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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牧隱詩藁) 제7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7. 20:34

목은시고(牧隱詩藁) 7

 

 

 ()

 

 

 

무오년 정단(正旦) 이틀 뒤에 짓다.

 


하늘이 목은자로 하여금 / 天敎牧隱子
만년에 궁한 집에 눕게 하였네 /
歲臥窮廬
지위는 삼중대광에 반열하였고 / 位列三重後
나이는 오십여 세에 올랐는데 / 年登五十餘
몸 바친 곳은 사직의 걱정이요 / 許身憂社稷
뼈에 새긴 건 시서의 감상이로다 / 刻骨感詩書
스스로 믿건대 다른 소망은 없고 / 自信無他望
마음이나 금석처럼 가질 뿐일세 / 秉心金石如

광록시에선 궁온을 반사하고 / 光祿頒宮醞
승명전은 직려가 탁 트였네 / 承明敞直廬
특별한 은총은 분수에 부끄럽고 / 異恩慚分外
옛 흥취는 시 읊는 데에 있어라 / 舊興在吟餘
홀로 조정의 반열은 못 나가거니와 / 獨阻朝正列
세밑의 문안 편지 쓰기도 귀찮구려 / 慵修餽歲書
구나
하여 역귀 방어하는 예는 / 驅儺屛障禮
아지 못게라 어떻게 결정할꼬 / 未識定何如

 

[주D-001]구나(驅儺) : 세밑에 역귀(疫鬼)를 몰아내는 의식을 말한다.

우연히 쓰다.

 


봄꽃 가을달은 고상한 놀이에 충분하고 / 春花秋月足高游
오막살이 앞에는 백척의 누각도 있으니 / 瓮牖前頭百尺褸
좋은 회포가 이느냐를 물을 뿐이지 / 但問好懷開與未
인간의 어느 곳엔들 풍류를 못 부리랴 / 人間何處不風流

 

[]를 읊다.

 


차군
은 참으로 속이 텅 빈 물건이라서 / 此君眞箇是虛中
겨울 죽순 눈물 얼룩
이 뜻에 따라 통하기에 /
淚斑隨意通
문득 해마다 취하기를 도모함에 힘입어 / 却被年年圖一醉
산속의 푸른 동이에서도 바람을 일으키네 / 靑盆山裏嘯生風

 

[주D-001]차군(此君) : 대의 별칭이다. ()나라 왕휘지(王徽之)가 읊조리면서 대를 가리켜 말하기를, “어찌 하루라도 차군이 없을 수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겨울 죽순 :
삼국(三國) 시대 오()나라 맹종(孟宗)은 효성이 매우 지극하였는데, 그의 어머니가 죽순을 좋아하므로, 겨울날 대숲에서 죽순이 없음을 슬피 탄식하자, 갑자기 죽순이 나타나서 이것을 가져다 어머니를 봉양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눈물 얼룩 :
() 임금의 두 비()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순 임금이 붕어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피 울어 눈물을 대에 뿌렸더니, 대에 얼룩이 생겨 반죽(斑竹)이 있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4]해마다 …… 힘입어 :
《악양풍토기(岳陽風土記)》에 의하면, 음력 5 13일에 대를 심으면 잘 번식한다 하여, 이날을 죽취일(竹醉日)이라 이름한 데서 온 말이다.

이 좌사(李左使)를 곡()하다.

 


철성 이씨는 문벌도 성하거니와 / 鐵城門閥盛
공이 홀로 조정 의례 독점하였네 / 公獨擅朝儀
비분강개함은 천고에 뛰어나고 / 慷慨傾千古
풍류는 한 시대를 뒤덮었도다 / 風流蓋一時
상서로는 중서성 일에 참예하고 / 尙書參省事
원수로는 군사 기략 판결했었네 / 元帥判戎機
병든 나는 이제 몹시 노쇠하여 / 病客今衰甚
멍하니 앉아 시나 읊을 뿐이네 / 茫然自詠詩

 

한사(漢史)를 읽고 읊다.

 


우리의 도가 미혹됨이 많아서 / 吾道多迷晦
유자 의관은 모두 겉치레였네 / 儒冠摠冶容
자운은 자못 적막하였고 /
子雲殊寂寞
백시는 스스로 중용이었네 /
伯始自中庸
육경 서적을 끝내 어디에 쓸꼬 / 六籍終安用
삼척동자도 끝내 따르지 않는 걸 / 三童竟不從
아득한 천재 아래서 / 悠悠千載下
거듭 공명 와룡을 생각하노라 / 重憶孔明龍

 

[주D-001]자운(子雲) 자못 적막하였고 : 자운은 한()나라 때의 문장가인 양웅(揚雄)의 자인데, 그가 조용히 들어앉아 《태현경(太玄經)》을 초()하면서나는 조용히 나의 《태현경》이나 지킬 뿐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87 揚雄傳》
[주D-002]백시(伯始) 스스로 중용이었네 :
백 시는 후한(後漢) 때의 문신(文臣) 호광(胡廣)의 자이다. 호광은 안제(安帝) 때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된 이후 삼공(三公)의 지위에 이르렀고, 성품이 겸손하고 온공하며 사체(事體)를 잘 알아서, 비록 직신(直臣)의 풍도는 없었으나 임금을 잘 보좌하였으므로, 경사(京師)의 속담에, “만사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백시에게 물으라. 천하의 중용이 호공에게 있다네.[萬事不理問伯始天下中庸有胡公]”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44 胡廣列傳》
[주D-003]공명 와룡(孔明臥龍) :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을 가리킨다. 공명은 그의 자이고, 와룡은 그가 세상에 나오기 이전의 별호이다.

우연히 쓰다. 2(二首)

 


오위가 규와 연해 빛은 다시 가지런한데 /
五緯聯奎色更齊
천진교 다리 위엔 두견새가 울어대네 /
天津橋上杜鵑啼
강남엔 본디 금을 묻은 땅이 있었기에 / 江南自有埋金地
왕기가 공중에 떠서 북녘 변새 나직하구려 / 王氣浮空紫塞低


천하가 통일된 곳에 백발 노인이 있어라 / 南北車書有老蒼
망향대 위에는 또 석양이 비꼈네그려 / 望鄕臺上又斜陽
까닭 없이 천애의 귀밑털만 다 희어졌는데 / 無端白盡天涯鬢
외론 기러기는 누런 구름 속에 아득하구나 / 斷鴈黃雲轉渺茫

 

[주D-001]오위(五緯)가 …… 가지런한데 : 오 위는 수()ㆍ화()ㆍ금()ㆍ목()ㆍ토() 오성(五星)을 말하고, ()는 문()을 주관하는 별 이름인데, 송 태조(宋太祖) 건덕(乾德) 연간에 오성이 규에 모이자, 이를 천하가 태평할 상서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에 의하면, 오성이 빛을 같이하면 천하에 전쟁이 종식된다고 하였다.
[주D-002]천진교(天津橋) …… 울어대네 :
()나라 소옹(邵雍)이 손과 함께 산보(散步)하다가, 낙양(洛陽)의 천진교 위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를 듣고는 몹시 좋지 않은 기색을 지었으므로 손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예전에는 낙양에 두견새가 없었는데, 지금 비로소 이르러 온 것은 까닭이 있다. 앞으로 3년에서 5년 이내에 임금이 남쪽 인사들을 많이 등용하여 오로지 변경(變更)만을 힘쓸 터이니, 천하가 이로부터 일이 많아질 것이다.” 하자, 손이 또 묻기를, “두견새 소리를 듣고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천하가 다스려지려면 지기(地氣)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고, 천하가 어지러워지려면 지기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법인데, 새가 그 기()를 가장 먼저 받기 때문이다.” 한 데서 온 말로, 천하에 큰 변화가 곧 있게 될 것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3]강남(江南)엔 …… 나직하구려 :
전 국 시대 초 위왕(楚威王)이 맨 처음 금릉읍(金陵邑)을 설치했는데,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땅에 왕기(王氣)가 있으므로 금()을 묻어서 그곳을 진압했기 때문에 금릉이라 이름한 것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금릉은 강남에 위치해 있는데, ()나라가 처음 여기에 도읍했었다.

이호연(李浩然)에게 주다.

 


억지로 병든 눈 닦고 한문을 읽으면서 / 强揩病目讀韓文
남은 생애에 자손을 가르치려 하는데 / 擬向殘年敎子孫
그중에 가장 중요한 원도 편이 있어 / 最是一篇原道在
우선 격물로부터 다시 연구를 거듭하노라
/
且從格物更燖溫

 

[주D-001]한문(韓文) : ()나라 때의 유학자요 문장가이던 한유(韓愈)의 문장을 가리킨다.
[주D-002]가장 …… 거듭하노라 :
원 도(原道)는 한유가 지은 문장 이름으로, 그 내용은 대략 노()ㆍ불() 등 이단(異端)을 강력히 배척하고, ()ㆍ순()ㆍ우()ㆍ탕()ㆍ문()ㆍ무()ㆍ주()ㆍ공()ㆍ맹()으로 이어져 온 사도(斯道)를 극력 존숭(尊崇)한 것이다. 이 글에서 특히 《대학장구(大學章句)》 전()에서 말한 팔조목(八條目) 중의 격물(格物)ㆍ치지(致知) 두 조목을 뺀 나머지 여섯 조목을 인용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흥취를 풀다.

 


강산은 아득하고 푸른 하늘은 나직한데 / 江山渺渺碧天低
한가하게 길이 읊노니 해는 또 넘어가네 / 長嘯悠然日又西
광객과 적선은 일찍이 우연하게 만났었고 /
狂客謫仙曾邂逅
만랑과 우수는 스스로 호칭을 만들었도다 /
漫郞迂叟自標題
칠현
의 방달함은 왕실을 기울게 하였고 / 七賢放曠傾王室
삼소의 높은 풍류는 호계에 가득하였네 /
三笑風流滿虎溪
상산에 가서 사호와 함께 있고 싶어라 / 欲向商山參四皓
자지가 깊은 곳에 이슬도 처량했었지 / 紫芝深處露凄迷

 

[주D-001]광객(狂客)과 …… 만났었고 : 광 객은 당 현종(唐玄宗) 때의 고사(高士)로서 사명광객(四明狂客)이라 자호한 하지장(賀知章)을 가리키는데, 이백(李白)이 일찍이 회계(會稽)의 도사(道士) 오균(吳筠)을 따라 장안(長安)에 갔다가 처음으로 하지장을 만났던바, 하지장이 그 자리에서 이백의 글을 보고는 매우 감탄하여 이백을 바로 적선(謫仙)이라 호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만랑(漫郞)과 …… 만들었도다 :
만 랑은 당나라 때의 문장가인 원결(元結)이 일찍이 낭사(浪士)라 자칭했는데 뒤에 그가 벼슬을 하자, 사람들이 말하기를, “방종한 사람은 또한 방종하게 벼슬을 하는가?[浪者亦漫爲官乎]” 하고 그를 만랑이라 호칭한 데서 온 말이다. 우수(迂叟)는 우활한 노인이란 뜻으로,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자칭한 별호이다.
[주D-003]칠현(七賢) :
()나라 때 노장(老莊)의 학문을 숭상한 완적(阮籍)ㆍ혜강(
)ㆍ산도(山濤)ㆍ상수(向秀)ㆍ유령(劉伶)ㆍ왕융(王戎)ㆍ완함(阮咸) 7인이 늘 죽림(竹林)에서 놀았으므로 이들을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일컬은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삼소(三笑)의 …… 가득하였네 :
()나라 때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 있으면서 안거(安居) 기간에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 두 사람을 전송하다가, 서로의 이야기가 너무 즐거웠던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넘어서는 안 될 호계(虎溪)를 건너가 범이 우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세 사람이 함께 대소(大笑)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5]상산(商山)에 …… 처량했었지 :
()나라 말기에 상산의 사호(四皓), 즉 동원공(東園公)ㆍ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선생(
里先生)이 진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남전산(藍田山)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한 고조(漢高祖)의 초빙을 거절하고 자지(紫芝)를 캐 먹으면서 자지가(紫芝歌)를 불렀던 데서 온 말이다.

잊은 것을 기록하다.

 


베갯머리에서 한두 연구를 읊어 이뤘다가 / 枕上哦成一二聯
등불 켜고 쓰려 하자 문득 생각이 안 나네 / 呼燈欲筆却茫然
총명은 절로 세월과 함께 사라져 가건만 / 聰明自與年光逝
흥미는 오히려 도력을 겸해 온전해지누나 / 興味猶兼道力全
양한의 문장은 누가 유독 아름다웠으랴만 / 兩漢文章誰獨美
삼한의 인물은 가장 현인이 많았었다네 / 三韓人物最多賢
애오라지 등불 앞에 늘 염려하는 뜻으로 / 聊將耿耿燈前意
이불 덮고 크게 읊어라 하늘이 쩡쩡 울리게 / 擁被高吟動遠天

 

흥취를 풀다.

 


비황은 소황문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 /
飛黃不逐小黃門
술잔 들고 의당 태백의 글이나 논해야지 /
浮白須論太白文
열두 누대에는 저녁 비가 잠기어 있고 / 十二樓臺藏暮雨
삼천의 풍월
엔 봄 구름이 피어오르네 / 三千風月靄春雲
내 마음은 스스로 못 속임을 자신하거니와 / 寸心自信難欺己
남은 힘은 아직도 임금 다시 섬길 만하네 / 餘力猶堪更事君
온 세상이 다 그런데 누가 안목을 갖추어 / 擧世滔滔誰具眼
우뚝한 들 학이 닭의 무리에 끼여 있을꼬 /
昂昂野鶴在鷄群

 

[주D-001]비황(飛黃)은 …… 것이니 : 비황은 천 년을 산다는 신마(神馬)의 이름인데 천자(天子)의 거가(車駕)에 채워지는 말이고, 소황문(小黃門)은 내시(內侍)를 가리킨 말이다.
[주D-002]술잔 …… 논해야지 :
태백(太白)은 이백(李白)의 자인데,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시에, “어느 때나 한 그릇 술을 마시면서, 거듭 함께 글을 자세히 논해 볼꼬.[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삼천(三千) 풍월(風月) :
()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시에, “한림의 풍월은 삼천 수에 이르고, 이부의 문장은 이백 년이 흘렀네.[翰林風月三千首 吏部文章二百年]” 하였다.

금경사(金經寺)의 일을 추억하다가 느낌이 있어 읊다. 3(三首)

 


조달하여 시기하는 자는 많으나 / 早達人多
작은 충성은 임금만이 알아주네 / 微忠主獨知
병이 깊으니 갑자기 낫기 어렵거니와 / 病深難遽喜
지나친 안일은 되레 위태로워지는 법 / 安甚却成危
경각 사이에 다른 증세 발작하여 / 頃刻生他證
밤낮으로 태의를 알현했노니 / 晨昏謁太醫
길이 생각하매 꿈속에도 놀라라 / 永思猶夢愕
지금에 이를 줄을 어찌 뜻했으랴 / 豈意及今時

병이 들어 세상일은 잊었는데 / 病來忘世事
친지가 있어 내게 물어보네 / 垂問有親知
빙탑엔 더위가 물러가려 하고 / 氷榻暑將去
송첨은 가을을 의심하게 하누나 / 松簷秋可疑
기거는 게으른 하인을 의지하고 / 起居憑倦僕
수요는 훌륭한 의원에게 부치노라 / 壽夭付良醫
우환은 참으로 당하기 어려우니 / 憂患誠難處
후일에도 다시 이것을 생각하리 / 他時更念茲

세상과 어울려 누구와 말을 할꼬 / 與世將誰語
하늘만이 즐겨 나를 알아주리라 / 惟天肯我知
일신 계책은 급히 이루기 어렵고 / 身謀難造次
병세는 의구심이 마냥 드는구려 / 病勢有危疑
근량의 물품은 사재감이 반사하고 / 斤兩分司宰
질병 치료는 전의에서 나오누나 / 刀圭出典醫
주상의 은혜 천지처럼 거대하여 / 主恩天地大
머리 돌려 다시 생각에 잠기네 / 回首更沈思

 

한적한 삶을 스스로 읊다.

 


한적한 삶에 한적한 맛 넉넉한데 / 幽居足幽味
산이 가까워 수목도 층층이로다 / 山近樹層層
한낮엔 처마의 고드름이 떨어지고 / 日午簷氷落
추운 밤엔 벼룻물이 얼어붙네 / 更寒硯水凝
술집에선 통달한 선비를 생각하고 / 酒樓思達士
차 자리에선 고승을 생각하는데 / 茶榻憶高僧
흥취 푸는 일을 시구에 의탁하여 / 遣興憑詩句
붓을 휘둘러 종이 가득 써내리네 / 揮毫滿剡藤

 

익재(益齋) 선생의 송도 팔영(松都八詠)을 읽다.

 


익재 노인의 문장은 월등히 뛰어나서 / 益老文章迥出群
치연 주해
의 형세가 광대하기도 하여라 / 馳烟走海勢沄沄
송도의 팔경을 한데 다 끌어 넣었으니 / 松都八景牢籠盡
이것은 다만 무산의 조각 구름이로다 / 只是巫山一段雲

 

[주D-001]치연 주해(馳烟走海) : 문 사(文思)가 민첩하고 화려함을 뜻한다. 치연은 나는 연기처럼 신속함을 말하고, 주해는 이백(李白)의 시에, “명공이 깊이 연구하여 채필을 휘둘러서, 산을 몰고 바다를 달려 눈앞에 갖다 놓았네.[名公繹思揮彩筆 驅山走海置眼前]”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무산(巫山) 조각 구름 :
본디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형용한 말인데, 전하여 아주 아름다운 사물을 비유한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읊다.

 


새벽에 일어나 얼굴 씻고 머리 빗기 싫어서 / 晨興慵盥櫛
가만히 앉아 홀로 시를 읊노라니 / 兀坐獨吟詩
창에 비친 해는 징처럼 걸려 있고 / 窓日銅鉦掛
처마의 고드름은 옥 젓가락 드리운 듯 / 簷氷玉

정신은 예전같이 뛰어나건만 / 精神依舊秀
신년하례의 옛 약속은 더디어라 / 久要賀年遲
아직도 기쁜 건 병든 몸 무릅쓰고 / 尙喜扶衰病
길이 노래하여 태평을 축복함일세 / 長謠祝盛時

 

새봄

 


맑은 새벽에 시 지으려고 붓에 먹 찍어 / 淸晨濡翰欲裁詩
길게 읊조리면서 고치고 또다시 쓰노니 / 長嘯微吟改又爲
기발한 시구 나옴을 힘으로 한 것 아니건만 / 警句忽生非力致
그윽한 회포 유유자적함은 그 누가 알런고 / 幽懷自適有誰知
갠 하늘 밝은 해는 백성들이 기뻐하고요 / 天晴白日閭閻喜
화기 넘친 푸른 봄엔 물상들이 변화하누나 / 氣盎靑春物像移
모름지기 새 가락을 악부에 첨가해야겠네 / 須把新聲添樂府
우리 동방이 천고 이래 태평한 시대인 걸 / 海東千古太平時

저자엔 신년하례의 수레들이 떠들썩한데 / 賀歲輪蹄鬧闠

궁벽한 집은 적적하여 꿈이 막 쇠잔하여라 / 幽居寂寂夢初殘
새봄이라 강산이 화려해짐을 문득 깨닫고 / 新春 覺江山麗
늘그막엔 유독 세월이 한가함을 알겠구나 / 老境偏知日月閑
상판과 조복엔 먼지가 두어 자나 끼었고 / 象版朝衫塵數尺
약 화로와 책 시렁은 세 칸 집에 갖추었네 / 藥爐書架屋三間
앓고 나서도 미친 흥은 완전히 안 사라져 / 病餘狂興全消未
좋은 시구 이룬 때는 희색이 만면하다오 / 好句圓時喜滿顔

 

느낌이 있어 읊다.

 


늦겨울에 찬 꽃술 터뜨리는 것은 / 窮冬吐冷蕊
오직 아주 청결한 매화뿐이련만 / 淸絶唯梅花
매화도 또한 세속 티를 벗지 못해 / 梅花亦俗態
가난한 집엔 오려고 하질 않누나 / 不肯來貧家
이는 도리어 주인이 사나워서 / 却恐主人惡
빙설의 꽃송이 더럽힐까 염려함일세 /
彼氷雪葩
주인이 자못 부끄러움 알았으니 / 主人頗知愧
힘써 생각에 부정함을 없애야겠네 / 勉矣思無邪
부정함을 없앨 곳이 어느 곳이뇨 / 無邪定何處
비낀 그림자에 향기 부동함일세 /
香動影橫斜

 

[주D-001]비낀 …… 부동함일세 : ()나라 처사(處士) 임포(林逋)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아래 부동하네.[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데서 온 말이다.

밤에 읊다. 3(三首)

 


서적과 향불 화로 써늘하기 중 같아라 / 經卷香爐冷似僧
푸른 등잔 벽 중턱에 얼음이 생기려 하네 / 靑燈半壁欲生氷
그 누가 알리요 한 점 티끌도 없는 곳에 / 誰知一點無塵處
분명히 서로 주고받은 공증이 있었음을 /
授受分明有孔曾

나는 본디 생활 대부분이 죽반승과 같아서 / 我是多生粥飯僧
괴로운 마음 깨끗한 절조가 빙벽을 겸했으니 / 苦心淸節蘗兼氷
시 읊고 이슬 마심은 응당 누됨이 없거니와 / 吟風吸露應無累
봉 요리 용 요리 먹는 건 일찍이 없었다네 / 炰鳳烹龍却未曾

배움 끊고 아무 없는 하나의
/ 絶學無爲一箇僧
무슨 여력으로 차고 더움을 분변하려 할쏜가 / 肯將餘力辨湯氷
공부는 도리어 부들자리 위에 있을 뿐이요 / 功夫却在蒲團上
만수 천산은 내가 진작부터 기억한 바라네 / 萬水千山記我曾

 

[주D-001]분명히 …… 있었음을 : 공증(孔曾)은 공자(孔子)와 증자(曾子)를 합칭한 말로, 공자가 증자에게 도통(道統)을 전했음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2]죽반승(粥飯僧) :
죽을 먹고 지내는 중이란 뜻으로, 전하여 무능한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주D-003]빙벽(氷蘗) :
차가운 얼음을 마시고 매우 쓴 황벽나무를 먹는다는 뜻으로, 대단히 청고(淸苦)한 생활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4]배움 …… :
()나라 선승(禪僧) 영가 현각(永嘉玄覺)의 〈증도가(證道歌)〉에, “그대는 못 보았나. 배움 끊고 할 일 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안 없애고 진도 구하지 않는다네. 이름 없는 실성이 바로 불성이요, 허깨비 같은 이 몸이 바로 법신이라네.[絶學無爲閑道人不除妄想不求眞 無名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 한 데서 온 말이다.

고의(古意) 3()이니, 장마다 4()이다.

 


닭이 이미 울어서 동방이 밝아졌으니 / 雞旣鳴矣東方明
어서 떨치고 나가 오리와 기러길 잡아야지 / 將翔弋鳧鴈

누구를 생각하느뇨 저기 인이로세 /
云誰之思彼美人
속히 데려오려면 얼음녹기 전이라야지 /
其歸氷未泮

화락한 기러기는 해뜨는 때가 아침이요 /
雝雝鴈旭日始旦
흠뻑 내린 이슬은 해가 아니면 말리리 /
湛湛露匪陽不晞
경각인들 늦출 있으랴 이미 급해졌으니 / 其虛其徐旣亟只
나를 좋아한 이와 함께 잡고 떠나련다 / 惠而好我携手歸


화락한 물새 쌍은 하수 가에 있도다 /
關關雎鳩在河洲
수레 타고 나가 놀아서 근심 풀어볼까 /
駕言出游寫我憂
즐거우신 군자님은 신명께 복을 받으니 /
愷悌君子神勞矣
만 백성의 소망이 주나라로 돌아감일세 / 萬民所望歸于周

 

[주D-001]닭이 …… 잡아야지 : 《시 경(詩經)》 정풍(鄭風) 여왈계명(女曰鷄鳴), “여자가 닭이 울었다 하거늘, 남자는 아침이 아직 어둡다 하네. 여자가 말하길, ‘그대 일어나 밤을 보라. 샛별이 한창 반짝이고 있으니, 어서 떨치고 나가서 오리와 기러기를 잡을지어다.’[女曰鷄鳴 士曰昧旦 子興視夜 明星有爛 將將翔 弋鳧與雁]”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어진 부부가 혹시라도 안일함에 빠져서 일을 폐하게 될까 서로 경계하는 말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2]누구를 …… 미인이로세 :
《시 경》 패풍(
) 간혜(簡兮), “누구를 생각하느뇨, 서방의 미인이로다. 저 미인은 바로 서방 사람이로다.[云誰之思 西方美人 彼美人兮 西方之人兮]” 한 데서 온 말인데, 서방의 미인이란 바로 서주(西周)의 성왕(聖王)을 가리키며, 이 시는 현자(賢者)가 쇠세(衰世)에서 뜻을 얻지 못하여 서주의 융성하던 시대를 생각하고 노래한 것이다.
[주D-003]혹 …… 전이라야지 :
《시경》 패풍 포유고엽(匏有苦葉), “화락하게 우는 기러기는, 해뜨는 때가 비로소 아침이니라. 남자가 아내를 데려오려면, 얼음이 녹기 전에 해야 하리라.[雝雝鳴雁 旭日始旦 士如歸妻 迨氷未泮]”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화락한 …… 아침이요 :
《시경》 패풍 포유고엽(匏有苦葉), “화락하게 우는 기러기는, 해뜨는 때가 비로소 아침이니라. 남자가 아내를 데려오려면, 얼음이 녹기 전에 해야 하리라.[雝雝鳴雁 旭日始旦 士如歸妻 迨氷未泮]”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흠뻑 …… 말리지 :
《시 경》 소아(小雅) 잠로(湛露), “흠뻑 내린 이슬은 태양이 아니면 못 말리리로다. 밤새도록 편히 마시어라, 취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도다.[湛湛露斯 匪陽不晞厭厭夜飮 不醉無歸]”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천자(天子)가 제후(諸侯)들에게 연회를 베풀었을 때 부른 노래이다.
[주D-006]경각인들 …… 떠나련다 :
《시 경》 패풍 북풍(北風), “북풍이 차갑게 불어오고, 눈이 성하게 내리도다. 나를 좋아한 이와 더불어 손 잡고 함께 떠나리라. 행여 늦출 수 있으랴. 이미 급해졌도다.[北風其涼 雨雪其
惠而好我 携手同行 其虛其邪 旣亟只且]”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국가에 위란(危亂)이 곧 이르게 되어 기상이 매우 참담해지므로, 좋아하는 사람끼리 서로 손 잡고 급히 피란할 것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7]화락한 …… 있도다 :
《시경》의 수장(首章)인 관저(關雎)에서 나온 말인데, 이 시는 금슬 좋은 물새 한 쌍의 모습을 끌어다가, 주 문왕(周文王)과 그 후비(后妃)의 성덕(盛德)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8]수레 …… 풀어볼까 :
이 구절은 《시경》 패풍 천수(泉水)와 위풍(衛風) 죽간(竹竿)에 똑같이 나오는데, 그 내용은 다른 제후국에 시집간 위()나라의 여인이 부모가 세상을 떠나 다시는 고국에 갈 수 없게 된 것을 슬퍼하여 부른 노래이다.
[주D-009]즐거우신 …… 받으니 :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서 나온 말인데, 이 시는 문왕(文王)의 성덕(盛德)을 노래한 것이다.

글을 읽다.

 


글 읽음은 산을 유람하는 것 같아 / 讀書如游山
깊고 얕음을 모두 스스로 얻나니 / 深淺皆自得
맑은 바람은 공허한 데서 불어오고 / 淸風來

우박은 어둠침침한 데서 쏟아지네 / 飛雹動陰黑
검은 용은 깊은 못에 서려 있고 / 玄虯蟠重淵
봉황은 팔방 끝에서 나는도다 / 丹鳳翔八極

정미에 관한 열여섯 글자
/ 精微十六字
분명하게 가슴속에 들었거니와 / 的的在胸憶
그 밖에 수많은 서책을 읽어서 / 輔以五車書
박약
으로 하늘의 법칙 보았노니 / 博約見天則
왕자의 교화는 오래도록 적막하고 / 王風久蕭索
대도엔 가시나무가 가려 있어라 / 大道翳荊棘
누가 알리요 이 빈한한 띳집에서 / 誰知蓬窓底
책을 덮고 길이 탄식하는 줄을 / 掩卷長太息

 

[주D-001]검은 …… 나는도다 : ()나라 가의(賈誼)의 〈조굴원부(吊屈原賦)〉에, “깊은 못의 신룡이여, 깊이 숨어서 스스로 보전하도다.……봉황은 천 길 높이 날아서, 빛난 덕을 보고 내려오도다.[襲九淵之神龍兮 沕淵潛以自珍……鳳凰翔于千仞兮覽德輝而下之]” 한 데서 온 말로, 현자(賢者)는 태평성대에만 세상에 나가고, 어지러운 시대에는 깊이 은거하여 자중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주D-002]정미(精微)에 …… 글자 :
() 임금이 우() 임금에게 선위(禪位)할 때에 명한 말이다. () 임금이 우() 임금에게 이르기를,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미세하니, 오직 정밀하고 전일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박약(博約) :
학문을 널리 배워서 사리를 구명하고, 예의로써 이것을 실천하여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회포를 풀다. 2(二首)

 


옛 생각에 깊이 잠겨 홀로 거문고를 타노니 / 古意沈沈獨撫琴
해산엔 아무 일 없고 지경 더욱 그윽해라 / 海山無事境彌深
쌍부와 승안이 어찌 많고 적음이 되랴 /
雙鳧乘鴈寧多少
별학과 고란
은 절로 고금이 똑같은 걸 / 別鶴孤鸞自古今
가장 기쁨은 흰 구름이 곡구에 쌓인 건데 / 最喜白雲埋谷口
다시 천심에 이른 밝은 달을 맞았네그려 / 更邀明月到天心
삼한의 문장이 오늘날에 한창 성하니 / 三韓近日文章盛
그 누가 중조의 늙은 한림을 세어주리요 / 誰數中朝老翰林

역양의 오동 삼척에 다섯 거문고
/ 嶧陽三尺五絃琴
옛 곡조와 새 가락에 뜻이 절로 깊은데 / 舊曲新聲意自深
그중에도 유독 고산곡과 유수곡만이 / 最是高山與流水
곧장 천고 이래 절창으로 알리어졌네 / 直從往古亘來今
아득한 모래 먼지는 두 귀밑에 불어오고 / 沙塵漠漠吹雙鬢
광대한 하늘과 땅은 나와 한마음이로다 / 天地茫茫共一心
두릉의 좋은 시어 유독 사랑한 것은 / 獨愛杜陵詩語好
초승달이 초당의 바람 숲에 떨어진 걸세 / 草堂纖月落風林

 

[주D-001]쌍부(雙鳧)와 …… 되랴 : 태 평 시대에는 국가에 현신(賢臣)이 많아도 많은 줄을 모르고, 없어도 없는 줄을 모른다는 뜻이다. 승안(乘鴈)은 네 마리의 기러기를 가리키는데, 양웅(揚雄)의 〈해조(解嘲)〉에, “아침에 권력 잡으면 경상(卿相)이 되고, 저녁에 권세 잃으면 필부(匹夫)가 되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강호(江湖)의 언덕이나 발해(渤海)의 섬에는 네 마리의 기러기가 모여도 많은 게 되지 않고, 한 쌍의 오리가 날아가 버려도 적은 게 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별학(別鶴) 고란(孤鸞) :
부부(夫婦)가 서로 헤어진 것을 뜻한다. 도연명(陶淵明)의 〈의고(擬古)〉 시에, “윗줄은 경별학이요, 아랫줄은 조고란이로다.[上絃驚別鶴 下絃操孤鸞]” 하였다.
[주D-003]역양(嶧陽)의 …… 거문고 :
역양은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산 이름인데, 오동나무가 여기에서 생산되었고, () 임금이 맨 처음 오동나무로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4]고산곡(高山曲) 유수곡(流水曲) :
옛 날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탔고,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는데, 백아가 뜻을 고산(高山)에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다, 험준함이 마치 태산(泰山) 같도다.” 하였고, 백아가 또 뜻을 유수(流水)에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다, 광대함이 마치 강하(江河)와 같도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내 …… 떨어진 걸세 :
두릉(杜陵)은 호가 소릉(少陵)인 두보(杜甫)를 가리키는데, 두보의 〈야연좌씨장(夜宴左氏莊)〉 시에, “바람 부는 숲에는 초승달이 떨어지고, 이슬에 옷 적시며 거문고를 타누나.[風林纖月落 衣露淨琴張]” 한 데서 온 말이다.

인일(人日)

 


새해의 초이레를 만나서 / 改歲臨初七
반쯤 흐리다 다시 반쯤 갰는데 / 半陰還半晴

삼양이 처음으로 발달하니 / 三陽初發達
만물이 생성으로 향하리라 / 萬物向生成
대궐문엔 온갖 상서가 모여들고 / 閶闔休祥集
조관들은 예의가 정성스럽네 / 衣冠禮數精
태창에선 반록하느라 떠들썩하고 / 太倉頒祿鬧
향안 앞엔 사전들을 바쳐오누나 / 香案謝牋呈
내부에는 밝은 햇빛이 반짝이고 / 內府金柱耀
성상의 낯은 이마가 환히 빛나네 / 天顔日角明
시위소찬은 스스로 부끄러우나 / 素飧臣自汗
축수의 마음은 남의 갑절이라오 / 祝壽倍常情

 

[주D-001]새해의 …… 갰는데 : 동 방삭(東方朔)의 〈점서(占書)〉에, “초하루에는 닭[]을 점치고……초이레에는 사람[]을 점치고, 초여드레에는 곡식[]을 점치는데, 날이 모두 청명 온화(晴明溫和)하면 번식 안태(蕃息安泰)할 징후이고, 음한 참렬(陰寒慘烈)하면 질병 쇠모(疾病衰耗)의 징후이다.” 하였다.

스스로 짓다.

 


높은 작급은 삼중대광 반열이요 / 峻級三重後
나이는 오십 남짓이 되었는데 / 殘生五十餘
재주는 얕아 준걸들에 부끄러우나 / 才微慚俊傑
큰 은총은 오활한 내게 미치었네 / 渥異及迂疎
단혈에선 봉황 새끼가 날고 / 丹穴飛雛鳳
빙지에선 잉어가 뛰어나오네 / 氷池躍鯉魚
멀리 예악 일으킴을 생각하며 / 緬懷興禮樂
길이 시서의 강론을 감개하노라 / 永慨講詩書
아침 햇살은 남은 눈에 빛나고 / 曙日輝殘雪
찬 연기는 먼 언덕에 일어나네 / 寒烟動遠墟
한빈한 생활은 자못 적막하지만 / 蓬窓殊寂寞
법도 있는 걸음은 아직 느슨하다오 / 矩步尙虛徐
산군에는 묵은 밭이 남아돌고 / 山郡餘荒畝
강촌에는 낡은 집이 무너지누나 / 江村倒弊廬
마음에 맞으니 이의나 노래하고 / 甘心歌已矣
뜻을 끊어라 귀여나 읊어야겠네 / 絶意賦歸歟
가장 다행함은 천명을 알아서 / 最幸知天命
보아 오매 도리어 자약함이로다 / 看來却自如
붓 빼들고 흥취 풀려고 하는데 / 抽毫聊遣興
연적의 두꺼비가 꽁꽁 얼었네그려 / 硯滴凍蟾

 

[주D-001]이의(已矣) : 절 망하는 말로서, 즉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봉황이 오지 않고 하수에서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나는 그만인가 보다.[鳳鳥不至河不出圖 吾已矣夫]” 한 것과그만이로다. 나는 여색을 좋아하듯 덕 좋아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已矣乎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한 것 등의 글에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衛靈公》
[주D-002]귀여(歸歟) :
공 자가 진()나라에 있으면서 도()가 끝내 행해지지 않음을 탄식하여 이르기를, “돌아가야겠다. 돌아가야겠다.[歸與歸與]”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후세에는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論語 公冶長》
[주D-003]천명(天命) 알아서 :
공자가 이르기를, “50세에 천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 하였으므로, 여기서는 곧 50세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論語 爲政》

아침에 읊다. 4(四首)

 


나이 오십여 세가 되고 보니 / 行年餘五十
귀밑털이 점차 희끗희끗해지는데 / 鬢髮漸星星
지붕 모서리엔 찬 소나무가 푸르고 / 屋角寒松碧
담장 모퉁이엔 늙은 냉이가 푸르러라 /
老薺靑
먼지는 서책 속에 끼어 있고 / 素塵棲竹簡
눈 녹인 물은 다경에 적혀 있네 / 雪水紀茶經
맑은 흥취가 아침에 더하여라 / 淸興朝來甚
꽃병에 매화꽃이 비치는구려 / 梅花照膽甁

입으로 쌀은 씹어먹을 만하니 / 長腰堪咀嚼
주둥이 되는 괜찮거니와 /
雞口亦容與
구멍은 되지 말아야지 /
咄咄無牛後
쥐가 남긴 묵은 쌀도 좋으리라 / 陳陳或鼠餘

평생에 그냥 먹고 마시기만 하니 / 平生徒哺啜
세상일이 참으로 한탄스러워라 / 世事足欷歔
마음속의 번민이 가장 두려우니 / 只怕心中悶
차라리 뱃속을 텅 비게 해야겠네 / 寧敎腹裏虛

시골 중은 참으로 허탕하여 / 野衲眞虛蕩
일미선
에 정진하고 있는데 / 參來一味禪
시를 지어달라고 자주 찾아와서 / 索詩頻叩戶
지팡이 놓고 문득 자리에 오르네 / 釋杖便登筵
권선하는 글은 천 권이나 되고 / 勸善文千卷
공을 표창한 기문도 두어 편인데 / 旌功記數篇
붓끝에 남은 힘이 있어 / 筆端餘力在
분복이 인천에 가득하겠네 / 分福滿人天

고상한 회포를 어디에 부칠꼬 / 雅懷何所寄
높이 올라 봉처럼 훨훨 날아볼까 / 高逝鳳飄飄
당 뒤엔 얼음이 아직 쌓였는데 / 堂背氷猶疊
산 이마엔 눈이 이미 녹았구나 / 山顔雪已消
연래에 조롱은 스스로 해명하나 / 年來嘲自解
늙어 가매 은자는 누가 불러줄꼬 / 老去隱誰招
이제 중흥송을 초하고자 하여 / 欲草重興頌
조정에서 정히 민요를 채집하네 / 朝廷政採謠

 

[주D-001]입으로 …… 좋으리라 : 닭은 작아도 그 입은 쌀을 주워 먹지만, 소는 아무리 커도 그 똥구멍은 똥만 나오므로, 강대한 사람의 종속(從屬)이 되느니보다 차라리 작은 두목(頭目)이 되는 게 낫다는 것을 뜻한 말이다.
[주D-002]일미선(一味禪) :
문자나 언어를 통하지 않고 갑자기 도를 깨닫는 선()을 가리킨다.
[주D-003]조롱은 스스로 해명하나 :
한 애제(漢哀帝) 때 양웅(揚雄)이 곤궁하게 들어앉아서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하는데, 어떤 사람이 양웅에게 도()가 아직 깊지 못하다고 조롱하자, 양웅이 〈해조(解嘲) 1편을 지어 그것을 해명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은자(隱者) 누가 불러줄꼬 :
()나라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박식하고 성품이 고상하여 천하의 숨은 현사(賢士)들을 불러들였던 데서 온 말이다.

흥취를 풀다. 2(二首)

 


연복사의 종소리 아직 울리기도 전에 / 演福鐘聲尙未鳴
이불 끼고 꿇어앉아 추운 밤을 지내노니 / 擁衾危坐度寒更
이 한 몸은 병들어 천지간에 늙어가는데 / 一身衰病乾坤老
삼라만상 위에 해와 달은 밝기만 하네 / 萬象森羅日月明
저구가 어찌 조나라 보존할 바꾸리요 /
杵臼肯移存趙志
화봉은 임금 축수하는 마음만 품었네 /
華封徒抱祝堯情
지루하여라 고금의 끝없는 천하만사가 / 悠悠今古無窮事
시 짓는 창자에 불평심을 일으키누나 / 惹起詩腸作不平

이젠 늙어서 젊어 장성한 때가 아니거니 / 老大殊非少壯時
천명 알아 즐기거니 무얼 다시 의심하랴 / 樂天知命復奚疑
땅은 동편에 치우치니 봄추위가 심하고 / 地偏東極春寒甚
집은 남산에 가까우니 저녁 경치가 좋네 / 家近南山
景宜
병든 몸은 소생하려고 좋은 약을 생각하고 / 病骨欲蘇思妙劑
쇠한 낯에 기쁨 있는 건 새 시를 얻음일세 / 衰顔有喜得新詩
게을리 서찰 정리하여 재상부에 올리어라 / 懶修書札投黃閣
나처럼 데면데면한 사람이 다시 또 누굴꼬 / 似我迂疎更是誰

 

[주D-001]저구(杵臼)가 …… 바꾸리요 : 춘 추 시대 진 경공(晉景公)의 영신(佞臣) 도안가(屠岸賈)가 세경(世卿)인 조삭(趙朔)의 온 가족을 다 죽이고, 또 조씨(趙氏)의 유복 고아(遺腹孤兒)까지 찾으려고 하자, 조씨의 문객(門客)인 공손저구(公孫杵臼)가 다른 아이를 조씨의 아이라고 속여 자신과 그 아이는 함께 살해당하고 조씨의 고아를 끝내 보전하였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화봉(華封)은 …… 품었네 :
() 임금이 화() 땅에 갔을 때 화 땅의 봉인(封人)이 말하기를, “성인(聖人)께 축수하겠습니다. 성인께서는 수()하고 부()하고 다남자(多男子)하소서.”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술을 가지고 찾아 준 한평재(韓平齋)에게 사례하다.

 


상당군이 조정에 돌아오던 날 / 上黨還朝日
동쪽 이웃은 병들어 누웠었네 / 東鄰臥病餘
좋은 술은 푸른 거품을 기울이고 / 芳樽傾綠蟻
좋은 안주는 청어를 구웠구려 / 鮮食炙靑魚
부침개는 끊어 놓은 기름 같고요 / 麪裹脂如截
쟁반엔 기록할 만한 감미가 쌓였네 / 盤堆味可書
해장술로 거나하게 취하고 나니 / 頹然成卯困
흥취 있어 그윽한 삶이 쾌족하구나 / 有興愜幽居

 

즉사(卽事)

 


명함 들고 분분하게 서로 찾건만 / 華刺紛相謁
사립문은 고요하여 응답 없어라 / 柴扉靜不應
음지쪽 절벽엔 얼음이 녹아가고 / 陰崖氷欲泮
동녘에선 해가 막 솟아오르는데 / 暘谷日初昇
나는 농부를 불러 풍년을 묻고 / 問歲呼田叟
들 중은 나에게 시를 요구하네 / 求詩有野僧
옆 마을은 강변 길이 미끄러웠지 / 傍村江路滑
내 일찍이 눈 밟은 걸 기억하노라 / 踏雪記吾曾

 

느낌이 있어 읊다.

 


유유한 고금의 일들이 한바탕 웃음이로다 / 今古悠悠一笑同
용과 범이 다 지쳐라 영웅이 그 몇이던고 / 龍疲虎困幾英雄
육조 시대의 문물은 금을 묻은 뒤였고 /
六朝文物埋金後
만 리라 황제 깃발은 파죽의 형세였도다 / 萬里旌旗破竹中
띳집이 산 마주함은 별난 경계 아니거니와 / 茅屋對山非異境
구름 돛이 바다 건넘은 장풍이 있어서라네 / 雲帆濟海有長風
예로부터 출처는 하늘 뜻에 관계된 것이라 / 由來出處關天意
쭈그려 앉아 읊노라니 두 뺨이 붉어지누나 / 抱膝高吟兩頰紅

 

[주D-001]육조(六朝) …… 뒤였고 : 전국 시대 초 위왕(楚威王)이 금릉(金陵)에 왕기(王氣)가 있다는 전설(傳說)을 듣고 처음으로 금릉에 금()을 묻어 왕기를 진압했다고 하는데, 그 후 육조(六朝) 시대 임금들이 모두 금릉에 도읍을 정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스스로 짓다.

 


소년 시절엔 세상 의혹 떨치었고 / 少年祛世惑
만년에 와선 심령을 기르노라 /
歲養心靈
동각에는 행마를 설치했었고 / 東閣施行馬
서창에선 취형한 게 기억나네 / 西窓記聚螢
시 읊느라 머리는 다 희었으나 / 吟詩頭盡白
단약 먹어서 뼈는 응당 푸르리 / 煉藥骨應靑
점차로 서하의 나그네와 같이 / 漸似棲霞客
향 사르고 성령이나 빌어야겠네 / 焚香祝聖齡

 

[주D-001]행마(行馬) : 귀인(貴人)의 집이나 관서(官署)의 문 앞에 설치하는, 말을 매어두는 제구를 이르는데, 사람의 출입을 금하는 데도 이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주D-002]취형(聚螢) :
동진(東晉) 때 차윤(車胤)이 집이 가난하여 기름이 없었으므로, 주머니 속에 개똥벌레를 많이 잡아 넣어서 그 반딧불로 책을 비추어 공부했던 데서 온 말로, 열심히 공부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3]뼈는 응당 푸르리 :
옛날 장자문(藏子文)이란 사람이 주색(酒色)을 아주 좋아하여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뼈는 푸르니, 죽으면 의당 신()이 될 것이다.’ 하였으므로, 후세에 선골(仙骨)을 가리켜 청골(靑骨)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서하(棲霞) 나그네 :
서하는 산 이름으로, 옛날 은사(隱士)가 수도(修道)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밖의 내용은 자세하지 않다.

정찬성전(鄭贊成傳) 후미에 쓰다.

 


사월에 과거 급제자 발표하고 / 四月開金牓
돌아간 시기는 유월 초승이었네 / 歸期季夏初
문생들은 총재에게 줄을 대었고 / 門生聯

외손자는 중서성의 으뜸이로다 / 宅相冠中書
선을 심은 집은 어찌 그리 너른고 / 種善軒何豁
향을 사른 골짝은 절로 비었네 /
燒香谷自虛
모두 좋아하는 건 눈 오는 날에 / 摠憐花六出
채소에 정육 곁들여 먹은 거로세 / 鼎肉照盤蔬

 

[주D-001]향을 …… 비었네 : 《노자(老子) 41(), “가장 큰 덕은 골짜기와 같다.[上德若谷]” 한 데서 온 말로, 마음을 모두 비움으로써 가슴이 탁 트이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정 월 12일에 비가 내리자, 갑자기외를 심고픈 그윽한 흥취 동해라. 작은 남새밭이 강성에 있다오.[種瓜幽興動 小圃在江城]”라는 시구가 기억난다. 이 시는 내가 성중(省中)에 입직(入直)했을 때 지은 것인데, 그 후로 지금 24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껏 그 소회(素懷)를 이루지 못했으므로, 감탄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여 시 한 편을 읊조려서 애오라지 스스로 위로하는 바이다.

 


진강의 봄물은 포도처럼 푸르고 / 鎭江春水蒲萄綠
강가의 기름진 땅은 강굽이에 걸쳐 있어라 / 江上腴田枕江曲
띳집 처마 그림자는 강물에 환히 비치고 / 茅簷影在江水中
지붕 위의 푸른 산은 깎아지른 옥 같은데 / 屋上靑山削如玉
부슬부슬 가랑비에 앞마을이 어둑할 때면 / 濛濛細雨暗前村
농부들의 도롱이가 흔들흔들 춤을 춘다오 / 農叟披
舞獨速
창문 열고 글 읽으면 뜻이 마냥 호연한데 /
讀書意浩然
어찌 하늘 밖의 기러기 고니를 바라볼쏜가 /
天外何曾望鴻鵠
우연히 한 번 일어나 삼십 년이 지나고 보니 / 偶然一起三十年
두 귀밑에 세속 먼지만 만 곡이나 쌓이었네 / 雙鬢塵埃深萬斛
대둔산은 꿈속에도 파랗게 보이거니와 / 大芚之山夢裏靑
오성산 구름은 바라보는 가운데 하얗구려 / 五聖之雲望中白
그 옛날 술에 취해 야은옹과 서로 이끌고 / 憶曾醉携野隱翁
뱃전 치며 노래할 땐 절벽이 찢긴 듯했었지 / 扣舷放歌崖石裂
인생이란 예로부터 한순간일 뿐이기에 / 人生古今一瞬爾
새로운 시 홀로 읊어 큰 시름 위로하노라 / 獨詠新詩慰愁絶

 

[주D-001]어찌 …… 바라볼쏜가 : 학 문에 전심(專心)함을 뜻한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혁추(奕秋)가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칠 경우, 한 사람은 전심치지(專心致志)하여 혁추의 말만을 듣고, 또 한 사람은 혁추의 말을 듣기는 하되 한편으로는기러기나 고니가 날아오거든 화살을 쏘아서 잡아야겠다.[鴻鵠至 思援弓而射之]”는 생각을 한다면, 아무리 함께 똑같이 배우더라도 결과는 서로 같을 수가 없다.”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告子上》
[주D-002]야은옹(夜隱翁) :
호가 야은인 고려 말기의 대신(大臣) 전녹생(田祿生)을 가리킨다.

()를 읽으면서 흥취를 풀다.

 


목은이 노쇠하여 잠이 잘 오지 않아서 / 牧隱衰老睡不着
등불 켜고 시 읊어 학의 머리 기울이노니 / 呼燈哦詩側頭鶴
애써 생각하여 곧장 깊은 뜻을 찾으려 하나 / 苦思直欲搜渺冥
또 후일에 주석 내기 번거로울까 염려로다 / 又恐他年煩注脚
나는 차마 노구가 알아듣겐 없으니 / 不忍便敎老嫗解
이 때문에 백속이란 비평을 더하게 된다오 / 爲是譏評增白俗
예로부터 시 짓는 도리 또한 쉽지 않은데 / 從來詩道亦不易
걸핏하면 장편 시가 축을 이룬 게 부끄럽네 / 却愧長篇動成軸
공자가 시를 산삭한 게 어찌 까닭이 없으랴 / 夫子刪詩豈無謂
한마디로 삼백 덮는단 명백하여라 /
明明一言蓋三百
뜻을 말함은 많은 데 있지 않음을 알거니와 / 卽知言志不在多
활을 쏘는 덴 정곡 맞히는 걸 기해야 하리 / 舍矢期於中正鵠
평생에 학식 거칠고 도의 뿌리 천박하여 / 平生鹵葬道根淺
게을리 동풍 쫓아 시편이나 읊조릴 뿐이네 / 懶逐東風逞紅綠

 

[주D-001]학(鶴) 머리 기울이노니 : 목을 한쪽으로 길게 기울여서 시를 읊조리는 것을 비유한 말로, 소식(蘇軾)의 시에, “그대 와서 시험 삼아 시를 읊어 보게나. 정히 학의 머리 기울인 모양이라네.[君來試吟詠 定作鶴頭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노구(老嫗)가 …… 없으니 :
()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시를 지으면 반드시 먼저 노구에게 들어 보게 하여 노구가 알아듣지 못하면 다시 지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노구가 알아듣게 한다는 것은 곧 시문(詩文)의 뜻이 평이하고 명백함을 의미한다.
[주D-003]백속(白俗) :
원진(元稹)의 시는 경조하고 백거이의 시는 속되다.[元輕白俗]”라는 평어(評語)에서 온 말이다.
[주D-004]한마디로 …… 명백하여라 :
공자가 이르기를, “《시경》 삼백 편을 한마디 말로 덮을 수 있으니,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말이다.[詩三百一言以蔽之 曰思無邪]”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흥취를 풀다.

 


읊조림은 흥취를 푸는 것이지만 / 吟哦雖遣興
휼간
은 도리어 시에 관계된다오 / 譎諫却關詩
다만 심간이 끊어질까 두려울망정 / 祇怕心肝絶
어찌 귀밑털 희어짐을 걱정하리요 / 寧憂鬢髮衰
강산엔 봄이 한창 굼틀거리고 / 江山春欲動
문항엔 해가 처음 길어지니 / 門巷日初遲
그윽이 중화송을 짓고 싶어라 / 擬賦中和頌
살아서 낙직의 때를 만났네그려 / 生逢樂職時

 

[주D-001]휼간(譎諫) : 직 간(直諫)하지 않고 완곡하게 영가(詠歌)로써 풍자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시경》 대서(大序), “윗사람은 풍으로 아랫사람을 교화하고, 아랫사람은 풍으로 윗사람을 풍자하되, 비유하는 글을 사용하여 완곡하게 규간하므로, 말하는 이는 죄가 없고, 듣는 이는 경계할 수 있기 때문에 풍이라 한다.[上以風化下下以風刺上 主文而譎諫 言之者無罪 聞之者足以戒 故曰風]” 하였다.
[주D-002]중화송(中和頌) :
()나라 때 익주 자사(益州刺史) 왕양(王襄)이 백성들에게 풍화(風化)를 선포하기 위하여 왕포(王褒)로 하여금 중화(中和)ㆍ낙직(樂職)ㆍ선포(宣布) 등의 시를 짓게 하고, 이를 녹명(鹿鳴) 시의 가락에 맞추어 노래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여기에 낙직이란 직수(職守)를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자안(子安)을 생각하다.

 


방축당한 지 삼 년의 자취요 / 放逐三年跡
신음한 지 육 년의 몸이로다 / 呻吟六載軀
강산은 시 읊는 걸 공하게 하고 / 江山工賦詠
약물은 공연히 몸을 버티게 하네 /
藥物漫枝梧
이합은 모두 하늘이 정한 것인데 / 離合皆天定
행장은 스스로 즐기기 충분하여라 / 行藏足自娛
유유한 방촌 한 마음은 / 悠悠方寸地
다 같이 하나의 요순 시대라네 / 共是一唐虞

 

[주C-001]자안(子安) : 고려 말기의 문신(文臣) 이숭인(李崇仁)의 자이다.
[주D-001]약물은 …… 하네 :
()나라 육유(陸游)의 시에, “약물이 몸 버티어 병이 점차 나아가니, 문전의 농부들이 웃으며 서로 부르네.[藥物枝梧病漸蘇門前夜老笑相呼]” 하였다.

정 첨서(鄭簽書)가 술을 가지고 찾아오다.

 


적 꺾을 땐 용맹을 칭찬했었는데 / 挫敵時稱勇
유학 일으키니 세상엔 글이 있네 / 興儒世有文
가문은 참으로 좋은 일을 쌓았고 / 家門眞積善
풍채는 홀로 무리에 뛰어나도다 / 風采獨離群
좋은 음식은 넓은 상에 그득하고 / 珍饌堆方丈
금술잔은 가득 채워 권하누나 / 金鍾勸十分
세상 은둔하여 사방에 방랑하고 / 逃禪因放浪
전 지어서 내운을 기록하였네 / 作傳記來雲
뛰어난 필치는 언뜻 군진을 이루고 / 傑筆俄成陣
고상한 담소는 삼군을 물리치네 /
高談自却軍
진실로 남은 복 누릴 줄 알겠어라 / 端知享餘慶
모두가 큰 공훈 세우길 바라누나 / 共望樹華勛
도리
는 문항에 줄지어 섰고요 / 桃李連門巷
가부
는 먼 바닷가까지 닿았어라 / 葭莩接海濆
친교로써 후한 권고 받들었고 / 親交承厚睠
세덕의 깨끗한 향기 흠모했으니 / 世德揖淸芬
졸렬한 시를 어찌 사양하랴만 / 拙語寧容讓
높은 재주를 말로 표현 다 못하리 / 長才未足云
마시고 흥겹게 한번 취하여 / 陶然成一醉
높이 누우니 석양이 되어가누나 / 高臥日將曛

 

[주D-001]고상한 …… 물리치네 : 이백(李白)의 시에, “담소는 삼군을 물리치고, 교유는 칠귀와 멀었도다.[談笑三軍却 交游七貴疎]” 하였다.
[주D-002]도리(桃李) :
훌륭한 문생(門生)들을 가리킨 말이다.
[주D-003]가부(葭莩) :
갈대의 줄기 속에 있는 아주 얇은 막()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아주 엷은 친분(親分)의 뜻으로 쓰인다.

새벽에 일어나서 읊다.

 


밤이 하마 어느 땐고 옷 걸치고 일어나니 / 夜如何又攬衣興
성색의 분분함이 파리를 쫓는 듯하여라 / 聲色紛紛似逐蠅
술통에 듣는 술방울은 비가 내린 듯하고 / 酒滴小槽疑有雨
허술한 집에 새어든 달은 절로 등불이 되네 / 月穿疎屋自爲燈
깍지 벗은 매는 넓은 하늘에 꿩을 치려 하고 / 解韝天闊鷹將擊
마판에 오래 엎드린 말은 달리고자 하려니와 / 伏櫪年深馬欲騰
고요함 속에 능득처가 있음
을 나는 믿노니 / 自信靜中能得處
좌선하는 중들 헛되이 늙는 게 가련하구나 / 可憐虛老坐禪僧

 

[주D-001]고요함 …… 있음 : 《대 학장구(大學章句)》 경 1장에, “그칠 줄을 안 다음에 정함이 있고, 정해진 다음에 고요해지며, 고요해진 다음에 편안해지며, 편안해진 다음에 자세히 생각하게 되며, 자세히 생각한 다음에 그칠 바를 능히 얻나니라.[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2(二首)

 


병든 몸 걱정 많음은 논할 것도 없거니와 / 病軀多患不須論
오는 손 물리치고 자주자주 문을 닫아라 / 麾客頻頻掩却門
기와 조각 찜질을 해도 허리는 또 아프고 / 瓦片熨餘腰又痛
차 싹으로 씻고 나도 눈은 그대로 어둡네 / 茶芽洗後眼仍昏
흥겨울 때 술 만나면 어찌 가득함 사양하랴 / 興來得酒寧辭滿
늙어 가매 글 보는 건 절로 온습이 되누나 / 老去觀書只自溫
필경엔 영고성쇠를 장차 어디에 쓰리요 / 畢竟乘除將底用
마을 흔드는 새 버들이나 기꺼이 보자꾸나 / 喜看新柳欲搖村

젊은 날엔 오직 여론 두려워할 줄만 알아서 / 少日唯知畏物論
부귀한 집에 명함 내밀기를 싫어했었는데 / 懶投華刺向朱門
병중에 기억한 세월은 냇물이 흐르듯 하고 / 病諳歲月如川逝
읊으며 마주한 봉우리는 비가 묻어 어둡구나 / 吟對峯巒得雨昏
좋은 시구 문득 이루니 종이는 반쯤 젖었고 / 好句忽圓牋半濕
단약을 먹으려 하니 술은 약간 미지근하네 / 靈丹欲下酒微溫
이제부턴 귀전록을 이어 지으려 하노니 / 從今擬續歸田錄
성남에 핍근하여 도리어 시골과 같구나 /
僻近城南却類村

 

[주D-001]귀전록(歸田錄)을 …… 하노니 : 《귀전록》은 송()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치사(致仕)한 뒤에 전사(田舍)로 돌아가 지내면서 자기가 평소에 듣고 본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전하여 여기서는 벼슬을 그만두고 전사로 돌아가고 싶은 뜻을 나타낸 말이다.
[주D-002]성남(城南)에 …… 같구나 :
두보(杜甫)의 시에, “가난한 생활이 시골구석과 같아라, 성의 남루와 아주 가깝다오.[貧居類村塢 僻近城南樓]” 한 데서 온 말이다.

 


수다하게 눈 읊은 시가 그 몇천 편이련만 / 紛紛詠雪幾千篇
한 글귀인들 누가 장차 만고에 전해줄꼬 / 一句誰將萬古傳
부들 삿갓은 저문 고깃배에 홀로 돌아가고 / 蒻笠獨歸漁艇暮
버들 꽃은 주막집 하늘에 사람을 시름케 하네 /
楊花愁殺酒樓天
청류가 도리어 탁류에 던져질까 의아스럽고 /
揚淸却訝還投濁
도가 미숙하니 어찌 다시 태현경을 초하랴 /
尙白寧敎更草玄
병든 몸 추위 무서워 깊이 문 닫고 앉았노니 / 病骨
寒深閉戶
매화 구경할 흥취가 아득한 데에 떨어졌네 / 觀梅野興墮茫然

사씨가 일찍이 설부 편을 지은 것이 /
謝氏曾題賦一篇
지금까지 독보적으로 세상에 전하고 있네 / 至今獨步世相傳
삼천장의 귀밑털 위에 어지러이 날리고 / 亂飄鬢上三千丈
성남의 척오천을 촉촉하게 적셔 주누나 /
低濕城南尺五天
이 물로 차 달여 불타는 심장에 붓고자 하나 / 煎茗欲澆心地赤
산을 마주해도 눈 흐림은 제거하기 어렵네 / 對山難刮眼花玄
나의 시 생각 극도로 찬 것을 누가 알리요 / 詩腸冷極誰能識
나귀 타고 읊던 맹호연
이 거듭 생각나누나 / 重憶騎驢孟浩然

 

[주D-001]버들 꽃은 …… 하네 : 이백(李白)의 〈맹호행(猛虎行)〉에, “율양의 주막집 삼월 봄 하늘에, 버들 꽃이 아득하여 사람을 시름케 하네.[溧陽酒樓三月春 楊花茫茫愁殺人]”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버들 꽃은 눈을 상징한다.
[주D-002]청류(淸流)가 …… 의아스럽고 :
당 소종(唐昭宗) 때에 역적 주전충(朱全忠)의 무리들이 조정의 명사(名士)들을 모조리 죽여 황하(黃河)에 던지면서 말하기를, “이 무리들은 청류이니, 탁류(濁流)에 던져야 한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청류는 눈을 의미한다.
[주D-003]도(道)가 …… 초하랴 :
()나라 때 양웅(揚雄)이 집에 들어앉아 곤궁하게 지내면서 《태현경(太玄經)》을 초하고 있을 적에 혹자가 그에게, “도가 아직 미숙하다.[玄尙白]”고 조롱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상백(尙白)의 백은 눈을 상징한다.
[주D-004]사씨(謝氏)가 …… 것이 :
사씨는 남조(南朝) ()나라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을 가리키는데, 그가 일찍이 〈설부(雪賦)〉를 지었다.
[주D-005]성남(城南)의 …… 적셔 주누나 :
척 오(尺五)는 일척 오촌(一尺五寸)의 약칭으로, ()나라 때 성남의 위씨(韋氏)와 두씨(杜氏)가 모두 임금을 가장 가까이 모시어 부귀영화를 누렸던 것을 이르는데, 여기서는 눈이 지세(地勢)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내린 것을 의미한다.
[주D-006]나귀 …… 맹호연(孟浩然) :
()나라 때 시인 맹호연이 일찍이 눈 속에 나귀를 타고 시를 읊었던 고사인데, 소식(蘇軾)의 시에, “그대는 보지 못했나.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이, 눈썹 찌푸리고 시 읊을 제 어깨가 산처럼 솟은 것을.[君不見雪中騎驢孟浩然皺眉吟詩肩聳山]”이라고 하였다.

고향을 생각하다. 2(二首)

 


내 고향 진강 한 굽이는 경치도 좋은데 / 鎭江一曲好烟波
경사에 오래 머무르니 세월만 더디어라 / 留滯京華歲月

울타리 대나무의 새 죽순이 매양 생각나고 / 籬竹每思新
마당의 늙은 배나무 꽃 안 핀 것도 기억나네 / 庭梨曾記老無花
약물을 책상 가득히 구할 줄만 알았지 / 但知藥物求堆案
어찌 집 가득히 문장 지어둔 게 있으랴 / 豈有文章作滿家
병중에 회포가 있어 끝없이 읊노라니 / 病裏有懷吟不盡
아스라한 청산에 석양이 비꼈네그려 / 靑山隱隱夕陽斜

땀 흘리며 분주했던 당년을 생각하노니 / 汗流奔走想當年
심신 수양은 온전한 도력을 의거했어야지 /
養須憑道力全
병중이라 기심은 전혀 없어지려 하건만 / 病裏機關渾欲盡
인간은 기름과 불이 서로 태운 격이로다 /
人間膏火苦相煎
뒤집은 구름 엎은
는 끝없는 날이거니와 / 翻雲覆雨無多日
풍월 읊조리는 건 절로 한 세계가 있나니 / 弄月吟風自一天
필경엔 바쁘고 한가함 전혀 관여치 않는 게 / 畢竟閑忙都不管
중을 따라 참선 배우는 것보다 월등히 낫겠네 / 絶勝雲水學參禪

 

[주D-001]인간은 …… 격이로다 :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기름은 불이 붙기 때문에 제가 스스로 태운다.[膏火自煎]” 한 데서 온 말로, 사람은 재능이 있기 때문에 화를 입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뒤집은 구름 엎은 :
두보(杜甫)의 〈빈교행(貧交行)〉에, “손 뒤집으면 구름이요 손 엎으면 비가 되니, 분분하고 경박함을 어찌 헤아릴 것 있으랴.[翻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한 데서 온 말로, 세상 인정(人情)의 변하기 쉬움을 비유한 말이다.

묘련사(妙蓮寺)의 조순암(趙順菴) 법사(法師)가 발견한 석지조(石池竈)에 대하여, 익재(益齋) 선생이 쓴 기문(記文)의 후미에 제()하다.

 


텅 비고 맑은 당 중의 늙은이는 / 虛淨堂中老
마음이 맑아 물건 절로 드러났네 / 心淸物自形
아이 적엔 묘련사에서 노닐었고 / 兒戲妙蓮社
나그네로는 한송정에 들렀었네 / 客過寒松亭
언뜻 보니 신이 내린 것 같았고 / 乍見若神授
오래 비장됨은 지령에 응함일러라 / 久藏應地靈
가운데는 맑디맑은 물을 담고 / 心涵水淡淡
주둥이론 찬바람을 끌어들이네 / 口引風冷冷
젓대는 가정으로부터 얻어졌고 /
笛向柯亭遇
보검은 풍옥으로부터 나타났도다 /
劍從
獄呈
고금의 이치가 똑같은 법칙이라 / 古今同一轍
천재에 맑은 향기를 풍기리로다 / 千載揖淸馨

 

[주C-001]석지조(石池竈) : 익 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석지조기(石池竈記)의 대략에 의하면, “삼장(三藏) 순암 법사(順菴法師)가 왕()의 분부를 받들어 풍악(楓岳)의 불사(佛祠)에서 복을 빌고는 인하여 한송정(寒松亭)을 구경하였는데, 그 위에 석지조가 있어 그 고장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체로 옛사람들이 차를 달여 마시던 곳이라 했는데 어느 시대에 만든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이때 법사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어렸을 적에 일찍이 묘련사(妙蓮寺)에서 두 바윗덩이가 풀 속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양을 상상컨대 어쩌면 이것이 아닐까?’ 하고, 돌아와서는 바로 그것을 찾아보니 과연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는, 사방을 말[]처럼 모나게 다듬고 가운데를 확[]처럼 팠으니, 이는 샘물을 담으려고 만든 것이며, 밑에는 주둥이처럼 구멍을 냈으니, 이는 열고 찌꺼기를 씻어 낸 다음 다시 막아 샘물을 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두 군데가 오목하게 생겼는데, 둥근 데는 물을 담는 곳이고, 타원형으로 된 데는 그릇을 씻는 곳이며, 또 한 구멍을 조금 크게 내어 둥근 데와 통하게 하였으니, 이는 바람이 들어오게 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모두 합하여석지조라 명명했다.” 하였다.
[주D-001]젓대는 …… 얻어졌고 :
가 정(柯亭)은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서남쪽에 있는 정자 이름인데, 후한(後漢) 때의 문인 채옹(蔡邕)이 일찍이 회계(會稽)로 피난을 가던 도중 가정에서 묵다가, 그 정자의 서까래로 얹은 대나무에서 뛰어난 소리가 날 것을 알고는 이것으로 젓대를 만들었더니, 천하의 보기(寶器)가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보검(寶劍)은 …… 나타났도다 :
()나라 때 뇌환(雷煥)이 풍성 영(
城令)으로 있으면서 하늘의 두우성(斗牛星) 사이에 이상한 광채가 쏘아 비치는 것을 보고 풍성 옥사(獄舍)의 옛터를 발굴하여 용천(龍泉)ㆍ태아(太阿) 두 보검을 찾아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정당기(政堂記)의 후미에 쓰다.

 


유하혜는 화하기만 하였고 / 柳下惠之和
백이는 청하기만 하였고 / 伯夷乃是淸

자막은 중을 잡기는 했으나 / 子莫却執中
권도가 없었음은 분명하였네 / 然非權也明

성리는 본디 빠지기 쉽거니와 / 聲利固酣夢
산림 또한 정에 치우치게 되니 / 山林亦偏情
조용하게 중도를 얻어야만 / 從容乃中道
집대성
이 될 수 있으리라 / 然後集大成
이단을 어찌 나무랄 것 있으랴 / 異端豈足責
절로 변화 못 시킴이 개탄스럽네 / 永慨時靡爭
어찌하면 높은 누각에 앉아서 / 何當坐樓上
차 마시어 위장이나 평온케 할꼬 / 啜茶腸胃平
짤막한 장구시를 읊어 이루니 / 哦成短長句
천재에 누각의 영광이 되리라 / 千載爲樓榮

 

[주D-001]유하혜(柳下惠)는 …… 하였고 : 맹 자가 이르기를, “백이는 성의 청한 분이요, 이윤은 성의 임한 분이요, 유하혜는 성의 화한 분이요, 공자는 성의 시한 분이다.[伯夷聖之淸者也 伊尹聖之任者也 柳下惠聖之和者也 孔子聖之時者也]” 한 데서 온 말인데, ()은 천하를 자기의 책임으로 삼는다는 뜻이고, ()는 시중(時中)이니 때에 합당하게 한다는 뜻이다. 《孟子 萬章下》
[주D-002]자막(子莫)은 …… 분명하였네 :
자 막은 노()나라의 현자(賢者)였는데, 그는 양주(楊朱)ㆍ묵적(墨翟)의 도가 중()에 어긋남을 헤아려, 양주ㆍ묵적의 중간을 고집했으므로, 맹자가 이르기를, “자막은 중을 잡았으니 중을 잡은 것이 도에 가깝기는 하나, 중을 잡되 권도가 없는 것이 마치 한쪽을 잡은 것과 같으니라.[子莫執中執中爲近之 執中無權 猶執一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盡心上》
[주D-003]집대성(集大成) :
공자(孔子)는 백이(伯夷)ㆍ이윤(伊尹)ㆍ유하혜(柳下惠) 세 성인(聖人)의 일을 한데 모아 일대성(一大聖)의 일로 만들었다 하여, 맹자가 공자를 집대성한 분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下》

은문(恩門) 익재(益齋) 선생을 받들어 생각하다.

 


익재의 공덕은 천심을 감동시켰거니와 / 益齋功德動天心
여사였던 그 문장도 고금을 덮었도다 / 餘事文章蓋古今
패는 스스로 낮지 않아서 문단에 올랐고 /
稗自不卑登說苑
역은 응당 악을 따르니 유림의 으뜸일세 /
櫟應從樂冠儒林
조과의 고정처럼 한가히 전서에 능하였고 /
琱戈古鼎閑工篆
유수와 고산으로 홀로 거문고를 탔었네 /
流水高山獨撫琴
묘정에 배향되었고
명은 묘도에 묻혔으나 / 從祀廟庭銘在隧
사관의 재주 웅심하지 못한 게 부끄럽구나 / 史才惟愧乏雄深

 

[주D-001]패(稗)는 …… 올랐고 :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일찍이 《역옹패설(櫟翁稗說)》을 저술했는데, 패설이란 패관소설(稗官小說)의 뜻을 취한 것이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역(櫟)은 …… 으뜸일세 :
이제현의 호가 역옹(櫟翁)인데, () 자는 악() 자를 따라서 구성되었으므로, 예악(禮樂)은 선비들이 의당 숭상하는 것이라 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3]조과(琱戈)의 …… 능하였고 :
조 과는 아로새긴 창으로, 천자(天子)가 원훈 대신(元勳大臣)에게 내린 하사품인데, 한대(漢代)에 부풍(扶風)에서 고정(古鼎)을 발견했던바, 거기에 주()나라 대전(大篆)으로 새겨져 있기를, “왕이 일을 주관한 신하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에게……조과를 내리노라.’ 하였다.[王命主事之臣曰賜爾……琱戈]” 한 데서 온 말이다. 전하여 여기서는 전서(篆書)에 능했음을 의미한다.
[주D-004]유수(流水)와 …… 탔었네 :
옛 날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던 고사에서 온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세상에 상대가 없이 독보적이었음을 뜻한다. 백아가 뜻을 고산(高山)에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다, 험준함이 마치 태산(泰山) 같도다.” 하였고, 백아가 또 뜻을 유수(流水)에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다, 광대함이 마치 강하(江河)와 같도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묘정(廟庭) 배향되었고 :
이제현이 공민왕(恭愍王)의 묘정에 배향된 것을 말한다.

앞의 운을 사용하여 스스로 읊다.

 


병으로 시 못 읊어 마음 산란할까 두려워라 / 病不吟詩恐亂心
수년 동안 길이 누워서 오늘에 이르렀네 / 數年長臥到于今
동고에서 휘파람 부는 팽택을 생각하고 /
東皐舒嘯思彭澤
곡수에 술잔 띄우 무림을 상상하노라 /
曲水流觴想茂林
물결 벽에 불어라 길이 그림을 대하고 /
吹壁白波長對畫
밝은 창에 가득해라 홀로 거문고를 타네 /
滿窓明月獨鳴琴
개중에 나의 즐거운 곳을 누가 능히 알랴 / 箇中樂處誰能識
예로부터 깊은 우물에 두레박 줄이 짧다오 /
短綆由來古井深

온갖 변화는 모두 마음에서 이뤄지나니 / 萬化皆從方寸心
문득 고금에 광채 나는 것을 알겠도다 / 便知耀古更光今
삼엄한 무고는 공부에 연하였고 /
森嚴武庫連工部
광대한 문장은 한림을 압도했네 /
浩蕩詞源倒翰林
화씨는 불우하여 옥을 번이나 바쳤고 /
和氏不逢三獻玉
종자기는 거문고 지기를 만났네 /
鍾期旣遇一彈琴
연래엔 이미 분화의 싸움을 그만두었는데 / 年來已罷紛華戰
해진 거적문 앞에 눈이 다시 깊구려 / 弊席門前雪更深

예부터 계절 경치가 인심을 변화시키어라 / 由來節物變人心
가을 모습 완연히 지금에 있는 듯 기억나네 / 記得秋容宛在今
이미 거센 바람 보내어 낙엽을 불어 대더니 / 已遣狂風吹落葉
다시 저녁 볕이 성긴 숲에 걸리게 하였지 / 更敎斜日掛疎林
유슬에서 나는 북비성은 매우 꺼리거니와 /
深嫌北鄙爲由瑟
순금에 들어온 훈풍은 멀리 생각나누나 /
緬想南薰入舜琴
근일에 매화 뜻 움직인단 소식 듣기 좋아라 / 近日喜聞梅意動
매화 한 가지의 봄빛이 십분 깊어졌구려 / 一枝春色十分深

 

[주D-001]동고(東皐)에서 …… 생각하고 : 팽 택(彭澤)은 진()나라 때 일찍이 팽택 영을 지낸 도잠(陶潛)을 가리키는데, 도잠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을 불고, 맑은 물을 임하여 시를 짓는다.[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곡수(曲水)에 …… 상상하노라 :
()나라 왕희지(王羲之)가 지은 〈난정서(蘭亭序)〉에, “이곳에는 높은 산, 험준한 봉우리와 무성한 숲, 길게 자란 대나무가 있고, 또 맑은 시내 여울물이 난정의 좌우에 서로 비치는지라, 이를 끌어들여 굽이쳐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운다.[此地有崇山峻嶺茂林脩竹 又有淸流激湍 映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 물결 …… 대하고 :
두 보(杜甫)의 〈봉환엄정공무청사민산타강화도(奉歡嚴鄭公武廳事泯山沱江畫圖)〉 시에, “타수는 중좌에 임하고, 민산은 북당에 이르니, 흰 물결은 하얀 벽을 불어 대고, 푸른 산봉우리는 아로새긴 들보에 꽂히었네.[沱水臨中座 泯山到北堂 白波吹粉壁 靑嶂揷雕梁]”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밝은 달 …… 타네 :
()나라 때 완적(阮籍)의 〈영회(詠懷)〉 시에, “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해, 일어나서 거문고를 타노라니, 얇은 휘장엔 밝은 달이 비치고, 맑은 바람은 내 옷깃에 부는구나.[夜中不能寐起坐彈鳴琴 薄帷鑑明月 淸風吹我衿]”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예로부터 …… 짧다오 :
짧은 두레박 줄로는 깊은 샘물을 길을 수 없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학식이 얕은 자와는 도리(道理)를 논할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6]삼엄(森嚴)한 …… 연하였고 :
삼 엄한 무고(武庫)란 진()나라 때 두예(杜預)가 박학 다통(博學多通)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으므로, 그를 무고의 병기(兵器)가 없는 것 없이 삼연히 늘어서 있는 데에 비유한 말이고, 두 공부(杜工部)는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주D-007]광대한 …… 압도했네 :
이 한림(李翰林)은 당()나라 때 한림 공봉(翰林供奉)을 지낸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주D-008]화씨(和氏)는 …… 바쳤고 :
()나라의 화씨란 사람이 산중에서 박옥(璞玉)을 얻어 여왕(厲王)에게 바쳤는데, 왕이 옥인(玉人)을 시켜 알아본 결과, 박옥이 아니라 돌이라는 판명이 나와, 왕이 화씨가 임금을 속였다 하여 그의 왼쪽 발꿈치를 베었다. 그 후 여왕이 죽은 뒤 무왕(武王) 때에도 화씨가 또 박옥을 바쳤다가 역시 돌이라고 하여 또한 여왕 때처럼 임금을 속였다고 해서 그의 오른쪽 발꿈치를 베었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여서는 화씨가 그 박옥을 안고 산 밑에서 밤낮 3일 동안 통곡하였는데, 왕이 그 까닭을 물은 다음, 다시 옥인을 시켜 자세히 살피게 한 결과 마침내 보옥(寶玉)을 얻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韓非子 和氏》
[주D-009]종자기(鍾子期)는 …… 만났네 :
옛 날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탔고, 종자기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는데, 백아가 뜻을 고산(高山)에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다, 험준함이 마치 태산(泰山) 같도다.” 하였고, 백아가 또 뜻을 유수(流水)에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다, 광대함이 마치 강하(江河)와 같도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0]분화(紛華) 싸움 :
공 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밖에 나가서는 성대하고 화려한 것[紛華]들을 보고 좋아하고, 들어와서는 부자(夫子)의 도를 듣고 즐거워하여,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서로 싸워서 스스로 결단할 수가 없었는데, 결국 부자의 의리가 이겼기 때문에 내가 살이 찐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1]유슬(由瑟)에서 …… 꺼리거니와 :
북 비성(北鄙聲)은 북쪽 변방의 살벌한 소리를 뜻하는데, 자로(子路)는 용맹이 지나치고 중화(中和)가 부족한 탓에 비파 타는 소리가 살벌했던 데서 온 말이다. 공자가 이르기를, “중유의 비파를 왜 나의 문에서 타는고.[由之瑟奚爲於丘之門]” 하였다. 《論語 先進》
[주D-012]순금(舜琴)에 …… 생각나누나 :
순 임금이 처음으로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南風詩)를 노래했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성냄을 풀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이 풍부하리로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可以阜吾民之財兮]” 한 데서 온 말이다.

반궁(泮宮)에서 춘정(春丁)의 번육(膰肉)을 보내오다.

 


오경의 정시에 북 치고 반열 나란히 하여 / 擊鼓齊班正五更
백관이 포홀 차림으로 춘정의 석전 행할 제 / 百官袍笏祭春丁
번쩍이는 면류관은 깊은 궁전에 빛나고 /
的的明深殿
울려 퍼진 종경 소리는 대정을 진동하네 / 鍾磬洋洋振大庭
성인의 도는 하늘의 일월처럼 게시되고 / 聖道九天懸日月
임금의 계책은 만고의 사책에 빛나도다 / 皇猷萬古耀丹靑
땀 흘리며 사석에 참예한 걸 기억하노니 / 汗流曾記參師席
백발의 나이로 한 경서 연구를 어찌 잊으랴 / 皓首何忘究一經

 

[주C-001]춘정(春丁) : 중춘(中春), 2월의 첫 정일(丁日)에 지내는 문묘(文廟)의 석전제(釋奠祭)를 말한다.

유거(幽居)의 즉사(卽事)

 


나이 늙으니 시력은 어두워지고 / 年衰昏目視
병이 오래가니 허리 둘레 줄어라 / 病久減腰圍
죽고 삶에 얽힌 꿈은 있거니와 /
有夢纏生死
옳고 그름 관여할 마음은 없다오 / 無心管是非
강사는 찾아와서 글자를 묻고 / 講師來問字
선객은 기심을 잊으라 권하누나 / 禪客勸忘機
적적하게 향불 피우고 앉아서 / 寂寂焚香坐
아침 내내 홀로 사립문 닫았네 / 終朝獨掩扉

 

[주D-001]죽고 …… 있거니와 : 소식(蘇軾)의 시에, “평생의 삶과 죽음과 꿈, 이 세 가지가 서로 우열이 없네.[平生生死夢 三者無劣優]”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목은 선생이 병으로 한가로운 휴가 얻어 / 牧隱先生病得閑
사립문이 있긴 하나 항상 닫아걸고서 / 柴門雖設却常關
맑은 술동이 속엔 세월을 거두어 담고 / 牢籠歲月淸樽裏
하얀 벽 사이엔 강산을 운반해 왔도다 / 搬運江山素壁間
송파의 저문 비는 그림을 펼친 듯하고 / 松坡
雨披圖畫
계곡의 찬 샘물은 패옥이 떨어지듯 하네 / 石磵寒泉落佩環
하늘이 시킨 득실을 끝내 저버리지 않고 / 造物乘除終不負
청아한 일 다 가져다 쇠한 몰골 위로하노라 / 盡將淸事慰衰顔

 

옛날 승사(僧舍)에서 놀던 일을 기억하다.

 


글 읽는 여가엔 여기저기 다니길 좋아하여 / 讀書餘隙好經過
산사의 고상한 놀이가 절반을 넘었는데 / 山寺高遊一半多
편면
엔 바람 일어라 스님의 말은 유연하고 / 便面風生僧語軟
높은 산엔 봄이 와서 새 소리 평화로웠네 / 孱顔春動鳥聲和
지난 자취 생각하면 모두가 꿈만 같은데 / 回頭陳跡渾如夢
새 시름은 눈에 가득해 노래를 지을 뿐이네 / 極目新愁祇作歌
괴이해라 창자 가득 아무런 속기가 없어 / 怪底滿腔無俗氣
선비 따르던 당시에 창을 잡으려 했던 / 逐儒當日欲操戈

 

[주D-001]편면(便面) : 옛사람들이 얼굴을 가리던, 부채 모양처럼 생긴 물건을 말한다.
[주D-002]창을 …… :
후 한(後漢) 때 경학자(經學者) 하휴(何休)가 공양씨(公羊氏)의 학문을 좋아하여 마침내 《공양묵수(公羊墨守)》ㆍ《좌씨고황(左氏膏肓)》ㆍ《곡량폐질(穀梁廢疾)》을 저술했는데, 정현(鄭玄)이 여기에 반박하여 《발묵수(發墨守)》ㆍ《침고황(鍼膏肓)》ㆍ《기폐질(起廢疾)》을 지으니, 하휴가 보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정강성(鄭康成)이 내 집에 들어와서 내 창을 가지고 나를 치는구나.”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후진(後進)이 선진(先進)을 능가하려 함을 비유한 말이다.

스스로 읊다.

 


인물은 수다하나 같은 길을 함께 가건만 / 人物紛紛共一途
부질없이 문호를 가지고 최로를 겨루누나 / 謾將門戶鬪崔盧
시서를 읽는다고 꼭 다 군자 되진 않거니와 / 詩書未必皆君子
경상은 예로부터 필부에서 일어났다네 / 卿相由來起匹夫
송백의 강한 모습은 눈이 많이 내린 때요 / 松柏
容當雪盛
오동의 가을빛은 서리가 오기 전에 말랐네 / 梧桐秋色未霜枯
눈앞의 온갖 물상이 삼연히 늘어섰는지라 / 眼前物像森成列
중화를 길러서 스스로 피부에 사무치누나 / 養得中和自浹膚

 

[주D-001]최로(崔盧) : 위진(魏晉) 시대로부터 당대(唐代)에 이르기까지 산동(山東) 지방의 사족(士族) 가운데 대성(大姓)으로 오랫동안 고현(高顯)한 지위를 누린 최씨와 노씨를 가리킨다.

즉사(卽事) 2(二首)

 


팽택은 마음이 형체의 노예가 되었고 /
彭澤心爲形役
창려는 운명이 원수와 함께 모의했는데 /
昌黎命與仇謀
안자는 온종일 어리석은 듯하고 / 顔子如愚終日
단표누항으로 맑고 고요하였네 / 簞瓢陋巷淸幽


누가 청산의 점잖음을 사랑했던고 /
誰愛靑山偃蹇
나는 그윽한 풀 향기로움을 사랑하노라 / 自憐幽草芳菲
휘파람 소리 속에 가랑비는 내리고 / 長嘯聲中細雨
홀로 가는 그림자 밖엔 석양이로다 / 獨行影外斜暉

 

[주D-001]팽택(彭澤)은 …… 되었고 :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지낸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이미 마음을 형체의 노예로 삼았거니, 어찌 상심하여 슬퍼하기만 하랴.[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창려(昌黎)는 …… 모의했는데 :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진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운명이 원수와 더불어 모의했으니, 실패한 적이 그 얼마인고.[命與仇謀取敗幾時]” 한 데서 온 말로, 운명이 매우 기박했음을 뜻한다.
[주D-003]안자(顔子)는 …… 고요하였네 :
공 자가 이르기를, “내가 안회와 종일토록 말할 적에 질문하지 않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듯하더니, 물러간 뒤에 혼자 있을 때를 살펴보건대 충분히 내 말을 발명함이 있으니, 회가 어리석지 않도다.[吾與回言終日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하였고, 또 이르기를, “어질도다, 회여. 도시락밥 한 그릇과 음료수 한 표주박으로 누추한 시골에 사는 것을, 다른 사람은 그 시름을 감당치 못하거늘, 회는 그 낙을 고치지 않으니, 어질도다, 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雍也》
[주D-004]누가 …… 사랑했던고 :
소식(蘇軾)의 〈월주장중사수락당(越州張中舍壽樂堂)〉 시에, “청산은 고상한 사람처럼 점잖아서, 심상히 관부에 들어가려 하지 않누나.[靑山偃蹇如高人尋常不肯入官府]”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몸 보전엔 꾀를 신중히 해야 하고 / 保身當愼術
처세하는 데는 기미를 알아야 하리 / 處世要知幾
지극한 도엔 어그러진 것이 많고 / 至道多乖隔
떠도는 말은 시비가 섞여 있다오 / 浮言雜是非
은혜에 감격할 때는 혹 있거니와 / 感恩時或有
나를 알아줌은 예로부터 드물었네 / 知己古來稀
새들은 응당 서로 생각하고 있으리 / 禽鳥應相憶
강 머리의 예전 그 낚시터를 / 江頭一釣磯

 

춘일(春日)의 즉사(卽事) 2(二首)

 


소년 시절엔 병 많던 나그네가 / 少年多病客
만년에는 일개 노쇠한 늙은이로다 /
歲一衰翁
도를 들음은 형체의 밖이 없고 / 聞道形無外
말을 잊으면 맛이 그 속에 있다네 / 忘言味在中
강산은 적현을 에워쌌고 / 江山圍赤縣
일월은 푸른 하늘에 빛나도다 / 日月耀蒼穹
또 기쁜 것은 문 앞의 버들이 / 又喜門前柳
실 드리워 바람에 한들거림일세 / 垂絲裊細風

시구 찾자니 장차 누구와 말하랴 / 覓句將誰語
문 두드리는 소리 손이 왔는데 / 敲門有客臨
읊조리다가 얻음이 있는 듯할 제 / 吟哦如有得
문 두드리던 손은 이미 사라져 버렸네 / 剝啄已難尋
눈 올 기미는 매화 동산에 넘치고 / 雪意餘梅塢
봄 경치는 버들 숲에 움직이네 / 春光動柳林
고향 산엔 죽순 고사리가 많기에 / 故山多

돌아가고픈 흥취를 금하기 어렵구나 / 歸興浩難禁

 

봄날에 산승(山僧)을 생각하다.

 


오랫동안 심한 봄추위 견디느라 / 久耐春寒甚
사립문을 석양에 닫아걸었네 / 柴門掩落曛
거센 바람은 한밤중에 불어 대고 / 狂風號夜半
눈보라는 춘분에 몰아치누나 / 飛雪入春分
물가에는 새 나물이 생겨나고 / 水際生新菜
산 북쪽엔 찬 구름이 끼었는데 / 山陰宿凍雲
선방에선 한 심지 향불 살라 / 禪窓香一炷
밤낮으로 우리 임금 축수하누나 / 日夜壽吾君

 

홀로 서다. 2(二首)

 


침상에 다른 코고는 용납하랴만 /
臥榻容他鼾睡
하수를 건너고도 거친 포용해야지 /
憑河尙自包荒
홀로 섰노니 사방에 밖이 없어라 / 獨立四方無外
천지의 조화로 요순 시대 만들었네 / 洪鈞氣轉陶唐

신의 원기는 만고를 배태하고 / 神氣胚胎萬古
마음은 사지 육체를 주관하도다 / 天君軨轄四支
홀로 섰노니 봄바람 광대하여라 / 獨立春風浩蕩
도를 떠날 수 없음을 예서 알았네 / 是知非道可離

 

[주D-001]침상에 …… 용납하랴만 : 송 태조(宋太祖)가 남당(南唐)을 급히 치려 하자, 남당의 후주(後主) 이욱(李煜)이 서현(徐鉉)을 송나라에 보내어 용서를 청하니, 송 태조가 하유하기를, “강남(江南)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다만 천하(天下)가 한 집이 되었으니, 내 침상 곁에서 다른 사람이 코를 골며 자는 것을 어찌 용납하겠는가.” 한 데서 온 말로, 자기 영역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하수(河水)를 …… 포용해야지 :
《주 역(周易)》 태괘(泰卦) 구이(九二), “거친 것을 포용하며, 맨몸으로 하수를 건너는 것을 쓰며, 멀리 있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包荒用馮河 不遐遺]” 한 데서 온 말로, 강용(剛勇)하면서도 너그러이 포용하는 지혜를 겸비함을 의미한다.

즉사(卽事) 9(九首)

 


산 빛은 한가한 가운데 더욱 좋고 / 山色閑中更好
시냇물 소리는 꿈속에도 맑건마는 / 溪聲夢裏猶淸
다만 부질없는 세속 일에 골몰하여 / 祇被塵緣汨沒
내 그윽한 정 저버림에 기가 꺾이네 / 垂頭負我幽情

밝은 달은 때로 왔다갔다 하거니와 / 明月時來時去
창랑수는 탁하기도 하고 맑기도 하네 / 滄浪有濁有淸
슬프다 내 평생에 사물을 관찰함은 / 慨我平生觀物
삼연한 공자의 생각 주공의 뜻이로세 / 森然孔思周情

술의 흥취와 시의 생각은 질탕하고 / 酒興詩情跌宕
하늘 모습과 바다 빛은 맑기만 하네 / 天容海色澄淸
일생의 세월을 어느덧 보내고 보니 / 斷送一生光景
공부는 다만 희로애락 잊는 데 있었네 / 功夫只在忘情

사륙변려문 지어서 기교 부리고 / 造語騈儷逞巧
청탁의 성운 맞춰 조화를 이루어라 / 諧聲淸濁含和
늙은 나는 이제 정신이 흐릿한데 / 老我如今怳惚
그대는 젊어서부터 활발함이 좋구나 / 喜君自少婆娑

평담함은 본래부터 맛이 적고요 / 平淡由來少味
청신함은 도리어 풍취가 많다네 / 淸新却是多姿
도끼로 깎은 흔적 전혀 없어라 /
斧鑿了無痕跡
동쪽 울에서 유연히 국화를 따도다 /
悠然採菊東籬

정회를 쏟아서 혼자 즐길 뿐이니 / 陶寫情懷而已
공덕을 선포하는데야 어찌하리요 / 鋪陳功德則那
늙은 목은이 근래에는 무양하여 / 老牧邇來無恙
온종일 청산에서 소리 높여 노래하네 / 靑山盡日高歌

타파하면 원래 안팎이 없는 건데 / 打破元無內外
보아 오매 어찌 중간이 있으리요 / 看來何有中間
늙은 목은이 이제부턴 활달해져서 / 老牧從今豁達
찾아오는 이가 모두 청한하리라 / 敲門盡是淸閑

일조의 허령은 스스로 만족커니와 / 一朝虛靈自足
다생
의 장애는 모두가 텅 빈 거로세 / 多生障礙皆空
늙은 목은이 이제부턴 활달해져서 / 老牧從今豁達
밝은 달 맑은 바람과 회통하리라 / 會通明月淸風

산색 보자고 어찌 애써 문을 열쏜가 / 山色何勞排闥
버들 그늘은 절로 뜰에 그득하네 / 柳陰自可充庭
늙은 목은이 이제부턴 활달해져서 / 老牧從今豁達
태평한 천지 사이에 소요하리라 / 逍遙天地淸寧

 

[주D-001]도끼로 …… 없어라 : 시문(詩文)을 짓는 데 있어, 애써 첨삭(添削)한 흔적이 없이 자연스럽게 잘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동쪽 …… 따도다 :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면서,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다생(多生) :
불가(佛家)의 용어로,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을 지어 윤회(輪廻)의 고통을 받으면서 생사(生死)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말한다.

느낌이 있어 읊다.

 


시 읊을 제 오묘한 곳 스스로 말하기 어려워 / 哦詩妙處自難言
비점과 기평으로 근원을 밝히고자 하는데 / 批點譏評欲透源
두어 봉우리 청산과 시냇물 한 굽이 / 數朶靑山溪一曲
대울타리 띳집에 버들이 문 앞에 서 있구나 / 竹籬茅屋柳當門

시서가 잔결된 지는 이미 오래이거니와 / 詩書殘缺已多年
진회
가 꺼졌다 다시 탈 줄 누가 헤아렸으랴 / 誰料秦灰死復然
화복은 본래부터 하늘이 정한 것이라 / 福禍由來天所定
이 백발의 시인은 병만 안고 있을 뿐이네 / 白頭詞客抱沈綿

강물에 얼음 녹아 깊이가 두어 자 되는데 / 江水氷消數尺深
거룻배를 저어가니 숲길 가기와 같구나 / 小舟撑去似穿林
여흥의 누각 위에서 밝은 달을 구경하니 / 驪興樓上看明月
당년에 채우지 못한 마음 다 갚았네그려 / 償盡當年未足心

 

[주D-001]진회(秦灰) : 진 시황(秦始皇) 때에 천하의 경적(經籍)을 다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었던 데서 온 말이다.

취중(醉中)에 스스로 읊다.

 


화창한 봄의 경치는 천만 리나 펼치었고 / 駘蕩春光千萬里
노쇠한 나그네 흥취는 술 두세 잔이로다 / 龍鍾客興兩三杯
어찌 타고 양주를 필요가 있으랴 /
何須駕鶴楊州去
갑자기 새 시 얻으니 절로 환골탈태하였네 / 忽得新詩自奪胎

방달한 가운데 도리어 예법을 보존해야지 / 放曠却須存禮法
변통만이 꼭 중용에 합치한 건 아니라네 / 變通未必合中庸
서생은 국량이 좁아서 비록 비루하건만 / 書生局促雖然鄙
어찌 시문 기대어 얼굴 파는 걸 배우리요 / 倚市何曾學冶容

 

[주D-001]어찌 …… 있으랴 : 옛 날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각각 자기의 소원을 말할 적에, 혹자는 양주 자사(楊州刺史)가 되기를 원했고, 또 혹자는 많은 재물 갖기를 원했으며, 혹자는 학()을 타고 하늘에 오르기를 원했는데, 그중 한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허리에 십만 관(十萬貫)의 돈을 차고, 학을 타고 양주(楊州)에 가고 싶다.”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현실성이 없는 망상(妄想)을 비유한 말이다.

단가행(短歌行)

 


길을 나는 봉황과 깊은 못의 용은 / 千仞鳳九淵龍
스스로 진중하여 진세에 드러내지 않나니 /
自重不爲塵世容
멀리 날고 깊이 숨음은 예부터 탄식한 바라 / 遠逝深藏古所嘆

오동 꽃 땅에 떨어지고 구름만 천겹이로다 / 桐花落地雲千重
나는 태평성대에 나서 쓰라린 고생 않고 / 我生大平無苦辛
마음대로 경사의 봄을 한껏 달리노라니 / 縱橫馳走京華春
깊숙한 대궐문은 용사들이 지키거니와 / 君門深邃虎豹守
역임한 벼슬은 모두 혁혁한 요직이었네 / 通籍赫赫皆要津
그러나 뛰어난 계책을 펼쳐내지 않고는 / 不將奇策披琅玕
헛된 이름으로 천안을 펴게 할 수 없기에 / 虛名無計開天顔
돌아와 동해바다 머리에 편히 누워서 / 歸來高臥東海頭
동녘에서 뜨는 해를 경건히 인도하노라 / 寅賓出日扶桑間

 

[주D-001] 길을 …… 바라 : 가 의(賈誼)의 〈조굴원부(弔屈原賦)〉에, “봉황이 훨훨 높이 날아감이여, 스스로 몸을 이끌어 멀리 떠나가도다. 구연에 깊이 숨어 있는 신룡이여, 깊은 못에 숨어서 스스로 진중히 하도다.[鳳縹縹其高逝兮 夫固自引而遠去襲九淵之神龍兮 沕淵潛以自珍]” 한 데서 온 말로, 현자(賢者)는 태평성대에만 세상에 나가고, 어지러운 시대에는 깊이 은거하여 자중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사(卽事)

 


맑은 새벽에 말 몰아 봄 찾으러 나가니 / 淸晨策馬欲尋春
무뢰한 시 생각은 보는 것마다 새로우나 / 無賴詩情觸目新
다만 이 노란 버들개지가 사랑스러울 뿐 / 只是柳絲黃可愛
화려한 오만 꽃들은 정신을 상할까 싶네 / 萬花錦
恐傷神

땅이 동쪽 끝에 치우쳐 일찍 봄을 만나니 / 地偏東極早逢春
꽃과 버들 무성함이 또 날로 새로워지네 / 花柳依依又日新
나는 남은 생애를 성덕이나 노래하면서 / 擬向殘生歌聖德
매양 술동이 의지해 정신을 화락케 하련다 / 每憑樽酒暢精神

꿈속같이 유유히 또 한 봄을 만나고 보니 / 夢裏悠悠又一春
세인들은 공연히 머리 세는 걸 한탄하는데 / 世人空歎白頭新
목옹은 앓고 일어나 시에 더욱 능해져서 / 牧翁病起能詩甚
붓끝에 바람 일어라 신이 붙은 듯하구나 / 下筆風生似有神

 

병중(病中)

 


병중에 천지의 생성해 준 은덕을 입어 / 病中天地荷生成
봄에 산촌엘 드니 경치가 갑절 밝구나 / 春入山村景倍明
한창 피어나는 꽃들은 나비를 끄는 듯하고 / 花幄欲開如引蝶
버들잎 막 푸르니 꾀꼬리가 숨을 만하네 / 柳絲初暗可藏鶯
은대의 학사들은 가끔 서로 찾아오고요 / 銀臺學士時相訪
금곡의 가인
은 매양 스스로 요리를 하누나 / 金谷佳人每自烹
목옹에게 기량이 없다고 비웃지들 마소 / 莫笑牧翁無伎倆
넉넉히 시구 지어 태평성대에 답할 걸세 / 剩裁詩句答昇平

 

[주D-001]금곡(金谷) 가인(佳人) : 금곡은 진()나라 석숭(石崇)의 별장이 있는 금곡원(金谷園)을 가리키는데, 석숭은 매양 이곳에 빈객(賓客)을 모아서 시부(詩賦)를 짓고 술을 마시며 노닐었다. 가인은 미인(美人)을 뜻한다.

춘일(春日)

 


늙어갈수록 시서는 흥미가 있는데 / 老去詩書有味
한가히 지내니 천지는 끝이 없어라 / 閑來天地無涯
또 이 푸른 하늘 밝은 태양 아래서 / 又是靑天白日
태평성대의 백발을 어찌한단 말가 / 何如素髮淸時

봄날이 언뜻 갰다 또 비 오곤 하니 / 春日乍晴又雨
꽃 가지가 피려다가 피질 못하네 / 花枝欲開未開
본디 병든 나는 미친 병이 심하여 / 自是病夫狂甚
천지의 시 재료를 한데 포괄하였다오 / 牢籠天地詩材

 

경로시(敬老詩) ()를 겸하여 쓰다.

 

 

내 가 생각건대, 달존(達尊)이 세 가지가 있어 치()가 하나, ()이 하나, ()이 하나인데, 예로부터 이 세 가지를 온전히 다 갖춘 이가 매우 적었고, 향리에 물러가 늙는 것은 또 더욱 얻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다행히도 내가 몸소 그런 이들을 보게 되었으니, 의당 성악(聲樂)에 올려서 후세에 전해 보여야겠으므로, 비졸(鄙拙)함을 헤아리지 않고, 칠언 팔구(七言八句)씩으로 시를 지어 성덕(盛德)의 일부나마 각각 서술해서 나의 경모(景慕)하는 정을 부치는 바이다.


강릉(江陵) 최 상국(崔相國)

훌륭한 명망은 일찍부터 우문의 경사였고 / 英名早望慶于門
도당에 출사해서는 국론을 결단하였네 / 珥筆都堂斷國論
나이 팔순에 이르러 몸은 더욱 건강하고 / 年俯八旬身愈健
지위는 일품에 올라 덕은 더욱 높아졌네 / 位躋一品德彌尊
강릉의 수석들은 교목 세가를 에워쌌고 / 江陵水石圍喬木
산사의 바람 연기는 근촌을 진압하도다 / 山寺風煙壓近村
숙씨의 나이 공보다 겨우 두어 해 적으니 / 叔氏少公纔數歲
백발로 마주하는 낙을 어떻게 다 말하랴 / 白頭相對樂何言

진양(晉陽) 하 상국(河相國)

백발로 홍추의 높은 반열에 올랐는데 / 白髮鴻樞躡峻聯
중외직 두루 거칠 제 모두 어질다 추앙했네 / 歷敭中外共推賢
영대사는 멀어라 구름이 골짜기를 메우고 / 靈臺寺遠雲埋谷
촉석루는 높아라 나무가 하늘에 닿았도다 / 矗石樓高樹接天
떠들썩한 음악 연주로 긴긴 해를 보내고 / 急管繁絃消永日
그윽한 난초와 대숲은 갠 연기를 띠었네 / 幽蘭叢竹帶晴烟
두류산 밑은 참으로 노년을 보낼 만하니 / 頭流山下眞堪老
무성한 숲에 머리 돌려 만 년을 축수하노라 / 回首扶疎祝萬年

서원(西原) 최 상국(崔相國)

깨끗한 마음 굳은 절개 늙을수록 강하여라 / 淸心苦節老彌强
큰 키에 무쇠 창자라고 모두들 말하누나 / 共道長身是鐵腸
물망은 조정에서 의당 주석으로 치거니와 / 物望巖廊宜柱石
위엄은 어사대에서 엄숙함을 숭상하였네 / 威聲柏府尙風霜
늙어 가매 청정반이 없는 것은 아니거니와 / 靑精老去非無飯
연래에는 녹야당까지 다시 지었네그려 / 綠野年來更作堂
기개 높은 토랑은 바로 나의 친한 벗인데 / 倜儻
郞吾契友
의성은 아득해라 그곳이 바로 백운향일세 / 義城迢遞白雲鄕

경산(京山) 송 상국(宋相國)

양파에서 뒤따라 다니던 일 회상해 보니 / 回視陽坡逐後行
당년에 공의 명성은 공경을 진동시켰네 / 當年聲價動公卿
세상을 덮은 훌륭한 풍채는 지금도 건장하고 / 風儀蓋世今猶壯
별을 뚫을 듯한 시어는 늙을수록 청아하도다 / 詩語穿星老盖淸
관각에서 전성시엔 모두 공에게 양보했고 / 館閣盛時皆讓步
누대의 좋은 곳엔 다 이름을 기록하였네 / 樓臺好處盡題名
용두회
주관하는 것을 다시 바라보면서 / 押班更望龍頭會
봄이 오매 가장 태평하다 모두들 말하누나 / 共說春來冣太平

 

[주D-001]우문(于門) : ()나라 때 우공(于公)이 옥리(獄吏)로서 판결을 매우 공평하게 하여 훌륭한 명성을 얻고 생사(生祠)까지 세워졌던바, 뒤에 그의 여문(閭門)이 무너져서 이를 수리할 때 우공이 인부들에게 말하기를, “문의 공간을 조금 더 높여서 사마 고거(駟馬高車)가 출입할 수 있게 해 달라. 내가 평소에 옥사(獄事)를 다스리면서 음덕(陰德)을 많이 베풀었으니, 내 자손 중에 반드시 현달한 자가 나올 것이다.” 하였는데, 훗날 과연 그의 아들 우정국(于定國)이 역시 공평한 법관(法官)으로 명망이 높았고, 벼슬이 승상(丞相)에 이르렀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漢書 卷71 于定國傳》
[주D-002]청정반(靑精飯) :
입 하일(立夏日)에 먹는다는 오미반(烏米飯)을 가리킨다. 이것은 본래 도가(道家)의 태극진인(太極眞人)이 제조한 것으로, 이 밥을 먹으면 장수한다는 것인데, 후세에는 불교도(佛敎徒) 또한 흔히 4 8일이면 이 밥을 지어서 공양(供養)한다고 한다.
[주D-003]녹야당(綠野堂) :
()나라 때의 명상(名相) 배도(裴度)가 낙양현(洛陽縣) 남쪽에 지은 별서(別墅)의 이름이다.
[주D-004]토랑(郞) :
여기서는 최 상국(崔相國)의 아들을 가리킨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5]백운향(白雲鄕) :
부 모의 고향을 가리킨다. 당나라 적인걸(狄仁傑)이 병주(並州)의 법조 참군(法曹參軍)으로 있을 때 태항산(太行山)에 올라 고향을 바라보다가 흰 구름이 나는 것을 바라보고는 그 구름 밑에 자기 부모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탄식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용두회(龍頭會) :
문과(文科)에 장원한 사람들끼리의 모임을 이르는데, 이 모임은 고려(高麗) 희종(僖宗) 때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스스로 읊다. 4(四首)

 


소년 시절 천자국에 가서 벼슬을 하다가 / 少年游宦帝王州
사직하고 돌아오니 아직도 머리털은 검네 / 投紱歸來尙黑頭
세월은 자꾸 흘러라 지붕만 자주 쳐다보고 / 歲月崢嶸頻仰屋
강산은 아득하여라 홀로 누각에 오른다오 / 江山迢遞獨登樓
난리 뒤의 사업은 한가함을 흥미로 삼으나 / 亂餘事業閑爲味
고요함 속의 공부는 병이 가장 걱정이로세 / 靜裏功夫病是憂
경쇠 치며 마음 두었고 그만이로다 했으니 /
擊磬有心吾已矣
당일에 동주하고자 한 뜻을 알 만하구려 / 可知當日欲東周

밤 늦도록 꿇어앉아 두어 종소리 듣다가 / 夜闌危坐數鳴鍾
동산에 해 돋을 때까지 의관 정제 게을러라 / 日上東山懶正容
천명은 오십 세가 되어서 십분 알았고 /
天命十分知五十
대광은 거듭 받아서 삼중에 이르렀네 / 大匡重拜到三重
가려봤자 환히 보는데 끝내 무어 유익하랴 /
黶然如見終何益
우뚝한 더욱 높은데 공연히 따르려 하네 /
卓爾彌高謾欲從
스스로 가소로워라 만년에 남은 힘이 있어 / 自笑
年餘力在
도리어 문원을 찾아서 조룡을 배우는 것이 / 却尋文苑學


나를 안 이는 바로 하늘이라 감히 말하랴 / 敢言知我是蒼天
인간사 배우는 일도 오히려 깜깜한 것을 / 下學如今尙

병든 삭신 시고 아파 스스로 괴로울 뿐이요 / 病骨酸辛徒自苦
근심 걱정 초췌한 얼굴 누가 불쌍히 여길꼬 / 愁顔憔悴有誰憐
푸른 산은 문에 당해 푸른빛 듣는 듯하고 / 靑山當戶光如滴
밝은 달은 처마에 닿아 빛이 또한 곱구나 / 明月低簷色更娟
누각 위 백의의 신선은 말을 하려 하는데 / 樓上白衣仙欲語
순풍 속의 연잎이 배보다 평온하구려 / 順風蓮葉穩於船

예로부터 인물은 하늘이 아끼는 것이라 / 由來人物是天慳
공명을 남기면 후세에 영원히 전한다오 / 留得功名永不刊
한자의 고문은 당나라의 태산북두요 /
韓子古文唐北斗
사공의 아량은 진나라의 동산이로다 /
謝公雅量晉東山
바둑 두고 꺾임은 비록 꾸밈이었으나 /
圍碁折屐情雖矯
악어 내쫓고 구름 헤침은 뜻이 절로 편안했네 /
徒鰐開雲意自安
그 누가 알리요 유구한 천년 세월 아래서 / 誰識悠悠千載下
개연히 생각 일으켜 밥먹는 것도 잊을 줄을 / 慨然興想輒忘飱

 

[주D-001]지붕만 자주 쳐다보고 :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계책이 없어 막연함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2]홀로 누각에 오른다오 :
삼 국(三國) 시대 위()나라 왕찬(王粲)이 동탁(董卓)의 난리를 피하여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의지해 있을 적에, 강릉(江陵)의 성루(城樓)에 올라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서 진퇴 위구(進退危懼)의 정을 서술하여 〈등루부(登樓賦)〉를 지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경쇠 …… 했으니 :
경 쇠 치며 마음을 두었다는 것은, 곧 공자가 위()나라에서 경쇠를 칠 적에 마침 삼태기를 메고 그 문 앞을 지나가던 은사(隱士)가 말하기를, “천하에 도를 행하려는 데에 마음을 두었구나, 경쇠 치는 소리여.[有心哉 擊磬乎]” 한 데서 온 말이고, 내 그만이로다라고 한 것은, 바로 공자가 이르기를, “봉황이 이르지 않고, 하수에서 용마의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나는 그만이로다.[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상서(祥瑞)가 이르지 않아서, 도를 끝내 행할 수 없음을 탄식한 말이다. 《論語 子罕, 憲問》
[주D-004]동주(東周) :
동 쪽 노()나라에 주()나라의 도를 일으킴을 뜻한다. 공자가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인 공산불요(公山弗擾)의 부름을 받고 가려 하면서 이르기를, “나를 부르는 자는 어찌 안 쓰려면서 공연히 부르리요. 만일 나를 써 주는 이가 있다면 나는 동쪽 노나라에 주나라의 도를 일으킬 것이다.[夫召我者 而豈徒然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陽貨》
[주D-005]천명(天命)은 …… 알았고 :
공자가 이르기를,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주D-006]가려봤자 …… 유익하랴 :
《대 학장구》 전 6장에, “소인이 홀로 있을 때에 악행을 하되 못하는 짓이 없다가, 군자를 본 다음에는 그 악행을 덮어 가리고 선행을 나타내지만, 남이 자기를 보는 것이 마치 폐간을 들여다보듯이 하니, 무슨 유익함이 있으리요.[小人閒居 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 厭然
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如見其肺肝然 則何益哉]”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우뚝한 …… 하네 :
안 연(顔淵)이 공자의 도를 감탄하여 말하기를, “쳐다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보매 앞에 있더니 갑자기 다시 뒤에 있도다.……그만두고자 해도 마지못하여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니, 마치 부자의 수립하신 도가 우뚝히 보인 듯한지라, 아무리 힘써 따르려고 하나 말미암을 데가 없도다.[仰之彌高 鑽之彌堅瞻之在前 忽然在後……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維欲從之 末由也已]”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주D-008]조룡(龍) :
용의 모양을 아로새긴다는 뜻으로, 문장을 공교하게 꾸미는 것을 이르는데, 전하여 쓸데없는 방면에 노력하는 것을 비유한다.
[주D-009]백의(白衣) 신선 :
연잎을 타고 있는 백의관음보살(白衣觀音菩薩)의 그림을 가리킨 말이다.
[주D-010]한자(韓子)의 …… 태산북두(泰山北斗) :
한자는 당나라의 거유(巨儒)인 한유(韓愈)를 가리키는데, 《당서(唐書)》 한유전찬(韓愈傳贊), “한유가 죽은 이후로 그의 글이 크게 행해져서 학자들이 태산북두처럼 추앙하였다.”고 하였다.
[주D-011]사공(謝公)의 …… 동산(東山)이로다 :
사 공은 진()나라 사안(謝安)을 가리키는데, 그가 일찍이 벼슬을 사양하고 동산에 은거하다가 40세가 넘어서야 벼슬길에 나갔던바,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와서 경사(京師)가 진동할 때를 당하여, 효무제(孝武帝)가 그에게 정토 대도독(征討大都督)을 임명하자, 그는 이때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동산의 별장으로 나가서 여러 친구들이 다 모인 가운데 자기 조카인 사현(謝玄)과 함께 별장 내기 바둑을 두어서 대장(大將)다운 아량을 보였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12]바둑 …… 꾸밈이었으나 :
()나라 장군 사현이 전진 부견의 군대를 격파했을 때, 그 첩보(捷報)를 받고도 사안은 짐짓 손과 마주앉아서 바둑을 두고 또 글을 보면서 전혀 기쁜 기색을 보이지 않다가, 한참 뒤에 내실(內室)로 들어가면서는 기쁜 마음을 자제하지 못하여 나막신 굽이 꺾여져 나간 것도 몰랐다는 데에서 온 말이다.
[주D-013]악어 …… 편안했네 :
한 유가 일찍이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부임했을 때, 그곳 악계(惡溪)에는 악어가 살고 있어 가축과 농산물을 수시로 나와 먹어치워서 백성들이 살 수가 없는 지경이었으므로, 한유가 제악어문(祭鰐魚文)을 지어 악계에 던졌는데, 그날 저녁에 바로 악계에 폭풍이 불고 천둥이 치더니, 수일 후에는 그곳의 물이 다 말라서 악어가 온데간데없어 이로부터 악어의 해를 면하게 되었던 일과, 또 한유가 일찍이 형악묘(衡嶽廟)를 배알하러 형산(衡山)에 올랐을 때, 구름이 잔뜩 끼어서 사방을 바라볼 수 없자, 정성껏 묵도(默禱)한 결과 마침내 구름이 활짝 걷혀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감로사(甘露寺)를 생각하다.

 


한 줄기 긴 강물이 섬돌 밑으로 흐르니 / 一帶長江砌下流
절벽 곁한 창호들이 모두 맑고 그윽하네 / 傍崖軒戶儘淸幽
꽃을 뿌려라 오범엔 스님이 경쇠를 치고 /
散花午梵僧敲磬
차를 마셔라 시 읊는 손은 누각을 기댔네 / 啜茗春吟客倚樓
방초의 부연 연기는 목동의 젓대에 연하고 / 芳草淡烟連牧笛
비낀 바람의 가랑비는 고깃배에 가득해라 /
斜風細雨滿漁舟
성 서쪽 길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노니 / 分明記得城西路
필마로 그 언제나 다시 홀로 노닐어 볼꼬 / 匹馬何時更獨遊

 

[주D-001]꽃을 …… 치고 : 꽃을 뿌린다는 것은 스님이 공불(供佛)할 적에 꽃송이를 흩뿌리는 것을 말하고, 오범(午梵)은 스님이 한낮에 경()을 읽어 여래(如來)의 공덕을 찬양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2]비낀 …… 가득해라 :
당나라 은사(隱士)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辭)〉에, “푸른 대삿갓 쓰고 푸른 도롱이 입었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굳이 돌아갈 것 없네.[靑篛笠綠
衣 斜風細雨不須歸]” 한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2(二首)

 


들 중은 시 지어달라 찾아오고 / 索詩來野衲
이웃 노인은 술을 보내왔도다 / 送酒有隣翁
짧은 머리는 시 읊다가 희어지고 / 短髮吟餘白
쇠한 얼굴은 술에 취해 붉어지네 / 衰顔醉裏紅
소는 비 내린 방초 언덕을 가고 / 牛行芳草雨
새는 꽃 떨군 바람 속에 나누나 / 鳥入落花風
시골 흥취는 아마도 타고난 거라 / 野興知天賦
병중에 이리저리 배회를 하네 / 逍遙在病中

호연지기 기르고 또 도를 밝혀라 / 養氣仍明道
여러모로 닦는 게 절로 때가 있네 / 交修自有時
지행은 비록 아울러 실천할지라도 / 知行雖並進
경의는 반드시 굳게 가져야 하리 / 敬義必相持
상지
는 의당 먼저 세워야 하거니와 / 尙志須先立
천명을 앎에 문득 비로소 쇠했으니 /
知天却始衰
늦은 바람 쐬고 읊조리는 곳에 / 暮春風詠處
동자 관자가 즐겨 따르려 하랴 / 童冠肯追隨

 

[주D-001]상지(尙志) : 뜻을 고상하게 한다는 뜻으로, 왕자 점()이 묻기를, “사는 무엇을 일삼는 것입니까?[士何事]” 하니, 맹자가 이르기를, “뜻을 고상하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孟子 盡心上》
[주D-002]천명을 …… 쇠했으니 :
《논어》 위정(爲政)에서 공자가오십에 천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 하였고, 《예기(禮記)》 왕제(王制)에는오십에 비로소 쇠한다.[五十始衰]”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늦은 …… 하랴 :
공 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기의 뜻을 말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冠者) 5, 6인 동자(童子) 6, 7인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서경(書經)》을 읽다.

 


당서에서는 공경하는 곳을 읽고 /
唐書欽處讀
목서에서는 뉘우친 때를 찾도다 /
穆誓悔時尋
비바람은 진나라의 를 식혔고 / 風雨秦灰冷
먼지는 공자의 속에 깊었어라 /
塵埈孔壁深
검은 구름은 땅 위에서 걷히고 / 黑雲收地面
밝은 태양은 중천에 이르렀도다 / 白日到天心
인산
의 학문을 가장 사랑하노니 / 最愛仁山學
푸르고 푸른 그대의 옷이로세 /
靑靑是子衿

 

[주D-001]당서(唐書)에서는 …… 읽고 : 당서는 당요(唐堯)의 글인 《서경(書經)》 요전(堯典)을 가리키는데, 그 첫머리에, “옛 제요를 상고하건대, 방훈이시니, 공경함과 총명함과 문장과 의사가 아주 자연스러웠다.[曰若稽古帝堯 曰放勳 欽明文思安安]”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목서(穆誓)에서는 …… 찾도다 :
목서는 《서경》 맨 끝의 진서(秦誓)를 가리키는데, 그 내용은 바로 진 목공(秦穆公)이 정()나라를 잘못 정벌했다가, 진 양공(晉襄公)에게 크게 패배당하고는 스스로 크게 잘못을 뉘우쳐서 신하들에게 서고(誓告)한 것이다.
[주D-003]진(秦)나라 :
진 시황(秦始皇) 때에 천하의 경적(經籍)을 다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먼지는 …… 깊었어라 :
한 무제(漢武帝) 말기에 노 공왕(魯共王)이 공자(孔子)의 구택(舊宅)을 헐다가 벽 속에서 고문상서(古文尙書)를 비롯한 여러 경적을 발견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인산(仁山) :
()나라 때의 명유(名儒)로서 학자들로부터 인산 선생(仁山先生)으로 일컬어진 김이상(金履祥)을 가리키는데, 그는 특히 《상서표주(尙書表注)》ㆍ《논어집주고증(論語集注考證)》 등을 저술했다.
[주D-006]푸르고 …… 옷이로세 :
《시경》 정풍(鄭風) 자금(子衿), “푸르고 푸른 그대의 옷이여, 나의 그리는 마음 그지없도다.[靑靑子衿 悠悠我心]” 한 데서 온 말로, 매우 사모하는 뜻을 의미한다.

《시경(詩經)》을 읽다.

 


빈풍은 풍으로부터 아가 되었고 /
豳自風爲雅
왕풍은 아로부터 풍이 되었도다 /
王由雅列風
인심은 스스로 고금이 다르고 / 人心自今古
세도는 쇠하고 융성함이 있는데 / 世道有汙隆
초목들도 모두 풍화를 입었고 / 草木皆蒙化
연어들 또한 천성을 타고났도다
鳶魚亦降衷
생각에 사특함 없다는 글귀
/ 思無邪一句
그 누가 소왕의 공을 알리요 / 誰識素王功

 

[주D-001]빈풍(豳風)은 …… 되었고 : ()은 주 무왕(周武王) 13대조(代祖)가 되는 공류(公劉)가 처음 세운 나라이므로, 《시경》 빈풍 칠월(七月) 시의 내용은 주공(周公)이 후직(后稷)과 공류의 교화를 서술하여 성왕(成王)을 경계시킨 것인데, 칠월 시에 이어서 모든 주공의 시를 다 이 빈풍에 붙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왕풍(王風)은 …… 되었도다 :
()은 왕성(王城)의 기내(畿內)인 주()나라 동도(東都) 낙읍(洛邑)을 가리키는데, 주 유왕(周幽王)이 서도(西都)인 풍호(
)에서 시해되고 나서, 새로 즉위한 평왕(平王)이 동도 왕성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로는 왕실(王室)이 마침내 낮아져서 제후(諸侯)와 다를 바가 없게 되었으므로, 그 시가 아()가 되지 못하고 풍()이 되었음을 이른 말이다.
[주D-003]연어(鳶魚)들 …… 타고났도다 :
《중 용장구》 제12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뛴다.[鳶飛戾天 魚躍于淵]’ 하였으니, 천지 화육(天地化育)의 유행(流行)함이 위아래에 밝게 드러난 것을 이른 말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생각에 …… 글귀 :
공자가 이르기를, “《시경》 삼백 편을 한마디의 말로 덮을 수 있으니,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말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주D-005]소왕(素王) :
제왕(帝王)의 덕을 갖추고도 제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로, 공자를 가리킨다.

《주역(周易)》을 읽다.

 


희문은 획단을 이루었고 /
羲文成畫彖
하락에선 도서가 나왔도다 /
河洛出圖書
상을 본받는 원래 빠짐이 없는데 / 則象元無漏
인하여 거듭한 어찌 남음이 있으랴 / 因重豈有餘

육허
는 흘러 움직이는 곳이요 / 六虛流動處
삼절
은 깊이 연구하던 처음이로다 / 三絶覈硏初
마음 깨끗이 하고 조용함에 처하니 / 洗盡心藏密
맑은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구나 / 淸香滿屋廬

 

[주D-001]희문(羲文) 획단(畫彖) 이루었고 : 희 문은 복희씨(伏羲氏)와 주 문왕(周文王)을 합칭한 말이다. 복희씨가 맨 처음 팔괘(八卦)를 긋고[], 인하여 거듭해서 육십사괘(六十四卦)를 만들었는데, 뒤에 주 문왕이 유리()에 갇혀 있으면서 복희씨의 《주역(周易)》에 괘()마다 괘사(卦辭)인 단사(彖辭)를 붙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하락(河洛)에선 도서(圖書) 나왔도다 :
하 락은 황하(黃河)와 낙수(洛水)를 합칭한 말인데, 복희씨 때는 황하에서 용마(龍馬)가 그림을 등에 지고 나와서 이것을 팔괘(八卦)의 근원으로 삼았고, 하우씨(夏禹氏) 때는 낙수에서 신귀(神龜)가 글을 등에 지고 나와서 이것이 곧 천하를 다스리는 큰 법칙인 홍범구주(洪範九疇)가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상(象)을 …… 있으랴 :
《주 역》 계사전 하(繫辭傳下)팔괘가 열을 이루니 상이 그 가운데 있고, 인하여 거듭하니 효가 그 가운데 있다.[八卦成列 象在其中 因而重之爻在其中矣]” 한 데서 온 말인데, 상은 천일산택(天日山澤) 등 조짐이 드러난 것을 가리킨다.
[주D-004]육허(六虛) :
《주역》 육십사괘(六十四卦)의 괘마다 갖추고 있는 육효(六爻)를 이른다. ()는 음양(陰陽)으로 나뉘어져서 매괘(每卦)의 효가 변동하여 일정함이 없기 때문에 허()라고 칭한다.
[주D-005]삼절(三絶) :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좋아하여 워낙 많이 읽었던 관계로,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던 것을 이른 말이다.

《춘추(春秋)》를 읽다.

 


서로 어긋난 것은 춘추의 전이요 /
齟齬春秋傳
정미한 것은 필삭한 마음이로다 /
精微筆削心
백왕의 모범이 여기에 있기에 / 百王模範在
한 글자를 두세 번씩 숙고했었네 / 一字再三尋
기린은 나의 도를 표현하였고 /
麟也表吾道
봉황은 덕음을 노래하였네 /
鳳兮歌德音
유유한 천재 아래서 / 悠悠千載下
나그네 눈물이 옷깃을 적시누나 / 有客淚霑襟

 

[주D-001]서로 …… 전(傳)이요 : 《춘추(春秋)》의 삼전(三傳)인 좌씨전(左氏傳)ㆍ공양전(公羊傳)ㆍ곡량전(穀梁傳)이 서로 잘 맞지 않음을 이른 말이다.
[주D-002]정미(精微)한 …… 마음이로다 :
공자가 《노사(魯史)》를 인하여 《춘추》를 저술할 적에 쓸 만한 것은 쓰고 삭제할 것은 삭제했는데, 내용이 워낙 완벽하여 자하(子夏) 등이 여기에 대해서 감히 한마디도 거들지 못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주D-003]기린은 …… 표현하였고 :
공 자가 《춘추》를 저술하던 중, 노 애공(魯哀公) 14년에 애공이 서쪽으로 사냥 나가서 기린을 얻자, 공자가나의 도가 다하였다.[吾道窮矣]” 한 데서 온 말이다. 기린은 성인(聖人)의 무리인데, 성왕(聖王)이 없는 이때에 기린이 나와서 죽임을 당했으므로 공자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주D-004]봉황(鳳凰)은 …… 노래하였네 :
춘 추 시대 초()나라의 은사(隱士)인 접여(接輿)가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나가면서 노래하기를,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 그리 덕이 쇠했느뇨.[鳳兮鳳兮 何德之衰]” 한 데서 온 말인데, 봉황은 본디 태평한 세상에만 나타나고 무도한 세상에는 숨어 버리는 것이므로, 접여가 공자를 봉황에 비유하여 무도한 세상에 숨지 않아서 덕이 쇠하게 했다고 기롱한 것이다. 《論語微子》

《예기(禮記)》를 읽다.

 


불은 미친 진나라에서 꺼지고 / 火向狂秦滅
책은 소대에 의해서 이뤄졌는데 /
書從小戴成
비록 잘못된 점이 있기는 하나 / 雖然有瑕纇
대부분은 정수를 얻었다 하겠네 / 動是得精英
박약하여 남은 부족함이 없고 / 博約無餘蘊
조용하게 태평을 이룰 수 있으니 / 從容致太平
바야흐로 노나라가 변하여 / 方期魯一變
봉황이 훨훨 날기를 기대하노라 /
翽翽鳳凰鳴

 

[주D-001]책은 …… 이뤄졌는데 : ()나라 때 금문 경학가(今文經學家)인 대덕(戴德)이 그의 조카인 대성(戴聖)과 함께 후창(后蒼)에게 예()를 배웠는데, 뒤에 대덕이 전한 《예기(禮記) 85편을 《대대례(大戴禮)》라 하고, 대성이 전한 《예기》 49편을 《소대례(小戴禮)》라고 했던바, 《소대례》가 바로 현존(現存)하는 《예기》이므로 한 말이다.
[주D-002]노(魯)나라가 …… 변하여 :
공자가 이르기를, “제나라가 한 번 변하면 노나라에 이르고, 노나라가 한 번 변하면 선왕의 도에 이를 것이다.[齊一變 至於魯 魯一變 至於道]”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D-003]봉황이 …… 기대하노라 :
《시 경》 대아 권아(卷阿), “봉황이 나니, 훨훨 치는 그 날개로다.[鳳凰于飛
翽翽其羽]”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소강공(召康公)이 성왕(成王)에게 사방의 현사(賢士)들을 널리 구하도록 경계시킨 노래로서, 봉황은 현사를 비유한다.

독야(獨夜) 8(八首)

 


처자식은 경치 좋은 데 놀러가고 / 婦兒游勝境
늙은 나는 집을 지키고 있노라니 / 老病守窮廬
아직껏 정신 빼어남이 기뻐라 / 尙喜精神秀
이와 머리털은 성글거나 말거나 / 從敎齒髮疎
평생을 그럭저럭 지낼 뿐이니 / 平生聊爾耳
필경에는 정히 어찌할거나 / 畢竟定何如
기억컨대 승죽을 얻어먹을 적엔 / 記得隨僧粥
연기 놀 속에 목어가 움직였었지 / 烟霞動木魚

늙은 목은은 기심 잊은 지 오래라 / 老牧忘機久
연래엔 집이 얼음처럼 청결하네 / 年來室似氷
여러 애들은 한창 곤히 자는데 / 衆雛方爛睡
긴 밤에 등불은 꺼지려 하누나 / 長夜欲殘燈
아직 삼업을 맑히지 못했거니 / 但未淸三業
어찌 이승에 떨어질 수 있으랴 / 何曾落二乘
산 놀이엔 봄이 점점 좋아지는데 / 遊山春漸好
다행히 해묵은 오등이 있구나 / 幸有老烏藤

세월이 흘러 나는 늙어만 가는데 / 鼎鼎吾將老
유유한 것은 다만 이 마음이로세 / 悠悠只此心
강산은 혼자 노닐기에 알맞고 / 江山宜獨往
풍월은 맑은 읊조림을 요하누나 / 風月要淸吟
학문이야 어찌 고봉을 벗하랴만 /
學豈友高鳳
화하기론 응당 전금을 본받아야지 /
和應師展禽
붓끝에 봄이 한창 광대하여라 / 筆端春浩蕩
화초가 문단에 두루 펼쳐지누나 / 紅綠遍詞林

어제 여기 날아온 흰 구름은 / 昨夜白雲來
응당 만 리 밖에서 왔을 텐데 / 應從萬里歸
오늘 아침에 붉은 해가 나오자 / 今朝紅日出
문득 사방 산으로 날아 흩어지네 / 却向四山飛
그림자가 있은들 누가 능히 짝하랴 / 有影誰能伴
무심하기론 세상에 드문 거로다 / 無心世所稀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노라니 / 看渠卷舒處
그것만으로도 벌써 기심을 잊었네 / 祇是早忘機

산당에 차가운 밤 하도 기니 / 山堂寒夜永
점차 도심이 깊어짐을 깨닫겠네 / 漸覺道情濃
얼음이 녹으니 솥에선 물이 끓고 / 氷釋湯鳴鼎
구름이 옮기니 달은 소나무에 있네 / 雲移月在松
서로 대하면 다 같은 동기이건만 / 相形固同氣
체가 같아야만 서로 용납한다오 / 同體却相容
혼자 읊조리매 생각이 끝없어라 / 獨詠思無盡
슬픈 소리가 귀뚜라미 소리 같네 / 悲聲似砌蛩

인생은 맘에 맞는 귀중하나니 /
人生貴適意
나 또한 나의 집을 사랑한다오 / 吾亦愛吾廬
흥이 있어도 누구와 함께 말하랴 / 有興將誰語
생각 있으니 문득 태연해지누나 / 忘懷却自如
얼음 녹으니 계곡은 졸졸 흐르고 / 氷消泉谷咽
눈이 다하니 나무숲은 성글어라 / 雪盡樹林疎
그윽한 회포 익숙함은 자신하건만 / 自信幽懷熟
자허부
를 지을 길이 막연하구나 / 無從賦子虛

구몽은 점치는 관원이 있거니와 /
九夢官有占
한 번 죽음은 하늘이 명한 바로세 / 一死天所賦
자가 계시거니 회가 감히 죽으랴 /
子在回何敢
쇠하여 주공을 다시 보리라 /
吾衰周不復
영혼은 응당 유명을 통하거니와 / 精魄通幽明
수요는 끝내 천지와 함께한다오 / 壽夭同仰俯
생명 기도할 데 없음을 잘 아노니 / 深知無所禱
하루하루를 조심조심 지낼 뿐일세 / 惕若度朝暮

양지쪽 비탈엔 봄이 굼틀거리고 / 陽崖春動盪
음지쪽 구렁엔 눈이 희미한데 / 陰壑雪糢糊
거마의 세속 자취는 전혀 없고 / 車馬塵蹤絶
종어
만 외로이 절간에 걸리었네 / 鍾魚梵刹孤
길이 수석 찾기를 생각하느라 / 永懷尋水石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래 앉아서 / 晏坐度朝晡
일만 그루의 낙락장송 아래 / 萬樹長松下
밝은 창 밑에 병든 몸 부치었네 / 明窓着病軀

 

[주D-001]승죽(僧粥) 얻어먹을 적엔 : 승죽은 죽반(粥飯)이나 축낼 뿐 수행에는 힘쓰지 않는 중을 죽반승(粥飯僧)이라 한 데서 온 말로, 승사(僧舍)에 있을 때를 이른다.
[주D-002]목어(木魚) :
나무를 깎아서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불구(佛具)인데, 절에서 승려(僧侶)들에게 식사 시간을 알리는 데에 이것을 걸어 놓고 쳤다.
[주D-003]삼업(三業) :
불가(佛家)의 용어로, ()ㆍ구()ㆍ의() 세 가지의 업을 가리킨다.
[주D-004]이승(二乘) :
불 가의 용어로,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을 합칭한 말인데, 성문승은 불()의 가르침을 듣고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四諦)의 진리를 깨달아 득도(得道)한 이를 이른 말이고, 연각승은 불()의 세상에 나와서 십이인연(十二因緣)을 관찰하여 득도한 이를 이른 말이다.
[주D-005]오등(烏藤) :
()으로 만든 지팡이를 가리킨다.
[주D-006]학문이야 …… 벗하랴만 :
고 봉(高鳳)은 후한(後漢) 때의 명유(名儒)인데, 일찍이 그의 아내가 마당에 보리를 널어놓고 밭에 가면서 그에게 보라고 했더니, 그때 마침 소나기가 내렸는데도 그는 학문에 워낙 열중한 나머지, 보리가 다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낚싯대를 손에 쥔 채 글만 읽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주D-007]화(和)하기론 …… 본받아야지 :
전 금(展禽)은 춘추 시대 노()나라 유하혜(柳下惠)의 이름이다. 그가 유하(柳下)에 살았고 시호가 혜()이므로 유하혜라 하는데, 맹자가 이르기를, “유하혜는 성의 화한 분이다.[柳下惠聖之和者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下》
[주D-008]인생은 …… 귀중하나니 :
()나라 때 장한(張翰)이 고향인 오중(吳中)을 떠나 낙양(洛陽)에 들어가서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오중의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鱠]를 생각하면서, “인생은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중한데, 어찌 수천 리 타관에 가서 벼슬하여 명작(名爵)을 구할 수 있겠는가.” 하고, 즉시 고향으로 돌아가버렸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9]나 …… 사랑한다오 :
도잠(陶潛)의 〈독산해경(讀山海經)〉 시에, “뭇 새들도 기꺼이 의탁할 곳 있거니, 나 또한 나의 집을 사랑한다오.[衆鳥欣有託吾亦愛吾廬]” 하였다.
[주D-010]자허부(子虛賦) :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양()에서 노닐 때에 지은 문장 이름이다. 공자(公子) 자허(子虛)ㆍ오유 선생(烏有先生)ㆍ무시공(亡是公)의 세 인물을 가설(假說)하여 문답체(問答體)로 서술하였는데, 그 내용은 대략 제후(諸侯)의 유렵(遊獵)에 관한 일을 서술하고 끝에는 절검(節儉)의 뜻을 기술하여 임금을 풍간(諷諫)한 것이었다. 후일 한 무제(漢武帝)가 그것을 보고는 사마상여를 매우 칭탄(稱歎)했다고 한다.
[주D-011]구몽(九夢)은 …… 있거니와 :
《주례(周禮)》 춘관(春官) 점몽(占夢)에는 육몽(六夢)을 점치는 것이 있고, 춘관 태복(太卜)에는 삼몽(三夢)을 점치는 것이 있어, 모두 합하면 구몽이 된다.
[주D-012]자(子)가 …… 죽으랴 :
공 자가 광() 땅에서 두려운 일을 겪을 적에 안회(顔回)가 뒤처졌으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나는 네가 죽은 줄로 알았노라.[吾以汝爲死]” 하니, 안회가 대답하기를, “부자께서 계시거니, 제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子在回何敢死]”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주D-013]내 …… 보리라 :
공자가 이르기를, “심하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이어라, 내가 다시 꿈에 주공을 보지 못하였도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주D-014]종어(鍾魚) :
종어(鐘魚)로도 표기한다. 절에서 종을 치는 나무를 가리키는데, 경어(鯨魚) 모양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병중(病中)에 읊다.

 


병중에 읊노라니 천지는 깊기도 한데 / 病中吟天地深
머리 위엔 해와 달이 혁혁히 임하였네 / 頭上赫赫日月臨
정신은 절로 초목과 함께 빼어나서 / 精神自與草木秀
외로운 향기 반짝반짝 총림에 빛나누나 / 孤芳耿耿明叢林
봉황이 한 번 울면 떼 지어 울어대는 건데 / 鳳鳥一鳴啾啾群
순 임금 문왕은 멀어라 어이 그리 아득한고 / 舜文遠矣何沈沈
만물이 형체가 있으면 이치도 있는 법이라 / 萬物有形卽有理
태극 또한 애써 사람에게 찾도록 하였네 / 大極亦强令人尋
양의와 사상이 무극에서 변하여 나왔거니 / 兩儀四象變無極
다만 하나의 토끼를 깊이 연구해야 하리 / 只一雙
宜沈潛
몸의 조화 잠시 잃으매 문득 재앙이 생기어 / 調和
乖輒生禍
땀 흘러 자리 적시고 가슴은 답답하여라 / 沾濡牀蓐煩胷襟
좋은 약재는 멀리 만 리 밖에서 구해오고 / 靈芽遠求至萬里
신비한 약방문은 천금을 들여 널리 찾았네 / 祕方廣叩搜千金
아 자기 반성은 또한 아주 쉬운 일이니 / 嗚呼反觀亦易耳
네 스스로 힘 안 쓰면 금수일 뿐이로다 / 汝自不力乃獸禽
또 청컨대 안심하고 조석을 지내노라면 / 且請安心度朝夕
야기가 절로 만족하여 음기를 제거하리니 / 夜氣自足消群陰
상제의 높은 거처엔 병위가 삼엄하다네 / 上帝高居兵衛森

 

[주D-001]하나의 토끼 : 정자(程子)가 일찍이 토끼를 보고 이르기를, “이것만 살펴보고도 괘를 그을 수가 있다.[察此亦可以畫卦]” 한 데서 온 말로, 《주역》의 이치를 의미한다.

노마(老馬行)

 


해는 지고 안개 짙어 밤이 칠흑 같아서 / 日沈霧重夜如漆
지척이 담장 대한 듯 걸을 수가 없어라 / 咫尺面墻行且跌
군기는 의당 때에 미쳐 일찍 정해야 하기에 / 軍機早定須及時
말려고 해도 마지못해 기가 한창 맺히누나 / 欲止未能氣方結
포의 입은 한 백발의 노쇠한 늙은이는 / 褒衣白髮一衰翁
청하노니 늙은 말을 그 가운데 풀어놓으면 / 請釋老馬於其中
참으로 마치 월상씨의 지남차와 같아서 / 端如越裳指南車
재갈 물려 따라가면 바람처럼 빠를 게고 / 銜枚從之疾如風
당시의 준마들이 모두 번개 쫓듯 달리면은 / 當時駿蹄摠逐電
만 리에 붉은 진주 빛 땀방울을 흘리리니 / 萬里血汗眞珠紅
누가 알랴 산보다 뾰족한 외롭고 파리한 몰골이 / 誰知伶
瘦骨高於山
경각 사이에 사람과 함께 큰 공을 이룰 줄을 / 頃刻與人成大功
그대는 못 보았나 태공은 팔십에 위무를 떨치어 / 君不見太公八十時鷹揚
화산에 돌려보내고 천하통일 이뤘던 것을
/
歸馬華山天下同

 

[주C-001]노마(老馬) : 춘 추 시대 제()나라 관중(管仲)이 환공(桓公)을 따라서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고 돌아오다가 길을 잃었을 때에, 관중이 말하기를, “늙은 말의 지혜를 쓸만하다.[老馬之智可用也]” 하고, 이에 늙은 말을 풀어놓고 그 말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길을 찾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경험을 많이 쌓아서 사리에 통달한 지혜를 비유한다.
[주D-001]월상씨(越裳氏) 지남차(指南車) :
주 공(周公)이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자, 월상씨가 백치(白雉)ㆍ흑치(黑雉)ㆍ상아(象牙) 등을 가지고 중역(重譯)을 거쳐 와서 조공(朝貢)했는데, 사자(使者)가 돌아갈 적에는 길을 잘 찾아가게 하기 위해 주공이 특별히 지남차를 만들어 주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태공(太公)은 …… 이뤘던 것을 :
무 왕(武王)이 강태공(姜太公)의 계책에 따라 상()나라를 정벌하여 멸망시키고 나서는,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하에 보이기 위하여 말[]은 모두 화산(華山)의 남쪽으로 돌려보내고, []는 모두 도림(桃林)의 들판에 풀어버린 데서 온 말이다. 《書經 武成》

잡영(雜詠) 3(三首)

 


세상 다스림엔 다른 계책이 없고요 / 御世無餘策
백성 위함은 하늘 받드는 데 있나니 / 因民在奉天
사치와 검소의 예를 조절하고 / 節文奢儉禮
억양하는 권변을 헤아려야 하리 / 斟酌抑揚權
종이쪽은 좁아서 도장 찍기 어렵고 / 紙狹難容印
명함 하나만 쓰고 전은 생략하여라 / 銜單却省牋
알건대 태평성대가 곧 다가와서 / 太平知有日
천하 만물이 화육 속에 들어오리 / 萬物入陶甄

나는 질병 많음을 가련케 여기는데 / 自憐多疾病
남들은 아직도 건강하다고 하네 / 共道尙康强
늘그막이라 즐거운 마음은 적은데 / 老境懽情少
새봄이라 화창한 기운은 많구나 / 新春和氣長
옥계는 바야흐로 상서를 기록하고 /
玉雞方紀瑞
금압 향로엔 향 연기가 타오르니 / 金鴨正燒香
반드시 배꽃 같은 달을 마주하여 / 須向梨花月
좋은 자리에 술잔을 기울여야지 / 瓊筵倒羽觴

친구들은 지금 몇이나 남았는고 / 朋友今餘幾
교외엔 봄이 태반이나 지났구려 / 郊原春半强
새로운 시름은 날마다 생겨나고 / 新愁隨日出
호기는 봄과 더불어 자라나누나 / 豪氣與春長
달은 넘실대는 금파에서 감상하고 / 月賞金波

꽃은 향기로운 백설에서 찾노라 / 花尋白雪香
이제부턴 꼭 촛불 잡고 노닐면서 / 從玆須秉燭
흥겨울 때마다 술잔을 기울이리 / 遇興且傾觴

 

[주D-001]옥계(玉雞) …… 기록하고 : 한 고조(漢高祖)의 어머니 함시(含始)가 일찍이 낙지(洛池)에서 노닐다가 적주(赤珠)를 물고 있는 옥계를 발견했는데, 거기에이것을 삼킨 자는 왕이 될 것이다.[呑此者王]”라고 새겨 있어서 함시가 이것을 삼키고 고조를 낳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향기로운 백설 :
이화(梨花)의 별칭으로 쓰인 말이다.

동산(東山)에서 길 가는 사람을 바라보다.

 


성 남쪽 큰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 城南大畝俯窺時
담장 밖 평탄한 길에 왕래하는 이 드문데 / 墻外平途往返稀
두 스님은 합장하여 서로 안부를 묻고 / 兩箇野僧相問訊
한 떼의 산새들은 서로 좇아 따르누나 / 一群山鳥自追隨
때로는 말 탄 관원이 지나가기도 하는데 / 有時騎馬官人過
목동은 소를 끌고 어느 곳으로 가는고 / 何處牽牛牧子歸
절로 교외의 주거는 풍경이 하도 좋아서 / 自是郊居好風景
두건 벗고 소리 높여 귀거래사를 읊노라 / 岸巾高詠去來辭

 

고향 산천을 생각하다.

 


바람소리는 솔솔 물은 질펀히 흐르고 / 風聲細細水溶溶
달 아래 어부가는 방아 소리에 섞이어라 / 帶月漁歌雜夜舂
내 일찍이 홀로 절에서 하룻밤을 잤는데 / 獨向僧窓曾一宿
깜빡이는 부처의 등불 소나무에 가득했었네 / 佛燈明滅滿山松

백사장 마을 길에 가랑비가 내릴 제 / 白沙村路雨絲絲
순채와 농어회가 정히 좋을 때로세 / 蓴菜鱸魚正美時
그 당시 함께 놀던 이 지금 몇이나 있는고 / 當日同遊今有幾
고금의 감회에 절로 슬픈 맘이 생기누나 / 感今懷古自生悲

 

즉사(卽事)

 


예는 가고 지금은 오고 또 이때를 당해서 / 古往今來又此時
유유한 이 신세는 끝내 무엇을 하는고 / 悠悠身世竟何爲
강산은 말 가는 대로 봄에 읊조리기 좋고 / 江山信馬春吟好
눈 속엔 스님 만류해 밤 얘기가 할 만하네 / 雨雪留僧夜話宜
가면 쓰고 장난하는 아이들은 떠들썩한데 / 假面弄餘童稚鬧
붓에 찍어 쓰니 귀신도 만하네 /
濡毫題罷鬼神知
한 덩이 화기 밖에 다른 물건은 없으니 / 一團和氣無餘物
중화를 빚어 만들어 작은 시에 넣으련다 / 釀作中和入小詩

 

[주D-001]붓에 …… 만하네 :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에게 부친 시에, “붓을 들어 쓰면 비바람을 놀래키고, 시를 이루면 귀신을 울리도다.[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 한 데서 온 말이다.

금중(禁中)에 입직(入直)했던 일을 추억하여 기록하다.

 


높다란 대궐 집에 지위는 가장 엄격한데 / 禁直岧嶢地最嚴
구천의 비이슬
이 내 조복을 적시누나 / 九天雨露濕朝衫
뚝뚝뚝 누각 소리는 머리 기울여 듣고 / 丁東漏刻傾頭聽
비속한 문장은 입에 나온 대로 읊조리네 / 俗下文章信口占
단술 만든 훈계 깊어라 부열을 생각하고 /
作醴訓深思傅說
왕가 다스린 중해라 무함을 생각하네 /
乂家功重憶巫咸
오늘날 시위소찬은 나 같은 사람 없으리 / 素飡今日臣無比
밤에 홀로 읊노라니 주렴에 달이 가득쿠나 / 入夜孤吟月滿簾

 

[주D-001]구천(九天) 비이슬 : 임금이 내린 은택(恩澤)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단술 …… 생각하고 :
은 고종(殷高宗)이 현상(賢相) 부열(傅說)에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뜻을 바로잡아서, 내가 만일 술을 만들려거든 네가 누룩이 되어다오.[爾惟訓于朕志 若作酒醴爾惟麴
]” 한 데서 온 말로, 임금을 잘 보좌하는 것을 의미한다. 《書經說命下》
[주D-003]왕가(王家) …… 생각하네 :
무함(巫咸)은 은 중종(殷中宗) 때의 현신(賢臣) 이름인데, 주공(周公)이 소공(召公)을 불러 이르기를, “() 태무(太戊) 때에는 무함이 왕가를 다스렸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태무는 중종의 이름이다. 《書經 君奭》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을 스스로 읊다.

 


발을 들려면 지팡이를 짚어야 하고 / 擧趾須扶杖
머리가 하늘 닿을까 바싹 구부리네 / 低頭似跼天
생각한 게 있으니 왜 안 넘어지랴 / 有懷何不蹶
흥취를 만나면 곧 미친 듯하는 걸 / 遇興卽如顚
자리에 깊이 앉는 데는 익숙하나 / 牀蓐工深坐
조정의 백관 반열과는 막혀버렸네 / 班行阻折旋
어찌하면 봄이 한창일 때를 당해서 / 何當春氣盛
굼뜬 걸음으로 산천을 누벼볼거나 / 蹇步涉山川

 

설고()를 읊다.

 


늙은 목은이 연래엔 비린 것이 싫어서 / 年來老牧厭羶腥
맑고 찬 것만 가지고 성령을 기르노라니 / 但把淸寒養性靈
옥 기름이 흰 달처럼 뭉쳐진 게 이미 좋은데 / 已喜瓊膏團素月
옥 가루가 하늘에서 떨어졌나 의심도 나네 / 却疑玉屑落靑冥
버들개지보다 가벼워 자리엔 바람이 일고 / 輕於柳絮風生座
매화처럼 차가운데 물은 병에 가득하여라 / 冷似梅花水滿甁
손 흔적 없이 천연으로 된 게 가장 좋아서 / 最愛天成無手澤
배불리 먹고 졸려서 창문 앞에 앉았노라 / 飽餘和睡倚窓

 

옛일을 기술하다.

 


만물 창조한 공은 어이 그리 먼고 / 創物功何遠
때를 따른 제도는 처음과 다르도다 / 因時制異初
용주는 나뭇잎 띄우던 뒤의 일이요 /
龍舟浮葉後
상로는 바람에 날린 쑥의 나머지로세 /
象輅轉蓬餘
세도는 지금 하도 많이 변했건만 / 世道今多變
인심은 본디 절로 허명한 것이니 / 人心本自虛
곧장 순수한 그 처음을 찾는다면 / 直須尋太素
원기가 아직도 천지에 충만하리라 / 元氣尙扶輿

 

[주D-001]용주(龍舟)는 …… 일이요 : 용주는 용의 모양으로 천자(天子)가 타는 배인데, 상고(上古) 시대에 낙엽(落葉)이 물에 뜬 것을 보고 처음으로 배를 만들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상로(象輅)는 …… 나머지로세 :
상 로는 상아(象牙)로 장식한 수레로서 천자가 타는 수레인데, 상고 시대에 성인(聖人)이 바람에 날리는 쑥의 모양을 보고 비로소 수레바퀴 만들 줄을 알았고, 구르는 수레바퀴 위에 짐을 실을 수 있음을 생각하여 다시 수레를 만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後漢書 輿服志》

일에 느낌이 있어 읊다. 4(四首)

 


성원은 권한이 어찌 그리 중한고 / 省院權何重
빈붕들의 자리가 헛되지 않도다 / 賓朋座不虛
의젓하 물러 나와 밥을 먹고 /
委蛇方退食
서로 이어 다시 수레를 따르누나 / 絡驛更隨車
자리를 양보한들 누가 위에 앉으랴 / 讓坐誰居右
서로 존경해 남은 음식 먹으려 하네 / 承歡欲食餘
후일에 응당 이 일을 생각할 때는 / 他年應念此
꽃다운 풀이 뜨락에 가득하리라 / 芳草滿庭除

살기 어려움은 잣나무 같았는데 /
生艱方擬柏
커서는 쓸모없는 재목이 되었네 / 材大却成樗
어린애에겐 천자문을 가르치고 / 敎稚溫千字
글을 하는 데 육서를 상고하여라 / 爲文考六書
충어
는 구차한 것일 뿐이니 / 蟲魚聊爾耳
준마나 봉황
을 정히 어찌하리요 / 驥鳳定何如
천운은 예로부터 아득한 것이라 / 天運由來杳
하염없이 태고를 상상할 뿐이로다 / 悠悠想古初

새해에 왕래하는 일 많지 않아 / 新年來往少
누워서 고인의 글을 읽노라니 / 臥讀古人書
이욕을 모름지기 먼저 틀어막고 / 利欲須先錮
겉치레를 의당 다시 제거해야겠네 / 浮華要再鋤
음지쪽엔 아직 섣달 눈이 쌓였고 / 陰崖猶臘雪
남새밭엔 봄 채소가 나려 하누나 /
欲春蔬
도리가 산 마을 가까이에 있으니 / 桃李山村近
가족 데리고 가서 집을 지으련다 / 携家往結廬

태평성대에 누가 숨으려 하랴 / 淸時誰欲隱
밝은 임금을 내 일찍이 만났거늘 / 明主我曾逢
경시에는 경고 소리 전해 오고 / 京市傳更鼓
강 하늘엔 저녁 산이 비추누나 / 江天照夕峯
종 울려라 예불하는 걸 알겠고 / 聞鍾知梵唄
베개 기대선 이웃 방아 소릴 듣네 / 欹枕聽鄰舂
새벽에 일어나 몸 단장 게을러라 / 曉起慵巾櫛
바야흐로 도의 뜻 농후함을 알겠네 / 方知道意濃

 

[주D-001]의젓하게 …… 먹고 : 《시 경》 국풍(國風) 소남(召南) 고양(羔羊), “관에서 퇴청하여 밥 먹으니, 의젓하고 의젓하도다.[退食自公 委蛇委蛇]”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남국(南國)이 문왕(文王)의 덕에 감화되어 모든 벼슬아치들이 검소하고 정직하게 사는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2]살기 …… 같았는데 :
소 식(蘇軾)의 시에, “잣나무 심어 자라기를 기대했더니, 잣나무 무성해지자 사람은 늙어버렸네. 잣나무의 삶은 어찌 그리 어려운고, 역시 하늘의 기교를 허비한 듯하구나.[種柏待其成 柏成人已老 柏生何苦艱 似亦費天巧]”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육서(六書) :
한자의 구성 및 활용에 관한 여섯 종류로서, 즉 상형(象形)ㆍ지사(指事)ㆍ회의(會意)ㆍ형성(形聲)ㆍ전주(轉注)ㆍ가차(假借)를 이르는데, 여섯 가지 서체(書體)를 가리키기도 한다.
[주D-004]충어(蟲魚) :
《이아(爾雅)》의 충어에 훈고(訓詁)나 다는 세쇄(細瑣)한 일을 이른다. 한유(韓愈)의 시에, “이아의 충어에 주석이나 다는 건, 정히 뛰어난 사람이 아니로다.[爾雅注蟲魚 定非磊落人]” 하였다.
[주D-005]준마나 봉황 :
재능이 뛰어난 인재를 비유한 말이다.
[주D-006]경고(更鼓) :
밤 시간을 알리기 위해 밤에 치는 북을 가리킨다.

즉사(卽事)

 


버릇없는 애가 무엇 하려 종이를 찾는고 / 驕兒索紙欲何爲
재차 물어 글씨 쓴단 걸 내 이미 알았네 / 再問濡毫我已知
그 진정은 분명 나를 속인 게 아니었으니 / 不是眞情明誑我
그 마음을 못 엿본 게 스스로 부끄러워라 / 自慚方寸不能窺

 

정월 23일에 강릉 염사(江陵廉使) 홍 소윤(洪少尹)이 인삼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경내엔 신령한 약이 많을 것이나 / 境內多靈藥
영중엔 쌓아 둔 것이 적을 터인데 / 營中少舊儲
어찌 년의 약쑥을 바랐으랴 / 何須七年艾
가장 기쁜 건 한 통의 서신이라네 / 最喜一封書
달고 쓴 것을 두루 맛보았기에 / 甘苦嘗來遍
조제하여 쓰는 덴 여유가 있다오 / 調和用有餘
춘풍이 부는 날 도성에 돌아오거든 / 春風如返旆
나의 집 찾아 주길 다시 바라노라 / 更望顧吾廬

 

[주D-001] 년의 약쑥 : 아주 소중한 약을 뜻한다. 맹자가 이르기를, “지금 왕()을 하려는 자는 마치 7년 된 병에 3년 묵은 약쑥을 구하기와 같으니, 진실로 미리 비축해 두지 않으면 종신토록 얻지 못할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上》

동산(東山)에 오르다.

 


소년 시절엔 너무도 미치광이어서 / 少年最狂妄
모든 책을 참으로 섭렵만 했었고 / 讀書眞涉獵
늘그막엔 갑절이나 쇠잔해져서 / 老境倍衰遲
붓 쥐고 수답이나 할 뿐이로세 / 秉筆但酬答
어두운 눈은 어른거리거나 말거나 / 昏眼任生花
흰 머리털은 비녀도 꽂기 싫어라 / 白髮慵不鑷
산에 올라선 노쇠함을 잊어버리고 / 登山忘龍鍾
지팡이에 기대어 성첩을 바라보네 /
瞻雉堞
뜬구름은 갑자기 울쑥불쑥 나오는데 / 浮雲忽嵯峨
뭇 산봉우리는 그대로 첩첩이로다 / 群峯仍重疊
한가히 앉아 온갖 근심 씻노라니 / 悠然消百憂
즐거워라 시 주워 담기 좋음이여 / 樂哉好收拾

 

교동(喬桐)에서의 놀이를 기록하다. 어부(漁父)가 와서 꽤나 먹여 주었다.

 


정오에 조수 들고 엷은 그늘 펼쳐질 제 / 正午潮廻散薄陰
푸른 강 가에 일엽편주를 한 번 띄우니 / 扁舟一放碧江潯
경원전 아래는 바람세가 막 순조롭고 / 慶源殿下風初順
화개산 앞에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네 / 華蓋山前日欲沈
시승과 길이 동반한 것도 이미 기쁜데 / 已喜詩僧長作伴
더구나 친구 같은 어부를 만났음에랴 / 況逢漁父似知音
지금은 다만 안질이 자주 후회스러워라 / 祇今眼病頻追悔
남은 책 읽다 보니 달이 숲에 가득하네 / 夜讀殘書月滿林

 

즉사(卽事)

 


쌀쌀한 봄추위에 세월은 자꾸 바뀌는데 / 春寒惻惻歲華移
문 닫고 향 연기 속에 생각한 바 있노니 / 掩戶淸香有所思
산수를 찾아다님은 이리저리 쉬는 곳이요 / 尋壑經丘流憩處
풍월을 읊조리는 것은 태평한 시대로세 / 吟風弄月太平時
일생에 천금 같은 승낙은 중히 여기거니와 / 一生自重千金諾
일곱 자의 팔구시는 잠깐에 이뤄버리네 / 七字俄成八句詩
필경에는 모두가 운수납과 같은 것인데 / 畢竟渾如雲水衲
어찌 이 신세로 안위를 주관하려 하리요 / 肯將身世管安危

 

[주D-001]천금 같은 승낙 : 언 어에 매우 신용이 있음을 뜻한다. ()나라의 장수 계포(季布)가 의협심이 아주 강하여 한 번 승낙한 일은 반드시 지켜 어김이 없었으므로, 초나라의 속담에, “황금(黃金) 백 근을 얻는 것이 계포의 승낙 한 번 얻은 것만 못하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운수납(雲水衲) :
행운 유수(行雲流水)처럼 정처 없이 사방을 돌아다닌다 하여 행각승(行脚僧)을 이르는 말이다.

즉사(卽事)

 


때로 행하거나 그침에 경권이 있는 건데 / 時行時止有經權
스스로 판단할 걸 왜 하늘에 묻는단 말가 / 自斷何煩更問天
세상을 분개할 땐 풍백송을 펴고도 싶고 / 憤世擬申風伯訟
안심하다간 야호선에 빠질까도 염려되네 / 安心恐墮野狐禪
물결에 댓잎 흔들려라 낯이 먼저 어른거리고 / 波搖竹葉顔先纈
눈을 짝한 매화는 신선 골격이 되어가누나 / 雪伴梅花骨欲仙
개중에 좋은 소식을 기억할 만한 것은 / 記取箇中消息好
진세와의 인연이 한 점도 없는 거로세 / 了無一點是塵緣

 

[주D-001]풍백송(風伯訟) : 풍백은 바람을 맡은 귀신이므로, 즉 바람 귀신에게 세상을 깨끗하게 소제(掃除)해 달라고 하소연함을 이른 말이다.
[주D-002]야호선(野狐禪) :
선학(禪學)을 닦아 아직 진리를 증오(證悟)하지 못한 처지에서 마치 진리를 증오한 것처럼 속여 행세하는 자를 야호(野狐)에 비유하여 욕하는 말이다.

우서(虞書)를 읽다.

 


성인은 조용히 앉아서 현세를 교화시키니 / 聖人端拱化當今
천지처럼 무위로써 덕택을 깊이 펴도다 / 天地無爲德澤深
계고의
은 일을 기록한 것이지만 / 稽古四篇雖紀事
집중의 두어 마디는 심법을 전한 거로세 /
執中數語是傳心
명은 양곡을 따라 희의 집을 나눠 주었고 /
命從暘谷分羲宅
노래는 훈풍과 함께 순금으로 들어왔도다 /
歌與熏虫入舜琴
집집마다 봉할 만함
은 힘으로 된 게 아니니 / 比屋可封非力致
의상 드리운
에서 미루어 찾아야 하리 / 只垂衣處要推尋

 

[주D-001]계고(稽古) : 《서 경》 우서(虞書)의 요전(堯典)ㆍ순전(舜典)ㆍ대우모(大禹謨)ㆍ고요모(皐陶謨) 네 편의 글을 가리킨다. 이 네 편은 첫머리마다, ‘왈약계고제요(曰若稽古帝堯)’, ‘왈약계고제순(曰若稽古帝舜)’, ‘왈약계고대우(曰若稽古大禹)’, ‘왈약계고고요(曰若稽古皐陶)’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2]집중(執中)의 …… 거로세 :
() 임금이 우() 임금에게 이르기를,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미세하니, 오직 정밀하고 전일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惟精惟一 允執厥中]”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심학(心學)을 가리킨다.
[주D-003]명(命)은 …… 나눠 주었고 :
《서경》 요전에 이르기를, “희중에서 나누어 명하사 우이에 살게 하시니, 바로 양곡이다.[分命羲仲 宅嵎夷 曰暘谷]”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노래는 …… 들어왔도다 :
순 임금이 처음으로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南風詩)를 노래했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성냄을 풀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이 풍부하리로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집집마다 봉할 만함 :
요순(堯舜) 시대에는 성왕(聖王)의 교화가 천하에 두루 미쳐서 사람마다 덕행(德行)이 있었으므로, 백성 모두가 봉()해 줄 만한 인물이 되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의상(衣裳) 드리운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 “황제(黃帝)와 요순은 의상만 입고 앉아 있어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한 데서 온 말이다.

흥취를 풀다.

 


세상 인정은 바쁜 가운데서 보고 / 世熊忙中見
하늘 마음은 고요함 속에 아나니 / 天心靜裏知
융화를 이루면 안팎이 없거니와 / 消融無內外
적막함은 시의에 따를 뿐이로다 / 寂寞但機宜
천지조화를 그 누가 도피하리요 / 物化誰逃數
나는 스스로 시기에 순응한다네 / 吾生自順時
아픈 뒤에도 뜻은 줄지 않아서 / 病餘非意少
흥취가 나면 바로 시를 쓰노라 / 遇興卽題詩

 

절구(絶句)

 


앞으론 늙은 눈이 다시 안 젊어지리니 / 從今老眼更難靑
매화를 꺾어다가 담병에 꽂지 않으리 / 不把梅花照膽甁
백화가 만발했으니 실컷 취해야 하는데 / 紅紫迷人宜爛醉
도리어 새가 사람 불러 깨울까 걱정일세 / 却愁啼鳥喚人醒

 

[주D-001]담병(膽甁) : 목이 길고 배가 불룩하게 생긴 화병을 가리킨다.
[주D-002]새가 …… 깨울까 :
한유(韓愈)의 〈동도우춘(東都遇春)〉 시에, “아침해가 창문을 뚫고 들어올 제, 새가 울어 불러도 깨지를 못했네.[朝曦入牖來鳥喚昏不醒]” 한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2(二首)

 


오랜 병에 그대로 늙으려 하노니 / 久病仍將老
회포는 다시 논할 것도 없고말고 / 情懷不復論
행장은 큰 절의를 보존시키고요 / 行藏存大節
어묵은 사람 본성을 변동시킨다오 / 語默動眞源
일찍이 만촉의 전쟁을 들었는데 / 蠻觸曾聞戰
오히려 주진의 마을도 있다네 / 朱陳尙有村
광대한 천지에 큰소리로 노래할 제 / 浩歌天地遠
매화 달빛은 정히 황혼 때로세 /
梅月政黃昏

새그물 골목은 조용키만 한데 /
雀羅窮巷靜
성긴 버들은 벌써 봄을 흔드네 / 疎柳已搖春
붓 가지고 범조를 제하여라 / 把筆題凡鳥
찾아와서 가인을 모욕하누나 / 敲門辱可人
대창살문은 눈을 마주해 환하고 / 筠窓明對雪
비자목 책상은 먼지 없이 깨끗하니 / 棐几淨無塵
상쾌한 기분으로 책을 뒤적이며 / 快意翻書卷
조용히 읊는 맛 또한 새롭구나 / 沈吟味更新

 

[주D-001]만촉(蠻觸) 전쟁 : 달팽이 뿔 위에 사는 만씨(蠻氏)와 촉씨(觸氏)가 서로 전쟁을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사소한 일로 쓸데없이 다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莊子 則陽》
[주D-002]주진(朱陳) 마을 :
서주(徐州) 고풍현(
)에는 주진촌(朱陳村)이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에는 주씨와 진씨 두 성씨가 살면서 대대로 자기들끼리 서로 혼인을 하며 화목하게 산다고 한다.
[주D-003]매화 …… 때로세 :
()나라 처사(處士) 임포(林逋)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아래 부동하네.[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새그물 …… 한데 :
문 밖에 찾아오는 이가 없는 썰렁한 집을 비유한 말이다. ()나라 때 책공(翟公)이 정위로 있을 적에는 찾아오는 빈객이 많았는데, 파관(罷官)을 당한 뒤로는 찾아오는 빈객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뒤에 정위에 복직(復職)되자 빈객이 다시 찾아오므로, 책공이 분개하여 자기 집 문에다 크게 써 붙이기를, “한 번 죽고 사는 데에서 사귀는 정을 알 수 있고, 한 번 가난하고 부유한 데에서 사귀는 태도를 알 수 있으며, 한 번 귀하고 천한 데에서 사귀는 정이 이에 나타난다.[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범조(凡鳥) 제(題)하여라 :
() 자를 파자(破字)하면 범조가 되는데, 범조는 평범한 새란 뜻으로, ()나라 때 혜강(
)과 여안(呂安)이 서로 매우 좋게 지냈던바, 한번은 여안이 혜강의 집을 찾아갔으나 혜강은 없고 그의 형 혜희()가 나와서 맞이하자, 여안은 들어가지 않고 문 위에 봉() 자를 써서 마음속으로 그를 조롱하고 떠나 버린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6]가인(可人) :
재덕(才德)이 있는 훌륭한 사람을 말한다.

영사(詠史). 느낌이 있어 읊다.

 


삼분 오전
은 오랫동안 전해 온 게 없으니 / 三墳五典久無傳
산정한 공부
가 예전보다 월등히 나았네 / 刪定功夫遠勝前
당우의 간우로 춤춘 을 멀리 생각하고 / 緬想唐虞舞干羽
탕무의 전쟁 일삼은 것을 다시 찾도다 / 更尋湯武事戈

공양씨
의 깨끗함은 춘추전에 빛나고 / 公羊淸映春秋傳
사마천의 호걸함은 사기에 남겨졌네 / 司馬豪留史記篇
필삭하여 춘추 지으매 기린이 절로 나왔고 /
筆削作經麟自出
주자 강목은 하늘에 운행하는 해와 같도다 / 考亭綱目日行天

 

[주D-001]삼분 오전(三墳五典) : 삼분은 삼황(三皇)의 글이고, 오전은 오제(五帝)의 글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주D-002]산정(刪定) 공부 :
공자가 시서(詩書)를 산삭하고, 예악(禮樂)을 바로잡은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간우(干羽) 춤춘 :
간 우는 방패를 쥐고 추는 간무(干舞)와 새의 깃을 쥐고 추는 우무(羽舞)를 합칭한 말이다. () 임금이 문덕(文德)을 크게 펴서 간무와 우무를 양계(兩階)에서 추게 했더니, 70일 만에 묘족(苗族)이 귀순해왔다. 《書經 大禹謨》
[주D-004]공양씨(公羊氏) :
자하(子夏)의 문인인 공양고(公羊高)를 이르는데, 그가 《춘추(春秋)》의 주해(注解)를 냈다.
[주D-005]필삭(筆削)하여 …… 나왔고 :
공 자가 《춘추》를 저술하던 중, 노 애공(魯哀公) 14년에 애공이 서쪽으로 사냥 나가서 기린을 얻자, 공자는 성왕(聖王)이 없는 세상에 기린이 나와서 죽임을 당했다 하여나의 도가 다했다.[吾道窮矣]”라고 탄식하고, 마침내 《춘추》를 종결지었다.

스스로 읊다.

 


세상일은 근래에 시비가 하도 많으나 / 世事年來足是非
내 마음 토로함에는 좋은 친구가 있네 / 寸心傾寫有良知
후생이 두려워라 나는 이미 쇠했거니와 / 後生可畏吾衰矣
도는 듣기 어려우니 자네는 신중하게나 / 至道難聞子愼之
눈 갠 강산엔 하늘 또한 말끔하고 / 雪盡江山天更淨
봄이 오는 문밖엔 해가 처음 더딘데 / 春來門巷日初遲
안락와
속의 분위기를 끌어 돌려서 / 句廻安樂窩中地
목은은 지금 시만 읊조리고 있노라 / 牧隱如今只有詩

 

[주D-001]안락와(安樂窩) : ()나라 소옹(邵雍)이 살던 집 이름인데, 소옹은 몸소 농사를 지어 생활하면서 자기가 사는 집을 안락와라 하고, 자호(自號)를 안락 선생(安樂先生)이라 하고서 시를 읊으며 자적하게 지냈다.

요동(遼東) 들을 지나던 일을 생각하다.

 


그 옛날 지났던 곳 생각하니 / 憶昔經過處
지금은 전쟁의 마당이 되어 버렸네 / 爲今爭戰場
하늘은 나직이 넓은 들에 연했고 / 天低連廣野
오래된 나무엔 석양이 걸렸어라 / 樹老掛斜陽
북방의 눈보라는 연래에 적어지고 / 朔雪年來少
다스운 바람은 날로 점점 드날리네 / 熏風日漸揚
그 누가 알았으랴 화표의 학이 / 誰知華表鶴
뒤에도 고향을 생각할 줄을
/
千歲亦思鄕

 

[주D-001]화표(華表)의 …… 줄을 : ()나라 때 요동(遼東)의 정영위(丁令威)가 일찍이 영허산(靈虛山)에 들어가 선술(仙術)을 배우고 뒤에 학()으로 변화하여 고향의 성문(城門) 화표주(華表柱)에 날아와 앉았는데, 이때 한 소년이 활로 그를 쏘려고 하자, 학이 날아올라 공중에서 배회하며, “새여 새여, 정영위가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 처음 돌아왔네.[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높은 산이 있으면 신령이 내리랴만 /
有嶽何嘗不降靈
우리의 도만 유독 고단함이 문득 슬프구나 / 却嗟吾道獨零丁
문장 제도는 유수를 따른 듯 다 잃었고 / 典章放失隨流水
인물은 희소하여 마치 새벽별 같아라 / 人物稀疎似曉星
백시의 중용은 만사를 다스렸었고 /
伯始中庸萬事理
양웅의 청정함은 태현경이 그것일세 / 子雲淸淨大玄經
털끝만 한 잘못이 천 리나 어긋나는 것이니 / 毫釐一謬應千里
제공의 일정 기약함을 깊이 사례하노라 / 深謝齊公指日程

 

[주D-001]높은 …… 내리랴만 : 《시 경》 대아(大雅) 숭고(崧高), “높다란 저 산이, 우뚝하여 하늘에 닿았도다. 저 산이 신령을 내리어, 보후와 신백을 낳았도다.[崧高維嶽 駿極于天維嶽降神 生甫及申]”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의 내용은 주 목왕(周穆王)의 현상(賢相) 보후(甫侯)와 주 선왕(周宣王)의 현상 신백(申伯)이 모두 높은 산 신령(神靈)의 화기(和氣)로 인해서 태어났음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2]백시(伯始)의 …… 다스렸었고 :
백 시는 후한(後漢)의 재상 호광(胡廣)의 자이다. 호광은 조정에서 벼슬하는 동안 조정의 제도(制度)와 사체(事體)에 매우 밝아서 조정에 보궐(補闕)의 도움이 많았으므로, 당시 경사(京師)의 속담에 이르기를, “만사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백시에게 물으라. 천하의 중용이 호광에게 있다오.[萬事不理問伯始 天下中庸有胡廣]”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아마도 고공단보가 침에 달려올 적에 / 古公走馬想來朝
풍채가 응당 물가에 한층 새로웠으리
/
風采如新水滸遙
기산 아래 한 집이 삼십 대에 이르렀으니 / 卜得一家三十代
기산의 봉황
와 상관없음을 알겠네 / 定知岐鳳不因韶

 

[주D-001]고공단보(古公亶父)가 …… 새로웠으리 : 고 공은 주()나라 태왕(太王)의 본호(本號)이고, 단보는 그의 이름이다. 《시경》 대아(大雅) (綿), “고공단보가 아침에 말을 달려와서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 아래에 이르니, 이에 강씨 부인과 함께 와서 집터를 보아 잡았도다.[古公亶父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岐下 爰及姜女 聿來胥宇]”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태왕이 처음 빈()에 살다가 적인(狄人)의 침략을 견디다못해 그곳을 떠나 기산(岐山) 아래에 새로 자리를 잡아 살게 된 것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2]기산의 봉황 :
《국어(國語)》 주어(周語), ()나라가 일어날 때에 기산에서 봉황이 울었다고 한 데서 온 말인데, 또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태왕이 기산을 옮겨감으로 인해서 주나라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주D-003]소(韶) :
() 임금의 음악 이름인데, 《서경》 익직(益稷), “소소를 아홉 번 연주하니 봉황이 와서 춤을 추었다.[韶簫九成 鳳凰來儀]”고 하였다.

술을 대하여 거문고 소리를 듣다.

 


연래에는 내 마음이 참선에 든 것 같아서 / 年來心地似安禪
사물을 만나면 유유히 만연에 응하노니 / 遇物悠悠應萬緣
취한 뒤의 미친 회포는 금하기 어렵거니와 / 酒後狂懷難自禁
거문고의 지극한 정취는 누가 있어 전할꼬 / 琴中至趣有誰傳
양춘백설곡
은 응당 악보가 없으련마는 / 陽春白雪應無譜
명월청풍은 돈 없이도 가질 수 있다네 / 明月淸風不用錢
몸이 아픔을 힘입어 일관의 도는 알았으나 / 賴是病中參一貫
기미는 아직도 예전 같음이 부끄럽구려 / 只慚氣味尙如前

 

[주D-001]만연(萬緣) : 불교 용어로, 이 세상의 일체(一切)의 인연(因緣)을 가리킨다.
[주D-002]양춘백설곡(陽春白雪曲) :
옛날 초()나라의 가곡(歌曲) 이름인데, 고상하기로 유명하였다.

신축년 겨울 단산(丹山) 가는 길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다.

 


긴 얼음판 속에 높은 재를 오르고 / 長氷登峻嶺
기나긴 밤은 빈 대청에서 묵노니 / 永夜宿虛廳
익힌 밥엔 자갈 섞여 화가 났지만 / 飯熟嗔兼礫
찬 이불 위엔 별 보인 게 기뻤었지 / 衾寒喜見星
어린애는 세상 모르고 잠만 자고 / 小兒眠爛

파리한 말은 홀로 외로이 섰어라 / 瘦馬立伶
새벽엔 단양 길을 향해 가노라니 / 曉向丹陽路
자석병
에 구름이 활짝 걷히었네 / 雲開紫石屛
깃발은 나무 끝에 번득이고 / 旌旗翻樹抄
술과 안주는 산정에 벌여 있는데 / 酒饌列山亭
자사의 교외까지 마중나온 예는 / 刺史郊迎禮
평소의 물망과 잘 어울리었네 / 平生物望幷
인심이 모두 자사를 좋아하니 / 輿情共怡悅
우리 국운이 장차 안녕하리라 / 國步向安寧
늙은 나는 백발이 놀라운 나이로 / 老我驚衰白
오늘날 역사 기록을 맡았는지라 / 如今領汗靑
멀리 생각하니 일기 저술하자면 / 緬懷修日記
문장이 모자라 형용하기 어렵겠네 / 筆弱竟難形

단산 군수(丹山郡守) 이상(李祥)이 공복(公服)을 갖춰 입고 나를 마중나왔었다.

 

[주D-001]자석병(紫石屛) : 병풍처럼 둘러친 절벽의 경치를 가리킨 말이다.

스스로 난도(亂道)를 읽고 느낌이 있어 읊다.

 


장성한 때 미친 회포는 공 세우길 생각하여 / 壯歲狂懷慕立功
당시에 혁혁하게 뭇 영웅들을 물리쳤으니 / 當時赫赫走群雄
시서와 예악은 국가를 일으킨 뒤의 일이요 / 詩書禮樂重興後
강산의 풍월은 난도 가운데 들어왔도다 / 風月江山亂道中
늙어가는 회포는 하늘이 알고 있거니와 / 老去情懷天在上
늙고 병든 신세는 하루요 또 하루로세 / 病餘身世日生東
무릉의 유초
구하기는 기필할 수 없으니 / 茂陵未必求遺草
자손에게 남겨 주어 할아비나 배우게 하리 / 留與兒孫學乃翁

 

[주C-001]난도(亂道) : 도리에 어긋난 망언(妄言)을 이르는 말인데, 자기가 지은 시문(詩文)의 겸칭(謙稱)으로도 쓰인다.
[주D-001]무릉(茂陵) 유초(遺草) :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병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무릉의 집에 있을 적에, 천자(天子)가 이르기를, “사마상여가 병으로 위독하다고 하니, 속히 사람을 보내어 그의 저서(著書)를 가져오도록 하라.” 하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상여의 집에 이르자, 상여는 이미 죽었고 그의 아내가 일찍이 상여가 저술해 놓은 책 한 권을 주었는데, 그 유서(遺書)는 바로 봉선서(封禪書)였다. 여기서는 저자(著者)의 시문(詩文) 등을 사마상여의 유서에 비유한 것이다.

밤에 읊다.

 


온 집안이 다 곤히 잠들었는데 / 渾家政酣夢
긴 밤을 홀로 조용히 읊노라니 / 長夜獨沈吟
치통은 머리까지 연해서 아프고 / 齒病連頭痛
허리는 뼛속 깊이 쑤셔대누나 / 腰酸入骨深
첩약은 많아라 단이요 또 산이요 / 帖多丹復散
치료 방법은 뜸도 뜨고 침도 맞네 / 術妙艾仍針
베개 위의 무궁한 내 생각을 / 枕上無窮意
옥황상제는 밝게 내려다보리라 / 明明上帝臨

 

남을 대신하여 써서 나주(羅州) 오 판관(吳判官)에게 부치다.

 


금성엔 봄 경치가 일찍 찾아와 / 錦城春色早
강 언덕에 매화가 지려 하겠네 / 江岸欲殘梅
한 가지의 꽃 소식이 이르러오니 / 一枝芳信到
병든 눈에 티끌이 가신 듯하구려 / 病目絶纖埃

 

정월 하순에 남쪽에서 온 서신을 얻어 보고 인하여 제공(諸公)을 생각하다.

 



무열장로(無說長老)에 대하여

무열산인은 스님들 중 문장가인데 / 無說山人釋翰林
바다 끝 서로 바라본 지 오랜 세월이었네 / 相望海角歲年深
매화는 지려 하고 봄추위는 극심하니 / 梅花欲落春寒甚
응당 남쪽 창 향하여 온종일 읊으리라 / 應向南窓盡日吟

강자야(康子野)에 대하여

늙어가도 호기는 다 없어지지 않아서 / 老來豪氣未全除
형창
에 괴로이 글 읽은 게 후회스럽네 / 悔殺螢窓苦讀書
그대는 좋이 감영의 막부가 되었는데 / 好作碧油幢下客
봄바람은 또 이 태평의 처음이고말고 / 春風又是大平初

권길부(權吉夫)에 대하여

당일에 재명이 조관들을 진동시켜 / 當日才名動搢紳
지금까지 문단에 명성이 알려졌는데 / 至今詞苑播芳塵
나이 겨우 오십 지나 벼슬 버리고 떠나서 / 年過知命休官去
홀로 강산을 향하여 이 몸을 늙히는구려 / 獨向江山老此身

안면(安勉) 동년(同年)에 대하여

송정의 문하에서 일찍이 급제를 하고 / 松亭門下早題名
연사의 다리 가에서 스님과 또 사귀었네 / 蓮寺橋邊更結盟
다행히도 부형들이 모두 다 건강하니 / 幸是父兄俱健在
고향에 대한 생각을 부디 잊지 말게나 / 莫敎鄕里便忘情

 

[주D-001]형창(螢窓) : 동진(東晉) 때 차윤(車胤)이 집이 가난하여 기름이 없었으므로, 주머니 속에 개똥벌레를 많이 잡아 넣어서 그 반딧불로 책을 비추어 공부했던 데서 온 말로, 고학(苦學)을 의미한다.

남을 대신하여 써서 이 동년(李同年) 득천(得遷) 에게 사례하다.

 


수년 전에 서로 작별한 이후요 / 數年相別後
한 번 웃고 서서 얘기한 사이로다 / 一笑立談間
갑자기 매화꽃 소식을 얻었어라 / 忽得梅花信
내 고장은 눈이 산에 가득하다오 / 幽居雪滿山

 

즉사(卽事)

 


인물을 구분한 것이 모두 아홉 유인데 / 人物區分摠九流
예로부터 평론한 게 모두 지리하기만해라 / 古來題品儘悠悠
봉두 호목
은 괴이한 짓 한 게 아니거니와 / 蓬頭蒿目非行怪
치모 황언
한 자는 되레 안락하게 사누나 / 梔貌簧言却處休
조정이 지금 태평함은 의당 믿어야 하나 / 須信朝廷今有道
다만 책을 의지해야 늙어서 근심 잊으리 / 祇憑書史老忘憂
인간에 우뚝 솟아 깊은 곳을 굽어보는 건 / 人間突兀臨無地
원룡의 백척루에 오름
을 힘입어서라네 / 賴是元龍百尺樓
본디 일을 만나면 따르고 말 게 있는데 / 從來遇事有從違
늙어 가매 시비는 관여할 마음이 없어라 / 老去無心管是非
인한 마을 가려 삶은 의당 자중해야거니와 / 擇里處仁須自重
천명을 알아서 즐김은 누구와 함께할거나 / 樂天知命與誰歸
하염없는 고풍의 뜻은 고란조가 그것이요 / 悠悠古意孤鸞操
아득한 긴 창공엔 새 한 마리가 나누나 / 渺渺長空一鳥飛
거문고 끝없이 타는 데에 마음 부치어 / 寄向琴中彈不盡
쓸쓸히 우뚝 앉아서 문득 기심을 잊노라 / 悄然危坐却忘機

 

[주D-001]봉두 호목(蓬頭蒿目) : 봉두는 쑥대강이처럼 흐트러진 머리를 말하고, 호목은 눈이 흐려서 잘 보지 못함을 형용한 말인데, 《장자》 변무(騈拇), “오늘날 인인(仁人)은 어지러운 눈으로 세상의 환난을 걱정한다.” 하였다.
[주D-002]치모 황언(梔貌簧言) :
매 우 가식적인 면모(面貌)와 언사(言辭)를 가리킨다. 치모는 유종원(柳宗元)의 편가(鞭賈)에 의하면, 어떤 부잣집 아들이 빛이 노랗고 광택이 좋은 말채찍 하나를 5만 전()를 주고 샀는데, 이 채찍을 물에다 깨끗이 씻어 놓고 보니, 그 노란 빛과 광택은 다 없어지고 하얀 본색이 드러나므로, 그제야 아까 본 노란빛은 치자 물감이었고, 광택이 난 것은 바로 밀칠을 한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황언은 남을 속이는 허황된 말을 가리킨다.
[주D-003]원룡(元龍) 백척루(百尺樓) 오름 :
원 룡은 삼국(三國) 시대 위()나라의 고사(高士) 진등(陳登)의 자이다. 허사(許汜)가 일찍이 유비(劉備)와 앉아서 얘기하기를, “옛날 난리를 만나서 원룡을 찾아갔었는데, 원룡이 자기는 큰 와상으로 올라가서 눕고, 나는 아래 작은 와상에 눕게 하더라.” 하자, 유비가 말하기를, “구전 문사(求田問舍)나 하는 그대의 말을 채택할 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원룡이 그것을 싫어해서 그런 것이다. 나 같았으면 나는 백척루에 눕고, 그대는 맨땅에 눕도록 했을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7 魏書 陳登傳》
[주D-004]고란조(孤鸞操) :
도 잠(陶潛)의 〈의고(擬古)〉 시에, “내가 짐짓 온 뜻을 알고, 나를 위해 거문고를 타누나. 경별학조를 타고 나서, 고란조를 다시 들려주네.[知我故來意 取琴爲我彈上絃驚別鶴 下絃操孤鸞]” 한 데서 온 말인데, 고란조는 바로 부부(夫婦)가 서로 헤어짐을 의미한 것이다.

병중(病中)에 읊다.

 


세간의 모든 고통이 한 몸에 다 모여서 / 世間衆苦政叢身
기거 동작을 모두 옆 사람에 의탁하네 / 動止全然付與人
병든 아내는 지지며 부처를 재차 외치고 / 病婦灼肌呼佛再
늙은 종은 땀 흘리며 자주 푸닥거릴 하누나 / 老奴流汗賽神頻
주역점 치는 강 판수는 판단을 가벼이 하고 / 易占姜瞽能輕斷
비술 가진 최씨 노인은 꽤나 자중을 하네 / 祕術崔翁頗自珍
다만 다생의 남은 기습이 있을 뿐이요 / 只有多生餘習在
매화와 시의 흥취는 아직도 청신하다네 / 梅花詩興尙淸新

 

[주D-001]살 …… 외치고 : 불교도(佛敎徒)가 자신의 죄에 대한 참회를 표시하는 의식이다.
[주D-002]다생(多生) :
불가(佛家)의 용어로,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을 지어 윤회(輪廻)의 고통을 받으면서 생사(生死)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말한다.

우연히 쓰다. 2(二首)

 


정히 전편을 완상하기가 좋고요 / 正好全篇玩
참으로 구절마다 찾기는 어려운데 / 誠難逐句尋
수계의 시구 평점 친 곳은 / 須溪評點處
과연 고인의 마음을 얻었도다 / 果得古人心

우연히 얻은 게 참다운 정취가 많고 / 偶得多眞趣
애써 읊조린 건 본정을 잃기 쉽나니 / 沈吟失本情
그 단적인 곳을 찾고자 할진댄 / 欲尋端的處
연못의 풀이 봄에 남이라오 /
池草又春生

 

[주D-001]연못의 …… 남이라오 : 남 조(南朝) ()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일찍이 시()를 생각하다가 종일토록 이루지 못했는데, 갑자기 꿈에 족제(族弟)인 혜련(惠連)을 만나서연못에 봄풀이 난다[池塘生春草]’는 구절을 얻고 대단히 만족하게 여겼던 데서 온 말이다. 이 시구가 매우 자연적인 맛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 사공(崔司空)에게 받들어 사례하다. 이름은 공철(公哲)인데, 이때 의주(義州)에 있었다.

 


한 지방의 큰 진을 나눠 지키어 / 一方分巨鎭
천 리 땅이 장성을 의지하나니 / 千里隱長城
헤아리건대 노쇠한 병 부지하며 / 準擬扶衰病
조용히 태평성대를 함께하리라 / 從容共大平
봄바람은 바닷가에서 나오고 / 春風生海岸
섣달 눈은 차가운 밤을 비추누나 / 臘雪照寒更
가장 기쁜 건 고문의 경사이어라 / 冣喜高門慶
글을 잘하는 후생이 있네그려 / 能文有後生

 

들은 일을 기록하다. 2(二首) ○ 무제(武帝)가 두건을 벗고 마원(馬援)을 접견했는데, 그 두건 이름은 승로(承露)이다.

 


서리 이슬은 밖이 없이 내리고 / 霜露霑無外
천둥 벼락은 태아를 보이는지라 / 雷霆示太阿
위엄과 명성은 변새를 요동시키고 / 威聲搖鴈塞
요망한 기운은 장가에서 걷히었네 / 妖氣卷牂柯
전상에서는 승로관을 쓰고 앉아 / 殿上垂承露
가운데 복파장군을 인견했네 / 庭中引伏波

동점
에서 문치의 교화가 시작되어 / 東漸文化始
무기를 호피에 싸서 거꾸로 실었도다 /
包虎倒干戈

주나라의 들판엔 봄기운 광대하고 / 周原春蕩蕩
선실에는 밤이 깊고 조용한데 / 宣室夜沈
가의 불러 귀신의 이치 밝혔건만 / 召賈明神道

문왕을 본받아라 봉황 소리 상상되네 /
師文想鳳音
풍속은 삼척검에 의해 바뀌어지고 /
風移三尺劍
재물은 오현금에 의해 풍부해져라 /
財阜五絃琴
지난 조정의 훌륭한 신하들은 / 膚敏前朝士
고작 마소에 옷 입힌 격이로다 / 牛裾與馬襟

 

[주D-001]태아(太阿) : 옛날 보검(寶劍) 이름이다.
[주D-002]장가(牂柯) :
땅 이름인데, 한 무제(漢武帝) 때에 야랑왕(夜郞王) ()이 대역무도(大逆無道)하였으므로, 장가 태수(牂柯太守)가 야랑왕을 당장 체포하여 죽인 일이 있었다.
[주D-003]전상에서는 …… 인견했네 :
후 한(後漢) 초기에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외효(隗囂)의 사자(使者)가 되어 낙양(洛陽)으로 광무제(光武帝)를 만나러 갔을 때 광무제가 선덕전(宣德殿)에서 승로관 즉 간단한 두건만 쓴 채로 마원을 인견하자, 마원이 말하기를, “()은 지금 먼 데서 왔는데, 폐하께서는 신이 혹 자객(刺客)일지 어찌 알아서 경계를 이렇게 소홀히 하십니까?” 한 데서 온 말로, 광무제의 도량이 넓었음을 의미한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주D-004]동점(東漸) :
《서경》 우공(禹貢)동으로는 바다에 다다랐고, 서로는 유사에 미쳤으며, 북과 남에 이르러서 성교가 세상에 널리 퍼졌다.[東漸于海 西被于流沙朔南曁 聲敎訖于四海]” 하였다.
[주D-005]무기를 …… 실었도다 :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이기고 나서는 다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우마(牛馬)는 화산(華山)의 남쪽과 도림(桃林)의 들판에 모두 풀어 주었고, 간과(干戈) 등의 무기는 호피(虎皮)로 싸서 칼날을 뒤로 가게 하여 수레에 실었던 데서 온 말이다. 《禮記 樂記》
[주D-006]선실(宣室)에는 …… 밝혔건만 :
선 실은 한()나라 궁전 이름이다. 한 문제(漢文帝)가 일찍이 제사를 지내고 나서 막 음복(飮福)하고 선실에 앉았다가, 귀신(鬼神)의 일에 느낀 바가 있자 가의(賈誼)를 불러 앉혀 놓고 그에게 귀신의 근본을 물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7]문왕(文王)을 …… 상상되네 :
봉 황은 어진 인재를 비유한 것으로, 훌륭한 정사를 하면 어진 인재가 모여들게 됨을 이른 말이다. 맹자가 이르기를, “문왕을 본받으면 큰 나라는 5, 작은 나라는 7년 정도 걸려서 반드시 천하(天下)에 정사를 펴게 될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上》
[주D-008]풍속은 …… 바뀌어지고 :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말하기를, “나는 포의(布衣)로 일어나 삼척검(三尺劍)을 가지고 천하를 차지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9]재물은 …… 풍부해져라 :
순 임금이 처음으로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南風詩)를 노래했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성냄을 풀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이 풍부하리로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한 데서 온 말이다.

달을 읊다. 2(二首)

 


가느다란 달은 굽어 갈고리 같고 / 纖纖曲似鉤
둥글한 달은 밝기가 거울 같은데 / 皎皎明如鏡
군자야 어찌 처음 회복을 구하랴 / 君子惡求初
그래서 만민이 바름을 취한다오 / 萬民所取正

둥글한 달이 천심에 합당커니 / 皎皎當天心
가느다란 달이 어찌 천명이리요 / 纖纖豈天命
소인은 끝까지 보전하기 어려우니 / 小人難保終
천재에 외로이 읊조리게 하누나 / 千載發孤詠

 

지공(指空)의 제자(弟子)가 찾아오다.

 


이단은 세상 교화를 초월하였고 / 異端超世敎
성찬은 가난한 서생을 위로하네 / 盛饌慰寒生
과일은 담론하는 가운데 먹고 / 野果談餘嚼
하사주는 절하고 나서 기울이도다 / 宮壺拜後傾
나의 시는 포괄함이 무궁하거니와 / 拙辭包不盡
현묘한 도는 본디 이름하기 어렵나니 / 妙道固難名
묻혀진 일들을 누가 능히 전하랴 / 逸事誰能傳
모름지기 목은의 명을 빙자해야 하리 / 須憑牧隱銘

 

햅쌀을 보내 준 희안(希顔)에게 사례하다.

 


부추나물은 새파랗고 떡 빛은 노란데 / 韮菜靑靑餠面黃
조석으로 씹어 먹으니 왜 그리 맛좋은고 / 朝昏細嚼味何長
병중에 의당 이런 후의를 못 잊으려니와 / 病中厚意難忘却
더구나 가을바람에 향기로운 햅쌀까지랴 / 況是秋風玉粒香

 

스스로 짓다.

 


노쇠한 나이에 잡병까지 많아서 / 衰年又多病
백발이 쇠한 낯에 서로 비추는데 / 白髮照蒼顔
예절은 조정 위에 단절되었고 / 禮絶朝廷上
이름은 운수 사이에 전해지누나 / 名傳雲水間
윤음은 윤색하기를 생각하거니와 / 綸音思潤色
채색옷은 아직 그대로 찬란하겠지 / 彩服尙爛斑
그만두어라 이제는 쓸모가 없으니 / 已矣今無用
어찌하면 저 한산으로 돌아갈꼬 / 何當返翰山

 

즉사(卽事)

 


중서성 재직시 그 이름 당시에 진동하여 / 紫薇名姓動當時
산승이 알지 못함을 스스로 기뻐했는데 / 自喜山僧不得知
목은이 병들어 내왕하는 이가 적은지라 / 牧隱病餘來往少
시 지어 달라는 산승이 유독 사랑스럽네 / 獨憐霞衲索題詩

 

즉사(卽事)

 


다행히 늘그막에 유유자적할 수가 있으니 / 幸從老境得逍遙
이것은 살아서 요순을 만났기 때문이로세 / 爲是生逢舜與堯
잘 삶은 나물 뿌리는 병든 치아에 알맞고 / 爛煮菜根宜病齒
깨끗한 채소 잎은 밥을 싸 먹기에 좋구나 / 淨乾蔬葉裹長腰
금 쟁반 양젖은 괜히 배부름을 구할 뿐이니 / 金盤羊酪空求飽
금장의 화려한 자리에 초대받기 괴로워라 / 錦帳鶯花苦見招
두드린 자가 어찌 임금의 힘을 알리요 /
鼓腹何曾知帝力
봉황이 소소에 춤추는 소리
들리는 듯하네 / 似聞儀鳳舞韶簫

 

[주D-001]배 …… 알리요 : () 임금이 미복(微服) 차림으로 강구(康衢)에 나갔을 때 한 노인(老人)이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해가 뜨면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며,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농사지어 밥 먹으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고.”라고 한 데서 온 말로, 태평성대를 즐기는 데에 비유한 말이다.
[주D-002]봉황(鳳凰)이 …… 소리 :
소소(韶簫)는 순() 임금의 음악 이름이다. 《서경》 익직(益稷), “소소를 아홉 번 연주하니 봉황이 와서 춤을 추었다.[韶簫九成 鳳凰來儀]”고 하였다.

인일음(引逸吟)

 


연래에는 병세가 참으로 더 없이 악화되어 / 年來病勢眞無敵
실낱같은 기운으로 조석을 근근이 넘기니 / 氣綫綿綿度朝夕
오십이면 절이 아니라
는 다섯 글자를 / 五十不稱夭五字
하루라도 어찌 일찍이 일각인들 잊었으랴 / 一日何曾忘一刻
본래부터 옥에는 산가지를 보탰거니와 / 從來海屋有添籌
년의 반도
야 어떻게 얻을 수 있으리요 / 千歲蟠桃安可得
곧장 매미를 좇아 봄가을을 의심하지만 / 直從
蟪蛄疑春秋
아득한 하늘이 어찌 느리게나 빠르게 하랴 / 圓象沈沈肯徐棘
소요유 제물론은 역시 억지 소리라 하겠다 / 逍遙齊物亦云强
붕새가 남쪽 가면서 개월 만에 쉬다니 /
大鵬圖南六月息
다만 지금 상자를 팽조와 같이 논하지만 / 只今在殤卽爲彭
팽조에 비유하면 흑백처럼 현격하다오 / 齒以彭兮如白黑
하늘의 조화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나니 / 造物乘除不負人
사람 스스로 배은한 걸 자책해야 하리라 / 人自背恩須引慝
돌아가서 능히 부모 마음 안락케 하면 / 歸來能順父母心
천지 화기 빚어내어 큰 법칙 이룰 게고 / 釀出天和成大極
어느 날에 죽어서 진원으로 돌아간다면 / 一朝有歸返眞源
억만년 후손에게 좋은 도리 드리우리 / 垂裕子孫千萬億
바로 알겠네 이 마음이 대체를 갖추어서 / 卽知方寸具大體
장래를 비추는 데에 길이 빛나는 것을 / 照向方來永輝

 

[주C-001]인일음(引逸吟) : 인일은 《서경》 다사(多士), “상제가 모든 사람을 편안한 데로 인도한다.[上帝引逸]”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1]오십이면 요절이 아니라 :
백거이(白居易)의 〈영회(詠懷)〉 시에, “오십에 죽으면 요절이 아닌데, 나는 지금 수년이 모자랄 뿐이네.[五十不爲夭吾今欠數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해옥(海屋)에는 산가지를 보탰거니와 :
해옥은 해상(海上)에 있다는 선옥(仙屋)을 이르는데, 이 해상의 선옥에는 선학(仙鶴)이 해마다 산가지를 하나씩 물어 온다는 전설에서 온 말로, 사람의 장수(長壽)를 비는 말로 쓰인다.
[주D-003] 년의 반도(蟠桃) :
반도는 선경(仙境)에 있는 큰 복숭아로서, 3천 년 만에 한 번 꽃이 피고 열매가 연다고 하는데, 이 또한 사람의 장수를 축하하는 데에 쓰는 말이다.
[주D-004]매미를 …… 의심하지만 :
《장자》 소요유(逍遙遊), “아침 버섯은 그믐과 초승을 알지 못하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붕새가 …… :
《장자》 소요유에,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에는 물결을 치는 것이 삼천 리요,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나 올라가 6개월을 가서야 쉰다.[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상자(殤子)를 …… 논하지만 :
《장 자》 제물론(齊物論), “천하에 털끝보다 더 큰 것이 없을 수도 있고, 태산이 아주 작은 것이 될 수도 있으며, 상자보다 더 장수한 자가 없을 수도 있고, 팽조가 요절했다고 할 수도 있다.[天下莫大於秋毫之末而大山爲小 莫壽乎殤子 而彭祖爲夭]” 한 데서 온 말인데, 상자는 20세 이전에 요절한 아이를 통틀어 말하고, 팽조(彭祖) 800세를 살았다는 상고(上古)의 선인(仙人)이다.

병든 치아를 읊다.

 


남은 생애에 괴로움도 많아라 / 餘生多苦澁
병든 치아가 몹시도 고통스럽네 / 病齒劇殘傷
편패
는 비록 부러움직하지만 / 編貝維堪羨
비사
를 스스로 잘 막아야 하리 / 飛梭要自防
침을 삼키기는 뇌법이 가장 좋고 /
嚥津雷法好
돌로 양치질하니 정취 진진하네 /
漱石野情長
우소
를 누가 능히 배우리요마는 / 齲笑誰能學
단단한 것 씹는 건 스스로 아껴야지 / 攻堅我自藏
통째로 삼키는 꾀가 가장 절묘하고 / 全呑謀最妙
잘게 씹는 계책은 좋은 게 아니로다 / 細嚼策非良
음식물을 출납하는 목구멍이 / 出納咽喉地
공을 논하자면 가장 으뜸이로세 / 論功却擅場

 

[주D-001]편패(編貝) : 조개껍질을 죽 엮어 놓은 것처럼 똑고르고 고운 치아를 이른 말이다.
[주D-002]비사(飛梭) :
북 을 날린다는 뜻으로, ()나라 때 사곤(謝鯤)은 본디 성품이 호탕하기로 유명했는데, 그 이웃집 고씨(高氏)의 딸이 미색(美色)이 있었으므로 사곤이 일찍이 그 여인을 건드리다가, 그 여인이 던진 북에 맞아 치아 두 개가 부러졌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49 謝鯤列傳》
[주D-003]침을 …… 좋고 :
침을 삼키는 것은 도가(道家)의 수양법(修養法)의 한 가지이고, 뇌법(雷法)은 옛날 도가의 뇌공(雷公)의 법칙을 이르는데, 뇌공의 법칙대로 하면 뇌우(雷雨)를 부를 수 있고 질고(疾苦)를 제거할 수도 있다고 한다.
[주D-004]돌로 …… 진진하네 :
()나라 손초(孫楚)가 소싯적에 은거하려 하면서,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돌을 베개로 삼는다.[漱流枕石]”고 해야 할 것을, 잘못해서 왕제(王濟)에게,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게로 삼는다.[漱石枕流]”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56 孫楚列傳》
[주D-005]우소(齲笑) :
마치 치통(齒痛)으로 인해서 어색하게 웃는 얼굴처럼, 여자가 고의로 어색하게 웃는 모양을 가리킨다.

군자(君子)가 본래의 뜻을 지키다. 3(三首)

 


군자가 본래의 뜻을 굳게 지킴은 / 君子秉素志
잊지 않고 스스로만 알 뿐이라 / 耿耿徒自知
얼음과 서리가 한창 서걱거릴 때 / 氷霜方淅瀝
문 닫고 앉아 맑은 시를 읊조리네 / 閉戶哦淸詩
불이 꺼져서 붓끝이 얼어붙거든 / 火冷筆尖凍
팔짱 끼고 때로 깊이 생각하노니 / 袖手時沈思
심오함 추구하면 생각 되레 얕아지고 / 追深慮却淺
먼 데를 보려면 형세 더욱 낮아지네 / 聚遠勢逾卑
이 또한 뜻을 상실함을 알겠으니 / 乃知亦喪志
학자가 의당 버려야 할 것이로다 / 學者當去之
두려운 맘으로 통렬히 자책하노니 / 悚然自痛責
더구나 마음을 저 성색에 옮김이랴 / 況彼聲色移

군자는 본래의 뜻을 지켜야 하거니 / 君子秉素志
어찌 몸을 영화롭게 한다 하랴 / 豈曰榮其身
경륜은 군왕의 교화를 보익하고 / 經綸贊王化
덕택은 백성들에게 입히어야지 / 德澤霑生民
화려한 옷은 이목에 빛날 뿐이요 / 軒裳耀耳目
금옥은 정신을 미혹시킬 뿐인데 / 金玉迷精神
조석으로 일미만 실컷 먹어대라 / 朝昏厭一味
크나큰 상에 팔진미를 차렸네그려 / 方丈羅八珍
어찌하여 곳에 따라 마음이 변해서 / 奈爲居所移
빈천한 이에게 교만을 부린단 말가 / 氣盈驕賤貧
처자가 모두 등 다습고 배부르니 / 妻子共溫飽
이 마음의 진실을 그 누가 알리요 / 誰知此情眞

군자는 본래의 뜻을 굳게 지켜 / 君子秉素志
다만 하늘과 벗이 뿐이거늘 / 祇與天爲徒
문장과 정사의 재능을 가지고 / 文章與政事
어찌 내 몸만 편케 해서 될쏜가 / 豈止寧吾軀
출처는 진실로 생각할 바 아니요 / 出處諒非慮
길이 당우를 노래하기로 맹세하고 / 永矢歌唐虞
번연히 시골구석에서 일어날 제 / 翻然起畎畝
속백
이 경사의 거리를 달리어라 / 束帛馳天衢
도가 행해지는 것만이 고소원인데 / 道行固所願
즐거워라 한창 도유가 행해짐이여 / 樂哉方都兪
서로 맞지 않으면 바로 떠나야 하니 / 不合卽徑去
자지가(紫芝歌)
또한 즐기기에 충분하다오 / 紫芝亦足娛

 

[주D-001]하늘과 …… 뿐이거늘 : 《장자》 인간세(人間世), “마음이 곧은 사람은 하늘과 서로 벗이 된다.[內直者與天爲徒]”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속백(束帛) :
일 속(一束)의 비단을 말하는데, 옛날에 현자(賢者)를 초빙할 때에 예물(禮物)로 썼다.
[주D-003]도유(都兪) :
찬동(贊同)하는 뜻으로, 본래는 요()ㆍ순()ㆍ우() 등이 정사(政事)를 토론할 때에(), ().’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군신(君臣) 간에 서로 화락하게 정사를 토론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4]자지가(紫芝歌) :
()나라 말기에 상산의 사호(四皓), 즉 동원공(東園公)ㆍ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선생(
里先生)이 진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남전산(藍田山)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한 고조(漢高祖)의 초빙을 거절하고 자지(紫芝)를 캐 먹으면서 자지가(紫芝歌)를 불렀던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적적한 문정은 새그물을 만도 해라 / 寂寂門庭雀可羅
마음 좁은 정위 그야 어찌한단 말인가 / 狹中廷尉奈渠何

술상 앞에서 자주 춤춘 건 연래에 적었고 / 樽前屢舞年來少
베개 맡의 새 시구는 아픈 뒤에 많아졌네 / 枕上新聯病後多
소갈병 장경은 난잡한 말을 남기었고 /
消渴長卿遺亂道
전원에 돌아간 정절은 슬픈 노래 불렀네 /
歸來靖節動悲歌
때로 미친 흥취를 수습할 길이 없어라 / 有時狂興難收拾
만 리 연파의 갈매기를 그 누가 길들일꼬 / 白鳥誰馴萬里波

 

[주D-001]적적한 …… 말인가 : 한 문제(漢文帝) 때 책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때는 빈객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왔는데, 그가 파관(罷官)된 뒤에는 문 앞에 새그물을 칠 정도로 빈객이 전혀 찾아오지 않다가, 그가 다시 정위에 복직되고 나서는 빈객이 다시 몰려들자, 이를 분하게 여겨 자기 집 문에다 크게 써 붙이기를, “한 번 죽고 사는 데에서 사귀는 정을 알 수 있고, 한 번 가난하고 부한 데에서 사귀는 태도를 알 수 있고, 한 번 귀하고 천한 데에서 사귀는 정을 볼 수 있다.[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소갈병 …… 남기었고 :
장 경(長卿)은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이다. ()나라 사마상여가 병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무릉의 집에 있을 적에, 천자(天子)가 이르기를, “사마상여가 병으로 위독하다고 하니, 속히 사람을 보내어 그의 저서(著書)를 가져오도록 하라.” 하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상여의 집에 이르자, 상여는 이미 죽었고 그의 아내가 일찍이 상여가 저술해 놓은 책 한 권을 주었는데, 그 유서(遺書)는 바로 봉선서(封禪書)였다. 여기서 난잡한 말이라고 한 것은 바로 봉선서를 가리킨 것이다.
[주D-003]전원에 …… 불렀네 :
정절(靖節)은 도잠(陶潛)의 사시(私諡)인데, 슬픈 노래란 도잠이 팽택 영(彭澤令)을 그만두고 향리로 돌아가서 지어 읊었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가리킨다.

고풍(古風) 5(五首)

 


그윽하게 사니 해 저문 줄은 모르나 / 處幽日未暮
깊은 곳에 있어야 명성이 드러난다오 / 居蔽聞乃章
그대는 보았나 예로부터 선비는 / 君看古來士
야광벽을 던지매 칼을 어루만짐을 /
按劍投夜光
이 때문에 자중함을 귀히 여기어 / 所以貴自重
망아지가 채소 뜯어먹었다 했네 /
白駒食我場
고풍은 또한 요원하다 하겠으나 / 古風亦云遠
갱가
는 요순 시대를 상상할 만하네 / 賡歌想虞唐
깊은 근심이 사람을 늙게 하는데 / 沈憂令人老
소나무 잣나무는 높은 산에 있구나 /
松柏在高岡

사람 마음은 좋은 토지와 같고 / 人心如良田
땅의 결은 기름처럼 윤택하기에 / 土脈如截肪
예로써 갈고 의로써 씨를 뿌리면 / 禮耕義以種
곡식의 잎이 성대하게 자라나니 / 勃然
葉長
성인이 어찌 어리석고 무지하랴 / 聖人豈芒芒
천시가 절로 일정함이 있는 걸 / 天時自有常
위아래가 서로 한 마음을 가지고 / 上下同一心
군자는 의당 쉴 새 없이 노력해야지 / 君子須自强
후일에 곡식 먹기를 희망하거든 / 他年要食實
의당 조장하거나 잊지 말아야 하리 / 且當勿助忘

목은이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 牧隱病莫興
조용히 앉아 저 하늘만 부르노니 / 默坐呼彼蒼
몸은 가벼워 오래도록 거리낌 없고 / 身輕久無累
마음이 맑으니 절로 향취가 나네 / 心淨自生香
편하게 이끌어 준 상제의 힘 입으니 / 引逸荷帝力
위대하여라 해와 달의 광휘여 / 大哉日月光
평탄한 길이 곧기가 화살 같아서 / 坦途直如矢
거닐 땐 패옥 소리 쟁쟁하누나 / 步履玉聲鏘
구곡의 양장판을 오르지 말라 / 莫向九曲坂
예로부터 거마들이 넘어졌다네 / 古來車馬僵

백 년의 절반이 오십 년이란 건 / 百年半五旬
어린아이도 셀 수가 있지만 / 童子可數之
구십 리가 바로 절반이란 /
九十的是半
슬프다 이를 알 자가 그 누구뇨 / 哀哉知者誰
굳은 지조는 금석을 능가하고 / 秉志沮金石
말을 내면 지란같이 향기롭네 /
吐言似蘭芝
공명과 부귀는 / 功名與富貴
한밤중에 남몰래 서로 옮겨지나니 / 夜半潛相移

속임수를 바른 마음으로 바꾸면 / 貞懷易詭計
모든 법도를 이룰 수 있으리라 / 方矩成圓


야기가 평단과 접했을 때엔 /
夜氣接平旦
맑고 텅 비어 먼지 하나 없어라 / 淸虛無纖塵
요순은 한창 예의를 숭상했기에 / 唐虞方揖讓
사흉
이 모두 처벌을 받았도다 / 四兇危竄身
때는 한창 태평성대가 이루어져 / 皎皎日當午
예의로써 신하들을 임했었는데 / 垂衣臨搢紳
어찌하여 사적인 생각을 했던고 / 奈何動私念
회상하니 그 자취 이미 묵었어라 / 回頭迹已陳
한당 시대는 지혜와 힘만 숭상하여 / 漢唐務智力
사람들을 한갓 괴롭히기만 하였네 / 令人徒苦辛

 

[주D-001]야광벽(夜光璧)을 …… 어루만짐을 : 《사 기(史記)》 추양열전(鄒陽列傳), “명월주(明月珠)나 야광벽을 어둠 속에 도로에서 사람에게 던져 줄 경우, 칼을 어루만지며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니, 왜냐하면 보배가 까닭 없이 앞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망아지가 …… 했네 :
《시 경》 소아(小雅) 백구(白駒), “깨끗한 저 흰 망아지가 내 채소를 뜯어먹었다 핑계 대고, 발을 꽁꽁 묶어 잡아두어 오늘 하루를 더 늘려서, 저 어진 이가 여기서 더 노닐게 하리라.[皎皎白駒 食我場苗
之維之 以永今朝 所謂伊人 於焉逍遙]”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떠나려고 하는 어진 이를 더 만류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어진 이의 망아지가 자기 채소를 뜯어먹었다고 핑계하여 가지 못하게 잡아두어서, 그 어진 이를 더 머물게 해 보리라는 뜻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3]갱가(賡歌) :
() 임금과 고요(皐陶)가 군신(君臣) 간에 서로 경계하는 뜻으로써 서로 이어서 노래한 것을 가리킨다. 《書經益稷》
[주D-004]소나무 …… 있구나 :
군자(君子)의 굳은 절조를 뜻한다. 한유(韓愈)의 〈조산창(條山蒼)〉 시에, “조산은 푸르고, 하수는 누렇도다. 하수 물결은 광대히 흘러가는데, 소나무 잣나무는 산에 있구나.[條山蒼 河水黃 浪波沄沄去 松柏在山岡]” 하였다.
[주D-005]조장하거나 …… 하리 :
맹 자가 사람이 의리를 쌓는 데 있어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쌓아가라는 뜻에서, “반드시 하는 일이 있어야 하되, 결과를 미리 기약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도 말고 빨리 자라도록 돕지도 말라.[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勿助長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上》
[주D-006]구십 리가 …… :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가 절반이다.[行百里者半於九十]”라는 고어(古語)에서 온 말인데, 이것은 말로(末路)가 험난함을 의미한 것이다.
[주D-007]말을 …… 향기롭네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 “의기가 투합한 말은 그 향취가 난초 같도다.[同心之言 其臭如蘭]” 하였다.
[주D-008]공명(功名)과 …… 옮겨지나니 :
《장자》 대종사(大宗師), “대저 배[]를 깊은 구렁에 감추어 두고 든든하다고 여기지만, 한밤중에 유력(有力)한 자가 짊어지고 달아날 수도 있다.”고 한 데서 온 말로, 부귀공명이 무상함을 뜻한다.
[주D-009]야기(夜氣)가 …… 때엔 :
평단(平旦)은 이른 새벽을 말하고, 야기는 사람이 사물과 접촉하기 이전인 밤의 깨끗한 마음을 가리킨다.
[주D-010]사흉(四兇) :
네 흉인으로, 즉 공공(共工)ㆍ환두(驩兜)ㆍ삼묘(三苗)ㆍ곤(
)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순() 임금 때에 모두 처벌을 받았다.

즉사(卽事)

 


갑자기 새로운 시가 눈 밑에서 나와라 / 忽有新詩眼底生
하염없는 시골 흥취가 십분 깨끗하구려 / 悠然野興十分淸
소나기 바람 부니 구름은 금방 검어지고 / 風吹急雨雲翻墨
하늘에 닿은 나무엔 해가 징처럼 걸렸네 / 樹接遙天日掛鉦
대아의 남긴 덕음만 꿈에 들어올 뿐인데 / 大雅遺音空入夢
노년엔 질병 많아라 이 마음을 어찌할꼬 / 老年多病若爲情
천지간의 인생살이는 일이 무궁한 것이니 / 人間俯仰無窮事
저 구구한 월단평이 참으로 우습구려 / 笑殺區區月旦評

 

[주D-001]월단평(月旦評) : 후한(後漢) 때 허소(許劭)가 매월 초하루마다 품제(品題)를 정하여 향당(鄕黨)의 인물을 비평했던 것을 이른 말이다.

이소(離騷)를 읽고 스스로 읊다. 2(二首)

 


위론 번개에서 아래론 높은 산까지 읊조려 / 上窮列缺下崢嶸
무위를 벗어나 도리어 지극히 청결했는데 / 超出無爲却至淸
비겨 대인부 지어서 임금 웃음거리 제공한 / 擬賦大人供帝笑
상여는 참으로 헛된 명성을 얻었네그려 / 相如眞箇得虛名


임금 깨우칠 계책 없어 소상강에 빠져라 / 悟君無策向淵沈
깊은 이치 찾아서 귀신과 함께 읊조렸네 / 索隱題篇與鬼吟
일월과 빛을 겨룰 만한 대장부의 큰 뜻이 / 日月爭光丈夫志
가련하여라 반죽으로 푸른 숲을 이루었네 / 可憐班竹綠成林

 

[주D-001]비겨 …… 얻었네그려 :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대인부(大人賦)를 지어서 아뢰자 천자(天子)가 크게 기뻐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매화를 읊다.

 


들으니 매화가 이미 반쯤 피었다 하는데 / 聞說梅花已半開
그 누가 능히 매화 한 가지를 보내올런고 / 有誰能送一枝來
고요한 남쪽 창 아래 분향하고 꿇어앉으니 / 焚香危坐南

달 아래 누대에서 서로 만난 게 기억나누나 / 記得相逢月下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