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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牧隱詩藁) 제6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7. 20:29

목은시고(牧隱詩藁) 6

 

 

 ()

 

 

 

새벽에 일어나서 읊다.

 


남쪽 창에 햇살 돋아 쇠한 얼굴 비추어라 / 南窓日上照衰顔
새벽에 일어난 병골은 추위가 가장 겁나네 / 病骨晨興最怯寒
어찌 바보 천치가 콩 보리를 구분하랴만 / 豈有白癡分菽麥
발가벗고 의관 안 한 걸 모두 조롱하겠지 / 共譏赤立不衣冠
못난 사람은 본디 지리멸렬하기 쉽거니와 / 庸材自是支離易
높은 식자는 예부터 몸 검속하기 어렵다오 / 高識由來檢束難
목은은 종전부터 도력이 없었던 터라 / 牧隱從前無道力
이젠 거칠고 게으름이 문득 굳어졌다네 / 只今疎懶却成頑

 

전다 즉사(煎茶卽事)

 


봄에 계산 찾아드니 그림도 이만 못하리 / 春入溪山畫不如
가벼운 천둥이 밤새 적막을 진동시켰네 / 輕雷一夜動潛虛
꽃 자기잔의 흰빛은 조반을 먹은 이후요 / 花瓷雪色朝飡後
돌냄비의 솔 소리는 낮잠을 잔 뒤로다 / 石銚松聲午睡餘
달을 희롱해라 완연히 친면을 듯하고 /
弄月宛然親面見
바람을 타라 마침 소생함을 묻고 싶네 /
乘風欲問到頭蘇
하얀 귀밑머리에 누가 기심 잊은 자인고 / 鬢絲誰是忘機者
흉중의 수많은 글을 깨끗이 씻은 이로세 / 淨洗胷中書五車

일찍이 공문에 가서 사여를 물을 적에 / 曾向空門問四如
차 향기 자리 가득코 창문은 공허했네 / 茶香滿座小窓虛
신심의 뭇 고통은 의당 다함이 없으나 / 身心衆苦知無盡
입속은 달콤하여 기쁨이 아직 남았다오 / 齒頰微甘喜尙餘
방달함은 도리어 이중을 찾아야겠지만 / 放曠却須尋二仲
문장은 하필 삼소를 배울 것이 있으랴 / 文章何必擬三蘇
문왕을 스승삼고픈데 지금 어디 있는고 / 欲師西伯今安在
아닌 점쳐 얻어 후거에 실었었네 /
卜得非熊載後車

 

[주D-001]달을 …… 듯하고 : ()나라 시인 노동(盧仝), 간의대부(諫議大夫) 맹간(孟簡)이 보내 준 월단차(月團茶)를 두고 지은 〈다가(茶歌)〉에, “봉함 열자 간의의 얼굴 완연히 보는 듯해라, 손으로 삼백 편의 월단차를 점열하네.[開緘宛見諫議面 手閱月團三百片]”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바람을 …… 묻고 싶네 :
역 시 노동의 〈다가〉에, “첫째 잔은 목과 입술을 적셔 주고……여섯째 잔은 선령을 통하게 해 주네. 일곱째 잔은 마실 것도 없이, 오직 양쪽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이 일어남을 깨닫겠네. 봉래산이 어디에 있느뇨. 나도 이 맑은 바람 타고 돌아가고 싶구나. 봉래산 위의 신선들은 하토를 다스리지만, 지위가 청고하여 비바람과 격해 있으니, 어떻게 알리요 억조창생이 벼랑에서 떨어지는 고통 받고 있는 줄을. 문득 간의에게 창생의 소식을 묻는다면, 마침내 창생을 소생시킬 수 있지 않겠나.[一碗喉吻潤……六碗通仙靈 七碗喫不得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蓬萊山在何處 玉川子乘此淸風欲歸去山上群仙司下土 地位淸高隔風雨 安得知百萬億蒼生 命墮顚崖受辛苦 便從諫議問蒼生 到頭合得蘇息否]”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사여(四如) :
《금 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에, “일체유위의 법칙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나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 亦如電 應作如是觀]”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이중(二仲) :
()나라 때의 은사(隱士)인 양중(羊仲)과 구중(裘仲)을 합칭한 말이다. 은사 장후(蔣詡)가 일찍이 향리로 돌아가 은거하면서 형극(荊棘)으로 문을 막고 집안에 세 길[三徑]을 내어, 오직 양중과 구중하고만 종유(從遊)했다고 한다.
[주D-005]삼소(三蘇) :
송 대(宋代)의 문장가인 소순(蘇洵)과 그의 두 아들인 소식(蘇軾)ㆍ소철(蘇轍)을 합칭한 말이다. 송대에 삼소의 문장이 크게 행해져서 그 문장을 숙독(熟讀)하면 과거(科擧)에 급제할 수 있었으므로, 심지어소씨 글에 익숙하면 양고기를 먹고, 소씨 글에 서투르면 나물국을 먹는다.[蘇文熟喫羊肉 蘇文生喫菜羹]”는 말까지 있었다.
[주D-006]곰 …… 실었었네 :
주 문왕(周文王)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가면서 점을 쳐보니, 점사(占辭), “용도 아니요, 이무기도 아니요, 곰도 아니요, 말곰도 아니요, 범도 아니요, 비휴도 아니요, 얻을 것은 패왕의 보좌로다.[非龍非
非熊非羆非虎非貔 所獲霸王之輔]” 했는데, 과연 위수(渭水) 가에서 강태공(姜太公)을 만나 그를 후거(後車)에 싣고 돌아왔던 데서 온 말이다.

스님을 곡하다. 이름은 신운(神運)이다.

 


조계
에서 갈려나와 조사 풍도 떨치어라 / 派出曹溪振祖風
정처 없는 병석은 사방을 뜻대로 밟았네 / 飄然甁錫任西東
태어나기는 이제 삼왕의 뒤를 따랐고 / 生從二帝三王後
죽어서는 천산 만수 속으로 향하누나 / 死向千山萬水中
구름 그림자는 머얼리 끝내 사라져가고 / 雲影迢迢終變滅
종소리는 은은히 아득한 속에 잠기누나 / 鐘聲隱隱在空濛
백련사 결성에 인연 없음이 부끄러워라 /
白蓮結社慚無分
슬픈 시 짓고자 하나 잘 되지 않는구려 / 欲製哀詩却不工

 

[주D-001]조계(曹溪) : 선종(禪宗) 가운데 남종(南宗)의 별호로, 육조(六祖) 혜능 선사(慧能禪師)가 조계산(曹溪山) 보림사(寶林寺)에서 설법(說法)을 하였기 때문에 불린 이름이다.
[주D-002]병석(甁錫) :
승려가 소지하는 물항아리와 석장(錫杖)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승려의 생애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주D-003]백련사(白蓮社) …… 부끄러워라 :
신운(神運)이라는 승려와 생전에 서로 교분이 없었음을 뜻한다. ()나라 때 혜원 법사(慧遠法師)는 수많은 고사(高士)들과 백련사를 결성하였고, 도잠(陶潛)ㆍ육수정(陸修靜)과도 교분이 두터웠으므로 이른 말이다.

 


창 아래 조용히 앉으니 생각은 끝없는데 / 小窓淸坐思綿綿
눈 올 기미 한창 부풀고 날은 저물어가네 / 雪意方酣欲暮天
두 뺨이 붉은 건 한창때라서가 아니요 / 頰上雙紅非壯歲
납전의 삼백
은 이것이 풍년의 조짐일세 / 臘前三白是

죽옥에 뿌릴 때는 소리만 들어도 추운데 / 洒來竹屋聲猶凍
차 솥에 떠 넣으면 차 맛은 더욱 좋구나 / 點入茶鐺味更姸
쭈그려 앉아 읊조리긴 정히 쓸쓸하지만 / 抱膝高吟正牢落
외로운 배에 삿갓 쓴 이가 되레 위태롭네 / 孤舟
笠轉危然

 

[주D-001]납전(臘前) 삼백(三白) : 삼백은 눈이 세 차례 내리는 것을 이르는데, 납일(臘日) 이전에 세 차례의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달밤에 찾아온 한 정당(韓政堂), 정 첨서(鄭簽書), 한 첨서(韓簽書)에게 받들어 사례하다.

 


상당의 호걸
은 기미가 다 순수하여 / 上黨三豪氣味醇
반쯤 거나해 흥이 나서 천진을 보여 주네 / 半酣乘興見天眞
가난한 내 집은 적적하여 등불도 없기에 / 貧居寂寂無燈火
사립에 비친 달빛이 더욱 선명하네그려 / 賴是柴門月色新

 

[주D-001]상당(上黨) 호걸 : 상당은 청주(淸州)의 고호(古號)인데, 두 한씨(韓氏)와 한 정씨(鄭氏)가 모두 본관이 청주이므로 이른 말이다. 정씨는 곧 당시 첨서밀직사(簽書密直事)였던 정공권(鄭公權)을 가리킨다.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하여 스스로 읊다.

 


풍미는 원래 순주를 마신 듯 훈훈한 것이니 / 風味由來似飮醇
세정을 어찌하면 다시 진실을 향하게 할꼬 / 世情那得更趨眞
다만 구구한 일편단심이 있을 뿐인데 / 區區祇有丹心在
쇠한 백발 새로워짐을 금하기 어려워라 / 種種難禁白髮新

도 마음은 잠시 순수해질 수도 있거니와 / 道情時或
還醇
그림 품격은 너무 핍진한 것 상관치 않네 / 畫品非關太逼眞
한 폭 그림의 강산과 서로 마주한 곳에 / 一幅江山相對處
들 매화의 시 흥취가 다시 청신해지누나 / 野梅詩興更淸新

 

느낌이 있어 읊다. 3(三首)

 


자고로 지기는 도가 있는 데에 있었으니 / 自古知音在道存
분분한 세리를 다시 무엇하러 논하리요 / 紛紛勢利更何論
포정은 소를 잡아 여유 있게 칼을 놀리고 /
庖丁善解餘游刃
정위는 사귀는 정을 문에다 크게 붙였네 /
廷尉交情大署門
먼 봉우리 뜬 구름은 청산을 가로질렀고 / 遠岫浮雲橫積翠
처마에 비친 아침 해는 온기를 펼치누나 / 短簷初日放微溫
비록 늦게 먹어도 배부르길 요구하여라 / 雖然
食猶求飽
청백을 언제 일찍이 자손에게 끼쳤던고 / 淸白何曾遺子孫

소년 시절엔 태평 시대를 미쳐 달렸는데 / 少年狂走太平時
벼슬길에서 다시 늙을 줄 어찌 뜻했으랴 / 豈意危途更老衰
격렬한 창자만 한갓 무쇠 같을 뿐이요 / 激烈中腸徒似鐵
쓸쓸한 두 귀밑은 이미 흰 실이 되었네 / 蕭疎雙鬢已成絲
공명의 사업은 천하를 삼분한 나라였고 /
孔明事業三分國
자미는 평생에 재배하는 시를 읊었도다 /
子美平生再拜詩
몹시 발광코 싶으나 부리를 닫고 / 甚欲發狂關尺喙
문득 묵묵히 깊은 생각에 젖기만 하노라 / 却成緘默謾沈思

높은 데 올라 바라보니 생각이 끝없어라 / 登高一望思悠悠
물상과 생애 속에 온갖 근심이 모여드네 / 物像生涯感百憂
나는 홀로 무리 적어 산과 함께 빼어난데 / 我自寡徒山並秀
세인은 응당 짝이 많아 물이 갈려 흐르듯하리 / 世應多偶水分流
년을 돌아온 오직 황학뿐이요 /
千年不返唯黃鶴
리라 길들이기 어려운 갈매기로세 /
萬里難馴有白鷗
또 남쪽 창을 향하여 주역을 읽으노니 / 且向南窓讀周易
마음 씻고 단정히 앉아 또 무엇을 구하랴 / 洗心端坐更何求

 

[주D-001]지기(知己)는 …… 있었으니 : 공 자(孔子)가 일찍이 온백(溫伯)이라는 현인(賢人)을 만나 보고 나서 아무 말이 없자, 자로(子路)가 그 까닭을 물으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그런 사람은 한 번만 보고서도 도()가 있음을 알 수 있으니, 또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莊子 田子方》
[주D-002]포정(庖丁)은 …… 놀리고 :
포 정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는데 그 칼질하는 솜씨가 매우 민첩하자, 문혜군이 그의 뛰어난 솜씨를 칭찬하였다. 이에 포정이 칼을 놓고 대답하기를, “()이 좋아하는 것은 도()이기에 기술보다 앞서는 것입니다.……지금 신의 칼은 19년 동안이나 썼고, 잡은 소도 수천 마리나 되지만, 이 칼날은 방금 막 숫돌에 갈아낸 것과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는데, 두께가 없는 것을 틈새가 있는 곳에 넣으므로, 칼날을 휘두르는 데에 반드시 여유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莊子 養生主》
[주D-003]정위(廷尉)는 …… 붙였네 :
()나라 때 책공(翟公)이 정위로 있을 적에는 찾아오는 빈객이 많았는데, 파관(罷官)을 당한 뒤로는 찾아오는 빈객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뒤에 정위에 복직(復職)되자 빈객이 다시 찾아오므로, 책공이 분개하여 자기 집 문에다 크게 써 붙이기를, “한 번 죽고 사는 데에서 사귀는 정을 알 수 있고, 한 번 가난하고 부유한 데에서 사귀는 태도를 알 수 있으며, 한 번 귀하고 천한 데에서 사귀는 정이 이에 나타난다.[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늦게 먹어도 :
옛날 은사(隱士) 안촉(
)늦게 먹어서 고기와 맞먹게 한다[食當肉]’는 말에서 온 것으로, 즉 끼니가 지난 뒤에 음식을 먹으면 시장함 때문에 아무리 거친 음식도 고기처럼 맛있게 느껴진다 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5]공명(孔明)의 …… 나라였고 :
공명은 제갈량(諸葛亮)의 자인데, 제갈량이 촉한(蜀漢)을 위해 천하를 통일하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촉()ㆍ위()ㆍ오() 삼국(三國)의 형세에 그쳤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6]자미(子美)는 …… 읊었도다 :
자 미는 두보(杜甫)의 자인데, 두보가 〈두견행(杜鵑行)〉을 지어서 천자(天子)를 존경한 것을 의미한다. 재배(再拜)는 곧 존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황정견(黃庭堅)의 〈제마애비(題磨崖碑)〉에, “신 원결은 용릉행 등 이삼 편의 시를 읊었고, 신 두보는 임금 존경하는 두견행을 읊었네.[臣結舂陵二三策 臣甫杜鵑再拜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 부리를 닫고 :
말 을 하지 않음을 뜻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시남의료(市南宜僚)는 공놀이[弄丸]를 함으로써 두 집안의 난리가 화해되었고, 손숙오(孫叔敖)는 우선(羽扇)을 쥐고 잠만 달게 잠으로써 초인(楚人)이 전쟁을 그만두었으니, 나도 부리가 석 자만 되었으면 좋겠다.” 한 데서 온 말인데, 보통 부리가 긴 새는 잘 지저귀지 않으므로, 이것을 가지고 말을 하지 않는 데에 비유한 것이다. 《莊子 徐无鬼》
[주D-008] 년을 …… 황학뿐이요 :
()나라 최호(崔灝)의 〈황학루(黃鶴樓)〉 시에, “옛사람이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났기에, 이곳엔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구나. 황학이 한 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흰 구름만 천재에 부질없이 유유하여라.[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9] 리라 …… 갈매기로세 :
두 보(杜甫)의 〈증위좌승(贈韋左丞)〉 시에, “갈매기가 아득한 연파 속에 묻혀 버리면, 만 리 멀리 누가 길들일 수가 있으랴.[白鷗沒浩蕩 萬里誰能馴]” 한 데서 온 말인데, 갈매기는 곧 두보 자신에 비유한 것이다. 《杜少陵詩集卷1

가련재(可憐哉) 3(三首)

 


가련하다 이 몸이여 / 可憐哉此身
작고 못생기어 품위도 없어라 / 矮陋無容儀
내 스스로 보아도 싫증이 나니 / 自觀尙可厭
이 때문에 남들이 조롱을 하지 / 所以人共譏
기거동작은 법도에 맞지 않고 / 興俯不中式
말은 매양 어긋난 것이 많은데 / 語言每多違
오히려 고상한 풍도 천재에 드문 / 尙企晏子短
작은 안자
가 되길 기대한다네 / 高風千載希

가련하다 이 몸이여 / 可憐哉此身
질병이 항상 몸을 싸고 돌아서 / 疾病常繞纏
칼로 도린 듯 아파 끙끙 앓아라 / 呻吟劇刀刮
위장은 고화가 오글오글 타듯하네 / 腸胃如膏煎
고통 속에 긴 겨울 밤을 지새노라면 / 艱辛冬夜永
잠시도 편안히 잠들 때가 없어라 / 寸刻無安眠
오만 집이 한창 깊이 잠들었을 때 / 萬戶睡正熟
근근이 숨만 쉬고 있을 뿐이라오 / 鼻息方綿綿

가련하다 이 몸이여 / 可憐哉此身
도를 실은 사람
으로서 / 所以載道者
물욕의 부림을 받고 있으니 / 而爲物欲役
하천배만도 못하고말고 / 廝養不如也
또 마음 구석을 살펴보며는 / 且觀方寸地
이적과 중하를 분명히 알건만 / 明明洞夷夏
가리운 두터워 태양을 보고 /
蔀不見日
부질없이 긴 밤만 보내는구나 / 漫漫度長夜

 

[주D-001] 작은 안자(晏子) : 안자는 춘추 시대 제()나라의 명신(名臣) 안영(晏嬰)을 가리키는데, 어진 재상으로 명성이 높았고, 특히 키가 아주 작았다고 한다.
[주D-002]도를 실은 사람 :
()나라 주돈이(周敦
)의 말에, “문장은 도를 실은 것이다.[文所以載道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글을 할 줄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주D-003]가리운 …… 보고 :
혼암(昏暗)한 임금을 은밀히 풍자한 말이다. 자세한 것은 《주역(周易)》 풍괘(
)에 보인다.

스스로 읊다. 3(三首)

 


벼슬함은 영화를 탐해서가 아니요 / 立朝非貪榮
떠남은 몸을 깨끗이 하는 게 아니라네 / 去國非潔己
밤을 묵고 땅에 나와서야 / 三宿乃出晝
호연히 돌아갈 뜻이 있었다오 / 浩然有歸志

돌려 종남산을 바라보니 / 回首終南山
두릉의 뜻이 아득하기만 하여라 / 蒼茫杜陵意

유유한 천재 아래서 / 悠悠千載下
조금도 다름없이 의기가 투합하네 / 氣合無少異
일식경도 임금 은혜 못 잊건만 / 一飯不忘君
누가 내 늙음을 불쌍히 여겨 주리 / 誰憐吾老矣

어려서 배움은 몸을 꾸민 게 아니요 / 幼學非文身
자라서 행함은 영화를 꾀한 게 아닐세 / 壯行非圖己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 해도 / 枉尺直乃尋
군자가 어찌 뜻을 굽힐까보냐 / 君子豈降志
현달을 원함은 비록 인정이지만 / 發達雖人情
머뭇거림은 혹 하늘의 뜻이라네 / 低回或天意
즐거운 노래에 시도 고프나 /
酣歌矢我音
해가 지금 이미 저물었도다 / 歲今云暮矣

이치는 본디 물아가 없는 것인데 / 理也無物我
태어나서 남과 내가 있는 걸세 / 生而有人己
밝은 천명이 바야흐로 빛나거니 / 明命方赫然
누가 그 뜻을 어길 수 있으랴 / 疇能越厥志
원래부터 도에 들게 되는 건 / 由來得造道
단적으로 성의에 달린 것이니 / 端的在誠意
노력하여 이 관문을 통과한다면 / 努力過此關
천하를 평치할 수 있고말고 / 天下可平矣

스스로 읊다’ 3수는,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스스로 그 뜻을 슬퍼한 것이니, 천재(千載) 뒤에 반드시 내 마음을 알아줄 이가 있을 것이다. 군자(君子)는 도()를 준행하면서 중간에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니, , 높은 산을 우러러보지 않을 있으며, 큰길을 따라가지 않을 있겠는가. 애오라지 이것을 좌우(座右)에 기록하는 바이다.

 

[주D-001] 밤을 …… 있었다오 : 맹 자(孟子)가 제()나라에서 도()를 행할 수가 없게 되자, 부득이 그곳을 떠나면서 제나라 왕이 혹시라도 개심(改心)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에 천천히 가서 3일 밤을 묵은 다음에야 주() 땅에 나갔는데, 그때까지도 왕으로부터 아무런 개심의 흔적이 없었으므로, 그제야 비로소 호연히 떠나갈 뜻이 있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下》
[주D-002]머리 …… 하여라 :
두릉(杜陵)은 호가 소릉(少陵)인 두보(杜甫)를 이르는데, 두보의 〈증위좌승(贈韋左丞)〉 시에, “마음은 아직도 종남산을 그리워하며, 머리 돌려 맑은 위수가를 바라보네.[尙憐終南山 回首淸渭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즐거운 …… 읊고프나 :
《시 경(詩經)》 대아(大雅) 권아(卷阿), “훌륭하신 임금님이 놀고 노래하시매, 나도 시를 지어 읊어보노라.[豈弟君子 來游來歌 以矢其音]”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성왕(成王)의 태사(太師)인 소공(召公)이 성왕을 모시고 놀 적에 성왕을 경계하기 위하여 읊은 것이다.
[주D-004]높은 …… 있겠는가 :
높은 산은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것이고, 큰길은 모든 사람이 다니는 것이므로, 곧 천하 만인에게 존경을 받는 군자에 비유한 것이다.

거문고 소리를 듣고 느낌이 있어 읊다.

 


법칙은 스승이 가르쳐야 하지만 / 指法須師授
마음 근원은 스스로 찾아야지 / 心源在自尋
오경에 맑은 야기가 생겨나면은 / 五更生夜氣
한 점의 천심을 볼 수 있다네 / 一點見天心
현묘함이 곡조를 이루긴 하지만 / 要妙雖成曲
화평함이 어찌 거문고에 있으랴 / 和平
在琴
옛날 소리는 이제 그만이라 / 古音今已矣
유수가 조용해진 한스럽구려 / 流水恨沈沈

 

[주D-001]옛날 …… 한스럽구려 : 춘 추 시대에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는데, 일찍이 백아가 고산(高山)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다, 높다란 것이 마치 태산(泰山) 같구나.” 하였고, 백아가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다, 광대한 것이 마치 강하(江河) 같구나.” 하여, 백아의 생각을 종자기가 다 알아들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세상에 지기(知己)가 없음을 한탄한 말이다.

뱃노래를 돕다.

 


뱃사공아 뱃사공아 너는 잘 들어 보거라 / 櫂夫櫂夫爾且聽
내 충고할 말이 있어 두 눈물이 흐른다 / 我有苦辭雙淚零
강하의 성질은 순하여 걱정이 없을 게고 / 江河性順似無患
나무배 만들어 띄우면 부평초 같으리니 / 刳木泛泛如浮萍
하늘 맑고 잔잔한 물결 거울처럼 맑으면 / 天晴恬波鏡面淨
즐거울사 건너기 좋은데 낯을 왜 붉히랴 / 樂哉利涉顔誰

인생은 발만 들면 화복을 밟게 되기에 / 人生擧足蹈禍福
평지의 지척에도 마음을 태워야 한다네 / 平地咫尺焦心靈
자고로 조물주는 본디 인자하다 하거늘 / 由來造物本仁恕
미친 바람 거센 파도를 누가 가져오는고 / 狂風逆浪誰來呈
산이 무너지고 불이 나는 것보다 험하다가도 / 山頹火飛勢莫比
문득 바람 한 번 자면 이내 평온해지리니 / 忽然一靜安且寧
천천히 내 시 읊고 땅에 내려가질랑 마소 / 徐吟我辭且勿下
언덕에 내리면 흙먼지에 앞이 캄캄하여 / 下岸塵土
前程
산림의 맹수들이 한창 흉악을 떨칠 걸세 / 山林豺虎方生獰

 

잡영(雜詠) 3(三首)

 


우뚝 치솟은 열두 누각 / 岧嶢十二樓
맨 위에 봉황의 날개가 있네 / 上有雙鳳翎
신선이 때로 자란 젓대를 불면은 / 時吹紫鸞笙
소리와 그림자 하늘 높이 올라라 / 聲影凌靑冥
비밀한 진결을 물어보고 싶은데 / 欲問祕眞訣
빠르기가 마치 유성과도 같구나 / 超忽如飛星
나는 삼생의 습기가 탁하기에 / 三生習氣濁
결합하기 어려움을 스스로 믿고 / 自信難合幷
취해 쓰러져 단꿈을 꾸다 보니 / 頹然就酣夢
흡사 상제의 궁정에 노닌 듯하네 / 髣髴游天庭

상제는 참으로 높은 데 거하시어 / 上帝信高居
아랫사람은 쳐다보기만 할 뿐이네 / 下人空

하늘의 관문은 운무에 막혔는지라 / 天關阻雲霧
서풍이 동남쪽에서 불어오기에 / 閶闔來東南
서풍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 乘之欲上征
벼슬하여 때로 조참도 하고프나 / 通藉時朝參
세속 일이 이것저것 잔뜩 쌓여서 / 塵事共塡積
재삼차 스스로 탄식만 하였는데 / 自嘆方再三
꿈속에 한 신선을 만나 보니 / 夢中遇羽客
나를 경계하길 네 탐욕을 버리라 / 戒以去爾貪
네 탐욕은 값진 보배가 아니요 / 爾貪匪珍寶
명교가 바로 즐길 것이다 하누나 / 名敎是所耽

사람 마음은 물같이 맑아서 / 人心如水淸
하늘이 그 속에 거꾸로 박혔다네 / 太虛倒其中
구름 연기는 조석으로 변동하고 / 雲烟變朝夕
해와 달은 동서에서 뜨고 지는데 / 日月生西東
바람이 불어 풍랑이 일어날 땐 / 風來波浪作
살펴보면 어찌 그리도 웅장한고 / 視之何其雄
갑자기 조용하게 한 번 진정되면 / 寂然忽一定
털끝만큼도 처음과 안 다르다오 / 毫釐無異同
밝은 창 앞에서 주역을 읽노라니 / 明窗讀周易
향 연기가 맑은 허공에 흔들리네 /
搖晴空

 

[주D-001]삼생(三生) 습기(習氣) : 불교(佛敎) 용어로, 삼생은 전생(前生)ㆍ금생(今生)ㆍ내생(來生)을 합칭한 말이고, 습기는 곧 습관적으로 번뇌(煩惱)를 일으킬 수 있는 여력(餘力)을 가리킨다.

느낌이 있어 읊다. 4(四首)

 


복희 황제 세대는 멀다 하더라도 / 羲軒世云遠
주공 공자는 지금 어디에 갔느뇨 / 周孔今安歸
요순 세대는 한창 태평했었는데 / 二帝日正午
소왕 비로소 도가 쇠미해졌네 /
昭王始衰微

진 시황 때는 극도로 암흑시대라 / 秦天極昏黑
길을 잃고 돌아갈 바를 몰랐거니와 / 失路迷所歸
주염계가 정주(程朱)를 개도하긴 했으나 / 濂溪導伊洛
근원이 멀어져 형세 더욱 희미했네 / 源遠勢益微

주 선생이 비로소 세상에 나와서 / 考亭夫子出
이학의 정미한 곳을 관통했는데 / 理學通精微
노재
가 다행히 기호를 같이하여 / 魯齋幸同嗜
조정에서 수시로 이를 발휘하였네 / 北庭時發揮

정자 주자는 도를 실은 그릇이라 / 程朱載道器
노씨 불씨 잘못을 크게 배척했는데 / 大斥二氏非
아직 구절 따라 해독이나 하는 자들이 / 尙作句解讀
누가 다시 삼희가 있음을 알리요 / 誰復知三希

 

[주D-001]소왕(昭王) …… 쇠미해졌네 : 주 소왕(周昭王)이 남쪽으로 순수(巡狩)를 나가는 길에 한수(漢水)를 건너게 되었는데, ()나라 사람이 소왕을 미워하여 아교를 칠한 배를 바쳤다. 소왕이 그 배를 타고 중류(中流)에 이르렀을 때 아교가 녹아 파선(破船)함으로써, 소왕이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노재(魯齋) :
()나라 초기의 학자인 허형(許衡)의 호이다. 허형은 특히 정주학(程朱學)을 좋아하여 깊이 통하였고, 벼슬은 국좌 좨주(國子祭酒)에 이르렀다.
[주D-003]삼희(三希) :
주돈이(周敦
)의 《통서(通書)》에 이르기를, “성인은 하늘을 희망하고, 현인은 성인을 희망하며, 선비는 현인을 희망한다.[聖希天 賢希聖 士希賢]” 한 데서 온 말이다.

미혹됨을 분변하다.

 


눈이 있으니 빛깔을 잘 구별하여 / 有目別其色
주자
에 판단이 바뀌지 말아야 하고 / 勿爲朱紫移
혀가 있으니 맛을 잘 구별하여 / 有舌別其味
역아
의 비웃음을 사지 말아야 하리 / 勿爲易牙嗤
의리와 이끗은 구분이 정연하지만 / 義利若畫一
그 처음은 차이가 털끝에 불과한 법 / 其初在毫釐
한번 어긋나면 천 리나 멀어지나니 / 差之卽千里
군자는 이것을 항상 유념해야 하리 / 君子其念玆

 

[주D-001]주자(朱紫) : 붉 은빛과 자줏빛을 이른다. 붉은빛은 정색(正色)이고, 자줏빛은 간색(間色)인데, 매우 서로 흡사하여 구별하기 어려움이 마치 사람의 현불초(賢不肖)를 구별하기 어려움과 같으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자줏빛이 붉은빛을 탈취하는 것을 싫어한다.[惡紫之奪朱也]” 하였다. 《論語 陽貨》
[주D-002]역아(易牙) :
옛날에 음식 맛을 잘 알았던 사람으로, 맹자가 이르기를, “맛에 대해서는 천하 사람이 모두 역아를 기준으로 삼았다.[至於味天下期於易牙]” 하였다. 《孟子 告子上》

영주(榮州)에 부임하는 신중현(申中顯)을 보내다. 자는 인보(仁甫)이다.

 


눈 다 녹은 강남에는 봄이 일찍 왔을 텐데 / 雪盡江南生早春
한 깃발의 행색으로 풍진을 떠나는구나 / 一麾行色離風塵
청향과 화극 속에 여가가 응당 많으리니 / 淸香畫戟應多暇
시 써서 친구에게 부치는 걸 아끼지 마소 / 莫惜題詩寄故人

 

[주D-001]화극(畫戟) : 아름답게 색칠한 창을 말하는데, 관부(官府)의 문을 지킬 때에 병졸들이 지니는 것이다.

나이 오십에 스스로 읊다.

 


첫째의 수가 우뚝이 오복에 으뜸했는데 /
一壽巍巍冠九疇
나이 오십에 배우길 즐기며 근심 잊었네 / 行年五十樂忘憂
분향하고 주역 읽으니 생각이 끝없어라 /
焚香讀易思無盡
이제부터 허물은 면하지 않겠나 / 大過從今得免不


장수나 요절이 모두 일개 물거품 같은 건데 / 生死彭殤海一漚
더구나 오십이 되어서 또 무얼 걱정하랴 / 況今知命更何虞
고요한 가운데 태극이 천지를 내었거니 / 靜中大極生天地
굳이 여러 말로 유무를 분변할 것 없어라 / 不必瀾飜辨有無

 

[주D-001]첫째의 …… 으뜸했는데 :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나오는 오복(五福) 가운데일왈수(一曰壽)’라 하였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2]나이 …… 않겠나 :
공 자가 이르기를, “나에게 수년의 나이를 더 주어 50세에 《주역》을 읽게 된다면, 큰 허물은 없게 할 수 있을 것이다.[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 하였고, 또 이르기를, “분발하여 밥먹는 것을 잊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근심을 잊어서, 몸이 곧 늙어가는 것도 알지 못한다.[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집을 자주 옮기는 데 대하여 스스로 읊다.

 


용수산의 북쪽이요 곡봉의 앞에 / 龍巒之北鵠峯前
수많은 민가가 서로 연접했는데 / 萬戶千門共接連
학문을 강론할 만한 옥려자가 없었기에 / 函丈曾無屋廬子
때로 맹모를 따라 삼천지교를 배운다오 / 時從孟母學三遷

 

[주D-001]옥려자(屋廬子) : 본디 맹자의 제자인데, 여기서는 가옥(家屋)을 의인화(擬人化)하여 이른 말이다.

즉사(卽事)

 


병든 몸이 고통 속에 또 겨울을 났는데 / 病骨酸辛又過冬
도근은 오히려 얕고 세정만 농후하여라 / 道根猶淺世情濃
아래서 주역에다 주묵 점을 찍노라니 /
硏朱點易晴窓下
변화하는 데는 분명 육효가 중요하구려 / 變化分明六位重

 

[주D-001] 아래서 …… 찍노라니 : ()나라 때 신선(神仙)을 매우 좋아했던 고변(高騈)의 〈보허사(步虛詞)〉에, “청계산 도사를 사람들은 알지를 못하니, 하늘을 오르내리는 학 한 마리뿐이로다. 동굴 문 깊이 잠기고 푸른 창은 춥기만 한데, 이슬방울로 주묵 갈아 주역에 권점 찍노라.[靑溪道士人不識 上天下天鶴一隻 洞門深鎖碧窓寒 滴露硏朱點周易]” 한 데서 온 말이다.

시로써 매화(梅花)를 빌리다.

 


봄이 오매 병든 몸이 더욱 고통스러워 / 春來病骨轉辛酸
동풍의 봄추위가 아직도 겁은 나지만 /
東風料峭寒
맑은 흥취는 조금 남은 걸 스스로 알괘라 / 淸興自知餘少許
절구 한 수 읊어서 매화 빌려 감상하네 / 吟成一絶借梅看

 

하일(夏日)에 부질없이 쓰다. 3(三首)

 


때를 만난 건 우물 안의 개구리요 / 時哉井底蛙
이미 늦은 구름 사이 학이로다 /
矣雲間鶴
봉황 새끼는 단혈에 있는 것인데 / 丹穴有鳳雛
어찌 아각에 둥우리를 틀었던고 / 何曾巢阿閣

기린이 나와서 춘추를 지었던가 / 麟出作春秋
춘추가 이뤄져서 기린이 왔던가 / 文成致麟至
성인이 스스로 기린이 되었던가 / 聖人自爲麟
분분한 추측 어느 것이 옳을는지 / 紛紛竟誰是

징검다리 위에는 눈발이 뿌리고 / 雪灑石矼上
암굴 속에는 고드름이 달렸어라 / 氷懸巖竇中
공연히 두 다리 있다 자랑하지만 / 謾誇雙脚在
안개 속을 밟을 줄 누가 알리요 / 誰解踏空濛

 

[주D-001]이미 …… 학이로다 : 두보(杜甫)의 〈야망(野望)〉 시에, “외로운 학은 돌아오길 왜 그리 늦는고, 저녁 까마귀 이미 숲에 가득하네.[獨鶴歸何 昏鴉已滿林]” 한 데서 온 말로 학은 곧 자신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2]아각(阿閣)에 …… 틀었던고 :
아각은 네 모퉁이가 있는 누각(樓閣)을 가리키는데, 황제(黃帝) 때에 봉황이 아각에 둥우리를 틀었다고 한다.

추일(秋日)의 즉사(卽事)

 


초가을의 일기가 잠깐 서늘킨 하나 / 初秋氣乍涼
남은 더위를 대적하기 어려워라 / 餘熱勢難敵
묘금을 달구어 순수하게 만듦은 /
畝金煉以純
조물주의 조화력에 달린 거로세 / 洪爐造化力
흐르는 땀이 구슬처럼 떨어질 제 / 膚汗滴如珠
농가에선 기쁘기 한량없었건만 / 農家喜無極
서로 모여 연사를 얘기할 때면 / 相聚共談歲
인정이 어찌 만족할 줄을 알랴 / 人情豈知足
나라에서 내게 조세를 면해주어 / 使我給租稅
아녀가 배불리 먹고 기뻐하니 / 兒女嬉鼓腹
임금의 힘이요 임금의 힘이라고 / 帝力歟帝力
여러 갈래 길에서 노래하련다 / 歌之歧路曲

 

[주D-001]묘금(畝金)을 …… 만듦은 : 묘 금은 비옥한 토지를 가리킨 것으로, 즉 곡식을 심어 가꾸고 거두는 일들을 연금(煉金)하는 일에 비유한 말이다. 《한서(漢書)》 동방삭전(東方朔傳)에 의하면, 풍호()의 사이에는 토지가 비옥하여 일묘(一畝)에 값이 일금(一金)이었다고 한다.

예전에 놀았던 일을 추억하다.

 


소년 시절엔 놀기를 좋아했으니 / 少之時好游
푸른 산 흰 구름 그곳이었지 / 靑山白雲處
승경을 만나선 돌아가길 잊었고 / 遇勝淡忘歸
명상에 잠겨 조용히 말도 없었네 / 冥心寂無語
그리워라 천재인이여 / 懷哉千載人
국화 먹고 계피술을 마셨으니 / 飧菊啜桂

높은 풍도는 절로 무리가 없어라 / 高風自罕徒
훌륭한 자취가 바로 이러했었네 / 芳躅乃如許
바위 틈 집은 본디 열쇠도 없거니 / 巖戶本無

평탄한 길을 누가 험하다 하는고 / 坦途誰云阻

 

소년장(少年場)

 


투계하고 말달리며 툭하면 떼를 이루고 / 鬪鷄走馬動成群
문필에 종사하여 문사도 짓기 좋아했지 / 染翰操觚喜弄文
다 똑같은 망양이니 냉소할 만하여라 / 等是亡羊堪冷笑
적적한 안항에는 해가 또 저물어가네 / 寂寥顔巷日將曛

 

[주D-001]망양(亡羊) : 《장 자(莊子)》 변무(騈拇), “계집종과 사내종이 다 같이 양()을 치다가 똑같이 양들을 잃었으므로, 무슨 일을 하다가 양을 잃었느냐고 묻자, 사내종은 책을 읽다가 잃었다고 하였고, 계집종은 쌍륙(雙六) 놀이를 하다가 잃었다고 하였는데, 이 두 사람이 한 일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양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다.”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외물(外物)에 마음이 팔려 자기 본성을 상실하는 데에 비유한 말이다.
[주D-002]안항(顔巷) :
누추한 시골을 뜻한다. 안자(顔子)가 도시락밥을 먹고 표주박 물을 마시며 누추한 시골에서 살았다는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가 정(稼亭)이 소장한 당시(唐詩) 가운데 《위소주집(韋蘇州集)》이 있어 내가 아이 적에 이것을 애독(愛讀)했었는데, 뒤에 어떤 사람이 이 책을 빌려 가서 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연경(燕京)에 있을 때 현윤(縣尹) 오종도(吳宗道)에게서 또 《위소주집》 한 본()을 얻어서 우리나라에 돌아왔는데, 또 이 책을 남이 빌려 가서 지금은 누구한테 있는지 모르겠다. 한 수를 읊다.

 


당시들은 기가 자못 단촉하고 / 唐詩氣頗短
조금 평온한 게 오직 소주인데 / 稍平唯蘇州
처음 볼 때는 청절한 듯하다가 / 初看似淸絶
많이 읽으면 한아함을 느낀다네 / 熟讀方優游
이곳 산재는 바로 관부이기에 / 山齋卽官府
시골 흥취에 백성 근심 곁들이니 / 野興雜民憂
거처가 높음을 스스로 경계하여 / 自戒居處崇
마음 단속은 참으로 둘도 없지만 / 操心良罕儔
늙은 내가 국록을 훔쳐 먹으며 / 老我竊國廩
병든 몸으로 두 해나 머물렀으니 / 抱病歲再周
얼굴 붉어지고 땀나지 않을쏜가 / 能無
且泚
묵묵히 앉아서 깊이 자책하노라 / 默坐深自尤

 

우연히 쓰다.

 


산림만 궁벽한 곳이 아니요 / 山林非僻處
조시 또한 한적할 수 있으니 / 朝市亦閑居
두 무릎만 용납할 수 있다면 / 雙膝如容得
수시로 즐거움이 유여하다네 / 隨時樂有餘

 

내원당 감주(內願堂監主) 판조계종사(判曹溪宗事) 영공(英公)의 호는 고저(古樗)이고, 거처하는 곳은 송월헌(松月軒)인데, 나에게는 동갑내기 친구이다. 써주기를 청하므로 이 시를 짓다.

 


천지 사이 제일의 봄 동방에 심겨서 / 種在乾坤第一春
바닷가의 반도와 좋은 이웃 되었구려 / 蟠桃海上接芳隣
예쁘기도 해라 희고 붉은 오만 꽃들은 / 可憐能白能紅者
몇 번이나 동풍 향해 비단 자리 펼쳤던고 / 幾向東風洒錦茵

만수 중에 장송의 그림자가 가장 중한데 / 萬樹長松翠影重
둥근 달 막 떠오르고 바람도 불지 않누나 / 月華初上更無風
선창은 적적하여 서늘하기 물 같아라 / 禪窓寂寂涼如水
가을 풍경 한 조각 속에 걸려 있구려 / 掛在秋光一片中

조계종의 큰 복전을 스님이 총괄하니 / 領袖曹溪大福田
비단 도포
가 찬란하여 인천을 비추네 / 錦袍錯落照人天
화엄경의 강설을 조용히 그만두고서 / 從容折却華嚴講
한밤중에 군왕과 진리를 담론하누나 / 半夜君王席更前

 

[주C-001]영공(英公) : 고려 말기의 선승(禪僧)인 찬영(粲英)을 가리킨다.
[주D-001]비단 도포 :
()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일찍이 선승 만회화상(萬回和尙)에게 비단 도포를 내린 적이 있었다.

() 양가 선사(兩街禪師) 총공(聰公)은 호가 무문(無聞)이고, 사는 곳은 남악(南嶽)인데, 현릉(玄陵)께서 그에게 남악무문(南嶽無聞)을 친히 써서 내렸다. 나에게 그 찬()을 써달라고 요구하기에 삼가 절구(絶句) 3(三首)를 쓰다.

 


뭇 산세는 남으로 달려 서로 이어졌는데 / 群山南走勢聯綿
남악만 돌기하여 바다 장기(瘴氣)를 가려주네 / 突起唯應蔽瘴烟
회안봉
정상에 올라 멀리 바라보고픈데 / 欲上鴈回峯頂望
어떤 이가 나에게 초혜전을 꾸어줄런고 / 何人借我草鞋錢

샘물 소리 소나무 소리는 만 구렁 가요 / 泉水松聲萬壑邊
가을 벌레 지는 잎새는 한 등잔 앞이로다 / 秋蟲落葉一燈前
상인은 스스로 안심하는 곳이 있기에 / 上人自有安心處
선탑을 내려와서 평온하게 자는구려 / 下却禪床穩穩眠

현릉이 써서 내린 남악무문 네 글자는 / 南嶽無聞四字聯
해와 별의 광채가 먼 하늘에 반짝이어라 / 日光星彩絢遙天
난간서 펼쳐 보면 응당 느낌이 많으리니 /
展閱應多感
한번 창오를 바라보고 한번 슬퍼하겠지 / 一望蒼梧一悵然

 

[주D-001]회안봉(回鴈峯) : 중국 형산(衡山) 72봉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봉우리인데, 여기서 회안봉을 말한 것은 형산이 중국의 남악(南岳)에 해당하기 때문에 남악을 빙자하여 끌어댄 것이다.
[주D-002]초혜전(草鞋錢) :
행각승(行脚僧)의 여비(旅費)를 이른 말이다.
[주D-003]안심(安心) :
선 종(禪宗)의 이조(二祖) 혜가(慧可)가 초조(初祖) 달마(達磨)에게 묻기를, “제 마음이 편치 못하니, 스님께서 제 마음을 편케 해 주소서.” 하자, 달마가마음을 가져오너라. 너를 편케 해 주리라.” 하니, 혜가가 한참 뒤에 말하기를, “마음을 찾아보아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므로, 달마가 이르기를, “내가 이제 너에게 안심을 주었노라.”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傳燈錄 卷3
[주D-004]한번 …… 슬퍼하겠지 :
죽은 임금을 사모하여 슬퍼함을 뜻한다. () 임금이 동()으로 순수(巡狩)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어했던 데서 온 말이다.

대화산(大華山)으로 돌아가는 죽곡 승통(竹谷僧統)을 보내다.

 


죽곡 스님은 전부터 아는 사인데 / 竹谷舊相識
대화산 깊은 곳으로 돌아간다네 / 華山深處歸
세정은 단풍잎 떨어지는 가을이요 / 世情黃葉下
야흥은 흰 구름이 나는 때이로다 / 野興白雲飛
계곡의 물은 악보 없는 거문고요 / 絶澗琴無譜
연이은 봉우리는 바로 철위산일세 / 聯峯鐵作圍
어떻게 하면 장차 오송산 아래서 / 何當五松下
서로 마주해 잠시 기심을 잊어 볼꼬 / 相對暫忘機

 

[주D-001]철위산(鐵圍山) :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구산(九山) 가운데 가장 밖에 있다는 산인데, 이 산은 전체가 철로 되어 있다 한다.
[주D-002]오송산(五松山) :
산 이름으로, 당나라 이백(李白)이 일찍이 이 산에 집을 짓고 살았었다.

중추(中秋)

 


소년들 오늘 밤엔 서로 오가기 좋아하고 / 少年今夜喜相過
높은 누각엔 젓대 소리 달빛은 물결 같네 / 長笛高樓月似波
스스로 부끄러워라 앓고 나서도 건재하여 / 自愧病餘猶健在
아이 불러 부축받고 산 언덕을 오르는구려 / 呼兒扶策上山坡

귀밑머리가 어찌 그 옛날 같을 수 있으랴 / 鬢毛那得似當年
중추절의 둥근 달을 내가 쉰 번째 보노라 / 月向中秋五十圓
흰 토끼는 지금도 약을 찧고 있을 테지만 /
至今猶搗藥
한 자밤 보내서 내 묵은 병 고치려 할쏜가 / 肯分圭撮救纏綿

아동이 밤을 구워 알맹이를 부숴 주길래 / 兒童燒栗
金丸
잘게 씹으니 치아 새에서 단맛이 나오네 / 細嚼微甘發齒間
살진 고기보다 맛이 더함을 이제 알았으니 / 雋永始知尤有味
양젖 먹으며 가난한 사람 비웃거나 말거나 / 任他羊酪笑酸寒

적적한 산 사립에 왕래하는 이도 없는데 / 寂寂山扉絶往還
달빛이 낮처럼 밝아 자려 해도 어렵구나 / 月明如晝欲眠難
다행히 서로 이끌고 다니는 동년이 있어 / 相携幸有同年在
산을 올라도 풍로의 차가움을 모른다네 /
不知風露寒

한홍(韓弘) 동년(同年)을 가리킨 말이다.

 

추일(秋日)의 즉사(卽事)

 


빈객이 오면 무엇을 요구하리요 / 客至何所求
담박하게 시서나 논할 뿐이라네 / 詩書淡泊耳
만족하게 소득을 본 이는 드무나 / 充然得者稀
아쉰 대로 그 뜻엔 위로가 된다네 / 庶以慰其志
시장이 멀어서 반찬은 통 없으나 / 市遠盤盂空
백반의 빛은 숟가락에 번득이네 / 白飯光翻匙
몹시 꺼린 건 마실 술이 없어서 / 深嫌無杯酒
시상의 빌미를 떨 수 없음이로세 / 可以祓詩祟
국화는 한창 가지에 가득한데 / 黃花時滿枝
적막한 속에 서릿바람만 이누나 / 寂寂霜風起

 

중구(重九)

 


손과 함께 술병 갖고 따르던 자미는 /
與客携壺杜紫微
풍류와 문채가 그 당시를 풍미했는데 / 風流文彩照當時
누가 알리요 목은은 산을 오르는 곳에 / 誰知牧隱登高處
단지 국화꽃 한두 가지만이 있을 줄을 / 只有黃花一兩枝

 

[주D-001]손과 …… 자미(杜紫微) : 두 자미는 일찍이 중서 사인(中書舍人)을 지낸 두목(杜牧)을 가리키는데, 이는 중서성(中書省)의 별칭이 자미성(紫微省)인 데서 온 말이다. 두목의 〈구일등고(九日登高)〉 시에, “가을빛 강에 비치고 기러기 처음 날 제, 손과 함께 술병 갖고 산허리를 오르네. 속세엔 활짝 웃는 모습 만나기 어려우니, 국화를 반드시 머리에 가득 꽂고 돌아가리.[江涵秋影鴈初飛 與客携壺上翠微 塵世難逢開口笑 菊花須揷滿頭歸]” 한 데서 온 말이다.

새벽에 읊다.

 


닭이 울고 아침해가 돋으니 / 鷄鳴朝日生
가을 기운이 바야흐로 쾌청하네 / 秋氣方最淸
창을 여니 연지는 파랗고 /
硯池碧
소리 높여 읊으니 맘은 즐거워라 / 高詠怡我情
늙은 아내는 옷에 쪽물을 들이고 / 老妻染藍服
계집종은 다듬이질을 하누나 / 女奴砧杵聲
겨울에 입을 옷을 새로 짓느라 / 裁縫御冬衣
가위질 소리 밤 깊도록 울리네 / 剪刀深夜鳴
장차 의당 깊은 방에 모여서 / 行當聚奧室
함께 군자의 바름을 보전하리 / 共保君子貞

 

[주D-001]군자의 바름을 보전하리 : 송백(松柏)이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듯이, 돌아오는 겨울을 잘 보내리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산중(山中)의 절을 생각하며 읊다.

 


온갖 인연이 모두 삭가라에 떨어지니 / 萬緣俱落爍迦羅
한 조각 마음이 건률태임을 알 만하네 / 一片可知乾栗駄
아마도 깊은 절간의 가부좌한 곳에는 / 想得伽藍趺坐處
수미산의 달빛이 우아하게 비추리라 / 須彌月色照婆娑

만 길 낭떠러지에 소나무가 거꾸로 나서 / 萬丈懸崖松倒生
험준한 데 뿌리 박으니 세인들은 놀라고 / 托根高峻世人驚
맑은 바람 밝은 달이 다 함께 깨끗할 제 / 淸風明月共蕭洒
늙은 학의 한 소리에 천지가 맑아지누나 / 老鶴一聲天地淸

 

[주D-001]삭가라(爍迦羅) : 불교 용어로 견고(堅固)함을 이르는데, 전하여 주 51)에 나온 철위산(鐵圍山)의 별칭으로 쓰인다.
[주D-002]건률태(乾栗駄) :
불교 용어로, 중생(衆生)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견실심(堅實心)을 가리킨다.

우인(友人)을 대신하여, 사명을 받들고 일본(日本)에 가는 사신을 보내다.

 


만 리 외로운 돛이 석양을 등져 떠날 제 / 萬里孤帆背夕暉
끝없는 푸른 하늘에 조각구름만 나누나 / 碧天無際片雲飛
그대가 태평성대의 덕화를 보충하려면 / 知君欲補垂衣化
부상의 누에고치를 가져와야 걸세 /
須取扶桑大繭歸

 

[주D-001]부상(扶桑)의 …… 걸세 : 부 상은 동방의 해가 뜨는 바다 속에 있다는 신목(神木) 이름인데, 전하여 일본(日本)을 가리킨 것으로, 즉 일본에 가서 사명을 완수하고 오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부상의 큰 누에고치는 항아리만 하다네.[扶桑大繭如甕盎]” 하였다.

만봉(萬峯). 유일 상인(惟一上人)을 위하여 쓰다. 유일 상인은 일본인(日本人)인데, 이때 그 나라의 사명을 받들고 왔다.

 


겹겹의 천만 봉우리가 / 纍纍千萬峯
천지 중에 여기저기 늘어섰는데 / 歷歷天地中
어느 곳이 바로 제일이런가 / 何處是第一
부상옹에게 웃으며 묻노니 / 笑問扶桑翁
내가 의당 옷 떨치고 꼭대기에 올라서 / 會當振衣凌絶頂
해가 목욕하는 붉은 물결을 굽어보리라 / 俯視浴日波搖紅

 

이암(羸菴). 승 상인(勝上人)을 위하여 쓰다.

 


상인은 나무 먹고 풀로 옷 지어 입으니 / 上人木食草爲衣
몸은 가을 하늘을 나는 한 잎새 같건만 / 身似秋空一葉飛
가슴속엔 십만의 군사가 있기 때문에 / 賴是胷中兵十萬
악마의 겹겹 포위망 부수어 항복을 받네 / 坐降魔衆破重圍

 

주 상인(珠上人)을 위하여 경철권(冏徹卷)에 쓰다.

 


맑고 깨끗한 마니주 / 淸淨摩尼珠
방소에 따라 오색을 나타내는데 / 隨方現五色
머리 돌려 팔방 끝을 바라보면 / 回頭望八荒
다만 한 소리 천둥뿐이로다 / 但一聲霹靂

 

[주D-001]마니주(摩尼珠) : 불교 용어로, 즉 여의주(如意珠)를 가리킨다. 마니주는 본디 용왕(龍王)의 뇌 속에서 나온 것이라 하는데, 이것을 몸에 지니면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섬 상인(暹上人)을 위하여 등등권(騰騰卷)에 쓰다.

 


너무 좁으면 반드시 포용키 어렵고 / 太狹必難容
너무 강하면 반드시 꺾이나니 / 太剛必致折
우선 산림 속에 들어가서 / 且向山林中
한가로이 세월을 보내보려마 / 悠悠度歲月

 

우사(玗師)를 위하여 경암권(璥菴卷)에 쓰다.

 


연래에 양자운의 태현경을 초하려고 / 年來欲草子雲玄
날마다 남창을 향해 유편을 검색하는데 / 日向南
檢類篇
어찌 뜻했으랴 상인이 먼저 손을 써서 / 豈意上人先下手
옥부로 표제한
이미 세상에 유전한 걸 / 標題玉部已流傳

 

[주D-001]옥부(玉部) 표제한 : 경암권(璥菴卷)의 경() 자가 옥부에 쓰인 것을 이른 말이다.

찬부가(爨婦歌)

 


땔나무 대신 밀랍에다 금보장 둘러치고 / 蠟代薪楢錦步障
산호수의 높이는 그림자가 길이로다 / 珊瑚樹高影尋丈

주인은 밤에 돌아와 취침도 하지 않고 / 主人夜歸不就枕
아주 들고 계산하다 아침 해가 돋았네 / 雙手牙籌朝日上

손이 뵙길 청하면 어찌 그리 머뭇거리며 / 客來上謁胡躑躅
보지 않고 기울여 상자를 가렸던고 / 不見傾身時障簏

누가 알리오 목은 집은 가장 가난하여 / 誰知牧隱家最貧
때로 나물 뿌리 먹고 늘 죽만 마시면서 / 時咬菜根長啜粥
헝클어진 머리 맨다리로 추위를 견디며 / 蓬頭赤脚耐寒冷
서리 속에 낙엽 쓸고 산기슭 달리는 걸 / 掃葉凌霜走山麓

 

[주D-001]땔나무 …… 길이로다 : 금 보장(錦步障)은 비단으로 만든 휘장을 이른다. ()나라 때 부호(富豪)인 석숭(石崇)이 사치를 매우 숭상하여 땔나무를 밀랍으로 대신하였고, 50리 길이의 금보장을 만들었으며, 또한 산호수(珊瑚樹)를 많이 소유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주인은 …… 돋았네 :
아 주(牙籌)는 상아(象牙)로 만든 산가지를 가리키는데,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이 재리(財利)를 매우 좋아하여 축재(蓄財)를 많이 하면서 매양 스스로 아주를 손에 쥐고 밤낮으로 돈을 계산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손이 …… 가렸던고 :
()나라 때 조약(祖約)이 또한 재리를 매우 좋아했는데, 일찍이 어떤 손이 찾아오자, 때마침 돈을 계산하고 있다가 손이 오는 것을 보고는 그것을 병풍으로 가리고, 병풍으로 다 가려지지 않은 조그만 두 상자는 또 자기 등 뒤에 놓고서 몸을 기울여 가렸던 데서 온 말이다.

역암가(易菴歌)

 


역암노인이 나에게 노래하길 요구하나 / 易菴老人求我歌
노래가 쉽지 않으니 내가 어찌하리오 / 歌不易兮奈吾何
일년을 읊으면 높은 하늘을 쳐다볼 뿐 / 一年吟仰見靑天高
벌여있는 별들은 두 손으로 만질 수 없듯 / 星斗歷歷不可雙手摩
이년을 읊으면 깊은 동해를 굽어볼 제 / 二年吟俯見東海深
정위
의 그림자 밑은 물결이 끝없는 듯 / 精衛影底無窮波
삼년을 읊으면 성인의 도가 밖이 없이 커서 / 三年吟聖人之道大無外
이전의 소견은 문득 벌집이나 소용돌이 같아 / 向來所見却是蜂房與水渦
크게 놀라며 손쓸 곳을 모르게 되고 / 瞠乎莫知下手處
번민에다 힘도 다하여 실패를 느끼리라 / 心煩力竭其蹉跎
소리 감추고 숨죽여 또 수년을 지내면 / 收聲屛氣又數載
어느 날 갑자기 날랜 말이 평지를 달리듯 / 一旦快馬馳平坡
황홀하게 얻음이 있는 것 같아서 / 怳然若有得
가지고 놀며 스스로 만족해지리 / 把玩以自多
마음은 사방 한 치에 불과하지만 / 靈臺方寸耳
천지 만물이 소연히 나열되어 있으니 / 天地萬物昭森羅
이를 높이면 나를 상제에 짝 지을 수 있고 / 尊之使我配上帝
이를 설만히 하면 나를 나귀와 같게도 만들리 / 褻之使我同驢騾
분명 오만 변화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서 / 分明萬化所根底
한 가지로 주재함이 있고 치우침이 없어 / 一有主宰無偏頗
강하가 쏟아져 내리듯 응용이 무궁하고 / 應用不竭如懸河
정신이 화창하여 늙는 줄도 모르나니 / 精神調暢不知老
그래서 억지로 안락와라 이름하였다네 / 强而名之安樂窩
아 하늘의 도는 참으로 주역일 뿐이니 / 嗚呼乾道易而已
노인이 이에 처함은 다른 뜻이 없으리 / 老人以居知無他
응당 불쌍히 여기리 목은은 안목이 좁아 / 應憐牧隱眼孔小
등불에 날아드는 불나방과 같이 / 撲撲有似投燈蛾
노년에 입이 마르도록 중화를 논하는 걸 / 長年燥吻論中和

 

[주C-001]역암가(易菴歌) : 역암은 고려 말기의 문신 성사달(成士達)의 호이다. 그는 벼슬이 대제학(大提學)에 이르고 창산부원군(昌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주D-001]정위(精衛) :
새 이름으로, 염제(炎帝)의 딸 소왜(小娃)가 동해(東海)에서 놀다가 빠져 죽어서 그 넋이 이 새가 되었는데, 그 때문에 이 새는 항상 서산(西山)의 목석(木石)을 물어다가 동해를 메운다고 한다.
[주D-002]안락와(安樂窩) :
북송(北宋)의 역학자(易學者) 소옹(邵雍)이 몸소 농사를 지어 생활하면서 자기가 거처하는 집을 스스로 안락와라 이름했었다.

박 밀직(朴密直)의 부인에 대한 만사(挽詞) 3(三首) ○ 박 밀직의 이름은 형()이다.

 


소년 시절 시골서 기꺼이 서로 왕래하여 / 少年里巷喜過從
산 남쪽 산 북쪽 길을 안 간 데가 없었네 / 山北山南路欲窮
밤 술을 마실 땐 향 연기 다함도 몰랐고 / 夜飮不知香篆盡
달 밝은 가운데 규문은 적적키만 했었지 / 閨門寂寂月明中

평소에 서로 헤어짐은 귀양길뿐이었고 / 平日分離只謫行
늙도록 서로 부지함은 바로 진정이었네 / 相扶到老是眞情
돌아와선 세월이 이제 얼마 안 되었는데 / 歸來歲月今無幾
가을바람 낙엽 소리를 차마 듣는단 말가 / 忍聽秋風落葉聲

푸른 하늘에 뜬 달은 어느 때나 올런고 / 月在靑天來幾時
풍로 속의 항아를 아득하여 못 따르겠네 / 姮娥風露杳難追
가엾어라 종적은 찾을 곳이 없고 / 應憐蹤跡尋無處
계수나무 가지만 인간에 남긴
/ 留得人間桂一枝

 

[주D-001]계수나무 …… : 망인(亡人)의 아들이 앞서 과거 급제(科擧及第)한 것을 가리킨다.

판서 전경선(全敬先)에 대한 만사

 


내가 병이 많은 지 오래이거니 / 久矣吾多病
누가 한 번이나 다정히 찾아 주랴 / 惠然誰一來
금란의 교의를 재차 꾀하려는데 / 金蘭將再講
옥수가 갑자기 먼저 꺾이는구나 / 玉樹忽先摧
구름 엷으니 가을 경치는 맑고 / 雲薄秋容淡
산이 멀어서 새벽빛은 환하구려 / 山遙曉色開
끝내 이렇게 서로 헤어지다니 / 分離竟如此
천지가 또한 아득하기만 하여라 / 天地亦悠哉

 

정당(安政堂)의 운을 차하여 산으로 돌아가는 안 밀직(安密直)을 받들어 보내다. 안 밀직의 이름은 집()이다.

 


노년의 전원생활은 그윽한 정취 익숙하고 / 老年田舍幽情熟
당일의 반열에선 물망이 한 몸에 돌아갔네 / 當日班行物望歸
일찍이 알건대 상국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 上國早知通桂籍
늦게 홀로 고당 앞에 내의 입고 춤추었지 / 高堂
獨舞萊衣

죽계의 달은 바로 마당 가운데 달이요 / 竹溪月是庭中月
화악산 구름은 지붕 위의 구름과 연했도다 / 華嶽雲連屋上雲
공은 진정 세상을 얕본다고 다 말하거니와 / 共說我公眞傲世
자제들은 모두 글을 잘한다고 내 들었네 / 似聞稚子摠能文

시내 머리 오솔길엔 중이 자주 지나가고 / 溪頭野徑僧頻過
소나무 꼭대기 둥지엔 학이 홀로 오누나 / 松頂雲巢鶴獨歸
이곳은 망천의 좋은 풍경과 꼭 비슷한데 / 恰似輞川風景好
누가 이 그림 알아서 속세를 벗어나는고 / 何人解畫拂塵衣

신심을 마치 갈라진 동굴처럼 간파했어라 / 識破身心如

예로부터 부귀란 바로 뜬구름 같았었네 / 由來富貴是浮雲
붉은 절벽은 거듭 때묻힘을 성내지 마오 / 丹崖愼勿嗔重滓
누가 산정을 향해 다시 글을 새기겠나 / 誰向山庭更勒文


또 두 수를 지어서 스스로 탄식하다.

짧은 머리는 점차 저녁 눈발을 알겠거니와 / 短髮漸知飄暮雪
새로운 시는 공연히 성한 봄 구름에 비기네 / 新詩漫擬靄春雲
평생에 자신하는 건 별다른 소망은 없으나 / 平生自信無他望
남은 힘이 아직 고문을 배울 수 있음이라오 / 餘力猶能學古文

곡학으로 감히 군자의 책임을 회피하고 / 曲學敢辭君子責
맹종으로 소인과 함께하길 달게 여기랴 / 詭隨甘與小人歸
삼훈 삼욕
을 그 누가 서로서로 인도하여 / 三熏三浴誰相引
가을 난초 몸에 차고 마름잎 옷을 지을꼬 /
佩却秋蘭製芰衣

 

[주C-001] 정당(安政堂) :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안보(安輔)를 가리킨다.
[주D-001]내의(萊衣) :
옛날 초()나라의 효자였던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70에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알록달록한 오채의(五彩衣)를 입고 부모 앞에서 춤을 추며 어린애처럼 재롱을 피웠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망천(輞川) :
()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별장(別莊)이 있던 곳인데, 왕유가 일찍이 그곳의 승경(勝景)을 그린 것이 바로 망천도(輞川圖)이다.
[주D-003]붉은 …… 새기겠나 :
남 제(南齊)의 주옹(周顒)이 처음에는 북산(北山)에 은거했다가 뒤에 조정의 부름을 받고 벼슬길에 나갔으므로, 일찍이 그와 함께 북산에 은거했던 공치규(孔稚圭)는 주옹이 변절했다 하여 북산의 신령(神靈)을 가탁해서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주옹이 두 번 다시 북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는데, 바로 그 〈북산이문〉에, “종산의 영령과 초당의 신령이 역로에 연기를 달리게 하여 산정에 이문을 새기게 하였다.……푸른 산봉우리로 하여금 재차 모욕을 받게 하고, 붉은 절벽으로 하여금 때를 거듭 입게 한다.[鍾山之英草堂之靈 馳煙驛路 勒移山庭……碧嶺再辱 丹崖重滓]”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저녁 눈발 :
머 리가 희어짐을 뜻한다.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에, “그대는 못 보았나 고당의 밝은 거울 대하여 백발을 슬퍼하는 걸, 아침엔 푸른 실 같던 게 저녁엔 눈발 이루었네.[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如雪]”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삼훈 삼욕(三薰三浴) :
세 번 목욕하고 세 번 향을 사른다는 뜻으로, 몸을 매우 청결하게 함을 의미한다.
[주D-006]가을 난초 …… 지을꼬 :
난초와 마름풀은 모두 은자(隱者)가 몸에 지니는 것이므로, 전하여 은거(隱居)하는 것을 의미한다.

느낌이 있어 읊다.

 


이사는 순황에게서 배웠으니 /
李斯出荀況
어찌 유아한 선비가 아니리요 / 豈非儒雅士
진나라 도와서 임금 드러냈으니 / 相秦顯其君
도가 진실로 여기에 있었건만 / 道固在於此
끝내 분서갱유의 계획을 낸 건 / 竟起焚坑謀
고담으로 인한 폐단일 뿐이로다 / 高談之弊耳
그 마음이 금수가 아니거늘 / 其心非禽獸
기호를 달리한 게 어찌 본뜻이랴 / 異好豈本志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는 자리에선 / 侁侁函丈間
입술을 함부로 놀리지 말아야지 / 搖脣勿容易
한 글자의 가르침을 잘못한 것이 / 一字訓之非
그 앙화가 분명 역사에 드러났네 / 流禍明在史

 

[주D-001]이사(李斯) 순황에게서 배웠으니 : 순황(荀況)은 전국 시대 조()나라의 유학자였고, 이사는 그를 사사(師事)하여 배운 사람인데, 이사는 뒤에 진 시황(秦始皇)의 승상(丞相)이 되어 진 시황을 도와서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하게 했다.

서해(西海) 안렴(按廉) 최자(崔資)를 보내다.

 


안렴어사 위엄이 한창 늠름하여 / 繡斧威方凜
감당
아래서 분분한 송사 판결하네 / 甘棠訟解紛
어진 바람은 백성들에게 불 거고 / 仁風吹赤子
남긴 자애는 예전 엄군을 말하리 / 遺愛說嚴君
송정엔 붉은 단풍 숲이 연하였고 / 松井連紅樹
양촌엔 흰 구름이 멀리 막히었네 / 楊村隔白雲
아마도 바다 도적을 소탕했다고 / 似聞淸海寇
운운하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되리 / 報喜定云云

 

[주D-001]감당(甘棠) : ()나라 소공(召公)의 선정(善政)에 감격한 백성들이 그가 일찍이 쉬어갔던 감당나무를 매우 소중히 여겼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훌륭한 지방관(地方官)을 의미한다.

상천암(霜泉菴)에 제하다.

 


내 옛날 산중의 승려처럼 생활할 적에 / 自分山中衲子嘗
달기는 꿀과 같고 차기는 서리 같았지 / 甘如崖蜜冷如霜
깊은 밤에 오열함은 뜻이 없지 않아라 / 夜深嗚咽非無意
정히 인간에서 물을 끓여대기 때문일세 / 政是人間沸火湯

 

김사정(金思亭)의 부인 이씨(李氏)에 대한 만사

 


죽헌엔 이제 거문고 소리 끊어졌고 /
竹軒今絶響
김해는 예전부터 명성이 전해 왔네 / 金海舊流芳
돌이켜 생각하니 정은 끝이 없어라 / 回首情無極
외로운 사정엔 석양만 걸려 있구려 / 思亭掛夕陽

 

[주C-001]김사정(金思亭) : 사정은 고려 말기의 문신 김희조(金希祖)의 호이다.
[주D-001]죽헌(竹軒)엔 …… 끊어졌고 :
죽헌은 충목왕(忠穆王) 때 벼슬이 좌정승(左政丞)에 이른 김륜(金倫)의 호인데, 그는 곧 김희조(金希祖)의 부친으로서 죽은 지 이미 오래이므로 한 말이다.

암혈에 은거하다.

 


도인은 지금 배움을 끊어 버리고 /
道人今絶學
띳집에서 청산 마주하여 사노니 / 茅屋對靑山
나뭇잎은 주워 새벽 땔감 만들고 / 拾葉晨供爨
책은 보아 낮의 한가함 물리치네 / 看經晝破閑
마음은 만 겁의 밖에 노닐고 / 心游萬劫外
몸은 한 창 사이에 늙노라니 / 身老一窓間
구름 위의 학은 다정도 해라 / 雲鶴多情思
때때로 함께 오고가고 하누나 / 時時共往還

 

[주D-001]도인(道人)은 …… 끊어 버리고 : 당나라 고승(高僧) 현각(玄覺)의 〈증도가(證道歌)〉에, “배움 끊고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제거할 것 없고 참도 구할 것 없다네.[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한 데서 온 말이다.

사방을 유람하다.

 


손 안에는 한 가지의 지팡이요 / 手中一枝竹
다리 밑에는 구주의 산이로다 / 脚底九州山
흐르는 물과는 정이 서로 부합하고 / 流水情相得
뜬구름 그림자와는 한가히 마주하네 / 浮雲影對閑
원숭이는 적적한 산속에서 울고 / 猿吟岑寂裏
송골매는 아득한 허공을 건너누나 / 隼度渺冥間
또 묻노니 내 일찍이 방문했던 빚을 / 且問草鞋債
훗날 갚을 건가 안 갚을 건가 / 他年還不還

이상의 두 수는 목암(木菴)을 위하여 지은 것이다.

 

팔선궁(八仙宮)을 참배하다.

 


돌길을 빙빙 돌아 산꼭대기에 오르니 / 石路縈回到上頭
팔선의 궁관이 신주를 굽어보고 있네 / 八仙宮觀俯神州
한 번 온 것은 처자의 원을 들어준 건데 / 一來只塞妻孥願
두 번 절하니 사직의 걱정을 일으키누나 / 再拜翻興社稷憂
꼭대기 운연 속엔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 絶頂雲煙初日曙
낙락장송 비바람은 반공중이 가을일세 / 長松風雨半空秋
하인들 수고시켜 견여 편히 타고 와서 / 僕夫流汗肩輿穩
음복하여 거나하니 흥을 주체 못 하겠네 / 飮福微酣興未收

 

[주C-001]팔선궁(八仙宮) :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송악산(松岳山)을 일러 팔진선(八眞仙)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여기에 팔선을 제사하던 궁관(宮觀)이 있었던 듯한데, 팔선의 명호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옛일을 기억하여 짓다.

 


성남에 가까이 붙어 있어 낙은 유여하나 / 僻近城南樂有餘
친구가 왕림하기 어려운 게 불만이로세 / 祇嫌難枉故人車
아득한 삼산은 내가 일찍이 놀던 곳이요 / 三山渺渺曾遊處
버들 홀로 우뚝 선 데는 아상의 집이라네 / 孤柳依依亞相廬
개구쟁이 어린 애들은 근골이 튼튼한데 / 稚子最狂筋骨緊
병 많은 늙은 아내는 치아가 듬성하네 / 老妻多病齒牙疎
험한 길 걷는 일을 끝내 무어 걱정하랴 / 欹傾步履終何患
짙은 녹음 아래 누워 글 읽기만 좋은 걸 / 滿地濃陰臥讀書

몸뚱이는 당당히 구척 남짓이나 되는데 / 軀幹堂堂九尺餘
높은 수레에 사마 채워 나란히 달리어라 / 齊驅駟馬駕高車
담장 낮으니 남의 집은 엿보지 말려니와 / 墻低莫瞰他人室
길이 멀어도 친구의 집은 꼭 들러야지 / 道枉須過舊友廬
심학은 다시 근심 속에서 원숙해지고 / 心學更從憂裏熟
세속 인연은 도리어 병중에 멀어지누나 / 世緣還向病中疎
남아의 사업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 / 男兒事業都消盡
백발토록 아버지의 글만 읽고 있다니 / 白首徒能讀父書

 

[주D-001]아버지의 …… : 전 국 시대 조()나라의 명신(名臣) 인상여(藺相如)가 명장 조사(趙奢)의 아들 조괄(趙括)을 일러, “조괄은 한갓 자기 아버지의 글만 읽었을 뿐, 임기응변할 줄을 모른다.”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글만 읽었지 진취(進取)나 변통할 줄 모르는 고루한 사람을 가리킨다.

즉사(卽事)

 


세월은 참으로 나그네 같거니와 / 光陰眞過客
인의는 곧 항상 유행하는 거로다 / 仁義是恒流
쓰임은 삼동의 문사가 넉넉하고 /
用足三冬史
시는 만호후를 가벼이 여기었네 /
詩輕萬戶侯
여금은 중한 현상으로 걸리었고 /
呂金懸重購
우벽은 궁한 시름을 비추었었지 /
虞璧照窮愁
나에겐 안빈낙도의 즐거움 있어 / 只有簞瓢樂
구구하게 늙도록 마지않는다네 / 區區老不休

 

[주D-001]쓰임은 …… 넉넉하고 : 한 무제(漢武帝) 때 동방삭(東方朔)이 무제에게 올린 글에, “() ()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형수의 양육을 받았는데, 나이 12세 때에 겨울 석달[三冬] 동안 글을 배웠는바, 문사(文史)가 쓰이기에 넉넉합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126 滑稽列傳》
[주D-002]시(詩)는 …… 여기었네 :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장호(張祜)에게 부친 시에, “어느 누가 장 공자와 같을 수 있으랴. 천 수의 시로 만호후를 가벼이 보누나.[誰人得似張公子 千首詩輕萬戶侯]”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여금(呂金)은 …… 걸리었고 :
()나라 승상 여불위(呂不韋)가 일찍이 《여씨춘추(呂氏春秋)》를 저술하여 함양(咸陽)의 시문(市門)에 펼쳐 놓고 그 위에는 천금(千金)을 현상(懸賞)으로 걸고서, 모든 유사 빈객(游士賓客)들 중에 그 글에서 한 글자만 가감하는 자가 있으면 천금을 주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85 呂不韋列傳》
[주D-004]우벽(虞璧)은 …… 비추었었지 :
전 국 시대 유세사(游說士)였던 우경(虞卿)이 매우 곤궁한 선비로서 맨 처음 조 효성왕(趙孝成王)을 설득했는데, 첫 번째 만났을 적에 대번에 황금(黃金) 100()과 백벽(白璧) 1()을 하사받았고, 두 번째 만나 보고 나서는 바로 상경(上卿)에 올랐으나, 뒤에 친구인 위제(魏齊)와의 관계로 인하여 조()나라를 떠나 양()나라에 가 있으면서 곤궁한 시름을 견디다 못해 마침내 《우씨춘추(虞氏春秋)》를 저술하기에 이르렀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76 虞卿列傳》

정 사년 10 20일 석양에 강자야(康子野)가 찾아왔는데, 그를 만류하여 함께 자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날 밤에 비바람이 크게 몰아치므로 등불을 켜 놓고 이것을 쓰는 바이니, 의당 그의 동년(同年) 박자허(朴子虛)ㆍ이자안(李子安)과 함께 지으리라.

 


나는 이미 노쇠하기 그지없는데 / 衰遲吾已甚
자네는 여전히 원기가 왕성하네 / 矍爍子如前
좋은 시구는 세상이 다 외는데 / 佳句世皆誦
묵은 병은 누가 불쌍히 여길꼬 /
誰復憐
촛불 아래 담화는 처량키만 하고 /
凄涼剪燭話
침상 나란히 함도 적막키만 해라 /
寂寞對牀眠
아마도 잠 못 이루는 나는 / 想得鷄鳴客
오늘 밤에 정히 망연자실하겠네 / 今宵定惘然

 

[주D-001]촛불 …… 하고 : 비 오는 밤에 친구와 서로 담화를 나누지 못함을 뜻한다.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시에, “어찌하면 함께 서쪽 창의 촛불 심지 자르면서, 파산의 밤비 내리던 때를 얘기해 볼꼬.[何當共剪西窓燭 卻話巴山夜雨時]”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침상 …… 해라 :
역 시 비바람 몰아치는 밤에 친구와 둘이 만나서 즐겁게 노닐고 침상을 서로 마주하여 자지 못함을 뜻한다.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와서 나와 함께 자지 않으려는가. 빗소리 들으며 침상 마주해 자자꾸나.[能來同宿否 聽雨對牀眠]” 한 데서 온 말이다.

보제(普濟)의 영정(影幀)을 마주하여 읊다.

 


스님이 나보다 적은 건 처자의 거리낌이요 / 師少我妻子枷瑣
내가 스님보다 적은 건 금란의 가사이거니 / 我少師金襴袈裟
득과 실이 서로 조화되는 곳을 알고자 할진댄 / 欲識乘除同調處
봄바람에 제비 춤추고 꾀꼬리 노래함일세 / 春風燕舞與鶯歌

 

()을 나와서 서로 교지(敎旨)에 응하여 찬진(撰進)하다.

 


불계
는 처음 증가하는 날이요 / 佛界初增日
마천
은 찢어지려 하는 때로다 / 魔天欲裂時
봄바람이 발걸음마다 일어나니 / 春風隨步起
만물이 이미 먼저 알았도다 / 萬物已先知

 

[주D-001]불계(佛界) : 제불(諸佛)의 세계(世界), 즉 부처의 경지를 가리킨다.
[주D-002]마천(魔天) :
불교에서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라 일컫는 욕계(欲界)의 맨 위에 있다는 악마의 천신(天神)을 가리킨다.

()나라의 교제(郊祭)를 생각하다.

 


초봄의 좋은 날을 맞이하여 / 上春回吉日
잔설로 제단을 깨끗이 닦아라 / 殘雪
嘉壇
예절은 중하여 천고에 으뜸이요 / 禮重傾千古
마음은 같아서 백관이 운집하네 / 心同集百官
하사한 향은 대궐에서 나오고 / 御香來紫闥
법복은 현관을 압도하도다 / 法服壓玄冠
친히 제사하면 응당 다복하리니 / 與祭應多福
상제의 흠향을 영원히 보게 되리 / 居歆信永觀

 

학문이 도저(到底)하지 못함을 상심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서 반성하여 시 두 수를 읊어 스스로 힘쓰다.

 


인심과 도심은 / 人心與道心
다만 동처로 좇아 찾아야 하리 / 只從動處求
본성이 발한 것은 바로 본원이요 / 性發乃本源
욕심이 생김은 지파의 흐름이라 / 欲生卽派流
분명히 물은 하나뿐인 것인데 / 分明只一水
내가 지금 또 무엇을 걱정하랴 / 吾今復何憂
호연지기를 잘 양성하면은 / 養成浩然氣
천지도 더 주도할 수 없나니 / 天地莫能周
맥락을 세밀히 관찰하여 / 脈絡却細密
어긋남이 없도록 삼갈지어다 / 愼旃無謬悠

문장은 폐부에서 나오는 것이니 / 文章出肺腑
거짓은 자신을 속인 것일 뿐이네 / 矯詐徒自欺
공문의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 / 孔門諸子中
자공은 말이 많다 일컬었거니와 /
賜也稱多辭
종일토록 어리석은 듯했던 이는 / 終日如愚者
어찌하여 사생활을 살폈던고 / 胡爲竟省私

봄바람의 화기가 넘치는 가운데 / 春風和氣中
초목이 때를 얻어 무성한 듯해라 / 發榮得其時
증씨는 비록 노둔하기는 하나 /
雖然曾氏魯
천재에 내 스승으로 삼는 바이니 / 千載我所師
마음을 안정하여 조급함이 없이 / 安心且無躁
충서 하나로써 만사를 관통했네 /
忠恕一貫之

 

[주D-001]자공(子貢)은 …… 일컬었거니와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는 불행히도 말을 하면 적중하므로, 이것이 사로 하여금 말을 많이 하게 만든 것이다.[賜不幸言而中 是使賜多言也]”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 定公15年》
[주D-002]종일토록 …… 살폈던고 :
공 자가 이르기를, “내가 회()와 종일토록 말을 해보면 회가 질문하지 않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듯했는데, 회가 물러간 뒤에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매, 역시 내가 말한 것들을 다 충분히 발명하고 있었으니, 회는 어리석지 않도다.[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回也不愚]”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주D-003]증씨(曾氏)는 …… 하나 :
증씨는 곧 증삼(曾參)을 가리키는데, 공자가 이르기를, “삼은 노둔하다.[參也魯]”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주D-004]충서(忠恕) …… 관통했네 :
공 자가 이르기를, “삼아, 우리의 도는 하나로써 관통하느니라.[參乎 吾道一以貫之]” 하니, 증자(曾子)하고 대답했는데, 공자가 밖으로 나간 뒤에 다른 문인(門人)이 증자에게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증자가 이르기를, “부자의 도는 충서일뿐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里人》

연도(燕都)를 생각하다.

 


연도를 회상하니 다시 아득하기만 해라 / 回首燕都更渺茫
황금대
위에는 또 지는 해가 비치겠지 / 黃金臺上又斜陽
교문 안의 오백 인 청금 입은 유생들은 / 橋門五百靑衿子
누가 중흥송 지어 대당에 비유할꼬 /
誰頌中興比大唐

서리보다 더 하얀 산의 돌을 캐어다가 / 斲來山石白於霜
이를 잘라 해자 곁에 새 다리를 만들고 / 截作新橋海子傍
임금님 인도하여 태액지로 달려갈 제 / 引得龍鱗趨太液
상아 돛대 비단 닻줄이 미인을 비추었네 / 牙檣錦纜照紅粧

 

[주D-001]황금대(黃金臺) : 연 소왕(燕昭王)이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역수(易水) 동남쪽에 건립했던 대() 이름이다.
[주D-002] 누가 …… 비유할꼬 :
당나라 때 원결(元結)이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을 지었으므로 한 말이다.

즉사(卽事)

 


세월은 바삐 가고 물은 동으로 흐르는데 / 年光袞袞水東流
세도와 인정은 둘 다 서로 어긋나누나 / 世道人情兩謬悠
좋은 시구는 매양 삼상에서 얻어 내고 / 好句每於三上得
현묘한 이치는 시험 삼아 일중에서 찾노라 / 玄機試向一中求
분향하고 주역 읽을 땐 한가히 증험하고 / 焚香讀易閑相驗
풍월을 읊조림은 늙어도 마지않는다네 / 弄月吟風老不休
속수와 고정의 서법이 각각 따로 있으니 /
涑水考亭書法在
과연 하늘의 뜻엔 어느 쪽이 우세할런고 / 未知天意定誰優

 

[주D-001]삼상(三上) : 마상(馬上), 침상(枕上), 측상(廁上)을 합칭한 말이다. ()나라 구양수(歐陽脩)의 《귀전록(歸田錄)》에 이르기를, “내가 평생에 지은 문장이 대부분 삼상에서 나왔으니, 그것은 곧 마상과 침상과 측상이다.” 하였다.
[주D-002]일중(一中) :
() 임금이 우() 임금에게 이르기를,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미세하니, 오직 정밀하고 전일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심학(心學)을 가리킨다.
[주D-003]속수(涑水)와 …… 있으니 :
속 수는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의 별호이고, 고정(考亭)은 주희(朱熹)의 별호이다. 사마광은 일찍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하면서 위기(魏紀)를 두어 바로 한실(漢室)을 찬탈한 조조(曹操)를 정통으로 인정했었는데, 그 후 주희는 그것을 부정하고 다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편차하면서 위기를 빼 버린 일을 가지고 한 말이다.

하표(賀表)를 올리러 가는 부친을 수행하는 왕강(王康)을 보내다.

 


왕랑은 젊어서 청수하였고 / 王郞少淸瘦
성균시에 일찍 합격했는데 / 泮水早題名
본 지 오래라 수염이 거뭇거뭇하니 / 久闊疎髥出
서로 보매 병든 눈이 놀라웁구나 / 相看病眼驚
어버이 수행해 자식 직분 다하고 / 隨親供子職
표문 올려서 왕의 정월 하례하네 / 奉表賀王正
좋은 시절 새봄에 귀국하거든 / 歸及新春好
집집마다 기쁜 정이 넘치리라 / 家家溢喜情

 

기심(機心)을 없애다.

 


터럭같이 자잘한 지난 일들이 / 往事細如毛
명백히도 꿈이면 기억이 나네 / 明明夢中記
창을 가지고 유생을 쫓았다
/ 操戈欲逐儒
이 말은 자못 이치가 있거니와 / 此言殊有理
옮기고 아내를 잊은
/ 徙室或忘妻
우연히 그런 것만은 아니었으리 / 非徒偶語爾
지금 수년을 병석에 있다 보니 / 一病今幾年
기심 없애는 게 약보다 낫고말고 / 息機勝藥餌

 

[주D-001]창을 …… 쫓았다 : 고 대(古代) ()나라의 양리화자(陽里華子)란 사람이 중년에 건망증이 아주 심하여 인사불성의 지경에 이르렀다. 온 가족이 그를 걱정하여 여러 방법으로 치유하려 하였으나 되지 않았는데, ()나라의 한 유생(儒生)이 그의 병을 고쳐 주겠다고 자청하여 신기한 비방(祕方)으로 하루아침에 고쳐 주었다. 그런데 그가 깨어나서는 크게 노하여 아내를 내쫓고 자식을 벌주고, 마침내 창을 가지고 그 유생을 내쫓으므로,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건망증이 있던 지난날에는 까마득한 천지(天地)가 있고 없는 것조차도 몰랐었는데, 이제 갑자기 깨어본 결과, 이미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존망 득실(存亡得失)과 애락 호오(哀樂好惡) 등 천서 만단(千緖萬端)의 기억들이 복잡하게 떠오르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존망 득실과 애락 호오가 내 마음을 이토록 산란하게 할 것이 염려된다.”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列子 周穆王》
[주D-002]집 …… :
노 애공(魯哀公)이 공자에게 묻기를, “내가 들으니,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 집을 이사하면서 자기 아내 데려가는 것을 잊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이는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아닙니다. 참으로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 자기 몸도 잊어버리는 법입니다.”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說苑 敬愼》

동년가(同年歌)

 


장원급제 우공은 빙옥같이 청수했는데 / 狀元牛公氷玉淸
태학에서 한 번 봤고 시의 명성 있었네 / 璧水半面詩有聲
자백은 그때 이미 머리털이 다 희었고 / 子白白髮已無餘
강서에서 문장으로 명성이 으뜸이었네 / 江西文章獨擅譽
마랑은 큰 키에 기백이 꽤나 호탕하여 / 馬郞長身氣頗豪
취하면 소나무 누르고 하늘에 치올랐고 / 醉掃松樹干靑霄
순동은 작은 키에 가장 날래고 굳세어 / 順童短小最精悍
대부 기강 떨치려고 모난 행동 보였었지 / 欲振臺綱立崖岸
그 당시에 자리를 함께했던 팔 구인은 / 當時座上八九人
풍채가 뛰어나고 문사 또한 청신했었고 / 風采俊逸詞淸新
문종 방걸은 중흥의 장수가 되어 / 文鍾邦傑中興將
사업이 오계 위의 절벽에 기록되었네 /
事業直跨
溪上
여태껏 그들 생몰을 아득히 알 수 없어 / 邇來存歿杳難知
때때로 누워서 제명비만 읽을 뿐이로다 / 時時臥讀題名碑
가련해라 늙은 목은은 이미 쇠했는데 / 可憐老牧今已衰
천지가 뒤바뀌었으니 어찌 그리 슬픈고 / 陵谷易處何其悲
돌아보매 우리들은 모기에 불과하거늘 / 回看我輩飛蚊耳
끝내 하남에서 무슨 일을 이룬단 말가 / 畢竟河南成底事
눈물이 다하도록 울어 동해를 불리어서 / 眼枯欲漲東溟水
육룡
이 동해에서 나오게 하고 싶구나 / 六龍飛出扶桑

 

[주D-001]사업이 …… 기록되었네 : 당나라 원결(元結)이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을 지어서 숙종(肅宗)의 공덕(功德)을 가송(歌頌)하여 이것을 오계() 곁의 절벽 위에 새겼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훈적비(勳績碑)가 세워진 것을 의미한다.
[주D-002]육룡(六龍) :
천자(天子)의 수레를 끄는 육마(六馬)의 미칭(美稱)인데, 전하여 천자를 의미한다.

시원(試院)에서의 일을 추억하여 기록하다.

 


백포 입고 깊은 과거장에 단정히 섰다가 / 白袍鵠立棘圍深
예 파하자 글제 갖고 하나하나 읊조리고 / 禮罷將題字字吟
거적 집에서 광록의 술 조용히 마시고는 / 席屋細斟光祿酒
흥이 나서 십 년 묵은 마음 다 쏟았었네 / 興來傾寫十年心

천일은 광채 드리우고 옥서는 그윽할 제 / 天日垂光玉署深
우러러 글제 보고 구부려 조용히 읊었네 / 仰承題目俯微吟
마감 소리 크게 울리자 종편을 다 바치고 / 一聲雷動終篇獻
대궐에서 독대하던 그 마음을 누가 알랴 / 誰識丹墀獨對心

 

한림원(翰林院)에 취임한 일을 추억하여 기록하다.

 


깊은 밤 맑은 이슬에 조복은 축축하고 / 夜闌淸露濕朝衣
조용한 대궐에는 더운 기운 감도는데 / 禁宇沈沈暑氣微
향이 다 타기 전에 대궐 향해 사은하고 / 向闕謝恩香未盡
파리한 말 홀로 타고 달밤에 돌아왔네 / 獨騎瘦馬月中歸

 

신년(新年) 하례차 표문(表文)을 올리러 가는 이몽달(李蒙達)을 보내다.

 


강건한 국운은 돌리기 어렵거니와 / 鼎重山難轉
위태한 시기는 형세 절로 나뉘었네 / 時危勢自分
눈물은 흘러 동해의 물을 보태고 / 淚添東海水
꿈은 늘 북정의 구름을 감돈다오 / 夢繞北庭雲
노마는 항상 주인을 생각하는데 / 老馬常思主
애홍
은 오래전에 무리를 잃었네 / 哀鴻久失群
조정의 소식 끊겨 들을 수 없으니 / 朝廷音問絶
나를 위해 제군에게 사죄하게나 / 爲我謝諸君

 

[주D-001]애홍(哀鴻) : 《시경》 소아(小雅) 홍안(鴻鴈), “기러기가 날아가며, 기럭기럭 슬피도 우네.[鴻鴈于飛 哀鳴嗷嗷]”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살 곳을 잃고 사방으로 유랑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다.

일이 있어 은영연(恩榮宴)에 나가지 못한 일을 추억하여 기록하다.

 


속수는 중원에서 예의 있는 가문이지만 / 涑水中原禮義家
임금 은혜에 감격해 하나를 꽂았는데 / 感恩簪得一枝花

소신은 머리 위에 아무것도 꽂은 것 없이 / 小臣頭上渾無物
석양까지 앉아서 경림연을 상상하노라 / 坐想瓊林到日斜

 

[주D-001]속수(涑水)는 …… 꽂았는데 : 속 수는 송()나라의 명상(名相) 사마광(司馬光)의 고향으로, 전하여 사마광을 가리킨다. 사마광은 성품이 본디 화려한 것을 싫어하고 검소함을 좋아했는데, 그가 나이 20세로 과거(科擧)에 급제하여 은영연(恩榮宴)을 내렸을 때도 유독 그만 머리에 어사화(御賜花)를 꽂지 않으므로, 그의 동년(同年)이 말하기를, “임금이 내린 것이니, 꽂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하자, 그제야 꽃 하나를 머리에 꽂았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세상 피하긴 그림자를 숨기듯하고 / 避世如逃影
희로애락 잊긴 숙취를 풀 듯하노니 / 忘情似解酲
병든 몸은 항상 약물을 연연하나 / 病軀關藥物
시골 정취는 늘 산 정자에 있다네 / 野意在山亭
가랑비는 중 곁에 하얗게 내리고 / 小雨僧邊白
먼 산봉우리는 새 밖에 푸르러 / 遙岑鳥外靑
다만 지금은 이 맑은 흥취의 맛을 / 祇今淸興味
읊고자 하나 형용하기가 어렵구려 / 欲詠却難形

 

즉사(卽事)

 


선광과 홍무
두 용이 함께 나는지라 / 宣光洪武二龍飛
외국의 외로운 신하는 두 줄기 눈물 뿌리네 / 外國孤臣雙淚揮
눈 깊은 변새 북쪽은 자주 조회하는데 / 塞北雪深朝覲數
하늘 너른 바다 남쪽은 왕래가 드물구나 / 海南天闊往來稀
푸른 산 이곳은 중들이 많이 점령하였고 / 靑山是處僧多占
명월 아랜 까치가 의지할 가지도 없어라 /
明月無枝鵲可依
병석에 누운 늙은이는 맘이 유독 괴로워 / 臥病老生心獨苦
모든 것을 역사에 맡겨버리고만 싶다오 / 願從靑史得羈縻

 

[주D-001]선광(宣光) 홍무(洪武) : 선광은 명 태조(明太祖) 때 북으로 쫓겨간 북원 소종(北元昭宗)의 연호이고, 홍무는 바로 명 태조의 연호이다.
[주D-002]명월(明月) …… 없어라 :
삼 국(三國) 시대 조조(曹操)의 시에, “달은 밝고 별은 드물 제, 까마귀 까치가 남쪽으로 날아서, 나무를 세 바퀴 돌아보지만, 의지할 가지가 없구나.[月明星稀 烏鵲南飛 繞樹三
無枝可依]”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정처 없이 유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읊다.

 


예로부터 하늘은 아득히 적막하기만 하나 / 從來頭上杳冥冥
은밀한 귓속말을 되레 세밀히 듣는다오 / 附耳微言却細聽
글귀가 문득 천재에 악명을 남겼어라 /
一句便流千載臭
사람에게 석양정을 거듭 생각하게 하누나 /
令人重憶夕陽亭

졸렬한 이룸은 원래 교묘한 데서 나오고 / 拙成元在巧之餘
너무 주밀함은 되레 가장 거칠게 된다네 / 太密由來却太疎
바닷가의 포어는 천하에 악취를 풍기고 / 海上鮑魚天下臭
봉함의 조서는 부소에게 보내졌구려 / 一封書去送扶蘇

 

[주D-001] 글귀가 …… 남겼어라 : 후 한(後漢) 때 청렴하고 강직하기로 명성이 높았던 학자(學者)이자 명신(名臣)인 양진(楊震), 일찍이 자기가 천거했던 창읍 영(昌邑令) 왕밀(王密)이 밤중에 금() 10근을 싸 가지고 와서 바치자, 말하기를, “나는 그대를 알아주었는데, 그대가 나를 몰라주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니, 왕밀이 말하기를, “저문 밤이라, 아무도 알 사람이 없습니다.[暮夜無知者]” 하자, 양진이 말하기를,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하여 알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天知神知我知子知 何謂無知]”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54 楊震列傳》
[주D-002]사람에게 …… 하누나 :
석 양정(夕陽亭)은 낙양현(洛陽縣) 서남쪽에 있는 정자 이름이다. 양진(楊震)이 태위(太尉)로 있을 때에 소인(小人)들의 불의(不義)를 엄격히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도리어 소인들의 참소를 입고 파면되어 본군(本郡)으로 돌아가던 도중 석양정에 이르러, 재상으로서 간신(姦臣)과 폐녀(嬖女)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무슨 면목으로 다시 일월(日月)을 볼 수 있겠느냐면서 음독자결(飮毒自決)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바닷가의 …… 보내졌구려 :
진 시황(秦始皇)이 만년에 출유(出游)하였다가 해상(海上)을 따라 평원진(平原津)에 이르러 병이 위독해지자, 공자(公子) 부소(扶蘇)에게 후사(後事)를 위임하는 조서(詔書)를 남기고 죽었다. 이때 진 시황을 수행했던 이사(李斯)와 조고(趙高)가 변()이 있을까 염려하여 임금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극비리에 숨겨서 함양(咸陽)으로 운구(運柩)하였는데, 시신(屍身)의 냄새를 감추기 위해 저린 어물[鮑魚] 한 섬을 수레에 함께 싣고 갔으며, 한편으로는 진 시황이 부소에게 내린 조서를 위조하여 보내서 마침내 부소와 장군(將軍) 몽염(蒙恬)을 함께 사사(賜死)하고, 함양에 돌아가서는 끝내 태자를 호해(胡亥)로 바꿔 세웠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정사년 겨울에 읊다.

 


강궁은 마디마다 점차 당기기 어려운 /
寸寸强弓不易彎
나이 오십이 되니 갈수록 고생만 되누나 / 行年半百轉辛酸
남창 아래 다스운 명주이불 덮고 앉아라 / 南窓坐擁紬衾煖
오늘 밤 추위는 어젯밤 추위보다 더하네 / 今夜寒於昨夜寒

 

[주D-001]강궁(弓)은 …… : 소식(蘇軾)의 시에, “백 년을 채우기 쉽지 않아라. 강궁을 마디마다 점차 당기는 격일세.[百年不易滿 寸寸彎强弓]” 한 데서 온 말이다.

옛일을 기억하여 짓다.

 


누런 나뭇잎 베어서 금전같이 만들면 / 剪來黃葉似金錢
아이 울음 그치는 데 가장 유력하거늘 / 止得兒啼最得權
아이 엄마가 교활하다 그 누가 말했나 / 誰道阿婆多狡獪
내 보기엔 이 꾀가 도리어 자연스럽네 / 吾觀此策却天然
성인의 정사는 모두 민심을 따르거니와 / 聖人立政皆因下
어린애는 무지하나 꼭 앞서는 게 있기에 / 稚子無知必有先
우뚝한 새로운 기상을 있었던 건 / 看取巖巖新氣像
당일에 삼천지교를 때문일세 / 只因當日解三遷


몸과 마음은 한 하늘 같이한다 말들 하나 / 盡說身心共一天
오늘은 판연히 서로 연계되지 않는구려 / 判然今日不相聯
등 다습고 배부름이 처음엔 유혹하더니 / 煖衣飽食初相誘
식은 불고기 남은 술잔이 또 가련하여라 / 冷炙殘杯又可憐
요순 시대 회상하며 혹 스스로 절규하지만 / 回首唐虞時自叫
공맹의 도를 추종한들 누구에게 전할쏜가 / 追蹤孔孟欲誰傳
다만 너무 좋아한 게 되레 병이 되었으니 / 只因嗜甚翻成病
등불 기름처럼 스스로 태우는 게 한스럽네 / 却恨蘭膏祇自煎

 

[주D-001]우뚝한 …… 때문일세 : 우 뚝한 기상이란 《근사록(近思錄)》 관성(觀聖), “공자는 천지와 같고, 안자는 온화한 바람 상서로운 구름과 같으며, 맹자는 태산에 바위가 중첩하듯 우뚝한 기상이다.[仲尼天地也 顔子和風慶雲也孟子泰山巖巖之氣象也]” 한 데서 온 말이고, 삼천지교는 곧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치기 위해 집을 세 번 옮긴 것을 말한다.

제 환공(齊桓公)

 


제후들을 규합하여 천하를 바로잡으니 / 九合諸侯到一匡
그 당시의 풍채는 의상이 성대했는데 / 當時風采盛衣裳
만년에 낭패한
은 관중 때문이 아니라 /
年狼狽非關仲
다만 교만한 마음이 재앙을 만든 거로세 / 祇是驕心作不祥

 

[주D-001]의상(衣裳) : 의상지회(衣裳之會)의 준말로, 춘추 시대 제 환공(齊桓公)이 천하의 제후(諸侯)들과 예()로써 평화의 회합(會合)을 가졌던 것을 이른 말이다. 《春秋穀梁傳 莊公27年》
[주D-002]만년에 낭패한 :
춘 추 시대 제 환공이 처음에는 관중(管仲)의 보필로 오패(五霸)의 으뜸이 되기까지 했었으나, 관중이 죽은 뒤에는 환관(宦官)인 수조(豎刁)와 역아(易牙) 등을 등용하여 정사를 게을리 했던 관계로, 그가 죽자 여러 공자(公子)들이 서로 권력을 쟁탈하는 지경에 이르러 마침내 패업(霸業)이 쇠해졌던 것을 이른 말이다.

관중(管仲)

 


관중은 재주가 높고 뜻 또한 충성스러워 / 仲也才奇志又忠
제나라 패업 이룬 공은 진정 아름다우나 / 贊成齊霸美哉功
구천에서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를 것은 / 九泉感愧應難措
성인의
이 자연의 조화 같기 때문이리 / 聖筆無心似化工

 

[주D-001]성인의 : 여 기서는 곧 공자가, “관중의 그릇은 작기도 해라.[管仲之器小哉]”라고 한 말을 가리키는데, 이는 곧 관중이 성현(聖賢)의 도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국량이 편협하고 규모가 협착하여 자기 임금을 왕도(王道)로 끌어올리지 못했음을 의미한 말이다. 《論語 八佾》

스스로 읊다.

 


걱정과 병이 서로 따른 지 이미 칠 년이라 / 憂病相仍已七年
남은 목숨 근근이 잇는 게 스스로 가련쿠나 / 自憐殘喘尙綿綿
종신토록 약쑥 구할
분명히 알기에 / 端知不蓄終身艾
맹자를 읽으면서 호연지기나 강구한다오 / 爲讀鄒書講浩然

 

[주D-001]종신토록 …… : 맹 자가 이르기를, “지금에 왕 노릇을 하려는 자는 마치 7년 묵은 병에 3년 묵은 쑥을 구하는 것같으니, 진실로 미리 저장해 두지 않으면 종신토록 얻지 못하리라.[猶七年之病求三年之艾也苟爲不畜 終身不得]”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上》

잡시(雜詩) 2(二首)

 


나의 길은 곧기가 화살 같아서 / 我道直如矢
군자가 종세토록 달려가노라면 / 君子終歲馳
만백성이 다 함께 보는 바요 / 萬民所共視
걸음걸이는 진실로 한가로우니 / 步履諒委蛇
험난한 구곡양장판과 달라서 / 不比九曲坂
수레 꺾이고 말이 울 일 없다네 / 車摧馬鳴悲
말이 슬피 울고 땀이 비 오듯 함을 / 鳴悲汗如雨
그대는 의당 길이 생각할지어다 / 君當永言思

나의 길은 또한 멀기도 해라 / 我道亦云遠
천 리요 또 만 리나 되건마는 / 千里又萬里
오랜 세월 문밖을 나가지 않고 / 長年不出門
문밖을 나가봤자 한 걸음이요 / 出門一步是
한 걸음 이상은 더 나가질 않고 / 一步更無餘
한 곳에 머물지 않을 뿐이라네 / 不止而已矣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 사람들은 / 乃何今之人
문득 멀리 노닐 뜻을 갖는고 / 却作遠游意
멀리 노닐 마음 갖기 어려워라 / 遠游難爲心
집안에 처자식이 있지 않은가 / 閨中有妻子

 

금주(衿州)의 산 아래를 지나며 추억하여 기록하다.

 


아득한 산속에 승방들은 많기도 해라 / 多少僧房縹渺中
고금의 서책 읽어 영웅들이 배출되었네 / 讀書今古出英雄
천지조화가 만물을 포용한다 말을 마소 / 莫言澒洞能容物
삼한의 목옹만은 그 그물을 벗어났다오 / 漏網三韓一牧翁

 

즉사(卽事)

 


병중에 긴 노래 짧은 노래 읊조리는 건 / 病裏長謠復短謠
비분을 풀잔 게지 어찌 문교를 부림이랴 / 祇將舒憤豈宣驕
가슴속엔 한 점의 티끌도 묻지 않았고 / 胷中一點塵埃絶
머리 위엔 두 바퀴 해와 달이 구르누나 / 頭上雙丸日月跳
산은 쪽빛을 펼친 듯 아득히 푸르고 / 山似披藍靑渺渺
눈은 흰 띠를 편 듯 천지가 온통 희어라 / 雪應曳素白蕭蕭
남쪽 이십사교의 밝은 밤에는 / 江南二十四橋夜
어느 곳에서 소리 퉁소를 불었던고 / 何處一聲吹洞簫

 

[주D-001]강 …… 불었던고 : 이 십사교(二十四橋)는 양주(揚州) 강도현(江都縣) 서교(西郊) 24개의 교량(橋梁)이 있는 명승지를 가리킨 것으로, 두목(杜牧)의 시에, “이십사교의 달 밝은 밤에, 어느 곳에서 옥인이 퉁소를 불게 했나.[二十四橋明月夜 玉人何處敎吹簫]”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이십사교는 곧 가무 번화(歌舞繁華)의 명승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즉사(卽事)

 


범이는 난 지 삼 일 만에 두각을 드러냈으니 / 虎生三日見頭顱
하늘 뜻 분명해라 적선지가의 여경이로세 / 天意分明積慶餘
문에 서서 달라 우는 모습은 천진스럽고 /
索飯啼門情爛

바늘 두드려 낚시 만드는 꾀는 엉성도 해라 /
敲針作釣計迂疎
배와 밤만 아는 것은 도잠의 집이려니와 /
但知梨栗陶潛室
반드시 기구는 대성의 글에서 배우리로다 /
必學箕裘戴聖書
천운은 알 수 없으니 한 잔 술이나 마시고 / 天運悠悠一杯酒
쓰러져 달게 자면서 세월이나 보내련다 / 頹然酣夢送居諸

 

[주D-001]문에 …… 천진스럽고 : 두보(杜甫)의 〈백우집행(百憂集行)〉 시에, “철없는 아이는 부자의 예를 알지 못하고, 밥 달라고 보채며 문 동쪽에서 우는구나.[癡兒不知父子禮 叫怒索飯啼門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바늘 …… 해라 :
두보(杜甫)의 〈강촌(江村)〉 시에, “늙은 아내는 종이에 그려 바둑판을 만들고, 어린애는 바늘을 두드려 낚시를 만드누나.[老妻畫紙爲碁局 稚子敲針作釣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배와 …… 집이려니와 :
도잠(陶潛)의 〈책자(責子)〉 시에, “막내 자식 통은 9살이 되어도, 다만 배와 밤만 달라고 하네.[通子垂九齡 但索梨與栗]”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반드시 …… 배우리로다 :
기 구(箕裘)는 곧 대대로 전하는 가업(家業)을 뜻한다. 대성(戴聖)은 한()나라 때의 경학자(經學者)로서 지금의 《예기(禮記)》를 정리했는데, 《예기》 학기(學記)에 이르기를,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반드시 갖옷 꿰매는 법을 배우고, 훌륭한 궁인(弓人)의 아들은 반드시 키 만드는 법을 배운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 한 데서 온 말이다.

잡영(雜詠)

 


태산이 숫돌로 황하가 띠로 된다 함은 / 礪山帶黃河
한나라가 공신에게 맹세한 말이니 /
漢誓功臣辭
끊임없이 후손에게 복록이 미치고 /
綿綿及苗裔
국가는 영원토록 이지러짐이 없으리 / 國家永無虧

충성심이 태양을 꿰뚫을 만한 건 / 丹心貫白日
천지신명이 엄연하게 살펴 알건만 / 森列嚴神祇
재앙의 싹은 소홀한 데서 생기고 / 禍萌生易忽
일의 형세는 변천함에 공교롭다네 / 事勢工推移
조정에서 한창 용사하는 자여 / 當朝赫赫者
묻노니 저이는 어떤 사람인고 / 問彼何人斯
예로부터 진실로 이와 같나니 / 自古諒如此
하늘의 마음을 누가 다시 알리오 / 天心誰復知

푸른 하늘은 어찌 그리 담담하고 / 靑天何淡淡
밝은 달은 어찌 그리 아름다우며 / 明月何娟娟
맑은 바람은 어찌 그리 솔솔 불며 / 淸風何習習
군자는 어찌 그리 편평한고 / 君子何平平
이 편평함을 끝내 어디에 쓸꼬 / 平平竟安用
도는 자연을 귀히 여김에 있나니 / 道在貴自然
사람으로 사람을 다스리는 법은 / 以人理人耳
곧 요순이 서로 전수한 바이로세 / 唐虞之所傳
이런 뜻이 오랫동안 적막해져서 / 此意久蕭索
시속은 과격함을 어질게 여기지만 / 崛强時所賢
내 노래를 시험 삼아 들어본다면 / 我歌且試聽
삶은 생선의 좋은 맛을 느끼리라 / 雋永思烹鮮

남쪽 마을은 부가 하늘을 진동하고 / 南里富熏天
북쪽 마을은 가난이 뼈에 사무쳐라 / 北里貧到骨
시물은 한결같이 고움을 뽐내는데 / 時物一以姸
인정은 아주 사소한 걸 구분한다오 / 人情析毫忽
군자는 사사로 친한 것이 없기에 / 君子無私親
동정이 길하지 않은 게 없거니와 / 動靜罔不吉
남 해치지 않고 탐욕도 안 부리며 / 不忮亦不求
한가로이 긴 세월을 보낸다네 / 悠悠送長日
도덕이 마음속 깊이 자리하면 / 天爵被靈臺
하늘이 안락하도록 인도해 주나니 / 上帝時引逸
머리 숙여 하늘의 명을 받들면 / 稽首承天明
자리 다습고 굴뚝도 검어지리 /
席暖黔我突

 

[주D-001]태산이 …… 없으리 : ()나라 때 공신(功臣)들을 봉작(封爵)하는 서사(誓辭), “가령 황하가 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이 숫돌처럼 작아질지라도, 국가는 영원히 보존되어서, 공신의 후손에게 복록이 미칠 것이다.[使黃河如帶 泰山如礪 國以永存 爰及苗裔]”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자리 …… 검어지리 :
세상에 도()를 행하기 위해 늘 분주히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느라고 한곳에 머무를 겨를이 없었던 관계로, 공자(孔子)가 앉은 자리는 다스워질 겨를이 없었고, 묵적(墨翟)의 굴뚝은 검어질 때가 없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예전의 놀이를 노래하다.

 


대둔산 정수루 하면 / 大芚之山淨水樓
꿈속에도 분명히 옛 놀이를 기억하는데 / 夢中明明記舊游
재사인 백면서생은 죽은 지 이미 오래고 / 白面久矣玉樹悲
붉은 수염 그이는 연래에 소식 드물어라 / 朱髥年來音信稀
당시에 우리 방랑한 건 고금을 뒤덮었고 / 當時放浪蓋今古
말로에 서로 헤어짐은 시비도 많았었네 / 末路分離多是非
진정은 겁화에도 타서 재가 되지 않기에 / 眞情劫火燒不灰
지금도 먼지 하나 없는 밝은 거울 같거니 只今鏡面無塵埃
죽은 이를 다시 못 살림은 분명 알지만 / 明知九原不可作
반드시 만 리 밖에 서로 따르게 되리라 / 會得萬里能相陪
종자기 또한 유수곡을 실컷 들었거니와 /
子期亦厭聽流水
생전에 자미는 의당 함께 술을 마셨으리 /
生前子美宜銜杯
대둔산 정수루가 여기서 지척이거늘 / 大芚淨水咫尺耳
이런 몽상을 어이하여 한단 말인고 / 而此夢想何爲哉
어찌하면 붕새의 날개를 한번 걸터타고 / 安得一跨垂天翼
순식간에 팔방 끝까지 날아 유람하면서 / 飄然瞬息游八極
당년에 글 읽던 곳을 직접 내려다보고 / 俯視當年讀書處
손뼉 치며 긴 노래로 마음을 위로해 볼꼬 / 拍手長謠慰深憶
그대는 보지 못했나 창해의 머리엔 / 君不見滄海頭
전쟁이 쉴 새 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 烽火甲刃無時休
돌더렁밭 띳집의 쑥대 날리는 가을에 / 空使老翁思舊游
공연히 이 늙은이 옛 놀이 생각케 하누나 / 石田茅屋蓬蒿秋

 

[주D-001]종자기(鍾子期) …… 들었거니와 : 춘 추 시대 백아(伯牙)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지기(知己)의 뜻으로 쓰인다. 백아는 거문고를 잘 타고, 종자기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는데, 일찍이 백아가 고산(高山)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鍾子期)가 말하기를, “좋다, 높다란 것이 마치 태산(泰山) 같구나.” 하였고, 백아가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다, 광대한 것이 마치 강하(江河) 같구나.” 하여, 백아의 생각을 종자기가 다 알아들었다고 한다.
[주D-002]생전에 …… 마셨으리 :
자 미(子美)는 두보(杜甫)의 자인데, 두보의 〈취시가(醉時歌)〉에, “유술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공구와 도척이 다 먼지가 되고 말았는 걸. 굳이 이 노래 듣고 슬퍼할 필요 없으니, 생전에 지기가 서로 만나 술이나 마셔보세.[儒術於我何有哉 孔丘盜跖俱塵埃 不須聞此意慘愴 生前相遇且銜杯]” 한 데서 온 말이다.

단가행(短歌行)

 


천지조화의 화로는 크기가 밖이 없나니 / 天地洪爐大無外
일착을 주조한
무어 괴이할 것 있으랴 / 鑄此一錯何足怪
아직 구징의 벌은 꼭 용서를 받기 때문에 / 尙緣咎徵罰必恕
머리 숙이고 하늘에 하소연할 마음 없고 / 垂頭無心訴眞宰
본래 잗단 짐승이 잠자는 낙타를 속이지만 / 由來毛群欺臥駝
그까짓 것들은 족히 꾸짖을 것도 없다오 / 擾擾不足煩撝訶
마치 태산처럼 꼼짝하지 않고 우뚝 서서 / 巍然不動如泰山
때로 사방의 구름 모아 큰비를 내리면 / 時出膚寸仍滂沱
하루에도 천하가 그 인으로 돌아가리니 / 一日天下歸其仁
삼태기 누가 문전에서 노래 화답하랴 /
誰和門前歌
인생의 길고 짧음은 절로 명이 있거니와 / 人生脩短自有數
흉중에 쌓인 기는 내리쏟는 강물 같건만 / 胷中有氣如懸河
뱉으려도 못 뱉고 세월만 북처럼 하도 빠르니 / 欲吐未吐頭上日月如飛梭
젊음은 얼마 안 되고 늙어감을 어찌하랴 / 少壯幾時奈老何
하늘이 귀가 있다면 내 노래를 들으려니와 / 天有耳乎聞我歌
노랫소리 격렬해라 범과 악어가 포효하듯 하네 / 歌聲激烈山哮虎兮水吼鼉
다만 하늘땅이 모두 태평함을 얻어서 / 但得天成地又平
두드리며 임금의 힘이 줄도 모르고 /
鼓腹不知帝力加
군신이 머리 조아려 요 임금께 축수하며 / 君臣稽首祝堯年
양곡과 매곡에 희화를 나누어 살게 했네 /
暘谷昧谷分羲和
즐거워라 나는 금서로 여생을 보내면서 / 樂哉琴書送殘生
다행히 상마전은 구하지 않고도 있으니 / 有田幸不求桑麻
상서하여 관직 사퇴만 아직 못했을 뿐 / 只欠上書乞骸骨
이 밖의 세상 맛은 전부 다 사라졌다오 / 此外世味皆消磨

 

[주D-001]일착(一錯) 주조한 : 당 소종(唐昭宗) 연간에 위박 절도사(魏博節度使) 나소위(羅紹威)가 주전충(朱全忠)에게 이용당하여 수많은 재물을 탕진함과 동시에 위부(魏府)의 아군(牙軍) 8000인을 몰살시키고 나서 이로부터 위병(魏兵)이 매우 잔약해지자, 나소위가 후회하여 말하기를, “6 43현의 무쇠를 모아가지고도 이런 줄은 만들지 못할 것이다.[合六州四十三縣鐵 不能爲此錯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착()은 곧 옥석(玉石)을 다듬는 도구인 줄[]로서 이는 본디 쇠로 주조하는 것이므로, 즉 나소위는 자신이 아군(牙軍)을 죽이는 착오(錯誤)를 빚었다는 뜻으로 비유하여 쓴 말이었다.
[주D-002]구징(咎徵) :
천벌(天罰)의 징조를 이르는데, 즉 임금의 과실에 대한 경계로서 일어나는 천변 지이(天變地異) 등을 가리킨다.
[주D-003]삼태기 …… 화답하 :
공 자가 일찍이 위()나라에서 경쇠[]를 치고 있을 때, 마침 삼태기를 메고 그 문전을 지나던 어느 은사가 그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마음을 둔 데가 있구나. 경쇠를 침이여.” 하더니, 이윽고 또 말하기를, “비루하도다. 소리의 딱딱함이여. 자기를 알아줄 이가 없으면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어지러운 세상에 도()를 행해보려는 공자의 굳은 의지를 부정적으로 비판한 말이었으므로, 공자는 그의 말을 듣고 이르기를, “세상은 잊는 데에 너무 과감하도다. 그렇게만 하자면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論語 憲問》
[주D-004]배 …… 모르고 :
() 임금 때에 한 노인이 배부르게 밥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며,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서 밥 먹으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태평세월의 구가(謳歌)를 의미한다.
[주D-005]양곡(暘谷)과 …… 했네 :
희 씨(羲氏)와 화씨(和氏)는 대대로 천지사시(天地四時)를 다스리는 집안인데, 요 임금이 일찍이 희중(羲仲)에게는 동쪽 바닷가의 양곡이란 곳에 살면서 해가 뜨는 것을 경건히 인도하여 봄 농사를 고루 다스리게 하고, 화중(和仲)에게는 서쪽의 매곡(昧谷)이란 곳에 살면서 해가 지는 것을 공경히 전송하여 추수(秋收)를 고루 다스리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堯典》

주 동년(朱同年)을 생각하여 읊다.

 


헤어진 지 오래라 자주 머리 돌려 / 久別頻回首
생각할 적마다 마음이 슬프구나 / 相思每愴神
뼈는 맑아라 삼신산의 나그네요 /
骨淸三島客
업은 희어라 오대산의 손이로세 /
業白五臺賓
층암 절벽엔 연기 빛이 예스럽고 / 石壁烟光古
구슬 궁전엔 새벽빛이 새로울 텐데 / 珠宮曉色新
어느 날에 다시 서로 종유할꼬 / 從游更何日
눈앞이 온통 붉은 먼지뿐이로다 / 滿目軟紅塵

 

[주D-001]뼈는 …… 나그네요 : 선경(仙境)인 삼신산(三神山)에 있는 선골(仙骨), 즉 선인(仙人)에 비유한 말이다.
[주D-002]업(業)은 …… 손이로세 :
업 이 희다는 것은, 곧 불가(佛家)에서 순백업(純白業)을 지은 사람은 순백보(純白報)를 얻고, 순흑업(純黑業)을 지은 사람은 순흑보(純黑報)를 얻는데, 십사 십악(十使十惡)은 죄()에 속하여 흑업(黑業)이 되고, 오계 십선(五戒十善)은 선()에 속하여 백업(白業)이 된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오대산(五臺山)은 곧 불교의 영지(靈地)이므로, 오대산의 손이란 바로 불사(佛寺)에 부쳐 있음을 의미한 말이다.

남창(南窓)

 


누가 북창의 바람을 말했던고 /
誰云北牖風
나는 남창의 햇빛을 사랑한다오 / 我愛南窓日
천도는 스스로 순환하거니와 / 天道自循環
인정 또한 사물 따라 변천한다네 / 人情亦因物

 

[주D-001] 누가 …… 말했던고 : 도잠(陶潛)이 일찍이 말하기를, “여름철 한가할 때에 북창(北窓) 아래 높이 누웠노라면 맑은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한 데서 온 말이다.

매화(梅花) 3(三首)

 


맑고 얕은 작은 시내 여기가 강남인데 / 小溪淸淺是江南
황혼 무렵에 가서 구경하고파라 /
月上黃昏欲往參
늙은 목은은 아픈 뒤에 기량이 많아져서 /
老牧病餘多伎倆
은은한 성긴 그림자 청담에 들어오네 / 暗香疎影入淸談


매화는 시내 북쪽에 달은 남쪽에 있어 / 梅在溪陰月在南
달빛과 매화 그림자 옅게 서로 섞였는데 / 月華梅影淡相參
숨은 사람은 본디 빙옥처럼 깨끗하기에 / 幽人自是如氷玉
호리를 계교하느라 많은 말을 허비하네 / 欲較毫釐却費談

맑은 향기를 천하에 홀로 차지했기에 / 淸香獨占斗牛南
속인에겐 원래 구경을 허락지 않는다오 / 俗子元來不放參
일찍이 연산에서 한 번 얼핏 보았는데 / 曾向燕山叨半面
형극 동타
를 어찌 말할 수 있으랴 / 銅駞荊棘豈容談

 

[주D-001]맑고 …… 들어오네 : ()나라 처사(處士) 임포(林逋)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아래 부동하네.[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형극(荊棘) 속의 동타(銅駞) :
나 라가 망했음을 뜻한다. 동타는 낙양(洛陽)에 세워졌던 동()으로 만든 낙타(駱駝)인데, ()나라 색정(索靖)이 일찍이 나라가 장차 멸망할 것을 예견하고 낙양의 궁문(宮門) 앞에 서 있던 동타를 가리키면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네 모습을 장차 가시덤불 속에서 보겠구나.” 한 데서 온 말이다.

우연히 쓰다.

 


연래의 세도는 앞길이 몹시 험난한지라 / 年來世道苦難前
조용한 속에 분향하고 주역을 점검하노니 / 靜裏焚香檢易篇
태극이 처음 나눠진 건 마음에 역력한데 / 太極始分心歷歷
그윽한 집에 줄창 누워 병은 끊이질 않네 / 幽居長臥病綿綿
우경의 글은 궁한 시름 때문에 지어졌고 /
虞卿書向窮愁著
사마의 사기는 궁형으로 좇아 전해졌었네 /
司馬史從熏腐傳
월굴 천근
은 한갓 몽상만 할 뿐이요 / 月窟天根徒夢想
다만 지금 제전을 전혀 잊지 못하는구려 / 祇今全未忘蹄筌

 

[주D-001]우경(虞卿)의 …… 지어졌고 : 전 국 시대 조()나라의 상경(上卿)이었던 우경이 자기 친구인 위제(魏齊)를 돕기 위해 상경의 자리를 버리고 위제와 함께 조나라를 떠나서 양()으로 갔다가, 양에서 매우 곤궁함을 겪으면서 마침내 《우씨춘추(虞氏春秋)》를 저술한 데서 온 말이다. 태사공(太史公)이 말하기를, “우경도 곤궁한 시름이 없었더라면 또한 글을 저술해서 후세에 스스로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虞卿非窮愁 亦不能著書以自見於後世矣]” 하였다. 《史記 卷76 虞卿列傳》
[주D-002]사마(司馬)의 …… 전해졌었네 :
()나라 사마천(司馬遷)이 일찍이 흉노(匈奴)에게 항복한 이릉(李陵)의 충성을 극구 변호하다가 무제(武帝)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宮刑)을 당하고는, 여기에 분격(憤激)한 나머지 무려 20년의 세월을 들여서 마침내 130권의 《사기(史記)》를 저술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漢書 卷62 司馬遷傳》
[주D-003]월굴 천근(月窟天根) :
송 나라 소옹(邵雍)의 〈관물음(觀物吟)〉에, “이목 총명한 남자 몸으로 태어났으니, 천지조화의 부여가 빈약하지 않구나. 월굴을 탐구해야만 물을 알 수 있거니와, 천근을 못 오르니 어찌 사람을 알리요. 건이 손을 만난 때에 월굴을 보게 되고, 지가 뇌를 만난 때에 천근을 볼 수 있으니, 천근 월굴이 한가로이 왕래하는 가운데 삼십육궁이 온통 봄이로구나.[耳目聰明男子身 洪鈞賦與不爲貧 須探月窟方知物 未躡天根豈識人乾遇巽時觀月窟 地逢雷處見天根 天根月窟閒往來 三十六宮都是春]” 한 데서 온 말인데, 월굴은 음()에 해당하고, 천근은 양()에 해당하는 것으로, 즉 천지 음양의 이치를 말한 것이다.
[주D-004]제전(蹄筌) :
제 는 토끼 그물을 말하고, 전은 물고기를 잡는 통발을 말한다. 《장자(莊子)》 외물(外物), “전은 고기를 잡는 것이나 고기를 얻은 다음에는 전을 잊어버리고, 제는 토끼를 잡는 것이나 토끼를 잡은 다음에는 제를 잊어버린다.[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
而忘蹄]” 한 데서 온 말로, 제와 전은 곧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의 뜻으로 쓰인다.

청산백운가(靑山白雲歌)

 


푸른 산은 흰 구름 밖에 푸르르고 / 靑山靑靑白雲外
흰 구름은 푸른 가운데 희어라 / 白雲白白靑山中
제정의 이 말이 오래도록 널리 퍼져서 / 霽亭此語久流播
고금의 수많은 영웅들을 초월하였네 / 超越古今諸英雄
내 처음 상쾌하여 그지없이 읽을 적엔 / 我初快意讀不輟
만 리에 긴 바람 타고 나는 듯했는데 / 飄如萬里乘長風
늙고 병들어 이젠 앉아서 상상을 하니 / 老病如今坐想像
이따금 안개 속에 노닒과 방불하여라 / 往往髣髴游空濛
구별 못할 안개 속 이게 바로 진경인데 / 空濛不辨是眞境
반공중 낙락장송엔 아침 해가 붉구려 / 長松半天朝日紅
승방은 역력히 바위 골짝에 걸터 있고 / 僧房歷歷跨巖谷
노학의 한 소리는 텅 빈 임학에 울리는데 / 老鶴一聲林壑空
지팡이 짚고 높은 산꼭대기를 오르려고 /
欲上崔嵬巓
두 손으로 정성 스쳐 하늘에 치올라라 / 雙手歷井凌蒼穹
멍하니 오래 앉아서 홀연 꿈을 이루어 / 然久坐忽成夢
꿈속에서 문득 담천옹을 찾았네그려 / 夢裏却訪談天翁

 

[주D-001]푸른 …… 희어라 : 고 려(高麗)의 명신(名臣)으로 호가 제정(霽亭)인 이달충(李達衷)이 청산백운도(靑山白雲圖)를 두고 읊은 노래에, “푸른 산은 흰 구름 밖에 푸르르고, 흰 구름은 푸른 산 가운데 희어라. 푸른 산과 흰 구름이 하나가 되어야만, 비로소 가슴속에 구의봉이 없음을 믿으리.[靑山靑靑白雲外 白雲白白靑山中 靑山白雲爲一致 方信胸無九疑峯]” 한 데서 온 말이다. 《霽亭集 卷1
[주D-002]정성(井星) 스쳐 :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에, “삼성을 만지고 정성을 스쳐 숨을 몰아쉬고, 손으로 가슴 치며 앉아서 길이 탄식하네.[捫參歷井仰脅息 以手拊膺坐長歎]” 한 데서 온 말로, 높은 데에 오름을 의미한다.
[주D-003]담천옹(談天翁) :
여기서는 곧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 천지자연의 소리, 즉 천뢰(天籟)를 설명하고 있는 남곽자기(南郭子綦)를 가리킨 말이다.

앞의 운을 사용하여 읊다.

 


생각이 허무 적적한 태극에 들어가서 / 思入虛無太極前
향 사르고 백운편을 조용히 읽노라니 / 焚香細讀白雲篇
차 끓는 작은 솥은 날린 비를 몰아온 듯 / 茶餘小鼎卷飛雨
오래된 해진 적삼은 솜덩이가 갈기갈기 / 歲久破衫多斷綿
세상에선 재주 없어 의당 움츠릴 뿐이요 / 世上無才宜手縮
책 속엔 맛이 있으니 맘으로만 전한다네 / 書中有味只心傳
어느 때나 다시 오계의 을 내려 쓸꼬 / 何時更下
溪筆
무경을 주해하여 이전을 사사하고 싶어라 / 欲註武經師李筌

 

[주D-001]오계(溪) : 공덕을 칭송하는 문장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당나라 원결(元結)이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을 지어서 숙종(肅宗)의 공덕(功德)을 가송(歌頌)하여 이것을 오계() 곁의 절벽 위에 새겼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이전(李筌) :
당나라 때 장략(將略)이 뛰어났던 사람으로, 일찍이 병서(兵書)인 《태백음부경(太白陰符經)》을 저술하였고, 만년에는 신선술(神仙術)을 좋아하여 수도(修道)를 하기 위해 산에 들어간 이후 죽은 곳을 모른다고 전해진다.

차를 마시고 나서 작게 읊다.

 


조그마한 병에 샘물을 길어다가 / 小甁汲泉水
깨진 솥에 노아차를 끓이노라니 / 破鐺烹露芽
귓속은 갑자기 말끔해지고 / 耳根頓淸淨
코끝엔 붉은 놀이 통하여라 / 鼻觀通紫霞
잠깐 새에 눈의 흐림이 사라져서 / 俄然眼翳消
외경에 조그만 티도 보이질 않네 / 外境無纖瑕
혀로 맛 분변하여 목으로 삼키니 / 舌辨喉下之
기골은 정히 평온해지고 / 肌骨正不頗
방촌의 밝은 마음 깨끗하여 / 靈臺方寸地
생각에 조금의 사도 없어라 / 皎皎思無邪
어느 겨를에 천하를 언급하랴 / 何暇及天下
군자는 의당 집부터 바루어야지 / 君子當正家

 

스스로 읊다.

 


군자는 사람을 사정으로 사랑하지 않나니 / 君子愛人非徇私
조금만 치우치면 분명 속임을 받게 되리 / 少偏端的受他欺
위수 경수는 합쳐지면서 청탁이 구분되고 / 渭涇水合分淸濁
매화 국화는 피는 데 이르고 더딤이 있도다 / 梅菊花開有早遲
너른 조정 몰려 나가선 스스로 삼가야 하고 / 旅進廣庭當自愼
어둔 방에 홀로 있을 땐 하늘을 두려워해야지 / 獨居暗室畏天知
사를 막아도 참으로 막아지는 아닌데 / 閑邪未必眞閑得
당년에 시를 배우지 못한 후회스럽네 / 悔殺當年不學詩

 

[주D-001]사(邪)를 …… 후회스럽네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시경(詩經)》 삼백 편을 한마디의 말로 덮을 수 있으니, ‘생각에 조금의 사도 없다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생각에 조금의 사도 없다.’는 말은 《시경》 노송(魯頌) ()에 있는 말인데, 대체로 《시경》의 말 가운데 선한 것은 사람의 선한 마음을 감발(感發)시킬 수 있고, 악한 것은 사람의 방탕한 뜻을 징계시킬 수 있어서, 끝내 사람으로 하여금 성정(性情)의 바름을 얻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論語 爲政》

느낌이 있어 읊다.

 


아 근래에 내가 노쇠해졌으니 / 比來嗟潦倒
이젠 나라 위해 고생이나 바치리 / 已矣效劬勞
땅은 궁벽해 시조와 거리가 먼데 / 地僻市朝遠
날씨는 추워라 별들이 높직하네 / 天寒星斗高
처음엔 기린 뿔에 받히나 했더니 / 初疑觸麟角
점차로 거북 털을 긁기와 같구나 / 漸似刮龜毛
좌우로 도의 근원을 만나는 곳에 / 左右逢原處
그 누가 나를 위해 불러줄런고 / 何人爲我招

 

[주D-001]나라 …… 바치리 : 《시 경》 소아(小雅) 북산(北山), “누구는 부름도 전혀 받지 않고, 누구는 참혹하게 고생을 하며, 누구는 제멋대로 거드럭거리고, 누구는 나랏일로 정신없이 분주하누나.[或不知叫號或慘慘劬勞 或棲遲偃仰 或王事鞅掌]”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정역(征役)을 나간 주()나라의 한 대부(大夫)가 자기만 유독 나랏일에 고생이 많음을 한탄하며 왕()의 불공정한 정사를 풍자하여 부른 노래이다.
[주D-002]기린 뿔에 받히나 :
기린의 뿔은 극히 희귀한 것이므로, 전하여 학업 등의 성취를 비유한다. 《북사(北史)》 문원열전(文苑列傳), “학자는 소의 털과 같고, 성취한 자는 기린의 뿔과 같다.[學者如牛毛成者如麟角]” 하였다.
[주D-003]거북 털을 긁기 :
소 식(蘇軾)의 시에, “거북의 등에서 털을 긁어 보았자, 어느 때에 모전을 이룰 수 있으랴.[刮毛龜背上 何時得成氈]” 한 데서 온 말인데, 거북은 본디 털이 나지 않아서 아무리 등을 긁어 봐도 털을 취할 수 없으므로, 전하여 헛수고만 할 뿐 공효를 거두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교동(喬桐) 3(三首)

 


바다 속의 화개산은 하늘에 치솟았는데 / 海中華蓋揷靑天
산 위의 옛 사당은 언제 지은지 모르겠네 / 上有荒祠不記年
제사 뒤에 한 잔 마시고 북쪽을 바라보니 / 奠罷一杯時北望
부소산 빛은 더욱 푸르기만 하구나 / 扶蘇山色轉蒼然

나그네로 산 아래 승방에 부쳐 놀다 보니 / 客游山下寄僧房
들 과실은 점점 살지고 샘물은 향기롭네 / 野菓漸肥泉水香
토지 귀신 은혜도 한번 보답해야 하기에 / 地主有恩須一報
바람 앞에 술잔 붓고 재차 한 잔 마시노라 / 臨風灌地再傾觴

바닷물은 끝없고 푸른 하늘은 나직한데 / 海門無際碧天低
돛단배는 나는 듯이 오고 해는 서산에 걸렸네 / 帆影飛來日在西
산 아래 집집마다 막걸리를 걸러내어 / 山下家家
白酒
파 뜯고 회를 칠 제 닭은 홰에 오르려 하네 / 斷蔥斫膾欲雞栖

 

모란산(牧丹山) 3(三首)

 


산색은 창연하여 바라만 봐도 기이한데 / 山色蒼然望已奇
산중의 절들은 높낮이가 서로 어울려라 / 山中精舍稱高卑
절의 중은 여산파에서 갈려 나왔기에 / 居僧出自廬山派
사서 나를 맞아 취하여 시를 청하네 / 沽酒相邀醉索詩


큰 소나무 그늘 아래 돌이 대가 되었는데 / 長松陰下石爲臺
서쪽으로 바라보니 뭇 산 큰 들이 펼쳐졌네 / 西望群山大野開
저곳이 수양산 고죽국 터라고들 하지만 / 指點首陽孤竹處
누가 고죽국의 소유래를 분변해낼꼬 / 有誰能辨所由來


절집의 밥 한 그릇을 몽글게 새겨 먹고 / 細嚼僧窓飯一盂
모여 앉아 담소하며 하루를 보냈는데 / 盍簪談笑送朝晡
틈을 내어 전편의 말을 외우고 나서 / 乘間誦過全篇語
제공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물었네 / 問却諸公箇箇無

 

[주D-001]절의 …… 청하네 : 동진(東晉)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술을 매우 즐기던 도연명(陶淵明)과 서로 친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저곳이 …… 분변해낼꼬 :
전설에 의하면,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가 고죽국(孤竹國)이고, 고죽국 임금들의 무덤과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사당이 있다고 하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전편(全篇) :
당나라 이산보(李山甫)의 〈선림사(禪林寺)〉 시에, “천축의 늙은 선사는 한 글귀를 남겼는데, 조계의 행자는 전편으로 답하였네.[天竺老師留一句曹溪行者答全篇]” 하였다.
[주D-004]아무것도 없다 :
선가(禪家)에서 진리의 대명사로 쓰이는()’를 가리킨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모란산으로부터 송도(松都)로 돌아가는 도중에 짓다. 3(三首)

 


산딸기 무르익어 온 산이 붉게 물들어라 / 覆盆爛映山紅
야금야금 씹어먹으니 맛은 달고도 시네 / 細嚼甘酸齒舌中
갑자기 검은 구름이 비를 몰고 지나가니 / 忽有黑雲携雨過
십분 청쾌하여라 하늘의 덕을 입었네그려 / 十分淸快荷天工

계곡의 급한 여울 건너기 몹시도 어려워 / 急澗如傾渡甚艱
몸 가볍고 힘도 없어 다리가 덜덜 떨렸지 / 身輕無力脚難安
다행히 김 부자의 붙들어줌을 힘입었지만 / 相扶賴有金夫子
천산을 넘고 나서도 간담이 서늘하구나 / 過了千山膽尙寒

산비탈의 화려한 빛은 놀 속에 잠기고 / 山崖金碧鎖烟霞
해 저문 강가에 앉아 모래에 그림 그릴 제 / 落日江邊坐畫沙
짧은 돛대 나는 새는 물에 환히 비치었고 / 短棹鳥飛明鏡裏
한 감실의 등불은 내 집보다 안온하였네 / 一龕燈火穩於家

교동(喬桐)으로부터 여기까지는 모두 옛날에 놀았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광가행(狂歌行)

 


소년 시절 호기는 담덩이가 말만했기에 / 少年氣豪膽如斗
뒤집은 구름 엎은
를 가소로이 봤는데 / 笑看翻雲與覆雨
남들은 한로의 병에 얼음이라 하였고 /
人言置氷露是壺
스스로는 바람 앞에 옥수라 믿었었네 /
自信臨風玉爲樹
오후
가 숨죽이고 나의 뒤에 추주할 제 / 五侯屛氣趨下風
채찍 내리고 곧장 승명전으로 들어가면 / 垂鞭直入承明宮
천안의 희로는 한마디 말에 달려 있고 / 天顔喜怒在片語
사림의 영고성쇠는 나의 뜻에 달렸어라 / 士林榮悴關微衷
아침의 천둥 벼락은 우주를 때려부수고 / 朝來雷霆擊宇內
밤중의 비이슬은 천하를 다 적셔 주는데 / 夜半雨露霑區中
미봉책으론 때로 임금의 결점 보완하고 / 彌縫有時補天缺
겸양하여 다시 신의 공이라 일컫지 않았네 / 退讓不復稱臣功
미친 말 그릇된 계책 끝없이 뱉어내는데 / 狂言謬
吐不已
여론과 성상의 뜻은 어찌 또 같을쏜가 / 物議宸衷那復同
허물은 비록 많으나 이름 또한 무거우니 / 愆尤雖
名亦重
붓 잡은 사씨는 응당 충성이라고 쓰겠지 / 史氏秉筆應書忠
아 충성이로다 노래를 미처 마치기 전에 / 嗚呼忠矣歌未終
노랫소리 곧장 올라 하늘을 찌르는구나 / 歌聲直上干蒼穹

 

[주D-001]뒤집은 구름 엎은 : 두보(杜甫)의 〈빈교행(貧交行)〉에, “손 뒤집으면 구름이요 손 엎으면 비로다.[翻手作雲覆手雨]” 한 데서 온 말로, 세상 인정의 변하기 쉬움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남들은 …… 하였고 :
두 보의 〈입주행(入奏行)〉에서 두 시어사(竇侍御史)의 인품을 일러, “빛나기는 마치 깊은 골짝에서 나온 한 조각 얼음을 영풍관 한로관의 옥병에 담아둔 것 같네.[炯如一段淸氷出萬壑 置在迎風寒露之玉壺]” 한 데서 온 말로, 깨끗한 인품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3]스스로는 …… 믿었었네 :
이 역시 깨끗한 인품을 이르는 말로,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최종지는 깨끗한 아름다운 소년인데, 술잔 들고 백안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바람 앞에 선 옥수와 같이 깨끗하였네.[宗之蕭灑美少年 擧觴白眼望靑天 皎如玉樹臨風前]”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오후(五侯) :
동시에 똑같이 봉후(封侯)된 다섯 사람으로, 한 성제(漢成帝)의 외삼촌인 왕담(王譚)ㆍ왕상(王商)ㆍ왕립(王立)ㆍ왕근(王根)ㆍ왕봉(王逢)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부귀와 권세가 막강한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홀로 읊다.

 


만 리라 먼 하늘에 구름 막 걷히어 / 萬里雲初卷
중천에 밝은 태양이 홀로 걸려 있네 / 中天日獨懸
이 마음은 본디 물욕이 없건만 / 此心無物欲
누가 즐겨 현인이 되려고 하랴 / 誰肯更希賢

 

견주(見州) 도중에 읊다.

 


우뚝한 세 고개는 푸른 하늘을 찌르는데 / 截然三嶺揷靑天
멀고 험난한 빙판길 말도 가질 못하네 / 峻路長氷馬不前
석양의 외론 마을엔 연기도 나지 않누나 / 落日孤村烟火絶
이 나름의 흥취는 누구에게 전한단 말가 / 箇中情興有誰傳

 

청룡산(靑龍山)

 


청룡산 아래엔 오래된 절이 있고 / 靑龍山下古招提
빙설 쌓인 절벽은 들 계곡을 임했는데 / 氷雪斷崖臨野谿
남창 아래 단정히 앉아 주역을 읽노라니 / 端坐南窓讀周易
종소리 한 번 울리자 닭이 홰에 오르네 / 鐘聲一動欲雞棲

당시 강강하던 이들 다 이미 떠났는데 / 當日剛强盡冷灰
유약하던 내가 이젠 도리어 튼튼하여라 / 祇今柔弱却雄哉
하늘도 꼭 사사 뜻이 없는 건 아니로다 / 天工未必無私意
금경로
한 잔을 아낄 줄을 알았네그려 / 解惜金莖露一杯

견주와 청룡산(靑龍山)은 모두 옛날에 놀았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주D-001]금경로(金莖露) : 금 경은 동주(銅柱)를 가리킨 것으로, 한 무제(漢武帝)가 일찍이 건장궁(建章宮)에다 동선인(銅仙人)을 세워서 동반(銅盤)을 받들어 감로(甘露)를 받도록 만든, 즉 승로반(承露盤)의 이슬을 가리키는데, 한 무제는 이것을 마시어 장수(長壽)를 기원했다.

취중의 노래

 


선생은 손이 있어 월굴을 가서 더듬고 / 先生有手探月窟
선생은 발이 있어 천궐을 따라 오르네 / 先生有足趨天闕
선생은 바로 옥황상제의 아들이기에 / 先生自是天帝子
의태가 본디 범인보다 월등히 뛰어나서 / 意態乃與塵凡絶
멀리 묘도를 찾아 희황 세대 초월하니 / 遠尋妙道出羲皇
호호하고 악악함
이 진정 놀랄 만하여라 / 瞠乎灝灝幷噩噩
정밀한 뜻 널리 찾아 사가와 나란히 서니 / 旁求精義並思軻
중용 한 편은 참으로 즐길 만하거니와 / 中庸一篇眞足樂
때로는 큰 기개가 홀로 무리를 초월하여 / 有時
駕獨超群
장주 굴원 반고 사마천을 모기같이 여기고 / 莊騷班馬如飛蚊
선생은 이가 시리도록 홀로 비웃음짓네 / 先生獨笑齒久冷
공문엔 제자들이 구름처럼 모였으나 / 孔門諸子屯如雲
누항의 생활 속에 참다운 낙이 있었는데 /
雖然陋巷有眞樂
온 세상이 그 누가 청결한 덕을 희망할꼬 / 擧世誰復希淸芬
나는 이제 늙었으나 아직은 건강하다오 / 吾今老矣尙

남 우러러 경모하는 걸 어찌 운운할쏜가 / 高山仰止奚云云
선생은 또한 취중의 노래를 부르노라니 / 先生且歌醉中歌
천지는 호호탕탕하여 치우침이 없는데 / 天地浩蕩無偏陂
머리 위의 해와 달은 북처럼 빨리만 가네 / 頭上日月如飛梭

 

[주D-001]호호(灝灝)하고 악악(噩噩) : 호호는 광대함을 뜻하고, 악악은 엄숙함을 뜻하는데, 양웅(揚雄)의 《법언(法言)》에, “상서는 광대하고, 주서는 엄숙하다.[商書灝灝爾 周書噩噩爾]”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사가(思軻) :
자사(子思)와 맹자를 합칭한 말로, ()는 맹자의 이름이다.
[주D-003]누항(陋巷)의 …… 있었는데 :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가 도시락밥 한 그릇과 물 한 표주박으로 누추한 시골구석에 살면서도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정신을 바꾸지 않았던 것을 이른 말이다.

홀로 읊다.

 


천지 속에서 홀로 읊조리며 / 獨詠乾坤裏
만물 가운데 함께 사노라니 / 群居品彙中
조화의 기틀은 동정을 포함하고 / 天機涵動靜
사물의 이치는 대소를 갖추었네 / 物理具纖洪
마음이 주관 없음을 자못 믿거니 / 頗信心無主
도가 몸에 있는 걸 어찌 알리요 / 焉知道在躬
몽매함 계도하는 꾀는 원래 있거니 / 擊蒙元有術
성인이 되는 공을 의당 이루어야지 / 作聖要成功
주공 소공을 지금 누가 필적할꼬 / 周召今誰匹
천지가 옛날 민생에 복을 내렸네 / 玄黃昔降衷
강산은 시름하는 곳에 아름답고 / 江山愁處麗
풍월은 취할 때마다 한가지로다 / 風月醉來同
절개는 백이 숙제처럼 준절하고 / 節得夷齊峻
공은 주공 소공처럼 풍부하여라 / 功從旦奭

빙상 속에 솔은 절로 빼어나건만 / 氷霜松自秀
서검
은 해마다 오히려 궁하구나 / 書劍歲猶窮
천하에 경대부가 많지 않으니 / 四海無多子
오직 삼태의 상공만을 생각하네 / 三台憶上公

국을 끓여라 은나라 솥이 있고 /
調羹殷鼎在
방에 들어라 공자의 담장이 비었네 /
入室孔墻空
한을 품어라 노쇠한 몰골 가엾고 / 抱恨憐衰白
홍진 밟은 건 뒤늦게 부끄럽구나 / 追慚踏軟紅
붓끝엔 약간 살얼음을 띠었는데 / 筆尖微帶凍
문창엔 아침해가 점차 떠오르네 / 窓日轉

 

[주D-001]서검(書劍) : 옛날에 학자나 문인이 항상 휴대하고 다니던 서책과 칼을 말한다.
[주D-002]천하에 …… 생각하네 :
상 공(上公)은 주공(周公)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공이 성왕(成王)에게 이르기를, “나 단은 많은 경대부들과 관리들을 거느리고 옛사람들이 이룬 공을 두터이 하겠습니다.[予旦以多子越御事篤前人成烈]”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洛誥》
[주D-003]국을 …… 있고 :
은 고종(殷高宗)이 현상(賢相) 부열(傅說)에게 이르기를, “내가 만일 국을 끓이려고 하거든 그대가 바로 소금과 매실이 되어주오.[若作和羹 爾惟鹽梅]”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說命下》
[주D-004]방에 …… 비었네 :
방 에 든다는 것은, 곧 공자가 이르기를, “유는 당에는 올랐고, 아직 방에만 들어가지 못했다.[由也升堂矣未入於室也]” 한 데서 온 말로, 학문이 대단히 깊은 경지에 이름을 의미한다. 《論語 先進》 공자의 담장이란, 곧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부자의 담장은 두어 길이나 되어서 그 문을 통해 들어가지 않으면 종묘의 화려함과 백관의 풍부함을 볼 수가 없다.[夫子之牆數仞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百官之富]”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담장이 비었다는 것은 바로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니, 이 역시 학문의 경지가 아주 깊음을 의미한다. 《論語 子張》

한거(閑居)

 


신구 교체가 일각인들 멈춘 적이 있으랴 / 代謝何曾一刻停
영고성쇠에 잘못 백 년의 마음 허비했네 / 昇沈枉費百年情
고당에선 예부터 거울 보고 슬퍼했었는데 /
高堂自昔悲明鏡
화려한 집에선 지금 짧은 등경을 버린다오 /
華屋如今棄短檠
천상의 옛 친구들 소식은 다 끊어졌건만 / 天上故交音信絶
술자리의 좋은 경치에 노랫소린 맑구려 / 樽前美景嘯歌淸
늙은 아내 어린 자식 규문은 하도 냉랭해 / 老妻稚子閨門冷
한거부
짓고 나니 부끄러워 편치 않구나 / 賦罷閑居愧不平

 

[주D-001]고당(高堂)에선 …… 슬퍼했었는데 :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에, “그대는 못 보았나 고당의 거울 보고 백발을 슬퍼한 것을. 아침엔 푸른 실 같더니 저녁엔 백설이 되었네.[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朝如靑絲暮成雪]” 한 데서 온 말이다. 《李太白集 卷2
[주D-002]화려한 …… 버린다오 :
한 유(韓愈)의 〈단등경가(短燈檠歌)〉에, “어느 날 부귀하면 스스로 방자해져서, 긴 등경 높이 달고 진주 비춰 비추어라. , 세상일이 그렇지 않은 게 없으니, 담장 머리에 짧은 등경 버린 걸 그대는 보게나.[一朝富貴還自恣 長檠高張照珠翠吁嗟世事無不然 牆角君看短檠棄]”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卷5
[주D-003]한거부(閑居賦) :
()나라 반악(潘岳)이 지은 문장 이름인데, 내용은 곧 세상일에는 아랑곳없이 한가히 지내는 뜻을 취한 것이므로 한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읊다. 3(三首)

 


밤에 누우니 뼈가 시리고 아파 / 夜臥骨酸辛
뒤척뒤척 괴로운 시름 그지없어라 / 展轉苦愁絶
몹시 슬퍼 심장은 오글오글 타고 / 深悲肝腎焦
하도 두려워 살갗은 찢길 듯하네 / 大恐皮肉裂
갑자기 첫닭이 한 번 울어대고 / 鷄聲忽一叫
벽에 비친 등불은 깜빡거리는데 / 照壁燈明滅
옷 걸치고 다시 일어나 앉아서 / 攬衣更危坐
아침 기운에 남긴 비결 상고하니 /
旦氣考遺訣
지극한 도는 아직도 아득하지만 / 至道尙渺茫
앞길은 판연하게 결정이 나누나 / 前途判然決

닭이 우니 마음은 이미 트였는데 / 鷄鳴心已豁
해가 뜨니 창문 또한 환하여라 / 日出窓更明
향 사르고 담담히 앉았노라니 / 焚香澹無累
깨끗한 마음 평온하기 그지없네 / 皎皎止水平
천지가 함께 한 집이 되어 / 天地共一室
위와 아래가 모두 깨끗하여라 / 上下俱澄淸
즐거울사 길이 바름을 보전하고 / 樂哉保永貞
상제 섬겨 내 삶을 순히 하노니 / 事帝順吾生
예의 넘치는 이 요순 시대에 / 揖讓唐虞際
그 누가 나에게 서로 친해줄런고 / 誰與予目成

질병을 요양하려 탕약을 마시고 / 撫病與湯藥
추위가 무서워 탄불을 재촉하니 / 哀寒促火炭
초동은 한낮에 나무를 하러 가고 / 樵童去近午
아내는 계곡으로 물 길러 나가네 / 爨婦出汲澗
오히려 기쁜 건 빈객이 드물어서 / 尙喜賓客稀
주인 또한 느지막이 일어남일세 / 主人亦起晏
머리 싸매고 남창을 향해 있으면 / 蒙頭面南窓
꼭 마판에 엎드린 관단마 같거니 / 伏櫪如款段
이로부터 다시 무엇을 근심하랴 / 從玆更何憂
토포 악발은 주공이 터인데 /
吐握有周旦

 

[주D-001]아침 …… 상고하니 : 아 침 기운이란 사람의 마음이 아직 사물(事物)을 접하기 전인 평단(平旦)의 청명(淸明)한 기운을 말한다. 남긴 비결이란, 맹자(孟子)가 사람의 마음이 평단의 청명한 때에는 미세하게나마 발현(發現)되는 양심(良心)이 있으나, 낮에 불선(不善)한 행위를 함으로 인해서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것을 일러, ()나라 우산(牛山)의 아름다운 나무들이 부근(斧斤)의 잦은 침벌(侵伐)과 우양(牛羊)이 자주 뜯음으로 인해서 밤이면 조금씩 자라는 새싹이 견뎌 내지 못하여 끝내 벌거숭이산이 되고마는 데에 비유한 말을 가리킨다. 《孟子 告子上》
[주D-002]관단마(款段馬) :
성질이 본디 느려서 아주 천천히 걷는 말을 가리킨다.
[주D-003]토포 악발(吐哺握髮)은 …… 터인데 :
주 공(周公)이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만나기에 급급하여 머리를 한 번 감는 동안에 세 번이나 젖은 머리를 움켜쥐고 나가고 밥 한 끼를 먹는 동안에 입 안의 음식을 세 번이나 뱉어냈다.[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우연히 써서 자조하다.

 


국신리 마을의 늙은 할미가 / 國贐里老嫗
매양 산승을 데리고 와서 / 每引山僧來
한 자쯤 되는 종이를 가지고 / 手持一尺紙
여기에 글을 써달라 청하네 / 請公書此哉
그가 말하길 이 늙은 비구승은 / 曰此老比丘
오대산에 거주한다 하는데 / 曰居於五臺
금강산과 기타 여러 산들도 / 金剛與諸山
역력히 다 우뚝하다더라 하고 / 歷歷皆崔嵬
또 말하길 여기에 보시를 하고 / 曰側金於此
선을 하여 화의 조짐 없애라 하네 / 作善消禍胎
늙은 내가 그를 위해 붓을 쥐고 / 老夫爲秉筆
하루에 천 번이나 휘둘러 써 주매 / 一日能千回
기뻐하며 감사를 표하고 떠나니 / 歡然致謝去
법뢰
로써 세상을 진동시켰으면 / 庶以震法雷
맹자는 양주 묵적을 물리쳐서 / 孟氏闢楊墨
그 공이 삼재에 배합되었는데 / 其功配三才
나는 지금 되레 그들을 도왔기에 / 而今反相助
묵묵히 앉아 때로 냉소를 짓노라 / 默坐時冷咍
기원에는 황금이 휘황찬란하고 /
祇園焜金碧
공자의 궐리엔 이끼만 그득하니 / 闕里多莓苔
마음 아파 눈물을 흘릴 지경이요 / 傷哉可流涕
조물주도 응당 시샘을 하련마는 / 造物應相猜
큰 집은 나무 한 가지로 못 괴나니 / 大廈非一枝
그 누가 동량의 재목을 가져올꼬 / 誰抱梁棟材

 

[주D-001]법뢰(法雷) : 불가(佛家)에서 불법(佛法)의 맹렬한 위엄을 천둥에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2]기원(祇園)에는 황금이 휘황찬란하고 :
기원은 본디 인도(印度) 기다태자(祇陀太子)의 소유였던 원림(園林)인데, 수달장자(須達長者)가 그곳에 황금을 가득 깔아서 태자로부터 그 원림을 구입한 다음, 그곳에 정사(精舍)를 건립하여 석존(釋尊)에게 바쳤던 데서 온 말이다.

최 대간(崔大諫)이 술을 가지고 찾아오다. 이름은 숭겸(崇謙)이다.

 


아침해가 돋아서 처마 위에 오르니 / 火輪飛出上簷牙
금장
의 문생이 술을 갖고 찾아왔네 / 錦帳門生載酒過
병중의 미친 회포를 풀 곳이 없었는데 / 病裏狂懷無處瀉
금하
에 가득 부어 기울이길 사양하랴 / 肯辭引滿倒金荷

 

[주D-001]금장(錦帳) : 옛날 상서랑(尙書郞)에게는 비단 휘장이 제공됨으로 인해 상서랑을 금장랑(錦帳郞)이라고도 했는바, 즉 상서랑의 직위를 일컫는 말이다.
[주D-002]금하(金荷) :
하엽(荷葉) 모양의 금으로 만든 술잔을 가리킨다.

최 대간이 가고 난 뒤에 취흥이 도도하여 또 읊다.

 


어찌 주금에다 고아를 세울 필요 있으랴 /
何須晝錦立高牙
문생이 자주 찾아 주는 것만 기쁠 뿐이네 / 祇喜門生屢見過
술 대하면 문득 덧없는 세상사를 잊고 / 對酒却忘浮世事
시 읊으면 고인의 노래에 못지않다오 / 哦詩不讓古人歌
연래에 도의 맛은 누가 가장 깊을꼬마는 / 年來道味知誰最
취한 뒤의 풍류는 몸이 늙음에 어찌하랴 / 醉後風情奈老何
남은 생애에 천명 즐김이 정히 좋아서 / 政好殘生樂天命
다시 달빛 아래 덩실덩실 춤을 추노라 / 更從月下舞婆娑

 

[주D-001]어찌 …… 있으랴 : 주 금(晝錦)은 낮에 비단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가는 것을 의미하고, 고아(高牙)는 장상(將相)이 행차할 때에 세우는 기()를 가리킨다. ()나라의 명신(名臣) 한기(韓琦)가 일찍이 재상(宰相)으로 무강군 절도사(武康軍節度使)가 되어 자기 고향인 상주(相州)를 다스리면서 금의환향(錦衣還鄕)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곳에 주금당(晝錦堂)을 지었는데, 구양수(歐陽脩)가 지은 〈주금당기(晝錦堂記)〉에, “고아(高牙)와 대독(大纛)이 공()에게는 영화로운 것이 못 되고, 환규(桓圭)와 곤상(袞裳)도 공에게는 귀한 것이 못 된다.” 한 데서 온 말이다.

흥취를 풀다.

 


성도와 왕풍은 떨치지 못할까 걱정이거니와 / 聖道王風恐不揚
천시와 인사는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네 / 天時人事轉堪傷
태평상은 따로 없고 맘에서 나오거니와 / 太平無像從心出
창해의 넘쳐 흐름은 손으로 가히 막으랴 / 滄海橫流可手障
공연히 춘추 시대의 제진을 허여하지만 / 謾向春秋許齊晉
고래로 수재 한재는 요탕 때에 있었다오 / 由來水旱在堯湯
늙은 아내가 말술을 잘 저장해 두어서 / 老妻斗酒能藏得
아침에 손이 오자 함께 한 잔 마시노라 / 有客朝來飮一觴

 

[주D-001]춘추 시대의 제진(齊晉) 허여하지만 : 제 진(齊晉)은 춘추 시대 제후국(諸侯國)으로서 각각 천하의 제후들을 일통(一統)시켜 패업(霸業)을 이루었던 제 환공(齊桓公)과 진 문공(晉文公)을 합칭한 말인데, 맹자가 일찍이 이르기를, “춘추 시대에 옳은 전쟁은 전혀 없었으나, 상대적으로 더 나은 것은 있었다.” 하여, 제환공과 진문공의 일을 약간 허여했던 데서 온 말이다. 《孟子 盡心下》

연경(燕京) 도중(途中)의 일을 기록하다.

 


부곡과 신산의 경계가 가장 아늑한데 / 富谷神山境最幽
괴이한 새 우는 곳에 숲은 빽빽하였고 / 怪禽啼處樹林稠
푸른 절벽 밑에는 또 절집이 있었으니 / 僧窓又在蒼崖底
향화는 참으로 화두를 일으킬 만했었네 / 香火眞堪擧話頭

난하는 산 구석 곁으로 청쾌히 흐르니 /
河淸傍山隅
곧장 근원 찾아 상도를 알현하고 싶었네 / 直欲尋源謁上都
이게 은하수에 뜬 사신의 떼는 아니지만 / 不是靈槎銀漢去
물길만 따라가도 방장산엔 갈 수 있다네 / 順流猶可到方壺

누가 달을 보고 서로 부를 알았던고 /
何人見月解相招
시든 초목 누대 곁에서 홀로 읊조리네 / 吟嘯臺邊草木凋
오조의 장락로라고 감히 자랑하지 말라 / 莫詑五朝長樂老
구양수의 붓끝에서 성난 천둥이 울렸지 / 歐陽筆底怒雷號

 

[주D-001]상도(上都) : 상제(上帝)가 있는 천궁(天宮)을 가리킨다.
[주D-002]그 …… 알았던고 :
백거이(白居易)가 지은 〈음력 8 15일 밤에 화양관(華陽觀)에서 친구를 불러 함께 달구경을 하다〉라는 시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白樂天詩集 卷13
[주D-003]오조(五朝)의 …… 울렸지 :
오 대(五代) 시대의 재상(宰相) 풍도(馮道)가 일생 동안 당()ㆍ진()ㆍ거란(契丹)ㆍ한()ㆍ주() 오조(五朝)의 재상으로 육제(六帝)를 섬기고 나서 장락로(長樂老)라 자호(自號)하여 스스로 매우 영화롭게 여겼는데, ()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신오대사(新五代史)》를 편찬하면서 풍도의 전기(傳記)를 잡전(雜傳) 속에 넣고 그를 일러 염치없는 자라고 평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유거(幽居)

 


늘그막엔 마음에 거리낌이 없어 / 老境心無累
유거하는 맛이 또한 진진하여라 / 幽居味更長
계산은 위징처럼 애교를 부리고 /
溪山徵媚

풍설은 한유처럼 거칠기만 하네 /
風雪愈疎狂
일찍 천지가 큰 것은 알았거니와 / 早識乾坤大
누가 일월의 빛과 겨룰 수 있으랴 / 誰爭日月光
근래에는 약물과 가까이 지내며 / 邇來親藥物
점차로 신선을 배우려고 하노니 / 漸欲學仙方
가슴에 묻힌 기화는 견디려니와 / 氣火甘中伏
밖에 동요하는 마음이 한스럽네 / 心旌恨外揚
호연지기는 원래 절로 넉넉하거니 / 浩然元自足
어찌 무지한 행동을 할 것 있으랴 / 何必更芒芒

 

[주D-001]계산(溪山)은 …… 부리고 : 시 내와 산이 아름다움을 뜻한다. 당 태종(唐太宗)이 일찍이 대신(大臣)들과 함께 단소루(丹霄樓)에서 주연(酒宴)을 베풀고 담화(談話)하던 중, 태종이 크게 웃으면서 이르기를, “사람들은 위징(魏徵)더러 등한하고 게으르다고 하는데, 나는 위징에게서 애교부리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新唐書 卷97 魏徵列傳》
[주D-002]풍설(風雪)은 …… 하네 :
당 헌종(唐憲宗) 때에 한유(韓愈)가 논불골표(論佛骨表)를 올렸다가 헌종의 노여움을 사서 겨우 죽음을 면하고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폄척(貶斥)되었는데, 한유가 조주에 가서 다시 표문(表文)을 올려 슬피 사죄(謝罪)하니, 헌종이 그 표문을 보고는 뉘우치는 마음이 든 나머지 한유를 다시 조정에 등용하려 하였다. 그러자 평소 한유의 강직함을 꺼려왔던 재상 황보박(皇甫鎛)이 아뢰기를, “한유는 끝내 거칠어 법도가 없을 것인데, 내직으로 옮겨올 수 있겠습니까.” 하고, 한유를 원주 자사(袁州刺史)로 고쳐 임명한 데서 온 말이다. 《新唐書 卷176 韓愈列傳》

손을 보내고 나서 일을 기록하다.

 


가난한 집이 자못 깊고 궁벽하여 / 貧居頗幽僻
손이 오는 것 또한 드물었었지 / 客來亦云稀
흔연히 옛일을 얘기하고자 / 欣然欲話舊
진정을 곧 발휘하려 하는데 / 眞情將發揮
찬바람이 대청에서 불어와 / 寒風吹虛廳
얼음 눈이 의관에 반짝이어라 / 氷雪耀冠衣
추위 참는 게 좋은 계책 아니거니 / 忍凍非善策
가려함은 진정 기미를 앎이로다 / 欲去誠知幾
손을 만류하자니 술도 없기에 / 留之又無酒
마당에 나가서 손을 전송하고 / 送之出我畿
부끄러운 맘으로 방에 들어와 / 懷慙旋入室
머리 숙이고 탄식만 할 뿐이네 / 俯首徒歔欷

 

들은 일을 기록하다.

 


북쪽 변방에 미친 아이가 있어 / 北鄙有狂童
그 행적이 여태자와 흡사하다네 / 比跡戾太子
춘추의 대의가 존재하거니 / 春秋大義在
어찌 경술의 선비가 없으리요 / 豈乏經術士
대동강에 얼음이 얼고 / 氷生大東江
그 밑엔 두 마리 잉어가 있어 / 其下有雙鯉
수시로 서신을 서로 통하니 / 尺素時相通
유언비어가 절로 중지되었네 / 訛言自中止
끝내는 흔적 없이 쓸어버려야 / 終當掃無迹
다시 의심이 생기지 않으리라 / 不復生疑貳

 

[주D-001]여태자(戾太子) : 한 무제(漢武帝)의 태자였던 유거(劉據)의 시호이다. 무제 말년, 강충(江充)이 권력을 천단(擅斷)할 때 태자가 강충과 서로 원극(怨隙)이 있었는데, 그 후 무고(巫蠱)의 화()가 일어나 무함(誣陷)을 입게 되자, 태자가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강충을 죽였다. 그러나 결국 승상(丞相)의 군대에 패하여, 도망간 지 얼마 안 되어 자살하였다.

봉익(奉翊) 이동수(李東秀)를 생각하다.

 


한 마을 동년으로 오랫동안 망형교였고 / 同年同巷久忘形
벼슬 시작한 당년엔 가정을 배알했는데 / 釋褐當年拜稼亭
근래엔 서신 한 장 없는 것이 한스러워 / 最恨近來無尺字
밤 깊도록 한 등잔 아래 앉아 생각하노라 / 夜深危坐一燈靑

 

고풍(古風) 3(三首)

 


흐르는 물은 절로 쉬지 않고 / 流水自不息
도도히 흘러 어디로 가는고 / 滔滔向何之
동방에 큰 바다가 있으니 / 東方有大海
그 뜻은 바로 여기에 있다네 / 其意乃在玆
주공은 문왕을 스승이라 했는데 / 周公師文王
어찌 공명의를 속였으리요 / 豈欺公明儀

삼왕을 생각하며 아침을 기다려 /
思三坐待旦
예악이 한 시대에 성하였네 / 禮樂盛一時
어찌하여 천재 아래에서도 / 如何千載下
아직껏 치효시를 읊조리는고 / 尙詠鴟

그 까닭을 알겠네 군자의 마음은 / 乃知君子心
험난함을 평탄함같이 여겨서일세 / 遇險如遇夷

낙락장송이 청천에 우뚝하기에 / 長松參靑天
너는 어느 해에 났느냐고 물으니 / 問渠生何年
산신령이 곁에서 대답하기를 / 山靈從旁對
아마도 나 먼저 태어난 듯하다 / 恐是在我前
내가 났을 때 형체 이미 갖추었고 / 我生形旣具
뿌리는 나의 어깨에 박았는데 / 結根在我肩
뭇 초목들은 피고 지고 하지만 / 衆卉自榮悴
소나무 안색은 변함이 없다 하네 / 顔色無變遷
식물도 또한 이러하나니 / 植物亦如此
군자는 의당 힘쓸지어다 / 君子當勉旃

기린이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 麟也不可知
나오면 천하가 태평한 건데 / 出則天下平
성인이 왕위에 있지 않은 때에 / 聖人不在位
어이해 스스로 몸을 가벼이 했나 / 乃何輒自輕
주남시에 나온 훌륭한 기린
/ 振振周南詩
변하여 성정이 미혹되었구려 / 變矣迷性情
가사 기린이 숲에 편히 있다면 / 使麟或在藪
누가 다시 춘추를 이으리요
/
誰復繼聖經
의당 내 마음속으로 하여금 / 當令方寸地
물욕의 싹을 길이 끊게 해야지 / 永絶物欲萌
이것 또한 기린의 무리이거니와 / 是亦麟之徒
천지의 덕을 생이라 하느니라 /
大德名曰生

 

[주D-001]주공(周公)은 …… 속였으리요 : 공 명의(公明儀)는 춘추 시대 노()나라의 현인(賢人)이었는데, 맹자가 이르기를, “공명의가 말하기를, ‘주공이 문왕은 나의 스승이라고 했으니,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리요.[文王我師也 周公豈欺我哉]’라고 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주D-002]삼왕(三王)을 …… 기다려 :
맹 자가 이르기를, “주공은 우ㆍ탕ㆍ문무 삼왕의 선한 일들을 혼자 겸해서 시행하려고 생각하여, 그중에 혹 부합되지 않는 일이 있을 적에는 밤낮으로 우러러 생각하다가 다행히 얻어진 것이 있으면 그대로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었다.[周公思兼三王以施四事 其有不合者 仰而思之 夜以繼日 幸而得之 坐以待旦]”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下》
[주D-003]치효시(詩) :
치 효는 《시경》 빈풍(豳風)의 편명이다. 일찍이 주 무왕(周武王)이 은()을 멸한 뒤, ()의 아들 무경(武庚)을 그 후사(後嗣)로 세우고 자기 아우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그곳에 보내어 무경을 감시하게 했었는데, 그 후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成王)이 즉위하여 주공이 어린 조카를 도와 섭정(攝政)하게 되자, 마침내 관숙과 채숙이 무경에게 붙어서 주공을 해치고자 하여주공이 장차 어린 성왕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이에 성왕이 이 소문을 듣고 마침내 숙부인 주공의 마음을 의심하기에 이르렀으므로, 이때 주공이 주나라의 다급한 사정을 성왕에게 알려서 깨우치려고 이 시를 지어 노래했던 것이다.
[주D-004]주남시(周南詩)에 …… 기린 :
주남시는 《시경》 주남(周南) 인지지(麟之趾) 편을 가리키는데, 이 시는 문왕(文王)과 후비(后妃)가 인후(仁厚)하였기 때문에 그의 자손들 또한 인후함을 기린의 인후한 덕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다.
[주D-005]기린이 …… 이으리요 :
《예 기(禮記)》 예운(禮運)에 의하면, 태평 시대에는 봉황(鳳凰)과 기린 등의 서수(瑞獸)가 교외의 숲에서 평화로이 노닌다고 했는바, 노 애공(魯哀公) 14년 봄에 기린이 잡히자, 공자(孔子)가 이를 몹시 상심한 나머지, 《춘추(春秋)》를 집필해 나가다가서수획린(瑞獸獲麟)’이란 말을 끝으로 집필을 마쳤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6]천지의 …… 하느니라 :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천지의 큰 덕을 생이라 하고, 성인의 큰 보배를 지위라 한다.[天地之大德曰生聖人之大寶曰位]”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3(三首)

 


묵묵함도 떠들어댐도 둘 다 공평치 못하니 / 默默譊譊兩不平
기회를 잡거나 놓침을 아예 잊어야 하리 / 投機失會要忘情
위징은 애교떤다 하나 말은 끝내 곧았고 /
魏徵媚
言終直
배도는 노쇠했으나 일을 끝내 이루었네 /
裴度龍鍾事竟成
자리는 다스우나 바람은 밤 내 불어댔고 / 席煖風聲呼永夜
높은 처마의 햇빛은 막 개임을 알리는데 / 簷虛日影報新晴
군자양양의 시편
을 소리 높여 읊조려서 / 高吟君子陽陽什
곤궁한 시름 떨치니 낙이 절로 생기누나 / 消盡窮愁樂自生

세상 태평이 기쁠 뿐 내 쇠함을 왜 한하랴 / 吾衰何恨喜時平
병중의 기거는 시골 정취가 꼭 알맞구려 / 病裏興居適野情
이웃집 막 익은 술은 향기를 보내오는데 / 隔壁香來新酒熟
나는 붓 휘둘러 조그만 시를 읊어 쓰노라 / 揮毫字濕小詩成
이백을 생각하여라 강동엔 날이 저물고 /
相思白也江東暮
목지가 조용히 걸어라 번포는 활짝 갰네 /
細履牧之樊圃晴
한 치의 회포가 있어 끊임없이 읊노라니 / 只有寸懷吟不盡
인간 어디에나 내 인생 의탁할 만하구려 / 人間隨處託吾生

일의 기틀 상충됨을 가장 평정키 어려워 / 事機相激最難平
도를 지켜온 연래엔 세상 물정 잊었는데 / 守道年來遣世情
외경은 한가로우나 마음이 유독 괴로워 / 外境悠悠心獨苦
밤중까지 근심 걱정에 잠 못 이루노라니 / 中宵耿耿夢難成
달 비친 문창은 밝기가 대낮 같고요 / 月臨窓面明如晝
비 뿌린 처마는 새벽에 이미 개었네 / 雨打簷牙曉已晴
옛날 삼태기 이가 경쇠 소릴 들었거니 /
昔曾聞擊磬
하늘이야 어느 날엔들 창생을 잊을쏜가 / 蒼天何日忘蒼生

 

[주D-001]위징(魏徵)은 …… 곧았고 : 위 징은 당 태종(唐太宗)의 직신(直臣)으로, 특히 직간(直諫)을 많이 하였다. 애교떤다는 말은 당 태종이 일찍이 대신(大臣)들과 함께 단소루(丹霄樓)에서 주연(酒宴)을 베풀고 담화(談話)하던 중, 태종이 크게 웃으면서 이르기를, “사람들은 위징더러 등한하고 게으르다고 하는데, 나는 위징에게서 애교부리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新唐書 卷97 魏徵列傳》
[주D-002]배도(裴度)는 …… 이루었네 :
배도는 당()나라 헌종(憲宗)ㆍ목종(穆宗)ㆍ문종(文宗) 삼조(三朝)를 섬긴 명상(名相)으로서, 특히 회채(淮蔡)의 반란(叛亂) 등을 평정하는 데에 큰 공훈을 세웠다. 《新唐書 卷173 裴度列傳》
[주D-003]군자양양(君子陽陽) 시편 :
군자양양은 《시경》 왕풍(王風)의 편명인데, 이 시는 행역(行役)에서 돌아온 남편이 그 수고로움을 잊고 가난한 살림이나마 만족하게 여기며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아내가 남편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탄하여 부른 노래이다.
[주D-004]이백(李白)을 …… 저물고 :
두 보(杜甫)가 봄날에 친구인 이백을 생각하여 지은 시에, “위수 북쪽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엔 날 저문 구름이로다. 어느 때나 한 동이 술을 갖추어, 거듭 함께 글을 자세히 논해 볼꼬.[渭北春天樹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목지(牧之)가 …… 갰네 :
목 지는 두목(杜牧)의 자이고, 번포(樊圃)는 호가 번천(樊川)인 두목의 전원(田園)을 가리키는데, 두목의 〈만청부(
晴賦)〉에, “비가 개니 가을 모습 목욕한 듯함이여, 전원을 꺾어 돌아 조용히 거니노라.[雨晴秋容新沐兮折繞園而細履]”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옛날 …… 들었거니 :
공 자가 일찍이 위()나라에서 경쇠[]를 치고 있을 때, 마침 삼태기를 메고 그 문전을 지나던 어느 은사가 그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마음을 둔 데가 있구나. 경쇠를 침이여.” 하더니, 이윽고 또 말하기를, “비루하도다. 소리의 딱딱함이여. 자기를 알아줄 이가 없으면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어지러운 세상에 도()를 행해보려는 공자의 굳은 의지를 부정적으로 비판한 말이었으므로, 공자는 그의 말을 듣고 이르기를, “세상은 잊는 데에 너무 과감하도다. 그렇게만 하자면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論語 憲問》

매화(梅花)를 읊다. 3(三首)

 


대지가 한 점의 봄을 끌어 돌리니 / 地軸句回一點春
갑자기 밝은 창에 은은한 향기를 느끼겠네 / 明窓 覺暗香新
바람에 날린 버들개지는 아예 아니거니와 / 風吹飛絮初行詐
긴 가지에 쌓인 눈과는 흡사하기도 해라 / 雪壓長條竟亂眞
철장처럼 누가 부를 지을 줄이야 알랴만 /
腸鐵誰知工作賦
흐릿한 눈이 티 없이 말끔해진 게 기쁘구나 / 眼花偏喜淨無塵
시가들이 매화시는 퍽이나 많이 짓겠지만 / 詩家摹寫應車載
서호
를 화답할 자가 그 몇이나 있을런고 / 和得西湖有幾人

땅이 추워서 명춘에 피기만을 기다렸는데 / 地寒相候擬明春
겨울에 찬 꽃송이 나올 줄 어찌 뜻했으랴 / 豈意深冬冷蕊新
익히 보니 천공은 응당 기교를 부렸지만 / 熟視天工應費巧
물색을 처음 만나니 참이 아닌가 싶구나 / 初逢物色恐非眞
곱고 고운 달빛은 천 리를 함께 비추는데 / 娟娟桂窟同千里
아득한 봉래산은 상전벽해가 번이던고 /
渺渺蓬山隔幾塵
다만 설창에 얼음이 얼려 함을 염려해 / 只爲雪窓氷欲凍
스스로 화기를 가져다 시인에게 알리누나 / 自將和氣報騷人

나부산 아래에 봄이 찾아오려 하니 / 羅浮山下欲生春
그윽한 울어 다하고 꿈속도 새로워라 / 啼盡幽禽夢境新

예로부터 신선의 일은 괴이한 게 많으나 / 自昔神仙多詭怪
지금의 사부는 아주 맑고도 진실하다오 / 祇今詞賦甚淸眞
산봉우리는 빼어나 티끌이 전혀 없고요 / 峯巒孕秀渾無滓
빙옥
은 서로 빛나서 먼지가 안 날리네 / 氷玉交輝不動塵
남국 사자가 보내온 향기는 그지없건만 / 越使寄來香未歇
황혼 달 아래 산보할 이가 그 누굴런고 / 黃昏踏月定何人

 

[주D-001]철장(鐵腸)처럼 …… 알랴만 : 철 장은 의지가 매우 강직 견고함을 이르는데, 당나라 시인 피일휴(皮日休)의 〈도화부 서(桃花賦序)〉에, “내가 항상 재상 송경(宋璟)의 바르고 강직한 자질을 사모하면서, 그렇게 강직한 철장 석심(鐵腸石心)으로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말을 토해 낼 줄 모르리라고 여겼는데, 그의 매화부(梅花賦)를 본 결과, 맑고도 화려함이 남조(南朝)의 서유체(徐庾體)를 꼭 닮아서 자못 그 위인(爲人)과 같지 않았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皮子文藪 卷1
[주D-002]서호(西湖) :
북 송(北宋) 때 서호에 은거했던 처사(處士) 임포(林逋)를 가리키는데, 임포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아래 부동하누나.[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라고 한 시구가 매우 회자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아득한 …… 번이던고 :
봉래산(蓬萊山)은 동해(東海) 가운데 있다는 선경(仙境)인데, 선녀(仙女) 마고(麻姑)가 일찍이 왕방평(王方平)에게 말하기를, “동해가 세 번 상전(桑田)이 되는 것을 보았다.” 한 데서 온 말로, 끝없는 세월의 변천을 의미한다.
[주D-004]나부산(羅浮山) …… 새로워라 :
()나라 때 조사웅(趙師雄)이 나부산에서 꿈속에 매화선녀(梅花仙女)를 만나 그와 더불어 말을 했는데, 향기가 사람을 엄습하고 말소리도 매우 맑고 아름다우므로, 마침내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취했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주D-005]빙옥(氷玉) :
매화의 별칭이다.

12 16일 경신일에 여아(女兒)가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저무는 해 오늘 밤이 바로 경신일인데 / 歲闌今夜是庚申
삼시의
을 가장 신기하다 모두 말하네 / 共說三尸事最神
건성으로 보지 말고 똑바로 볼지어다 / 瞪視莫敎過海眼
지척이 바로 옥황상제의 천궁이란다 / 天庭咫尺玉皇宸

아무것도 모르는 아녀가 가장 가련하여라 / 兒女無知冣可憐
그래도 머리 위에 하늘이 있음은 아는구려 / 猶知頭上有蒼天
하늘은 삼시충이 고하길 기다리지 않나니 / 明明不待三尸報
작은 노력으로 허물 덮으려고 하지 말거라 / 休把微勞欲蓋愆

가난한 집은 윷놀이도 적적하기만 한데 / 貧家寂寂樗

일류 저택엔 화려한 술자리가 떠들썩하네 / 甲第紛紛玳瑁筵
허물을 가려 덮는 건 혹 용서도 받겠으나 / 銷沮閉藏猶可恕
늘 취하고 춤추는 건 허물을 더할 뿐이리 / 酣歌恒舞適增愆

병든 나는 편안히 잠들기를 염원하노니 / 病夫心願得安眠
화복을 모두 잊는 게 도리어 자연스럽다오 / 禍福都忘却自然
홀로 앉아서 시 두어 수를 읊어 이루니 / 獨坐吟成詩數首
짙고 옅은 먹 흔적이 화전에 가득하구나 / 墨痕濃淡滿華牋

 

[주D-001]삼시(三尸) : 도 가(道家)의 장생법(長生法)의 한 가지로서, 60일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庚申日)이 되면, 사람의 머리와 창자와 발에 각각 형체 없이 기생하고 있다는 삼시충(三尸蟲)이 있어 사람이 잠든 사이에 몸 밖으로 빠져나가서, 그동안에 있었던 사람의 죄과(罪過)를 낱낱이 상제(上帝)에게 고해 바침으로써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 삼시충이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경신일이면 잠을 자지 않고 꼬박 밤을 새우게 한다는 일을 가리킨다.

느낌이 있어 한 수를 읊다.

 


공자를 내고 또 여서를 내었으니 / 生孔生黎鋤
푸른 하늘은 정히 무슨 마음이던고 / 蒼天定何心
맹자를 내고 또 장창을 내었으니 / 生孟生臧倉
예를 보면 지금을 보는 것 같구나 / 視古猶視今
당시에는 의기가 매우 성대하여 / 當時意氣盛
임금과 신하가 서로 화락했는데 / 君臣如鼓琴
적적하기만 해라 천재 아래서는 / 寂寂千載下
누가 다시 남긴 덕음을 들어 볼꼬 / 誰復聞遺音
구름 안개 자욱한 황량한 언덕에 / 荒丘靄煙日
길손의 슬픈 노래가 절로 나오네 / 過者動哀吟

 

[주D-001]여서(黎鋤) : 춘 추 시대 제()나라 대부(大夫)의 이름인데, 공자가 노()나라 대부가 되어 상사(相事)를 섭행(攝行)하고 있을 때, 여서가 제 경공(齊景公)에게 말하기를, “노나라에서 공구(孔丘)를 쓰면 그 형세가 제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하여 공자를 쓰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주D-002]장창(臧倉) :
노 평공(魯平公)의 폐신(嬖臣) 이름인데, 노 평공이 일찍이 맹자(孟子)를 만나기 위해 나가려고 할 때, 장창이 말하기를, “무슨 까닭입니까? 임금께서 몸을 가벼이 하여 먼저 가서 필부(匹夫)를 만나려는 것은 그를 어질다고 여겨서입니까? 예의(禮儀)란 본디 어진 이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맹자의 후상(後喪)이 전상(前喪)보다 훨씬 더 후하였으니, 임금께서는 그를 만나지 마소서.”라고 하여, 끝내 노 평공과 맹자가 서로 만나지 못하였다. 《孟子 梁惠王下》

인희(仁熙) 등 여러 상국(相國)을 받들어 생각하다.

 


적적한 비궁은 인간 세상과 동떨어져서 / 閟宮寂寂隔塵寰
푸른 솔과 시내 소리가 특별히 차가웠지 / 松翠溪聲特地寒
당시의 한림인 나는 지금 병석에 누워 / 當日詞臣今臥病
쇠약한 눈물로 붓끝을 적실 뿐이라네 /
將衰淚滴毫端

탕흉과 결자
를 마침내 어디에 쓸쏜가 / 盪胷決眥終安用
용슬과 타두
도 도리어 여유가 있는 걸 / 容膝打頭還有餘
조석의 전을 드리고 나면 아무 일도 없어 / 奠罷朝昏無一事
외치는 윷 조용한 바둑과 금서가 전부라오 / 陸呼碁默與琴書

부들자리는 소나무 밑이 가장 알맞고 / 蒲薦最宜松下坐
남여는 비 올 때에 타기가 아주 좋은데 / 籃輿恰好雨中乘
자하동 어귀의 건천방 길에서 / 紫霞洞口乾川路
일찍이 한두 승려 찾은 게 기억나누나 / 記得曾尋一兩僧

 

[주D-001]탕흉(盪胷) 결자(決眥) : 두 보(杜甫)의 〈망악(望嶽)〉 시에, “층층 구름 생기는 데에 가슴이 환히 뚫리고, 돌아가는 새를 보는 데서 눈이 확 트이네.[盪胷生層雲 決眥入歸鳥]” 한 데서 온 말로, 가슴이 확 트이는 호쾌한 흥취를 의미한다. 《杜少陵詩集 卷1
[주D-002]용슬(容膝) 타두(打頭) :
용슬은 무릎이나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비좁은 처소를 말하고, 타두는 머리가 천장에 부딪힐 정도로 집이 워낙 협소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