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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少監) 김경숙(金敬叔)에게 부쳐 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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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숙은 수많은 서적들을 모조리 읽으며 / 敬叔讀破書五車
샅샅이 찾아내느라 세월 가는 것도 잊고서 / 搜羅剔抉忘居諸
풍창 설탑 곤궁한 생활 삼십 년을 지내고 / 風窓雪榻三十載
스스로 일생을 책벌레처럼 살았다 말하네 / 自道一生如蠹魚
노사 숙유들 다 같이 감탄하며 칭찬하여라 / 老師宿儒共嘆賞
이 비서 관직 역임한 게 참 다행이로다 / 幸哉得此行祕書
한나라의 제공들이 우리 도를 보익했으되 / 漢庭諸公翼吾道
참다운 재주 걸출한 이는 오직 동중서였고 / 眞才儏出唯仲舒
중루는 천록각에서 밤에 책을 교열할 제 / 中壘校書天祿夜
태을 노인이 처음으로 그를 찾아갔었네 / 太乙老人來投初
자운은 글자만 알았고 일을 몰랐으니 / 子雲識字不識事
학문의 깊은 조예가 허황한 게 아니었네 / 學力所到非荒虛
삼국 시대 가장 뛰어난 문장은 출사표인데 / 三國文章出師表
남양의 초려는 천 년을 적적키만 하여라 / 千年寂寂南陽廬
태산북두처럼 추앙을 받은 한 이부는 / 泰山北斗韓吏部
이단을 극력 배척하고 틈 난 곳을 보충했네 / 力排異端仍補苴
구왕증소는 조송에서 으뜸을 차지했고 / 歐王曾蘇冠趙宋
중간의 작자들은 모두 적막하기만 한데 / 中間作者皆丘墟
정자 주자의 도학은 천지와 짝이 되어 / 程朱道學配天地
밝은 해와 달이 하늘에 운행하는 것 같았네 / 直揭日月行徐徐
문선 문수 송문감과 / 文選文粹宋文鑑
통전 통고는 정수함이 가득 쌓여서 / 通典通考精英儲
은미한 말 오묘한 뜻이 남김없이 드러났고 / 微辭奧義盡呈露
정밀한 감식 해박한 채택이 서로 장단을 이뤘네 / 精鑑博採相乘除
누가 알았으랴 동방에도 한 선비가 있어 / 誰知東方有一士
중년까지 왕후의 문에 출입하지 않고 / 中年不曳王門裾
문장과 전고 두 가지를 조사하여 찾아서 / 文章典故兩考索
위로는 천문 아래론 지리까지 다 탐구하여 / 上窮玄象下黃輿
산천에 구멍이 뚫리어 신기가 유통하듯 / 竅於山川神氣流
우뚝한 저 은하에 별자리가 탁 트인 듯 / 倬彼雲漢星躔疏
양지 녘에서 우는 봉황의 소리를 들은 듯 / 朝陽一鳴聞鳳凰
천자의 만 필 말이 다 준마로 일컬어지듯 / 天廐萬匹稱騊駼
풍화월로는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고서 / 風花月露束高閣
숙속포백만 민간에 가득 채워줄 줄을 / 菽粟布帛充里閭
그대는 보지 못했나 쾌헌 문정공의 / 君不見快軒文正公
문장과 도덕이 한때에 다투어 기려진 걸 / 文章道德時爭譽
또 보지 못했나 예산농은 최 졸옹의 / 又不見猊山農隱崔拙翁
기개와 높은 재주가 성대히 유여했던 걸 / 倜儻高才霈有餘
두 분의 시문 편찬도 대단히 애쓴 거였는데 / 兩家類粹亦勤苦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게 과연 어디 있는고 / 如今流傳安在歟
하늘이여 하늘이여 이 일을 어찌하리까 / 蒼天蒼天知奈何
백발의 늙은 목은은 탄식만 할 뿐이로다 / 白頭老牧徒欷歔
[주C-001]소감(少監) 김경숙(金敬叔) : 고 려 말기의 학자로 비서 소감(祕書少監)을 지낸 김구용(金九容)를 가리킨다. 경숙은 그의 자이다. 그가 일찍이 유서(類書)의 일종인 《선수집(選粹集)》과 관직(官職)의 전고(典故)에 해당하는 《주관육익(周官六翼)》을 편찬하여, 목은이 각각 서(序)를 지어 주었는데, 지금 그 서적들은 상고할 길이 없다. 목은이 《선수집》과 《주관육익》의 서를 짓고 나서 아울러 이 시를 지어 김구용에게 부쳐준 것이다.
[주D-001]동중서(董仲舒) : 한 무제(漢武帝) 때의 대유(大儒)로서 일찍이 강도왕(江都王)과 교서왕(膠西王)의 재상을 역임하였다. 그는 특히 무제에게 상주(上奏)하여 유학(儒學)을 국교(國敎)로 삼도록 했다.
[주D-002]중루(中壘)는 …… 찾아갔었네 : 한 (漢)나라 때의 학자인 유향(劉向)이 일찍이 천록각(天祿閣)에서 서적(書籍)을 교열하는데, 밤에 한 노인이 황의(黃衣)를 입고 청려장(靑藜杖)을 짚고서 왔다. 노인이 어둠 속에서 글을 외고 있던 유향을 보고는 청려장 끝에 불을 붙인 다음 유향에게 오행 홍범(五行洪範)의 글을 전해 주었다. 유향이 그의 성명을 묻자, “나는 바로 태을(太乙)의 정기(精氣)인데, 천제(天帝)께서 유씨(劉氏)의 아들 중에 박학(博學)한 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나에게 내려가 살펴보게 했다.” 하고, 품속에서 천문지도(天文地圖)의 글이 적힌 죽첩(竹牒)을 꺼내어 유향에게 주었다는 고사가 있다.
[주D-003]자운(子雲)은 …… 아니었네 : 자 운은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자인데, 그는 큰 학자로서 특히 고대 문자(古代文字)에 정통하였고, 일찍이 《주역(周易)》을 모방하여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하였고, 《논어(論語)》를 모방하여 《법언(法言)》을 저술하는 등 학문에 조예가 매우 깊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4]삼국(三國) 시대 …… 하여라 : 출 사표(出師表)는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위(魏)나라를 치려고 출병할 때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올린 글인데, 세상에 명문(名文)으로 일컬어졌다. 남양(南陽)의 초려(草廬)는 곧 제갈량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은거하던 옛집이다.
[주D-005]태산북두(泰山北斗)처럼 …… 보충했네 : 한 이부(韓吏部)는 곧 이부 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그가 죽은 뒤로 그의 언론(言論)이 크게 행해져서, 학자들이 그를 태산북두처럼 추앙하였다. 또 그의 〈진학해(進學解)〉에 의하면, “이단(異端)을 배척하고 불로(佛老)의 사상을 물리쳤으며, 유술(儒術)의 이지러진 곳을 보충하고, 성도(聖道)의 은미한 곳을 확대시켰다.”라고 하였다.
[주D-006]구왕증소(歐王曾蘇)는 …… 차지했고 : 구 왕증소는 문장(文章)이 뛰어난 당(唐)ㆍ송(宋) 팔대가(八大家) 중에 당나라의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을 제외한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 왕안석(王安石), 증공(曾鞏)과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삼부자(三父子)를 합칭한 말이고, 조송(趙宋)은 조광윤(趙匡胤)이 세운 송나라를 뜻한다.
[주D-007]문선(文選) …… 통고(通考) : 《문 선》은 주대(周代) 이후로 양(梁)나라에 이르기까지의 뛰어난 시문(詩文)들을 모아 놓은 책으로, 양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이 편찬한 것이고, 《문수(文粹)》는 곧 《당문수(唐文粹)》의 준말로, 당대(唐代)의 뛰어난 시문을 모아 놓은 책으로서, 송(宋)나라 요현(姚鉉)이 편찬한 것이며, 《송문감(宋文鑑)》은 송나라 여조겸(呂祖謙)이 칙명(勅命)을 받들어 편찬한 것으로, 송나라 일대(一代)의 뛰어난 시문을 모은 책이고, 《통전(通典)》은 당나라 두우(杜佑)가 편찬한 책으로, 식화(食貨)ㆍ선거(選擧)ㆍ직관(職官)ㆍ예(禮)ㆍ악(樂)ㆍ병(兵)ㆍ형(刑)ㆍ변방(邊防)의 팔문(八門)으로 나누어, 황제 요순(黃帝堯舜) 시대로부터 당 현종(唐玄宗) 때에 이르기까지의 정전(政典)을 기록한 것이며, 《통고》는 《문헌통고(文獻通考)》의 약칭으로, 원(元)나라 마단림(馬端臨)이 편찬한 책으로서, 두우의 《통전》을 다시 증보(增補)하여 송대(宋代)에 이르기까지의 제도(制度), 문헌(文獻) 등의 연혁을 기술한 것이다.
[주D-008]풍화월로(風花月露) :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소재인 사시(四時)의 경치를 말한 것으로써, 즉 화려하게 꾸민 시문(詩文)을 비유한다.
[주D-009]숙속포백(菽粟布帛) : 의식(衣食)의 주요 물품으로서, 이것은 사람마다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전하여 극히 평범하면서도 대단히 유익한 사물을 비유한다.
[주D-010]그대는 …… 기려진 걸 : 쾌 헌(快軒)은 고려 말기의 학자이며 명신(名臣)인 김태현(金台鉉)의 호이다. 그는 벼슬이 중찬(中贊)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그가 일찍이 《동국문감(東國文鑑)》을 편찬했는데, 우리나라 고대(古代)로부터 고려 말기에 이르는 제가(諸家)의 시문(詩文)을 수록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시문을 수록한 책은 이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주D-011]또 …… 유여했던 걸 : 예 산농은(猊山農隱)과 졸옹(拙翁)은 모두 고려 말기의 문장가인 최해(崔瀣)의 호이다. 그는 특히 성품이 강직하기로 명성이 높았으며, 벼슬은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이르렀다. 일찍이 고려 명현(名賢)들의 시문을 뽑아 《동인지문(東人之文)》 25권을 편찬했다.
초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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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에 추위가 갑자기 이르니 / 冬初寒乍至
한밤중에 썰렁하여 잠 못 이루네 / 夜半冷無眠
바람 이슬은 삼경 달빛 아래요 / 風露三更月
강산은 만리 먼 하늘가이로다 / 江山萬里天
돌아가려니 마음은 절로 괴로운데 / 欲歸心自苦
마주한 그림자는 가엾기만 하구나 / 相對影堪憐
누가 다시 이 적적함을 같이 해줄꼬 / 誰復共牢落
홀로 읊자니 신선 될까 위태롭네 / 獨吟危得仙
또 여덟 구를 지어서 비서(祕書)에게 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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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옛날 상국 관광차 원나라에 있을 때 / 我昔觀光在帝都
매양 유자들을 따라 큰 선비들을 뵈었는데 / 每從縫掖謁鴻儒
집집마다 문집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 家家文集堆如岳
곳곳마다 연구 시는 구슬이 달린 듯하여 / 處處詩聯走似珠
쳐다봐도 엿볼 수 없어 걱정은 눈에 가득하고 / 盱矣莫窺愁滿眼
움키려도 되지 않아 땀은 등 가득 흘리었네 / 掬之不得汗流膚
후일에 만일 비서에게 이것을 보여 준다면 / 祕書異日如相示
다행함이 늙은 내게 있었음을 비로소 알 걸세 / 天幸方知在老夫
기린을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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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발굽 소꼬리에 또 사슴의 몸뚱이로 / 馬蹄牛尾又麕身
천지와 함께 유행하는 하나의 인 자로다 / 上下同流一箇仁
그 당시에 서상이 잡은 게 아니었다면 / 不是鉏商當日獲
반드시 왕 자 위에다 춘 자를 썼으리라 / 定知王上必書春
우리 도가 공자의 몸에까지 전해 왔는데 / 斯文傳至仲尼身
국맥은 어찌하여 마비된 것 같았던고 / 國脈胡然似不仁
노나라 재상 직무 대행한 지 석 달 만에 / 相魯攝行三月耳
동자 관자 욕기의 봄을 벌써 돌이켰는 걸 / 已回童冠浴沂春
[주D-001]말발굽 …… 자로다 : 기 린은 성왕(聖王)의 가서(嘉瑞)로 나타나는 인수(仁獸)인데, 그 생김새는 발굽은 말과 같고 꼬리는 소와 같으며 몸은 사슴과 같다고 한다. 천지(天地)와 함께 유행한다는 것은 곧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군자는 지나는 곳에 변화하며, 마음을 둔 곳에 신통함이 있는지라, 위아래 천지의 조화와 함께 운행한다.[夫君子 所過者化 所存者神 上下與天地同流]”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盡心上》
[주D-002]그 당시에 …… 썼으리라 : 서 상(鉏商)은 춘추 시대 노(魯)나라 숙손씨(叔孫氏)의 하인이다. 그가 애공(哀公) 14년 봄에 서쪽 대야(大野)로 나무하러 갔다가 기린을 잡았으므로, 공자(孔子)가 《춘추(春秋)》에서 “14년 봄에 서쪽으로 사냥하여 기린을 얻다.[十有四年春 王西狩獲麟]”라고 쓰지 않고, 그냥 “14년 봄에 서쪽으로 사냥하여 기린을 얻다.[十有四年春 王狩獲麟]”라고만 기록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春秋左傳 哀公14年》
[주D-003]노(魯)나라 …… 만에 : 노 정공(魯定公) 때에 공자가 대사구(大司寇)로 재상의 직무를 대행하여 정사에 참여한 지 3개월 만에 노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는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주D-004]동자(童子) …… 돌이켰는 걸 : 공 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해 보라고 했을 때, 증점(曾點)이 마침 비파를 타다가 쟁그렁 소리와 함께 비파를 놓고 일어나서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5, 6인,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공자의 교화를 받은 증점이 성인의 기상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論語 先進》
신륵사(神勒寺)에 놀러 가려 했다가 가지 못하고 인하여 단운(短韻)의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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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봉우리는 긴 강의 밖이요 / 遠峀長江外
성긴 소나무는 푸른 돌 곁이로다 / 疏松翠石傍
사찰은 신선의 경계가 열리었고 / 招提開福地
보제의 영당은 환하게 트이었네 / 普濟敞眞堂
현령은 자주 홀을 허리에 꽂고 / 縣令頻腰笏
산승은 홀로 담장을 향하누나 / 山僧獨面墻
어떻게 하면 거룻배를 찾아가서 / 何當尋野艇
광활함 속에 맑은 휘파람 불어 볼꼬 / 淸嘯倚蒼茫
[주D-001]보제(普濟) : 고려 말기에 보제 존자(普濟尊者)라는 사호(賜號)를 받은 고승(高僧) 혜근(惠勤)을 가리키는데, 그의 호는 나옹(懶翁)이며,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入寂)하였다.
[주D-002]현령(縣令)은 …… 꽂고 : 당 (唐)나라 때 하역우(何易于)가 익창 영(益昌令)으로 있을 적에 자사(刺史) 최박(崔朴)이 봄놀이를 하기 위해 빈객들과 함께 배를 타고서 백성들을 불러 배를 끌게 하려고 하자, 하역우가 홀(笏)을 허리에 꽂고 몸소 배를 끌므로, 자사가 놀라면서 그 까닭을 물으니, 하역우가 말하기를, “봄을 당하여 백성들은 논밭을 갈고 누에도 길러야 하므로 그들을 부릴 수가 없고, 현령은 한가하니 의당 그 노고를 대신해야겠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산승(山僧)은 …… 향하누나 : 승려가 면벽(面壁)하고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수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오 팔영(東吳八詠)은 심휴문(沈休文)이 지은 것이다. 그리고 송복고(宋復古)가 팔경(八景)을 그림으로 그린 사실은 《동파집(東坡集)》에 실려 있다. 나는 젊어서 그 시를 읽었으나 잊고 있었는데, 지금 병을 앓은 나머지 몹시 답답증이 나서 우연히 《동파시주(東坡詩註)》를 펼쳐 보다가 인하여 동오의 흥취를 일으켜서 팔영 절구(絶句)를 짓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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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만애(洞庭晚靄)
한 점의 군산에 저녁놀이 붉게 비치어 / 一點君山夕照紅
오초를 몽땅 삼켜라 그 형세 무궁한데 / 闊呑吳楚勢無窮
긴 바람이 황혼의 달을 불어 떠올리니 / 長風吹上黃昏月
깁 바른 등롱 흐릿한 속의 촛불 같구려 / 銀燭紗籠暗淡中
여부추운(廬阜秋雲)
일만 구렁 수많은 숲에 가을 기운 높으니 / 萬壑千林秋氣高
무성한 푸른 산빛이 아득히 바라보이네 / 葱蘢空翠望中遙
흰 구름 나는 곳 여기가 바로 선경이라 / 白雲飛處是仙境
퉁소 부는 신선 모습 어슴푸레 보이는 듯 / 髣髴羽人吹洞簫
평전안락(平田雁落)
까마득히 편평한 밭 다 끝나가는 곳에 / 漠漠平田欲盡頭
누런 벼 반쯤 거둔 이미 깊은 가을인데 / 黃雲半捲已深秋
바람 따라 내려앉은 기럭 소리 문득 들려라 / 忽聞新雁逐風落
긴 젓대 한 소리에 사람은 누각 기대었네 / 長笛一聲人倚樓
활포범귀(闊浦帆歸)
아스라한 두 언덕 나는 새도 더디어라 / 兩岸茫茫鳥去遲
가벼운 배 석양 아래 돌아오는 때로세 / 輕舟斜日欲歸時
한바탕 긴 바람에 돛이 막 팽팽해질 제 / 長風一陣帆初飽
봉창 밑 고상한 사람 시 읊기 꼭 좋겠네 / 蓬底高人恰得詩
우암강촌(雨暗江村)
하늘 낮고 산은 멀어 숲이 구름에 걸려라 / 天低山遠樹浮雲
이때가 정히 강 하늘의 황혼 무렵이로세 / 政是江天日欲曛
범이 포효하고 원숭이 울어 시름이 끝없어라 / 虎嘯猿啼愁不盡
쫓겨난 신하 시 읊는 이는 님 생각 사무치네 / 逐臣騷客苦思君
설장산록(雪藏山麓)
일천 산에 나는 새 멎고 차가운 빛 번쩍여라 / 千山鳥絶冷搖光
백옥처럼 흰 연꽃 모양에 저녁 햇살 비칠 제 / 白玉芙蓉照夕陽
갑자기 바람 타고 들려오는 저 종소리여 / 忽有鐘聲落風外
모를레라 그 어드메가 바로 승방이던고 / 不知何處是僧房
천암고백(泉巖古柏)
무수한 바람 천둥에 어렵스레 자란 잣나무 / 柏生艱苦費風霆
샘물가 바위 틈새 땅의 신령 의탁하였네 / 泉畔巖間托地靈
만고에 모를레라 그 누구가 심은 것인지 / 萬古不知誰所植
우묘의 한 그루 푸른 것이 유독 어여쁘구려 / 獨憐禹廟一株靑
석안고송(石岸孤松)
무너진 바위 기운 언덕에 우뚝이 꽂혔는데 / 石崩岸側挿崔嵬
자욱한 안개는 언뜻 끼었다 걷혔다 하누나 / 煙日溟濛乍合開
만년토록 자라진 않고 뿌리 절로 튼튼해라 / 萬歲不長根自固
가지 치고 잎사귀 따러 그 누가 찾아오리 / 尋枝摘葉有誰來
[주C-001]동오 팔영(東吳八詠)은 …… 있다 : 심 휴문은 양(梁)나라 때 문장가인 심약(沈約)으로, 휴문은 그의 자이다. 송복고는 송(宋)나라 때 화가인 송적(宋迪)으로, 복고는 그의 자이다. 동오 팔영은 심약이 동양 태수(東陽太守)로 있으면서 원창루(元暢樓)를 세우고 아울러 팔영시(八詠詩)를 지은 데서 온 말인데, 그 제목은 바로 등대망추월(登臺望秋月), 회포림동풍(會圃臨東風), 세모민쇠초(歲暮愍衰草), 상래비락동(霜來悲落桐), 석행문야학(夕行聞夜鶴), 신정청효홍(晨征聽曉鴻), 해패거조시(解佩去朝市), 피갈수산동(被褐守山東)이다. 그리고 송적이 그린 팔경도(八景圖)는 여창조(呂昌朝)가 소장한 것으로, 그 제목은 곧 동정만애(洞庭晚靄), 여부추운(廬阜秋雲), 평전안락(平田雁落), 활포범귀(闊浦帆歸), 우암강촌(雨暗江村), 설장산록(雪藏山麓), 천암고백(泉巖古柏), 석안고송(石岸孤松)이다. 소식(蘇軾)이 가주 태수(嘉州太守)로 나가는 여창조를 보낸 시에, “삼도의 꿈으로 익주 태수 되는 건 부럽지 않고, 팔영을 가지고 동오 팔영 잇기를 바라노라.[不羨三刀夢蜀都 聊將八詠繼東吳]” 하였다. 《東坡集 卷31》
[주D-001]군산(君山) : 동정호(洞定湖) 가운데 있는 산 이름으로, 상군(湘君)이 노니는 곳이라 하여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주D-002]바람 따라 …… 기대었네 : 당(唐)나라 때 시인 조하(趙嘏)의 〈조추(早秋)〉 시에, “몇 점 남은 별 아래 기러기는 변새를 횡단하고, 긴 젓대 한 소리에 사람은 누각에 기대었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우묘(禹廟)의 한 그루 푸른 것이 : 우 임금 사당에 잣나무가 있었으므로 한 말이다. 육유(陸游)의 〈우사(禹祠)〉 시에, “오래된 등나무는 가지가 규룡 같고, 큰 잣나무는 배를 파낸 듯하구나.[壽藤枝如虬 巨柏腹若刳]” 하였다. 《劍南詩藁 卷22》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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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만 길의 티끌 아득하기만 해라 / 回首茫茫萬丈塵
한 구역의 산수가 몸 편히 하기에 넉넉하네 / 一區林壑足安身
시골 중은 매양 와서 시 얻는 데 익숙하고 / 野僧每向求詩熟
산새는 으레 먹이 얻어먹기에 길들었네 / 山鳥應緣得食馴
팽택은 거문고 서책에 오만함 부쳤거니와 / 彭澤琴書曾寄傲
소릉은 토란 밤 있거니 어찌 전혀 가난했으랴 / 少陵芋栗豈全貧
후일에 몹시도 유고를 불태우고자 하리 / 他年甚欲焚遺草
어찌 태평성대에 대인부를 지으려 하랴 / 肯向平時賦大人
밤이 깊자 처자식은 단란히 모여 앉았는데 / 夜深妻子坐成團
백발의 나만 홀로 행로난을 읊조리노니 / 白首獨吟行路難
난리 뒤론 대경이 마치 대식같이 되었고 / 亂後代耕如代食
병중엔 사퇴 구함이 마치 벼슬 구한 것 같네 / 病中求退似求官
구름 걸친 용수산은 일천 겹이나 되는데 / 雲橫龍峀卽千疊
여강의 물은 지금 몇 장대나 줄었는고 / 水落驪江今幾竿
출처는 예로부터 구차히 하기 어렵나니 / 出處由來難草草
마음이 어찌 잠시나마 편할 수가 있으랴 / 寸心安得暫時寬
[주D-001]팽택(彭澤)은 …… 부쳤거니와 :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지낸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남쪽 창에 기대어 방종한 마음 부치다.……거문고와 서책 즐기어 근심을 달래다.[倚南窓以寄傲……樂琴書以消憂]”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소릉(少陵)은 …… 가난했으랴 : 소 릉은 두보(杜甫)의 호인데, 그의 〈남린(南鄰)〉 시에, “금리 선생은 오각건을 머리에 쓰고, 동산에서 토란과 밤 거두니 전혀 가난치만은 않네. 빈객을 자주 보는 아이들은 좋아라 하고, 뜰에서 먹이 얻어먹는 새들은 길이 들었네.[錦里先生烏角巾園收芋栗不全貧 慣看賓客兒童喜 得食堦除鳥雀馴]”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集卷9》
[주D-003]후일에 …… 하랴 : 한 (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무제(武帝)를 위해 대인부(大人賦)를 지어 바쳤고, 또 임종(臨終) 직전에는 〈봉선문(封禪文)〉을 지어 놓고 천자(天子)의 사자(使者)가 오면 이것을 바치도록 유언까지 남겼다. 대인부는 무제가 신선(神仙)을 좋아하는 것을 간(諫)한 것이고, 〈봉선문〉은 천자의 봉선(封禪)에 관한 일을 기록한 글이다. 뒤에 송(宋)나라의 처사(處士) 임포(林逋)가 그의 임종시(臨終詩)에서 사마상여의 저서(著書)를 기롱하는 뜻으로, “후일 무릉에 유고를 구하러 오거든, 일찍이 봉선문 안 지은 게 오히려 기쁘구나.[茂陵他日求遺稿 猶喜曾無封禪書]” 한 데서 온 말이다. 무릉은 바로 사마상여의 고향이다.
[주D-004]행로난(行路難) : 악 부 가사(樂府歌辭)의 이름으로, 처세(處世)하기 어려움을 비유한 내용이다. 일찍이 진(晉)나라 포조(鮑照)가 19수(首)를 지었고, 그 후로는 당(唐)나라 이백(李白) 등이 이것을 많이 모방하여 지었는데, 그중에 이백의 작품이 가장 뛰어났다.
[주D-005]대경(代耕) : 모 든 벼슬아치의 녹봉(祿俸)을 정함에 있어 각 등급에 따라 각각 농부(農夫)의 경지(耕地)를 표준으로 삼아서 고하(高下)를 정해 주는 것이다. 예컨대, 제후(諸侯)의 하사(下士)는 상농부(上農夫)에 비등하므로 그의 녹봉은 상농부에 대신할 만큼 주고, 중사(中士)는 하사보다 배(倍)를 주는 등, 이는 곧 벼슬아치를 의미하는 말이다. 《禮記 王制》
[주D-006]대식(代食) : 세상이 어지러움으로 인하여 군자(君子)가 벼슬하지 않고 물러나서 손수 농사를 지어 녹봉 대신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가리킨다. 《詩經 大雅 桑柔》
병중에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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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하염없이 장대한 뜻은 사라지고 / 病裏無端壯志消
머리 가득 쇠한 백발은 근래에 시든 걸세 / 滿頭衰白近來凋
강산 어느 곳에서 참다운 은자를 찾을꼬 / 江山何處尋眞隱
벼슬하던 당년엔 조참 못 한 게 기억나네 / 袍笏當年記嬾朝
거공이 짝 이룸은 비루하게 여기거니와 / 自鄙蚷蛩成對偶
붕새와 메추리가 함께 소요함은 누가 알랴 / 誰知鵬鷃共逍遙
시를 읊는대서 꼭 다 잊어버리진 못 하지만 / 吟詩未必皆忘却
깊은 회포 써내서 조롱이나 해명코자 하노라 / 寫出幽懷欲解嘲
[주D-001]조참(朝參) 못 한 게 : 특히 벼슬아치가 숙취(宿醉)로 인해 조정(朝廷)에 나가지 못한 것을 말한다.
[주D-002]거공(蚷蛩)이 짝 이룸 : 북 방(北方)에 있는 공공거허(蛩蛩巨虛)라는 짐승은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고, 궤(蹷)라는 짐승은 앞발은 짧고 뒷발은 길어서 잘 달리지 못하므로, 궤가 항상 공공거허에게 감초(甘草)를 뜯어다 먹이고 위급한 때를 당하면 공공거허의 등에 업혀 달아난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서로 도와 의존하는 것을 비유한다.
[주D-003]붕새와 …… 소요함 : 《장 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의하면, 붕(鵬)이란 새는 등은 태산(泰山)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아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나 올라가서야 남쪽 바다로 가는데, 메추리는 붕새를 보고 비웃기를, “저것은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나는 뛰어올라 봤자 두어 길도 못 올라가서 도로 내려와 쑥대밭 사이에서 빙빙 돌 뿐인데, 이것도 나에게는 최고로 나는 것이다.”고 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우 사재(禹四宰)에게 받들어 올리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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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비탈 깊은 곳에 늙은 평장사 있으니 / 北崖深處老平章
세월이 쉴 새 없이 흐르는 녹야당이로다 / 歲月崢嶸綠野堂
필마로 왕래하노라면 몸은 그림 같을 게고 / 匹馬往來身似畫
두 노인이 담소하면 귀밑은 서릿빛 같으리 / 兩翁談笑鬢如霜
시 읊는 상탑 위엔 푸른 산빛이 가로지르고 / 吟詩榻上山橫翠
술 마주한 처마 앞엔 노란 국화가 널리었네 / 對酒簷前菊散黃
동부의 옛 놀이가 한바탕 꿈만 같은데 / 東府舊遊如一夢
아스라한 창오엔 또 석양이 비끼었구려 / 蒼梧渺渺又斜陽
집터 잡던 당년에 서로 가장 친했었고 / 卜宅當年最見親
묘당에선 또한 높은 자리 가까이 있었네 / 廟堂仍忝接芳茵
외로운 버들 골짝은 남쪽 마을을 이루었고 / 孤楊洞壑成南里
큰 들판 구름 연기는 북쪽 이웃을 옹위하네 / 大畝雲煙拱北鄰
지팡이 끌며 손자 볼 땐 촌노인과 똑같고 / 拖杖携兒同野老
채찍 들고 말을 타면 바로 벼슬아치일세 / 揚鞭騎馬卽官人
베개 위에 쓰러져 세상일 잊고 자노라니 / 頹然就枕忘塵事
꿈속에 닭소리 들려라 어느덧 새벽이로세 / 夢裏鷄聲已達晨
[주C-001]우 사재(禹四宰) :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른 우제(禹磾)를 가리킨다.
[주D-001]녹야당(綠野堂) : 당(唐)나라 때의 명상(名相) 배도(裴度)가 벼슬을 그만두고 낙양(洛陽)에 퇴거(退居)하면서 오교(午橋)에 지은 별장 이름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퇴관(退官)한 재상의 처소로 쓰인 것이다.
[주D-002]창오(蒼梧) : 순(舜) 임금이 남쪽으로 순수(巡狩)하다가 창오의 들에서 붕어하여 이곳에 장사를 지냈던 데서, 전하여 돌아간 임금의 능소(陵所)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공민왕(恭愍王)의 현릉(玄陵)을 가리킨다.
영해(寧海)의 김 좌윤(金左尹)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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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은 고목 울창한 산이 깊은 곳이요 / 甫城古木山深處
영해엔 푸른 물결에 해가 돋는 때로다 / 寧海蒼波日出時
비단 주머니 속에 풍광을 다 주워 담거든 / 拾盡風光錦囊底
혹 병든 아우와 술잔을 함께 기울여 줄는지 / 倘容病弟共傾卮
[주D-001]보성(甫城) : 영해(寧海)에 인접해 있는 진보(眞寶)의 고호(古號)이다.
[주D-002]비단 …… 담거든 : 당(唐)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명승지를 구경하면서 좋은 시구를 얻을 때마다 써서 해노(奚奴)가 들고 다니던 비단 주머니에 넣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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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늙은이 시는 문장을 못 이루는데도 / 牧翁詩語不成章
시골 중은 시를 구하러 곧장 당을 오르네 / 野衲來求直上堂
눈은 청산으로 더불어 경계가 합해지는데 / 眼與靑山交境界
몸은 서릿바람에 떠는 푸른 잣나무 같구려 / 身如翠柏戰風霜
매양 주객을 따라 큰 술잔 함께 마셨거니와 / 每從酒客同浮白
천조에서 첩황 검열한 일도 기억이 나네 / 尙記天曹檢貼黃
늙어가며 비로소 감자 먹을 줄을 알아서 / 老去方知啖甘蔗
날마다 처마 밑에서 아침 햇살을 쬐노라 / 茅簷日日負朝陽
병중에 왕래한 이는 아주 다정한 사람이라 / 病中來往是情親
썰렁히 앉아라 자리에 토하도록 취할 길 없네 / 冷坐無由醉吐茵
감호의 달밤 뱃놀이는 자주 꿈속에 드는데 / 月艇鑑湖頻入夢
팽택의 국화 울타리는 유독 이웃이 없구려 / 菊籬彭澤獨無鄰
예로부터 큰 배는 제자백가를 담았거니와 / 由來大腹容諸子
어찌 요망한 맘이 정인에 접근할 수 있으랴 / 豈有妖情近正人
백 년 지낼 궁벽한 땅 자리 잡아 사노라니 / 占得百年幽僻地
창 가득 아침 햇살이 맑은 새벽을 비춰주네 / 滿窓初日照淸晨
[주D-001]첩황(貼黃) : 당 나라 때 조서(詔書)를 고칠 데가 있으면 황지(黃紙)를 첨부하여 정정했던 것을 이르는데, 후대에는 상소문(上疏文) 등의 요지(要旨)를 황지에 별도로 기록하여 그 문서(文書)의 끝에 붙여서 임금이 보기에 편리하도록 한 것을 말하기도 한다.
[주D-002]감자(甘蔗) …… 알아서 : 감 자는 사탕수수인데, 진(晉)나라 때 고개지(顧愷之)가 감자를 먹을 때 꼬리 부분부터 먼저 먹으므로, 혹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점차 가경으로 들어가기 위함이다.[漸入佳境]”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문장이나 혹은 기타 사물에 있어 흥미가 점차 깊어짐을 의미한다.
[주D-003]처마 …… 쬐노라 : 옛 날 송(宋)나라의 한 농부가 항상 누더기옷을 걸치고 어렵게 겨울을 지내고 나서, 봄에 햇살이 따뜻해지자, 스스로 햇살을 쬐면서 자기 아내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햇살을 쬐는 따듯함을 아무도 알 자가 없으리니, 이것을 우리 임금님에게 바친다면 큰 상(賞)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임금을 향하는 충심(忠心)의 비유로 쓰인다.
[주D-004]자리에 토하도록 취할 길 : 한(漢)나라 때 승상 병길(丙吉)의 마부(馬夫)가 일찍이 병길을 수행하여 나갔다가 술을 마시고 잔뜩 취해 승상의 수레 위에다 구토를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술 취한 뒤에 주사 부리는 것을 뜻한다.
[주D-005]감호(鑑湖) : 경호(鏡湖)와 같은 말로, 소흥현(紹興縣)에 있는 호수 이름인데, 당 현종(唐玄宗) 때 비서감(祕書監) 하지장(賀知章)이 사직하고 돌아가자, 현종이 그에게 경호 한 굽이를 하사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팽택(彭澤)의 국화 울타리 : 팽택 영(彭澤令)을 지낸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면서, 하염없이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목면포(木綿布)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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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가 은하수의 하늘 문장을 잘라내어 / 銀河織女抉天章
옷 지어 한림학사 입히니 옥당이 빛나네 / 衣被群仙耀玉堂
화려한 비단옷은 그 누구의 세상이었나 / 重錦輕羅誰歲月
굵은 무명옷은 나의 청결한 생활이로세 / 麤繒大布我氷霜
시름겨이 거울 보아라 머리털은 희어졌고 / 愁臨曉鏡頭衰白
조복 입을 희망 없어라 얼굴은 수척하네 / 望絶朝衫面瘦黃
일찍이 강동에서 한 장사꾼을 만났는데 / 曾向江東逢賈客
석양에 이르도록 누워서 퉁소를 불었다네 / 臥吹簫管到斜陽
섭현 공소와는 가장 다정한 사이였기에 / 葉縣孔昭情最親
한상에 밥 먹고 한자리에 앉았었으니 / 食同几案坐同茵
경호와 진포는 서로 다른 물이 아니었고 / 鏡湖鎭浦非他水
월정과 풍장은 가까운 이웃만 같았었네 / 月艇風檣似近鄰
나에겐 바다 상인 통해서 모시 뿌리 얻어갔고 / 丐我苧根煩海賈
그대에겐 향인을 통해 목화 열매 보내게 했지 / 送君綿實托鄕人
분명히 이런 말들을 아직도 기억할 텐데 / 分明此語猶能記
삼십여 년 세월이 바로 어제만 같네그려 / 三十餘年似隔晨
[주D-001]직녀(織女)가 …… 잘라내어 : 소 식(蘇軾)의 〈한문공묘비(韓文公廟碑)〉에, “공이 옛날 용을 타고 백운향에 노닐면서, 손으로 은하수 긁어 하늘 문장 잘라내니, 직녀가 공을 위해 구름 치마를 짰도다.[公昔騎龍白雲鄕 手抉雲漢分天章 天孫爲織雲錦裳]”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일찍이 …… 불었다네 : 소 식(蘇軾)의 〈금산몽중작(金山夢中作)〉 시에, “강동의 장사꾼은 목면구를 입었는데, 모이고 흩어지는 금산엔 누각에 달빛 가득하네. 한밤중에 조수가 오고 바람도 많아지매, 누워서 퉁소를 불며 양주까지 가는구나.[江東賈客木綿裘 會散金山月滿樓 在半潮來風又熟 臥吹簫管到揚州]”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集 卷24》
[주D-003]섭현 공소(葉縣孔昭) : 목 은의 시 중에 〈섭공소와 함께 짓다[與葉孔昭同賦]〉라는 제목의 시가 여러 편이 있는데, 섭공소는 원(元)나라 사람으로, 목은이 원나라에서 벼슬할 때에 서로 다정히 지냈던 사람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벼슬이 염성 윤(鹽城尹)에 이르고 인공후(仁功侯)에 봉해진 섭항(葉恒)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한 섭현(葉縣)의 현은 현 이름인지, 이름 자인지 자세하지 않다. 《牧隱集 卷2》
[주D-004]경호(鏡湖)와 …… 같았었네 : 경호와 월정(月艇)은 중국에 있는 경치를 말한 것이고, 진포(鎭浦)와 풍장(風檣)은 목은의 고향인 한산(韓山)에 있는 경치를 말한 것으로, 원나라의 섭공소와 서로 매우 친근하게 지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느낌이 있어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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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창 깨끗한 책상은 먼지 하나도 없고 / 明窓淨几絶纖塵
앓고 난 몸은 뼛속까지 맑고 한가하여라 / 徹骨淸閑病後身
전토를 내려달라고 총재를 번거롭힌 건 / 乞賜土田煩冡宰
후손에게 공신임을 알게 하게 위함이리 / 欲令苗裔識功臣
문장 솜씨는 움츠려 내 졸렬함 지키고요 / 文章縮手抱吾拙
작록엔 관심 없어 내 가난함 편히 여기네 / 爵祿無心安我貧
재주 빌고 궁귀 보낸 일이 다 적막하기만 한데 / 乞巧送窮俱寂寞
어찌 남 따라서 명리를 취하려고 할 것 있나 / 何須作計更隨人
저 높고 큰 태산과 미세한 티끌 가운데 / 巍巍喬嶽與微塵
형질이 있는 건 본래 오직 이 한 몸이라 / 有質由來是一身
이미 관저를 보아서 부부 관계를 알았고 / 已向關雎識夫婦
문득 개미에게서 군신의 의리를 체득했네 / 却從行蟻體君臣
베 이불로 평진의 거짓됨은 더럽게 여기고요 / 布衾自鄙平津詐
관옥으로 곡역의 가난함은 가련히 여겼노라 / 冠玉初憐曲逆貧
목욕하고 바람 쐬고 읊는 걸 점검하는 곳에 / 點檢浴沂風詠處
쟁그랑하고 비파 놓던 이는 그 누구였던고 / 鏗然舍瑟是何人
[주D-001]재주 빌고 : 옛 풍속에 칠석날 밤이면 부녀자들이 견우(牽牛)와 직녀(織女) 두 별에게 길쌈과 바느질 솜씨를 늘게 해 달라고 기원하던 의식을 가리킨다. 당(唐)나라 때 유종원(柳宗元)이 일직이 자신의 모신책(謀身策)에 대한 졸렬함을 버리고자 견우, 직녀에게 기원한 결과, 직녀가 나타나서 고하기를, “하늘이 한번 명한 바이니, 중간에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하자, 유종원이 스스로 말하기를, “졸렬함을 종신토록 지키다가 그대로 죽은들 무엇을 상관하랴.[抱拙終身以死誰惕]” 한 데서 온 말이다. 《柳河東集 卷18 乞巧文》
[주D-002]궁귀(窮鬼) 보낸 일 : 한유(韓愈)가 일찍이 항상 자기를 괴롭히는 다섯 궁귀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송궁문(送窮文)을 지은 데서 온 말이다. 그 다섯 궁귀란 바로 지궁(智窮), 학궁(學窮), 문궁(文窮), 명궁(命窮), 교궁(交窮)이다.
[주D-003]이미 …… 알았고 : 관 저(關雎)는 《시경(詩經)》 주남(周南)의 편명으로, 관관저구(關關雎鳩)의 준말인데, 저구라는 물새는 각각 정해진 짝이 있어 서로 난잡하지 않고, 자웅(雌雄)이 항상 나란히 다니면서도 서로 친압하지 않는다 하여, 이를 부부유별(夫婦有別)에 비유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문득 …… 체득했네 : 남 당(南唐) 담초(譚峭)의 《화서(化書)》에 의하면, “개미[蟻]에게는 임금이 있어, 주먹만한 집에서 뭇 개미와 함께 거처하고, 한 톨의 먹을 것도 뭇 개미와 함께 저축하며, 한 벌레의 고기도 뭇 개미와 함께 에워싼다.”고 하여, 이를 군신유의(君臣有義)에 비유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베 이불로 평진의 거짓됨 : 본 디 제(齊)나라 사람으로 한 무제(漢武帝) 때 승상(丞相)이 되고 평진후(平津侯)에 봉해진 공손홍(公孫弘)이 베 이불을 덮은 데 대하여, 직신(直臣) 급암(汲黯)이 일찍이 임금 앞에서 그를 힐난하며 말하기를, “공손홍은 삼공(三公) 지위에 올라 봉록(俸祿)이 매우 많은데도 베 이불을 덮으니, 그것은 바로 거짓된 짓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58 公孫弘傳》
[주D-006]관옥(冠玉)으로 …… 여겼노라 : 한 고조(漢高祖)의 공신(功臣)으로 곡역후(曲逆侯)에 봉해진 진평(陳平)이 소싯적에 집이 매우 가난하여 어렵게 지내다가, 뒤에 위무지(魏無知)의 천거로 한왕(漢王)을 한번 만난 결과, 한왕으로부터 특별한 총애를 받게 되었다. 이에 주발(周勃), 관영(灌嬰) 등이 진평을 참소하여 말하기를, “진평은 비록 미장부(美丈夫)이기는 하나, 관(冠)에 옥(玉)을 장식한 것과 같아서 속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40 陳平傳》
[주D-007]목욕하고 …… 누구였던고 : 공 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해 보라고 했을 때, 증점(曾點)이 마침 비파를 타다가 쟁그렁 소리와 함께 비파를 놓고 일어나서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5, 6인,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공자의 교화를 받은 증점이 성인의 기상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論語 先進》
최재(崔宰) 선생의 죽음을 곡(哭)하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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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고한 가풍은 내력이 구원하고 / 淸苦家風遠
소통하는 정사엔 법도가 있었네 / 疏通典則存
명성은 젊어서 이미 높았거니와 / 名聲少已重
말기운은 늙을수록 온화해졌지 / 詞氣老來溫
추부에서 홀을 되돌리자마자 / 樞府纔還笏
고향에 내려가 두문불출하였네 / 桑鄕已杜門
돌아보니 천지는 넓기만 한데 / 回頭天地闊
해 떨어져 온 산천이 캄캄하구나 / 日落萬山昏
상당엔 아지랑이가 뚝뚝 듣고 / 上黨嵐光滴
완산엔 바다 장기가 엄습하여라 / 完山海氣侵
삶이 있는 건 비록 천명을 믿지만 / 有生雖信命
죽음에 당해선 맘을 편히 가져야지 / 當死要安心
칠십 년 하고도 칠 년을 지났거니 / 七十伊過七
어찌 심상하게 찾아볼 수 있으랴 / 尋常詎可尋
세 가지 달존을 스스로 갖추어 / 達尊三自具
풍채가 유림 가운데 으뜸이었네 / 風采冠儒林
말을 타고는 산중엘 들어갔었고 / 騎馬山中去
사람 찾아선 바닷가로 돌아갔으니 / 尋人海上回
광대한 푸른 물결을 임해도 보았고 / 蒼波臨浩瀚
우뚝한 푸른 절벽을 오르기도 했네 / 翠壁陟崔嵬
서로 악수한 건 덧없는 인생의 낙이요 / 握手浮生樂
간장이 꺾이는 건 영결의 슬픔이로다 / 摧肝永訣哀
국도 밖의 아스라한 도로에는 / 遙遙關外路
묵은 자취에 벌써 이끼가 끼었네 / 陳迹已莓苔
[주C-001]최재(崔宰) :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전리 판서(典理判書)에 이르고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졌다.
[주D-001]소통하는 …… 있었네 : 두보(杜甫)가 두 시어사(竇侍御史)에게 지어준 〈입주행(入奏行)〉에, “정사는 상하를 소통시킴이 법도에 맞았고, 친척은 호귀들과 연결되어 문사와 친하네.[政用疏通合典則 戚聯豪貴耽文儒]”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홀(笏)을 되돌리자마자 : 당 고종(唐高宗)이 무측천(武則天)을 후(后)로 삼으려 할 때, 저수량(褚遂良)이 극력 간(諫)했으나 듣지 않자, 궁전 섬돌에 홀을 내려놓고 머리를 땅에 찧어 피를 흘리면서 말하기를, “폐하(陛下)께 이 홀을 돌려드립니다.” 하고 그대로 떠나 버렸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원칙을 굳게 지켜서 벼슬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3]세 가지 달존(達尊) : 달존은 천하 사람이 다 같이 높이는 것을 이르는 말로, 세 가지 달존이란 곧 작위[爵]와 나이[齒], 덕(德)을 가리킨다. 《孟子公孫丑下》
책을 열람하는 석상(席上)에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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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사가 분부 전하여 비서를 검토하게 하니 / 中使傳宣檢祕書
금술잔의 하사주는 제호보다도 좋네그려 / 金卮賜酒勝醍醐
뭇 영걸들 좌상에는 정신이 한데 모이고 / 群英座上精神聚
육록의 편 속에는 땅의 기세가 펼쳐 있네 / 六錄篇中氣勢鋪
절로 늙은 용 있어 몇 번이나 변화했던고 / 自有老龍知幾變
상서로운 봉황은 삼소에서 부르려 하누나 / 欲招祥鳳在三蘇
전조의 일 생각하니 끝없이 감격하여라 / 無端感激前朝事
당시의 일개 서생이 이젠 수염이 다 세었네 / 一箇書生白盡鬚
꿈결에 부름 받고 서운관으로 달려가서 / 夢中赴召向書雲
앉아 비서를 검열하다 해가 저물어 갈 제 / 坐閱祕書將夕曛
잠깐 천안을 뵈니 환후가 나았음을 알겠고 / 乍奉天顔知有喜
재차 하사주 기울이니 거나함을 깨닫겠네 / 再傾御酒覺微醺
실봉은 분명히 바로 신선의 문자였는데 / 實封的是神仙字
올린 글은 혹 견강부회한 것도 많았었지 / 奏狀容多附會文
다시 성신을 명하여 자리를 주관케 하니 / 更命省臣來押座
예사와 민자가 정히 여러 말들을 하누나 / 猊師閔子政云云
[주D-001]육록(六錄) : 신 라(新羅) 말기의 고승(高僧)인 옥룡자(玉龍子) 도선(道詵)이 지었다고 하는 도참서(圖讖書)인 《옥룡비기(玉龍祕記)》를 가리키는데, 이 책의 내용이 옥룡자십승지지비결(玉龍子十勝之地祕訣), 십승지지외론보신산수지소(十勝之地外論保身山水之所), 옥룡비결(玉龍祕訣), 옥룡자기(玉龍子記), 옥룡자시(玉龍子詩), 옥룡자청학동결(玉龍子靑鶴洞訣) 등 육편(六篇)으로 구성되었으므로 이렇게 일컬은 것이다.
[주D-002]늙은 용(龍) : 용은 지리설(地理說)에서 기복(起伏)이 수없이 펼쳐지는 산세(山勢)를 가리켜 말한다.
[주D-003]삼소(三蘇) : 고 려 시대에 도참설(圖讖說)의 지리쇠왕설(地理衰旺說)에 의거하여 국가의 기업(基業)을 연장시키고자 도성(都城)인 개성(開城) 주위에 위치한 백악산(白岳山)에는 좌소(左蘇), 백마산(白馬山)에는 우소(右蘇), 기달산(箕達山)에는 북소(北蘇)를 두어 이 세 곳에 각각 행궁(行宮)을 짓고 임금이 주기적으로 그곳에 순행유주(巡行留駐)했던 데서 온 말이다. 이 소(蘇)의 의미에 대해서는 ‘솟’의 개념에서 용출(湧出), 초출(超出)의 의미로 보는 설(說)이 있고, 또는 소복(蘇復), 소생(蘇生)의 의미로 보는 설도 있다.
[주D-004]실봉(實封)은 …… 문자였는데 : 실봉은 가호(家戶)나 전토(田土)를 공신(功臣)에게 실제로 봉해 주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임금이 직접 써서 내린 것을 의미한다.
[주D-005]예사(猊師)와 민자(閔子) : 예 사는 당시 예공(猊公)으로 일킬어졌던 조계종(曹溪宗) 스님을 가리키고, 민자는 당시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이었던 민안인(閔安仁)을 가리킨다. 민안인은 뒤에 최해(崔瀣)의 《동인지문(東人之文)》을 모방하여 본국(本國) 명현(名賢)들의 시(詩)를 모아서 편찬하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즉사(卽事)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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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 밖에 임금님 부름 받고서 / 分外蒙宣召
병든 나머지 비서를 보고 나니 / 病餘觀祕文
돌아오매 모든 것이 꿈만 같아라 / 歸來渾似夢
기뻐서 뛰고픔을 다시 뭐라 말하랴 / 喜躍更何云
일찍 일어나 의관도 차리지 않은 채 / 早起慵冠櫛
생각에 잠기어 옛 전적 검토하네 / 沈思討典墳
어찌 알았으랴 쇠하고 병든 뒤에 / 豈知凋瘵後
한번 일어나서 명군을 만날 줄을 / 一起遇明君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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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한림원에서 노닐 적엔 / 舊游金馬地
옥룡자의 글을 두루 보았었는데 / 泛覽玉龍文
선왕께서 갑자기 승하하신 뒤로는 / 弓劍俄成哭
도서를 다시는 들먹이지도 않네 / 圖書不復云
후비궁에는 화상이 드리워 있고 / 椒闈垂畫像
도서실엔 서적이 그득 쌓였어라 / 石室峙丘墳
적막하게 천년을 지난 이후로 / 寂寞千年後
동방에 참다운 임금이 있었네그려 / 東方儘有君
과거 시험엔 연해서 급제하였고 / 金榜聯登第
과거 시험은 두 번을 주관했는데 / 春闈再主文
돌아보니 지금은 녹록할 뿐이라 / 回觀今碌碌
예전에 운운하던 것 다 잊어버렸네 / 摠忘向云云
해마다 먼지는 시루에 쌓이지만 / 每歲塵生甑
후일에 술은 무덤에 이르겠지 / 他年酒到墳
밝은 창 아래 글을 읽는 곳에 / 明窓讀書處
정결함으로 마음을 받들 뿐이로다 / 精白奉天君
[주D-001]해마다 …… 쌓이지만 : 끼 니를 굶을 정도로 몹시 가난하다는 뜻이다.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 범염(范冉)이 매우 청빈하기로 이름이 나서, 마을 사람들이 노래하기를, “시루에 먼지 쌓인 범사운이요, 가마솥에 고기 생긴 범 내무로다.[甑中生塵范史雲釜中生魚范萊蕪]” 한 데서 온 말이다. 범염의 자가 사운(史雲)이고 일찍이 내무장(萊蕪長)을 지냈었다.
새벽에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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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관들은 자리에 가득 앉고 / 陰陽官滿座
도화원은 새로운 터를 잡으니 / 圖畫院開基
땅은 비서성을 눌러 있고 / 地壓蓬萊境
하늘은 추밀원에 나직하구나 / 天低喉舌司
뜰가엔 차가운 비가 지나가고 / 半庭寒雨過
서산엔 저녁볕이 더디기만 하네 / 西嶺夕陽遲
돌아와 누워서 몸과 세상 잊어라 / 歸臥忘身世
닭 우는 소리에 꿈을 깨는 때로세 / 鷄聲夢破時
강토는 일찍이 이 나라를 열었고 / 蘿圖曾闢國
예언은 국운을 연장할 수 있어라 / 天錄可延基
주소도 오히려 점을 좇았거니와 / 周召猶從卜
중려는 각각 맡은 바가 있었네 / 重黎有所司
삼소는 있는 곳이 헷갈리어 / 三蘇迷所在
백세에 끝내 알기가 어려우니 / 百世竟難知
애석하기도 해라 선왕의 뜻이 / 可惜先朝意
바로 적막강산 낙엽 지는 때로세 / 江山木落時
송악산은 천고의 길한 땅이요 / 松山千古地
돌 계단은 태평의 터전이로다 / 石砌太平基
궁전 모퉁이엔 일천 산이 둘러 있고 / 殿角回千嶂
담장가엔 온갖 관사가 벌여 있으며 / 墻邊列百司
집안에는 신민들이 옹위해 있고 / 宅中臣庶拱
후손에겐 조종이 복을 내리도다 / 裕後祖宗知
전배 중엔 그 누가 명세자였던고 / 前輩誰名世
지금 사람도 스스로 때에 응한다네 / 今人自應時
[주D-001]주소(周召)도 …… 좇았거니와 : 주 소는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합칭한 말이다. 성왕(成王)이 무왕(武王)의 유지를 받들어 낙(洛) 땅에 도읍(都邑)을 새로 만들기 위해 일찍이 소공을 시켜 그곳을 조사하게 하였고, 낙 땅에 도읍을 정하기 위해 주공이 길흉(吉凶)을 점친 결과, 그곳이 과연 길하여 마침내 도읍을 새로 정하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書經召誥, 洛誥》
[주D-002]중려(重黎) : 요순(堯舜) 시대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의 조상인 중씨(重氏)와 여씨(黎氏)를 합칭한 말인데, 이들은 대대로 천지사시(天地四時)를 맡아 다스리던 관원이었다. 《書經 堯典, 呂刑》
[주D-003]명세자(名世者) : 한 세상에 이름이 높이 드러나서 왕자(王者)의 보좌(輔佐)가 될만한 대현(大賢)을 가리킨다. 《孟子 公孫丑下》
광암사(光巖寺)를 삼가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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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이슬 방울방울 몇 번이나 비통했던고 / 白露團團幾度悲
노신은 병이 많아 쇠한 걸 스스로 안다오 / 老臣多病自知衰
그 언제나 일만 그루 낙락장송 아래서 / 何時萬樹長松下
애써 흐린 눈 비벼가며 와비를 읽어 볼꼬 / 強刮昏花讀臥碑
눈 가득한 서책들은 드러나고도 은미하고 / 群書滿眼顯仍微
세 종류의 점심은 살지고도 맛이 있네 / 三色點心甘且肥
계사년 을과 급제가 한바탕 꿈만 같아라 / 癸巳乙科如一夢
두 노인 나란히 말 타고 달밤에 돌아갔었지 / 兩翁聯騎月中歸
길이 동문을 향하여 뱃재는 우뚝 솟았고 / 路指東門梨嶺高
산이 남리를 가로질러 버들골은 아득한데 / 山橫南里柳坊遙
선죽교 가에 어슴푸레한 황혼 달 아래서 / 選竿橋畔黃昏月
명일 아침에 다시 만나길 서로 약속했었네 / 更約相逢隔一朝
천현 남쪽 언덕엔 풀이 아직 푸르른데 / 穿峴南崖草尙靑
버들숲 다 지나서 내 문정에 당도하니 / 柳林行盡到門庭
어린애는 깊은 밤까지 날 기다리고 있었고 / 夜深稚子猶相候
나는 다시 조용히 앉아 산해경을 보았었네 / 靜坐更參山海經
[주C-001]광암사(光巖寺) : 본래 이름이 운암사(雲巖寺)로 고려 공민왕비(恭愍王妃)인 노국공주(魯國公主)의 원당(願堂)이다.
[주D-001]흰 이슬 …… 비통했던고 : 두 보(杜甫)의 〈해민(解悶)〉 시에, “선제의 귀비는 이제 적막하기만 한데, 여지는 지금 다시 장안으로 들어오누나. 남방에서 매양 앵도에 이어 바쳐왔으니, 옥좌는 응당 방울진 이슬을 슬퍼했으리.[先帝貴妃今寂寞 荔枝還復入長安 炎方每續朱櫻獻 玉座應悲白露團]” 한 데서 온 말이다. 두보의 이 시는 남방의 과실인 여지 열매를 생전에 매우 좋아했던 양 귀비(楊貴妃)가 죽은 뒤로, 당 현종(唐玄宗)이 여지를 볼 때마다 양 귀비를 생각하며 슬퍼했을 정상을 읊은 것이다. 여기서는 공민왕이 일찍이 노국공주와 더불어 광암사에 행차했고, 공주가 죽은 뒤에는 이 절 근처에 묘(墓)를 쓰고 자주 여기에 행차하여 공주의 명복을 빌곤 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杜少陵詩集卷17》
[주D-002]세 종류의 점심(點心) : 점 심은 공심(空心)에 점을 찍는다는 뜻으로, 선종(禪宗)에서 재식(齋食)을 일컫는 말인데, 당(唐)나라 때 고승(高僧) 덕산 선사(德山禪師)가 대오(大悟)하기 전에 일찍이 한 노파(老婆)를 만났던바, 그 노파가 자기가 팔고 있는 점심거리 떡을 가지고 《금강경(金剛經)》의 글을 끌어대서 덕산 선사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금강경》에 ‘과거심도 얻을 수 없고, 현재심도 얻을 수 없고, 미래심도 얻을 수 없다.[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하였으니, 모르겠지만 상좌(上坐)는 어느 심에 점을 찍을는지요?”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불교의 수행을 의미한다.
[주D-003]계사년 …… 같아라 : 고려 공민왕(恭愍王) 2년(1353)인 계사년에 초과(初科)를 베풀었을 때 목은이 을과(乙科) 제일인(第一人)으로 급제했던 일을 말한다.
[주D-004]두 노인 : 계사년의 과거(科擧)를 관장했던 지공거(知貢擧) 이제현(李齊賢)과 동지공거(同知貢擧) 홍언박(洪彦博)을 가리킨다.
[주D-005]산해경(山海經) : 작 자(作者) 미상의 지리서(地理書)인데, 해내(海內), 해외(海外)를 통틀어 각 지방의 진귀한 산천 풍물(山川風物)들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일찍이 《산해경》을 읽으면서 한적한 흥취를 만끽하여 지은 〈독산해경(讀山海經)〉 시가 있다.
느낌이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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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은혜로 휴가 내려 신하들을 헤아리고 / 休沐寬恩體衆臣
문무의 늦추고 죔으로 천 년을 보전하도다 / 弛張文武保千春
밝은 창 밑 깨끗한 책상 앞 시 읊는 곳은 / 明窓淨几沈吟處
먼지 한 점 앉은 데 없이 말끔하기만 하네 / 洒落難容一點塵
전조의 신하로 초췌해진 이 늙은 문신이여 / 前朝憔悴老詞臣
병든 고목 앞에 일만 나무들은 봄이로세 / 病樹前頭萬木春
모르겠다 이것이 꿈인가 정녕 꿈은 아닌데 / 未識夢耶非是夢
의관 정제하고 때로 도성 거리를 밟는구려 / 整冠時踏軟紅塵
좌구명이 참으로 소신임을 못 믿겠어라 / 未信丘明是素臣
모름지기 왕 자 위에 다시 춘 자를 썼어야지 / 須參王上更書春
기린 얻고 공자의 눈물 한번 흘린 후로는 / 獲麟一反宣尼袂
산더미 같은 사책에 먼지만 가득 쌓였네 / 方冊山堆網素塵
[주D-001]문무(文武)의 늦추고 죔 : 《예 기(禮記)》 잡기(雜記)에, “긴장시키기만 하고 늦추어 주지 않으면 아무리 문왕, 문왕의 다스림이라 할지라도 백성들이 따를 수가 없고, 늦추어 주기만 하고 긴장시키지 않으면 아무리 문왕, 무왕의 다스림이라 할지라도 백성들이 하지 않는 것이니, 한 번 긴장시키고 한 번 늦추어 주는 것이 바로 문왕, 무왕의 도이다.[張而不弛 文武不能也 弛而不張 文武不爲也 一長一弛 文武之道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좌구명(左丘明)이 …… 썼어야지 : 일 찍이 노사(魯史)에 의거해서 《춘추(春秋)》를 지은 공자(孔子)를 한(漢)나라 유학자들이 소왕(素王)이라고 일컬었는바, 좌구명이 또 《춘추전》을 지어 공자의 도를 기술해서 《춘추》의 법을 천명했으므로, 후인들이 그를 높여 소신(素臣)이라 하였다. 그런데 좌구명은 《춘추전》을 쓰면서 공자가 작고한 노 애공(魯哀公) 16년까지만 경문(經文)을 기재함과 동시에 춘왕(春王)을 기록하였고, 17년부터 27년에 이르기까지는 경문을 기재하지 않음과 동시에 춘(春) 자만 쓰고 왕(王) 자는 쓰지 않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기린 …… 흘린 : 공 자가 《춘추》를 기록하다가 노 애공(魯哀公) 14년 봄에 ‘서쪽으로 사냥하여 기린을 얻다.[西狩獲麟]’라는 말로 끝을 맺었는데, 앞서 그 기린을 잡았을 때 공자가 성왕(聖王)의 상서인 기린이 성왕이 없는 세상에 나왔다가 죽은 것을 몹시 상심하여 눈물을 흘렸던 데서 온 말이다. 《春秋公羊傳 哀公14年》
느낌이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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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이 인물을 생산하지만 / 乾坤産人物
안목 갖춘 이는 예부터 드물었으니 / 具眼古來稀
주나라 말기에 이미 나무를 베었고 / 周季已伐樹
한나라 초기까지 지초를 먹었었네 / 漢初猶茹芝
한 몸뚱이는 매인 말과 같은지라 / 一身同馬繫
두 눈으로 나는 기럭 바라볼 뿐이네 / 雙目送鴻飛
어느 날에나 산중으로 들어가서 / 何日山中去
솔바람이 귀밑털을 불게 할거나 / 松風吹鬢絲
[주D-001]주(周)나라 …… 베었고 : 공 자(孔子)가 일찍이 조(曹)를 떠나 송(宋)으로 가서 제자들과 함께 큰 나무 밑에서 예(禮)를 익히고 있을 적에 송의 대부(大夫) 환퇴(桓魋)가 공자를 죽이려고 그 나무를 베어 내자, 공자가 그곳을 떠나 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주D-002]한(漢)나라 …… 먹었었네 : 진 (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상산(商山)에 은거한 네 노인, 즉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이 지초(芝草)를 캐어 먹고 지내면서, 뒤에 한 고조(漢高祖)의 부름을 받고도 나오지 않았던 데서 온 말이다.
우연히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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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우는 계집애는 새벽부터 들렜는데 / 啼飢兒女閙晨興
향연기 어린 대살창에 해가 벌써 돋았네 / 香篆筠窓日已昇
이 쇠한 몸은 누가 신선 단약을 나눠 주랴만 / 衰鬢誰分金匕藥
맑은 풍채는 스스로 옥병의 얼음에 비기노라 / 淸標自擬玉壺氷
시서의 도가 무너져서 세상은 깜깜하고 / 詩書道缺風塵暗
사직의 근심은 깊어라 갈수록 더해만 가네 / 社稷憂深歲月增
잔뜩 취해 세상일을 모두 잊고 싶지만 / 欲向醉鄕忘世事
어떤 이가 날 위해 많은 술을 마련해 줄꼬 / 何人爲辦酒如澠
판사(判事) 부부(夫婦)가 식사를 마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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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아들 며느리 금슬도 좋거니와 / 佳兒佳婦翕如琴
혼정신성의 봉양엔 촌각도 아끼누나 / 奉養晨昏惜寸陰
아름다운 술은 보고로부터 얻어 왔고 / 美酒乞來從寶庫
좋은 안주는 깊은 산에서 얻어 왔어라 / 嘉肴求得向雲林
빙어와 동순은 천지조화가 훌륭하고 / 氷魚冬笋天機好
강봉과 가화는 임금의 덕이 심원하네 / 岡鳳嘉禾帝德深
감응은 분명 크고 작은 일이 따로 없기에 / 感應分明無大小
반쯤 거나하면 때때로 내 마음 점검하노라 / 半酣時復檢吾心
[주C-001]판사(判事) 부부(夫婦) : 여기서 판사는 곧 목은의 장자(長子)로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였던 이종덕(李種德)을 가리키는데, 그는 특히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주D-001]혼정신성(昏定晨省) :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데 있어, 저녁에는 부모의 잠자리를 편안하게 보아드리고, 새벽에는 문안(問安)을 드리곤 하는 것을 말한다. 《禮記 曲禮》
[주D-002]빙어(氷魚)와 동순(冬笋) : 빙 어는 진(晉)나라 때 효자(孝子) 왕상(王祥)의 모친이 일찍이 추운 겨울에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자, 왕상이 강으로 나가서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기 위해 옷을 벗으니, 갑자기 얼음이 절로 깨지면서 잉어 두 마리가 튀어나오므로, 이를 가져다 모친을 봉양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동순은 삼국 시대 오(吳)나라의 효자 맹종(孟宗)이 한겨울에 자기 모친이 좋아하는 죽순(竹笋)을 구하기 위해 대숲에 들어가 슬피 울며 탄식하자, 죽순이 갑자기 솟아나오므로, 이것을 가져다 모친을 봉양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강봉(岡鳳)과 가화(嘉禾) : 강 봉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이 훨훨 날아, 저 높은 뫼에서 울도다. 오동이 무성하게 저 산 양지쪽에서 자라도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于彼朝陽]” 한 데서 온 말로, 봉황은 곧 현사(賢士)를 상징한 말이다. 가화는 양쪽 두둑에서 각기 난 벼가 이삭이 하나로 합쳐진 것을 말한 것으로, 이는 천하가 동화(同和)하는 상(象)이라 하는데, 성왕(成王)의 아우 당숙(唐叔)이 자기 봉지(封地)에서 이 벼를 얻어 성왕에게 바치자, 성왕은 이것이 곧 주공(周公)의 덕에 감응한 상서라 하여 이를 주공에게 보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일찍 일어나서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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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창이 밝아 꿈을 문득 깨어 보니 / 午夜窓明夢忽回
달빛은 대낮 같고 월궁전은 썰렁도 해라 / 月華如晝冷瑤臺
옷자락 거머쥐고 뜨락에 산보를 하려노니 / 攬衣欲向庭中步
학을 타고 일찍이 해상으로부터 왔었다네 / 駕鶴曾從海上來
다시 잠의 마귀와 서로 짝하여 앉았으니 / 更被眼魔相伴坐
시사를 엮고자 하나 누구를 시켜 재단할꼬 / 欲編詩史遣誰裁
일찍 일어나 붓을 잡고도 기록하기 어려워라 / 早興呼筆還難記
맑은 경치는 아득하나 재주 없음이 부끄럽네 / 淸景茫然愧不才
삼소와 사실의 형세가 면면이 이어져서 / 三蘇四室勢連綿
이리저리 집터 보아 일변에 이르렀네 / 陟巘胥原到日邊
지리산 천왕이 처음 술수를 가르쳐주어 / 智異山王初授術
고려의 국조가 크게 천명을 받았도다 / 高麗國祖誕膺天
바다에 흘러든 물은 용이 응당 뱉어낸 게고 / 水流入海龍應吐
하늘 높이 솟은 산엔 봉이 날아오르려 하리 / 嶺峻盤空鳳欲騫
길상을 낳아서 종묘사직을 길이 붙드니 / 産得吉祥扶社稷
이 강토가 억천만년 영원히 무궁하리라 / 蘿圖億載又千年
병든 몸 흐린 눈으로 서책을 관람하고 / 扶病觀書兩眼花
돌아오다가 시중 댁을 올라가 배알할 제 / 歸來上謁侍中家
곡령의 푸른 솔은 봄날을 길이 어둡게 하고 / 靑松鵠嶺春長暗
오공산 붉은 숲엔 석양이 비끼려 하누나 / 紅樹蜈山日欲斜
동국의 영재들은 우뚝 선 난봉과 같은데 / 東國英材峙鸞鳳
중원의 피바다는 용과 뱀이 싸운 듯하네 / 中原血海鬪龍蛇
깊은 밤에 홀로 앉았으니 생각이 끝없어라 / 夜深獨坐思無盡
살림살이 영위할 길이 절로 멀기만 하구려 / 問舍求田路自賖
[주D-001]삼소(三蘇) : 고 려 시대에 도참설(圖讖說)의 지리쇠왕설(地理衰旺說)에 의거하여 국가의 기업(基業)을 연장시키고자 도성(都城)인 개성(開城) 주위에 위치한 백악산(白岳山)에는 좌소(左蘇), 백마산(白馬山)에는 우소(右蘇), 기달산(箕達山)에는 북소(北蘇)를 두어 이 세 곳에 각각 행궁(行宮)을 짓고 임금이 주기적으로 그곳에 순행유주(巡行留駐)했던 데서 온 말이다. 이 소(蘇)의 의미에 대해서는 ‘솟’의 개념에서 용출(湧出), 초출(超出)의 의미로 보는 설(說)이 있고, 또는 소복(蘇復), 소생(蘇生)의 의미로 보는 설도 있다.
[주D-002]사실(四室) : 고 려 태조(太祖)의 선계(先系)를 가리킨다. 《태조실록(太祖實錄)》에 의하면 삼대(三代)만을 왕(王)으로 추존(追尊)하였는바, 즉 시조(始祖) 보육(寶育)을 원덕대왕(元德大王)으로, 의조(懿祖) 작제건(作帝建)을 경강대왕(景康大王)으로, 세조(世祖) 융(隆)을 위무대왕(威武大王)으로 각각 추존하였다고 하여, 여기에서 사실이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의하면, 태조의 고조(高祖)가 되는 보육이 일찍이 출가(出家)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수도(修道)하고 다시 고향인 평나산(平那山)으로 돌아와서 거사(居士)가 되었는데, 한번은 신라(新羅)의 술사(術士)가 그에게, “이곳에 살면 반드시 대당 천자(大唐天子)를 사위로 삼게 될 것이다.”고 했던바, 후일에 과연 그의 딸이 당시 천하의 산천을 유람중이던 잠저(潛邸) 시절의 당 숙종(唐肅宗)과 동침(同寢)하게 되어 그대로 임신하여 작제건을 낳았고, 작제건은 또 뒤에 용녀(龍女)를 아내로 맞아서 아들 융을 낳았다고 하였다.
느낌이 있어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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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이 서로 이어진단 건 옛말에 있거니와 / 五運相承古已言
제왕의 운수는 하늘땅과 가지런하다오 / 帝王曆數等乾坤
관과 복색 바꾸는 건 종래의 일이거니와 / 易冠易服由來事
순흑색과 순홍색은 듣지 못한 바이로세 / 純黑純紅所未聞
풍속의 미개함은 예로 인해 변하였고 / 風俗鴻荒因禮變
조정은 후손 위해 좋은 계책 남기었네 / 朝廷燕翼有謀存
글 읽은 건 소득 없이 자꾸 늙어만 가는데 / 讀書孟浪老將至
한림원에서 다시 노니는 게 유독 기쁘구나 / 獨喜更游金馬門
[주D-001]오운(五運)이 …… 있거니와 : 오운은 곧 오행(五行)의 운행(運行)으로, 고대(古代)에 오행의 상생상극설(相生相克說)에 의거하여 왕조(王朝)의 흥체(興替)의 운기(運氣)를 추산(推算)했던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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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눈 애써 비비며 아이를 가르치려고 / 強刮昏花訓小兒
칠언의 뛰어난 시구 당시를 뽑았노니 / 七言警句採唐詩
고인 학문의 자별한 규모는 스스로 알지만 / 自知古學規模別
시골 풍속의 쇠퇴한 지기는 면할 수가 없네 / 未免鄕風志氣衰
작위의 높고 낮음은 본디 명에 달렸거니와 / 爵位崇卑元有命
문장의 흥하고 막힘은 또 시대에 관계된다오 / 文章興替更關時
우선 도연명의 술잔이나 실컷 기울여 보자 / 且傾彭澤杯中物
타고난 바탕은 본래 바뀔 수 없는 거라네 / 稟賦由來不可移
밤에 이튿날 다시 모일 것을 생각하면서 1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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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헤어지면서 전처럼 모이길 기약했는데 / 晚散相期聚似前
밤 늦게 일어나려 하니 문득 까마득하네 / 夜闌將起却茫然
노쇠하매 날마다 시름겨이 거울을 보고 / 老衰日日愁看鏡
가고 머묾은 아침마다 마부에게 묻노라 / 行止朝朝問執鞭
수많은 산들은 모두 바다로 향하여 가고 / 無數衆山皆就海
태평의 상서로운 기운은 하늘에 뜨려 하누나 / 太平佳氣欲浮天
아득히 구름 나직한 곳 저 옥룡사에서는 / 玉龍渺渺雲低處
지금 한창 향화 올리고 법연을 열었겠지 / 香火如今敞法筵
고풍(古風)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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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희씨는 지리를 관찰했었고 / 庖犧察地理
공자는 주역 계사를 지었는데 / 宣聖繫易辭
간산이 곤지에 가득 차서 / 艮山滿坤地
동으로 달려 고려를 이루었네 / 東走成高麗
기세가 왕성한 이천 리 땅은 / 磅礴二千里
종묘사직의 무궁한 터전이라 / 宗社無窮基
하늘이 우리 태조를 내시매 / 上天生太祖
밀봉서가 때를 맞춰 나왔도다 / 密封書出時
만대토록 반드시 끊어지지 않을 / 萬代必不絶
밝은 증거가 바로 이에 있는지라 / 明徵乃在玆
사천대(司天臺)의 여러 군자들이 / 司天衆君子
널리 살피고 깊이 생각하는데 / 博考仍覃思
정미함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덴 / 精微可到底
다행히 예선사가 있네그려 / 幸有猊禪師
[주D-001]포희씨(庖犧氏)는 지리를 관찰했었고 : 《주 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옛날 포희씨가 천하에 왕노릇할 적에 위로는 하늘의 상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땅의 법을 관찰하고……처음으로 팔괘를 지어서 신명의 덕을 통했다.[古者庖犧氏王天下也 仰則觀象於天 俯則觀法於地……始作八卦以通神明之德]”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간산(艮山)이 곤지(坤地) : 간괘(艮卦)는 산에 해당하고, 곤괘(坤卦)는 땅에 해당하므로 한 말이다.
[주D-003]밀봉서(密封書) : 신 라 말기의 고승(高僧)인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저술했다고 하는 《옥룡비기(玉龍祕記)》를 가리킨다. 이 책은 옥룡자십승지지비결(玉龍子十勝之地祕訣), 십승지지외론보신산수지소(十勝之地外論保身山水之所), 옥룡비결(玉龍祕訣), 옥룡자기(玉龍子記), 옥룡자시(玉龍子詩), 옥룡자청학동결(玉龍子靑鶴洞訣) 등 육편(六篇)으로 구성되었다.
진관사(眞觀寺)로부터 맹동(孟童)이 돌아와서 밤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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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동은 글 읽던 곳으로부터 돌아오고 / 孟童回自書窓下
이 할아비는 금중으로부터 돌아와서 / 祖父歸從禁苑中
칠언 장구 율시를 암송하게 하였더니 / 暗誦七言長句律
양대 장원의 풍도를 멀리 이었네그려 / 遠承兩代狀元風
밤에 듣자니 말은 아직 번잡한 게 많았으나 / 夜聞言語猶多雜
새벽에 보니 얼굴은 이미 풍만해져가누나 / 曉看顔容已向豐
오직 원하는 건 너희들이 열심히 예를 지켜 / 且願汝曹勤守禮
한산의 남은 복이 무궁하게 되는 거란다 / 韓山餘慶儘無窮
한산은 긴 강가에 우뚝하게 자리했고 / 韓山突兀長江上
진포의 물은 큰 바다로 흘러들어가네 / 鎭浦朝宗大海中
향리에선 그 뉘 집이 숨은 덕을 쌓았던고 / 鄕里誰家積玄德
문장은 우리 이씨가 중원 문풍을 지녔다오 / 文章我李有華風
민가는 촘촘하나 지경은 더욱 후미지고 / 閭閻櫛比地逾僻
곡식은 구름처럼 쌓여 해마다 풍년인데 / 禾稼雲屯年屢豐
문득 왜구를 만나 지금 다 탕진했기에 / 却被東倭今蕩盡
액운이 장차 다하리라고 모두들 말하누나 / 摠言艱厄數將窮
[주C-001]맹동(孟童) : 목은의 큰아들인 종덕(種德)의 소생으로 맹균(孟畇) 등 4형제가 있는데, 그중에 맹균을 가리키는 듯하다.
[주D-001]양대(兩代) 장원의 풍도 : 목은이 일찍이 과거(科擧)에 장원했고, 목은의 큰아들인 종덕(種德) 또한 과거에 장원했던 것을 이른 말이다.
치재(致齋)를 하고 홀로 앉아서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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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봉 서쪽에 해가 아직 안 기울었는데 / 延慶峯西日未斜
치재하고 먼저 나와 홀로 집에 돌아왔네 / 致齋先出獨還家
바로 알겠네 이 고개가 삼승령과 마주했으니 / 卽知嶺對三升嶺
길 가는 이가 머리 이미 희어진 걸 어찌 알랴 / 行路那知鬢已華
그을음 낀 묵은 종이에 글자는 삐딱삐딱 / 煙熏故紙字橫斜
이게 모두 삼한의 지리가의 서적이로세 / 盡是三韓地理家
소년 시절에 일찍 못 배운 게 한스러워라 / 頗恨少年曾不學
서책을 휴대하고 중원으로 들어가고 싶네 / 欲携書秩入中華
하얀 물결 위에는 거룻배가 비껴 있는데 / 白鷗波上小舟斜
두어 봉우리 푸른 산 예가 바로 내 집일세 / 數朶靑山是我家
꿈속에서도 대궐 밑이 놀랍기만 하여라 / 夢裏尙驚雙闕下
동화문 가득 뿌연 먼지가 날린 때문일세 / 軟紅塵土滿東華
[주D-001]동화문(東華門) …… 때문일세 : 동 화문은 옛날 백관(百官)이 입조(入朝)할 때 드나들던 문 이름인데, 소식(蘇軾)의 〈종가경령궁(從駕景靈宮)〉 시의 자주(自註)에 의하면, “전배(前輩)의 장난말에 ‘서호(西湖)의 풍월(風月)이 동화문의 뿌연 먼지만 못하다.’고 했다.”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36》
21일에 사천감(司天監)의 관원이 와서 조 육재(曺六宰)의 말을 전하여 비서(祕書)를 속히 올리도록 재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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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창 아래 머리도 빗지 못 하고 / 曉窓頭未櫛
우두커니 앉아 내 집을 사랑할 제 / 兀坐愛吾廬
참정으로부터 말을 전해와서 / 傳語自參政
기한을 정해 비서를 보라 하네 / 刻期觀祕書
문장은 마치 투구 갑옷과 같고 / 文章猶介冑
필연은 마치 성책과도 같아라 / 筆硯似儲胥
조용히 앉았으매 남은 흥미가 있어 / 默坐有餘味
호기가 아직도 가시지를 않누나 / 氣豪猶未除
그만이로다 굴원의 사당이여 / 已矣屈原廟
제갈량의 집엔 먼지만 끼었는데 / 塵埃諸葛廬
마음은 출사표를 전해 받았고 / 心傳出師表
학문은 천문의 글에 깊었도다 / 學邃問天書
아량은 시재에게 추앙되었건만 / 雅量推時宰
높은 재주는 미관말직에 썩었네 / 英材困里胥
지금에 와서 누가 통곡을 해줄꼬 / 至今誰痛哭
천운이 스스로 순환할 뿐이로세 / 天運自乘除
해진 옷으로 호락과 어울리고 / 弊衣廁狐貉
띳집으로 화려한 집 마주하여라 / 華屋對茅廬
깜깜한 운명은 논하기 어려우나 / 杳杳難論命
분명한 것은 글을 읽는 데 있나니 / 明明在讀書
공자의 도를 좇아 배움으로부터 / 自從游闕里
다시 화서의 꿈을 꾸지 않노라 / 不復夢華胥
늙은 나는 몸과 세상 다 잊으니 / 老我忘身世
마음 한가해라 만사가 그만일세 / 心閑萬事除
[주D-001]내 집을 사랑할 제 : 도잠(陶潛)의 〈독산해경(讀山海經)〉 시에, “새들도 의탁할 데 있음을 기뻐하거니, 나 또한 내 집을 사랑하노라.[衆鳥欣有託 吾亦愛吾廬]”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그만이로다 굴원(屈原)의 사당이여 : 전 국 시대 초 회왕(楚懷王) 때의 충신 굴원이 소인들의 참소에 의해 쫓겨난 뒤 충분(忠憤)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멱라수(汨羅水)에 투신 자결하였는데, 그가 지은 이소(離騷)의 〈난사(亂辭)〉에, “그만이로다. 나라에 사람 없어 나를 알아줄 이 없거니, 또 어찌 고국을 생각하랴.[已矣哉國無人莫我知兮 又何懷乎故都]” 하였다. 굴원의 사당은 장사현(長沙縣)의 멱라수 가에 있다고 한다.
[주D-003]제갈량(諸葛亮)의 …… 끼었는데 :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이 일찍이 융중(隆中)의 초려(草廬)에 은거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4]출사표(出師表) : 제 갈량이 위(魏)나라를 치려고 출병(出兵)할 때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올린 글인데, 이 글은 특히 충성(忠誠)이 아주 간절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안자순(安子順)의 평어(評語)에 의하면,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출사표를 읽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불충(不忠)한 사람이다.”고 하였다.
[주D-005]천문(天問)의 글 : 천문은 굴원이 지은 글인데, 그 내용은 특히 우주(宇宙)의 사실(事實) 및 설화(說話)에 관한 의문(疑問)을 하늘에게 묻는 형식을 취하였다.
[주D-006]화서(華胥)의 꿈 : 황제(黃帝)가 낮잠을 자다가 꿈에 화서라는 나라에 가서 그 나라가 아주 이상적으로 잘 다스려진 것을 보고 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허무한 꿈을 의미한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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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의 정취가 마치 뜬구름과 같아서 / 病中情興似浮雲
아득히 무심하게 무리를 멀리 벗어나니 / 渺渺無心迥出群
시구엔 한 글자 놓기도 의당 어렵거니와 / 難向詩聯安一字
필진으로 천군을 쓸어버릴 기력도 없네 / 懶從筆陣掃千軍
병 속의 해와 달은 하늘 끝에 운행하고 / 壺中日月行天際
베개맡의 강산은 한밤중에 들어오누나 / 枕上江山入夜分
쓸쓸한 백발로 지팡이 짚고 나갔다가 / 白髮蕭蕭扶杖出
홀로 돌아오는 밭둑길에 석양이 비끼려 하네 / 獨歸南陌欲斜曛
오래도록 한 조각 무심한 구름에 비겼더니 / 久擬無心一片雲
어이해 아직도 닭무리를 벗어나지 못했나 / 奈何猶未離鷄群
조존은 혹 천명을 공경히 받들 수 있거니와 / 操存儻可祗承帝
담소는 적군을 물리치는 데 어찌 해로우랴 / 談笑何妨自却軍
현불초 관문은 학문으로 좇아 나오거니와 / 人鬼關從螢榻出
화이의 땅은 압록강을 한계로 나누어졌네 / 華夷地向鴨江分
백발에 동주의 뜻을 이미 믿었는지라 / 白頭已信東周意
중원을 돌아보니 해는 저물어만 가누나 / 回望中州日欲曛
[주D-001]필진(筆陣)으로 천군을 쓸어버릴 : 필 진은 서법(書法) 또는 문장포치(文章布置)의 웅건(雄建)함을 군진(軍陣)에 비유한 말이다. 두보(杜甫)의 〈취가행(醉歌行)〉에, “문장 근원은 삼협의 물을 거꾸로 쏟은 듯하고, 필진은 홀로 천인의 군대를 쓸어버렸네.[詞源倒流峽水 筆陣獨掃千人軍]”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3》
[주D-002]병 속의 해와 달 : 후 한(後漢) 때 한 노인이 여남(汝南)의 시중(市中)에서 약장사를 하면서 밤이면 가게머리에 매달린 병 속으로 뛰어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그것을 본 시연(市掾) 비장방(費長房)이 그 노인을 찾아가 뵙고 노인을 따라 함께 그 병속으로 들어가 보니, 옥당(玉堂)이 화려하고 좋은 술과 안주가 가득하여 노인과 함께 실컷 마시고 나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별천지(別天地), 즉 선경을 의미한다.
[주D-003]베개맡의 …… 들어오누나 : 몽매(夢寐)의 사이에도 마음이 늘 강산에 있음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4]조존(操存) : 마 음을 굳게 잡아 간직함을 이른 말이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잡아 간직하면 보존되고 놓아 버리면 없어져서, 드나듦이 때가 없어 그 향하는 곳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마음을 이름인저.[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하였다. 《孟子 告子上》
[주D-005]담소(談笑)는 …… 해로우랴 : 전 국 시대 진(秦)나라 군대가 조(趙)나라를 급히 포위했을 때, 위(魏)나라의 사자(使者) 신원연(新垣衍)이 제(齊)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魯仲連)을 만나서 진나라를 제(帝)로 받들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노중련은 의리상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강력히 말했는데, 그때 마침 위나라 신릉군(信陵君)이 군대를 거느리고 오자, 진나라 군대가 마침내 퇴각하여 달아났다는 고사가 있다. 좌사(左思)의 〈영사(咏史)〉 시에, “나는 노중련을 사모하노니, 담소로 진나라 군대를 물리쳤네.[吾慕魯仲連談笑却秦軍]” 하였다.
[주D-006]동주(東周)의 뜻 : 동주는 주(周)나라의 도(道)를 동쪽 노(魯)나라에 일으킨다는 뜻으로,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만일 나를 써줄 이가 있다면 내가 동주를 만들겠다.[如有用我 吾其爲東周乎]”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陽貨》
고풍(古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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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세에 태학에 들어가서 / 十五入大學
명덕 밝히고 우리 백성 새롭게 하고 / 明德新吾民
사물 궁구하여 체용에 통달해서 / 格物達體用
천지의 도가 한 몸에 충만해지면 / 天地充一身
이것을 가지고 천자를 보좌하여 / 所以佐天子
조화와 함께 천하를 다스린다네 / 造化同彌綸
공자가 그리도 급급히 여긴 것을 / 孔氏所汲汲
그 누가 다시 큰 띠에 쓸런고 / 誰復書諸紳
중고에는 과목의 자료를 만들어 / 中爲科目資
당장 요로의 지름길에 올라서 / 立登要路津
긴 등경은 화려한 집을 비추고 / 長檠照華屋
아첨엔 먼지만 가득 쌓이누나 / 牙籤棲素塵
아 우리 여러 자손들은 / 咨我諸子孫
도리의 봄을 다투지 말지어다 / 勿競桃李春
[주D-001]공자(孔子)가 …… 쓸런고 : 자 장(子長)이 행(行)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이르기를, “말이 충성되고 미쁘며, 행실이 독실하고 공경스러우면 멀리 오랑캐 나라에서도 행할 수 있으려니와, 말이 충성되고 미쁘지 못하며, 행실이 독실하고 공경스럽지 못하면 자기 향리에선들 행할 수 있겠느냐.[言忠臣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 行乎哉]” 하니, 자장이 이 말을 큰 띠에 적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큰 띠에 적는 것은 곧 그 말을 깊이 새겨서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論語衛靈公》
[주D-002]아첨(牙籤) : 책 속에 끼워서 표지(標識)로 삼는 첨대를 가리킨다.
[주D-003]도리(桃李)의 봄 : 이백(李白)의 〈영양별원단구지회양(潁陽別元丹邱之淮陽)〉 시에, “소나무 잣나무는 비록 추위에 고통스럽지만, 복사꽃 오얏꽃의 봄을 좇기 부끄러워한다네.[松柏雖寒苦 羞逐桃李春]” 하였다.
휴가(休暇)를 얻어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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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으로 휴가 내려 편안히 잠을 자고 / 聖恩休沐得安眠
동창에 해 오를 제 초라하게 앉았노니 / 日上東窓坐聳肩
만권당 여는 것은 만년을 기약하거니와 / 萬卷開堂期晚歲
오경 시각 기다리던 당년이 생각나누나 / 五更待漏憶當年
옥룡자의 비기는 제자들이 의탁하고요 / 玉龍書祕憑諸子
높다란 한림원엔 뭇 현인이 모이었네 / 金馬門高集衆賢
나는야 승방 빌려 반 걸상 나눠 앉아서 / 欲乞僧房分半榻
흰 구름 쌓인 속에 폭포 소릴 듣고 싶구나 / 白雲堆裏聽飛泉
달 밝은 한밤중에 썰렁해서 잠 못 이루고 / 月明夜半冷無眠
앉아서 영웅을 손꼽아 어깨를 견주어 보네 / 坐數英雄立比肩
일만 권축 불경은 무한한 세월을 간직하고 / 萬軸貝書包曠劫
한 알 선약은 흐르는 세월을 멎게 하건만 / 一丸仙藥駐流年
보아 넘기고 구구한 힘을 쓰지 않았거니와 / 看來不費區區力
배워야만 개개의 어짊을 비로소 알겠지 / 學了方知箇箇賢
가장 낙천하는 게 참으로 흥미가 있거니 / 最是樂天眞有味
쉴 새 없는 내의 흐름은 깊은 근원에 달렸다네 / 川流不息在淵泉
[주D-001]만권당(萬卷堂) : 많은 서적(書籍)을 소장한 서재를 말한다.
[주D-002]오경(五更) …… 생각하누나 : 백관(百官)이 아침 일찍 대루원(待漏院)으로 나가서 입조(入朝)의 시각까지 기다리던 일을 이른 말이다.
첫눈이 사시(巳時) 초에 내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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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은 애당초 병통이 없었고 / 國脈初無病
천심은 본디 스스로 화평하기에 / 天心故自平
음양은 절후에 따라 조화 이루고 / 陰陽隨節候
형정은 공평무사한 데서 나왔네 / 刑政出鈞衡
오물 삼키어 천원은 깨끗하고요 / 含垢川原淨
청결 드러내 궁전은 밝기만 한데 / 揚淸殿宇明
누가 알랴 깊이 들어앉은 나그네가 / 誰知深坐客
머리 조아려 왕은에 감사한 줄을 / 稽首謝生成
사해에는 구름이 아직 캄캄한데 / 四海雲猶暗
일천 숲엔 길이 이미 편평해졌네 / 千林路已平
부 짓는 재주론 사조를 추앙하고 / 賦才推謝眺
시의 고아함은 광형을 사모하노라 / 詩故慕匡衡
취한 뒤엔 옥산이 무너지는 듯 / 醉後玉山倒
시야에는 은빛 바다가 환한 듯 / 望中銀海明
재신들은 의당 하례를 올리리니 / 宰臣當拜賀
낭사에서는 표문을 작성하겠네 / 郞舍表文成
인심은 아직도 두려워 떨지만 / 人心猶震疊
세상은 그런대로 태평하기에 / 世路且升平
군왕의 자리는 만대를 전하고 / 萬葉傳丹扆
옥형으로는 삼광을 관찰하네 / 三光察玉衡
온 천하엔 더러운 물건이 없고 / 普天無垢穢
작은 집은 더욱 텅 비고 밝은데 / 小室更虛明
목은 노인은 방금 꿇어앉아서 / 牧老方危坐
새로운 시를 갑자기 이루었네 / 新詩忽爾成
[주D-001]사조(謝眺) : 남제(南齊) 때의 시인(詩人)으로 당대에 재명(才名)이 높았으나 그는 일찍이 설부(雪賦)를 지은 적이 없으니, 사혜련(謝惠連)의 설부가 유명했던 것으로 보아 혹 사혜련의 착오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주D-002]광형(匡衡) : 한 (漢)나라 때 사람으로 일찍이 박사(博士)에게서 《시경(詩經)》을 전공하였고, 그는 특히 시(詩)를 잘 말하였으므로, 당시 제유(諸儒)들이 서로 말하기를, “시를 말하지 말라, 광형이 곧 올 것이다. 광형이 시를 말하면 모두 입이 벌어질 것이다.[無說詩 匡鼎來 匡說詩 解人頤]” 하였다. 《漢書 卷81 匡衡傳》
[주D-003]취한 …… 듯 :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의하면, 혜강(嵇康)의 풍채는 마치 외로운 소나무가 홀로 우뚝 선 것과 같고, 그가 취한 모습은 마치 크나큰 옥산(玉山)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옥형(玉衡)으로는 삼광(三光) : 옥형은 구슬로 제작한 천체(天體)를 관측하는 기계(器械)인 혼천의(渾天儀)를 가리키고, 삼광은 일(日), 월(月), 성신(星辰)을 가리킨다.
눈이 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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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어우러지기에 개지 않을까 했더니 / 勢合心疑不復晴
갑자기 구름 흩어지고 석양이 밝은지라 / 忽然雲散夕陽明
지팡이 끌고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 / 携筇欲上崔嵬頂
만리의 강산을 다시 바라보고 싶구나 / 萬里江山更目成
일천 산과 일만 구렁에 눈이 처음 개자 / 千山萬壑雪初晴
붓 잡으니 문득 두 눈이 환해짐이 놀랍네 / 把筆忽驚雙眼明
마치 포획하기 어려운 용사와도 같아라 / 却似龍蛇難捕得
천연으로 된 생동한 그림 그대로 둘밖에 / 放他活畫自天成
병든 나그네 연래엔 흐리고 개는 걸 알거니 / 年來病客識陰晴
강산에 해와 달이 밝음을 가장 기뻐한다네 / 最喜江山日月明
더구나 성군께서 사철 기후를 잘 고르시니 / 況是聖君調玉燭
늙은이의 시율이 어느새 이루어졌네그려 / 老夫詩律忽然成
[주D-001]병든 …… 알거니 : 날씨가 흐리면 특히 노쇠한 사람들이 뼈마디가 쑤시고 아픈 고통을 느끼게 되므로 한 말이다.
권 상주(權尙州)가 와서 이미 1수를 짓고, 인하여 그 운을 사용하여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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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지 오랜만에 상주가 갑자기 서울을 왔네 / 尙州久別忽來京
탕약 제공하던 당년에 지극한 정 입었었지 / 湯藥當年荷至情
문득 한스러워라 내 집은 전처럼 가난하여 / 却恨家貧猶似舊
탁주 마시며 서로 마주해 평생을 얘기하네 / 濁醪相對話生平
황곡 타고 요경엘 날아오르고 싶어라 / 欲騎黃鵠上瑤京
달빛 차고 바람 맑아서 속세가 아니라네 / 月冷風淸不世情
다만 다생 속에 혼탁한 기가 남아서 / 只爲多生餘濁氣
고금의 슬픈 감정 우울함을 누르기 어렵네 / 古今悲感鬱難平
화기가 아침부터 이미 도성에 가득해라 / 和氣朝來已滿京
임명장 내리려 하매 인심이 흡족해하네 / 除書欲下愜群情
지금 성내고 웃는 속에 진정이 드러났거니 / 如今嗔笑中情見
관리 임명 목록에 그 누가 불평을 외치랴 / 批目誰曾號不平
[주D-001]황곡(黃鵠) …… 아니라네 : 황 곡은 선인(仙人)이 타고 다닌다는 황색의 고니이고, 요경(瑤京)은 천제(天帝)가 있는 곳, 또 선인이 사는 곳을 가리킨다. 송(宋)나라 홍매(洪邁)의 〈채진인사(蔡眞人詞)〉에, “속세에는 이 곡조를 아는 사람이 없어, 문득 황곡을 타고 요경을 날아오르니, 바람은 차고 달빛은 깨끗하구나.[塵世無人知此曲 却騎黃鵠上瑤京 風冷月華淸]” 하였다.
[주D-002]다생(多生) : 불교 용어로, 중생이 선악의 업(業)을 지음으로 말미암아 윤회의 고통을 받아서 생사(生死)가 서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사전(賜田)을 받고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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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하 백발까지 빈한함을 불쌍히 여겨 / 憐臣衰白尙貧寒
산수 사이의 토전을 칙명으로 내리었네 / 勅賜土田山水間
예로부터 군신 사이엔 대의가 있거니와 / 自古君臣存大義
이제는 처자들의 시름겨운 낯을 면했구려 / 如今妻子免愁顔
물굽이엔 배 띄워서 밝은 달을 부를 게고 / 乘舟水曲招明月
산기슭엔 집 지어라 푸른 산을 깎아 내리 / 結屋雲根斲碧山
다만 여생을 은퇴하지 못한 게 흠이지만 / 只欠殘生乞骸骨
은혜에 감격한 두 눈물을 금치 못하겠네 / 感恩雙淚不禁潸
진포에 은퇴할 기약 저버린 지 이미 오래라 / 鎭浦鷗盟久已寒
비바람에 도롱이 삿갓이 아득하기만 하네 / 簑風笠雨渺茫間
종묘는 만대를 전해라 하늘이 한을 붙들고 / 宗祧萬世天扶漢
삼한의 인물은 임금이 안회를 주조하도다 / 人物三韓帝鑄顔
밝은 태양은 금잔지를 비추어 임하고 / 天日照臨金盞地
구름 연기는 금병산을 서로 비추어라 / 雲煙映帶錦屛山
그대와 함께 다시 만년을 기약하려 하니 / 與君更保桑楡晚
차마 헤어지지 못해 눈물이 줄줄 흐르누나 / 未忍臨岐涕淚潸
[주D-001]비바람에 도롱이 삿갓 : 당 (唐)나라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대삿갓 쓰고, 푸른 도롱이 입었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것 없어라.[靑箬笠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강호(江湖) 사이의 한적한 생활을 의미한다.
[주D-002]안회(顔回)를 주조하도다 : 양웅(揚雄)의 《법언(法言)》에 의하면, 혹자가 “사람을 주조(鑄造)할 수 있는가?” 하고 묻자, “공자(孔子)가 안회를 주조했다.”고 대답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인재 양성을 의미한다.
[주D-003]금잔지(金盞地) : 《유 설(類說)》에 의하면, 장안(長安) 영녕방(永寧坊)의 동남쪽은 바로 금잔(金盞) 같은 땅이라서 깨져도 다시 이루어낼 수 있으나, 안읍리(安邑里)의 서쪽은 바로 옥완(玉碗) 같은 땅이라서 깨지면 완전하게 할 수 없다고 한 데서 온 말로, 거주하기에 아주 좋은 터전을 의미한다.
[주D-004]금병산(錦屛山) : 산이 마치 비단 병풍을 둘러친 것처럼 화려한 것을 뜻한다.
성 정당(成政堂) 여완(汝完) 을 축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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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이 여기저기서 황비를 비추어라 / 文星錯落照黃扉
선생은 늙어도 쇠하지 않은 게 가장 기쁘네 / 最喜先生老不衰
세 아들의 등과는 지금 가장 성대하거니와 / 三子登科今最盛
칠순으로 상부에 듦은 고래로 드물고말고 / 七旬入省古來稀
위엄은 어사대의 기강 잡던 날에 남았고 / 威餘烏府提綱日
꿈은 연산서 군왕 호종하던 때를 깨었네 / 夢斷燕山負絏時
기억하건대 진강 가에 그대 행차 들렀을 때 / 記得鎭江旌旆過
백발의 가정이 채색옷 입고 춤을 추었었지 / 稼亭白髮舞菜衣
[주D-001]문성(文星)이 …… 비추어라 : 문성은 문운(文運)을 주관한다는 문창성(文昌星)을 가리키고, 황비(黃扉)는 곧 황색으로 문을 칠한 상부(相府)를 가리킨다.
[주D-002]진강(鎭江) 가에 …… 추었었지 : 진강은 목은의 고향인 한산(韓山)에 있는 물 이름이고, 가정(稼亭)은 곧 목은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의 호인데, 이곡이 일찍이 고향에 내려가 영친연(榮親宴)을 베풀었던 일을 가리키는 듯하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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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생술이 지루하기만 하여라 / 悠悠養生術
해 저물도록 궁한 집에 누워 있네 / 歲晚臥窮廬
폐에 병들어 술은 절로 즐기고 / 肺病自耽酒
눈은 어두워도 글은 꼭 읽는다오 / 眼昏猶讀書
먼 데 산들은 도성을 옹위하고 / 遙山拱畿甸
겨울 햇빛은 마을을 내려오네 / 寒日下村墟
적막함 속 까마귀 나는 저편에 / 寂寞鴉翻外
뜬구름만 때로 말고 펴고 하누나 / 浮雲時卷舒
16일에 장 밀직(張密直)이 와서 명함(名銜)을 두고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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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은 본디 신채가 준수하거니와 / 張公神彩秀
오래 못 만나 매양 생각했었는데 / 久闊每相思
봉 자를 문 위에 쓰던 날이요 / 鳳字題門日
추밀원의 요직을 담당한 때로세 / 鴻樞當軸時
젊어서부터 교의는 친밀했지만 / 早年交契密
병이 많아서 축하는 더디었구려 / 多病賀書遲
다시 약속하세나 천태의 길에서 / 更約天台路
거듭 우화사를 심방키로 말일세 / 重尋芋火師
[주D-001]봉(鳳) 자를 …… 날이요 : 진 (晉)나라 때 혜강(嵇康)의 친구 여안(呂安)이 일찍이 혜강의 집을 찾아갔을 적에 마침 혜강은 출타 중이어서 그의 형 혜희(嵇喜)가 여안을 반갑게 맞이하였는데, 여안이 문에 들어서지 않고 문 위에다 봉 자를 써놓고 갔던 데서 온 말이다. 봉 자를 파자(破字)하면 범조(凡鳥)가 되므로 이는 곧 주인을 우롱하는 뜻이었으므로, 전하여 여기서는 주인인 목은이 스스로 겸사해서 한 말이다.
[주D-002]우화사(芋火師) : 고 려 말기의 선승(禪僧) 천태 선사(天台禪師) 나잔자(懶殘子)를 가리킨다. 당(唐)나라의 고승 명찬 선사(明瓚禪師)의 별호가 나잔(懶殘)이었는바, 그가 일찍이 화롯불에 토란을 구워 먹은 일이 있어 그를 우화사라고도 일컬었는데, 고려의 천태 선사 또한 호가 나잔이므로 이렇게 일컬은 것이다.
7일에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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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관원들 표문에 절하여 금릉에 보내어라 / 群官拜表送金陵
궁문으로부터 나와 역말들 날듯이 달리네 / 出自宮門驛騎騰
관원들 반열 지어 의식 매우 성대하니 / 袍笏綴班儀甚盛
민간인들 몽땅 나와 유심히 구경하누나 / 閭閻空巷睇方凝
종산의 좋은 경치는 등잔 앞에서 적을 게고 / 鍾山美景燈前錄
요해의 일엽편주는 달빛 아래서 타리로다 / 遼海扁舟月下乘
그 옛날 연경을 자주 왕래할 적엔 / 當日燕京來往數
모래 먼지에 눈 못 뜬 걸 내 기억한다오 / 塵沙眯目記吾曾
해마다 성왕의 수를 강릉으로 축원하니 / 年年聖壽祝岡陵
송도하는 가락 소리가 안팎에 드날리누나 / 頌禱和聲內外騰
금릉은 아득해라 천지는 광활하기만 하고 / 縹緲金陵天地闊
적막한 변방 사막엔 눈서리가 어리었으리 / 寂寥沙塞雪霜凝
국방 힘쓰는 오늘은 태평이 곧 오려니와 / 枕戈今日艱將泰
당년엔 자격 없이 높은 자리 차지했었네 / 覆餗當年負且乘
나 써주면 동주 만든다는 건 부자일 뿐이니 / 用我東周夫子耳
백발에 부지런히 안자 증자나 배우련다 / 白頭勤苦學顔曾
[주D-001]금릉(金陵) : 지금의 남경(南京)인데, 명(明)나라 초기에 여기에 도읍했다.
[주D-002]강릉(岡陵) : 《시경》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산과 같고 언덕과 같으며, 산등성이와 같고 큰 언덕과 같다.[如山如阜如岡如陵]” 한 데서 온 말로, 곧 임금에게 축복(祝福)하는 말이다.
[주D-003]나 써주면 …… 뿐이니 : 부자(夫子)는 곧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만일 나를 써줄 이가 있다면 내가 동주를 만들겠다.[如有用我 吾其爲東周乎]”고 하였다. 《論語 陽貨》
한 상당(韓上黨)과 함께 광암사(光巖寺)에 놀러 가려고 새벽에 일어나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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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박씨가 화려한 명함 남겼어라 / 二朴留華剌
광암사엔 푸른 산빛이 둘러쌌으리 / 光巖擁翠微
글자 새김 구경하자고 요청을 하니 / 相邀觀刻字
외람히 글 지은 게 스스로 부끄럽네 / 自愧濫陳辭
구불구불 계곡물은 졸졸 흐르고 / 屈曲淸溪咽
우뚝한 겹겹 봉우리는 둘러쌌는데 / 崢嶸疊嶂圍
훌륭한 손과 나란히 가게 되었으니 / 聯鞍有佳客
그 몇 편의 시나 서로 창화할는지 / 唱和幾篇詩
해와 달과도 같은 선왕의 덕이 / 日月先王德
희미한 반딧불에 광휘를 더하네 / 增輝螢燭微
사관은 이를 사책에 기록할 게고 / 史臣編汗簡
중들은 큰 비석에 탁본을 뜨겠지 / 衲子打豐碑
구름 그림자는 처마에 비끼었고 / 雲影橫簷際
종소리는 철위산을 진동하여라 / 鐘聲震鐵圍
조용한 가운데 느낀 생각이 있어 / 靜中生感念
붓 잡고 즉시 시를 이루었네 / 把筆卽成詩
쇠한 나이로 인하여 병까지 깊고 / 年衰仍病重
짧은 식견에 재주 또한 부족한데 / 識短又才微
명 받고 외람되이 붓을 대하여 / 拜命猥當筆
깊이 생각해 애써 비문 기술했네 / 覃思強述碑
약한 재목으로 큰 집을 버티어라 / 弱材支大廈
맹수는 긴 포위망을 무너뜨리나니 / 猛獸潰長圍
후일 비평하는 솜씨가 나오거든 / 他日雌黃手
응당 이 시 기록하여 보게 해야지 / 應須錄此詩
[주D-001]희미한 반딧불 : 임금의 덕을 일월(日月)에 비유한 데 대하여 자신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철위산(鐵圍山) : 불경(佛經)의 말에 의거하면, 남섬부주(南贍部洲) 등 사대부주(四大部洲)의 밖에 철위산이 있는데, 그 한 중심은 바로 수미산(須彌山)이고 그 밖으로 칠산 팔해(七山八海)가 있고 또 그 밖을 철위산이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
광암사의 동역관(董役官)이 유고(有故)하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후일에 가기로 언약하고 인하여 절구 2수를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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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암사 골짜기를 유람하고픈 생각 있어 / 有意光巖洞裏游
눈 앞의 푸른 산빛이 갖옷을 적실 듯하더니 / 目中山翠欲侵裘
세상일은 뜻대로 안 되는 게 십중팔구라 / 不如意事十八九
사립문 걸어 닫고 흰머리만 득득 긁노라 / 掩却柴扉搔白頭
해마다 서문으로 말 타고 놀러 나갈 땐 / 歲歲西門駕出游
풀 마르고 서리 차가워 두툼한 갖옷 입었었지 / 草枯霜冷正重裘
그 당시의 학사가 지금은 몹시 늙었는데 / 當時學士今衰甚
세월이 하도 빨라 그때가 엊그제만 같구려 / 鼎鼎光陰似轉頭
일찍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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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으로 돌아가는 게 꿈속만 같아라 / 圖畫歸來似夢中
겹겹의 산수가 아득한 데 떨어져 버렸네 / 山重水複墮空濛
고공이 말 달림엔 훌륭한 풍채 보았거니와 / 古公走馬見風采
태보는 거북점 쳐서 먼 후세를 도모했다오 / 大保卜龜圖始終
스스로 우스워라 후생은 깊은 책략도 없이 / 自笑後生迷遠畧
일찍 선주 만나서 미세한 충성 바쳤으니 / 早逢先主效微忠
헤아리건대 이젠 농사나 힘써야 하거늘 / 筭來不過明農耳
원로가 지금은 상공의 자리에 있네그려 / 元老如今作上公
새벽녘 거센 바람에 기왓장이 날리려 할 제 / 向曉風狂瓦欲飛
꿈에서 깨어 심의 걸치고 꿇어앉았노라니 / 夢回危坐擁深衣
하늘가 외론 기러기는 날개에 서리 날리고 / 天涯斷鴈霜飄翅
바위틈의 외론 절집은 사립에 눈이 들이치네 / 石竇孤僧雪入扉
고요함 속엔 초연히 회고의 정이 우러나고 / 靜裏悄然生古意
한가함 속엔 만물의 동작 멎은 지 오래로다 / 閑中久矣息群機
멀리 알건대 저 북해의 누런 사막 밖에선 / 遙知北海黃沙外
북 매달고 술잔 돌리며 사냥을 시작하겠네 / 繫鼓傳觴欲打圍
[주D-001]그림 속 : 여기서 말하는 그림은 곧 아름다운 산수(山水)를 가리킨다.
[주D-002]고공(古公)이 …… 보았거니와 : 고 공은 곧 문왕(文王)의 조부(祖父)로서 호가 고공이고 이름이 단보(亶父)인 태왕(太王)을 가리킨다. 《시경》 대아(大雅) 면(綿)에, “고공단보가 아침 일찍 말을 달리어,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 아래 이르렀으니, 이에 강녀와 함께 와서 집터를 보았느니라.[古公亶父 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岐山 爰及姜女 聿來胥宇]”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태왕이 처음 빈(豳) 땅에 살다가 적인(狄人)이 자주 침범하자 그들을 피해 빈 땅을 버리고 다시 기산(岐山) 아래로 옮기기 위해 집터를 보던 일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3]태보(太保)는 …… 도모했다오 : 태 보는 곧 소공(召公)을 가리키는데, 성왕(成王) 때에 도읍을 장차 낙읍(洛邑)으로 옮기기 위해 태보인 소공이 먼저 낙읍에 가서 시찰하고 거북점을 쳐서 길조(吉兆)를 얻어 마침내 낙읍을 경영(經營)하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召誥》
[주D-004]일찍 …… 바쳤으니 : 선주(先主)는 촉한(蜀漢)의 소열황제(昭烈皇帝) 유비(劉備)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곧 목은 자신을 촉한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에 비유한 말이다.
[주D-005]농사나 힘써야 하거늘 : 주공(周公)이 만년에 성왕(成王)에게 이르기를, “너는 낙읍에 가서 공경히 할지어다. 나는 농사나 힘쓰련다.[汝往敬哉玆予其明農哉]” 한 데서 온 말로,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전야(田野)에 은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書經 洛誥》
고의(古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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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 끝의 비단이 있으니 / 我有一段錦
특별히도 이것을 애지중지하여 / 重之異尋常
비록 아름다운 것이 속에 있지만 / 雖然美在中
겹겹이 싸서 드러내지 않으려 하네 / 什襲不欲彰
한번 뭇사람의 알아줌을 입어 / 一爲衆所知
이에 천자의 당에 뽑혀 올라서 / 乃登天子堂
이를 마름질하여 천하에 입히면 / 裁成被天下
천지 사방이 그 광영을 접하리니 / 六合親耿光
해와 달과 광휘를 나란히 하여 / 日月並晃耀
요순 시대 태평으로 돌아갈 테라 / 皥皥歸陶唐
요순 시대의 재료 한 끝 비단을 / 陶唐一段錦
다만 가슴속에 간직할 뿐이로다 / 祗向欽中藏
내가 옛날에 술 마시기 좋아한 건 / 我昔好飮酒
어둠 속에 도피하려는 게 아니었네 / 匪以逃昏冥
예로부터 양로의 예가 있어 / 養老古有禮
삼대의 예가 경에 실렸거니와 / 三代著之經
더구나 질병의 발작을 만났을 땐 / 矧値疾病作
약에 조제하여 성령을 통해줌에랴 / 調藥通性靈
남쪽 창이 씻은 듯이 깨끗하여 / 南窓淨如洗
밝은 덕의 향기가 절로 풍기어서 / 自生明德馨
온갖 사기의 그림자 사라졌으니 / 百邪影已滅
상제가 바야흐로 보고 들으시리 / 上帝方視聽
비단으로는 내 몸을 치장하고 / 錦以賁我身
술로는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하여 / 酒以熏我心
성현의 지경에서 유유자적하고 / 優游聖賢域
시서의 숲에서 조용히 휴식하며 / 偃息詩書林
깊은 이치 탐구하여 태고에 들고 / 探幽入邃古
좋은 문장 지어 후세에 남기어라 / 咀華垂來今
봉황이 높은 뫼에서 우는 모습 / 鳳凰鳴高崗
내 거문고 타서 이를 노래하니 / 歌之絃我琴
문왕이 떠난 지 이미 오래이건만 / 文王去已遠
금옥 같은 음성을 듣는 것 같구나 / 如聞金玉音
[주D-001]예로부터 …… 실렸거니와 : 옛 날에 노인을 봉양하는 데 있어, 유우씨(有虞氏)는 연례(燕禮)로 하였고, 하후씨(夏侯氏)는 향례(饗禮)로 하였고, 은(殷)나라는 식례(食禮)로 하였고, 주(周)나라는 이상의 세 가지를 겸하여 행했던 데서 온 말이다. 《禮記 王制》
[주D-002]봉황이 …… 모습 : 《시 경》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이 울어대니, 저 높은 뫼이로다. 오동나무가 자라나니, 저 산의 양지쪽이로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현사(賢士)들을 많이 등용하라는 뜻으로 권고하여 부른 노래이다.
중손(仲孫)이 좌창동(左倉洞)에 있다가 온 것을 인하여 옛 놀이를 기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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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창동 안에 윤공의 집이 있으니 / 左倉洞裏尹公家
산 둘러싸고 솔바람 불고 물 흐르는 곳이로세 / 山擁松風水走沙
유모가 와서 중손을 데리고 떠나가니 / 乳母來携仲孫去
버들골 깊은 곳에 길 하나가 비꼈네그려 / 柳村深處路橫斜
제성천 가에 우뚝 섰는 절집에는 / 祭星川上梵王家
황금이 땅에 가득 모래처럼 펼쳐졌는데 / 滿地黃金布細沙
일찍이 성랑과 함께 깊은 밤에 예배할 제 / 曾共省郞深夜拜
옷소매에 땀 흐르고 복두건은 삐딱했었지 / 汗流衫袖幞頭斜
자리 밑의 뜬 연기는 십만의 민가이고 / 席下浮煙十萬家
동리 어귀 솔 그림자는 모래톱에 가득하네 / 洞門松影滿平沙
병중에도 기억이 난다 옛날 금종사에서 / 病中尙記金鍾寺
남은 글 유쾌히 읽느라 해가 저물어가던 걸 / 快讀殘書日欲斜
[주D-001]황금(黃金)이 …… 펼쳐졌는데 : 《불 국기(佛國記)》에 의하면, 인도(印度)의 수달장자(須達長者)가 세존(世尊)의 공덕(功德)을 듣고는 세존을 매우 존경한 나머지, 정사(精舍)를 건립하여 세존으로 하여금 그곳에 내림(來臨)하게 하려고 했던바, 당시 기다태자(祇多太子)에게 큰 원지(園地)가 있었으므로, 장자가 태자에게 그 원지를 사겠다고 청하니, 태자가 농담으로 황금을 이 원지에 가득 깔면 팔겠다고 하자, 장자가 즉시 소장했던 황금을 몽땅 털어내서 그 말대로 원지에 가득 까니, 태자가 크게 감동하여 즉시 그 원지에 정사를 세워서 세존으로 하여금 그곳에 거주하게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승사(僧舍)를 가리킨다.
장차 광암사(光巖寺)에 가려고 새벽에 일어나서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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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광암사를 가려고 / 欲向光巖去
먼저 비록을 바치었네 / 先將祕錄呈
창문 여니 서리는 기왓장에 가득코 / 開窓霜滿瓦
붓 적시려니 물은 병에 얼었구나 / 點筆水凝甁
취하려면 큰 술잔을 마셔야거니와 / 酩酊須浮白
나쁜 평판이야 사필에 맡기고말고 / 譏評付汗靑
지금도 강가에는 대밭이 있어 / 至今江上竹
댓잎 사이 눈발이 빈 뜰에 떨어지네 / 蒼雪落空庭
광암사로 가는 도중에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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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바야흐로 조반을 먹을 제 / 先生方早食
수상이 깊은 술잔을 권하누나 / 上相勸深杯
늘그막엔 한번도 못 취해봤거니 / 老境不一醉
좋은 회포를 몇 번이나 열었겠나 / 好懷能幾開
황교의 흐르는 물은 멀기만 한데 / 黃橋流水遠
송악산엔 흰 구름이 잔뜩 쌓였네 / 松岳白雲堆
누가 알랴 이리저리 돌아보는 곳에 / 誰識顧瞻處
충성 간장이 꺾이고 또 꺾이는 걸 / 忠肝摧復摧
환암 방장(幻菴方丈)의 석등(石燈)을 읊다. 이날 밤에 이 석등 밑에서 자는데, 석등이 심장(心臟) 위에 똑바로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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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았을 땐 머리 위에 누웠을 땐 심장에 당해 / 坐當頭上臥當心
한 점의 밝은 등불이 깊은 밤을 비춰주누나 / 一點靑熒照夜深
괴이해라 아직도 마음에 찌꺼기가 남은 건 / 怪底尙遺方寸地
다만 다섯 겹의 쌓임을 깨치지 못해서이리 / 祗緣難破五重陰
이미 혜일을 더해 사계를 환히 밝혔거니 / 已增慧日明沙界
도림에 선풍 진작시키길 어찌 두려워하랴 / 肯怕禪風振道林
아마도 우리 스님은 일찍이 그림자 마주해 / 想得吾師曾對影
백운 유수의 경계에 깊이 빠져들었으리 / 白雲流水境沈沈
[주C-001]환암 방장(幻菴方丈) : 환암은 고려 말기의 선승(禪僧)인 보각 국사(普覺國師) 혼수(混脩)의 호이고, 방장은 고승의 처소를 가리킨다.
[주D-001]다섯 겹의 쌓임 : 불가(佛家)의 용어로, 일체의 번뇌를 섭취하는 오온(五蘊), 즉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을 말한다.
[주D-002]혜일(慧日)을 …… 밝혔거니 : 혜일은 부처의 지혜를 햇빛에 비유한 말이고, 사계(沙界)는 항하(恒河)의 모래와 같이 수많은 세계를 말한다.
두 박 영공(朴令公)이 간단한 주연(酒宴)을 베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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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한 운암사여 / 寂寂雲巖寺
푸른 이끼에 땅은 더욱 그윽한데 / 蒼苔地轉幽
화려한 자리 막 베풀고자 하매 / 華筵方欲設
가랑비가 다시 사람을 만류하네 / 小雨更相留
두 박공의 고독한 충정의 날이요 / 二朴孤忠日
삼한이 재차 창조되는 시기로다 / 三韓再造秋
유독 가련한 건 병든 나그네가 / 獨憐衰病客
잔 가득 마시어 애써 시름 녹임일세 / 滿酌強澆愁
이날 서북면 원수(西北面元帥)가 행군(行軍)을 떠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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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깃발은 도성을 가리키는데 / 山下旌旗指鎬京
광암동 골짝은 소리 없이 적적하여라 / 光巖洞壑寂無聲
전조의 늙은 신하는 통곡하고플 뿐인데 / 前朝老臣欲痛哭
오늘의 성상께선 승전을 막 기대하누나 / 今日聖君方仰成
장군의 위엄과 명성은 교활한 적을 물리칠 게고 / 節鉞威名消桀黠
변방의 중대한 직무 위임은 태평을 가져오리 / 藩維重寄屬升平
취해 돌아가는 게 문득 소년 시절 같아라 / 醉歸却似少年日
작은 말 예쁜 화장으로 밤에 성을 들어가네 / 細馬紅粧夜入城
[주D-001]작은 말 …… 들어가네 : 이 백(李白)의 〈대주(對酒)〉 시에, “포도주는 금술잔에 넘실넘실, 십오세의 오나라 미인이 작은 말에 실렸네. 푸른 먹으로 눈썹 그리고 붉은 비단신 신었는데, 문자는 알지 못하나 창가는 유창하구나.[蒲萄酒金叵羅吳姬十五細馬駄 靑黛畫眉紅錦靴 道字不正嬌唱歌]” 하였다.
남의 말[馬]을 빌려 타면서 장난삼아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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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수척하면 청관이라고 말들 하는데 / 人言馬瘦是官淸
콩대 씹어대는 소리가 풍랑이 이는 듯하네 / 夜齕枯箕風浪生
누가 알랴 말 빌려 탄 주제가 더욱 교활해 / 誰識借乘尤狡獪
고삐 잡고 의기양양히 영걸들을 따르는 걸 / 揚揚按轡逐群英
비 오는 밤에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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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에 가랑비가 쓸쓸히 내리는데 / 小雨蕭疏入夜深
자다 깨서 일어나 앉아 조용히 읊조리네 / 夢餘危坐動微吟
예악을 끌어 돌리면 요순 세상이 되려니와 / 句回禮樂唐虞世
시서를 처리하는 건 공자 맹자의 마음일세 / 照管詩書孔孟心
천기를 살펴라 뇌환의 칼은 요원하고요 / 望氣遙遙雷煥劍
소리를 알아라 백아의 거문고는 아득하네 / 知音杳杳伯牙琴
연래에 전배들은 다 시들어 떨어지고 / 年來前輩凋零盡
원조의 일개 늙은 한림만 남았네그려 / 一箇元朝老翰林
[주D-001]천기(天氣)를 …… 요원하고요 : 진 (晉)나라 때 천문(天文)에 정통했던 뇌환(雷煥)이 북두(北斗)와 견우(牽牛) 두 별 사이에 자기(紫氣)가 서린 것을 보고 풍성(豐城)에 보검(寶劍)이 있는 것을 알고는, 친구인 장화(張華)의 주선으로 풍성 현령(豐城縣令)이 되어 가서 옛날 옥사(獄舍)의 터를 발굴하여 용천(龍泉), 태아(太阿) 두 보검을 찾아내어 용천은 친구 장화에게 주고 태아는 자신이 가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주D-002]소리를 …… 아득하네 : 옛 날에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어서, 백아가 높은 산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탈 때는 종자기가 말하기를, “험준한 것이 마치 태산(泰山) 같다.” 하였고, 백아가 흐르는 물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탈 때는 종자기가 말하기를, “광대한 것이 마치 강하(江河)와 같다.”고 하여, 백아가 생각한 것은 종자기가 반드시 알아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지기(知己)의 친구를 뜻한다. 《列子湯問》
고의(古意)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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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음기 속에 해가 저물어가니 / 重陰歲云暮
쌀쌀한 바람이 끝없이 일어나누나 / 悲風興未已
산천이야 어찌 적막하리오 / 山川何寂寥
은거하는 군자가 여기 있거늘 / 屛居有君子
태고 시대 이전을 깊이 생각하고 / 潛心大素前
번화한 데에 자취를 단절하노니 / 削迹繫華裏
양심 보존하기도 매우 어렵지만 / 操存亦孔艱
먼 데 가려면 꼭 가까운 데부터라네 / 行遠必自邇
가시나무가 앞 길에 가득 찼으니 / 荊棘滿前途
하 슬퍼라 밟을 곳이 아니로다 / 哀哀非所履
하찮은 이 몸도 진정 명이 있거니 / 微軀諒有命
아무쪼록 끝까지 잘 보존해야지 / 庶以保終始
가랑비는 그쳤다 도로 내리고 / 小雨止還作
찬 날씨는 밝았다 또 어두워지는데 / 寒日明又昏
숨은 사람이 깊이 들앉았노라니 / 幽人閉深戶
맑은 향기가 쑥대문을 뚫고 나오네 / 淸香透蓬門
한가히 앉아 생각하는 바 있으니 / 燕坐有所思
위대하여라 주역의 건곤이여 / 大哉易乾坤
태극이 한번 동정을 일으키매 / 太極一動靜
저절로 천지의 뿌리가 생겼으니 / 自生天地根
내 몸 가운데 돌이켜 살필진댄 / 反觀吾身中
성성에 마음을 항상 둬야 하거늘 / 成性當存存
어찌하여 외물에 노예가 되어서 / 奈何役於物
밤낮으로 본원에 흐려져 가는고 / 日夕迷本原
옛사람은 승낙을 중하게 여겨 / 古人重然諾
몸을 던져 위급한 남을 구할 제 / 捐軀赴人急
방 안에 가득한 처자식들이 / 妻子滿室中
슬퍼하여 소리 높이 울어대지만 / 哀哀啼且泣
이를 돌아보고 낯빛도 변치 않거니 / 顧之色不變
어찌 재앙 미치는 걸 걱정했으랴 / 何曾憂禍及
보통 사람은 머리를 잔뜩 움츠리어 / 常人縮頭頸
갑자기 어려움 닥칠까 염려하다가 / 猶恐忽來襲
어느 날 문득 어려움이 평정되면 / 一旦屯難平
의기양양하게 높은 계급에 올라 / 揚揚躡峻級
곡돌 말한 자를 도리어 밀쳐내고 / 反擠曲堗者
스스로 난액한 자와 나란히 서네 / 自與爛額立
[주D-001]산천(山川)이야 …… 있거늘 : 공 치규(孔稚圭)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은사인 상장(尙長)은 이 세상에 없고, 중장통(仲長統)은 이미 가버려서, 산이 적막해졌으니, 천재에 산을 누가 감당해 줄꼬.[尙生不存 仲氏旣往 山阿寂寥 千載誰賞]”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먼 데 …… 데부터라네 : 《중 용장구(中庸章句)》 제15장에, “군자의 도는 비유하자면 마치 먼 데를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시작하며, 높은 데를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로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다.[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성성(成性)에 …… 하거늘 : 성 성은 이루어진 성, 즉 타고난 성을 뜻한다.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천지가 자리를 베풀거든 주역이 그 가운데 행해지나니, 이루어진 성에 마음을 항상 두는 것이 도의의 문이다.[天地設位 而易行乎其中矣 成性存存 道義之門]”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곡돌(曲堗) …… 서네 : 곡 돌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굴뚝을 굽게 내는 것을 말하고, 난액(爛額)은 불을 끄다가 이마를 데는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 곽광전(霍光傳)에 의하면, 한 나그네가 주인집의 굴뚝이 곧게 나고 바로 그 곁에 땔나무가 쌓여 있는 것을 보고는, 주인에게 화재가 날 수 있으니 굴뚝을 굽게 내고 땔나무를 먼 데로 옮기라고 권했으나, 주인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가, 과연 화재가 났다. 그러자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행히 불을 꺼주었는데, 주인은 감사의 보답으로 주연(酒宴)을 크게 베풀고서 이마 덴 사람을 가장 윗줄에 앉히고 나머지는 각각 공에 따라 차례로 앉히면서, 굴뚝을 굽게 내라고 말한 사람은 아예 거론하지도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자격 없는 자가 높은 자리에 오름을 뜻한다.
절구(絶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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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뚫고 새나온 석양은 창을 밝게 비추고 / 漏雲殘日照窓明
한 심지 향연은 푸른 실이 모락모락 피는데 / 一炷香煙碧縷生
병든 나그네 세정 잊고 깊이 들어앉았다가 / 病客忘情且深坐
찾는 이 문 두드리는 소리에 갑자기 놀라네 / 忽驚剝啄叩門聲
병중의 쇠한 몰골은 거울 속에 환히 비치고 / 病裏衰容鏡裏明
영겁의 혼탁한 번뇌는 눈앞에 펼쳐 보이네 / 劫前麤念眼前生
푸른 구름 깊이 잠긴 광암동 골짜기에 / 碧雲深鎖光巖洞
조용히 앉아서 홀로 종경 소리를 듣노라 / 靜坐獨聞鐘磬聲
산속의 푸른 동굴은 모두 텅 비고 밝은데 / 山藏碧洞儘虛明
거듭 노니는 병든 나그네 몹시도 야위었네 / 病客重游大瘦生
후일 참선하는 걸상 가에서 곤히 졸다가 / 他日困眠禪榻畔
문을 나서면 때로 탁본하는 소리 들리리 / 出門時聽打碑聲
비가 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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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에 성긴 비 내리는 걸 자주 보노니 / 仲冬頻看雨疏疏
울 밑의 노란 국화는 시들은 나머지로세 / 籬下黃花憔悴餘
손들의 청담 나누는 데는 술잔이 없고요 / 賓客淸談無盞斝
아이들 날뛰는 곳엔 뜨락이 떠들썩하네 / 兒童狂走閙庭除
새가 돌아오니 팽택의 솔 길이 생각나고 / 鳥還彭澤思松逕
용이 누워라 남양의 초가집이 기억나네 / 龍臥南陽憶草廬
다행히 한 편의 주역이 있음을 힘입어 / 賴有一篇周易在
조용히 살피며 때때로 은자에 비기노라 / 靜觀時復擬潛虛
[주D-001]새가 …… 생각나고 : 일 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지낸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길은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있네.……구름은 무심히 산굴에서 나오고, 새는 날다 지쳐 돌아올 줄 아누나.[三逕就荒松菊猶存……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용(龍)이 …… 기억나네 : 후 한(後漢) 말기에 제갈량(諸葛亮)이 남양(南陽) 융중(隆中)의 초가집에 은거하고 있을 적에 그의 친구 서서(徐庶)가 유비(劉備)에게 제갈량을 천거하면서 말하기를, “제갈량은 바로 사람 가운데 누워 있는 용[臥龍]이니, 그를 만나 보지 않으렵니까?”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친구를 마주하여 스스로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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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대청에서 좋은 친구 마주하며 / 虛廳對良友
생각나는 대로 얘기를 하다 보니 / 出語隨所思
정밀한 의리는 절로 아름답거니와 / 精義自爲休
곧은 말은 다시 곁가지가 없구려 / 直言無復枝
곁으론 노장의 학문을 탐구하고 / 旁探莊老學
멀리 주공 공자의 말을 이으노니 / 遠繫周孔辭
이만하면 만년 수양이 넉넉한데 / 晚景足頤養
구이에서 산들 무엇이 더러우랴 / 何陋居九夷
고요히 미래의 일에 대응하되 / 寂然應來物
행위도 없고 또한 생각도 없어 / 無爲復無思
한 마음엔 천지가 갖추어졌고 / 一心具天地
만사는 줄기와 가지가 나뉘었거니 / 萬事分幹枝
나갈 만하면 다시 왜 물러가며 / 可就復何去
받을 만하면 다시 왜 사양하랴 / 當受復何辭
의리는 구차하지 않음에 있나니 / 義在不苟耳
청하기도 해라 저 백이여 / 淸哉彼伯夷
입술 놀리면 절로 망언이 나오고 / 搖唇自亂道
눈 감으면 생각을 깊이 하여라 / 閉目仍沈思
혹 어렵긴 바다를 뛰어넘기와도 같고 / 或難似超海
혹 쉽긴 나뭇가지를 꺾기와도 같네 / 或易如折枝
분명하게 대훈을 깊이 새기고 / 明明服大訓
묵묵히 미사를 탐구하노니 / 默默探微辭
지극한 도가 진정 나에게 있는데 / 至道苟在我
어찌 동이에서 난 것을 한하랴 / 豈恨生東夷
[주D-001]구이(九夷)에서 …… 더러우랴 : 구 이는 아홉 종족이 있는 동방의 오랑캐를 가리킨다. 공자(孔子)가 일찍이 구이에 가서 살고 싶어 하자, 혹자가 말하기를, “더러운 곳이거니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군자(君子)가 그곳에 살면 무슨 더러울 것이 있겠는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주D-002]고요히 …… 없어 : 《주 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주역은 생각이 없고 행위도 없어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낌이 있으면 마침내 천하의 일을 통하나니, 천하의 지극한 신이 아니면 누가 여기에 참예할 수 있으랴.[易 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其孰能與於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청(淸)하기도 …… 백이(伯夷)여 :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백이는 성인 가운데 청한 자이다.[伯夷聖之淸者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下》
[주D-004]혹 어렵긴 …… 같네 : 맹 자가 제 선왕(齊宣王)에게 왕도(王道) 정치를 권유하는 말 가운데, “왕께서 왕도정치를 하지 못하는 것은 태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북해를 뛰어넘는 것과 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른의 명에 따라 초목의 가지를 꺾는 것처럼 쉬운 것이다.[王之不王 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 王之不王 是折技之類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梁惠王上》
[주D-005]대훈(大訓) : 옛 성왕(聖王)들의 교훈을 가리킨다.
[주D-006]미사(微辭) : 은미하게 서술하여 넌지시 일깨우는 말을 가리킨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정공(定公) 원년(元年) 조에, “정공 애공 연간에 은미한 말이 많다.[定哀多微辭]” 하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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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천명 따름을 중히 여기나니 / 君子重受命
시세에 붙좇는 건 진정이 아니라오 / 趨時非眞情
대의가 있는 곳에 / 大義有所在
그 위엄은 장성과도 같은 건데 / 隱隱如長城
어찌하여 혹자는 궤도를 바꾸어서 / 奈何或改轍
황폐한 길을 스스로 종횡하는고 / 荒塗自縱橫
산은 길고 해는 또 저물어가니 / 山長日且暮
거센 바람에 여우가 울어대누나 / 風急狐狸鳴
객사에서 또 잠을 달게 자노라니 / 逆旅且酣夢
등불은 밤새도록 환히 밝아라 / 燈花終夜明
타고난 명을 진정 즐길 만하니 / 賦命信可樂
내일 아침엔 또 외로운 길을 떠나리 / 詰旦將孤征
홀로 앉아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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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앉은 남쪽 창에 해는 또 저물어가는데 / 獨坐南窓又欲晡
고향이라 천리 밖 강호가 아득하기만 하네 / 故鄕千里渺江湖
함께 놀던 무심한 새는 아직도 기억커니와 / 同游尙記無心鳥
복관된 나는 되레 이마 병든 망아지 같구나 / 起廢還如病顙駒
가을 풀 찬 연기는 백악산을 둘러쌌고 / 秋草寒煙籠白嶽
저문 구름 비낀 해는 창오를 붉게 비추네 / 暮雲斜日靄蒼梧
유유히 잠깐 새에 고금을 이루는 가운데 / 悠悠俯仰成今古
두 눈썹 찡그리고 수염 꼬며 끙끙 읊노라 / 皺盡雙眉撚斷鬚
홀로 앉아 유유히 현묘한 이치 연구하노라니 / 獨坐悠悠思入玄
단혈의 봉황 새끼가 외로이 날려고 하누나 / 鳳雛丹穴欲孤騫
오동의 새벽 이슬엔 붉은 햇빛이 번득이고 / 梧桐曉露翻紅日
가시나무 찬 서리는 푸른 하늘에 가득하네 / 枳棘秋霜滿碧天
고당에서 거울 보는 건 어찌할 수 없거니와 / 不奈高堂照明鏡
그 누가 이별곡은 슬픈 가락에 부치게 했나 / 誰敎別曲寄哀絃
평생에 쉽게 보기 어려우리라 자부했건만 / 平生自負難輕易
행적을 보면 때때로 망연자실하게 하누나 / 視履時時更惘然
[주D-001]창오(蒼梧) : 순(舜) 임금이 남쪽으로 순수(巡狩)하다가 창오의 들에서 붕어하여 그곳에 장사 지냈던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공민왕의 능을 가리킨다.
[주D-002]단혈(丹穴)의 봉황 새끼 :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단혈산(丹穴山)에는 마치 닭처럼 생긴 새가 있어 오색(五色)의 문채(文彩)가 찬란한데, 이를 봉황(鳳凰)이라 한다고 하였다.
[주D-003]고당(高堂)에서 거울 보는 건 :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에, “그대는 또 못 보았나 높은 대청 밝은 거울에 백발 슬퍼하는 걸, 아침엔 검푸른 실 같더니 저녁엔 흰 눈 같구려.[又不見高堂明鏡悲白髮朝如靑絲暮如雪]” 한 데서 온 말이다.
전라 영공(全羅令公)이 귤(橘)을 보내 준 데 대하여 받들어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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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관 조회는 위의가 하도 성대했거니와 / 八關朝會盛威儀
선왕께서 감귤 하사한 때를 기억하노라 / 曾記先王賜橘時
당시의 존안은 지금 그 어드메 계시는지 / 當日慈顔今底處
동정의 향기 속에 두 눈물이 흐르는구나 / 洞庭香裏淚雙垂
누추한 시골 쓸쓸하여 왕래하는 이 없기에 / 陋巷蕭條絶往來
푸른 이끼에 날린 눈발에 갑자기 놀랐더니 / 忽驚飛雪落蒼苔
머나먼 남쪽 바닷가 홍련막에서 보내온 / 遙遙南海紅蓮幕
서신 대하여 감귤 봉함 재차 열게 되었네 / 對面華緘得再開
[주D-001]팔관 조회(八關朝會) : 고 려 시대 불교의식으로서 연등회(燃燈會)와 함께 국가의 2대 의식의 하나였다. 팔관회는 중동(仲冬)에 개경(開京)에서, 맹동(孟冬)에 서경(西京)에서만 거행했는데, 이 의식에는 특히 천령(天靈), 오악(五岳), 명산(名山), 대천(大川), 용신(龍神) 등 토속신(土俗神)에게 제(祭)를 올렸는바, 이 대회 때는 임금이 하례(賀禮)를 받고 군신(群臣)의 헌수(獻壽)와 축하 선물의 봉정(奉呈) 및 가무백희(歌舞百戱)가 행해졌다고 한다.
[주D-002]동정(洞庭)의 향기 : 감귤을 가리킨다. 동정산(洞庭山)의 감귤이 가장 빨리 익고 특히 껍질이 섬세하고 맛이 좋기로도 유명하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홍련막(紅蓮幕) : 막 부(幕府)의 미칭(美稱)이다. 남제(南齊) 때의 장군 왕검(王儉)이 유고지(庾杲之)를 위장 장사(衛將長史)로 등용하자, 소면(蕭緬)이 유고지의 인품을 찬미하여 ‘푸른 물 위의 연꽃[綠水芙蓉]’ 같다고 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왕검의 막부에 들어가는 것을 일러 연화지(蓮花池)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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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 고개 숙여 세속 따라 처신함에도 / 我自低眉隨處行
남들은 나를 높은 정취 드높인다 지적하네 / 人猶指點抗高情
취하면 미쳐 매양 꽃 앞의 달을 생각하고 / 醉狂每憶花前月
돌아갈 꿈은 유독 바닷가의 성을 찾는다오 / 歸夢偏尋海上城
추구 같은 시서는 남은 맛이 엷기만 한데 / 芻狗詩書餘味薄
목어와 금벽의 옛 놀이는 맑기만 했었지 / 木魚金碧舊游淸
노년에는 이름의 굴레를 도피하고자 하여 / 老年擬欲逃名網
문득 옛날 노나라 두 유생이 부럽기만 하네 / 却羨當時魯兩生
내 스스로 고도를 추심하여 행하는데도 / 我自追尋古道行
남들은 나를 방자한 정 꾸민다고 지적하네 / 人猶指點飾淫情
비록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보진 않지만 / 觀天縱不坐於井
뜻을 막는 덴 의당 성을 쌓듯이 해야 하리 / 防意却須如彼城
감히 난초 향을 솔의 성함 같다고 말하랴만 / 敢道蘭馨似松盛
부질없이 옥윤과 빙청 견주는 말은 들었네 / 空聞玉潤比氷淸
그럭저럭 지내다가 이제는 늙었는지라 / 悠悠唯唯今衰老
또 새로운 시 가지고 친구에게 고하노라 / 且把新詩告友生
[주D-001]취하면 …… 생각하고 : 백거이(白居易)의 〈노병(老病)〉 시에, “낮에는 생가 소리 듣고 밤에는 취해 잠들어라, 달빛 아래가 아니면 바로 꽃 앞이로세.[晝聽笙歌夜醉眠 若非月下卽花前]”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추구(芻狗) : 옛날 무속(巫俗)에서 제사에 쓰기 위해 짚으로 만든 개를 가리키는데, 제사가 끝나면 이를 곧 내버리므로, 전하여 별로 쓸모없는 사물이나 혹은 언론(言論)을 비유한다.
[주D-003]목어(木魚)와 금벽(金碧) : 목어는 불공이나 예불(禮佛)할 때 두드리는 목탁(木鐸)을 가리키고, 금벽은 곧 승사(僧寺)의 화려한 단청(丹靑)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하여 승사를 의미한다.
[주D-004]노(魯)나라 두 유생 : 한 고조(漢高祖) 초기에 숙손통(叔孫通)이 예악(禮樂)을 제정하기 위해 노나라의 유생(儒生) 30여 인을 초빙했을 때, 유독 두 유생만이, “숙손통의 행위가 옛 도에 합치하지 못하므로 우리는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끝내 은거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비록 …… 않지만 :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을 본다는 것은 곧 문견이나 견해가 아주 좁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D-006]뜻을 …… 하리 :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에, “입 조심하기를 병 막듯이 하고, 뜻 억제하기를 성 쌓듯이 하라.[守口如甁 防意如城]”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감히 …… 말하랴만 : 난초는 본디 현자(賢者)에 비유되거니와, 소나무는 특히 굳은 절조를 상징하는 것이다.
[주D-008]옥윤(玉潤)과 빙청(氷淸) 견주는 말 : 장 인과 사위가 똑같이 훌륭함을 뜻한다. 진(晉)나라 때 위개(衛玠)는 특히 풍채가 뛰어났는데, 그의 장인인 악광(樂廣)은 본디 천하에 명망이 높았으므로, 의논하는 이가 말하기를, “장인은 얼음처럼 맑고, 사위는 옥같이 깨끗하다.[婦公永淸 女壻玉潤]” 한 데서 온 말이다.
밤에 처마 밑의 낙숫물 소리를 듣고 새벽에 일어나서 그것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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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침침한 서쪽 창 달빛 떨어진 때에 / 燭暗西窓月落時
친구는 어드메 있는지 정히 생각나누나 / 故人何處政相思
눈이 녹아 낙숫물이 밤새도록 떨어지니 / 雪消簷溜終宵滴
문득 파산의 밤비 읊은 시와 비슷하네 / 却似巴山夜雨詩
산중에서 사기 읽던 시절을 기억하노니 / 記得山中讀史時
모호한 시비 포폄하느라 퍽 고심했었지 / 褒疑貶似苦尋思
이제는 홀로 서서 이도저도 다 놓친 곳에 / 如今獨立亡羊處
호증의 두어 수 시가 우습기만 하구나 / 笑殺胡曾數首詩
[주D-001]촛불 …… 비슷하네 : 당 (唐)나라 이상은(李商隱)이 멀리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여 지은 〈야우기북(夜雨奇北)〉 시에, “그대 돌아올 날 물어도 기약은 없고, 파산의 밤비만 가을 못에 넘치누나. 어찌하면 함께 서쪽 창의 촛불 심지 자르면서, 파산의 밤비 내리던 시절을 얘기할거나.[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 何當共翦西窓燭 却話巴山夜雨時]”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호증(胡曾) : 당나라 때 강직한 선비였는데, 그의 저서 가운데 특히 《영사시(詠史詩)》 상ㆍ하권은 송원(宋元) 시대에 성행했었다.
병중에 우연히 예전의 놀이가 생각났는데, 이제는 늙었으니 어떻게 다시 체험할 수 있겠는가. 애오라지 3편의 시를 짓노니, 대체로 세월의 무상함을 몹시 가슴 아프게 여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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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관음(巖串吟)
금주의 북쪽이요 양천의 동쪽이라 / 黔州之北陽川東
한수가 북으로 꺾여 끝없이 흘러가니 / 漢水折北流無窮
바다로 내려간단 말은 우공에 있거니와 / 朝宗于海著禹貢
도성을 안고 돌아 어룡이 달리듯 하는데 / 回抱京邑趨魚龍
남방의 조운선들이 한데 모인 곳이라 / 南方漕轉所都會
천 척 배의 노 젓는 소리 창공을 뒤흔드네 / 千艘飛櫓聲搖空
내가 처음 한산 마을을 왕래할 적에는 / 我初往返韓山村
타루에 높이 누워 돛에 긴 바람 받아서 / 高臥柁樓帆長風
순식간에 대번 백여 리를 달리노라면 / 瞬息一踔百餘里
여기저기 등불 아래 술잔은 낭자하고 / 燈火錯落杯盤重
푸른 물결에서 아름다운 고기를 낚아 올려 / 碧波釣出錦鱗魚
얇게 회치고 파 밑동 잘게 썰어 양념했었네 / 葱白細和飛縷紅
그런데 어이해 해적이 가끔 뭍에 올라서 / 乃何海盜或登岸
노약자들이 깊은 산중으로 숨게 되었는고 / 老弱逃遁深山中
다행히 지금은 긴 얼음이 강어귀를 막아서 / 幸今長氷塞江口
해가 창문에 오르도록 코 골며 편히 잔다오 / 鼻息窓日方曈曈
용산음(龍山吟)
용산은 한강물을 절반쯤 깔고 앉았고 / 龍山半枕漢江水
푸른 소나무는 농촌 마을 산에 가득한데 / 蒼松滿山桑柘里
개 닭 소리 들리는 수십 가호 마을에는 / 里中鷄犬數十家
기울어진 띳집에서 낮 연기가 피어올랐네 / 茅屋欹傾午煙起
배에서 내려 말을 타고 찬 여울을 건너서 / 下舟跨馬涉寒灘
꽃 떨어지는 빈 대청에 들어가 쉬노라니 / 入憩空廳落花裏
아전이 와서 채소 곁들인 점심상을 올리고 / 吏來上食雜野蔬
또 이어서 강물 고기의 별미를 올리었지 / 繼進異味江中魚
나는 이때 서울을 가느라 더 머물지 못하고 / 我時赴京不得住
석양 까마귀 너머로 한 촌락에 투숙했는데 / 夕陽鴉外投村墟
푸른 솔밭에 뜬구름 나직한 걸 돌아보니 / 回看翠色浮雲低
솔 사이 집에서 하룻밤 못 잔 게 아쉬웠네 / 恨不一宿松間廬
더구나 지금은 와병으로 더욱 쇠퇴해져서 / 況今臥病轉荒落
속으로 세어 보매 기이한 경관이 역력함에랴 / 默數奇觀明歷歷
창을 열면 다행히 푸른 용수산이 있기에 / 開窓橫翠有龍巒
때로 소리 높이 읊어 시름과 적막 달래노라 / 時復高吟慰愁寂
장단음(長湍吟)
내 나이 이십 이전에 여러 사람을 따라서 / 我年未冠逐諸子
글 읽을 때 산중의 절을 몹시 좋아했는데 / 讀書酷愛山中寺
명산의 가는 곳마다 인적이 하도 많아서 / 名山到處人迹多
응접하느라 학문에 전념할 수가 없었네 / 應接無由得專志
배를 타고 재차 교동의 산으로 들어가니 / 浮舟再入喬桐山
해문의 달빛이 살갗에 닿아 차가웠었지 / 海門月色侵肌寒
또 들으니 나라 동쪽 가장 후미진 곳에 / 又聞國東最幽僻
한 가닥 감악산이 구름 끝에 뻗쳤다기에 / 一髮紺岳橫雲端
장단엘 좋이 당도하자 해가 막 떨어졌는데 / 恰到長湍日初落
언덕 너머 거룻배는 백사장에 방치된 채 / 隔岸小舟沙上閣
건너고자하여도 사람이 없어 어찌할 수 없기에 / 欲渡無人知奈何
풀 새에서 귀뚜라미와 하룻밤을 지냈었네 / 露宿草間蛩一夕
새벽엔 사람이 와서 노를 힘차게 저으니 / 曉來人至棹浮空
물결 위에 바람 일어 새가 나는 듯했지 / 波面生風如鳥革
상쾌도 하여라 한 번 건넌 게 이러함이여 / 快哉一涉有如此
어제의 고난이 오늘은 행복이 되었도다 / 前日之屯今日利
벼슬길의 험난함과 평탄함은 관심 없어라 / 官途險易莫關心
늙었으니 들어앉아 행운 불운을 잊어야지 / 老矣閉門忘泰否
[주D-001]한수(漢水)가 …… 있거니와 :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양자강과 한수는 바다로 세차게 내려간다.[江漢朝宗于海]” 하였으므로, 조선의 한강을 중국의 한수에 빗대서 한 말이다.
대서(代書)하여 한 동년(韓同年)에게 받들어 부치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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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엔 이끼 낀 길이요 / 海岸莓苔路
산마을엔 단청 칠한 집이로다 / 山村罨畫家
추위에 떨며 꿇어앉았는 곳에 / 苦寒危坐處
해 그림자는 창 반쯤 비끼었네 / 日影半窓斜
내포는 군대 진영이 있는 곳이요 / 內浦屯營處
청주는 옛 친구의 집이로다 / 西原舊故家
안장과 굴레가 눈을 현란케 하니 / 鞍籠眩人目
다시 모자 차양 기울임을 깨닫겠네 / 更覺帽簷斜
성균관에서 알성시를 치르고 / 謁聖成均館
헌납의 집에 행차를 멈추었네 / 停驂獻納家
앓은 나머지 갑제에서 노닐 제 / 病餘游甲第
내 발걸음은 아직도 삐딱하구려 / 我步尙欹斜
토랑(兔郞)이 산 너머 별장에서 유학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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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랑이 산 너머로 갔는데 / 兔郞山後去
전사의 벽은 이제 막 말랐네 / 田舍壁初乾
조월을 하려고 통나무배 만드는데 / 釣月刳木小
경운을 하려니 길 통하긴 어려워라 / 耕雲通路難
긴 냇물은 응당 망천과 비슷한데 / 長川應像輞
깊은 골은 반곡이라 칭할 만하네 / 深谷可名盤
기달산은 새 서울과 가까우니 / 箕達新京近
폭건을 쓰고 수시로 왕래하련다 / 幅巾時往還
[주C-001]토랑(兔郞) : 묘년생(卯年生)에 대한 애칭인 듯하나, 가리키는 사람은 자세하지 않다.
[주D-001]조월(釣月) : 달빛 아래서 낚시질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2]경운(耕雲) : 깊은 산중에서 농사짓는 것을 말한다.
[주D-003]망천(輞川) :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남쪽에 있는 계곡 이름으로, 경치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당(唐)나라 시인 왕유(王維)가 일찍이 이곳에 별장을 짓고 그곳의 십이승경(十二勝景)을 화폭(畫幅)에 담아 망천도(輞川圖)를 제작했다.
[주D-004]반곡(盤谷) : 태항산(太行山) 남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산수가 아름답기로 유명했는데, 한유(韓愈)가 일찍이 반곡으로 돌아가는 이원(李愿)을 보내는 서(序)를 지었다.
회포를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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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로 낙숫물 아직 떨어져라 / 夜雨簷猶滴
아침엔 갰으나 길은 안 말랐네 / 朝晴路未乾
몸이 있는 게 원래 걱정거리라 / 有身元是患
처세함에 점차 어려운 걸 알겠네 / 處世漸知難
혹은 포도주를 보내 주기도 하지만 / 或送蒲萄酒
누가 목숙반을 가련하게 여기랴 / 誰憐苜蓿盤
동짓달도 이제 절반을 넘었는데 / 仲冬今過半
어느 날에나 사직하고 돌아갈꼬 / 何日乞身還
처음엔 봉황이 이르길 기약했더니 / 初期鳳鳥至
문득 말라붙은 책벌레처럼 되었네 / 却似蠹魚乾
기분좋게 책을 보기는 쉬우나 / 快意觀書易
눈 어두워 글자 읽긴 어렵구려 / 昏眸讀字難
살에 못박힘은 우공을 생각하고 / 腁胝思禹貢
길곡한 것은 은반을 생각하건만 / 詰曲想殷盤
백발이 되도록 끝내 쓸모가 없어 / 皓首終無用
연래에는 팔환을 배우노라 / 年來學八還
일찍이 붉은 꽃이 이슬에 젖었더니 / 露萼曾紅濕
연기 낀 푸른 산이 다 말라가누나 / 煙山欲翠乾
비 오고 개는 데 길흉이 나타나니 / 雨暘休咎見
나라를 지켜 보호하기 어렵고말고 / 邦國守持難
도가 원숙하매 단약이 솥에 꽉 찬 듯 / 道熟丹盈鼎
시가 이뤄지매 구슬이 쟁반에 구른 듯 / 詩成珠走盤
예로부터 명리의 길 떠나는 것은 / 古來名利路
지친 새가 돌아갈 줄 아는 것 같다네 / 倦鳥自知還
[주D-001]몸이 …… 걱정거리라 : 《노자(老子)》 제13장에, “나에게 큰 걱정이 있는 까닭은 나의 몸이 있기 때문이니, 내 몸이 없어짐에 미쳐서는 나에게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吾所以有大患者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목숙반(苜蓿盤) : 야 채의 일종인 목숙을 담은 쟁반이란 뜻으로, 스승의 빈약한 식생활을 가리킨다. 당(唐)나라 설령지(薛令之)가 동궁 시독(東宮侍讀)으로 있을 적에 관서(官署)가 워낙 빈약했으므로, 시를 지어 스스로 슬퍼하기를, “아침 해가 둥그렇게 떠올라서, 선생의 밥상을 비추네. 밥상에는 무엇이 있느뇨, 난간에서 자란 목숙이로세.[朝日上團圓 照見先生盤 盤中何所有 苜蓿長欄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봉황(鳳凰)이 이르길 : 봉황이 이르는 것은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순(舜) 임금 때와 문왕(文王) 때에 모두 성왕(聖王)의 상서인 봉황이 나타났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살에 …… 생각하고 : 우 공(禹貢)은 《서경(書經)》의 편명으로, 우(禹) 임금이 일찍이 10년에 걸쳐 구주(九州)의 경계를 바로잡고, 강하(江河)를 터 내리고, 지질(地質)의 상하(上下)와 물산(物産)의 다과(多寡)를 기준으로 삼아 천하의 조세 공부(租稅貢賦)의 법칙을 정해 놓은 것인데, 살에 못이 박혔다는 것은 곧 우 임금이 이 일을 워낙 부지런히 함으로 인하여 피부에 못이 박히고 터럭이 나지 않았다는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57 司馬相如傳》
[주D-005]길곡(詰曲)한 …… 생각하건만 : 길 곡은 길굴오아(佶屈聱牙)와 같은 뜻으로, 어려워서 읽기 힘든 글을 형용한 말이고, 은반(殷盤)은 《서경》 상서(商書)의 반경(盤庚) 편을 가리키는데,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주나라의 고문과 은나라의 반경은 읽기가 아주 어렵다.[周誥殷盤佶屈聱牙]”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팔환(八還) : 불 교에서 여덟 종류의 변화한 상(相)이 각자 그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이르는 말로, 즉 밝음은 해로 돌아가고, 어둠은 흑월(黑月)로 돌아가고, 통함은 창문으로 돌아가고, 가려 막힘은 담장으로 돌아가고, 인연의 분별로 돌아가고, 형상이 없는 것은 텅 빈 데로 돌아가고, 어둡고 막힘은 먼지로 돌아가고, 청명함은 갬으로 돌아간다[明還日輪 暗還黑月 通還戶牖 壅還墻宇 緣還分別 頑虛還空 鬱
즉사(卽事)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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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그림자 동으로 옮기고 해는 또 기우는데 / 窓影移東日又西
늘그막의 신세를 그윽한 곳에 부쳐 있노니 / 老年身世寄幽棲
흥이 나면 시의 재료는 얻을 수가 있지만 / 興來拾得詩材料
글자 안배가 가지런치 못한 것이 한스럽네 / 祗恨安排却不齊
당년에 압록강 서쪽을 분주히 다니다가 / 當年奔走鴨江西
만년엔 돌아와서 새처럼 둥지를 잡았는데 / 落日歸來鳥擇棲
태평 시대에 나서 죽은 원로는 남김없어라 / 生死太平耆舊盡
예부터 타고난 명이 절로 가지런치 않다오 / 由來賦命自難齊
구름 그림자 바람 따라 동서로 옮기어라 / 隨風雲影自東西
우연히 산중에 와서 학의 둥지와 짝했는데 / 偶向山中伴鶴棲
갑자기 한서 받은 건 상산사호와 같고요 / 忽被漢書如綺皓
문득 주속 사절한 건 백이 숙제와 같구려 / 却辭周粟似夷齊
[주D-001]갑자기 …… 같고요 : 한 서(漢書)는 한나라의 서신(書信)이란 뜻으로, 한 고조(漢高祖)가 만년에 태자(太子)를 폐하고 척 부인(戚夫人) 소생인 조왕(趙王) 여의(如意)를 대신 세우려고 하자, 대신(大臣)들이 수없이 간쟁했으나 듣지 않으므로, 여후(呂后)가 여택(呂澤)을 시켜 장량(張良)에게 좋은 계책을 내도록 강요하게 하여 장량의 계책에 따라 태자로 하여금 정중히 서신을 갖추어 겸손한 언사와 안거(安車)로써 상산(商山)의 사호(四皓) 즉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을 초빙해 오게 한 결과, 과연 이 네 노인이 입조(入朝)하여 태자를 매우 지성으로 보호하게 됨으로써, 끝내 태자를 바꾸지 않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곧 저자 또한 선왕(先王)으로부터 후사(後嗣)의 보호를 부탁받은 것을 비유한 말인 듯하다.
[주D-002]문득 …… 같구려 : 백 이(伯夷), 숙제(叔齊)는 은(殷)나라 말기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인데,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평정하여 천하를 통일하기에 이르자, 백이와 숙제가 이를 부끄럽게 여기어 의리상 주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고 수양산(首陽山)에 은거하여 고사리만 캐어 먹다가 마침내 굶어 죽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곧 원(元)나라가 망하고 명(明)나라가 새로 일어난 시점에서 목은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어제 석양에 자안(子安)에게서 밀직(密直) 이인민(李仁敏)이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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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의 조부 풍도 이은 걸 좋아하노니 / 我愛先生繼祖風
한창 나이에 홀 반납해 조정을 경동시켰네 / 壯年還笏動朝中
승선의 직임 중하여라 추밀사에 올랐고 / 龍喉任重升樞相
명성은 가벼이 여겨라 새옹을 짝하였네 / 蟬翼名輕伴塞翁
산길은 험준한데 구름은 다시 하얗고 / 山路崢嶸雲更白
역루는 아득한데 해가 막 붉게 돋누나 / 驛樓迢遞日初紅
말 위에서 시 읊으며 자주 머리 돌려라 / 沈吟馬上頻回首
중씨가 지금 상공이 되었기 때문일세 / 仲氏如今作上公
[주C-001]자안(子安) : 이숭인(李崇仁)의 자이다.
[주D-001]나는 …… 경동시켰네 : 홀 (笏)을 반납했다는 것은 곧 당 고종(唐高宗)이 무측천(武則天)을 후(后)로 삼으려 할 적에 저수량(褚遂良)이 극력 간(諫)하였으나 고종이 듣지 않자, 수량이 마침내 홀을 궁전 섬돌에 내려놓고 머리를 땅에 찧어 피를 철철 흘리면서 말하기를, “폐하(陛下)의 홀을 돌려드립니다.” 하고 그대로 떠나 버렸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여기에서는 이인민(李仁敏)의 조부 이조년(李兆年)이 일찍이 짐승 사냥과 황음(荒淫)을 일삼아 무도하기 이를 데 없던 충혜왕(忠惠王)에게 자주 간했으나 듣지 않자, 문득 필마(匹馬)로 고향에 돌아가 세상일을 단념하고 여생을 보냈던바, 지금 그의 손자인 이인민 또한 선뜻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므로 한 말이다.
[주D-002]명성은 …… 짝하였네 : 명리(名利)를 추구하지 않고 이해득실에 담담했음을 뜻한다. 새옹(塞翁)은 곧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중씨(仲氏)가 …… 때문일세 : 중씨는 곧 이인민(李仁敏)의 중형(仲兄)인 이인임(李仁任)을 가리킨다. 이때 이인임이 문하 시중(門下侍中)이었으므로 한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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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추 학사 이공은 사직하던 처음이요 / 鴻樞學士掛冠初
한산군 선생은 병석에 누운 나머지로다 / 馬邑先生伏枕餘
출처는 다만 대의를 보존할 뿐이거니와 / 出處但敎存大義
시비 훼예야 어찌 평소에 면할 수 있으랴 / 毁譽安得免平居
해마다 백발은 거울 보기가 시름겨운데 / 比年白髮愁看鏡
어느 곳 청산도 오두막을 지을 만하거니 / 何處靑山可結廬
네 스스로 안 가는 게지 가면 당장 얻으리 / 汝自不歸歸便得
한강 어디나 고기 못 잡을 데가 없질 않나 / 漢江無地不堪漁
이 밀직(李密直)이 경산부(京山府)로 돌아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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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야 하나 못 가는 이는 한산옹이요 / 可歸不歸韓山翁
머무를 만하나 안 머문 이는 제학공일세 / 可留不留提學公
제학은 강성한 나이에 무병하기도 한데 / 提學年強又無病
중씨는 혁혁히 조정에 군림하고 있어라 / 仲氏赫赫臨朝中
예부터 도를 행함엔 형세를 탐이 중하고요 / 古來行道重乘勢
돛 걸고 바다 건너려면 장풍이 필요하다네 / 掛帆濟海須長風
공이 말하길 우리 집은 경산부에 있는데 / 公言我家京山府
안팎의 종족 가운데 영웅들이 많아서 / 宗族內外多英雄
왕의 심복으로 장수와 재상이 줄을 이어 / 瓜牙腹心列將相
치성한 기세가 푸른 하늘을 찌를 듯하니 / 氣焰欻翕摩蒼穹
만이불일은 옛적에 경계한 바이다 하고 / 滿而不溢古所戒
사직하고 용감히 물러나 훌훌히 떠나매 / 乞身勇退如飄蓬
만조백관들 탄복하며 갈채를 보내어라 / 搢紳歎服手加額
그칠 줄 만족할 줄 앎이 누가 그만하리요 / 知止知足誰能同
그대는 못 보았나 임금이 동강에서 새 사냥할 적에 / 君不見君王彈雀在東岡
문열공이 충심을 다해 간언을 올리었건만 / 文烈進諫披心腸
지는 해 외로운 연기 악양에 희미했던 걸 / 落日孤煙迷岳陽
또 보지 못했나 초은 선생이 병석에 누웠던 그날에 / 又不見樵隱先生臥病日
중관이 와서 문병하는 일은 드물었지만 / 罕有中官來問疾
문묵의 공로야 과연 누가 제일이었던고 / 文墨功勞誰第一
선생의 높은 의리는 군신을 감동시켰거니와 / 先生高義動群臣
떠난 이나 안 떠난 이 다 인으로 칭할 만하네 / 或去不去俱稱仁
한산은 적막하기만 해라 지금 아무도 없어 / 韓山寂寞今無人
진강의 흐린 달빛 아래 물결만 넘실대겠지 / 鎭江煙月波鱗鱗
[주D-001]만이불일(滿而不溢) : 《효경(孝經)》 제후장(諸侯章)에, “윗자리에 있으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높아도 위태롭지 않고, 절제하여 법도를 삼가 지키면 가득 차도 넘치지 않는다.[在上不驕 高而不危 制節謹度 滿而不溢]”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그대는 …… 희미했던 걸 : 충 혜왕(忠惠王)이 일찍이 북궁(北宮)으로부터 걸어 나가 송악산 동강(東岡)에서 새를 사냥하므로, 문열공(文烈公) 이조년(李兆年)이 지름길로 나아가 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고, 그 후에도 왕은 황음 광포한 행위를 계속하다가, 마침내 그를 응징하기 위해서 온 원(元)나라 사신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단신으로 압송되어 광동성(廣東省) 게양현(揭陽縣)으로 유배되어 가던 도중 악양현(岳陽縣)에서 죽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초은 선생(樵隱先生) : 초 은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검교시중(檢校侍中)에 이르고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에 봉해진 이인복(李仁復)의 호이다. 이인복은 바로 이조년의 장손(長孫)이며 이인민의 장형(長兄)으로서 성품이 강직하여 직간(直諫)을 잘하였고, 절의(節義)가 있었다고 한다.
[주D-004]문묵(文墨)의 …… 제일이었던고 : 문 묵의 공로란 곧 문자(文字)나 의론(議論)에 종사한 문신의 공로를 말하는 것으로,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평정하고 나서 논공행상(論功行賞)할 적에 소하(蕭何)는 전쟁은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 문자와 의론에 종사한 공로를 제일로 삼아 찬후(酇侯)에 봉하고 식읍(食邑)을 가장 많이 하사한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탄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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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머리털은 희고 네 얼굴은 검지만 / 汝髮白汝面黑
속에는 한 치의 착한 마음이 들었어라 / 內有靈臺方寸赤
머리엔 하늘을 이고 발로는 땅을 밟고 / 頂戴蒼蒼足蹈黃
손에는 아주 기다란 오색실을 지녔기에 / 手中五色線甚長
위로는 순 임금의 의상을 촘촘히 깁고 / 上補舜殿垂衣裳
천지 사방을 터진 데 없이 모두 기워서 / 六合一縫無綻傷
만백성 편케 다스려 요순 시대 만들럈더니 / 安燠萬姓歸虞唐
인생의 잘못된 계획은 끝내 수포로 가고 / 人生謬筭竟寥落
눈 덮인 빈 뜰에 금학을 마주하노라니 / 雪擁空庭對琴鶴
때때로 밝은 달은 뜰 가운데 가득하고 / 有時明月滿中庭
문 앞의 유수는 옛 구렁으로 돌아가누나 / 門前流水歸舊壑
[주D-001]손에는 …… 깁고 : 신 하가 임금을 잘 보좌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색실은 옛날 천자(天子)의 곤룡포(袞龍袍)를 짓는 데 썼던 것으로 두목(杜牧)의 〈군재독작(郡齋獨酌)〉 시에, “평생에 오색실을 가지고, 순 임금 의상 기워보기가 원이로다.[平生五色線 願補舜衣裳]”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금학(琴鶴) : 거문고와 학을 가리키는데, 고인(古人)들이 흔히 거문고와 학을 가까이에 두어 청고 염결(淸高廉潔)한 기상을 표현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병학음(病鶴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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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은 적적하여 인간 세상이 아닌데 / 琳宮寂寂非塵寰
신선은 엄연하게 붉은 놀의 관을 쓰고 / 羽客肅肅丹霞冠
마침 학을 타고 바다와 산을 유람하다가 / 適騎胎仙游海山
돌아오매 푸른 하늘 바람 이슬 차가워라 / 歸來碧空風露寒
인간의 세월은 날아가는 공처럼 빠른데 / 人間歲月如跳丸
기다란 목 파리한 몸에 의지는 굳세거니와 / 長頸瘦軀意態頑
광활한 그 정신을 누가 능히 부여잡을꼬 / 精神曠蕩誰能攀
늙지 않고 오래 살아서 상제께 조회하니 / 長生不老朝帝壇
지금까지 닭과 개들도 구름 새에 깃들었네 / 至今鷄犬棲雲間
병색이 있긴 하나 그리 어려운 건 아니라 / 雖然示病非甚艱
날개 떨치며 한번 울면 천지를 진동하고요 / 振翮一鳴天地寬
봉래산에 달 밝고 동해 물결 아득한 곳에선 / 蓬萊月白波漫漫
하루살이 같은 인간의 생사를 굽어본다네 / 俯視蠛蠓生死關
[주D-001]닭과 …… 깃들었네 : 한 (漢)나라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신선이 되어 승천하던 무렵, 뜰 안에 놓인 그가 먹다 남은 선약(仙藥)을 개와 닭이 핥아먹고 그들도 모두 승천하여 구름 위에서 개가 짖고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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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가에 눈 쓴 것이 고작 하루 전인데 / 掃雪庭除祗隔晨
빗소리가 밤새도록 그윽한 사람 괴롭히네 / 雨聲終夜惱幽人
연래엔 하늘 뜻을 참으로 예측키 어려운데 / 年來天意眞難料
거울 속엔 까닭 없이 백발만 새로워지누나 / 鏡裏無端白髮新
수년 동안 편히 누워 맑은 조정 사절했거니 / 數年高臥謝淸晨
진퇴는 고인처럼 하기를 기필치 못하겠네 / 未必行藏似古人
다만 문 앞이 물처럼 조용한 게 좋은지라 / 祗喜門庭寂如水
다시 새로워진 백발 탄식할 마음도 없구려 / 無心更嘆白頭新
한밤중부터 읊어 걸핏하면 새벽에 이르니 / 午夜高吟動達晨
아름다운 강산 풍월을 누구에게 맡길꼬 / 江山風月屬何人
병든 나머지 기뻐 날뜀은 참으로 천행이어라 / 病餘喜躍眞天幸
칙명으로 경호 내린 은택이 새롭기만 하네 / 勅賜鏡湖恩澤新
[주D-001]경호(鏡湖) 내린 은택 : 당 현종(唐玄宗) 연간에 하지장(賀知章)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현종이 칙명으로 경호 한 굽이를 그에게 하사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곧 임금이 저자에게 여강(驪江) 가의 토전(土田)을 하사한 데서 비유한 것이다.
감회(感懷)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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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상이 때에 따라 절로 변천하는지라 / 物像隨時自變移
유유히 홀로 서서 깊은 생각에 잠기네 / 悠悠獨立政沈思
하늘을 나는 구름은 나를 부르는 듯한데 / 雲飛碧落如招我
황혼에 뜨는 달은 누구를 따르려 하는고 / 月上黃昏欲趁誰
전조를 향해 뿌리는 건 두어 줄 눈물인데 / 洒向前朝數行淚
후세에 유전할 건 몇 편의 시나 될런고 / 流傳後世幾篇詩
강산 가는 곳마다 이 몸 의탁할 만하건만 / 江山到處堪棲托
병들어 못 일어나니 심하도다 내 쇠함이여 / 病莫能興甚矣衰
조나라 보존할 일념은 끝내 변치 않아라 / 存趙一心終不移
젊은 나이로 묘당의 논사직에 참여했었지 / 廟堂黑髮忝論思
내 문장처럼 저속한 체는 흔치 않으려니와 / 文章陋體無多子
나 같은 산야의 외론 자취는 또 누가 있으랴 / 山野孤蹤更有誰
예전엔 용기 내어 낙양책을 진술했는데 / 張膽曾陳洛陽策
이제는 고심하여 두보의 시를 배우노라 / 苦心方學杜陵詩
창오산에 흐린 햇빛 어둠침침한 곳에 / 蒼梧煙日溟濛處
슬픈 정을 쓰려 하나 필력이 쇠했네그려 / 欲寫哀情筆力衰
산 아래 낙락장송은 그림자 또 옮기어라 / 山下長松影又移
백년 세월이 부질없이 생각을 깊게 하누나 / 百年光景謾深思
나루 잃은 당일엔 어디서 왔냐 물었거니와 / 迷津當日問奚自
집 짓고 은거한 노인은 바로 그 누구던고 / 卜築老年知是誰
묵묵히 양의 연구해 방금 주역을 주석하고 / 默究兩儀方注易
한가히 육의 연구해 시경을 해석코자 하나 / 閑尋六義欲箋詩
보아오매 군더더기 말은 끝내 쓸모가 없고 / 看來贅語終無用
중년에 치아와 머리털만 쇠하고 말았네 / 只得中年齒髮衰
[주D-001]조(趙)나라 보존할 일념 : 전 국 시대 위 안희왕(魏安釐王) 연간에 진 소왕(秦昭王)이 군대를 보내 조나라 한단(邯鄲)을 포위하였는데, 조나라 평원군(平原君)은 본디 위 공자(魏公子) 신릉군(信陵君)의 매부(妹夫)였던 터라, 평원군이 위왕(魏王)과 신릉군에게 자주 서신을 보내서 구원을 요청하니, 위왕이 장군 진비(晉鄙)로 하여금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조나라를 구원하게 했다가, 마침내 진왕(秦王)의 협박에 못 이겨 진비 군대의 출전(出戰)을 중지시킨 채 우유부단하고 있으므로, 신릉군이 보다 못하여 몰래 위왕의 병부(兵符)를 훔쳐 가지고 진비의 진영(陣營)으로 가서 즉시 진비를 쳐 죽이고 그의 군사를 빼앗아 인솔하여 가서 마침내 조나라를 구원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77 魏公子列傳》
[주D-002]낙양책(洛陽策) : 한 문제(漢文帝) 때의 문신으로 낙양 사람인 가의(賈誼)가 일찍이 일종의 시국 광구책(時局匡救策)인 치안책(治安策)을 올렸던 데서 온 말인데, 가의의 문장 중에 이 치안책과 과진론(過秦論) 등의 글이 가장 명문으로 일컬어진다.
[주D-003]창오산(蒼梧山) : 순(舜) 임금이 남쪽으로 순수(巡狩)하다가 창오의 들에서 붕어하여 이곳에 장사를 지냈던 데서, 전하여 돌아간 임금의 능소(陵所)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공민왕(恭愍王)의 현릉(玄陵)을 가리킨다.
[주D-004]나루 …… 물었거니와 : 공 자(孔子)가 천하를 주류할 적에 일찍이 초(楚)로부터 채(蔡)로 가던 도중에 마침 밭을 갈던 은사(隱士) 장저(長沮), 걸닉(桀溺)을 만나서 자로(子路)를 보내 그들에게 나루를 묻게 했더니, 장저가 자로에게 공자를 가리켜 누구냐고 물으므로, 공구(孔丘)라고 대답하자, 장저가 말하기를, “공구가 나루를 안다.” 하고 가르쳐 주지 않았던 데서 온 말이다. 그가 나루를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은 곧 난세에 은거하지 않고 도를 행하겠다고 천하를 주류하는 공자를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論語 微子》
[주D-005]양의(兩儀) : 《주역(周易)》에서 음양(陰陽)을 달리 일컫는 말이다.
[주D-006]육의(六義) : 《시경(詩經)》의 여섯 가지 체(體)인 풍(風), 아(雅), 송(頌), 부(賦), 비(比), 흥(興)을 가리킨다.
가행(歌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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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행과 단가행은 / 長歌行短歌行
금성옥진으로 음률의 조화를 이루어라 / 金聲玉振宮商鳴
깊이 가라앉아 바다에 들면 어룡이 시름하고 / 幽沈入海魚龍愁
밝게 드러나 해에 닿으면 귀신이 놀라고요 / 晃朗薄日神鬼驚
급한 천둥 소낙비가 별안간 지나가고 나면 / 疾雷暴雨瞥眼過
뜬구름 나는 개지가 바람 따라 흩날려라 / 浮雲飛絮隨風輕
대랑의 검무는 도리어 너울거릴 뿐이요 / 大娘劍舞却宛轉
우군의 필진은 한갓 종횡무진할 뿐이로다 / 右軍筆陣徒縱橫
때는 천자가 해서로 순수 나감을 만나서 / 時當天子巡海西
황제는 남토를 돌보아 문명을 펼치는데 / 帝眷南土開文明
동방의 한 구역 산과 바다의 깊은 곳에 / 東方一區山海深
시인들 번다하여 현가 소리 울려 퍼지니 / 風人雜沓絃歌聲
후일 외국의 시까지 채집하게 되는 날에는 / 他年採詩及外國
목은의 감당 못한 슬픔을 가련하게 여기리 / 當憐老牧難爲情
[주D-001]금성옥진(金聲玉振) : 금은 종(鐘)이고 옥은 경(磬)으로, 팔음(八音)을 연주할 때에 먼저 종을 쳐서 시작하고, 마지막에 경을 쳐서 소리를 거두어 음악 한 곡을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2]대랑(大娘)의 검무(劍舞) : 대 랑은 당(唐)나라 때의 교방기(敎坊妓)였던 공손대랑(公孫大娘)을 가리키는데, 그가 검무를 매우 잘 추었으므로, 당대의 명필(名筆)인 승(僧) 회소(懷素)와 장욱(張旭)이 모두 그의 검무를 보고 초서(草書)의 진취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주D-003]우군(右軍)의 필진(筆陣) : 우 군은 진(晉)나라 때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낸 명필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키고, 필진은 역시 진나라 때의 명필인 위부인(衛夫人)이 제작했다는 필진도(筆陣圖)를 말한다. 필진도는 곧 필법(筆法)을 해설한 것인데, 왕희지가 일찍이 필진도의 후미에 다시 필법을 해설한 글을 쓴 것도 있거니와, 손과정(孫過庭)의 서보(書譜)에 의하면, 필진도가 바로 왕희지의 제작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말하고 있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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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끌고 서쪽 이웃 계정을 알현했다가 / 拖杖西鄰謁繼亭
우연히 광객을 만나 다정히 얘기를 나누고 / 偶逢狂客語丁寧
집에 돌아와 다시 깊은 방에 들어앉아서는 / 歸來入室還深坐
점점이 푸른 구름 같은 산을 묵묵히 세노라 / 默數雲山點點靑
상당군에게 들러 함께 분향을 하려 했는데 / 欲過上黨共焚香
꼬불꼬불 진흙탕 길에 이미 석양이 되었네 / 曲逕泥深已夕陽
세상일이란 본디 뜻대로 안 되는 법이라 / 世事由來不如意
전배들의 삼상 탄식을 이제야 알겠구려 / 始知前輩嘆參商
처마에 빗방울 듣는 밤에 조용히 앉았자니 / 雨滴茅簷夜坐淸
적막한 신세가 유독 시 생각뿐이로구려 / 寂寥身世獨詩情
늙어 가매 종유하는 손은 이미 드물어지고 / 老來已少從游客
다만 당년의 붓 한 자루가 있을 뿐이네 / 只有當年一管城
사륙 문장에 대해선 내가 가장 서툴러 / 四六文章我最疏
백발토록 양식에 따라 호리병을 그리거니 / 胡蘆依樣白頭餘
병중에 문장 윤색을 내 어찌 감히 하리오 / 病中潤色吾何敢
두 장원공이 욕되이 나를 찾아왔네그려 / 兩壯元公枉下車
조정에서 후소 얻은 걸 모두 경하하니 / 共賀朝廷得後蘇
위치 정해 도표 만들라 분부로 재촉하네 / 勅催攻位按成圖
산중은 얼음 눈이 쌓여 몹시도 흐릿한데 / 山中氷雪糢糊甚
거마들이 급히 달려 벌써 큰길이 나버렸네 / 車馬星馳已坦途
[주D-001]계정(繼亭) : 고려 말기에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고 길창군(吉昌君)에 봉해진 권적(權適)의 호이다.
[주D-002]삼상(參商) 탄식 : 삼성(參星)은 서쪽에, 상성(商星)은 동쪽에 있어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동시에 두 별을 함께 볼 수 없으므로, 전하여 친구 간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나지 못한 데 대하여 탄식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양식에 …… 그리거니 : 옛사람의 그린 양식에 따라서 호리병을 그린다는 뜻으로, 전하여 옛사람의 작품을 본뜨기만 하고 새로운 것을 스스로 창안해내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다.
[주D-004]후소(後蘇) : 북 소(北蘇)를 달리 이른 말이다. 고려 시대에 도참설(圖讖說)의 지리쇠왕설(地理衰旺說)에 의거하여 국가의 기업(基業)을 연장시키고자 도성(都城)인 개성(開城) 주위에 위치한 백악산(白岳山)에는 좌소(左蘇), 백마산(白馬山)에는 우소(右蘇), 기달산(箕達山)에는 북소(北蘇)를 두어 이 세 곳에 각각 행궁(行宮)을 짓고 임금이 주기적으로 그곳에 순행유주(巡行留駐)하였다. 이 소(蘇)의 의미에 대해서는 ‘솟’의 개념에서 용출(湧出), 초출(超出)의 의미로 보는 설(說)이 있고, 또는 소복(蘇復), 소생(蘇生)의 의미로 보는 설도 있다.
동지(冬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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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백발은 비녀에도 꽉 차지 않는데 / 白髮蕭蕭不滿簪
문을 닫고 조용히 앉아 천심에 부응하네 / 閉關靜坐契天心
병상의 약물은 날것 익힌 것이 쌓여 있고 / 病狀藥物堆生熟
늘그막의 시편은 고금의 것이 섞였도다 / 老境詩篇雜古今
진흙탕 길 수레는 무거운 짐 끌기 어렵고 / 泥上車輪難重載
안개 속의 산악은 모두 펀펀히 묻히었네 / 霧中山岳盡平沈
금년의 시절 또한 지난해처럼 좋아서 / 今年比似前年好
연유 같은 팥죽이 푸른 사발에 가득쿠나 / 豆粥如酥翠鉢深
새벽 등잔불 아래 옥비녀를 머리에 꽂고 / 向曉燈花綴玉簪
문을 닫으니 바야흐로 성인의 마음 알겠네 / 閉關方見聖人心
삼한의 예악은 스스로 예전과 같거니와 / 三韓禮樂自如昔
사해의 병란은 유독 오늘뿐이 아니로세 / 四海兵戈非獨今
혁혁한 영대는 열고 닫음을 통하고 / 赫赫靈臺通闢闔
아득한 기해는 뜨고 잠긴 걸 실었나니 / 茫茫氣海載浮沈
분명히 알겠네 잘 기르기가 어려운 게 아니요 / 明知善養非難事
다만 이 공부에 깊고 얕음이 있을 뿐임을 / 祗是工夫有淺深
마판의 말 우는 가운데 친구들 자주 모였지 / 櫪馬聲中屢盍簪
병든 나머지 옛 놀이가 언뜻언뜻 생각나네 / 病餘頻起舊游心
문장의 체제는 자못 고아하지 못하거니와 / 文章體製殊非古
고관대작 친구는 모두 지금에 있다오 / 冠蓋交游盡在今
화려한 배 띄운 강물엔 하늘이 아득하고 / 綵鷁碧江天漠漠
좋은 술 화려한 자리엔 밤이 고요했었지 / 浮蛆錦席夜沈沈
손꼽아 헤어보니 참으로 꿈만 같은데 / 回頭屈指眞如夢
겨울에 화기 넘치는 게 다시 기쁘구려 / 更喜小春和氣深
또 읊다.
맑은 새벽 팥죽에 몸이 절로 평온하여라 / 豆粥淸晨體自平
의를 모아야 기가 생김을 꼭 알아야 하리 / 須知集義氣方生
조정에선 마치 섬돌에 우뚝 선 학과 같고 / 立朝恰似軒墀鶴
도를 바라보긴 빙설 속의 꾀꼬리 같도다 / 望道還如氷雪鶯
공자의 문장은 혹 볼 수라도 있거니와 / 孔聖文章容得見
주공의 예악은 끝내 행하기 어려워라 / 周公禮樂竟難行
어찌 칠일 만에야 바야흐로 회복하리요 / 肯從七日方來復
천지의 마음은 원래 스스로 밝은 것을 / 天地有心元自明
꽁꽁 언 몽당붓 가져다 태평을 읊조려라 / 筆退尖來詠太平
병도 많은 한 서생이 가련하기만 하네 / 可憐多病一書生
소년 시절엔 첩과 말 바꾸어 타지 않았고 / 少年不跨換妾馬
노년엔 벗 찾는 꾀꼬리 소리가 듣기 좋네 / 老境喜聞求友鶯
푸른 산에 그윽한 절 찾아 묵고는 싶으나 / 翠巘擬尋幽寺宿
푸른 강에 거룻배 놓아 다니기 어려우리 / 碧江難放小舟行
내 쇠하여 마음이 무력함을 스스로 믿기에 / 吾衰自信心無力
부질없이 남양의 공명을 생각할 뿐이네 / 謾向南陽憶孔明
천지 사이에 좁쌀 같은 하찮은 내 인생 / 稊米吾生天壤間
반드시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게 하여 / 須敎大德不踰閑
종신토록 삼 년 묵은 쑥을 더욱더 저축하고 / 終身更蓄三年艾
한 삼태기로 아홉 길 산을 축나게 말아야지 / 一蕢無虧九仞山
어찌 유구가 능히 덕을 고쳐주기를 믿으랴 / 豈信由求能改德
예로부터 등설은 서로 반열을 잘 다투었네 / 由來滕薛好爭班
무우엔 절로 읊으며 돌아올 곳이 있으련만 / 舞雩自有詠歸處
적적한 내 문정엔 이끼만 얼룩져 있구나 / 寂寂門庭苔蘚斑
천자국에서 벼슬한 건 참으로 꿈만 같아라 / 游宦天都眞夢間
옥당 깊숙한 곳이 가장 맑고 한가로웠네 / 玉堂深處最淸閑
바다 속에 그림자 내리비춘 건 중심각이요 / 影侵海底中心閣
구름 속에 우뚝 솟아오른 건 만수산이로다 / 勢入雲中萬壽山
문필은 새 발자국 전서가 어렴풋하고 / 翰墨依俙鳥跡篆
홀과 관복은 백관 반열에 서로 비치었네 / 牙緋照耀蛾眉班
당시의 여러 사람들 지금은 어디 있는고 / 當時諸子在何處
동해의 외론 신하는 두 귀밑이 반백이라오 / 東海孤臣雙鬢斑
[주D-001]문을 …… 부응하네 : 《주 역》 복괘(復卦) 상사(象辭)에 이르기를, “우레가 땅속에 있는 것이 복이니, 선왕이 이것을 인하여 동지일에 관문을 닫아서 상려를 다니지 못하게 하고, 임금은 사방을 시찰하지 않는다.[雷在地中復 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后不省方]”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혁혁한 …… 통하고 : 영 대(靈臺)는 도가(道家)에서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고, 열고 닫음이란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문을 닫는 것을 곤이라 하고, 문을 여는 것을 건이라 하고, 한 번 닫고 한 번 여는 것을 변화라 하고, 끝없이 왕래하는 것을 통이라 한다.[闔戶謂之坤 闢戶謂之乾 一闔一闢謂變 往來不窮謂之通]” 한 데서 온 말로, 천지조화의 변화를 의미한다.
[주D-003]아득한 …… 실었나니 : 기 해(氣海)는 의가(醫家)의 용어로, 사람 신체의 정기(精氣)가 모인다고 하는 배꼽 아래 1치 5푼쯤 되는 곳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여기서는 천지의 정기(正氣)인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뜻한다. 뜨고 잠긴 것이란 역시 천지간의 음양 조화를 의미하는 말이다.
[주D-004]잘 기르기가 :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나는 천하의 말을 잘 알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르노라.[我知言我善養吾浩然之氣]”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上》
[주D-005]의(義)를 모아야 기가 생김 : 의를 끝없이 쌓음으로써 호연지기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孟子 公孫丑上》
[주D-006]섬돌에 우뚝 선 학(鶴) : 우뚝 서서 보통 사람들과 서로 어울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주D-007]도(道)를 …… 같도다 : 성인(聖人)의 도를 닦아 실천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주D-008]공자(孔子)의 …… 있거니와 : 여 기서 문장은 위의(威儀)나 문사(文辭) 같은 겉으로 드러난 덕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공(子貢)이 일찍이 말하기를, “부자의 문장은 들을 수가 있거니와, 부자께서 성과 천도를 말씀한 것은 들을 수가 없다.[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公冶長》
[주D-009]어찌 …… 회복하리요 : 《주역》 복괘(復卦) 상사(象辭)에, “그 도가 반복하여 칠일만에 와서 회복한다.[反復其道 七日來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0]첩(妾)과 말 바꾸어 : 위 (魏)의 조조(曹操) 아들 창(彰)은 성격이 호탕하였는데, 일찍이 남의 준마(駿馬)를 보고는 매우 탐을 내어 그 주인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아름다운 첩이 있어 말과 바꿀 수 있으니, 그대가 내 첩을 고르기만 하라.” 하니, 그 주인이 한 첩을 지목하므로, 창이 마침내 그 첩을 말과 바꾸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11]벗 찾는 꾀꼬리 소리 : 《시경》 소아(小雅) 벌목(伐木)에, “나무 찍는 소리는 쩡쩡하거늘, 꾀꼬리 우는 소리는 평화로워라.……평화로운 그 울음소리여, 그 벗을 찾는 소리로다.[伐木丁丁 鳥鳴嚶嚶……嚶其鳴矣 求其友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2]남양(南陽)의 공명(孔明) : 공명은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의 자인데,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일찍이 남양의 초려(草廬)에 은거하면서 몸소 농사를 지으며 지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13]큰 덕이 …… 하여 :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은 드나듦이 있더라도 괜찮다.[大德不踰閑 小德出入 可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張》
[주D-014]종신토록 …… 저축하고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 “지금 왕을 하고자 하는 이는 마치 칠 년 묵은 질병에 삼 년 묵은 약쑥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 진실로 미리 저축하지 않으면 종신토록 얻지 못하리니, 진실로 인에 뜻 두지 않으면 종신토록 근심과 욕을 당하다가 죽음에 빠지리라.[今之欲王者 猶七年之病 求三年之艾 苟爲不蓄終身不得 苟不志於仁 終身憂辱 以陷於死亡]”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離婁上》
[주D-015]한 삼태기로 …… 말아야지 : 《서경(書經)》 여오(旅獒)에, “작은 행실을 함부로 하다가는 마침내 큰 덕에 누가 되어, 아홉 길 산을 쌓는 데 있어 공이 흙 한 삼태기에 이지러지는 것과 같다.[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6]어찌 …… 믿으랴 : 유 구(由求)는 공자의 두 제자인 자가 자로(子路)인 중유(仲由)와 염구(冉求)를 가리키는데, 이 두 사람이 모두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 되었던 바, 염구는 특히 계씨의 덕(德)을 바로잡지 못하고 도리어 백성에게 전보다 세금을 갑절이나 더 거두어서 계씨를 더욱 부자로 만들어주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염구는 우리 무리가 아니니, 소자들아 북을 울려 염구를 성토해야 한다.[求非吾徒也 小子鳴鼓而攻之 可也]” 하였고, 또 일찍이 계자연(季子然)이 공자에게 묻기를, “중유와 염구는 대신(大臣)이라 이를 만합니까?” 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지금 중유와 염구는 숫자만 채운 신하라고 이를 만하다.[今由與求也可謂具臣矣]”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孟子離婁上》
[주D-017]예로부터 …… 다투었네 : 춘추 시대 노 은공(魯隱公) 11년 봄에 등후(滕侯)와 설후(薛侯)가 내조(來朝)하여 자기들끼리 서로 행례(行禮)의 선후(先後)와 석차(席次)의 고하(高下)를 가지고 다투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18]무우(舞雩)엔 …… 곳 : 공 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해 보라고 했을 때, 증점(曾點)이 마침 비파를 타다가 쟁그렁 소리와 함께 비파를 놓고 일어나서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5, 6인,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공자의 교화를 받은 증점이 성인의 기상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論語 先進》
[주D-019]새 발자국 : 황제(黃帝)의 신하 창힐(蒼頡)이 새의 발자국을 보고 처음으로 문자(文字)를 만들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문자를 가리킨다.
염동정(廉東亭)이 눈 속에 술을 가지고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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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하늘이 활짝 개어 만 리가 푸르러서 / 是日天晴萬里碧
처마 밑에서 볕을 쬘 제 한낮은 적적했는데 / 茅簷曝背晝寂寂
이윽고 석양이 지붕 모퉁이 서쪽에 걸릴 제 / 斜暉掛向屋角西
손님이 찾아오는 소리 갑자기 들리어라 / 忽聞剝
바람 앞의 옥수처럼 빼어난 풍채 염동정이 / 臨風玉樹廉東亭
술과 안주를 가지고 문정에 당도하였네 / 擕酒與鴈臨門庭
둘이서 한잔 한잔 기울이고 또 기울이느라 / 一杯一杯倒又倒
눈이 내려 써늘한 대청 덮는 줄도 몰랐다가 / 不知雪落埋寒廳
창을 여니 눈발은 날려 좌석까지 들어오고 / 開窓片片入座上
흰 학은 그림자 놀리며 하늘을 날아가네 / 白鶴弄影凌靑冥
나는 방금 뼈가 쑤시고 마음이 언짢아서 / 我時骨酸心不樂
마음을 털어놓자도 의탁할 곳이 없었다가 / 欲寫肺肝無所托
이 반가운 사람 만나선 서로 형체를 잊고 / 得此可人俱忘形
함께 그윽한 회포를 세속 밖에 부치었네 / 共把幽懷寄丘壑
반쯤 거나해선 무하향 꿈속으로 달려가니 / 半酣走入無何鄕
표지와 야록이 있고 하늘은 아스라한데 / 標枝野鹿天微茫
삼시와 오궁이 모두 도망쳐 없어져서 / 三尸五窮盡奔竄
정신과 혈맥이 서로 아울러 충만해지네 / 精神血脈俱洋洋
문호에 갑을이 있음을 어찌 아랑곳하랴 / 那知門戶有甲乙
위아래에 천지만 있다는 걸 알 뿐이로다 / 但覺俯仰徒玄黃
동정의 호기는 조정 반열을 떨쳤거니 / 東亭豪氣振朝行
한번 넘어졌다 이내 쾌주하면 무어 해로우랴 / 一蹶逐電庸何傷
그대는 못 보았나 사공이 별장 내기 바둑을 두어 / 君不見謝公園棊賭別墅
아량이 위태로운 때를 평안하게 만든 것을 / 雅量足使危時康
더구나 풍류 넘치는 녹야당에 있어서야 / 況在風流綠野堂
어찌 나날이 금술잔을 기울이지 않을쏜가 / 何不日日傾金觴
소년 시절의 지기야 누구에게 내렸으랴 / 少年志氣爲誰降
구정을 들었던 영웅호걸에 스스로 견주었네 / 自視雄豪鼎可扛
몸은 향연기 타오르는 대궐 문에 이끌리고 / 身惹爐香靑鎖闥
꿈은 홍등가 푸른 깁 창문에 희미하여라 / 夢迷燈火碧紗窓
조정에서 물러갈 땐 하늘이 대궐 굽어보고 / 退朝丹鳳天臨闕
여주에 집 지으니 달빛은 여강에 가득하네 / 卜築黃驪月滿江
꼭 분양만 종시 부귀를 누릴 게 아니거니 / 未必汾陽獨終始
후일에 태사씨의 붓이 화려하게 기술하리 / 他年太史筆如杠
강산 어디에나 나무하고 고기 잡을 만한데 / 江山到處可樵漁
다만 물러가서 살려는 사람이 없을 뿐이네 / 只是無人欲退居
모두 영웅이 때를 만났다고 자랑들 하니 / 共詑蛟龍得雲雨
뜰에서 먹이 쪼는 새가 유독 가련하구나 / 獨憐鳥雀食庭除
반 장대 강물엔 겨우 배를 띄울 만하고 / 半竿江水纔浮艇
만 겹 산봉우리 마주해 집을 지었으니 / 萬疊雲峰對結廬
먼 후일에 금사장의 팔영시가 / 他日金沙莊八詠
응당 좋은 경치로 방여승람에 올려지리 / 應從勝覽入方輿
일찍 일어나 하얀 두 귀밑털 드리우고 / 早興雙鬢白絲垂
시 한 수를 적어서 동정에게 부치노니 / 寄與東亭一首詩
아침 햇살 창에 가득코 향연기 모락모락 / 朝日滿窓香縷細
소년 시절 행락을 어느 때 다시 해 볼꼬 / 少年行樂更何時
우리 성상이 방금 만고의 국운 기약했으니 / 聖統方期萬古垂
악관이 응당 사방의 시들을 채집하면은 / 樂官應採四方詩
빈풍 노송도 오히려 말단에 놓이리니 / 豳風魯頌猶居末
이게 바로 성대히 귀에 쟁쟁할 때이로다 / 政是洋洋盈耳時
눈보라 펄펄 날릴 제 푸른 휘장 드리우고 / 雪花飄灑翠帷垂
아황주 살살 따르며 함께 시를 지었는데 / 細酌鵝黃共賦詩
다시 내일 아침을 향해 끝없이 읊노라니 / 更向明朝吟不盡
미친 회포가 아직 한창 거나한 때 같구나 / 狂懷猶似政酣時
[주D-001]표지(標枝)와 야록(野鹿) : 표지는 가장 높은 데 있는 나뭇가지를 말한 것으로, 즉 아무 하는 일 없이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임금을 가리키고, 야록은 곧 자유 자적하는 아래 백성들을 가리킨 말로, 전하여 태고(太古) 시대를 의미한다. 《莊子 天地》
[주D-002]삼시(三尸)와 오궁(五窮) : 삼 시는 도가(道家)에서 이른바 인체(人體) 안에서 빌미를 일으킨다는 3개의 악신(惡神)을 가리킨다. 오궁은 다섯 궁귀(窮鬼)를 말한다. 한유(韓愈)가 일찍이 항상 자기를 괴롭히는 다섯 궁귀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송궁문(送窮文)〉을 지었는데, 그 다섯 궁귀란 바로 지궁(智窮), 학궁(學窮), 문궁(文窮), 명궁(命窮), 교궁(交窮)이다.
[주D-003]문호(門戶)에 갑을이 있음 : 부호 권귀(富豪權貴)의 집을 갑문(甲門)이라 일컫는 말에서 온 말이다.
[주D-004]사공(謝公)이 …… 것을 : 진 (晉)나라 때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이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회비(淮淝) 가에 쳐들어와 진을 치자, 진 효무제(晉孝武帝)가 사안(謝安)을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으로 삼아 그들을 토벌하게 했는데, 사안은 이때 수레를 명하여 동산(東山)의 별장으로 가서 친구들이 다 모인 가운데 조카인 사현(謝玄)과 더불어 별장 내기 바둑을 두어 대장군다운 여유로움을 보였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녹야당(綠野堂) : 당(唐)나라 때의 명상(名相) 배도(裴度)가 벼슬을 그만두고 낙양(洛陽)에 퇴거(退居)하면서 오교(午橋)에 지은 별장 이름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퇴관(退官)한 재상의 처소로 쓰인 것이다.
[주D-006]꼭 …… 아니거니 : 당 (唐)나라 때의 명장(名將)으로 벼슬이 중서령(中書令)에 이르고 분양군왕(汾陽郡王)에 봉해진 곽자의(郭子儀)가 평생에 부귀영화를 극도로 누린 데다 사후(死後)까지 전혀 아무 일도 없이 영총(榮寵)을 끝까지 입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7]뜰에서 …… 새 : 두 보(杜甫)의 〈남린(南鄰)〉 시에, “금리 선생은 오각건을 쓰고서, 토란과 밤 거두워라 전혀 가난치만은 않네. 빈객을 익히 본 아동들은 반가워하고, 뜰에서 먹이 쪼는 새들은 길이 들었네.[錦里先生烏角巾園收芋栗不全貧 慣看賓客兒童喜 得食堦除鳥雀馴]”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은자의 생활을 의미한다.
[주D-008]금사장(金沙莊)의 팔영시(八詠詩) : 동정(東亭) 염흥방(廉興邦)이 일찍이 여주(驪州)로 유배되어 천녕현(川寧縣)의 금사장에 기거하면서 일에 따라 명칭을 세워 여덟가지 제목을 만들고 인하여 〈팔영시〉를 지었는데, 저자 역시 그 시에 화운(和韻)했었다.
[주D-009]방여승람(方輿勝覽) : 송(宋)나라 축목(祝穆)이 편찬한 책 이름인데, 이 책은 각 지방의 풍속(風俗), 명승(名勝), 토산(土産), 산천(山川) 등에 관한 시(詩), 부(賦), 서(序), 기(記) 등을 수록하였다.
[주D-010]빈풍(豳風) 노송(魯頌) : 빈 풍은 《시경》 국풍(國風)의 하나로, 그중의 칠월(七月) 편은 특히 주공(周公)이 주(周)나라의 시조(始祖)인 후직(后稷)으로부터 그 후손 공류(公劉)에 이르기까지 모두 빈(豳) 땅에 도읍하여 농사에 힘써서 백성들을 잘 살게 한 사실을 노래하여 성왕(成王)을 일깨운 것이고, 노송은 곧 성왕이 큰 공훈을 세운 주공을 위하여 주공의 아들 백금(伯禽)을 노(魯)나라에 봉하고 천자(天子)의 예악(禮樂)을 내려줌으로써 노나라에 송(頌)을 두어 묘악(廟樂)으로 삼게 된 것이다.
[주D-011]성대히 …… 때이로다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악사 지가 재직하던 처음에 연주하던 관저시의 졸장이 지금도 성대히 귀에 쟁쟁하다.[師摯之始 關雎之亂 洋洋乎盈耳哉]” 한 데서 온 말로, 음악이 아름답고 성대했음을 뜻한다. 《論語 泰伯》
잡제(雜題) 5수(五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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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맡에 바람 소리는 급하더니 / 枕上風聲急
창문 사이의 햇빛은 다사롭구나 / 窓間日色溫
그윽한 생활 자유 자적 만족하여 / 幽居甘自適
조용히 앉아 담담히 말을 잊노라 / 靜坐澹忘言
인가들은 연기가 용마루에 나오고 / 萬戶煙生棟
외론 마을엔 눈이 문에 가득하네 / 孤村雪滿門
인정은 모두 세월을 중시하건만 / 人情重時歲
나는 늘그막에 천지를 사절했노라 / 老境謝乾坤
한산에 새로 제수된 태수는 / 韓山新太守
나이 젊고 조행 또한 아름다워 / 年少更淸脩
성적 고사에서 높이 발탁되어 / 都目當高擢
오두로서 멀리 노닐게 되었네 / 遨頭却遠游
빈 관아엔 마른 풀이 썰렁하고 / 空衙寒草地
북소리는 석양 수루에서 울리리 / 戍鼓夕陽樓
밤엔 누웠어도 잠 이루기 어려워 / 夜臥難成夢
등잔 앞에 온갖 근심이 모이겠지 / 燈前集百憂
낭서로서 청요직까지 겸하여라 / 郞署兼淸要
혼자 유독 노성한 인재로구려 / 人材獨老成
젖비린내 벗었다고 누가 말했나 / 誰言離乳臭
문득 세상 여론 살피게 되었네 / 便得察輿情
관의 옥은 아침 햇살에 빛나고 / 冠玉明朝旭
뜰의 괴나무는 석양에 우뚝한데 / 庭槐峙晚晴
조산이라 시냇가의 길목엔 / 造山溪畔路
발걸음마다 패옥 소리 요란하구려 / 步步佩環聲
학문은 안팎을 밝혀야 하려니와 / 學須明內外
이치는 반드시 호리를 살펴야 하리 / 理必察毫釐
비록 듣고 본 게 많다 하더라도 / 縱是多聞見
의당 의심나고 미안한 건 빼야지 / 尤當闕殆疑
천명을 받들면 끝내 혁혁해지리니 / 奉天終赫赫
처신을 정히 노력해야 하고말고 / 行己定孜孜
해는 저물어가고 바람 소리 급한데 / 歲暮風聲急
고요히 앉았는 이때를 그 누가 알랴 / 誰知靜坐時
방은 고요하여 티끌 한 점 없고 / 室靜塵難染
창은 밝은데 해가 또 높이 돋으니 / 窓虛日又高
고요함은 응당 야기를 내거니와 / 靜應生夜氣
밝음은 털끝도 분석할 수 있다오 / 明可析秋毫
물을 취하려고 음수를 달아매고 / 取水懸陰燧
바람을 당하여 퉁소를 불어 대라 / 臨風捻洞簫
조용히 홀로 유유자적 하노라니 / 從容聊自適
군자는 정히 화락하기만 하다네 / 君子政陶陶
[주D-001]천지를 사절했노라 : 이백(李白)의 〈방도안릉(訪道安陵)〉 시에, “손을 들어 천지를 사절하고, 허무로 들어가 우주의 본체와 동화하리.[擧手謝天地虛無齊始終]”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세속을 초월한 것을 의미한다. 《李太白集 卷9》
[주D-002]오두(遨頭) : 당 (唐)나라 때 성도(成都)의 풍속에 매년 4월 19일마다 완화계(浣花溪) 가에서 연유(宴游)하면서 이날을 완화일(浣花日)이라 일컬었는데, 이날은 특히 그 지방 태수(太守)가 출유(出游)하여 두보(杜甫)의 초당(草堂)에서 오두연(遨頭宴)을 베풀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태수를 가리킨다.
[주D-003]비록 …… 빼야지 : 자 장(子張)이 봉록(俸祿)을 구하는 것을 배우려 하자,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많이 들어서 의심나는 것은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말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며, 많이 보아서 미안한 것은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행하면 뉘우침이 적을 것이니, 말에 허물이 적고 행실에 뉘우침이 적으면 봉록이 그 가운데 있느니라.[多聞厥疑愼言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주D-004]야기(夜氣) : 한밤중의 조용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리킨다. 《孟子 告子上》
[주D-005]물을 …… 달아매고 : 음수(陰燧)는 달밤에 이슬을 받는 대야[盤]를 가리키는데, 옛날에 음력 11월 임자일(壬子日) 밤이면 음수를 가지고 물을 받았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군자(君子)는 …… 하다네 : 《시 경》 왕풍(王風) 군자양양(君子陽陽)에, “군자님은 화락하여, 왼손에다 깃대를 들고, 오른손으론 날 춤추는 데로 부르니, 아 참말 즐거웁도다.[君子陶陶 左執翿 右招我由敎 其樂只且]”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현자(賢者)가 세상에 도를 행할 수 없음을 알고 낮은 악관(樂官)의 자리에 녹사(祿仕)하면서 거짓 만족한 체하는 것을 그의 친구가 아름답게 여겨 노래한 것이다.
회포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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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말을 달려 진흙탕 헤맴은 면했으나 / 揚鑣幸免困泥塗
불쑥 성낸 속 좁은 사람 된 게 가련하여라 / 悻悻仍憐小丈夫
도를 좋아한 중년엔 현빈을 지켰거니와 / 好道中年守玄牝
몸 편케 할 상책은 청노에 부칠 뿐이네 / 安身上策寄靑奴
높은 산 흐르는 물은 석 자 거문고에 있고 / 高山流水琴三尺
좋은 경치 좋은 때엔 백 병 술을 마시어라 / 美景良辰酒百壺
한가함 훔쳐라 배우는 소년이 가장 좋거니 / 最好偸閑學年少
어찌 다른 곳에서 요순 시대를 찾을쏜가 / 肯從他處覔唐虞
적막하여라 고금천지는 하도 깊어서 / 寂寞古今天地深
빼어난 인재들이 성대히 숲을 이뤘는데 / 人材挻出鬱成林
군신 사이에 어느 날 좌복으로 들어가면 / 風雲一旦入左腹
산과 바다를 몇 겹이나 맘속에 감췄던고 / 山海幾重藏中心
공연히 옛 서적은 섭렵에만 제공될 뿐이라 / 謾有舊書供涉獵
다만 새로운 시구를 가지고 읊조리노니 / 祗將新句當謳吟
내 세정 잊는 경지 아무도 알 사람 없지만 / 無人領得忘情處
머리 위의 상제께선 밝게 내려다본다오 / 頭上明明上帝臨
[주D-001]불쑥 …… 된 게 : 맹 자(孟子)가 제(齊)나라에서 도를 행할 수 없음을 알고 떠날 적에 혹시라도 제왕(齊王)이 개과(改過)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길을 천천히 갔는데, 윤사(尹士)라는 사람이 맹자의 천천히 가는 것을 헐뜯어 말하자, 맹자가 그에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어찌 속 좁은 사람처럼 임금에게 간했다가 들어 주지 않으면 성내어 얼굴에 노기를 드러내서, 떠날 경우 하루에 달려갈 힘을 다하여 간 다음에 자리오.[予豈若是小丈夫然哉諫於其君而不受則怒 悻悻然見於其面 去則窮日之力而後宿哉]”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下》
[주D-002]현빈(玄牝) : 만물을 창조해 내는 오묘한 도(道)를 가리킨다. 《노자(老子)》 제6장에, “곡신은 죽지 않나니 이를 현빈이라 하고, 현빈의 문을 바로 천지의 근원이라 한다.[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是謂天地根]” 하였다.
[주D-003]청노(靑奴) : 더운 여름철에 서늘함을 취하는 침구(寢具)의 일종인 죽부인(竹夫人)의 별칭이다.
[주D-004]높은 산 …… 있고 : 옛 날에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어서, 백아가 높은 산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탈 때는 종자기가 말하기를, “험준한 것이 마치 태산(泰山) 같다.” 하였고, 백아가 흐르는 물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탈 때는 종자기가 말하기를, “광대한 것이 마치 강하(江河)와 같다.”고 하여, 백아가 생각한 것은 종자기가 반드시 알아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지기(知己)의 친구를 뜻한다. 《列子 湯問》
[주D-005]한가함 …… 소년 : 정 호(程顥)의 〈춘일우성(春日偶成)〉 시에, “구름 맑고 바람 가벼운 한낮 가까운 때에, 꽃 곁으로 버들을 따라 앞 냇가에 이르렀네. 세상 사람들은 즐거운 내 마음을 모르고, 한가함 훔친 배우는 소년이라 말하겠지.[雲淡風輕近午天 傍花隨柳過前川 時人不識余心樂 將謂偸閑學少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좌복(左腹)으로 들어가면 : 간사한 소인이 은밀하게 임금의 뜻을 순종하여 임금과 가까워지는 것을 말한다. 《周易明夷》
[주D-007]산과 …… 감췄던고 : 이 백(李白)의 〈공후요(箜篌謠)〉에, “다른 사람들 마음속에는, 산과 바다가 그 몇천 겹인고. 친구로 사귀자고 선뜻 말하나, 얼굴 대하면 구의봉처럼 속을 모를레.[他人方寸間山海幾千重 輕言託朋友 對面九疑峯]” 한 데서 온 말이다. 《李太白集卷2》
아침밥을 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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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끼니는 담박한 걸로 만족해 / 晨飡淡自足
거친 밥에 국 한 사발이러니 / 麤糲羹一盂
아내가 새로 빚은 술 있다면서 / 婦言有新酒
알뜰한 정으로 올리기를 청하는데 / 請進情區區
겨울 추위가 오늘 유독 심하니 / 冬寒今日甚
이로써 병든 몸 조섭도 하려니와 / 庶以調病軀
사기를 물리치고 정기를 보한다면 / 却邪補正氣
사리가 참으로 실정에 맞고말고 / 事理誠非迂
하얀 쌀밥은 티 없이 깨끗하고 / 白粲瑩無累
좋은 술은 흘러내린 양유 같아라 / 綠波如流酥
취하고 배부른 두 가지 맛 겸하니 / 醉飽信兼味
내 부호가 도성에서 으뜸이로세 / 豪富傾皇都
어찌 알리요 누추한 시골의 낙이 / 那知陋巷樂
안연의 어리석음을 계발할 줄을 / 足發顔淵愚
거나하니 정신이 이내 통창하여 / 精神旋流通
천지가 같은 무리처럼 느껴지고 / 天地爲脽尻
술 마심이 오묘한 도에 합치하니 / 斟酌合妙道
마음이 요순 시대로 돌아가누나 / 方寸回唐虞
[주D-001]어찌 …… 줄을 : 공 자가 일찍이 안연(顔淵)을 칭찬하여 이르기를, “내가 안회와 더불어 종일토록 말을 했으되, 어려운 것을 질문하지 않아 어리석은 것 같더니, 물러가 홀로 있는 때를 살펴보건대, 내가 말한 이치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으니, 안회가 어리석지 않구나.[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如不愚]” 하였고, 또 이르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밥과 한 표주박 음료수로 누추한 시골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걱정을 감당치 못하는데,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雍也》
[주D-002]술 마심이 …… 합치하니 :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 시에, “석 잔을 마시니 대도에 통하고, 한 말을 마시니 자연에 합치하누나.[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 한 데서 온 말이다.
강상(江上)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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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위의 달빛이 대낮과도 같아서 / 江上月如晝
거룻배에 올라 낚싯줄 드리울 제 / 扁舟垂釣絲
은쟁반 같은 달이 강물에 떨어져 / 銀盤墮空明
형체와 그림자가 한창 우아한지라 / 形影方逶迤
강 달 마주하니 절로 즐겁긴 한데 / 對之自可樂
밤이 차가워 고기는 더디 오르네 / 夜寒魚上遲
깨끗한 달은 속세를 벗어나서 / 皎皎出塵世
계수나무 가지가 너울너울 춤추누나 / 婆婆丹桂枝
강 위에 가랑비가 지나가고 / 江上小雨過
갠 물결이 낚시터를 출렁일 제 / 晴波動漁磯
긴 낚싯줄에 향기론 미끼 드리우니 / 長絲垂芳餌
즐거워라 살진 고기가 올라오누나 / 樂哉魚正肥
고기 얻는 건 응당 내 소원이지만 / 得之適我願
못 얻어도 내 맘에 서운친 않다오 / 不得非我違
처자식은 나름대로 세월을 보내라 / 妻子自度日
돌더렁밭에 이끼 낀 사립 닫혀 있네 / 石田掩苔扉
그 옛날 강 위에서 즐기던 일이 / 江上舊時樂
아스라이 허공 속에 떨어졌어라 / 渺然墮空虛
나는 늙어서도 식량이 떨어지거니 / 我老猶絶粮
당시에 어찌 고기를 구했으리오 / 當時豈求魚
한 번 명리 좇는 길에 접어들어 / 一涉爭名路
달리다 보니 한 해가 또 저물었네 / 驅馳歲又除
바닷가 산봉우리에 봉화가 비추어라 / 海嶠照烽火
어느 날에나 내 집으로 돌아갈꼬 / 何日歸吾廬
문생(門生) 정사현(鄭士賢)이 고향에 돌아갈 것을 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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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수원의 동쪽에 있고요 / 家在水原東
어버이는 초계 한 구석에 사는데 / 親居草溪畔
영광된 이름은 하대부 벼슬이요 / 榮名下大夫
돌아갈 흥취는 남으로 가는 기럭일세 / 歸興南飛鴈
푸른 잣나무는 산꼭대기에 기대섰고 / 翠柏倚雲岡
차가운 매화는 강 언덕에서 피우리 / 寒梅拆江岸
생애는 절로 한정이 있는 것이니 / 生涯自有涯
모름지기 맘속에 조만을 잊어야지 / 且須忘早晚
우 성랑(禹省郞)이 와서 표문(表文)의 제두(提頭)에 해당한 곳에 권점(圈點) 찍어 주기를 청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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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섬김은 의당 근신해야건마는 / 事君當謹愼
근세엔 점차로 문식이 더해지누나 / 逐世漸彌文
충심을 펴는 덴 정미함이 드러나고 / 披懇精微著
줄을 바꿈엔 위아래가 나누어지네 / 提頭上下分
거센 바람은 짧은 해를 재촉하고 / 風狂催短景
빽빽한 산엔 찬 구름이 잠기었네 / 山密鎖寒雲
붓이 떨려 권점 치기도 어려워라 / 筆凍難圈點
높은 재주가 절로 뛰어나구려 / 高才自出群
[주C-001]제두(提頭) : 표문(表文)이나 주문(奏文), 상소(上疏) 등의 글 가운데에서 명휘(名諱)나 공유(恭惟) 등 존칭어를 만날 때마다 존경의 표시로 줄을 바꾸어 쓰는 것을 말한다.
박 판서(朴判書)의 연석(宴席)에 참여했다가 가마에 실려 밤중에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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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객이 벗들과 다시 만나길 어찌 기약했으랴 / 久病誰期更盍簪
꿈속처럼 서로 마주해 깊은 술잔 기울이네 / 夢中相對酒杯深
제공들의 아량은 나를 공부로 추앙하는데 / 諸公雅量推工部
둘째 아들 높은 재주는 한림에 제수되었네 / 仲子高才拜翰林
시구를 교대로 읊조릴 제 구름은 뭉게뭉게 / 詩句迭聯雲藹藹
현가를 서로 연주하니 밤은 한창 깊어졌네 / 絃歌交奏夜沈沈
지팡이 짚고 갔다가 가마에 실려 돌아오니 / 扶筇赴召扶輿返
늙은 목은의 풍류가 고금을 덮었네그려 / 牧老風流蓋古今
[주D-001]공부(工部) : 여기서는 일찍이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냈던 두보(杜甫)를 가리킨 것으로, 즉 시(詩)에 뛰어남을 의미한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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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미친 흥취가 아주 사라지진 않아서 / 少年狂興未全消
간드러진 노랫소리가 반공중에 치오르네 / 裊裊歌聲到半霄
몸은 깊은 골짝에서 나온 꾀꼬리 같은데 / 身似遷鶯出幽谷
맘은 애꾸 말 타고 높은 다리 건너기 같네 / 心如瞎馬度危橋
뜬구름 흐르는 물은 인간 세상에서 보고 / 浮雲流水看人世
흰머리 쇠한 얼굴은 성조를 사절했건만 / 白髮蒼顔謝聖朝
다시 화려한 자리에 나가 실컷 취하여 / 更向綺羅叢裏醉
중화의 한 곡조 소를 듣기가 소원일세 / 重華一曲願聞韶
[주D-001]몸은 …… 같은데 : 《시 경》 소아(小雅) 벌목(伐木)에, “나무 베는 소리 쩡쩡하거늘, 새는 평화로이 울어대네.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 가도다.[伐木丁丁 鳥鳴嚶嚶 出自幽谷遷于喬木]”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새가 평화로이 울어 벗을 구하는 것으로써 사람에게 친구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전하여 친구를 그리는 것을 뜻한다.
[주D-002]맘은 …… 같네 : 옛날 진(晉)나라 사람이 위어(危語)를 하는 가운데, “맹인이 애꾸눈의 말을 타고 한밤중에 깊은 못을 만났다.[盲人騎瞎馬 夜半臨深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위험을 느껴서 마음이 아주 불안함을 의미한다.
[주D-003]중화(重華)의 한 곡조 소(韶) : 중 화는 순(舜) 임금의 별칭이고, 소는 순 임금이 지은 음악 이름이다. 특히 소는 진선진미(盡善盡美)했던 관계로, 공자(孔子)가 일찍이 제(齊)나라에서 소를 들어 보고는 석 달 동안 고기맛을 잊어버리고 이르기를, “순 임금의 음악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미처 몰랐다.”고 하였다.
이른 아침의 추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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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자리는 추위가 한창 심하고 / 曉榻寒方甚
갠 난간엔 눈이 잔뜩 쌓여 있네 / 晴欄雪正堆
현가 소리는 어슴푸레 꿈 같거니와 / 絃歌怳如夢
필찰은 내 재주 없음이 부끄러워라 / 筆札愧非才
큰 집은 누구를 좇아 지탱할꼬만 / 大廈從誰庇
거센 물결은 먼저 내가 돌이키리 / 狂瀾首自回
어느 날에나 저 강호로 떠날거나 / 江湖何日去
그리운 사람이 망향대에 있다오 / 人在望鄕臺
[주D-001]현가(絃歌) : 거 문고를 타며 시가를 읊조리는 것을 가리키는데, 공자가 일찍이 무성(武城)에 가서 현가 소리를 듣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당시 무성의 원[宰]이었던 자유(子游)에게 농담으로 이르기를, “닭 잡는 데에 소 잡는 칼까지 쓸 필요가 있겠느냐.”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예악 교화(禮樂敎化)를 의미한다. 《論語 陽貨》
[주D-002]필찰(筆札)은 …… 부끄러워라 : 필 찰은 붓과 옛날에 종이 대신으로 썼던 얇은 목간(木簡)을 가리키는데, 한 경제(漢景帝)가 일찍이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를 읽어보고는 그 문장을 아주 좋게 여긴 나머지 곧바로 사마상여를 불러들여서 상서(尙書)를 시켜 상여에게 필찰을 내리면서 다시 문장을 짓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57 司馬相如傳》
[주D-003]큰 집은 …… 지탱할꼬만 : 큰 집이란 곧 국가를 비유한 것으로, 한(漢)나라 왕포(王褒)의 〈사자강덕론(四子講德論)〉에, “큰 집의 재목은 한 언덕의 나무로 되는 것이 아니요, 태평을 이룬 공은 한 사람의 지략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大廈之材非一丘之木 太平之功 非一人之略]” 하였다.
[주D-004]거센 …… 돌이키리 : 거 센 물결이란 바로 세도(世道)의 쇠퇴해진 모양을 비유한 것으로,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온갖 냇물을 막아서 동으로 흐르게 하고, 이미 엎어진 데서 거센 물결을 돌이켰다.[障百川而東之 迴狂瀾於旣倒]”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그리운 …… 있다오 : 망 향대는 두보(杜甫)의 고향인 성도(成都)에 있던 대(臺) 이름인데, 두보가 일찍이 양수(瀼水)의 동쪽과 서쪽에 우거(寓居)했으므로, 소식(蘇軾)의 〈방장산인득산중자(訪張山人得山中字)〉 시에, “길은 앞과 뒤가 희미한데 사람은 양수 동쪽과 서쪽에 있었네.[路迷山向背 人在瀼西東]” 한 데서 온 말이다.
수묵산수화(水墨山水畫) 팔첩 병풍(八疊屛風)을 보내 준 우 사재(禹四宰)에게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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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언보와 유도권은 / 張彦輔劉道權
지정 이래 이름이 가장 널리 전해졌는데 / 至正以來名最傳
두 사람의 오묘한 곳은 자연 정취를 체득해 / 兩家妙處得天趣
필력이 이른 곳엔 기세가 온전하여 / 筆力所到氣勢全
정신이 현묘한 경지에 들고 또 들었네 / 精神入玄又入玄
풍류가 넘치는 귀공자요 / 風流公子
산택 간의 청수한 신선으로 / 山澤癯仙
관복 단정히 입고 조정에 앉았는가 하면 / 法服端嚴坐廊廟
아득히 구름 연기 희미한 선경에도 있어라 / 洞天縹渺迷雲煙
듣고 보기만 해도 천진난만을 느꼈는데 / 耳聞目睹且爛熳
신기가 서로 합하니 더욱 맑고 아름답구나 / 神交氣合仍淸姸
병든 나는 요즘 타호 곁에 누운 처지인데 / 邇來臥病唾壺側
감히 병풍을 가져다 자리를 두른단 말인가 / 敢把屛障圍几筵
산수 그리던 생각은 다 식은 재가 되었고 / 沈思丘壑盡寒灰
멀리 눈보라 생각하며 새 시나 읊을 뿐인데 / 遠想雨雪吟新聯
어찌 기약했으랴 북애의 평장공께서 / 何期北崖平章公
팔폭의 산수화를 나에게 보내줄 줄을 / 送我八疊之林泉
푸른 짚신 베 버선으로 당장 떠나고파라 / 靑鞋布襪便欲往
다시 두 이랑 밭을 마련할 것 없고말고 / 不用更置二頃田
허깨비 같은 인생은 다만 이와 같다네 / 人生幻境祗如此
나는 새가 먼 하늘로 사라져 없어지듯 / 飛鳥滅沒投長天
[주D-001]장언보(張彦輔)와 유도권(劉道權) : 모두 원(元)나라 말기의 이름난 두 화가(畫家)이다.
[주D-002]지정(至正) : 원 순제(元順帝)의 연호이다.
[주D-003]푸른 …… 떠나고파라 : 푸 른 짚신과 베 버선은 은자(隱者)나 혹은 평민의 차림을 가리키는데, 두보(杜甫)의 〈봉선유소부신화산수장가(奉先劉少府新畫山水障歌)〉 시에, “어이해 나만 홀로 진흙 속에 묻혀 있으랴, 푸른 짚신 베 버선으로 지금부터 여행을 시작하리.[吾獨胡爲在泥滓靑鞋布襪從此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두 이랑 밭 : 즉 200묘(畝)의 토지로서 옛날 중농가(中農家)에 해당하는데, 전국 시대 소진(蘇秦)이 여섯 나라의 상인(相印)을 한 몸에 차고서 말하기를, “가령 나에게 성곡 밖에 두 이랑의 토지만 있다면 내가 어찌 오늘날에 여섯 나라의 상인을 찰 수 있었겠는가.” 하였다.
천녕(川寧)을 바라보며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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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나머지 높은 흥을 읊조림에 부치노니 / 病餘高興寄吟哦
하도 빠른 세월 속에 두 귀밑이 희어졌네 / 歲月如流兩鬢華
마음 수양 공부는 심오해지기 어려운데 / 心地工夫難到底
끝없는 세상 물욕은 절로 한정이 없구나 / 尾閭情欲自無涯
돌더렁밭 띳집 앞엔 강물이 멀리 흐르고 / 石田茅屋江流遠
대삿갓 도롱이 위엔 빗방울이 비끼어라 / 篛笠簑衣雨點斜
가장 기억나는 건 용문산을 왕래하던 곳에 / 最是龍門往來處
보일락말락 절집에 연기 놀 섞인 거로세 / 僧窓隱見雜煙霞
정회를 쏟아내고자 온종일 읊조리어라 / 欲寫情懷盡日哦
그 몇 년이나 멀리 경사를 바라보았던고 / 幾年迢遞望京華
천지는 광대하여 응당 밖이 없으려니와 / 乾坤浩蕩應無外
인물의 생성이야 절로 한정이 있고말고 / 人物生成自有涯
산기슭 끊어진 구름 오솔길은 아스라하고 / 山麓斷雲微逕遠
돌여울 밝은 달 아랜 거룻배가 비껴 있네 / 石灘明月小舟斜
여강 가엔 백 척의 높은 누각이 있거니 / 驪江百尺高樓在
기필코 난간에 기대 저녁놀을 읊조리련다 / 須倚欄干詠落霞
여흥에 가서 취한 속에 읊조리려 생각하니 / 擬向驪興醉裏哦
노년에 격전을 벌인 건 되레 번화로구려 / 老年酣戰却繁華
보일락말락 강물은 동쪽 바다로 돌아가고 / 淸江隱見歸東海
들쭉날쭉 산기슭은 양쪽 물가를 끼었는데 / 斷麓參差夾兩涯
등불 빛 구름에 비치어라 절집은 고요하고 / 燈影侵雲梵宮靜
피리 소리 비에 섞여라 나뭇길은 비껴 있네 / 笛聲和雨樵徑斜
이미 여생은 적막하게 지내길 작심했으니 / 已向殘年甘寂寞
형체 잊고 곧바로 신선 경계를 찾으련다 / 忘形直指問丹霞
[주C-001]천녕(川寧) : 여주(驪州)에 있는 현(縣)인데, 바로 목은의 전토(田土)가 있었던 곳이다.
[주D-001]대삿갓 …… 비끼어라 : 당 (唐)나라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대삿갓 쓰고, 푸른 도롱이 입었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것 없어라.[靑箬笠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강호(江湖) 사이의 한적한 생활을 의미한다.
[주D-002]격전을 …… 번화로구려 : 공 자(孔子)의 제자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밖에 나가서는 번화한 문물들을 보고 좋아하고, 들어와서는 부자(夫子)의 도(道)를 듣고 좋아하여,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싸움을 벌이어 스스로 결단할 수가 없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23 禮書》
200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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