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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牧隱詩藁) 제16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8. 00:15

 

목은시고(牧隱詩藁) 16

 

 

 ()

 

 

 

느낌이 있어 읊다.

 


백의의 선인은 가운데 앉아서 /
白衣仙人躡蓮葉
풍파 속에 있는데도 옷이 젖지를 않네 / 宛在風波衣不濕
인간의 죽고 삶은 끝없는 고해이기에 / 人間生死海無涯
통곡의 눈물은 비내리듯 많기도 한데 / 雨洒大空多哭泣
소리 듣고 고통 구할 때마다 현신하여 / 聞聲救苦皆現身
순간에 달려가 중생의 고통 구원하네 / 一刹那頃赴人急
수많은 국토를 거울로 비춰 보듯 하고 / 微塵國土明鏡中
지붕 밑 중생들을 풀잎 줍듯 하시나니 / 樓下居人如芥拾
원컨대 서원을 갖고 신통력을 드러내서 / 願將淨願現威神
병든 이들을 낱낱이 일으켜 세우시어 / 數箇霑牀起而立
성중으로 달려가 생계를 꾸리게 하소서 / 走向城中辦生理
주인의 백발이야 어찌 뽑을 수 있으랴 / 主人白鬚容可鑷

 

[주D-001]백의(白衣)의 …… 앉아서 : 백 의의 선인(仙人)이란 곧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가리킨다. 그가 항상 흰옷을 입고 백련(白蓮) 가운데 앉아 있기 때문에 붙여진 호칭인데, 고통 받는 중생(衆生)들이 일심(一心)으로 보살(菩薩)의 명호(名號)를 염송(念誦)하면 보살이 즉시 그 음성(音聲)을 관()하여 곧바로 가서 그 고통 받는 이를 구해 준다 하고, 또 불(), 비구(比丘), 우바새(優婆塞), (), 야차(夜叉)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현신(現身)하여 중생들을 교화시킨다고 한다.

천녕음(川寧吟). 천녕현(川寧縣)으로부터 내방(來訪)한 이가 있으므로, 인하여 생각한 바를 서술하다.

 


냇물의 근원이 죽령으로부터 시작하여 / 川之源兮竹嶺下
단산 예파를 거쳐
여흥에 이르기까지 / 丹山蘂坡驪興野
수백여 리를 세차게 흘러 내려오는데 / 奔流數百有餘里
배들은 송경을 향해 주야로 들어가네 / 舟入松京無晝夜
그중 천녕 한 고을은 경치도 좋거니와 / 川寧一邑好風煙
동쪽 가는 양근이요 서쪽은 이천이라 / 東岸楊根西利川
공경들의 별장이 멀리 서로 바라뵈는데 / 公卿別墅遙相望
춘풍 추월 좋은 땐 화려한 자리 연다네 / 春風秋月開華筵
내가 생장한 진강은 큰 바다와 가까워 / 我生鎭江近大海
바다 물결 공중에 솟고 끝없이 넓어서 / 鯨波蹴空浩無外
바람 돛배 노저어 뿌연 물가에 노닐 제 / 風帆扣
游紫汀
당시의 즐거움은 진정 하나의 쾌사였네 / 當時樂事眞一快
이제는 백발로 붉은 먼지 속에 지내면서 / 白頭軟紅塵底行
가끔 미친 노래로 회포를 감당 못 하는데 / 狂歌往往難爲情
성은이 하늘 같아 국사를 관장케 하사 / 聖恩如天領史翰
한가한 직 후한 녹으로 영화롭게 하시나 / 官閑祿厚榮吾生
내 생은 큰 영화가 쓸데없음을 어찌하랴 / 吾生儘榮奈無用
이 때문에 강산이 맑은 꿈속에 들온다네 / 所以江山入淸夢
어떡하면 천녕에 가서 농사에 힘쓰면서 / 何當明農向川寧
산꼭대기의 봉황 우는 소리를 들어 볼꼬 / 聽取岡頭有鳴鳳

 

[주C-001]천녕현(川寧縣) : 고려 시대 여주(驪州)의 속현(屬縣)이다.
[주D-001]죽령(竹嶺)으로부터 …… 거쳐 :
죽령은 단양(丹陽)에 있는 산 이름이고, 단산(丹山)은 단양의 옛 이름이며, 예파(蘂坡)는 즉 옛 이름이 예성(蘂城)인 충주(忠州)를 가리킨다.

이 개성(李開城)이 술을 가지고 방문해 준 데에 사례하다.

 


백발 나이로 병도 많은 한산 늙은이는 / 白頭多病韓山翁
그 당시 뻔뻔스레 군웅을 시종했는데 /
顔當日陪群雄
성상 은총 특별하여 등에 땀 흘리면서 / 恩榮不次背流汗
여러 공을 따라 중서성을 오르고 보니 / 跡逐臺省登諸公
봄의 꽃과 가을 달은 읊조리는 속에 있고 / 春花秋月嘯詠裏
천둥과 비이슬은 주상의 경륜이었네 /
雷霆雨露經綸中
나는 지금 의상에서 적막을 지키노니 /
如今蟻牀守寂寞
약도 넉넉지 못해라 내 궁함을 알겠네 / 藥餌不給知吾窮
밝은 달밤에 앉았으면 눈동자가 구르고 / 夜坐月明轉眼月
바람 거센 봄 놀이엔 두풍이 걱정인데 / 春游風急愁頭風
어찌 알았으랴 노쇠한 허리 다리 뻣뻣할 줄 / 那知老衰腰脚頑
천지의 정신과 서로 융화됨은 점차 기쁘구려 / 漸喜天地精神融
금년에는 즐거운 일이 전년보다 나아라 / 今年樂事勝前年
서로 만나 술잔 드니 기쁘기 한량없네 / 會面擧酒欣欣然
비운과 행운의 왕래함은 정해진 이치건만 / 艱極泰來理固爾
안배하는 건 머리 위의 푸른 하늘뿐일세 / 安排頭上唯蒼天
위대하여라 개성은 바로 내 옛 친구인데 / 偉哉開城是久要
일생의 호기를 그 누가 앞설 자 있으랴 / 一生豪氣誰居先
사이에 있으면 우물에 빗장 던져라 /
松間有客井投轄
진천 공자의 화려한 자리에 대작을 하니 /
對酒秦川公子筵
정당시의 역마
오래 적적했던 터에 / 當時置驛久牢落
뛰어난 풍류가 뭇 어진 이를 경도하누나 / 風流卓爾傾群賢
별장에서 즐겨 놂은 아량을 부친 것일 /
遨遊別墅寄雅量
시냇가 그윽한 풀을 유독 가련히 여기네 /
幽草澗邊時獨憐
나는 그대 따라 문득 세상 잊고자 하여 / 我欲從公便忘世
연래엔 자못 생긴 싫어하노라 / 年來頗厭生三耳
고금에 그 누구나 교유를 중시하거니와 / 紛紛今古重交游
더구나 우리 사문의 하나뿐인 아들이랴 / 況我恩門唯一子
술 갖고 자주 들르는 것도 나쁘진 않으나 / 携酒頻過雖不惡
송정을 빌려 주어 취해 기대도록 해줬으면 / 幸借松亭容醉倚

 

[주D-001]천둥과 …… 경륜(經綸)이었네 : 임금이 때에 따라 은혜와 위엄으로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백거이(白居易)의 〈화사귀락(和思歸樂)〉 시에임금의 은혜는 비이슬과 같고, 임금의 위엄은 천둥과도 같네.[君恩若雨露君威若雷霆]” 하였다.
[주D-002]나는 …… 지키노니 :
이질(耳疾)이 있음을 뜻한다. 의상(蟻牀), ()나라 때 은사(殷師)가 일찍이 이질을 앓던 중, 와상 밑에서 개미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소가 싸우는 소리로 잘못 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 사이에 …… 던져라 :
다 정하게 빈객(賓客)을 만류하는 것을 뜻한다. ()나라 진준(陳遵)이 술을 몹시 좋아하여 빈객들을 초청해서 술을 마실 때마다 대문을 걸어 잠그고 빈객의 수레의 비녀장을 뽑아 우물에 던져서 빈객을 가지 못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92 陳遵傳》
[주D-004]진천 공자(秦川公子)의 …… 하니 :
두 보(杜甫)가 일찍이 장사(長史) 하란양(賀蘭楊)의 주연(酒宴)에서 취하여 노래한 〈낙유원가(樂遊園歌)〉에공자의 화려한 자리는 지세가 가장 높으니, 술잔 대하매 진천이 편평하기 손바닥 같네.[公子華筵勢最高 秦川對酒平如掌]” 한 데서 온 말로, 공자는 장사 하란양을 가리키고, 진천은 바로 그곳의 물 이름인데, 여기서는 곧 귀공자(貴公子)로부터 술 대접 받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5]정당시(鄭當時)의 …… :
한 경제(漢景帝) 때 정당시가 태자 사인(太子舍人)으로 있을 적에 항상 장안(長安)의 여러 교외(郊外)에 역마(驛馬)를 두어 교통의 편의를 제공해서 빈객(賓客)들을 초청해다가 밤새도록 주연을 베풀어 융숭히 접대하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별장에서 …… :
()나라 때 사안(謝安)이 일찍이 벼슬을 사양하고 회계(會稽)의 동산에 은거하다가 40세가 넘은 뒤에야 벼슬길에 나갔는데,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와서 경사(京師)가 진동할 때를 당하여, 효무제(孝武帝)가 사안에게 정토 대도독(征討大都督)을 임명하자, 그는 이때 수레를 명하여 산중의 별장으로 나가서 여러 친구들이 다 모인 가운데 자기 조카인 사현(謝玄)과 내기 바둑을 두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위급한 때를 당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장(大將)의 풍도를 의미한다.
[주D-007]시냇가 …… 여기네 :
국 가의 환난(患難)을 걱정하는 것을 뜻한다. ()나라 위응물(韋應物)의 〈제주서간(
州西澗)〉 시에유독 가련하다 그윽한 풀은 시냇가에 났고, 위에는 꾀꼬리가 깊은 나무에서 우누나. 봄 조수는 비를 띠어 석양에 급히 몰아오는데, 들 나루엔 사람은 없고 배만 절로 비껴 있네.[獨憐幽草澗邊生上有黃深樹鳴 春潮帶雨來急 野渡無人舟自橫]”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주석에 의하면, 봄 조수가 비를 띠어 급히 몰아온다는 것을 국가에 환난이 많은 데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주D-008] 귀 …… 싫어하노라 :
세 귀가 생긴다는 것은, ()나라 때 장심통(張審通)이란 사람이 일찍이 명부(冥府)의 서기(書記)가 되어 판결문(判決文)을 한 번 잘못 써서 상관(上官)으로부터 귀 하나를 막아 버리는 벌()을 받았다가, 그 후 다시 판결문을 한 번 잘 써서 그에 대한 상으로 귀 세 개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마침내 그가 부활(復活)한 지 수일 후에 갑자기 이마가 가렵다가 이마에서 귀 하나가 더 나와서 귀가 모두 셋이 된 후로는 그가 더욱 총명(聰明)해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여기서는 곧 세상일을 도무지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9]우리 …… 아들이랴 :
여 기서 사문(師門)은 곧 저자의 스승인 이제현(李齊賢)을 가리키고, 하나뿐인 아들이란 바로 그 당시 이제현의 세 아들 중에 서종(瑞種), 달존(達尊) 형제는 이미 죽고 막내아들인 개성 윤(開城尹) 창로(彰路)만 생존하였으므로 그를 가리켜 한 말이다.

이미 전후(前後)로 두 편을 써서 개성(開城)에게 부쳐 올리고, 붓을 잡은 김에 세 수를 더 읊어 이루다.

 


연래엔 미친 흥취를 붓대에 의탁하여 / 狂興年來托管城
장편과 단율을 자유자재로 쓰노라니 / 長篇短律儘縱橫
익재의 남쪽 언덕 천 척의 소나무는 / 益齋南畔松千尺
송악산 용수산과 마주하여 친한 듯하네 / 鵠嶺龍巒與目成

나는 본디 병성을 경계하지는 못하나 / 我生雖不戒甁城
마구 따르거나 횡역함을 싫어하는데 / 却厭主從幷主橫
유독 노래가 있어 감춰 둘 수 없는지라 / 獨有國風藏不得
한 편을 이루고서 또 한 편을 이루노라 / 一篇成了一篇成

고승이 화성 말한 걸 일찍이 들었건만 / 曾聽高僧說化城
전부터 코 골며 잠 잘 자는 건 여전하네 / 由來鼻息眼仍橫
누가 알리오 한가로운 천지가 절로 있어 / 誰知自有閑天地
광성의 무궁문에
보다 훨씬 나음을 / 絶勝無窮訪廣成

 

[주D-001]병성(甁城) :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에입 조심하기를 병 막듯이 하고, 방종한 뜻 막기를 성 지키듯이 하라.[守口如甁防意如城]”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화성(化城) :
신 통력으로 잠시 나타나게 한 성을 말한다. 《법화경(法華經)》에 의하면, 여러 사람이 보배가 있는 곳을 찾아가다가 그 길이 험하여 모두 피로해하므로, 그때에 길을 인도하던 이가 신통력으로써 큰 성을 잠시 나타나게 하여 여기가 보배가 있는 곳이라 하자,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여 이 성에서 쉬었는데, 이윽고 길을 인도한 이가 사람들의 피로가 회복됨을 보고는 이 성을 없애 버리고 다시 참으로 보배가 있는 곳에 이르게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중생(衆生)이 잠시 쉬어간다고 하는 이 세계(世界)를 비유한다.
[주D-003]광성(廣成)의 …… :
무 궁문(無窮門)은 곧 지극한 도[至道]를 가리킨다. 황제(黃帝)가 일찍이 공동산(空同山)으로 신선(神仙) 광성자(廣成子)를 찾아가 지극한 도를 묻자, 광성자가 이르기를저 지극한 도는 끝이 없건만 사람들은 끝이 있다고 여기고, 그 도는 헤아릴 수 없건만 사람들은 다함이 있다고 여긴다. 내 도를 얻은 자는 위로는 황()이 되고 아래로는 왕()이 되며, 내 도를 잃은 자는 살아서는 일월(日月)의 광명을 볼 뿐이고 죽어서는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장차 그대를 무궁(無窮)한 도의 문()으로 들여보내어 무극(無極)의 들판에서 놀게 하고자 한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莊子 在宥》

즉사(卽事)

 


가랑비 자욱이 내려 초당은 어둑한데 / 細雨濛濛暗草堂
복사꽃 피려 하고 버들가진 노랗구려 / 桃花欲綻柳絲黃
도롱이 입고 일엽편주로 올라가고파라 /
欲上扁舟去
한 굽이 여강 가에 시골 전장이 있으니 / 一曲驪江置野莊

봄비가 후북이 내려 밭을 갈 만하여라 /
春雨可耕田
남쪽 바라보는 연래엔 생각이 아득하네 / 南望年來思渺然
병중에 문 닫고 다시 깊이 들앉았노니 / 病裏關門更深坐
모를레라 이 행색이 뭍인가 배 안인가 / 未知行色陸邪船

그 옛날 벼슬하며 경사를 분주할 적엔 / 昔年游宦走京師
천하가 한 집이라 가는 대로 맡겼더니 / 天下一家隨所之
늙어 가매 문 나가면 갈 곳이 분명찮아 / 老去出門迷所適
산 남쪽 강 북쪽서 공연히 시만 읊노라 / 山南水北漫吟詩

 

우중(雨中)에 회포를 읊다. 3(三首)

 


경도에서 뭇 영재와 어울렸어라 / 天邑趨群彦
한림원이 마치 꿈속만 같네그려 / 鑾坡似夢中
떠가는 구름은 북을 향해 가는데 / 行雲猶向北
늘그막에 나는 정동에 머물렀네 / 老境在征東
약한 버들은 푸른 물결에 흔들리고 / 弱柳將搖碧
고운 복사꽃은 빨갛게 터지려 하네 / 夭桃欲綻紅
소년이 참으로 배워야 할 것은 / 少年眞可學
물욕을 선뜻 녹여 없앰이로세 / 物欲旋消融

해내에 수많은 동년 친구들의 / 海內同年友
존망을 아득히 들을 수 없어라 / 存亡杳莫傳
난리 때에 누가 피란을 했던가 / 亂離誰避地
병든 나는 전원으로 돌아왔었네 / 衰病我歸田
태학의 물엔 밝은 달이 잠기고 / 璧水沈明月
한림원엔 찬 연기가 자욱하리 / 鑾坡鎖冷煙
일찍이 돌에 이름 적어 두었거니 / 題名曾有石
꼭 이것까진 남으로 안 옮겼겠지 / 未必亦南遷

하늘은 군문을 향하여 가깝고 / 天向君門近
바람은 누각 소리를 전해 오는데 / 風傳禁漏來
뛰어난 풍채는 옥수가 생각나고 / 淸標思玉樹
별천지는 흡사 요대와도 같아라 / 異境似瑤臺
긴긴 밤 등불 대해 빗소리 듣다가 / 永夜對燈聽
새벽에야 우산 가지고 돌아왔네 / 淸晨持傘回
어사주는 자주 유쾌히 기울이건만 / 黃封頻快倒
붓 잡으면 재주 없는 게 한이로세 / 把筆恨微才

 

[주D-001]정동(征東) : 고려 후기에 원()나라에서 일본(日本)을 정벌하기 위하여 고려 개경(開京)에 설치한 관청, 즉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약칭으로, 전하여 고려를 가리킨다.
[주D-002]돌에 이름 적어 두었거니 :
()나라 때 진사(進士)에 급제한 사람들이 자은사(慈恩寺)의 안탑(雁塔) 밑에 이름을 적었던 데서 온 말이다.

저녁때 비가 개자, 대이부(大姨夫) 민 판사(閔判事)에게 주어 그의 뜻을 위로하다.

 


한낮의 그늘 정히 짙고 봄바람은 거센데 / 午陰正濃春風急
저녁 볕 비끼려 하매 찬 기운이 모여드네 / 夕照欲斜寒氣集
배꽃은 가지 머리에 봉오리가 부풀고 / 梨花枝頭蓓蕾肥
소나무는 숲 사이서 소리를 홀로 내누나 / 松樹林間聲韻襲
주인은 손 마주해 흰 귀밑털을 드리우고 / 主人對客垂鬢絲
계집종은 술잔 올리며 옷자락을 펄럭이네 / 婢子行杯動腰

죽고 삶이 명에 달렸다 담론은 하면서도 / 坐談生死信有命
은정은 아직도 울고 싶음을 면치 못하네 / 未免恩情猶欲泣
나는 병중에 실낱같은 목숨만 이어 가는데 / 我在病中息如綫
분수 밖에 작급 더해질 걸 누가 일렀던가 / 誰云分外增一級
길흉을 처음부터 끼쳐줌
은 본디 알거니와 / 故知吉凶初生貽
엄격한 건 지나침도 못 미침도 없는 거라오 / 截然無過無不及
장차 서로 손 잡고 전원으로 돌아가거든 / 會當携手歸去來
여흥의 강 머리서 도롱이 삿갓을 쓰리니 / 驪興江頭有蓑笠
형체 잊고 담소 나누며 명대로 사노라면 / 忘形談笑終天年
마음 따름이 지킴에서 비롯됨
을 증험하리 / 驗得從心自而立

 

[주D-001]길흉(吉凶) 처음부터 끼쳐줌 : 소 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고하기를왕께서 처음 일을 시작하시니, , 마치 막 태어난 자식이 처음 나서부터 선을 하면 절로 철한 명을 끼쳐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늘이 철을 명할지, 길흉을 명할지, 오랜 국운을 명할지는 지금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데에 달렸습니다.[王乃初服 嗚呼 若生子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今天其命哲 命吉凶 命歷年 知今我初服]”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召誥》
[주D-002]마음 …… 비롯됨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나는 삼십 세에 지킴이 견고해졌고, 사십 세에는 의혹되지 않았고, 오십 세에는 천명을 알았고, 육십 세에는 모든 일을 들으면 알았고, 칠십 세에는 마음에 하고 싶은 바를 따라서 하여 절로 법도를 넘지 않았다.[三十而立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청명절(淸明節)

 


일기가 청명하여 절기에 꼭 알맞아라 / 風日淸明應曆書
화기를 유포시킨 하늘땅에 감사하노라 / 宣流和氣謝堪輿
늦은 봄에 봄옷 입고 관동과 어울리면 /
暮春成服携童冠
스스로 시옹에 견주고도 남음이 있으리 / 自比時雍尙有餘

방종한 내가 어찌 공무를 두려워하랴 / 放曠何曾畏簡書
때때로 남여 타고 거나하게 취한다오 / 時時扶醉在籃輿
모르겠다 답청 놀이엔 누가 날 부를런고 / 踏靑未識誰招喚
듣자니 수일 전에 금주령이 내렸다던데 / 酒禁傳言數日餘

그 몇 해를 기럭에게 서신 부치려 했던가 / 幾年春雁欲投書
장백산 빛은 응당 승여를 비추고 있으리 / 長白山光照乘輿
꿈속의 한림원엔 꽃다운 풀 푸르던데 / 夢裏鑾坡芳草綠
상림원 화석들은 난리 겪은 나머지일 걸 / 上林花石劫灰餘

 

[주D-001]늦은 …… 어울리면 : 공 자(孔子)가 제자들에게 각자의 소원을 묻는 말에 대하여, 증점(曾點)이 대답하기를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冠者) 대여섯 사람, 동자(童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조리면서 돌아오겠습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先進》
[주D-002]시옹(時雍) :
《서경(書經)》 요전(堯典)백성들이 성인의 덕에 감화되어 이에 화락해졌다.[黎民於變時雍]”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주D-003]남여(籃輿) …… 취한다오 :
남여는 대를 엮어서 만든 가마인데, ()나라 도잠(陶潛)이 평소 각질(脚疾)이 있어 항상 남여를 타고 한 문생(門生)과 두 아들로 하여금 남여를 메게 하고는 가는 곳마다 흔연히 술을 마셨다는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세폐를 산더미처럼 변새 가에 쌓아라 / 歲幣如山塞上堆
중원의 인력이 정히 지칠 대로 지쳤네 / 中原人力政摧頹
마침내 남쪽에서 양과 말을 먹였으니 / 却將羊馬天南牧
삼백 세월이 또한 짧기도 하여라
/
三百年間亦迅哉

수당은 아득해라 그 몇 년이나 누렸던고 / 隋唐渺渺幾經春
오계 시대에 삼한에서 이인이 출현했네 /
五季三韓出異人
국가 보존할 좋은 계책 남김을 힘입어 / 只賴貽謀能保國
오늘도 훌륭한 신하가 계책을 짜내누나 / 運籌今日有良臣

진갱
에 아직 덜 묻혔다고 누가 일렀나 / 誰道秦坑尙未塡
유풍이 끊기려다 다행히 서로 전했네 / 儒風欲絶幸相傳
병든 몸 지탱하여 시구를 읊노라니 / 支持病骨吟詩句
머리 위에는 절로 푸른 하늘이 있구려 / 頭上蒼蒼自有天

 

[주D-001]남쪽에서 …… 하여라 : 남쪽에서 양과 말을 먹인다는 것은 곧 북방인(北方人)의 침략을 뜻하고, 삼백 년이란 바로 317년 만에 원()나라에게 멸망당한 송()나라를 가리킨다.
[주D-002]오계(五季) 시대에 …… 출현했네 :
오계는 당()나라 말기에 일어난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를 가리키고, 이인(異人)은 걸출한 인물을 의미한 것으로, 즉 오계 시대에 태어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가리킨 말이다.
[주D-003]진갱(秦坑) :
진 시황(秦始皇)이 분서갱유(焚書坑儒)했던 일을 가리킨다.

치통(齒痛)을 앓다.

 


잘 익힌 음식으로 쇠한 창자 보충하는데 / 軟炊爛煮補衰腸
그럼에도 치아가 상하는 게 괴이하구나 / 怪底齒牙猶被傷
당시 강한 억제함으로 인한 앙화이거니 / 當日抑餘禍在
조조를 지낭이라 것은 거짓말이로세 / 謾言晁錯智爲囊


이와 혀의 중간에서 좋은 맛이 나는 건데 / 齒舌中間至味生
대추를 통째로 삼키니 그 심정 어이할꼬 / 全呑大棗若爲情
뱃속에 가득한 문자를 적셔 주려면 /
撑腸文字從霑濕
고래가 물 마시듯 술을 마심도 무방하리 / 飮酒無妨似吸鯨

단단한 것 씹어 끊기를 남 이기려 했더니 / 挫硬攻堅欲勝人
늙어선 달보드레한 게 절로 군침이 도네 / 老年甘滑自生津
보아오매 문득 산서의 장수와 흡사히도 / 看來却似山西將
백발에 한가로우니 몸에 병만 생기누나 / 白髮閑居病在身

 

[주D-001]당시 …… 거짓말이로세 : 지 낭(智囊)은 슬기가 많은 사람을 일컬은 말이다. 조조(晁錯)는 한 문제(漢文帝) 때의 문신으로, 그는 특히 재변(才辯)이 뛰어나서 지낭으로 일컬어지기도 했었으나, 그가 경제(景帝) 때에 이르러 강성해진 제후(諸侯)들을 억제하기 위하여 그들의 봉지(封地)를 삭감하려 하다가, ()ㆍ초() 등 칠국(七國)이 이에 반란(叛亂)을 일으키자, 마침내 그 반란의 원인 제공자라는 이유로 참형(斬刑)을 당했던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일찍이 단단한 음식을 함부로 다루다가 끝내 치아를 상하게 된 것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2]뱃속에 …… 적셔 주려면 :
당나라 노동(盧仝)의 〈다가(茶歌)〉에세 사발 마셔 마른 창자 더듬어 보니, 오직 문자 오천 권이 있을 뿐이로세.[三碗搜枯腸 惟有文字五千卷]”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산서(山西) 장수 :
《한 서(漢書)》 조충국전찬(趙充國傳贊)에 의하면, “진한(秦漢) 이래로 산동(山東) 지방에서는 재상이 나오고, 산서(山西) 지방에서는 장수가 나오는데, 진나라 때의 백기(白起), 왕전(王翦)과 한나라 때의 공손하(公孫賀), 부개자(傅介子), 이광(李廣), 이채(李蔡), 조충국(趙充國), 신무현(辛武賢)이 모두 명장(名將)이었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자세하지 않다.

회포를 서술하다.

 


젊을 때 떼 지어 마시던 건 다 지난 일이요 / 少年群飮墮空虛
병이 많아 홀로 읊자니 세상과는 멀고말고 / 多病獨吟甘闊疎
작은 뜰의 꽃과 달은 밤 놀이를 할 만하고 / 花月小庭宜秉燭
평야의 연기 버들은 병든 몸 산보할 만하네 / 柳煙平野可扶輿
아침저녁 죽 먹으면 됐지 또 무얼 구하랴 /
夕粥寧求外
막히면 서고 흐르면 떠서
참으로 여유롭네 / 坎止流浮信有餘
후일 여강에서 낚시질을 내게 용납한다면 / 他日驪江容我釣
늘그막의 신세가 절로 유유자득하련마는 / 老來光景自蘧蘧

 

[주D-001]막히면 …… 떠서 : 가의(賈誼)의 〈복조부(鵩鳥賦)〉에흐름을 타면 내려가고, 모래섬을 만나면 그친다.[乘流則逝兮 得坻則止]”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환경의 순역(順逆)에 따라 진퇴 행지(進退行止)를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 제 병을 무릅쓰고 광평(廣平) 이 시중(李侍中)의 아우의 상()에 조문을 나갔으나 시중을 만나지 못하였고, 다음으로는 강남(江南)에 출사(出使)했다 돌아온 심 재신(沈宰臣)을 찾아뵙고 나의 불민(不敏)함을 사죄했으며, 또 다음으로는 광제사(廣濟寺)에 들어갔더니 나잔자(懶殘子)가 술을 받아 대접해 주었고, 또 다음으로는 나를 방문해 준 데에 감사를 드리려고 이 개성(李開城) 댁에 갔으나 만나지 못했으며, 마침 양 이상(楊二相)은 집에 있었으므로, 또 그와 함께 마시고 돌아와서는 취해 쓰러져서 아침에 이르렀다.

 


목옹이 병 무릅쓰고 머리털 흐트러진 채 / 牧翁扶病髮鬅鬙
바쁘고 한가한 이 두루 뵌 적 일찍이 없었네 / 徧謁閑忙見未曾
훌륭한 아우 여읜 건 다 애석히 여기거니와 / 共惜鴒原摧玉樹
새로 조서 받든 이는 금릉에서 돌아왔구려 / 新持鳳詔返金陵
우사
와의 담소는 참으로 친구 사이 같았고 / 芋師談笑眞如舊
양상의 위세와 명성은 정히 대단하였네 / 楊相威名政有稜
유독 개성이 자주 행차한 게 한스러워라 / 獨恨開城頻上馬
일만 소나무 깊은 곳 오르기도 어렵거늘 / 萬松深處又難登

 

[주D-001]우사(芋師) : 이 시()의 제목에 나오는 광제사(廣濟寺)의 승려 나잔자(懶殘子)를 가리킨다.

제공(諸公)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임 대참(林大參)이 내 집에 명함을 내놓고 간 것을 보고는 명일에 시를 지어가지고 가서 사례하다.

 


대참의 충효는 뭇 영걸들 중에 으뜸인데 / 大參忠孝冠群雄
그 행차가 이 누추한 문항을 들러줬기에 / 車騎經過陋巷中
병든 몸이 세속 따름은 가장 한스러우나 / 最恨病軀方殉世
짐짓 화려한 명함 받들고 찾아뵈었노라 / 故陪華刺便趨風
광대한 봄 경치는 다순 기운을 재촉하고 / 春光蕩蕩仍催暖
생기 넘친 꽃 마음은 나날이 화창해가네 / 花意欣欣欲向融
퇴청하여 좌정하신 그날을 다시 기다려 / 更候退朝深坐日
노친을 경하한 제공의 시를 감상하련다 / 慶親詩什賞諸公

 

어 제 임 참정(林參政)을 뵈러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인하여 동정(東亭)에게 들러서 간단히 한 잔을 마시고, 왕 참정(王參政) 댁에 이르자 주식(酒食)을 성대히 차려 내왔는데, 마침 한유항(韓柳巷)이 또 오므로 함께 마시고 취하여 나왔다. 그러고는 또 시중공(侍中公)을 찾아뵙고 실컷 마시어 취한 몸 부축하고 저물녘에야 돌아왔다가 명일 아침에 그 사실을 기록하는 바이다.

 


병든 나머지 신세는 낮잠이나 늘 자고 / 病餘身世夢華胥
일 만나면 읊조리니 여유롭기 그지없네 / 遇事沈吟儘有餘
당일의 호걸들은 이제 적막하기만 하고 / 當日雄豪今寂寞
노년의 친구들은 또한 드물기도 하여라 / 老年交契亦稀疎
지란에 이슬 젖어 향기는 방에 어리고 /
芝蘭露浥香凝室
버들에 봄 깊어 그림자는 마을을 덮었네 / 楊柳春深影滿閭
수레 타고 나가 놂이 이제부터 시작이라 / 命駕出游從此始
새벽 창가에 우는 새도 의기양양한 듯 / 曉窓啼鳥亦蘧蘧

 

[주D-001]지란(芝蘭)에 …… 어리고 : 현 사(賢士)의 처소나 훌륭한 친구를 비유하는 말인데, 《공자가어(孔子家語)》에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지초와 난초의 방에 들어간 것 같아서 오래되면 그 향기는 맡지 못하더라도 곧 그에게로 변화하게 되고, 불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어물 가게에 들어간 것 같아서 오래되면 그 냄새는 맡지 못하더라도 또한 그에게로 변화하게 된다.[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與不善人居 如入鮑魚之肆 久而不聞其臭 亦與之化矣]” 한 데서 온 말이다.

종서(宗壻) 박 판서(朴判書)와 종손(宗孫) 이 정당(李政堂)이 술을 가지고 찾아오다.

 


맑은 얼음 윤택한
은 의관을 비추고 / 氷淸玉潤照衣冠
다시 어진 손자 있어 구한을 압도하네 / 更有賢孫壓九韓
봄바람이 초막에 가득함도 이미 기쁜데 / 已喜春風滿蓬蓽
더구나 아침 해가 배반에 비춤을 봄에랴 / 況逢朝日映杯盤
병든 나머지 취하긴 참으로 쉽잖거니와 / 病餘得醉誠非易
난리 뒤에 서로 만남도 아주 어렵다마다 / 亂後相逢亦甚難
늘그막의 정회를 쏟을 곳이 없었더니 / 老境情懷無處寫
취중의 천지는 본래 너그러운 거로세 / 麴生天地本來寬

 

[주D-001]맑은 …… : ()나라 때 위개(衛玠)가 악광(樂廣)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장인과 사위가 똑같이 명망이 높아서 당시에 논하는 이가장인은 얼음처럼 깨끗하고, 사위는 옥처럼 윤택하다.[婦翁冰淸 女壻玉潤]”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장인과 사위의 미칭(美稱)으로 쓰인다.
[주D-002]구한(九韓) :
신라(新羅) 시대에 인접해 있던 아홉 나라로, 즉 일본(日本), 중화(中華), 오월(吳越), 탁라(
), 응유(鷹遊), 말갈(靺鞨), 단국(丹國), 여진(女眞), 예맥(穢貊)을 가리킨다.

한유항(韓柳巷)이 급제(及第)한 문생(門生)들에게 연회(宴會)를 베풀다.

 


봄이 오매 일마다 중화로움은 즐거우나 / 春來事事樂中和
늙은 목은 생애는 귀밑털이 이미 희었네 / 老牧生涯鬢已華
거리엔 방을 걸어 술 마시길 재촉하는데 / 牓掛通衢催飮酒
바람은 가랑비 불어 꽃 피길 억제하누나 / 風吹小雨勒開花
가정의 남은 경사는 냇물이 흐르듯 하고 /
稼亭餘慶川方至
유항의 청담은 해가 기울지 않았다 하네 /
柳巷淸談日未斜
스스로 기쁜 건 병중의 우마주도 참여해 / 自喜病中牛馬走
애써 새 율시를 까맣게 써내리는 거로세 /
題新律字如鴉

호걸스런 백정은 개결하고도 온화하여 / 柏亭豪邁介仍和
젊어서부터 뛰어나 기가 절로 빛났으니 / 少已離倫氣自華
시구는 모두 못가의 풀을 운운했었고 /
詩句共喧池上草
화려한 깃발은 일찍이 영남에서 보았네 /
旌旗曾看嶺南花
문생이 축수 드려라 봄은 한창 좋은 때요 / 門生獻壽春方好
유항 노인 쓰니 글자가 반은 삐딱하네 /
巷老題詩字半斜
실컷 담소하고 나선 깊이 들앉을 뿐이니 / 嗔笑餘閑深閉戶
저녁 늦도록 수창하는 것도 무방코말고 / 不妨酬唱到昏鴉

 

[주D-001]가정(稼亭)의 …… 흐르듯 하고 : 가 정은 바로 저자의 아버지 이곡(李穀)의 호이다. 고려 충목왕(忠穆王) 3(1347), 이곡이 지공거(知貢擧)가 되었을 때에 유항(柳巷) 한수(韓脩)가 당시 15세로 과거에 급제하여 명성을 크게 떨쳤는데, 지금 이 자리는 곧 한수의 문생(門生)들에게 연회를 베푼 자리이므로 한 말이다.
[주D-002]유항(柳巷)의 …… 하네 :
유항 한수가 빈객들을 은근히 만류하느라 해가 아직 저물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3]우마주(牛馬走) :
()나라 때 태사령(太史令) 사마담(司馬談)의 아들인 사마천(司馬遷)이 일찍이 임안(任安)에게 답한 편지에서 자신을 겸칭(謙稱)하여태사공의 우마주[太史公牛馬走]’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곧 저자가 자기 아버지 가정의 문생들과 자리를 함께하였기 때문에 또한 자신을 이렇게 겸칭한 것이다. 또 저자는 일찍이 원()나라 태학(太學)의 학관(學官)에게 자신을고려 이 가정의 우마주[高麗李稼亭牛馬走]’라고 소개한 적도 있다. 《牧隱文稿 卷4 朴子虛貞齋記》
[주D-004]백정(柏亭) :
유항 한수의 종제(從弟)인 한천(韓蕆)의 호이다. 한천은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도 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등을 역임하였다.
[주D-005]시구는 …… 운운했었고 :
남 조(南朝) ()나라 사영운(謝靈運)이 꿈에 족제(族弟)인 사혜련(謝惠連)을 만나서못가에 봄풀이 난다.[池塘生春草]’라는 시구를 얻고 아주 만족하게 여겼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한천(韓蕆)이 한수(韓脩)에게 매우 훌륭한 아우였음을 의미한다.
[주D-006]화려한 …… 보았네 :
한천이 일찍이 경상도 도순문사를 지냈으므로 이른 말인데, 원문(原文)의 화() 자는 화려하게 장식한 깃발을 화기(花旗), 또는 채기(彩旗)라고 일컫는 데서 온 것으로, 깃발의 수식어로 쓰인 것이다.
[주D-007]유항 노인 …… 삐딱하네 :
취중(醉中)에 쓴 글씨를 뜻한다. 소식(蘇軾)의 시에취중에 시를 쓰니 글자가 반은 삐딱하네.[醉裏題詩字半斜]”라는 구절이 있다.

술을 보내오다.

 


깊은 봄에 술 보낸 것 또한 풍류로다 / 春深送酒亦風流
꽃망울은 여전히 나무 끝에 가득하네 / 蓓蕾依然滿樹頭
조물이 득실 정함은 의당 뜻이 있으리니 / 造物乘除當有意
때에 따라 자위하면 걱정될 게 뭐 있으랴 / 順時消遣復何憂
홀로 정칙
은 도리어 벗들이 많았고 / 獨醒正則還多侶
지어 취한 연명
은 문득 짝이 적었네 / 群醉淵明却寡儔
다만 송곳처럼 힘이 강한 붓이 있기에 / 只有如錐管城子
매양 날린 비 맞아 높은 누에 기대노라 / 每邀飛雨倚高樓

 

[주D-001]홀로 정칙(正則) : 정칙은 굴원(屈原)의 본명(本名)인데, 굴원의 〈어부사(漁父詞)〉에뭇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었다.[衆人皆醉而我獨醒]”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지어 취한 연명(淵明) :
연명은 도잠(陶潛)의 자인데, 그는 술을 매우 즐기어 언제 어디서나 술을 만나기만 하면 실컷 마셨으므로 이른 말이다.

스스로 읊다.

 


나는 당시의 제일류라고 스스로 믿고 / 自負當時第一流
산림의 정흥을 술병 머리에 부쳤노라 / 山林情興寄壺頭
일은 백면과 꾀하매 이룰 길이 없는데 /
事謀白面無從濟
창생에겐 기대 있어 그것이 걱정일세 / 望係蒼生祗自憂
태사로 가업 전하긴 오직 부자뿐이요 /
太史傳家唯父子
늘그막엔 병이 많아 친구도 많지 않네 / 老年多病少朋儔
인간 가는 곳마다 길이 읊조릴 만한데 / 人間到處舒長嘯
왜 굳이 원룡의 백척루만 숭상할쏜가 / 何必元龍百尺樓

참으로 위아래 천지와 함께 유행하여라 /
天地眞同上下流
하염없이 내 머리 희어짐을 점차 보겠네 / 悠悠漸見白吾頭
임금 은혜 흠뻑 입음은 절로 부끄러우나 / 自慙淪骨主人惠
군자의 종신토록 근심함
은 누가 알리오 / 誰識終身君子憂
세상 다스림엔 의당 마음을 다하려니와 / 濟世經邦當盡己
봄 놀이를 하자면 어찌 동류가 없을쏜가 / 傍花隨柳豈無儔
여강 가에서 늦은 봄에 바람 쐬며 읊다가 / 暮春風詠驪江上
다시 물결 사이 객사의 누각에 기댔으면 / 更倚波間客舍樓

 

[주D-001]일은 …… 없는데 : 백면(白面)은 견식(見識)이 천박한 서생(書生)이란 뜻으로, 즉 견식이 천박한 사람들과는 일을 꾀할 수 없음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2]태사(太史)로 …… 부자뿐이요 :
태사는 곧 사관(史官)을 가리키는데, 저자의 아버지 이곡(李穀)이 일찍이 국사(國史)의 편찬에 참여했었고, 이때에 저자 또한 국사를 관장하고 있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3]원룡(元龍) 백척루(百尺樓) :
원 룡은 삼국 시대 위()나라 진등(陳登)의 자이다. 허사(許汜)가 일찍이 유비(劉備)와 이야기를 나누던 가운데, 자기가 한번은 진등을 찾아갔더니,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주인 자신은 높은 와상으로 올라가 눕고, 손님인 자기는 아래 와상에 눕게 하더라고 말하자, 유비가 말하기를그대의 말이 채택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인(小人) 같았으면 자신은 백척루로 올라가 눕고 그대는 땅바닥에 눕게 했을 것이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지기(志氣)가 고상함을 뜻한다.
[주D-004]참으로 …… 유행하여라 :
맹 자가 이르기를군자는 지나는 곳마다 변화하게 되고, 마음을 둔 곳마다 신묘한지라, 위아래로 천지와 함께 유행한다.[夫君子 所過者化 所存者神 上下與天地同流]”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성인(聖人)의 일은 천지조화의 운행과 똑같다는 것을 이른 말인데, 여기서는 단지 사람이 천지조화의 운행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孟子 盡心上》
[주D-005]군자(君子) 종신토록 근심함 :
맹자가 군자는 순() 임금처럼 되지 못한 것을 종신토록 근심할 뿐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離婁下》

백의(白衣)를 찬송하다.

 


소리 듣고 고통 구함이 응당 분명하거니 / 聞聲救苦應昭然
급난에 빠진 그 누구가 애원하지 않으랴 / 急難何人不乞憐
집 밖의 중생 세계는 기멸을 반복하는데 / 樓外空華方起滅
등잔 앞의 관음상은 완연히 나는 듯하네 / 燈前水墨宛飄翩
중생의 배는 생사의 끝없는 바다를 가고 / 舟行生死無涯海
관음 거울은 모든 현상을 환히 비추나니 / 鏡掛姸
有象天
원하건대 천하의 모든 병을 다 제거하여 / 且願盡除天下病
애태우지 않고 창 아래 편히 앉게 해주오 / 小窓安坐免心煎

 

[주C-001]백의(白衣) : 곧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가리킨다. 그가 항상 흰옷을 입고 백련(白蓮) 가운데 앉아 있기 때문에 붙여진 호칭인데, 고통 받는 중생(衆生)들이 일심(一心)으로 보살(菩薩)의 명호(名號)를 염송(念誦)하면 보살이 즉시 그 음성(音聲)을 관()하여 곧바로 가서 그 고통 받는 이를 구해 준다 하고, 또 불(), 비구(比丘), 우바새(優婆塞), (), 야차(夜叉)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현신(現身)하여 중생들을 교화시킨다고 한다.

염동정(廉東亭)의 연회석상에서 취하여 노래하다.

 


나는 술을 잔도 하지만 / 我飮不盡器
반쯤 거나한 맛이 더욱 더라던 / 半酣味尤長

저 우뚝한 동파 늙은이의 문장은 / 落落東坡翁
불꽃이 길이나 세차게 올랐네 /
光焰萬丈

광대한 봄바람이 정대에 불어오니 / 春風蕩蕩吹亭臺
밝은 낮에 정히 금술잔을 날릴 만하네 / 白日政可飛金觴
한산의 목은옹은 늙어서 병도 많지만 / 韓山牧翁老多病
창자 속에 쌓인 시상을 참을 수 없어라 / 不耐錦繡堆中腸
음중의 팔선
들은 매양 손뼉을 쳤건만 / 飮中八仙每拍手
붓끝에 비바람 일으킴
을 나는 웃노라 / 自笑毫端走風雨
황차 지금은 꽃과 방초가 봄을 과시하고 / 況今紅綠爭扶春
지저귀는 새소리에 흥취가 새로움에랴 / 啼鳥數聲情興新
예부터 음주한 이는 생사를 달관하건만 / 古來飮者達生死
하찮은 것들이야 어찌 사리를 알리오 / 擾擾區區那解事
백이 숙제나 도척이 양을 잃었거니 /
夷齊盜跖俱亡羊
꽃향기 속에서 금술잔이나 기울이세 / 金杯且倒花香裏
꽃피는 이런 때 취하길 사양하지 마소 / 花開有時莫辭醉
제비 춤추고 꾀꼬리 노래함이 우연이겠나 / 燕舞鶯歌非偶耳
동정의 호기는 또한 무리에 뛰어나서 / 東亭豪氣亦人傑
동산에 높이 누워 풍월을 읊조리나니 / 高臥東山弄風月
비록 별장 내기의 바둑은 두지 않지만 / 圍棊雖不更賭墅

손의 수레 빗장 던지는 거야
어찌 꺼리랴 / 對客肯憚頻投轄
하찮은 병으로 나른한 모습 보이지 마소 / 莫將微恙示春慵
내 주량으론 이미 천 잔이나 기울였다네 / 我已自分傾千鍾
그대는 못 보았나 지금은 취향 천지에 사람 없는 걸 / 君不見醉鄕天地今無人
목은 노인 홀로 앉아 누구와 이웃하란 말인가 / 牧老獨坐誰爲隣

 

[주D-001]나는 …… 좋더라던 : 이것은 곧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호상야귀(湖上夜歸)〉 시의 두 구절이다. 《東坡集 卷9
[주D-002]불꽃이 …… 올랐네 :
한유(韓愈)의 〈조장적(調張藉)〉 시에이백 두보의 문장이 지금 있다면, 불꽃이 만 길이나 치솟으리라.[李杜文章在光焰萬丈長]” 한 데서 온 말로, 시문(詩文)이 대단히 힘찬 것을 가리킨다.
[주D-003]음중(飮中) 팔선(八仙) :
두 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당시 팔인(八人)의 주호(酒豪)를 미화하여 노래한 데서 온 말인데, 팔인의 주호는 바로 하지장(賀知章), 이진(李璡), 이적지(李適之), 최종지(崔宗之), 소진(蘇晉), 이백(李白), 장욱(張旭), 초수(焦遂) 등이다.
[주D-004]붓끝에 비바람 일으킴 :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에게 부친 시에붓 들어 쓰면 비바람을 경동시키고, 시가 이루어지면 귀신을 울리네.[筆落驚風雨詩成泣鬼神]”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백이 숙제(伯夷叔齊)나 …… 잃었거니 :
《장 자(莊子)》 변무(騈拇)에 의하면, 사내종과 계집종이 각각 양()을 치다가 다 같이 그 양들을 잃었던바, 그 까닭을 물으니, 사내종은 책을 읽다가 양을 잃었고, 계집종은 주사위 놀이를 하다가 양을 잃었다고 했는데, 결국 이 두 사람이 한 일은 서로 다르나 양을 잃은 것은 똑같은 것이고, 백이는 이름 때문에 수양산(首陽山) 아래서 굶어 죽었고, 도척(盜跖)은 이끗 때문에 동릉산(東陵山) 위에서 죽었는데, 이 두 사람은 죽은 까닭은 서로 다르나 그 생명을 잃은 것은 똑같다고 평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어진 이나 불초한 이가 모두 실수된 것이 있음을 의미한다. 또 소식의 〈박박주(薄薄酒)〉 시에백이 숙제나 도척이 다 같이 양을 잃었나니, 지금 당장에 한 번 취하여 시비와 우락을 둘 다 잊어버림이 가장 좋으리.[夷齊盜跖俱亡羊 不如眼前一醉 是非憂樂兩都忘]” 하였다.
[주D-006]동산(東山)에 …… 않지만 :
()나라 때 사안(謝安)이 일찍이 벼슬을 사양하고 회계(會稽)의 동산에 은거하다가 40세가 넘은 뒤에야 벼슬길에 나갔는데,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와서 경사(京師)가 진동할 때를 당하여, 효무제(孝武帝)가 사안에게 정토 대도독(征討大都督)을 임명하자, 그는 이때 수레를 명하여 산중의 별장으로 나가서 여러 친구들이 다 모인 가운데 자기 조카인 사현(謝玄)과 내기 바둑을 두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위급한 때를 당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장(大將)의 풍도를 의미한다.
[주D-007]손의 …… 거야 :
다 정하게 빈객(賓客)을 만류하는 것을 뜻한다. ()나라 진준(陳遵)이 술을 몹시 좋아하여 빈객들을 초청해서 술을 마실 때마다 대문을 걸어 잠그고 빈객의 수레의 비녀장을 뽑아 우물에 던져서 빈객을 가지 못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92 陳遵傳》

느낌이 있어 읊다.

 


가문 일으킨 할아비를 하늘처럼 받들어라 / 起家大父望如天
당일에 명한 시들은 다 전할 만하고말고 / 當日銘詩儘可傳
자식 하나 있는 것도 한산한 데 두었거니 / 有子一人猶置散
어찌 구천의 백씨 중씨께 한을 품게 하랴 / 肯將伯仲感重泉

 

척산(朴陟山)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다.

 


높이 솟은 문정이 속세를 굽어보아라 / 門庭高峻壓塵寰
용수산 진봉산이 서로 연한 곳이로세 / 龍岫山連進奉山
중문턱에 놓인 향로를 재차 보노라니 / 再見香爐在中

그때 취한 목옹은 아직도 낯이 붉구려 / 牧翁乘醉尙紅顔

 

[주C-001] 척산(朴陟山) : 당시의 재신(宰臣)으로 척산군(陟山君)에 봉해진 박원경(朴元鏡)을 가리킨다.

내가 부름을 받고 회의차 도당(都堂)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 정당(韓政堂) 댁으로 가다.

 


소년 시절 묘당에서 논사의 직에 참예하여 / 少年廊廟忝論思
혹 세상을 놀래킬 만한 두려운 일 만나면 / 或値危疑駭一時
원로들을 매양 맞아 자리 가득 모시고서 / 耆老每邀俄滿座
조용히 한 번 결정하곤 함께 술잔 기울였네 / 從容一定共傾巵
계획을 짜는 덴 절로 신묘한 꾀가 있거니 / 運籌自有神機在
이룬 계획을 어찌 궤변으로 바꿀 수 있으랴 / 成算寧爲巧辯移
병든 뒤에 백발로 말단 의론에 참여해 보니 / 病後白頭參末議
완연히 예전의 종용 자득한 그 모습이었네 / 宛如曾見儘委蛇

정해년에 문과 급제한 문생 정당
/ 丁亥門生韓政堂
마침 사소한 병으로 책상 앞에 앉았는데 / 適因微恙坐書牀
제군이 들어와 뵙고 막 교배를 나눌 제 / 諸君入謁方交禮
총재가 찾아오니 자리가 더욱 빛나누나 /
宰來過爛有光
소반 위의 진수 성찬은 가짓수도 많거니와 / 案上珍羞自多品
맵고 향기론 계피주는 특이한 맛 처음 보네 / 樽中香辣異初嘗
춘풍에 기약 없이 만난 게 진정 다행일세 / 春風邂逅眞多幸
두 그루 매화나무에 시흥이 절로 나는군 / 兩樹梅花詩興長

 

[주D-001]정해년에 …… 정당(韓政堂) : 한 정당은 정당문학(政堂文學) 한수(韓脩)를 가리키는데, 고려 충목왕(忠穆王) 3(1347)에 바로 저자의 아버지인 지공거(知貢擧) 이곡(李穀)의 문하에서 한수가 당시 15세로 문과에 급제했던 것을 이른 말이다.

주금(酒禁)

 


기억컨대 꽃구경하던 일이 꿈만 같아라 / 記得看花似夢中
소년 시절 춘풍 행락이 그 몇 번이던고 / 少年行樂幾春風
좋은 술 마련하여 서로 부르고 따를 제 / 靑州從事相徵逐
비단 자락 너울너울 두 뺨은 불그레했지 / 錦繡浮空兩


뜻밖의 침해 받는 걸 일소하는 도구론 / 非意相干一掃空
좋은 술이 유독 영웅으로 일컬어지거늘 / 靑州從事獨稱雄
하늘이 우리들의 간장을 마구 태워서 / 天敎我輩焦肝腎
진나라 축객
속으로 떼밀어 넣는구려 / 推入秦家逐客中

꽃이 있고 술도 있고 이 몸 또한 한가하여 / 有花有酒此身閑
조물주의 큰 은혜가 세간에 가득하건만 / 造物洪恩滿世間
사미
를 겸하기 어려운 게 우리들 일이라 / 四美難幷吾輩事
누각에 홀로 앉아 남산을 마주할 뿐이네 / 上樓獨坐對南山

 

[주D-001]진(秦)나라 축객(逐客) : 진 시황(秦始皇) 때에 각국(各國)에서 들어온 유세사(游說士)들을 모두 내쫓으라는 축객령(逐客令)을 내렸던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마음대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것을 축객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2]사미(四美) :
좋은 철[良辰], 아름다운 경치[美景], 경치를 즐겁게 감상하는 마음[賞心], 유쾌한 일[樂事]을 가리킨다.
[주D-003]남산(南山) 마주할 뿐이네 :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하염없이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곧 도잠의 술 마신 것을 그리워하여 하는 말이다.

일을 기록하다.

 


승지가 분부 전해 국서를 지으라 하는데 / 龍喉傳旨撰書詞
백발에 필력마저 쇠한 게 몹시 부끄럽네 / 白髮深慚筆力衰
글 내용은 이미 당국자의 뜻에서 나왔지만 / 命意已從當國出
문장은 다시 붓을 잡고 생각해야 하잖는가 / 文言更向把毫思
천둥이 잦으면 위엄이 응당 욕되겠거니와 / 雷霆隱隱威應褻
일월은 하도 밝아 빠뜨림 없이 비춘다네 / 日月昭昭照不遺

다만 두려운 건 소인들이 여전히 득실거려 / 祗恐浮雲猶故態
한 치 마음을 성상께 상달키 어려움일세 / 寸心難徹九重知

비록 재여 단목의 을 빌린다 하더라도 / 縱借宰予端木詞
삼군도 삼고엔 기가 오히려 쇠하는 걸세 /
三軍三鼓氣猶衰
진정을 내자면 늘 번거롭힘이 염려되니 / 陳情只恐煩重聽
사정을 서술함에 의당 생각을 다해야지 / 敍事誠宜更致思
험난한 길에 수레 부서지는 걸 잘 알거니 / 自信畏途車或敗
누가 묘한 계책이 되레 실책이 되게 했나 / 誰敎妙算策還遺
노년에 지은 문자는 어긋난 것이 많으니 / 老年文字多乖刺
당시에 잘못 알아줌 입은 게 한스럽구려 / 却恨當時誤見知

 

[주D-001]천둥이 …… 비춘다네 : 소 순(蘇洵)의 〈명론(明論)〉에해와 달은 중천(中天)에 떠서 천하를 다 밝혀 주므로,……천하 사람이 해와 달의 밝은 빛을 마치 군부(君父)의 위엄과 같이 우러러본다.” 하고, 천하 사람이 말하기를부모(父母)를 배반하고 신명(神明)을 모독하면 천둥 벼락이 그를 내려친다.’고 하니, 천둥이 참으로 천하를 위해 이런 무리들을 다 내려칠 수는 없지만, 천하 사람이 두려워하여 감히 죄를 범하지 못하는 것은 때로 헤아릴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령 천둥이 날마다 천하를 쾅쾅 울려서 부모 배반하고 신명 모독하는 자를 일일이 찾아 내려치자고 보면, 그런 무리들을 반드시 다 치지도 못하면서 도리어 천둥의 위엄만 욕되지 않겠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재여(宰予) 단목(端木) :
단목은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子貢)의 성이다. 공자가 이르기를언어엔 재아와 자공이다.[言語宰我子貢]” 하였다. 《論語先進》
[주D-003]삼군(三軍)도 …… 걸세 :
춘 추 시대 노 장공(魯莊公) 때에 제()나라가 노나라를 쳐들어오므로, 노나라의 조귀(
)라는 사람이 장공에게 자청하여 함께 전쟁을 하게 되었던바, 장공이 북을 쳐서 막 진군(進軍)시키려 하자, 조귀가 이때는 진군을 하지 못하게 했다가, 제나라 사람이 세 차례 북을 울린 다음에야 진군을 하도록 권유하여 제나라 군대를 패배시켰는데, 승전(勝戰)을 하고 나서 장공이 조귀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대저 전쟁이란 용기로 하는 것인데, 한 번 북을 쳤을 때는 적의 용기가 났지만 우리가 응전(應戰)하지 않았고, 재차 북을 쳤을 때는 적의 용기가 쇠해졌지만 우리가 응전을 하지 않았으며, 세 번째 북을 쳤을 때는 적의 용기가 다 갈앉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기게 된 것입니다.”라고 한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노쇠하여 문장력도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春秋左傳 莊公10年》

한유항(韓柳巷)의 초청으로 그와 함께 판서(尹判書)의 원림(園林)에 가다.

 


병든 몸 쑤시고 아파 잠도 편히 못 이뤄라 / 病骨酸辛寢不安
답청의 법식 알긴 하나 몸이 말을 안 듣네 / 雖知踏法只人難
창 가득 밝은 달 아래 날은 곧 새려 하고 / 滿窓明月天將曙
담장 너머 큰 소나무는 밤에 더욱 차갑구나 / 隔壁長松夜更寒
고독한 생은 먹 갈리듯 점차 닳아가는데 / 漸見孤生似磨墨
누가 세월은 저리도 급히 달리게 하는고 / 誰敎兩耀競跳丸
일찍 일어나 장춘오를 가려고 하던 차에 / 早興欲向藏春塢
유항의 가동이 와서 구경가길 재촉하누나 / 柳巷蠻童趣往觀

 

[주C-001] 판서(尹判書) : 고려 말기에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고, 조선(朝鮮) 개국(開國) 후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지고 벼슬이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이른 윤호(尹虎)를 가리킨다.
[주D-001]장춘오(藏春塢) :
()나라 때의 문인(文人) 조약(刁約)이 거처하던 동산 이름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윤 판서(尹判書)의 원림(園林)을 가리킨다.

윤 판서(尹判書)의 석상(席上)에서

 


주인은 청수하기로 일찍 이름 있었는데 / 主人淸秀早知名
한 그루 매화는 사람의 눈을 환히 비추네 / 一樹梅花照眼明
부귀한 가풍은 참으로 숨길 수 없어라 / 富貴家風藏不得
화려한 주렴 깊은 곳에 풍악이 울리는구려 /
簾深處管絃聲

파평군
은 화려한 경력에 큰 명성 있거니 / 坡平敭歷有威名
정사는 상하 소통에 처사가 분명하였네 / 政用疏通處事明
내 외람되이 파평군 묘지명을 지었지만 / 記向幽堂叨秉筆
목은 늙은이 문자는 헛된 명성뿐이라오 / 牧翁文字但虛聲

윤씨의 원림은 전부터 이름이 높았거니와 / 尹氏林園舊擅名
봄바람이 화창하니 사방 산천이 다 빛나네 / 惠風和暢四山明
빨간 살구꽃 노란 버들이 서로 마주했지만 / 猩紅杏對鵝黃柳
그 누가 매화의 전통이 끊어졌다고 말하랴 / 誰道梅花墜世聲

 

[주D-001]파평군(坡平君) : 여 기서는 판서(判書) 윤호(尹虎)의 아버지로 파평군에 봉해진 윤해()를 가리킨다. 윤해는 공민왕(恭愍王) 때 복주 목사(福州牧使) 등을 역임했고, 홍건적(紅巾賊)의 난리 때에는 왕을 복주(福州)에 호종(扈從)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그 후 벼슬이 전법 판서(典法判書)에 이르고 파평군에 봉해졌다. 저자가 일찍이 그의 묘지명(墓誌銘)을 지었다.

일찍 일어나다.

 


늙은 아내가 술에 중독된 나를 나무라며 / 老妻嗔我酒膏肓
흑두탕에다 감초를 더 넣어 달여 주더니 / 甘草加煎黑豆湯
긴긴 밤을 곤히 자서 몸은 절로 평온하고 / 夜永困眠身自穩
추운 새벽에 일어나니 이는 아직 향기롭네 / 曉寒徐起齒猶香
살구꽃 버들가지 동산의 못은 고요하고 / 杏花柳線園池靜
아침 햇살 처마 바람에 궤석은 서늘한데 / 窓日簷風几席涼
앉아서 매화 마주하니 시흥이 격동하여라 / 坐對野梅詩興激
하손을 따라 양주에서 다시 놀고 싶구나 / 欲從何遜更遊揚

 

[주D-001]앉아서 …… 싶구나 : ()나라의 문인(文人) 하손(何遜)이 일찍이 양주 자사(揚州刺史) 소위(蕭偉)의 기실(記室)이 되어 양주에 따라가 있을 적에 조매(早梅)를 보고 시흥(詩興)이 발동하여 고풍시(古風詩)를 지었던 데서 온 말이다. 두보(杜甫)의 〈화배적등촉주동정송객봉조매상억견기(和裴迪登蜀州東亭送客逢早梅相憶見寄)〉 시에동각의 관매가 시흥을 발동시킨 것이, 도리어 하손이 양주에 있을 때와 같구려.[東閣官梅動詩興 還如何遜在揚州]”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9

종백(宗伯) 개성(開城)의 운에 차()하다.

 


늙은 나이에 나는 이미 시궁에 걸려서 / 老年吾已坐詩窮
한가로이 때로 읊으며 만사를 잊었는데 / 一詠悠悠萬事空
익재 선생이 사랑하던 막내아들 때문에 / 賴是益齋憐季子
술잔을 향해서 좋은 흥치를 열어 펴노라 / 好懷開向酒杯中

다생의 습관에 의해 좋은 인연 맺어서 / 多生習氣結良緣
벼슬을 시작한 지는 삼십 년이 되었네만 / 釋褐如今三十年
감히 문장의 의발이 내게 있다 자부하랴 / 敢負文章衣鉢在
백발의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걸 / 蒼蒼頭上有蒼天

 

[주C-001]종백(宗伯) 개성(開城) : 종백은 좌주(座主)의 아들을 가리킨 말인데, 여기서는 곧 저자의 좌주였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막내아들로 개성 윤(開城尹)을 지낸 이창로(李彰路)를 가리킨다.
[주D-001]시궁(詩窮) :
문 인(文人)이 불운(不運)을 만나서 시나 읊조리며 빈궁(貧窮)한 생활에 처한 것을 뜻한다. 구양수(歐陽脩)의 〈매성유시집서(梅聖兪詩集序)〉에시가 사람을 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못 궁한 다음에야 시에 능해지는 것이다.[非詩之能窮人 殆窮者而後工也]” 하였다.

3 21일에 지신사(知申事) () 김도(金濤)가 선온(宣醞)과 내선(內膳)을 받들어 와서 전해 주므로, () ()은 감격스러움을 감당치 못하여 삼가 단가(短歌)를 지어서 사관(史官) 편에 올려 보내는 바이다.

 


천한 신하는 늙고 병들어 낙엽과 같은지라 / 微臣老病如敗葉
잡초 새에 떨어졌으니 누가 다시 주우랴만 / 墜在草間誰復拾
성상 마음은 만물 불어 살리는 춘풍 같아서 / 聖心春風吹物生
두어 자 마른 가지가 봄비에 흠뻑 젖었네 / 數尺枯條春雨濕
생기 발랄케 자람은 또한 초목의 성질이라 / 欣欣向榮亦渠性
뭇 초목들 서로 뒤질세라 무성함 다투누나 / 群卉爭敷如不及
나는 전조의 양육해 주신 큰 은혜를 입어 / 洪惟前朝卵翼恩
온 집안이 배부르고 등 다숩게 잘 산다오 / 一家飽煖方高門
처음엔 봄빛이 도리에 뜨는 걸 놀랐더니 / 初驚崇光泛桃李
수려한 빛이 향초에 무성함을 점차 보겠네 / 漸喜秀色紛蘭蓀
병든 몸으로 노래 불러 태평을 기리노니 / 病餘謳吟贊日月
화창한 기운 발양하여 천지에 가득하여라 / 發揚和氣彌乾坤
당로자에게 의당 큰 문장 솜씨가 있거니 / 當塗自有大手筆
봄 새 지저귐 같은 내 글이 문득 부끄럽네 / 却愧酷似春禽喧
나는 평생에 뜻과 기개가 본디 위축되어 / 平生志氣本跼蹜
높이 날아보았자 울타리도 넘기 어렵지만 / 高飛畢竟難踰藩
신은 의당 취하여 노래하리 하늘의 일은 / 臣當醉歌上天載
소리도 냄새도 없어 끝내 말하기 어려움을
/
無聲無臭終難言

 

[주D-001]하늘의 …… 어려움을 : 《시 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저 하늘이 하는 일은 소리도 냄새도 없거니와, 오직 문왕을 본받으면 만방이 다 태평하리라.[上天之載 無聲無臭 儀刑文王萬邦作孚]”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문왕의 깊은 덕을 노래한 것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임금의 덕을 칭송하는 뜻으로 쓴 것이다.

금사 팔영(金沙八詠)

 

 

염 동정(廉東亭)이 여주(驪州) 천녕현(川寧縣)의 금사장(金沙莊)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일에 따라 명칭을 붙여 모두 여덟 제목(題目)으로 만들고 인하여 근심과 슬픈 정을 서술하였는데, 돌아오고 나서도 그 일을 잊지 못하여 나에게 함께 짓기를 청하였다.


서산채미(西山採薇)

봄비는 바람 따라 부슬부슬 내리고 / 春雨隨風細
봄 산은 가는 곳마다 깊기만 한데 / 春山到處深
그 어떤 사람이 고사리를 캐어서 / 何人能採蕨
백이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고
/
惹起伯夷心

동강조어(東江釣魚)

생선맛 좋단 말 일찍이 들었는데 / 早聞鮮味雋
모두 잔 고기 살진 걸 말들 하니 / 摠說細鱗肥
가을바람 일기를 기다릴 없이 / 不待秋風起
장한을 따라서 돌아가고만 싶어라 / 願從張翰歸


용문착약(龍門斲藥)

땅이 신령하니 약물들은 많고 / 地靈多藥物
산이 빽빽하니 먼지는 적구나 / 山密少塵埃
오이만 대추를 다시 묻노니 / 更問如瓜棗
안기생은 어드메 있느뇨 / 安期安在哉


호곡경전(虎谷耕田)

평야는 부호들이 다 차지하고 / 平野牢籠盡
남은 것은 거친 밭뙈기뿐이라 /
片段餘
몸소 밭갈아 조석을 지내노라면 / 躬耕度朝夕
도리어 공명의 초가집 같으리 / 還似孔明廬


한포농월(漢浦弄月)

해가 떨어지니 모래는 더욱 희고 / 日落沙逾白
구름이 옮기니 물은 다시 맑구나 / 雲移水更淸
고상한 사람이 명월을 희롱하는데 / 高人弄明月
다만 자란생 피리가 없네그려 / 只欠紫鸞笙

파성망우(婆城望雨)

하늘 뜻은 응당 만물을 살리거니와 / 天意應生物
농사일은 꼭 제때에 해야 하거늘 / 農功在及時
용은 깊은 못에 오래 누워만 있고 / 碧潭龍臥久
한 번 일어남이 어찌 그리 더딘고 / 一起竟何遲

장흥습률(長興拾栗)

가을바람이 막 우수수 불어오니 / 秋風初瑟瑟
밤송이가 점차 주렁주렁 드러나네 / 栗樹漸纍纍
내 홀로 찾아간 일을 기억하노니 / 獨往吾曾記
알밤이 벌겋게 떨어지던 때로세 / 金丸落地時

주읍심매(注邑尋梅)

매화 읊은 시는 핍진한 게 적으나 / 賦詠逼眞少
심은 곳은 세속 초월한 데가 많네 / 栽培離俗多
가장 어여쁜 것은 궁벽한 곳에서 / 最憐荒僻處
적막하게 달빛과 서로 짝함이로세 / 寂寞伴姮娥

 

[주D-001]고사리를 …… 일으키는고 : 백 이(伯夷)는 은()나라 때 고죽국(孤竹國) 임금의 아들이다.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쳐서 멸하자, 아우 숙제(叔齊)와 함께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가 마침내 굶어 죽었으므로 한 말이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주D-002]가을바람 …… 싶어라 :
()나라 때 오중(吳中) 사람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 오중의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鱠]가 생각나서 말하기를인생은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어찌 수천 리 밖에서 벼슬에 얽매여 명작(名爵)을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92 張翰列傳》
[주D-003]오이만 한 …… 있느뇨 :
안 기생(安期生)은 전설상의 신선(神仙) 이름인데, 한 무제(漢武帝) 때 방사(方士) 소군(少君)이 임금에게 말하기를()이 일찍이 해상(海上)에 노닐면서 신선 안기생을 만나 보았는데, 그는 크기가 오이만 한 대추를 먹고 있었습니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28 封禪書》
[주D-004]몸소 …… 같으리 :
삼국(三國) 시대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일찍이 남양(南陽)의 초려(草廬)에 은거하면서 몸소 밭갈며 농사를 지었던 데서 온 말이다.

자문(紫門)에 나아가 주과(酒果)를 하사한 데 대하여 사례하다.

 


성은이 뼛속까지 취하여 마음 위로되어라 / 聖恩骨醉來寬
터럭 같은 덕성을 들기는 참으로 어렵네 /
德性如毛擧甚難
일찍이 현릉께서 내 초상 그려 내렸는데 / 曾荷玄陵親點筆
이젠 갓 쓰기도 귀찮은 백발이 가련쿠나 / 自憐白髮懶纓冠
춘풍이 다수워지자 활쏘기 구경 재촉하여 / 春風漸暖催觀射
햇빛 흐린 한낮에 강관들을 흩어 보내네 / 午日曚曨散講官
태평성대라 온 나라가 아무 일도 없어 / 可見太平無一事
요순의 교화가 삼한에 흡족함을 보겠도다 / 唐虞聲敎洽三韓

 

[주D-001]터럭 같은 …… 어렵네 : 《시 경》 대아(大雅) 증민(烝民)덕이 가볍기가 터럭 같으나, 능히 드는 사람은 드물다 하네.[如毛 民鮮克擧之]” 한 데서 온 말로, 덕은 본디 가벼운 터럭을 들기와 같이 행하기가 아주 쉬운 것이지만 행하는 이는 드물다는 뜻이다.

정 정당(鄭政堂)을 배알하여 문병(問病)을 했더니, 정공(鄭公)이 차를 내왔다.

 


봄 들어선 찾아뵌 게 전보다 더디었는데 / 春來上謁比前遲
멀리 시통 전한 것 또한 예가 아니었네 / 遙遞詩筒禮又非
시냇물 조금 불자마자 비는 처음 개었고 / 溪水纔添初雨霽
나무숲은 서로 비쳐라 꽃이 피려는 때로세 / 樹林相暎欲花時
공은 응당 병도 없이 병을 보임이거니와 / 公應示病元無病
나는 돌아가려면서도 아직 못 돌아가네 / 我政思歸尙未歸
가장 좋은 건 푸른 송산에 산림욕을 하며 / 最愛松山翠如濕
찻잔 기울이면서 얼굴 활짝 펴는 거로세 / 茶甌傾了更軒眉

 

[주D-001]병도 …… 보임이거니와 : 석 가(釋迦)의 속제자(俗弟子)인 유마힐거사(維摩詰居士)는 본디 인도(印度)의 비야리성(毗耶離城)에 거주했는데, 석가가 일찍이 그곳에서 설법(說法)할 때에 유마힐은 아프지 않으면서도 짐짓 병을 칭탁하여 법회(法會)에 나가지 않고 텅 빈 방의 한 와상에 누워 있었으므로, 석가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보내어 문병(問病)을 하게 하였다. 문수보살이 유마힐에게 문병을 가서 묻기를어떤 것이 바로 보살(菩薩)의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입니까?” 하니, 유마힐은 묵묵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므로, 문수보살이 감탄하여 말하기를아무런 문자(文字)나 언어(言語)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야만 이것이 참으로 입불이법문이로다.”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병이 없다는 의미로써 환자를 위로하여 한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 비 오는 소리를 듣고 앞의 운을 사용하여 스스로 읊다.

 


나는 평소 사리 판단이 본래 더디거니 / 吾生見事自來遲
감히 여생에 시비를 관섭할 수 있으랴 / 敢向殘生管是非
부질없는 시편
으론 좋은 경치 보답하고 / 謾與詩篇酬美景
술자리 만나거든 태평성대 감사하노라 / 相逢樽酒謝淸時
늘그막에 유독 병이 많음은 내가 알건만 / 自知老日偏多病
금년에도 못 돌아감은 남들이 비웃으리 / 人笑今年又不歸
앉아서 빗소리 들으며 길이 탄식하노니 / 坐聽雨聲長太息
여흥의 산빛이 시름겨운 낯에 떠오르네 / 驪興山色入愁眉

 

[주D-001]부질없는 시편(詩篇) : 두 보(杜甫)의 〈강상치수여해세료단술(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 시에늘그막의 시편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라, 봄이 오매 화조는 깊이 시름치 말지어다.[老去詩篇渾漫與 春來花鳥莫深愁]” 한 데서 온 말인데, () 자를 흥() 자로 보는 설()도 있다.

즉사(卽事)

 


불태운 밭두둑에 봄풀은 한창 푸르른데 / 燒餘田壟草靑靑
온 산에 비 흠뻑 와서 생수가 날 지경이라 / 一雨漫山水欲生
도롱이 걸친 늙은이가 삽을 들고 나가서 / 獨速老翁携鍤去
물꼬 막고 도랑 트니 갠 하늘 물에 번쩍이네 / 好防渠決灩新晴

봄비가 자주 내려 들빛이 푸르러가니 / 春雨頻來野色靑
안개 자욱한 채소밭에 푸른 싹이 돋누나 / 菜畦煙暗綠芽生
소년 적부터 관록 탐하여 백발에 이르니 / 少年干祿今頭白
병든 몸은 흐리고 갠 날을 절로 알겠네 / 病骨自知陰與晴

공명이 역사 더럽힌 게 매양 한스러워 / 每恨功名汚汗靑
음풍농월 의지해 여생을 보낼 뿐인데 / 只憑吟嘯送殘生
가득한 이슬비에 정취가 한량없어 / 滿庭煙雨情無極
다시 번천 따라 만청부를 짓고 싶구나 / 更擬樊川賦

 

[주D-001]뜰 …… 싶구나 : 번천(樊川)은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호인데, 그의 〈만청부(晴賦)〉에비 갠 가을 모습 막 목욕한 듯 깨끗하여, 동산을 꺾어 돌아 조용히 거니노라.[雨晴秋容新沐兮 折繞園而細履]” 하였다.

즉사(卽事)

 


병든 뒤에 동풍은 나날이 거세게 불어와 / 病後東風日日狂
말발굽이 가는 곳마다 봄빛을 띄우는데 / 馬蹄隨處泛崇光
꽃 마음은 공교한 하늘 마음을 그려내고 / 花心欲寫天心巧
술의 힘은 능히 장대한 필력을 붙드누나 / 酒力能扶筆力長
달사의 형체 잊는 위진 시대와 같고 /
達士忘形如魏晉
좋은 사람은 삼상처럼 헤어지기 일쑤로세 / 可人携手喜參商
봄옷이 아직 안 이루어진 게 애처로워라 / 自憐春服猶成未
웅천의 계음을 여름 서늘한 때 할 수밖에 / 稧飮熊川趁夏涼

 

[주D-001]달사(達士)의 …… 같고 : 특히 위진(魏晉) 시대에 종일토록 청담(淸談)을 나누고 술을 즐겨 마시던 죽림칠현(竹林七賢) 등 방달(放達)한 선비가 많았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2]계음(禊飮) :
옛날 중국에서 음력 3 3일에 행하던 곡수연(曲水宴)을 가리킨다.

봄놀이[春遊]

 


봄놀이가 방금 다하지 않아서 / 春遊方未艾
시 흥취 또한 농후하기만 하네 / 詩興亦云濃
버들 늘어져 마을은 더욱 고요하고 / 楊柳村逾靜
이끼 끼어라 골목은 이미 깊은데 / 莓苔巷已窮
푸른 산빛 속에 문을 굳게 닫고 / 閉門山色裏
빗소리 들으며 베개 베고 누웠으니 / 欹枕雨聲中
마음속에 거리낀 것만 없다면 / 但得心無累
어찌 격양옹에게 부끄러우랴 / 何慚擊壤翁

 

[주D-001]격양옹(擊壤翁) : 《격양집(擊壤集)》의 저자인 송()나라의 소옹(邵雍)을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낙양(洛陽)에 살면서 자기 집을 안락와(安樂窩)라 하고 스스로 안락 선생(安樂先生)이라 자호하였다.

새벽에 일어나다.

 


비둘기 우는 숲 밖에 날이 벌써 밝았는데 / 鳩鳴林外已天明
비온 뒤의 봄추위가 청랭하기 그지없네 / 雨後春寒盡意淸
병객이 늦게 일어남엔 별난 정취 있거니와 / 病客懶興殊有味
노년에 한가히 누움은 세정을 잊고파일세 / 老年閑臥欲忘情
뭇 꽃은 이슬에 젖어 약한 가지를 붙잡고 / 群花浥露方扶弱
실버들은 바람 머금어 가벼이 한들거리네 / 細柳含風自弄輕
심기가 다 화평한 지경에 이른 다음에야 / 到得平心和氣處
참으로 호연히 천명을 받들 수가 있으리 / 浩然眞可順吾生

 

백공(伯恭)의 자설(字說) 끝에 제하다.

 


버들골에 금년에도 봄이 또 저물었는데 / 柳巷今年又暮春
낮닭 우는 소리 속에 인적은 고요하여라 / 午雞聲裏寂無人
백공의 자설을 어찌 늘어놓을 수 있으랴 / 伯恭字說寧容肆
늙은 목은의 문장이 거짓될까 염려로다 / 老牧文言恐失眞
비 지나간 문정엔 푸른 풀이 돋아나는데 / 雨過門庭生碧草
바람 부는 도성 거리엔 먼지가 그득하네 / 風來街陌漲紅塵
선왕 추모하는 세월에 막 오십이 되어 / 羹墻歲月今知命
오직 조심조심으로 나날이 새로워지리라 / 一味淵氷日日新

 

[주C-001]백공(伯恭) : 고려 말기에 벼슬이 집현전 대학사(集賢殿大學士)에 이른 공부(孔俯)를 가리킨다.

산수화(山水畫)의 병풍(屛風)을 두고 짓다.

 


해동의 산수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여 / 海東山水絶纖塵
곳곳마다 산수 경치가 바로 선경이거늘 / 在在雲煙境界眞
문득 병풍을 향해 그윽한 흥취 부치다니 / 却向屛風寄幽興
목은 늙은이가 도리어 가련한 사람일세 / 牧翁還是可憐人

산중의 은자가 깨끗한 풍도를 퍼뜨리며 / 山中隱者播淸塵
누가 능히 진위를 분간하랴 자부하건만 / 自恃誰能辨僞眞
필경엔 흰 구름이 그를 숨기지 못하나니 / 畢竟白雲藏不得
천지간에 안목 갖춘 이가 어찌 없으랴 / 乾坤具眼豈無人

청신한 시구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해라 / 詩句淸新不惹塵
형체 따라 사물 읊음이 조화를 탈취했네 / 因形賦物奪天眞
흰구름 걸친 일천 산봉우리 겹겹의 속에 / 白雲千嶂重重處
원숭이 소리 써낸 이가 그 몇이나 있을꼬 / 寫出猿聲有幾人

 

홍수겸(洪守謙) 상서(尙書)가 방문하다.

 


총각 시절부터 친하여 백발에 이르도록 / 總角相親到白頭
중간에 서로 헤어진 게 그 몇 년이던고 / 中間乖隔幾經秋
다만 가난하여 술이 없는 게 한스러워라 / 家貧只恨無樽酒
조용히 차 마시며 옛 얘기 나눌 뿐이네 / 細嚼茶芽話舊游

 

빌린 말이 병이 나다.

 


말 빌리기가 지금 또한 매우 어렵거늘 / 借馬知今亦甚艱
어느 누가 병들어 고치기 어렵게 만드는고 / 誰敎病發欲醫難
주인은 본디 불운한 일이 허다한지라 / 主人自是多屯蹇
일 만날 때마다 무단히 코가 시큰하네 / 觸事無端鼻孔酸

 

흥취를 풀다.

 


나는 본디 등한하여 시속과 동화 못 하는데 / 我本疏慵不入時
더구나 이젠 병까지 들어 어디를 가려 하랴 / 況今衰病欲何之
문 굳게 닫으니 안심하고 앉았기 알맞아라 / 閉門自合安心坐
서로 손 잡고 누구와 땀 흘리며 달릴 건가 / 連袂誰曾汗背馳
신년 하례는 시골 마을도 두루 다니려는데 / 賀歲里閭將欲遍
대궐에 사은할 일을 감히 더디한다 말하랴 / 謝恩閶闔敢云遲
지금은 또 꽃구경하는 흥취가 일어나니 / 如今又起看花興
취하여 남산 지은 에 견주고 싶구나 / 準擬南山醉賦詩

봄바람 이것이 또한 태평의 시절이건만 / 春風又是太平時
문을 나가도 갈 곳 없는 게 가소로워라 / 却笑出門無所之
우리들은 구름같이 모이고 흩고 하는데 / 我輩還如雲聚散
세월은 절로 물 흐르듯 급히도 달리누나 / 年光自趁水奔馳
버들실은 이미 청색으로 다 켜졌을 텐데 / 柳絲已染應繰畢
꽃봉오린 봉해진 채 터지길 더디하려 하네 / 花錦猶封欲拆遲
반쯤 취해 높은 누각에서 조망하는 때에 / 待得半酣高閤望
행락하는 곳을 다시 새로운 시에 부치리 / 更將樂處寓新詩

위편삼절
은 다만 때를 알았기 때문인데 / 三絶韋篇只識時
노년에 어찌 편안하게 해주길 바랐으랴 /
老年胡不望安之
배부른 매는 자유롭거니 따르려 하랴 /
飽鷹自在寧思附
매인 말은 본래에 달리기만을 생각한다네 / 繫馬由來每念馳
문왕 사모해 목목 노래한 지는 오래이건만 /
久矣思文歌穆穆
노나라 떠날 더디함 배우긴 슬프어라 /
哀哉去魯學遲遲
붓도 또한 나의 이런 뜻을 아는 까닭에 / 中書君亦知吾意
손 가는 대로 조용히 시를 써내는구나 / 信手從容寫出詩

 

[주D-001]남산(南山) 지은 :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하염없이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곧 도잠의 술 마신 것을 그리워하여 하는 말이다.
[주D-002]위편삼절(韋篇三絶) :
공자(孔子)가 만년에 《주역(周易)》을 하도 많이 읽어서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떨어졌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노년에 …… 바랐으랴 :
자로(子路)가 공자의 뜻을 물었을 때 공자가 이르기를, “늙은이를 편안하게 봉양해 주고, 친구들을 신의로 대해 주고, 젊은이를 은혜로 감싸 주는 것이다.[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公冶長》
[주D-004]배부른 …… 하랴 :
매는 본디 배가 고프면 사람을 따르고, 배가 부르면 날아가 버린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문왕(文王) …… 오래이건만 :
목목(穆穆)은 심원(深遠)의 뜻으로, 《시경》 대아(大雅) 문왕(文王)심원하신 문왕이여, 아 공경을 계속하여 밝히시도다.[穆穆文王 於緝
敬止]”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문왕의 덕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6]노(魯)나라 …… 슬프어라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공자가 제나라를 떠날 때는 인 쌀을 건져서 급히 떠났고, 노나라를 떠날 때는더디어라 나의 떠남이여.’라고 하였으니, 이는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도리인 것이다.[孔子之去齊 接淅而行 去魯 曰遲遲吾行也 去父母國之道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下》

산새 우는 소리를 듣다.

 


봄 산 깊은 곳에 일찍이 놀던 일 기억나네 / 春山深處記曾游
들리는 소리 막지 못해 온종일 걱정했더니 / 觸耳難禁盡日愁
어찌 뜻했으랴 일만 집 밥 짓는 연기 속에 / 豈意萬家煙火裏
두어 소리 지저귐에 유유한 꿈 놀라 깰 줄을 / 數聲驚破夢悠悠

병든 몸 쑤시고 아파 절로 늦게 일어났는데 / 病骨酸辛自懶興
그 누가 시 생각 다시 모여들게 하는고 / 誰敎詩思更相凝
문득 새소리 들으매 되레 느낌이 많으니 / 忽聞啼鳥翻多感
공을 보아
도를 즐기는 중을 배우고 싶네 / 欲學觀空樂道僧

봄이 오매 시구 지어 동유에게 주어라 / 春來有句贈同游
환기며 최귀가 모두 시름뿐이었네 / 喚起催歸摠是愁

소리 듣고 맘으로 통해 스스로 즐거우면 / 聲入心通吾自樂
유유자적하는 곳이 바로 유유자적인 것을 / 可悠悠處卽悠悠

밤 늦게 자고 반드시 또 일찍 일어나야지 / 夜寐仍須更夙興
마음속의 도덕을 어느 때나 성취시킬꼬 / 心中道德幾時凝
지저귀는 새 한 소리에도 마음이 동요되니 / 一聲啼鳥心還動
영락없이 지금 세상 땡추중과 흡사하구나 / 宛似如今雀鼠僧

 

[주D-001]공을 보아 : 《반야심경(般若心經)》의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에서 온 말로, 즉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를 의미한 말이다.
[주D-002]봄이 …… 시름뿐이었네 :
한 유(韓愈)의 〈증동유(贈同游)〉 시에불러 깨울 땐 창이 완전히 밝았고, 돌아오기 재촉함은 해가 지기 전인데, 무심한 꽃 속의 새들은 다시 서로 정을 다해 우는구나.[喚起窓全曙 催歸日未西 無心花裏鳥 更與盡情啼]” 한 데서 온 말인데, 황정견(黃庭堅)은 이 시의 환기(喚起)와 최귀(催歸)를 모두 새의 이름으로 보았는바, 환기는 일명 춘환(春喚)이라는 봄 새의 이름이고, 최귀는 바로 두견(杜鵑)이라고 하였다. 《韓昌黎集 卷9

나팔 부는 소리를 듣다.

 


맑은 새벽 남문에서 나팔 소리 울리어라 / 南門淸曉一聲鑼
울어대는 말에 채찍질 소리 들린 듯하네 / 坐想蕭蕭聞馬

적의 포로 바치길 재촉하는 게 아니면 / 不是獸牢催進獻
응당 저 강 위에 풍파가 있는 때문이리 / 定應江上有風波

위의 풍파는 어느 날에나 그칠런고 / 江上風波幾日休
경인년 이후로 사람을 시름겹게 하누나 / 庚寅以後使人愁

용양의 만곡선
이 진정 무력하기만 해라 / 龍驤萬斛眞無力
하늘 흔드는 파도를 향하기가 두렵구려 / 怕向掀天雪浪頭

흰 파도가 오래도록 하늘 높이 치솟아라 / 雪浪長年欲蹴天
강릉 일도와 해서의 변방이 다 그렇거늘 / 江陵一道海西邊
해독을 입으면서도 끝내 계략이 허술하여 / 雖然被毒終疎闊
시체 그득한 산중에 좌선만 하고 있다니 원 / 露骨山中穩坐禪

 

[주D-001] 위의 …… 하누나 : 고려 충정왕(忠定王) 2(1350)에 왜구(倭寇)가 처음으로 고성(固城), 거제(巨濟) 등지에 침입했는데, 그로부터 왜구의 침입이 계속되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2]용양(龍驤) 만곡선(萬斛船) :
만곡선은 곧 만곡을 적재할 만한 큰 배를 가리키는데, ()나라 때 용양장군(龍驤將軍) 왕준(王濬)이 아주 거대한 군함(軍艦)을 건조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출전해서 마침내 오()를 멸망시켰던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잔뜩 취해선 고화의 태움을 모두 잊었고 / 沈醉都忘膏火煎
깨고 나선 도를 즐김이 문득 그대로이네 / 醒來樂處却依然
오의항 어귀엔 석양빛이 환히 밝고요 /
烏衣巷口明斜日
녹야교 가에는 연기만 잠겨 있도다 /
綠野橋邊鎖冷煙
부귀의 풍류는 응당 쓴 듯이 사라졌지만 / 富貴風流應掃地
고금의 슬픈 감정은 다시 하늘에 넘치네 / 古今悲
更滔天
정녕코 이 꽃피는 호시절이 지나기 전에 / 丁寧趁取花時節
배우는 소년 따라 촛불 잡고 놀아야겠네 / 秉燭相從學少年

우물물 길어다 새 차를 강한 불에 달여서 / 汲井新茶活火煎
창 앞에서 한잔 마시니 기분이 날 것 같네 / 晴窓一啜意翛然
경쾌히 날아 밝은 달을 안기는 어려우나 /
飄飄難得抱明月
탁트인 기분은 마치 선경을 오른 듯하네 / 蕩蕩却如凌紫煙
한가히 읊는 건 사물을 감촉함에 따르지만 / 閑裏吟哦由觸境
병든 뒤의 출처는 모두 천명에 맡긴다오 / 病餘行止摠關天
붓 빼듦은 다만 흥취를 서술하기 위함인데 / 抽毫只管紓情興
봄빛이 한창 무르녹은 또 한 해이로세 / 春色方濃又一年

 

[주D-001]고화(膏火) 태움 :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기름은 불이 붙기 때문에 스스로 저를 태운다.[膏火自煎也]”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스스로 애태우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오의항(烏衣巷) …… 밝고요 :
오 의항은 진()나라 때 왕씨(王氏), 사씨(謝氏) 등 귀족(貴族)들이 거주하던 지명인데,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읊은 유우석(劉禹錫)의 〈오의항〉 시에주작교 가에는 들풀에 꽃이 피고, 오의항 어귀엔 석양이 비끼었어라. 그 옛날 왕씨 사씨 집의 제비들이, 일반 백성의 집으로 날아드누나.[朱雀橋邊野草花 烏衣巷口夕陽斜 昔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녹야교(綠野橋) …… 잠겨 있도다 :
()나라 때 명상(名相) 배도(裴度)가 만년에 퇴관(退官)하여 오교(午橋)에 별장(別莊)을 짓고 수많은 화목(花木)들을 심고서 이를 녹야당(綠野堂)이라 이름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경쾌히 …… 어려우나 :
소 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에일엽편주 가는 대로 따라서 아득한 만경창파를 헤쳐 가니, 광대하기는 마치 허공을 타고 바람을 몰아 가서 그칠 줄을 모르는 것 같고, 경쾌하기는 마치 속세를 버리고 우뚝 서서 깃을 달고 신선이 되어 등천하는 것과 같도다.……하늘을 나는 신선과 어울려 놀고, 밝은 달을 안고 오래오래 살고 싶구나.[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憑虛御風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長終]” 한 데서 온 말이다.

홀로 노닐다.

 


홀로 노니매 정취는 더 쾌적한데 / 獨游情更適
병이 많아서 뼈는 아직 쑤시누나 / 多病骨猶酸
깜깜한 풍진 속을 견딜 수 없어 / 不耐風塵暗
하늘땅 널찍한 곳을 찾아왔는데 / 向來天地寬
재주 없어 시 읊기는 고통스럽고 / 才疎吟咏苦
계책 졸렬해 가고 멎기도 어렵네 / 計拙去留難
광대한 봄 경치가 저물어가기에 / 浩蕩春將老
때때로 취해 안장에 걸터앉노라 / 時時醉據鞍

 

주 동년(朱同年)에게 적어 올리다.

 


꽃 가지 붉게 물들고 또 동풍은 불어오는데 / 枝紅染又東風
매양 주 동년 수염을 꿈속에서만 본다네 / 每見朱髥向夢中
봄 기럭 북으로 날 제 한 자 소식도 없어라 / 春雁北飛無一字
소년 시절 행락은 어느새 적막키만 하구려 / 少年行樂轉頭空

 

한 유항(韓柳巷)이 창화(昌和)의 안 첨서(安簽書) 댁을 함께 가자고 초청해 왔으나, 나는 술 때문에 피곤하여 사양하였다. 오후에는 몸이 조금 거뜬해졌는데, 마침 이 삼재(李三宰)가 특별히 초청해서 가보니, 염동정(廉東亭)이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술잔을 서로 주고받고 하다가 잔뜩 취해서 집에 돌아와 그 사실을 기록하는 바이다. 대체로 음식(飮食) 같은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마치 은미한 사이에 주고 뺏는 신의 작위가 있는 듯하니, 어찌 느껍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단편(短篇)을 읊어 이루어서 기록하는 바이다.

 


인생의 모이고 흩어짐은 바람꽃과 같나니 / 人生聚散如風花
우연한 형세일 뿐 끝내 다른 까닭 아니라네 / 勢出偶爾終無他
춘성의 복사꽃 오얏꽃이 반쯤 터져 나오니 / 春城桃李半吐艶
하늘 다스운 볕에 붉은 놀이 끼는구나 / 晴天暖日蒸紅霞

물 남쪽에 나란히 가기론 옛 약속 있었으나 / 水南聯鞍有舊約
붉은 낯에 작취의 피곤함 견딜 수 없었네 / 酒困不耐朱顔

해가 한낮을 지나선 빗방울이 또 떨어져 / 日行過午雨又滴
먼지 하나 없이 시야가 환히 트이는지라 / 眼界豁達無塵沙
가뿐한 몸 날 것 같아 흥이 한창 동하는데 / 將翺將翔興方動
봄빛은 정원 나뭇가지에 은은히 비치었네 / 春光掩映庭中柯
동정은 이때 말 타고 북쪽 마을에 들어가 / 東亭游騎入北里
문병하고 마침 평장의 집에 있었는지라 / 問疾適在平章家
평장이 나를 부르기에 절뚝말 채찍질하여 / 平章招我策蹇馬
넘어질 듯 말 듯 간신히 흰 머리 날려 갈 제 / 欲跌不跌頭皤皤
들쭉날쭉 푸른 기와는 횡령 곁에 자리했고 / 參差碧瓦傍橫嶺
문 앞의 한 길은 시내를 따라 비껴 있었네 / 當門一逕緣溪斜
진기한 음식에 술 따라 배불리 마시고 / 淺斟軟飽雜異味
고담준론을 마치 강하처럼 쏟아내면서 / 高談雄辯如懸河
반쯤 거나해 격앙하여 큰 탄식 펼치어라 / 半酣激裂發浩歎
우리 함께 조정에서 성상을 보좌했던 / 同游廊廟扶重華
당시의 제공들이 이제 반은 돌아갔으니 / 當時諸公半鬼錄
술을 마시지 아니하고 장차 어찌하리오 / 有酒不飮將如何
응당 촛불 밝히고 부지런히 즐겨야 하리 / 會須秉燭勤行樂
모를레라 임금의 힘이 나에게 미쳤던가 /
帝力不知於我加
일천 겹의 산과 바다를 깎아 버려서 /
千重山海盡剗去
머리 위에 해와 달이 북처럼 왕래하누나 / 頭上日月如飛梭
남북의 안씨 이씨가 본래 땅 안 가렸건만 / 南安北李本不擇
하늘이 안배하였으니 그게 명이 아니던가 / 天自安排非命耶

 

[주D-001]춘성(春城)의 …… 끼는구나 : 붉은 놀은 곧 꽃을 형용한 말이다. 한유(韓愈)의 〈도원도(桃園圖)〉 시에복숭아 심어 곳곳마다 꽃을 피우니, 멀고 가까운 천원에 붉은 놀이 낀 듯하네.[種桃處處惟開花川原遠近蒸紅霞]” 하였다.
[주D-002]모를레라 …… 미쳤던가 :
() 임금 때에 천하가 태평해지자, 한 노인이 배부르게 밥 먹고 배를 두드리면서 땅을 치며 노래하기를해가 뜨면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도다.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농사지어 먹고 사는데,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 한 데서 온 말로, 태평을 구가하는 뜻으로 쓰인다.
[주D-003]일천 겹의 …… 깎아 버려서 :
이 백(李白)의 〈공후요(箜篌謠)〉에다른 사람의 가슴속이야, 산과 바다가 그 몇천 겹이던고. 선뜻 붕우라고 칭탁은 하나, 얼굴 대하면 구의봉과 다름없다네.[他人方寸間 山海幾千重 輕言託朋友 對面九疑峯]”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의기가 서로 투합함을 의미한다.

새벽에 일어나다.

 


앓고 나서 시 읊으니 기가 절로 평온한데 / 病後吟詩氣自平
하늘 가득 봄 경치에 새들도 지저귀누나 / 滿天春色鳥啼聲
북쪽 이웃엔 술이 익어 처음 예를 행했고 /
北隣酒熟初成禮
남쪽 마을엔 꽃이 피어 또 가자고 불렀지 / 南里花開又喚行
비 갠 강산은 다스운 경치를 재촉하는데 / 雨卷江山催暖景
해 비낀 정원은 덧없는 생을 느끼게 하네 / 日斜庭院感浮生
이 몸은 요순 시대 만남을 다행하게 여겨 / 此身自幸逢堯舜
매양 붓끝으로 성명께 감사를 드리노라 / 每向毫端謝聖明

병든 몸이 태평 만난 걸 깊이 감사하노니 / 病餘深謝値升平
당일 궁중에선 끄는 소리를 알았었네 /
當日宮中識履聲
흐르는 물 깊은 골에 푸른 산은 어우러지고 / 流水谷深靑嶂合
푸른 하늘 실바람에 흰 구름은 둥둥 떠가네 / 碧天風細白雲行
시서의 도는 무너진 채 나이만 늙어가고 / 詩書道缺年將老
문정엔 인적 드물어 풀이 절로 나는구나 / 門巷人稀草自生
긴긴 날 앉아 읊는 게 일과처럼 되었는데 / 永日坐吟如有課
관을 벗은 모영이 보는 아직도 밝겠지 /
免冠毛穎視猶明

 

[주D-001]북쪽 …… 행했고 : 《춘 추좌전(春秋左傳)》 장공(莊公) 22년 조에 의하면, 군자(君子)가 이르기를술자리 베푸는 예를 행함에 있어, 밤늦게까지 지나치게 하지 않은 것은 의리에 알맞다.[酒以成禮 不繼以淫 義也]”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주연(酒宴)을 의미한다.
[주D-002]당일 …… 알았었네 :
()나라 때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던 상서 복야(尙書僕射) 정숭(鄭崇)이 항상 가죽신을 질질 끌면서 들어가 천자(天子)를 뵈었으므로, 천자가 한번은 웃으면서 이르기를내가 정 상서(鄭尙書)의 신 끄는 소리를 알았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관(冠)을 …… 밝겠지 :
모 영(毛穎)은 토끼털로 만든 붓[]을 의인화(擬人化)하여 일컬은 말이다. 관을 벗었다는 것은 한유(韓愈)의 〈모영전(毛穎傳)〉에모영이 관을 벗고 사죄했다.[免冠謝]”는 데서 온 말로, 즉 몽당붓이 되어 더 이상 쓰일 수 없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보는 것이 밝다는 것은 곧 《예기(禮記)》에서 토끼의 별명(別名)을 명시(明視)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조사겸(趙思謙)에 대한 만사(挽詞)

 


정숙
의 여러 손자 중 몇이나 남았는고 / 貞肅諸孫幾箇存
당시의 빛난 풍채는 중원까지 비치었네 / 當時風彩照中原
백발로 또 성남 길에 만가를 부르노라니 / 白頭又挽城南路
쓸쓸한 새벽빛에 두 눈이 깜깜하구나 / 曉色蒼涼兩眼昏

 

[주D-001]정숙(貞肅) : 조인규(趙仁規)의 시호이다. 조인규는 고려 말기에 벼슬이 자의도첨의사사(咨議都僉議司事)에 이르고 평양군(平壤君)에 봉해졌다.

애재(哀哉) 2(二首)

 


슬프도다 나의 외생이여 / 哀哉我外甥
어린 딸은 더욱 의지할 곳이 없어 / 有女尤失憑
기구하게 거처를 바꾸었는데 / 崎嶇易居處
다행히 몇 겹 산 너머에 있는지라 / 幸隔山幾層
바로 가서 어루만져주고 싶지만 / 徑欲往撫背
내 병세가 더치는 게 괴로워서 / 苦此病勢陵
우선 하인을 너에게 보내어 / 且遣蠻童去
나의 애타는 심정을 전하노라 / 達我心炭氷
봄풀이 나서 도로에 가득하거든 / 草生滿道周
남여를 탈 수가 있을 터이라 / 籃輿可以乘
내 의당 가서 너를 찾아볼 테니 / 我當往省汝
너는 문에 나와 나를 맞을지어다 / 汝其出門應

네 아비 성질은 곧음을 숭상했으니 / 汝父性尙直
재앙을 당한 것 또한 천명이로다 / 罹凶亦天命
아우가 있고 또 누이동생도 있어 / 有弟又有妹
가풍이 퍽이나 근엄했었더니 / 家風頗修整
슬프다 너는 성질이 천진한데 / 哀汝出天眞
길이 막힌 듯 왕래는 못 하지만 / 往來如道梗
네가 남의 양육을 받음으로 인해 / 由汝養於人
네 천성을 능히 보호하고 있으니 / 保汝能順性
네가 자라서 시집을 가는 때는 / 汝長可適人
복사꽃 핀 화창한 봄날이리라 / 桃夭春日靜
어찌 네 혼기를 늦어지게 하랴 / 肯使汝愆期
인륜은 의당 스스로 바루어야지 / 人倫當自正

 

영매(嶺梅)의 시권(詩卷)에 제하다.

 


안회봉
꼭대기에 눈이 처음 날리자마자 / 雁回峰頂雪初飛
한 점 꽃 마음이 그 시기를 맞추려 하네 / 一點芳心欲透機
봄 경치 누설한 것은 응당 우연일 텐데 / 漏洩春光應偶爾
교묘히 평한 시인 안목이 유독 예쁘구나 / 獨憐詩眼巧評譏

 

[주C-001]영매(嶺梅) : 《유항시집(柳巷詩集)》에 〈제영매상인시권(題嶺梅上人詩卷)〉이란 제하(題下)의 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영매는 곧 스님의 호이다.
[주D-001]안회봉(雁回峰) :
호 남성(湖南省) 형양현(衡陽縣) 남쪽에 있는 형산(衡山) 칠십이 봉(七十二峰) 가운데 하나로 또 다른 이름은 회안봉(回雁峯)인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기러기가 가을이면 형양(衡陽)에 와서 머물렀다가 봄이 오면 돌아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철동(鐵洞)에서의 놀이를 기록하다.

 


계림문 밖에 달빛은 맑은 물결 같은데 / 雞林門外月如波
헤어지려다 다시 머물러 술잔 기울였네 / 欲別更留傾叵羅
젊을 때처럼 취해 미친 게 좋기는 하나 / 自喜醉狂如少日
병에 싸인 이 신세를 내가 어찌하리오 / 病餘身世奈吾何

동풍이 물에 불어 푸른 물결 요동치고 / 東風吹水綠搖波
구름 걷힌 긴 하늘은 푸른 비단 같은데 / 雲盡長天似碧羅
홀로 송정에 올라서 한 번 읊조리노니 / 獨上松亭一舒嘯
늘그막의 가고 그침은 뜻대로 못 할레라 / 老來行止末如何

 

염동정(廉東亭)과 함께 이상(李相)의 초대를 받고 갔다 와서 술병이 난 지 이틀 만에 조금 우선해지자, 시가(詩歌)를 읊어 이루다.

 


나는 외물을 좇아 변천하는 데 유능하여 / 我生逐物工推移
아주 유연하게 세상과 잘 합류하는데도 / 與世俯仰如韋脂
남들은 나더러 고고함을 자부한다 하나니 / 人猶指點負介特
나는 세상과 불합한 채 늙어갈 걸 믿노라 / 自信齟齬將衰遲
문 닫고 안 나간 게 걸핏하면 한 달이요 / 閉門不出動旬月
때로 만나는 이는 모두 오활한 사람일세 / 有時會合皆迂闊
평장사 이공이 우연히 말에서 떨어졌는데 / 平章李公偶墜馬
나라 운명 맡아서 백성이 의뢰한 바이라 / 國之司命民賴活
문안차 찾아가니 마침 취하여 잠들었기에 / 敲門投刺適醉眠
당에 올라가 앉아서 시구를 써놓았더니 / 上堂據座題詩聯
명일 아침 사자 보내어 나를 초청하므로 / 明朝馳騎來相邀
내 말 스스로 몰아 화려한 자리에 올랐네 / 我策我馬登華筵
중관 이상 또한 마침 그곳을 내방했는데 / 中官李相適來訪
동정은 크게 취하여 말이 조금 방자했고 / 東亭大醉談稍放
이상은 기쁜 마음에 진정을 토로하였지 / 李相情懽吐肺腑
채씨는 바로 나의 처족이 되는 사람이라 / 蔡氏於吾是妻黨
명일에 나를 초대해 특별히 주연 베풀고 / 仍邀明日特設酌
내게 마냥 술 권하여 그지없이 즐기면서 / 酌我甚多耽且樂
큰 술잔에 곧 취하여 하늘에 호소도 했네 / 徑取大杯仰靑天
병이 들어서야 약 구할 줄 어찌 알았으랴 / 病入豈知方救藥
와상에 쓰러져 며칠 동안 구토를 하노라니 / 倒牀嘔吐連數朝
바짝바짝 타는 가슴 견딜 수가 없었는데 / 心中膏火相煎熬
아내가 탕제 달여 내 술독을 풀어 주었네 / 妻煎湯劑解酒毒
스스로 의아해라 기식을 조양할 길 없다가 / 自訝氣息無由調
오늘 새벽 일어나매 맘이 절로 진정되고 / 今晨起坐意自定
창문 밖의 천기가 하 맑고도 조용한지라 / 開窓風日淸且靜
엊그제 모진 고통이 꿈처럼 사라졌으니 / 向來艱辛墮夢中
도류
를 찾아서 술 마심을 본받고 싶네 / 欲訪陶劉仍取正
인간의 오만 일은 다 하잘 것 없는 건데 / 人間萬事儘悠悠
묻노니 홀로 깨어 그 무얼 구한단 말인가 / 借問獨醒何所求
조정엔 도가 있고 화창한 봄이 한창이니 / 朝廷有道靑春深
정히 술을 마실 만한데 그 무얼 걱정하랴 / 政可飮酒夫何憂

 

[주D-001]도류(陶劉) : ()나라 때 모두 술을 대단히 즐겨 마셨던 도잠(陶潛)과 유령(劉伶)을 합칭한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구구
의 문장은 세상이 다투어 기리는데 / 文章歐九世爭譽
유로
는 오히려 독서를 안 했다 기롱했네 / 劉老猶譏不讀書
표절로 어찌 거만을 이룰 수가 있으랴 / 剽竊豈能成鉅萬
해중의 보배들이 스스로 넉넉하고말고 / 海中衆寶自嬴餘

보배들이 잔뜩 널려 광채가 찬란하거니 / 衆寶橫陳爛有光
맞잖은 말이 있더라도 무슨 병될 게 있으랴 / 縱非倫序亦何傷
한 번 구안자를 만나 고하가 나눠졌으니 / 一經具眼分高下
만고에 다시 억양할 이가 아무도 없으리 / 萬古無人更抑揚

억양하는 가운데 지극한 소리가 나오나니 / 抑揚中有至音生
사광
은 원래 음악 소리를 집대성했다네 / 師曠元來集大成
반가운 손에게 즐거운 주연을 베풀더라도 / 燕樂嘉賓雖旨酒
음악이 있어야만 기쁜 정이 흡족해지는 걸 / 鏗鏘始得洽懽情

 

[주D-001]구구(歐九) : ()나라 때의 문장가로서, 배항(輩行)이 아홉 번째에 해당한 구양수(歐陽脩)를 가리킨다.
[주D-002]유로(劉老) :
유 씨 노인이란 뜻으로, 그가 일찍이 구양수의 시문(詩文)에 대하여 기평(譏評)을 가한 말이 있었던 듯하나, 누구를 가리키는지 자세하지 않다. 다만 섭몽득(葉夢得)의 《석림시화(石林詩話)》에서 구양수의 시문을 평론한 말에 의하면구양 문충공(歐陽文忠公)의 시는 오로지 기격(氣格)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그 말이 평이하고 통창하다. 율시(律詩)의 경우, 뜻이 도저한 곳에는 비록 말은 윤서(倫序)에 맞지 않는 데가 있고 또한 물어서 배우지 않은 것에 있어서는 가끔 그 진정(眞情)을 상실하는 것도 있기는 하나, 그 회포를 조금도 남김없이 다 기울이곤 한다. 공의 시가 좋은 점이 어찌 이뿐이랴. 〈숭휘공주수흔(崇徽公主手痕)〉 시의옥 같은 미모는 예부터 몸의 누가 됐거니와, 고기 먹는 그 어떤 이와 나라를 꾀하리오.[玉顔自昔爲身累 食肉何人與國謀]’라는 경우는 절로 양단(兩段)의 대의론(大議論)으로서 억양(抑揚)과 곡절(曲折)이 일곱 글자 가운데 다 발현되어 고상하고 아름답고 웅장하고 뛰어나면서도 글자마다 상대(相對)를 잃지 않았다.……” 하였다.
[주D-003]사광(師曠) :
춘추 시대 진()나라의 음악가로, 그는 귀가 워낙 밝아서 미묘한 소리를 잘 분별하였다 한다.

묘봉(妙峰)의 시권(詩卷)에 제하다.

 


편평한 땅에 묘봉이 우뚝하게 꽂혔는데 / 平地巍然揷妙峰
겹겹의 흰 구름이 둘러싸고 또 둘러쌌네 / 白雲封了白雲封
내 장차 정상에 올라 길이 휘파람 불면서 / 會當絶頂舒長嘯
천만 겹의 수많은 산들을 내려다보련다 / 俯視衆山千萬重

 

즉사(卽事)

 


제비가 돌아오니 기쁜 정을 알 만하여라 / 燕子歸來喜可知
주렴 앞에서 지저귀다 해가 저물어가네 / 簾前致語日將移
주인은 병이 많으나 도리어 예전 같은데 / 主人多病還依舊
다소의 화려한 집은 거미줄이 얽혔구려 / 多少華堂蛛掛絲

 

유거(幽居)

 


병든 나머지 내 신세는 경영을 끊었기에 / 病餘身世絶經營
초여름 그윽한 집이 일마다 청신하거니 / 新夏幽居事事淸
잎에 가린 남은 꽃은 바람에 떨어지고 / 翳葉殘花風裏墜
뜰에 오른 이끼는 비온 뒤에 자라누나 / 上階蒼蘚雨餘生
이곳저곳 손자들은 모두 편히 잘 있고 / 諸孫異處皆無恙
벼슬하는 두 아들은 다 명성이 있는데 / 二子隨朝摠有名
말을 대신해 주는 이 붓이 있음을 힘입어 / 賴是代言毛穎在
늙은 나는 깊이 경계해 병성을 생각하네 / 老夫深戒慕甁城

 

[주D-001]병성(甁城) :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에입 조심하기를 병 막듯이 하고, 방종한 뜻 막기를 성 지키듯이 하라.[守口如甁防意如城]” 한 데서 온 말이다.

4월 초파일 저물녘에 약간의 비가 내리더니, 밤에 들어서는 비바람이 크게 몰아쳤다.

 


우산 쓰고 관등하다간 비난을 받을까 봐 / 持傘觀燈恐取譏
꽃 떨어진 깊은 집에 사립문 닫고 있자니 / 落花深巷掩柴扉
처음엔 작은 비가 장막을 적실 듯하다가 / 初看小雨將侵幕
나중엔 거센 바람이 휘장을 뚫으려 하네 / 漸聽狂風欲透幃
금년 시절은 지난해만 못하거니와 / 今歲不如前歲好
노년에야 소년 시절의 잘못을 깨달았도다 / 老年方識少年非
고인의 밤놀이 하던 걸 누가 능히 배우랴 / 古人秉燭誰能學
유쾌한 일 완상하는 맘을 번번이 못 이루네 / 樂事賞心頻見違

 

즉사(卽事)

 


일려
의 가랑비는 시골 마을에 자욱한데 / 一犁微雨暗田家
복사꽃 살구꽃 숲엔 길이 절로 비껴 있네 / 桃杏成林路自斜
늙은 소 타고 가는 도롱이는 반쯤 젖었고 / 歸跨老牛
半濕
곳곳의 방죽엔 떨어진 꽃이 둥둥 뜨누나 / 陂塘處處泛殘花

백발 나이에도 나는 집에서 쉬질 못하고 / 白髮吾猶不食家
때때로 칙명 받드노니 글자는 비뚤비뚤 / 時時奉勅字橫斜
몹시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라 / 乞身甚欲還鄕去
또 강촌에 살구꽃 떨어질 때가 아니던가 / 又是江村落杏花

소년 시절엔 진정 천자를 보좌하고파서 / 少年眞欲佐官家
문장 짓기 배우느라 글씨도 많이 썼더니 / 學作文章點筆斜
병든 지금은 부질없이 연산 꿈만 꾸어라 / 臥病燕山空入夢
옥당의 정원엔 야초 한화가 가득할 테지 / 玉堂野草雜閑花

 

[주D-001]일려(一犁) : 논밭을 갈기에 알맞은 봄비를 가리킨다.

택주(宅主)가 큰언니[大姨]를 방문하러 가자, 홀로 앉아서 읊다. 3(三首)

 


동글동글 달떡은 희기가 서리빛 같아서 / 月餠團團白似霜
뭇 옥을 쌓아올린 듯 찬 달빛이 감도는 듯 / 疊成群玉冷生光
꿀벌이 만든 석청을 가져다 빚어 놓으니 / 黃蜂爲作崖頭蜜
앓고 난 마른 창자에 먹기가 가장 좋구려 / 最好枯腸病後嘗

두 자매가 해를 격해서 서로 마주 앉으면 / 兩姨相對隔星霜
늙었지만 뽀얀 얼굴은 아직 광채가 나리 / 已老朱顔尙有光
죽고 삶을 가지고 때로 마음 쓰지 마오 / 莫把存亡時掛念
세간의 온갖 고생을 이미 다 맛보았거니 / 世間辛苦已親嘗

늙어서 서로 만나니 나이 이미 오십이라 / 老大相看五十霜
아무래도 가는 세월은 붙잡을 길이 없네 / 百般無計駐流光
칠 인 중에 지금 절반은 거의 돌아갔으니 / 七人存歿今將半
자주 들러 술이나 마시는 게 좋지 않겠나 / 豈害頻過索酒嘗

 

[주C-001]택주(宅主) : 여기서는 곧 정신택주(貞愼宅主)에 봉해진 저자의 부인(夫人) 권씨(權氏)를 가리킨다.

병중(病中)에 짓다.

 


병중에 삼 일 동안 시를 읊지 않았더니 / 病中三日廢長吟
문득 흉중에 속기가 깊어짐을 깨닫겠네 / 便覺胸中俗氣深
밝은 맑은 바람은 무진장한 보배요 /
明月淸風無盡藏
높은 흐르는 물은 소리가 유여하네 /
高山流水有餘音
훌쩍 나는 새는 햇빛 속으로 들어가고 / 翩翩去鳥投紅日
소리 고운 꾀꼬리는 녹음에서 지저귀네 / 恰恰流鶯囀綠陰
험난한 세상살이 겨우 반백 년을 지났건만 / 身世間關才過半
모를레라 무슨 방도로 마음을 안정시킬지 / 不知何策可灰心

 

[주D-001]밝은 …… 보배요 : 소 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에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빛을 이루는데, 이를 취하여도 막는 사람이 없고,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무진장한 보배이다.[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寓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是造物者之無盡藏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높은 …… 유여하네 :
옛날에 거문고를 잘 타던 백아(伯牙)가 일찍이 높은 산과 흐르는 물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탔던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다만 산수(山水)를 가리킨 것이다.

대 그림[畫竹]에 제하다.

 


차군은 참으로 속되지 않아서 /
此君眞不俗
깨끗하고 또한 당당하여라 / 蕭洒更堂堂
다만 시나 가득 쓰려고 /
祗欲題詩滿
어찌 허리띠를 것이 있으랴 /
何須解帶量
가을바람은 해곡에 불어오고 / 秋風吹嶰谷
밤비는 소상강에 자욱하여라 / 夜雨暗瀟湘
이 세상의 끝없는 비바람에 맞서 / 世上無窮意
때에 따라 스스로 억양을 하누나 / 隨時自抑揚

 

[주D-001]차군(此君)은 …… 않아서 : 차 군은 대[]의 아칭(雅稱)인데, 소식의 〈녹균헌(綠筠軒)〉 시에밥 먹을 때 고기는 없어도 되지만, 사는 집에 대가 없게 할 수는 없네.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파리하게 하지만, 대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오.[可使食無肉 不可使居無竹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다만 …… :
두보(杜甫)의 〈제정현정자(題鄭縣亭子)〉 시에다시 푸른 대에 가득 시를 쓰려고 한다.[更欲題詩滿靑竹]”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의 소재가 대 그림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3]어찌 …… 있으랴 :
허리띠를 푼다는 것은 곧 허리띠를 풀고 대숲의 맑은 바람을 쐬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다만 그림일 뿐이므로 한 말이다.
[주D-004]해곡(嶰谷) :
곤륜산(崑崙山)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아름다운 대가 나는데, 황제(黃帝)의 신하 영륜(伶倫)이 일찍이 이곳의 대를 취하여 음률(音律)을 제정했다고 한다.
[주D-005]소상강(瀟湘江) :
동정호(洞庭湖) 남쪽에 위치한 소수(瀟水)와 상수(湘水)를 가리키는데, 이 강가에는 순() 임금의 이비(二妃) 아황(娥皇)ㆍ여영(女英)의 눈물 자국에 의하여 반죽(斑竹)이 난다는 전설이 있다.

궁문(宮門)에 시립(侍立)하여 예식(禮式)을 관람하고 물러와서 기록하다.

 


주역 읽던 당년엔 시의를 알고자 했더니 / 讀易當年要達時
출처를 아직도 못 정함이 문득 가련하네 / 却憐行止尙支離
몸은 절로 아파서 알아줄 사람이 없는데 / 骨酸自痛無人識
늙어서도 가난하여 남의 말 빌려 타노라 / 身老猶貧借馬騎
천생연분에 성대한 혼례를 모두 기뻐하고 / 共喜爛盈天作合
좋은 계책으로 국운 연장을 막 기약했네 / 方期燕翼國延基
돌아와선 다시 자손을 위해 염원하노니 / 歸來更作兒孫念
성주와 현신이 영원히 서로 이어졌으면 / 聖主賢臣永世垂

사월이라 맑고 화창한 정히 호시절인데 / 四月淸和正好時
어이해 인사는 오히려 어긋나기만 하는고 / 奈何人事尙乖離
매양 향원이 문전 지나는 상관 않지만 /
每從鄕愿門前過
노동의 옥상에 말타는 만날까 염려로세 /
恐値盧仝屋上騎
하늘땅은 영원해라 책력이 시작되었고 / 天地久長開鳳曆
강산은 웅장 화려하게 나라 터전 감쌌네 / 江山壯麗擁鴻基
스스로 알괘라 늘그막에 딴 생각은 없고 / 自知老境無他念
일편단심으로 백발을 드리울 뿐이로다 / 一片丹心白髮垂

 

[주D-001]매양 …… 않지만 : 향 원(鄕愿)은 향리(鄕里)에서 근후(謹厚)하다고 일컬어지는 사람으로, 세상에 아첨하여 철저하게 위선(僞善)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공자(孔子)가 이르기를내 문전을 지나면서 내 집에 들르지 않아도 내가 유감으로 여기지 않는 자는 오직 향원인저. 향원은 덕의 적이다.[過我門而不入我室 我不憾焉者 其惟鄕愿乎 鄕愿德之賊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盡心下》
[주D-002]노동(盧仝)의 …… 염려로세 :
한 유(韓愈)가 노동에게 부친 시에어젯밤에 하인 시켜 보내온 서찰을 보니, 담장 너머 악소년이 못되기 그지없어, 매양 지붕 대마루 타고 앉아 아래를 엿보기에, 온 집안이 놀라 달아나다 발목을 삐곤 한다지.[昨夜長鬚來下狀隔墻惡少惡難似 每騎屋山下窺瞰 渾舍驚怕走折趾]” 한 데서 온 말이다.

회포를 읊다.

 


백발의 시인은 생각이 늘 연연했는데 / 白頭詞客思依依
다행히도 조정이 기회를 아니 놓쳤네 / 幸是朝廷不失機
정원의 녹음 속엔 꾀꼬리가 곱게 울고 / 庭院綠陰鶯語滑
문전의 푸른 풀은 말이 드물게 밟누나 / 門閭碧草馬來稀
때로는 홀로 앉아서 성긴 비도 보고요 / 時時獨坐看疎雨
나날이 읊조릴 땐 석양을 마주한다오 / 日日高吟對落暉
앓고 나서도 붓을 잡는 건 우선 기쁘나 / 且喜病餘猶把筆
기미를 변별할 힘이 없는 게 부끄럽네 / 只慚無力辨幾微

병든 나머지 쇠잔한 목숨이 아직 남아서 / 殘喘猶存臥病餘
도리어 사랑한단 정절 같구려 / 還如靖節愛吾廬
봉두 구면
은 세상을 경시해서가 아니요 / 蓬頭垢面非輕世
극구 모심
은 글을 오래 폐했기 때문일세 / 棘口茅心久廢書
푸른 풀은 아득해라 고향은 멀기만 하고 / 綠草迢迢鄕里遠
청산은 흐릿해라 나무 숲은 듬성하겠지 / 靑山隱隱樹林疎
인간은 잠깐 사이에 고금을 이루나니 / 人間俯仰成今古
때로 하늘에 나는 조각 구름을 쳐다보네 / 時見片雲行大虛

 

[주D-001]내 …… 정절(陶靖節) : 정절 선생(靖節先生) 도잠(陶潛)의 〈독산해경(讀山海經)〉 시에새들도 의탁할 데 있음을 기뻐하거니, 내 또한 내 집을 사랑하노라.[衆鳥欣有託 吾亦愛吾廬]”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봉두 구면(蓬頭垢面) :
흐트러진 머리와 때묻은 얼굴이란 뜻으로, 외모를 전혀 치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주D-003]극구 모심(棘口茅心) :
극 구는 글을 오래 읽지 않아서 입이 뻣뻣해진 것을 말하고, 모심은 맹자(孟子)가 일찍이 고자(高子)에게 이르기를산중의 오솔길이 사용하는 순간에는 길을 이루었다가, 잠시 사용하지 않으면 띠풀이 꽉 차 버리나니, 지금 자네의 마음속에도 띠풀이 꽉 찼도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 則茅塞之矣 今茅塞子之心矣]”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의리(義理)의 마음을 망각함으로써 사욕(私慾)이 자라남을 의미한다.

어 제 양부(兩府)에서 지인(知印)을 차견하여 부름을 받고 대궐에 이르러 내정(內庭)으로 들어가서 주연(酒宴)에 참여했는데, 이윽고 중관(中官)이 왕지(王旨)를 전하여 자리를 정해 주어 나는 당상(堂上)의 서편에 앉고 이상(二相) 이하는 모두 뜨락에 늘어앉아서 차례대로 상수(上壽)를 하였다. 그리고 물러 나와서 스스로 반성해 보니, 이 일이 참으로 꿈만 같았다. 선왕(先王)께서 이 신()을 총애해 주신 은택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지라, 감격스러움을 감당치 못하여 장구(長句) 4()을 읊어 이루어서 후일의 영예로운 볼거리로 삼는 바이다.

 


쇠잔한 몸이 균천 듣길 감히 바랐으랴 / 摧頹敢望聽鈞天
어전에서 상수한 일이 꿈속만 같네그려 / 夢裏稱觴近御筵
일월은 가지런히 밝아 열성을 계승했고 /
日月齊明承列聖
풍운은 감화를 받아 현인들이 둘러섰네 /
風雲感化立群賢
누가 이 백발은 전배들과 같게 하였는고 / 誰敎白髮如前輩
일편단심은 예와 같음을 스스로 믿노라 / 自信丹心似昔年
가장 기쁜 건 중흥의 공렬이 성대함이라 / 最喜重興功烈盛
왕업이 영원토록 전할 것을 정히 알겠네 / 定知王業永相傳

 

[주D-001]균천(鈞天) : 균천 광악(鈞天廣樂)의 준말로, 천상(天上)의 음악(音樂)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궁중(宮中)의 성대한 음악을 의미한다.
[주D-002]일월(日月)은 …… 계승했고 :
해와 달이 밝은 빛을 거듭 펴듯이 성군(聖君)이 계속 이어짐을 의미한다.
[주D-003]풍운(風雲)은 …… 둘러섰네 :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 한 데서 온 말로, 현신(賢臣)이 성군(聖君)을 만난 것을 의미한다.

하일(夏日)의 즉사(卽事)

 


중하의 산중 생활이 일마다 한적한지라 / 仲夏山居事事幽
백년의 신세 담담하여 근심을 모두 잊네 / 百年情境淡忘憂
검은 구름이 해 가리니 비올 기미 알겠고 / 黑雲遮日商量雨
푸른 나무에 바람 이니 가을을 당겨온 듯 / 碧樹含風探借秋
종은 나무하기에 게을러 밥 짓기가 더디고 / 僕倦拾薪遲煮飯
버릇없는 애는 막대 끌고 누각 자주 오르네 / 兒驕拖杖數登樓
한가함 속에 시 읊는 힘만 소비할 뿐이니 / 閑中只費吟詩力
내 인생 잘못 늙은 걸 스스로 인정코말고 / 自信吾生枉白頭

광대한 천지간에 순리대로 살아가면서 / 乾坤蕩蕩順吾生
사물에 기심 잊으니 기가 절로 평온하네 / 遇物忘機氣自平
가랑비 좋은 바람은 병골을 소생시키고 / 微雨好風蘇病骨
녹음 방초는 시 생각을 유쾌하게 하누나 / 綠陰芳草快詩情
대낮이 되도록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고 / 日高三丈臥不起
나이 오십이 넘도록 공도 못 이루었지만 / 年過五旬功未成
남은 힘은 아직 억계를 노래할 만하여 / 餘力尙堪歌抑戒
다시 남은 세월을 병성에 부치려 하네 / 更將歲月寄甁城

물욕은 참으로 죽면처럼 두껍기만 하니 / 物欲眞如粥面濃
남용이 백규 읽은
다시 배워야겠네 / 白圭當更學南容
한가하여 가랑비 속에 처음 약밭을 매니 / 閑乘細雨初鋤藥
늘그막엔 석양 아래 소나무도 심고 싶네 / 老向殘陽欲種松
덕이 쇠한 중니의 봉은 누가 노래했던고 /
衰德誰歌仲尼鳳
노심초사한 공명의
에나 비길 뿐이네 / 勞心只擬孔明龍
때때로 뒤얽힌 간담을 쏟아내려고 하면 / 有時欲寫輪囷膽
문득 황종률이 동짓달에 응한 같구려 / 却似黃鐘應仲冬

 

[주D-001]억계(抑戒) : 옛날 위 무공(衛武公)이 억() 시를 지어서 여왕(厲王)을 풍자하고 또한 스스로 경계하였던 것을 가리킨다. 《詩經 大雅》
[주D-002]병성(甁城) :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에입 조심하기를 병 막듯이 하고, 방종한 뜻 막기를 성 지키듯이 하라.[守口如甁防意如城]”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남용(南容)이 …… :
백 규(白圭)는 《시경》 대아(大雅) 억에흰 구슬의 티는 닦을 수가 있거니와, 말을 잘못한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말을 조심하도록 경계한 것인데, 남용이 이 글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는 것을 보고는 공자가 자기 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아 주었다. 《論語 先進》
[주D-004]덕(德)이 …… 노래했던고 :
춘 추 시대 초()나라의 미치광이 접여(接輿)란 사람이 공자의 문앞을 지나가면서 공자가 무도한 세상에 은거하지 않는 것을 덕이 쇠했다고 여기어 노래하기를봉이여 봉이여, 어찌 그리도 덕이 쇠했는고.[鳳兮鳳兮 何德之衰]”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微子》
[주D-005]노심초사한 공명의 :
공 명(孔明)은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의 자이고, ()은 곧 그의 친구 서서(徐庶)가 그를 유비(劉備)에게 천거하면서제갈공명(諸葛孔明)은 와룡(臥龍)이다.” 한 데서 온 말인데, 제갈량은 특히 한실(漢室)을 흥복(興復)시키기 위해 평생을 노심초사하다가 생을 마친 충신이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6]황종률(黃鐘律)이 …… :
동지(冬至)가 되면 일양(一陽)이 처음 생기면서 황종률관(黃鐘律管)의 갈대 재[葭灰]가 날리게 되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앞의 운을 사용하다.

 


남쪽 가까이 후미지고
산 또한 깊어라 / 僻近城南山更幽
천재에 홀로 근심 잊은 이가 그 누구던고 / 誰歟千載獨忘憂
천인대책 시절은 다스려져 편안한 날이요 /
天人對策治安日
전후 출사할 때는 존망이 달린 시기였네 /
前後出師危急秋
깊은 숲에서 꾀꼬리 울 땐 낮잠을 자고요 / 深樹流鶯欹晝枕
조각 구름 나는 새 보며 누각에 기대기도 / 片雲飛鳥倚晴樓
마음속 깊은 흥취를 쏟아낼 길이 없으니 / 無從陶寫心中興
선방에 가서 화두 들고 참선이나 하고 싶네 / 欲向禪窓擧話頭

거울 속에 비친 백발은 금하기 어렵지만 / 鏡裏難禁白髮生
성정 함양을 힘입어 기는 오히려 평온하네 / 只憑涵養氣猶平
끊임없는 조화는 속된 생각이 없거니와 / 天機袞袞無塵慮
늘그막의 한가함은 시골 정취에 알맞구려 / 老境悠悠適野情
백시의 중용
본받긴 비루하게 여기지만 / 自鄙中庸師伯始
남들은 현성처럼 애교부린다고 말하네 /
人言媚
似玄成
이름 탓에 그르침을 이제 다시 믿겠어라 / 如今更信爲名誤
말 타고 때때로 도성을 들어가니 말일세 / 騎馬時時入鳳城

뜬세상 인정은 깊고 얕음이 섞이었는데 / 浮世人情雜淡濃
목옹이 당일에 속된 얼굴 쳐들고 다니니 / 牧翁當日抗塵容
가볍긴 정히 바람 앞의 버들개지 같지만 / 飄飄政似風中絮
계곡 밑의 무성한 소나무
를 왜 슬퍼하랴 / 鬱鬱寧悲澗底松
의를 정히 하여 신에 듦은 자벌레 같거니와 /
精義入神如屈

대인 봄이 이로움은 나는 용이 있어서지 /
大人利見有飛龍
봄에 싹터서 생장하는 걸 알고자 할진댄 / 欲知甲拆春生遂
깊은 눈이 겨울 온기 보호함을 우선 봐야지 / 且看崢嶸雪壓冬

 

[주D-001]성(城) …… 후미지고 : 두보(杜甫)의 〈하일이공견방(夏日李公見訪)〉 시에가난한 생활은 시골 마을 같고, 후미지긴 성 남쪽 성루와 가깝네.[貧居類村塢僻近城南樓]”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천인대책(天人對策) …… 날이요 :
천인대책은 한 무제(漢武帝) 때 동중서(董仲舒)가 올린 대책문(對策文)을 가리킨 것으로, 그 글이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요지로 삼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인데, 무제는 그의 의론을 흔쾌히 채납(采納)했었다.
[주D-003]전후 출사(前後出師)할 …… 시기였네 :
전 후 출사는 촉한의 승상 제갈량이 위()나라를 치려고 전후 두 차례에 걸쳐 출병(出兵)한 것을 가리키는데, 그는 전후로 출병할 때마다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출사표(出師表)〉를 올렸는바, 그 내용은 모두 충성(忠誠)이 극도로 발로된 것이었다. 특히 〈전출사표(前出師表)〉에서는선제께서 창업을 반도 못 이룬 채 중도에 붕어하시고, 지금 천하가 셋으로 나누어진 가운데 익주가 피폐하니, 이는 참으로 존망이 달린 위급한 때입니다.[先帝創業未半而中道崩殂 今天下三分 益州疲弊 此誠危急存亡之秋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백시(伯始) 중용(中庸) :
백 시는 후한(後漢) 때의 재상 호광(胡廣)의 자인데, 호광은 성품이 근후(謹厚)하고 사체(事體)에 밝아서, 비록 강직한 풍도는 없으나 조정(朝廷)에 보익(補益)된 바가 많았으므로, 당시 경사(京師)의 속담에만사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백시에게 물으라, 천하의 중용이 호공에게 있다네.[萬事不理問伯始 天下中庸有胡公]”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남들은 …… 말하네 :
현 성은 당 태종(唐太宗) 때의 명신(名臣) 위징(魏徵)의 자이다. 위징은 원래 간언(諫言)을 잘했는데, 한번은 단소루(丹霄樓)에서 주연(酒宴)을 베풀 적에 태종이 크게 웃으면서 말하기를남들은 위징의 거동(擧動)이 데면데면하다고 말들 하지만, 나는 그가 애교부리는 것만 보일 뿐이다.” 하니, 위징이 재배(再拜)하고 말하기를폐하(陛下)께서 신()을 그렇게 유도하시므로 신이 감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받아주지 않으신다면 신이 감히 역린(逆鱗)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계곡 …… 소나무 :
좌 사(左思)의 〈영사(詠史)〉 시에지엽 무성한 건 계곡 밑의 소나무요, 가지 드러낸 건 산꼭대기 어린 나무라, 저 한 치쯤의 어린 나무 줄기로, 이백 척 소나무를 가리누나.[鬱鬱澗底松離離山上苗 以彼徑寸莖 蔭此百尺條]”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의(義)를 …… 같거니와 :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장차 펴기 위함이요, 의리를 정밀히 연구하여 신의 경지에 드는 것은 장차 쓰이기 위함이다.[
之屈 以求信也 精義入神 以致用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8]대인(大人) …… 있어서지 :
《주역》 건괘(乾卦) 구오(初九) 효사(爻辭)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성군(聖君)이 현신(賢臣)을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고의(古意)

 


여름날이 마치 겨울밤 같아서 / 夏日似冬夜
오래 얼어붙어 흐르지를 않으니 / 永矣凝不流
뜬구름이 산봉우리를 이루어 / 浮雲成峯巒
십이루
가 요원하기만 하구나 / 迢遞十二樓
농가에서는 비가 내리길 바라서 / 田家望虹霓
때로 정성을 다해 기도하지만 / 瀝血時叩頭
하늘은 높고 귀신은 악한 데다 / 天高鬼神惡
더구나 힘으로 구할 바 아님에랴 / 又況非力求
태양은 어김없이 운행하건만 / 金烏政飛

거센 바람은 어느 때나 그칠런고 / 風伯何時休

사람 마음이 곧 천지의 마음이라 / 人也天地心
마음이 평온하면 원기도 화하련만 / 心平元氣和
필부는 제자리를 얻지 못하고 / 匹夫不得所
바다엔 거센 물결이 이누나 /
大海揚其波
고인은 하나의 경을 지키어 / 古人守一敬
치우침이 없이 공명정대했으니 / 耿耿無偏頗
방훈은 천하에 덕을 입히었고 /
放勳被四表
중화는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
重華庸作歌
세도가 나날이 쇠퇴해져만 가니 / 世道日以降
우선 안락와를 구해야겠네 / 且求安樂窩

오동나무가 지금은 나지를 않고 / 梧桐今不生
봉황새도 지금은 울지를 않아서 /
鳳凰今不鳴
권아시가 다시 지어지지 않으니 / 卷阿不復作
아득히 성왕이 생각나네 / 渺渺思周成

주 성왕이 지금 임금이 되었으니 / 周成爲今主
주공 단이 의당 충성을 다하리 / 公旦披忠誠
치효엔 사람의 의심이 풀리고 /
人疑釋
풍우엔 하늘 마음이 밝혀졌네 /
風雨天心明
천재 아래 오늘날에 이르러서 / 至今千載下
어린 임금 맡길 법칙이 되고말고 / 托孤有法程

 

[주D-001]십이루(十二樓) : 선인(仙人)이 사는 누각으로 곤륜산(崑崙山)에 있다고 한다.
[주D-002] 바다엔 …… 이누나 :
천 하가 어지러움을 뜻한다. 성왕(成王) 때에 월상씨(越裳氏)가 중역(重譯)을 통하여 주공(周公)에게 꿩을 바치면서, 오래도록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지 않고 바다에는 파도가 일지 않아서 반드시 중국에 성인(聖人)이 있다고 여겨 찾아왔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방훈(放勳)은 …… 입히었고 :
방훈은 요() 임금의 별칭(別稱)인데, 《서경(書經)》 요전(堯典)빛난 덕이 천하에 입혀졌으며, 하늘과 땅에 미치었다.[光被四表 格于上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중화(重華)는 …… 불렀는데 :
중화는 순() 임금의 별칭인데, 순 임금이 일찍이 노래를 지어 불러서 신하들을 권면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益稷》
[주D-005]안락와(安樂窩) :
낙양(洛陽)의 천진교(天津橋) 남쪽에 있던 소옹(邵雍)의 거실(居室) 이름인데, 소옹은 여기에 살면서 안락 선생(安樂先生)이라 자호(自號)하였다.
[주D-006]오동나무가 …… 생각나네 :
《시 경》 대아(大雅) 권아(卷阿)봉황새 훨훨 날아서, 높은 뫼에 앉아 우네. 오동나무가 나서, 산 동쪽에 우뚝 섰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한 데서 온 말인데, 권아는 꼬부라진 언덕을 가리키고, 봉황은 현사(賢士)를 비유한 것으로, 이 시는 바로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을 시종(侍從)하여 꼬부라진 언덕에서 놀 때, 현사들을 널리 구해야 한다는 뜻으로 성왕을 경계하여 부른 노래이다.
[주D-007]치효()엔 …… 풀리고 :
치 효는 《시경》 빈풍(豳風)의 편명으로, 주공(周公)이 일찍이 악인(惡人)들을 올빼미에 비유하여 지은 시이다. 일찍이 주 무왕(周武王)이 은()을 멸하고 나서 주()의 아들 무경(武庚)을 세워 은의 후사를 잇게 하고 자기 아우인 관숙(管叔), 채숙(蔡叔)을 보내어 무경을 감시하게 했었다. 뒤에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成王)이 즉위함에 이르러 주공이 어린 조카를 위해 섭정(攝政)을 하게 되자, 관숙, 채숙이 마침내 무경에게 붙어서주공이 장차 어린 성왕에게 불리할 것[公將不利於孺子]’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는데, 성왕이 이 소문을 듣고 숙부인 주공을 의심하기에 이르렀으므로, 주공이 마침내 혐의를 피해 동쪽으로 가 있으면서 성왕에게 이 시를 지어 주어 나라의 다급한 사정을 알렸던 것이다.
[주D-008]풍우(風雨)엔 …… 밝혀졌네 :
성 왕(成王)은 주공(周公)의 〈치효(
)〉 시를 보고 의심을 조금은 풀었으나 완전히 다 풀지는 못했었다. 그해 가을 곡식이 다 여물었을 때 갑자기 큰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쳐서 벼가 다 쓰러지고 큰 나무가 뽑히는 변이 일어나자, 성왕이 대신(大臣)들과 함께 주공이 일찍이 쇠줄로 봉해 놓은 금등서(金縢書)를 열어보았는데, 일찍이 무왕(武王)이 병들어 위독했을 때 주공이 무왕 대신 자기를 죽게 해 달라고 선왕(先王)께 기도한 글이 그 속에 들어 있었다. 성왕이 그것을 보고는 울면서 말하기를지금 하늘이 위엄을 나타내어 주공의 덕을 밝힌 것이니, 이 소자(小子)가 주공을 친히 맞아들이겠다.” 하고, 교외(郊外)로 나가자, 바람이 반대쪽으로 불어서 쓰러진 벼가 다시 다 일어났다는 데서 온 말이다. 《書經 金縢》

사물을 관찰하다.

 


위대하도다 사물 관찰하는 곳에 / 大哉觀物處
형세 따라 스스로 모양 드러내네 / 因勢自相形
맑은 물도 깊으면 빛이 검어지고 / 白水深成黑
뻘건 산도 멀리 보면 푸려뵈누나 / 黃山遠送靑
자리가 높으면 위엄은 절로 중하고 / 位高威自重
집이 누추하면 덕은 더욱 향기롭네 / 室陋德彌馨
늙은 목은은 말을 잊은 지 오래라 / 老牧忘言久
작은 뜨락에 이끼만 가득하구려 / 苔痕滿小庭

 

회포를 읊다.

 


늙은 목은은 읊조림을 스스로 마지않노니 / 老牧吟哦不自休
쇠퇴함 또한 풍류인 줄을 그 누가 알리오 / 誰知潦倒亦風流
해마다 병석에서는 꾀꼬리 소리를 듣고 / 年年病枕聞黃鳥
밤마다는 고깃배랑 흰 갈매기 꿈을 꾸네 / 夜夜漁舟夢白鷗
중화로 천지의 자리함
이야 감히 바라랴만 / 敢望中和位天地
매양 포폄하는 건 춘추에 견주려 한다오 / 每將褒貶擬春秋
인간 만사는 끝내 기필하기 어려운 거라 / 人間萬事終難必
온종일 유유히 홀로 누각에 기대 있노라 / 盡日悠悠獨倚樓

 

[주D-001]중화(中和) 천지의 자리함 : 《중 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중화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하고, 만물이 길러진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집주(集註)에 의하면, 이것을 일러, 학문(學問)의 극공(極功)이요, 성인(聖人)의 능사(能事)라고 하였다.

한 상당(韓上黨)이 신륵사(神勒寺)의 비문(碑文)을 쓴 데 대하여 읊다.

 


유항이 신륵사의 비문 대서했는데 /
柳巷大書神勒碑
성상은 부왕의 스승을 크게 존중하네 /
聖心方重父王師
물결에 비친 밝은 달은 중 앞에 다가오고 / 映波明月僧前轉
길 곁의 푸른 산은 말 위에서 옮겨 가누나 / 傍路靑山馬上移
술 대해 시 읊음은 응당 매우 즐겁지만 / 對酒吟詩應樂甚
존경하는 고향은 돌아가려도 더디어라 / 恭桑敬梓欲歸遲
목은이 유독 병이 많음을 그 누가 알랴 / 誰知牧隱偏多病
공연히 승방을 향해 생각나는 게 있구려 / 漫向禪窓有所思

 

[주D-001]유항(柳巷)이 …… 대서(大書)했는데 : 유항 한수(韓脩)가 일찍이 신륵사보제선사사리석종비(神勒寺普濟禪師舍利石鐘碑)의 글씨를 썼던 것을 가리킨다.
[주D-002]성상은 …… 존중하네 :
여기의 성상은 바로 우왕(禑王)을 가리킨다. 보제 선사(普濟禪師) 나옹(懶翁)이 공민왕(恭愍王) 때에 왕사(王師)가 되었으므로 한 말이다.

즉사(卽事)

 


석양에 뜬구름이 문득 하늘을 가리더니 / 浮雲忽蔽天
바람 불고 가랑비가 뜰 앞에 뿌리는구나 / 風吹微雨洒庭前
농가에 천금 밭이랑이란 말이 있거니와 / 田家有語千金畝
연래엔 한 말 쌀이 또한 돈과 맞먹는다오 / 斗米年來亦直錢

 

희우행(喜雨行)

 


금년 봄 가뭄으로 누런 먼지가 벌창하니 / 今年春旱黃埃漲
늙은 농부들은 공연히 허희탄식만 하네 / 南畝老農空悵惘
위로 구중궁궐에선 성상이 진념하시고 / 上徹九重軫淵衷
대신들도 걱정되어 마음 몹시 졸이는데 / 廟堂不樂心忡忡
성탕께서 희생되어 육사로 책망하실새 /
成湯爲牲責六事
하늘이 감동하여 잠깐 새에 뜻을 돌리니 / 天意爲回俄頃裏
벽운
의 신통한 술법은 우레처럼 빨라라 / 碧雲神術疾如雷
녹장
을 밤에 아뢰매 하늘 문이 열리더니 / 綠章夜奏玄關開
석양엔 빗방울이 잠깐잠깐 뚝뚝 듣다가 /
來滴點乍霑洒
밤에는 등잔 앞에 낙숫물이 죽죽 내리네 / 入夜簷溜燈前掛
병든 나는 일어나 앉아 미칠 듯이 기뻐라 / 病夫起坐喜欲狂
외람된 은총 입어 한가히 녹 먹는 터이니 / 食祿閑居叨寵光
영원한 천명 기도해 우리 임금 받들고요 / 祈天永命奉我后
우순 풍조 이루어 백성도 잘 살길 바라네 / 庶調玉燭民財阜
밭둑의 누런 보리는 온 대지가 아득하고 / 麥壟黃雲
地遙
무논의 푸른 볏잎은 하늘 연해 살랑대네 / 稻田翠浪連天搖
누가 알았으랴 하느님께 깊은 뜻이 있어 / 誰知天公有深意
창생들을 끝까지 이렇게 보호해줄 줄을 / 竟使蒼生保終始
조용히 읊어 희우행을 줄잡아 얽으노니 / 微吟排比喜雨行
목은의 못 잊는 정을 응당 가련케 여기리 / 當憐老牧難忘情

 

[주D-001]성탕(成湯)께서 …… 책망하실새 : 탕 임금이 일찍이 칠 년 대한(大旱)을 만나서 스스로 자기 몸을 희생(犧牲)으로 삼아 상림(桑林)의 들에서 기도할 적에 여섯 가지 일로 자신을 책망하여 이르기를정사가 간략하지 못한가, 백성이 직업을 잃었는가, 궁실이 높은가, 부녀자의 청탁이 성한가, 뇌물이 행해지는가, 아첨하는 무리가 많은가?[政不節歟 民失職歟 宮室崇歟 女謁盛歟 苞苴行歟讒夫昌歟]”라고 하자,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천 리 지방에 큰비가 내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벽운(碧雲) :
저자의 글 가운데 양 벽운(楊碧雲), 또는 양 벽운 노선생(楊碧雲老先生) 등으로 여러 차례 나오는 사람인데, 그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당시 기우제(祈雨祭)를 주관했던 듯하다.
[주D-003]녹장(綠章) :
도가(道家)에서 하늘에 제사(祭祀)할 때 쓰는 주문(奏文)을 가리키는데, 이는 특히 청등지(靑藤紙)에다 주서(朱書)로 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즉사(卽事)

 


여강의 양쪽 언덕에 보리 한창 가을이거니 / 驪興兩岸麥秋深
농촌 생활 이만하면 마음에 맞으련만 / 田舍生涯已稱心
한스러워라 백발이 되어도 가지 못하고 / 自恨白頭猶不去
뿌연 먼지 속에서 세월만 보내다니 원 / 軟紅塵底送光陰

얼굴 대하면 산과 바다 겹겹이 깊어라 /
對面重重山海深
유방백세 유취만년
도 마음 따라 하겠지 / 流芳遺臭亦從心
누가 홀로 서서 되레 느낌이 많게 했나 / 誰敎獨立翻多感
주역의 도는 본디 음을 억제할 뿐이라네 / 易道由來只抑陰

꾀꼬리 우는 곳에 푸른 숲은 깊기도 해라 / 流鶯啼處綠林深
여름 경치 선명하니 내 마음도 유쾌하네 / 夏景鮮明快我心
꽃다운 풀에 연기 끼어 들판은 자욱한데 / 芳草和煙靄平野
좋은 바람이 비 불어 흐린 하늘 희롱하누나 / 好風吹雨弄輕陰

 

[주D-001]얼굴 …… 깊어라 : 사람들과 서로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담화를 나누더라도 상대방의 심중(心中)을 전혀 알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유방백세(流芳百世) 유취만년(遺臭萬年) :
유 방백세는 훌륭한 명성을 후세에 남기는 것을 말하고, 유취만년은 악명(惡名)을 후세에 남기는 것을 말하는데, ()나라 때 환온(桓溫)이 일찍이 역심(逆心)을 품고 말하기를기왕 후세에 훌륭한 명성을 남기지 못할진댄, 만세 뒤에까지 악명도 남기지 못하겠느냐.[旣不能流芳後世 亦不足復遺臭萬載耶]” 한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눈병은 해마다 발작하고요 / 眼疾年年發
미친 맘은 나날이 새로워지네 / 狂心日日新
시서는 마냥 호기를 길러 주고 / 詩書養豪氣
약물은 쇠한 몸을 붙들어 주누나 / 藥餌益衰身
외물 접함은 되레 세속과 똑같고 / 接物還同俗
글 짓는 건 점차 참을 잃어가거니 / 爲文漸喪眞
먼 후일에 곧은 붓대를 잡고서 / 他年携直筆
관대히 봐줄 이가 그 누굴런고 / 末減是何人

 

벽운(碧雲)이 와서 기우제(祈雨祭)가 즉시 응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왕의 마음 순일하여 하늘 마음과 같은데 / 王心一哉同天心
벽운이 표문 아뢰자 하늘이 침침해졌네 / 碧雲表奏天沈沈
하늘 마음은 만고에 인애롭기만 하건만 / 天心仁愛亘萬代
본디 간악한 무리들이 화기를 해친다오 / 自是傷和多孔壬
필부필부도 가벼이 볼 수 없는 것인데 / 匹夫匹婦不可下
더구나 간인이 오르고 현자가 침체함에랴 / 何況奸升賢者沈
민가의 밥 짓는 연기는 전혀 볼 수 없고 / 閭閻煙火寂如水
지금은 환난도 많고 병고도 많은 터인데 / 今乃多故多呻吟
천심을 돌리는 그대의 신술이 아니었다면 / 非君神術可回天
어찌 큰 가뭄에 단비를 오게 할 수 있으랴 / 何得大旱來甘霖
백성 생계 국가 비용이 걱정 없게 되었고 / 民生國用已無患
타던 싹 문드러진 잎이 모두 숲을 이루어 / 焦芽爛葉皆成林
생기 넘쳐 자라는 게 앎이 있는 듯하니 / 欣欣向榮似有知
남녘 들 농부의 마음을 알 수 있다마다 / 可見南畝農夫心
하늘 마음 왕의 마음 백성들의 마음이 / 天心王心民物心
본디 하나임을 알기 어려운 게 아니로다 / 本一也故非難諶
서로 의지하고 느끼고 겉과 속이 되어서 / 相依相感相表裏
좌우에 충만하여라 상제가 강림하시네 /
洋洋左右上帝臨
벽운은 신통한 술법 지닌 걸 자랑 마소 / 碧雲莫詫抱神術
깊숙한 서연에서 운한을 한 번 강하자 / 一講雲漢書筵深
글 다 읽기도 전에 빗소리가 이르러서 / 舌聲未盡雨聲至
그 훌륭한 일 지금까지 자자하게 전하네 / 勝事籍籍傳至今
목옹의 백성 근심은 타고난 천성이라 / 牧翁憂民出天性
몹시 감격해 눈물이 옷깃을 적시누나 / 感極涕淚霑衣襟
기도하면 보답 있음은 고금의 법칙이니 / 有祈有報古今典
벽운은 의당 더욱 정성을 다해야 하리 / 碧雲當更敷丹忱

 

[주D-001]좌우(左右)에 …… 강림하시네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깨끗이 재계하고 의복을 성대히 입고 제사를 받들게 하면, 신명이 충만하여 마치 위에 있는 듯하기도 하고, 좌우에 있는 듯하기도 하느니라.[使天下之人齊明盛服 以承祭祀 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 한 데서 온 말이다. 《中庸章句第16章》
[주D-002]운한(雲漢) :
《시 경》 대아(大雅)의 편명인데, 이 시는 곧 주 선왕(周宣王) 때에 오랜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모두 굶어 죽게 되자, 선왕이 온 정성을 기울여 한재(旱災)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고 대부(大夫) 잉숙(仍叔)이 백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는 선왕의 정성을 아름답게 여겨 부른 노래이다.

박총(朴叢) 상서(尙書)삼교(三敎)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떠난 다음에 세 편()을 읊어 이루다.

 


이씨
가 들어온 이래 우리 도가 쇠해져서 / 二氏以來吾道衰
온 천하가 이씨 판이니 어드메로 갈거나 / 滔滔天下欲何之
신심엔 누가 있어 끝내 바로잡기 어렵고 / 身心有累終難正
생사는 끝없으니 결국 의심을 할 수밖에 / 生死無涯竟致疑
정정 공부
는 샘물이 막 퍼져가듯 성대하고 / 靜定功夫泉始達
치평 사업
은 해가 처음 더디듯 느리다네 / 治平事業日初遲
그 누가 알리오 이씨의 적멸과 허무 / 誰知寂滅虛無處
폈다 말았다 하는 뜬구름과 똑같은 줄을 / 政似浮雲舒卷時

백발에 곤궁히 살다가 지기가 쇠해지니 / 白髮窮居志氣衰
늙은이는 편케
을 분명히 알겠네 / 明知老者在安之
요순의 덕화는 참으로 즐거움직 하건만 / 唐虞聲敎眞堪樂
불로의 기심은 모두가 의문투성이로다 / 佛老機關儘可疑
여울물은 아주 맑고 진흙물은 아주 흐리고 / 沙水至淸泥水濁
매화는 유독 이르고 국화는 유독 더디되 / 梅花偏早菊花遲
조화옹이 만물 주심은 지공무사하나니 / 化工付物無私意
다만 침착하게 시의에 순응할 뿐이로다 / 祗得悠悠且順時

늙어서 정력 쇠한 게 스스로 부끄러워라 / 自愧老來精力衰
맑고 깨끗한 소년 최종지
가 부럽네그려 / 少年蕭洒羨宗之
억양한 것은 시경의 정과 부정에 있고 /
抑揚毛什邪兼正
아주 적절함은 춘추의 믿음과 의문일세 /
深切麟經信與疑
높은 집 긴 숲에선 꾀꼬리가 곱게 울고 / 高屋長林鶯語滑
뜰 한쪽 가랑비엔 제비가 천천히 나누나 / 半庭微雨燕飛遲
공자의 화평한 기상은 천지와 같거니와 / 仲尼和氣如天地
제자의 재주 명성은 각각 한때일 뿐이네 / 諸子才名各一時

 

[주C-001]삼교(三敎) : 유교(儒敎), 도교(道敎), 불교(佛敎)를 합칭한 말이다.
[주D-001]이씨(二氏) :
도교(道敎)와 불교(佛敎)를 합칭한 말이다.
[주D-002]정정(靜定) 공부 :
《대학장구(大學章句)》 경 1장에지선에 그칠 줄을 안 다음에야 뜻에 정향이 있게 되고, 뜻에 정향이 있는 다음에야 마음이 안정된다.[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치평(治平) 사업 :
치평은 《대학장구》 팔조목(八條目) 가운데 맨 마지막인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합칭한 말이다.
[주D-004]적멸(寂滅) 허무(虛無) :
적멸은 불가(佛家)의 말이고, 허무는 도가(道家)의 말이다.
[주D-005]늙은이는 편케 해야 :
자로(子路)가 공자의 뜻을 물었을 때 공자가 이르기를, “늙은이를 편안하게 봉양해 주고, 친구들을 신의로 대해 주고, 젊은이를 은혜로 감싸 주는 것이다.[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公冶長》
[주D-006]맑고 …… 최종지(崔宗之) :
최 종지는 당 현종(唐玄宗) 때의 풍류 문인(風流文人)이었는데,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종지는 맑고 깨끗한 아름다운 소년인데, 술잔 들고 백안으로 청천을 바라보면, 깨끗하기 바람 앞에 선 옥수와 같아라.[宗之蕭灑美少年擧觴白眼望靑天 皎如玉樹臨風前]”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억양(抑揚)한 …… 있고 :
이는 《시경(詩經)》의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의의를 가지고 한 말이다.
[주D-008]아주 …… 의문일세 :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환공(桓公) 5년 조()《춘추》의 사건을 기록하는 원칙은, 확실한 일은 확실하게 기록하고, 의문의 일은 의문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春秋之義 信以傳信 疑以傳疑]” 한 데서 온 말이다.

들은 일을 기록하다.

 


새파란 증지에 맑은 물결 넘실거릴 제 / 甑池浮碧灩晴波
양부 관원들 유람차 수레들이 모였는데 / 兩府游觀簇玉珂
계곡 햇빛 옮겨올 땐 봄바람이 화창터니 / 溪日欲移風淡蕩
구름이 막 어울자 비가 죽죽 내리네 / 野雲纔合雨滂

연달은 등성이 끊긴 곳은 평야를 굽어보고 / 連岡斷處臨平野
천둥 번개 치는 곳엔 큰 강물이 쏟아지누나 / 飛電明時決大河
태평 시대 참으로 즐거운 일을 보았으니 / 看取太平眞樂事
곧바로 중화의 송을 노래하고 싶네그려 /
絃歌直欲頌中和

 

[주D-001]곧바로 …… 싶네그려 : ()나라 때 익주 자사(益州刺史) 왕양(王襄)이 천자(天子)의 풍화(風化)를 백성들에게 널리 펴고자 하여 문사(文士) 왕포(王褒)를 시켜 중화(中和), 낙직(樂職), 선포(宣布)의 시()를 짓게 한 다음, 가인(歌人)들을 선발하여 이 시를 녹명(鹿鳴)의 가락에 맞추어 노래하도록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소년 시절엔 번천의 시구를 배웠는지라 / 少年詩句學樊川
소매에 좋은 바람이 솔솔 불었더니 / 襟袖好風吹颯然

늘그막엔 몸 한가하여 맘 절로 유쾌하나 / 老境身閑心自快
장편 시엔 기가 약해 말이 온전치 못하네 / 長篇氣弱語難全
갠 구름은 해를 희롱해 밝았다가 어둡고 / 晴雲弄日明還晦
방초엔 연기 끼어 끊겼다 연했다 하누나 / 芳草和煙斷復連
반드시 공부처럼 추재는 되지 않을지라도 / 未必麤才似工部
관과 패옥 떨어뜨림은 누가 가련타 하랴 / 倒冠落佩有誰憐


진강에서 행락하던 시절을 추억하노니 / 憶在鎭江行樂時
선창에서 생선회를 은실같이 쳐 놓고는 / 船窓斫膾凍銀絲
향인들 반갑게 서로 부르고 가고 했는데 / 眼靑鄕里相徵逐
백발엔 풍진 속에 이별만이 익숙해졌네 / 頭白風塵慣別離
바닷가 드날린 돛은 길이 꿈에 들거니와 / 海岸揚帆長入夢
산비탈 나막신 차림엔 시 읊기도 좋았지 / 山崖著屐好吟詩
병석에 누워 어떻게 떨쳐 날 수 있으랴 / 病牀安得奮飛去
슬피 바라보노니 뜬구름은 어디로 가는고 / 悵望浮雲何所之

 

[주D-001]소년 시절엔 …… 불었더니 : 번천(樊川)은 두목(杜牧)의 호인데, 두목의 〈추사(秋思)〉 시에가랑비는 못 위에서 보이고, 좋은 바람은 옷깃과 소매가 아네.[微雨池塘見 好風襟袖知]”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반드시 …… 하랴 :
공 부(工部)는 당 현종(唐玄宗) 때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낸 두보(杜甫)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두목(杜牧)에 대한 고사를 잘못 두보에게 붙인 듯하다. 추재(麤才)는 재학(才學)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특히 당()나라 때는 직급(職級) 낮은 무관(武官)을 가리키기도 했는데, 두목의 〈만청부(
晴賦)〉에서 대숲을 가리켜대숲은 밖에서 둘러싸 십만의 장부와 같아라, 갑옷과 칼날 어지러이 뒤섞여 빽빽이 포진해 빙 둘러 시립하였네.[竹林外裹兮十萬丈夫 甲刃樅樅密陳而環侍]” 한 데 대하여, 소식(蘇軾)이 〈죽오(竹塢)〉 시에서 그를 풍자하여추재인 두목은 참으로 가소로워라, 대를 군중의 십만 장부라고 부르다니.[麤才杜牧眞堪笑 喚作軍中十萬夫]” 한 데서 온 말이고, 관과 패옥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곧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역시 두목의 〈만청부〉에관과 패옥을 떨어뜨리고 세상과 멀어지다.[倒冠落佩兮 與世闊疏]” 한 데서 온 말이다.

이상(楊二相)이 회군(回軍)하여 광주(廣州)에 이르렀다가 적()이 진포(鎭浦)에 있다는 말을 듣고 즉각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말을 듣다.

 


양상은 연래에 용맹이 무리에 뛰어나서 / 楊相年來勇絶倫
의로운 담이 몸보다 크다고들 떠들어 대네 / 喧傳義膽大於身
적 등쪽에 돌진해서 날랜 장수 사로잡고 / 橫馳賊背擒梟將
민심 크게 위로하여 중한 신하 되었구려 / 大慰民心作重臣
한데서 먹고 자느라 노고도 지극했거니와 / 宿露
風勞亦至
산 등지고 바다 제압해 국운은 새로워졌네 / 負山控海命惟新
변보를 듣고 다시 남으로 내려갔다 하니 / 歸途聞變還南下
나라뿐인 충성이 조관들을 감동케 하누나 / 國爾忠勤動搢紳

 

[주C-001] 이상(楊二相) : 고려 말기의 무신(武臣)으로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른 양백연(楊伯淵)을 가리킨다.

새벽에 일어나서 느낌이 있어 짓다.

 


비둘기 울고 참새 짖고 닭까지 울어대라 / 鳩鳴雀噪雜雞聲
새벽 꿈이 막 깨일 제 방 안이 훤하구나 / 曉夢初回小室明
만물은 조화 따라 천변의 묘를 일으키는데 / 群動天機千變妙
홀로 있자니 야기는 십분 맑기만 하구려 / 獨居夜氣十分淸
노력하길 싫어 않는 공자를 본받고요 /
爲之不厭師宣聖
무궁문에 들어감은 광성자를 생각하노니 /
去入無窮憶廣成
필경엔 참으로 즐거운 곳을 누가 알런고 / 畢竟誰知眞樂處
쓸쓸한 백발 거울에 나타난 이 사람일세 / 蕭蕭白髮鏡中生

거센 비바람 몰아치듯 붓 달려 써내리니 / 驟雨狂風逐筆聲
금석 소리 쟁글쟁글
신명을 감동시키네 / 鏘鳴金石感神明
일만 이랑 물결도 넓다 할 것 없거니와 / 波瀾萬頃難爲闊
가닥 빙설
은 되레 맑음을 양보하리 / 氷雪三條却讓淸
감히 지부처럼 널리 포함한다 말하랴만 / 敢道包幷如地負
본래부터 버릇이 천성처럼 된 것이라오 / 由來習慣似天成
새벽 창 앞에 홀로 앉으니 생각이 끝없어 / 曉窓獨坐思無盡
둑에 봄풀 갑자기 생각나누나 /
忽憶池塘春草生

구름 사이 기러기 시위 소리에 떨어져라 / 雲間飛雁落絃聲
만리 밖 가을 터럭이 눈 앞에 환하구려 / 萬里秋毫眼底明
쏘던 유기
는 맘이 절로 교묘했고 / 善射由基心自巧
자주 굶던 안자
는 처신이 따라서 깨끗했네 / 屢空顔子迹仍淸
태어날 땐 누구나 밝은 덕을 부여받나니 / 初生一是承明命
원하는 건 기어코 집대성을 이룸이로세 / 所願期於集大成
후일에 화살 놓아 정곡을 맞히고 나면 /
發矢他年中正鵠
다시 천지를 따라서 내 생을 마치련다 / 更從天地謝吾生

 

[주D-001]야기(夜氣) : 적막(寂寞)한 한밤중에 아무런 사념 망상(邪念妄想)도 없이 청명(淸明)해진 정신(精神) 상태를 가리킨다.
[주D-002]노력하길 …… 본받고요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성이나 인에 대해서는 내가 감히 자처하랴만, 하려고 노력하기를 싫어 않고, 남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음에 있어서는 그렇게 한다고 이를 수 있다.[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주D-003]무궁문(無窮門)에 …… 생각하노니 :
광 성자(廣成子)는 황제(黃帝) 때의 신선(神仙)인데, 황제가 일찍이 공동산(空同山)으로 그를 찾아가서 도()를 묻자, 그가 대답한 말 가운데오거라, 내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저 지극한 도는 끝이 없건만 사람들은 다 끝이 있다고 여기고, 저 지극한 도는 헤아릴 수 없건만 사람들은 모두 다함이 있다고 여긴다.……나는 장차 속세의 그대를 속세에서 벗어나 무궁한 지도(至道)의 문으로 들어가 무극의 들판에서 노닐게 하려고 한다.[來余語女 彼其物無窮 而人皆以爲有終 彼其物無測 而人皆以爲極……余將去女 入無窮之門 以遊無極之野]” 한 데서 온 말이다. 《莊子 在宥》
[주D-004]금석(金石) 소리 쟁글쟁글 :
이 백(李白)의 〈망앵무주회예형(望鸚鵡洲懷禰衡)〉 시에오강에서 앵무부를 지을 제, 붓 들어 쓰매 뭇 영재를 초월했거니, 쟁글쟁글 금옥 소리 떨치어라, 구절마다 훨훨 날며 우는 듯하네.[吳江賦鸚鵡落筆超群英 鏘鏘振金玉 句句欲飛鳴]” 한 데서 온 말로, 문장이 아주 뛰어남을 의미한다.
[주D-005] 가닥 빙설(氷雪) :
두목(杜牧)의 〈설청방조하(雪晴訪趙
)〉 시에 의하면오늘 그대 방문한 건 도리어 뜻이 있거니, 두 가닥 빙설을 홀로 와서 보기 위함일세.[今日訪君還有意 二條氷雪獨來看]” 하였는데, 삼조(三條)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주D-006]지부(地負) :
대지는 만물을 다 실어 주고 바다는 온갖 냇물을 다 받아들인다는 지부 해함(地負海函)의 준말로, 즉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모두 한데 포괄함을 의미한다.
[주D-007] 둑에 …… 생각나누나 :
남조(南朝) ()나라 사영운(謝靈運)이 꿈에 족제(族弟)인 사혜련(謝惠連)을 만나서못가에 봄풀이 난다.[池塘生春草]’라는 시구를 얻고 아주 만족하게 여겼다. 여기는 형제간을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8]활 …… 유기(由基) :
유기는 바로 춘추 시대 초()나라 사람으로서 활을 잘 쏘기로 천하에 이름이 높았던 양유기(養由基)를 가리킨다.
[주D-009]자주 굶던 안자(顔子)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안회는 도에 가깝구나, 자주 굶어도 변함이 없구려.[回也 其庶乎屢空]”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주D-010]집대성(集大成) :
공자는 다른 성인(聖人)들의 여러 가지 특징을 한 몸에 다 갖추었다 하여 공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孟子 萬章下》
[주D-011]후일에 …… 나면 :
공 자가 이르기를군자는 다투는 바가 없는 것이나, 반드시 활쏘기만큼은 다툴진저.……활을 쏘는 자는 어떻게 쏘고 어떻게 듣는가? 소리를 좇아서 화살을 놓되, 화살을 놓아서 정곡을 맞히는 이만이 그 현자인저.[君子無所爭 必也射乎……射者 何以射何以聽 循聲而發 發而不失正鵠者 其唯賢者乎]” 한 데서 온 말이다. 《禮記射義》

어제 유항(柳巷)의 초청을 받고 가서 술을 반정도나 거나하게 마셨는데 몸이 피곤해서 정신없이 아침까지 자고 손이 오자 석양까지 손을 응접(應接)하고 나서 홀로 한 수를 읊다.

 


취중의 세월이 북처럼 빠르기만 하여라 / 醉裏光陰疾似梭
병든 몸은 피곤하고 눈은 어른거리네 / 病軀沈困眼生花
누추한 시골에 방초 나는 걸 왜 꺼리랴 / 肯嫌陋巷生芳草
매양 높은 누에 올라 저녁놀을 읊노라 / 每向高樓詠落霞
이단을 헤아리매 하늘 뜻은 모르겠지만 / 商確異端天莫測
조용히 담소 나누니 해는 기울어가누나 / 笑談淸坐日將斜
유연자적하게 인간 세상을 망각했거니 / 悠然忘却人間世
어찌 바다 모래를 애써 있으랴 /
入海何勞更算沙

 

[주D-001]어찌 …… 있으랴 : 바다 속의 모래를 센다는 것은 곧 학문을 하는 데 있어 소득은 없이 정력만 낭비하는 것을 의미한 말이다.

황 광주 경덕(黃廣州敬德)을 보내다.

 


중외에 명성 날리며 큰 재주 펼치더니 / 中外蜚英展大才
이미 하위직 벗어나 삼공에 가까워졌네 / 已離平地近三台
막부에 방책을 짜내매 방책은 훌륭하고 / 轉籌幕府謀猷壯
여염을 다스리는 덴 담소하며 처리하네 / 製錦閭閻笑語開
사면의 구름 같은 산은 관사를 옹위하고 / 四面雲山擁官舍
한 가닥 강가의 숲은 어대를 둘러쌌도다 / 一條江樹遶漁臺
청풍정에 오르면 생각이 끝없을 터인데 / 淸風亭上思無盡
언제나 술잔 대해 달 뜨는 걸 바라 볼꼬 / 對酒何時望月來

 

명일 서연(書筵)에 진강(進講)을 하게 되었는지라, 옛날 선왕(先王)께서 총애해 주신 은혜를 추념(追念)하니, 감격스러움을 감당할 수 없어 한 수를 읊어 이루다.

 


병든 몸이 태평 만나서 얼마나 다행한지 / 病軀何幸遇昌辰
매양 성상의 부름 받고 대궐을 들어가네 / 每荷宣招入紫宸
더구나 서연에 강의할 일을 만났음에랴 / 況値書筵當講義
학술이 아직 어두운 게 부끄러울 뿐일세 / 自慚學術尙迷眞
얼음 있어 여름날에도 응당 안 더울 게고 / 氷峰永日應無暑
대궐이라 맑은 바람에 절로 먼지 없으리 / 玉宇淸風自絶塵
단술이건 바늘방석이건
다 상관치 않고 / 設醴針氈皆已矣
원컨대 하늘을 대신해 순순히 계도하련다 / 願天啓迪代諄諄

 

[주D-001]단술이건 바늘방석이건 : 단 술은 한()나라 때 초 원왕(楚元王)의 사부(師傅) 중에 목생(穆生)이 술을 마시지 못한 관계로 원왕이 주연(酒宴)을 베풀 때마다 항상 목생을 위해 단술을 준비했던 데서 온 말로, 즉 현사(賢士)를 예우하는 것을 의미하고, 바늘방석은 진()나라 때 직신(直臣) 두석(杜錫)이 민회태자(愍懷太子)를 자주 간()함에 있어 언사(言辭)가 매우 간절했으므로, 태자가 그것을 걱정한 나머지, 두석이 항상 앉는 방석 속에다 바늘을 꽂아 놓아서 두석이 바늘에 찔려 피가 철철 흘렀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매우 야박한 대우를 의미한다.

전라 안부(全羅按部)가 세린(洗鱗)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세린어가 지금은 흔치 않거니와 / 洗鱗今罕有
병든 이에는 먹기도 가장 좋아라 / 病齒最相宜
부질없이 경요의 보답에 비기어 / 漫擬瓊瑤報
애오라지 한 수 시에 의탁하노라 / 聊憑一首詩

 

[주D-001]경요(瓊瑤) 보답 : 경요는 아름다운 옥을 가리키는데 《시경(詩經)》 위풍(衛風) 모과(木瓜)값싼 모과를 내게 주길래, 값진 옥으로 보답했노라.[投我以木瓜 報之以瓊]” 한 데서 온 말이다.

5 26일 상()이 서연(書筵)에 계시어, () ()이 《논어(論語)》의윗사람이 친한 이에게 후하면 백성들이 인에 흥기하고,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인심이 각박해지지 않는다.[君子篤於親 則民興於仁 故舊不遺 則民不偸]”는 글에 대하여 진강(進講)을 마친 다음 시학 내관(侍學內官)이 높은 목소리로 이 글을 두어 번 읽고 나자, 상께서 친히 술을 내리시므로, 절하고 마신 다음 곧장 총총걸음으로 나와서 집에 돌아와 피곤한 나머지 그대로 누웠다가 한참 만에야 일어났다.

 


명덕 신민의 체용이 갖춰졌거니와 /
明德新民體用俱
흠이란 글자는 요순의 도에 으뜸이었네 /
欽之一字冠唐虞
친척에 후하고 친구 사랑하는 양심이 발하면 / 篤親卹舊良心發
후해지고
인에 흥기하는 훌륭한 교화 펴지리 / 歸厚興仁美化敷
정미한 뜻 진술키 어려워 마음 다시 겁나고 / 精義難陳心更怯
쇠하는 나이 이미 지나서
얼굴은 수척하네 / 衰年已過貌仍癯
어느 날에나 소광처럼 사직하고 돌아가 / 乞歸何日如疏廣
황금 갖고 동해에서 스스로 즐겨볼거나
/
東海黃金得自娛

 

[주D-001]명덕 신민(明德新民)의 …… 갖춰졌거니와 : 명 덕 신민은 곧 《대학장구(大學章句)》 경 1장에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 데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그치는 데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 한 데서 온 말인데, 즉 위의 제목에 나온 《논어》의 문구(文句) 중 독어친(篤於親), 고구불유(故舊不遺)는 명덕(明德)과 체()에 해당하고, 민흥어인(民興於仁), 민불투(民不偸)는 신민(新民)과 용()에 해당함을 이른 말이다.
[주D-002]흠(欽)이란 …… 으뜸이었네 :
흠은 곧 공경하라고 경계한 말로, 특히 《서경》 요전(堯典), 순전(舜典)에서 흠재(欽哉)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후해지고 :
증자(曾子)가 이르기를죽은 이에게 상례를 신중히 하고 제사에 정성을 다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갈 것이다.[愼終追遠 民德歸厚矣]”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學而》
[주D-004]쇠하는 …… 지나서 :
나이 50세가 넘었음을 뜻한다. 《예기(禮記)》에 의하면, 나이 50에 쇠하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주D-005]소광(疏廣)처럼 …… 즐겨볼거나 :
한 선제(漢宣帝) 때 태자 태부(太子太傅) 소광이 자기 조카인 태자 소부(太子少傅) 소수(疏受)와 함께 상소(上疏)하여 사직하자, 천자(天子)가 황금(黃金) 20근을 하사하고 태자가 50근을 주므로, 이것을 가지고 고향인 동해(東海)로 돌아가서 날마다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친척과 친구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베풀어 즐기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漢書 卷71 疏廣傳》

상당군(上黨君) 한공 맹운(韓公孟雲)이 최 판삼사(崔判三司)의 화상(畫像)을 가지고 내 집에 와서 그 화상을 마룻대에 걸어 놓고 보니, 신채(神彩)가 매우 위엄이 있어 보이므로, 시를 지어 찬미(讚美)하는 바이다.

 


흰 머리 흰 수염에 두 볼은 불그레한데 / 雪鬢霜髭兩
갑자기 헛간 같은 내 집에 와서 앉았네 / 忽然來坐草廠中
갑옷 빛은 번쩍여라 천둥 바람이 진동하고 / 甲光有爛風雷動
눈빛은 자주 돌려라 천지가 무인지경일세 /
屢回天地空
산 뽑을 힘만 믿는다고 스스로 비웃지만 / 自笑拔山徒恃力
관일지충 홀로 지녔다고 남들은 말한다네 / 人言貫日獨能忠
머리 위의 밝디밝은 태양이 있는 한은 / 明明頭上跳丸處
영원토록 위령이 우리 해동을 비춰주리 / 永世威靈照海東

 

권 상주(權尙州)의 편지를 받았는데, 서늘한 대자리까지 부쳐 주었다.

 


상주의 동쪽 가이 예가 바로 용궁인데 / 尙州東畔是龍宮
퇴임하여 머물러라 고인 풍도가 있구려 / 罷任留居有古風
한 장의 좋은 대자리를 보내 준 까닭은 / 送至一張涼席好
더위에 지친 늙은이를 위로코자 함일세 / 欲於炎暑慰衰翁

 

()을 중단하다.

 


병을 무릅쓰고 대궐에 추주하노니 / 力疾趨丹陛
내 인생 백발에 다행하기도 해라 / 吾生幸白頭
글방의 앉은 좌석은 편치 못한데 / 書房坐未穩
좋은 음식은 자주자주 내려 주누나 / 玉食賜來稠
송악산 길목을 되돌아 바라보며 / 回望松山路
돌아와 유항의 누각을 올랐는데 / 歸登柳巷樓
한 인아 친척이 나를 부르는지라 / 招呼有姻

미리 두려워 땀이 물 흐르듯 하네 / 預怕汗如流

 

민중립(閔中立) 시랑(侍郞)이 두 어버이에게 헌수(獻壽)하면서 자기 아우 총랑(摠郞)을 시켜 나를 초청하였는데, 나는 앓고 난 나머지 더위가 무서워서 나가지 못하고 붓을 달려 써서 절하고 바치는 바이다.

 


여강의 수려한 기운은 발양하는 나머지요 / 驪江秀氣發揚餘
한산의 고독한 인생은 앓고 난 처음일세 / 馬邑孤生病起初
화려한 자리 가려 하나 더위가 두려워라 / 欲赴華筵畏炎熱
병든 몸 기거 조심함을 가련히 여기겠지 / 須憐瘦骨愼興居
술잔 음식 즐비하여 향기론 내음 풍기고 / 杯盤錯落香風動
관현악 소리 청아할 제 일기도 화창하네 / 絲竹輕淸化日舒
취중에는 자연히 얻고 잃음 같아지나니 /
醉裏自然齊得喪
두 어버이 무양하여 길이 광영 누리리라 / 兩親無恙永終譽

 

[주D-001]취중에는 …… 같아지나니 : 소식(蘇軾)의 〈한위공취백당기(韓魏公醉白堂記)〉에바야흐로 한 번 취하는 데에 형체를 부치고 나면 얻고 잃음이 똑같게 되고, 재앙과 복을 잊게 된다.[方其寓形於一醉也 齊得喪 忘禍福]”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정전
의 남긴 뜻이 다 무너지진 않았는데 / 井田遺意未全隳
제현이 다시 생각하지 않은 게 애석하구나 / 可惜諸賢更不思
구는 얕고 혁은 깊어 수리를 도모하였고 /
溝淺洫深行水利
가물면 막고 장마지면 터서 천시에 응했네 / 旱潴潦泄應天時
지금은 농산 낙야로 조세 거두기 급급한데 / 籠山絡野收租急
조월 경운
을 하자도 조정 떠나기 더디어라 / 釣月耕雲去國遲
죽기 전에야 감히 호구책을 잊을 수 있으랴 / 未死敢忘糊口計
자고로 어진 정사는 사리 도모에 가깝다네 / 自來仁政近營私

 

[주D-001]정전(井田) : ()ㆍ주() 시대의 토지 제도로서, 사방(四方) 1(一里) 9백 묘()의 전지(田地)를 정() 자 모양으로 9등분하여 주위의 8백 묘는 사전(私田)으로 삼아 여덟 집에 나누어 주어 경작하게 하고, 한 중앙의 1백 묘는 공전(公田)으로 삼아 여덟 집이 이를 공동으로 경작해서 그 수확만을 국가에 바치도록 했던 제도이다.
[주D-002]구(溝)는 …… 도모하였고 :
구 와 혁()은 모두 밭 사이의 봇도랑을 가리킨다.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의하면, 사방 1리에 9()가 정()이 되는데, 정과 정의 사이에 너비 4, 깊이 4척으로 내는 도랑을 구라 하고, 사방 10(十里)가 성()이 되는데, 성과 성의 사이에 너비 8, 깊이 8척으로 내는 도랑을 혁이라고 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농산 낙야(籠山絡野) :
정 전의 제도가 없어짐으로써 부강(
)한 자들이 전지(田地)를 겸병하는 폐단을 뜻하는데, 백거이(白居易)의 〈의정전천맥책(議井田阡陌策)〉에정전의 천맥을 무너뜨려 전지를 넓히는 일이 일어나자, 겸병하는 길이 열려서, 심지어 빈곤한 자에게는 발을 세울 곳이나 송곳 하나 찌를 땅도 없게 하고, 부강한 자에게는 산과 들의 이끗을 멋대로 장악하게 하였다.[阡陌作則兼幷之門開至使貧苦者無容足立錐之地 富者專籠山絡野之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조월 경운(釣月耕雲) :
달빛 아래서 낚시질을 하고, 산속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뜻으로, 전하여 은거 생활을 의미한다.

가지산(迦智山) 영공(英公)이 차()를 선사하였으므로, 붓을 달려 받들어 사례하다.

 


천지간의 맑은 기운이 십분 온전하여라 / 乾坤淸氣十分全
노선사와 짝한 신령한 차를 부쳐주었네 / 寄向靈芽伴老禪
병 많은 동갑 친구 심신이 몹시 쇠약한지라 / 多病同庚昏耗甚
타심통
이 있는 곳에 동정의 생각 보임일세 / 他心通處示哀憐

 

[주C-001]가지산(迦智山) 영공(英公) : 가지산은 구산 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이고, 영공은 고려 말기의 선승(禪僧)으로 호는 고저(古樗)인데, 저자와는 동갑 친구였다고 한다.
[주D-001]타심통(他心通) :
불교 용어인 타심지통(他心智通)의 준말로, 다른 사람이 각각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모두 자유자재로 헤아려 아는 불가사의한 심력(心力)을 말한다.

소재 법석(消災法席)으로 인하여 강()을 중단하다.

 


재변 만나 얇은 얼음 깊은 못처럼 두려워해 / 遇災深懼似氷淵
군왕께서 수일 동안 강석을 중단하였네 / 數日君王輟講筵
본디 오행이 자주 질서를 잃은 탓이거니 / 自是五行頻失序
한 생각이 곧 천심에 통한단 걸 알아야지 / 須知一念旋通天
부처가 중생 구함은 끝내 증험키 어려우니 / 慈悲濟物終難驗
요컨댄 측은한 맘을 굳게 갖는 데 있다오 / 惻隱存心要在堅
백발의 늙은 신하는 달리 기도할 건 없고 / 頭白老臣無所禱
인욕이 서로 졸여대는 것만이 걱정이라오 / 只憂人欲苦相煎

 

흥취를 풀다.

 


원룡의 호기
는 전고에 없이 호탕했는데 / 元龍豪氣浩無前
허명은 혹 전할 수도 있음을 자신하노라 / 自信虛名或可傳
젊은 날엔 악서의 천거도 한 번 받았는데 / 少日鶚書曾一薦
늘그막엔 세 잠 잔 누에꼴이 되어 버렸네 / 老年蠶箔已三眠
도는 요순의 도 아니면 입 열기 어렵거니와 / 道非堯舜難開口
학문은 안자 증자와 감히 어깨를 겨룰쏜가 / 學與顔曾敢比肩
붓 잡으면 때로 맘이 절로 환히 드러나서 / 把筆有時心自露
푸른 하늘에 구름 조각 하나 없는 것 같네 / 更無纖靄隔靑天

 

[주D-001]원룡(元龍) 호기(豪氣) : 원 룡은 삼국 시대 위()나라 진등(陳登)의 자이다. 허사(許汜)가 일찍이 유비(劉備)와 이야기를 나누던 가운데, 자기가 한번은 진등을 찾아갔더니,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주인 자신은 높은 와상으로 올라가 눕고, 손님인 자기는 아래 와상에 눕게 하더라고 말하자, 유비가 말하기를그대의 말이 채택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인(小人) 같았으면 자신은 백척루로 올라가 눕고 그대는 땅바닥에 눕게 했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전하여 지기(志氣)가 고상함을 뜻한다.
[주D-002]악서(鶚書) 천거 :
후 한(後漢) 때 공융(孔融)이 예형(禰衡)을 천거하는 표문(表文)사나운 새 수백 마리가 물수리 한 마리만 못하나니, 예형을 조정에 등용하면 반드시 볼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鷙鳥累百 不如一鶚 使衡立朝 必有可觀]” 한 데서 온 말이다.

월성(李月城) 성서(成瑞) 을 곡()하다.

 


중원에 기염을 떨치긴 대단히 어렵거니와 / 大難氣焰照中原
몸이 태평 시대 만나서 지위 또한 높았네 / 身際休明位又尊
고량진미 실컷 먹으며 세월 가는 걸 잊고 / 厭飫膏粱忘歲月
조정에 우유자적하며 천지에 감사했는데 / 優游廊廟謝乾坤
술자리의 뛰어난 흥은 운우처럼 사라지고 / 樽前逸興雨雲散
도성의 옛 놀이는 천지가 온통 깜깜하네 / 輦下舊游天地昏
경성을 수복해낸 공이 가장 성대하기에 / 克復京城功最盛
산하 대려 맹세의
이 영원히 남았구려 / 山河帶礪誓辭存

 

[주C-001] 월성(李月城) : 고 려 말기의 문신으로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진 이성서(李成瑞)를 가리키는데, 그는 일찍이 사신(使臣)으로 원()나라를 두 차례 다녀왔고, 공민왕(恭愍王) 때 홍건적(紅巾賊)이 쳐들어왔을 적에는 양광도도순문 겸 병마사(楊廣道都巡問兼兵馬使)로 홍건적을 막아 싸웠고, 또 흥왕사(興王寺)의 변란 때는 최영(崔瑩)과 함께 이를 진압하여 이상의 공으로 흥왕토적공신(興王討賊功臣)과 첨병보좌공신(僉兵輔佐功臣)에 각각 1등으로 책록되었으며, 그 후 찬성사(贊成事)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다시 원나라에 가서 대위감 대경(大尉監大卿)이 되었다.
[주D-001]산하 대려(山河帶礪) 맹세의 :
한 고조(漢高祖)의 공신(功臣)들을 봉작(封爵)할 때 맹세한 말에황하가 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이 숫돌처럼 닳아질 때까지 나라가 영원히 평안하여 복록이 후손에게 미치리라.[使河如帶 泰山如礪 國以永寧 爰及苗裔]” 한 데서 온 말이다.

양 이상(楊二相)이 원수(元帥)들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오는데, 나는 앓고 난 나머지 기력이 쇠약해져서 교외(郊外)에 나가 맞이하지 못하고 단율(短律)을 읊어 이루다.

 


적개심 불탄 충성이 장렬하더니 / 敵愾忠肝壯
개선하매 기쁜 기색이 넘치누나 / 班師喜氣浮
조정에선 의뢰하여 존중하거니와 / 朝廷方倚重
종사에는 정히 큰 복을 남기었네 / 宗社政敷休
음지
의 예의는 원만히 갖춰졌고 / 飮至禮儀備
공훈 책록한 은택은 하 두터워라 / 策功恩澤優
어느 사관이 붓대를 잡을런고 / 史官誰秉筆
혁혁한 공이 천추에 빛나리라 / 赫赫照千秋

또 제하다.

병든 몸은 유독 더위를 두려워하고 / 病軀偏畏熱
절뚝발은 편안함만 찾을 뿐이네 / 蹇步祗求安
힘은 약해 겨우 몸을 지탱하는데 / 力弱僅支骨
땀은 흘러서 얼굴에 가득하구나 / 汗流方滿顔
좋은 시는 눈 앞에서 생겨나고 / 好詩生眼底
그윽한 흥취는 붓끝에 부치었네 / 幽興寄毫端
몸소 친히 맞고 보내지 못한 건 / 不暇躬迎送
한가함을 유독 아껴서가 아니라네 / 非關酷愛閑

 

[주D-001]음지(飮至) : 장군이 출정했다가 개선하여 돌아오면 군신(群臣)과 함께 종묘(宗廟)에 가서 개선을 고()하고 연음(宴飮)하는 예식을 말한다.

즉사(卽事)

 


철없는 애들 공 하나를 둘이 서로 다퉈라 / 騃稚爭毬兩不降
누가 사욕이 벌써 창자에 가득케 했는고 / 誰敎私欲已盈腔
하인 불러 제 뜻에 만족하게 만들어주니 / 呼僮製作足渠意
문득 화기가 얼굴에 가득함을 보겠네그려 / 便見中和開六窓

부질없이 아이들 서로 버티는 걸 보노니 / 謾向兒曹志不降
뱃속에 아무것도 없어 양의 창자 같아라 / 腹中無物似羊腔
울고 웃음을 인하여 본심을 볼 수 있기에 / 只因啼笑良心見
늙은 목은은 흔연히 병석 창문 기대 있노라 / 老牧欣然倚病窓

북해에 모직물 먹고 끝내 항복 않아서 / 北海飡氈竟不降
일편단심이 철석 간장으로 되었거니와 / 丹心一點鐵爲腔

가련하여 강총은 지금 몹시 쇠했는데 /
可憐江摠今衰甚
달이 중천에 이르러 그림자만 창에 드누나 / 月到天中影入窓

 

[주D-001]북해(北海)에선 …… 되었거니와 : 한 무제(漢武帝) 때 소무(蘇武)가 흉노(匈奴)에 사신(使臣)으로 갔을 적에 흉노의 선우(單于)가 그를 굴복시키려고 온갖 협박을 가했으나 듣지 않았다. 흉노가 그에게 더욱 고통을 주기 위해 그를 대교(大窖) 안에 억류시키고 음식을 주지 않았는데, 때마침 눈이 내리자, 소무는 눈과 모직물(毛織物)을 씹어 먹고 연명(延命)을 하므로, 흉노가 그를 신()이라고 여겨 다시 북해(北海) 가의 인적 없는 곳에 그를 안치하고 양()을 치게 하니, 소무는 그곳에서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면서 끝내 굴복하지 않고 있다가 19년 만에야 한()과 흉노의 화친(和親)으로 인하여 한나라로 돌아오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54 蘇武傳》
[주D-002]가련하여라 …… 쇠했는데 :
강 총(江摠)은 양()나라 때의 문인(文人)으로 특히 오칠언시(五七言詩)에 뛰어나서 명성이 높았는데, 그는 양 무제(梁武帝) 태청(太淸) 3년에 나이 31세로 후경(侯景)의 난리를 피해 유랑하기 시작하여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진 문제(陳文帝) 천가(天嘉) 4년 나이 45세가 되어서야 조정에 돌아왔던바, 그때까지도 머리가 아직 안 세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저자 자신은 강총에 비하여 빨리 노쇠했음을 의미한 것이다. 두보(杜甫)의 〈만행구호(
行口號)〉 시에멀리 양나라 강총에게 부끄러워라, 집에 돌아와서도 머리 아직 안 세었었지.[遠媿梁江摠 還家尙黑頭]” 하였다.

홀로 앉아서 읊다.

 


적적한 긴긴 날에 의관도 차리지 않고 / 寥寥長晝懶衣冠
홀로 앉아 시 읊자니 글자마다 어려워라 / 獨坐吟詩一字難
주렴 가득 숲 그림자는 눈 밑에 흔들리고 / 樹影滿簾搖眼底
문 밀치니 산빛은 붓끝에 들어오누나 / 山光排闥入毫端
동방에 으니 서복이 생각나고요 /
扶桑日出思徐福
요해엔 하늘 낮아라 유안을 바라보네 /
遼海天低望幼安
고금은 유유하여 변천이 무상하여라 / 今古悠悠如轉燭
거울 속에 흰 털이 점차 자주 보이네 / 鏡中衰白漸頻看

 

[주D-001]동방에 …… 생각나고요 : ()나라 때 방사(方士) 서복(徐福)이 삼신산(三神山)을 찾으러 동해(東海)에 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요해(遼海)엔 …… 바라보네 :
유 안(幼安)은 삼국(三國) 시대 위()나라 관녕(管寧)의 자이다. 그가 일찍이 황건적(黃巾賊)의 난리를 피하여 요동(遼東)으로 건너가 수십 년을 지냈던 데서 온 말인데, 그가 요동에 있는 동안 시서(詩書)와 예양(禮讓)을 가르쳐서 요동의 풍속을 많이 변화시켰다고 한다. 《三國志 卷11

윤월(閏月) 초하루에 읊다.

 


산가지 펼쳐서 천세를 연구하고 / 布算窮千歲
정전에 거하여
사시에 응하여라 / 居門應四時
덥고 서늘함엔 육기의 순함을 알고 / 炎涼知氣順
아침저녁으론 별의 옮김을 보도다 / 昏旦見星移
천문 관측은 처음에 나누어 명하고 /
曆象初分命
상도와 권도는 각각 적합하게 하고 / 經權各適宜
흠명에다 경수를 병행함으로써 /
欽明幷敬授
한 시대의 태평을 만들어 내었네 / 釀出一雍

 

[주D-001]정전(正殿) 거(居)하여 : 《주례(周禮)》 춘관(春官)윤달에는 왕자에게 조서를 내려 한 달 동안 정전에서 정무를 처리하도록 한다.[閏月 詔王居門終月]”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육기(六氣) :
(), (), (), (), (), ()의 여섯 가지 기운(氣運)을 가리킨다.
[주D-003]천문 관측은 …… 명하고 :
() 임금이 희중(羲仲), 희숙(羲叔), 화중(和仲), 화숙(和叔)에게 각각 나누어 명하여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관측해서 천지사시(天地四時)를 잘 다스려 백성들에게 사시(四時)를 공경히 알려 주도록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堯典》
[주D-004]흠명(欽明)에다 경수를 병행함으로써 :
흠명은 요() 임금의 공경스럽고 총명함을 이른 말이고, 경수(敬授)는 요 임금이 희중, 희숙, 화중, 화숙에게 각각 나누어 명하여 사시를 백성들에게 공경히 알려 주도록 한 것을 말한다. 《書經 堯典》

염동정(廉東亭)의 초청을 받고 가서 취하여 돌아오다.

 


동정은 자주로 술자리를 베풀고 / 東亭頻置酒
상당군과는 매양 함께 다니노라니 / 上黨每聯鞍
앉은 손은 모두 호걸들인데 / 坐客皆豪傑
나 혼자만 유독 나잔이로세 / 吾生獨懶殘
술그릇은 고금의 것이 섞여 있고 / 樽罍今古雜
과실들은 치아를 시리게 하네 / 苽菓齒牙寒
석양에는 가랑비가 좋이 내리어 / 微雨
來好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 주누나 / 爽然淸肺肝

 

[주D-001]나잔(懶殘) : ()나라 때 고승(高僧) 명찬 선사(明瓚禪師)가 게을러서 남이 먹고 남은 찌꺼기 음식만을 먹었다 하여 그를 나잔이라 호칭했었는데, 여기서는 곧 노쇠하고 게으른 저자 자신을 나잔에 비유한 것이다.

민제(閔霽) 사성(司成)이 내방(來訪)하다.

 


수년 동안 서로 잊은 적 드물어 / 數年罕相置
한 번 보니 기쁨을 감당키 어렵네 / 一見喜難勝
수척한 얼굴은 지금 오히려 더한데 / 瘦貌今猶甚
고상한 담론은 전부터 능한 바였지 / 高談舊所能
산중 생활은 맑아 속되지 않으나 / 山居淸不俗
차 마심은 썰렁하여 중과 똑같네 / 茗飮冷如僧
서로 대하니 세정 잊은 진 오래이나 / 相對忘懷久
다만 백발이 더한 게 부끄럽구려 / 徒慙白髮增

총각 시절 향교에 유학할 적엔 / 總角游鄕校
근엄한 태도로 한어를 배웠었지 / 嚴顔學漢音
모임에선 담론을 그치지 않았고 / 會間談不置
병든 뒤엔 취하여 서로 찾았네 / 病後醉相尋
나는 질병이 천지처럼 거대하여 / 我病乾坤大
공무를 잊은 지 이미 오래이지만 / 公亡歲月深
사성은 이제 나이 사십이거니 / 司成今不惑
가정 교훈을 모쪼록 마음 쓰게나 / 家敎幸溫燖

잠시 사성과 담화를 나누노라니 / 暫與司成話
국학에서 놀던 옛일이 생각나네 / 因思國學游
높은 당에선 갈포옷을 풀어 헤치고 / 堂高披細葛
깊은 방에선 겹갖옷을 껴입고서 / 室密擁重裘
학문 강습으로 정신은 통창해지고 / 講習精神暢
마음 수양으로 덕업은 두터워졌네 / 藏修德業優
회고해 보니 참으로 한바탕 꿈이라 / 回頭眞一夢
몸과 세상이 모두 유유할 뿐이로세 / 身世儘悠悠

 

조용히 앉아서 읊다.

 


조용히 앉으매 몸은 더욱 한적하나 / 靜坐身彌適
말을 많이 하매 기는 절로 손상되네 / 多言氣自傷
생애는 달팽이 뿔 위의 싸움 같은데 / 生涯戰蠻觸
세도는 복희씨의 성대를 능가하누나 / 世道傲羲皇
여름 숲에선 서늘한 바람이 일고 / 夏木生涼吹
연기 낀 마을엔 석양이 내려가네 / 煙村下夕陽
담박함 속에 늙는 것도 잊고서 / 澹然忘老境
아득히 요순 시대를 상상하노라 / 渺渺想虞唐

 

즉사(卽事)

 


한바탕 맑은 바람이 갑자기 불어오니 / 一陣淸風忽颯然
정신이 상쾌하고 기거가 편안하여라 / 精神爽快起居便
뜬구름은 저절로 반공중 밖에 걷히고 / 浮雲自卷半天外
석양은 문득 높은 나무 끝에 비치누나 / 返照忽明高樹顚
고율 전편은 그 누가 독보를 누렸던고 / 古律全篇誰獨步
단청의 묘한 곳은 절로 심법이 있다네 / 丹靑妙處自單傳
목옹은 흥취 만나면 참으로 미치광이라 / 牧翁遇興眞狂甚
모자 벗고 옷깃 헤치니 신선 된 기분일세 / 露頂披襟骨欲仙

 

잠부사(蠶婦詞) 전편(前篇)

 


새로 딴 누에고치 황금과 같아라 / 新繭如黃金
살갗 드러날까 걱정할 것 없구려 / 不愁露肌膚
뽕을 따러 조석으로 분주하나니 / 採桑走朝夕
어린 여종들 그 얼마나 괴로운고 / 艱哉小女奴
하지만 나는 아노라 눈서리 속에 / 懸知霜雪中
너만 유독 바지도 속옷도 없는 걸 / 爾獨無袴

저 혁혁한 고관대작들은 / 當朝赫赫者
거마가 도성 거리에 넘치거니와 / 車馬溢通衢
국은이 어찌 두텁지 않으리오 / 國恩豈不厚
깊은 방엔 두꺼운 담요를 깔고 / 密室敷
氍毹
나가서는 겹갖옷을 걸쳐 입고서 / 加之以重裘
거나하게 취하여 노래를 불러대네 / 乘醉仍歌呼
가벼운 비단으론 봄옷을 짓거니 / 輕羅剪春服
어찌 또 구슬 같은 땀을 흘릴쏜가 / 肯復流汗珠
인생은 정해진 명이 있는 법인데 / 人生有定分
감히 관부에 바치는 걸 원망하랴 / 敢怨充官租

 

잠부사(蠶婦詞) 후편(後篇)

 


빈풍은 아송을 일으켰거니와 / 豳風興雅頌
누에 농사가 농사의 반이었네 / 桑蠶半農功

명주베 짜서 붉은 곱게 들여 / 載績朱孔陽
공자의 몸에 입혀 주길 원했으니 / 願被公子躬

화기가 성대하게 넘쳐 흘러라 / 靄然有和氣
임금께 충성함을 넉넉히 보겠네 / 足見於君忠
아 도타우신 공류 어른이 / 於戱篤公劉
내 맘 미뤄 백성과 고락 같이하니 / 推心與民同
후일에 자손이 천하를 얻어서 / 子孫得天下
온 세상이 태평하기에 이르렀네 / 擧世臻時雍
군자가 다만 농사에 힘을 쓴다면 / 君子但務本
온 집안이 곤궁하지 않으려니와 / 一家無困窮
기기를 부리고 음교를 만든다면 /
奇技淫巧作
천록이 영영 끊어지고 말리라 /
天祿其永終
누에 농사의 시가 비속하긴 하나 / 蠶詩雖鄙俚
혹 백관에게 고해줄 만도 하구려 / 或可告臣工

 

[주D-001]빈풍(豳風)은 …… 반이었네 : 빈 풍은 《시경》 국풍(國風)의 하나로, 여기서는 특히 빈풍의 칠월(七月) 편을 가리키는데, ()나라의 선조(先祖)인 공류(公劉)가 처음 빈 땅에 나라를 열고 오곡(五穀) 농사와 누에 농사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장려함으로써 백성들이 모두 잘 살게 되었던 일을 가지고 주공(周公)이 어린 성왕(成王)으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농사를 장려하여 선조 공류의 풍화(風化)를 본받도록 권하는 뜻으로 지어 부른 노래인데, 아송(雅頌)을 일으켰다는 것은 곧 아송은 천자의 조정 종묘(朝廷宗廟)의 악가(樂歌)이므로, 즉 공류가 백성들에게 농사를 장려하여 잘 살게 한 것이 끝내 천자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2]명주베 …… 원했으니 :
《시 경》 빈풍 칠월에팔월에는 아낙네들 명주베 짜서, 검은 물감 노랑 물감 곱게 들이어, 제일 고운 붉은 베를 골라 두었다, 공자님 옷을 먼저 지어 드리리.[八月載績 載玄載黃 我朱孔陽 爲公子裳]”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의 공자는 곧 공류의 아들을 가리킨다.
[주D-003]기기(奇技)를 …… 만든다면 :
주 무왕(周武王)이 주()를 치러 가기에 앞서 군사들에게 훈시한 말 가운데지금 상왕(商王) 수는……기괴한 기예를 부려서 지나치게 공교로운 물건들을 만들어 부인 달기(妲己)를 기쁘게 하고 있다.[今商王受……作奇技淫巧 以悅婦人]”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泰誓下》
[주D-004]천록(天祿)이 …… 말리라 :
천 록은 하늘이 내려 준 복록이란 뜻으로, 즉 국가의 운명을 가리키는데, () 임금이 우() 임금에게 선위(禪位)할 때에 이르기를 “……사해가 곤궁해지면 천록이 영영 끊어질 것이다.[……四海困窮 天祿永終]”고 경계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大禹謨》

송첨(松簷)에 시렁을 대서 포도 넝쿨을 옮겨오다.

 


병든 뒤로 더위 꺼리길 나만 한 이 없으리 / 病餘畏熱莫如吾
오월임에도 몸에 땀 흠뻑 난 게 싫다마다 / 仲夏猶嗔汗洽膚
풀 헛간 송첨 그늘을 이제 다 만들었거니 / 草廠松簷今始畢
아침 햇살 저녁 볕이 또 어찌 걱정될쏜가 / 朝暉夕照更何虞
비 뒤의 서늘한 기운은 옷소매를 스치고 / 雨餘爽氣侵衣袂
달 오른 맑은 그늘은 자리에 펼쳐지누나 / 月上淸陰散座隅
후일에 얼음 하사가 나에게도 미친다면 / 他日賜氷如及我
꿀물을 좋이 타서 큰 사발 가득 마시련다 / 好調崖蜜滿深甌

새로 심은 포도 넝쿨이 두어 자나 자라서 / 新種葡萄數尺長
연한 싹과 듬성한 잎이 이미 푸르러지니 / 嫩芽疎葉已蒼蒼
처마에 뿌린 빗방울은 자리를 못 적시고 / 洒簷飛雨難侵座
시렁 흔드는 청풍은 절로 당에 가득하네 / 動架淸風自滿堂
주렁주렁 가을 열매는 이슬을 드리우고 / 秋實聯珠垂湛露
한낮의 푸른 그늘은 서늘함을 보내는데 / 午陰凝碧産微涼
다시 온갖 화초들을 줄지어 심어 놓으면 / 更敎花木森成列
아침부터 석양까지 읊조리기 정말 좋으리 / 政好朝吟到夕陽

 

서연(書筵)에서 군자가 귀히 여기는 도가 지가 있다.[君子所貴乎道者三]’로부터 ‘유사가 있다.[有司存]까지를 진강(進講)하고 물러와서 소감을 기록하다.

 


도체는 널리 퍼져 절로 드러나는 법이니 / 道體周流自露呈
신심과 기수
를 빠짐없이 포함하고말고 / 身心器數盡包幷
엄한 말 바른 의리는 춘추의 법칙이요 / 辭嚴義正春秋法
순한 기운 화한 낯은 일월의 운행이로다 / 氣順顔和日月行
격물치지 제가 평천하는 차례가 있거니와 / 致格齊平終有序
마음의 보존 성찰은 기필 정밀하게 해야지 / 操存省察要須精
단표의 누추한 시골
엔 꽃다운 풀이 나고 / 簞瓢陋巷生芳草
일관의 전한 곳엔 성도가 밝아졌도다 /
一貫傳來聖道明

 

[주C-001]군자가 …… 있다 : 증 자(曾子)가 이르기를군자가 귀히 여기는 도가 세 가지가 있으니, 용모를 움직일 때는 사납고 거만함을 멀리할 것이며, 낯빛을 바르게 하는 데는 신실함에 가깝도록 할 것이며, 말을 함에 있어서는 상스럽고 도리에 어긋난 것을 멀리할 것이다. 제기를 다루는 일에 있어서는 유사가 맡아서 하는 것이다.[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斯遠暴慢矣 正顔色斯近信矣 出辭氣斯遠鄙倍矣籩豆之事則有司存]” 한 것을 이른 말이다. 《論語 泰伯》
[주D-001]신심(身心) 기수(器數) :
신심은 언어 행동(言語行動) 등 여러 가지 신심의 수양(修養)에 관한 것을 가리키고, 기수는 곧 제기(祭器)를 다루는 등의 사소한 예절을 가리킨다.
[주D-002]단표(簞瓢) 누추한 시골 :
공 자가 이르기를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 물로 누추한 시골구석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그 걱정을 견디지 못하건만,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변치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D-003]일관(一貫)의 …… 밝아졌도다 :
공 자가 이르기를삼아, 우리의 도는 하나로써 관통하느니라.[參乎 吾道一以貫之]” 하자, 증자(曾子)하고 대답했던 데서 온 말인데, 공자의 이 말은 바로 증자에게 전도(傳道)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論語 里仁》

곡 성 시중(曲城侍中), 칠원군(漆原君)이 함께 서쪽 이웃의 길창공(吉昌公)을 방문하니, 정 계림(鄭雞林)은 이미 와 있었다. 성찬(盛饌)을 베풀어 술잔이 반쯤 돌았을 때 왕 우승(王右丞), 영녕군(永寧君)이 또 와서 즐겁게 서로 수작을 하였는데 장차 헤어지려 할 때에 비가 내리자, 제공(諸公)이 모두 매우 기뻐하며 갔다. 나도 다행히 그 말석(末席)에 참여하여 율시(律詩) 여덟 구()를 읊어 이루었으니, 기쁜 뜻을 기록한 것이다.

 


국가 원로들이 서로 즐기는 뜻 깊어라 / 國老交懽用意深
애애한 화기가 하늘 마음을 감동시켰네 / 靄然和氣感天心
광대한 뜬구름 들에 나직이 퍼지자마자 / 浮雲浩浩纔低野
드문드문 가랑비가 벌써 숲에 비치누나 / 微雨疎疎已暎林
잔치론 년이나 정역을 달렸던고 /
樽酒幾年馳鄭驛
묘당에는 당일에 은림이 세차게 내리네 /
廟堂當日霈殷霖
맑은 새벽 좋은 일이 여기에 성대했어라 / 淸晨勝事斯爲盛
두 분의 왕손까지 한 자리에 참여했구려 / 兩箇公孫更盍簪

 

[주D-001] 잔치론 …… 달렸던고 : 빈 객 접대하기 좋아하는 주인(主人)을 비유한 것이다. 한 경제(漢景帝) 때 정당시(鄭當時)가 태자 사인(太子舍人)으로 있을 적에 항상 장안(長安)의 여러 교외(郊外)에 역마(驛馬)를 두어 교통의 편의를 제공해서 빈객(賓客)들을 초청해다가 밤새도록 주연을 베풀어 융숭히 접대하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묘당(廟堂)에는 …… 내리네 :
은 고종(殷高宗)이 현상(賢相) 부열(傅說)에게 명하기를만일 큰 냇물을 건너게 되면 내가 그대를 배와 노로 삼을 것이고, 만일 큰 가뭄을 만나면 그대를 장맛비로 삼을 것이다.[若濟巨川 用汝作舟楫 若歲大旱 用汝作霖雨]”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說命上》

서연(書筵)에서 증자가 이르기를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이에게 물었다.[曾子曰以能問於不能]’ 했다.”는 한 장()을 진강(進講)하였다.

 


의리는 끝내 다함이 없거니와 / 義理終無盡
현우는 본래 서로 같은 거라네 / 賢愚本自同
수많은 인민은 천하에 가득하고 / 林林滿區宇
광대함은 푸른 창공에 닿았는데 / 浩浩際虛空
몸뚱이는 분잡스럽게 생겼지만 / 軀殼雖紛糅
미세한 이치를 회통할 수 있나니 / 毫釐亦會通
그 누가 참으로 이를 실천했던고 / 誰歟眞踐得
누추한 시골에 유풍이 있었네 /
陋巷有遺風

 

[주C-001]증자(曾子)가 …… 했다 : 증 자가 일찍이 이미 작고한 안연(顔淵)을 회상하여 이르기를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이에게 묻고, 많이 알면서도 적게 안 이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꽉 차 있어도 텅 빈 것처럼 하며, 남이 범해 와도 계교하지 않던 것을, 옛날 우리 친구가 일찍이 여기에 종사했었다.[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太伯》
[주D-001]누추한 …… 있었네 :
안회(顔回)가 누추한 시골에서 매우 곤궁하게 지내면서도 낙도(樂道)의 정신을 바꾸지 않았던 데서 온 말이다.

비를 읊다.

 


가랑비가 푸른 산 아득히 내리어 / 微雨遮靑嶂
텅 빈 뜰에 푸른 이끼를 적시누나 / 空庭濕綠苔
하늘이 바야흐로 은택을 내리거니 / 天公方降澤
가뭄이 감히 재앙을 일으킬쏜가 / 旱魃敢爲災
조시 사람들은 옷소매를 적시고 / 朝市沾衣袂
임정에서는 술잔을 들어 마시네 / 林亭引酒杯
석양에는 날이 다시 맑게 개니 /
來晴更好
남쪽 밭둑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 南畝欲歸來

 

장차 서연(書筵)에 가려고 천현(穿峴)을 올라가다가 한 홀지(忽只)를 만났는데, 그가 알자(謁者)의 말을 전하여, 비가 와서 출입(出入)하기가 어려우니 신()을 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집에 돌아와 편히 앉아서 은혜에 감격한 나머지 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성주의 어짊으로 노신을 불쌍히 봐주시니 / 聖主寬仁憫老臣
우중에 편히 앉아 정신을 모으게 되었네 / 雨中安坐正凝神
항상 못 잊는 일편단심이야 누가 알랴만 / 誰知耿耿丹心在
쓸쓸한 백발 새로운 게 스스로 가소롭네 / 自笑蕭蕭白髮新
오늘날 안자 사모하긴 나뿐이 아니련만 /
今日希顔非獨我
당시에 조나라 보존할 인물 어찌 없었으랴 /
當時存趙豈無人
사문의 흥망은 도시 천명에 매인 것이니 / 斯文興喪關天命
내 충성이나 다해야지 감히 몸을 아낄쏜가 / 且盡吾忠敢愛身

 

[주C-001]홀지(忽只) : 몽고어(蒙古語)로 호위병을 일컫는 말이다.
[주D-001]오늘날 …… 아니련만 :
안자(顔子)를 사모한다는 것은 안자 같은 현인(賢人)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뜻으로, 즉 조용히 은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당시에 …… 없었으랴 :
전 국 시대 위 안희왕(魏安釐王) 연간에 진 소왕(秦昭王)이 군대를 보내 조()나라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조나라 평원군(平原君)은 본디 위 공자(魏公子) 신릉군(信陵君)의 매부였던 터라, 평원군이 위왕(魏王)과 신릉군에게 자주 서신을 보내서 구원을 요청하니, 위왕이 장군(將軍) 진비(晉鄙)로 하여금 10만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조나라를 구원하게 했다가 마침내 진왕(秦王)의 협박에 못 이겨 진비 군대의 출전을 중지시킨 채 우유부단하고 있으므로, 신릉군이 마지못하여 몰래 위왕의 병부(兵符)를 훔쳐서 진비의 진영(陣營)으로 가서 진비를 쳐 죽이고 그의 군대를 인솔하여 끝내 조나라를 구원해 주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77 魏公子列傳》

남촌(南村)의 부인(夫人)이 상당(上黨) 한공(韓公)에게 청하여 묘명(墓銘)을 썼는데, 한공이 그 묘지명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이고 관직(官職) 천제(遷除)의 연월(年月)을 고쳐 바로잡았으므로, 인하여 느낌이 있어 짓다.

 


절의와 문장에다 지위는 시중에 이르러 / 節義文章位侍中
혁혁한 가문이 우리 동방 환히 비추어라 / 家門赫赫照天東
눈 앞의 세월은 남긴 자취가 희미하건만 / 眼前歲月迷遺跡
맘 속의 시비는 지극히 공정함을 지켰네 / 皮裏陽秋秉至公
천자를 알현할 적엔 충정이 격렬했었고 / 北極風雲忠懇激
남강의 풍경 속엔 도의 정취가 농후했지 / 南江煙雨道情濃
병신년 화를 피한 더욱 어려운 일이라 /
丙申避禍尤難得
분양만 유독 종시를 이룬 것이 아니로세 /
未必汾陽獨始終

 

[주C-001]남촌(南村) : 고 려 말기의 문신 이공수(李公遂)의 호이다. 벼슬이 찬성사(贊成事), 좌정승(左政丞) 등을 거쳐 영도첨의(領都僉議)에 이르고 익산부원군(益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특히 공민왕(恭愍王)이 폐위되자 원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가서 공민왕의 복위(復位)를 극력 주청(奏請)했고, 그 후 역신(逆臣) 최유(崔濡)의 반란을 평정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워 추충수의동덕찬화공신(推忠守義同德贊化功臣)이 되었다.
[주D-001]병신년 …… 일이라 :
이 공수는 본디 기 황후(奇皇后), 기철(奇轍)과 서로 내외 사촌(內外四寸) 간이었는데, 병신년(1356, 공민왕5)에 기철이 반란을 꾀하다가 복주(伏誅)되고 그 도당(徒黨)이 모두 처벌을 받았으나, 이공수는 유독 화를 입지 않았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2]분양(汾陽)만 …… 아니로세 :
분 양은 당()나라 때의 명장(名將)으로 벼슬이 중서령(中書令)에 이르고 분양군왕(汾陽郡王)에 봉해진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킨다. 종시(終始)를 이루었다는 것은 곧 곽자의가 부귀영화를 극도로 누렸으면서도 생전(生前)과 사후(死後)에 아무 일 없이 영총(榮寵)을 끝까지 입었음을 의미하는데, 그의 열전(列傳)부귀와 장수를 누렸고, 살아서는 존경을, 죽어서는 애도함을 끝까지 입어서 신하의 도리에 조금도 결점이 없었다.[富貴壽考哀榮終始 人臣之道無缺焉]” 한 데서 온 말이다. 《舊唐書卷120 郭子儀列傳》

철원군(鐵原君) 최맹손(崔孟孫)을 곡()하다.

 


시서 숭상한 전배는 이제 드문데 / 詩書前輩少
벌열 공신은 그 몇이나 남았는고 / 閥閱幾人存
도가 곧으매 명성은 더욱 중하고 / 道直名逾重
나이 늙어 지위는 처음 높아졌네 / 年高位始尊
구름 걸친 숲은 겹겹 산이 이어졌고 / 雲林連疊嶂
연기 낀 풀은 평원이 아득한데 / 煙草靄平原
붉은 명정이 바람에 펄럭이면서 /
風吹動
아스라이 도성문을 나가는구나 / 依依出國門

 

새벽에 일어나 읊다.

 


짓누른 듯한 짙은 그늘 몹시도 침침한데 / 濃陰如壓黑沈沈
새들은 떼 지어 날아 숲 속으로 향하누나 / 瓦雀群飛向茂林
병중엔 늘 누가 신선이 됐나 의심하는데 / 病裏每疑誰換骨
한가하매 혹은 내게 맘을 수양한다 하네 / 閑中或謂我存心
정학을 배태시킨 규모는 주밀하거니와 / 胚胎正學規模密
쇠잔한 인생 길러 준 덕택은 깊기만 해라 / 卵翼殘生德澤深
언제나 사직하여 친지들 전송받고 돌아가 / 何日乞歸煩祖道
전리에서 취해 노래하며 세월을 보낼거나 / 酣歌田里送光陰

 

낮닭이 울다.

 


낮닭 우는 소리 속에 앉아 시를 쓰다가 / 午雞聲裏坐題詩
붓 놓쳐 옷에 먹물 드니 화가 몹시 나네 / 筆墜深嗔汚我衣
어찌 샘물 길어다 씻을 겨를이 있으랴 / 豈暇汲泉謀洗滌
의당 시구 퇴고하여 정미함 추구해야지 / 政當鍊句入精微
늦은 구름 술잔 앞엔 자세히 논하려니와 /
暮雲樽酒論應細
둑에 봄풀 꿈은 드물기만 하여라 /
春草池塘夢亦稀
오묘한 경지는 본디 전수하기 어렵나니 / 妙處由來難授受
생각에 사특함 없어야
기심을 잊게 되리 / 思無邪後要忘機

 

[주D-001]늦은 …… 논하려니와 : 두 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시에위수 북쪽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엔 해 늦은 구름이로다. 어느 때나 한 동이 술을 두고서, 우리 함께 글을 자세히 논해 볼꼬.[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뜻으로 쓴 것이다.
[주D-002]못 …… 하여라 :
형제간을 그리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조(南朝) ()나라 사영운(謝靈運)이 꿈에 족제(族弟)인 사혜련(謝惠連)을 만나서못가에 봄풀이 난다.[池塘生春草]’라는 시구를 얻고 아주 만족하게 여겼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생각에 사특함 없어야 :
이는 본디 《시경》 노송(魯頌) () 편의 말인데,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시경》 삼백 편에 한 마디로 전체를 포괄할 만한 말이 있으니,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하였다.

즉사(卽事)

 


어린애들이 서로 떼를 지어서 / 稚子群成隊
즐겁게 놂에 일정한 곳이 있으니 / 嬉游有定方
말하는 것은 아직 바르지 못하고 / 語言猶未正
기뻐하고 성냄은 절로 무상하지만 / 喜怒自無常
비올 땐 낙숫물 받는 데 공교롭고 / 雨滴工承

어두워지면 기꺼이 방엘 들어가네 / 天昏喜入房
다만 가엾은 건 이해에 어두워서 / 只憐迷利害
칼날에 손 다칠 줄을 모른 거로세 / 執刃不知傷

 

송악산(松岳山)에 오르다.

 


아침 일찍 송산에 올라 팔선을 제사하고 / 夙駕松山祀八仙
지성으로 기도한 게 어찌 공연한 일이랴 / 至誠祈禱豈徒然
태후를 부호하여 무궁한 복을 받게 하고 / 扶持大后膺千福
명군을 잘 인도해 만년을 누리게 함일세 / 啓迪明君享萬年
조정은 깨끗하여 일월이 환히 드리우고 / 朝著肅淸垂日月
나라 안은 조용해라 산천이 안정되었네 / 封疆靜謐奠山川
한 집안의 노약자도 아무런 탈이 없거니 / 一家老弱仍無害
어연 가까이서 강경하기를 감히 꺼릴쏜가 / 敢憚橫經近御筵

밤비가 날이 새도록 쉴 새 없이 내려서 / 夜雨連明滴不休
송악을 오르려니 자못 걱정이 되었는데 / 欲登松岳頗懷憂
계곡을 따라 오를 땐 물이 한창 급하더니 / 初沿溪足水方急
산허리에 오르니 구름이 반이나 걷혔네 / 漸上山腰雲半收
언보의 산수 그림은 품격이 고상했었고 /
彦輔丹靑高畫格
문안의 창백 시는 시인을 놀라게 했지만 /
文安蒼白駭詩流
누가 알랴 늙은 목은의 시원한 두 눈으로 / 誰知老牧雙眸冷
하늘이 아낀 아름다운 산천 다 흡수한 걸 / 收拾天慳聳玉樓

 

[주D-001]언보(彦輔)의 …… 고상했었고 : 언보는 원()나라의 화가(畫家)로서 장 도사(張道士)로도 일컬어진 장언보(張彦甫)를 가리키는데, 그는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특히 청산백운도(靑山白雲圖) 등이 유명하다. 《益齋集卷4》 《牧隱集 卷32
[주D-002]문안(文安)의 …… 했지만 :
문안은 원()나라의 학자인 게혜사(揭徯斯)의 시호이고, 창백(蒼白) 시는 그가 장언보의 청산백운도에 제()한 시이다. 《文安集 卷3

중지(仲至)의 자설(字說) 후미에 제하다.

 


넓고 깊숙한 큰 집이 바로 나의 집인데 / 渠渠夏屋是吾家
타향에 쏘다니다가 두 귀밑이 희어졌네 / 客走他鄕兩鬢華
처자식은 의지할 곳 없어 처량도 해라 / 妻子凄涼無所主
적막한 문정엔 해가 장차 비끼려 하네 / 門庭寂寞日將斜

이르기 전이다.[未至]


고생 끝에 돌아오니 실가가 그대로 있어 / 辛苦歸來有室家
창 아래 향 사르니 모두가 청화로워라 / 焚香窓戶儘淸華
다시는 타향의 나그네 될 마음 없어져서 / 無心更作他鄕客
흥이 나면 때때로 붓 들어 시를 쓰노라 / 遇興時時點筆斜

이르고 난 뒤이다.[旣至]


아득한 천지가 다 똑같은 내 집이거늘 / 茫茫天地共爲家
동이에 살면서 중화 사모한 게 한스럽네 / 只恨居夷却慕華
한 조각 마음은 우주를 능히 포괄하기에 / 一片心田包宇宙
연래엔 절뚝발이 걸음 삐딱하거나 말거나 / 年來蹇步任欹斜

본원(本原)을 말한 것이다.

 

[주C-001]중지(仲至) : 고 려 말기에 벼슬이 형조 판서(刑曹判書)에 이른 전오륜(全五倫)의 자이다. 고려가 망한 뒤에는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가 뒤에 다시 서운산(瑞雲山)으로 들어가 은거했다고 한다. 저자가 일찍이 그의 자설(字說)을 지어서 지() 자를 도()의 경지에 견주어 설명하였다.

흥취를 풀다.

 


반쯤 맑고 반쯤 흐려라 산색은 아름다운데 / 半晴半陰山色佳
연하고 끊긴 산들이 높은 서재를 옹위하네 / 聯峰斷麓擁高齋
백발의 병든 나그네는 홀로 있을 뿐이요 / 白頭病客立於獨
반가운 친구와는 함께 있기 어렵다마다 / 靑眼故人難與偕
오초의 가무
는 퍽이나 적막하기만 한데 / 楚舞吳歌殊寂寞
요순의 세월은 절로 안배되어 흐르누나 / 堯年舜日自安排
누각에 오른 흥취를 누가 있으랴 / 登樓有興誰能會
푸른 괴나무 청풍에 흔들림을 앉아 보노라 / 坐見淸風動綠槐


친인척 화목하고 며늘아이 아름다워라 / 親姻和睦婦兒佳
동해의 봄바람이 목은 집에 가득하네 / 東海春風牧隱齋
젊은 시절엔 늦게 태어남을 탄식했더니 / 少日已嗟生太

쇠한 나이엔 늙음이 함께함을 믿겠구나 / 衰年始信老方偕
꽃은 순령의 향이 피어오른 같고 /
花如荀令香初炷
산은 번후가 문을 밀치고 들어온 듯하네 /
山似樊侯闥可排
예부터 몸소 행하고 하늘에 보답 맡겼기에 / 自古躬行能責報
진공은 밑에 괴나무를 심었었다오 / 晉公堂下植三槐


늙어 가매 생각 잊으니 도미(道味)가 절로 나누나 / 老去忘懷境自佳
바다와 산 깊은 곳에 한 서재가 자리했네 / 海山深處一書齋
장편 시 단편 시는 원래 서로 섞이거니와 / 長篇短韻由來雜
밝은 달 맑은 바람은 본디 절로 함께한다오 / 明月淸風本自偕
흥취 풀기는 붓을 의탁하는 데 불과하건만 / 遣興無過托毛穎
사심 물리치는 덴 되레 방패를 쓰듯 하네 / 却邪還似用彭排
필경엔 세상일이 하늘 뜻에 달려 있거늘 / 到頭世事關天意
억지로 괴나무에 대질러 죽을 필요 있나 /
何必區區
觸槐

 

[주D-001]오초(吳楚) 가무(歌舞) : 옛날 강남(江南)의 오초 지방에 유행하던 경쾌한 음악과 우아한 춤을 가리킨다.
[주D-002]누각에 …… 보노라 :
삼 국(三國) 시대 위()나라 왕찬(王粲)이 일찍이 동탁(董卓)의 난리를 피해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가 의지해 있으면서 강릉(江陵)의 성루(城樓)에 올라가 고향을 생각하며 진퇴 위구(進退危懼)의 심정을 서술하여 〈등루부(登樓賦)〉를 지었는데, ()나라의 시인 왕유(王維)가 일찍이 왕찬의 〈등루부〉를 모방하여 지은 〈등루가(登樓歌)〉에그대 높은 누각에 올랐을 제, 높다란 기와집들 아래에 즐비하고, 열두 갈래 통한 거리 굽어보매, 들쭉날쭉 푸른 괴나무 새로 거마가 왕래했었지.[聊上君兮高樓 飛甍鱗次兮在下俯十二兮通衢 綠槐參差兮車馬]” 한 데서 온 말이다. 《王右丞集卷1
[주D-003]꽃은 …… 같고 :
순령(荀令)은 진()나라 때 벼슬이 상서령(尙書令)에 이른 순욱(荀彧)을 가리키는데, 순욱이 남의 집에 가면 그가 앉았던 자리에서 3일 동안 향내가 풍겼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꽃향기의 짙음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4]산은 …… 듯하네 :
번 후(樊侯)는 한 고조(漢高祖)의 무장(武將)으로 무양후(舞陽侯)에 봉해진 번쾌(樊噲)를 가리키는데, 한 고조가 일찍이 병이 심해져서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여 금중(禁中)에 누워 있으면서 10여 일 동안이나 군신(群臣)들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번쾌가 마침내 궁문(宮門)을 밀치고 들어가서 고조를 만났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산이 문 앞에 아주 가까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5]예부터 …… 심었었다오 :
진 공(晉公)은 송()나라 초기의 직신(直臣)으로 벼슬이 병부 시랑(兵部侍郞)에 이르고 진국공(晉國公)에 추봉(追封)된 왕우(王祐)를 가리킨다. 왕우가 일찍이 자기 뜰에 괴나무 세 그루를 심으면서 말하기를내 자손 가운데 반드시 삼공(三公)이 되는 자가 있을 것이다.” 하더니, 과연 뒤에 그의 아들 왕단(王旦)이 진종(眞宗) 연간에 18년 동안이나 재상(宰相)을 지내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인데, 소식(蘇軾)의 〈삼괴당명(三槐堂銘)〉에 의하면진공은 자기 몸에 덕을 닦고서 그 보답을 하늘에 책임 지우고 반드시 수십 년 뒤에 그 보답을 받기를 기필했다.[晉公修德於身責報於天 取必於數十年之後]” 하였다.
[주D-006]왜 …… 있나 :
춘 추 시대 진 영공(晉靈公)의 무도함이 극에 이르자 대부(大夫) 조돈(趙盾)이 자주 간하였는데, 영공이 그를 싫어하여 역사(力士) 서예(鉏麑)를 시켜 그를 죽이게 하였다. 서예가 아침 일찍 조돈의 집에 가니, 방문이 활짝 열려 있고 조돈은 이때 시각이 일러서 조복(朝服)을 입고 앉은 채로 잠시 잠이 들어 있는지라, 서예가 그 상황을 보고 물러 나와 탄식하여 말하기를임금에 대한 공경심을 잊지 않은 이는 백성의 주인이니, 백성의 주인을 죽이는 것은 충성치 못한 일이요, 임금의 명을 받들지 않는 것은 신의가 없는 일인데, 이 두 가지 죄 중에 한 가지를 범했으니, 죽는 것만 못하다.” 하고 스스로 괴나무에 머리를 들이받아 죽었다. 《春秋左傳 宣公2年》

5 9일에 홀로 앉았는데, 석양에 이르러 가랑비가 내리니, 햇빛과 빗방울이 서로 섞이었다. 인하여 최졸옹(崔拙翁) 밀직(郭密直)의 상련(賞蓮) 시에 화운한구름 새나온 석양 아래 비가 실실 내리네.[漏雲殘照雨絲絲]”라는 시구가 기억나서 마음속으로 말하기를송시(宋詩)오월이라 임평의 산 아래 길가에는, 수많은 연꽃이 모래섬에 가득하구나.[五月臨平山下路 藕花無數滿汀洲]’라는 시구도 있거니와, 5월은 정히 연꽃이 피는 때인데, 가랑비 또한 이렇게 내리니, 졸옹의 정취를 상상할 만하다. 나는 반백(斑白)의 머리로 잠시 사필(史筆)을 관령(管領)하고 있노라니, 곽공(郭公)의 옥당 늙은이[玉堂老]라는 말이 진정 나의 풍취와 흰 귀밑털[風情鬢絲]을 먼저 얻은 것이었다.” 하였다. 그래서 시 한 편을 읊어 이루어 후일 지회(池會)의 장본(張本)으로 삼는 바이다.

 


구름 새나온 석양 아래 비가 실실 내려라 / 漏雲殘照雨絲絲
세상에 회자된 예산농은의 네 구절 시로다 / 膾炙猊山四句詩
다시 풍류 넘친 옥당 노인을 생각하노니 / 更憶風流玉堂老
붉은 꽃 흰 머리가 둘이 서로 어울렸으리 / 紅粧白髮兩相宜

 

[주C-001]최졸옹(崔拙翁) : 고려 후기의 문장가로, 벼슬이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이른 최해(崔瀣)의 호이다. 또 다른 호는 예산농은(猊山農隱)이다.
[주C-002] 밀직(郭密直) :
고려 후기의 문신 곽예(郭預)를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직한림원(直翰林院), 지제고(知制誥), 춘궁 시강학사(春宮侍講學士), 대사성(大司成), 문한 학사(文翰學士) 등을 역임하고 지밀직(知密直)에 이르렀다.

10 일에 《논어(論語)》 태백(泰伯)인을 자기의 책임으로 삼거니, 또한 무겁지 않겠는가. 죽은 뒤에야 그만둘 것이니, 또한 멀지 않겠는가.[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라는 글을 진강(進講)하면서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천지의 큰 덕을 생이라 하는 것이요, 성인의 큰 보배를 자리라 하는 것이니, 어떻게 그 자리를 지킬꼬? 인이라는 것이다.[天地之大德曰生 聖人之大寶曰位 何以守位 曰仁]”라는 글로써 중() 자와 원() 자의 뜻을 증험하고, 물러 나와서 그것을 기억해 보니, 대체로 임금에게 고하는 말은 의당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뒤에 명주베[紬布]를 하사받고 시 두 수를 읊어 이루는 바이다.

 


허령한 마음 한 점이 천지와 짝하나니 / 虛靈一點配乾坤
법칙 세움은 본래부터 지존에 있다네 /
立極由來在至尊
날로 달로 진취하면 예를 회복할 것이요 / 日就月將當復禮
봄 여름의 생장시킴은 은택을 널리 폄일세 / 春生夏長要覃恩
우로가 초목에 미치면 지엽을 번성케 하고 / 霑濡及物繁枝葉
측은한 마음 보존하면 근본이 튼튼해지리 / 惻隱存心壯本根
요순 우탕 문무의 사업이 바로 귀감이거늘 / 二帝三王是龜鑑
재주 없는 소신이 감히 함부로 논할쏜가 / 小臣才短敢輕論

경연에 진강 파하니 해는 아직 오전이요 / 講罷經筵日未中
집에 오니 가랑비는 또 자욱이 내리는데 / 還家細雨又濛濛
병든 아내는 은사 받은 걸 행복해하여라 / 病妻慶幸蒙恩賜
밝은 임금은 궁한 신하를 가엾게 여기었네 / 明主包容愍老窮
혁혁한 건 한정의 옛일 상고한 노력이요 / 赫赫漢庭稽古力
적막한 건 주역의 몽매를 기르는 공이로다 / 寥寥周易養蒙功
사신의 필법은 예로부터 곧은 것이니 / 史臣秉筆由來直
보람을 이룸은 필경 하늘에 부칠 뿐이네 / 成效終當付昊穹

 

[주D-001]법칙 …… 있다네 : 법 칙은 곧 천하의 대중지정(大中至正)한 법칙이란 뜻인데, 주희(朱熹)의 〈대학장구 서(大學章句序)〉에총명(聰明)하고 예지(睿智)로워서 능히 그 본성을 다한 이가 그 사이에 나오면 하늘이 반드시 그를 명하여 억조(億兆) 백성들의 임금과 스승으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쳐 각자의 본성을 회복시켜 주도록 하였으니, 이 때문에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요순(堯舜)하늘의 뜻을 이어 법칙을 세움[繼天立極]’으로써 사도(司徒)의 직책과 전악(典樂)의 벼슬이 베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였다.
[주D-002]예(禮) 회복할 것이요 :
안연(顔淵)이 인()을 묻자, 공자(孔子)가 이르기를사욕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克己復禮爲仁]”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顔淵》
[주D-003]한정(漢庭)의 …… 노력이요 :
후 한 광무제(光武帝) 때 환영(桓榮)이 태자 소부(太子少傅)에 제수되어 거마(車馬)를 하사받고는 제생(諸生)들을 죄다 집합시키고 그 앞에 거마와 인수(印綬)를 진열해 놓고내가 오늘날에 입은 영광은 옛일을 상고한 노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힘쓰지 않아서 되겠는가.[今日所蒙 古之力也可不勉乎]”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주역의 …… 공이로다 :
《주역(周易)》 몽괘(蒙卦) 단사(彖辭)몽매한 이를 바름으로 기르는 것이 성인을 만드는 공이다.[蒙養以正 聖功也]” 한 데서 온 말이다.

강릉(江陵) 최 상국(崔相國)에게 받들어 사례하다. ()이 말하기를내가 향도(香徒)로서 시중(廉侍中)의 윗자리에 앉아서 담암(淡庵)과 바둑을 두었다.” 하였고, 또 나에게 시를 창화(唱和)한 것이 있으므로, 이 시에 그것을 언급하였다.

 


단체 조직하던 당년에 시중을 눌렀고 / 結社當年屈侍中
담암과는 또 바둑으로 자웅을 겨루었네 / 淡庵碁局又爭雄
시인의 세계에는 고하가 없는 법이니 / 詩家天地無高下
다시 청컨대 애써 내게 양보하지 마소 / 更請無勞讓牧童

 

[주C-001]향도(香徒) : 원래는 불교(佛敎) 신앙을 목적으로 조직된 신도(信徒)들의 결사(結社)를 일컬은 말이었는데, 후세에는 서로 뜻이 맞는 문사(文士)들의 친목 단체라는 뜻으로 범칭되기도 하였다.
[주C-002] 시중(廉侍中) :
문하 시중(門下侍中) 염제신(廉悌臣)을 가리킨다.
[주C-003]담암(淡庵) :
고려 말기의 문신 백문보(白文寶)의 호이다.

상당(上黨) 한공(韓公)이 증각사(證覺寺)에서 남촌(南村)의 묘명(墓銘)을 쓰는데, 나는 아픈 뒤라서 따라가 모실 수가 없으므로, 멍하니 앉아서 짓다.

 


비바람이 열흘 동안 그쳤다 오다 하는데 / 風雨連旬止又來
만송의 선원은 가파른 산에 부쳐 있기에 / 萬松禪院寄崔嵬
구원의 영혼이야 응당 서로 감응하련만 / 九原英氣知相感
수일의 청담 자리는 못 모신 게 한이로세 / 數日淸談恨莫陪
천동의 옛집엔 푸른 풀이 더부룩할 게고 / 泉洞舊家多碧草
강촌의 별장엔 푸른 이끼가 반쯤 되겠지 / 江村別墅半蒼苔
부인의 어진 행실이야 물을 것이 있으랴 / 夫人賢行何煩問
묘지명 새기어 영원한 슬픔 부칠 뿐이네 / 鐫石幽堂寓永哀

 

《논어》 태백의시로 흥기하며, 예로 서며, 음악으로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는 한 장()을 진강(進講)하였다.

 


군사가 법칙 세워 백성들을 교화한 /
君師建極化生民
오늘날에 환히 빛나 후인을 깨우치나니 / 照耀來今覺後人
대학의 처음 중간 끝까지 얻음이 있어라 /
大學初中終有得
선왕의 시와 예와 음악이 서로 따르네 /
先王詩禮樂相循
성정이 화평하여 사특함이 없는 날이요 / 性情動盪無邪日
찌꺼기가 사라져서 도를 좇는 봄이로다 / 査滓消融順道春

삼백과 삼천
이 위아래에 모두 통하나니 / 三百三千通上下
단거나 잡처
에 신명을 대하듯 해야 하리 / 端居雜處對明神

 

[주D-001]군사(君師)가 …… 교화한 : 법 칙은 곧 천하의 대중지정(大中至正)한 법칙이란 뜻인데, 주희(朱熹)의 〈대학장구 서(大學章句序)〉에총명(聰明)하고 예지(睿智)로워서 능히 그 본성을 다한 이가 그 사이에 나오면 하늘이 반드시 그를 명하여 억조(億兆) 백성들의 임금과 스승으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쳐 각자의 본성을 회복시켜 주도록 하였으니, 이 때문에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요순(堯舜)하늘의 뜻을 이어 법칙을 세움[繼天立極]’으로써 사도(司徒)의 직책과 전악(典樂)의 벼슬이 베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였다.
[주D-002]대학(大學)의 …… 있어라 :
《논 어》 태백(泰伯)의 흥어시(興於詩) 장 집주(集註)에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의하면십 세가 되면 어린이 거동을 배우고, 십삼 세가 되면 음악을 배우고 시를 외며, 이십 세가 된 다음에야 예를 배운다.[十年學幼儀十三學樂誦詩 二十而後學禮]’ 하였으니, 이 세 가지는 소학(小學)의 전수(傳授)하는 차서가 아니요, 바로 대학(大學)에서 종신토록 얻는 바의 난이(難易), 선후(先後), 천심(淺深)에 관계된 것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선왕(先王)의 …… 따르네 :
《예기》 왕제(王制)악정이……선왕의 시서 예악의 가르침을 좇아 조사를 양성하나니, 봄가을에는 예악을 가르치고, 겨울과 여름에는 시서를 가르친다.[樂正……順先王詩書禮樂以造士 春秋敎以禮樂 冬夏敎以詩書]” 하였다.
[주D-004]성정(性情)이 …… 봄이로다 :
()와 악()에서 얻은 결과를 가리킨 말이다.
[주D-005]삼백(三百) 삼천(三千) :
《예기》에 이른바, 대강령의 예 삼백 가지와 소절목의 예 삼천 가지[經禮三百 曲禮三千]를 가리킨 말이다.
[주D-006]단거(端居) 잡처(雜處) :
단거는 평상시 홀로 있을 때를 말하고, 잡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를 말한다.

개성(柳開成) 좌랑(安佐郞)이 음식을 장만해 왔는데, 마침 용부 정당(庸夫政堂)이 문안차 들렀으므로, 서로 헌수(獻酬)를 마치고 나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인척들의 후의가 정말 다정하기도 해라 / 姻親厚意儘勤渠
술 갖고 서로 이끌고 초려를 찾아 주었네 / 佩酒相携顧草廬
다행히 용부가 누추한 시골 왕림해 주니 / 幸値庸夫臨陋巷
늙은 목은은 고관 접대 자랑도스럽구려 / 堪誇老牧致高車
하늘 나직한 먼 숲엔 연기 빛이 어둠침침 / 天低遠樹煙光暗
구름 엷은 긴 공중엔 빗방울이 드문드문 / 雲薄長空雨點疎
반쯤 취해 홀로 읊으니 자못 맛이 있어라 / 半醉獨吟殊有味
백 년의 신세가 정히 한바탕 꿈이로구려 / 百年身世夢華胥

 

[주C-001] 개성(柳開成) : 당시 개성 윤(開城尹)이었던 유구()를 가리킨다.
[주C-002] 좌랑(安佐郞) :
당시 좌랑이었던 안득수(安得壽)를 가리킨다.
[주C-003]용부 정당(庸夫政堂) :
당시 정당문학(政堂文學)이었던 권중화(權仲和)를 가리킨다. 용부는 그의 자이다.

절구(絶句)

 


엷은 구름 비 머금고 해는 기울어가는데 / 薄雲含雨欲斜陽
숲에선 꾀꼬리 울고 손은 집에 가득하네 / 深樹黃
客滿堂
늘그막에 회포 풂도 운수가 있는 법이라 / 老境開懷知有數
한 동이 술 마주하여 하늘에 감사하노라 / 一樽相對謝蒼蒼

 

《논어》 태백의백성은 옳은 도리를 따라 행하게 할 수 있을 뿐이요, 그 도리의 소이연을 알게 할 수는 없다.[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는 한 장을 진강(進講)하였다.

 


고기 뛰고 솔개 날아 도체가 유행하니 /
魚躍鳶飛道體流
민생의 일상생활 우유자적하기만 해라 / 民生日用儘優游
난 백발에도 존양 공부가 아직 미진한데 / 白頭存養猶難至
백성들은 따라 행함이 각자 주도하구려 / 黔首由行却自周
자급 자족하는 백성은 항산이 넉넉커니와 / 鑿井耕田恒産足
국가 다스리는 군자는 종신토록 근심일세 / 持家奉國沒身憂
백성 새롭게 함은 마음 밝혀줌에 있나니 / 作興祗在明明德
집집마다 봉할 만한
지금 몇 해이던고 / 比屋可封今幾秋

 

[주D-001]고기 …… 유행하니 : 자사(子思)가 이르기를 《시경》에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고기는 못에서 뛴다.’ 하였으니, 천도의 유행이 위아래에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한 데서 온 말이다. 《中庸章句 第12章》
[주D-002]집집마다 봉할 만한 :
요순(堯舜) 시대 백성들은 모두 성인(聖人)의 덕에 감화되어 인물이 다 훌륭해져서 사람마다 벼슬을 줄 만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論衡 率性》

유 만호(柳萬戶)가 세 아들의 이름을 청하다.

 


찻잔 놓고 손 대한 품은 그지없이 맑은데 / 對客茶甌徹底淸
빗방울 날려 한낮의 서늘함에 문득 놀랐네 / 忽驚飛雨午涼生
고흥 유씨 남은 행복이 응당 끝없으리니 / 高興餘慶應無盡
세 아들이 후일에 모두 이름이 날 거로세 / 三子他年摠有名

 

인하여 시중(侍中)을 읊다.

 


영밀공이 필마로 원나라 분주히 다닐 때 / 英密西來一騎塵
군왕은 경사에서 공에게 정신 집중하였네 / 君王在鎬政凝神
황금 부절 번쩍이고 하사한 옷 다수워라 / 金符照耀衣安燠
군문을 알현할 땐 기쁜 기색 새로웠었지 / 上謁君門喜氣新

시중의 공업은 근래에 둘도 없으려니와 / 侍中功業近無雙
한 세상 영웅들은 모두 항복을 청했었네 / 並世英雄盡乞降
하루아침에 요망한 중이 짐독이 되었으니 / 一旦鷲翁成鴆毒
억울함 씻자면 응당 장강을 끌어와야 하리 / 洗冤應是挹長江

 

[주C-001] 시중(侍中) : 여 기서는 고려 말기에 고흥 유씨(高興柳氏)로 재상을 지낸 유청신(柳淸臣)과 그의 손자로 역시 재상을 지낸 유탁(柳濯)을 가리킨다. 유청신은 젊어서 몽고어(蒙古語)를 잘하여 여러 번 원()에 사신으로 가서 응대(應對)를 잘하였으므로, 이 때문에 충렬왕(忠烈王)의 총애를 입어서 여러 요직을 거쳐 벼슬이 찬성사(贊成事), 첨의 정승(僉議政丞)에 이르고 고흥부원군(高興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옥대(玉帶)를 하사받기도 했는데, 뒤에 충숙왕(忠肅王)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당시 왕위(王位)를 엿보던 심양왕 고(瀋陽王暠)에게 붙어 조적() 등과 함께 충선왕(忠宣王)을 모함하는 등 배신 행위를 하다가 이루지 못하자, 두려워서 귀국하지 못하고 원나라에 그대로 머물다가 죽었다. 시호는 영밀(英密)이다. 그리고 유탁은 처음에 음보(蔭補)로 등용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공민왕(恭愍王) 초기에 좌승상(左丞相)에 올라 고흥부원군에 봉해지고, 그 후 원나라 장사성(張士誠)의 토벌을 위해 출전하여 그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고, 귀국 후 홍건적(紅巾賊)이 침입했을 때는 경상도도순문사 겸 병마사(慶尙道都巡問使兼兵馬使)로서 홍건적의 방어에 큰 공을 세워 1등 공신이 되었으며, 뒤에 도첨의 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르렀는데, 공민왕 말기 요승(妖僧) 신돈(辛旽)이 주살(誅殺) 당한 때에 이르러 그의 일당으로 몰려 처형되었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비가 개다.

 


띠 처마에 낙숫물 연일 떨어져라 / 茅簷連日滴
유동에서 몇 년이나 곤궁했던고 / 柳洞幾年窮
저녁 볕은 높은 나무에 나직하고 / 落照低高樹
우레 소리는 먼 하늘을 울리누나 / 輕雷殷遠空
새의 지저귐은 뜻을 얻은 듯한데 / 鳥啼如得意
개미 싸움은 이미 성공을 거뒀네 /
蟻戰已成功
퇴청하여 걱정 없이 한가롭기에 / 朝退閑無悶
붓끝으로 조화옹을 대신하노라 / 毫端代化工

 

[주D-001]개미 …… 거뒀네 : 고어(古語)에 비가 오려면 개미가 둑을 쌓는다는 말이 있는데, 비가 이미 개었으므로 한 말이다.

영가(永嘉) 시중(權侍中)을 곡()하다.

 


중수 누린 이도 지금 얼마 없는데 / 中壽今無幾
안동에는 대대로 현인이 나와서 / 安東世有賢
여러 손자들은 다 장년이 되었고 / 諸孫皆壯歲
큰아들은 이미 칠십 세를 넘었네 / 長子已稀年
만년은 시주로 세월을 보냈거니와 / 詩酒桑楡景
성명한 조정엔 문벌을 누렸었지 / 衣冠雨露天
멀리 가련하여라 당 북쪽 대나무는 / 遙憐堂北竹
적막하게 푸른 연기를 띠었으리 / 寂寞帶蒼煙

 

[주C-001]영가(永嘉) 시중(權侍中) : 고 려 말기에 벼슬이 검교시중(檢校侍中)에 이르고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에 봉해진 권고(權皐)를 가리킨다. 권고는 기미년(1379, 우왕5) 86세로 죽었는데, 이때 그의 장자(長子)로 벼슬이 검교좌정승(檢校左政丞)에 이르고 영가군(永嘉君)에 봉해진 권희(權僖) 71세였고, 권고의 손자이며 권희의 아들인 권근(權近) 28세였다.

즉사(卽事)

 


금릉
은 아득히 겹겹 산천 막혀 있건만 / 金陵迢遞隔山川
일월의 드리운 빛은 한 하늘 함께하네 / 日月垂光共一天
북방에 있는 말은 살져서 사랑스러우나 / 馬在北方肥可愛
남토에 옮겨온 사람은 병들어 가여워라 / 人遷南土病堪憐
군신 간의 의리는 명백히 해야 하려니와 / 君臣有義須明白
장상이 서로 결친하여 비로소 보전되었네 / 將相交懽始保全
진정에서 통곡하던
누가 다시 이을꼬 / 往哭秦庭誰更繼
오랜 병에 몹시 쇠한 게 스스로 슬프구나 / 自悲衰甚抱沈綿

 

[주D-001]금릉(金陵) : ()나라 초기의 수도였던 남경(南京)을 가리킨다.
[주D-002]진정(秦庭)에서 통곡하던 :
춘 추 시대 초()나라 오자서(伍子胥)가 일찍이 초왕(楚王)이 자기 가족을 주멸(誅滅)할 때에 홀로 오()나라로 도망가 있다가 뒤에 그 보복(報復)을 하기 위해 오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로 쳐들어가자, 초나라의 신하 신포서(申包胥)가 진()나라에 가서 원병(援兵)을 요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으므로, 그가 정장(庭墻)에 기대 서서 7일 밤낮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통곡을 계속하니, 진나라에서 그의 정성에 감동되어 마침내 원병을 보내서 초나라를 구원해 주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유거(幽居) 2(二首)

 


그윽한 삶 생활도 졸렬하여라 / 幽居生理拙
채소 싹이 모래 땅에서 나오누나 / 菜甲出沙田
문밖의 진창은 밭둑에 연하였고 / 門外泥連陌
마당의 이끼는 자리에 들어오네 / 庭中蘚入筵
새는 길들어 먹이 얻어먹고 /
鳥馴緣得食
나귀는 절어 조회가기 겁나네 /
驢蹇怕朝天
그 누가 알리오 한가로운 곳에 / 誰識悠悠處
몸과 이름 다 보전할 수 있는 걸 / 身名可兩全

시서는 군자의 집이요 / 詩書君子宅
예악은 성인의 밭이로다 / 禮樂聖人田
풍월은 시편 속으로 돌아가고 / 風月歸篇翰
천지는 내 자리를 옹위하누나 / 乾坤擁几筵
명도의
을 두루 훑어보고 / 流觀鳴道集
취향의 별천지에 홀로 걷노니 / 獨步醉鄕天
늘그막에 남은 소망이 없건만 / 老境無餘望
누가 나를 낙전이라 호칭할꼬 / 誰歟號樂全

 

[주D-001]새는 …… 얻어먹고 : 두보(杜甫)의 〈남린(南隣)〉 시에빈객을 익히 보아 아동들은 기뻐하고, 뜰에서 먹이 쪼아라 새들은 길이 들었네.[慣看賓客兒童喜得食堦除鳥雀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나귀는 …… 겁나네 :
두보(杜甫)의 〈핍측행(偪側行)〉에동가에서 내게 절뚝 말 빌려 주기로 했지만, 진창 미끄러워 감히 타고 조회를 못 가겠네.[東家蹇驢許借我 泥滑 不敢騎朝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명도(鳴道) :
명도는 곧 한유(韓愈)의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맹가, 순경은 도로써 울린 사람들이다.[孟軻荀卿以道鳴者也]”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성현(聖賢)의 경전(經傳)을 의미한다.
[주D-004]낙전(樂全) :
애 락(哀樂)의 정을 초탈하여 유유자적하는 경계를 말한다. 《장자(莊子)》 선성(繕性)즐거움이 온전한 것을 일러 뜻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니, 옛날의 이른바 뜻을 얻었다는 것은 높은 벼슬을 말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낙을 외물로 더할 수 없는 경지를 이른 것이다.[樂全之謂得志 古之所謂得志者 非軒冕之謂也 謂其無以益其樂而已矣]” 한 데서 온 말이다.

국화를 미처 다 심기 전에 비가 또 오므로 단가(短歌)를 짓다.

 


목옹의 국화 사랑은 이제 버릇이 되어 / 牧翁愛菊今成癖
화원에서 옮겨오니 두어 가지 푸르러라 / 移自花園數枝碧
심기도 다하기 전에 자라기를 생각타가 / 栽培未竟念生成
문득 뜰 가운데 빗방울 듣는 걸 보겠네 / 便見庭中雨來滴
땅 귀신 용의 주도해 흙을 윤택케 하니 / 土潤黃祇用意深
가을바람엔 국화가 산더미처럼 쌓이리 / 秋風金錢似山積
도연명은 천재에 하나뿐인 고사로서 / 淵明千載一高士
취한 가운데 붓을 들어 갑자를 썼는데 / 醉裏抽毫書甲子

돌아간 그의 유풍 사모한 이 그 누군고 / 誰歟歸來慕遺風
동해의 성난 파도는 아직 그치질 않네 / 東海怒濤猶未已
보원의 곽탁타에게 전하여 고하노니 /
寄謝寶源郭

늦가을 서리 바람엔 어찌해야 하는가 / 風霜
景當如何
예부터 백 리에 구십 리가 반이라거니 / 由來百里半九十
국화 대하매 강개하여 시가를 이루노라 / 對菊慷慨成詩歌

 

[주D-001]도연명(陶淵明)은 …… 썼는데 : 연 명은 도잠(陶潛)의 자이다. 도잠은 본디 국화(菊花)를 매우 사랑했었고, 또 저술한 문장(文章)마다 반드시 연월(年月)을 기재하였는데 동진 안제(東晉安帝)의 연호인 의희()까지는 진()의 연호를 분명히 쓰고, 송 무제(宋武帝)의 연호인 영초(永初)로부터 이후는 연호를 쓰지 않고 간지(干支)만 썼던 것을 이른 말이다. 《南史卷75 隱逸列傳》
[주D-002]보원(寶源)의 …… 고하노니 :
보 원은 원()나라 때 화폐를 주조하던 보원국(寶源局)의 준말로, 여기서는 마치 금전(金錢)처럼 생긴 국화를 비유한 것이고, 곽탁타는 당()나라 때 나무를 잘 심어 가꾸던 사람의 호칭이므로, 전하여 곽탁타에게 국화 심는 방법을 묻는 뜻으로 한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누가 형세가 서로 연관되도록 했는고 / 誰敎形勢自相因
여우가 범의 위엄 빌린 게 귀신 같구려 / 狐假虎威如有神
은거한 것 때문에 되레 화를 전가하다니 / 只爲逃形翻嫁害
소인의 정태가 일간에 더 새로워졌구만 / 小人情態日來新

죄를 논함엔 정상에 따라 경중이 있나니 / 議罪緣情有重輕
한나라의 노리는 아직껏 이름 남기었네 /
漢庭老吏尙留名
오늘 법관의 평의가 억울함 없게 했으니 / 臺評今日無冤屈
차라리 법도 지킨 요순의 밝음이로다 /
寧失不經堯舜明

지위 높고 비방 없긴 예부터 드무나니 / 位高無謗古來稀
군자는 몸가짐에 기미를 삼가야 하리 / 君子持身要愼幾
집 짓고 편히 사는 건 평범한 일이건만 / 作室安居常事爾
위기는 어디에나 있음을 비로소 알겠네 / 始知隨處有危機

맑은 새벽에 말을 타고 산봉우리 오르니 / 淸晨騎馬上穿峯
송악산에 구름 걷혀 푸른 산빛 짙어라 / 松岳雲開翠色濃
병도 많은 백발에 아직껏 세속 좇노라니 / 多病白頭猶殉世
천진교 당일에 늙고 병든 우습구나 /
天津當日笑龍鍾

 

[주D-001]한(漢)나라의 …… 남기었네 : 노 리(老吏)는 곧 노련한 관리라는 뜻인데, 한 소제(漢昭帝) 때 준불의(雋不疑)가 경조 윤(京兆尹)으로 있을 적에 그가 매양 관할 주현(州縣)을 순행하면서 죄수(罪囚)들의 정상을 심리하고 돌아올 때마다 그의 모친이평번(平反)을 해서 몇 사람이나 살렸느냐?”고 물어보아서 불의가 만일 평번을 많이 했다고 대답하면 모친이 매우 기뻐하였으므로, 불의는 법관으로 재직할 때에 엄하면서도 잔인하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 듯하다. 《漢書 卷71 雋不疑傳》
[주D-002]차라리 …… 밝음이로다 :
고요(皐陶)가 순() 임금에게 찬사(讚辭)를 올려 말하기를무죄한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법도를 안 지키는 실수를 하였다.[與其殺不辜 寧失不經]”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大禹謨》
[주D-003]천진교(天津橋) …… 우습구나 :
()나라 때 회채(淮蔡)의 난을 토평(討平)했던 명상(名相) 배도(裴度)가 일찍이 미천했을 때 낙중(洛中)에 우거(寓居)하고 있으면서 하루는 절뚝발이 말을 타고 천진교를 올라가자, 한 노인이 교주(橋柱)에 기대 서서 말하기를마침 채주(蔡州)가 평정되지 못한 것을 걱정했더니, 반드시 이 사람을 장수로 삼아야겠다.”고 하므로, 배도가 말하기를내 늙고 병든 모습을 보고 농담을 하는구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늦게 먹는
선생은 가릴 것이 없기에 / 食先生佼
나물국도 꿀맛이요 밥은 연유 같다네 / 菜羹如蜜飯如酥
팔진미를 늘어논들 배부르긴 한가진데 / 八珍羅列同歸飽
천금 허비해 자봉하는 건 어리석고말고 / 枉費千金養至愚

단표의 시골 생활에 낙이 있었거니와 /
陋巷簞瓢樂在中
주공 같은 부귀로 동에 있기도 했었네 /
周公富貴尙居東
인생은 간 곳마다 마음 편한 게 제일이니 / 人生到處安心耳
우선 연래의 목은 늙은이를 볼지어다 / 且看年來牧隱翁

요의 선위 탕의 정벌은 시무를 알 뿐이었고 / 堯禪湯征只識時
공맹은 구구하게 쇠한 도를 붙들려 했네 / 區區孔孟要扶衰
적막해라 진한 시대 유풍은 저속했는데 / 寂寥秦漢儒風陋
마침 염계에서 만세의 스승이 나왔네그려 / 會有濂溪萬世師

 

[주D-001]늦게 먹는 : 《전 국책(戰國策)》 제책(齊策)밥을 늦게 먹어서 고기와 맞먹게 하고, 편안히 걸어서 수레와 맞먹게 한다.[食以當肉 安步以當車]” 한 데서 온 말로, 즉 시장한 뒤에 밥을 먹으면 고기를 먹는 것처럼 좋은 맛을 느낄 수 있음을 뜻한다.
[주D-002]단표(簞瓢)의 …… 있었거니와 :
공 자가 이르기를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 물로 누추한 시골구석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그 걱정을 견디지 못하건만,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변치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D-003]주공(周公) 같은 …… 했었네 :
주 공은 왕실(王室)의 지친(至親)으로 대공(大功)이 있고 총재(
)의 지위에 있었으므로 그를 부귀(富貴)했다고 일컬은 것인데, 무왕(武王)이 죽은 뒤에 주공이 총재가 되어 삼년복(三年服)을 마친 다음, 어린 성왕(成王)을 위해 섭정(攝政)을 하려고 하자,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주공이 성왕에게 불리하게 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므로, 주공이 즉시 피혐하여 동도(東都)로 물러가 있었던 것을 이른 말이다. 《論語 先進》 《書經 金縢》
[주D-004]염계(濂溪)에서 …… 나왔네그려 :
염계 가에서 대대로 살았던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周敦
)가 이학(理學)의 개조(開祖)로 추앙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고풍(古風) 3(三首)

 


광대함이 무극과 연접한 가운데 / 寥寥接無極
천지의 형체가 처음 나누어지고 /
天地初分形
천지의 정기가 서로 응합하니 /
正氣偶妙合
사람이 만물 중에 가장 신령하여 /
人爲萬物靈
가운데 아름답게 빼어난지라 / 秀出於其中

성현이 세상의 법칙이 되어 / 聖賢爲法程
예악 법도를 천하에 널리 입혀서 / 文章被天下
찬란하기 마치 일성과도 같거늘 / 粲然如日星
어찌하여 지금 세상 사람들은 / 奈何今之人
캄캄한 속을 제멋대로 달리는고 /
駕趨冥冥
집안에 앉아 홀로 반성해보면 / 反觀居室內
내 맘 또한 하늘의 법칙이라오 / 是亦天之經

복희씨는 음획 양획을 그었는데 / 庖犧畫奇耦
상으로써 이치의 근원 밝히었고 / 象以明理源
문왕과 주공은 / 文王與周公
일일마다 말로 표명하였네 / 觸事宣諸言

중니는 십익을 부연하였으니 / 仲尼演十翼
위대하여라 도의의 이여 / 大哉道義門
가죽끈이 번이나 끊어져라 /
韋篇旣三絶
천재에 천지와 같은 분이로다 / 千載如乾坤
나에게 몽매함 깨우치게 했으니 / 使我知養蒙
덕성을 어찌 그리 높이었는고 / 德性何其尊
홀로 있을 때도 한사코 삼가서 / 獨居愼勿褻
경건한 맘으로 본원을 생각해야지 / 焚香思本元

공문은 크기가 마치 하늘과 같아 / 孔門大如天
종유한 제자가 삼천이나 됐는데 / 從游有三千
빨리 닮은 칠십
중에도 / 速肖七十子
유독 안회가 어질다고 칭하였네 /
獨稱回也賢
증자는 공자의 종통을 얻어서 / 曾子得其宗
대학에서 선후의 일을 밝히었고 / 大學明後先

자사는 다행히 증자께 수업하여 / 聖孫幸摳衣
마침내 중용의 책을 이루었도다 / 中庸乃成篇
아 나는 유자의 한 사람으로 / 嗟嗟我縫掖
힘써 심전을 구하고는 있으나 / 用力求心傳
글을 읽어도 몸과 맘은 판이하니 / 讀書身心判
취하기 아니면 응당 미칠 수밖에 / 非醉應爲顚

 

[주D-001]광대함이 …… 빼어난지라 : 이 내용은 모두 주돈이(周敦)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2]문왕(文王)과 …… 표명하였네 :
문 왕은 《주역(周易)》의 각 괘()마다 총론(總論)을 붙여 길흉(吉凶)을 판단한 단사(彖辭)를 지었고, 주공(周公)은 《주역》 각 괘의 각 효()에 대하여 설명한 상사(象辭)를 지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상사 또한 문왕이 지었다는 설도 있다.
[주D-003]십익(十翼) :
공 자(孔子)가 지은 《주역》의 주석(註釋)인 상단전(上彖傳), 하단전(下彖傳), 상상전(上象傳), 하상전(下象傳), 계사전 상(繫辭傳上), 계사전 하(繫辭傳下), 문언전(文言傳), 서괘전(序卦傳), 설괘전(說卦傳), 잡괘전(雜卦傳)를 말한다.
[주D-004]도의(道義)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이루어진 성을 잘 보존하는 것이 도의의 문이다.[成性存存 道義之門]”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가죽끈이 …… 끊어져라 :
공자(孔子)가 만년에 《주역(周易)》을 하도 많이 읽어서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떨어졌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6]빨리 …… 제자 :
빨 리 닮았다는 것은 곧 양웅(揚雄)의 《법언(法言)》에빠르기도 해라, 칠십 인의 제자가 중니를 닮음이여.[速哉 七十子之肖仲尼也]” 한 데서 온 말이고, 칠십 인 제자란 공자가 일찍이내게 수업하여 몸소 육예를 통한 자가 칠십이 인이다.[受業身通者七十二人]” 한 데서 온 말로, 즉 재덕(才德)이 출중한 72인의 제자를 가리킨다.
[주D-007]유독 …… 칭하였네 :
공 자가 이르기를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 물로 누추한 시골구석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그 걱정을 견디지 못하건만,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변치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하였고, 또 이르기를말을 해주면 게으르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은 그 안회인저.[語之而不惰者 其回也與]” 하였는데, 그 주석에 의하면, 안자(顔子)는 공자의 말을 들으면 마치 초목(草木)이 제때의 비를 맞아서 성대히 성장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말하였으며, 또 공자가 이르기를내가 안회와 더불어 종일토록 말을 했으나,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듯했는데, 물러간 다음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건대, 내가 해준 말을 충분히 발명하고 있었으니, 안회는 어리석지 않도다.[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雍也, 子罕》
[주D-008]증자(曾子)는 …… 밝히었고 :
종 통을 얻었다는 것은 곧 주희(朱熹)의 《대학장구(大學章句)》 서문(序文)삼천의 제자가 다 공자의 설을 듣지 않은 이 없건만, 증씨의 전함이 유독 그 종통을 얻었다.[三千之徒 蓋莫不聞其說 而曾氏之傳獨得其宗]” 한 데서 온 말이고, 선후(先後)를 밝혔다는 것은 곧 증자가 《대학》에서 팔조목(八條目)인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대하여 차례대로 해석해 놓은 것을 가리킨다.
[주D-009]심전(心傳) :
(), (), ()가 서로 전수(傳授)한 심법(心法)을 가리킨 말로, 즉 요 임금은 순 임금에게 선위(禪位)할 때에진실로 그 중을 잡으라.[允執其中]” 하였고, 순 임금은 우 임금에게 선위할 때에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하게 하여야 진실로 그 중을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한 것을 이른 말이다. 《書經 大禹謨》 공문(孔門)의 자사(子思)가 마침내 《중용(中庸)》에서 이 심법을 미루어 밝혔으므로 한 말이다.

일찍 일어나다.

 


담천으로 추옹 배우길 원하지 않고말고 /
談天不願學鄒翁
진리가 명교 안에 찬연히 드러났는 걸 / 實理粲然名敎中
병골은 아직 구름이 대궐 향한 데 괴롭고 / 病骨尙酸雲向北
욕심은 해가 동에 돋을 때 움직이려 하네 / 欲心將動日生東
누에 올라 황학루 쓰긴 절로 싫거니와 /
登樓自厭題黃鶴
단약 고아 뭣하러 기러기는 있나 /
鍊藥何須駕白鴻
한스러라 일생을 헛되이 힘만 소모했으니 / 祗恨一生徒費力
누추한 생활 안빈낙도를 누구와 함께할꼬 / 簞瓢樂處與誰同

바다 산 깊은 곳에 한낱 쇠한 늙은이는 / 海山深處一衰翁
읊조리는 가운데 세월을 보내노라니 / 斷送光陰嘯咏中
어찌 시마가 유독 낙하에만 많았으랴 /
豈獨詩魔多洛下
강동에 가득한 추흥도 생각한다오 /
每思秋興滿江東
교유는 본디 공궐처럼 서로 의지했는데 /
交游本擬蛩將

만나기는 되레 연홍처럼 서로 어긋나네 /
會合還如燕與鴻
때로 하늘가에 떠가는 맑은 구름 보면서 / 時見晴雲天際去
머리 숙이고 세세히 참동계를 읽노라 / 低頭細細讀參同

계림의 최졸옹
을 거듭 생각하노니 / 重憶雞林崔拙翁
온 생애를 풍월과 술 가운데 보내었네 / 生涯風月酒尊中
제과에 급제하여 천하에 명성 날렸고 / 出身進士聞天下
사람을 잘 꾸짖어 해동을 경동시켰지 / 極口罵人驚海東
한 마음은 말처럼 얽매임을 못 견디었고 / 不耐一心如繫馬
홀로 눈으론 나는 기러기 보내려 했네 /
獨將雙目送飛鴻
예산은 적막해라 유적만 남았을 뿐인데 / 猊山寂寞空遺跡
서쪽으로 흐르는 강물은 고금이 똑같구나 / 江水西流今古同

 

[주D-001]담천(談天)으로 …… 않고말고 : 추 옹은 전국 시대 제()나라의 추연(鄒衍)을 가리키는데, 그가 일찍이 천체 우주(天體宇宙)에 관하여 글을 저술했던바, 그 변론(辯論)이 워낙 굉원 박대(宏遠博大)하였으므로, 세인(世人)들이 그를 일러 담천연(談天衍)이라 호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누(樓)에 …… 싫거니와 :
()나라 때의 문인 최호(崔灝)가 일찍이 황학루(黃鶴樓)에 올라 〈등황학루(登黃鶴樓)〉 시를 지었던바, 이 시가 이백(李白)에게 격상(激賞)을 받음으로써 그의 명성이 천하에 널리 알려졌으므로, 여기서는 곧 문장으로 명성 얻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주D-003]단약(丹藥) …… 있나 :
이는 또한 신선(神仙)이 되어 승천(昇天)하는 것도 굳이 원치 않는다는 것을 뜻한 말이다.
[주D-004]어찌 …… 많았으랴 :
시 마(詩魔)란 곧 시를 짓고 읊기를 몹시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데, 옛날 낙하 서생(洛下書生)의 음영(吟詠)하는 성조(聲調)가 매우 중탁(重濁)했던바, 특히 동진(東晉)의 명사(名士)들이 그 성조를 좋아하여 많이 따라 읊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강동(江東)에 …… 생각한다오 :
()나라 때 오중(吳中) 사람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 오중의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鱠]가 생각나서 말하기를인생은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어찌 수천 리 밖에서 벼슬에 얽매여 명작(名爵)을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92 張翰列傳》
[주D-006]교유는 …… 의지했는데 :
()은 공공거허(蛩蛩距虛)라는 짐승의 약칭인데, (
)이라는 짐승은 앞발은 짧고 뒷발은 길어서 잘 달리지 못하므로, 항상 공공거허에게 감초(甘草)를 뜯어 먹여 주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그의 등에 업혀 도망쳐서 위기를 모면한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서로 의지하는 것을 비유한다.
[주D-007]만나기는 …… 어긋나네 :
연홍(燕鴻)은 제비와 기러기를 가리키는데, 제비는 여름 철새이고, 기러기는 겨울 철새여서 서로 만날 수가 없으므로, 전하여 서로 거리가 멀거나 만나기 어려운 처지를 비유한다.
[주D-008]참동계(參同契) :
()나라 때 위백양(魏伯陽)이 지었다고 하는 책인데, 이 책은 《주역(周易)》의 효상(爻象)을 빌려서 수련 양생(修煉養生)에 관한 뜻을 논한 것이다.
[주D-009]계림(鷄林) 최졸옹(崔拙翁) :
계 림은 경주(慶州)의 옛 이름으로서 즉 경주 최씨(慶州崔氏)로 호가 졸옹인 최해(崔瀣)를 가리킨다. 최해는 일찍이 본국의 문과(文科)와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다 합격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이르렀는데, 그는 성품이 강직하여 남의 선악(善惡)을 거리낌 없이 밝히었고, 특히 당대(當代)의 문호(文豪)로서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문명(文名)을 크게 떨쳤으며, 만년에는 예산(猊山) 아래에 은거하면서 예산농은(猊山農隱)이라 자호하였다.
[주D-010]홀로 …… 했네 :
()나라 혜강(
)의 〈증수재입군오수(贈秀才入軍五首)〉 시에눈으론 돌아가는 기러기를 보내면서, 손으론 다섯 줄 거문고를 뜯는다.[目送歸鴻 手揮五絃]”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유유자적한 정취를 의미한다.

절구(絶句)

 


북쪽 창 맑은 바람은 푸른 숲에서 나오고 / 北牖淸風生碧樹
남쪽 창 가랑비는 푸른 산에 비치는데 / 南窓細雨映靑山
백발의 병든 나그네는 몹시도 한가해라 / 白頭病客悠悠甚
소보 허유 기룡과 서로 백중지간이로세 /
巢許夔龍伯仲間

나는 속세에 낙원이 있을까 의아해하는데 / 自訝塵中無樂土
남들은 바다 밖에 선산이 있다고 말들 하네 / 人言海外有仙山
누가 알랴 형체 잊는 걸 실천하는 곳에 / 誰知踐得忘形處
호연한 지기가 천지에 가득 찬다는 것을 / 志氣浩然盈兩間

병중의 생애는 세월 가는 것을 잊고 / 病裏生涯忘日月
한가함 속의 흥미는 강산에 붙였는데 / 閑中興味寄江山
지난날 나의 시 적어논 걸 점검해 보니 / 他時點檢吾詩譜
삼십여 년이 한바탕 꿈만 같네그려 / 三十餘年一夢間

 

[주D-001]소보(巢父) …… 백중지간이로세 : 소 보와 허유(許由)는 모두 요() 임금 때의 은사(隱士)로서 요 임금이 일찍이 그들에게 천하를 선양(禪讓)하려고 해도 듣지 않고 은거했었고, 기룡(夔龍)은 순() 임금의 두 신하 이름으로, 기는 전악관(典樂官)이었고, 용은 납언관(納言官)이었다. 이때 저자는 관직에 있기는 했으나, 생활은 마치 은거하는 사람 같았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16일에주공의 재능의 훌륭함[周公之才之美]이라는 한 장을 진강(進講)하였다.

 


교만함과 비린한 게 어찌 허물이 없으랴 / 矜誇鄙嗇豈無尤
근본과 지엽이 서로 인해 형세가 주밀한 걸 / 根葉相因勢自周
비록 재능이 많기가 주공 같다 할지라도 / 縱使多材似公旦
이런 사람은 분명 평범한 무리일 뿐일세 / 此人端的是恒流

주공의 붉은 신은 정중하기도 하여라 /
赤舃周公几几餘
풍뢰 멎고 풍년든 효서에 감동함일세 /
風雷歲熟感

당시 한 점 마음이 공평하고 정대하여 / 當時一點心平正
우주를 비추는 밝디밝은 일월과 같았네 / 日月明明照大虛

예악과 문장이 한 시대에 성대했거니 / 禮樂文章盛一時
훌륭하여라 그 제작이 창희에 있었네 / 美哉制作在蒼姬
연수와 대수 점친 끝내 명백했으니 /
卜年卜世終明白
처음 나매 어진 끼쳐준 있음일세 /
祗在初生哲命貽

 

[주C-001]주공의 재능의 훌륭함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주공 같은 훌륭한 재능이 있다 할지라도 교만하고 비린하다면 그 나머지는 보잘것이 없는 것이다.[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집주(集注)에 정자(程子), 교만은 비린의 지엽(枝葉)이 되고, 비린은 교만의 근본이 되어서 그 형세가 서로 따르게 된다고 하였다. 《論語 泰伯》
[주D-001]주공(周公)의 …… 하여라 :
《시 경》 빈풍(豳風) 낭발(狼跋)공이 크고 좋은 자리 사양하시니, 면복의 붉은 신이 정중하기만 하네.[公孫碩膚 赤舃几几]”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는 주공이 일찍이 관숙(管叔), 채숙(蔡叔)으로부터 성왕(成王)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듣고, 또 성왕에게도 의심을 받았지만, 동방(東方)으로 피해 가 있으면서 조금도 동요하는 빛이 없이 태연자약하였으므로, 시인(詩人)이 주공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부른 노래이다.
[주D-002]풍뢰(風雷) …… 감동함일세 :
효 서(
)는 곧 주공이 관숙, 채숙으로부터 성왕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들음과 동시에 성왕 또한 주공을 의심하기에 이르자, 주공이 주실(周室)의 위태로운 상황을 성왕에게 친히 경고한 내용인 즉 《시경》 빈풍 치효()의 시를 가리킨다.
[주D-003]창희(姬) :
창은 황제(黃帝)의 신하로서 새 발자국[鳥跡]을 보고 최초로 문자(文字)를 만들었던 창힐(蒼頡)을 가리키고, 희는 주()나라의 성()으로서 즉 예악(禮樂)을 제작한 주공(周公) 희단(姬旦)을 가리킨다.
[주D-004]연수(年數)와 …… 명백했으니 :
《춘 추좌전(春秋左傳)》 선공(宣公) 3년 조()성왕이 겹욕에 도읍을 정하여 구정을 안치하고 점을 쳐보매, 세대 수는 삼십 세요 연수는 칠백 년이었으니, 이게 바로 하늘이 명한 것이다.[成王定鼎于
郟鄏 卜世三十 卜年七百 天所命也]” 한 데서 온 말인데, 실제 주()나라의 역년(歷年)이 그와 비슷하였다.
[주D-005]처음 …… 있음일세 :
소 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고하기를왕께서 처음 일을 시작하시니, , 마치 막 태어난 자식이 처음 나서부터 선을 하면 절로 철한 명을 끼쳐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늘이 철을 명할지, 길흉을 명할지, 오랜 국운을 명할지는 지금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데에 달렸습니다.[王乃初服 嗚呼 若生子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今天其命哲 命吉凶 命歷年 知今我初服]”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召誥》

산보(散步)를 하다.

 


한가히 거닐며 허리 다리를 펴고 / 散步伸腰脚
조용히 읊조려 성령을 도야하노라니 / 沈吟陶性靈
나는 구름은 맑고 다시 하얗고 / 飛雲晴更白
겹겹 봉우리는 멀수록 푸르구나 /
遠彌靑
바다 밖에는 서복이 머물렀고 /
海外留徐福
요동에서는 관녕이 늙었었는데 /
遼東老管寧
한적한 경계 절로 순리로운 곳은 / 悠悠境自順
버들골의 나의 한 모정이로세 / 柳洞一茅亭

 

[주D-001]바다 …… 머물렀고 : 서 복(徐福)은 진 시황(秦始皇) 때 방사(方士)의 이름인데, 그가 일찍이 진 시황의 명에 따라 동남동녀(童男童女) 각각 3천 인씩을 거느리고 장생불사약(長生不死藥)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들어갔다가 마침내 돌아가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118 淮南衡山列傳》
[주D-002]요동(遼東)에서는 관녕이 늙었었는데 :
삼 국(三國) 시대 위()나라 관녕(管寧)이 황건적(黃巾賊)의 난리를 피하여 요동으로 건너가 수십 년을 지냈던 데서 온 말인데, 그가 요동에 있는 동안 시서(詩書)와 예양(禮讓)을 가르쳐서 요동의 풍속을 많이 변화시켰다고 한다. 《三國志 卷11

여러 손자들을 보며 읊다.

 


손자들 발걸음은 아주 건장하나 / 諸孫步甚健
달리다간 넘어질 게 염려되어 / 走則恐顚跌
할아비가 애들 인도해 다니며 / 老翁導之行
빈 당에서 함께 오르내리노라니 / 虛堂共軒

청풍은 두 갈래 머리에 불어오고 / 淸風吹兩髦
의기는 각기 절로 뛰어나누나 / 意氣自超逸
바라노니 너희들 가훈을 잘 지켜 / 願汝守家敎
시서를 힘써 크게 창성하기를 / 詩書庶逢吉
천운은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여 / 天運儘悠悠
기필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나니 / 可必未可必
슬프다 늙은 할아비의 마음이여 / 悲哉老翁心
붓끝에 문장만 화려할 뿐이로다 / 筆端詞彩溢

 

현 소윤(玄少尹)이 이름 지어 주기를 청하므로, 인하여 세 글자를 알려 주면서 본인에게 스스로 가리도록 하였다.

 


신장은 칠 척에다 수염도 아름다운데 / 身長七尺美鬚髥
도당의 지인이라 지체도 가장 엄하네 / 知印都堂地最嚴
나는 오랜 병으로 꼬부랑 노인이 됐거늘 / 我病七年仍句老
그대는 사품에 올라 하급관을 벗어났구려 / 君躋四品已離潛
이름 고칠 글자 청해라 마음은 기쁠 텐데 / 更名請字應心悅
뜻 살피고 성운 맞춰 입으로 불러만 주네 / 考義諧聲但口占
위에 신명이 계시어 정직을 관장하나니 / 上有神明司正直
경건한 맘으로 헤아려 혐의를 결단하게나 / 焚香探取決疑嫌

 

《논어》 태백(泰伯)삼 년을 배우고도 관록에 뜻 두지 않을 사람은 쉽게 얻을 수 없다.[三年學 不志於穀 不易得也]”라는 한 장을 진강하였다.

 


몽매를 기름은 성인 만드는 공이니 /
蒙養無非作聖功
종신토록 얻는 것은 하나의 중용이거늘 / 終身所得一中庸
어찌하여 번화와의 싸움을 한단 말인가 /
奈何挑得繁華戰
이는 다만 배부르고 취하기 위함이로세 / 只爲飽鮮仍醉醲

이상은 자제(子弟)의 학문에 대하여 논한 것이다.


성학은 예로부터 하나의 집중뿐이거니 /
聖學由來一執中
잠룡이 문득 뛰오르면 바로 비룡이라네 /
潛龍忽躍是飛龍
누가 알랴 도를 좇자면 먼저 도를 밝혀서 / 誰知從道先明道
후일에 목목한 을 종주로 삼을 만함을 / 穆穆他年德可宗

이상은 제왕(帝王)의 학문에 대하여 논한 것이다.


소신은 그 옛날에 중원을 분주하면서 / 小臣當日走中原
태학에 입학하여 성문을 엿보았건만 / 鼓篋璧雍窺聖門
문득 자장의 녹봉 구한 물음이 생각나네 / 忽起子張干祿問
백발에도 마음은 아직 어둡기만 하구려 / 白髮心地尙昏昏

이상은 자신을 책망한 것이다.

 

[주D-001]몽매를 …… 공이니 : 《주역(周易)》 몽괘(蒙卦) 단사(彖辭)몽매한 이를 바름으로 기르는 것이 성인을 만드는 공이다.[蒙養以正 聖功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어찌하여 …… 말인가 :
자 하(子夏)가 말하기를밖에 나가서는 번화하고 화려한 것들을 보고 기뻐하고, 들어와서는 부자의 도를 듣고 즐거워하여,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서로 싸워서 스스로 결단할 수가 없다.[出見紛華盛麗而說 入聞夫子之道而樂 二者心戰 未能自決]” 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23 禮書》
[주D-003]성학(聖學)은 …… 집중뿐이거니 :
(), (), ()가 서로 전수(傳授)한 심법(心法)을 가리킨 말로, 즉 요 임금은 순 임금에게 선위(禪位)할 때에진실로 그 중을 잡으라.[允執其中]” 하였고, 순 임금은 우 임금에게 선위할 때에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하게 하여야 진실로 그 중을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한 것을 이른 말이다. 《書經 大禹謨》
[주D-004]잠룡(潛龍)이 …… 비룡(飛龍)이라네 :
잠룡은 숨은 용이란 뜻으로, 성인(聖人)으로서 하위(下位)에 있는 이를 가리키고, 비룡은 즉 성인으로서 왕위(王位)에 오른 이를 가리킨다.
[주D-005]목목(穆穆) :
목목(穆穆)은 심원(深遠)의 뜻으로, 《시경》 대아(大雅) 문왕(文王)심원하신 문왕이여, 아 공경을 계속하여 밝히시도다.[穆穆文王 於緝
敬止]”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문왕의 덕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6]자장(子張)의 …… 물음 :
자장이 일찍이 녹봉(祿俸) 구하는 방도를 공자에게 배우려고 했던 데서 온 말인데, 녹봉을 구한다는 것은 곧 벼슬을 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論語 爲政》

희안(希顔)이 자기 선군(先君)의 묘명(墓銘)을 베껴 가므로, 나는 노쇠하여 아직까지 한산(韓山)의 선영(先塋)에 묘명도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를 스스로 탄식하면서 인하여 세 수를 짓다.

 


희안의 형제가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 希顔兄弟奉慈堂
가풍을 잘 지키어 모두 입신 양명하고 / 不墜家風總立揚
선군 사적 기술하여 후세에 전하는데 / 名述先君傳後世
늙은 목은 문장 모자람이 가련하구나 / 自憐老牧少文章

남의 묘지명 써준 것 또한 이미 많아서 / 把筆銘人亦已多
때때로 마음 감동해 눈물 줄줄 흘리네 / 時時動念涕滂

적막한 한산 선영엔 송추만 늙어가니 / 韓山寂寞松楸老
어느 때나 빗돌이 푸른 등라를 비출꼬 / 何日龜趺照碧蘿

조모께서 팔십삼 세로 생애를 마쳤는데 / 祖母年終八十三
무덤엔 지명 있어 교목에 덮이어 있네 / 幽堂有石蔭

익재의 노련한 글이 엄정하고 간결하니 /
益齋老筆嚴仍簡
후일에 아름다운 얘기로 흘러 전하리 / 他日流傳作美談

 

[주C-001]희안(希顔) : 고려 말기의 권렴(權廉)의 아들로 벼슬이 전공 판서(典工判書), 지신사(知申事), 밀직 제학(密直提學)에 이른 권주(權鑄)의 자이다. 저자가 일찍이 그의 부친인 현복군(玄福君) 권렴의 묘지명(墓誌銘)을 지었다.
[주D-001]조모(祖母)께서 …… 전하리 :
조 모는 곧 저자의 조모인 삼한국 대부인(三韓國大夫人) 이씨(李氏)를 가리킨다. 그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40년을 수절하면서 이배(李培), 이곡(李穀) 두 아들을 기르고 가르쳤던바, 마침내 곡이 원조(元朝)의 제과(制科)에 합격하고 벼슬이 재상 지위에 오름으로써 그에게 삼한국 대부인이 봉해졌고, 83세로 생애를 마쳤는데, 이런 사실이 모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쓴 그의 묘지명(墓誌銘)에 나타나 있으므로 한 말이다.

살구[]를 읊다.

 


우랑
집에서 동실동실한 살구를 보내와 / 牛郞家送杏團團
살살 씹으니 늙은이 이가 절로 시리네 / 細嚼衰翁齒自酸
씨 속의 알맹인 꺼내어 석청에 타놓으니 / 劈核得仁調石蜜
여름날 금쟁반에 가득한 양유와도 같네 / 暑天羊酪滿金盤

영락없는 황금빛에 이슬방울은 함초롬 / 色奪黃金露作團
하늘이 특이한 맛에 달고 신 맛 섞어놨네 / 天敎異味雜甘酸
화려한 자리엔 날마다 포도주가 있건만 / 華筵日日葡萄酒
누추한 집엔 해마다 목숙의 쟁반이라오 / 陋室年年苜


비단 부채 바람 일고 밝은 달은 두둥실 / 紈扇風生碧月團
정신이 서로 통창해 괴로움을 씻어 주니 / 精神交暢洗辛酸
걱정거리 소갈증도 염려할 것 없어라 / 不愁消渴爲人患
한나라의 승로반
보다 월등히 낫고말고 / 絶勝漢庭承露盤

 

[주D-001]우랑(牛郞) : 본래는 목동(牧童)을 일컫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축년생(丑年生)을 애칭(愛稱)으로 부른 말인 듯하다.
[주D-002]목숙() 쟁반 :
빈 약(貧弱)한 식생활을 뜻한다. ()나라 때 설영지(薛令之)가 동궁 시독(東宮侍讀)으로 있을 적에 식생활이 매우 빈약하였으므로, 시를 지어 스스로 슬퍼하기를아침 해가 둥그렇게 돋아올라, 선생의 식탁을 비추어 보이네. 쟁반에는 무엇이 있는고 하니, 난간에서 자란 목숙나물이로세.[朝日上團圓 照見先生盤 盤中何所有 苜
長欄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한(漢)나라의 승로반(承露盤) :
승로반은 곧 한 무제(漢武帝)가 일찍이 신선(神仙)이 되고자 하여 감로(甘露)를 받기 위해 건장궁(建章宮)에 만들어 세웠던 동반(銅盤)을 가리킨다.

이날에 대장(臺狀)이 있어 양부(兩府)의 회의(會議)를 소집하므로, 이 때문에 강()을 중지하였다.

 


군왕의 보고 들음이 대관 평론에 있기에 / 君王視聽在臺評
백관의 반열이 스스로 숙청하게 하누나 / 能使班行自肅淸
감히 추호나마 귀와 눈을 속일 수 있으랴 / 敢把豪釐欺耳目
그림자 메아리는 형체 소리에서 나오는 걸 / 由來影響出形聲
포용하여라 크나큰 천지 은혜를 함께 입고 / 包容共荷乾坤大
환히 비춰라 밝은 일월을 모두 우러러보네 / 照耀仍瞻日月明
차라리 법도 지킴
이 요순의 덕이거니 / 寧失不經堯舜德
팔의
에 권형이 있음을 의당 알아야 하리 / 須知八議有權衡

병든 나머지 비난 받을까 몹시 두려운데 / 病餘深恐被譏評
두 눈조차 어른거려 맑지를 못하네그려 / 兩眼昏花未見淸
매양 서연에선 참된 이치를 진술하건만 / 每向書筵陳實理
문단엔 헛된 명성 알려진 것이 부끄럽네 / 自慚文苑張虛聲
음양의 홀수 짝수는 변화를 일으키거니와 / 陽奇陰耦變且化
인백 기천이면 우자도 반드시 밝아지리 /
人百己千愚必明
다만 한스러운 건 유유히 세월만 보내면서 / 但恨悠悠經歲月
동에서 스스로 다스림을 아형에 바람일세 /
居桐自艾望阿衡

오늘날에 인재를 누가 있어 평하리오만 / 人才今日有誰評
부귀한 집이 어찌 문벌도 맑기를 바라랴 / 屋潤寧須門地淸
한빈한 집 세월은 채소만 먹는 신세인데 / 蓬蓽光陰蔬筍氣
높은 누대 풍월은 풍악 소리가 요란하네 / 樓臺風月管絃聲
문장이야 남이 탄복하는 걸 못 믿거니와 / 文章未信稱三服
술 마시긴들 어찌 사명광객을 이을쏜가 / 尊酒何曾繼四明
전일에 시를 말하 배필을 진술한 것은 / 他日說詩陳配匹
백발이 응당 한나라의 광형 같으리
/
白頭應似漢匡衡

 

[주D-001]차라리 …… 지킴 : 고요(皐陶)가 순() 임금에게 찬사(讚辭)를 올려 말하기를무죄한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법도를 안 지키는 실수를 하였다.[與其殺不辜 寧失不經]”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大禹謨》
[주D-002]팔의(八議) :
평 의(評議)에 의해 형벌을 감면하는 여덟 가지 조건으로, 첫째 왕실의 일정한 친척[議親], 둘째 왕실과 고구 관계로 오랫동안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議故], 셋째 국가에 큰 공훈을 세운 사람[議功], 넷째 덕행이 있는 현자[議賢], 다섯째 재능이 뛰어나서 왕업을 보좌하고 인륜의 모범이 되는 사람[議能], 여섯째 문관이나 무관으로 정성껏 봉직했거나 사신으로 나가서 현저한 공로가 있는 사람[議勤], 일곱째 관작이 1품인 사람, 또는 문무관으로 3품 이상인 사람[議貴], 여덟째 전대 군왕의 자손으로서 선대의 제사를 맡아 빈()이 된 사람[議賓]에 대하여 형벌을 감면해 주는 것을 말한다.
[주D-003]인백 기천(人百己千)이면 …… 밝아지리 :
《중 용장구(中庸章句)》 제20장에남이 한 번에 능히 하거든 나는 그것을 백 번에 하고, 남이 열 번에 능히 하거든 나는 그것을 천 번에 하나니, 과연 이 도리를 능히 한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반드시 밝아지고, 아무리 유약한 사람도 반드시 강해지느니라.[人一能之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
]”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동(桐)에서 …… 바람일세 :
동 은 탕() 임금의 묘()가 있는 곳이고, 아형(阿衡)은 재상 이윤(伊尹)의 별칭이다. 탕 임금이 죽은 뒤에 태갑(太甲)이 즉위하여 탕 임금의 전형(典刑)을 무너뜨리므로, 이윤이 태갑을 동에 내쳤는데, 그로부터 3년 뒤에 태갑이 스스로 회과 천선(悔過遷善)하여 이윤의 훈계를 잘 따름으로써 다시 박()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上》
[주D-005]사명광객(四明狂客) :
당 현종(唐玄宗) 때의 시인인 하지장(賀知章)의 호이다. 하지장은 시문(詩文)과 글씨에 모두 뛰어났고, 술을 매우 좋아하였는데, 이백(李白)의 〈대주억하감(對酒憶賀監)〉 시에 의하면사명에 미친 나그네 있었으니, 풍류 넘치는 하계진이로다. 장안에서 한 번 서로 만나서는, 나를 적선인이라 불렀었지. 그 옛날 술을 그리도 좋아하더니, 어느새 솔 밑의 티끌이 되었구려. 금거북으로 술 바꿔 마시던 일, 생각만 하면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四明有狂客 風流賀季眞 長安一相見 呼我謫仙人 昔好杯中物 翻爲松下塵 金龜換酒處却憶淚沾巾]” 하였다. 《李太白集 卷22
[주D-006]시(詩)를 …… 같으리 :
광 형(匡衡)은 한()나라 때의 경학자(經學者)로서 특히 시()에 조예가 깊었으므로, 제유(諸儒)들이 서로 말하기를광이 시를 말하면 사람을 아주 재미있게 한다.[匡說詩 解人
]” 하였고, 또 광형은 일찍이 성제(成帝)에게 상소(上疏)하여 배필(配匹)을 신중히 세워야 한다는 것을 진술한 적이 있으므로 이른 말이다. 《漢書 卷81 匡衡傳》

《논어》 태백(泰伯)독실히 믿으면서 학문을 좋아하고, 죽기로써 지키면서 도를 선하게 해야 한다.[篤信好學 守死善道]”는 여덟 자를 진강하였다.

 


성학의 규모가 갖추어지고 / 聖學規模具
인륜의 시종이 온전하여라 / 人倫終始全
관통하는 덴 체와 용을 겸하고 / 貫穿兼體用
변화하는 덴 경과 권이 있도다 / 開合有經權
쉬지 않는 건 바다로 흐르는 강이요 / 不息江朝海
빠뜨림 없는 건 하늘에 뜬 태양일세 / 無遺日照天
평상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가야지 / 平居須愼獨
우리 도를 그 누구에게 전할거나 / 吾道是誰傳

 

유항루(柳巷樓) 밑을 지나면서도 몸이 피곤하여 올라가지 못하고, 집에 와서는 옷을 벗고 두 다리를 죽 뻗고 앉아서 세 수를 읊어 이루다.

 


푸르른 상림원엔 비가 드문드문 내리고 / 上林蒼翠雨疎疎
깊고 조용한 전각엔 여름 하늘 화창한데 / 殿閣沈沈夏景舒
경연에 강의 마치고 지팡이 짚고 나와서 / 講罷經筵扶杖出
준마를 빌려 타니 안온하기 수레 같구려 / 借來駿馬穩如輿

온몸에 질펀히 땀이 절로 흐르던 차 / 被體翻漿汗自流
버들잎 바람 속에 누각 오르기 좋았건만 / 柳絲風裏好登樓
병든 몸 힘이 없어 편히 쉬려 하였더니 / 病軀無力將將息
집에 돌아와서는 조금도 쉬지를 못하네 / 馳向蓬門不少休

늙은 신하의 학력은 본디 우활하건만 / 老臣學力本來迂
요행스런 공명으로 재상 지위에 오르고 / 僥倖功名位宰樞
서연관에 제수되어 부끄럽기 그지없어라 / 承乏書筵羞滿面
적막한 천재에 진유가 그 몇이나 되던고 / 寥寥千載幾眞儒

 

즉사(卽事)

 


홀로 최염과 함께 초당에 앉아 있다가 / 獨與崔髥坐草堂
습기가 몹시 싫어 자주 와상을 옮기네 / 苦妨霑濕屢移牀
토랑은 산사로부터 집에 돌아오자마자 /
郞山寺歸來處
곧장 승선의 당직하는 방으로 들어가네 / 直入承宣上直房

전하는 말 듣자 하니 서방의 극락당이 / 聞說西方極樂堂
상념없이 승상에 앉았음만 못하다네 / 不如無念坐繩牀
대번 구품에 뛰오름은 진정 현격하거니 / 一超九品眞懸隔
해마다 푸른 이끼야 방에 들거나 말거나 / 遮莫年年蘚入房

우중에 서늘한 기운 대청에 가득하여 / 雨中涼氣滿虛堂
병들어 괴로운 몸 한 와상에 누웠노니 / 病骨酸辛臥一牀
어찌하면 형체 잊고 참다운 방랑을 해 볼꼬 / 安得忘形眞放浪
벌집처럼 번잡한 아득한 이 세계를 떠나서 / 茫茫世界似蜂房

 

[주D-001]최염(崔髥) : 수염이 많이 난 최씨(崔氏)를 이른 말인 듯하나 누군지는 자세하지 않다.
[주D-002]승상(繩牀) :
비구(比丘)가 앉고 눕는 데 사용하는 상()의 일종으로, 윗부분을 노끈으로 얽어서 만든다고 한다.
[주D-003]구품(九品) :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의하면,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는 이의 수행(修行)의 높고 낮음에 따라 상품 상생(上品上生)에서 하품 하생(下品下生)까지의 구종(九種)의 차별이 있는 데서 온 말이다.

서 연(書筵)에 나갔더니, 중관(中官)이 상()의 분부를 전하는데, “어제 읽은 글을 아직 잘 익히지 못했으니, 우선 강의를 중지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 ()이 말하기를이 장()은 참으로 읽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고 물러 나와서 그 일을 기록하다.

 


조사 없이 여덟 글자 구슬처럼 연하여 / 八字聯珠絶助辭
순환하는 의리가 그지없이 정밀하기에 / 循環義理甚精微
예로부터 초학자는 의미를 몰랐었는데 / 由來初學不知味
더구나 시무를 모르는 어린 나이에랴 / 況是幼年難識時
살기를 탐함이 누가 되는 건 자신하거니와 / 自信偸生爲己累
공연한 죽음
이 남의 비난 받음은 누가 알랴 / 誰知徒死被人譏
배우기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진취하소서 / 請從好學中修進
요의 선위 탕의 정벌이 각각 마땅하다오 / 堯禪湯征各有宜

 

[주D-001]여덟 글자 구슬처럼 연하여 : 바로 전일에 진강(進講)했던독신호학 수사선도(篤信好學守死善道)’ 여덟 글자를 가리킨다.
[주D-002]공연한 죽음[徒死] :
위 에서 말한독신호학 수사선도의 집주(集注)독실히 믿지 않으면 배우기를 좋아할 수 없으나, 독실히 믿으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믿는 바가 혹 바른 것이 아닐 수 있고, 죽기로써 지키지 않으면 그 도를 선하게 할 수 없으나, 죽기로써 지키기만 하고 그 도를 선하게 하지 못한다면 이는 또한 공연한 죽음일 뿐이다.[不篤信則不能好學 然篤信而不好學 則所信或非其正 不守死則不能以善其道 然守死而不足以善其道 則亦徒死而已]”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아이 우는 소리에 비 오는 소리 아우르니 / 兒啼聲裏雨來聲
백발 늙은이 무한한 정을 견딜 수 없네 / 白髮老翁無限情
천재의 사람 연명
의 한 잔 술을 마셔라 / 千載淵明一杯酒
아득한 천운은 끝내 밝히기 어렵고말고 / 悠悠天運竟難明

소년 시절엔 누가 명성 세우지 않으랴만 / 少年誰不立名聲
만년에는 응당 성정을 잘 길러야 하리 /
境應須養性情
사방 처마에 낙숫물 듣고 인적은 고요한데 / 簷溜四垂人迹絶
변동하는 생각 잊으니 마음 절로 맑구나 / 淡忘移念自虛明

솔바람 부는 절벽에 폭포 소리 어울려 / 松聲絶壁掛泉聲
시원스레 들려오니 도 생각이 우러나네 / 觸耳爽然生道情
내 멋대로 산중에 그윽한 흥취 붙이어 / 漫向山中寄幽興
때론 아침 일찍 먹고 날 밝길 기다린다오 / 時時蓐食候天明

빈 대청 적적하고 새소리만 요란한데 / 虛堂寂寂鳥啼聲
외로이 앉아 유연히 세정 잊고 있노라니 / 兀坐悠然忘世情
열흘 동안 장맛비는 그쳤다 내렸다 하고 / 淫雨彌旬止還作
작은 창은 온종일 어두웠다 밝았다 하네 / 小窓終日晦仍明

귀로 듣고 맘으로 통하던
여운이 있어 / 心通入耳有餘聲
일일마다 끝없이 절로 성정에 꼭 맞아라 / 遇事無端自適情
육착
의 찌꺼기를 모조리 쓸어없애야만 / 六鑿掃除査滓盡
즐겨 놂에 하늘의 밝음을 비로소 알리라 /
始知游豫昊天明

 

[주D-001]천재(千載) 사람 연명(淵明) : 황정견(黃庭堅)의 〈자첨적해남(子瞻謫海南)〉 시에도연명은 천재의 사람이요, 소동파는 백세의 선비로다.[淵明千載人 東坡百世士]” 하였다.
[주D-002]귀로 …… 통하던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나는 육십 세에 귀가 순해졌다.[六十而耳順]” 한 주석에모든 소리가 귀에 들어오면 마음으로 통하여 어긋나는 바가 없는 것이니, 앎이 지극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다.[聲入心通無所違逆 知之之至 不思而得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爲政》
[주D-003]육착(六鑿) :
불교 용어로,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키는 여섯 가지 근원, 즉 안(), (), (), (), (), ()의 근원을 가리킨다.
[주D-004]즐겨 …… 알리라 :
《시 경》 대아(大雅) ()하늘의 노염을 삼가서, 감히 편히 놀지 말며, 하늘의 변하는 모습 삼가서, 멋대로 내닫지 말지어다. 하늘은 지극히 밝아서, 네 가는 곳을 다 보시며, 하늘은 지극히 밝아서, 네 멋대로 노는 걸 보느니라.[敬天之怒 無敢戱豫 敬天之渝 無敢馳驅昊天曰明 及爾出王 昊天曰旦 及爾游衍]”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주공(周公)의 후손으로 대부(大夫)가 된 범백(凡伯)이 무도한 여왕(厲王)을 풍자한 노래라 한다.

21일에 중관(中官)이 나와서 말하기를상체(上體)가 더위로 인하여 설사를 하시다가 그 증세는 이미 회복되었으나, 우선은 강의를 중지해 달라.” 하므로, 신 색이 물러 나와서 그 일을 기록하다.

 


수십 일 계속 여름 비에 수토가 안 맞아서 / 暑雨連旬水土離
민간 가는 곳마다 비장에 병들이 생겼네 / 閭閻到處病生脾
성인이야 천명에 관계됨을 잘 알거니와 / 固知神聖關天命
설사 허약하다 한들 국의가 있지 않은가 / 縱使虛羸有國醫
밤낮으로 질병 없기를 간절히 바라노니 / 日夜庶幾無疾病
신명은 본디 화락한 군자를 부호한다네 /
神明愷悌是扶持
앞으로 섭양 잘해 질병을 퇴치하고 나면 / 從今
養無乖氣
아침마다 장님의 외는 감히 꺼리랴 / 敢憚朝朝瞽誦詩

 

[주D-001]신명은 …… 부호한다네 :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화락하신 군자님은 신명이 보우한 바이로다.[豈弟君子 神所勞矣]”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문왕(文王)의 덕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2]장님의 외는 :
옛날에 장님 악사(樂師)로 하여금 군왕(君王)의 곁에서 매양 시()를 외어 규간(規諫)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周禮春官 瞽矇》

즉사(卽事)

 


온종일 화려한 거리를 분주하노라 / 終日驅馳綺陌間
사람마다 청산을 좋아한다 말하네만 / 無人不道愛靑山
목옹은 시 속의 경지가 따로 있기에 / 牧翁自有詩中地
끝없는 풍월로 간 곳마다 한적하다네 / 風月無涯到處閑

때로는 눈썹 사이에 기쁜 빛을 띠어라 / 時時喜色起眉間
반산
시 같은 정미한 시구도 얻는다네 / 得句精微似半山
반쯤 누런 보리밭엔 향긋한 밥이 익고 / 麥壟半黃香飯熟
짙푸른 들뽕은 깊은 바구니에 그득하네 / 野桑重綠懿筐閑

덧없는 세상 공명은 한바탕 꿈속이요 / 浮世功名一夢間
일생의 흥미는 만 겹의 청산에 있어라 / 終身興味萬重山
헤아리매 어디가 진정 할 일이 없을꼬 / 算來何處眞無事
선생만이 한나절이 한가할 뿐일세 / 只是先生半日閑

 

[주D-001]반산(半山) : ()나라 왕안석(王安石)의 별호(別號)이다.

앵도(櫻桃)를 읊다.

 


쟁반에 가득 담긴 곱디고운 둥근 구슬 / 的的圓珠滿漆盤
붉은빛 서로 쏘며 그지없이 굴러대네 / 赤光相射走難安
하늘의 사물 제작 참으로 공교해라 / 天公賦物眞奇巧
달콤한 맛에다 신 맛까지 띠게 했구려 / 旣帶微甘又帶酸

 

묘당(廟堂)에서 바야흐로 선목(選目)을 주의(注擬)하려 하는데, 나를 찾아와서 청탁을 하는 자가 꽤 많았으므로, 스스로 비웃고 나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억지로 병든 몸 버티고 뿌연 먼지 밟아서 / 支瘦骨踏紅塵
다 늘그막에 우연히 대궐 가까이 와 있으니 / 偶向殘生近紫宸
행인들은 자주 내게 손가락질을 하련만 / 自分行人頻指點
병든 나그네 괴로움은 누가 불쌍히 여길꼬 / 誰憐病客獨艱辛
감히 빈자리 찾는 건 예가 아닌 듯하나 / 敢於索闕恐非禮
우연히 전선에 참예한 나를 응당 원망하리 / 偶爾與官應是嗔
임명장이 문하성에 이미 내려간 뒤에도 / 待得除書下門下
사례오는 이 없어 비로소 몸이 편안하구려 / 寂無來謝始安身

 

스스로 읊다.

 


아침엔 급히 불돌 가져오게 했는데 / 熨瓦朝來急
창을 여니 해가 이미 중천에 떴네 / 開窓日已高
병은 깊어 기거 동작도 어려우나 / 病深乖動息
조용한 생각은 호리를 분석한다오 / 慮靜析分毫
비록 귀는 개가 생겼지마는 / 雖則生三耳
갑자기 반백의 머리를 탄식하네 / 俄而歎二毛
연경은 지금 적막하기만 한지라 / 燕山今寂寞
머리 돌려 호걸들을 생각하노라 / 回首憶群豪

 

[주D-001]불돌[熨火] : 화롯불이 쉬 꺼지지 않도록 눌러 놓는 돌이나 기왓조각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아마 결린 데를 찜질하기 위해서 가져오게 했던 듯하다.
[주D-002]귀는 …… 생겼지마는 :
세 귀가 생긴다는 것은, ()나라 때 장심통(張審通)이란 사람이 일찍이 명부(冥府)의 서기(書記)가 되어 판결문(判決文)을 한 번 잘못 써서 상관(上官)으로부터 귀 하나를 막아 버리는 벌()을 받았다가, 그 후 다시 판결문을 한 번 잘 써서 그에 대한 상으로 귀 세 개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마침내 그가 부활(復活)한 지 수일 후에 갑자기 이마가 가렵다가 이마에서 귀 하나가 더 나와서 귀가 모두 셋이 된 후로는 그가 더욱 총명(聰明)해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최인호(崔仁浩)를 희롱하다.

 


최옹은 지금 이미 늙었으니 / 崔翁今老矣
갈 길은 멀고 해는 저물어가는데 / 途遠日將沈
곧바로 삼품관을 얻고자 하면서 / 直欲拜三品
스스로 두 마음이 없다 하누나 / 自言無二心
아내는 주리면서도 투기를 하고 / 妻飢猶互妬
자식은 장성해도 서로 찾질 않네 / 子壯懶相尋
선음을 입고도 배부르길 구하니 / 蔭後仍求飽
그의 용의가 참으로 주도하구만 / 知渠用意深

 

스스로 책망하다.

 


병석은 시를 읊조리는 곳이요 / 病榻吟詩處
서연은 강의를 중지한 때로다 / 書筵輟講晨
임금께 고함엔 충성을 다해야 하고 / 告君當盡己
도를 꾀함엔 몸을 온전히 해야 하리 / 謀道要全身
대를 쪼갬은 칼을 받는 데 있거니와 / 解竹在迎刃
글을 읽는 바퀴 깎듯 해야지 /
讀書如斲輪
뉘로 하여금 차고 다숨을 알아서 / 遣誰知冷煖
물을 마시고 진실을 보게 할꼬 / 飮水見吾眞

 

[주D-001]글을 …… 해야지 : 춘 추 시대 제 환공(齊桓公)이 글을 읽고 있을 때 당() 아래서 마침 수레바퀴를 깎고 있던 목수 편()이란 자가 환공에게 글이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말하고, 70에 이르도록 수레바퀴를 깎아온 자기는 그 기술이 손에서 익혀지고 마음으로 체득한 것이어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자식에게 전해줄 수도 없다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즉 도의 본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론이나 인식보다는 실제와 체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莊子 天道》
[주D-002]뉘로 …… 할꼬 :
물의 차고 다수움은 마셔본 사람이라야 안다는 데서 온 말로, 불교(佛敎) 선종(禪宗)에서 도를 깨달은 경지에 비유한 것이다.

음우(霪雨) 3(三首)

 


장맛비는 피부를 윤택케 하고 / 霪雨肌膚潤
빈 대청은 귀와 눈을 서늘케 하네 / 虛堂耳目涼
늦게 일어남은 오랜 병 때문이요 / 懶興緣病久
높이 읊음은 시의 광기가 발함일세 / 高詠發詩狂
이끼는 점차 파릇파릇해지고 / 苔蘚將浮碧
산봉우리는 다시 울창해지누나 / 林巒更鬱蒼
누가 알랴 편히 앉아 있는 곳이 / 誰知安坐處
절로 하나의 태평성대인 줄을 / 自是一羲皇

강개한 것은 경방책이요 / 慷慨經邦策
처량한 것은 영사시로다 / 凄涼詠史詩
인재는 하늘이 내리는 바이거니와 / 人材天所降
성학은 내가 어찌 아는 바이리오 / 聖學我何知
안개 이슬은 소나무 길에 자욱하고 / 霧露沈松徑
시내와 산은 국화 울타리를 둘렀네 / 溪山擁菊籬
멀리 가련한 것은 진강의 물이 / 遙憐鎭江水
아득하여 가도가도 끝없음일세 / 渺渺去無涯

짙게 흐림은 병든 삭신을 괴롭히고 / 濃陰酸病骨
무더위는 쇠한 몸을 곤하게 하네 / 溽暑困衰身
맑은 새벽에도 기분은 침울하고 / 淸曉亦沈鬱
짧은 밤에도 잠은 이루질 못해라 / 短宵猶欠伸
삼복이 다가옴은 미리 걱정되지만 / 預憂三伏近
새로운 가을은 응당 기다려야지 / 應待九秋新
붓을 잡으니 생각은 끝이 없는데 / 把筆思無盡
덥고 서늘함은 절로 신기함이 있네 / 炎涼自有神

 

스스로 책망하다.

 


인정은 스스로 다할 바이거니와 / 人情須自盡
공론도 의당 생각해야 하고말고 / 公論亦當思
무례한 건 자주 청탁하는 짓이요 / 踰禮頻干謁
은혜를 팖은 약고도 어리석음일세 / 市恩眞黠癡
공은 적은데 작록을 사양치 않고 / 功微不辭爵
학문은 얕은데 감히 스승이라니 / 學淺敢爲師
자책하는 말 좌우명으로 삼아 / 自責銘諸坐
때때로 내 자신을 반성하련다 / 時時要省私

 

절구(絶句)

 


강산은 아스라이 나의 누각에 비치는데 / 江山渺渺入吾樓
거울 속의 백발은 한두 가을이 아니로세 / 白髮鏡中非一秋
예부터 급류에서 용퇴하긴 어렵거니와 / 自古急流難勇退
너는 지금 병이 많으니 돌아가 쉬어야지 / 汝今多病可歸休

 

[주D-001]급류(急流)에서 용퇴하긴 어렵거니와 : ()나라 때 한 고승(高僧)이 전약수(錢若水)를 보고 말하기를이 사람은 급류에서 용감히 물러날 사람이다.”고 했는데, 뒤에 전약수가 과연 벼슬이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에 이르러 40의 나이로 즉시 물러났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관도(官途)에서 한창 득의(得意)했을 때 미련 없이 과감하게 물러나는 것을 비유한다.

동년(同年) 임희좌(任希座)가 박[]을 주다.

 


빈풍의
을 내 젊어서 읽었거니 / 豳風斷壺我少讀
농사란 예부터 하나하나 정성을 다했었네 / 民事由來致其曲
동년 선생은 주나라 초기 업적을 사모해 / 同年先生慕周初
농업에 종사하니 뽕나무들도 푸르러라 / 服田南畝桑柘綠
가을이면 울타리에 박이 주렁주렁 열리어 / 秋來籬落掛新匏
작은 건 술잔 만하고 큰 것은 궤짝 만한데 / 小如杯棬大如櫝
가난한 내가 남새밭도 못 가꾸는 걸 알고 / 知我家貧懶學圃
해마다 박 가져와 깊은 골짝 비추어주네 / 年年持來照窮谷
나는 평생 밥상에 두 가지 반찬 못 먹어 / 平生案上味不重
무미하게 사는 세월 번쩍번쩍 흘렀는데 / 嚼蠟光陰如轉燭
삼월이라 표주박에 낙이 있었거니와 /
三月一瓢樂在中
섬이라 박은 말도 그리 웅장한고 /
五石大瓠言何雄
거위 오리로 비난 받을까 두려워 /
爛蒸鵝鴨恐招譏
왕왕 소리 높여 노래해 제공을 놀래키고 / 高歌往往驚諸公
황차 이젠 병들어 매여 있어 먹기에 / 況今病餘繫不食
넘치는 잎새로 국풍이나 노래하네 /
濟盈苦葉歌國風
밝은 창 아래 붓 휘둘러 동년께 사례하노니 / 明窓揮筆謝同年
내 기용은 질그릇이라 화려한 게 없음일세 / 器用陶瓦無朱紅
그대 나를 깊이 알아주는 데 감격하여 / 感君知我不之淺
짧은 노래 뱉어내니 소리가 하늘에 닿네 / 吐出短歌聲摩空
나뭇가지에 걸던 허유
나 배울 뿐이요 / 且學許由掛樹枝
귀 어두워 훈지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네 / 耳聵不欲聞塤篪

 

[주D-001]빈풍(豳風) : 《시 경》 빈풍 칠월(七月)팔월이면 박을 따서 쪼개고, 구월에는 삼씨를 주워 모으네.[八月斷壺 九月叔苴]”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어린 성왕(成王)이 즉위함에 미쳐 그의 삼촌인 주공(周公)이 성왕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옛날 주()나라의 선조(先祖)인 후직(后稷)이 맨 처음 빈() 땅에 나라를 열고 백성들에게 농사를 장려하여 백성들을 모두 잘 살게 했던 일을 진술해서 성왕을 경계한 것이다.
[주D-002]삼월(三月)이라 …… 있었거니와 :
공 자가 이르기를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는다.[回也 其心三月不違仁]” 하였고, 또 이르기를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 음료수로 누추한 시골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근심을 감당치 못하건만,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D-003] 섬이라 …… 웅장한고 :
장 자(莊子)가 혜자(惠子)에게 말하기를지금 자네에겐 닷 섬들이 바가지가 있는데, 어찌하여 그것을 큰 통으로 만들어 강호에 띄울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것이 너무 커서 쓸 데가 없다고 걱정만 하는가?[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 而憂其瓠落無所容]” 한 데서 온 말이다. 《莊子 逍遙遊》
[주D-004]푹 …… 두려워 :
당 덕종(唐德宗) 연간의 재상 정여경(鄭餘慶)이 일찍이 사람들을 불러서 회식(會食)할 적에 좌우(左右) 측근을 불러 이르기를푹 쪄서 터럭만 제거하고 목은 꺾어뜨리지 말라.[爛蒸去毛 勿拗折項]”고 하자, 여러 사람들이 속으로 반드시 거위나 오리[鵝鴨] 따위를 말한 것이리라고 생각했는데, 한참 뒤에 음식을 차려와서 보니, 매 한 사람 앞에 각각 밤밥[栗飯] 한 사발과 찐 호리병박 하나씩이 올려졌으므로, 사람들이 몹시 실망한 나머지, 마지못해 억지로 그것을 먹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소식(蘇軾)의 〈우일수답이유자여왕랑견화(又一首答二猶子與王郞見和)〉 시에청태를 포로 삼고 청포를 불고기로 삼아라, 푹 찐 거위 오리는 바로 호리병박이라네.[脯靑苔炙靑蒲 爛蒸鵝鴨乃瓠壺]”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21
[주D-005]매여 있어 먹기에 :
춘 추 시대 조()나라 중모재(中牟宰)인 필힐(
)이 공자(孔子)를 부르자 공자가 가려고 하였는데,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필힐은 불선한 사람이므로 가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말하자, 공자가 이르기를내가 어찌 박이더냐, 어째서 한군데에 매여 있어 음식도 먹지 못한단 말이냐?[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陽貨》
[주D-006]넘치는 …… 노래하네 :
《시 경》 국풍(國風) 패풍(
) 포유고엽(匏有苦葉)박에 쓴 잎 달려 아직 못 띄우는데, 건너갈 나루터는 하 깊도다.……나루터의 물은 넘실대거늘, 암꿩이 막 울어대도다.[匏有苦葉 濟有深涉……有瀰濟盈 有雉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나뭇가지에 …… 허유(許由) :
() 임금 때에 고사(高士) 허유가 기산(箕山)에 은거하면서 처음에는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시다가 어떤 이가 바가지를 하나 준 뒤로는 바가지로 물을 떠서 마셨는데, 매양 물을 떠서 마시고는 바가지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던바, 뒤에는 그 바가지가 바람에 흔들려 요란한 소리가 나는 것을 싫어하여 마침내 그 바가지까지 버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2009-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