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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君子)는 추향(趨向)하는 바를 삼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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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추향할 바를 삼가야 하니 / 君子愼所趨
맘이 갈래면 끝내 바루기 어려워 / 岐而卒難正
모두가 물욕 속에 분분하지만 / 紛紛物欲中
반짝반짝 빛나는 천명이 있다오 / 耿耿有天命
털끝 차이가 천리로 어긋나나니 / 毫釐謬千里
처음부터 조리를 바르게 해야지 / 條理當自整
거센 바람은 큰 파도를 말아가고 / 狂風卷洪濤
잔물결은 고정에서 일어나나니 / 微瀾生古井
발동하는 곳에 기틀을 잘 살피어 / 動處審其機
스스로 안정하는 것부터 힘써야지 / 施功先自靜
삼천 가지나 되는 많은 위의가 / 威儀有三千
무불경 하나에 다 달려 있거니와 / 只在毋不敬
또 보건대 사물이 변화하는 건 / 且看物之變
일개 텅 비고 맑은 명명함에서라네 / 冥冥一虛淨
[주D-001]무불경(毋不敬) :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공경하지 않은 것이 없어, 엄연히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한다.[毋不敬儼若思]” 한 데서 온 말이다.
조미행(糶米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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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년 겨울엔 쌀 비는 편지를 자주 썼는데 / 去冬乞米頻作書
금년 봄엔 환자곡도 도리어 여유가 있구려 / 今春糶米還有餘
늙은 내가 구 년 동안 우환 속에 있다 보니 / 老翁九年憂患中
재상이 내 곤궁함 슬피 여겨 구제해 주누나 / 宰相卹乏哀窮廬
나 같은 병든 말도 임금님 수레 따를 적엔 / 病馬曾從象輅後
등 위의 비단천이 황금 수레에 빛났었고 / 錦幪照耀黃金輿
공덕을 칭도하여 상으로 속미를 내렸으니 / 論功稱德賜粟米
한 번에 한 섬 먹는다는 게 허언이 아니었네 / 一食一石眞非虛
지금은 기가 쇠하고 수척한 뼈만 앙상하여 / 如今氣衰瘦骨聳
뭇 준마들과 멍에를 나란히 할 수 없는데 / 無由竝駕群騊駼
그럼에도 천구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입어 / 尙蒙異恩在天廏
바람 앞에 한 번 울면 그림보다 나으리니 / 臨風一嘶畫不如
장차 갈기를 떨쳐 남은 분노를 쾌설할 적엔 / 會須振鬣快餘憤
봄바람에 향기로운 풀이 교외에 가득하리 / 春風芳草滿郊墟
[주D-001]쌀 비는 편지 : 당(唐)나라 때의 충신(忠臣)이며 명필(名筆)이었던 안진경(顔眞卿)이 일찍이 몹시 곤궁함을 당하여, 당시 이 태보(李太保)에게 쌀을 구걸하는 편지를 보냈던 데서 온 말인데, 그 편지를 세상에서 걸미첩(乞米帖)이라 칭한다.
[주D-002]한 번에 한 섬 먹는다 : 한유(韓愈)의 〈잡설(雜說)〉에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은 한 번에 혹 한 섬의 곡식을 다 먹기도 한다.[馬之千里者 一食或盡粟一石]” 한 데서 온 말이다.
서대행(犀帶行) 오서홍정대(烏犀紅鞓帶) 두 벌은 익재(益齋)와 송정(松亭)이 전해 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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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은 능히 하늘에 통하거니와 / 犀牛有角能通天
불을 붙이면 깊은 못 속을 환히 밝히고 / 火燃下燭窮深淵
고기 새겨 물에 넣으면 삼 척을 열어 주며 / 刻魚入水劈三尺
돌로 만든 무소는 진의 강물을 진압했네 / 磨石作象橫秦川
큰 띠 드리우면 금은어의 갈기 움직이어 / 垂紳金銀魚鬣動
화려한 두 줄로 조정 의식 빛나기도 해라 / 朝儀煥赫分華聯
중조에선 백옥대를 으뜸으로 쳤는데 / 中朝白玉最第一
동국의 반열엔 이보다 앞설 것이 없으니 / 東國班列無居先
이제 알건대 무소의 뿔은 특이한 물건으로 / 是知犀也是異物
검은 바탕 누런 문채에 가볍고도 견고하네 / 質黑文黃輕且堅
불가에선 도를 전수함에 의발이 있었으나 / 僧家授受有衣鉢
유림의 성대한 일은 처음 누가 전했던고 / 儒林盛事初誰傳
문풍의 소중함은 과거를 주관함에 달렸고 / 文風所重在主擧
좌주와 문생 사이에 은의가 온전하나니 / 座主門生恩義全
이 때문에 다행히 좌주가 무양한 시절에 / 所以座主幸無恙
문생이 과시를 주관함은 우연이 아니라네 / 門生掌試非偶然
하늘이 주지 않으면 감히 훔쳐 취하랴만 / 天而不與敢竊取
나 같은 자야 어찌 삼 년 연속을 바랐으랴 / 如我豈望連三年
익재는 눈으로 보며 두 줄기 눈물을 떨구었고 / 益齋眼見落雙淚
송정은 오래전에 이미 신선이 되어 갔네 / 松亭久已登神仙
익재는 글을 지어 이르기를 이 물건은 / 益齋作書曰此物
열헌이 충렬왕의 경연 앞에서 얻은 것이라 했는데 / 悅軒得之忠烈經筵前
왕이 이르길 너는 우리 문단의 으뜸이기에 / 曰汝是我文場元
내 지금 네게 주노니 네가 어진 때문이다 했다네 / 我今賜汝惟汝賢
송정의 자손이 친히 이것을 안고 왔으니 / 松亭子孫親抱送
이 띠가 나온 곳은 예천부원군 권공이로세 / 帶之所出權醴泉
두 가문의 훌륭한 자손은 동국에 빛나서 / 兩家玉笋照東國
문장과 정사로써 어깨를 서로 비비는데 / 文章政事相磨肩
내가 이 영광 입은 건 내가 능해서가 아니라 / 獨荷榮華非我能
가정이 남긴 경복이 한창 이어진 때문일세 / 稼亭流慶方綿綿
[주C-001]익재(益齋)와 송정(松亭) : 익재는 이제현(李齊賢)의 호이고, 송정은 김광재(金光載)의 호인데, 저자에게는 모두가 좌주(座主)였다.
[주D-001]무소의 …… 통하거니와 : 무소의 뿔은 속이 상하(上下)가 관통(貫通)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불을 …… 밝히고 : 전 설(傳說)에 의하면, 무소의 뿔에 불을 붙여 비추면 깊은 물속의 괴물(怪物)들을 다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진(晉)나라 온교(溫嶠)가 일찍이 우저기(牛渚磯)에 이르렀을 때 그 물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고, 또 괴물이 많이 있다고 세상에 알려진 곳이었으므로, 마침내 무소의 뿔에 불을 붙여 비추어 보니, 온갖 기이한 형상을 한 수족(水族)들이 다 보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고기 새겨 …… 열어 주며 : 《포 박자(抱朴子)》 등섭(登涉)에 “삼 촌(寸) 이상 되는 진짜 통천 서각(通天犀角)을 구하여 물고기 모양으로 새겨서 물속에 넣어두면 그 물고기가 사람을 위하여 사방 삼 척(尺)쯤의 공간을 항상 열어 줌으로써, 사람이 물속에서 호흡을 자유로이 할 수 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돌로 …… 진압했네 : 진 효문왕(秦孝文王)이 일찍이 이빙(李氷)을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삼아 그로 하여금 석서(石犀) 다섯 마리를 제작해서 촉강(蜀江)의 수정(水精)을 진압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나 같은 …… 바랐으랴 : 이는 저자가 을사년(1365)에는 동지공거(同知貢擧)로, 기유년(1369)에도 동지공거로, 신해년(1371)에는 지공거(知貢擧)로 연이어 세 차례 과거를 주관했던 일을 가리킨다.
[주D-006]열헌(悅軒) : 조간(趙簡)의 호인데, 조간 또한 이제현의 좌주였다.
[주D-007]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권공(權公) : 권한공(權漢功)을 가리킨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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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으로 폐해진 몸은 은퇴한 것 같고 / 病廢身如退
우환 속의 눈물은 이미 다 말랐네 / 憂居眼已枯
천시는 원래 일정하지 않거니와 / 天時元不定
우리의 도는 본디 우활한 거로세 / 吾道本來迂
눈이 내려라 봄은 아직도 차갑고 / 雨雪春猶冷
강산엔 오늘도 해가 저물어가는데 / 江山日欲晡
매화가 피었다가 또 떨어지니 / 梅花開又落
머리 돌려 임포를 생각하노라 / 回首憶林逋
땅이 외지니 몸 깃들기 안온하고 / 地僻棲身穩
담장 따뜻하니 등을 자주 쬐노라 / 牆暄炙背頻
시서는 늘그막에 자연 알맞거니와 / 詩書宜老境
문밖엔 길 먼지가 전혀 일지 않네 / 門巷絶行塵
말로에 와서 불우하긴 그지없으나 / 末路蹉跎甚
중원의 제도는 막 새로워졌으니 / 中原制度新
후일에 만일 다시 기용되거든 / 他年如起廢
머리 조아려 밝은 신에게 사례하리 / 稽首謝明神
[주D-001]임포(林逋) : 송(宋)나라의 은사(隱士)로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했는데, 그는 특히 매화(梅花)와 학(鶴)을 사랑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매처 학자(梅妻鶴子)라 일컬었다.
유항(柳巷)이 화답해 온 시에 ‘험난한 곳을 질주한다[走險]’는 말이 있으므로, 그 운을 사용하여 사슴[鹿]에 관한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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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봄풀 뜯으며 평화로이 울어라 / 食野呦呦春草深
인재 천거한 당일에 다 함께 노래하였네 / 賓興當日共謳吟
고소대 아래선 일찍이 사슴이 놀았으니 / 姑蘇臺下曾游處
나는 용이 여기에 숨을 줄 누가 알았으랴 / 誰料飛龍向此潛
녹명(鹿鳴) 및 녹유(鹿游)의 고사를 인하여 고금(古今)의 역사를 내리 회상해 보니, 참으로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깊숙한 망이궁에 군졸 호위가 삼엄할 제 / 森森兵衛望夷深
천하의 창생들은 정히 괴로워 신음했는데 / 天下蒼生政苦吟
환관이 공공연히 사슴을 말이라 하였으니 / 熏腐公然指爲馬
포어가 어찌 바다 속에 숨을 수 있었으랴 / 鮑魚那得海中潛
녹유의 고사를 인하여 또 생각이 지록위마(指鹿爲馬)에 미쳤다.
조가에 안 들어간 그 뜻은 더욱 깊거니와 / 朝歌不入意彌深
지명을 자세히 상고해 일일이 음미하자면 / 細考輿圖一一吟
그 누가 일찍이 녹문산 무덤에 올랐던고 / 誰向鹿門曾上冢
본래에 고상한 풍치는 숨는 데에 있다오 / 自來高致在幽潛
난신(亂臣)을 인하여 또 고사(高士)를 언급해서 마침내 나의 뜻을 피력하였다.
[주C-001]험난한 곳을 질주한다 : 춘 추 시대 정(鄭)나라 공자(公子)가 약소국(弱小國)을 몰아붙이지 말라는 의도를 가지고 진(晉)나라 조 선자(趙宣子)에게 전한 말에 “옛사람의 말에 ‘사슴이 죽게 되면 좋은 소리를 가려서 내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을 섬기는 데에 있어, 대국이 소국에 덕을 베풀면 소국은 인도(人道)를 지키지만, 덕을 베풀지 않으면 소국은 죽을 처지에 있는 사슴처럼 되어버립니다. 위급하여 험난한 곳을 마구 질주하는 마당에 비명이나 지를 뿐, 좋은 소리를 어떻게 가려 낼 수 있겠습니까.”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 文公17年》
[주D-001]향기로운 …… 노래하였네 : 《시 경(詩經)》 소아(小雅) 녹명(鹿鳴)에 “평화로이 우는 저 사슴이여, 들판의 쑥을 뜯는도다. 나에게 반가운 손들이 모여서, 비파 타고 피리도 부네.[呦呦鹿鳴 食野之苹 我有嘉賓 鼓瑟吹笙]”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는 곧 임금이 어진 신하들을 불러 주연(酒宴)을 베풀면서 군신(君臣)의 화락한 정을 노래한 것인데, 후세에 와서는 또 주현(州縣)의 시험(試驗)에 급제한 공사(貢士)들에게 베푼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석상에서 그들의 전도(前途)를 축복하는 뜻으로 이 노래를 불렀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2]고소대(姑蘇臺) …… 놀았으니 : 고 소대는 춘추 시대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고소산(姑蘇山) 위에 지은 대(臺)의 이름이다. 부차가 처음에 월(越)나라를 격파하고 나서 미인(美人) 서시(西施)를 얻고는 이 대를 지어 날마다 서시와 함께 그 위에서 유연(游宴)만 즐기다가 끝내는 월나라의 침공을 받아 멸망당하고 말았는데, 한(漢)나라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장군(將軍) 오피(伍被)와 함께 모반(謀反)을 계획할 적에 오피가 회남왕에게 간하여 말하기를 “천자께서 대왕(大王)을 관대히 용서하셨는데, 왕께서 어떻게 다시 이런 망국(亡國)의 말씀을 할 수 있습니까. 신(臣)이 듣건대, 오자서(伍子胥)가 일찍이 오왕에게 간했으나 듣지 않자, 오자서가 말하기를 ‘신이 지금 황무지가 된 고소대에서 미록(麋鹿)이 노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더니, 지금 신 또한 이 궁중(宮中)에 가시나무[荊棘]가 나고 이슬이 옷을 적시는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망이궁(望夷宮) : 진(秦)나라 이세 황제(二世皇帝)가 거처하던 궁궐 이름인데, 끝내는 이세가 승상(丞相) 조고(趙高)에 의해 여기에서 살해되고 말았다.
[주D-004]환관(宦官)이 …… 하였으니 : 여 기의 환관은 본디 환관 출신이었던 승상 조고(趙高)를 가리킨다. 진 시황제(秦始皇帝)가 죽고 이세 황제가 즉위한 후, 조고가 용사(用事)를 하던 중, 조고가 군신(群臣)을 꼼짝 못하게 하고 자기가 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먼저 한 가지 시험을 베풀었던바, 즉 조고가 이세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馬]입니다.” 하자, 이세가 웃으면서 “승상이 잘못 안 게 아닌가?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구려.” 하고, 다른 좌우의 신하들에게 묻자, 혹자는 사슴인 줄을 알면서도 조고의 뜻에 아첨하기 위해 말이라 말하고, 혹자는 사실대로 사슴이라 말하기도 했는데, 끝내 사슴이라고 말한 자는 뒤에 모두 조고의 흉계(凶計)에 의해 처벌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5]포어(鮑魚)가 …… 있었으랴 : 포 어는 소금에 절인 어물(魚物)을 가리킨다. 진 시황이 말년에 순유(巡游)를 나갔다가 평원진(平原津)에 이르러 병이 나서 마침내 무더운 7월에 사구(沙丘)의 평대(平臺)에서 죽자, 조고와 공자(公子) 호해(胡亥)가 진 시황의 죽음을 극비리에 숨겨 발상(發喪)하지 않고, 그 시신(屍身)을 온거(轀車)에 싣고 장안(長安)으로 가던 도중, 포어 1석(石)을 온거에 함께 실어서 시신에서 나는 악취(惡臭)를 숨겨 다른 사람이 얼른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조가(朝歌)에 …… 뜻 : 춘 추 시대 송(宋)나라의 묵적(墨翟)이 일찍이 조가라는 고을에 들어가지 않고 회피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그 까닭인즉, 은(殷)나라의 주(紂)가 처음으로 조가에 도읍을 정하고 또 조가의 음악을 제작하였던바, 아침에 노래하는 것[朝歌]은 때가 아니라는 뜻에서였다고 한다.
[주D-007]그 누가 …… 올랐던고 : 후 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방덕공(龐德公)이 일찍이 처자(妻子)를 거느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약초(藥草)를 캐며 은거했는데, 당시 고사이던 사마휘(司馬徽)가 일찍이 방덕공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침 방덕공은 성묘(省墓)를 가고 없었더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유 개성(柳開城)이 이천(利川)의 별서(別墅)로 돌아갔는데, 나는 그 소식을 늦게야 들은 까닭에 미처 방문하지 못하고, 단편(短篇)의 시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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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집 정하기가 천도 정하기보다 어려워라 / 卜居難似卜遷都
난곡은 예로부터 푸른 오동에 머무른다네 / 鸞鵠由來峙碧梧
평원의 봄기운 광대함을 이미 보고 나니 / 已見平原春動盪
그늘진 골짝 희미한 눈이 가련키만 하구나 / 尙憐陰壑雪糢糊
황량한 송국 사이엔 세 길이 트였거니와 / 荒涼松菊開三徑
뿌연 물결 아득한 오호엔 편주를 띄웠었지 / 縹渺煙波泛五湖
목은 노인 쭈그려 앉았는 걸 비웃지 마소 / 莫笑牧翁終縮坐
여흥 강물에 오리 한 쌍이 목욕을 할 걸세 / 驪興江水浴雙鳧
[주D-001]난곡(鸞鵠)은 …… 머무른다네 : 사 람이 머무를 곳에 머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한유(韓愈)의 〈전중소감마군묘명(殿中少監馬君墓銘)〉에 “물러 나와 태자 소부를 뵈니, 푸른 대나 벽오동나무에 난새와 고니가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그 가업을 잘 지킬 분으로 여겨졌다.[退見少傅翠竹碧梧 鸞鵠停峙 能守其業者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황량한 …… 트였거니와 : 세 길이란 한(漢)나라의 은사(隱士) 장후(蔣詡)가 자기 집 마당에 세 길을 냈던 데서, 전하여 은사가 사는 곳을 의미하는데,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길은 황폐해 가고 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그대로 있구나.[三徑就荒 松菊猶存]”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뿌연 물결 …… 띄웠었지 : 춘추 시대 월(越)나라의 대부(大夫) 범려(范蠡)가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보좌하여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는 바로 은퇴하여 편주(扁舟)를 타고 오호(五湖)에 떠서 종적을 감춰 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다시 절구(絶句)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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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의 폭포에선 돌다리에 눈을 뿌리고 / 絶壁飛湍雪灑矼
얼음 녹은 봄물은 여강에 벌창하는데 / 氷消春水漲驪江
고상한 사람 홀로 편주에 앉아서 갈 제 / 高人獨坐扁舟去
수많은 청산들이 절로 창에 가득하겠네 / 無數靑山自滿窓
천태산 돌다리 걷는 꿈을 꾸는가 하면 / 歸夢天台踏石矼
밝은 달 아래 장강 지나는 꿈도 꾸는데 / 又乘明月過長江
서쪽 이웃의 한 그루 커다란 소나무가 / 西隣一箇長松樹
찬 소리 바람을 병든 창에 보내 주누나 / 風送寒聲到病窓
석양에 솔 배를 이끼 낀 돌다리에 매노니 / 松舟向晚繫苔矼
저문 날의 실바람이 온 강에 가득하구나 / 落日微風滿一江
시의 흥취 호연함을 다 거둬들이지 못해 / 詩興浩然收不得
다시 밝은 달 부르며 봉창에 기대 있노라 / 更呼明月倚篷窓
자 주(自註)에 “상서(尙書) 유사렴(兪思廉)이 여흥(驪興)에 막 부임하였을 때, ‘일엽편주 가운데 나그네는, 삼 년 동안 누대 위의 사람이로다.[一葉舟中客 三年樓上人]’라는 시구를 읊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이 시를 일러 ‘파면되어 돌아가는 시[罷歸詩]’라 하여, 듣는 이들이 이가 시리도록 비웃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사전(賜田)을 받고 돌아갈 계획이 결정되었으므로, 음영(吟詠)하는 사이에 흥취를 의탁함이 적지 않아서, 나 또한 가기도 전에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막 부임한 처음에 이미 ‘삼 년’이란 시구를 읊은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가소롭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래서 스스로 그 과실을 기록하고 또 동배(同輩)들에게 고하여 내가 스스로 내 과실을 잘 알고 있음을 알리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주D-001]천태산(天台山) 돌다리 : 천태산은 예로부터 선경(仙境)으로 유명한데, 여기에는 또 천연의 돌다리가 있어 더욱 유명하다.
고향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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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럽다 당년엔 벼슬길을 일찍 나왔는데 / 苦恨當年早起家
늙어 가매 쇠병으로 반듯이 걷지도 못하네 / 老來衰病步欹斜
강물은 도도히 흘러 하늘가에 이어지고 / 江流溶溶連天際
논밭은 어디에나 물가를 연접해 있거니 / 田野每每幷水涯
어찌 개미와 함께 큰 나무를 흔들려 하랴 / 肯與蚍蜉搖大樹
기꺼이 갈매기 따라 모래톱이나 차지하리 / 喜從鷗鷺占平沙
지금은 문득 꿈속의 일이 의아하여라 / 如今却訝夢中事
눈 다 녹고 들매화가 두루 피었데그려 / 雪盡野梅開遍花
한산(韓山)의 문장으론 유독 우리 집안뿐이라 / 馬邑文章獨我家
이름 적힌 비석 위에 나무 그늘 비껴 있네 / 題名碑上樹陰斜
경인년에는 난천 가의 분학에 나가 있었고 / 庚寅分學灤川上
병술년에는 창해 가에서 장가를 들었었네 / 丙戌頒春滄海涯
침향정에선 악부를 첨가하지 못하거니와 / 不向沈香添樂府
어찌 선실에선 장사 태부를 불러줄쏜가 / 何曾宣室召長沙
예로부터 초목은 생기 있게 잘 자라지만 / 由來草木欣欣耳
다만 동풍을 받아야만 꽃을 조각해 낸다오 / 只被東風剪作花
문장의 법도를 아는 명가가 그 몇이던고 / 文章軌範幾名家
책상 닦고 분향하고 붓에 먹 찍어 쓰노니 / 淨几焚香點筆斜
빛나는 신명은 마치 위에 있는 듯하건만 / 赫赫神明如在上
아득한 물욕은 스스로 끝도 가도 없구나 / 茫茫物欲自無涯
노을 속 목동의 피리 소린 봄 들을 가로지르고 / 淡煙牧笛橫春野
석양의 낚싯대는 저녁 모래톱을 내려가네 / 落日漁竿下晚沙
이것이 바로 남은 생에 돌아갈 곳이거니 / 此是殘生歸宿處
굳이 정원에 다시 꽃 심을 것 없고말고 / 不須庭院更栽花
[주D-001]개미와 …… 하랴 : 한유(韓愈)가 장적(張籍)을 조롱한 〈조장적(調張籍)〉 시에 “개미가 큰 나무를 흔들려고 하니, 자기 역량 못 헤아림이 가소롭구나.[蚍蜉撼大樹可笑不自量]”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경인년에는 …… 나가 있었고 : 원 순제(元順帝) 10년인 경인년(1350)에 이색(李穡)이 난하(灤河) 가에 위치한 원(元)나라 상도(上都)의 분학(分學)에 나가서 수업(受業)했던 일을 가리킨다.
[주D-003]병술년에는 …… 들었었네 : 창해(滄海)는 곧 동국(東國)을 가리키는 것으로, 고려 충목왕(忠穆王) 2년인 병술년(1346)에 저자가 19세로 권씨(權氏)에게 장가를 들었다.
[주D-004]침향정(沈香亭)에선 …… 못하거니와 : 침 향정은 당(唐)나라 궁중(宮中)에 있던 정자 이름인데, 당 현종(唐玄宗) 개원(開元) 연간에 현종이 모란(牡丹) 두어 그루를 흥경지(興慶池) 동쪽, 침향정 앞에 옮겨 심고 이르기를 “명화(名花)를 감상하면서 양 귀비(楊貴妃)를 대한다면야 옛 악부가사(樂府歌辭) 따위를 어디에 쓰겠느냐.” 하고, 마침내 한림(翰林) 이백(李白)을 시켜 청평조사(淸平調辭) 삼장(三章)을 지어 올리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어찌 …… 불러줄쏜가 : 한 문제(漢文帝) 초년에 태중대부(太中大夫) 가의(賈誼)가 군신(群臣)의 참소에 의해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폄척되었는데, 뒤에 문제가 가의를 보고 싶어 하여 그를 선실(宣室)로 불러들이고는 한밤중이 되도록 귀신(鬼神)에 관한 일을 묻는 등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데서 온 말이다.
연주가(連州歌) 공경(公卿)들의 별서(別墅)가 있는 곳이므로, 이를 노래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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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라 연산이 편평한 들을 끼고 있어 / 連州連山擁平野
논밭 많아 예로부터 곡식 많다 일러왔네 / 田多自古稱多稼
봄이면 보리 싹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 春風綠浪漲瀰漫
가을엔 벼 이삭의 누런 구름 무더기라네 / 秋日黃雲屯罷亞
뽕나무 숲은 아득하여 여름 바람 시원하고 / 桑陰漠漠夏風涼
누에 채반은 층층으로 집안에 가득하여라 / 蠶箔層層滿堂舍
부부가 열심히 일하여 생계를 꾸려 가는데 / 夫勤婦苦營生理
베짱이는 또 베를 짜라고 달밤에 울어대네 / 促織又吟明月夜
작은 애는 소 끌고서 우리 밖으로 나오고 / 小兒牽牛將出欄
큰 아이는 말 먹일 제 고삐를 놓아두누나 / 大兒牧馬能縱靶
마을 안 노인들이 번갈아 서로 초청하니 / 里中父老迭相邀
취하고 배부르길 어찌 다시 사양할쏜가 / 醉飽何曾更辭謝
풍속이 아직도 순박함을 절로 알겠으니 / 自知風俗尙純庬
격식을 잘 갖추지 못한 것은 한하지 않노라 / 不恨容儀無醞藉
복사꽃 떠서 흐르는 물이 어드메 있다던가 / 桃花流水安在哉
이 마을은 옛 주진촌과 다를 것이 없구려 / 直與朱陳相上下
백발의 목은도 기어이 한번 가 노닐어서 / 白頭牧隱思一游
격양가 부르며 태평의 풍화를 찬미하련다 / 擊壤謳歌美風化
[주D-001]주진촌(朱陳村) : 당(唐)나라 때 서주(徐州)에 주진(朱陳)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에는 주씨(朱氏)와 진씨(陳氏) 두 성씨만 살면서 대대로 두 성씨끼리 혼인(婚姻)하면서 사이좋게 지냈다고 한다.
환암(幻菴)이 도성(都城)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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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다 녹은 도성 안은 물색도 새로워라 / 雪盡城中物色新
무성한 푸른 산기운 티 없이 말끔하네 / 扶疎山翠淨無塵
마음 놓고 감히 크나큰 임금 은혜 잊으랴 / 安心敢忘君恩重
육십 년 이래로 처음 군왕을 대하는구려 / 六十年來對主人
신묘한 작용 무궁하여 나날이 새로워지니 / 妙用無窮逐日新
장대한 불사가 천하 만물에 두루 미쳤네 / 張皇佛事遍微塵
누가 알랴 환옹은 원래 아무 생각 없으되 / 誰知幻老元無念
생각이 있다면 모두 임금님 축복뿐인 걸 / 有念無非祝一人
젊은 시절 분주한 자취는 아직도 새로운데 / 少日驅馳迹尙新
늙은 나이엔 병이 많아 풍진을 피해 있느라 / 老年多病避風塵
광암사에 내왕을 오랫동안 빠뜨렸으니 / 光巖來往成疎闊
또 묻노라 나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될런고 / 且問如吾有幾人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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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화는 피어서 끝내 멀리 뻗어 나가고 / 優鉢華開竟蔓延
이구산은 우뚝 솟아 도리어 쓸쓸하여라 / 尼丘山聳却蕭條
하늘땅은 아득하여 끝도 가도 없기에 / 茫茫天地無窮盡
요순을 거듭 만나는 건 기필을 못 하겠네 / 未必重逢舜與堯
[주D-001]우발화(優鉢華)는 …… 뻗어 나가고 : 불교(佛敎)가 갈수록 흥성해짐을 뜻한다. 우발화는 인도(印度)에 많이 자생하는 연꽃의 일종인데, 불교 경전(經傳)에서는 이 꽃을 흔히 불안(佛眼)에 비유하고 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2]이구산(尼丘山)은 …… 쓸쓸하여라 : 유도(儒道)가 갈수록 쇠퇴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구산은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 있는데, 이 산에 기도하여 공자(孔子)를 낳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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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이라 동해의 한 제후의 신하여 / 白頭東海一陪臣
낯을 대해 그의 뜻 진실함을 누가 알리요 / 對面誰知意甚眞
동궁의 광한전에 입시했을 제 / 入侍東宮廣寒殿
충의로운 마음이 조신들을 감동시켰네 / 忠肝義膽動簪紳
[주C-001]남촌(南村) : 고 려 말기의 문신 이공수(李公遂)의 호이다. 그가 일찍이 폐위된 공민왕(恭愍王)의 복위를 위해 원(元)나라에 갔다가, 원나라로부터 태상예의원사(太常禮儀院使)에 제수되어 그곳에 머물 적에 한번은 천자의 명에 의해 태자(太子)가 그를 만수산(萬壽山) 광한전(廣寒殿)으로 불러 놓고 여러 가지 일을 질문하자, 그가 충의(忠義)로운 말을 많이 진달했더니, 천자가 태자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듣고는 이르기를 “너의 외가(外家)에는 오직 이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고까지 칭찬을 했다. 태자의 외가라고 한 것은 곧 이공수가 기 황후(奇皇后)와 내외종 남매가 되기 때문이다.
한 정당(韓政堂)과 박 첨서(朴簽書)가 내방(來訪)해 준 데에 받들어 사례하고, 겸하여 나의 회포를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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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요 동문이 죽고 산 이가 반반이라 / 同志同門半死生
술잔 서로 마주하니 그 정을 어이할꼬 / 一樽相對若爲情
구 년 동안의 근심이 구름처럼 흩어져서 / 九年憂病如雲散
만리라 긴 하늘에 달이 유독 밝네그려 / 萬里長空月獨明
그림자와 동행하며 내 인생 한탄하여라 / 獨行携影歎吾生
오십여 년을 다만 이 심정뿐이었는데 / 五十餘年只此情
가정 문하의 훌륭한 손들이 아니라면은 / 不是稼亭門下客
한 잔 술로 뉘 다시 유명을 위로해 줄꼬 / 一尊誰復慰幽明
반쯤 거나하여 새 시가 눈앞에 떠오르매 / 半醉新詩眼底生
황연히 형세를 잊고 정 또한 잊노니 / 恍然忘勢復忘情
먼 후일에 나의 연보를 점검할 적에는 / 他年點檢吾年譜
두 선생이 유독 좌중을 밝게 비추리라 / 兩箇先生照座明
가정의 훌륭한 여러 문하생들 가운데 / 濟濟稼亭門下生
어떤 이인들 소싯적의 정을 바꾸었으랴 / 何人曾改細時情
정조나 기신 때엔 방문할 길이 없었기에 / 正朝忌席無由赴
술 갖고 찾아온 그 뜻 절로 분명하구려 / 尊酒相過意自明
내 인생은 이미 반평생을 넘어섰기에 / 吾生已過半浮生
한 굽이 여강만이 내 마음에 꼭 드는데 / 一曲驪江適我情
작별의 담화 속엔 봄밤 짧은 게 걱정이라 / 話別祗憂春夜短
하얀 촛불 높이 켜고 밤을 꼬박 새우네 / 高燒銀燭到天明
서경(西京)의 이동수(李東秀)를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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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년은 예로부터 떨어져 있기 일쑤였건만 / 同年自古喜參商
하루라도 어찌 좌주를 잊을 때가 있으랴 / 一日何曾座主忘
구 년 동안 병석에 누워 머리가 다 셌으니 / 臥病九年頭盡白
석양 아래서 몇 번이나 서쪽을 바라봤던고 / 幾回西望立斜陽
조천석 아래 대동강에 겹겹 얼음이 얼거든 / 朝天石下結層氷
얼음 밑의 물고기는 흰 눈이 어린 듯하거니 / 氷底纖鱗雪自凝
어느 날에나 소반 가득히 회를 잘게 쳐 놓고 / 何日滿盤飛縷細
술잔 들어 한량없는 술을 자주 기울여 볼꼬 / 引杯頻倒酒如澠
독칠방에 종유하던 친구는 이미 묘연해지고 / 獨七同游已渺然
송정엔 푸른 풀만 차가운 연기에 잠겼어라 / 松亭碧草鎖寒煙
인간은 잠깐 사이에 언뜻 고금을 이루는데 / 人間俯仰成今古
광대한 봄바람이 또 한 해를 시작하였네 / 浩蕩春風又一年
박 밀직(朴密直)으로부터 정 선생(鄭先生)이 문생(門生)들의 축수재(祝壽齋)를 받게 되어 장차 그 모임에 가리라는 소식을 듣고, 선배(先輩)의 유풍(遺風)이 있음을 기쁘게 여겨 삼가 졸시(拙詩)를 지어서 좌하(座下)에 기정(寄呈)하여 한 번의 웃음거리로 삼기를 바라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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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에 복사꽃 오얏꽃이 장안에 가득해라 / 桃李春風滿九街
선생이 만년에 회포를 남김없이 열었네 / 先生晚景儘開懷
금년까지 삼십삼 년이 되었을 뿐이니 / 今年三十三年耳
다시 후년의 축수재를 거듭 쇠게 되리라 / 更數他年祝壽齋
앉아서 사문을 세보면 죽은 이가 절반인데 / 坐數斯文半九原
과거장 먼저 연 이는 유독 공만이 남았네 / 先開試席獨公存
현릉 일대의 사문은 지금 몇이나 남았는고 / 玄陵一代幾人在
나는 병들어 연래에 길이 문을 닫았다오 / 我病年來長掩門
근세에 둘도 없는 이는 다만 익재옹뿐이라 / 近世無雙只益翁
문에 가득한 도리에 춘풍이 그 몇 번이던고 / 滿門桃李幾春風
선생은 아마도 그 의발을 전해 받은 듯한데 / 先生似是傳衣鉢
집안 음식을 공양할 부인이 없어 한이로세 / 主饋無人更在中
[주D-001]춘풍에 …… 가득해라 : 문 하(門下)에 준수한 선비가 많음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나라 때 적인걸(狄仁傑)이 천거한 사람 가운데 명신(名臣)이 많았으므로, 어떤 이가 적인걸에게 말하기를 “천하의 복사꽃, 오얏꽃이 공의 문에 다 있구려.[天下桃李悉在公門矣]”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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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종유할 때는 초청도 안 기다렸는데 / 少日從游不待招
늙어서는 친구도 만나기가 어렵구나 / 老年親舊亦難邀
동풍은 정히 아무런 정도 없는 물건이라 / 東風定是無情物
또 문전을 향하여 버들가지에 불어오네 / 又向門前吹柳條
밤새워 놀던 당년에 어찌 헤어지고팠으랴 / 秉燭當年肯解携
아침부터 읊어서 곧장 저녁에 다다랐더니 / 朝吟直至欲鷄棲
지금 나는 적적한 남쪽 창 아래에 / 如今寂寂南窓下
홀로 앉아서 다시 봄 기럭 소리만 듣노라 / 獨坐更聞春鴈嘶
소년행(少年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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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엔 내가 글을 가장 잘 지어서 / 少年綴文我最工
썼다 하면 가끔 제공을 놀라게 했었는데 / 落筆往往驚諸公
존심 양기의 힘이 철저하지 못한 탓으로 / 存心養氣力未徹
광염이 더 이상 하늘까지 치솟지 못했네 / 光焰不復摩蒼穹
황하의 물이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리면 / 黃河之水天上來
우주를 흔들어 천둥처럼 굉음을 내뿜지만 / 震蕩宇宙雷喧豗
근원 없이 고인 물은 이내 말라 버리나니 / 行潦無根涸可竢
무성한 꽃 큰 열매를 반드시 가꿔야 하리 / 華敷實碩須栽培
궁벽한 시골 마을에 한 해가 또 저물고 / 窮鄕僻地歲云徂
험준한 산골짝엔 고드름이 희끗희끗한데 / 崢嶸洞壑氷糢糊
백발로 서책 대하여 괴로이 읊조리면서 / 白頭苦吟對黃卷
도사에게 어긋남을 걱정해 보려 하지만 / 欲令陶謝愁枝梧
만년까지 무어 하나도 얻은 것 없고 / 晚年所得無一物
고달프기만 할 뿐 배는 굶주려 텅 비었네 / 枵然腹空徒矻矻
때로는 감격하여 속마음을 토로해 보지만 / 有時感激吐心肝
토로하려 해도 안 되어 다시 붓을 놓아라 / 欲吐未吐還閣筆
회상컨대 소년 시절은 다시 오지 않아서 / 回思少年不再來
담장 모퉁이의 단경에 이끼가 끼어 버렸네 / 短檠牆角生莓苔
비록 글을 읽고자 한들 읽을 수가 있으랴 / 縱欲讀書那可得
두 눈은 깜깜하고 나이 또한 노쇠해진 걸 / 兩眼昏黑年光頹
[주D-001]도사(陶謝)에게 …… 하지만 : 도 사는 도잠(陶潛)과 사영운(謝靈運)을 합칭한 말이다. 두보(杜甫)가 허생(許生)의 시(詩)를 높이 찬양하여 지은 시에 “도사와 일치하여 어긋나지 않고, 풍소와 똑같이 추앙을 받겠네.[陶謝不枝梧風騷共推激]”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바로 저자 자신이 도잠과 사영운보다도 더 우월하고 싶은 생각을 말한 것이다.
[주D-002]소년 시절은 …… 끼어 버렸네 : 단 경(短檠)은 짧은 등잔대를 말하는데, 한유(韓愈)가 단경가(短檠歌)에서 등잔대를 빌려 인생(人生)의 무상함을 노래하면서, 소년 시절에는 짧은 등잔대 밑에서 글을 열심히 읽었다가도 일단 과거(科擧)에 급제하여 부귀를 얻고 나면 긴 등잔대 밑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짧은 등잔대는 마침내 담장 모퉁이에 버리게 된다는 것을 노래하였다. 그 시에 “여덟 자 긴 등잔대는 공연히 길기만 할 뿐이요, 두 자의 짧은 등잔대가 밝고도 편리하건만……어느 날 부귀를 얻으면 스스로 방자해져서, 긴 등잔대 높이 걸어 미인들을 비추게 하네. 아 오만 세상일이 그렇지 않은 게 없나니, 담장 모퉁이에 버려진 짧은 등잔대를 그대는 보았나.[長檠八尺空自長短檠二尺便且光……一朝富貴還自恣 長檠高張照珠翠 吁嗟世事無不然 牆角君看短檠棄]” 한 데서 온 말이다.
회포를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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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은 한창 만물을 화생하고 / 春氣方生物
하늘은 참으로 임금을 사랑하여 / 天心儘愛君
사방에서 우로를 골고루 입으니 / 四方均雨露
천재에 풍운의 제회를 만났도다 / 千載會風雲
난리 평정하여 대업을 전하거든 / 撥亂將垂統
대업 보호하여 법을 계승할 텐데 / 持盈重守文
나도 아직은 살날이 남아 있으니 / 猶餘犬馬齒
혹 요순을 도울 기회가 있을는지 / 或是贊華勳
천명은 새 임금을 내놓았는데 / 天命開新主
인심은 옛 임금에게 붙이었네 / 人心屬舊君
금릉엔 밝은 태양이 환히 빛나고 / 金陵輝白日
오랑캐 땅엔 누런 먼지가 잠겼어라 / 氈幕鎖黃雲
변새 북쪽은 지금 질박을 좇거니와 / 塞北今趨質
강남에선 예부터 문명을 숭상했었지 / 江南舊尙文
후일에 올바른 역사를 기록하련만 / 他年修信史
누가 세상 뒤덮는 공훈을 세울런고 / 誰立蓋時勳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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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내는 일찍 일어나 친히 약을 달이고 / 老妻早起親湯藥
작은 여종은 눈살 찡그리며 청소를 하는데 / 小婢長嚬擁帚箕
헝클어진 백발로 비스듬히 병풍 기대어 / 斜倚屛風蓬鬢白
목은 늙은이는 시 한 편을 지어 쓰노라 / 牧翁題出一篇詩
‘해와 달이 비추는 곳과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에 사는 모든 혈기를 지닌 사람치고 존경하고 친애하지 않는 자가 없다[日月所照 霜露所墜 凡有血氣 莫不尊親]’는 말이 우연히 기억나서 사영(四詠)을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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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日)
남긴 땅 없이 만물을 다 쬐어 주고 / 晅物無餘地
빛을 드리워 절로 하늘과 짝하였네 / 垂光自配天
남창의 밝은 빛은 눈이 부시는데 / 南窓明潑眼
그림자 살피며 성상께 축수하노라 / 視蔭祝堯年
월(月)
형체를 숨기어 낮엔 해를 피하고 / 藏形晝避日
빛을 발하여 밤엔 하늘을 운행하네 / 流影夜行天
다만 군왕께서 보게 하기 위하여 / 祗欲君王見
중추의 빛이 일 년 중 가장 밝구려 / 中秋蓋一年
상(霜)
가을 기운은 끝없이 맑은 데다 / 秋氣淸無際
엄한 서리가 하늘에 가득한데 / 嚴霜滿一天
풍산의 종소리 절로 울리어라 / 豐山鐘自動
감응은 해마다 어김이 없다오 / 感應是年年
노(露)
은하수는 씻은 듯이 말끔한데 / 銀河淨如洗
한 방울 이슬이 하늘에서 떨어지니 / 一滴墜玄天
다행히 금선의 손바닥이 있어 / 賴有金仙掌
군왕께 억만년 장수를 누리게 했네 / 君王億萬年
[주C-001]해와 …… 없다 : 이것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31장에 있는 말인데, 즉 성인(聖人)의 광대한 덕화(德化)를 찬미한 말이다.
[주D-001]군왕(君王)께서 …… 밝구려 : 당 명황(唐明皇)이 8월 15일 밤에 술사(術士)인 신 천사(申天師), 홍 도객(洪都客)과 함께 도술(道術)을 부려 월궁(月宮)에 누워 놀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풍산(豐山)의 …… 울리어라 : 《산해경(山海經)》 중산경(中山經)에 의하면, 풍산에는 아홉 개의 종이 있는데, 서리가 내리면 저절로 울린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금선(金仙)의 …… 했네 : 한 무제(漢武帝)가 일찍이 동(銅)으로 선인장(仙人掌)을 만들어 세워서 승로반(承露盤)을 받쳐 들고 이슬을 받게 했었는데, 그 이슬에 옥 가루[玉屑]를 타서 마시면 장생불사(長生不死)한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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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를 포괄해 태반의 부세 거두고 / 籠山收大半
성 쌓는 일은 삼군에게 미치어라 / 土國及三單
태평 이루기가 어찌 용이하랴 / 處泰詎爲易
나라 지키기도 몹시 어려운 걸 / 守成方甚難
송경에 봄기운이 아직 이르니 / 松京春氣早
백악산의 새벽빛이 차가웁구나 / 白岳曙光寒
우리의 도는 본디 우활하지만 / 吾道自迂闊
백관이 있어 나라를 경영한다오 / 經營有百官
유포 둔영(柳浦屯營)의 두목(頭目)이 벼슬자리를 요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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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관작이 천하기가 진흙 같아서 / 官爵如今賤似泥
외양간이나 닭장과도 구별이 안 되는데 / 不分牛巷與鷄棲
수루의 비바람에 꿈을 이루기 어려워 / 戍樓風雨難成夢
백발에 긴 허리로 서대를 띠려 하누나 / 白髮長腰欲帶犀
묘당의 여러 조신은 모두 원수 출신이라 / 廟堂列位盡元戎
바닷가의 둔영을 손바닥 보듯 환히 알아 / 竝海屯營視掌中
조그마한 공로도 기록하지 않은 게 없지만 / 尺寸功勞無不錄
그중 얻기 어려운 것은 백발 늙은이라네 / 箇中難得白頭翁
해마다 잡초는 많고 벼 이삭은 드물어서 / 年年種得稻苗稀
한 항아리 벼 실어 오니 석양이 되어가네 / 甔石輸來欲落暉
흉년이 들어 좌창엔 조세 납부도 못 하니 / 歲歉左倉科不足
가련해라 처자식을 어느 때나 살찌울꼬 / 可憐妻子幾時肥
백씨 중씨가 행렬 따라 백관 속에 끼이니 / 伯仲隨行側百官
한 쌍의 흰 옥이 동반을 환히 비추는구나 / 一雙白玉照東班
출근하고 숙직하는 거야 어려울 게 없지만 / 朝衙夕直非難事
군자는 본디 시위소찬을 수치로 여긴다네 / 君子由來恥素飡
[주D-001]좌창(左倉) : 고려(高麗) 시대에 백관(百官)의 녹봉(祿俸)으로 줄 미곡(米穀)을 저장하던 창고인데, 문종(文宗) 때에 우창(右倉)과 함께 설치했다가, 충렬왕(忠烈王) 때에 이르러 이름을 광흥창(廣興倉)으로 고쳤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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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녹은 시냇물 소리는 담장 밖에 들레고 / 雪盡溪聲隔壁喧
구름 걷힌 햇빛은 창에 비춰 따뜻해라 / 雲收日色照窓溫
춘풍이 이미 사람 눈 놀래키기 넉넉한데 / 春風已足驚人眼
목은 선생만 유독 사립문 닫고 들앉았구나 / 牧隱先生獨掩門
인간의 어디에도 풍진 안 이는 곳 없건만 / 人間無地不風塵
적적한 내 문정에 또 한 봄이 찾아와서 / 寂寂門庭又一春
짤막한 시 구사하여 오만 물상을 담으니 / 驅使小詩籠物像
엄연한 조복 차림의 조정보다 월등히 낫네 / 絶勝廊廟儼垂紳
동갑(同甲)인 개천사(開天寺)의 담선사(曇禪師)가 보낸 서찰(書札)과 차(茶)를 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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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사는 아득히 하늘 한쪽에 있는지라 / 開天渺渺在天涯
연래에 남쪽 바라보다 두 귀밑이 희었는데 / 南望年來兩鬢華
스스로 꿈인가 했더니 꿈은 분명 아니로다 / 自訝夢耶非是夢
두어 줄의 서찰과 한 봉의 차가 왔네그려 / 數行書札一封茶
인하여 무설(無說)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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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 동정호 두루 보고 바닷가에 당도해라 / 遊遍湖湘到海涯
돌아온 뒤엔 시구가 온 경성에 가득했네 / 歸來詩句滿京華
지금은 병석에 누워 아무 일도 없는지라 / 如今臥病無他事
도를 묻는 사람이 와서 차만 마시는구려 / 問道人來只喫茶
[주C-001]무설(無說) : 고려 말기의 선승(禪僧) 무설 장로(無說長老)를 가리키는데, 그는 진원산(珍原山) 가상사(佳祥寺)에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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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고통 밀려든 속에 세월은 흘러가서 / 憂病侵尋歲月闌
광대한 동녘 바람이 봄추위를 겁박하니 / 東風浩蕩㥘春寒
문밖의 이끼 낀 길에 눈은 다 녹았고 / 雪消門外莓苔路
와상 머리 목숙 쟁반에 태양이 비추누나 / 日照床頭苜蓿盤
두통도 안 그쳤는데 치통까지 잇따라라 / 頭痛不禁仍齒痛
몸 편키는 기필 못 하나 마음은 편안하네 / 身安未必便心安
백출을 태워서 향기를 벽에 흠뻑 쏘이고 / 燒來白朮香熏壁
앉아서 당년의 행로난을 손꼽아 세노라 / 坐數當年行路難
[주D-001]와상 머리 …… 비추누나 : 빈 약(貧弱)한 식생활을 뜻한다. 당(唐)나라 때 설영지(薛令之)가 동궁 시독(東宮侍讀)으로 있을 적에 식생활이 매우 빈약하였으므로, 시를 지어 스스로 슬퍼하기를 “아침 해가 둥그렇게 돋아 올라, 선생의 식탁을 비추어 보이네. 쟁반에는 무엇이 있는고 하니, 난간에서 자란 목숙나물이로세.[朝日上團圓 照見先生盤 盤中何所有 苜蓿長欄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행로난(行路難) : 악부(樂府) 잡곡가사(雜曲歌辭)의 이름으로, 그 내용은 처세(處世)의 간난(艱難)함을 비유한 것인데, 특히 당(唐)나라 이백(李白)ㆍ백거이(白居易) 등의 노래가 유명하다.
동년(同年) 이몽유(李夢遊)가 62세의 나이로 벼슬자리를 요구하므로, 인하여 이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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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의 진사는 뭇 영재 중에 뛰어났으니 / 辛巳進士翹群英
송정 선생의 인재 전형이 공평무사하였네 / 松亭提衡無私平
당시에 이씨는 반열 가운데서 빼어났지만 / 當時李氏秀班列
노년엔 뜻을 잃어 마음이 찢어질 듯하누나 / 老年蹭蹬心如裂
이씨는 형이 있어 큰 스님이 되었는데 / 李氏有兄大浮圖
그는 이따금 시서의 일에 유희도 하는지라 / 往往游戱詩書途
대가들이 서로 다투어 자질들을 보내거든 / 大家爭送子與姪
불일간에 학문 성취해 높은 자리에 올라 / 學成不日躋華秩
혹 와서 사은하면 스님은 즉시 사양했으니 / 或來謝恩師卽辭
절로 어진 명을 처음부터 타고난 것이로다 / 自有哲命初生貽
그런데 나는 지금 감히 조화의 힘을 훔쳐서 / 我今敢竊造化力
거만하게 나의 덕으로 자처하고 있네그려 / 傲然自處爲己德
이씨는 나를 따라 그 가운데 노닐면서 / 李氏從之游其中
강습하고 인도함에 숨은 공이 많았으나 / 講習掖誘多陰功
천양지차의 형세로 인해 스스로 멀리했고 / 雲泥勢絶自疎闊
기세를 마구 부려 방자히 구는 걸 보고는 / 氣焰橫行頗挑撻
나가 참예하지 않고 스스로 달게 물러나서 / 自甘屛縮不往參
백발의 나이에도 아직 관함이 없네그려 / 白頭尙爾無官銜
본래 벼슬 않고 치사하는 격식은 없거니와 / 不仕致仕古無格
비지 내리던 세월과는 차이도 현격타마다 / 下批歲月今懸隔
사수에 빠진 주정도 취하기가 어려웠는데 / 鼎沈泗水取之難
더구나 낭사에다 진정을 호소하면 뭘하나 / 又況郞舍呈琅玕
옛날의 비판을 버려두고 쓰지 않은지라 / 舊時批判束高閤
출사할 길이 없어 마음이 안 좋겠지만 / 無由出謝心不樂
그대는 서둘지 말고 조금 머물러 있게나 / 君其無躁幸少留
금년 가을 안으로 선발이 꼭 있을 걸세 / 說選不待今年秋
[주D-001]신사년의 …… 공평무사하였네 : 고려 충혜왕(忠惠王) 복위 2년인 신사년(1341)에 당시 삼사 우사(三司右使)였던 송정(松亭) 김광재(金光載)가 성균시(成均試)를 관장했었는데, 저자 역시 이때의 시과(試科)에 합격했었다.
[주D-002]사수(泗水)에 …… 어려웠는데 : 일찍이 주정(周鼎)이 사수에 빠뜨려져 있었으므로, 진 시황(秦始皇) 말기에 천여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사수에 들어가 이것을 찾게 하였으나, 끝내 찾아내지 못했던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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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간과 민정 관찰을 정랑에게 맡기어라 / 持斧觀風屬正郞
조정 참배한 목백들이 땀을 줄줄 흘리네 / 庭趨牧伯汗如漿
풍교 받들어 덕화 펴기 어려운 일 아니어라 / 承流宣化非難事
지금 주공 소공이 묘당에 앉았으니 말일세 / 周召如今坐廟堂
밤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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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래엔 세상일이 날마다 생겨나기에 / 世事年來逐日生
상념을 못 떨치는 게 스스로 애처롭네 / 自憐無地可忘情
오직 저 풍월만이 사람에게 쓰이는지라 / 惟其風月爲人用
이 때문에 강산이 나를 불러 가게 하네 / 是以江山招我行
절구와 장편 시는 어이 그리 초초한고 / 絶句長篇何草草
뜬구름 흐르는 물은 바쁘기만 하구나 / 浮雲流水亦營營
아직도 남은 습기 완전히 소멸 안 되어 / 尙嫌餘習全消未
때로 남양을 향해 제갈공명을 생각하네 / 時向南陽憶孔明
동해 서해 가에 이 인생 기탁하면서 / 東海西涯寄此生
훌쩍훌쩍 울다 말고 다시 감정 억누르네 / 呑聲哭罷更含情
요순 시대 아득해라 때는 갈수록 못해지고 / 唐虞渺渺時逾降
공맹은 분주했으나 끝내 도를 행치 못했네 / 孔孟區區道不行
한 시대의 사문은 자못 적막하기만 하고 / 一代斯文殊寂寞
사방에선 오늘날 정히 경영에 분주한데 / 四方今日政經營
광대한 봄바람이 꽃과 버들을 재촉하니 / 春風浩蕩催花柳
수없는 청산들이 눈에 비쳐 환히 밝구나 / 無數靑山照眼明
쓸쓸한 백발에 이 한 늙은이가 / 白髮蕭蕭一老生
흥폐를 직접 보고 얼마나 마음 상했던고 / 眼看興廢幾傷情
듣건대 천하에 풍진이 잠잠해졌다 하니 / 似聞海內風塵靜
하늘에 일월이 운행하는 게 정히 기쁘구나 / 政喜天中日月行
옛 제도라서 어찌 숙손의 예를 쓰리오 / 制古寧容叔孫禮
엄한 군령은 한창 아부의 영에 중하도다 / 令嚴方重亞夫營
후일에 예복 입고 상국에 관광을 가거든 / 他年束帶觀光去
연래에 안목이 원대해졌음을 사례하련다 / 爲謝年來視遠明
[주D-001]옛 제도라서 …… 쓰리오 : 한 고조(漢高祖) 초기에 숙손통(叔孫通)이 노(魯)의 제생(諸生)들을 초빙하여 그들과 함께 고례(古禮)와 진대(秦代)의 의식(儀式) 등을 섞어서 채택하여 새로운 예(禮)를 만들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2]엄한 …… 중하도다 : 한 문제(漢文帝) 때 장군(將軍) 주아부(周亞夫)가 세류(細柳)에 군영(軍營)을 두고 있을 적에 군령(軍令)이 대단히 엄격하였으므로, 문제가 여러 군영을 두루 시찰한 결과, 유독 주아부를 일러 참장군[眞將軍]이라고까지 칭찬했던 데서 온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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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과 기러기 털 어느 게 중하고 경할꼬 / 性命鴻毛誰重輕
모진 고통에 몇 번이나 죽고 싶어했던가 / 幾回苦極欲捐生
새벽이 오매 치아는 아직 은근히 아픈데 / 曉來牙齒猶微痛
앉아서 가동이 마당 쓰는 소리를 듣노라 / 坐聽家童掃地聲
버들가진 비에 젖어 가벼이 흔들거리고 / 柳條和雨弄柔輕
물 북쪽 산 남쪽엔 풀이 절로 돋아나네 / 水北山南草自生
봄 꿈이 깨려 할 제 아침 해가 떠오르니 / 春夢欲回朝日上
귓가에 수시로 새 우는 소리 들리누나 / 耳邊時有鳥啼聲
적막한 정원에 새벽바람이 솔솔 부는데 / 寂寥庭院曉風輕
홀로 앉아 읊조리며 이 생을 사절하노라 / 獨坐沈吟謝此生
오늘도 추위 무릅쓰고 조정에 나가봤자 / 當日耐寒趨合坐
임금 바르게 인도하는 소리는 적적할 걸 / 黃裾引道寂無聲
분 파는 사람[賣粉者]을 두고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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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싼 흰 가루 한 봉지를 펼쳐 놓고 / 紙裹分開雪一堆
문 곁에서 말하길 정료에서 왔다 하누나 / 傍門云自定遼來
늙은 아내는 병이 많아 머리 단장도 못 해 / 老妻多病忘膏沐
경대에 거미줄이 얼기설기 쳐져 있는 걸 / 蛛網橫遮明鏡臺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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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가 다 덧없는 이 세계라 / 浮漚世界去來今
한 치 마음속에 만 길 먼지만 쌓이었네 / 萬丈黃埃一寸心
후일에 홀로 강가의 길에서 노닐거든 / 他日獨游江上路
흰 물결 푸른 산에 저문 구름 깊으리라 / 白波靑嶂暮雲深
근래에 돌아간 이가 사문이 절반인 데다 / 近來淪喪半斯文
초나라 굴원 쫓겨난 건 더욱 가련하구나 / 放逐尤憐楚屈原
홀로 병석에 누워 빠른 세월에 놀라면서 / 獨向病中驚歲月
한산의 늙은 목은은 사립문을 꽉 닫았네 / 韓山牧老掩柴門
반월의 동풍은 아직 날카로이 차가운데 / 半月東風料峭寒
완연한 봄기운은 붓끝에 발동하누나 / 十分春意動毫端
채소밭을 어찌 양이 마구 짓밟게 할쏜가 / 菜園肯使羊來踏
아비 자식 대대로 한결같이 빈곤뿐일세 / 父子傳家一味酸
[주D-001]채소밭을 …… 할쏜가 : 옛 날 어떤 사람이 항상 채소만 먹고 살다가 갑자기 양육(羊肉)을 한 번 먹었더니, 그날 밤 꿈에 오장신(五臟神)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양이 채소밭을 짓밟아 버렸다.[羊踏破菜園]”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항상 채소만 먹고 사는 청빈한 생활을 의미한다.
우연히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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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베짱이를 한 번 읊조리는 게 / 一詠螽斯羽
일생 백 년 군자의 마음이라네 / 百年君子心
집을 바루려면 먼저 몸을 바루되 / 正家先正己
몹시 삼가서 일각을 아껴야 하리 / 惕若惜分陰
역상은 천변 만화에 응하거니와 / 有象應千變
정처 없는 건 한 마음뿐이로다 / 無鄕只一心
욕심을 적게 하여 선심을 길러 가면 / 養成從寡欲
태양 가린 짙은 구름을 깨뜨리리 / 白日破重陰
나의 학문은 별다른 방도가 없고 / 我學無他術
평생에 이 마음 검속하는 일이니 / 平生檢此心
털끝만큼인들 어찌 감히 방자하랴 / 一毫何敢肆
끊임없이 가는 게 바로 세월이라네 / 袞袞是光陰
군 자(君子)의 도(道)는 가정을 바르게 하는 데에 있으니, 가정을 바르게 하려면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먼저 방심(放心)을 거둬들여야 하는데, 방심을 거둬들이는 방도는 ‘털끝만큼도 감히 방자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위의 삼장(三章)에 다 갖추어졌으니, 보는 이들은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주D-001]수많은 베짱이 : 《시 경(詩經)》 주남(周南) 종사(螽斯)에 “수많은 베짱이들 화목하게 모여드니, 의당 네 자손이 대대로 번성하리라.[螽斯羽 詵詵兮 宜爾子孫 振振兮]” 한 데서 온 말인데, 즉 문왕(文王)의 후비(后妃)가 투기하지 않고 모든 궁녀(宮女)들과 화목하여 자손이 많았으므로, 궁녀들이 그를 한 번에 99개의 알을 낳는 베짱이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다.
면마행(眠魔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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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에 기침이 발작하여 그치지 않아 / 咳嗽夜深發不止
누웠다 일어났다 또 비기기도 하지만 / 臥而復起起又倚
심장이 뒤집히고 가래가 위로 치오르니 / 肝腎翻動痰上逆
폐장이 침공을 받아 가슴이 꽉 막히어라 / 肺受橫侵胸膈否
막혔다 통했다 하는 것이 기의 형세라서 / 有否有通氣之勢
밤 내 막혔다 통했다 내 몸 지치게 하누나 / 終夜相激疲吾體
그러나 한가운데 한 치의 밝은 마음속은 / 中間靈臺方寸赤
신명이 혁혁하여 이게 바로 천자이기에 / 神明赫赫是天子
평상시의 거동은 당연히 조용하거니와 / 平時擧動儘從容
또한 제어를 받는 것도 잠시일 뿐이라네 / 亦復受制聊爾耳
잠의 마귀는 일찍이 내 원수가 되었으니 / 眠魔與我爲敵讎
나의 뱃속에 문자가 많이 못 들게 하고 / 使我腹中少文字
이를 쪼개 가서 내 노염 마구 부리게 하여 / 磔而去之肆我怒
일찍이 마귀를 천리 밖에 내치려 했는데 / 嘗欲放流去千里
오늘 밤엔 마귀의 공이 갑자기 생각나서 / 今夜忽念眠魔功
그를 불러오게 하여 그 뜻을 위로해 주니 / 招之使來慰其志
피부가 윤택해지고 정신 또한 장쾌하여라 / 肌膚豐潤精神壯
이게 다 출중한 그대의 공이로다 / 盡是公功功出類
가사 내가 소년 시절에 오늘 밤 같았다면 / 使我少年似今夜
몸을 못 가눈 터에 무얼 의지하려 했으랴 / 身不自持欲何恃
내 지금 다시 잠의 마귀의 공에 감사하노니 / 我今更謝眠魔功
천하에 네 아니면 인간 기강이 끊어지리라 / 天下非渠絶人紀
동짓날에 관문 닫고 밤 되면 편히 쉬어라 / 至日閉關晦宴息
주역에 내린 훈계가 깊은 뜻이 있네그려 / 大易垂訓深有旨
[주D-001]동짓날에 관문 닫고 : 《주 역(周易)》 복괘(復卦) 상(象)에 “우레가 땅속에 있는 것이 복이니, 선왕이 그것을 인하여 동짓날에 관문을 닫아 상인들이 다니지 못하게 하고, 임금이 사방을 순시하지 않도록 하였다.[雷在地中復 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복괘의 양(陽)은 처음으로 생긴 미양(微陽)이기에 그것을 안정(安靜)으로써 기르기 위한 뜻이라고 한다.
[주D-002]밤 되면 편히 쉬어라 : 《주 역》 수괘(隨卦) 상(象)에 “못 속에 우레가 있는 것이 수이니, 군자가 그것을 인하여 날이 어두워지면 들어가서 편히 쉬나니라.[澤中有雷隨 君子以 嚮晦入宴息]”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우레가 때에 따라 발동하는 것을 본받아 사람 또한 기거동정(起居動靜)을 시의(時宜)에 따라서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초은(樵隱)의 묘지명(墓誌銘) 후미에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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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의 초은은 신선이 되어 올라가고 / 京山樵隱登仙去
외로운 학만 아득히 공중을 나는데 / 獨鶴渺渺空中擧
광암사 구름 연기 참담하여 빛이 없어라 / 光巖雲煙慘無色
요동 들에서 어떤 이의 말을 다시 들을꼬 / 遼野何人更聞語
당년에 초은의 뒤를 따르던 한 동자가 / 當年隨後一童子
병 많고 근심도 많아 이제는 늙었는데 / 多病多憂今老矣
억지로 몽당붓 들어 묘지명을 쓰는 것은 / 强拈敗筆銘幽堂
후일의 훌륭한 사관을 기다리기 위함일세 / 祗爲他年有良史
이 노인은 곧장 옛 문풍을 따르려 하여 / 斯翁直欲追古風
멀리 천재의 문장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 遠跨千載文章宗
그 당시에 공이 저술한 비문 한두 편은 / 當時碑誌一二篇
글자와 뜻 예스러워 종정 문자 모방했는데 / 字古義邃摹鼎鐘
다만 몹시도 아끼어 스스로 비장하고서 / 祗是愛惜自祕多
두 손으로 만지기만 한 게 매우 싫었었지 / 深嗔兩手徒摩挲
인간의 어느 곳이든 견식 갖춘 이가 있어 / 人間到處有具眼
응당 유창한 문장을 뱉어낼 수는 있지만 / 應須吐出如懸河
혹자는 재주는 높으나 기력이 짧아서 / 或是才高氣力短
바쁜 마음에 가끔 땀만 줄줄 흘리기도 하고 / 心煩往往膚流汗
혹자는 소인의 참소하는 입을 기피하여 / 或是避却讒夫口
미친 놈에게서 비난이 나올까도 저어한다오 / 恐有譏評出狂竪
그러나 공은 평생에 안하무인의 경지로 / 平生眼前無一人
이백 두보 한유 유종원과 어깨를 겨뤘는데 / 李杜韓柳爲比隣
누가 알았으랴 목은이 다행 중 다행으로 / 誰知牧隱幸又幸
국가의 전례 맡아 문단에서 뫼시게 될 줄을 / 參掌國典陪文茵
그러나 이제는 선배들이 모두 돌아가고 / 如今前輩盡凋落
백발로 적막을 향해 외로이 읊조릴 뿐이니 / 白首孤吟向寂寞
알건대 공은 구원에서 응당 크게 웃겠지만 / 知公九原應大笑
우리 무리도 쓸모없어진 지 이미 오래라오 / 久矣吾曹束高閣
[주C-001]초은(樵隱) : 고려 말기의 학자이며 명상(名相)인 이인복(李仁復)의 호이다.
[주D-001]경산(京山) : 성산(星山)의 옛 이름으로, 이인복의 관향이다.
[주D-002]요동(遼東) 들에서 …… 들을꼬 : 요 동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일찍이 영허산(靈虛山)에서 선술(仙術)을 배우고 뒤에 학(鶴)으로 변화하여 고향에 돌아가서 성문(城門)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았는데, 때마침 한 소년(少年)이 활을 가지고 그를 쏘려 하자, 그 학이 날아올라 공중을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새로 변화한 정영위가,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야 돌아왔네. 성곽은 예와 같은데 사람은 간 곳 없어라, 어이해 신선 안 배우고 무덤만 즐비한고.[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청어(靑魚)를 두고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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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말에 청어가 스무 마리 남짓인데 / 斗米靑魚二十餘
끓여오매 흰 주발이 채소 쟁반을 비추네 / 烹來雪盌照盤蔬
인간의 맛 좋은 물건들이 응당 많으리라 / 人間雋永應多物
산더미 같은 흰 물결이 하늘을 치는 곳엔 / 白浪如山擊大虛
생률(生栗)을 두고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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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밤을 땅 귀신 의탁해 움에 저장했더니 / 窖藏霜栗托黃祇
옥 같은 바탕 더욱 단단하고 색도 안 변했으나 / 玉質彌堅色不移
싹이 나와서 진미가 감손됨을 점차 보겠네 / 漸見芽生眞味減
화로에 구워 씹어 먹으니 절로 때를 알겠구려 / 圍爐細嚼自知時
밤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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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자 기침이 또 예전같이 나와서 / 夜深咳嗽又如前
앉으나 누우나 기대나 모두가 불편하네 / 坐臥欹傾摠不便
벌꿀을 먹으니 그제야 폐는 부드러운데 / 崖蜜啖來初肺潤
촛불이 다 타니 다시 마음을 졸이누나 / 燈花落盡只心煎
목소리가 청탁 잃음은 점차 알겠거니와 / 漸覺聲音失淸濁
사지육체도 뻣뻣해짐을 문득 놀라노라 / 却驚支體更拘攣
어찌하면 다시 옛날 아동 시절과 같이 / 何當復似兒童日
뭇 닭이 다 울 때까지 깊이 잠들어 볼꼬 / 唱罷群雞爛熳眠
설(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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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에 솔솔 내려 사립짝에 뿌리어라 / 夜深颯颯灑柴扃
꿈 깨고 일어나 이게 눈 소린가 의심하여 / 夢罷仍疑是雪聲
급히 소녀를 불러서 문을 열고 살펴보니 / 急喚小娃開戶視
병객이 창 너머로 듣기에 가장 알맞구려 / 最宜病客隔窓聽
해마다 다순 겨울에 마음은 번열이 나도 / 年年冬煖心猶熱
밤마다 봄추위엔 뼈가 절로 맑아지누나 / 夜夜春寒骨自淸
어느 날에나 여흥의 강가로 가서 살다가 / 何日驪興江上去
도롱이 삿갓 일엽편주로 죽어 내 편안할꼬 / 孤舟簑笠歿吾寧
아침에 탕약 마셔 심장을 깨끗이 맑히고 / 朝來湯藥淨心腸
문을 여니 눈보라의 형세 미친 듯하네 / 開戶飛花勢似狂
무성한 낙락장송은 머리가 희려 하는데 / 鬱鬱長松頭欲白
아득히 넓은 평야는 낯이 아직 누렇구나 / 茫茫平野面猶黃
남은 생엔 몇 번이나 은빛 세계에 놀랄런고 / 殘生幾度驚銀海
옛 꿈은 자주 돌아와 옥당으로 드네그려 / 舊夢頻回入玉堂
다만 한스러운 건 서호에 가서 놀지 못해 / 只恨西湖游不到
성긴 그림자 은은한 향이 아직 의아함일세 / 尙疑疎影暗浮香
[주D-001]서호(西湖)에 …… 의아함일세 : 송 (宋)나라 때 서호 가에 은거했던 처사(處士) 임포(林逋)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아래 부동하네.[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영가군(永嘉君) 권고(權皐)에게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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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삼달존 가운데서 호걸을 들자면 / 東方三達尊中傑
국재 시중이 유독 앞자리를 차지했으니 / 菊齋侍中獨前列
몸에 지닌 도덕은 참으로 심원하였고 / 道德在躬信淵深
세상에 빛난 문장은 옥처럼 깨끗하였네 / 文章照世仍玉潔
훌륭한 여러 아들은 다 고관이 되었는데 / 振振諸子盡高官
그중에도 길창부원군이 삼한을 군림하니 / 吉昌府院臨三韓
백미의 호기는 조금도 맞설 자가 없거니와 / 白眉豪氣少無敵
붕정 만리엔 먼지 하나 막힘도 못 보았네 / 鵬程不見纖塵隔
소년 재상 계림 윤은 / 少年宰相尹雞林
포편 사용도 없이 사람들이 절로 발라져서 / 蒲鞭不用人自格
남긴 사랑이 지금껏 민심에 흠뻑 스미었고 / 至今遺愛淪心肝
풍류의 성대한 일은 유림 사이에 전해 오네 / 風流盛事傳衣冠
끝없이 흐르는 세월은 번개같이 빨라서 / 流光荏苒飛電滅
머리 위에 두어 가닥 흰 털이 더해졌는데 / 頭上空添數莖雪
시담을 나누려면 매양 담암옹을 불러서 / 詩談每喚淡庵翁
백일 아래 거문고 술을 잠시도 걷지 않았고 / 白日琴尊無暫輟
인간 세월은 마치 튀는 공처럼 빠르기에 / 人間歲月如跳丸
가끔 홀로 읊을 땐 애환이 교차하기도 하네 / 獨詠往往交悲歡
한산의 목동은 학문이 투철하지 못하거늘 / 韓山牧子學末徹
헛된 명성으로 감히 선철 뫼시길 바라랴만 / 虛名敢望陪先哲
간혹 초청받아 좋은 자리에 뫼시고 앉아서 / 或蒙折簡侍淸娛
교졸을 잊고 시를 마구 지어내기도 했더니 / 吐出詩章忘巧拙
요즘은 병석에 누워 고통이 갑절이라 / 邇來臥病倍辛酸
절뚝발이 양이 높은 데 못 오름과 흡사하네 / 跛牂無路登巑岏
비단 같은 봄꽃은 내가 꺾고자 하는 바요 / 春花如錦我所折
물결 같은 가을 달은 내가 좋아하는 바요 / 秋月如波我所悅
시원한 봉우리와 대자리는 내가 앉는 바요 / 氷峯竹簟我所坐
눈 녹인 물로 끓인 차는 내가 마시는 바이라 / 雪水茶甌我所啜
공을 따라 함께 놀기를 그리도 원하건만 / 甚願從公共盤桓
크고 작은 역량이 서로 다름을 어찌할쏜가 / 奈此鵬鷃難同觀
공은 팔순 나이로 인간 상서를 이뤘거니와 / 公乎期頤作人瑞
나는 지금 오십 나이로 곤궁함을 잊었다오 / 我今知命忘酸寒
[주C-001]권고(權皐) : 고려 말기의 문신(文臣)으로,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에 봉해지고 벼슬이 검교시중(檢校侍中)에 이르렀는데, 그는 곧 첨의 정승(僉議政丞)으로 역시 영가부원군에 봉해진 국재(菊齋) 권보(權溥)의 아들이기도 하다.
[주D-001]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 권고의 백형인 권준(權準)의 봉호이다.
[주D-002]백미(白眉) : 형 제(兄弟)들 가운데 재능(才能)이 가장 뛰어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촉한(蜀漢)의 마량(馬良) 오 형제가 모두 재명(才名)이 있었으되, 그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뛰어났는데, 유독 마량의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었으므로, 향리(鄕里) 사람들이 “마씨(馬氏) 오 형제 중에 백미(白眉)가 가장 훌륭하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주D-003]소년 재상 계림 윤(鷄林尹) : 권고의 바로 손아래 동생으로 일찍이 계림 윤을 지냈던 권후(權煦)를 가리킨다.
[주D-004]포편(蒲鞭) : 때 려도 아프지 않도록 부들 가지로 만든 회초리를 말한다. 후한(後漢) 때 유관(劉寬)이 남양 태수(南陽太守)로 있을 적에 인후(仁厚)한 성품으로 사람들의 과실을 많이 용서하였던바, 아전이나 백성들이 혹 과실을 지었을 경우에는 그를 포편으로 다스려서, 모욕적인 것만 느끼게 하고 끝내 고통을 주지 않았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관후(寬厚)한 형벌을 의미한다.
[주D-005]담암옹(淡庵翁) : 담암은 고려 말의 문신 백문보(白文寶)의 호이다
중손(仲孫) 맹균(孟畇)이 좌창동(左倉洞)으로 돌아오면서 인하여 그 외조댁(外祖宅)을 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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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균이 하룻밤을 내 집에 와서 묵으니 / 孟畇一夜宿吾家
친애의 정 깊기도 해라 기쁘기 가이없네 / 親愛情深喜莫涯
외손은 꼭 성취할 것을 기대할 만하려니와 / 宅相必成眞可竢
문풍은 다시 떨쳐 다행히 어긋남이 없으리 / 文風復振幸無訛
좌창동은 멀어라 낙락장송이 무성하고 / 左倉洞遠雲松暗
삼현문은 높아라 저녁노을이 비껴 있네 / 三峴門高夕照斜
늘그막엔 아손들을 자주 보아야 하니 / 老境兒孫宜數見
모름지기 꽃이 피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 歸來須及未開花
당대(唐代) 현사(賢士)의 화시(花詩)를 읽고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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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마음이 바로 봄 경치이고 / 花心是春色
봄 경치가 바로 꽃 마음인데 / 春色是花心
조물주는 스스로 말이 없어서 / 造物自無語
사람에게 괜히 애써 읊게 하누나 / 令人空苦吟
[주D-001]꽃 마음이 …… 꽃 마음인데 : 당(唐)나라 왕유(王維)의 〈홍모란(紅牧丹)〉 시에 “꽃 마음은 애가 끊어지려 하건만, 봄 경치는 어찌 꽃 마음을 알리오.[花心愁欲斷 春色豈知心]” 하였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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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에 아침노을이 걷히니 / 東方雲錦卷
붉은 햇살이 창문을 쏘아 비추네 / 紅日射窓櫺
앓은 뒤라 몸은 아직 피곤하나 / 痛後身猶困
읊고 나니 뜻은 절로 편안하네 / 吟餘志自寧
서책은 책상 위에 가득 쌓였고 / 簡篇堆几案
깊은 골짝은 문정을 감싸았도다 / 洞壑擁門庭
꾀부리는 일 잊는 걸 점차 깨달으니 / 漸覺忘機事
세월이 번개처럼 번쩍번쩍 가누나 / 光陰似迅霆
정도전(鄭道傳)을 생각하며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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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소 걱정해 처음에 자리 옮기더니 / 憂讒初避地
조용함 좋아해 마침내 기심 잊었네 / 愛靜遂忘機
낭서엔 곧은 말 할 사람이 없으나 / 郞署無司直
천도의 근원엔 홀로 묘처 발명했네 / 天原獨發微
세상 인정은 예전처럼 각박커니와 / 世情依舊薄
우리 도는 이제 와서 그릇되었구려 / 吾道至今非
후일에 우리가 서로 종유할 곳은 / 他日相從處
참선하는 방이나 낚시터일 거로세 / 禪窓與釣磯
묵헌문집(默軒文集)의 후미에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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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의 문집에 장원이 서문을 썼으니 / 壯元文集壯元序
동국의 문장을 모두 전하게 되었구려 / 東國文章儘可傳
양손이 영원히 전하려는 게 가장 기뻐라 / 最喜兩孫謀不朽
화려한 여주가 하늘을 비추는 듯하구나 / 驪珠粲粲照雲天
문장이라서 꼭 다 영화를 누리는 건 아니나 / 文章未必盡榮身
국가를 빛내는 덴 예부터 형세가 뛰어났는데 / 華國由來勢絶倫
그중에 청춘이 헛되이 늙는단 구절을 보니 / 最恨靑春虛老句
당년에 묵묵히 상심했을 게 가장 한스럽구려 / 當年默默暗傷神
[주C-001]묵헌문집(默軒文集) : 묵헌은 고려 시대 문장가(文章家)로 일찍이 문과(文科)에 장원하고 벼슬이 정승(政丞)에 이르렀던 민지(閔漬)의 문집이다.
[주D-001]장원의 …… 썼으니 : 저자가 일찍이 묵헌문집의 서문을 썼는데, 저자 또한 장원 급제 출신이므로 한 말이다.
[주D-002]양손(兩孫) : 민지의 두 증손(曾孫)인 민안인(閔安仁)과 민유의(閔由誼)를 가리킨다. 이들이 저자에게 서문을 지어달라고 요청했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3]여주(驪珠) : 검은 용[驪龍]의 턱 밑에 있는 구슬이라는 뜻으로, 전하여 긴요한 문장에 비유한다.
고풍(古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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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일어 하늘에 가득하니 / 浮雲動滿盈
태양은 가렸다 또 나오곤 하는데 / 寒日翳復吐
문항이 적막하여 들레지 않으니 / 門巷寂無喧
은거한 이는 절로 깊이 막히누나 / 幽人自深阻
도를 사모해도 혹 지취가 부정하면 / 慕道或趨岐
그 누군들 썩은 선비가 아니될쏜가 / 爲儒孰非腐
하늘땅은 나날이 적막해지고 / 乾坤日寂寥
기영은 연기 속에 묻혀 버렸네 / 箕潁埋煙雨
노쇠함은 자위라도 할 수 있는데 / 老衰尙自寬
깊은 근심이 심장을 꺾는구나 / 沈憂摧肺腑
도연명은 천재에 한 사람이라 / 淵明千載人
도리 달관에 진정 짝이 없으련만 / 達道諒無匹
어찌하여 스스로 생각을 괴롭혀 / 奈何苦心思
추졸한 말들을 붓끝에 부쳤던고 / 醜拙寄於筆
그런 때문에 두릉옹이 / 所以杜陵翁
한 마디 말로 감히 힐난했었네 / 一語敢相詰
시인이 초췌함을 한탄하는 건 / 詩人恨枯槁
예나 지금이나 모두가 일률이건만 / 今古用一律
백낙천만은 진정을 토로했으니 / 樂天是眞情
내 무릎을 당연히 꿇어야겠네 / 我膝當爲屈
[주D-001]기영(箕潁) : 기산(箕山)과 영수(潁水)를 합칭한 말인데, 요(堯) 임금 때의 은사(隱士) 소보(巢父)ㆍ허유(許由)가 천자(天子) 자리도 마다하고 여기에 은거했다.
[주D-002]두릉옹(杜陵翁)이 …… 힐난했었네 : 두 보(杜甫)의 〈견흥(遣興)〉 시 5수 가운데 도잠(陶潛)을 두고 읊은 시에 “도잠은 세속을 피한 늙은이일 뿐, 꼭 도리를 통달한 건 아니로다. 그의 시문에 나타난 것을 보면, 역시 꽤나 곤궁함을 한탄했으니, 생사 초월을 어찌 만족히 했으랴, 묵묵히 도를 기억함도 안 일렀으리. 자식들의 어짊과 어리석음을, 왜 또 마음에 두었단 말인가.[陶潛避俗翁 未必能達道 觀其著詩集 頗亦恨枯槁 達生豈是足 默識蓋不早 有子賢與愚何其掛懷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시인이 …… 토로했으니 : 낙 천(樂天) 백거이(白居易)의 〈기동병자(寄同病者)〉 시에 “얼굴은 날마다 초췌해지고, 시명은 날로 불우해 가지만, 어찌 유독 나만 이러하랴, 성현도 어찌할 수 없었네.……굶주림과 요절의 고통을, 나보다 더 당한 이도 많은지라, 이로써 스스로 위로를 하면, 항상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오.[面顔日枯槁 時命日蹉跎 豈獨我如此 聖賢無奈何……窮餓與夭促不如我者多 以此反自慰 常得心平和]” 한 데서 온 말이다.
2월 초하룻날 둘째 아들 집에서 찰밥을 보내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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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이 자르르한 찹쌀밥에 석밀을 섞고 / 粘米如脂石蜜和
다시 여기에 잣과 밤과 대추를 곁들여서 / 更敎松栗棗交加
천만 가호들이 이를 서로 받들어 보낼 제 / 千門萬戶擎相送
새벽빛 싸늘하고 까마귀는 날갯짓하네 / 曙色蒼涼欲起鴉
앞의 시운을 사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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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풍이 서서히 화창한 봄기운 발산하니 / 東風淡蕩動陽和
음사한 게 다시 침범하지 못할 걸 믿겠네 / 已信陰邪不復加
문득 붓끝을 향해 조화를 나누어 부리니 / 却向筆端分造化
봄 구름 뭉게뭉게 글자는 까마귀 같구나 / 春雲靄靄字如鴉
술 취해 난정을 쓸면서 영화를 상상하노니 / 醉掃蘭亭想永和
한때의 정경이 그 어느 게 이보다 더할꼬 / 一時情景有誰加
무우에 바람 쐬고 읊는 게 내 집의 일이요 / 舞雩風詠吾家事
그 당시 무림엔 응당 까마귀가 가득했으리 / 回首茂林應滿鴉
[주D-001]영화(永和) : 진 목제(晉穆帝)의 연호인데, 왕희지(王羲之)의 〈난정기(蘭亭記)〉에 의하면, 영화 9년 늦은 봄에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서 왕희지ㆍ사안(謝安) 등 42인의 명사(名士)들이 모여 계사(禊事)를 행하고는 이어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으며 성대한 풍류(風流)놀이를 했었다.
[주D-002]무우(舞雩)에 …… 읊는 게 : 공 자(孔子)가 제자들에게 각자의 소원을 묻는 말에 대하여, 증점(曾點)이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冠者) 대여섯 사람, 동자(童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조리면서 돌아오겠습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주D-003]무림(茂林) : 무성한 숲을 말하는데, 왕희지의 〈난정기〉에 의하면, 난정 주위에 숭산 준령(崇山峻嶺)과 무림 수죽(茂林脩竹)이 있다고 했으므로 한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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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풍이 밤낮으로 외로운 읊조림 일으키니 / 東風日夜動孤吟
읊어가고 읊어오매 얕기도 깊기도 하여라 / 吟去吟來淺復深
필경엔 진창 위에 발자국만 남을 터이니 / 畢竟只留泥上迹
아득히 날아간 기러기를 누가 다시 찾을꼬 / 鴻飛杳杳更誰尋
창밖의 바람 소린 성내어 부르짖는 듯하고 / 窓外風聲似怒號
창 안의 병든 사람은 정히 무료하기만 해라 / 窓間客病政無聊
무리들 준동이 어느 때 그칠지 모르겠으니 / 不知群動何時已
남은 생애엔 적막이나 지키는 게 꼭 좋겠네 / 恰向殘生守寂寥
초목이 이미 생기 있게 자람을 깨닫겠어라 / 便覺欣欣已向榮
아침에 정원 나무에서 바람 소리를 들었네 / 朝來庭樹得風聲
하지만 꽃과 방초 만발하길 기다리지 않고 / 不待十分紅綠遍
지금의 정경만으론 평하기가 어렵고말고 / 祗今情景自難評
[주D-001]진창 위에 …… 찾을꼬 : 눈 이 녹아 가는 진창 위에 남긴 기러기의 발자국은 얼마 안 가서 바로 사라지는 것이므로, 전하여 인생의 종적(蹤跡)이나 사업(事業)의 덧없음을 비유하는데, 소식(蘇軾)의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 시에 “인생이 가는 곳마다 그 무엇과 같을꼬, 응당 눈 진창 위에 기러기 발자국 남김 같으리. 진창 위에 우연히 발자국만 남겼을 뿐이니, 기러기가 날아간 곳을 어찌 다시 알쏜가.[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踏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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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덧없는 세상에 부쳐 사는데 / 身從浮世寄
병은 노년을 향해서 생겨나누나 / 病向老年成
고통스러우면 처자도 잊어버리지만 / 苦痛忘妻子
편안할 땐 친구밖에 더 있던가 / 安寧有友生
산은 깊어서 속인을 돌려보내고 / 山深廻俗駕
물은 맑아서 때묻은 갓끈을 씻네 / 水淨濯塵纓
앉아서 무정물들을 마주하노라니 / 坐對無情物
견식이 밝지 못한 게 되레 부끄럽네 / 還慚見未明
늙어 가매 병은 나와 적이 되었고 / 老去病爲敵
흥이 나매 시는 절로 이뤄지누나 / 興來詩自成
강산엔 참다운 은자가 적거니와 / 江山少眞隱
약물은 내 인생 절반을 함께하네 / 藥物半浮生
반자는 일찍이 붓을 던지었고 / 班子曾投筆
종동은 또한 밧줄을 청했었는데 / 終童亦請纓
나는 늘 염려하는 회포만 있어 / 有懷徒耿耿
앉은 채로 밤을 꼬박 새우네그려 / 夜坐到天明
쓸쓸히도 문사는 폐해져 버렸고 / 蕭然文事廢
오랜만에 무공은 이루어졌으니 / 久矣武功成
삼걸을 쓴 건 다행스레 여기지만 / 自幸用三傑
양생을 불러올 방도는 없었구려 / 無從致兩生
적막한 건 간우로 춤추는 일이요 / 寥寥舞干羽
급급한 건 번영을 애석히 여김일세 / 汲汲惜繁纓
옛것 좋아한들 끝내 어디에 쓰랴 / 好古終安用
노쇠한 얼굴만 거울에 비칠 뿐이네 / 蒼顔鏡裏明
[주D-001]편안할 …… 있던가 :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상사와 난리 다 지나서, 내 한 몸 편안해지면, 아무리 형제간이 있다 해도, 친구만 못하도다.[喪亂旣平 旣安且寧 雖有兄弟 不如友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반자(班子)는 …… 던지었고 : 반 자는 곧 후한(後漢)의 반초(班超)를 가리킨다. 반초는 집이 가난하여 오랫동안 관청(官廳)에서 글 쓰는 품팔이로 생활을 영위하다가, 한번은 붓을 던지면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대장부(大丈夫)가 별다른 지략(志略)이 없으면 의당 이역(異域)에 나가 공(功)을 세워서 봉후(封侯)라도 취해야지, 어찌 오래도록 필연(筆硯) 사이에 종사할 수 있겠는가.” 하고, 그 후 마침내 서역(西域) 정벌에 큰 공을 세우고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종동(終童)은 …… 청했었는데 : 한 무제(漢武帝) 때 종군(終軍)은 18세의 나이로 박사 제자(博士弟子)에 선발되고 이어 간대부(諫大夫)에 발탁되었는데, 20세 때에 무제가 남월(南越)을 굴복시키기 위해 그를 사신(使臣)으로 보내려 하자, 그가 긴 밧줄을 내려 주면 남월왕(南越王)을 묶어 오겠다고 무제에게 자청했던 고사에서 온 말인데, 그는 곧 남월왕을 잘 설득하여 사명을 완수했으나, 월상(越相) 여가(呂嘉)의 반란으로 월왕과 함께 그곳에서 살해되었는바, 그때 그의 나이 겨우 20여 세였으므로, 세상에서 그를 종동이라 호칭한 것이다.
[주D-004]삼걸(三傑) :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한 후, 장량(張良)ㆍ소하(蕭何)ㆍ한신(韓信) 세 신하의 재능을 열거하면서 “이 세 사람은 모두 인걸(人傑)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양생(兩生)을 …… 없었구려 : 특 히 고례(古禮)에 밝았던 노(魯)나라의 두 유생(儒生)을 말한다.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한 후, 숙손통(叔孫通)이 조의(朝儀)를 제정하자고 건의하여 노나라의 제생(諸生) 30여 인을 불러들였는데, 이때 유독 두 유생만은 숙손통을 일러 비루하게 아첨하는 위인이라 비난하면서 부름을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간우(干羽)로 춤추는 일 : 간 우는 방패를 들고 추는 무무(武舞)와 새 깃을 들고 추는 문무(文舞)를 합칭한 말인데, 우(禹) 임금이 일찍이 문덕(文德)을 크게 펴고 방패와 새 깃을 들고 춤을 추니, 그렇게 한 지 70일 만에 오랑캐인 묘족(苗族)이 귀복(歸服)해 왔다는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大禹謨》
[주D-007]번영(繁纓)을 애석히 여김일세 : 번 영은 제후(諸侯)의 거마(車馬)에 채우는 뱃대끈과 가슴걸이를 말한다.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大夫) 중숙우해(仲叔于奚)가 위나라에 공이 있어 위나라에서 그에게 상으로 읍(邑)을 주니, 그는 읍을 사양하고 제후의 말에 채우는 번영을 요구하였는데, 위나라에서 그것을 허락했다. 공자(孔子)가 그 사실을 듣고 이르기를 “애석하다. 읍을 많이 주는 것만 못하다. 신분에 맞지 않는 기(器)와 명(名)을 함부로 남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 成公2年》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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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앉으매 천고의 시름이 절로 생겨라 / 靜坐自生千古愁
구름 되고 비 되는 것 일찍이 그치지 않았네 / 翻雲覆雨未曾休
그 누가 알리요 이 광대한 봄바람 속에 / 誰知浩蕩春風裏
홀로 원룡의 백척루에 기대 있는 줄을 / 獨倚元龍百尺樓
풍광이 변천하여 사람을 시름겹게 하여라 / 風光流轉使人愁
내 인생 점검해 보니 쉴 새 없이 분주했네 / 點檢吾生走不休
가슴속의 큰 뜻 기울인 걸 손꼽아 세보니 / 屈指胸中傾磊落
황려의 강가에 높은 누대가 있었네그려 / 黃驪江上有高樓
누(樓) 자 운(韻)을 인하여 나도 모르게 여흥(驪興)의 흥취가 발동하므로, 이 시를 지어서 나의 과실을 기록하는 바이다.
진포의 구름 연기 만 겹이나 시름겨워라 / 鎭浦雲煙萬疊愁
바다 하늘의 봉화는 어느 때나 그칠런고 / 海天烽火幾時休
일광은 높아서 전라도까지 끌어 들이는데 / 日光控引全羅境
절정 낭떠러지의 한 조그마한 누대라오 / 絶頂懸崖一小樓
여흥(驪興)의 누대를 인하여 일광 소루(日光小樓)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주D-001]구름 …… 것 : 두보(杜甫)의 〈빈교행(貧交行)〉에 “손 뒤집으면 구름 되고 엎으면 비가 되네.[翻手作雲覆手雨]” 한 데서 온 말로, 세인(世人)들의 반복무상한 교정(交情)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2]원룡(元龍)의 백척루(百尺樓) : 원 룡은 삼국 시대 위(魏)나라 진등(陳登)의 자이다. 허사(許汜)가 일찍이 유비(劉備)와 이야기를 나누던 가운데, 자기가 한번은 진등을 찾아갔더니,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주인 자신은 높은 와상으로 올라가 눕고, 손님인 자기는 아래 와상에 눕게 하더라고 말하자, 유비가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채택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인(小人) 같았으면 자신은 백척루로 올라가 눕고 그대는 땅바닥에 눕게 했을 것이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지기(志氣)가 고상함을 뜻한다.
외구(外舅) 화원군(花原君)의 기일(忌日) 아침에 유 영광(柳靈光) 부인이 재(齋)를 올리는데, 마침 큰 바람이 불고 또 일기가 매우 추워서 가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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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군이 작고한 지 그 몇 년이 지났던고 / 花原仙去幾回春
아들 사위가 이제는 두어 사람뿐이거늘 / 子婿如今只數人
병으로 문 못 나가고 쭈그려 앉았노라니 / 病不出門仍縮坐
새벽바람 급히 불어 거리에 먼지 가득하네 / 曉風吹急漲街塵
화원의 비이슬은 절로 기나긴 봄이라 / 花原雨露自長春
내외 여러 손자가 수십 인이나 되누나 / 內外諸孫數十人
도성 거리 버들에 도리가 서로 비치니 / 楊柳天街映桃李
궁성의 풍일은 먼지 없이 맑기만 하리 / 鳳城風日淨無塵
하늘땅은 만물의 봄에 사정이 없나니 / 天地無私萬物春
인간의 도리 잘하는 게 바로 명인이라네 / 彝倫秩秩是名人
재산을 다투어 은의를 잊지 말지어다 / 莫爭生産忘恩義
산처럼 쌓아놔도 끝내는 티끌일 뿐일세 / 縱使山堆竟作塵
동풍(東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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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풍이 한창 거세게 불어오니 / 東風吹倒人
초목은 바야흐로 싹이 트누나 / 草木方甲拆
조물주는 본디 적막하기만 한데 / 造物本冥冥
동풍 소리에 미세한 자취 보이네 / 鼓盪微有迹
왕래하는 건 네 생각대로 하련만 / 往來從爾思
가련한 건 빨리 가는 세월이로다 / 可憐百代客
끊임없이 봄 경치를 재촉하니 / 袞袞催韶光
잠시 동안에 고금을 이루누나 / 俯仰卽今昔
한가로이 나의 생을 관찰해 보니 / 悠然觀我生
머리털이 이미 절반이나 세었네 / 頭髮已半白
동풍은 어이 그리 불어오는고 / 東風何習習
군자가 장차 먼 길을 가려는데 / 君子將有行
빙설 때문에 꾀꼬리는 아니 오고 / 氷雪鶯難至
산 절벽은 아직도 험준하기만 하네 / 山崖尙崢嶸
여관집은 불 안 지펴 썰렁하니 / 逆旅冷無火
긴 밤의 초조한 정 견딜 수 없어라 / 夜長難爲情
아침 햇살이 산림 계곡에 비추고 / 朝暾照林壑
한참 뒤에 날이 이미 밝아져서 / 久矣天已明
몹시 초초하게 조반을 먹었으니 / 蓐食甚草草
나가서 사방의 일을 보아야겠네 / 四方當經營
동풍이여 동풍이여 / 東風兮東風
날 위해 봄의 음기 몰아가주오 / 爲我驅春陰
군자가 먼 길을 가야 하는데 / 君子遠行邁
길바닥에 진흙탕이 질척거리네 / 道途泥濘深
강산에 밝은 태양이 비추고 / 江山白日照
산새들이 고운 소리 지저귀면 / 禽鳥貽好音
험난한 곳도 거닐긴 쉽겠거니와 / 遇險亦易涉
기이함 찾을 땐 깊이 생각해야지 / 探奇宜沈吟
애오라지 이로써 내 성정 쓰노니 / 聊以寫情性
즐거울사 군자의 마음이로다 / 樂哉君子心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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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종아이는 완악하나 되레 크게 어리석어 / 小婢雖頑却太癡
도무지 옳고 그름을 분변할 길이 없는데 / 無由是是與非非
다만 한 조각 착한 마음이 있음을 인연해 / 祗緣一片良心在
짐짓 갈 곳을 물어보니 갈 곳은 아네그려 / 試問所歸知所歸
늙은 내 어리석음이 되레 여종아이 같아라 / 我老還如小婢癡
평일을 돌아보니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 回看平日夢耶非
아직도 천하를 잊지 못하는 게 몹시 역겨워 / 苦嫌猶未忘天下
하늘가 높이 나는 홍곡을 바라보노라 / 目送天涯鴻鵠歸
비록 타고난 성정이 본디 어리석으나 / 雖然稟性本來癡
작은 꾀로 가끔은 잘못을 교묘히 가리지만 / 小黠時時巧飾非
남이 내 속 환히 보는 걸 피할 수 없는 게 / 人見肺肝逃不得
문득 곱고 추함이 거울에 나타남과 같다네 / 却如姸醜鏡中歸
바람 소리를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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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동풍이 하늘 가득히 불어오니 / 日日東風吹滿天
작은 창의 향연기가 사라지려 하누나 / 小窓香篆欲銷煙
전세의 몸이 혹시나 산중의 승려가 되어 / 前身或是山中衲
사면의 솔바람 속에 홀로 좌선을 했던가 / 四面松聲獨坐禪
그 비슷함을 말한 것이다.
산꼭대기 지붕 모서리가 하늘 높이 솟아라 / 峰頭屋角逈摩天
문정에 눈만 가득코 연기는 볼 수가 없네 / 雪滿門庭不見煙
늙은 중에게 묻노니 두 무릎 가부좌하고서 / 爲問老僧盤兩膝
그 어느 때나 조사의 선을 취득할 건고 / 何時坐斷祖師禪
그 우활함을 말한 것이다.
구름같이 큰 돛은 하늘을 가리려 하고 / 帆大如雲欲蔽天
끝없는 바다 물결은 연기처럼 아득한데 / 海波無際望如煙
타루 안에는 한낱 뱃사공만 앉아 있으니 / 柁樓有箇長年在
우뚝이 앉은 게 참으로 일미선과 똑같구려 / 兀坐眞同一味禪
그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주D-001]타루(柁樓) : 다락으로 된 선실(船室)을 말한다.
[주D-002]일미선(一味禪) : 불교(佛敎) 용어로, 문자(文字)와 언어(言語)를 사용하지 않고 갑자기 오도(悟道)하는 것, 즉 좌선(坐禪)을 말한다.
장차 집의(執義) 박정(朴挺)을 방문하려면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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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동쪽으로 사람을 찾아가려 하는데 / 有意尋人梨峴東
봄추위 싸늘한 데다 바람까지 거세어라 / 春寒料峭更顚風
온 집안 같은 항렬이 얼마 안 남았으리 / 閤門同列應無幾
그 당시 소년이 이젠 늙은이가 되었으니 / 當日少年成老翁
한강 북쪽 기슭이요 화산의 동쪽이라 / 漢江北岸華山東
띳집은 높고 낮고 큰 들에 바람 부는데 / 茅舍高低大野風
필마로 왕년에 일찍이 이곳을 지났건만 / 匹馬往年曾過此
여기에 백대옹이 사는 줄은 진정 몰랐네 / 不知中有柏臺翁
중조에 벼슬 내놓고 해동에서 늙노라니 / 還笏中朝老海東
백발의 문항에 또 봄바람이 부는구나 / 白頭門巷又春風
인생은 만절의 성취를 얻기 어려운 거라 / 人生難得桑楡景
만년의 공명으론 치암 노인을 생각하네 / 晚歲功名憶恥翁
치암(恥菴)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를 언급한 것이다.
[주D-001]백대옹(柏臺翁) : 백대는 곧 사헌부(司憲府)의 별칭이므로, 즉 사헌부 집의인 박정(朴挺)을 가리킨 말이다.
[주D-002]치암(恥菴) :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른 박충좌(朴忠佐)의 호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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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봄 시름 쓰기 위해 문을 나서려 하니 / 寫我春愁欲出門
광대한 동풍에 버들이 마을을 흔드누나 / 東風浩蕩柳搖村
병이 오래 지속됨은 스스로 가련커니와 / 自憐病勢方持久
시 생각 이미 간편해진 건 누가 알리오 / 誰識詩腸已省煩
홀로 앉은 자리 다스워 몸은 썩 편안하나 / 兀坐席溫身頗適
크게 읊어 쓰려 하니 눈은 오히려 어둡네 / 高吟筆落眼猶昏
노년에 느낀 이 맛을 알아줄 이 없으니 / 老年有味無人會
날로 정원 거닐던 연명과 점차 비슷해지네 / 漸似淵明日涉園
[주D-001]날로 …… 연명(淵明) :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정원을 날로 거닐어 즐거운 정취 이루고, 문은 달려 있으나 항상 닫아 놓았도다.[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 한 데서 온 말이다.
요동위(遼東衛)의 사자(使者)가 돌아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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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에 금방 내걸어 성명을 기록했는데 / 掛牓通衢錄姓名
힘없이 떠돌다 보니 진정 마음 상하여라 / 流離瑣尾可傷情
요동에 반드시 양호가 없진 않을 터인데 / 遼東未必無羊祜
뽕나무 마을 연기 자욱코 보리밭만 개었네 / 桑塢煙沈麥壟晴
호걸은 본래 관작과 명성을 중히 여기지만 / 豪傑由來重爵名
소인이 제 고향 그리워함도 인지상정이니 / 小人懷土亦常情
이는 참으로 논 갈려고 비 바라는 자의 소원이 / 眞如欲雨方耕者
벼 베려고 개기 바라는 자와 서로 다름 같다오 / 所願還乖刈欲晴
약 화로와 책상 곁에 오래도록 이름 숨기니 / 藥爐書榻久藏名
백발 나이에 세정 잊음은 점차 기뻐지건만 / 漸喜白頭忘世情
다만 국가의 은혜를 보답하지 못했는지라 / 只是國恩猶未報
해마다 세후이면 일기로 시절을 점친다네 / 年年歲後數陰晴
[주D-001]양호(羊祜)가 …… 개었네 : 양 호는 진(晉)나라의 명장(名將)인데, 그가 5세 때에 자기 유모(乳母)로 하여금 자기가 가지고 놀던 금가락지를 가져오게 하자, 유모가 말하기를 “너한테는 일찍이 금가락지가 없었다.” 하자, 양호가 즉시 이웃 이씨(李氏) 집으로 가서 동쪽 담장 곁의 뽕나무 속에서 금가락지를 찾아내니, 그 주인이 놀라며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 죽은 아이가 잃어버린 물건인데, 왜 가져가느냐?” 하므로, 유모가 그 사실을 자세히 말하자, 이씨는 매우 슬퍼하였고, 당시 사람들은 그 일을 이상히 여겨, 이씨의 아들이 바로 양호의 전신(前身)이었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양호 같은 대장군이 나오지 않음을 한탄하여 한 말이다.
이 개성(李開城)에게 받들어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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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별장 생활에 시골 정취 진진할 텐데 / 別墅優游野趣長
행차가 도성에 들렀단 소식 갑자기 들었네 / 忽聞行色過康莊
다만 말 타는 게 뜨고 잦음이 있기 때문이요 / 只緣上馬有疎數
사람 대하는 데 억양이 많아서가 아니로다 / 不是待人多抑揚
철성의 훌륭한 명성은 빠른 세월에 놀랍고 / 鐵洞流芳驚歲月
송정의 짙푸른 솔은 얼음 서리를 능가하네 / 松亭積翠傲氷霜
문을 닫고 문생들의 알현을 굳게 거절하니 / 閉門固拒門生謁
좌주의 빛난 위광이 점점 아득해만 가누나 / 座主威靈轉渺茫
[주C-001]이 개성(李開城) : 고려 공양왕(恭讓王) 때에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가 되었고, 이어서 딸이 공양왕의 비(妃)가 됨으로써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에 봉해진 이임(李琳)을 가리킨다.
해안사(海安寺)의 채 수좌(蔡首座)가 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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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채씨가 안동 부인과 배필이 된 이후 / 平康蔡氏配安東
안팎의 여러 후손이 나라 안에 가득한데 / 內外諸孫滿國中
가장 고마운 건 스님이 자주 찾아와서 / 最喜瑜珈數相見
병상의 이 노쇠한 늙은이를 위로해 줌일세 / 病床勞苦守衰翁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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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책상 앞에 우뚝이 앉아서 / 兀坐書床歲月長
춘추를 폈다 하면 환공 장공 조를 읽었네 / 春秋開卷讀桓莊
도의 근원은 삭막하여 마음이 아직 괴롭고 / 道根索寞心猶苦
병든 몸은 쇠퇴해서 기가 왕성치 못하여라 / 病骨摧頹氣不揚
텅 빈 방에서 홀로 읊으니 맑긴 물 같은데 / 虛室獨吟淸似水
창 앞에 외로이 앉으니 차갑긴 서리 같네 / 小窓危坐冷如霜
하염없는 이 정흥을 장차 어디에 의탁할꼬 / 悠悠情興將誰托
높은 하늘로 날아드는 한낱 명홍이 있구나 / 一箇冥鴻入杳茫
[주D-001]춘추(春秋)를 …… 읽었네 : 춘 추 시대 노(魯)나라 임금들 가운데 유독 환공(桓公)과 장공(莊公)이 중흥주(中興主)에 해당하므로 이른 말인 듯하다. 환공과 장공에 대한 시법(諡法)에 의하면 “강토를 넓히고 먼 나라를 귀복시킨 것을 환이라 한다.[辟土服遠曰桓]” 하였고, 또 “적을 이기고 난리를 바로잡은 것을 장이라 한다.[勝敵克亂曰莊]” 하였다.
[주D-002]명홍(冥鴻) : 하늘 높이 나는 기러기를 가리키는데, 전하여 뜻이 고상하여 속세를 초월한 사람에 비유한다.
행재가(幸哉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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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 달구워 이지러진 하늘 때우려 하나 / 我欲鍊石補天缺
높고 조용한 하늘에 별들이 총총 벌여 있고 / 圓象沈沈星宿列
내가 곧은 도로 임금의 위태함 붙들려 하나 / 我欲直道扶君危
혁혁한 정승 있어 조정이 태평하기만 하네 / 師尹赫赫朝廷煕
하늘도 이지러짐 없고 임금도 위태함 없어라 / 天無缺兮君無危
다행히도 나는 이런 때를 당해서 나왔으니 / 幸哉我生當此時
나는 의당 청풍명월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고 / 我當與淸風明月共婆娑
나는 의당 청산 백운과 함께 벗을 삼아 읊조리리 / 我當與靑山白雲同吟哦
춘풍에 복사꽃 오얏꽃이 한창 만발할 적엔 / 春風桃李政爛熳
내 자류마 달려 옥 굴레 쟁글쟁글 울리면서 / 馳我紫騮鳴玉珂
도성 안을 두루 다니며 꽃구경을 하노라면 / 看花遊遍鳳城中
아동들이 손뼉 치며 이 늙은이를 웃어대고 / 兒童拍手笑老翁
해 넘어가려 할 때 백접리 거꾸로 쓰고서 / 倒著接籬日欲落
반쯤 거나해 돌아오면 두 뺨이 불그레하네 / 歸來半酣雙頰紅
태평성대의 좋은 기상을 잘 형용했어라 / 形容太平好氣像
늦은 봄 기수 가의 관자 동자를 말했으니 / 童冠暮春沂水上
그 당시에 증점은 늙고 또 광간하였지만 / 當時曾點老而狂
비파 놓고 일어난 게 지금 우러를 만하구려 / 舍瑟起居今可仰
[주D-001]돌 …… 하나 : 태곳적에 하늘의 서북쪽이 이지러진 것을 보고, 여와씨(女媧氏)가 오색(五色)의 돌을 달구워서 하늘을 때웠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도성 안을 …… 불그레하네 : 백 접리(白接籬)는 두건(頭巾)의 일종으로, 진(晉)나라 산간(山簡)이 날마다 고양지(高陽池)에 나가서 술에 대취(大醉)하여 백접리를 거꾸로 쓴 채 백마(白馬)를 타고 다녔다는 고사가 있는데,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 “지는 해 현산 서쪽으로 넘어가려 할 때면, 백접리 거꾸로 쓰고 꽃 아래서 비틀거리니, 양양의 아동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며, 길거리 가로막고 다투어 백동제를 노래했네. 옆 사람이 아이들에게 왜 웃느냐고 물으니, 곤드레로 취한 산간 노인을 웃었다 하누나.[落日欲沒峴山西 倒著接䍦花下迷 襄陽小兒齊拍手 攔街爭唱白銅鞮 傍人借問笑何事 笑殺山翁醉似泥]”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태평성대의 …… 만하구려 : 광 (狂)은 뜻이 커서 행사(行事)에 홀략함을 이른 것으로, 공자(孔子)가 진(陳)에 있을 적에 노(魯)나라에 있는 제자로 특히 증점(曾點) 등을 가리켜 이르기를 “어서 돌아가야겠다. 오당의 소자들이 광간하다.[歸歟歸歟 吾黨之小子狂簡]”고 한 데서 온 말인데, 공자가 일찍이 여러 제자들에게 각자의 소원을 물었을 때 다른 제자들이 각기 다 소원을 말한 다음, 공자가 다시 증점에게 “너는 어떠하냐?”고 묻자, 증점이 타던 비파를 내려놓고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나도 네 생각과 같다.”고 깊이 허여했었으므로 한 말이다. 《論語 公冶長, 先進》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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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무서워 못 나가고 두 어깨 웅크릴 제 / 畏寒不出聳雙肩
남창에 햇살 비치니 흥취가 심원하구나 / 日照南窓興杳然
위진 시대 청담은 비록 절로 끊어졌으나 / 魏晉淸談雖自絶
정주의 도학은 끝내 누가 전한단 말인가 / 程朱道學竟誰傳
아스라한 한토는 멀리 영해를 바라보고 / 茫茫韓土望寧海
기름진 땅 칠원은 예천으로 돌아가누나 / 膴膴漆原歸醴泉
감히 일가에 천지가 제자리했다 말하랴만 / 敢道一家天地位
본손 지손은 백세토록 끊임없이 이어지리 / 本支百世儘綿綿
[주D-001]아스라한 …… 바라보고 : 한토는 곧 저자(著者)의 본관인 한산(韓山)을 가리키고, 영해는 바로 저자의 외가(外家)인 김씨(金氏)가 살던 고을이며, 따라서 저자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주D-002]기름진 …… 돌아가누나 : 칠 원(漆原)은 곧 주 문왕(周文王)의 조부모(祖父母)가 되는 태왕(太王) 부처(夫妻)가 일찍이 주(周)나라의 터전을 닦던 처음에 거주했던 칠수(漆水) 가와 주원(周原) 땅을 가리키고, 예천(醴泉)은 바로 저자의 처조부(妻祖父)가 되는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권한공(權漢功)을 가리킨다.
[주D-003]천지가 제자리했다 : 《중 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 “중화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하고 만물이 길러진다.[致中和天地位焉 萬物育焉]”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집주에 의하면, 이것을 일러 학문(學問)의 극공(極工)이요, 성인(聖人)의 능사(能事)라고 하였다,
조춘(早春)의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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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깨던 금곡원에선 요리를 잘하였고 / 敲氷金谷善烹煎
화려한 자리 봄바람은 더욱 광대했는데 / 綺席春風轉浩然
이미 누런 구름 장성에 걷힘을 보았으니 / 已見黃雲收紫塞
장차 밝은 태양이 청천에 빛남을 보리라 / 行看白日照靑天
명신들은 한림원에서 영재를 드날리었고 / 名臣翰苑翹鸞彩
장사들은 군문에서 뛰어난 용맹 떨치었네 / 壯士軍門割彘肩
오직 늙고 병든 이 동해의 나그네가 있어 / 唯有病餘東海客
꿈속에 때때로 높고 견고함 감탄한다오 / 夢中時復歎高堅
[주D-001]얼음 깨던 …… 광대했는데 : 금 곡원(金谷園)은 진(晉)나라 때의 부호(富豪)인 석숭(石崇)의 원명(園名)인데, 소식(蘇軾)의 시에 “또 못 보았나 금곡원은 얼음 깨는 겨울에도 초목은 봄이었던 걸, 휘장 아래 요리한 사람은 모두가 미인이었네.[又不見金谷敲氷草木春帳下烹煎皆美人]”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높고 견고함 감탄한다오 : 안 연(顔淵)이 일찍이 공자(孔子)의 높은 도(道)를 보고 감탄하여 말하기를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보면 눈 앞에 있다가, 문득 등 뒤에 있기도 하도다.[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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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없는 낯으로 조관을 대하여라 / 面無慚色對簪紳
이학은 거칠어서 진원을 보지 못하였네 / 理學空疎未見眞
졸졸 흐르는 물엔 현묘한 도를 생각하고 / 流水潺湲思妙道
뜬구름 변멸하는 덴 인륜을 부치노라 / 浮雲變滅寄彝倫
안 들으려니 세 귀 생김은 절로 싫으나 / 反聽自厭生三耳
죽음 속바치자니 누가 백신을 원할쏜가 / 贖死誰能願百身
슬픔과 즐거움 제거하긴 오직 술뿐인데 / 掃去悲歡惟有酒
그 한 맛이 가장 순수함을 누가 알리오 / 誰知一味最爲醇
[주D-001]안 들으려니 …… 싫으나 : 세 귀가 생긴다는 것은, 수(隋)나라 때 장심통(張審通)이란 사람이 일찍이 명부(冥府)의 서기(書記)가 되어 판결문(判決文)을 한 번 잘못 써서 상관(上官)으로부터 귀 하나를 막아 버리는 벌(罰)을 받았다가, 그 후 다시 판결문을 한 번 잘 써서 그에 대한 상으로 귀 세 개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마침내 그가 부활(復活)한 지 수일 후에 갑자기 이마가 가렵다가 이마에서 귀 하나가 더 나와서 귀가 모두 셋이 된 후로는 그가 더욱 총명(聰明)해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여기서는 곧 세상일을 도무지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죽음 …… 원할쏜가 : 《시 경》 진풍(秦風) 황조(黃鳥)에 “대신 누가 죽으라면 사람마다 제 몸 백 번이라도 바치리로다.[如可贖兮 人百其身]”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진 목공(秦穆公)이 죽었을 때, 자거씨(子車氏)의 세 아들인 엄식(奄息)ㆍ중행(仲行)ㆍ침호(鍼虎)로 순장(殉葬)을 하자, 이들은 다 진(秦)나라의 현신(賢臣)이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들을 애석하게 여겨 노래한 것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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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빈부 때문에 다 서로 마음 졸이나니 / 人間貧富摠相煎
고금이 한결같이 양 잃고 서로 다툰 격일세 / 今古亡羊一齗然
살진 말 탄 공서적에겐 곡식도 더 주었지만 / 肥馬公西仍益粟
절뚝 나귀 탄 자미는 감히 조회도 못 했었네 / 蹇驢子美敢朝天
참소가 쌓이면 절로 뼈를 녹일 수 있거니와 / 積讒自是能銷骨
아첨하여 웃을 땐 본래 어깨까지 으쓱였지 / 諂笑由來更脅肩
이 몸을 점검할진대 끝내 썩어 문드러지리니 / 點檢此身終腐爛
이 마음은 의당 금석처럼 견고히 해야 하리 / 心如金石要當堅
[주D-001]살진 말 …… 주었지만 : 공 자(孔子) 제자인 공서적(公西赤)이 공자의 사자(使者)가 되어 제(齊)나라에 갔을 때, 염구(冉求)가 공서적의 모친(母親)에게 곡식을 주기를 청하자, 공자가 부(釜)로 주라고 했다가, 염구가 더 주기를 청하자, 공자가 다시 유(庾)로 주라고 했는데, 염구가 그 말을 듣지 않고 5병(秉)의 곡식을 주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공서적은 제나라로 갈 때에 살진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나는 들으니, 군자는 궁박한 사람을 구해 주는 것이요, 여유가 있는 사람을 더 도와주지는 않는다고 하였다.[赤之適齊也 乘肥馬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不繼富]” 한 데서 온 말이다. 1부(釜)는 6두(斗) 4승(升)이고, 1유(庾)는 16두이고, 1병(秉)은 16곡(斛)이다. 《論語 雍也》
[주D-002]절뚝 나귀 …… 못 했었네 : 두보(杜甫)의 〈핍측행(偪側行)〉에 “동쪽 집 절뚝발이 나귀를 내게 빌려 준다 했으나, 진흙탕 길 미끄러워 감히 조회를 못 가겠네.[東家蹇驢許借我 泥滑不敢騎朝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참소가 …… 있거니와 : 전 국 시대 장의(張儀)가 연횡설(連橫說)로써 위왕(魏王)을 설득하는 말 가운데 “신(臣)은 들으니,……뭇사람의 입은 무쇠를 녹일 수 있고, 참소가 쌓이면 뼈를 녹일 수 있다[衆口鑠金 積毁銷骨]고 하더이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70 張儀列傳》
[주D-004]아첨하여 …… 으쓱였지 : 증자(曾子)가 이르기를 “어깨를 으쓱이면서 아첨하여 웃는 것이 뜨거운 여름날에 밭매기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脅肩諂笑 病于夏畦]”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下》
사람을 찾다가 만나지 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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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취하니 잠이 처음 깊이 들고 / 爛醉眠初熟
높이 읊조리니 흥을 거둘 수 없네 / 高吟興未收
산 남쪽은 우연히 만나기 어렵고 / 山南難邂逅
물 북쪽은 다 한가롭기만 하네 / 水北儘優悠
땅이 외지니 지팡이 끌긴 알맞으나 / 地僻宜拖杖
바람이 차니 누대에 오르긴 싫어라 / 風寒懶上樓
그 누가 알랴 병중의 나그네가 / 誰知病中客
더운 남쪽 고을 가고픈 꿈이 있음을 / 有夢向炎州
스스로 읊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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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무서워라 병든 몸은 피곤하고 / 畏寒困病骨
옛일을 논하자니 외로움이 가련하네 / 述古憫孤蹤
생동하는 뜻은 뜰 앞의 풀이요 / 生意庭前草
곧은 마음은 계곡 밑의 소나무로다 / 貞心澗底松
봄바람은 큰 들판에 불어오고 / 春風吹大野
새벽달은 높은 봉우리에 걸렸네 / 曉月掛危峰
꿈을 깨고 나서 행장을 결단하니 / 夢破行藏決
마침 당사의 종소리가 들리누나 / 時聞唐寺鐘
인생은 모름지기 자중해야 하리 / 人生須自重
우리 도는 본래 어그러졌으니 / 吾道本來乖
어디에서 깊은 정분을 의탁하여 / 何處托深契
때때로 좋은 회포를 토로해 볼꼬 / 有時開好懷
고상한 풍도는 오류를 생각하고 / 高風思五柳
묵은 음덕은 삼괴를 사모하노라 / 舊德慕三槐
내 그윽한 집은 워낙 궁벽해서 / 漸見幽棲僻
이끼가 뜰에 오름을 점차 보겠네 / 苔痕欲上堦
[주D-001]생동하는 …… 풀이요 :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가 일찍이 창문 앞의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므로,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자기의 의사와 일반이다.[與自家意思一般]” 하였다.
[주D-002]곧은 …… 소나무로다 : 좌 사(左思)의 〈영사(詠史)〉 시에 “지엽 무성한 건 계곡 밑의 소나무요, 가지 늘어진 건 산꼭대기 어린 나무라, 저 한 치쯤의 어린 나무 줄기로, 이 백 척 소나무를 가리누나.[鬱鬱澗底松離離山上苗 以彼徑寸莖 蔭此百尺條]” 하였다.
[주D-003]당사(唐寺)의 종소리 : 여 기의 당사는 곧 당나라 때에 건립된 보조사(普照寺)를 가리킨다. 소식(蘇軾)이 일찍이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인 엄광(嚴光)이 은거했던 부춘현(富春縣)에 있는 보조사에 홀로 노닐면서 지은 시에 “부춘은 참으로 옛 고을이거니와, 이 절은 또한 당나라의 고찰이로다. 홈통 연해서 봄 물은 멀리 보내오고, 골짝 나가는 저녁 종소리는 드물구나.[富春眞古邑 此寺亦唐餘 連筒春水遠出谷晚鐘疎]”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오류(五柳) : 진(晉)나라 때의 고사(高士) 도잠(陶潛)이 자기 집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서 자신을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자칭하여 스스로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지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삼괴(三槐) : 송 (宋)나라 초기의 명신(名臣) 왕호(王祜)의 당호(堂號)이다. 왕호가 일찍이 자기 집 앞에 삼공(三公)을 상징하는 세 그루 괴나무를 심어놓고 스스로 “내 자손 중에 삼공이 되는 자가 반드시 나올 것이다.”고 예언을 했었는데, 그 후 과연 그의 아들 왕단(王旦)이 진종(眞宗) 때에 18년 동안이나 명상(名相) 노릇을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6]이끼가 뜰에 오름 : 당(唐)나라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에 “이끼는 뜨락에 올라 푸르고, 풀빛은 주렴에 들어 푸르도다.[苔痕上階綠 草色入簾靑]”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강(驪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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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의 두어 겹겹 산에 돌아갈 꿈 있으니 / 歸夢驪江數疊山
신선의 집이 흰 구름 새로 아득히 보이네 / 仙家縹渺白雲間
다생의 탁기는 절로 다하기 어렵겠지만 / 多生濁氣自難盡
한 조각 고심도 아직 한가롭질 못하누나 / 一片苦心猶未閑
뜬세상에 백발 날리긴 가장 어렵거니와 / 浮世最艱飄素髮
가는 세월에 청춘을 붙잡을 길도 없구려 / 流光無計駐朱顔
어느 때나 저 삼각산 봉우리 앞 길을 / 何時三角峰前路
필마와 일엽편주로 나 홀로 왕래할꼬 / 匹馬孤舟獨往還
[주D-001]다생(多生) : 불교 용어로, 중생(衆生)이 선악(善惡)의 업(業)을 지어 윤회(輪廻)의 고통을 받음으로써 생사(生死)가 끊임없이 연속됨을 말한다.
[주D-002]백발 날리긴 : 두 보(杜甫)의 〈대력삼년춘백제성방선출구당협구거기부장적강릉표박유(大曆三年春白帝城放船出瞿唐峽久居蘷府將適江陵漂泊有)〉 시에 “바람에 흩날리는 백발을 가지고, 조화의 자연 속에 묻혀 지내야지.[飄蕭將素髮 汩沒聽洪鑪]” 한 데서 온 말이다.
미쳐서 읊다.[狂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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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깎아 내면 상수가 편편해질 거고 / 剗却君山湘水平
계수나무를 잘라내면 달이 또한 밝으리 / 斫却桂枝月更明
방옹의 이 말은 참으로 매우 호방하니 / 放翁此語儘豪放
다만 천재에 광의 명칭 전할 게 염려로세 / 只恐千載傳狂名
광자의 진취 재능을 성인이 허여했으니 / 狂者進取聖所許
비파 놓고 대답한 게 바로 그 진정이어라 / 鏗爾舍瑟其眞情
늦은 봄에 바람 쐬고 읊으며 돌아온다니 / 風雩詠歸維暮春
그 기상은 절로 요순 시대 사람이로다 / 氣象自是唐虞人
세 사람은 구구하게 예악만을 지켰으니 / 三子區區守禮樂
아침 버섯과 영춘나무와의 차이와 같네 / 有如朝菌與靈椿
시골구석 단표의 생활 속에 봄풀이 나서 / 簞瓢陋巷春草生
제때의 비 한 번 맞아 생기가 발랄해지고 / 時雨一來隨發榮
말해 주면 나태 않고 물러가면 사생활 살펴라 / 語之不惰退省私
공자는 하늘 중심을 운행하는 일월 같구려 / 夫子日月天中行
수많은 제자 가운데 칠십인이 가장 속히 배웠는데 / 七十速肖侁侁中
노둔한 이가 종을 전했다고 그 누가 말했나 / 誰謂魯者傳其宗
반드시 광견인저란 말을 조용히 음미해보면 / 沈吟必也狂者乎
부자의 뜻은 참으로 하늘과 똑같고말고 / 夫子之志與天同
아홉 길 산도 한 삼태기 흙으로 시작하나니 / 爲山九仞一簣始
군자의 공부는 뜻을 세우는 게 우선이로세 / 君子功夫先立志
아 뜻을 세워서 스스로 포기를 말아야지 / 嗚呼立志無自小
요순이나 범인이나 조금도 서로 다를 게 없다오 / 堯舜塗人無少異
[주D-001]군산(君山)을 …… 밝으리 : 군 산은 상수(湘水)의 한 중심에 있는 산인데, 순(舜) 임금의 이비(二妃) 즉 아황(娥皇)ㆍ여영(女英)의 신(神)인 상군(湘君)이 노는 곳이라 하여 이렇게 이름한 것이라 한다. 이 두 구절의 시는 곧 송(宋)나라 때의 시인(詩人)으로 호가 방옹(放翁)인 육유(陸游)의 〈누상취가(樓上醉歌)〉 시 속에 들어 있는 것인데, 육유의 《검남시고(劍南詩稿)》에는 지(枝) 자가 수(樹) 자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시 두 구절의 뜻은 곧 이백(李白)의 “좋은 군산을 깎아 내어서, 상수의 흐름을 편편하게 하리.[剗却君山好 平鋪湘水流]” 한 시구와 두보(杜甫)의 “달 속의 계수나무를 잘라낸다면, 밝은 빛이 응당 더욱 많으리.[斫却月中桂 淸光應更多]” 한 데서 온 것이다.
[주D-002]광자(狂者)의 …… 허여했으니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중도의 사람을 얻어서 함께할 수 없을진댄, 반드시 광견한 사람이라도 가르쳐 보리라. 광한 자는 진취할 재능이 있고, 견한 자는 하지 않는 바가 있다.[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狂者進取 狷者有所不爲也]” 한 데서 온 말로, 광(狂)이란 곧 뜻이 매우 커서 행실이 뜻에 못 미치는 것을 가리키고, 견(狷)이란 바로 지혜는 미치지 못하나 지킴이 매우 견고함을 가리킨 것인데, 공자가 말한 광(狂)은 곧 금장(琴張)ㆍ증점(曾點)ㆍ목피(牧皮)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論語 子路》
[주D-003]비파 놓고 …… 돌아온다니 : 자 로(子路)ㆍ증점(曾點)ㆍ염유(冉有)ㆍ공서화(公西華) 네 문인이 일찍이 공자를 모시고 앉았을 적에 공자가 각자의 뜻을 말하게 하였는데, 증점은 비파를 타고 있다가 가장 나중에야 쟁그렁 소리와 함께 비파를 땅에 놓고 대답하기를 “저는 앞에서 말한 세 사람의 의견과 다릅니다.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지거든, 관자(冠者) 대여섯 사람, 동자(童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시가를 읊조리며 돌아오겠습니다.” 하니, 공자가 감탄하며 이르기를 “나도 너의 뜻과 같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先進》
[주D-004]세 사람 : 자로ㆍ염유ㆍ공서화를 가리킨다.
[주D-005]아침 버섯과 영춘나무 : 영 춘(靈椿)은 상고 시대에 있었다는 나무로, 본 이름은 대춘(大椿)인데,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의하면, 아침나절에만 사는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대춘은 8천 년을 봄으로 삼고 8천 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한 데서 온 말로, 본래는 수요장단(壽夭長短)의 차이를 말한 것이나, 전하여 여기서는 서로의 현격한 경지를 비유한 것이다.
[주D-006]시골구석 …… 살펴라 : 공 자가 이르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 물로 누추한 시골구석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그 걱정을 견디지 못하건만,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변치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하였고, 또 이르기를 “말을 해주면 게으르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은 그 안회인저.[語之而不惰者 其回也與]” 하였는데, 그 주석에 의하면, 안자(顔子)는 공자의 말을 들으면 마치 초목(草木)이 제때의 비를 맞아서 성대히 성장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말하였으며, 또 공자가 이르기를 “내가 안회와 더불어 종일토록 말을 했으나,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듯했는데, 물러간 다음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건대, 내가 해준 말을 충분히 발명하고 있었으니, 안회는 어리석지 않도다.[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雍也, 子罕》
[주D-007]칠십인(七十人) : 공자의 제자가 모두 3천여 인이나 되지만, 몸소 육예(六藝)를 통한 이는 72인에 불과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8]노둔한 …… 전했다 : 공자가 일찍이 이르기를 “증삼은 노둔하다.[參也魯]” 하였고, 주자(朱子)가 《대학장구(大學章句)》 서문에서 “증씨의 전이 홀로 그 종을 얻었다.[曾氏之傳 獨得其宗]”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진관사(眞觀寺) 도수원기(道樹院記)의 후미에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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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은 하늘에 치솟고 김해는 광활하여 / 鷄林參天金海闊
영기가 쌓인 곳에 호걸이 배출되었는데 / 英氣所儲出豪傑
익재 선생은 특히 그 가운데 집대성이라 / 益齋先生集大成
천촉과 오월 땅에도 다 이름이 적히었고 / 川蜀吳越皆題名
문장 또한 요 목암과 서로 겨루었으니 / 文章頡頏姚牧菴
높다랗기가 절로 태산과 견줄 만하였네 / 泰山自可齊巖巖
둘째 아들은 소년으로 고과에 급제하여 / 仲子少年擢高第
화려한 문장을 내제 외제에 펼쳐 내었고 / 華藻敷陳內外制
또는 보진재의 필법을 깊이 탐구하여 / 又探筆法寶晉齋
절묘한 곳은 곧장 조아비와 맞먹었는데 / 妙處直與曹娥偕
진관사의 도수원을 중수하다가 보니 / 眞觀重新道樹院
높은 문장 큰 필법이 먼지 속에 묻혔네 / 高文大筆煙塵埋
문집 속에 들지 않음은 괴이도 하거니와 / 怪底集中不收入
한 번 읽어보니 참으로 따를 수가 없구려 / 一讀眞知不可及
따를 수가 없는지라 / 不可及
두 눈엔 눈물 줄줄 슬픔이 한량없네 / 雙目滂沲悲感集
후일 빠진 글 모으면 편질이 많으려니와 / 他年拾遺編秩多
어찌 보물이 찾는 손을 피할 수 있으랴 / 豈有寶物逃搜羅
뜬구름 골짝 가득코 옛 절은 고요하여라 / 浮雲滿谷古院靜
귀부가 언제나 산기슭에 빛날런고 / 龜趺何日輝山阿
[주D-001]계림(鷄林) : 경주(慶州)의 옛 이름으로, 여기서는 곧 경주가 본관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가문을 가리킨 것이다.
[주D-002]요 목암(姚牧菴) : 호가 목암인 원(元)나라의 요수(姚燧)를 가리키는데, 요수는 문장이 뛰어났고, 벼슬은 한림 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를 지냈다.
[주D-003]내제(內制) 외제(外制) : 당(唐)ㆍ송(宋) 시대의 제도로서, 내제는 곧 지제고(知制誥)가 조서(詔書)를 관장하는 것을 말하고, 외제는 곧 한림학사(翰林學士)가 조서를 관장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4]보진재(寶晉齋) : 송(宋)나라 때 시(詩)ㆍ서(書)ㆍ화(畫)가 모두 뛰어났던 미불(米芾)의 재명(齋名)인데, 여기에 진대(晉代)의 법첩(法帖)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라 한다.
[주D-005]조아비(曹娥碑) : 후한(後漢)의 효녀(孝女) 조아(曹娥)의 뛰어난 효행을 기술한 비문(碑文)인데, 이 비문을 왕희지(王羲之)가 썼다고 전하므로 한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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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우는 버들 골목에 해는 기울어가고 / 鷄聲柳巷日將斜
문정은 적적하여 새그물도 칠 만한데 / 寂寂門庭雀可羅
자고 일어나니 남창엔 바람 또한 급한지라 / 睡起南窓風更急
두어 편의 시구를 동파에 비겨 짓노라 / 數篇詩句擬東坡
성 남쪽 한 길이 마을을 둘러 비꼈는데 / 城南一逕遶村斜
산새들은 높이 날아 그물을 피하누나 / 山鳥高飛避罻羅
눈 다 녹은 버들 숲에 봄은 굼틀대는데 / 雪盡柳林春欲動
송재의 서쪽 가 여기가 바로 양파로세 / 松齋西畔是陽坡
관도 버들 늘어진 푸른 들에 손 보내고 / 送客靑郊官柳斜
봄 적삼은 아직 비단 마름질도 못 했는데 / 春衫猶未剪輕羅
도성에 밤낮으로 동풍이 급히 불어 대니 / 鳳城日夜東風急
풀빛이 멀리 비 뒤의 언덕에 연하였네 / 草色遙連雨後坡
[주D-001]자고 …… 짓노라 :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시 가운데는 특히 ‘자고 일어나다.[睡起]’라는 구절이 많으므로, 한적한 정취를 동파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2]송재(松齋)의 …… 양파(陽坡)로세 : 송재는 권준(權準)의 호이고, 양파는 홍언박(洪彦博)의 호이다.
우연히 신사년의 동년(同年)들을 생각하다가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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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은 푸른 산기슭에 적적하기만 해라 / 松堂寂寂碧山隅
당일의 풍류야 세상에 더 없이 뛰어났었지 / 當日風流絶世無
문하의 제공들은 그 몇이나 남아 있는고 / 門下諸公能有幾
모란꽃 지고 새들이 서로 벗을 부르누나 / 牡丹花落鳥相呼
소년 시절 학문이 삼우를 반증치 못하여 / 少年學未反三隅
중년까지 학문의 소득이 전연 없었더니 / 中歲全然所得無
이젠 백발로 혼자 있자니 마음 더욱 괴로워 / 白髮獨居心更苦
술잔 앞에서 친구를 얼마나 놀라 불렀던고 / 樽前問舊幾驚呼
[주D-001]송당(松堂) : 고려 충혜왕(忠惠王) 복위(復位) 2년인 신사년(1341)에 성균시(成均試)의 시관(試官)을 맡았던 김광재(金光載)의 당호(堂號)이다.
[주D-002]새들이 …… 부르누나 : 《시경》 소아(小雅) 벌목(伐木)에 “쩡쩡 나무를 찍거늘, 앵앵 새가 우나니,……앵앵 우는 그 울음은, 벗을 부르는 소리로다.[伐木丁丁 鳥鳴嚶嚶……嚶其鳴矣 求其友聲]” 한 데서 온 말로, 친구를 그리워하는 뜻으로 한 말이다.
[주D-003]삼우(三隅)를 반증치 못하여 : 삼 우를 반증한다는 것은 곧 한 가지 일을 들어 보이면 스스로 세 가지를 반증하여 알아내는 것을 이른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한 가지 일을 들어 보여서, 세 가지 일을 스스로 반증하여 알아내지 못하면 다시 말해 주지 않는다.[擧一隅不以三隅反則不復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회포를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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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깨니 뼈는 저리고 날은 밝아오는데 / 夢破骨酸天欲明
종소리 파하자마자 또 닭이 울어대네 / 鐘聲才罷又鷄鳴
몸은 나무처럼 썩어도 이름은 썩기 어렵거니와 / 身如木朽名難朽
맘이 저울처럼 반듯하면 사물도 절로 반듯하리 / 心似衡平物自平
공자 맹자의 저서는 참으로 도에 급급했고 / 孔孟著書誠汲汲
이윤 주공의 행사는 진정 몹시 서둘렀었네 / 伊周行事苦營營
적막히도 천재에 그를 알아줄 이 적었어라 / 寂寥千載知音少
당시의 노나라 양생이 부끄럽기 그지없네 / 愧殺當時魯兩生
[주D-001]노(魯)나라 …… 그지없네 : 양 생(兩生)은 노나라의 두 유생을 가리키는데, 한 고조(漢高祖) 때 숙손통(叔孫通)이 조의(朝儀)를 새로 제정하고자 하여 노나라의 유생 30여 인을 불렀을 적에 특히 두 유생만이 숙손통의 행위가 고도(古道)에 어긋난다 하여 가지 않았으므로, 즉 양생은 옛 예악(禮樂)의 전적(典籍)만을 잘 알고 있었을 뿐, 권변(權變)의 도리를 몰랐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산중(山中)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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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의 촌 늙은이는 사립문 닫고 들앉아 / 山中野老掩柴扉
하늘땅이 갈라진대도 전연 알지 못하나니 / 地拆天分摠不知
내 몹시도 끝내 서로 종유하고는 싶으나 / 甚欲相從聊卒歲
기심을 잊을 길 없는 게 도리어 부끄럽네 / 却慚無計可忘機
원숭이가 과실 훔치는 덴 나무가 하늘에 닿고 / 猿偸園菓雲連樹
학이 잠자는 소나무엔 달이 가지에 가득타지 / 鶴宿庭松月滿枝
당년에 이 말 익히 들은 것이 기억나는데 / 記得當年聞此熟
언제나 늙은 목은은 사직하고 돌아갈거나 / 何時老牧掛冠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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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왕의 공손하고 삼감을 시로 노래했으니 / 文王翼翼歌于詩
공경하여 그치어라 아 계속해서 광명했네 / 敬止敬止於緝煕
요 임금 공경 순 임금 공손이 바로 근본이라 / 高欽舜恭是根柢
두 노인이 돌아온 것이 오직 그 시기였네 / 二老歸矣惟其時
유리의 충성심은 해와 달을 꿰뚫었기에 / 羑里忠心貫日月
성명한 천왕께서 끝내 의심을 하지 않았고 / 天王聖明終不疑
삼분의 이를 차지코도 신하의 절의 지키어 / 三分有二守臣節
가슴속의 충심은 견고하기 무쇠 같았네 / 方寸赤肉堅如鐵
상제가 널 살피거니 감히 행여 변심할쏜가 / 上帝臨汝敢或貳
어찌 거센 바람에 산이 찢길 걸 두려워하랴 / 疾風豈怕高岡裂
평생에 그 몇 번이나 맹진을 건넜던고 / 平生幾度渡孟津
천자 높이는 조회 의식 잠시도 멎지 않았네 / 敬上聘儀無暫輟
밝은 창 조용한 책상에 먼지 하나 없을 제 / 明窓靜几無塵埃
홀로 청묘를 노래하고 영대에 화답하노니 / 獨歌淸廟賡靈臺
푸른 하늘 밝은 태양은 천만고를 통틀어서 / 靑天白日亘萬古
털끝만 한 가리움도 좇아올 데가 없고말고 / 一毫纖翳無從來
창려의 금조는 참으로 이을 수가 없어라 / 昌黎琴操不可繼
동해 가의 태산은 어이 그리도 우뚝한고 / 泰山表海何崔嵬
[주C-001]소심행(小心行) : 소심은 조심조심하여 아주 근신한다는 뜻으로, 《시경》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오직 이 문왕이 조심조심하여 공손하고 삼가시다.[維此文王 小心翼翼]”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1]문왕(文王)의 …… 노래했으니 : 《시경》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오직 이 문왕이 조심조심하여 공손하고 삼가시다.[維此文王 小心翼翼]”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공경하여 …… 광명했네 : 《시경》 대아(大雅) 문왕(文王)에 “심원하신 문왕이여, 아, 계속해서 광명하사 항상 공경하여 그침에 편안하시다.[穆穆文王 於緝煕敬止]”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요 임금 …… 공손 : 요 임금을 일러 “공경하고 통명하고 문채가 빛나고 생각이 심원한 것이 매우 자연스러우시다.[欽明文思安安]” 한 것과 순 임금을 일러 “온화하고 공손하고 지성스럽고 착실하시다.[溫恭允塞]”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堯典, 舜典》
[주D-004]두 노인이 돌아온 것 : 두 노인은 바로 백이(伯夷)와 태공(太公)을 가리킨다. 백이가 일찍이 무도한 주(紂)를 피하여 북해(北海) 가에서 살다가 문왕(文王)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흥기하여 말하기를 “어찌 그에게로 돌아가지 않으랴, 내가 들으니, 서백(西伯)은 노인을 잘 봉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 하였고, 태공 또한 일찍이 주를 피하여 동해(東海) 가에서 살다가 문왕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흥기하여 말하기를 “어찌 그에게로 돌아가지 않으랴, 내가 들으니, 서백은 노인을 잘 봉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上》
[주D-005]유리(羑里)의 …… 않았고 : 유 리는 주(紂)가 주 문왕(周文王)을 유폐(幽閉)시켰던 성(城) 이름이다. 문왕이 일찍이 주의 밑에서 구후(九侯), 악후(鄂侯)와 함께 삼공(三公)으로 있을 적에 주가 무죄한 구후와 악후를 처참하게 죽인 데 대하여 몰래 탄식을 했다가, 소인의 참소에 의해 주의 노염을 사서 유리에 수감되어, 그곳에서 천자(天子)에 대한 충심 어린 구유조(拘幽操)를 지었었는데, 한유(韓愈)가 일찍이 구유조를 모방하여 문왕의 충심을 서술하기를 “아, 신의 죄는 죽어 마땅하거늘, 천왕께서는 성명하시도다.[嗚呼臣罪當誅兮天王聖明]”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의 천왕은 곧 그 당시의 천자인 주를 가리킨다.
[주D-006]삼분의 …… 지키어 : 주 문왕(周文王)이 제후(諸侯)의 신분으로 천하를 3분의 2나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주(紂)를 천자로 섬겼던 일을 가리킨다. 《論語 泰伯》
[주D-007]평생에 …… 건넜던고 : 문왕(文王)이 제후(諸侯)의 신분으로 매양 맹진(孟津)을 건너 주(紂)의 도읍인 조가(朝歌)에 가서 조회(朝會)했던 일을 가리킨다.
[주D-008]청묘(淸廟)를 …… 화답하노니 : 청묘는 《시경》 주송(周頌)의 편명인데, 이 시는 문왕을 제사 지낼 때에 문왕의 덕을 극찬하여 노래한 것이고, 영대(靈臺)는 《시경》 대아(大雅)의 편명인데, 이 시 또한 문왕의 훌륭한 덕화를 노래한 것이다.
[주D-009]창려(昌黎)의 금조(琴操) : 창 려는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진 한유(韓愈)를 가리키고, 금조는 바로 한유가 일찍이 문왕(文王)의 금조곡(琴操曲)인 구유조(拘幽操)를 모방하여 지은 시가(詩歌)를 가리킨 것이다. 문왕이 일찍이 주(紂)의 밑에서 구후(九侯), 악후(鄂侯)와 함께 삼공(三公)으로 있을 적에 주가 무죄한 구후와 악후를 처참하게 죽인 데 대하여 몰래 탄식을 했다가, 소인의 참소에 의해 주의 노염을 사서 유리에 수감되어, 그곳에서 천자(天子)에 대한 충심 어린 구유조(拘幽操)를 지었다.
크게 탄식하다.[浩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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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탄식은 하늘땅도 좁기만 하고 / 浩歎乾坤窄
고독한 삶은 작은 것도 많기만 해라 / 孤生銖兩多
때로는 미친 흥취를 발산도 하는데 / 時時發狂興
모든 일은 슬픈 노래를 촉발시키네 / 事事觸悲歌
물욕은 잡초를 매듯 제거하거니와 / 物慾如鋤草
세월은 황하를 터놓은 듯 빠르구나 / 年光似決河
한가로이 천명을 즐기면서 / 悠然樂天命
온종일 뜰의 나뭇가지를 바라보노라 / 終日眄庭柯
[주D-001]뜰의 나뭇가지를 바라보노라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술병과 잔 들어 스스로 따라 마시고,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흐뭇해하네.[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한 데서 온 말이다.
외로이 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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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이 걸어서 어드메를 가려느뇨 / 孤征欲何往
곧은 길엔 다니는 사람 하 적구려 / 直道少人行
아득해라 산천은 끝없이 광활하고 / 渺渺山川闊
쓸쓸해라 서리 이슬은 맑기만 하네 / 凄凄霜露淸
충성은 괜히 스스로 애쓸 뿐이지만 / 忠肝空自苦
병든 이 몸은 그 누가 놀래리요 / 病骨有誰驚
공자의 자리 다수워질 날 없으니 / 孔席無由煖
문왕이 다시 나오지 않으리로다 / 文王不復生
[주D-001]공자(孔子)의 …… 없으니 : 공자는 도(道)를 행하기 위해 급급히 천하(天下)를 주유(周遊)하느라 오래 앉았을 겨를이 없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文選 卷45 班固答賓戱》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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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에서 햇볕 쬐며 어린애 손을 잡고 / 負暄簷下手携兒
어리광 소리 서로 나눠 스스로 어리석을 제 / 相語嬌音尙自癡
무엇보다 여기엔 한 덩이의 화기가 있는지라 / 最是一團和氣在
서로 겸양하며 노래 짓던 시절이 완연하네 / 依然揖讓作歌時
천하가 산산이 쪼개진 지 그 몇 해이던고 / 四海分崩問幾年
예전에 놀던 흥취가 아득하기만 하구나 / 舊游情興墜茫然
중원은 요즈음 아무런 소식도 없는데 / 中原近日無消息
일개 서생 이 몸만 동해 가로 나왔네그려 / 一箇書生出日邊
시의 도는 본래부터 성정을 쓰는 것인데 / 詩道由來寫性情
그 누가 입으로 서로 다퉈 울리게 했던고 / 誰敎口吻却爭鳴
푸른 산이 은은하게 누대 아래 가득하니 / 靑山隱隱滿樓下
백발 늙은이의 두 눈이 환히 밝아지누나 / 白髮老翁雙眼明
[주D-001]서로 …… 시절 : 순(舜) 임금이 여러 현신(賢臣)들과 만나서 스스로 노래를 지어 부르자, 고요(皐陶)가 또한 여기에 화답하여 노래를 지어 불렀던 때를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태평성대를 이른 말이다. 《書經 益稷》
종백(宗伯) 개성 윤(開城尹)이 찾아 준 데 대하여 받들어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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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 봄바람에 해가 처음 길어지니 / 春風浩蕩日初長
그윽한 집 적막하여 먼 시골집 같은데 / 寂寞幽居似野莊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갑자기 들으니 / 忽聽跫音垂顧問
나의 마음 기뻐서 하늘을 날 것만 같구나 / 便敎喜氣欲飛揚
공은 나이 한창이라 의지가 철석 같은데 / 公年方壯腸如鐵
나는 병이 아직 깊어 머리털이 다 세었네 / 我病猶深髮似霜
내 소원은 이제부터 촛불 밝혀 노닒일세 / 但願從今勤秉燭
근래엔 세상이 더욱 아득하기만 하구려 / 邇來人世更茫茫
[주C-001]종백(宗伯) 개성 윤(開城尹) : 종백은 좌주(座主)의 아들을 일컫는 말로, 여기서는 곧 저자의 좌주였던 이제현(李齊賢)의 막내아들로 일찍이 개성 윤을 지낸 이창로(李彰路)를 가리킨 것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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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 이불 쓰고 앉아서 / 鷄未鳴時坐擁衾
지루한 신세를 조용한 읊조림에 붙이노라니 / 悠悠身世付微吟
빈 방에 맑은 기운 생김을 조용히 관찰타가 / 靜觀夜氣生虛室
먼 봉우리에 아침 햇살 오름을 문득 보겠네 / 忽見朝暉上遠岑
남이 날 보는 덴 응당 속을 환히 알겠거니와 / 視己固應如見肺
형체 잊는 사귐엔 하필 맘을 논할 것 있으랴 / 忘形何必更論心
백발 나이에 왕래가 드문 걸 한탄하지 말라 / 白頭莫恨過從少
육마도 오히려 거문고 잘 타는 걸 알았다오 / 六馬猶知善鼓琴
[주D-001]육마(六馬)도 …… 알았다오 : 육 마는 천자(天子)의 수레를 끄는 여섯 마리의 말을 가리키는데, ‘옛날에 거문고를 매우 잘 타던 백아가 거문고를 타자, 육마가 거문고 소리를 듣느라 머리를 쳐들고 꼴을 먹었다[伯牙鼓琴而六馬仰秣]’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학덕이 뛰어나면 자연히 남이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荀子 勸學》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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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쯤이나 기다란 명함을 써내어라 / 寫出名銜尺許長
후일에 정안이 또한 광채가 나겠구려 / 他年政案亦生光
한 가지 일도 공평 범한 실착 전혀 없으니 / 了無一事干公錯
백발이라 물고기 쌀의 고장으로 돌아가리 / 白首歸來魚稻鄕
태창의 묵은 곡식 일천 관원에게 흩으어라 / 太倉紅腐散千官
아침저녁 출근 숙직으로 쉴 틈이 없구려 / 夕直朝衙不暫閑
더구나 지금은 사방에 외구 침략도 많으니 / 況値四郊多壘日
시골서 몸소 농사지으며 늙는 게 제일이겠네 / 不如躬稼老田間
봉군되고 녹봉 받으니 참으로 풍족하여라 / 封君受祿儘優游
십만전 차고 또 학 타고 양주 가는 격일세 / 十萬腰錢又鶴州
병중에 하 깊은 나라 은혜 갚지를 못하여 / 病裏國恩深莫報
화봉의 세 가지 축복을 금할 길이 없어라 / 華封三祝不能休
[주D-001]정안(政案) : 벼슬아치의 출신 내력(出身來歷)을 기록한 문서이다.
[주D-002]십만전(十萬錢) …… 격일세 : 옛 날에 어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각각 자기 소원을 말하는데, 그중 한 사람은 양주 자사(揚州刺史)가 되고 싶다 하고, 또 한 사람은 많은 재물을 갖고 싶다 하고, 또 한 사람은 학(鶴)을 타고 승천(升天)하고 싶다고 하자,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허리에 십만 꿰미의 돈을 차고, 학을 타고 양주로 날아가서, 앞서 말한 세 사람의 소원을 겸하고 싶다.[腰纏十萬貫 騎鶴上揚州 欲兼三者]”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러 가지 행복을 한 몸에 갖추어 지닌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3]화봉(華封)의 세 가지 축복 : 요(堯) 임금 때에 화(華) 땅의 봉인(封人)이 요 임금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성인(聖人)께 축복을 드리겠노니, 성인께서 수(壽)ㆍ부(富)ㆍ다남자(多男子) 하시기를 비옵니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莊子 天地》
깊숙한 골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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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숙한 골목엔 다듬이 소리 급하고 / 深巷砧聲急
텅 빈 뜰엔 산기운이 엄습하누나 / 空庭山氣侵
소리 높이 읊어 이미 세상 피했고 / 高吟已遺世
우뚝 서서 다시 속된 생각 잊을 제 / 獨立更冥心
저물녘엔 까마귀 그림자 번득이고 / 翻影鴉投暮
그늘에선 학이 날개를 떨치는구나 / 揚翎鶴在陰
위하여 유수곡 연주할 일이 없어 / 無因奏流水
백아의 거문고 줄은 끊기고 말았네 / 絃斷伯牙琴
[주D-001]위하여 …… 말았네 : 세 상에 자기를 알아줄 사람이 없음을 뜻한다. 옛날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어서, 백아가 일찍이 태산(泰山)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듣고 말하기를 “좋다, 높다란 것이 마치 태산 같다.” 하였고, 백아가 또 흐르는 물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또 말하기를 “좋다, 세차게 내려가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 같다.”고 하여, 백아의 생각을 종자기가 다 알아들었으므로, 종자기가 죽은 뒤에는 백아가 자기 소리를 알아줄 사람이 없다 하여 마침내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종신토록 거문고를 다시 타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한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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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이라 그늘은 막 흩어졌는데 / 日午陰初散
봄날이 차니 땅은 더욱 그윽하네 / 春寒地轉幽
들 다리는 나막신 신기에 알맞고 / 野橋宜著屐
강가엔 배가 막 떠나려 하는구나 / 江岸欲行舟
천명에 순응하여 깊이 들앉아서 / 信命仍深坐
다시 멀리 노닐 마음도 없는지라 / 無心更遠遊
귀인 행차가 때로 혹 왕림해 주면 / 高軒時或枉
문득 일천 근심 흩어짐을 느낀다오 / 便覺散千憂
조양(朝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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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는 동쪽 벽에 오르고 / 朝陽上東壁
병객은 남쪽 창문을 향하노니 / 病客向南窓
몸은 완악한 아이와 이웃했고 / 身與頑童比
마음은 항복한 장수와 같구나 / 心如老將降
봄 구름은 곡령에 나직하거니와 / 春雲低鵠嶺
눈 녹은 물은 여강에 벌창하리 / 雪水漲驪江
끝없는 생각 아득하기만 하여 / 渺渺思無極
고독한 이 몸 스스로 사람 끊노라 / 孤蹤自絶雙
병든 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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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몸 어디도 부칠 곳이 없어라 / 病軀無處著
앉으나 누우나 불편하기만 하네 / 坐臥摠非便
먹고 숨쉬는 게 다 명에 달렸거늘 / 食息皆關命
병 앓는대서 감히 하늘을 원망하랴 / 呻吟敢怨天
절벽에는 섣달 눈이 아직 남았고 / 巖崖餘臘雪
촌락에는 차가운 연기 자욱하구나 / 墟落鎖寒煙
후일 나의 유고를 불사르고 나면 / 他日焚遺草
매미 허물 벗듯이 속진을 벗어나리 / 浮游似蛻蟬
군자(君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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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다른 방술이 없나니 / 君子無他術
오직 도의 진리 지킬 줄만 안다오 / 唯知守道眞
몇 년이나 호연지기를 길렀던고 / 幾年曾養氣
만물이 절로 봄을 머금었네그려 / 萬物自含春
삼가서 가법을 손상치 말아야지 / 愼勿虧家法
이 또한 나라 다스림과 같은 걸 / 還如秉國鈞
끝내는 하늘이 저 위에 계시나니 / 到頭天在上
화복으로 고생스러워 말지어다 / 禍福莫艱辛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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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빳빳이 하면 자만에 가깝지만 / 强項近自大
허리를 굽히면 비굴함에 가까워서 / 折腰近自卑
현령도 쉽게 하지 않았는데 / 縣令不易爲
더구나 재상 지위에 있는 자이랴 / 何況居台司
승상이 가까운 신하를 욕보일 때 / 丞相辱近臣
중사가 부절 가지고 달려갔으니 / 中使持節馳
누가 알았으랴 극히 짧은 순간에 / 誰知呼吸頃
한의 국운이 태산처럼 안전해진 걸 / 漢鼎山不移
어찌하여 남을 따라 진퇴하면서 / 奈何群進退
머뭇머뭇 자기 이익만 도모하는고 / 媕婀圖自私
뜬구름은 성대히 하늘을 가리는데 / 浮雲鬱嵯峨
흐르는 물은 왜 구불구불 가는고 / 流水何逶迤
군자는 본래의 뜻 굳게 지키니 / 君子守素志
즐거울사 항상 시기에 순응함이여 / 樂哉方順時
[주D-001]허리를 …… 않았는데 : 진 (晉)나라 도잠(陶潛)이 일찍이 팽택 현령(彭澤縣令)으로 있을 때, 마침 군(郡)의 독우(督郵)가 현(縣)을 순시하게 되어, 아전이 도잠에게 의관(衣冠)을 갖추고 독우를 뵈어야 한다고 하자, 도잠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는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혀서 향리(鄕里)의 소인(小人)을 정성으로 섬길 수 없다.” 하고, 마침내 현령의 인끈을 풀어 던지고 현을 떠나 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승상(丞相)이 …… 안전해진 걸 : 임 금의 근신(近臣)을 엄히 다룸으로써 국가가 편안해짐을 뜻한다. 한 문제(漢文帝) 때 승상 신도가(申屠嘉)가 일찍이 일을 아뢰러 입조(入朝)했을 적에 행신(幸臣) 등통(鄧通)이 임금의 총애를 믿고 태만(怠慢)한 행동을 하자, 신도가가 일을 다 아뢰고는 임금에게 말하기를 “폐하(陛下)께서 신하들을 사랑하시면 그들에게 부귀(富貴)하게 해 주면 됐지 조정의 예(禮)에 관해서는 엄숙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즉시 승상부(丞相府)로 나와서 격문(檄文)으로 등통을 부르기를 “승상부로 나오너라. 오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 하니, 등통이 승상부로 나가서 관(冠)을 벗고 머리를 조아려 사과하였으나, 신도가는 그에게 예를 하지 않고, 책망하여 말하기를 “조정은 고제(高帝)의 조정이거늘, 소신(小臣)이 전상(殿上)에서 희학질을 한 것은 대단히 불경(不敬)한 짓이니, 목을 베어 마땅하다.” 하였는데, 이때 마침 임금이 중사(中使)를 시켜 부절(符節)을 가지고 가서 등통을 부르게 하고, 따라서 승상에게 사과하기를 “등통은 나의 농신(弄臣)이니, 그대는 그를 놓아주오.” 하여, 겨우 등통의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족자(族子)가 찾아왔기에 이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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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은 예부터 돈목하는 바거니와 / 同姓古所敦
더구나 숙씨 백씨 아우며 형이랴 / 矧叔伯弟兄
내 자식이 바로 자네의 항렬이니 / 有子是子行
친애하는 정리를 알 수 있으리라 / 可知親愛情
이사한 곳은 이미 서로 멀거니와 / 移居旣曠遠
친속은 멀어 합치기도 어렵구나 / 勢疎難合幷
귀천은 각각 천명에 달린 것이라 / 貴賤各有命
인력으로 경영할 수 없는 것이니 / 非力可經營
농사지어 스스로 생활 영위하면 / 服田苟自給
또한 내 생을 마치기에 넉넉하리 / 亦足終吾生
왕래를 행여 너무 더디게 말라 / 往來愼無闊
인륜은 예로부터 밝혀졌느니라 / 彝倫從古明
고의(古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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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의 달이 못 속에 스며들 제 / 山月入潭底
늙은 용이 이를 안고 잠이 들어 / 老龍抱之眠
오래도록 천둥을 일으키지 않고 / 雷霆久不作
숲 골짝은 깊은 못을 에워쌌네 / 林谷圍重淵
적적한 가운데 천재를 내려가도 / 寂寂向千載
신묘한 변화는 끝내 어긋남 없어 / 神化終不愆
하루아침에 천하에 비를 내리면 / 一朝澤天下
만물 적셔준 공이 하늘을 짝하네 / 潤物功配天
현묘한 이치를 헤아릴 수 없어라 / 玄機不可測
자연이요 또한 자연이 아니로다 / 自然非自然
기린이 때 아닌 때에 나왔으니 / 麟也出不時
신령함을 어찌 이를 것 있으랴 / 其靈何足云
성인이 아랫자리에 있었으나 / 聖人在下位
하늘은 사문을 망치지 않았기에 / 天未喪斯文
허둥지둥 제후국들을 주류하여 / 棲棲適侯國
가고 머묾이 뜬구름 같았었네 / 行止如浮雲
시서 예악 산정엔 여력이 있었고 / 刪定有餘力
춘추 필삭엔 공훈을 이루었으니 / 筆削方集勳
애공이 서쪽으로 사냥 나간 일은 / 哀公幸西狩
천재에 맑은 향기가 유전하누나 / 千載流淸芬
[주D-001]기린이 …… 있으랴 : 공 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저술해 나가다가 노 애공(魯哀公) 14년에 이르러 “서쪽으로 사냥 나가서 기린을 얻다.[西狩獲麟]”라는 말로 끝마쳤는데, 그것은 곧 기린은 인수(仁獸)로서 성왕(聖王)의 아름다운 상서인데, 성왕이 없는 세상에 잘못 나와서 잡히게 된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한 때문이란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성인(聖人)이 …… 않았기에 : 공 자가 광(匡) 땅에서 두려운 일을 당하여 이르기를 “문왕이 이미 작고하였으니, 도가 나에게 있지 않겠느냐. 하늘이 이 도를 망칠진댄, 나 같은 사람이 이 도에 참예하지 못했겠거니와, 하늘이 이 도를 망치지 않을진댄, 광 땅 사람이 나를 어찌하겠는가.[文王旣沒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상서(尙書) 강용리(姜用鯉)가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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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강과는 젊어서 서로 좋아했는데 / 髥姜少相善
오랜만에 만나니 온통 백발이로세 / 久別白無餘
막 만나서 묵은 회포 풀려고 할 제 / 乍見欲敍舊
헌칠한 미목이 궁한 집에 빛나는데 / 眉目照窮廬
내 머리 또한 세진 걸 괴이케 여겨 / 怪我亦頭白
얼굴빛 변하여 길이 탄식을 하네 / 色變爲欷歔
인생에 그 몇 번이나 서로 만날꼬 / 人生幾會合
세월은 지금 또 한 해가 다 갔는 걸 / 歲月方云徂
늙고 병든 나는 이제 그만이건만 / 老病吾已矣
장하여라 그대는 방금 상서했으니 / 壯哉方上書
그 뜻은 곧 해적들을 평정하여 / 意在靖海寇
민생들을 편히 살리기 위함이었네 / 帖然安里閭
청컨대 그대는 스스로 책려하여 / 請子自策勵
정이 되고 주거가 안 되도록 하게나 / 鼎也非柱車
[주D-001]염강(髥姜) : 수염이 좋은 강 상서(姜尙書)라는 뜻이다.
[주D-002]정(鼎)이 …… 하게나 : 정 은 곧 세 발 달린 솥이므로, 이를 삼공(三公)에 비겨 대신(大臣)의 뜻으로 쓴 말이고, 주거(柱車)는 곧 당(唐)나라 때 유차(劉叉)란 사람이 평소 아무런 명성도 없었다가, 일찍이 한유(韓愈)를 찾아가서 빙주(氷柱)ㆍ설거(雪車)의 두 시를 지어 갑자기 노동(盧仝)ㆍ맹교(孟郊)보다 더 뛰어나다는 인정을 받았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한 가지 재능으로 잠시 명성을 얻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절구(絶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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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엔 시주에만 미쳐 달릴 뿐이었고 / 少年詩酒但狂馳
흘러가는 세월은 도무지 아랑곳 안했는데 / 頭上跳丸摠不知
늙어 가매 좋은 때를 늘 손꼽아 기다리자니 / 老去良辰頻屈指
여전히 또 답청하는 시절이 가까워지누나 / 依然又近踏靑時
중년에야 시서로 이 마음을 증험해 보니 / 中歲詩書驗此心
참으로 얇은 얼음 깊은 못에 임한 것 같네 / 眞如履薄與臨深
병든 나머지 절로 알게 된 건 공부는 줄고 / 病餘自識工夫減
기력은 쇠해지고 물욕은 서로 침범함일세 / 氣力摧頹物欲侵
한가히 늙어 가매 얻고 잃음 비등해라 / 老去悠然得喪齊
오경에 단정히 앉아 이웃 닭소리를 듣네 / 五更端坐聽隣鷄
오늘 아침엔 또 동풍이 급히 불어와서 / 今朝又是東風急
구름 불어 다 헤치니 해가 지려 하누나 / 吹盡飛雲日欲西
청산음(靑山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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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기약 있어 길이 문에 당했는지라 / 靑山有約長當戶
앉아서 거용 등지고 여부를 어루만지네 / 坐背居庸撫廬阜
세 가닥이 종횡하여 산세가 불일치하니 / 三條縱橫勢莫一
어느 곳이 참다운 천부인지 알 수 없고 / 未知何處眞天府
동쪽 바다 서쪽 언덕에 자리한 장백산은 / 東溟西岸長白山
마치 태백이 도망갔던 형만과 똑같은데 / 有如泰伯逃荊蠻
오악은 중국에서 가장 높게 내버려 두고 / 從敎五岳尊中州
홀로 요해에 걸터앉아 청구와 연하였네 / 獨跨遼海聯靑丘
삼한에 흩어져선 뛰어난 지세를 차지하여 / 散在三韓占形勝
봉우리마다 신선 누각을 솟구쳐 일으키고 / 峰峰聳起神仙樓
누각 아래 흐르는 물은 동해로 달려가 / 樓下流川走東海
봉래산의 운기는 하늘이 내리덮은 듯하네 / 蓬萊雲氣如天蓋
눈이 있어도 티끌 하나를 볼 수 없거니 / 有眼不見纖塵生
학 타고 돌아간들 또한 무엇이 해로우랴 / 駕鶴歸來亦何害
머리 숙이고 앉아서 청산음을 짓다 보니 / 低頭且作靑山吟
마른 버들에 말 부스럼 비벼댐과 흡사하네 / 恰似枯楊便馬疥
[주D-001]청산(靑山)은 …… 당했는지라 : 소식(蘇軾)의 〈조동년초당(刁同年草堂)〉 시에 “청산은 기약 있어 길이 문에 당해 있고, 유수는 정이 없어 절로 못에 흘러드누나.[靑山有約長當戶 流水無情自入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거용(居庸) …… 어루만지네 : 거용은 연경(燕京)에 있는 산명(山名)인데, 험준하기로 이름이 높고, 여부는 바로 동진(東晉)의 고승(高僧)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거주했던 여산(廬山)을 가리킨다.
[주D-003]천부(天府) : 산천(山川)이 험준한 천연의 요새를 말한다.
[주D-004]태백(泰伯)이 도망갔던 형만(荊蠻) : 형 만은 곧 남만(南蠻) 지방을 가리킨다. 태백은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세 아들 가운데 장자(長子)인데, 막내아들인 계력(季歷)이 성자(聖子) 창(昌)을 낳음으로 인해, 태왕이 계력을 후사(後嗣)로 삼으려는 뜻이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태백이 마침내 형만으로 도망가서 오(吳)의 시조가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따라서 여기의 형만은 곧 남만 지방의 산세를 가리킨 것이다.
[주D-005]마른 버들에 …… 비벼댐 : 소 식(蘇軾)의 〈여호사부유법화산(與胡祠部游法華山)〉 시에 “갑자기 좋은 선비 만나 명산에 함께 노니, 마른 버들에 말 부스럼 비벼댐과 뭐가 다르랴.[忽逢佳士與名山 何異枯楊便馬疥]” 한 데서 온 말로, 즉 일시적인 즐거움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병중음(病中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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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가 이부자리에 누워서 / 老翁偃袵席
소녀를 시켜 삭신을 밟게 하노니 / 小娃踏肌肉
삭신은 절로 몹시 고통스러우나 / 肌肉自酸辛
혈기는 끊이거나 이어짐이 없네 / 血氣無斷續
탕약은 정맥을 비보해 주고 / 湯藥補正脈
침석은 사독을 공격하는데 / 針石攻邪毒
성인이 오묘한 학술을 세웠으니 / 神聖立妙術
전심하면 치곡을 할 수 있거니와 / 專心能致曲
누가 알았으랴 밟는 법이 있어 / 誰知有踏法
나의 고통 쾌히 위로해줄 줄을 / 快慰我慘酷
심신은 이내 청명해지고 / 神志旋淸明
몸은 방금 목욕한 듯 가벼워지네 / 身輕如初浴
섭생이 어찌 어려운 일이리오 / 攝生豈難事
너는 우선 욕심을 적게 할지어다 / 汝且先寡欲
[주D-001]치곡(致曲) : 성 (誠)이 아직 미진하여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대현(大賢) 이하 사람들에 한해서, 일편적(一偏的)인 선단(善端)의 발현을 말미암아 그것을 모두 미루어 실천해서 각각 궁극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中庸章句 第23章》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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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의 시골 중은 도심이 농후한데 / 文殊野衲道情濃
평양의 여러 성에서 겨울 한 철 늙으면서 / 平壤諸城老一冬
집집의 말 되 곡식으로 무거운 짐 이루어 / 家斗戶升成重負
운반하여 돌아오니 해가 이미 석양일세 / 歸來盤脚日高舂
병든 후로 얼마나 산에 놀고 싶었던가 / 病餘幾度欲遊山
한가로운 흥취가 수석 사이에 있었으니 / 情興悠然水石間
그러나 다생의 속된 생각 많음을 입어서 / 却被多生塵念重
몸 하나 한가로운 백운을 쫓기 어렵구나 / 一身難逐白雲閑
구름 속의 가파른 산을 오를 길이 없어라 / 入雲無路上崔嵬
깎아지른 절벽엔 붉은 이끼 드리웠는데 / 絶壁削戌垂紫苔
낯 쳐들고 십 년을 부질없이 사모했더니 / 仰面十年空跂立
하늘에서 내려온 생학 소리 멀리 들리네 / 遙聞笙鶴下天來
[주D-001]다생(多生) : 불교 용어로, 중생(衆生)이 선악(善惡)의 업(業)을 지어 윤회(輪廻)의 고통을 받음으로써 생사(生死)가 끊임없이 연속됨을 말한다.
군자(君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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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 君子有所懷
크게는 천자 노릇도 할 수 있으나 / 大可朝諸侯
만일 한 가지라도 불의가 있으면 / 苟或一不義
터럭처럼 가벼이 던져 버리나니 / 棄去如毛輶
이것은 바로 내 몸과 나라가 / 所以身與國
일체여서 달리 구할 게 없음일세 / 一體無他求
맑은 바람이 뜬구름을 불어 헤쳐 / 淸風吹浮雲
밝은 태양이 중주에 환히 빛나서 / 白日照中州
인륜을 아름답게 두루 펼치어 / 粲粲彝倫敍
삼덕으로 구주를 실행하였네 / 三德行九疇
어찌하면 우 임금 홍범을 신칙하여 / 何當申禹範
상제의 훈계를 끝없이 빛나게 할꼬 / 帝訓無疆休
[주D-001]삼덕(三德)으로 …… 실행하였네 : 삼 덕은 곧 하우씨(夏禹氏)가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로부터 얻었다는,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의 큰 법칙[洪範九疇]’ 가운데 하나로, 즉 첫째는 정직(正直)함이요, 둘째는 강함으로 다스림이요[剛克], 셋째는 부드러움으로 다스림[柔克]이 그것이다. 홍범구주는 첫째 오행(五行), 둘째 오사(五事), 셋째 팔정(八政), 넷째 오기(五紀), 다섯째 황극(皇極), 여섯째 삼덕(三德), 일곱째 계의(稽疑), 여덟째 서징(庶徵), 아홉째 오복(五福)과 육극(六極)을 가리킨다. 《書經 洪範》
호불귀행(胡不歸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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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돌아가지 않으랴 / 胡不歸胡不歸
네 이미 늙었거늘 어이해 안 돌아가느뇨 / 汝旣老矣胡不歸
네가 섬기던 임금은 이미 세상 떠났고 / 汝所天兮賓于天
네 혼자 남으니 넓은 정호 물결에 석양만 밝구나 / 汝獨留兮鼎湖波遠明斜暉
떨어지는 석양은 멈추게 할 수 없거니와 / 斜暉欲墜不可駐
바람 소리 구슬프고 천지도 위하여 빛을 잃었는데 / 風聲悲號天地亦爲之依依
나 홀로 영화 누려라 옷 입어 살 드러내지 않고 / 獨榮華兮衣蓋膚而不露
나 홀로 술 고기 먹어라 창자 채워 주리지 않고 / 獨醲鮮兮食充腸而不饑
나의 두 자식도 뭇 재사들 사이에 끼어서 / 有子一雙逐群彦
붉은 띠와 금어대에 붉은 옷자락 드리우네 / 紅鞓金魚垂紫衣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돌아가지 않으랴 / 胡不歸胡不歸
부족함이 없거늘 그 무엇을 더 바라는고 / 無不足兮奚所希
청산은 은은하고 물은 거울처럼 맑거니 / 靑山隱隱水鏡淨
내 무릎 꿇을 곳은 오직 낚시터뿐이로세 / 我膝所屈唯漁磯
[주D-001]정호(鼎湖) : 하남성(河南省) 형산(荊山) 아래에 있는 지명(地名)이다. 황제(黃帝)가 일찍이 형산 아래서 동(銅)으로 솥을 주조하고는 용(龍)을 타고 승천(昇天)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임금의 붕어(崩御)를 뜻한다.
유 학관(柳學官)이 춘정 석전(春丁釋奠)의 번육(膰肉)을 친히 보내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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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춘이라 초열흘에 또 첫 정일을 만나서 / 仲春十日又逢丁
제사 돕는 일천 관원이 큰 마당에 모이었네 / 助祭千官集大庭
밤기운은 아직 차와라 쌓인 눈이 남아 있고 / 夜氣尙寒餘積雪
하늘빛은 젖은 듯한데 남은 별이 깜빡이네 / 天光如濕耿殘星
창생들은 모두 천지의 은혜를 입었거니와 / 蒼生共荷乾坤惠
밝은 덕이야 어찌 서직의 향기와 같을쏜가 / 明德何如黍稷馨
병중에 제육이 이른 것에 갑자기 놀랐어라 / 病裏忽驚膰肉至
백발에 기력은 없지만 경서나 더 연구하리 / 白頭無力更窮經
[주D-001]밝은 …… 같을쏜가 : 《서경(書經)》 군진(君陳)에 “기장이 향기로운 게 아니라, 밝은 덕이 오직 향기롭다.[黍稷非馨明德惟馨]”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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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내 잠 못 들고 늦새벽에 이르렀어라 / 夜眠不著曉方濃
어느새 아침 햇살이 먼 봉우리에 올랐네 / 不覺朝暉上遠峰
약수는 아득히 삼만 리나 멀리 있거니와 / 弱水渺茫三萬里
고향 산천은 멀어라 몇천 겹이나 되던고 / 故山迢遞幾千重
태워도 또 자라는 건 언덕 머리의 풀이요 / 燒來又長原頭草
그늘져도 높이 크는 건 계곡의 소나무로다 / 蔭了猶高澗底松
좌망이 매우 의미 있음을 이제야 믿겠어라 / 始信坐忘深有味
한 표주박 안자의 마을엔 이끼만 끼었구려 / 一瓢顔巷綠苔封
죽면도 돌아갈 뜻 진함만은 못하거니와 / 粥面不如歸意濃
벼슬할 뜻은 태양에 얼음산 녹듯 사라졌네 / 宦情赫日爍氷峰
긴 바람에 물결 부수는 건 절로 천 리이건만 / 長風破浪自千里
구름 속의 첩첩 봉우리는 몇 겹이나 되는고 / 疊巘入雲知幾重
술을 즐기니 병든 뒤에 방금 차조를 심고 / 嗜酒病餘方種秫
그늘 기다려 늘그막에 비로소 솔을 심노라 / 待陰老去始栽松
한가로운 내 신세가 지금 그 누구 같을꼬 / 悠悠身事今何似
양생하던 유후 또한 봉작을 받지 않았던가 / 道引留侯亦受封
[주D-001]약수(弱水) : 곤륜산(崑崙山)의 선경(仙境)에 있다는 물 이름인데, 이 물은 기러기 털도 가라앉는다고 한다.
[주D-002]좌망(坐忘) : 도가(道家)에서, 물아(物我)를 다 잊고 도(道)와 일치하는 정신(精神)의 경계를 가리켜 이른 말이다.
[주D-003]한 …… 마을 : 안자(顔子)가 누추한 시골에서 대그릇밥 한 그릇, 한 표주박 음료수로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도 낙도(樂道)의 정신을 변치 않았다는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D-004]죽면(粥面) : 진 한 차[濃茶]나 혹은 진한 술[醇酒]의 표면에 응결되는 얇은 막(膜)을 가리키는데, 그 모양이 마치 죽막(粥膜)처럼 생겼기 때문에 일컫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기손군부(寄孫君孚)〉 시에 “즐거워라 무엇을 근심하리요, 사주는 죽면이 진하기도 하거니……[樂哉何所憂社酒粥面濃……]” 하였다.
[주D-005]긴 바람에 …… 천 리이건만 : 유송(劉宋) 시대의 장군(將軍) 종각(宗慤)이 일찍이 긴 바람을 타고 만 리 파도를 부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사람의 뜻이 원대하고 기백이 웅장함을 비유한다.
[주D-006]양생하던 …… 않았던가 : 유후(留侯)는 장량(張良)의 봉호이다. 장량이 한 고조(漢高祖)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고 유후에 봉해지고 나서는 은퇴(隱退)하여 도가(道家)의 양생법(養生法)을 배우면서 여생을 마쳤으므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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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잊는 것은 크게 불길하거니와 / 忘恩大不祥
옛 친구 버리는 건 더욱 불량하다오 / 棄舊尤不良
스스로 자기 집도 보전하지 못하고 / 自不保家室
-원문 빠짐- / □□□□□
상헌은 구원 아래서 / 常軒九原下
반드시 아득하기만 하진 않을 텐데 / 未必徒茫茫
바다의 도적들에게 손을 빌리어 / 假手於海賊
천자의 위광이 -원문 빠짐- / 威靈□□□
내 일찍이 동파에게서 들은 말을 / 我曾受東坡
지금까지 마음속에 새기었노라 / 至今銘心腸
더구나 그는 여러 차례 -원문 빠짐- 배우고 / 況渠數□學
글을 지어 과거에 급제하였고 / 綴文捷科場
정 반주의 주선해줌을 인연하여 / 夤緣鄭班主
요직으로 성랑 자리에 올랐으니 / 華要登省郞
이게 다 부옹의 힘에서 나온 건데 / 盡出婦翁力
차마 그 은혜를 잊을 수 있으랴 / 忍哉其可忘
화복은 진정 제 스스로 취하나니 / 禍福信自取
머리 위의 푸른 하늘을 볼지어다 / 頭上天蒼蒼
[주C-001]느낌이 있어 읊다 : 이 시는 자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데다 탈자(脫字)된 곳도 여러 군데 있어 우선 원문에 따라 새겨 놓는 바이다.
[주D-001]상헌(常軒) :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던 안진(安震)의 호이다. 안진은 일찍이 충숙왕 때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뒤에 원(元)나라의 제과(制科)에도 급제하였다.
최 안동(崔安東)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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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 왕사의 윤필암은 / 普濟王師潤筆菴
명산 가는 곳마다 남기에 잠겨 있거니 / 名山到處鎖煙嵐
선생도 늘그막에 다른 바람 없을진대 / 先生老境無他望
푸른 산에 한 감실 두는 게 무어 해로우랴 / 鑿翠何妨置一龕
[주D-001]보제 왕사(普濟王師)의 …… 잠겨 있거니 : 보제 왕사는 고려 말기의 고승(高僧) 나옹(懶翁)의 사호(賜號)이고, 윤필암(潤筆庵)은 바로 보제 왕사의 암자 이름인데, 이 암자는 향산(香山), 금강산(金剛山), 지평현(砥平縣)의 미지산(彌智山) 등에 다 있으므로 이른 말이다.
최 대사성(崔大司成)이 나에게 태학(太學)에 들어가기를 청하므로, 인하여 회포를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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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깊어 다시는 성공을 바랄 수 없어라 / 病深無復望成功
만권 서책 망실되어 뱃속 절로 텅 비었네 / 萬卷書亡腹自空
당년에 좌석 기대놓은 걸 이미 한했거니와 / 已恨當年徒倚席
노쇠한 몸 떠도는 신세 또한 가련하구나 / 更憐衰骨似飄蓬
문풍은 세상 떨쳐라 유자들이 한창 성하고 / 文風振世諸儒盛
하늘 같은 성인의 도는 만고가 한가지이니 / 聖道如天萬古同
노생을 그르쳐 주착을 거듭하게 하지 말게나 / 莫誤老生重鑄錯
이제 곧 사직하고 농사를 배울 작정이라네 / 乞身方欲學爲農
[주D-001]좌석 기대놓은 걸 : 박사(博士)나 경사(經師) 등의 좌석을 한쪽에 방치해 둔다는 뜻으로, 즉 스승이 강좌(講座)를 베풀지 않아서 학술(學術)을 폐기하여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주착(鑄錯) : 당 소종(唐昭宗) 연간에 위박 절도사(魏博節度使) 나소위(羅紹威)가 주전충(朱全忠)에게 이용당하여 수많은 재물을 탕진함과 동시에 위부(魏府)의 아군(牙軍) 8천 인을 몰살시키고 나서 이로부터 위병(魏兵)이 몹시 잔약해지자, 나소위가 후회하여 말하기를 “6주 43현의 무쇠를 거둬 모아도 이런 줄은 만들지 못할 것이다.[合六州四十三縣鐵 不能爲此錯也]” 한 데서 온 말인데, 착(錯)은 곧 옥석(玉石)을 다스리는 도구인 줄[鑢]로서 이는 본디 쇠로 주조하는 연장인 동시에 또한 착오(錯誤)의 뜻이 있으므로, 즉 나소위가 자신이 아군을 죽인 잘못에 대하여 스스로 큰 착오를 빚었다는 뜻으로 쓴 말이었다.
여강(驪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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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의 강가에 눈이 막 녹기 시작하니 / 驪興江上雪消初
일엽편주에 올라 초려로 향하고 싶어라 / 欲坐扁舟向草廬
병든 몸 고통 속에 또 봄이 반이나 지났는데 / 病骨酸辛春又半
어이해 아직도 사직하고 못 돌아가는고 / 奈何猶未賦歸歟
봄바람 조용히 불고 새벽 운기 드리울 제 / 春風澹蕩曉陰垂
백발의 쇠한 늙은이가 앉아서 시를 읊네 / 白髮衰翁坐詠詩
강 위의 푸른 물결은 죽령과 연하였거니 / 江上綠波連竹嶺
언제나 거슬러 올라 남쪽 변방을 바라 볼꼬 / 泝流何日望南陲
하늘땅은 가이 없으나 삶은 가이 있거니 / 天地無涯生有涯
호연히 돌아가고파라 그 어디로 가려느뇨 / 浩然歸志欲何之
여강 한 굽이는 산이 흡사 그림 같은데 / 驪江一曲山如畫
절반은 단청 같고 절반은 시와도 같다네 / 半似丹靑半似詩
밥을 말하면 주린 사람은 입침을 흘리며 / 說食飢夫口帶涎
아무것도 없는 뱃속에 마음만 탈 뿐인데 / 腹中無物只心煎
목옹의 돌아갈 흥취 또한 그와 백중지세라 / 牧翁歸興難兄弟
공연히 시가와 함께 좋은 시구 지어 보네 / 謾與詩家作好聯
20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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