르기를, “그침에 있어 그 그칠 곳을 아나니, 사람으로서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사람이 제가 할 도리(道理)에 최선을 다하여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大學章句 傳3章》

즉사(卽事)

 


아침놀이 다 흩어지고 연기 또한 사라지매 / 朝霞散盡又煙消
뜨거운 태양이 하늘에 오른 것을 보겠네 / 時見飛烏上紫霄
속세의 푹푹 찌는 더위를 점차 깨닫겠어라 / 漸覺人間蒸似火
별천지 그 어디에 누워 퉁소나 불어 볼꼬 / 洞天何處臥吹簫

 

과거장(科擧場)의 제삼장(第三場)을 생각하다.

 


제목이 분명하게 크나큰 뜰을 비추거든 / 題目分明照大庭
글자마다 신경이 쓰일 줄을 누가 알리요 / 誰知字字惱心靈
모형대로 상을 만듦이
창의력을 구함이랴 / 模形鑄像豈求意
뼈와 가죽만 붙일 테면
법칙을 잃고 말지 / 着骨粘皮寧失經

-이하 원문 빠짐-

 

[주D-001]모형대로 상(像) 만듦이 : 기존의 모형대로 상을 주조하듯이, 기존의 격식만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뼈와 …… 테면 :
역시 시문(詩文) 같은 것을 짓는 데 있어 기존의 법칙이나 격식에 집착하여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명일(明日)에 또 읊다.

 


높은 집은 어찌 그리도 적적한고 / 高堂何寂寂
새벽빛은 썰렁하기 가을 같은데 / 曉色冷如秋
고사하느라 방금 정성을 들이니 / 考閱方精意
점두
의 고사가 흘러 전하리로다 / 流傳有點頭
부귀한 자제는 수재가 많거니와 / 膏梁多秀氣
한빈한 자제는 또한 청류라 하리 / 蓬蓽亦淸流
다만 바라는 건 유풍이 융성하여 / 只願儒風盛
전현의 훌륭함을 짝하게 됨이라네 / 前修得匹休

 

[주D-001]점두(點頭) : ()나라 구양수(歐陽脩)가 공거(貢擧)를 주관하던 때에 시권(試券)을 고사(考査)할 적마다 자기 등 뒤에서 한 주의(朱衣) 입은 사람이 머리를 끄덕인 것[點頭]을 느낀 다음에야 그 시권이 입격(入格)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시권 고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군필(金君弼) 동년은 어느 과()에 급제할까 하고 앉아서 생각하다.

 


오십칠 년이 참으로 한바탕 꿈 같아라 / 五十七年眞夢中
늘 과거장 왕래하며 아동 곁에 끼었는데 / 朅來場屋廁兒童
남들은 늙은이라고 심한 기롱도 하건만 / 人言老物遭譏甚
자신은 금년에 문장이 잘된다고 말하네 / 自道今年造語工
월협 성심
채색붓 밑에서 나올 게고 / 月脇星心綵毫下
표태 웅장
은 화려한 주연에 차려지겠지 / 豹胎熊掌錦筳中
어떤 동방이 유독 그대를 사랑하던고 / 有誰同榜偏相愛
흰 머리털 소소한 한 목은 늙은이라오 / 白髮蕭蕭一牧翁

 

[주D-001]월협 성심(月脇星心) : 소 식(蘇軾)의 시에, “대범은 문득 긴 노래를 부르매, 말이 월협에서 나와 사람을 놀래켰으니, 소범은 의당 이 노래를 이어서, 닭이 울 듯이 명성의 마음을 설파하리.[大范忽長謠語出月脇令人驚 小范當繼之 說破星心如鷄鳴]” 한 데서 온 말로, 뛰어난 시문(詩文)을 형용한 말이다. 대범은 범백록(范百祿)을 가리키고, 소범은 범조우(范祖禹)를 가리키는데, 월협은 당()나라 황보식(皇甫湜)의 〈고황집서(顧況集序)〉에, “유독 일가 장구에는 탁월하고 격렬한 기세가 있어, 이따금 마치 하늘의 중심을 꿰뚫는 듯, 달의 옆구리를 찢고 나오는 듯이 뜻밖에 사람을 놀래키는 말들은 아무나 미칠 바가 아니다.[偏於逸歌長句 駿發踔厲 往往若穿天人出月脇 意外驚人語 非尋常所能及]” 한 데서 온 말이고, 성심은 당()나라 맹교(孟郊)의 〈효학(曉鶴)〉 시에, “외로운 달의 입을 여는 듯하고, 계명성의 마음을 말한 듯도 하네.[如開孤月口似設明星心]”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새벽에 우는 학()의 고상하고도 청아한 음조를 시문의 음조에 비추어 말한 것이다. 맹교의 시는 학을 두고 지은 것인데, 소식은 닭으로 바꾸어 쓴 듯하다.
[주D-002]채색붓[綵毫] :
()나라 때 문장가인 강엄(江淹)이 일찍이 야정(冶亭)에서 잠을 자다가, 곽박(郭璞)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내 붓이 그대에게 가 있은 지 여러 해이니, 이제는 나에게 돌려다오.” 하므로, 자기 품속에서 오색필(五色筆)을 꺼내어 그에게 돌려준 꿈을 꾸었는데, 그 후로는 좋은 시문을 전혀 짓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뛰어난 문재(文才)를 의미한다. 《南史 卷59 江淹列傳》
[주D-003]표태 웅장(豹胎熊掌) :
표범의 태반(胎盤)과 곰의 발바닥을 말한 것으로, 모두가 진귀한 음식으로 꼽힌다.

빨래를 하다.[澣濯]

 


굵고 가는 갈포옷 공정도 세밀한데 / 功夫細
찌는 더위라서 빨래도 자주 하누나 / 炎蒸澣濯頻
거칠수록 늙은이 몸에는 간편한데 / 愈疏便老骨
해지는 모양은 쇠한 몸과 흡사하네 / 漸弊似衰身
먹물 흔적은 본디 좋게 여기거니와 / 墨點自來好
술방울 얼룩인들 누가 짜증내리요 / 酒痕誰復嗔
겉치레 하는 건 내 일이 아니건만 / 修容非我事
남과 달리 보일까 염려되어서라네 / 只恐異於人

 

아장(我將)

 


나는 장차 옛 풍도를 따르기 위해 / 我將追古風
주나라 초기에 전심치지하노라 / 潛心向周初
땅의 뽕은 농포에 섞어 심어서 / 豳桑雜農圃
충성과 사랑이 그리 넘쳤던고 / 忠愛何有餘

얼음도 지난해에 깨어 쟁이나니 / 鑿氷在去歲
지붕 이는 누가 감히 늦출쏜가 /
乘屋誰敢徐
때문에 추동 절기에 미쳐서는 /
所以及秋冬
잡고 빚어 연향을 즐기었네 / 羔酒多讌譽

슬프도다 농사를 힘쓰지 않다간 / 悲哉不務本
조만간에 폐허를 이루고 말리라 / 旦暮成丘墟

고풍이 진작되지 않은 지 오래이니 / 古風已不作
나는 장차 어디로 돌아가야 할꼬 / 我將安所歸
주남은 문왕의 덕화가 널리 퍼져 / 周南文王化
칡덩굴 위에 꾀꼬리가 날았으니 / 葛覃黃鳥飛

그 근원은 빈국에서 나온 것인데 / 其源出于豳
낙읍까지 정하여 왕성 이뤘네 /
卜洛皆京畿
주공이 예악을 제작한 거야말로 / 周公制禮樂
후왕에겐 있기 드문 일이거니와 / 後王之所希
노나라에 돌아온 지도 오래여라 /
返魯亦久矣
우리의 도가 왜 그리 그릇되는고 / 吾道何其非

장차 동해에 빠져 죽으려 하나 /
我將蹈東海
하늘이 도를
두렵고 / 畏天未喪文
내 장차 조정엘 들어가고자 하나 / 我將趨中朝
임금을 바로잡을 계책도 없는지라 / 無術可格君
진퇴양난으로 오도가도못하고 / 進退諒惟谷
아득히 요 임금을 생각할 뿐이네 / 渺渺思放勳
고금은 절로 세대가 다르거니와 / 古今自異世
세상일은 덧없는 뜬구름 같아서 / 世故如浮雲
정아
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니 / 正雅不復作
분잡스런 음와를 누가 배제할꼬 / 淫哇誰解紛

 

[주D-001]빈(豳) 땅의 …… 넘쳤던고 : ()나라의 선조(先祖) 공류(公劉)가 자기 증조(曾祖)인 후직(后稷)의 업()을 잘 닦아서 빈 땅에 도읍을 정하고, 백성들에게 농사를 장려하여 백성들이 다 잘살게 된 내막을 노래한 것이 바로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의 시인데, 이 시는 주공(周公)이 지은 것으로, 그 제3장에, “누에치는 달 뽕나무 가지를 칠 땐, 저 도끼를 가져다가, 멀리 뻗은 가지를 치고, 여린 가지는 잎만 따느니라. 칠월에 때까치가 울거든, 팔월에는 길쌈을 하나니, 검은 물감 노랑 물감 곱게 들여서, 가장 고운 붉은 베를 골라서, 공자의 옷을 만드나니라.[蠶月條桑 取彼斧 以伐遠楊 猗彼女桑 七月鳴 八月載績 載玄載黃 我朱孔陽 爲公子裳]”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에서 말한 공자는 바로 빈국(豳國)의 왕자(王子)를 가리킨다.
[주D-002]얼음도 …… 즐기었네 :
《시 경》 빈풍 칠월 제8장의, “섣달이면 얼음을 꽝꽝 깨어다가, 정월이면 얼음 창고에 쟁이나니, 이월 초하루 이른 아침엔, 양 잡고 부추나물로 제사하느니라. 구월에 찬 서리가 내리거든, 시월에는 마당을 깨끗이 쓸고, 두 항아리 가득 술 걸러놓고, 새끼 양을 잡아서, 저 공당으로 올라가 저 뿔잔 들어 축수 드리니, 우리님 만수무강하리로다.[二之日鑿氷沖沖三之日納于凌陰 四日其蚤 獻羔祭韭九月肅霜 十月滌場 朋酒斯饗 曰殺羔羊 祭彼公堂 稱彼兕觥 萬壽無疆]” 한 것과 제7장의, “낮에는 나가서 띠를 베오고, 밤이면 새끼를 꼬아서, 하루 빨리 지붕을 이어야만, 명년 봄에 다시 백곡을 파종하느니라.[晝爾于茅 宵爾索
亟其乘屋 其始播百穀]”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주남(周南)은 …… 날았으니 :
《시 경》 국풍(國風) 주남(周南) 갈담(葛覃), “칡덩굴이 쭉쭉 뻗어, 골짜기 가운데에 뻗어가서, 잎이 매우 무성하거늘, 꾀꼬리는 날아와, 떨기나무 위에 앉아서, 평화로이 울어대도다. 칡덩굴이 쭉쭉 뻗어, 골짜기 가운데에 뻗어가서, 그 잎새가 빽빽하거늘, 그 덩굴을 베어 삶아서, 굵고 가는 갈포옷 지으니, 입으매 싫지가 않도다. 사씨에게 고하여, 친정에 갈 것을 말하라 했노라. 잠깐 사복도 빨고, 잠깐 예복도 빠노니, 어느 건 빨고 어느 건 안 빨랴, 돌아가 부모님께 문안 드리리라.[葛之覃兮 施于中谷 維葉萋萋 黃鳥于飛集于灌木 其鳴
喈喈 葛之覃兮 施于中谷 維葉莫莫 是刈是濩 爲絺爲 服之無斁 言告師氏 言告言歸 薄汚我私 薄澣我衣 害澣害否 歸寧父母]”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몸소 부인(婦人)의 일에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효심(孝心)도 지극했던 문왕(文王) 후비(后妃)의 훌륭한 덕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4]낙읍(洛邑)까지 …… 이뤘네 :
성왕(成王)이 주공(周公)으로 하여금 동도(東都) 낙읍을 다시 경영하여 왕성(王城)으로 만들게 한 것을 말한다. 《書經 洛誥》
[주D-005]노(魯)나라에 …… 오래여라 :
공자가 이르기를, “내가 위나라로부터 돌아온 다음에야 음악이 바로잡아져서 아와 송이 각각 제자리를 얻었느니라.[吾自衛反魯 樂正雅頌各得其所]”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주D-006]내 …… 하나 :
전 국 시대 제()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魯仲連)이 말하기를, “저 진()나라가 방자하게 황제를 자칭하고 죄악으로 천하에 정사를 한다면, 나는 동해에 빠져 죽을 뿐이요, 내가 차마 그 백성은 될 수가 없다.[彼卽肆然而爲帝過而爲政於天下 則連有蹈東海而死耳 吾不忍爲之民也]”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83 魯仲連列傳》
[주D-007]하늘이 …… :
공 자(孔子)가 일찍이 광()에서 횡포(橫暴)를 부렸던 양호(陽虎)로 오인받아 광 사람들에게 포위되었을 때는 이르기를, “문왕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도가 나에게 있지 않느냐? 하늘이 이 도를 장차 망칠 작정이면 문왕의 뒤에 죽을 내가 이 도에 참여하지 못했을 테지만, 하늘이 이 도를 망치려 하지 않으시니, 광 사람이 나에게 어찌하겠느냐.[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하였다. 《論語 子罕》
[주D-008]정아(正雅) :
《시 경》 소아(小雅)의 녹명(鹿鳴)으로부터 청청자아(菁菁者莪)까지의 22편을 정소아(正小雅)라 하고, 대아(大雅)의 문왕(文王)으로부터 권아(卷阿)까지의 18편을 정대아(正大雅)라 하여 이를 합해서 정아라 한 것인데, 이는 바로 왕도(王道)가 행해져서 정교(政敎)가 올바르게 베풀어진 때의 악가(樂歌)라 하여 이렇게 일컬은 것이다.
[주D-009]음와(淫哇) :
음란하고 부정한 후세의 악가를 말한다.

군자(君子)

 


군자의 마음은 마치 물과 같아서 / 君子心如水
굽이굽이 순리대로 따를 뿐이요 / 曲折隨所之
군자의 마음은 마치 산과 같아서 / 君子心如山
후중하여 옮겨 가질 않는 법인데 / 厚重無所移
한탄스러워라 나 같은 소인은 / 嗟嗟我小人
동정이 대부분 타당함을 잃어서 / 動靜多失宜
행할 만할 땐 문득 자취를 감추고 / 可行輒屛跡
그쳐야 할 땐 되레 세상을 나가네 / 可居還趨時
속으로 반성을 하지 않을지언정 / 寧能內不省
반성해 보면 장차 누구를 책망할꼬 / 內省將責誰

 

가만히 앉아서 읊다.

 


가만히 앉아서 담담히 세상 잊고 / 兀坐淡忘世
유유히 성령을 도야하다 보니 / 悠悠陶性靈
맑은 바람은 북쪽 창에서 나오고 / 淸風生北牖
성긴 비는 뜰 안에 가득 내리네 / 疎雨滿中庭
이미 푸른 나무가 그늘지더니 / 已是樹陰綠
다시 온 산을 푸르게 하는구나 / 更敎山色靑
더러운 속세를 초연히 벗어나니 / 超然出塵垢
머리 위엔 아득한 하늘뿐이로세 / 頭上一冥冥

 

개구리가 울다.

 


개구리가 미나리밭에서 우는데 / 蛙鳴靑芹田
비 오고 흐려 소리 더욱 드날리니 / 雨暗聲更揚
고저가 악부 가요에 합치하여라 / 高低合樂府
물밑에서 생황을 부는 듯하네 /
水底開笙簧
성음은 정사와 서로 통하거니와 /
聲音與政通
소균
이 지금은 아득하기만 한데 / 韶鈞今渺茫
조화의 기밀이 우연히 발동하여 / 天機偶爾動
성왕을 생각기에 절로 만족하니 / 自足思皇王
성왕의 시대는 이미 멀어졌건만 / 皇王旣遠矣
어슴푸레 여광을 보는 듯하구나 / 髣髴瞻餘光

 

[주D-001]물밑에서 …… 듯하네 : 소 식(蘇軾)의 〈증왕자직수재(贈王子直秀才)〉 시에, “물밑의 생가 소리는 개구리의 양부고취요, 산중의 노비 대신은 귤나무 천 그루로다.[水底笙歌蛙兩部 山中奴婢橘千頭]” 한 데서 온 말로,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생황 연주에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2]성음(聲音)은 …… 통하거니와 :
《예 기(禮記)》 악기(樂記), “성음의 도는 정사와 서로 통하는 것이다. 궁은 임금에 해당하고, 상은 신하에 해당하고, 각은 백성에 해당하고, 치는 일에 해당하고, 우는 물에 해당한다.[聲音之道 與政通矣 宮爲君 商爲臣角爲民 徵爲事 羽爲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소균(韶鈞) :
소는 순() 임금의 음악이고, 균은 천상(天上)의 미묘한 음악인 균천광악(鈞天廣樂)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아주 우아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말한다.

노옹(老翁)

 


병든 뺨은 때때로 술을 빌어 붉기도 하나 / 病頰時時酒借紅
강산의 좋은 구경은 허공에 떨어져 버렸네 / 江山勝賞墮虛空
그 누가 나를 만년에 광객이 되게 했는고 / 誰敎
景爲狂客
서늘한 바람은 절로 늙은이에 알맞구려 / 自有涼風可老翁
가랑비 걷힌 채소 꽃엔 나비가 날아들고 / 蝶入菜花微雨後
연기 낀 버들잎 속에선 꾀꼬리가 우누나 / 鶯啼柳葉淡煙中
얼마나 금릉 바라보며 조용히 읊었던고 / 沈吟幾向金陵望
언제나 관대한 은택이 해동에 입혀질는지 / 何日寬恩遍海東

 

[주D-001]금릉(金陵) : 당시 금릉에 도음한 명()나라를 가리킨다.

회포를 서술하다.

 


홀로 앉았으니 유유히 시골 정취 우러나서 / 獨坐悠悠生野情
소리 높여 길이 읊으니 문득 시를 이루었네 / 高吟長嘯便詩成
구름이 절로 엷어져 해는 새나오려 하고 / 雲容自薄日將漏
빗방울 또한 드물어져 산은 개려 하누나 / 雨點更疎山欲晴
늙었으니 원량 따라 취할 만도 하거니와 / 老矣可從元亮醉
담박함은 다시 백이처럼 청하기만 하니 /
淡然還似伯夷淸
중서령으로 스물네 성적 고사한 이가 /
中書二十四考令
모르겠도다 나와 더불어 누가 더 중할꼬 / 未識與吾誰重輕

 

[주D-001]원량(元亮) : 도잠(陶潛)의 자이다.
[주D-002]담박함은 …… 하니 :
맹자가 이르기를, “백이는 성인의 청한 분이다.[伯夷聖之淸者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下》
[주D-003]중서령(中書令)으로 …… 이가 :
()나라 때의 명장(名將) 곽자의(郭子儀) 20여 년 동안 중서령으로 있으면서 24차에 걸쳐 관리들의 성적 고사(成績考査)를 주관했던 데서 온 말이다.

풍우행(風雨行)

 


오월이라 스무이튿날 밤이 다 샐 무렵에 / 五月卄二夜將闌
바람 불고 비 쏟아져 거센 물결 뒤집혀라 / 風作雨瀉翻狂瀾
목옹은 잠이 깨어 갑자기 놀라 일어나니 / 牧翁夢破忽驚起
주룩주룩 빗소리에 맘이 절로 넉넉해지네 / 兩耳浪浪心自寬
이게 무슨 상서이던고 내가 헤아려 보건대 / 是何祥也予忖度
기예 겨루는 뭇 용이 한창 격투를 벌이매 / 戰藝
龍方鬪格
뭇 용은 용맹하고 발톱과 엄니도 길어서 /
龍矯矯爪牙長
천둥 번개 내뿜어 어지러이 서로 쳐댐이니 / 吼雷噴電紛相擊
이게 바로 호연지기가 천지 새에 가득 차서 / 浩然之氣塞天地
지극히 크고 강함에 충격을 받은 거로다 / 至大至剛爲所激

상제께선 높이 앉아 조화의 권력 맡아서 / 上帝居高司化權
다른 손 빌어서 사문의 현자를 결정함에도 / 假手予奪斯文賢
저울에 물건 달면 무게의 경중이 드러나듯 / 如衡稱物有輕重
거울에 물건 비치면 곱고 추함 나뉘듯 하네 / 如鑑照物分

잠깐 새에 바람 자고 빗발도 가늘어져라 / 須臾風定雨祈祈
순서대로 직무받아 모두 온당케 수행하니 / 順序受職皆得宜
이제야 알겠네 천인의 감응은 신속한 거라 / 乃知天人感應速
귀중한 건 조정이 옥촉을 조화시킴인걸 / 所貴廟堂調玉燭
옥촉을 조화시킴은 인걸에 달려 있나니 / 玉燭之調在人傑
고니처럼 섰는 백포 차림
을 비웃지 마소 / 莫笑白袍如鵠立

 

[주D-001]이게 …… 거로다 : 호 연지기(浩然之氣)는 천지(天地) 사이에 성대히 유행(流行)하는 정기(正氣)를 말하는데, 공손추(公孫丑)가 말하기를, “감히 묻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 하는 것입니까?” 하니 맹자가 이르기를,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 기운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곧음으로 길러서 해치지 않으면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되느니라.[難言也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乎天地之間]”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上》
[주D-002]옥촉(玉燭) 조화시킴 :
사시(四時)의 기후가 잘 조화되도록 하는 것을 이른 말로, 전하여 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3]고니처럼 …… 차림 :
백 포(白袍)는 거인(擧人) 즉 입시생(入試生)들이 입는 옷으로, 전하여 입시생을 가리키는데, 소식(蘇軾)의 〈최시관고교희작(催試官考較戲作)〉 시에, “원컨대 그대는 내 말을 듣고 납촉을 더 태우소, 문밖엔 백포들이 고니처럼 서서 결과를 기다리네.[願君聞此添蠟燭 門外白袍如立鵠]” 하였다.

느낌이 있어 짓다.

 


정명한 일 처리는 잘 헤아림에 달렸나니 / 制事在權衡
춘추를 안 배우고는 악명을 들을 수밖에 / 不學春秋受惡名
충성이야 유여한데 왜 죽음을 저어하랴만 / 忠固有餘寧畏死
예를 만일 빠뜨리면 이는 구차한 삶이리 / 禮如蓋闕是偸生
한가하니 방초는 어디에나 있음을 알겠고 / 閑知芳草尋常有
고요하니 뜬구름 자유로운 게 사랑스럽네 / 靜愛浮雲自在行
물아의 양자 사이를 투명하게 간파하니 / 物我兩間看得透
자연히 맘과 자취가 갑자기 맑아지누나 / 自然心跡頓雙淸

 

과거(科擧) 공부는 폐한 지 오래이면서 자기의 작문(作文)이 합격되기 어려움을 걱정하는 거자(擧子)가 있으므로, 시로써 그 사실을 기록하다.

 


과거 공부가 절로 법칙이 있거늘 / 擧業自有法
고시관을 누가 함부로 간청할쏜가 / 文衡誰妄干
병중에 약쑥 구하긴 너무 급하고 /
病中求艾急
목마른 뒤에 샘 파긴 어렵고말고 / 渴後掘泉難
부어가 금석을 땅에 던진 듯하고 /
賦語金擲地
시구가 쟁반에 구슬 굴린 듯하긴 / 詩聯珠走盤
예로부터 쉽사리 얻을 수 없나니 / 古來非易得
높은 하늘의 단계를 어찌하리요 /
丹桂碧霄寒

 

[주D-001]병중에 …… 급하고 : 맹 자가 이르기를, “지금 천하에 왕을 하려는 것은 마치 7년 묵은 병에 3년 묵은 약쑥을 구하기와 같으니, 이제부터라도 미리 약쑥을 저축해 두지 않으면 종신토록 얻지 못할 것이다.[今之欲王者猶七年之病求三年之艾也 苟爲不畜終身不得]” 한 데서 온 말로, 모든 일을 사전에 미리 준비해야 함을 이른 말이다. 《孟子 離婁上》
[주D-002]부어(賦語)가 …… 듯하고 :
()나라 때 손작(孫綽)이 〈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지어 놓고 나서 자기 친구인 범영기(范榮期)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시험 삼아 이 부를 땅에 던져보게나, 의당 금석 소리가 날 것일세.[卿試擲地當作金石聲]” 한 데서 온 말로, 문장이 매우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晉書 卷56 孫綽列傳》
[주D-003]높은 …… 어찌하리요 :
과거에 급제하기 어려움을 의미한 말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목은 늙은이 정원엔 티끌 하나 없는 데다 / 牧翁庭院絶纖塵
홀로 읊으며 마시니 흥미가 더욱 순수한데 / 獨詠孤斟味更眞
오직 맑은 바람이 흡사 애교를 부리는 듯 / 唯有淸風如媚

살랑살랑 서로 쫓아 의관 가득 불어오누나 / 飄飄相逐滿衣巾

가소롭기도 해라 좋은 벼슬을 얻으려고 / 嘲笑還須作美官
땀 흘리며 분주히 서로 다퉈 반연하는 게 / 汗流奔走競相攀
한산군인들 어찌 기심을 잊은 자이랴만 / 韓山豈獨忘機者
배부르고 편안함엔 원래 마음 안 썼노라 / 用意元非飽與安

시 읊는 게 좌선과 흡사하다 말들 하지만 / 共道吟詩似坐禪
어찌 일찍이 오묘한 단전이야 얻었으랴 / 何曾妙處得單傳
맑은 바람 밝은 달 아래 참으로 일 없으니 / 淸風明月眞無事
늙도록 상종한 곳이 스스로 별천지로세 / 到老相從自一天

 

[주D-001]단전(單傳) : 말 이나 문자에 의거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불법(佛法)을 말한 것으로, 원래 선종(禪宗)의 전법(傳法)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敎外別傳不立文字直指人心見性成佛)”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높은 경지의 의미로만 쓰였다.

잡흥(雜興) 3(三首)

 


고요하니 뜻은 더욱 원대해지고 / 闃寂志彌遠
한적하여라 거처는 절로 깊숙해 / 幽閑居自深
흥이 나면 외로이 휘파람을 불고 / 遇興發孤嘯
근심 풀려면 짧은 시를 이루노니 / 舒憂成短吟
빈아
는 이미 아득해졌거니와 / 豳雅旣渺渺
노송
은 어찌 그리 침침해졌나 / 魯頌何沈沈
작자를 다시 볼 수는 없지만 / 作者不可見
태양은 제잠에 떠오르누나 / 海日升鯷岑

동방의 풍속은 인수한 고장이라 / 東方俗仁壽
고래로 군자가 사는 곳이거니와 / 君子之所居
중고엔 기자의 나라가 되었는데 / 中爲箕子國
질서 정연한 홍범의 글을 / 井井洪範書
처음 무왕에게 전해 주어 /
初傳周武王
도가 중국에 성대히 행해진 다음 /
道行沛有餘
품고 와서 우리 백성에게 펴니 /
卷之惠我民
예양이 어쩌면 그리 의젓했던고 / 禮讓何徐徐

우리 동방은 절로 안정하건만 / 海邦自安靜
주진은 이미 폐허가 되어 버렸네 / 周秦成丘墟

임금이 즉위하던 무진년에 / 帝堯戊辰歲
동방에 처음 임금이 있었으니 / 東方始有君

그때에는 하늘과 서로 통하여 / 其時與天通
괴이한 일들이 삼분을 이뤘는데 / 祕怪成三墳

천재에 이르도록 장수를 누리며 /
壽考至千載
동해 가의 땅을 다 점유했으니 / 奄有東海濆
질박하여 예는 간략하게 행하고 / 質朴禮向簡
거칠어서 말은 꾸미지를 않았네 / 麤疎言不文
어찌하여 내가 태어난 지금은 / 奈何予之生
세상 변천이 뜬구름 같단 말인가 / 世變如浮雲

 

[주D-001]빈아(豳雅) : 《시 경》 빈풍(豳風)의 칠월(七月)을 가리킨다. 이 시는 주공(周公)이 지은 것으로, 선조(先祖) 후직(后稷)이 일찍이 빈() 땅에 나라를 열고 백성들에게 농사를 장려하여 부강()을 일삼았던 풍화(風化)를 자세히 진술하여 성왕(成王)에게 잊지 말도록 이 노래를 부르게 했던 것이다.
[주D-002]노송(魯頌) :
()나라의 종묘악(宗廟樂)인데, 주공(周公)이 천하(天下)에 큰 훈로(勳勞)가 있다 하여, 성왕(成王)이 주공의 아들 백금(伯禽)을 노나라에 봉()하면서 천자(天子)의 예악(禮樂)을 주었으므로, 노나라에 송()이 있게 된 것이다.
[주D-003]제잠(鯷岑) :
옛날에 우리나라를 이렇게 일컬었다.
[주D-004]질서 …… 의젓했던고 :
()나라 기자(箕子)가 은나라가 망한 뒤에는 주()나라 무왕(武王)을 위해 천하를 다스리는 큰 법칙인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전해 주었고, 뒤에 동방으로 나와서는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세우고 팔조교(八條敎) 등을 마련하여 백성들을 가르쳤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요(堯) 임금이 …… 있었으니 :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 의하면, 요 임금이 무진년에 즉위하였고, 고조선의 단군(檀君) 또한 무진년에 즉위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그때에는 …… 이뤘는데 :
삼분(三墳)은 삼황(三皇)의 글을 가리킨 것으로, 아주 먼 옛날의 서적을 의미하고, 하늘과 서로 통했다는 것은 곧 단군이 천제(天帝)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이었다는 단군신화(檀君神話)를 두고 이른 말이다.
[주D-007]천재에 …… 누리며 :
이 또한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1048년이었다고 하는 설화를 두고 한 말이다.

() 찬명(贊明)이 전주(全州)로 돌아가다.

 


천마사에서 얼굴 처음 알았는데 / 識面天摩寺
견훤성
으로 몸 의탁하러 가면서 / 托身甄萱城
글 구하기 위해 읍재를 알현하고 / 求書謁邑宰
내 문에 와서 종이를 내놓는구나 / 踵門投楮生
푸른 산은 가는 길에 가득할 게고 / 靑山滿歸路
흰 구름은 갠 하늘을 희롱하겠지 / 白雲弄新晴
어느 날에나 또 북녘을 유람할꼬 / 北游又何日
검극 같은 암석들이 눈에 선하네 / 戟石眼中明

 

[주D-001]견훤성(甄萱城) : 신라 말기에 후백제의 시조 견훤(甄萱)이 처음 전주(全州)에 입성(入城)하여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라 자칭했던 데서, 즉 전주를 가리킨다.

느낌이 있어 짓다.

 


분잡스러운 세상일들 냉소할 만하여라 / 世事紛紛足冷咍
년에 좋은 회포를 번이나 볼꼬 /
百年幾度好懷開
도와준 적어 친척도 배반함은 알지만 /
已知寡助親皆畔
더구나 친구 또한 오래도 오지 않음에랴 / 況復同盟命不來
준마는 바람 모래 길을 헤쳐 달리고 / 騏驥風沙千里路
교룡은 구름 얻어서 천둥을 쳐대는데 / 蛟龍雲雨九天雷

젊은이 숭상한 만나 풍당은 늙었기에 / 時當尙少馮唐老
한낱 포의로 다시 예전같이 돌아가누나 / 一箇布衣依舊回

 

[주D-001] 년에 …… 볼꼬 : 진 사도(陳師道)의 〈절구(絶句)〉 시에, “맘에 맞는 글 만나면 언뜻 다 읽어버리기 쉽고, 반가운 손은 기약을 해놓고도 오지를 않네. 서로 어긋난 세상일이 매양 이와 같거니, 백 년 동안 좋은 회포를 몇 번이나 펴 볼꼬.[書當快意讀易盡 客有可人期不來 世事相違每如此 好懷百年幾回開]” 하였다.
[주D-002]도와준 …… 알지만 :
맹 자가 이르기를, “도리를 얻은 자는 도와주는 사람이 많고, 도리를 잃은 자는 도와주는 사람이 적나니, 도와주는 사람이 적기가 극에 이르면 친척까지 배반하는 것이고, 도와주는 사람이 많기가 극에 이르면 천하가 순종하게 된다.[得道者多助 失道者寡助 寡助之至 親戚畔之 多助之至 天下順之]”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下》
[주D-003]준마는 …… 쳐대는데 :
영웅이 때를 만나서 웅대한 포부를 마음껏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4]젊은이 …… 돌아가누나 :
한 문제(漢文帝) 때 풍당(馮唐)은 이미 늙은 나이로 낭중서장(郞中署長)을 거쳐서 뒤에 겨우 차기도위(車騎都尉)에 이르고 말았는데, 무제(武帝) 때에 이르러 그가 다시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었으나, 이때는 그의 나이 이미 90여 세나 되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102 馮唐列傳》 여기서는 아마 이색의 진사 동년(進士同年)인 김군필(金君弼)이란 이가 이미 늙은 나이로 과거(科擧)에 응시하기 위하여 얼마 전에 입경(入京)했다가, 그가 이번에도 과거에 실패하고 돌아가게 된 것을 애처롭게 여겨 한 말인 듯하다.

 

 

2009-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