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3 월 29일에 영문하(領門下)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이 연회를 베풀었는데, 영삼사(領三司)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과 수시중(守侍中)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도 왕림하였다. 길창군(吉昌君), 강 평장(姜平章), 이 이상(李二相), 윤 해평(尹海平), 한 정당(韓政堂), 이 육재(李六宰), 성 지문하(成知門下)가 차례대로 앉았으며 나도 그 말석에 끼었다. 그리고 윤 영공(尹令公)과 염동정(廉東亭)과 유 밀직(柳密直)이 또 자리를 꺾어서 북쪽을 향하였고, 주인공과 김 원사(金院使)는 동쪽을 향하였다. 이처럼 세 분 시중의 풍채가 세상을 환히 비추는 가운데 제공(諸公)이 옆에 모시고 있는 광경이 마치 그림 속에나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에 돌아와서 이 일을 기록하였다. |
|
태평 재상의 풍채가 삼한을 비추는 가운데 / 太平風采照三韓
도리꽃이 활짝 피어 눈앞이 또 넉넉하네 / 桃李花開眼界寬
가장 기쁜 건 오늘날 예악을 드높이는 것 / 最喜方今崇禮樂
예로부터 의관을 중시한 뜻을 알 만하오 / 故知從古重衣冠
가야금 타고 피리 부는 소리마다 절묘하고 / 鳴絲吹竹聲聲妙
달 부르고 바람 읊는 글자마다 멋들어져라 / 咏月吟風字字安
병 끝에 성대한 연회 끼인 게 다행스럽소만 / 自幸病餘參盛會
만당의 호걸들 중에 나만 유독 초라했다오 / 滿堂豪傑獨吾酸
[주D-001]도리(桃李)꽃이 …… 넉넉하네 : 도 리는 문생(門生)을 뜻하는 말로, 부원군(府院君)의 문생들이 대거 참여하여 연회를 더욱 빛내고 있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적인걸(狄仁傑)의 문생 출신인 요원숭(姚元崇) 등 수십 인이 모두 명사(名士)가 되었으므로, “천하의 복사꽃과 오얏꽃이 모두 공의 문에서 나왔다.[天下桃李悉在公門矣]”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도리(桃李)가 문생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資治通鑑 唐紀23》
남창(南窓) |
|
남쪽 창가에서 용수산 마주 대하면서 / 南窓對龍岫
홀로 앉아 있노라니 사념이 유유해라 / 獨坐思悠悠
시대와 함께 변천하는 문물이라면 / 文物與時變
물처럼 흘러가는 옛날과 오늘이라 / 古今如水流
나는 구름은 하늘 밖에 떠 다니고 / 飛雲天外去
남은 꽃술은 나뭇잎 사이에 남았어라 / 殘蘂葉間留
얼마나 다행인가 이렇게 한가한 때 / 幸矣及閑暇
수레 타고 나가 노닐 수 있는 일이 / 駕焉頗出游
[주D-001]수레 …… 일이 : 《시경(詩經)》 패풍(邶風) 천수(泉水)와 위풍(衛風) 죽간(竹竿)에 “수레 타고 나가 노닐면서, 나의 근심 걱정 쏟아볼거나.[駕言出遊 以寫我憂]”라는 말이 나온다.
경 신년 과거에 급제한 이 정언(李正言) 등이 자신들의 이름을 써넣은 족자(簇子)를 좌주(座主)인 염동정에게 증정하였다. 이에 동정이 전에 기유년과 갑인년 과거에 급제한 문생들까지 모두 불러 연회에 합석하게 하였는데, 나도 초청을 받고서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서로들 연구(聯句)를 지었는데, 그중에 “세 차례나 문생을 거느린 분은 머리가 아직도 까맣다네.[三領門生頭尙黑]”라는 구절이 있었다. 나도 과거를 세 번 주관하긴 하였으나, 을사년 과거 때에는 전시(殿試)의 제도가 아직 시행되지 않았고, 신해년 과거 때에는 전시의 독권(讀卷)에 별도로 다른 사람을 썼으며, 오직 기유년의 전시 때에만 나도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대구(對句)를 지으면서 “전시에 한 번만 참여한 몸 항상 얼굴이 달아올라.[一叨殿試面長紅]”라고 하였다. 대체로 근래에 들어와서 세 번이나 시관(試官)의 자리에 끼이게 된 사람으로는 동정과 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동정은 바야흐로 강사(强仕)의 나이에 있는 만큼 앞길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하겠지만, 나의 경우는 병으로 오래 시달린 끝에 이처럼 성대한 자리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꿈속과 같은 이 일을 어찌 기록해 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만하면 과장(科場)의 고사가 되기에 충분하겠기에 시 한 수를 지어 기록하는 바이다. |
|
장원 급제하여 높은 지위에 오른 것은 / 壯元及第作宗工
나와 동정이 대개는 같다고 하겠지만 / 穡與東亭大槪同
세 번 문생을 거느린 분 아직 까만 머리라서 / 三領門生頭尙黑
한 번 전시에 끼인 몸 항상 얼굴이 후끈거려 / 一叨殿試面長紅
나의 병 예전과 같은 거야 무슨 대수리요 / 何嫌我病如前日
사문이 고풍을 회복한 것이 너무 기쁜걸 / 最喜斯文復古風
도리꽃 활짝 피고 풍악이 성대히 울렸나니 / 桃李盛開絃管沸
대청 가득 빈객 모두 즐거움 만끽하였도다 / 滿堂賓客樂融融
[주C-001]강사(强仕)의 나이 : 40세를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나이 사십을 강이라고 하니, 이때에 벼슬길에 나선다.[四十曰强而仕]”는 말이 나온다.
[주D-001]도리꽃 : 도 리는 문생(門生)을 뜻하는 말로, 부원군(府院君)의 문생들이 대거 참여하여 연회를 더욱 빛내고 있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적인걸(狄仁傑)의 문생 출신인 요원숭(姚元崇) 등 수십 인이 모두 명사(名士)가 되었으므로, “천하의 복사꽃과 오얏꽃이 모두 공의 문에서 나왔다.[天下桃李 悉在公門矣]”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도리(桃李)가 문생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資治通鑑 唐紀23》
굉유곡(宏幽谷)을 보내면서 |
|
장경(藏經)의 바다가 천지에 떠 있건만 / 藏海浮天地
먼지 낀 이 세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 塵寰亘古今
죽음과 삶을 그 누가 요리할 수 있으리요 / 死生誰得辦
늙음과 병이 저절로 서로 침노하는 것을 / 老病自相侵
두 눈은 외물에 끌려 흐리터분하다 해도 / 物累迷雙眼
한 마음은 오묘해라 참된 기틀 드러내니 / 眞機妙一心
우리 스님 모쪼록 뒤로 물러서지 말고 / 請師無退轉
부지런히 공덕 쌓아 울창한 숲 이루시길 / 功德鬱成林
기로(耆老) 재추(宰樞)의 글을 받아 보니 공함(公緘)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내용은 나에게 회의에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뛸 듯이 기쁜 나머지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
빛나는 뭇 어진 이들 모두가 노성하니 / 赫赫群賢盡老成
목동은 이에 비해 실로 초라한 서생이라 / 牧童眞箇一寒生
원로의 잔치에 몇 번인가 끼이긴 하였지만 / 幾陪國老曾歡宴
국사를 함께 논하다니 두렵고도 놀랍도다 / 始與□□倍震驚
정책은 왕도로 결정하니 종사가 굳건하고 / 決策談王宗社固
시대는 성군을 만났으니 산해가 청명해라 / 逢辰樂聖海山淸
지금부터 남신의 거리 필마로 달려가서 / 從今匹馬南新路
흰머리 표표히 나부끼며 그 뒤를 따르리라 / 白髮飄然逐後行
자 은종(慈恩宗)의 우세군(祐世君)이 해안사(海安寺)에서 경(經)을 강론하였다. 이에 종덕(種德) 부추(副樞)가 술과 음식을 조금 가지고 가서 대접하게 되었는데, 노부(老夫)는 몸이 피곤해서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시 한 수만 읊었다. |
|
해안이라 보배 사찰 성 서쪽을 비추나니 / 海安寶刹照城西
소나무 구름에 닿고 골짜기 새 우짖는 곳 / 松樹連雲谷鳥啼
날마다 경을 강론하고 승려와 토론 벌이면서 / 日日經科僧問辯
때때로 객의 손을 잡고 술동이도 비운다오 / 時時樽酒客携提
다른 세계 꾸며 주려 꽃은 나무에 활짝 피고 / 粧成異境花生樹
평평한 들판 가로질러 물은 시내에 넘치리라 / 界破平田水漲溪
숙취가 아직 깨지 않아 멀리 나가기 어려운데 / 身被宿酲難遠出
한낮에 우는 닭소리가 남쪽 창가에 또 들리네 / 南窓又聽午時鷄
초여름 날의 즉흥시 2수(二首) |
|
사월이라 화창한 날 세상도 평온한 때 / 四月淸和世道平
노옹의 눈 밑으로 시흥이 슬슬 일어나네 / 老翁眼底好詩生
높고 낮은 버들 속에 안개도 함께 침침하고 / 高低柳樹煙俱暗
흐드러진 복사꽃에 빗줄기 유달리 환하도다 / 爛熳桃花雨更明
맑은 경치 재촉하는 긴 낮의 따스한 바람이요 / 遲日暖風催淑景
그윽한 정취에 걸맞은 녹음 속의 꾀꼬리로세 / 綠陰黃鳥可幽情
의관을 차리고 늙은이들 모임에 찾아가서 / 整冠欲赴耆英會
병든 뒤의 내 모습을 서울에 한번 보여 줄까 / 病後光華照鳳城
적막한 집에 비 짙으니 마음이 또 편치 못해 / 雨暗幽齋意不平
꽃을 보려다 다시금 허무한 인생을 탄식하노라 / 欲看花又歎浮生
공명도 이젠 끝장이라 이 몸은 벌써 늙었는데 / 功名已矣一身老
계절의 경치는 여전해라 두 눈이 새삼 뜨이누나 / 節物依然雙眼明
틈이 나면 중을 찾아 세상 번뇌도 모두 잊고 / 有暇尋僧忘俗累
지금부터는 사람들과도 뜻 맞추면서 살아야지 / 從今□□當人情
날씨가 조금 개면 남산에 오르고 싶다마는 / 少晴便上南山頂
꽃 대신 녹음만 가득 성을 채울까 걱정일세 / 政恐紅稀綠滿城
최 시중(崔侍中)이 장차 해풍군(海豐郡)을 순시할 즈음에 기마(騎馬)를 보내 나를 부르면서 “하루저녁 우리 함께 시를 지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기에, 내가 너무도 기쁜 나머지 붓을 잡고 곧장 시 한 수를 지었다. |
|
철원이 이룬 공업 우리 동방을 뒤덮었는데 / 鐵原功業蓋東陲
때로 창을 비껴 잡고 시 짓기 또 즐겨하네 / 橫槊時時愛賦詩
이 얼마나 행운인가 태평 시대의 잔치 자리 / 幸此升平方燕喜
쓸모없는 쇠한 몸도 따라가 모실 수 있다니 / 在於衰朽亦追隨
세상에 응당 짝이 없을 사공의 진속이요 / 謝公鎭俗應無偶
모범으로 삼아야 할 조상의 영민이라 하리 / 曹相寧民是所師
멀리서 봐도 논에 비가 충분히 내렸을 터 / 遙想水田新雨足
조정의 근심 걱정을 하늘도 아셨을 테니까 / 廟堂憂念上天知
[주D-001]철원(鐵原)이 …… 즐겨하네 : 철 원부원군 즉 최영(崔瑩)이 무략(武略)뿐만 아니라 문재(文才)를 겸비하여 시 짓기를 좋아한다는 말이다. 조조(曹操)와 조비(曹丕)ㆍ조식(曹植) 부자가 전장(戰場) 속에서도 창을 비껴 잡고 말 위에서 시를 읊었다는 〈횡삭부시(橫槊賦詩)〉의 일화가 당(唐)나라 원진(元稹)의 〈두보(杜甫) 묘지명〉 서문에 나온다.
[주D-002]사공(謝公)의 진속(鎭俗) : 위 급한 상황을 맞아 인심이 흉흉할 적에도 묵묵히 세상을 진정시켜 안정을 되찾게 하는 것을 말한다. 전진(前秦)의 왕 부견(苻堅)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회비(淮肥)까지 진군하자 동진(東晉)의 서울이 진동하며 모두 두려움에 떨었는데,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 사안(謝安)이 군대를 보내 격파하게 하고는 태연히 바둑을 두어 안심시키면서 승첩의 보고를 기다렸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주D-003]조상(曹相)의 영민(寧民) : 법 령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백성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를 말한다. 전한(前漢)의 조참(曹參)이 제(齊)나라 승상으로 있으면서 황로(黃老)의 청정무위(淸靜無爲)를 숭상하여 백성을 다스려 현상(賢相)이라고 일컬어졌고, 또 소하(蕭何)가 죽은 뒤에 한나라의 승상이 되어서도 일절 법령과 제도를 변경하는 일 없이 민생의 안정을 도모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卷39 曹參傳》
흐린 하늘 |
|
분수 밖의 부름받고 기쁨이 얼굴에 넘치는데 / 分外承招喜溢顔
날이 궂으니 뼈마디가 왜 이렇게도 쑤시는지 / 天陰我骨政辛酸
우리 시중의 맑게 부는 바람의 힘에 편승해서 / 欲憑黃閣淸風力
안장 위에 뛰어올라 부운을 한번 쓸어 볼까 / 掃去浮雲躍上鞍
갠 하늘 |
|
우리 시중의 맑은 바람 해동에 가득하여 / 黃閣淸風滿海東
구름 모두 사라지고 해가 밝게 솟았도다 / 群陰消盡日曈曈
노부야 그저 쇠해 빠진 몸을 한할 뿐이지만 / 老夫獨恨摧頹甚
강가에 창을 비껴든 분 일세의 영웅이시라오 / 橫槊臨江一世雄
어제 한 청성(韓淸城)과 남산에 올라가 꽃구경을 하고 돌아와서 짓다. |
|
몸은 비록 쇠했어도 흥은 넉넉한 목로라면 / 牧老雖衰興有餘
어떤 그림도 못 미칠 우리 형주의 풍채로세 / 荊州風采畫難如
남산 꼭대기에 올라 복사꽃 오얏꽃 굽어보고 / 俯看桃李南山頂
사월 초의 하늘과 땅을 마주 대하고 앉았어라 / 對坐乾坤四月初
중간에 잠깐 헤어져서 승상부에 들렀다가 / 分轡中途參相府
다시 나란히 남쪽 동네 우리들의 초막으로 / 聯裾南里愛吾廬
해질 녘에 높이 누워 읊조리고 파람 부니 / 日斜高枕吟仍嘯
유유해라 나의 신세 자허에게나 붙여 볼까 / 身世悠悠付子虛
[주D-001]형주(荊州) : 청 성군(淸城君) 한수(韓脩)가 한 형주(韓荊州)와 성씨가 같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당(唐)나라 한조종(韓朝宗)이 형주 장사(荊州長史)로 명망이 높아 한 형주로 일컬어졌는데, 이백(李白)의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에 “태어나서 만호후에 봉해지기보다는 한 번만이라도 한 형주를 알기를 원한다.[生不用萬戶侯但願一識韓荊州]”는 말이 나온다.
[주D-002]다시 …… 초막으로 : 개 경에서 한수와 목은은 같은 동네인 버들골[柳洞]에서 살았다. 도잠(陶潛)의 시에 “초여름에 풀과 나무 무성하게 자라나서, 집을 에워싸고 나뭇가지 우거졌네. 새들도 깃들 곳이 있어서 좋겠지만, 나도야 내 초막을 사랑한다오.[孟夏草木長 繞屋樹扶疏 衆鳥欣有托 吾亦愛吾廬]”라는 표현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4 讀山海經》
[주D-003]해질 녘에 …… 붙여 볼까 : 현 실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꿈 같은 생활을 지금 실컷 음미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자허부(子虛賦)〉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가공의 인물인 자허(子虛)가 초(楚)나라 사신으로 제(齊)나라에 가서 역시 허구적인 인물인 오유 선생(烏有先生)과 문답을 나누는 것으로 되어 있다.
수시중(守侍中)의 부름을 받고 짓다. 이때 공이 승천부(升天府)의 군영(軍營)에서 송주회(送酒會)를 베풀었다. |
|
남쪽 교외 푸르른 여름 게다가 꾀꼬리 소리 / 南郊夏綠又鶯啼
점점이 남은 붉은 꽃잎 말굽 위에 붙어 있네 / 點點殘紅襯馬蹄
영웅호걸 함께 어울려 노니는 이 자리에 / 政是英豪共游豫
쇠하고 병든 몸도 부축을 받으며 끼이다니 / 怪來衰病亦扶携
언덕 너머 산봉우리 하늘에 푸르름 잇닿고 / 山峯隔岸靑磨漢
공중에 뜬 못물은 제방에 초록색 넘실대네 / 池水浮空綠灩堤
다만 한스러워라 술이여 어디로 가시는가 / 只恨麴生何處去
안개 물결 아득하고 달이 처음 기우는 때 / 煙波渺渺月初低
[주C-001]송주회(送酒會) : 술을 떠나보내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고려 시대에 큰 가뭄이 들면 궁중을 비롯해서 온 나라에 금주령(禁酒令)을 내리곤 하였는데, 이 시는 그때의 일을 읊은 듯하다.
도 중에 한 정당(韓政堂)을 만나 함께 길을 가다가 또 이 이상(李二相)을 만났는데, 군영(軍營)에 도착하니 염동정(廉東亭)과 우 정당(禹政堂)과 유 밀직(柳密直)이 또 잇따라 이르렀다. 한 정당이 자기 막사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나에게 제의하였는데, 우와 유도 모두 한공의 막사 안에서 식사하면서 별미가 있으면 서로들 권하곤 하였다. 이윽고 수시중(守侍中)이 군관(軍官)들과 모내기를 끝내고 와서 크게 풍악을 울리고 술과 음식을 성대하게 차리고는 술을 전송하는 의식을 시작했는데 한밤중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내가 노숙(露宿)하는 것을 겁내자 염동정이 자기 부친의 농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아침밥을 먹고 군영에 돌아오니 술과 음식이 또 성대하게 앞에 차려져 있었으며, 홍 판삼사사(洪判三司事)가 또 궁중의 술을 받들고 와서 노고를 위로하였다. 그리고 이날 중방(重房)에서도 승천부(升天府) 못의 제방을 보수하였기 때문에 중방이 또 성대한 음식을 차려 내었다. 자리를 파하고 나서 동정과 함께 우 정당ㆍ임 오재(林五宰)ㆍ도 우사(都右使)ㆍ유 판추(柳判樞)ㆍ이 광양(李光陽)ㆍ김 밀직(金密直) 등과 동행하여 개경으로 돌아오다가 중도에 조그마한 봉우리 위에 올라가서 또 술을 마셨다. 이때 여러 기녀(妓女)들도 부름을 받고 모였으며, 연구(聯句)는 길을 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쉬는 법이 없이 지었다. 집에 돌아와서 조금 쉬고 있을 때 종덕(種德)이 또 술과 음식을 차려서 내왔으니, 이는 내가 밖에 나가서 노닐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죽성군(竹城君) 안공(安公)의 서한을 받아 보니, 문생이 성명을 적은 족자(簇子)를 바치면서 베푸는 연회에 참석해 주면 좋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기에, 내가 흐뭇한 기분이 들어서 이 일도 함께 기록하였다. |
|
시중의 초대받는 일은 세상에 흔히 없는 일 / 侍中招喚世應稀
자리에 참석한 뭇 영걸들 백옥처럼 빛나누나 / 照座群英玉有輝
목로의 흥겨운 마음이야 더욱 뛸 듯하다마는 / 牧老喜心尤躍躍
술을 보내는 한은 유독 떨쳐버리지 못하겠네 / 麴生離恨獨依依
평소처럼 풍악을 울리게 허락을 받은 이 자리 / 笙簫已許尋常擁
태양을 언제 가까이 모시지 않은 적 있었던가 / 天日何曾咫尺違
돌아와 받은 축수의 술잔도 행복감을 안기는데 / 歸飮壽觴仍自幸
죽성군의 서한이 또 사립문 환하게 비춰 주네 / 竹城書札照柴扉
[주D-001]태양을 …… 있었던가 : 임 금의 위엄이 그 자리에도 엄연히 임하고 있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제 환공(齊桓公)이 주 양왕(周襄王)이 하사한 제육(祭肉)을 받고 “천자의 위엄스러운 빛이 나의 이마에서 지척의 거리도 떨어져 있지 않다.[天威不違顔咫尺]”고 말한 고사가 있다. 《春秋左傳 僖公9年》
죽 성군(竹城君)이 문생 급제자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름을 적은 족자를 좌주(座主)에게 바쳤기 때문이었다. 두 분 시중(侍中)은 동쪽을 향하였고, 판삼사(判三司) 성 정당(成政堂)과 한 정당(韓政堂) 및 나는 북쪽에 있었고, 정 남경(鄭南京)과 민 밀직(閔密直)과 안 밀직(安密直)은 서쪽을 향하였고, 문생들은 동쪽 대청에 있었다. 기악(妓樂)이 교대로 울리는 가운데 연구(聯句)를 지으며 매우 즐겁게 노닐다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
|
죽성의 풍도와 운치 우리 동방에 가득한데 / 竹城風韻滿東方
옥순이 또 벌여 서서 화려한 집을 비추누나 / 玉笋森森映畫堂
엄격히 선발된 청전이라 재주와 덕망이 뛰어나 / 妙選靑錢才德茂
높이 드리운 흰 비단 위에 성과 이름도 향기롭네 / 高垂白絹姓名香
동년이 거의 다 죽었으니 공도 늙은 줄 알고말고 / 同年甚鮮知公老
밤 되어 돌아갈 즈음에 나의 광기가 또 발동했네 / 入夜將歸發我狂
총재가 모두 임석했으니 얼마나 성대한 자리인가 / 冢宰俱臨眞盛事
예로부터 성조에서는 문장을 소중히 여겼느니 / 聖朝從古重文章
[주D-001]죽성(竹城)의 …… 가득한데 : 순 흥안씨(順興安氏) 집안의 화려한 명성을 찬양한 말이다. 안축(安軸)ㆍ안보(安輔)ㆍ안집(安輯) 삼 형제가 등과(登科)한 뒤를 이어, 안보의 세 아들이 다시 등과하였으며, 또 안축의 막내아들인 안종원(安宗源)의 삼 형제가 등과를 하였다. 제목에 나오는 죽성군은 바로 안종원으로, 목은과는 신사년의 진사시(進士試)에 함께 입격한 인연을 갖고 있다. 죽성은 죽계(竹溪) 즉 순흥의 별호이다.
[주D-002]옥순(玉笋) : 급제한 문생을 가리킨다. 당(唐)나라 이종민(李宗閔)이 시관(試官)이 되어 선발한 문생들 모두가 저명 인사였으므로 당시에 옥순이라고 불렀던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74 李宗閔列傳》
[주D-003]청전(靑錢) : 재 능이 출중한 급제자를 일컫는 말이다. 당나라 장작(張鷟)이 진사(進士)에 등제(登第)하자,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 건미도(騫味道)가 그의 문장을 마치 청동전(靑銅錢) 같다고 칭찬한 뒤로부터 그를 청전학사(靑錢學士)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61 張薦列傳》
원재(圓齋) 정당(政堂)이 와서, 오늘 동년회(同年會)를 열 것이니 정오가 되면 오라고 하기에, 기뻐서 한 수 짓다. |
|
빈자는 돈이 없고 부자는 돈을 아끼는 터에 / 貧者無錢富守錢
빈자도 부자도 아닌 이는 우리 공권 혼자뿐 / 不貧不富獨公權
정당 취임 축하하려고 오래전부터 별렀는데 / 政堂相賀謀來久
누항에 직접 와 부르다니 기뻐서 넘어질 듯 / 陋巷親招喜欲顚
꽃을 남겨 둔 여름 경치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 夏景留花明又暗
맑은 날 해를 놀리는 구름 끊어졌다 이어졌다 / 晴雲弄日斷還連
그 누가 한산자처럼 늙어서 먹는 걸 욕심낼까 / 老饞誰似韓山子
정오가 다 되자 의관 차리는 모습이 우스워라 / 笑整衣冠近午天
[주C-001]원재(圓齋) : 정추(鄭樞)의 호이고, 자(字)는 공권(公權)이다.
원재의 석상에서 주인이 시를 읊기에 그 시에 차운하다. |
|
며칠 내내 퍼마시며 송주시를 읊조리다 / 數日連吟送酒詩
병든 끝에 서성에 또 도취하게 되었구만 / 病餘徐聖又中之
취향엔 원래 봄을 감춰둔 땅이 있나니 / 醉鄕自有藏春地
남쪽 가지 북쪽 가지 따지지 마시기를 / 莫問南枝與北枝
[주D-001]송주시(送酒詩) : 술을 떠나보내는 시라는 뜻이다. 고려 시대에 큰 가뭄이 들면 궁중을 비롯해서 온 나라에 금주령(禁酒令)을 내리곤 하였는데, 이 시는 그때의 일을 읊은 듯하다.
[주D-002]서성(徐聖) : 서 막(徐邈)의 성인(聖人)이란 뜻으로 술을 가리킨다. 흔히 청주(淸酒)를 성인에 비유하고 탁주(濁酒)를 현인에 비유하곤 하는데, 삼국 시대 위(魏)나라 서막이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마시다 적발되자 “성인에게 도취되었다.[中聖人]”고 익살을 부린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27 魏書 徐邈傳》
[주D-003]취향(醉鄕)엔 …… 마시기를 : 술 에 취한 사람의 기분은 온화하고 평온해서 언제나 꽃이 피어 있는 봄날과 같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왕적(王績)의 〈취향기(醉鄕記)〉에 “취향의 날씨는 항상 온화하고 평온하며, 밤과 낮이나 춥고 더움을 느끼지 못한다.[其氣和平一揆無晦明寒暑]”는 말이 나오고, 《백공육첩(白孔六帖)》 매부(梅部)에 “대동령의 매화는 남쪽 가지의 꽃이 떨어질 때 북쪽 가지의 꽃이 피니, 이는 춥고 더운 날씨의 차이 때문이다.[大東嶺上梅南枝落北枝開 寒暖之候異]”라는 말이 나온다.
간밤의 숙취가 깨지 않은 상태에서 소리 높이 한 수 읊조리다. |
|
술을 좋아하다 술병에 거꾸로 걸린 이 몸 / □酒翻成酒病
봄은 갔어도 봄의 나른함 여전히 즐기노라 / 送春賸得春慵
이쯤은 되어야 노년의 광경이라 할 것이니 / 此是老年光景
어디서나 느긋하게 지낸들 무슨 상관이랴 / 何妨到處從容
을사년에 급제한 문생이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왔으니, 역시 주금(酒禁) 때문이었다. |
|
함께 문인에 나아온 지 어느덧 열일곱 해 / 同赴文茵十七年
흰머리 좌주는 병으로 여태 골골거린다네 / 白頭座主病纏綿
그 당시 옥 같았던 이십팔 명의 미소년들 / 當時卄八美如玉
오늘은 연기처럼 동서로 뿔뿔이 흩어졌네 / 今日東西散似煙
술 보낸단 명분으로 찾아와 위로하는 자리 / 送酒爲名來見慰
단장취의하며 서로 연구(聯句)를 지었어라 / 斷章取義迭相聯
홍정이 바로 승려의 의발과 같다 할 것인데 / 紅鞓卽是僧衣鉢
행여 쇠한 늙은이가 손수 전할 수 있을는지 / 儻見衰翁手自傳
[주D-001]함께 …… 해 : 을 사년(1365, 공민왕14)의 문과(文科)를 행한 지 벌써 17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말이다. 문인(文茵)은 수레에 까는 호피(虎皮) 무늬의 방석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시관(試官)의 자리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 시는 목은 55세 때의 작품이다.
[주D-002]단장취의하며 …… 지었어라 : 원 래 송주(送酒)는 선물로 술을 보내 준다는 뜻이지만, 이 시에서의 송주는 술을 떠나 보낸다는 뜻이므로, 본의에 구애받지 않고 적당한 구절만을 부분적으로 취해서 마음대로 시를 지었다는 말이다. 도연명(陶淵明)이 중양절(重陽節)에 술 생각이 간절할 때, 자사(刺史) 왕홍(王弘)이 백의인(白衣人)을 보내 술을 선물했다는 ‘백의송주(白衣送酒)’의 고사가 특히 유명하다. 《宋書 卷93 陶潛列傳》
[주D-003]홍정(紅鞓)이 …… 있을는지 : 홍정은 당상관(堂上官)의 겉옷에 띠는 홍색의 술띠를 말하는데, 불가(佛家)에서 의발을 통해 법통(法統)을 전하는 것처럼, 목은 자신이 홍정을 띤 문생들의 모습을 생전에 볼 수 있게 될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
|
새벽 창가 옅은 안개 깁보다 더 하늘하늘 / 曉窓輕霧薄於紗
푸른 그늘 숲 사이에 진 꽃잎이 보이도다 / 綠暗林間見落花
오늘 저녁 관등놀이 이번엔 또 어디라지 / 今夕觀燈又何處
작은 봉우리 그림처럼 일천 집을 누르는 곳 / 小峯如畫壓千家
혹시나 비가 내려 골짜기 메우면 어떡하나 / 却恐雨師埋嶽瀆
바람 불어 모래 날리면 무엇보다 큰일일세 / 最嫌風伯捲塵沙
가리는 것 하나 없이 모쪼록 하늘 맑기만을 / 願天澄霽無纖靄
선명한 별자리 기울도록 앉아서 볼 수 있게 / 坐見星躔整復斜
얼마 있다가 구름이 걷히기에 너무도 기쁜 나머지 또 한 수 읊다. |
|
잠깐 사이에 벽사(碧紗)처럼 푸르러진 하늘빛 / 須臾天色碧如紗
나가 보고도 싶다마는 눈앞이 어른거리는걸 / 游眺還嫌眼有花
어디를 가든 부처의 생일 소리 높이 불러 대며 / 處處皆呼佛生日
서울 시가지 집들마다 등불이 줄을 이으리라 / 燈燈相續鳳城家
누대에서 두강(杜康)의 술을 끝없이 기울이노라면 / 無限樓臺傾杜酒
그 속에 세상의 낙이 항하(恒河)의 모래와 같으련만 / 於中世□等□沙
대보름 명절의 성대함과 견줄 수 있는 오늘의 일 / 上元盛事眞堪比
왕명을 받들어 붓에 먹을 적시는 사람은 누구일꼬 / 應制何人點筆斜
[주D-001]두강(杜康)의 술 : 두강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술을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술을 보통 두주(杜酒)라고 부르게 되었다.
[주D-002]항하(恒河)의 모래 : 불경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숫자를 비유할 때 쓰는 상투적인 표현이다.
이 이상(李二相)이 그의 아우 밀직공(密直公)을 나에게 보내 관등놀이를 함께 구경하자고 초청하였다. 그 자리에 갔더니 빈객이 성황을 이룬 가운데 술과 음식이 갖추어져 있었다. 닭이 울 때쯤 해서 자리를 파한 뒤에 잠깐 쉬면서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
흰 눈썹 추상께서 내 집에 홀연히 왕림하여 / 白眉樞相忽臨門
흐린 눈 한번 씻으라고 관등 구경 초청했네 / 招我觀燈洗眼昏
화려한 기둥에 땅거미 슬슬 지는 저녁 어스름 / 漸見暮痕侵畫棟
금술잔에 봄빛이 가득 다시 와서 머물렀네 / 更留春色滿金樽
건네고 받는 술잔 속에 흘러넘치는 즐거움 / 獻酬盛禮歡情洽
읊고 답하는 시 속에 등장하는 멋진 경치들 / 唱和新聯美景繁
광채를 발하는 태평 시대 묘사하는 이때 / 描得太平光彩出
뭇별들이 찬란하게 온 누리를 비춰 주네 / 衆星粲粲照乾坤
[주D-001]흰 눈썹 : 형 제 중에 걸출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이 밀직(李密直)을 가리킨다. 삼국 시대 촉(蜀)나라 마량(馬良)이 다섯 형제 가운데 뛰어난 면모를 보였는데, 그의 눈썹에 흰 털이 있었으므로 백미(白眉)라고 불렸다고 한다. 《三國志卷39 蜀書 馬良傳》
통 주(通州)의 자복사(資福寺) 주지 남가천(南可泉)이 헤어진 지 일 년 만에 오늘 나를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동년(同年)인 김원수(金元粹)의 집이 어렵게 되었다고 언급하였다. 이에 내가 붓을 달려 그에게 주면서 김 동년에게도 이 시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
|
가천이 연경으로 유람을 떠난 뒤로 / 可泉游大都
함께 어울려 노닌 지도 오래됐구려 / 久矣伴淸娛
우리 동년은 아직도 호기가 만발한데 / 同榜足豪氣
나는야 그동안 부유가 되고 말았다오 / 邇來成腐儒
서로들 응당 만나 보아야 할 터인데 / 相逢應有數
병이 많아 끝내는 어찌 될지 모르겠소 / 多病竟難圖
지허가 등불 앞에 얘기를 하다 보면 / 支許燈前話
노부도 화제에 끼어들 줄 아다마다요 / 遙知及老夫
[주D-001]지허(支許) : 진 (晉)나라 고승 지도림(支道林)과 고사(高士) 허순(許詢)이 유불(儒佛)의 차이를 떠나 돈독한 우정을 맺었던 데에서 유래하여, 친하게 지내는 승려와 문사(文士)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는 남가천(南可泉)과 김원수(金元粹)를 지칭한다. 《世說新語 文學》
육언(六言) 3수(三首) |
|
공업은 붓끝에서 거두어 오고 / 功業收來筆底
시비는 술잔 앞에서 쓸어버리고 / 是非掃去樽前
대낮에 꽃향기 동산에 가득할 때 / 白日花香滿院
반쯤 취해 시 몇 수 지어도 보고 / 半酣剩得詩聯
한가한 이끼의 빛은 방 안에 들어와 푸르르고 / 閑蘚入房靑了
날리는 꽃은 술을 보내며 붉은빛이 쇠잔해라 / 飛花送酒紅殘
편히 쉬면서 몸에 좋다는 약만 먹어야 할 텐데 / 偃息唯求藥餌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술잔만 입에다 퍼붓누나 / 招呼每集杯盤
정절 선생 술잔 앞의 하늘과 땅이요 / 靖節樽前天地
유안 처사 바다 밖의 강과 산이로다 / 幼安海外江山
한번 물어보세 누가 둘 다 가졌는지 / 借問何人兼有
읊고 파람 불며 항상 한가한 목옹일세 / 牧翁吟嘯長閑
[주D-001]정절(靖節) 선생 : 동진(東晉) 도연명(陶淵明)의 사시(私諡)이다. 〈귀거래사〉를 읊고 전원에 돌아와 살면서 술을 좋아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D-002]유안(幼安) 처사 : 유안은 동한(東漢) 관녕(管寧)의 자(字)이다. 영제(靈帝) 말년에 난리를 피해 도해(渡海)하여 요동(遼東)으로 건너간 뒤에 조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예절을 가르치며 검소한 생활로 일관하였다.
김 대간(金大諫)이 나를 찾아와서, 어제는 상관(上官)이 술을 금했기 때문에 황봉주(黃封酒)를 마시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가 떠나고 난 뒤에 육우(六友)에 대한 시 세 수를 지어 읊었다. |
|
시와 술로 멋대로 지내며 만년이 되었다만 / 詩酒淸狂到晚年
나는야 금곡엔 침을 뱉고 평천을 벗하노라 / 僕奴金谷與平泉
급암이 남긴 운치에 그 누가 비슷할까마는 / 及菴餘韻誰能似
육우의 풍류가 그래도 전인보다 낫겠는걸 / 六友風流却勝前
조정에서 바라는 건 바로 풍년이니 / 朝廷所欲是豐年
상운과 예천인들 어디에다 쓰겠는가 / 何用祥雲與醴泉
벼 익고 물고기 살지면 주금도 풀리리니 / 稻熟魚肥開酒禁
그때 술상 앞에 풍악 울려도 좋으리라 / 不妨琴瑟列樽前
최소년의 나의 벗은 오직 간의뿐 / 諫議唯吾最少年
날마다 황봉주를 샘물처럼 마시는데 / 黃封日日酒如泉
육우의 풍류가 도리어 우습게도 보이나니 / 風流六友還堪笑
노대는 술 없이도 작약 앞에서 시 읊는걸 / 老大醒吟芍藥前
[주C-001]육우(六友) : 김 대간 즉 김경지 구용(金敬之九容)의 당호(堂號)이다. 육우는 소강절(邵康節)의 풍(風)ㆍ화(花)ㆍ설(雪)ㆍ월(月)에 강(江)과 산(山)을 합친 것인데, 《목은문고》 제3권 〈육우당기(六友堂記)〉에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주D-001]금곡(金谷) : 진(晉)나라 위위(衛尉) 석숭(石崇)의 그지없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별장의 이름인데, 밥을 지을 때에도 장작 대신에 납촉(蠟燭)을 쓸 정도였다고 한다. 《世說新語 汰侈》
[주D-002]평천(平泉) : 당 무종(唐武宗) 때의 명재상인 이덕유(李德裕)의 별장 이름인데, 기화요초(琪花瑤草)와 기암괴석이 즐비하여 마치 선경(仙境)에 온 것 같은 흥취를 자아내었다고 한다. 《刷談錄 李相國宅》
[주D-003]급암(及菴)이 …… 낫겠는걸 : 시 주(詩酒)를 즐기기로 유명했던 급암 민사평(閔思平)에 비교해 보아도 김구용(金九容)이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목은문고》 제16권 〈언양군부인(彦陽郡夫人) 김씨(金氏)의 묘지명〉에 “급암은 날마다 시와 술로 유유자적하였을 뿐, 집안의 살림살이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으며 모두 부인이 하는 대로 맡겨 두었다. 부인은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외조부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면서도 혹시 부족한 점이 있지 않을까 날마다 걱정하였다.”는 말이 나오는데, 김구용은 바로 급암의 외손자이다.
[주D-004]상운(祥雲)과 예천(醴泉) : 오색구름과 감미로운 샘물이라는 뜻으로, 예전에 상서롭고 길한 현상으로 여겨져 왔다.
[주D-005]벼 …… 좋으리라 : 고려 시대에 큰 가뭄이 들면 국가에서 금주령(禁酒令)을 내리곤 하였는데, 비가 흠뻑 내려서 풍년이 들면 그때 마음껏 주연을 즐겨도 괜찮을 것이라는 말이다.
[주D-006]최소년(最少年)의 …… 간의(諫議)뿐 : 목 은이 형제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벗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은 바로 김구용이라는 말이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나이 차이가 열 살이 나면 형으로 모신다.[十年以長 則兄事之]”는 말이 나오는데, 김구용은 목은보다 꼭 열 살 아래의 후배이다.
한맹운(韓孟雲)에게 봉정하다. |
|
육서를 통해 형성을 가려낼 뿐 아니라 / 六書非獨辨形聲
천 수의 시가 경중과 또한 관계되는 분 / 千首仍兼繫重輕
시구를 원활히 운용해서 조금도 막힘없고 / 句律活圓無少滯
붓끝 역시 단정하여 맑은 여운이 감돈다오 / 筆鋒端正有餘淸
가슴이 툭 트이는 누대의 바람과 달이요 / 高樓風月心中闊
눈 아래 펼쳐지는 별장의 강과 산이로세 / 別墅江山眼底平
우스워라 그대와 이웃하며 담소를 하다 / 自笑卜隣陪笑語
백구와의 맹약을 까맣게 잊고 말았으니 / 頓忘寒了白鷗盟
꿈에서 깨니 두세 마디 꾀꼬리 소리 구르고 / 夢覺流鶯三兩聲
뜨락에는 제비의 춤이 또 경쾌하게 펼쳐지네 / 庭中燕舞又輕輕
천기가 발동하는 곳에 자연의 묘한 이 도리여 / 天機動處自然妙
야흥이 일어나는 때에 끝없이 맑은 이 정취여 / 野興生時無限淸
내 신세 유유해라 벌써 늙은 게 놀라운데 / 身世悠悠驚老大
강변은 적적해라 태평의 기상이 완연하네 / 江上寂寂占升平
만물이 우리의 벗인 것을 아는 이 누구일꼬 / 誰知萬物是吾與
다행히 나와 맹약 맺은 서쪽 이웃이 계시다오 / 幸有西隣同我盟
문간이 적막해서 신발 소리도 안 들리는데 / 寂寂門庭無履聲
소세하고 가뿐하게 차릴 필요가 또 있을까 / 此身何待洗來輕
구름 걷히자 먼 산이 남쪽 누각을 옹위하고 / 雲收山拱南樓遠
해도 긴 날 맑은 바람이 북쪽 창에 불어오네 / 日永風來北牖淸
그윽한 정취 안배하느라 급급하지는 않소마는 / 幽事安排非汲汲
새 시의 평점은 모조리 평범하기만 하오그려 / 新聯評點盡平平
늙어 가며 호기가 심하니 욕을 얻어먹을밖에 / 老來狂甚應遭罵
매번 시단을 향해 맹주의 욕심만 부리니까 / 每向詩壇欲主盟
[주D-001]육서(六書)를 …… 분 : 한 수(韓脩)는 자(字)가 맹운(孟雲)인데, 서법(書法)에 능할 뿐만 아니라 시문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다. 육서는 원래 글자를 만드는 여섯 가지 방법으로, 그중에 형성(形聲)이 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비롯하여 여섯 가지 서체(書體)를 뜻하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주D-002]만물이 우리의 벗 : 송유(宋儒) 장재(張載)의 〈서명(西銘)〉 첫머리에, “우주 만물 모두가 천지(天地)를 부모로 하여 태어난 만큼,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형제요 만물은 우리의 벗이다.[民吾同胞 物吾與也]”라는 말이 나온다.
금석(金石) |
|
금석은 팔음 중에 으뜸이라서 / 金石冠八音
신과 사람이 서로 느껴 통하나니 / 神人相感通
견고한 그 공덕을 몸받는다면 / 堅也載功德
만세토록 무궁히 전해지리로다 / 萬世傳無窮
반면에 시대가 흥망을 거듭함은 / 時代有興替
마치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가 / 如鳥投長空
바라보는 사이에 사라짐과 같나니 / 望之已滅沒
어떻게 그 자취를 찾을 수 있으랴 / 何能尋其蹤
그런데 내가 금석의 시를 지으면서도 / 我作金石篇
청풍이 못 되는 것이 길이 부끄럽도다 / 永愧非淸風
[주D-001]금석(金石)은 …… 으뜸이라서 : 팔음(八音)은 악기를 만드는 여덟 가지 재료 혹은 여덟 가지 악기로, 금(金)ㆍ석(石)ㆍ사(絲)ㆍ죽(竹)ㆍ포(匏)ㆍ토(土)ㆍ혁(革)ㆍ목(木)을 말하는데, 이 중에서 금석이 첫째 자리를 차지한다는 말이다.
[주D-002]신과 …… 통하나니 : 《서경》 순전(舜典)에 “팔음을 제대로 조화시켜 서로 질서를 잃지 않게 하면 신과 사람 사이에 화기가 감돌게 될 것이다.[八音克諧 無相奪倫 神人以和]”라는 말이 나온다.
기사(紀事) |
|
나는 병들어 아침마다 기상이 가장 늦는데 / 我病朝朝起最遲
오늘은 깜짝 놀랐네 창에 서리가 가득해서 / 滿牕霜冷忽驚疑
늙어가며 주역의 견빙을 음미하고 있소마는 / 老來政玩堅氷易
어렸을 때도 정월시를 일찍이 읊조렸더라오 / 少也曾吟正月詩
눈이 살구꽃 짓누른 것이 바로 어제 일 같은데 / 雪壓杏花如昨日
노루가 못물에 빠지는 것이 또 오늘 일이로세 / 獐浮池水又今時
자애로운 하늘의 마음을 분명히 볼 수 있나니 / 天心仁愛分明見
성주와 현신은 위급한 사태에 미리 대처하시기를 / 主聖臣賢保未危
[주D-001]견빙(堅氷) : 조짐을 보고 미리 대처해야 한다는 뜻으로, 《주역》 곤괘(坤卦) 초육(初六)의 “서리를 밟으면 두꺼운 얼음의 계절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履霜堅氷至]”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2]정월시(正月詩) : 《시 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소인들이 정권을 잡고 기승을 부리는 난세의 정치를 풍자한 시이다. 그 첫머리에 “사월달에 된서리 내려 내 마음 걱정이 되는데, 백성들의 뜬소문이 또 너무나 흉흉하네.[正月繁霜 我心憂傷 民之訛言 亦孔之將]”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3]노루가 …… 것 : 때에 걸맞지 않게 된서리가 내리고 살얼음이 얼어서 노루가 방심하고 못을 건너가다가 빠져서 허우적댄다는 말이다.
[주D-004]자애로운 …… 대처하시기를 : 하늘의 경고를 삼가 경청하여 그동안의 잘못된 일을 뉘우치면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영(自詠) |
|
사시가 바뀌어 또 여름철 농번기 / 四時相代又南訛
목은 선생은 집안에 누워 있나니 / 牧隱先生臥在家
이 빠지고 머리 희어 곱절이나 쓸쓸한데 / 齒髮方衰倍蕭索
문장은 또 젊어서부터 볼품이 없었다오 / 文章自少欠精華
뭇별들은 북극성을 고리처럼 옹위하고 / 星皆北拱環辰極
산맥은 서에서 달려와 해변을 누르나니 / 山自西來鎭海涯
나도 주인이 계신걸 이 마음 어찌 잊을까 / 耿耿此心元有主
작은 창가에 향 피우고 붓을 달려 보노라 / 小窓揮筆篆煙斜
광풍(狂風) |
|
거센 바람 하루 종일 길가의 먼지 풀풀 / 狂風盡日路塵揚
조용히 앉은 남쪽 창가 유장한 나의 정취 / 靜坐南窓意味長
어린 여종 풀죽은 목소리 보고하는 말 / 小婢低聲來報道
뒤뜰의 배나무가 바람에 쓰러졌다나요 / 後園梨樹已吹僵
광풍에 뒤집힌 바다 물결 하늘까지 발길질 / 狂風簸海蹴長天
일만 섬 용양의 배도 나뭇잎처럼 나부끼리 / 萬斛龍驤亦可憐
다행일세 목은의 마음 오래된 우물 같아서 / 自幸牧翁如在井
흔들림 없이 비춰 보며 느긋할 수 있으니까 / 湛然相照故恬然
말라붙은 논에 광풍이 급히도 몰아치니 / 狂風吹急水田枯
새로 움튼 벼의 싹들 제대로나 부지할지 / 新稻抽芽恐未敷
우리 집에만 대약이 없는 것이 아닐 테니 / 不獨我家無大藥
하늘이여 비를 내려 두루 적셔 주시기를 / 願天施澤普沾濡
[주D-001]일만 섬 용양(龍驤)의 배 : 곡식 일만 섬을 실을 정도로 규모가 큰 배를 말한다. 서진(西晉)의 용양장군(龍驤將軍) 왕준(王濬)이 거대한 전함을 건조하여 오(吳)나라를 정벌했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晉書 卷42 王濬列傳》
[주D-002]대약(大藥) : 밥을 먹지 않고도 거뜬히 버틸 수 있다는 도교(道敎)의 단약(丹藥)을 말한다.
유감(有感) 3수(三首) |
|
동 트면서 초가지붕 하얗게 변했나니 / 茅茨曉來白
된서리가 내렸다고 또 말들을 하는데 / 又道有淸霜
봄으로 접어든 지 벌써 보름 가까운 때 / 孟夏已幾望
노부가 그 의미를 어떻게 알 수 있으랴 / 老夫難可量
상서로운 구름은 절목의 조짐 보이고 / 祥雲兆折木
상서로운 태양은 부상에서 다시 떠서 / 瑞日出扶桑
세도는 앞으로도 태평스럽게 될 터이니 / 世道向交泰
나는야 사직하고 고향으로나 갈까 보다 / 乞身歸故鄕
복사꽃 오얏꽃이 유독 무슨 죄가 있어 / 桃李獨何事
올해는 유난히 시비에 많이 걸리는고 / 今年多是非
꽃이 피자 눈을 만나 지는가 하면 / 花開逢雪落
열매 맺자 된서리 맞아 떨어지누나 / 子結見霜飛
괜히 감흥 읊은 시 두루마리에 가득 / 漫興詩盈軸
실컷 퍼마신 술 자국 옷자락에 흥건 / 淋漓酒滿衣
유감이 있으면 당장에 풀어 버려야지 / 有懷方自遣
나는 감히 시비 잊고 무심할 수 없다오 / 不敢便忘機
술을 마시자면 귀한 손님도 맞는 법 / 酒本有佳客
나도 이제 새 집터를 마련해 볼까 / 我今將卜居
하늘과 땅은 얼마나 호호탕탕하고 / 乾坤何蕩蕩
세월은 또 얼마나 서서히 흐르는지 / 歲月亦徐徐
한번 살다 가는 것도 그저 고마운 일 / 幸得一生死
비방과 칭찬 따위 상관할 게 있으리요 / 豈知多毁譽
얕은 곳도 괜찮고 깊은 곳도 괜찮나니 / 淺深無小異
하늘과 땅 사이가 바로 나의 집이니까 / 天地卽吾廬
[주D-001]상서로운 …… 보이고 : 태 양이 서쪽으로 지기 전에 하늘 구름이 붉게 물든 것을 가지고, 태평 시대에나 보이는 상서로운 채색 구름으로 비유하면서, 은근히 당시의 세상을 풍자하는 뜻을 담았다. 절목(折木)은 절약목(折若木)의 준말로, 초(楚)나라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약목의 가지를 꺾어 태양이 지지 못하게 후려쳐서, 잠시 동안 여기저기 한가하게 소요해 볼거나.[折若木以拂日兮 聊逍遙以相羊]”라는 말이 나오는데, 약목(若木)은 해가 지는 곳에서 자라는 푸른 잎사귀에 붉은 꽃이 피는 나무라고 한다.
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1수(一首) |
|
미풍 따라 구름 색깔 짙어졌다 묽어졌다 / 雲容濃淡逐微風
뭉게뭉게 이어지며 눈 안에 가득 들어오네 / 陣陣相連一望中
남새밭 채소는 두둑에 겨우 싹이 돋고 / 小圃菜蔬才映畝
들판의 보리는 공중에 푸른빛 띠울 때 / 平田麰麥欲浮空
이륜도 변지의 힘을 통해서 알 수 있고 / 彝倫可見胼胝力
재용이 있어야 정정의 공부도 마치는 법 / 財用能終靜定功
아끼지 말고 제때에 비 한번 내려 주면 / 一雨知時如不靳
다시 진정을 토로하며 하늘에 감사하련마는 / 更披心腹謝蒼穹
[주D-001]이륜(彝倫)도 …… 있고 : 비 가 내려야 살에 못이 박히도록[胼胝] 농사를 열심히 지어 부모를 봉양하는 등 사람의 도리[彝倫]를 다할 수 있다는 말이다. 《순자(荀子)》 자도(子道)에 “손과 발에 못이 박히도록 열심히 일해서 어버이를 봉양한다.[手足胼胝 以養其親]”는 말이 나온다.
[주D-002]재용(財用)이 …… 법 : 풍 년이 들어 재정이 넉넉해야만 수기 치인(修己治人)의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학장구》에 “머물 곳을 안 뒤에야 지향할 목표가 정해지고, 지향할 목표가 정해진 뒤에야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진 뒤에야 외물에 동요되지 않을 수 있다.[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는 말이 나온다.
비가 내리는 것이 기뻐서 1수(一首) |
|
구름장은 북을 향해 홀연히 쳐들어가는데 / 行雲向北忽如奔
백발의 쇠한 늙은이는 그저 작은 마루에 / 白髮衰翁在小軒
우르릉 천둥소리 들렸다가는 멀어지고 / 隱隱雷聲聞更遠
자욱한 빗줄기에 주위는 금세 어둠침침 / 濛濛雨勢坐來昏
풍흉을 통산해서 나라의 예산을 정하는데 / 豐凶通制能爲國
늙음과 병이 침노하니 홀로 칩거할 수밖에 / 老病相侵獨掩門
여강 한 굽이로 돌아가고픈 이 흥치여 / 一曲驪江歸興動
도롱이에 삿갓을 써도 임금님의 은혜련만 / 簑衣蒻笠亦君恩
[주D-001]풍흉(豐凶)을 …… 정하는데 : 풍 년과 흉년의 수입을 통산해서 평균값을 낸 뒤에 국가의 예산을 정한다는 말이다. 《예기》 왕제(王制)에 “풍년과 흉년을 참작하여 삼십 년 간의 수입을 통산한 뒤에 나라의 예산을 정하고 수입을 헤아려서 경비를 지출한다.[視年之豐耗 以三十年之通 制國用量入以爲出]”는 말이 나온다.
[주D-002]도롱이에 …… 은혜련만 : 고 향에 돌아가서 비를 맞으며 한가롭게 낚시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삿갓 쓰고 초록색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에 가랑비 온다고 굳이 돌아갈 것 없네.[靑蒻笠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라는 구절이 나온다.
외람되게 기로회(耆老會)에 참석했다가 돌아와서 이렇게 짓다. |
|
회색빛 얼굴 흰 머리칼 예로부터 드문 일 / 蒼顔白髮古來稀
덕망도 높고 벼슬도 높아 모두가 귀의하네 / 碩德高官衆所歸
후생이 모시고 참석할 줄 생각이나 하였으랴 / 豈意後生陪杖屨
오늘 홀연히 부리나케 의관을 차리게 되었어라 / 忽然今日倒裳衣
뭇 강물은 출렁출렁 동해에 인사드리고 / 百川袞袞朝東海
뭇별들은 반짝반짝 자미를 옹위하나니 / 列宿熒熒拱紫微
내 마음속에 늘 계시는 주인님을 제외하면 / 除却吾心所存主
내 다시 어느 곳에 마음 부칠 수 있으리요 / 不知何處更堪依
[주D-001]회색빛 …… 일 : 나 이 칠십이 넘은 국가의 원로들을 표현한 말로,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에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고려 때 나이 칠십에 치사(致仕)한 대신들이 사적으로 기로회(耆老會)를 만들어 친목을 도모하였는데, 이것이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에서 예우하는 기로소(耆老所)로 제도화되었다.
[주D-002]뭇 강물은 …… 옹위하나니 : 임 금을 향한 신하의 정성을 비유한 말이다. 《서경》 우공(禹貢)에 “강한의 물이 바다로 인사드리러 간다.[江漢朝宗于海]”는 말이 나오고, 《논어》 위정(爲政)에 “북극성을 중심으로 뭇별들이 에워싸고 호위한다.[衆星拱之]”는 말이 나온다. 자미(紫微)는 북두성 북쪽의 자미원(紫微垣)을 가리키는데, 흔히 제왕의 거소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절간(絶磵)이 우거하고 있는 천마산(天磨山) 지족암(知足菴)에 받들어 제하다. |
|
구름 위로 솟구친 천마산 맨 꼭대기 / 天磨絶頂入雲端
일만 골 솔바람 다리 아래 차가우리 / 萬壑松風脚底寒
이제는 도정을 본격적으로 맛보리니 / 自是道情方有得
서로 귀찮은 세상일도 다시 없겠네 / 更無塵事敢相干
냉랭한 향연 속에 적막한 광음 보내다가 / 光陰寂寞香煙冷
병석 쥐고 표표히 산과 바다 마음대로 / 甁錫飄搖山海寬
우스워라 목옹은 속진이 너더분한데도 / 却笑牧翁多俗累
부질없이 산 정상에 날아갈까 생각하니 / 謾思飛步上巑岏
[주D-001]서로 …… 없겠네 : 그동안 목은에게 여러 차례나 기문(記文)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이제는 그럴 일도 없으리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목은문고》에 윤절간(倫絶間)이 부탁해서 지어 준 기문이 몇 개 나온다.
[주D-002]병석(甁錫) : 승려의 필수품인 병발(甁鉢)과 석장(錫杖)을 합친 말로, 승려의 생활이나 모습을 비유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비 |
|
농가에서 비 얻은 기쁨 어떻게 말로 다하리요 / 農家得雨喜何言
조정의 왁자한 웃음소리 바람결에 들리는 듯 / 廊廟風傳笑語喧
상은 하늘만 우러러 쳐다보던 양궁을 위로하고 / 上慰兩宮瞻且仰
온 누리 사방 백성들도 풍족한 옷과 밥 기약하리 / 下期四境飽仍溫
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씻은 듯 푸른 산기운이요 / 峯巒如濯靑排闥
서로 어울려 문간에 비치는 초록빛 버들가지로세 / 楊柳相和綠映門
앉아서 읊는 늙은이도 뜻한 일 이루어졌는지라 / 坐嘯老翁元得意
붓끝에 태평의 기상이 완연히 묻어나는구만 / 筆端描出太平痕
어제 한유항(韓柳巷)과 함께 나들이를 나가서 취해 돌아오다. |
|
늙어가는 나의 모습 온통 풍류스러워서 / 老來情態儘風流
술자리만 만나면 번번이 조금 머문다오 / 逢着杯盤輒少留
반쯤 취해 돌아온 길 그런대로 즐길 만하니 / 半醉歸來聊自適
남은 인생 시 읊는 일 지금도 쉬면 안 되겠지 / 餘生嘯咏豈曾休
서리가 빨리도 내렸나니 나부끼는 백발이요 / 白飄鬢髮霜何早
여름날 갈수록 그윽해져 녹음 짙은 동산이라 / 綠暗園林夏轉幽
맑고 서늘한 이 맛을 그 누가 비슷하게 알까 / 一味淸寒誰得似
흐르는 세월 나의 심사 다 함께 유유하도다 / 年光心事共悠悠
권 사재(權四宰)가 어버이 때문에 사직을 하였으니, 이는 대개 사신의 일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어버이의 연세가 여든인데 만리 여행길을 떠나게 된다면 그의 회포가 어떠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요, 따라서 그가 오늘날 사직하게 된 것 또한 그의 진정에서 우러나온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다. 그러나 허락을 하고 안 하고는 군상(君相)에게 달려 있으니, 이는 하늘에 속한 일이다. 하늘이 하는 일을 어떻게 사람이 기필할 수 있겠는가. 이에 내가 그의 심경을 대변하여 짧은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운명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는 뜻을 토로하였다. |
|
노모가 집에 계시나니 연세가 팔순이요 / 老母在堂年八旬
아들이 하나 있나니 만리 길 떠날 예정이라 / 有子一人游萬里
모자간의 애틋한 정은 하늘이 홀로 아실 텐데 / 母子之情天獨知
나라의 일 피하면 안 될 충신의 길은 어떡하나 / 忠臣由來不避事
임금 섬길 날은 많고 효도할 날은 적으니 / 事君則長事親短
나는 당분간 집에서 노모를 봉양해야 하리 / 我且閑居養親耳
그래서 감히 수식 없이 진심을 토로하노니 / 所以吐詞不敢飾
내 어찌 굳이 안 가려고 마음을 둔 것이리요 / 我豈有心行與止
봄바람이 불고 나면 훈풍이 또 불어오고 / 春風吹盡又熏風
그 다음엔 가을바람이 여지없이 불어오듯 / 秋風之來迺相次
노모의 연세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니 / 親年隨日添
자식이 봉양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리 / 子職有時已
내가 지금부터라도 곁을 떠나지 않으면 / 我得從今不離側
나는 바로 어머니의 자식이라 하겠지만 / 便是吾爲母之子
내가 멀리 떠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리면 / 我如遠游傷母心
나는 못된 놈이라 하늘이 버릴 것이로다 / 我是惡子天所棄
지금 조정에 즐비한 능력 있는 인재들 / 當今林立幹事才
부모님도 안 계시어 집안 걱정도 없고 / 上無嚴君少家累
임금을 욕되지 않게 분규도 잘 해결해서 / 不辱君命善解紛
역사책에 기록되면 어찌 멋지지 않으리요 / 豈不美哉書國史
허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다 해도 / 雖然誠意可回天
운명은 하늘에 달렸으니 순종을 해야 하리 / 有命在天當順竢
허리가 시어서 지어 부른 노래 |
|
한밤중에 깬 뒤로는 다시 잠들기 어려워서 / 夜半夢斷難再續
눈을 감고 몽롱하게 오똑 앉아 있노라니 / 暝目朦朧坐於獨
허리가 또 예전처럼 쑤셔 오니 어떡하나 / 奈何腰痛又如前
어린 여종 급히 불러 기와를 굽게 하고 / 徑呼小婢燒古甎
무명에 싸서 아픈 곳에 찰싹 붙게 하니 / 帶以木緜貼之穩
사지가 안온해지고 기거하기도 편하도다 / 四支調適興居便
이 통증은 옛날부터 앓던 병의 여독이라 / 此是舊病之餘毒
언제나 말끔하게 이 고통에서 벗어날꼬 / 洒然脫去知何年
나는 이제 늙어서 마음도 마냥 피곤하니 / 我今老矣心兀兀
밝을 때 기다려서 시골에 돌아가려 하나 / 欲向明時乞骸骨
인생의 행로는 하늘에 달린 걸 어떡하노 / 人生行止在於天
앉아서 생각건대 구름은 높이 날아가고 / 坐想飛雲去超忽
꽃잎은 나풀나풀 진흙탕 속에 떨어지니 / 殘花片片粘在泥
각자 처한 상황은 똑같기가 어려운 법 / 物也勢也誠難齊
마음의 경지를 어떡하면 태허처럼 만들어서 / 何當心地如太虛
바다에 햇빛 일렁일 때 천계 소리 들어 볼꼬 / 日色動海聞天鷄
[주D-001]천계(天鷄) : 도도(桃都)라는 거목 위에 서식한다는 전설상의 닭으로, 해가 처음 뜰 때 이 닭이 울면 천하의 모든 닭이 뒤따라 울기 시작한다고 한다. 《述異記 卷下》
아침에 일어나서 감회를 서술하다. |
|
어젯밤에 어찌나 뼈와 살이 쑤시던지 / 疇昔肌骨酸
아침에 보니 얼굴색이 완전히 변했는데 / 曉來顔色變
정신이 자꾸만 이렇게 소모되는 사이에 / 精神旋消耗
세월은 역마처럼 마구 치달려 지나가네 / 歲月如馳傳
너른 들판엔 울뚝불뚝 구름이 험상궂고 / 平野雲容頑
방초 떨기는 찔끔찔끔 꽃 눈물 뿌리는데 / 芳叢花淚濺
그 속에서 이 몸이 무슨 일을 하냐고요 / 而我於其間
늘상 붓과 벼루만 가까이하고 지낸다오 / 悠悠親筆硯
높은 흥치를 백운에 부쳐 보기도 하오마는 / 高懷寄白雲
형편없는 글이라서 황견에 부끄러운지라 / 蕪詞愧黃絹
오늘은 아침 내내 말없이 앉아 있노라니 / 默然坐終朝
처마 밑의 제비가 나 대신 말해 주려는 듯 / 代語有簷燕
만물이 우리의 벗이라는 그 말이 맞네그려 / 諒哉物吾與
순식간에 천 수의 시를 쏟아내는 것을 보니 / 倏忽來千轉
[주D-001]황견(黃絹) : 아름다운 시문을 뜻하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채옹(蔡邕)이 조아비(曹娥碑)의 뒷면에다 ‘절묘호사(絶妙好辭)’라는 뜻으로 ‘황견유부 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齏臼)’라는 여덟 글자를 써 넣은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世說新語 捷悟》
[주D-002]만물이 우리의 벗 : 송유(宋儒) 장재(張載)의 〈서명(西銘)〉 첫머리에, “우주 만물 모두가 천지(天地)를 부모로 하여 태어난 만큼,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형제요 만물은 우리의 벗이다.[民吾同胞 物吾與也]”라는 말이 나온다.
동정(東亭)이 다시 도당(都堂)에 들어갔기에 시를 지어 축하하다. |
|
용두출신으로 지금 묘당에 있는 이는 / 龍頭今在廟堂中
오직 한 분 추밀원의 우리 포은공 / 只有鴻樞圃隱公
얼마나 기쁜가 동정이 평리가 되었으니 / 最喜東亭拜評理
승상부에 문풍이 다시 떨쳐지겠구나 / 定敎黃閣振文風
향을 머금고 묵묵히 발휘한 회천의 힘이요 / 含香默運回天力
바다 건너 일찍이 이룩한 땅 넓힌 공이로세 / 過海曾成拓地功
양친에게 축수의 술잔 따라 올릴 그날 / 具慶應須斟壽酒
백발의 이 늙은이도 함께 불러 주셨으면 / 不妨招喚白頭翁
[주D-001]용두(龍頭) : 문과(文科) 장원 급제자의 별칭이다.
[주D-002]향(香)을 …… 힘이요 : 예 전에 시종신으로서 임금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고친 것을 말한다. 한(漢)나라 때에 상서성(尙書省)의 관원이 황제에게 아뢸 적에는 입에 계설향(鷄舌香)을 머금어서 향기가 나게 했다는 고사가 있다. 그리고 당 태종(唐太宗)이 궁전을 수축하려고 할 때, 급사중(給事中) 장현소(張玄素)가 직간을 하여 중지시키자, 위징(魏徵)이 감탄하면서 “장공이 마침내 하늘을 되돌리는 힘을 발휘했다.[張公遂有回天之力]”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02 張玄素列傳》
어 제 한유항(韓柳巷)과 함께 새로 제수된 재추(宰樞)들을 차례로 방문하였다. 이 일을 모두 마치고는 기로(耆老)인 여러 영공(令公)들을 찾아뵈었는데 만나지 못하였고, 오직 윤 영평(尹鈴平)만이 외출하지 않고 있다가 술과 밥을 차려 주었다. 그 뒤에 또 계림(鷄林)의 이 정당(李政堂) 집을 찾아가서 수반(水飯)을 먹고는 돌아왔다. |
|
어젯밤 구천에서 선마를 내려 보내 / 昨夜宣麻降九天
묘당 높은 곳에 영재를 다 모았어라 / 廟堂高處集英賢
병든 몸의 축하 방문 계면쩍기도 하다마는 / 登門致賀慚扶病
상종하는 회원들 동정해 주니 다행일세 / 結社相從幸見憐
자취를 감춘 국생도 다시 맛보게 되었으니 / 屛迹麴生猶邂逅
뱃속 가득 시흥도 술술 풀려나올 밖에 / 滿腔詩興亦牽聯
솔꽃이 대지를 비춰 주는 계림의 저택에서 / 松花照地鷄林宅
기장밥이 소 같은데 찬물을 또 대었다나 / 黍飯如酥灌冷泉
[주D-001]어젯밤 …… 보내 : 임금이 새로 재신(宰臣)들을 임명하였다는 말이다. 당(唐)ㆍ송(宋) 때에 장상(將相)을 임명할 적에는 백마지(白麻紙)에다 조서(詔書)를 써서 조정에 공포하였는데, 이를 가리켜 선마(宣麻)라고 하였다.
[주D-002]기장밥이 …… 대었다나 : 소 나 양의 젖으로 만든 소(酥)처럼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기장밥에다 다시 찬물을 말아서 먹었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장교(張喬)의 시 〈작은 소나무를 옮겨 심다.[移小松]〉에 “달빛 어린 가지에는 산새가 잠이 들고, 꽃을 아우른 뿌리에는 찬물을 대 준다오.[帶月棲幽鳥兼花灌冷泉]”라는 시구가 나오는데, 소나무 아래에 찬물을 대 준다는 표현을 목은이 밥에다 물을 대 준다고 해학적으로 바꿔서 표현한 점이 재미있다.
가빈(家貧) |
|
집이 가난해도 경영을 못하는 성벽이라 / 家貧性僻絶經營
무슨 일만 생기면 절름발이가 걷는 격 / 遇事還同躄欲行
나의 인생 모두가 운명인 줄 안다마는 / 頗信此生皆有命
세상의 정을 잊었다고 감히 말할 수야 / 敢言於世已忘情
고요한 문정에 이끼는 비 맞아 푸르르고 / 苔痕得雨門庭靜
맑은 잠자리에 나무는 바람을 머금었네 / 樹影涵風枕簟淸
종일토록 시만 읊다 혼자서 피식 웃나니 / 盡日獨吟還自笑
하는 일 없어도 이름 남길 줄 누가 알리요 / 誰知疏懶亦留名
이 이상(李二相) 자송(子松) 이 방문해 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
|
동산 숲 여름 경치 한창 밝고 산뜻한데 / 園林夏景政鮮明
한가로이 태평 시대 구가하는 목은이라 / 牧隱閑居詠太平
백발에 쇠한 나이 흡사 병든 학이라면 / 白髮衰年如病鶴
녹음에 가랑비 게다가 꾀꼬리 노래로세 / 綠陰微雨又流鶯
때때로 왕림하는 영광스러운 고관의 행차 / 高軒每荷時時枉
매일 짓는 짧은 시를 어찌 또 짓지 않을까 / 短律難禁日日成
병을 무릅쓰고 동각을 찾고도 싶소마는 / 力疾欲尋東閣去
문객에게 국선생의 폐를 끼칠까 무서워서 / 恐煩門客麴先生
[주D-001]국선생(麴先生) : 술의 별칭으로, 국 수재(麴秀才), 국생(麴生)이라고도 한다.
즉사(卽事) |
|
밤새껏 신음하던 것이 급기야 한낮까지 / 徹夜呻吟到午天
이 육신 지닌 것이 실로 궂은 인연일세 / 百骸眞是惡因緣
저녁빛 돋아나는 곳에 찾아오는 맑은 바람 / 夕陽生處淸風至
흥미가 그래도 온전한 걸 이제야 깨닫겠네 / 始覺吾猶興味全
아신(我身) |
|
내 육신은 내 생명이 붙어 있으니 / 我身我所寄
애틋한 정으로야 가장 절실하거늘 / 愛惜情最眞
혹 자살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고 / 奈何或自殺
호오에 끌리는 바가 있기 때문이라 / 好惡之所牽
참을 수 없도록 아픈 때를 당해서는 / 當痛不可忍
하늘에게서 받은 명을 알기나 할까 / 那知命於天
당장 내버리고 떠나고 싶은 심정이 / 便欲棄之去
원수를 피하려 하는 마음과 같다가도 / 如避仇怨然
조금만 안정되면 다시 애지중지하며 / 稍定卽保護
약을 달이는 등 온전해지기를 구하나니 / 湯藥求百全
이 마음이 도대체 어떻게 된 마음인고 / 是誠何心哉
곧장 쓰다 보니 어느새 시가 됐군그래 / 直書俄成篇
어쨌든 이 육신은 끝날 날이 있는 만큼 / 此身會澌盡
사업은 응당 현인 되기를 원해야 할 터 / 事業當希賢
현인이 되면 죽더라도 썩지를 않을 테니 / 賢者死不朽
이것이 바로 영원히 사는 길이 되리로다 / 是爲能永年
[주D-001]사업은 …… 터 : 송 유(宋儒)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 지학(志學)에 나오는 “선비는 현인이 되기를 원하고, 현인은 성인이 되기를 원하고, 성인은 하늘처럼 되기를 원한다.[士希賢 賢希聖 聖希天]”는 말을 인용한 것인데, 사실은 현인이 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늘처럼 되고 싶은 목은의 심경을 은연중에 보여 주고 있다.
시골 사람의 말을 기록해서 시를 짓다. |
|
시골 사람들이 비와 눈을 점칠 때는 / 鄕人占雨雪
초파일과 이십삼 일을 기준한다는데 / 卄三與初八
더구나 지금은 농사가 한창 바쁠 때니 / 況當南畝時
더욱 애를 태우면서 하늘만 쳐다보리 / 瞻仰心益渴
오늘 아침에는 구름이 하늘 가득하여 / 今朝雲滿天
비를 뿌리긴 하나 가늘기가 머리카락 / 有雨細如髮
내리는 듯 마는 듯 드문드문 떨어지니 / 蕭疏乍有無
어떻게 씨앗에서 싹이 틀 수 있으리요 / 未足滋芽孽
하느님의 마음은 본래 자애로운지라 / 天心本仁愛
화기가 끝내는 온 누리에 펼쳐질 터 / 和氣終四達
아무쪼록 시원스럽게 비를 내리시어 / 願致霈然下
싹들이 생기 있게 자라나게 해 주시면 / 有苗皆潑潑
가을바람 속에 풍년가 울려 퍼지리니 / 秋風豐年詩
일만 들판 노랫소리 누가 다 거두리요 / 滿野誰採綴
나우수(羅迂叟)를 위해 황 충주(黃忠州)에게 부치다. |
|
궁중에서 연구 지어 사대부에게 과시하고 / 禁中聯句搢紳誇
바다 밖의 기행에 또 풍월이 많기도 한데 / 海外紀行風月多
간행하여 전하게 함은 공의 손에 달렸으니 / 繡梓流傳在公手
다른 뜻 없는 우수를 한 번 살펴 주시게나 / 請看迂叟志無他
[주D-001]궁중에서 …… 한데 : 나 흥유(羅興儒)의 호는 우수(迂叟)인데, 그가 공민왕에게 연구(聯句)를 지어 바쳐 3품의 직질(職秩)에 오르자 사대부들이 부러워했다는 것과, 자청하여 일본으로 사신가서 이색적인 풍물을 시에 담아 왔다는 등의 내용이, 《목은문고》 제9권 〈중순당집(中順堂集) 서문〉과 제13권 〈금남우수(錦南迂叟)의 전기(傳記) 뒤에 쓰다.〉에 자세히 나온다.
아생(我生) |
|
나의 삶 정도면 또 얼마나 다행인고 / 我生亦何幸
하늘과 땅 사이에 소요하며 즐기는걸 / 逍遙天地間
바람을 맞으면 번뇌도 날아가 버리나니 / 臨風散煩懷
산을 대해도 얼굴이 부끄럽지 않다오 / 對山無愧顔
푸른 버들 아래 우연히 앉았다 일어서고 / 偶坐碧柳去
다시 꾀꼬리 소리 따라 되돌아오는 생활 / 又從黃鳥還
단지 유감이라면 시의 마력에 빠져 든 채 / 只爲詩魔擾
지금 벌써 귀밑머리 희끗해진 것이랄까 / 鬢毛今已斑
하지만 그깟 일이야 걱정할 게 있으리요 / 鬢斑豈足念
이 몸과 이 마음 한가로우면 그만이지 / 幸此身心閑
비가 오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부른 노래 1수(一首) |
|
구름은 용이 있어야 구름이 되는 법 / 雲之爲雲龍所憑
모이고 흩어지게 함은 용의 권능이니 / 乍離乍合惟其能
비 오려다 안 오는 것은 누구 탓인고 / 雨而不雨誰之由
한두 방울 떨어지다 곧바로 그만일세 / 一點二點旋卽休
흰머리로 병들어 누워 군에 봉해지고 / 白髮臥病忝封君
삼중대광으로 예문을 주관하는 이 몸 / 三重大匡領藝文
탑상엔 청풍이요 숲에선 새가 노래하니 / 淸風滿榻鳥啼林
무현금을 다시 둘 필요가 뭐 있으리요 / 不用更置無絃琴
한가한 중에도 걱정은 우리 백성의 일 / 閑中有念及蒼生
춥고 덥고 맑고 흐림에 신경쓸 수밖에 / 默察寒暑幷陰晴
올해도 사월이 또 다하려 하는 이때 / 今年四月又將闌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을 그 누가 알꼬 / 誰知有淚方汍瀾
막막한 강변 하늘 낚시터 낮게 드리우고 / 江天漠漠低我磯
산속의 푸른 이내 불현듯 옷을 적시는데 / 空翠霏霏濕我衣
어떡하면 오늘의 이 마음을 돌이켜서 / 何當反觀今日心
천지와 같은 성은에 보답할 수 있을꼬 / 驗得聖恩天地深
[주D-001]구름은 …… 법 :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 구오(九五)에 “구름은 용을 따른다.[雲從龍]”는 말이 나온다.
[주D-002]탑상엔 …… 있으리요 : 자 연을 대하면서 한적한 정취를 만끽하니, 도연명(陶淵明)처럼 굳이 ‘줄 없는 거문고[無絃琴]’를 매만질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도연명이 거문고를 탈 줄도 모르면서 술을 마시고 흥취가 일어나면 무현금을 매만지면서 “거문고의 정취만 느끼면 되지, 굳이 줄을 퉁겨서 소리를 낼 것이 있으리오.[但識琴中趣 何勞絃上聲]”라고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書 卷93 陶潛列傳》
가랑비를 주제로 지은 육언시(六言詩) 3수(三首) |
|
가랑비가 극미진수와 흡사하다면 / 雨似極微塵數
산은 청정한 법신이라고나 할까 / 山如淸淨法身
장난삼아 한 말은 본래 불교 용어인데 / 戲語由□□語
나는 지금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는지 / 我今比得何人
가랑비 비치는 속에 청산은 홀로 서 있고 / 雨映靑山獨立
꾀꼬리 우는 백주에 나는야 느긋한 낮잠 / 鶯啼白晝閑眠
이 몸과 이 경계 모두가 담박할 뿐 / 身與世俱淡泊
사람들이 나 보고 자연 그 자체라나 / 人呼我曰天然
술이 있어도 약간만 취해야 하는 이 몸 / 有酒還須微醉
시 없으면 어떻게 늘 노래하며 즐기리요 / 無詩何以長吟
밤마다 일어나 하늘 보며 비를 점치나니 / 夜夜起占雲漢
지금쯤 조정에서도 애타게 기다리시겠지 / 想今廊廟焦心
[주D-001]극미진수(極微塵數) : 더는 쪼갤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를 가리키는 불교 용어로,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원자 혹은 소립자의 개념과 비슷한데, 간혹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를 가리킬 때에도 쓰인다.
[주D-002]법신(法身) : 불교 용어로, 거래(去來)와 생멸(生滅)의 현상적 변화를 떠나 항상 오염되는 일 없이 청정하게 부동(不動)의 경지를 보여 주는 여래(如來) 본연의 실체라는 뜻이다.
[주D-003]장난삼아 …… 있을는지 : 가 랑비와 푸른 산을 불교의 이른바 극미진수와 청정법신(淸淨法身)으로 장난삼아 비유해 봤는데, 이와 같은 측면에서 주인공인 목은 자신을 비유해 본다면 과연 어떤 사람과 비교될 수 있겠느냐는 뜻의 자부심이 넘쳐나는 말이다. 원문의 빠진 글자는 혹 ‘내불(來佛)’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어 제 한 청성(韓淸城)과 함께 여러 곳을 두루 방문하였다. 광평(廣平) 시중(侍中)은 만나 뵙지 못했고, 철성(鐵城) 시중 댁에서는 수반(水飯)을 먹었다. 궁동(宮洞)으로 들어가 박사신(朴思愼) 개성(開城)의 집에서 또 수반을 먹고, 윤 정당(尹政堂)의 집에서 차를 마신 뒤에 다시 임 사재(林四宰)의 집에 가서 성찬(盛饌)을 대접받았다. 상당군(上黨君)의 댁으로 가서 술을 조금 마셨는데, 주금(酒禁) 이전의 법주(法酒)였다. 이에 함께 사양하며 석 잔으로 그친 뒤에 차를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
|
말고삐 나란히 풍류 넘치는 객과 함께 / 聯鞍有客儘風流
고대광실 두루 찾아 멋진 유람을 했다오 / 徧謁朱門得勝游
상에 가득히 쌓인 좌상의 진수성찬이요 / 座上珍飡堆□案
주금 이전의 법주는 매끄럽기 기름이라 / 禁前法釀滑如油
오래 사귄 개성의 우정 얼마나 두텁던지 / 開城久要情何厚
새로 임명된 문학은 벌써 명망이 높아라 / 文學新除望已孚
환담하고 축하하고 병문안을 마친 뒤에 / 敍舊賀遷仍問疾
돌아와 혼자서 중선의 누대에 기댔다오 / 歸來獨倚仲宣樓
[주D-001]돌아와 …… 기댔다오 : 고향 생각에 젖어 들었다는 말이다. 자(字)가 중선(仲宣)인 왕찬(王粲)이 후한(後漢) 말 동란(動亂) 때에 형주(荊州)의 누대에 올라 고향 생각을 하며 〈등루부(登樓賦)〉를 지은 고사가 《문선(文選)》 권11에 나온다.
가랑비 |
|
가랑비 부슬부슬 땅속에 스미지 않으니 / 微雨不入土
남은 생 어떨지 하늘에 물으려 하지 마오 / 殘生休問天
집안에만 있어도 마음이 이처럼 괴로운데 / 居家心尙苦
나라를 맡은 이들 얼마나 속을 태우실까 / 當國慮應煎
꽃잎이 진 섬돌 위엔 붉게 물든 이슬이요 / 紅濕花堦露
버들가지 저자 위엔 푸르게 뜬 연무로세 / 靑浮柳市煙
바뀌는 경치 모두가 사랑스럽긴 하다마는 / 流光盡可愛
밭고랑의 흥치는 막막하기만 하네그려 / 南畝興茫然
뜨락을 거닐며 |
|
모자 삐딱하게 쓰고 뜨락 안을 어슬렁 / 細履園中烏帽斜
옅고 짙은 나무 그림자 산비탈에 가득 / 樹陰濃淡滿山坡
모르겠네 이 정취를 누구와 함께할지 / 道情不識與誰共
세상일이 이 몸을 얽어맨 적 있었으리 / 世故何曾於我加
개미들 싸우는 걸 보니 비가 쏟아지려나 봐 / 雨意欲成酣蟻戰
꾀꼬리 노래가 또 농염한 꽃 속에 들려오네 / 花姿方艷送鶯歌
나의 인생 풍광 따라 굴러가면 그저 그뿐 / 吾生自逐風光轉
흰머리 부쩍 늘었다고 한탄할 것 있으리요 / 敢恨年來鬢有華
소왜(小娃) |
|
내 머리를 빗겨 주는 예쁜 계집아이 / 小娃梳我髮
머리칼이 짧으니 빗기기도 쉬우렷다 / 髮短易施功
외진 골목은 비가 내린 듯 선들선들 / 曲巷涼如雨
텅 빈 집은 바람도 없이 고요하기만 / 虛堂靜不風
꾀죄죄한 모습이 조금 말끔해지니 / 容儀稍修潔
막혔던 기운도 금세 뚫려 통하는걸 / 血脈旋流通
다만 한심한 것은 마음에 욕심 많아 / 只恨心多慾
티끌을 좇다 보니 얼굴 붉어지는 것 / 趨塵面發紅
[주D-001]다만 …… 것 : 세 상에 대한 욕심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명리(名利)를 좇는 자신을 되돌아 볼 때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반악(潘岳)이 세상의 명리를 좇은 나머지, 석숭(石崇) 등과 함께 당시의 권신(權臣)인 가밀(賈謐)에게 아첨하면서, 가밀이 외출할 때마다 수레가 일으키는 먼지를 바라보며 절을 했다[望塵而拜]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55 潘岳列傳》
풍수지리(風水地理)에 대한 학식을 자부하는 사람이 있기에 이 시를 지어 읊다. |
|
여인이 당일에는 도가 더더욱 높았을 텐데 / 旅人當日道彌尊
상을 살피고 맨 처음에 지세곤이라 적으셨지 / 觀象初題地勢坤
백학이며 청오 등의 신술이 일어나면서부터 / 白鶴靑烏神術起
꾀꼬리와 제비들이 교언을 재잘거리는도다 / 黃鸝紫燕巧言繁
길한 땅에다 도읍을 열었다 모두 말할 줄 안다마는 / 地靈共道開天府
구름 덮인 채 인적 끊긴 선경이 있는 줄 누가 알랴 / 雲暗那知鎖洞門
낙락장송 솔 한 그루 창공에 기대 서 있는 곳 / 一樹長松倚霄漢
나는 여기서 자손에게 청백을 물려줄까 한다 / 要將淸白遺兒孫
[주D-001]여인(旅人)이 …… 적으셨지 : 공 자가 《주역》의 십익(十翼)을 지을 즈음에는 만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도의 경지가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 것인데, 십익의 하나인 건괘(乾卦) 대상(大象)에서는 첫머리에 ‘천행건(天行健)’이라 했고 곤괘(坤卦) 대상(大象)에서는 맨 처음에 ‘지세곤(地勢坤)’이라고 했다는 말이다. 여인은 공자를 가리키는 말로,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지금 나는 동서남북으로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다.[今丘也 東西南北之人也]”라는 공자 자신의 말이 나오고, 두보(杜甫)의 시에도 “중니는 나그네 신세도 달갑게 여겼고, 상자는 손괘와 익괘의 뜻을 알았다.[仲尼甘旅人向子識損益]”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8 兩當縣吳十侍御江上宅》
[주D-002]백학(白鶴)이며 …… 재잘거리는도다 : 황 당무계하다고 할 풍수지리에 대한 술법이 나오면서부터 후대에 해괴한 주장들이 난무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청오(靑烏)와 백학 모두 감여가(堪輿家)의 서적이나 그들의 술법, 혹은 그들이 꼽는 최고의 길지(吉地)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시문에서 병칭되어 쓰인다.
자소(自笑) 1수(一首) |
|
일이 뜻과 어긋나니 매번 장탄식할 수밖에 / 事多相反每長吁
후회를 한들 소용 있나 이미 끝나버렸는걸 / 悔亦難追已矣夫
명리를 스스로 구하면서 오히려 숨어 살려 하고 / 名實自求還欲晦
늙었는데도 못 떠나니 바보가 아니고 무엇이랴 / 老而不去却如愚
쇠한 얼굴 짜증날 텐데 그래도 미를 생각하나니 / 衰顔可厭猶思媚
병든 뼈 쑤시긴 해도 그다지 야위진 않았음이라 / 病骨雖酸未甚癯
오직 하나의 가난만이 나를 잘 지켜 주는 동안 / 只有一貧能守我
검은 머리가 지금 어느새 하얗게 변해버렸구나 / 黑頭今見白髭鬚
[주D-001]쇠한 …… 생각하나니 : 임 금은 혹 자신을 싫어할지 몰라도 목은 자신은 옆에서 왕을 모시면서 직간을 하여 국정을 바로잡아 보고 싶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당(唐)나라 위징(魏徵)이 황제가 노여워해도 과감하게 바른말을 하면서 전후 200여 차례나 직간을 올렸는데, 어느 날 위징이 또 요순(堯舜)의 고사를 가지고 극구 아뢰자, 태종(太宗)이 크게 웃으면서 “사람들은 위징의 거동이 거칠고 거만하다고 말들을 한다마는, 내가 볼 때에는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울 뿐이다.[人言徵擧動疏慢我但見其嫵媚耳]”라고 말했던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97 魏徵列傳》
이 상의(李商議)가 자기의 자(字)와 거실(居室)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아울러 자기 아들 가운데 일랑(一郞)의 이름도 부탁하였다. 이에 내가 ‘계수나무 꽃은 가을에 희고도 깨끗하다.[桂花秋皎潔]’라 는 시구를 취해서 그의 자를 중결(仲潔)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계(桂)의 짝으로는 송(松)만 한 것이 없고, 또 공이 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절의(節義)라고 생각되기에, 그의 거실의 이름을 송헌(松軒)이라고 지었다. 또 삼랑(三郞)의 이름이 방의(芳毅)인 점을 감안해서 일랑의 이름을 모(某) 삼가 주(註)하건대, 이 이름은 바로 우리 공정대왕(恭靖大王)의 휘(諱)이다. 라고 지었으니, 이는 과(果)와 의(毅)는 그 의미가 서로 배합하면서 의존하는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시 한 편을 읊는다. |
|
추부를 선점하고 의기양양한 것이 부끄러웠는데 / 着鞭樞府愧揚揚
이번엔 어깨 맞대고서 같은 날 성당에 들어왔네 / 同日磨肩入省堂
산과 바다에 가득한 달빛 얼마나 교교하오 / 月滿海山何皎皎
솔과 잣은 추운 계절에 더욱 창창하오그려 / 歲寒松柏愈蒼蒼
형우제공(兄友弟恭)의 흡족한 정을 잘 알고말고 / 友恭可見親情洽
과감하고 굳세거니 적군이 강한 걸 걱정할까 / 果毅何憂敵勢強
바라건대 이 시대의 여러 대장들과 함께 / 願與一時諸大將
시종일관 곽 분양을 공동의 사표로 삼으시길 / 共師終始郭汾陽
[주C-001]계수나무 …… 깨끗하다 : 이 시구는 당(唐)나라 장구령(張九齡)의 〈감우(感遇)〉라는 오언 율시에 나오는데, 이성계(李成桂)의 계 자를 감안해서 이 시구를 취한 것이다.
[주C-002]모(某) : 조선 제2대 왕 정종(定宗)의 이름인 방과(芳果)를 가리킨다. 공정(恭靖)은 명나라에서 내린 시호(諡號)이다.
[주D-001]곽 분양(郭汾陽) : 당 숙종(唐肅宗) 때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하고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진 곽자의(郭子儀)를 말한다. 무려 20년 동안 천하의 안위(安危)를 한 몸에 짊어진 명장이요 명상으로서, 덕종(德宗)으로부터 상부(尙父)의 칭호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어제 나가서 광평(廣平) 시중(侍中)을 찾아뵙고 곧장 이야기를 나누고는 곧바로 물러 나와 이 상의(李商議)의 집에 가서 시를 전해 주고 돌아와 피곤해서 자리에 누웠다. 그러고는 다음 날에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
세도와 인재가 어찌 우연이리요 / 世道人才豈偶然
천년에나 한번 있을 만남인 것을 / 一時遭遇應千年
국가에 일도 많은 오늘날을 당하여서 / 國家多故當今日
장상의 참인재가 하늘에서 내려왔네 / 將相眞才降自天
진정시키는 큰 도량 예전에도 드물었는데 / 鎭撼量洪前所罕
적을 물리친 중한 공 후세에 또 전해지리 / 折衝功重後來傳
병든 끝의 나는 또한 몸에 일 없으니 / 病餘我亦身無事
찬송하는 시나 또 한 편 지을 수밖에 / 頌美新詩又一篇
비가 내릴 듯하면서도 내리지 않기에 하재탄(何哉嘆)을 지었다. |
|
군왕은 탕왕의 희생을 사모하고 / 君王慕湯牲
재상은 부열의 단비를 생각하며 / 宰相思說霖
하늘이 풍년을 내리기를 기원하니 / 願天降豐年
위나 아래나 그 마음 어찌 다를쏜가 / 上下同一心
간절한 마음이 통하는 바가 있었던지 / 心之所感如有通
구름 기운 일어나 날마다 짙게 드리웠고 / 雲氣日日成濃陰
우사도 다시 솜씨를 선보이려 하면서 / 雨師亦復試其手
가끔씩 한두 방울 떨어뜨려 주었어라 / 時將點滴來相侵
이에 내가 처음엔 바닷물을 말아 올려 / 我初便疑卷海底
숲처럼 빽빽하게 하늘에서 쏟아 내려 / 瀉向太虛森如林
마른 싹과 시든 잎을 촉촉이 적시리니 / 沃我焦萌與敗葉
고요의 금보다 훨씬 많으리라 하였어라 / 受用遠過皐陶金
그런데 홀연히 흩어져서 모이지 않다가는 / 忽然相離不相合
헤어질 수 없다는 듯 다시 모이곤 하였는데 / 又不棄去如相尋
오늘 하늘을 바라보니 너무도 실망스러워 / 今日瞻天稍缺望
만리 하늘 끝도 없이 온통 파랗기만 하네 / 一碧萬里天沈沈
무엇 때문인고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고 / 何哉何哉復何哉
지금 비가 내려야지 때를 놓치면 안 될 텐데 / 時不可失須及今
손가락 헤어 보니 망종까지 겨우 며칠 / 屈指芒種餘數日
그 누가 알거나 목은 노인의 애타는 마음 / 誰知牧老焦胸襟
조물의 속셈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으리요 / 天工用意不可測
나는 식견이 짧으니 그저 슬프게 읊을밖에 / 我見自短空悲吟
[주D-001]탕왕(湯王)의 희생 : 상(商)나라 탕왕이 큰 가뭄을 만나 5년 동안 수확을 하지 못하였는데, 상림(桑林)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 대신으로 바쳐 하늘에 기도를 드리자, 큰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呂氏春秋 順民》
[주D-002]부열(傅說)의 단비 : 은 고종(殷高宗)이 현신 부열에게 ‘큰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霖雨]’처럼 국가를 운영해 달라고 부탁한 고사가 있다.
[주D-003]고요(皐陶)의 …… 하였어라 : 비 가 제때에 내려 곡식이 잘되면, 옛날 오랑캐가 바쳤던 황금보다도 더 풍성하게 나라의 곳간을 채울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는 말이다. 《시경》 노송(魯頌) 반수(泮水)에 “고요처럼 신문을 잘 하는 이가, 반궁에서 오랑캐 포로들을 철저하게 조사를 하여 바친다.[淑問如皐陶在泮獻囚]”는 말과 “은혜를 깨달은 오랑캐들이……남방의 좋은 황금을 조공으로 많이 바쳤다.[憬彼淮夷……大賂南金]”는 말이 나온다.
유감(有感) 2수(二首) |
|
온갖 근심 떨치고서 너울너울 날았으면 / 有意翶翔散百憂
물처럼 짙푸른 하늘 차갑기 가을일세 / 碧天如水冷如秋
남쪽 땅에 유민이 많다는 말 홀연히 듣고 / 忽聞南土多流徙
종일 수심에 잠겨 홀로 누대에 기대섰네 / 終日悠悠獨倚樓
음양의 섭리는 예로부터 어렵게 여겼는데 / 自古陰陽難燮理
더군다나 조야가 지금 조용하지 못한데야 / 況今朝野少優游
청풍이 내 마음속의 열기를 식혀 주려는 듯 / 淸風似識心中熱
빈집 가득 서늘 바람 쉬지 않고 불어 주네 / 涼滿虛堂吹不休
여강에 물러가도록 성은을 내려 주셨으면 / 欲向驪江謝聖恩
높고 낮은 두 언덕 그림 같은 그 마을로 / 高低兩岸畫中村
푸른 산빛 무더기지고 구름은 지붕 위까지 / 山光積翠雲連屋
밝은 달빛 속에 강물은 문 앞에 출렁출렁 / 月色分明水逼門
늙은 몸 귀향도 못 청하니 진짜 내대자요 / 老不乞歸眞褦襶
병도 고치기 어려우니 끝내 속이 터질밖에 / 病難求療竟煩冤
후생은 내가 형편없다 비웃질랑 말아 주오 / 後生莫笑吾無狀
그래도 이따금씩 술잔은 대할 수 있으니까 / 猶得時時對酒樽
[주D-001]음양의 섭리 : 음양의 변화 등 정(正)과 반(反)의 양 측면을 조화롭게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재상(宰相)의 직무를 뜻할 때 쓴다. 《서경》 주관(周官)에, 삼공(三公)이 음양을 섭리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주D-002]내대자(褦襶子) : 사 리를 분간할 줄 모르고 주착없이 구는 사람을 뜻한다. 내대는 여름철에 햇빛을 가리기 위해서 쓰는 삿갓인데, 삼국 시대 위(魏)나라 정효(程曉)의 〈조열객시(嘲熱客詩)〉에 “지금 삿갓 쓴 이가, 더위를 무릅쓰고 남의 집을 찾아왔네. 주인이 손님 왔다는 소리를 듣고, 이 일을 어쩌나 이맛살을 찡그리네.[只今褦襶子 觸熱到人家 主人聞客來 嚬蹙奈此何]” 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우음(微雨吟) |
|
중들은 자비를 갈구하며 나무아미타불 / 群僧呼佛乞慈悲
성재는 향을 사르면서 땀이 옷에 흠뻑 / 省宰行香汗透衣
구름 일어 비 내리자 환희하며 펄쩍펄쩍 / 雲起雨來隨踊躍
천지가 돌 듯 모두가 정신없이 치달리네 / 天旋地轉共奔馳
살짝 적신 뜨락의 풀잎 마치 아침 이슬이요 / 細霑庭草如朝露
멀리 비친 궁궐의 수풀 흡사 저녁 안개로세 / 遠映宮林似夕霏
조금만 더 시원스럽게 쏟아 부어 주신다면 / 更得須臾霈然下
눈에 가득 곡식들 알차게 영글 수 있으련만 / 眼中禾黍便離離
동트기 전에 비가 내려서 지붕이 새고 이불이 젖었다. 이에 너무도 놀랍고 기쁜 나머지 행재가(幸哉歌)를 지어서 불렀다. |
|
나의 집 지붕이야 고치고 말고 할 게 있나 / 我屋不足修
나의 이불도 젖은들 애석할 것 없어 / 我衾不足惜
얼마나 통쾌한고 오늘 아침 내린 비 / 快哉今日雨
놀랍고 기뻐서 펄쩍펄쩍 뛰고 싶네 / 驚喜欲跳躅
지붕 새고 이불 젖은 건 손쓰기가 쉽지만 / 衾霑屋漏易施功
묽은 죽만 먹고서야 조석을 어떻게 견디리요 / 粥薄無由度朝夕
씨앗이 싹도 안 터서 가뭄 재앙 들이닥쳐 / 種不入土罹旱災
하늘을 감격시키려고 재상들 애를 태웠는데 / 宰相憂勞圖感格
부처 부르던 승려들 비 온다 미친 듯 달리더니 / 群僧呼佛走若狂
왜가리도 안 울 만큼 하늘이 파랗게 바뀌었네 / 鸛亦不鳴天更碧
내가 오래 병들어 침상에 누워 있긴 해도 / 我雖久病臥在床
가족의 식록을 합치면 만석과도 같은지라 / 闔家食祿同萬石
임금 걱정 백성 걱정이 골수에까지 사무쳐서 / 憂君憂民到骨髓
비만 오거나 볕만 나면 가슴을 치곤 하였다오 / 恒雨恒暘撫胸臆
우리 동방의 농사는 하늘만 쳐다볼 뿐이라서 / 東方農事仰於天
비만 한번 안 오면 천리가 황무지 되기 마련 / 天澤一愆千里赤
방죽 물 가둬 비 만들 줄 일찍이 알지 못했으니 / 決□成雨不曾知
우리네 풍속의 졸렬함은 정말 천하에 무적이라 / 吾俗之拙眞無敵
하느님이 어여삐 여겨 은혜를 듬뿍 내렸으니 / 天公憐之降嘉惠
이 얼마나 다행인고 이런 다행이 또 있을까 / 幸哉幸哉幸之極
이 노래 지어 거리마다 아녀자 입으로 퍼뜨려서 / 作歌播之街童巷婦口
우리 성군의 태평성대를 떠받들게 하노매라 / 奉我聖君開壽域
기 우제(祈雨祭)를 지낼 때에는 행향사(行香使)의 임무가 가장 어려운 것으로 꼽힌다. 그런 까닭에 며칠이 지나도 효과가 없거나 아니면 한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서 비가 내리는 데에 따라, 행향사의 정성을 따지게 되고 국가의 행불행을 논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비를 얻을 때에는 바로 나의 동년(同年)인 정 정당(鄭政堂)이 행향사의 임무를 맡았다. 지금 내가 기뻐하고 또 기뻐하는 것도 나의 동년을 위해 사적으로 기뻐하는 뜻과 국가를 위해 공적으로 기뻐하는 뜻이 함께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아직 기우제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는 내가 하재탄(何哉嘆)을 지어 불렀고, 비를 얻고 나서는 행재가(幸哉歌)를 지어 불렀으니, 앞에서 하재(何哉)로 탄식하고 뒤에서 행재(幸哉)의 노래를 부른 것 역시 이러한 나의 심경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이 노래를 기록하여 원재(圓齋)에게 증정하게 되었는데, 원재도 이러한 나의 뜻을 이해해 주리라고 믿는다. 이 노래에서 나는 원재에게 공을 돌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대개 원재는 행향(行香)을 했을 뿐이요, 비와 볕을 때에 맞게 해 주느냐는 어디까지나 천심(天心)이 감응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서, 원재가 독자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주면 다행이겠다.
또 읊다.
지는 해는 구름 뚫고 푸른 산을 비추고 / 落日穿雲照碧岑
미풍은 비를 불어와 푸른 숲에 흩뿌리네 / 微風吹雨散靑林
창생의 소망이 풀렸다고 그 누가 말하리요 / 誰言足慰蒼生望
나도 상제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네 / 我亦難知上帝心
늙음을 자꾸 재촉하는 곤곤히 흐르는 세월이요 / 袞袞流光催老大
떴다가 또 가라앉는 망망한 자연의 기운이라 / 茫茫元氣載浮沈
날씨의 변화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으랴만 / 陰晴變化誰能料
그저 순 임금 거문고에 남풍이 들어오기만을 / 只願南熏入舜琴
[주D-001]왜가리도 …… 바뀌었네 : 가 랑비가 잠깐 내리다가 하늘이 다시 맑게 갰다는 말이다. 비가 오려고 할 때에는 왜가리가 먼저 알고서 운다고 하는데, 《시경》 빈풍(豳風) 동산(東山)에 “가랑비 보슬보슬 내릴 적에, 왜가리가 개미둑에서 울어 제쳤다.[零雨其濛 鸛鳴于垤]”는 말이 나온다.
[주D-002]가족의 …… 같은지라 : 집 안에 고관이 많이 있어 국가의 은혜를 듬뿍 받고 있다는 말이다. 만석은 만석군(萬石君)의 준말로, 한(漢)나라 석분(石奮)과 그 아들 네 명 모두가 국가로부터 2000석을 받는 고관이었는데, 그 식록을 합하면 1만 석이 되었기 때문에 만석군으로 불렸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03 萬石君列傳》
[주D-003]정 정당(鄭政堂) : 정추(鄭樞)를 가리킨다. 그의 자(字)는 공권(公權)이고 호는 원재(圓齋)이다.
[주D-004]그저 …… 들어오기만을 : 순 (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남풍가(南風歌)를 부르면서 “훈훈한 남쪽 바람이여, 우리 백성의 수심을 풀어 주기를. 제때에 부는 남풍이여, 우리 백성의 재산을 늘려 주기를.[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이라고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禮記 樂記》
한유항(韓柳巷)이 빙옹(氷翁)을 위해 향연(饗宴)을 베풀 적에 나를 불러 배석(陪席)하게 하였다. |
|
빙청과 옥윤이 서로를 비춰 주는 자리 / 氷淸玉潤政交輝
현순이 곤의와 어울리니 부끄러울 뿐 / 愧我懸鶉照袞衣
단오가 오려 할 즈음에 먼저 축수를 올리니 / 端午欲來先獻壽
창포도 꽃을 토하면서 아침 햇빛을 농하누나 / 菖花已吐弄晨暉
[주D-001]빙청(氷淸)과 옥윤(玉潤) : 훌 륭한 장인과 사위를 뜻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악광(樂廣)과 그의 사위 위개(衛玠)를 두고, 당시에 “장인은 얼음처럼 맑게 빛나고, 사위는 옥돌처럼 은은하게 빛난다.[婦公氷淸 女婿玉潤]”고 일컬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36 衛玠列傳》
[주D-002]현순(懸鶉)이 …… 뿐 : 귀인의 자리에 끼인 목은 자신의 행색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는 뜻의 겸사이다. 현순은 누덕누덕 기운 남루한 옷을 가리키고, 곤의(袞衣)는 삼공(三公) 등 고관이 입는 화려한 옷을 가리킨다.
아침에 일어나 뜨락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아도 구름 한 점 없기에 |
|
온 누리를 뒤덮은 새파란 하늘이여 / 天之靑兮垂九圍
아직도 비가 부족한데 구름은 어디로 돌아갔노 / 雨尙不足兮雲從何處歸
구름이 올라가는 것은 바로 산택으로부터 / 雲之升兮自山澤
산택에선 조석으로 안개를 일으키건마는 / 山澤日夕生煙霏
어쩌자고 그 사이에 바람 귀신이 버티고서 / 乃何風伯居其間
왔다 갔다 불어 대며 구름을 못 살게 구시는가 / 吹來吹去兮使雲無所依
창려가 시비를 따진 말이 너무도 솔직해서 / 昌黎之訟詞甚直
내가 지금 읽어 봐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 我今讀之涕淚揮
남쪽에서 온 사람이 나에게 말을 전하기를 / 人從南方來致言
씨앗이 뿌리 못 내려서 싹도 보기 드물다네 / 種不入土苗兮稀
싹이 트고 꽃 피어야 열매를 맺는 법이거늘 / 苗而秀兮乃成實
싹도 안 텄는데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랴 / 苗且不立兮何實之肥
아 중니께서 춘추를 저술하실 적에 / 嗚呼仲尼按魯史
비 안 오고 기근 든 걸 여러 번 쓰셨나니 / 屢書不雨仍書饑
이는 대개 천지간에 크나큰 재앙으로 / 蓋曰天地大不祥
다른 잡다한 재해들을 능가하기 때문이라 / 紛紛餘災何足譏
내 지금 말세에 나와 다시 무슨 일을 하리 / 我今生晚復何爲
세도가 날로 낮아지며 오도가 잘못돼 가는걸 / 世道日降吾道非
때때로 동산에 올라 사방을 돌아본다마는 / 時登東山兮四顧
하늘과 물처럼 서로들 어긋나기만 하는구나 / 如天與水兮相違
어떡하면 서로 감응해 옥촉으로 조화시켜 / 何當交感玉燭調
요순의 수의를 지금 눈으로 볼 수 있을거나 / 眼見高舜今垂衣
[주D-001]창려(昌黎)가 …… 말 : 창 려 한유(韓愈)가 당 덕종(唐德宗) 때 극심한 가뭄을 당하여 관중(關中)의 조세(租稅)를 감면해 주도록 상소했다가 참소에 걸려 연주(連州) 양산 영(陽山令)으로 좌천되었는데, 이에 대한 자신의 억울한 심정과 백성의 참혹한 생활상을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당시의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한 고시(古詩) 형태의 장시(長詩)가 전한다. 《韓昌黎集 卷1 赴江陵途中寄贈王二十補闕云云》
[주D-002]하늘과 …… 하는구나 : 세 상과 도가 어긋나서 자꾸만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주역》 송괘(訟卦) 상(象)에 “하늘은 위를 향하고 물은 아래를 향하기 때문에 길이 서로 어긋나 만나지 못하는 것이 송의 상이다.[天與水違行 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옥촉(玉燭) : 사시(四時)의 기운이 화창하게 펼쳐지는 것으로, 보통 태평성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주D-004]요순(堯舜)의 수의(垂衣) : 성군(聖君)의 덕치(德治)를 가리킨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황제와 요순 시대에는 임금이 의상을 드리우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어도 천하가 그 덕에 힘입어 잘 다스려졌다.[黃帝堯舜 垂衣裳而天下治]”는 말이 나온다.
즉사(卽事) |
|
한여름철 외진 집에 풀과 나무 더부룩 / 仲夏幽居草木長
희황 시대의 사람인 줄 아는 이 누구일까 / 誰知□□□羲黃
세운 공도 없는데 작록은 개부의 버금이요 / 無功爵祿同開府
늙지도 않았는데 자손이 벌써 집에 가득 / 未老兒孫已滿堂
산빛만 문에 비치는 고즈넉한 풍경 속에 / 山色當門何寂寂
비를 머금었는지 구름도 꾸무럭 잿빛일세 / 雲容含雨正蒼蒼
요즘 와서는 그야말로 한가롭고 마음 편해 / 邇來日月眞閑適
도의 맛 한창 진한데 머리는 서리가 내렸나 봐 / 道味方濃鬢似霜
[주D-001]한여름철 …… 누구일까 : 목 은도 도연명(陶淵明)과 같은 은일(隱逸)의 맛을 한껏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도연명의 글에 “오뉴월 여름철에 북창 아래에 누워 있다가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오면 스스로 복희씨 시대의 사람이라고 여겼다.[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는 기록이 나오고, 또 그의 시에 “초여름에 풀과 나무 더부룩 자라나서, 집을 에워싸고 나뭇가지 울창해라.[孟夏草木長 遶屋樹扶疏]”라는 표현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7 與子儼等疏, 卷4 讀山海經》
[주D-002]개부(開府) : 고려 시대 문관의 가장 높은 품계인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의 준말인데, 뒤에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으로 고쳐졌다.
여름날에 사계화(四季花)를 노래하다. |
|
화려하게도 흐드러진 작약꽃과 장미꽃이 / 芍藥薔薇麗更繁
여름 한 철 답답하게 부잣집 갇혀 있기보단 / 沈沈夏日鎖侯門
우리 집 사계화가 사계절 봄빛을 다투면서 / 爭如四季長春色
별로 촌스럽지 않게 꾸며 주는 게 더 좋아라 / 粧點吾家不甚村
경정(敬亭)의 시권(詩卷)을 읽고 |
|
모두 평장사에 오른 회산의 아버지와 아들 / 檜山父子拜平章
세상에 빛을 뿌린 자애와 효친의 가문이라 / 慈孝家門照世光
길가에 이는 붉은 티끌 겨울에도 뜨거웠고 / 路上紅塵冬亦熱
뙤약볕 비치는 여름에도 정자 안은 서늘했네 / 亭中白日夏猶涼
담암이 서문으로 취지를 설명해 주었다면 / 澹菴序引眞敷暢
초은은 시가를 통해 찬양하면서 억눌렀군 / 樵隱詩歌有抑揚
간단한 말 속에 분명한 뜻 어느 분 작품인고 / 辭約義詳誰得似
동방을 환하게 비추시는 우리 익재 선생일세 / 益齋光焰照東方
[주D-001]회산(檜山)의 아버지와 아들 : 회산군(檜山君) 황석기(黃石奇)와 그의 아들인 회산부원군(檜山府院君) 황상(黃裳)을 가리킨다.
[주D-002]길가에 …… 뜨거웠고 : 권문세가인 회산의 집을 계속 들락거리는 손님들의 수레로 땅 위의 먼지도 가라앉아 식을 날이 없었다는 말이다.
[주D-003]담암(澹菴) : 백문보(白文寶)의 호이다.
[주D-004]초은(樵隱) : 이인복(李仁復)의 호이다.
[주D-005]익재(益齋) : 이제현(李齊賢)의 호이다.
우중(雨中) |
|
자욱이 뒤덮은 구름 주룩주룩 내리는 비 / 雲浮浩浩雨浪浪
원재가 피운 한 가닥 향에서 비롯되었도다 / 出自圓齋一瓣香
성상의 마음을 몸받고서 신령을 감동시켜 / 能體聖心俄感格
여망에 부합했는지라 모두 찬탄 일색일세 / 已符衆望共誇張
농부들 얼마나 기쁘겠소 곳간 가득 채우리니 / 稻人自喜將盈廩
뽕따는 아낙네 걱정 마오 광주리 잠깐 놔둔다고 / 桑女何憂暫廢筐
음양을 섭리하는 것은 바로 군상의 일이거니 / 燮理陰陽君相事
청사에 다시 그 이름 찬란히 빛나게 되리이다 / 更敎靑史爛生光
명을 받들고 분향한 일 누가 가장 많았던가 / 承命行香誰最多
성중과 성외의 사찰들을 사뭇 돌아다녔었지 / 城中城外梵王家
당시 기우제 지낼 때만 내가 절간에 없었는데 / 當時禱雨獨無我
하늘 뜻 돌린 오늘도 여전히 다른 데 있군그래 / 今日廻天仍在他
궁중에서 진강할 적엔 운한을 생각했는데 / 進講宮中想雲漢
바람과 꽃을 읊다니 한가한 붓대가 부끄럽소 / 閑吟筆底愧風花
늙은 몸 떠나고자 하면 묻노니 어드매오 / 老身欲去問何處
벼 익고 물고기 살진 그곳 나의 안락와라오 / 魚稻是吾安樂窩
[주D-001]운한(雲漢) : 《시경》 대아(大雅)의 편명으로, 혹심한 가뭄을 만나 노심초사하는 임금의 심경을 읊은 것이다.
[주D-002]안락와(安樂窩) : 송(宋)나라 소옹(邵雍)이 살던 집 이름으로, 비록 누추하지만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거처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어제 송헌(松軒) 이 이상(李二相)의 초청을 받고 가서 개선(凱旋)을 축하하는 시편을 열람하였는데, 그때 마침 오랜 가뭄 끝에 홀연히 비가 오기에, 술잔을 연거푸 들면서 기쁜 마음을 표시하였다. |
|
군량을 확보하려면 풍년이 들어야 하고말고 / 飛蒭輓粟要年豐
말 위의 위명이야 우리 공 말고 또 누굴까 / 馬上威名屬我公
해적도 가슴 떨려 군령이 무서워 피하는 때 / 海賊寒心避軍令
우사도 위세 북돋우며 농사일 재촉하는구나 / 雨師張勢督農功
기쁜 뜻 보이려 연거푸 드는 합환의 술잔이요 / 合歡樽酒欲志喜
모두 공들여 멋지게 지은 개선 축하 시편이라 / 頌美詩篇皆致工
풍악 소리 울려 퍼지는 맑은 밤의 이 잔치 / 絲竹長歌淸夜讌
누가 있어 그림 속에 죄다 옮겨 넣어 줄까 / 有誰移入畫圖中
대신(代身) |
|
좋은 일 대신 병만 많으니 결국에는 어찌 될꼬 / 代身多病竟何如
국록을 먹으며 놀고만 있으니 비난이 많을밖에 / 食祿長閑責有餘
일편단심은 해처럼 빛나 흐릿해진 적 없건마는 / 日照丹心無曖昧
바람에 날리는 흰 머리칼은 더욱 스산해지기만 / 風吹白髮更蕭疏
이미 중국의 예악을 따라 황극에 귀의하였나니 / 已從禮樂歸皇極
어쩌면 북극성을 향해 에워싼 별들과 같다 할까 / 恰似辰星拱帝居
시골로 돌아갈 때쯤엔 이 몸이 건강해질는지 / 比及還鄕强健否
진강의 연월이 지금도 오두막 위에 비칠 텐데 / 鎭江煙月一茅廬
구름 낀 새벽에 |
|
검은 구름 비 머금고 띳집 처마를 누르는 때 / 濃雲含雨壓茅簷
나는 병으로 한거하며 인염의 은혜를 누리노라 / 因病閑居得引恬
허명으로 이 몸이 벌써 늙은 것이 유감일 뿐 / 只恨虛名身已老
거친 밥에 반찬 하나 싫어할 까닭이 있으리요 / 豈嫌麤糲味難兼
나물 보내 준 이웃의 정 두터운 줄 알고말고 / 隣家送菜知情厚
상부가 시를 부탁하면 입으로 금세 짓는다오 / 相府求詩每口占
소쇄한 생애 보낸 것이 나로선 정말 다행인데 / 蕭洒生涯眞自幸
지금 펼쳐 본 간괘에도 허물이 없으리라 하네 / 時觀艮卦卽□□
[주D-001]인염(引恬)의 은혜 : 편히 살게 해 주는 임금의 은혜라는 뜻이다. 《서경》 재재(梓材)에 “정치의 목적은 백성을 인도하여 길러 주고 편안하게 해 주는 데에 있다.[引養引恬]”는 말이 나온다.
붓을 달려 밀성(密城)과 전(前) 김해(金海)와 남경 중서(南京中書) 등 삼 형제 좌하에 부치면서 함께 보기를 희망하다. |
|
일도 많은 이때에 큰일을 또 벌이다니 / 事鉅時多故
마음은 간절해도 힘이 감당을 하지 못해 / 情深力不支
그대들 삼생의 꿈을 일단 깨게 해 주려고 / 欲醒三際夢
우선 짧게 오언시로 급히 지어 보내노라 / 且作五言詩
형님 아우 어울려 함께 그곳에 노닐면서 / 昆仲同游處
강과 산에 자신있게 지금 우뚝 서 있겠지 / 江山獨立時
-원문 빠짐- / □□□□□
후회막급할 일은 부디 하지들 말았으면 / 莫使悔難追
김 안렴(金按廉)에게 부치다. 2수(二首) |
|
나는 유술을 몰라 길을 헤매는데 / 自笑迷儒術
사람들이 추켜 주니 웃음이 나올밖에 / 人□□□經
가야의 산 빛깔 얼마나 수려할까 / 伽倻山色秀
천리의 풍경이 눈 속에 푸르러라 / 千里眼中靑
그대 지금 다행히도 부월을 잡았으니 / 子幸方持斧
실기하지 않으리라 나는 생각하노라 / 吾思不失機
차 잎새 푸릇푸릇 들판에 돋아났으리니 / □□群野□
아침의 출출함을 참지 않게 해 줬으면 / 勿使忍朝飢
[주D-001]그대 …… 잡았으니 : 왕명을 받들고 나가서 법을 집행하는 어사(御史) 등의 관원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지방 장관으로 부임해 나간 것을 가리킨다.
김 안렴이 보내 준 차가 마침 도착했기에 |
|
내가 지금 시를 부치려고 하는 차에 / 我欲寄詩去
그대가 보낸 차가 방금 도착하였도다 / 君方送茶來
하루만 지났으면 어긋날 뻔하였으니 / 適在一日間
얼마나 다행인가 참으로 다행일세 / 幸哉眞幸哉
이번 일을 누가 우연이라 말을 할까 / 雖云偶然爾
마음에 간격 없는 것을 족히 보겠도다 / 足見無疑猜
정분이 친하면 서로 느껴 통하는 법 / 情親卽相感
그래서 사람을 천지에 짝한다 하느니라 / 故曰通三才
맑은 바람이 자리 옆으로 불어오고 / 淸風吹座隅
참새가 뜰 속의 이끼 쪼아 먹을 뿐 / 雀啄庭中苔
적막한 집 속에 낮 시간 길고 길어 / 寥寥白晝永
그림자 데리고 일없이 배회하노매라 / 携影空徘徊
오지 그릇에 찬 샘물 길어 부을 때 / 瓦盆汲冷泉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죽창의 풍경 / 竹窓無纖埃
한번 들이켜니 오장이 시원해지면서 / 一啜爽五內
일만 구멍이 일제히 열려 소리치누나 / 萬竅呼風雷
[주D-001]정분이 …… 하느니라 : 《주역》 함괘(咸卦)에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주D-002]일만 …… 소리치누나 : 차 를 마시자마자 몸이 상쾌해져서 이목구비와 살갗의 털 구멍 등 모든 감각기관들이 다시 살아나 발동하기 시작한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인데,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의 “바람이 안 불면 모르지만 일단 불기만 하면 일만 개의 구멍이 성내어 소리치기 시작한다.[是唯無作 作則萬竅怒號]”라는 말을 전용(轉用)한 것이다.
흰 구름 |
|
내 눈앞에 펼쳐진 흰 구름이여 / 白雲當我前
조각조각 높고 낮게 나뉘어졌네 / 片片分高低
원래 유리알처럼 짙푸른 하늘 위에 / 天容自澄碧
동에서 서로 해가 늘상 뜨고 지는데 / 日行東復西
오늘 엉겨 붙게 한 뜻이 분명히 있으련만 / 點綴有其意
올라가서 물어볼 길 없는 것이 유감일세 / 問之恨無梯
이따금씩 기이한 봉우리 만들어 내면 / 往往成奇峯
신선의 학이 둥지 틀었나 의심도 되고 / 仙鶴疑可栖
미풍이 불어 형편없이 힘이 약해지면 / 微風力甚弱
살금살금 따르는 모양이 골계 같기도 / 隨之如滑稽
잠깐 사이에 온갖 변화가 이뤄지건만 / 變化在俄頃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유연할 뿐이로세 / 悠然無心兮
진흙탕 속에서 구름이 생기는 집도 있는 데다 / 生泥旣有舍
꽃길 따라 앞 시내를 건널 수 있는 나의 집 / 傍花仍有溪
내가 언제 사는 곳을 특별히 골랐으랴마는 / 何曾擇所處
지금 나도 그들과 똑같은 곳에 살고 있네 / 我今思與齊
[주D-001]오늘 …… 있으련만 : 티 끌 하나 없는 하늘에 구름이 점점이 박히게 한 뜻이 뭔가 있을 것이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진(晉)나라 사마도자(司馬道子)가 밤 하늘의 맑은 달을 보고 찬탄을 하자, 사중(謝重)이 옆에 앉아 있다가 “엷은 구름이 살짝 엉겨 붙어 있는 것만 못하다.[不如微雲點綴]”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言語》
[주D-002]골계(滑稽) :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처신하여 몸을 다치지 않고 은근히 풍자를 통해 웃기면서 임금을 바른 길로 이끄는 자들을 말하는데, 동방삭(東方朔)이나 순우곤(淳于髠)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주D-003]진흙탕 …… 있는 데다 : 목 은의 거처도 두보(杜甫)의 초당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말이다. 두보의 시에 “태양은 울타리 동쪽 물가에서 떠오르고, 구름은 집 북쪽 진흙탕 속에서 생겨나네.[日出籬東水 雲生舍北泥]”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3 絶句六首》
[주D-004]꽃길 …… 집 : 송 유(宋儒) 정명도(程明道)가 호현(鄠縣)의 주부(主簿)로 있을 때 지은 시 〈춘일우성(春日偶成)〉에 “엷은 구름 상큼한 바람 정오가 다 되는 때, 꽃길 따라 버들 따라 앞 시내를 건너가네.[雲淡風輕近午天 傍花隨柳過前川]”라는 구절이 나온다. 《伊洛淵源錄 卷3》
단옷날의 석전(石戰) |
|
해마다 단옷날엔 악바리 청년들 모여들어 / 年年端午聚群頑
양 편으로 갈라서서 돌 날리며 싸우는데 / 飛石相攻兩陣間
마시장 냇가에 아침부터 집결을 하였다가 / 馬市川邊朝已集
승재 지내는 절 북쪽에 저녁에야 돌아오네 / 僧齋寺北暮方還
쫓길 적엔 산야에 깔린 약초처럼 흩어졌다가 / 忽然被逐輕如藥
대치할 적엔 태산처럼 물러설 줄을 모르는데 / 屹爾當衝重似山
목적은 단지 조정이 용사를 구하는 것이거늘 / 只爲朝廷求勇士
얼굴과 눈이 깨지다니 이는 또 무슨 체면인고 / 殘傷面目亦胡顔
단 옷날에 조정에서 격구(擊毬)를 하는 것은 예전부터 행해 온 관례였다. 그러나 주상 전하께서 병화로 인해 백성들이 많이 유망(流亡)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바야흐로 좌불안석하며 재해를 막을 방도를 깊이 생각하고 계시고, 재상들 역시 위로 성상의 마음을 몸 받아 주연(酒宴)을 금지하고 곡물 창고를 열어서 백성들을 진휼(賑恤)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날 격구를 하는 것도 그만두기로 하였으므로, 내가 너무도 감격스러운 나머지 시 한 수를 지어 기록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령 자제들이 말을 치달리며 격구하는 일을 익혀서 사적으로 모여 즐긴다고 한다면 이것이야 조정에서도 필시 금지하지 않을 텐데, 나를 불러서 함께 구경하자고 할 사람이 누가 있을지 모르겠다. |
|
군신은 병화를 당한 백성을 걱정하여 / 君臣因兵荒
노심초사하며 창고를 열어 진휼하고 / 發倉憂正烈
자제들은 격구를 하는 기술을 익혀 / 子弟習擊刺
땅이 찢겨 나갈 듯 질풍처럼 치달리고 / 馳馬疾如裂
이쯤 되면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니 / 一擧乃兩得
왕성에도 부족함이 없게 되리로다 / 王省無由缺
요 임금과 탕 임금 홍수와 가뭄 만났어도 / 堯湯遇水旱
만세토록 성군으로 추앙을 받지 않던가 / 萬世歆聖哲
창생이 죽더라도 원망을 하지 않는데 / 蒼生死不怨
천명이 끊어진 적이 어느 때 있었던가 / 天命何時絶
백성의 마음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所以得民心
그것은 단지 시절을 알아서 행하는 것 / 只在知時節
그대여 독부의 행위를 한번 보시게나 / 君看彼獨夫
그 때문에 멸망의 길을 스스로 불렀다오 / 所以取亡滅
위와 아래가 화합하여 한마음이 됐는지라 / 上下和而同
내가 지금 바야흐로 희열감에 차 있나니 / 我今方喜悅
자제들이 말 타고 달리며 공을 친다면 / 子弟如擊毬
한번 가서 구경하는 것도 어떠하리요 / 何妨一往閱
[주D-001]땅이 …… 치달리고 : 두보(杜甫)의 시에 “세모에 초목들은 시들어 떨어지고, 높은 언덕은 질풍에 찢겨 나갈 듯.[歲暮百草零 疾風高岡裂]”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4 自京赴奉先縣詠懷》
[주D-002]왕성(王省) : 임금의 정치라는 말이다. 《서경》 홍범(洪範)에 “임금이 잘하고 못한 것은 1년을 기준으로 판단한다.[王省惟歲]”는 말이 나온다.
[주D-003]독부(獨夫) : 하늘도 버리고 백성도 버려 외롭게 된 통치자라는 뜻인데, 《서경》 태서 하(泰誓下)에 폭군 주(紂)를 독부로 명명하고는 그의 죄악상을 나열한 내용이 나온다.
민 판서(閔判書), 권 판서(權判書)와 함께 외구고(外舅姑)의 분묘에 가서 성묘한 다음에 성안으로 들어와서 석전(石戰)을 구경하려고 마시장의 냇가로 갔으나 텅 빈 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때 남 원수(南元帥)가 강릉(江陵)으로 나가 왜적을 쳐부수고 개선(凱旋)하였으므로, 함께 그를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성문(省門)에 이르렀을 때 마침 석전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길이 막혀서 되돌아왔다. 선죽(善竹)의 큰길에서도 석전이 벌어질 예정이었으므로, 남산의 동쪽 기슭으로 올라가서 구경하려고 하였는데, 아직 그들이 집결하지 않았기에 임 판사(任判事)의 집에 가서 조금 쉬었다. 급기야 석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에 염동정(廉東亭)이 또 왔으므로, 마침내 함께 올라가서 구경하였는데, -원문 빠짐- 비가 와서 옷을 축축히 적셔도 개의하지 않았다. 권 판서의 초청을 받고 그 집에 가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다 마치자 그가 또 “멀리 떨어져서 구경하기보다는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기에, 선죽의 물가로 가서 소루(小樓)에 올라갔는데, 상의(商議) 이송헌(李松軒)과 문 반주(文班主)도 이곳을 찾아왔다. 이때 석전이 소루 바로 아래에서 한 차례 벌어졌으므로 이만하면 석전 구경을 충분히 했다는 생각도 들고, 날도 어두워지려고 하기에 각자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
|
선영에 성묘하고 성안으로 들어와서 / 先塋拜掃入城來
개선하고 돌아온 남공을 찾아 인사했네 / 往謁南公奏凱廻
마시장 냇가에는 해만 쨍쨍 내리쬐고 / 馬市川邊空白日
승재 올리는 절 북쪽은 이끼만 푸를 뿐 / 僧齋寺北但蒼苔
남산에서 비 만났어도 얼마나 흥이 나던지 / 南山遇雨眞乘興
선죽의 돌팔매질 정말 그 재주 볼 만했네 / 善竹生風可閱才
세 분 집에 두루 들러 주금 이전의 술 마시고 / 飮徧三家禁前酒
송헌과 문상도 잠시나마 서로 얼굴을 보았다오 / 松軒文相暫相陪
서린(西隣)의 길창군(吉昌君)이 곡성(曲城)과 칠원(漆原) 두 분 시중을 비롯해서 정 월성(鄭月城)과 두 명의 한 정당(韓政堂)을 초청하여 식사 대접을 하였는데, 나도 그 자리에 끼어 있다가 돌아와서 이 일을 기록하였다. |
|
식례와 고년이 어울려서 온당함을 얻은 자리 / 食禮高年兩得宜
쇠한 장에는 기름이 있어야 윤기가 돌고말고 / 衰腸潤澤在膏脂
주인의 마음 씀씀이를 누가 미칠 수 있으리요 / 主人用意誰能及
동자가 은혜를 받은 것은 세상에서 아는 바라 / 童子蒙恩世所知
작약은 꽃잎을 토해 내어 붉은빛 넘쳐흐르고 / 芍藥吐葩紅爛熳
포도는 덩굴 벋어 나가 온통 초록색 뒤덮였네 / 葡萄引蔓綠紛披
한낮의 모정 풍경 여기가 선경이 아니겠소 / 茅亭白日眞仙境
백발로 담소 나누는 신선의 얼굴이 계시니까 / 華髮蒼顔笑語時
[주D-001]식례(食禮) : 노 인에 대한 식사 대접을 말한다. 《예기》 왕제(王制)에 “노인을 대접할 때 은나라 사람들은 식례로써 하였다.[凡養老 殷人以食禮]”는 말이 나오는데, 그 주(註)에 “술이 있기는 하나 마시지 않고 오직 밥 먹는 것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식례라고 한다.”고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또 읊다. |
|
꾀꼬리 소리 속에 꿈을 막 깨고 보니 / 黃鸝聲裏夢初驚
햇빛이 동창에 쏟아져서 두 눈이 부셔 / 日照東窓兩眼明
원래가 활발발한 본심을 본 듯하다가도 / 乍見本心元潑潑
다시금 왱왱대는 사욕을 좇고 마는구만 / 又從私慾却營營
서로 시작과 끝이 되는 시서와 예악이요 / 詩書禮樂相終始
태평 시대를 함께 하는 설월과 풍화로세 / 雪月風花共太平
요즘 부쩍 쇠한 내 몸도 한스럽지 않아 / 不恨吾衰今已甚
달존의 성대한 모임에 끼일 수 있으니까 / 達尊高會忝同盟
[주D-001]달존(達尊) : 누구나 존경하는 것을 말하는데,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이 세상에 누구나 존경하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관작과 연치와 덕이 그것이다.[天下有達尊三爵一齒一德一]”라는 말이 나온다.
합 좌소(合坐所)에서 한량 기로(閑良耆老)들을 초치하여 사대(事大)에 관한 현안(懸案)에 대해서 회의하게 하였다. 회의가 끝난 뒤에 상당군(上黨君)이 곡성(曲城)과 칠원(漆原)과 길창군(吉昌君)과 강 평장(康平章)을 초청하여 식사 대접을 하였는데, 나와 상당군의 조카인 정당공(政堂公)도 이 자리에 끼었다. 이날 늦게 돌아와서 흥에 겨워 노래를 지어 불렀다. |
|
소방의 사대에 대해서야 다시 말할 게 있으랴만 / 小邦事大復何言
뜻밖의 변고를 만났으면 중론에 부쳐야 하고말고 / 遇變還須付衆論
고기를 가미한 순챗국은 개운하면서 매끄럽고 / 肉雜蓴羹鮮且滑
멥쌀로 금방 지은 밥은 희디희면서 다숩도다 / 飯蒸粳米潔仍溫
성대한 모임에 분수 넘치게 끼어든 서생이요 / 書生分外參高會
공무의 여가에 성은을 즐기는 국가의 원로로세 / 國老公餘樂聖恩
주금(酒禁) 이전에 빚은 술을 어찌 마시지 않을쏘냐 / 釀在禁前胡不飮
반쯤 취해서 돌아가는 수레에 시흥이 가득하였네라 / 半酣詩興滿歸軒
즉사(卽事) |
|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물처럼 서늘하고 / 晨興天氣涼如水
노쇠했어도 내 마음은 연꽃처럼 청정해라 / 衰老吾心淨似蓮
남신으로 다시 가서 성대한 모임 끼었으니 / 更向南新參盛會
병으로 얽힌 이 몸도 더는 시름겹지 않아 / 不愁□□苦纏綿
유감(有感) |
|
부모님 애써 주신 덕에 이 몸이 있게 되었나니 / 父母劬勞有此身
하늘과 같은 그 은덕 늙으며 더욱더 새록새록 / 昊天恩德老彌新
오늘 아침 정좌하니 한없이 뻗치는 사념이여 / 今朝靜坐思無盡
분양으로 시종해야만 효도를 했다고 하련마는 / 終始汾陽可孝親
[주D-001]부모님 …… 되었나니 : 《시경》 소아(小雅) 육아(蓼莪)에 “슬프고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哀哀父母生我劬勞]”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분양(汾陽)으로 …… 하련마는 : 분 양왕(汾陽王)에 봉해진 당(唐)나라의 곽자의(郭子儀)처럼 위대한 인물이 되어 국가에 공을 세워야만 비로소 어버이의 은혜를 갚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는 말이다. 당 숙종(唐肅宗) 때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하고 분양왕에 봉해진 곽자의는 무려 20년 동안 천하의 안위(安危)를 한 몸에 짊어진 명장이요 명상으로서, 덕종(德宗)으로부터 상부(尙父)의 칭호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무제(無題) |
|
굶주린 기색이 얼굴에 이미 떠 있는데 / 菜色已浮面
묵 자국만 몸에 가득 묻히려 하시는가 / 墨痕將遍身
간난신고야 누구에 비할 수 있겠소만 / 艱辛難可比
용맹심만큼은 아직도 따를 자 없으리다 / 勇猛尙無倫
졸렬한 인생살이 한스럽게 여기리요 / 不恨人謀拙
진실된 나의 성품 아무쪼록 찾아야지 / 須參自性眞
원래 괴로움 속에 즐거움이 있는 법 / 苦中元有樂
어찌 꼭 미진을 건널 필요가 있으리까 / □□度迷津
[주D-001]미진(迷津) : 고해(苦海)를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붓을 잡고 상념에 잠겨 있다가 붓을 떨어뜨려 옷에 먹을 약간 묻히다. |
|
시흥이 아득하게 끝도 없이 이어져서 / 詩興茫無涯
사색에 빠져들었다가 정신이 되레 깜박 / 靜思心反昏
손 안에 쥐고 있던 곧은 붓대 끝이 / 手中筆鋒直
홀연히 떨어져서 옷에 자국 남겼네 / 忽落衣有痕
옷에 묻은 먹물이야 세탁하면 되겠지만 / 衣汚尙可濯
정신이 쇠했으니 글이 제대로 나오겠나 / 心衰難立言
물고기 비늘처럼 이어지는 사계절 속에 / 四序似鱗次
하늘과 땅 사이를 만물이 가득 채웠나니 / 萬物盈乾坤
그 속에 충만한 것은 바로 호연지기 / 其中浩然氣
내 몸속의 원기와 똑같은 것이거늘 / 與我同一元
어찌하여 도리어 스스로 작게 여겨 / 奈何反自小
흐린 흙탕물처럼 되려고만 하시는가 / 有如泥水渾
맑게 하려고만 하면 금방 맑아지리니 / 澄之便見淸
어서 떠날지어다 참근원을 찾는 길로 / 往矣尋眞源
합포(合浦)의 남 영공(南令公)에게 답하는 시를 대신 써 주다. |
|
경신년에 급제한 분들 모두가 영웅호걸인데 / 庚申及第盡英雄
이공과 우공은 아들이 벌써 도당에 들었구려 / 子入都堂李禹公
보내신 건육 한 봉지 깊은 그 뜻을 모르리까 / 乾肉一封深有意
언젠가 뵙고서 감사하며 가풍을 회복하리이다 / 他時面謝復家風
[주D-001]경신년에 …… 영웅호걸인데 : 충숙왕(忠肅王) 7년(1320)의 문과(文科)에 목은의 부친인 가정(稼亭)도 함께 급제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인 듯하다.
[주D-002]언젠가 …… 회복하리이다 : 부친 때에 맺어진 동년(同年)의 정리를 생각해서 그 후손들끼리도 다정하게 지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유감 |
|
생을 탐하고 죽음을 겁냄은 둘 다 불쌍한 일 / 貪生畏死兩堪憐
본래 사생은 운명이라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을 / 有命在天元自然
단지 심신에 안처의 경지를 제대로 터득하면 / 只得身心安處善
어떤 상황에 처하든 간에 막힘없이 행하리라 / 便於事物可行權
솔의 마음을 볼지어다 한과 열에 변하던가 / 松心不變寒兼熱
물의 성품을 볼지어다 택과 천을 가리던가 / 水性何分澤與川
단 하나 이 고질병은 깎아 내 버릴 수가 없어 / 只是沈痾難刮去
매번 술 먹고 취해야만 곤히 잠들 수 있다오 / 每憑尊酒得酣眠
[주D-001]안처(安處) : 안 시처순(安時處順)의 준말로, 어떤 시운(時運)을 만나든 그 변화를 편안히 여기면서 순응하는 것을 말한다. 《장자》 양생주(養生主)에 “마침 그때에 태어난 것은 선생이 올 때가 되었기 때문이요, 마침 이때에 세상을 떠난 것은 선생이 갈 때가 된 것이니 도리상 순응해야 할 일이다. 자기에게 닥친 시운을 편안히 여기고서 그 도리를 이해하여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슬프고 기쁜 따위의 감정이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適來 夫子時也適去 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솔의 …… 변하던가 : 생사를 초월한 심경을 비유한 것으로, 한(寒)은 죽음을 겁내는 것을, 열(熱)은 생을 탐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3]물의 …… 가리던가 : 어떤 상황에 처하든 간에 막힘없이 행하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택(澤)은 한곳에 머물러 있는 호수나 늪지대로서 궁(窮)을 말하고, 천(川)은 곤곤히 흘러가는 장강 대하로서 통(通)을 말한다.
어떤 승려 하나가 황량한 시골 나루에서 배를 대기시켜 두고 있다가 사람들을 건네 주고 있기에, 내가 기쁜 한편으로 슬픈 생각이 들기에 절구 한 수를 지었다. |
|
사람도 없는 들 나루에 가로놓인 배 하나 / 野渡無人舟自橫
이 배 없으면 길손이 무슨 수로 건너갈까 / 無舟何以送人行
목옹은 이미 늙은 데다 병이 또 하 많지만 / 牧翁老矣仍多病
남의 어려움 구해 주는 스님 보니 부끄러워 / 愧殺閑僧濟物情
[주D-001]사람도 …… 하나 : 당나라 위응물(韋應物)의 시 〈저주서간(滁州西澗)〉에 “비 내리는 봄 물결 저녁 들어 급한데, 사람도 없는 들 나루에 가로놓인 배 하나.[春潮帶雨晚來急 野渡無人舟自橫]”라는 시구가 나온다.
즉사(卽事) |
|
한낮의 맑은 바람 북쪽 숲 속에 가득하고 / 日午淸風滿北林
남쪽 창엔 하늘 활짝 엷은 구름 걷힌 때 / 南窓天豁卷輕陰
유술의 효과 끝내 없어 부끄러워만 하면서 / 只慚儒術終無效
농사일을 걱정하며 시만 괴롭게 읊노매라 / 偶念農功祗苦吟
흰 머리칼 성글어도 자포자기를 할 수야 / 種種自難抛白髮
구구하게 맹세한 마음 그 누가 믿어 줄까 / 區區誰信矢丹心
한가히 거하며 국록 받고 처자를 살지우니 / 閑居食祿肥妻子
바다처럼 깊은 군은에 감격할 따름일세 / 感激君恩似海深
무급(無及) 등 여러 대덕(大德)에게 부쳐 보내면서 아울러 염 육재(廉六宰)와 성 하성(成夏城) 두 집에도 소식을 전하다. |
|
잘 참아 내야만 제대로 일을 이루는 법 / 堪忍能成事
어렵고 힘들다고 말할 것이 또 있을까 / 艱難不必言
회통을 하면 너와 나가 따로 없는 법 / 會通無彼我
큰 덕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울 테니 / □德滿乾坤
흰 구름 |
|
남쪽을 향하는 흰 구름 그림자 너울너울 / 白雲南去影翩翩
하늘 끝 가야산 다시금 종적이 묘연해라 / 天際伽倻更渺然
따라가고 싶어도 날아갈 수가 있어야지 / 我欲從之飛不得
어느 날에나 금대로 유선을 찾아갈거나 / 琴臺何日訪儒仙
[주D-001]유선(儒仙) : 가야산에서 노닐었다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가리키는데, 학사대(學士臺)와 제시석(題詩石)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자탄(自嘆) |
|
내 몸이 쇠했어도 걱정할 게 뭐 있으랴 / 我身衰朽亦何傷
조석으로 밥 먹여 주는 맹광이 건재한걸 / 朝夕饔飱有孟光
아이가 배와 밤 찾는 것이 뭐가 이상하랴 / 不怪兒童索梨栗
나도 손님 올 때마다 차를 홀짝거리는 걸 / 每因賓客啜茶湯
살림살이 졸렬한 책임을 어떻게 면하리오마는 / 營生甚拙那辭責
봉급을 꽤나 받는 것도 감히 잊어선 안 되겠지 / 請奉之多豈敢忘
어떡하면 티끌세상 그물망을 벗어나서 / 安得破除塵土網
자지 향내 맡으며 남은 세월을 보낼꼬 / 紫芝香裏送殘陽
[주D-001]맹광(孟光) : 후한(後漢) 양홍(梁鴻)의 처의 이름인데, 가난한 집에 시집을 와서 부부가 동고동락하며 서로 경애(敬愛)하였으므로, 현처(賢妻)의 대명사로 곧잘 쓰인다. 《後漢書 卷83 梁鴻列傳》
[주D-002]아이가 …… 이상하랴 : 도 연명(陶淵明)은 자기 아이들을 책망하면서 “통이란 놈은 아홉 살이 다 되었는데도, 배와 밤만 찾고 있다.[通子垂九齡 但覓梨與栗]”고 넋두리를 늘어놓았지만, 목은이 볼 때 아이들의 그러한 행동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서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다는 말이다. 《陶淵明集 卷3 責子》
[주D-003]자지(紫芝) …… 보낼꼬 : 인 적이 드문 곳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는 뜻을 토로한 것이다. 진(秦)나라 말기에 상산사호(商山四皓)가 남전산(藍田山)에 숨어 살면서 〈자지가(紫芝歌)〉를 지어 불렀는데, 그중에 “색깔도 찬란한 영지 버섯이여, 그것만 먹어도 배고픔이 사라지지.[曄曄紫芝 可以療飢]”라는 구절이 나온다. 《高士傳 卷中》
동 년(同年)인 안면(安勉)의 아들 노생(魯生)이 어버이를 뵈러 고향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나에게 자기 부친의 말을 전하였다. 이에 내가 두루 소식을 물어봤더니, 향선생(鄕先生)인 신 판사(申判事) 형제와 권길부(權吉夫)와 김군제(金君濟) 및 그의 존공(尊公) 모두가 무고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
광주는 전라도의 승경이 모여 있는 곳 / 全羅勝槪在光州
벌써 백발이 된 나의 생애가 한스러워 / 自恨吾生已白頭
듣자니 의관들의 즐거운 잔치가 많다고 / 聞說衣冠多燕喜
구학의 풍류 얼마나 멋있을까 상상되네 / 想看丘壑最風流
산이 이어진 마을에 구름이 또 자리까지 / 山連里巷雲連座
물이 가득한 연못에 달빛이 또 누각까지 / 水滿池塘月滿樓
우리 태수님 세운 정자 더더욱 좋으련만 / 太守置亭應更好
과연 어느 분이 취옹의 놀이를 이을는지 / 不知誰繼醉翁遊
[주D-001]취옹(醉翁) :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의 별호이다. 그가 저주 태수(滁州太守)로 좌천되어 나간 뒤에 그곳에 정자를 짓고 노닐면서 지은 〈취옹정기(醉翁亭記)〉가 유명하다.
문생 윤상발(尹商發)이 집에서 빚은 술 한 병을 보내왔기에 |
|
지금은 쫓겨 나가 있는 국 수재의 높은 풍도 / 麴秀才今在逐中
옛 놀이 얼마나 신났던지 얼른 보고 싶었는데 / 舊遊心渴慕高風
우리 문생이 내 마음 알고 주선을 해 주다니 / 先容賴有門生在
기분이 좋아 영접하며 신발도 거꾸로 신었다오 / 倒屐相迎意氣濃
병골이라 술을 늘상 뱃속에 담을 순 없더라도 / 病骨末由長貯緣
쇠한 얼굴 잠시나마 홍조를 띠게야 못 하겠소 / 衰顔猶可暫浮紅
누대에 올라 남산을 다시 대하고 앉으려니 / 上樓更對南山坐
호호탕탕 천지 사이에 하나의 노옹뿐이로세 / 浩蕩乾坤一老翁
[주D-001]국 수재(麴秀才) : 술의 별칭으로, 국생(麴生)이라고도 한다.
최 시중(崔侍中)이 성묘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내 몸이 고단해서 교외로 나가 영접할 수가 없기에 시 한 수를 지어 봉정하다. |
|
삼한의 거목으로 대대로 공을 세운 집안 / 喬木三韓有世臣
성군의 은혜 중히 받고 양친을 현양했네 / 聖君恩重顯雙親
북받치는 충성심으로 선영에 향 피우고 / 焚香先壟忠誠激
도당에 백발 드리우고 덕화를 펼치도다 / 垂白都堂德化淳
수려한 기운이 모여든 강산인 줄 알겠거니 / 已信江山鍾秀氣
밝은 신령도 서직을 받고 흠향을 하셨으리 / 須知黍稷感明神
병으로 교외에 못 나간 채 괜히 읊는 노래 / 病難郊迓空吟咏
찬미하는 시구가 새롭지 못한 게 부끄럽소 / 頌美飜慚語不新
독음(獨吟) 3수(三首) |
|
푸른 풀빛 촘촘해라 자리 위에 바람 일고 / 綠密風生座
붉은 꽃잎 산뜻해라 섬돌에 이슬 떨어지네 / 紅鮮露滴堦
붓끝에 무궁한 조화 함축하고서 / 筆端含造化
병든 나그네 산재에 앉아 있노라 / 病客坐山齋
이미 띠풀로 지붕을 이었거니 / 旣以茅爲屋
흙으로 섬돌 만든들 관계 있겠소 / 何妨土作堦
육신은 쇠해서 걸핏하면 병드오만 / 身衰動成病
마음은 안정되어 재계하는 듯하다오 / 心定輒如齋
푸르른 산빛은 문 앞에 다가서고 / 山色靑當戶
초록색 이끼는 섬돌 위로 올라오네 / 苔痕綠上堦
새로운 시랍시고 되는대로 써 봤는데 / 新詩渾漫□
몇 점이나 줄는지 우재에게 물어볼까 / 評點付迂齋
[주D-001]이미 …… 있겠소 : 요순(堯舜) 시대에는 궁궐의 지붕을 띠풀로 잇고서 그 끝을 가지런히 자르지도 않았으며[茅茨不剪], 흙으로 세 계단의 섬돌을 만들 뿐이었다[土階三等]는 말이 《사기(史記)》 권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나온다.
[주D-002]마음은 …… 듯하다오 : 마음을 텅 비워 모든 잡념을 없애고 순일하게 하는 이른바 ‘심재(心齋)’의 경지에 대한 내용이 《장자》 인간세(人間世)에 나온다.
[주D-003]푸르른 …… 다가서고 : 이백(李白)의 시 〈제동계공유거(題東溪公幽居)〉에 “푸른 산에 가까운 집은 사조와 같고, 푸른 버들 드리운 문은 도잠과 비슷하네.[宅近靑山同謝脁 門垂碧柳似陶潛]”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D-004]초록색 …… 올라오네 : 당(唐)나라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에 “이끼는 섬돌에 올라 초록색이요, 풀빛은 발에 들어 청색이로다.[苔痕上階綠 草色入簾靑]”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D-005]새로운 …… 봤는데 : 두 보(杜甫)의 시 〈강상치수여해세(江上値水如海勢)〉에 “나는 성벽이 멋진 시구를 좋아해서, 남을 놀래킬 말 아니면 죽어도 쉬지를 않았는데, 늙어가면서는 시들 모두 흥따라 되는대로, 봄에 꽃 피고 새 울어도 별로 시름겨울 것도 없네.[爲人性僻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 老去詩篇渾漫與 春來花鳥莫深愁]”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D-006]몇 …… 물어볼까 : 흥 이 나는 대로 옛 시인들의 시구를 모아서 한 편의 시를 지어 보았는데, 과연 시를 잘 안다는 우재(迂齋)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우재는 우수(迂叟) 나흥유(羅興儒)로, 《목은문고》 제13권의 〈금남 우수(錦南迂叟)의 전기(傳記) 뒤에 쓰다.〉와 〈나흥유를 축하한 시권(詩卷)의 발문(跋文)〉을 참고하기 바란다.
선유(仙遊) |
|
신선의 나들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 仙遊已超忽
속세의 인연에 바야흐로 얽매는 때 / 俗緣方牽連
어떻게 그런 기회 다시 만날 수 있으리요 / 無由得相値
물이 하늘과 반대로 흐르는 것과 같은걸 / 水行違於天
인욕을 버리는 일이 바위처럼 무겁다면 / 去欲重如石
천심을 지니는 일은 안개처럼 흩어져라 / 存心散如煙
예로부터 나름대로 뜻을 고수한 이들이 / 古來有志者
단약을 만든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닐 텐데 / 丹成非偶然
나는야 몸뚱이에 병이 온통 감겼으니 / 我身病所□
어느 때나 매미처럼 껍질을 벗어 볼꼬 / 蟬蛻知何年
[주D-001]물이 …… 같은걸 : 《주역》 송괘(訟卦) 대상(大象)에 “하늘은 위를 향하고 물은 아래를 향하기 때문에 길이 서로 어긋나 만나지 못하는 것이 송의 상이다.[天與水 違行 訟]”라는 말이 나온다.
절구(絶句) |
|
오래도록 단비가 내리기를 바라면서 / 久矣欲甘霔
뭣 때문에 부질없이 애를 태웠던고 / 胡然徒苦心
짙은 구름 사방 들판 드리워지자 / 濃雲垂四野
새들이 높은 가지에서 떠들어 대네 / 群鳥噪高林
군자(君子) |
|
군자가 백성을 이롭게 해 주려는 / 君子欲澤民
그 마음씨 얼마나 진실되다 할까 / 用意何其眞
허나 때를 만남은 바로 운명이요 / 遭逢在於命
자기 몸을 보전 못 할 때도 있다네 / 亦或難保身
오직 귀중한 건 오도를 지키는 것 / 所貴守吾道
출처간에 인륜을 밝혀야 하고말고 / 出處明彝倫
뜬구름이 허공을 가득 뒤덮은 채 / 浮雲滿虛空
가랑비가 풍진과 뒤섞여 내리는 때 / 微雨雜煙塵
북쪽 창가에 높이 누워 있자 하니 / 北牖政高臥
한 줄기 청풍이 고인처럼 찾아오네 / 淸風來故人
[주D-001]뜬구름이 …… 때 : 뭇 간악한 신하들이 일월과 같은 임금의 총명을 가리는 것을 풍자해 표현한 말이다.
[주D-002]북쪽 …… 찾아오네 : 진 (晉)나라 도잠(陶潛)의 글에 “오뉴월 여름철에 북창 아래에 누워 있다가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오면 스스로 복희씨 시대의 사람이라고 여기곤 했다.[五六月中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라는 구절이 나온다. 《陶淵明集卷7 與子儼等疏》
당 후(堂後) 정혼(鄭渾)이 맹운(孟雲) 선생의 시를 얻어 가지고 나에게 와서 보여 주고는 이번에 청성(菁城)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였다. 내가 그의 뜻을 살펴보건대 나의 시를 얻고 싶어 하는 것 같기에 그 시에 차운해서 더욱 힘쓰도록 하였다. 그는 죽정(竹亭) 정지상(鄭之祥)의 아들이다. |
|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빛나는 죽정의 절의 / 竹亭節義久彌精
위엄 있게 처리한 일 온 세상이 놀랐어라 / 處事威稜擧世驚
끝없이 전해질 못다한 한과 꽃다운 향기여 / 遺恨流芳俱不盡
나 홀로 탄식노라 백발이 되도록 헛 산 것을 / 白頭吾獨嘆虛生
산 위의 묘목 늘어졌다 탄식할 게 있으리요 / 山苗不用歎離離
남자라면 천하의 기걸찬 대장부가 되어야지 / 男子要爲天下奇
때를 만나지 못했을 땐 무슨 낙이 또 있을까 / 未遇知時何所樂
색동옷 입고 뜨락에서 어린애 재롱 부리는 일 / 綵衣庭際作兒嬉
[주D-001]시간이 …… 놀랐어라 : 공 민왕 4년(1355)에 정지상이 전라도 안렴사(全羅道按廉使)로 있을 적에, 고려 사람으로 원나라 황제의 신임을 받아 강향사(降香使)로 내려온 야사부카[埜思不花]가 위세를 부리며 횡포를 자행하자, 그를 전주(全州)에 구금하고 금패(金牌)를 뺏는 동시에 그의 아우인 응려(應呂)를 철퇴로 쳐서 죽였는데, 원나라 단사관(斷事官)이 국문을 하고 투옥시켰으나, 이듬해 부원파(附元派)인 기철(奇轍) 일당이 숙청되면서 석방된 사건을 말한다.
[주D-002]산 위의 …… 있으리요 : 아 무 능력도 없는 자들이 권력의 비호를 받고 현자(賢者)의 위에 군림하면서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는 세태를 풍자한 말이다. 진(晉)나라 좌사(左思)의 〈영사시(詠史詩)〉에 “골짜기 속엔 울창하게 소나무가 서 있고, 산 위엔 늘어진 채 묘목이 서 있는데, 직경 한 치에 불과한 저 묘목이, 백 척의 소나무 가지에 그늘을 지우누나.[鬱鬱澗底松離離山上苗 以彼徑寸莖 蔭此百尺條]”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때를 …… 일 : 정 지상이 유감스럽게도 높은 관직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어버이에 대한 효성은 실로 지극하였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 은사(隱士)인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칠십에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어 늙은 어버이를 기쁘게 한 고사가 있다. 《初學記 卷17 孝子傳》
아생(我生) |
|
나 태어나 글 읽기를 좋아하였나니 / 我生喜讀書
당초에 권유를 받은 것이 아니었네 / 初非因誘掖
아침저녁 사이로 절로 그렇게 / 自然朝夕間
물이 흘러서 못 속에 들어가듯 / 如水流入澤
강습하는 과정에서 좋은 벗을 얻었나니 / 講習得良友
일찍이 가린 적 없이 의기투합하였다오 / 氣合何曾擇
처음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였으나 / 始也尙迷塗
결국엔 여기가 바로 나의 편안한 집 / 終焉是安宅
공명 같은 것도 추구할 대상이 못되거늘 / 功名非所求
더군다나 복숭아 씨 구멍 뚫는 따위리요 / 況彼鑽桃核
담담하게 이런 나의 경지를 유지하면 / 澹然守吾中
불공과 애의 폐단도 자연히 없어질 터 / 自無不恭隘
노력할지어다 노년이 앞으로 이르리니 / 孜孜老將至
이마에 귀가 생긴들 어디에다 쓰겠는가 / 安用耳生額
[주D-001]편안한 집 : 《맹 자》 이루 상(離婁上)에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요,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인데,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거처하지 않으며, 바른 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으니, 슬픈 일이다.[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不居舍正路而不由 哀哉]”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더군다나 …… 따위리요 : 진나라 왕융(王融)의 집에서 자두를 내다 팔았는데, 사람들이 그 씨앗을 얻을까 걱정한 나머지 항상 자두 씨에 구멍을 뚫곤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43 王戎列傳》
[주D-003]불공(不恭)과 애(隘)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백이는 속이 좁고 유하혜는 공손하지 못한 점이 있나니, 그 두 가지는 군자가 따르지 않는다.[伯夷隘 柳下惠不恭 隘與不恭 君子不由也]”라는 말이 있다.
[주D-004]이마에 …… 쓰겠는가 : 예 전보다 더 똑똑해지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장심통(張審通)이라는 사람이 태산부군(泰山府君)의 부름을 받고 명부(冥府)의 일을 잘 처리하자 이마에 귀 하나가 더 생기는 상을 받았는데, 그 이후로 예전보다 훨씬 더 총명해졌다는 ‘삼이 수재(三耳秀才)’의 전설이 송(宋)나라 장군방(張君房)의 《좌설(脞說)》에 전한다.
상자(桑者) |
|
뽕나무 그림자 이제는 십묘 사이에 드문드문 / 桑影疏疏十畝間
원잠이 잠박에 올랐으니 여종들도 한가하리 / 原蠶上箔女奴閑
온 누리 집집마다 기뻐할 줄을 알고말고 / 明知四海家家喜
지금부턴 비단 다발 산처럼 가득 쌓이겠지 / 束帛從今積似山
나는 띳집에 누더기 입고 백발을 나부껴도 / 鶉結茅簷飄雪鬢
우리 임금님 새 곤룡포 생각만 해도 즐거워 / 龍浮玉殿照天顔
위나 아래나 똑같이 따뜻한 옷을 입으면서 / 願言上下同安燠
서연에서 나눠 주신 은혜를 다시 받았으면 -지난해 서연(書筵)에서 세포(細布)를 하사받았다. / 更向書筵荷匪頒
두 분 시중(侍中)을 찾아뵙고 돌아와서 읊조리다. |
|
병든 몸 끌고 아침에 시중을 찾아뵈었더니 / 扶病朝來謁侍中
뜨락 가득 빈객 가운데 쇠옹은 나 한 사람 / 滿庭賓客一衰翁
온화한 말씀 다정해라 얼마나 정이 두터운지 / 溫言款曲情何厚
종종걸음치며 송구스러워 땀이 흠뻑 젖었어라 / 促步趑趄汗已融
집에서 국록만 축내니 나 스스로 부끄러워 / 自愧居家猶食祿
음풍농월만 한다는 사람들 조롱도 당연하이 / 人譏弄月與吟風
지나온 삶 결산을 하면 장량에겐 충분한데 / 乘除更□於良足
그래도 배회하노라니 얼굴이 달아오르누나 / 尙爾低回面發紅
[주D-001]지나온 …… 충분한데 : 그 동안 국가의 은혜를 분수에 넘치게 받았으니, 이제 벼슬을 그만두어도 여한이 없다는 뜻의 표현이다. 《사기》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에 “지금 세 치의 혀를 가지고 임금의 스승이 되었는가 하면, 만호에 봉해지고 열후의 지위에 올랐으니, 이는 포의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영광으로서 나에게는 이미 충분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제는 인간 세상의 일을 버리고 적송자를 따라 노닐고 싶다.[今以三寸舌 爲帝者師封萬戶 位列侯 此布衣之極 於良足矣 願棄人間事 欲從赤松子遊耳]”는 장량(張良)의 말이 나온다.
무제(無題) |
|
공자가 풍류를 부리면서 자부심이 대단하여 / 公子風流自負多
허리는 비록 굽혀도 은근히 호사를 뽐내누나 / 雖然折節尙豪奢
누가 알꼬 나물만 먹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 誰知蔬筍酸寒者
뱃속에 시서만 있으면 기운이 화사해지는 것을 / 腹有詩書氣亦華
[주D-001]뱃속에 …… 것을 : 소식(蘇軾)의 시에 “거칠고 허름한 옷이 한 생애를 휘감아도, 뱃속에 시서만 있으면 기운이 절로 화사해져.[麤繒大布裹生涯 腹有詩書氣自華]”라는 표현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5 和董傳留別》
오월(五月) |
|
오월에 점차 더워져서 모시옷 지어 입노라면 / 五月漸熱裁紵衣
꾀꼬리 소리 한층 더 구르고 꽃은 이미 드물어 / 鶯歌轉滑花已稀
깊숙이 자리한 정원은 대낮에 마냥 조용한데 / 沈沈庭院白日靜
성긴 발 시원한 대자리에 걷어올려진 휘장이라 / 疏簾淸簟蹇羅帷
미인이 잠에서 깨어나 드시는 오찬을 볼라치면 / 美人睡起索午膳
순채와 생선회 하도 가늘어 바람에도 날아갈 듯 / 蓴絲膾縷輕如飛
유리잔 물 드는 손을 보소 마치 찬 옥과 같고 / 水漿碧椀冷玉手
비단 부채 살랑살랑 눈 같은 살결을 부쳐 주네 / 紈扇涼風侵雪肌
인간 세상의 찌는 무더위 어디 범접이나 할까 / 人間炎蒸逼不得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못 잡아매어서 한이렷다 / 恨不上繫西飛暉
호로병 속에 선경이 있어 동천과 서로 이어지고 / 壺中有地連洞天
진주 조개 꾸민 궁궐이 연무를 머금고 있더라도 / 珠宮貝闕含煙霏
선인이여 사양하노니 초청할 생각은 아예 마오 / 爲謝仙人莫招我
나는 관을 쓴 동자와 함께 노래하며 돌아올 테니까 / 我與童冠方詠歸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아 기운차게 움직이고 / 心如流水活潑潑
춥고 더운 변화 속에서 현기를 타고 노니나니 / 寒暑變易乘玄機
정명(正命)을 순리로 받아들이면 절로 즐거운 법 / 順受其正可自樂
늙음을 한탄도 했다마는 지금은 이미 아니로다 / 嗟我老矣今已非
[주D-001]호로병 …… 이어지고 : 후 한(後漢) 비장방(費長房)이 선인 호공(壺公)의 호로병 속에 함께 들어가서는 고대광실 안에서 맛좋은 술과 음식을 먹고 나왔다는 전설이 전한다. 《後漢書 卷72下 費長房列傳》 동천(洞天)은 신선이 산다는 선경으로 이 세상에 서른여섯 곳이 있다고 한다. 《述異記 卷下》
[주D-002]진주 조개 꾸민 궁궐 : 용궁(龍宮)을 말하는데, 보통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 등 으리으리한 집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주D-003]선인(仙人) : 신선과 같은 생활을 하는 귀족들을 빗대어서 풍자한 말이다.
[주D-004]나는 …… 테니까 : 공 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포부를 말하면서 “늦봄에 봄 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어른 오륙 명과 동자 육칠 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쐰 뒤에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오겠다.[詠而歸]”고 하자, 공자가 감탄을 하면서 허여(許與)했던 고사가 있다. 《論語先進》
[주D-005]정명(正命)을 …… 법 : 《맹 자》 진심 상(盡心上)에 “명 아닌 것이 없다고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정명을 순리로 받아야 할 것이다. 자기의 도리를 다하고서 죽음을 맞는 것이 정명이요, 질곡에 매여서 죽는 것은 정명이 아니다.[莫非命也 順受其正 盡其道而死者正命也 桎梏死者 非正命也]”라는 말이 나온다.
문생(門生) 배상도(裵尙度)가 와서 해주(海州)의 풍경을 말해 주기에 |
|
배생의 기개가 장한 것이 나는 어여뻐 / 我愛裵生氣稍豪
소년으로 용퇴한 일 품격이 있고말고 / 少年勇退有風標
산나물 뜯어 먹고 물고기나 낚으면서 / 採山釣水鮮兼美
멀리 높이 바다와 산 유람을 해 보게나 / 望海登丘遠又高
섬에는 봉홧불이 잇따라 타오르고 / 島嶼何多照烽火
논밭은 태반이나 쑥대로 뒤덮인 때 / 田疇大半沒蓬蒿
어려움이 극하면 태평이 오는 법이건만 / 由來艱極翻成泰
유감일세 내 머리칼 벌써 반백이 되었으니 / 只恨吾今已二毛
남경 윤(南京尹)이 순채(蓴菜)를 보내 준 것에 감사하며 |
|
오월이라 띳집에 무더위 스며드는 때 / 五月茅齋向暑天
순채 엉겨 미끌미끌 용연의 향내로세 / 蓴絲凝滑帶龍涎
온몸이 상쾌해라 빙설보다 맑은 기운 / 淸於氷雪通身爽
홀연히 생각나네 강 복판의 축경편이 / 忽憶江心縮頸鯿
[주D-001]용연(龍涎) : 고래 위장 속의 결석(結石)에서 채취한 향의 이름으로, 진귀한 향료의 대명사로 불린다.
[주D-002]축경편(縮頸鯿) : 물 고기 이름인 사두축경편(槎頭縮頸鯿)의 준말로, 사두편(槎頭鯿)이라고도 한다. 등이 활처럼 휘고 청색을 띠고 있으며 회 맛이 특히 좋다고 하는데, 당(唐)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의 〈현담작(峴潭作)〉과 두보(杜甫)의 〈해민(解悶)〉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 진(晉)나라 장한(張翰)이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를 그리워한 고사가 있기 때문에 이 물고기를 거론한 것이다.
잠부사(蠶婦詞) |
|
누에가 잠박에 오름이여 / 蠶上箔
뽕치는 아낙이 즐겁도다 / 桑婦樂
한가해라 뽕나무 숲 이슬 기운 마를 즈음 / 閑閑桑林露氣薄
대바구니 옆에 끼고 아침저녁 치닫노라 / 我執懿筐馳日夕
누에 크는 한 달 사이 내 몸 수고 아낄까 / 敢憚旬月勞我身
제복과 조복 모두 새로 지어야 하고말고 / 祭服朝衫當致新
가족들 겨울 보낼 옷을 골고루 마련하고 / 一家禦冬苟平均
세금 바쳐 우리 주인님 받들어 모실지니 / 願輸我稅奉主人
보불 무늬로 천년토록 대궐에 군림하시면서 / 黼黻千春臨紫宸
신하들에게 비단 내려 은혜 듬뿍 베푸시길 / 匪頒茂渥霑群臣
꽃을 대하고 느낌이 있기에 |
|
뜨락에서 차례로 봄을 피우는 꽃나무들 / 花木園中次第春
석류가 붉게 터져 새로 창을 비춰 주네 / 石榴紅綻照窓新
뜬 인생도 풍광과 함께 저절로 구르나니 / 浮生自與風光轉
금인과 고인을 구태여 따질 자 누구인고 / 誰問今人與古人
금일(今日) |
|
오늘도 맑게 갰으니 이 일을 어떡하노 / 今日亦晴知奈何
흰머리로 오똑 앉아 슬픈 노래 부를밖에 / 白頭危坐動悲歌
산골 물 댈 수 있는 논은 그나마 다행이요 / 稻田只幸泉源灌
보리밭은 안개와 이슬 적실 수도 있다지만 / 麥壟猶蒙霧露加
망망하여라 푸른 바다와 잇닿은 저 전야여 / 田野茫茫接蒼海
광음만 누런 강물 따라 곤곤히 흘러가는구나 / 光陰袞袞逐黃河
풍년이 들어 이 몸 또한 고향으로 돌아가면 / 年登我又還鄕去
하늘과 땅 사이 어디든 안락와가 되련마는 / 卽是乾坤安樂窩
운암 존자(雲巖尊者)가 차를 보내왔기에 붓을 달려 사례하다. |
|
근년 들어 유난히도 더위 참기 어려운데 / 畏熱近年甚
어딜 가야 더위 피해 서늘 바람 쐬어 볼꼬 / 追涼何處宜
산문이 굳게 닫힌 구름 낀 깊은 산골짜기 / 雲巖洞門鎖
돌솥에선 차가 끓고 솔바람만 불어오리 / 石鼎松風吹
지은 업이 탁해서 병들어 누워 있소마는 / 業濁臥病日
마음은 통하니 나눠 준 은혜 알고말고요 / 心通分惠時
한 모금 마시자 저절로 시원해지는 뱃속이여 / 自然淸五內
뵙고서 감사드릴 일을 그저 시로만 때우네요 / 面謝只憑詩
유감(有感) |
|
주광(酒狂)으로 소문난 우리 무덕 장군 / 武德將軍號酒顚
사십 겨우 넘기고는 신선 되어 하늘로 / 年餘四十便登仙
지금 어린아이들이 대나무처럼 서 있는데 / 更憐稚子今如竹
부인이 또 황천으로 따라갔으니 어떡하나 / 又況賢妻已及泉
부모구존의 즐거움을 잘 알고 있을 텐데 / 父母俱存知樂矣
실가부족이 되다니 이 어찌 된 까닭인고 / 室家不足問胡然
총재가 지금 보살펴 주니 불행 중 다행 / 幸今冢宰方優卹
성산과 전생의 인연이 있는 줄을 알겠도다 / 可見星山有宿緣
[주D-001]지금 …… 있는데 : 뒤 에 남겨진 어린 자식들이 많은 것이 애처롭다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지금 늙고 젊은 것이야 묻지 맙시다, 아이들 죽죽 벋어 나서 대나무처럼 서 있으니.[如今莫問老與少 兒子森森如立竹]”라는 표현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9 與臨安令宗人同年劇飮》
[주D-002]부모구존의 …… 까닭인고 : 부 모가 모두 생존해 계신데 부부가 모두 세상을 떠나서 마치 가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되고 말았다는 말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군자(君子)의 삼락(三樂) 가운데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모두 무고한 것[父母具存 兄弟無故]”이 첫 번째로 꼽힌다. 그리고 《시경》 소남(召南) 행로(行露)에 “비록 나를 재판에 불러들였으나, 부부가 될 인연은 부족하니라.[雖速我獄 室家不足]”라는 말이 나오는데, 목은이 이 구절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한 것이다.
백주(白晝) |
|
백주에 높이 누운 사람 그 누구인고 / 白晝誰高臥
아침부터 혼자서 시 읊는 이 몸이지 / 淸晨我獨吟
지금 나이가 지명을 넘겼을 따름이니 / 行年過知命
종심소욕의 경지를 감히 엄두낼 수야 / 所欲昧從心
구름이 걷히고 나니 하늘은 물과 같고 / 雲卷天如水
바람 부는 숲 속에선 새들의 노랫소리 / 鳥啼風在林
나의 삶도 이만하면 유유자적하지 않소 / 吾生頗自適
천년 뒤 언젠가는 알아주는 이 있으리다 / 千載有知音
[주D-001]지금 …… 수야 : 《논어》 위정(爲政)에 “나는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일흔 살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五十而知天命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권가원(權可遠)이 나를 찾아와서는, 승선방(承宣房)이 구전(口傳)으로 성균 교관(成均敎官)을 임명하면서 장차 학교를 진흥할 것이라고 했다고 하기에, 내가 너무도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시 한 수를 지어 그 뜻을 표하였다. |
|
현릉이 학교를 일으켜 인재를 기르려 하였나니 / 玄陵興學作人材
성대한 그 덕 찬란하게 후세에 길이 비치리라 / 盛德光輝照後來
성상이 이를 숭상하여 그 뜻을 이으려 하시는 때 / 聖主是崇圖繼志
노신이 겸임을 하였으나 재능이 없어 부끄럽네 / 老臣兼領愧非才
한복판의 웅장한 건물 괄목할 만큼 더 빛나고 / 中心大廈明如刮
바깥에 심은 새 솔들도 겹겹이 푸른빛 더하리라 / 外面新松翠作堆
하늘엔 소리개가 날고 못에선 물고기 뛰놀 텐데 / 坐想鳶飛魚躍處
병든 몸 이미 피폐해져서 너무나도 유감일세 / 病體深恨已摧頹
[주C-001]권가원(權可遠) : 가원은 권근(權近)의 자(字)로, 목은의 문생이다.
[주D-001]하늘엔 …… 텐데 : 앞 으로 왕의 교화가 성대하게 펼쳐져서 만물이 모두 제자리를 얻고 즐거워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소리개는 하늘 높이 솟구치고, 물고기는 못 속에서 뛰노누나.[鳶飛戾天 魚躍于淵]”라는 구절이 나온다.
오도(吾道) |
|
크도다 우리 도여 하늘과 같고 / 吾道如天大
깊도다 임금 은혜 바다와 같네 / 君恩似海深
훌륭한 임금과 신하 천명을 받든 이때 / 明良方勅命
오직 충서의 도만을 마음에 간직할지라 / 忠恕但存心
물결 일렁이는 중에 바람은 술잔에 불어오고 / 波動風吹酒
샘물 울어대는 속에 달빛은 거문고 가득해라 / 泉鳴月滿琴
나도 몰래 우러나는 산야의 이 정취여 / 悠然生野趣
번뇌에 찌든 흉금 씻어 내기에 족하도다 / 足以洗煩襟
뜨락 속의 앵두를 맛보며 |
|
지금 바야흐로 가뭄이 극심해서 / 旱暵今方甚
앵두도 통통하게 살지지 못했구나 / 櫻桃亦不肥
탁자 위에 동글동글 쌓인 열매들 / 團團堆棐几
사립문 반짝반짝 비추던 것이렷다 / 粲粲照苔扉
사당에 올릴 때는 정성이 중요한 법 / 薦廟誠爲重
바구니 하사받는 일도 이젠 드문걸 / 擎籠賜已稀
백발로 물러나서 깨무는 앵두의 맛 / 白頭林下喫
성상의 은덕이 살 속까지 스며들듯 / 聖德欲淪肌
무제(無題) |
|
개미누에 다 커서 뽕나무 밭이 비었으니 / 原蠶已老野桑空
여름날 뙤약볕 아래 시골 아낙도 한가하리 / 村婦將閑夏日烘
지금은 바로 일년 농사의 반이 지난 때 / 又是一年民事半
사해가 의연히 성덕의 은혜 속에 있네 / 依然四海聖恩中
사모를 쓰면 염천에도 정수리가 선들선들 / 炎天紗帽涼生頂
금구를 입으면 눈보라에도 몸이 따끈따끈 / 臘雪錦裘煖被躬
단지 괴이한 건 광주리 들고 고생한 이들 / 只怪執筐勤苦者
해마다 추위 참아 내며 봄바람 기다리는 것 / 年年忍凍候東風
오열(午熱) |
|
중순이 지난 뒤론 본격적인 낮더위 / 午熱仲旬後
많은 병 치른 끝에 마음도 오락가락 / 心昏多病餘
불 구름은 지붕 모퉁이까지 내려앉고 / 火雲低屋角
즙처럼 흐르는 땀방울은 옷자락에 뚝뚝 / 瀋汗滴衣裾
책상에 기대어도 몸이 더욱 나른하더니 / 倚几身彌困
시 한 수 읊노라니 뜻이 조금 풀어지네 / 吟詩意稍舒
마침 홀연히 불어오는 한줄기 맑은 바람 / 淸風忽然至
한번 상쾌해지라고 천지를 가득 채워 주네 / 一快滿堪輿
총지종(摠持宗) 성주(省珠)의 부탁을 받고 자비령(慈悲嶺) 나한당(羅漢堂)의 수조기(修造記)를 써 주고 나서 짓다. |
|
뭇 산들을 압도하며 높이 서 있는 나한당 / 羅漢高堂壓衆山
줄 잇는 행인의 얼굴 온통 땀으로 뒤범벅 / 征人絡繹汗流顔
소싯적에 조회하러 관문 밖 치달렸는데 / 朝正少日馳門外
오늘 아침 기문 써서 벽 사이에 걸게 했네 / 作記今朝掛壁間
응진이 복과 이익 나눠 주는 걸 믿는 터에 / 已信應眞分福利
욕심과 인색 버리고 은혜를 베푼들 어떠하리 / 不妨施惠捨貪慳
나는 늙고 쇠했으니 다시 북으로 갈 수 있나 / 老衰行李無由北
왕래하는 흰 구름만 시름없이 바라볼밖에 / 悵望白雲時往還
[주D-001]소싯적에 …… 치달렸는데 :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이 《목은문고》 제3권 〈자비령(慈悲嶺) 나한당기(羅漢堂記)〉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주D-002]응진(應眞) :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 최고의 경지를 얻은 자를 지칭하는 Arhat를 말하는데, 음역은 아라한(阿羅漢) 즉 나한(羅漢)이고, 응진은 의역(意譯)이다.
환암(幻菴)의 문인이 찾아와서 -원문 빠짐- 육(六)의 뜻을 묻기에 장난삼아 짓다. |
|
환암은 지금 그야말로 한가한 도인이라 / 幻菴今爲閑道人
눈가림으로 경을 보며 티끌을 털어내시는 분 / 看經遮眼仍拂塵
그분의 마음 쓰는 곳을 문생이 어찌 알리 / 門生那知用意處
땀 흘리며 분주하게 고생만 죽도록 하는구나 / 汗流犇走何艱辛
어쩌면 너무 무지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 或是愍憐甚無知
불법과 인연 맺었을 뿐 진심을 보임은 아닐지도 / 結緣大法非示眞
한 사람이 진심을 발해 근원에 돌아가는 순간 / 一人發眞得歸源
대지와 산하도 정화되어 불국토로 바뀌는 법 / 大地山河皆□□
그대여 한번 보소 푸른 눈 오랑캐 늙은 중을 / 君看碧眼老胡僧
눈밭에서 끝없는 봄이 절로 피게끔 안 했던가 / 雪中自放無邊春
지금도 뜰 앞엔 잣나무가 여전히 서 있으련만 / 至今庭前柏樹在
인간 세상엔 붉은 꽃 푸른 잎 또 한창 새롭도다 / 人間紅綠方新新
[주D-001]환암(幻菴)은 …… 도인(道人)이라 : 목 은과 절친한 벗이기도 한 선승(禪僧) 환암 혼수(幻菴混修)는 더 배울 것이 없을 정도로 불교 구극(究極)의 경지를 터득한 도인이라는 말이다. 당(唐)나라 영가 현각(永嘉玄覺)이 지은 〈증도가(證道歌)〉 첫머리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배움도 끊어지고 아무 할 일도 없이 한가한 도인은, 굳이 망상을 없애려 하지도 않고 참된 진리를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무명의 참성품이 바로 불성이요, 허깨비 같은 빈 몸이 바로 법신인 것을.[君不見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無明實性卽佛性幻化空身卽法身]”이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눈가림으로 …… 분 : 언 어와 문자의 경계를 이미 떠났으면서도 그저 남의 눈가림용으로 불경을 보는 시늉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당나라 선승(禪僧) 약산 유엄(藥山惟儼)이 불경을 보고 있을[看經] 적에, 어떤 승려가 묻기를 “화상께선 남에겐 불경을 보지 못하게 하시면서 혼자서는 왜 불경을 보십니까?” 하자, “나는 그저 남의 눈을 가리려고 할 따름이다.[我只圖遮眼]”라고 대답하였는데, 그 승려가 다시 “저도 화상을 본받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하자, “그대라면 쇠가죽도 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한 일화가 전한다. 《景德傳燈錄 卷14》
[주D-003]그대여 …… 했던가 : 늙 은 중은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인 달마(達磨)를 가리킨다. 2조인 혜가(慧可)가 눈밭에 밤새 서서 달마에게 법을 구했으나 달마가 일체 응대를 하지 않자 계도(戒刀)로 자기의 팔뚝을 끊으니 뿜어 나온 피 속에서 파초(芭蕉)가 피었다는 일화가 전하는데, 이렇게 혜가로부터 점차 중국 선종이 발전하여 급기야는 오가 칠종(五家七宗)의 현란한 개화기를 맞게 된 것을 의미한다.
[주D-004]지금도 …… 있으련만 : 당나라 조주 종심 선사(趙州從諗禪師)에게 어떤 승려가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건너온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조주가 “저 뜰 앞에 서 있는 잣나무이다.[庭前柏樹子]”라고 대답한 일화가 전한다. 《宋高僧傳 卷11》
유감(有感) |
|
둘씩 짝을 지어 나는 저 제비들 / 燕燕雙雙飛
함께 날면서 뭔가 또 재잘재잘 / 雙飛復雙語
암수가 어울려 서로들 좋아하니 / 雄雌旣相悅
계절이 다시 온 줄 나도 알겠네 / 亦復知時序
나의 뜨락 안은 여름에도 선들선들 / 庭院夏生涼
발에는 하늘이 보내 주는 새벽 기운 / 簾櫳天送曙
내가 추구하는 것은 세상과 다른지라 / 所托異於常
다행히 갈등을 빚을 일도 없다마는 / 幸哉無齟齬
아 저기 초가집의 밥을 짓는 연기여 / 嗟彼茅簷煙
남은 더위 얼마나 어렵게들 보낼거나 / 艱難送殘暑
오수(午睡) |
|
한낮에 서늘 바람 산들 불어오고 / 日午涼風來
텅 빈 집은 적요하기 마치 물이라 / 虛堂寂如水
오똑 앉아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다 / 危坐方沈思
무얼 하는지도 까마득히 잊고서는 / 冥然忘所以
심과 신이 어느새 서로 사귀더니 / 心腎俄相交
드르렁드르렁 콧구멍에 우렛소리 / 鼻孔雷聲起
정신이 문득 높이 날아오르면서 / 精神便飛揚
끝없이 천만리를 휘젓고 다녔는데 / 浩蕩千萬里
아이놈들이 모여들어 서로 떠들면서 / 童稚聚相喧
악다구니하는 소리 홀연히 귀에 들려 / 聲急忽觸耳
잠을 깨고 불러다가 혼내려 하였더니 / 覺來欲相質
모조리 오유 선생이요 무시공일세 / 烏有與亡是
아서라 다시 한탄할 것이 있으리요 / 不須更嘆嗟
만사가 실로 이처럼 우연인 것을 / 萬事眞偶爾
[주D-001]심과 …… 사귀더니 : 심장 즉 화기(火氣)와 신장 즉 수기(水氣)가 원활하게 소통되면서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고 나른해진 결과 자기도 모르게 비몽사몽간의 경지에 빠져들었다는 말이다.
[주D-002]모조리 …… 무시공(亡是公)일세 : 아 이들이 모두 어디론가 달아나 없어졌다는 말이다.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자허부(子虛賦)〉를 지으면서 실존하지도 않는 자허(子虛)와 오유 선생(烏有先生)과 무시공 등 3인을 등장시켜 서로 문답을 나누게 했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큰아들의 집에서 금방 데운 술을 맛보다. |
|
술맛이 좋아도 오래도록 보관하기 곤란한데 / 酒味雖醇難久藏
끓여 놓으면 한여름에도 상하지 않는다네 / 煑來炎熱莫能傷
우리 집은 빚자마자 금방 모조리 마시는데 / 吾家旋釀便飮盡
오늘에야 오래 두고 마실 계책을 알았도다 / 今日方知爲計良
가라앉기 이전이니 색깔을 어떻게 따지랴만 / 及此未澄何問色
술을 따라 올릴 적에 벌써 향기가 진동하네 / 在於將進已聞香
석 잔을 냉큼 들이켜니 정신이 날아갈 듯 / 三杯快倒精神暢
동순과 빙어의 맛도 아마 이보단 못하리라 / 冬笋氷魚却不祥
[주D-001]동순(冬笋)과 빙어(氷魚) : 겨 울철 눈 속에서 솟아 나온 죽순과 얼음을 뚫고 나온 잉어라는 뜻으로, 효자로 유명한 삼국 시대 오(吳)나라 맹종(孟宗)과 진(晉)나라 왕상(王祥)이 각각 모친을 위해 바쳐 올린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48 吳書 孫晧傳》 《晉書 卷33 王祥列傳》
가랑비를 탄식하며 3수(三首) |
|
빈 뜨락에 빗방울 몇 점 떨어지기에 / 雨映空庭數點來
노옹이 놀랍고 기뻐 한참 서 있었는데 / 老翁驚喜立移時
하늘 가득 구름장 다시 산 서쪽으로 / 滿空雲向山西去
예로부터 천심은 감히 알 수 없었느니 / 自古天心不敢知
성군이 공묵하고 재신이 근심하는 것은 / 聖君恭默宰臣憂
전야에 풍성하게 한 해 농사 잘되는 것 / 田野茫茫歲有秋
고탕도 수한이 있었으니 이는 하늘 운수 / 水旱高湯天數在
가련토다 땀 흘리며 부처의 자비 구하다니 / 可憐呼佛汗交流
우리 집도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사는데 / 我家耕牧以爲生
연래엔 후한 녹봉으로 영화를 누린다오 / 厚祿年來享世榮
누가 알리요 지금 더욱 가슴을 졸이면서 / 誰識操心今更苦
한가한 중에도 날씨를 자꾸만 살피는 줄을 / 閑居亦復數陰晴
[주D-001]공묵(恭默) : 임금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말없이 치도(治道)를 심사숙고하는 것을 말한다. 《서경》 열명 상(說命上)에 “공경히 침묵하며 도를 생각하였다.[恭默思道]”는 말이 나온다.
[주D-002]고탕(高湯)도 …… 운수 : 요 (堯) 임금이나 탕왕(湯王) 같은 성군의 시대에도 홍수와 가뭄이 있었고 보면 이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현상일 뿐이라는 말이다. 《설문(說問)》 토부(土部)에 “요(堯)는 고(高)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 외에도 목은이 요(堯) 대신에 고(高)를 쓴 경우가 종종 보인다.
다음 날에 또 사운(四韻)의 장구(長句) 한 수를 읊다. |
|
백발의 쇠한 늙은이 길게 탄식하노니 / 白髮衰翁感嘆長
새벽 구름 간 데 없고 햇빛만 눈부셔 / 曉陰消盡日浮光
인심이야 예로부터 어긋남이 많았지만 / 人情自古多乖隔
천도도 지금 보니 갈수록 모르겠군그래 / 天道於今轉渺茫
임금님도 구휼하며 혜택이 돌아가게 하고 / 聖主卹荒流實惠
지방관도 구제하며 처방을 마련하겠지만 / 守臣施藥按良方
아무쪼록 더더욱 있는 힘 모두 쏟아야지 / 丁寧更盡分毫力
보리밭 누런 구름 벌써 반쯤 익었으니 / 麰麥如雲已半黃
동년(同年)인 오혁림(吳奕臨) 상서(尙書)의 아들이 나를 찾아왔기에 한 수 짓다. |
|
진사시 급제자 명단에 나와 함께 오르신 분 / 共綴成均榜上名
선군의 문하에서 경학에 밝다고 이름났네 / 先君門下號經明
나이는 칠십이 다 되는데 관직은 겨우 사품 / 年將七十官四品
덕이 두셋이 아니니 평생 가난할 수밖에 / 德不二三貧一生
성균관 박사로 기강을 한 손에 휘어 잡고 / 博士綱紀專泮水
개성에서 참군으로 풍채 멋지게 드날렸지 / 參軍風彩動開城
운수가 기박해서 강년에 버림을 받았으나 / 方强見棄緣奇數
아들을 보면 그래도 위로받을 수 있으리라 / 有子猶堪慰不平
[주D-001]덕(德)이 두셋이 아니니 : 신념이 확고해서 세상과 타협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시경》 위풍(衛風) 맹(氓)에 “그 남자는 확고한 신념이 없어서, 자꾸만 이랬다저랬다 한다.[士也罔極 二三其德]”는 말이 나온다.
[주D-002]강년(强年) : 나이 사십을 말한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나이 사십이 되면 강이라 하니, 이때부터 벼슬길에 나아가기 시작한다.[四十曰强 而仕]”는 말이 나온다.
비를 고대하며 |
|
일찍 일어나 하늘 보니 사방은 온통 푸른색 / 早起瞻天碧四垂
흰 구름 몇 조각만이 바람 따라 흩날릴 뿐 / 白雲片片逐風飛
승려들은 부처에게 자비의 비를 호소하고 / 群僧呼佛慈悲雨
임금님은 떠도는 백성 걱정하고 계시는 때 / 聖主憂民轉徙時
겨우 돋은 벼싹이 어떻게 부쩍 클 수 있나 / 秔稻才抽難遽盛
다 익은 앵도 알도 속이 다 차지 않았는걸 / 櫻桃已熟未全肥
목옹은 봉군의 녹을 배불리 받아먹으면서 / 牧翁飽喫封君祿
주 선왕의 한발 시만 부질없이 읊고 있네 / 空詠周宣旱魃詩
[주D-001]주 선왕(周宣王)의 한발 시 : 《시경》 대아(大雅)의 운한(雲漢)을 말한다. 이 시는 주 선왕이 포학한 여왕(厲王)의 뒤를 이어 선정을 베풀면서 가뭄을 해소할 비를 갈망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햇볕을 가리려고 하였으나 제대로 되지 않기에 번민을 풀어 보려고 읊다. |
|
창문을 닫자니 바람이 들어오지 않고 / 閉窓風不來
창문을 열자니 햇볕이 또 이글거리고 / 開窓日又烘
그래서 처마 끝에다 솔가지를 얽어매어 / 所以架松簷
햇볕도 피하고 바람도 들어오게 시도했다네 / 誓將避日兼來風
망망하도다 하늘과 땅은 단지 하나의 기운 / 茫茫天地但一氣
그 속에 끝없이 교대하며 순환하는 사계절 / 四序相代來無窮
성인이 지극히 세밀하게 법제를 세우시어 / 聖人立制至纖悉
기후에 알맞게 자기 몸을 보호하게 하셨어라 / 涼燠溫寒斯保躬
산처럼 얼음을 쌓아 좌우를 비치게 하거나 / 堆氷成峯照左右
두건 벗고 맨머리로 높은 누각에 앉았거나 / 脫巾露頂高樓中
이는 또한 인위로서 고작 이런 정도일 뿐 / 是亦人耳乃如此
운명은 하늘에 달린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 / 須知有命懸蒼穹
늙은 종이여 내 명령을 너는 공손히 받들지니 / 老奴汝當奉我勅
어찌 차마 보겠느냐 땀방울 흥건히 맺힌 채 / 忍見我汗珠交融
실낱같은 숨결로 붉게 뜬 주인님의 얼굴을 / 氣息如綫顔浮紅
학교(學校) 3수(三首) |
|
학교가 국가의 명맥이라면 / 學校邦家脈
군사는 천지의 마음이시라 / 君師天地心
생성하는 공이 절로 묘하거니 / 生成功自妙
교양하는 은택이 얼마나 깊나 / 敎養澤何深
날마다 대하나니 갱장의 모습이요 / 日對羹墻面
수시로 들리나니 금석의 소리로다 / 時聞金石音
가엾어라 이 몸은 병을 부여안고 / 自憐方抱病
궤안에 앉아 혼자서 침음만 하니 / 几坐獨沈吟
학교를 유신하신 금상의 명령 / 今代維新命
선왕이 못다 하신 그 마음이라 / 先王未了心
문풍이 바야흐로 떨쳐지려 하니 / 文風方欲振
성상의 은택이 또 깊다 하리로다 / 聖澤亦云深
밝은 태양이 사심 없이 비춰 주고 / 白日無私照
꾀꼬리가 명랑하게 노래하는 때 / 黃鸝送好音
나의 생도 아직은 강건하거니 / 吾生尙强健
함께 공부하며 송가를 불러야지 / 絃誦共謳吟
부끄러워라 재주도 학식도 없는 내가 / 愧我無才學
현릉의 은혜로 반궁에 몸을 담았는데 / 逢君叨泮宮
장차 무수의 공을 이루려고 하던 차에 / 功成將舞獸
홀연히 반룡을 당해 꿈이 끊어졌다오 / 夢斷忽攀龍
섬돌의 이끼는 비 내리니 더욱 푸르르고 / 階蘚工隨雨
뜨락의 솔도 바람을 만나니 마냥 기쁜 듯 / 庭松喜得風
흰머리 병든 몸도 어떻게든 참여해서 / 白頭扶病去
자갈 같은 자질이나마 다시 갈고 닦아야지 / 沙石更磨礱
[주D-001]갱장(羮墻)의 모습이요 : 성 현을 사모하며 본받고자 하는 지극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요(堯)가 죽은 뒤에 순(舜)이 사모한 나머지 삼년 동안이나 요의 환영(幻影)이 담장[墻]에 나타나고 국[羹]속에 드러나 보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後漢書 卷53 李固列傳》
[주D-002]무수(舞獸)의 공 : 장 차 문교(文敎)를 진흥하여 성군의 덕을 노래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서경》 순전(舜典)에서 악관(樂官)인 기(夔)가 “내가 경(磬)을 치니 온갖 짐승들이 서로 와서 춤을 추었다.[予擊石拊石 百獸率舞]”고 순 임금에게 말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3]반룡(攀龍) : 임금의 죽음을 뜻하는 말이다. 황제(黃帝)가 용을 타고 승천할 적에 신하들이 함께 가려고 용의 수염을 붙잡았다가[攀龍鬚] 수염이 빠지는 바람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史記卷28 封禪書》
흐린 하늘을 보고는 기뻐서 짓다. |
|
두 눈으로 몽롱하게 새벽하늘 바라보니 / 兩眼朦朧望曉天
먹구름 땅에 떨어질 듯 산천을 짓누르네 / 濃雲欲墜壓山川
부호들이야 맛난 음식 줄어든들 어떠랴만 / 豪奢任是脂膏减
배 곯는 백성은 목숨을 이어야 하고말고 / 餓殍須敎性命延
다행히도 오늘날 소강의 시대를 만났다만 / 幸値小康當此日
풍년을 기록할 해는 어느 때나 찾아올꼬 / 特書大有是何年
병들어 봉군의 녹만 배불리 먹는 이 몸 / 病餘飽喫封君祿
날씨 변할 때마다 시만 한 편씩 지을 뿐 / 每遇陰晴賦一篇
해가 뜨기에 또 짓다. |
|
비 오려나 애 태우며 재차 시를 읊었는데 / 再吟其雨我心煎
하늘에 쨍쨍 해 뜨다니 이것이 웬일인가 / 杲杲還驚日上天
사방 여염엔 지금 마침 걱정이 많다 해도 / 四顧閭閻適多故
사직은 현신들 덕분에 중흥을 맞이한 때 / 重興社稷賴群賢
정전법으로 구백 묘씩 구획하지는 않았지만 / 井田不畫九百畝
국가 예산은 삼십 년을 통산해야 하고말고 / 國用須通三十年
땅을 이용하는 것은 사람의 힘에 달린 것 / 地利明明在人力
물 막는 법 강론하여 나도 새 글을 짓고 싶네 / 講論吾欲着新篇
[주D-001]비 …… 웬일인가 : 《시경》 위풍(衛風) 백혜(伯兮)에 “비 오려나 비 오려나 하였더니, 쨍쨍 해만 뜨는구나.[其雨其雨 杲杲出日]”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국가 …… 하고말고 : 《예기》 왕제(王制)에 “풍년과 흉년을 참작하여 삼십 년간의 수입을 통산한 뒤에 나라의 예산을 정하고 수입을 헤아려서 경비를 지출한다.[視年之豐耗 以三十年之通 制國用量入以爲出]”는 말이 나온다.
서린(西隣)이 염주를 선물했기에 찾아뵙고 사례하다. 3수(三首) |
|
염주 선물 감사해라 서린을 찾아뵈었더니 / 出謁西隣謝數珠
석류꽃 활짝 피어 뜨락 모퉁이 비춰 주네 / 石榴花發照庭隅
한낮에 모정에서 시음한 새 차의 맛이라니 / 茅亭白日嘗新茗
마음이 정결해졌는걸 극락도가 필요할까 / 心淨何煩極樂圖
손 안에 염주를 끝없이 굴리다 보면 / 數珠在手轉無窮
마음과 서로 융화되는 연화장 세계 / 心與蓮花境界融
내외의 차별 없애는 공부 절로 되나니 / 內外不分功自熟
생사의 고해에 부는 바람 걱정 있으랴 / 不愁生死海中風
젊어서 넘치던 기백 늙어서도 어디 갈까 / 少年狂甚老猶狂
내 마음 무량광과 같다고 자부하였는데 / 自負心同無量光
요즘에 다시 기로회에 끼어 앉다 보니 / 近日更陪耆老會
청정해라 그곳이 바로 서방 정토로세 / 澹然當處卽西方
[주D-001]연화장 세계(蓮花藏世界) : 불교 화엄종(華嚴宗)에서 말하는 불국토(佛國土)의 이름으로, 정토종(淨土宗)의 극락세계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주D-002]무량광(無量光) : 범어(梵語) 아미타(阿彌陀)의 의역(意譯)으로, 무량수(無量壽)라고도 하는데, 정토종의 신앙 대상인 아미타불이 거하는 곳이 바로 서방 정토(西方淨土)라고 한다.
시향(時享) |
|
정성을 바쳐 순결하게 올려야 할 사시 대향 / 四時大享致精純
만고토록 우리 삼한 예법이 스스로 새로웠네 / 萬古三韓禮自新
조정은 물론 사대부 모두 월령을 준수하며 / 孟國仲家分月令
자자손손 대대로 인륜을 제대로 행해 왔지 / 父前子後敍人倫
세상 풍속 따른다고 희생을 갖추지 못하다니 / 犧牲不備難違俗
답습하는 의식도 온통 본래의 뜻을 잃었도다 / 儀式相傳摠失眞
누가 알까 올해 오늘 내가 느낀 이 감회를 / 誰識今年今日意
말없이 보살펴 주는 신명에 사죄할 수밖에 / 白頭陰騭謝明神
희우(喜雨) |
|
한밤 내내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빗소리 / 一雨通宵細有聲
이 소리만으로도 생령은 위로를 받으리 / 此聲猶足慰生靈
벼싹이 불끈 일어남은 하늘 마음이 동함이요 / 苗興也勃天心動
몸은 곤해도 편안함은 내 기운 청명함이로다 / 身困而亨我氣淸
티끌세상 유유해라 귀밑머리 희끗희끗 / 塵世悠悠雙鬢白
고향 산천 아득해라 등잔 불빛 푸르스름 / 鄕山渺渺一燈靑
가을바람만 불어오면 돌아가겠다 간청하여 / 乞歸只待秋風起
풍년 맞은 이웃 노인과 태평가를 불러야지 / 魚稻隣翁共太平
지금 유포(柳浦)의 별장에서 노닐고 있을 맹운(孟雲) 선생을 생각하며 |
|
강변에 푸른 산이 에워싼 초가집 / 江上靑山擁草廬
꿈이 막 깨었을 땐 자욱한 안개비라 / 濛濛煙雨夢迴初
목옹은 어느 날이나 몸이 강건해져서 / 牧翁何日身强健
도롱이 둘러쓰고 함께 고기 잡을거나 / 披得簑衣共釣魚
나 역시 강변에 농가가 없진 않소마는 / 江邊我亦置田廬
안빈낙도가 처음과 같지 않아 부끄러워 / 自愧安貧不似初
더구나 요즘에는 식탐이 부쩍 심해져서 / 況是口饞今更甚
갈바람 순채와 농어회만 생각나니 원 / 秋風蓴菜與鱸魚
진포의 안개 낀 물결 에워싼 나의 집 / 鎭浦煙波遶弊廬
어부가를 화답하던 옛날 일을 생각노라 / 漁歌互荅想當初
늙어가며 풍진 속에 병들어 누운 이 몸 / 老來病臥風塵底
매번 염주 향해 붕어만 찾고 있네그려 / 每向鹽州覓鮒魚
[주D-001]갈바람 …… 원 : 고 향의 별미가 더더욱 생각이 난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어느 날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 생각이 나서 곧장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을 했다는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識鑑》
[주D-002]진포(鎭浦) : 목은의 고향인 한산(韓山)의 나루터 이름이다.
[주D-003]염주(鹽州) : 연안(延安)의 옛 이름이다.
동정(東亭)이 자기 문생(門生)인 장원(壯元) 김 정언(金正言)을 급히 보내 나를 초청하였는데, 내가 몸이 고단해서 나갈 수 없었으므로 서글픈 생각이 들어서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
젊은 장원이 늙은 장원을 불러 준 자리 / 少壯元招老壯元
게다가 새 장원이 특별히 말을 전했으니 / 壯元郞又特傳言
이는 바로 세상에 드문 성대한 일이거늘 / 斯爲盛事足驚世
몸이 병들어 못 나가니 이 일을 어떡하노 / 只恨病體難出門
모이고 흩어짐 모두가 부평초 같다 할 것이니 / 聚散却同萍與水
한가하거나 바쁘거나 술잔을 채워야 마땅한데 / 閑忙只合酒盈樽
내 사지가 편안할 날은 어느 때나 찾아올꼬 / 四支調適知何日
비바람 속에 쓸쓸히 난간에 홀로 기댈밖에 / 風雨蕭蕭獨倚軒
흐린 하늘 |
|
계속 흐릴 뿐 비 적은 것은 무슨 까닭인고 / 連陰少雨謂何哉
재주도 없이 한가롭게 녹만 축내니 부끄러워 / 食祿閑居愧不才
작디작은 이 몸이야 섭양을 그르친다 해도 / 孑孑一身乖攝養
많고 많은 만물들은 다 함께 잘 자라야지 / 芸芸萬物共栽培
들안개는 시탑을 뒤덮어 몹시 짜증난다마는 / 苦嫌野霧暗詩榻
강 안개는 운치 있게 낚시터 감싸고 있으렷다 / 遙想江煙侵釣臺
어떡하면 사방에 팔사를 올릴 수 있게 하여 / 安得四方通八蜡
풍년 술자리 도처에서 구경할 수 있을거나 / 游觀到處酒尊開
[주D-001]팔사(八蜡) : 추 수를 하고 나서 일년 농사에 도움을 준 여덟 귀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예기》 교특생(郊特牲)에 “사방에 수확이 순조롭지 못할 경우에는 팔사를 올리지 못하게 하니, 이는 백성의 재물을 아끼게 하기 위함이다. 반면에 수확이 순조로운 지방에는 팔사를 올리게 하니, 이는 백성들이 재물을 조금 소비해서라도 기분을 풀게 하기 위함이다.[四方年不順成八蜡不通 以謹民財也 順成之方 其蜡乃通 以移民也]”라는 말이 나온다.
혼자 장난삼아 읊다가 다시 자책하는 시를 지어 스스로 해명하다. |
|
소년 시절 피리 불며 머리도 내둘내둘 / 少年吹笛又搖頭
옆 사람이 배꼽 잡고 계속 웃건 말건 / 遮莫傍人笑不休
노경에 머리 모양은 반듯하게 했다마는 / 老境已敎容也直
한 소리 들릴 때면 위남루에 기대 서네 / 一聲時倚渭南樓
태평 시대의 바람과 달이 사림에 가득 / 大平風月滿詞林
읊조리는 시 모두가 이 마음 기르는 것 / 吟咏無非養此心
장난삼아 지어 본 시 정말 웃기겠지마는 / 忽此戲題眞可笑
훗날 알아주는 이가 혹시 있을까 해서 / 只緣他日有知音
[주D-001]한 소리 …… 서네 : 위 남(渭南)의 위(尉)를 지낸 당(唐)나라 조하(趙嘏)의 시 〈조추(早秋)〉에 “새벽별 몇 점 남은 변방 하늘에 기러기 비껴 날아가고, 긴 젓대 한 소리에 사람 하나 누대에 기대섰네.[殘星幾點鴈橫塞 長笛一聲人倚樓]”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두목(杜牧)이 이 구절을 너무도 좋아하여 조하를 조의루(趙倚樓)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唐摭言 知己》
아광(我狂) |
|
나의 광이 지금 어느 정도냐고요 / 我狂今如何
전패에도 반드시 광에 의거한다나요 / 顚沛必於是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할 때 / 承祭與見賓
의관을 정제하는 것도 단지 잠시뿐 / 斂容亦暫耳
가만히 있으면 줄에 묶인 망아지요 / 止則如繫馬
일단 움직이면 물꼬 터진 물이랄까 / 行則如逝水
때를 가리지 않고 마구 말을 내뱉으며 / 言不擇其時
얘기할 때마다 상대방 뜻을 거스르네 / 語必忤他意
온화한 얼굴에 행동거지를 조심하면 / 和顔愼動容
이것은 또 군자를 웃기기에 적격이요 / 又適笑君子
마음을 풀어놓고 욕심대로 행동하면 / 放情恣趨欲
이것은 또 원래의 뜻이 아닐까 싶네 / 又恐非初志
나의 광이 이처럼 이미 심하고 보면 / 我狂旣甚矣
붕우에게 버림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 / 朋友宜見棄
허리를 꺾고 천군에게 호소할 수밖에 / 磬折告天君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느냐고 / 夫何至於此
[주D-001]광(狂) : 가슴에 품은 뜻이 워낙 커서 세상의 예법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2]전패(顚沛)에도 …… 의거한다나요 : 《논 어》 이인(里仁)에 “군자는 밥 먹는 동안이라도 인의 정신을 어겨서는 안 되니, 아무리 다급한 때라도 이 인에 의거해야 하고, 넘어져 뒤집히는 때라도 반드시 이 인에 의거해야 한다.[君子 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는 공자의 말이 나오는데, 목은이 이를 해학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주D-003]제사를 …… 때 : 《논어》 안연(顔淵)에 “문밖을 나가서는 큰 손님을 대접하는 것처럼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드는 것처럼 해야 한다.[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4]천군(天君) : 사유의 기능을 담당하는 마음을 이른다. 《순자(荀子)》 천론(天論)에 “마음이 가운데 텅 빈 곳에 거하면서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다스리기 때문에 하늘의 임금님이라고 이른다.[心居中虛 以治五官 夫是之謂天君]”는 말이 나온다.
2010-01-05
'▒ 목은고자료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은시고(牧隱詩藁) 제30권 번역 (0) | 2010.01.08 |
---|---|
목은시고(牧隱詩藁) 제30권 번역 (0) | 2010.01.08 |
목은시고(牧隱詩藁) 제28권 번역 (0) | 2010.01.08 |
목은시고(牧隱詩藁) 제27권 번역 (0) | 2010.01.08 |
목은시고(牧隱詩藁) 제26권 번역 (0) | 2010.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