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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행(短歌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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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란 우뚝이 서서 뜻 지킴에 급급할 뿐 / 士也孤立守爲急
용사 행장에 대해선 생각할 바 아니라네 / 用舍行藏非意及
현릉께 알아줌 입기는 가정부터였거니와 / 遇知玄陵自稼亭
연산의 푸른 빛은 지금도 눈에 가득하구나 / 至今滿目燕山靑
초과의 장원 때부터 정당에 오를 때까지 / 初科狀元拜政堂
몇 번이나 손수 황금술잔을 내리었던고 / 幾度手賜黃金觴
병중에 문후 행렬이 한창 줄을 이었는데 / 病中問候方絡繹
성상께서 승하하니 문은 적적하기만 해라 / 鼎湖龍去門寂寂
광암사 빗돌 위에 글자 새김 끝내자마자 / 光巖碑上刻纔終
나는 또한 재차 한산군에 봉해지었네 / 我亦再就韓山封
정당 제수와 봉군은 다 현릉의 명이거니 / 政堂封君玄陵命
십 년을 덕에 배불러라 어찌 그리 후했던고 / 十年飽德何雋永
문밖엔 찾는 이 없고 뜨락에 풀만 자라니 / 門無車馬庭草生
마음 사이에 슬픔과 기쁨이 서로 아울러라 / 方寸之間悲喜幷
슬플 적엔 절망하여 추령을 준비하고 / 悲者絶望備芻靈
기쁠 때는 조용히 앉아 금경을 열람하네 / 喜者靜坐閱金經
세상과 부합하려 하면 어찌 쉽지 않으랴만 / 欲圖膠漆豈不易
어려서 배운 걸 커서 안 씀은 내 뜻 아닐세 / 幼學壯舍非我志
예전부터 조맹이 나를 어찌할 수 있었으랴 / 由來趙孟奈吾何
나 홀로 노필 가지고 내 노래 지어 쓰거늘 / 獨携老筆書吾歌
[주D-001]용사 행장(用舍行藏) : 세 상에 쓰일 때는 나가서 자기의 도를 행하고, 버림을 받았을 때는 물러나서 숨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안연(顔淵)에게 이르기를 “쓰이면 나가서 도를 행하고, 버림을 받으면 물러나 숨는 것을 오직 나와 네가 그렇게 할 뿐이다.[用之則行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주D-002]현릉(玄陵)께 …… 가정(稼亭)부터였거니와 : 현릉은 공민왕(恭愍王)의 능호이고, 가정은 목은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의 호이다.
[주D-003]초과(初科)의 장원(狀元) : 고려 공민왕 2년 계사년(1353)에 초과를 실시하여 이제현(李齊賢)이 지공거(知貢擧)가 되고 홍언박(洪彦博)이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었을 때 목은이 을과(乙科) 제1인으로 급제했던 일을 가리킨다.
[주D-004]광암사(光巖寺) 빗돌 : 광 암사는 개성(開城)의 봉명산(鳳鳴山)에 있던 절인데, 공민왕이 일찍이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와 함께 이 절에 자주 행차했었고, 노국대장공주가 죽은 뒤에는 이 절 근처에 공주의 능(陵)을 쓰고 자주 이곳에 와서 공주의 명복을 빌었던바, 따라서 이 절은 노국대장공주의 능 즉 정릉(正陵)의 조포사(造泡寺)가 되었다. 이 절의 비문(碑文)은 우왕(禑王) 때 목은이 찬(撰)하고 한수(韓脩)가 글씨를 썼다.
[주D-005]추령(芻靈) : 띠풀을 묶어서 만든 인형(人形)을 가리키는데, 고인(古人)들이 이것을 죽은 이에게 순장용(殉葬用)으로 사용했었다.
[주D-006]금경(金經) : 금궤(金匱)에 비장(祕藏)한 비서(祕書)를 가리키나, 불전(佛典)인 《금강경(金剛經)》의 약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주D-007]어려서 …… 씀 :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사람이 어려서 배우는 것은 장성하여 그것을 행하기 위해서이다.[夫人幼而學之壯而欲行之]”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梁惠王下》
[주D-008]조맹(趙孟) : 춘 추(春秋) 시대 진(晉)나라의 세경(世卿)이었던 조씨(趙氏) 집을 가리키는데, 조씨는 당시에 권력이 막강하여 작록(爵祿)을 자기 마음대로 사람들에게 주고 뺏고 했었다. 맹자가 이르기를 “조맹이 귀하게 만들었던 사람을 조맹이 능히 천하게도 만들었다.[趙孟之所貴趙孟能賤之]”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告子上》
부질없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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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는 형체 없어 은미하나 눈으로 본 것 같고 / 理隱無形如目視
혀 놀려 말하긴 어려우나 맘은 이미 전한다네 / 言難動舌已心傳
기심 부리는 건 본디 우리 집 일이 아니라서 / 機關不是吾家事
앉아서 남산 마주하니 하늘 가득 비가 내리네 / 坐對南山雨滿天
말은 까칠해라 비밀한 천기를 누설하랴만 / 馬涼肯洩天機祕
용으로 화해라 높은 폭포 계단이 놀라웁네 / 龍化堪驚浪級高
주의 입고 머리 끄덕인 이가 절로 있거니 / 自有朱衣點頭者
그 누가 시력으로 터럭 끝을 본단 말인가 / 誰將眼力見秋毫
[주D-001]말은 …… 누설하랴만 : 천 기(天機)는 곧 내면의 천진(天眞)함을 뜻한다.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이 일찍이 말[馬]의 상(相)을 잘 보았던 구방고(九方皐)로 하여금 천리마(千里馬)를 구해 오게 했는데, 3개월이 지난 뒤에야 구방고가 와서 천리마를 얻었다고 하므로, 목공이 어떤 말이냐고 물으니, 구방고가 누런 암말[牝而黃]이라고 대답하므로, 다른 사람을 시켜 가서 보게 한 결과 검은 숫말[牡而驪]이었다. 그러자 목공이 앞서 구방고를 천거한 그의 친구 백락(伯樂)을 불러 책망하기를 “실패했도다. 그대의 천거로 말을 구해 오게 했던 사람은 말의 색깔도 암수도 알지 못하는데, 무슨 말을 알 수 있단 말인가.” 하니, 백락이 말하기를 “구방고가 본 것은 곧 천기이므로, 그 정(精)한 것만 얻고 추(麤)한 것은 잊어버리며, 내면의 것만 중시하고 외면의 것은 잊어버린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말을 데려와서 보니, 과연 천하의 양마(良馬)였더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列子 說符》
[주D-002]용(龍)으로 …… 놀라웁네 : 황 하(黃河)의 상류에 있는 용문(龍門)의 폭포수는 세 계단으로 되었는데, 강해(江海)의 대어(大魚) 수천 마리가 그 밑에 모였다가 그 폭포를 뛰어오르는 놈은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하는 것을 비유한다.
[주D-003]주의(朱衣) …… 있거니 : 송 (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일찍이 공거(貢擧)를 관장하던 때에 시권(試券)을 고사(考査)할 적마다 자신의 자리 뒤에서 주의를 입은 어떤 사람이 수시로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느낀 다음에야 그 시권이 입격(入格)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과거에 급제한 것을 의미한다.
동당시(東堂試)의 급제자를 방방(放榜)하는데, 나는 병 때문에 가서 구경할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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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정은 예로부터 유풍을 중히 여기어 / 我朝從古重儒風
예악 속에서 삼한의 인재를 도야했거니 / 陶鑄三韓禮樂中
청쇄의 대궐문 열려라 하늘은 광활하고 / 靑瑣闥開天蕩蕩
황금의 방이 나올 제 해는 막 돋아올랐네 / 黃金牓出日曈曈
호명하는 소리 속에 충심은 격앙되고요 / 傳臚聲裏忠心激
절하고 춤추는 반열은 희기가 넘치누나 / 拜舞班中喜氣濃
본래부터 사문은 국체에 관계된 것이라 / 自是斯文關國體
병상의 백발 노인은 너무 좋아 날 것 같네 / 奮飛牀上白頭翁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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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의 늙은 목은이 남의 비난받는 것은 / 韓山牧老被人譏
녹봉받아 처자만 살찌게 한 때문이거니 / 食祿只敎妻子肥
두꺼운 낯은 구우의 가죽보다 두껍거니와 / 顔厚九牛皮尙薄
경미한 몸은 한 개미의 힘이나 똑같다오 / 身輕一蟻力俱微
친구가 있긴 하나 마음은 모두 변하였고 / 舊遊雖在心皆變
소원 이루기 어려워라 도는 이미 글렀네 / 素願難酬道已非
다행히 동산이 있어 그윽한 흥취 부치노니 / 賴有東山寄幽興
묵은 구름 깊은 숲에 남은 빗방울 뿌리누나 / 宿雲深樹洒餘霏
권집경(權執經)의 등제(登第)를 하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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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군의 두 아들은 조상 공훈 힘입었고 / 花原二子席門功
등과하여 할아버지 계승한 이는 없었는데 / 未有登科繼祖翁
가장 기쁜 것은 낭군이 지금 독보인 데다 / 最喜郞君今獨步
예천군 외손이 또 뛰어난 문장가임일세 / 醴泉宅相又宗工
[주D-001]화원군(花原君)의 …… 독보인 데다 : 화 원군은 고려 말기에 벼슬이 지밀직(知密直)에 이르고 화원군에 봉해진 권중달(權仲達)을 가리키는데, 그의 아버지 권한공(權漢功)은 벼슬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르렀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두 아들 사종(嗣宗)과 계용(季容)은 모두 등제(登第)하지 못했고, 사종의 아들인 집경(執經)만 등제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예천군(醴泉君) 외손(外孫) : 예천부원군 권한공의 외손자 염흥방(廉興邦)을 가리킨다.
갑 신년에 진사(進士)가 된 구사평(丘思平)은 내가 젊었을 때 서로 종유(從遊)했던 사람인데, 그 후 서로 못 만난 지 이미 오래여서 생사조차 모르게 된 지가 오래이다. 그런데 상주(尙州)의 동년(同年) 김직지(金直之)의 말을 들어 보니, 구공(丘公)이 선주(善州) 지현(支縣)의 화곡(華谷)에다 집을 매우 번듯하게 짓고 서재(書齋)를 두어 생도(生徒) 30여 인을 가르치면서 빈객(賓客) 접대도 아주 풍성하게 하더라 하고, 김공은 또 그의 용모가 매우 장대한 데다 먹고 마시기도 잘하더라고 말하고, 또 나에게도 언급이 있었다고 말하므로, 한 수를 읊어 이루어서 김 동년에게 부쳐 올리는 바이니, 웃으며 보아주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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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칠방에 종유한 게 격세지감 느껴져라 / 獨七相從似隔生
예로부터 출처는 비평을 받게 된다네 / 由來出處費譏評
소년 시절에 문득 오랜 이별 지었으니 / 少年便作多年別
언제나 다시 예전의 맹세를 되찾을거나 / 何日還尋昔日盟
화곡의 운연은 읊조림을 제공할 텐데 / 華谷雲煙供嘯詠
송산의 세월은 공명 속에 늙어버렸네 / 松山歲月老功名
우연히 상주 고을 김 동방을 인하여 / 偶因上洛金同榜
회고의 느낌이 무단히 한 번 격동되누나 / 感舊無端一動情
육익정(六益亭)에게 받들어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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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려현이라 신계 마을에 / 靑驪新界里
내 친구가 새 정자를 지었으니 / 我友構新亭
밤 주우면 창자 얼마나 윤택할꼬 / 拾栗腸何潤
뽕나무 심어 몸은 절로 편안하리 / 栽桑體自寧
버들 바람엔 읊고 또 휘파람 불고 / 柳風吟又嘯
대 이슬엔 취했다가 도로 깨겠지 / 竹露醉還醒
도연명의 국화만 사랑하지 마소 / 莫愛淵明菊
송악산의 땅이 가장 신령하다네 / 松山地最靈
[주C-001]육익정(六益亭) : 목 은과 진사(進士) 동년(同年)이었던 김직지(金直之)의 호이다. 그는 일찍이 과거(科擧)에 낙방하고는 벼슬을 포기하고 상주(尙州)의 지현(支縣)인 청려현(靑驪縣)에 내려가 새로 집을 짓고 살면서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일찍이 유독 사랑했던 송(松), 죽(竹), 국(菊)에다 상(桑), 율(栗), 유(柳)를 더하여 모두 여섯 가지 나무를 심고 스스로 그 집을 육익정이라 이름했던 것인데, 목은이 일찍이 그의 청에 의하여 〈육익정기(六益亭記)〉를 지었었다.
지정(至正) 계사년(1353) 4월에 익재(益齋) 선생과 양파(陽坡) 선생이 공거(貢擧)를 주관했는데, 연향(燕享)은 없었고, 내가 동년(同年)들과 함께 행렬(行列)을 이루고 있다가 파하고 나서는 곧바로 집에 가서 쉬었으니, 매우 쓸쓸하였다. 을미년(1355)에는 남촌(南村) 이 정승(李政丞)과 성동(星洞) 안 정당(安政堂)이 공거를 주관했는데, 이때 이공(李公)의 고모는 바로 기 황후(奇皇后)의 어머니였으므로, 인하여 수상(壽觴)을 올린 때문에 두 학사(學士)는 모두 연향을 베풀었다. 그러나 예전에 비하면 열에 일고여덟은 줄인 셈이었다. 정유년(1357)의 과거에는 이초은(李樵隱)과 김사정(金思亭)이 공거를 주관했는데, 이초은은 연향을 간략하게 베풀었고, 김사정 또한 그와 같이 하였으되, 다만 일수(日數)가 많았을 뿐이다. 경자년(1360) 과거에는 김 사재(金四宰)와 한 상의(韓商議)가 공거를 주관했는데, 이들은 대략 예전의 규모가 있었다. 임인년(1362)에는 대가(大駕)가 청주(淸州)에 있었는데, 홍양파(洪陽坡)와 유 상의(柳商議)가 공거를 주관했는바, 계사년처럼 연향이 없었다. 을사년(1365)에는 이초은이 재차 지공거(知貢擧)가 되고, 내가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었으며, 기유년(1369)에도 그와 같이 하였다. 신해년(1371)에는 내가 지공거가 되고, 전 정당(田政堂)이 동지공거가 되었다. 갑인년(1374)에는 이 평리(李評理)와 염 정당(廉政堂)이 공거를 주관했는데, 모두 연향을 베풀지 않았다. 금상(今上)이 즉위하자, 말하는 이들이 양파에게 허물을 돌리고 다시 연향을 베푼 것이 지금 두어 차례 과거에서 시행되었는데, 적지 않은 비용을 소비했으므로, 말하는 이들이 또 이를 그르게 여겨 다시 기유년 과거 때처럼 할 것을 청하였다. 이윽고 또 지금 경신년(1380)의 주사(主司)들은 모두 어버이가 생존하여 의당 헌수(獻壽)를 행해야 하는데, 성균시원(成均試員) 서 승지(徐承旨)는 부모가 향리(鄕里)에 있는 관계로 계사년처럼 하기를 청하였고, 염공(廉公)과 박공(朴公)은 모두 어버이를 모시고 있는 터라서 옛 규정에 따라 연향을 베풀었다. 내가 염공에게는 인친(姻親)이 되고, 박공에게는 종백(宗伯)이 되는 처지이니, 법으로는 의당 그 자리에 참예해야 하거니와, 앉아서 생각건대 내가 이 연회에 참예한 것은 오직 을미년 안 정당의 한 자리뿐이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또 며칠 밤을 삭신이 쑤시고 아파서 잠을 통 붙이지 못했는지라, 관디[冠帶]를 갖추고 존장(尊長) 앞에서 기거(起居)하기가 어렵겠으므로, 시 한 편을 읊어 이루어 동정(東亭) 좌하(座下)께 삼가 바치오니, 전람(電覽)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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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영친하는 게 외관 미화함이 아니라 / 榮親榮親匪觀美
문풍을 떨치고자 신자를 권면하는 거로세 / 欲振文風勸臣子
동방의 성대한 일은 주문에 달렸기에 / 東方盛事在主文
현불초를 막론하고 모두 흠모하거니와 / 無賢不肖皆歆企
문전의 도리는 비이슬에 촉촉이 젖고 / 門前桃李雨露濃
방목 위의 용호는 풍운을 일으키었네 / 榜上龍虎風雲起
북당의 홀어머니 일소춘은 있었거니와 / 孀親在堂一笑春
양친 생존은 예로부터 진정 쉽지 않았네 / 具慶由來誠不易
내가 등제했을 때 자리 안 베풂에 대해선 / 我登第時不開筵
양파 선생 훌륭한 강단에 다 탄복했었고 / 剛斷皆服陽坡賢
을미년의 자리는 영친연을 겸했는지라 / 乙未之席因榮宴
성동에는 밤늦도록 관현악 소리 들렸고 / 星洞夜闌聞管絃
정유년 사정의 일은 꿈속만 같을 뿐이요 / 丁酉思亭如夢中
그 후로는 적적하여 번화함이 전혀 없었네 / 爾後寂寂繁華空
경자년에 시험을 관장했던 두 장군에겐 / 庚子主司兩將軍
용사들이 문전에 구름같이 모였었는데 / 貔貅門戶屯如雲
나는 신경에 있어 부름을 받지 못했기에 / 我在新京不見招
적적한 서곡에는 석양만 환히 밝았었네 / 瑞谷寂寂明斜曛
임인년에는 청주에서 여러 능을 바라보며 / 壬寅淸州望諸陵
와신상담에 떨리는 마음 정히 괴로웠고 / 嘗膽政苦心兢兢
을사년에는 요행히도 초옹을 모시고서 / 乙巳僥倖陪樵翁
옛 법규 일체 고쳐 어이 그리 종용했던고 / 舊法一革何從容
조촐한 음식 거처는 흡사 산승 같아서 / 淡飡涼臥山僧如
고관대작도 두부에 채소 반찬만 먹었지 / 大官豆腐盤堆蔬
기유년 이후로는 중국 제도를 모방하여 / 己酉以來倣中國
향시와 전시를 중서성 규례대로 치르고 / 鄕試殿試仍中書
유사가 주선하여 은영연을 성대히 베푸니 / 有司大設恩榮宴
유풍의 성대함이 천재일우의 기회였는데 / 儒風之盛千齡旦
갑자기 선왕께서 승하하시고 난 뒤로는 / 忽爾龍昇鼎湖水
삼 년을 안 바꾼단 게 헛말일 뿐이었네 / 三年無改虛語耳
병진년 정사년 연달아 두 차례 과거엔 / 丙辰丁巳連兩科
조정의 유사 숭상함을 모두 하례한 가운데 / 共賀朝廷尙儒士
양 삶고 계피 쌓고 비단꽃도 만들었으니 / 烹羊積桂錦裁花
풍성케 하여 화려함 겨루자는 게 아니요 / 致豐匪欲爭奢華
태평성대의 기약이 바로 오늘에 있건만 / 太平之期在今日
머리 돌리니 현릉엔 저녁놀만 나는구나 / 回首玄陵飛暮霞
빈 당에 앉아 열두 해의 과거를 세노라니 / 虛堂坐數十二科
유수처럼 흐르는 세월이 서글프기만 하네 / 惆悵流光如逝波
여생에 자못 원하는 건 성회를 직접 보고 / 殘生頗願目盛會
천상의 부모님도 태평을 누리시게 됨일세 / 父母在上熏中和
다만 한스러운 건 더위가 기승을 부려서 / 獨恨炎官稍張勢
머리 숙이고 안락와에 가만히 앉았음일세 / 低頭靜坐安樂窩
한 번 마시는 것도 천정이라 말들 했거니 / 人言一飮亦天定
붓 잡아 뜻을 말한 게지 노래한 게 아니라네 / 援筆言志非爲歌
[주C-001]익재(益齋) 선생과 양파(陽坡) 선생 : 익재는 이제현(李齊賢)의 호이고, 양파는 홍언박(洪彦博)의 호이다.
[주C-002]남촌(南村) …… 안 정당(安政堂) : 이 정승(李政丞)은 당시 찬성사(贊成事)였던 이공수(李公遂)를 가리키고, 안 정당은 당시 밀직 제학(密直提學)이었던 안보(安輔)를 가리킨다.
[주C-003]이초은(李樵隱)과 김사정(金思亭) : 초은은 당시 정당문학(政堂文學)이었던 이인복(李仁復)의 호이고, 사정은 당시 첨서원사(簽書院事)였던 김희조(金希祖)의 호이다.
[주C-004]김 사재(金四宰)와 한 상의(韓商議) : 김 사재는 당시 정당문학이었던 김득배(金得培)를 가리키고, 한 상의는 당시 추밀 직학사(樞密直學士)였던 한방신(韓方信)을 가리킨다
[주C-005]홍양파(洪陽坡)와 유 상의(柳商議) : 홍양파는 당시 우시중(右侍中)이었던 홍언박(洪彦博)을 가리키고, 유 상의는 당시 지도첨의(知都僉議)였던 유숙(柳淑)을 가리킨다.
[주C-006]전 정당(田政堂) : 정당문학 전녹생(田祿生)을 가리킨다.
[주C-007]이 평리(李評理)와 염 정당(廉政堂) : 이 평리는 당시 정당문학이었던 이무방(李茂方)을 가리키고, 염 정당은 당시 밀직사(密直使)였던 염흥방(廉興邦)을 가리킨다.
[주C-008]염공(廉公)과 …… 처지이니 : 염 공은 곧 염흥방(廉興邦)을 가리키고, 박공(朴公)은 바로 충목왕(忠穆王) 3년 정해년(1347)에 목은의 아버지 이곡(李穀)이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주관했던 과거(科擧)에 급제한 박형(朴形)을 가리키는데, 목은이 염흥방과는 처가(妻家) 쪽으로 남매(男妹)간이 되고, 좌주(座主)의 아들을 종백(宗伯)이라 하는바, 박형에게는 좌주의 아들이 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001]영친영친(榮親榮親) : 영친은 곧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부모에게 광영(光榮)을 드리기 위해 베푸는 영친연(榮親宴)을 가리킨다.
[주D-002]주문(主文) : 과거를 보일 때 고시관(考試官) 중에 가장 우두머리를 가리킨다.
[주D-003]문전(門前)의 …… 젖고 : 당 (唐)나라 때 적인걸(狄仁傑)이 일찍이 천거한 요원숭(姚元崇), 환언범(桓彦範) 등 수십 인이 모두 명신(名臣)이 되었으므로, 혹자가 적인걸에게 말하기를 “천하의 도리가 모두 공의 문에 있었다.[天下桃李悉在公門矣]”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훌륭한 좌주(座主)에 의하여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음을 의미한다.
[주D-004]방목(榜目) …… 일으키었네 : 당 덕종(唐德宗) 연간에 구양첨(歐陽詹)이 한유(韓愈), 이강(李絳) 등 23인과 함께 육지(陸贄)의 방중(榜中)에 줄지어 급제했는데, 그들이 모두 당시의 준걸(俊傑)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일러 용호방(龍虎榜)이라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과거에 급제하여 모두 벼슬길에 나가게 된 것을 의미한다.
[주D-005]북당(北堂)의 …… 있었거니와 : 일 소춘(一笑春)은 곧 모친(母親)이 기뻐하여 웃는 모습을 가리킨 것으로, 한 소제(漢昭帝) 때 준불의(雋不疑)가 경조 윤(京兆尹)이 되어 매양 현(縣)을 순행하면서 죄수들을 조사하고 돌아올 적마다 늙은 모친이 준불의에게 “이번에는 평번(平反)을 해서 몇 사람이나 살렸느냐?”고 물었는데, 만일 준불의가 평번을 해서 죄를 감해 준 것이 많았으면 그의 모친이 기뻐하여 웃으면서 밥도 잘 먹었고, 평번한 것이 없었을 경우에는 노하여 밥도 먹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소식(蘇軾)의 〈화소주태수왕규보시태부인관등지십(和蘇州太守王規父侍太夫人觀燈之什)〉 시에 “낙빈에 시종한 이는 삼인이 부귀하였고, 경조 윤의 평번엔 한 번 웃는 봄이 있었네.[洛濱侍從三人貴 京兆平反一笑春]”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11》
[주D-006]성동(星洞) : 을미년 과거에 동지공거(同知貢擧)를 맡았던 당시 정당문학 안보(安輔)가 살았던 마을을 가리킨다.
[주D-007]경자년에 …… 장군 : 김득배(金得培)와 한방신(韓方信)을 가리킨다.
[주D-008]임인년에는 …… 괴로웠고 : 공민왕 10년 신축년(1361) 동짓달에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공민왕이 남쪽으로 행행하여 그다음 해인 임인년까지 청주(淸州)에 있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9]을사년에는 …… 종용했던고 : 초 옹(樵翁)은 호가 초은(樵隱)인 이인복(李仁復)을 가리킨다. 공민왕 14년 을사년(1365) 과거에서 이인복은 지공거(知貢擧)가 되고 목은은 동지공거가 되어 과거를 치렀는데, 이때는 전혀 연회(宴會)를 베풀지 않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10]삼 년을 …… 게 : 공 자가 이르기를 “아버지가 생존했을 때는 그의 뜻을 보고,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그의 행실을 보나니, 삼 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바꾸지 않아야만 효라 할 수 있는 것이다.[父在觀其志父沒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한 데서 온 말인데, 군부(君父)는 일체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곧 군신(君臣) 간의 일을 부자(父子)간의 일과 같이 보아서 한 말이다. 《論語 學而》
[주D-011]병진년 …… 과거엔 : 고 려 우왕(禑王) 2년 병진년(1376)에는 정당문학 홍중선(洪仲宣)이 지공거가 되고, 지밀직(知密直) 한수(韓脩)가 동지공거가 되어 정총(鄭摠) 등 33인에게 급제(及第)를 내렸고, 우왕 3년 정사년(1377)에는 죽성군(竹城君) 안극인(安克仁)이 지공거가 되고, 정당문학 권중화(權仲和)가 동지공거가 되어 성석연(成石珚) 등 33인에게 급제를 내렸다.
[주D-012]열두 해의 과거 : 이 시(詩)의 서(序)에 나오는 계사년, 을미년, 정유년, 경자년, 임인년, 을사년, 기유년, 신해년, 갑인년, 경신년의 과거와 이 시의 본문(本文)에 나오는 병진년, 정사년의 과거를 모두 합해서 말한 것이다.
[주D-013]안락와(安樂窩) : 본래는 송(宋)나라 소옹(邵雍)의 거실(居室) 이름인데, 여기서는 목은이 자기 거실을 소옹의 거실에 견주어 말한 것이다.
[주D-014]한 번 …… 했거니 : 《태평광기(太平廣記)》, 《전등록(傳燈錄)》 등에 “한 번 마시고 한 번 쪼아먹는 것도 각각 정해진 분수가 있다.” 한 것을 이른 말로, 전하여 세상의 모든 일이 정해진 분수가 있어 억지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곡성 대인(曲城大人) 좌하(座下)께 받들어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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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의 당 앞에 백일은 길기도 하여라 / 具慶堂前白日長
익재의 성대한 일은 동방에 으뜸인데 / 益齋盛事冠東方
이제는 문득 그 일을 동정에 양보하여 / 如今却讓東亭步
문생의 헌수하는 잔을 재차 받는구려 / 再領門生獻壽觴
[주D-001]구경(具慶) : 부모가 다 생존한 것을 가리킨 말이다.
[주D-002]익재(益齋)의 …… 으뜸인데 : 고 려 충숙왕(忠肅王) 7년 경신년(1320)에 익재 이제현(李齊賢)이 34세의 나이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였는데, 당시 익재의 아버지 문정공(文定公) 이진(李瑱)과 어머니 진한국 대부인(辰韓國大夫人)이 다 건강하였으므로, 익재가 손수 술잔을 들어 부모님께 칭수(稱壽)하여 온 세상이 이를 흠모하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이제는 …… 받는구려 : 동 정(東亭)은 곧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의 아들인 염흥방(廉興邦)의 호인데, 그가 우왕 6년 경신년(1380)에 과거를 주관하고 마치 익재 때와 같이 잔치를 베풀어 자기 부모인 곡성부원군 양위(兩位)에 칭수를 올렸으므로 이른 말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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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끗 중히 여겨 교의를 잊었다가도 / 重利忘交誼
기회를 당하면 본심을 움직이어라 / 臨機動本心
사람의 꾀는 본디 절로 교묘하지만 / 人謀元自巧
물욕도 또한 깊은 것이라 하겠네 / 物欲亦云深
가랑비는 갑자기 창문에 뿌려대고 / 細雨俄侵戶
맑은 바람은 문득 옷깃에 가득하니 / 淸風忽滿襟
정경의 담박함은 약간 기쁘건만 / 稍欣情境淡
그 누가 줄 없는 거문고를 탈꼬 / 誰弄沒絃琴
[주D-001]그 …… 탈꼬 : 진(晉)나라 도잠(陶潛)은 음률(音律)을 알지 못하면서도 줄 없는 거문고 하나를 간직하고서 술이 거나할 때마다 그 거문고를 어루만져 자기의 뜻을 부쳤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헌수(獻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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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바람 가랑비가 서늘한 기운 일으킬 제 / 風輕雨細産微涼
관현악 연주에 춤추는 소매는 너울너울 / 鳳管鯤絃舞袖長
재사들 앞에 나와 축수의 술잔 올리어라 / 玉笋前頭酙壽酒
태평 재상은 고당 한가운데 앉았네그려 / 太平宰相坐中堂
[주D-001]태평 재상(太平宰相) : 세상을 태평하게 다스린 재상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곧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을 가리킨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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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뒤로 상종한 이는 적어졌지만 / 病後相從少
한가함 속에 소득은 도리어 많구나 / 閑中所得多
바람을 당해선 옥나무를 생각하고 / 臨風思玉樹
달을 대해선 금빛 물결을 감상하네 / 對月賞金波
앉아서 상린의 설을 읽다 보니 / 坐讀麟祥說
봉덕의 노래를 듣는 것 같구려 / 如聞鳳德歌
풍속이 점점 야박해짐을 알겠어라 / 漸知風俗薄
내 또한 나를 어찌할 수 없네그려 / 吾亦奈吾何
[주D-001]바람을 …… 생각하고 :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최종지는 말쑥한 아름다운 소년인데, 술잔 들고 흰 눈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바람 앞에 선 옥나무같이 깨끗하였네.[宗之瀟灑美少年擧觴白眼望靑天 皎如玉樹臨風前]”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상린(祥麟)의 설 : 한 유(韓愈)가 일찍이 노 애공(魯哀公) 14년 봄에 기린이 나와서 잡힌 것을 두고 지은 〈획린해(獲麟解)〉에 “기린이 영물(靈物)임은 분명하다.……아무리 부인 소자(小子)라도 모두 그것이 상서로운 것인 줄을 안다.……기린이 나온 때에는 반드시 성인(聖人)이 재위(在位)했었으니, 기린은 성인을 위해서 나오는 것이요, 성인은 반드시 기린을 알아보나니, 기린은 과연 상서로운 것이다.……그러나 기린이 기린이 된 까닭은 덕(德) 때문이요 형체(形體) 때문이 아니니, 만일 기린이 성인을 기다리지 않고 나온다면 상서롭지 않은 것이라 하여도 타당하겠다.” 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봉덕(鳳德)의 노래 : 춘 추 시대 초(楚)나라의 은자(隱者)였던 미치광이 접여(接輿)가 공자(孔子)의 수레 앞을 지나면서, 봉(鳳)이란 본디 태평한 때에만 나타나고 무도(無道)한 세상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도한 세상에 숨지 않고 애써 도를 행하려고 돌아다니는 공자를 기롱하여 노래하기를 “봉이여 봉이여, 어찌 그리도 덕이 쇠했는고.[鳳兮鳳兮 何德之衰]” 한 것을 이른 말이다. 《論語 微子》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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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고 속 털어놓고 주정도 부리지만 / 對面輸情逞酒容
산과 바다가 몇천 겹인 줄 어찌 알리오 / 那知山海有千重
착한 이는 예로부터 다른 재능 없었거니와 / 休休自昔無他技
환히 깨달은 나는 지금 정종을 알았다오 / 了了吾今識正宗
얼음이나 끓는 물이나 다 물이라 이르거늘 / 摠道氷湯皆是水
괜히 복사꽃 오얏꽃이 솔만 못하다 말하네 / 謾言桃李不如松
빗소리 자리에 가득코 남쪽 창 밝아올 제 / 雨聲滿榻南窓白
조용히 앉았노라니 도의 맛이 농후하구려 / 靜坐悠然道味濃
[주D-001]산과 …… 알리오 : 이 백(李白)의 〈공후요(箜篌謠)〉에 “다른 사람들 가슴속에는, 산과 바다가 그 몇천 겹인고? 친구하자고 말은 선뜻 하지만, 얼굴 대하면 구의봉과 똑같다네. 꽃 피었다 반드시 일찍 떨어지니, 복사꽃 오얏꽃은 소나무만 못하다오. 관중 포숙이 죽은 지 이미 오래이니, 어느 누가 그 자취를 이을런고?[他人方寸間山海幾千重 輕言託朋友 對面九疑峯 開花必早落 桃李不如松 管鮑久已死 何人繼其蹤]” 한 데서 온 말이다. 《李太白詩集 卷2》
[주D-002]착한 …… 없었거니와 : 《서 경(書經)》 진서(秦誓)에 “만일 한 신하가 정성스럽고 다른 재능은 없으나, 그 마음이 착하여 포용함이 있는 듯하여, 남이 지닌 재능을 마치 자기가 지닌 것처럼 여기고, 남의 성스러움을 마음속으로 좋아하기를 마치 자기 입에서 나온 것처럼 여길 뿐만이 아니라면 그는 진실로 남을 능히 포용하는 것이어서 우리 자손과 백성을 보전할 수 있으리니, 오히려 또한 유리할 것이다.[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彦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寔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尙亦有利哉]”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정종(正宗) : 특히 학문의 정파(正派)를 이르는 말이다.
삼가 고율(古律) 두 편(篇)을 이루어 박 학사(朴學士) 좌하(座下)께 받들어 올리다. 전편에서는 박씨(朴氏)의 사성(賜姓)에 관한 사유를 추술(追述)하고, 후편에서는 우리 선군(先君)께서 정해년에 인재를 얻은 성대한 일을 대략 진술하였으며, 중간에는 모두 오늘의 영광에 대한 감사의 뜻을 말하였다. 나는 병 때문에 초청을 받고도 가지 못하니, 열람해 주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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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의 천표로 인해 박이라 호칭했는데 / 雞林天瓢號爲朴
개성까지 널리 뻗어 어이 그리 혁혁한고 / 蔓延扶蘇何赫奕
근대의 풍류로는 행산을 다 일컫거니와 / 近代風流稱杏山
부친을 계승한 이는 병인년 노사백인데 / 幹蠱丙寅老詞伯
지금 공이 계승한 게 바로 승중이거니 / 今公繼之是承重
삼현의 대대로 학사를 전하는 집이로세 / 三峴家傳學士宅
성은으로 특별히 영친연을 윤허하시니 / 聖恩特許壽高堂
천일의 위광이 항상 지척에 있고말고 / 天日不違顔咫尺
높다란 집에는 맑은 바람이 솔솔 불고 / 飄颻宇下淸風生
우뚝한 연석 앞엔 평계가 그득 쌓여라 / 突兀筵前平桂積
늘어선 인재들은 좌석에 광채를 발하고 / 森森玉笋照座光
넘실대는 술잔에는 푸른 하늘이 비치고 / 灩灩金盃映天碧
대관 갑족들이 안팎에 구름처럼 모여라 / 大官甲族溢內外
요란한 관현악 소리 조석으로 들레겠지 / 急管繁絃咽朝夕
공이야 실수 없이 당초에 초청했거니와 / 微我有咎初投書
선군 생각에 나 또한 참석하고 싶고말고 / 先君之思欲參席
인생에 이런 기회는 쉬 얻기 어렵거니와 / 人生此會非易得
더구나 내 머리는 눈처럼 희어졌음에랴 / 況是吾頭如雪白
생각건대 예로 대접함은 경중이 있는 건데 / 翻思禮食有重輕
유유히 홀로 앉아서 게으름이 버릇되었네 / 獨坐悠悠懶成癖
선군이 정해년에 동지공거로 인재 뽑아 / 先君丁亥副禮圍
삼십삼 인이 옥수처럼 광휘를 발하는데 / 三十三人玉樹輝
자식으론 부조 사업을 충실히 계승했고 / 如子肯堂仍肯構
지금 공은 사문의 학문도 잘 전수하였네 / 今公傳鉢又傳衣
영친의 연향에 관해선 재상이 주청했고 / 榮親宴享台司奏
효성 넓히는 규모는 어필에 의거했도다 / 廣孝規模御筆依
양부의 악기 연주엔 청탁의 소리 섞이고 / 兩部鏗鏘雜淸濁
팔진미는 중첩해라 맛있는 음식 쌓이었네 / 八珍重疊積甘肥
줄지어 앉은 손들은 오사모가 반듯하고 / 聯翩座客烏紗整
문생들이 갈도하매 수레는 나는 듯하고요 / 呵喝門生翠蓋飛
춤추는 적삼의 향기 흩어져라 바람은 솔솔 / 香散舞衫風細細
노래하는 부채에 메아리쳐라 비는 부슬부슬 / 響搖歌扇雨霏霏
자당 안색 흐뭇하니 하늘이 응당 감동하리 / 慈顔喜動天應感
효성을 펴는 데는 예물과 예의가 있고말고 / 孝懇披來物有儀
부러워함은 외인 친척이 다 같으려니와 / 歆艷定知疏戚共
정결함은 모두 고금에 드물다 말들 하네 / 潔精皆道古今稀
행산의 남은 복은 냇물이 바다로 흐르듯 한데 / 杏山餘慶川流海
유동의 그윽한 집은 풀이 사립에 비칠 뿐이네 / 柳洞幽居草映扉
병이 많아 가서 하례 못 한 게 가련한 데다 / 多病自憐難進賀
시문을 써도 좋은 작품 못 이뤄 부끄럽구려 / 揮毫又愧乏珠璣
[주C-001]박 학사(朴學士) : 고 려 말기에 벼슬이 밀직사(密直使)에 이르고, 조선 초기에 찬성사(贊成事)로 치사한 박형(朴形)을 가리키는데, 이 시는 곧 우왕 6년 경신년(1380)에 박형이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급제자를 뽑고 영친연(榮親宴)을 베풀게 된 것을 축하한 것이다. 박형은 또한 앞서 고려 충목왕 3년 정해년(1347)에 목은의 아버지 이곡(李穀)이 대제학(大提學)으로 동지공거가 되어 김인관(金仁琯) 등 33인을 뽑았을 때 한수(韓脩) 등과 함께 급제했었다.
[주D-001]계림(鷄林)의 …… 호칭했는데 : 천 표(天瓢)는 전설에 천신(天神)이 비를 내릴 때 사용한다는 바가지인데, 여기서는 곧 박씨(朴氏)의 시조(始祖)인 혁거세(赫居世)가 마치 박[瓢]처럼 생긴 알[卵] 속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을 박씨로 했다는 신화를 두고 이른 말이다.
[주D-002]행산(杏山) : 박전지(朴全之)의 호이다. 그는 일찍이 원(元)나라에 가서 문장(文章)으로 명성을 널리 떨쳤고, 벼슬은 수첨의찬성사(守僉議贊成事)에 이르렀는데, 박형(朴形)에게는 증조(曾祖)가 된다.
[주D-003]부친을 …… 노사백(老詞伯)인데 : 노사백은 곧 원로 문장가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바로 박전지의 아들로서 충숙왕 13년 병인년(1326)에 지공거가 되어 최원우(崔元遇) 등을 뽑은 박원(朴遠)을 가리키는데, 박형에게는 조(祖)가 된다.
[주D-004]지금 …… 승중(承重)이거니 : 박형이 그의 할아버지 뒤를 이어 과거를 주관했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주D-005]평계(平桂) : 옛날에 생강과 함께 육고기의 양념으로 반드시 쓰였던 육계(肉桂)를 가리킨다.
[주D-006]효성 넓히는[廣孝] : 어 버이에게 효도하는 마음을 다른 사람에까지 베푸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아버지의 친구에 대해서는 그의 수레는 탈 수 있으나 그의 옷은 입을 수 없나니, 이것이 군자가 효도를 넓히는 바이다.[於父之執 可以乘其車 不可以衣其衣君子以廣孝也]” 하였다. 《禮記 坊記》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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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을 짙게 흐리고 새벽에 또 흐리어라 / 數日濃陰曉又濃
담담한 흥취는 오직 이 백발 늙은이로세 / 淡然情興白頭翁
친구는 다정한 체하나 마음은 다 차갑고 / 故交佯熱心皆冷
비운은 끝내 궁하거니 명이 어찌 통하랴 / 否運終窮命豈通
산악이 문득 나뉘어라 안개 처음 걷히고 / 山岳忽分初罷霧
원림은 절로 적막한데 바람도 안 부누나 / 園林自寂更無風
언제나 여강 달 아래 길이 휘파람 불어 / 何時長嘯驪江月
분분하고 번란한 속을 멀리 벗어나 볼꼬 / 逈脫紛紛擾擾中
의교는 끝내 담담하고 세교는 농후한데 / 義交終淡勢交濃
쓸쓸히 홀로 앉아 있는 한 독옹이로다 / 獨坐蕭條一禿翁
기영의 높은 풍치는 소보를 사모커니와 / 箕潁高標企巢父
하분의 옛 학문은 왕통을 비루케 여기네 / 河汾舊學鄙王通
흐린 물에 달이 안 보임은 가련하거니와 / 自憐濁水不見月
큰 소나무엔 꼭 바람 있다고 누가 말했나 / 誰道長松必有風
여기 다 닳아진 붓 한 자루가 아니라면 / 不是中山老毛穎
이 인생 가슴속을 토로할 길이 없으리 / 此生無計謝胸中
[주D-001]의교(義交)는 …… 농후한데 : 의교는 도의(道義)로써 사귄 친구 간을 말하고, 세교는 세리(勢利)로써 사귄 친구 간을 말한다.
[주D-002]독옹(禿翁) : 나이 늙어서 관작(官爵)의 권세(權勢)가 없는 사람을 이른 말이다.
[주D-003]기영(箕潁)의 …… 사모커니와 : 기영은 기산(箕山)과 영수(潁水)를 합칭한 말인데, 요(堯) 임금 때에 고사(高士)인 소보(巢父), 허유(許由)가 기산, 영수 사이에 은거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4]하분(河汾)의 …… 여기네 : 하 분은 하수(河水)와 분수(汾水)를 합칭한 말인데, 수(隋)나라 말기의 유학자(儒學者) 왕통(王通)이 벼슬하지 않고 하수, 분수 사이에서 생도(生徒)들을 교수(敎授)했던바, 수업(受業)한 생도가 무려 1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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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마음 존양이 이미 수년이건만 / 病裏存心已數年
공부가 미숙해 아직도 아득할 뿐인데 / 功夫未熟尙茫然
시관은 나의 천심을 시험하고자 하여 / 主司欲驗吾深淺
천거한 사람을 다시 주상께 천거하네 / 所薦之人更薦天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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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논함은 거울처럼 곱고 추함 가리거니와 / 論文如鑑別姸媸
절묘한 곳은 예로부터 바꿀 수가 없고말고 / 妙處由來不可移
학사는 몇 번이나 일오색부에 헷갈렸던고 / 學士幾番迷日賦
응시자는 모두 운수가 다행하기만 바라네 / 擧人壹是幸天時
아직도 다생의 기습 있음은 누가 알랴만 / 誰知尙有多生習
일찍이 반점의 사도 없었음은 자부하노라 / 自負曾無半點私
뒤에 오는 유자들에게 간절히 고하노니 / 報向後來縫掖者
명명함 속에 조물옹이 잘 부지해주리라 / 冥冥造物善扶持
[주D-001]학사(學士)는 …… 헷갈렸던고 : 학 사는 곧 시관(試官)을 가리킨다. 당 덕종(唐德宗) 때 이정(李程)이 일찍이 굉사과(宏辭科)에 응시하여 〈일오색부(日五色賦)〉를 지었던바, 그 파제(破題)에 “덕은 하늘의 보심을 감동시키고, 상서는 태양 빛을 열었도다.[德動天鑑 祥開日華]” 하였는데, 같은 응시자였던 양오릉(楊於陵)이 이정의 파제를 보고는 그에게 말하기를 “공(公)이 금년에 반드시 장원(壯元)할 것이다.” 하고, 그다음 날 보니, 방명(榜名)에 이정의 이름이 빠졌으므로, 양오릉이 몹시 불만스럽게 여겨 그 시권(試券)에 작자의 이름을 가린 채로 시관(試官)에게 가져가 보이면서 이 글이 어떠냐고 묻자, 시관이 말하기를 “장원이 아니고는 이런 글을 지을 수 없다.”고 하므로, 양오릉이 말하기를 “진실로 그렇다면 시랑(侍郞)께서는 이미 훌륭한 인재를 놓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정이 지은 글입니다.” 하니, 시관이 급히 이정을 불러들여 다시 그를 장원으로 뽑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다생(多生) : 불교 용어로, 중생(衆生)들이 선악(善惡)의 업(業)을 지음으로 인해 윤회(輪廻)의 고통을 받아 생사(生死)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양전(梁甸) 편을 통하여 안변(安邊)의 장자온(張子溫) 영공(令公)에게 받들어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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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 시절에 상종한 것이 꿈속만 같아라 / 總角相從似夢中
늘그막엔 도리어 전혀 만나지를 못하네 / 老年還是馬牛風
유안의 백모를 그 누가 능히 미칠쏜가 / 幼安白帽誰能及
병든 나그네 무단히 얼굴이 붉어지누나 / 病客無端面發紅
[주D-001]유안(幼安)의 백모(白帽) : 유 안은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관녕(管寧)의 자이다. 그가 일찍이 황건적(黃巾賊)의 난리를 피해 요동(遼東)으로 건너가서 40년 가까이 생도(生徒)들을 가르치며 명제(明帝)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청빈(淸貧)을 달게 여겨 항상 검은 모자[皁帽]를 착용하고 지냈던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 말한 백모(白帽)의 백(白) 자는 바로 조(皁) 자의 착오인 듯하다.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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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내린 행산에 화려한 자리 열어라 / 杏山微雨錦筵開
긴긴 날에 갈고는 꽃 피길 재촉할 텐데 / 白日遲遲羯鼓催
총재가 중앙에 앉으니 참으로 성사거니와 / 冢宰當中眞盛事
아래 있는 제생들은 다 뛰어난 인재로세 / 諸生在下摠雄材
이미 과거 보여서 처음 인재를 뽑았거니 / 已將丹桂初題目
황금을 다시 대에 비치할 것 없고말고 / 不用黃金更置臺
병중에 그 몇 과거나 헛되이 지나쳤던고 / 病裏幾科虛過了
이번엔 봄빛이 관에 들오는 걸 혹 볼라나 / 倘看春色入關來
[주D-001]긴긴 …… 텐데 : 살 구꽃 등 여러 가지 꽃들이 한창 피었음을 의미한다. 갈고(羯鼓)는 말가죽으로 메운 장고를 가리키는데, 당 현종(唐玄宗)은 본디 음률(音律)을 잘 안 데다 갈고를 특히 좋아했던바, 한번은 2월 초 어느 날 밤비 갠 아침에 내정(內庭)의 버들개지, 살구꽃 등이 막 터져나오려는 것을 보고는 역사(力士)를 시켜 갈고를 가져다가 친히 춘호광(春好光) 한 곡조를 지어 갈고를 연주하고 나서 돌아보니, 버들개지, 살구꽃 등이 이미 다 터져나왔더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황금(黃金)을 …… 없고말고 : 전국 시대 연 소왕(燕昭王)이 역수(易水) 가에 황금대(黃金臺)를 지어 놓고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불러들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즉 대(臺) 위에 천금(千金)을 비치하고 천하의 현사를 초빙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D-003]이번엔 …… 볼라나 : 은 영연(恩榮宴)에 참석할 의사가 있음을 의미한다. 소식(蘇軾)이 지방 공사(貢士)에 합격한 이들을 위한 축하연을 두고 지은 〈녹명연(鹿鳴宴)〉 시에 “금잔에 국화 띄워 축하연 열기를 재촉하여라, 붉은 꽃술은 봄 맞이해 관에 들오길 기다리리.[金罍浮菊催開宴 紅蘂將春待入關]” 하였다.
이 선생(李先生)이 가죽신의 재료를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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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칠한 곰가죽 두껍기도 해라 / 黑漆熊皮厚
편지에 위아래 장식품이라 했거니 / 書云上下粧
앞으로는 대궐문에 조회갈 적에 / 他時朝紫闥
오경의 찬 서리를 밟을 수 있겠네 / 可踏五更霜
동정(東亭)이 성찬(盛饌)을 가지고 방문하였으므로, 시를 지어서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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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에 축수 올리고 조관에게 연회 베풀고 / 獻壽高堂宴宰樞
다시 성찬을 가지고 못난 선비 방문하였네 / 更携盛饌訪迂儒
쇠잔한 생이 여리에 광영 있길 바랐으랴만 / 殘生豈望光閭里
누추한 집이 도리어 화폭에 남길 만하구려 / 弊止還堪作畫圖
부부는 자리 함께해 애정이 무르녹고요 / 夫婦共筵情爛熳
아손들은 나눠 앉아 기색도 화락하여라 / 兒孫分坐色怡愉
반성해 보니 매우 분에 넘친 건 두려우나 / 反觀自恐踰涯甚
자리 가득 청풍일랑 부를 것도 없고말고 / 滿榻淸風不用呼
손의 물음에 대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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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손이 선생에게 묻기를 / 客有問先生
붕우는 인륜의 가장 끝에 있으니 / 朋友人倫末
이상의 네 가지만 잘 실천한다면 / 四者旣得宜
이건 없어도 꼭 달하리라 하기에 / 無之亦必達
선생이 이를 몹시 노여워하여 / 先生怒之甚
말을 하려 해도 잘 나오질 않네 / 欲言猶戞戞
강습을 해야만 도가 밝아지나니 / 講習道乃明
책선하는 데 마음을 꼭 다해야지 / 責善心乃竭
그렇지 않으면 금수로 돌아가서 / 不然禽獸歸
이에 하늘의 벌을 받게 되나니라 / 斯爲上帝割
아 세상이 하도나 혼탁해져서 / 嗟嗟世溷濁
분분하게 방자히 서로 날뛰거니 / 紛紛競挑撻
서로 보아 선케 함을 안 힘입고 / 不賴相觀善
어디로 좇아 부족한 선을 채우랴 / 何從□飢渴
질문한 이가 수긍하는 걸 보니 / 問者□肯□
그의 맘이 확 트였음을 알겠구려 / 知渠方寸豁
[주D-001]꼭 달하리라[必達] : 달 (達)은 곧 덕(德)이 남에게 믿음을 주어 행함에 있어 얻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이른 말인데, 자장(子張)이 묻기를 “선비가 어떻게 해야 달이라 할 수 있습니까?” 하니,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네가 말하는 달이란 것이 무엇이냐?” 하자, 자장이 말하기를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명성[聞]이 나고, 집에 있어도 반드시 명성이 나는 것입니다.” 하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이것은 문(聞)이요 달이 아니다. 달이란 것은 순진하고 정직하여 의리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관찰해서 생각하여 자기 몸을 낮추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달하며, 집에 있어도 반드시 달하느니라. 문이란 것은 얼굴빛은 인(仁)한 척하나 행실은 어긋나며, 옳다고 자처하여 의심하지 않나니, 이런 사람은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명성이 나고, 집에 있어도 반드시 명성이 나느니라.”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顔淵》
[주D-002]서로 …… 함 :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서로 관찰하여 착해지도록 인도하는 것을 연마라 한다.[相觀而善之謂磨]” 한 데서 온 말이다.
제현(諸賢)의 시운에 차(次)하여 이 아원(李亞元)을 하례하고, 그다음은 그의 부친인 둔촌(遁村)에게 부치고, 그다음은 회포를 서술하였다. 모두 세 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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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의 호명 소리에 햇빛도 화사로워라 / 殿上傳臚日色新
어사화 향기 풍기니 거리 가득 봄이로세 / 賜花香動滿街春
그대 마음은 내 한을 꼭 알진 못하겠지 / 君心未必知吾恨
그대가 제일인자 안 된 게 바로 한이라네 / 恨不前頭更有人
둔촌은 무상한 세정을 길이 탄식하거니 / 遁村長嘆世情新
병든 나무가 앞으로 몇 봄이나 지낼런고 / 病樹前頭幾度春
오늘 이 좋은 회포를 다 펴지 않으려나 / 今日好懷開盡未
큰 자제가 그래도 어여쁜 사람이고말고 / 一郞猶是可憐人
연래에 모지라진 백발 자꾸만 더해 가는데 / 種種年來白髮新
꿈속엔 아직도 곡강의 봄을 기억하노라 / 夢中猶記曲江春
문장이 반드시 국가 경영하는 건 아닌데 / 文章未必能經國
주상께 후한 은택 힘입음이 마냥 부끄럽네 / 厚祿深慚荷主人
[주C-001]이 아원(李亞元) :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큰아들로, 우왕 6년 경신년(1380)에 갑과(甲科) 제2인으로 급제한 이지직(李之直)을 가리킨다.
[주D-001]꿈속엔 …… 기억하노라 : 목 은이 일찍이 원(元)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했을 때의 일을 가리킨다. 곡강(曲江)은 바로 당송(唐宋) 시대에 급제자를 방방(放榜)한 다음, 이들을 곡강정(曲江亭)에 모아 놓고 주연(酒宴)을 크게 베풀었던 데서 온 말인데, 이것을 곡강회(曲江會) 또는 문희연(聞喜宴)이라고도 한다.
홀로 앉아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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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앉아서 천고를 생각하노니 / 獨坐思千古
유유함이 어찌 유독 지금뿐이랴 / 悠悠豈□今
뜰에서 읊을 땐 그림자 벗이 반갑고 / 庭吟幸携影
누각서 휘파람 불면 여운이 감도네 / 樓嘯有遺音
하늘이 트여라 구름은 바다로 가고 / 天豁雲歸海
샘물은 흘러라 달은 숲에 가득하네 / 泉鳴月滿林
자연의 정경이 이렇게 담박하니 / 自然情境淡
번거로운 생각 씻을 것 없고말고 / 不用滌煩襟
밀 성(密城) 박언진(朴彦珍)은 내 신사년의 동년(同年)인바, 그를 못 만난 지 지금 10여 년이 되었는데, 오늘 그가 찾아와서 그의 관함(官銜)을 보니 서운관 정(書雲觀正)이었고, 그의 얼굴을 보니 검기는 하나 매우 건장해 보였다. 또 그가 말하기를 “양 동년 세신(梁同年世臣)은 늙어서 문밖을 나갈 수는 없으나 아직은 평안하다.”라고 하므로, 매우 기뻐서 아울러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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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후는 얼굴은 검으나 아직은 건강한데 / 朴侯顔黑尙康強
양 노인은 팔순에도 와상에서 읊는다네 / 梁老八旬吟在牀
병 많은 목은 늙은이 나이는 가장 적어라 / 多病牧翁年最少
인간 득실은 본디 저 하늘에 달린 거로세 / 乘除自有彼蒼蒼
이슬 젖은 꽃은 곱게 아침 햇살 맞이하고 / 露葩粲粲迎朝旭
단풍잎 늘어진 곳엔 석양이 서로 비치네 / 霜葉離離映夕陽
눈앞에 흐르는 세월을 그 누가 체득할꼬 / 眼底流光誰體得
예로부터 인간의 일이 참으로 슬프다마다 / 古來人事足悲傷
스스로 탄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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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아프면 또 불돌로 찜질하고 / 腰酸又熨瓦
마음 괴로우면 길이 시를 읊노라 / 心悶長吟詩
내 신세는 다만 이와 같을 뿐이니 / 身世只如此
심하여라 나의 노쇠한 몰골이여 / 甚矣吾之衰
흰 구름은 푸른 하늘을 운행하되 / 白雲行碧天
말고 펴는 게 때가 있는 듯하지만 / 卷舒如有時
이는 또한 우연일 뿐이라네 / 是亦偶然耳
무심함은 내가 본받는 바이로되 / 無心吾所師
본받는 그 자취가 서로 다르니 / 師之跡乃異
후일에 나를 알 이가 그 누굴런고 / 後來知者誰
위학의 금령이 하도나 준엄하여 / 僞學禁令峻
문인들이 배신한 자가 많았기에 / 門人多背馳
송의 사직은 높은 집을 지었지만 / 宋社遂峙屋
대의는 끝내 어그러지고 말았네 / 大義終乖離
나는 운명일 뿐이라고 이르노라 / 吾謂氣運耳
중니는 도가 내게 있다 했지만 / 仲尼文在玆
기린이 나와서 잡힌 것을 보고는 / 麟出乃見獲
눈물 닦으며 왜 그리 슬퍼했던고 / 反袂何其悲
몇몇 악인이야 책하잘 게 있으랴 / 數子豈足責
해와 달은 만고에 드리우는걸 / 日月萬古垂
유수는 날로 도도히 흘러가고 / 流水日滔滔
세도는 날로 유유하기만 한데 / 世道日悠悠
질병과 늙음이 함께 찾아와서 / 病與老交至
내 인생은 지금 백발이 되었네 / 吾生今白頭
사람을 만나면 모두 초면 같으니 / 相逢皆如新
다행히 서로 원수지간은 아니라 / 幸不爲仇讎
술잔 앞에선 실컷 웃고 즐기지만 / 盃酒極懽笑
급한 때엔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 緩急何所求
애오라지 천명이나 즐길 뿐일세 / 庶以樂天命
본래부터 나는 동무가 적었는걸 / 由來吾寡儔
[주D-001]위학(僞學)의 …… 준엄하여 : 위 학은 곧 거짓된 학문이란 뜻으로, 남송 영종(南宋寧宗) 연간에 한탁주(韓侂冑)가 조여우(趙汝愚)와 권력을 겨루다가 주희(朱熹) 등 도학자(道學者)들이 모두 조여우의 편이 된 것을 본 나머지, 그가 권세를 잡고 나서는, 탐하고 방자한 것이 바로 사람의 진정(眞情)이요, 청렴결백하여 수행(修行)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곧 거짓된 사람이라 하여, 마침내 도학을 위학이라 칭하고 도학을 숭상하던 당시 승상(丞相) 조여우 등 59인을 모조리 파척(罷斥)하고, 주희의 도학에 찬동하는 선비들을 일절 등용하지 말도록 금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중니(仲尼)는 …… 했지만 : 공 자가 일찍이 광(匡)에서 위태함을 당하여 이르기를 “문왕이 이미 작고했으니, 도가 나에게 있지 않겠는가. 하늘이 이 도를 망치려고 할진댄 뒤에 죽을 내가 이 도에 참여하지 못했겠거니와, 하늘이 이 도를 망치지 않을진댄 광 사람이 나를 어찌하겠는가.[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주D-003]기린이 …… 슬퍼했던고 : 노 애공(魯哀公) 14년 봄에 기린이 나왔다가 잡혔는데, 공자가 기린은 본디 성왕(聖王)의 상서인데 성왕이 없는 세상에 잘못 나왔다 잡혀 죽은 것을 몹시 마음 아프게 여겨 소매를 들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는 데서 온 말이다. 《春秋公羊傳 哀公14年》
종이를 가져오게 하여 성랑(省郞)에게 편지를 써서 출사(出謝)하기를 요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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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 시켜 이웃집 종이 얻어 오게 하여 / 赤脚南鄰喚楮生
중서성 아래에 내 깊은 정성 부치노라 / 紫微花下寄中情
근년 들어 전체 삼십사 개의 도부에서 / 年來三十四都府
반드시 사람마다 반기를 들진 않았었네 / 未必人人親弄兵
[주D-001]도부(都府) : 고려 시대에 군사 1000명을 단위로 하여 편성한 군대, 또는 그 군대를 관할하여 다스리는 관청이라고 하는데, 《고려사(高麗史)》 선거지(選擧志)에 의하면, 42도부(都府)로 되어 있으니,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설사[泄痢]가 나서 이중산(理中散)을 요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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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바로 평생을 글 읽은 늙은이인데 / 平生汝是讀書翁
백발토록 어이해 몸 지킬 줄을 모르나 / 白髮胡然昧保躬
음식 기거는 모두 내게 달린 것이려니와 / 飮食起居皆在我
한가히 자적하면 흥이 절로 무궁하리라 / 閑居自適興無窮
모진 더위에 지침은 밖에서 온 것이지만 / 炎威見爍雖由外
약으로 병 치는 건 곧 속을 다스림일세 / 藥味能攻是理中
모르겠다 그 약을 어디서 구해 얻을꼬 / 未識求之何處得
온종일 북쪽 창 맑은 바람에 누웠노라 / 北窓終日臥淸風
[주C-001]이중산(理中散) : 한의학(漢醫學)에서 복통, 설사 등에 사용하는 약화제(藥和劑) 이름이다.
어제 동정(東亭)의 초대를 받고 가서 밤중에야 가마에 실려 돌아왔다가, 새벽에 이르러 놀라 깨어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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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몸 화연에 참여함이 얼마나 다행한고 / 病軀何幸與華筵
좌중의 손들은 모두가 당세의 어진 이였네 / 座客盡爲當世賢
황홀하긴 요대 같으나 달 아래는 아니요 / 怳似瑤臺非月下
자손들은 옥수 같은데 또 바람 앞이로세 / 森如玉樹又風前
거룩한 공신 책록은 한신의 무공이 빛나고 / 山河誓冊輝韓鉞
-원문 빠짐- 사조의 시편이 방불하네 / □□□□□謝篇
잔뜩 취해 가마에 실려 유동에 돌아와서는 / 泥醉扶輿歸柳洞
새벽 창 아래 남은 흥취에 꿈이 번뜩 깨누나 / 曉窓餘興夢蘧然
[주D-001]요대(瑤臺) : 요대는 천상(天上)의 선궁(仙宮)을 말한 것으로, 여기서는 곧 자리가 매우 화려함을 의미한다.
[주D-002]자손들은 …… 앞이로세 : 여 기서는 곧 훌륭한 자손들을 가리켜 한 말이다.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최종지는 말쑥한 아름다운 소년인데, 술잔 들고 흰 눈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바람 앞에 선 옥나무같이 깨끗하였네.[宗之瀟灑美少年 擧觴白眼望靑天 皎如玉樹臨風前]”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거룩한 …… 방불하네 : 동 정(東亭) 염흥방(廉興邦)의 가문이 문무(文武)를 겸비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신(韓信)은 대장군(大將軍)으로서 한 고조(漢高祖)의 공신(功臣)이 되었고, 사조(謝脁)는 남제(南齊) 때에 시명(詩名)이 아주 높았었는바, 백거이(白居易)가 영호 상공(令狐相公)에게 답한 시에 의하면 “사조의 시편과 한신의 무공을, 일생에 둘 다 얻은 이는 그대만 한 이 없으리.[謝朓篇章韓信鉞 一生雙得不如君]” 하였다. 《白樂天詩後集卷7》
팥죽을 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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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을 깨끗이 씻어서 새롭게 하기 위해 / 澡雪肝腸欲致新
한낮에 한 그릇 마시니 정신이 상쾌하네 / 午窓一啜快精神
사기를 치는 덴 다른 계책도 없진 않으나 / 攻邪未必無他策
농가의 기미가 순진함을 기뻐할 뿐이라오 / 只喜田家氣味眞
금곡의 신속함은 사모하는 바 아니지만 / 金谷咄嗟非所慕
남산의 묵은 꼴이야 짜증날 만하고말고 / 南山蕪穢亦堪嗔
유유한 천고 이래 진정한 영웅호걸들은 / 悠悠千古英雄輩
거친 밥 먹고 지내다 모두 사라져 갔는걸 / 細嚼麤飡總化塵
[주D-001]사기(邪氣)를 치는 덴 : 민속(民俗)에 동짓날이면 팥죽을 쑤워 먹어서 액운(厄運)을 방지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금곡(金谷)의 신속함 : 금 곡은 진(晉)나라 때 부호(富豪)였던 석숭(石崇)의 금곡원(金谷園)을 가리키는데, 석숭은 매양 금곡원에 빈객(賓客)을 모아서 주연(酒宴)을 베풀곤 했던바, 그는 빈객을 위해 팥죽 또한 아주 신속하게 쑤워 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남산(南山)의 묵은 꼴 : 두 보(杜甫)가 일찍이 함양현(咸陽縣)과 화원현(華原縣)의 제자(諸子)에게 부친 시에 “장안의 독한 추위를 누가 유독 슬퍼하는고, 두릉야로는 뼈가 정말 부러지려 한다네. 남산의 팥 모종은 진작에 묵어버렸고, 청문의 외밭은 새로 얼어 쩍쩍 갈라지누나.[長安苦寒誰獨悲杜陵野老骨欲折 南山豆苗早荒穢 靑門瓜地新凍裂]”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卷2 投簡咸華兩縣諸子》
교주 염사(交州廉使) 박 회장(朴會長)이 보내 준 애밀(崖蜜)과 오미자(五味子)를 받고 시(詩)로써 사례하다. 붓을 달려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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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 단 두 가지 맛이 절로 조화되었거니 / 酸甘異味在調和
은정의 공부도 이보다 나을 것 없고말고 / 殷鼎功夫亦不多
누가 알랴 목은 늙은이 한가한 세월 속에 / 誰識牧翁閑日月
오창 아래 끓여 마시면 읊조림도 청아할 줄 / 午窓湯飮足淸哦
[주C-001]박 회장(朴會長) : 당시 회장이었던 박의중(朴宜中)을 가리킨다.
[주D-001]은정(殷鼎) : 은 고종(殷高宗)이 재상 부열(傅說)에게 이르기를 “내가 만일 여러 가지 양념을 섞어서 국을 끓이려 하거든 그대는 오직 소금과 매실이 되어 주오.[若作和羹 爾惟鹽梅]”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說命下》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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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창 햇빛이 맑기가 가을날 같아서 / 曉窓日色淡如秋
병든 몸 회복코자 와유하기에 꼭 알맞네 / 病骨欲蘇供臥遊
노쇠하나 다행한 건 환경 따라 편안함이라 / 衰老幸然安所遇
무더워도 이것 있어 즐기면서 근심 잊노니 / 炎蒸得此樂忘憂
붓 빼들고 절구를 한가히 써내려 가는데 / 抽毫絶句閑來寫
시렁 가득 서책들은 그지없이 찬란하구려 / 滿架陳編爛不收
들쭉날쭉 푸른 숲 요란한 꾀꼬리 소리에 / 綠樹參差鶯語亂
개중의 흥취가 참으로 유유하기만 하네 / 箇中情興儘悠悠
마음이 흡사 가을빛 띈 장강과도 같아서 / 心似長江帶素秋
선경에 생각 부치니 고상한 놀이 그것일세 / 寄懷仙境當高游
단약 고는 솥엔 아홉 번 고는 걸 배우지만 / 煉丹有鼎學九轉
붓 들어 문장 짓자면 온갖 근심을 열거하네 / 落筆成章名百憂
물이 골짜기서 나와 시내는 이미 벌창하고 / 水出谷中溪已漲
구름이 하늘가로 옮기어 비는 막 개었구나 / 雲行天際雨初收
이 늙은이 홀로 풍진 밖에 앉았노라니 / 老翁獨坐風塵外
덧없는 세상 아득해라 모두가 거짓일세 / 浮世茫茫儘謬悠
우곡(愚谷), 익재(益齋) 등 여러 선생께서 귀양(歸養)차 가는 진사(進士) 홍민구(洪敏求)에게 준 시에 발(跋)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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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하는 건 비록 효자로 논할 수 있지만 / 歸養雖將孝子論
포양하는 덴 대인의 말을 얻기 어렵고말고 / 褒揚難得大人言
송악산은 만고토록 시권에 전해지려니와 / 松山萬古傳詩卷
철동의 세 집 중에선 죽헌만 빠졌네그려 / 鐵洞三菴少竹軒
후생을 격려하던 풍채는 이미 멀어졌으나 / 激勵後生風采遠
어렴풋이 전배의 전형은 그대로 남았어라 / 依俙前輩典刑存
외가의 옛 덕택은 지워 없애기 어렵나니 / 外家舊德難磨去
급제한 후일엔 어머니 은혜에 보답하겠지 / 登第他年報母恩
[주C-001]귀양(歸養) :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1]철동(鐵洞)의 …… 빠졌네그려 : 우곡(愚谷) 정이오(鄭以吾),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죽헌(竹軒) 김륜(金倫)이 모두 철동에 살면서 아주 친밀히 종유(從游)했었는데, 홍민구(洪敏求)의 시권(詩卷)에 유독 죽헌의 시만 들어 있지 않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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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니 두 눈은 상쾌하고 / 晨興雙眸淸
낯 씻고 머리 빗어 몸도 가벼운데 / 盥櫛身更輕
계집애 시켜 붓과 벼루 가져오니 / 小娃進筆硯
방촌의 이 마음 유유하기만 해라 / 悠悠方寸情
풍아의 근원을 조용히 읊조리노니 / 吟哦風雅源
태평성대에 난 것이 다행타마다 / 幸哉生太平
그 옛날 양양한 군자에 대해서는 / 陽陽古君子
멀리 그 명성을 진작 들었거니와 / 遠矣聞其聲
세도가 날로 형통해져 가거니 / 世道日交泰
남풍가를 어느 때나 이어 부를꼬 / 南風何時賡
천지가 이적과 중국으로 나뉜 건 / 天地判夷夏
그 기가 절로 갈라져 나뉜 것이라 / 其氣區以分
뜻 있는 이를 스승으로 삼아서 / 有志爲之師
엄연히 신하가 임금 섬기듯 하네 / 儼如臣事君
밝은 창 앞에서 옛 서책을 대하면 / 晴窓對黃卷
성현들과 한 무리가 될 수 있나니 / 聖賢可與羣
온화하게 읍양을 함께 하노라면 / 雍容共揖讓
높기가 방훈에 이를 수도 있으리 / 高可參放勳
조용한 새벽은 절로 잠깐일 뿐이라 / 平旦自難久
해가 뜨면 다시 분분해질 수밖에 / 日出還紛紛
군자는 출처를 한사코 삼가서 / 君子愼出處
끝내 구차히 하지 말아야 하리 / 終身勿草草
공자는 가장 큰 성인이었지만 / 仲尼大聖人
도덕 품고 국란을 안 구했거니 / 迷邦懷其寶
마땅하여라 안자 민자 무리가 / 宜哉顔閔徒
은거하여 깊이 강구함 있던 것이 / 屛居深有討
나는 그보다 천재 뒤에 태어나서 / 我生千載下
식견 일찍 못 지닌 게 부끄러워라 / 達識愧不早
한 치의 마음을 돌이켜 살피건대 / 反觀方寸間
하늘이 어찌 그리도 광대한고 / 昊天何浩浩
[주D-001]그 …… 군자(君子) : 《시 경(詩經)》 왕풍(王風) 군자양양(君子陽陽)에 “군자님은 기분이 좋아서, 왼손에는 생황을 들고, 오른손으론 나를 방중악으로 부르니, 아 참말로 즐거웁도다.[君子陽陽 左執簧 右招我由房 其樂只且]”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현자(賢者)가 세상에 도(道)를 행할 수 없음을 알고 낮은 악관(樂官)의 자리에 숨어 녹사(祿仕)하면서 만족한 체하는 것을 보고 그의 친구가 이를 아름답게 여겨 노래한 것이다.
[주D-002]남풍가(南風歌) : 순 (舜) 임금이 처음으로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지어 불렀다는 노래로, 즉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노염을 풀어 줄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할 만하도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03]읍양(揖讓) : 본디 읍하여 서로 겸양하는 뜻을 나타내는 것을 말하는데, 특히 요순(堯舜) 시대에 천자(天子)의 자리를 서로 선양(禪讓)했던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D-004]높기가 …… 있으리 : 방 훈(放勳)은 요(堯) 임금의 별칭인데, 공자가 이르기를 “크도다, 요 임금의 임금됨이여. 높도다, 오직 하늘이 가장 크거늘, 오직 요 임금이 하늘을 본받으시니, 하도 넓고 원대하여, 백성들이 말로 형용할 수 없도다.[大哉 堯之爲君也 巍巍乎 唯天爲大 唯堯則之 蕩蕩乎 民無能名焉]”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泰伯》
[주D-005]공자(孔子)는 …… 구했거니 : 노 (魯)나라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인 양화(陽貨)가 일찍이 길에서 공자를 만나서 말하기를 “도덕을 속에 품고 어지러운 나라를 그대로 두는 것이 인하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해와 달이 쉬지 않고 흘러가서 세월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느니라.[懷其寶而迷其邦 可謂仁乎……日月逝矣 歲不我與]”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陽貨》
[주D-006]안자(顔子) 민자(閔子) :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와 민손(閔損)을 가리키는데, 두 사람 모두 벼슬하지 않고 안빈낙도(安貧樂道)로 일생을 보냈다.
유매(兪邁)가 그의 좌주(座主)인 광양군(光陽君)에 게 죄를 짓고 하소연할 곳이 없자 나에게 와서 그 사실을 말하였으니, 그의 뜻을 관찰하건대 나에게 그의 좌주와 화해시켜 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생(門生)은 좌주에 대해서 마치 부자(父子) 사이와 같은 것이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죄를 짓고서 어찌 제삼자에게 부탁하여 화해를 구할 수 있겠는가. 다만 조석(朝夕)으로 간절히 애걸하여 어느 날 갑자기 자애스러운 마음이 발하기만을 기다릴 뿐인 것이다. 내가 일찍이 성균(成均)을 주관했을 때 마침 유매가 제생(諸生)으로 있었기 때문에 내가 차마 스스로 멀리할 수 없어 이와 같이 충고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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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생과 좌주의 사이는 / 門生與座主
골육지친과 똑같이 보거니와 / 視猶骨肉親
사문은 국가의 대동맥과 같아서 / 斯文大血脈
앉아서 국운을 새롭게 하는 건데 / 坐令邦命新
어찌하여 스스로 삼가지 않아서 / 奈何不自愼
뭇 비방이 한 몸에 모이게 했는고 / 衆謗叢厥身
혈맥이 화평해야 몸이 건강하고 / 脈和體強健
화기가 넘쳐야 정신이 통하거니와 / 氣盎流精神
혈맥이 혼란하면 곧 죽게 되나니 / 脈亂喪無日
암만 살이 쪄도 진을 보전 못 하리 / 雖肥難保眞
지은 죄를 간절히 사과 드리게나 / 肉袒且乞罪
군자는 반드시 인륜을 밝혀야지 / 君子明彝倫
[주C-001]광양군(光陽君) : 고려 말기에 벼슬이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이르고 광양부원군(光陽府院君)에 봉해진 이무방(李茂芳)을 가리킨다.
산중음(山中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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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절벽엔 인적이 전혀 없고 / 蒼崖絶人跡
낙락장송만 반공중에 솟아 있어 / 長松橫半天
흰 구름은 그 밑으로 지나가고 / 白雲過其下
여라 덩굴도 이리저리 뻗었는데 / 女蘿仍蔓延
때로는 학이 있어 혹 날아오고 / 有時鶴飛來
때로는 원숭이가 타고 오를 뿐 / 有時猿攀緣
이 세상에 녹피옹이 없는지라 / 世無鹿皮翁
적막해진 지 지금 천년이로세 / 寂寞今千年
내 또한 세상을 피하는 선비인데 / 我亦避世士
몸은 우선 명리에 얽혀 있지만 / 身爲名利牽
내가 본시 선풍도골인 때문에 / 尙賴是道骨
길이 세속 초탈하기만 생각하네 / □想長飄然
조용히 읊어 그윽한 정 토로하나 / 微吟吐幽素
또 덧없는 세상에 전할까 두려워 / 又恐浮世傳
하염없는 이 산중의 의미를 / 悠悠山中意
줄 없는 거문고에 쓰려 하노라 / 欲寫琴無絃
[주D-001]녹피옹(鹿皮翁) : 옛 선인(仙人)의 이름이다. 열선전(列仙傳)에 의하면, 잠산(岑山) 위에는 본디 신천(神泉)이 있었으나, 산세가 하도 험준하여 아무도 오르지 못했는데, 녹피옹이 일찍이 그곳에 잔도(棧道)를 만들어 이것을 타고 정상(頂上)에 올라간 뒤에는 다시 속세에 내려오지 않고 그곳에서 지초(芝草)를 캐 먹고 신천을 마시면서 살았다고 한다.
[주D-002]줄 없는 거문고 : 진(晉)나라 도잠(陶潛)은 음률(音律)을 알지 못하면서도 줄 없는 거문고 하나를 간직하고서 술이 거나할 때마다 그 거문고를 어루만져 자기의 뜻을 부쳤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6월 10일이 졸옹(拙翁)의 기일(忌日)인데, 그의 사위인 권 판서(權判書)가 승려들을 시켜 재(齋)를 올렸으니, 이것은 향속(鄕俗)이다. 나는 약간의 조의(助儀)를 가지고 가서 제사에 참석하고 돌아와서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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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은 적막해라 풀밭에 연기만 뿌옇고 / 猊山寂寞草浮煙
전배의 풍류는 이미 아득한 옛날이로세 / 前輩風流已渺然
가의 재주는 임금이 중용했다 말들 하지만 / 謾說誼才爲帝重
사마천 사기는 사위가 전한 게 가련하여라 / 可憐遷史有甥傳
여기저기 먼 봉우리들은 병풍을 둘러친 듯 / 遙岑點點如橫嶂
드문드문 가랑비는 자리를 씻으려 하는데 / 細雨疏疏欲洒筵
백발의 후생이 와서 전 드리는 걸 돕노라니 / 白髮後生來助奠
고금의 감회에 젖어 마음만 졸일 뿐이로다 / 感今懷古只心煎
[주C-001]졸옹(拙翁) : 고 려 후기의 문장가로 원(元)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하고 벼슬이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던 최해(崔瀣)의 호이다. 그는 성품이 워낙 강직하여 벼슬길이 순탄치 못했고, 만년에는 사자갑사(獅子甲寺)의 땅을 빌려 손수 농사를 짓고 살면서 예산농은(猊山農隱)이라 자호하였다.
[주D-001]가의(賈誼) …… 하지만 : 한 문제(漢文帝) 때 가의가 소년으로 중용(重用)되어 한 해에 태중대부(太中大夫)에까지 올랐고, 심지어는 천자(天子)가 그를 공경(公卿)의 지위에까지 올리려고 했었으나, 끝내 훈구(勳舊)들의 참소에 의해 장사 태부(長沙太傅)로 쫓겨나는 등 소외를 받다가 마침내 33세의 나이로 요절했는데, 여기서는 최해 또한 재학(才學)은 뛰어났으나 중용되지 못했음을 안타깝게 여겨 한 말이다.
[주D-002]사마천(司馬遷) …… 가련하여라 : 사 마천이 지은 《사기(史記)》가 한 선제(漢宣帝) 때에 이르러 그의 외손인 평통후(平通侯) 양운(楊惲)에 의해서 비로소 세상에 선포(宣布)된 것을 이른 말인데, 여기서는 최해 또한 사위가 그의 재(齋)를 올린 것을 두고 사마천에 비유한 것이다.
옛일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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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주의 하얀 용모 누대 아래 떨어지더니 / 綠珠樓下墜如霜
금곡원은 황량해라 저녁볕만 비추누나 / 金谷荒涼照夕陽
한탄스럽기도 해라 자운은 천록각에서 / 惆悵子雲天祿閤
온몸이 청정하던 그 또한 황급했었네 / 滿腔淸淨亦蒼黃
[주D-001]녹주(綠珠)의 …… 비추누나 : 녹 주는 진(晉)나라 때 부호(富豪)였던 석숭(石崇)의 애기(愛妓)로서 미색(美色)이 뛰어났었고, 금곡원(金谷園)은 바로 석숭의 원명(園名)인데, 당시 조왕 윤(趙王倫)의 하수인이던 손수(孫秀)가 녹주의 미색을 탐하여 석숭에게 녹주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석숭이 듣지 않으므로, 손수가 조왕 윤에게 석숭을 잡아 죽이도록 권유하여 마침내 석숭을 체포하기 위해 금곡원으로 갑사(甲士)들이 들이닥치자, 그때 마침 석숭은 녹주를 데리고 청량대(靑涼臺)에서 놀고 있다가 녹주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너 때문에 죽게 되었다.” 하니, 녹주가 슬피 울면서 스스로 청량대 아래로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한탄스럽기도 …… 황급했었네 : 왕 망(王莽)이 한실(漢室)을 찬탈했을 당시, 양웅(揚雄)의 제자인 유분(劉棻)이 왕망에게 체포되어 치죄(治罪)를 받음에 따라 양웅도 여기에 연루되어 옥리(獄吏)가 그를 체포하러 갔을 때, 그는 마침 천록각(天祿閣)에서 교서(校書)를 하고 있다가 자기도 죽음을 면치 못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천록각에서 그대로 뛰어내려 거의 죽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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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 밑에 검은 구름이 급히 달릴 제 / 白雲之下黑雲馳
처음엔 흰 구름은 옮기지 않은 듯하더니 / 馳疾初如白不移
찬찬히 보니 둘 다 동으로 감을 알겠어라 / 注目方知兩東去
하늘 가득 먹구름이 사방으로 드리우누나 / 滿天陰翳四方垂
흡사 중국에 분주히 왕래하던 그날 같고 / 眞如航海梯山日
정히 바로 천둥 치고 비 내리는 때이로다 / 政是雷屯雨解時
기고만장한 신룡은 변화를 능히 하거니 / 矯矯神龍能變化
성인은 본디 자연에서 조짐을 취한다네 / 聖人取象本無爲
칠재(七宰) 박보로(朴普老)의 아들 대도(大都)가 자기 아버지의 묘지명(墓誌銘)을 지어달라고 요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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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척의 큰 키에 수염도 아름다웠는데 / 身長七尺美鬚髥
무략은 뛰어난 데다 사무도 유능하였지 / 武略超羣吏事兼
왜구 방어한 남긴 풍도는 강역에 떨쳤고 / 禦寇餘風振疆埸
백성 사랑한 깊은 은택은 여염을 적셨네 / 愛民深澤浸閭閻
문득 기로들에겐 먼저 감을 놀라게 했고 / 忽敎耆老驚先逝
공연히 재상감이란 말만 운운하였구려 / 謾道英賢屬具瞻
병든 몸으로 관에 들어 함께 사은했더니 / 扶病入關同拜舞
존엄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완연하구나 / 宛然顔範尙尊嚴
[주C-001]박보로(朴普老) : 고려 말기의 무신(武臣)으로 수차에 걸쳐 왜구(倭寇)를 크게 무찔러 많은 공을 세웠고, 벼슬이 문하 평리(門下評理)에 이르렀다.
절구(絶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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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구름 벗어지고 햇빛이 새어나오자 / 宿雲解駁日光穿
여생에 푸른 하늘 봄을 몹시 기뻐했더니 / 大喜餘生覩碧天
다시 맑은 향기가 좌석 가득 불어와서 / 更有淸香吹滿座
짤막한 시 두서너 편을 적어 내노라 / 小詩題出兩三篇
임술년에 있을 관족사(灌足寺) 미륵 석상(彌勒石像)의 용화회(龍華會)를 주선해 온 한 스님이 나에게 연화문(緣化文)을 지어 달라고 요구하여 이미 그 글을 지어 주고, 인하여 옛날에 내가 자당(慈堂)을 모시고 진포(鎭浦)에서 배를 타고 올라오다가 이 절의 법회(法會)에 참여하게 되었던 일과 계묘년 겨울에 향(香)을 내려 법회를 열게 했던 일이 모두 꿈결처럼 기억이 나므로, 단가(短歌)를 지어서 그 사실을 기록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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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의 동쪽으로 백여 리쯤 되는 곳에 / 馬邑之東百餘里
은진현이라 그 안에 관족사가 있고요 / 市津縣中灌足寺
여기엔 크나큰 석상 미륵존이 있으니 / 有大石像彌勒尊
내 나간다 나간다며 땅속에서 솟았다네 / 我出我出湧從地
눈처럼 하얗게 우뚝이 큰 들을 임하니 / 巍然雪色臨大野
농부들은 벼를 베어 보시를 하거니와 / 農夫刈稻充檀施
때로는 땀 흘려 군신을 경계도 시키는데 / 時時流汗警君臣
구전만이 아니라 국사에도 실렸고말고 / 不獨口傳藏國史
계묘년 동짓달엔 변방의 경보가 급하여 / 癸卯仲冬邊報急
내가 또 향을 받아서 급히 달려가면서 / 我又降香馳汲汲
한 장의 흰 종이에 상께서 서명한 것을 / 一張白紙上所署
내 손가락 새에 쥐고 매우 감읍했는데 / 掛向指間吾感泣
흉인들이 패주하고 조정이 청명해지니 / 兇人敗走朝著淸
지금도 선왕의 명철함을 다 노래한다네 / 至今歌詠先王明
회상하건대 내 젊어서 어머니를 모시고 / 回思少也侍慈顔
우러러 예배하고 배를 타고 돌아오다가 / 目瞻頂禮浮舟還
용화수 아래에 중생이 가득 모였을 제 / 龍華樹下人天會
이미 그 반열에 자취를 나란히 했었으니 / 已擬簉跡於其班
더구나 지금 글을 지어 널리 초대한다면 / 況又把筆廣邀請
성심껏 보시하기를 누가 다시 아끼리오 / 傾心施財誰復慳
근원을 밝히는 데 다만 일념을 갖는다면 / 直截根原只一念
삼세가 한 치의 마음 사이에 분명해지리 / 三世分明方寸間
남으로 바라보니 운산이 그 몇천 겹인고 / 南望雲山幾千疊
내 지금 허리 다리 뻣뻣한 게 한스러워라 / 恨殺我今腰脚頑
[주C-001]관족사(灌足寺) : 충 청남도 논산군(論山郡) 은진현(恩津縣)의 반야산(般若山)에 있는 관촉사(灌燭寺)의 다른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시대에 한 여인(女人)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가보았더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에서 솟아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조정(朝廷)에서 이 소문을 듣고는 중 혜명(慧明)에게 그 바위에 불상(佛像)을 조성하도록 명함으로써 마침내 혜명이 100여 명의 공장(工匠)을 데리고 30여 년의 공사 끝에 드디어 불상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설화(說話)가 전하는데, 특히 이 미륵 석상(彌勒石像)은 국가가 태평할 때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국란(國亂)이 있게 되면 불상의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도 빛을 잃었다는 설화가 가장 유명하다.
[주C-002]용화회(龍華會) : 불교에서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성불(成佛)한 뒤에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는 법회(法會)를 이른다.
[주C-003]연화문(緣化文) : 연화하는 글을 가리키는데, 연화는 불법(佛法)을 들을 만한 인연이 있는 이들을 권하여 인도한다는 뜻으로, 즉 권화(勸化)와 같은 뜻이다.
[주D-001]용화수(龍華樹) : 인도(印度) 지방에 널리 야생하는 교목(喬木) 이름인데, 미륵보살이 수억 년 뒤에 이 세계(世界)에 출현하여 이 나무 밑에서 성도(成道)한다고 한다.
[주D-002]삼세(三世) : 불교 용어로, 과거, 현재, 미래, 또는 전세(前世), 현세(現世), 내세(來世)를 말한다.
박 학사(朴學士)가 특별히 누추한 내 집에 들러서 명일(明日)의 모임에 나와 달라고 초청하고 떠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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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한 모임을 참여할 길 없어라 / 盛會無緣赴
남은 생이 벌써 가소롭기만 하네 / 餘生已自嗤
수고롬 잊고 음주 모임 초청했는데 / 忘勞邀飮酒
나는 앉아 흥겨워서 시를 쓰노라니 / 乘興坐題詩
산비는 개었다가 다시 내리고 / 山雨晴還作
숲 바람은 더운 뒤에 다시 부누나 / 林風暑更來
백발 나이로 -원문 빠짐- / 白頭□□□
분에 따라 청명 시대나 즐길 뿐이네 / 隨分樂淸時
유두(流頭)가 벌써 가까워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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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인생 자손도 곁에 없이 / 孤生無左右
유월도 이미 절반에 이르렀어라 / 六月已中央
유두절이 다가옴은 정히 기쁘나 / 政喜流頭近
기다란 빗줄기가 다시 생각나네 / 還思雨脚長
돌 틈 샘물은 눈같이 차가웁고 / 石泉如雪冷
솔숲은 절로 가을처럼 서늘하네 / 松樹自秋涼
더위의 독을 모조리 녹여 없애고 / 熱毒都消盡
시 짓는 창자를 꿀물로 적시노라 / 詩脾潤蜜漿
[주C-001]유두(流頭) : 민 속 명절의 하나로, 복중(伏中)에 들어 있는 음력 6월 15일 즉 유둣날을 가리킨다. 이날은 일가 친척이 함께 모여 맑은 시내나 산의 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다음, 집에서 장만해 간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를 지내는데, 이렇게 하면 여름에 질병을 물리치고 더위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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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가 사람에 스며 온몸은 촉촉하고 / 雨氣侵人潤髮膚
높은 집은 사면으로 바람벽도 없는지라 / 高堂四面壁仍無
산새들은 짹짹 깊은 숲에서 울어대고 / 山禽恰恰啼深樹
온종일 맑은 바람이 자리에 가득하네 / 盡日淸風滿座隅
이슬이 서리로 변화함은 시종이 있기에 / 露結爲霜有始終
빗물이 도랑 가득타 눈이 날기도 하나니 / 雨盈溝澮雪漫空
때에 따라 잘 조섭하면 참으로 무사하리 / 順時調燮眞無事
요의 선양 탕의 정벌이 중도일 뿐이라네 / 堯禪湯征只一中
젊어선 떼 지어 놀다 늙어선 홀로 앉아서 / 少日羣游老獨居
미쳐 읊건 조용히 읊건 여유롭기만 하네 / 狂吟靜嘯盡徐舒
모진 추위 더위 장마는 순환하는 일이라 / 祁寒暑雨循環事
천명을 안 연래에는 즐거움이 유여하구나 / 知命年來樂有餘
[주D-001]요(堯)의 …… 뿐이라네 : 요 임금은 순(舜) 임금에게 천자(天子)의 자리를 선양(禪讓)하였고, 탕(湯) 임금은 무도한 걸(桀) 임금을 쳐서 내쫓고 스스로 천자가 되었으나, 요 임금과 탕 임금의 행위가 똑같이 중도(中道)에서 나온 것임을 의미한다.
채련곡(採蓮曲). 구씨(舅氏)에게 받들어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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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풍기는 어이 그리도 맑고 고운고 / 江南風氣何淸姸
이름난 꽃 뛰어난 품이 다 신선 같건만 / 名花絶品皆神仙
연은 군자로 깨끗하게 우뚝 섰다 했거니 / 蓮爲君子號淸植
상하로 햇살 비쳐 붉은 단장 선명도 해라 / 日照上下紅粧鮮
얼굴이 백옥 같은 아리따운 여인이 있어 / 有女婉婉白如玉
미소 지으며 물결 새로 그림배 저어 가면 / 笑向波間撑畫船
검은 쪽머리 비스듬 푸른 일산 움직일 제 / 綠鬟斜墮翠蓋動
향기론 소맷자락 바람에 가끔 펄럭이고요 / 風吹香袂時翩翩
돌아올 땐 비단버선 이슬에 흠뻑 젖은 채 / 歸來羅襪濃露濕
연기처럼 푸른 깁 창 앞에 서로 마주하네 / 碧窓相對紗如煙
하랑이랑 순령과 교묘히 서로 비슷하여 / 何郞荀令巧相似
시인들의 품평이 세상에 많이 전해 오는데 / 詩家題品多流傳
누가 알았으랴 일만 산 가장 깊은 곳에 / 誰知萬山最深處
한 구역이 완연히 강남 하늘과 흡사한걸 / 一區宛爾江南天
그 가운데 채련곡 한 가지만 없을 뿐이라 / 於中只欠採蓮曲
백발로 남쪽 바라보며 유유한 맘 그지없어 / 白頭南望心悠然
문득 벼슬 사퇴하고 가서 구씨를 모시고 / 便欲乞身陪杖屨
상통 술 실컷 마시며 시편을 쓰고 싶다오 / 象筒劇飮題詩篇
늘그막의 소원을 하늘이 막지만 않는다면 / 老來所願天不靳
오는 해나 그 명년까지는 볼 수가 있으련만 / 看取來歲幷明年
[주C-001]채련곡(採蓮曲) : 악 부(樂府) 청상곡(淸商曲) 이름으로, 본디 “강남은 연을 취할 만하여라, 연잎이 어이 그리 늘어서 있는고.[江南可採蓮 蓮葉何田田]”라는 한대(漢代)의 강남곡(江南曲)에서 비롯되었다 하는데, 그 후 양 무제(梁武帝)를 비롯하여 수많은 문인(文人)들이 채련곡을 지었는바, 그 내용은 흔히 남녀 간에 서로 사모하는 뜻을 서술하고 있다.
[주D-001]연(蓮)은 …… 했거니 :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의하면 연꽃을 가리켜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아서 우뚝이 깨끗하게 서 있다.[香遠益淸 亭亭淨植]” 하고, 또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이다.[蓮花中之君子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하랑(何郞)이랑 순령(荀令) : 하 랑은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하안(何晏)을 가리키는데, 그는 용모가 하도 희고 아름답게 생긴 데다 또한 곱게 꾸미기를 좋아하여 당시에 뛰어난 미남자(美男子)로 일컬어졌고, 순령 역시 위나라 사람으로 상서령(尙書令)을 지낸 순욱(荀彧)을 가리키는데, 그는 일찍이 아주 특이한 향[異香]을 취하여 항상 옷에 훈증시켜 입고 다녔으므로, 그가 한번 다녀간 집에는 남은 향기가 3일 동안을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는 곧 하안의 아름다운 용모와 순욱의 향기를 연(蓮)의 꽃과 향기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3]상통(象筒) : 삼 국 시대 위나라 정각(鄭慤)이 삼복(三伏) 때마다 빈료(賓僚)들을 거느리고 사군림(使君林)에서 피서(避暑)를 했는데, 항상 큰 연잎에 술 서 되[三升]를 담고 연의 잎과 줄기의 사이를 비녀로 뚫어서 술이 줄기를 타고 내려오게 하여 줄기를 마치 코끼리의 코[象鼻]처럼 구부려서 줄기 끝에 입을 대고 술을 빨아 마시면서 이를 벽통주(碧筒酒)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대서(代書)하여 김 좌윤(金左尹) 형(兄)에게 부쳐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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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 익고 비 자욱코 바다 하늘 나직할 제 / 梅黃雨暗海天低
은자의 그윽한 집은 푸른 시내 곁하였거니 / 隱者幽居傍碧溪
가을바람엔 필마 타고 내 그곳으로 가서 / 匹馬秋風吾欲去
우리 함께 손 잡고 산수를 유람하고 싶네 / 登山臨水共携提
지리산(智異山)에는 선인(仙人)이나 석자(釋子)가 많으므로, 짧은 율시(律詩)를 지어서 회포를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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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산이 나라 안에 가장 커서 / 頭流山最大
도사가 표피자리 깔고 사는데 / 羽客豹皮茵
나무 끝엔 두 다리가 날아다니고 / 木末飛雙脚
구름 속엔 몸 절반을 내놓았도다 / 雲間出半身
남들은 삼무에 쫓겼다 기롱하고 / 人譏困三武
혹은 진의 난리 피했다고 말하네 / 或說避孤秦
나는 어찌 그윽한 은거지가 없어 / 豈乏幽棲地
풍진 속에 백발이 새로워졌는고 / 風塵白髮新
[주D-001]삼무(三武) : 북 위 도무제(北魏道武帝), 북주 무제(北周武帝), 당 무종(唐武宗)을 합칭한 말이다. 이들은 모두 불교를 배척하여 모든 승려들을 환속(還俗)하게 하였으므로, 불가(佛家)에서 이들의 일을 일컬어 “삼무의 난리[三武之亂]”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진(秦)의 난리 피했다 :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무릉도원(武陵桃源)에는 옛날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들어가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회포를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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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짧으니 잠이 넉넉키 어렵고 / 夜短睡難足
날이 흐리니 생각 또한 무거워라 / 天陰思更沈
어찌 호연지기 기를 줄이야 알랴만 / 何曾知養氣
다행히 노심초사는 하지 않는다네 / 幸是不勞心
꾀꼴새는 비파의 말을 하고요 / 黃鳥琵琶語
흰 망아지는 소식을 아끼어라 / 白駒金玉音
내 삶은 요행으로 면했거니와 / 吾生俱幸免
노염 푸는 것은 오현금이라네 / 解慍五絃琴
[주D-001]꾀꼴새는 …… 하고요 : 비 파(琵琶)의 말이란 곧 한 원제(漢元帝) 때 미색(美色)이 뛰어났던 궁녀 왕소군(王昭君)이 흉노(匈奴)의 선우(單于)에게 시집갈 적에 마상(馬上)에서 비파를 타면서 원한 맺힌 뜻을 노래한 데서 온 말이고, 꾀꼴새는 《시경》 진풍(秦風) 황조(黃鳥)에서, 진 목공(秦穆公)의 장사 때 자거씨(子車氏)의 어진 세 아들인 엄식(奄息), 중행(仲行), 침호(鍼虎)가 순장(殉葬)되는 것을 보고 나라 사람들이 그들을 몹시 슬프게 여겨 꾀꼴새를 들어 노래한 데서 온 말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2]흰 …… 아끼어라 : 《시 경》 소아(小雅) 백구(白駒)에 “깨끗한 흰 망아지가, 저기 빈 골짜기에 섰네. 꼴 한 줌 베어 먹이고서, 옥 같은 손님을 전송하네. 가거든 소식을 금옥처럼 아껴서, 나를 멀리할 마음 갖지 마소.[皎皎白駒 在彼空谷 生芻一束 其人如玉毋金玉爾音 而有遐心]”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어진 사람이 왔다가 돌아가려 하자, 헤어지기를 몹시 아쉬워하는 주인(主人)의 정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3]내 …… 면했거니와 : 공자가 이르기를 “사람의 사는 이치는 바른 것이니, 바르지 못하면서 사는 것은 죽음을 요행히 면한 것일 뿐이다.[人之生也直罔之生也 幸而免]”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D-004]노염 …… 오현금(五絃琴)이라네 : 순 (舜) 임금이 처음으로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가(南風歌)를 지어 불렀는데, 즉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노염을 풀어 줄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할 만하도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라고 한 것을 말한다.
우연히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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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소리 높여 읊으며 더디 쓰는 건 / 盡日高吟下筆遲
연마해서 신기하게 만들려는 뜻 아니라네 / 非緣鍛煉欲新奇
덧없는 삶은 흡사 길이 흐르는 물 같거니 / 浮生酷似長流水
동녘까지 흘러가선 어느 때에 되돌아올꼬 / 流到天東回幾時
장년 시절엔 번화함이 눈에 가득했건만 / 壯歲繁華紛滿目
늘그막엔 적막 속에 홀로 턱만 고이노라 / 殘年寂寞獨支頤
유유한 고금의 일이 다 이러한 것이거니 / 悠悠今古皆如此
흥 풀고 회포 푸는 덴 시가 있을 뿐이로세 / 遣興開懷只有詩
박 학사의 석상(席上)에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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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산의 봄 경치는 사람을 밝게 비추고 / 杏山春色照人明
죽간의 가을 소리는 뼛속까지 청쾌하네 / 竹澗秋聲徹骨淸
명문가의 남긴 복이라고 말들을 마소 / 莫道舊家餘慶耳
훌륭한 인재들이 다 그의 문생이라네 / 森森玉笋是門生
[주C-001]박 학사 : 고 려 말기에 벼슬이 밀직사(密直使)에 이르고, 조선 초기에 찬성사(贊成事)로 치사한 박형(朴形)을 가리키는데, 박형은 고려 충목왕 3년 정해년(1347)에 목은의 아버지 이곡(李穀)이 대제학(大提學)으로 동지공거가 되어 김인관(金仁琯) 등 33인을 뽑았을 때 한수(韓脩) 등과 함께 급제했었다.
[주D-001]행산(杏山) : 박전지(朴全之)의 호이다. 그는 일찍이 원(元)나라에 가서 문장(文章)으로 명성을 널리 떨쳤고, 벼슬은 수첨의찬성사(守僉議贊成事)에 이르렀는데, 박형(朴形)에게는 증조(曾祖)가 된다.
어제 박 학사의 연석(宴席)에 참예했다가 한밤중에 취해서 돌아왔는데, 오늘 정오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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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거에 음악 연주로 여생이 눈부시어라 / 鶢鶋金奏眩餘生
호기가 넘치는 데다 야기 또한 청명하네 / 豪氣仍將夜氣淸
몹시 취해선 몸이 아직 아픔도 잊었거니 / 醉倒不知身尙病
미친 말들은 꿈에도 놀라기 마땅코말고 / 狂言自合夢猶驚
뜰 앞의 잔 풀은 한 점 먼지 없이 깨끗하고 / 階前細草塵沙淨
집 뒤의 낙락장송은 비바람이 치는 듯하네 / 屋上長松風雨鳴
숙취를 깨고 나서 몽당붓을 손에 쥐니 / 解了宿酲携禿筆
종이 가득 문장이 절로 종횡무진하여라 / 滿牋詞彩自縱橫
[주D-001]원거(鶢鶋)에 …… 눈부시어라 : 원 거는 해조(海鳥)의 이름인데, 원거가 일찍이 노(魯)나라 교외(郊外)에 날아와 앉자, 노나라 임금은 그 새를 정중히 모셔다가 종묘(宗廟)에서 환영연을 베풀어 순(舜) 임금의 소악(韶樂)을 연주하고 소, 양, 돼지고기의 요리로 대접하니, 그 새는 눈이 부시고 근심과 슬픔이 교차하여 고기 한 점도 먹지 못하고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한 채 3일 만에 죽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자기 생리(生理)에 맞지 않는 과분한 대접을 의미한다. 《莊子 至樂》
6 월 15일에는 향인(鄕人)들이 동류수(東流水)에 가서 머리 감는 모임을 하면서 이를 유두일(流頭日)이라 이름한다. 내가 젊었을 때는 서로 초청하는 이가 하도 많아서 심지어는 거취(去就)를 결정하기 어려워 망설이던 날도 있었는데, 중년에는 벼슬이 높아져서 대관(大官) 친구가 초청한 게 아니면 나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병을 앓은 이후로는 건강이 조금 괜찮아진 때에도 전혀 초청해 주는 이가 없으므로, 홀로 앉아서 읊조리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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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십오일 더위가 뼛속까지 찜질하니 / 六月十五熱熏骨
술 안 마셔도 취한 듯 정신이 몽롱하네 / 不飮猶如醉兀兀
평생의 지기가 진세의 속박을 초탈하여 / 平生志氣謝□籠
화산 꼭대기의 가을 새매를 자부했는데 / 自負峯尖逐霜鶻
근해를 검속 못 하여 지체가 느슨해져라 / 筋骸不束支體緩
오늘은 어찌하여 마음도 이리 흐릿한고 / 今日胡爲心忽忽
소년 시절 친구들은 모두 영웅호걸이라 / 少年相喚盡英豪
높은 의리 하늘 가닿아 녹녹지 않았거니 / 薄雲高義非乾沒
옷엔 솔바람 가득고 자리엔 물 흐를 제 / 松風滿衣水流席
자하동 깊은 곳은 어이 그리 험준했던고 / 紫霞深處何硉矹
달빛 아래 돌아오자면 신선 된 기분이라 / 歸來踏月似登仙
어찌 한 점이나마 침울한 맘이 남았었으랴 / 豈有一點餘沈鬱
지금은 병이 들어 마음만 떨쳐 날 뿐이니 / 卽今病中心奮飛
날개 한번 다쳐 다시 못 나는 새 같구려 / 如翅一傷難再拂
소리 높여 회포를 노래해 귀신을 놀래켜라 / 高歌放懷驚鬼神
다 취하고 홀로 깬 이와 누가 우세할런고 / 羣醉獨醒誰甲乙
[주D-001]화산(華山) …… 새매 : 두보(杜甫)의 〈위장군가(魏將軍歌)〉에 “위후는 골격이 우뚝하고 정신이 긴장되어, 화산 꼭대기의 가을 새매를 본 듯하네.[魏侯骨聳精爽緊 華嶽峯尖見秋隼]”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정신이 긴장되고 청쾌함을 의미한다.
[주D-002]높은 …… 가닿아 : 《송 서(宋書)》 사영운전 논(謝靈雲傳論)에 “주나라가 쇠해지매 풍류가 더욱 드러나서, 굴평과 송옥은 맑은 근원을 앞에서 인도하고, 가의와 상여는 향기로운 자취를 뒤에서 떨치어, 뛰어난 문장은 금석을 윤택케 하고, 높은 의리는 하늘에 가닿았다.[周室旣衰 風流彌著屈平宋玉導淸源於前 賈誼相如振芳塵於後 英辭潤金石 高義薄雲天]”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문장 가운데 표현한 의리가 매우 고상했음을 의미한다.
[주D-003]다 …… 우세할런고 : 다 취하고 홀로 깼다는 말은 본디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온 세상이 다 흐리거늘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거늘 나 홀로 깨었는지라, 이 때문에 쫓겨났노라.[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초청해 주는 이가 없어 유두절(流頭節) 놀이에 참예하지 못하는 목은 자신을 굴원에 빗대서 풍자한 말이다.
배 안동(裵安東)의 도계장(到界狀)에 받들어 답하다. 장난삼아 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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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노닐던 곳 회상해 보니 / 回首同遊處
연산은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네 / 燕山儘渺茫
짧은 시로 옛정을 펼 뿐이거니 / 小詩聊敍舊
침향 -원문 빠짐- 말하지 마소 / 莫道□沈香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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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도는 공언의 위요 / 孔道空言上
주공의 사상은 짧은 꿈속이로다 / 周情短夢中
주역 춘추 엮어 큰 법칙 드리웠고 / 讚修垂大法
예악을 제정하여 성공을 드러냈네 / 制作表成功
아득한 하늘은 바다를 임해 있고 / 渺渺天臨海
밝은 태양은 하늘을 운행하건만 / 明明日轉空
이내 마음은 칠흑같이 캄캄해서 / 寸心如黑漆
아동들처럼 미쳐 달릴 뿐이로세 / 狂走似兒童
[주D-001]공자(孔子)의 …… 위요 : 공 언(空言)은 시비(是非)를 포폄(褒貶)할 뿐 당세에 쓰이지 않는 언론(言論)을 가리키는데, 공자가 일찍이 이르기를 “내가 공언을 남기려고 할진댄 집정자들의 행사에 부쳐서 깊고 간절하게 드러내 밝히는 것만 못하리라.[我欲載之空言 不如見之於行事之深切著明也]” 하고, 마침내 《춘추(春秋)》를 짓게 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太史公自序》
[주D-002]주공(周公)의 …… 꿈속이로다 : 공 자가 젊은 시절에는 주공의 도를 행하려는 굳은 의지 때문에 꿈속에서 가끔 주공을 보았었는데, 늙음에 미쳐서는 의지 또한 쇠약해져서 다시는 꿈속에도 주공을 만나지 못하자, 이를 탄식하여 이르기를 “심하다, 나의 쇠함이여. 내가 다시 꿈속에 주공을 만나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주D-003]주역(周易) …… 드러냈네 : 공자는 《주역》을 찬(贊)하고, 《춘추》를 저술했으며, 주공은 예악(禮樂)을 제정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유두회(流頭會)에 대하여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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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상쾌한 오늘은 절로 나쁜 기운 없어 / 爽然今日自無邪
뱃속까지 시원하고 티끌 한 점도 없는데 / 冷徹肝腸絶滓査
넘실넘실 옥술잔엔 죽엽청을 기울이고 / 灩灩玉盃傾竹葉
깊디깊은 은사발엔 좋은 차를 마시자면 / 深深銀鉢吸瓊花
완연히 밝은 달밤 쌍계의 물과 흡사하고 / 宛如明月雙溪水
맑은 바람 칠완의 차보단 월등히 나으리 / 絶勝淸風七椀茶
위하여 묻노니 채소밭에 양은 있었던가 / 爲問菜園羊在否
찬 음료랑 흰 떡만 어지러이 놓여졌겠지 / 氷漿雪餅亂交加
[주D-001]맑은 …… 차 : 노 동(盧仝)의 〈다가(茶歌)〉에 “첫째 잔은 목과 입술을 적셔 주고, 둘째 잔은 외로운 시름을 떨쳐주고,……다섯째 잔은 기골을 맑게 해 주고, 여섯째 잔은 선령을 통하게 해 주고, 일곱째 잔은 다 마시기도 전에 두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이 이는 걸 깨닫겠네.[一椀喉吻潤 二椀破孤悶……五椀肌骨淸 六椀通仙靈 七椀喫不得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채소밭에 양은 있었던가 : 옛 날 어떤 사람이 항상 채소만 먹다가 갑자기 한 번 양고기를 먹었더니, 그날 밤 꿈에 오장신(五臟神)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양이 채소밭을 밟아 망가뜨렸다.[羊踏破菜園]”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채소만 먹던 사람이 우연히 고기를 먹는 데에 비유한 말이다.
서해 안렴사(西海按廉使) 김진양(金震陽)의 서신을 얻었는데, 노루포[乾鹿]를 보낸다고 하였다. 그러나 염주(鹽州)의 붕어[鮒魚] 또한 먹고 싶은 것이기에 인하여 한 수를 지어서 부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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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치아는 씹어 끊기 어려우나 / 病齒難於決
쇠한 창자는 포육으로 길러야지 / 衰腸養在庖
물고기는 그물질하기가 쉽거니와 / 池魚知易罾
들 노루는 띠풀로 쌀 만도 하지 / 野鹿亦堪包
이름은 옛날 청초를 들어 보았고 / 名舊聞靑草
시경에선 진작 흰 띠풀을 읊었네 / 詩曾詠白茅
늙어 가매 식탐이 더욱 심해지니 / 老來饞更甚
구업은 참으로 버리기 어렵구나 / 口業信難抛
[주D-001]들 노루는 …… 하지 : 《시경》 소남(召南) 야유사균(野有死麕)에 “들판에 노루가 죽어 있거늘, 흰 띠풀로 싸서 주도다.[野有死麕 白茅包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청초(靑草) : 민물고기 중에 초어(草魚)라는 고기를 이른 말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한 좌윤(韓左尹) 동년(同年)의 서신을 얻고 시(詩)로써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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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소식 없어 매양 서로 생각했어라 / 久無音耗每相思
적을 피해 가족 이끌고 자주자주 옮기었네 / 避賊携家數數移
그 어느 날에나 저 황려강 한 굽이에다 / 何日黃驪江一曲
삼경의 집 마련하여 서로 종유할거나 / 卜隣三徑共追隨
[주D-001]삼경(三徑) : 한 (漢)나라 장후(蔣詡)가 왕망(王莽) 때에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鄕里)에 은퇴하여 자기 집 뜰에다 좁은 길 셋을 내고서 오직 구중(求仲), 양중(羊仲) 두 친구하고만 종유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은사(隱士)의 문정(門庭)을 의미한다.
보덕굴(普德窟)의 중이 좌선(坐禪)의 공량(供粮)에 대한 연화문(緣化文)을 지어 달라고 요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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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의 경계는 전혀 가이없는 곳이요 / 圓通境界無邊處
수증의 공부는 곧바로 오르는 때로다 / 修證功夫直上時
버들개지 바람에 미치듯 함은 삼업의 죄요 / 柳絮風狂三業罪
은산 철벽이 우뚝 섬은 한 덩이 의심일세 / 銀山壁立一團疑
살갗을 드러내지 않아 위의는 엄숙하나 / 肌膚不露威儀肅
구복이 만일 텅 비면 목숨이 위태로우리 / 口腹如虛性命危
물외에 초연한 이도 양식을 예비하거니 / 物外高流猶豫備
인간의 진리가 감히 서로 다르다 할쏜가 / 人間實理敢參差
[주D-001]원통(圓通)의 경계 : 원통은 주원 융통(周圓融通)의 뜻으로서 즉 불(佛), 보살(菩薩)의 깨달은 경계를 말한다.
[주D-002]수증(修證) : 불가에서 수행(修行)을 통하여 진리를 증득(證得)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D-003]삼업(三業) : 불교에서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 즉 신체의 동작, 언어, 의지의 작용을 말한다.
[주D-004]은산 철벽(銀山鐵壁) : 불교 용어로, 은(銀)과 철(鐵)은 뚫기 어렵고, 산(山)과 벽(壁)은 오르기 어려운 것이므로, 즉 도저히 이를 수 없는 경계를 이른 말이다.
새로 지은 누각 위에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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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면이 탁 트인 한 개 조그만 누각에서 / 八面虛通一小樓
수많은 법회 열어 시방을 두루 제도하네 / 恒沙法會十方周
지성스런 공불 마치자 몸도 청정해져라 / 心香熱罷身淸淨
내 인생 반드시 잘못 늙은 건 아니로세 / 未必吾生枉白頭
웃으면서 원룡의 백척루에 기대고요 / 笑倚元龍百尺樓
멀리 공자의 동주 하고픔을 따르노라 / 遠從尼父欲東周
안영의 높은 절행은 오히려 모순이어라 / 晏嬰高節猶矛楯
고기 먹는 이는 지금 다 범의 머리라네 / 食肉如今盡虎頭
경릉이 창화한 시를 용루집이라 하는데 / 慶陵唱和號龍樓
아득한 세월 묻노라 그 몇 해나 되었느뇨 / 漠漠星霜問幾周
듣건대 서연에서 시강을 하려 한다 하니 / 聞說書筵將勸講
감히 향리에 호두산이 있다고 말할쏜가 / 敢言鄕里有壺頭
[주D-001]원룡(元龍)의 백척루(百尺樓) : 원 룡은 삼국 시대 위(魏)나라 진등(陳登)의 자인데, 허사(許汜)가 일찍이 유비(劉備)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기가 한번은 진등을 찾아갔더니, 진등이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주인인 자신은 높은 와상으로 올라가 눕고, 손님인 자기는 아래 와상에 눕게 하더라고 말하자, 유비가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채택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인(小人) 같았으면 자신은 백척루로 올라가 눕고, 그대는 땅바닥에 눕게 했을 것이다. 어찌 와상을 위아래의 차이로만 하였겠는가.”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지기(志氣)가 매우 고상함을 의미한다.
[주D-002]공자(孔子)의 동주(東周) 하고픔 : 동 주는 곧 동쪽 노(魯)나라에 주(周)나라의 도를 일으키겠다는 뜻으로,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인 공산불요(公山弗擾)가 비(費)를 가지고 배반하여 공자를 불렀을 때 공자가 가려고 하자, 자로(子路)가 하필 공산씨(公山氏)에게 갈 것이 있느냐고 못마땅하게 여기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공연히 불렀겠는가. 만일 나를 써주는 이만 있으면 나는 동주를 만들 것이다.[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陽貨》
[주D-003]안영(晏嬰)의 …… 머리라네 : 범 의 머리란 곧 부귀(富貴)의 상(相)을 말한 것으로, 후한(後漢) 때 한 관상쟁이[相者]가 반초(班超)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제비의 턱에 범의 머리라 날아서 고기를 먹는 상이니, 이는 곧 만리후가 될 상이다.[燕頷虎頭 飛而食肉此萬里侯相也]”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인데, 안영은 춘추 시대 제 경공(齊景公)의 현상(賢相)이었는바, 그는 대국(大國)의 재상이었지만 성품이 워낙 검약(儉約)하여 선인(先人)의 제사(祭祀) 때도 돼지 어깨가 제기를 채우지 못했고, 여우갖옷 한 벌을 삼십 년이나 입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4]경릉(慶陵)이 …… 하는데 : 경 릉은 고려 충렬왕(忠烈王)의 능호(陵號)로서 즉 충렬왕을 가리킨다. 충렬왕이 세자(世子)로 있을 때 특히 국가의 전고(典故)에 밝았고 독서도 많이 하여 일찍이 대사성(大司成) 김구(金坵), 좨주(祭酒) 이송진(李松縉) 등과 시를 서로 창화(唱和)하여 모은 것이 이른바 《용루집(龍樓集)》인데, 이것이 세상에 행해졌다고 한다.
[주D-005]향리(鄕里)에 호두산(壺頭山)이 있다 : 후 한(後漢) 때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의 종제(從弟) 마소유(馬少游)가 일찍이 형 마원이 큰 뜻을 품고 있는 것을 애처롭게 여겨 말하기를 “선비가 세상에 나서 의식(衣食)이나 궁핍하지 않을 정도면……군(郡)의 연리(掾吏)가 되어 선영(先塋)의 분묘(墳墓)나 수호하고 지내면서 향리로부터 선인(善人)이란 말이나 들으면 될 것이니, 넘치는 것을 구하려고 하면 스스로 괴로울 뿐이다.”라고 했었는데, 마원은 끝내 오계(五溪)의 만이(蠻夷)를 치러 가서 호두산에 군영(軍營)을 쳤다가 전세(戰勢)가 불리해진 데다 마침 혹서(酷暑)를 만나는 바람에 병까지 들어 대단히 곤욕을 치렀다. 이 일을 두고 왕안석(王安石)이 주창숙(朱昌叔)에게 수답한 시에 “경사에 곡구 자진의 명성 전함은 안 좋아하고, 단지 향리가 호두산보다 나은 것만 안다네.[未愛京師傳谷口 但知鄕里勝壺頭]” 한 데서 온 말이다. 《臨川文集 卷17》
흥취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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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가 사람 찾는 것 또한 뻔뻔스러워라 / 扶病尋人亦強顔
무미건조한 언어에 귀밑털은 희뜩희뜩 / 語言無味鬢毛斑
돌아오니 그윽한 삶의 맛을 다시 깨닫겠네 / 歸來更覺幽居味
청산에 걸친 백운을 앉아서 대하니 말일세 / 坐對白雲連碧山
정원(庭園)에 배나무가 있어 6월에 익어서 흔들면 떨어지는데, 그 알이 작기 때문에 상하지도 않고 매우 시고 달아서 맛이 있으므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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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안의 배나무 십여 그루 가운데 / 園中梨樹十餘株
한 그루가 일찍 익어 특수한 품종이라 / 一株早熟其品殊
꽃과 잎새 피는 건 다 같은 때이건만 / 開花發葉皆同時
열매는 유독 달라 사람을 감탄케 하네 / 實獨也異令人吁
동실동실 참으로 연약한 황금빛이요 / 團團色嫩眞黃金
알 가벼워 떨어져도 살을 상하지 않네 / 體輕墜不傷其膚
이 정원은 본시 서쪽 이웃의 정원인데 / 此園本是西鄰園
늙은 목은이 주인이라니 왜 그리 슬픈고 / 老牧作主何悲夫
당시에 부귀를 누리던 원로 길창군은 / 當時富貴老吉昌
고관대작 자손이 도성에 그득했는데 / 子孫冠蓋盈通衢
어찌 알았으랴 외성 중에 악인이 나서 / 那知外姓出梟獍
관가에 몰수됐다가 내게로 돌아올 줄을 / 沒入官家歸老夫
이 늙은이는 오십이 넘도록 집이 없고 / 老夫五十無屋廬
가포도 지금까지 전혀 못 내는 처지에 / 直布至今全未輸
산 마주한 집이 있어 비바람을 가리고 / 有樓對山壓風雨
밭에는 채소 심어 조석거리 제공하고 / 有田種菜供朝晡
밤은 가을에 따서 식탁의 맛을 돋우고 / 有栗秋實足盤味
배는 철이 일러 앞장서는 사람 같아라 / 有梨捷疾如先趨
감라는 가장 연소한 재상이 되었는데 / 甘羅作相最年少
이걸 대하니 내 흰 수염이 부끄럽구나 / 對此愧吾今白鬚
하늘의 뜻은 절로 헤아리기 어렵거니 / 天公用意自難料
이르고 늦음을 찬연히 나눠 구분하였네 / 早晚粲然分以區
바람 임해 탄식하매 절로 깨달음 있어라 / 臨風三嘆自有得
만물이 내 동류니 이로써 나를 살피리 / 物吾與也聊觀吾
[주D-001]길창군(吉昌君) : 고려 후기에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고 길창군에 봉해진 권적(權適)을 가리킨다.
[주D-002]가포(價布) : 국가에 일정한 신역(身役)을 치러야 할 사람이 출역(出役)하지 않고 그 신역의 대가로 바치는 포목(布木)을 말한다.
[주D-003]감라(甘羅)는 …… 되었는데 : 감 라는 전국 시대 진 무왕(秦武王) 때의 재상 감무(甘茂)의 손자인데, 그는 나이 12세 때에 진 시황(秦始皇)의 사신(使臣)으로 조(趙)나라에 가서 조왕(趙王)을 설득하여 오성(五城)을 떼어 받는 성과를 거두고 돌아와서 진 시황으로부터 상경(上卿)에 봉해지고, 일찍이 자기 조부(祖父)인 감무가 소유했던 전택(田宅)을 다 하사받았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만물이 내 동류니 :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백성은 나의 형제이고, 만물은 나의 동류이다.[民吾同胞 物吾與也]” 한 데서 온 말이다.
배를 따서 사문(師門)에 보냈더니, 택부인(宅夫人)께서 별장에 나가시고 안 계셨으므로, 시로써 그 사실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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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익고도 시고 단 맛이 가장 좋아서 / 早熟酸甘味最良
부인이 어려서부터 친히 맛보던 것인데 / 夫人自小所親嘗
문생이 오늘 여기 와서 주인이 되었기에 / 門生今日來爲主
보내 드려라 별장 가신 걸 어찌 알았으랴 / 馳獻那知出野莊
고국은 푸르러라 교목들이 둘러서 있고 / 故國蒼蒼擁喬木
봉우리들은 아득하게 석양이 걸려 있네 / 羣峯渺渺掛斜陽
당성의 푸른 솔 그림자 물결에 흔들려라 / 唐城松翠搖波影
덕산의 남은 복이 장구함을 누가 알리오 / 誰識德山餘慶長
[주D-001]고국(故國)은 …… 있고 : 고국은 봉건(封建)된 지 오래된 나라를 가리키고, 교목(喬木)은 오래 자라서 키가 큰 나무를 가리킨 것으로, 즉 오래된 나라에는 반드시 큰 나무가 있음을 의미한다. 《孟子梁惠王下》
[주D-002]당성(唐城)의 …… 알리오 : 당 성은 남양(南陽)의 고호(古號)인데, 여기서는 곧 앞서 공민왕(恭愍王) 초기에 실시했던 초과(初科)에서 남양 홍씨(南陽洪氏)로서 바로 목은의 좌주(座主)가 되었던 양파(陽坡) 홍언박(洪彦博)의 가문을 가리킨다. 남양 홍씨의 족보에 의하면, 덕산 촌주(德山村主)였다는 홍천하(洪天河)가 바로 홍씨의 시조인데, 그가 일찍이 당(唐)나라 팔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고구려 영류왕(榮留王) 때에 처음 고구려에 귀화(歸化)했다가 그 후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때에 태자 태사(太子太師)가 되고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얼음을 대하여 소리 높여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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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의 모양 생김새는 수정과 흡사한데 / 氷也成形似水精
몹시 차가운 광선은 십분 맑기도 하여라 / 光芒寒冽十分淸
천도를 도와 다스림은 끝내 인력이지만 / 財成輔相終人力
사시 기후가 골라야만 태평을 보고말고 / 玉燭調時見太平
태양 앞엔 얼음산인들 어찌 오래가랴만 / 日出如山那得久
깊은 당의 좌석 비추는 덴 홀로 밝구려 / 堂深照座獨能明
두 눈 흐리지 않음도 과시할 만하거니와 / 可誇兩眼無昏翳
피서하러 왜 굳이 시냇물 소리를 들으랴 / 避暑何須聽澗聲
괴화(槐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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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이웃 홰나무에 꽃이 새로 피어서 / 西鄰槐樹著新花
맑은 새벽바람 없어 이슬이 맺혔는데 / 淸曉無風帶露華
두어 가지 꺾어 누추한 집에 옮겨 놓으니 / 折得數枝分陋巷
빛은 서책을 엄습하고 그림자는 비끼었네 / 色侵黃卷影橫斜
새벽에 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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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비가 소소하게 주룩주룩 내리니 / 曉雨蕭疏滴不成
더운 날 병든 나그네 십분 청쾌하여라 / 炎天病客十分淸
이슬 맺힌 연잎에 못 물결은 조용하고 / 想看荷露池波靜
솔바람 속에 계곡 물은 콸콸 흐르겠지 / 記取松風澗水鳴
이 몸이 나에게 누가 됨은 분명하거니와 / 了了此身爲我累
유유 무사함은 내 생을 보전할 만하다네 / 悠悠無事可吾生
흥겨우면 몹시 미쳐 날뛰는 게 괴이해 / 怪來遇興輕狂甚
앉아서 중용 읽어 성정을 검속하노라 / 坐讀中庸檢性情
김경지(金敬之)를 생각하여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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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 서로 쫓고 오만 산은 푸르러서 / 白雲相逐萬山靑
한 굽이 여강이 비단병풍 두른 듯하리니 / 一曲驪江遶錦屛
그대는 어버이 생각 나는 벼슬 사퇴하여 / 君政思親吾乞退
가을바람에 함께 거룻배를 노젓고 싶네 / 秋風準擬共揚舲
옮겨 살면 회수의 탱자 될까가 염려지만 / 移居只恐爲淮枳
박식하자고 굳이 초평을 쪼갤 것 있으랴 / 博物何須剖楚萍
어부들이 서로 건너길 다투는 곳에 가서 / 到得漁人爭渡處
좋이 순박한 마음으로 여생을 보냈으면 / 好將淳朴送殘齡
[주C-001]김경지(金敬之) : 경 지는 고려 말기의 유학자였던 김구용(金九容)의 자이다. 그가 일찍이 삼사 좌윤(三司左尹)으로 있다가 고향인 여주(驪州)에 퇴거(退居)하였다. 《목은시고》 제9권 〈어부(漁父) 김경지(金敬之)가 생각나서 여강(驪江)에 대한 절구(絶句) 네 수를 짓다.〉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주D-001]옮겨 …… 염려지만 : 《주례(周禮)》 고공기 서(考工記序)에 “감귤이 회수를 넘어 북으로 가면 탱자로 변한다.[橘踰淮而北爲枳]”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사람도 주위의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주D-002]박식(博識)하자고 …… 있으랴 : 춘 추 시대 초왕(楚王)이 강을 건너다가 둥글고 빨갛게 생겼으며 크기가 말[斗]만 한 물체를 보고는 그것을 취하여 사람을 시켜서 노(魯)나라 공자(孔子)에게 물어보게 했더니, 공자가 이르기를 “이것이 이른바 부평초 열매[萍實]라는 것으로 쪼개서 먹을 수가 있는데, 이는 길상(吉祥)의 조짐으로서 오직 패자(霸者)라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孔子家語 致思》
[주D-003]어부(漁父)들이 …… 가서 : 춘 추 시대 양자거(陽子居)란 사람이 일찍이 여관(旅館)에 묵을 적에 처음에는 그가 예모(禮貌)를 엄격히 차린 까닭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매우 조심스럽게 대접했는데, 그가 노자(老子)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 소탈한 태도를 보인 이후로는 모두들 그와 더불어 좋은 좌석을 서로 다툴[爭席]정도로 친숙해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꾸밈없이 순박한 태도로 서민들과 서로 어울리는 것을 의미한다. 《莊子寓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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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먹고 햇볕 쬐던 늙은 시골 농부는 / 食芹負暄田舍翁
스스로 마음 만족해 낙이 그 속에 있었네 / 於心自足樂在中
나의 입에 딱 맞고 나의 몸에 편하여라 / 適我口兮便我體
내게 이걸 누리게 함은 하늘에 말미암고 / 使我享此由天公
하늘 대신 일한 이는 바로 우리 임금인데 / 代天行事是我主
우리 임금은 명명하게 대궐에 임어하여 / 我主明明臨法宮
형법이 공명하고 부역 또한 균평하고요 / 刑淸徭賦又均平
내 슬하엔 손자들이 탈 없이 잘 자라거니 / 我膝下有孫之童
화봉 삼축만 하면 죽어도 여한 없으련만 / 華封三祝死則已
내 좋아하는 걸 천자께 바칠 길이 없구나 / 我美無由獻天子
다만 내 소원은 온 하늘 아래 땅 끝까지 / 但願普天率土濱
억만의 창생들이 마치 한 몸뚱이와 같이 / 億萬蒼生如一身
임금 사랑하는 마음 조금도 다름이 없어 / 愛君之心無少異
백성 부리기 쉽고 풍속이 순후해짐일세 / 民易使兮風俗淳
백성 부리기 쉽고 풍속이 순후해지면 / 民易使兮風俗淳
상하가 한 몸 되어 국운이 길이 새로우리 / 上下一體邦命新
[주C-001]근훤가(芹暄歌) : 근 훤은 미나리와 다스운 햇볕을 합칭한 말이다. 옛날 송(宋)나라의 한 농부가 항상 누더기옷만을 입고 겨울을 지내고는 다스운 봄날을 만나 따뜻한 햇볕을 쬐면서, 천하에 너른 집, 다스운 방과 솜옷이나 여우갖옷이 있는 줄은 모르고 자기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등 쬐는 따뜻함[負背之暄]을 아무도 알 사람이 없으리니, 이것을 우리 임금님께 바치면 큰 상(賞)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자, 그 마을의 부자가 그에게 말하기를 “옛사람이 미나리[芹]를 아주 좋아한 이가 있어 그 마을의 부귀한 자에게 미나리가 맛이 좋다고 말하자, 그 부귀한 자가 미나리를 먹어본 결과, 맛이 독하고 배가 아팠다더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미력이나마 임금을 위하고자 하는 충성(忠誠)을 의미한다. 《列子 楊朱》
[주D-001]화봉 삼축(華封三祝) : 요(堯) 임금이 일찍이 화(華)를 시찰할 때에 화의 봉인(封人)이 말하기를 “아, 성인께 축복을 드리겠노니, 성인께서 수하시고 부하시고 아들이 많으시기를 비노이다.[噫 請祝聖人 使聖人壽富多男子]” 한 데서 온 말이다.
낮에 앉아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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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바람은 텅 빈 고당에 불고요 / 淸風虛堂高
얼음덩이는 백발을 비추는지라 / 氷峯照白頭
매서운 더위는 침범하질 못하고 / 炎威逼不得
대자리는 물 흐르듯 매끄러운데 / 竹簟滑如流
때때로 날린 비를 뿌리기도 하니 / 有時洒飛雨
시원함이 맑은 가을 의심케 하네 / 爽然疑淸秋
병든 몸이 문득 유유자적하여 / 病軀忽自適
아무 바라는 것 없이 담박하여라 / 澹泊無所求
비둘기는 깊은 숲에서 울어대니 / 鳴鳩在深樹
다행도 해라 거처의 그윽함이여 / 幸哉居處幽
산벌[山蜂]을 두고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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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이라 한창 더위에 바람 한 점 없는데 / 六月正熱天無風
산벌이 앵앵 울며 빈 당으로 들어오네 / 山蜂咽入虛堂中
군신의 대의를 너만 온전히 지녔거늘 / 君臣大義獨爾全
어이하여 선후 없이 홀로 떼를 떠났느뇨 / 何故離羣無後先
응당 쫓기진 않았으련만 쫓긴 듯하여라 / 不應見逐似見逐
우는 소리 슬퍼한 양 맺힌 것이 있구려 / 鳴聲如悲有涵蓄
혹시 무리들과 달리 너 홀로 개결하여 / 或是狷介異於衆
읊조림을 자연히 함께할 수 없어서일까 / 嘯詠自然無與共
평생에 사물 보고 회포 안 일으키는데 / 平生遇物不興懷
늘그막엔 서로 멀어진 이가 하도 많아서 / 老境□□多睽乖
벌 마주해 거듭 탄식하며 몽당붓 잡으니 / 對之三嘆把禿筆
문득 얼음물에 석청을 타 마시고 싶구나 / 氷漿便欲調崖蜜
[주D-001]군신(君臣)의 …… 지녔거늘 : 고어(古語)에 벌과 개미는 임금과 신하의 의리가 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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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의 충효 가문에서 요황을 진공하니 / 洛陽忠孝進姚黃
천재에 비난하는 평이 억양이 있었다네 / 千載譏評有抑揚
백발의 산림 은사의 뜻을 그 누가 알리오 / 誰識白頭林下意
새로운 맛 볼 때마다 먼저 먹기 미안한걸 / 每逢新味愧先嘗
임금 위해 구복 봉양함은 좋은 꾀가 아니요 / 愛君養口非良計
세상 피해 정신 수양함은 어찌 미친 병이랴 / 避世頤神豈病狂
홀로 앉아 유연히 소리 높여 읊조리면서 / 獨坐悠然發高詠
일생의 가고 머묾을 다 하늘에 부치노라 / 一生行止付蒼蒼
[주D-001]낙양(洛陽)의 …… 있었다네 : 요 황(姚黃)은 낙양의 모란화(牡丹花) 중에 명품종(名品種)이었고, 낙양의 충효 가문이란 곧 오대(五代) 오월(吳越) 시대 전유연(錢惟演)의 가문을 가리키는데, 전유연은 바로 오월의 후예로서 오월 왕(吳越王)이 그를 충효(忠孝)로 일컬었던바, 이 요황을 임금에게 바친 것은 전유연에게서 비롯되었다 한다. 소식(蘇軾)의 〈여지탄(荔支嘆)〉 시에서 당 현종(唐玄宗)이 양 귀비(楊貴妃)를 위해 여지(荔支)를 바치게 한 일과 송(宋)나라 때에 좋은 차(茶)들을 제조하여 임금에게 바쳤던 일 등으로 인한 폐해를 논하고, 맨 끝에 가서 “낙양의 상군은 충효의 가문이었음에도, 가련하여라 그 또한 요황화를 진공하였네.[洛陽相君忠孝家 可憐亦進姚黃花]” 한 데서 온 말이다.
적제촌(赤提村)의 농사짓는 하인이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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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제촌 안에 보리를 처음 수확하여라 / 赤提村裏麥初收
향기로운 밀국수가 번드르르하구나 / 白麵香湯滑欲流
또 나락 꽃이 이미 두루 다 피었다 하니 / 又說稻花開已遍
-원문 빠짐-
어 제 녹사(錄事)를 보내와서 말하기를 “내일 재추(宰樞)들이 남산(南山)의 암방사(巖房寺)에서 합좌(合坐)하기로 했다.”고 하였는데, 새벽에 일어나니 몸이 피곤해서 수행(隨行)하기 어렵겠으므로, 서장(書狀)을 써서 나가지 못함을 사과하고, 인하여 한 수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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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친밀한 장상들이 안위를 맡았는데 / 交懽將相任安危
병중에 부름받으니 기쁨은 한량없지만 / 病裏承招喜可知
예모를 안 차려도 하루를 견디기 어려운데 / 縱意尙難消永日
예모 갖추고 감히 태평성대 더럽히려 하랴 / 修容敢擬玷淸時
텅 빈 당 안에 백발이 한가운데 앉았으니 / 虛堂白髮中央坐
높은 나무 맑은 바람이 좌우에서 불어오네 / 高樹淸風左右來
속으로 비노니 하늘이 우리 임금 붙드시어 / 默禱上天持我后
만년토록 장수하시며 큰 국운 누리시기를 / 萬年眉壽享丕基
[주D-001]서로 …… 맡았는데 : 여 태후(呂太后) 때에 여러 여씨(呂氏)들이 권력을 천단하여 황실(皇室)이 위태롭게 되자, 승상(丞相) 진평(陳平)이 이를 걱정하던 차에 역생(酈生)이 진평을 찾아가서 말하기를 “천하가 편안할 때는 재상을 중시하고, 천하가 위태로울 때는 장수를 중시하는 것이다.[天下安 注意相 天下危 注意將]”라고 하면서, 평소에 서로 불편한 관계였던 승상 진평과 태위(太尉) 주발(周勃)의 사이를 서로 친하게 결탁해서 사직(社稷)의 안전을 도모하도록 충고했던 데서 온 말이다.
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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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들이 모두 남산으로 올라가 / 宰府南山上
정신 모아서 막 사방을 돌아보니 / 凝神四顧初
구불구불한 성은 멀리 연이어졌고 / 蛇城綿亘遠
곡령의 숲은 울창한 나머지로다 / 鵠嶺鬱蒼餘
만백성은 국가의 근본이거니와 / 萬姓國之本
천년 사직은 왕자의 도읍지로세 / 千年王者居
오르내리는 노고를 어여삐 여겨 / 應憐勞陟降
맑은 비를 듬성듬성 뿌린 걸 테지 / 淸雨洒疏疏
종선(種善)의 글 읽는 소리를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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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집 성긴 비에 한낮이 서늘해라 / 小樓疏雨午涼生
푸른 산 푸른 숲이 기가 절로 청쾌하네 / 碧樹蒼崖氣自淸
그림이 좋은 곳에 보기 또한 좋을 텐데 / 畫得好時看更好
낭랑한 저 글 소리를 누가 묘사해낼꼬 / 有誰描出讀書聲
우연히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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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이라 무더위를 못 견딜 것만 같더니 / 六月炎蒸恐不支
하늘이 비바람 보내 쇠한 나를 위로하네 / 天敎風雨慰吾衰
군왕이 내린 얼음 반사는 진작 입었는데 / 頒氷曾荷君王賜
또 두건 벗은 채 다리 뻗고 있는 때로다 / 又是脫巾䃲礴時
대궐서 기뻐 뛰던 일은 늘 꿈속에 드는데 / 闕下鳧趨長入夢
붓끝엔 나방 적셔 공연히 시만 쓸 뿐이네 / 筆端蛾濕謾題詩
어찌 늦게 먹어 고기와 맞먹을 것 있으랴 / 何須晚食當肥肉
구복을 경시하고 이젠 생각함이 있는걸 / 口腹已輕方有思
[주D-001]나방 적셔 : 나방은 곧 누에나방을 가리키는바, 종이 중에는 잠견지(蠶繭紙)가 있으므로, 널리 종이의 뜻으로 쓴 말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2]어찌 …… 있으랴 : 배가 고픈 뒤에 음식을 먹으면 그 맛이 절로 아름다워서 고기 먹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 “늦게 먹어서 고기와 맞먹게 한다.[晚食以當肉]”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구복(口腹)을 …… 있는걸 : 맹 자(孟子)가, 사람의 신체 중에서 구복은 천하고 작은 것이요,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은 귀하고 큰 것이므로, 작은 구복을 기르는 자는 소인(小人)이 될 뿐이고, 큰 마음을 기르는 자는 대인(大人)이 되는 것이라고 이른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告子上》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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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기병이 밤새도록 마구 달리는지라 / 賊騎橫馳夜到明
유월달 산성에는 사람 종적이 끊기었네 / 山城六月斷人行
마초와 군량 운반은 어느 때나 그칠런고 / 不知飛輓何時已
십만의 용맹한 군사를 앉아서 모으누나 / 坐擁貔貅十萬兵
늙어 가매 선비는 갑절이나 오활해지고 / 老去儒冠倍迂闊
연래엔 세도 또한 태평을 잃어버렸거니 / 年來世道失升平
흰 구름 푸른 산 솔바람 부는 그 속에 / 白雲靑嶂松風裏
일찍이 성명 숨기지 못한 게 후회스럽네 / 悔不從前隱姓名
통도사리기(通度舍利記)의 후미에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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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가 석가에게서 나왔다고 말들 하는데 / 舍利人言出釋迦
통도사에는 신라 때부터 사리탑이 있었네 / 覆鐘通度自新羅
중국서 가져온 것은 자의전을 위함이련만 / 北來應爲慈儀殿
팔십 년 세월은 빠른 물결과도 같았는걸 / 八十光陰似逝波
양전의 춘추가 한창 성하신 때를 당하여 / 兩殿春秋甚富時
하늘이 이미 선을 부지런히 닦도록 하고 / 天敎爲善已孜孜
갑자기 이 법보까지 함께 바쳐오게 하여 / 忽然法寶俱來獻
송악산 굳건한 터전을 훌륭하게 꾸미었네 / 賁飾松山不拔基
병석에 누운 연래엔 문 나가는 일 드물어 / 臥病年來少出門
명산 승경을 마음속에만 둘 뿐이었는데 / 名山勝境只心存
조칙 받들어 기문 쓰길 어찌 기약했으랴 / 豈期奉勑書堅固
만고에 신령한 빛이 홀로 우뚝 높으리라 / 萬古靈光獨也尊
[주C-001]통도사리기(通度舍利記) : 목 은이 일찍이 지었던 〈양주통도사석가여래사리지기(梁州通度寺釋迦如來舍利之記)〉의 약칭이다. 그 기문(記文)에 의하면, 신라(新羅) 때 자장 율사(慈藏律師)가 중국에 들어가서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정골(頂骨)과 사리(舍利)와 불경(佛經) 등을 직접 얻어와서 왕명(王命)에 따라 통도사(通度寺)를 창건하고 여기에 맨 처음 이 사리들을 봉안(奉安)했는데, 명 태조(明太祖) 홍무(洪武) 10년에 이르러 왜적(倭賊)이 그 사리를 탐내어 통도사에 쳐들어오는 변이 일어나서, 남산종(南山宗) 통도사의 주지(住持)인 원통무애 변지대사(圓通無礙辯智大師) 월송(月松)이 그 사리를 짊어지고 도주하여 이리저리 숨겨오다가 홍무 12년 가을에 월송이 드디어 이 사리를 가지고 도성(都城)으로 와서 그 사실을 아뢰자, 태후(太后)와 근비(謹妃)가 여기에 공경히 예배(禮拜)를 하고 마침내 송림사(松林寺)에 봉안하도록 하였고, 이때에 우왕(禑王)은 목은에게 명하여 그 사실을 기록하게 했던 것이다. 《牧隱文藁 卷3》
[주D-001]자의전(慈儀殿) : 신라 문무왕(文武王)의 비(妃)가 자의왕후(慈儀王后)이기는 하나, 자장 율사는 서로 연대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아, 범칭 왕후(王后)의 뜻으로 쓴 말인 듯하다.
[주D-002]팔십 년 세월 : 석가모니의 수(壽)가 80세였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3]양전(兩殿) : 여기서는 바로 당시 임금인 우왕(禑王)과 왕후인 근비(謹妃) 이씨(李氏)를 합칭한 말이다.
스스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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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새벽에 일어나기 더디어라 / □明晨起遲
두 다리가 쑤시고 또 쑤셔대길래 / 兩腿酸復酸
두번 세번 계집아이 불러일으켜 / 再三呼小娃
밟게 하니 맘이 조금 편안해지네 / 起踏庶心寬
생각건대 물거품 같은 이 몸뚱이 / 默念浮漚身
보존하기가 어찌 그리 어려운고 / 云何保艱難
자식 기르는 고생은 진작 끝났거니 / 勞悴旣久遠
이제는 내 몸 편키나 도모해야지 / 幸今圖自安
기거 환경이 자못 뜻에 맞아서 / 興居頗適意
혹은 의관 정제도 맘에 잊은 채 / 或至忘衣冠
때때로 동산에 올라가서 / 時時登東山
용수산 마주해 길이 휘파람 불면 / 長嘯對龍巒
답답한 심정을 풀 뿐만 아니라 / 匪獨陶堙鬱
신선의 구전단을 먹은 듯할 텐데 / 如嚼九轉丹
아직도 온갖 번뇌의 핍박 속에 / 猶爲衆苦逼
더구나 벼슬까지 하고 있음에랴 / 況彼方爲官
매미 소리를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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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이라 임정이 십분 맑고 신선한데 / 林亭六月十分淸
게다가 또 새 매미 첫 소리를 들었으니 / 又聽新蟬第一聲
앉아 기다리리 가을 기운 천하에 퍼져 / 坐待秋涼天下遍
더운 구름 다 걷혀서 눈 다시 밝아지길 / 火雲收盡眼還明
낮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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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불어올 제 / 一陣淸風吹面涼
성긴 주렴 다 걷고 빈 마루에 앉았노라니 / 疏簾捲盡坐虛堂
조정의 친구들은 아마 심중에 열이 나서 / 朝中舊故心中熱
백설 같은 꿀 탄 빙수를 한창 기울이겠네 / 政倒調氷白雪漿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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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대궐문에 상서론 구름 감쌌는데 / 閶闔沈沈擁霱雲
기룡과 주호는 요순을 훌륭히 보좌하여 / 夔龍朱虎贊華勳
간무를 추어 삼묘가 절로 감복케 하고 / 舞干自致三苗格
백발의 늙은 서생은 고문을 강토하여라 / 白髮書生討古文
덕이 하늘 감동시킴엔 안 변화한 게 없거니와 / 德動天時無不化
위엄이 천하에 가해진 곳엔 다시 무얼 말하랴 / 威加海處更何云
삼광 오악의 기가 이합 집산이 있나니 / 三光五嶽□離合
뭇 어진 이와 함께 임금을 잘 받들었으면 / 願與羣賢奉大君
[주D-001]기룡(夔龍)과 주호(朱虎) : 기룡은 순(舜) 임금의 두 신하로 악관(樂官)인 기와 간관(諫官)인 용을 합칭한 말이고, 주호는 역시 순 임금의 두 신하로 산림 천택(山林川澤)을 맡아 다스렸던 주와 호를 합칭한 말이다. 《書經 舜典》
[주D-002]간무(干舞)를 …… 하고 : 간 무는 방패를 들고 추는 춤을 가리키는데, 순 임금이 문덕(文德)을 널리 펴고 양계(兩階) 사이에서 방패와 새의 깃을 들고 춤을 추자, 그렇게 한 지 70일 만에 오랑캐인 묘족(苗族)들이 감복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大禹謨》
[주D-003]삼광 오악(三光五嶽)의 …… 있나니 : 삼 광은 일(日), 월(月), 성신(星辰)을 가리키고, 오악은 중국의 다섯 명산(名山)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천지(天地)를 의미하는데,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 자서(自序)에 “삼광 오악이 나누어짐으로부터 풍기가 날로 엷어졌다.[光嶽旣分 風氣日漓]” 하였다.
근비(謹妃)가 이어(移御)하는 날 아직 날이 밝기 전에 짧은 율시(律詩)를 읊어 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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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산이 말 시장 가로부터 뻗어나와서 / 龍壽山來馬市邊
우뚝 높게 일어나 긴 내를 등에 지고서 / 突然高起背長川
문득 뭇 화초를 궁전 수목으로 삼았어라 / 忽敎衆卉爲宮樹
화려한 집 통창한 어연을 어찌 뜻했으랴 / 豈意華堂敞御筵
지위는 장추에 정하여 한창 경복을 쌓고 / 位正長秋方毓慶
시는 규목에 진열해 이미 어짊을 칭했네 / 詩陳樛木已稱賢
원컨대 하늘이 무궁한 복을 길이 내리어 / 願天永錫無疆福
아들 백인에 만만년 큰 복을 누리소서 / 則百斯男萬萬年
[주C-001]근비(謹妃) : 고려 우왕(禑王)의 비(妃) 이씨(李氏)를 가리킨다.
[주D-001]장추(長秋) : 한(漢)나라 초기 장락궁(長樂宮) 안에 있던 궁전 이름인데, 고제(高帝)가 처음 거처하였고, 뒤에는 태후(太后)가 항상 거처했으므로, 전하여 왕후(王后)의 처소를 가리킨다.
[주D-002]시(詩)는 …… 칭했네 : 규 목(樛木)은 가지가 아래로 늘어진 나무를 가리킨 것으로, 《시경》 주남(周南) 규목에 “남산에 구부러진 나무 있으니, 칡넝쿨이 감아 오르도다. 즐거울사 우리 님은, 복록에 편안하시도다.[南有樛木 葛藟纍之 樂只君子 福履綏之]”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에 나오는 구부러진 나무는 문왕(文王)의 후비(后妃)를 가리키고, 칡넝쿨은 모든 후궁을 가리킨 것으로, 즉 투기(妬忌)를 하지 않고 하천한 후궁들에게까지 은혜를 두루 베푸는 후비의 어진 덕에 감복한 후궁들이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주D-003]아들 백인(百人) : 《시 경》 대아(大雅) 사제(思齊)에 “공경 다하는 태임님이, 문왕의 어머니이시니, 시모님 주강께 효도하사, 효부라 모두 일렀더니, 며느님 태사가 그 덕을 이어, 백인 남자를 두시었네.[思齊太任 文王之母 思媚周姜 京室之婦 太姒似徽音 則百斯男]” 한 데서 온 말이다.
어제 궁궐 앞까지 이르러 장차 제군(諸君)을 따라서 숙배하려던 차에, 임시로 정지하고 예(禮)를 받지 않는다는 전지(傳旨)가 내렸으므로, 그대로 돌아와서 피곤하여 누워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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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산이 언덕 나누어 성안으로 들어와 / 龍山分隴入城中
형체 우뚝 일으켜 푸른 하늘에 비치어라 / 突起成形照碧空
보좌엔 하늘이 임해 상서론 구름 성대하고 / 寶座天臨雲藹藹
고관 반열은 서로 따라라 해가 둥실 돋았네 / 華聯景從日曈曈
응암은 높다랗게 타교의 물을 진압하고 / 鷹巖高壓駝橋水
용수산은 나직히 곡령의 바람을 받누나 / 龍岫低承鵠嶺風
겸양하사 조하의 예를 임시로 정지하시매 / 謙讓權停朝賀禮
쇠한 늙은이 일찍 와서 편히 앉았네그려 / 早歸安坐有衰翁
입추(立秋) 뒤에 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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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는 뼛속까지 푹푹 찌더니 / 炎天蒸到骨
가을비는 맘에 쾌족하기도 해라 / 秋雨快於心
조물주가 농지거리를 한 듯하니 / 造物似戲謔
때에 따라 시나 읊조릴 뿐이로다 / 順時聊詠吟
학은 먼 언덕에 의지하여 울고 / 鶴鳴依遠垤
매미는 높은 숲에 숨어 우는데 / 蟬噪翳高林
늙은 내게도 탕목읍을 내렸으니 / 老我封湯沐
노년에 성상의 은택이 하 깊구려 / 衰年聖澤深
빗방울이 점차 귀를 놀래키다가 / 雨滴漸驚耳
가을 기운이 문득 맘을 일깨우매 / 秋涼俄醒心
홀연히 오래 앓는 병을 망각하고 / 忽然忘久病
다시 이렇게 소리 높여 읊조리네 / 復此動高吟
아득한 햇살은 온 들을 덮어 싸고 / 渺渺日沈野
쓸쓸한 바람은 산 숲에 가득하니 / 蕭蕭風滿林
한가한 가운데 이 맑은 흥미를 / 閑中淸興味
요즘 더욱 깊이 스스로 깨닫겠네 / 自覺比來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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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 아래에 검은 구름 달려가며는 / 白雲之下馳黑雲
흰 구름 틈새로 푸른 하늘 나뉘어져라 / 白雲缺處靑天分
검은 구름 달려도 흰 구름은 꼼짝 않는데 / 馳之疾兮白不動
옥황상제 처소는 푸른 하늘을 초월해서 / 上帝之居超紫氛
만고에 고요하여 묵묵하게 말이 없으되 / 沈沈萬古默無語
어찌 그리 수다한 만물을 만들어 내는고 / 化出物類何紛紛
미세도 해라 땅 위의 이 미천한 신하는 / 微哉地上蟣蝨臣
중년까지는 삼가서 천군을 존중했건만 / 中年踧踖尊天君
온갖 이욕의 침범을 받고 절로 패주하여 / 利欲交攻自敗走
소란스레 떼로 나는 모기와 똑같아졌으니 / 擾擾眞同聚飛蚊
상제 곁에 계신 문왕을 감히 바랄쏜가 / 敢希文王在左右
공경히 따름은 때로 요 임금을 생각하나 / 欽若有時思放勳
요 임금은 아득하고 문왕은 이미 몰했으니 / 放勳遠矣文旣沒
동해 가에서 노래하는 이 속을 누가 알랴 / 誰識高歌東海濆
동해 상전은 참으로 아침저녁 사이거니 / 東海桑田眞朝暮
천지간에 몇 번이나 사문을 일으킬런고 / 乾坤幾度興斯文
[주C-001]망운가(望雲歌) : 망 운은 곧 군왕(君王)을 사모하는 뜻으로,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제요란 분은 방훈이니, 그 어질기는 하늘과 같고, 아는 것은 신과 같으며, 가까이 나아가 보면 태양과 같고, 멀리서 바라보면 구름 같기도 하다.[帝堯者放勳 其仁如天 其知如神就之如日 望之如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1]천군(天君) : 사람의 타고난 본래의 선심(善心)을 높여 일컫는 말이다.
[주D-002]상제(上帝) …… 문왕(文王) : 《시경》 대아(大雅) 문왕(文王)에 “가신 문왕이 위에 계시사, 아 하늘에 밝으시니……가신 문왕이 오르내리심이, 늘 상제의 곁에 계시니라.[文王在上 於昭于天……文王陟降 在帝左右]”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공경히 따름 : 《서경》 요전(堯典)에 “이에 희씨와 화씨를 명하여 하늘을 공경히 따르게 하다.[乃命羲和 欽若昊天]”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동해 상전(東海桑田) : 《신 선전(神仙傳)》에 의하면, 선녀(仙女) 마고(麻姑)가 왕방평(王方平)에게 이르기를 “접시(接侍)한 이래로 벌써 동해(東海)가 세 차례 상전(桑田)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세상일의 큰 변화를 의미한다.
해가 나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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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나오자 구름은 막 엷어지고 / 日出雲初薄
비가 걷히매 바람이 또 불어오네 / 雨收風更吹
흐리고 갬은 변화가 많기도 한데 / 陰晴多變化
이 신세는 안위가 그 몇 번이던고 / 身世幾安危
방초는 바퀴 자국을 덮으려 하고 / 芳草將侵轍
맑은 냇물은 시를 읊을 만하거니 / 淸流可賦詩
유연히 내 뜻에 맞음을 얻은 곳에 / 悠然得意處
노쇠함 위로하기 절로 만족하여라 / 自足慰吾衰
[주D-001]맑은 …… 만하거니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동쪽 언덕에 올라 길이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읊노라.[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한 데서 온 말이다.
수원(水原)으로 근친(覲親) 가는 이 진사(李進士)를 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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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은 모친 시하에 있는 사람임을 / 李生慈侍下
서문 읽어보고 자세히 알았거니와 / 讀序可知詳
베개에 부채질하는 효심이 동하여 / 扇枕孝思動
옷자락 떨치며 돌아갈 뜻 바쁘구려 / 拂衣歸意忙
강산은 가을이라 더위가 물러가고 / 江山秋退暑
등불은 밤의 서늘한 기운 생기누나 / 燈火夜生涼
후일 대과 급제를 하는 날에는 / 異日收功處
영친함에 있어 광채가 찬란하리라 / 榮親爛有光
[주D-001]베개에 …… 동하여 : 후 한(後漢) 때의 효자 황향(黃香)은 집이 가난하여 노복(奴僕)도 없었으므로, 몸소 어버이 곁에서 열심히 시중을 들며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는데, 특히 더울 때는 어버이의 침상(枕牀)에 부채질을 하여 서늘하게 하고, 추운 겨울에는 어버이 이부자리에 자기가 먼저 들어가 누워서 자리를 따뜻하게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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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을 즐길 뿐 다시 무얼 의심하랴 함은 / 樂夫天命復奚疑
이 늙은이 유연하게 돌아가던 때이거니 / 此老悠然歸去時
어찌 한 점이나마 곤궁함을 한하였으랴 / 一點何曾恨枯槁
나는 지금 두릉의 시를 거듭 탄식하노라 / 我今三嘆杜陵詩
광대한 천지 사이엔 산하가 바뀌었는데 / 乾坤蕩蕩山河改
적막한 문항은 세월이 더디기만 하구나 / 門巷寥寥日月遲
길이 읊는 백발의 나는 이제 그만이라 / 長嘯白頭吾已矣
문 닫고 앉아서 공연히 귀거래사만 읽네 / 閉門空讀去來辭
[주D-001]천명(天命)을 …… 때이거니 : 도 잠(陶潛)이 팽택 영(彭澤令)을 그만두고 돌아가던 무렵에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맨 끝에 “자연의 변화를 따라 죽음으로 돌아가거니, 천명을 즐길 뿐 다시 무얼 의심하리오.[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어찌 …… 탄식하노라 : 두 릉(杜陵)은 호가 소릉(少陵)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두보의 〈도잠피속옹(陶潛避俗翁)〉 시에 “도잠은 속세를 피한 늙은이일 뿐, 반드시 도리에 통한 건 아니로다. 그의 시집에 나타난 걸 보노라면, 역시 곤궁함 한탄한 게 자못 많더군.[陶潛避俗翁 未必能達道 觀其著詩集頗亦恨枯槁]” 하였는데, 목은은 두보의 이 시가 도잠의 내면(內面)과는 걸맞지 않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주D-003]천지 …… 바뀌었는데 :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천하(天下)의 주인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
쪽꽃[藍花]을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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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두둑 절반쯤 쪽꽃이 피었는데 / 半畦藍吐花
덩굴풀이 동편을 휘감고 올라서 / 蔓草罥其東
계집애가 손으로 그걸 제거하려다 / 小娃手去之
힘이 약해 끝내 뜯어내질 못하네 / 力弱竟難功
새 명주실 이미 길게 뽑아냈으니 / 新絲抽已長
공자의 몸에 옷 지어 입힐 만한데 / 可被公子躬
붉은 물 들임은 본디 소원이거니와 / 染朱固所願
푸른 물 들이면 광채 더욱 짙으리 / 染靑光更濃
어이해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랴 / 奈何不去草
정색 해치는 너를 누가 용서할쏘냐 / 害正誰汝容
[주D-001]붉은 …… 짙으리 : 주색(朱色)과 청색(靑色)은 모두 정색(正色)이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상주(尙州) 안 병마사(安兵馬使)가 자기쟁반[瓷盤] 다섯 개와 술잔[鍾] 열 개를 보내 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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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 다섯 차곡차곡 술잔 열 개 한 벌이 / 五盤成疊十鍾連
벽옥의 광채 발하여 푸른 하늘 비추어라 / 碧玉生光照碧天
한번 보매 내 눈 맑게 해줌을 알겠거니 / 一見便知淸我眼
후일 비린내로 더럽힐 일 걱정 없고말고 / 不愁他日汚腥羶
지난달에 입추(立秋)가 들었기 때문에 7월 1일에 점차 서늘함이 더해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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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초하룻날 당에 가득 비가 내리니 / 七月初頭雨滿堂
지난달이 입추라서 갑절이나 서늘하네 / 立秋前月倍生涼
기후는 차고 줆이 없음을 본디 알거니와 / 故知氣候無盈縮
더구나 밤낮은 길고 짧음이 있음에랴 / 況是朝昏有短長
천지엔 병골 소생시켜 달라 정중히 빌고 / 稽首乾坤蘇病骨
쌀밥 고기론 쇠한 창자 보하길 벼르노라 / 甘心魚稻補衰腸
높이 백제를 찾음은 참으로 흥겨웠으리 / 高尋白帝眞乘興
공부의 문장은 광염이 진정 만 길이로세 / 工部文章萬丈光
병든 늙은이 땀 흘리며 빈 당에 앉아서 / 病翁流汗坐虛堂
오직 서늘키만 원하는 걸 그 누가 알랴 / 念念誰知但願涼
갑자기 서풍은 얼굴에 급히 불어오건만 / 忽値西風吹面急
어찌 백발이야 마음과 함께 길어질쏜가 / 何曾白髮與心長
강산은 뉘 눈에 제공할는지 모르겠으나 / 江山不識供誰眼
빙탄은 내 창자에 넣을 길이 없고말고 / 氷炭無從置我腸
다행히 당년의 토끼털붓이 남아 있어 / 幸有當年毛穎在
시구 지어 쓰면서 세월을 보낼 뿐이로다 / 只將詩句答流光
사십의 나이 이전부터 묘당에 들어가서 / 不惑年前入廟堂
우물쭈물 그럭저럭 세월만 보냈는지라 / 媕婀玩愒送炎涼
임금 은혜 오래 입음은 스스로 부끄러운데 / 自慚雨露蒙恩久
강산은 흥을 길게 끌어낸다 누가 말했던고 / 誰道江山引興長
이욕 권세 풍파 속에 발 한번 들였더니 / 利勢風波一投足
산해와 친하고픈 시름 감당을 못 하겠네 / 淸親山海九回腸
올가을 필마 타고 여흥 길에 오른다면 / 新秋匹馬黃驪路
아마도 남은 생애에 광채가 찬란하련만 / 想見餘生爛有光
[주D-001]높이 …… 흥겨웠으리 : 백 제(白帝)는 화산(華山)의 신령인 서방신(西方神)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가을을 의미하는데, 두보(杜甫)의 〈망악(望岳)〉 시에 “점차 가을바람이 서늘해지기를 기다려, 높이 백제를 찾아서 진원을 물으련다.[稍待秋風涼冷後 高尋白帝問眞源]”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공부(工部)의 …… 길이로세 : 한유(韓愈)의 〈조장적(嘲張籍)〉 시에 “이백 두보 문장은 지금도 존재하여, 만 길 높이의 광염을 내뿜는다.[李杜文章在 光焰萬丈長]”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어찌 …… 길어질쏜가 : 몸은 비록 노쇠하여도 마음은 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D-004]빙탄(氷炭)은 …… 없고말고 : 빙 탄은 서로 정반대가 되는 사물을 가리킨 것으로, 여기서는 곧 기쁨과 두려움을 의미하는바, 한유(韓愈)의 〈청영사탄금(聽潁師彈琴)〉 시에 “영사여 그대는 거문고 솜씨 참으로 능하거니, 빙탄을 내 창자에 놓지 말지어다.[潁乎爾誠能 無以氷炭置我腸]”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강산(江山)은 …… 말했던고 : 두보(杜甫)의 〈추야(秋野)〉 시에 “예악은 나의 단점을 다스려주고, 산림은 흥을 길게 끌어내누나.[禮樂攻吾短 山林引興長]” 한 데서 온 말이다.
사과[來禽]를 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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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은 살짝 붉고 속살은 눈빛처럼 흰데 / 皮帶微紅雪作肌
둥그런 게 가을도 되기 전에 이미 익었네 / 團團已向未秋肥
농익으면 도리어 썩은 것 같음을 알거니와 / 知渠爛熟還如腐
시고 단 맛 난 때가 바로 제맛을 얻은 걸세 / 政爾□甜得所歸
골짝 나온 얼음은 응당 한로에 넣을 텐데 / 出壑氷應置寒露
서리 띤 단풍은 이미 저녁볕에 비치누나 / 帶霜楓已照斜暉
우군의 서첩에 청리를 연해 쓴 게 있으니 / 右軍有帖聯靑李
당년에 일필휘지했던 걸 상상할 만하구나 / 坐想當年筆一揮
[주D-001]골짝 …… 텐데 : 두 보의 〈입주행(入奏行)〉에 “두 시어는 천리마나 봉황의 새끼 같아서, 나이 삼십도 되기 전에 충의를 다 갖추어, 강직하기가 세상에 다시 없으니, 마치 만학에서 나온 번쩍이는 한 조각 맑은 얼음을, 영풍관 한로관의 옥병에 넣어둔 것 같구려.[竇侍御 驥之子鳳之雛 年未三十忠義俱 骨鯁絶代無 炯如一段淸氷出萬壑 置在迎風寒露之玉壺]”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계절(季節)의 의미만을 취한 것이다.
[주D-002]우군(右軍)의 …… 있으니 : 우 군은 일찍이 우군 장군(右軍將軍)을 지낸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키는바, 그의 서첩(書帖) 중에 내금청리첩(來禽靑李帖)이란 것이 있으므로 한 말인데, 그 서첩 맨 첫머리에 청리 내금(靑李來禽)이란 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라 한다.
일찍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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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야 어찌 감히 저버리랴마는 / 詩書何敢負
가난과 병은 끝내 서로 따르누나 / 貧病竟相隨
못 갖추면 참으로 제사 못 지내나니 / 不備誠難祭
계신 것처럼 함은 괜한 생각뿐일세 / 如存謾致思
우연히 청자의 성인과도 같거니 / 偶同淸者聖
홀로 앉아서 청정 담박한 때로다 / 獨坐湛然時
생계 졸렬한 게 누구의 책임인고 / 謀拙將誰責
쇠한 지 이미 오램을 내가 아노라 / 吾知久矣衰
[주D-001]못 갖추면 …… 지내나니 : 맹자가 이르기를 “희생과 기명과 의복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감히 제사 지내지 못한다.[牲殺器皿衣服不備不敢以祭]”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주D-002]계신 …… 생각뿐일세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9장에 “죽은 이 초상 치르기를 산 사람 섬기듯이 하고, 이미 돌아간 이 제사 모시기를 생존한 이 섬기듯 하는 것이 지극한 효도이다.[事死如事生事亡如事存 孝之至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청자(淸者)의 성인(聖人) : 맹자가 이르기를 “백이는 성인 가운데 청한 분이다.[伯夷聖之淸者也]”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청빈(淸貧)의 뜻만을 취한 것이다. 《孟子萬章下》
이 장원(李狀元) 문화(文和) 과 함께 가는 용두사(龍頭寺)의 스님을 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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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의 승통이 송경을 나감에 미쳐 / 龍頭僧統出松京
나이 젊은 용두가 동행을 하게 되었네 / 年少龍頭作伴行
와병중인 용두를 서글프게 바라보면서 / 臥病龍頭空悵望
동문 밖에 오르니 아침 해가 막 돋누나 / 上東門外日初生
[주D-001]용두(龍頭) : 고려 때 문과(文科)의 장원(狀元)을 이르던 말로, 여기서는 곧 당시 문과에 장원한 이문화(李文和)를 가리킨다.
내 가 연도(燕都)의 국자감(國子監)에 있을 때, 도성 거리의 남쪽에 셋집 한 칸을 얻어 살았는데, 집이 몹시 더워서 질항아리에 담긴 얼음물로 손과 얼굴을 씻으면서 시(詩)를 지었는바, 그 시의 결구(結句)에 “서글퍼라 강호에서 낚시질하던 손으로, 온종일 질항아리의 맑은 물결을 희롱하네.[惆悵江湖釣竿手 瓦盆終日弄淸波]”라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병을 앓은 나머지 추위와 더위를 견디지 못하는 데다, 금년 초가을은 더욱 더워서 작은 계집종을 시켜 샘물을 새로 길어오게 하여 그 물을 부채에 뿌려서 부채질을 해 보니, 그 바람이 갑절이나 시원하여 마치 빗방울이 떨어진 것 같아 기골(肌骨)이 상쾌해진다. 그러나 맑은 물결을 희롱함에 비하면 또 그보다는 훨씬 못하다. 맑고 깨끗한 천석(泉石)이 있는 진경(眞境)이 적지도 않으련만, 젊어서나 늙어서나 모두 거기에 흥취만 부쳤을 뿐이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후일에 조물주가 의당 어떻게 나를 위로할런고? 세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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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히나 더위를 무서워하여 / 吾生偏畏熱
여름철이면 매양 애를 태우는데 / 當暑每焦腸
국자감 얼음 동이 물결은 넓었고 / 璧氷盆波闊
송경 부채의 빗방울은 서늘하네 / 松京扇雨涼
졸렬한 꾀는 왜 그리 모자란가만 / 拙謀何佼儈
고상한 흥취는 절로 한량없는데 / 高興自蒼茫
아직도 참다운 경계를 찾지 못해 / 尙未尋眞境
바람 앞에 광기가 발동하려 하네 / 臨風欲發狂
계집종 애가 힘껏 부채질하여라 / 小婢力搖扇
저도 속이 끓을 줄을 내 알고말고 / 知渠猶熱腸
베적삼엔 막 땀이 배어 나오는데 / 布衫初透汗
대모자는 또 서늘한 기운이 나네 / 竹帽更生涼
연새의 구름은 하 멀기만 하고 / 燕塞雲迢遰
여강의 물은 아득하기만 한데 / 驪江水渺茫
만년의 일을 스스로 결단치 못해 / 桑楡難自斷
이따금 마음이 미칠 것만 같구나 / 往往欲顚狂
창랑의 물에 방금 발을 씻거니 / 滄浪方濯足
빙탄이 어찌 내 창자에 쌓이랴 / 氷炭肯堆腸
심한 추위엔 의당 다습길 꾀하고 / 寒沍宜圖燠
무더위 땐 되레 서늘코자 하는데 / 炎蒸却願涼
북정엔 얼음이 우뚝우뚝 솟았고 / 北庭氷矗矗
남국엔 물이 아득하게 흐르나니 / 南國水茫茫
그 누가 알리오 내 마음속이 / 誰識吾方寸
도리어 미치광이 증점 같은 줄을 / 還如點也狂
[주D-001]창랑(滄浪)의 …… 씻거니 : 한 어린애가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上》
[주D-002]빙탄(氷炭)이 …… 쌓이랴 : 빙탄은 서로 정반대가 되는 사물을 가리킨 것으로, 한유(韓愈)의 〈청영사탄금(聽潁師彈琴)〉 시에 “영사여 그대는 거문고 솜씨 참으로 능하거니, 빙탄을 내 창자에 놓지 말지어다.[潁乎爾誠能無以氷炭置我腸]”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미치광이 증점(曾點) : 여 기서 미치광이란 곧 뜻은 크나 행실이 뜻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데, 공자(孔子)가 일찍이 진(陳)나라에 있을 때 이르기를 “돌아가련다, 돌아가련다. 오당의 소자들이 광하고 소략하여 찬란하게 문장만 이루었을 뿐이요, 그것을 재단할 줄을 모르는도다.[歸與歸與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라고 했던바, 여기서 말한 광(狂)이 바로 증점 등을 가리켰던 데서 온 말이다. 증점의 뜻이 큰 점을 예로 들자면, 일찍이 공자가 그에게 뜻을 물었을 때, 그가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리면서 돌아오겠습니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하여 성현(聖賢)의 기상(氣象)을 발휘한 것 등이다. 《論語 公冶長, 先進》
6일에 내가 한 청성(韓淸城), 염동정(廉東亭)과 함께 구재(九齋)에 서 노닐면서 또 이□□(李□□), 정 첨서(鄭簽書)를 초청하여 놀았는데, 나를 수행한 사람은 내 자식 종학(種學)과 문생(門生) 유경(劉敬)이었고, 한 탐화랑(韓探花郞)과 이 교감(李校勘)은 청성을 수행한 사람들이었다. 안심정사(安心精舍)에서 촛불에 금을 긋고 시를 짓게 되었으므로[刻燭賦詩], 그 시제(詩題)를 ‘안심정사에서 노닐다.[游安心精舍]’로 하고, 또 한 시제는 ‘괴(槐)’라 하였는데, 방방(放榜)을 하고 나서는 교관(敎官)이 주식(酒食)을 대접하므로, 실컷 마시고 먹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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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도가 처음에 구재라 일컬었었는데 / 十二徒稱曰九齋
국중의 관자 동자가 산처럼 모여들어서 / 國中童冠集山崖
촛금 그어 시 짓는 재주는 왜 그리 빠른고 / 賦詩刻燭才何疾
학문 권면하는 뜻은 아름답기 그지없어라 / 勸學興文意甚佳
아득한 붉은 놀은 자리를 쏘아 비추고 / 渺渺紫霞光射席
층층의 보수 그림자는 뜰에 가득하구려 / 層層寶樹影侵堦
함께 노는 사람은 또 명사들이 있는지라 / 同游又是高流在
읊조리는 소리 속에 좋은 회포 열리누나 / 嘯詠聲中開好懷
[주C-001]구재(九齋) : 고 려 시대 개경(開京)에 설립된 12개 사학(私學)인 12공도(公徒) 중 최초로 사학을 설립한 문헌공(文憲公) 최충(崔冲)이 낙성(樂聖), 대중(大中), 성명(誠明), 경업(敬業), 조도(造道), 솔성(率性), 진덕(進德), 대화(大和), 대빙(待聘) 등 9개 반으로 나누어 구재학당(九齋學堂)을 베풀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1]붉은 놀[紫霞] : 근처에 자하동(紫霞洞)이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2]보수(寶樹) : 훌륭한 자제(子弟)들을 일컫는 말이다.
7월 7일은 주상(主上) 전하의 탄일(誕日)이다.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의 통솔하에 제군(諸君)이 수파(手帕)를 올리는데, 나도 그 뒤를 따라서 예배(禮拜)를 행하고 선사주(宣賜酒)를 마신 다음 종종걸음으로 물러 나왔다. 그러고는 이 판개성(李判開城), 염 봉성(廉蓬城), 한 청성(韓淸城)과 함께 광제사(廣濟寺) 못가의 임 중랑(任中郞) 집에 이르러 연꽃을 구경하였는바, 핀 것은 하나나 되고 아직 안 핀 것은 두셋이나 되는 정도에 그쳤는데, 중랑이 말하기를 “아직은 덜 피었으니, 이달 보름 이후가 되면 다 필 것이다.”라고 하므로, 이에 다시 후일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돌아오니, 오육화(吳六和) 판서(判書)가 음식을 차려 내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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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폐에서 겨우 예를 거행하고 / 蓂陛才行禮
연못에서 다시 은혜를 입노라니 / 蓮池更荷恩
맑은 바람은 불어서 -원문 빠짐- / 淸風動□□
빗방울은 물에 흔적을 만드누나 / 小雨水生痕
북쪽 절엔 외가 상 가득 쌓였고 / 北寺苽堆案
동쪽 이웃엔 술이 동이에 가득해 / 東鄰酒滿樽
코끼리 코 같은 벽통주를 마시니 / 碧筒如象鼻
이 좋은 일을 천지에 감사하노라 / 勝事謝乾坤
오만 경계가 다 청정함이 좋아서 / 對境欣淸淨
나란히 말 타고 나잔자를 찾았네 / 聯鞍訪懶殘
술이 거나해 고상한 흥취 발하니 / 微酣高興發
늙어갈수록 이 맘이 편안해지누나 / 向老此心安
버들 그늘은 더위가 한층 엷고 / 柳影暑氣薄
연꽃은 가을빛을 널리 풍기네 / 荷花秋色寬
거듭 놀 날이 진정 머지않으니 / 重游諒不遠
술 장만해 조관들을 끌어와야지 / 沽酒引朝冠
[주C-001]수파(手帕) : 손수건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예물(禮物)을 의미한다.
[주D-001]명폐(蓂陛) : 대 궐의 뜰을 가리킨다. 요(堯) 임금 때에 명협(蓂莢)이란 서초(瑞草)가 뜰에 났는데, 매월 초하루부터 15일까지는 매일 한 잎씩 나오고, 16일부터 그믐날까지는 매일 한 잎씩 떨어졌으므로, 이것을 인하여 달력을 만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코끼리 …… 마시니 : 연 잎에 술을 담아서 연줄기를 통해 술을 빨아 마시는 것을 말한다.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정각(鄭慤)이 삼복(三伏) 무렵이면 매양 빈료(賓僚)들을 거느리고 사군림(使君林)에서 피서(避暑)를 했는데, 그때마다 큰 연잎에다 술 서 되를 담은 다음, 비녀로 연잎을 찔러서 줄기의 구멍과 서로 통하게 하여 줄기를 마치 코끼리의 코처럼 구부려서 거기에 입을 대고 술을 빨아 마셨던 데서 온 말이다
이 제정(李霽亭) 선생이 주상의 탄일을 하례하기 위하여 경성(京城)에 들어왔으므로, 그다음 날에 염동정(廉東亭), 한유항(韓柳巷)과 함께 각각 주과(酒果)를 휴대하여 이 개성(李開城) 댁으로 초청을 받고 가니, 이 개성이 성찬(盛饌)을 마련하고 가인(歌人)의 노래와 해금(奚琴) 연주로 권주(勸酒)를 하도록 했는데, 이때 마침 홍 이상(洪二相)이 또 주과를 가지고 와서 실컷 즐기고 파하였다. 다음 날에 그 사실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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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는 선생 음식 접대에 합하고 / 氣合先生饌
광채는 아상이 오는 데서 빛났네 / 光浮亞相來
해금 소리엔 백설곡이 얽히었고 / 奚琴縈雪曲
가양주는 금술잔에 넘실대누나 / 杜酒艷金盃
자리 옮기니 푸른 잔디는 깨끗하고 / 移席綠莎淨
산에 걸친 붉은 해는 재촉을 하네 / 踞山紅日催
취하고 배만 불렀다 말하지 마소 / 莫言徒醉飽
노인 공경이 삼재를 갖추었는걸 / 敬老備三才
[주D-001]선생(先生) 음식 접대 : 선 생은 곧 부형(父兄)을 가리킨 것으로, 자하(子夏)가 일찍이 효(孝)를 묻자, 공자가 이르기를 “낯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우니라. 일이 있거든 자식이나 아우가 그 일에 부지런히 종사하고, 주식이 있거든 선생을 드시게 하는 것을 일찍이 효라고 하였던가.[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제정(霽亭) 이달충(李達衷)을 부형의 지위로 존경하여 이른 말이다. 《論語 爲政》
[주D-002]아상(亞相) : 어사대부(御使大夫)의 별칭인데, 여기서는 바로 제정 이달충이 일찍이 어사대부를 지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백설곡(白雪曲) : 전국 시대 초(楚)나라에 유행했던, 고아(高雅)하기로 유명한 악곡(樂曲)의 이름이다.
[주D-004]노인 …… 갖추었는걸 : 삼재(三才)는 곧 천(天), 지(地), 인(人)이므로, 즉 인간의 도리를 다했음을 의미한 말이다.
서경(西京)의 장상(張相)이 포(脯)를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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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가을이 또 이르러 와서 / 病中秋又至
읊는 곳에 비가 한창 내리는데 / 吟處雨方來
앉아서 홍련막을 상상해 보니 / 坐想紅蓮幕
맛있는 고기가 소반에 쌓였겠네 / 肥甘案上堆
[주D-001]홍련막(紅蓮幕) : 재상 대신(宰相大臣)의 막부(幕府)를 가리킨다. 진(晉)나라 때 재신(宰臣) 왕검(王儉)의 막부를 당시 사람들이 연화지(蓮花池)라 일컬었던 데서 온 말이다.
7월 9일 새벽에 가랑비가 와서 약간 서늘하여 몸이 가뿐해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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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비는 쓸쓸히 작은 집을 감싸 내리고 / 曉雨蕭疏擁小樓
바람이 불어와서 또 가을을 놀라게 하네 / 颯然風至又驚秋
병든 몸 소생하여 쾌해짐은 절로 알거니와 / 自知病骨蘇來快
누가 더위를 물러가다 아직 머물게 하는가 / 誰導炎官代尙留
몽택에 삿갓 쓰던 건 어찌 그리 아득한고 / 夢澤披簑何渺渺
파산의 불똥 자르던 것 또한 유유하구나 / 巴山剪燭亦悠悠
노년의 맑은 흥취를 버려 버리기 어려워서 / 老年淸興難抛得
만사를 제쳐 놓고 온종일 시만 읊는다네 / 竟日吟詩萬事休
[주D-001]몽택(夢澤)에 …… 아득한고 : 이백(李白)의 〈상청보정시(上淸寶鼎詩)〉에 “아침에 운몽택의 구름을 헤치고, 삿갓 차림 낚시질에 푸른 물이 아득하네.[朝披夢澤雲 笠釣靑茫茫]” 하였다.
[주D-002]파산(巴山)의 …… 유유하구나 : 이 상은(李商隱)의 〈야우기북(夜雨寄北)〉 시에 “그대에게 물으니 돌아올 기약은 없고, 파산의 밤비만 가을 못에 넘치는구나. 어찌하면 함께 서창의 촛불똥을 자르면서, 파산의 밤비 내리던 때를 얘기해 볼꼬.[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 何當共剪西窓燭 却話巴山夜雨時]” 한 데서 온 말이다.
양촌권(陽村卷)에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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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의 봄비는 봄 연기에 자욱이 내리고 / 陽村春雨暗春煙
양촌의 가을 이슬은 가을 하늘에 뿌려라 / 陽村秋露洒秋天
벽오동에 봉황 깃들긴 기필할 수 없거니 / 碧梧未必棲丹鳳
아직 숨은 사람 사슴 짝하여 졸게나 하리 / 且許幽人伴鹿眠
[주D-001]벽오동에 봉황 깃들긴 : 《시 경》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이 울어대니, 저 높은 뫼이로다. 오동나무가 나서 자라니, 저 볕바른 양지쪽이로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하였는데, 여기서는 곧 호가 양촌(陽村)이기 때문에 봉황과 오동을 끌어댄 것이다.
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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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당에 더위가 처음 물러가고 / 虛堂暑初退
우기가 있어 십분 서늘하여라 / 雨氣十分涼
화산의 매는 사냥할 뜻이 동하고 / 嶽隼意將動
풀벌레는 소리가 벌써 길어졌네 / 草蟲聲已長
뭇 산은 푸른 빛이 공중에 뜨고 / 羣山浮積翠
이른 벼는 약간 누른 빛 띠었는데 / 早稻帶微黃
병든 몸 소생하고자 하는 곳에 / 病欲蘇醒處
오히려 시 읊기 바쁜 게 혐의로세 / 猶嫌得句忙
[주D-001]화산(華山)의 …… 동하고 : 두보(杜甫)의 〈위장군가(魏將軍歌)〉에 “화산 꼭대기의 가을 매를 보는 듯하다.[華嶽峯尖見秋隼]” 하였다.
군자(君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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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출처는 비록 다르더라도 / 君子異出處
마음의 귀착점은 진실로 같나니 / 其心諒同歸
포관도 일정한 직책이 있거니와 / 抱關有常職
산림 처사를 어찌 하찮게 볼쏜가 / 山林豈卑微
어느 날 갑자기 재상에 오르면 / 一朝膺具瞻
앉아서 천하를 살찌게 하고말고 / 坐令天下肥
공산에게는 갈 곳이 아니었지만 / 公山非所適
그의 잘못을 배척하지 않았으니 / 亦不斥其非
위대하여라 성인의 마음씀이여 / 大哉聖人心
천재 아래서 그 모습 어렴풋하네 / 千載猶依俙
[주D-001]포관(抱關)도 …… 있거니와 : 포 관은 포관격탁(抱關擊柝)의 준말로, 관문을 안고 딱따기를 치는 야경군을 가리키는데,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관문을 안고 딱따기를 치는 사람도 모두 일정한 직책이 있어 나라에서 녹을 먹나니, 일정한 직책도 없이 임금으로부터 하사받는 것을 불공하다고 여기는 것이다.[抱關擊柝者 皆有常職 以食於上 無常職而賜於上者 以爲不恭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공산(公山)에게는 …… 않았으니 : 계 씨(季氏)의 가신(家臣)인 공산불요(公山弗擾)가 비(費)를 가지고 배반하여 공자를 불렀을 때 공자가 가려고 하자, 자로(子路)가 하필 공산씨(公山氏)에게 갈 것이 있느냐고 못마땅하게 여기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공연히 불렀겠는가. 만일 나를 써주는 이만 있으면 나는 동주를 만들 것이다.[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陽貨》
참외[甘瓜]를 보내 준 정 영공(鄭令公)에게 붓을 달려 써서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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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남쪽의 별장엔 가을 기운이 동할 텐데 / 城南別墅動高秋
어느 날에나 그대 따라 좋은 놀이 해 볼꼬 / 何日從公得勝游
벽옥 같은 참외가 굴러와 좌석을 비추매 / 碧玉甘瓜來照座
문득 그쪽 바라보며 머리만 득득 긁노라 / 忽然瞻望苦搔頭
보광(普光)의 형(兄)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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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은 푸른 빛 가로지른 곳이요 / 山光橫碧處
들 빛은 절반쯤 누레진 때이로다 / 野色半黃時
선정에서 나오면 다른 일이 없어 / 出定無餘事
읊조리면 곧 좋은 시가 나오누나 / 吟來卽好詩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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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기운 하늘 가득해 내 병이 가벼워져라 / 秋氣滿天吾病蘇
지난날 땀 뻘뻘 흘리던 일이 가련하구나 / 可憐前日汗流膚
오경에 이미 낙숫물 소리 듣고 좋아했더니 / 五更已好聞簷雨
우물 오동 한 잎새 떨어진 데 자주 놀라네 / 一葉頻驚落井梧
이 마음은 공맹 같음을 스스로 믿거니와 / 自負此心如孔孟
세도는 요순 시대로 그 누가 회복시킬꼬 / 誰回世道復唐虞
한가함 속에 생각 있어 참으로 무료하나 / 閑中有念眞無賴
청풍은 솔솔 불어와 자리에 가득하네그려 / 習習淸風滿座隅
[주D-001]우물 …… 데 : 가을이 오면 오동잎이 가장 먼저 떨어지므로, ‘오동 한 잎새 떨어진다.[梧桐一葉落]’는 말로 가을이 온 것을 표현하는 데서 온 말이다.
수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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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이 흰 눈처럼 차서 치아가 써늘하니 / 西瓜如雪齒牙寒
열기가 나의 뱃속에 들어갈 길이 없어라 / 熱氣無從入我肝
일만 구렁 맑은 얼음은 눈동자를 비추고 / 萬壑淸氷照銀海
한 잔의 맑은 이슬은 금쟁반에 들었도다 / 一杯湛露在金盤
수혈에 붓 휴대하여 시 읊길 꾀하려 하고 / 欲圖水穴吟携筆
풍암에 관 안 쓰고 앉았길 괜히 생각했네 / 謾想風巖坐不冠
늙어서도 오히려 송백을 먹기 어렵거늘 / 老矣猶難啖松柏
누가 난새 타고 푸른 하늘을 날려고 하랴 / 靑冥誰擬控飛鸞
[주D-001]수혈(水穴)에 …… 생각했네 : 소식(蘇軾)의 〈풍수동(風水洞)〉 시에 “풍암 수혈은 예전부터 이름이 높았는데, 다만 산계가 막혀 있어 밤엔 갈 수가 없네.[風巖水穴舊聞名 只隔山溪夜不行]”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늙어서도 …… 어렵거늘 : 송백(松柏)을 먹는다는 것은 곧 솔잎이나 잣을 따서 요기(療飢)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즉 선도(仙道)를 배우는 이들의 세속을 초탈한 생활을 가리킨다.
팥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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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을 삶아서 죽을 쑤어 놓으니 / 小豆烹爲粥
붉은빛이 표면에 짙게 뜨누나 / 光浮赤面濃
가을은 왔으나 날은 아직 더웁고 / 秋回天尙暑
햇볕 아래 낮에는 바람도 없는데 / 日照晝無風
삼초의 열기를 깨끗이 씻어 주고 / 淨掃三焦熱
맑은 기운은 구규를 소통시키네 / 淸凝九竅通
달콤한 맛 치아 사이에 감돌아라 / 微甘生齒頰
황봉의 석청 맛보다도 좋고말고 / 崖蜜謝黃蜂
[주D-001]삼초(三焦) : 한방(漢方)에서 말하는 상초(上焦), 중초(中焦), 하초(下焦)를 합칭한 말로, 상초는 심장(心臟) 아래에, 중초는 위(胃) 속에, 하초는 배꼽[臍] 아래에 각각 있어 수곡(水穀)의 배설(排泄) 기능을 맡았다고 한다.
[주D-002]구규(九竅) : 사람의 몸에 있는 아홉 구멍을 말한다. 즉 이(耳), 목(目), 비(鼻)의 각각 두 구멍씩 여섯 구멍과 구(口), 항문(肛門), 요도(尿道)의 세 구멍을 합해서 일컫는 말이다.
신 해년 회시(會試) 때의 문생 오의(吳毅)가 와서 말하기를 “일찍이 규정(糾正)으로부터 판나주목(判羅州牧)으로 나갔다가 지금은 장 서경(張西京) 막하(幕下)의 요좌(僚佐)가 되었는데, 일 때문에 휴가를 청하여 여기에 왔다가 또 곧 서경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하므로, 그를 전별하려고 술을 가져오게 하였으나 마침 집에 술이 없어 그냥 보내고 나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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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가 되어 남북을 주류하면서 / 幕府游南北
백천의 산을 넘고 물을 건넜구려 / 山川閱百千
원수의 자문을 어찌 헛되이 하랴 / 肯虛元帥問
아직도 판관의 직책에 있는걸 / 猶在判官聯
요습 땅은 강 서쪽의 길이요 / 遼霫江西路
탐라는 바다 밖의 세계이거늘 / 耽羅海外天
그대는 이역의 풍속도 살폈거니 / 知君詢異俗
어찌 유독 군문에만 있을쏜가 / 豈獨在軍前
[주D-001]요습(遼霫) : 요령성(遼寧省) 북부에 위치한 흉노(匈奴)의 별종(別種)을 가리킨다.
평원권(平源卷)에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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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구덩이 채운 다음엔 반드시 넘쳐서 / 水盈科處必橫奔
콸콸 도도히 흘러흘러 바다에 이르나니 / 汨汨滔滔赴海門
다행히 가을바람이 서늘해진 뒤이라서 / 幸是秋風涼冷後
곧 백제를 찾아 도의 근원을 묻겠네그려 / 將尋白帝問眞源
[주C-001]평원권(平源卷) : 평원은 고려 말기의 선승(禪僧) 환암(幻菴)의 제자인 분상인(分上人)의 호로, 즉 분상인의 시권(詩卷)을 가리킨다.
[주D-001]물이 …… 이르나니 : 서 자(徐子)가 맹자에게, 공자가 자주 물을 칭탄(稱歎)한 데 대하여 묻자, 맹자가 이르기를 “근원 있는 샘물이 콸콸 솟아 나와서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 구덩이를 채운 다음에야 나가서 사해에 이르나니, 근본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라, 이것을 취하신 것이다.[原泉混混 不舍晝夜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離婁下》
[주D-002]다행히 …… 묻겠네그려 : 백 제(白帝)는 화산(華山)의 신령인 서방신(西方神)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가을을 의미하는데, 두보(杜甫)의 〈망악(望岳)〉 시에 “점차 가을바람이 서늘해지기를 기다려, 높이 백제를 찾아서 진원을 물으련다.[稍待秋風涼冷後高尋白帝問眞源]” 한 데서 온 말이다.
아침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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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우는 가운데 조용히 앉았어라 / 靜坐鳥聲中
백발의 쇠하고 병든 늙은이로다 / 白頭衰病翁
국가 체통 붙들고자 맹세는 하나 / 誓心扶國體
천공을 대신할 직무는 없네그려 / 無事謝天工
들이 넓으니 아침에 안개 걷히고 / 野闊朝收霧
숲이 깊으니 낮에 바람 보내오네 / 林深晝送風
더운 기운 덜해짐은 비록 알지만 / 雖知暑氣薄
아직도 구슬땀 흐르는 게 두렵네 / 尙怕汗珠融
[주D-001]천공(天工)을 …… 없네그려 : 직무가 없음을 뜻한다. 천공은 곧 하늘이 할 일이란 뜻으로,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에 “모든 관리들이 일을 폐하지 말게 하소서. 하늘의 일을 사람들이 대신하는 것입니다.[無曠庶官 天工人其代之]” 하였다.
낮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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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미로 찌는 듯한 모진 더위에 / 熱甚如蒸熨
당이 높아 다행히 바람은 부누나 / 堂高幸有風
수많은 수레에선 먼지가 벌창하고 / 千車塵自漲
도성 거리는 햇볕이 한창 쬐는데 / 九陌日方烘
두건은 벗어 내 게으름 따르지만 / 露頂從吾懶
명상에 젖음은 세상과 달리함일세 / 冥心非世同
불 시루에 차가운 서리가 어려라 / 嚴霜凝火甑
머리 돌려 구공을 생각게 하누나 / 回首憶丘公
[주D-001]불 시루에 …… 하누나 : 구 공(丘公)은 단구인(丹丘人)이란 뜻에서 즉 신선(神仙)을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곧 선인(仙人) 갈홍(葛洪)을 가리키는데, 그의 저서인 《포박자(抱朴子)》에 “눈서리는 신기한 화로에 어리게 하고, 신령한 지초는 숭악에서 캔다.[凝霜雪於神爐 採靈芝於嵩岳]” 한 데서 온 말이다.
석양에 산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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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비탈에 저녁 그늘이 생기니 / 西崖生夕陰
그윽한 사람 답답증이 확 풀리네 / 幽人爽煩襟
겨우 해가 막 서산에 지자마자 / 甫爾日入地
서늘한 바람이 숲에 가득하구나 / 蕭然風滿林
말 잊고서 고상한 생각에 잠기고 / 忘言有遐想
흥겨울 땐 조용히 읊기도 하는데 / 乘興動微吟
어도의 계절은 또한 가까워졌네 / 魚稻亦云近
강산에 가을은 아직 깊지 않지만 / 江山秋未深
아침에 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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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마다 모두 우란분회를 베풀으니 / 盂蘭盆會遍僧家
신도들은 떼 지어 왁자지껄 담소하는데 / 檀越成羣笑語譁
난 홀로 연잎 밟은 원통을 마주하다 / 獨對圓通躡蓮葉
문득 광제사로부터 법화를 빌려왔네 / 却從廣濟借荷花
뜬구름은 바람 따라 광대히 움직이고 / 浮雲浩浩隨風轉
가랑비는 햇살을 띠고 실실 내리누나 / 小雨絲絲帶日斜
지난 허물 깨끗이 씻어 매우 청정하거니 / 滌盡往愆淸淨甚
어찌 고통 참고 산수와 짝할 것 있으랴 / 何須忍苦伴煙霞
[주D-001]우란분회(盂蘭盆會) : 불가(佛家)에서 매년 음력 7월 15일에 선조(先祖) 및 생존한 부모(父母)의 고통을 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해서 그릇에 담아 시방(十方)의 불승(佛僧)들에게 베푸는 불사(佛事)를 말한다.
[주D-002]연잎 밟은 원통(圓通) : 원통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별호(別號)인 원통대사(圓通大士)의 약칭인데,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이 연화대좌(蓮花臺座)에 안치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7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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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돌아오니 흥취 더욱 그윽해라 / 山寺歸來興轉幽
매미 소리 푸른 숲에 흰 구름 가을일세 / 蟬聲碧樹白雲秋
가부좌하고 소리 높여 읊조리는 이곳이 / 誰知趺坐高吟處
되레 산사보다 더 자유로움을 누가 알랴 / 却勝僧窓得自由
텅 빈 당에 앉아 졸다가 해는 또 기울고 / 坐睡虛堂日又斜
적막한 집안은 마치 절집이나 똑같은데 / 寂寥庭宇似僧家
광흥 토산 명주베가 패를 따라 이르르니 / 廣興紬布隨牌至
임금 은혜 아직 끝없음을 다시 깨닫겠네 / 更覺君恩尙未涯
아침 일찍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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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의 비바람 속에 꿈이 처음 깨었는데 / 五更風雨夢初回
일어나니 검은 구름이 아직 안 걷혔었네 / 早起陰雲尙未開
가을 물에 배 띄우긴 지금이 딱 좋거니와 / 秋水揚舲今正好
전토 하사한 강가엔 조어대도 있질 않나 / 賜田江畔有漁臺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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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하나의 텅 빈 배와 같은데 / 我身一虛舟
바람 부는 강해의 가을을 만나서 / 颯然江海秋
바람 따라 끊어진 항구에 들었지만 / 隨風入斷港
잠시일 뿐 오래 머물 건 아니라네 / 暫爾非久留
나를 비춰 준 것은 하늘의 달이요 / 照我天有月
나와 짝할 것은 백사장 갈매기라 / 伴我沙有鷗
내를 건너는 게 본디 소원이거니 / 濟川固所願
감히 공자의 떼 타는 걸 배우랴 / 敢學宣尼桴
[주D-001]내를 건너는 게 : 은 고종(殷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명하기를 “내가 만일 큰 냇물을 건너게 된다면 그대를 배와 노로 삼으리라.[若濟巨川 用汝作舟楫]”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제왕(帝王)을 보좌하는 것을 의미한다. 《書經 說命上》
[주D-002]공자(孔子)의 …… 걸 : 공자가 일찍이 천하에 어진 임금이 없어 도(道)를 행할 수 없음을 탄식하여 이르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떼를 타고 바다에 뜨리라.[道不行 乘桴浮于海]”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公冶長》
자은 종사(慈恩宗師) 법천 장로(法泉長老)가 나에게 만화방석(滿花方席)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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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이 원만한 게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 圓滿十方何物耶
다섯 채색이 한데 모여 정히 꽃을 피웠네 / 雜然五彩政開花
누가 체와 용이 도리어 대가 되게 했는고 / 誰敎體用還成對
서로 전함은 예로부터 일가를 이루었었지 / 授受由來是作家
북창 아래 누웠을 땐 바람이 잎새 흔들고 / 北牖臥時風動葉
동헌의 앉았는 곳엔 해가 꽃송이 비추리 / 東軒坐處日臨葩
일생 동안 교의에 걸터앉는 데만 익숙해 / 一生只慣胡牀踞
책상다리 해온 연래에 귀밑털이 희어졌네 / 盤脚年來鬢有華
[주C-001]만화방석(滿花方席) : 여러 떨기의 꽃무늬를 놓아서 짠 방석을 가리키는데, 방석 외에도 이와 같이 짠 침석(寢席), 단석(單席) 등이 있었다.
[주D-001]시방(十方)이 …… 피웠네 : 석 가(釋迦)의 제자 마하가섭(摩訶迦葉)이 염화미소(拈花微笑)에 의해 석가의 심법(心法)을 처음 전해 받아 불교 선종(禪宗)의 초조(初祖)가 되었는데, 후에 그의 법을 전수받은 달마(達磨)가 역시 중국 선종의 초조가 되어, 선종이 뒤에 조동(曹洞), 임제(臨濟), 운문(雲門), 위앙(潙仰), 법안(法眼) 등 오파(五派)가 나올 것을 예측하고 스스로 일화(一花)라 자칭하여 그의 전법게(傳法偈)에 “한 꽃이 다섯 잎새를 피우면, 열매 맺는 건 자연히 이루어지리.[一花開五葉結果自然成]”라고 예언했던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만화방석(滿花方席)을 선종의 종통(宗統)에 은밀히 빗대어 한 말이다
소우(小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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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앉아 꾀부리는 행위 잊고 / 靜坐忘機事
남은 생애에 성령만을 기르는데 / 殘生養性靈
검은 구름이 작은 비를 몰아와서 / 黑雲携小雨
백일 청천 텅 빈 뜰에 뿌려대니 / 白日洒空庭
신세는 어찌 그리도 시원한가만 / 身世何蕭爽
강산은 절로 아득하기만 하여라 / 江山自杳冥
한집안이 상하가 제자리 얻으니 / 一家天地位
분수에 따라서 또한 편안하구려 / 隨分亦淸寧
닭이 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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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달빛 성긴 별에 하늘 가득 서늘한데 / 淡月疏星涼滿天
닭이 우니 일찍이 조회 나간 일 기억나네 / 雞鳴曾記赴朝聯
연래엔 가만히 누워 봉군록을 먹다 보니 / 年來臥喫封君祿
부름받아 강연에 참예키만 두려울 뿐일세 / 只恐宣呼與講筵
얼굴을 씻고 머리를 빗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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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 씻고 머리 빗으니 몸이 문득 경쾌해라 / 盥櫛身輕便快哉
다시 티끌 하나도 마음 더럽히는 게 없어 / 更無纖翳汚靈臺
엄연히 우공의 산하가 머리에 떠오르고 / 森然禹貢山河出
갑자기 우서의 예악이 맘속에 돌아오네 / 忽爾虞書禮樂回
빙 두른 푸른 산 위론 아침 해가 떠오르고 / 靑嶂周遭初日上
푸른 숲은 시원하게 바람이 살살 부누나 / 綠林蕭爽小風來
누가 천하를 이만하게 다스릴 수 있을꼬 / 誰敎四海能臻此
참찬의 재주 부족한 게 부끄럽기 그지없네 / 參贊深慚未有才
[주D-001]우공(禹貢)의 산하(山河) : 우 공은 《서경》 하서(夏書)의 편명으로, 요(堯) 임금 때에 우(禹)가 천하(天下) 구주(九州)의 홍수(洪水)를 다스림과 동시에 그곳의 부세(賦稅)와 땅의 등급 및 공물(貢物)의 종류를 낱낱이 정한 사실 등을 기록한 것인데, 이것이 곧 천하를 다스리는 기반이 되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2]우서(虞書)의 예악(禮樂) : 《서 경》의 우서에는 요전(堯典), 순전(舜典),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익직(益稷) 등의 편이 있는바, 이 글들의 내용은 모두 요순(堯舜) 시대에 성군 현신(聖君賢臣)이 서로 만나서 훌륭한 예악으로써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렸던 일들을 기록하였다.
조금 서늘해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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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서늘해짐이 내 뜻에 맞아라 / 嫩涼可吾意
삭신의 상쾌함을 어찌 다 말하랴 / 肌骨快何言
갑자기 정신이 한층 건강해지니 / 忽致精神健
문득 귀와 눈의 흐림도 사라졌네 / 俄除耳目昏
내 부자가 아님은 스스로 알지만 / 自知非潤屋
청귀한 가문임은 누가 믿을런고 / 誰信是淸門
문득 저 흰 구름 머문 골짜기의 / 却似白雲谷
청풍에 시냇물 졸졸 흐른 것 같네 / 淸風溪水喧
원주(原州)의 석(釋) 경전(敬田)이 천태(天台)의 선(選)에 합격하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시(詩)를 요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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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 산중으로부터 나와서 / 雉岳山中出
천태산 아래 와서 노닐다가 / 天台山下游
바람 따라 또 고향엘 돌아가니 / 隨風又歸去
아득한 흰 구름 가을이로세 / 渺渺白雲秋
[주D-001]치악산(雉岳山) …… 노닐다가 : 원주(原州) 치악산에 있던 승려가 천태종(天台宗)의 승과(僧科)에 합격한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어제 조사(詔使)가 도성(都城)에 들어왔다는데, 나는 한창 병석에 누워 있는 터라, 무슨 일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인하여 한 수를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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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건대 그 옛날 천자 조서 읽을 때는 / 記得當年讀詔時
조정의 높은 곳 깃발 밑에 부복했었는데 / 省堂高處俯旌旗
시골에 사는 나에겐 알려 주는 이 없으니 / 村居自分無相報
천자의 말을 어떻게 자세히 알 수 있으랴 / 天語何曾得細知
홀로 선 쇠잔한 인생은 응당 내이거니와 / 獨立殘生應是我
중흥의 사업일랑 그 누가 해낸단 말인가 / 重興盛業在於誰
중원의 새 천자가 방금 개혁을 일삼으니 / 中原新主方更化
후일 남북 사이에 사신이 분주하겠네그려 / 南北他年信使馳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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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아이들이 옷 안 입고 발가벗은 채 / 日午羣童赤不衣
서로 쫓아 빙빙 돌며 팔로 지휘한 것 같네 / 相追環走似肱麾
인정의 호오는 보는 데 따라 달라지거니와 / 人情好惡看時異
천성의 순진함은 발하는 곳이 은미도 해라 / 天性純眞發處微
밥 달라고 울 때는 정이 천진난만하고요 / 索飯啼時情爛熳
오이 먹으며 다닐 때는 희색이 만면하구나 / 啖瓜行處色愉怡
늙은이가 가만히 앉아서 생각이 끝없어라 / 老翁端坐思無盡
너희들 어른 되어 그른 일만 하지 말거라 / 爾輩成人要去非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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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의 정취가 일 꾀하기를 사절하니 / 老年情興謝經營
그윽한 살이 일일마다 청한함을 얻었네 / 剩得幽居事事淸
바람 고요한 산 돌배는 절로 떨어지는데 / 風靜山梨時自落
가을 깊은 뜨락 이끼는 누굴 위해 나는고 / 秋深庭蘚爲誰生
도는 오취에 있어라 이윤을 알거니와 / 道存五就知伊尹
공은 삼분을 덮어라 공명을 생각하네 / 功蓋三分憶孔明
조용히 앉아서 유연히 서책을 대하노니 / 默坐悠然對黃卷
고금 천하에 태평한 때가 그 얼마이던고 / 古今天下幾昇平
[주D-001]도(道)는 …… 알거니와 : 맹 자가 이르기를 “다섯 번 탕에게 나가고 다섯 번 걸에게 나간 사람은 이윤이다.[五就湯五就桀者伊尹也]” 한 데서 온 말인데, 이윤이 걸에게 다섯 번 나갔던 것은 곧 탕(湯) 임금이 그의 어짊을 알고 그를 정중히 초빙하여 당시 천자(天子)인 걸을 보좌하도록 걸에게 바쳤던 것이나, 걸이 그를 쓰지 않음으로써 다섯 번이나 갔다가 되돌아오곤 하다가, 마침내 탕 임금을 보좌하여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孟子 告子下》
[주D-002]공(功)은 …… 생각하네 : 삼 분(三分)은 촉한(蜀漢) 시대에 천하가 위(魏), 촉(蜀) 오(吳) 셋으로 나누어졌던 것을 가리키고, 공명(孔明)은 촉한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의 자인데, 두보(杜甫)가 제갈량의 진법(陣法)인 팔진도(八陣圖)를 두고 지은 시에 “공은 삼분의 나라를 뒤덮고, 이름은 팔진도에서 이루었네.[功蓋三分國 名成八陣圖]” 한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탄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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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두려워 서늘한 누각 지었는데 / 畏熱作涼軒
누각 이뤄지자 가을이 벌써 이르러 / 軒成秋已至
도생과 비단부채까지도 / 桃笙與紈扇
또한 갑자기 버리듯 하여라 / 亦復忽如棄
누각 안 사람을 앉아 탄식하노니 / 坐歎軒中人
평생에 이런 일이 정히 많고말고 / 平生多此類
글 배웠는데 시속은 무를 숭상하고 / 學成時尙武
봉양하려는데 부모는 세상 떠났네 / 榮養親棄世
삼가 생각건대 조물주의 마음은 / 恭惟造物心
흡사 사람을 놀리는 듯도 하구나 / 似乎戲之耳
백발에 다행히 떠돌지는 않거니 / 白頭幸席暖
그런대로 가지는 게 나의 뜻인데 / 苟有吾所志
금년이 지나고 다시 명년이 온들 / 今年復明年
뉘 다시 갖추고 아름답길 바라랴 / 誰更望完美
텅 빈 당에서 한껏 멀리 바라보니 / 虛堂縱遠眺
가을빛은 서늘하기 물과 같은데 / 秋色涼如水
흰 구름 한두 조각은 또 / 白雲一二片
푸른 하늘 천만 리에 둥둥 떠가네 / 靑天千萬里
내 또한 나의 생애를 관찰해 보니 / 亦復觀吾生
호연히 돌아갈 뜻 간절하고말고 / 浩然有歸意
배회만 하면 끝내 무엇을 할꼬 / 低回竟何爲
옛적 군자에게 길이 부끄럽구려 / 永愧古君子
[주D-001]도생(桃笙) : 도지죽(桃枝竹)으로 엮은 죽석(竹席)을 말한다. 도지죽은 껍질이 붉은 일종의 대인데, 《산해경(山海經)》 서산경(西山經)에 의하면, 파총산(嶓冢山)에 이 대가 많이 난다고 한다.
[주D-002]그런대로 …… 바라랴 : 공 자(孔子)가 일찍이 위(衛)나라 공자 형(公子荊)을 두고 이르기를 “그는 가정생활을 잘하는도다. 살림살이를 처음 가졌을 때는 ‘그런대로 모여졌다.’ 하였고, 조금 더 가졌을 때는 ‘그런대로 갖추어졌다.’ 하였고, 많이 가졌을 때는 ‘그런대로 아름답다.’고 하였다.[善居室 始有曰苟合矣 小有曰苟完矣 富有曰苟美矣]”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외물(外物)에 마음을 두어 성취욕을 급하게 채우려 하지 않는 담박한 생활 태도를 의미한다. 《論語 子路》
임 동년(任同年)이 햅쌀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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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들 밖에 불어 대더니 / 西風吹野外
옥 같은 쌀이 궁한 집을 비추누나 / 玉粒照窮廬
다시 생각건대 상주의 북쪽에선 / 更想尙州北
맑은 못에서 고기도 낚아 내겠지 / 淸池釣出魚
남경 영공(南京令公)이 햅쌀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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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구름이 조각조각 평야에 들더니 / 黃雲片片入平田
햅쌀이 내 앞에 떨어질 줄 어찌 뜻했으랴 / 豈意隨風落我前
늙어갈수록 식탐이 가을이면 더욱 심해라 / 老去口饞秋更甚
한강에는 원래부터 축두편도 있었다네 / 漢江元有縮頭鯿
[주D-001]누런 구름 : 가을에 누렇게 익은 벼를 구름에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2]축두편(縮頭鯿) : 살지고 맛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물고기의 이름인데, 이 고기는 본래 한수(漢水)에서 난다고 한다.
왜인(倭人)이 목주(木州)를 침범했다는 소식을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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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새로운 일들이 어찌 다 참일까만 / 南來新事豈皆眞
듣자 하니 왜노가 우리 백성 괴롭힌다네 / 聽說倭奴擾我民
누가 바닷가에서 적을 제어할 수 있을꼬 / 誰向海濱能制敵
내 들으니 산중에도 사람이 없다 하더이 / 我聞山路亦無人
근년엔 근심 병고로 숨이나 보존하거니와 / 比年憂病存殘喘
자고로 국가 안위는 대신에 의지하고말고 / 自古安危倚大臣
가장 이 한가함 속에 느낀 바가 많은 건 / 最是閑中多所感
다만 당일에 조관 반열에 있기 때문일세 / 只緣當日逐簪紳
길창군(吉昌君)이 길을 내므로, 하인으로 하여금 가서 일을 돕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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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은 하도 높아 반공중에 우뚝한지라 / 穿峴高高倚半天
남북으로 나뉜 길이 운연을 굽어보는데 / 路分南北俯雲煙
매양 장마철이면 꺼진 길이 많기 때문에 / 每因夏雨多崩陷
가을이 오면 이내 길을 땜질하곤 한다네 / 故値秋風旋補塡
유동의 그윽한 삶은 한가한 날만 많지만 / 柳洞幽居閑有日
송재의 남긴 복은 냇물처럼 흘러흘러라 / 松齋餘慶至如川
맑은 새벽에 하인을 명하여 보내었거니 / 淸晨約束蒼頭去
아마도 그 어진 맘이 의당 널리 미치리 / 想得仁心便霈然
[주C-001]길창군(吉昌君) : 고려 말기에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고 길창군에 봉해진 권적(權適)을 가리킨다. 송재(松齋) 권준(權準)은 바로 그의 아버지이다.
나의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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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애가 어찌 슬프지 않으랴 / 我生豈不悲
천하가 바야흐로 둘로 갈라져서 / 天下方分崩
본래 섬기던 천자는 새외에 있어 / 所天在塞外
마른 풀이 긴 얼음판과 연했거니 / 衰草連長氷
가려고 해도 내 또한 병이 들어 / 欲往我又病
가을 파리처럼 힘이 전혀 없기에 / 力弱如秋蠅
끝없는 길을 서글피 바라보노라면 / 悵望路無極
슬픈 바람만 쓸쓸히 불어온다네 / 颯颯悲風興
나의 생애가 어찌 슬프지 않으랴 / 我生豈不悲
도를 배우다 중도에서 그만두고 / 學道廢半途
문장일랑 남의 부림만 받다 보니 / 文章爲人役
상전 모시는 구종이나 같고말고 / 如與執鞭趨
겉보기는 또한 아름답기도 하지 / 外視亦美矣
고관으로 도성을 누비니 말일세 / 華聯致亨衢
허나 끝내 조금의 보람도 없으니 / 竟無尺寸效
늙어지매 길이 탄식이나 할밖에 / 老矣空長吁
나가서 우 평장(禹平章)을 방문하고 인하여 박 판서(朴判書)의 집에 들러서 약간 취하여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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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엔 나무 그늘에 깊이 숨었다가 / 三伏深藏樹影中
어느덧 또 가을바람이 모발을 스치기에 / 颯然毛髮又秋風
큰 들판 높은 봉우리 밑에 나와 노니니 / 出游大畝危峯下
술의 흥취 시 생각이 해동에 가득하구나 / 酒興詩情滿海東
향기론 풀은 연기에 섞여 한창 어둑하고요 / 芳草和煙方暗淡
엷은 구름은 해를 희롱해 아직도 흐릿하네 / 輕陰弄日尙曚曨
늙은 목은의 마음 보존한 곳을 알려거든 / 欲知老牧存心處
이천 격양옹을 찾아서 물어보아야 하리 / 問向伊川擊壤翁
[주D-001]이천 격양옹(伊川擊壤翁) : 이 천옹(伊川翁)이라 자호(自號)한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의 저자인 소옹(邵雍)을 가리킨다. 소옹은 특히 역학(易學)에 정통한 유학자(儒學者)로서 평생을 독서에만 전심하였고, 낙양(洛陽)으로 옮겨 가 살 적에는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등과 종유하면서 자기가 사는 집을 안락와(安樂窩)라 하고 안락 선생(安樂先生)이라고도 자호했었다.
권 판서(權判書)가 군전(軍前)에 있는데, 어느 날에나 돌아올는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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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들이 진영 연해 바닷가에 주둔했는데 / 諸將連營屯海濆
다시 사구로 하여금 감군을 하도록 했네 / 更敎司寇作監軍
깃발 그림자 속에 산은 끝도 가도 없고 / 旌旗影裏山無盡
고각 소리 울릴 때 밤은 분간하기 쉬우리 / 鼓角聲中夜易分
죽어도 변찮는 충심은 밝은 태양 같고요 / 之死忠心如皎日
이승의 높은 의리는 하늘에 가닿타마다 / 此生高義薄層雲
타고난 용맹과 겁은 억지로 못 바꾸나니 / 稟來勇怯誠難強
승첩 거둬 속히 돌아와 좋이 책훈되게나 / 獻捷遄歸好策勳
산중의 포도가 익어서 나무꾼이 따서 가져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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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의 가을 기운이 한껏 청쾌해지자 / 山中秋氣十分淸
주렁주렁 흑수정을 바람이 흔들더니만 / 風動纍纍黑水精
잎 속의 검은 구슬이 와서 방을 비추니 / 葉裏驪珠來照屋
흰 구름 깊은 곳이 내 뜻을 움직이누나 / 白雲深處動吾情
내가 옛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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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옛날 먼 데를 갔을 적에 / 我昔遠行邁
하늘은 맑아 티끌 하나도 없었고 / 天淸無纖埃
산천은 씻은 듯이 깨끗한 데다 / 山川淨如洗
제때의 비에 풍뢰도 겸하더니 / 時雨兼風雷
갑자기 요기가 발작함을 만나서 / 忽値沴氣作
사람의 간장을 마구 꺾어뜨렸지 / 令人肝肺摧
충량한 사람은 폐출을 당하고 / 忠良見廢黜
현성한 이들은 시기를 받았네 / 賢聖遭疑猜
이젠 조용히 한 칸 방에 앉아서 / 靜默坐一室
이 타고난 천성을 보존하노라니 / 保玆天降才
맑은 바람은 좌우에서 불어오고 / 淸風左右至
숲 그늘엔 푸른 이끼가 자라누나 / 林影生蒼苔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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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기운은 맑기가 물과 같고 / 秋氣淸如水
마음은 잠잠해 출렁이지 않으니 / 人心湛不波
바야흐로 밝은 달을 희롱하고파 / 方將弄明月
곧장 떼 타고 은하를 오르고 싶네 / 直欲上靈槎
산색은 병풍을 막 펼친 듯하고 / 山色屛初展
천광은 이미 연마한 거울 같은데 / 天光鏡已磨
가련도 해라 낯에 먼지 가득한 채 / 獨憐塵滿面
동화문을 분주함과 흡사한 꼴이 / 宛似走東華
[주D-001]낯에 …… 분주함 : 동 화문(東華門)은 백관(百官)이 입조(入朝)할 때에 출입하던 문(門) 이름인데, 소식(蘇軾)의 〈박박주(薄薄酒)〉 시에서 “서호의 풍월이 동화문의 뿌연 먼지만 못하다.[西湖風月 不如東華軟紅土]”라는 전인(前人)의 희어(戲語)를 인용하여 “은거하여 뜻을 구함엔 의리만을 따를 뿐, 동화문의 먼지나 북창의 바람은 아예 계교치 않네.[隱居求志義之從本不計較東華塵土北窓風]” 한 데서 온 말이다.
200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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