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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 촌(遯村) 이호연(李浩然)이 천녕현(川寧縣)에서 나에게 절구(絶句) 1수를 부쳐 주고 자기가 지은 시 10수를 겸해서 보여 주므로, 그 운에 차(次)하고, 또 그 운을 사용하여 스스로 읊었으니, 이는 모두 붓을 달려 신속히 쓴 것이다. 모두 22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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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머리 돌려 남주를 생각하노니 / 病中回首想南州
무의 시를 읊자고 아직껏 체류하는가 / 欲賦無衣尙滯留
누가 승방에 가서 산 마주해 앉았는고 / 誰向僧房對山坐
매미 울고 낙엽지는 창 가득 이 가을에 / 寒蟬落葉滿窓秋
이상은 부쳐준 시에 차운한 것이다.
세상 피한대서 누가 조수를 따라 살랴 / 避世誰從鳥獸居
정려에 얹혀 먹고 잠도 해롭지 않으리 / 不妨眠食寄精廬
마음속엔 다시 세속 용납할 곳이 없으나 / 心中無地更容俗
손 안엔 낚싯대 있어 고기를 낚을 만하네 / 手裏有竿還可漁
생각 버리면 꾀부리는 일을 잊고 / 怠念忘機事
마음만 편하면 바로 고향이라오 / 安心卽故鄕
전쟁이 아직도 그치지 않아서 / 兵戈猶未戢
전야가 하도 많이 황폐해졌는데 / 田野儘多荒
산이 좋아 늘 지팡이 끌고 나가면 / 山好常扶杖
차가운 바람이 옷을 찢을 듯하네 / 風寒欲綻裳
그 누가 둔촌 노인과 함께하여 / 誰歟偕遯老
분수 따라 더위 추위를 보낼런고 / 隨分送炎涼
비운이 기울면 태운이 오거니와 / 否傾仍遇泰
흥이 다하면 또 슬픔이 오는 법 / 興盡却來悲
국운은 한창 어려운 즈음이요 / 國步方艱際
천심은 정해지지 않은 때이로다 / 天心未定時
일찍 핀 매화에 이미 놀랐는데 / 已驚梅綻早
더디 피는 국화를 또 보겠구려 / 又見菊開遲
둔촌 노인은 지금 그 어떠한지 / 遯老今何似
오래도록 내 마음 달랠 길 없네 / 悠悠勞我思
이상은 ‘도미사에 제하다.[題道美寺]’ 시에 차운한 것이다.
푸른 산 푸른 물에 하얀 모래톱을 끼고 / 靑山綠水白沙洲
거룻배는 물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데 / 野艇順流仍逆流
저녁 산보하는 사람 그림자 더불어 갈 제 / 晚步有人携影去
강 위의 반달 빛은 누각을 잠기려 하네 / 半輪江月欲沈樓
이상은 ‘보덕만에서 저녁에 산보하며[寶德灣晚步]’ 시에 차운한 것이다.
사우당 안에 군자가 살고 있으니 / 四友堂中君子居
하늘 가득 맑은 흥취가 더 남음이 없겠네 / 滿天淸興更無餘
세찬 강물 곳곳엔 뛰어난 경치도 많으니 / 滂江處處多奇絶
남은 생에 마주하여 집 짓길 빌고 싶어라 / 欲乞殘生對結廬
이상은 ‘도미사의 누각 위에서 경지에게 부치다.[道美寺樓上寄敬之]’ 시에 차운한 것이다.
예전엔 말 빌려 타고 조회갔는데 / 朝天曾借馬
문득 세상 피해 승사에 투신했네 / 避世却投僧
전사에는 동년이 있어 / 田舍同年在
달빛 밟고 강루에 오르누나 / 江樓踏月登
오동나무는 한 잎이 떨어지고 / 高梧一葉落
백발은 두어 가닥이 더하였네 / 白髮數莖增
뛰어난 시구를 자주도 읊어내니 / 秀句頻吟出
원망과 흥취를 의탁할 만하겠네 / 聊堪託怨興
이상은 ‘입추일에 경지에게 부치다.[立秋日寄敬之]’ 시에 차운한 것이다.
황학루 앞에는 앵무주가 있어 / 黃鶴樓前鸚鵡洲
뿌연 물결 아스라이 눈앞에 흐르는데 / 煙波渺渺望中流
사랑스러라 두 노인 함께 노니는 곳이 / 却憐二叟同游處
두 언덕 푸른 산 아래 일엽편주로구려 / 兩岸靑山一葉舟
이상은 ‘경지와 함께 배 안에서 밤에 술을 마실 적에 경지가 시를 지으므로 그 운에 차하다.[與敬之舟中夜飮敬之有詩次其韻]’ 시에 차운한 것이다.
도정이 생기는 곳엔 세정이 약해지거니와 / 道情生處世情微
활구는 예로부터 불쑥 나오는 게 아니거니 / 活句由來不可磯
어찌 풀 이슬에 짚신 젖는 걸 아까워하랴 / 肯惜芒鞋霑草露
우연히 밝은 달 밟고 깊은 밤에 돌아왔네 / 偶乘明月夜深歸
산 아래 시골 마을이 물가에 임해 있는데 / 山下村居枕水濱
밥상 가득 야채 중엔 물풀이 섞이었고 / 堆盤野菜雜江蘋
석양엔 다시 물고기 회에 배가 불러라 / 晚來更飽銀絲膾
큰 술잔 유쾌히 마심은 잦은 게 싫지 않네 / 快倒深杯不厭頻
강산은 살기 좋은 고장 이뤘고 / 江山成樂土
풍물은 다른 지방에 뛰어나니 / 風物異他方
시구 얻는 건 천기가 익숙하련만 / 得句天機熟
생계 영위엔 시골 흥취가 막히리 / 營生野興妨
누각을 좋아해 객사를 찾고요 / 愛樓尋客舍
절에 노니느라 승방에 앉았네 / 游寺坐僧堂
늘그막에 참으로 세상 잊었는데 / 老境眞忘世
동년이 다행히 시골에 있네그려 / 同年幸在鄕
이상은 ‘도미사에서 경지에게 부치다.[在道美寺寄敬之]’ 시에 차운한 것이다.
또 앞의 운을 사용하여 스스로 읊다.
난리 뒤론 산촌 살이가 강촌보다 나아라 / 亂後山居勝水居
진강의 봉화가 아직도 촌가에 비치는걸 / 鎭江烽火照田廬
병이 나으면 다만 안심되는 곳을 찾아서 / 病除只覓安心處
등잔 앞에 경사 펼치고 섭렵이나 하련다 / 經史燈前獵復漁
어찌 시름 맺힌 것을 두려워하랴 / 肯畏愁如結
애오라지 술 마시고 취해나 보자 / 聊從醉作鄕
서로 잊고 춘풍 화기와 함께하여 / 相忘共駘蕩
곧장 태고를 거슬러 오르고 싶네 / 直欲遡鴻荒
달 속에 간 이로는 오질이 생각나고 / 赴月思吳質
파도 없음은 월상씨가 기억나는데 / 無波記越裳
다만 이젠 손 접대도 못하는 곳에 / 祗今懸榻處
얼굴 가득 새벽바람만 서늘하구나 / 滿面曉風涼
마음이 안정 안 됨을 스스로 믿거니 / 自信中無定
어찌하여 속으로 혼자 슬퍼하리요 / 胡爲內自悲
반갑게 대해도 세속엔 거슬리거늘 / 眼靑猶牾俗
얼굴 붉히며 시세를 따르려 할쏜가 / 面赤欲趨時
감히 일찍 기틀을 알았다 말하랴 / 敢道知機早
까닭 없이 도성 떠나기만 더디네 / 無端去國遲
고인은 이제 다시 볼 수 없으니 / 古人今已矣
천재에 과연 그 누굴 생각할거나 / 千載果誰思
진강을 가면 나에겐 백구 물가가 있어 / 鎭江吾有白鷗洲
이 몸이 인간의 제일류라고 자부했는데 / 自負人間第一流
문득 공명을 입어 노추가 돼버렸으니 / 却被功名成老醜
어느 때나 다시 일광루를 올라가 볼꼬 / 何時更上日光樓
백조와 푸른 물결 여기가 내 고향인데 / 白鳥蒼波是故居
회상하니 십 년 남짓 세월이 아득하구나 / 回頭渺渺十年餘
하늘가엔 치이의 배가 보이지를 않고요 / 天涯不見鴟夷舸
산 아래엔 제갈의 초당이 이미 무너졌네 / 山下已頹諸葛廬
강 마을엔 은거한 이가 없고 / 江村無隱者
들 승사엔 고승이 적기도 해라 / 野寺少高僧
시고는 한가한 때에 고치고 / 詩藁閑中改
산꼭대기는 취한 뒤에 오르네 / 山椒醉後登
지금 혼자 노닒은 꿈만 같은데 / 獨游今似夢
병이 많음은 늙을수록 더하누나 / 多病老彌增
멀리 기억하건대 거적 창 아래서는 / 遙記蓬窓底
조용히 읊으며 날로 늦게 일어나리 / 微吟日懶興
바다 어귀는 아스라이 긴 모래톱을 띠었고 / 海門迢遰帶長洲
만리 푸른 하늘은 푸른 강물에 비치는데 / 萬里靑天映碧流
한바탕 맑은 바람에 돛 그림자 곧게 설 제 / 一陣淸風帆影直
쪽배에 앉아 취중에 소리 높여 읊조리었지 / 醉中高詠坐輕舟
두 언덕 높은 산엔 푸른 산기운 우뚝한데 / 兩岸雲山矗翠微
한 낚싯줄 바람에 이끼 낀 물가에 앉았네 / 一絲風裏坐苔磯
느지막이 가랑비 오는 석양 아래 길목을 / 晚來小雨斜陽路
도롱이에 삿갓 쓰고 홀로 간 게 기억나누나 / 篛笠簑衣記獨歸
하수가의 질그릇 굽던 집을 찾고 싶어라 / 欲尋陶舍傍河濱
종묘 제사엔 예부터 마름을 올릴 수 있었네 / 宗祀由來可薦蘋
세도는 날로 박해져 참과 거짓이 혼잡한데 / 世道日澆情僞雜
나 혼자만 자주자주 충심을 토로하네그려 / 心肝嘔出自頻頻
산빛은 곧 문에 들어오려 하고 / 山光將入戶
구름은 서에서 동으로 가는구나 / 雲影自徂方
세상살이는 부쳐 사는 몸이거니 / 處世身如寄
마음 따르는 일이 어찌 해로우랴 / 隨心事豈妨
오의에는 일찍이 마을이 있었고 / 烏衣曾有巷
녹야에는 예전에 당을 열었는데 / 綠野久開堂
목은 또한 이 얼마나 다행한가 / 牧隱亦何幸
맹세코 장차 고향으로 돌아가련다 / 誓將歸故鄕
소년 시절 미쳐 날뛰어 중국을 분주하다 / 少年狂妄走中州
동국의 문장을 잘못 그곳에 머물게 했네 / 東國文章誤見留
임금 은혜 갚지 못하고 이제는 백발인데 / 未報主恩今白髮
진강의 강가엔 또 가을조차 깊어졌구려 / 鎭江江上又深秋
[주D-001]남주(南州)를 …… 체류하는가 : 두 보(杜甫)의 〈발진주(發秦州)〉 시에, “나는 쇠한 데다 게으르고 졸렬하여, 생계를 스스로 꾀하지 못하기에, 먹을 것 없으면 낙토를 찾고, 입을 옷 없으면 다스운 남주를 생각한다네.[我衰更懶拙 生事不自謀無食問樂土 無衣思南州]”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세상 …… 살랴 : 춘 추 시대 초(楚)나라의 은자(隱者)인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이 도(道)를 행하려고 애쓰는 공자(孔子)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데 대하여, 공자가 이르기를, “사람이 조수와는 함께 무리 지어 살 수 없는 것이니, 내가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고 누구와 함께하리요.[鳥獸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微子》
[주D-003]정려(精廬) : 학사(學舍), 또는 승사(僧舍)를 가리킨다.
[주D-004]오동나무는 한 잎이 떨어지고 : 가을이 되면 오동나무 잎이 가장 먼저 떨어지기 때문에, 즉 초가을을 의미한다.
[주D-005]활구(活句) : 활기(活氣)가 있는 시문(詩文)을 가리킨다.
[주D-006]달 …… 생각나고 : 오 질(吳質)은 달 속의 신(神)인 오강(吳剛)을 가리킨다. 한(漢)나라 때 서하(西河) 사람 오강의 자가 질(質)인데, 그가 일찍이 선술(仙術)을 배우다가 죄과(罪過)를 지어 달 속으로 귀양 가서 계수나무를 채벌(採伐)하고 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주D-007]파도 …… 기억나는데 : 천하가 태평함을 뜻한다. 주공(周公) 때에 월상국(越裳國)에서 3년 동안이나 비바람이 순조롭고 바다에도 파도가 일지 않는 것을 보고는, 중국에 성인(聖人)이 있음을 알고 주공에게 조회를 갔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8]치이(鴟夷)의 배 : 춘 추 시대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모신(謀臣) 범려(范蠡)가 구천을 도와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는, 월나라에 더 머물지 않고 오호(五湖)에 배를 타고 떠나서 제(齊)나라에 들어가 이름을 치이자피(鴟夷子皮)로 바꾸어 행세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9]제갈(諸葛)의 초당(草堂) :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일찍이 남양(南陽)의 초당에 은거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10]하수가의 …… 집 : 순(舜) 임금이 미천했을 때에 일찍이 하수가에 질그릇을 구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11]종묘 …… 있었네 : 《시 경(詩經)》 소남(召南) 채빈(采蘋)에, “남녘 산골 물가에서, 고운 아씨가 마름풀을 캐도다.[于以采蘋 南澗之濱]”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대부(大夫)의 부인(夫人)이 정성스레 마름풀을 캐어 제사 지내는 것을 가상하게 여겨 노래한 것이다.
[주D-012]오의(烏衣)에는 …… 있었고 : 진(晉)나라 때 왕씨(王氏)ㆍ사씨(謝氏) 등 귀족(貴族)들이 살았던 오의항(烏衣巷)을 두고 이른 말이다.
[주D-013]녹야(綠野)에는 …… 열었는데 : 당(唐)나라 때 재상 배도(裴度)가 만년에 지은 별장인 녹야당(綠野堂)을 두고 이른 말이다.
영해(寧海) 족중(族中)의 서신을 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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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댁은 적막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데 / 外家寂寞海邊村
풍경은 예로부터 사람들 입에 올랐었네 / 風景由來入物論
동녘 바다 향하여 돋는 해를 보려 하니 / 欲向東溟看出日
갑자기 슬퍼 두 눈이 먼저 캄캄해지누나 / 却嗟雙眼已先昏
황량한 마을서 하룻밤 단란하게 묵으면서 / 團圝一夜宿荒村
젊은 시절 회포를 자세히 못 논해 보았는데 / 少壯情懷未細論
회상컨대 몇 년 새에 선배들은 다 떠났고 / 回首幾年耆故盡
아침 까치 지저귀더니 어느덧 또 황혼일세 / 簷前鵲噪又黃昏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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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은 드문드문 옷을 적시려 하는데 / 雨點疏疏欲濕衣
구름 새로 해 비치고 묵은 구름 돌아가네 / 日光穿漏宿雲歸
산꼭대기에 재배한 건 다른 소망이 아니라 / 山頭再拜無他望
반열 속에 온건하여 시비를 단절하잔 걸세 / 穩涉班行絶是非
과장에서 머리 끄덕인 주의에게 사례하고 / 點頭場屋謝朱衣
어사가 되어선 물망이 한 몸에 돌아왔으니 / 袍笏班心物望歸
시서를 가지고 천하게 사용하지 말아야지 / 莫把詩書作芻狗
분명히 귀신과 사람이 다 같이 책망하리라 / 明明鬼責與人非
황향의 베개 부채질과 노래자의 채색옷이여 / 黃香扇枕老萊衣
이 사람이 없으면 누구와 함께한단 말인가 / 不有此人誰與歸
충효는 집안에서 반드시 노력해야 하나니 / 忠孝家中須努力
일호라도 미진하면 일이 모두 글러지리라 / 一毫未盡事皆非
[주D-001]과장(科場)에서 …… 사례하고 : 과 거(科擧)에 급제함을 뜻한다.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공거(貢擧)를 주관할 때에 시권(試券)을 고사(考査)할 적마다 등 뒤에서 한 주의(朱衣) 입은 사람이 머리를 끄덕여 준 것을 느낀 다음에야 그 시권을 입격(入格)시키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황향(黃香)의 …… 채색옷이여 : 황 향은 후한(後漢) 때의 효자로,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섬기면서 여름이면 아버지의 침상에 부채질하여 서늘하게 하고, 겨울이면 자기가 아버지의 자리에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따뜻하게 하곤 했고, 노래자(老萊子)는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효자로, 나이 70에 부모 앞에서 어린애처럼 채색옷을 입고 재롱을 부려 부모를 즐겁게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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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 가득 고운 모래 깔아서 지면 만들고 / 細沙滿槃鋪紙面
한 자 길이의 보릿짚을 붓 삼아 써내려라 / 麥秸盈尺鳴筆鋒
아침마다 어린애가 여기에 글자 익히고 / 朝來小兒習作字
후일엔 명광궁에서 책문에 답안을 쓰리 / 他日對策明光宮
또 짓다.
모래 그어 글자 쓰니 바르고도 비딱하여라 / 畫沙作字整仍斜
다만 바람 불어 새 발자국 없앨까 염려로세 / 祗恐風吹鳥跡磨
창힐은 아득하니 누가 그 법을 얻을까마는 / 蒼頡渺茫誰得法
원장의 법은 호탕하여 스스로 명가이었네 / 元章跌宕自名家
못가의 세월 속엔 서법 공부를 익히었고 / 臨池歲月功夫熟
붓 놓은 춘추에선 상벌을 두루 가하였었지 / 絶筆春秋賞罰加
아비의 자식 교육은 경홀히 못할 일인데 / 老父敎兒難造次
어른어른 눈은 어둡고 귀밑털도 하얗구나 / 眼昏多翳鬢毛華
[주D-001]창힐(蒼頡) : 황제(黃帝)의 신하로, 새의 발자국을 보고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주D-002]원장(元章) : 송(宋)나라 미불(米芾)의 자이다. 미불은 시문(詩文)과 서화(書畫)에 모두 뛰어났는데, 그중에도 특히 글씨는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일컬어졌다.
[주D-003]못가의 …… 익히었고 : 후한(後漢) 때의 명필(名筆) 장지(張芝)는 글씨를 익힐 적에 집안의 의백(衣帛)들을 반드시 글씨를 쓴 다음에 빨곤 하였는데, 못가에서 글씨를 배우는 바람에 못의 물이 온통 검어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4]붓 …… 가하였었지 :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집필(執筆)하다가, 노 애공(魯哀公) 14년 봄에 이르러 ‘서수획린(西狩獲麟)’이란 구절로써 《춘추》를 마감하고 붓을 놓았던 데서 온 말이다.
구전가(求田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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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있어도 안 가는 건 매우 말이 안 되지만 / 有田不歸甚亡謂
땅이 없어도 가려 함은 망녕된 사람일 뿐이리 / 無田欲歸妄人耳
아 슬프다 대장부가 백발 나이에 이르도록 / 嗚呼丈夫鬢髮白
아직껏 이름 날리며 이끗을 가까이했으니 / 尙爾馳名近於利
당시에 조소 받고 낯은 이미 붉어졌거니와 / 當時非笑已赤面
후일의 비난 평판은 역사에 부칠 뿐이로다 / 他日譏評付靑史
의리와 이끗은 분명 흑백이 절로 판이하여 / 義利分明自白黑
금옥 같은 법령처럼 환하기가 그림 같아라 / 金科玉條皎如畫
돌아보니 내 몸은 한 덩이 고기에 불과하나 / 回觀我身一塊肉
큰 은택 오늘에 이름은 상의 은덕 때문인데 / 肥澤至今由上德
쇠하고 병들어 예전 공을 이을 힘이 없어 / 病衰無力繼前功
늙은 말은 또 지쳐 슬픈 바람에 울어댈 뿐 / 老馬又困嘶悲風
붉은 진주 같은 땀을 흘릴 길이 없는지라 / 無由汗出眞珠紅
편평한 들판 가을풀에 야윈 뼈를 가리운 채 / 平郊秋草蔽瘦骨
석양 아래 흐르는 내에 마른 목을 축이누나 / 渴飮流川斜日中
토지 구하여 어서 시골로 돌아가야겠네 / 求田求田可歸去
산야에는 예로부터 늙은 농사꾼이 많다오 / 山野古來多老農
[주D-001]늙은 …… 울어댈 뿐 : 사람이 몸은 늙었어도 웅대한 뜻은 그대로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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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장성을 향해 술 한 잔을 권했나 / 誰向長星勸一杯
잠깐 사이에 궁전이 이미 티끌이 되었네 / 回頭宮殿已塵埃
천둥소리에 낯빛 변한 게 전조의 일이거니 / 聞雷變色前朝事
어찌 깊숙이 있다고 재앙을 피할까 보냐 / 豈有深居可避災
[주D-001]그 누가 …… 권했나 : 장 성(長星)은 살별로서 이 별이 나타나면 병란(兵亂)이 일어날 조짐이라고도 하고, 이 별이 왕자(王者)의 죽음을 주관한다고도 하는데, 동진(東晉)의 효무제(孝武帝)가 일찍이 장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매우 혐오한 나머지, 밤에 화림원(華林園)에서 술을 마시다가 술잔을 들어 장성을 향해 권하면서 말하기를, “장성아, 너에게 술 한 잔을 권하노라. 예로부터 그 어느 때에 만세 천자(萬世天子)가 있었더냐?”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천둥소리에 …… 게 : 삼 국(三國) 시대 위(魏)나라의 조조(曹操)가 일찍이 촉한(蜀漢)의 유비(劉備)에게 조용히 말하기를, “지금 천하에 영웅(英雄)을 논하자면 오직 사군(使君)과 조(操)가 있을 뿐이다.”고 하자, 유비가 마침 밥을 먹다가 깜짝 놀라서 수저를 떨어뜨렸는데, 이때 마침 천둥소리가 들리자, 유비가 조조에게 말하기를, “성인(聖人)이 천둥소리를 듣고 낯빛을 변했다는 것이 참으로 까닭이 있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예천군(醴泉君)의 명기(明忌)에 수정사(水精寺)에서 재(齋)를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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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사는 맑고 깨끗해 티끌 하나 없어라 / 水精精舍淨無塵
중수한 공사가 집을 새로 지은 것 같구려 / 起廢功夫似創新
푸른 절벽 붉은 등나무는 오솔길을 타오르고 / 翠壁紫藤緣細逕
푸른 소나무 흰 돌은 꽃다운 풀밭을 끼었네 / 蒼松白石擁芳茵
외손들은 연이어 양부에 들어갔는데 / 聯翩宅相入兩府
적막해라 문생은 한 사람도 없네그려 / 寂寞門生無一人
동궁의 찬선이 중국 역사에 드러났으니 / 贊善東宮中國史
예천군의 풍채가 푸른 봄을 비추었으리 / 醴泉風采照靑春
[주C-001]예천군(醴泉君) : 목은의 처조부(妻祖父)인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권한공(權漢功)을 가리킨다.
[주D-001]동궁(東宮)의 …… 비추었으리 : 푸른 봄이란 역시 동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찍이 예천부원군 권한공이 원(元)나라 원제(元帝)의 소명(召命)을 받아 태자 좌찬선(太子左贊善)에 임명되었으므로 한 말이다.
인하여 반궁(泮宮)에 들러 알성(謁聖)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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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돌아와 반궁으로 들어오니 / 山寺歸來入泮宮
뜨락의 나무 그림자가 막 한낮이로세 / 庭除樹影日初中
머리 숙여 재배하니 신은 있는 듯한데 / 低頭再拜神如在
처음 온 때 헤어보니 꿈은 텅 비어버렸네 / 屈指初游夢已空
십수년이 지난 오늘 잡초는 더부룩하나 / 十數年將爲茂草
후생들 중에 혹은 선비 풍도도 있구려 / 二三子或有儒風
봉은사 서쪽 고개에 장송은 간 데 없고 / 奉恩西嶺長松盡
머리 돌리니 오공산에 석양빛만 붉구나 / 回首蜈山落照紅
하늘이 우리 도를 만고에 비춰 임하는지라 / 吾道天臨萬古同
아직도 신의 공화 힘입어 시종을 보존하니 / 尙資神化保初終
당당한 국가 체모는 법칙 안에서 이뤄지고 / 堂堂國體規模內
쇄쇄한 가문 명성은 계책 가운데 움직이네 / 瑣瑣家聲指畫中
사슴 잃고 용 일어남은 때가 절로 변함이요 / 鹿失龍興時自變
솔개 날고 고기 뜀은 성인의 공을 이룸일세 / 鳶飛魚躍聖成功
앓고 난 이후 늙고 쇠퇴하기 이를 데 없어 / 病餘老矣摧頹甚
재배 올리매 까닭 없이 얼굴이 붉어지누나 / 再拜無端面發紅
[주D-001]사슴 …… 일어남 : 천하를 소유한 사람이 천하를 잃고, 또 다른 사람이 천하를 소유하게 됨을 뜻한다.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진나라가 사슴을 잃으매 천하가 함께 그 사슴을 쫓고 있다.[秦失其鹿天下共逐之]” 하였다.
[주D-002]솔개 …… 뜀 : 《중 용장구(中庸章句)》 제12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뛴다.’ 하였으니, 조화의 유행이 천지에 밝게 나타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한 데서 온 말이다.
금강산가(金剛山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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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엔 일찍이 느릅나무가 자랐는데 / 金剛山中楡樹長
서해에서 종이 떠올 땐 하늘이 아득했었고 / 鍾浮西海天茫茫
서역의 황금 부처 오십하고도 또 세 구가 / 金人五十又三軀
바로 이 나무 아래에 천당을 열었다 하나 / 直指樹下開天堂
때와 역사 상고할 제 참으로 믿기 어려워라 / 考時按籍信難信
일이 진정 해괴하고도 황당하기만 하네 / 事出詭怪仍荒唐
천축의 신통한 술법은 세상에 뛰어났으니 / 竺乾神變自絶世
더구나 바닷길에 배를 통하는 정도임에랴 / 海路況可通舟航
동방 사람은 젖먹이도 범패를 다 외거니 / 東人口乳已梵唄
늙은이야 그 누가 불법을 찾지 않을쏜가 / 白頭誰不求西方
이 산을 세 번 오르면 삼도를 면한다는 / 三登此山免三塗
이 말을 모두 금강처럼 확고하게 믿지만 / 此語堅確齊金剛
금강처럼 파괴되지 않는 건 곧 내 본성이니 / 金剛不壞有我性
세계가 멸하여도 금강산은 공중에 감춰 있으리 / 世界毁滅山向空中藏
[주D-001]금강산엔 …… 하나 : 고 려 때 민지(閔漬)가 찬한 〈유점사기(楡岾寺記)〉에 의하면, 서역(西域)의 월지국(月支國)에서 일찍이 53구(軀)의 부처가 무쇠의 종(鐘)을 타고 서해(西海)에 떠와서 안창현(安昌縣)의 포구(浦口)에 대었는데, 이때 현재(縣宰) 노춘(盧偆)이 관속들을 거느리고 가보니, 부처는 보이지 않고 부처가 나뭇가지에 종을 걸어 놓고 쉰 흔적만 있었다. 이리저리 부처를 찾던 도중 한편에서 종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는 그곳으로 가보니, 못이 하나 있고 못 위에 느릅나무가 있는데, 느릅나무 가지에 종을 걸어 놓고 여러 부처들이 못 언덕에 죽 벌여 있으면서 이상한 향기를 풍겼다. 그러므로 노춘이 관속들과 함께 부처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돌아가서 왕께 아뢴 다음, 이 자리에 절을 창건하여 그 부처들을 봉안(奉安)하고 유점사(楡岾寺)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또 고려 때 보덕암(普德菴)의 중이 찬했다는 〈금강산기(金剛山記)〉에 의하면, 한 평제(漢平帝) 원시(元始) 4년에 서역으로부터 황금 불상 53구가 바다에 떠와서 이 산에 이르렀으므로, 인하여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고 했는데, 정사(正史)에 의하면, 후한(後漢)의 명제(明帝) 영평(永平) 8년에야 불법(佛法)이 처음 중국에 들어갔고, 우리나라에는 그로부터 400여 년 뒤인 양 무제(梁武帝) 대통(大通) 원년에야 불법이 행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D-002]삼도(三塗) : 불교 용어로 삼악도(三惡道)와 같은 말이다. 즉 사람이 악업(惡業)을 지은 죄과로 인하여 죽은 뒤에 가게 된다는 지옥도(地獄道)ㆍ아귀도(餓鬼道)ㆍ축생도(畜生道)를 말한다.
즉사(卽事)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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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승은 얼굴이 붉게 빛나는데 / 山僧火色面
친숙한 사람처럼 나를 방문해 주니 / 問訊若情親
후일 천마산 길에서 / 異日天磨路
날 부지해줄 사람을 이미 얻었네 / 扶持已得人
마음을 안정해 말 없이 묵묵하고 / 安心無語默
원친 평등으로 만물 이롭게 하네 / 利物等冤親
동분서주하는 게 바로 공덕이라서 / 奔走是功德
한가한 도인에 뒤질까 염려로다 / 恐輸閑道人
노골산이 그 어드메에 있느뇨 / 露骨山何處
천마산 경계가 절로 친근커니와 / 天磨境自親
도를 닦을 수 있는 맘이야말로 / 菩提可種地
다만 이 우리들에게 있고말고 / 只是在吾人
[주D-001]원친 평등(冤親平等) : 불교의 평등 대자비심(平等大慈悲心)으로, 원수건 친한 사람이건 모두 평등하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2]한가한 도인(道人) : 당(唐)나라 때 고승(高僧) 현각(玄覺)의 〈증도가(證道歌)〉에, “배움 끊고 하는 것 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제거할 것 없고 참도 구할 것 없다네.[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한 데서 온 말이다.
전라 염사(全羅廉使) 송문중(宋文中)의 시권(詩卷)에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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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남양의 송일장은 / 吾友南陽宋日章
키 크고 깨끗하기 여러 낭관에 으뜸인데 / 脩長潔白冠諸郞
명성을 날려라 동방의 수재임을 자부했고 / 蜚英自負東方秀
배를 타고는 상국의 문물을 구경하였네 / 航海曾觀上國光
위하여 묻노니 향합과 축책 주관하던 게 / 爲問函香持祝冊
이제 금의환향하는 것과 서로 어떠한가 / 何如衣錦得還鄕
한 몸에 충효를 겸한 이가 연래에 드무니 / 一身雙美年來少
공론이 지금부터 묘당에서 일어날걸세 / 公論從今在廟堂
동국(東國)의 예속(禮俗)은 춘추 전국 시대의 풍속과 가까운데, 그것을 기록하는 뜻은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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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에 아매씨가 / 遙遙阿每氏
대업을 동방에 세웠으니 / 大業樹桑墟
서리 이슬 내리는 대지 밖이요 / 霜露堪輿外
춘추전국 초기의 풍속이로다 / 春秋戰國初
목숨 가벼이 여겨 자결을 잘하고 / 輕生多伏劍
무를 숭상하여 글하는 이는 적은데 / 尙武少通書
번장이 때로 와서 조공을 했으니 / 藩將時來貢
주공 희공의 교화 덕택이었네 / 周僖聲敎餘
서국엔 하늘이 통서를 열었고 / 西國天開統
동방엔 해가 언덕에 나왔는데 / 東邦日出墟
분주하게 외적을 방어한 뒤요 / 奔波守禦後
사신들이 왕래하는 처음이로다 / 行李往來初
조공에는 의식과 폐백이 많으나 / 禮貢多儀幣
정을 통함은 한 장의 서신이었네 / 情通一札書
가장 예쁜 건 스스로 부끄럼 알아 / 最憐能自恥
남김없이 상국에 귀화함일세 / 嚮化已無餘
맑은 하늘은 바다 섬을 감싸고 / 晴天藏海嶼
새벽 안개는 마을에 들었네 / 曉霧入村墟
악인들은 간 곳을 알 수 없고 / 鬼蜮不知處
구원병이 서로 돕는 처음이로다 / 蚍蜉相援初
선비들은 전쟁에 참여하고 / 儒冠臨劍戟
학사에선 시서 교육을 폐하여라 / 學舍廢詩書
미친 앙화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 流禍至於此
슬프다 다른 일을 어찌 물으랴 / 哀哉奚問餘
[주D-001]아매씨(阿每氏) : 고대(古代) 왜왕(倭王)의 성이다. 성은 아매(阿每)이고 자는 다리사비고(多利思比孤)라는 왜왕이 수(隋)나라와 통사(通使)한 사실이 《수서(隋書)》에 나타나 있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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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란 해결엔 많은 말을 해야겠거니와 / 解紛將代舌
느낌 있으니 창자가 얼마나 뒤틀리는고 / 有感幾回腸
사와 정은 오래갈수록 명백해지나니 / 邪正久彌白
저 푸른 하늘이 굽어 살피시리라 / 監觀有彼蒼
죄수 정체는 응당 꾀가 많아서지만 / 停囚應長智
화를 전가함엔 어진 이 해칠까 두렵네 / 嫁禍恐讐良
세상일은 시운에 관계되는 것이라 / 世事關時數
사람을 길이 감탄하게 하누나 / 令人感嘆長
판사(判事) 유백(兪伯)이 내방(來訪)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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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한 몰골은 예전 그대로이고 / 瘦骨如前日
낮은 벼슬은 소년 시절 같구나 / 卑官似少年
공훈 책록은 큰 은총이 내려졌고 / 錄功頒茂渥
일 주관함은 문신 중에 으뜸일세 / 判事冠文聯
곡령은 한가로운 땅이요 / 鵠嶺閑中地
연산은 꿈속의 하늘이어라 / 燕山夢裏天
광암사는 지금 적막하기만 한데 / 光巖今寂寞
재연에 갈 사람이 몇이나 있을꼬 / 有幾赴齋筵
속리산(俗離山) 법주사(法住寺)의 승통(僧統)이 오성합(五星合)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는 뜻으로 붓을 달려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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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별이 열을 지어 반짝반짝 빛나는 데다 / 五星聯珠光的的
상하 사방 이은 흔적 없고 검은빛 섞이었네 / 六合無縫色交黑
처음엔 천지가 처음 나뉘는가 의심했더니 / 初疑天地始分離
오미가 절로 만족하여 사람이 먹게 되었네 / 五味自足人得食
늙은 목은은 병중에 나가려면 말도 없고 / 老牧病中出無馬
채소 반찬으로 아침저녁 지내고 있거니 / 苜蓿堆盤度朝夕
무슨 연유로 다시 화려한 자리에 오를쏜가 / 何緣更登玳瑁筵
환단에 의지하면 응당 힘이 있을 거로세 / 庇却還丹應有力
전라 도순문사(全羅都巡問使) 지 밀직(池密直)이 홍대하(紅大蝦)를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는 뜻으로 붓을 달려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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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기러기는 급한 서풍에 날고 / 白鴈西風急
붉은 새우는 먼 남해서 잡아왔네 / 紅蝦南海遙
앓고 나서 두터운 은혜를 입으니 / 病餘承厚惠
늙어갈수록 맑은 조정에 감사하노라 / 老去謝淸朝
천둥 치며 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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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절로 뛰어난 경계인데 / 江山自絶境
뇌우는 깊어 가는 가을에 몰아치네 / 雷雨欲窮秋
늙은 날엔 반겨주는 이가 적고 / 老日少靑眼
동년 중엔 머리 센 이가 많은데 / 同年多白頭
내 회포만 공연히 걱정스러울 뿐 / 寸懷徒耿耿
하늘의 도는 아득하기만 하구나 / 天道儘悠悠
내 일찍이 서운관에 있었거니 / 曾忝書雲觀
조정의 근심거리를 잘 알고말고 / 深知廊廟憂
검은 구름이 푸른 하늘에 걷히고 / 黑雲收碧落
밝은 태양이 맑은 가을을 비추니 / 白日照淸秋
작은 시내 밑바닥에 모래는 맑고 / 沙淨小溪足
높은 나무 끝에 잎은 선명하구나 / 葉明高樹頭
흐르는 세월은 한가함 속에 급하고 / 流年閑裏急
지난 일은 꿈속에 한가롭기만 하네 / 往事夢中悠
하늘의 뜻은 정히 어디에 있는지 / 天意定安在
온갖 근심에 한 치 마음만 타누나 / 寸心煎百憂
[주D-001]서운관(書雲觀) : 고려 때 천문(天文)ㆍ역수(曆數) 등의 일을 관장하는 사천감(司天監)과 태사국(太史局)을 합하여 설치한 관아였다.
국화를 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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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밑에 푸른 진흙이 촉촉하니 / 靑泥盆底潤
국화 향기가 방 안에 그윽하구나 / 黃菊室中幽
눈 앞에 환히 핀 모습을 사랑할 뿐 / 只愛開當面
어찌 머리 가득 꽂을 필요 있으랴 / 何須揷滿頭
외로운 솔은 팽택의 저문 해이고 / 孤松彭澤晚
쇠한 혜초는 초강의 가을이로다 / 衰蕙楚江秋
정성스런 모습이 군자를 짝했는데 / 耿耿配君子
꽃다운 그 맘을 누가 다시 찾을런고 / 芳心誰復求
[주D-001]외로운 …… 해이고 : 일 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지냈던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길은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있도다.[三逕就荒 松菊猶存]”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를 도잠의 굳은 지조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2]쇠한 …… 가을이로다 : 초(楚)나라의 충신(忠臣) 굴원(屈原)이 소인들의 참소에 의해 조정으로부터 쫓겨나서 지은 이소(離騷)에 특히 향초(香草)인 난초와 혜초를 많이 노래하였는데, 끝내는 상강(湘江)에 투신하여 자결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우중(雨中)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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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가매 한가하여 뜻이 절로 참다워라 / 老去悠然意自眞
-원문 빠짐- / □□□□□□□
뜬구름이 돌 부딪고 나와 점차 모이더니 / 閑雲觸石生膚寸
소나기가 동이로 붓듯 사방에 쏟아지네 / 急雨傾盆遍廣輪
수많은 누대에는 불제자들이 들어 있고 / 多少樓臺藏釋子
적막한 등잔 앞엔 시인이 고뇌를 하누나 / 寂寥燈幕惱詩人
-원문 빠짐- / □□□□□□□
조용히 앉고 깊이 생각함이 다 신의 경지일세 / 兀坐沈思摠入神
또 짓다.
은거의 생활 적적한 저문 가을 이때에 / 屛居寂寂暮秋時
조용히 앉은 은자는 생각한 바가 있네 / 兀坐幽人有所思
만리 푸른 하늘엔 구름이 떼 지어 날고 / 萬里靑天雲陣陣
반쪽 산 태양 아랜 비가 실실 내리는데 / 半山白日雨絲絲
베개맡의 기러기는 서리 앞서 지나가고 / 枕頭新鴈霜前過
담장 머리 찬 매미는 한낮에야 우는구나 / 牆角寒蟬午始嘶
늙은 인생 병든 몸이 소생하게 된 것은 / 漸覺老生蘇病骨
천지의 큰 은혜 입었음을 점차 깨닫겠네 / 乾坤俯仰荷洪私
[주D-001]뜬구름이 …… 나와 : 《춘 추공양전(春秋公羊傳)》 희공(僖公) 31년 조(條)에, “작은 운기(雲氣)가 돌을 부딪고 나와서 점차로 모이면 하루아침이 다 안 가서 천하에 비를 두루 내리게 하는 것은 오직 태산(泰山)뿐이다.” 한 데서 온 말로, 돌을 부딪고 나온다는 것은 곧 구름이 산봉우리와 서로 부딪쳐서 공중으로 퍼져 나오는 것을 이른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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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방 밝은 창이 경계가 새로우니 / 室淨窓明境界新
마음이 유리빛 하늘의 밝은 달 같아라 / 琉璃甁裏貯氷輪
예로부터 이것은 밖에서 얻는 게 아니니 / 由來得此非從外
우선 다시 때때로 먼지를 떨어야겠네 / 且復時時更拂塵
인간이란 본디 묵은 것과 새것이 있어 / 爲是人間有故新
구구하게 오르내림이 수레바퀴 같나니 / 區區上下似車輪
깨끗함과 더러움이 본래 없음을 안다면 / 若知淨穢元無二
삼천 세계가 한 티끌임을 앉아서 보리라 / 坐見三千只一塵
몇 번이나 문생 중에 인재가 배출됐던고 / 幾度門生玉笋新
마차 소리 들레며 갈도한 게 아직 놀랍네 / 尙驚呵喝鬧蹄輪
병중에 문안 온 사람이 연래에는 드무니 / 病中相候年來少
진번의 걸상 먼지를 그 누가 쓸어 줄꼬 / 誰掃陳蕃榻上塵
[주D-001]우선 …… 떨어야겠네 : 불 교 선종(禪宗)의 제5조(第五祖) 홍인 선사(弘忍禪師)의 상좌(上佐)인 신수(神秀)가 게(偈)를 쓰기를, “몸은 바로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와 같으니, 때때로 부지런히 닦아서, 먼지가 일지 않게 하라.[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拂拭勤勿使惹塵埃]” 한 데서 온 말인데, 제6조(第六祖) 혜능 선사(慧能禪師)는 또 여기에 반박하여 게를 쓰기를, “보리는 본디 나무가 아니요, 명경은 또한 대가 아니니, 본디 한 물건도 없거늘, 먼지가 어디에 일어난단 말인가.[菩提本非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했다 한다.
[주D-002]진번(陳蕃)의 걸상 : 후한(後漢) 때에 진번이 예장 태수(豫章太守)로 있으면서 특별히 걸상 하나를 걸어 두었다가, 그곳의 명사(名士)인 서치(徐穉)가 찾아오면 이를 내려서 그를 우대했던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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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같이 푸른 하늘에 붉은 태양 떠오르니 / 碧空如水日輪紅
산 빛 절로 아름다워 가을 기운 농후한데 / 山色自佳秋氣濃
그윽한 집에 속객 없음은 자못 기쁘거니와 / 頗喜幽居無俗客
청아한 일은 몽땅 쇠한 늙은이에 부쳐졌네 / 盡將淸事付衰翁
국은엔 보답 못하고 선주를 사모할 뿐이나 / 國恩未報思先主
가학은 반드시 밝혀 아이들을 가르치리라 / 家學須明訓小童
내 자신을 점검할 제 가소롭기 그지없구나 / 點檢此身眞可笑
무슨 공으로 집에 앉아 녹을 먹는단 말인가 / 居家食祿有何功
그 누가 오품 관복에 홍정대를 둘렀던고 / 五品皁衫誰帶紅
침향정 북쪽엔 이슬빛이 농후도 하였지 / 沈香亭北露華濃
사장이 어찌 밝은 임금 섬기기에 족하랴 / 詞章豈足事明主
이와 머리털 늙은이 된 게 스스로 놀랍네 / 齒髮自驚成老翁
목탁이거니 이삼자는 그 무엇을 걱정하랴 / 木鐸二三何患子
무우서 바람 쐬고 돌아오는 육칠 동자로다 / 風雩六七詠歸童
누가 이 가슴을 천지처럼 넓게 만들었나 / 誰敎胸次似天地
깊은 방 구석에서 일찍이 공부를 했었다오 / 屋漏當年曾著功
[주D-001]국은(國恩)엔 …… 뿐이나 : 선 주(先主)는 곧 촉한(蜀漢)의 소열제(昭烈帝) 유비(劉備)를 가리키는 것으로, 촉한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항상 간흉(姦凶)을 제거하고 한(漢)나라 왕실을 부흥시키는 것을 선주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침향정(沈香亭) …… 하였지 : 당 현종(唐玄宗)이 일찍이 양 귀비(楊貴妃)와 함께 침향정에서 모란꽃을 감상하면서 한림 공봉(翰林供奉) 이백(李白)을 불러 악장(樂章)을 지으라고 명하자, 이백이 〈청평조사(淸平調詞)〉 3수를 지어 올렸는데, 그 사(詞)에, “구름은 의상을 꽃은 얼굴을 상상케 하는데, 봄바람이 난간 스칠 제 이슬빛은 농후해라.……봄바람의 끝없는 한을 다 풀어 녹이며,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있네.[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解釋春風無限恨沈香亭北倚闌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목탁(木鐸)이거니 …… 걱정하랴 : 목 탁은 나무로 추를 만든 큰 방울을 가리키는데, 고대(古代)에 정교(政敎)를 낼 때에 이것을 쳤으므로, 전하여 세상 사람을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바, 공자(孔子)가 일찍이 위(衛)나라에 있을 적에 의(儀) 땅의 봉인(封人)이 공자를 뵙기를 청하여 뵙고 나와서는 공자를 시종(侍從)한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이삼자는 공자가 자리 잃은 것을 어찌 걱정할 것이 있으리오? 천하가 무도해진 지 오래이니,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을 것이다.[二三子何患於喪乎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八佾》
[주D-004]무우(舞雩)서 …… 동자(童子)로다 : 공 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일찍이 공자가 뜻을 물음에 대하여 자기의 뜻을 말하기를, “저문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5, 6인,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리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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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국의 은혜는 비할 데가 없었는데 / 上國恩無比
전조의 은택은 널리 펴지지 못했네 / 前朝澤未霈
회상하면 아직도 고통스럽거니와 / 回思猶苦楚
들어가 아뢴 일은 다 황당했었네 / 入奏儘荒唐
하늘땅은 종묘사직 굽어 임하고 / 天地臨宗社
경륜을 가진 이는 조정에 있건만 / 經綸在廟堂
홀로 가엾은 것은 병 많은 나그네 / 獨憐多病客
거울에 비친 서리 빛 귀밑털일세 / 對鏡鬢如霜
또 짓다.
조화의 유행을 저 하늘이 주관하거니 / 化育流行有彼蒼
물거품 같은 신세가 갈수록 상심되누나 / 浮漚身世轉堪傷
난리 겪고야 청명한 때 적음을 증험했고 / 亂餘自驗晴時少
병든 뒤에야 겨울밤이 긺을 처음 알았네 / 病後始知冬夜長
창려를 향해 쇠퇴한 사업을 찾으려 하고 / 欲向昌黎尋墜緖
다시 공부를 좇아 유풍 여향을 입었노라 / 更從工部丐遺芳
내 큰 뜻은 다 사라지길 허여치 못하노니 / 壯心未許消磨盡
장차 제자로서 공자의 당을 오르게 되리 / 會見摳衣躡孔堂
늙은 나는 사문에 참예할 희망이 없어라 / 老夫望絶與斯文
젊은 날 언제 경전을 연구한 적 있었던가 / 少日何曾討典墳
천명과 인륜은 끊임없이 밝기만 하건만 / 天命彝倫終粲粲
인정과 세도는 도리어 분잡하기만 하네 / 人情世道却紛紛
황종의 삼분 손익은 중화의 기이거니와 / 黃鐘損益中和氣
잠깐에 변한 창구는 부귀의 구름이로다 / 蒼狗須臾富貴雲
필경 시비는 어진 사관이 맡을 것이니 / 畢竟是非良史在
문 닫고 높이 누워서 제군을 사절하노라 / 閉門高臥謝諸君
[주D-001]창려(昌黎)를 …… 하고 : 창려백(昌黎伯)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아득히 쇠퇴해진 성인의 사업을 찾아서 홀로 널리 구하여 멀리 이었다.[尋墜緖之茫茫獨旁搜而遠紹]”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공부(工部)를 …… 입었노라 : 공 부는 곧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당서(唐書)》 문예열전(文藝列傳)의 두보찬(杜甫贊)에 의하면, 두보의 시(詩)는 고금인(古今人)의 소장(所長)을 홀로 다 겸하여,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들을 두루 만족하게 갖추었으므로, 후인(後人)들에게 영향을 입힌 유풍 여향(遺風餘香)이 많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황종(黃鐘)의 …… 기이거니와 : 12 율의 기본인 황종률관(黃鐘律管)에서 시작하여 삼분손일(三分損一)과 삼분익일(三分益一)을 차례로 반복하여 십이율관(十二律管)의 길이를 정하는 법칙에서 온 말로, 즉 삼분손일이란 일정한 관(管)의 길이를 삼등분하여 그중 3분의 2만으로 소리를 낸다는 뜻이고, 삼분익일이란 관의 길이를 삼등분한 다음 그 3분의 1만큼을 더 늘여서 3분의 4를 만들어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길이가 9촌(寸)인 황종률관을 삼분손일하여 즉 3분의 2를 취하면 6촌의 임종률관(林鐘律管)을 얻게 되고, 6촌의 임종률관을 삼분익일하여 즉 3분의 4를 취하면 8촌의 태주율관(太簇律管)을 얻게 되는 것 등이다.
[주D-004]잠깐에 …… 구름이로다 : 두 보(杜甫)의 〈가탄(可歎)〉 시에, “천상의 뜬구름이 마치 흰옷 같더니, 잠깐 사이에 변하여 마치 푸른 개 같구나.[天上浮雲似白衣斯臾改變如蒼狗]” 한 데서 온 말로, 세상일의 변화무상함을 비유한 것이다. 또 부귀의 구름이란 바로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옳지 못하게 누리는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한 데서 온 말이다.
홍대하(紅大蝦)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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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이 인충도 갑충도 아닌 네가 / 受質非鱗介
바다에서 나는 것이 어여쁘구나 / 憐渠出海隅
은주 빛은 마치 피를 띤 듯하고 / 銀朱如帶血
하얀 살결은 엉긴 기름과도 같네 / 雪白自凝膚
엷은 껍질은 종이 한 장 두께인데 / 匣薄祗一札
긴 수염은 그 몇 치나 되는고 / 鬚長知幾扶
몸을 굽혀서 서로 예를 차리니 / 曲躬交有禮
깊이 음미하면 도가 살찌겠구나 / 深味道爲腴
우연히 쓰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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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두께는 삼만 리인데 / 地厚三萬里
가볍기는 일엽편주와 같고 / 輕如一葉舟
허공 속에 아무런 언덕도 없어 / 虛空大無岸
위아래로 예전부터 떠 있었네 / 上下古來浮
바다 기운은 쇠로부터 나오고 / 海氣從金出
산꼭대기선 물이 흘러나온다오 / 山頭有水流
내 이제 천지 변화를 알았노니 / 吾今知闢闔
하늘 이치를 탐구할 것도 없네 / 理數不須求
내 인생은 천명만을 믿고서 / 吾生信天命
둥둥 뜬 빈 배를 탔거니 / 泛泛駕虛舟
이 넓은 데서 장차 어디로 갈꼬 / 浩瀚將安適
가볍고 맑아 스스로 뜰 뿐이네 / 輕淸祗自浮
길을 잃으면 단항으로 갈 뿐이요 / 迷塗趨斷港
배를 타면 큰 강을 건널 테지만 / 利涉過洪流
아직 두려운 건 거센 바람이 일어 / 尙恐盲風作
산호주를 다시 구하지 못함일세 / 珊瑚不復求
[주D-001]단항(斷港) : 배 의 통행이 끊어진 항구를 말한다. 한유(韓愈)의 〈송왕훈서(送王塤序)〉에, “양주(楊朱), 묵적(墨翟), 노자(老子), 장자(莊子), 불자(佛者)의 학문에 한 번 들어갔다가 다시 성인(聖人)의 도(道)로 가려고 하면 마치 끊어진 항구나 웅덩이에서 배를 타고 바다에 이르기를 희망하는 것과 같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식죽음(食粥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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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공이 죽 먹었는데 감히 밥 짓는 걸 말하며 / 顔公食粥敢言炊
목은은 양식이 떨어졌는데 감히 죽을 말하랴 / 牧老絶糧敢言粥
밝은 창 아래서 송궁문을 짓고자 하여 / 明窓擬作送窮文
붓 놓고 길이 읊으며 괜히 천장만 쳐다보네 / 閣筆長吟空仰屋
소년 시절 산사에서 글을 읽을 적에는 / 少年讀書山寺中
승려들과 분명히 얼굴을 서로 마주했는데 / 鉢民分明對眉目
나물 뿌리도 맛이 있어 입에 향기 느끼면서 / 菜根有味齒頰香
스스로 천종록을 당장 이룰 수 있다 했더니 / 自謂立致千鍾粟
누가 알았으랴 작위가 이미 봉군이 된 터에 / 誰知爵位已封君
죽에 비친 백발을 때로 다시 보게 될 줄을 / 白髮粥中時更覿
늙은 아내는 내 병약한 몸을 불쌍히 여겨 / 老妻悶我病軀瘦
옥같이 하얀 고미를 특별히 얻어왔기에 / 特丐錭胡白如玉
기름이 어린 듯 번드르한 죽을 들이마시고 / 凝脂流滑入喉去
처마 밑에서 볕 쬐며 내 배를 두드리노라 / 曝背茅簷叩吾腹
그러나 하인들은 못 먹어 낯빛이 초췌하니 / 蒼頭赤脚色憔悴
내 생활력 없어 잘 기르지 못한 게 부끄럽네 / 愧我生疏不能育
일생 동안 글을 읽었지만 사리를 알지 못해 / 讀書一生不識事
가정 건사도 어두운데 더구나 나랏일이랴 / 尙昧持家況當國
처자 이끌고 산중으로 가는 게 합당할 텐데 / 政合提携山中歸
산중에는 기화요초가 지금 정히 푸르리라 / 山中瑤草今正綠
[주D-001]안공(顔公)이 죽 먹었는데 : 당(唐)나라 안진경(顔眞卿)의 걸미첩(乞米帖)에, “나는 생활 영위에 졸렬하여 온 집안이 죽만 먹은 지가 이미 수개월이 되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송궁문(送窮文)을 …… 쳐다보네 : 송 궁문은 한유(韓愈)가 일찍이 지궁(智窮)ㆍ학궁(學窮)ㆍ문궁(文窮)ㆍ명궁(命窮)ㆍ교궁(交窮)의 다섯 궁귀(窮鬼)를 몰아낸다는 뜻으로 송궁문을 지은 데서 온 말이고, 천장만 쳐다본다는 것은 곧 곤궁함 때문에 천장을 쳐다보고 탄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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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을 타고났거늘 감히 스스로 맘 상하랴 / 賦命由天敢自傷
다행히 태평성대 만나 내 광기를 부치었네 / 幸逢昭代寄吾狂
예악은 횡설수설로 대궐 뜰에서 진술하고 / 縱橫禮樂陳丹陛
자질구레한 문장으론 옥당에 참예했으나 / 瑣碎文章忝玉堂
범 가죽에 양 바탕이라 본디 겁이 많거니와 / 皮虎質羊生本怯
마소에 옷 입힌 격이라 늙어서 곧 쓰러지리 / 襟牛裾馬老將僵
그대에게 한 걸음 더 진취하기를 권하노니 / 勸君更進一步地
기수가의 대를 읊어오매 세월이 바쁘구려 / 淇竹吟來歲月忙
늙어선 세상을 상심할 뿐 자신을 상심 않노니 / 老大傷時不自傷
취해 미침이 어찌 깬 채로 미친 것만 하랴 / 醉狂那得似醒狂
소년 시절엔 요행히 과거에 급제하였고 / 少年僥倖黃金榜
중년의 풍류는 녹야당과 흡사하구나 / 中歲風流綠野堂
자는 손은 좌담할 제 늦가을을 흥겨워하고 / 宿客坐談秋晚興
시동은 서서 졸다가 깊은 밤엔 쓰러져 자네 / 侍童立寐夜深僵
이미 붓끝 얼까 봐서 화롯불 준비했으니 / 竹爐已恐毫端凍
한가함 속에 또한 매우 바쁨을 믿어야겠네 / 須信閑中亦甚忙
[주D-001]범 …… 많거니와 : 외모만 그럴듯하고 속은 그렇지 못함을 뜻한다. 《법언(法言)》 오자(吾子)에, “양의 바탕에 범의 가죽을 입은 짐승은 풀을 보면 좋아하고 승냥이를 보면 두려워한다.[羊質而虎皮 見草則說 見豺則戰]”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마소에 …… 쓰러지리 : 한유(韓愈)의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 시에, “사람이 못 배워서 고금을 통하지 못하면, 마소에 사람 옷 입혀 놓은 것과 같다.[人不通古今 馬牛而襟裾]”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기수가의 대 : 《시 경》 위풍(衛風) 기욱(淇奧)에, “저 기수가의 언덕을 보니, 푸른 대가 아름답고 무성하도다. 문채 빛나는 우리 님이여, 짐승의 골각(骨角)을 끊고 갈듯, 옥석(玉石)을 쪼고 갈듯 하도다.[瞻彼淇奧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는 본디 위 무공(衛武公)의 높은 학문과 덕행을 칭찬하여 노래한 것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곧 학문과 덕행을 절차탁마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4]취해 …… 하랴 : 한 (漢)나라 때 특히 강직하고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던 개관요(蓋寬饒)가 황태자(皇太子)의 외조(外祖)인 허백(許伯)의 집 주연(酒宴)에 참석했을 적에 허백이 술을 권하자, 그가 말하기를, “나에게 술을 많이 권하지 말라. 내가 바로 술 미치광이다.” 하니, 승상(丞相) 위후(魏侯)가 웃으며 말하기를, “차공(次公)은 깨어서도 미치는데, 어찌 반드시 술을 마셔야만 미치던가.”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차공은 바로 개관요의 자이다.
[주D-005]녹야당(綠野堂) : 당(唐)나라 때 재상 배도(裴度)가 오교(午橋)에 지은 별장을 가리킨다.
9월 그믐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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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항이 성 모퉁이에 근접하여 / 柳巷城隅近
조석으로 띠 처마에 연기 어리네 / 茅簷朝暮煙
병이 깊으니 내왕하는 이는 적으나 / 病深來往少
뜻에 맞으니 기거하긴 편하구려 / 意適起居便
울타리 국화는 황금이 부드러운 듯 / 籬菊黃金嫩
뜨락 이끼는 푸른 비단인 양 곱구나 / 庭苔綠錦鮮
가을바람이 오늘로써 다하기에 / 秋風今日盡
머리 들어 갠 하늘을 바라보노니 / 矯首望晴天
단풍든 나무엔 비가 막 지나갔고 / 樹紅初過雨
붉은 산엔 정히 연기가 어리었네 / 山紫政凝煙
붓이 있어 시름은 풀 수 있거니와 / 有筆能排悶
돈 없다고 권세에 아부야 할 수 있나 / 無錢可附權
몸뚱이 보긴 썩은 쥐를 버리듯 하고 / 觀身如棄鼠
성정 기르긴 생선을 삶듯 하노니 / 養性似烹鮮
누가 알리요 마음을 삼가는 곳에 / 誰識操心處
푸른 하늘이 머리 위에 있는 줄을 / 蒼蒼頭上天
[주D-001]성정 …… 하노니 : 《노 자(老子)》에, “큰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마치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해야 한다.[治大國者若烹小鮮]” 한 데서 온 말인데, 예컨대 생선을 뒤집고 흔들면 다 문드러지기 때문에 가만히 두어야 하는 것이니, 여기서는 마치 생선을 삶듯 성정(性情)도 그와 같이 조용하게 기른다는 의미이다.
일본(日本)의 중 홍혜(弘慧)가 시(詩)를 요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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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은 동해의 나그네로 / 上人東海客
해 지는 곳에 와서 노닐었는데 / 日沒處來游
석장 날릴 땐 일천 산이 저물었고 / 飛錫千山暮
배 돌려 갈 땐 한 낙엽 가을일세 / 回舟一葉秋
이름만 듣고도 얼굴을 본 듯했는데 / 聞名如見面
이별을 하려니 머리가 득득 긁히네 / 送別却搔頭
부질없는 흥이 시편에 남아 있으니 / 漫興詩篇在
후일에 혹 다시 시를 구할런가 / 他年倘再求
일본의 중을 보내고 인하여 느낀 바가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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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는 하늘 한쪽에 아득하기만 한데 / 東海茫茫天一涯
병든 몸은 다시 국가 안위에 관섭치 않네 / 病軀無復管安危
노쇠하니 어찌 남 놀래킬 시구야 있으랴만 / 年衰豈有驚人句
가을 다하니 자주 손 보내는 시를 쓰노라 / 秋盡頻題送客詩
말로의 슬픔과 즐거움은 꿈속만 같거니와 / 末路悲歡如夢寐
중원의 옛 친구와는 종유가 이미 끊어졌네 / 中原舊故絶追隨
동방에 뜬 해는 서편으로 언뜻 넘어가는데 / 扶桑出日西飛疾
홍혜 노인 돌아올 날은 정히 어느 때일꼬 / 慧老歸來定幾時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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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어물 예예하면 응당 칭찬을 보전커니와 / 悠悠唯唯足求全
방자함은 예부터 세상이 현능하게 여기었네 / 挑達由來世所賢
거울 대하니 절로 백발은 버리기 어려운데 / 對鏡自難抛白髮
전원에 돌아가긴 되레 하늘 오르기와 같구나 / 歸田却似上靑天
홍진 속의 거마로는 여러 현사들을 따르는데 / 軟紅車馬陪諸彦
푸른 산 절의 종소리는 소년 시절이 기억나네 / 積翠鍾魚記少年
한강을 거슬러 올라 태고 신비를 찾고프나 / 欲泝漢江尋太古
바다 가운데 신선을 진정 찾을 길이 없구려 / 海中無路覓神仙
10월 초하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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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가을 기운을 전송하고 / 夜半送秋氣
겨울 첫날 새벽에 한기를 맞아오네 / 冬初迎曉寒
서책은 그대로 시렁에 가득하고 / 簡篇猶滿架
목숙 나물은 소반에 수북하구나 / 苜蓿正堆盤
문정의 홀은 이제 그만이거니와 / 已矣文貞笏
신무의 관엔 먼지만 끼어 버렸네 / 塵埃神武冠
양은 다할 리가 없는 것이니 / 陽無可盡理
다시 먼 데를 볼 필요가 없겠네 / 不用更遐觀
[주D-001]목숙(苜蓿) …… 수북하구나 : 사 부(師傅)의 빈약한 식생활을 뜻한다. 목숙은 식용하는 나물 이름인데, 당(唐)나라 설령지(薛令之)가 동궁 시독(東宮侍讀)으로 있을 적에 관서(官署)가 하도 썰렁하여 먹을 것이 없으므로, 시를 지어 스스로 슬피 여겼는데, 그 시에, “아침 해가 둥그렇게 떠올라서, 선생의 밥상을 비추네. 밥상에는 무엇이 있는고 하면, 난간에서 자란 목숙이로세.[朝日上團圓 照見先生盤 盤中何所有 苜蓿長欄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문정(文貞)의 홀(笏) : 문 정은 당 태종(唐太宗) 때에 충직한 간언(諫言)으로 태종을 잘 보필했던 명상(名相) 위징(魏徵)의 시호이다. 당 문종(唐文宗) 때에 위징의 5대손인 위모(魏謨)가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었는데, 문종이 위모에게 묻기를, “경(卿)의 집에 조서(詔書)가 적힌 문서가 보존된 것이 있는가?” 하니, 위모가 대답하기를, “오직 선조(先祖)의 옛 홀(笏)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하자, 문종이 그것을 속히 올려 보내도록 명하므로, 정담(鄭覃)이 아뢰기를, “사람에게 달린 것이지 홀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하니, 문종이 이르기를, “너는 짐(朕)의 뜻을 알지 못해서이다. 이 홀은 지금 나에게 감당(甘棠) 나무와 같느니라.” 한 데서 온 말인데, 감당 나무란 바로 주(周)나라 소공(召公)의 선정(善政)에 감격한 백성들이 그가 일찍이 쉬어갔던 감당 나무를 대단히 소중하게 보호했던 고사에서 온 것이다. 감당나무는 팥배나무를 말한다.
[주D-003]신무(神武)의 관(冠) : 양(梁)나라의 고사(高士) 도홍경(陶弘景)이 일찍이 남제(南齊)의 제왕 시독(諸王侍讀)이 되었다가 어느 날 조복(朝服)을 벗어 신무문(神武門)에 걸어 두고는 표문(表文)을 올려 사직하고 돌아가 은거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양(陽)은 …… 것이니 : 《주 역(周易)》 박괘(剝卦)의 정전(程傳)에, “박괘는 모든 양이 다 떨어져 없어지고 유독 상구 일효만 남아 있어 마치 큰 과일 하나만 먹히지 않아서 장차 다시 생겨날 도리가 있는 것과 같으니, 상구 일효 또한 변하면 순음으로 되어 버리긴 하지만, 양이 완전히 다 없어질 리는 없으므로, 위에서 변하면 아래서 생겨 잠시도 멈출 틈이 없는 것이다.[剝之爲卦 諸陽消剝已盡 獨有上九一爻尙存 如碩大之果不見食 將有復生之理 上九亦變則純陰矣 然陽無可盡之理 變於上則生於下無間可容息也]” 한 데서 온 말인데, 십이월벽괘(十二月辟卦)로 보면, 9월은 박(剝), 10월은 곤(坤), 11월은 복(復) 괘에 각각 해당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회포를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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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동쪽의 산수는 조선에서 으뜸이라 / 國東山水冠朝鮮
찾아 유람할 뜻 가진 지 이미 수년이러니 / 有意高尋已數年
승려에게 물어서 현화사엘 들르고 싶고 / 欲問瑜伽向玄化
수묵 산수화 구하러 황해도에도 들어가리 / 因求水墨入黃延
의상대 꼭대기에선 길이 휘파람을 불고요 / 義相絶頂長舒嘯
영은사 깊은 절벽에선 잠시 좌선을 하고 / 靈隱深崖蹔坐禪
곧장 박연의 천 척 높은 폭포를 빌어서 / 直借朴淵千尺瀑
무량 세월 생사 인연을 깨끗이 씻어보리 / 滌淸塵劫死生緣
병든 뒤론 욕정 잊고 치발조차 쇠잔한데 / 病後忘情齒髮凋
온 집안이 녹 먹으니 청조에 감사하노라 / 渾家食祿謝淸朝
때로는 먼지 자욱해 쑥대 문을 꼭 닫는데 / 有時塵暗閉蓬戶
어느 곳에서 달 밝은 밤에 퉁소를 부는고 / 何處月明吹洞簫
깊은 못 늙은 용을 어찌 낚을 수 있으랴 / 潭底老龍寧可釣
산꼭대기 봉황은 본디 불러도 안 온다네 / 岡頭瑞鳳本非招
다만 지금 우뚝한 도를 누구에게 물을꼬 / 只今卓爾從誰問
본래에 시골서 한 표주박 물을 마시었네 / 陋巷由來飮一瓢
[주D-001]깊은 …… 안 온다네 : 은거하는 고사(高士)를 세상에 나오게 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주D-002]우뚝한 …… 마시었네 : 공 자(孔子)가 일찍이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 물로 누추한 시골에 살면서도 도를 즐기는 마음을 고치지 않는다 하여 안연(顔淵)을 어질다고 칭찬했고, 또 안연은 일찍이 공자의 무궁무진한 도를 깊이 감탄하여 말하기를, “우러러볼수록 높고 뚫을수록 견고하다.……마치 부자의 도가 우뚝 선 것이 있는 듯한지라. 비록 그것을 따르려고 하나 따를 방도가 없도다.[仰之彌高 鑽之彌堅……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子罕》
두문불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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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배회하며 세상일 관여 않고 / 偃蹇非關世
오래도록 들어앉아 끙끙 읊노라니 / 呻吟久杜門
죽정에선 바둑 두는 소리 울려오고 / 竹亭棊送響
이끼 낀 길엔 나막신 자국 보이네 / 苔逕屐留痕
강산엔 세월이 저물어가는데 / 歲月江山暮
천지간엔 풍진이 어둡기만 하구나 / 風塵天地昏
적막해진 천재 아래에 / 寂寥千載下
악명 남긴 걸 어찌 논할 것 있으랴 / 遺臭更何論
[주D-001]악명(惡名) 남긴 걸 : 진(晉)나라 때 대사마(大司馬) 환온(桓溫)이 찬탈(簒奪) 음모를 꾀하면서 일찍이 말하기를, “기왕 후세에 훌륭한 명성을 남기지 못할 바엔 또한 악명은 만년 뒤에까지 충분히 남길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만세(晚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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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 숨어 살면서 태평을 누리다 보니 / 晚歲幽居享太平
다시 경영해야 할 남은 일이 전혀 없네 / 更無餘事可經營
맑은 바람 밝은 달은 바로 소리와 빛이요 / 淸風明月是聲色
흐르는 물 뜬구름은 내 성정으로 삼았네 / 流水浮雲爲性情
주공 공자의 문장은 늘 꿈속에 상상커니와 / 周孔文章頻夢想
요순의 덕업은 혹 이뤄볼까도 생각하노라 / 唐虞德業或思成
남창 아래 이불 쓰고 분향하고 앉았노라니 / 南窓蒙被焚香坐
끝없는 천지간에 회고의 정이 생기누나 / 天地悠悠古意生
세화(歲畫) 십장생(十長生)을 읊다. 십장생은 곧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 지초[芝], 거북, 학(鶴), 사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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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세화 십장생이 있는데, 지금이 10월인데도 아직 새 그림 같다. 병중에 원하는 것은 오래 사는 것보다 더할 것이 없으므로, 죽 내리 서술하여 예찬하는 바이다.
푸르고 푸른 하늘은 밤낮으로 회전하고 / 圓象蒼蒼晝夜旋
산하 대지는 바다 가운데 배와 같은데 / 山河大地海中船
해 바퀴는 만고에 멈추는 곳이 없건만 / 日輪萬古無停處
달이 혹 앞서고 뒤서는 게 가소롭구나 / 可笑姮娥或後先
돌 부딪고 공중에 퍼지면 형세 월등히 달라져 / 觸石漫空勢迥殊
신기루와 하늘의 형체를 몽땅 감춰 버리네 / 藏形海市與天衢
말고 펴고 하여 사람 눈을 미혹하겐 하지만 / 雖然舒卷迷人眼
주룩주룩 비 내리어 만물을 소생시킨다오 / 興雨祈祈萬物蘇
기수에 목욕한 당일 번잡한 가슴 씻었으니 / 浴沂當日洒煩襟
문득 긴 흐름이 고금에 뻗치었음을 알겠네 / 便識長流亘古今
한번 중니의 냇가의 탄식을 받음으로부터 / 一領仲尼川上嘆
바다를 봐야 깊은 줄 안다는 말 인정 않노라 / 不容觀海始知深
오악이 죽 연이어서 뭇 산을 압도하건만 / 五嶽聯綿壓衆山
오직 모래와 흙으로만 둥글게 뭉쳐졌는데 / 只將沙土肉成團
누가 알리요 돌이 한가운데 골격이 되어 / 誰知有石中爲骨
물이 할퀴고 천둥이 쳐도 끄떡하지 않는 걸 / 水囓雷搖兀自安
북쪽 낭떠러지에 한 그루 소나무가 있어 / 北崖有箇一株松
늙은 내가 이거하여 두 겨울을 났는데 / 老我移居再見冬
더구나 이 용만이 곡령을 조회하는 곳엔 / 況是龍巒朝鵠嶺
하늘 찌르는 소나무들이 절로 겹겹임에랴 / 拂雲蒼翠自重重
일찍이 기억컨대 집에 대 심고 완상할 제 / 曾記幽居種竹看
담장 달빛 섬돌 바람이 찬 기운 보내왔네 / 月牆風砌送微寒
나이 구십 되거든 기수가의 대를 바라보며 / 行年九十瞻淇奧
앉아서 무성함 읊고 다시 관을 정제하리 / 坐詠猗猗更整冠
예천과 주초는 바로 아름다운 상서인데 / 醴泉朱草是嘉祥
사책에 연서하여 나란히 광채를 내누나 / 史冊聯書對有光
어찌하면 노인들처럼 깊은 산에 은거하여 / 何似老人曾鵠去
이걸로 요기하고 한실을 붙들 수 있을꼬 / 療飢扶得漢明堂
멀리 생각건대 용도는 하수에서 뛰어나왔고 / 緬想龍圖躍在河
낙귀는 하늘이 내려 왕가의 상서 되었는데 / 洛龜天錫瑞王家
신선 거북으로 표출된 이후부터는 / 自從表出神仙後
문득 산중에 들어가 해의 정기만 삼키누나 / 却入山中嚥日華
삼신산은 아득해라 그곳이 어드메이뇨 / 三山渺渺是何方
태선을 타고 옥당엘 들어가고 싶어라 / 欲駕胎仙叩玉堂
한스러운 건 평생에 도골이 못 된 내가 / 却恨平生無道骨
부질없이 세인들의 사모함을 받음일세 / 謾敎塵世慕昻藏
진궁에서 말 대신한 일은 이미 그릇되었고 / 代馬秦宮事已非
오대 아래 놀던 곳엔 또 석양이 비끼었네 / 吳臺游處又斜暉
담장 넘어 짐짓 산중의 절로 들어가서는 / 踰牆故入山中寺
천하가 분분하여 재앙 기틀이 그지없었네 / 天下紛紛足禍機
[주C-001]세화(歲畫) : 새 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리는 그림이다. 즉 질병이나 재난 등의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 해 동안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벽사(辟邪), 기복(祈福)의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옛날 새해 첫날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의 하나로 이루어졌던바, 이 그림은 특히 궁중(宮中)에서 재상(宰相)과 근신(近臣)들에게 내렸다고 한다.
[주D-001]돌 부딪고 공중에 퍼지면 : 《춘 추공양전(春秋公羊傳)》 희공(僖公) 31년 조(條)에, “작은 운기(雲氣)가 돌을 부딪고 나와서 점차로 모이면 하루아침이 다 안 가서 천하에 비를 두루 내리게 하는 것은 오직 태산(泰山)뿐이다.” 한 데서 온 말로, 돌을 부딪고 나온다는 것은 곧 구름이 산봉우리와 서로 부딪쳐서 공중으로 퍼져 나오는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기수(沂水)에 …… 씻었으니 : 공 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일찍이 공자가 뜻을 물음에 대하여 자기의 뜻을 말하기를, “저문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5, 6인,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리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주D-003]중니(仲尼)의 냇가의 탄식 : 공 자가 일찍이 냇가에서 이르기를,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도다.[逝者如斯夫 不舍晝夜]” 한 데서 온 말인데, 이것은 잠시도 쉴 새 없이 흐르는 냇물을 보고 천지(天地)의 조화가 잠시도 쉬지 않고 왕래하는 것을 감탄한 말이었다.
[주D-004]나이 …… 정제하리 : 기 수가의 대란 곧 《시경》 위풍(衛風) 기욱(淇奧)에, “저 기수가의 언덕을 바라보니, 푸른 대가 아름답고 무성하도다.[瞻彼淇奧綠竹猗猗]”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는 곧 위 무공(衛武公)의 학문과 덕행을 칭찬하여 노래한 것이다. 또 위 무공은 나이 95세에 이르러 스스로 〈억(抑)〉 시를 지어서 악공(樂工)으로 하여금 날마다 곁에서 읊게 하여 자신을 경계하기도 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5]예천(醴泉)과 …… 내누나 : 예천은 단맛이 나는 샘물로서 서조(瑞兆)에 해당하고, 주초(朱草)는 서초(瑞草)의 일종이다. 지초(芝草) 또한 서초의 일종으로, 옛 사책(史冊)에서 예천, 주초와 늘 함께 열거되었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006]어찌하면 …… 있을꼬 : 여 기서 노인(老人)들이란 바로 진(秦)나라 말기에 난리를 피하여 상산(商山)에 은거한 네 노인, 즉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을 가리킨다. 이들은 한 고조(漢高祖)의 초빙에도 응하지 않고 지초를 캐 먹고 지내면서 자지가(紫芝歌)를 지어 스스로 노래했던바, 그 노래에, “무성한 자지여, 요기를 할 만하도다. 요순 시대는 이미 지나갔는데, 우리가 의당 어디로 돌아가리요.[曄曄紫芝 可以療飢 唐虞往矣 吾當安歸]” 하였는데, 뒤에 한 고조가 태자(太子)를 바꾸려고 할 때에 이르러서는 장량(張良)의 계책에 의해 이 네 노인이 마침내 초빙되어 와서 태자를 적극 보필함으로써 끝내 한실(漢室)이 무사하게 되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7]멀리 …… 뛰어나왔고 : 용도(龍圖)는 바로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길이 8척이 넘는 용마(龍馬)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그림을 말하는데, 이 그림이 바로 《주역(周易)》 팔괘(八卦)의 근원이 되었다.
[주D-008]낙귀(洛龜)는 …… 되었는데 : 낙 귀는 곧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를 가리키는데, 하우씨(夏禹氏)가 홍수를 다스릴 때에 낙수에서 신귀가 45점(點)으로 된 무늬를 등에 지고 나왔던바, 이것이 바로 뒤에 천하를 다스리는 큰 법칙인 홍범구주(洪範九疇)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9]신선 …… 삼키누나 : 십장생도(十長生圖)에 의하면 거북이 태양 바로 아래에서 놀고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10]태선(胎仙)을 …… 싶어라 : 태선은 학(鶴)의 별칭이다. 학은 본디 선금(仙禽)이란 칭호가 있고, 또 다른 조류와는 달리 새끼를 태생(胎生)한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한 말이고, 옥당은 바로 신선이 사는 집을 가리킨다.
[주D-011]진궁(秦宮)에서 …… 그릇되었고 : 진 이세(秦二世) 때 간신(姦臣) 조고(趙高)가 군신(群臣) 중에 자기의 용사(用事)를 반대할 자가 있을까 염려한 나머지, 먼저 그것을 시험하기 위해 이세(二世)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馬]이라고 하자, 이세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승상(丞相)이 잘못 안 게 아닌가?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구려.” 하면서 좌우 신하들에게 물으니, 어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조고의 뜻을 맞추기 위해 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중에 혹 사슴이라고 말한 자에 대해서는 조고가 은밀히 법으로 얽어 처벌하였으므로, 그 후로는 뭇 신하들이 조고를 다 두려워하여 조고의 용사에 전혀 반대하지 못하고 그냥 따르기만 하다가 끝내 진나라가 멸망하고 말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12]오대(吳臺) …… 비끼었네 : 오 대는 춘추 시대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미인 서시(西施)를 위해 지은 고소대(姑蘇臺)를 가리키는데, 부차가 날마다 서시와 함께 고소대에서 황음(荒淫)만을 일삼고 오자서(伍子胥)의 간언을 듣지 않으므로, 오자서가 부차에게 말하기를, “신이 지금 곧 오나라가 망하여 고소대 아래에서 사슴이 노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13]담장 …… 그지없었네 : 불 교가 번창하여 천하가 어지럽게 된 것을 의미한다. 중인도(中印度)에 불교의 지명으로 녹야원(綠野苑)이란 곳이 있는데, 석가가 성도(成道)한 후로 처음 이곳에 와서 사제(四諦)의 불법(佛法)을 설(說)하여 다섯 비구(比丘)를 제도(濟度)시켰다고 하므로 이른 말이다.
이미 십장생의 시를 짓고 또 스스로 1수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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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해바라기처럼 해를 향해 기울어 / 心似葵花向日傾
소리 높이 읊조려서 또 십장생을 지었네 / 高吟又賦十長生
천지가 혹 나에게 인서를 허락해준다면 / 乾坤倘許爲人瑞
원컨대 정직과 충성으로 성명께 보답하리 / 願把淸忠答聖明
[주D-001]인서(人瑞) : 덕행(德行)이 뛰어난 사람이나 혹은 특별히 장수(長壽)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사(卽事) 5수(五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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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는 액운을 슬퍼하고 / 病中悲蹇運
한가함 속엔 청조에 감사하네 / 閑裏謝淸朝
해마다 꽃을 심어서 구경하고 / 歲歲栽花看
때때로 물동이 안고 노고를 하니 / 時時抱甕勞
형용은 참으로 초췌하지만 / 形容儘憔悴
말기운은 아직도 웅장하다오 / 詞氣尙雄豪
어느 날에나 사직하고 돌아갈꼬 / 何日乞骸骨
고향 산천은 천리나 멀리 있어라 / 鄕山千里遙
오랜 병으로 인사는 익히 아는데 / 久病諳人事
쇠한 나이에 또 겨울을 만났네 / 衰年又歲寒
약재는 구하기가 쉽지 않거니와 / 藥材求不易
기와 조각 찜질도 또한 어렵구나 / 瓦片熨猶難
팽택은 무릎을 들여놓을 만했고 / 彭澤堪容膝
번천은 다시 관을 벗어 버렸다오 / 樊川更倒冠
조용히 읊으매 자못 적막하여라 / 微吟殊寂寞
고요히 앉아서 높은 산을 대하네 / 靜坐對巑岏
병을 지닌 거야 내 어찌 한하리요 / 抱病吾何恨
만물의 삶이 원래 서로 같지 않은걸 / 資生物不齊
집은 가난해 나가려도 말이 없고 / 居貧出無馬
잠은 줄어서 닭 울기만 기다리네 / 睡減候鳴鷄
부는 지어서 망시공을 제하고 / 作賦題亡是
문은 얽어서 골계를 전하노니 / 爲文傳滑稽
스스로 실용학이 아닌 줄 알기에 / 自知非實用
백발 나이에 아직껏 허둥지둥하노라 / 白首尙棲棲
무병한 게 바로 나의 소원이지만 / 無病是吾願
편안함을 스스로 구하기 어려워라 / 欲安難自求
득실은 조물주에 달렸거니와 / 乘除有造物
출처는 바로 등루에 있다오 / 出處在登樓
넓은 하늘에 구름은 어디로 가는고 / 天闊雲何往
텅 빈 산골에 물은 끝없이 흐르네 / 山空水正流
하염없이 그윽한 뜻 부치노라니 / 悠然寄幽意
둥둥 뜨는 게 마치 빈 배 같구나 / 泛泛似虛舟
아픈 체했지만 원래 병이 없었고 / 示病元無病
조용히 한 와상에 누워 있었네 / 蕭然臥一牀
정명하면 몸도 절로 맑겠거니와 / 淨名身自淨
향적의 밥이 어찌 향기로울쏜가 / 香積飯何香
늙고 졸렬하여 문장은 비루하고 / 老拙文章陋
고질병 만나 세월은 길기도 해라 / 膏肓歲月長
비야리성이 그 어드메 있느뇨 / 毗耶離底處
서쪽을 바라보니 하늘만 아득하네 / 西望杳蒼蒼
[주D-001]물동이 …… 하니 : 기 심(機心) 없이 자연에 순응하여 사는 것을 뜻한다. 자공(子貢)이 일찍이 초(楚)나라를 유람하고 진(晉)나라로 가면서 한수(漢水)의 남쪽을 지나다가 한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은 때마침 밭이랑을 일구기 위해 우물을 파놓고 물동이를 안고 우물물을 퍼다 붓고 있었다. 이를 본 자공이 그 노인에게 용두레를 사용하면 힘을 덜 들이고도 많은 밭에 물을 댈 수가 있다고 말하자, 노인은 화를 내다가 곧 웃으면서 말하기를, “기계란 것이 있으면 반드시 꾀를 부리는 일[機事]이 있게 되고, 꾀를 부리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꾀를 부리는 마음[機心]이 생기는 것이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莊子 天地》
[주D-002]팽택(彭澤)은 …… 만했고 : 진 (晉)나라 때 팽택 영을 지낸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남쪽 창가에 기대어 오만한 마음 부치니, 무릎을 들여놓을 만한 방이 편안함을 알겠네.[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한 데서 온 말로, 아주 비좁은 집의 청빈한 생활을 의미한다.
[주D-003]번천(樊川)은 …… 벗어 버렸다오 : 번천은 당(唐)나라 두목(杜牧)의 호인데, 그의 〈만청부(晚晴賦)〉에, “나 같은 사람은 그 어떠한가. 관을 벗고 패옥을 떨어뜨리어 세상과 서로 멀어지고.[若予者則爲何如 倒冠落珮兮 與世闊疏]”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부(賦)는 …… 제(題)하고 : 망시공(亡是公)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 인물로,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가 바로 자허(子虛), 오유 선생(烏有先生), 망시공 3인의 가상 인물을 등장시켜 서로 문답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문(文)은 …… 전하노니 : 골 계(滑稽)는 곧 말을 유창하게 잘하여 그르다는 것도 옳은 것같고 옳다는 것도 그른 것같이 느껴질 정도로 이동(異同)을 능히 혼란시킬 수 있는 말을 가리키는데, 여기에 뛰어난 사람으로는 특히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순우곤(淳于髡)과 한 무제(漢武帝) 때의 동방삭(東方朔) 등을 꼽을 수 있다.
[주D-006]등루(登樓) : 삼 국 시대 위(魏)나라의 왕찬(王粲)이 동탁(董卓)의 난리 때 형주(荊州)에 피난하여 유표(劉表)에게 의지해 있으면서 강릉(江陵)의 성루(城樓)에 올라 고향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서 진퇴 위구(進退危懼)의 정을 서술하여 〈등루부(登樓賦)〉를 지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7]아픈 …… 있었네 : 석 가의 속제자(俗弟子)로서 의역(意譯)으로는 정명(淨名)이라고 하는 유마힐거사(維摩詰居士)가 본디 인도의 비야리성(毗耶離城)에 거주했는데, 석가가 일찍이 그곳에서 설법(說法)할 때에 유마힐은 병을 칭탁하여 법회(法會)에 나가지 않고 텅 빈 방의 한 와상에 누워 있었으므로, 석가의 명을 받은 문수보살이 유마힐에게 문병 가서 묻기를, “어떤 것이 바로 보살(菩薩)의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입니까?” 하자, 유마힐은 묵묵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니, 문수보살이 감탄하여 말하기를, “아무런 문자(文字)나 언어(言語)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야만 이것이 참으로 입불이법문이로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8]향적(香積)의 밥 : 향 적여래(香積如來)가 먹는 음식물을 가리키는데, 《유마경(維摩經)》에 의하면, 향적여래가 뭇 바리때에 향반(香飯)을 가득 담아서 보살들에게 주어 교화시켰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전하여 향적은 승사(僧舍)의 주방(廚房)을 뜻하기도 한다.
새벽에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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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는 옛 정취를 다만 스스로 알기에 / 古意悠悠祗自知
고요한 남쪽 창가에 단정히 앉았노라니 / 南窓虛靜坐仍危
황차 아침 해로써 마음 거울도 밝히거늘 / 況逢曉日明心鏡
어찌 가을서리 귀밑에 듦을 두려워하랴 / 肯怕秋霜入鬢絲
속됨 싫어 평소엔 대 구경하길 좋아하고 / 厭俗尋常愛看竹
요기하며 조석으론 지초 노래를 배우노라 / 療飢朝夕學歌芝
지금 이불 덮고 소리 높여 읊는 이곳은 / 卽今擁被高吟處
바로 당년에 조참 시각 기다리던 때로세 / 政是當年待漏時
[주D-001]속됨 …… 좋아하고 : 소 식(蘇軾)의 〈녹균헌(綠筠軒)〉 시에, “밥에 고기가 없는 것은 괜찮으나, 사는 곳에 대가 없어서는 안 되네.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파리하게 할 뿐이나, 대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오. 사람의 파리함은 살찌울 수 있지만, 선비의 속됨을 고칠 수가 없다네.[可使食無肉 不可居無竹 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 人瘦尙可肥 士俗不可醫]”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요기하며 …… 배우노라 : 진 (秦)나라 말기에 난리를 피하여 상산(商山)에 은거한 네 노인, 즉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이 한 고조(漢高祖)의 초빙에도 응하지 않고 지초를 캐 먹고 지내면서 자지가(紫芝歌)를 지어 스스로 노래했던바, 그 노래에, “무성한 자지여, 요기를 할 만하도다. 요순 시대는 이미 지나갔는데, 우리가 의당 어디로 돌아가리요.[曄曄紫芝 可以療飢 唐虞往矣 吾當安歸]” 하였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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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사르어라 거처는 다시 조용한데 / 焚香居更靜
주역 완미하니 이치는 왜 그리 은미한고 / 玩易理何微
복괘와 구괘는 순환하는 곳이요 / 復姤循環處
건괘와 곤괘는 용으로 드는 때로다 / 乾坤入用時
코끝에선 흰 기운을 관찰하고 / 鼻端觀白氣
마음으론 깊은 도리를 통하여라 / 心上透玄機
적과 감이 애당초 둘이 아니로다 / 寂感初無二
유연히 스스로 스승을 얻었네 / 悠然自得師
[주D-001]복괘(復卦)와 …… 곳이요 : 《주 역》의 복괘는 순음(純陰)인 곤괘(坤卦)를 막 지나서 일양(一陽)이 처음 생기는 괘이고, 구괘(姤卦)는 순양(純陽)인 건괘(乾卦)를 막 지나서 일음(一陰)이 처음 생기는 괘이므로, 즉 음에서 양으로, 또는 양에서 음으로 각기 서로 순환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건괘(乾卦)와 …… 때로다 : 여기의 용(用)은 바로 《주역》 건괘의 용구(用九)와 곤괘(坤卦)의 용육(用六)을 가리키는데, 용구의 내용은 천덕(天德)을 말한 것이고, 용육의 내용은 지덕(地德)을 말한 것이다.
[주D-003]코끝에선 …… 관찰하고 : 불교의 수행(修行) 방법의 하나로서, 자신의 코끝을 자세히 주목하여 보는 것인데, 이 수행이 오래가면, 콧속으로 드나드는 기(氣)가 연기처럼 하얗게 보이고, 신심(身心)이 속으로 밝아진다고 한다.
[주D-004]적(寂)과 감(感)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역은 생각이 없고 하는 곳도 없어 적막하게 움직이지 않다가, 느낌이 있음에 미쳐서는 마침내 천하의 일을 통한다.[易无思也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한 데서 온 말이다.
박 총랑(朴摠郞)의 시권(詩卷)에 제하다. 19수(十九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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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풍소의 격조를 얻었으니 / 自得風騷格
그 누가 대산 소산을 구분하리요 / 誰分大小山
재주는 뛰어나 기괴한 걸 본받고 / 才豪師怪怪
필법은 묘하여 생동함을 벗 삼았네 / 筆妙友閑閑
도는 하늘땅의 안에 있고요 / 道在玄黃內
마음은 푸른 산속에 노닐어라 / 心游紫翠間
낭선이 스스로 괴로이 읊조리지만 / 浪仙吟自苦
누각 아래 소명이 곧 당도하리 / 樓下帝方還
쑥대 문은 대묘동을 임해 있는데 / 蓬門臨大畝
야복 차림으로 방산에 은거하여 / 野服隱芳山
구애됨 없이 마음대로 노닐면서 / 縱意無拘束
정신 수양하며 한가히 자적하누나 / 怡神自適閑
불경 쓰는 건 재계하는 동안이요 / 寫經齋戒畔
시구 얻는 건 담소하는 사이로다 / 得句笑談間
글자마다 구슬을 꿰놓은 모양이니 / 字字聯珠樣
이게 응당 합포에서 돌아왔으리 / 應從合浦還
보리수는 그 몇 자나 되는고 / 幾尺菩提樹
아만의 산은 천 층이나 되어 / 千層我慢山
천자의 귀함도 아랑곳하지 않고 / 不知天子貴
도인의 한가함만 자부한다네 / 自負道人閑
마음은 형해 밖에 방랑하고요 / 放浪形骸外
도의 기미는 미목 새에 분명하네 / 分明眉目間
후일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거든 / 他年向上去
어찌 떨어져 한번인들 돌아오랴 / 肯墮一來還
젊은 날에 일찍 세상을 잊었으나 / 少日曾忘世
늙어서야 비로소 산으로 들어가니 / 衰年始入山
푸른 산은 겹겹으로 모이었고 / 重重靑嶂合
흰 구름은 조각조각 한가로워라 / 片片白雲閑
고요함 속엔 생각이 고상해지고 / 靜裏識天際
꿈속에선 세간의 일을 담론하네 / 夢中談世間
백정이 방금 한번 돌아봤으니 / 柏亭方一顧
어찌 사직하고 돌아가게 할쏜가 / 肯使乞身還
바람은 창 앞의 달빛을 보내오고 / 風送窓前月
하늘은 베갯머리의 산에 나직하네 / 天低枕上山
흥겨움 속에 스스로 의탁하지만 / 興來方自托
신선을 만나려니 한가롭지도 않네 / 邪絶不須閑
아득한 것은 삼청의 밖이요 / 渺渺三淸表
분잡한 것은 오탁의 사이로다 / 紛紛五濁間
건파는 그 어드메에 있느뇨 / 乾坡在何處
내 홀 또한 장차 돌려보내련다 / 我笏亦將還
아침 해는 영해에서 떠오르고 / 初日出寧海
맑은 강물은 한산을 안고 흘러라 / 淸江抱翰山
그 얼마나 홀로 가길 생각했던가만 / 幾年思獨往
길이 한가함을 얻을 길이 없었네 / 無路得長閑
적막한 기분은 전쟁을 겪은 뒤요 / 寂寞干戈後
황량한 모습은 수석의 사이로다 / 荒涼水石間
건파의 가장 깊고 그윽한 곳에 / 乾坡最深處
돌아가는 그대 부럽기도 하여라 / 矯首羨君還
계수 같은 땔나무를 기억커니와 / 記得薪如桂
일찍이 목가산을 찾기도 했었지 / 曾求木假山
연경엔 얼음 눈이 차갑고 / 燕京氷雪冷
한산엔 세월이 한가로워서 / 馬邑歲年閑
반열 속을 툭툭 털고 일어나 / 抖擻班行裏
그림 같은 산수 사이로 돌아왔더니 / 歸來圖畫間
평생에 은거할 뜻 있었는지라 / 平生丘壑趣
또 게으른 사람을 돌려보내네 / 又送妥夫還
처자식은 화롯가에 둘러앉았는데 / 妻子圍爐火
홀로 촉산에 기대 가부좌하였네 / 跏趺几蜀山
일승은 원래 스스로 급했거니와 / 一乘元自急
생각이 많음은 한가함만 못했으리 / 萬念不如閑
임제에게는 먼 후손뻘이요 / 臨濟兒孫外
장강과는 백중의 사이로다 / 長江伯仲間
앉아서 사계가 광활함을 보고는 / 坐看沙界闊
문득 세속으로 돌아와버렸네 / 却向俗中還
누추한 띳집의 시 짓는 곳에는 / 茅屋賦詩處
두어 봉우리 산이 문 앞에 당했으니 / 當門數朶山
구름 연기는 끝내 천변만화하건만 / 雲煙終萬變
맘과 자취는 절로 둘 다 한가롭네 / 心跡自雙閑
높이 누움은 희황의 이상 시대요 / 高臥羲皇上
청담은 위진 사이의 시대로다 / 淸談魏晉間
나무꾼 아이는 짧은 젓대 비껴 불며 / 樵童橫短笛
또 석양을 향해 돌아오누나 / 又向夕陽還
팔대의 문장이 피폐해짐으로 인해 / 八代文章弊
창려를 태산같이 우러러서 / 昌黎仰泰山
진부한 것 버리고 고문을 본받고 / 去陳仍體古
호연지기 길러서 신기도 안한하니 / 養浩覺神閑
행여도 삼상을 잊지 말 것이요 / 且莫忘三上
호연지기도 천지간에 충만케 해야지 / 須敎塞兩間
미사여구로 한창 기교들만 부리니 / 錭龍方逞巧
순박한 풍조가 언제나 돌아올런고 / 醇朴幾時還
매양 석정 연구의 서문을 보거니 / 每觀聯句序
석정은 어느 산에서 나왔던고 / 石鼎出何山
후희는 우는 소리가 괴로웠으나 / 侯喜鳴聲苦
미명은 의기가 여유롭기만 하였네 / 彌明意氣閑
둔옹은 서로 오르내릴 만하려니와 / 遁翁相上下
목은 늙은이는 중간이나 차지하리 / 牧老且中間
다만 한스러운 건 괴이하게도 / 祗恨却荒怪
한번 나가서 끝내 안 돌아옴일세 / 出門終不還
불은 명이의 땅에 들어가고 / 火入明夷地
하늘은 대축의 산에 저장되나니 / 天藏大畜山
기미를 아는 덴 신중해야거니와 / 知幾須愼密
학문 연구는 넓고 여유로이 하고 / 講學尙寬閑
몸과 마음속을 잘 보중 섭리하여 / 保燮身心內
우주 안에 경륜을 두루 펴야 하리 / 經綸宇宙間
일생에 응당 건너는 게 이로우니 / 一生應利涉
가면 반드시 돌아와야 하고말고 / 有往必須還
내가 처음 태학에 유학할 적에 / 我初游璧水
자네 또한 금산을 알현했는데 / 子亦謁金山
학문이 어찌 삼동으로 족했으랴 / 學豈三冬足
사는 건 하루도 한가롭지 못했네 / 居難一日閑
과하마 태워 보낸 건 가련했었고 / 送蹄憐果下
귀에 들렌 건 비루한 상간이었지 / 聒耳鄙桑間
뛰어난 장인이 방관하는 곳에 / 巧匠旁觀處
나의 금의환향한 게 부끄럽구려 / 回慚衣錦還
마음이 물 같음을 스스로 믿거니 / 自信心如水
산 뽑는 기력을 누가 바랐으리오 / 誰求力拔山
작은 재주는 도 듣길 바랄 뿐이요 / 小才要聞道
큰 덕은 한계 넘는 걸 경계한다오 / 大德戒踰閑
학은 화표주에 앉아서 말을 하고 / 鶴語留華表
벌레는 일어 창문을 갉아먹었네 / 蟲生蝕白間
고금은 참으로 한순간일 뿐인데 / 古今眞俯仰
하늘 밖엔 새가 날아 돌아오누나 / 空外鳥飛還
칼춤은 천둥 번개를 놀라게 하고 / 劍舞驚雷電
거문고 솜씨는 해산에서 변화했네 / 琴工化海山
귀신은 응당 스스로 울 테지만 / 鬼神應自泣
세월이야 어찌 한가함을 용납하랴 / 日月豈容閑
오묘함에 들어선 무극을 말하고 / 入妙語無極
기이한 걸 찾을 땐 반간을 행하네 / 搜奇行反間
시인이 고심하여 읊조리는 곳에 / 詩人苦心處
고풍이 돌아온 걸 직접 보겠구려 / 直見古風還
전원은 대묘동에 펼쳐 있고 / 園開大畝洞
문은 덕암산을 마주하였네 / 門對德巖山
종백은 반열이 처음 높아졌고 / 宗伯班初顯
경생은 자취가 아직 한산한데 / 經生跡尙閑
흰머리는 귀밑가에 드리웠고 / 素絲垂鬢上
노란빛은 눈썹 사이에 띠었네 / 黃色起眉間
다시 부러운 건 건파의 길목으로 / 更羨乾坡路
문득 미록들을 따라 돌아감일세 / 却從麋鹿還
고상한 풍도는 동해에 빠지고 / 高風蹈東海
뛰어난 여운은 서산으로 들어갔네 / 絶響入西山
명성 구함은 급하지도 않거니와 / 不是求名急
몸을 아낌도 익숙하지 않거니 / 仍非愛己閑
성왕을 만남은 꿈속을 말미암지만 / 遭逢由夢裏
발탁은 혹 항오 사이에서 한다네 / 拔擢或行間
출처는 천명에 맡겨야 하겠지만 / 出處信天賦
후일에 응당 소명이 있을 거로세 / 他年應召還
큰 도량은 바다를 술잔 삼을 만하고 / 鉅量能杯海
큰 공은 태산이 닳아도 남을 만하니 / 脩功可礪山
비록 세상의 막중함은 될지언정 / 雖然爲世重
기필코 내 한가로움만은 못하리라 / 未必似吾閑
태극 이치는 호리 안에 들어 있고 / 大極毫釐內
세월은 눈 깜빡하는 사이일 뿐이니 / 流光瞬息間
조용히 즐겨 천리나 따를 뿐이요 / 從容樂循理
굳이 장생불사약 먹을 필요 없으리 / 不用餌丹還
마음을 가라앉혀 태극을 연구하고 / 沈潛心大極
독실하게 겸산을 본받는다면 / 篤實象兼山
효험이 마침내 명백해지리니 / 效驗終明白
공부는 오래 익힘이 중요하다오 / 功夫要熟閑
호연지기는 천지 안에 충만하고 / 氣充天地內
몸은 서책 사이에서 늙건마는 / 身老簡篇間
옛 도에 끝내 미쳐가기 어려우니 / 古道竟難及
요순 시대가 어느 때나 돌아올꼬 / 唐虞何日還
[주D-001]풍소(風騷) : 《시경》의 국풍(國風)과 《초사(楚辭)》의 이소(離騷)를 합칭한 말인데, 전하여 뛰어난 시문을 뜻한다.
[주D-002]대산(大山) 소산(小山) : 한 (漢)나라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문인(文人)들을 불러 모아서 저술(著述)에 종사하게 한 결과 각각 사부(辭賦)를 지음에 따라 종류를 나누어서 혹은 대산, 혹은 소산이라 칭했던 것으로, 이는 마치 《시경》에 대아(大雅), 소아(小雅)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주D-003]낭선(浪仙)이 …… 읊조리지만 : 낭선은 당(唐)나라 때의 시인(詩人) 가도(賈島)의 자인데, 가도 또한 일찍이 승려가 되었다가 뒤에 환속하였고, 시를 짓는 데 있어서는 특히 고심하여 읊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박 총랑을 가도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4]합포(合浦) : 광동성(廣東省) 합포군(合浦郡)에는 예로부터 곡식은 생산되지 않고 바다에서 구슬이 많이 나왔다고 하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5]보리수(菩提樹) : 인도에 있는 나무 이름인데, 석가모니가 일찍이 이 나무 밑에서 성도(成道)했으므로, 전하여 불교의 진리를 의미한다.
[주D-006]아만(我慢) : 불교 용어로 증상만(增上慢)과 같은 뜻인데, 훌륭한 교법(敎法)과 깨달음을 얻지도 못하고서 얻었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잘난 체하는 거만함을 이른 말이다.
[주D-007]백정(柏亭)이 …… 돌아봤으니 : 한번 돌아봤다는 것은 곧 현자(賢者)의 천거(薦擧)를 받았음을 의미하는데, 백정이 누구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주D-008]삼청(三淸) : 도교(道敎)에서 이른바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 세 곳의 청경(淸境)을 말한다.
[주D-009]오탁(五濁) : 불교 용어로, 나쁜 세상에 대한 다섯 가지 더러운 것, 즉 겁탁(劫濁), 번뇌탁(煩惱濁), 중생탁(衆生濁), 견탁(見濁), 명탁(命濁)을 가리킨다.
[주D-010]건파(乾坡) : 박 총랑이 은거하는 곳의 지명(地名)이다.
[주D-011]내 …… 돌려보내련다 : 벼슬아치가 지녔던 홀(笏)을 임금에게 되돌린다는 뜻으로, 사직(辭職)을 의미한다.
[주D-012]계수 같은 땔나무 : 전 국 시대 소진(蘇秦)이 초(楚)나라에 가서 초왕(楚王)을 설득했으나 듣지 않으므로 이내 하직하고 떠나려 하자, 초왕이 왜 그리 빨리 떠나려 하느냐고 물으니, 소진이 초나라에는 밥이 옥(玉)보다 귀하고, 땔나무가 계수나무보다 귀하여 더 머무를 수가 없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객지 생활의 어려움을 의미한다.
[주D-013]목가산(木假山) : 모양이 산 비슷하게 생긴 나무를 가리키는데, 송(宋)나라 소순(蘇洵)의 〈목가산기(木假山記)〉에 자세한 내용이 나타나 있다.
[주D-014]일승(一乘) : 불교 용어로, 승(乘)은 탄다는 뜻인데, 수레나 배에 태우듯이 우리 중생들을 깨닫는 경계에 운반해 준다는 뜻에서 즉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교법(敎法)을 의미한다.
[주D-015]임제(臨濟) : 당 (唐)나라 때 진주(鎭州) 임제원(臨濟院)에 머물렀던 혜조 선사(慧照禪師) 의현(義玄)을 가리킨다. 그는 임제종(臨濟宗)의 종조(宗祖)이기도 한데, 임제의 종풍(宗風)은 송(宋)나라 때에 크게 떨쳤고, 우리나라의 선종(禪宗) 또한 대개가 임제의 종풍이었다고 한다.
[주D-016]장강(長江) : 당(唐)나라 때 일찍이 출가(出家)했다가 환속한 시인으로 장강 주부(長江主簿)를 지낸 가도(賈島)를 가리킨다.
[주D-017]사계(沙界) : 항하(恒河)의 모래와 같이 수많은 세계(世界)란 뜻이다.
[주D-018]높이 …… 시대요 : 희 황(羲皇)은 상고 시대에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복희씨(伏羲氏)를 가리키는데,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일찍이 5, 6월 중에 북쪽 창 아래 누워 서늘한 바람을 쐬면서 스스로 ‘희황의 이상 시대 사람[羲皇上人]’이라고 자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19]청담(淸談)은 …… 시대로다 : 청담은 속되지 않고 청아(淸雅)한 이야기라는 뜻인데, 특히 위진(魏晉) 시대에 죽림칠현(竹林七賢) 등 많은 풍류인(風流人)들이 청담을 즐겨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20]팔대(八代)의 …… 우러러서 : 팔 대는 후한(後漢), 위(魏), 진(晉), 송(宋), 제(齊), 양(梁), 진(陳), 수(隋)를 가리키는 말이고, 창려(昌黎)는 곧 창려백(昌黎伯)에 추봉(追封)된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소식(蘇軾)의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에, “문장에 있어서는 팔대에 걸쳐 쇠퇴해진 것을 일으켰고, 도에 있어서는 천하가 함께 타락한 것을 붙들어 구했다.[文起八代之衰 而道濟天下之溺]” 하였고, 또한 한유는 후한 이래 유행한 변려문(騈儷文) 등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하여 고문(古文)을 숭상 발전시켰고, 또한 유도(儒道)를 진흥시키기 위해 노불(老佛) 등 이단(異端)을 극력 배척하였으므로, 〈한유전찬(韓愈傳贊)〉에, “한유가 죽은 뒤로 그의 언론이 크게 행해져서 학자들이 그를 마치 태산북두(泰山北斗)처럼 우러렀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21]삼상(三上) : 문 장(文章)을 짓는 데 있어 문사(文思)를 짜내기에 가장 알맞은 말 위[馬上]와 베개 위[枕上]와 뒷간 위[廁上]를 말한다.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말하기를, “내가 평생에 지은 문장은 대부분 삼상에서 얻은 것이니, 바로 말 위와 베개 위와 뒷간 위인데, 대체로 이곳만이 생각에 몰두하는 데 더욱 알맞기 때문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22]매양 …… 보거니 : 석 정 연구(石鼎聯句)의 서문은 바로 한유(韓愈)가 쓴 것인데, 그 서문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당 헌종(唐憲宗) 연간에 형산(衡山)의 도사(道士) 헌원미명(軒轅彌明), 진사(進士) 유사복(劉師服), 교서랑(校書郞) 후희(侯喜) 3인이 유사복의 집에 모여서 화로 가운데 있는 석정(石鼎)을 두고 연구(聯句)를 지었던바, 시를 짓는 도중에 유사복과 후희 두 사람은 도사 미명의 높은 식견에 눌리어 성조(聲調)가 갈수록 처량해지고 시를 쓰려다가도 다시 머뭇거리곤 하였으나, 미명은 갈수록 여유작작하게 경구(警句)를 토해 내자, 끝내 두 사람은 미명을 존사(尊師)로 받들고 스스로 제자(弟子)가 되기를 청하고 그곳에서 모두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도사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다시 오지 않았다고 한다.
[주D-023]불은 …… 들어가고 : 《주역》 64괘의 하나인 지화 명이괘(地火明夷卦)를 두고 한 말인데, 이 괘는 현자(賢者)가 뜻을 얻지 못하여 소인의 참소와 기롱을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상(象)이다.
[주D-024]하늘은 …… 저장되나니 : 《주 역》 64괘의 하나인 산천 대축괘(山天大畜卦)를 두고 한 말인데, 이 괘사(卦辭)에는, “대축은 바름이 이롭다. 집에서 먹지 않으면 길하니, 대천을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라.[大畜利貞不家食吉 利涉大川]” 하였는바, 이 괘는 곧 사람이 학술과 도덕을 많이 축적하여 이를 세상에 널리 펼 수 있는 상이라고 한다.
[주D-025]건너는 게 이로우니 : 《주 역》 64괘의 하나인 산천 대축괘(山天大畜卦)에 “대축은 바름이 이롭다. 집에서 먹지 않으면 길하니, 대천을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라.[大畜利貞 不家食吉 利涉大川]” 하였는바, 이 괘는 곧 사람이 학술과 도덕을 많이 축적하여 이를 세상에 널리 펼 수 있는 상이라고 한다.
[주D-026]학문이 …… 족했으랴 : 한 무제(漢武帝) 때 동방삭(東方朔)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신(臣)은 나이 12세 때 삼동(三冬)에 글을 읽어 문사(文史)가 쓰이기에 넉넉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27]과하마(果下馬) : 사람이 타고 과수(果樹) 밑을 다니기에 알맞은, 키가 3척쯤 되는 아주 작은 말을 가리킨다.
[주D-028]상간(桑間) : 옛날에 음란하여 망국(亡國)의 음악으로 일컬어졌던 ‘뽕나무 사이 복수가의 음악[桑間濮上之音]’의 준말이다.
[주D-029]뛰어난 …… 곳에 : 재 능이 뛰어난 사람은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오히려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 쓰이는 것을 비유한 말로, 한유(韓愈)의 〈제유자후문(祭柳子厚文)〉에, “다른 사람들은 나무를 잘 깎지 못하여 손가락을 다쳐 피가 흐르고 얼굴에는 땀을 뻘뻘 흘리는데, 뛰어난 장인은 도리어 소매 속에 손을 넣고 곁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不善爲斲血指汗顔 巧匠旁觀 縮手袖間]”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30]큰 …… 경계한다오 :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은 드나듦이 있더라도 괜찮다.[大德不踰閑小德出入可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張》
[주D-031]학(鶴)은 …… 하고 : 요 동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일찍이 영허산(靈虛山)에서 선술(仙術)을 배우고 뒤에 학으로 변화하여 고향에 돌아가서 성문(城門)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았는데, 때마침 한 소년이 활을 가지고 그를 쏘려 하자, 그 학이 날아올라 공중에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새로 변화한 정영위가,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야 돌아왔네. 성곽은 예와 같은데 사람은 간 곳 없어라, 어이해 신선 안 배우고 무덤만 즐비한고.[有鳥有鳥丁令威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32]벌레는 …… 갉아먹었네 : 두보(杜甫)가 안녹산(安祿山)의 난리를 회상하여 지은 〈왕재(往在)〉 시에, “당시 천자와 옥좌는 무너졌고, 문 사이 용 그림은 닳아 떨어졌네.[當宁陷玉座白間剝畫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33]칼춤은 …… 하고 : 당(唐)나라 때 초성(草聖)으로 일컬어진 장욱(張旭)이 일찍이 공손대랑(公孫大郞)이란 사람의 칼춤 추는 것을 보고 필법(筆法)의 신묘(神妙)함을 터득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34]거문고 …… 변화했네 : 옛 날에 백아(伯牙)가 성련 선생(成連先生)에게서 거문고를 3년 동안 배웠으나 이루지 못하자, 성련 선생이 이르기를, “나의 스승 방자춘(房子春)이 지금 동해(東海) 가운데 계시는데, 능히 인정(人情)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이다.” 하고, 마침내 백아를 데리고 봉래산(蓬萊山)에 들어가 유숙(留宿)하면서 백아에게, “그대는 여기에서 거문고를 연습하라. 나는 가서 스승을 맞아오리라.” 하고는 배를 타고 떠나서 10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때 백아는 사방을 바라보아도 사람은 하나도 없고, 파도만 쳐대는 바닷물 소리와 조용한 숲에서 뭇 새들의 슬피 지저귀는 소리만 들려오므로, 백아가 슬피 탄식하여 말하기를, “선생이 나의 정(情)을 변화시키려 한 것이다.” 하고, 이에 거문고를 가져다 한 곡조를 노래하고 나자, 그제야 성련 선생은 스승을 맞이하여 돌아왔고, 백아는 마침내 거문고의 천하 일인자가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35]귀신은 …… 울 테지만 : 두보(杜甫)의 〈기이백(寄李白)〉 시에, “글씨를 쓰면 비바람을 놀래키고, 시를 이루어 놓으면 귀신을 울린다.[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36]무극(無極) :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말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을 가리킨다.
[주D-037]반간(反間) : 병법(兵法)에서 간첩(間諜)을 놓아 적정(敵情)을 탐지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곧 좋은 시구를 찾기 위해 깊이 탐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38]종백(宗伯) : 본디 문장과 학문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큰 스승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사문(師門)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주D-039]경생(經生) : 경서(經書)를 배우는 서생(書生)을 가리킨다.
[주D-040]노란빛은 …… 띠었네 : 고대(古代) 상서(相書)에 의하면, 노란빛은 기쁨의 징조라 하여 눈썹 사이에 노란빛을 띠면 공경(公卿)이 될 상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41]고상한 …… 빠지고 :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魯仲連)이 당시 포악무도한 진(秦)나라를 미워하여, 차라리 동해(東海)에 빠져 죽을지언정, 차마 진나라를 섬길 수는 없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42]뛰어난 …… 들어갔네 : 은(殷)나라 말기에 백이(伯夷), 숙제(叔齊) 형제가 주 무왕(周武王)에 의해 은나라가 멸망한 것을 보고는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서산(西山)에 들어가서 고사리만 캐먹다가 끝내 굶어 죽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43]성왕(聖王)을 …… 말미암지만 : 은 고종(殷高宗)이 일찍이 열(說)이란 이름을 가진 성인(聖人)을 얻은 꿈을 꾸고 나서 백공(百工)을 시켜 사방으로 그런 사람을 수소문하게 한 결과 부암(傅巖)이란 곳에서 과연 현상(賢相) 부열(傅說)을 얻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44]큰 …… 만하니 : 공 신(功臣)의 후손에게 영원토록 복록이 미침을 뜻한다. 《사기(史記)》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에 나오는 봉작(封爵)에 대한 맹세에, “황하가 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이 닳아서 숫돌처럼 편평해지더라도 나라는 영원히 보존되어 후손에게 미치리라.[使河如帶 泰山若礪 國以永存 爰及苗裔]”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45]겸산(兼山) : 《주역》 간괘(艮卦) 상사(象辭)에, “산이 중첩한 것이 간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생각이 자기 지위를 벗어나지 않게 한다.[兼山艮 君子以 思不出其位]” 한 데서 온 말로, 즉 자기 분수를 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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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창 아래 붓 잡고 망녕되이 높은 체하니 / 把筆明窓妄自尊
다행히도 지금은 찾아오는 친구가 적네그려 / 幸今朋友少過門
난국에 말을 다한 건 역사에서 징계하였고 / 盡言亂國徵齊史
위방에 들지 않는 건 논어에서 증험하였네 / 不入危邦驗魯論
역마 달리는 요서엔 백사장 달빛이 하얗고 / 馳驛遼西沙月白
관어대 아래엔 바다 하늘이 어두워지누나 / 觀魚臺下海天昏
백발에 비로소 노고가 병이 된 걸 후회하여 / 白頭始悔勞成病
나날이 차 달여 마시며 채원에 물을 주노라 / 日日煎茶灌菜園
내 동정 반성하매 스스로 그른 줄 아는데 / 反觀行止自知非
차례 뛰어넘은 은총은 세상에 드문 바로세 / 越次恩榮世所稀
칼 패옥 차고 퇴청할 땐 꽃 아래서 헤어지고 / 劍佩朝回花底散
조서는 밤에 초하고 달빛 아래 돌아온다오 / 絲綸夜草月中歸
그늘 짙은 나무에선 꾀꼬리가 지저귀고요 / 陰陰夏木黃鸝語
아득한 연기 물결 위엔 백조가 날아다니네 / 渺渺煙波白鳥飛
한스러운 건 당시에 일찍 사직하지 못하고 / 恨不當時乞身早
사면의 풍진 속에 석양이 비끼려 함이로다 / 風塵四面欲斜暉
[주D-001]난국(亂國)에 …… 징계하였고 : 춘추 시대 제(齊)나라 대부(大夫) 국무자(國武子)가 어지러운 나라에서 할 말을 다하여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기 좋아하다가 끝내 제나라에서 죽임을 당했던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成公17年》
[주D-002]위방(危邦)에 …… 증험하였네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는 것이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세상에 나가고, 도가 없으면 숨는 것이다.[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無道則隱]”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泰伯》
구씨(舅氏) 김 밀직 치사존시(金密直致仕尊侍)께 받들어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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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씨는 은애의 정이 중한데 / 舅氏恩情重
나는 지금 노병이 심중하네 / 吾今老病深
푸른 솔은 빽빽한 골에 연하였고 / 蒼松連密洞
단풍잎은 성긴 숲에 떨어지누나 / 錦葉落疎林
달은 전원에 돌아갈 꿈을 비추고 / 月照歸田夢
하늘은 국은 갚을 마음을 알건만 / 天知報國心
이리도 종족을 비호할 길이 없어 / 無從庇宗族
다시 갈류를 읊조릴 뿐이로세 / 更把葛虆吟
[주D-001]갈류(葛虆) : 칡 덩굴을 가리키는데, 《춘추좌전(春秋左傳)》 문공(文公) 7년 조(條)에, “칡덩굴도 오히려 근본을 비호할 줄 알기 때문에 군자가 그것을 종족에 비유하는데, 더구나 나라의 군주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葛藟猶能庇其本根 故君子以爲比 況國君乎]” 한 데서 온 말이다.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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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연한 군함들은 새매처럼 비양하고 / 連空畫鷁似鷹揚
깃발들은 햇빛 가려 바다 기운도 서늘하네 / 蔽日旌旗海氣涼
이미 바람 서리로 숙살의 가을을 당했는데 / 已遣風霜當肅殺
다시 파도를 일으켜 군함 뱃길을 돕누나 / 更敎波浪助騰驤
오경이라 은하의 빛은 스스로 옮겨 가고 / 五更自動星河影
만리 멀리 일월의 빛은 똑같이 비추이네 / 萬里同浮日月光
푸릇푸릇한 여러 섬에 연기 안개 걷히자 / 島嶼抽靑煙霧卷
고래 벤 소리가 동녘 바다를 진동하누나 / 斬鯨餘響振扶桑
군령 엄격한 군사들은 사기가 양양하여 / 令嚴軍士氣揚揚
일제히 도성문 출발할 제 아침 해가 서늘하네 / 齊發都門曉日涼
나라 세운 몇 년 동안은 범처럼 뛰기만 하고 / 闢國幾年思虎躍
하늘에 솟은 만곡선은 용이 날듯 달리어라 / 凌空萬斛駕龍驤
깃발은 높이 흔들려 하늘빛이 희미하고 / 旌旗高拂迷天色
창칼은 서로 부딪쳐 번갯불이 번쩍이네 / 劍戟相磨閃電光
앞으로는 천리만리 기나긴 바닷가에 / 從此海濱千萬里
봄바람 간 곳마다 모두 농상을 일삼으리 / 春風處處盡農桑
[주D-001]고래 벤 소리 : 대적(大敵)을 물리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나라 …… 달리어라 : 만곡선(萬斛船)은 곧 용량이 대단히 큰 군함(軍艦)을 가리키고, ‘범처럼 뛰다’, ‘용이 날 듯 한다’는 것은 바로 군대의 웅장한 무위(武威)를 의미한다.
한유항(韓柳巷)을 방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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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데리고 지팡이 짚고 서쪽 이웃에 들러 / 携兒扶策過西鄰
먼지 한 점 없는 창 앞에 앉아 기뻐하면서 / 坐愛明窓絶點塵
새 술로 좋은 사람과 함께 거나히 취했더니 / 新酒可人陶一醉
밤 늦게 약간 깼으나 몸은 아직 후끈거리네 / 夜闌微覺尙熏身
선생이 이웃에 살라 허락한 게 가장 기뻐라 / 最喜先生許卜鄰
버들숲 깊은 곳에 조용하고 먼지도 없네 / 柳林深處靜無塵
폭건 쓰고 왕래하매 풍류가 그지없어라 / 幅巾來往風流甚
뭇 새들이 병든 이 몸을 서로 따르는구려 / 禽鳥相隨病裏身
구름 연기를 사방 이웃으로 삼지 않으면 / 不把雲煙作四鄰
늘그막에 바람 먼지 피할 땅이 없으리라 / 老年無地避風塵
동쪽 울에 국화 심은 건 연명이 그랬는데 / 東籬種菊淵明爾
누가 말했나 내가 바로 연명의 후신이라고 / 誰道韓山是後身
[주D-001]동쪽 …… 그랬는데 : 연 명(淵明)은 도잠(陶潛)의 자인데, 도잠의 〈음주(飮酒)〉 시에, “속세에 집을 짓고 살지만, 거마의 시끄러움이 없도다. 묻노니 그대 어찌 그렇게 할 수가 있나, 마음이 멀기에 땅도 절로 한적하다오.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면서,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結廬在人境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우연히 쓰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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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순음의 곳에 이르렀고 / 身到純陰處
마음은 태극의 근본을 탐구하노니 / 心探太極根
정이 전일하면 원기가 수렴되고 / 靜專元氣翕
고루 다스리면 대화가 보존되리 / 燮理大和存
땅은 시서의 고장을 옹위하고 / 地拱詩書圃
하늘은 도의의 문을 열었도다 / 天開道義門
조용함 속에 끝없는 낙이 있으니 / 從容有餘樂
내 낀 버들은 앞마을에 어둑하네 / 煙柳暗前村
새는 높은 나무 끝에 둥지를 틀고 / 鳥巢喬木頂
개미는 배나무 뿌리에 굴을 뚫나니 / 蟻穴老梨根
그칠 줄 알면 마음이 응당 바르고 / 知止心應正
부정을 막으면 예가 응당 보존되리 / 閑邪禮所存
먼 산은 명아주 지팡이를 둘러 있고 / 遙山遶黎杖
낙엽은 쑥대문 앞에 가득 떨어졌네 / 落葉滿蓬門
어찌 반드시 혼자 있는 곳뿐이랴 / 豈必獨游處
저녁때는 강가의 마을로 간다네 / 晚來江上村
푸른 산은 깎아서 밭을 일구고 / 耕田鑿山翠
산기슭은 깎아서 집을 지으니 / 架屋斲雲根
골짜기 새는 날로 친근해지고 / 谷鳥日親近
이웃 중은 때때로 문안을 하네 / 鄰僧時問存
꽃뜰에선 새가 늘 먹이를 주워 먹고 / 花階頻得食
달 뜬 골짝엔 손이 혹 찾아도 오네 / 月壑或敲門
백발이 되도록 돌아가지 못하고 / 白髮未歸去
꿈속에만 공연히 마을을 감도누나 / 夢中空遶村
또 쓰다.
연래에 옛집의 지붕을 이고 / 老屋年來蓋
사립문은 밤에도 닫지를 않네 / 虛門夜不扃
병든 몸은 가을 풀이 푸른 격이요 / 病身秋草綠
돌아갈 꿈은 저문 산 푸른 곳일세 / 歸夢暮山靑
고요함 얻으면 심역을 참고하고 / 得靜參心易
병이 위태하면 맥경을 조사하네 / 臨危檢脈經
세월은 또 어느덧 시월이라 / 流光又陽月
묵묵히 황령을 우러르노라 / 默默仰皇靈
[주D-001]순음(純陰) : 곤괘(坤卦)에 해당하는 육음(六陰)의 달인 10월을 가리킨다.
[주D-002]정(靜)이 …… 수렴되고 : 《주 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건은 고요함이 전일하고 움직임이 곧은지라, 이 때문에 큼이 생기고, 곤은 고요할 때는 거두고 움직일 때는 열리는지라, 이 때문에 넓음이 생긴다.[夫乾 其靜也專 其動也直 是以大生焉 夫坤其靜也翕 其動也闢 是以廣生焉]”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고루 …… 보존되리 : 고루 다스린다는 것은 곧 삼공(三公)이 음양(陰陽)을 조화시켜 다스린다는 뜻이고, 대화(大和)는 곧 천지 사이의 충화지기(沖和之氣)를 가리키는데, 태평(太平)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주D-004]심역(心易) : 송 (宋)나라 소옹(邵雍)이 지은 서법(筮法)의 하나로, 그 법칙은 곧 임의대로 어느 한 글자의 획수(劃數)를 취하여 8획을 제하고 남은 숫자로 괘(卦)를 얻고, 다시 한 글자의 획수를 취하여 6획을 제하고 남은 숫자로 효(爻)를 얻어서 이것을 역리(易理)에 의거하여 길흉을 판단하는 것인데, 이것을 매화수(梅花數), 또는 매화심역(梅花心易)이라고도 한다.
[주D-005]맥경(脈經) : 진(晉)나라 때 왕숙화(王叔和)가 지었다는 의서(醫書)의 이름이다.
비록(祕錄)을 어전에서 진독(進讀)하자, 사천감(司天監) 신하에게 역말을 달려가서 땅을 살펴보도록 분부를 내림으로써 명일에 출발하기로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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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왕이 바야흐로 선왕의 뜻 이으니 / 我王方繼志
태조께서 남기신 글이 있었네 / 太祖有遺書
삼경을 순주한 뒤요 / 巡駐三京後
억만년 후손에 계책을 남겼도다 / 貽謀億載餘
사천감은 신기한 계책 발휘하여 / 司天運神算
역말을 달려 땅을 살펴보는데 / 馳馹相方輿
백발 성성한 전조의 늙은이는 / 白首前朝老
초려에 누워 조용히 읊을 뿐이네 / 沈吟臥草廬
부질없이 삼동의 학문을 자부하나 / 謾負三冬學
육록의 글은 통하기 어려우니 / 難通六錄書
정신은 응당 울적할 테지마는 / 精神應鬱積
형세는 절로 우여곡절이 있으리 / 形勢自迂餘
해와 달은 하늘에 둥실 떠 있고 / 日月浮天蓋
산과 강은 대지를 둘러 있도다 / 山河繞地輿
그 터전에서 밝은 임금 만들 테라 / 其基作明辟
주려에 숙직할 뜻만 있을 뿐이네 / 有意直周廬
소년 때부터 우리 도에 뜻 두었으니 / 少年志吾道
어느 겨를에 다른 글을 읽으리오 / 何暇讀他書
끝까지 연구 못함이 한스러우니 / 自恨難窮底
남긴 음식도 남들이 먹지 않으리 / 人將不食餘
명산엔 밀 칠한 나막신이 생각나고 / 名山思蠟屐
가랑비엔 남여 타기를 생각하네 / 細雨想藍輿
출사표를 끝없이 감탄하노니 / 三嘆出師表
제갈량의 초려엔 먼지만 끼었으리 / 塵埃諸葛廬
[주C-001]비록(祕錄) : 신라 말기의 고승(高僧)인 도선(道詵)이 지었다고 하는 《옥룡비기(玉龍祕記)》를 가리킨다.
[주C-002]사천감(司天監) : 고려 때 천문(天文)과 역일(曆日)을 관장하던 관아이다.
[주D-001]태조(太祖)께서 남기신 글 : 고 려 태조가 남긴 〈훈요십조(訓要十條)〉 중 제5조에 의하면, 서경(西京) 즉 평양(平壤)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서 우리나라 지맥(地脈)의 근본이 되는 까닭에 만대(萬代)의 대업(大業)을 누릴 만한 곳이니, 사중월(四仲月)마다 그곳에 순주(巡駐)하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02]삼경(三京)을 순주(巡駐)한 뒤요 : 삼경은 고려 때에 중경(中京)인 개성(開城), 서경(西京)인 평양(平壤), 동경(東京)인 경주(慶州)를 가리키는데, 고려 태조가 일찍이 도선(道詵)의 《옥룡비기》에 의거하여 이 삼경을 일정 기간씩 순주(巡駐)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육록(六錄) : 신 라 말기의 고승인 옥룡자(玉龍子) 도선이 지었다고 하는 《옥룡비기》를 가리키는데, 그 내용이 옥룡자십승지지비결(玉龍子十勝之地祕訣), 십승지지외론보신산수지소(十勝之地外論保身山水之所), 옥룡비결(玉龍祕訣), 옥룡자기(玉龍子記), 옥룡자시(玉龍子詩), 옥룡자청학동결(玉龍子靑鶴洞訣) 등 6편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주D-004]남긴 …… 않으리 : 남들이 그가 남긴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품이 아주 천박한 것을 의미한다.
[주D-005]명산(名山)엔 …… 생각나고 : 남조(南朝) 때 사영운(謝靈運)이 명산에 오르기를 좋아하여 매양 나막신을 신고 등산을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출사표(出師表) : 촉 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조조(曹操)를 치려고 출병(出兵)할 때에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올려 지극한 충성을 토로한 글인데, 《문장궤범(文章軌範)》의 출사표에 대한 안자순(安子順)의 평론(評論)에 의하면,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출사표를 읽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반드시 충성스럽지 못한 사람일 것이라고까지 하였다.
한 첨서(韓簽書) 댁에서 간단한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나와 동갑인 양천(陽川) 허완(許完)이 자리를 함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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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들 대부분 귀밑털이 쇠했는데 / 同甲多衰鬢
양천만 유독 젊은이 얼굴이로세 / 陽川獨壯顔
서로 만났으니 통음을 해야겠으나 / 相逢宜痛飮
병든 지 오래라 즐거움이 적네그려 / 久病少淸歡
세 길엔 파란 이끼가 예스럽고 / 三逕苔痕古
일천 산엔 눈빛이 차가운데 / 千山雪色寒
주인에게 깊은 뜻이 있는지라 / 主人深意在
떠나려다 다시 또 머뭇거리네 / 欲去更盤桓
[주D-001]세 길 : 한(漢)나라 때 장후(蔣詡)가 일찍이 벼슬을 버리고 향리(鄕里)에 은둔하여 뜰에다 세 길을 내놓고 오직 구중(求仲), 양중(羊仲) 두 친구하고만 종유했던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은사(隱士)의 집을 뜻한다.
8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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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감 신하는 명 받들어 함께 땅을 살피는데 / 司天承命共胥原
늙은 목은은 홀로 문 닫고 시만 읊조리네 / 老牧吟詩獨閉門
북에서 온 산세에서는 바른 맥을 찾고요 / 山勢北來尋正脈
서쪽으로 가는 물소리엔 진원을 물어라 / 水聲西去問眞源
얼음 절벽은 미끄러워 오르내리기 어렵지만 / 氷崖滑側難登降
밝게 운행하는 천문은 토론할 만하리라 / 銀漢昭回可討論
전조에서 마음 가다듬은 일 회상하노니 / 回首前朝曾銳意
소갈병 든 늙은 문원이 스스로 가련하네 / 自憐消渴老文園
[주D-001]소갈병 …… 문원(文園) : 한(漢)나라 때의 문장가로 일찍이 효문원 영(孝文園令)을 지냈고, 만년에 소갈병을 앓았던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곧 목은 자신을 사마상여에 비유한 것이다.
토전(土田)을 하사한 데 관하여 여럿이 기록한 공함(公緘)을 요색(料色)이 갖다 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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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색이 오늘 아침에 이르러 / 料色今朝至
공문서 한 장을 가지고 오니 / 公緘一札來
즐거운 마음은 온 집안에 넘치고 / 歡情洽家室
굶주린 빛은 하인들도 면하였네 / 饑色免輿臺
이것으로 훌륭한 아이 양성하여 / 養得渥洼種
동량 같은 재목으로 이루어서 / 培成梁棟材
후일에 국가의 용도로 삼는다면 / 他年爲國用
삼공의 자리가 혁혁히 빛나리라 / 赫赫照三台
[주C-001]요색(料色) : 옛날에 녹봉(祿俸)을 담당했던 색리(色吏)를 가리키는 듯하다.
장차 가노(家奴)를 보내서 새 토전(土田)을 직접 가서 조사하게 하면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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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토전 답사할 제 또 한 해가 저물어가니 / 踏驗新田歲欲除
나라에 바칠 조세는 배와 수레에 이르렀네 / 輸租計已到舟車
인생은 만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겠거니와 / 人生知足可無辱
동료는 친하려 하나 되레 스스로 멀리하네 / 儕輩欲親還自疏
간략한 술상은 장차 준비할 수 있을 게고 / 草草杯盤將准備
아침마다 죽 먹는 건 절로 여유가 있으리 / 朝朝饘粥自嬴餘
산림에 묻혀 몸소 농사지을 필요 없어라 / 不須林下躬耕去
대은은 예로부터 사책에 기록된 바로세 / 大隱由來史所書
[주D-001]대은(大隱) : 참 된 은자(隱者)를 뜻한다. 진(晉)나라 왕강거(王康琚)의 〈반초은시(反招隱詩)〉에, “작은 은자는 산림 속에 숨고, 큰 은자는 조시에 숨는 거라, 백이는 수양산에 숨었고, 노자는 주하사 벼슬에 숨었네.[小隱隱陵藪 大隱隱朝市 伯夷竄首陽 老聃伏柱史]” 하였다.
회포를 서술하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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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년이라 먹을 것 없음은 알지만 / 饑歲知艱食
남은 생을 은퇴하여 살고 싶어라 / 殘生欲退居
산봉우리는 강 언덕을 끼고 있고 / 峯巒夾江岸
밭두둑은 시골집을 감싸 있으니 / 畦壟擁田廬
돌 여울에선 찬 소리 멀리 들리고 / 灘石寒聲遠
솔 언덕엔 푸른 그림자 듬성하리 / 松坡翠影疏
내 생을 스스로 결단해야 하는데 / 此生須自斷
어느 날에나 정히 돌아갈런고 / 曷日定歸歟
공명은 내 얼굴을 붉게 하고 / 功名頳我面
상란은 내 머리를 희게 한지라 / 喪亂白吾頭
취한 듯 또는 꿈꾸는 듯도 한데 / 如醉又如夢
돌아가려단 다시 머물려고 하네 / 欲歸還欲留
뿌연 연기는 들판의 절을 덮고 / 淡煙埋野寺
밝은 달은 강 누각에 떠올라라 / 明月上江樓
흥취 의탁해 가경에 들어가면 / 托興入佳境
긴 바람이 거룻배에 불어오리 / 長風吹小舟
9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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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도감은 어사대를 마주해 있는데 / 筵會都監面柏臺
격구장 남쪽가엔 눈이 잔뜩 쌓이었네 / 毬庭南畔雪成堆
관직 겸한 판사는 모두 먼저 이르렀는데 / 兼官判事皆先至
왕명 받든 승선만 유독 맨 뒤에 오누나 / 奉命承宣獨後來
예법의 높낮이는 밝아 법식이 될 만하고 / 禮數高低明可式
광대들은 분잡하게 공교히 정재를 하네 / 倡優雜踏巧呈才
가련도 해라 도사는 친히 필기를 맡고 / 可憐都事親刀筆
일개 청삼이 고관들 속에 끼었네그려 / 一箇靑衫厠紫緋
[주D-001]정재(呈才) : 대궐에서 연회를 할 때에 창우(倡優)들이 하는 춤과 노래 등의 기예를 가리킨다.
[주D-002]청삼(靑衫) : 옛날에 전악(典樂)이 입었던 유록색(柳綠色)의 공복(公服)을 가리킨다.
진관사(眞觀寺)의 스님이 와서 맹유(孟㽥)가 칠언 연구(七言聯句)를 능란히 지어 낸다고 하므로, 기뻐서 이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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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 옛 절이 환연히 거듭 새로워지니 / 眞觀古寺煥重新
푸른 소나무는 설법의 자리를 옹위하네 / 松樹蒼蒼擁法茵
아이가 처음 입학한 게 이미 기뻤는데 / 已喜小童初入學
다시 긴 연구 시를 신처럼 지어낸다네 / 更聯長句動如神
주렴 창에 해 옮길 땐 자주 붓 휘두르고 / 簾櫳日轉頻揮筆
정원에 날 갤 땐 혹 두건도 벗을 테지 / 院落天晴或脫巾
짧은 시간도 가벼이 스스로 버리지 말라 / 莫把寸陰輕自擲
예로부터 근고만이 사람을 만들었단다 / 古來勤苦可成人
[주C-001]맹유(孟㽥) : 목은의 손자이다.
흥취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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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꺾어진 쑥 날듯이 방랑했거니 / 我生飄蕩斷蓬飛
요해와 연산서 몇 번이나 해가 저물었던고 / 遼海燕山幾落暉
인끈 던져 달게 물러날 줄은 늦게 알았으나 / 投紱晚知甘退縮
글 읽어도 정미하지 못함은 깊이 한스럽네 / 讀書深恨闕精微
구름 걸린 숲은 멀리 나뭇길에 연하였고 / 雲林迢遞連樵徑
내 낀 강물은 아득히 낚시터에 닿았도다 / 煙水蒼茫接釣磯
지금은 병석에 누워 슬피 바라볼 뿐인데 / 臥病只今空悵望
끼룩끼룩 기러기는 남쪽으로 돌아가누나 / 鴈聲嘹唳向南歸
비록 백척의 긴 노끈을 날려 올린다 해도 / 縱有長繩百尺飛
푸른 하늘의 지는 해는 잡아맬 길 없어라 / 碧空無路絆西暉
예부터 도의 단서는 바루기 어렵거니와 / 由來道緖難歸正
누가 다시 천리의 미묘함을 천명할쏜가 / 誰向天原更發微
한산의 소나무 소리는 절집에 가득하고 / 馬邑松聲滿禪院
여강의 산 달은 낚시터에 환히 비추리 / 驪江山月照漁磯
내 성질이 본래부터 강단이 없었을 뿐 / 吾生自是無剛斷
떠나려 하면 어느 누가 너를 붙잡으리오 / 欲去何人止汝歸
궁년토록 병석에 누우니 떨쳐 날고 싶어라 / 病臥窮年欲奮飛
밤새도록 꿇어앉아 아침 해 뜨길 기다리네 / 夜闌危坐待朝暉
심장 괴로이 걱정됨은 스스로 가련커니와 / 自憐耿耿心腸苦
실낱처럼 미미한 기식은 그 누가 알아줄꼬 / 誰識綿綿氣息微
병중에는 붓 잡아 약물 목록을 기록하고 / 病裏抽毫題藥物
꿈속에선 물가에 앉아 낚싯줄을 드리우네 / 夢中垂釣坐苔磯
저 강산의 설월풍화 완상하는 이들이 / 江山雪月風花子
응당 계당을 쓸고 나 돌아가길 기대하리 / 應掃溪堂望我歸
[주D-001]설월풍화(雪月風花) : 사시(四時)의 경색(景色), 즉 눈, 달, 바람, 꽃을 합칭한 말이다.
10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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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울고 동방이 밝아오니 / 鷄鳴東方白
허둥지둥 조회온 이 벌써 가득하네 / 顚倒朝旣盈
뭇 현신들은 정히 뜻을 얻었고 / 群賢政得志
임금님은 한창 대업을 지키실세 / 君后方守成
계책 올려서 가부를 논하면은 / 謨猷可且否
덕택이 민생에게 입혀지누나 / 德澤霑民生
누가 알리요 병석에 누운 내게도 / 誰知臥病者
성상 축복하는 깊은 정이 있음을 / 祝堯有深情
한식경도 감히 잊지 아니하고 / 食刻不敢忘
머리 숙여 하늘 밝음을 받드노라 / 稽首承天明
강산은 눈빛을 둘러 감싸고 / 江山擁雪色
수목들은 바람 소리를 부르짖누나 / 樹木號風聲
고향 산천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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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앞에서 자주 길 떠난 꿈을 깨어라 / 夢斷燈前數去程
천리 밖 내 고향은 바닷가의 성이로세 / 故鄕千里海邊城
숭정사에 모인 솔은 구름 속의 그림자요 / 松團崇井雲中影
장암진 부딪치는 조수는 달빛 아래 소리로다 / 潮打長巖月下聲
삼소의 풍류는 이미 묵은 자취이거니와 / 三笑風流已陳跡
사명은 적막해라 미치광이 이름뿐이네 / 四明寂寞但狂名
녹문산 무덤 오를 날이 그 어느 날일꼬 / 鹿門上冢知何日
조용히 앉으니 끝없는 감개가 생기누나 / 靜坐悠悠感慨生
해 비낀 창 그림자는 또 동으로 옮기는데 / 日斜窓影又移東
높은 집 적막함 속에 가만히 앉았노라니 / 兀坐高齋寂寞中
남쪽 마을엔 옷 다듬이질 소리가 급하고 / 南里搗衣砧杵急
서쪽 이웃은 주연 열어 술맛이 진하겠네 / 西隣展席酒杯濃
귀밑가의 세월은 하늘이 늙을 지경이요 / 鬢邊歲月天將老
마음속의 강산은 길이 막히려고 하누나 / 心上江山路欲窮
후일에 유고를 누가 다시 찾아줄런고 / 遺藁後來誰復索
글 지어 써놓은 이는 모두가 영웅이로세 / 操觚染翰盡英雄
총각 시절 집 나와서 지금 백발이 되도록 / 束髮出游今白頭
대중 속에 섞여 서로 따르는 것만 알았네 / 只知唯唯雜悠悠
읊조림 가운데는 길고 짧은 시구가 있고 / 吟中短句仍長句
꿈속에는 새 시름 묵은 시름이 갈마들 제 / 夢裏新愁替舊愁
두어 가닥 백발은 밝은 거울에 드러나고 / 數莖白髮生明鏡
만겹의 청산은 작은 누각에 들어오누나 / 萬疊靑山入小樓
후일의 나쁜 평판은 모두 관섭지 않노라 / 他日譏評都不管
다시는 춘추를 이을 큰 솜씨가 없을 테니 / 更無大筆繼春秋
[주D-001]삼소(三笑)의 …… 자취이거니와 : 진 (晉)나라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도잠(陶潛)과 육수정(陸修靜)을 전송할 때에 그들과 서로 의기가 투합한 나머지 이야기에 마음이 팔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호계(虎溪)를 건너가 범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세 사람이 서로 크게 웃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사명(四明)은 …… 이름뿐이네 : 당 현종(唐玄宗) 때의 문사(文士)로 풍류가 뛰어났던 하지장(賀知章)이 일찍이 사명광객(四明狂客)이라 자호(自號)한 데서 온 말인데, 이백(李白)이 하지장을 추억한 〈대주억하감(對酒憶賀監)〉 시에, “사명에 광객이 있었으니, 풍류가 뛰어난 하계진이로다.[四明有狂客 風流賀季眞]” 하였다. 계진(季眞)은 하지장의 자이다.
[주D-003]녹문산(鹿門山) …… 날 : 후 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방덕공(龐德公)이 일찍이 처자를 거느리고 녹문산에 들어가서 약(藥)을 캐며 은거(隱居)했는데, 역시 당시의 고사였던 사마휘(司馬徽)가 일찍이 방덕공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침 방덕공은 무덤에 올라가고 집에 없었더라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은거를 의미한다.
[주D-004]하늘이 늙을 지경이요 : 지나온 세월이 매우 오래임을 의미한다.
[주D-005]후일에 …… 찾아줄런고 : 한 (漢)나라의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병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무릉(茂陵)에 가 있을 적에 천자(天子)가 사람을 시켜 그의 저서를 속히 가져오게 하였는데, 그의 집에 가 보니 그는 이미 죽었고, 봉선(封禪)의 일을 기록해 놓은 유고(遺藁)인 〈봉선문(封禪文)〉 한 편만이 있으므로, 이것을 가져다가 천자에게 아뢰니, 천자가 이를 매우 기이하게 여기고 뒤에 그의 말에 따라서 과연 봉선의 일을 거행했던 데서 온 말이다.
11일에 4수(四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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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음악 교열을 온종일씩 거행했는데 / 年年閱樂日將頹
금년엔 격구장에서 예를 익히고 돌아왔네 / 今歲毬庭習禮回
술 마시는 자리엔 산해진미가 갖춰지고 / 嘗酒一筵山海具
보물 바친 팔도는 그림같이 펼쳐 있는데 / 獻琛八牧畫圖開
각문의 호령 소리엔 천관이 배례를 하고 / 閣門大喝千官拜
호위병은 일만 기병을 길이 몰아왔도다 / 兵衛長驅萬騎來
당시에 호가했던 이 그 몇이나 남았는고 / 扈駕當時幾人在
백발의 내 집 앞엔 푸른 이끼뿐이로구려 / 白頭門巷但蒼苔
잔뜩 흐린 하늘은 눈이 내리려는데 / 重陰天欲雪
동짓달이라 해가 한창 차갑구나 / 子月歲方寒
예를 익힐 때 술을 어이 사양하랴 / 習禮那辭酒
행렬 따르다 관 떨어질까 염려로세 / 隨行恐倒冠
푸른 적삼 낭관은 음률을 고르고 / 綠衫郞協律
어사대의 관리는 반열을 정제하니 / 烏府吏齊班
부녀자들도 좋아할 줄을 알아서 / 婦女猶知慕
얼음 절벽까지 올라 구경을 하누나 / 氷崖自往觀
소자는 반열을 오랫동안 따랐고 / 小子隨班久
선왕은 불전엘 자주 납시었는데 / 先王坐殿頻
음악은 양부로써 연주하고 / 樂音呈兩部
화기는 천세를 받들어 축복했네 / 和氣奉千春
절집엔 임금님 의장이 옮겨지고 / 紺宇移天仗
부처의 대좌엔 먼지 하나도 없어 / 輪臺絶點塵
문에 드니 마음 절로 깨끗해지고 / 入門心自淨
달빛은 뜰에 가득 새로웠었네 / 月色滿庭新
양회 의식은 어이 그리 번다한고 / 兩會儀何縟
선왕의 뜻이 매우 참다웠도다 / 先王意甚眞
세존당에는 두 번 예배를 하고 / 世尊堂再拜
신중전은 세 번 순행을 할 제 / 神衆殿三巡
촛불은 빛깔을 구분하기 어렵고 / 燭影難分色
향 내음은 몸을 물들이려 하였네 / 爐香欲染身
지금 생각하니 한바탕 꿈만 같아 / 至今如一夢
조용히 앉아 수건에 눈물 적시네 / 兀坐淚霑巾
[주D-001]푸른 …… 고르고 : 옛날에 전악(典樂)인 협률랑(協律郞)이 유록색(柳綠色)의 공복(公服)을 입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음악은 양부(兩部)로써 연주하고 : 옛날 왕실의 성대한 연회 때에 입부(立部)와 좌부(坐部) 양부의 악기를 통틀어서 연주한 것을 가리킨다.
[주D-003]양회(兩會) : 고 려 시대에 성행했던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를 합칭한 말이다. 이 의식은 고려 태조(太祖)가 처음 거행하게 한 것으로,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 중 제6조에 의하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연등회와 팔관회에 있다. 연등은 부처를 섬기는 바이고, 팔관은 하늘 및 오악, 명산, 대천, 용신을 섬기는 바이다.[朕所至願 在於燃燈八關 燃燈所以事佛 八關所以事天靈及五岳名山大川龍神也]” 하였다.
후소(後蘇)를 살펴보느라 제공(諸公)들이 눈 속에 반드시 고생했을 것이므로, 시 한 편을 읊어 이루어서 유능함 때문에 수고가 많았던 제공들을 위로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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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데 올라 멀리 바라봄은 본디 즐거운 일 / 登高望遠古所樂
더구나 평생의 뜻이 산수 속에 있었음에랴 / 況是平生志丘壑
봄엔 꽃 가을엔 물이요 새는 숲에서 울고 / 春花秋水鳥啼林
꽃은 화려하고 푸른 유리빛 물은 넘실댈 제 / 錦繡爛熳琉璃碧
말은 가파른 산을 오르고 / 馬陟崔嵬
수레 소리는 적막을 깨뜨리며 / 輿鳴幽寂
바람은 불어 옷깃을 헤치고 / 有風披襟
비는 내려 두건을 젖히어라 / 有雨岸幘
위아래 천지와 끊임없이 운행을 함께하면 / 上下同流無間斷
정신과 기가 화열하여 혈맥이 생동하리라 / 神怡氣悅動血脈
혹 이 한겨울엔 깊이 들어앉는 게 마땅한데 / 或是仲冬宜深藏
높은 절벽 위의 밝은 창 아래 향을 피우고 / 香火明窓懸絶壁
눈 쌓인 가파른 일만 봉우리를 굽어볼 제 / 俯視崢嶸萬玉峯
온통 은빛 세계 속에 하늘만 아득했으리 / 銀色界中天漠漠
험난한 길 오르내린 건 들어볼 것도 없이 / 不聞登降頗崎嶇
등에 흠뻑 땀 흐르고 얼굴까지 붉어졌겠지 / 流汗洽背面發赤
후일에 도읍 정하고 으뜸 공훈을 기록하여 / 他年定鼎紀元庸
크나큰 비석에 새기면 그 몇 자나 될런고 / 勒向豐碑知幾尺
[주C-001]후소(後蘇) : 고 려 시대에 도참설(圖讖說)의 지리쇠왕설(地理衰旺說)에 의하여 국가의 기업(基業)을 연장시키고자 도성(都城)인 개경(開京) 둘레에 삼소(三蘇)를 두어, 좌소(左蘇)인 백악산(白岳山), 우소(右蘇)인 백마산(白馬山), 북소(北蘇)인 기달산(箕達山)에 각각 행궁(行宮)을 짓고 임금이 주기적으로 순행(巡幸)하며 머물렀는데, 여기의 후소는 곧 북소인 황해도 기달산을 가리킨다.
이달 보름에 월식(月蝕)이 있을 예정이므로, 11일에 구정(毬庭)에서 습례(習禮)를 하고 이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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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관회의 예 거행이 동짓달로 정해졌는데 / 八關行禮立子月
선왕 승하 일주년이라 음악 교열 정지하니 / 先王周年停閱樂
성원이며 대합이며 고원의 관원들이 / 省院臺閤誥苑官
잠시 분주함 접고 두 다리 펴고 누워서 / 暫輟鳧趨臥伸脚
진한 술과 고기에 취포하여 즐겁게 놀건만 / 醉醲飽鮮競繁華
나는 외로이 읊조려라 되레 적막키만 하네 / 孤吟冷嘯還寂寞
해마다 온갖 관사가 어찌 이것을 알았으랴 / 年年百司豈知此
다만 격구장에서 습례가 비롯되었던 걸 / 但自毬庭習禮始
사천감은 아뢰기를 장차 월식이 있을 텐데 / 司天奏言月有蝕
진행할 뿐 후퇴 없음을 역사에 상고했다네 / 進而無退稽諸史
송악산은 개벽 이래로 우뚝하기만 하고 / 松山峩峩開闢來
강토는 천만년을 끝없이 이어질 터이니 / 蘿圖綿綿千萬祀
팔관회의 대례도 함께 끝없이 거행하여 / 八關大禮與無窮
우리 동방 보전해서 천자를 섬겨야 하리 / 保有東方事天子
성명한 천자가 방금 인을 고루 베푸시네 / 天子聖明方一視
[주D-001]인을 고루 베푸시네 : 한유(韓愈)의 〈원인(原人)〉에, “성인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여 인애를 똑같이 베푼다.[聖人一視而同仁]” 한 데서 온 말이다.
추후로 기록하여 자상(子翔)의 말을 요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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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은 조금 안정된 품성을 지녀 / 子翔稍安靜
처음부터 나에게 후한 사람인데 / 從來厚我者
태학의 수많은 유생들 중에서는 / 濟濟靑衿中
그들과 서로 오르내리었었지 / 與之相上下
처음 갑오년 제과에 급제해서는 / 初登甲午科
문묘의 석전을 올리게 되었는데 / 文廟菜方舍
서로 손 잡고 다시 머뭇거리다 / 携手更踟躕
요행히 얻곤 낯이 매우 붉었었네 / 僥倖顔甚赭
그런데 문득 불손한 말을 했어라 / 却出不遜言
지금 한밤중에 앉아 생각건대 / 至今坐中夜
중원에 사람이 그리도 없던가 / 中原無人乎
으뜸 발탁이 그대 어찌 가당하랴 / 首擢君豈可
문장은 도덕에서 나오는 것이요 / 文章出道德
성정은 중하와 이적이 똑같나니 / 性情均夷夏
자상은 의당 다시 생각할지어다 / 子翔當更思
어이해 송의 사직을 받든단 말가 / 夫何屋宋社
천명은 진실로 아득한 것이거니 / 天命苟悠悠
왜 꼭 초야에서 일어나야 하는가 / 何須起草野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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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은 어이 그리 광대한고 / 中原何茫茫
성인이 경영하는 바이로다 / 聖人所經營
안이 자상해야 밖을 간략케 하나니 / 詳內乃略外
다스리는 도가 절로 규정이 있도다 / 治道自有程
사해는 하도 커서 가이 없고 / 四海大無畔
백성들은 수많은 생명이로다 / 黔首蒼蒼生
인한 마음은 본래 두루 덮어서 / 仁心本徧覆
만물을 모두 아울러 감싸건만 / 有物皆包幷
멀고 가까움은 입장이 본디 달라 / 遠近體固異
형세가 경중으로 나누일 뿐이네 / 勢似分重輕
넓고 넓은 하늘이 위에 있어 / 浩浩天在上
사시를 차례대로 운행하기에 / 四時鱗次行
재앙과 상서는 사람의 일에 달려 있고 / 災祥在人事
그림자 메아리는 형체 소리 말미암거니 / 影響由形聲
인애함을 어찌 잠시라도 그칠쏜가 / 仁愛肯少輟
해와 달은 항상 갈음하여 밝다네 / 日月恒代明
천명 받듦은 성주에게 달려 있으니 / 奉天在聖主
지극한 태평에 오름을 찬송하노라 / 歌頌登至平
[주D-001]해와 …… 밝다네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30장에서 성인(聖人)의 덕을 일러, “비유하자면 사시가 갈음하여 운행하는 것과 같고, 해와 달이 갈음하여 밝은 것과 같도다.[辟如四時之錯行 如日月之代明]” 한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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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속세에 이 인생을 부쳐 있노니 / 塵世悠悠寄此生
한 거문고 한 학도 모두 귀찮기만 하네 / 一琴一鶴儘營營
문 닫고 높이 누우니 마음 더욱 깨끗하고 / 閉門高枕心逾淨
땅 쓸고 향불 사르니 꿈 또한 맑아지누나 / 掃地焚香夢亦淸
후일에 사관이 번거로이 올려 보낼 것은 / 他日史官煩上送
소년 시절 서쪽 간 일 기록한 시고이리라 / 少年詩藁錄西征
눈송이는 처마 앞에 자리처럼 내리는데 / 雪花如席簷前落
편히 앉아 읊조리며 성명께 감사하노라 / 穩坐高吟謝聖明
해 저문 강산에 이 백발의 늙은 인생은 / 歲晚江山白髮生
다시는 공명 얻고자 일부러 꾀하지 않으리 / 功名不復費經營
왕의 교화는 태평하여 끝없이 멀리 미치고 / 王風玉燭無涯遠
시의 풍격은 빙호와 같아 바닥까지 맑도다 / 詩格氷壺徹底淸
금석엔 공을 칭송해라 북벌의 일이 전할 게고 / 金石頌功傳北伐
토벌한 덕을 기념해라 동정의 일을 노래하리 / 斧斨紀德詠東征
한가함 속에 문학은 쓸데없는 게 아니거니 / 閑中文學非無用
공씨의 밝은 산정만을 오로지 의거하련다 / 刪定專憑孔氏明
세월은 흘러흘러 내 반평생이 지났는데 / 流光袞袞半吾生
고각 소리는 군영으로부터 자주 들리네 / 鼓角頻聞細柳營
책문을 쏘아라 삼급의 높음은 일찍 알았고 / 射策早知三級峻
전토를 내려라 십분 청명함은 이제 보았네 / 賜田方見十分淸
기린 얻은 춘추엔 순수할 일이 더 없으니 / 獲麟魯史無西狩
학 타고 저 봉래산이나 올라가고 싶어라 / 駕鶴蓬山欲上征
시구마다 읊조리매 마음속은 산란한데 / 句句吟來心緖亂
북녘 바람이 밝은 창 앞에 눈을 불어오누나 / 朔風吹雪小窓明
[주D-001]한 거문고 한 학(鶴) : 송(宋)나라 조변(趙抃)이 성도 전운사(成都轉運使)로 부임할 적에 몸에 딸린 것이라고는 거문고 하나와 학 한 마리였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청렴한 관직 생활을 의미한다.
[주D-002]후일에 …… 시고(詩藁)이리라 : 여 기서 서쪽 간 일이란 바로 목은이 소년 시절에 제과(制科) 응시 등 여러 가지 일로 중국을 왕래했던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후일 왕명(王命)에 의해 목은의 유고(遺藁)를 바치게 될 경우에는 목은이 일찍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지은 시고가 올려질 것이라는 뜻이다.
[주D-003]북벌(北伐)의 일 : 고려 말기에 행해졌던 요동 정벌을 가리킨다.
[주D-004]동정(東征)의 일 : 고려 시대 원(元)나라가 일본을 치기 위해 고려에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을 설치하고 여원 연합군(麗元聯合軍)으로 수차에 걸쳐 일본 정벌을 시도했던 일을 가리킨다.
[주D-005]공씨(孔氏)의 밝은 산정(刪定) : 공자(孔子)가 일찍이 시서를 산삭하고 예악을 제정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6]책문(策問)을 …… 알았고 : 책 문을 쏜다는 것은 곧 옛날 과거(科擧)를 보일 때 경서(經書)의 의의(疑義)나 시무책(時務策)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여러 개의 댓조각에 하나씩 써서 죽 늘어놓고 응시자로 하여금 하나씩 쏘아 맞히게 하여 그 댓조각에 나온 문제에 대해서 답안을 쓰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삼급(三級)이란 바로 황하강(黃河江) 상류에 있는 용문(龍門)의 세 계단으로 된 폭포를 가리키는데, 강해(江海)의 대어(大魚) 수천 마리가 그 밑에 모여서 그곳을 뛰어올라가는 놈만 용(龍)이 된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과거에 급제한 것을 의미한다.
[주D-007]기린 …… 없으니 : 노 애공(魯哀公) 14년 봄에 서쪽으로 사냥하여 기린을 잡은 일이 있자, 공자가 기린이란 성왕(聖王)의 아름다운 상서인데 성왕이 없는 세상에 나왔다가 잡혀 죽음으로써 끝내 주(周)나라의 도(道)가 흥기하지 못할 것을 몹시 마음 아프게 생각하여 마침내 《춘추(春秋)》를 짓기 시작해서 “애공 14년 봄에 서쪽으로 사냥하여 기린을 얻다.[哀公十四年春 西狩獲麟]”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춘추》의 집필을 끝내버린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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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 이르고 하도가 나옴은 문명의 상서라 / 鳳至圖出文明祥
천지 기수와 성인 공화가 모두 양양했는데 / 氣運聖化俱洋洋
바다로 흘러든 물은 가서 안 돌아오거니와 / 水流入海去不返
세도는 그 언제나 요순 시대를 회복할런고 / 世道何日回虞唐
백발의 이 서생은 애가 타서 못 견디겠네 / 白頭書生九回腸
인심은 예나 지금이 조금도 다를 것 없어 / 人心無古亦無今
가슴속에 하늘땅이 혁연히 임해 있건만 / 方寸赫然天地臨
털끝만 한 사욕도 자라면 제거하기 어려워 / 一萌私欲蔓難圖
황폐한 지 오래되면 가시덤불이 깊어지고 / 蕪翳百年荊棘深
오랜 뒤엔 예천 주초가 다 숨어 버리나니 / 醴泉朱草久矣藏
조양에서 날개 치며 우는 봉을 어찌 바라랴 / 豈望翽翽鳴朝陽
아 예를 회복하는 건 하루에 달려 있거니와 / 嗚呼復禮在一日
천하가 인에 돌아가면 할 일이 끝난 거로세 / 天下歸仁能事畢
[주C-001]복례음(復禮吟) : 예 를 회복하는 것에 대하여 읊은 시이다. 안연(顔淵)이 인(仁)을 물으니, 공자가 이르기를, “사욕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니, 하루라도 사욕을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1]봉(鳳)이 …… 상서라 : 순 (舜) 임금 때에는 봉황(鳳凰)이 와서 춤을 추었고, 문왕(文王) 때에는 봉황이 기산(岐山)에서 울었으며, 복희씨(伏羲氏) 때에는 하수(河水)에서 용마(龍馬)가 팔괘(八卦)의 근원이 된 그림을 등에 지고 나왔던바, 이들은 모두 성왕(聖王)의 상서였으므로, 공자가 일찍이 이르기를, “봉새가 오지 않고 하수에서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나의 도는 이제 그만이로다.[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 하였는데, 그 집주(集註)에 의하면, 장재(張載)가 말하기를, “봉황이 오고 그림이 나온 것은 문명(文明)의 상서이다.” 하였다.
[주D-002]예천(醴泉) 주초(朱草) : 예천은 단맛이 나는 샘물을 말하고, 주초는 서초(瑞草)의 한 가지인데, 이들은 모두 상서(祥瑞)의 조짐으로 전한다.
[주D-003]조양(朝陽)에서 …… 봉(鳳) : 《시 경》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새가 날아서 날개를 탁탁 치네.……봉황새가 울어대니, 저 높은 언덕이로다. 오동나무가 나서 자라니, 저 볕바른 산이로다.[鳳凰于飛 翽翽其羽……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봉황은 현사(賢士)를 비유한 것이다.
민 총랑(閔摠郞)이 후소(後蘇)의 지도를 가지고 와서 또 말하기를, “전우(殿宇)의 유지(遺址)가 완연하고 산수(山水)의 형세도 글에 기재된 내용과 서로 합치한다.”고 하므로, 기뻐서 이를 기록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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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시찰은 처음에 육록편을 의거했는데 / 相地初憑六錄篇
그림 바친 오늘엔 서연을 훤하게 하누나 / 獻圖今日敞書筵
산하의 좋은 땅은 그리 많지 않은 건데 / 山河勝地無多子
전우의 예전 터가 아직까지 완연하구려 / 殿宇遺基尙宛然
나라는 중흥되고자 성주를 탄강시켰고 / 國欲中興生聖主
하늘은 후진들을 전현처럼 길러내었네 / 天敎後進似前賢
구름 깊은 곳 돌더렁밭 띳집에 살면서 / 石田茅屋雲深處
때때로 필마 타고 시가를 들어가기도 하리 / 匹馬時時入市廛
[주D-001]육록편(六錄篇) : 신 라 말기의 고승인 옥룡자(玉龍子) 도선이 지었다고 하는 《옥룡비기》를 가리키는데, 그 내용이 옥룡자십승지지비결(玉龍子十勝之地祕訣), 십승지지외론보신산수지소(十勝之地外論保身山水之所), 옥룡비결(玉龍祕訣), 옥룡자기(玉龍子記), 옥룡자시(玉龍子詩), 옥룡자청학동결(玉龍子靑鶴洞訣) 등 6편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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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의 분분함은 고금이 마찬가지려니와 / 世道紛紛自古今
청구 한 경계는 바다와 산이 유독 깊은데 / 靑丘一境海山深
나라 다스리는 법칙은 조정에 담겨 있고 / 經邦典則藏天府
국가 빛내는 문장은 한림이 우뚝하구려 / 華國文章聳翰林
적막한 반평생은 일손 놓기에 능했거니와 / 寂寞半生工縮手
유랑할 땐 몇 곳에서 남몰래 맘 상했던고 / 流離幾處暗傷心
얼음 눈을 따뜻이 녹일 줄을 응당 알겠네 / 須知氷雪溫溫煦
일찍이 무더위가 무쇠도 녹이려 했지 않나 / 曾是炎蒸欲爍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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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이 높은 담장에 오른 송골매를 잡으니 / 先王射隼登高墉
송악산에 푸른 솔이 우뚝함을 재차 보겠네 / 再見鵠嶺浮靑松
병든 신하 가엾게 여기고 가득참 경계하여 / 憐臣抱病戒盈滿
대광을 특별히 내리고 한산에 봉작하시니 / 大匡特賜韓山封
안심하고 조석으로 탕약을 마시고 있지만 / 安心朝夕仰湯藥
거울 속엔 이따금 쇠한 얼굴이 비참도 한데 / 鏡裏往往悲衰容
상의 은총은 거듭 이르러 몸을 흠뻑 적셔라 / 上恩洊至浹肌骨
국사 담당관의 승진에 삼중까지 더해졌네 / 進領史事加三重
아무리 생각해도 보답할 계책 전혀 없으니 / 沈思報答百無計
청컨대 화축 본받기를 가슴속에 새기리다 / 請效華祝銘心胸
밝디밝은 해와 달은 높은 하늘 멀리 있고 / 明明日月九霄迥
봉래산의 구름 기운은 나는 용을 따르누나 / 蓬萊雲氣隨飛龍
용사들은 열 지어 멀끔한 창날을 휘두르고 / 爪牙布列麾白矛
문물 제도를 개혁할 땐 황종을 울리도다 / 文章損益鳴黃鐘
오동엔 장차 덕을 살피는 봉이 깃들 게고 / 梧桐將棲覽德鳳
서릿바람은 매섭게 쏘는 벌을 곧 쓸어버리리 / 霜風直掃辛螫蜂
늙은 신하는 문을 닫고 공덕을 찬송하노니 / 老臣閉戶誦功德
내가 친히 요순을 만난 게 얼마나 다행한가 / 何幸堯舜躬親逢
[주C-001]봉요가(逢堯歌) : 요 임금 같은 성군(聖君)을 만난 데 대하여 노래한다는 뜻이다.
[주D-001]선왕(先王)이 …… 잡으니 : 《주 역》 해괘(解卦) 상육(上六)에, “상육은 공이 높은 담장 위의 송골매를 쏘아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上六 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패역스로운 소인(小人)들을 제거하여 천하를 평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화축(華祝) : 요(堯) 임금이 일찍이 화(華) 땅을 시찰할 적에 화 땅의 봉인(封人)이 아뢰기를, “아, 청컨대 성인(聖人)을 축복하노니, 성인께서는 수(壽)하고 부(富)하고 다남자(多男子)하소서.”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황종(黃鐘)을 울리도다 : 황 종은 십이율려(十二律呂)의 기본이 되는 음으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이므로, 《초사(楚辭)》 복거(卜居)에서 군자(君子)가 배척되고 소인(小人)이 득세하는 것을 비유하여 “황종은 버림을 받고, 질솥은 우레처럼 울린다.[黃鐘毁棄 瓦釜雷鳴]”고 한 데서 온 말이니, 여기서 황종을 울린다는 것은 군자가 중용(重用)됨을 의미한다.
[주D-004]오동(梧桐)엔 …… 게고 : 가 의(賈誼)의 〈조굴원부(弔屈原賦)〉에, “봉황은 천 길의 하늘을 날다가, 성군의 덕이 빛남을 살피고 내려온다네.[鳳凰翔于千仞兮 覽德輝而下之]” 한 데서 온 말로, 군자가 난세(亂世)에는 세상에 나가지 않고 숨었다가 성군(聖君)이 나온 뒤에야 세상에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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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라 역사 춘추는 동천을 이었는데 / 春秋魯史繼東遷
오월 황지의 일로써 이미 편을 끝내었네 / 吳越黃池已絶篇
상령의 봉이 와선 사백 년을 연장시켰고 / 商嶺鳳來延四百
진궁의 개 도둑은 삼천 명을 압도했다지 / 秦宮狗盜蓋三千
벽 속은 시서에 먼지가 자욱한 날이었고 / 壁間塵暗詩書日
면체는 예악이 연기에 묻힌 하늘이었네 / 綿蕝煙埋禮樂天
순전의 오현금은 끝내 적막하기만 하고 / 舜殿五絃終寂寞
시골 노래와 젓대 소리만 정히 시끄럽구나 / 村歌野笛政紛然
[주D-001]노(魯)나라 …… 이었는데 : 동 천(東遷)은 주 유왕(周幽王)이 무도하여 견융(犬戎)에게 살해되자 그의 아들인 평왕(平王)이 견융을 피하여 호경(鎬京)에서 동쪽 낙읍(洛邑)으로 도읍을 옮긴 것을 가리킨다. 공자(孔子)는 노나라 역사인 《춘추(春秋)》를 저술하면서 주 평왕(周平王)이 동천한 지 40여 년 뒤인 노 은공(魯隱公) 원년으로부터 애공(哀公) 14년에 이르기까지의 242년간의 일을 기술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오월(吳越) …… 끝내었네 : 《춘 추》 애공 13년의 기사(紀事)에 의하면, 여름에 애공이 진 정공(晉定公), 오왕(吳王) 부차(夫差) 등과 황지(黃池)에서 회담(會談)을 가졌는데, 이때 마침 월(越)나라가 오(吳)나라를 쳐서 대패(大敗)시킨 일을 기록하였는바, 바로 그다음 해인 애공 14년 봄에 기린을 얻은 일로 말미암아 《춘추》의 집필을 끝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상령(商嶺)의 …… 연장시켰고 : 상 령은 상산(商山)의 별칭이고, 봉(鳳)은 곧 현인(賢人)을 일컫는 말로, 한 고조(漢高祖)가 만년에 척씨 부인(戚氏夫人) 소생인 조왕(趙王) 여의(如意)로 태자(太子)를 바꿔 세우려고 할 적에 장량(張良)의 계책에 의하여 일찍이 상산에 은거(隱居)했던 네 노인, 즉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을 초빙하여 효혜태자(孝惠太子)를 잘 보필하게 하여 끝내 태자를 바꾸지 못하게 함으로써 한(漢)나라가 전한(前漢), 후한(後漢)을 통틀어 400여 년의 국명(國命)을 누리게 되었음을 이른 말이다.
[주D-004]진궁(秦宮)의 …… 압도했다지 : 전 국 시대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의 문객(門客)은 모두 3000여 명이나 되었는데, 맹상군이 일찍이 진(秦)나라에 들어갔다가 혹인(或人)의 참설(讒說)에 의하여 갇혀 죽게 되었을 때, 그 문객 가운데 마치 개처럼 도둑질하는 데에 유능한 사람과 닭 울음소리를 잘 흉내 내는 사람이 있어, 이 두 사람 때문에 맹상군이 잡혀 죽지 않고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던바, 이로 말미암아 앞서 이 두 사람과 동렬(同列)에 있기를 부끄럽게 여겼던 나머지 3000여 명의 문객들이 이때에 와서 모두 이 두 사람에게 굴복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벽 속은 …… 날이었고 : 노 공왕(魯共王)이 궁실(宮室)을 넓히려고 공자의 옛집을 헐다가 벽 속에서 《고문상서(古文尙書)》, 《예기(禮記)》 등 여러 가지 고문 경전(古文經傳)을 발굴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면체(綿蕝)는 …… 하늘이었네 : 면 체는 한 고조(漢高祖) 때 숙손통(叔孫通)이 야외(野外)에서 예(禮)를 익힐 적에 띠풀을 베어 묶어서 죽 세워 존비(尊卑)의 차례를 표시했던 것을 가리키는데, 숙손통이 이 일을 행하기에 앞서 노나라의 유생(儒生) 30여 인과 함께 하려고 그들을 부르자, 그중에 유독 두 유생이 참예하기를 거절하며 말하기를, “백 년을 적덕(積德)한 다음에야 예악(禮樂)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니, 나는 차마 공의 일에 참예하지 못하겠다. 공이 하는 예악은 옛것에 부합하지 못하니, 나는 가지 않겠다. 나를 더럽히지 말라.” 하였다고 한다.
[주D-007]순전(舜殿)의 오현금(五絃琴) : 순 (舜) 임금이 맨 처음 오현금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南風)〉 시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 노래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노염을 풀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하리로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한 것을 이른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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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고하던 당년에 오랫동안 문에 기댔어라 / 勤苦當年久倚閭
상제를 마치려고 묘 곁에 여막을 지었는데 / 欲終憂制墓傍廬
성상의 조칙에도 판결을 바꾸기가 어려워 / 綸言天陛難移判
조정에 공연히 충심의 글만 올렸을 뿐이네 / 血懇都堂謾上書
가을달 봄바람 속에 안색은 초췌해지고 / 秋月春風顔色悴
조석 반찬 부추 소금에 치아는 듬성도 해라 / 暮鹽朝薤齒牙疏
다만 적선한 나머지의 복을 받은 때문에 / 只緣積善流餘慶
올해 둘째 아들에게 좋은 벼슬 제수되었네 / 仲子今年有美除
끝없는 동해가 한없이 미려로 빠져 나가듯 / 東海無涯洩尾閭
앓고 나선 욕심도 많아 궁려에서 탄식하네 / 病餘多欲嘆窮廬
회포는 잔뜩 커서 자주 술을 불러 마시고 / 情懷磊落頻呼酒
시력은 흐릿하여 글 읽기를 게을리하네 / 目視昏花懶讀書
누각 밑 흰 구름 속엔 산이 희미하게 비치고 / 樓下白雲山隱映
뜰 안의 푸른 이끼 속엔 나무가 무성하구나 / 庭中蒼蘚樹扶疎
남쪽으론 가는 곳마다 몸을 의탁할 만한데 / 南游到處堪棲托
올해도 못 돌아가고 한 해가 또 저물어가네 / 未賦歸歟歲又除
[주D-001]근고하던 …… 기댔어라 : 문에 기댔다는 것은 곧 모친이 문에 기대서서 밖에 나가 있는 자식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즉 목은 자신이 조정에 나가 벼슬할 적에 모친만 홀로 시골집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주D-002]성상의 …… 어려워 : 조 정에 나오라는 임금의 권유가 간절했으나 나가지 않았음을 뜻한다. 판결(判決)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은 곧 당(唐)나라 때 이원굉(李元紘)이 옹주 사호참군(雍州司戶參軍)으로 있을 적에 당시 세력이 천하를 진동하던 태평공주(太平公主)가 맷돌을 가지고 불법으로 백성과 다투는 일이 있어, 이원굉이 그 맷돌을 백성에게 돌려주도록 판결을 작성했는데, 장사(長史) 두회정(竇懷貞)이 크게 놀라서 그 판결을 고치려고 하자, 이원굉이 그 판결문 뒤에다 크게 쓰기를, “남산은 옮길 수 있어도 판결한 죄안은 흔들 수 없다.[南山可移 判不可搖]”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미려(尾閭) : 바닷물이 쉴 새 없이 바다 밖으로 새어나간다는 구멍을 말한다.
옛 놀이를 추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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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마주해 말을 잊고 석양에 이르러라 / 相對忘言到落暉
매양 아이가 사립에서 기다린 게 가련했네 / 每憐稚子候柴扉
산중에 길은 어둡고 이슬조차 많은 때에 / 山中路暗仍多露
고상한 사람의 짚신을 빌려서 돌아왔었지 / 借得高人不借歸
아침 햇살 등지고 띠 처마 밑에 홀로 앉으니 / 茅簷獨坐負朝暉
강촌 물이 사립 중동에 찬 게 문득 생각나네 / 忽憶江村水半扉
큰 고기 잡은 어부는 자주 크게 외치면서 / 得雋漁師頻大叫
석양에 푸른 삿갓 벗어젖히고 돌아왔었지 / 夕陽披却綠簑歸
아득한 이 강산에 또 저녁 해는 비꼈어라 / 江山渺渺又斜暉
백발의 이 몸은 연래에 홀로 사립 닫았는데 / 白髮年來獨掩扉
어찌 뜻했으랴 뿌연 먼지가 얼굴 때릴 제 / 豈意軟紅塵撲面
문득 파리한 말 타고 조정에 갔다 올 줄을 / 却騎瘦馬赴朝歸
[주D-001]말을 잊고 : 대화를 하지 않고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는 깊은 우의(友誼)를 뜻한다.
천녕(川寧)을 읊다. 이는 돌아가기를 생각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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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은 산중의 사립문을 적시고 / 露濕山中扉
바람은 강가의 배에 불어오는데 / 風吹江上舲
훌쩍 왔다가 또 가기도 하고 / 飄然來又往
간혹 취했다 또 깨기도 하네 / 偶爾醉還醒
달이 떠오르니 파도는 하얗고 / 月出波濤白
구름 걷히니 솔과 계수는 푸르러라 / 雲收松桂靑
마음을 쓰면 참 운치를 잃나니 / 安排失眞趣
정녕스레 나를 부르지 말아다오 / 招喚莫丁寧
중이 와선 흔히 가르침을 청하고 / 逢僧多問字
손 보낼 땐 혹 돛을 걸기도 하네 / 送客或揚舲
귀가 어두우니 항상 웃음은 많고 / 耳憒恒多笑
마음이 맑으니 본래 홀로 깨어라 / 心淸故獨醒
긴 강물은 한줄기가 푸르른데 / 長江一條碧
첩첩 봉우린 몇 층이나 푸르른고 / 疊巚幾層靑
시골 흥취를 수습하기 어렵거니 / 野興難收拾
어느 때나 곧장 천녕으로 갈거나 / 何時直往寧
나막신 신고서 산사에 노닐고 / 著屐游山寺
낚싯줄 드리우고 배에 앉아라 / 垂絲坐野舲
읊은 시는 동야처럼 파리하나 / 吟如東野瘦
미친 태도는 깬 차공과 같으리 / 狂似次公醒
나무 빛은 구름 속에 푸를 게고 / 樹色雲中綠
하늘 모습은 물 밑에 맑을 텐데 / 天容水底淸
어떤 이가 애써 생각을 잘 내서 / 何人煩意匠
천녕에 있는 내 모습을 그려 줄꼬 / 畫我在川寧
[주D-001]읊은 …… 파리하나 : 동 야(東野)는 당(唐)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자이다. 소식(蘇軾)이 일찍이 당나라 시인들의 시풍(詩風)을 평론하여 말하기를, “원진은 가볍고, 백거이는 속되며, 맹교는 한빈하고, 가도는 파리하다.[元輕白俗 郊寒島瘦]”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맹교와 가도를 잘못 혼동하여 쓴 듯하다.
[주D-002]미친 …… 같으리 : 차 공(次公)은 한(漢)나라 개관요(蓋寬饒)의 자인데, 그가 일찍이 평은후(平恩侯) 허백(許伯)의 주연(酒宴)에 참석하여 말하기를, “나에게 술을 많이 권하지 말라. 나는 바로 술미치광이다.”라고 하자, 곁에 있던 승상(丞相) 위후(魏侯)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차공은 깨어 있어도 미친 사람인데, 하필 술을 마셔야 미친단 말인가.”라고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어제저녁에 마을의 불량배가 우리 집에서 기르는 개를 활로 쏘았으므로, 그 화살을 뽑아 버렸으나, 밤중에 죽고 말았다. 개의 죽음을 슬피 여겨 이렇게 기록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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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개가 연래에 사립문을 지키면서 / 黃狗年來守蓽門
적막한 대낮부터 황혼까지 계속했는데 / 寥寥白晝到黃昏
꼬리 흔들며 손 따라간 적은 행여 없었고 / 不曾搖尾隨賓客
편지 전하여 형제간에 알리려고만 했었네 / 祗欲傳書報弟昆
갑자기 당한 앙화는 제가 지은 게 아니거니 / 一旦禍機非自蹈
다생의 묵은 빚을 누구와 함께 논할거나 / 多生宿債與誰論
온 집안이 어진 마음으로 탄식을 하는지라 / 闔家嘆惜仁心在
붓 잡고 끝없이 위하여 원통함 씻어 주노라 / 把筆無端爲洗冤
[주D-001]다생(多生) : 불교 용어로, 중생들이 선악(善惡)의 업(業)을 지음으로 인하여 윤회(輪廻)의 고통을 받아서 생사(生死)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말한다.
팔관회(八關會)에 순마(巡馬)가 매우 성대했다는 말을 듣고 이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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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군은 예로부터 성대했건만 / 禁軍從古盛
순마는 오늘에야 많아졌도다 / 巡馬乃今多
철창은 저들끼리 서로 스치고 / 鐵槊自磨戞
갖옷은 차등 없이 모두 같았네 / 毛衣無等差
넓은 마당은 몽땅 다 둘러싸았고 / 廣庭包欲盡
큰 예식은 치우침 없이 갖췄는데 / 大禮備無頗
높은 층계 위에서 바라만 봤으니 / 矯首浮堦上
나의 쇠해진 몰골을 어찌할거나 / 吾衰可柰何
[주C-001]순마(巡馬) : 고려 때 방도 금란(防盜禁亂)의 일을 관장했던 관청인 순마소(巡馬所)의 말을 가리킨다.
전려(田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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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의 시골집은 작은 창이 그윽한데 / 田廬馬邑小窓幽
가까운 수루에서 고각 소리 전해 오네 / 鼓角聲傳近戍樓
베틀 위의 등잔불은 밤일 하기에 알맞고 / 機上燈明宜夜作
와상 머리 익은 술은 추수하기도 좋아라 / 床頭酒熟好秋收
남쪽 마을 노인과는 함께 낚싯줄 드리우고 / 南村叟共垂絲釣
북쪽 절 스님은 불러 촛불 밝히고 노니네 / 北寺僧邀秉燭游
다시 천녕에 가서 별장을 열어야겠네 / 更向川寧開別墅
강산 가는 곳마다 돌아가 쉴 만할 테니 / 江山到處可歸休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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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백 년이 허둥지둥 마치 꿈속만 같아 / 百年鼎鼎夢魂間
술을 만나면 우선 스스로 위로할 뿐이네 / 樽酒相逢且自寬
후미진 곳에 병조차 깊어 내왕하는 이는 적고 / 地僻病深來往少
가난한 집에 벼슬은 높아 가고 멎기도 어렵네 / 家貧官大去留難
산중의 스님과 대화하는 건 그대로이거니와 / 山中僧話依然在
강가에 은거할 꿈은 저버린 지 하 오래로세 / 江上鷗盟久矣寒
토전을 하사받아 돌아가기도 정말 좋거니 / 賴賜土田歸正好
벽라의 밝은 달은 흰 구름 끝에 비추리라 / 薜蘿明月白雲端
두어 칸 초가집에 세 길은 황량한데 / 三逕荒涼屋數間
병든 몸에 허리띠는 날로 헐렁해지네 / 病軀帶眼日來寬
반평생 동안 평상의 빚은 면치 못하나 / 半生不免尋常債
무리 떠나니 크고 작은 어려움은 없구려 / 獨立曾無大小難
어찌 문장이야 옥같이 깨끗하리오마는 / 豈有文章如玉潔
다만 관패가 금한을 꺼리는 건 아노라 / 祗知冠佩忌金寒
중화의 기는 넘쳐서 원래 흠결이 없나니 / 中和洋溢元無欠
다만 명성 갖고 양단을 증험할 뿐이네 / 只把明誠驗兩端
[주D-001]벽라(薜蘿)의 밝은 달 : 등라(藤蘿) 사이로 비추는 밝은 달빛을 이르는 말로, 은자(隱者)가 거주하는 곳을 의미한다.
[주D-002]세 길은 황량한데 : 도 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길은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있도다.[三逕就荒 松菊猶存]” 한 데서 온 말이다. 세 길은 은사(隱士)의 집을 뜻하는데, 한(漢)나라 때 장후(蔣詡)가 일찍이 벼슬을 버리고 향리(鄕里)에 은둔하여 뜰에다 세 길을 내놓고 오직 구중(求仲), 양중(羊仲) 두 친구하고만 종유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평상의 빚 : 두보(杜甫)의 〈곡강(曲江)〉 시에, “술빚은 평상 가는 곳마다 있거니와, 인생의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다네.[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어찌 …… 깨끗하리오마는 : 당(唐)나라 이한(李漢)의 〈창려문집서(昌黎文集序)에〉, “태양처럼 빛나고 옥같이 깨끗하며, 주공의 뜻이요 공자의 생각이다.[日光玉潔 周情孔思]”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다만 …… 아노라 : 관 패(冠佩)는 의관(衣冠)과 패옥(佩玉)을 가리키고, 금한(金寒)은 금이 차다는 뜻이다. 춘추 시대 진 헌공(晉獻公)이 태자(太子) 신생(申生)을 시켜 동산(東山)의 고락씨(皐落氏)를 치러 보낼 때에, 태자에게 잡색(雜色)의 옷을 입히고 금(金)으로 만든 결(玦)을 차게 하자, 대부(大夫) 호돌(狐突)이, “잡색의 옷을 입히고 금으로 만든 결을 차게 한 것은 곧 임금이 태자를 멀리하려는 뜻에서이고, 또 금은 찬 물건이고 결은 이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임금의 마음을 믿을 수가 없다.”고 탄식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명성(明誠) : 《중용장구(中庸章句)》에 이른바, 선을 밝힌다[明善], 몸을 성실히 한다[誠身]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7]양단(兩端) : 몸은 도성에 있으나 마음은 향리에 있음을 의미한다.
구씨(舅氏)를 위하여 연정기(蓮亭記)를 짓고, 인하여 이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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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향정기를 겨우 지어 이루긴 했으나 / 淸香亭記僅成篇
병든 뒤의 문장이 어찌 전할 만하리오 / 病後文章豈可傳
나의 고심을 후학에게 밝히긴 부끄럽고 / 愧我苦心明後學
군의 맑은 덕이 전현을 이음은 부러워라 / 羨君淸德繼前賢
바람에 펄럭이는 연잎은 이슬방울 기울이고 / 風翻翠蓋傾珠露
아침 햇살 비친 연꽃은 흰 연기를 끌어오네 / 日照紅粧曳素煙
부질없이 염계가 홀로 사랑했다 말하지만 / 漫說濂溪曾獨愛
함창에도 이렇듯 뛰어난 선경이 있다오 / 咸昌別有洞中天
[주C-001]구씨(舅氏) : 중대광(重大匡) 함녕군(咸寧君)에 봉해진 목은의 외삼촌 김요(金饒)를 가리킨다.
[주D-001]청향정기(淸香亭記) : 목은이 외삼촌의 부탁을 받고 이 기문(記文)을 지었었다.
[주D-002]부질없이 …… 말하지만 : 염계(濂溪)는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호인데, 그의 〈애련설(愛蓮說)〉에 의하면, 자신은 유독 연(蓮)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또 연은 꽃 가운데 군자(君子)라고 예찬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함창(咸昌) : 목은의 외가가 있던 곳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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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설이 태평한 때에 팔관회 의식 거행할 제 / 八關氷雪太平時
술 힘으로 몸 일으켜 대궐 뜰에 예배하노라 / 酒力扶人拜紫墀
의장에 들어 반열 정제하매 바람은 솔솔 불고 / 入仗齊班風細細
교지 전하여 우산을 내려라 비는 실실 뿌리네 / 傳宣下傘雨絲絲
주정은 역법을 바로잡아 천통을 열었었고 / 周正紀曆天開統
한체는 의례를 닦아 임금이 기업 시작했네 / 漢蕝修儀帝創基
다시 연등회의 명기 모인 주연이 열리거든 / 更有燃燈名妓會
후일 병든 이 신하도 행여 자리 함께할는지 / 病臣他日幸追隨
연일의 목빙으로 시절에 상심이 갑절이라 / 木氷連日倍傷時
남쪽 창 앞에 홀로 앉아 대궐 뜰을 생각하네 / 獨坐南窓想玉墀
꿈속의 한 마음은 아직도 처음 마음이건만 / 夢裏一心猶是境
병중의 두 귀밑은 이미 흰 실을 이루었구나 / 病中雙鬢已成絲
붓은 뽑아서 사직의 진정표를 초하려 하고 / 抽毫欲草陳情表
사물은 궁구해 적덕의 기반을 꾀하려노니 / 格物將營積德基
얇은 얼음 밟듯 지금까지 조심조심한 곳에 / 履薄至今兢戰處
봄바람의 온화한 기운이 절로 서로 따르리 / 春風和氣自相隨
[주D-001]주정(周正)은 …… 열었었고 : 주 정은 주나라의 정삭(正朔)을 가리키는 말로, 즉 자월(子月)인 11월을 말하고, 천통(天統)은 역시 주나라의 정삭을 이른 말로, 예를 들면 인월(寅月)인 하정(夏正)은 인통(人統)에 해당하고, 축월(丑月)인 상정(商正)은 지통(地統)에 해당하며, 자월인 주정은 곧 천통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곧 팔관회를 거행한 달이 11월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주D-002]한체(漢蕝)는 …… 시작했네 : 체 (蕝)는 면체(綿蕝)의 준말로, 한 고조(漢高祖) 초기에 숙손통(叔孫通)이 의례(儀禮)를 익히기 위해 띠[茅]를 베어 묶어서 차례대로 죽 세워 존비(尊卑)의 위차를 표시했던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을 기초로 하여 한나라의 의례가 마련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목빙(木氷) : 나무에 젖은 빗물이 한기(寒氣)를 만나서 결빙(結氷)이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한절(寒節)이 지난 때에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경우 이것을 재변이라 하여 《춘추(春秋)》에서도 기록하였다.
스스로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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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는 쉬지 않고 운행하는데 / 亹亹玄機轉
백업은 아득히 희미하기만 해라 / 茫茫白業迷
마음은 미쳐서 물불로 뛰어들고 / 心狂投水火
자취는 방탕해 천지를 오르내리네 / 跡蕩等雲泥
국가 보좌엔 미련한 자식을 책하지만 / 輔國責愚子
가정 다스림엔 늙은 아내가 어여뻐라 / 持家憐老妻
그 누가 알리요 은거하는 이들이 / 誰知高隱者
끝내는 백이 숙제만 못하다는 걸 / 終不似夷齊
조시엔 먼지가 아직도 캄캄한데 / 朝市塵猶暗
산림엔 가는 길이 헷갈리려 하네 / 山林路欲迷
세월은 복력을 감수해야거니와 / 星霜甘伏櫪
천둥 번개는 반니에 아끼는구려 / 雷電惜蟠泥
세력 떠나니 찾아오는 손은 없으나 / 勢去門無客
마음 편함은 아내가 있기 때문일세 / 心安室有妻
향불 피우고 삼축을 본받노니 / 焚香效三祝
성상의 수는 하늘과 가지런하소서 / 聖壽與天齊
마음 바룸은 처음부터 청결했건만 / 正心初潔淨
일을 만나면 도리어 혼미해지네 / 遇事却昏迷
그림자가 보임은 거울 때문이려니와 / 影見知懸鏡
형체 있는 건 진창의 발자국 같다오 / 形存似印泥
그루터기 지켜 토끼도 기다리지만 / 守株應待兔
집 옮기고 혹 아내는 잊기도 하네 / 徙室或忘妻
이런 병통을 모두 다 없애 버려서 / 此病皆消盡
내가 공평하면 사물도 가지런해지리 / 衡平物自齊
[주D-001]백업(白業) : 불교 용어로, 선업(善業)과 같은 뜻이다.
[주D-002]복력(伏櫪) : 삼 국 시대 조조(曹操)의 시에, “늙은 준마는 마판에 엎드려 있어도 뜻은 천 리 밖에 있고, 열사는 늘그막에도 장대한 마음은 그치지 않는다.[老驥伏櫪 志在千里 烈士暮年 壯心不已]”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큰 뜻을 펴지 못하고 칩거하는 것을 비유한다.
[주D-003]천둥 …… 아끼는구려 : 반니(蟠泥)는 진흙 속에 서려 있는 용(龍)을 가리키는데, 용은 반드시 천둥 번개와 비바람을 타야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므로, 전하여 재능을 발휘할 계제가 이루어지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4]삼축(三祝) : 요(堯) 임금이 일찍이 화(華) 땅을 시찰할 적에 화 땅의 봉인(封人)이 아뢰기를, “아, 청컨대 성인(聖人)을 축복하노니, 성인께서는 수(壽)하고 부(富)하고 다남자(多男子)하소서.”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형체 …… 같다오 : 진 창의 발자국이란 곧 눈 녹은 진창 위에 남긴 기러기의 발자국을 가리키는데, 이 발자국은 얼마 안 가서 바로 사라지는 것이므로, 전하여 이 세상에 나왔다가 아무 자취도 남기지 못하고 덧없이 떠나는 인생을 비유한다. 소식(蘇軾)의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 시에, “인생이 가는 곳마다 그 무엇 같은고하면, 응당 눈 진창에 남긴 기러기 발자국 같으리.[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蹈雪泥]”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그루터기 …… 기다리지만 : 춘 추 시대 송(宋)나라의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을 때 마침 토끼가 달아나다가 밭 가운데 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서 목이 부러져 죽자, 농부는 그때부터 일손을 놓고 그루터기만 지키며 토끼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으나 토끼는 끝내 다시 오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구습(舊習)에만 젖어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통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한다.
[주D-007]집 …… 하네 : 《설 원(說苑)》 경신(敬愼)에 의하면, 노 애공(魯哀公)이 공자(孔子)에게 묻기를, “내가 듣건대 건망증이 심한 자는 집을 옮기면서 자기 아내를 잊어버리고 데려가지 않기도 한다 하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이 정도는 건망증이 심한 게 아닙니다. 건망증이 심한 자는 자기 몸까지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영호행(英豪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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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백성 가호가 만리 멀리 뻗치어라 / 煙火萬里蒼蒼生
중국과 사이에 똑같이 해와 달이 밝은데 / 中國四夷日月明
아침저녁 먹는 일은 그만둘 수 없기에 / 朝饔夕飱不可廢
구복을 받들어 채워서 원기를 조양하네 / 奉養口腹調元精
진실한 재능과 학문은 그림의 떡이 아니요 / 眞才實學非畫餠
식례의 기원은 대갱으로 말미암았는데 / 食禮之起由大羹
제복과 후식이 여염집에 그득 채워지고 / 帝服后飾充閭閻
부두와 절형까지 하려고 하는 가운데 / 致欲剖斗仍折衡
청담의 흐른 폐단이 예전보다 갑절되어 / 淸談流弊倍於舊
관면을 찢어 버리는 재해가 싹터 왔었네 / 毁冠裂冕災害萌
이것이 천재에 유전하여 갈수록 심해지니 / 流傳千載日益甚
종고와 금벽은 어이 그리도 거창한고 / 鐘鼓金碧何崢嶸
십 년에 쓸 비용을 하루에 탕갈시켰으니 / 十年用度一日竭
다음 생에 복 받는다 누가 능히 평정하랴 / 他生得福誰能評
다만 사랑하는 건 푸른 산 흰 구름 아래 / 但愛靑山白雲處
조용히 앉아서 명리를 쫓지 않음일세 / 靜坐不知趨利名
인간의 명리는 맹렬하기가 불 같아서 / 人間利名烈如火
만고의 수많은 영웅호걸을 다 녹이었지 / 爍盡萬古諸豪英
[주D-001]식례(食禮)의 …… 말미암았는데 : 식 례는 밥을 주로 삼는 예란 뜻으로,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무릇 양로(養老)에 있어……은(殷)나라 사람은 식례로써 했다.”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식례에는 밥이 있고 안주가 있으며, 술은 있으나 마시지는 않고 오직 밥만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식례라 한 것으로, 곧 검소함을 숭상하는 뜻이다. 그리고 대갱(大羹)은 상고 시대에 조미료를 섞지 않은 고깃국[肉汁]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기》 예기(禮器)에, “천자의 대규(大圭)는 조각을 하지 않으며, 제사에 올리는 대갱에는 조미료를 섞지 않는다.”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또한 검소함을 숭상하는 뜻이다.
[주D-002]제복(帝服)과 …… 채워지고 : 제 복은 황제의 의복을 가리키고, 후식(后飾)은 황후의 복식(服飾)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 문제(漢文帝)에게 올린 가의(賈誼)의 〈상소(上疏)〉에, “지금 서인(庶人)의 옥벽(屋壁)에는 황제의 의복이 걸려 있고, 창우(倡優) 같은 하천(下賤)들은 황후의 복식을 하고 있으니, 그러고도 천하에 재력(財力)이 궁핍해지지 않을 수는 없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부두(剖斗)와 절형(折衡) : 《장자(莊子)》 거협(胠篋)에, “말을 부숴버리고 저울대를 꺾어 버려야만 백성들이 서로 다투지 않게 된다.”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성인(聖人)의 예법(禮法)을 비난하는 뜻에서 한 말이다.
[주D-004]관면(冠冕)을 찢어 버리는 재해 : 춘 추 시대에 진(晉)나라가 융적(戎狄)을 거느리고 주(周)나라를 공격하자, 주왕(周王)이 첨환백(詹桓伯)을 진(晉)나라에 보내서 고하기를, “내가 종친(宗親)인 진후(晉侯) 당신에게는 의복의 관면(冠冕)과 같은데, 지금 종친이 만일 관면을 스스로 찢어 버린다면 아무리 저 융적이라도 나 한 사람에게 무슨 의리를 생각할 것이 있겠는가.”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제후 또는 오랑캐가 천자(天子)를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5]금벽(金碧) : 건축물의 화려한 단청(丹靑)을 가리킨다.
한 동년(韓同年)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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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언덕은 이끼 낀 길이요 / 海岸莓苔路
산촌은 채색 그림 같은 집이로다 / 山村罨畫家
모진 추위 속에 홀로 앉았노라니 / 苦寒危坐處
해 그림자는 창 반쯤에 비끼었네 / 日影半窓斜
시주가(詩酒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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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되고 / 酒不可一日無
시는 하루라도 그만둘 수 없어라 / 詩不可一日輟
인인 의사는 본디 고심하는 게 많아서 / 仁人義士心膽苦
시는 쓰려도 못 쓰고 술은 끊으려도 못 끊네 / 欲寫未寫絶未絶
상수의 혼은 조용해라 물엔 파도가 없고 / 湘魂沈沈水無波
촉제의 넋은 소쩍소쩍 산 달은 희미해라 / 蜀魄磔磔山有月
손으로 큰 술잔 당기면 바닷물이 출렁인 듯 / 手引深杯蒼海翻
입으로 긴 시구 읊을 땐 번개처럼 빠르기도 / 口吟長句飛電決
내 큰 뜻 몽땅 가져다 뜬구름에 부쳤거니 / 盡將磊落付雲虛
잠깐의 생을 가지고 생멸을 따질 것도 없네 / 不向須臾辨生滅
인간에게 시와 술의 공이 가장 크고말고 / 人間詩酒功第一
다소간 위태할 때엔 명철보신을 해주잖나 / 多少危時保明哲
술엔 미친 기가 있고 시엔 마귀가 있어 / 酒有狂詩有魔
예법이 감히 시주를 억압하지 못하거니와 / 禮法不敢煩麾呵
명예 그물 도피한 게 바로 인생의 낙원이라 / 身逃名網卽樂土
강산풍월이 모두가 한가롭기만 하구나 / 江山風月俱婆娑
[주D-001]상수(湘水)의 혼 :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충신(忠臣)으로 참소를 입어 조정으로부터 쫓겨나서 끝내 상수에 몸을 던져 자결한 굴원(屈原)의 혼을 가리킨다.
[주D-002]촉제(蜀帝)의 넋 : 옛날에 촉(蜀)나라 임금 두우(杜宇)가 만년에 재상(宰相)에게 제위(帝位)를 선양하고 스스로 도망가 죽어서 두견(杜鵑)으로 화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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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일편단심은 있었는데 / 自昔丹心在
이제는 흰 머리털만 남았네그려 / 如今白髮餘
주공은 예악을 제정하였고 / 周公制禮樂
맹자는 시서를 기술하였네 / 孟子述詩書
그만이로다 쇠한 세상 만났으니 / 已矣丁衰世
돌아가서 낡은 집에 누워야겠네 / 歸歟臥弊廬
전토 내린 건 전혀 소망 밖인데 / 錫田非望及
송덕은 하려도 재주 없어 한이로세 / 頌德恨才疏
세상 살기는 참으로 일이 많은지라 / 處世眞多故
몸 편히 하려고 다시 꾀를 줄이네 / 安身更少謀
예전엔 가난이 병인 줄 알았더니 / 早知貧是病
즐거워 근심 잊은 걸 점차 믿겠네 / 漸信樂忘憂
시주야 누구와 즐길 수 있을까만 / 詩酒誰爲地
구름 낀 산은 절로 누각에 드누나 / 雲山自入樓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다 보니 / 悠悠送日月
흰 터럭이 벌써 머리에 그득하네 / 蒼雪已蒙頭
[주D-001]주공(周公)은 예악(禮樂)을 제정하였고 : 무왕(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어렸을 때 주공이 천자(天子)의 직무를 섭행(攝行)하면서 예악을 제정했던 것을 가리킨다. 《禮記 明堂位》
[주D-002]맹자(孟子)는 시서(詩書)를 기술하였네 : 맹 자가 천하에 도(道)를 행할 수 없게 되자, 물러가서 제자인 만장(萬章) 등과 더불어 시서의 글을 열거하여 공자(孔子)의 뜻을 기술해서 《맹자(孟子)》 7편을 지었다는 데서 온 말인데, 한유(韓愈)의 말에 의하면, 《맹자》는 맹자 자신이 저술한 게 아니라, 맹자가 죽은 뒤에 그 제자인 만장 등이 맹자가 평소에 말한 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하였다. 《史記 卷74 孟子列傳》
[주D-003]가난이 병인 줄 : 공 자의 제자 원헌(原憲)이 노(魯)나라에서 몹시 곤궁하게 지낼 적에 자공(子貢)이 화려한 수레를 타고 원헌을 방문하여 말하기를, “아, 선생은 어찌하여 이렇게 병이 들었습니까?” 하자, 대답하기를, “나는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배워서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병이라 한다 하니, 지금 나는 가난한 것이지, 병든 것이 아니라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莊子 讓王》
[주D-004]즐거워 근심 잊은 걸 : 공자가 학문을 하는 데 있어, 얻은 바가 있기 전에는 분(憤)을 발하여 밥 먹는 것도 잊었다가, 얻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즐거워하여 근심도 잊어서 늙음이 다가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 말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영해(寧海)를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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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바다 서쪽 가로 한 점 산이 있으니 / 東海西涯一點山
태평한 민가들은 그림 속 같기도 하건만 / 太平煙火畫圖間
긴 시구는 전편을 다 좋게 만들려 하면서 / 欲敎長句全篇好
덧없는 생은 한나절 한가함도 못 이루네 / 未辦浮生半日閑
꿈속의 은하는 적안의 물과 연하였고 / 夢裏銀河連赤岸
병중의 흰머리는 쇠한 얼굴을 비추누나 / 病中華髮照蒼顔
조상을 받들고파도 진정 어쩔 도리가 없어 / 恭桑敬梓眞無賴
괜히 먼 하늘 바라보니 새만 절로 돌아오네 / 空望遙天鳥自還
[주D-001]은하(銀河)는 …… 연하였고 : 적안(赤岸)은 장강(長江) 어귀에 있는 지명인데, 두보(杜甫)의 〈희제왕재화산수도가(戲題王宰畫山水圖歌)〉에, “파릉의 동정호로부터 일본 동쪽에 이르고, 적안의 물은 은하수와 서로 통하누나.[巴陵洞庭日本東赤岸水與銀河通]” 하였다.
고의(古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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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땅은 도피할 길이 없어라 / 天地無所逃
내 속마음을 환히 다 보나니 / 視己如肺肝
어찌 한 터럭 끝만큼인들 / 豈容一毫地
늙은 간악을 숨길 수 있으리오 / 可以藏老姦
나의 집엔 보배로운 칼이 있어 / 我家有寶劍
서슬빛이 시퍼런 가을물 같아 / 光如秋水寒
온갖 부정이 감히 접근 못하여라 / 百邪不敢近
호표는 구중문을 엄히도 지키네 / 虎豹嚴重關
삼가는 마음으로 상제를 섬기어 / 小心事上帝
형살을 금하면 천하가 편안하리 / 去殺天下安
[주D-001]호표(虎豹)는 …… 지키네 : 《초사(楚辭)》 초혼(招魂)에, “혼이여 돌아오라, 그대는 하늘을 오르지 마소. 호표가 구중문을 엄히 지켜, 아래 인간을 물어뜯는다네.[魂兮歸來 君無上天些 虎豹九關 啄害下人些]” 한 데서 온 말이다.
앞의 운을 사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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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에 오래도록 유공의 먼지를 피하고 / 西風久避庾公塵
중원의 일 누워 들으니 일마다 새로워라 / 臥聽中原事事新
대궐엔 상서 구름이 한창 피어오르고 / 魏闕彩雲方靄靄
태창엔 묵은 곡식이 또한 잔뜩 쌓였네 / 太倉紅粟更陳陳
국운은 응당 쉬운 데서부터 어려움을 풀고 / 圖難國步應從易
인정은 이미 거짓 등지고 진실을 향했도다 / 背僞人情已向眞
백발에 병도 많은 동해의 나그네는 / 多病白頭東海客
작은 창 깊은 곳에 봄을 감춰두고 싶네 / 小窓深處欲藏春
[주D-001]서풍(西風)에 …… 피하고 : 권 세가(權勢家)와 가까이하지 않음을 뜻한다. 유공(庾公)은 바로 동진(東晉) 때에 권세를 크게 떨쳤던 유량(庾亮)을 가리키는데, 왕도(王導)가 평소에 그가 권세 부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한번은 서풍이 불어 먼지가 날리자, 부채를 들어 자신을 가리면서 말하기를, “유량의 먼지가 사람을 더럽힌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국운(國運)은 …… 풀고 : 《노 자(老子)》 은시(恩始)에, “쉬운 데서부터 어려운 일을 풀어 나가야 하고, 작은 데서부터 큰일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데서 일어나고, 천하의 큰일도 반드시 작은 데서 일어난다.[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必作於細]” 한 데서 온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어제의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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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부터 삭신이 쑤시고 저려 / 夜半肌膚酸
심신이 서로 조화가 안 되더니 / 心腎交不得
일어나 앉으면 어깨와 등이 아프고 / 起坐肩背痛
누워서는 또 마냥 뒤치락거렸네 / 臥又多反側
등불 켜게 하여 차가운 밤 밝힐 제 / 呼燈照寒更
계집애는 잠이 한창 깊었던 터라 / 小娃睡方極
띠 띠고 내 몸 밟아 안마하면서도 / 束帶踏我身
눈을 감고 맘은 아직 잠에 취했네 / 閉目心尙黑
제가 싫어하는 걸 내가 잘 알지만 / 極知渠不樂
난 모진 통증을 늦추고플 뿐이었네 / 但欲紓痛劇
성안의 십만이나 되는 민가들은 / 城中十萬家
코를 한창 씩씩 골며 잘들 자는데 / 鼻息方織織
나 혼자만 이렇게 고통을 겪어라 / 辛苦獨在我
가슴을 상쾌히 할 방도가 없었네 / 無從快胸臆
어찌하면 뭇 사악들을 제거하여 / 何當掃群邪
성대히 하늘 법칙을 순종할거나 / 赫赫順帝則
[주D-001]심신(心腎)이 …… 안 되더니 : 심(心)은 화(火)에 속하고, 신(腎)은 수(水)에 속하므로, 체내(體內)에서 음양(陰陽)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함을 의미한다.
또 앞의 운을 사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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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함을 가지고 훌륭한 명성 전파하려고 / 欲將淸白播芳塵
선조의 새로운 제도를 눈으로 직접 보았네 / 眼見先朝制度新
장년엔 백금의 노나라에 가서 놀았는데 / 壯歲如游伯禽魯
만년엔 방금 중니의 진 땅에 있게 되었네 / 晚年方在仲尼陳
술자리의 세월 속엔 늙는 줄도 모르거니와 / 樽前日月不知老
벽 위의 강산 그림은 진경과 흡사할 뿐이네 / 壁上江山空逼眞
이 생애를 보내는 덴 그 무엇을 의거할꼬 / 斷送此生須底物
작은 시편으로 봉성의 봄 경치나 구사하련다 / 小詩驅使鳳城春
[주D-001]장년엔 …… 놀았는데 : 백금(伯禽)은 주공(周公)의 장자(長子)로 맨 처음 노(魯)나라에 봉해졌고, 또한 주(周)나라의 예악(禮樂)이 모두 노나라에 있었으므로 이른 말인데, 이것은 목은이 일찍이 원(元)나라에 가서 벼슬한 것을 빗대어서 한 말이다.
[주D-002]만년엔 …… 되었네 : 몹시 곤궁함을 비유한 말이다. 공자(孔子)가 진(陳) 땅에 있을 때 식량이 떨어져 종자(從者)가 병이 나서 일어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衛靈公》
산수도(山水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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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전당 감춘 협곡에 어둑하고 / 雨暗藏堂峽
놀은 검극 의지한 산에 선명한데 / 霞明倚戟山
높은 절벽은 아득한 광야를 임했고 / 斷崖臨浩渺
오솔길은 높은 산꼭대기로 오르네 / 微逕上巑岏
깊은 골짜기에 숨은 이는 예스럽고 / 谷隱幽棲古
교외의 씩씩한 걸음은 한가로워라 / 郊行健步閑
저녁에는 달을 불러 나오게 하고 / 晚來呼月出
두건 젖히고 흰 구름 끝에 서 있네 / 岸幘白雲端
[주D-001]전당(殿堂) 감춘 협곡(峽谷) : 두보(杜甫)의 〈철당협(鐵堂峽)〉 시에, “협곡의 형세는 당황을 감출 만하고, 절벽의 빛은 정철을 세운 듯하네.[峽形藏堂隍壁色立精鐵]” 한 데서 온 말인데, 당황은 곧 광대(廣大)한 전당을 가리킨다.
[주D-002]검극(劍戟) 의지한 산(山) : 한유(韓愈)의 〈봉화배상공(奉和裴相公)〉 시에, “깃발은 새벽 햇살 뚫고 올라 운하와 섞이고, 산은 가을 하늘 의지해 검극이 빛난 듯하네.[旗穿曉日雲霞雜 山倚秋空劍戟明]” 한 데서 온 말이다.
아이들의 장난을 구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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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놈은 물건에 늘 부딪치고 / 大癡頻觸物
좀 약은 놈은 언뜻 기미를 아누나 / 小黠乍知機
이게 모두 천연스러운 곳이거니 / 摠是天然處
도리어 성자의 시중과도 같구려 / 還如聖者時
짧은 처마 밑에선 소나기를 피하고 / 短簷逃急雨
텅 빈 누각에선 저녁볕을 쪼이누나 / 虛閣冒斜暉
부끄러워라 나는 본성을 못 찾고 / 愧我迷眞性
세상 연연하면서 이미 노쇠해졌네 / 栖栖已老衰
[주D-001]도리어 …… 같구려 :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공자는 성인 중에 모든 일을 때에 맞게 하는분이다.[孔子聖之時者也]”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아이들의 천진스러움을 비유한 것이다.
팔이 아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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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하여 다리 힘이 없는지라 / 老衰無脚力
지팡이 짚고 천천히 걸어서 / 扶杖起行徐
날마다 산꼭대기를 오르고 / 日日登山冢
때로는 시렁의 책도 점검했으니 / 時時檢架書
병이 된 건 응당 원인이 있지만 / 病成應有自
너무 아파서 다시 여지가 없구나 / 痛急更無餘
세 번 부러진 것을 누가 알리요 / 三折知誰在
낡은 집에 누워 끙끙 앓을 뿐이네 / 呻吟臥弊廬
[주D-001]세 번 부러진 것 :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세 번 당해보아야만 훌륭한 의사(醫師)가 될 수 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다만 팔이 몹시 아픈 것을 빗대어서 한 말이다. 《春秋左傳定公13年》
스스로 상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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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형체를 갖춘 것은 / 人生具形體
천지 음양의 정기인지라 / 天地陰陽精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한 이치이니 / 三才一理耳
본성 회복은 명성에 달려 있거늘 / 復初在明誠
어찌하여 기를 줄을 알지 못하고 / 胡爲不知養
원기의 평온함을 잃어버리는고 / 元氣失於平
마음 보존함에 어두운 탓으로 / 操存旣茫昧
질병이 이를 인하여 생기나니 / 疾病隨以生
이는 진실로 저 백만의 대군이 / 端如百萬師
밤낮으로 외로운 성 포위함 같네 / 日夜圍孤城
그러나 성중은 묵자가 지켜서 / 城中守者墨
물리치면 이윽고 청명해지련만 / 卷去俄淸明
두려운 건 마음이 산란함이니 / 所懼內自亂
마음 산란함을 그 누가 다스리랴 / 自亂誰能兵
[주D-001]명성(明誠) : 《중용장구(中庸章句)》에 이른바, 선을 밝힌다[明善], 몸을 성실히 한다[誠身]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성중(城中)은 묵자가 지켜서 : 전국 시대 묵적(墨翟)이 성을 아주 잘 지켰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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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는 어찌 이리도 광막한고 / 天地何寥闊
나는 스스로 슬프기만 하여라 / 幽人內自悲
때의 위태함은 누구를 의지할꼬 / 時危誰可仗
오랜 일도 혹 속이긴 어렵다오 / 事久或難欺
난세엔 지붕 까마귀를 보거니와 / 亂世烏瞻屋
인생은 가지에 의지한 까치 같네 / 浮生鵲寄枝
한 번 읊으매 두 눈물이 흘러라 / 一吟雙淚落
말이 간삽하여 시를 못 이루누나 / 語澁不成詩
[주D-001]난세(亂世)엔 …… 보거니와 : 《시 경》 소아(小雅) 정월(正月)에, “서러워라 이 나라 망하면, 우리 어디로 가서 먹고 살까. 까마귀 날아 앉는 걸 보아라, 뉘 지붕에 가서 앉을런고.[哀我人斯 于何從祿 瞻烏爰止 于誰之屋]”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주 유왕(周幽王) 때 한 대부(大夫)가 유왕의 학정(虐政)을 풍자하여 노래한 것이다.
예공(猊公)이 방문해 준 데에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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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공은 선승 중에 걸출한 이요 / 猊公禪者傑
나는 백발에 곤경을 겪고 있네 / 蹭蹬白頭餘
육록은 천왕의 가르침이고요 / 六錄天王訓
삼소는 곧 성조의 글이로세 / 三蘇聖祖書
현묘한 이치는 쉽지를 않거니와 / 眞機非淺易
비밀한 법술은 되레 오활하다오 / 祕術却迂疏
온 세상에 날 알아줄 이 적은데 / 擧世知音少
초려를 찾아 주니 하도 부끄럽네 / 深慚顧草廬
[주D-001]육록(六錄)은 천왕(天王)의 가르침이고요 : 육 록은 신라 말기의 고승인 옥룡자(玉龍子) 도선(道詵)이 지었다고 하는 《옥룡비기》를 가리키는데, 그 내용이 옥룡자십승지지비결(玉龍子十勝之地祕訣), 십승지지외론보신산수지소(十勝之地外論保身山水之所), 옥룡비결(玉龍祕訣), 옥룡자기(玉龍子記), 옥룡자시(玉龍子詩), 옥룡자청학동결(玉龍子靑鶴洞訣) 등 6편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천왕이란 불가(佛家)에서 부처의 별칭으로 쓰는 말인데, 여기에서는 신라 말기에 《옥룡비기(玉龍祕記)》 등 많은 도참설(圖讖說)을 저술했던 도선 국사(道詵國師)를 가리킨다.
[주D-002]삼소(三蘇)는 …… 글이로세 : 고 려 시대에 도참설(圖讖說)의 지리쇠왕설(地理衰旺說)에 의하여 국가의 기업(基業)을 연장시키고자 도성(都城)인 개경(開京) 둘레에 삼소(三蘇)를 두어, 좌소(左蘇)인 백악산(白岳山), 우소(右蘇)인 백마산(白馬山), 북소(北蘇)인 기달산(箕達山)에 각각 행궁(行宮)을 짓고 임금이 주기적으로 순행(巡幸)하며 머물렀다. 여기에서 성조(聖祖)는 바로 고려의 태조(太祖)를 가리키는데,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는 삼소에 관한 말이 들어 있지 않으니, 어느 글을 가리키는지 자세하지 않다.
병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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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파 밤새도록 끙끙 앓으니 / 我病終夜呻
집사람마저 잠을 이루지 못하네 / 室人眠不得
등잔 아래 일어났다 누웠다 할 제 / 燈下起臥頻
번민이 일어 가슴이 답답하더니 / 煩懣塡胸臆
마침내 요사한 기운에 감염되어 / 遂感邪沴氣
콧숨이 막혀 호흡마저 곤란타가 / 呼吸壅鼻息
한낮에야 비로소 몸이 좀 풀리니 / 日午始體舒
청풍이 먹구름을 쓸어버린 듯하네 / 風淸掃陰黑
내가 아프고 아내 또한 아프니 / 我病妻又病
액운이 어찌 끝날 날이 있으랴만 / 蹇運豈終極
조화에 힘입어 병 절로 나으리라 / 勿藥荷造化
시 써서 스스로 마음 위로하노니 / 題詩慰心曲
어떻게 알리요 이러한 고통이 / 安知此艱辛
장수의 지경으로 가기 위함일지도 / 所以趨壽域
침착하게 지극히 고요함 지키면 / 湛然守至靜
상제께서 환히 굽어 살피시리라 / 上帝臨有赫
새벽에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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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엔 또 통증이 극심하여 / 疇昔又痛劇
온 몸이 뼛속까지 쑤시고 아파서 / 渾身酸入骨
밝은 달빛은 남쪽 창에 가득한데 / 月色滿南窓
꼼짝 않고 홀로 앉았기만 하였네 / 獨坐恒兀兀
공을 보면 적막에 들기도 하건만 / 觀空入沈寂
좋은 시구 얻으면 격률도 잊는다오 / 得句忘格律
그렇게도 깨끗한 이 한 마음이 / 灑落一靈臺
지금까지 어둠 속을 헤매이노니 / 至今迷怳惚
세월을 어찌 따라잡을 수 있으랴 / 流光安可追
백발이 되도록 깨닫지를 못하네 / 白頭猶鶻突
노력하여 뜻을 성실히 하여야만 / 努力立誠意
항상 깨는 데에 소홀함이 없으리 / 惺惺庶無忽
[주D-001]공(空)을 보면 : 불 교 용어로, 공(空)은 유(有)가 아닌 즉 실체(實體)가 없음을 의미하고, 색(色)은 즉 심법(心法)에 대하여 모든 현상으로 나타난 물질을 의미하는데, 공을 본다는 것은 마음으로 공의 진리를 관념한다는 뜻이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니, 색은 바로 공이요, 공은 바로 색이다.[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하였다.
곡성 시중(曲城侍中)이 서택(西宅)을 방문했는데, 나는 부름을 받고도 병 때문에 가지 못하여 서운한 마음에 이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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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원로가 국가 원로의 집에 들러서 / 國老相過國老家
개개며 봉봉으로 권아시를 읊조리는데 / 喈喈菶菶詠卷阿
후생은 불우한 서러움을 견디지 못해 / 後生不耐秋蓬感
홀로 사립문 닫고 행차만 바라보노라 / 獨掩柴扉望玉珂
인서는 본래에 태평을 나타낸 것이요 / 人瑞由來表太平
사령은 예로부터 헛된 이름일 뿐이니 / 四靈從古但虛名
모름지기 우아한 아취와 풍류가 있는 곳에 / 須知閑雅風流處
국맥이 화평해져 병이 안 생김을 알아야지 / 國脈均和病不生
중원은 한창 융성한 시대 백 년 이래로 / 中原全盛百年來
노인 축복하는 자리가 곳곳에 열렸지만 / 慶老華筵處處開
누가 알았으랴 우리 동방 군자의 나라에 / 誰識東方君子國
우뚝한 오복이 삼태를 비추고 있는 줄을 / 巍然五福照三台
[주C-001]곡성 시중(曲城侍中) :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으로 당시 시중(侍中)이었던 염제신(廉悌臣)을 가리킨다.
[주D-001]개개(喈喈)며 …… 읊조리는데 : 개 개는 봉황(鳳凰)의 평화로운 울음소리를 형용한 말이고, 봉봉(菶菶)은 오동나무의 무성함을 형용한 말이다. 《시경》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이 울어대니, 저 높은 뫼이로다. 오동나무가 나서 자라니, 저 볕바른 언덕이로다. 오동나무가 우거져 무성하니, 봉황이 평화로이 우는도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菶菶萋萋雝雝喈喈]” 한 데서 온 말인데,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을 따라 굽이진 언덕에서 노닐 때, 마침 천하가 태평한 터라 왕이 즐겁게 놀며 노래하므로, 소공이 이 시를 지어서 천하가 아무리 태평할지라도 임금이 항상 경계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노래한 것이라 한다.
[주D-002]인서(人瑞) : 사람의 상서라는 뜻으로, 학덕(學德)이 높고 장수(長壽)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주D-003]사령(四靈) : 네 가지 영물(靈物)이란 뜻으로, 상상의 동물인 기린(麒麟), 봉황(鳳凰), 거북[龜], 용(龍)을 가리킨다.
관동(關東)으로 가는 진관사(眞觀寺)의 승통(僧統)을 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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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의 강주는 거마도 성대하여라 / 眞觀講主馬如龍
태후께서 불사에 향 반사하는 행차로세 / 太后頒香佛者宮
가파른 눈길엔 산이 하얗게 솟아 있고 / 雪路崢嶸山聳白
먼 바다 하늘엔 아침 해가 붉게 떠오르네 / 海天迢遞日浮紅
예로부터 속제가 모두 진제이었거니와 / 從來俗諦皆眞諦
중요한 건 승려에게 선비풍이 있음일세 / 最是僧風有士風
사람 안 가는 잡초 우거진 황량한 묘에 / 蔓草荒丘人不到
성묘하고 관동 가는 게 유독 어여쁘구려 / 獨憐拜掃向關東
[주D-001]강주(講主) : 절에서 강경 설법(講經說法)하는 고승(高僧)을 가리킨다.
[주D-002]속제(俗諦)가 모두 진제(眞諦)이었거니와 : 불교 용어로, 속제는 곧 세속의 진리(眞理)란 뜻이고, 진제는 곧 세속을 초월한 진리를 의미한다.
스스로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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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많아서 몸은 허약하지만 / 多病身浮脆
말 잊으니 뜻은 고요함이 전일하네 / 忘言意靜專
중년에 들어선 약물과 친해지고 / 中年親藥物
말로에 당해선 산수를 꿈꾸노니 / 末路夢林泉
감히 창 휘둘러 해를 멈추게 하랴 / 敢駐揮戈日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볼 뿐이네 / 徒觀坐井天
밝은 창 앞에 깊이 앉았을 만해라 / 明窓可深坐
흥겨운 정취가 절로 초연하구려 / 情興自超然
산수는 절로 아득하기만 하거니와 / 林泉自迢遞
고관대작은 내 이미 뜻을 잃었네 / 軒冕我龍鍾
외로운 학은 가을 하늘 멀리 날고 / 獨鶴秋空外
뭇 까마귀는 석양 아래 모였도다 / 群鴉夕照中
돌아가려면서도 결단을 못 내리고 / 欲歸心未決
병치레 속에 또 해가 저물어가네 / 多病歲將窮
듣자니 여강의 굽이굽이에는 / 聞道驪江曲
꽃 그림자 물에 잠겨 붉다 하던데 / 山花浸水紅
기나긴 밤을 몸뚱이 편치 못해라 / 永夜身難穩
노년에는 뼈까지 쑤시고 아프네 / 衰年骨更酸
등잔불은 적막한 방을 비추고 / 燈華照寂寞
약맛은 달고 찬 맛이 섞이었네 / 藥味雜甘寒
장대한 뜻은 칼을 노려봤었는데 / 壯志曾看劍
여생은 벼슬을 그만두고 싶구나 / 殘生欲掛冠
한가로이 참다운 정취를 얻어서 / 悠然得眞趣
우뚝이 앉아 용수산 마주하노라 / 兀坐對龍巒
[주D-001]말 …… 전일하네 : 정이(程頤)의 〈언잠(言箴)〉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말을 인하여 선포되나니, 말을 할 때 조급하고 경망함을 금해야만 이에 고요함이 전일해지느니라.[人心之動 因言以宣 發禁躁妄 乃斯靜專]”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감히 …… 하랴 : 옛날에 노 양공(魯陽公)이 한(韓)나라와의 싸움이 한창 절정에 이르렀을 때 마침 해가 저물자, 창을 잡고 해를 향하여 휘두르니, 해가 90리를 되돌아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淮南子 覽冥訓》
[주D-003]우물 …… 뿐이네 : 한 유(韓愈)의 〈원도(原道)〉에, “노자가 인의를 하찮게 여긴 것은 인의를 헐뜯은 것이 아니라, 자기 견식이 좁은 까닭이다.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 하늘이 작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하늘이 작아서가 아닌 것과 같다.[老子之小仁義 非毁之也 其見者小也 坐井而觀天曰天小者 非天小也]” 한 데서 온 말로, 견식이 좁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고향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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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밑털 희어지고 병은 낫기도 어려워 / 鬢毛衰白病難醫
지기가 자못 장성한 때 같질 않는지라 / 志氣殊非少壯時
반짝이는 등불 아래 밤새도록 앉아서 / 耿耿一燈終夜坐
하염없이 천 리 밖의 고향을 생각하네 / 悠悠千里故鄕思
낙화풍 속에선 좌선하는 자리를 찾고 / 落花風裏尋禪榻
달 밝은 강가에선 낚싯줄을 거두어라 / 明月江頭卷釣絲
난리 십 년에 고향엔 돌아가지 못하고 / 烽火十年歸不得
흥이 나면 붓 가져다 시만 쓸 뿐이로세 / 興來呼筆獨題詩
[주D-001]낙화풍(落花風) …… 찾고 : 두목(杜牧)이 노쇠함을 한탄한 〈제선원(題禪院)〉 시에, “오늘은 흰 귀밑털로 선탑 가에 앉았노라니, 차 연기가 낙화풍에 가벼이 날리는 듯하구나.[今日鬢絲禪榻畔 茶煙輕颺落花風]”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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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섣달 절반은 삼조가 가까워지도록 / 今年臘半近三朝
물엔 얼음 안 얼고 눈도 이내 녹아버렸네 / 水不成氷雪旋消
기수 변화는 예로부터 남과 북이 있기에 / 氣化由來有南北
달 밝은 천진교에 두견의 소리가 들렸지 / 天津月白杜鵑橋
하늘이 인물을 냄은 때를 바루기 위함이니 / 天生人物擬匡時
필경 흥하고 망함은 절로 기약이 있겠지만 / 畢竟興亡自有期
삼소의 기반 이미 원대함은 차치하고라도 / 不待三蘇基已遠
밝고 밝은 태조께서 남긴 계책이 있고말고 / 明明太祖有謀貽
[주D-001]삼조(三朝) : 세(歲), 월(月), 일(日)의 시초라 하여 정월(正月) 초하루를 일컫는 말이다.
[주D-002]기수(氣數) …… 들렸지 : 송 (宋)나라 소옹(邵雍)이 낙양(洛陽)에 있을 때, 손과 함께 달밤에 산보하다가 천진교(天津橋) 위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를 듣고는 자못 걱정되는 기색을 짓자 손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예전에는 낙양에 두견새가 없었는데, 지금 비로소 두견새가 왔으니, 앞으로 몇 년 안 가서 임금이 남쪽 인사를 재상(宰相)으로 등용하면 남쪽 사람을 많이 끌어 들여 오로지 변경(變更)을 일삼게 됨으로써 천하가 이때부터 일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천하가 다스려지려면 지기(地氣)가 북(北)에서 남(南)으로 내려가는 것이고, 장차 어지러워지려면 지기가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것인데, 지금 남방(南方)에 지기가 이르렀다. 조류(鳥類)가 가장 지기를 먼저 받는 것이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밤에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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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은 차가워라 서리가 눈 같고 / 被冷霜如雪
등불은 희미해라 밤이 일 년 같네 / 燈殘夜似年
구름 연기는 천만 겹이나 되고요 / 雲煙千萬疊
고풍 율시는 겨우 두세 편이로다 / 古律兩三篇
흥취는 산 오르는 나막신을 끌고 / 興引山行屐
귀신은 종이 오린 돈으로 사귀네 / 神交紙裹錢
나는 마치 주인 그리는 말과 같이 / 猶如馬戀主
머리 들어 바다 서쪽을 바라보노라 / 矯首海西天
[주D-001]귀신은 …… 사귀네 : 옛날 장례 때나 제사 때에 귀신을 제사하는 데 있어, 처음에는 실제의 동전(銅錢)을 사용했는데, 후세에는 동전 대신 종이를 동전 모양으로 오려 만들어 사용한 데서 온 말이다.
영해(寧海) 김 좌윤(金左尹)의 서신을 받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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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의 소식이 근래에 드물었는데 / 丹陽音耗近來稀
갑자기 건어를 얻으니 성의가 작지 않네 / 忽得乾魚意不微
어느 날에나 벼슬 그만두고 동해로 가서 / 何日乞身東海去
달밤에 물가에 앉아 낚싯줄을 드리울꼬 / 月中垂釣坐苔磯
유사정 위에서 술잔 가득 부어 마실 제 / 流沙亭上酒杯深
맑은 노래 달 가득 거문고가 기억나누나 / 記得淸歌月滿琴
전배들의 풍류를 누가 다시 이을 건고 / 前輩風流誰復繼
근래에는 구름 숲에 봉화가 마냥 비추리 / 邇來烽火照雲林
이량곡 어귀에 밤이 한창 깊어지거든 / 伊良谷口夜深天
등잔 밑 단란한 자리에 술이 끝없었는데 / 燈火團欒酒似泉
노인들이 연래에 모두 세상을 떠났는지라 / 耆舊年來盡凋喪
몇 번이나 동녘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던고 / 幾回東望一茫然
[주D-001]단양(丹陽) : 영해(寧海)의 고호(古號)이다.
[주D-002]유사정(流沙亭) : 영해에 있는 정자 이름인데, 목은이 일찍이 그 기문(記文)을 지었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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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동물이라 하늘 운행을 체받았기에 / 人爲動物體天行
많이 앉고 눕는 데서 온갖 병이 생긴다네 / 坐臥多時百病生
흐르는 물은 끝내 썩지 않음을 보았거니 / 看取水流終不腐
솔개 날고 고기 뛰는 데 도가 아주 밝다오 / 鳶飛魚躍道明明
절름 다리를 한갓 지팡이 의지해 다니면서 / 蹇步徒憑拄杖行
동녘 산에 날마다 구름 이는 걸 보았더니 / 東山日日看雲生
이젠 추워서 쭈그려 앉아 하도나 무료하여 / 畏寒縮坐無聊甚
문득 창문을 향해서 날 가는 것만 세노라 / 却向窓間閱晦明
[주D-001]솔개 …… 밝다오 : 《중 용장구》 제12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뛴다.’ 하였으니, 이는 천지조화의 유행이 위아래에 드러난 것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염주(念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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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한 생각들을 이 염주에 부치고 보면 / 念念無窮寄此珠
염주 수는 일정하나 생각은 응당 다르리니 / 珠應有定念應殊
입과 손의 동작은 전혀 간섭할 것이 없고 / 口中手裏無干涉
곧장 마음속에서 탄탄대로를 찾아야 하리 / 直向心頭覓坦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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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하는 놈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 橫來豎去棄如遺
일 만나면 바람 일으켜 앎이 있는 듯하니 / 遇事生風似有知
야호의 소굴을 때려 부수고 나면은 / 打得野狐窠窟破
산하의 대지가 태평해지는 때이로세 / 山河大地太平時
[주C-001]선방(禪棒) : 선 가(禪家)에는 방(棒)과 할(喝)이 있는데, 방은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고, 할은 큰소리로 꾸짖는 것으로서, 선가의 종장(宗匠)이 학자(學者)를 제접하는 방편으로 어떤 이에게는 방을 쓰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할을 쓰기도 하는바, 방은 덕산(德山)에게서, 할은 임제(臨濟)에게서 시작되었다 한다.
[주D-001]야호(野狐) : 선(禪)을 닦아 아직 증오(證悟)하지 못했으면서도 이미 증오한 것처럼 자만(自慢)하는 자를 욕하여 야호선(野狐禪)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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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매한 마음은 교칠처럼 견고하고 / 悶悶心如漆
분잡한 일들은 터럭같이 많아라 / 紛紛事似毛
생애는 방종한 대로 따르거니와 / 生涯從跌宕
말씨는 맑고 호탕함을 숭상하네 / 辭氣尙淸豪
스스로 뜰 앞의 풀을 사랑하는데 / 自愛庭前草
누가 해상의 복숭아를 훔쳤던고 / 誰偸海上桃
남쪽 창에 겨울 햇볕 다스우니 / 南窓冬日煖
군자는 정히 흐뭇하기만 하구나 / 君子正陶陶
[주D-001]스스로 …… 사랑하는데 :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가 일찍이 창 앞의 풀을 제거하지 않으므로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그 풀도 자기의 생각과 마찬가지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누가 …… 훔쳤던고 : 《한무고사(漢武故事)》에 의하면, 선녀(仙女)인 서왕모(西王母)가 심은 복숭아는 3000년 만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리는데, 동방삭(東方朔)이 이 복숭아를 세 차례나 훔쳐 먹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안 첨서(安簽書)가 세 아들의 등과(登科)에 대한 경연(慶宴)을 열고 특별히 와서 나를 초청했으나, 나는 병 때문에 가지 못했다가, 그다음 날 병이 조금 우선하므로, 1수를 읊어서 기록하여 바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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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등과는 예부터 영광되이 여겼거니와 / 三子登科古所榮
죽계 안씨는 뭇 영재들 중에도 으뜸이로다 / 竹溪安氏冠群英
조종은 대대로 인재 양성의 미를 독점했고 / 祖宗奕世能專美
부자간에는 대대로 또 가득참을 경계했네 / 父子傳家更戒盈
환희 속에 좌석 가득한 봄을 언뜻 깨달아라 / 頓覺人懽春滿座
눈 날리는 도성의 찬 기운을 문득 돌렸으리 / 便回天氣雪飄城
타고난 병치레인데 내가 무엇을 한하랴만 / 前身日用吾何恨
손들 가고 아침이 오매 몸이 또 편해지는군 / 客散朝來體又平
[주C-001]안 첨서(安簽書)가 …… 열고 : 안 첨서는 당시 첨서밀직(簽書密直)으로 재직하던 안종원(安宗源)을 가리키는데, 그의 세 아들인 안중온(安仲溫), 안경량(安景良), 안경공(安景恭)이 모두 등과(登科)했으므로, 그에 대한 경연(慶宴)을 열었던 것이다.
[주D-001]환희 …… 봄 : 사람들의 환희로 인하여 좌석이 훈훈해짐을 뜻한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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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녹은 처마 밑에 비오는 소리 주룩주룩 / 雪消簷溜雨來聲
누워 듣자니 끝없이 나그네 정 발동하네 / 臥聽無端動客情
강가에 전토가 있어도 돌아가진 못하고 / 江上有田歸不得
연못 둑의 봄풀만 꿈속에 나오는구나 / 池塘春草夢中生
밤에 바위 앞에서 대 꺾이는 소리 들어라 / 夜聽巖前折竹聲
지금도 자주 옛 놀이의 정취가 떠오르네 / 至今頻起舊游情
이제는 병든 몸이 하도 쑤시고 아파서 / 如今病骨多酸痛
빈 뜰 낙숫물 소리에 온갖 감회가 생기누나 / 點滴空階百感生
시 읊어 스스로 길고 짧은 소리 이루니 / 吟詩自作短長聲
한 조각 청한함이 세속 밖의 정취로세 / 一片淸閑物外情
창문 햇살 서로 기울고 낮닭이 울어대라 / 窓日欲西鷄唱午
내 신세가 진정 덧없는 인생인지 모르겠네 / 不知身世是浮生
[주D-001]대 꺾이는 소리 : 눈이 많이 내려서 대나무가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꺾이는 것을 이른 말이다.
홀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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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땅은 다함이 없는 곳이요 / 天地無窮處
몸과 맘은 부동하는 때이거니 / 身心不動時
어찌 사기가 일어날 수 있으랴 / 豈容邪氣作
다만 도심을 알게 될 뿐이로다 / 只有道情知
본심을 지키어 교첨은 잊거니와 / 對越忘驕諂
조존은 하려도 늙은 게 한이로세 / 操存恨老衰
읊조림은 스스로 뜻을 말한 건데 / 謳吟自言志
이를 손질하면 문득 시가 되누나 / 檃括却成詩
[주D-001]교첨(驕諂) : 자 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묻기를,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떠합니까?[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그도 괜찮으나, 가난해도 도를 즐기고 부유하여도 예를 좋아함만은 못하다.[可也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學而》
[주D-002]조존(操存) : 마 음을 굳게 가져 보존하는 것을 뜻한다. 공자가 이르기를, “굳게 가지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져서, 드나듦이 일정한 때가 없어 그 정처를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이 마음을 이름인저.[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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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가 한 집이 된 오늘날에 / 四海一家日
삼한은 동쪽 문호가 되었구려 / 三韓東戶扃
백발을 탄식할 줄 어찌 알았으랴 / 那知嘆衰白
다시는 증청을 쓸 필요도 없네 / 更不用曾靑
도를 바라보면 천 리나 멀거니와 / 望道猶千里
글을 짓는 덴 어찌 육경을 썼던고 / 爲文豈六經
붉은 절벽을 차마 거듭 더럽히랴 / 丹崖忍重滓
종산의 영령이 이문을 새기리라 / 移勒有山靈
[주D-001]증청(曾靑) : 복용하면 몸이 경쾌해져서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는 선약(仙藥)의 이름이다.
[주D-002]붉은 …… 새기기라 : 남 제(南齊) 때 주옹(周顒)이 일찍이 종산(鍾山)에 은거하다가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해염 현령(海鹽縣令)으로 나갔는데, 그가 임기를 마치고 도성(都城)으로 가는 길에 다시 종산에 들르려 하자, 일찍이 그와 함께 은거했던 공치규(孔稚圭)가 그의 변절(變節)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산신령의 뜻을 가탁하여 그를 거절하는 뜻으로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었다. 그 글에, “종산의 영령과 초당의 신령이 연기로 하여금 역로를 달려가서 종산의 광장에 이문을 새기게 하였다.……어찌 푸른 봉우리로 하여금 재차 욕되게 하고, 붉은 절벽으로 하여금 거듭 더럽혀지게 하리오.[鍾山之英 草堂之靈 馳煙驛路 勒移山庭……碧嶺再辱丹崖重滓]” 한 데서 온 말이다.
장난삼아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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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의 시가 권축이 가득 찼는데 / 牧隱詩盈卷
읊어보면 글자마다 서툴긴 하나 / 吟來字字疏
때로는 철저히 맑은 정취가 있어 / 有時淸到骨
갠 하늘에 가을이슬 뿌린 듯하네 / 秋露灑晴虛
200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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