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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牧隱詩藁) 제26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8. 01:02

 

목은시고(牧隱詩藁) 26

 

 

 ()

 

 

 

9 15일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니, 가을은 똑같은 가을이건만, 7월에는 아직 덥더니, 9월에는 이미 추워져버렸다. 그중 8월은 가을의 한중간이기 때문에 그 기운이 서늘하니, 서늘함은 사람에게 가장 적당한 기온이므로, 이 때문에 중추(中秋)의 달이 유독 고금(古今) 사람들에게 칭상(稱賞)되었던 것이다. 오늘 밤에는 달이 비록 밝기는 하나, 누가 다시 서로 불러서 연회(宴會)를 갖겠는가. ()이란 것이 하늘에 있는 게 이와 같거니, 어찌 사람에게 있는 것을 관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밝은 달은 푸른 하늘을 길이 운행하되 / 月之行兮在靑天
은섬 옥토
가 서로 고운 자태 겨루는데 / 銀蟾玉
爭娟娟
천고 만고에 예전 법칙을 그대로 지키어 / 千古萬古守舊轍
둥글었다 기울고 기울었다 또 둥글어지네 / 圓而缺兮缺又圓
구름이 가린대도 무슨 해로울 게 있으며 / 有雲蔽兮亦何傷
달이 어찌 사람이 제 빛 우러르길 원하랴 / 月豈求人仰其光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실상은 싫어하기에 / 匪惟不求實所惡
모든 동작이 멎은 때 밝은 빛을 발한다오 /
動息處淸輝揚
낮은 동을 주관하고 밤은 정을 주관해라 / 晝主動兮夜主靜
주역의 대도는 어찌 그리도 광대하던고 / 大易大象何洋洋
가을 한중간에 이르면 그 기가 청신하여 / 至秋之中其氣淸
덥지도 춥지도 않고 절로 서늘해지나니 / 不熱不寒涼自生
서늘한 기운은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데 / 涼於人兮最相宜
더구나 지탱하기 괴로운 이 병골에게랴 / 況此病骨苦支持
적적하게 홀로 읊으매 흥은 작지 않으나 / 寂寂獨詠興不淺
사미
를 겸하기 어려움을 저 달은 알리라 / 四美難幷唯月知
오늘 밤엔 달이 밝은들 무슨 소용 있으랴 / 今夜月明復何用
중추가 이미 지났으니 아 때가 아니로다 / 中已過矣嗟非時
중을 평생 배웠지만 중을 얻지 못했노니 / 平生學中不得中
항아
가 귀가 있으면 내 시를 들어주겠지 / 姮娥有耳聞吾詩

 

[주D-001]은섬(銀蟾) 옥토() : 달 속에는 두꺼비와 토끼가 있다는 전설(傳說)에서 온 말이다.
[주D-002]사미(四美) :
좋은 때[良辰], 아름다운 경치[美景], 경치를 완상하는 마음[賞心], 유쾌한 일[樂事]을 말한다.
[주D-003]항아(姮娥) :
달 속에 있다는 선녀(仙女)의 이름인데, 전하여 달의 이칭(異稱)으로 쓰인다.

안 정당(安政堂), 한 첨서(韓簽書)와 함께 예원(蘂院) 귀곡 대선사(龜谷大禪師)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은사(慈恩寺)의 우세군(祐世君)을 알현한 다음 십자가(十字街)에 이르러 서로 헤어져 돌아오다.

 


적막한 예원은 송악산을 등지고 있는데 / 寥寥蘂院負松巒
거듭 온 귀곡은 기력이 아직도 왕성하네 / 龜谷重來猶壯顔
만금대 위에는 소나무 바람이 차가운데 / 萬金臺上松風寒
땅 쓸고 앉아 진귀한 음식 차리려 할 제 / 掃地欲坐羅珍飡
여기 높다랗게 우뚝 솟은 경령 원묘 / 景靈原廟高巑岏
자리 밑에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해서 / 如在席下心不安
문득 방장을 쓸고 두 다리 개고 앉으니 / 却掃方丈兩脚盤
굴신하기가 도리어 천지같이 넓었는데 / 卷舒還同天地寬
푸른 산 백련사에서 웅변들을 토로할 제 / 白蓮枕碧談翻瀾
나는 듣자마자 잊어버려 쓰기가 어렵구나 / 入耳輒忘下筆難
문을 나서매 푸른 산색은 건조한 듯하고 / 出門山色翠如乾
잡목들은 서리를 띠어 가을이 깊어갔었지 / 雜木帶霜秋欲殘
늘그막엔 실컷 놀아 즐길 일이 적었더니 / 老來游衍少成歡
다행히도 훌륭한 풍채와 나란히 말 타고 / 何幸玉樹能聯鞍
자은사에서 또 함께 배회하게 되었는데 / 慈恩寺裏又盤桓
아손의 글 읽는 모습은 더욱 볼 만하였네 / 兒孫讀書尤可觀
당두
는 손님 좋아해 조관들을 모았는데 / 堂頭愛客集朝冠
더구나 우리 동지가 단란하게 만났음에랴 / 況我同志仍團

앉아서 좋은 차 마셔 창자를 맑게 씻고 / 坐啜佳茗淸心肝
십자가에서 말 머리 돌려 서로 헤어졌네 / 十字街上分馬還
인생의 만나고 헤어짐은 잠깐의 사이라 / 人生聚散顧盻間
쓰러져 잠자리에 드니 맘 절로 한가로웠지 / 頹然就寢心自閑
꿈속에도 서로 손 잡고 거듭 산에 노니니 / 夢裏握手重游山
노닒이 유쾌했어라 하늘이 비장한 그곳엔 / 游山樂哉是天慳
원숭이와 새 숲과 골짝이 한창 다채로웠네 / 猿鳥林壑方爛斑

 

[주C-001]예원(蘂院) 귀곡 대선사(龜谷大禪師) : 예원은 향초(香草)가 번성하다는 의미에서 선궁(仙宮)을 예궁(蘂宮)이라 칭하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사원(寺院)을 가리키고, 귀곡은 고려 말기의 선승(禪僧) 각운(覺雲)의 법호(法號)이다.
[주D-001]경령 원묘(景靈原廟) :
경령은 경령전(景靈殿)의 약칭으로, 고려 역대 임금들의 초상(肖像)을 봉안한 궁전 이름이고, 원묘는 정묘(正廟) 이외에 별도로 세운 사당을 가리킨다.
[주D-002]방장(方丈) :
유마거사(維摩居士)의 거실(居室)이 사방(四方) 일장(一丈)이었던 데서, 전하여 고승(高僧)의 처소를 가리킨다.
[주D-003]백련사(白蓮社) :
()나라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高僧)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당대의 명유(明儒)들을 초청하여 승속(僧俗)이 함께 염불 수행(念佛修行)을 할 목적으로 결성(結成)한 단체의 이름인데, 여기서도 역시 승속이 한자리에 모였으므로 이를 백련사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4]당두(堂頭) :
선사(禪寺)에서 한 절의 우두머리, 즉 주지(住持)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민자복(閔子復), 민유의(閔由義), 민 진사(閔進士) 삼 형제가 주식(酒食)을 가지고 와서 나를 대접하는데, 마침 염동정(廉東亭)이 오므로 매우 기뻐서 이에 한유항(韓柳巷)을 초청하여 자리를 함께하다.

 


여강의 형제
/ 驪江三弟兄
성찬으로 늙은이를 대접하는데 / 盛饌餉老夫
동정이 갑자기 왕림해주니 / 東亭忽枉駕
조양이 좌석을 환히 비추고 / 朝陽照座隅

서쪽 이웃서도 반갑게 와주어 / 西鄰惠肯來
우연히 즐거운 자리 이루었네 / 偶爾成歡娛
가을바람은 사람을 맑게 스치고 / 秋風著人淸
노란 국화는 찬란하게 피었거니 / 黃花爛開敷
가득한 술잔 사양할 것 없고말고 / 不辭酒滿巵
흐르는 세월이 진정 일순간인걸 / 流光如隙駒
-
원문 빠짐- / 吾黨□□
-
원문 빠짐- / 世方我儒

 

[주D-001]여강(驪江) 형제 : 이들이 여흥 민씨(驪興閔氏)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2]동정(東亭)이 …… 비추고 :
산 동쪽[山東]을 조양(朝陽)이라 하는데, 염흥방(廉興邦)의 호가 동정이기 때문에 조양에 빗대서 한 말이다.

문생(門生) 유경(劉敬)이 철원(鐵原)에서 돌아오다.

 


태봉
의 가을 기운이 일찍 서리를 내려서 / 泰封秋氣早飛霜
들 빛이 절반은 푸르고 절반은 누렇다네 / 野色半靑仍半黃
안변의 풍기가 가장 나쁘다고 알려 주누나 / 報道安邊風最惡
하늘이 무슨 연고로 풍년을 빼앗았는고 / 天工何故奪

 

[주D-001]태봉(泰封) : 신라 효공왕(孝恭王) 때 신라의 왕족(王族)인 궁예(弓裔)가 철원(鐵原)에 세웠던 국호(國號)로서, 전하여 철원을 가리킨다.

전원(田園)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다.

 


한 봉우리 용수산이 좌석 한쪽에 비치는데 / 一朶龍山照座隅
뜨락의 배나무 잎은 전혀 없이 다 떨어졌네 / 庭中梨樹葉全無
가을바람은 나날이 급하게 불어오는데 / 西風日日吹來急
어느 곳 외론 배에 이 늙은이를 실을꼬 / 何處孤舟著老夫
마읍의 높은 파도는 말아갈 듯 거셀게고 / 馬邑雲濤狂欲卷
여강의 강물은 베를 깔아 놓은 듯 맑으리 / 驪江沙水淨如鋪
어찌 감히 생애를 스스로 결단하랴 /
此生自斷吾何敢
임금 은혜 갚지 못하고 백발이 되었는걸 / 未報主恩今白鬚

 

[주D-001]내 …… 결단하랴 : 생 애를 결단한다는 것은 곧 벼슬을 그만두고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두보(杜甫)의 〈곡강(曲江)〉 시에스스로 이 생애 결단해 하늘에 물을 것 없어라, 두곡에 다행히 상마의 전지가 있으니.[自斷此生休問天 杜曲幸有桑麻田]” 한 데서 온 말이다.

낙엽을 쓸다.

 


여자종 아이가 낙엽을 쓸어 모아 / 小婢掃落葉
그것을 부서진 삼태기에 담아서 / 盛之以破箕
머리에 이고 부엌으로 들어가니 / 頂戴入廚去
아내는 저녁밥 짓기를 재촉하네 / 主婦催暮炊
저녁밥 짓는 건 급할 것 없고요 / 暮炊不必急
아침밥 늦을까 두려울 뿐이라오 / 祗怕朝炊遲
손이 와서 나를 가자고 청할 텐데 / 客來要我去
가지 않으면 의심을 받을 터이니 / 不去遭猜疑
새벽밥 먹고 데리러 오길 기다려 / 蓐食待招呼
의당 놀 때에 유쾌히 놀아야겠네 / 行樂當及時

 

느낌이 있어 짓다.

 


달의 이지러짐은 상도일 뿐이니 /
月微惟其常
삼가기만 하면 나라가 창성하리 / 克謹邦乃昌
선후한 자들을 용서 없이 죽임은 / 先後殺無赦
신이 방에 만나지 않은 때문일세 / 辰不集于房

예전에 성인이 큰 법칙을 세워서 / 聖人立大法
우리 양을 붙듦을 귀히 여겼으니 / 只貴扶我陽
재변 생기면 바로 구휼할 수 있어 / 有災卽相卹
천인의 감응이 아득하지 않고말고 / 天人非杳茫
일어
는 대궐 섬돌에서 주달하고 / 日御奏天陛
백관은 옛 법칙을 꼭 준수해야지 / 百司遵舊章
역법이 대낮같이 환히 밝은지라 / 曆法皎如晝
늙은이는 탄식만 더할 뿐이로다 / 老夫增嘆傷

 

[주D-001]달의 …… 뿐이니 : 《시 경(詩經)》 소아(小雅) 시월지교(十月之交)저 달이야 이지러지려니와, 이 해까지 왜 이지러질꼬.……저 달이 먹히는 것은, 오직 그 상도이거니와, 이 해가 먹히는 것이여, 어찌하여 어긋났는고.[彼月而微 此日而微……彼月而食 則維其常 此日而食 于何不臧]”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월식(月食)보다는 일식(日食)을 훨씬 더 큰 재변(災變)으로 여겼음을 의미한다.
[주D-002]선후(先後)한 …… 때문일세 :
선 후한 자를 용서 없이 죽인다는 것은 일관(日官)으로서 재변(災變)을 제때에 대처하지 못한 데 대하여, 선왕(先王)의 정전(政典)때보다 앞선 자도 용서 없이 죽이고, 제때에 미치지 못한 자도 용서 없이 죽인다.[先時者 殺無赦 不及時者殺無赦]” 한 데서 온 말이다. ()은 해와 달이 교차하여 서로 만나는 것을 말하고, () 28(宿)의 하나로 동방(東方)에 있는 별자리인데, 《서경(書經)》 윤정(胤征)끝 가을 초하루에 해와 달이 방에서 만나지 않았다.[乃季秋月朔 辰弗集于房]”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9월 초하루에는 의당 해와 달이 동방에서 만나야 하는데, 서로 화합하지 못하여 만나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일식(日食)이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3]일어(日御) :
제후(諸侯)의 일관(日官)을 말한다.

절구(絶句)

 


일월이 순환하여 교대로 덮여 이지러짐은 / 日月循環迭蔽虧
사람에겐 만남이 일월은 서로 멀어짐일세 / 如人相値卽分馳
어찌 알리오 천문을 관측하는 자가 있어 / 那知下有觀天者
신묘한 예측으로 한 시대를 놀래킬 줄을 / 算出神機駭一時

 

[주D-001]일월(日月)이 …… 멀어짐일세 : 일식과 월식을 말한다.

용만(龍巒)

 


용수산은 나의 창 앞에 직립하여 / 龍巒當我窓
온화한 품이 참으로 덕인 같아서 / 醞藉眞可人
서로 못 만남은 밤의 시간뿐이요 / 相違只隔夜
날로 마주해 내 정신 융화시켜라 / 日對融我神
후중하기 흡사 편안한 같으니 / 厚重似安宅
비유하자면 군자의 인이로다 / 比之君子仁

슬피 생각하니 당세의 선비들은 / 慨念當世士
경박하여 제 본성을 잊어버리고 / 輕薄忘本眞
구를 헐면서 스스로 규라 하고 /
毁矩以爲規
옛것 버리고 새것만 도모하는데 / 捨舊而圖新
부끄럽다 내 또한 함부로 나와서 / 愧我亦浪出
흰옷에 검은 먼지 흠뻑 쓴 것이 / 素衣多緇塵

 

[주D-001]후중(厚重)하기 …… 인(仁)이로다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인이란 하늘이 사람에게 내려 준 높은 벼슬이요, 사람의 편안한 집이건만, 막는 이가 없는데도 인하지 않으니,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夫仁 天之尊爵也 人之安宅也 莫之違而不仁 是不智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구(矩)를 …… 하고 :
구 는 방형(方形)을 그리는 데에 쓰는 곡척(曲尺)을 가리키고, ()는 원형(圓形)을 그리는 데에 쓰는 그림쇠를 가리킨 것으로, 구와 규는 바로 일정한 법도(法度)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곧 경박한 세상 풍조가 기존의 예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자기들의 행위를 새로운 예법인 양 합리화하려는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스스로 읊다.

 


목옹은 쇠하고 병든 게 바로 여생이지만 / 牧翁衰病是餘生
유연히 시골 정취 많음이 가장 기쁘다오 / 最喜悠然多野情
맘은 가을과 함께 맑아 더러움 제거하고 / 心與秋淸初去穢
눈은 푸른 산을 인해 더욱더 밝아지누나 / 眼因山碧更增明
일 만나서 곧장 흥취 푸는 걸 누가 알랴 / 誰知遇事卽遣興
논설이 되레 명예 추구함인지 의아해지네 / 自訝立言還近名
울타리 밑의 국화는 아직껏 찬란도 해라 / 籬下黃花猶爛

너울너울 춤추는 가을 나비가 가련하구나 / 可憐寒蝶舞輕輕

 

송풍헌시(松風軒詩). 절간(絶磵)이 특별히 와서 짓기를 청하다.

 


달이 흐린 물에 들면 달빛이 무색해지고 / 月入濁水月無影
바람이 무딘 돌에 부딪치면 소리가 없나니 / 風觸頑石風無聲
높은 숲을 만나야만 바람이 진동을 하고 / 樹木然後風振蕩
맑은 물을 만나야만 달빛이 분명해진다오 / 水泉然後月分明
강물은 물 가운데 가장 깨끗한 물이고요 / 江於水也最潔淨
소나무는 나무 중에 더욱 우뚝한 나무라 / 松於木也尤崢嶸
알겠도다 서로 만남은 비상한 인연이라 / 乃知相遇異於常
활달한 인사만이 그 이름을 취하는 것을 / 豁達之士取之名
나옹의 강월은 예전에 희었던 듯한데 /
懶翁江月似舊白
절간의 송풍은 지금 또 이렇게 맑구려 / 絶磵松風今又淸
강월은 밝고 송풍은 맑아라 그 태평곡을 / 月白風淸太平曲
적막한 천지간에 누가 능히 창화할꼬 / 寥寥天地誰能賡
내 지금 붓 잡아 송풍을 노래하노라니 / 我今把筆歌松風
붓 밑에서 송풍이 일어나는 것만 같구나 / 筆底髣髴松風生
송풍은 달을 흔들고 강은 물결 일으키매 / 松風搖月江湧波
좋은 경계 대하여 담연히 세정을 잊노라 / 對境淡然忘世情
하늘은 지극히 고요해 만고에 푸르거니 / 大空至靜萬古碧
소리와 빛이 어디로 좇아서 가득 차리오 / 聲色何從而滿盈
더구나 지금 그림자 속 그림자를 묘사함은 / 況今描出影中影
마침 외물이 내 정신을 흔들게 함이니 / 適使外物搖吾精
우선 송풍 강월 두 좋은 곳을 향해 가서 / 且向松風江月兩佳處
편히 누워 코를 골며 잠이나 실컷 자련다 / 高臥鼻息如雷鳴

 

[주C-001]송풍헌시(松風軒詩) : 송풍헌은 조계(曹溪)의 선승(禪僧) 윤절간(倫絶磵)의 처소(處所) 이름이다.
[주D-001]나옹(懶翁)의 …… 듯한데 :
나옹은 선승(禪僧) 혜근(惠勤)의 호인데, 그가 일찍이 강월헌(江月軒)이라 자호(自號)했던 데서 온 말이다.

유하불가편(有何不可篇)

 


뭐가 안 될 것 있으랴 나는 도 아닌데 / 有何不可吾非狂
장년에는 사방을 분주할 만했고 / 壯可走四方
노년에는 고향도 돌아갈 만하나 / 老可歸故鄕
고향엘 가지 않으니 솔과 국화는 묵었고 /
故鄕不去松菊荒
봉군이 된 데다 삼중대광 품계까지 띠었어라 / 封君帶三重大匡
머리털과 음은 어느 길고 짧은지 /
我髮我心誰短長
온 세상 다스리는 건 어찌 그리 아득하며 / 經邦濟世何杳茫
농투성이 해보잔 건 왜 못 이룬단 말인가 / 求田問舍何參商
전쟁 먼지 벌창한 곳엔 거마가 엎어지고 / 黃塵漲海車馬僵
민물 번성한 곳엔 물 흐르듯 땀을 뿌려라 / 揮汗相逐如翻漿
낙천만 하면 태평성대 아닌 곳 없으련만 / 樂天無處非羲皇
요행 바라면 지척이 참으로 양장 같으리 / 僥倖咫尺眞羊腸
너른 맘으로 지내면 끝내 진정 좋으리니 / 寬懷倘佯終允臧
누각에 기대 길이 읊으며 행장을 잊자꾸나 / 倚樓長嘯忘行藏

 

[주D-001]광(狂) : 이는 곧 뜻이 아주 큰 것을 의미한다.
[주D-002]고향엘 …… 묵었고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세 오솔길은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있도다.[三徑就荒 松菊猶存]”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내 …… 짧은지 :
발단 심장(髮短心長), 즉 나이는 비록 늙어도 마음은 쇠하지 않는다는 고어(古語)에서 온 말이다.
[주D-004]양장(羊腸) :
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한 산로(山路)를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여기서는 험난한 세로(世路)를 의미한다.

매미 소리를 듣다.

 


수일 밤 맑은 서리가 나무에 새로 내렸는데 / 數夜淸霜著樹新
매미가 둔갑하여 몸 숨길 줄을 알았네그려 / 玄蟬遁甲解藏身
해가 한낮이 되자 적적한 후원의 숲에서 / 日輪正午園林寂
찬 소리 울어대니 껄끄러워 고르질 않네 / 咽出寒聲澁不均

 

차기장밥[粘黍飯]을 두고 짓다.

 


차기장밥이 이렇게도 맛나거니 / 粘黍□□□
쌀밥과 떡 향기를 누가 알리오 / 誰知飯餌香

황금의 빛은 얼굴에 넘쳐흐르고 / 黃金光溢面
붉은 팥은 문드러져 속을 채우네 / 赤豆爛撑腸
씹기 쉬워 주릴수록 맛은 좋으나 / 易嚼飢彌快
소화가 안 되어 포만이 병이로세 / 難消飽或傷
최옹은 비위가 아주 튼튼하여 /
崔翁脾胃壯
음식을 얼음 녹이듯 잘 삭인다지 / 旋釋似氷湯

 

[주D-001]최옹(崔翁)은 …… 튼튼하여 : 최옹은 바로 최인호(崔仁浩)를 가리킨 듯한데, 그는 특히 몸이 건강하기로 일컬어졌다. 《목은시고》 제13권 〈일을 기록하다〉에는 최인호의 건강함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추운(秋雲)

 


가을 구름은 흡사 깁처럼 엷은데 / 秋雲薄如紗
하얗게 긴 하늘에 널리 퍼져 있고 / 曳白彌長空
석양 볕은 물결보다도 더 맑아서 / 夕照淡於波
남은 황색이 먼 봉우리에 떠 있네 / 餘黃浮遠峯
세월이 흰 귀밑털 재촉하는 속에 / 星霜催鬢華
자리에 누운 쇠하고 병든 노인은 / 偃臥衰病翁
휘파람을 불거나 청아하게 읊으며 / 長嘯或淸哦
종년토록 곤궁함을 걱정 않는다네 / 不憂終歲窮
평생에 교만과 사치를 단절하고 / 平生絶驕奢
늠름하게 유자의 풍도 지녔으니 / 凜然儒者風
원컨대 갱재가를 다시 진술하여 / 願陳賡載歌
요순 시대처럼 세상을 구제했으면 / 濟世唐虞同

 

[주D-001]갱재가(賡載歌) : 노래를 서로 이어 부르는 것을 말한 것으로, () 임금과 신하인 고요(皐陶)가 서로 경계하는 내용으로 노래를 지어 창화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益稷》

추우(秋雨)

 


창문을 여니 뜨락 풀이 젖었기에 / 開窓庭草濕
쳐다보니 구름이 하늘 가득해서 / 仰見雲滿天
그제야 밤에 비가 온 걸 알았으니 / 始知夜有雨
곤히 잘 수 있었던 게 다행이어라 / 幸哉能困眠
통증을 만나면 잠을 이루지 못해 / 當痛不得睡
하룻밤이 지루하기 일년 같아서 / 一夜長如年
빈 뜰에 빗방울 듣는 소리만 나도 / 空堦有點滴
온갖 근심에 애간장이 탔었는데 / 寸心百憂煎
어젯밤엔 곤히 잘 수가 있었으니 / 如今得酣寢
하늘이 응당 불쌍히 여김이로다 / 造物應見憐
원컨대 나를 더욱 불쌍히 여기사 / 憐我願憐我
몸과 이름 둘 다 온전케 해 주소서 / 身名俱兩全

 

느낌이 있어 짓다.

 


주공은 일찍이 동산엘 갔었고 /
周公徂東山
공자는 광에서 두려움 만났는데 /
仲尼畏於匡
두 성인의 그 당시의 마음은 / 兩聖當日心
지금까지 찬란하게 광채 있어라 / 至今爛有光
기린을 얻으매 대전이 지어졌고 /
麟獲大典作
낭발의 시에선 성덕이 드러났네 /
狼跋盛德彰
아 아득한 백세 아래서 / 嗟哉百世下
사모하는 이 맘을 하늘은 알겠지 / 景仰天蒼蒼

 

[주D-001]주공(周公)은 …… 갔었고 : 동 산(東山)은 《시경》 빈풍(豳風)의 편명으로, 주공이 지은 것이다. 주공의 형인 관숙(管叔), 채숙(蔡叔)이 일찍이 무경(武庚)에게 붙어서, 주공을 지목하여장차 유자에게 불리할 것이다.[將不利於孺子]”라는 유언비어를 국중(國中)에 퍼뜨림으로써 성왕(成王) 또한 주공을 의심하기에 이르자, 주공이 동산으로 물러가서 3년 동안을 있었는데, 뒤에 성왕이 주공의 〈치효()〉 시를 보고 또 뇌풍(雷風)의 변고를 당하고 나서는 크게 회오(悔悟)하여 주공에 대한 의심을 풀고 주공을 맞이하자, 주공은 앞서 이미 동산에 가서 무경과 관숙, 채숙 등을 치고 3년 만에야 돌아와서 이 시를 지어 군사들을 위로했던 것이다. 위에서 말한 유자(孺子)는 바로 성왕을 가리킨다.
[주D-002]공자(孔子)는 …… 만났는데 :
()나라 양호(陽虎)란 자가 일찍이 광()에서 횡포(橫暴)를 부렸는데, 공자의 얼굴이 양호와 비슷했으므로, 광 사람들이 공자를 양호인 줄 잘못 알고 포위했던 일을 말한다. 공자가 일찍이 광에서 그 일을 당했을 때 이르기를문왕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도가 나에게 있지 않느냐. 하늘이 이 도를 장차 없앨 작정이면 문왕의 뒤에 죽을 내가 이 도에 참여하지 못했을 테지만, 하늘이 이 도를 없애려 하지 않으시니, 광 사람이 나에게 어찌하겠느냐.[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匡人其如予何]” 하였다. 《論語 子罕》
[주D-003]기린을 …… 지어졌고 :
대 전(大典)은 아주 중요한 전적(典籍)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특히 《춘추(春秋)》를 가리킨다. 노 애공(魯哀公) 14년 봄에 서쪽으로 사냥 나가서 기린을 얻자[西狩獲麟], 공자가 성왕(聖王)이 없는 시대에 상서로운 기린이 잘못 나왔다가 죽은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겨 《춘추》를 지은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낭발(狼跋)의 …… 드러났네 :
낭 발은 《시경》 빈풍(豳風)의 편명이다. 그 시에이리가 앞으로 가다간 제 턱을 밟고, 뒷걸음치다간 제 꼬리 밟아 넘어지네. 공이 큰 아름다움 사양하시니, 그 붉은 신이 편안도 하시어라.[狼跋其胡載
其尾 公孫碩膚 赤舃几几]” 한 데서 온 말인데, 주공(周公)이 관숙(管叔), 채숙(蔡叔)으로부터는 유언비어를 듣고, 또 성왕(成王)에게 의심까지 받아서 마치 이리처럼 진퇴양난의 어려운 처지를 당하였으나,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잘 대처하여 상도(常道)를 잃지 않았으므로, 시인(詩人)이 주공의 이런 모습을 보고 존경하는 마음에서 이 시를 지어 노래한 것이다.

절구

 


아득한 가을 구름은 담장 머리에 나직한데 / 秋雲漠漠欲低牆
새는 빈 뜰에서 우짖고 당 가득 서늘하여라 / 雀噪空庭涼滿堂
섬돌 위의 이끼는 약간 촉촉이 젖은 가운데 / 階上苔痕帶微濕
단정히 앉은 목옹은 귀밑이 서릿빛 같네 / 牧翁危坐鬢如霜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의 기단(忌旦)에 사위인 염 시중(廉侍中)이 수정사(水精寺)에서 재()를 올리는데, 나는 바로 장자(長子) 화원군(花原君)의 사위인지라, 당상(堂上)에서 염 시중을 모시고 앉았더니, ()이 관음상(觀音像)을 가리키면서 이르기를이것은 나의 장모 채 부인(蔡夫人)께서 막내아들이 죽은 것을 인하여 재물을 희사해서 만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른바 막내아들이란 바로 내 장인의 아우인데, 연도(燕都)에서 죽었고 자식도 없다.

 


수월관음이 장엄하기도 하여라 / 水月粧嚴□□□
소리 듣고 고통 구함을 순순히 하듯 하네 / 聞聲救苦似諄諄

막내아들을 유독 사랑함은 자친의 뜻이요 / 尤憐季子慈親意
중생을 널리 구제한 이는 대사의 몸이로다 / 普應
生大士身
전각은 거듭 새로워져 땅을 환히 비추고 / 殿宇重新明照地
산봉우리는 사방에서 모아들어 옹위하네 / 峯巒四合□□□
곡성 총재는 늙어갈수록 더욱 강건하니 / 曲城宰逾
응당 빙옹을 닮아 구십 연세를 향수하리 / 應似氷翁九十春

 

[주C-001]장자(長子) 화원군(花原君) : 예천부원군 권한공(權漢功)의 장자로서 화원군에 봉해진 권중달(權仲達)을 가리키는데, 그가 바로 목은의 장인이기도 하다.
[주D-001]수월관음(水月觀音)이 …… 하네 :
수 월관음은 달이 비친 바다 위의 한 잎의 연꽃 위에 선 모양을 한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을 가리키는데, 모든 고통 받는 중생(衆生)들이 관세음보살의 명호(名號)를 암송(暗誦)하거나 일컫기만 하면 관세음보살이 즉시 그 음성(音聲)을 관()하여 바로 달려가서 그 모든 고통을 면하게 해 준다고 한다. 이 밖에 별칭으로는 구세보살(救世菩薩), 연화수보살(蓮華手菩薩), 원통대사(圓通大士) 등의 여러 가지 명호가 있다.
[주D-002]곡성 총재(曲城宰)는 …… 향수하리 :
곡성 총재는 당시 문하 시중(門下侍中)으로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에 봉해진 염제신(廉悌臣)을 가리키고, 빙옹(氷翁)은 처부(妻父)의 별칭으로, 여기서는 곧 염제신의 처부인 권한공(權漢功)을 가리킨다.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서 알성(謁聖)을 하려 하는데, 염동정(廉東亭)이 따라오므로 함께 가서 예를 행하고 총총걸음으로 나오다.

 


공자께 숙배할 제 몸에 땀이 줄줄 흘러라 / 肅拜宣尼出汗漿
마치 기침 소리 듣고 존안을 대한 것 같네 / 如聞謦欬接餘光
풀이 나서 한창 무성함은 비록 가련하나 / 可憐草迺今茂
심은 솔이 저렇게 자란 걸 모두 감탄하네 / 共嘆種松如許長
궐리의 의관
은 이제 자못 쓸쓸해졌는데 / 闕里衣冠殊索寞
광암사의 단청 또한 황량하기만 하구나 / 光巖金碧亦荒涼
백발로 붓 잡으니 내 쇠한 모습 처량해라 / 白頭秉筆嗟吾耗
하늘이 성도를 창성케 하기만 바랄 뿐이네 / 祗願天扶聖道昌

 

[주D-001]궐리(闕里) 의관(衣冠) : 궐리는 곡부현(曲阜縣)에 있는 공자(孔子)의 고리(故里)의 이름이고, 의관은 예모(禮貌)를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유학(儒學)을 의미한다.

저물녘에 곡성군(曲城君)의 부름을 받았는데, “명일(明日)에 서린(西鄰)의 길창군(吉昌君)을 모시고 오라.”는 것이었으므로, 기뻐서 이를 기록하다.

 


병든 뒤로는 종유할 이 점점 드물어지고 / 病後從游漸已稀
머리 가득 흰머리는 남의 기롱만 받는데 / 滿頭霜雪被人譏
시중께서 불러 주니 광영됨이 그지없어라 / 侍中招喚榮爲甚
아랫사람이 생각해 보니 꿈인지 생시인지 / 在下尋思夢也非
송백은 추운 겨울에 더욱 의젓해지거늘 / 松柏歲寒逾偃蹇
만년의 계책은 갈수록 희미해져만 가네 / 桑楡
景轉依
고인의 밤놀이한 게 어찌 뜻이 없었으랴 / 古人秉燭豈無意
아침 이슬 마른 노란 국화까지 보잤구나 / 又見黃花朝露晞

 

일찍 일어나다.

 


국가의 원로는 본디 시귀 같은 존재이거니 / 國家耆老如蓍龜
후진이 부름받음은 의당 세상에 드물리라 / 後進承招當世稀
이 때문에 기뻐서 밤 내 잠 못 이루었노니 / 所以喜而不能寐
행여 앞으로의 일은 고칠 수도 있을는지 / 庶幾來者猶可追
고관들의 행차는 도성 거리에 연달으고 / 冠蓋風塵連紫陌
금준과 송국 가득한 황비는 활짝 열렸네 / 琴尊松菊敞黃扉
외람히 원로 뫼심은 참으로 얻기 어렵기에 / 叨陪杖屨眞難得
맑은 새벽에 붓 뽑아서 종이 펼쳐 쓰노라 / 淸曉抽毫繭紙披

 

[주D-001]앞으로의 …… 있을는지 : 《논 어(論語)》 미자(微子)지나간 잘못은 탓할 수 없거니와, 앞으로의 일은 고칠 수도 있다.[往者不可諫來者猶可追]”고 한 것은 초광(楚狂) 접여(接輿)가 공자(孔子)에게 은거(隱居)를 권유한 말이고,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이미 지나간 잘못은 탓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앞으로의 일은 고칠 수도 있음을 알았네.[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라고 한 것 역시 한번 잘못 벼슬길에 나간 것을 뉘우치면서 앞으로는 다시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말이다.
[주D-002]황비(黃扉) :
재상의 청사(廳舍) 문을 황색으로 꾸민 데서 전하여 재상의 처소를 가리킨다.

길 창군을 모시고 곡성부(曲城府)에 이르니, 한 정당(韓政堂), 윤 밀직(尹密直)도 와 있었는데, 모두 앉아서 젊은 시절 상도(上都), 대도(大都)에서 행락(行樂)했던 일들을 매우 자상하게 얘기하였다. 성찬(盛饌)을 차려왔으나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 병든 몸에 매우 편했다. 돌아와서 한 수를 읊다.

 


노년의 즐김이 자연의 정취에 알맞아라 / 老境歡娛適野情
눈에 선한 젊은 시절 행락을 함께 말하네 / 共談行樂眼中明
낙양의 풍기는 인간 세상이 아니거니와 / 洛陽風氣非人世
연새의 산천은 황제의 도성을 옹위하였지 / 燕塞山川拱帝京
한 시대에 부귀한 이야 어찌 많았으랴만 / 一代豈多膺富貴
백년에 그런 태평은 다시 보기 어려우리 / 百年難再見昇平
유취 소년이 이젠 백발 된 게 가련하여라 / 自憐乳臭今頭白
약간 거나하매 유연히 감개가 무량하구나 / 半醉悠然感慨生

 

9 22일에 우리 진사(進士) 장원(壯元) 성 역암(成易菴)을 성남(城南)에 장사 지냈는데, 나는 앓은 나머지 풍한(風寒)이 두려워서 장송(葬送)하는 행렬에 참여하지 못하고, 몹시 쇠한 내 모습을 스스로 마음 아프게 여기면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늙은 삭신이 찬 바람 쐬기가 몹시 꺼려워 / 老骨深嫌觸曉寒
서글피 서쪽 바라보니 눈물이 줄줄 흐르네 / 悵然西望淚

사십 년 동안의 꿈이 유유하기도 하여라 / 悠悠四十年間夢
거마가 엎어지듯 행로는 어렵기만 했었지 / 車仆馬僵行路難
온전히 돌아가는
공은 무슨 한이 있으랴만 / 幸得全歸公底恨
병이 많아 편함만 찾는 자신이 부끄럽다네 / 只慚多病我求安
만사 속에 어버이 생존한 걸 덧붙이노니 / 挽詞剩著高堂句
죽은 이가 앎이 있다면 응당 몹시 비참하리 / 死者有知應鼻酸

 

[주D-001]온전히 돌아가는[全歸] : 몸 을 잘 보중하여 훌륭한 명성을 남기고 생을 마치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제의(祭義)부모가 온전하게 낳아 주었으므로, 자식이 온전하게 돌아가야만 효도라 이를 수 있나니, 육체를 손상시키지 않고 몸을 욕되게 하지 않아야만 온전히 했다고 이를 수 있는 것이다.[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可謂孝矣 不虧其體 不辱其身 可謂全矣]” 한 데서 온 말이다.

문 생(門生) 정달몽(鄭達蒙)이 일 때문에 합좌소(合坐所)에 왔는데, 그가 첩서(捷書)를 가져온 사람을 만나 보고 와서 말하기를여러 원수(元帥)들이 운봉(雲峯)의 단월역(旦月驛) 들판에서 왜적(倭賊)을 포위하여 모조리 섬멸하였으므로 기뻐서 와서 보고하는 것이다.”라고 하므로, 나는 깜짝 기뻐하며 말하기를종사(宗社)의 위령(威靈)과 우리 왕()의 덕과 우리 재상(宰相)들의 공이 이러하니, 남은 생애는 무사하기를 보장할 만하구나. , 천도(天道)가 어긋나지 않음을 환히 볼 수 있으니, ()을 힘써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선을 하면 끝내 반드시 창성하고 / 爲善終必昌
악을 하면 끝내 반드시 멸망하나니 / 爲惡終必滅
비록 오래고 빠름은 다를지라도 / 雖然久速異
만고에 법칙은 하나뿐이고말고 / 萬古一軌轍
경인년부터 경신년에 이르기까지 /
庚寅至庚申
해적들이 끊임없이 옴으로 인해 / 海賊來不絶
국가 재정은 끝내 고갈되어 가고 / 邦賦竟彫零
민심은 극도로 비탄에 젖었는지라 / 輿情極嗚咽
이 때문에 세상 걱정하는 마음이 / 所以憂世心
내 머리털 희어지길 재촉했는데 / 速我頭似雪
오늘 아침에 기쁜 소식 듣고 나니 / 今朝聞喜音
흡사 천년 맺힌 한을 푼 듯하구나 / 如解千年結
이제부터는 내 고향 진강 굽이로 / 從今鎭江曲
돌아갈 계획 내 또한 결정했으니 / 歸計吾亦決
어부가로 태평성대를 노래하면서 / 漁唱歌太平
음풍농월로 스스로 즐겨야겠네 / 弄月自怡悅

 

[주D-001]경인년부터 경신년에 이르기까지 : 경인년 즉 고려 충정왕(忠定王) 2년부터 경신년인 우왕(禑王) 6년에 이르기까지의 31년간을 말한다.

자 문(紫門)에 나아가서 정 영공 휘(鄭令公暉)와 한 정당(韓政堂)의 부자(父子)를 만났는데, 모두 돌아가려고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입직(入直)한 관원(官員)을 만나 본 다음에 집으로 물러가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이에 재차 들어가니, 이나(李那)가 전교(傳敎)를 내왔다. 이윽고 상()께서 숙배(肅拜)를 받고 치주(巵酒)를 하사하고 이르기를해구(海寇)를 이와 같이 섬멸한 것은 경() 등 노인(老人)들의 덕이다.”라고 하였다. 곧 총총걸음으로 나와서 영삼사(領三司) 곡성군(曲城君), 시중(侍中) 칠원군(漆原君), 수시중(守侍中) 광평군(廣平君), 판삼사(判三司) 철원군(鐵原君)을 차례로 알현하여 해적을 평정한 것을 하례하고, 석양에 이르러서야 돌아왔다.

 


삼십일 년 동안을 바다 물결이 거세어 / 三十一年揚海波
강촌과 산마을이 왜놈에게 시달렸기에 / 水村山郭困東倭
소의 간식
으로 마음 쓰신 지 오래이고 / 宵衣
食勞心久
심고 거두는 농사는 폐한 이가 많지만 / 春種秋收失業多
천운이 순환하여 좋은 운수 회복했으니 / 天運循環當復泰
무공 이룰 조짐이 길이 어긋남 없으리 / 武功成象永無訛
하례하고 벼슬 내려 은영이 흡족하기에 / 賀門錫爵恩榮洽
장상을 두루 뵈옵고 짧은 노래 짓노라 / 徧謁台屛作短歌

 

[주D-001]바다 물결이 거세어 : 주 성왕(周成王) 때에 월상씨(越裳氏)가 중역(重譯)을 거쳐 주나라에 들어와서 주공(周公)에게 백치(白雉)를 바치면서, 바다에 파도가 일지 않은 지 3년이 되었는지라, 중국(中國)에 성인(聖人)이 있음을 알고 조회하러 왔다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세상이 태평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주D-002]소의 간식(宵衣食) :
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옷을 입고 해가 진 뒤에야 늦게 저녁을 먹는다는 뜻으로, 임금이 정사(政事)에 부지런함을 말한다.

23일은 현릉(玄陵)께서 승하하신 날인데, () ()에게는 분발(分發)이 없어서 배석(陪席)하여 제사를 도울 길이 없으므로, 망연자실하여 한 수를 읊어 이루다.

 


현릉은 아득하여라 그 몇 해나 지났는고 / 玄陵杳杳幾經春
이제 백발이 소소한 이 하나의 신하는 / 白髮蕭蕭一介臣
산직에 있어 제향도 참여할 길이 없거니 / 置散末由參祭享
슬퍼하여 정신 손상됨을 어찌 염려하랴 / 含哀豈念損精神
첨엔 패한 군졸이 주장을 잃은 것 같더니 / 初如敗卒失主將
점차 젖먹이가 모친을 이별함 같아지누나 / 漸似乳兒違母親
성상께서 계술을 힘쓴다고 말들 하나니 / 共說聖心方繼述
인효를 숭상하시어 인륜을 널리 펴옵소서 / 願崇仁孝敍彝倫

 

[주D-001]계술(繼述) : 선왕(先王)의 뜻과 일을 잘 계승하는 것을 말한다.

청주(淸州) 시중(慶侍中)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애도한 나머지, 긴 소리로 배곡(拜哭)하다.

 


큰 키에 우뚝 서서 백관을 압도한 데다 / 長身山立壓臣工
겸손하게 반열을 따라 상공에 이르렀네 / 磬折趨班到上公
사리 분석은 세밀해 내외사에 다 밝았고 / 析事毫釐明內外
청렴 숭상하는 가풍은 초지일관이었네 / 處家氷蘗貫初終
경륜의 사업은 동방의 태양처럼 빛나고 / 經綸業煥靑丘日
부월의 위엄은 자라 바람에 행해졌지 /
斧鉞威行紫羅風
죽어 고향에 묻힘이 쉬운 일 아니고말고 / 死葬故鄕非易得
고금의 영욕이야 따져 보면 텅 빈 거라오 / 古今榮辱算來空

 

[주C-001] 시중(慶侍中) :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 시중(門下侍中)에 이르고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에 봉해진 경복흥(慶復興)을 말한다.
[주D-001]부월(斧鉞)의 …… 행해졌지 :
자 라(紫羅)는 고관(高官)의 복장을 의미한 것으로, 경복흥이 일찍이 서북면 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 서북면 도원수(西北面都元帥) 등으로 나가서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을 방어한 일과 원()나라로부터 군사를 거느리고 덕흥군(德興君)을 받들고 쳐들어온 최유(崔濡)를 무찌른 일 등을 가리켜 한 말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원로가 빈사하여 이미 서로 헤어졌으니 / 元老擯死已睽乖
외론 생이 보존하려면 은퇴해야 하고말고 / 孤生圖存宜卷懷
군신의 대의를 보전하긴 드문 일이거니와 / 君臣大義保全少
붉어도 여우요 시랑이 길에 당했네 /
莫赤匪狐當道豺
하늘 비춘 태양은 안개가 잠깐 가렸는데 / 白日照天霧乍隔
땅에 솟은 태산은 겹겹 구름에 묻혔구나 / 太山拔地雲重埋

누가 노쇠한 눈물을 바람 향해 뿌리는고 / 誰將衰淚向風洒
세상에 시기받고 은퇴한 이 나그네로세 /
笠有客遭疑猜

 

[주D-001]빈사(擯死) : 매 우 위태로운 곳에 내쳐짐을 뜻한다. 유종원(柳宗元)의 〈기허경조맹용서(寄許京兆孟容書)〉에가생은 쫓겨났다가 다시 선실로 부름을 받았고, 예관은 위태로운 곳에 내쳐졌다가 뒤에 어사대부에 이르렀다.[賈生斥逐復召宣室 倪寬擯死 後至御史大夫]” 하였는데, 예관은 한()나라 때 경학자(經學者)였는바, 《한서(漢書)》 예관전(倪寬傳)에 의하면, 그가 처음 문학졸사(文學卒史)에 보임(補任)되었으나, 유약하여 사무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북지(北地)의 우양(牛羊) 기르는 곳으로 쫓겨나 수년 동안을 고생하며 지내다가, 뒤에 능력을 인정받아 다시 조정에 들어온 이후 계속 승천(陞遷)하여 어사대부에 이르렀다고 한다.
[주D-002]안 …… 당했네 :
안 붉어도 다 여우라는 것은 《시경》 패풍(
) 북풍(北風)안 붉다고 여우가 아니며, 안 검다고 까마귀가 아니랴. 우리 서로 정다운 사람끼리, 손 잡고 한 수레 타고 가리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으랴, 이미 급박하게 되었도다.[莫赤匪狐 莫黑匪烏 惠而好我 携手同車 其虛其邪 其亟只且]”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는 악인(惡人)이 많아서 나라가 장차 위태해질 것을 짐작하고 서로 화란(禍亂)을 빨리 피하자는 내용이고, 시랑(豺狼)은 포학하고 간악한 사람을 비유한 것으로, 시랑이 길에 당했다는 것은 곧 포학하고 간사한 자들이 국정(國政)을 제멋대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주D-003]하늘 …… 묻혔구나 :
하늘 비춘 태양이란 바로 임금을 가리킨 말이고, 땅에 솟은 태산(太山)이란 곧 태산북두(太山北斗)와 같은 뜻으로 학덕(學德)이 높은 사람을 가리킨 말이다.

자손들에게 한 편을 지어 보이다.

 


형체가 바르면 그림자가 왜 굽으랴 / 形端影豈曲
근원이 맑으면 하류도 맑으나니라 / 源潔流斯淸
수신을 해야 제가를 할 수 있나니 / 修身可齊家
무물은 불성한 데서 비롯되느니라 /
無物由不誠
황음한 짓은 본성을 상실하게 되고 / 荒淫喪本性
망녕된 행동은 정기를 손상시킨다 / 妄動傷元精
때문에 스스로 깎음을 경계하나니 / 所以戒自斲
뿌리 깎인 나무는 무성치 못하니라 / 斲根木不榮
안일하게 즐기는 잠자리 그곳에도 / 寢席燕安地
천명은 혁연히 밝게 비춰 보나니 / 天命赫然明
어찌 행여 경홀히 할 수 있으리오 / 奈之何忽諸
내 몸이 말미암아 나온 곳이거늘 / 吾身所由生
혹시라도 친압하여 완롱한다면 / 或褻而玩之
바로 그게 금수의 성정이고말고 / 禽獸其性情
아 나의 여러 자손들아 / 嗟嗟我子孫
이 좌우명을 살펴보거라 / 視此座右銘

 

[주D-001]무물(無物)은 …… 비롯되느니라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5장에진실함은 사물의 시종을 이루는 것이니, 진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성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진실함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다.[誠者物之終始不誠無物 是故 君子誠之爲貴]” 한 데서 온 말이다.

단가행(短歌行)

 


노둔한 말은 원래 악와의 종자가 아니요 / 駑蹇元非渥洼種
참으로 솔기에 사는 이 벼룩 같을 뿐이라 / 眞同蚤蝨居衣縫
군망은 길가의 오얏이라 서로 전하거니와 /
郡望相傳道傍李
향인들은 모두 일서의 송씨로 지목한다네 / 鄕言共指日西宋
평생에 천지는 나를 알리라 자부했거니 / 平生自負天地知
누가 풍월로써 이런 흥미를 함께해 줄꼬 / 興味誰將風月共
전원은 과분한 은혜로 만년에 하사받았고 / 田園誤恩
受賜
의식은 늘그막까지 놀면서 봉록을 힘입네 / 衣食到老閑請俸
돌아가려면서 못 돌아간 지 또한 오래인데 / 可歸不歸亦云久
거칠고 껄끄러운 문사는 쓸모는 없지만 / 荒澁文詞非足用
때로 미친 노래 장편 단편 지어 부르거든 / 有時狂歌長短章
변화하는 건 되레 칠금 칠종과도 같다오 / 變化還如七擒縱
다만 한스러움은 서방의 미인이 멀어져 / 只恨西方美人遠
천추에 풍아송이 적적해져 버린 거로세 / 千秋寂寂風雅頌
천진교의 두견새는 울어 마지를 않으니 /
天津杜鵑啼不休
천하가 그 어느 때나 대일통을 이룰런고 / 天下何時大一統

 

[주D-001]악와(渥洼) 종자 : 악와는 수명(水名)인데, 한 무제(漢武帝) 때에 악와에서 용마(龍馬)가 나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준마(駿馬)의 종자를 의미한다.
[주D-002]군망(郡望)은 …… 전하거니와 :
군망은 군내(郡內)의 뭇사람이 모두 우러러보는 인망(人望)을 말하고, 길가의 오얏이란 곧길가의 쓴 오얏나무[道邊苦李]’라는 왕융(王戎)의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쓸모없는 못난 재주를 비유한다.
[주D-003]일서(日西) 송씨(宋氏) :
일서는 석양(夕陽)과 같은 뜻으로, 전하여 노년(老年)을 의미하고, 송씨는 아마 전국 시대 초()나라의 문장가(文章家)로 특히 사부(詞賦)에 뛰어났던 송옥(宋玉)을 가리킨 듯하다.
[주D-004]칠금 칠종(七擒七縱) :
삼 국(三國) 시대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남이(南夷)를 정벌하러 가서 그곳의 추장(酋長) 맹획(孟獲)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을 다시 놓아주어서 끝내 항복을 받아 냈던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문장 변화의 무궁무진함을 의미한다.
[주D-005]서방(西方) 미인(美人) :
서 주(西周) 시대의 성왕(聖王)을 가리킨다. 《시경》 패풍(
) 간혜(簡兮)내가 누구를 생각하는고, 서방의 아름다운 사람이로다. 저 아름다운 사람이여, 서방의 사람이로다.[云誰之思 西方美人 彼美人兮 西方之人兮]”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풍아송(風雅頌) :
풍 은 《시경》의 국풍(國風)을 말한 것으로 이는 주()나라 때 지방(地方)의 민요(民謠)이고, 아는 역시 《시경》의 대아(大雅), 소아(小雅)를 말한 것으로 이는 주나라 때 조정(朝廷)의 아악(雅樂)이고, 송은 역시 《시경》의 주송(周頌), 상송(商頌), 노송(魯頌)을 말한 것으로 이는 선조(先祖)의 공덕(功德)을 찬양하는 종묘악(宗廟樂)이다.
[주D-007]천진교(天津橋)의 …… 않으니 :
()나라 소옹(邵雍)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거주할 적에 한번은 손과 함께 달밤에 산보를 하다가 천진교 위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를 듣고는 자못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손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예전에는 낙양에 두견새가 없었는데, 지금 비로소 두견새가 온 것으로 보아, 앞으로 몇 년 안 가서 임금이 남쪽 사람을 재상(宰相)으로 등용할 것이다. 그러면 남쪽 사람을 많이 끌어들여 오로지 변경(變更)만을 일삼게 되리니, 천하(天下)가 이때부터 일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천하가 다스려지려면 지기(地氣)가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고, 천하가 어지러워지려면 지기가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는데, 지금 그 지기가 이름에 조류(鳥類)가 가장 먼저 지기를 받는 것이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세상이 어지러움을 의미한다.

국화의 말을 대신하다.

 


내가 서리 맞고 핀 게 어찌 이름을 위함이랴 / 我向霜風豈爲名
코머거리에게 향기요 맹인에게 빛일 뿐인걸 / 香於
者色於盲
알아준 이는 다행히도 도연명이 있었으니 /
相知幸有淵明在
목은은 홀로 늦게 난 것을 짜증내지 마소 / 牧隱休嗔獨

 

[주D-001]알아준 …… 있었으니 : ()나라 주돈이(周敦)의 〈애련설(愛蓮說)〉에진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다.[晉陶淵明獨愛菊]” 한 데서 온 말이다.

국화를 대하여 짓다.

 


시경 가운데 초목 이름을 많이도 알지만 / 多識詩中草木名
참으로 오색이 눈을 흐리게 과 같거니 / 眞同五色使人盲
우수수 낙엽진 쓸쓸한 가을 하늘 석양 아래 / 秋天搖落斜陽裏
늙은이 위로해 주는 국화를 유독 사랑하노라 / 獨愛霜葩慰老生

 

[주D-001]오색(五色)이 …… : 《노자(老子)》 검욕(檢欲)오색의 찬란한 빛은 사람의 시각을 흐리게 하고, 오음의 난잡한 음악 소리는 사람의 청각을 혼란스럽게 한다.[五色令人目盲五音令人耳聾]” 한 데서 온 말이다.

계림(鷄林)에 부임(赴任)하는 윤 밀직(尹密直)을 받들어 보내다.

 


모친 모시고 부임함은 세상에 영광이지만 / 輦母之官世所榮
오산
은 아득히 멀어 노인이 가기 어렵겠네 / 鼇山迢遞老難行
온 조정의 기대는 환조의 조서에 모아지고 / 滿朝望屬還朝詔
바다 떨칠 위엄은 근해의 군영에서 나오리 / 振海威生近海營
옛날 영천엔 상서로운 봉황이 왔었는데 /
渺渺穎川來瑞鳳
아득한 양곡엔 고래가 자취를 감추겠지 /
茫茫暘谷息長鯨
태평성대 풍월 속에 한가이 지내는 곳에 / 太平風月投閑處
부디 염옹 불러서 내 이름도 들먹여 주게나 / 須喚髥翁叱鄙名

 

[주D-001]오산(鼇山) : 경상북도 흥해(興海)의 옛 이름이다.
[주D-002]먼 …… 왔었는데 :
()나라 때 황패(黃覇)가 일찍이 영천 태수(穎川太守)가 되어 선정(善政)을 베푼 결과 치적(治績)이 천하제일로 일컬어졌는데, 이때에 상서(祥瑞)의 상징인 봉황(鳳凰)이 영천에 가장 많이 날아왔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아득한 …… 감추겠지 :
양곡(暘谷)은 동방(東方)의 해 뜨는 곳을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곧 동해 가에 위치한 경주(慶州)를 가리키고, 큰 고래란 거대한 구적(寇敵)을 비유하는 말로, 여기서는 바로 왜적(倭賊)을 가리킨다.

25일 성거산(聖居山)에 들어가서 그 명일에 재()를 올려 선비(先妣)께 천도(薦度)를 드리고 나서 돌아오다가 산대암(山臺巖)에 이르니, 한유항(韓柳巷)이 음식을 마련하여 나를 맞이했는데, 문생(門生) 최 통헌(崔通憲)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저물께야 집에 돌아왔다. 이날 비록 좋은 경치를 만나기는 했으나 감히 읊조리지 못하고 피곤하여 그대로 잠자리에 들어가 쓰러져서 아침까지 자버리고 나니, 이른바 좋은 경치라는 것을 열에 일고여덟은 잊어버렸다. 그래서 이 사실이 영영 빠져버릴까 염려되어 추후에 두어 수를 짓노니, 이날은 바로 27일이다.

 



()을 들어가다.

말을 타고 동문을 나가서 보니 / 騎馬出東門
백사장엔 가을 기운이 말끔한데 / 沙川秋氣晴
달려서 산대암을 지나노라니 / 馳過山臺巖
화장 고개가 높다랗게 비껴 있고 / 華藏高嶺橫
우러러보니 층암 절벽 밑에는 / 仰見石壁底
저녁 볕이 승방을 환히 비추었네 / 僧房斜日明
어렵스레 회령 꼭대기를 오르니 / 崎嶇上檜頂
봉우리들이 하늘가에 편평하기에 / 天際峯巒平
잠깐 서서 한번 휘파람 부노라니 / 一嘯立須臾
내 가슴속의 정이 확 트이었네 / 豁我方寸情
아래로 현화교를 내려다보니 / 降睨玄化橋
내 행차 따로 우회할 길은 없고 / 無由迂我行
반공중에 우뚝한 두어 봉우리는 / 半空數朶峻
푸른 빛이 구름 끝에 나왔는지라 / 蒼翠雲端生
말고삐 늦춰 잡고 절벽을 따라서 / 緩轡緣斷麓
오르내리니 기쁘고도 놀라웠네 / 登降欣且驚
높은 절벽은 중천에 기대섰는데 / 峭壁倚天半
한쌍의 탑에선 풍경 소리 울리고 / 雙塔風鈴鳴
중은 다만 한 사람을 만났는데 / 逢僧只一箇
절은 가파른 골짝에 감춰져 있어 / 蘭若藏崢嶸
바라만 볼 뿐 갈 수는 없었으니 / 可望不可到
어슴푸레 화성에 노는 듯하였네 / 怳然游化城
문수보살은 지혜가 있는지라 /
文殊有大智
갑자기 종경의 소리를 듣고 나니 / 忽聞鐘磬聲
내 몸을 피로하지 않게 해주었고 / 不勞我筋骨
탁 트인 정원은 매우 깨끗한데 / 曠然庭院淸
머리 조아려 세존께 예배드리니 / 稽首禮世尊
복잡한 세상일이 갑자기 잊혀졌네 / 頓忘世故

산꼭대기는 올라갈 길이 없었고 / 無由上絶頂
내 걸음은 아직도 기우뚱거려서 / 我步猶欹傾
지팡이 세우고 가만히 한참 서서 / 植杖久不動
찬찬히 보니 되레 눈이 캄캄해졌네 / 熟視還如盲
수많은 암벽들은 빼어남 겨루는데 / 千巖自競秀
내 필력은 참으로 약한 군졸 같아 / 我筆眞弱兵
취하자도 끝내 취할 힘이 없기에 / 取之卒無力
바라만 볼 뿐 감히 겨루질 못했지 / 望之不敢爭
더구나 마음 재계하는 날을 만나서 / 矧値齋心日
머리 숙여 신명을 강림케 할 때이랴 / 垂頭政思成
피곤하여 누워서 잠을 달게 자고 / 困臥便熟睡
종이 울려서야 오경임을 알고는 / 鐘鳴知五更
유연히 깊은 깨달음 일으켰으니 / 悠然發深省

다만 이름 피치 못함이 부끄러웠네 / 只愧難逃名

산을 나오다.

반승
에 거친 음식은 부끄러우나 / 飯僧慙菲食
예불하는 덴 깊은 마음 다하였네 / 禮佛竭深衷
이속의 제사는 선조를 따르지만 / 夷俗祭從祖
유관은 지금 자신을 책망하노라 / 儒冠今責躬

노쇠한 나는 특립하기 어렵지만 / 衰遲難特立
호걸들 또한 부화뇌동만 하누나 / 豪傑亦雷同
두려운 맘으로 서리 이슬을 밟고 /
惕踐霜露
재계하면서 종경 소리를 듣노라니 / 齋明聞磬鐘
산은 깊어서 쓸쓸함이 더하였고 / 山深增悄悄
경계는 고요해 인적이 전혀 없었네 / 境靜絶憧憧
베개는 썰렁해라 창문엔 달 비치고 / 枕冷窓含月
등불은 밝아라 불전엔 바람 없었지 / 燈明殿不風
깨끗한 집이라 마음 또한 고요하고 / 心更寂
좋은 경계라 자취는 스님 같았는데 / 佳境跡如空
도의 맛은 비록 좋게 느끼었지만 / 道味雖然旨
세속 인연은 아직도 농후했는걸 / 塵緣尙爾濃
산봉우리엔 솔이 겹겹으로 푸르고 / 峯巒松疊翠
나무숲 위론 해가 붉게 떠올랐네 / 樹木日浮紅
가을 국화는 담장 밑을 환히 비추고 /
菊照牆底
찬 샘물은 집 동편에서 콸콸 흘렀지 / 寒泉鳴屋東
바위의 자태는 단장을 덜 마친 듯 / 巖姿粧未了
안개에 젖으니 머리를 막 감은 듯 / 霧意沐新同
머물자면 참으로 계책이 없지만 / 欲住誠無計
돌아가자도 궁인 같을 뿐이었네 /
將歸又似窮
안장에 걸터앉아 말 가는 대로 두고 / 據鞍聊信馬
소매 드리워 솔 가지 잡으려 하니 / 垂袖欲攀龍
길을 막아라 가지는 손을 만류하고 / 截路枝留客
산을 나오매 구름은 노인을 따랐지 / 出山雲逐翁
바람 따른 나는 항상 자재하거늘 /
隨風常自在
땅에 붙은 산은 불룩 솟았어라 /
附地儘穹窿
골짝 어귀엔 맑은 물이 급히 흐르고 / 洞口淸流

언덕 머리엔 자잘한 풀이 풍성한데 / 原頭細草
길은 편평하나 돌들은 널려 있고 / 途平仍亂石
산은 다했으나 또 높은 산이 있어 / 山盡又危峯
깊은 골짝엔 표범이 숨었을 텐데 /
深谷應藏豹
높은 하늘엔 기러기가 날아갔었지 / 高旻有去鴻
갈림길 당해선 나그네를 만났는데 / 臨岐見行旅
넓은 길에선 철없는 애가 내달았네 / 遇坦走狂童
회령 꼭대기를 매달려 올라가니 / 檜嶺夤緣上
송경이 시야에 들어올 만했는데 / 松京指點中
봉우리가 있어 교묘히 가렸지만 / 巧遮從有嶂
술은 있어 잠시 솔 밑에서 마셨지 / 得酒暫依松
좋은 경치를 어찌 다 기억할쏜가 / 回顧寧知數
미숙한 읊조림이 부끄러울 뿐이네 / 吟哦愧不工

 

[주C-001]산대암(山臺巖) : 송 경(松京)의 숭인문(崇仁門) 밖에 있었는데, 절벽(絶壁)이 백 길[百仞]이나 되고 그 모양이 마치 채붕(綵棚)을 놓은 것 같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했다고 한다. 고려 때 산대극(山臺劇)의 놀이가 있었는데, 산대는 곧 나무로 다락을 만들고 그 위에 오색(五色) 비단 장막을 늘어뜨린 일종의 가식 무대(假飾舞臺)였는바, 이것을 채붕이라 부르기도 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1]화성(化城) :
《법 화경(法華經)》에서 방편(方便)의 가르침을 비유하는 말에서 온 것으로, 즉 여러 사람이 보배가 있는 곳을 찾아가다가 그 길이 험난하여 사람들이 모두 피로에 지쳐 되돌아가려고 하므로, 그때 길잡이하던 스님이 여러 사람을 분발시키기 위해 방편력(方便力)을 써서 도중(道中)에 임시로 큰 성() 하나를 만들어 내어 여기가 보배가 있는 곳이라고 하여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성에서 쉬게 하였는데, 이윽고 길잡이하던 스님이 여러 사람의 피로가 회복된 것을 보고는 이내 그 성을 없애 버리고, 다시 여러 사람을 인도하여 참으로 보배가 있는 곳에 이르게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전하여 일반적으로 사찰(寺刹)의 뜻으로 쓰기도 한다.
[주D-002]문수보살(文殊寶薩)은 …… 있는지라 :
문수보살은 석가모니의 왼쪽에 위치하여 지혜를 맡은 보살인데, 그는 다음 생()에 성불(成佛)한다고 한다.
[주D-003]종(鐘)이 …… 일으켰으니 :
두보(杜甫)의 〈유용문봉선사(游龍門奉先寺)〉 시에깨려던 차에 새벽 종소리 들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깨닫게 하네.[欲覺聞晨鐘 令人發深省]”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반승(飯僧) :
수선 기복(修善祈福)의 목적으로 승려(僧侶)에게 반식(飯食)을 공양(供養)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5]이속(夷俗)의 …… 책망하노라 :
이 속은 동이(東夷)의 풍속이란 뜻이고, 유관(儒冠)은 곧 유자(儒者)를 가리킨 것으로, 목은 자신은 유자이면서도 유가(儒家)의 의식(儀式)대로 하지 못하고 선조(先祖)의 제사 지내던 의식을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불교의 의식대로 사원(寺院)에서 재()를 올리게 된 것을 자책하여 한 말이다.
[주D-006]두려운 …… 밟고 :
《예 기》 제의(祭義)가을에 서리, 이슬이 내리거든 군자가 그것을 밟아보고 반드시 슬픈 마음이 생기나니, 이는 날이 추워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또 봄에 비와 이슬이 내려 땅이 축축해지거든 군자가 그것을 밟아보고 반드시 섬뜩하게 두려운 마음이 생겨 마치 죽은 부모를 곧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 春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
惕之心 如將見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돌아가자도 …… 뿐이었네 :
맹자(孟子)가 순() 임금을 일러부모에게 화순치 못했기 때문에 마치 돌아갈 데 없는 궁한 사람과 같으셨다.[爲不順於父母 如窮人無所歸]”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上》
[주D-008]바람 …… 자재하거늘 :
《주역(周易)》 손괘(巽卦) 상사(象辭)서로 따르는 바람이 손순함이니, 군자가 그것을 인하여 명령을 내려서 정사를 행하나니라.[隨風巽 君子以 申命行事]”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일이 순리로움을 의미한다.
[주D-009]땅에 …… 솟았어라 :
《주역》 박괘(剝卦) 상사(象辭)산이 땅에 붙은 것이 박이니, 윗사람이 그것을 인하여 아래를 후하게 하여 집을 편케 하나니라.[山附於地剝 上以 厚下 安宅]” 하였다.
[주D-010]깊은 …… 텐데 :
《열 녀전(列女傳)》에 의하면, 남산(南山)에는 검은 표범이 있는데, 비가 오거나 안개가 낀 날에는 밖에 나가 먹이를 먹지 않는다. 그 까닭은 바로 자기 모문(毛文)을 더럽히지 않고 윤택하게 잘 보전하기 위해서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은거하여 몸을 깨끗이 하는 군자(君子)에게 비유한다.

도중(途中)에서

 


숫돌처럼 평탄한 길 말발굽도 가벼워라 / 坦途如砥馬蹄輕
걸음걸음 나는 듯이 도성 가까이 왔는데 / 步步飄然近鳳城
이 몸이 종신토록 -원문 빠짐- 때문에 / 爲是終身□□
산색이 점차 분명해진 줄을 몰랐네그려 / 不知山色轉分明

 

산대암(山臺巖)

 


군왕께서 당일에 풍류를 잡고 노닐었으니 / 君王當日擁笙歌
한 시대 번화함이 전쟁 없던 걸 짐작하겠네 / 一代繁華想止戈
산대는 절벽에 서서 푸른 물을 굽어보고 / 臺聳斷崖臨碧水
정자는 옛터에 남아 찬 잔디가 자라는구나 / 亭留舊址長寒莎
삼한의 기개야말로 뭇 용이 모여들었건만 / 三韓氣槪
龍集
만고 영웅도 마리가 지나간 격일세 / 萬古英雄一鳥過
아지 못게라 태평 시대가 다시 돌아올는지 / 未識太平回得未
신은 지금 늙었으니 장차 어이한단 말인고 / 臣今老矣欲如何

 

[주C-001]산대암(山臺巖) : 송 경(松京)의 숭인문(崇仁門) 밖에 있었는데, 절벽(絶壁)이 백 길[百仞]이나 되고 그 모양이 마치 채붕(綵棚)을 놓은 것 같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했다고 한다. 고려 때 산대극(山臺劇)의 놀이가 있었는데, 산대는 곧 나무로 다락을 만들고 그 위에 오색(五色) 비단 장막을 늘어뜨린 일종의 가식 무대(假飾舞臺)였는바, 이것을 채붕이라 부르기도 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1]새 …… 격일세 :
새가 눈앞을 언뜻 지나간 것처럼 잠시일 뿐인 덧없는 인생을 의미한다.

야정(野情)

 


시골 정취가 아직도 다하지 않아서 / 野情猶未闌
붓 빼들고 산수의 경치 묘사하노니 / 抽毫描丘壑
병든 내 몸을 스스로 돌아보건대 / 自顧病餘身
새장에 갇힌
과 참으로 똑같네 / 眞同樊中鶴
흰 구름은 먼 하늘을 날아가는데 / 白雲飛遠空
모를레라 어느 곳에 떨어질런고 / 不知何處落
유연히 말았다 다시 펴곤 하나니 / 悠然卷復舒
만고에 끝내 그 어디에 의탁하랴 / 萬古竟誰托
애오라지 내 그윽한 정 부치노니 / 聊以寄幽情
내 다리는 그 어디에 정착시킬꼬 / 何從安我脚

 

[주D-001]새장에 갇힌 학(鶴) : 자유(自由)가 속박되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음을 뜻한다. 소식(蘇軾)의 〈승혜근초파승직(僧惠勤初罷僧職)〉 시에드높이 날던 청전의 학이, 답답하게 새장에 갇혀 있네.[軒軒靑田鶴 鬱鬱在樊籠]” 하였다.

즉사(卽事)

 


서로 불러 웃고 즐기던 소년 시절 기억난다 / 詡詡相徵記少年
술자리 가는 곳마다 돌아올 줄을 몰랐었지 / 杯盤到處被留連
당시에 어찌 내 머리 희어질 걸 생각했으랴 / 當時豈念吾頭白
홀로 앉아 읊노라니 생각이 아득해지누나 / 獨坐高吟思渺然

 

새벽에 일어나다.

 


야기
가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어 / 夜氣猶存些
타고난 양심을 보전하려 하노니 / 天心欲保全
문장은 작은 기예가 부끄러우나 / 文章羞末技
도덕은 전대 현인을 기망한다오 / 道德企前賢
울던 봉황을 아스라이 생각하고 /
渺渺思鳴鳳
가는 냇물을 유유히 탄식도 하네 /
悠悠歎逝川
백발의 흥취가 담담하기만 하니 / 白頭情興淡
시구 얻어 저절로 편을 이루누나 / 得句自成篇

 

[주D-001]야기(夜氣) : 사람이 바깥 사물(事物)을 접하기 이전인 밤의 맑은 기()를 말하는데, 그때는 사람의 타고난 착한 마음이 발현된다고 한다. 《孟子 告子上》
[주D-002]울던 …… 생각하고 :
《시경》 대아(大雅) 권아(卷阿)봉황새가 울어대니, 저 높은 뫼이로다.[鳳凰鳴矣 于彼高岡]” 하였고, 《국어(國語)》 주어(周語)()나라가 흥기할 적에 봉황이 기산(岐山)에서 울었다.” 하였다.
[주D-003]가는 …… 하네 :
공 자(孔子)가 일찍이 냇가에서 흐르는 냇물을 가리켜 이르기를가는 것이 이와 같은저,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잠시도 멈추지 않는 도체(道體)의 본연(本然)을 감탄한 것이다. 《論語 子罕》

담담(淡淡)

 


맑디맑은 가을 물결은 / 淡淡秋水坡
환히 빛나서 변함이 없기에 / 炯然無轉移
하늘이 그 가운데 비치거든 / 天光瀉其中
구름 해가 어찌 그리도 선명한고 / 雲日何陸離
거센 바람이 혹 불어오거든 / 狂風或相觸
물결이 일어도 서서히 출렁이네 / 浪作猶逶迤
고요한
는 마음 근원이 맑아서 / 靜者心源澄
일을 만나면 따라서 달려가지만 / 事至隨以馳
그러나 이리저리 요동하지 않나니 / 然而不流蕩
무너뜨리지 못할 도의가 있음일세 / 有義誠難隳
바라건대 스스로 경계하여 / 願言自儆戒
오늘의 시를 잊지 말았으면 / 無忘今日詩

 

[주D-001]고요한 이[靜者] : 공자가 이르기를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고, 인한 이는 산을 좋아하나니, 지혜로운 이는 유동하고, 인한 이는 고요하다.[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한 데서 온 말이다.

대사도(大司徒) 희암공(菴公)이 일찍이 삼장법사(三藏法師)를 이어 흑탑(黑塔)의 고려승원(高麗僧院)에 거주하다가, ()나라 천자(天子)가 북쪽으로 몽진하고, 중원(中原)의 군대가 도성(都城)을 쳐들어가자, 탈주(脫走)하여 동국(東國)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현릉(玄陵)께서 그를 청하여 내정(內庭)에서 재()를 올리게 하였으나, 그는 자기 스승 순암공(順菴公)을 추념(追念)하여 조용히 지낸 지 오래되었다. 그 후 금상(今上)께서 그를 판천태종사(判天台宗事)에 임명했으나, 이윽고 남의 무함을 입어 산중(山中)으로 들어간 지 수년이 되었는데, 은혜를 입고 환경(還京)하여 이 병든 사람을 방문해 주므로, 서로 만난 것을 기쁘게 여겨 짤막한 율시(律詩)를 읊는 바이다.

 


허정당에 일찍이 늙은 순암이 있었는데 /
虛淨堂中老順菴
스님 얻으니 청색이 쪽보다 푸른 격일세 /
得師靑也出於藍
회삼 귀일
에 대해선 끝내 입을 다물고 / 會三歸一終成默
현실 개권
에 대해선 되레 말을 하누나 / 顯實開權却費談
천자의 몽진 때는 배알한 걸 고마워했고 / 天子蒙塵嘉上謁
국왕은 옛정 생각해 거듭 참여 윤허했네 / 國王懷舊許重參
세간 영욕은 이제 흔적 없이 쓸어버린 듯 / 世間榮辱今如掃
갠 하늘 구름이요 맑은 못의 달빛이로다 / 雲在晴空月在潭

 

[주C-001]삼장법사(三藏法師) : 고려 후기(後期)의 선승(禪僧)으로 속명(俗名)은 조의선(趙義旋)이고 호는 순암(順菴)인데, 일찍이 원제(元帝)로부터 정혜원통 지견무애 삼장법사(定慧圓通知見無礙三藏法師)의 호를 받았었다.
[주D-001]허정당(虛淨堂)에 …… 있었는데 :
삼장법사(三藏法師) 순암(順菴)이 자기가 거처하는 곳에 허정(虛淨)이란 편액을 걸었는데, 이곡(李穀)이 일찍이 〈허정당기(虛淨堂記)〉를 지었다.
[주D-002]스님 …… 격일세 :
《순 자(荀子)》 권학(勸學)청색은 쪽에서 취하나 쪽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로 만들어지지만 물보다 차갑다.[靑取之於藍而靑於藍氷水爲之而寒於水]”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제자가 스승보다 낫거나 혹은 후인(後人)이 전인(前人)보다 나은 경우를 비유한 말인데, 여기서는 곧 희암(
)이 그의 스승인 순암(順菴)보다도 훌륭하다고 칭찬한 것이다.
[주D-003]회삼 귀일(會三歸一) :
실 교(實敎)에 들어가게 하는 방편(方便)으로 삼승(三乘)을 개회(開會)하여 실교인 일승(一乘)에 들어가게 한다는 뜻인데, 이는 곧 천태종(天台宗)에서 쓰는 말로, 《법화경(法華經)》 이전에 말한 삼승은 방편이라고 하여, 삼승은 일승에서 나누어 말한 것이므로, 일승 이외에 삼승이 따로 없고, 삼승 이외에 일승이 따로 없다고 하는 이론이다.
[주D-004]현실 개권(顯實開權) :
권 교(權敎)인 방편(方便)을 치우고 진실한 교리(敎理)를 나타내 보인다는 뜻으로, 석가(釋迦)의 일대(一代) 50년 중 《법화경》을 설()할 때까지의 40년 동안은 방편교(方便敎)를 진실한 듯이 말하고, 방편을 방편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나, 《법화경》을 설하면서부터 삼승교(三乘敎)는 방편이고 일승교(一乘敎)는 진실한 것이라 하여 방편을 치우고 진실을 나타냈다는 데서 온 말이다.

내하(奈何)

 


어찌하여 허리는 또 이리 아픈고 / 奈何腰又酸
한밤중에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어 / 夜半眠不安
우뚝 앉아 날 새기만 기다리자니 / 危坐待窓曙
마음 쓰기 참으로 몹시 어려웠네 / 操心良甚艱
닭이 울자 맘이 조금 기뻐지더니 / 雞鳴稍已喜
새가 울자 바야흐로 위로가 되네 / 鳥啼方自寬
애들은 일어나서 또 떠들어 대는데 / 衆雛起又聒
나는 아직 의관도 갖추지 않은 채 / 我尙慵衣冠
아프던 곳을 갑자기 잊어버리고 / 頓忘所痛處
변화 무궁한 시를 읊조리노라니 / 吟哦浩波瀾
뭇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는지라 / 衆音入吾耳
광릉산
도 필요할 것이 없네그려 / 不消廣陵散
날이 새자 이리저리 눈을 놀리니 / 天明更遊目
춥고 주림도 넉넉히 잊을 만하군 / 足以忘飢寒

 

[주D-001]광릉산(廣陵散) : 삼 국 시대 위()나라의 혜강()이 탔던 금곡(琴曲) 이름이다. 혜강이 평소에 이 곡을 잘 탔으나, 이를 숨겨 두고 남에게 전수(傳授)하지 않았다가, 뒤에 그가 참소(讒訴)를 입어 해()를 당할 때 형장(刑場)에 임하여 그 곡을 한번 타고 나서 말하기를광릉산이 지금부터 끊어지게 되었다.”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다시 들을 수 없는 절향(絶響)의 뜻으로 쓰인다.

장 차 희암 대사도(菴大司徒)를 알현하기 위해 유동(柳洞)을 출발하여 수금항(水金巷) 어귀로 들어가 숭교사(崇敎寺)를 달려 지나서 서쪽 고개를 넘으니, () 판사(判事) 김사도(金師道)의 고택(故宅)이 빈 터만 남아 있었다. 여기서 또 서쪽 고개를 넘으니, 송림사(松林寺)가 있으므로, 들어가서 사리탑(舍利塔)에 예배하고 산을 내려가니, 그곳이 당사천동(唐寺泉洞)이었다. 여기서 또 서쪽 고개로 올라갔다가 장대천동(長大泉洞)으로 내려가 큰 거리로 나가서 성문(省門)을 되돌아보니, 안마(鞍馬)가 성대히 모여 있었다. 이것은 도당(都堂)에서 금릉(金陵)에 갈 계품사(計稟使)를 전별함과 동시에 포왜군선(捕倭軍船)의 제장(諸將)을 위하여 축하연(祝賀宴)을 베푼 자리였다. 불은사(佛恩寺)에 이르러 사도(司徒)를 참알하고 앉아서 담론(談論)하는 사이에 한유항(韓柳巷)이 또 오므로 함께 저녁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판사 이성중(李誠中), 판사 장보지(張輔之)를 방문하였으나 모두 만나지 못했다. 이때 한공(韓公)은 자기 어버이께 저녁 문안을 드리러 가고, 나만 홀로 동년(同年) 이구(李玖)를 방문한 다음 천현(穿峴)을 넘어서 돌아오다.

 


시끄러움 피해 나의 길 우회하고 / 避喧迂我路
고요함 사랑해 스님 방에 이르니 / 愛靜到僧窓
내 종적은 석가모니와 다르지만 / 跡與牟尼異
마음은 사리를 보고 복종되었네 / 心從舍利降
빈 집터는 예전 길이 헷갈리었고 / 丘墟迷故道
스님은 장강을 향해 떠나 버렸네 / 甁錫向長江
한유항이 이윽고 뒤따라 이르니 / 柳巷俄相踵
은구
가 절로 흉중에 가득하여라 / 銀鉤自滿腔
밥상 가득 진미엔 문득 놀랐으나 / 忽驚珍列案
다만 항아리 가득한 술은 없었지 / 只欠酒盈缸
준수한 용모는 쇠할수록 예스럽고 / 秀貌衰來古
청아한 담론은 전혀 잡되지 않아 / 淸談正不

군왕을 연연하여 몹시 슬퍼하는데 / 戀君悲惻惻
도를 묻자니 무능함이 부끄러웠네 / 問道愧悾悾
작은 비는 소나무숲에 몰아오고 / 小雨來松麓
석양은 돌다리에 거꾸로 비치니 / 斜陽倒石矼
역력하기는 마치 그림과도 같고 / 如圖畫歷歷
뒤섞인 모양은 갑주와도 같아서 /
似甲
冑摐摐
흥이 넘치매 깃발 또한 펄럭이고 / 興逸隨動
힘찬 재주는 구정도 들 만하였지 / 才雄鼎可杠
사람 찾아가선 성자만 남겼으나 / □人留姓字
교우는 국가 바루기 위함이었고 / 交友正家邦
어버이 문안차 헤어지는 마당엔 / 昏定須分馬
훌륭한 두 아들이 뒤를 따랐었네 / 追隨玉一雙

 

[주C-001]금릉(金陵) : 금릉은 명()나라가 처음 도읍했던 곳으로, 즉 명나라의 사행(使行) 길을 말한다.
[주D-001]은구(銀鉤) :
은으로 만든 갈고리란 뜻으로, 전하여 뛰어난 서법(書法)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바로 당대의 명필(名筆)이었던 유항(柳巷) 한수(韓脩)의 글씨를 가리켜 한 말이다.
[주D-002]뒤섞인 …… 같아서 :
두 목(杜牧)의 〈만청부(
晴賦)〉에대숲은 밖에서 둘러싸 십만 장부와 같아라, 갑옷 칼날 어지러이 뒤섞여 빽빽이 포진해 빙 둘러 시립한 듯하네.[竹林外裹兮十萬丈夫甲刃摐摐密陳而環侍]”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소나무 등 여러 가지 숲을 통틀어 가리킨 것이다.

남창(南窓)

 


남쪽 창문이 절로 훤히 밝아져라 / 南窓紙自白
아침 햇살이 바야흐로 비치는데 / 朝日方照之
늙은이는 게을리 일어나지 않고 / 老夫懶不起
이불 덮은 채 새 시를 읊조리네 / 擁衾哦新詩
가을이 이미 다되어가는 때라서 / □爲秋已盡
기후가 점차 찬 바람이 일어나니 / 雲物漸凄其
노란 국화와 붉은 단풍잎일랑 / 黃花與紅葉
애오라지 후일을 기약해야겠네 / 聊以爲後期
명년에도 내가 혹 탈이 없어서 / 明年倘無恙
다시 추풍사를 짓게 될는지 원 / 更作秋風詞

 

동년(宋同年)의 부인(夫人) 이씨(李氏)를 곡()하다.

 


익재의 문생으로 경림에 빼어났는지라 / □□門下秀瓊林
당세에 모두 그의 장가든 걸 흠모했는데 / 當世皆歆得委禽
이십팔 년이 참으로 한바탕 꿈이었도다 / 二十八年眞一夢
어린애 안고 홀로 상심하는 게 가련하구려 / 可憐携幼獨傷心

익재에게 오늘날 외손이 많긴 하지만 / 益齋今日外孫多
어미가 죽었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 母也凋零可奈何
마사를 후일에 부탁할 데가 있게 되면 /
馬史他年如有托
구천에서 응당 눈물을 줄줄 흘리겠네 / 定應泉下淚滂


익재 문하의 장원으로 나도 지금 백발이라 / 門下壯元今白頭
당시의 고관들은 절반이나 돌아갔는데 / 當時冠蓋半山丘
상심스런 일 다시 보는 걸 어찌 견디랴 / 那堪更見傷心事
쇠한 눈물이 바람 앞에 끝없이 떨어지네 / 衰淚風前滴不休

 

[주C-001] 동년(宋同年) : 익 재(益齋) 이제현(李齊賢)과 양파(陽坡) 홍언박(洪彦博)이 문과(文科) 고시(考試)를 함께 주관했던 공민왕(恭愍王) 2년 계사년(1353)에 저자와 함께 급제(及第)했던 송무(宋懋)를 가리키는데, 그는 이제현의 문생(門生)으로서 사위까지 되었다.
[주D-001]경림(瓊林) :
()나라 때 천자(天子)의 경림원(瓊林苑)을 말하는데, 신급제자(新及第者)들에게 항상 여기에서 축하연(祝賀宴)을 베풀어 주었던 데서, 전하여 과거(科擧)에 급제한 것을 의미한다.
[주D-002]마사(馬史)를 …… 되면 :
마사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가리키는데, 사마천이 죽은 이후 선제(宣帝) 때에 이르러 그의 외손(外孫)인 평통후(平通侯) 양운(楊惲)이 비로소 그 글을 천양(闡揚)하여 선포했던 데서 온 말이다.

예천군(醴泉君)의 자손들이 용부(庸夫) 사재(四宰)의 금릉(金陵) 행차를 위해 돈을 갹출하면서 유독 나는 가난하다 하여 돈을 내지 못하게 하고, 또 나는 용부의 동년으로 장원(壯元)이라 하여 특별히 그 자리에 배석하도록 하였다. 이 자리에는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이 광평 시중(廣平侍中)을 초대하여 함께 있었는데, 밤중에 이르러 두 시중은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더 머물러서 서로 바싹 다가앉아서 매우 즐겁게 놀았는데, 두 아들이 나의 많이 취한 모습을 보고는 나를 부축하여 나왔다. 다음 날 해가 높이 올라온 뒤에야 일어나서 기록하여 가장(歌章)을 만들어 사재령(四宰令) 저하(邸下)께 바치면서 한번 웃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일재
의 내외손은 구름처럼 많기도 한데 / 一齋內外孫如雲
문무에 다 능하다고 세상이 칭하거니와 / 世稱好武仍能文
용부 선생은 그중에서도 우뚝 뛰어나 / 庸夫先生更拔萃
멀리 중국에 놀아 고결한 덕행 남기었고 / 遠游中國留淸芬
현릉으로부터 금상까지 알아줌을 입어 / 遇知玄陵逮今上
묘당에 주선하며 성군들을 협찬하였네 / 周旋廟堂贊華勛
금릉에서 조서 내려 세공을 독촉해오자 / 金陵降詔責歲貢
선생이 명 받들고 천자께 조회를 가는데 / 先生將命朝大君
아국은 땅이 척박해 다 마련할 수 없어 / 我邦地薄辦不得
말은 천 필 절반이요 금은 백 근 뿐이라 / 馬半千匹金百斤
부로들이 조금 봐달라고 애원을 하여라 / 父老哀訴願少貸
입으로 말하면서 몹시 애간장을 태우네 / 言出于口心厲熏
학이 구고에서 울면 밖에 소리 들리나니 / 鶴鳴九皐聲在外
아득한 하늘은 듣지 못한다 누가 말하랴 / 誰謂杳杳天無聞

성명한 천자가 우릴 멀리 버리지 않으사 / 天子聖明不遐遺
거울로 비춰 보듯 유훈을 응당 분간하리 / 如鑑照物分蕕薰
선생은 말이 간명해 사리 절로 분명하니 / 先生辭簡理自明
의심만 풀 뿐 아니라 분란도 해결할걸세 / 匪徒析疑堪解紛
양고기 삶고 술 따라 공에게 축수 드리니 / 烹羊酌酒爲公壽
고당의 백발 노모께선 마냥 기뻐하면서 / 高堂鶴髮心欣欣
내 아이가 표문 받들고 천자께 조회하고 / 我兒奉近耿光
돌아와선 동해 가에 태평을 선포할 텐데 / 歸布太平東海濆
내 늙었지만 다행히 직접 보게 되었으니 / 我雖老矣幸目覩
만족하고 즐거움을 무어라 말할꼬 하네 / 足矣樂矣何云云
자손들 일어나 춤추고 풍악 소리 들렐 제 / 子孫起舞簫鼓沸
곡성군과 광평군 또한 약간 거나하였고 / 曲城廣平亦微

서로 일어나 술 따르며 화기 융융한 속에 / 迭起行酒和氣融
촛불은 반쯤 타고 때는 한밤중에 이르러 / 燭焰半銷淸夜分
장자가 먼저 나가자 내 또한 이어 나오니 / 長者□□我亦出
코에 스며든 향내는 아직도 농후하였고 / 香塵入鼻猶氤氳
산을 높이 올라서도 풍악 소리 들리자 / 登山已高聞樂音
늙은이가 자리 먼저 떠난 게 후회되었네 / 心悔老物先離

안씨 따라서 나라 다스림을 묻고플 뿐 / 曾從顔氏問爲邦
자로의 삼군 거느리는 원치 않노라 / 不願子路行三軍

더구나 지금은 중국에 성인이 나왔으니 / 況今中國聖人出
폐백은 부족하나 정성으로 대신해야 하리 / 雖乏玄黃當獻芹
야차로 보내 주려고 이 말을 쓰노라니 / 欲書此語贈野次
적적한 남쪽 창엔 향 연기가 피어오르네 / 南窓寂寂淸香焚

 

[주C-001]용부(庸夫) : 용부는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권한공(權漢功)의 서자(庶子)인 권중화(權仲和)의 자이다.
[주D-001]일재(一齋) :
예천부원군 권한공의 호이다.
[주D-002]학(鶴)이 …… 말하랴 :
구고(九皐)의 고는 물웅덩이로서 아홉 웅덩이라 함은 매우 깊고 먼 곳을 의미하는데, 《시경》 소아(小雅) 학명(鶴鳴)학이 구고에서 울거든, 소리가 하늘에 들리도다.[鶴鳴于九皐 聲聞于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유훈(蕕薰) :
유는 악취(惡臭)가 나는 풀이고, 훈은 향초(香草)이므로, 전하여 선악(善惡), 현우(賢愚)에 비유한다.
[주D-004]안씨(顔氏) …… 않노라 :
안 연(顔淵)이 일찍이 나라 다스리는 방도를 묻자, 공자(孔子)가 이르기를하나라의 시력을 쓰고, 은나라의 수레를 타고, 주나라의 면복을 착용하고, 음악은 소무를 써야 한다.[行夏之時 乘殷之輅 服周之冕 樂則韶舞]” 하였고, 자로(子路)가 일찍이 묻기를부자께서 삼군을 거느리시게 된다면 누구와 함께하시겠습니까?[子行三軍則誰與]” 하자, 공자가 이르기를범을 맨손으로 잡으려 하고, 황하를 맨몸으로 건너려다가 죽어도 뉘우침이 없는 자를 나는 함께할 수 없으니, 반드시 일을 만나면 두려워하고, 계책 쓰기를 좋아하여 성공하는 자라야 한다.[暴虎憑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무력(武力)보다는 평화적인 방도를 추구하는 뜻에서 한 말이다. 《論語 述而, 衛靈公》

해가 서쪽으로 지다.

 


해는 서로 창 그림자는 동으로 / 日西窓影東
가는 세월 못 잊는 쇠한 늙은이가 / 依依衰老翁
멀리 관망할 땐 수고에 들어가고 / 遐觀入邃古
조용히 앉아선 대동을 생각하네 / 靜坐思大同
하늘은 광활해 높은 흥취 끌어내고 / 天遠引高興
해는 추워 외로운 충정 간직할 /
歲寒抱孤忠
적막한 가운데 남은 흥미가 있어 / 寂寥有餘味
가을벌레같이 마냥 읊조리노라 / 吟詠如秋蟲

 

[주D-001]수고(邃古) : 아주 먼 태곳적이란 뜻으로, 전하여 태곳적의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주D-002]대동(大同) :
공 도(公道)를 천하(天下)에 함께한다는 뜻으로 태평성대를 말한다. 《예기》 예운(禮運)에 의하면, 요순(堯舜) 시대를 가장 잘 다스려진 시대라 하여 대동 시대라 하고, (), (), 문왕(文王), 무왕(武王), 성왕(成王), 주공(周公)의 시대를 대동 시대보다는 못하나 조금 다스려진 세상이라 하여 이를 소강(小康) 시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해는 ……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해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에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지사(志士)의 굳은 절조(節操)를 의미한다. 《論語 子罕》

병든 나머지에

 


병든 뒤에도 광기는 줄지 않았으나 / 病餘狂不減
다만 방촌의 본심만은 간직하였네 / 只有方寸心
삭신은 걸핏하면 쑤시고 아프고 / 筋骸動酸澁
귀밑털은 어찌 그리도 까칠한고 / 鬢髮何蕭森
꽃구경을 하려면 안개가 낀 듯하고 / 看花似隔霧
달밤의 산보는 숲 속을 걷기 같으니 / 踏月如入林
안력이 이미 이렇게 되었는지라 / 眼力已如許
문 닫고 종일토록 읊조릴 수밖에 / 閉門終日吟

 

스스로 읊다.

 


병든 몸이 연래에 가장 바람이 두려워서 / 病骨年來最怕風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이불 덮고 있노니 / 擁衾朝日□□□
유유한 세상 맛은 자욱한 먼지 속이요 / 悠悠世味塵埃底

담담한 시 생각은 월로의 마당이로다 / 淡淡詩情月露中
몸은 떨쳐 날고프나 새장에 갇힌 학 같은데 / 身欲奮飛籠野鶴
맘은 어이해 나는 기럭을 주살로 쏘려 할꼬 /
心何思慕弋冥鴻
추워지매 점점 기쁜 건 우뚝이 앉았을 때 / 天寒漸喜成危坐
해진 거적문 밖에 하늘 가득 눈 내림일세 / 弊席垂門雪滿空

 

[주D-001]월로(月露) : 문사(文詞)는 화려하나 내용이 없는 시문(詩文)을 말한 것으로, 즉 사시(四時)의 경치나 읊조리는 시문을 의미한다.
[주D-002]맘은 …… 할꼬 :
맹 자(孟子)의 말에 의하면, 바둑은 비록 작은 기예(技藝)지만 전심치지(專心致志)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니, 혁추(奕秋)가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칠 경우, 한 사람은 전심치지하여 혁추의 말만을 듣고, 또 한 사람은 혁추의 말을 들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으로 홍곡(鴻鵠)이 날아오거든 주살을 먹여서 쏘아 잡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같이 배우더라도 진취함이 서로 다르게 된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생각이 다른 데에 있음을 의미한다. 《孟子 告子上》

대사도(大司徒) 조공(趙公)이 화답하였으므로,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하여 짓다.

 


몇 해나 북녘 바라보며 희암을 생각했던고 / 幾年北望憶
쪽빛같이 푸른 연산이 아련히 떠올랐었지 / 彷彿燕山靑似藍
난리 뒤에 서로 만남은 참으로 꿈만 같거니 / 亂後相逢眞是夢
귀양살이의 고통쯤은 말할 것도 없고말고 / 謫中之苦不須談
천화가 땅에 떨어질 아침 강경을 열고 /
天花落地開朝講
산월이 하늘에 밝을 땐 야참을 그만두네 / 山月當空放夜參
백련사를 결성하는
바로 내 소원인데 / 結社白蓮吾所願
암벽에 머문 보찰이 다행히 깊고도 넓구려 / 留巖寶刹幸潭潭

죽 마시고 누더기 입고 초막 암자에 있는 게 / 啜粥懸鶉草結菴
어찌 금포 차림으로 명찰에 머무름만 하랴만 / 錦袍何似住名藍
세상을 비춘 법화는 마음으로 좇아 나오고 / 法花照世從心發
오묘한 곳은 기회 따라 남김없이 설파하네 / 妙處隨機極口談
뭇 새들도 때로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고 / 衆鳥□□時致供
신룡은 보배 바치고
혹 참여도 요구하누나 / 神龍獻寶或求參
다만 화려한 말들은 전생의 업이라서 /
綺語吾前業
묵은 때 씻자면 만 길 못물을 쏟아야 하리 / 滌垢須傾萬丈潭

삼한의 크고 작은 암자 손꼽아 세어 보면 / 屈指三韓大小菴
산은 푸른 병풍 같고 물은 쪽빛과 같은데 / 山如翠嶂水如藍
젊어선 죽원에 가서 스님 만나 환담했더니 /
少從竹院欣逢話
늙어선 풍랑에서 담승 굴복시키지 못하네 /
老向風廊懶折談
흑탑의 옛 놀이는 다시 얻기 어렵거니와 / 黑塔舊游難再得
백발엔 병이 많아서 자주 참여하고파라 / 白頭多病欲頻參
연지에서 술 마시기를 고대 기다리노니 / 苦心只待蓮池飮
다시 남은 생에 국담을 묻고 싶어서라네 / 更擬殘生問菊潭

 

[주D-001]천화(天花)가 …… 열고 : 불 교의 전설에 의하면, 불조(佛祖)가 《법화경(法華經)》을 강설(講說)한 것이 천신(天神)을 감동시킴으로 인하여 제천(諸天)의 각색(各色) 향화(香花)가 어지러이 땅에 떨어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불경을 강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야참(夜參) :
만참(
)과 같은 뜻으로, 선사(禪寺)에서 저녁때에 사장(師匠)에게 불법(佛法)을 묻는 것을 말한다.
[주D-003]백련사(白蓮社) 결성하는 :
()나라 때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일찍이 유유민(劉遺民), 뇌차종(雷次宗) 등 명유(名儒)들을 초빙하여 무량수불상(無量壽佛像) 앞에서 유불(儒佛)이 함께 서방(西方)의 정업(淨業)을 닦기로 서원(誓願)하고, 또 이 절의 못에 백련(白蓮)을 많이 심고서, 이 유불의 단체를 백련사라 이름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유불이 서로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4]법화(法花) :
《법화경》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불법을 의미한다.
[주D-005]신룡(神龍) 보배 바치고 :
《법화경》에 의하면, 용녀(龍女)가 일찍이 부처[]를 매우 존경한 나머지 부처에게 보주(寶珠)를 바쳤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6]다만 …… 업(業)이라서 :
소식(蘇軾)의 〈차운승잠견증(次韻僧潛見贈)〉 시에다생의 화려한 말들을 전부 없애지 못해, 아직도 완전한 시인의 정이 있네그려.[多生綺語磨不盡 尙有宛轉詩人情]”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젊어선 …… 환담했더니 :
죽 원(竹院)은 대를 심은 정원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승사(僧舍)를 의미한다. ()나라 장적(張籍)의 〈심서도사(尋徐道士)〉 시에스님 찾아서 멀리 휘천관에 당도하니, 죽원의 대는 무성한데 약방은 닫혀 있네.[尋師遠到暉天觀 竹院森森閉藥房]” 하였고, 이섭(李涉)의 〈제학림사승사(題鶴林寺僧舍)〉 시에는죽원을 지나다가 스님 만나 담화를 나누니, 또 덧없는 인생 한나절 한가함을 얻었구나.[因過竹院逢僧話 又得浮生半日閑]” 하였다.
[주D-008]늙어선 …… 못하네 :
풍 랑(風廊)은 바람이 잘 통하는 낭옥(廊屋)을 가리키고, 담승(談僧)은 담론(談論) 잘하는 중을 가리킨 것으로, 한유(韓愈)의 〈송후참모부하중막(送侯參謀赴河中幕)〉 시에눈길은 헤쳐 나무꾼 찾아가 놀고, 풍랑에서는 담승을 굴복시키네.[雪徑抵樵叟 風廊折談僧]”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9]국담(菊潭) :
하남성(河南省) 남양부(南陽府)에 국담이란 못이 있는데, 그 물이 매우 달고 향기로워서 그곳 주민들이 이 물을 마시고 장수(長壽)한 이가 많다고 한 데서, 즉 장수를 의미한다.

비를 대해서 짓다.

 


작은 빗발 듬성듬성 새벽 암자에 비칠 제 / 小雨疏疏曉映菴
푸른 산은 문에 당해 쪽빛을 펼친 듯하네 / 靑山當戶似披藍
우산 받고 가서 뫼시고 놂은 무방켔지만 / 不妨持傘陪淸賞
주렴 걷고 담론이나 하게 될까 염려로다 / 只恐鉤簾費軟談
우의를 반쯤 걸친 촌 늙은이는 떠나가고 /
襏襫半遮村叟去
가사를 갑자기 적신 스님은 자리에 있네 / 袈娑乍濕野僧參
벼루 들고 처마 밑 낙숫물을 받으려는데 / 茅簷携硯將承溜
자수정 같은 달빛이 푸른 못에 잠겼구나 / 紫石月痕沈碧潭

 

진 무문(進無門) 시자(侍者)가 말하기를우리 스님 환암공(幻菴公)께서 지금 원주(原州) 서곡사(瑞谷寺) 골짜기의 백운암(白雲菴)에 계신다.”고 하므로, 붓을 달려 써서 부쳐 올리다. 무문(無門)의 이름은 희진(禧進)이다.

 


흰 구름 깊은 골짜기엔 백운암이 있어 / 白雲深處白雲菴
밝은 달이 두둥실 푸른 못에 비치겠네 / 明月團團照碧潭
유항의 동편에는 시냇물이 얕기도 한데 / 柳巷東邊溪水淺
외로운 그림자와 함께함을 누가 알리오 / 誰知孤影也相參

 

유항루(柳巷樓) 위에서 놀았던 일을 추후에 기록하다.

 


어제 서쪽 누각을 지팡이 짚고 올라가니 / 昨向西樓扶以登
호화스런 진수성찬에 술은 강물 같았지 / 食前方丈酒如

희암은 딴 데를 가서 약간 실망되었지만 / 菴他適稍缺望
규헌
은 우연히 와서 흔연히 나가 맞았네 / 葵軒偶來欣出應
줄을 이은 문생들도 취하고 배불렀어라 / 聯翩門生亦醉飽
뫼고 헤짐은 천명인데 무슨 득실이 되랴 / 聚散天數誰除乘
작은 비 뜰 가득 내릴 제 몽당붓 잡으니 / 小雨滿携敗筆
읊조리지 않으려 해도 멈출 수가 없구려 / 欲止不吟還未能

 

[주D-001]규헌(葵軒) :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의 손자이며 현복군(玄福君) 권렴(權廉)의 아들인 권주(權鑄)의 호이다.

초겨울에

 


초겨울 작은 비가 밤부터 낮까지 계속 내려 / 冬初小雨夜連明
오후까지 빈 처마에 낙숫물 소리가 나누나 / 午後虛簷滴有聲
신세는 연연한 나머지 노쇠함에 놀라지만 / 身世依依驚老大
가사는 초솔하나마 태평을 송축하노라니 / 歌詞草草誦昇平
구름은 먼 산에 나직해 술자리가 어둑하고 / 雲低遠岫樽前暗
바람은 성긴 숲에 불어 붓 밑이 청량하구나 / 風動疏林筆底淸
앞서 여름날엔 써늘해지기만 기대했거늘 / 曾向炎天望凄凜
어찌하여 지금 다시 남은 생을 염려하랴 / 奈何今復念殘生

 

이 상의(李商議), 변 사재(邊四宰)가 여러 원수(元帥)들과 함께 개선(凱旋)한다는 말을 듣고도 나는 병 때문에 교외(郊外)에 나가 맞이할 수 없으므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참다운 장수가 아주 수월히 적을 소탕하니 / 掃賊眞將拉朽同
삼한의 기쁜 기색이 온통 제공에게 모이네 / 三韓喜氣屬諸公
충성은 태양에 걸려라 하늘엔 구름도 없고 /
忠懸白日天無靄
위엄 청구를 진동해 바다엔 풍파도 없네 /
威振靑丘海不風
교외의 화려한 자리에선 무공을 노래하고 / 出牧華筵歌武烈
높다란 능연각엔 영웅들 초상이 걸리겠지 /
凌煙高閣畫英雄
병든 몸이라 교외에 나가 맞이하지 못하고 / 病餘不得參郊迓
앉아서 새 시 읊어 위대한 공 송축할 뿐이네 / 坐詠新詩頌偉功

 

[주D-001]충성은 …… 없고 : 충성이 태양에 걸린다는 것은 곧충성이 태양을 꿴다.[忠貫白日]’는 말과 같은 뜻으로, 충성이 매우 지극함을 의미한다.
[주D-002]위엄은 …… 없네 :
청 구(靑丘)는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바다에 풍파가 일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주 성왕(周成王) 때에 월상씨(越裳氏)가 중역(重譯)을 통하여 중국(中國)에 조회(朝會)를 가서 주공(周公)에게 백치(白雉)를 바치면서, 바다에 풍파가 일지 않은 지 3년이 되었으므로, 필시 중국에 성인(聖人)이 계시다고 여겨 조회를 왔노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성군(聖君)이 나라를 다스리는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주D-003]높다란 …… 걸리겠지 :
당 태종(唐太宗) 때에 훈신(勳臣) 장손무기(長孫無忌), 두여회(杜如晦), 위징(魏徵), 방현령(房玄齡) 24인의 초상(肖像)을 그려서 능연각(凌煙閣)에 걸도록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남창(南窓)

 


남쪽 창에 햇살이 바야흐로 비치자 / 南窓日方照
어리석은 파리가 창문을 기어다니네 / 癡蠅緣紙行
여름날 미끄러운 넓은 대자리선 / 炎天廣簟滑
소리를 내며 경쾌히 날아다녔으되 / 剽輕飛有聲
그 당시엔 쫓아내려고 해보았자 / 當時驅之去
놀라지 않은 듯 빙빙 돌곤 했었지 / 翩旋如不驚
이제는 마치 움츠러드는 듯하니 / 今玆似羞澁
네가 앞으론 어떻게 살아갈거나 / 爾將何以生
늙은이가 몹시도 일이 없는 터라 / 老翁苦無事
측은한 정을 어찌할 수가 없구나 / 惻然難爲情

 

윤 장원(尹壯元)이 와서 얼굴에 술기운을 띈 채 앉아서 조는데, 그 진솔한 모습은 사랑스러우나, 어른을 섬기는 예에 있어서는 약간 잘못된 것이므로, 단가(短歌) 한 수를 기록하노니, 이는 그를 친하게 여긴 때문이며, 탐탁지 않게 여기는 가르침이기도 한 것이다. 이름은 소종(紹宗)이다.

 


율정의 장손이 할아버지 풍도가 있으니 /
栗亭長孫有祖風
진솔한 정회가 참으로 누가 그와 같을꼬 / 眞率情懷誰與同
자기 좌주를 마치 자기 아비처럼 여기어 / 視其座主如乃翁
술이 취하여 좌중에서 앉은 채로 조는데 / 醉而
睡於座中
코는 콜콜 아서 무지개를 토한 듯하고 /
齁齁鼻息垂長虹
두 눈은 붉기가 두 뺨보다도 더 붉더니 / 雙眼紅於雙頰紅
스스로 말하기를 부모가 병중에 계시어 / 自言父母病在躬
약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면서 / 收拾藥材走西東
늦게 뵈온 걸 사죄한단 말 마치기도 전에 / 似謝來遲言未終
일어나서 하직하고는 훌쩍 떠나가누나 / 起而辭去如飄蓬
좌주는 너무 기뻐서 신기가 화락하여라 / 座主喜甚神氣融
효도하고도 거짓이 없어야 충성을 하는 법 / 孝又無詐然後忠
충성은 지금 세상에 참으로 고동 같거니 / 忠於今世眞羖童
절문의 예가 있어야만 도가 충만해지리 / 節文有禮道乃充
세도는 비록 융성함과 쇠퇴함이 있지만 / 雖然世道有汚隆
걸주에겐 박하고 요순에겐 후한 게 아니라네 / 桀紂非嗇堯非

 

[주C-001]탐탁지 …… 가르침 : 상 대방을 탐탁지 않게 여겨 멀리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경각(警覺)시키는 가르침을 말한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사람을 가르치는 데도 방도가 많으니, 내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가르침도 이 또한 가르침일 뿐이다.[敎亦多術矣予不屑之敎誨也者 是亦敎誨而已矣]”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告子下》
[주D-001]율정(栗亭)의 …… 있으니 :
율정은 고려 말기의 문신 윤택(尹澤)의 호이고, 그의 장손(長孫)은 바로 윤소종(尹紹宗)이다.
[주D-002]코는 …… 듯하고 :
코를 대단히 시끄럽게 고는 것을 말한다.
[주D-003]고동(羖童) :
뿔 없는 염소를 말한 것으로, 결코 있을 수 없는 물건을 의미한다. 《시경》 소아(小雅) 빈지초연(賓之初筵)취하여 망언을 하는 자에겐, 뿔 없는 염소를 내놓으라 하리라.[由醉之言俾出童羖]” 하였다.

북풍(北風)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수목이 진동할 제 / 風從北來樹木鳴
한 서생이 밝은 창 앞에 단정히 앉았노라니 / 明窓危坐一書生
장하여라 사방을 경영할 뜻은 있었지만 /
壯哉有志在四方
근력이 이미 쇠하여 쓰러질 것만 같구나 / 膂力已衰如欲僵
봄엔 온갖 새가 울고 가을엔 벌레가 울 뿐 / 春鳴百鳥秋鳴蟲
만고에 아득한 건 오직 저 텅 빈 하늘인데 / 萬古冥冥唯大空
텅 빈 하늘은 끝도 가도 없거늘 / 大空無畔岸
어디에 이런 소리를 감추었는고 / 何處藏此聲
소리가 한번 발동하게 되면 / 此聲一發動
천둥 벼락도 자취를 감추누나 / 雷霆不得鳴

천지는 적적하고 오만 봉우리는 우뚝하고 / 乾坤寂寂萬峯立
얼음은 절벽에 얼고 물은 구렁으로 가는데 / 氷上懸崖水歸壑
구렁
을 바다라 이름하나니 / 大壑名曰海
급한 파도의 충격은 보는 이를 경악케 하네 / 舂擊火生觀者愕
금오의 머리 위에는 삼신산이 있는데 /
金鼇頭上有三山
잠깐 새에 심한 파도 속에 출몰하는지라 / 振動出沒俄頃間
나는 염려하노니 신선들도 놀라 넘어져서 / 我恐神仙亦驚倒
서로 붙드느라 경황이 없지나 않을는지 / 相扶相卹無歡顔
돌아보니 내 집은 조그만 거룻배 같아서 / 回觀我室小如舟
반 이랑 연못에 나뭇잎 하나 뜬 격이지만 / 半畝方塘一葉浮
심히 흔들려 넘어지는 건 걱정이 안 되고 / 不憂掀舞困傾倒
북풍 소리에 내 마음 슬픈 것만 한스럽네 / 只恨聞聲心惻惻
아침 내내 앉았자니 바람은 점차 약해지고 / 終朝兀坐風漸闌
박산로의 향 연기는 곧게 피어오르누나 / 博山碧縷香煙直

 

[주D-001]장하여라 …… 있었지만 : 《예 기(禮記)》 사의(射義)에 의하면, 남아(男兒)가 태어나면 장차 사방(四方)을 경영(經營)하는 데에 뜻을 두게 한다는 의미에서, 뽕나무활[桑弧]과 쑥대화살[蓬矢] 여섯 개로 천지 사방(天地四方)을 향해 한 개씩 쏘았다는 데서 온 말로, 남아의 장대한 포부를 의미한다.
[주D-002] 소리가 …… 감추누나 :
이 소리란 바로 북풍(北風)을 가리킨 것으로, 북풍이 몰아치는 동절기(冬節期)에는 천둥이 치지 않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003] 구렁 :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동해 밖에 큰 구렁이 있다.[東海之外有大壑]”고 하였으니, 이 또한 동해를 가리킨다.
[주D-004]금오(金鼇)의 …… 있는데 :
금 오는 동해(東海)에 있다는 금색(金色)의 큰 거북[巨鼇]을 가리킨다.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의하면, 발해(渤海)의 동쪽에는 대여(岱輿), 원교(員嶠), 방호(方壺), 영주(瀛洲), 봉래(蓬萊)의 다섯 신산(神山)이 있는바, 이 산들이 조수(潮水)에 밀려 표류(漂流)하여 정착하지 못하므로, 천제(天帝)가 이 산들이 서극(西極)으로 흘러가 버릴까 염려하여 큰 거북 15마리로 하여금 이 산들을 머리에 이고 있게 함으로써 비로소 정착하게 되었는데, 뒤에 용백국(龍伯國)의 거인(巨人)이 단번에 이 거북 6마리를 낚아감으로 인하여 대여, 원교의 두 산은 서극으로 표류해 버리고, 방호, 영주, 봉래의 세 산만 남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날이 개다.

 


하늘은 활짝 개어 물처럼 파란데 / 天晴碧如水
백발로 높은 누각에 기대앉았네 / 白髮倚高樓
직도로 삼출을 가벼이 여겼으니 /
直道輕三黜
여생엔 온갖 근심을 털어버려야지 / 餘生散百憂
달은 평야로 좇아 솟아오르고 / 月從平野湧
구름은 먼 산과 더불어 떠 있네 / 雲與遠山浮
적막함 속에 유독 흥미가 많아라 / 索寞偏多味
유유히 예전 놀이가 생각나누나 / 悠悠憶舊游

 

[주D-001]직도(直道)로 …… 여겼으니 : 삼 출(三黜)은 벼슬에서 세 번 쫓겨난 것을 이른 말로, 춘추 시대 노()나라의 유하혜(柳下惠)가 사사(士師)가 되었다가 세 번을 쫓겨나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그대가 여기를 떠나 버릴 수 없겠는가?” 하니, 유하혜가 대답하기를도를 바르게 하여 사람을 섬기기로 들면 어디를 간들 세 번 쫓겨나지 않겠으며, 도를 굽혀서 사람을 섬기기로 들면 어찌 굳이 부모의 나라를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微子》

송산(松山)

 


소년 시절엔 걸어서 산을 올라가 / 少年步上山
해뜨는 동녘을 굽어보았었는데 / 俯視日生東
노년에는 말을 타고 산을 올라서 / 老年騎上山
중천에 오른 해를 쳐다볼 뿐이네 / 仰觀日在中
산의 높음은 고금에 걸쳤거니와 / 山高亘今古
우뚝한 것은 또한 팔선궁이로다 / 巍巍八仙宮
한 몸도 강하고 약할 때가 있거든 / 一身有

더구나 궁통의 기복이 많음에랴 / 況復多窮通
강산과 사직은 / 江山與社稷
절로 태산 반석처럼 안전하거니 / 自與盤石同
바라건대 신명한 조화를 받들어 / 願言奉神化
오래도록 외로운 충성 보전했으면 /
歲保孤忠
한 잔 올리매 지성이 감천하여 / 一獻誠可格
향 연기가 갠 하늘에 흩어지누나 / 爐香散晴空

 

[주D-001]팔선궁(八仙宮) : 송악산(松岳山)에 팔선(八仙)을 모신 궁관(宮觀)인데, 이때 목은이 여기에 제()를 드린 것이다.

소나무 밑에서 음복(飮福)을 하다.

 


높이 올라 사방 바라보니 만봉이 푸르러라 / 登高四望萬峯靑
가운데로 물이 흘러 양쪽은 비단 병풍일세 / 白水中分兩錦屛
누가 알랴 목은 늙은이 소나무 밑에 앉아 / 誰識牧翁松下坐
두어잔 기울이며 산신령께 감사하는 줄을 / 數杯傾了謝山靈

늙어서 높은 산 오르니 눈도 함께 푸러져라 / 老向雲山眼共靑
그림은 아닌데도 병풍 같은 게 의아스럽네 / 只疑非畫却如屛
백발에 풍류가 더해짐을 점차 깨닫겠으니 / 白頭漸覺風流甚
인걸은 예로부터 지령을 힘입는 것이로다 / 人傑由來荷地靈

눈앞에 펼친 구름은 희고 또 산은 푸르고 / 眼中雲白又山靑
해는 중천에 있는데 짧은 병풍 기대앉아 / 日在□□倚短屛
반쯤 취하고 반쯤 깨니 흥겨움 그지없어라 / 半醉半醒情興逸
온 천하의 창생들이 상제를 우러르고말고 / 普天率土仰皇靈

또 읊다.

신명께 재배 드리니 이 정성 통촉하시어 / 再拜神明照此誠
대왕은 장수 누리고 재신은 광영 있으리 / 大王長壽宰臣榮
나는 백발에 시주로 한가히 소일하노니 / 白頭詩酒閑消日
바라건대 창생과 함께 태평을 누렸으면 / 願與蒼生共太平

 

즉사(卽事)

 


닭이 운 뒤에도 두 눈은 아직 흐리멍덩한데 / 雞鳴兩眼尙朦朧
갑자기 처마 앞 소나무에 비가 뿌리는구나 / 忽爾簷間雨洒松
급히 계집종 불러 마당을 가보게 하노니 / 急喚女奴庭下去
말린 나락 비에 젖어 아침거리 그르칠라 / 恐漂乾稻誤朝舂

 

비가 그치지 않으므로, 앉아서 여러 원수(元帥)들의 개선(凱旋) 길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염려하다.

 


깃발 걷어 돌아오니 눈이 녹아 질척여라 /
卷旆歸來雨載塗
한가로이 우는 말들을 서서히 모는구려 / 蕭蕭萬馬政徐驅
적을 꺾은 힘찬 기세는 천하를 경도하고 / 折衝猛勢傾天下
개선 아뢰는 환성은 해동을 진동시키리 / 奏凱懽聲動海隅
오만 산에 반쯤 비침은 그림인가 의심되고 /
半映亂峯疑是畫
쇠한 풀에 약간 적심은 우유처럼 윤택하네 /
細霑衰草欲如酥
막부의 하의객
에게 간곡히 말 전하노니 / 寄言幕府荷衣客
새 시 아끼지 말고 늙은이에게 부쳐주오 / 無惜新詩寄老夫

 

[주D-001]깃발 …… 질척여라 : 《시 경》 소아(小雅) 출거(出車)옛날 우리가 출정할 적엔, 기장과 피가 한창 무성하더니, 이제 우리가 돌아올 때엔, 눈이 녹아서 질척이누나.[昔我往矣 黍稷方華今我來思 雨雪載塗]”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북쪽 오랑캐를 치러 간 장군(將軍)이 많은 공을 세우고 돌아오자, 임금이 주연(酒宴)을 베풀어 위로하면서 장군의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주D-002]오만 …… 의심되고 :
높고 낮은 여러 산봉우리의 중턱쯤에 빗발이 비치는 모습을 두고 이른 말이다.
[주D-003]쇠한 …… 윤택하네 :
한유(韓愈)의 〈조춘정수부장십팔원외(早春呈水部張十八員外)〉 시에도성 거리 작은 비가 우유처럼 윤택하여라, 풀빛은 멀리서만 뵈고 가까이선 안 뵈누나.[天街小雨潤如酥 草色遙看近却無]”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막부(幕府) 하의객(荷衣客) :
하 의객은 원래 은자(隱者)의 뜻으로 쓰이며, 또는 새로 급제(及第)하여 녹포(綠袍) 입은 사람을 일컫기도 하나, 여기서는 남제(南齊) 때 연부(蓮府)라 일컬어졌던 재상(宰相) 왕검(王儉) 막부의 막료(幕僚)인 유고지(庾杲之)의 고사에서 온 말로, 훌륭한 막료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겨울비가 오다.

 


작은 비가 날을 연해서 내리어라 / 小雨連朝至
강산은 해가 저물어가는 때인데 / 江山歲暮時
성긴 빗줄기는 텅 빈 방에 비치고 / 疏疏映虛室
아득한 광경은 새 시에 들어오네 / 渺渺入新詩
외론 기럭은 변새 구름에 희미하고 / 斷鴈迷雲塞
찬 꽃은 국화 가지서 흠뻑 젖누나 / 寒花浥菊枝
철저히 맑음을 달게 여기거니와 / 自甘淸到骨
동분서주 면함은 다행이고말고 / 幸爾免驅馳

두 아이가 서로 말을 주고받으니 / 兩兒相唱和
상스런 말은 무식배나 똑같은데 / 俚語似街童
즐거워서 한창 서로 기뻐하다간 / 樂矣方怡悅
이윽고 또 서로 공격을 하는구나 / 俄而□□
맑은 새벽부터 문을 열고 나가서 / 凌晨出戶外
비를 맞으며 마당을 쏘다니다가 / 冒雨走庭中
자주자주 배랑 대추를 달라면서 / 數數求梨棗
할아비의 옷을 끌어당기네그려 / 牽衣向祖翁

많은 벼를 수확하여 들인 때라서 / 多稼登場日
농부들이 이젠 편히 쉬게 되었네 / 庶幾民力休
와상에 들린 방아 소리는 급하고 /
殷牀舂政急
관청에 바칠 조세도 곧 거둘 텐데 / 輸縣稅將收
비바람이 다시 마음을 괴롭히니 / 風雨還相惱
처자들 또한 함께 걱정을 하누나 / 妻兒亦共憂
봉군되어 아직까지 녹을 먹으니 / 封君猶食祿
난 부끄러워 땀이 물 흐르듯 하네 / 內愧汗如流

 

[주D-001]와상에 …… 급하고 : 소식(蘇軾)의 〈과고우기손군부(過高郵寄孫君孚)〉 시에온 들판에 가을 수확을 마치니, 밤에 쌀 찧는 소리가 와상에 들리네.[卷野畢收穫 殷牀聞夜舂]” 한 데서 온 말이다.

밤에 바람 소리를 듣고 지어 놓았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기록하다.

 


문밖에 바람 소리가 사해를 진동할 제 / 門外風聲振四溟
한 등불 앞에 쓸쓸히 꿇어앉았노라니 / 悄然危坐一燈靑
밤이 하마 얼만고 염려됨이 갑절이로다 / 夜如何其倍耿耿
하늘은 바로 이치라 어두운 게 아니라오 / 天卽理也非冥冥
조위와 등설엔 각각 적재가 있거니와 /
趙魏滕薛各適器
기룡과 직설이 방금 정에 있거늘 /
夔龍稷契方在廷
격렬한 바람 소리에 마음을 토출하여라 / 聞聲激裂便吐出
입을 병처럼 지킬
길이 없음일세 / 守口末由如彼甁

 

[주D-001]조위(趙魏)와 …… 있거니와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맹공작이 조씨나 위씨의 가로(家老)가 되기에는 넉넉하지만, 등나라나 설나라의 대부는 되지 못할 것이다.[孟公綽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滕薛大夫]” 한 데서 온 말인데, 맹공작은 당시 노()나라의 대부로서 덕망(德望)은 있으나 행정(行政)의 재간이 부족했으므로, 즉 그의 사람됨이 조위(趙魏) 같은 대신가(大臣家)의 가로는 될 수 있지만, 등설(滕薛) 같은 소국(小國)의 어려운 사건들을 해결할 만한 재간은 부족하다는 뜻으로서, 이것이 곧 적재적소(適材適所)를 의미한 것이다. 《論語 憲問》
[주D-002]기룡(龍)과 …… 있거늘 :
기룡과 직설(稷契)은 모두 순() 임금의 명신(名臣)들로서, 기는 악관(樂官)이었고, 용은 간관(諫官)이었으며, 직은 농관(農官)이었고, 설은 사도(司徒)였다.
[주D-003]내 …… 지킬 :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에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 하고, 사욕 막기를 성 지키듯이 하라.[守口如甁防意如城]” 한 데서 온 말로, 입을 굳게 다물고 말을 삼가는 것을 의미한다.

설 시승(偰寺丞)에게 주다. 이름은 경수(慶壽)이다.

 


아침 해가 창에 비쳐 환히 밝아라 / 朝暾照窓明
천기는 흡사 물처럼 맑기도 한데 / 天氣如水淸
새가 정원수 가지에서 울어대니 / 鳥啼庭樹枝
여전히 벗을 부르는 소리로다 / 依然求友聲

조용히 아름다운 손을 마주하니 / 靜言對佳客
방촌의 그리운 정이 하염없구려 / 悠悠方寸情
사문이 절반이나 망하여 없어져서 / 斯文半淪喪
세상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거니와 / 世路荊棘生
천운 또한 분열된 때를 만났으니 / 天運屬分裂
몸의 경중을 어찌 논할 것 있으랴 / 何論身重輕
다만 원하는 것은 각각 노력하여 / 但願各努力
백발로 태평성대를 노래함일세 / 皓首歌太平

 

[주D-001]새가 …… 소리로다 : 《시 경》 소아(小雅) 벌목(伐木)꾀꼬리가 꾀꼴꾀꼴 욺이여, 제 벗을 부르는 소리로다. 저 새를 보아도, 서로 벗을 부르는데, 더구나 우리 사람으로서, 벗을 찾지 않을쏜가.[嚶其鳴矣 求其友聲 相彼鳥矣 猶求友聲 矧伊人矣不求友生]” 한 데서 온 말로, 친구를 그리는 뜻을 의미한다.

느낌이 있어 짓다.

 


매도 배고프면 사람에게 의지하고 / 鷹飢方附人
범도 배부르면 동물을 안 해치되 / 虎飽不害物
반대가 되면 걱정거리가 되나니 / 反之則爲患
다루는 방법을 신중해야 하고말고 / 在我愼其術
천도가 초목을 꺾어뜨릴 때에는 / 天道賁草木
명확하게 일률적으로 시행하기에 / 皎然如畫一
흑과 백이 혹 뒤섞이기도 하거니 / 黑白或混殽
어떻게 갑을을 논할 수 있으리오 / 何從論甲乙
일에 귀중한 건 공평함을 얻어서 / 事貴得其平
동함에 길하지 않음이 없는 걸세 /
動也罔不吉
원컨대 모두 어진 덕을 숭상하여 / 願言崇令德
어진 이를 보고 시기하지 말았으면 / 見賢無媢嫉

 

[주D-001]동함에 …… 걸세 : 《서경》 함유일덕(咸有一德)덕이 오직 한결같으면 동함에 길하지 않음이 없고, 덕이 한결같지 못하면 동함에 흉하지 않음이 없다.[德惟一 動罔不吉德二三 動罔不凶]” 한 데서 온 말이다.

회포를 서술하다.

 


주림을 참으면 몸을 죽이게 되고 / 忍飢將亡軀
부끄럼을 참으면 아첨하게 되는데 / 忍恥將媚人
아첨하는 건 의롭지 못한 짓이요 / 媚人爲不義
몸을 죽임은 인하지 못한 일이라 / 亡軀爲不仁
구복은 척촌의 살보단 중하기에 /
口腹非尺寸
그래서 대신에게 간청을 하지만 / 所以干大臣
대신은 나를 외면하지 않을지라도 / 大臣苟不棄
나는 가기가 자꾸만 머뭇거려지네 / 我去猶逡巡
굶주려도 차래식은 먹지 않나니 /
飢不食嗟來
부끄러우면 스스로 새로워져야지 / 恥則能自新
출처엔 절로 의리가 있는 법이니 / 出處自有義
군자는 몸을 보중해야 하고말고 / 君子當保身

 

[주D-001]구복(口腹)은 …… 중하기에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음식을 탐하는 사람을 누구나 천하게 여기나니, 그것은 작은 구복만을 기르고 큰 체통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음식을 탐하는 사람이 만일 잃는 것이 없다면, 구복인들 어찌 척촌의 살갗만큼 하찮은 것이리오.[飮食之人 則人賤之矣 爲其養小以失大也 飮食之人 無有失也 則口腹豈適爲尺寸之膚哉]”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告子上》
[주D-002]굶주려도 …… 않나니 :
차 래식(嗟來食)이란 본디 굶주린 사람을 불쌍히 여겨 예의를 갖추지 않고 주는 음식을 말하는데, 전하여 사람을 업신여겨 무례한 태도로 주는 음식의 뜻으로도 쓰인다. 춘추 시대 제()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금오(黔敖)란 사람이 길에서 밥을 지어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는데, 그때 금오가 왼손에는 밥을 들고 오른손에는 마실 것을 들고 한 굶주린 사람을 불러서가엾어라, 와서 먹으라.[嗟來食]” 하자, 그는 눈을 부릅뜨고 금오를 보면서 말하기를나는 오직 가엾게 여겨 와서 먹으라는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予唯不食嗟來之食 以至於斯也]”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禮記 檀弓下》

우세군(祐世君)이 숯[]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이름은 종림(宗林)이다.

 


첫추위가 엉성한 집에 닥쳤으나 / 初寒逼疏屋
화로에는 식은 재만 남아 있으니 / 小爐餘舊灰
무슨 수로 내 손을 쬘 수 있으랴 / 何由灸我手
장뢰
를 소매 속에 넣고 있었더니 / 袖間收掌雷
건장한 말이 큰 섬을 싣고 왔는데 / 健馬駄大石
그 속에 봉탄이 가득 담겨 있으니 / 鳳炭於中堆
이제부터는 냉소와 냉어로부터 / 冷笑與冷語
갑자기 시기를 받게 되었네그려
/
忽然俱見猜
생각이 난다 불시루 속에 서리를 / 懷哉甑中霜
어리게 하던 참다운 신선 도술이 / 變化眞仙才

 

[주D-001]장뢰(掌雷) : 장심뢰(掌心雷)의 준말로, 도교(道敎)에서 손바닥으로 큰소리를 내는 일종의 법술(法術)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다만 손바닥의 뜻으로 쓴 것이다.
[주D-002]봉탄(鳳炭) :
《천보유사(天寶遺事)》에 의하면, 양국충(楊國忠)의 집에서는 숯가루를 꿀로 이겨서 쌍봉(雙鳳)의 형상으로 만들어 놓았다가 겨울이 되면 이것을 화로에 넣어 땠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다만 숯의 뜻으로 쓰였다.
[주D-003]냉소(冷笑)와 …… 되었네그려 :
냉소는 냉담하게 남을 멸시하여 비웃는 것을 말하고, 냉어(冷語)는 역시 남을 비웃는 말인데, 여기서는 다만 추위를 벗어나 다습게 지내게 된 것을 풍자적으로 한 말이다.
[주D-004]생각이 …… 도술이 :
선인(仙人)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눈과 서리는 신기한 화로에 어리게 하고, 신령한 지초는 숭산에서 캔다.[凝霜雪於神爐 採靈芝於嵩岳]” 한 데서 온 말이다.

무급(信無及)이 병 때문에 봉선사(奉先寺)의 소재전(消災殿)에 우거하고 있었으므로, 내가 문병(問病)하러 가보니, 병은 이미 나은 뒤였다. 소재전 동쪽에 위치한 두 칸은 벽이 허술해서 삼면으로 바람을 받아 약간 썰렁하므로, 겨울에 거처하기는 마땅치 않으나, 그 벽을 더 두껍게 바르면 추위를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무급이 말하기를장차 산중으로 들어가서 겨울을 나겠다.”고 하므로, 돌아와서 그 일을 기록하는 바이다.

 


집이 산 위에 있어 사면에서 바람이 부니 / 屋在山頭四面風
여름 거처만 좋을 뿐 겨울은 마땅치 않네 / 只宜炎夏不宜冬
남쪽 하늘의 갠 빛은 일천 문의 햇살이요 / 晴色千門日
북쪽 창의 찬 소리는 만 그루 소나무로다 / 北牖寒聲萬樹松
병을 보여라
장수할 골격을 능히 감추고 / 示病却能藏壽骨
한가함 얻어선 다시 쇠한 얼굴 활짝 펴네 / 得閑聊復逞衰容
두껍게 벽 바르면 깊이 들앉을 만하리니 / 厚泥塗壁堪深坐
나막신 신고 눈길 걷는 내 모습을 보게나 / 著屐看吾雪上蹤

 

[주C-001] 무급(信無及) : 무급은 고려 말기 선승(禪僧)의 호인데, 그는 나옹 선사(懶翁禪師)의 제자이기도 했다.
[주D-001]병을 보여라 :
석 가의 속제자(俗弟子)인 유마힐(維摩詰)은 인도(印度)의 비야리성(毗耶離城)에 살았는데, 석가가 일찍이 그곳에서 설법(說法)할 적에 유마힐은 거짓 병을 핑계로 법회(法會)에 나가지 않고 텅 빈 방의 한 와상에 조용히 누워 있었으므로, 석가가 문수보살(文殊菩薩) 등을 보내어 문병하게 한 결과, 문수보살이 문병을 갔다가 유마힐로부터 아무런 문자나 언어가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만 그것이 참으로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이라는 진리를 크게 깨달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다만 승려의 질병이 나은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밀직(李密直)을 방문했다가 만나지 못하다.

 


늙은 나는 소홀하여 문밖도 잘 안 나가다 / 老我迂疏上馬稀
연래에 두 번을 방문해 매양 못 만나누나 / 年來再訪每相違
문정이 하도 적적하여 맑기가 물 같은지라 / 門庭寂寂淸如水
묶음이나 두고 돌아가고 싶구려 /
欲置生芻一束歸

선진들은 영락하여 점점 드물어가는데 / 先進凋零漸已稀
나만이 백발로 속세에 머뭇거리고 있네 / 白頭塵世獨依違
초옹의 절의야말로 고금을 경도하거니 / 樵翁節義傾今古
온갓 냇물은 흘러흘러 동해로 가고말고 / 袞袞百川東海歸


말 타고 길을 나서매 아는 이 드물었는데 / 路上揚鞭識面稀
친구를 방문해서도 그를 만나질 못하고 / 故人相訪也乖違
산사로 나가 노닒이 참으로 흥겨울새라 / 出游山寺眞乘興
말 한 필 두 동복과 다시 홀로 돌아가네 / 一馬二僮還獨歸

 

[주D-001] 꼴 …… 싶구려 : 《시 경(詩經)》 소아(小雅) 백구(白駒)깨끗한 흰 망아지가, 저 빈 골짜기에 섰네. 생 꼴 한 묶음을 먹이노니, 그 사람이 옥과 같도다. 간다고 소식조차 끊어서, 부디 나를 멀리 마소나.[皎皎白駒 在彼空谷 生芻一束 其人如玉 毋金玉爾音 而有遐心]”라고 하였는데, 떠나는 현사(賢士)를 보내기 아쉬워하는 뜻이다.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곽태(郭太)가 일찍이 모상(母喪)을 당했을 적에 평소 그를 존경해왔던 서치(徐穉)가 그곳에 조문을 가서는 곽태를 현사로 존경하는 뜻에서 생 꼴 한 묶음만 여막(廬幕) 앞에 두고 상주(喪主)는 만나지도 않은 채 그냥 돌아갔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현사를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주D-002]초옹(樵翁)의 …… 가고말고 :
초 옹은 고려 말기의 명신(名臣)으로 호가 초은(樵隱)인 이인복(李仁復)을 높여 일컬은 말이다. 그는 성품이 매우 강직하고 절의(節義)가 뛰어났다고 하는데, 온갖 냇물이 동해로 돌아간다는 것은 곧 그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 밀직(李密直)이 바로 이인복의 아우였기 때문에 여기서 특별히 이인복을 거론한 것인데, 이 밀직은 고려 말기에 벼슬이 대제학(大提學) 등을 거쳐 겸밀직사사(兼密直司事)에 이른 이인민(李仁敏)을 가리킨다.

경상 안렴(慶尙按廉) 전 총랑(全摠郞)이 생포(生鮑)와 홍시(紅柹)를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붉은빛 무르녹은 건 산중의 감이요 / 赤爛山中柹
은덩이처럼 흰 건 해중의 생선일세 / 銀團海底魚
남쪽 창에 아침 해가 환히 비칠 제 / 南窓朝日照
앉아서 안렴의 서신을 펼쳐 보노라 / 坐閱按廉書

 

한 유항(韓柳巷)과 함께 이 개성(李開城)을 방문하고 송봉(松峯)의 남쪽에 들러 홍 이상(洪二相)을 방문했으나 모두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조정으로 소환(召還)된 김 영공(金令公)을 특별히 위로하면서 간단히 술을 마시고, 다시 정 남경(鄭南京)을 방문했으나 또 만나지 못했다. 그러고는 보제사(普濟寺)에 들어가서 나잔자(懶殘子)를 알현하고 차를 마신 다음, 한공(韓公)은 어버이께 저녁 문안차 가고, 나만 홀로 돌아와서 한 수를 짓다.

 


말고삐 나란히 하여 남성 가까이 이르니 / 聯鑣緩轡傍南城
용산의 푸른빛이 눈에 가득 선명하여라 / 滿目龍山翠色明
문정 두루 방문해 공연히 자취만 붙였고 / 徧歷門庭空托跡
억지로 동복 불러서 이름자만 남기었네 /
呼僮僕獨留名
유배 풀려 온 갑제엔 금술병이 불룩하고 / 賜環甲第金樽凸
음주 금한 절간엔 설완이 깨끗했었지 / 止酒蓮坊雪椀淸
어버이 조석 문안은 폐하기 어려운 거라 / 定省朝昏難可廢
유동에 홀로 오니 날이 벌써 저물었구려 / 歸來柳洞暮痕生

 

[주D-001]설완(雪椀) : 본디 시문(詩文)을 쓰는 데 사용하는 청아(淸雅)한 문구(文具)를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찻잔을 가리킨 듯하다.

홍시자가(紅柹子歌)

 


홍시가 멀리 상산의 동쪽에 있었던 것을 / 紅柹遠在商山東
대바구니에 담아서 광명궁에 진상했는데 / 翠籠擎獻光明宮
나머지를 나눠 봉하여 제공에게 내리고 / 分封羨餘進諸公
다행하게도 쇠한 늙은이에까지 미치었네 / 幸哉亦及衰老翁
명창 아래서 눈을 닦고도 흐릿하던 차에 / 明窓揩目尙朦朧
언뜻 보니 붉은 광채가 공중에 비치누나 / 乍見爛
光浮空
처음엔 의심하길 적제가 충심을 내리어 / 初疑赤帝所降衷
살결이 막 어려서 어리고 약한가 했다가 / 膚理始凝方屯蒙
또 의심하길 정규의 이 속에 들어서 / 又疑
虯卵在中
외면은 둥그렇고 속은 영롱한가 하였네 / 團圓外面中玲瓏
씹어 먹으니 단맛이 갈수록 끝없어라 / 嚼之味甘愈不窮
꿀은 꿀벌에서 이루어진 게 가련하구려 / 可憐崖蜜成於蜂
여지 감람
과는 격조가 서로 다르고말고 /
枝橄欖調不同
먼 걸 믿고 변덕이 많아 간웅과도 같건만 / 恃遠多變如奸雄
홍시는 순일한 맛이 어찌 그리 농후한고 / 柹也一味何其濃
순진한 자연미를 다시 염려할 것 없어라 / 純眞不復愁天工
목옹은 지금 고통 참고 충어를 주하면서 /
翁今忍苦註魚蟲
쑥대강이 꼴로 혀와 입술이 마르던 차에 / 舌乾吻燥頭如蓬
찬 홍시가 열기를 씻어줌에 문득 놀라라 / 忽驚氷雪洗熱烘
몸이 가벼워 봉래궁을 알현하고도 싶네 / 身輕欲謁蓬萊宮
우습기도 하여라 마시던 늙은 노동은 / 笑殺喫茶老盧仝
일곱 만에 비로소 청풍이 일었던 것이 / 七椀始得生淸風

 

[주D-001]적제(赤帝) 충심을 내리어 : 적제는 상고 시대 제왕(帝王)인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를 가리키고, 또는 화신(火神)인 축융씨(祝融氏)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모두 붉은빛의 상징이므로, 여기서는 곧 홍시(紅柹)에 빗대서 한 말이다.
[주D-002]정규의 알[虯卵] :
정규는 붉은 규룡(虯龍)을 말한 것으로, 붉은 규룡의 알이란 역시 홍시를 비유한 말이다.
[주D-003]여지(枝) 람(橄欖) :
여지와 감람은 모두 남방의 열대 지방에서 나는 과실(果實) 이름이다.
[주D-004]목옹(牧翁)은 …… 주(註)하면서 :
한 유(韓愈)의 〈독황보식공안원지시서기후(讀皇甫湜公安園池詩書其後)〉 시에이아는 충어를 주낸 것이니, 정히 뜻이 큰 사람이 아니로다.[爾雅注蟲魚 定非磊落人]”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문자의 번쇄(繁碎)한 일에 종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5]봉래궁(蓬萊宮) :
동해(東海) 가운데 신선이 거주한다는 봉래산(蓬萊山)의 선궁(仙宮)을 말한다.
[주D-006]우습기도 …… 것이 :
노 동(盧仝)의 〈다가(茶歌)〉에첫째 잔은 목과 입술을 적셔 주고, 둘째 잔은 외로운 시름을 떨쳐주고,……일곱째 잔은 다 마시기도 전에 두 겨드랑이에 청풍이 이는 것을 깨닫겠네.[一椀喉吻潤 二椀破孤悶……七椀喫不得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 한 데서 온 말이다.

아침에 읊다.

 


아침에 읊길 왜 그리 급히 하는고 / 朝吟何太急
생각이 풍아 속으로 들어가누나 / 思入風雅中
외물을 내 아직 접촉하기 전이라 / 外物不我觸
새벽 청명한 기운이 몸에 있기에 / 淸明方在躬
마음이 담담하고도 화락하여라 / 淡然或怡然
타고난 본성을 보전할 만하구려 / 可以保降衷
다만 갑자기 누가 와서 두드려 / 祗恐忽剝啄
주공만 놀래킬 아닐 두렵네 / 不獨驚周公

조정의 부름을 감히 거절 못 하여 / 招呼不敢絶
백발로 먼지 뿌연 거리를 걷다가 / 白頭踏軟紅
붓에 의탁해 소리 높여 읊노라니 / 高吟托毛穎
새벽빛 맑고 바람도 잔잔하구나 / 曉色晴無風

 

[주D-001]풍아(風雅) : 《시경》의 국풍(國風)과 대아(大雅), 소아(小雅)를 합칭한 말로, 전하여 시문(詩文)에 관한 일을 의미한다.
[주D-002]다만 …… 두렵네 :
문 을 두드린다는 것은 손이 찾아오는 것을 말하고, 주공(周公)을 놀래킨다는 것은내가 다시는 꿈에 주공을 만나지 못한다.[吾不復夢見周公]”고 한 공자(孔子)의 말에서, 즉 잠을 깨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곧 잠만 깰 뿐이 아니라 청명(淸明)한 기운마저도 잃게 될까 염려하는 뜻에서 한 말이다. 노동(盧仝)의 〈다가(茶歌)〉에해가 한 길 반이나 오르도록 한창 자고 있었더니, 군장이 와서 문 두드려 주공을 놀래키누나.[日高丈五睡正濃 軍將扣門驚周公]” 하였다.

군자(君子)

 


군자는 본디 마음이 넓디넓어서 /
君子本蕩蕩
몸을 용납치 못할 듯 근신하거늘 /
如不容
하늘이 이미 멀다고는 하거니와 / 上天旣云遠
교사함은 또 참으로 충성 같도다 / 詐又眞如忠
이 때문에 나는 홀로 뜻을 지키어 / 所以獨自守
빙설 속의 외로운 솔처럼 있노니 / 孤松氷雪中
빙설이 막혀 울을 이루어서 /
氷雪塞成冬
때에 북풍이 하도 불어오는지라 / 維時多北風
띠처마 밑에서 아침 햇살을 쬐니 / 茅簷負朝陽
온화하여 심기가 화락해지누나 / 溫和神志融
즐거워라 가히 해를 보낼 만하네 / 樂哉可卒歲
건건 또한 자신 위함 아니고말고 /
蹇蹇亦匪躬
귀중한 건 천명을 즐기는 것이니 / 所貴樂天命
조용하게 시종을 잘 보전해야지 / 從容保初終

 

[주D-001]군자(君子)는 …… 넓디넓어서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군자는 마음이 평탄하여 넓디넓고, 소인은 불만스러워 길이 근심만 한다.[君子坦蕩蕩小人長戚戚]” 하였다. 《論語 述而》
[주D-002]빙설(氷雪)이 …… 이루어서 :
《예기》 월령(月令)에 의하면맹동의 달에는……천지가 서로 통하지 않고 꽉 막혀서 겨울을 이룬다.[孟冬之月……天地不通閉塞而成冬]” 하였다.
[주D-003]건건(蹇蹇) …… 아니고말고 :
건건은 애써 충성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건괘(蹇卦) 육이(六二)신하가 건건함은 자기 몸 때문이 아니다.[六二 王臣蹇蹇 匪躬之故]” 한 데서 온 말이다.

지포(紙浦)의 최홍(崔洪) 부정(副正)이 사서(司書)의 임명을 환수할 것을 요구하다.

 


대령군
의 손자가 / 大寧君之孫
남교의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데 / 農於南郊村
그의 집이 지포와 가까이 있어 / 其居傍紙浦
바람 파도의 해문에 연접하였네 / 風濤連海門
즐거워라 알아줌을 구하지 않고 / 樂哉不求知
나의 학헌 비루하게 여겨 / 鄙我鶴軒
도성에 온 건 이미 드물었다지만 / 入城旣云罕
내게 와서도 또한 아무 말이 없네 / 來予又無言
지금은 이러한 사람이 적은지라 / 當今少斯人
진실로 내가 존경하는 바이로세 / 實我心所尊
밭 머리에 일기가 차가워지거든 / 田頭天氣寒
향기로운 술을 기울일 만하겠지 / 傾芳樽

 

[주D-001]대령군(大寧君) :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수 첨의정승(守僉議政丞)에 이르고 대령부원군(大寧府院君)에 봉해진 최유엄(崔有)을 가리킨다.
[주D-002]학헌(鶴軒) :
()은 대부(大夫) 이상의 고관(高官)이 타는 수레인데, 춘추 시대 위 의공(衛懿公)이 학()을 매우 좋아하여 학을 헌에다 태우기까지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무능한 사람이 임금의 총애로 외람되이 높은 녹위(祿位)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유거(幽居)

 


성긴 빗방울이 높은 숲에 내리어 / 疏雨滴高林
그윽한 집도 일기 또한 차갑더니 / 幽居天又寒
햇빛이 구름과 섞여 내리비추매 / 日光雜雲影
홀로 앉아서 즐거운 기색 짓노라 / 獨坐怡我顔
골목 버들은 하늘거림이 멎었건만 / 巷柳罷裊裊
울타리 국화는 둥근 꽃이 남았네 / 籬菊留團團
돌아보니 소나무 잣나무 푸르러라 / 回看松柏翠
송악산 용수산이 서로 마주했구려 / 鵠嶺對龍巒

 

어 제 계사년 문과(文科)의 동년(同年)인 정 첨서(鄭簽書), 박 판서(朴判書), 이 판사(李判事)와 함께 용부(庸夫) 사재(四宰)의 강남(江南) 행차를 전송했는데, 오직 송 판사(宋判事)만이 처상(妻喪) 때문에 오지 못했으니, 경성(京城)에 사는 동년은 여섯 사람뿐이다. 계사년부터 지금까지가 28년인데, 동년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방으로 떠났고 불행하게 이미 죽고 했으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용부는 국가가 위의(危疑)한 때를 당하여 사신(使臣)으로 피선(被選)되어 들어가 천자(天子)를 알현하게 되었으니, 그의 풍채(風彩)는 의당 한 시대를 경도하건만, 우리 네 사람은 모두가 한산한 자리에 있어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화락하게 서로 담소를 나누는 품은 비록 성찬의 화려한 자리에 풍악을 잡히고 질탕하게 마시는 풍류도 여기에 더할 수 없을 것이다. 약간 취하여 나와서 달밤에 돌아오다.

 


지난 계사년에 익재 양파 시중께서 / 益齋陽坡兩侍中
용호방을 열어 영재를 배출했는데 / 榜開龍虎羅

그때가 지금 고작 이십팔 년 전이건만 / 回頭二十八年耳
생리사별이 어찌 그리 급했단 말인가 / 生離死別何悤悤
지금 성중에 사는 이는 육인뿐인 데다 / 今居城中只六人
용부만 홀로 조정 반열에 있을 뿐인데 / 庸夫獨也垂朝紳
초겨울에 표문 받들고 중국을 들어가 / 方冬奉表入中國
멀리 동방에서 천자께 조회하게 되었네 / 邈自靑丘朝紫宸
모친은 늙었으나 희색이 만면하거니와 / 慈顔雖老亦喜動
온 나라의 안위는 한 몸에 달렸고말고 / 闔國安危關一身
우리들은 쓸쓸히 헤어지길 아쉬워하며 / 我輩蕭條惜解携
아득히 큰 바다 서쪽으로 전송하노니 / 渺渺目送鯨濤西
사정과 공의가 서로 가리지 않게 하여 /
私情公義不相掩
돌아올 기약 잠시 지체도 없기만 바라네 / 但願歸期無少稽
용부는 소년 시절에 회수 가를 유람했고 / 庸夫少年淮上游
중년에는 또 고소의 가을을 구경했는데 / 中歲又見姑蘇秋
다시 종산엘 가서 옥적을 불게 되었으니 /
更向鍾山吹玉笛
노광은 정히 중국을 놀래킬까 염려라오 / 老狂政恐驚中州
평생에 충효는 의당 둘 다 온전했지만 / 平生忠孝當兩全
재능 있고 때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마다 / 有才遭時非偶然
우리 삼한의 마음을 천자께 주달하거든 / 三韓之心達天子
천만년토록 상하가 서로 믿게 되리라 / 上下交孚千萬年
병든 뒤에도 꽃구경은 내 마다 않거니와 / 病餘看花我不靳
매화가 한창 필 무렵 공은 돌아올 테니 / 梅花盛開公方旋
취한 가운데 도리가 문정에 가득하거든 / 醉中桃李滿門庭
아침마다 서로 불러 해장하길 싫어할쏜가 / 肯厭朝朝呼解酲

또 짓다.

손꼽아 세보니 선생이 복명하는 때까지 / 屈指先生復命初
남산의 남은 눈은 도성을 환히 비추련만 / 南山殘雪照天衢
유독 가련한 것은 정조를 하례하는 곳엔 / 獨憐庭賀正朝處
우리 계사년 동년이 하나도 없게 됨일세 / 癸巳同年掃地無

장차 무슨 면목으로 제공을 본단 말인가 / 將何面目見諸公
한가히 지내면서 녹만 먹는 일개 목옹이 / 食祿閑居一牧翁
백발로 반열 따라서 예물을 바쳐 올려 / 白髮隨行呈手帕
작은 정성이나 성상께 전달할까 하노라 / 却將微懇徹蒼穹

천도는 아득하여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 天道冥冥未可知
존망과 취산은 본디 서로 따르는 법일세 / 存亡聚散自相隨
우리 도의 흥망은 늘 있어온 일이거니와 / 斯文興喪由來事
천하를 평치하려면 나를 두고 누가 하랴 /
如欲平治捨我誰

 

[주D-001]지난 …… 배출했는데 : 고려 공민왕(恭愍王) 2년 계사년(1353)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지공거(知貢擧), 양파(陽坡) 홍언박(洪彦博)이 동지공거(同知貢擧)로 주관한 과거(科擧)에서 목은의 동년(同年)이 함께 급제했었다.
[주D-002]사정(私情)과 …… 하여 :
사정은 어버이에 대한 효성을 말하고, 공의(公義)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말한 것으로, 즉 효성과 충성 두 가지를 다 온전하게 실천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주D-003]고소(姑蘇) :
지금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의 옛 이름인데, 고적(古蹟)이 많고 경관(景觀)이 뛰어난 곳으로 일컬어진다.
[주D-004]다시 …… 되었으니 :
종 산(鍾山)은 당시 명()나라의 수도(首都)인 금릉(金陵)에 있는 산명(山名)인데, 이백(李白)의 〈금릉청한시어취적(金陵聽韓侍御吹笛)〉 시에한공이 옥젓대를 불어서, 초연한 기개로 기이한 소리를 내매, 그 소리 바람에 실려 종산을 감싸니, 오만 구렁이 용의 울음소리로다.[韓公吹玉笛 倜儻流英音 風吹繞鍾山萬壑皆龍吟]” 한 데서 온 말로, 당시 명나라에 입조(入朝)하는 권중화(權仲和)의 고상한 풍류를 비유한 것이다.
[주D-005]도리(桃李) 문정(門庭) 가득하거든 :
훌 륭한 문생(門生)이 많음을 뜻한다. ()나라 때 적인걸(狄仁傑)이 일찍이 수십 인의 인재를 천거하여 모두 명신(名臣)이 되었으므로, 혹자가 적인걸에게 말하기를천하의 도리가 공의 문에 다 있도다.[天下桃李悉在公門矣]”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천하를 …… 하랴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하늘이 천하를 평치하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일 천하를 평치하려고만 한다면 지금 세상을 당하여 나를 놔두고 누가 하겠는가.[夫天未欲平治天下也 如欲平治天下 當今之世 舍我其誰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下》

황애(黃埃)

 


누런 먼지 속에 말발굽은 빠르고 / 黃埃馬蹄疾
땀은 한창 얼굴에 줄줄 흐르는데 / 汗流方被顔
홀로 들앉아 적막을 지키다 보니 / 獨居守寂寞
마침내 허리 다리가 뻣뻣해졌네 / 遂致腰脚頑
창 앞에선 백일 아래 앉아 있고 / 窓間坐白日
누대 위에선 청산을 읊조리노니 / 樓上吟靑山
일이 적어 경계는 절로 적적하고 / 事簡境自寂
정신이 완전하니 몸도 한가롭네 / 神完身復閑
먼 하늘엔 외기러기가 날아가고 / 遙天斷鴈去
성긴 숲엔 나는 새가 돌아오누나 / 疏樹飛鳥還
사물을 보고 다시 나를 관찰하니 / 觀物復觀我
마음 자리가 한가롭기만 하구려 / 悠悠方寸間

 

제장(諸將)이 도성(都城)에 들어오다.

 


장수들이 전공 세우고 개선하여 돌아오자 / 諸將功成奏凱來
순군부가 산대잡극을 베풀어 환영하니 / 巡軍雜劇設山臺
짧은 당인은 말소리가 대단히 급하고 /
唐人舌短談鋒急
허리 호객은 춤추는 소매가 빙빙 도네 /
胡客腰長舞袖回
양부의 화려한 자리엔 푸른 장막이 연했고 / 兩府錦筵連翠幕
가득 따른 하사주는 금술잔에 넘치는구나 / 十分宮醞灩金杯
중문에서 소장을 아뢰려면 구당이 낮으니 / 中門奏狀句當卑
응당 나를 위해서 동합을 열어 놓을 테지 /
東閤應須爲我開

적을 격파한 공이 후래에 가장 높은지라 / 破賊功高冠後來
군신의 즐거운 자리가 운대를 의지했네 / 君臣懽宴倚雲臺
예전엔 만초를 도모키 어렵다 들었더니 /
昔聞蔓草圖非易
이제는 거센 물결 돌릴 있음을 보았네 /
今見狂瀾倒可回
신사는 자주자주 와서 예물을 바치고요 / 信使頻頻來獻贄
미친 중은 가끔 가득한 잔을 좋아하누나 / 狂僧往往喜浮杯
팔방 중에 차마 동방만 빼놓을 수 있으랴 / 八荒可忍東隅缺
하늘이 응당 동방에 수역이 열리게 하리라 / 天意應敎壽域開

만고에 영웅들이 줄을 이어서 나왔건만 / 萬古英雄袞袞來
몇 사람이나 기린각에 초상을 남겼던고 / 幾人留影在麟臺
충심으로 보국하다가 몸은 늙어가지만 / 赤心報國身將老
백발토록 학문 힘쓰는 뜻은 변함없다오 / 皓首窮經志不回
험난한 운자로 장단 시구 막 읊고 나서 / 險韻纔吟長短句
향기로운 술 두세 잔을 또 부어 마시네 / 香醪又酌兩三杯
이게 다 한마 공신이 베풀어준 덕이라 / 斯皆汗馬功臣賜
햇볕 마주한 남창 아래 편안히 앉았노라 / 坐穩南窓向日開

 

[주D-001]산대잡극(山臺雜劇) : 고 려 시대에 국가의 특별한 경사가 있을 때면 채붕(綵棚)을 진설하고 그 위에서 가무 백희(歌舞百戲)를 상연(上演)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산대잡극이라 이름한 것은 산형(山形) 또는 산과 같이 높은 채붕을 산붕(山棚) 또는 산대(山臺)라고 부른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주D-002]혀 …… 급하고 :
당인(唐人)은 중국 사람을 말하는데, 고려 때 잡희(雜戲) 중에 중국 사람들이 하는 놀이, 즉 당인희(唐人戲)가 있었다.
[주D-003]허리 …… 도네 :
호 객(胡客)은 곧 신라 헌강왕 때의 처용(處容)을 가리킨 것으로, 산대잡극에 처용무(處容舞)가 있었기 때문에 이른 말인데, 처용의 설화에 의하면 처용은 동해 용왕(龍王)의 아들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당시 울산(蔚山) 지방의 호족(豪族)의 아들이라고도 하며, 또는 당시 신라에 왕래하던 아라비아의 상인(商人)이었다고도 한다.
[주D-004]구당(句當) :
이 단어는 본디 일을 관장한다는 뜻이요, 또는 담당관의 의미로도 쓰이는데, 여기서는 자세하지 않다.
[주D-005]응당 …… 테지 :
동 합(東閤)은 동쪽으로 난 작은 문[小門]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 공손홍(公孫弘)이 승상(丞相)이 되고 나서는 객관(客館)을 짓고 객관의 동쪽으로 작은 문을 열어 놓고 현사(賢士)들을 맞아들였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재상이 현사를 초빙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6]운대(雲臺) :
후한 명제(後漢明帝) 때에 전세(前世)의 공신(功臣)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등우(鄧禹) 28인의 장수(將帥)의 초상(肖像)을 걸었던 대명(臺名)이다.
[주D-007]예전엔 …… 들었더니 :
《춘 추좌전(春秋左傳)》 은공(隱公) 원년(元年) 조에세력이 멀리 뻗어 가게 하지 말라. 멀리 뻗어 가면 도모하기 어렵다. 무성하게 뻗어 가는 풀도 제거하기 어렵거든, 더구나 임금의 사랑하는 아우이겠는가.[無使滋蔓蔓難圖也 蔓草猶不可除 況君之寵弟乎]”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외적(外敵)의 내침(來侵)하는 형세를 두고 한 말이다.
[주D-008]이제는 …… 보았네 :
한 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온갖 냇물을 막아서 동으로 흐르게 하여, 이미 거꾸로 흐르는 데서 거센 물결을 끌어 돌렸다.[障百川而東之 回狂瀾於旣倒]” 한 데서 온 말로, 본 뜻은 한유가 이단(異端)을 물리치고 유도(儒道)를 진작시킨 것을 이른 말인데, 여기서는 곧 강성한 세력의 적들을 격퇴시킨 데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9]기린각(麒麟閣) :
한 무제(漢武帝) 때에 세운 누각 이름인데, 선제(宣帝) 때에 이르러서 곽광(霍光), 장안세(張安世), 소무(蘇武) 등 공신(功臣) 11인의 초상(肖像)을 여기에 걸었었다.
[주D-010]한마 공신(汗馬功臣) :
한마는 말을 달려 전장(戰場)에서 땀을 흘리게 한다는 뜻으로, 즉 전공(戰功)을 세운 것을 의미한다.

참새가 지저귀다.

 


띠처마서 새 지저귀고 해는 지려 하는데 / 雀噪茅簷日欲西
안자가 이계를 아낀
멀리 가련해지네 / 遙憐晏子惜泥谿
왕풍이 다행히 노나라에서 일어났는데 / 王風幸矣興於魯
여악이 어이해 제나라에서 건너왔던고 / 女樂胡然至自齊

쇠한 풀 엷은 연기 속엔 원근이 헷갈리고 / 衰草淡煙迷遠近
흰 구름 푸른 산은 서로 높고 낮고 하누나 / 白雲靑嶂互高低
봉의 노랫소리가 문득 문전을 지나가니 /
鳳歌忽向門前過
늙은 나는 바야흐로 골계를 전하려 하네 / 老我方將傳滑稽

 

[주D-001]안자(晏子)가 …… : 안 자는 춘추 시대 제 경공(齊景公)의 현상(賢相) 안영(晏嬰)을 가리키는데, 제 경공이 일찍이 공자(孔子)에게 정사(政事)를 물어보고는 매우 기뻐하여 이계(泥谿)를 공자에게 봉해 주려고 하자, 안영이 이를 극력 반대하여 공자를 등용하지 못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왕풍(王風)이 …… 건너왔던고 :
춘 추 시대 노 정공(魯定公) 14년에 공자(孔子)가 노나라의 사구(司寇)가 되어 상사(相事)를 섭행(攝行)하여 노나라가 잘 다스려지자, ()나라에서 이를 두렵게 여긴 나머지, 노나라에 여악(女樂)을 보내어 공자의 정사(政事)를 저지시켰던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미자(微子)제나라 사람이 여악을 보내거늘, 계환자가 이를 받아들이고 삼일 동안 조회를 보지 않자, 공자가 노나라를 떠났다.[齊人歸女樂 季桓子受之 三日不朝 孔子行]” 하였다.
[주D-003]봉(鳳)의 …… 지나가니 :
춘 추 시대 초()나라의 광인(狂人) 접여(接輿)가 난세(亂世)에 도()를 행하려고 애쓰는 공자를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공자의 곁을 지나면서 노래하기를봉이여, 봉이여. 어찌 그리도 덕이 쇠했느뇨. 지나간 일은 탓할 수 없거니와 앞으로의 일은 고칠 수 있으니,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鳳兮鳳兮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已而]”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세상이 어지러움을 의미한다. 《論語 微子》
[주D-004]골계(滑稽) 전하려 하네 :
골계는 실답지 못한 해학적(諧謔的)인 말재주나 부리는 것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여기서는 시문(詩文)이나 짓는 것을 의미한다.

풍우성(風雨聲) 일편(一篇)을 짓노니, 이는 돌아갈 것을 생각하는 뜻에서이다.

 


오경에 비바람 치고 어지러이 닭 울어라 / 五更風雨雞亂鳴
비바람 소리 닭소리에 등불은 깜빡이는데 / 蕭蕭膠膠燈滅明
기인
은 꿈에서 깨어 잠을 못 부치노니 / 畸人夢斷睡不著
공인가 사인가 마음을 둘 곳이 없네그려 / 公邪私邪難爲情
신하는 임금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요 / 爲臣不可忘所天
자식은 조상을 욕되게 할 수 없는 것인데 / 爲子不可忝所生
내 일생을 점검하며 앉아서 탄식하노니 / 點檢吾生坐歎息
옳은 일은 하나도 없고 헛된 이름뿐이었네 / 竟無一可唯虛名
장년엔 급류 타서 높은 지위에 올랐었고 / 壯年急流已位顯
늘그막엔 놀면서도 관록을 그대로 누리네 / 老境閑居猶祿榮
문장은 일전 가치도 없음을 스스로 알면서 / 文章自知不直錢
높은 값을 요구하여 부끄럽기 그지없구려 / 索價太高顔甚

이젠 사직표 한 장만 못 올렸을 뿐이라서 / 只欠乞身一表耳
오경의 비바람 소리를 앉아 듣고 있노라 / 坐聽五更風雨聲

 

[주D-001]기인(畸人) : 독특한 지행(志行)을 가져서 세속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 것으로, 여기서는 곧 목은 자신을 가리킨다.
[주D-002]급류(急流) :
()나라 때 한 도승(道僧)이 진단(
)에게 전약수(錢若水)의 사람됨을 가지고 말하기를이는 급류 속에서 용감히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다.[是急流中勇退人也]” 했었는데, 뒤에 과연 전약수는 벼슬이 추밀 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을 때 40도 채 안 된 나이로 용감하게 관직에서 물러났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관로(官路)가 한창 트인 때를 비유한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다.

 


비 그치니 창은 처음 밝아지는데 / 雨止窓初白
구름 짙으니 산은 더욱 푸르구나 / 雲濃山轉靑
여생을 깊이 들어앉아 있노라니 / 殘年深閉戶
맑은 새벽에 홀로 뜨락을 거니네 / 淸曉獨行庭
서전에 전주할 뜻은 있거니와 / 有意箋書傳
역경을 표준삼을 마음은 없어라 / 無心準易經
후세에 누가 나의 속을 알아줄꼬 / 後來誰識我
천지 사이에 하나의 부평초인걸 / 天地一浮萍

새벽 비는 개었다가 도로 내리고 / 曉雨明還黑
소나무 가지는 차고도 푸르러라 / 松枝寒更靑
우리 집은 창문이 꽉 닫혀 있는데 / 吾廬閉窓戶
재상 관사는 문정이 떠들썩하네 / 相府鬧門庭
사업으로는 삼걸을 희망하고요 / 事業希三傑
문장으로는 육경을 모방하건만 / 文章倣六經
나의 쇠퇴함이 그 무엇과 같을꼬 / 摧頹何所似
청평
에 다닥다닥 이끼 낀 꼴일세 / 苔暈澁靑萍

머리는 중년부터 희거나 말거나 / 髮任中年白
눈은 도리어 종일토록 푸르구나 / 眼還終日靑
책은 거미줄 얽힌 책상에 쌓이고 / 書堆蟲網案
문은 새그물 문정에 닫혔네 /
門掩雀羅庭
소나무 국화 사이엔 삼경을 열고 /
松菊開三逕
아손에겐 경서를 가르치노라 /
兒孫敎一經
지금 세상엔 박물 군자가 없으니 / 世今無博物
누가 초강의 평실을 알겠는가 / 誰識楚江萍

 

[주D-001]삼걸(三傑) : 3 인의 걸출한 인물이란 뜻으로,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天下)를 통일하는 데 있어 가장 공이 컸던 장량(張良), 한신(韓信), 소하(蕭何)를 말한다. 한 고조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이들을 일러이 세 사람은 모두 인걸이다.[此三人者皆人傑也]” 했다.
[주D-002]청평(靑萍) :
옛날 보검(寶劍)의 이름이다.
[주D-003]문은 …… 닫혔네 :
()나라 때 책공(翟公)이 일찍이 정위(廷尉)가 되었을 적에는 찾아오는 빈객(賓客)이 문에 가득했다가, 그가 정위에서 물러난 뒤에는 찾아오는 빈객이 전혀 없어 문밖에 새그물을 칠 만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문호(門戶)가 매우 쓸쓸함을 형용한 말이다.
[주D-004]소나무 …… 열고 :
도 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세 길은 황폐해졌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 있다.[三逕就荒松菊猶存]” 한 데서 온 말인데, 세 길이란 한()나라 때 은사(隱士) 장후(蔣詡)가 일찍이 자기 문정(門庭)에 세 오솔길을 내놓고 구중(求仲), 양중(羊仲) 두 사람하고만 종유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은자(隱者)의 처소를 의미한다.
[주D-005]아손(兒孫)에겐 …… 가르치노라 :
()나라 때 경학자(經學者)인 위현(韋賢)이 네 아들을 두어 모두 훌륭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막내아들 현성(玄成)은 특히 명경(明經)으로 벼슬이 승상(丞相)에 이르렀으므로, 당시 추로(鄒魯)의 속담에바구니에 가득한 황금을 자식에게 남겨 주는 것이 한 경서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遺子黃金滿
不如一經]”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지금 …… 알겠는가 :
춘 추 시대 초왕(楚王)이 일찍이 강을 건너다가, 모양은 둥글고 빛깔은 붉은 것이 크기가 말[]만 한 물체를 보고 이것을 취하여 사람을 시켜 노()나라에 가서 공자(孔子)에게 물어보게 했더니, 공자가 이르기를이것이 이른바 평실이란 것으로 쪼개서 먹을 수가 있는 것인데, 이것을 얻은 것은 길상의 조짐이다.[此所謂萍實者也 可剖而食之 吉祥也]”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孔子家語 致思》

여러 원수(元帥)들이 도성에 들어왔는데, 나는 날이 흐린 때문에 병이 발작하여 나아가 알현할 수가 없다.

 


밤 내 비바람치는 통에 앉아 흠신했더니 / 風雨通宵坐欠伸
아침엔 병든 삭신이 갑절 고통스럽네 / 朝來病骨倍酸辛
조물주가 겨울 절기 어기잔 아니라 /
非關眞宰違冬律
원수들의 개선 길을 씻어 주기 위함일세 / 只爲元戎洗路塵
예절은 강행하기 어려움을 이미 알지만 / 禮數已知難自

친지들이 점점 멀어질 게 문득 두렵네 / 親交却恐漸如新
날 개고 몸 쾌차해 동합에서 노닐거든 / 天晴身健游東閤
취한 어리가 자리에 토하는 봐주겠지 /
馭吏從敎醉吐茵

 

[주D-001]조물주가 …… 아니라 : 겨울 절기를 어긴다는 것은 곧 비바람이 몰아칠 때가 아닌 겨울철에 비바람이 몰아치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취한 …… 봐주겠지 :
어 리(馭吏)는 거마(車馬)를 부리는 하리(下吏)를 가리키는데, 한 선제(漢宣帝) 때 승상(丞相) 병길(丙吉)의 어리가 술을 몹시 좋아한 나머지, 한번은 승상을 따라 나갔다가 술을 많이 마시고 승상 수레의 깔자리에 술을 토하는 과실을 범했으나, 병길은 그를 문책하지 않았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술에 취하여 실수를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자(兒子) 등이 서장관(書狀官)으로 금릉(金陵)에 가는 민중리(閔中理)를 전송했다는 말을 듣다.

 


성조에서 오늘날 주관을 모방하는지라 / 聖朝今日倣周官
천하에 간악한 자들의 간담이 서늘하리 / 天下老姦心已寒
앉아서 사방 오랑캐를 아이처럼 위무하니 / 坐撫四夷如赤子
구중에선 이제 지키기 어려움을 염려하네 / 九重方念守成難

여흥의 명문엔 고관이 대대로 나왔거니와 / 黃驪甲第世高官
속의 얼음인 눈에 비쳐 차가워라 /
氷在壺中照眼寒
천자의 용안을 뵙는 건 천재일우이거니 / 入覲耿光千載一
눈보라 길 험난한 것을 어찌 꺼릴쏜가 / 肯嫌風雪道塗難

내 옛날 서장관으로 연경을 두 번 갔기에 / 我昔再爲書狀官
연산의 눈보라가 꿈속에도 차갑기만 한데 / 燕山風雪夢中寒
그대는 지금 다스운 강남으로 갈 것이니 / 君今却向江南去
아마도 매화 읊자면 글자 놓기 어려울걸 / 想見吟梅下字難

 

[주D-001]주관(周官) : 주 성왕(周成王)이 제정한 관직 제도를 가리키는데, 이는 군신 상하의 질서를 엄격히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書經 周官》
[주D-002] 속의 …… 차가워라 :
고결 청렴(高潔淸廉)한 인품을 비유한 말이다.

산중요(山中謠)

 


내 일찍 들으니 해적이 출몰하여 / 我聞海有賊
때때로 수촌을 공격한다 하였네 / 時時攻水村
맨 처음엔 밤이면 해안을 올라와 / 其初夜登岸
담장 넘어 서절 구투에 그쳤는데 / 鼠竊踰牆垣
중간엔 교만을 떨며 안 물러가고 / 中焉驕不退
벌건 대낮에 평원을 횡행하다가 / 白晝行平原
점차 우리 관군과 감히 서로 맞대항하여 / 漸與官軍敢相敵
새벽부터 황혼까지 북치며 함성을 질러댔지 / 淸晨鼓譟俄黃昏
나는 그때 다른 세상일을 들은 듯 여기고 / 我時如聞異世事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 아손들과 놀았었네 / 寢早起遲弄兒孫
그런데 연래엔 능곡 위치가 문득 바뀌어 / 年來陵谷忽易處
적들이 날뛰어서 장차 우리를 병탄하고자 / 賊勢猖獗將幷呑
맨발로 천 길 낭떠러지를 달려 올라가서 / 赤足走上千仞崖
가시덤불 돌 모서리를 원숭이처럼 나는데 / 藤棘石角飛猴猿
관군이 그들의 배를 불태운 데 격노하여 / 官軍燒船激其怒
열화처럼 독을 부려 옥석 구분하듯 하니 / 肆毒烈火如俱焚
규중의 아녀자와 천한 졸도에 이르기까지 / 閨中女兒與卒徒
모조리 잡혀 죽는데 기타야 무얼 말하랴 / 騈首就戮餘何言
나는 다행히 잡목숲 속에 도망가 숨어서 / 我幸竄伏榛灌中
목숨만 보존했을 뿐 아무것도 없는지라 / 僅保性命無留存
하루하루를 주림과 고통 참고 지내면서 / 忍飢忍苦日復日
바닷가에 원통한 호소 많음을 이제 알았네 / 始知濱海多呼冤
원통함 호소한 지 삼십 년하고도 일 년이라 / 呼冤三十又一年
조정에서 오래도록 백성을 걱정해왔는데 / 廟堂久矣憂黎元
어이해 오늘날 나도 이 일을 만났단 말인가 / 奈何今日亦及我
곧장 대궐에 나가 급함을 호소하곤 싶으나 / 告急直欲排天閽
돌이켜 생각해 보니 실로 나의 운명이로다 / 反而思之實我命
편하면 위태해지고 통하면 어려워지는 법 / 久安必危亨必屯
하늘은 사람에게 후박의 차별이 없기에 / 天於人兮無厚薄
지속의 차이는 있을망정 은택은 똑같나니 / 雖有久速均其恩
혹 가까운 시일에 태평을 내렸으면 하여 / 賜之太平或者近
내 지금 머리 조아리며 천지에 호소하노라 / 我今稽顙呼乾坤

 

[주D-001]능곡(陵谷) …… 바뀌어 : 언덕이 변하여 골짜기가 되고, 골짜기가 변하여 언덕이 된다는 뜻으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위치가 서로 전도(顚倒)되는 것을 비유한다.

해동(海東)

 


바다의 동쪽 옛 기자의 나라에 / 海東箕子國
늙은 목은은 귀밑이 허옇게 세어 / 牧老鬢皤皤
병은 나이와 함께 커져만 가고 / 病與年俱大
시름은 날이 갈수록 많아만 지네 / 愁隨日又多
포용해준 천지엔 사례하거니와 / 包容謝天地
분열된 산하엔 위문을 해야겠네 / 分裂弔山河
조물주는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워 / 造物誠難料
유연히 홀로 소리 높여 노래하노라 / 悠然獨浩歌

 

어 제 이 상의(李商議)를 방문했더니, 술상을 내왔으나 병 때문에 극력 사양하고, 다음으로 변 사재(邊四宰) 댁을 갔더니, 마침 손이 있어 이미 석 잔 술을 넘어서 거나하였다. 또 이어서 이 오성(李鼇城), 염 서성(廉瑞城)이 왔는데, 석양에 이르러 손이 떠나고 나자, 주인이 우리들을 익랑(翌廊)으로 맞아들여서 등촉(燈燭)을 밝히고 주연(酒宴)을 베풀었다. 나는 밤중이 거의 다 된 때에 도망쳐 나와 버렸다. 명일에 한 수를 읊어 이루다.

 


두 분의 용맹과 지혜는 국가의 간성이라 / 二公勇智是干城
모월
가지고 원정으로부터 막 돌아오니 / 旄鉞初回自遠征
당 가득한 빈객들은 즐거운 뜻 흡족하고 / 賓客滿堂歡意洽
술 따르는 아들은 몸가짐도 청아했었지 / 郞君行酒動容淸
좌중을 비춘 미인은 노랫소리 절묘하고 / 紅顔照座歌箏妙
백발노인은 갓끈 날리며 -원문 빠짐- / 白髮飄纓□□□
너무 즐거워 한밤중이 지난 것도 모른 채 / 樂甚不知過夜半

태평을 그려낼 필력 없는 것만 걱정했었네 / 只愁無筆畫昇平

 

[주D-001]모월(旄鉞) : 장수(將帥)가 출정(出征)할 때에 임금으로부터 받는 흰 깃대와 누런 도끼[白旄黃鉞]를 가리킨 것으로, 이는 곧 장수에게 군권(軍權)을 전적으로 위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날이 흐리다.

 


날 흐려서 야외에 뭇 산들이 묻혀 버리매 / 天陰野外沒
앉아 조는 사이에 오만 생각이 깜깜했는데 / 萬慮昏昏坐睡間
한낮을 지나서 구름이 비로소 흩어지니 / 日過天中雲始散
창 가득 환한 광채에 반백 머리 선명해지네 / 滿窓光彩鬢毛斑

 

날이 개다.

 


날이 개니 만리 멀리 바다와 산이 편평하여라 / 天晴萬里海山平
행여 뜬구름이 별안간 생겨날까 염려되네 / 尙恐浮雲瞥爾生
우리 도가 깜깜해진 건 어느 때나 그칠런고 / 吾道晦盲何日已
가슴속은 잠시나마 청명한 게 다행이로세 / 幸哉方寸乍淸明

또 짓다.

흐리고 개는 변화가 잠깐 새에 일어나는데 / 陰晴變化在須臾
홀로 앉아 시 읊으며 수염을 배배 꼬아 끊네 / 獨坐吟詩撚斷鬚
듣건대 만수가 일본에 말미암는다 했거니 /
見說萬殊由一本
우리 도가 널리 행해지길 천구에 바라노라 / 大行吾道望天衢

 

[주D-001]듣건대 …… 했거니 : 일 본 만수(一本萬殊)는 곧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가지 다른 것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공자(孔子)가 일찍이 증자(曾子)에게 이르기를삼아, 우리 도는 한 이치로써 오만 일을 관철시키는 것이다.[參乎 吾道一以貫之]” 한 데 대하여, 증자가 말하기를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뿐이니라.[夫子之道 忠恕而已矣]” 하였는데,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의하면, 충서(忠恕)를 논함에 있어, ()가 충()에서 분파(分派)되는 것을 가지고 말하기를만수가 한 근본이 되는 것과 한 근본이 만 가지로 다르게 되는 것이 마치 한 근원의 물이 흘러 나가서 만 갈래의 지류가 되고, 한 뿌리의 나무가 나서 허다한 지엽이 나오게 되는 것과 같다.[萬殊之所以一本 一本之所以萬殊 如一源之水流出爲萬派 一根之木生爲許多枝葉]”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里仁》 《朱子語類 卷29
[주D-002]천구(天衢) :
하늘, 또는 제왕(帝王)이 거주한 도성(都城)을 가리키기도 한다.

등경가(燈檠歌)

 


낮은 창에는 짧은 등경이 있고 / 矮窓有短檠
높은 당에는 긴 등경이 있으니 / 高堂有長檠
긴 등경의 큰 불꽃은 청홍을 드리우고 / 長檠大焰晴虹垂
짧은 등경의 작은 불꽃은 풍형만 한데 / 短檠小焰風螢明
호문과 누항이 각각 스스로 만족해하며 / 豪門陋巷各自足
자손이 대대로 전하여 생사를 같이하네 / 子孫相傳同死生
문벌의 성쇠는 운명에 달려 있는 것이라 / 衣冠興替有數在
혁혁한 집도 꼭 다 세경이 되진 못하나니 / 赫赫未必皆世卿
연군에 땔나무 하긴 그리 고달팠으며 /
練裙負薪何其苦
칠세를 초관 집은 그리 영화로웠나 /
七葉珥貂何其榮
서인으로 일어나서 고관대작에 오르기란 / 起跡白屋躡靑雲
하늘이요 운명이라 경영하기 어렵고말고 / 天也命也難經營
나는 조정에 벼슬한 지 열여덟 해 동안에 / 我游廊廟十八載
아이들 잘 먹여 배고파 우는 소리 없었고 / 兒肥耳絶啼飢聲
당시의 짧은 등경도 감히 버리지 못하여 / 當時短檠不敢棄
밤마다 서로 마주하니 신심까지 맑아지네 / 夜夜相對身心淸
창려가 궁귀 보낸 바로 곤궁을 견딤이니 / 昌黎送窮是固窮
담장 모서리 탄성을 들은 것만 같구나 / 牆角一嘆如聞聲

 

[주C-001]등경가(燈檠歌) : 등경은 등잔을 얹어 놓는 기구, 즉 등경걸이를 말하는데, 한유(韓愈)의 〈단등경가(短燈檠歌)〉에긴 등경 팔 척은 공연히 스스로 길 뿐이요, 짧은 등경 이 척이 편리하고도 밝도다.[長檠八尺空自長 短檠二尺便且光]” 하였다.
[주D-001]청홍(晴虹) :
등화(燈火)의 별명(別名)이다.
[주D-002]풍형(風螢) :
반딧불의 별명이다.
[주D-003]세경(世卿) :
대대로 경대부(卿大夫)가 되는 것을 말한다.
[주D-004]연군(練裙)에 …… 고달팠으며 :
연 군은 흰색의 아랫도리 옷을 말하는데, ()나라 때의 문인(文人) 임방(任昉)이 죽은 뒤로 집이 몹시 곤궁하여 그의 아들 4형제가 뿔뿔이 흩어져서 유랑할 적에 4형제 중 둘째 아들 서화(西華)가 추운 겨울날 갈포배자에 흰 아랫도리[
練裙]를 입고 다녔다는 데서 온 말이고, 땔나무를 했다는 것은 춘추 시대 초()나라의 현상(賢相) 손숙오(孫叔敖)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그의 아들이 몹시 곤궁한 나머지, 몸소 땔나무를 해서 생활을 영위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소식(蘇軾)의 〈차운왕정국사한자화과음(次韻王定國謝韓子華過飮)〉 시에초나라에는 현상 손숙오가 있어, 장성이 천리에 위중(威重)했다 하는데, 슬프다 연군 입은 그의 아들은, 땔나무를 지고 해진 신을 신었네.[楚有孫叔敖 長城隱千里 哀哉練裙子 負薪躡破履]” 하였다.
[주D-005]칠세(七世)를 …… 영화로웠나 :
초 관(貂冠)은 담비 꼬리로 장식한 관을 말한 것으로, 이 관은 한()나라 때 왕()을 가까이 모시는 시중(侍中)과 중상시(中常侍)가 썼는데, 특히 김일제(金日
)와 장안세(張安世)의 두 집안은 7대 동안 자손들이 대대로 시중, 중상시가 되어 왕을 가까이 모시면서 영화를 누렸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창려(昌黎)가 …… 같구나 :
창 려는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진 한유(韓愈)를 가리키는데, 그가 일찍이 다섯 궁귀(窮鬼)를 보낸다는 의미로 송궁문(送窮文)을 지었던바, 다섯 궁귀란 바로 지궁(智窮), 학궁(學窮), 문궁(文窮), 명궁(命窮), 교궁(交窮)을 이른 말이고, 담장 모서리의 한 탄성(歎聲)이란 한유의 〈단경가(短檠歌)〉에하루아침에 부귀하면 도리어 방자해져서, 긴 등경 높이 걸어 미인의 머리를 비추네. 아 세상일은 그렇지 않은 것이 없으니, 담장 모서리에 버려진 짧은 등경을 그대는 보았나.[一朝富貴還自恣 長檠高張照珠翠 吁嗟世事無不然 牆角君看短檠棄]” 한 데서 온 말이다.

오늘 하늘이 또 흐리다.

 


오늘 하늘이 또 흐리니 / 今日天又陰
내 마음이 어찌 편안할 수 있으랴 / 吾心何以寧
내 삭신은 갑절 쑤시고 아픈데 / 我骨倍酸痛
세월은 번개같이 빠르기만 하네 / 流光如迅霆
조용히 태고 시대로 거슬러 가서 / 靜言遡鴻荒
맹세코 형체를 잊으려 하노니 / 誓將忘我形
표지와 야록
의 시대를 생각건대 / 標枝與野鹿
그 천지는 왜 그리 아득기만 한고 / 天地何冥冥
읍양
하는 곳에 눈이 번뜩 뜨여라 / 眼明揖讓地
이것이 바로 요순의 조정이었으니 / 是爲堯舜庭
도유
가 백일처럼 하도 밝았기에 / 都兪白日明
나의 속된 생각을 확 깨게 하누나 / 使我塵慮醒
애석하여라 그것이 오래가지 못해 / 惜哉不可久
또 겹겹 구름이 낀 걸 보게 되었네 / 又見雲屛屛
겹겹 구름을 바람이 불지 않으니 / 屛屛風不來
어쩔 수가 없어 눈물만 흘리노라 / 已焉雙涕零

 

[주D-001]내 …… 하노니 : 형 체(形體)를 잊는다는 것은 곧 물외(物外)에 초연하여 자신의 형체를 잊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양왕(讓王)뜻을 기르는 자는 형체를 잊고, 형체를 기르는 자는 이욕을 잊으며, 도를 이룬 자는 마음을 잊는다.[養志者忘形 養形者忘利 養道者忘心矣]” 하였다.
[주D-002]표지(標枝) 야록(野鹿) :
표 지는 나무의 맨 끝에 있는 가지를 가리킨 것으로, 이는 상고(上古) 시대에 위에 있는 임금이 아무 하는 일 없이 담박하게 있었던 것을 비유한 말이고, 야록은 들판에 뛰노는 사슴을 가리킨 것으로, 이는 상고 시대에 아래에 있는 백성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양양자득했던 것을 비유한 말이다. 《莊子 天地》
[주D-003]읍양(揖讓) :
제위(帝位)를 선양(禪讓)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4]도유(都兪) :
훌륭하다, 옳다.”라는 감탄사로서, 이는 곧 순()과 우()와 고요(皐陶)가 군신(君臣) 간에 서로 화합하여 좋은 말을 주고받은 가운데서 나온 말이다. 《書經 益稷》

소리 높여 읊다.

 


한량없이 광대한 천지 가운데 / 渺然天地中
쇠한 늙은이 외로이 우뚝 섰노니 / 孑孑立衰翁
아득하여라 희황 이전의 시대여 / 邈矣羲皇上
유유히 옛날의 풍도를 생각하네 / 悠悠思古風
흐르는 물은 큰 바다로 내달리고 / 流水赴大壑
뜬구름은 먼 하늘에 가득하여라 / 浮雲滿長空
소리 높여 읊으니 뜻이 무궁한데 / 高吟意無極
밝은 해는 동녘에서 떠오르누나 / 白日生天東

 

17일에 감진색(監進色)이 성()에 정문(呈文)할 일로 회좌(會坐)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그사이에 아직도 도당(都堂)에 자문하여 결정한 것이 있어야만 말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으로 조목조목 갖추어 올렸다. 삼색(三色)이 점심(點心)을 마련해 와서 또 선온(宣醞)을 마시고 약간 취하여 돌아오다.

 


금릉
의 천자가 천하를 전부 장악하여 / 金陵天子握乾樞
우리 동방에서 처음 세공을 징수하누나 / 歲貢初徵東海隅
임금 어리고 인심 의구하니 누가 책임질꼬 /
主少國疑誰執咎
백성 드물고 땅이 박하니 물품도 부족하지 / 民稀地薄物難敷
조정의 관원들이 애원서를 올리려면서 / 朝中
彦將陳乞
병중의 외로운 나까지 또한 불러 주었네 / 病裏孤生亦被呼
재배하고 함께 하사주를 또 기울였어라 / 再拜共傾宣賜酒
석양 무렵에 삼색이 주식을 내왔네그려 / 日斜三色設行廚

 

[주C-001]삼색(三色) : 색은 관청(官廳) 사무(事務)의 한 분장(分掌), 또는 담당의 뜻으로, 아마도 위에 나오는 감진색(監進色) 등 세 가지 사무처의 담당자를 가리킨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1]금릉(金陵) :
당시 금릉에 도읍했던 명()나라를 가리킨다.
[주D-002]임금 …… 책임질꼬 :
《시 경》 소아(小雅) 소민(小旻)말을 하는 자가 뜰에 가득하니, 누가 감히 그 허물을 책임질꼬.[發言盈庭誰敢執其咎]”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임금이 혼암(昏暗)한 까닭에 소인(小人)들이 조정에 가득하여 서로 제 말이 옳다고 떠들어 대기만 할 뿐, 일이 설령 실패하더라도 아무도 자기 허물을 책임질 자가 없다는 뜻이다.

새벽에 비가 오다.

 


새벽 비에 처마 끝 낙숫물이 죽죽 내리니 / 曉天簷溜滴來多
어찌할 수 없이 주공의 꿈을 놀라 깨었네 / 驚起周公不奈何
경각 새에 시골 정취 우러남은 알겠건만 / 頃刻自知生野意
평소에 묵은 병 지닌 건 누가 애석해하랴 / 尋常誰惜抱沈

시중 누각의 흥취는 홍벽이 아득하고 /
市樓酒興漫紅壁
강물 위의 생각은 녹사가 어둑하여라 /
江上詩情暗綠

이 두 곳에 나의 노년을 부칠 길이 없어 / 兩處無由著吾老
모란꽃 피던 한림원을 상상할 뿐이로다 / 牧丹花發想鑾坡

 

[주D-001]주공(周公)의 …… 깨었네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심하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되었도다, 내가 다시는 꿈에 주공을 보지 못하는도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다만 잠에서 깬 것을 의미한다. 《論語 述而》
[주D-002]시중(市中) …… 아득하고 :
홍 벽(紅壁)은 붉은 칠을 한 벽을 말한 것으로, ()나라의 시인(詩人) 허혼(許渾)의 〈재유고소옥지관(再游姑蘇玉芝觀)〉 시에달빛 어린 푸른 창은 오늘 밤의 술자리요, 비 어둑했던 붉은 벽엔 거년의 글씨로다.[月過碧窓今夜酒 雨昏紅壁去年書]”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강물 …… 어둑하여라 :
녹 사(
)는 푸른 도롱이를 말한 것으로, ()나라 때 은사(隱士)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푸른 대삿갓 쓰고 푸른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것 없고말고.[笠 綠衣 斜風細雨不須歸]” 한 데서 온 말이다.

소동(小童)

 


조그만 아이가 꿩 꼬리의 빗자루를 들고 / 小童提携翟尾帚
방 안을 깨끗이 쓸어 먼지가 하나도 없네 / 淨掃房中無點塵
그의 마음은 순일하여 잡념이 없어서이니 / 渠心純一政無雜
안 배우고도 능히 하는 게 바로 진이로다 / 不學而能知是眞
오만 사물에 대응함은 대인의 일이거니와 / 酬酢萬物大人事
일은 비록 달라도 그 사리는 똑같고말고 / 事也雖殊其體均
그러나 목옹은 평생에 맘을 잘못 썼으니 / 牧翁平生錯用心
봉황이 봉황 아니요 기린이 기린 아니로다 /
鳳兮非鳳麟非麟
어찌 한 집이나 천하를 논할 것이 있으랴 / 何論一室與天下
늙어 가매 모든 악이 내 몸으로 모이누나 / 老矣衆穢叢吾身
조그만 아이가 오늘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 小童不失今日心
후일 요순의 백성 되는 걸 앉아서 보리라 / 坐見他年高舜民

 

[주D-001]봉황이 …… 아니로다 : 여기서 말한 봉황과 기린은 다만 현인(賢人)이나 걸출한 인재(人才)를 가리킨 것이다.

즉사(卽事)

 


한가하여 편히 누움은 다행이거니와 / 已幸閑供臥
고요해서 읊음직함은 더욱 좋구나 / 尤憐靜可吟
바람이 부니 창문은 덜덜거리고 / 風來窓戶
개가 짖으니 문려는 깊숙하여라 / 犬吠閭深

떨어진 잎은 많이 물로 돌아가고 / 落葉多歸水
찬 구름은 절반이 숲에 머물렀네 / 寒雲半在林
유연히 고상한 흥취를 발동시키니 / 悠然高興發
셋이 감탄함에 남은 소리가 있구려 /
三嘆有遺音

 

[주D-001]셋이 …… 있구려 : 《예 기》 악기(樂記)청묘의 비파는 붉은 줄에 너른 구멍을 밑바닥에 뚫었으며, 한 사람이 연주를 하면 세 사람이 따라서 감탄하는데, 이는 선왕의 남긴 소리가 있는 것이다.[淸廟之瑟 朱絃而疏越 壹倡而三歎 有遺音者矣]”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훌륭한 음악(音樂)이나 시가(詩歌)를 의미한다.

민 여강(閔驪江)이 자기 아들이 금릉(金陵)을 가게 된 일로 부인과 함께 경성(京城)에 왔으므로, 택주(宅主)가 가서 그분들을 만나 보고 변변찮은 음식을 약간 마련했는데, 나는 삭신이 아픈 관계로 가지 못하고 시 세 수를 읊어서 좌하(座下)에 부쳐 올리는 바이다.

 


강남이라 만리 길에 자식을 보내려니 / 送子江南萬里行
하늘이 응당 노친의 정리를 통촉했으리 / 老天應鑑老親情
충신과 효자는 본래 두 길이 아니거니 / 忠臣孝子元非二
조금이나마 어찌 경중의 차이가 있으랴 / 銖兩何曾有重輕

소년 시절에 상종하다가 자라선 출가하여 / 少也相從壯有行
언니 동생 늙었으니 심정 어이할꼬 / 弟兄臨老若爲情

비 오는 날 한 동이 술로 말없이 앉았어라 / 一樽簷雨還無語
술은 묽어도 뜻은 중하단 걸 알아야 하리 / 酒淡須知意不輕

병든 삭신은 끝내 비 맞고 가기가 어려워 / 病骨終難冒雨行
문 닫고 우뚝 앉아 깊은 정만 부칠 뿐이네 / 閉門危坐獨含情
날 개고 몸 쾌차할 때가 머지않으려니와 / 天晴身快應非遠
더구나 나는 듯한 날쌘 말까지 있음에랴 / 況有如飛馬足輕

 

[주D-001]소년 …… 어이할꼬 : 위의 제목(題目)에 나오는 민 여강(閔驪江) 즉 민근(閔瑾)이 목은의 손위 동서가 되므로, 서로 자매()가 되는 그 부인(夫人)들이 지금 서로 만났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우중(雨中)에 유항(柳巷)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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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빠짐-

 

스스로 읊다.

 


해동의 풍월 속에 일개 쇠한 늙은이는 / 海東風月一衰翁
쓸쓸한 행색이 그림 속 사람 같은지라 / 行李蕭條似畫中
친구는 깜짝 놀라 병든 학을 가련해하고 / 朋友驚心憐病鶴
군왕께선 얼굴 알아 행차를 머무르셨네 / 君王識面駐飛龍
집에 가득한 건 문장 만 있을 뿐이요 / 滿家只有文章債
나라에 보답이란 척촌의 공도 없고말고 / 報國曾無尺寸功
후일에 벼슬 내놓고 고향에 돌아가거든 / 他日乞身歸故里
이소의 성대한
과 혹 서로 같을는지 / 二疏盛事或相同

 

[주D-001]문장 빚[文章債] : 남에게 글을 지어 주기로 약속해 놓고 미처 글을 짓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주D-002]이소(二疏) 성대한 :
이 소는 한 선제(漢宣帝) 때의 태자 태부(太子太傅) 소광(疏廣)과 그의 조카인 태자 소부(太子少傅) 소수(疏受)를 합칭한 말이다. 소광이 태자 태부가 된 지 5년 만에 스스로 성만(盛滿)을 경계하는 뜻에서 병을 핑계로 상소(上疏)하여 사직하고 조카 소수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자, 천자(天子)는 황금(黃金) 20근을, 태자(太子) 50근을 각각 하사하였고, 공경대부(公卿大夫) 친구들은 동도문(東都門) 밖에서 전별연(餞別宴)을 베풀었는데, 이때 그들을 환송(歡送) 나간 차량(車輛)은 무려 백여 대에 이르렀고, 도로에서 그 광경을 구경하던 이들은 모두 그들을 어진 대부(大夫)라고 칭찬하면서 혹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한다.

8 17일에 지신사(知申事) 이존성(李存性)이 왕지(王旨)를 전해 왔는데, 반궁수조비문(泮宮修造碑文)을 지으라는 것이었다. ()이 삼가 생각건대, 선왕(先王)의 성덕(盛德)으로 학교(學校)를 일으켰는데, 금상(今上)께서 선왕의 뜻을 잘 계승하시니, 매우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학교를 일으킨 까닭은 인재(人才)를 교양(敎養)하기 위해서인데, 지금은 생도(生徒)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학관(學官)도 드물게 옴으로써 자못 황폐한 잡초밭이 되었는지라, 신이 말을 만들어 보려고 해도 그 요령을 얻지 못하여 그럭저럭 오늘에 이르렀으므로,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없어 한 수를 읊어 이루는 바이다.

 


선왕의 성덕은 인륜을 밝히는 데 있기에 / 先王盛德在明倫
태학을 크게 지어 인재를 작성코자 했는데 / 大作芹宮欲作人
적적해진 요즘엔 황량한 풀밭이 되어서 / 寂寂比來爲茂草
많은 인재 얻어 명성 퍼뜨리기 어려워라 / 侁侁難得播芳塵
강산은 구중궁궐을 환히 비추는 날이요 / 江山照耀重霄日
천지는 만물을 다습게 쬐이는 봄이로다 / 天地熏蒸萬物春
졸렬한 글 빗돌에 새기긴 아깝지 않으나 / 不惜蕪詞刻貞石
빈말로 정신 손상함이 부끄러울 뿐이네 / 只慚虛語欠精神

 

걱정함이 없다.

 


걱정 없애려도 걱정 없지 못하니 / 無悶非無悶
한갓 아비의 글만 읽었을 뿐이네 /
徒能讀父書
전원은 왜 그리 아득하기만 한고 / 田園何縹渺
귀밑털은 까칠하기 그지없어라 / 鬢髮政蕭疏
산 빛은 개어 문 앞에 당해 있고 / 山色晴當戶
이끼는 비를 맞아 뜰에 비치누나 / 苔痕雨□□
적막한 가운데 해가 저물어가니 / 寂寥將歲

귀여를 읊조릴 뜻이 생기는구나 /
有意賦歸歟

 

[주D-001]걱정 …… 못하니 : 《주 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의하면, 건괘 초구(初九)의 잠룡(潛龍)에 대하여 공자(孔子)가 이르기를세상을 피해 은둔하되 걱정함이 없으며, 옳게 여겨 주지 않아도 걱정함이 없어, 즐거우면 나가서 도를 행하고, 근심스러우면 떠나서, 확고하여 그 뜻을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잠룡인 것이다.[遯世無悶不見是而無悶 樂則行之 憂則違之 確乎其不可拔 潛龍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한갓 …… 뿐이네 :
오직 대대로 전해 온 글만을 읽었을 뿐, 임기응변의 재능이 없음을 말한다. 이는 곧 전국 시대 조왕(趙王)이 염파(廉頗) 대신 조괄(趙括)을 장수로 삼았을 때, 인상여(藺相如)가 조괄을 비평(批評)한 말이다.
[주D-003]귀여(歸歟)를 …… 생기는구나 :
귀 여를 읊는다는 것은 공자가 일찍이 진()에 있을 때에 이르기를돌아가련다, 돌아가련다. 우리 당의 소자들이 뜻만 크고 일에는 홀략하여 찬란하게 문채만 이루었을 뿐이요 스스로 재단할 줄을 모르도다.[歸歟歸歟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사직하고 전원(田園)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전(賜田)에 대하여 관가(官家)의 조세(租稅) 징수를 면제해달라는 장자(狀子)를 재추소(宰樞所)에 바치고, 하인이 떠난 뒤에 부끄러워서 땀이 흘러 멎지 않았다.

 


녹만 먹고 한가히 지내 국은을 입으면서 / 食祿閑居荷國恩
사전의 면세까지 번거롭게 요구하였으니 / 賜田免稅更相煩
늙은이의 염치없음은 남들이 웃겠지만 / 老翁無恥人皆笑
총재는 뭇사람의 의논을 다 수용한다오 /
宰能容衆所論
덧없는 세상의 이 몸은 썩은 쥐와 같거니 / 浮世此身如腐鼠
언제나 고향 산의 청원 소리를 들어 볼꼬 /
故山何日聽淸猿
고사를 아는 게 힘이 됨을 분명히 아노니 / 明知稽古終多力
바구니의 황금을 자손에게 주지 말아야지 /
莫把
金遺子孫

 

[주D-001]언제나 …… 들어 볼꼬 : 청원(淸猿)은 원숭이의 처량하고도 맑은 울음소리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전원(田園)에 은거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한 말이다.
[주D-002]바구니의 …… 말아야지 :
()나라 때 경학자(經學者)인 위현(韋賢)이 네 아들을 두어 모두 훌륭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막내아들 현성(玄成)은 특히 명경(明經)으로 벼슬이 승상(丞相)에 이르렀으므로, 당시 추로(鄒魯)의 속담에바구니에 가득한 황금을 자식에게 남겨 주는 것이 한 경서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遺子黃金滿
不如一經]”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개천사(開天寺)의 담사(曇師)가 홍시를 보내오다.

 


홍시가 동실동실 대바구니에 가득하여라 / 紅柹團團滿竹筐
백발로 마주하니 찬란히 광채가 나누나 / 白頭相對爛生光
아스라한 절집에 서리가 처음 내렸으리 / 禪窓縹渺霜初落
버선 신고
언제나 그 당에 올라 볼꼬 / 布襪何時直上堂

 

[주D-001] 버선 신고 : 두 보(杜甫)의 〈봉선유소부신화산수장가(奉先劉少府新畫山水障歌)〉에약야계요 운문사로다. 나만 홀로 어이해 속세에 묻혀 있으랴, 짚신과 베 버선 차림이 이제부터 시작일세.[若耶溪 雲門寺 吾獨胡爲在泥滓靑鞋布襪從此始]”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산수(山水) 속에 유유자적함을 의미한다.

돌아가고 싶어서

 


돌아가려면서도 돌아가지 못하고 / 欲歸歸不得
백발로 추진하기에 지치는구나 / 白首困趨塵
예로부터 강산은 고요하거니와 / 自古江山靜
더구나 지금 풍속도 순후함에랴 / 況今風俗醇
때를 만나면 뜻을 행해야 하지만 / 遭時便行志
이 몸은 어디나 붙일 만하고말고 / 隨處可栖身
다만 생각건대 떠나는 날에는 / 只念掛冠日
다시 머리 돌려 님을 생각하겠지 / 回頭思主人

 

[주D-001]추진(趨塵) : ()나라 때 반악(潘岳)이 당시의 권신(權臣)인 가밀(賈謐)을 아첨하여 섬기면서, 가밀이 외출할 때마다 수레의 먼지를 바라보며 절을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명리(名利)를 얻기 위해 비굴한 태도를 짓는 것을 의미한다.

찻잔에 차를 집어 넣다.

 


찬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자마자 / 冷井才垂綆
창 앞에서 문득 차를 넣어 끓여라 / 晴窓便點茶
목을 축이니 오장 열을 다스리고 / 觸喉攻五熱
뼈에 스미니 뭇 병기를 제거하네 / 徹骨掃

찬 계곡 물은 달빛 아래 떨어지고 / 寒磵月中落
푸른 구름은 바람 밖에 비꼈구나 / 碧雲風外斜
이미 진미의 무궁함을 알았으니 / 已知眞味永
다시 내 흐린 눈까지 씻어야겠네 / 更洗眼昏花

 

[주D-001]진미(眞味) 무궁함 : 소식(蘇軾)의 〈화전안도기혜건다(和錢安道寄惠建茶)〉 시에설화며 우각 따윌 어찌 말할 거나 있으랴, 건다 한 잔 마시니 진미가 무궁함을 알겠네.[雪花雨脚何足道 啜過始知眞味永]” 한 데서 온 말이다.

시를 고치다.

 


새로운 시 고치고 또 고치고야 말다 보니 / 新詩改又改來休
병중의 세월 속에 머리가 다 희어버렸네 / 病裏光陰白盡頭
퇴고를 정밀히 함은 진부한 게 싫어서인데 / 百煉因於厭塵舊
한 번만 읊조려도 풍류 알기엔 넉넉고말고 / 一吟亦足識風流
강산은 등잔 앞의 밤비 속에 아스라하고 / 江山渺渺燈前雨
귀밑털은 거울 속의 가을이 쓸쓸하구나 / 鬢髮蕭蕭鏡裏秋
누가 생각할꼬 여기에 마음 더욱 괴롭혀 / 誰念此間心更苦
홀로 수로써 봉후에 비기려고 하는걸 / 獨將千首擬封侯

 

[주D-001] 수(千首)로써 …… 하는걸 : 두목(杜牧)의 〈등지주구봉루기장호(登池州九峯樓寄張祜)〉 시에어느 누가 우리 장 공자 같은 이가 있으랴, 천 수의 시로써 만호후를 가벼이 여기는걸.[誰人得似張公子 千首詩輕萬戶侯]”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연 곡사(燕谷寺)의 주지(住持) 인우(印牛)가 서찰과 함께 보내온 차()를 얻었는데, 그는 또 옥룡사(玉龍寺)와 서룡사(瑞龍寺)의 전세(田稅)에 관한 일을 부탁하였다. 또 무설(無說)의 서찰도 받았는데, 그 내용 또한 이와 같았다.

 


두 봉의 서찰이 산림 속에서 나왔는데 / 兩封書札出煙霞
두 절의 전답은 바닷가에 위치했다네 / 二寺田疇傍海涯
가장 군량이야 응당 줄일 게 아니지만 / 最是軍粮非有減
승려의 양식 또한 더해야 한다 하누나 / 在於僧粥亦云加
서생들은 정히 녹이라도 구할 수 있는데 / 書生政爾猶干祿
승려들은 방도가 없어 차만 마시는구려 / 衲子無由只喫茶
다만 한스러운 건 남에게 말하기 어려워 / 獨恨向人難掉舌
홀로 앉아 석양까지 시만 읊고 있음일세 / 坐吟新律日將斜

 

소우(小雨)

 


작은 비가 한창 뜨락에 뿌려댈 제 / 小雨洒庭宇
쇠잔한 몸은 시비를 잊고 있노라니 / 殘生忘是非
담담하여 물욕은 전혀 없거니와 / 淡然無物欲
말을 삼간 지야 오래이고말고 / 久矣愼樞機
대궐은 늘 마음속에 존재하지만 / 象魏丹心在
강호엔 흰머리로 돌아가야겠네 / 江湖白首歸
천재 전의 사람을 생각하노라니 / 思人千載上
남긴 풍도가 아직도 아련하구나 / 遺響尙依

 

오래 앉아서

 


오래 앉았으니 맘은 더욱 산란한데 / 坐久心逾亂
많이 읊으니 말은 다시 새로워지네 / 吟多語更生
내 머리는 이미 다 희어버렸는데 / 吾頭今盡白
새벽 비는 청량함이 넘치는구나 / 曉雨有餘淸
구름은 골짜기 절집에 어둑하고 / 雲暗谷中寺
하늘은 강가의 성에 나직하여라 / 天低江上城
도롱이 걸치러 그 언제나 떠날꼬 /
衣何日去
묵묵히 홀로 마음만 먹을 뿐이네 / 默默獨含情

 

우중(雨中)

 


-
원문 빠짐-

 

문생장시도가(門生掌試圖歌) 병서(幷序)

 

 

국재(菊齋) 권 정승(權政丞)광묘(光廟)가 처음 과거(科擧)를 설시한 이래 좌주(座主)와 장원(壯元)의 성명(姓名)을 모아서 한 권()을 만들고, 또 부(), (), ()이 서로 이어 과시(科試)를 관장한 사람 및 좌주가 무양(無恙)한 때에 문생이 과시를 관장한 사람들을 모아서 책 후미에 도면(圖面)을 만들어 붙이고, 그 제목을 《계원록(桂苑錄)》이라 하였다. 그래놓고 보니 400여 년에 걸친 문사(文士) 회합(會合)의 성대함이 찬연히 한눈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문생과 좌주 사이의 은의(恩義)의 온전함이 국가의 원기(元氣)를 배양하기에 충분하여, 시서(詩書)의 은택과 사한(詞翰)의 화려함이 백세(百世) 뒤에까지도 폐해지지 않게 되었다. 중찬(中贊) 유경(柳璥)이 일찍이 과시를 관장했을 적에 그의 좌주인 평장(平章) 임경숙(任景肅)이 자신이 띠고 있던 홍정오서대(烏犀帶)를 끌러 유경에게 채워 주면서 이르기를경의 문하(門下)에서 다시 경과 같은 사람이 나오거든, 비로소 나의 오늘 이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띠를 경에게 전해 주노라.” 하였으니, 이것이 또 홍정오서대를 서로 수수(授受)하게 된 시초이다. 그로부터 지금 계해년까지는 120여 년이 되었는데, 나의 문생 염정수(廉廷秀)가 성균시(成均試)를 관장하였으니, 그는 바로 예천 정승(醴泉政丞) 권공(權公)의 외손(外孫)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성균시 때 좌주였던 송정(松亭) 김 선생(金先生)이 남겨준 서대(犀帶)를 그에게 주노니, 송정은 이것을 일찍이 예천에게서 친히 받았던 것이다. 짤막한 노래를 읊어 이루게 되니, 이는 늙은이의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며, 선진(先進)들의 남긴 업적이기도 한 것이다. 노래는 다음과 같다.


국가엔 원기를 배양하고 / 國家培元氣
사문은 정맥을 전하였네 / 斯文傳正脈
깊고도 원대하신 우리 광묘께서 / 穆穆我光廟
비로소 시서의 우로를 쏟아 내려 / 肇派詩書澤
단계의
을 흠뻑 적셔 주시매 / 浸漬丹桂林
깊은 풍로 속에 향기가 풍겼어라 / 香浮風露深
뭇 인재들을 동량으로 작성하여 /
材作棟樑
혁혁한 광채가 고금에 빛났도다 / 赫赫光古今
좌주는 다행히 병 없이 건강한데 / 座主幸無恙
문생은 풍채가 화락한 모습으로 / 門生風彩暢
문생들 거느리고 가서 알현할 제 / 庭謁領門生
좌주는 기뻐하여 상을 내렸으니 / 座主方喜賞
무엇으로 진정을 표했는가 하면 / 何以表眞情
무소뿔 장식이 홍정에 비치었네 / 犀銙映紅

재배하고 진귀한 선물 받고 나면 / 再拜荷珍錫
모두들 희세의 광영이라 했었지 / 人曰稀世榮
이게 무엇이 다르랴 늙은 부모가 / 何異老父母
자식의 출세한 걸 놀라 기뻐함과 / 驚喜子遭遇
하루아침에 문생들을 거느리고 / 一旦領門生
풍악 잡혀 축수를 드리니 말일세 / 張樂斟壽酒
나 같은 사람 또한 다행하고말고 / 伊我亦幸哉
세 번이나 과거 시험 주관했는데 / 三見文闈開
어찌 기약했으랴 가장 연소자가 / 何期最少者
바로 제 문생을 거느리고 올 줄을 / 乃率門生來
이 때문에 나의 붓 뽑아 들고 / 所以動我筆
풍우처럼 신속하게 시를 쓰노니 / 題詩風雨疾
행여 실추함이 없이 서로 전하여 / 相傳庶無墜
의당 천지와 더불어 영원했으면 / 當與天地畢

 

[주D-001]국재(菊齋) : 권보(權溥)의 호이다.
[주D-002]광묘(光廟) :
고려 제4대 임금인 광종(光宗)을 가리키는데, 고려 시대에 그가 처음으로 과거제(科擧制)를 실시했다.
[주D-003]예천 정승(醴泉政丞) :
고려 후기에 벼슬이 도첨의 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르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진 권한공(權漢功)을 가리킨다.
[주D-004]송정(松亭) :
목은이 성균시(成均試)에 응시했을 때의 좌주(座主)였던 김광재(金光載)의 호이다.
[주D-005]정맥(正脈) :
공맹(孔孟)의 도()의 정통(正統)을 말한다.
[주D-006]단계의 숲[丹桂林] :
진 무제(晉武帝) 때 극선(
)의 현량 대책(賢良對策)이 천하제일로 뽑혔을 적에 무제가 극선에게 이르기를()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자, 극선이 대답하기를신의 현량 대책이 천하제일로 뽑힌 것은 마치 계림의 계수나무 한 가지, 곤산의 한 조각 구슬[桂林之一枝 崑山之片玉]과 같은 것입니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과거(科擧)에 급제한 인재들을 가리킨다.

 

 

 

201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