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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당(李政堂)에게 부치다. 8수(八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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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와 늙은이가 처음 서로 헤어져 / 紅顔白髮始乖離
몇 번이나 천애를 향해 일찍 오길 바랐던고 / 幾向天涯望早歸
지척거리가 문득 만 리나 멀리 느껴져 / 咫尺却須論萬里
깊은 꿈을 의탁해 맑은 광채 마주할 뿐일세 / 只憑幽夢對淸輝
금성서 우리 서로 종유한 게 꿈속만 같아라 / 錦省相從似夢間
조정을 진동시킨 그 풍채 아직도 놀란다네 / 尙驚風采動朝端
지금은 또 이 어사대의 장관이 되어서 / 如今又是烏臺長
손 물리치고 때때로 문 닫고 홀로 있다오 / 麾客時時獨掩關
익재의 높은 안목은 친혐도 끊어 버리고 / 益齋藻鑑絶嫌親
매양 내 손자는 고인 같다고 자랑했었네 / 每詑吾孫似古人
정당에 초배된 게 비록 늦기는 했지만 / 超拜政堂雖已晚
장차 옥순이 푸른 봄에 비춤을 보리로다 / 行看玉笋照靑春
덕이 있고 글이 있고 말도 또한 잘하여 / 有德有文仍有言
아동들도 모두 익재의 손자를 칭송하니 / 兒童皆誦益齋孫
해과가 열매 더디 맺는 걸 걱정하지 마소 / 勿憂海果遲生子
옥사 잘 판결한 음공이 후손에 미칠걸세 / 決獄陰功及後昆
인편에 전하거나 친히 옴을 논할 것 없이 / 無論遞送與親臨
명함을 얻어보니 기쁨을 금할 수 없네 / 得見名銜喜不禁
오늘은 신년 하례의 평상적인 의식이지만 / 此是賀年恒態爾
의당 한나절이라도 함께 한가히 읊어야지 / 須將半日共閑吟
소년 시절 잠 많기로 나만한 이 없었으니 / 少年耽睡莫如吾
함께 글 읽던 친우들이 어찌 기억 못하랴 / 燈火同窓記得無
늙고 병들어 비로소 겨울밤 긴 걸 알았네 / 衰病始知冬夜永
닭소리 기다리며 마른 등걸처럼 앉았노라 / 候雞危坐似枯株
수년을 병으로 누워 궁려에서 탄식했는데 / 數年臥病嘆窮廬
또 새봄이 반달 남짓 된 것을 보았네 / 又見新春半月餘
관도는 아주 평탄하고 산길은 좁으니 / 官道砥平山路狹
본래부터 친구 행차가 왕림하기 어려웠지 / 由來難枉故人車
정원의 늙은 나무를 하얗게 쪼아대어라 / 園中老樹白錭鎪
딱따구리가 날아와서 제멋대로 구는구나 / 啄木飛來得自由
한창 광대히 불어오는 동풍에게 묻노니 / 爲問東風方浩蕩
붉은 꽃 푸른 잎을 가지 위에 피게 할는지 / 肯敎紅綠上枝頭
[주D-001]친혐(親嫌) : 남들로부터 친속(親屬)이기 때문에 사정(私情)을 둔다는 혐의를 받게 됨을 이른다.
[주D-002]옥순(玉笋) : 수많은 영재(英才)가 줄을 이음을 뜻한다.
[주D-003]해과(海果)가 …… 걸 : 해과는 창해(滄海) 가운데 있는 도삭산(度朔山)에서 나는 큰 복숭아를 이르는데, 이 복숭아는 3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여기서는 아들이 늦음을 비유한다.
나 판사(羅判事)의 시권(詩卷)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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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벽의 마음은 갈수록 청고하고 / 氷蘗心彌苦
시서의 분위기는 절로 화려하네 / 詩書氣自華
장양궁에서 자주 필찰을 내리니 / 長楊頻給札
지어 올리고 밤에야 집엘 가누나 / 奏罷夜還家
[주D-001]빙벽(氷蘗) : 얼음과 황벽나무를 가리키는데, 차가운 얼음을 마시고 매우 쓴 황벽나무를 먹는다는 뜻으로, 청고(淸苦)한 생활을 잘 견뎌 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장양궁(長楊宮)에서 …… 내리니 : 사 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천자(天子)에게 〈상림부(上林賦)〉를 짓겠다고 청하자, 천자가 이를 허락하고 상서(尙書)로 하여금 필찰(筆札)을 내리게 한 데서 온 말로, 조정의 문사(文士)에 대한 임금의 특별한 예우(禮遇)를 의미한다.
매화(梅花)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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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같은 정신에 빙설 같은 모습으로 / 秋水精神氷雪容
요대의 달빛 아래 처음 서로 만났도다 / 瑤臺月下始相逢
나도 시 지어 써서 서호를 압도하려 하니 / 題詩欲壓西湖倒
종이 가득 굼틀대는 자획이 짙고 옅고 하누나 / 滿紙蛟蛇墨淡濃
섣달 다한 강 남쪽에 경치가 새로워져서 / 臈盡江南景物新
물가의 곳곳마다 먼지 없이 깨끗하여라 / 水邊處處淨無塵
동쪽에 와서 이미 유랑의 한을 품었는데 / 東來已抱流離恨
변방에 또 이렇게 춘광을 베풀어 주누나 / 又是宣光塞外春
[주D-001]나도 …… 하니 : 서 호(西湖)는 송(宋)나라 때 서호의 고산(孤山)에 은거했던 처사(處士) 임포(林逋)를 가리킨다. 임포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아래 부동하누나.[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라고 한 시구가 매우 회자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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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바야흐로 와신상담을 하고 / 勇士方嘗膽
충신은 가슴을 부수려고 하는데 / 忠臣欲碎胷
오구는 쌓인 눈 위에 번쩍거리고 / 吳鉤明積雪
제운은 깊은 겨울에 발동하누나 / 齊霣發深冬
사책엔 재앙이 어찌 그리 잦은고 / 史冊災何疊
군영은 형세가 스스로 중하고말고 / 軍營勢自重
정공이 의당 길이 죽지 않으리 / 鄭公當不死
곡령에 푸른 소나무 울창하여라 / 鵠嶺鬱靑松
[주D-001]오구(吳鉤) : 옛날 오(吳)나라의 고검(古劍) 이름이다.
[주D-002]제운(齊霣) : 옛날 제(齊)나라에서는 뇌(雷)를 운(霣)이라 하였으므로, 천둥을 가리키는데, 예로부터 겨울에 울리는 천둥을 재앙으로 여겼다.
흥취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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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산은 참으로 권력을 부리는구나 / 靑山眞箇是招權
문만 열면 때때로 책상 앞에 서네그려 / 排闥時時立案前
모든 일이 앞에 당하면 의당 참아야 하리 / 萬事當頭須地忍
한 마음 스스로 만족함이 되레 천연이라오 / 一心自足却天然
강가 누각의 달빛은 감로사가 생각나고 / 江樓月色思甘露
돌솥의 차 끓는 소리는 묘련사가 기억나네 / 石竈松聲憶妙蓮
역력한 옛 놀이터에 푸른 이끼만 끼었어라 / 歷歷舊遊蒼蘚合
노파는 신선 끼고 노닒을 부러워했었네 / 老坡曾羨挾飛仙
[주D-001]돌솥의 …… 기억나네 : 익 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쓴 묘련사조순암석지조기(妙蓮寺趙順菴石池竈記)의 대략에 의하면, “삼장(三藏) 순암 법사(順菴法師)가 왕(王)의 분부를 받들어 풍악(楓岳)의 불사(佛祠)에서 복을 빌고는 인하여 한송정(寒松亭)을 구경하였는데, 그 위에 석지조가 있어 그 고장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체로 옛사람들이 차를 달여 마시던 곳이라 했는데 어느 시대에 만든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이때 법사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어렸을 적에 일찍이 묘련사(妙蓮寺)에서 두 바윗덩이가 풀 속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양을 상상컨대 어쩌면 이것이 아닐까?’ 하고, 돌아와서는 바로 그것을 찾아보니 과연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는, 사방을 말[斗]처럼 모나게 다듬고 가운데를 확[臼]처럼 팠으니, 이는 샘물을 담으려고 만든 것이며, 밑에는 주둥이처럼 구멍을 냈으니, 이는 열고 찌꺼기를 씻어 낸 다음 다시 막아 샘물을 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두 군데가 오목하게 생겼는데, 둥근 데는 물을 담는 곳이고, 타원형으로 된 데는 그릇을 씻는 곳이며, 또 한 구멍을 조금 크게 내어 둥근 데와 통하게 하였으니, 이는 바람이 들어오게 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모두 합하여 ‘석지조’라 명명했다.” 하였다.
[주D-002]노파(老坡)는 …… 부러워했었네 : 노파는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가리키는데, 그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나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닌다.[扶飛仙以遨遊]” 한 것을 이른 말이다.
즉사(卽事)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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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경치는 흐린 눈을 맑게 하고 / 淑景淸昏眼
빼어난 꽃 향기는 병든 창자에 드네 / 孤芳入病肝
떨기 이슬은 영벽이 어린 듯하고 / 露叢凝郢碧
고운 꽃잎은 현란한 진단 같구나 / 晴萼炫辰丹
학을 놓으니 하늘이 너른 줄 알겠고 / 放鶴知天闊
중을 찾으러 길이 마르길 기다리네 / 尋僧候路乾
그윽한 회포가 절로 거리낌 없으니 / 幽懷自無累
누가 어찌 악의로써 나를 범하리요 / 非意豈相干
출처는 의당 특립독행하여야 하고 / 出處宜孤立
몸과 명성은 둘 다 온전해야 하기에 / 身名要兩全
작급 더해짐이 오히려 걱정되거늘 / 尙憂加爵級
감히 찬전 내리기를 바랄쏜가 / 敢望賜餐錢
진퇴는 누가 그 입장을 만드는고 / 進退誰爲地
행장은 절로 하늘에 달려 있다네 / 行藏自有天
병중에 날마다 기록한 건 많으나 / 病中多日錄
이것이 귀전록을 이은 게 아니라오 / 不是續歸田
밤에 선의를 입고 앉았노라니 / 夜擁禪衣坐
흡사 선정에 들어간 중 같구나 / 端如入定僧
고양이는 다스운 자리를 같이하고 / 狸奴同煖席
요강은 쇠잔한 등불을 함께하네 / 虎子共殘燈
소나무 끝엔 바람소리 가늘고 / 松杪風聲細
매화꽃엔 달빛이 어리었는데 / 梅花月色凝
다만 지금 고상한 흥미를 / 只今淸興味
쓰려 해도 비길 데가 없네그려 / 欲寫却難憑
[주D-001]영벽(郢碧) : 초(楚)나라에서 나는 벽옥(碧玉)을 가리킨다.
[주D-002]진단(辰丹) : 진주(辰州)에서 나는 단사(丹砂)를 가리킨다.
[주D-003]찬전(餐錢) : 반식전(飯食錢)과 같은 뜻으로, 식읍(食邑)을 말한다.
[주D-004]귀전록(歸田錄) :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지은 책 이름인데, 그가 치사(致仕)한 뒤에 전사(田舍)에 돌아가 지내면서, 일찍이 문견(聞見)했던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자하동(紫霞洞)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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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뒤의 신세가 세속 인연 끊어 버리고 / 病餘身世絶塵緣
사물로 회포 일으키니 도리어 실망스럽네 / 寓物興懷却惘然
북령은 침침해라 소나무가 안개 띠었고 / 北嶺沈沈松帶霧
남강은 아득해라 물 위에 연기가 떠 있네 / 南江渺渺水浮烟
충계의 득실은 누가 그 사정을 이해할꼬 / 蟲雞得失誰爲地
붕안의 자적함은 절로 자연이 있다오 / 鵬鷃逍遙自有天
어느 날에나 퉁소 한 번 잡아 불면서 / 何日洞簫吹一捻
자하동 깊은 곳에 가서 신선을 찾을거나 / 紫霞深處去尋仙
[주D-001]충계(蟲雞)의 득실 : 계 교할 것도 없는 사소한 득실을 비유한 말이다. 두보(杜甫)의 〈박계행(縛雞行)〉에, “종이 닭 묶어 시장으로 팔러 나가니, 묶인 닭들이 서로 다투어 떠들어 대네. 집에서는 닭이 벌레 잡아먹는 것만 싫어하고, 닭도 팔리면 삶길 것은 알지 못하누나. 벌레와 닭이 사람에게 무슨 후박이 있으랴, 나는 종을 꾸짖어 묶은 닭을 풀게 하였네. 닭과 벌레의 득실은 끝날 때가 없으리, 찬 강물 굽어보며 산각에 기대 있노라.[小奴縛雞向市賣 雞被縛急相喧爭 家中厭雞食蟲蟻 不知雞賣還遭烹 蟲雞於人何厚薄 吾叱奴人解其縛雞蟲得失無了時 注目寒江倚山閣]” 하였다.
[주D-002]붕안(鵬鷃)의 자적함 : 붕 안은 붕새와 메추라기를 말한다. 붕새의 등은 태산(泰山)과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아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를 올라가 구름을 벗어나서 푸른 하늘을 등에 진 다음에야 남쪽 바다로 가는데, 아주 작은 메추라기는 오히려 붕새를 비웃으며 말하기를, “저것은 어디를 가는 것일까? 나는 뛰어올라봤자 두어 길도 못 올라서 도로 내려와 쑥대밭 사이에서 맴돌지만, 이런 정도도 최고의 비행이다. 그런데 저것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고 한다는 데서 온 말이다. 《莊子 逍遙遊》
옛일에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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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어 뜻이 클 땐 원유부를 지었는데 / 遠遊曾賦我狂時
아득한 말로에는 심하여라 노쇠함이여 / 末路悠悠甚矣衰
오늘에 어찌 내일의 일을 알 수 있으랴 / 今日安知明日事
노년엔 소년 시절의 시를 많이도 고치네 / 老年多改少年詩
푸른 적삼 다 젖은 건 백거이가 생각나고 / 靑衫濕盡思居易
미인들이 돌아온 건 두목지가 생각나네 / 紅粉回餘憶牧之
사욕이 이미 한 점 없이 사라짐을 기뻐하노니 / 已喜消磨無一點
구하는 곳에 스승이 있음을 비로소 알겠네 / 始知求處有餘師
[주D-001]푸른 …… 생각나고 : 백 거이(白居易)의 〈비파행(琵琶行)〉에, “그중에 눈물을 누가 가장 많이 흘렸나, 강주 사마는 푸른 적삼이 다 젖었다오.[就中泣下誰最多江州司馬靑衫濕]”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백거이가 당 헌종(唐憲宗) 연간에 강주 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어 갔을 때 그곳에서 한 창녀(倡女)를 만나 그의 만년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읊은 것이다.
[주D-002]미인들이 …… 생각나네 : 목 지(牧之)는 두목(杜牧)의 자이다. 두목이 일찍이 병부 상서(兵部尙書)의 연석(宴席)에서 지은 시에, “화려한 집에서 오늘 화려한 자리 열었는데, 그 누가 분사 어사를 불러오게 하였는고. 우연히 미친 말로 온 좌중을 놀래니, 세 줄의 미인들이 일시에 돌아오누나.[華堂今日綺筵開 誰喚分司御史來 偶發狂言驚滿座 三行粉面一時回]” 한 데서 온 말이다.
취중(醉中)에 읊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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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에 문득 화서국을 들어가 보니 / 忽從醉裏入華胥
종전 계획이 매우 서툴렀음을 깨닫겠네 / 始覺從前計甚疎
한 번 서막의 성인에게 맞음은 정히 좋은데 / 政好一中徐邈聖
세 번 올린 퇴지의 편지는 되레 부끄러워라 / 却慙三上退之書
재상 집엔 종일토록 행마를 설치해 두나 / 黃扉永日施行馬
적벽의 청풍 아랜 다행히 고기가 있네 / 赤壁淸風幸有魚
늙어 가매 득실의 귀착점을 알겠거니와 / 老去乘除知落處
본디 천지는 바로 인간의 거저일 뿐일세 / 自來天地是籧篨
사물 이치는 서로 돕는 게 바로 자연이니 / 物理相資是自然
도모한 게 있으면 끝까지 관철해야 하리 / 希求不退要當前
거허가 짐을 지는 건 감초가 좋아서이고 / 巨虛重負憐甘草
불법을 기약하는 건 낙천이 부러워서라네 / 兜率深期羨樂天
조각조각 흰 구름은 맘과 함께 멀기만 하고 / 片片白雲心共遠
겹겹의 푸른 산은 형세가 서로 연하였도다 / 重重靑嶂勢相連
그 가운데 절로 진리가 있는 법이거니와 / 箇中自有眞消息
아동들에 이르노니 함부로 전하지 말거라 / 爲報兒童莫浪傳
[주D-001]화서국(華胥國) : 황제(黃帝)가 낮잠을 자다가 꿈에 화서라는 나라에 가서 그 나라가 이상적으로 잘 다스려진 것을 보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낮잠을 뜻한다.
[주D-002]한 번 …… 좋은데 : 술 에 취함을 뜻한다. 청주(淸酒)를 성인(聖人)이라 하고,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이라 하는데,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서막(徐邈)이 상서랑(尙書郞)으로 있으면서 금주령(禁酒令)에도 불구하고 혼자 술을 마시고 곤드레가 되어 말하기를, “내가 성인에게 맞았다.[中聖人]”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세 번 …… 부끄러워라 : 퇴 지(退之)는 한유(韓愈)의 자이다. 한유가 15세 때 과거(科擧)에 급제했으나 출사(出仕)하지 못하여, 당시의 재상(宰相)에게 세 번이나 편지를 올려 등용해 주기를 간청했지만 끝내 보답이 없으므로, 마침내 동(東)으로 돌아가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행마(行馬) : 귀인(貴人)의 집이나 관서(官署)의 문 앞에 설치한, 말을 매어두는 도구를 말한다.
[주D-005]적벽(赤壁)의 …… 있네 : 소식(蘇軾)의 〈후적벽부(後赤壁賦)〉에 의하면, 달 밝고 바람 시원한 밤에 술과 고기를 준비하여 다시 적벽 아래서 놀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거저(籧篨) : 갈 대나 대를 엮어서 만든 거친 자리[粗席]를 말한 것으로, 즉 천지(天地)는 인간에게 있어 덮고 까는 자리와 같음을 의미한 것이다. 유령(劉伶)의 〈주덕송(酒德頌)〉에 “하늘을 천막으로 삼고 땅을 자리로 삼는다.[幕天席地]”고 한 것도 바로 그런 뜻이다.
[주D-007]거허(巨虛)가 …… 좋아서이고 : 거 허는 본디 달리기를 잘하는 짐승인데, 궤(蹷)라는 짐승은 앞발은 짧고 뒷발은 길고 커서 잘 달리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거허가 좋아하는 감초(甘草)를 취하여 거허에게 먹여 주고, 급한 일이 생기면 거허의 등에 업혀서 달아나곤 한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상호 의존의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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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황룡부를 바라다보니 / 渺渺黃龍府
두 눈의 시야가 다시 차가워라 / 雙眸望更寒
가한의 산은 가장 멀기만 한데 / 可汗山最遠
구탈에는 해가 막 지려 하누나 / 區脫日初殘
건장한 부인은 전장을 주관하고 / 健婦專氈帳
귀여운 아이는 낙타 등에 앉았네 / 嬌兒跨肉鞍
하늘의 마음은 주장함이 없기에 / 天心定無主
끝내는 절로 순환하는 거로세 / 畢竟自循環
도성 거리에 일기가 화창하니 / 九街天日好
왕래하는 이 옷자락이 너울거리네 / 來往共婆娑
바람은 푸른 실 재갈을 움직이고 / 風動靑絲鞚
꽃은 붉은 옥 굴레에 나는구나 / 花飛紫玉珂
은근한 정은 죽은 말을 묻어주고 / 殷勤埋死馬
줄을 잇는 건 산 거위 선물이로다 / 絡繹饋生鵝
그 어느 나귀 탄 나그네는 / 何物騎驢客
외로이 읊으며 그리도 자부하는고 / 孤吟自負多
[주D-001]가한(可汗) : 몽고(蒙古)ㆍ돌궐(突厥)ㆍ회흘(回紇) 등 민족의 왕(王)을 일컫는 호칭인데, 전하여 그들 나라를 뜻한다.
[주D-002]구탈(區脫) : 북호(北胡)들이 땅을 파서 만든, 한(漢)나라를 찰후(察候)하던 토실(土室)을 말한다.
[주D-003]전장(氈帳) : 모전(毛氈)의 장막(帳幕)으로 꾸민 북호들의 옥사(屋舍)를 가리킨다.
[주D-004]죽은 말을 묻어주고 : 공 자(孔子)가 자신이 기르던 개가 죽자, 자공(子貢)에게 개를 묻어주라고 하면서 이르기를, “내 들으니, 해진 휘장을 버리지 않는 것은 말을 묻어주기 위함이요, 해진 수레 차일을 버리지 않는 것은 개를 묻어주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나는 가난하여 수레 차일이 없으니, 거적자리를 많이 깔아 주어서 머리가 흙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산 거위 선물이로다 : 전국 시대 제(齊)나라 진중자(陳仲子)는 청렴한 선비로 이름이 높았는데, 세경(世卿)인 자기 형 대(戴)가 남에게서 산 거위[生鵝]를 선물로 받았다 하여 이를 몹시 불쾌하게 여겼던 데서 온 말로, 즉 뇌물을 뜻한다.
[주D-006]그 …… 자부하는고 : 당 (唐)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한창 고심하여 시를 읊조릴 적에는 나귀를 타고 길을 가다가 공경(公卿) 등 귀인(貴人)을 만나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는데, 하루는 그가 경조 윤(京兆尹) 한유(韓愈)를 길에서 만났는데도 나귀 등에 앉은 채 피하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시를 읊는 데에 심취한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매화(梅花)를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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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엔 이미 손의 발자국 소리 끊어졌어라 / 門前已絶足音跫
흰 머리털 헝클어진 한 목은 늙은이로세 / 白髮鬅鬙一牧翁
부귀는 소년에게 절로 옴이 참으로 괴롭고 / 富貴少年眞苦逼
문장은 병이 많아 잘하지 못한 게 한스럽네 / 文章多病恨難工
정자 주자의 도학은 천명을 다하였고 / 程朱道學窮天命
이백 두보의 재명은 국풍을 뒤따랐네 / 李杜才名騁國風
기억하건대 매화는 지금 한창 좋아서 / 記得梅花今政好
꽃동산의 봄빛이 어둠 속에 붉겠구려 / 花園春色窨中紅
팽상의 말은 허탄하니 경배에 맡기려니와 / 彭殤虛誕任傾培
강물은 동으로 흘러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네 / 江水東流不復回
굳은 절개 일편단심은 천지처럼 광활한데 / 素節丹心天地闊
흰 구름 푸른 산은 그림처럼 펼쳐 있구려 / 白雲靑嶂畫圖開
전원은 정히 한가로이 가기에 좋겠거니와 / 田園政好悠然逝
문 앞엔 언제 현달한 이가 온 적이 있었던가 / 門巷何曾顯者來
괴이해라 눈 어둔 게 봄에 더욱 심해짐은 / 怪底眼昏春更甚
다만 한 가지 매화를 보지 못한 때문일세 / 只緣不見一枝梅
[주D-001]부귀(富貴)는 …… 괴롭고 : 북 주(北周)의 무제(武帝)가 문사(文詞)에 뛰어난 양소(楊素)를 가상히 여겨 일찍이 그에게 이르기를, “경은 상(相)이 좋으니 스스로 힘쓸 것이요, 부귀하지 못할까는 걱정하지 말라.” 하니, 양소가 대답하기를, “신은 다만 부귀가 신에게 절로 오는 것을 염려할 뿐이요, 부귀를 도모할 마음은 없습니다.[臣但恐富貴來逼臣臣無心圖富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팽상(彭殤)의 말 : 《장 자》 제물론(齊物論)에, “천하에 털끝보다 더 큰 것이 없을 수도 있고, 태산이 아주 작은 것이 될 수도 있으며, 상자보다 더 장수한 자가 없을 수도 있고, 팽조가 요절했다고 할 수도 있다.[天下莫大於秋毫之末 而大山爲小 莫壽乎殤子 而彭祖爲夭]” 한 데서 온 말인데, 상자는 20세 이전에 요절한 아이를 통틀어 말하고, 팽조(彭祖)는 800세를 살았다는 상고(上古)의 선인(仙人)이다.
[주D-003]경배(傾培) : 《중 용장구(中庸章句)》 제17장에, “하늘이 만물을 내는 데는 반드시 그 바탕을 인하여 후하게 하나니, 그러므로 심어져 있는 것을 길러 주고, 기울어진 것을 엎어 버린다.[天之生物 必因其材而篤焉 故栽者培之 傾者覆之]” 한 데서 온 말이다.
명선(明善) 선생을 받들어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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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림해 준 노고를 길이 생각하노니 / 永懷勞玉趾
내 처음 병나서 금경사에 누웠었네 / 始病臥金經
뜨락의 나무는 바람을 머금어 푸르고 / 庭樹含風碧
처마의 소나무는 해를 가려 푸르러라 / 簷松蔽日靑
살림살이는 세 번 집을 옮기었고 / 生涯三徙室
세월은 다섯 번 해가 바뀌었구려 / 歲律五移星
몇 번이나 미친 흥취를 타서 / 幾度乘狂興
병을 무릅쓰고 찾아뵈려 했던고 / 扶輿欲拜庭
스스로 읊다. 4수(四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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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좋아하는 것이 남들과 달라서 / 平生嗜好與人殊
병중의 회포가 스스로 즐기기에 넉넉하네 / 病裏情懷足自娛
침상 앞의 흰 구름은 먼 봉우리서 나오고 / 晝榻白雲生遠岫
새벽 창의 찬 이슬은 오동에서 떨어지누나 / 曉窓寒露滴高梧
좌석 모신 학동은 몸이 온통 먹빛이요 / 書童侍座身將墨
집에 온 늙은 의원은 성이 바로 주씨라네 / 醫老過門姓是朱
천지가 태평한 곳이 가장 사랑스러우니 / 最愛乾坤呈露處
찾아올라서 곧장 요순 시대에 이르고파라 / 相尋直欲到唐虞
부자가 안회 어짊 감탄한 걸 진작 알거니와 / 早知夫子歎回賢
찬앙의 공부는 갑자기 전후한 데 깊었었네 / 鑽仰功深後忽前
지금 내 나이는 오십여 세가 되었건만 / 政是行年餘五十
언제 삼천의 예를 다 실천한 적 있던가 / 何曾蹈禮盡三千
취한 뒤의 방탕함은 깬 뒤에 기억 못하고 / 醉來放蕩醒難記
싸움은 번화에 밀려 지킴이 견고치 못하네 / 戰退繁華守未堅
가장 한스러운 건 글 읽어 소득 없는 곳에 / 㝡恨讀書無得處
백발의 신세가 다 망연자실뿐인 것이로다 / 白頭身世儘茫然
밤 기운이 차서 혈액 순환도 잘 안 되는데 / 血不歸肝夜氣凝
계집애는 잠결에 억지로 등불을 돋우네 / 小娥帶睡强挑燈
종횡의 문자는 그 누가 제일이었던고 / 縱橫文字知誰最
정정의 공부는 어찌 내가 능히 하리요 / 定靜功夫豈我能
창 틈으로 보인 별빛은 밝은 빛 한 점이요 / 窓隙星光明一點
베개 밑의 산 빛은 푸르름이 천 층이로다 / 枕頭山色翠千層
두문불출 수년에도 입은 열고 말을 하니 / 閉門數載猶開口
도리어 그 당시 늙은 앉은뱅이 중 같구나 / 却似當時老躄僧
백발이라 연래의 기개를 스스로 조소하노니 / 垂白年來氣自調
세교는 저러한데 진정의 사귐은 적구려 / 勢交如彼少心交
영유의 패망한 일은 온통 꿈만 같고요 / 嬴劉顚蹶渾如夢
왕사의 풍류는 정히 조정에 가득하도다 / 王謝風流政滿朝
못 가운데 물고기가 피곤하단 말 모두 믿으니 / 摠信池中魚圉圉
반드시 높은 언덕에 봉황이 날게 하리라 / 會敎岡上鳳飄飄
다만 지금 내 신세는 누구에게 물어 볼꼬 / 祇今身世憑誰問
남쪽 멀리 고향의 산 한 점을 바라보노라 / 南望鄕山一點遙
또 짓다. 2수(二首)
평생에 옛것을 좋아한다 일컫노니 / 平生稱好古
수시로 변천하는 풍속이 한스럽네 / 風俗嘆移時
성인의 도는 글 속에서 찾거니와 / 聖道書中覓
인정은 날이 추워진 뒤에야 안다오 / 人情歲後知
청산은 마치 약속이 있는 듯한데 / 靑山如有約
백일은 정히 사심이 없도다 / 白日正無私
다행히도 시 짓는 세계가 있기에 / 賴是詩家地
참으로 노년을 의탁할 만하구나 / 眞堪托老衰
시비는 스스로 풀기 어렵고 / 是非難自解
마음속은 하늘만이 안다네 / 方寸只天知
병중엔 의당 별다른 일이 없어 / 病裏無餘事
한가할 때엔 예전 시를 고친다오 / 閑中改舊詩
구름 걷히니 하늘은 더욱 멀고 / 雲收天更遠
산이 고요하니 해는 옮아가려 하네 / 山靜日將移
패옥 떨구고 관 벗은 곳에 / 落佩倒冠處
때때로 두목지를 찾노라 / 時時尋牧之
[주D-001]부자(夫子)가 …… 걸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도시락밥 한 그릇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시골에서 살되, 남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회는 그 낙을 고치지 않으니, 어질도다, 회여.[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하였다. 《論語 雍也》
[주D-002]찬앙(鑽仰)의 …… 깊었었네 : 안 연(顔淵)이 일찍이 공자의 도(道)가 한없이 깊고 큼을 감탄하여 말하기를, “우러러볼수록 높기만 하고, 뚫을수록 견고하기만 하며, 쳐다보매 앞에 있더니, 갑자기 뒤에 있기도 하도다. 부자께서 순순히 사람을 잘 가르쳐 인도하사, 문으로써 나를 넓혀 주시고, 예로써 나를 요약해 주시었다.[仰之彌高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然在後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주D-003]삼천(三千)의 예 : 《예기(禮記)》에, “경례가 삼백 가지이고, 곡례가 삼천 가지이다.[經禮三百 曲禮三千]” 하였다.
[주D-004]싸움은 …… 못하네 :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밖에 나가서는 외물(外物)의 화려함을 보고 기뻐하고, 들어가서는 부자(夫子)의 도를 듣고 좋아하여,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서로 싸워서 스스로 결단하지 못한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정정(定靜)의 공부 : 《대학장구(大學章句)》 경 1장(經一章)에, “뜻이 정해진 다음에 마음이 고요해진다.[定而后能靜]”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세교(勢交) : 권세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교제를 말한다.
[주D-007]영유(嬴劉)의 패망한 일 : 진(秦)나라와 한(漢)나라가 패망한 것을 가리킨다. 영은 진나라의 성이고, 유는 한나라의 성이다.
[주D-008]왕사(王謝)의 풍류 : 왕사는 육조(六朝) 시대의 망족(望族)이었던 왕씨와 사씨를 합칭한 말이다.
[주D-009]못 …… 믿으니 : 군 자는 이치에 맞는 말로 속일 수 있음을 뜻한다. 춘추 시대 정(鄭)나라 대부 자산(子産)에게 어떤 이가 산 물고기 두 마리를 선물로 보내자, 자산이 그것을 차마 죽일 수 없어 교인(校人)을 시켜 고기를 못에 놓아주게 했는데, 교인이 물고기를 삶아 먹어버리고는 자산에게 복명하기를, “처음 막 놓아주었을 때는 고기가 약간 피곤한 기색을 보이더니, 조금 뒤에는 활발해져서 깊은 곳으로 쑥 들어가더이다.” 하니, 자산이 말하기를, “제 살 곳을 얻었구나, 제 살 곳을 얻었구나.”라고 감탄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上》
[주D-010]반드시 …… 하리라 : 《시경(詩經)》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이 훨훨 날아, 저 높은 언덕에서 울도다.[鳳凰鳴矣 于彼高岡]” 한 데서 온 말로, 현사(賢士)들이 조정에 모여듦을 의미한다.
[주D-011]인정(人情)은 …… 안다오 : 공자가 이르기를, “날이 추워진 다음에 송백이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淍也]” 한 데서 온 말로, 어려운 일을 당해본 다음에야 사람의 지조를 알 수 있음을 뜻한 말이다. 《論語 子罕》
[주D-012]청산(靑山)은 …… 듯한데 : 소식(蘇軾)의 시에, “청산은 약속이 있는 양 길이 문에 당해 있고, 유수는 아무 뜻 없이 절로 못으로 들어가네.[靑山有約長當戶 流水無情自入池]” 하였다.
[주D-013]패옥 …… 찾노라 : 벼 슬을 그만두고 은거함을 뜻한다. 두목(杜牧)의 〈만청부(晚晴賦)〉에, “나 같은 사람은 어떠한가? 관 벗고 패옥 떨어뜨려 세상과 서로 멀어져서, 유유자적하여 참으로 그 어리석음을 좇아 은거하는 자로다.[若予者則爲何如 倒冠落佩兮與世疎闊敖敖休休兮眞徇其愚而隱居者乎]” 한 데서 온 말이다.
장난삼아 정 첨서(鄭簽書) 연형(年兄)에게 주면서 지난번의 운을 사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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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세상살이 득실을 맛보았지만 / 崎嶇世味試沈升
청수해도 다행히 의복은 아직 이긴다오 / 淸瘦衣裳幸已勝
현허하긴 진나라 왕연같다고 자부하는데 / 自負玄虛如晉衍
남들은 당나라 위징처럼 아첨한다 하누나 / 人言媚嫵似唐徵
해방의 풍속을 물어라 솔이 일산처럼 기울고 / 海邦問俗松傾蓋
산군에서 시 읊을 땐 달빛으로 등불을 삼네 / 山郡哦詩月作燈
청룡사에서 일찍이 향화사를 결성했으니 / 香火靑龍曾結社
조계산 한 굽이에 다시 혜능을 스승삼았네 / 曹溪一曲更師能
또
달게 자던 가운데 해가 막 떠올랐는데 / 黑甛鄕裏日初升
멀리 음식 보내 주니 기쁘기 한량없네 / 遠餉衰翁喜不勝
불같이 배고파 침 흘리니 기제를 이루었고 / 饑火饞涎成旣濟
비바람이 알맞음은 이것이 좋은 징조로세 / 慳風嗇雨是休徵
잠잘 때는 강피 덮고 두 베개 나란히 하고 / 秋眠姜被聯雙枕
밤에는 한문 읽으며 한 등잔 함께하였네 / 夜讀韓文共一燈
아들을 잘 가르쳐 과거에 장원했으니 / 敎誨郞君魁桂牓
좌선의 남은 힘으로 재능이 많아졌구려 / 坐禪餘力却多能
[주D-001]현허(玄虛)하긴 …… 자부하는데 : 현허는 현묘하고 허무함을 이르는 말로, 노장(老莊)의 학설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왕연(王衍)이 항상 노장의 학설을 위주로 하여 청담(淸談)을 잘했다고 한다.
[주D-002]남들은 …… 하누나 : 당 태종(唐太宗)이 일찍이 단소루(丹霄樓)에서 주연을 베풀고 술을 마시던 중에 크게 웃으면서 이르기를, “남들은 위징(魏徵)의 거동이 거칠고 완만하다고 하나, 나는 그가 아첨하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하니, 위징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신에게 말을 하도록 인도하시므로 감히 말씀을 드리는 것이요, 만일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신이 감히 자주 역린(逆鱗)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주D-003]청룡사(靑龍寺)에서 …… 결성했으니 : 백거이(白居易)가 치사(致仕)한 뒤에 향산(香山)의 중 여만(如滿)과 함께 향화사(香火社)를 결성했던 데서 온 말이다. 향화사는 불도(佛道)를 수행(修行)하는 단체이다.
[주D-004]조계산(曹溪山) …… 스승삼았네 : 선종(禪宗)의 제6조(第六祖)인 혜능 선사(慧能禪師)가 맨 처음 조계산 보림사(寶林寺)에서 설법(說法)을 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5]불같이 …… 이루었고 : 기제(旣濟)는 《주역(周易)》의 괘(卦) 이름인데, 물이 불 위에 있는 것[水在火上]이 기제괘의 상이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6]강피(姜被) : 후한(後漢) 때 강굉(姜肱) 형제가 한이불을 덮고 자면서 서로 화목하게 지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음을 뜻한다.
[주D-007]한문(韓文) : 한유(韓愈)의 문장(文章)을 가리킨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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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 여윈 몸 길이 고통을 호소하는데 / 長呼救苦一身癯
누각 위의 향 연기는 수묵 그림 같아라 / 樓上香烟水墨圖
장송의 거센 바람은 지붕 위에 부르짖고 / 風急長松號屋角
봄추위에 쌓인 눈은 마당 구석에 가득하네 / 春寒積雪滿庭隅
새 시는 자주 고쳐 줄이 온통 시커멓고 / 新詩屢改行渾黑
주역은 처음 보느라 구절마다 주묵을 치네 / 古易初看句帶朱
스스로 부끄러워라 아픈 뒤에도 건재한 건 / 自愧病餘猶健在
흥취가 도연명 사영운과 다르지 않음일세 / 興來陶謝不枝梧
잡흥(雜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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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작질은 내 바람이 아니거니와 / 峻秩非吾望
덧없는 인생은 스스로 편키 어려워라 / 浮生難自休
병중엔 흐르는 세월 슬퍼했는데 / 病中悲歲月
분수 밖에 춘추관 영사가 되었네 / 分外領春秋
백발은 때로 거울 속에서 보이는데 / 白髮時看鏡
청산은 날로 누각에 가득하구나 / 靑山日滿樓
임금 걱정하는 마음 아직도 간절한데 / 憂君心尙切
하늘의 명은 참으로 유유하기만 해라 / 天命信悠悠
이른 봄에 예전의 놀이를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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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은 시 생각으로 온종일 집중하고 있는데 / 牧隱詩情盡日凝
동풍이 맑은 물에 불어 얼음을 녹이려 하네 / 東風吹淥欲消氷
봄꿈을 불러 깨운 건 마음 없는 새이고 / 喚回春夢無心鳥
산행을 앉아 센 이는 머리털 있는 중이로다 / 坐數山行有髮僧
감악산 삼각산엔 구름이 아직 뭉쳐 있고 / 紺嶽華峯雲尙合
단애의 동도에는 달이 처음 올라오누나 / 丹崖桐島月初升
자장의 소탈하고 광대한 문장 기운은 / 子長疎蕩文章氣
만고에 모름지기 자서에서 보아야 하리 / 萬古須將自序憑
[주D-001]머리털 있는 중이로다 : 송(宋)나라 때 태학(太學)을 유발두타사(有髮頭陀寺)라 일컬었는데, 그것은 생활의 청고(淸苦)함이 승사(僧舍)와 같기 때문에 이른 말로, 전하여 생활이 청고한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2]자장(子長)의 …… 하리 : 자장은 한(漢)나라 태사령(太史令) 사마천(司馬遷)의 자인데, 그가 지은 자서(自序)가 《사기(史記)》의 맨 끝에 실려 있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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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단평(月旦評)은 본래부터 억양이 있었거니와 / 月旦由來是抑揚
때로는 숨은 덕이 그윽한 빛을 토해 낸다오 / 有時潛德吐幽光
연로한 자 뒤에 있음은 자갈과 같고요 / 衰遲在後同砂礫
소장한 자 앞에 있음은 쭉정이와 같다네 / 少壯居前似粃糠
늙은 중은 악취가 많다고 다들 말하거니와 / 盡說老胡多臭氣
철석 간장의 용감한 사내는 그 누가 알리요 / 誰知好漢似剛腸
백이도 아니요 유하혜도 아닌 중화의 곳에 / 不夷不惠中和處
마음을 부여하면 그 맛이 가장 진진하리라 / 付與天君味最長
시의 맛이 비록 쓰고도 달다고는 하지만 / 詩味雖然苦且甘
야호선의 굴에는 빠지지 말게 해야지 / 野狐禪窟莫敎參
강운의 배율은 혹 오백 자를 얽기도 하나 / 韻强排律或五百
옛 격조의 의고시는 겨우 이삼에 불과하네 / 調古擬詩才二三
태평성대의 풍월은 병 속에 담겨 있고 / 太平風月藏壺底
여사로 삼은 문장은 천하에 제일이로다 / 餘事文章擅斗南
천재 아래서 요순 시대 갱가를 불러라 / 馳騁賡歌千載下
어느 날에나 벼슬을 그만둘는지 모르겠네 / 未知何日脫征驂
지난 운수 분명하여 참된 술수 징험했는데 / 數往明明驗術眞
세정은 백두의 새로움을 면하기 어려워라 / 世情難免白頭新
성관이나 역옹에게 팔자는 물어보거니와 / 星官歷翁問八字
갑장이나 연형은 몇 사람이나 남았는고 / 甲長年兄知幾人
방랑하는 형체는 사물과 동등시하려는데 / 放浪形骸欲齊物
노쇠한 치아와 머리털은 또 봄을 만났네 / 衰遲齒髮又逢春
남산이 문에 당한 집에 혼자 높이 앉아서 / 南山當戶自偃蹇
술 있어 따라마시니 세속의 거리낌 없어라 / 有酒對酙無俗塵
[주D-001]월단평(月旦評) : 후한(後漢) 때 허소(許劭)가 매월 초하루마다 품제(品題)를 정하여 향당(鄕黨)의 인물을 비평했던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연로한 …… 같다네 : 진 (晉)나라 때 손작(孫綽)은 성품이 활달하고 조롱을 좋아했는데, 일찍이 습착치(習鑿齒)와 함께 길을 갈 적에 손작이 앞서가면서 습착치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곡식을 일면 자갈은 뒤에 남는 것이다.[沙之汰之 瓦石在後]” 하니, 습착치가 대꾸하기를, “곡식을 키로 까불면 쭉정이는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簸之颺之粃糠在前]”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백이(伯夷)도 …… 아닌 : 백이는 성지청자(聖之淸者)이고 유하혜(柳下惠)는 성지화자(聖之和者)로서 모두 한편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004]야호선(野狐禪) : 선학(禪學)을 닦아 아직 진리를 증오(證悟)하지 못한 처지에서 마치 진리를 증오한 것처럼 속여 행세하는 자를 야호(野狐)에 비유하여 욕하는 말이다.
[주D-005]태평성대의 …… 있고 : 후 한(後漢) 때 호공(壺公)이라는 선인(仙人)이 시장에서 매일 약을 팔다가 석양이 되면 점포 머리[肆頭]에 달아 놓은 병 속으로 뛰어들어가곤 하므로, 그것을 본 비장방(費長房)이 한번은 그를 따라 병 속으로 들어가 보니, 하나의 별천지(別天地)가 있더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6]세정(世情)은 …… 어려워라 : 젊어서부터 백발이 되도록 오랫동안 사귀었어도 깊은 마음을 서로 알아주지 못하면 새로 사귄 벗이나 다름이 없음을 이른 말이다.
[주D-007]사물(事物)과 동등시하려는데 : 우주 사이의 모든 사물에 대한 생사(生死)의 수요(壽夭), 시비(是非)의 득실(得失), 물아(物我)의 유무(有無) 등에 관해서 모두를 동등하게 간주하는 장자(莊子)의 사상에서 온 말이다.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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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는 다니는 사람이 적고 / 山下少人行
산꼭대기에는 눈이 성에 가득한데 / 山頭雪滿城
형체를 숨겨라 장차 맹렬히 공격하려고 / 匿形將鷙擊
풀피리 불어라 이미 용이 울었네 / 吹角已龍鳴
달빛은 이별가 속에 차갑고 / 月冷驪駒曲
구름은 장군 진영에 깊어라 / 雲深驃騎營
어찌하면 화살같이 정직하여 / 何當直如矢
모두 함께 태평성대를 누려 볼꼬 / 絡繹共升平
[주D-001]풀피리 …… 울었네 : 황제(黃帝)가 치우(蚩尤)와 싸울 때 군중(軍中)에 명하여 풀피리를 불어서 용(龍)의 울음소리를 내게 했던 일을 말한다.
이른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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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숲의 새는 부디 제호를 권하지 말라 / 幽禽且莫勸提壺
자세히 들으니 되돌아가길 재촉한 듯하네 / 細聽還疑促返塗
시냇물은 티끌 없어 맑게 스스로 비추고 / 溪水無塵淸自照
들 매화는 눈 마주해 찬 것이 서로 붙드누나 / 野梅對雪冷相扶
찬 소리 걸상에 울려라 바람이 대를 두드리고 / 寒聲入榻風敲竹
푸른 그림자 문에 당해라 해가 오동에 옮기었네 / 翠影當窓日轉梧
정회와 경계 둘 다 잊는 걸 누가 깨달았던고 / 情境兩忘誰領得
마른 등걸처럼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로다 /
[주D-001]깊은 …… 말라 : 제 호(提壺)는 제호로(提壺蘆)라는 새 이름의 약칭인데, 술병을 든다는 뜻이 되므로 한 말이다. 구양수(歐陽脩)의 시에, “유독 꽃가지 위에 제호로가 있어, 나에게 꽃 앞에서 술잔 기울이라 권하네.[獨有花上提壺蘆勸我有酒花前傾]” 하였다.
궁중(宮中)에서 사식(賜食)한 일을 기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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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대궐을 들어갔는데 / 早朝雙闕下
오찬 음식은 팔진미도 넘었네 / 午膳八珍餘
붉은 모자는 전주한 뒤이고 / 絳幘傳籌後
푸른 팔깍지는 밥 올린 처음일세 / 靑韝進食初
맑은 술에는 거품이 둥둥 뜨고 / 輕淸浮酒蟻
향료와 양념은 고깃국에 곁들였네 / 香辣雜羹魚
임금의 하사로 자주 배를 채웠는데 / 君賜頻充腹
지금은 들 채소만 먹을 뿐이라오 / 如今啖野蔬
[주D-001]전주(傳籌) : 술을 마실 때에 서로 헌수(獻酬)한 것을 계산하는 산가지를 말하는데, 전하여 술잔을 서로 돌리는 것을 뜻한다.
2월 초하루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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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는 즐거운 일이라 일컫고 / 鄕閭稱樂事
아녀자들은 좋은 때라고 치는데 / 兒女數良時
동글동글한 송실을 채취하면서 / 的的剝松實
줄줄이 잣 가지를 뚫고 다니네 / 纍纍穿柏枝
하늘 맑으니 푸른 산이 가깝고 / 天晴山翠近
바람은 자는데 햇빛은 옮기었네 / 風定日華移
점차로 푸른 봄의 좋은 걸 보고 / 漸見靑春好
오만 경치 포괄하여 시를 읊노라 / 牢籠有小詩
두 안 첨록(安簽錄)이 이름을 청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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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안씨는 모두 흑립을 썼는데 / 二安俱黑笠
화려한 명함 갖고 나를 찾아왔네 / 華刺扣門投
글자를 물으니 소종래를 알겠거니와 / 問字知來處
이름을 편케 함은 몸 보전키 위함일세 / 安名欲保軀
정밀히 찾으면 생각을 허비할 듯하고 / 精求疑費慮
범범히 응하면 어리석은 것 같으리 / 泛應恐如愚
원컨대 각각 처음 뜻을 힘써 행하여 / 願各勉初志
후일에 이 늙은이를 위로해다오 / 他年慰老夫
김 사공(金司空)에게 부쳐서 띠를 빌려 지붕을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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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정한 거처는 초가집이 많은데 / 新居多草屋
지붕을 이지 못한 지 여러 해로세 / 不蓋已多年
스스로 별빛이 새어든 게 좋아서 / 自喜星光入
달빛까지 뚫고 들어오게 두었는데 / 仍敎月色穿
비가 오면 우산 들기가 괴롭거니와 / 雨應持傘苦
바람이 불면 등불이 또 애처로워라 / 風更爲燈憐
드러누워 잘 땅은 참으로 없으나 / 偃臥信無地
덮어 가려줌은 하늘이 있을 뿐이네 / 庇庥知有天
박 총랑(朴摠郞)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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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 윤과 퇴고에서 문득 스스로 항복하고 / 京兆敲推便自降
지금까지 가 장강을 배우려고 발돋움하네 / 至今翹企賈長江
낭군은 얼굴 붉히고 누각을 사절하고 가서 / 郞君面赤辭樓去
깊은 밤 달 밝은 창 아래 외로이 읊었었지 / 入夜孤吟月滿窓
[주D-001]경조 윤(京兆尹)과 …… 발돋움하네 : 가 장강(賈長江)은 장강 주부(長江主簿)를 지냈던 당(唐)나라 시인 가도(賈島)를 가리킨다. 가도가 일찍이 과거(科擧)를 보려고 경사(京師)에 있을 때, 한번은 나귀를 타고 가다가 〈승퇴월하문(僧推月下門)〉의 시구를 짓고 나서, 퇴(推) 자를 고(敲) 자로 바꿀까말까 하고 생각에 잠겼다가 자기도 모르게 마침 지나가던 경조 윤 한유(韓愈)의 행차를 범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된 까닭을 한유에게 갖추 말하자, 한유가 고 자가 더 좋다고 말하고, 마침내 그와 포의교(布衣交)를 맺기까지 했다고 한다.
우연히 최근의 일을 기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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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기개는 인간 세상을 뒤덮지만 / 帝王氣槩蓋人寰
죽음과 삶 두 가지가 한탄스러울 뿐이네 / 只歎浮休是兩端
사한가 속에는 가을달이 떨어지고 / 辭漢歌中秋月落
흥당관 안에는 새벽바람이 차갑구나 / 興唐觀裏曉風寒
[주D-001]사한가(辭漢歌) …… 떨어지고 : 사 한가는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지은 〈금동선인사한가(金銅仙人辭漢歌)〉를 가리킨다. 그 내막은 곧 위 명제(魏明帝) 연간에 궁관(宮官)에게 명하여 일찍이 한 무제(漢武帝)가 세워 놓은 선인 승로반(仙人承露盤)을 훼철하여 옮겨다가 위나라 궁전 앞에 세웠던바, 앞서 궁관이 한 무제의 궁전에서 그 선인을 훼철하여 수레에 실으려고 할 적에 이 선인이 한(漢)나라를 하직하기를 슬퍼하는 듯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전설에 대하여 노래한 것이다. 〈금동선인사한가〉의 말구(末句)에, “승로반 갖고 홀로 나올 제 달빛은 황량한데, 위성은 이미 멀어져 파도 소리도 작았어라.[携盤獨出月荒涼 渭城已遠波聲小]” 하였다.
[주D-002]흥당관(興唐觀) …… 차갑구나 : 당 헌종(唐憲宗)이 만년에 신선(神仙)을 좋아하여 천하의 방사(方士)들을 구할 적에, 종정경(宗正卿) 이도고(李道古)가 산인(山人) 유필(柳泌)이 장생약(長生藥)을 만들 수 있다며 천거하자, 헌종이 유필을 흥당관에 있게 하고 단약(丹藥)을 만들도록 했는데, 그 후 끝내 유필이 만든 단약을 먹고 헌종이 갑자기 붕어했던 고사에서 온 말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스스로 희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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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루한 차림의 산승이 속세를 횡행함은 / 襤褸山僧踏軟紅
인법이 본디 공허함을 스스로 안 때문인데 / 自知人法本皆空
붓끝에 참다운 삼매가 있음을 힘입어 / 筆端賴有眞三昧
의문점 세밀히 분석하는 한 목옹이로다 / 縷析疑團一牧翁
연도(燕都)를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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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솟은 중천에는 제거가 운행하고 / 高拱中天運帝車
아득하게 널리 펼쳐진 건 모두 대지인데 / 廣輪綿邈盡黃輿
비록 국운은 끝내 다함이 없는 것이지만 / 雖然國步終無極
인재는 아직도 유여함이 애석하구려 / 只惜人才尙有餘
평야에는 석양 아래 옹중이 우뚝 서 있고 / 平野斜陽立翁仲
연기 속의 잡초밭에는 궁전이 묻혀 있네 / 淡烟衰草沒儲胥
그 당시 한림학사가 오늘은 백발이 되어 / 白頭當日鑾坡客
봄 기러기 날아갈 때 서신을 부치고파라 / 春鴈飛時欲寄書
[주D-001]옹중(翁仲) : 무덤 사이에 세워진 석인(石人)ㆍ석수(石獸) 등을 가리킨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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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밥상에 목숙나물로 조석을 지내노니 / 春盤苜蓿度朝晡
속은 실한데 어찌하여 겉이 마름을 한하랴 / 內實何由恨外枯
만년을 향해서 구복은 꾀하지 않거니와 / 不向晚年謀口腹
이미 젊은 그 시절에 두각을 나타냈었네 / 已從當日見頭顱
한가로운 못가엔 공연히 봉을 생각하고 / 悠悠池上空思鳳
아득한 강동엔 도리어 농어가 생각나누나 / 渺渺江東却憶鱸
다만 지금 내 신세는 누가 주관하는고 / 身世祇今誰得管
다행히 인삼 복령 백출이 서로 붙들어 주네 / 參苓白朮幸相扶
어그러진 세상일에 생각은 그지없는데 / 蹉跎世事思悠悠
쓸쓸한 백발만 절로 머리에 가득하구나 / 白髮蕭疎自滿頭
눈앞에선 동점하던 우의 성교가 끊어졌고 / 目斷東漸禹聲敎
몸으로는 남도한 진의 풍류를 겪었네그려 / 身經南渡晉風流
방초가 나려 하니 봄의 꿈은 끊어지고 / 芳草欲生春夢斷
매화가 다 떨어지니 들 정취는 고요하네 / 小梅渾落野情幽
병든 나는 본래부터 무료한 사람이라 / 病夫自是無聊賴
오로지 시만 읊어 늙어도 마지않는다오 / 一味吟詩老不休
[주D-001]봄 …… 지내노니 : 교 사(敎師)의 빈약한 식생활을 뜻한다. 당나라 설령지(薛令之)가 동궁 시독(東宮侍讀)으로 있을 때 먹을 것이 워낙 초초하자, 스스로 슬퍼하는 시를 지어, “아침 해가 둥실 떠올라, 선생의 밥상을 비추어라. 밥상에 무엇이 있는고 하니, 난간에서 자란 목숙나물이로세.[朝日上團圓 照見先生盤盤中何所有 苜蓿長欄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한가로운 …… 생각하고 : 봉은 봉황지(鳳凰池)로 중서성(中書省)을 가리키는데, 당나라 때 중서성에 봉황지가 있었던 데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는 작자가 일찍이 중서성에 있었음을 뜻한다.
[주D-003]아득한 …… 생각나누나 : 진 (晉)나라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인 강동(江東) 오중(吳中)의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鱠]를 생각하면서 말하기를, “인생은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어찌 수천 리 밖의 벼슬아치가 되어 명작(名爵)을 바랄 수 있겠는가.” 하고, 마침내 수레를 명하여 향리로 돌아갔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눈앞에선 …… 끊어졌고 : 《서 경》 우공(禹貢)에, “동으로는 바다까지 다스렸으며……성교가 사해에 미쳤으므로, 우 임금이 현규를 바쳐서 순 임금께 성공을 고하시다.[東漸于海……聲敎訖于四海 禹錫玄圭 告厥成功]”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원(元)나라가 멸망한 것을 탄식하여 한 말이다.
[주D-005]몸으로는 …… 겪었네그려 : 남 도(南渡)는 진(晉)나라가 양자강(揚子江) 남쪽으로 쫓겨가 도읍한 것을 말하는데, 이때에는 왕씨(王氏)ㆍ사씨(謝氏) 등 명족(名族) 가운데 특히 왕도(王導)ㆍ사안(謝安) 등을 비롯한 명사(名士)들이 풍류로 이름을 떨쳤던 데서 온 말이다.
옛일을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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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 시대가 한번 간 지 또한 오래이어라 / 賡歌一去亦悠哉
세상 풍속 변한 것이 지금 몇 번이던고 / 世變風移今幾廻
목숨 걸고 시 읊어도 좋은 시구는 없으나 / 捨命吟詩無好句
장소 따라 희롱 부리는 덴 능통한 재주라네 / 逢場作戲是通才
격조 높은 이백 두보엔 기발함을 본받거니와 / 調高李杜奇仍法
재주 많은 증공 소식은 화려하나 거칠도다 / 材大曾蘇斐不裁
음풍농월의 흥취는 모두 쓸어 없애고 / 月露風花俱掃盡
사심 없는 생각으로 혼자 누대를 오르네 / 思無邪處獨登臺
회포를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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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몸과 세상 둘 다 아득하기만 하나 / 祇今身世兩茫然
그윽한 흥취 이끄는 건 스스로 소년이라네 / 幽興相牽自少年
낮에 서책 열람한 건 한가한 때의 일과요 / 縹秩晝翻閑裡課
소나무에 눈 날릴 땐 취하여 잠을 잔다오 / 蒼松雪落醉中眠
언덕 위의 긴 휘파람은 원량을 생각하고 / 登皐長嘯思元亮
동해 가던 높은 풍도는 중련을 상상하네 / 蹈海高風想仲連
돌솥에 차 끊인 게 삼절 중의 으뜸인데 / 石鼎煎茶三絶最
아이가 대 사이의 샘물을 막 길어오누나 / 小童新汲竹間泉
[주D-001]언덕 …… 생각하고 : 원량(元亮)은 도잠(陶潛)의 자인데, 도잠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한다.[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동해(東海) …… 상상하네 : 전 국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魯仲連)이 포악한 진(秦)나라를 증오하여 말하기를, “저들이 방자하게 황제(皇帝)가 되어 천하에 군림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에 가서 빠져 죽을지언정, 차마 진나라의 백성은 될 수가 없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송산(松山)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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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삼나무 바람 옷에 가득 불어올 제 / 松杉影裡滿衣風
어둑한 푸른 산속을 한가히 배회하노니 / 徙倚溟濛積翠中
굽이굽이 도는 계곡은 달빛을 부수며 흐르고 / 百轉回溪流碎月
천 층 겹겹 산봉우리는 하늘에 치솟았네 / 千層疊嶂聳排空
자란 생황 소리는 아득히 아직 남아 있고요 / 紫鸞笙遠聲猶在
황학루는 높아서 그윽한 뜻도 무궁하여라 / 黃鶴樓高意莫窮
다만 한스러운 건 다생 속엔 신선이 없어 / 只恨多生無道骨
흰 구름 깊은 곳에 절집을 짓는 거로세 / 白雲深處築琳宮
밭엔 가화가 나오고 바다엔 파도 안 일어 / 壠出嘉禾海不風
태평 천자가 정히 산에 올라 공을 고하네 / 太平天子政升中
한 마음은 깨끗하여 남은 것이 없거니와 / 一心皎皎無餘物
만고는 아득하여 바로 텅 빈 하늘뿐이로다 / 萬古冥冥是大空
미악을 바르게 썼는데 신명께 무엇을 빌랴 / 美惡直書何所禱
재상은 역산가도 끝내 다 궁구 못한다네 / 災祥巧歷竟難窮
가만히 앉았어도 태평 정치 절로 이르니 / 垂衣自致時雍治
오악은 분명히 대궐을 옹위하고 있다오 / 五岳分明拱法宮
진주 비취로 꾸민 견여 먼지도 안 날리는데 / 珠翠肩輿不動塵
인도하는 두 미인은 몸도 사뭇 가냘퍼라 / 雙娥引道最輕身
뒤에 오는 안마들은 매우 서로 머뭇거리고 / 後來鞍馬逡巡甚
중도에 차린 배반은 어지러이 진열되었네 / 半路杯盤錯落陳
천지는 말끔하여 막 태양을 보게 되었는데 / 淨洗乾坤初見日
태평의 노래와 음악은 봄을 둥둥 띄우누나 / 太平歌吹欲浮春
나라를 부지함은 본디 천지신명의 힘이라 / 扶持自是神明力
장상들이 어울려 성왕 탄신을 서로 즐기네 / 將相交歡樂聖辰
[주D-001]다생(多生) : 불가(佛家)의 용어로,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을 지어 윤회(輪廻)의 고통을 받으면서 생사(生死)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말한다.
[주D-002]밭엔 가화(嘉禾)가 나오고 : 가 화는 각기 다른 밭둑에서 자란 두 줄기의 이삭이 하나로 합쳐진 벼를 가리킨 것으로, 이는 곧 천하가 화동(和同)할 상서로운 징조라 한다. 성왕(成王)의 아우인 당숙(唐叔)이 자기 식읍(食邑)에서 가화를 얻어 성왕에게 바치자, 성왕은 이것을 주공(周公)의 덕화로 인한 상서라고 여기고, 당숙을 명하여 당시 동정(東征) 중에 있던 주공에게 이것을 보내면서 여기에 대하여 문사(文辭)를 짓게 하니, 주공이 천자의 명을 받들어 마침내 가화편(嘉禾篇)의 글을 지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바다엔 파도 안 일어 : 성 군(聖君)이 천하를 다스린 것을 말한다. 성왕(成王) 때 월상씨(越裳氏)가 중역(重譯)을 거쳐 와서 주공(周公)에게 꿩을 바치자, 주공이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이것을 받는단 말인가.” 하니, 월상씨가 대답하기를, “하늘이 거센 비바람을 내리지 않고, 바다에 거센 파도가 일지 않은 지 3년이 되었으므로, 중국에 성인(聖人)이 있으리라 여겨 왔습니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4]태평 …… 고하네 : 옛날 천자(天子)가 오악(五岳)을 순수(巡狩)할 때에, 한 방악(方岳)에 이르면 반드시 이 명산(名山)에 올라가서 이 방면의 제후(諸侯)의 치공(治功)을 하늘에 고(告)했던 것을 말한다. 《禮記 禮器》
[주D-005]미악(美惡)을 …… 빌랴 : 공 자가 병이 났을 때, 자로(子路)가 천지신명께 기도하기를 청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기도한 지 오래이다.[丘之禱久矣]” 한 데서 온 말로, 즉 공자 자신은 기도를 해야 할 과실을 짓지 않았다는 뜻이다. 《論語 述而》 미악을 바르게 썼다는 것은 곧 공자가 지은 《춘추(春秋)》를 가리켜 한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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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의 시 흥취가 그윽한 집에 가득하여 / 早春詩興滿幽齋
오가며 읊노라니 참으로 점입가경이로다 / 吟去吟來漸入佳
찬 새는 이미 눈 쌓인 나뭇가지 위에 날고 / 凍雀已飛枝上雪
물고기는 아직도 물속의 섶에 모여 있구나 / 寒魚猶聚水中柴
평상시 천기는 스스로 익히 증험하거니와 / 尋常自驗天機熟
모순된 세상일은 서로 어긋나거나 말거나 / 矛楯從敎世事乖
집집마다 봉할 만한 데 견줄 수 있는 건 / 比屋可封差可擬
띳지붕 그림자 속에 흙으로 만든 계단일세 / 茅茨影裏土爲堦
[주D-001]집집마다 …… 데 : 요순(堯舜) 시대에는 백성들이 모두 성인의 덕화를 입어 훌륭했으므로, 어느 집 사람이든 다 벼슬을 줄 만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띳지붕 …… 계단일세 : 요순이, 계단은 흙으로 삼등(三等)만 쌓고 지붕에 인 띠는 가지런히 자르지도 않았다는 데서 온 말로, 매우 검소했음을 뜻한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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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갈수록 몸은 오히려 건강한데 / 老去身猶健
진작부터 일은 이루지 못했어라 / 由來事不諧
문 위에 써 놓은 건 범조가 있고 / 題門有凡鳥
술을 마시자니 규채 없어 부끄럽네 / 飮酒愧無鮭
산 빛은 창을 열 때마다 공교롭고 / 山色工排闥
이끼는 섬돌을 오르려 하는데 / 苔痕欲上階
친근하고 다정한 붓은 / 殷勤管城子
나를 위해 그윽한 회포를 써 주누나 / 爲我寫幽懷
[주D-001]문 …… 있고 : 봉 (鳳) 자를 파자(破字)하면 범조(凡鳥)가 되는데, 범조는 평범한 새란 뜻으로, 진(晉)나라 때 혜강(嵇康)과 여안(呂安)이 서로 매우 좋게 지냈던바, 한번은 여안이 혜강의 집을 찾아갔으나 혜강은 없고 그의 형 혜희(嵇喜)가 나와서 맞이하자, 여안은 들어가지 않고 문 위에 봉(鳳) 자를 써서 마음속으로 그를 조롱하고 떠나 버린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술을 …… 부끄럽네 : 규 채(鮭菜)는 조리(調理)한 어채(魚菜)의 총칭이다. 진(晉)나라 때 유고지(庾杲之)가 매우 청빈하여 매양 삼구(三韭), 즉 담근 부추, 삶은 부추, 생 부추만 먹었으므로, 임방(任昉)이 희롱하는 말로 “누가 유랑(庾郞)을 가난하다 하는고, 매양 이십칠종의 규채를 먹는다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27종이라 한 것은 곧 삼구(三韭)를 음이 같은 삼구(三九)로 돌려서 3 곱하기 9는 27로 해석한 것이다.
[주D-003]산 빛은 …… 공교롭고 : 송(宋)나라 왕안석(王安石)의 시에, “한 물은 밭을 감싸서 푸르게 둘렀고, 두 산은 문만 열면 푸른 빛을 보내오네.[一水護田將綠繞 兩山排闥送靑來]”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이끼는 …… 하는데 : 당나라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에, “이끼는 섬돌에 올라 새파랗고, 풀빛은 주렴에 들어 푸르도다.[苔痕上階綠草色入簾靑]” 하였다.
산중(山中)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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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을 회상하니 대번 정신이 멍하여라 / 回首山中一惘然
분명히 지금 현재 그 당시를 기억코말고 / 分明眼底記當年
바람 맑은 죽원에선 중을 만나 얘기 나누고 / 風淸竹院逢僧話
풀 향긋한 양파에선 사슴과 함께 졸았었지 / 草軟陽坡共鹿眠
퉁소를 불어 다하니 가을 경치는 아득하고 / 吹徹紫簫秋景遠
서책을 읽어 남기니 낮 그림자는 옮기었네 / 讀殘黃卷午陰遷
지금은 홍진의 어둠 속에 눈도 잘못 뜬 채 / 如今眯目紅塵暗
가슴속은 끝없이 온갖 생각이 들볶는구나 / 方寸無端百慮煎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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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마시어 무하유향에 들어가니 / 痛飮無何有
깊은 근심이 절로 얼음 풀리듯하네 / 幽憂自釋氷
꼭 알아야 할 건 돈이 암만 많아도 / 須知金至斗
술이 많은 것만은 못하다는 거로세 / 不換酒如澠
백설곡은 삼첩을 따라 부르거니와 / 白雪從三疊
청산은 정히 그 몇 층이나 되는고 / 靑山定幾層
문밖은 새그물을 칠 만큼 고요한데 / 雀羅門巷靜
한가한 중만이 시 써달라 왔네그려 / 乞筆有閑僧
[주D-001]백설곡(白雪曲)은 …… 부르거니와 : 양춘백설곡(陽春白雪曲)은 초(楚)나라의 고상한 가곡(歌曲) 이름이고, 삼첩(三疊)은 가곡을 연주하는 하나의 법칙으로서 모구(某句)에 이르러 재삼(再三) 반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2월 8일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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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밤중에 꿈속의 놀이에 놀라 깨어나서 / 午夜驚回夢裡遊
등 밝히고 생각해 보니 금방 잊어버렸네 / 呼燈欲記却悠悠
계집애는 일어나 등잔 기름 떨어졌다 아뢰고 / 小娃起報蘭膏盡
늙은 아내는 쌀이 귀함을 길이 걱정하누나 / 老婦長懷米玉憂
눈 감은 어둠 속엔 의당 절로 삼가려니와 / 閉目暗中宜自愼
몸 편한 고요 속엔 다시 무엇을 구하리요 / 安身靜裏更何求
주관의 구몽을 그 누가 점쳐 알아낼꼬 / 周官九夢誰占得
천지의 도는 응당 위아래서 함께 유행하리 / 天地應同上下流
[주D-001]구몽(九夢) : 《주례(周禮)》 춘관(春官) 점몽(占夢)에는 육몽(六夢)을 점치는 것이 있고, 춘관 태복(太卜)에는 삼몽(三夢)을 점치는 것이 있어, 모두 합하면 구몽이 된다.
궁인(宮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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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를 호종함은 요천의 꿈이요 / 扈駕遼天夢
은혜를 입음은 한전의 마음이로다 / 承恩漢殿心
연춘궁 누수 소리는 길기만 하고 / 延春宮漏永
비율 소리엔 변새 구름이 깊어라 / 悲栗塞雲深
쌓인 눈은 천막집을 묻어 버리고 / 積雪埋氈帳
찬바람은 비단 이불에 스며드네 / 寒風透錦衾
이몸이야 무어 아까울 것 있으랴 / 此身何足惜
성상의 축수나 길이 읊어보련다 / 祝聖自長吟
[주D-001]비율(悲栗) : 호중(胡中)의 악기인 필률(觱篥)을 가리키는데, 그 소리가 매우 처량하다고 한다.
《번천집(樊川集)》을 읽고 그 후미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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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잎새 그늘 이루고 가지엔 열매 가득해라 / 綠葉成陰子滿枝
호주에서 물놀이한 예전 기약 저버렸구려 / 湖州水戲負前期
두목이 봄을 찾은 게 늦어서가 아니라 / 非關杜牧尋春晚
주지가 재상 된 것이 더딘 때문이었네 / 自是周墀拜相遲
한 상자의 은혜는 평선하던 날에 깊었고 / 一篋恩深平善日
세 줄 미인은 발광하던 때에 웃음지었네 / 三行顔破發狂時
도리어 여가에만 시사를 논하였으니 / 却從餘暇論時事
고금에 둔재라면 그 말고 또 누가 있으랴 / 今古麤才更有誰
[주D-001]푸른 …… 저버렸구려 : 당 나라 두목(杜牧)의 호는 번천(樊川)인데, 그가 일찍이 호주 자사(湖州刺史)로 있는 친구를 찾아가 노닐 적에 그곳의 이름난 미인들을 다 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여인이 없으므로, 자사에게 청하여 물놀이[水戲]를 베풀어서 사람들에게 구경하게 하였다. 두목이 구경꾼들 사이를 왕래하면서 살펴보니, 그중에 할미를 따라 구경나온 10여 세쯤 된 한 여아(女兒)가 있었는데 참으로 국색(國色)이었다. 이에 두목이 그 할미에게 말하기를, “지금은 여아를 맞아들일 수 없고 의당 훗날로 미뤄야겠으니, 내가 10년 뒤에 호주 자사가 되어 여아를 맞을 것이로되, 만일 오지 않으면 다른 데로 시집을 보내시오.” 하고는, 중폐(重幣)를 주어 약혼하였다. 그 후 두목의 일이 늦어져 14년 만에야 호주 자사로 부임하여 가보니, 이미 그 여아는 다른 데로 시집간 지 3년이 되었고 두 아들까지 있었다. 두목이 그들 모녀를 불러 만나 보고 돌려보내면서 이별을 슬퍼하여 읊은 시에, “내가 본디 봄을 찾은 게 워낙 더디었으니, 슬퍼하며 꽃다운 시절 한할 것 없어라. 미친 바람이 불어 붉은 꽃을 다 떨어뜨리니, 푸른 잎새 그늘 이루고 가지엔 열매가 가득하네.[自是尋春去較遲 不須惆悵恨芳時 狂風吹盡深紅色 綠葉成陰子滿枝]”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주지(周墀)가 …… 때문이었네 : 주 지는 두목(杜牧)과 서로 친한 사이였는데, 주지가 재상(宰相)이 되기 전에는 호주 자사로 임명해 달라는 간청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주지가 재상이 되자 곧바로 호주 자사로 부임했지만, 이때는 호주의 여자와 약속한 기한인 10년보다 이미 4년이 늦은 뒤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한 …… 깊었고 : 평 선(平善)은 무사(無事)하다는 뜻과 같다. 두목이 일찍이 양주(揚州)에서 우승유(牛僧孺)의 막료(幕僚)로 있을 때, 밤이면 으레 미복(微服) 차림으로 홍등가(紅燈街)를 누비고 다녔으므로, 우승유가 그 사실을 알고는 가졸(街卒)들을 시켜 몰래 두목의 뒤를 수행하면서 뜻밖의 봉변에 대비하도록 했다. 뒤에 두목이 조정으로부터 습유(拾遺)를 제수받고 돌아가게 되자, 작별하는 자리에서 우승유가 두목에게 지나친 방종을 경계하면서 한 상자의 문서를 꺼내어 두목에게 보였던바, 그 내용은 모두 가졸들이 우승유에게 보고한 문서로서, 즉 ‘두 서기는 무사하다.[杜書記平善]’라는 문서뿐이었으므로, 두목이 크게 감복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4]세 …… 웃음지었네 : 두 목(杜牧)이 일찍이 병부 상서(兵部尙書)의 연석(宴席)에서 지은 시에, “화려한 집에서 오늘 화려한 자리 열었는데, 그 누가 분사 어사를 불러오게 하였는고. 우연히 미친 말로 온 좌중을 놀래니, 세 줄의 미인들이 일시에 돌아오누나.[華堂今日綺筵開誰喚分司御史來 偶發狂言驚滿座 三行粉面一時回]” 한 데서 온 말이다.
경상도(慶尙道)를 안찰(按察)하러 나가는 부령(副令) 강득화(康得和)를 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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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원 당후관으로 일찍 이름이 있었고 / 中樞堂後早知名
낭관을 두루 거치며 일마다 정밀했는데 / 揚歷星郞遇事精
통천 흡곡의 산천엔 뛰어난 자취 남기었고 / 通歙山川留勝跡
전라도의 초목엔 위엄과 명성 떨치었네 / 全羅草木振威聲
바위틈에서 튕긴 불은 구름 끝에 번쩍이고 / 火生疊石明雲杪
연달아 깎아지른 산봉은 철성이 우뚝하네 / 壁立聯峯聳鐵城
모두들 큰 재주를 이제 처음 쓴다 하는데 / 摠說大才今始展
경상도는 예로부터 여러 군영에 으뜸이라오 / 慶尙從古冠諸營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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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히 삼려대부 따라서 홀로 깸을 본받아 / 懶向三閭效獨醒
거나하여 길이 읊으며 바람 창에 기대었네 / 半酣長嘯倚風櫺
어린 나이엔 요행히 과거에 장원하였고 / 早年僥倖登黃甲
만년의 친구들은 무식한 이가 드물건만 / 晚歲從游少白丁
실추된 성현의 도를 누가 다시 이을런고 / 墜緖渺茫誰復紹
슬픈 노래 격렬하여 스스로 듣기 어려워라 / 哀歌激烈自難聽
봄바람에 복사꽃 오얏꽃 구경하기 좋으니 / 春風政好看桃李
동산 곁에다 초정이나 지어 살고 싶구나 / 擬傍東山結草亭
[주D-001]삼려대부(三閭大夫) …… 본받아 : 삼 려대부는 초(楚)나라의 관직 이름이다. 초 회왕(楚懷王) 때의 충신 굴원(屈原)이 삼려대부로 있다가 억울하게 참소를 입고 쫓겨나 강가에서 읊조리며 지낼 적에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온 세상이 다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었는지라, 이 때문에 쫓겨났노라.[擧世皆濁 我獨淸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한 데서 온 말이다.
낭랑하게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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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생은 스스로 수양함이 알맞으니 / 殘年宜自養
흥미가 있은들 누가 다시 알리요 / 有味更誰知
궁벽한 시골이라 새로운 일이 없어 / 窮巷無新事
밝은 창 아래 예전 시를 고치노라 / 明窓改舊詩
언덕을 거닐면 푸른 풀이 나오고 / 踏崖靑草出
지팡이 기대면 흰 구름이 옮겨 가네 / 倚杖白雲移
아득한 소회를 낭랑히 읊노라니 / 朗詠情懷遠
강산풍월이 귀밑털을 둘러쌌구려 / 江山繞鬢絲
방종한 데다 근심 걱정이 잇달아서 / 跌宕仍憂病
남은 생은 뜻이 더욱 혼미하여라 / 殘生意轉迷
실바람은 차갑게 솔솔 불어오고 / 微風寒習習
가랑비는 석양에 쓸쓸히 내리는데 / 小雨晚凄凄
그늘진 골짝엔 샘물 소리 급박하고 / 陰壑泉聲急
양지쪽 언덕엔 풀빛이 가지런하네 / 陽崖草色齊
시골 정취가 자못 마음에 들어 / 野懷殊自愜
낭랑히 읊노라니 닭이 홰에 오르네 / 朗詠欲雞棲
시골 마을에 찾아오는 이 적으니 / 村塢經過少
그윽한 정취 이만하기 드무리라 / 幽情似此稀
주위엔 푸른 봉우리가 모여들고 / 周遭靑嶂合
흰 구름은 조각조각 날아가누나 / 片段白雲飛
붓은 새로 쓴 시고에 모지라지고 / 筆禿新詩藁
문밖엔 누더기 중이 많이 찾누나 / 門多破衲衣
누가 있어 낭랑히 읊조림을 알랴 / 有誰知朗詠
홀로 서서 또 석양이 되었네그려 / 獨立又斜暉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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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아첨 다 잊고 맹세코 마음 변치 않으리 / 驕諂俱忘矢靡他
타고난 운명이야 치우침이 있거나 말거나 / 從敎賦命有偏頗
벼슬살이 시작한 지는 지금 얼마 안 됐지만 / 離蔬釋蹻今無幾
호화스런 생활은 이미 스스로 만족하고말고 / 食肉乘車已自多
역졸들은 조를 짜서 길거리를 벽제하고요 / 五百縫構淸綺陌
만 전어치 많은 술엔 금물결이 넘실대누나 / 十千斗酒灔金波
의기를 너무나 양양하게는 말아야지 / 莫令意氣揚揚甚
본래부터 외물이 나와 무슨 상관 있었던가 / 外物由來奈我何
스스로 읊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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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 뜻은 죽음을 가벼이 여겼는데 / 壯志曾輕死
늙어서는 생명을 보전하려 하네 / 衰年欲保生
부정을 물리치려 백택을 그리고 / 辟邪圖白澤
늙음을 물리치려 청정반을 먹노니 / 卻老服靑精
수월은 참선으로 장차 깨달을 게고 / 水月參將透
연기 낀 등라는 올라가서 이루려는데 / 烟蘿躡欲成
다만 일찍이 호연지기를 기른 때문에 / 只緣曾養氣
한밤중엔 마음이 절로 청명해지네 / 夜半自淸明
세도는 비록 법칙이 서로 다르나 / 世道雖殊轍
우리나라는 본디 한 종통이라네 / 吾邦自一宗
안개 자욱함은 산 그림자 속이요 / 空濛山影裏
비바람 몰아침은 저자의 소리로다 / 颯霅市聲中
소보 허유는 조정 반열의 의표였고 / 巢許朝廷表
기룡은 산림 은사의 모습이었네 / 夔龍丘壑容
멀리 아득한 천재 아래서 / 悠悠千載下
이남의 국풍을 길이 상상하노라 / 永想二南風
[주D-001]백택(白澤) : 사자(獅子)처럼 생긴 신수(神獸)의 이름인데, 옛날에 이것을 장복(章服)의 도안(圖案)으로 삼았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청정반(靑精飯) : 도가(道家)에서 청정석(靑精石)으로 지은 밥을 가리키는데, 이것을 오래 먹으면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고 한다.
[주D-003]수월(水月) : 불가(佛家)에서 물속의 달그림자를 가리킨 말로, 제법(諸法)의 실체(實體)가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4]기룡(夔龍) : 순(舜) 임금의 두 신하 이름인데, 기는 전악관(典樂官)이었고, 용은 납언관(納言官)이었다.
[주D-005]이남(二南) : 《서경》 국풍(國風)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 두 편을 가리키는데, 모두 문왕(文王)의 덕화를 노래하였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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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 곧장 요순 시대를 사모하여 / 直將方寸慕唐虞
조용히 앉아서 태극도를 깊이 연구하노니 / 靜坐深參大極圖
이 마음 제거하면 모두가 이단이겠거니와 / 除却此心皆異境
무사하길 꾀하자면 혹 길을 달리도 하리라 / 筭來無事或殊途
풍상과 우로는 하늘이 어찌 한계를 지었으랴 / 風霜雨露天何限
예악과 시서는 해 뜨는 동녘까지 미치었네 / 禮樂詩書日出隅
성인의 신묘한 변화의 큰 것을 간파하려면 / 看取聖人神化大
단정히 앉은 곳에 공부가 있을 뿐이로다 / 只危坐處有功夫
성거산(聖居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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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은 당일에 어지러운 풍진을 떠났고 / 高僧當日離風塵
용녀와 서로 따른 일이 가장 신기하여라 / 龍女相隨事最神
천 길 산꼭대기엔 함께 자취를 붙이었고 / 千仞岡頭同寄迹
한 병의 물속엔 홀로 몸을 숨기었었네 / 一甁水底獨藏身
적적한 범궁엔 연기와 놀이 예스럽고 / 梵宮寂寂烟霞古
유유한 인간 세상엔 세월이 새롭구나 / 人世悠悠歲月新
특히나 바위 앞에서 범의 울음 듣던 일은 / 最是巖前聞虎嘯
지금까지 책력으로 천 년이 되었구려 / 至今鳳歷照千春
[주D-001]고승(高僧)은 …… 신기하여라 : 김 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선조(先祖)인 원덕대왕(元德大王) 보육(寶育)이 일찍이 출가(出家)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수도(修道)하고 돌아와서 황해도 우봉현(牛峯縣) 성거산(聖居山) 마하갑(摩訶岬)에 거처하면서 마침내 거사(居士)가 되었는데, 당시 잠저(潛邸)에 있던 당 숙종(唐肅宗)이 천하(天下)를 두루 유람하다가 마침 보육의 집에 들러 기숙(寄宿)하면서 보육의 딸 진의(辰義)와 합방하여 임신이 되었던바, 여기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작제건(作帝建)이다. 그가 장성하여서는 자기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상선(商船)을 타고 바다를 건너던 도중에 서해 용왕(西海龍王)의 딸에게 장가를 들고, 그 용녀(龍女)와 함께 고향에 돌아와서 아들 용건(龍建)을 낳았고, 용건이 마침내 태조 왕건을 낳게 되었다는 설화(說話)에서 온 말이다.
[주D-002]바위 …… 일은 : 고 려 태조 왕건의 시조(始祖)인 호경(虎景)이란 사람이 일찍이 부소산(扶蘇山)에 살면서 사냥을 업(業)으로 삼았는데, 하루는 같은 마을 사람 9인과 함께 성거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해가 저물어 바위 굴 속에 들어가 자려던 차에 바위 앞에서 범이 크게 포효하므로, 호경이 그 범과 싸우려고 밖으로 나가자, 범은 이내 보이지 않고 갑자기 그 바위굴이 무너져서 나머지 9인이 모두 압사(壓死)당하고 호경만이 살아 나오게 되었다는 설화에서 온 말이다.
판서 신덕린(申德麟)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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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엔 날마다 애써 서로 맞이하여 / 少年日日苦相邀
잔뜩 취하고 깊이 읊어 짧은 노래 불렀는데 / 泥醉沈吟放短謠
한가할 때의 초서는 풍우처럼 상쾌하였고 / 閑裏草書風雨快
홀로 서 있는 청수한 모습은 먼 해산에 있네 / 靜中柴立海山遙
술동이는 그 언제나 따스한 봄을 더할런고 / 酒樽何日添春暖
귀밑털은 지금에 날리는 눈발을 띠었다오 / 鬢髮如今帶雪飄
친구 중엔 유독 공만이 아직 건재하니 / 契友獨公猶健在
늙은 목은 애타는 마음 정히 가련하여라 / 可憐老牧政心焦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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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서 읊조리니 애가 끓일 듯하여라 / 獨立沈吟政斷腸
새로운 시름 옛 한이 둘 다 아득하구나 / 新愁舊恨兩茫茫
들판에 분주하여라 사막은 광활하고 / 暴旗露蓋胡沙闊
천지를 통괄하여라 한실은 번창하네 / 緯地經天漢室昌
푸른 풀 강 남쪽엔 단비가 많이 오는데 / 草綠江南多好雨
누런 구름 변새 밖엔 또 해가 저무누나 / 雲黃塞外又斜陽
고금의 무궁한 일들 유유하기만 해라 / 悠悠今古無窮事
흥망성쇠는 예로부터 천명이 덧없다오 / 興廢由來命靡常
거문고 소리 들은 일이 갑자기 기억나서 여기에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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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오래되니 다른 소망은 없고 / 病久無他望
몸이 한가하니 마음만 괴롭구나 / 身閑獨苦心
낙매 한 곡조에 봄물은 광활하고 / 落梅春水闊
비율 한 가락에 저문 구름 깊어라 / 悲栗暮雲深
창성한 국운은 전후에 빛나거니와 / 昌運光前後
위태로운 길은 고금에 뻗치었도다 / 危途亘古今
수시로 창자 속에 열이 날 때면 / 有時腸內熱
거문고 잡아 백설곡을 타고 싶어라 / 白雪欲鳴琴
[주D-001]낙매(落梅) : 고적곡(古笛曲)의 이름인데, 이백(李白)의 시에, “황학루에 올라 옥젓대 불어 대니, 강성이라 오월의 낙매화로세.[黃鶴樓中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 하였다.
[주D-002]비율(悲栗) : 호중(胡中)의 악기인 필률(觱篥)을 가리키는데, 그 소리가 매우 처량하다고 한다.
유거(幽居)에 대하여 절구(絶句)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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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해라 그윽한 집이 외진 마을 같아서 / 寂寂幽居類遠村
봄비 내린 뜰 앞에 이끼만 쑥쑥 자라네 / 庭前春雨長苔痕
주공의 꿈 놀라 깰까 걱정할 것 없어라 / 不憂驚破周公夢
찾아와서 문 두드릴 손이 어찌 있으랴 / 剝啄何曾有扣門
[주D-001]주공(周公)의 …… 없어라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심하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이어라, 내 다시 꿈속에서 주공을 만나 뵙지 못하였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잠자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찾아오는 손이 없으므로 잠을 깰 걱정이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論語述而》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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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몸 시리고 아파 홀로 문 닫고 있노라니 / 病骨酸辛獨掩門
동풍에 수양버들이 이미 마을을 흔드누나 / 東風楊柳已搖村
궁벽한 땅 그윽한 집이 가장 사랑스러운데 / 最憐地僻幽棲迥
더구나 또 산이 높다란 고목을 품었음에랴 / 況復山含古木尊
천상의 친구들은 자주 병을 위문하거니와 / 天上故人頻問疾
눈앞의 좋은 일들은 문득 말을 잊게 하누나 / 眼中勝事忽忘言
삼생의 번뇌를 녹여 없애기 어려워라 / 三生習氣難消盡
마음에 못 잊는 건 임금 은혜 갚는 거로세 / 耿耿心懷報主恩
또 짓다.
병중의 회포가 매양 스스로 슬프기만 해라 / 病裏情懷每自悲
푸른 하늘이 즐겨 안위를 주관하려 할쏜가 / 蒼天肯復管安危
때로 거울 대하면 파리한 몰골이 가엾고 / 時時對鏡憐黃瘦
일마다 기회 당하면 바보 같은 게 한스럽네 / 事事臨機恨白癡
흐르는 세월 번개 같음은 자못 믿거니와 / 頗信流光如電影
꽃가지에 꽃소식 온 것은 또다시 놀랍네 / 又驚芳信到花枝
삼라만상 포괄함에는 본디 힘이 없는지라 / 牢籠物像知無力
부리는 건 고작 작은 시가 있을 뿐이라오 / 驅使由來只小詩
홀(笏)에 대하여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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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 조정에 예의가 성대하여 / 周庭禮儀盛
죽본과 어반이 번쩍번쩍 빛났으니 / 竹本耀魚班
지시가 있으면 임금의 명을 받들고 / 指畫承君命
생각을 기록해 임금 앞에서 대답했네 / 書思對帝顔
붉은 주머니엔 흰 붓을 달았는데 / 紫囊懸白筆
상쾌한 기운은 서산에 가득했었지 / 爽氣滿西山
멀리 생각하니 뱀 때려 죽인 곳엔 / 緬想擊蛇處
위엄 있는 풍채가 노간을 꺾었으리 / 威風摧老姦
[주D-001]죽본(竹本)과 어반(魚班) : 죽본은 대나무로 만든 홀(笏)로서, 사(士)가 지니는 것이고, 어반은 상어[鮫]의 수염으로 문식한 홀로서, 대부(大夫)가 지니는 것이다. 《禮記 玉藻》
[주D-002]상쾌한 …… 가득했었지 : 진 (晉)나라 때 풍류(風流)로 이름났던 왕휘지(王徽之)가 일찍이 거기장군(車騎將軍) 환충(桓冲)의 기병참군(騎兵參軍)이 되었을 때, 한번은 환충이 왕휘지에게 막부(幕府)의 일을 묻자, 왕휘지는 아예 막부의 일은 대답하지 않고 홀(笏)로 턱을 괴고서 서산(西山)을 쳐다보며 말하기를, “서산에 아침이면 상쾌한 기운이 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뱀 …… 곳엔 : 송 (宋)나라 때 영주(寧州)의 천경관(天慶觀)에 요사스러운 뱀이 있어 극히 괴이하였으므로, 그곳 자사(刺史)는 하루에도 두 번씩 찾아가 뵈었고, 온 주민들은 그것을 용(龍)이라 하여 모두 문 앞에 가서 엄숙히 치성(致誠)을 드리곤 했었는데, 마침내 공도보(孔道輔)가 영주 자사(寧州刺史)의 막료(幕僚)로 있으면서 그 요사스러운 뱀을 홀(笏)로 쳐 죽여 주민들의 미신을 확연히 타파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고의(古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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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산 오르려니 내 말은 병들었고 / 陟阻我馬瘏
자갈길은 내 수레를 요동시키네 / 石齧甐我車
조심함이 아주 견고하지 못한 게지 / 操心非孔堅
아니면 누가 이토록 흐느끼게 하랴 / 誰使徒欷歔
음우 속에 짐승들은 부르짖는데 / 陰雨群獸呼
앞길은 다만 황량한 빈터뿐이요 / 前途但丘墟
사람 만나면 낯빛도 분간 못하는데 / 逢人不辨色
제각기 일찍 돌아가리라 말하네 / 各言早歸歟
노력하여 깊고 험한 곳 나오니 / 努力出幽險
세월이 어느덧 저물어가는구나 / 歲月忽將除
큰길은 곧기가 화살 같은데 / 周道直如矢
머리 쳐들고 바야흐로 머뭇거리네 / 矯首方趑趄
우연히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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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백 년을 사는 동안에 / 人生百歲爾
몸이 편하면 마음 절로 편하건만 / 身安心自安
위태한 가운데 조석을 지내노라니 /
한가로이 배회할 곳도 없어라 / 無地充盤桓
기름과 불은 서로 다투어 태우고 / 膏火競相煎
또다시 찬 얼음까지 만나네그려 / 又復遭氷寒
슬프도다 마침내 늙어 죽고 나면 / 哀哀竟老斃
바보스런 사업이 부끄러울 뿐일세 / 事業羞癡頑
믿었던 건 기운이 무지개 같아서 / 所恃氣如虹
한 번의 비로 천하를 적시려 했는데 / 一雨洽塵寰
어찌 알았으랴 끝내 길이 막히어 / 何知終坎軻
홀로 현원과 함께 탄식만 할 줄을 / 獨與玄猿嘆
현원도 또한 미쳐 가기 어려워라 / 玄猿亦難及
등라의 달빛엔 흙비가 겹겹이로세 / 蘿月霾重關
[주D-001]기름과 …… 태우고 :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기름은 불이 붙기 때문에 제가 스스로 태운다.[膏火自煎]” 한 데서 온 말로, 사람은 재능이 있기 때문에 화를 입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현원(玄猿) : 검은 빛깔의 원숭이를 가리키는데, 진(晉)나라 육기(陸機)의 시에, “사나운 범이 숲에서 부르짖으니, 검은 원숭이가 언덕에서 탄식하네.[猛虎憑林嘯 玄猿臨岸嘆]” 한 데서 온 말이다.
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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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에선 한식에 동풍이 좋이 불 때면 / 中原寒食好東風
사람과 그네가 반공중을 오르내리는데 / 人與鞦韆在半空
모름지기 기억할 건 삼한의 단오절에 / 須記三韓端午日
말 소리 속에 모시 적삼 가벼이 날림일세 / 紵衫輕擧語聲中
채색 실 나부끼며 스스로 바람 일으킬 땐 / 綵絲飛颺自生風
붉은 치마가 하늘로 들어갈까 두려웠는데 / 直恐紅裙入碧空
사람 파한 석양엔 적막하기만 하여라 / 人散晚來殊寂寞
석양 아래 그넷줄만 희미하게 걸려 있네 / 依依掛在夕陽中
당당한 가래나무는 멀리 바람을 임했는데 / 堂堂楸樹迥臨風
붉은 실 그넷줄은 공중을 차고 오르네 / 紅線鞦韆欲蹴空
소년들이 서로서로 끌어가고 밀어올 제 / 挽去推來少年在
여인들 시선 속에 장부의 심장 흔들려라 / 鐵腸搖蕩眼波中
격구(擊毬)를 구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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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밝은 날 화려한 거리 널찍해라 / 靑天白日綺陌闊
편평하긴 손바닥 같고 환하긴 씻은 듯한데 / 平如掌中明如刮
끌어온 준마들은 빛깔이 서로 엇갈리고 / 牽來駿馬色相奪
금안장 옥굴레는 다투어 왕래하누나 / 金鞍玉勒爭挑撻
무리 나눈 소년들이 처음 나가 공을 쳐라 / 分曹年少始出擊
명령 받든 대관은 재주 또한 뛰어나구려 / 拜命大官才更傑
구슬발 수놓은 휘장은 좌우에서 비추고 / 珠簾綉幕映左右
화려한 주취의 향기는 끊임없이 불어오네 / 朱翠生香吹不絶
중앙의 높은 장막 안엔 관현악이 요란한데 / 中央高幕管絃咽
양부에선 자리 열어 친히 고열을 하누나 / 兩府開筵親考閱
융병은 삼대에도 잘 다스림을 귀히 여겼는데 / 戎兵三代貴克詰
더구나 요즘 근교에는 좀도둑이 많음에랴 / 矧是近郊多巤竊
강 머리 푸른 풀은 아직도 핏빛을 띠어서 / 江頭靑草尙帶血
충의 어린 심장이 한창 찢어질 듯한지라 / 義膽忠肝方欲裂
이 때문에 대궐에서 파란 포도주 내리어 / 所以宮壺鴨頭綠
반열 중에서 무재를 특별히 총애하누나 / 寵異武才異班列
나는 별이 반짝이듯 공이 가장 빠르고 / 飛星瑩瑩毬最疾
번개를 쫓아 나는 듯 말발굽도 경쾌하여라 / 逐電翩翩蹄欲決
바람이 일고 불이 달려 미처 보기도 바쁘니 / 風生火逬未及矚
거리에 넘친 사람들 모두 팔짝팔짝 뛰누나 / 街溢巷塡皆踊躍
나도 잔년의 묵은 질병을 다 떨쳐 버리고 殘年宿疾束高閣
또한 누각에 올라 간단한 주연을 열어서 / 亦上市樓開小酌
반쯤 거나하여 말 타고 해는 저물어갈 제 / 半酣乘馬日將落
돌아오니 의기 호쾌하여 곤궁을 다 잊었네 / 歸來氣豪忘窮約
[주C-001]격구(擊毬) : 장(杖)으로 공을 쳐서 우열을 겨루었던 옛날 무술(武術)의 일종이다.
왕연수(王延壽)의 말 그림에 대하여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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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랑이 그린 한 필의 말은 / 王郞一疋馬
악와의 참모습을 그려내었네 / 寫出渥洼眞
천산의 풀을 모조리 뜯기고 / 齕盡天山草
봄날의 사원으로 끌어왔구려 / 牽來沙苑春
떼 지어 모일 땐 세월이 한가롭고 / 簇蹄閑日月
갈기를 떨치면 풍진을 일으키도다 / 振鬣起風塵
늙은 나는 새 골격을 좋아하노니 / 老我賞新骨
타고서 대궐에 조회가고 싶어라 / 欲騎朝紫宸
[주D-001]악와(渥洼) :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내 이름인데, 한 무제(漢武帝) 때에 악와천에서 신마(神馬)가 나왔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천산(天山) : 흉노(匈奴)의 지역에 있는 산맥(山脈) 이름이다.
[주D-003]사원(沙苑) :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땅 이름인데, 말을 목축하기에 아주 알맞은 땅이라 한다.
동산(東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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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꼭대기에 한참 동안 서 있노라니 / 東山高頂立移時
나도 모르게 생각이 혼돈 속에 드누나 / 思入鴻濛自不知
나는 새와 조각구름은 다 아득하기만 하고 / 飛鳥片雲俱縹渺
연한 등성이 높은 절벽은 절로 굼틀거리네 / 連岡斷壠自逶迤
가을바람에 두로는 띳지붕이 부서지고 / 秋風杜老破茅屋
저문 날에 산공은 접리를 거꾸로 썼지 / 落日山公倒接罹
초야에 앉아 임금 잊는 건 내 뜻이 아니니 / 畎畝忘君非我志
다시 남은 힘을 가지고 안위를 생각하련다 / 更將餘力念安危
[주D-001]가을바람에 …… 부서지고 : 두보(杜甫)가 띳지붕이 가을바람에 부서진 것을 노래한 시에, “팔월이라 가을바람이 아주 거세게 불어, 내 지붕 위의 세 겹 띠를 걷어버렸네.[八月秋風高怒號 卷我屋上三重茅]”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저문 …… 썼지 : 산 공(山公)은 진(晉)나라 때 풍류가 뛰어났던 산간(山簡)을 가리키고, 접리(接罹)는 두건(頭巾)인 백모(白帽)의 이름이다. 산간의 술 취한 모습을 두고 아동들이 노래하기를, “산공은 어디를 나가느뇨, 고양지를 가는구나. 저문 날에는 거꾸로 실려와서, 잔뜩 취하여 인사불성이라네. 때로는 혹 말을 타고 오면서, 하얀 접리를 거꾸로 쓴다네.[山公出何許 往至高陽池 日夕倒載歸 酩酊無所知 時時能騎馬 倒著白接罹]”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산수도(山水圖)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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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해라 마음은 시름겹기만 하고 / 慘惔愁肝腎
허리 다리는 늘어져서 힘도 없어라 / 紆餘散腰脚
천 리요 또 만 리나 멀리에 / 千里又萬里
한 언덕이요 다시 한 구렁이로다 / 一丘復一壑
옛 정자엔 두어 그루 소나무요 / 古亭松數株
평상의 거문고는 뜰 학을 마주했네 / 床琴對庭鶴
언제나 그윽한 보금자리 의탁하여 / 何時托幽棲
사람과 경계가 깨끗함을 함께해 볼꼬 / 人境共洒落
청행전(靑行纏)에 대하여 노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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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긴 정강이가 검고도 살이 없어 / 我有長脛黑無肉
파리한 몸 실은 모양이 병든 학 같건만 / 閣得瘦軀如病鶴
소년 시절엔 재명이 구중을 진동했으니 / 少年才名動九重
역사 시켜 신 벗김에 어찌 조금이나 뒤지랴 / 力士脫靴寧少却
곧장 버선발로 어연을 밟고 올라가서 / 直將布襪踏御筵
붓 잡고 시를 쓰면 천자가 좋아했는데 / 把筆題詩天子樂
누가 알았으랴 아직도 푸른 행전이 있어 / 誰知尙有靑行纏
높은 절벽 바위 계곡을 능란히 타올라서 / 雲崖石澗工夤緣
나무 끝에 나는 원숭이와 똑같이 빠를 줄을 / 樹杪飛猱共超忽
감과 밤은 산에 가득 서리는 하늘 가득할 제 / 柿栗漫山霜滿天
푸른 행전이 내 두 다리를 붙들어 주누나 / 靑行纏扶我兩脚
스스로 날마다 돌아가려 하지만 / 自有日欲歸
못 돌아간 지가 지금 몇 년이던고 / 未歸今幾年
[주D-001]역사(力士) …… 벗김 : 이백(李白)이 일찍이 당 명황(唐明皇)을 모시고 잔뜩 취하여, 환관(宦官) 고역사(高力士)에게 자기 가죽신을 벗기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7월 20일에 해산(解産)하기가 어려워 고생하는 여비(女婢)가 있어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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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이의 시를 주남에서 읽어보니 / 芣苢讀周南
그 씨가 난산을 다스린다 하였네 / 其子治難産
첫아이를 양 새끼처럼 순산하여 / 先生旣如達
태실이 길이 서로 이어졌는데 / 邰室永相纘
문왕께서는 깊은 뜻이 있었으니 / 文王有深意
한 번 노래하고 세 번 감탄할 만해라 / 一唱可三歎
태생 난생을 실패하지 않게 하니 / 胎卵不殰殈
어진 교화가 온 누리에 미치었네 / 仁風吹無間
행채를 좌우로 물을 따라 뜯어라 / 荇菜左右流
다시 관저의 난사를 읊조리네 / 更詠關雎亂
어려움 당하여 허둥지둥하다 보니 / 臨難却蒼黃
사람을 퍽이나 부끄럽게 하누나 / 令人多愧赧
[주D-001]부이(芣苢)의 …… 하였네 : 부이는 차전초(車前草)인데, 《시경》 주남(周南) 부이의 전(傳)에 이르기를, “혹자는 부이의 씨가 난산을 다스린다고 한다.[或曰其子治難産]”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첫아이를 …… 이어졌는데 : 태 실(邰室)은 태씨(邰氏)의 딸로서 주(周)나라 시조(始祖) 후직(后稷)을 낳은 강원(姜嫄)의 친정집을 가리킨다. 《시경》 대아(大雅) 생민(生民)에, “맨 처음 사람을 낳은 이가 바로 강원이시다……곧 낳아서 곧 기르시니, 그 아이가 바로 후직이셨네. 열 달을 꼭 채워서, 첫아이를 양 새끼처럼 순산하였네.[厥初生民 時維姜嫄……載生載育 時維后稷 誕彌厥月 先生如達]” 한 데서 온 말인데, 후직이 요(堯) 임금 때에 공이 있어, 요 임금이 그를 태(邰)에 봉하여 자기 모가(母家)에 가 살면서 강원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3]태생(胎生) …… 하니 : 《예 기(禮記)》 악기(樂記)에, “대인(大人)이 예악(禮樂)을 사용하여 천하를 다스리면, 천지(天地)가 화합하고 음양(陰陽)이 조화를 이루어……태(胎)로 낳는 짐승은 낙태(落胎)하지 않고, 알로 까는 새는 알을 깨지 않는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행채(荇菜)를 …… 읊조리네 : 《시 경》 주남(周南) 관저(關雎)의 난사(亂辭)에, “들쭉날쭉한 행채를, 이리저리 물 따라가며 취하놋다. 그윽하고 조용한 숙녀를, 자나 깨나 구하놋다. 구해도 얻지 못한지라, 자나 깨나 생각하노니, 지루하고 지루해라, 엎치락뒤치락 잠자리가 편치 않도다.[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한 데서 온 말로, 요조한 숙녀를 구하지 못해 끝없는 근심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듯이, 매우 불안하고 초조함을 비유한 것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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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삭신 꿇고 앉아서 누굴 좇아 나을꼬 / 骨酸危坐從誰療
찡그린 낯으로 길이 읊어 억지로 자위할 제 / 面皺長吟强自寬
마당 가득 내리던 비를 바람이 거두어 가니 / 小雨滿庭風捲去
우는 새 두어 소리가 푸른 숲에서 나누나 / 數聲啼鳥翠林寒
한 첨서(韓簽書)가 광암사(光巖寺)의 비문(碑文)을 썼는데, 나는 가서 구경하지 못하고, 애오라지 생각한 바를 서술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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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항의 붓끝은 날카로운 칼날 같은데 / 柳巷筆鋒如快劍
운암사의 비석이 긴 다리에 누워있으니 / 雲巖碑石臥長橋
후일엔 타루비에 응당 이끼가 푸를게고 / 他年墮淚苔痕綠
종고 소리와 총림은 절로 예전 같으리 / 鐘鼓叢林自暮朝
앓고 난 뒤의 문장은 하도 껄끄러웁고 / 病後文章多苦澁
난리 뒤의 신세는 더욱 쓸쓸하기만 하네 / 亂餘身世轉荒涼
우리 임금님 예찬하려도 끝내 방책이 없어 / 譽天贊日終無術
교산에 머리 돌리니 오늘도 석양이로세 / 回首喬山又夕陽
[주C-001]한 첨서(韓簽書) : 고려 말기 첨서(簽書)를 지낸 한수(韓脩)를 가리킨다. 그의 호는 유항(柳巷)으로, 학식과 행의(行誼)가 매우 높았고, 초서(草書)ㆍ예서(隸書)에도 뛰어났다.
[주C-002]광암사(光巖寺) : 개성(開城)의 무선봉(舞仙峯) 아래에 있는 절 이름인데, 일명 운암사(雲巖寺)라고도 한다. 여기가 바로 공민왕(恭愍王) 현릉(玄陵)의 재궁(齋宮)이었다.
[주D-001]후일엔 …… 푸를게고 : 진 (晉)나라 양호(羊祜)가 일찍이 도독형주제군사(都督荊州諸軍事)가 되어 양양(襄陽)에 주재했던 관계로, 그가 죽은 뒤에 부속(部屬)들이 추모하여 그가 생전에 유식(游息)했던 현산(峴山)에 비(碑)와 사당을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는데, 그 비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눈물을 흘렸으므로, 두예(杜預)가 이 비를 타루비(墮淚碑)라 칭하였다. 이백(李白)의 〈양양곡(襄陽曲)〉에는, “현산이 한강을 임해 있으니, 물은 푸르고 모래는 눈빛 같아라. 그 위에는 타루비가 서 있으니, 푸른 이끼가 이미 마멸되었네.[峴山臨漢江 水綠沙如雪 上有墮淚碑 靑苔已磨滅]” 하였다.
[주D-002]교산(喬山) : 옛날 황제(黃帝)를 장사 지냈던 산 이름인데, 전하여 왕릉(王陵)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공민왕(恭愍王)의 현릉(玄陵)을 말한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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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그림자 마당 가득코 이끼는 푸르러라 / 滿庭山影綠苔痕
거마들은 먼 마을을 찾아올 까닭이 없건만 / 車馬無緣到遠村
우물 긷느라 문밖에 문득 길이 났으니 / 汲井却成門外路
계집종은 조석으로 물동이를 이고 다니네 / 女奴朝夕頂銅盆
호구(糊口)의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구름 걷힌 푸른 하늘엔 한 달빛이 외롭고 / 雲卷靑天月一痕
이른 가을바람 이슬은 산촌에 가득했는데 / 早秋風露滿山村
새벽에 한 꿈을 깨고 잠시 일어나 보니 / 曉來一夢俄頃起
소나기가 동이로 쏟는 듯 주룩주룩 내리네 / 急雨浪浪似瀉盆
몸가짐의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죽계권(竹溪卷)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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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빛은 고요할수록 푸르고 / 竹色靜逾碧
시냇물 소리는 한가할수록 맑은데 / 溪聲閑更淸
고상한 사람이 막 홀로 서 있으니 / 高人方獨立
바람은 솔솔 달빛은 환히 밝구나 / 風細月華明
7 월 8일에 조칙(詔勅)을 들으러 정동성(征東省)에 갔을 때 명선 학사(明善學士)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는데, 21일에 왕 태의(王太醫)가 와서 얘기하던 가운데 명선이 죽은 지가 이미 10여 일이 되었다고 하므로, 깜짝 놀라 외치고 나서 노래를 지어 곡(哭)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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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에서 과거한 이가 두 사람 남았는데 / 元朝進士二人存
나는 오랜 병치레에 두 눈까지 캄캄하네 / 臥病長年兩眼昏
지팡이 짚고 성중에서 함께 조칙 들었는데 / 扶杖省中同聽詔
천상의 사신 바라보니 넋이 빠지려 하누나 / 望槎天上欲銷魂
수일 동안 선유하러 감인지 어찌 알랴만 / 那知數日仙遊去
다생으로 객사하는 게 가장 원통하구려 / 最是多生客死冤
무성한 수양버들도 나의 아픔을 아는지 / 楊柳依依知我痛
문항에 낮게 드리워 오는 수레를 막는구나 / 低垂門巷截來轅
[주D-001]다생(多生) : 불가(佛家)의 용어로,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을 지어 윤회(輪廻)의 고통을 받으면서 생사(生死)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말한다.
잃을 것이 없다. 지 상인(持上人)을 위하여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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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가질 것이 없거니 무엇을 잃으랴만 / 本不可持何可失
갖고 잃는 것이 있어 도리어 분분하다네 / 有持有失却紛然
두타의 웃음을 아무도 알아들을 이 없고 / 無人領得頭陀笑
한 조각 강산만이 눈앞에 가득하구나 / 一片江山滿眼前
[주D-001]두타(頭陀)의 웃음 : 석 가(釋迦)가 영취산(靈鷲山)에 있을 때, 어느 날 천화(天華)를 들어 중인(衆人)에게 보이니, 수많은 중인이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으나, 당시 석가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두타제일(頭陀第一)인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그것을 깨닫고 파안미소(破顔微笑)를 지으므로, 석가가 이르기를,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은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교외별전(敎外別傳)이니, 마하가섭에게 이것을 부촉(付囑)한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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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못과 깊은 산은 절로 한 세계가 있어 / 大澤深山自一天
삼엄하고 그윽한 형세가 서로 이어졌으니 / 森嚴沈邃勢相聯
후일에 범이 떠나고 용이 없어지고 나면 / 他年虎逝龍亡去
도깨비들이 제멋대로 권세를 부리리로다 / 魑魅紛紛弄得權
[주D-001]범이 …… 부리리로다 : 군자(君子)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소인(小人)들이 득세(得勢)하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소식(蘇軾)의 〈제구양문충공문(祭歐陽文忠公文)〉에 보인다.
21일에 박사(朴舍)가 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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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강남으로 가더니 / 昔向江南去
오늘은 일본에서 왔구려 / 今從日本來
표류함은 바람에 맡기었는데 / 隨風信飄泊
조물주가 스스로 안배하였네 / 造物自安排
지주는 은혜가 어이 그리 두터웠나 / 地主恩何厚
나라 사람은 돌아옴을 기뻐할 걸세 / 邦人喜得廻
이번 길엔 의당 복명을 해야 하니 / 此行須復命
후일에 다시 만나 술잔을 드세나 / 異日更浮杯
바다와 산은 어이 그리 아득한고 / 海山何渺渺
모자는 참으로 마음이 아팠으리 / 母子正哀哀
모친은 늙어서 과연 질병이 없고 / 孃老果無恙
아이는 철없어서 재앙을 면했겠지 / 兒癡當避災
거리낌 적으니 몸은 나는 새 같고 / 累輕身似鳥
나이 늙으니 등은 복어처럼 얼룩지네 / 年暮背如鮐
오늘밤이 정히 어떤 밤인고 / 今夕定何夕
채색옷 입고 처음 춤추는 노래자로세 / 斑衣始舞萊
[주D-001]지주(地主) : 여기서는 일왕(日王)을 가리킨다.
우중(雨中)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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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는 주룩주룩 빈 당에 가득한데 / 雨聲颯颯滿虛堂
낮 꿈을 막 깨고 나서 붓을 바삐 찾노니 / 午夢初回索筆忙
마음이 맑아 절로 사사로운 뜻 없는지라 / 心淨自無私意起
더위 한 번 식혀준 은혜 하늘에 감사하네 / 一涼恩厚謝蒼蒼
회상하니 한더위엔 낯이 붉게 달았었는데 / 回首炎天面發紅
얼음덩이 비단 부채가 쓸모없게 되었네 / 氷峯紈扇已成空
살펴보니 또 중추의 달이 머지않은지라 / 看來又近中秋月
해마다 점점 늙어감을 스스로 깨닫겠네 / 自覺年年成老翁
백이(伯夷)의 낙(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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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사막 가운데 진인을 명하니 / 天命眞人沙漠中
백 년 동안 삼척법으로 풍속을 바꾸었고 / 百年三尺潜移風
하늘이 강회 사이에 진인을 명하니 / 天命眞人江淮間
중화의 구정이 산과 같이 무거웠네 / 中華九鼎重如山
진인의 출현은 해가 하늘에 뜸과 같아서 / 眞人之出日麗天
팔방 끝까지 빛나고 밝게 똑같이 비추고 / 赫赫明明同八埏
오악은 서로 연해서 대궐을 옹위하는데 / 五岳聯綿擁金闕
한 가닥 고죽국(孤竹國)의 달빛만 길이 희었네 / 一朶長白氈廬月
썩은 선비는 사립문 닫고 병석에 누워서 / 腐儒臥病扃苔扉
수시로 나는 뜬구름을 우러러보노라니 / 時時仰見浮雲飛
어디서 오는지 긴 바람이 한 번 불면은 / 長風一來自何處
동서남북 바람이 서로 따라 돌아가누나 / 東西南北相追歸
그대는 못 보았나 삼왕이 교대로 일어나고 성현이 나올 제 / 君不見三王迭興聖賢作
유독 백이의 마음만 스스로 즐거웠음을 / 獨有伯夷心自樂
[주D-001]진인(眞人) : 여기서는 창업주(創業主)인 성천자(聖天子)를 가리킨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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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의 기상은 도성 안에서 호걸스럽고 / 丈夫氣豪鳳城裏
아녀자의 몸은 조그만 집에 편안하구나 / 兒女身安蝸舍中
출처는 예로부터 천명에 달려 있거니와 / 出處由來在天命
길고 짧은 노래 속에 또 가을바람이로세 / 長歌短歌又秋風
무마행(無馬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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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물에 말이 약하여 감히 못 나가노니 / 泥水馬弱不敢出
창려 선생은 남들과 내왕을 끊기도 했었네 / 昌黎先生與人絶
늙은 목은은 마구간에 이끼가 낀 지경이라 / 牧隱老年廐生苔
동쪽 집에서 때로 절름발이 노새를 빌린다오 / 東家蹇驢時借來
그 누가 빈부를 가지고 치수를 계교했던고 / 誰將貧富較銖錙
간대 끝의 독비곤과 산호수도 있었네 / 一竿犢鼻珊瑚枝
당시의 원도는 성대히 여유가 있었거니와 / 當時原道霈有餘
악어 옮기고 구름 헤침은 역사에 전하였네 / 徙鰐開雲垂史書
지금까지 그를 북두성처럼 앙모하거니 / 至今仰之如北斗
머리 숙이고 무슨 맘으로 가난을 한탄하랴 / 低頭何心嘆貧窶
그대는 못 보았나 중니는 양식 끊기고 안자는 자주 공하여 / 君不見仲尼絶粮顔子空
천추만고에 그 높은 풍도 흠모하는 걸 / 千秋萬古歆高風
[주D-001]창려 선생(昌黎先生)은 …… 했었네 : 창 려 선생은 곧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진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한유가 위 중행(衛中行)에게 준 편지에, “황량한 시골에 곤궁히 사노라니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나가자니 당나귀가 없어 사람들과 내왕을 끊어 버리고, 방 안에 들어앉아 스스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窮居荒涼 草樹茂密 出無驢馬 因與人絶 一室之內 有以自娛]”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치수(錙銖) : 아주 가벼운 무게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하찮은 이해득실(利害得失)을 의미한다.
[주D-003]간대 …… 있었네 : 독 비곤(犢鼻褌)은 쇠코잠방이를 가리킨다. 간대 끝의 독비곤이란,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함(阮咸)은 길 남쪽에 살면서 매우 가난하였고, 길 북쪽에 사는 다른 완씨(阮氏)들은 다 부자였다. 어느 해 7월 7일에 북쪽의 완씨들이 모두 화려한 비단옷을 꺼내서 햇볕에 포쇄(曝曬)하자, 완함은 대포(大布)로 지은 쇠코잠방이를 높은 간대 끝에 걸어 놓았던 데서 온 말이다. 산호수(珊瑚樹)는, 진(晉)나라 때의 부호(富豪)였던 석숭(石崇)과 왕돈(王敦) 등이 서로 사치를 숭상하여 산호수를 각각 집에 저장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원도(原道) : 한유(韓愈)가 지은 문장의 이름인데, 그 내용은 대략 유도(儒道)의 인의도덕(仁義道德)을 강조하고, 도가(道家)와 불가(佛敎)를 이단(異端)으로 극력 배척한 것이다.
[주D-005]악어(鰐魚) …… 해침 : 한 유가 일찍이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부임했을 때, 그곳 악계(惡溪)에는 악어가 살고 있어 가축과 농산물을 수시로 나와 먹어치워서 백성들이 살 수가 없는 지경이었으므로, 한유가 제악어문(祭鰐魚文)을 지어 악계에 던졌는데, 그날 저녁에 바로 악계에 폭풍이 불고 천둥이 치더니, 수일 후에는 그곳의 물이 다 말라서 악어가 온데간데없어 이로부터 악어의 해를 면하게 되었던 일과, 또 한유가 일찍이 형악묘(衡嶽廟)를 배알하러 형산(衡山)에 올랐을 때, 구름이 잔뜩 끼어서 사방을 바라볼 수 없자, 정성껏 묵도(默禱)한 결과 마침내 구름이 활짝 걷혀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6]중니(仲尼)는 …… 공(空)하여 : 공 자가 일찍이 위(衛)나라를 떠나 진(陳)나라에 갔을 때, 7일 동안 양식이 떨어져서 종자(從者)들이 모두 굶주리고 병들어 큰 곤경을 치렀던 일과, 공자가 이르기를, “안회는 도에 가까워졌고, 자주 먹을 것이 떨어지기도 한다.[回也其庶乎 屢空]”라고 했던 것을 말한다.
금강산(金剛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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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산의 땅은 삼분의 이를 진압하였고 / 鍾山地控三分二
풍악은 일만 이천 봉우리가 모였는데 / 楓嶽峯攢萬又千
줄을 이어 향 내린 건 지난날의 일이요 / 絡繹降香前日事
지금은 적막하게 구름 연기만 잠기었구나 / 如今寂寞鎖雲烟
군수는 위엄을 부려 역졸들을 불러대고 / 郡守施威呼五百
산승은 땀흘리며 삼천 인이나 분주하네 / 山僧流汗走三千
은혜 갚고 고통 없앰은 그들의 일이라 / 報恩濟苦渠家事
자귀 끝에 바람 일어 푸른 연기 흩어지네 / 斤斧生風散碧烟
김 좌윤(金左尹)에게 받들어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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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한 지 지금 이미 오래인지라 / 別離今已久
친애하는 마음 늙을수록 깊어지네 / 親愛老來深
동해엔 가을이 지금 한창일 텐데 / 東海秋將半
어느 때나 필마를 타고 찾을꼬 / 何時匹馬尋
이 동년(李同年) 임하(臨河) 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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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동안 소식은 단절되었고 / 數年音信絶
천리 길에 왕래 또한 드물어라 / 千里往來稀
원래 구전하러 간 것이 아니라 / 不是求田去
서찰을 보낼 길 또한 막연하구려 / 無由送札歸
지경은 그윽해 늙은 나무가 많고 / 境幽多老木
울창한 산에는 석양이 걸렸으리 / 山密掛斜暉
어느 날에나 높은 은자를 찾아서 / 何日尋高隱
서로 이끌고 낚시터를 들러 볼꼬 / 相携過釣磯
[주D-001]구전(求田) : 전답과 가옥을 사려고 묻는다는 구전 문사(求田問舍)의 준말로, 자기 일신상의 이익에만 마음을 쓰고, 국가의 일에는 무관심함을 이르는 말이다.
27일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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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으로 문 두드려 물불을 구하거든 / 朝莫扣門求水火
주지 않을 이 없음은 아주 넉넉키 때문이니 / 人無不與至足耳
집집마다 먹을 것도 이처럼 넉넉하다면 / 家家菽粟亦如此
천하에 어찌 예의 없는 걸 걱정하리요 / 天下何憂無禮義
우뚝한 추나라에는 스스로 천지가 있어 / 巖巖鄒國自天地
곧장 화기를 가지고 이단을 꺾어 버리고 / 直將和氣摧邪異
뿌리 뽑고 근원 막아 세교를 세웠었네 / 拔本塞源立世敎
명당을 헐지 않음은 뜻이 없지 않거니와 / 明堂不毁非無意
천심과 왕화는 천하에 두루 유행하나니 / 天心王化共周流
예로부터 서로 이은 천자가 그 몇이었던고 / 自古相承幾天子
더운 곳 추운 곳 남북이 모두 감복하였네 / 炎天朔雪自南北
정통은 후일 어진 사관에게 붙여지리니 / 正統他年付良史
인심을 얻는 것은 우연한 게 아니라오 / 得人之心非偶爾
[주D-001]우뚝한 추(鄒)나라 : 맹자(孟子)가 추나라 사람이므로, 곧 맹자를 가리킨 말이다.
[주D-002]명당(明堂)을 헐지 않음 : 명 당은 주(周)나라 때 태산(泰山)에 있던 궁전 이름으로, 이곳은 바로 주나라 천자(天子)가 동쪽으로 순수(巡守)하여 제후(諸侯)들을 조회받던 곳이다. 전국 시대 제 선왕(齊宣王)이 맹자(孟子)에게 묻기를, “사람들이 나더러 명당을 헐어 버리라 하는데, 헐어야겠습니까, 말아야겠습니까?” 하니, 맹자가 이르기를, “명당이란 왕자의 당이니, 왕께서 왕정을 행하시려면 헐지 마소서.”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梁惠王下》
28일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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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만고에 하나의 진흙덩이였건만 / 江山萬古一丸泥
수많은 영웅들이 스스로 길을 헤매었네 / 多少英雄路自迷
매양 조심하는 건 하늘이 알고 있거니와 / 耿耿操心天在上
한가히 노년 보내니 해는 막 넘어가누나 / 悠悠送老日初西
붉은 먼지 길에 가득해라 조회간 말을 돌리고 / 紅塵滿路回朝馬
푸른 버들 문에 드리울 제 낮 닭소리를 듣네 / 碧柳垂門聽午雞
생각건대 연래엔 기화요초가 많이 자라서 / 想得年來瑤草長
붉은 절벽엔 아득히 구름 사다리 의지하리 / 丹崖縹渺倚雲梯
청태가(靑苔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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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여 이끼여 어이 그리도 푸르른고 / 苔兮苔兮何靑靑
예전엔 뜰에만 올랐다더니 이젠 대청까지 왔네 / 昔聞上堦今半廳
깊은 가을 궂은비에 갠 날이 적으니 / 秋深苦雨少晴日
어찌 거마가 빈 뜰에 올 리가 있으리요 / 豈有車馬來空庭
아침마다 하인이 더러운 것만 쓸어버릴 뿐 / 朝朝倦僕掃穢耳
밟고 다닐 사람 없어 내 마음 편키만 해라 / 無從踏破吾心寧
은자나 부귀한 집에 꽃다운 풀이 있어도 / 閑門要路有芳草
고인의 노랫소리를 누가 능히 들었으랴 / 古人歌詠誰能聽
유독 성질이 유별난 이끼를 사랑하노니 / 獨愛靑苔性寡合
궁벽한 곳에 나서 성긴 난간과 연접하여 / 生在僻處連疎櫺
비단을 씻는 듯 실마다 가랑비 떨어지고 / 濯錦絲絲落微雨
별을 띤 듯 반짝반짝 반딧불이 날기도 하네 / 帶星耿耿飛流螢
회상하건대 버선 신고 산사에 노닐 적엔 / 回首布襪山寺遊
노승이 지팡이 짚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 老僧倚杖高伶俜
내 다리 밑에 붉은 먼지 묻은 걸 알고는 / 知予脚底有紅塵
때로 눈썹 찡그리고 얼굴도 붉히었다네 / 時皺長眉顔亦頳
어찌 알았으랴 마침 내게 의발을 전하려고 / 豈料傳衣適在我
날로 송아지 달리듯 하는 첨정을 성낸 것을 / 日日犢走嗔添丁
[주D-001]예전엔 뜰에만 올랐다더니 : 당나라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에, “이끼는 섬돌에 올라 새파랗고, 풀빛은 주렴에 들어 푸르도다.[苔痕上階綠草色入簾靑]” 하였다.
[주D-002]날로 …… 것을 : 송 아지 달리듯 한다는 것은, 곧 두보(杜甫)의 〈백우집행(百憂集行)〉에, “생각하니 십오 세 때도 마음은 아직 어려서, 송아지처럼 건장하여 달려가고 오고 하였네.[憶年十五心尙孩 健如黃犢走復來]” 한 데서 온 말이다. 첨정(添丁)은 곧 노동(盧仝)이 아들을 낳자, 국가에 한 정역(丁役)이 첨가되었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첨정이라 이름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철없는 아동을 가리킨다.
7월 29일은 바로 익재(益齋) 선생의 명기(明忌)인데, 나는 병으로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옛일에 감격하여 회포를 서술하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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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희대의 인물로 사문을 진흥시켜 / 先生間世振斯文
규벽이 큰 바닷가에 광채를 드날리었네 / 奎壁騰輝大海濆
선생의 유풍은 참으로 후인의 밑거름이라 / 賸馥殘膏信霑丐
당시의 영재들이 모두 청운에 빛나누나 / 當時玉笋照靑雲
축수하던 당년엔 밤새도록 떠들어댔으니 / 祝壽當年徹夜喧
존전에서 장난 말 미친 말 마구 지껄이고 / 尊前戲語雜狂言
당장을 밀어내어 향을 피우러 가서는 / 推컼堂長燒香去
그 누가 불전의 문을 불쑥 들어갔던고 / 佛殿誰曾更闖門
병중의 세월은 베 짜는 북처럼 하도 빨라서 / 病中歲月似飛梭
눈에 보인 동년도 또한 많지를 않구나 / 面見同年亦不多
오늘은 응당 단란한 모임을 이뤘을 텐데 / 今日定應團一會
창 가득한 가을빛 아래 못 감을 한탄하노라 / 滿窓秋色歎蹉跎
[주D-001]규벽(奎壁)이 …… 드날리었네 : 규와 벽은 모두 문운(文運)을 관장한다는 별 이름이므로, 즉 우리 동방(東方)에 문풍(文風)을 크게 일으켰음을 뜻하는 말이다.
성친(省親)하러 가는 김백옥(金伯玉)을 보내다. 이름은 이음(爾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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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옥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 伯玉我初識
태학에 봄바람 불던 때인데 / 泮水春風中
붉은 봉황 새끼가 훨훨 날아라 / 翩翩丹鳳雛
태학에 아침해가 붉었었네 / 綠槐朝日紅
중서당에서 한 번 명성을 떨쳐 / 一鳴中書堂
추천을 받아 제공을 놀라게 했고 / 首薦驚諸公
대책으로 고과에 발탁되었으니 / 對策擢高科
필력은 마치 긴 무지개 같았었네 / 筆力如長虹
계림에서 서기의 직책 맡아서는 / 雞林掌書記
일 만나면 참으로 바람이 일었는데 / 遇事眞生風
어사에게 저촉을 받게 되면서는 / 抵觸部使者
그 관직을 헌신짝처럼 버리었네 / 棄去弊屣同
그 후 도성으로 선발되어 와서는 / 被選本天下
서책 교정이 유능하다 일컬어졌고 / 校讎時稱工
이어 옥당으로 전직되어서는 / 移居玉堂裏
연고의 문사가 가장 뛰어났었네 / 演誥詞最雄
문서로써 두 관부에 일하다가 / 文牒事兩府
당후관으로 세월을 마치었는데 / 堂後歲月終
사무 처리의 재능 또한 뛰어났으니 / 吏才又出等
잘 배워서 쓰임이 이에 풍부했도다 / 學成用迺豐
늙은 모친이 기다린 지 오래인지라 / 老親倚閭久
오랫동안 근심 걱정 많았으리니 / 久矣心忡忡
한가한 틈 내어 속히 내려가서 / 投閑可速去
채색옷 입고 춤추면 신명이 감통하리 / 舞綵神明通
자식의 직분은 뜻을 받듦에 있고 / 子職在養志
뜻을 받들려면 몸을 보전해야 하니 / 養志當保躬
명철 보신을 제일의로 삼아서 / 明哲第一義
몸을 조섭하는 데 공을 펴야 하리 / 調燮宜施功
더구나 나와는 같은 고향으로서 / 況我同鄕里
서로 가까운 함창과 안동이거니 / 咸昌與安東
감히 정으로써 주지 않을쏜가 / 敢不以情贈
그대는 의당 이 늙은이를 용서하겠지 / 君當恕老翁
또 제(題)하다.
지난겨울 눈이 문에 가득할 제 / 去冬雪擁門
술에 취해 마음이 약간 답답했는데 / 酒困心稍煩
백옥이 배를 보내와서 먹었으니 / 伯玉送梨來
그 상쾌한 기분을 어떻게 형용하랴 / 快哉復何言
살살 씹으매 입안이 상쾌해져서 / 細嚼爽口頰
캄캄한 천지를 말끔히 씻은 듯했고 / 淨洗乾坤昏
읊은 시 또한 빙호처럼 깨끗하여 / 吟詩如氷壺
냉랭한 골격에 마음까지 맑아졌네 / 冷骨仍淸魂
다만 병이 아직 남았기 때문에 / 只因病尙在
음식 절제하여 원기를 조양하노라 / 節食調眞元
도의는 함양하는 데에 달렸거니와 / 道義在涵養
문장은 의당 토론을 해야 하는데 / 文章當討論
정신과 형체가 이미 다 쇠해져서 / 神形旣凋瘁
도의 근원을 탐구하기 어렵구려 / 難以探天原
후생이 오히려 두려운 것이니 / 後生尙可畏
덕성을 의당 스스로 높이어야지 / 德性宜自尊
[주D-001]일 …… 일었는데 : 직무를 과감하게 잘 처리했음을 이른다. 한(漢)나라 때 유능한 지방관이었던 조광한(趙廣漢)이 일을 보면 바람이 휙휙 날 정도로 과감하게 잘 처리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연고(演誥) : 임금의 조령(詔令) 등을 초(草)하는 일을 가리킨다.
[주D-003]당후관(堂後官) : 당리(堂吏)와 같은 말인데, 고려 때에는 특히 중추원(中樞院)의 정7품 관직을 이렇게 일컬었다고 한다.
[주D-004]후생(後生)이 …… 것이니 : 공 자가 이르기를, “후생이 두려우니, 후생이 장래에 지금의 나만 못할 줄을 어떻게 알리요.[後生可畏焉知來者之不如今也]” 한 데서 온 말로, 즉 후생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여 학문을 많이 쌓을 수 있으므로, 그 형세가 두려워할 만하다는 것이다. 《論語 子罕》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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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사람을 궁하게 하는 게 아니라 / 非詩能窮人
궁한 사람이라야 시가 공교해진다오 / 窮者詩乃工
나의 도는 지금 세상과 달라서 / 我道異今世
고심하여 자연의 원기를 찾노라면 / 苦意搜鴻濛
빙설이 살과 뼈를 찌르더라도 / 氷雪砭肌骨
환연히 내 마음 스스로 즐거우니 / 歡然心自融
비로소 믿겠네 옛사람의 말에 / 始信古人語
뛰어난 시구가 궁한 데서 나온다는 걸 / 秀句在羈窮
화평하면 밝은 태양이 빛나고 / 和平麗白日
참혹하면 슬픈 바람이 생겨서 / 慘刻生悲風
보는 데 따라 정이 절로 동하나니 / 觸目情自動
노력하여 그 중도를 구할 것이요 / 庶以求厥中
창졸간에 중도를 잡기 어려우나니 / 厥中難造次
군자는 의당 공부를 해야 하느니라 / 君子當用功
[주D-001]뛰어난 …… 걸 : 소식(蘇軾)의 시에, “시인은 으레 곤궁한 것이라, 뛰어난 시구가 춥고 배고픈 데서 나온다네.[詩人例窮蹇 秀句出寒餓]” 한 데서 온 말이다.
일본(日本)의 중[釋] 유천우(有天祐)를 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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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에 옛 정사가 있으니 / 東福古精舍
상인이 날카로운 기봉을 휘두르네 / 上人橫氣機
처음엔 면벽하여 좌선을 하다가 / 坐禪初面壁
흥취를 만나면 즉각 시를 쓰도다 / 遇興卽題詩
구름 그림자는 배 안에 떨어지고 / 雲影舟中落
쇠한 얼굴은 거울 속에 비치어라 / 秋容鏡裏歸
장문에 날이 장차 저물려고 하니 / 長門日將暮
백발 모친이 문에 기대 기다리겠네 / 白髮倚閭時
[주D-001]백발 …… 기다리겠네 :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왕손가(王孫賈)의 모친이, 아들이 아침에 나가서 저물어 돌아올 때면 집의 문(門)에 기대 서서 기다렸고, 저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을 때면 이문(里門)에 기대 서서 기다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8월 1일에 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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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가 이미 농사를 해쳤는지라 / 大雨旣傷稼
백성의 생계가 참으로 가련하거늘 / 民生誠可哀
또 그지없이 주룩주룩 쏟아지니 / 滂沲又不止
천벌의 조짐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 咎徵安在哉
요탕은 나쁜 시운을 만났으나 / 堯湯遇時數
고심하여 큰 재변을 막아 내니 / 苦心禦大災
큰 홍수와 큰 가뭄이 든 때에도 / 滔天爍玉際
사람들이 절로 태평을 누리었는데 / 人自登春臺
세상 운수가 날로 더욱 나빠만 가니 / 世運日益降
흘러간 물을 어찌하면 끌어 돌릴꼬 / 流水何當回
군자가 아무쪼록 노력해야만 / 君子庶努力
우뚝한 산처럼 우러르게 되리 / 高山仰崔嵬
또 읊다.
가랑비도 오래 오면 옷이 젖고요 / 雨細久自潤
실바람도 가늘게 소리가 있나니 / 風輕微有聲
물이 생하면 마침내 무성해져서 / 物生遂暢茂
화려하게 다투어 꽃을 피운다네 / 夭夭爭發榮
임금이 구중궁궐에 조용히 앉아서 / 垂衣拱淵默
예의로써 인정을 도야시킬 적엔 / 禮義陶人情
신묘한 조화는 절로 자취가 없으나 / 神化自無迹
온 천하에 난리가 말끔히 없어졌네 / 海宇烟塵淸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와서 / 風雨忽暴至
전쟁을 하듯 마구 두드려 쳐대니 / 摐摐如甲兵
큰 나무는 넘어지고 또 꺾이고 / 高木倒且折
거센 홍수는 남성을 무너뜨리네 / 奔流壞南城
아 이 백발의 늙은이는 / 嗚呼白髮叟
밝은 봉창 아래 병석에 누워서 / 臥病蓬窓明
마음속으로 매양 기도를 하노니 / 冥心每自禱
세월이 지금 그 얼마나 바뀌었는고 / 歲月今幾更
[주D-001]요탕(堯湯)은 …… 만났으나 : 요 임금 때는 구년 홍수(九年洪水)의 재변이 있었고, 탕 임금 때는 칠년 대한(七年大旱)의 재변이 있었음을 말한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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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혐은 바로 사소한 체면이라 / 避嫌是小節
현자도 오히려 하지 않나니 / 賢者猶不爲
이 때문에 옛 성인들은 / 是以古聖人
명백하여 조금의 의심도 없었네 / 明白無少疑
그런데 어찌하여 요즘 선비들은 / 奈何比來士
묵묵히 자기 이익만 도모하는고 / 悶默圖自私
원수와 자기 자식을 천거한 일이 / 擧讎與擧子
중세에도 오히려 있었는 걸 / 中世猶有之
풍속은 날로 투박해져만 가고 / 風俗日偸薄
강상은 날로 문란해져만 가는데 / 綱常日陵夷
나는 이를 만회시킬 힘이 없으나 / 挽回我無力
하늘은 좋이 인도할 때가 있으리 / 啓迪天有時
후일에 기개 있는 이가 나오거든 / 他年倜儻者
나의 시 반복해 읽으며 슬퍼하리라 / 三復哀吾詩
[주D-001]원수와 …… 일 : 춘 추 시대 진(晉)나라의 대부(大夫) 기해(祁奚)가 늙어서 치사(致仕)를 청하자, 진후(晉侯)가 후임자를 물으니, 평소에 자기 원수인 해호(解狐)를 천거하므로 그를 후임으로 세우려고 하였으나, 그가 마침 죽었다. 그러자 진후가 다시 기해에게 후임자를 물으니, 자기 자식인 기오(祁午)가 쓸 만하다고 천거했던 데서 온 말이다. 기해의 일을 두고 군자는 말하기를, “기해는 편당을 짓지 않았다고 이를 만하다. 외인(外人)을 천거함에 있어서는 원수도 숨기지 않았고, 내인(內人)을 천거함에 있어서는 자식도 숨기지 않았다.” 하였다.
비가 지나간 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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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공중에 비 지나자 푸른 하늘 탁 트이고 / 雨過長空敞碧羅
짙고 옅은 구름은 아직 뭉게뭉게 나는데 / 行雲濃淡尙嵯峨
막 목욕한 가을 산이 그림처럼 화려하기에 / 秋容新沐山如畫
번천을 조용히 거닐며 짧은 노래 부르노라 / 細履樊川放短歌
[주D-001]막 …… 부르노라 : 번 천(樊川)은 두목(杜牧)의 전원(田園)이 있는 곳으로, 두목의 호이기도 하다. 두목의 〈만청부(晚晴賦)〉에, “비 개니 가을 풍경이 새로 목욕한 듯 말끔하여, 전원을 꺾어돌며 조용히 거니노라.[雨晴秋容新沐兮 折繞園而細履]” 한 데서 온 말이다.
예전에 지은 시를 읽고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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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목은에게 길이 읊조림 관장케 하니 / 天敎牧隱管長吟
자못 연래에 흥취가 깊어짐을 깨닫겠구려 / 頗覺年來興趣深
옛 뜻에 새로운 말은 시의 격률이고요 / 意舊語新詩格律
많이 앉고 적게 다님은 병든 세월이로다 / 坐多行少病光陰
한기와 번삽은 모두 특수한 시체거니와 / 韓奇樊澁皆殊體
도수와 교한은 고심만 했을 뿐이었네 / 島瘦郊寒只苦心
곧장 거슬러 올라 아송을 탐구하고프나 / 直欲遡流探雅頌
노쇠하여 감당키 어려움이 가련하구나 / 自憐衰老力難任
[주D-001]한기(韓奇)와 번삽(樊澁) : 한기는 한유(韓愈)의 시풍(詩風)이 기이함을 말한 것이고, 번삽은 당나라 때의 문인(文人) 번종사(樊宗師)의 글이 매우 기삽(奇澁)하여 당시에 그의 글이 삽체(澁體)로 일컬어졌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도수(島瘦)와 교한(郊寒) : 도수는 가도(賈島)의 시풍이 파리함을 말한 것이고, 교한은 맹교(孟郊)의 시풍이 한빈함을 말한 것이다.
이 대경(李大卿)이 승선(承宣)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을 달려서 받들어 하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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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은 선생은 도덕이 의당 높았거니와 / 樵隱先生道德尊
문장의 성가는 중원을 진동시켰는데 / 文章聲價動中原
안전에서 떠난 이들은 바로 여러 아들이요 / 眼前淪逝是諸子
사후에 입신양명한 이는 유일한 손자로세 / 身後立揚唯一孫
만세의 깨끗한 제사는 대실에 종향됐거니와 / 萬世明禋從大室
몇 가문이나 남은 경사가 고문을 얻었던고 / 幾家餘慶得高門
병든 목은이 더욱 놀라며 기뻐한 까닭은 / 病餘老牧尤驚喜
당시 한자리에 뫼시고 국론을 결단했음일세 / 當日陪筵斷國論
[주D-001]초은 선생(樵隱先生) : 초은은 이인복(李仁復)의 호이다.
[주D-002]만세의 …… 종향(從享)됐거니와 : 이인복이 충정왕(忠定王)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남은 …… 얻었던고 : 한 (漢)나라 때 우공(于公)이 일찍이 옥리(獄吏)로 있으면서 옥사(獄事)를 아주 공평하게 처결하여 생사(生祠)가 세워지기까지 했다. 한번은 자기 집의 여문(閭門)이 무너져서 부로(父老)들이 함께 수리하게 되었는데, 우공이 부로들에게 말하기를, “문을 약간 고대(高大)하게 만들어서 사마 고거(駟馬高車)가 드나들 수 있게 하라. 나는 옥사를 다스릴 적에 음덕(陰德)을 많이 베풀어서 억울함을 당한 사람이 없었으니, 나의 자손 가운데 반드시 크게 될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더니, 과연 훗날 우공의 아들 정국(定國)은 승상(丞相)이 되고, 손자 영(永)은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어 모두 봉후(封侯)가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漢書 卷71 于定國傳》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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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말하길 연래엔 나랏일이 많아서 / 共說年來國事多
오경에 대루했다 밤에야 집에 간다 하는데 / 五更待漏夜還家
내가 유독 가련한 건 가을 풀 황량한 서문 밖에 / 獨憐秋草西門外
광암사 가는 길이 예전대로 비껴 있는 거로세 / 路指光巖依舊斜
[주D-001]대루(待漏) : 백관(百官)이 아침 일찍 출근하여 대루원(待漏院)에서 조참(朝參)하는 시각까지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주D-002]광암사(光巖寺) : 개성(開城)의 무선봉(舞仙峯) 아래에 있는 절 이름인데, 일명 운암사(雲巖寺)라고도 한다. 여기가 바로 공민왕(恭愍王) 현릉(玄陵)의 재궁(齋宮)이었다.
이 밀직(李密直)을 받들어 하례하다. 내가 외람되이 초은 선생(樵隱先生)과 함께 주문(主文)을 했었고, 지금의 시중공(侍中公)과는 또 함께 승선(承宣)이 되었으므로, 말구(末句)에 그것을 언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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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이 달을 짝한 가을하늘은 멀기만 한데 / 金星伴月碧天長
천고에 경산의 크나큰 상서를 낳았네그려 / 千古京山産吉祥
중씨는 지금 현재 나라의 주석이 되었고 / 仲氏只今爲柱石
백씨는 당일에 세상의 문장을 독점했었네 / 長公當日擅文章
아우들은 다 동량지재로 모두 추앙커니와 / 共推諸弟皆梁棟
선생이 묘당에 들어간 게 또한 기쁘구려 / 更喜先生入廟堂
예전부터 골육처럼 풍격이 서로 같았는데 / 自昔同風如骨肉
더구나 나는 힘입어 반항을 달리했음에랴 / 況予緣幸異班行
[주D-001]경산(京山) : 이 밀직(李密直)의 본관인 성산(星山)의 고호이다.
역사(歷史)를 읽고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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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인물을 냄은 시국을 바루기 위함이라 / 天生人物擬匡時
큰 재주나 작은 기예도 각각 쓰임이 있나니 / 曲藝長才各有施
해와 달이 환히 빛날 땐 아송을 일으키고요 / 日月光輝興雅頌
바람 천둥 진동할 땐 화이를 마구 소탕하여라 / 風雷震蕩掃華夷
간악한 자는 벼슬을 팔고도 마음에 부족하고 / 老奸鬻爵心難足
정직한 이는 집에 있어도 낙이 절로 진진하네 / 方正居家樂自頤
문득 기쁜 건 늦게 난 게 되레 흥미가 있고 / 却喜晚生還有味
조정에 폐단이 없어 정히 서로 화락함일세 / 朝廷無弊政煕煕
오계 시대 훑어보면 모두 어지러웠거니와 / 流觀五季儘搶攘
그 밖의 기록으로 멀리 긴 연대를 궁탐해보면 / 外紀遠窮年代長
정일집중은 요순우가 서로 전수한 것이요 / 精一執中堯舜禹
천하를 강제로 겸병한 건 한수당이었도다 / 兼幷無外漢隋唐
그 옛날 송나라 황제께는 금백을 바쳤는데 / 舊時帝宋輸金帛
오늘날 원나라는 강토만 바라볼 뿐이로세 / 今日皇元望土疆
습해와 단진은 오호에 속할 뿐이니 / 霫海丹眞五胡耳
후일 사책에서 원나라 또한 빛이 나리라 / 他年史冊亦生光
노중련의 동해는 높은 풍도가 있었거니와 / 魯連東海有高風
청문에 심은 오이는 이슬이 흠뻑 젖었네 / 瓜種靑門露浥叢
사호는 지령에서 노래를 소리 높여 불렀고 / 四皓高歌芝嶺上
칠현은 죽림에서 술에 곤드레가 되었었지 / 七賢沈醉竹林中
신도는 병객이니 누가 핍박할 수 있으랴만 / 申屠抱病誰能迫
정절은 전원에 돌아가 나 홀로 곤궁했었네 / 靖節歸田我獨窮
천지 사이에 머리 돌려 길이 탄식하노니 / 回首乾坤長太息
기산과 영수가 둘 다 아득하기만 하구나 / 箕山潁水兩濛濛
[주D-001]오계(五季) : 후량(後梁)ㆍ후당(後唐)ㆍ후진(後晉)ㆍ후한(後漢)ㆍ후주(後周)를 가리킨다.
[주D-002]정일집중(精一執中)은 …… 것이요 : 요 (堯) 임금이 순(舜) 임금에게 선위(禪位)할 때에 이르기를, “아, 너 순아, 하늘의 역수가 네 몸에 있으니, 진실로 그 중을 잡을지어다.[咨爾舜天之曆數在爾躬 允執厥中]” 하였고, 뒤에 순 임금이 우(禹) 임금에게 선위할 때는 또 이르기를,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은미하니, 오직 정하고 전일하여야 진실로 그 중을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惟精惟一 允執厥中]”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堯曰》《書經 大禹謨》
[주D-003]습해(霫海)와 …… 뿐이니 : 습해는 동북이(東北夷)의 이름이고, 단진(丹眞)은 거란족(契丹族)과 여진족(女眞族)을 합칭한 말이며, 오호(五胡)는 다섯 호족(胡族)인 흉노(匈奴)ㆍ갈(羯)ㆍ선비(鮮卑)ㆍ지(氐)ㆍ강(羌)을 가리킨다.
[주D-004]노중련(魯仲連)의 …… 있었거니와 : 노 중련은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인데, 일찍이 진(秦)나라의 무도(無道)함을 강력히 비난하고, 진나라가 만일 천하(天下)에 정사를 편다면 자신은 차라리 동해(東海)에 가서 빠져 죽을지언정, 차마 진나라의 백성은 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주D-005]청문(靑門)에 심은 오이 : 청 문은 한(漢)나라 장안성(長安城)의 동남문(東南門)을 가리킨다. 일찍이 진(秦)나라 때 동릉후(東陵侯)에 봉해졌던 소평(邵平)이 진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다시 포의(布衣)가 되어 청문 밖에 손수 오이를 심어 가꾸면서 여생을 마쳤다.
[주D-006]사호(四皓)는 …… 불렀고 : 진 (秦)나라 말기에 상산의 사호(四皓), 즉 동원공(東園公)ㆍ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선생(甪里先生)이 진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남전산(藍田山)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한 고조(漢高祖)의 초빙을 거절하고 자지(紫芝)를 캐 먹으면서 자지가(紫芝歌)를 불렀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7]칠현(七賢)은 …… 되었었지 : 진(晉)나라 때 노장(老莊)의 학문을 숭상한 완적(阮籍)ㆍ혜강(嵇康)ㆍ산도(山濤)ㆍ상수(向秀)ㆍ유령(劉伶)ㆍ왕융(王戎)ㆍ완함(阮咸) 등 7인이 늘 죽림(竹林)에서 놀았으므로 이들을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일컬은 데서 온 말이다.
[주D-008]신도(申屠)는 …… 있으랴만 : 신도는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인 신도반(申屠蟠)을 가리키는데, 그는 학문이 뛰어나서 조정으로부터 수없이 초빙을 받았으나, 끝내 나가지 않고 은거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었었다.
[주D-009]정절(靖節)은 …… 곤궁했었네 : 정 절은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사시(私諡)이다. 도잠은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이 되었다가, 오두미(五斗米)를 얻기 위해 향리(鄕里)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는 없다 하고서, 팽택 영이 된 지 겨우 80여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전원으로 돌아가 청빈(淸貧)으로 일생을 마쳤다.
[주D-010]기산(箕山)과 영수(潁水) : 기 산은 요(堯) 임금 때의 은사(隱士) 소보(巢父)가 은거했던 산이고, 영수는 요 임금 때의 은사 허유(許由)가 은거했던 곳이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요 임금으로부터 천하(天下)를 양여(讓與)하겠다는 말을 듣고서 귀를 더럽혔다 하여 영수에 귀를 씻고 끝까지 은거했다고 한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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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으로 돌아간 천재인이여 / 歸去來兮千載人
당일의 높은 풍도를 누가 친할 수 있었으랴 / 高風當日有誰親
시도를 중흥시킴은 특별한 방도가 아니었고 / 中興詩道非他術
위로 천심과 합한 건 바로 이 천진함이었네 / 上合天心是此眞
물가에나 언덕에 올라선 때로 눈을 놀리고 / 臨水登皐時縱目
창 기대고 방에 들어선 정신을 수양했도다 / 倚窓入室自怡神
곧장 처사라 쓰고 그대로 진을 썼으니 / 直書處士仍書晉
강목의 밝고 밝은 필법 새롭기도 하여라 / 綱目明明筆法新
[주D-001]천재인(千載人) : 황정견(黃庭堅)의 시에, “팽택은 천재인이요, 동파는 백세사로다.[彭澤千載人 東坡百世士]”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곧장 …… 하여라 : 주 희(朱熹)가 찬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서, 유송(劉宋)의 원가(元嘉) 4년이요, 위(魏)의 시광(始光) 4년인 정묘년 조에, “진나라의 징사 도잠이 졸하다.[晉徵士陶潛卒]”라고 쓴 것을 가리키는데, 그 주석에 의하면, 도잠은 처음부터 출처(出處)의 의리가 훌륭했는데, 유송(劉宋) 시대에는 끝내 벼슬을 하지 않아서 명절(名節)을 끝까지 잘 보전했기 때문에 《강목》에서 특별히 ‘진처사(晉處士)’로 써서, 도잠만이 유독 ‘진나라의 온전한 사람[晉全人]’이 되었음을 밝힌 것이라고 하였다. 처사나 징사는 같은 뜻이다.
우연히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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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거나 배부름은 몸에 관계되는 것이요 / 有飢有飽身所關
훼방이나 칭찬은 이름이 있는 곳이거니와 / 有毁有譽名所在
종정과 옥백을 산더미처럼 높다랗게 쌓고 / 鐘鼎玉帛似山堆
고량진미와 비단옷을 수레에 가득 실어라 / 膏粱文繡空車載
그 어떤 사람이 이 두 가지를 벗어나서 / 何人超出此兩端
황곡을 걸터타고서 사해를 날아 노닐꼬 / 黃鵠道之游四海
아래엔 옥산의 벼가 있어 쪼아 먹을 만하고 / 下有玉山禾可啄
위에는 광한궁이 있어 잠을 잘 만도 하니 / 上有廣寒宮可宿
이를 인해 손으로 운한의 무늬를 도려내어 / 因之手抉雲漢章
위하여 인간 세상의 태평곡을 짓는다면 / 爲作人間太平曲
곡마다 절묘하여 사람 마음을 감동시켜서 / 曲曲要妙感人心
우물 파고 밭 갈아 때로 배 두드리며 노래하리 / 鑿井耕田時鼓腹
[주D-001]옥산(玉山)의 벼 : 곤륜산(崑崙山)에 벼가 있다는 전설에서 온 말로, 옥산은 곧 곤륜산을 달리 이른 말이다.
[주D-002]운한의 무늬 : 뛰어난 문장(文章)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3]우물 …… 노래하리 : 요(堯) 임금 때에 천하가 태평하자, 한 노인이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면서 노래하기를,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서 밥 먹는데,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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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사에선 당년에 권세가 매우 뛰어나서 / 郞舍當年勢絶倫
비린내와 구린내가 문득 몸에 배었는데 / 魚腥銅臭却熏身
다시 아전을 불러 청탁서를 써서 보내니 / 更呼小吏書榌字
뭇 친구들이 까닭 없이 벼슬을 계속 얻네 / 六故無端續得新
끝없이 순환하는 천운을 술잔에 부치어라 / 天運悠悠付酒杯
조물주에게 경재가 있음을 그 누가 알리요 / 誰知造物有傾栽
작은 선을 쓸데없는 일로 여기지 말라 / 莫將小善爲閑事
아홉 길 산이 한 삼태기로 좇아 이뤄진다네 / 九仞山從一簣來
[주D-001]비린내와 구린내 : 이끗만 도모하는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이다.
[주D-002]경재(傾栽) : 《중 용장구(中庸章句)》 제17장에, “하늘이 만물을 내는 데는 반드시 그 바탕을 인하여 후하게 하나니, 그러므로 심어져 있는 것을 길러 주고, 기울어진 것을 엎어 버린다.[天之生物 必因其材而篤焉 故栽者培之 傾者覆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아홉 …… 이뤄진다네 : 《서 경(書經)》 여오(旅獒)에, “작은 행실을 삼가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에 누가 되어, 마치 아홉 길의 산을 만들 적에 흙 한 삼태기가 부족하여 이루지 못하는 것과 같다.[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 한 데서 온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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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니 마음도 고요해라 / 晨起心猶靜
연래에는 몸이 절로 청한하구나 / 年來體自淸
시 읊음은 흥을 풀기 위함이건만 / 吟詩聊遣興
처세에는 반드시 정을 잊어야 하리 / 處世要忘情
안개 짙으니 구슬 방울이 연하고 / 霧重珠聯忽
마을이 침침하니 유영을 잃었구려 / 村沈柳失營
척촌의 거리도 빛을 분간키 어려워 / 尋常未分色
앉아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노라 / 坐待日輪明
[주D-001]마을이 …… 잃었구려 : 유영(柳營)은 한(漢)나라 장군 주아부(周亞夫)가 세류(細柳)에 설치했던 세류영(細柳營)의 준말인데, 여기서는 안개가 자욱하여 버들이 보이지 않음을 세류영에 빗대어서 한 말이다.
강남(江南)의 사신(使臣)이 국경(國境)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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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의 해와 달이 화이를 고루 비추어라 / 金陵日月照華夷
모든 물건이 형체를 드러낸 한낮이로세 / 物物呈形正午時
엎어진 사발 밑까지도 빛을 환히 발하고 / 豐蔀覆盆猶晃耀
편평한 내와 넓은 들은 멀리도 뻗치었네 / 平川廣野正逶迤
천둥소리는 은은히 남은 노염을 품었는데 / 雷霆隱隱含餘怒
거북점 시초점으론 큰 의문을 결단하누나 / 龜筮紛紛決大疑
패금이 한 번 이뤄지면 선뜻 풀기 어렵나니 / 貝錦一成難遽釋
예로부터 선비들의 풍습이 교활하고말고 / 由來士習有傾危
또 짓다.
의심이 생겨 헛 대면만 했는데 / 疑生空對面
일이 지나매 마음을 알 만하네 / 事過可知心
폭우가 아침에 갑자기 쏟아지는데 / 暴雨朝來洒
숨은 사람 홀로 시를 읊조리노라 / 幽人獨自吟
[주D-001]금릉(金陵) : 전 국 시대 초 위왕(楚威王)이 맨 처음 금릉읍(金陵邑)을 설치했는데,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땅에 왕기(王氣)가 있으므로 금(金)을 묻어서 그곳을 진압했기 때문에 금릉이라 이름한 것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금릉은 강남(江南)에 위치한 남경(南京)을 가리키는데, 명(明)나라가 처음 여기에 도읍했었다.
[주D-002]패금(貝錦) : 비 단처럼 고운 패각(貝殼)의 무늬를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남을 참소하는 자가 마치 비단을 짜듯 남의 죄(罪)를 구성 날조(構成捏造)함을 비유한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항백(巷伯)에, “작은 무늬 서로 엮어서, 이 패금을 만들도다.[萋兮斐兮 成是貝錦]” 하였다.
산고가(山高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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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을 꼭대기까지 걸어 오르니 / 山高步至頂
곤륜산도 찾아갈 수 있기에 / 崑崙猶可尋
푸른 돌 긴 사다리 타고 도리천을 오르니 / 靑石長梯上忉利
침침한 하늘에 뭇 신선들이 날아다니네 / 縹渺飛步天沈沈
동해에 돌아오니 여기엔 지리산이 있어 / 歸來東海有智異
상봉은 여름에도 춥고 골짝 물은 얼었는데 / 峯頭夏冷氷垂陰
내려다보니 큰 파도는 산 아래 둘러 있고 / 下視鯨波遶山下
북쪽을 보니 만 리 멀리 구름 봉우리 희미하네 / 北顧萬里迷雲岑
산중은 구불구불 수백 리나 되는데 / 山中委曲數百里
큰 고을들이 산기슭 깊은 숲에 감춰져 있고 / 大郡據麓藏深林
전설에 의하면 진나라 난리 피해 온 마을 있어 / 相傳避秦有孤村
복사꽃 흐르는 물에 산새가 지저귄다 하데 / 桃花流水啼幽禽
내가 산고가를 노래한 게 무슨 마음이던고 / 我歌山高何心哉
다만 시위소찬으로 늘그막이 된 때문일세 / 只爲素飧衰老侵
그 당시 상산사호의 자지곡은 / 當時四皓紫芝曲
천재에 훈풍의 거문고와 짝할 만했는데 / 千載足配熏風琴
끝없는 우주에 고금을 통틀어라 / 宇宙悠悠自今古
산고가를 마치노니 이 소리를 누가 알런고 / 山高歌闋誰知音
[주D-001]도리천(忉利天) : 불가(佛家)의 용어로, 욕계육천(欲界六天)의 둘째 하늘을 가리키는데,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 위치하여 제석천(帝釋天)이 여기에 산다고 한다.
[주D-002]복사꽃 흐르는 물 : 이 백(李白)의 〈산중답인(山中答人)〉 시에, “나더러 무슨 일로 청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웃고 대답 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그림자 잠긴 물이 아득히 흘러가니, 새로운 세계가 있어 인간 세상이 아니로세.[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한 데서 온 말로, 선경(仙境)을 의미한다.
[주D-003]상산사호(商山四皓)의 자지곡(紫芝曲) : 진 (秦)나라 말기에 상산의 사호(四皓), 즉 동원공(東園公)ㆍ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선생(甪里先生)이 진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남전산(藍田山)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한 고조(漢高祖)의 초빙을 거절하고 자지(紫芝)를 캐 먹으면서 자지가(紫芝歌)를 불렀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훈풍(熏風)의 거문고 : 순 임금이 처음으로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南風詩)를 노래했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성냄을 풀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이 풍부하리로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한 데서 온 말이다.
보국가(保國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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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즐김은 예로부터 천하를 보전했거니와 / 樂天自昔保天下
나라 보전엔 지금 응당 하늘을 두려워해야지 / 保國如今應畏天
저 크신 상제가 아래를 밝게 살피시니 / 皇矣上帝監在茲
한 점 영명한 마음을 의당 보전해야 하리라 / 一點靈明當保全
크게는 우주를 손아귀에 넣기도 하려니와 / 大之宇宙入掌握
작게는 한 나라의 산천을 나누기도 하나니 / 小之茅土分山川
자손이 서로 이어 만만세를 전하노라면 / 子孫相傳萬萬世
상하의 기가 서로 합해 억만년을 내려가리 / 上下氣合彌億年
황조의 훈계는 명백하기 획일과 같으니 / 祖訓明明若畫一
민풍이 침착해져서 변천이 없게 되었네 / 土風皥皥無變遷
단연코 하늘처럼 쉬지 않고 운행해야 하리 / 端如圓象運不息
해와 달의 황도에 별자리가 나열한 가운데 / 日月黃道羅星躔
천둥 벼락 비이슬엔 만물이 절로 나려니와 / 雷霆雨露物自生
얼음 서리 눈의 시긴들 어긋난 적이 있던가 / 氷霜雪霰時何愆
지금 한 번 변하면 옛을 멀리 초월하리니 / 如今一變迥超古
즐거울사 나를 안 이는 오직 푸른 하늘일세 / 樂哉知我唯靑天
땅을 파되 한 자를 파고 또 한 자를 파라 / 掘土一尺又一尺
더구나 힘써 샘물이 나도록 깊이 팜에랴 / 何況用功深及泉
거칠고 지리멸렬함은 예부터 경계한 바이니 / 鹵莽滅裂古所戒
나라 보전의 근본은 현인을 희망함에 있다오 / 保國根本由希賢
[주D-001]하늘 …… 두려워해야지 : 여 기서 하늘이란 곧 천리(天理)의 당연함을 말한 것으로,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섬기는 사람은 하늘을 즐기는 사람이요,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는 사람은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니, 하늘을 즐기는 사람은 천하를 보전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를 보전하는 것이다.[以大事小者 樂天者也 以小事大者 畏天者也 樂天者 保天下 畏天者 保其國]”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梁惠王下》
[주D-002]황조(皇祖)의 훈계 : 여 기서 황조는 우(禹) 임금을 가리킨다. 《서경》 오자지가(五子之歌)에, “황조께서 훈계를 하셨으니, 백성은 가까이할지언정 멀리해서는 안 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해지느니라.[皇祖有訓 民可近 不可下 民惟邦本 本固邦寧]”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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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걷힌 푸른 하늘에 새벽빛이 맑으니 / 雲盡靑天曉色淸
아침해가 돋으려 하매 먼 산이 밝아지네 / 朝暉欲上遠山明
병든 몸 애써 일으켜 머리 빗고 낯 씻으니 / 支持病骨仍梳洗
야기가 다하려 하매 물욕이 생겨나누나 / 夜氣將闌物欲生
하늘이 늙은 목은을 십분 청수하게 하여 / 天敎老牧十分淸
강산에 홀로 서서 눈을 밝게 뜨고 볼 제 / 獨立江山刮眼明
정경을 완전히 잊는 지경에 도달하니 / 恰到頓忘情境處
모르겠구나 이 신세가 덧없는 인생인지 / 不知身世是浮生
시 속에 황벽을 먹고 얼음을 마시노니 / 詩中蘗苦雜氷淸
늙은 조개가 구슬 토해 가을달이 밝구나 / 老蚌吐珠秋月明
도리어 서시가 오물 뒤집어쓴 걸 배워서 / 却學西施蒙不潔
남의 코를 가리게 하고 여생을 보내련다 / 令人掩鼻送殘生
[주D-001]야기(夜氣) : 모든 사물(事物)과 접하기 이전인 야간(夜間)의 조용한 마음을 가리킨다.
[주D-002]황벽(黃蘗)을 …… 마시노니 : 차가운 얼음을 마시고 매우 쓴 황벽나무를 먹는다는 뜻으로 청고(淸苦)한 생활을 잘 견뎌 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3]서시(西施)가 …… 보내련다 : 서 시는 옛날 월(越)나라의 미인(美人) 이름이다. 맹자가 이르기를, “서자(西子) 같은 미인도 오물(汚物)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가리고 지나갈 것이다.”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남에게 혐오받는 것을 의미한다. 《孟子 離婁下》
8일에 정제(丁祭)의 번육(膰肉)이 왔으므로, 시를 지어서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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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정 지낸 지 얼마 안 되어 또 추정 지내니 / 春丁未幾又秋丁
제육에 훈기 짙고 서직도 향기로워라 / 膰肉濃熏黍稷馨
당일 강명하던 게 아직도 몹시 부끄러운데 / 當日講明猶汗背
지금은 준수한 이들이 뜰에 가득하구려 / 如今俊秀尙盈庭
도는 황왕에 관통하여 묵중함을 이루고 / 道貫皇王致淵默
덕화는 천지에 행해져 태평을 함께하도다 / 化行天地共淸寧
나는 늘그막에 한낱 마음 둔 곳이 있으니 / 老來有箇存心處
배불리 먹고 분향하고 성경을 읽음이로세 / 飽食焚香讀聖經
[주C-001]정제(丁祭) : 음력 2월과 8월의 첫째 정일(丁日)에 공자에게 제사 지내는, 즉 문묘(文廟)의 석전(釋奠)을 말한다.
청천백운가(靑天白雲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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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집에 사면이 텅 비어 벽이 없는데 / 高堂四面虛無壁
우뚝이 앉아 길이 읊으니 두 눈이 푸르러라 / 兀坐長吟雙眼碧
하늘은 푸르고 또 푸르러 끝없이 푸르르고 / 天靑又靑靑未了
구름은 희고 또 희어 희기가 짝이 없는데 / 雲白又白白無敵
광대한 기운은 스스로 적막하거니와 / 浩浩有氣自寂寥
하 높은 형체는 변역에 유능하고말고 / 超超有形工變易
하늘은 사람에게 보이나 사람이 모르는 건 / 天公示人人不知
다만 마음속이 깜깜해서 그러할 뿐이네 / 只方寸地胡與貊
광대와 정미를 다하고 덕성을 높이어라 / 廣大精微德性尊
천명은 지금까지 밝게 감림하여 있거니 / 天命至今臨有赫
자양의 우물 안 개구리를 배우지 말라 / 莫學子陽井底蛙
하늘을 보면은 대롱 속의 막힘과 같으리 / 觀天還如管中隔
흰 구름 그림자 희롱함이 아득하기만 하여 / 白雲弄影杳茫茫
신룡이 천둥 벽력을 떨칠 길이 없는지라 / 神龍無從飛霹靂
연래에는 가뭄이 자꾸만 위엄을 부리니 / 年來旱魃多作威
언제나 한바탕 비로 흔적 없이 쓸어버릴꼬 / 一雨何時掃無跡
[주D-001]광대(廣大)와 …… 높이어라 : 《중용장구》 제27장에, “군자는 덕성을 높이고 문학을 말미암는 것이니, 광대함을 이루고 정미함을 다하며, 고명함을 다하고 중용을 말미암는다.[君子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자양(子陽)의 우물 안 개구리 : 자 양은 후한(後漢) 때 공손술(公孫述)의 자이다. 공손술이 망녕되이 스스로 잘난 체하여 촉(蜀)에서 황제(皇帝)를 자칭하자, 마원(馬援)이 그의 좁은 견문(見聞)을 조롱하여 말하기를, “자양은 우물 안의 개구리일 뿐이다.[子陽井底蛙耳]” 한 데서 온 말이다.
한 첨서(韓簽書)의 네 아들에 대한 명(名)과 자(字)의 설(說)을 짓고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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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래에 늙은 붓 희롱을 하도 많이 하여 / 老筆年來弄得多
정신도 광채도 전혀 없는 나를 어찌할꼬 / 百無精采奈吾何
땀흘리며 낭군의 설 다시 지어 주자 하니 / 汗流更與郞君說
간삽하여 황하를 터뜨린 듯 통쾌치 못하네 / 艱澁無由似決河
중추(仲秋) 9일에 장손(長孫) 맹유(孟㽥)를 성남(城南)으로 보내어 글을 읽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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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의 할아비들이 어진 손자들을 보내어 / 兩家大父送賢孫
정사에 가서 조용히 앉아 글을 읽게 했는데 / 靜坐讀書祇樹園
소나기가 바람을 따라 먼지를 휩쓸어 가니 / 急雨隨風掃塵去
석양의 맑은 흥이 돌아가는 수레에 가득하네 / 晚來淸興滿歸軒
한 조각 청한함이 이 늙은이에 부쳐졌으니 / 一段淸閑付此翁
산 가득한 푸른 소나무 빗소리 속이로다 / 滿山松翠雨聲中
다만 아직 아손의 계책이 있음을 인연하여 / 只緣尙有兒孫計
늘그막에도 인경이 텅 빈 걸 모르겠구나 / 到老不知人境空
두 부자는 애당초 유학시킬 마음이 없어 / 游學初非父子心
스승을 구하려고 천 리 멀리 찾아갔었네 / 求師千里遠相尋
어떻게 저 아득한 성 밑의 글 읽는 곳을 / 如何城底讀書處
나날이 송계의 숲을 거쳐 왕래한단 말인가 / 日日往還松桂林
명일(明日)에 생각하는 바가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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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피곤해 달게 자고 나니 새벽빛 새로워라 / 身倦眠酣曉色新
내 손자는 어젯밤에 응당 몹시 슬펐으리 / 吾孫疇昔鼻應辛
동복 시켜 가 보게 한 건 애정 때문이지만 / 呼僮往省緣情愛
이제부턴 모든 지도는 남에게 맡겨야겠네 / 操縱如今付與人
작은 복숭아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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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복숭아 막 익어 푸르고 동글동글한데 / 小桃初熟碧團團
흰 살을 살살 씹으니 이와 볼이 시리어라 / 細嚼氷肌齒頰寒
동방삭과 소아가 몇 번이나 훔쳐먹었던고 / 方朔小兒偸幾度
봉래산은 붉은 구름 끝에 희미하기만 하네 / 蓬萊縹渺紫雲端
[주D-001]동방삭(東方朔)과 …… 훔쳐먹었던고 : 한 (漢)나라 때에 동도(東都)에서 단인(短人)이 복숭아를 바쳐오자, 무제(武帝)가 동방삭을 불러 물으니, 동방삭이 그 단인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며 말하기를, “서왕모(西王母)가 복숭아나무를 심어서 3천 년 만에 한 번 열매가 열었는데, 이 아이가 불량하여 이미 세 개나 훔쳐먹었습니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일설(一說)에는 동방삭이 직접 그 복숭아를 훔쳐먹었다고도 한다. 여기에서 소아(小兒)는 단인을 가리킨다.
광암사(光巖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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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사는 아스라이 석양 가에 우뚝해라 / 雲巖渺渺夕陽邊
쓸쓸한 가을 풀과 함께 먼 하늘 비기었네 / 秋草蕭蕭共遠天
필마 타고 왕래한 것은 옛날 일이 아니요 / 匹馬往還非昔日
뭇 신선의 가취 소리는 당년을 상상케 하네 / 群仙歌吹想當年
인간은 잠깐 사이에 고금을 이루었거니와 / 人間俯仰成今古
지하에서 종유함은 선후가 있을 뿐이로다 / 地下從游但後先
이 마음을 조금도 부끄럼이 없게만 한다면 / 直使此心無少愧
사관의 서법이 저절로 거기에 이끌려 오리 / 史官書法自牽聯
[주D-001]운암사(雲巖寺) : 옛 이름은 광암사(光巖寺)이다. 광암사는 개성(開城)의 무선봉(舞仙峯) 아래에 있는 절 이름인데, 여기가 바로 공민왕(恭愍王) 현릉(玄陵)의 재궁(齋宮)이었다.
두시(杜詩)를 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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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선생이 어찌 가난한 사람이었나 / 錦里先生豈是貧
두곡의 상마에 또 봄이 돌아왔구려 / 桑麻杜曲又回春
주렴 걷고 환약 지으니 몸은 무병커니와 / 鉤簾丸藥身無病
종이에 그리고 바늘 두드린 뜻은 더욱 천진하네 / 畫紙敲針意更眞
우연히 난리를 만나서 절의를 더했거니 / 偶値亂離增節義
어찌 노쇠함 때문에 정신이 감손될쏜가 / 肯因衰老損精神
고금에 뛰어난 노래를 누가 능히 이을꼬 / 古今絶唱誰能繼
유풍 여향이 후인에게 많은 도움 주었네 / 賸馥殘膏丐後人
[주D-001]금리 선생(錦里先生)이 …… 돌아왔구려 : 금 리는 금강(錦江) 가의 마을이란 뜻으로, 금리 선생은 두보(杜甫)가 자칭한 말이다. 두보의 〈남린(南隣)〉 시에, “금리 선생은 오각건을 쓰고서, 전원에서 토란 밤 거두니 가난하지만은 않구나.[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不全貧]” 하였고, 또 〈곡강(曲江)〉 시에, “스스로 결단한 생애 하늘에 물을 것 없어라, 두곡에 다행히 상마의 전원이 있고말고.[自斷此生休問天 杜曲幸有桑麻田]” 하였다.
[주D-002]주렴 …… 지으니 : 두보의 시에, “주렴 걷으니 자던 백로가 일어나고, 환약 짓노라니 꾀꼬리가 지저귀네.[鉤簾宿鷺起 丸藥流鶯囀]”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종이에 …… 천진하네 : 두보의 시에,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어린 아들은 바늘 두드려 낚시를 만드누나.[老妻畫紙爲棊局 稚子敲針作釣鉤]” 하였다.
[주D-004]유풍 여향이 …… 주었네 : 《당서(唐書)》 두보전찬(杜甫傳贊)에 두보의 시를 평가하기를, “다른 사람의 부족한 것을 두보는 여유 있게 갖추어서, 그의 유풍 여향이 후인에게 도움을 준 것이 많았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우연히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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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파리하니 도는 되레 살찐 줄 어찌 알랴 / 身瘦那知道却肥
새그물 친 문 앞엔 왕래하는 이 드물어라 / 雀羅門巷往來稀
새로운 시 다 짓고 길이 읊조리노라니 / 新詩賦罷長吟好
때마침 산중턱에 흰 구름이 생겨나오네 / 時有白雲生翠微
호정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가 살찌어라 / 不出戶庭天下肥
현묘한 기틀 신통한 조화가 고금에 드물구려 / 玄機神化古今稀
이아 충어의 주석보다는 오히려 낫기에 / 猶勝爾雅蟲魚註
매양 천원을 향해 다시 발미를 하노라 / 每向天原更發微
홍무가 등극한 이후 나라가 살찌어라 / 洪武龍飛國體肥
근래에 보기 드문 태평의 세월이로세 / 太平風月近來稀
그 누가 알랴 바다 밖에 있는 한산자가 / 誰知海外韓山子
푸른 하늘에 머리 조아려 천자를 향하는 걸 / 稽首蒼旻拱紫微
[주D-001]새그물 친 문 : 찾아오는 사람이 없음을 뜻한다. 한(漢)나라 때 책공(翟公)이 일찍이 정위(廷尉)가 되었을 때는 찾아오는 빈객이 문밖에 그득했다가, 그가 폐해진 뒤에는 문밖이 아주 적적하여 새그물을 칠 정도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천하가 살찌어라 : 당 현종(唐玄宗) 때 재상 한휴(韓休)가 자주 직간(直諫)을 하여 임금의 자유를 많이 구속하므로, 한번은 좌우의 신하들이 현종에게 아뢰기를, “한휴가 입조(入朝)한 이후로는 폐하께서 하루도 즐거운 날이 없었는데, 왜 스스로 걱정만 하시고 한휴를 내쫓지 않으십니까?” 하니, 현종이 이르기를, “나는 비록 수척하나 천하가 살찌고 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천원(天原)을 …… 하노라 : 송(宋)나라 포운룡(鮑雲龍)이 일찍이 천수(天數)에 의거하여 《주역(周易)》에 대한 수리(數理)를 밝힌 《천원발미(天原發微)》를 저술했던 데서 온 말인 듯하다. 발미(發微)는 사물의 오묘한 원리(原理)를 탐색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4]홍무(洪武) : 명 태조(明太祖)의 연호이다.
권 정당(權政堂)이 광암사비(光巖寺碑)를 전서(篆書)하여, 한 첨서(韓簽書)가 함께 가서 구경하자고 나에게 요청하였으나, 나는 마침 병이 나서 가지 못하고 홀로 앉아서 다시 지난번의 운을 사용하여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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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세도는 흐르는 물을 보는 듯하고 / 世道悠悠觀逝水
조심스런 인정은 높은 다리를 건너듯하네 / 人情屬屬渡危橋
지금의 행지는 내 맘대로 하기 어려워라 / 只今行止難由己
오늘 아침에 또 한 질병이 방해를 부리네 / 一疾相妨又此朝
하늘에 구름 걷히어 가을 모습 고요하고 / 雲收碧落秋容靜
푸른 숲에 바람 일어 새벽빛은 서늘한데 / 風動靑林曉色涼
단청 찬란한 총림이 눈에 삼삼하여라 / 金碧叢林眼中見
처마 곁에 높이 앉아 아침해를 등에 졌네 / 傍簷危坐負朝陽
또 읊다.
무선봉 아래의 주지는 하 깊기도 한데 / 舞仙峯下酒池深
사면엔 큰 소나무가 울창히 숲을 이뤘지 / 四面長松鬱作林
지옥이나 천당이 모두 다 정토이거니 / 地獄天堂俱淨土
묻노라 누가 조사의 심인을 전해 얻었느뇨 / 問誰傳得祖師心
교산에 머리 돌리니 오랜 세월 지났어라 / 喬山回首歲年深
적적한 연하 속에 담복 숲만 아득하구려 / 寂寂烟霞薝葍林
벽동에 물 흐르고 모래 풀이 어우러졌던 / 碧洞水流沙草合
그 옛날 봄바람에 나 홀로 상심했었지 / 春風曾記獨傷心
[주D-001]정토(淨土) : 불교 용어로, 번뇌의 속박을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 즉 불(佛)ㆍ보살(菩薩)이 산다는 국토(國土)를 가리킨다.
[주D-002]조사(祖師)의 심인(心印) : 심 인은 불심(佛心)을 중생의 마음속에 심어주는 것을 뜻하는 말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을 가리킨다. 선종(禪宗)의 교조(敎祖)인 달마선사(達摩禪師)가 처음 중국(中國)에 들어와서 문자(文字)를 세우지 않고 심인만을 전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게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교산(喬山) : 옛날 황제(黃帝)를 장사 지냈던 산 이름인데, 전하여 왕릉(王陵)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공민왕(恭愍王)의 현릉(玄陵)을 말한다.
[주D-004]담복(薝葍) : 특히 향기가 짙기로 유명한 치자꽃을 가리키는데, 서역(西域)의 사원(寺院)에 이 꽃이 아주 많다고 한다.
고헌과(高軒過)를 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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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땋고 하의 입은 칠 세의 아이가 / 總角荷衣七歲童
말 나란히 타고 의관 차린 한공을 만났네 / 聯鑣束鬢得韓公
금낭 속에 인간의 기교한 걸 다 주워 담아라 / 錦囊拾盡人間巧
이십여 년 동안에 조화의 공을 훔쳤네그려 / 二十餘年竊化工
마음과 정력 다 쏟아 장가 단가 읊었는데 / 心肝吐血短長歌
볼수록 기괴하고 공교로움 또한 많아라 / 怪怪看來巧更多
금선이 한을 하직하고 떠난 한 곡조 속엔 / 一曲金仙辭漢去
위성은 멀어지고 달빛이 물결 같았네 / 渭城迢遞月如波
[주C-001]고헌과(高軒過) : 당 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7세 때에 지은 문장 이름이다. 이하가 7세에 문장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 한유(韓愈)와 황보식(皇甫湜)이 그 집을 찾아가서 이하에게 시를 짓게 하자, 이하가 대번에 즉석에서 장편 시(長篇詩)를 지어 쓰고 스스로 제목을 고헌과라 명명하니, 한유와 황보식은 이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고헌과라 이름한 것은, 곧 귀인(貴人)의 행차가 내방(來訪)해 주었음을 의미한 것이다.
[주D-001]금낭(錦囊) …… 주워 담아라 : 이하가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시를 짓는 족족 해노(奚奴)가 휴대한 비단주머니에 담았던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이십여 년 …… 훔쳤네그려 : 이하가 20여 세에 요절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금선(金仙)이 …… 같았네 : 금 선은 바로 한 무제(漢武帝)가 일찍이 장안(長安)의 건장궁(建章宮) 안에 만들어 세운 선인 승로반(仙人承露盤)을 가리킨다. 위 명제(魏明帝) 연간에 궁관(宮官)에게 명하여 일찍이 한 무제가 세워 놓은 선인 승로반을 훼철하여 옮겨다가 위나라 궁전 앞에 세웠던바, 앞서 궁관이 한 무제의 궁전에서 그 선인을 훼철하여 수레에 실으려고 할 적에 이 선인이 한(漢)나라를 하직하기를 슬퍼하는 듯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전설에 대하여 노래한 당(唐)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지은 〈금동선인사한가(金銅仙人辭漢歌)〉의 말구(末句)에, “승로반 갖고 홀로 나올 제 달빛은 황량한데, 위성은 이미 멀어져 파도 소리도 작았어라.[携盤獨出月荒涼 渭城已遠波聲小]” 하였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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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말은 문장의 병통이거니와 / 奇語文章病
평상한 말은 썩어 문드러진 나머지로다 / 常談腐爛餘
성정은 도야한 뒤에 이루어지고요 / 性情陶冶後
아속은 변천하는 처음에 달렸다오 / 雅俗變移初
푸른 바다엔 천둥 소리 진동하고 / 蒼海雷聲振
푸른 하늘엔 햇볕이 화창하거니 / 靑天日色舒
회포의 산란함을 걱정하지 말고 / 莫愁心緖亂
우선 고인의 글이나 읽어야겠네 / 且讀古人書
두시(杜詩)를 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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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지기는 맹자와 같이하고 / 操心如孟子
일 기록한 글은 사마천과 같아서 / 紀事如馬遷
문장은 그 명성을 크게 떨치었고 / 文章振厥聲
지성 측달함은 그 본성을 보전했네 / 惻怛全爾天
조복 입고 조정에 앉았을 적엔 / 法服坐廊廟
뭇 현사들이 예악을 추종했어라 / 禮樂趨群賢
문장의 높이가 두어 길이었으니 / 門墻高數仞
후인들은 공연히 어깨만 겨눌 뿐 / 後來徒比肩
어찌 그 깊은 경지를 엿볼쏜가 / 何曾望堂奧
머리 들고 때로 망연자실할 뿐이로다 / 矯首時茫然
[주D-001]마음 …… 하고 : 맹 자가 일찍이 사람의 양심(良心)을 우산(牛山)의 나무에 비유하여, 보존하기 어려움을 말한 가운데, “공자가 이르기를 ‘가지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져서, 일정한 때가 없이 드나들며 향하는 곳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마음을 이름인저.’라고 했다.[孔子曰操則存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告子上》
[주D-002]일 …… 같아서 : 옛사람들의 말에 기사문(紀事文)은 의당 사마천(司馬遷)이 으뜸이라는 말이 있으므로 한 말인데, 여기서는 두보(杜甫) 또한 기사문에 뛰어났음을 의미한다.
[주D-003]문장(門墻)의 …… 길이었으니 : 자 공(子貢)이 말하기를, “부자의 문장은 두어 길이나 되는지라, 그 문을 통하여 들어가지 않으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풍부함을 볼 수가 없다.[夫子之墻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 하여, 공자의 도(道)가 끝없이 높고 큼을 논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張》
옥설권(玉屑卷)의 말미를 읽고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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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강남은 곡조와 소리가 모두 맑거니와 / 望江南調與聲淸
얌전한 미인의 살결은 빙설처럼 깨끗하네 / 綽約肌膚氷雪明
노래 파하고 문 나서자 찾을 곳이 없어라 / 歌罷出門無處覓
응당 고니를 타고 옥경으로 올라갔으리 / 定應騎鵠上瑤京
[주D-001]망강남(望江南) : 사조(詞調)의 이름이다. 수 양제(隋煬帝)가 이 악곡(樂曲)을 맨 처음 지었고, 그 후 당나라 때는 이덕유(李德裕)가 망기(亡妓) 사추랑(謝秋娘)을 위해 이 악곡을 개작(改作)했으며, 기타의 시인들도 많은 작품이 전한다.
대서(代書)하여 송광(松廣)의 화상(和尙)에게 받들어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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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산은 아스라이 멀리 있어 / 松廣山迢遞
이름은 대길상이라 전해 오는데 / 名傳大吉祥
큰 체구는 선대 사업을 잘 이행하고 / 長身能幹蠱
태후께서는 위하여 향을 내리었네 / 大后爲頒香
주실엔 청풍의 선탑이 놓여 있고 / 籌室淸風榻
납의는 밝은 달 아래 복도를 거닐리 / 衲衣明月廊
나는 삼생의 습기가 혼탁한지라 / 三生習氣濁
머리 돌리니 다시 아득하기만 하네 / 回首更蒼茫
[주D-001]송광산(松廣山)은 …… 전해 오는데 : 순천(順天)의 조계산(曹溪山)에 송광사(松廣寺)가 있고, 조계산의 일명(一名)이 대길상(大吉祥)이므로 한 말이다.
[주D-002]주실(籌室) : 인 도(印度)의 제4조(第四祖)인 우바국다(優波毱多)가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여 제도(濟度)했는데, 한 사람을 제도할 적마다 산가지 하나씩을 내려둔 것이 높이 20여 척(尺), 넓이 30여 척 되는 방에 가득 찼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후세에는 수행인을 교화 지도하는 방장 화상(方丈和尙)을 주실이라 일컫게 되었다.
[주D-003]삼생(三生)의 습기(習氣) : 불교 용어로, 중생들의 거듭되는 윤회(輪廻) 속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기습을 가리킨 말이다.
추우탄(秋雨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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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이라 십사일 비가 뜰에 가득 내릴 제 / 八月十四雨滿庭
이끼 낀 길은 미끄럽고 사립은 닫혔는데 / 靑苔路滑柴扉扃
송광사의 시자는 큰 키에 수척한 몸으로 / 松廣侍者瘦軀長
와서 답서 구하는 태도 어이 그리 정중한고 / 來取答書何丁寧
흐린 눈 억지로 비비고 몽당붓 집어 들고서 / 强揩病目拈禿筆
큰 소리로 단운시 읊으매 바람은 썰렁해라 / 高吟短韻風冷冷
처마 사이 떨어진 빗방울은 사랑스러우나 / 簷間點滴儘可愛
교외의 벼이삭이 마침 반쯤이나 익었는데 / 郊外黃雲時半靑
개구리는 응당 오랜 비를 두려워하려니와 / 政當吠蛤畏恒雨
오랜 가뭄 또한 절로 상도엔 어긋나리라 / 恒陽亦自違天經
허나 온몸에 흙 묻히고 얼굴에 땀흘리면서 / 霑身塗足汗被面
해마다 모진 고생에 몸은 쇠약하기만 한데 / 年年作苦身丁零
벼논 바람 솔솔 불어와 콧구멍을 스치면 / 田頭風來觸鼻觀
향기로운 햅쌀밥 냄새가 방불한 이때에 / 髣髴飯餌吹淸馨
어찌하여 위에선 내리고 아래는 침수되어 / 奈何上霑下又浸
농부들로 하여금 하늘을 외치게 하는고 / 直使野老呼蒼冥
옥황의 향안 앞엔 누가 붓대 잡고 모시는고 / 玉皇案前誰侍筆
청컨대 농가류의 일정을 기록해 올리게나 / 請記農家流日程
게으른 자는 굶어 죽어야 마땅하겠지만 / 惰者甘心向溝壑
다른 이의 간절한 말은 신명이 들을지어다 / 他人苦語神其聽
추우탄편(秋雨歎篇)을 짓고 나니 하늘이 말끔하게 개어서 정신이 매우 상쾌하므로, 또 추양가(秋陽歌)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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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가을볕의 쬠을 결백하다 일컬었으니 / 秋陽古稱曝皓皓
천지가 결백해지면 정신도 소생된다오 / 天地潔白精神蘇
여름 사이엔 흐린 기운이 일월을 가리고 / 夏間陰翳蔽日月
구름 안개 잔뜩 끼어 봉래산이 묻히는지라 / 雲蒸霧滃沈蓬壺
옥당이며 금전에도 습기를 피치 못하고 / 玉堂金殿不避濕
가난한 오막살이는 진흙탕과 서로 연했네 / 甕牖圭竇連泥塗
맘 우울하고 몸 나른하며 기운은 실낱 같아 / 思沈體倦氣如綫
오동에 가을바람 불기만 손꼽아 기다릴 제 / 屈指秋風吹碧梧
사랑스런 가을바람이 분 지 수일도 안 되어 / 蕭蕭可人未數日
비 맡은 신의 여력은 따라서 주춤해졌으나 / 雨師餘力仍躊躇
청황색 벼이삭 들에 가득코 바람 이슬 많아서 / 靑黃滿野足風露
정히 매몰될까 두려워 걱정을 더했는데 / 政恐埋沒增憂虞
하늘 끝 땅 끝이 갑자기 빛을 드러내더니 / 乾端坤倪忽呈露
상쾌도 해라 천지 사방이 탁 트이네그려 / 快哉爽塏開通衢
해마다 농가에서는 큰 풍년을 만나서 / 年年農家得大熟
배불리 먹어 다시 처자 걱정 않거니와 / 鼓腹不復愁妻孥
한산의 늙고 병든 나 또한 얼마나 다행한고 / 韓山老病亦何幸
글 지어 쌀 얻어서 조석을 이으니 말일세 / 作書乞米供朝晡
[주D-001]옛날에 …… 일컬었으니 : 옛 날 공자가 작고한 뒤에 자하(子夏)ㆍ자장(子張) 등 문인들이, 같은 문인 중에 유약(有若)의 기상(氣象)이 공자와 비슷하다 하여 마치 공자를 섬기듯이 그를 섬기려고 증자(曾子)에게 권하자, 증자가 이르기를, “불가하다, 부자의 도는 강수ㆍ한수로 씻은 듯이 광휘가 나며, 가을볕으로 쬔 듯이 결백한지라, 그 결백함을 더할 수가 없다.[不可 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皓皓乎不可尙已]”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주D-002]글 …… 얻어서 : 당나라 때 충신(忠臣)이며 명필(名筆)이었던 안진경(顔眞卿)이 일찍이 글을 지어 이 태보(李太保)에게 보내어 쌀을 빌었던 데서 온 말인데, 세상에서 이것을 걸미첩(乞米帖)이라 일컬었다.
15일 이른 아침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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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 고향 산 바라보니 푸른 하늘 멀어라 / 鄕山南望碧天長
올가을에도 묘목에 석양빛이 걸렸으리 / 宰木秋來掛夕陽
늙고 병든 그 몇 년을 마음 홀로 괴로웠던고 / 老病幾年心自苦
어느 날에나 녹문산에 제주를 올릴 거나 / 鹿門何日奠椒漿
밤에 한 첨서(韓簽書) 댁에 가서 간단한 주연(酒宴)을 베푼 자리에서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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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는 드물어서 보기 어렵고 / 列宿稀難見
가는 구름은 멀어서 부를 수 없는데 / 行雲遠莫招
무르녹은 술자리에 마주앉았노라니 / 酒闌仍對坐
밝은 달이 한밤중을 지났네그려 / 明月過中宵
우산 쓴 이는 자주 내 집을 찾았고 / 雨傘頻相過
풍루에서는 누차 나를 불러 주었네 / 風樓屢見招
어찌 알았으랴 이 버들 그늘 아래 / 那知柳陰下
이렇게 달 밝은 밤이 있을 줄을 / 有此月明宵
옥토끼는 절로 접근하기 어렵건만 / 玉兔自難近
신선은 그 누가 불러올 수 있으랴 / 羽人誰得招
바다와 산 천만리 머나먼 곳에 / 海山千萬里
나그네 있어 맑은 밤에 섰노라 / 有客立淸宵
[주D-001]나그네 …… 섰노라 : 두보(杜甫)가 오랫동안 고향의 가족들과 헤어져 있음을 한하여 지은 시에, “집 생각엔 달빛 아래 거닐며 맑은 밤에 섰고, 아우 생각엔 구름 쳐다보며 백일에 조노라.[思家步月淸宵立憶弟看雲白日眠]” 한 데서 온 말이다.
200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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