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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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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흥이 나면 낚시터를 찾아가지만 / 有時乘興訪漁磯
또 신선 찾아 푸른 산에도 들어가려 하네 / 又欲尋仙入翠微
자금단을 만든대서 어찌 늙음을 물리치랴 / 煉紫金丹寧卻老
오피궤를 기대도 몹시 고향만 그립구나 / 凭烏皮几苦思歸
책상은 바람 가린 볏단 때문에 절로 가지런하나 / 書床自整風前
문 앞엔 누가 찾아와 달 아래 사립을 두드려줄꼬 / 門巷誰敲月下扉
다시 남쪽 이웃서 두 공부 시집을 빌려다가 / 更借南鄰工部集
높은 풍격을 좇아 현묘한 기틀 뚫어보련다 / 擬從騷雅透玄機
[주D-001]자금단(紫金丹) : 도가(道家)에서 이른바, 먹으면 장생불사(長生不死)한다는 단약(丹藥)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에, “내 생활은 다만 황각로에게 의탁하고, 노쇠한 얼굴은 자금단에 맡기려 하노라.[生理祇憑黃閣老 衰顔欲付紫金丹]” 하였다.
[주D-002]오피궤(烏皮几) : 검은 염소 가죽으로 장식한 안석(案席)인데, 두보의 시에, “금관성 서쪽의 생활이 하도 곤궁하니, 오피궤는 있지만 되레 고향이 그립구나.[錦官城西生事微 烏皮几在還思歸]” 한 데서 온 말이다.
윤절간(倫絶磵)의 운(韻)에 차(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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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 경례 드리며 자엄을 우러러볼 제 / 人天圍繞仰慈嚴
허공을 몽땅 포괄해 섬세한 이치 분석했으니 / 圓裏虛空剖至纖
반드시 알아야 할 건 아난이 막 자취 보일 때 / 須識阿難方示迹
마등가의 요술이 먹혀들 수 없었음일세 / 摩騰祅術豈容談
열반은 끝의 일이요 화엄이 바로 시작이라 / 涅槃居末始華嚴
불교의 원류가 크고 작은 이치 다 포함했네 / 藏敎源流盡鉅纖
그 당시 부처의 음성이 귀에 쟁쟁하거늘 / 當日梵音如在耳
홀연히 잃어버리니 문득 말하기 어렵구려 / 忽然迷失却難談
앉아서 심향 태울 제 자리 더욱 존엄하고 / 坐爇心香地轉嚴
푸른 그늘 정원엔 가랑비 실실 내리는데 / 綠陰庭院雨纖纖
앓고 나선 스스로 속세 인연 적음을 깨달아 / 病餘自覺塵緣少
끊어진 계곡 솔바람 속에 담소를 즐기누나 / 絶磵松風雜笑談
한창 시절엔 엄격한 격률로 시를 읊어서 / 壯歲吟詩格律嚴
크고 작은 천하 만물을 모두 포괄했는데 / 牢籠萬物盡洪纖
이제는 꽉 막혀서 자못 시의 맛이 없으니 / 如今梗澁殊無味
안목 갖춘 어떤 이가 그 필담을 이을꼬 / 具眼何人續筆談
[주D-001]인천(人天)이 …… 제 : 인천은 인간계(人間界)와 천상계(天上界)의 중생(衆生)을 통틀어 칭한 말이고, 자엄(慈嚴)은 부처를 가리킨 말로, 즉 모든 중생들이 부처를 옹위하여 경례(敬禮)를 올린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아난(阿難)이 …… 없었음일세 : 아 난은 석가(釋迦)의 종제(從弟)이며, 십대 제자(十大弟子) 가운데 한 사람인 다문 제일(多聞第一)로서 일찍이 석가의 설법(說法)을 잘 지켰는데, 석가 생존시에 한번은 사녀(邪女)인 마등가(摩騰伽)가 그의 딸 발길제(鉢吉帝)를 위하여 환술(幻術)로써 아난을 미혹시켜 음락(淫樂)하게 하려 하자, 석가가 신주(神呪)를 설하여 마침내 아난을 구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심향(心香) : 불교 용어로, 마음속의 정성을 공불(供佛)의 분향(焚香)에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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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 찾는 이 없고 종일 바람만 부는데 / 門巷無人盡日風
양쪽 토방에서 개는 졸고 닭은 울어대누나 / 犬眼雞唱翼廊中
그 누가 알랴 고부가 서로 불화하는 곳에 / 誰知姑婦反次處
배회하는 이 노쇠한 늙은이가 있는 줄을 / 有此逍遙衰老翁
지수가 서로 따르는 곳에 화풍이 동하는데 / 地水相隨動火風
묻노라 어느 것이 한 몸의 주인이 되는고 / 問誰爲主一軀中
우연히 병세가 찾아와 사람을 요란시키니 / 偶然病勢來相擾
사주팔자 적어서 운명가에게 묻고 싶구나 / 欲把生辰問歷翁
[주D-001]지수(地水)가 …… 동하는데 :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 네 가지가 인체는 물론 천하 만물을 생성하는 기본 요소가 되므로 이른 말이다.
직강(直講) 집에서 소녀(小女)를 시켜 파[葱]를 보내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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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붉은 소매가 실바람을 일으켜라 / 小娃紅袖動微風
외모가 수려해 속마음도 착할 줄 알겠네 / 秀外知渠定惠中
푸른 파를 가져다주곤 잠시 모여 앉아서 / 送了靑葱時蔟坐
이 백발 늙은이를 한 번 힐끗 돌아보누나 / 一時回看白頭翁
염동정(廉東亭)이 고기[肉]를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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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동안 천애 멀리 서로 헤어져 있다보니 / 數年相別隔天涯
궁벽한 골목에 고기 보내올 사람 없었기에 / 窮巷無人送肉來
나물 뿌리만 먹어도 한창 맛이 있던 터라 / 咬得菜根方有味
쟁반 가득 좋은 고기에 갑자기 놀랐다네 / 忽驚鮮食滿盤堆
희우(喜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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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의 비가 물가에 자욱히 쏟아지니 / 一雨濛濛暗水涯
생기 넘치는 벼이삭을 아침에 보겠네 / 勃興禾稼見朝來
하늘이 어찌 백성을 잊을 날이 있으리요 / 蒼天豈有忘民日
천 곳집에 쌀 그득 쌓임은 이미 정해졌구려 / 已分千倉玉粒堆
중(山中)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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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 집 짓고 남은 생애를 부쳐 있노라면 / 山中結屋寄生涯
원숭이가 풀 열매 보내오는 걸 매양 보겠지 / 每見獮猴送菓來
늙어서도 붉은 먼지가 몽상에 깊이 젖는데 / 老向紅塵勞夢想
솔바람 여라의 달빛엔 흰 구름이 쌓였으리 / 松風蘿月白雲堆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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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광대한 들판에 가뭄이 극심한데 / 旱魃爲災浩莫涯
바람이 가랑비 불어내어 날을 개게 하누나 / 風吹微雨送晴來
푸른 하늘의 뜻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 蒼天用意誰能料
뭉게구름에 푸른 물결 벌창함을 곧 보리라 / 會見黃雲碧浪堆
도미는 끝이 없고 인생은 끝이 있는 법인데 / 道味無涯生有涯
세상만사를 어찌 마음에 둘 것이 있으랴 / 世情那得上心來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집 바람 부는 자리에 / 家徒四壁風吹座
다만 서책이 한 무더기를 이뤘을 뿐이로다 / 只有文書作一堆
흥취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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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이 신세 혼자 스스로 읊노라니 / 身世悠悠獨自吟
옛사람도 일찍이 지기가 적음을 탄식했었지 / 昔人曾歎少知音
문정은 적막해라 가난함은 예전 같은데 / 門庭寂寞貧如舊
세월은 자꾸 흘러서 병이 오늘에 이르렀네 / 歲月侵尋病到今
천 리라 먼 산 바라볼 땐 자주 두건을 벗고 / 千里遠山頻岸幘
주렴 같은 성긴 빗속엔 홀로 거문고를 타네 / 一簾疎雨獨鳴琴
때때로 주공의 꿈을 꾸어보려 하건마는 / 時時擬作周公夢
뼈 시리고 넋이 맑아 맘만 괴로울 뿐이로다 / 骨冷魂淸謾苦心
[주D-001]때때로 …… 뿐이로다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심하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이어라, 내 다시는 꿈속에서 주공을 뵙지 못하였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한 데서 온 말이다. 이는 곧 공자가 젊었을 때는 주공의 도(道)를 행하려는 뜻이 강했기 때문에 꿈속에서도 주공을 가끔 보았으나, 늙도록 도를 행하지 못함에 이르러서는 그 마음이 없어짐으로써 다시는 주공의 꿈조차 꾸어지지 않으므로, 이것을 인해서 몸이 몹시 쇠해졌음을 탄식한 것이다. 여기서는 몸이 노쇠해짐을 비유한 것이다. 《論語 述而》
혹심한 더위 속에 윤절간(倫絶磵)이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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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 쇠한 낯으로 옷도 걸치지 않은 채 / 白髮蒼顔赤不衣
사립문 닫아걸고 땀을 줄줄 흘리고 있네 / 汗流如瀋掩柴扉
상인은 본디 소나무 바람 속에 나그네이니 / 上人自是松風客
석양까지 소리 높여 읊기를 아끼지 마소 / 莫惜高吟到落暉
소년 시절엔 조복에 땀을 흠뻑 흘렸더니 / 少年流汗洽朝衣
늙고 병들어선 낮에도 사립문을 닫았네 / 老病幽居晝掩扉
선화가 갑자기 속된 생각을 맑게 씻을 제 / 禪話頓令塵慮淨
푸른 그늘 높은 나무엔 석양이 걸렸구나 / 綠陰高樹掛斜暉
[주D-001]선화(禪話) : 불교의 선학(禪學)에 관계된 이야기를 말한다.
고향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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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비낀 바람 푸른 도롱이에 가득해라 / 細雨斜風滿綠簑
꿈속엔 길이 백구 같은 물결에 가 있다네 / 夢中長在白鷗波
공명은 예로부터 몹시 분주하게 했었는데 / 功名自古驅馳甚
늙고 병든 지금은 앉고 누움이 대부분일세 / 衰病如今坐臥多
강가의 두어 푸른 봉우리는 우뚝하려니와 / 江上數峯靑偃蹇
바람 앞의 수많은 푸른 대는 너울너울 춤추리 / 風前萬竹綠婆娑
돌아오는 가을엔 결단코 함창으로 가서 / 來秋決意咸昌去
약 먹어 몸 부지해야지 늙음을 어찌하랴 / 藥餌扶吾奈老何
[주D-001]가랑비 …… 가득해라 : 당나라 때의 은사(隱士)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대삿갓 쓰고, 푸른 도롱이 입었거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필요 없어라.[靑篛笠 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 한 데서 온 말이다.
나비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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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날개 펄럭이는 건 낱낱이 똑같은데 / 雪翅翩然箇箇同
꽃향기 쫓아 떼를 이루어 동풍에 춤을 추네 / 弄芳成隊舞東風
달 아래 무수히 날았단 말은 진작 들었지만 / 曾聞月下飛無數
우리 집 창문 안으로야 들어오려 할쏜가 / 肯入吾家紙裹中
벌을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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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집에 술이 익어 한낮에 향기 풍기니 / 山家酒熟午生香
나는 벌들 콧구멍이 긴 게 가장 기쁘네 / 最喜游蜂鼻孔長
또 절벽을 향해 부지런히 꿀을 만들거라 / 且向石崖勤作蜜
백발의 시인 나의 창자가 바싹 말랐단다 / 白頭騷客政枯腸
꾀꼬리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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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꼴꾀꼴 꾀꼴새가 두세 소리 울어대니 / 綿蠻黃鳥兩三聲
눈 가득한 정원 숲에 우기가 말끔히 개었네 / 滿目園林雨氣淸
이 증문에 누구의 귀가 가장 신통했던고 / 最是曾門誰耳順
일장의 그칠 줄 안다는 게 매우 분명하구나 / 一章知止甚分明
[주D-001]꾀꼴꾀꼴 …… 울어대니 : 《대 학장구(大學章句)》 전 3장(傳三章)에,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꾀꼴꾀꼴 꾀꼴새는 숲이 무성한 곳에 그친다.[緍蠻黃鳥 止于丘隅]’ 했거늘, 공자가 이르기를, ‘새도 그 그칠 바를 알거니, 사람치고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於止知其所止可以人而不如鳥乎]’ 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이 …… 분명하구나 : 증 문(曾門)은 증자(曾子)의 문인(門人)을 말한다. 《대학장구》 경 1장(經一章)은 공자가 말한 것을 증자가 기술해 놓은 것이요, 전 10장(傳十章)까지는 증자의 뜻을 그의 문인이 기록해 놓은 것이므로 이른 말이다. 일장(一章)은 곧 《대학장구》 경 1장을 가리키고, 그칠 줄을 안다는 것은 바로 경 1장의 “그칠 줄을 안 다음에 뜻이 정해지게 된다.[知止而后有定]”라고 한 대목을 가리킨다.
제비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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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리 먼 길 돌아온 작은 새 한 마리 / 萬里歸來一羽微
주인의 정원 조용하여 날아다닐 만하구나 / 主人庭院靜堪飛
금년은 도리어 지난해보다 훨씬 좋으리 / 今年却勝前年好
둘째 아들이 중서성 관직에 올랐으니 말일세 / 第二郞君拜紫微
고향 산천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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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동안 병객으로 맑은 조정에 누웠노라니 / 數年抱病臥淸朝
물고기와 새는 여전히 몹시도 나를 불러대네 / 魚鳥依然苦見招
마읍의 강산은 자못 적막하기만 하고 / 馬邑江山殊寂寞
한림의 풍월은 끝내 쓸쓸하기만 하구나 / 翰林風月竟蕭條
환한 꽃 우거진 버들 속엔 꾀꼬리 소리 들리고 / 花明柳暗聞黃鳥
맑은 서리 높은 하늘엔 검은 매를 놓았었지 / 天闊霜淸放皁鵰
돌이켜 생각하니 아득히 꿈속만 같아라 / 回首渺然如夢裡
이제는 두 귀밑에 흰 눈발만 날릴 뿐이네 / 只今雙鬢雪飄飄
[주D-001]마읍(馬邑) : 저자의 관향인 한산(韓山)의 고호(古號)이다.
내가 하루는 우연히 유예(游藝)의 훈계가 생각나서, 내가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 매우 얕은 까닭은, 대체로 사물을 지나치게 완상하다가 본심을 잃게 될까 하는 점을 두려워함으로써 이렇게 된 것이라고 스스로 책망하였다. 대체로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대한 법칙이 있는 것이니, 어찌 어느 한 가지 사물인들 내 성(性) 안의 쓰임이 되지 않을 것이 있겠는가. 사물 중에 미세하기로는 자벌레보다 더 미세한 것이 없기에 자벌레를 소재로 삼아 단가(短歌)를 지어서 스스로 경계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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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벌레야 너는 왜 구부리느뇨 / 尺蠖汝何屈
심하게 구부리면 네 뼈가 꺾이리라 / 屈甚折汝骨
자벌레야 너는 왜 길게 펴느뇨 / 尺蠖汝何伸
심하게 펴면 네 몸이 욕되리라 / 伸甚辱汝身
하지만 잠시 폈다 또 잠시 구부리길 / 乍伸又乍屈
일생 동안 조금도 어긋남이 없구나 / 一生無所拂
이런 까닭에 옛사람의 학문은 / 所以古之學
물리 연구부터 먼저 가르쳤는데 / 敎人先格物
어찌하여 지금 세상 사람들은 / 奈之何今人
한결같이 요로만을 추향하는고 / 一向趨要津
학문 강습은 쉬지 않는 게 귀하거니와 / 講學貴不息
공력을 쓰는 데 더욱 법칙이 있다오 / 施功尤有則
더구나 조관의 반열에 당해서는 / 況當列簪紳
자용하면 남이 반드시 진노하리라 / 自用人必嗔
이것을 인해서 밝은 덕을 얻으면 / 因之得明德
상제가 혁혁히 굽어 임할 것이니 / 上帝臨赫赫
일동 일정에 두 마음이 없어지면 / 周旋無貳心
끝내 자벌레 시를 지을 것도 없으리 / 不用賦尺蠖
[주C-001]유예(游藝)의 훈계 : 공 자가 이르기를, “기예에 놀아야 한다.[游於藝]”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 기예란 곧 예(禮)ㆍ악(樂)의 글과 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의 법칙을 가리키고, 논다는 것은 곧 나의 뜻에 알맞게 그것을 완상(玩賞)한다는 것이다. 《論語 述而》
[주D-001]자용(自用) : 남 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하는 것을 이른다. 공자가 이르기를, “어리석으면서도 자용하기를 좋아하고, 지위가 낮으면서도 자전하기를 좋아하고, 지금 세상에 나서 옛 도를 행하려 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재앙이 그 몸에 미칠 것이다.[愚而好自用 賤而好自專 生乎今之世 反古之道 如此者 災及其身者也]” 한 데서 온 말이다. 《中庸章句 第28章》
내 가 이미 척확음(尺蠖吟)을 짓고 또 생각해 보니, 귀뚜라미[促織]란 것 또한 매우 미세한 벌레지만, 베 짜는 부인이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베 짜는 일을 힘쓰게 됨으로써 그것이 세상에 유익함이 많았다. 그래서 노래를 지어 슬퍼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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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인이 베 안 짜면 천하 사람이 다 춥거니와 / 一婦輟織天下寒
점점 길어지는 가을밤은 하늘이 아끼는 바거늘 / 秋夜漸長天所慳
어이하여 황혼 때부터 잠자리에 들어가서 / 何爲黃昏入燕寢
한 번 누우면 별과 달이 지는 것도 모르는고 / 一臥不知星月殘
그래서 귀뚜라미 소리도 귀로 듣지 못하니 / 有蟲之聲耳不聞
슬프다 서리 내릴 때 입을 옷이 없으리로다 / 哀哉霜落衣裳單
입을 옷 없는 건 오히려 참을 수 있으리 / 衣裳單猶可忍
남편이 나무 져다 불 지피면 다습고도 편하려니와 / 主夫背薪燒突溫且安
포백은 전결에 따라 내는 수량이 있나니 / 布帛有數出田地
묻노라 너는 무슨 수로 관아에 베를 바칠런고 / 問汝何以輸縣官
내 지금 노래 지으매 눈물이 줄줄 흐르누나 / 我今作歌涕淚澘
거문고ㆍ바둑ㆍ글씨ㆍ그림을 우리 세속에서 네 가지 기예(技藝)라 이르므로, 여기에 대하여 절구(絶句) 4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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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나라 다스리는 상이 연래엔 대동과 달라서 / 理象年來異大同
정음은 끊어져가고 속음이 우월한 체하지만 / 正音將絶俗誇雄
줄도 나무판도 손가락에도 관계된 게 아니요 / 非絲非木還非指
다만 한 치쯤 되는 사람 마음에 달렸다네 / 只在人心方寸中
바둑
요원의 불길 봄 샘물과 형세 절로 같나니 / 野火春泉勢自同
강자는 삼키고 약자는 뱉어라 정히 누가 이길꼬 / 强呑弱吐定誰雄
정녕코 한 수 한 수 두기가 용이치 않나니 / 丁寧下手無容易
승패는 분명 한 수를 두는 데에 달렸다네 / 勝敗分明一着中
글씨
뜬구름 같은 자체는 끝내 닮기 어렵거니와 / 浮雲字體竟難同
진초는 분분하게 모두 우월함을 떨치는데 / 眞草紛紛儘逞雄
살지고 파리하고 길고 짧음은 다 애교스러우나 / 肥瘦短長俱媚嫵
다만 육서의 범위를 벗어난 게 걱정스럽네 / 只愁跳出六書中
그림
모사한 걸 무엇으로 서로 다름을 비교할꼬 / 模寫何從較異同
까마귀의 자웅 구별할 수 없는 격이로세 / 瞻烏未可辨雌雄
백발 나이로 화조는 관섭할 마음 없는지라 / 白頭花鳥無心管
눈 안에 들어온 강산만을 허여할 뿐이라네 / 祇許江山入眼中
[주D-001]대동(大同) : 천하(天下)를 일가(一家)로 하지 않고 천하 사람의 소유로 하여 천하 사람이 천하를 함께하는 것을 말한다. 《禮記 禮運》
[주D-002]뜬구름 : 필 세(筆勢)의 자유로움을 비유한 말이다.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가 예서(隸書)에 더욱 뛰어났으므로, 당시 평론하는 사람들이 그의 필세를 일컬어 “날리듯 경쾌함은 뜬구름과 같고, 굳세게 쳐드는 것은 놀란 용과 같다.[飄若浮雲 矯若驚龍]”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육서(六書) : 한(漢)나라 때에 제정된 고문(古文)ㆍ기자(奇字)ㆍ전서(篆書)ㆍ예서(隸書)ㆍ무서(繆書)ㆍ충서(蟲書) 등 여섯 가지 서체(書體)를 가리킨다.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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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집은 적막해라 밥 짓는 연기 끊어지고 / 東家寂寞絶廚烟
밤낮으로 침만 삼키니 신선 될까 위태롭네 / 日夜嚥津危得仙
스스로 기쁜 건 채소 기운이 창자에 가득해 / 自喜滿腔蔬筍氣
깨끗한 시 생각이 새 시구에 들어옴일세 / 嚼成氷雪入新聯
얼음을 반사(頒賜)하는 데에 회포가 있어 짓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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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년을 길이 병석에 누웠다 보니 / 六年長臥病
얼음 반사 못 받은 지 오래이어라 / 久矣不頒氷
차가운 기운은 삼복을 누르거니와 / 寒氣制三伏
능음은 그 몇 층이나 되었던고 / 凌陰知幾層
마음속은 불이 활활 타는 듯하고 / 心中如火烈
귀밑 가엔 흰 머리털이 그득한데 / 鬢上有霜凝
우물의 두레박 물이 얼음처럼 차서 / 古井銀甁凍
오이 띄우는 건 내가 능히 했었지 / 浮瓜是我能
전각은 조용하고 덥지도 않은데 / 殿閣靜無暑
얼음 깬 물에 꿀을 타서 마시어라 / 蜜漿調碎氷
지경이 깊으니 인적은 적적하고 / 境深人寂寂
바람이 부니 나무는 층층이로다 / 風動樹層層
얼굴에 비추면 냉기가 쏘아대고 / 照面冷相射
목에 삼키면 머물 틈도 없이 넘어갔지 / 入喉流不凝
다만 이젠 꿈속 같은 일이거니와 / 只今如夢裡
후한 은총에 작은 재능이 부끄럽네 / 厚渥媿微能
형세는 한로 절기부터 시작하여 / 勢從寒露始
물이 얼어서 절로 얼음이 되는데 / 水結自爲氷
골짝마다 사람은 얼음 조각을 캐내고 / 萬壑人擎段
교하엔 말이 층층 얼음 위를 달리네 / 交河馬踏層
기운은 멀리 음감과 서로 통하고 / 氣通陰鑑迥
빛은 옥병에 담아 얼린 듯하여라 / 光貯玉壺凝
비할 데 없이 맑음을 스스로 믿노니 / 自信淸無比
더운 것 좇음은 본디 능치 못하다오 / 趨炎素不能
[주D-001]능음(凌陰) : 땅속에 얼음을 저장하는 빙실(氷室)을 말한다. 옛날에 음력 섣달이면 얼음을 캐고, 정월이면 빙실에 얼음을 저장했다고 한다. 《詩經 豳風 七月》
[주D-002]오이 띄우는 건 : 몹시 더운 여름날의 우아한 놀이를 이른다. 위 문제(魏文帝)가 오질(吳質)에게 준 편지에, “맑은 우물에는 단 오이를 띄우고, 찬물에는 붉은 오얏을 담가 놓는다.[浮甘瓜於淸泉 沈朱李於寒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교하(交河)엔 …… 달리네 : 교 하는 중국 신강성(新疆省)에 있는 강 이름인데, 두보(杜甫)의 〈고도호총마행(高都護騘馬行)〉에, “발목 짧고 발굽은 높아 무쇠처럼 단단하니, 교하에선 그 얼마나 층빙을 차서 깨었던고.[腕促蹄高如踣鐵 交河幾蹴層氷裂]”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음감(陰鑑) : 옛날, 달밤에 이슬을 받던 쟁반을 가리킨다. 《주례(周禮)》 추관(秋官)에, “사훤씨(司烜氏)가 거울을 가지고 맑은 물을 달에서 취한다.[以鑑取明水於月]”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더운 …… 못하다오 : 더위를 견디지 못하는 얼음의 성질을 이른 말인데, 더운 것을 좇는다는 것은 곧 염량세태(炎涼世態)를 의미한다.
흥취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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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심을 토로하여 죽어도 마지않아라 / 嘔出心肝死不休
연래엔 다시 중선의 성루를 오르네그려 / 年來更上仲宣樓
강산은 가는 곳마다 절로 은사를 부르고 / 江山到處自招隱
풍월은 사람과 더불어 능히 함께 노누나 / 風月與人能共游
고관들의 방문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하고 / 車蓋過門靑我眼
벽에 가득한 시서는 내 머리를 희게 하는데 / 詩書滿壁白吾頭
서쪽 이웃에 다행히 크나큰 소나무가 있어 / 西鄰幸有長松樹
늘 차가운 소리 보내 가을을 미리 빌려 주네 / 每送寒聲探借秋
[주D-001]중선(仲宣)의 성루(城樓) : 중 선은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왕찬(王粲)의 자(字)이다. 왕찬이 일찍이 동탁(董卓)의 난리를 피하여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의지해 있으면서, 강릉(江陵)의 성루에 올라 고향을 그리워하며 진퇴 위구(進退危懼)의 정을 서술하여 〈등루부(登樓賦)〉를 지었던 데서 온 말이다.
이 판사(李判事) 동수(東秀) 를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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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속박 벗겨주어 마음대로 치달려라 / 天脫馽羈恣馳突
언뜻 지나거니 어찌 험준한 산을 놀랄쏜가 / 瞥歷肯復驚崷崒
손바닥 같은 편평한 냇물 자리 같은 풀밭에 / 平川如掌草如茵
만 필의 떼지은 말은 다 뛰어난 골격이어서 / 群馬萬匹皆神骨
한 번 울면 감히 가까이 못하는데 / 一鳴不敢近
어찌 감히 덤벼들 수 있으리요 / 何曾敢搪堗
갈기 털은 씩씩해라 창해의 용과 같고요 / 鬃毛矯矯滄海龍
눈동자는 번쩍여라 가을 하늘 새매와 같네 / 目睛閃閃霜天鶻
천자가 구중궁궐 깊숙이 앉았기만 하기에 / 天子垂衣深九重
의장대는 버려진 채 먼지 속에 묻혔으니 / 鹵簿高閣塵埃沒
천자 행차 언제나 여섯 용마 기다려 날런고 / 法駕何時須六飛
마판 사이에 늙어 죽어 정기만 답답하여라 / 老斃櫪間精氣鬱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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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띳집은 예스럽기만 하고요 / 林下茅茨古
쟁반 속의 과실은 시원하기도 해라 / 盤中瓜果涼
무성한 소나무는 빛을 뽐내고 / 童童松挺色
옅푸른 술은 향기를 풍기누나 / 翁翁酒生香
푸른 산 가까우니 마음은 조용하고 / 心靜靑山近
해가 기니 몸 또한 한가롭구려 / 身閑白日長
다만 지금의 이 청신한 의미는 / 祇今淸意味
어렴풋이 요순 시대를 상상케 하네 / 髣髴想陶唐
어부(漁父) 김경지(金敬之)가 생각나서 여강(驪江)에 대한 절구(絶句) 4수를 짓다. 김경지의 이름은 구용(九容)인데, 삼사 좌윤(三司左尹)으로 있다가 고향으로 퇴거(退居)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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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오만 꽃이 만발하여 맑은 하늘 현란시킬 제 / 群花爛熳炫晴空
거울처럼 맑은 강에 낚싯배 하나 떠 있으니 / 一箇釣舟明鏡中
푸른 도롱이 삿갓 쓴 나그네가 아니라면 / 不是綠簑靑篛客
가랑비와 비낀 바람을 그 누가 알리요 / 誰知細雨與斜風
여름
양쪽 언덕 아득히 물이 공중에 넘실대어라 / 兩岸微茫水拍空
빗소리 속에 산은 잠기고 숲은 어둑한데 / 山沈樹暗雨聲中
유리 사발 생선회에 향료 곁들여 먹노라면 / 搗香碧椀銀絲凍
백척의 높은 누대에 온종일 바람이 불겠지 / 百尺高樓盡日風
가을
물가는 맑고 모래는 희고 물은 허공 같아라 / 渚淸沙白水如空
가을 경치 생동하는 그림 속에 사람이 있네 / 人在秋光活畫中
시의 안목은 지금 천하에 가장 으뜸이어서 / 詩眼祇今高四海
한 낚싯대 밝은 달에 낚싯줄 바람이로다 / 一竿明月釣絲風
겨울
텅 빈 강 외로운 배에 도롱이 삿갓을 쓰고 / 孤舟簑笠碧江空
쓸쓸한 저녁 눈 속에 홀로 낚시질을 하노니 / 獨釣蕭蕭暮雪中
물이 차서 고기 물지 않는 걸 왜 두려워하랴 / 肯怕水寒魚不食
다시 시의 격조에 고상한 풍격을 펼쳐야지 / 更敎詩格播高風
[주D-001]푸른 …… 알리요 : 당나라 때의 은사(隱士)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대삿갓 쓰고, 푸른 도롱이 입었거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필요 없어라.[靑篛笠 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한 …… 바람이로다 : 낚싯대 하나를 벗 삼아 풍월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주D-003]쓸쓸한 …… 하노니 : 유 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 시에, “사방 산엔 새도 날지 않고, 모든 길엔 인적도 끊어졌는데, 외로운 배에 도롱이 삿갓 쓴 노인이, 눈 내린 찬 강에 홀로 낚시질을 하네.[千山鳥飛絶萬逕人蹤滅 孤舟簑笠翁 獨釣寒江雪]” 한 데서 온 말이다.
절간(絶磵) 윤공(倫公)이 찾아왔기에 짓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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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는 스스로 방랑하면서 / 吾生自放浪
가고 머무는 걸 하늘에 맡겼는데 / 行止付蒼天
가랑비는 아침 나들이를 막고요 / 細雨防朝出
맑은 바람은 낮잠을 편히 재우네 / 淸風穩晝眠
모두가 그윽한 흥취 넉넉하거니 / 儘敎幽興足
세속 인연에 끌림을 왜 두려워하랴 / 肯怕俗緣牽
기사를 온통 다 잊어버리니 / 機事渾忘却
마치 일미선에 들어간 것 같구려 / 如參一味禪
고승은 세속의 선비가 아니요 / 高僧非俗士
도인 풍모는 서역으로부터 왔는데 / 道貌自西天
조용히 앉아서 한가히 얘기 나누고 / 靜坐仍閑話
주리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네 / 飢飧與困眠
새의 낢은 스스로 익힘에서 능해지는데 / 鳥飛工自習
늙은 소는 사람의 이끎을 허비하네 / 牛老費人牽
덧없는 세상은 진정 허깨비 같으니 / 浮世眞如幻
후일에 좌선하는 법을 배우련다 / 他年學坐禪
처세는 내게 달린 것이 아니거니와 / 處世不由我
생각 잊는 건 하늘에 묻지 말아야지 / 忘懷休問天
가을바람엔 새 식품이 아직 적고 / 秋風少新食
여름밤엔 편히 자는 게 잠깐일세 / 夏夜乍安眠
버들은 문에 드리우라 심었거니와 / 柳爲垂門種
등라는 지붕을 기우려고 끌어왔네 / 蘿仍補屋牽
어찌하여 굳이 산꼭대기에 올라가 / 何須上絶頂
가부좌하여 참선을 시작할 것 있으랴 / 趺坐始參禪
[주D-001]기사(機事) : 꾀를 부리는 일을 말한다.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기계가 있는 자는 반드시 꾀를 부리는 일이 있게 되고, 꾀를 부리는 일이 있는 자는 반드시 기심이 있게 된다.[有機械者必有機事有機事者必有機心]”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일미선(一味禪) : 불교 용어로, 문자와 언어를 쓰지 않고 갑자기 오도(悟道)하는 선(禪)을 가리킨다.
[주D-003]늙은 …… 허비하네 : 소식(蘇軾)의 시에, “나는 채찍질해도 꼼짝 않는 늙은 소 같아서, 미끄러운 진흙탕 길에 네 발굽이 무겁구나.[我似老牛鞭不動 雨滑泥深四蹄重]” 하였다
동산(東山)에 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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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려면 뼈가 더욱 아프고 / 欲雨骨彌痛
개고 나면 마음이 오히려 답답하네 / 已晴心尙煩
방문객은 병든 뒤에 적어지고 / 賓朋病後少
새들은 꿈속에 시끄러이 떠드누나 / 鳥雀夢中喧
먼 봉우리는 편평한 들에 연했고 / 遠岫連平野
외론 연기는 마을에서 솟아나는데 / 孤烟矗近村
산 정자에 명아주 지팡이 짚고 서니 / 林亭倚藜杖
고상한 흥취가 천지에 가득하구나 / 高興滿乾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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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와 이끗 어지러이 서로 다퉈 침범하니 / 紛紛勢利競相侵
적막한 군자의 마음을 그 누가 알아주랴 / 寂寞誰知君子心
가을 향기 짙은 난곡엔 바람 이슬이 차갑고 / 蘭谷秋香風露冷
늦도록 푸른 송파엔 눈서리가 깊기도 해라 / 松坡晚翠雪霜深
홀로 주역 열심히 읽어 세 번 끊어지려 하고 / 獨參古易將三絶
우연히 새로운 연구 얻어 다시 한 번 읊노라 / 偶得新聯更一吟
사업을 힘써 곧장 어진 재상을 쫓아가야지 / 事業直追賢宰相
백발 나이에 어찌 애써 유림으로 전할쏜가 / 白頭何苦傳儒林
[주D-001]주역(周易) …… 하고 :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좋아하여 하도 많이 읽었기 때문에 가죽으로 맨 책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칠석(七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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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깃대 펼쳐진 곳에 좋은 상서 모일 제 / 兩旗張處集休祥
갑관에 상서 내리고 천기 언뜻 서늘해지네 / 甲觀天開氣乍涼
천추금경록을 지어 올리고는 싶으나 / 擬進千秋金鏡錄
문장 못 이루는 늙은 필력이 부끄럽구나 / 却慚老筆不成章
오작교를 이루어라 이 무슨 상서인고 / 橋成烏鵲是何祥
견우 직녀가 서늘한 밤에 서로 만나누나 / 牛女佳期趁夕涼
재능 얻기 기원하면서 포졸을 칭했어라 / 乞得巧來稱抱拙
의조는 우뚝하게 문장을 발휘하였네 / 儀曹表表擅文章
예로부터 흥하려면 상서가 있는 법이라 / 將興自昔有禎祥
나무 심어 그늘 이루니 집안이 서늘하네 / 栽種成陰院宇涼
대자리와 얼음덩이로 가을 더위 지내거니 / 竹簟氷峯度秋熱
왜 굳이 기장에게 수석을 물을 것 있으랴 / 何須水石問奇章
[주D-001]두 …… 제 : 두 깃대란 견우성(牽牛星) 왼쪽에 있는 구성(九星)과 견우성 오른쪽에 있는 구성을 가리키고, 좋은 상서가 모인다는 것은 곧 견우성과 직녀성(織女星)이 7월 칠석(七夕)에 은하(銀河)에 놓인 오작교(烏鵲橋)를 건너서 서로 만난다는 전설을 두고 한 말이다.
[주D-002]갑관(甲觀)에 상서 내리고 : 갑 관은 태자궁(太子宮)을 이르는 말로, 즉 태자의 탄생(誕生), 또는 탄일(誕日)을 축복하는 뜻으로 한 말이다. 갈연(葛衍)의 〈성절도량소(聖節道場疏)〉에, “오백 년 만에 성인이 탄생하니, 하늘이 갑관의 상서를 내렸도다.[五百年而有作 天開甲觀之祥]” 하였다.
[주D-003]천추금경록(千秋金鏡錄) : 당 현종(唐玄宗)의 탄일인 음력 8월 5일 천추절(千秋節)에 장구령(張九齡)이 지어 올린 서명(書名)인데, 그 내용은 전고(前古)의 흥망(興亡)에 관한 소이연(所以然)을 서술한 것이다.
[주D-004]재능 …… 발휘하였네 : 포 졸(抱拙)은 어리석고 졸렬함을 굳게 지킨다는 뜻이고, 의조(儀曹)는 예조(禮曹)와 같은 뜻으로, 즉 당(唐)나라 때 예부 원외랑(禮部員外郞)을 지낸 유종원(柳宗元)을 가리킨다. 옛 풍속에, 칠석날 밤에 부녀자들이 견우(牽牛)와 직녀(織女) 두 별에게 길쌈과 바느질 솜씨가 늘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의식을 ‘걸교(乞巧)’라 하는데, 유종원이 일찍이 자신의 모신책(謀身策)에 졸렬한 것을 버리고자 하여 걸교문을 지어서 견우 직녀에게 많은 말로 기원한 결과, 직녀가 와서 고(告)하기를, “하늘이 한 번 명한 바이니, 중간에 운명을 바꿀 수 없다.”라고 하자, 유종원이 스스로 말하기를, “종신토록 졸렬함을 지키다가 그대로 죽은들 무엇을 상심하랴.[抱拙終身 以死誰愓]” 한 데서 온 말이다. 《柳河東集卷18》
[주D-005]예로부터 …… 법이라 : 《중 용장구(中庸章句)》 제24장에, “지성의 도는 사전에 알 수 있으니, 국가가 흥하려면 반드시 상서의 조짐이 있고, 국가가 망하려면 반드시 재앙의 조짐이 있다.[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 國家將亡 必有妖孽]”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기장(奇章) : 당 나라 때 기장군공(奇章郡公)에 봉해진 우승유(牛僧孺)를 가리키는데, 백거이(白居易)의 〈태호석기(太湖石記)〉에, “지금의 승상(丞相) 기장공은 돌[石]을 매우 좋아하여, 이 돌에 대해서만은 유독 겸양(謙讓)하지 않아서, 동쪽 저택, 남쪽 별장에 모두 늘어놓았다.” 하였다.
염동정(廉東亭)이 밀보리[牟來]와 현미[糙米]를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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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보리로 백성 기르고 벼는 산더미 같아라 / 來牟率育稻如京
매양 시경을 읊으면서 길이 탄식했었네 / 每詠詩章發嘆長
본디 진에 있을 때도 마냥 즐거웠었는데 / 自是在陳猶最樂
더구나 이젠 흰 쌀밥으로 배불릴 수 있음에랴 / 況今璀璨可撑腸
벼 논이 송경을 끼고 들판을 연했는데 / 稻田連野擁松京
가을 벼이삭 이미 자랐다고 모두 말하네 / 共說秋來穟已長
누런 벼이삭 다 거두어 백옥같이 찧으면 / 卷盡黃雲舂白玉
향그런 햅쌀밥으로 쇠한 창자 보충하리라 / 剩敎香滑補衰腸
또 단가(短歌)를 짓다.
보리는 사시를 거쳐 원기가 넉넉하거니와 / 麥經四時元氣足
벼는 오곡 가운데 수덕을 오로지하는데 / 稻在五種專水德
아득히 넓은 지세 높고 낮게 펼쳐진 가운데 / 茫茫地勢陳高卑
구품으로 부세 내라 우 임금 업적을 알겠네 / 九品出賦知禹績
생각건대 상제의 명은 피차가 없는지라 / 恭惟帝命無彼此
중국에 상도를 베풀어 인륜을 세웠도다 / 陳常時夏立人極
아침마다 밥 짓는 연기 천하에 가득해라 / 朝朝烟火遍區宇
그 누가 아침 안 먹고 저녁을 꾀할 수 있으랴 / 何人閉口能謀夕
금옥 같은 소리도 이것을 바탕 삼아 나오고 / 金玉之音資以聲
금옥 같은 바탕도 이것을 힘입어 빛났으며 / 金玉之相資以色
문장을 뱉아내어 천하에 두루 입히매 / 吐出文章被天下
인륜이 중국 천하에 찬란히 빛났었네 / 彝倫粲然照中域
그 사이 병란이 생겨 다스려야 할 때에는 / 孽生其間須草薙
군량 조달은 예부터 부득이한 일이거니와 / 飛輓由來少不得
언제나 위급한 일은 생길 수 있는 법이라 / 尋常緩急不可離
혁혁한 공훈 책록하여 종정에 새길 만하네 / 策功赫赫鐘鼎勒
그러나 의리가 이보다 더 중함을 누가 알랴 / 誰知義理重於此
꾸짖으며 음식을 주면 걸인도 안 먹는다오 / 呼爾乞人猶不食
그대는 못 보았나 하증은 한 젓가락에 만전을 허비했고 / 君不見何曾一箸費萬錢
고사리 캐던 서산엔 천지가 깜깜했었던 걸 / 西山採薇天地黑
[주D-001]밀보리로 백성 기르고 : 《시경》 주송(周頌) 사문(思文)에, “우리 백성에게 밀보리 주심이, 바로 상제께서 명하여 백성 기르게 하심이라.[貽我來牟帝命率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진(陳)에 있을 때 : 공자가 일찍이 진채(陳蔡) 사이에서 7일 동안 양식이 끊겨 큰 곤란을 당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양식이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論語 衛靈公》
[주D-003]보리는 사시(四時)를 거쳐 : 보리는 가을에 싹이 나서 그다음 해 여름에 수확하게 되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4]구품(九品)으로 …… 알겠네 : 우 (禹) 임금이 고산 대천(高山大川)을 정하고 천하의 땅을 구주(九州)로 나누어서, 각각 토질(土質)과 부세(賦稅)의 등급을 매길 때, 상(上)ㆍ중(中)ㆍ하(下) 3등급에 각 등급마다 또다시 3등급씩을 매겨서 상지상(上之上)에서 하지하(下之下)까지 모두 9등급으로 정한 것을 가리킨 말이다.
[주D-005]상제(上帝)의 …… 세웠도다 : 주 (周)나라의 시조(始祖)인 후직(后稷)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쳐서 모두가 잘 살게 함으로써 중국 천하에 군신 부자(君臣父子)의 상도(常道)가 펴지게 되었던 것을 말한다. 《시경》 주송(周頌) 사문(思文)에, “문덕 높은 후직이여, 능히 저 하늘을 짝하셨다.……우리에게 밀보리 주심이, 상제께서 명하여 우리를 기르게 하심이라. 피차의 경계를 없게 하시고, 중국에 상도를 펴시었다.[思文后稷 克配彼天……貽我來牟 帝命率育 無此疆爾界 陳常于時夏]”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하증(何曾)은 …… 허비했고 : 진 (晉)나라 때의 재상 하증이 호사(豪奢)를 매우 힘써, 유장(帷帳)과 거복(車服)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하였는데, 특히 음식 사치는 왕자(王者)보다 더하여, 매일 만전(萬錢) 어치의 음식을 차려 먹으면서도 항상 “젓가락 댈 데가 없다.”라고 말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7]고사리 …… 걸 : 은 (殷)나라 말기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주 무왕(周武王)이 끝내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우자,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고는, 일명 서산(西山)으로도 일컫는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 먹고 살다가 마침내 굶어 죽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조서(詔書)를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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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중흥주는 소원한 족속이었는데 / 自古重興族屬疏
동경과 서촉은 모두 한나라의 영토였네 / 東京西蜀漢方輿
이제는 혼동강 가에서 용이 날아 나오니 / 混同江上龍飛出
천둥 비가 잠깐 새에 천지를 뒤덮는구나 / 雷雨須臾遍大虛
만조백관 조복 갖추고 소리 없이 서 있을 제 / 百官袍笏寂無聲
임금님 말씀 바람 따라 넓은 뜰에 떨어지네 / 天語隨風落廣庭
누가 알랴 반열 속에 지팡이 짚은 늙은이가 / 誰識一時扶杖聽
조서 들으면서 두 줄기 눈물 흘리는 줄을 / 白頭朝列淚雙零
[주D-001]예로부터 …… 영토였네 : 동경(東京)은 후한(後漢)의 도읍지인 낙양(洛陽)을 가리키는데, 후한의 광무제(光武帝)와 촉한(蜀漢)의 소열제(昭烈帝)가 모두 한(漢)나라의 먼 족속(族屬)으로서 한나라를 중흥시켰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한 유항(韓柳巷)의 누상(樓上)에서 염 정당(廉政堂)과 함께 간단한 주연(酒宴)을 즐기던 차에 마침 판서(判書) 윤호(尹虎)가 왔고, 석양에 이르러서는 길창군(吉昌君)이 나와 앉아서 남주(南州)에서 노닐 때의 즐거웠던 일을 언급하였으므로, 물러 나와서 그 사실들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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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높은 누각에 버들 바람 불어오고 / 盡日高樓楊柳風
발 같은 가랑비는 또 어둑히 내리는데 / 一簾微雨又濛濛
곡성의 호기는 붕정에 아주 가깝고 / 曲城豪氣鵬程逼
상당의 깨끗한 풍채는 옥수와 똑같구려 / 上黨淸標玉樹同
복숭아를 살살 씹으니 치아는 서늘하고 / 細嚼碧桃牙齒冷
좋은 술 따라마시니 창자는 훈훈해지네 / 穩斟綠蟻肺肝通
충심으로는 다 영평의 후손을 말하거니와 / 忠心共說鈴平後
쇠한 백발이야 누가 이 목은 늙은이 같을꼬 / 衰鬢誰如牧隱翁
계정이 와서 자리 주관할 줄 어찌 뜻했으랴 / 豈意繼亭來押座
일찍이 아상 사직하고 공에 진봉되었는데 / 早辭亞相進封公
곁에서 남주의 즐거운 놀이 자세히 들으니 / 從傍細聽南州樂
원기 왕성한 노익장에 두 뺨이 아직 붉구나 / 矍鑠張僧頰尙紅
[주D-001]곡성(曲城)의 …… 가깝고 : 곡성은 파주(坡州)의 고호로, 파주 염씨(坡州廉氏)인 정당문학(政堂文學) 염흥방(廉興邦)을 가리키고, 붕정(鵬程)은 붕새가 날아가는 먼 길이란 뜻으로, 남아의 원대한 포부를 의미한다.
[주D-002]상당(上黨) : 청주(淸州)의 고호로, 여기서는 청주 한씨(淸州韓氏)인 유항(柳巷) 한수(韓脩)를 가리킨다.
[주D-003]영평(鈴平)의 후손 : 영평은 영평백(鈴平伯)에 봉해진 명장(名將) 윤관(尹瓘)을 가리키고, 후손은 바로 윤호(尹虎)를 가리킨 말이다.
[주D-004]계정(繼亭) : 벼슬이 찬성사(賛成事)에 이르고 길창군(吉昌君)에 봉해진 권적(權適)의 호이다.
가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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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칠석을 지나가더니 / 秋雨過七夕
처마 밑엔 물방울이 아직 남았네 / 簷間有餘滴
붓에 먹 적셔 긴 율시 읊자하니 / 濡毫吟長律
높은 흥취가 규정에 얽매이누나 / 高興窘常格
언뜻 얻었다 또 이내 잊어버리고 / 乍得又乍忘
뜻은 있으나 문득 힘이 없어라 / 有志却無力
옛 풍아를 읊조리고 노래하니 / 嘯歌古風雅
정회가 팔방 끝까지 가득 차누나 / 情懷滿八極
천기가 점차 맑고 깨끗해져야만 / 天氣向澄淸
누각에 올라 밝은 달을 완상하리 / 登樓玩明月
젓대 소리는 이미 귀에 그득하니 / 笛聲已在耳
다시 한 달이 지나길 기다려야지 / 更待一圓缺
정당공(政堂公) 권용부(權庸夫)가 부인을 위해 화장사(華藏寺)에서 재(齋)를 올리는데, 나는 그 일을 인하여 구룡산(九龍山)에 가서 놀려고 했다가 병 때문에 가지 못하고 이것을 써서 소회를 기록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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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산 속에 절집이 덩그렇게 서 있어 / 華藏山中梵宇高
청풍으로 깨끗이 쓸고 애써 날 초청했는데 / 淸風淨掃苦相邀
무단히 병이 나서 부질없이 고개 돌리니 / 無端疾作空回首
지척의 거리가 도리어 만 리나 먼 것 같네 / 咫尺還同萬里遙
인하여 특별한 경계 구룡산에 들러서 / 因過異境九龍山
선경 속의 절집을 찾아가려고 했더니 / 欲扣僧扉縹渺間
좋은 놀이는 우연이 아니란 걸 믿어야 하리 / 須信淸遊非偶爾
졸졸 흐르는 물소리 들을 인연이 없었구려 / 耳邊無分聽潺溪
가을바람에 백제를 높이 찾았던 이는 / 高尋白帝在秋風
천재에 시의 명성이 홀로 천하에 으뜸인데 / 千載詩名獨擅雄
난 병든 나머지 몹시 무뢰함 스스로 한하여 / 自恨病餘無賴甚
산 위에서 옷 떨치며 허공을 날고 싶구나 / 振衣岡上欲凌空
[주D-001]가을바람에 …… 이는 : 두 보(杜甫)의 〈망화악(望華岳)〉 시에, “점차 가을바람이 서늘해지길 기다려서, 백제를 높이 찾아가 진원을 물으련다.[稍待秋風涼冷後 高尋白帝問眞源]” 한 데서 온 말인데, 백제는 화산(華山)을 지배한다는 서방신(西方神)을 가리키고, 진원은 선도(仙道)의 본원(本源)을 이른 말이다.
염동정(廉東亭)이 햅쌀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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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한 둥근 상자를 흰 모시로 봉했는데 / 白苧斜封潻合圓
그 안에 흰 쌀이 들어 은은히 향기를 풍기네 / 中藏玉粒細香傳
동정은 응당 기억하리 먼저 맛보는 곳에 / 東亭應記先嘗處
붉은 게 쟁반 가득코 가을 하늘 맑았던 걸 / 紫蟹堆盤秋滿天
진강의 강가에는 둥그런 산이 있고요 / 鎭江江上有山圓
서면에는 비옥한 토지가 대대로 전해와서 / 西面腴田世所傳
해마다 옥같이 깨끗한 쌀을 먹었는지라 / 歲歲長腰如玉潔
지금 돌아갈 흥취가 남쪽 하늘에 가득하네 / 只今歸興滿南天
[주D-001]먼저 맛보는 곳 : 공자가 임금이 음식을 내려 주면 반드시 자리를 바르게 하고 먼저 맛을 보고 나서 나머지는 모두 반사(頒賜)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論語鄕黨》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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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새벽엔 빗방울이 한두 점 지나가고 / 淸晨過雨一二點
깊은 숲에선 비둘기가 두세 번 울어대네 / 深樹鳴鳩三兩聲
꿈을 깨고는 길이 읊어 끝없이 읊노라니 / 夢覺長吟吟不盡
붓끝이 무력하여 진정만을 쓸 뿐이로다 / 筆端無力寫眞情
정해년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한 제공(諸公)을 생각하다. 3수(三首) ○ 나라 풍속에 의하면, 진사과에 급제한 사람은 자기 좌주(座主)의 아들을 종백(宗伯)이라 일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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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돌려 정해년을 생각해 보니 / 回頭丁亥歲
지금까지 삼십이 년이 흘렀네 / 三十二回春
종백은 여러 아들이 없었거니와 / 宗伯無多子
문생은 그 몇 사람이나 남았는고 / 門生有幾人
공명은 의당 천명을 따라야 하고 / 功名須信命
몸은 반드시 예의로 닦아야 하리 / 禮義要修身
떠돌면 끝내 무슨 득이 있으랴 / 浪走終何益
가을에는 또 새 곡식을 먹으리라 / 秋來又食新
젊은 날 과거에 장원급제했을 땐 / 少日登高第
재상들이 넓은 마당 압좌했는데 / 台司壓廣庭
그 당시에 노인이라 일컬었더니 / 當時稱老大
그들은 중년에 다 돌아가버렸네 / 中歲盡凋零
세월은 하수처럼 빨리만 달리고 / 奔逸馳河水
남은 사람은 새벽별처럼 드물어라 / 稀疎耿曉星
이제 와서 남은 한이 있으니 / 至今遺恨在
중국에서는 증청을 사용한다네 / 中國用曾靑
상당 고을이 군자를 배출하여 / 上黨出君子
한집에서 두 한씨가 출생하니 / 一家生二韓
정당문학은 옥수처럼 빼어나고 / 政堂琪樹迥
첨서원사는 옥호처럼 청결한데 / 簽院玉壺寒
함께 문형의 중책을 맡기도 하고 / 共掌文衡重
함께 유배의 어려움도 겪었었네 / 俱經編管難
가련하기도 해라 성 내사는 / 可憐成內史
웅대한 뜻 끝내 눈물만 흘리누나 / 壯志竟汍瀾
[주D-001]증청(曾靑) : 사람이 복용(服用)하면 몸이 경쾌해져서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는 선약(仙藥)의 이름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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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가 날아와 스스로 사람 접근하여라 / 瓦雀飛飛自近人
뜰에서 먹이 얻는 게 오랫동안 길들었는데 / 庭除得食久相馴
늙은이가 널빤지 치면 자주 놀라 일어나니 / 老翁擊板頻驚起
나도 모르게 아침에 한바탕 웃음 짓노라 / 不覺朝來一笑新
들 과일 한가한 꽃은 세세히 향기롭고 / 野果閑花細細香
보리 싹은 자라나서 옥 같은 실 기다란데 / 麥苗抽出玉絲長
높은 누각이 다행히 원통암 경내에 있어 / 樓高幸有圓通境
아녀들 떠들어 대는 곳이 바로 도량이로세 / 兒女喧嘩是道場
누각에 기댄 신세는 참으로 한가하건만 / 倚樓身世儘悠悠
거울 속의 세월은 두 귀밑이 가을이로세 / 鏡裡光陰兩鬢秋
소년 시절 회상하니 한바탕 꿈만 같아라 / 回首少年如一夢
몇 사람이나 봉후 구하느라 애를 썼던고 / 幾人辛苦覓封侯
부질없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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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의 쌀 귀함은 근래에 드문 일인데 / 今年米貴近來稀
죽 먹는 안공은 늙도록 돌아가질 못하네 / 食粥顔公老不歸
다만 기쁜 건 서풍이 점차 급히 불어오매 / 只喜西風吹漸急
들에 그득한 누런 벼가 석양에 너울댐일세 / 黃雲靄靄弄斜暉
[주D-001]죽 먹는 안공(顔公) : 안 공은 당나라의 충신으로 노국공(魯國公)에 봉해진 안진경(顔眞卿)을 가리키는데, 그가 일찍이 이 태보(李太保)에게 보낸 편지에, “내가 생계에 졸렬하여 온 집안이 죽을 먹고 지낸 지가 이미 수개월이 되었는데, 이제는 죽도 먹을 것이 없어, 더욱 애가 탈 뿐이다.[拙於生事 擧家食粥 已來數月 今又罄竭 祇益憂煎]” 한 데서 온 말이다.
7월 15일에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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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의 뜰아래 잔디밭을 자리로 삼아서 / 奉恩庭下草爲茵
노소가 둘러앉아 구경하니 먼지도 안 날려라 / 老幼環觀不動塵
마주서 있는 장신은 빙옥처럼 깨끗한데 / 角立長身氷玉潔
무겁기는 천 근 같고 빠르기는 신 같았네 / 重如難拔疾如神
서리같이 흰 발에 버선 없이 짚신만 신고 / 草鞋無襪足如霜
동자 관자 서로 이끌고 석양까지 노닐었지 / 童冠相携至夕陽
예전 놀이 회상하니 꿈만 같을 뿐이라 / 回首舊遊如夢耳
화로에 향 사르고 빈 걸상에 앉았노라 / 一爐香火坐空牀
다음 날에 또 짓다.
산사는 오늘이 번화한 날이요 / 山寺繁華日
속세는 지금이 적막한 때로다 / 烟區寂寞時
오늘 아침도 다시 예전 같은데 / 今朝還似舊
세상 도의는 모두 변천했구려 / 世道儘推移
새벽에 일어나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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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온통 잠 못 이루어라 / 一夜睡不成
새벽까지도 삭신이 쑤시고 아프네 / 曉來猶骨酸
옷과 두건으로 겨우 몸만 가렸고 / 衣巾纔掩體
낯 씻고 머리 빗질도 억지로일세 / 盥櫛亦强顔
가만히 앉았긴 몹시 무미하거니와 / 危坐甚無味
길이 노래한들 어찌 즐거울쏜가 / 長歌豈成歡
그 누가 알랴 참으로 즐거운 일은 / 誰知可樂處
머리 위에 조관이 없는 것인 줄을 / 頭上無朝冠
아이종을 시켜 잡초를 매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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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새벽에 아이종을 시켜서 / 淸晨課童奴
물 뿌리고 쓸어 집안 깨끗이 하니 / 洒掃庭內空
이끼는 푸르러 밟고 다닐 만하고 / 苔痕綠可踏
풀 싹은 섬세하여 보기도 좋아라 / 草芽纖可容
더러움 제거함은 이미 통절했지만 / 去穢旣痛迫
시야가 깨끗하니 마음 절로 즐겁네 / 眼淨心自融
가장 사랑스런 건 좋은 나무숲이 / 㝡愛嘉樹林
높은 담장 너머로 우뚝 빼어나 / 梃出臨高墉
푸른 그림자가 상탑에 가득하여 / 翠影滿床榻
흔들거리며 실바람을 불어 주어 / 搖搖生細風
정히 단꿈 이루기가 퍽도 좋아서 / 政好就甘夢
용 따라 하늘을 오를 수 있음일세 / 閶闔追飛龍
큰비 내려 남은 열을 씻어버리면 / 大雨掃餘熱
한 번 서늘함은 천하가 똑같지만 / 一涼天下同
도리어 두려운 건 필연의 이치로 / 却恐勢必至
눈서리가 엄한 겨울을 이룸일세 / 霜雪成嚴冬
즉사(卽事). 이날에 조사(詔使)를 전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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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그늘 아득하고 일기 약간 서늘한데 / 重陰漠漠嫩涼生
때마침 꾀꼬리는 깊은 숲에서 울어대누나 / 時有錦鳩深樹鳴
서쪽 교외엔 조사 보내는 수레 가득할 텐데 / 送詔西郊車騎滿
병석에 누운 늙은이는 마음만 있을 뿐이네 / 白頭病臥獨含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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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의 큰 누에고치는 항아리만 하다던데 / 扶桑大繭如甕盎
내 젊어서 동파의 시를 유쾌히 읽었노니 / 我少快讀東坡詩
직녀가 은하수 가에서 일곱 번 자리 옮기어 / 織女七襄河漢間
눈부시게 화려한 옷을 천하에 입혀 주었네 / 衣被天下光陸離
월라와 촉금은 사람의 눈을 현란케 하여 / 越羅蜀錦炫人目
부호들이 서로 다투어 화려함을 뽐내어라 / 豪富相傾逞紅綠
어쩌면 그리도 티 없이 눈빛처럼 깨끗한고 / 爭如雪色絶纖垢
품질 평판이 정히 천하에 으뜸이었건만 / 題品定爲天下獨
본질은 이미 멀어지고 물 또한 깊이 들었네 / 太素已遠染亦深
사물과 함께 안 변하는 건 오직 인심이거늘 / 不與物化惟人心
어찌하여 날마다 밖으로 이익만 추구하여 / 奈何逐外日趨末
금수 아닌 인간이 금수가 되어 버린단 말가 / 非禽獸兮爲獸禽
내가 소사가 지어 한 곡조를 불러 마치니 / 我作素絲歌一終
슬픈 소리는 묵자와 서로 다를 게 없거니와 / 悲聲墨子將無同
코끝이 아주 맑아져 푸른 하늘에 통하누나 / 鼻端有白通蒼穹
[주C-001]부상사음(扶桑絲吟) : 부상은 동해(東海)의 해돋는 곳에 있다는 신목(神木) 이름이고, 사는 잠사(蠶絲)를 가리킨다.
[주D-001]부상의 …… 읽었노니 : 옛 날 제남(濟南) 땅에 원객(園客)이란 선인(仙人)이 있어 항상 오색의 향초(香草)를 심어 가꾸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뒤에 어느 날 갑자기 오색 나방[蛾]이 향초 위에 날아와 앉으므로 원객이 베[布]를 깔아 주니, 나방이 베 위에 누에를 낳았다. 그러자 한 여인이 와서 그 누에에게 향초를 먹여 길러서 누에고치 120개를 얻었는바, 크기는 항아리만 했고, 고치 하나마다 실을 켜는 데는 6, 7일씩이나 걸렸는데, 실을 다 켜고는 여인이 원객과 함께 신선이 되어 갔다는 고사가 있으므로,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이 고사를 두고 지은 시에, “부상의 누에고치는 크기가 항아리만 한데, 천녀가 은하수 가에서 비단을 짠다네.[扶桑大繭如甕盎 天女織綃雲漢上]”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직녀(織女)가 …… 입혀 주었네 : 《시경》 소아(小雅) 대동(大東)에, “발돋움하는 저 직녀가, 종일토록 자리를 일곱 번 옮기도다.[跂彼織女 終日七襄]” 한 데서 온 말이다. 직녀는 별 이름인데, 베를 짠다는 의미를 부여해서 한 말이다.
[주D-003]월라(越羅)와 촉금(蜀錦) : 월(越)에서 생산되는 능라(綾羅)와 촉(蜀)에서 생산되는 금단(錦緞)을 가리킨다.
[주D-004]내가 …… 없거니와 : 전 국 시대 송(宋)나라의 묵적(墨翟)이 흰 실[素絲]을 보고는, 흰 실을 물들이면 노랗게도 검게도 만들 수 있듯이, 사람도 각자의 환경에 따라서 선인(善人)이 될 수도 있고 악인(惡人)이 될 수도 있다 하여 슬피 울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5]코끝이 아주 맑아져 : 불교 수행법의 한 가지로, 자신의 코끝을 두 눈으로 주의깊게 살펴보아서 이것이 오래되면 콧숨[鼻息]이 아주 맑아진다는 데서 온 말이다.
단오일(端午日)의 일을 추후에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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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보 거리 운동장에 말을 나란히 달리어라 / 千步場中馬並馳
한 점의 나는 공이 그 누구를 따르려 하랴 / 飛毬一點欲從誰
분명히 이것은 마음이 없는 물건이련만 / 分明是箇無心物
유능한 이와 만나는 건 앎이 있는 듯하네 / 逢著高才若有知
근세에 졸옹(拙翁)의 글을 고친 자가 있었는데, 그의 성씨(姓氏)는 잃어버렸다. 그것을 인하여 단묵경(段墨卿)의 회서비(淮西碑)에 관한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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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다한 비문은 조화옹 대신한 것이거니 / 刻物區區代化工
무슨 낯으로 지하에서 문공을 만날런고 / 何顔地下見文公
우리 동방에도 선배의 글 고치는 손이 있어 / 海東亦有雌黃手
나 홀로 예산을 향해 졸옹을 조문하노라 / 獨向猊山弔拙翁
[주C-001]졸옹(拙翁) : 고려 시대 문장가로 벼슬이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던 최해(崔瀣)의 호이다. 그가 만년에는 사자산(獅子山)에 은거하면서 예산농은(猊山農隱)이라 자호하였다.
[주C-002]단묵경(段墨卿)의 …… 일 : 단 묵경은 당 헌종(唐憲宗) 때의 문신(文臣) 단문창(段文昌)를 가리키는데, 묵경은 그의 호이다. 당 헌종 연간에 회서 절도사(淮西節度使) 오원제(吳元濟)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재상 배도(裴度)가 회서 선위처치사(淮西宣慰處置使)가 되어 한유(韓愈)를 행군 사마(行軍司馬)로 삼고 출정(出征)하여 회서를 평정하고 돌아왔다. 이에 헌종이 한유에게 명하여 평회서비(平淮西碑)를 짓게 했다. 그 비문 내용은 재상 배도의 일을 많이 서술하였으므로, 당시 회서에 맨 먼저 들어가 오원제를 사로잡는 데 공이 가장 컸던 이소(李愬)가 비문 내용을 불만스럽게 여겨, 자기 아내를 시켜 금중(禁中)을 드나들면서 비문 내용이 부실함을 하소연하게 한 결과, 헌종이 다시 한림학사(翰林學士) 단문창을 시켜 그 비문을 새로 지어서 비석에 새기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1]문공(文公) : 여기서는 시호가 문(文)인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계사년의 동년(同年) 제공(諸公)이 술을 갖고 찾아왔는데, 이날 저녁 무렵에 비가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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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생에 의기투합해 다행히 동문이 되었으니 / 三生托契幸同門
친후한 깊은 정의는 다시 논할 것도 없는데 / 親厚深情不復論
검은 머리 소년 시절엔 제자들 왕성했건만 / 綠髮早年諸子盛
백발의 오늘날엔 그 몇 사람이나 남았는고 / 白頭今日幾人存
병든 나머지라 시구 적을 힘도 없거니와 / 病餘無力題詩句
난리 뒤에 무슨 마음으로 술은 대한단 말가 / 亂後何心對酒樽
몹시도 나란히 누워 밤비 소리 듣곤 싶으나 / 甚欲聯床聽夜雨
워낙 가난해 가는 손 만류할 계책이 없구려 / 貧居無計駐歸軒
또 쓰다.
병든 나머지 흥취가 그윽한 삶에 만족하니 / 病餘情興愜幽居
취한 가운데 읊조림이 참으로 유여하구나 / 醉裏吟哦儘有餘
문전의 푸른 버들 흔들려라 바람은 살살 불고 / 門柳綠搖風細細
뜨락의 붉은 꽃 젖어라 비는 듬성듬성 내리네 / 砌花紅濕雨疎疎
깊이 생각함은 소아를 탐구하려는 것이지만 / 沈思直欲探騷雅
오랜 병객은 언제 간서를 두려워한 적 있었나 / 久病何曾畏簡書
세상 인정이 지금 더욱 야박하다 누가 말했나 / 誰道世情今更薄
때때로 친구의 행차가 멀리 왕림해 주는 걸 / 時時遠枉故人車
[주D-001]삼생(三生) : 불교(佛敎) 용어로, 삼생은 전생(前生)ㆍ금생(今生)ㆍ내생(來生)을 합칭한 말이다.
[주D-002]나란히 …… 싶으나 : 비 바람 몰아치는 밤에 친구끼리 서로 만나서 다정히 노는 것을 뜻한다. 백거이(白居易)가 비 오는 날에 장 사업(張司業)과 함께 자려고 그를 초청한 시에, “나와 함께 잠잘 수 있겠는가, 빗소리 들으며 침상 마주해 자세나.[能來同宿否 聽雨對牀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소아(騷雅) :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와 《시경》의 소아(小雅)ㆍ대아(大雅)를 합칭한 말로, 전하여 뛰어난 풍격(風格)의 시문을 이른다.
[주D-004]간서(簡書) : 옛 날, 임금이 장수를 전장에 내보낼 때에 내리는 명령서(命令書)이다. 《시경》 소아(小雅) 출거(出車)에, “어찌 돌아가고픈 생각이 없었으랴만, 이 간서가 두려웠느니라.[豈不懷歸 畏此簡書]”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주(周)나라 장수가 천자의 명을 받들어 험윤(玁狁)을 정벌하여 평정하고 돌아오면서 부른 노래라 한다.
즉사(卽事)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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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온 대지를 다 포함하고 / 蓋象包輿地
한 치 마음은 몸속에 담겼거니 / 寸心藏尺軀
조용한 때 복괘 구괘를 관찰하면 / 靜時觀復姤
오묘한 곳에 요순 시대를 상상하리 / 妙處想唐虞
새벽안개는 푸른 봉우리에 걷히고 / 曉霧收靑嶂
가을바람은 푸른 오동에 불어오네 / 秋風入碧梧
유유히 스스로 조화에 순응하노니 / 悠悠自乘化
큰 바다가 하늘 한쪽에 닿았네그려 / 鯨海接天隅
몸가짐은 본디 방술이 없거니와 / 持身固無術
소일하는 덴 다만 시를 읊노라니 / 送日祇吟詩
흐르는 세월은 하도나 빠르고 / 鼎鼎光陰速
강직하던 절조는 이제 변했네 / 觥觥節操移
가을바람은 억센 풀을 꺾고 / 秋風摧勁草
석양은 높은 나뭇가지에 걸렸네 / 夕照掛高枝
길이 휘파람 불어 분심을 푸노니 / 長嘯自舒憤
안위를 장차 누구에게 의탁할꼬 / 安危將恃誰
왕희지의 필법엔 뜻을 단절하고 / 絶意右軍筆
두보의 시에만 마음을 두었노니 / 留心工部詩
글자 형체는 예로부터 변해 왔고 / 字形從古變
시구 법칙은 때에 따라 바뀌었네 / 句法逐時移
곧장 본원으로 돌아가려 하거늘 / 直欲反源本
어찌 지파를 찾은 적이 있었던가 / 何曾尋泒枝
한 몸에 쌍미를 갖춘 이는 적으니 / 一身雙美少
그칠 줄 앎이야 나말고 누구리요 / 知止捨吾誰
[주D-001]복괘(復卦) 구괘(姤卦) : 복괘는 일양(一陽)이 처음 생기는 괘[
[주D-002]쌍미(雙美) : 두 가지 선행(善行)을 이른 말이다.
산수 소도(山水小圖)를 두고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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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는 뛰어난 경계가 있고 / 人間有異境
하늘가엔 높은 성이 우뚝한데 / 天際起層城
가을 물 얕아 돛단배는 끊어지고 / 石出孤帆落
깊은 숲 속엔 오솔길이 빤하구나 / 林深小逕明
계곡의 새는 바둑 소리에 흩어지고 / 溪禽散碁響
산중 사람은 종소리에 우뚝 서네 / 山客立鐘聲
어느 때나 참다운 은자를 찾아서 / 何日尋眞隱
하염없이 심원한 정을 우러내 볼꼬 / 悠然生遠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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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와씨가 돌 달구어 이지러진 하늘 기웠으니 / 女媧煉石補天缺
연금니 속에서 그 돌을 응당 주웠을 텐데 / 連金泥中應拾掇
그 누가 안목 있어 교묘한 생각 훔쳐다가 / 誰歟有眼竊巧思
끊어진 줄 다시 잇는다면 얼마나 신기할꼬 / 絃絶更續何其奇
다만 봉황은 가고 기린도 놀지를 않아서 / 但恐鳳逝麟不遊
봉황 부리 기린 뿔을 구할 길 없어 염려로세 / 鳳喙麟角無由求
공자는 다시 춘추를 저술하지 않거니와 / 孔子不復作春秋
문왕도 멀어져서 동주만 생각할 뿐인데 / 文王遠矣思東周
아교 달이는 기술은 절로 아득하기만 해라 / 煎膠有術自悠悠
이미 실추된 도의 계통을 누가 널리 찾을꼬 / 道緖已墜誰旁搜
[주C-001]속현교행(續絃膠行) : 속 현교는 곧 끊어진 줄을 잇는 아교라는 뜻으로, 두보(杜甫)의 시에, “기린 뿔 봉황 부리를 세상에 알 자 없으나, 아교 달여 줄 이으면 신기함 절로 드러나리.[麟角鳳觜世莫識 煎膠續絃奇自見]” 한 데서 온 말이다. 선가(仙家)에서 봉새의 부리와 기린의 뿔을 한데 합쳐 달여서 아교를 만들고 이것을 ‘집현교(集絃膠)’라 이름하는바, 이 아교는 궁노(弓弩)의 끊어진 줄을 이을 수 있다고 하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1]여와씨(女媧氏)가 …… 기웠으니 : 여와씨는 상고 시대 제왕(帝王)의 이름인데, 그가 일찍이 오색(五色)의 돌을 달구어서 하늘의 이지러진 곳을 기웠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주D-002]연금니(連金泥) : 선가(仙家)에서 봉새의 부리와 기린의 뿔을 한데 합쳐 달여서 아교를 만들고 이것을 ‘집현교(集絃膠)’라 하는데, 연금니는 이와 같은 뜻이다.
중암(中菴) 윤 상인(允上人)이 내 집에 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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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사의 연기와 놀은 한 구역에 잠기었고 / 靈隱烟霞鎖一區
천마산의 바위 골짝은 부소와 연접했는데 / 天磨巖壑接扶蘇
일천 봉 꼭대기에 반 바퀴 밝은 달이 있거니 / 半輪明月千峯頂
어찌 뿌연 먼지 속의 늙은이를 생각할쏜가 / 肯向紅塵憶老夫
스스로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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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질이 박하니 벼 수확은 적고 / 田薄取禾少
고향이 머니 쌀 보냄도 드물구나 / 鄕遙送米稀
솜옷은 초여름까지 그대로 입고 / 夏初猶故絮
홑옷은 또한 늦가을까지 입노라 / 秋末尙輕衣
손이 오면 조용히 앉는 데 익숙하고 / 客至工淸坐
아이는 울면서 오랜 굶주림 견디네 / 兒啼耐久飢
호초 삼백 곡이야말로 / 胡椒三百斛
남의 비난 받기에 꼭 알맞으리 / 適足被人譏
병난 이후론 시만 자주 읊을 뿐 / 病後吟詩數
연래에는 출입이 드물었더니 / 年來命駕稀
산을 마주하면 납극이 생각나고 / 對山思蠟屐
빗소리 들으면 도롱이가 생각나네 / 聽雨憶簑衣
대는 있으니 속됨이야 꺼리랴만 / 有竹何嫌俗
배고픔 다스릴 옥지가 없네그려 / 無芝可療飢
때로는 새로 지은 시를 고치면서 / 時時改新作
붓을 잡고 스스로 평론도 하노라 / 把筆自評譏
흐르는 세월은 빠르기만 하고 / 鼎鼎光陰迅
쓸쓸한 귀밑털은 드물기만 한데 / 蕭蕭鬢髮稀
주머니 속엔 옥 먹는 법이 있고 / 囊中飧玉法
시렁엔 연잎으로 지은 옷이 있네 / 架上製荷衣
주유의 배부름을 다들 자랑하지만 / 共詫侏儒飽
만천의 배고픔은 누가 가여워할꼬 / 誰憐曼倩飢
천명을 어찌 도피할 수 있으랴 / 命邪何可逭
남의 비난 그만두고 반성이나 해야지 / 撫己任他譏
[주D-001]호초(胡椒) 삼백 곡(三百斛) : 당 나라 때 탐관(貪官) 원재(元載)가 죽은 뒤에 그의 집을 적몰(籍沒)한 결과, 종유(鍾乳)가 500냥, 호초가 800석이나 나왔고, 기타의 물품도 여기에 걸맞았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뇌물을 매우 탐하는 데에 비유한 말이다. 원문(原文)에 삼백 곡이라 한 것은 고저(高低) 관계로 글자를 전용한 것이다.
[주D-002]납극(蠟屐) : 밀을 발라서 반질반질하게 한 나막신을 말하는데, 남조 송(南朝宋)의 사영운(謝靈運)이 평소 등산을 좋아하여 항상 나막신을 신고 등산을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대는 …… 꺼리랴만 : 소식(蘇軾)의 시에,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파리하게 하고, 대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네.[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배고픔 …… 없네그려 : 장형(張衡)의 〈사현부(思玄賦)〉에, “서왕모를 은대로 찾아가서, 옥지 올려 배고픔 다스리게 하네.[聘王母于銀臺兮羞玉芝以療飢]” 한 데서 온 말인데, 옥지는 선경(仙境)에 있는 영지(靈芝)를 가리킨다.
[주D-005]주머니 …… 있고 : 옥 (玉)을 먹는 법이란 선가(仙家)에서 옥을 조제하여 복용하는 법을 가리키는데, 두보(杜甫)의 시에, “주머니 속의 옥 먹는 법을 시험하지 못했으니, 내일 아침에는 또 남전산을 들어가야겠네.[未試囊中餐玉法 明朝且入藍田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연잎으로 지은 옷 : 연잎을 엮어서 만든 옷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옛날 은자(隱者)들이 입었다고 한다.
[주D-007]주유(侏儒)의 …… 가여워할꼬 : 주 유는 기예(技藝)를 연출하던 난쟁이 광대이고, 만천(曼倩)은 동방삭(東方朔)의 자인데, 동방삭이 한 무제(漢武帝)에게 말하기를, “난쟁이 광대는 키가 삼 척(三尺)인데 봉록(俸祿)이 일낭속(一囊粟)이고, 신(臣) 삭(朔)은 키가 구 척(九尺)인데도 역시 일낭속을 받으므로, 난쟁이 광대는 배가 불러서 죽을 지경이고, 신 삭은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입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소년락(少年樂) 2편(二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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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의 행락을 / 少年樂
병중에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구나 / 病中思之心作惡
마을에서 밤낮없이 즐겁게 노닐 적에 / 嬉游閭巷罔晝夜
나이 많은 선비들이 총각을 끼어 주었네 / 褒博之間容總角
멀리 긴 그림자 따라 달밤에 돌아가서는 / 遙隨長影踏月歸
일곱 자 몸으로 토란을 훔쳐 짊어지고서 / 竊負蹲鴟身七尺
늦은 밤에 서로 이끌고 그 집을 찾아 들어가 / 夜闌相携扣其戶
다시 술 밥 청하여 아침저녁을 대접받는데 / 更請治具供朝夕
때마침 남녀 노복이 갑자기 와서 아뢰길 / 長鬚赤脚忽來報
어젯밤 전원에 미친 도적이 쳐들어와서 / 昨夜園中有狂賊
토란을 긴 줄기 둥근 잎까지 다 말아갔으니 / 卷去長莖帶圓葉
이는 호강자제나 유협객 소행이 아니라며 / 不是膏粱與游俠
한낮까지 온갖 욕설을 마구 퍼부어댔었지 / 極口醜詆及日中
소년은 못 들은 척하며 얼굴이 발개진 채로 / 少年佯聾面發赤
진한 술 사양하지 않고 연거푸 마셔대니 / 亟飮醇醪不肯辭
이윽고 붉은빛이 안색을 어지럽게 하였네 / 紅暈俄而亂顔色
돌아와서는 이가 시리도록 스스로 웃었으니 / 歸來自笑齒却冷
슬프다 이런 행락 두 번 다시 얻기 어려우리 / 悲哉此樂難再得
소년 시절의 행락을 / 少年樂
이제는 늙어버려서 탄식만 할 뿐이로다 / 老矣已矣徒歔欷
비 걷힌 산 빛은 물방울이 듣는 듯 젖었고 / 雨收山光濕如滴
풀 마른 평야에는 맑은 서리가 날리었네 / 草枯平野淸霜飛
시냇물은 티 하나 없이 밤낮으로 흐르건만 / 溪水無塵流日夜
아득한 동해 바다를 어느 때나 돌아갈꼬 / 渺渺東海何時歸
석양의 가을 경치가 천지에 가득하여 / 晚來秋色滿天地
시골집과 낚시터를 말끔히 씻어줄 제 / 淨洗田廬幷釣磯
깊은 밤에 비틀거리며 물을 따라 내려가면 / 夜深蹣跚逐水下
내황과 사자가 지금 한창 살찔 때로세 / 內黃賜紫今正肥
동자 관자가 서로 이끌고 문을 나가면 / 童冠提携出門去
머리털 듬성한 노복은 술병을 허리에 차고 / 僕夫佩壺頭髮稀
옷 걷고 물에 들어가 쉴 새 없이 달리다가 / 褰衣水中走不止
때로는 큰 고기 잡으며 천기를 잊기도 했네 / 有時得雋忘天機
바람 높아라 뼈에 닿는 가을이 비로소 기쁘고 / 風高始喜淸透骨
밤이 깊으니 한기가 몸에 범함을 또 깨닫겠네 / 夜深又覺寒侵肌
병중에 생각하니 공연히 마음만 괴로운데 / 病中思之空苦心
유독 가을달만이 이끼 낀 사립을 비추누나 / 獨有秋月臨苔扉
[주D-001]내황(內黃)과 사자(賜紫) : 내황은 속이 노랗다 하여 게[蟹]를 가리킨 말이고, 사자는 당나라의 시인 온정균(溫庭筠)이 일찍이 포도(葡萄)를 일러 ‘사자앵도(賜紫櫻桃)’라 했던 데서 온 말로, 포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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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교외의 적전에 둥근 봉우리가 있고 / 東郊藉田有圓峯
봉우리 밑의 못에는 늙은 용이 서려 있는데 / 峯下有池蟠老龍
소년들이 서로 불러 이끌고 나가 노니 / 少年相招駕出游
일백 병의 맑은 술은 모두가 황봉이로세 / 百壺淸酒皆黃封
하인들은 벌거벗고 긴 그물 들어올리니 / 蒼頭赤立擧長網
고운 물고기 날뛰어라 비린 바람 불어오고 / 錦鱗跳躑吹腥風
소반의 향기로운 양념엔 온갖 맛 곁들였는데 / 盤中香辣衆味集
난도로 회를 칠 때는 붉은 실이 날았었지 / 鑾刀截玉飛絲紅
좋은 때에 술 가득 부어라 조금인들 사양하랴 / 當時引滿肯少讓
취해 읊은 시의 기백은 하늘을 찌를 듯했네 / 醉吟詞氣凌蒼穹
병중의 세월은 흔들리는 촛불처럼 빨라서 / 病中流光如轉燭
다만 가을 쑥 같은 귀밑털만 나부끼누나 / 祇有雙鬢飄秋蓬
조정엔 일이 없고 임금 속이는 자도 없는지라 / 廟堂無事欺蔽絶
때로는 즐겨 노닐며 태평을 노래하기도 하네 / 時復游豫歌時雍
그대는 못 보았나 장강 북쪽 언덕에 수만 군사 왔을 때 / 君不見長江北岸屯萬兵
바둑 두며 별장을 내기하던 사공이 있어 / 圍棊賭墅有謝公
동진의 무공이 무궁한 후세에 전해진 것을 / 東晉武烈垂無窮
고상한 정취 넓은 도량으로 풍속 진압한 게 아니면 / 不是高情雅量鎭浮俗
바람 소리 학 울음에 놀란 걸 그 누가 형용하리 / 風聲鶴唳誰形容
[주C-001]증지인(甑池引) : 증지는 개성부(開城府)의 북쪽에 있었던 땅 이름이고, 인(引)은 가곡(歌曲)의 뜻이다.
[주D-001]황봉(黃封) : 본래는 임금이 하사한 술을 가리키는데, 널리 술의 뜻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주D-002]그대는 …… 형용하리 : 사 공(謝公)은 바로 동진(東晉)의 명신(名臣) 사안(謝安)을 가리킨다. 동진 효무제(孝武帝) 연간에 진(秦)의 부견(苻堅)이 백만 대군을 친히 거느리고 쳐들어와 동진의 수도와 아주 가까운 비수(淝水) 가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사안은 정토 대도독(征討大都督)으로 임명되어, 당시 명장(名將)인 조카 사현(謝玄)과 함께 수레를 명하여 별장으로 나가서 친구들이 다 모인 가운데 사현과 더불어 별장 내기 바둑을 두고는 밤중에야 돌아와서 여러 장수들을 지휘하여 출정(出征)하게 하였다. 마침내 사현이 이끈 정병(精兵) 8천여 명이 비수를 건너가 부견의 군대를 공격함으로써, 부견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자기들끼리 서로 짓밟으면서 물에 빠져 죽은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고, 남은 군졸들은 갑옷을 벗어 버리고 밤중에 도망치다가, 바람 소리나 학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모두 왕사(王師)가 쫓아오는 것으로 알고 혼비백산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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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락의 치포는 곱기가 마치 서리 빛 같아라 / 一端緇布白如霜
만 리 먼 길 건강으로부터 가져왔는데 / 萬里回來自建康
해지면 다시 지어 주는 걸 내 어찌 한하랴 / 弊又改爲吾豈恨
나는 군자를 따라 상향에 있게 되었는 걸 得從君子在桑鄕
사물 이치와 인심을 그 누가 자상히 알꼬 / 物理人心誰得詳
예로부터 머리 위의 푸른 하늘만이 안다네 / 由來頭上但蒼蒼
가련하기도 해라 두어 자의 모시베가 / 可憐數尺毛施布
우연히 사람을 길이 감탄하게 하누나 / 偶爾令人感嘆長
세세히 바람 머금어 형세 절로 서늘한데 / 細細含風勢自涼
더구나 지금은 더위가 남방에 성함에랴 / 況今炎熱盛南方
그러나 쓰여질 날은 응당 얼마 안 되고 / 雖然見售應無幾
곧 화롯불 일으키어 묘당에 앉게 되리라 / 惹得爐烟坐廟堂
[주D-001]건강(建康) : 명(明)나라 초기의 도읍지인 남경(南京)의 지명이다.
[주D-002]해지면 …… 걸 : 《시 경》 정풍(鄭風) 치의(緇衣)에, “치의가 꼭 맞음이여, 해지면 내가 또다시 지어 주리라.[緇衣之宜兮 弊予又改爲兮]” 한 데서 온 말이다. 치의는 경대부(卿大夫)가 사조(私朝)에서 입는 옷으로, 이 시는 정 환공(鄭桓公)과 정 무공(鄭武公)이 서로 이어 주(周)나라의 사도(司徒)가 되어서 직무를 잘 수행하므로, 주나라 사람이 그들을 사랑하여 노래한 것이다.
구재(九齋)의 전(前) 도장교(都將校) 이정(李丁)이 송이버섯을 보내 주므로, 인하여 절구(絶句) 3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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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가을 팔월이라 만물이 절로 성숙할 제 / 八月高秋物自成
소나무 숲은 적적하고 백사장은 편평한데 / 松林寂寂白沙平
송이버섯 만든 시초는 비록 땅의 힘이지만 / 胚胎縱是黃祇力
바람 소리와 맑은 이슬만 먹고 자란다네 / 只得風聲露氣淸
소나무 그림자 속으로부터 생겨나서 / 自從松樹影中生
매끄러운 맛 찬 향기에 기가 절로 평온하니 / 味滑香寒氣自平
만물을 이루어낸 천지에 깊이 감사하지만 / 深謝乾坤成萬物
연약한 게 십분 깨끗함이 유독 사랑스럽네 / 獨憐浮脆十分淸
붙어사는 듯한 내 인생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 吾生如寄又殘生
홀로 강산에 우뚝 서니 눈 밑이 편평하네 / 獨立江山眼底平
이미 뜬구름과 함께 달린 곳을 끊었으니 / 已與浮雲絶根蔕
보건대 너만 홀로 가장 깨끗함을 얻었구나 / 看來獨得物中淸
[주C-001]구재(九齋) : 고려 문종(文宗) 때 최충(崔冲)이 사학(私學)을 일으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인데, 그 서재가 낙성(樂聖)ㆍ대중(大中)ㆍ성명(誠明)ㆍ경업(敬業)ㆍ조도(造道)ㆍ솔성(率性)ㆍ진덕(進德)ㆍ대화(大和)ㆍ대빙(待聘)의 아홉으로 나뉘었다.
앞의 운을 사용하여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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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제생에 끼어 태학에 유학할 때에 / 初游璧水備諸生
듣자하니 하남이 태평을 잃었다 했는데 / 聞說河南失大平
그래서 유독 호광 선비는 뽑혀온 이가 없고 / 偕計獨無湖廣士
절강 전씨의 필단만이 가장 청쾌했었네 / 淛江錢氏筆端淸
강서 지방의 자백은 늙은 서생으로서 / 江西子白老書生
방종했던 필세가 만년에야 평온해졌는데 / 筆勢縱橫晚始平
당년에 노나라로부터 공자의 도를 얻어 / 孔道當年從魯得
지남차 비녀장 역할로 길 먼지 맑게 씻었네 / 指南車轄路塵淸
문종 방걸은 바로 서생으로서 / 文鍾邦傑是書生
충의 어린 마음에 울울 불평했는데 / 義膽忠肝鬱不平
하남을 도와서 무슨 일을 이루었던고 / 羽翼河南成底事
혼동강의 물이 절로 맑아지었네 / 混同江水自澄淸
일본(日本)을 유람하고 인하여 불법(佛法)을 구하러 강남(江南)으로 가는 조계(曹溪)의 대선(大選) 자휴(自休)를 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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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승려가 일본을 향해 갔다가 / 新羅僧向扶桑去
또 중원에 가서 조주를 찾으려 하네 / 又道中原訪趙州
필경엔 다만 마음에서 찾아야 하거늘 / 畢竟只從心上覓
소림사 눈보라만 공연히 머리에 맞누나 / 少林飛雪謾蒙頭
청산은 아득하고 물은 길이 흐르고 / 靑山迢遞水悠悠
수많은 누대는 이슬비 가을에 잠겼는데 / 多少樓臺烟雨秋
홀로 선창에 기대 지는 해를 바라보며 / 獨倚船窓看落日
곧장 동쪽 가에서 서쪽 끝을 가누나 / 直從東畔到西頭
[주D-001]조주(趙州) : 당나라 때의 고승(高僧)으로, 강남(江南) 지방에서 교화(敎化)를 크게 떨쳤다.
[주D-002]소림사(少林寺) …… 맞누나 : 선 종(禪宗)의 제2조(第二祖)인 혜가(慧可)가 일찍이 숭산(嵩山)의 소림사로 달마 선사(達摩禪師)를 찾아가 눈이 내리는 마당에 앉아서 가르침을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으므로, 이에 왼쪽 팔을 스스로 절단하여 굳은 의지를 보임으로써 마침내 가르침을 허락받아 뒤에 크게 도를 깨달았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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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림원의 더운 바람은 검은 머리에 불고 / 上林熏風吹鬢綠
변새의 차가운 달빛은 마음속에 어려라 / 邊庭冷月凝心曲
비파 타면서 얼굴 가리고 홀로 상심할 제 / 琵琶掩面獨傷情
손가락 끝엔 마음 있고 줄에선 소리가 나네 / 指端有心絃有聲
첩의 몸은 팔자 기박한 일개 허약한 존재라 / 妾身命薄一浮脆
죽고만 싶을 뿐 어찌 살기를 탐하랴만 / 直欲決死何偸生
충신이 아닌 모연수에게 몹시 화가 나고 / 深嗔延壽非忠臣
맑은 꿈은 지금도 대궐을 향해 난다오 / 淸夢至今飛紫宸
장막 앞 편평한 물결은 눈빛처럼 하얗고 / 帳前平波如雪色
기러기 그림자 끊어진 곳엔 남쪽 구름 검은데 / 鴈影斷處南雲黑
손으로 살을 문지르니 빙옥처럼 깨끗해라 / 摩挲肌膚氷玉淸
이게 다 당일에 궁중 밥을 먹은 몸일세 / 盡是當日宮中食
후일의 마른 뼈 또한 임금의 은혜이거늘 / 他年枯骨亦君恩
구원에 간다 한들 감히 고국을 잊으리까 / 敢向九原忘故國
[주C-001]명비곡(明妃曲) : 명 비의 노래라는 뜻으로, 명비는 한 원제(漢元帝)의 후궁인 왕소군(王昭君)을 가리킨다. 원제는 후궁이 매우 많았던 관계로 화공(畫工)을 시켜 궁인(宮人)의 초상을 그리게 하여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든 궁인을 골라서 자곤 하였으므로, 많은 궁인들이 모두 화공에게 뇌물을 바쳐 자기 초상을 잘 그려주도록 하였으나,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않아 화공 모연수(毛延壽)가 그의 초상을 좋지 않게 그림으로써 끝내 원제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흉노(匈奴)의 선우(單于)가 입조(入朝)하여 미인(美人)을 요구하자, 원제의 명에 의하여 흉노의 선우에게로 보내지게 되었는데, 융복(戎服)을 입고 말에 올라 비파(琵琶)를 타면서 변새(邊塞)를 나갔었다. 흉노로 떠날 적에 원제가 그를 불러서 보니, 이전에 본 초상과는 매우 다른, 후궁 가운데 제일의 미인이었음을 알게 되어, 결국 뇌물을 받은 모연수 등 여러 화공들은 기시형(棄市刑)에 처해졌다.
안기행(晏起行)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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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깁 같은 밥 짓는 연기는 처마를 두르고 / 炊烟遶簷碧如紗
햇빛은 창에 비쳐 창 그림자 비꼈는데 / 日色照窓窓影斜
주인이 늦게 일어나 헝클어진 머리 긁을 제 / 主人晏起搔蓬頭
손이 문밖에 와서 새그물을 놀래키네 / 有客敲門驚雀羅
의관 정제 못하고 발걸음도 절뚝거리며 / 衣巾不整步又蹇
때로 다시 때 낀 얼굴을 자주 문지르는데 / 時復垢面頻摩挲
한번 보고 충심을 다 털어놓는 듯하긴 하나 / 目擊還如吐肺肉
언론이 너무 유창한 게 몹시 혐의로웠네 / 深嫌辯舌懸長河
두로의 묵은 술은 전혀 가난치만은 않고요 / 舊醅杜老不全貧
마음 맑게 하는 일곱 잔은 노동의 차로다 / 淸心七椀盧仝茶
때로 병이 발작하면 길이 읍만 할 뿐이라 / 有時病作但長揖
인사치레 잘못됐다고 여길까도 염려로세 / 爲恐辭謝聲音訛
구름 연기가 온종일 스스로 교태를 부리니 / 雲烟終日自媚嫵
물과 나무 그윽한 경계 따라서 맑고 고와라 / 水木幽境仍淸華
바람 먼지 아득한 데가 바로 어느 곳이뇨 / 風塵漠漠是何處
비처럼 땀 뿌리며 고관들 분주하는 곳일세 / 揮汗如雨爭鳴珂
대장부의 출처가 어찌 우연한 일이랴만 / 丈夫出處豈偶爾
다만 지금 천하는 두 집이 되어 버렸다네 / 天下只今爲兩家
서생이 우활하여 남의 비웃음 받는 가운데 / 書生迂闊被人笑
하염없는 세월은 흐르는 물결만 같구나 / 悠悠歲月如流波
아름다운 살결에 중단 한삼을 걸쳐 입고 / 玉肌掩映中單紗
화장하려 거울 대하니 쪽머리 기우뚱하네 / 對鏡欲粧雲髻斜
깊은 규방 새벽이라 아침해 쏘아비칠 제 / 深閨曉色射初日
가을 기운 잠시 서늘해 비단을 재단하다가 / 秋氣乍涼裁越羅
분향하고 조용히 앉아 내칙을 읽고 나서 / 焚香靜坐讀內則
옆 서가의 서책들을 따라서 만져 보누나 / 傍架書秩仍摩挲
밤이 오매 긴 하늘은 물처럼 깨끗하고 / 夜來長空淨如水
성긴 별은 반짝반짝 은하수 환히 빛날 제 / 疎星耿耿明銀河
명랑한 마음으로 밝은 달을 마주하여 / 心肝冏徹對明月
솔바람 속에 작은 솥에 새 차를 끓이네 / 松風小鼎烹新茶
대대로 전해 온 빙벽은 절로 청고하거니와 / 家傳氷蘗自淸苦
엄동 설한의 송백처럼 지조가 견고하고 / 歲暮松柏無遷訛
눈썹 높이로 상 드는 건 늙을수록 신중하며 / 齊眉擧案老彌謹
꿈속에서도 번화한 것은 생각하지 않았네 / 夢裏不復思繁華
남편은 소싯적에 분주하는 걸 일삼아서 / 主夫少時事馳騁
조천할 때는 오경까지 말을 달리었는데 / 朝天五更飛玉珂
만년에는 병석에 누워 문밖을 못 나가고 / 晚年臥病不出戶
인삼 복령 백출 향기만 집에 가득하구려 / 參苓白朮香滿家
어찌 고목을 못 하랴만 누굴 위해 치장하랴 / 豈無膏沐誰適容
흐르는 물결처럼 빠른 세월이 서글프구나 / 惆悵流光如逝波
[주D-001]손이 …… 놀래키네 : 쓸쓸한 집에 어쩌다 손이 왔음을 뜻한다. 한(漢)나라 때 책공(翟公)이 일찍이 정위(廷尉)가 되었을 때는 찾아오는 빈객이 문밖에 그득했고, 그가 폐해진 뒤에는 문밖이 아주 적적하여 새그물을 칠 정도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두로(杜老)의 …… 않고요 : 두 로는 두보(杜甫)를 가리키는데, 두보의 시에, “시장이 멀어 반찬은 여러 가지가 없고, 집이 가난해 술은 묵은 술뿐이로다.[盤餐市遠無兼味樽酒家貧只舊醅]” 하고, 또 “금리 선생은 오각건을 쓰고서, 토란 밤을 주우니 전혀 가난치만은 않네.[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不全貧]”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마음 …… 차로다 : 노 동(盧仝)의 〈다가(茶歌)〉에, “첫째 잔은 목과 입을 적셔 주고, 둘째 잔은 외로운 시름을 떨쳐주고……일곱째 잔은 다 마시지도 않아서, 두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이 이는 걸 깨닫겠네.[一椀喉吻潤 二椀破孤悶……七椀喫不得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내칙(內則) : 《예기(禮記)》의 편명(篇名)인데, 그 내용은 모두 가정생활의 예법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주D-005]빙벽(氷蘗) : 얼음과 황벽나무를 가리키는데, 차가운 얼음을 마시고 매우 쓴 황벽나무를 먹는다는 뜻으로, 청고(淸苦)한 생활을 잘 견뎌 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6]눈썹 …… 건 : 아내가 남편을 매우 공경하여 받듦을 이른다. 후한(後漢)의 은사(隱士) 양홍(梁鴻)의 아내 맹광(孟光)이 남편을 매우 존경하여 밥먹을 때마다 밥상을 눈썹 높이까지 받들어 올렸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7]인삼 …… 가득하구려 : 인삼ㆍ복령(茯苓)ㆍ백출(白朮)은 모두 한약재의 이름으로, 즉 병중에 탕약을 복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8]어찌 …… 치장하랴 : 고 목(膏沐)은 머리 감고 기름 발라 치장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위풍(衛風) 백혜(伯兮)에, “남편이 동으로 간 이후로, 내 머리는 쑥대강이 되었노라. 어찌 감고 기름칠 못할까만, 누구를 위해 모양을 낸단 말가.[自伯之東 首如飛蓬 豈無膏沐 誰適爲容]”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한 부인이 오래도록 정역(征役)에 나가 있는 남편을 그리워하여 부른 노래이다.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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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이 경성에 들어온 건 고래로 드문 일인데 / 虎入京城古所稀
더구나 지금은 긴 둑 같은 성첩이 있음에랴 / 況今雉堞似長圍
장군의 한 화살에 강한 바람이 일었으니 / 將軍一箭風生䎂
위에 계신 신명께서 나라 위엄을 높이었네 / 上有神明聳國威
하늘이 이런 맹수 낸 것도 드물다 하리라 / 天生猛獸亦云稀
거울 같은 두 눈동자에 허리는 열 아름일세 / 夾鏡雙瞳腰十圍
성 밑에 있는 여우는 응당 간이 떨어졌으리 / 城底有狐應落膽
다만 당일에 범의 위력 빌린 때문이라오 / 只緣當日假渠威
[주D-001]성 …… 때문이라오 : 여우가 범의 위력을 빌려 다른 짐승을 위협한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여기서는 남의 권세(權勢)를 빌려 위세를 부리는 소인배들을 풍자하여 이른 말이다.
22일 밤중에 비바람이 크게 몰아치므로, 시 한 편을 읊어 이루어 놓았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이를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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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석양에 검은 구름이 사방에 드리워서 / 昨晚黑雲垂四方
빗방울 뚝뚝 떨어져 서늘한 가을 느끼었네 / 小雨點滴生秋涼
때마침 한 손이 말을 달려 급히 찾아왔으니 / 有客走馬叩門急
그는 바로 도은인데 땀을 줄줄 흘리면서 / 乃是陶隱流汗漿
덕이 높아 훼방이 옴은 예부터 탄식한 바인데 / 德高毁來古所嘆
지금 내 좋은 친구의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 今我良友心悲傷
선생의 말 한 마디는 본래 신용이 있으니 / 先生一言素見信
한 장 글 아끼지 말고 마음 피력해 달라 하네 / 尺字莫靳披肝腸
나는 곧장 아이 불러 종이 붓 갖추게 하고 / 徑呼蠻童具紙筆
병든 눈 억지로 닦고 두어 줄 글을 써서 / 强揩病目書數行
위로는 공론이 전혀 애매하다는 걸 말하고 / 上言公論絶曖昧
아래로는 우리 도를 발양시킬 걸 말하였네 / 下言吾道須發揚
유림이 하늘에 닿아서 풍월을 흔들어 대고 / 儒林際天撼風月
곧은 줄기 빼어나서 하늘을 어루만짐은 / 直幹挺出摩蒼蒼
예전에도 적었는데 지금 어찌 많을쏜가 / 古來亦少今豈多
숲 속의 소초들만 다투어 향기를 풍기는데 / 林間小草爭流芳
꽃을 따기는 이미 쉬우려니와 / 採掇旣云易
가지고 놀면 또 매우 향기롭지 / 把玩又甚香
그러나 큰 재목을 공연히 크다고 웃지 마소 / 莫笑大材空磊落
후일에 동량이 되어서 명당을 부지하리라 / 他日梁棟扶明堂
비분강개하여 밤에 잠 못 이루고 앉았노라니 / 夜坐慷慨不能寐
바람은 거세게 불고 비는 주룩주룩 내리네 / 風聲怒呼雨浪浪
다만 바라는 건 하늘이 더러운 것 씻어버려서 / 但願天公洗穢惡
예천과 주초가 광휘를 더하는 것뿐이로다 / 醴泉朱草增輝光
[주D-001]도은(陶隱) : 고려 말기의 유학자이며 문신인 이숭인(李崇仁)의 호이다.
[주D-002]덕이 …… 바인데 : 한유(韓愈)의 〈원훼(原毁)〉에, “일을 잘 다스리면 비방이 일어나고, 덕이 높으면 훼방이 온다.[事修而謗興德高而毁來]”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소초(小草) : 약 초의 하나인 원지(遠志)의 별칭이다. 동진(東晉)의 명신(名臣) 사안(謝安)이 처음에는 동산(東山)에 영영 은거할 뜻이 있었다가, 뒤에 소명(召命)이 누차 이르자 마지못해 비로소 환온(桓溫)의 사마(司馬)가 되었는데, 그때 마침 어떤 사람이 환온에게 약초를 보내왔던바, 그중에 원지가 있으므로 환온이 사안에게 묻기를, “이 약초의 별명은 소초이니, 어찌하여 한 약초를 두고 두 이름으로 일컫는가?” 하였으나, 사안이 즉시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때 곁에 있던 학륭(郝隆)이 대답하기를, “이것은 알기가 매우 쉬우니, 산속에 있으면 원지이고, 산을 나오면 소초가 되는 것입니다.” 하니, 사안이 매우 부끄러운 기색이 있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예천(醴泉)과 주초(朱草) : 예 천은 단맛이 나는 샘물을 이르는데, 예로부터 이것을 상서(祥瑞)의 응험으로 일컬어왔다. 주초는 일종의 서초(瑞草) 이름인데, 매월 초하루부터 15일까지는 매일 한 잎씩 나와서 15잎이 되었다가, 16일부터는 매일 한 잎씩 지기 시작하여 30일에 이르러서는 잎이 완전히 다 지곤 했다 한다.
새벽에 구름이 북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이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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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나 바라보니 구름은 북으로 가는데 / 早起望雲雲向北
햇빛이 완전히 가려져 하늘은 칠흑과 같네 / 日光不漏天沈黑
중추절의 밝은 달은 이미 지나갔거니와 / 中秋明月亦已過
중구일의 국화는 아직 피지를 못했으니 / 重九黃花開不得
모자 떨구고 읊조림은 미리 걱정할 것 없으나 / 落帽高吟莫預憂
누각 기댄 긴 젓대는 지금 멀어져 버렸네 / 倚樓長笛今懸隔
눈앞의 벼농사는 반쯤이나 누레졌는데 / 眼前禾稼半黃雲
쓰러져 엎치락뒤치락한 걸 차마 못 보겠네 / 忍見欹斜仍反側
가는 줄기 긴 이삭이 스스로 서로 부지해 / 纖莖長穟自相扶
그런대로 비바람을 견디는 힘이 있긴 하나 / 耐風耐雨猶有力
원구와 태실의 제수는 제때에 향기롭고 / 圓丘太室臭亶時
선부는 옥 같은 밥을 양궁에 제공하련만 / 膳夫兩宮供玉食
백성들은 쌀이 적으니 참으로 가련하구나 / 民間米少誠可哀
네가 힘을 안 쓴 건가 귀신이 복을 안 준 건가 / 汝不力耶神不福
내 지금 노래 지으니 마음 몹시 슬프구나 / 我今作歌心惻惻
[주D-001]모자 떨구고 읊조림 : 뛰 어난 풍류를 뜻한다. 진(晉)나라 때 맹가(孟嘉)가 정서장군(征西將軍)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으로 있던 중, 중구일(重九日)에 환온이 막료(幕僚)들을 모두 거느리고 용산(龍山)에서 연회(宴會)를 베풀었을 때, 마침 바람이 불어 맹가의 모자가 날려 땅에 떨어졌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자, 맹가가 변소에 간 틈을 타서 환온이 손성(孫盛)을 시켜 글을 지어서 맹가를 조롱하게 했더니, 맹가가 돌아와서 보고는 즉시 글을 지어 답했는데, 그 글이 매우 아름다워서 온 좌중이 감탄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누각 …… 젓대 : 당나라 시인 조하(趙嘏)의 〈추석(秋夕)〉 시에, “남은 별 두어 점 아랜 기러기 변새를 가로지르고, 긴 젓대 한 소리엔 사람이 누각을 기대었네.[殘星數點鴈橫塞 長笛一聲人倚樓]”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원구(圓丘)와 태실(太室) : 원구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원형(圓形)의 제단(祭壇)을 말하고, 태실은 종묘(宗廟)를 가리킨다.
[주D-004]선부(膳夫) : 옛날에 궁중의 음식을 관장했던 사람이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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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기가 전부터 어찌 스스로 내렸으랴 / 志氣從來肯自降
온종일 남쪽 창 기대어 조용히 읊조리노니 / 微吟盡日倚南窓
사생과 오탁은 교칠 같아 못 떨어지지만 / 死生五濁膠投潻
마음과 자취는 둘 다 맑아 강에 비친 달 같네 / 心迹雙淸月印江
뜻은 요순 시대에 있으니 아 도는 심원하고 / 志在唐虞嗟道遠
학문은 공맹을 연구하니 말은 크기도 해라 / 學窮鄒魯絶言厖
노쇠한 나이에 흥미는 아직도 호쾌하여 / 衰年興味猶豪甚
일 만나서 시를 쓰노라니 붓이 깃대 같구나 / 遇事題詩筆似杠
[주D-001]오탁(五濁) : 불교 용어로, 악세(惡世)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 즉 겁탁(劫濁)ㆍ견탁(見濁)ㆍ번뇌탁(煩惱濁)ㆍ중생탁(衆生濁)ㆍ명탁(命濁)을 말한다.
밤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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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밤이 조용함을 알겠네 / 病床知夜靜
늘그막의 반평생이 한가롭구나 / 老境半生閑
흰 창문은 읊는 나머지 달빛이요 / 窓白吟餘月
푸른 등불은 꿈속의 산이로다 / 燈靑夢裏山
나라 풍속은 비열한 데로 달리고 / 國風趨下劣
세상 길은 더욱 험난해져만 가니 / 世路轉間關
후일에 백성의 풍속을 보려거든 / 異日觀民俗
내 시도 혹 버리지 않게 되려나 / 吾詩或不刪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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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절개를 누가 일찍이 빼앗았으랴 / 大節誰曾奪
육척의 고아를 붙들어 지키었네 / 扶持六尺孤
노나라 기반은 침중함에 바탕했고 / 魯基板隱重
한나라 왕업은 회생시킴을 입었지만 / 漢業擁昭蘇
어찌 장량의 계책을 기다리려 하랴 / 肯待張良計
의당 영무자처럼 어리석어야 하리 / 當如甯武愚
홀로 상심하여 서쪽을 바라보니 / 獨傷西望處
저녁 햇빛이 창오에 흐릿하구나 / 烟日靄蒼梧
[주D-001]큰 …… 지키었네 : 육 척의 고아란 바로 나이 15세쯤 되는 어린 임금을 가리킨다. 증자(曾子)가 이르기를, “육척의 고아를 기탁할 만하고, 백 리쯤 되는 제후국의 정사를 맡길 만하며, 큰 절개를 당하여 지조를 빼앗을 수 없다면 군자다운 사람일까? 군자다운 사람이니라.[可以託六尺之孤 可以寄百里之命 臨大節而不可奪也 君子人與 君子人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泰伯》
[주D-002]의당 …… 하리 : 영 무자(甯武子)는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大夫)인데, 공자가 이르기를,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슬기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으니, 그의 슬기로움은 미칠 수 있거니와, 그의 어리석음은 미칠 수 없다.[甯武子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公冶長》
[주D-003]창오(蒼梧) : 순(舜) 임금이 남쪽으로 순수(巡狩)했다가 붕어(崩御)한 곳의 지명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돌아가신 임금을 상징하는 뜻으로 쓴 것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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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때엔 어찌 만국이 번복될 줄 알았으랴 / 早歲寧知萬國翻
만년에야 비로소 두 하늘이 존재함을 보겠네 / 晚年方見二天存
풀이 말라라 양과 말은 사막에 주둔하고 / 草枯羊馬屯沙塞
바람 급해라 곤과 붕은 해문을 공격하네 / 風急鯤鵬擊海門
북으로부터 남으로부터 해와 달을 함께하고 / 自北自南同日月
자뢰하여 생기고 시작함엔 하늘땅이 있도다 / 資生資始有乾坤
늙바탕에 마음속의 혈성을 토해 내어 / 老來嘔出心中血
가을 하늘에 뿌리니 두 눈이 캄캄하구나 / 洒向秋空兩目昏
[주D-001]북으로부터 …… 함께하고 : 천 하가 통일되었음을 뜻한다. 《시경》 대아(大雅) 문왕유성(文王有聲)에서 무왕(武王)에 대하여 노래하기를, “호경의 태학에, 서로부터 동으로부터, 남으로부터 북으로부터 와서, 복종하지 않을 이 없으니, 황왕이 임금이샷다.[鎬京辟廱 自西自東 自南自北 無思不服 皇王烝哉]” 한 데서 온 말인데, 황왕은 무왕을 가리킨다.
[주D-002]자뢰하여 …… 있도다 : 《주 역》 건괘(乾卦) 단사(彖辭)에, “위대하도다, 건의 큼이여, 만물이 이를 자뢰하여 시작하나니, 이에 하늘을 통괄하였도다.[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 하고, 곤괘(坤卦) 단사에, “지극하도다, 곤의 큼이여, 만물이 이를 자뢰하여 생기나니, 이에 하늘을 순히 받들도다.[至哉坤元 萬物資生 乃順承天]” 한 데서 온 말이다.
중추일(中秋日)에 유항(柳巷)의 누(樓) 아래에서 달구경했던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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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대에 가득했던 두둥실 밝은 그 달이 / 團團璧月滿瑤臺
회남왕의 한쪽 재가 또 이지러졌구나 / 又缺淮南一面灰
인간 세상에 서로 만남은 우연이 아니거니 / 人世相逢非偶爾
명년엔 어느 곳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일꼬 / 明年何處共傾杯
[주D-001]회남왕(淮南王)의 …… 이지러졌구나 : 한(漢)나라 회남왕 유안(劉安)이 달 그림을 그리고 그 주위에 갈대재[蘆灰]를 빙 둘러 놓고서 한쪽 면을 비워 두면 달무리도 따라서 한쪽이 이지러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달의 한쪽이 이지러져감을 의미한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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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아껴둔 그윽한 보금자리 차지하여 / 幽棲地僻占天慳
온종일 시 읊으니 흥취가 다하질 않누나 / 盡日吟詩興未闌
꽃동산 버들 제방에 깊은 골목은 고요하고 / 花塢柳塘深巷靜
반달 담 바람 섬돌에 작은 정자는 차가워라 / 月墻風砌小亭寒
이슬 맞고 거문고 타며 인하여 칼을 보고 / 淨琴衣露仍看劍
갠 전원 살살 걸으며 또 관을 벗어던져라 / 細履園晴又倒冠
이제 동해 노중련의 여운은 끊어졌지만 / 東海魯連餘響絶
어찌 중국으로 하여금 단안을 쓰게 하랴 / 肯敎中國用丹矸
[주D-001]이슬 …… 보고 : 두 보(杜甫)의 〈야연좌씨장(夜宴左氏莊)〉 시에, “바람부는 숲에 초승달이 기울 제, 옷에 이슬 맞으며 거문고를 타네……서책 점검하며 잠시 촛불을 태우고, 칼 보면서 긴 시간 술을 마시네.[風林纖月落 衣露淨琴張……檢書燒燭短 看劍引杯長]”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갠 …… 벗어던져라 : 두 목(杜牧)의 〈만청부(晚晴賦)〉에, “비 개니 가을 모습 목욕한 듯함이여, 전원을 꺾어 돌아 조용히 거니노라.……나 같은 자는 어떠한가, 관 벗고 패옥 떨구어 세상과 멀어졌도다.[雨晴秋客新沐兮 折繞園而細履……若予者則爲何如 倒冠落佩兮與世闊疎]”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이제 …… 하랴 : 노 중련(魯仲連)은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인데, 일찍이 포학무도한 진(秦)나라를 증오하여 말하기를, “진나라가 만일 방자하게 황제(皇帝)를 자칭하고 천하에 정사를 편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東海)에 빠져 죽을지언정 차마 그들의 백성이 될 수가 없다.”라고 하여 대의(大義)를 역설하였다. 단안(丹矸)은 단사(丹砂)인데, 《순자(荀子)》 왕제(王制)에, “남해(南海)에는 증청(曾靑)ㆍ단안 등의 토산물(土産物)이 있으나, 중국(中國)이 그것을 얻어서 재화(財貨)로 소유한다.”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지금은 비록 노중련처럼 의로운 인물은 없지만 성왕(聖王)이 없는 세상에 중국이 사방 각국의 토산물들을 조공(朝貢)받아 소유하게 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경상도 안렴사(慶尙道按廉使) 박가흥(朴可興)을 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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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찍이 보주서 하룻밤을 묵은 적 있어 / 甫州一宿記吾曾
어가 호종하던 정회가 꿈속에 어리었으니 / 扈駕情懷夢裏凝
그곳 주민들 순박함은 이미 좋아하거니와 / 已喜居民頗淳朴
어진 태수 위엄 있다는 건 요즘에 들었네 / 近聞賢守有威稜
봄이 되면 부름받아 조정 반열에 따를 게고 / 春風寵召趨朝列
가을 달밤에 순행하면 고을 수레 찬란하리 / 秋月巡行耀郡乘
바닷가의 단양에서 부디 말을 멈춰보게나 / 海上丹陽須駐馬
관어대 아래서 아침해가 막 떠오를 걸세 / 觀魚臺下日初昇
[주D-001]보주(甫州) : 경상북도 예천(醴泉)의 고호이다.
[주D-002]단양(丹陽) : 영해(寧海)의 고호로, 저자(著者)의 외가(外家)가 있는 곳이다.
[주D-003]관어대(觀魚臺) : 경상북도 영해의 바닷가에 있는 대(臺) 이름이다.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과 곡성(曲城) 시중(侍中)이 나를 찾아와서, 내가 부름을 받고 한자리에 참여하였다. 인하여 좋은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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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인은 수시로 들러주는데 / 二老過從數
나는 병석에서 이제 겨우 일어났네 / 孤生病起初
모시길 용납해 줌은 다행이거니와 / 幸容陪杖屨
서로 이웃이 된 게 또한 기쁘네 / 更喜接門閭
두부 반찬에 토란을 곁들이었고 / 豆腐蹲鴟雜
좋은 쌀은 개구리 울던 나머지로다 / 香粳吠蛤餘
말린 양고기에 좋은 술 따를 제 / 乾羊斟美酒
가을 경치는 뜨락에 가득하구나 / 秋色滿庭除
[주D-001]좋은 …… 나머지로다 : 소식(蘇軾)의 시에, “서늘한 벼논엔 막 개구리가 운다.[稻涼初吠蛤]” 한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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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데 오르니 세 봉우리 가까워라 / 登眺三峯近
이렇게 배회한 게 두어 해 남짓일세 / 逍遙數載餘
나는 비록 인간 세상에 있긴 하나 / 雖然在人境
나의 집을 사랑한 건 아니라네 / 不是愛吾廬
쌀 사들이느라 머리는 다 세어가고 / 糴米頭將鶴
조세 독촉에 등엔 구더기가 생기는데 / 催租背有蛆
나는 다행히 이런 일들을 면했으니 / 此生俱幸免
머리 조아려 시서에 감사하노라 / 稽首謝詩書
힘써 행함은 사물로 말미암거니와 / 力行由四勿
널리 배우는 건 삼여에 있는데 / 博學在三餘
백발에 괜히 나라 걱정만 하면서 / 白首空憂國
푸른 산 마주해 집을 지었네그려 / 靑山對結廬
벼논엔 응당 황새가 안 보일 텐데 / 稻畦應沒鶴
술항아리엔 이미 구더기가 떴구나 / 酒甕已浮蛆
절구는 무심한 가운데 얻거니와 / 斷句無心得
장편은 손 가는 대로 쓸 뿐이라네 / 長篇信手書
[주D-001]나의 …… 건 : 도잠(陶潛)의 〈독산해경(讀山海經)〉 시에, “뭇 새들도 기꺼이 의탁할 곳 있거니, 나 또한 나의 집을 사랑한다오.[衆鳥欣有託 吾亦愛吾廬]” 하였다.
[주D-002]조세 …… 생기는데 : 백성들이 조세를 제때에 내지 못하여, 독촉하러 나온 관청 사람으로부터 매를 맞아 등이 헐어서 구더기가 생기곤 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사물(四勿) : 안 연(顔淵)이 공자에게 인(仁)을 행하는 조목을 묻자, 공자가 이르기를, “예가 아닌 것은 보지 말고, 예가 아닌 것은 듣지 말며,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닌 것은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한 것을 이른 말이다. 《論語 顔淵》
[주D-004]삼여(三餘) : 학문을 하기에 가장 좋은 세 가지 때의 여가(餘暇)로서, 즉 해의 나머지[歲之餘]인 겨울과 날의 나머지[日之餘]인 밤과 때의 나머지[時之餘]인 비 오는 때를 가리킨다.
[주D-005]벼논엔 …… 안 보일 텐데 : 한유(韓愈)의 시에, “물고기 살지니 벼가 이미 팬 걸 알겠고, 황새 안 보이니 벼가 무성해짐을 깨닫겠네.[魚肥知已秀 鶴沒覺初深]” 한 데서 온 말이다.
감회(感懷)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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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 태학에선 조관 반열에 참여했고 / 少年璧水忝簪紳
가을날 한림원에선 새로운 흥취 즐겼더니 / 翰苑秋高發興新
세월은 유유해라 이젠 약물을 가까이하고 / 歲月悠悠親藥物
천지는 막막해라 풍진이 서로 막혀버렸네 / 乾坤漠漠阻風塵
부채질하는 서늘한 자리엔 한 바퀴 달이요 / 扇搖氷榻一輪月
술방울 떨어지는 은상엔 천 리가 봄이로다 / 酒滴銀床千里春
옛일 느꺼워 시 쓰고 때로 읊조리노라니 / 感舊題詩時咀嚼
병중에 그런대로 정신이 다시 상쾌해지네 / 病中聊復暢精神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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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시절엔 상국의 금마문에서 노닐다가 / 壯歲客游金馬門
돌아와선 백발로 황량한 마을에 누웠노니 / 歸來白髮臥荒村
주린 매는 날개 거둬라 푸른 하늘 멀기만 하고 / 飢鷹戢翼碧天遠
늙은 준마는 머리 들어라 누런 먼지 캄캄하네 / 老驥驤首黃塵昏
이역의 태평은 의당 다행으로 여기거니와 / 異域大平當自幸
후일의 정통은 그 누구와 논한단 말인가 / 他時正統與誰論
가을바람에 노 두드리며 애써 머리 돌려라 / 秋風擊楫苦回首
강물 거슬러서 곧장 곤륜산을 오르고 싶네 / 泝流直欲上崑崙
또 읊다.
통달한 선비는 응당 천명을 알거늘 / 達士應知命
나의 삶은 마음만 괴로울 뿐이로세 / 吾生但苦心
이끗은 공명을 따라 급급해지고 / 利隨名汲汲
시름은 취기와 함께 깊어만 지네 / 愁與醉沈沈
긴 해는 읊어서 다하기 어려운데 / 永日吟難盡
쇠한 나이엔 병이 또 침범하누나 / 衰年病又侵
문장은 깊은 바다와 같은 것이니 / 文章似淵海
어느 곳에서 금을 일어낼거나 / 何處得淘金
[주D-001]주린 …… 캄캄하네 : 두 보(杜甫)의 시에, “늙은 준마는 머리 들기를 싫어하고, 푸른 매는 쉽게 길들까 걱정하는데, 고상한 현자를 세상이 알지 못하니, 의당 주리고 가난하기에 마땅하리.[老驥倦驤首 蒼鷹愁易馴 高賢世未識 固合嬰饑貧]” 한 데서 온 말이다. 준마와 매는 재능이 높은 현자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2]노 두드리며 : 진 (晉)나라 때 조적(祖逖)이 예주 자사(豫州刺史)가 되어 부임하던 도중에 강을 건너다가 중류(中流)에서 노를 두드리며 맹세하기를, “조적이 중원(中原)을 맑히지 못하고 돌아와서 이 강물을 다시 건널진댄, 이 큰 강이 지켜보리라.” 하여, 천하를 맑게 다스리고픈 의지를 토로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금을 일어낼거나 : 모래를 일어서 금을 취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문장(文章)의 진수를 얻는 데에 비유한 말이다.
안국사(安國寺)의 송정(松亭)에서 비 오는 것을 구경했던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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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비 내리고 젓대 소리 들리더니 / 小雨仍村笛
석양엔 또 절의 종소리가 울리었네 / 斜陽又寺鐘
멀찍한 산은 퍽 너그러운 모습이요 / 山遙多醞藉
광대한 물은 소리 절로 시원했었지 / 水闊自舂容
상쾌한 기분은 밝은 달을 보는 듯 / 爽氣生明月
찬 소리는 푸른 솔에서 일어났네 / 寒聲起碧松
지금까지도 마음이 두려운 것은 / 至今心尙悸
천둥 번개가 용을 쫓던 광경이로세 / 雷電逐飛龍
배를 타고 조공(朝貢)하러 금릉(金陵)에 들어갔다가 풍랑을 만나서 돌아오지 못하여, 나라 사람들이 이를 슬피 여기므로, 시를 지어 기록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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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이라 만 리 먼 나라에서 / 三韓萬里國
한 장에 열 줄의 서찰 가져갈 제 / 一札十行書
배를 탄 건 마음을 기울인 뒤요 / 航海傾心後
장대 타는 건 처음 구경했으리 / 尋橦縱目初
하늘과 땅은 먼 외국까지 통하고 / 乾坤通絶域
황제 은택은 대지를 흠뻑 적셨는데 / 雨露洽方輿
다만 한스러운 건 고래 탄 손이 / 獨恨騎鯨客
어느 때나 고국으로 돌아올는지 / 何時返故居
[주D-001]장대 타는 건 : 곡 예(曲藝)의 일종이다. 한 사람이 긴 장대를 손으로 잡고 있거나 머리 위에 세우고 있으면 다른 두어 사람이 그 장대를 타고 올라가서 연희(演戲)를 펼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 곡예는 특히 서역(西域)의 도로국(都盧國) 사람들이 잘 했다고 한다.
[주D-002]고래 탄 손 : 전설에 의하면, 당나라 이백(李白)이 심양(潯陽)에서 술에 취해 고래를 탔다가 익사(溺死)했다고 하는바, 여기서는 항해 도중 풍랑을 만나 익사한 사람을 가리킨다.
서쪽 이웃집의 글 읽는 소리를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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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집 글 소리가 담장을 넘어 나올 제 / 深院經聲過短墻
동쪽 이웃 병객은 빈집에 우뚝 서 있네 / 東隣病客立虛堂
가을이 오매 마음과 기가 더욱 맑아지니 / 氣淸心淨秋來甚
마음이 바로 도량임을 비로소 믿겠구려 / 始信靈臺卽道場
연궁사(鉛宮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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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뜰 빛나는 계단에 달빛은 물결 같은데 / 玄墀鉛砌月如波
그림자랑 향 사르니 이슬 이미 흠뻑하구나 / 對影焚香露已多
괴이도 하여라 밤이 깊도록 홀로 앉아서 / 怪底夜深猶獨坐
은하수 건너는 견우 직녀를 왜 보려 하는고 / 欲看牛女渡銀河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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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 관복 동어부가 죽지에 비치었으리 / 靑布銅魚映竹池
산비탈 흐르는 물이 지난날을 느끼게 하네 / 坡
석양 석마가 서 있는 가을바람 부는 속에 / 石羊石馬秋風裏
이끼 닦아내고 애써 비문 읽지 말게나 / 莫掃莓苔强讀碑
[주D-001]동어부(銅魚符) : 옛날에 지방관이 소지하던, 구리로 만든 어형(魚形)의 부신(符信)을 말한다.
[주D-002]석양 석마(石羊石馬) : 옛날 귀인의 묘(墓) 앞에 세우는, 돌로 깎아 만든 양과 말을 가리킨다.
유 판서(柳判書)가 이천(利川)에 있는 전사(田舍)의 아름다운 풍경을 말하면서 다만 게[蟹]가 없을 뿐이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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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뭉게 누런 구름 땅 위에 둥둥 떠라 / 靄靄黃雲地上浮
이천의 전사에 가을이 깊어 가려 하는데 / 利川四舍欲深秋
상앗대 반쯤 불은 맑은 물과 삼경 달 아래 / 半篙淸漲三更月
여강의 백척 누각을 읊조리며 기대 있구나 / 嘯倚驪江百尺樓
감주만 있고 게는 없으니 이 어떤 고을인고 / 有監無蟹是何州
지방관 구하는 사람마다 미리 걱정했었네 / 乞郡人人摠預憂
부질없이 이천의 풍경 좋은 것만 말하지만 / 謾說利川風景好
예로부터 내황후는 왕림하기 어려웠구려 / 從來難枉內黃侯
옛날 정씨의 전장에서 놀던 일 기억하거니 / 鄭氏田莊記昔游
둥근 소나무 들 경치에 작은 마을 깊숙했지 / 松團野色小村幽
나 또한 긴 강 굽이에 집터 잡아 살면서 / 卜居更向長江曲
명하여 수레도 타고 혹은 배도 노저어볼거나 / 或命巾車或棹舟
[주D-001]누런 구름 : 여기서는 누렇게 익은 가을벼를 가리킨다.
[주D-002]감주(監州)만 …… 걱정했었네 : 송 (宋)나라 때 게[蟹]는 벼논에 큰 재앙거리가 되었었고, 감주는 통판(通判)의 별칭인데, 통판은 지방 관아에 있긴 하나 태수(太守)의 부관(副官)도 속관(屬官)도 아니기 때문에, 항상 태수와 권력을 겨루면서 매양 “나는 바로 고을을 감찰하는 사람이다. 조정에서 나로 하여금 태수 너를 감찰하게 했다.” 하면서 태수의 행동을 억제하곤 하였으므로, 일찍이 여항(餘杭)의 전곤(錢昆)이란 사람이 지방관으로 나가기를 요청할 적에, 어떤 사람이 그에게 어떤 고을로 가고 싶냐고 묻자, 그가 말하기를, “게는 있고 감주는 없는 고을만 얻는다면 좋겠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내황후(內黃侯) : 게는 등짝 속에 노란 빛의 물질이 들어 있으므로, 이를 의인화(擬人化)하여 일컫는 말이다.
고향 산천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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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저 하늘가에 구름 절로 떠 있어라 / 渺渺天涯雲自浮
눈이 바람을 따라 고원의 가을로 들어가네 / 眼隨風入故園秋
일광사 꼭대기엔 스님네 방도 조용한데 / 日光絶頂僧牕靜
천 리 밖 강산에서 작은 누대와 함께하네 / 千里江山共小樓
물이 전라도와 경계 이룬 제일의 고을이라 / 水隔全羅第一州
바다 하늘 봉화가 이게 바로 내 걱정일세 / 海天烽火是吾憂
나는 홀로 풍월 삼천 수를 가지고 / 獨將風月三千首
인간의 고귀한 만호후를 멸시하노라 / 蔑視人間萬戶侯
노년에 일찍이 소년 시절 놀던 일 생각하니 / 老年嘗憶少年游
한 굽이의 강 마을에 일마다 한적했는데 / 一曲江村事事幽
지금은 병석에 누워 고향엘 가지 못하고 / 臥病如今歸不得
하늘가에 가는 배 안 것만 부질없이 읊노라 / 謾吟天際識歸舟
[주D-001]일광사(日光寺) : 저자의 고향인 한산(韓山)의 취봉산(鷲峯山)에 있는 절 이름이다.
[주D-002]하늘가에 …… 것 : 남제(南齊)의 시인 사조(謝脁)의 시에, “하늘가엔 돌아가는 배를 알겠고, 구름 속엔 강가의 나무가 보이네.[天際識歸舟 雲中辨江樹]” 한 데서 온 말이다.
연아(演雅)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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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년엔 송아지처럼 천 번이나 달렸었는데 / 當年黃犢走千回
백발의 오늘엔 등에 검버섯까지 피었구려 / 鶴髮如今背又鮐
말은 물결 소리 보내어 낮잠을 깨우고 / 馬送浪聲喧午枕
뱀은 활 그림자를 따라 술잔에 떨어졌네 / 蛇從弓影落深杯
그루터기서 토끼 기다림은 옛말을 들었거니와 / 守株待兔聞前語
나무에 올라 물고기 구함은 뒤탈은 없다더구려 / 緣木求魚絶後災
내 일찍이 조관의 반열 속에 끼었었는데 / 鵷鷺行中曾簉跡
이젠 사슴을 벗 삼아 산으로 들어가고 싶네 / 欲尋麋鹿入崔嵬
곤과 붕새의 변화함은 어찌 그리 신묘하며 / 鯤鵬變化何其妙
벌 개미의 군신은 누가 작다고 말할쏜가 / 蜂蟻君臣誰曰小
큰 집의 봄바람 속엔 제비가 서로 경하하고 / 大廈春風燕相賀
쇠잔한 생명은 가을밤에 벌레 스스로 슬퍼하네 / 殘生秋夜蟲自弔
황조가 언덕에 그침을 소리 높여 읊조리고 / 高吟黃鳥止丘隅
관저의 요조숙녀 구함을 멀리 사모하노라 / 遠慕關雎求窈窕
일곱 대의 고관은 마음만 괴롭힐 뿐이니 / 七葉蟬貂空苦心
쓰지 말라는 숨은 용을 나는 장차 본받으리 / 龍蟠勿用吾將傚
거북과 함께 장륙하여 마음을 편안히 하고 / 與龜藏六要安心
종이에다 새로 척확음을 지어 쓰노라니 / 繭紙新題尺蠖吟
천 리를 가는 준마는 길이 하 멀기만 하고 / 騏驥千里道途闊
한 가지에 둥지 튼 뱁새는 천지가 하 깊어라 / 鷦鷯一枝天地深
맑고 찬 가을 하늘엔 매가 꿩을 덮치려 하고 / 霜淸雲斷鶻將擊
달 밝은 텅 빈 산에선 원숭이 홀로 울부짖네 / 月明山空猿自吟
일찍이 궁전 섬돌에 푸른 향 연기 피어오를 제 / 獸爐烟碧螭堦上
조관 반열에 끼어 옥음 듣던 일 기억나누나 / 曾記鳧趨聽玉音
[주C-001]연아(演雅) : 시 체(詩體)의 하나로서 송(宋)나라 황정견(黃庭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체는 기린(麒麟)ㆍ봉황(鳳凰)ㆍ거북[龜]ㆍ용(龍)을 비롯한 새ㆍ짐승ㆍ곤충 등 여러 가지 동물들을 소재로 하여 각 구절마다 반드시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동물명을 넣어서 지은 것이 특징이다.
[주D-001]당년엔 …… 달렸었는데 : 두 보(杜甫)의 〈백우집행(百憂集行)〉에, “내 옛날 십오 세 적에 마음 아직 어리어, 송아지처럼 건장하여 달려가고 오곤 하면서, 팔월이라 뜰 앞의 배와 대추가 익거든, 하루에도 천 번이나 나무를 올라갔었네.[憶年十五心尙孩 健如黃犢走復來 庭前八月梨棗熟 一日上樹能千回]”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말은 …… 보내어 : 송나라 장뢰(張耒)의 〈출도만박(出都晚泊)〉 시에, “말의 종적은 눈에 보이지 않고, 물결 소리는 처음 배를 치누나.[馬跡不在眼 浪聲初拍船]”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뱀은 …… 떨어졌네 : 진 (晉)나라 때 악광(樂廣)이 하남 윤(河南尹)으로 있을 적에 항상 친하게 지낸 손이 있었는데, 한참 동안 그 손이 다시 오지 않으므로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지난번에 베풀어 준 술자리에서 갑자기 잔 속에 뱀이 있는 것을 보고는 몹시 혐오감을 느꼈는데, 그 술을 마신 뒤 병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사실은 청사(廳事)의 벽 위에 걸린 각궁(角弓)의 그림자가 술잔에 뱀의 모양처럼 비쳤던 것이라, 다시 술자리를 마련하고 그 손에게 그 까닭을 일러 주니, 손의 병이 대번에 나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4]그루터기서 …… 들었거니와 : 옛 날 송나라의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한번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토끼가 와서 부딪쳐 죽는 것을 보고는, 그 후로 일손을 놓고 계속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토끼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구습(舊習)에만 젖어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韓非子 五蠹》
[주D-005]나무에 …… 없다더구려 : 전 국 시대 제 선왕(齊宣王)이 전쟁을 통해서 천하 제후의 으뜸이 되고자 한 데 대하여, 맹자가 이르기를, “그와 같은 행위로 그와 같은 욕망을 구한다면 마치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비록 고기는 잡지 못하더라도 뒤의 재앙은 없거니와, 그와 같은 행위로 그와 같은 욕망을 구한다면 반드시 뒤의 재앙이 있게 될 것이다.” 한 데서 온 말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엉뚱한 수단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孟子 梁惠王上》
[주D-006]곤(鯤)과 …… 신묘하며 :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북쪽 바다에는 곤이라는 고기가 있어 그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고, 그것이 변화하여 붕새[鵬]가 되는데, 붕새의 등[背]은 또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도 없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벌 개미의 군신(君臣) : 고어(古語)에 벌과 개미는 임금과 신하의 의리가 있다고 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8]큰 …… 경하하고 : 사람이 집을 지어 놓으면 제비와 참새가 그 안에 둥지를 만들고 마치 서로 축하하며 기뻐하는 듯이 보이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9]황조(黃鳥)가 …… 읊조리고 : 《시 경》 소아(小雅) 면만(緡蠻)에, “꾀꼴꾀꼴 꾀꼴새가, 언덕 모퉁이에 그쳤도다.[緡蠻黃鳥 止于丘隅]” 하였는데, 공자가 이것을 두고 이르기를, “새도 자신이 그칠 곳을 알거늘, 사람치고 새만 못할 수 있겠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 《大學章句傳3章》
[주D-010]관저(關雎)의 …… 사모하노라 : 《시 경》 주남(周南) 관저(關雎)에, “자웅이 서로 화락하게 우는 물새는 하수 가에 있도다. 얌전한 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關關雎鳩 在河之州 窈窕淑女 君子好逑]” 하였는데, 이 시는 금슬 좋은 문왕(文王)과 후비(后妃)의 성덕(聖德)을 노래한 것이므로 이른 말이다.
[주D-011]일곱 대의 고관 : 한(漢)나라 때 김일제(金日磾)와 장안세(張安世)의 두 집안이 무제(武帝)로부터 평제(平帝)에 이르기까지 무려 일곱 조정을 섬기면서 대대로 시중(侍中)ㆍ상시(常侍) 등의 고관이 되어 부귀영화를 오래도록 누렸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12]쓰지 말라는 숨은 용 : 《주역》 건괘(乾卦) 초구(初九)에, “숨은 용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潛龍勿用]” 한 데서 온 말로,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은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13]장륙(藏六) : 거북이가 위험한 때를 만나면 머리와 꼬리 및 네 발을 갑(甲) 속에 감춰 넣어서 위험을 모면하는 것을 이르는데, 전하여 사람이 재능을 드러내지 않거나 혹은 깊이 은거하여 재앙을 면하는 데에 비유한 것이다.
[주D-014]척확음(尺蠖吟) : 자 벌레를 읊은 시를 말한다.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장차 펴기 위함이라는 뜻에서, 사람도 어려움을 참고 시기를 기다리는 데에 비유한 것이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장차 펴기 위함이요, 용과 뱀이 깊이 숨는 것은 몸을 보존하기 위함이다.[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以存身也]” 하였다.
[주D-015]한 …… 뱁새 :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뱁새가 깊은 숲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는 나뭇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鷦鷯巢於深林 不過一枝]” 한 데서 온 말로, 사람도 각각 자기 분수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함을 의미한다.
양정(涼亭) 밑을 지나다가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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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담장 둘러친 웅장하고 화려한 누각이 / 鳥革翬飛繚畫墻
서리 빛처럼 흰 모래 길을 굽어 임했는데 / 俯臨沙道白如霜
당년엔 말에서 내려 천천히 가던 이곳을 / 當年下馬徐行處
오늘에 재갈 울림은 무슨 바쁜 게 있어설꼬 / 今日鳴鑣有底忙
깨진 주초 무너진 담장에 초목은 황량한데 / 破礎頹垣草樹荒
적막한 서쪽 봉우리에 저녁볕이 걸려 있네 / 西峯寂寂掛斜陽
인간이 잠깐 사이에 고금을 이뤘는지라 / 人間俯仰成今古
정자 밑의 행인이 속으로 몹시 슬퍼하네 / 亭下行人暗斷腸
봄날은 다스웁고 가을날은 서늘한데 / 春日微溫秋日涼
뭇 꽃들 두루 피고 국화 향기 불어주었지 / 群花開遍菊吹香
해마다 풍경이야 언제 바뀐 적이 있으랴만 / 年年風景何曾改
해마다 인정은 갈수록 더 상심스럽구나 / 歲歲人情轉可傷
홀로 앉아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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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 아래 홀로 앉으니 의기가 호연하여 / 獨坐筠牕意浩然
곧장 서촉으로부터 요동 하늘로 돌아오니 / 直從西蜀返遼天
산천은 연이어서 높고 낮음이 없는데 / 山川邐迤無高下
문물의 번화함은 서로 앞뒤가 있구려 / 文物繁華有後先
도깨비며 안개 구름에 이무기는 열 길이요 / 魍魎煙氛蛟十丈
인민이며 성곽에다 학은 또 천 년이로다 / 人民城郭鶴千年
우리 삼한은 다행히 동방과 가장 가까워서 / 三韓賴與扶桑近
팔방 끝까지 비추는 함지의 해를 받드누나 / 捧日咸池照八埏
[주D-001]도깨비며 …… 열 길이요 : 이 무기는 서촉(西蜀) 지방의 백수천(白水川)에 있었다는, 몸의 길이가 열 길이나 되는 괴물을 가리키는데, 두보(杜甫)의 〈최소부고재(崔少府高齋)〉 시에, “열 길 이무기와 서로 마주했는데, 언뜻 뒤척여 소용돌이 일으키네.……안개 구름은 높은 산에 피어오르고, 도깨비는 으스스하게 널려 있네.[相對十丈蛟欻翻盤渦坼……煙氛靄崷崒 魍魎森慘戚]”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인민이며 …… 천 년이로다 : 한 (漢)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일찍이 영산(靈山)에 들어가 선술(仙術)을 배우고 뒤에 학(鶴)으로 변화하여 고향인 요동에 돌아가 성문(城門)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았는데, 이때 한 소년이 활로 그를 쏘려 하자, 학이 날아올라 공중을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새가 되어 날아온 정영위가,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야 돌아와보니, 성곽은 여전한데 인민은 간 곳이 없구나. 왜 신선을 안 배우고 무덤만 즐비한고.[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함지(咸池) : 해가 목욕을 한다는, 하늘에 있는 못 이름이다.
술을 대하여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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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대해 회포 푸는 건 속물이 아니려니와 / 對酒開懷非俗流
취중의 별천지는 참으로 한가롭기만 하네 / 醉鄕天地儘悠悠
하루 종일 노자표를 끌어다 들이켜고 / 携來盡日鸕鷀杓
당년의 숙상구를 전당도 잡히었어라 / 典却當年鷫鸘裘
술 취한 도연명은 응당 통달한 선비거니와 / 彭澤沈酣應達士
초췌했던 굴원은 바로 외로운 죄수였었네 / 湘江憔悴卽孤囚
보병교위를 그 누구로 좇아 청해 볼꼬 / 步兵校尉從誰請
황화가 끝없이 웃을까 미리부터 염려로세 / 預恐黃花笑不休
[주D-001]노자표(鸕鷀杓) : 술 그릇 이름인데,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 “노자표와 앵무배로, 백 년이라 삼만 육천 일에, 하루에도 삼백 잔씩을 반드시 기울이리.[鸕鷀杓 鸚鵡杯 百年三萬六千日 一日須傾三百杯]” 하였다.
[주D-002]숙상구(鷫鸘裘) : 초 록빛 털을 지닌 숙상이란 새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말한다.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탁문군(卓文君)과 함께 성도(成都)로 돌아갔을 때, 집이 워낙 가난하여 술을 마련할 길이 없자, 자기가 입고 있던 숙상구를 팔아 술을 사가지고 탁문군과 함께 마시며 즐겼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보병교위(步兵校尉) : 진 (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을 가리킨다. 완적은 세상이 혼란스러움을 염려하여 녹사(祿仕)나 하려는 생각을 가졌던바, 마침 보병교위의 자리가 비었는데, 그 영내(營內)의 주방에 좋은 술이 많다는 말을 듣고는, 마침내 보병교위를 자청하여 들어가서 날마다 술을 진탕 마시고 곤드레가 되어 세상일을 다 잊어버렸다고 한다.
[주D-004]황화(黃花)가 끝없이 웃을까 : 황화는 국화(菊花)를 가리킨다. 이백이 중구일(重九日)에 용산(龍山)에서 술을 마시며 읊은 시에, “중구일에 용산에서 술을 마시니, 황화가 쫓겨난 신하를 비웃누나.[九日龍山飮 黃花笑逐臣]” 한 데서 온 말이다.
송이버섯을 보내 준 이가 있어, 시를 지어서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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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의 마을에서 왔다 하면서 / 云自尙書井
학사의 집에 가져다 주는데 / 來投學士家
긴 줄기는 깎아놓은 옥과 같고 / 長莖玉自削
둥근 머리는 일산을 막 편 듯하네 / 圓頂傘初斜
기는 솔잎 사이의 이슬에서 받고 / 氣禀葉間露
형체는 뿌리 밑 모래에서 이뤘는데 / 形成根底沙
빙설 같은 하얀 살결의 선녀가 / 氷肌有仙女
이것을 캐서 놀 속으로 들어가누나 / 採去入烟霞
사초(莎草)를 제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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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가 텅 빈 뜰 가운데에 나서 / 苔生空庭中
마침 문항을 더 그윽하게 하기에 / 適增門巷幽
행여라도 짓밟아버릴까 염려하여 / 尙恐或踏破
애호하고 따라서 걱정을 하였었지 / 愛護仍爲憂
차가운 사초에 이슬방울 마르고 / 寒莎團露晞
초일이 한가을에 당한 때에 / 初日當高秋
까닭 없이 나의 눈을 가리는지라 / 無端翳我目
하인 시켜 너를 매버리게 하노니 / 鋤玄煩蒼頭
너는 이제 나를 원망하지 말라 / 汝今勿怨我
스스로 먼 곳에 난 게 마땅했으리 / 自宜生阻脩
푸른 소나무는 누워 일산이 되고 / 靑松偃翠葆
흰 바위는 높다란 누각이 된 곳에 / 白石飛瓊樓
네가 그런 곳에 나서 자랐더라면 / 棲遲得其所
아무런 재난도 부르지 않았으리라 / 無復招愆尤
사물 관찰이 또한 자신의 관찰이기에 / 觀物亦觀我
저문 해에 이것으로 자적하노라 / 歲晚聊優游
연아(演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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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등에서 시 읊으며 곡봉을 바라보니 / 驢背吟詩望鵠峯
나는 원숭이 쫓아 높은 소나무를 오르고파라 / 欲追飛猱入雲松
변방의 가을 기러기 소리 갑자기 들리더니 / 忽聞胡塞霜前鴈
절집의 달밤 귀뚜라미가 다시 생각나누나 / 更想祇園月下蛩
지저귀는 참새야 어찌 홍곡의 뜻을 알랴만 / 雀噪豈容知鵠志
코끼리 가는 곳에 여우 자취 찾기도 어렵네 / 象行難更覓狐蹤
부모님의 교훈 못 받은 지가 이미 오래라 / 鯉庭久已忘書禮
또 앙려를 향하여 종소리를 들을 뿐이네 / 且向鴦廬聽鼓鐘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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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자식 거느리고 망녕되어 스스로 높아서 / 下有妻孥妄自尊
항상 꿇어앉아서 매양 말하길 잊노니 / 尋常危坐輒忘言
가을 모습은 새로 목욕해 강산이 깨끗한데 / 秋容新沐江山淨
도의 힘은 아직 미약해 지기가 혼미하구려 / 道力猶微志氣昏
붓 잡아 당장 써내려선 좋은 시구 읊조리고 / 操筆立書吟好句
지팡이 짚고 애써 일어나선 고관을 사례하네 / 杖藜强起謝高軒
이제는 안락와 안에 들어가 늙어가면서 / 欲從安樂窩中老
천지 혼돈의 근원을 자세히 찾고만 싶구나 / 細訪鴻濛大地根
[주D-001]안락와(安樂窩) : 송(宋)나라의 도학자 소옹(邵雍)의 거실(居室) 이름이다.
삼각산(三角山)을 생각하다가 가행(歌行)을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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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아래 흰 모래는 마치 담요 같은데 / 松下白沙如氍毹
숲 떨치는 반종 소리엔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 飯鐘振林面色腴
어른과 젊은이 서로 이끌고 땅에 앉아서는 / 相携地坐略少長
함께 토론을 하다가 곧장 석양에 이르렀네 / 討論直到鴉畢逋
산천의 뛰어난 기운이 천하에 가득하여 / 山川英氣滿天下
미산 사람 부자를 삼소라 칭했거니와 / 眉之父子稱三蘇
그중에 장공은 고금에 으뜸가는 시호로서 / 長公詩豪蓋今古
장편과 절구가 정함과 거침을 포함했는데 / 長篇絶句含精麤
문장 기세 웅장 방종함이 수레 엎는 말 같아 / 詞雄勢逸馬覂駕
풍아를 변역시켜 때로는 긴 노래를 불러서 / 變移風雅時長謳
음란하고 기교한 소리 깨끗이 쓸어 없애고 / 淫哇尖巧掃淨盡
횡설수설하여 스스로 충의와 함께했는지라 / 縱橫自與忠義俱
섶에 불살라 글자 비춰 끝없이 읽다보니 / 爇薪照字讀不輟
지는 달빛 산에 가득코 바람 또한 불어댈 제 / 落月滿山風又呼
하늘땅 깊은 곳에 초연히 크게 한숨지으며 / 悄然大息天地深
높은 재능 쇠퇴한 것을 길이 탄식하였네 / 高才陵替空長吁
새벽이 오매 산승이 손뼉 치며 웃었으니 / 曉來山僧拍手笑
그을음 얼굴 가득해 마른 등걸 같았기 때문일세 / 烟煤滿面如枯株
이제는 늙었는지라 지기에게 감사하노니 / 如今老矣謝知己
글 읽는 데에 어찌 공부가 없을 수 있으랴 / 讀書豈可無功夫
글 읽는 데에 어찌 공부가 없을 수 있으랴 / 讀書豈可無功夫
이 목은을 지금 그 무엇이 붙들어 주던가 / 牧隱至今誰所扶
[주C-001]가행(歌行) : 고대 악부시(樂府詩)의 한 체(體)이다.
[주D-001]반종(飯鐘) : 승사(僧舍)에서 식사 시간을 알리기 위해서 치는 종을 말한다.
[주D-002]미산(眉山) …… 칭했거니와 : 삼 소(三蘇)는 송나라 때 사천성(四川省) 미산 출신으로 문장이 뛰어나서 모두 당송팔가(唐宋八家)에 든 소순(蘇洵)과 그의 두 아들인 소식(蘇軾)과 소철(蘇轍) 삼부자(三父子)를 합칭한 말이다. 개별적으로는 소순을 노소(老蘇), 소식을 대소(大蘇)ㆍ장공(長公), 소철을 소소(小蘇)라 칭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씨 삼부자가 모두 산천(山川)의 정기(精氣)를 타고났다는 뜻에서, 당시 미산 사람들 사이에는 “미산에 소씨 삼부자가 나니, 촉중에 풀이 또한 시들었다.[眉山生三蘇 蜀中草亦枯]”라는 말도 있었다 한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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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택거 타는 게 마음에 만족할 뿐 / 甘心乘下澤
남가몽 꿀 생각은 전혀 없어라 / 絶意夢南柯
도가 성숙하매 읊조림은 줄어들고 / 道熟吟哦少
나이 들수록 앉고 누움은 많아지네 / 年侵坐臥多
집 주위 산은 병장처럼 둘리어 있고 / 屋山橫似障
누각의 달빛은 물결처럼 깨끗하건만 / 樓月淨如波
높은 흥취 없음을 논할 것 없어라 / 任是無高興
일찍이 오랜 병 앓은 게 혐오스럽네 / 曾嫌抱久痾
[주D-001]하택거(下澤車) : 전 간(田間)을 마음대로 다니기에 편리한, 바퀴통이 짧은 수레를 가리키는데, 후한(後漢) 때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의 종제 마소유(馬少游)가 일찍이 마원에게 말하기를, “선비가 세상에 나서 의식(衣食)이나 겨우 해결하는 가운데 하택거를 타고 관단마(款段馬)나 몰면서 향리(鄕里)로부터 착한 사람이란 말만 들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남가몽(南柯夢) : 당 나라 때 순우분(淳于棼)이 자기 집 남쪽에 있는 괴(槐) 나무 밑에서 술에 취해 자다가, 꿈에 대괴안국(大槐安國) 남가군(南柯郡)을 다스려 20년 동안 부귀(富貴)를 누리다가 깨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덧없는 부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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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인지 구름인지 멀기만 한데 / 山耶雲耶遠
봄바람은 강 하늘을 흔들어대고 / 春風搖江天
교목 끝에 보이다 말다 한 것은 / 隱見喬木杪
수많은 갈래로 떨어지는 폭포로다 / 百道飛來泉
그대는 어느 곳에서 얻었느뇨 / 君從何處得
가는 길을 찾을 계제가 없구나 / 去路無由緣
고인은 응당 나를 부를 것이거니 / 故人應有招
구름은 흩어져도 산은 그대로이리 / 雲散山依然
[주C-001]산수도(山水圖) …… 짓다 :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왕정국(王定國)이 소장한 왕진경(王晉卿)의 연강첩장도에 시를 썼는데, 이것을 저자가 띄엄띄엄 뽑아내어 시(詩)로 엮은 것이다.
옛일을 기억하여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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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은 편벽되어 항상 홀로 지내고 / 性僻居恒獨
집은 가난해 여러 반찬 못 겸하네 / 家貧味罕兼
세월은 빨리 가는 걸 슬퍼하고 / 光陰悲鼎鼎
기상은 위엄 있는 걸 사모하노라 / 氣像慕巖巖
고요한 문엔 그윽한 새가 찾아오고 / 門靜來幽鳥
텅 빈 처마엔 달이 둥실 걸렸는데 / 簷虛掛冷蟾
가을바람이 푸른 버들에 불어오니 / 秋風吹碧柳
천재에 도잠이 생각나누나 / 千載憶陶潛
[주D-001]가을바람이 …… 생각나누나 : 진 (晉)나라 도잠(陶潛)이 자기 집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어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자호(自號)한 데서 온 말이다. 이백의 〈제동계공유거(題東溪公幽居)〉 시에, “집은 청산에 가까워서 사조와 같고요, 문엔 푸른 버들 드리워 도잠과 같도다.[宅近靑山同謝朓 門垂碧柳似陶潛]” 하였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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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의 시풍은 지금 적막해졌고 / 野詩今寂寂
원체의 시풍도 아득하기만 하네 / 院體亦悠悠
천지는 무궁한 뜻이 있거니와 / 天地無窮意
강산은 다하려는 끝머리로다 / 江山欲盡頭
새 시편은 반쯤 지워 고쳤고 / 新篇半塗抹
절구는 혹 풍류가 있기도 한데 / 絶句或風流
후일에 중주집을 편찬하게 되면 / 他日中州集
누가 혹 내 시를 거두어 줄런고 / 誰歟幸見收
[주D-001]원체(院體) : 당나라 이래로 한림원풍(翰林院風)의 문체(文體)를 가리킨다.
[주D-002]중주집(中州集) : 금(金)나라 일대(一代)의 시(詩)를 편집한 책인데, 금나라의 학자 원호문(元好問)이 편집하였다.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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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광채를 입어 절로 휘황하여라 / 萬物蒙光自焜煌
벽규와 은하가 문장을 환히 펼치네 / 壁奎河漢耀文章
반향과 송염은 꽃이 안개에 덮인 듯하고 / 班香宋艶花藏霧
도수와 교청은 달이 서리에 비친 듯하네 / 島瘦郊淸月照霜
모두 원화가 절역에 전해졌다 말들 하지만 / 摠道元和傳絶域
대력이 명당에 앉았었음을 알아야 하리 / 須知大曆坐明堂
창려 부자의 문장은 더욱 호탕하여 / 昌黎夫子尤豪甚
곧장 긴 바람으로 큰 바다를 말 듯하였네 / 直播長風卷大洋
[주D-001]벽규(壁奎) : 두 별 이름인데, 이 두 별이 문운(文運)을 주관하기 때문에 항상 문원(文苑)에 비유된다.
[주D-002]반향(班香)과 송염(宋艶) : 반고(班固)의 향기로움과 송옥(宋玉)의 화려함이란 뜻이다. 반고와 송옥은 모두 사부(辭賦)에 뛰어났는데, 특히 문체가 풍부하고 화려하기로 유명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3]도수(島瘦)와 교청(郊淸) : 소식(蘇軾)이 일찍이 가도(賈島)의 시풍(詩風)은 파리하고, 맹교(孟郊)의 시풍은 청한하다고 논평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원화(元和)가 절역(絶域)에 전해졌다 : 원화는 당 헌종(唐憲宗) 원화 연간에 백거이(白居易), 원진(元稹) 두 시인이 개창(開創)한 시풍(詩風)인 원화체(元和體)를 가리키는데, 특히 이 체가 동방(東方)에 널리 전파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5]대력(大曆)이 명당(明堂)에 앉았었음 : 대 력은 당 태종(唐太宗) 대력 연간에 명성을 나란히 날렸던 십재자(十才子), 즉 노륜(盧綸)ㆍ길중부(吉中孚)ㆍ한굉(韓翃)ㆍ전기(錢起)ㆍ사공사(司空曙)ㆍ묘발(苗發)ㆍ최동(崔峒)ㆍ경위(耿湋)ㆍ하후심(夏侯審)ㆍ이단 (李端)의 시풍인 대력체(大曆體)를 가리키는데, 이 시체는 일찍이 동방에 전해 온 적이 없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6]창려 부자(昌黎夫子) : 창려백(昌黎伯)에 추봉(追封)된 한유(韓愈)를 높여 일컬은 말이다.
28일. 이날은 바로 예천군(醴泉君)의 부인 채씨(蔡氏)의 명기(明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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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한 평강 채씨가 예천군의 배필 되어 / 婉婉平康配醴泉
예천군 재상에 오르고 장수도 누리었네 / 侍中開府又高年
안팎의 자손들이 지금 한창 번성하거니 / 子孫內外今方盛
검소한 그 유풍을 묻노라 누구에게 전할꼬 / 儉素遺風問孰傳
미인들 노래 부르고 술은 샘물 같을 제 / 遏雲歌裏酒如泉
송정의 헌수하던 자리가 기억나누나 / 記得松亭獻壽筵
그 누가 당시 나이 십사 세인 나를 일러 / 誰道當時年十四
예천군의 의발을 전할 것이라 했던고 / 醴泉衣鉢得相傳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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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산에 이를 문지르며 앉았고 / 靑山捫虱坐
꾀꼬리 울 제 책 베고 잠을 자네 / 黃鳥枕書眠
회자된 건 형공의 시구이고 / 膾炙荊公句
규모는 두보 노인의 연구로다 / 䂓模杜老聯
조명은 미처 편집하지 못했고 / 肇明編不及
천계는 외워서 전했을 뿐이로다 / 天啓誦來傳
백발에 애써 길이 읊조려서 / 白髮吟長苦
난교로 끊어진 줄을 잇노라 / 鸞膠續斷絃
일을 줄이니 형세를 잊게 되고 / 省事忘形勢
시를 쓰니 성령을 기르게 되네 / 題詩養性靈
창문은 읊는 가운데 또 밝아지고 / 紙牕吟更白
담요는 앉은 자리가 푸르구나 / 氈席坐來靑
우물이 차니 옥의 진액이 어린 듯 / 井冷凝瓊液
산이 맑으니 비단 병풍을 친 듯하네 / 山晴列錦屛
병든 나머지 아무 흥미가 없어 / 病餘無興味
종일토록 빈 정자에 기대 있노라 / 竟日倚空亭
[주D-001]푸른 …… 뿐이로다 : 형 공(荊公)은 북송(北宋) 때 형국공(荊國公)에 봉해진 왕안석(王安石)을 가리키고, 조명(肇明)은 왕안석에게 수재(秀才)로 일컬어진 설조명(薛肇明)을 가리키며, 천계(天啓)는 왕안석의 교우였던 채조(蔡肇)의 자인데, 송나라 섭몽득(葉夢得)의 《석림시화(石林詩話)》에 의하면, “채천계(蔡天啓)가 말하기를, ‘형공(荊公)이 두보(杜甫)의 「주렴을 걷으니 자던 백로가 일어나고, 환약을 지으니 꾀꼬리 소리 아름답네.[鉤簾宿鷺起 丸藥流鶯囀]」라는 연구(聯句)를 매양 일컬으면서, 「용의(用意)가 고상하고 묘하여 오언시(五言詩)의 규모가 될 만하다.」라고 했는데, 뒤에 형공이 「푸른 산에 이를 문지르며 앉았고, 꾀꼬리 울 제 책 끼고 잠을 자네.[靑山捫虱坐 黃鳥挾書眠]」라는 시구를 짓고는, 스스로 두보의 시보다 못하지 않다며 만족하게 여겼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 전편(全篇)을 다 들어 말하지 못했으므로, 내가 일찍이 이 사실을 설조명에게 말했었는데, 설조명이 뒤에 분부를 받고 형공의 문집(文集)을 편집하면서 그 시를 찾았으나 끝내 얻지 못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그리고 왕안석의 시를 《석림시화》에서는 ‘挾書眠’이라 했고, 저자는 ‘枕書眠’이라 했는데, 어느 글자가 맞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주D-002]난교(鸞膠)로 …… 잇노라 : 난 교는 봉린주(鳳麟州)의 선가(仙家)에서 봉황의 부리[鳳觜]와 기린의 뿔[麟角]을 섞어 고아서 만든 고(膏)의 명칭으로, 이 고는 끊어진 쇠뇌의 줄을 이을 수 있어 일명 속현교(續絃膠)라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저자가 왕안석의 시를 이어 보충한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주D-003]담요는 …… 푸르구나 : 진 (晉)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어느 날 밤 서재(書齋)에 누워 있으면서, 도둑이 들어와 온 방을 다 뒤지는데도 꼼짝 않고 누웠다가, 도둑이 마침내 와상으로 올라가서 무엇을 찾으려 하자, 도둑을 불러 말하기를, “푸른 담요는 바로 나의 구물(舊物)이니, 그것만은 놔두지 않으려나?” 하니, 도둑이 훔친 물건을 모두 놓고 도망갔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청빈(淸貧)한 생활을 의미한다.
강릉(江陵) 최상(崔相)이 미역을 보내 준 데 대하여 받들어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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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을 해마다 보내 주어 / 海菜年年送
산재에서 날마다 먹으니 / 山齋日日嘗
처음엔 흐린 눈이 맑아짐을 알았고 / 始知淸病目
점차로 시상이 윤택해진 게 기뻐라 / 漸喜潤詩腸
외딴섬에 봄빛은 멀기만 하고 / 絶島春光遠
거센 바람에 파도는 드높아서 / 狂風浪勢揚
미역 따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라 / 採來非易得
조용히 씹노라니 맘이 아득해지네 / 細嚼意蒼茫
최 안동(崔安東)에게 받들어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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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천관의 자리에 있다가 / 早忝天官席
갑자기 바다고을 가을에 놀라네 / 俄驚海國秋
어떻게 하면 대관령 밖에서 만나 / 何當關外路
함께 달 가운데 누각에 기대 볼꼬 / 共倚月中樓
풍악산은 마음으로 상상할 뿐이요 / 楓嶽徒心想
한송정은 꿈속에만 노닐 뿐이로다 / 松亭只夢游
회포를 논함도 하늘이 내리는 바라 / 論懷天所賦
세상일은 날로 아득하기만 하네 / 世事日悠悠
덧없는 인생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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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인생 반백 년을 지나서 / 浮生餘半百
말로에는 다시 허둥지둥해지네 / 末路更蒼黃
농조는 가을 하늘이 넓기만 하고 / 籠鳥秋天豁
원구는 저문 길이 멀기만 하구나 / 轅駒暮道長
마음에 맹세하여 공자 맹자를 본받고 / 誓心師孔孟
머리 돌려 이윤 주공을 부르짖노니 / 回首叫伊周
냇가에서 말한 무궁한 뜻을 / 川上無窮意
끝없이 스스로 구할 뿐이로다 / 悠悠祇自求
[주D-001]농조(籠鳥)는 …… 하구나 : 농조는 새장 안에 갇힌 새란 뜻으로, 몸이 자유스럽지 못하고, 원구(轅駒)는 끌채 밑의 망아지란 뜻으로, 힘이 모자라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2]냇가에서 …… 뜻을 : 공 자가 일찍이 냇가에서 이르기를, “흘러가는 것이 이러하구나, 밤낮을 쉬지 않도다.[逝者如斯夫 不舍晝夜]”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공자가 잠시도 쉬지 않고 끝없이 흐르는 물을 보고 그것이 바로 도체(道體)의 본연(本然)임을 감탄한 말이었다.
우연히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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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관찰하며 하염없이 구주를 살펴보니 / 觀物悠悠撫九圍
해와 달은 환히 밝아 광휘를 떨치는데 / 日月晃朗揚光輝
숲의 기린 산의 봉황은 사람 피해 날아가고 / 棷麟岡鳳色斯擧
성호와 사서는 떼를 지어 서로 의지하누나 / 城狐社鼠群相依
천지는 만물을 길러 형세가 절로 크거니와 / 乾坤涵育勢自大
기에는 청탁이 있되 모두 조화를 탔으니 / 氣有淸濁皆乘機
십육상을 등용하고 사흉을 제거하여라 / 用十六相去四凶
만물의 나고 변화함이 법칙을 따를 뿐이네 / 物生物化無從違
하늘을 이어 법칙 세움은 성인의 일인데 / 繼天立極聖人事
삼대의 말기에 이르러 이 도가 어그러지고 / 三代末流斯道乖
진의 재가 식기도 전에 면촬을 익히어서 / 秦灰未冷習綿蕞
후세에 어지러이 시비를 겨루게 되었네 / 後世紛紛爭是非
예서는 방잡한 가운데 순수한 게 많으니 / 禮書厖雜純粹多
고정이 이따금 정미한 데에 통하였도다 / 考亭往往通精微
관저와 인지가 바로 근본이 되는 건데 / 關雎麟趾是根本
세상에 임방이 없으니 누구와 함께할꼬 / 世無林放誰與歸
[주D-001]숲의 …… 날아가고 : 기린이나 봉황이 태평한 세상에는 모두가 숲이나 산에 깃들어 살지만, 세상이 어지러우면 사람을 피해 떠나 버린다는 뜻으로, 난세(亂世)를 의미한다.
[주D-002]성호(城狐)와 …… 의지하누나 : 간악한 소인(小人)이 많음을 뜻한다. 성호는 성안에 있는 여우이고, 사서(社鼠)는 사당에서 사는 쥐인데, 이들은 모두 안전한 곳에서 나쁜 짓을 하는 짐승들로서, 임금의 측근에서 간악한 행위를 일삼는 소인에 비유된다.
[주D-003]십육상(十六相)을 …… 제거하여라 : 십 육상은 고양씨(高陽氏)의 여덟 재자(才子)와 고신씨(高辛氏)의 여덟 재자를 합한 16인의 선인(善人)을 가리킨다. 고양씨의 여덟 재자로는 이른바 팔개(八愷)로 불리었던 창서(蒼舒), 퇴개(隤凱), 도연(檮戭), 대림(大臨), 방강(厖降), 정견(庭堅), 중용(仲容), 숙달(叔達)이고, 고신씨의 여덟 재자로는 이른바 팔원(八元)으로 불리었던 백분(伯奮), 중감(仲堪), 숙헌(叔獻), 계중(季仲), 백호(伯虎), 중웅(仲熊), 숙표(叔豹), 계리(季狸)이다. 순(舜) 임금이 일찍이 이들의 후손들을 등용하여 훌륭한 정사를 펴게 하였고, 또 사흉(四凶), 즉 4명의 악인(惡人)인 공공(共工), 환두(驩兜), 삼묘(三苗), 곤(鯀)을 죽이거나 내쳤던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 文公18年》 《書經 舜典》
[주D-004]진(秦)의 …… 익히어서 : 진 의 재란 진 시황(秦始皇)이 학자들의 정치 비평을 막기 위하여 천하의 경적(經籍)을 모두 불태우고 학자들을 생매장한 일을 말하고, 면촬(綿蕞)은 야외에서 예(禮)를 강(講)하기 위해 띠[茅]를 베어 묶어서 죽 늘어세워 존비(尊卑)의 차례를 표시한 것을 가리키는데, 한 고조(漢高祖) 초기에 숙손통(叔孫通)이 이 방법을 통하여 조정의 의례(儀禮)를 새로 제정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고정(考亭)이 …… 통하였도다 : 고정은 주희(朱熹)의 호인데, 주희가 저술한 예서(禮書) 중에 특히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가 가장 대표적이다.
[주D-006]관저(關雎)와 인지(麟趾) : 관 저는 《시경》 주남(周南)의 편명으로, 이 시는 주 문왕(周文王)과 후비(后妃)의 성덕(盛德)을 노래한 것이고, 인지는 역시 《시경》 주남의 편명으로, 이 시는 주 문왕의 후비의 덕이 자손 종족(子孫宗族)에까지 미친 것을 찬미하여 노래한 것이다.
[주D-007]임방(林放) : 노(魯)나라 사람인데, 그가 일찍이 공자에게 예(禮)의 근본을 묻자, 공자가 이르기를, “훌륭하도다, 예의 근본을 물음이여.”라고 칭찬하였다. 《論語 八佾》
당(唐)나라 어진 이의 영월장(詠月章)을 읽고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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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참 꺼림은 기틀을 아는 듯해라 / 忌滿似知機
가득찬 걸 지키자면 계책이 없으리 / 持盈却無策
백발 나이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 白頭猶未歸
달을 마주해 스스로 책망하노라 / 對月聊自責
[주C-001]당(唐)나라 어진 이의 영월장(詠月章) : 영 월장은 달을 읊은 시란 뜻이다. 당나라 어진 이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자세하지는 않으나, 낙빈왕(駱賓王)의 〈완초월(翫初月)〉 시에 의하면, “가득참 꺼리어 빛은 늘 이지러지고, 어둠을 타서 그림자 점점 퍼지네.[忌滿光恒缺 乘昏影漸流]” 하였다.
스스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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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부살이 같은 인생 참으로 지루하여라 / 人生如寄儘悠悠
꿈에 주공 보았던 그때가 오래이로세 / 久矣當年夢見周
신선이 안 되는 건 탁기가 많기 때문인데 / 骨髓不靑多濁氣
귀밑털 절로 희어져라 또 가을을 만났구려 / 鬢毛自白又高秋
예로부터 후진이 선진을 경시했거니와 / 由來後進輕先進
나는 새 시름 묵은 시름이 교체할 뿐이네 / 只見新愁替舊愁
강가에 전토 있으니 의당 빨리 돌아가야지 / 江上有田宜速去
동산엔 토란 밤 거두고 벼는 논에 그득하리 / 園收芋栗稻盈疇
[주D-001]꿈에 …… 오래이로세 : 몸 이 노쇠해졌음을 뜻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심하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이어라, 내 다시는 꿈속에서 주공을 뵙지 못하였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한 데서 온 말이다. 이는 곧 공자가 젊었을 때는 주공의 도(道)를 행하려는 뜻이 강했기 때문에 꿈속에서도 주공을 가끔 보았으나, 늙도록 도를 행하지 못함에 이르러서는 그 마음이 없어짐으로써 다시는 주공의 꿈조차 꾸어지지 않으므로, 이것을 인해서 몸이 몹시 쇠해졌음을 탄식한 것이다. 《論語 述而》
[주D-002]예로부터 …… 경시했거니와 : 선 진(先進), 후진(後進)은 선배, 후배와 같은 뜻으로, 공자가 이르기를, “선진이 예악에 야인이요, 후진이 예악에 군자라고 하나니, 만일 예악을 쓴다면 나는 선진의 것을 쓰리라.[先進於禮樂野人也 後進於禮樂君子也 如用之則吾從先進]” 한 데서 온 말이다. 즉 공자 당시의 사람들이 문질(文質)이 알맞은 선진의 예악을 도리어 촌스럽게 여기고, 질보다 문이 지나친 후진의 예악을 도리어 수준 높게 여겼으므로 이른 말이다. 《論語 先進》
한가히 읊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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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몸은 오히려 건강한데 / 老境身猶健
그윽한 집엔 손이 오지를 않네 / 幽居客不來
한가함 속엔 짧은 시구에 공교롭고 / 閑中工短句
병든 뒤로는 큰 술잔에 겁이 나네 / 病後怯深杯
조용한 골목엔 버들에 연기 떠 있고 / 巷靜烟浮柳
텅 빈 뜨락엔 이끼가 비에 자라누나 / 庭空雨長苔
공명 이루긴 이제 늦었는지라 / 功名今晚矣
운대에 오를 꿈조차 없네그려 / 無夢上雲臺
구름은 검은빛을 번득이며 가고 / 雲容翻墨去
산 빛은 푸르름을 보내어 오네 / 山色送靑來
시루에선 먼지가 나거나 말거나 / 任是塵生甑
모름지기 술이나 잔 가득 마시리 / 須敎酒滿杯
물가의 모래는 눈빛보다 하얗고 / 汀沙白於雪
강물은 이끼와 같이 푸르른데 / 江水綠如苔
일엽편주는 아직 그대로 있으니 / 尙有扁舟在
돌아가서 낚시터로 올라가련다 / 歸歟上釣臺
[주D-001]운대(雲臺) :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공신(功臣)을 추모하기 위해 공신 28인의 초상(肖像)을 걸었던 곳으로, 전하여 공신을 의미한다.
기러기 소리를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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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리라 북방 사막의 한 깃털 미물이 / 萬里胡沙一羽微
금년에 또 남쪽으로 날아오는 걸 보겠네 / 今年又見向南飛
누가 알랴 병든 나그네는 애만 끊어질 뿐 / 誰知病客心空折
수염이 다 세도록 아직껏 못 돌아가는 걸 / 白盡髭鬚尙未歸
북쪽 변방 하늘 높고 더운 기운 물러가매 / 北塞天高暑氣微
기러기가 이때 흰 구름 따라 날아오누나 / 鴈飛時逐白雲飛
모르겠도다 어느 곳에서 깃들어 있다가 / 不知何處堪棲托
해마다 남으로 왔다 또 북으로 가는건지 / 歲歲南歸又北歸
달을 마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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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마주해 나 홀로 있노라니 / 對月我方獨
시원하여 마음까지 맑아지누나 / 洒然肝肺淸
다행히 뭇사람 들렘이 없는 데다 / 幸無群動鬧
더구나 이렇게 달이 한껏 밝음에랴 / 況此十分明
문득 외론 그림자 있는 걸 보고 / 忽見有孤影
서로 더불어 촌정을 논하여라 / 相將論寸情
평생에 담박한 생활 함께하면서 / 平生共淡泊
바람 이슬 속에 삼경을 지나노라 / 風露過三更
강상(江上) 1수(一首) ○ 주 동년(朱同年)이 생각나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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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푸른 산이 둘러 있고 / 江上有靑山
거기에 서너 칸 초막집이 있는데 / 草廬三四間
가을바람과 깨끗함을 함께하니 / 秋風共蕭洒
촌 늙은이 또한 조용하기만 하리 / 村叟亦幽閑
얼마나 머리 돌려 슬피 바라봤던가 / 悵望幾回首
지체함은 참으로 뻔뻔한 짓이로세 / 遲留眞强顔
나는 구름은 언뜻 남으로 가는데 / 飛雲忽南去
언제나 나는 사직하고 돌아갈거나 / 何日乞身還
작은 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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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비가 갑자기 날아 내리니 / 小雨忽飛至
뜰 가득한 이끼가 다시 푸르러지네 / 滿庭苔更靑
누가 이 연기 낀 골목을 찾아 주랴 / 誰曾訪烟巷
나 홀로 바람 창을 임해 있노라 / 我獨俯風欞
서늘함은 소망에 꼭 들거니와 / 涼快愜所望
청한함은 편안한 게 기쁘구려 / 淸閑欣以寧
조용히 읊으매 흥겹기도 하여라 / 微吟興不淺
가을 물 불커든 배를 띄울 만하리 / 秋水可揚舲
우연히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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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 두보의 문장을 이을 자가 드물어라 / 李杜文章繼者稀
어느 날에나 봉황이 다시 쌍쌍으로 날꼬 / 鳳凰何日更雙飛
세상 가득한 공명은 지금에 이루기 어렵고 / 功名滿世今難致
우뚝 뛰어난 도덕은 옛날에도 드물었었네 / 道德離倫古亦希
번민을 풀어 성정은 스스로 기를 만하거니와 / 陶寫性情堪自養
정치 교화를 펴는 것은 누가 그르다 할쏜가 / 敷陳政化有誰非
병든 나머지 시 속의 맛을 음미하면서 / 病餘咀嚼詩中味
흥이 나면 때때로 단숨에 내려쓰노라 / 遇興時時筆一揮
[주D-001]어느 …… 날꼬 : 봉황(鳳凰)이 쌍쌍으로 난다는 것은 형제 또는 두 사람의 재덕(才德)이 동시에 뛰어난 경우를 가리킨다.
광암사(光巖寺)를 바라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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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나머지 시력은 더욱 많이 감퇴되고 / 病餘目力減尤多
거울에선 하얀 귀밑머리를 자주 보게 되네 / 鏡裏頻看鬢髮皤
멀리 바라보니 광암사엔 붉은 해가 걸렸는데 / 遙望光巖掛紅日
덧없는 세상은 황하처럼 탁한 게 가련하여라 / 可憐浮世似黃河
조정 가득한 호걸들은 명리를 다투는데 / 滿朝豪傑爭名利
집에 들앉은 늙은이는 홀로 읊기만 하네 / 閉戶衰遲獨嘯歌
아주 좋기는 가을바람이 조금 서늘해지면 / 政喜秋風稍涼冷
달 밝은 밤에 승탑으로 직접 찾아감일세 / 月明僧榻夜相過
국화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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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가 난세 피해 동쪽 울타리에 있으니 / 菊花避地在東籬
하얀 꽃과 붉은 꽃이 각각 한 시절인데 / 白白朱朱各一時
천지도 그 마음 홀로 괴로움을 가련히 여겨 / 天地亦憐心獨苦
하늘 가득 바람 이슬에 서리를 더디 내리네 / 滿天風露降霜遲
엷은 구름 저녁볕이 성긴 울타리에 새들 제 / 薄雲斜日漏疎籬
노쇠한 백발 늙은이가 홀로 서 있는 때로다 / 白髮衰翁獨立時
정경이 절로 융화됨을 그 누가 헤아릴꼬 / 情境自融誰領得
예로부터 고상한 뜻은 늘그막에 생긴다오 / 古來抗志在衰遲
팽택에서 돌아가 울타리서 국화를 땄거니 / 彭澤歸來採向籬
남산의 빼어난 빛이 다시 아름다운 때로세 / 南山秀色更佳時
낙천은 본디 장수하길 바란 이가 아닌데 / 樂天不是延年者
이름과 더딤을 평론한 것이 가소롭구나 / 可笑評論早與遲
[주D-001]국화(菊花)가 …… 있으니 :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 국화를 따면서, 하염없이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팽택(彭澤)에서 …… 때로세 :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간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 국화를 따면서, 하염없이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낙천(樂天)은 …… 아닌데 : 낙 천은 백거이(白居易)의 호인데, 그의 〈객유설(客有說)〉 시에, “요즘에 어떤 이가 해상에서 돌아왔는데, 바다 산 깊은 곳에서 누대를 보았고, 누대 안의 선감엔 방 하나가 비었는데, 모두 낙천이 오길 기다린다고 하더라 하네.[近有人從海上廻海山深處見樓臺 中有仙龕虛一室 多傳此待樂天來]” 하고, 또 그의 〈답객설(答客說)〉 시에는, “나는 부처를 배울 뿐 신선을 안 배우니, 아마도 그대의 이 말은 헛소문인 듯하네. 바다 산은 본디 내가 돌아갈 곳이 아니요, 돌아가려면 응당 도솔천으로 돌아가리라.[吾學空門非學仙 恐君此說是虛傳 海山不是我歸處 歸卽應歸兜率天]” 하였으므로, 소식(蘇軾)이 해월변사(海月辯師)를 조문한 시에서 백거이의 시 내용을 들어, “낙천은 본디 봉래산의 신선이 아니요, 서방정토에 의거해 주인이 되려 했다네.[樂天不是蓬萊客 憑仗西方作主人]”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이름과 …… 것 : 백거이가 국화의 이름과 더딤을 평론한 일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원중잡영(園中雜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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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松)
솔의 마음은 우뚝이 곧은 지조를 품어서 / 松心落落抱幽貞
솜이 끊기고 쇠가 흘러도 한가지로 푸르니 / 綿折金流一樣靑
응당 괴이타 하리 주인은 조금 괜찮은데도 / 應怪主人差可者
두 귀밑이 이미 성성해짐을 막지 못한 걸 / 不禁雙鬢已星星
율(栗)
밤은 초구에 있어 일찍이 시로 노래했기에 / 栗在楚丘曾詠詩
제수와 손 접대로 쓰는 걸 세상이 다 아는데 / 用充賓祭世皆知
유독 가련타 목은은 가난하여 먹을 게 없어 / 獨憐老牧貧無物
여물기도 전에 벌써 아이들을 먹이네그려 / 未得肥時已啖兒
이(梨)
이원에서 취하여 꽃 감상하며 읊조렸어라 / 梨園醉裏賞花吟
제공들의 정시음 시풍을 내 들어봤는데 / 見說諸公正始音
늙은 목은은 한가로이 열매만 먹으면서 / 老牧閑居惟食實
시고 단 맛 섞인 가운데 세월을 보내노라 / 酸甘相雜度光陰
행(杏)
살구꽃 마을에 오던 비가 막 개고 나니 / 杏花村裏雨新晴
향기론 바람이 농부에게 불어온 걸 보겠네 / 曾見香風洒耦耕
늙어 가매 뿌연 먼지 회상하기도 괴로워라 / 老向紅塵苦回首
몇 번이나 담장 머리 두어 가지 꽃을 봤던고 / 幾看墻角數枝明
도(桃)
한번 도원에서 진나라 난리 피함으로부터 / 一自桃源得避秦
지금까지 그 누가 그 사람을 안 부러워하랴 / 至今誰不羨其人
꽃 따고 열매 먹는 건 참으로 잗단 일이요 / 採花食實眞細事
산천이 난세와 격해 있음을 기뻐할 뿐이네 / 只喜山川隔戰塵
추(楸)
가래나무는 높고 높아 반공중에 치솟아서 / 楸樹高高倚半空
봄엔 잎 피고 겨울엔 우뚝해 앞산을 굽어보네 / 春敷冬竦壓前峯
뿌리는 땅 밑의 샘 근원에 깊이 서려 있는데 / 根蟠地下泉源在
그늘은 용 비늘 얻어 바다 속으로 들어가누나 / 蔭得龍鱗入海中
[주D-001]솜이 …… 흘러도 : 보드라운 솜이 얼어서 꺾어질 정도의 혹독한 추위와 무쇠가 녹아 흐를 정도의 맹렬한 더위를 가리킨다.
[주D-002]밤은 …… 아는데 : 춘 추 시대 위 의공(衛懿公)이 적(狄)에게 멸망한 후, 새로 즉위한 문공(文公)이 초구(楚丘)로 도읍을 옮겨 궁실(宮室)을 짓고 나무를 심으며 정사를 부지런히 하므로, 그 나라 사람이 그를 찬미하여 노래하기를, “계절은 바야흐로 시월인데, 초구에 궁실을 짓고……개암나무, 밤나무, 의나무, 오동나무, 가래나무, 옻나무를 심으니, 장치 베어서 거문고와 비파를 만드리로다.[定之方中作于楚宮……樹之榛栗椅桐梓漆 爰我琴瑟]” 하였는데, 그 집전(集傳)에 의하면, 개암과 밤 이 두 가지 과실을 일러, 변두(籩豆)에 차려 놓을 만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詩經 鄘風 定之方中》
[주D-003]이원(梨園) : 당 현종(唐玄宗) 때 금원(禁苑) 안에 있던 원(園) 이름이다. 현종이 자제(子第) 300인을 선발하여 이곳에서 속악(俗樂)을 가르치고, 또 수백인의 궁녀(宮女)들로 하여금 이곳에서 가무(歌舞)와 기예(技藝)를 학습하게 하였다.
[주D-004]정시음(正始音) : 위 제왕(魏齊王) 정시(正始) 연간에 시속(時俗)이 청담(淸談)을 숭상하였으므로, 세상에서 그것을 정시풍(正始風)이라 하였고, 이어서 진(晉)의 혜강(嵇康), 완적(阮籍) 등의 시체(詩體)를 정시체(正始體)라 칭한 데서 온 말로, 음(音), 풍(風), 체(體)는 모두 같은 뜻이다.
[주D-005]한번 …… 안 부러워하랴 : 진 (晉)나라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진 효무제(晉孝武帝) 태원(太原) 연간에 무릉(武陵)의 한 어부(漁父)가 시내를 따라서 한없이 올라가다가, 갑자기 복사꽃이 어지러이 떨어진 도화림(桃花林)을 만나서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숲 끝까지 들어가 보니, 작은 산이 하나 있고 그 산속에는 널따란 토지와 민가가 있어 하나의 별천지(別天地)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이 어부를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또 음식을 대접하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의 선세(先世)에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처자(妻子)를 거느리고 이 절경(絶境)에 들어왔는데, 그 후로는 다시 바깥 세상에 나가지 않아서 마침내 바깥 사람과 서로 멀어지게 되었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6]그늘은 …… 들어가누나 : 가래나무의 그늘이 바닷물에 비침을 뜻한다. 용 비늘은 바닷물에 출렁이는 파도를 가리킨 말이다.
200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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