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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시(淸風詩)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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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이 어쩌다가 불쑥 찾아왔다 / 淸風來有時
훌쩍 떠나니 그 누가 붙잡으리 / 去也誰能追
무심코 홀연히 서로들 접촉하면 / 無心忽相觸
소중한 내 임처럼 사랑할 따름 / 愛之如我私
오래 헤어져 내 마음 괴로우니 / 久闊勞我心
노래나 부르면서 쏟아 낼 수밖에 / 寫之以歌詩
나의 노래 그야말로 청풍과 같아 / 歌詩如淸風
자연스럽게 사무사를 이루었는데 / 自然無邪思
어떤 분이 금슬을 잡고 노래하며 / 何人被琴瑟
나에게 또 청풍시로 화답해 줄까 / 賡我淸風詩
청풍이여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가 / 淸風在何處
나 지금 그대와 함께 있고 싶어라 / 我今思共之
길보가 노래한 것도 오래전의 일 / 吉甫頌已久
대아가 어쩌면 그토록 쇠하였는고 / 大雅何其衰
자릉이 조대에 높이 숨어 살아서 / 子陵釣臺高
한정이 결국엔 또한 옮겨졌나니 / 漢鼎終亦移
황각을 열어젖힌 방두의 그 풍도를 / 房杜敞黃閣
제대로 이어받을 자 그 누구일까 / 繼者知爲誰
아 슬프다 뒤에 오는 이들이여 / 悲哉後來者
나의 이 청풍시를 읽어 보시기를 / 讀我淸風詩
[주D-001]나의 …… 이루었는데 : 맑 은 바람처럼 생각이 삿되지 않고 순수하여 마치 《시경(詩經)》의 노래와 같이 되었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시경》의 삼백 편 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각에 삿됨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2]길보(吉甫)가 …… 쇠하였는고 : 주 선왕(周宣王)의 현신(賢臣)인 중산보(仲山甫)를 찬양하며 윤길보(尹吉甫)가 〈청풍시(淸風詩)〉를 지은 이후로는 청풍을 노래한 시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시경》 대아(大雅) 증민(烝民)에 “나 윤길보가 노래를 지어 불렀나니, 조화되게 하는 것이 청풍과 같네. 깊은 시름 잠겨 있는 우리 중산보여, 이 노래로 그 마음 위로받기를.[吉甫作誦 穆如淸風 仲山甫永懷 以慰其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3]자릉(子陵)이 …… 옮겨졌나니 : 청 풍과 같은 현인이 세상을 떠나 은거만 하였을 뿐,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漢)나라 역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말이다. 자릉은 동한(東漢)의 고사(高士)인 엄광(嚴光)의 자(字)인데, 옛 친구인 광무제(光武帝)가 누차 초빙을 하였는데도 응하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의 낚시터[釣臺]에서 소일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73 嚴光列傳》 한정(漢鼎)은 한나라 구정(九鼎)이란 뜻으로, 한나라의 국운(國運)을 의미한다.
[주D-004]황각(黃閣)을 …… 풍도를 : 조정에 청풍과 같은 참신한 기풍을 불러일으키는 명재상의 풍도를 뜻한다. 황각은 승상부(丞相府)의 별칭이고, 방두(房杜)는 당(唐)나라의 명재상인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의 병칭이다.
이 응양(李鷹揚) 원부(元富) 의 죽음을 애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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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동생 모두가 한 시대의 호걸들 / 昆仲聯翩一世豪
응양의 상장군은 병조에서 최고였지 / 鷹揚上將冠兵曹
멀리 떠난 현릉을 석양에 마음 아파하며 / 傷心落日玄陵遠
치아도 점점 드문드문 머리칼도 희끗희끗 / 齒漸稀疏鬢二毛
사람으로 태어나 쉰한 번째 맞은 춘풍 / 人生五十一春風
득실과 희비 모두 꿈처럼 이미 공허해라 / 得失悲歡夢已空
몸은 가도 집안 이을 형의 아들 두었으니 / 身後傳家有兄子
구천에서 시중공에게 감사를 해야 하리 / 九泉應謝侍中公
적막한 청산 속에 홀로 맑은 물소리 / 靑山漠漠水泠泠
천상의 별이 지하의 영을 비춰 주리라 / 天上星臨地下靈
점점 멀어져 가는 상여꾼의 노랫소리 / 一曲薤歌聲漸遠
이생에선 멋진 자태 다시 못 보겠구려 / 此生無復見儀形
이호연(李浩然)과 함께 자하동(紫霞洞)으로 놀러 갔는데, 밀직(密直) 정포은(鄭圃隱)과 판서(判書) 이사위(李士渭)가 술을 가지고 찾아왔기에, 저녁 늦게까지 있다가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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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높은 산속에 몇 이랑쯤 널찍한 곳 / 四面崔嵬數畝寬
엷은 솔 그림자에 물소리도 차갑도다 / 長松影薄水聲寒
선경이 여기 말고 다른 데 따로 있으리요 / 便知異境非他境
염관도 냉관에게 자리를 양보하였구먼 / 已見炎官避冷官
근년에 산골짝에 폭우가 쏟아진 탓으로 / 近歲洞門逢急雨
바윗돌 떨어져 나가 날리는 여울과 희롱하네 / 當年石角弄飛湍
사문이 이렇게 모인 것도 하늘의 선물 / 斯文聚散皆天賦
달빛 속에 말 타고서 얼근히 취해 돌아왔네 / 半醉歸來月照鞍
[주D-001]염관(炎官)도 …… 양보하였구먼 : 무더운 여름철인데도 썰렁한 기운이 감돈다는 말이다.
이호연(李浩然)과 함께 자하동(紫霞洞)으로 놀러 갔는데, 밀직(密直) 정포은(鄭圃隱)과 판서(判書) 이사위(李士渭)가 술을 가지고 찾아왔기에, 저녁 늦게까지 있다가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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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높은 산속에 몇 이랑쯤 널찍한 곳 / 四面崔嵬數畝寬
엷은 솔 그림자에 물소리도 차갑도다 / 長松影薄水聲寒
선경이 여기 말고 다른 데 따로 있으리요 / 便知異境非他境
염관도 냉관에게 자리를 양보하였구먼 / 已見炎官避冷官
근년에 산골짝에 폭우가 쏟아진 탓으로 / 近歲洞門逢急雨
바윗돌 떨어져 나가 날리는 여울과 희롱하네 / 當年石角弄飛湍
사문이 이렇게 모인 것도 하늘의 선물 / 斯文聚散皆天賦
달빛 속에 말 타고서 얼근히 취해 돌아왔네 / 半醉歸來月照鞍
[주D-001]염관(炎官)도 …… 양보하였구먼 : 무더운 여름철인데도 썰렁한 기운이 감돈다는 말이다.
앞의 운을 써서 회포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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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리 길 고향 산천 눈 안에 아련해서 / 萬里鄕山入眼靑
문 닫고 종일토록 홀로 뜰을 거닐었네 / 閉門終日獨行庭
쇠한 나이 접어들어 총명도 전과 다른지라 / 年衰便覺聰明減
늙어 은퇴한 신안의 정자 자꾸만 생각나네 / 回首新安謝老亭
풀벌레 소리 속에 희미한 등불 하나 / 草虫聲裏一燈靑
꿈을 깨니 창도 밝게 달이 뜰을 비춰 주네 / 夢破窓明月照庭
천지도 무더위에 시달리는 이 몸이 불쌍한지 / 天地憐吾困於熱
바람과 이슬로 시원한 정자 만들어 주셨구먼 / 已將風露作涼亭
자리 아래 산봉우리 차례로 푸르르고 / 席下諸峯次第靑
파도 소리 달빛 띠고 집까지 들리는 곳 / 潮聲帶月入門庭
지금은 봉화가 하늘가에 잇따르는 때 / 如今烽火連天際
한산의 역정(驛亭)에 언제나 다시 올라 볼까 / 何日韓山更置亭
한 공(韓公)이 시 한 수로 화답을 하였는데, 그 말구(末句)에 “생각나네 연전의 바로 이 시절, 곳곳에 우뚝 선 연꽃 감상하던 일이.[却憶年前此時節 蓮花處處賞亭亭]”라고 하였다. 이 시를 읽다 보니 다시 감흥이 일기에 시 세 수를 또 지어서 기록해 바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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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만 보면 내 두 눈이 반갑게 변하나니 / 君子於吾兩眼靑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담담한 우정 때문이라 / 淡交無逕爾無庭
꽃 중에서 비슷한 것은 오직 연꽃이 있을 따름 / 花中似者唯蓮耳
금세라도 유항(柳巷)의 정자를 찾아가고 싶구려 / 便欲相尋柳下亭
서리 엉긴 흰 종이에 푸른빛 도는 묵의 빛깔 / 紙白凝霜墨潑靑
새로운 시 담은 글자 하나하나가 황정 같소 / 新詩字字似黃庭
청향 정식의 기운이 온전히 글 속에 배어 있어 / 淸香淨植依然在
바람과 이슬도 함께 따라와 나의 초정에 가득하오 / 風露相隨滿草亭
짙푸른 연 잎새에 희고 붉은 고운 꽃들 / 艶粧紅白蓋深靑
선녀가 임금님 뜰을 거니는 것과도 흡사하오 / 恰似仙娥步帝庭
부끄러워라 내 솜씨로 이 아름다움을 칭송할까 / 頌美却慚吾語拙
아무래도 낙신부 글에 난정의 글씨가 있어야 하리 / 須憑洛賦字蘭亭
[주D-001]황정(黃庭) : 진(晉)나라의 명필 왕희지(王羲之)의 별칭이다. 그가 거위를 무척이나 좋아한 나머지, 산음(山陰)의 도사(道士)에게 《황정경(黃庭經)》을 써 주고는 그 대가로 거위를 모조리 가져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太平御覽 卷238》
[주D-002]청향(淸香) 정식(淨植)의 기운 : 연 꽃과 같은 군자의 기풍을 말한다. 송유(宋儒) 주돈이(周敦頤)가 연꽃을 군자에 비유하며 〈애련설(愛蓮說)〉을 지었는데, 그중에 “연꽃은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고, 깨끗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香遠益淸亭亭淨植]”는 말이 나온다.
[주D-003]선녀가 …… 흡사하오 :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에 하락(河洛)의 여신(女神)인 복비(宓妃)를 묘사하여 “연꽃이 푸른 물결 위로 솟구친 듯 선명도 하다.[灼若芙蕖出綠波]”라고 표현한 말이 나온다.
[주D-004]아무래도 …… 하리 : 한수(韓脩)가 〈낙신부〉와 같은 명문을 짓고, 〈난정서(蘭亭序)〉를 쓴 왕희지처럼 명필을 선보여야만 제격이라는 말이다
증각사(證覺寺) 서쪽 누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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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연하 속에 울려 퍼지는 쇠북 소리 / 縹渺煙霞鍾磬聲
이 누각이 높아서 흐르는 별까지 닿겠도다 / 此樓高可接飛星
하늘가에 비 올 때는 일천 산이 어둡더니 / 雨來天際千山暗
구름 사이로 해 비치니 반쪽 들판이 환하구나 / 日漏雲間半野明
지금 영모하는 마음 바람 속의 나무라면 / 永慕今同風裏樹
옛날 만났던 추억들은 물속의 부평이라 / 相逢昔似水中萍
문생들 세 사람이 함께 자리에 있다마는 / 門生在席三人耳
다함이 없는 내 심정을 그 누가 알겠는가 / 誰識區區不盡情
[주D-001]지금 …… 나무라면 :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새삼 사무쳐 온다는 뜻으로, “나무가 조용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說苑 敬愼》
비를 대하고 보니 연꽃을 감상하고 싶은 흥치가 홀연히 일어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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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내리는 비를 보니 뭉클 솟는 흥치 / 朝來對雨興悠然
남지 찾아 혼자서 연꽃을 보고도 싶다마는 / 欲向南池獨賞蓮
다만 저어하는 것은 천태의 정사가 가까워서 / 只恐天台精舍近
파람 소리에 깜짝 놀라 지관의 선을 깨실까 봐 / 嘯聲驚破止觀禪
미친 듯 날뛰는 흥치는 늙어서도 남아 있어 / 自知狂興老猶存
때때로 흥만 나면 금방 문밖을 나서는데 / 遇興時時便出門
단지 유감은 연꽃 감상 소원을 풀지 못하는 것 / 只恨賞蓮違素願
낙타교 아래 물이 불어 미친 듯 치달릴 테니까 / 駱駝橋下水如奔
버들골 깊은 곳에 한씨와 이씨가 상종하며 / 韓李相從柳巷深
말고삐 나란히 가는 곳마다 함께 읊조리다 / 聯鞍到處共微吟
연꽃 감상할 때면 항상 찾아뵌 우리 스님 / 賞蓮每與吾師會
누가 알까 세 마음이 모두 한마음인 것을 / 誰識三心共一心
[주D-001]지관(止觀) : 망상을 쉬고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관찰하는 불교 수행법으로, 특히 천태종(天台宗)에서 강조하는데, 목은과 절친한 나잔자(懶殘子)가 천태종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자조(自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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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급제해서 친밀한 우정 나누었고 / 少年金牓比情親
을과 병과의 명성 또한 서로 어울릴 만했지 / 乙丙科名可擬倫
우스워라 나를 점점 동진사처럼 취급하더니 / 自笑漸如同進士
늙어서는 은사랍시고 산인으로 모시려는군 / 老爲恩賜望山人
날씨도 이젠 서늘하니 등불 가까이 글 읽을 때 / 燈火新涼稍可親
글은 도대체 왜 읽는가 인륜을 밝히기 위함이지 / 讀書歸宿在明倫
어울려 지내다 늘그막에 버림을 받고 말았으니 / 老年却被交游棄
나 역시 지금 망인인 것을 비로소 깨닫겠도다 / 始覺吾今亦妄人
본래 기운이 같으면 절로 가깝게 지내는 법 / 由來同氣自相親
향기는 난초와 같고 말은 법도에 맞아야지 / 其臭如蘭言□倫
늙은 목옹 어떡하나 맹자 보기도 부끄러워 / 老牧大慚慚孟子
단정한 사람은 단정한 사람을 벗으로 취할 테니 / 端人所取必端人
[주D-001]동진사(同進士) : 문과(文科)에서 갑(甲), 을(乙), 병(丙)의 등급에 속하지 못한 등외(等外)의 급제자를 말한다.
[주D-002]본래 …… 법 : 의 기투합(意氣投合)과 같은 뜻으로,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 구오(九五)에 “같은 소리끼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끼리는 서로 찾게 마련이니,……이는 각자 자기와 비슷한 것끼리 어울리기 때문이다.[同聲相應 同氣相求……則各從其類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3]향기는 …… 맞아야지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마음이 같은 두 사람의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同心之言 其臭如蘭]”는 말이 나오고, 《논어》 미자(微子)에 “말하는 것마다 법도에 들어맞는다.[言中倫]”는 말이 나온다.
[주D-004]단정한 …… 테니 :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 “윤공타는 단정한 사람이니, 그가 취한 벗도 반드시 단정한 사람일 것이다.[夫尹公之他端人也 其取友必端矣]”라는 말이 나온다.
법 화사(法華寺) 남쪽 작은 못에 연꽃이 있었는데, 백련(白蓮)이 대여섯 송이, 홍련(紅蓮)이 한두 송이, 그리고 피었다가 진 꽃들이 벌써 칠팔 송이나 되었으며, 아직 피지 않은 것들이 또 몇 송이 남아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나의 뜻을 위로받기에는 충분했으나, 읊조려 노래하는 것만으로는 그 소회를 다 표현할 수 없기에, 그저 짧은 시를 하나 지어 다른 해에 다시 감상하는 장본(張本)으로 삼기로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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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법화사 연못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는데 / 平生不數法華池
홀연히 이렇게 만나다니 또 하나의 기연일세 / 忽此相逢又一奇
벌써 떨어져 적막하다 시름지을 것 있으리요 / 已落豈容愁寂寞
안 핀 연꽃이 그래도 노년을 위로해 주는걸 / 未開猶足慰衰遲
안개빛과 물색이 서로들 물들여 길러 주고 / 煙光水色相涵養
달과 바람이 찾아와서 앞으로 함께들 보살피리 / 月影風香共夾持
아이 종이 꺾어 가는 푸른 연잎 몇 자루여 / 翠蓋奴僮携數柄
계사년 철행할 때와 어쩌면 그리도 흡사한지 / 依俙癸巳綴行時
이 날 은문(恩門)인 익재(益齋)의 기일(忌日)을 맞아 재(齋)를 행하는 곳에 참석하러 갔는데, 당년의 과거에서 탐화랑(探花郞)으로 급제했던 권 화산공(權花山公)이 연잎을 쓸 데가 있다고 꺾어서 아이 종에게 주어 먼저 가지고 가게 하였으므로, ‘계사 철행(癸巳綴行)’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
[주D-001]계사년 철행(綴行)할 때 : 목 은이 계사년인 공민왕 2년(1353) 문과(文科) 을과(乙科)에 장원(壯元)하여, 당시 지공거(知貢擧)였던 익재 이제현(李齊賢)에게 사은(謝恩)하러 갔던 때를 말하는데, 이 과거에서 목은의 처숙부인 화산군(花山君) 권중화(權仲和)도 함께 급제하였다. 철행은 줄지어 서는 것을 말하는데, 《당척언(唐摭言)》 사은(謝恩)에 “장원 이하의 급제자들이 시험관의 집 문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린 뒤에 줄지어 서서[下馬綴行而立] 사은한다.”는 말이 나온다.
혜문(惠文) 형에게 삼가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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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서 얼굴들은 늙어 갔소만 / 鏡裏顔俱變
글을 통해 우리 뜻은 하마 전했지요 / 書中意已傳
서로 종유하며 여생을 보낼 날이 / 相從送餘日
어느 해에나 있게 될지 모르겠네요 / 不識在何年
이끼 돋은 민가에 오시어 향불을 피우거나 / 爟火蒼苔地
내가 절간에 가서 밥 짓는 연기를 피우거나 / 炊煙碧洞天
오직 바라는 것은 곡봉 아래에서 만나 / 唯期鵠峯下
우리 두 사람 흔쾌히 한번 웃어 봤으면 / 一笑兩欣然
염동정(廉東亭)이 노루고기를 보내면서 “늙으신 양친에게 나누어 드리다 보니 양이 매우 적게 되었다.”고 하기에, 짤막한 시를 지어 감사의 뜻을 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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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노친께 노루 등심살 나누어 드리고는 / 獐背分呈兩老親
병 앓은 남리의 나에게 또 은혜 베푸셨네 / 更霑南里病餘人
양이 채소밭 짓밟은 지가 얼마 만이런가 / 菜園久矣無羊踏
햅쌀밥 맞는 반찬으론 그저 그만이로구려 / 足配盤飡玉粒新
또 한 수를 짓다.
고기 못 먹는 집집마다 채소만 상에 가득 / 素食家家菜滿盤
어쩌다 건어와 젓갈이 끼어드는 것이 고작 / 乾魚臭醯雜寒酸
유독 마음 아파라 예전에 금련을 맛봤는데 / 獨傷禁臠曾嘗得
백발이 다된 지금껏 관을 걸지 못했으니 / 白髮如今未掛冠
[주D-001]양이 …… 만이런가 : 오 랫동안 채소만 먹고 고기맛은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항상 채소만 먹다가 우연히 양고기 맛을 보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오장신(五臟神)이 나타나서 “양이 채소밭을 짓밟았다.[羊踏破菜園]”고 했다는 이야기가 삼국 시대 위(魏)나라 한단순(邯鄲淳)의 《소림(笑林)》에 나온다.
[주D-002]유독 …… 못했으니 : 옛 날 공민왕으로부터 고기를 하사받는 등 후한 대접을 받았는데, 자기를 알아주는 임금이 없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조정에 몸담고 있는 것이 애처롭게 여겨진다는 말이다. 진 원제(晉元帝)가 돼지 머릿고기를 너무도 좋아하자 신하들이 감히 맛볼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금련(禁臠)’이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있으며, 동한(東漢)의 봉맹(逢萌)이 왕망(王莽)의 정사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관을 벗어서 동쪽 도성 문에다 걸어 놓고는[解冠掛于東都門] 곧장 시골로 돌아갔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78 謝混列傳》 《後漢書 卷83 逢萌列傳》
한 유항(韓柳巷)이 나와 동정(東亭)을 적전(籍田)의 시골 별장으로 초청하여 연꽃을 감상하자고 하였는데, 마침 내린 비로 시냇물이 넘쳐흘러서 가기가 어려운 데다가 병이 또 발작하여 감히 움직일 수가 없었으므로 율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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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을 보고픈 평소의 뜻 그 누가 알아줄까 / 賞蓮雅志有誰知
기호는 달라도 세 사람 모두 연꽃엔 푹 빠졌지 / 異好三人共一癡
티끌세상 떨쳐 버리기 어려운 것이 유감이나 / 獨恨塵埃難抖擻
따라다니며 풍월을 즐기는 것만도 다행일세 / 只憐風月幸追隨
깨끗한 가을 기운 속에 성남의 하늘 활짝 개고 / 城南天豁秋容淨
쏟아지는 햇발 아래 못 위의 꽃들도 환하련만 / 池上花明日脚垂
조물이 인색하게 굴어 들놀이 흥을 깨시다니 / 造物靳人妨野興
쾌청한 날 다시 기다려 훨훨 날아 볼 수밖에 / 翶翔更俟快晴時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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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득실 사이에서 시끄러운 세상의 일 / 世事紛紛得失間
몸이 한가하다 해서 마음이 꼭 한가하랴 / 身閑未必便心閑
등불 앞엔 점점이 떨어지는 삼경의 비요 / 燈前點滴三更雨
베개 위엔 종횡으로 펼쳐진 만첩 산이로다 / 枕上縱橫萬疊山
조용할 땐 기심 잊은 노인 본뜰 듯도 하다마는 / 靜似忘機將學老
행동하면 예가 아닌 걸 감히 안자를 기대하랴 / 動皆非禮敢希顔
유방과 유취의 일은 모두 의식하지 않고 / 流芳遺臭都休管
사람과 귀신의 관문이나 다시 뚫어 보련다 / 更透一重人鬼關
[주D-001]기심(機心) 잊은 노인 : 두 레박 틀을 이용하면 쉬운 줄을 알면서도 굳이 우물 속으로 들어가 항아리에 물을 퍼 담아 밭에 물을 주면서 “기계가 있으면 기교를 부리는 일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일이 있으면 기교 부리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有機械者必有機事 有機事者必有機心]”라고 말했던 한음 장인(漢陰丈人)을 말한다. 《莊子 天地》
[주D-002]행동하면 …… 기대하랴 : 안연(顔淵)이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물(四勿)의 경계 가운데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非禮勿動]”는 조목이 들어 있다. 《論語 顔淵》
[주D-003]유방(流芳)과 유취(遺臭)의 일 : 후세에 향기로운 미명(美名)을 전하는 것과, 냄새 나는 악명(惡名)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주D-004]사람과 …… 보련다 : 성의(誠意) 공부에 전념해 보겠다는 뜻이다. 《심경부주(心經附註)》 권2에 “뜻을 참되게 하는 공부야말로 사람이 되느냐 귀신이 되느냐 하는 관문이 된다.[誠意 是人鬼關]”는 말이 나온다.
선영에 성묘하러 가는 심 상의(沈商議)를 봉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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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품이 정민하기로는 우리 동갑 중에 으뜸 / 天資精敏冠同庚
어렵고 힘든 일 마다 않고 성상을 보좌했지 / 履歷艱危佐聖明
아무 힘없는 나의 문장 부끄럽게 생각하며 / 愧我文章無氣焰
절월을 쥔 그대의 광영 대단하게 여겼다오 / 多君節鉞有光榮
압강을 수어하자 원근의 산빛이 맑아졌고 / 鴨江守禦山光合
접해를 종횡무진하자 햇빛이 밝게 빛났지요 / 蝶海橫行日色明
선영에 분황을 하게 된 은혜 이 얼마나 중하오 / 先壟焚黃恩更重
자손은 응당 가문의 명성 떨어뜨려선 안 되느니 / 子孫應不墜家聲
[주D-001]분황(焚黃) : 선조에게 증직(贈職)이 내려졌을 때, 그 교지를 누런 종이에 복사하여 무덤 앞에 가지고 가서 고한 뒤에 불태우는 것을 말한다.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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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울 때 잠 깼는데 해님은 왜 이리 더디신지 / 夢破雞鳴日上遲
밤이 선들선들하니 가을이 교대를 하려나 봐 / 夜涼秋氣欲分時
잠꾸러기 소년 시절 전생의 일인 듯 가물가물 / 少年耽睡如前世
지금은 사지가 온통 쑤셔 잠을 못 이루니 원 / 政被酸辛遍四支
용두(龍頭)를 봉송하며 그의 시에 차운하다. 이때 곽 동년(郭同年)과 최 계장(崔契長)도 그곳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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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니 연형의 머리 온통 하얗게 변한 채 / 聞設年兄白盡頭
전주와 날마다 함께 어울려 노닌다는데 / 全州日日得同遊
스님이 지금 또 강변의 절에 주석하신다니 / 師今又住江邊寺
나도 따라가 달빛 아래 뱃놀이를 하고 싶소 / 我欲相尋月下舟
괜히 어깨가 들썩이는 설렁설렁 가을 소리 / 瑟瑟秋聲生逸興
허튼 시름 자아내는 맑디맑은 물빛이라 / 澄澄水色浼閑愁
늙은 이 몸 손자들을 다시 안아 보고픈데 / 老翁更抱兒孫念
어느 때나 내왕하며 함께 누대에서 자 볼거나 / 來往何時共枕樓
[주D-001]연형(年兄) : 동년(同年)과 같은 말로 곽 동년(郭同年)을 가리킨다.
[주D-002]전주(全州) : 본관이 전주인 최 계장(崔契長)을 가리킨다.
[주D-003]스님 : 용두(龍頭), 즉 용두사의 스님을 가리킨다. 용두사는 충주(忠州)에 있는 절이다.
무열(無說)의 글을 얻고 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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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공은 서울에 와서 노닐기를 생각하고 / 公病思游洛下
쇠한 나는 꿈만 꾸면 강남 땅이 얽히는데 / 吾衰夢繞江南
몸들이 태산 같아 움직이기 어려우니 / 身似大山難動
타생 어느 곳에서나 청담을 나눠 볼지 / 他生何處淸談
나는야 국화를 최고로 치고 / 我以菊花居右
공은 백수가 바로 지남이라 / 公將柏樹指南
기호는 달라도 결국은 같은 의취인데 / 異好終然同趣
우릴 평론한답시고 말들 많이 하겠지 / 評論應費人談
나의 침상을 에워싼 건 인삼과 복령이요 / 參苓擁我床上
북두 남쪽 공의 동행은 달빛과 이슬이라 / 月露隨公斗南
누가 알랴 참선 자리 뒤끝의 맛을 / 誰識禪餘有味
혼자 부끄럽소 병 중에 말이 많아 / 自慚病裏多談
[주D-001]국화(菊花) :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가장 좋아했던 꽃인데, 송유(宋儒)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국화는 꽃 중의 은자이다.[菊花之隱逸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백수(柏樹) : 정 전백수자(庭前柏樹子) 즉 뜰 앞의 잣나무라는 뜻이다. 당(唐)나라 조주 종심 선사(趙州從諗禪師) 선사에게 어떤 승려가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건너온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불법(佛法)의 대요(大要)를 묻자, 조주가 “저 뜰 앞에 서 있는 잣나무이다.[庭前柏樹子]”라고 대답한 일화가 전한다. 《聯燈會要 卷6 趙州從諗》
은문(恩門)인 남양(南陽) 시중(侍中)의 분묘를 찾아가 성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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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인 자허를 위시해서 일곱 명의 영걸들 / 子虛班首七英賢
그리고 우리 동년 세 사람이 또 그 앞에 / 我牓三人更在前
무릎 꿇고 제물 올리니 얼마나 감격스러웠던가 / 跪奠椒漿多感激
물러나 절간에 와서 함께 또 시간을 보냈다오 / 退歸蓮宇共遷延
아침엔 햇빛과 솔 그림자가 서로 뒤섞이더니 / 日光松影朝相雜
저녁엔 또 비 올 듯하며 바람 소리가 잇따르네 / 雨氣風聲晚又連
하늘이 초반감 내신 것이 두렵기도 하다마는 / 只恐天生超反鑑
그래도 남몰래 보살피며 요기를 소탕해 주셨으면 / 尙蘄陰騭掃狼煙
[주D-001]반수(班首)인 자허(子虛) : 박의중(朴宜中)의 자(字)인데, 공민왕 11년(1362) 문과에서 장원 급제하였다. 반수는 장원의 뜻이다.
[주D-002]초반감(超反鑑) : 남 양(南陽) 시중(侍中) 즉 홍언박(洪彦博)과 같은 훌륭한 가문에서 나온 패륜아라는 뜻이다. 치감(郗鑒)은 진나라에 충성을 바친 명신이고, 그의 손자인 치초(郗超)는 환온(桓溫)의 참모가 되어 역모에 가담하였으므로, 그의 부친인 치음(郗愔)이 아들의 죽음을 접하고서도 일찍 죽지 않았다고 탄식하며 곡을 하지 않았다는 고사가 전하는데, 여기서는 치초가 자기 조부인 치감을 배반했던 것[超反鑑]처럼, 명신 홍언박의 손자인 홍륜(洪倫)이 공민왕을 시해하는 패륜을 자행하여 끝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고 만 것을 비유한 것이다. 《晉書 卷67 郗鑒列傳》 소식(蘇軾)의 시에 “혜소는 부친 혜강과 비슷하니 괜찮은 아들을 두었다고 하겠지만, 치초는 조부 치감을 배반하였으니 손자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嵇紹似康爲有子 郗超叛鑑是無孫]”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卷5 戲作賈梁道詩》
중추(中秋)에 내리는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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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하는 중추의 달빛 / 共愛中秋月
은하에 흰 물결이 넘실대니까 / 銀河溢素波
구름이 엉긴 것도 꺼려할 터에 / 尙嫌雲點綴
황차 주룩주룩 비가 내림에랴 / 況値雨霶
병객도 서운한 뜻 한이 없는데 / 病客情無盡
항아의 기분은 또 오죽하실까 / 姮娥意若何
내년에 한번 감상할 수 있을 터 / 明年容一賞
지금 어긋났다고 한숨 쉴 것까지야 / 不用嘆蹉跎
[주D-001]구름이 …… 터에 : 진 (晉)나라 태부(太傅)인 사마도자(司馬道子)가 밤하늘의 맑은 달을 보고 찬탄을 하자, 사중(謝重)이 옆에 앉아 있다가 “엷은 구름이 살짝 엉겨 붙어 있는 것만 못하다.[不如微雲點綴]”라고 하니, 태부가 “경의 마음가짐이 깨끗하지 못하다. 어째서 다시 청명한 달을 억지로 오염시키려 하는가.[卿居心不淨 乃復强欲滓穢太淸耶]”라고 조롱했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言語》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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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가 새벽까지 쉬지 않고 주룩주룩 / 夜雨連明洒不休
병 앓은 뒤라 서운한 뜻 더더욱 끝없어라 / 病餘情興陪悠悠
내년에는 금년과 꼭 같지는 않으리니 / 來年未必如今歲
그때 다시 서쪽 이웃 백척루에 오르리라 / 更上西隣百尺樓
수원(水原)에 우거하는 김군필(金君弼)이 나를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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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벌에서 가솔 끌고 옮겨 온 수원 땅 / 沙伐携家寓水原
산촌의 밥 짓는 연기 강촌에 잇닿는 곳 / 山村煙火接江村
인간 세상 한 조각 안심할 데가 있다면 / 人間一片安心處
흰머리로 소요하는 몇 이랑 밭뿐이리 / 只是蒼頭數畝園
동년 동학 중에 그대만 한 이 드문 터에 / 同年同學少如君
늙은 눈으로 아직도 오색 문장에 미련인가 / 老眼還迷五色文
주의 점두 같은 거야 한스럽게 생각 마오 / 莫恨朱衣點頭者
부귀는 뜬구름 같은 것이 아니더이까 / 看來富貴是浮雲
[주D-001]사벌(沙伐) : 상주(尙州)의 옛 이름이다.
[주D-002]주의 점두(朱衣點頭) …… 마오 : 김 군필이 목은과 함께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으나 그 뒤에 계속 문과(文科)에서 낙방하였는데, 이제는 문과에 급제하지 못했다고 한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그만 떨쳐 버리라는 말이다.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지공거(知貢擧)로 답안지를 채점할 적에, 자신의 등 뒤에서 붉은 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머리를 끄덕끄덕하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 답안지가 합격되곤 하였는데, 이상하게 느껴져서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더라는 ‘주의 점두’의 고사가 전한다. 《天中記 卷38 引 鯸鯖錄》 《목은시고》 제28권 〈김군필의 시를 받고 나서 이에 차운하여 답하는 시를 급히 짓다.〉와 《목은문고》 제5권 〈육익정기(六益亭記)〉에 이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용두(龍頭) 돈공(敦公)이 길 떠날 즈음에 내 집에 들러서 작별을 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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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더위 아직도 나를 침노한다마는 / 殘暑猶侵我
서늘한 기운 잠깐씩 사람의 맘에 들어 / 新涼乍可人
마음이 응당 산과 물에 있으신지라 / 心應在山水
몸이 벌써 티끌세상을 벗어났구려 / 身已離風塵
구름이 흩어지니 눈부신 강물 비단이요 / 雲散明江練
하늘이 드높으니 밝기도 한 달바퀴라 / 天高耿月輪
배를 뭍에 대고 불전에 올라가시거든 / 泊舟登佛殿
천수 누리시도록 성상을 축원하여 주오 / 祝上奉千春
변 효자(邊孝子)의 시권(詩卷)에서 간(看) 자를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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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자가 또 기쁘게도 효성이 지극하니 / 次子亦可喜
변공 자신도 바야흐로 위로를 받으리라 / 邊公方自寬
푸른 하늘에 장차 나래를 펼 봉황이요 / 碧天將躍鳳
푸른 대에 멈춰 선 난곡(鸞鵠)이로다 / 翠竹正停鸞
붓은 굳세어라 옥으로 만든 젓가락이요 / 筆勁玉爲筋
시는 원만해라 소반에 구르는 구슬일세 / 詩圓珠走盤
과명 역시 수염을 뽑는 것과 같으리니 / 科名摘鬚爾
빨리 양친이 보실 수 있게 해 드리게나 / 早使兩親看
[주D-001]붓은 …… 젓가락이요 : 전서(篆書)를 잘 쓴다는 말이다. 진(秦)나라 이사(李斯)가 창안한 소전(小篆)의 서체(書體)를 옥저(玉筯)라고 한다.
[주D-002]과명(科名) …… 드리게나 : 과 거 시험에도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니, 빨리 급제해서 양친을 기쁘게 해 드리라는 말이다. 한유(韓愈)의 시에 “해마다 과거 급제 영광을 거두다니, 마치 턱 밑의 수염을 뽑는 것과 같았소.[連年收科第若摘頷底髭]”라는 표현이 나온다. 《韓昌黎集 卷5 寄崔二十六立之》
무제(無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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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山寺)의 사람이 급히 달려와 보고하는 말 / 山□走報□□□
이미 공암 나루 바위곶 가를 통과하였다고 / 已過孔岩岩串邊
선고의 지극한 정성이 이제 비로소 꽃을 피워 / 先考至誠今始顯
강월헌 하나가 푸른 하늘에 걸리게 되었구나 / 一軒江月掛靑天
[주D-001]공암(孔岩) 나루 : 양천(陽川) 북쪽 10리 지점에 있는 나루로, 북포(北浦)라고도 하는데, 물속에 바위가 우뚝 서 있고 그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주D-002]강월헌(江月軒) : 보제 존자(普濟尊者) 즉 나옹(懶翁)의 자취가 서려 있는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 앞에 위치하여 여강(驪江)을 굽어보고 있는 누대 이름이다.
한양 윤(漢陽尹)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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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속 깊은 골짜기 하나의 절간 / 三角山中□壑寺
연하 속에 어리비치는 지붕 모롱이 / 觚稜掩映煙霞裏
그곳의 중이야 조석으로 밥 먹고 잠만 자니 / 居僧朝夕眠食耳
도끼 쥐고 쉴 새 없이 일한들 꺼리겠소마는 / 斤斧豈嫌勞不已
성치 못한 어떤 중이 너무 노곤하다 보면 / 但患支離四體倦
혹시라도 병이 생겨 못 일어날까 걱정이라 / 或者疾生醫未易
중은 이미 인륜을 저버린 자라 할 것이니 / 其人旣曰去人倫
위의 은혜를 갚겠다는 말도 헛된 것일 터 / 上報重恩虛語爾
차라리 잠시 깊은 산속에 놓아 보내어 / 不如且放山中去
들짐승 날짐승과 지내게 함이 어떠하실지 / 猿鳥鹿麋而已矣
갈바람은 하늘 가득 들판은 푸르고 누런 때 / 秋風滿天野靑黃
걸식하며 겨울 보냄이 이 중의 소원이라는데 / 乞食過冬是其志
보잘것없는 중 하나쯤 아까울 게 있겠소만 / 九牛一毛豈足惜
나도 인사치레할 겸 이 말씀드리는 것이외다 / 老牧斯言亦人事
오늘 강에 도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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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의 문인이 벌써 강에 도착하였나니 / 普濟門人□□□
구슬이 구르고 벼락 치듯 쉽고도 빠르도다 / 易如丸走疾如霆
목동이 구사를 잘했다고 감히 말하리요 / 牧童敢道能驅使
하늘에 계신 선고께서 인도해 주신 덕분이지 / 啓迪冥冥有□□
내원(內院) 감주(監主) 귀곡 대선사(龜谷大禪師)의 죽음을 애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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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 대선사는 의관의 후예로서 / 龜谷衣冠冑
출가하여 임제의 법손이 되신 분 / 去爲臨濟孫
용모가 맑았나니 원래 마음이 고요했고 / 貌淸心自寂
간단한 언어 속에 도는 더욱 높았어라 / 言簡道彌尊
바람이 불어오던 연사의 그 자리여 / 蓮社風吹座
달빛이 가득하던 송산의 그 뜰이여 / 松山月滿園
이제는 짚신 한 짝 볼 길이 없겠기에 / 無從見隻履
늙은이의 이 눈물 가을 언덕에 뿌립니다 / 老淚洒秋原
[주D-001]출가하여 …… 분 : 중국 선종(禪宗)의 오가 칠종(五家七宗) 가운데 하나인 임제종(臨濟宗)의 법맥을 고려 말에 태고(太古) 보우(普愚)가 전해 왔는데, 귀곡 각운(龜谷覺雲)이 그 의발(衣鉢)을 전해 받았다는 말이다.
[주D-002]연사(蓮社) : 승 려와 문사(文士)의 결사(結社)를 말한다. 진(晉)나라 고승 혜원(慧遠)이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서 승속(僧俗) 18현(賢)과 함께 염불 결사를 하였는데, 그 절의 못에 백련(白蓮)이 있어서 연사라고 칭했던 고사에서 유래한다. 《蓮社高賢傳 慧遠法師》
[주D-003]이제는 …… 없겠기에 : 불 도(佛道)의 경지가 높은 선승(禪僧)의 죽음을 말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인 달마(達磨)가 죽은 지 3년 뒤에, 위(魏)나라 송운(宋雲)이 총령(蔥嶺)에서 달마를 만났는데, 그때 그가 짚신 한 짝만을 들고 서천(西天)으로 가더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五燈會元 東土祖師 初祖菩提達磨祖師》
강 총랑(姜摠郞)의 시권(詩卷)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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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랑을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나니 / 侍郞吾愛甚
그 풍채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오 / 籍甚有風儀
자식의 도리 지금 빠짐없다고 할 것이요 / 子道今云備
임금의 은혜 또한 보기 드물다 할 것이라 / 君恩亦所稀
푸른 하늘은 순전을 위에서 굽어보고 / 靑天臨舜殿
밝은 태양은 내의를 환하게 비춰 주네 / 白日照萊衣
늙은 나는 그저 부러워하고 흠모하며 / 老我徒歆羨
남창에서 붓을 잡고 한번 휘두르노라 / 南牕筆一揮
[주D-001]푸른 …… 주네 : 순 임금의 시대와 같은 태평한 때를 맞아 노래자(老萊子)처럼 어버이에게 효성을 다 바치고 있다는 말이다. 내의(萊衣)는 노래자의 옷이라는 뜻으로,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은사(隱士)인 노래자가 나이 칠십에도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初學記 卷17 孝子傳》
유감(有感)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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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한 천지 속에 잠깐 머물다 가는 이 몸 / 天地悠悠寄此身
전광석화라 표현해도 오히려 더디다 하리로다 / 電光石火亦逡巡
누가 알까 늙은 목옹 마음속의 괴로움을 / 誰知老牧心中苦
임금의 은혜 갚지 못한 채 백발만 새로 돋아나니 / 未報君恩白髮新
당일에 꽤나 어렵고 힘들게 글을 읽을 적에는 / 讀書當日頗艱辛
유풍을 떨치려 하며 소신을 부끄럽게 여겼는데 / 欲振儒風耻素臣
늙어가며 혼자 슬퍼라 너무도 쇠한 것이 / 老去自悲衰也甚
불교에 의지해 임금님 은혜 갚으려 하니 / 却憑西敎報君親
서늘함 찾아 자하동 갔다가 들른 왕륜사 / 趁涼霞洞過王輪
뜰의 풀들 연무에 뒤섞여 사람 키도 넘을 듯 / 庭草和煙欲沒人
손가락 튕길 사이에 바뀌는 과거 현재 미래 / 過見來爲彈指頃
동해가 홀연히 티끌을 날리는 줄을 믿겠도다 / 不疑東海超飛塵
[주D-001]소신(素臣) : 국록을 축내면서 자리만 지키는 유명무실한 신하를 말한다.
[주D-002]늙어가며 …… 하니 : 젊 었을 때와는 달리 늘그막에 몸이 쇠하여 의지가 약해지면서, 자신을 알아주었던 공민왕의 명복을 불교에 의탁해서 빌기만 할 뿐, 쇠퇴한 유가의 도를 진작시키려고 했던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없게 된 것이 슬프게 여겨진다는 말이다. 《논어》 술이(述而)에 “내가 너무도 쇠하였구나. 오래도록 꿈속에서 주공을 다시 뵙지 못하였으니.[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라고 탄식한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3]동해(東海)가 …… 믿겠도다 : 세 상이 잠깐 사이에 무상하게 변천하는 것을 말한다. 선녀 마고(麻姑)가 신선 왕방평(王方平)을 만나서, 그동안 동해가 세 번이나 뽕밭으로 변한 것을 봤다고 말하자, 왕방평이 웃으면서 “바다 속에서 다시 티끌이 날리게 될 것이다.[海中復揚塵也]”라고 말했다는 신화 속의 이야기가 전한다. 《神仙傳 卷7 麻姑》
중도(中道)의 염사(廉使)로 부임하는 안 간의(安諫議)를 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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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래에 바다 근처에는 사람 사는 집이 적어 / 年來傍海少人家
행차 길에 밥 짓는 연기도 쓸쓸하기만 하리 / 煙火蕭條一路斜
가다가 한원을 지나면 말에서 한번 내리겠지 / 行過韓原應下馬
깊은 가을 선영의 나무들 운하 속에 있으리니 / 秋深榟樹雜雲霞
[주D-001]한원(韓原) : 목은의 고향인 한산(韓山)을 말한다.
전라 염사 허 총랑(許摠郞)을 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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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깊은 곳에서 노닐던 추억 떠오르나니 / 錦州深處記吾游
적막하게 물가에 임할 때 초목은 가을이었어라 / 寂寞臨川草樹秋
사기 열전의 순리(循吏)들과 명성을 같이하시리니 / 馬史有傳應並美
앞으로 그대의 후임자들 부끄러운 시 지으리라 / 汗流題引在前頭
[주D-001]금주(錦州) : 나주(羅州)의 옛 이름이다.
우제(偶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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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려가 재배하고 문창에 사과했겠지만 / 昌黎再拜謝文昌
회비가 지워졌다 한들 무슨 상관 있으리요 / 刮去淮碑實不妨
전모를 모사하며 그림자 붙잡듯 했건마는 / 摹寫典謨如捕影
끝내 아첨을 바쳐 문장을 잘도 이루었군 / 終輸貝錦有文章
호오의 마음이 생기는 걸 어떻게 이름을 가리우며 / 心生好惡名難掩
안목에 고저가 있는 걸 문장의 진가가 손상되랴 / 眼有高低物豈傷
해변가의 목동이 천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 海上牧童千載下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며 그 여광에 읍하노라 / 仰瞻雲漢揖餘光
[주D-001]창려(昌黎)가 …… 있으리요 : 창 려 즉 한유(韓愈)가 지은 〈평회서비문(平淮西碑文)〉이 당시에 비평을 받고 지워지기까지 하였지만, 대문장가로서의 명성에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는 말이다. 당 헌종(唐憲宗) 원화(元和) 12년(817)에 오원제(吳元濟)가 반란을 일으키자 승상 배도(裴度)가 이를 토벌하기 위해 회서선위처치사(淮西宣慰處置使)로 나갔는데, 이때 한유가 행군 사마(行軍司馬)로 따라갔다가 개선하고 돌아와서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평회서비문〉을 지었다. 그런데 오원제를 사로잡는 등 큰 공을 세웠던 이소(李愬)는 당안공주(唐安公主)의 사위로서 궁중에 자주 드나드는 처지였는데, 한유의 비문이 배도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등 사실과 다르다고 호소한 결과, 헌종이 한림학사(翰林學士) 단문창(段文昌)에게 새로 비문을 지어 새기게 하고 한유의 비문은 지워 버리도록 명한 고사가 있다. 《舊唐書 卷160 韓愈列傳》
[주D-002]전모(典謨)를 …… 이루었군 : 아 무도 흉내낼 수 없는 뛰어난 필치로 한유가 비문을 지었건만, 단문창이 이소에게 아첨을 하면서 알록달록 치장을 하며 다시 글을 엮어 내었다는 말이다. 전모는 《서경(書經)》의 2전(典) 3모(謨)를 가리키는 말로, 한유가 비문을 《상서(尙書)》의 문체로 멋지게 구사했다는 말이다. 포영(捕影)은 보통 근거 없는 허황된 내용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나, 여기서는 문장의 묘한 경지를 귀신같이 표현해 내었다는 뜻으로 쓰였다. 소식(蘇軾)이 〈여사민사추관서(與謝民師推官書)〉에서 글 짓는 법을 논하면서 “존재의 본질을 구명하여 묘한 경지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마치 바람을 묶어 두고 그림자를 붙잡는 것과 같다.[求物之妙 如繫風捕影]”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주D-003]호오(好惡)의 …… 손상되랴 : 안 목이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 지은 문장의 질적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할 것이니, 한유의 글이 당시에 비록 지워지긴 하였으나 그의 명성이나 문장의 진가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소식이 지은 시에 “회서의 공적이야말로 당나라에서 으뜸인데, 이를 기록한 한유의 문장이 일월처럼 빛나도다. 지워진 비문이 천년토록 사람들 입에 회자되나니, 세상에 단문창이 있었던 것은 아무도 모르누나.[淮西功業冠吾唐 吏部文章日月光 千載斷碑人膾炙 不知世有段文昌]”라는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50 沿流館中得二絶句》
중구일(重九日) 하루 전에 유항(柳巷)에게 증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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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과 절물은 실로 불가분의 관계인데 / 人情節物苦牽聯
머리 위의 광음은 마치 물이 흘러가 듯 / 頭上光陰如逝川
아쉬워라 중추의 달을 내년으로 미뤘는데 / 已負中秋姑待後
놀라워라 중구일이 어느새 또 닥쳐왔네 / 俄驚九日又當前
조물이 동쪽 울의 국화를 아끼는 듯하니 / 化工似靳東籬菊
늙은 나야 북해의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 老我徒瞻北海天
그래도 적막을 함께할 서린이 계시나니 / 賴有西隣同寂寞
서로 마주 보며 한가한 시간 좀 보내야지 / 更須相對共悠然
[주D-001]인정(人情)과 …… 관계인데 : 계절이 변화하면서 보여 주는 경물(景物)에 따라 사람의 마음도 어쩔 수 없이 바뀌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주D-002]머리 위의 …… 흘러가 듯 :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로,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가 시냇가에서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도다.[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탄식한 말이 나온다.
[주D-003]조물이 …… 수밖에 : 중 구일(重九日)이 왔는데도 국화가 아직 피지 않았으므로, 북해(北海)의 하늘처럼 어서 날씨가 쌀쌀해져서 국화가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시에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 꽃잎을 따다가, 유연히 남쪽 산을 바라보노라.[采菊東籬下悠然見南山]”라는 명구(名句)가 전한다. 《陶淵明集 卷3 飮酒》 북해는 기후가 한랭하여 사람이 살지 못하는 북쪽 지역으로, 한(漢)나라의 충신인 소무(蘇武)를 흉노가 ‘북해 지역의 사람이 없는 곳[北海無人處]’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전한다. 《漢書 卷54 蘇武傳》
묘각사(妙覺寺) 고정(高井)의 방장실(方丈室)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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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가 연래에 날마다 점점 잘못되니 / 世道年來日漸非
산승이 술 사 주는 일도 드물다 하리 / 山僧沽酒亦云稀
오늘 아침 혜원 노인을 다행히 만났으니 / 今朝遇着惠遠老
모르겠소 연명이 어디로 발길 돌릴는지 / 不識淵明何處歸
[주D-001]오늘 …… 돌릴는지 : 고 정(高井) 스님을 찾아가서 술 한 잔 얻어먹어야겠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옛날 혜원 스님은 술 사서 도연명을 먹였는데, 오늘은 불인 스님이 돼지를 구워서 나를 대접하네. 벌이 꽃을 찾아 꿀을 만들었소마는, 모르겠소 모진 고생을 하며 누굴 위해 달게 해 주었는지를.[遠公沽酒飮陶潛 佛印燒猪待子瞻 采得百花成蜜後 不知辛苦爲誰甛]”이라는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50 戲答佛印》
삼가 주상 전하께서 남쪽 교외에 나아가 성렴(省斂)하시는 날을 만났는데도 배행(陪行)하며 모실 수가 없기에 시 한 수를 지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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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임금님이 백성의 일을 걱정하여 / 聖主憂民事
남쪽 교외에 납시어 추수를 살펴보시는 때 / 南郊省斂初
누렇게 익은 벼 구름은 이랑마다 잇따르고 / 黃雲連壟畝
임금님 수레 푸른 일산 농촌 들녘 비추리라 / 翠蓋映村墟
왕의 풍화에 따라 길흉의 징조가 드러나나니 / 休咎王風著
풍년과 흉년은 나라의 역사에 꼭 기록하나니라 / 豐凶國史書
늙은 신하 하염없이 우러러 쳐다보노라니 / 老臣瞻望處
오늘은 하루해가 왜 이다지도 길고 긴지 / 便覺日行舒
[주C-001]성렴(省斂) : 제왕이 순시하며 추수의 상황을 점검하는 것을 말한다.
중구일(重九日)에 반주(班主)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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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제 뒤에 으레 술을 제군에 보내 주오마는 / 醮餘雖例及諸君
두 병 술로야 어떻게 골수까지 얼큰해질까 / 朋酒無從骨髓醺
병후에 산에 올라 나 혼자 명절을 보내는데 / 病後登高吾自賀
황차 사문을 중시하는 우리 응양은 오죽할까 / 鷹揚況是重斯文
[주C-001]반주(班主) : 고려 시대 때 설치된 응양군(鷹揚軍)의 상장군(上將軍)으로서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일컬었던 말이다.
호 연(浩然)과 자안(子安)과 자복(子復)이 나와 한맹운(韓孟雲) 선생을 초청하였으니, 이는 송산(松山) 좌측 산기슭에 올라가서 중구일을 기념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밀직(密直) 정포은(鄭圃隱)을 위시해서 자은종(慈恩宗)의 우세군(祐世君)과 금산 장로(金山長老)와 판서(判書) 이사위(李士渭)가 미리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그 산의 봉우리로 올라가서 사방을 바라보았으나 마음에 차지 않는 점이 있기에, 조금 서쪽으로 옮겨 감로사(甘露寺) 남쪽 봉우리로 올라갔더니 앞이 툭 터져서 전망이 훨씬 좋았다. 여기에서 술잔을 주고받고 시와 노래를 읊조리면서, 국화꽃이 필 때 다시 모이기로 재차 약속을 하고는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이날 뒤에 도착한 사람들이 또 있었는데, 그들은 청주(淸州) 이사영(李士穎)과 정 부령(鄭副令)이었다. 그다음 날 이때의 일을 다시 떠올려 보니 벌써 꿈속의 일처럼 여겨졌으므로, 이에 정회를 가눌 길이 없어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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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양절 성대한 모임 모두 걸출한 인물인데 / 重陽盛會盡高流
나만 병신인 몸으로 머리에 흰 눈만 가득 / 獨我支離雪滿頭
해타는 바람 따라 천상에서 떨어지고 / 咳唾隨風天上落
광휘는 세상을 비치며 일변에 떠 있도다 / 光輝照世日邊浮
술잔이 얼크러진 채 밤까지 이어지는 속에 / 杯盤錯落繼以夜
바람과 이슬 처량하니 가을인 줄 알겠도다 / 風露凄涼知是秋
국화 꺾어 술잔 숫자 한번 세고 싶으시면 / 欲把黃花籌酒去
자은사에서 또 함께들 노닐어 보십시다 / 慈恩寺裏又同游
[주D-001]해타(咳唾)는 …… 떨어지고 : 일 행이 해타 즉 멋있는 시문을 지어냈다는 말이다. 이백(李白)의 시에 “하늘 위에서 침을 뱉어 아래로 떨어지면, 바람 따라 모두가 옥구슬을 이루었네.[咳唾落九天 隨風生珠玉]”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목은이 이를 단장취의(斷章取義)한 것이다. 《李太白集 卷3 妾薄命》
[주D-002]광휘는 …… 있도다 : 일행의 뛰어난 의표가 일변 즉 도성 주위를 환히 비추었다는 말이다.
7월 7일에 모임을 한 번 갖고, 9월 9일에 다시 한 번 모임을 가졌는데, 이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기에, 시 한 수를 읊어서 이 심정을 기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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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단란한 모임 어찌 우연이라 할까 / 我輩團圝非偶然
가을 되고 벌써 두 번 술자리를 가졌는걸 / 秋來再得話尊前
칠석엔 자하동 선경 물소리 돌을 울렸고 / 紫霞仙洞泉鳴石
중구엔 감로사 승방 달이 하늘을 비쳤다네 / 甘露僧房月照天
뜬세상 헛된 이름 훌쩍 떠나긴 어려워도 / 浮世虛名難□□
명절의 좋은 경치만은 항상 마음 끌린다오 / 良晨美景每相牽
내년에는 꽃구경 모임 내가 주선해 봐야지 / 明年欲辦看花會
젓가락 집는 데 어찌 꼭 만전을 들여야 할까 / 下筯何須費萬錢
[주D-001]젓가락 …… 할까 : 음식을 그저 정갈하고 간소하게 차리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진(晉)나라 하증(何曾)이 “날마다 만전을 들여 밥상을 차리게 하면서도 젓가락 댈 곳이 없다고 했다.[食日萬錢 猶曰無下箸處]”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33 何曾列傳》
또 칠석(七夕)에 지은 시의 운을 써서 중구일(重九日)을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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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확 트이는 감로사 앞 봉우리 / 甘露前峯眼界寬
솔바람 얼굴 씻어 주고 산에는 한기 가득 / 松風洒面滿山寒
조복이라도 잡혀야지 멋적어도 별 수 있나 / 朝衣典却甘□術
초례 끝난 술도 장군이 나눠 줘 마시는걸 / 醮酒分來荷武官
가련해라 이 몸만 홀로 낙엽처럼 나뒹굴 뿐 / 獨我自憐身似葉
제공들이야 성유단에 미혹될 분 뉘 있겠소 / 諸公誰惑性猶湍
공 이루고 물러나 시골에 가는 게 소원이나 / 功成願□歸田去
벼슬길에 가끔은 쉴 줄도 알아야 하리이다 / 宦路有時須歇鞍
[주D-001]조복(朝服)이라도 …… 있나 : 술은 마시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조복이라도 전당 잡힐 수밖에 없다는 뜻의 처량한 심정을 표현한 말이다.
[주D-002]성유단(性猶湍) : 사 람의 성품은 본래 한 가지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마치 여울물과 같아서 상황에 따라 갖가지로 변할 수 있다는 학설을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사람의 성품은 여울물과 같다.[性猶湍水也] 여울물을 보아라. 동쪽으로 물길을 터 주면 동쪽으로 흘러가고, 서쪽으로 터 주면 서쪽으로 흘러가지 않던가. 사람의 성품에 선과 불선의 구분이 없는 것 역시 여울물에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다.”는 고자의 설이 소개되어 있다.
유거(幽居)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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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거의 재미를 알 사람이 뉘 있을까 / 幽居有味有誰知
한 가닥 향 연기에 실 같은 귀밑머리 / 一燧香煙兩鬢絲
간밤의 술도 다 깬지라 저녁밥 재촉하며 / 宿酒已消催夕飯
풍우성 가득한 창가에서 또 한 수 짓노매라 / 滿牕風雨又題詩
물어보세 풍류 넘치는 우리 국 수재여 / 爲問風流麴秀才
중양절에 국화 핀 걸 몇 번이나 보셨던가 / 重陽幾見菊花開
금년엔 푸른 꽃술 참으로 따기 어려워서 / 今年靑蘂眞難摘
백옥 술잔에 하늘 그림자 분명히 비치는군 / 天影分明白玉杯
하느님의 마음 쓰심이 정말 깊기도 하셔라 / 天公用意十分深
내가 쇠년에 심장을 토해 낼까 걱정해 주셨나니 / 恐我衰年嘔出心
백로의 계절 중추(中秋)에는 구름이 달을 가리더니 / 白露正中雲掩璧
된서리 내릴 중구(重九)에는 안개가 국화를 숨겼구먼 / 淸霜欲下霧藏金
[주D-001]한 가닥 …… 귀밑머리 : 머 리칼이 빠져서 성글어진 노년에는 그저 향 연기를 벗 삼으며 사는 것이 온당하다는 말로, 늙어서 담박하게 생활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을 뜻한다. 젊었을 적에 호주(湖州)의 정자에서 물놀이를 즐기며 아름다운 소녀와 가연(佳緣)을 기약했던 당(唐)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늙어서 절간에서 지내며 지은 시에 “오늘은 하얀 귀밑머리 선탑 가에서 지내나니, 차 연기가 꽃 지는 바람에 가벼이 나부끼네.[今日鬢絲禪榻畔 茶煙輕颺落花風]”라고 하였는데, 소식(蘇軾)이 다시 이를 인용해서 “실 같은 귀밑머리로는 그저 선탑을 마주해야 온당한 일, 호주 정자의 물놀이야 이제 필요가 있겠는가.[鬢絲只可對禪榻 湖亭不用張水嬉]”라고 묘사한 시가 있다. 《樊川詩集 卷3 題禪院》 《蘇東坡詩集 卷8 將之湖州戲贈莘老》
[주D-002]국 수재(麴秀才) : 술의 별칭으로, 국생(麴生)이라고도 한다.
[주D-003]백옥 술잔에 …… 비치는군 : 술잔 위에 국화꽃을 띄우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만 선명하게 잔 속에 비친다는 말이다.
[주D-004]내가 …… 주셨나니 : 목 은이 시를 짓느라 노심초사하다가 몸을 상할까 염려한 나머지, 조물주가 명절의 좋은 경치를 일부러 보여 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종일토록 밖에 나가 지은 시를 금낭(錦囊)에 넣어 가지고 집에 들어오곤 하였는데, 모친이 그 시들을 보고는 “이 아이는 자기 심장까지 토해 낼 정도가 되어야만 이 일을 그만둘 것이다.[是兒要當嘔出心始已耳]”라고 탄식했다는 고사가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이하 소전(李賀小傳)》에 나온다.
유경휘(柳景輝)가 자기 부인과 함께 병이 들더니 동시에 죽어서 오늘 도성 남쪽에 똑같이 묻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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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다가 함께 죽다니 참으로 좋은 인연일세 / 同生同死是良因
성남에 함께 묻힐 적에 친족이 다들 모였어라 / 同葬城南會族親
목숨은 하늘에 달렸으니 자위해야 하겠지만 / 有命在天應自慰
애달프다 집에 계신 늙은 모친은 어찌할꼬 / 可憐堂上老夫人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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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익고 물고기 살지고 또 한 해의 가을 / 稻熟魚肥又一年
농촌 마을 가는 곳마다 태평 시대의 연기로세 / 田家到處太平煙
누가 알랴 흰머리로 누대에 오른 이 나그네 / 誰知白髮登樓客
남쪽 고향 산 바라보며 생각이 아득한 줄을 / 南望鄕山思渺然
문생(門生)인 박주 병마사(博州兵馬使) 김지탁(金之鐸)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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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용부 사재가 그곳에서 돌아온 뒤로 / 去夏庸夫四宰回
그대의 부오가 모조리 영재인 것을 잘 알았소 / 知君部伍盡英材
봄에는 글 겨울엔 사냥 몸에 탈 없으면 됐지 / 春書冬弋身無事
운대와 조대를 굳이 비교할 것이 뭐 있겠소 / 何較雲臺與釣臺
[주D-001]용부(庸夫) : 목은의 처삼촌인 권중화(權仲和)의 자(字)이다.
[주D-002]운대(雲臺)와 …… 있겠소 : 운대는 공신(功臣)을, 조대(釣臺)는 은사(隱士)를 가리키는데, 아마도 김지탁(金之鐸)의 문의에 대하여 목은이 답변한 것인 듯하다.
정음(正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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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한 음악이 지금 없어진 것을 / 正音今已矣
늙은 이 몸이 또 어떻게 하겠는가 / 老我復何爲
애태우며 마음을 꽉 붙잡고 있다가도 / 耿耿操心苦
구구하게 외물 따라 휩쓸려 버리는걸 / 區區逐物移
누런 국화는 아직도 토하지를 않고 / 黃花猶未吐
밝은 달마저 장차 이지러지려는 때 / 明月又將虧
촛불 잡고 열심히 즐기기나 해야지 / 秉燭當勤樂
지금은 마침 또 풍년을 맞았으니 / 豐年適此時
[주D-001]촛불 …… 해야지 : 밤 에 촛불을 밝히고 노닌다는 이른바 병촉유(秉燭游)로, 덧없는 인생살이 속에서 좋은 때를 놓치지 말고 즐겁게 놀아 보자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고시(古詩)에 “사는 햇수는 백년도 채우지 못하건만, 항상 천년의 시름을 품고 있네. 낮은 짧고 밤이 긴 것이 괴로우니, 어찌 촛불 잡고 놀아 보지 않을쏜가.[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晝短苦夜長何不秉燭游]”라는 구절이 나온다. 《文選 卷29 古詩十九首》
9월 15일 밤에 유항(柳巷)이 술 마시자고 부르기에 달을 마주하며 국화꽃을 잔에 띄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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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일 같기도 하고 중추절 같기도 하고 / 如重九又似中秋
국화 띄운 술잔 속에 달그림자 흐르누나 / 泛菊杯深月影流
아스라이 못 위에 떠 있는 황금 물결이요 / 渺渺金波浮池面
둥그렇게 가지 끝에 가득한 옥 이슬이라 / 團團玉露滿枝頭
형체를 잊으려면 열 섬의 술쯤은 있어야 / 忘形政籍千鍾酒
한껏 바라보려면 백 자 누각에 기대야지 / 極目聊憑百尺樓
예로부터 시절 따라 광음을 아꼈나니 / 自古隨時愛□□
늙어서도 고인의 병촉유에 마음 끌려 / 老來猶欲古人游
문생(門生)인 노숭(盧崇)이 밀직 제학(密直提學)에 임명된 것을 축하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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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선마가 대궐에서 내려왔나니 / 一夜宣麻降紫宸
묘당 높은 곳에 총애와 영광이 새롭도다 / 廟堂高處寵光新
추밀원(樞密院)의 학사님 누군지 아시나요 / 鴻樞學士知誰氏
을사년에 오등으로 급제한 나의 문생이라오 / 乙巳門生苐五人
[주D-001]선마(宣麻) : 흰 마지(麻紙)에 써서 선포한 조서(詔書)라는 뜻으로, 보통 재상 임명장을 가리킨다.
[주D-002]을사년 : 목은 38세 때인 공민왕 14년(1365)으로, 그해 10월에 목은이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윤소종(尹紹宗) 등 28인을 급제시켰다.
어제 교외에 나가 영접하려 했으나 만나 뵙지 못하고 돌아와서 피곤해 누웠다가 아침에 일어나 느낌을 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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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는 미리 정하기 어려운 법이지만 / 萬事難前定
외로운 이 몸 뒤에 가서 부끄럽기만 / 孤生愧後來
도리를 어떻게 사람이 다할 수 있나 / 道非□所盡
이 몸뚱이 세상과 삐걱거릴 수밖에 / 身與世相猜
이루고 무너지고 많이도 변화하는 속에 / 成壞終多變
맺고 끊는 인연은 몇 번이나 돌고 돌까 / 因緣定幾回
군친에게 보답하려 애를 쓰는 일만큼은 / 君親圖報處
스스로 우뚝하길 마음속으로 기원할 뿐 / 願意自崔嵬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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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서서히 일어나니 흥취가 무궁무진 / 天明徐起興無窮
보이는 풍경은 똑같은데 도의 맛은 새삼 짙어 / 玩物依然道味濃
담장 너머 햇빛은 지붕 모서리를 뚫고 / 墻外日光穿屋角
처마 사이 새 그림자는 병풍에 붙어 있네 / 簷間鳥影在屛風
토란을 구워 먹어 볼까 화로가 아직 뜨거우니 / 欲嘗燒芋爐猶熱
관매를 배운들 뭐하리요 거울은 원래 똑같은걸 / 試學觀梅鏡自同
단지 담연한 이 경지를 오래 지니기 어려워서 / 只是淡然難久得
분분히 외물에 응하다가 쇠옹이 귀찮을 뿐이로다 / 紛紛應接惱衰翁
[주D-001]토란을 …… 뜨거우니 : 별명이 나잔(懶殘)인 당(唐)나라 명찬 선사(明瓚禪師)가 쇠똥의 불로 곧잘 토란을 구워 먹었는데, 나중에 재상이 되고 업후(鄴侯)로 봉해진 이필(李泌)에게도 먹다 만 반쪽 토란을 나눠 줬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高僧傳卷19》
[주D-002]관매(觀梅)를 …… 똑같은걸 : 거 울을 보면 항상 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 굳이 점을 쳐서 자신의 운수를 알아볼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관매는 송(宋)나라 소옹(邵雍)이 창안한 점법(占法)으로, 하나의 글자를 택해 그 글자의 획수에서 8의 숫자를 계속 덜어 내어 괘(卦)를 얻고, 또 하나의 글자에서 6의 숫자를 덜어 내어 효(爻)를 얻은 다음에 역리(易理)에 의거해서 길흉을 판단하게 되어 있다.
환암(幻菴)에게 삼가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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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한가하여 지금 배움을 끊었는데 / 師閑方絶學
나는 늙어서야 글자나 뒤쫓고 있소그려 / 我老始尋行
붉게 물든 나무엔 가을 기운이 떠 있고 / 紅樹浮秋氣
푸른 산에는 저녁 햇빛이 비치는 이때 / 靑山照夕陽
시의 정회야 애오라지 혼자 풀 수 있다 해도 / 詩情聊自遣
도의 맛을 누구와 더불어 맛볼 수 있으리까 / 道味與誰嘗
언젠가 함께 돌아가 서로 만나는 그곳에선 / 異日同歸處
구름이 날듯 끝없이 한번 노닐어 보십시다 / 飛雲共渺茫
[주D-001]스님은 …… 끊었는데 : 목 은의 절친한 벗이기도 한 환암(幻菴)이 이른바 ‘절학무위한도인(絶學無爲閑道人)’으로서 불법을 더는 배울 것이 없을 정도로 불교의 최고 경지에 올랐다는 뜻의 찬사이다. 당나라 선승(禪僧) 영가 현각(永嘉玄覺)이 조계산(曹溪山)으로 육조대사(六祖大師) 혜능(慧能)을 찾아가서 하룻밤을 자고 떠났기 때문에 일숙각(一宿覺)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그가 지은 〈증도가(證道歌)〉 첫머리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배움이 끊어져 하릴없이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하지 않나니, 무명의 참성품이 바로 불성이요, 허깨비 같은 빈 몸이 바로 법신이로다.[君不見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無名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나는 …… 있소그려 : 목 은 자신은 불법의 진수를 모른 채, 그저 늘그막에 들어와서야 불경이나 뒤적거리는 초보에 불과하다는 뜻의 겸사이다. 《전등록(傳燈錄)》에 “불법의 원만 구족함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불경 속의 문자에 매달려 헛수고만 하고 있다.[不解佛法圓通徒勞尋行數墨]”는 말이 나온다.
동년(同年)인 판서(判書) 이석지(李釋之)가 용구(龍駒)의 별장으로 돌아갈 즈음에 나를 찾아와 작별을 고하면서 한마디 해 달라고 청하기에 붓을 달려 책임을 메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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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장을 과시하는 우리 남곡 선생 / 南谷先生老益强
흰머리에 붉은 뺨 얼마나 멋있는지 / 白鬚紅頰照人光
춤 자리 어울려 노닐면서 이름 더욱 중하였고 / 爛游舞席名尤重
글 숲에 외로이 서서 흥취가 절로 끝없었네 / 孤立詞林趣自長
당일의 벗의 모습 삼삼히 헬 수 있는데 / 當日友朋森可數
만년엔 자녀들이 어느덧 줄을 지었구려 / 晚年兒女忽成行
평소의 회포를 다 쏟아 낼 길 없겠지만 / 無由倒瀉平生抱
그래도 시골집 술이 이미 익었을 테니까 / 幸是田家酒已香
[주C-001]이석지(李釋之) : 석지는 이무방(李茂芳)의 자(字)로, 목은과 함께 신사년의 진사과(進士科)에 합격하였다. 《목은문고》 제1권 〈남곡기(南谷記)〉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주C-002]용구(龍駒) : 용인(龍仁)의 옛 이름이다.
[주D-001]만년엔 …… 지었구려 :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옛날 헤어질 땐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자녀들이 줄을 짓게 되었구려.[昔別君未婚 兒女忽成行]”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6 贈衛八處士》
감진색(監進色)이 자리에 나오기를 청하기에 나아갔더니, 도당(都堂)에서 또 와서 불러 주기에 가서 수반(水飯)을 먹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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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원로의 뒤를 따라 도당에 갔었는데 / 每隨耆老入都堂
혼자 부름을 받고 보니 진땀이 주룩주룩 / 獨也承招汗逬漿
위엄을 잠깐 굽히고서 깍듯이 예우하고 / 暫屈尊威成禮數
공사도 없는데 특별히 배려해 주었어라 / 亦無公事費商量
하늘 마구간 액수 채운 도장 박힌 명마요 / 名駒烙印補□額
병든 내장을 적셔 주는 잔 가득 술이었네 / 浮蟻盈杯澆病腸
만년에 받은 직함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 自幸餘生蒙齒錄
동네에 돌아오니 갑자기 광채가 발하는 듯 / 歸來里巷頓生光
현 릉(玄陵)의 기신(忌辰)을 맞아 왕륜사(王輪寺)에서 재(齋)를 설행하였다. 곡성(曲城)과 칠원(漆原)과 길창(吉昌)이 영전(影殿)에서 예를 행할 적에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재추소(宰樞所)에서 승방(僧房)으로 불러들여 음식을 대접하였다. 돌아와서 이 일을 기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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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암을 뒤돌아보니 벌써 팔년 전의 일 / 回首光巖已八年
아득해라 용 타고 돌아간 정호의 하늘이여 / 龍歸渺渺鼎湖天
당시에 가슴 아팠던 일 어찌 말로 다할까 / 當時一痛那堪說
요즈음 외로운 목숨 나 자신도 가련할 뿐 / 近日孤生自可憐
깨진 주추 무너진 담장 가을 풀에 덮여 있고 / 破礎頹垣秋草遍
푸른 산 흐르는 물 새벽 구름에 잇닿았네 / 碧山流水曉雲連
영당에서 숙배하고 신선의 술 기울인 다음 / 影堂肅拜傾仙醞
다시 승방에 가서 음식 대접을 받았다오 / 更向僧房荷肆筵
[주D-001]광암(光巖)을 …… 일 : 공민왕이 세상을 떠난 지 어언 8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말이다. 광암사는 공민왕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그 근처에 현릉(玄陵)이 있는데, 목은이 당시에 그 비문을 지었다.
[주D-002]아득해라 …… 하늘이여 : 공 민왕의 죽음을 비유한 말이다. 황제(黃帝)가 수산(首山)의 동(銅)을 캐어 형산(荊山) 아래에서 솥[鼎]을 만들었는데, 그 일이 다 끝나자 용이 내려와서 황제를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그곳을 정호(鼎湖)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史記 卷28 封禪書》
고생(孤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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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가지없는 외로운 목숨 / 孤生何孑孑
게다가 여전히 많은 병치레 / 多病更依依
필묵으로 긴 하루 소일을 하고 / 筆硯消長日
술잔 들고 지는 해 마주한다오 / 壺觴對落暉
가는 곳마다 뒤바뀐 세상인심이요 / 世情隨處變
오늘에 와서 잘못된 우리 도로세 / 吾道至今非
거울을 볼 적이면 혼자 웃곤 하나니 / 對鏡每自笑
흰머리로 어찌하여 돌아가지 않느냐고 / 白頭胡不歸
석방사(石房寺)에서 밤에 물소리를 듣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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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골짝 굽어보는 석방사 절간 / 石寺臨深壑
날리는 샘물이 단애에 휘감겨 있네 / 飛泉繞斷崖
멀리서 이어져 내려오는 죽통의 물 / 連筒來自遠
벽 너머로 들리는 소리 더욱 흥겨워 / 隔壁聽尤佳
이상도 해라 베개에서 청풍이 일어나나 / 頗訝風生枕
의심쩍어라 빗방울이 섬돌에 떨어지나 / 還疑雨滴堦
오장 속이 저절로 맑아 시원해지니 / 自然淸五內
심재를 얻은 것보다 훨씬 낫군그래 / 絶勝得心齋
[주D-001]심재(心齋) : 제 사 지낼 때의 재계(齋戒)가 아니라 마음속의 재계라는 뜻으로, 마음을 텅 비워 모든 잡념을 없애고 순일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오직 도는 텅 빈 곳에 모이나니, 텅 비게 하는 것이 바로 심재이다.[唯道集虛 虛者心齋]”라는 말이 나오고, 또 “저 빈 곳을 바라보아라. 텅 빈 방에서 광채가 뿜어 나오지 않던가. 온갖 길하고 상서로운 것은 조용히 멈추어 있는 곳에 깃드는 법이다.[瞻彼闋者 虛室生白 吉祥止止]”라는 말이 나온다.
우수(迂叟)가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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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골짝에 살고 있던 우리 우수가 / 迂叟居仙洞
배를 타고 섬나라를 돌아 보았나니 / 乘槎海上巡
한 몸으로 세객의 역할 수행하고 돌아오자 / 一身爲說客
여섯 글자 공신의 호를 내려서 표창하였다네 / 六字表功臣
임금의 총애받은 세밀한 전고 실력에다 / 典故牢籠盡
참신하게 단련한 시련 또한 멋지고말고 / 詩聯煅煉新
이따금씩 누추한 내 집 찾아와서는 / 有時過陋巷
한마디씩 내놓는 말 신통도 하네그려 / 發語有精神
[주C-001]우수(迂叟) : 나 흥유(羅興儒)의 호이다. 그가 공민왕에게 고사의 유래를 자세히 설명하고 또 연구(聯句)를 지어 바쳐 3품의 직질(職秩)에 오르자 사대부들이 부러워했다는 것과, 일본(日本)에 자청하여 사신으로 건너가서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고 이색적인 풍물을 시에 담아 왔다는 내용 등이, 《목은문고》 제9권 〈중순당집(中順堂集) 서문〉과 제13권 〈금남 우수(錦南迂叟)의 전기(傳記) 뒤에 쓰다〉에 자세히 나온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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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고 / 海上無纖靄
바람도 거세게 부는 시월 초의 날씨 / 風高十月初
수목에는 누르스름한 빛이 돌아오고 / 微黃歸樹木
교외 들판엔 연녹색이 점차 줄어드네 / 嫩綠減郊墟
추상 같은 의기를 누가 장하게 떨칠거나 / 義氣誰能壯
나는 쇠한 머리칼이 더욱 성글어질 따름 / 衰鬚我更疏
조각배에 몸을 싣고 남쪽으로 떠나 볼까 / 扁舟欲南去
나도 한강 가에 시골집이 있으니까 / 漢水有田廬
홀로 앉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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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에 홀로 조용히 앉아 있으니 / 獨坐虛堂靜
남과 갈등을 빚는 일이 있으리요 / 何曾與物違
숲 사이에 들리나니 참새들의 지저귐이요 / 林間聞雀噪
하늘 밖에 보이나니 소리개 나는 모습이라 / 空外見鳶飛
자득의 경지를 체험하긴 어렵다 해도 / 自得眞難驗
소요유가 못 된다고 말할 수도 없으리라 / 天游未必非
속된 일이 없으니 그래도 얼마나 기쁘오 / 猶欣無俗事
이끼 낀 방에 비치는 풀빛을 한번 보소 / 草色映苔扉
혜민국(惠民局)의 관원들에게 약을 구했으니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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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께서 백성의 병을 염려하시어 / 先王念民病
혜민국 설치하여 환단을 주게 하셨네 / 設局散還丹
병 기운이 얼음 녹듯 사라지게 되었으니 / 邪氣如氷釋
은혜의 물결이 바다처럼 넓다고 하리로다 / 恩波似海寬
긴 수염이 지금 고통을 받고 있다마는 / 長鬚方苦痛
늙은이의 눈도 어렵고 힘들긴 마찬가지 / 老眼亦艱難
서찰을 쓰는 거야 아낄 것이 있으랴만 / 書札無由惜
관원들이 불쌍하게 생각이나 해 줄는지 / 哀矜在衆官
[주D-001]환단(還丹) : 환혼단(還魂丹)의 준말로, 기사 회생시키는 선약(仙藥)을 말하는데, 보통 중병을 치료하는 양약(良藥)의 뜻으로 쓰인다.
[주D-002]긴 수염 : 하인의 별칭이다. 한유(韓愈)가 〈기노동(寄盧仝)〉이라는 시에서 긴 수염의 하인을 등장시켜 여러 번 그 표현을 썼던 데에서 유래한다. 《韓昌黎集 卷5》
일식(日蝕) 현상을 보고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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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깊은 터에 날씨가 워낙 따뜻해서 / 秋之深兮天氣和
흰 눈 같은 배꽃이 뜰의 나무에 다닥다닥 / 梨花如雪粘庭柯
아득한 곳에서 만물을 주관하는 조물께서 / 冥冥眞宰幹洪鈞
장차 어찌하려고 거꾸로 행하고 계시는가 / 倒行逆施將奈何
겨울 우레 여름 서리 역사책에 보인다만 / 冬雷夏霜照方策
재앙이라는 측면에선 조금도 차이가 없도다 / 祅孼之興無少差
좋지 않은 때 태어난 건 감수해야 하겠지만 / 我生不辰當順受
울적한 이 심정은 시로나 괜히 읊을밖에 / 鬱鬱不樂空吟哦
그런데 또 홀연히 청천의 태양이 이지러져 / 白日忽鈌靑天中
쳐다보는 얼굴에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 仰面有淚雙霶
하늘의 재변은 정사 때문에 나타나게 마련이니 / 謫見于天在於政
모르겠다만 어떤 일인가 편파적으로 되었겠지 / 不識何事分偏頗
당연히 그렇게 된 거라면 운수로 돌려야겠지만 / 適然而然委之數
날로 낮아지는 세도는 되돌릴 길이 보이잖네 / 世道日降無回波
마음은 타고 입술은 마르고 발광이라도 할 듯한데 / 心焦吻燥欲發狂
오색 기운 찬란하게 산하를 비칠 땐 언제일까 / 何時五色明山河
못난 선비는 집에 앉아 아직도 국록을 축내면서 / 腐儒家居尙祿食
재변을 만나면 이따금씩 슬픈 노래만 부르누나 / 遇變往往成悲歌
시월 초이튿날에 국화를 노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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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와 이슬이 올해는 서로 재촉하지 않아 / 今年霜露不相催
시월에야 누런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도다 / 十月黃花爛熳開
쇠옹도 이제 적적함을 위로받아야 하련마는 / 應與衰翁慰愁寂
문 앞에 백의의 모습 도시 보이지 않는구먼 / 門前不見白衣來
[주D-001]문 앞에 …… 않는구먼 : 중 양절을 기념하면서 한 잔 하고 싶은데, 술병을 들고 찾아와 주는 사람도 없다는 말이다. 도잠(陶潛)이 중양절을 맞아 술 생각이 간절한데도 집에 마실 술이 없었는데, 그때 마침 자사(刺史) 왕홍(王弘)이 보낸 흰옷 입은 사람[白衣]이 술을 가지고 문에 들어섰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書 卷93 陶潛列傳》
내부(內府)의 제공(諸公)이 방문해 준 것을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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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목의 문장은 한 푼어치도 안 되나니 / 老牧文章不直錢
실록이나 유전에만 의지하고 있음이라 / 唯憑實錄或流傳
제공이 고마워할 이유가 어디 있기에 / 諸公見謝今安有
별미와 술을 이렇게 많이 먹여 주나요 / 異味成堆酒似泉
문장의 가치는 학주전보다 더욱 소중한 법 / 文章價重鶴州錢
불후하게 되는 거야 노소를 어찌 따지리요 / 不朽寧論大小年
노목은 자꾸 손에 피를 묻히니 부끄럽기만 / 老牧只慚頻血指
누가 오염 씻어 내고 약수를 마시게 해 줄거나 / 誰能洗垢挹靈泉
[주D-001]학주전(鶴州錢) : 최 고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말한다. 네 사람이 각자 자기의 소원을 말하는 중에, 한 사람은 양주 자사(楊州刺史)가 되고 싶다고 하고, 한 사람은 많은 재물을 얻기를 원하고, 한 사람은 학을 타고 하늘로 오르고 싶다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한 사람이 “나는 허리에 십만 관(貫)의 돈을 두르고, 학을 타고서 양주로 날아가고 싶다.[腰纏十萬貫 騎鶴上楊州]”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淵鑑類函 卷420 鳥部3 鶴3》
[주D-002]노목(老牧)은 …… 부끄럽기만 : 글 짓는 데에 서투르다는 뜻의 겸사이다. 한유(韓愈)의 〈제유자후문(祭柳子厚文)〉에 “목수가 나무 깎는 일에 서툴러서 손을 다쳐 피를 묻히고 얼굴에 땀만 흠뻑 흘린다.[不善爲斲 血指汗顔]”는 표현이 나온다.
국화를 노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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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밑의 국화꽃 마치 황금을 흩뿌린 듯 / 籬下黃花如散金
노옹이 상대하며 홀로 나직이 읊조리네 / 老翁相對獨微吟
중양엔 몸을 꼭꼭 숨겨 너무 한스럽더니 / 重陽最恨藏身密
시월엔 용의가 주도해서 오히려 놀라워라 / 十月還驚用意深
꽃잎 띄우는 일이야 막걸리인들 마다하랴만 / 泛泛不辭隨白酒
예법만 차리는 사람과는 심심해서 싫으렷다 / 寥寥寧願對靑衿
늙음을 막는 술법이 없지야 않겠지만 / 頹齡可制非無術
아득해라 벽담은 어느 곳으로 찾아갈꼬 / 杳矣碧潭何處尋
[주D-001]늙음을 …… 않겠지만 : 도잠(陶潛)의 시에 “술은 온갖 근심 걱정 물리쳐 주고, 국화는 늙음을 막아 오래 살게 해 준다네.[酒能祛百慮 菊爲制頹齡]”라는 구절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2 九日閒居》
[주D-002]아득해라 …… 찾아갈꼬 : 전 국 시대 초(楚)나라의 충신으로, 모함을 받고 쫓겨난 뒤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은 굴원(屈原)의 충정을 기리며 사모하는 목은의 뜻이 담겨 있다. 벽담(碧潭)은 강담(江潭)과 같은 말로,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굴원이 쫓겨난 뒤에 강담에서 노닐며 택반에서 읊조리고 다녔다.[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는 말이 나오고, 또 그의 〈이소(離騷)〉에 “아침에는 목란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지는 꽃잎을 먹는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는 구절이 나온다.
절구(絶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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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높아라 푸른 물이 엉긴 듯 / 天高凝碧水
국화는 고요해라 황금을 흩뿌린 듯 / 菊靜散黃金
홀로 서 있는 강산의 저녁나절 / 獨立江山晚
유유하도다 가슴속의 이 회포여 / 悠悠方寸間
송산(松山)에 올라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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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가 자욱하여 어두운 새벽하늘 / 雲霧冥冥暗曉天
우구를 손에 들고 산꼭대기 올랐어라 / 携持雨具上山顚
장풍도 내 마음 울적한 걸 아시는 듯 / 長風似識吾心悶
짙은 구름 걷어 내고 일월을 보여 주네 / 吹散濃陰日月懸
일만 가호 큰 도로는 곧기가 화살 같고 / 萬戶大街如矢直
사방의 낮은 산들 병풍처럼 둘렀어라 / 四方低嶂似屛聯
날이 갠 건 우연일 뿐 어찌 기도 덕분일까 / 偶然不是由祈禱
만년에 태평 시대 한번 볼 수 있을지도 / 可見昇平在晚年
[주D-001]일만 …… 같고 : 《시경》 소아(小雅) 대동(大東)에 “주나라 길은 숫돌처럼 평평하고 곧기가 화살 같도다.[周道如砥 其直如矢]”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날이 …… 덕분일까 : 옛 날 한유(韓愈)는 형악(衡嶽)에 올라가 기도를 한 덕분에 운무가 걷혔지만, 지금 목은의 경우는 굳이 기도를 하지 않았는데도 하늘이 알아서 날이 말끔히 개게 해 주었다는 말이다. 한유의 시에 “내가 찾아온 것은 마침 가을비 내리는 계절이라, 음기가 어둑하건마는 씻어 낼 맑은 바람도 없네.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없이 기도를 올리니 뭔가 반응이 있는 듯도, 신명이 어찌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는가. 조금 있자 운무가 개며 드러나는 뭇 봉우리, 쳐다보니 우뚝하게 창공을 버티고 있구나.[我來正逢秋雨節 陰氣晦昧無淸風 潛心默禱若有應 豈非正直能感通 須臾靜掃衆峯出 仰見突兀撑靑空]”라는 구절이 나온다. 《韓昌黎集 卷3 謁衡嶽廟遂宿嶽寺題門樓》
돌아와서 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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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들 굽어보는 팔선의 궁관에서 / 八仙宮觀俯崔嵬
음복을 하고 약간 취해 의기양양 돌아왔네 / 飮福微醺得意回
꼼짝 않던 운무도 홀연히 활짝 개고 / 癡霧頑雲忽開霽
상서로운 바람과 달 함께 배회하였어라 / 祥風瑞月共徘徊
오래 간직한 마음은 표항처럼 되는 것 / 存心久擬希瓢巷
높은 뜻 끝내는 조대를 찾아야 하리로다 / 抗志終當問釣臺
일가의 천지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만 한다면야 / 儻見一家天地位
만세의 태평이 열릴 것을 의심할 게 또 있으랴 / 何疑萬世大平開
[주D-001]팔선(八仙)의 궁관(宮觀) : 김 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개경(開京)의 곡령(鵠嶺) 즉 송악(松嶽)을 가리켜 ‘팔진선이 머물렀던 곳[此八眞仙住處也]’이라고 한 기록으로 볼 때, 아마도 이곳에 팔선을 모신 궁관이 있었던 듯하다. 《高麗史 高麗世系》
[주D-002]표항(瓢巷) : 누 항(陋巷)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즐긴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과 같은 현인을 말한다. 《논어》 옹야(雍也)에 “우리 안회는 어질기도 하다. 일단사(一簞食) 일표음(一瓢飮)으로 누항에 사는 어려운 생활을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데, 우리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참으로 어질도다, 우리 안회여.”라고 칭찬한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주D-003]조대(釣臺) : 엄 광(嚴光)과 같은 은사가 숨어 사는 곳을 말한다. 엄광은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소싯적 학우로, 높은 벼슬을 주려는 광무제의 호의를 거절하고서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숨어 살며 동강(桐江)에서 낚시로 소일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83 嚴光列傳》
[주D-004]일가의 …… 있으랴 : 왕 실이 혼란을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는다면 그 교화가 온 누리에 퍼져서 태평 시대를 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인데, 아마도 이때 팔선궁에서 왕실을 위한 제사를 지낸 듯하다. 《중용장구(中庸章句)》에 “중과 화의 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천지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만물이 제대로 육성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는 말이 나오고, 《대학장구(大學章句)》에 “임금의 집안 하나가 인을 행하면 온 나라가 인한 마음을 일으키게 되고, 임금의 집안 하나가 사양을 하면 온 나라가 사양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는 말이 나온다.
화령 윤(和寧尹) 박 영공(朴令公)이 연어(年魚)를 보내 준 것을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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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외로 위풍이 멀리 나갔으니 / 嶺外威風遠
하늘 끝에서 서신도 어려울 텐데 / 天涯信字稀
목옹의 감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 牧翁多感激
별미 보내 준 재상님께 그저 감사드리오 / 異味謝黃扉
부추(副樞)가 송산(松山)에서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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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산에 올라 팔선을 예배하고 / 夜半登山禮八仙
새벽빛 아직 창연한 때 돌아왔구나 / 歸來曉色尙蒼然
흑발로 추부에 일찍 뛰어오른 덕에 / 黑頭樞府超升早
백발의 훤당이 봉양을 편히 받는도다 / 白髮萱堂奉養平
두 눈이 순일을 만나 다시 밝아졌으니 / 雙眼更明逢舜日
요년을 축원하는 한마음 더욱 절실하리 / 一心尤切祝堯年
고금에 일컬어지는 분양의 일생처럼 / 汾陽終始喧今古
부귀와 공명을 모두 온전히 보전하길 / 富貴功名要兩全
[주C-001]부추(副樞) : 목은의 장남 종덕(種德)을 말한다.
[주D-001]순일(舜日) : 순 임금의 태양이라는 말로, 태평성대를 이룰 성군(聖君)이라는 뜻이다.
[주D-002]요년(堯年) : 요(堯) 임금의 수명이라는 말인데, 옛날 화 봉인(華封人)이 요 임금에게 수(壽)와 부(富)와 다남(多男)을 기원하며 축도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장자》 천지(天地)에 전한다.
[주D-003]분양(汾陽) : 당 숙종(唐肅宗) 때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하고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진 곽자의(郭子儀)를 말하는데, 무려 20년 동안 천하의 안위(安危)를 한 몸에 짊어진 명장이요 명재상으로서, 덕종(德宗)으로부터 상부(尙父)의 칭호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한 시대의 부귀영화를 한껏 누리면서 아무 탈 없이 일생을 마친 보기 드문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의 열전에 “부귀와 장수를 누리는 가운데, 살아서는 존경을 받고 죽어서는 애도를 받았으니, 신하 된 자의 도리에 비춰 볼 때 하나의 흠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富貴壽考 哀榮終始 人臣之道無缺焉]”는 말이 나온다. 《舊唐書 卷120 郭子儀列傳》
대신 승려를 보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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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은 본래 매인 꼭지가 없거니와 / 浮雲本無蔕
흐르는 물 역시 박힌 뿌리가 또 있으랴 / 流水更何根
이별할 때 느끼는 건 사람의 감정일 뿐 / 相別人情耳
유유한 이 심정을 누가 기억이나 할까 / 悠悠誰記存
[주D-001]뜬구름은 …… 있으랴 : 도잠(陶潛)의 시에 “인생이란 꼭지도 없고 뿌리도 없이, 길 위에 먼지처럼 날아다니는 것.[人生無根蔕 飄如陌上塵]”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4 雜詩》
김 오재(金五宰)가 장차 금릉(金陵)으로 떠나게 되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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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의 변화가 사람과 어찌 관계가 있으랴만 / 氣數推移豈繫人
그래도 충의심 발휘하여 신명을 감동시켜야지 / 要將忠義感明神
두견이 낙양에 들어와서 장차 어지러워질 때 / 杜鵑入洛是將亂
걸의 개가 요를 짖은 건 불인해서가 아니었네 / 桀犬吠堯非不仁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은 감수해야 하겠지만 / 當日艱危知自守
근년에 당한 횡액은 도대체 누구 때문인고 / 近年屯厄問誰因
만세토록 부지할 것은 오직 공정한 논의뿐 / 扶持萬世唯公論
귀한 몸 잘 보전하여 황제를 설득하여 주오 / 善保金軀達紫宸
[주D-001]두견이 …… 아니었네 : 원 (元)ㆍ명(明)의 교체기에 국제 정세가 급격하게 변동하면서 극도의 혼란 상태로 돌입하였을 때, 고려가 원나라에 대한 의리를 예전대로 고수하면서 명나라에 저항했던 것은 당시의 사정으로 볼 때 수긍할 점도 없지 않았다는 말이다. 송(宋)나라 소옹(邵雍)이 낙양(洛陽)의 천진교(天津橋) 위에서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두견새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몇 년 안에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다는 ‘천진교상문두견(天津橋上聞杜鵑)’의 고사가 전한다. 《邵氏聞見前錄 卷19》 한(漢)나라 추양(鄒陽)이 참소를 받고 감옥에 갇혀 스스로 변호하면서, 누구든 각자 자기 주인을 위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폭군 걸왕의 개로 하여금 요 임금을 보고 짖게 할 수도 있고, 도척의 식객으로 하여금 허유를 칼로 찌르게 할 수도 있다.[桀之犬可使吠堯 跖之客可使刺由]”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51 鄒陽傳》
기로회(耆老會)에서 강남(江南)으로 떠나는 김 오재를 전별(餞別)해 주자, 오재가 음식을 성대하게 마련하고 풍악을 성대하게 울렸으므로, 한껏 즐기다가 자리를 파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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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백 받들고 황제를 뵐 적임자를 뽑았나니 / 奉幣朝王選得人
평소에 기묘한 계책 귀신처럼 내놓는 분 / 平生妙算動如神
큰일을 당해선 의리를 제대로 고수하면서도 / 能臨大事守以義
본래의 마음은 사랑으로 충만한 줄 알고말고 / 可見本心存得仁
명문으로 일컬어지는 김해 김씨의 후예로서 / 金海起家稱令族
-원문 빠짐- / □□□□□□□
나라의 원로 대접하는 그 뜻을 내가 왜 모를까 / 奉娛國老非無意
황제에게 아뢸 훌륭한 말씀을 듣고자 함이렷다 / 欲乞嘉言奏帝宸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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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도 다 지나고 이제 겨울철 / 歲律今成冬
찬 기운이 높은 하늘 꽉 채웠는데 / 寒氣塞高空
구름 낀 태양빛 엷기만 하고 / 浮雲日色淡
너른 벌 나무 숲은 붉게 물들어 / 平野林彩紅
서리와 이슬에 느껴지는 마음 있어 / 霜露之所感
처창한 심정으로 쇠한 몸 매만지네 / 惻愴撫衰躬
흰 머리칼 갈수록 더 성글어지며 / 白髮漸以短
전원에 돌아갈 뜻 점점 짙어지는 / 田園歸意濃
돌아가지 않으면 세상의 조롱받고 / 不歸取世譏
돌아가도 농사짓기 어려운 내 신세여 / 歸亦難明農
옛사람은 이미 멀어 볼 수 없으니 / 古人旣遠矣
누구와 더불어 나의 마음 함께할까 / 誰與吾心同
[주D-001]서리와 …… 있어 : 돌 아가신 어버이 생각이 불현듯 치밀어 오른다는 뜻으로, 《예기(禮記)》 제의(祭義)의 “서리와 이슬이 내린 때에 군자가 이를 밟다 보면 처창한 마음이 들게 마련인데, 이는 날씨가 싸늘해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霜露旣降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절구(絶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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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짓다 보면 산야의 흥취 뭉클 / 野趣詩中起
술 마신 뒤에는 고향 생각 사무쳐 / 鄕愁酒後生
강과 산은 숨어 살아라 자꾸만 부르는데 / 江山招隱遁
바람 달 읊으면서 승평을 노래만 하다니 / 風月寫昇平
벽암(璧菴)의 시권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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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돌려보내는 것도 유익한 일이 아니요 / 完歸非有益
품고 있다 죄받는 것도 애달프기는 매한가지 / 懷罪亦堪憐
도라는 건 먼지와 티끌 벗어난 것이 아니겠소 / 道者超塵垢
하늘 가득 휘황하게 부유(浮游)하는 저 달처럼 / 光浮月滿天
[주D-001]온전히 …… 매한가지 : 도 (道)는 어느 한 나라의 전유물이나 한 개인의 사유물이 아닌 것으로서, 목은 역시 불교의 최고 경지를 체득했을 수도 있다는 뜻의 강한 자신감의 표명이 아닌가 싶다. 전국 시대 조(趙)나라 인상여(藺相如)가 화씨벽(和氏璧)을 가지고 진(秦)나라에 갔다가, 열다섯 개의 성(城)과 바꾸겠다는 진나라의 약속이 미덥지 못하자, 다시 화씨벽을 온전히 보존해서 조나라로 돌려보냈던 ‘완벽귀조(完璧歸趙)’의 고사가 전한다. 《史記卷81 廉頗藺相如列傳》 또 아무 죄도 없는데 공연히 보옥(寶玉)을 품고 있다가 죄를 받고 만다는 ‘필부무죄 회벽기죄(匹夫無罪 懷璧其罪)’의 고사가 전한다. 《春秋左傳 桓公10年》 승려의 법호가 구슬 벽(璧)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해서 말한 것인데, 결구(結句)에 나오는 달의 비유 역시 벽(璧)이 달의 시어(詩語)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성렴(省斂)의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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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만물을 이루어 주듯 / 天地方成物
군신은 백성을 길러 주는 법 / 君臣在養民
어가가 장차 거둥하려 하자 / 翠華將欲動
쌀알도 벌써 알고 영글었구만 / 玉粒已相因
일천 문 통행을 경계하는 날이요 / 警蹕千門日
일만 호 수확을 하는 봄빛이로다 / 收藏萬戶春
뒷날 아름다운 일을 전할 때에 / 他年傳美事
내가 지은 이 시도 채록되리라 / 雅頌採詞臣
[주C-001]성렴(省斂) : 제왕이 순시하며 추수의 상황을 점검하는 것을 말한다.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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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은 지금 길이 막히고 / 中原今路梗
소식도 절반은 참이 아닌 때 / 消息半非眞
사변이 끊임없이 발생을 하니 / 事變不旋踵
공을 이룬들 몸 보전도 어려워라 / 功成難保身
달 하나 외로이 걸린 요동 들판이요 / 孤懸遼野月
티끌이 어둡게 이는 계주 관문이라 / 暗起薊門塵
하지만 온 누리가 거울처럼 맑아져서 / 海內淸如鏡
태평 시대 구가하는 날도 끝내 오겠지 / 終當樂盛辰
삼가 대가(大駕)가 서쪽 교외에 거둥하는 때를 만났는데도 병 때문에 수행할 수가 없기에 한 수를 지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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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새벽 서쪽 교외 육비가 거둥하면 / 六飛淸曉出城西
일만 기병 벽옥 말발굽 바람을 일으키리 / 萬騎風生碧玉蹄
사냥개는 무리 지어 임금님 깃발 뒤따르고 / 鷹犬成群逐天仗
무사들은 부대 나눠 모래 둑 에워싸리로다 / 熊羆分隊擁沙堤
주서에 있는 대로 힐융에 힘써야 하겠지만 / 詰戎不止周書在
하언을 상고해서 성렴도 돌봐야 하고말고 / 省斂仍將夏諺稽
유감일세 병든 신하 활 잡고 쏘기 어려워서 / 自恨病臣難執射
오경에 꼿꼿이 앉아 새벽닭 우는 소리 듣다니 / 五更危坐聽晨雞
[주D-001]육비(六飛) : 여섯 필의 비마(飛馬)가 모는 임금의 수레를 말한다.
[주D-002]주서(周書)에 …… 하고말고 : 평 상시에 무비(武備)를 닦는 의미에서 사냥을 하는 일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농사일로 대표되는 백성의 고달픈 생활에도 관심을 갖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입정(立政)에 “너의 갑옷과 병기를 사전에 제대로 닦아 두어야 한다.[其克詰爾戎兵]”는 말이 나오고,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봄에는 밭갈이가 잘 되었는지 살펴보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보충해 주고, 가을에는 수확이 잘 되었는지 살펴보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도와준다. 그래서 하나라 속담에도 ‘우리 왕이 나들이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쉬며, 우리 왕이 즐기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도움을 받으리요.’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春省耕而補不足秋省斂而助不給 夏諺曰 吾王不遊 吾何以休 吾王不豫 吾何以助]”라는 말이 나온다.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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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네 예전에 먼 길 오를 때 / 念昔登長道
우연히 만난 사람 옛 벗과 같았는데 / 逢人似舊知
반나절쯤 둘이 함께 길을 가다가 / 相隨行半日
기로에서 각자 다른 길로 헤어졌지 / 又別向他歧
바람결에 나부끼는 버들개지랄까 / 飛絮風中起
물위에 떠다니는 부평초 신세랄까 / 浮萍水上移
남창에 기대어 홀로 앉아 있노라니 / 南牕獨坐處
돌이킬 수 없는 옛 정경 못내 그리워 / 耿耿固難追
사계화(四季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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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꽃들 흔들려 지고 나그네 길게 읊는 때 / 群芳搖落客長吟
몇 점 피처럼 붉은 꽃잎 더욱 진해 보이누나 / 數點猩紅色更深
하지만 진정 고요한 건 울타리 밑의 국화꽃 / 籬下菊花眞靜者
그대를 마주 대해야만 함께 마음을 논하리라 / 最宜相對共論心
[주D-001]뭇 꽃들 …… 때 : 숙 살지기(肅殺之氣)가 휘몰아쳐 초목이 다 지는 가을날에 시인이 느끼는 슬픈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전국 시대 초(楚)나라 시인 송옥(宋玉)의 〈구변(九辯)〉 첫머리에 “슬프다, 가을 기운이여. 쓸쓸하게 초목은 바람에 흔들려 땅에 지고 쇠한 모습으로 바뀌었도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 草木搖落而變衰]”라는 유명한 표현이 나온다.
[주D-002]울타리 밑의 국화꽃 :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음주시(飮酒詩) 오(五)〉에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 꽃잎을 따다가, 유연히 남쪽 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명구가 나온다.
구차하게 얻으려고 해서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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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은 사심을 두지 않았나니 / 古人無私心
그중에도 재물에 가장 분명하였네라 / 臨財最明白
천리마를 받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만 / 不受千里馬
그래도 가릴 줄을 알았다고 할 수 있지 / 僅能知所擇
임금이 마음속에 미련을 둔 탓으로 / 所以留於心
신하들도 때때로 은택을 바라는 법 / 時時望恩澤
극기 공부를 깊이 해야 할 것이니 / 克己有深功
군자는 편안한 집을 구하는 법이니라 / 君子求安宅
자신의 생활 태도가 떳떳하기만 하다면 / 自處苟泰然
안 보이는 곳에서 귀신의 질책이 있겠는가 / 幽冥無鬼責
[주D-001]옛사람은 …… 분명하였네라 :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재물을 보면 구차하게 얻으려 하지 말고, 난리를 당해서는 구차하게 면하려 하지 말라.[臨財毋苟得 臨難毋苟免]”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천리마를 …… 있지 : 한 문제(漢文帝)와 같은 어진 임금이 되어야만 뇌물을 바쳐 아부하려는 신하들의 발길을 끊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 문제에게 어떤 사람이 천리마를 바치자, 조서를 내리기를 “난기(鸞旗)가 앞에서 선도하고 속거(屬車)가 뒤에 따라오면서 날마다 50리밖에는 가지를 못하는데, 내가 천리마를 타고 혼자 어디로 먼저 간단 말이냐.” 하고는, “나는 뇌물을 받지 않을 것이니, 사방에서 와서 바치지 말도록 하라.[朕不受獻也其令四方無來獻]”고 엄명을 내린 고사가 있다. 《漢書 卷64 賈捐之列傳》
[주D-003]극기(克己) …… 법이니라 : 《논 어》 안연(顔淵)에 “자기의 사심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克己復禮爲仁]”라는 말이 나오고,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다.[夫仁人之安宅也]”라는 말과 “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혜롭지 못하게 되고, 그리하여 예와 의가 없어진 결과 다른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게 된다.[不仁不智 無禮無義 人役也]”라는 말이 나온다.
삼가 교외의 행궁(行宮)을 생각하며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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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교외 장막친 행궁에 밤이 이제 새려는 때 / 帳殿西郊夜欲分
늙은 신하 단정히 앉아 우리 임금님 생각하노라 / 老臣端坐想吾君
이슬 내린 일천 숲 위엔 밝은 달이 내걸리고 / 千林露墜懸明月
새벽밥 지은 일만 아궁이 흰 구름을 일으키리 / 萬竈煙收起白雲
외적의 위협이 상존하니 무예를 닦아야 하겠지만 / 外侮尙存須講武
중흥한 지 오래되니 문치를 행해야 하고말고 / 中興已久要修文
한 번 풀고 한 번 당김이 얼마나 아름답나 / 一張一弛斯爲美
큰 공훈 수립한 주공을 본받아야 하련마는 / 當見周公樹大勳
[주D-001]한 번 …… 하련마는 : 《예 기》 잡기 하(雜記下)에 “활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기만 하고 풀어 줄 줄을 모르면, 문왕(文王)이나 무왕(武王)이라도 어떻게 다스릴 수가 없다. 또 풀어 주기만 하고 팽팽하게 당기지 않는 것은 문왕과 무왕이 하지 않는 바이다. 한 번 당겼다가 한 번 풀어 주는 그것이 바로 문왕과 무왕의 도이다.[一張一弛 文武之道也]”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 한 번 풀어 주는 것은 문(文)을 가리키고 한 번 당기는 것은 무(武)를 가리키는데, 주공이 무왕을 도와서 천하를 무력으로 통일하고 문치(文治)로 안정시켰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견흥(遣興)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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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산 붉은 나무 촌사람의 집 / 碧山紅樹野人家
문밖엔 한 가닥 비스듬한 시냇길 / 門外一條溪路斜
눈 안에 선하건만 찾아가 보지 못하다니 / 宛在目中還不見
가련하게 지는 해만 국화꽃을 비춰 주리 / 可憐殘日照黃花
싱거운 음식에 누운 곳 썰렁 흡사 절간인 듯 / 淡飡涼臥似僧家
향 연기 바람에 흔들리며 책상 위로 꼬불꼬불 / 風動香煙几上斜
부끄러워라 아이 종은 고사도 잊었는데 / 愧殺僮奴忘故事
하늘 추운 시월 달에 꽃을 피워 주시다니 / 天寒十月不藏花
풍아에는 어느 분이 작가라고 할 수 있나 / 風雅何人是作家
금낭의 경치를 필봉으로 하나씩 써내는 분 / 錦囊光景筆鋒斜
뜨락 가득 누런 국화 서리 맞고 지거들랑 / 滿庭黃菊霜初落
이번엔 강산의 육출화를 다시 음미해 봐야지 / 更賞江山六出花
[주D-001]부끄러워라 …… 주시다니 : 국 화를 너무도 좋아했던 도잠(陶潛)이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자 “종들이 나와서 기쁘게 맞아 주더라.[僮僕歡迎]”는 고사가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건마는, 목은이 늘상 외출도 하지 않고 썰렁한 자리에 누워 있기만 하니 아이 종이 아예 주인을 맞을 줄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조물은 자기를 위해서 꽃을 감추지 않고 활짝 피워 준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주D-002]풍아(風雅)에는 …… 분 : 마 치 비단 주머니[錦囊] 속에 들어 있는 경치처럼 철마다 바뀌는 풍경을 보면서 무궁무진한 시상(詩想)을 하나씩 꺼내어 써 내려가는 목은 자신이 바로 참다운 시인이 아니겠느냐는 뜻의 해학적이고도 자부심 넘치는 표현이다. 당(唐)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매일 아침 동료들과 함께 나가 노닐 적에 종에게 다 해진 비단 주머니를 등에 메고 따라오게 하면서 시상이 떠오르는 대로 써서 그 주머니 속에 넣었다가 뒤에 다시 꺼내어 시를 완성했다는 이른바 ‘시재금낭(詩裁錦囊)’의 고사가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이하 소전(李賀小傳)》에 나온다.
[주D-003]육출화(六出花) : 눈의 별칭이다. 다른 초목은 대부분 다섯 개의 꽃잎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설화(雪花)만은 육각(六角)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육출공(六出公)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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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때에 남강에서 화렵을 행했는데 / 南江火獵在春分
구름도 얼 듯한 때 금교의 서수로다 / 西狩金郊欲凍雲
쇠퇴함 떨치는 방법으론 물론 좋겠지만 / 振起摧頹眞得術
절도 있게 주선하려면 문을 강구해야지 / 周旋節制在論文
오늘날 화란을 맞게 된 우리 삼한 땅 / 三韓禍亂當今日
성군을 떠받드는 한 시대의 영웅호걸 / 一代雄豪戴聖君
천의를 돌릴 수 있으련만 슬프다 백발이여 / 天意可廻悲白髮
행여 황각을 좇아 화훈을 도울 수 있을는지 / 儻從黃閣贊華勛
[주C-001]□□ : 제목이 누락되었는데, 혹시 유감(有感)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주D-001]춘분(春分) …… 서수(西狩)로다 : 임 금이 사냥을 좋아하는 것을 풍자하는 뜻이 들어 있다. 공자가 《춘추(春秋)》를 집필하다가 노 애공(魯哀公) 14년의 “봄에 서쪽에서 사냥하다가 기린을 잡았다.[春 西狩麒麟]”는 대목에 이르러서 탄식을 하며 절필(絶筆)을 하였는데, 목은이 굳이 ‘서수’라는 표현을 쓴 것이 주목된다. 화렵(火獵)은 어떤 지역에 불을 질러서 짐승이 쫓겨 나오게 한 뒤에 사냥하는 것을 말하고, 금교(金郊)는 오행으로 볼 때 서방이 금(金)에 해당되기 때문에 서쪽 교외의 뜻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주D-002]행여 …… 있을는지 : 목 은 자신이 재상의 지위에 몸을 담고서 요순(堯舜)과 같은 태평 시대를 이루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말이다. 황각(黃閣)은 문을 누렇게 칠한 승상부(丞相府)로 재상을 뜻하고, 화훈(華勛)은 순 임금과 요 임금의 호인 중화(重華)와 방훈(放勳)의 병칭이다.
어제 상의(商議) 이송헌(李松軒)이 화엄경(華嚴經)의 발문(跋文)을 부탁하면서 술자리를 베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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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뒤로 나들이는 지금 이미 드문 일 / 病後出游今已稀
문 앞에 늘어진 푸른 버들 그림자만 간들간들 / 門垂碧柳影依依
퇴근하면 술자리 자주 초대하는 우리 송헌 / 松軒朝退頻招飮
불경을 간행하고 나서 나를 또 불러 주었구만 / 寶典成來更發揮
국화가 보내는 저녁 향기 옥술잔에 배어 들고 / 菊送晚香侵玉斝
비에 몰린 썰렁한 기운 비단 장막에 스미는 때 / 雨催寒氣入羅幃
절로 형체를 잊을 만한 훈훈한 우정 속에 / 熏然自有忘形處
곧장 밤 늦게까지 취한 몸 이끌고 돌아왔네 / 直到夜深扶醉歸
[주D-001]송헌(松軒) : 이성계(李成桂)의 당호(堂號)이다.
만음(漫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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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는 새벽 햇빛 처마에는 참새 소리 / 曉日當牕雀噪簷
성근 수염 배배 꼬며 꼿꼿이 앉은 한 늙은이 / 老翁危坐撚疏髥
절구 한 수 읊고 나니 도리어 맛도 잊어버려 / 吟成句律還忘味
순갱에 소금을 쳐야 함을 비로소 믿겠도다 / 始信蓴羹要下鹽
[주D-001]성근 …… 늙은이 : 목 은이 좋은 시구를 얻기 위해 수염을 꼬면서 고심하고 있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노연양(盧延讓)의 시 〈고음(苦吟)〉에 “한 글자 제대로 읊으려 하다 보니, 배배 꼬인 수염 몇 개 툭 끊어지네.[吟安一箇字 撚斷數莖鬚]”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순갱(蓴羹)에 …… 믿겠도다 : 순 챗국에는 원래 소금이 필요 없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입맛이 없어졌으니까 소금으로 간을 해서 먹어야 제 맛이라는 말이 실감난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진(晉)나라 육기(陸機)가 왕제(王濟)를 찾아갔을 때, 왕제가 양락(羊酪)을 자랑하면서 동오(東吳) 땅에도 이것과 비교할 것이 있느냐고 묻자, “천리의 호수에서 나는 순채로 끓인 국이 있는데, 이 국에는 소금이나 된장을 칠 필요도 없다.[千里蓴羹 未下鹽豉]”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晉書 卷54 陸機列傳》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소식(蘇軾)이 꿀에 담근 여지(荔支)의 맛을 비유하면서 “소금과 된장을 가미한 순챗국을 항상 먹고 싶어 했다.[每憐蓴菜下鹽豉]”고 표현한 시구가 있다. 《蘇東坡詩集 卷37 次韻劉燾撫勾蜜漬荔支》
조부의 묘소에 분황(焚黃)하러 가는 임 밀직(林密直)을 전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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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때 만나 큰 재질을 떨친 형제요 / 昆仲逢辰展大才
태배를 이룬 춘추 구십의 고당이시라 / 高堂九十背成鮐
궁중의 술까지 하사받아 분황하러 가는 길 / 更賚內醞焚黃去
세상에 드문 영광이 묘소를 환히 비추리라 / 不世恩榮照夜臺
우로에 젖은 땅을 보면 마음이 얼마나 섬뜩할까 / 雨露霑濡心怵惕
산은 가지런히 둘러치고 물은 멀리 감돌아 흐르리 / 山川平遠勢縈廻
부디 알지니 적선을 한 고문의 이 경사 역시 / 須知積善高門慶
고조부 증조부 때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 也自高曾發出來
[주C-001]분황(焚黃) : 선조에게 증직(贈職)이 내려졌을 때, 그 교지를 누런 종이에 복사하여 무덤 앞에 가지고 가서 고한 뒤에 불태우는 것을 말한다.
[주D-001]태배(鮐背)를 …… 고당(高堂)이시라 : 어버이도 연세 구십이 되도록 아직 생존해 계시다는 말이다. 고당은 어버이를 뜻하고, 태배는 복어처럼 등에 거뭇거뭇하게 점이 찍혔다는 뜻으로, 나이 많은 노인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주D-002]우로(雨露)에 …… 섬뜩할까 : 축 축히 젖은 묘소를 보면 선조를 뵌 듯한 느낌이 절로 들 것이라는 말이다. 《예기》 제의(祭義)에 “봄에 비와 이슬이 내려 축축하게 젖은 땅을 군자가 밟게 되면 마치 돌아가신 분을 뵙는 것처럼 섬뜩하게 느껴지는 점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春 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부디 …… 것을 : 밀 직으로 현달하게 된 이 경사 역시 선조들이 쌓아 둔 음덕(陰德)에 힘입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漢)나라 우공(于公)이 옥사(獄事)를 공정하게 처리하여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구제하였으므로 사람들에 의해 생사(生祠)가 세워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가 집을 수리하면서, “내가 음덕을 많이 쌓은 만큼 우리 자손 중에 고관이 많이 나올 테니 좁은 문을 개조하여 사마(駟馬)의 수레가 드나들 수 있도록 크게 만들어야 하겠다.”고 하였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그의 아들인 우정국(于定國)이 승상이 된 뒤를 이어 대대로 자손들이 봉후(封侯)되었다는 ‘우공 고문(于公高門)’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71 于定國傳》
조부의 묘소에 분황(焚黃)하러 가는 임 밀직(林密直)을 전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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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때 만나 큰 재질을 떨친 형제요 / 昆仲逢辰展大才
태배를 이룬 춘추 구십의 고당이시라 / 高堂九十背成鮐
궁중의 술까지 하사받아 분황하러 가는 길 / 更賚內醞焚黃去
세상에 드문 영광이 묘소를 환히 비추리라 / 不世恩榮照夜臺
우로에 젖은 땅을 보면 마음이 얼마나 섬뜩할까 / 雨露霑濡心怵惕
산은 가지런히 둘러치고 물은 멀리 감돌아 흐르리 / 山川平遠勢縈廻
부디 알지니 적선을 한 고문의 이 경사 역시 / 須知積善高門慶
고조부 증조부 때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 也自高曾發出來
[주C-001]분황(焚黃) : 선조에게 증직(贈職)이 내려졌을 때, 그 교지를 누런 종이에 복사하여 무덤 앞에 가지고 가서 고한 뒤에 불태우는 것을 말한다.
[주D-001]태배(鮐背)를 …… 고당(高堂)이시라 : 어버이도 연세 구십이 되도록 아직 생존해 계시다는 말이다. 고당은 어버이를 뜻하고, 태배는 복어처럼 등에 거뭇거뭇하게 점이 찍혔다는 뜻으로, 나이 많은 노인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주D-002]우로(雨露)에 …… 섬뜩할까 : 축 축히 젖은 묘소를 보면 선조를 뵌 듯한 느낌이 절로 들 것이라는 말이다. 《예기》 제의(祭義)에 “봄에 비와 이슬이 내려 축축하게 젖은 땅을 군자가 밟게 되면 마치 돌아가신 분을 뵙는 것처럼 섬뜩하게 느껴지는 점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春 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부디 …… 것을 : 밀 직으로 현달하게 된 이 경사 역시 선조들이 쌓아 둔 음덕(陰德)에 힘입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漢)나라 우공(于公)이 옥사(獄事)를 공정하게 처리하여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구제하였으므로 사람들에 의해 생사(生祠)가 세워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가 집을 수리하면서, “내가 음덕을 많이 쌓은 만큼 우리 자손 중에 고관이 많이 나올 테니 좁은 문을 개조하여 사마(駟馬)의 수레가 드나들 수 있도록 크게 만들어야 하겠다.”고 하였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그의 아들인 우정국(于定國)이 승상이 된 뒤를 이어 대대로 자손들이 봉후(封侯)되었다는 ‘우공 고문(于公高門)’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71 于定國傳》
자영(自詠)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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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돌아보면 정녕한 일생이었건만 / 自顧丁寧身世
남들은 속하문장이라 기롱을 하는구나 / 人譏俗下文章
아직도 상유의 저녁 경치가 남았건만 / 尙有桑楡晚景
백발로 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고 / 白頭胡不歸鄕
부원군의 봉읍은 없다고 할지라도 / 封邑雖無府院
성당에선 평장사와 섞여 앉는 몸 / 省堂雜坐平章
스스로 살피건대 장량에겐 충분하니 / 自揣於良足矣
마음 편안한 곳 하필 나의 고향이리 / 安心何必吾鄕
종신토록 붓 놀렸다 말하지 말지어다 / 漫道終身弄筆
개구성장한 적이 언제 있기나 하였던가 / 何曾開口成章
호기는 창려와 흡사한 것이 우습기도 해 / 狂似昌黎可笑
용을 타고 하늘 위 백운향에나 가 볼거나 / 騎龍向白雲鄕
[주D-001]속하문장(俗下文章) : 속 하문자(俗下文字)와 같은 말로, 세상일에 부응하기 위하여 지어낸 평범한 문장이라는 뜻이다. 한유(韓愈)의 〈여풍숙논문서(與馮宿論文書)〉에 “때때로 세상일에 부응하기 위하여 속하문자를 짓곤 하였으므로 붓을 들 때마다 부끄러운 느낌을 지녔으나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 멋있게 되었다고 말하곤 하였다.[時時應事作俗下文字 下筆令人慙 及示人 則人以爲好矣]”는 내용이 나온다.
[주D-002]아직도 …… 남았건만 : 목은에게는 아직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노년의 생애가 남아 있다는 말이다. 해가 질 때에는 그 빛이 뽕나무와 느릅나무[桑楡] 가지 끝에 비친다는 말에서 상유가 노년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주D-003]스스로 …… 충분하니 : 목 은 자신은 국가로부터 이미 충분한 은혜를 받았다는 말이다. 《사기》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의 “지금 세 치의 혀를 가지고 임금의 스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호에 봉해지고 열후의 지위에 올랐으니, 이는 포의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영광으로서 나에게는 이미 충분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제는 인간 세상의 일을 버리고 적송자를 따라 노닐고 싶다.[今以三寸舌 爲帝者師 封萬戶 位列侯 此布衣之極 於良足矣 願棄人間事 欲從赤松子遊耳]”는 장량(張良)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4]개구성장(開口成章) : 출 구성장(出口成章)과 같은 말로, 입만 열면 문장이 이루어지듯 뛰어난 글을 민첩하게 지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백(李白)이 열 살 때에 이미 옛글에 정통하여 출구성장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이 땅에 신선이 내려왔다고 찬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警世通言李謫仙醉草嚇蠻書》
[주D-005]용을 …… 볼거나 :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진 한유(韓愈)가 태어나기 전에 “용을 타고 하늘 위 선경인 백운향에서 노닐었다.[騎龍白雲鄕]”는 이야기가 소식(蘇軾)의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墓碑)〉에 나온다.
송헌(松軒)의 부름에 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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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술자리 초대받고 여생을 위로받는 몸 / 每承招飮慰殘生
마침 나는 할 일도 없이 태평가만 부르니까 / 適我居閑詠大平
미친 것처럼 술 취해도 큰 탈이 있을 리야 / 醉似顚狂無大咎
별의별 이야기들 속에 진심이 또 들었지요 / 語多雜亂說眞情
꽃은 가랑비에 젖어 봄의 온기를 간직하고 / 花滋細雨藏春暖
바람은 뜬구름 쓸어 내어 밝은 달 드러내네 / 風掃浮雲放月明
부귀한 그대나 청고한 나나 술이 싫지 않거니 / 富貴淸高俱不惡
노년에 술로 이름난들 해 될 게 뭐 있으리요 / 老年何害酒爲名
다듬이 소리를 듣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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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추위에 들리는 일만 호의 다듬이 소리 / 萬戶初寒聞擣衣
다시금 아련히 전해 오는 남주의 정취로다 / 南州情興更依依
살 속에 스며 굴러가는 깊은 밤 희뿌연 달빛이요 / 夜深淡月侵肌轉
머리칼 주위에 날리나니 차가운 새벽의 된서리라 / 曉冷嚴霜遶鬢飛
가난한 집에선 겨우 몸 가리려 해진 옷을 꿰매고 / 補弊寒牕才具体
부잣집에선 휘황찬란 눈부신 새 옷을 재단하리 / 裁新華屋爛交輝
변방에 멀리 떠나신 님 얼마나 고생이 많으실까 / 遙怜塞上征夫遠
빨리 돌아오길 바라면서 규중에서 눈물 훔치리라 / 抆淚閨中願早歸
[주D-001]첫추위에 …… 소리 : 이백(李白)의 시에 “장안에 한 조각 달이 밝은데, 일만 호에서 들리나니 다듬이 소리.[長安一片月 萬戶擣衣聲]”라는 구절이 나온다. 《李太白集 卷5 子夜吳歌》
[주D-002]다시금 …… 정취로다 : 두보(杜甫)의 시에 “먹을 것이 없으니 안락한 곳을 물을밖에, 입을 것이 없으니 남쪽 지방이 그리울밖에.[無食問樂土 無衣思南州]”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8 發秦州》
유감(有感)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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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바쁘게 날고 나는 한곳에 죽치고 / 飛雲超忽我淹留
얼굴 쳐들고 이따금씩 참지 못하고 웃노매라 / 仰面時時笑不休
어느 곳 강과 산을 으뜸으로 친다더라 / 何處江山爲第一
듣자니 영남 땅에 장원루가 있다던데 / 嶺南聞有壯元樓
흰머리로 나는 지금 어디 떠나든 머물든 / 白髮吾今任去留
휴휴할 만한 곳이면 그곳이 나의 휴휴처 / 可休休處卽休休
달빛 타고 긴 휘파람 회포를 날릴 때면 / 每乘明月舒長嘯
버들골 동쪽 서쪽 어디나 모두 누각인걸 / 柳巷東西盡是樓
유 땅에 봉해지면 평생의 소원도 족하거니 / 平生志願足封留
죽어서야 그만두는 군웅과 같게 할 수야 / 肯似群雄死後休
다행히 사전도 얻었는데 왜 돌아가지 않노 / 幸得賜田胡不去
황려강 가에 높은 누각도 우뚝 서 있는데 / 黃驪江上有高樓
[주D-001]장원루(壯元樓) : 진주(晉州) 촉석루(矗石樓)의 별칭이다. 이 누각을 처음 지은 사람과 뒤에 복원한 사람 모두가 장원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卷30 晉州牧》
[주D-002]휴휴할 …… 휴휴처 : 편히 쉴 곳만 있다면 그곳이 바로 목은의 안락와(安樂窩)라는 뜻이다.
[주D-003]유(留) 땅에 …… 수야 : 한 고조(漢高祖) 휘하의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더 큰 욕망을 채우려다가 죽음을 당한 것과는 달리, 장량(張良)만은 조그마한 유 땅에 봉해지는 것으로 만족하고 벽곡(辟穀)을 하며 화를 피했던 고사를 인용하면서 목은 자신의 심경을 부친 것이다. 한 고조가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면서 장량에게 3만 호(戶)의 봉지(封地)를 스스로 선택해서 가지라고 하자, 장량이 고조를 처음으로 유 땅에서 만났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신의 소원은 유 땅에 봉해지는 것이니, 삼만 호는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臣願封留足矣 不敢當三萬戶]”라고 말해 유후(留侯)에 봉해진 고사가 있다. 《史記卷55 留侯世家》
이자안(李子安)을 방문하고 밤에 돌아와서 그다음 날 시 세 수를 지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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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 모였다 하면 걸핏하면 떼를 이뤄 / 少年相聚動成群
흥겹게 술을 마셨으니 낮과 밤이나 알았을까 / 酣飮寧將晝夜分
늙어서는 금오가 트집을 잡을까 두려우니 / 老怕金吾相詰責
가련토다 초췌해진 옛날의 장군님이시여 / 可憐憔悴故將軍
용수산 몇 봉우리 다가와 담장 누르고 / 數朶龍巒近壓墻
서리보다 하얀 달빛 뜨락에 가득하였지 / 滿庭明月白於霜
돌아가 국화차를 다시 마셔 보았으면 / 欲歸更啜黃金茗
아침에도 향기가 입 안에 묻어나는걸 / 齒頰朝來尙帶香
문장의 정통을 누가 있어 전할거나 / 文章正印有誰傳
달 서리 바람 꽃 바다 위의 하늘이여 / 月露風花海上天
다행히 날 알아주는 자안이 있으니 / 幸是子安知我者
유하의 뒤를 따라 함께 주선해 볼까 / 且從游夏共周旋
[주D-001]금오(金吾) : 야간 통행금지 등 수도의 치안을 담당했던 관직 이름이다.
[주D-002]가련토다 …… 장군님이시여 : 한 (漢)나라 명장 이광(李廣)이 삭직(削職)을 당하고 나서 야간에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패릉(覇陵)의 현위(縣尉)에게 붙잡혔는데, 따라갔던 사람이 “옛날의 이 장군이시다.[故李將軍]”라고 설명을 하자, 현위가 “현임 장군도 야간 통행을 못하는데, 하물며 옛날 장군이겠는가.[今將軍尙不得夜行 何乃故也]”라고 하면서 패릉정(覇陵亭) 아래에서 묵게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09 李將軍列傳》
[주D-003]유하(游夏) : 공자의 제자인 자유(子游)와 자하(子夏)의 병칭인데, 공자가 “문학에는 자유와 자하가 있었다.[文學 子游子夏]”고 술회한 바 있다. 《論語 先進》
증각사(證覺寺)에서 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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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봉우리 깎은 듯 티끌세상 저 멀리 / 石峯如削出塵寰
떠다니는 구름 내 앉아서 만져 보네 / 坐撫雲煙縹渺間
범패 소리 사그라지고 중은 삼매 속으로 / 梵唄聲殘僧入定
일천 산 비춰 주는 둥글고 밝은 달 하나 / 一輪明月照千山
영복정(迎福亭) 서쪽 봉우리에서 잠깐 쉬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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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날아와 용안을 마주하셨는고 / 何處飛來對聖顔
황금 자라 머리 위의 하나의 신선일세 / 金鼇頭上一神仙
매년 팔관회 때마다 떠밀려 옮겨 다니는 듯 / 八關歲歲如搬運
구정에 비친 그림자 낮밤 사이에 움직이니 / 影動毬庭日月間
답청하며 아이 데리고 술 취해 얼굴 폈었는데 / 踏靑携幼醉開顔
지금은 사방의 산 빛깔이 온통 자줏빛 비췻빛 / 紫翠如今遍四山
군영을 대하고 앉았건만 왜 이리도 적막할까 / 坐對群英還寂寞
그거야 풍류는 단지 술잔 사이에 있으니까 / 風流只在酒尊間
[주D-001]황금 …… 신선일세 : 봉 우리 모양이 삼신산(三神山)에서 날아온 신선처럼 생겼다는 말이다. 동해 바다에 있는 삼신산이 뿌리가 없어서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자 천제(天帝)가 거대한 황금 자라 여섯 마리로 하여금 그 산을 머리로 떠받치게 했다는 신화와, 그 삼신산에 사는 신선들은 하늘로 날아다니며 왕래한다는 전설이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실려 있다.
[주D-002]답청(踏靑)하며 …… 비췻빛 : 삼월 삼짇날 답청놀이 할 때에는 대지에 풀이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어느새 산에 녹음이 우거져서 짙푸르게 되었다는 말이다.
서린(西隣)을 찾아뵈었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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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하게 일어나니 때는 벌써 정오 무렵 / 起晏時將午
서리 내린 머리칼 거울을 보니 성글기만 / 霜毛照鏡稀
서린께서는 녹야로 돌아가 뵙지 못하고 / 西隣回綠野
북리로 발길 돌려 황비를 찾아뵈었다오 / 北里謁黃扉
나는야 게으른 데다 몸에 병까지 지녔는데 / 我懶身仍病
공은 근실도 해라 예법에 어긋남이 없네 / 公勤禮不違
이인이야말로 세상에 가장 행복한 일 / 里仁天下美
게다가 옥윤이 또 빛을 뿌려 주시는걸 / 玉潤更交輝
[주D-001]녹야(綠野) : 서 린(西隣) 즉 길창군(吉昌君)의 별장을 말한다. 당(唐)나라의 재상 배도(裴度)가 은퇴하고 나서 낙양(洛陽) 근교에다 녹야당(綠野堂)이라는 별장을 마련하고는 백거이(白居易)ㆍ유우석(劉禹錫) 등과 함께 시와 술을 즐기면서 만년을 보낸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新唐書 卷173 裴度列傳》
[주D-002]황비(黃扉) : 재상의 지위에 있는 길창군의 사위를 가리킨다. 옛날 재상이 근무하는 관청은 문을 황색으로 칠했다.
[주D-003]이인(里仁)이야말로 …… 주시는걸 : 길 창군과 같은 어진 이와 이웃하며 사는 것만도 크나큰 행운인데, 그의 사위가 또 훌륭하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는 뜻이다. 《논어》 이인(里仁)에 “어진 이와 이웃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일이다.[里仁爲美]”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또 진(晉)나라 위개(衛玠)가 악광(樂廣)의 사위가 되자, 사람들이 “장인은 얼음처럼 맑고, 사위는 옥처럼 윤택이 난다.[婦公氷淸 女婿玉潤]”고 평했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言語》
독좌(獨坐)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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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옹은 바야흐로 홀로 앉아 있는데 / 牧翁方獨坐
세월은 왜 이다지 재촉을 하시는지 / 歲月苦相催
해 그림자는 꽃 사이에 굴러다니고 / 日影花間轉
바람 소리는 나무 위에 들려오도다 / 風聲樹上來
도의 맛은 애오라지 자득도 한다마는 / 道情聊自驗
세상의 변화는 끝내 만회하기 어려워 / 世變竟難廻
어디에다 이 몸을 의탁할 수 있을꼬 / 何處堪棲托
천지 사이 하나의 조그마한 낚시터 / 乾坤一釣臺
또다시 일어나는 강남의 흥취 / 又起江南興
귤 숲도 누르스름 빛을 띠었겠지 / 新黃著橘林
조각배 사서 언제나 떠나가 볼꼬 / 買舟何日去
시 읊으며 십년 세월 허비만 했네 / 費我十年吟
돌아가고 싶어라 흘러가는 물을 보니 / 流水隨歸意
호기가 일어나네 저 멀리서 바람 부니 / 長風激壯心
하지만 행장을 내 어떻게 결단할까 / 行藏難自斷
천지와 같은 임금 은혜 깊기만 하니 / 天地聖恩深
[주D-001]돌아가고 …… 보니 : 바다로 돌아가는 강물처럼 목은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면수(沔水)에 “넘실넘실 흘러가는 저 강물이여, 바다에 인사드리러 떠나는구나.[沔彼流水 朝宗于海]”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호기가 …… 부니 : 끝 없이 부는 바람결을 접하고 보니 지금이라도 소년처럼 당장 일어나서 결행하고 싶다는 말이다. 남조(南朝) 시대 송(宋)나라의 종각(宗慤)이 소년 시절에 자신의 소원을 말하면서 “끝없이 부는 바람을 타고 만리의 파도를 헤쳐 가고 싶다.[願乘長風破萬里浪]”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宋書 卷76 宗慤列傳》
[주D-003]행장(行藏) : 용행사장(用行舍藏)의 준말로, 《논어》 술이(述而)의 “나를 써 주면 나아가서 도를 행하고, 나를 버리면 물러나 숨는다.[用之則行 舍之則藏]”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도 영공(都令公)을 위해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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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는 지금 마침 쓰일 곳이 없는 데다 / 老儒無適用
병이 많아 다행히 한가롭게 지내는 터 / 多病幸投閑
매번 글을 지어내라 급히 닥달하시는데 / 每被徵文急
대구가 또 어려우니 더욱 놀랄 수밖에요 / 尤驚對句難
공은 가슴속에서 정성을 드러내어 / 精誠發腸內
두 눈썹 사이에 광채가 어리신 분 / 光彩應眉間
감히 바라건대 밝은 임금 붙드시어 / 敢願扶明主
어진 바람을 구한에 퍼뜨려 주시기를 / 仁風播九韓
[주D-001]구한(九韓) : 신 라(新羅)와 인접했던 아홉 나라를 지칭하는 말로, 온 누리를 뜻한다. 안홍(安弘)이 지은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에 구한을 열거하여, 일본(日本)ㆍ중화(中華)ㆍ오월(吳越)ㆍ탁라(乇羅)ㆍ응유(鷹遊)ㆍ말갈(靺鞨)ㆍ단국(丹國)ㆍ여진(女眞)ㆍ예맥(穢貊)이라고 하였다. 《三國遺事 卷1 紀異 馬韓, 卷3 塔像 皇龍寺九層塔
시집가는 박씨의 딸을 보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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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는 지금 늙고 쇠했다만 / 外氏今衰老
커서 시집가는 모습이 어여뻐 / 憐渠壯有行
바다로 돌아가는 한강 물이요 / 漢江□□海
활짝 맑게 갠 만리 하늘이라 / 萬里放新晴
예전에 집안의 화를 당하였다만 / 往日遭家禍
뒷날엔 세상의 영화를 누리겠지 / 他年享世榮
병중이라 너를 전송하기 어려워서 / 病中難送汝
말없이 홀로 정을 머금고 있노라 / 默默獨含情
조비(祖妣)의 기일에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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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께서 그 당시 자친을 천도하실 적에 / 先人當日薦慈靈
-원문 빠짐- 장차 -원문 빠짐- 이루려고 하셨지 / □□將成□□□
삼십이 년 세월이 전광석화 같은데 / 三十二年如石火
-원문 빠짐- 연무 낀 바다는 끝없이 아득해라 / □□煙海浩冥冥
불초 소자는 줄곧 문원에서만 놀았건만 / 愚兒一向游文苑
옛 승려가 다시 와서 법회를 열었다오 / 古佛重來敞祖庭
앉아서 탄식하노라 우연치 않은 이 인연을 / 坐嘆因緣非偶耳
바람 부는 창가에 박산의 향연이 퍼졌으니 / 博山香燧散風欞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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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에는 어느새 소설의 절기 / 小雪明黃曆
쇠한 나이 백발이 새삼 느껴져 / 衰年感白頭
부슬부슬 가랑비 뜨락에 가득 / 滿庭來細雨
경치는 마치도 깊은 가을일세 / 玩物似深秋
갈수록 맑아지는 시인의 안목이요 / 詩眼彌淸切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의 마음이라 / 天心儘謬悠
마침 태평성대를 당하게 되었으니 / 會當調玉燭
아송으로 중국을 이어야 하고말고 / 雅頌繼中州
청좌(淸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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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앉아 있노라니 마음이 마치 태허 / 淸坐一心如大虛
남거나 모자람이 마음에 언제 있었으리 / 何曾欠少更嬴餘
잡아 둠만 좋아하고 풀어 줌은 모른다면 / 只憐把定無□□
음양의 변화 도리를 투득(透得)하지 못하리라 / 未透陰陽變化初
꿰맨 이불을 보고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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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의 바탕 현란해라 황금실로 박은 이불 / 巧織金絲絢紫霞
구름 위에 용 뛰놀고 찬란히 꽃도 피었도다 / 龍騰雲彩爛開花
내부에 수장했다가 중곤에게 내주신 물건 / 收藏內府供中壼
외가를 총애해서 남촌에게 하사해 주셨도다 / 賜與南村寵外家
내가 봐도 부끄러워 참으로 속하문장인데 / 自愧文章眞俗下
밥 먹고 잠자는 것이 생애인 줄 누가 알까 / 誰知眠食是生涯
발길질로 찢은 손자들 꾸짖어 주고도 싶다마는 / 深嗔踏裂多孫子
밤에 덮고 앉았으니 기운이 저절로 화사해지네 / 擁坐淸宵氣自華
[주D-001]내부(內府)에 …… 주셨도다 : 기 황후(奇皇后)가 남촌 이공수(李公遂)에게 선물로 준 이불이라는 말이다. 내부는 중국의 황실 창고를 가리키고, 중곤(中壼)은 중궁(中宮)으로 기 황후를 가리킨다. 기 황후는 기철(奇轍)의 누이동생으로 원 순제(元順帝)의 두 번째 황후가 되어 황태자 애유식리달랍(愛猶識理達臘)을 낳았는데, 기 황후의 모친 이씨(李氏)는 이공수의 조부인 이행검(李行儉)의 딸로서, 이공수에게는 고모가 된다. 이공수와 목은의 관계도 각별한 점이 있는데, 《목은문고》 제18권 〈이공수 묘지명〉을 보면 “공이 성절(聖節)을 축하하러 중국에 갈 적에 내가 실로 공을 수행했던 인연이 있다. 그리고 성균관(成均館)에서 수업을 받고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이르게 되었으니, 오늘날의 내가 있게 된 것은 모두가 공이 베풀어 준 은혜 덕분이라고 하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주D-002]속하문장(俗下文章) : 속 하문자(俗下文字)와 같은 말로, 세상일에 부응하기 위하여 지어낸 평범한 문장이라는 뜻이다. 한유(韓愈)의 〈여풍숙논문서(與馮宿論文書)〉에 “때때로 세상일에 부응하기 위하여 속하문자를 짓곤 하였으므로 붓을 들 때마다 부끄러운 느낌을 지녔으나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 멋있게 되었다고 말하곤 하였다.[時時應事作俗下文字下筆令人慙 及示人 則人以爲好矣]”는 내용이 나온다.
[주D-003]발길질로 …… 싶다마는 : 잠 버릇이 고약해서 이 귀중한 이불을 찢어 놓은 이공수의 손자들을 생각하면 꾸짖어 주고도 싶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솜이불 여러 해 되어 차갑기 쇠와 같은데, 잠버릇 고약한 아이들 발길질에 찢겨 있네.[布衾多年冷似鐵 嬌兒惡臥踏裏裂]”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0 茅屋爲秋風所破歌》
천청(天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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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에 추운 기운 한결 더한지라 / 小雨增寒氣
아침에 일어날 적에도 늑장 부리고파 / 朝來欲起遲
이불을 뒤집어쓰니 더욱 맛이 있어 / 擁衾尤有味
붓을 끌어당겨 시 한 수 또 짓노매라 / 援筆又題詩
경물은 슬프면서도 청랑하게 다가오고 / 雲物悽淸際
산천은 조촐하면서도 곱게 보이는 때 / 川原淨麗時
몸과 마음도 튼튼하고 건전해지는 속에 / 神形亦强健
우연히 얻은 것이 정밀한 사색보다 낫네 / 偶得勝精思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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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도 요즈음엔 드물기만 하니 / 朋友近來稀
나의 도가 잘못된 걸 점차 알겠도다 / 漸知吾道非
오늘도 하릴없이 쇠 벼루나 갈아댈 뿐 / 悠悠磨鐵硯
이끼 낀 사립문은 적적하게 닫혀 있네 / 寂寂掩苔扉
가랑비 내리는 산은 더욱 추워지고 / 細雨山寒重
긴 숲 들판에는 새벽빛이 희미해라 / 長林野曙微
외로운 나의 삶 그윽한 맛이면 그저 그만 / 孤生足幽味
남쪽 하늘 바라보니 횡으로 나는 기러기 떼 / 南望雁橫飛
쌀 찧는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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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은 노적이 마치도 높은 언덕 / 富家積如京
야외에서 뜨락 안까지 이어지는데 / 野外連園中
가난한 집은 등에 짊어지고 와서는 / 貧家負以來
손으로 절구질하느라고 땀이 뒤범벅 / 手舂汗交融
아침밥은 먹어도 저녁을 기약 못하니 / 救朝不謀夕
붉게 썩어 가는 쌀을 알기나 하겠는가 / 那知相因紅
부잣집이야 비옥한 땅을 차지하고서 / 富家得上田
하인들도 많아 노동력도 풍부하니 / 力作多僕僮
찧고 까부는 건 쉽고도 또 쉬운 일 / 舂簸易又易
쭉정이와 겨들이 바람 따라 흩날리네 / 粃糠散以風
서쪽 방아는 서쪽에서 쿵더쿵 / 西碓鳴于西
동쪽 방아는 동쪽에서 쿵더쿵 / 東碓鳴于東
알알이 모두가 백옥처럼 깨끗해서 / 粒粒皆玉潔
맑은 하늘에 광채가 환히 비치누나 / 光華燭晴空
위로는 나랏님께 상납을 하고 / 上以供官家
가운데로는 신하들을 기르게 하고 / 中以養臣工
아래로는 묵은 쌀들을 가져다가 / 下以取其陳
해마다 우리 농민을 먹여 살린다오 / 歲歲食吾農
썩은 선비 나도 입에 풀칠하면서 / 腐儒亦糊口
그동안 아무 공도 세우지 못했는데 / 而無尺寸功
이제는 너무나도 늙고 말았으니 / 甚矣今老矣
국록만 축내는 것이 제공에 부끄러워 / 素飡愧諸公
제공은 따뜻함과 배부름을 함께하며 / 諸公共溫飽
바야흐로 건건 비궁 행하고들 있잖은가 / 蹇蹇方匪躬
[주D-001]부잣집은 …… 언덕 : 《시경》 소아(小雅) 보전(甫田)에 “증손이 쌓아 둔 노적가리는, 구릉 같기도 하고 높은 언덕 같기도.[曾孫之庾如坻如京]”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D-002]건건 비궁(蹇蹇匪躬) :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직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건괘(蹇卦) 육이(六二)에 “왕의 신하가 충성을 다 바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위해서가 아니다.[王臣蹇蹇匪躬之故]”라는 말이 나온다.
안 대부(安大夫)와 이 개성(李開城)과 이 계림(李雞林)을 차례로 방문하였는데, 모두 술자리를 베풀어 주기에 취해서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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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옹은 몸과 세상 양쪽 다 한가한지라 / 病翁身世兩悠悠
성남으로 벗을 찾아 멋진 유람 즐겼다오 / 訪友城南得勝遊
울타리 가득 국화꽃은 한창 흐드러지고 / 黃菊滿籬方爛熳
난간 앞의 푸른 솔은 다시 비바람 소리 / 碧松當檻更颼飀
차 끓이고 정좌하니 떠오르는 삼성이요 / 烹茶靜坐追三省
술 대하고 담소하니 흩어지는 걱정이라 / 對酒高談散百憂
돌아오는 저녁 풍경 진정 그림 같았나니 / 薄晚歸來眞似畫
피곤한 동복 지친 말에 눈 내린 백발노인 / 倦僮疲馬雪渾頭
[주D-001]삼성(三省) : 자 기 반성과 수양을 뜻하는 말로, 증자(曾子)의 “나는 하루에 세 가지 일로 자신을 반성한다. 그것은 즉 남을 위해 꾀해 줄 때 불충하지는 않았는가, 벗과 사귈 때 신의를 잃지는 않았는가,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은 것은 없는가이다.[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論語 學而》
자탄(自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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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넓은 천지 속에 경미한 나의 이 몸 / 乾坤蕩蕩我身輕
젊어선 광기 부리더니 점점 점잔을 빼는구만 / 少也顚狂漸老成
오탁악세를 언제 슬퍼한 적이나 있으리요 / 惡世何曾悲五濁
삼청의 장생 따윈 부러워하지도 않았수다 / 長生寧復慕三淸
문장은 전아해도 교묘한 기술은 부족하고 / 文章典雅傷於巧
권도는 분명해도 쓰는 게 정밀하지 못해 / 權度分明用不精
하지만 기쁜 것은 번화한 것이 소진된 것 / 只喜繁華已消盡
맑은 창공에 뜬구름과 버들개지만 날릴 뿐 / 浮雲飛絮碧空晴
[주D-001]오탁악세(五濁惡世) : 말 세를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인류의 수명이 8만 세에서 점차 감소하여 백 세도 못 되는 때에 이르게 되면, 겁탁(劫濁)ㆍ견탁(見濁)ㆍ번뇌탁(煩惱濁)ㆍ중생탁(衆生濁)ㆍ명탁(命濁) 등 다섯 가지의 고통과 죄악이 이 세상에 가득 차게 된다고 한다.
[주D-002]삼청(三淸)의 장생 :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도교(道敎)의 신선술을 가리킨다. 삼청은 도교 용어로, 옥청(玉淸)ㆍ상청(上淸)ㆍ태청(太淸)을 말하는데, 신선을 삼청객(三淸客)이라 하고 도관(道觀)을 삼청전(三淸殿)이라고도 한다.
전답의 소출이 너무 적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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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밭 빌려 씨 뿌려서 해마다 벼를 거두는데 / 借種官田歲取禾
소출이 늘지는 않고 줄어만 든다고 말을 하네 / 來言減少不增多
마음만 풍족하다면야 여유가 있는 법이거니 / 心如足矣有餘裕
운명으로 알고 따라야지 이를 또 어떡하누 / 命也安之將奈何
자기가 원한다고 배불리 먹을 수 있으리요 / 求飽豈能從所欲
맹세코 딴마음 없이 배고픔 참고 견디리라 / 忍飢聊復矢無他
세금 거두는 관원들이야 이런 사정 어찌 알까 / 收司君子寧知此
강가에 노적가리 거꾸로 그림자 섰을 테니 / 露積江頭影倒波
하처(何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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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라 할까 나 돌아갈 전원이 / 何處可歸田
유유하지 않은가 내 머리 위의 하늘 / 悠悠頭上天
강산은 어디든 주인을 기다리겠지만 / 江山皆有主
행지야 어찌 감히 현인을 바라겠나 / 行止敢希賢
바람 티끌 소매 속에 육신을 끌고 다니면서 / 形影風塵袖
달과 이슬 시나 지으며 정신을 담아 볼 뿐 / 精神月露篇
서로 알아주는 이는 예로부터 적은 법 / 相知古來少
이름만 괜히 사람 입에 오르내릴 따름 / 名字謾流傳
[주D-001]어디라 …… 바라겠나 : 돌 아갈 전원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고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고향이 아닌 어디를 가더라도 한가롭게 지낼 수는 있겠지만, 안회(顔回)처럼 어질게 되는 일은 감히 바랄 수 없으리라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글에 “임고정 아래로 십여 보도 되지 않는 거리에 큰 강물이 흐른다. 그 강물의 반절 정도는 아미산에서 눈이 녹은 물인데, 내가 마시고 먹고 목욕하는 것을 모두 이 물에서 취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어찌 꼭 고향에 돌아가야만 하겠는가. 강산과 풍월은 본래 일정한 주인이 없나니, 한가로이 즐길 수 있는 그 사람이 바로 주인이라 할 것이다.[臨皐亭下不十數步便是大江 其半是峨嵋雪水 吾飮食沐浴皆取焉 何必歸鄕哉 江山風月本無常主 閑者便是主人]”라는 말이 나온다. 또 《논어》 옹야(雍也)에 “어질다, 안회여.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을 마시며 누항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근심하며 견뎌 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낙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라고 한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백운(白雲)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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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도 사람처럼 마음을 가졌나 봐 / 白雲還是有心哉
청창에 날 비추러 낮은 곳으로 돌아오니 / 映我晴牕底處廻
이미 홍진과는 서로 떨어져 있건마는 / 已與紅塵相隔絶
매번 푸른 산 따라 부러 배회하는구만 / 每從靑嶂故徘徊
비 끝에 해 가까이 떨어졌다 또 만나고 / 雨餘傍日□□合
하늘 밖에 바람 따라 떠났다가 돌아오네 / 天外隨風去又來
목옹이 괜히 애달프게 바라본다 뉘 말하노 / 誰道牧翁空悵望
아침 내내 단정히 앉아 병든 몸 탄식하는 것을 / 終朝危坐嘆摧頹
[주D-001]목옹이 …… 것을 : 구름을 보며 이유 없이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구름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자기의 병든 몸을 생각하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는 말이다.
어제 유 밀직(柳密直)을 방문했다가 취해서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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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동쪽 비탈에 서니 뭇 산이 저 아래에 / 梨峴東崖俯衆山
정원 가득 꽃나무들 구름 뚫고 서 있어라 / 滿園花木拂雲端
삼한의 수재라고 누구나 말하는 우리 주인 / 主人共道三韓秀
이 늙은이 자주 들러 반날을 한가이 보낸다오 / 老者頻投半日閑
푸른 장막에 스며드는 차가운 국화 향기요 / 菊以寒香侵翠幙
금쟁반에 뚝뚝 듣는 이슬 같은 술이었네 / 酒如秋露滴金盤
거나한 술에 차까지 마신 맑은 이 회포여 / 半酣啜茗淸懷抱
한 마리 새 하늘 높이 아스라이 떠가도다 / 一鳥高飛縹渺間
어제 신평군(新平君)을 방문하고 정 월성(鄭月城)을 찾아뵈었는데, 모두 술자리를 베풀어 주었으므로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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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은 동갑 가운데 가장 친하게 지내고 / 親交同甲最
월성은 선인의 벗으로 연세가 칠순 남짓 / 父執七旬餘
병문안이 늦었노라고 사과 말씀 올렸고 / 問疾謝遲慢
초기의 정치 알아보며 회포를 논했다오 / 論懷探治初
좋은 안주는 봉황을 구워 놓은 듯하고 / 嘉肴似炰鳳
아름다운 술은 또 흰개미가 둥둥 떴네 / 美酒更浮蛆
반쯤 취해 발동하는 드높은 이 흥치여 / 半醉發高興
흰 구름 하나 푸른 허공에 떠가는도다 / 白雲行碧虛
[주D-001]좋은 …… 듯하고 : 대 궐에서 성대한 전례(典禮)를 행할 때에나 맛볼 수 있는 진기한 안주가 차려져 있었다는 말이다. 《작중지(酌中志)》에 “성대한 전례를 행할 적에 이른바 봉황을 굽고 용을 삶는[炮鳳烹龍] 음식이 있는데, 봉황은 바로 수꿩을 가리키고 용은 백마(白馬)를 잡아서 대신한다.”는 말이 나온다.
[주D-002]아름다운 …… 떴네 : 술이 막 익어서 금방 걸러냈을 때 술의 표면에 흰개미[蟻]나 구더기[蛆]같은 거품이 떠 있는 것을 말한다.
어제 판삼사사(判三司事) 홍공(洪公)의 집에 갔더니 척산군(陟山君) 박공(朴公)이 먼저 와서 자리에 있기에 함께 술을 마셨다. 그 집에서 나온 뒤에 밀양군(密陽君) 박공의 집에 들러서 그림을 구경하고는 차를 마시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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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의 하늘은 먼데 저녁 햇빛은 나직 / 鼎湖天遠夕陽低
광암을 찾고도 싶으나 길이 벌써 흐릿 / 欲訪光巖路已迷
잠깐 당성을 찾아 술잔을 주고받았나니 / 且向唐城對尊酒
순일을 붙들어 하늘 거리 비추는 분이시라 / 方扶舜日照天衢
차를 마시니 속진이 말끔해지는 걸 느끼겠고 / 啜茶頓覺塵緣淨
그림을 보니 필법이 유다른 것을 알겠도다 / 看畫仍知筆法殊
백발 서생은 아직도 세상을 전혀 모르나 봐 / 白髮書生尙狂甚
노래 부를 자리에서 늘상 시만 읊다니 원 / 每將吟咏當歌呼
[주D-001]정호(鼎湖)의 …… 나직 : 목 은이 기울어지는 저녁 햇빛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된 공민왕을 생각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상고 시대 황제(黃帝)가 정호에서 솥을 만들어 연단(鍊丹)을 하고는, 그 일이 끝나자 신하들과 함께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정호가 임금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史記 卷28 封禪書》
[주D-002]광암(光巖) : 공민왕의 재궁(齋宮)이 있는 광암사(光巖寺)를 가리킨다.
[주D-003]당성(唐城) : 남양(南陽)의 옛 이름으로, 남양이 본관인 홍공(洪公)을 가리킨다.
[주D-004]순일(舜日)을 …… 분이시라 : 현재 임금을 도와 온 누리에 태평성대를 이루려고 힘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임금의 성덕(盛德)이나 태평 시대를 비유할 때 요 임금의 하늘[堯天]이라든가 순 임금의 해[舜日]라는 표현을 곧잘 쓴다.
외형(外兄) 김 좌윤(金左尹)이 영해(寧海)에서 왔기에 서로 만나게 된 것이 기뻐서 짧은 시를 읊조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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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때부터 자유롭게 뛰놀던 시골 마을 / 鄕里優游自少年
백발의 몸 지금은 병란을 당해 떠도누나 / 干戈飄泊在華顚
천금이 모두 없어진들 무슨 해가 되리이까 / 千金散盡庸何害
만나서 한번 웃는 것도 우연이 아닌걸요 / 一笑相逢豈隅然
아침 해 창에 비치니 되살아나는 술기운이요 / 朝日照牕扶酒力
찬 바람이 자리에 드니 솟구치는 시 어깨라 / 寒風入座聳詩肩
인생의 모이고 헤어짐을 주관하는 이 누구더뇨 / 人生取散知誰管
그거야 우리 머리 위의 아득한 저 하늘 아니던가 / 頭上冥冥有老天
[주D-001]천금이 …… 되리이까 : 많던 재산이 흩어졌어도 다시 돌아올 기회가 있을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백(李白)의 시에 “많은 돈이 다 흩어져도 또다시 돌아오는 법.[千金散盡還復來]”이라는 구절이 있다. 《李太白集 卷3 將進酒》
[주D-002]만나서 …… 아닌걸요 : 우 환으로 가득 찬 이 세상 속에서 입을 열고 웃을 수 있는 기회는 지극히 드물다는 말이 《장자》 도척(盜跖)에 나오는데, 소식(蘇軾)이 이를 인용하여 “만나서 한 번 웃는 것을 어찌 쉽게 얻으리요.[一笑相逢那易得]”라고 표현한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12 與毛令方尉遊西菩提寺》
[주D-003]찬 바람이 …… 어깨라 : 시 상(詩想)에 몰두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성당(盛唐)의 시인 맹호연은 눈발이 휘날리는 패교(覇橋) 위를 나귀 타고 지나갈 때 가장 멋진 시상이 떠올랐다고 하는데, 소식의 시에 “그대는 또 보지 못했는가, 눈발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이 눈썹 찌푸린 채 시 읊느라 산처럼 어깨가 솟구친 것을.[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蘇東坡詩集 卷12 贈寫眞何充秀才》
삼가 교외의 행궁(行宮)을 상상하며 한 수를 지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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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한기에 사냥으로 무예를 닦게 함은 / 講武當農隙
성상의 마음에 사위를 두고 계심이니 / 思危在聖心
지금은 또 혜성이 나와 땅을 환히 비춤에 / 長星明照地
멧돼지도 살던 숲을 멀리 떠나는 때임에랴 / 剛鬣遠辭林
하지만 뭇사람은 삼구의 법도를 기뻐해도 / 衆悅三驅法
이 신하는 오언시를 지어서 바쳐 올리나니 / 臣將五字吟
바라건대 풀고 당김을 모쪼록 병용하시어 / 弛張須竝用
지금 다시 빛나는 공업을 우뚝 세우시기를 / 樹立更光今
[주D-001]사위(思危) : 거 안사위(居安思危)의 준말로, 편안히 거처할 때 위태한 상황을 미리 예측한다는 말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11년 조(條)에 “거안사위라는 말이 있는데, 미리 생각하면 대비가 있게 되고, 대비가 있으면 환란을 당하지 않게 된다.[書曰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는 말이 나온다.
[주D-002]지금은 …… 때임에랴 : 지금 전란을 상징하는 혜성(彗星)이 출현하자 멧돼지들도 미리 알고서 숲을 떠나는 때이니, 군대를 풀어 수렵을 행하는 임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주D-003]삼구(三驅)의 법도 : 한쪽 면은 열어 두고 삼면으로만 사냥감을 쫓아서 잡는다는 말로, 임금의 사냥을 가리킨다. 《주역》 비괘(比卦) 구오(九五)에 “임금이 삼면으로만 몰아가자, 앞으로 날아가는 새를 다 잃어버린다.[王用三驅 失前禽]”는 말이 나온다.
[주D-004]바라건대 …… 병용하시어 : 임 금이 사냥만 좋아하지 말고, 문(文)과 무(武)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면 좋겠다는 말이다. 《예기》 잡기 하(雜記下)에 “활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기만 하고 풀어 줄 줄을 모르면, 문왕(文王)이나 무왕(武王)이라도 어떻게 다스릴 수가 없다. 또 풀어 주기만 하고 팽팽하게 당기지 않는 것은 문왕과 무왕이 하지 않는 바이다. 한 번 당겼다가 한 번 풀어 주는 그것이 바로 문왕과 무왕의 도이다.[一張一弛文武之道也]”라는 말이 나온다.
사전(賜田)에 세금을 거두는 사람이 다녀간 뒤에 느낌이 있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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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의 은혜가 이 얼마나 중한고 / 聖代恩何重
쇠한 나이에 더욱 깊이 감격하도다 / 衰年感更深
먹을 것만 챙긴다고 사람들이 흉보는데 / 人譏謀口腹
몸과 마음 따로 놀아 나 역시 부끄럽소 / 自愧判身心
모래섬에 울리나니 노 젓는 소리 / 短棹鳴沙浦
대숲 그림자 비치는 성긴 울타리 / 疏籬映竹林
돌아가려 할진댄 누가 나를 말리리요 / 欲歸誰我止
가지고 있는 건 단지 거문고 하나인걸 / 只有一張琴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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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장성에게 술 한 잔 권했다던데 / 曾向長星勸一杯
그 사람도 해골이 이미 진토가 되었으리 / 故人骸骨已塵埃
당시의 술안주 무엇이었을지 알고말고 / 當時佐酒知何物
오늘도 사냥한 고기 산처럼 쌓여 있을걸 / 獵較今朝肉似堆
[주D-001]옛날에 …… 권했다던데 : 동 진(東晉) 태원(太元) 말년에 장성(長星) 즉 혜성이 나타나자 점을 쳐 보니 임금이 곧 세상을 떠날 징조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는 효무제(孝武帝)가 밤에 화림원(華林園)에서 술을 마시다가 혜성에게 한 잔을 권하면서 “장성이여, 너도 술 한 잔 먹어라. 예로부터 만년 동안 살았던 천자가 언제 있기라도 했더냐.[長星 勸爾一杯酒 自古何時有萬歲天子]”라고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雅量》
십일월 초하루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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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또 맞게 된 중동의 계절 / 仲冬今又至
어느 날에나 고향에 돌아갈지 / 何日我方歸
적적하게 한 해도 장차 지려 하는 때 / 寂寂歲將晚
분분하게 사람들은 옛사람이 아니로다 / 紛紛人已非
장성은 여전히 기염을 토하는데 / 長星猶吐燄
열수가 유난히도 빛을 떨치는 밤 / 列宿頓揚輝
앉아서 생각하네 여주로 돌아가는 길 / 坐想黃驪路
사립문은 낚시터로 활짝 열려 있으련만 / 柴扉向釣磯
[주D-001]장성(長星)은 …… 밤 : 혜 성이 나타나는 등 병란의 조짐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는 이 시절에, 목은이 아끼는 어떤 사람이나 혹은 아들이 대궐에서 숙직을 하고 있는 밤이라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맑은 가을밤 숙직하기에 좋고말고, 그대가 숙직하니 열수가 유난히 빛나누나.[淸秋便寓直 列宿頓輝光]”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3 承沈八丈東美除膳部員外郞阻雨未遂馳賀奉寄此詩》
혼자서 웃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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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위법(有爲法)은 모두 허공과 같건마는 / 有爲□□□虛空
흑백 금은이 화숭에 잔뜩 쌓였도다 / 黑白金銀積華嵩
부끄러워라 일도 많은 시대를 마침 당해 / 愧殺適當多故際
보는 것이 오히려 편운 속에 있는 것이 / 看來却在片雲中
마음은 밝은 달 머무는 고요한 물 같건만 / 心如止水容明月
육신은 질풍 따라 떠다니는 구름 같아라 / 身似浮雲趁疾風
단지 소중한 것이 있다면 군친의 은의 / 只有君親恩義重
기필코 충심을 다해 보답해야 하련마는 / 政須徒報盡吾忠
[주D-001]유위법(有爲法)은 …… 쌓였도다 : 세 상일은 모두가 무상한 것이건만, 사람의 가슴속에는 온갖 탐욕이 들끓는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화숭(華嵩)은 화산(華山)과 숭산(嵩山)의 병칭으로, 그 산들 속에 각종 금은보화와 잡동사니 광물이 내장(內藏)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도 별의별 욕망과 번뇌가 잠재해 있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주D-002]부끄러워라 …… 것이 : 사람들마다 바삐 뛰어다니느라 겨를이 없는 때에, 목은 자신은 마치 뜬구름 쳐다보듯 하는 것이 혼자 생각해도 우습다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부인(婦人)의 말을 듣고 기록하다. 병서(幷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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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날 독칠방(獨七房)에 있을 적에 침석(寢席) 1장(張)을 마련하려고 오승포(五升布) 3필(匹)로 생견(生絹) 24척(尺)을 사고 또 5필로 견(絹) 1필을 샀다. 이것이 지정(至正) 기축년의 일인데, 그때에는 향면주(鄕綿紬) 40척의 값이 오승포 4필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견 1필을 사려면 포 70필을 줘야 하고 면주 40척을 사려면 포 30필을 줘야 하니 의복을 어떻게 예전처럼 지을 수가 있겠는가. 위와 같은 내용으로 슬퍼하는 부인의 말을 듣고 보니 나 역시 가슴속에 느껴지는 점이 없을 수 없기에, 이를 그대로 서술하여 세상의 흥망성쇠를 살피기로 하였다.
지정 기축년 그 당시에는 / 至正己丑歲
입고 먹을 것이 세상에 풍부해서 / 四海富布粟
명주 한 필 값이 고작 포목 너더댓 필 / 匹絹四五布
돈 없는 사람들도 명주를 살 수 있었다오 / 貴賤悉取足
부인이 조금 모아 둔 것이 있다면서 / 婦曰我少畜
나에게 독칠방을 혼자 쓰게 하고서는 / 獨處獨七屋
조부님께 간청하며 아뢰고 나서 / 乞□向祖父
시장에 나가 원하는 만큼 바꿔 왔는데 / 市易得所欲
계절 따라 지어 준 옷을 몸에 걸치면 / 製服趁節序
정결한 느낌이 목욕을 한 듯 상쾌했다오 / 潔淨若沐浴
홍건적이 중원에서 일어나게 된 뒤로는 / 盜賊起汴洛
베 짜는 여인들도 칼집을 차고 다녔고 / 織女佩劍韣
도로가 오래도록 막혀 통하지 않은지라 / 道路久梗塞
상인들도 쌓아 둔 채 팔지 못한 탓으로 / 販賣閣以束
명주 한 필 값이 무려 포목 칠십 필 / 匹絹布七十
시장에 가도 구경조차 할 수 없으니 / 入市亦未矚
비단옷 걸칠 생각 다시 할 수 있으리요 / 錦綺更莫問
속살 안 보이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지 / 幸矣不露肉
바뀐 세상 돌아보며 앉아서 탄식하노라니 / 撫世坐嘆息
머리카락만 백조처럼 하얗게 셀 뿐 / 鬢髮白鶴鶴
치세와 난세는 원래 운수가 정해져서 / 理亂自有數
만고토록 촛불이 꺼졌다 다시 켜지듯 / 萬古似轉燭
어느 날에나 옛 모습 되찾을 수 있을는지 / 曷日或復舊
늙은이의 눈물 두 눈에 맺힐 뿐이로다 / 老淚滴兩目
고(故) 사공(司空) 유공(柳公)의 자서(子婿)가 나를 찾아와서 사공의 묘지명을 부탁하며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으므로, 그 이튿날에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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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의 두 분 사위 역시 사공의 신분으로 / 司空二婿亦司空
덕행과 사업 모두 풍성한 한 시대 웅걸이라 / 德業俱豐一代雄
진나라 버들이 문 앞에서 지금 유독 번성하니 / 晉柳當門今獨盛
어구 깊은 곳에서도 춘풍에 춤추고 있으리라 / 御溝深處舞春風
[주D-001]진(晉)나라 …… 있으리라 : 숨 어 사는 목은의 집 앞에도 수양버들이 무성하니, 궁전의 도랑에 줄지어 선 버드나무도 지금 한창 봄바람에 휘날리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진나라 버들은 오류선생(五柳先生)으로 자처했던 도잠(陶潛) 집 앞의 버들로서 은자의 거처를 가리킨다. 어구(御溝)는 궁전을 거쳐 흐르는 도랑을 말하는데, 옛날에 그 위에다 수양버들을 심었다고 한다. 북조(北朝) 시대 제(齊)나라의 시인 사조(謝脁)의 고취곡(鼓吹曲)에 “나는 듯 지붕 대마루는 한길을 끼고 있고, 늘어진 버들은 궁전 도랑을 뒤덮고 있네.[飛甍夾馳道垂楊蔭御溝]”라는 구절이 있다.
목옹(牧翁) 11월 4일에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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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옹은 늙어 가며 온통 풍류 일색이라 / 牧翁垂老儘風流
동정간에 느긋해서 꽤나 자유스러워 / 動靜從容頗自由
도당은 연장자에게 양보하고 소매 떨치고 돌아와서 / 讓齒都堂歸拂袖
작은 방에 몸 편안히 갖옷을 입고 앉았어라 / 安身小室坐披裘
강과 산이 적적하니 하늘은 더욱 머나먼데 / 江山寂寂天逾逈
해와 달이 밝으니 안개도 조만간 걷히겠지 / 日月明明霧乍收
지금 곧장 표연히 남쪽을 향해 떠나 볼까 / 便欲飄然向南去
천년 전에도 소서 읽으며 봉류로 족했으니 / 素書千載足封留
[주D-001]작은 …… 앉았어라 : 가 난한 중에서도 고고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말인데, 사실은 소매를 떨치고 돌아왔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은연중에 세상을 풍자하며 자기의 신세를 자조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피구(披裘)는 고고하게 숨어 사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춘추 시대 때 갖옷을 입고 나무를 하면서 연릉 계자(延陵季子)를 준엄하게 꾸짖은 은사 피구공(披裘公)의 고사와, 한(漢)나라 엄광(嚴光)이 숨어 살면서 갖옷을 입고 낚시를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論衡書虛》 《後漢書 卷83 嚴光列傳》
[주D-002]지금 …… 족했으니 : 한(漢)나라 장량(張良)이 유(留) 땅에 봉해져서 황석공(黃石公)의 《소서(素書)》를 읽으며 자족했던 것처럼, 목은도 군(君)에 봉해진 한산(韓山) 땅으로 물러나서 유유자적하게 지내 보고도 싶다는 말이다.
중도(中道)의 염사(廉使) 안 대간(安大諫)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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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잔한 인생이 그래도 입에 풀칠하는 것은 / 殘生尙糊口
이 몸을 정녕 돌보시는 성상의 은택 때문 / 聖澤政渾身
농지세 거둘 때 예전의 규정대로 하여 / 田稅前規在
우리 백성들 동요함이 없게 해 줬으면 / 公無擾我民
혼자서 웃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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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돌아가겠다고 공연히 말해 놓고 / 謾道歸期的的
아직도 못 가느냐고 짜증만 내는구먼 / 還嗔行李遲遲
눈앞에 가득 펼쳐진 그림 같은 강과 산 / 滿目江山如畫
인간 세상 어디인들 시 아닌 곳 있으리요 / 人間何處非詩
여강(驪江)을 생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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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연히 곧장 한강 물 거슬러 올라갈 / 不是無錢買小舟
조각배 한 척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오라 / 飄然直遡漢江流
문 앞의 용수산 푸른빛이 애처로워 / 只怜當戶龍山碧
홀로 누대에 기대어 날마다 시 읊느라고 / 日日吟詩獨倚樓
눈 내리는 것을 기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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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 때부터 한서의 이변을 없애려고 기도하였나니 / 禳祈寒署自陶唐
기후가 시절에 맞아야 세도도 편안해지기 때문이라 / 天氣和時世道康
서리가 내리면 얼음이 언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 霜落雖然有氷至
봄의 약동도 단지 겨울의 갈무리 속에 있느니라 / 春生只是在冬藏
시의 재료 제공해 주는 뜨락 가득 옥가루요 / 滿庭玉屑供詩料
술잔을 다투게 하는 자리 위의 구슬 꽃이라 / 入座瓊花鬪酒觴
다만 농가를 위해서는 기쁨이 한이 없다마는 / 只爲農家喜無極
나무꾼의 헐벗은 발도 감히 잊어선 안 되겠지 / 樵夫跣足敢相忘
[주D-001]서리가 …… 있느니라 : 서 리가 내린 것을 보면 얼음이 꽁꽁 어는 혹한의 계절이 곧 닥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기미를 보고서 미리 경계해야 한다는 식으로 겨울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생명력이 약동하는 봄도 바로 만물을 갈무리해 주는 추운 겨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이다. 《주역》 곤괘(坤卦) 초육(初六)에 “서리를 밟으면 두꺼운 얼음의 계절이 곧 온다.[履霜堅氷至]”는 말이 나온다.
윤(尹)의 모친 최씨(崔氏)의 죽음을 애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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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생이 눈물 젖은 상복을 입고 / 門生有淚服
천리 길 달려와서 간절히 청하누나 / 千里請之勤
남겨 준 은택 모여 있는 고죽이라면 / 孤竹鍾餘澤
슬픈 석양빛 띠고 있는 임천이로다 / 臨川帶夕曛
흐르는 물 여울 만나 서글피 울고 / 水流悲急澗
첩첩산중의 뜬구름 참담도 해라 / 山密慘浮雲
앞으로 응당 우리 삼한 땅에 / 應使三韓地
말에서 내리는 무덤 새로 생기리 / 新成下馬墳
[주D-001]고죽(孤竹) : 해주(海州)의 옛 이름이다. 최씨의 본관이 아마도 해주인 듯하다.
[주D-002]임천(臨川) : 영천(永川)의 옛 이름이다. 윤씨의 본관이 아마도 영천인 듯하다.
11월 6일에 백련사(白蓮社)의 여러 노인들이 술을 가지고 김광조(金光祚) 영공(令公)을 찾아갔더니, 공이 진수성찬을 차려 주고 성대하게 풍악을 울려 밤이 되어서야 자리를 파하였다. 이에 그다음 날에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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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동쪽 비추는 백련의 높은 모임 / 白蓮高會照天東
총재가 와서 노 시중을 시중들었도다 / 冢宰來陪老侍中
용봉을 새긴 피리는 시간도 정지시키고 / 龍管鳳笙留迅晷
수놓은 비단 장막은 산들바람에 흔들렸네 / 羅幃綉幙動微風
경륜하는 성업은 그 나라 인걸의 몫 / 經綸盛業歸邦傑
붓이나 드는 초라한 목동은 부끄러울 뿐 / 鉛槧殘生愧牧童
궁중에서 내려 주신 술을 또 마셨으니 / 更拜九重宣賜酒
송가를 불러 무궁히 전파해야 하고말고 / 要將歌頌播無窮
견흥(遣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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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생 정녕 기생(寄生) 같나니 / 餘生政如寄
흰머리가 창백한 얼굴 비춰 줄 따름 / 白髮映蒼顔
천지는 그래도 내 늙음을 받아 주고 / 天地容吾老
시서는 나의 한가함을 짝해 주는도다 / 詩書伴我閑
대낮에도 문은 여전히 닫혀 있지만 / 閉門猶白晝
창만 열면 곧바로 보이나니 청산이라 / 開戶卽靑山
마음과 경물이 너무도 유연한지라 / 情境悠然甚
그림 속에 들어왔나 스스로 의심되네 / 自疑圖畫間
기로회(耆老會)에 갔다가 돌아와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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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의 기로회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 溫室初移席
맑은 향 내음이 옷을 온통 물들일 듯 / 淸香欲染衣
기로와 같은 단심은 절박하다 해도 / 一心雖迫切
이 몸의 신분은 아직도 희미할 따름 / □□尙稀微
바람이 이는 듯하는 칠보 나무라면 / 寶樹風如動
이슬이 마르지 않는 요지의 연꽃이라 / 瑤蓮露未晞
분명히 알지니 나에게는 꿈과 같은 일 / 明知是幻境
백발의 고향 생각 더욱 절실해질밖에 / 白髮苦思歸
[주D-001]바람이 …… 연꽃이라 : 기로회(耆老會)의 풍경이 마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칠보(七寶) 나무는 불교의 극락세계에 있다고 하고, 요지(瑤池)는 도교의 신선 세계에 있는 연못이라고 한다.
무제(無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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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대가 오늘 구정을 좌우로 낀 가운데 / 八臺今日擁毬庭
남쪽 둔덕에 열악청이 바야흐로 열렸도다 / 南畔方開閱樂廳
승선이 뒤에 오니 위엄이 이미 진동했고 / 承旨後來威已振
재신이 단좌하니 체모가 더욱 안정됐네 / 宰臣端坐體彌寧
묘한 곡조 연주하자 귀신도 깜짝 놀라고 / 彈成妙曲驚神鬼
허공 위의 줄타기에 달과 별도 흔들려라 / 踏絶層霄動月星
기억나네 언젠가 사소한 예법 다투던 일 / 記得當時爭末禮
소년이 객기 부리면서 어찌나 까불던지 / 少年狂態頗生獰
[주D-001]팔대(八臺) : 팔 관회(八關會) 때 가무를 연희하는 무대라는 뜻으로 산대(山臺)의 별칭이다. 산대는 산대놀이를 벌이는 높다란 연극 무대로 채붕(綵棚)이라고도 하는데, 높이 50척 되는 봉래산(蓬萊山) 연화대(蓮花臺) 모양의 채색된 무대를 구정의 양쪽 편에 설치했다고 전한다. 《목은시고》 제33권 〈열악(閱樂)〉에 “송악의 구정에 팔대가 우뚝 솟았나니, 예전과 같은 묘기에 신난 사람들 왁자지껄.[松岳毬庭八臺聳 呈才依舊萬人喧]”이라는 구절이 나오고, 또 제33권 마지막의 〈산대잡극(山臺雜劇)〉 시에 “산대 얽어 만든 것이 마치 봉래산, 과일 바치는 선인이 해상에서 오도다.[山臺結綴似蓬萊 獻果仙人海上來]”라는 구절이 보인다.
[주D-002]승선(承宣)이 …… 안정됐네 : 다 른 신하들이 먼저 와 있는 상태에서 왕명을 받든 승선이 뒤에 도착하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왕의 위엄이 떨쳐졌다고 이를 만하고, 이와 동시에 재신들 역시 출영(出迎)하지 않고 단정히 자리에 앉아서 승선을 맞았으니 조정의 체모도 예전보다는 더욱 안정되었다는 말이다. 《목은시고》 제20권에 이와 관련된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참고로 그 제목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성원(省院)과 대각(臺閣)과 고원(誥院)이 구정(毬庭)에서 열악(閱樂)을 행할 적에 승선이 명을 받들고 나중에 도착하자, 시신(侍臣)이 북면(北面)을 하고 그를 맞았다. 이에 승선이 시신으로 하여금 막외(幕外)로 나가서 자기를 맞이하게 하려 하니, 시신이 말하기를 ‘우리들도 명을 받든 신하인 만큼, 사리상 출영(出迎)할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승선 중에는 심지어 복명(復命)만 하고 들어가지 않은 자가 있기까지 하였으니, 가령 김 좌사(金左使)가 승선이 되었던 때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였다. 그리하여 그 뒤로부터는 현릉(玄陵)이 분부를 내려서 재상(宰相)들도 또한 승선을 맞이하게 하였으니, 시신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 우리 아이 종덕(種德)이 명을 받들고 갔는데, 오늘은 또 어떠할지 모르겠다.”
고음(高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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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높이 읊는 것이 이름을 다투려 함이리까 / 高吟不是欲爭名
광대와 함께 태평 시대를 구가하려 함이외다 / 且與倡優誦太平
도덕성정에 대해서는 오히려 얕다 하더라도 / 道德性情猶淺近
풍화월로에 대해서는 그래도 깊다고 할 테니까 / 風花月露亦深精
봉우리 서로들 접했건만 하늘과는 모두 멀고 / 峯巒相接天俱遠
자욱이 묻힌 연애 속에 태양이 홀로 밝도다 / 煙靄方沈日獨明
나의 말 졸렬해 도움 못 됨이 부끄러울 따름 / 語拙只慚無所補
뒷날에 비평받는 일을 어찌 면할 수 있으리요 / 異時安得免譏評
[주D-001]봉우리 …… 밝도다 : 봉우리와 연애(煙靄)는 제구실 못하는 신하들을 가리키고, 하늘과 태양은 신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임금을 가리킨다.
열악(閱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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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가 서로 만나 예법이 틀리지 않았나니 / 兩府相逢禮不愆
구정의 열악은 예로부터 전해 오는 바이니라 / 毬庭閱樂至今傳
재주 뽐내는 산대잡극 동이와 중국이 합쳐졌고 / 呈才雜劇夷兼夏
이름 적은 직함 보니 뒤의 사람이 혹 앞으로 / 署狀官銜後或先
차가운 해 기울어지니 술기운 사라지려는데 / 酒氣欲消寒日側
길한 구름 이어지니 시흥이 홀연히 동하도다 / 詩情忽動慶雲連
소외된 몸 포용해 주신 선왕의 당시 은덕이여 / 當時萬幸容疏懶
병중에 뭉클 이는 회포 왜 이토록 망연한지 / 病裏興懷一惘然
[주D-001]양부(兩府)가 …… 않았나니 : 승 선(承宣)이 왕명을 받들었다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행동이 없었다는 말이다. 다른 신하들이 먼저 와 있는 상태에서 왕명을 받든 승선이 뒤에 도착하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왕의 위엄이 떨쳐졌다고 이를 만하고, 이와 동시에 재신(宰臣)들 역시 출영(出迎)하지 않고 단정히 자리에 앉아서 승선을 맞았으니 조정의 체모도 예전보다는 더욱 안정되었다는 말이다. 《목은시고》 제20권에 이와 관련된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참고로 그 제목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성원(省院)과 대각(臺閣)과 고원(誥院)이 구정(毬庭)에서 열악(閱樂)을 행할 적에 승선이 명을 받들고 나중에 도착하자, 시신(侍臣)이 북면(北面)을 하고 그를 맞았다. 이에 승선이 시신으로 하여금 막외(幕外)로 나가서 자기를 맞이하게 하려 하니, 시신이 말하기를 ‘우리들도 명을 받든 신하인 만큼, 사리상 출영(出迎)할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승선 중에는 심지어 복명(復命)만 하고 들어가지 않은 자가 있기까지 하였으니, 가령 김 좌사(金左使)가 승선이 되었던 때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였다. 그리하여 그 뒤로부터는 현릉(玄陵)이 분부를 내려서 재상(宰相)들도 또한 승선을 맞이하게 하였으니, 시신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 우리 아이 종덕(種德)이 명을 받들고 갔는데, 오늘은 또 어떠할지 모르겠다.”
양가 선사(兩街禪師)가 기민(飢民)을 진휼(賑恤)할 일에 대해 말하면서 그 어조가 강개(慷慨)하기에 내가 기뻐서 기록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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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화(兵禍)에 고통 받는 초췌한 우리 백성들 / 吾民憔悴困兵荒
게다가 사기에 전염되어 질병으로 신음하네 / 邪氣相熏病勢强
못사는 사람들은 죽어서 몸이 썩어 가고 / 貧賤死亡身朽爛
잘사는 사람들은 피난길 떠나랴 처량하이 / 豪强流徙色凄涼
원래 비지로 중생을 구제하는 줄 아오마는 / 由來悲智周□□
탄식하면서 묘당에 호소한 일이야 있었겠소 / 豈有呻吟徹廟堂
스님이 올리는 좋은 계책 얼마나 감사한지 / 多謝我公陳上策
집집마다 배부른 것이 서방 정토 아니리까 / 家家飽煖卽西房
[주D-001]비지(悲智) : 불 교 용어인 대비(大悲)와 지혜(智慧)를 병칭한 말로, 지혜는 수기(修己)라 할 상구보리(上求菩提)에 해당하고 대비는 치인(治人)이라 할 하화중생(下化衆生)에 해당하는데,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지혜의 화신이요 보현보살(普賢菩薩)은 자비의 화신으로 일컬어진다.
판관(判官) 이전(李展)이 안동(安東)에서 와서 왜적이 또 쳐들어왔다고 말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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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 해마다 해안에 올라온 탓으로 / 海賊連年上岸來
강마을 곳곳마다 예외 없이 쑥밭으로 / 江村處處盡蒿萊
겨울에 들어서는 또 산속에 들어가서 / 方冬更向崔嵬入
도처에 출몰하여 약탈하고는 내빼누나 / 到處偏能邐迤回
인재를 진작시키면 겁먹을 일 있겠는가 / 振作人材無勇怯
천도는 경재에 있음을 분명히 알지로다 / 分明天道在傾栽
지금 조정이 밤낮으로 민생을 걱정할뿐더러 / 朝廷日夜勤民甚
난리 평정할 능력을 모두들 겸하고 있음에랴 / 況是皆兼撥亂才
[주D-001]천도(天道)는 …… 알지로다 : 선 인(善人)에게는 복을 내리고 악인(惡人)에게는 재앙을 내리는 것이 하늘의 도라는 말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 천도를 설명하면서 “잘 심겨진 것은 더 잘 자라도록 북돋아 주고, 기우뚱하게 비뚤어진 것은 엎어지게 한다.[栽者培之 傾者覆之]”고 한 대목이 나온다.
견흥(遣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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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짓고는 또 고치니 글자가 자꾸 삐뚤빼뚤 / 詩成又改字橫斜
정수를 음미하노라면 기운이 절로 화사해져 / 咀嚼精英氣自華
눈 부릅뜨고 벼슬길로 달려간 적 있으리요 / 蒿目何曾向官道
쑥대머리로 어쩌다가 이웃집에나 찾아갈 뿐 / 蓬頭時或訪隣家
황종이 삼분의 율관을 진동시키려 하건마는 / 黃鐘欲動三分律
여섯 꽃잎 눈송이는 아직도 내릴 줄을 몰라 / 白雪猶遲六出花
무언중에 이해하노니 은밀한 곳에 감추는 것 / 默識退藏於密處
그것이 바로 분명코 형가가 된다고 하는 것을 / 明明眞固是亨嘉
[주D-001]황종(黃鐘)이 …… 하건마는 : 동 지(冬至)가 다가왔다는 말이다. 여섯 개의 양률(陽律)과 여섯 개의 음려(陰呂) 가운데 황종이 양률 중의 첫 번째를 점하면서, 동지가 되면 일양(一陽)의 기운이 처음으로 생겨 황종 율관(律管) 속의 재가 풀썩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 황종을 기준으로 삼분 손익법(三分損益法)에 의해서 12율려가 산출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2]여섯 꽃잎 눈송이 : 다른 초목은 대부분 다섯 개의 꽃잎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설화(雪花)만은 육각(六角)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주D-003]은밀한 …… 것 :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자신의 재능을 숨기면서 홀로 수양 공부를 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성인은 이로써 마음을 씻어 아무도 모르게 은밀한 곳에다 감추어 둔다.[聖人以此洗心 退藏於密]”는 말이 나온다.
[주D-004]형가(亨嘉) : 모든 아름다움이 모여 형통하게 된다는 말인데,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원형이정(元亨利貞)을 설명하면서 “형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모이는 것을 말한다.[亨者嘉之會也]”고 한 대목이 나온다.
임 사재(林四宰)의 악부(岳父)에 대한 만사(挽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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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엔 깊은 뿌리 있고 물에는 근원이 있는 법 / 木有深根水有源
음덕으로 청귀(淸貴)한 가문 세운 줄 알고말고 / 已知潛德樹淸門
향년 역시 희년을 넘어 중수에 또 가까운데 / 稀年又是幾中壽
다시 공명을 가지고서 외손에게 전하셨구려 / 更把功名付外孫
[주D-001]중수(中壽) : 80세를 가리킨다. 상수(上壽)는 100세를, 하수(下壽)는 60세를 말한다.
독좌(獨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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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앉아 있으려니 생각이 무궁무진 / 獨坐思無盡
언제 문밖 뜰을 나가 본 적 있으리요 / 何曾出戶庭
경서를 마주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 冥心對經卷
눈길 돌려 이따금씩 창문 밖을 내다볼 뿐 / 游目數窓欞
흰빛 부옇게 흩뿌리는 등나무 덩굴에 걸린 달 / 蘿月紛紛白
고향 산천이 아스라이 푸른빛으로 다가오네 / 鄕山渺渺靑
간밤의 술 깨려면 술이 있어야 하고말고 / 解酲須用酒
그래서 화로 가까이에 은술병 놔두었지 / 爐火近銀甁
[주D-001]언제 …… 있으리요 : 때 가 아니기 때문에 출입을 삼가면서 언어와 행동을 조심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절괘(節卦) 초구(初九)에 “문밖 뜰을 나가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不出戶庭 无咎]”고 하였고, 그 상(象)에 “문밖 뜰을 나가지 않음은 통하고 막히는 때를 알기 때문이다.[不出戶庭知通塞也]”라고 하였으며, 또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이에 대해서 “난이 일어나는 것은 언어가 단서가 된다.……그렇기 때문에 군자가 자신을 엄밀히 단속하면서 나가지 않는 것이다.[亂之所生也 則言語以爲階……君子愼密而不出也]”라고 한 공자의 해설이 나와 있다.
길에서 판삼사사(判三司事)를 만나 이 이상(李二相)의 집에 들어가서 술을 마셨다. 그때 양가 선사(兩街禪師)가 또 와서 기민(飢民)을 진휼(賑恤)하는 글을 부탁하기에 그 자리에서 초안을 잡아 주고는 이에 대해 시 한 수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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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 노 선사는 대대로 의관의 집안 출신 / 兩街禪老世衣冠
상을 축도하면서 백성의 안녕을 기약하네 / 祝上仍期百姓安
졸지에 흉년 만나 걱정을 태산같이 하며 / 忽値凶年憂太甚
홍택이 베풀어지게 선난을 생각하셨도다 / 欲宣洪澤念先難
고단한 몸에 풍진이 자욱하게 부는 이때 / 風塵漠漠吹形影
일월은 밝고 밝아 속마음 살펴 주시리라 / 日月明明照肺肝
두 어르신 만나서 졸렬한 글솜씨 보이다니 / 邂逅兩翁觀拙筆
삼한을 진동시킬 말이 없어 그저 부끄럽기만 / 只慚無語動三韓
[주D-001]홍택(洪澤)이 …… 생각하셨도다 : 인 자(仁者)의 마음으로 임금의 큰 은택이 백성에게 베풀어지게 하였다는 말이다. 《논어》 옹야(雍也)에 “인자는 어려움을 먼저하고 얻는 것은 뒤로 한다. 그렇게 하면 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仁者 先難而後獲 可謂仁矣]”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가야(伽倻)의 총공(聰公)이 홍시를 보내 준 것에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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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굽어보는 푸른 산속에서 / 靑山臨海上
서리 맞고 흠뻑 익은 붉은 감이여 / 紅柿得霜餘
천리 너머 공의 모습 대하는 것처럼 / 千里如相見
갠 창에서 공의 편지 뜯어보았소 / 晴窓閱尺書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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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는 밝고 밝아 상도를 잃지 않건마는 / 天道明明不失常
가련토다 나의 도는 시문에만 부치다니 / 可憐吾道寄詞章
우뚝 수립하는 공은 이미 얻기 어려운 일 / 卓然有立已難得
늙어 가며 무능해서 그저 혼자 슬퍼할 뿐 / 老矣無能徒自傷
붉은 뜨락 별 고깔 얼마나 혁혁하였던가 / 星弁彤庭何赫奕
푸른 바다 구름 돛은 갈수록 까마득해라 / 雲帆滄海轉蒼茫
누가 알까 나의 출처 모두 바람에 흩날리며 / 誰知出處俱飄蕩
어디든 자리만 나면 주광을 발동하는 것을 / 到處逢場發酒狂
[주D-001]붉은 …… 까마득해라 : 예 전에 공민왕 시절에는 임금의 인정을 받고 조정에서 중책을 맡아 나름대로 경륜을 펼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의 포부를 펼쳐 볼 희망이 갈수록 아득해진다는 말이다. 붉은 뜨락은 궁정(宮庭)을 가리키고, 별 고깔은 솔기를 오색 구슬로 장식하여 별처럼 빛나는 관을 가리킨다. 《시경》 위풍(衛風) 기욱(淇奧)에 위 무공(衛武公)을 칭송하면서 “고깔에 장식한 오색 구슬이 별처럼 빛난다.[會弁如星]”고 하였는데, 목은이 은연중에 이를 공민왕에 비유한 것이다. 또 남조(南朝) 시대 송(宋)나라의 종각(宗慤)이 소년 시절에 자신의 포부를 말하면서 “끝없이 부는 바람을 타고 만리의 파도를 헤쳐 가고 싶다.[願乘長風破萬里浪]”고 했던 고사가 전하는데, 이를 인용하여 이백(李白)이 “장풍 파랑의 기회가 언젠가는 올 터이니, 곧장 구름 돛 달고 푸른 바다 건너가고 싶다.[長風破浪會有時 直挂雲帆濟滄海]”고 표현한 시구가 있다. 《宋書 卷76 宗慤列傳》 《李太白集 卷2 行路難》
종덕(種德) 부추(副樞)가 팔관회(八關會)의 바뀐 예복과 다식(茶食)을 보내왔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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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관회의 성대한 의식 동짓달마다 여는지라 / 八關盛禮應黃鐘
해마다 상서를 내려 해동을 보우해 주시도다 / 歲降禎祥保海東
음식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네 풍속을 준수하고 / 肴膳今猶守夷俗
의관은 고풍을 따랐나니 역시 중국의 풍도로세 / 衣冠古亦重華風
하늘의 마음과 합한지라 기도하면 보응이 있고 / 有祈有報天心格
세상의 도가 성한지라 효도와 충성을 보겠도다 / 惟孝惟忠世道豐
오물오물 씹다 보니 입 안에 달착지근한 맛 / 細嚼微甘生齒舌
예전에 제공을 따르던 일 어렴풋이 떠오르네 / 依俙當日逐諸公
[주D-001]팔관회(八關會)의 …… 여는지라 : 고려 시대 때 팔관회를 매년 11월 15일에 열었다.
대회일(大會日) 새벽에 내린 눈을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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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구정에서 꽃 마련하려고 애썼는데 / 一夜毬庭要辦香
아침이 되자 등륙이 상서와 길함을 보여 주네 / 朝來滕六表休祥
옷자락 흩날리는 속에 하얀빛 서로 뒤섞이고 / 亂飄衫袖光相雜
깃발을 날려 따르면서 그 기세 더욱 양양하네 / 輕逐旌旗勢更揚
부옇게 떠서 밝아 오는 대궐 지붕 모롱이요 / 蘂闥觚稜浮晃朗
어슴푸레 잠겨 있는 송악의 바위와 골이로세 / 松山巖壑入微茫
요즈음 비에 젖을세라 우산을 쓰고 다녔나니 / 近間雨傘防霑濕
가장 기쁜 건 날씨가 점점 정상을 되찾는 것 / 最喜天心漸順常
[주C-001]대회일(大會日) : 팔관회(八關會) 당일을 말한다. 예행 연습을 하는 그 전날은 소회일(小會日)이라고 하였다.
[주D-001]밤새도록 …… 애썼는데 : 시 에서 꽃의 별칭으로 향(香)을 간혹 차용하기도 한다. 당(唐)나라 이하(李賀)의 시 〈금동선인사한가(金銅仙人辭漢歌)〉에 “화려한 난간엔 계수나무가 가을 꽃을 매달고 있고, 한나라 궁궐 삼십육 궁엔 이끼만 푸르게 깔려 있네.[畫欄桂樹懸秋香 三十六宮土花碧]”라는 명구가 나온다.
[주D-002]등륙(滕六) : 전설상에 나오는 눈 귀신[雪神]의 이름이다.
정 판서(丁判書)가 와서 말하기를 “안 대부(安大夫)가 동년(同年)을 초대하여 곽 판서(郭判書)를 찾아갔다.”고 하였다. 지금 양회(兩會)도 이미 지나갔는데, 어느 날에나 멋진 모임을 갖게 될지 모르겠기에 시를 지어서 독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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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동년을 세어 보니 점점 얼마 안 되는데 / 坐數同年漸漸稀
게다가 만년의 신세들이 각자 부운 유수로다 / 浮雲流水又西暉
토산의 은자는 지금 고요한 생활을 즐기시고 / 兔山隱者方耽寂
오부의 선생은 홀로 위엄을 떨치고 계시는 중 / 烏府先生獨振威
출처는 달라도 의리에 모두 입각했다 할 것이나 / 出處雖殊均是義
공명 따위야 어디에 쓰랴 차라리 돌아감이 낫지 / 功名安用不如歸
어느 날에나 술잔 놓고 서로들 웃으며 얘기할까 / 尊前笑語知何日
목로가 가난하지만 옷이라도 전당 잡히고 싶네 / 牧老雖貧欲典衣
[주C-001]양회(兩會) :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의 병칭이다.
[주D-001]동년(同年) : 충혜왕 복위 2년인 신사년(1341)에 송당(松堂) 김광재(金光載)가 주관한 성균관시(成均館試)에서 목은과 함께 합격한 사람들을 말한다.
[주D-002]토산(兔山)의 은자 : 곽 판서 즉 곽충수(郭忠秀)를 가리킨다. 《목은문고》 제4권 〈영모정기(永慕亭記)〉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주D-003]오부(烏府)의 선생 : 간의대부(諫議大夫)인 안 대부 즉 안종원(安宗源)을 가리킨다.
새벽에 일어나서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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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옹의 신세 이만하면 청랑(淸朗)의 극치 / 牧翁身世十分淸
처마 끝 눈 떨어지는 소리 누워서 듣노매라 / 臥聽茅簷雪落聲
새벽에 남창 향해 언 붓 호호 부노라니 / 曉向南窓呵凍筆
고주에 사립으로 옛 맹세 지켜보고 싶어 / 孤舟簑笠欲尋盟
높았다가 낮아지고 탁했다가 맑아지고 / 音韻高低濁復淸
손자 아이 마루에서 글 읽는 소리로다 / 兒孫堂上讀書聲
늙은 할배 단정히 앉아 생각이 무궁무진 / 老翁端坐思無盡
뒷날 우리 집안에서 문단의 맹주가 나오려나 / 吾道他年倘主盟
마음가짐은 맑은 물에 갓끈 씻는 데 있다 해도 / 操心雖在濯纓淸
절교하며 악성을 낸 적이 언제 한번 있었던가 / 交絶何曾出惡聲
사막의 변방 아득해라 기러기 편지도 없는 터에 / 沙塞茫茫無雁信
아스라이 내 낀 물결 백구와의 약속 잊고 있나 / 煙波渺渺敗鷗盟
[주D-001]고주(孤舟)에 …… 싶어 : 고 향에 돌아가서 홀로 배를 타고 낚시질하고 싶은 흥치가 불현듯 일어난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이라는 오언 절구에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 외로이 배를 타고, 눈 덮인 추운 강 속에서 홀로 낚시질 하누나.[孤舟簑笠翁 獨釣寒江雪]”라는 구절이 나오고, 또 《목은시고》 제16권 〈즉사(卽事)〉에 “도롱이 쓰고 조각배로 물길 올라가고 싶어, 한 굽이 여강 가에 내 농장이 있으니.[披簑欲上扁舟去 一曲驪江置野莊]”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마음가짐은 …… 있었던가 : 세 상의 더러움을 멀리한 채 깨끗이 살고 싶은 마음을 항상 지니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벼슬을 버리지 못한 채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왔다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초췌한 안색으로 강변을 거닐자 어부가 그 이유를 물었는데, 굴원이 더러운 세상에 대해서 푸념을 늘어놓자 어부가 빙그레 웃으면서 “창랑의 물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 흐리면 내 발 씻으면 되지.[滄浪之水淸兮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떠나갔다는 이야기가 굴원의 〈어부사(漁夫辭)〉에 전한다. 또 삼국 시대 위(魏)나라 산도(山濤)가 이부랑(吏部郞)으로 있다가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자리를 옮기면서 자기의 후임으로 친구 혜강(嵇康)을 추천하자, 혜강이 산도에게 절교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탕왕과 무왕까지도 비난하고 비루하게 여기는[非薄湯武]’ 내용을 담기까지 하였는데, 대장군(大將軍) 사마소(司馬昭)가 ‘이 말을 듣고는 혜강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聞而惡焉]’는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捿逸》
[주D-003]사막의 …… 있나 : 임 금이 자신의 충절을 알아주지도 않는데, 고향에 돌아가서 물새와 노닐겠다는 예전부터의 소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漢)나라의 충신 소무(蘇武)가 흉노 땅의 사막 요새지[沙塞]에 19년 동안이나 붙잡혀 있다가, ‘천자가 상림원(上林苑)에서 기러기 다리에 매어 있는 편지[雁信]를 보고 소무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는 말로 사신이 기지(奇智)를 발휘한 덕에 한나라로 돌아왔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54 蘇武傳》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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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고뿔 걸려 아침 늦게야 부스스 / 老劫風寒曉起遲
사지가 쑤시고 찌뿌드드 옷 무게도 감당 못해 / 四支酸澁不勝衣
그래도 중화의 기운 그동안 길러 둔 덕분에 / 只緣養得中和氣
그런대로 옛 율시를 다시금 지어 읊는다오 / 且復吟成古律詩
날씨도 잔뜩 찌푸려서 창에는 어두운 그림자만 / 漠漠窮陰窓影暗
조그만 뜨락은 적막에 싸여 인기척도 드물기만 / 寥寥小院履聲稀
숨어 사는 이 흥치를 아는 이 뉘 있으리 / 幽居興味無人識
객을 마주해 이따금씩 술잔만 기울일 뿐 / 對客有時傾酒巵
[주D-001]중화(中和)의 기운 : 원기(元氣)를 말한다. 도교(道敎)에서는 태양(太陽)과 태음(太陰)과 중화를 세 개의 원기라 일컫는다.
김 좌윤(金左尹) 형이 술을 가지고 찾아 준 것을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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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이별 끝의 상봉 기쁘고도 놀라운 일 / 久別相逢喜又驚
술잔 들고 담소하니 평소의 회포가 위로되네 / 尊前笑語慰平生
자손들 흩어지는 화를 다행히도 면한 이때 / 流離幸免子孫累
늙고 쇠하니 형제의 정을 더욱 느끼겠소이다 / 衰老更諳兄弟情
술안주는 소반 가득 해산물도 하 많은데 / 佐酒滿盤多海錯
시구는 퇴고만 할 뿐 자연스러움 드물어라 / 吟詩鍊句少天成
간밤의 술은 다 깼어도 몸은 아직도 찌뿌드드 / 宿酲消盡身猶困
앉아서 남창을 대하면서 자꾸 눈만 비비누나 / 坐對南窓撥眼明
전의(全義) 한 좌윤(韓左尹)의 글을 받아 보니, 오래도록 나의 편지를 받아 보지 못했다는 말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나 역시 그에게서 오래도록 서신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으므로, 한번 웃고는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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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그대의 편지 없는 게 괴이하였는데 / 吾方怪子久無書
그대는 오히려 나의 서신 뜸하다고 화내누나 / 君却嗔吾問訊疏
천리 너머 마음속 회포는 대략 서로 같으리니 / 千里情懷略相似
한 등불 아래 우리 만나 읊조려 봄이 어떠할지 / 一燈吟嘯定何如
평평한 들판 에워싼 푸른빛 감도는 산이라면 / 山浮翠色圍平野
허공에 바퀴 굴리는 붉은빛 수렴한 태양이라 / 日斂紅光轉太虛
홀로 앉아 있으려니 슬그머니 나오는 웃음 / 獨坐悠然成獨笑
예로부터 인간 세상은 거거한 꿈속이었나니 / 古來人世夢蘧蘧
[주D-001]홀로 …… 꿈속이었나니 : 동 상이몽(同床異夢)처럼 사람은 하나의 일에 대해서도 각자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장자》 제물론(齊物論) 마지막에 호접몽(蝴蝶夢)의 일화가 나오는데, 그중에 “얼마 있다가 호랑나비 꿈을 깨고 보니, 엄연히 사람의 몸을 갖춘 나 자신이더라.[俄然覺 則蘧蘧然周也]”라는 말이 나온다.
기사(紀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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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따스한 울타리 아래 흡사 춘대에 오른 듯 / 負暄墻下似春臺
찻잔 들며 술 마시는 흉내를 내 볼까 하였는데 / 欲啜茶甌當酒杯
홀연히 거센 바람 불어 땅을 말아 올릴 듯 / 忽有狂風吹卷地
그럼 그렇지 천공께서 내 기분 좋게 해 주겠나 / 天公應靳好懷開
소년 시절엔 사흘도 멀다고 여겼는데 / 少年三日以爲疏
시와 술 상종한 지 한바탕 꿈 밖일세 / 詩酒相從一夢餘
버들골 고요해라 산새 소리만 들리더니 / 柳巷寥寥山鳥語
이게 웬일인가 골목에 갑자기 수레 소리 / 忽驚車騎入門閭
[주D-001]등 …… 듯 : 울 타리 아래에 햇빛이 따스해서 마치 봄 누대에 오른 것처럼 기분이 한껏 고양되었다는 말이다. 《노자(老子)》 20장에 “사람들 마냥 기분 좋은 것이, 진수성찬을 먹는 듯도 하고, 봄 누대에 오른 듯도 하다.[衆人煕煕 如享太牢 如登春臺]”는 말이 나온다.
철원(鐵原) 김 동년(金同年)이 기러기를 보내 준 것을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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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밝아 아직도 깨알 같은 글씨 써서 / 眼明尙作蠅頭字
기러기 다리에 서신도 함께 묶어서 보내셨네 / 意厚仍傳雁足書
보잘것없는 병든 노인 부끄러워 어떡하나 / 深愧病翁無可取
어느 날에나 경거로 보답해 드릴 수 있을는지 / 不知何日報瓊琚
[주D-001]어느 …… 있을는지 : 다 음에는 목은이 좋은 선물로 답례를 하면서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고 싶다는 말이다. 《시경》 위풍(衛風) 모과(木瓜)에 “나에게 모과를 보내 주신 분, 나는 패옥(佩玉)으로 답례하고 싶나니, 형식적 보답이 아니오라, 영원히 친하게 지내자는 것.[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 匪報也 永以爲好也]”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병든 승려가 나에게 소개하는 글을 얻어서 양벽운(楊碧雲)에게 약을 구하려 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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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도다 금선께서 색신을 걱정하여 / 可笑金仙患色身
우객에게서 정신을 기르려 하시다니 / 却從羽客養精神
깡마른 선비는 기량이 별로 많진 않지만 / 癯儒伎倆無多子
붓 하나로 두 원수를 친하게 할 순 있지 / 一筆能令兩敵親
[주D-001]우습도다 …… 하시다니 : 육 신을 사대(四大)의 임시 화합물로 간주하여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불교의 승려가, 육신의 단련을 통해서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도교의 도사를 굳이 찾아가서 병을 치료하려 하느냐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금선(金仙)은 부처의 별명이고, 색신(色身)은 육신을 가리키며, 우객(羽客)은 도교의 신선이고, 정신(精神)은 도교의 내단(內丹) 사상에서 비롯된 정(精)ㆍ기(氣)ㆍ신(神)의 정신으로 일종의 원기(元氣)를 말한다.
고저(古樗) 동갑(同甲)에게 붓을 달려 띄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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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에서 돌아와서 다시 화산 속으로 / 海上歸來入華山
표연히 주장자를 백운간에 세웠구려 / 飄然甁錫白雲間
병든 뒤끝 동갑쟁이 괜히 머리 긁적이며 / 病餘同甲空搔首
묻노니 언제나 만나 파안대소해 볼는지 / 問道何時一破顔
[주C-001]고저(古樗) : 고려 말의 고승인 지감 원명 국사(智鑑圓明國師) 찬영(粲英)의 호인데, 목은의 시에 영공(英公)으로 몇 번 소개되기도 하였다.
교주(交州)의 염사(廉使)에게 띄워 고기를 부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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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봉양에도 진미가 필요하고 / 養老須滋味
제사 음식에도 돼지가 있어야만 / 交神在腯肥
두 가지 모두 작은 일 아니거니 / 兩端俱不細
바라건대 말에 태워 보내 주기를 / 一騎望來歸
며칠 동안 몸이 편치 못해서 시를 읊지 못하다가 동짓날에 남쪽 창가에 조용히 앉아서 세 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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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고 주역의 상을 생각하며 / 閉關思易卦
시골 풍속 따라 팥죽을 먹다 보니 / 啜粥順鄕風
시 읊고 싶은 흥치 갑작스레 일어나서 / 忽起吟詩興
성현의 도에 드는 공부 깡그리 잊었다오 / 全忘入道功
끝없이 생성 변화하는 조화의 묘함 속에 / 造化生生妙
허령한 속성이 만물에 하나같이 들었어라 / 虛靈箇箇同
담연한 경지를 바야흐로 스스로 지키면서 / 湛然方自守
철두철미 하나의 경으로 시종일관할지로다 / 一敬徹初終
정고로써 나의 근본을 삼으면 / 貞固爲吾本
인온이 내 속에도 통창하는 법 / 絪縕達我中
건곤은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데 / 乾坤用不竭
어느 날에나 시옹을 볼 수 있을거나 / 何日致時雍
[주D-001]문을 …… 생각하며 : 《주 역》 복괘(復卦) 상사(象辭)에 “우레가 땅속에 있는 것이 바로 복괘의 상이다. 그래서 선왕이 복괘를 보고는, 동짓날에는 관문을 닫게 하고, 행상인의 출입을 금지시키며, 임금 자신은 지방을 순행하지 않는 것으로 경계를 삼았다.[雷在地中復 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 하였는데, 이는 땅속에서 싹트기 시작하는 지극히 작은 하나의 양기[一陽]를 보전하여 기르려는 경건한 마음의 발로였다.
[주D-002]시골 …… 보니 : 팥이 양(陽)의 색깔인 붉은색을 띠고 있는 만큼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동짓날에는 팥죽을 끓여 사당과 집안의 여러 곳에 담아 놓았다가 식으면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 일종의 주술적인 풍속이 있었다.
[주D-003]끝없이 …… 속에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음양이 끝없이 변전(變轉)하면서 생성 변화하는 것을 역이라고 한다.[生生之謂易]”는 말이 나온다.
[주D-004]정고(貞固) : 정도(正道)를 굳게 지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주역》의 사덕(四德) 가운데 정(貞)을 풀이한 말로,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정도를 굳게 지키면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가 있다.[貞固足以幹事]”는 말이 나온다.
[주D-005]인온(絪縕) : 서 로 화합하여 만물을 생성하는 하늘과 땅의 두 기운을 말한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하늘과 땅은 음양의 두 기운을 합하여 만물을 생성하고, 남자와 여자는 정기(精氣)를 합하여 자식을 낳아 기른다.[天地絪縕 萬物化醇 男女構精 萬物化生]”는 말이 나온다.
[주D-006]시옹(時雍) : 태평성대를 말한다. 《서경》 요전(堯典)에 “백성들이 성군의 덕에 크게 감화된 나머지 온 누리에 화평한 기운이 감돌았다.[黎民於變時雍]”는 말이 나온다.
도목장(都目狀)을 오늘 바쳐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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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초하기 위해 오늘 열린 전석에서 / 歲抄開銓席
영재들 모두 차례대로 옮겨졌을 뿐 / 時英盡序遷
아전 한 사람으로 족하단 말도 들었는데 / 曾聞一吏足
더구나 유능한 공이 몇 분이나 되는데야 / 況値數公賢
아래 신하 대우하는 도리로 말한다면 / 所以待群下
원래 조종의 법도를 따라야 마땅할 터 / 由來從祖先
나 지금 또다시 진땀만 흐르니 어떡하나 / 吾今更流汗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자리에 끼어 앉았으니 / 添席尙依然
[주D-001]세초(歲抄)하기 …… 뿐 : 도 목정사(都目政事)에서 근무 성적이나 유능한지를 따지지 않고 오직 근무 연수에 따라 승진시키는 인사 행정이 이루어졌다는 말인데, 서천(序遷)은 다음에 나오는 주(註)의 정년격(停年格)과 같은 말이다. 세초(歲抄)는 12월과 6월에 전조(銓曹)의 관원이 모여 행하는 인사 행정을 말하는데, 12월은 대정(大政)이라 하고 6월은 소정(小政)이라 한다.
[주D-002]아전 …… 들었는데 : 북 위(北魏)의 최량(崔亮)이 현우(賢愚)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근무한 햇수만 따져서 녹용(錄用)하는 이른바 ‘정년격(停年格)’이라는 인사 행정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자, 설숙(薛琡)이 이에 반대하면서 올린 상소 중에 “유능한지도 살피지 않은 채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와 똑같이 취급하면서 물고기 꿰듯 순서를 정해 놓고서 장부를 들고 이름을 부르기만 한다면, 아전 한 사람만 있으면 족할 것이니, 관원의 근무한 햇수만 따져서 임용하는 것을 어떻게 인사 행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不簡賢否 便義均行雁 次若貫魚執簿呼名 一吏足矣 數人而用 何謂銓衡]”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北齊書卷26 薛琡列傳》
대서(代書)하여 혜문(惠文) 형에게 삼가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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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토를 장엄하는 곳에 나의 마음 있나니 / 幻土莊嚴有我心
산들바람 부는 보수 새들 화답하는 노래 / 微風寶樹鳥和鳴
속인이야 그저 성색을 구하면 그뿐인걸 / 人間只是求聲色
다시 멀리 청정을 찾을 필요나 있으리까 / 淸淨何須更遠尋
[주D-001]환토(幻土)를 …… 노래 : 미 풍에 흔들리는 나무 위에서 서로 화답하는 새들의 노랫소리 하나만 예로 들더라도, 환토 즉 허깨비 같은 이 세상을 극락세계처럼 멋있게 꾸며 주고 있으니, 굳이 속세를 떠나 다른 곳을 찾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뜻이다. 장엄(莊嚴)은 불교 용어로 국토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을 의미하며, 보수(寶樹) 역시 불교의 극락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진기한 나무로 칠보(七寶)로 되어 있다고 한다.
문생(門生)인 판서(判書) 최숭겸(崔崇謙)이 술을 가지고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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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에 추위가 벌써 심한데 / 仲冬寒已甚
아침 해가 산대에 솟아올랐네 / 朝日上山臺
좌주가 궤안에 기대 누워 있자니 / 座主隱几臥
문생이 술을 가지고 찾아왔구나 / 門生携酒來
바람과 구름이 성대한 조정을 열자 / 風雲開盛朝
하늘과 땅이 영재를 길러 내었도다 / 天地育英材
한번 취하는 것도 정말 쉽지 않은 일 / 一醉誠非易
앞으로 다시 몇 번이나 맞게 될는지 / 從今更幾回
한나라 구정이 태산처럼 중하였건만 / 漢鼎如山重
조대로 떠난 고풍에 경의를 표하노라 / 高風揖釣臺
그 마음 아는 것은 내 일이 아니거니와 / 知心非我事
그 풍도 이어받는 이는 누가 또 있을까 / 繼踵有誰來
국가 경륜할 큰 그릇을 오래도록 폐기하고 / 久廢經綸器
동량이 될 재목을 허송 세월케 하는 이때 / 虛生棟樑材
하지만 혈맥이 병들지 않은 건 확실하니 / 明知脈不病
바른 기운이 머지않아 자연히 돌아오리로다 / 正氣自然回
나는 평소에 풍채만 중시한 나머지 / 平生重風采
행동거지 모두가 마음을 더럽힐 뿐 / 擧動汚靈臺
정사로는 선배들 보기가 민망하고 / 政事羞先進
문장으론 후배들 보기가 부끄러워 / 文章愧後來
누구를 찾아 도를 물으려 하시는고 / 欲從誰問道
더군다나 이 몸은 재목이 못 되는걸 / 況是我非材
문밖에 물은 동쪽으로 돌아가는데 / 門外水東注
유유해라 이 몸은 언제나 돌아갈꼬 / 悠悠何日回
[주D-001]산대(山臺) : 매년 11월 15일에 열리는 팔관회(八關會) 때에 가무를 연희하는 무대를 말한다. 높이 50척 되는 봉래산(蓬萊山) 연화대(蓮花臺) 모양으로 색칠한 무대를 구정(毬庭)에 설치했다고 전한다.
[주D-002]바람과 …… 열자 : 훌륭한 임금과 신하가 만나 성세(盛世)를 이루었다는 말인데,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 구오(九五)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雲從龍風從虎]”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3]한(漢)나라 …… 표하노라 : 옛 친구인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누차 초빙을 하였는데도 엄자릉(嚴子陵)이 이에 응하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의 낚시터[釣臺]에서 소일했던 그 높은 풍도를 일단은 높이 평가한다는 말이다. 구정(九鼎)은 하(夏)ㆍ은(殷)ㆍ주(周) 삼대(三代) 때부터 전해 온 솥 이름으로,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보배로 여겨져 왔는데, 여기서는 한나라 사직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주D-004]그 마음 …… 아니거니와 : 엄 자릉의 진정한 마음을 모르겠다는 뜻으로, 광무제 같은 현군(賢君)을 만났으면 자신의 경륜을 펼쳐 봄 직도 했을 텐데 엄자릉이 그때 왜 떠나가고 말았을까 하는 목은 자신의 의아한 심정을 토로한 말이다. 《목은시고》 제30권 맨 처음의 〈청풍시(淸風詩)〉에서도, 엄자릉처럼 청풍과 같은 현인이 세상을 떠나 은거만 하였을 뿐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나라 역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뜻으로, “자릉이 조대에 높이 숨어 산 탓으로, 한나라 구정이 결국엔 또한 옮겨졌다.[子陵釣臺高 漢鼎終亦移]”고 읊은 대목이 나온다.
20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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