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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손(宗孫)의 시권(詩卷)에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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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재 사문이 우리 해동을 압도하였으니 / 益齋門墻壓東海
북두가 하늘 받치매 하늘이 의지한 듯 / 斗柄揷天天倚蓋
문장의 원기는 사시의 변화를 참작하여 / 文章元氣酌四時
중원의 기풍 내뿜어서 해외에 불어왔네 / 吐出華風吹海外
우리 부자는 광석 가운데 쇳덩이처럼 / 我家父子鑛中金
익재의 주조를 입어 홍량한 소리 펼쳐서 / 一被鑄出宣洪音
환히 서로 빛나 남의 이목 경동시켰으니 / 炳然相輝動人目
은의가 이 때문에 천지와 같이 깊다네 / 恩義所以天地深
내 감히 아첨하는 말을 자네에게 이르랴 / 敢把諛辭進吾子
내 속맘을 다 꺼내서 보여 주는 거로세 / 我出肺腑肉相示
만권 서책을 읽어서 또한 어디에 쓰랴 / 讀書萬卷亦安用
인륜 본체 밝혀서 충효를 실천할 뿐이네 / 明體達之忠孝耳
우선 대학 한 부의 책에 마음을 두어서 / 且心大學一部書
정정을 한 다음 나머지를 구하게나 / 靜定然後求其餘
격물치지 제가 평천하가 다 여기 있거니 / 致格齊平盡在此
타일에 내 한 말을 행여 경홀히 여길쏜가 / 他日吾言其忽諸
[주D-001]정정(靜定) : 《대 학장구(大學章句)》 경 1장에 “그칠 곳을 안 다음에 뜻이 정해지고, 뜻이 정해진 다음에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진 다음에 처한 곳이 편안해지고, 처한 곳이 편안해진 다음에 자상하게 생각할 수 있고, 자상하게 생각한 다음에 그칠 바를 얻을 수 있다.[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慮而后能得]” 한 데서 온 말이다.
흥취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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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는 일찍이 범중엄을 배우려 했는데 / 進退曾期范仲淹
돌아감은 도리어 진나라 도잠 같구나 / 歸來却似晉陶潛
강산과 풍월은 평생에 만족하거니와 / 江山風月平生足
술동이와 시편은 흥미를 겸했고말고 / 樽酒篇章興味兼
가는 구름 사랑해 자주 지팡이 세우고 / 爲愛行雲頻植杖
자는 새 놀랄까 봐 주렴 드물게 걷노라 / 恐驚宿鳥罕鉤簾
한가함 속에 절로 마음 존양할 곳 있으니 / 閑中自有存心處
성성한 백발 더한 것이 가장 다행스럽네 / 最幸星星鬢上添
내가 동으로 올 때는 정히 소년이었고 / 記我東歸政少年
북당의 어머니께선 한창 청춘이었는데 / 北堂萱草媚靑天
주상 은혜는 자주로 불차 탁용 했었건만 / 主恩不次超遷數
자식 도리는 언제 온전히 봉양해봤던가 / 子職何曾奉養全
백발은 처음 쇠하여 털이 막 짧아지고 / 白髮始衰方種種
충심은 늙어서도 늘 연연해 마지않네 / 丹心到老尙懸懸
한산의 산 아래엔 잡초들이 하 많거니 / 韓山山下多蒿艾
종당엔 띳집 짓고 돌더렁밭 개간하련다 / 茅屋終當墾石田
[주D-001]진퇴(進退)는 …… 했는데 : 범 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묘당(廟堂)의 높은 곳에 있을 때는 백성을 걱정하고, 강호(江湖)의 먼 곳에 있을 때는 임금을 걱정하는지라, 이것이 바로 나아가서도 걱정하고 물러가서도 걱정하는 것[進亦憂退亦憂]이니, 그렇다면 어느 때에 즐거워할 것인가? 그것은 기필코 ‘천하 사람의 근심은 내가 먼저 근심하고 천하 사람의 즐거움은 내가 나중에 즐거워하는 것[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이리라.”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돌아감은 …… 같구나 : 도잠(陶潛)이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으로 있다가 갑자기 벼슬을 그만두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 전원(田園)으로 돌아갔던 데서 온 말이다.
고풍(古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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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한 번 개벽함으로 인해 / 玄黃一開闢
풍기가 태허를 만들어 냈건만 / 風氣生太虛
조짐은 아직 혼돈 상태이어서 / 朕兆尙混芒
광대한 원기가 꿈틀거릴 뿐인데 / 磅礴仍扶輿
누가 알았으랴 주나라의 문이 / 誰知周之文
찬연하게 도리어 유여할 줄을 / 粲然還有餘
은하수는 절로 반짝반짝하건만 / 星河自耿耿
초목은 어찌 그리 번성했던고 / 草木何與與
인륜 펴서 백성 법칙 세웠어라 / 陳常立民極
멀리 무왕의 초기가 생각나누나 / 緬想皇王初
세도는 날로 말절만 추구하여 / 世道日趨末
질박함 깎아 화사하기를 다투니 / 斲朴競奢華
화려함은 고금 천지를 빛내고 / 組綉耀宇宙
구슬과 금은 못과 모래에서 나오네 / 珠金出淵沙
누가 알리오 은나라의 질박함이 / 誰知殷之質
완연히 조금도 잘못됨이 없음을 / 宛然無少訛
아름다운 옥은 쪼지 말아야 하거니와 / 美玉當不琢
현주는 참으로 아름답고말고 / 玄酒誠可嘉
그림은 응당 흰 바탕에 그리나니 / 繪事必後素
내가 지금 다시 무엇을 탄식하랴 / 吾今復何嗟
문장은 하나의 작은 기예이지만 / 文章一小技
또한 시속의 숭상한 바를 따르나니 / 亦從時尙趨
화려한 것은 고운 비단 같고요 / 綺麗似文錦
질박한 것은 마른 나무 등걸 같네 / 質樸如枯株
누가 알랴 각각 맞추어 씀에 있어 / 誰知各適用
세차게 떨치게도 온화하게도 함을 / 奮迅仍喣婾
복희씨는 괘 긋는 걸로 족했지만 / 庖犧畫卦足
공자는 문언을 부연했었거니 / 仲尼文言敷
요원하기도 해라 천재 아래의 / 遼哉千載下
우리 무리는 참으로 하찮고말고 / 我輩誠區區
[주D-001]주(周)나라의 문(文) : 《중 용장구(中庸章句)》 제19장의 왕천하유삼중언(王天下有三重焉) 주석에서 정현(鄭玄)이 삼왕(三王)의 예(禮)를 가리켜 “하나라는 충후함을 숭상하였고, 상나라는 질박함을 숭상하였고, 주나라는 문채를 숭상하였다.[夏尙忠 商尙質 周尙文]”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초목(草木)은 …… 번성했던고 : 주로 주대(周代)의 시가(詩歌)들을 모아 놓은 《시경(詩經)》에는 특히 조수(鳥獸)와 초목(草木)의 이름이 많이 실려 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3]현주(玄酒) : 정화수(井華水)의 별칭이다. 태고(太古) 시대에는 술이 없었기 때문에 제사 때 정화수를 술 대신 썼던 데서 현주라 이름한 것인데, 후대(後代)에는 술이 있음에도 옛것을 잊지 않는 뜻에서 정화수를 꼭 썼다고 한다.
[주D-004]그림은 …… 그리나니 : 공자가 이르기를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다음에 하는 것이다.[繪事後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본연의 질박함이 먼저이고 예(禮)의 문식(文飾)은 나중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論語 八佾》
[주D-005]복희씨(伏羲氏)는 …… 족했지만 : 복희씨가 맨 처음으로 팔괘(八卦)를 그어 만들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6]문언(文言) : 공자가 지었다고 하는 《주역(周易)》 십익(十翼) 가운데 하나인데, 이것은 곧 건(乾), 곤(坤) 두 괘(卦)의 의의(意義)를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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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가 없도다 / 已矣乎
천자가 북으로 순수해 동쪽 구석에 오니 / 天子北狩來東隅
장백산 앞에는 푸른 초야도 많거니와 / 長白山前多綠蕪
타봉에다 양락이랑 담요까지 벌였는데 / 駝峰羊酪羅氍毹
외론 성 굳게 지키며 상기도 걱정하여라 / 孤城堅壁尙爲虞
감히 중원을 향해서 영토를 다툴쏜가 / 敢向中原爭版圖
어쩔 수가 없도다 / 已矣乎
당시의 세가들이 모두 다 쇠퇴해졌거니 / 當時世家盡零落
행여 후사를 부탁할 만한 인재가 있으랴 / 倘有臥龍堪付託
성정에서 조서 듣고 속으로 눈물 흘렸고 / 省庭聽詔淚流臆
진하표는 먼지 낀 채 시렁에 묶여 있네 / 賀表塵棲束高閣
바다 서쪽은 길이 막히고 산도 험준하니 / 海西路梗山崢嶸
이는 결코 부로들의 정성이 부족해서 / 不是父老無精誠
지척의 존엄한 천자를 안 뵙는 게 아닐세 / 咫尺違顔天子明
어쩔 수가 없도다 / 已矣乎
백발의 늙은 목은은 구곡간장 다 녹는데 / 白頭老牧腸九回
북풍은 나날이 남대로 불어닥치는구나 / 北風日日吹南臺
왕년의 사필은 맹렬한 천둥과 같았으니 / 他年史筆如奔雷
고정 부자는 참으로 뛰어난 재주고말고 / 考亭夫子眞豪才
[주C-001]이의호가(已矣乎歌) : 이 의호는 절망하여 탄식하는 말로서, 즉 공자가 이르기를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아직 자기 과실을 능히 알아서 속으로 반성하는 자를 보지 못했노라.[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 而內自訟者也]” 하였고, 또 이르기를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아직 덕 있는 이 좋아하기를 마치 여색 좋아하듯이 하는 자를 보지 못했노라.[已矣乎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公冶長, 衛靈公》
[주D-001]천자(天子)가 …… 오니 : 여 기의 천자는 바로 원 순제(元順帝)를 가리킨다. 원 순제 28년(1368)에 순제가 명병(明兵)에게 쫓기어 처음에는 상도(上都)인 개평부(開平府)로 행행하여 지냈고, 29년에는 다시 그곳까지 명병의 공격을 받게 되어 마침내 만주(滿洲) 열하성(熱河省) 응창부(應昌府)로 옮겨 행행해 있다가 그다음 해인 30년에 순제가 끝내 그곳에서 생을 마쳤던 데서 온 말이다. 그 후로는 순제의 장자(長子) 소종(昭宗)이 순제의 뒤를 이어 그곳에서 다시 즉위했으나, 또 명병에게 쫓기어 다시 원(元)의 구도(舊都)인 화림(和林)으로 옮겼고, 그 후 또 쫓기어 금산(金山)으로 옮겨 지내다가 마침내 즉위한 지 8년 만에 금산에서 생을 마쳤다.
[주D-002]타봉(駝峰)에다 양락(羊酪) : 타봉은 곧 낙타(駱駝)의 등 위에 불룩 솟은 육봉(肉峰)을 가리키는데, 고인(古人)들이 이것을 진귀한 식품으로 여겼다 하고, 양락은 곧 양유(羊乳)의 지방(脂肪)을 분리하여 만든 식료품인데, 이것 또한 진귀한 식품으로 알려졌다.
[주D-003]왕년의 …… 재주고말고 : 고 정(考亭)은 주희(朱熹)가 살았던 곳의 지명으로, 고정 부자는 곧 주희를 높여 이르는 말인데, 주희의 역사에 관한 일로 말하자면, 일찍이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하면서 조조(曹操)를 정통(正統)으로 보아 위 무제기(魏武帝紀)를 둔 데 반하여 주희는 조조를 역신(逆臣)으로 간주하여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하면서 그를 정통에서 제외했던 것 등이다.
하일(夏日)의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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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구름이 온종일 쇠한 얼굴 비추어 / 火雲終日照衰顔
팔면이 텅 빈 집에 관도 안 쓰고 앉았노니 / 八面虛堂坐不冠
도엽 냉도는 시원함이 뼈에 사무치고요 / 桃葉冷淘淸入骨
새 귤피 약제는 온기가 간장에 어리누나 / 橘皮新劑暖凝肝
무더위엔 매양 벌빙 귀족이 부럽거니와 / 炎蒸每感伐氷貴
진창을 보고야 행로의 어려움을 안다네 / 泥濘方知行路難
한 번 한가로움이 진정 즐거움직하여라 / 只得一閑眞可樂
숲에 바람 이니 절로 찬 기운이 나누나 / 樹林風動自生寒
황하가 바다에 이르듯 청춘이 떠나가니 / 黃河到海謝朱顔
쓸쓸한 백발에 의관 정제도 귀찮네그려 / 鬢髮蕭蕭懶整冠
구전단을 이루어라 단전은 튼튼해지고 / 九轉丹成心在臍
십 년 등불 침침한 속에 충정은 그지없네 / 十年燈暗血歸肝
공명은 마치 꿈속의 꿈과 흡사하거니와 / 功名恰似夢中夢
도덕은 더 없이 어려움을 스스로 알겠네 / 道德自知難上難
호걸의 선비가 나지 않는 땅이 없건마는 / 無地不生豪傑士
구이 중에 나만 유독 이렇게 곤궁하다니 / 九夷唯我獨酸寒
부귀는 뜬구름이라 안자만 희망했거니 / 浮雲富貴早希顔
더구나 연래엔 벼슬도 그만두었음에랴 / 況復年來已掛冠
홀로 고문을 향해 누가 방담문을 쓸런고 / 獨向古文誰放膽
매양 새 일 만나면 나는 간장이 꺾인다네 / 每逢新事我摧肝
얼음 깨고 농사하던 빈풍은 멀기만 하고 / 鑿氷載畝豳風遠
정성 지나 삼성 만져라 촉도는 험난도 하지 / 歷井捫參蜀道難
유유한 신세 험난함과 평탄함 잊었으니 / 身世悠悠忘險易
늙은이는 참으로 이 청빈한 절조뿐일세 / 老翁眞箇是淸寒
[주D-001]도엽 냉도(桃葉冷淘) : 옛날 괴엽(槐葉)의 즙(汁)을 면(麪)에 섞어서 만든 국수로 일종의 냉면을 가리킨 것이니, 원문의 도(桃) 자는 괴(槐) 자의 착오인 듯하다.
[주D-002]벌빙(伐氷) 귀족 : 옛날에 경대부(卿大夫) 이상의 귀족만이 상제(喪祭)에 얼음을 쓸 수 있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황하(黃河)가 …… 떠나가니 : 이 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에 “그대는 못 보았나 황하의 물이 천상으로부터 내려와서, 바다로 세차게 흘러들어 다시 못 돌아오는 걸.[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廻]”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빠른 세월 속에 한 번 늙어지면 젊음을 다시 찾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주D-004]구이(九夷) : 아홉 종류의 동이(東夷)를 가리킨다.
[주D-005]방담문(放膽文) : 소소한 문법(文法)에 구애하지 않고 대담하게 쓰는 문장을 가리킨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문법에 맞추어 쓰는 소심문(小心文)과 대조를 이룬다.
[주D-006]얼음 …… 빈풍(豳風) : 《시 경(詩經)》 빈풍(豳風) 칠월(七月) 편은 특히 주(周)나라 시조(始祖) 후직(后稷)이 농사에 힘썼던 일을 노래한 것으로, 그 가운데 섣달에는 얼음을 깨어 내서, 정월이면 얼음을 창고에 저장하고, 봄이 오면 밭에 나가 농사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실려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7]정성(井星) …… 하지 :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에 “삼성 만지고 정성 지나 우러러 숨 헐떡거리고, 손으로 가슴 쓸어내리며 앉아서 길이 탄식하네.[捫參歷井仰脅息 以手拊膺坐長歎]”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세로(世路)의 험난함을 비유한 것이다.
흥취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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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는 먼 데로부터 이어왔건만 / 騷雅相承遠
강산은 홀로 가기 어렵기도 해라 / 江山獨往難
구름을 보며 홀로 외로이 지내고 / 看雲弔形影
시구를 다듬느라 생각을 쏟노라니 / 琢句嘔心肝
매우는 온 숲에 자욱이 내리고 / 梅雨千林暗
솔바람은 유월에 한기를 느끼겠네 / 松風六月寒
점차 알겠네 시골 정취 많아져서 / 漸知多野趣
손이 와도 의관 정제 게을리함을 / 客至懶衣冠
환한 천재의 거울을 가지고 / 昭然千載鑑
오만 일을 평정하고자 하는데 / 萬事欲平難
정직한 이 사랑함은 더 없이 가볍고 / 愛直如蟬翼
간악한 자 죽임엔 마간을 칭탁하네 / 誅奸託馬肝
가생은 선실의 밤에 불리었고 / 賈生宣室夜
범숙은 제포가 차가웠어라 / 范叔綈袍寒
누가 알리오 이 한산자가 / 誰識韓山子
상하가 도치된 꼴을 걱정하는 걸 / 方憂倒履冠
[주D-001]소아(騷雅) : 《시경》의 소아(小雅), 대아(大雅)와 굴원(屈原)의 이소(離騷)를 합칭한 말인데, 전하여 품격(品格)이 뛰어난 고상한 시문(詩文)을 가리킨다.
[주D-002]마간(馬肝) : 한 경제(漢景帝) 때 경학자(經學者)인 원고(轅固)가 일찍이 임금 앞에서 황생(黃生)과 쟁론(爭論)을 벌일 적에 황생이 탕무(湯武)는 천명(天命)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임금을 죽인 것이라고 말하자, 원고는 걸주(桀紂)가 황란(荒亂)함으로 인해 천하 인심이 탕무에게 돌아감으로써 탕무가 부득이 천하를 차지한 것이라고 반박하였는데, 이때 임금이 그들의 말을 듣고 이르기를 “말의 간을 먹지 않아도 고기 맛을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하니, 그것은 바로 학자들이 탕무의 수명(受命)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도 어리석음이 되지 않음을 이른 말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인데, 말의 간은 독이 있어 사람이 먹으면 죽는다고 하는바, 탕무가 임금을 죽였다고 하는 것은 곧 경의(經義)에 위배되므로, 이를 말의 간을 먹는 데에 비유한 것이다. 《漢書 卷88 轅固傳》
[주D-003]가생(賈生)은 …… 불리었고 : 가생은 곧 가의(賈誼)를 가리키는데, 한 문제(漢文帝)가 일찍이 한밤중에 선실(宣室)로 가의를 불러 인견하면서 천하 다스리는 일은 묻지 않고 귀신에 관한 일만을 물었던 데서 온 말이다. 《漢書卷48 賈誼傳》
[주D-004]범숙(范叔)은 제포(綈袍)가 차가웠어라 : 범 숙은 전국 시대 진(秦)나라의 재상으로 자가 숙(叔)이었던 범수(范睢)를 가리키고, 제포는 솜 둔 명주옷을 가리킨다. 범수는 본디 위(魏)나라 사람으로 처음에 위나라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와 함께 위나라를 섬기다가 수가의 훼방을 받아 모진 곤욕을 당하고 진나라로 도망쳐 가서 재상이 되었다. 뒤에 진나라가 위나라를 치려고 하기에 위나라 수가가 진나라에 사신 갔을 적에 범수가 자기 신분을 감추고 해진 옷차림으로 수가를 찾아가 보았는데 수가는 범수의 신분을 알지 못하고 그의 헐벗은 모양을 불쌍히 여겨 솜 둔 옷을 주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79 范睢列傳》
화원(花園) 양화원(養花員)의 천거 요구를 받고 인하여 지인 승제(知印承制)에게 천장(薦狀)을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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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고 늦음은 비록 다르거니와 / 蚤晚雖然異
성함과 시듦 또한 같지 않지만 / 榮枯亦不同
바라건대 우로를 고루 내리시어 / 願天均雨露
꽃 가꾼 공을 특별히 표창했으면 / 表出養花功
흥취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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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생활 이 맛을 아는 이 적으려니와 / 幽居有味少人知
당년에 퇴청하여 밥 먹던 때가 기억나네 / 記得當年退食時
아이에겐 파 잎 불며 죽마를 타게 하고 / 敎子吹蔥騎竹馬
손님 접대엔 금거북 보내 술을 바꿔 왔지 / 對賓沽酒送金龜
병중에 누워 있자니 몸과 마음은 괴롭고 / 病中偃臥身心苦
난리 뒤론 읊조리다 이와 머리털 쇠했네 / 亂後謳吟齒髮衰
이 생도 천지간의 일개 기생물일 뿐인데 / 俯仰此生如寄耳
우는 새 두어 소리에 비가 실실 내리누나 / 數聲啼鳥雨絲絲
목은 노인은 우직하여 아는 것도 없는데 / 牧老空空未有知
병든 뒤론 높이 누워 태평성대 사절했네 / 病餘高臥謝明時
젊어서는 흡사 하늘을 나는 학 같았더니 / 早年恰似沖天鶴
만년엔 도리어 태양 삼키는 거북 같구나 / 晚景還同嚥日龜
변덕 부리는 게 덕이 아님은 잘 알거니와 / 自信二三非是德
남들은 오십을 쇠라 일컫는다 말들 하네 / 人言五十已稱衰
한가함 속에 모름지기 고금을 함양해야지 / 閑中今古須涵養
푸른 숲 청풍이 귀밑털에 좋이 불어오잖나 / 綠樹淸風吹鬢絲
순제 공부는 지식을 안 쓰는 데 있나니 / 順帝功夫在不知
예로부터 발상하던 때를 멀리 생각하노라 / 緬懷從古發祥時
들 기린은 늪에 있고 봉황은 뫼에서 울며 / 郊麟在藪鳴岡鳳
하수의 용마 낙수의 거북은 도서를 바쳤네 / 河馬呈圖出洛龜
모든 성인이 이를 세상 법칙으로 삼았는데 / 壹是聖人爲世則
유독 부자가 내 쇠함 탄식한 게 가련해라 / 獨憐夫子嘆吾衰
사납게 멸하는 게 인이 아님을 잘 알거니 / 明知暴殄非仁恕
하늘이 낸 물건은 사소한 것도 아껴야지 / 天物終當惜寸絲
[주D-001]퇴청하여 …… 때 : 높은 관원(官員)의 검소한 생활을 의미한다. 《詩經 召南 羔羊》
[주D-002]파 잎 불며 : 아 이들 놀이의 일종으로, 파 잎을 입으로 불어 삐삐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한다. 송(宋)나라 유극장(劉克莊)의 시에 “어려서 파 잎 불 적엔 들을 만했었는데, 늙어서 호리병 그리긴 되레 익숙지 못하네.[幼吹蔥葉還堪聽 老畫葫蘆却未工]” 하였다.
[주D-003]손님 …… 왔지 : 금 거북[金龜]은 옛날 허리띠에 장식하던 패물(佩物)의 일종이다. 당 현종(唐玄宗) 때의 시인인 하지장(賀知章)은 시문(詩文)과 글씨에 모두 뛰어났고, 술을 매우 좋아하였는데, 이백(李白)의 〈대주억하감(對酒憶賀監)〉 시에 의하면 “사명에 미친 나그네 있었으니, 풍류 넘치는 하계진이로다. 장안에서 한 번 서로 만나서는, 나를 적선인이라 불렀었지. 그 옛날 술을 그리도 좋아하더니, 어느새 솔 밑의 티끌이 되었구려. 금거북으로 술 바꿔 마시던 일, 생각만 하면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四明有狂客風流賀季眞 長安一相見 呼我謫仙人 昔好杯中物 翻爲松下塵 金龜換酒處 却憶淚沾巾]” 한 데서 온 말이다. 《李太白集 卷22》
[주D-004]태양 삼키는 거북 : 태양의 정기(精氣)를 삼킨다는 도가(道家)의 한 가지 수양법(修養法)에서 온 말이다.
[주D-005]오십(五十)을 쇠라 일컫는다 :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오십에 비로소 쇠한다.[五十始衰]” 하였다.
[주D-006]순제(順帝) …… 있나니 : 순제는 하늘의 명을 따른다는 뜻으로, 《시경(詩經)》 대아(大雅) 황의(皇矣)에서 문왕(文王)의 덕을 찬양하여 “자기의 지식을 쓰지 않아, 상제의 법칙을 따랐다.[不識不知 順帝之則]”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발상(發祥) : 천명(天命)을 받아 나라를 창건할 길조(吉兆)가 나타남을 뜻한다. 《시경》 상송(商頌) 장발(長發)에 “대대로 밝은 임금 상나라에, 상서 내린 지 이미 오래였네.[濬哲維商 長發其祥]” 하였다.
[주D-008]들 기린은 …… 바쳤네 : 도서(圖書)는 곧 하도 낙서(河圖洛書)를 가리키는데, 이는 모두 성왕(聖王)의 태평 시대를 의미한 말이다. 《禮記 禮運》
[주D-009]유독 …… 가련해라 : 공 자(孔子) 당시에 성왕(聖王)의 가서(嘉瑞)인 기린[麟]이 나오기는 했으나 성왕이 없는 세상에 잘못 나와서 잡혀 죽고 공자의 도는 더욱 막혀서 행해지지 않았으므로, 공자가 끝내는 이르기를 “심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내가 다시 꿈에 주공을 보지 못한지가 오래되었구나.[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주D-010]사납게 …… 아껴야지 : 《서경(書經)》 주서(周書) 무성(武成)에 “지금 상왕 수는 무도하여 하늘이 낸 물건들을 사납게 멸하고, 백성들을 해치고 학대한다.[今商王受無道 暴殄天物 害虐蒸民]” 한 데서 온 말이다.
신륵사(神勒寺)의 주사(珠師)가 둥근 부채를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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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잡힌 종이는 잔잔한 물결 무늬 같은데 / 皺紙鱗鱗水起紋
근처 물가엔 연꽃 백로요 먼 산엔 구름일세 / 近汀荷鷺遠山雲
알겠어라 주사는 청량한 경계 만들어 내어 / 知師幻出淸涼境
석양까지 바람 드는 창을 기대 앉았으리 / 坐倚風櫺到夕曛
걸상 위의 청풍은 문득 옷깃에 가득한데 / 榻上淸風忽滿襟
밝은 달은 안석 위의 거문고를 비추누나 / 團團璧月照牀琴
어느 때나 외로운 배에 이 몸 싣고 가서 / 何時著我孤舟去
깊은 밤 절간에 앉아 더위를 피할거나 / 避暑僧窓坐夜深
마음속의 번뇌는 하늘을 태우려 하는데 / 心中熱惱欲燒天
더구나 묵은 병까지 오래 낫지 않음에랴 / 況是沈痾久不痊
또 묻노니 주사는 내게 나눠 주지 않겠나 / 且問珠師分我否
뜰 앞의 잣나무라 말하던 조사의 선을 / 庭前柏樹祖師禪
[주D-001]뜰 앞의 …… 선을 : 당(唐)나라 때 한 승려(僧侶)가 고승(高僧) 조주(趙州)에게 묻기를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조주가 말하기를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고 했던 선어(禪語)에서 온 말이다.
한거(閑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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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의 중심은 적적하기도 해라 / 柳洞中心寂
송악산의 왼쪽 날개에 연했는데 / 松山左臂連
북쪽 비탈엔 과일 나무가 많고 / 北崖多果木
남쪽 고개는 오이밭이 절반일세 / 南嶺半苽田
게을러서 의관 정제는 잊거니와 / 疏懶忘巾櫛
몸 기댈 안석과 자리는 있다오 / 支持有几筵
다만 지금 무미 담박한 이 맛을 / 卽今無味處
후일에 그 누가 전할런고 / 異日有誰傳
시 읊음은 기분을 쾌히 하려 함인데 / 吟詩將快氣
붓만 잡으면 문득 정을 잊게 되네 / 把筆却忘情
생애의 고통스러움을 못 믿겠어라 / 未信生涯苦
엄연히 분수 밖에 청한하니 말일세 / 居然分外淸
구름 낀 산은 흐릿하게 연하였고 / 雲山連暗淡
들길은 가로 세로로 얽히었는데 / 野逕遶縱橫
온종일 찾아오는 이 적거니와 / 盡日經過少
은거 생활에 이름 구할 것 없어라 / 幽居不用名
송제의 길은 날마다 다니고요 / 日踏松齊路
유항 누각은 때로 올라가는데 / 時登柳巷樓
청담은 비린한 회포를 없애 주고 / 淸談消鄙吝
유덕한 원로는 풍류가 생각나네 / 舊德想風流
얼음 눈은 시 속에 차가웁고요 / 氷雪詩中冷
산 숲은 자리 위에 그윽하구나 / 山林座上幽
때로 기로들이 회합할 적엔 / 有時耆老會
말석에 앉은 흥취가 그지없다네 / 隅坐興悠悠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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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나 읊조리며 내 쇠함 탄식했으며 / 幾年吟嘯嘆吾衰
시 짓는 법칙은 어찌 일찍이 기괴했던가 / 句法何曾怪與奇
백발토록 경전 연구는 스스로 천시하지만 / 皓首窮經還自鄙
충심으로 나라 보답한 건 누가 알아줄꼬 / 赤心報國有誰知
서책이 나를 둘러싸라 청산은 참말 좋고 / 圖書繞我靑山好
문 앞에 사람 없어라 백일은 정히 더디네 / 門巷無人白日遲
삼만 리라 머나먼 중원에 머리 돌리니 / 回首中原三萬里
남방 사람 북방 사람이 생애가 각각일세 / 炎風朔雪各生涯
언로가 능히 국운의 쇠잔함을 붙드나니 / 言路能扶氣數衰
모름지기 백리해와 궁지기를 보아야지 / 須看百里與之奇
간한 말 안 들어도 일은 혹 성취하지만 / 諫而不聽事或濟
묵묵으로 용납한다면 시대를 알 만하리 / 默足以容時可知
어느 날 나루터 물으러 자로를 따를꼬 / 何日問津從季路
때로는 채소밭 배우러 번지를 찾는다오 / 有時學圃向樊遲
늙어 가매 신병 많은 게 몹시 한스러워라 / 老來苦恨身多病
유한한 생에 앎은 무한함을 점차 보겠네 / 漸見生涯未有涯
이 마음은 예전 같건만 이 몸은 쇠했고 / 此心如舊此身衰
재주는 남만 못한데 운명도 기박하여라 / 才不如人數又奇
날마다 문 닫으니 얻는 건 있는 듯한데 / 日日閉門如有得
때때로 술 가져온 이는 바로 아는 이로세 / 時時携酒是相知
혹 소낙비 피해 누각에 오르면 유쾌한데 / 或因驟雨登樓快
스스로 새 시 고치러 붓 대기는 더디구나 / 自改新詩下筆遲
흐르는 물 뜬구름에 정경이 담박하니 / 流水浮雲情境淡
개중의 맑은 흥취로 생애가 만족스럽구려 / 箇中淸興足生涯
[주D-001]백리해(百里奚)와 궁지기(窮之奇) : 모 두 춘추 시대 우(虞)나라 신하인데, 진(晉)나라에서 좋은 옥벽(玉璧)과 명마(名馬)를 우(虞)나라 임금에게 바치고 우나라에 길을 빌려 괵(虢)나라를 치려고 할 때, 궁지기는 임금을 간(諫)하였고, 백리해는 간해 봤자 임금이 듣지 않을 것이라 하여 끝내 우나라가 멸망할 줄을 미리 알고는 간하지도 않고 우나라를 먼저 떠나 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上》
[주D-002]묵묵으로 …… 알 만하리 : 《중 용장구(中庸章句)》 제27장에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그 말이 몸을 일으키기에 족하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그 묵묵함이 몸을 용납하기에 족하다.[國有道其言足以興 國無道 其默足以容]” 한 데서 온 말로, 묵묵으로 용납한다는 것은 곧 무도한 시대임을 의미한다.
[주D-003]어느 날 …… 따를꼬 : 공 자(孔子)가 도를 행하고자 제자들을 데리고 천하를 주류하던 시절, 초(楚)나라에 들렀을 때 마침 밭을 갈고 있던 두 은자(隱者) 장저(長沮), 걸닉(桀溺)에게 자로(子路)를 시켜 나루터를 묻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微子》
[주D-004]때로는 …… 찾는다오 : 공자의 제자 번지(樊遲)가 일찍이 공자에게 채소밭 가꾸는 법을 배우기를 청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전원생활을 의미한다. 《論語 子路》
[주D-005]유한한 …… 무한함 :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에 “우리의 생명은 한이 있으나 지식은 한이 없는 것이니, 한이 있는 것으로 한이 없는 것을 따르자면 위태할 뿐이다.[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 以有涯隨無涯 殆已]” 한 데서 온 말이다.
오생(吾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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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내 스스로 반성해 보니 / 吾生吾自省
거울 속에 두 귀밑은 시들었는데 / 雙鬢鏡中秋
급급한 건 명예와 이끗이었고 / 汲汲名兼利
구구한 건 즐거움과 근심이었네 / 區區樂且憂
동파는 붙여 삶 같다고 탄식했고 / 東坡嘆如寄
팽택은 장차 다할 것을 느꼈었지 / 彭澤感行休
맑은 바람 밝은 달 끝없는 곳에 / 風月無涯處
홀로 누각 기대어 소리 높여 읊노라 / 高吟獨倚樓
[주D-001]동파(東坡)는 …… 탄식했고 : 동파 소식(蘇軾)의 시에는 특히 “내 인생은 붙여 삶과 같을 뿐이다.[吾生如寄耳]”라는 시구가 수없이 많이 나온다.
[주D-002]팽택(彭澤)은 …… 느꼈었지 :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지냈던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만물이 제때를 얻음을 부러워하고, 내 인생은 장차 다할 것을 느끼노라.[羨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한 데서 온 말이다.
글 읽던 곳을 노래하다. 병서(幷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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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산(韓山)의 숭정산(崇井山)은 내가 태어나서 2세 때에 부모(父母)가 고향으로 돌아갔으므로 8세 이후에 있었던 곳이고, 교동(喬桐)의 화개산(華蓋山)은 14세 때에 있었던 곳이며, 한양(漢陽)의 삼각산(三角山)은 17세 되던 해 봄에 있었던 곳이고, 견주(見州)의 감악산(紺嶽山)은 그해 가을에 있었던 곳이며, 청룡산(靑龍山)은 그해 겨울에 있었던 곳이며, 서주(西州)의 대둔산(大芚山)은 18세 때에 있었던 곳이고, 평주(平州)의 모란산(牡丹山)은 19세 때에 있었던 곳이며, 중국의 국자감(國子監)은 무자년(1348, 충목왕4)부터 시작하여 신묘년(1351, 충정왕3)에 마쳤는바, 그 사이에 어버이를 뵈러 귀국한 적이 있었다. 일곱 산[七山]을 먼저 쓰고 태학(太學)을 나중에 쓴 것은 바로 일곱 산에서의 성공(成功)을 거두어 태학에 진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는 왜 하는고 하면 자손(子孫)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잠깐잠깐 붙여 있었던 승사(僧舍)도 또한 적지 않으나, 그 승사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잊어서가 아니라, 학업(學業)을 이루고 못 이루는 데에 관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산 승경(名山勝境)이 인물을 배양하여 기질(氣質)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고금의 사람들이 칭도(稱道)하여 마지않았으므로, 내가 그 때문에 이것을 노래하여 장차 악부(樂府)에 올려서 무궁한 후세에 전하려는 것이니, 당세에 시(詩)를 잘하는 이는 따라서 감탄하는 일이 혹 있으리라.
한산의 숭정산엔 소나무에 구름 걸쳤고 / 韓山崇井松浮雲
교동의 작은 섬엔 속세의 들렘이 없었네 / 喬桐小島無塵喧
삼각산은 하늘에 꽂혀 암학이 우뚝하고 / 三峯揷天聳巖壑
감악산은 높이 솟아 장단을 내려다보네 / 紺嶽高壓長湍村
청룡산 얼음 절벽은 오두막을 썰렁케 하고 / 靑龍氷崖小屋冷
서림의 대둔산은 연기 낀 창이 어둑했지 / 西林大芚煙窓昏
모란산은 옛 전쟁터를 굽어보고 있는데 / 牡丹俯視涿鹿野
외론 구름 지는 해에 천원이 희미했었네 / 孤雲落日迷川原
함께 글 읽던 동료들은 모두가 호걸이라 / 同游儕輩盡豪傑
광대한 학문 세계에 근원을 궁구했는데 / 學海浩瀚窮淵源
서로 보아서 착하게 연마해도 부족하고 / 相觀而善尙不足
높이 날아 봤자 뱁새는 울을 넘을 뿐이었네 / 高飛斥鷃才踰藩
때마침 중국 천자가 학교를 중히 여겨 / 中朝天子重學校
태학의 선비들이 한창 경전을 토론할 제 / 璧水縉紳方討論
동인으로 취학한 이는 매우 적었는지라 / 東人鼓篋亦甚少
조관의 자제는 어찌 그리도 존귀했던고 / 朝官子弟何其尊
나는 선군이 봉훈의 반열에 오른 관계로 / 先君簉跡奉訓列
전례에 따라 태학에 유학할 수 있었는데 / 援例得以游橋門
훌륭한 교화 받은 지 한 해도 안 지나서 / 螟蛉變化不閱歲
글 지으면 이따금 뛰어나단 칭찬 들었네 / 綴文往往稱高騫
고국에 돌아와 선군 상중에 있을 적엔 / 歸來東海居憂中
번쩍번쩍 흐르는 세월 번개처럼 빨랐어라 / 流光飄忽如電奔
현릉의 초과 때엔 마침 복을 마치고서 / 玄陵初科服適闋
응시한 게 우연히도 장원을 차지했는데 / 射策偶耳叨狀元
중서당의 급제자 환영연엘 참여했더니 / 鹿鳴往會中書堂
관복과 한림 제수로 특별한 은총 입었고 / 賜緋玉署承殊恩
뒤이어 초천 발탁으로 삼중까지 이르러 / 因之超擢至三重
한가히 관록 먹으며 자손 행복케 하였네 / 閑居食祿榮子孫
당시 글 읽던 곳에 머리 돌려 회상하노니 / 回頭當日讀書處
지금도 푸른 이끼에 나막신 자국 남았으리 / 蒼苔至今留屐痕
산신령이 앎이 있다면 내 의당 감사하리 / 山靈有知我當謝
천지와 같이 인물을 배양했으니 말일세 / 養出人物同乾坤
후일 명성의 좋고 나쁜 평판은 차치하고 / 流芳遺臭且不問
우선 노래를 불러 후손에게 남겨 주노라 / 歌之直欲貽後昆
[주D-001]서로 …… 연마해도 : 《예 기(禮記)》 학기(學記)에 “서로 보아서 착해지도록 하는 것을 절차탁마라 한다.[相觀而善之謂摩]”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여러 제자(弟子) 가운데 유능한 이 한 사람을 자문역으로 삼아 혼자서 스승에게 질문을 하게 하고 기타 사람들은 그의 문답(問答)만을 듣고서 각각 해득(解得)할 수 있게 했던 수업 방법을 말한다.
[주D-002]높이 …… 뿐이었네 : 《장 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의하면, 붕새는 9만 리나 날아올라 가는데, 뱁새는 날아올라 보았자 고작 두어 길도 더 못 오르고 다시 내려와 쑥대밭에서 뱅뱅 돈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식견이나 안목의 협소함을 의미한다.
[주D-003]나는 …… 있었는데 : 옛날 태학(太學)에는 사대부(士大夫)의 자식까지만 유학(遊學)이 허용되었는데, 이때 저자의 부친 이곡(李穀)이 마침 원조(元朝)의 봉훈대부(奉訓大夫) 작위에 있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4]현릉(玄陵)의 …… 차지했는데 : 현 릉은 공민왕(恭愍王)의 능호이다. 공민왕 2년인 계사년(1353)에 초과(初科)를 실시했던바, 이때 지공거(知貢擧) 이제현(李齊賢), 동지공거(同知貢擧) 홍언박(洪彦博)의 주관하에 저자가 을과 제일인(乙科第一人)으로 급제한 것을 이른 말이다.
유 항(柳巷)의 문생(門生)이 주연(酒宴)을 베풀었는데, 이는 공(公)이 왕명을 받들고 신륵사(神勒寺)를 다녀왔기 때문이었다. 공이 친히 내 집까지 왕림하여 자리를 함께해 달라고 나를 초청했으나, 내가 마침 몸이 약간 좋지 않아서 초청을 따르지 못하고 홀로 앉아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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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명을 받들고 여강에 잠시 출유했다가 / 奉勅驪江蹔出游
돌아오매 산수의 흥취 걷잡기 어려워라 / 歸來山水興難收
무성한 푸른 버들은 길이 문 앞에 서 있고 / 依依碧柳長當戶
솔솔 맑은 바람은 문득 누각에 가득하네 / 細細淸風忽滿樓
앉아서 문생 대하면 그 얼마나 깨끗할꼬 / 坐對門生何灑落
이웃 친구를 초청함은 또한 한아하고말고 / 來招里友亦優游
복건 쓰고 왕래하는 게 일상의 일이련만 / 幅巾往返尋常事
한스러워라 허리 아픈 병이 내 원수로세 / 只恨腰酸是我仇
새벽에 일어나서 즉사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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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손자가 태어나던 날이요 / 仲孫弧矢日
절에 시주하여 복 비는 처음일세 / 丐福飯僧初
문호는 맑음을 제일로 치거니와 / 門戶淸爲最
시서의 은택은 아직도 남았는 걸 / 詩書澤尙餘
근원이 깊어야 흐름이 광대하고 / 源深流浩蕩
뿌리가 튼튼해야 지엽이 무성하리 / 根固樹扶疏
네 할아비의 정회가 끝이 없어 / 乃祖情無極
푸른 하늘 마주해 조용히 읊노라 / 微吟對碧虛
권 만호(權萬戶)의 아내 이 부인(李夫人)을 곡(哭)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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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군이 처음 장가들 적에 / 花原初奠雁
부인의 나이 겨우 십삼 세러니 / 年甫十仍三
집은 부하였으나 교만하지 않았고 / 家富驕心絶
가문은 쇠하여도 예모는 깍듯했네 / 門衰禮貌耽
세상에선 과부라 가련히 여겼지만 / 世皆憐寡婦
하늘은 다행히 아들이 많게 하였네 / 天也幸多男
유언 내려 남편 곁으로 돌아가니 / 遺命歸同穴
유명 간에 다 부끄럽지 않고말고 / 幽明兩不慙
최옹(崔翁)이 나를 초치해서 위하여 정방(政房)에 청탁을 하므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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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반열 허직으로 의기양양하는 게 / 揚揚虛職大夫聯
어찌 중랑으로 녹봉 받는 것만 할쏜가 / 爭似中郞得俸錢
목옹의 기력 없음을 한스레 여기지 마소 / 莫恨牧翁無氣力
예로부터 운명은 하늘에서 타고난다네 / 由來稟命在蒼天
이 시를 최옹에게 보였더니, 최옹이 말하기를 “말이 옳기는 옳으나, 다시 한 번 청탁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므로, 이에 또 앞의 운을 사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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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탈 없이 화려한 반열에 올랐는데 / 一生無恙躡華聯
학과 돈 겸하려는 큰 욕심을 부리겠나 / 大欲還如鶴與錢
칠순 다 된 나이로 돌아갈 계획 정했지만 / 年近七旬歸計決
이 마음은 길이 구중의 님께만 향하는 걸 / 此心長向九重天
[주D-001]학과 돈 겸하려는 : 옛 날에 어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각각 자기 소원을 말하는데, 그중 한 사람은 양주 자사(揚州刺史)가 되고 싶다 하고, 또 한 사람은 많은 재물을 갖고 싶다 하고, 또 한 사람은 학(鶴)을 타고 승천(升天)하고 싶다고 하자,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허리에 십만 꿰미의 돈을 차고, 학을 타고 양주로 날아가서, 앞서 말한 세 사람의 소원을 겸하고 싶다.[腰纏十萬貫 騎鶴上揚州欲兼三者]”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러 가지 행복을 한 몸에 갖추어 지닌 것을 비유한 말이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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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생들의 고관대작이 서로 줄을 이어라 / 門生圭組更蟬聯
좌주의 문장이야 일전 가치도 되질 않네 / 座主文章不直錢
부평초처럼 서로 만남은 진정 우연이거늘 / 萍水相逢眞偶爾
괜히 하늘을 도망갈 곳 없다고 말들 하네 / 謾言無處可逃天
짧은 시구 짓고 나서 또 긴 시구 지어라 / 短聯賦罷又長聯
점차 기름 장수 돈 버는 재주 같아지네 / 漸似油翁技在錢
자고로 시인은 붓 놓기 어려운 법이거니 / 自古詞人難閣筆
풍화설월 사시 경치가 천지에 그득하잖나 / 風花月露政漫天
국신리(國贐里)의 할멈이 새 기름을 짜는데, 이것을 장차 금강산(金剛山)의 보제 영당(普濟影堂)으로 보낼 것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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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짠 기름은 향기가 코를 진동하는데 / 壓得新油擁鼻香
더운 날 등에 지고 금강산을 들어간다네 / 炎天背負入金剛
한 등불로 사바세계의 어둠을 깨뜨려라 / 一燈照破恒沙暗
보제 왕사는 조용히 영당에 앉아 있으리 / 普濟王師坐影堂
유인(幽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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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사람이 자취를 달게 감추고 / 幽人甘屛跡
늘그막에 홀로 기심을 잊노라니 / 晚景獨忘心
숲에 앉으면 바람은 소매에 나고 / 坐樹風生袖
샘물을 뜨면 얼음은 옷깃에 가득하네 / 挹泉氷滿襟
연못 고기는 잔 거품을 불어 대고 / 池魚吹細沫
골짜기 새는 깊은 그늘을 찾누나 / 谷鳥擇深陰
자연과 함께 한가한 시름 풀거니 / 與物同消遣
좋은 친구 소식 못 들은들 어떠하랴 / 何妨玉爾音
높은 풍치는 세속 밖에 빼어나고 / 高標出塵表
고아한 뜻은 거문고 곡조에 있는데 / 古意在琴心
아득히 고결한 법도를 사모하면서 / 渺渺希淸範
조용히 나의 본심을 간직하노라니 / 沈沈抱素襟
성왕 풍교는 천 년이라 멀거니와 / 王風千載遠
인일은 몇 년을 계속 흐리었던고 / 人日幾年陰
내 어찌 감히 세상을 경시하리오 / 傲世吾何敢
그윽한 새 좋은 소리가 있잖은가 / 幽禽遺好音
산이 깊으니 누가 서로 알랴마는 / 山深誰識面
구름은 절로 무심하게 나오누나 / 雲出自無心
공명은 이미 헌신짝처럼 버렸고 / 已棄功名屐
한갓 필삭의 옷깃만 적실 뿐이네 / 徒霑筆削襟
형체 잊으면 만물과 동등하거니와 / 忘形齊萬物
도를 꾀하자면 분음을 아껴야지 / 謀道惜分陰
거짓 발걸음엔 주자가 있었거니 / 假步有周子
후일 그런 일은 잇지 말아야 하리 / 他年休嗣音
[주D-001]인일(人日)은 …… 흐리었던고 : 인일은 곧 음력 정월(正月) 초이렛날을 가리키는데, 동방삭(東方朔)의 점서(占書)에 의하면, 인일의 일기(日氣)가 청명하고 온화하면 안태(安泰)의 조짐이 되고, 일기가 흐리고 쌀쌀하면 질병(疾病)의 조짐이 된다고 하였다.
[주D-002]구름은 …… 나오누나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구름은 무심하게 산에서 나오고, 새는 날다가 지쳐 돌아올 줄을 안다.[雲無心以出岫鳥倦飛而知還]”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한갓 …… 뿐이네 : 필 삭(筆削)은 공자(孔子)가 노사(魯史)를 가지고 쓸 것은 쓰고 삭제할 것은 삭제하여 《춘추(春秋)》를 지은 것을 가리키는데, 노 애공(魯哀公) 14년 봄에 본디 성왕(聖王)의 상서(祥瑞)인 기린(麒麟)이 난세(亂世)에 잘못 나와서 잡혀 죽은 것을 보고는 이를 몹시 상심(傷心)한 나머지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으면서 이르기를 “나의 도가 궁하였도다.[吾道窮矣]” 하고, 마침내 《춘추》를 지으면서 “14년 봄에 서쪽으로 순수하여 기린을 얻다.[十有四年春 西狩獲麟]”라는 것으로 끝을 맺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거짓 …… 있었거니 : 주 자(周子)는 남제(南齊) 때의 문인(文人) 주옹(周顒)을 가리키는데, 그가 일찍이 북산(北山)에 은거하다가 조정의 부름을 받고 변절하여 해염 영(海鹽令)에 취임해서 임기를 마치고는 드디어 경사(京師)로 가는 도중에 다시 북산에 들르려고 하자, 공치규(孔稚珪)가 그의 변절을 배척하여 지은 〈북산이문(北山移文)〉에서 “비록 마음은 조정에 두고 있으면서도 혹 거짓 발걸음을 산문에 들여 놓으리라.[雖情投於魏闕 或假步於山扃]” 한 데서 온 말이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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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가축 중에 사람과 가장 친하고 / 猫人畜也最相親
생김새 경쾌한 데다 성질도 잘 길드는데 / 質稟輕柔性又馴
갑자기 한밤중에 자는 나를 놀래 깨우고 / 忽向夜中驚我夢
새끼 낳아 핥아주어라 사랑을 알 만하네 / 子生便舐可知仁
승냥이 호랑이는 워낙 친하기 어렵지만 / 雖然豺虎苦難親
고양이는 견마처럼 길들일 수도 있나니 / 也有門庭犬馬馴
어찌 유독 영주에만 쥐들이 많으리오 / 豈獨永州多鼠輩
탐포한 자 제거하는 게 바로 인이라네 / 驅除貪暴便爲仁
지공하면 친한 이도 피혐할 것 없거니와 / 至公無處避嫌親
악 제거하면 착한 이 길들일 수 있다네 / 去惡能敎善者馴
다만 한 고양이한테 천리가 드러났을 뿐 / 只就一猫天理白
악인 내치는 건 원래 제왕의 인이고말고 / 放流元是帝王仁
[주D-001]영주(永州)에만 쥐들이 많으리오 : 당 (唐)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서설(鼠說)〉에 의하면, 영주에 사는 아무가 자기의 생년(生年)이 자년(子年)인데 자(子)는 곧 쥐[鼠]의 신(神)이라 하여 쥐를 아주 사랑한 나머지, 고양이를 기르지 않고 창고와 푸줏간을 모두 쥐에게 맡겨서 제멋대로 훔쳐 먹고 씹어대게 내버려 두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쥐들을 간악한 소인(小人)에 비유한 것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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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은 하남 출신으로 옥 같은 사람인데 / 丞相河南是玉人
당시 정의가 진 출신 아닌 자 제거했네 / 當時廷議去非秦
장백산 꼭대기의 두둥실 밝은 달빛은 / 團團長白山頭月
유독 중원의 한 장신을 비추어 주리라 / 獨照中原一將臣
공명은 당일에 홀로 군대를 인솔했는데 / 孔明當日獨提兵
어느 날 밤 진영으로 큰 별이 떨어졌네 / 一夜營中落大星
비록 중흥의 공업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 縱使中興功未竟
사당 앞의 잣나무는 지금까지 푸르다오 / 廟前柏樹至今靑
탈상은 사람을 십분 잘 알지 못했으니 / 脫相知人未十分
한때에 보좌한 건 공연한 말일 뿐이요 / 一時參贊謾云云
끝내는 눈먼 사람을 태자 곁에 두어서 / 竟留瞎眼儲君側
검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듯 하게 했네 / 蔽日天中似黑雲
뛰어난 무예로 십육 세에 과거 급제하고 / 虎躍龍騰十六科
천자 보좌한 것 또한 많다고 이를 만한데 / 笙鏞黼黻亦云多
문종 방걸은 지금 그 어디에 있는고 / 文鍾邦傑今何在
잡초 우거진 궁전엔 달빛만 물결 같구나 / 草沒儲胥月似波
[주D-001]승상(丞相)은 …… 제거했네 : 조 정(朝廷)의 의논이 진(秦)나라 출신 아닌 자를 제거했다는 것은 곧 이사(李斯)의 〈축객서(逐客書)〉에 “진나라 출신이 아니면 제거하고, 객이 되어 온 자는 축출한다.[非秦者去 爲客者逐]” 한 데서 온 말로, 아마도 호원(胡元) 말기에 중원(中原)의 하남(河南) 지방 출신으로 승상이 된 이가 끝내 호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거된 일이 있어 이를 두고 한 말인 듯하나,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주D-002]공명(孔明)은 …… 떨어졌네 : 공 명은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의 자이다. 제갈량이 일찍이 오장원(五丈原)에 진을 치고 위(魏)나라의 사마의(司馬懿)와 대치하던 중, 어느 날 밤에 큰 별이 동북쪽에서 날아와 그의 진영으로 떨어졌는데, 그로부터 잠시 후에 제갈량이 죽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사당 앞의 …… 푸르다오 : 사당은 곧 사천성(四川省) 금관성(錦官城)에 세워진 제갈량의 사당을 가리키는데, 두보(杜甫)의 〈촉상(蜀相)〉 시에 “승상의 사당을 어느 곳에서 찾을꼬, 금관성 밖에 잣나무가 무성하구나.[丞相祠堂何處尋 錦官城外柏森森]” 하였다.
[주D-004]탈상(脫相) : 원 순제(元順帝) 때에 현상(賢相)으로 일컬어졌던 승상(丞相) 탈탈(脫脫)을 가리킨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5]문종 방걸(文鍾邦傑) : 원 (元)나라 사람인데 《목은시고》 제6권 〈동년가(同年歌)〉에 “문종 방걸은 중흥의 장수로서, 사업이 오계 위의 절벽에 기록되었네.[文鍾邦傑中興將事業直跨浯溪上]” 한 것으로 보아, 그는 곧 저자의 제과(制科) 응시(應試) 때의 동년이었던 듯하다.
직포음(織布吟) 2편(二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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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 너무 촘촘히 짜지 말지어다 / 織布莫太密
너무 촘촘하면 담요와 같으니라 / 太密如氍毹
베를 너무 거칠게 짜지 말지어다 / 織布莫太疎
너무 거칠면 살갗이 드러나느니라 / 太疎露肌膚
여름엔 갈포요 겨울엔 갖옷이라 / 夏葛冬則裘
맞추어 쓰는 물건이 본디 다른데 / 適用物固殊
서늘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면은 / 細細含涼風
얼음덩이가 자리에 있는 듯하지만 / 氷峰橫座隅
땀이 흘러 혹 웃통을 벗게 된다면 / 汗流或裸體
왜 거친 베적삼인들 걸칠 것 있나 / 單衫寧用麤
길쌈 바느질로 오랜 세월 걸렸나니 / 女功積歲月
부디 옷소매를 더럽히지 말지어다 / 勿令袪袖烏
다행이로다 저 거친 베옷들은 / 幸哉彼太布
유독 서민들을 입혀 주고 있거니 / 獨爾資匹夫
서민들이 얼어 죽지 않아야만 / 匹夫不凍死
세도가 요순 시대로 돌아가리라 / 世道歸唐虞
삼 심어 자라니 마을은 어둑하고요 / 藝麻翳村巷
삼 껍질은 벗겨 웅덩이에 담그어라 / 漚麻瀦川流
부녀자들 힘써 길쌈 일 하다 보면 / 婦女政力作
귀뚜라미 가을에 베짜기 시작하네 / 候蟲機杼秋
낮 해가 점차로 짧아지고 / 白日漸漸短
고요한 밤이 바야흐로 길어지면 / 淸夜方悠悠
부녀자는 규문 안에 앉아 쉬면서 / 燕坐閨門中
도리어 일 년의 일을 걱정하는데 / 却懷終歲憂
남자들은 의복을 좋게 차려 입고 / 主夫美服飾
현달하게 제 한 몸 편히 살거니와 / 顯奕身處休
훌륭한 아손들은 줄줄이 나와서 / 兒孫森玉笋
고관대작과 서로 종유하나니 / 冠蓋相追游
헌 누더기는 의당 더럽게 여기지만 / 襤褸固可鄙
호사스러움도 바라는 바 아니로세 / 奢麗非所求
군자가 진실로 도에 뜻을 둔다면 / 君子苟志道
솜옷 입은 중유를 본받아야 하리 / 縕袍師仲由
[주D-001]솜옷 입은 중유(仲由) : 중 유는 자로(子路)의 이름인데,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해진 솜옷을 입고 여우 담비 갖옷을 입은 사람과 나란히 서 있으면서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그 유일 것이다.[衣敝縕袍 與衣狐貉者 立而不恥者 其由也與]”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子罕》
수박을 먹다. 승제(承制)가 얻어 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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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름이 이제 다해 가니 / 季夏今將盡
수박을 이미 먹을 때가 되었도다 / 西瓜已可嘗
승제 아들은 근교를 유람하고 / 龍喉游近甸
늙은 아비는 높은 집에 있었더니 / 鶴髮在高堂
하얀 속살은 얼음처럼 시원하고 / 瓣白氷爲質
푸른 껍질은 빛나는 옥 같구려 / 皮靑玉有光
달고 시원한 물이 폐에 스며드니 / 甘泉流入肺
신세가 절로 맑고도 서늘하구나 / 身世自淸涼
성균관(成均館)이 생각나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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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을 둔 까닭은 영재 양성에 있나니 / 泮水英材在作成
선왕이 여기에서 태평을 바랐던 것인데 / 先王於此望昇平
사문은 저절로 흥하고 막힘이 있거늘 / 斯文自是有興替
우리들이 어떻게 경중이 될 수 있으랴 / 我輩焉能爲重輕
집 주위의 푸른 솔엔 서기가 떠 있건만 / 繞舍碧松浮瑞氣
이끼 가득한 뜰엔 글 소리가 끊어졌네 / 滿庭蒼蘚絶書聲
인간은 참으로 잠깐 새 고금을 이루어라 / 人間俯仰眞今古
귀밑 가에 무단히도 백발이 나오는구려 / 鬢上無端白髮生
경복(敬僕)이 필묵(筆墨)으로 장난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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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잘 못하는 어리석은 아이가 / 騃稚聲音澁
속마음은 표현할 줄을 아는데 / 還能弄肚腸
비록 필묵을 가까이는 하지만 / 雖然親筆墨
고작 제 옷만 더럽힐 뿐이로세 / 只是汚衣裳
쇠한 백발 까칠함에 놀라면서도 / 颯颯驚衰白
명명함 속에 하늘을 우러르노라 / 冥冥仰老蒼
둘째 손자가 지금 이와 같으니 / 仲孫今若此
노년을 위로하기에 넉넉하고말고 / 自足慰殘陽
조균(趙鈞)이 이름을 온(溫)으로 고치고 벼슬을 요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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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하러 무단히 스스로 이름 고치어라 / 入仕無端自改名
좋고 싫음이 정을 따라 우러난 때문일세 / 只緣好惡逐情生
한 몸의 궁달은 운명에 관계된 것이니 / 一身窮達關天數
균과 온에 경중이 있다고 말을 말게나 / 莫道鈞溫有重輕
우중(雨中)에 갑자기 연꽃을 감상하고픈 흥취가 동했으나 말을 타기가 어려워서 이루지 못하고 세 수를 읊어 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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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를 타자면 하인이 있어야 하거니와 / 欲扶輿去只長鬚
말을 타자면 병든 몸 흔들림도 싫다마다 / 上馬還嗔撼病軀
빗속에 연꽃 감상하자면 두 다리뿐이니 / 冒雨賞蓮唯兩脚
백발로 어찌 차마 진흙을 밟는단 말인가 / 白頭何忍踏泥塗
백발로 수레 없이 걸어다니던 습유공은 / 白頭徒步拾遺公
사물 묘사하는 재주가 조물주를 능가했지 / 賦物奇才奪化工
연꽃이 닦은 듯이 깨끗하다는 한 시구가 / 一句荷花淨如拭
성긴 비 엷은 연기 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네 / 依稀疎雨淡煙中
연못가의 절집엔 나잔 선사가 머물러 / 池上精廬屬懶殘
연화의 묘어가 삼한을 진동시키거니와 / 蓮花妙語動三韓
우리 유가엔 본래 염계 노인이 있어 / 吾家自有濂溪老
깨끗이 선 채 맑은 향이 천지에 풍겼다오 / 淨植淸香天地寬
[주D-001]백발로 …… 습유공(拾遺公) : 습 유공은 일찍이 좌습유(左拾遺)를 지낸 두보(杜甫)를 가리키는데, 두보의 〈도보귀행(徒步歸行)〉에 “청포 입은 조관들 중에 가장 빈곤한 이는, 수레 없이 걸어가는 백발의 습유라네.[靑袍朝士最困者 白頭拾遺徒步歸]”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연꽃이 …… 한 시구 : 두보의 〈미피행(渼陂行)〉에 “낚싯줄 이어 드리워도 깊이를 알 수 없는데, 마름잎 연꽃은 닦은 듯이 깨끗하구나.[沈竿續縵深莫測 菱葉荷花淨如拭]”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연못가의 …… 진동시키거니와 : 연 못가의 절집이란 바로 보제사(普濟寺)를 가리키고, 나잔(懶殘)은 고려 말기 고승(高僧)의 호이며, 연화(蓮花)의 묘어(妙語)는 바로 당시 보제사의 당두(堂頭)로 있었던 나잔이 《묘법연화경(妙法蓮花經)》을 설(說)하는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주D-004]우리 …… 풍겼다오 : 염 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속은 텅 비고 겉은 곧으며, 넝쿨도 가지도 뻗지 않고,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하게 깨끗이 서 있어, 멀리 바라볼 수만 있고 가까이 가서 만질 수 없음을 나는 유독 사랑한다.[予獨愛……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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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초목들을 이름은 알 수 없지만 / 園中草木不知名
경물 접촉하니 시골 정취에 꼭 알맞네 / 觸物悠然適野情
이아의 충어는 박식을 과시했거니와 / 爾雅蟲魚誇博洽
모시의 조수는 정명함이 감탄스러워 / 毛詩鳥獸歎精明
눈으론 붙여 삶 같은 인생의 성쇠를 보고 / 眼看榮悴身如寄
생각은 생성의 뜻 절로 성실한 데 드누나 / 思入生成意自誠
홀로 천천히 경치 찾아 세월을 보내노라니 / 獨立緩尋聊度日
한가함 속의 읊조림이 점차 홀가분해지네 / 閑中賦詠漸輕輕
[주D-001]이아(爾雅)의 충어(蟲魚) : 《이아》는 십삼경(十三經)의 하나인 자서(字書)인데, 저자(著者)는 알 수 없으나, 그 내용은 초목(草木), 조수(鳥獸), 충어(蟲魚) 등에 관한 문자(文字)들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모시(毛詩)의 조수(鳥獸) : 《모시》는 한(漢)나라 때 모형(毛亨)과 모장(毛萇)이 전(傳)을 낸 것이라 하여 《시경(詩經)》을 달리 일컫는 말인데, 《시경》에는 특히 초목(草木), 조수(鳥獸) 등의 이름이 많이 나오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생각은 …… 드누나 : 만 물을 생성(生成)하는 것은 곧 천지(天地)의 덕이요, 성실함[誠]은 곧 천도(天道)이므로, 즉 천도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2장에는 “성한 것은 하늘의 도이고, 성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하였고,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는 “성한 것은 하늘의 도이고, 성하기를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誠者 天之道也 思誠者 人之道也]” 하였다.
유거(幽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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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한가하기 그지없어라 / 老境悠悠甚
그윽한 삶 한 병든 늙은이로세 / 幽居一病翁
텅 빈 뜰엔 빈객 왕래가 끊어졌고 / 空庭絶賓客
가랑비 속엔 아이들이 뛰노누나 / 細雨走兒童
술 대하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 酒至窓移日
시 이루면 붓이 바람을 일으키네 / 詩成筆起風
조용히 천명을 즐기는 곳에 / 從容樂天處
다시 깊은 공부는 하지 않노라 / 更不著深功
세상살이 참으로 한바탕 꿈이라 / 處世眞如夢
그윽한 삶에 기미가 온전하구려 / 幽居氣味全
빗방울 가느니 해도 함께 비추고 / 雨微兼白日
구름이 엷으니 하늘이 새나오네 / 雲薄漏靑天
골짜기 새는 처마 앞을 지나가고 / 谷鳥簷前過
시내 바람은 베개맡에 불어올 제 / 溪風枕上傳
가슴속에 모든 잡념 다 없애고 / 胸中査滓盡
광대한 천지에 연어를 대하노라 / 浩浩對魚鳶
그윽한 삶의 정취에 만족하거니 / 自得幽居味
희황의 이상 시대 사람이로다 / 羲皇上世人
적막함은 별천지와도 같거니와 / 寂寥如異境
순박한 것은 바로 이웃들이로세 / 淳朴是比隣
문 앞은 탁 트여 이끼가 뜰에 연하고 / 門豁苔連砌
주렴은 성기어 숲이 자리에 닿을 듯 / 簾疎樹逼茵
연명은 소유한 게 그 무엇이던고 / 淵明何所有
술 걸러 마시던 한 두건이었네 / 漉酒一頭巾
[주D-001]광대한 …… 대하노라 : 연 어(鳶魚)는 솔개와 물고기를 가리킨다. 자사(子思)가 이르기를 《시경》에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고기는 못에서 뛴다.’ 하였으니, 천도의 유행이 위아래에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한 데서 온 말이다. 《中庸章句 第12章》
[주D-002]희황(羲皇)의 …… 사람이로다 : 희 황은 복희씨(伏羲氏)를 가리키는데, 도잠(陶潛)이 일찍이 더운 여름날에 맑은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북쪽 창 아래 누워서 스스로 희황 이상 시대 사람[羲皇上人]이라고 자칭했던 데서 온 말로, 즉 속세를 떠나서 한가히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晉書 卷94》
[주D-003]연명(淵明)은 …… 두건(頭巾)이었네 : 연명은 도잠(陶潛)의 자인데, 도잠은 술을 매우 좋아하여 매양 술이 익으면 머리에 쓴 갈건(葛巾)을 벗어서 술을 걸러 마시고는 다시 갈건을 머리에 쓰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환암(幻菴)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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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당에서 종횡으로 문답을 벌일 적에 / 問辯縱橫選佛堂
당시 다른 승려들은 감당할 이 적었는데 / 一時衲子少承當
마음은 초조의 심법 전한 백수를 따랐고 / 心從柏樹傳初祖
용모는 육랑과 같은 연화와 함께했도다 / 貌與蓮花似六郞
뿌연 거리 풍진 속을 나는 홀로 거니는데 / 紫陌風塵今獨步
흰 구름 산수 속에 그대는 깊이 숨었었지 / 白雲丘壑昔深藏
듣건대 선정에 들고 원각경도 강설한다니 / 似聞入定談圓覺
나 같은 사람은 그 몇째 장을 물어야 할꼬 / 如我當咨第幾章
[주D-001]선불당(選佛堂)에서 …… 적에 : 선 불당은 선법(禪法)이나 교법(敎法)을 닦는 곳인데, 고려 말기의 고승(高僧)인 환암(幻菴) 혼수(混脩)가 일찍이 선불당에서 베푼 공부선(工夫選)에서 답변을 매우 명쾌히 하여 명성을 크게 떨쳤던 데서 온 말이다. 공부선은 곧 승려들의 공부를 평가하는 시험인데, 《목은문고》 제4권 〈환암기(幻菴記)〉에 의하면 “또 공부선에서도 유독 공만이 묻는 뜻에 명확하게 답변하였으니, 여기에서 또 공의 명성은 헛되이 얻은 것이 아니어서 남보다 월등히 뛰어났음을 알게 되었다.[又於工夫選獨公開口的答問意 又知公名不虛得 出於衆萬萬矣]” 하였다.
[주D-002]마음은 …… 따랐고 : 초 조(初祖)는 동토(東土) 선종(禪宗)의 개조(開祖)인 달마 선사(達摩禪師)를 가리키고, 백수(柏樹)는 곧 선종의 한 가지 화두(話頭)로서 즉 당(唐)나라 때 한 승려가 고승(高僧) 조주(趙州)에게 묻기를 “조사(祖師)가 서역(西域)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하자, 조주가 이르기를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子]”고 했던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선종의 심법(心法)을 이었음을 의미한다.
[주D-003]용모는 …… 함께했도다 : 당 (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장씨(張氏)의 형제 중 여섯째인 장창종(張昌宗)이 용모가 매우 아름다워서 무후에게 총애를 받으므로, 당시 아부를 잘 하던 양재사(楊再思)가 매양 말하기를 “사람들이 육랑(六郞)을 연꽃 같다고 한 것은 틀린 말이요, 연꽃이 육랑 같다고 해야 한다.”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용모가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김 삼사(金三司) 형(兄)의 여러 족중(族中)에 받들어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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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에 있는 몹시 노쇠한 내게 / 洛下衰遲甚
시골에서 자주 왕래를 해 주니 / 鄕中往返頻
한 술잔 서로 마주한 자리에서 / 一樽相對處
응당 이 병든 사람을 들먹이겠지 / 應說病餘人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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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통은 밤중에 더욱 심해지고 / 腰酸夜方劇
두통은 새벽에 조금 우선해지네 / 頭痛曉來輕
오래전에 이미 내 운명 알았거니 / 久已知吾命
어찌하여 이 생명을 아낄쏜가 / 何從愛此生
문정은 예전같이 썰렁하지만 / 門庭依舊冷
잠자리엔 맑은 기운이 감돈다네 / 枕席有餘淸
단양은 아득히 멀기만 한데 / 渺渺丹陽遠
서신 대하니 객정이 동하누나 / 臨書動客情
밤 창에 비친 가을 달은 넘어가고 / 夜窓涼月落
새벽 자리엔 바람이 조금 서늘하네 / 曉榻暑風輕
처음엔 한나라 삼걸을 바랐더니 / 始擬漢三傑
끝내는 노나라 양생에 부끄럽네 / 終慙魯兩生
지루하니 마음은 더욱 괴로우나 / 悠悠心更苦
적적하니 정취는 자못 청신하구려 / 寂寂味殊淸
낯 씻고 머리 빗어 모처럼 기분 상쾌해 / 盥櫛身初快
고요한 산림에 심원한 정 부치노라 / 山林寄遠情
[주D-001]단양(丹陽) : 영해(寧海)의 옛 이름인데, 저자의 외가(外家)가 바로 영해에 있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2]한(漢)나라 삼걸(三傑) : 한 고조(漢高祖)의 신하인 장량(張良), 소하(蕭何), 한신(韓信)을 가리킨다. 한 고조가 일찍이 이 세 사람을 가리켜 모두 인걸(人傑)이라고 일컬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노(魯)나라 양생(兩生) : 노 나라의 두 유생(儒生)을 가리킨다. 한(漢)나라 초기에 숙손통(叔孫通)이 조의(朝儀)를 제정하고자 하여 노나라의 유생 30여 인을 불렀는데, 그중에 두 유생은 숙손통의 더러운 행위를 비판하면서 끝내 응하지 않았던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희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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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신세가 참으로 절뚝발이 중 같거니 / 老年眞似蹇浮屠
걸음만 머뭇거릴 뿐 말이야 왜 더듬으랴 / 獨患趑趄肯囁嚅
지척에 있는 내 문정 손바닥 보기 같건만 / 咫尺門庭如示掌
그래도 지팡이 없인 나가질 못하네그려 / 猶敎木上座相扶
[주D-001]걸음만 …… 더듬으랴 : 한 유(韓愈)의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에 “공경의 집을 찾아다니고, 벼슬길에 분주하여, 발은 나가려 하면서도 머뭇거리고, 입은 말하려 하면서도 더듬거린다.[伺候於公卿之門 奔走於形勢之途 足將進而趑趄 口將言而囁嚅]” 한 데서 온 말로, 이 글의 본지는 벼슬길에 분경(奔競)하는 자들이 권세가에게 청탁을 하려고 할 때 말과 행동이 위축되어 비굴한 태도를 짓는 모습을 가리킨 것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몸이 불편하여 잘 걷지 못함을 머뭇거리는 것에 비유하였다.
스스로 화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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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달리던 용사들은 예로부터 많았거니 / 健兒疾走古來多
절벽에 돌을 떨춘 듯 강물을 터내린 듯 / 石墜懸崖決大河
누가 알랴 이 늙은이 두 발 개고 앉아서 / 誰識老翁盤兩脚
물결 위를 걷는 비단 버선 상상하는 걸 / 想看羅襪政凌波
[주D-001]물결 …… 버선 :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에 “사뿐사뿐 물결 위를 걸어라, 비단 버선에 먼지가 인 듯하네.[陵波微步羅生塵]” 한 데서 온 말이다.
퇴지(退之)의 군마(軍馬) 사이에서 조용했던 그 풍도가 사안석(謝安石)에 못지않았으므로, 한 절구(絶句)를 지어 읊조리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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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책군에 원익 없는 걸 어찌 걱정했으랴 / 肯憂神策無元翼
조정 위의 진공을 알 뿐이었던 듯하네 / 似向天津識晉公
적 평정하고는 높은 산 오르려 했으니 / 欲上崢嶸平賊後
창려가 도리어 사안의 풍도가 있었구려 / 昌黎還有謝安風
[주C-001]퇴지(退之) : 한유(韓愈)의 자이다.
[주C-002]사안석(謝安石) : 안 석은 진(晉)나라 사안(謝安)의 자이다. 사안이 일찍이 벼슬을 사양하고 회계(會稽)의 동산에 은거하다가 40세가 넘은 뒤에야 벼슬길에 나갔는데,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와서 경사(京師)가 진동할 때를 당하여, 효무제(孝武帝)가 사안에게 정토 대도독(征討大都督)을 임명하자, 그는 이때 수레를 명하여 산중의 별장으로 나가서 여러 친구들이 다 모인 가운데 자기 조카인 사현(謝玄)과 내기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주D-001]신책군(神策軍)에 …… 걱정했으랴 : 당 목종(唐穆宗) 때 진주(鎭州)에 난이 일어나서 성덕군 절도사(成德軍節度使) 전홍정(田弘正)이 진인(鎭人)과 싸웠는데 그때 왕정주(王廷湊)가 진주에 들어가 민중을 선동하여 전홍정을 죽이고 유후(留後)라 자칭하였다. 당시 심기 절도사(深冀節度使) 우원익(牛元翼)이 전홍정의 군대를 거느리게 되자, 왕정주가 노하여 우원익을 공격해서 그를 굳게 포위하고 있었으므로, 목종이 당시 병부 시랑(兵部侍郞)인 한유(韓愈)에게 진주를 선무(宣撫)하도록 명하였다. 마침내 한유가 진주에 당도하자, 왕정주가 병위(兵威)를 삼엄하게 하여 한유를 맞았는데, 한유가 왕정주의 비행을 준절히 책망하고 또 말하기를 “신책육군장(神策六軍將) 가운데 우원익만 한 자가 없는 것은 아니나, 다만 조정이 대체(大體)를 감안해 그를 버리지 못한 것인데, 공(公)이 오래도록 그를 포위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니, 왕정주가 즉시 우원익을 풀어 주었고 따라서 진주의 난이 평정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新唐書 卷176 韓愈列傳》
[주D-002]조정 위의 …… 듯하네 : 진공(晉公)은 진국공(晉國公)에 봉해진 명상(名相) 배도(裴度)를 가리키는데, 한유가 평소에 배도를 가장 존경하였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3]적(賊) …… 했으니 : 당 헌종(唐憲宗) 연간에 회서(淮西)에서 오원제(吳元濟)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배도는 회서 선위처치사(淮西宣慰處置使)가 되고 한유(韓愈)는 행군 사마(行軍司馬)가 되어 배도를 따라 종군하여 회서를 평정하였다. 그에 앞서 배도가 회서의 정벌을 나가던 도중 신녀(神女)의 전설(傳說)이 얽힌 여궤산(女几山)을 지나다가 시 한 수를 읊어 “적의 소굴 평정하여 천자께 보고할 테니, 선산을 가리켜 무부에게 보이지 말라.[待平賊壘報天子 莫指仙山示武夫]” 하였으므로, 한유가 여기에 화답하여 읊기를 “감히 청컨대 상공께선 적을 평정한 후에, 잠시 종관들 데리고 높은 산을 올라 보소서.[敢請相公平賊後暫携諸吏上崢嶸]”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10》
[주D-004]창려(昌黎) :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진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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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산 깊은 곳에 전장이 있어 / 海山深處有田莊
벼슬 버리고 돌아오니 흥미는 진진하나 / 投紱歸來興味長
비가 오거나 개려면 병든 몸이 쑤셔대고 / 欲雨欲晴酸病骨
겨울 여름 할 것 없이 쇠한 창자 괴로워라 / 無冬無夏惱衰腸
거센 바람 불 땐 모옥 노래에 비기지만 / 風高自擬歌茅屋
달빛 아래 옥당 꿈꾸는 건 누가 알리오 / 月冷誰知夢玉堂
목은이 일생 동안 자랑으로 삼은 것은 / 牧隱一生誇大處
기자의 사당 향 연기를 흠뻑 쏘임일세 / 衣熏箕子廟中香
한때에 풍류 넘치던 장상의 야운장에는 / 風流張相野雲莊
푸른 못물 출렁이고 벼이삭도 쑥쑥 자랐지 / 綠池塘稻穟長
연구 시는 소리를 맞춰 자주 입에서 나오고 / 聯句應聲頻脫口
술잔 들어 마시면은 바로 창자를 적시었네 / 擧杯嘗味卽澆腸
옛 놀이는 적막해라 누가 젓대 소릴 듣는고 / 舊游寂寞誰聞笛
유업은 쓸쓸해라 내가 어이 잇는단 말인가 / 遺業蕭條我肯堂
천고라 화산엔 밝은 달이 두둥실 뜨거니와 / 千古華山山有月
용연의 춤추는 소매엔 아직 향내가 나는 듯 / 龍淵舞袖尙生香
[주D-001]거센 …… 비기지만 : 두보(杜甫)의 〈모옥위추풍소파가(茅屋爲秋風所破歌)〉에 “팔월이라 한가을에 바람이 거세게 불어, 우리 지붕 세 겹 띠 이엉을 다 말아갔네.[八月秋高風怒號 卷我屋上三重茅]”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集 卷10》
[주D-002]달빛 …… 건 : 소식(蘇軾)의 〈화장칠출수호주(和章七出守湖州)〉 시에 “다만 중한 임금 은혜를 갚지 못하여, 맑은 꿈이 때때로 옥당엘 가곤 한다오.[只應未報君恩重淸夢時時到玉堂]”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集 卷13》
[주D-003]목은(牧隱)이 …… 쏘임일세 : 저자 자신이 망한 원(元)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처지를, 일찍이 망한 고국(故國) 은(殷)나라를 마지못해 떠나서 우리 조선(朝鮮)에 정착했던 기자(箕子)에 비유한 말인 듯하다.
[주D-004]옛 놀이는 …… 듣는고 : 진 (晉)나라 때 혜강(嵇康)의 친구 상수(向秀)가 혜강이 이미 죽은 뒤에 그의 구택(舊宅)을 지나다가 그 이웃 사람이 젓대 부는 소리를 듣고 옛날 혜강과 서로 즐겨 노닐던 일을 추상(追想)하여 〈사구부(思舊賦)〉를 지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옛 친구를 그리는 뜻으로 쓰인다. 《晉書 卷49 向秀列傳》
[주D-005]유업(遺業)은 …… 말인가 : 자식이 부업(父業)을 계승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 말로, 여기서는 곧 저자 자신의 겸사로 쓴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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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온 몸뚱이 살과 뼈가 쑤시고 아파 / 肌骨酸辛忽遍身
계집애가 주무를 땐 성을 버럭 내곤 하네 / 小娃摩挫十分嗔
생각은 아직도 형체를 잊지 못하거니와 / 思量尙隔忘形處
읊조림은 흥겨운 새벽 만나기 어렵고말고 / 嘯詠難逢發興晨
여름 밤 지루함은 긴긴 겨울 밤 같은데 / 夏夜永如冬夜永
속정의 새로움은 도정의 새로움과도 같네 / 俗情新似道情新
새벽 알리는 한바탕 이웃 닭 울음소리에 / 一聲報曉隣雞唱
낯 씻고 머리 빗으니 바로 어제 그 사람일세 / 盥櫛依然昨日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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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공은 일찍 지공을 받들어 섬기었는데 / 順公承事指空公
보제가 참알했을 땐 도가 이미 높았었네 / 普濟初參內外紅
짐짓 회암사의 큰 전당을 짓고 나서는 / 故向檜巖營大殿
도리어 견암사에 가부좌하고 지내누나 / 却盤雙脚見菴中
[주C-001]주 상인(珠上人)이 …… 청하다 : 주 상인은 원래 신륵사(神勒寺)에 있던 승려이고, 달순(達順)은 보제(普濟) 나옹(懶翁)보다 훨씬 앞서 지공 선사(指空禪師)에게서 수업하여 깨달음을 얻고 뒤에 거제도(巨濟島)의 우두산(牛頭山) 견암사(見菴寺)에 있었던 승려인데, 그가 일찍이 견암사를 중수(重修)하고 주 상인을 시켜 저자에게 견암사의 기문(記文)을 청했던 것이다. 《牧隱文稿卷5》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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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에 해가 곧 한낮이 되어가서 / 東山日將午
깊은 그늘 따라 좌석을 옮겼더니 / 移座趁深陰
개미는 마른 나무 뿌리에서 나오고 / 行蟻枯根出
새는 빽빽한 숲 속에서 지저귀네 / 幽禽密葉吟
중은 와서 기문을 지어달라 청하고 / 僧來求作記
손이 오니 아는 친구가 반가운데 / 客至喜知音
방에 들자 몸이 몹시도 불편하니 / 入室身偏困
후일에 어찌 거듭 찾아 주려 하랴 / 他時肯重臨
한낮의 열기 한창 핍박해올 때엔 / 方爲午熱逼
어찌 석양의 서늘함을 뜻했으랴만 / 豈意晚涼生
비낀 해가 숲 속으로 숨어들자 / 斜日林間隱
실바람이 나무 밑에서 불어오니 / 微風葉底淸
정신이 다시 약간 건전해지누나 / 精神還稍健
조화는 절로 능히 공평하구려 / 造化自能平
정신 수양은 때에 따라 하나니 / 頤養隨時去
애써 내 마음 상할 것 없고말고 / 無勞傷我情
조그만 새가 거미줄을 몸에 걸고 / 瓦雀粘蛛網
낮게 날아 내 와상에 들어오길래 / 低飛入我牀
기쁜 맘으로 막 잡으려 하는데 / 驩然方欲捕
갑자기 다시 훌쩍 날아가버리네 / 忽爾却能翔
지척에서 위험으로 고통 받다가 / 咫尺危途苦
별 일 없이 순조롭게 풀려나누나 / 尋常順境長
알겠어라 너는 요행으로 위기 면하여 / 知渠幸而免
세 번 날개 펴고 산량을 향하겠지 / 三嗅望山梁
[주D-001]세 번 …… 향하겠지 : 산 량(山梁)은 산에 있는 다리를 가리키는데,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공자가 이르기를 ‘산량의 암꿩이 제때로구나, 제때로구나.’ 하자, 자로가 꿩을 잡아다가 먹이를 주니, 세 번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山梁雌雉 時哉時哉 子路共之 三嗅而作]” 한 데서 온 말이다. ‘자로공지 삼후이작(子路共之三嗅而作)’의 후(嗅) 자에 대해서는 집주(集註)에 이설(異說)들이 있는바, 특히 유 빙군(劉聘君)은 날개를 편다는 뜻의 격(狊) 자로 보았는데, 여기 저자 또한 그 설을 따랐으므로, 저자의 취지에 따라서 해석하였다.
연꽃을 감상하려고 용화지(龍化池)에 가보니, 꽃이 핀 게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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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막신 양산 갖춰 산에 올라 연꽃 감상하려니 / 傘屐登山欲賞蓮
거울 같은 푸른 물결이 가벼운 연기 끌어오네 / 綠波如鏡曳輕煙
늙은 용은 참으로 무정하기 그지없어라 / 老龍的是無情甚
연꽃은 피우지 않고 잠만 자고 있네그려 / 不放花開只管眠
나가고는 싶으나 나가지 못하고 운금루(雲錦樓)를 생각하며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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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옹의 시어가 맑은 놀이를 상상케 하여라 / 放翁詩語想淸游
말 한 필 두 동복에 시냇길 가을이라 했지 / 一馬二僮溪路秋
늙은 목은은 앓고 나서 다리 힘이 없으니 / 老牧病餘無脚力
가랑비 속에 가마를 타는 것도 풍류라네 / 扶輿細雨亦風流
홀로 여생을 향하여 좋은 회포 펼치면서 / 獨向殘年開好懷
창 앞에 조용히 앉았으면 무어 해로우랴만 / 小窓淸坐有何乖
가마에 실려서 또 꽃구경을 가려고 하네 / 扶輿又欲看花去
텅 빈 운금루엔 물이 계단을 적실 터인데 / 雲錦樓空水浸階
용수산 서쪽 봉우리엔 석양이 걸려 있고 / 龍岫西峰掛夕陽
영릉의 영소는 문왕의 것과 비슷하여라 / 永陵靈沼似文王
세간의 근심과 즐거움은 유수와 같건만 / 世間憂樂如流水
길 위의 행인들은 공연히 애가 끊어지누나 / 路上行人枉斷腸
[주C-001]운금루(雲錦樓) : 고려 충숙왕(忠肅王) 연간에 권렴(權廉)이 개성(開城) 남쪽 용화지(龍化池) 곁에 세운 누각인데, 부근에 연못들이 있어 운금이라 이름한 것이다.
[주D-001]방옹(放翁)의 …… 했지 : 방 옹은 송(宋)나라 시인(詩人) 육유(陸游)의 호인데, 그의 〈유근산(游近山)〉 시에 “난립한 산 외론 주점에 기럭 소리 석양이요, 말 한 필 두 동복에 시냇길은 가을이로세.[亂山孤店雁聲晚 一馬二僮溪路秋]” 한 데서 온 말이다. 《劍南詩稿卷41》
[주D-002]영릉(永陵)의 …… 비슷하여라 : 영릉은 고려 충혜왕(忠惠王)의 능호이고, 영소(靈沼)는 곧 문왕(文王)을 사모한 백성들이 문왕의 못을 찬미하여 이름한 것인데, 여기서는 곧 용화지가 궁성(宮城) 안에 있으므로, 이를 문왕의 못에 비유한 것이다.
석양이 서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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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골짝으로 들고 새는 숲에서 우는데 / 歸雲入谷鳥啼林
물 떨어진 암벽에서 저녁 그늘이 생기더니 / 水落石崖生夕陰
갑자기 긴 바람이 밝은 달을 불어오는지라 / 忽有長風吹送月
빙설처럼 시원함 속에 소리 높이 읊조리네 / 爽然氷雪動高吟
판사(判事) 권주(權鑄)가 이중탕(理中湯)을 보내 주었으니, 나에게 설리(泄痢)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기뻐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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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푹푹 찌는 건 마치 화롯불 같고 / 乾坤蒸熨是烘爐
기혈이 부실한 건 바로 이 병든 몸인데 / 水土浮虛卽病軀
흥겨워서 읊조릴 마음은 토해 낼 듯하지만 / 遇興吟哦心欲吐
때에 따라 조섭할 계책은 되레 어두웠다네 / 順時調燮策還迂
규헌이 하 좋은 탕제를 갑자기 보내 주니 / 葵軒妙劑俄相惠
유동의 쇠잔한 인생이 부지하게 되었구려 / 柳洞殘生便可扶
공의 나라 다스릴 계책도 넉넉히 알겠으니 / 足見吾公醫國術
몸뚱이를 언제나 탄탄대로에 들여놓을꼬 / 將身何日致亨衢
[주D-001]규헌(葵軒) : 고려 말기의 문신 권주(權鑄)의 호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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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더위 가을바람이 절로 때가 있어라 / 苦熱西風自有時
내 평생에 노파의 시를 즐겨 읽었거니와 / 平生喜讀老坡詩
그 누구의 마음 자리가 물같이 청량해서 / 有誰心地淸如水
금석이 녹는 모진 더위도 아랑곳 않을꼬 / 爍玉流金摠不知
[주D-001]모진 …… 읽었거니와 : 노 파(老坡)는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가리키는데, 소식의 〈추회(秋懷)〉 시에 “모진 더위엔 가을바람이 그리워, 가을이 안 올까 늘 염려했는데, 가을이 와서 마침내 썰렁해지니, 또 가는 세월을 슬퍼하게 되누나.[苦熱念西風 常恐來無時 及玆遂凄凜又作徂年悲]”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詩集 卷8》
우연히 반빙(頒氷)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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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유월에 얼음덩이 마주하면은 / 年年六月對氷峰
잠자리 깨끗하고 부채 바람 인 듯했는데 / 枕簟無塵扇有風
앓고 나서 문득 반사가 적음에 놀랐노니 / 病後忽驚頒賜少
지난겨울 다수워 빙고가 텅 빈 때문일세 / 只因冬暖凌陰空
반빙하는 총재는 홀로 여유가 있거니와 / 頒氷冢宰獨優游
양부의 관원들은 등에 땀이 줄줄 흐르네 / 兩府摩肩背汗流
승선 다섯 사람만 유독 반사를 얻었으니 / 五箇承宣偏得賜
성조에서 예부터 승선을 중히 여겼음일세 / 聖朝從古重龍喉
기억컨대 연산에 모진 더위 푹푹 찔 적엔 / 記得燕山酷熱蒸
길거리 곳곳에서 얼음 꿀물을 타 마셨는데 / 街頭處處蜜調氷
동에 돌아온 신세는 청량하기 그지없어라 / 東歸身世淸涼甚
시냇물 솔바람에 시원한 기운이 모이는 걸 / 澗水松風爽氣凝
[주C-001]반빙(頒氷) : 고려 때 해마다 여름철이면 종실(宗室) 및 재신(宰臣)들에게 얼음덩이를 반사(頒賜)했던 일을 가리킨다.
비가 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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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병객이 스스로 길이 읊조리어라 / 白頭病客自長吟
세속 초월한 이 마음을 그 누가 알리오 / 誰識悠悠物外心
구름 끼어 안 걷히니 조석을 모르겠는데 / 雲合不開迷早晚
산은 밝았다 어두웠다 음청을 희롱하네 / 山明還晦弄晴陰
연잎은 떨어지려 하니 우산처럼 쓰고 싶고 / 池蓮欲落思持傘
뜰 풀은 무성하나 거문고 습한 게 애석쿠려 / 庭草方深惜潤琴
다시 듣건대 피서를 하려면 변새의 밖에 / 消暑更聞沙塞外
바다 서쪽 천 리가 바로 솔숲이라 하더이 / 海西千里是松林
최옹(崔翁)의 말을 기억하여 내 의견으로 되풀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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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 화장세계가 끝내 한 구역이라 / 娑婆華藏一區中
견식이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법이니 / 見識隨人各不同
부질없이 혀를 놀려 이치를 분석하지만 / 謾向舌頭能剖析
마음으로 문득 통했다는 걸 일찍 들었네 / 早聞心力便融通
누대의 푸른 숲에선 서늘한 바람이 일고 / 樓臺綠樹涼風起
여항의 뿌연 먼지엔 낮 해가 뜨거운 법 / 閭巷紅塵午日烘
빈부의 선택은 제 스스로 초래한 것이니 / 貧富異途渠所致
시의에 따라 풀어 버리면 낙이 무궁하리라 / 順時消遣樂無窮
네 뱀이 한데 모여 주인공을 휘감아서 / 四蛇共一主人公
온갖 방도로 중상하여 늙은이를 만드니 / 百計中傷成老翁
단약 먹어 양생함은 운수가 있을 뿐이련만 / 入口元丹徒有數
온몸에 침 놓고 뜸 뜸은 끝내 효험 없어라 / 遍身針灸竟無功
아득히 푸른 풀은 먼 들판에 서로 연하고 / 迢迢綠草接遙野
조각조각 흰 구름은 높은 하늘을 날아가네 / 片片白雲行大空
성시이든 산림이든 그 어디를 가릴쏜가 / 城市山林何所擇
흥겨우면 참으로 가는 곳마다 춘풍인 걸 / 興來無處不春風
좌우에서 피리 불던 벽옥 같은 동자는 / 兩兩吹笙碧玉童
해산의 풍로 속에 나는 기럭을 탔는데 / 海山風露駕飛鴻
몸은 탁세에 있어 흰머리를 드리우고 / 身居汚濁頭垂白
꿈이면 하늘에 올라 얼굴을 붉히어라 / 夢入靑冥面發紅
부귀공명이야 어찌 세속을 면하랴만 / 富貴功名那免俗
문장 정사인들 감히 제일을 겨룰쏜가 / 文章政事敢爭雄
누가 알리오 뼈와 넋이 청랭한 이곳이 / 誰知骨冷魂淸處
도리어 밝은 달 비치는 설궁 같은 줄을 / 却似銀蟾照雪宮
삼신산은 아스라이 바다 동쪽에 있어 / 渺渺三山在海東
구슬로 장식한 궁궐이 하늘에 비치는데 / 珠宮貝闕照蒼穹
누가 나에게 약간의 선풍이 있게 하였나 / 誰敎半點仙風在
다생의 탁기가 농후함을 스스로 믿노라 / 自信多生濁氣濃
제객 연인은 자못 기괴한 술수일 뿐인데 / 齊客燕人殊怪詭
진 시황 한 무제가 어찌 근심을 풀었으랴 / 秦皇漢武豈消融
단표누항이 바로 우리 집의 낙이거니 / 簞瓢陋巷吾家樂
수요 궁통이야 한 번 타고난 걸 어찌하랴 / 壽夭窮通一降衷
[주D-001]사바세계(娑婆世界) 화장세계(華藏世界) : 불교(佛敎)에서 사바세계는 곧 고통을 참고 견디어야 하는 이 세계를 말하고, 화장세계는 곧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준말로, 석가(釋迦)의 진신(眞身)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정토(淨土)를 가리킨다.
[주D-002]네 뱀이 …… 휘감아서 : 이 뱀이란 불교 용어로서,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사대 원소(四大元素) 즉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을 비유한 말이고, 주인공(主人公)은 곧 사람마다 본디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가리킨다.
[주D-003]좌우에서 …… 탔는데 : 이 백(李白)의 〈고풍(古風)〉에 “학의 등에 걸터 탄 한 선객이, 날고 날아 하늘을 올라가서, 구름 속에서 소리 높이 외치어, 내가 바로 안기생이라고 하네. 좌우에는 백옥 같은 동자가 있어, 나란히 자란생을 불어 대누나.[客有鶴上仙飛飛凌太淸 揚言碧雲裏 自道安期名 兩兩白玉童 雙吹紫鸞笙]” 한 데서 온 말이다. 《李太白集 卷1》
[주D-004]제객(齊客) …… 풀었으랴 : 진 시황(秦始皇)은 일찍이 방사(方士)인 제인(齊人) 서시(徐市), 연인(燕人) 노생(盧生) 등을 시켜 동해(東海)에 들어가 신선(神仙)을 구하게 하였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고, 한 무제(漢武帝) 또한 신선을 좋아하여 방사인 제인(齊人) 이소군(李少君)과 소옹(少翁) 등의 황당 무계한 말을 믿고 장생불사(長生不死)를 기도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말았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秦始皇本紀》 《漢書 武帝紀》
[주D-005]단표누항(簞瓢陋巷) …… 낙이거니 : 안자(顔子)가 누추한 시골에서 대그릇밥 한 그릇, 한 표주박 음료수로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도 낙도(樂道)의 정신을 변치 않았다는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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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더운 구름이 머리 위를 지날 제 / 日午火雲頭上飛
시냇가 작은 새들도 다투어 목욕을 하네 / 溪禽爭浴羽毛微
백발의 목은은 인간 세상을 잊어버리고 / 白頭老牧忘人世
팔면이 텅 빈 대청에 훌렁 벗고 앉았노라 / 八面虛堂赤不衣
나연(那演)이 용호단(龍虎丹)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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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사람이 몹시 유감스러운 건 / 病夫深有感
요즘 부자를 얻기 어려움이었는데 / 附子近來難
오늘 다시 놀라며 기뻐한 것은 / 今日更驚喜
한 봉지 용호단을 얻은 때문일세 / 一封龍虎丹
무더운 날엔 몸이 절로 피곤하거니와 / 暑天身自困
흐리고 비올 땐 뼈가 더욱 쑤셔댄다네 / 陰雨骨彌酸
간절히 기달려라 가을바람이 일어 / 苦待西風至
서연에서 강관을 불러들이기만을 / 書筵召講官
정랑(正郞) 이정보(李廷輔)가 자기 세 아들의 이름에 대한 설(說)을 청하다. 세 아들은 소(佋), 타(佗), 한(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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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대성에서 청류들을 끌어 들이고 / 弟兄臺省控淸流
이부와 예부로부터 잠시 휴가를 냈는데 / 吏部儀曹且暫休
고인이 이름에 뜻 두는 걸 절실히 믿고 / 頗信古人名有義
자식들은 주나라로 돌아가게 하려 하네 / 欲敎諸子行歸周
해동에 가지 연하고 기가 합하는 날이요 / 連枝氣合海東日
천하에 근본 힘써 도가 생기는 기회로다 / 務本道生天下秋
기개 높은 제정은 내 아버지 친구이거니 / 倜儻霽亭吾父執
정미한 자설을 다시 나에게 구해야겠지 / 精微字說更宜求
[주C-001]정랑(正郞) 이정보(李廷輔) : 이정보는 경주 이씨(慶州李氏) 중에 당시 유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제정(霽亭) 이달충(李達衷)의 백씨(伯氏)인 이경중(李敬中)의 손자이다.
[주D-001]주(周)나라로 돌아가게 : 《시 경(詩經)》 소아(小雅) 도인사(都人士)에 “저 훌륭한 서울 분들, 여우 갖옷이 아름답기도 해라. 그 얼굴도 변함 없고, 말씀 또한 고우시니, 주나라에 돌아가거든, 만민이 뵙기 바란 바이라오.[彼都人士 狐裘黃黃 其容不改 出言有章行歸于周 萬民所望]”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주(周)나라가 난리로 황폐해진 뒤에 사람들이 그 옛날 아름답던 서울과 예의 바른 어진 이들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탄식하여 부른 노래이다.
[주D-002]가지 …… 합하는 : 동포(同胞)의 형제(兄弟)를 의미한다.
[주D-003]근본 …… 생기는 : 공자(孔子)의 제자 유약(有若)이 말하기를 “군자는 근본을 힘쓰는 것인데,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기나니, 효제는 그 인을 하는 근본인저.[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學而》
단가행(短歌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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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는 어찌 그리 번성한고 / 蠛蠓何其繁
인생도 그와 한 근원 같이했다네 / 人生同一原
요란스레 하루하루를 지내거니 / 擾擾度朝夕
누구와 친하고 또 누굴 원망하랴 / 誰親復誰寃
아미타불은 극락국을 만들어 내었고 / 彌陀幻出極樂國
광성자는 속세 떠나 무궁문에 들어갔으니 / 廣成去入無窮門
이 때문에 아미타불과 광성자는 / 所以此二氏
초연하게 모두 스스로 높았었네 / 超然幷自尊
나는 지금 백발에 시서를 즐겨 읽으며 / 我今白髮耽詩書
세쇄한 걸 분석하여 본원을 탐구하면서 / 蠶絲牛毛探本原
담담한 한 맛을 스스로 즐기는 가운데 / 淡然一味足自娛
도의 위해 이루어진 성 잘 보존할 뿐이네 / 道義成性聊存存
어찌 요에게만 많이 주고 걸에겐 아꼈으랴 / 堯何豐兮桀何嗇
혁혁한 이 마음은 모두 천지와 똑같은 걸 / 方寸赫赫同乾坤
[주D-001]아미타불(阿彌陀佛)은 극락국을 만들어 내었고 : 아미타불은 대승 불교(大乘佛敎)의 중요한 부처 이름인데, 그가 있는 곳은 괴로움이 없이 자유롭고 안락한 이상향(理想鄕)이라 하여 극락세계(極樂世界), 극락정토(極樂淨土), 극락국(極樂國) 등으로 불리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002]광성자(廣成子)는 …… 들어갔으니 : 무 궁문(無窮門)은 곧 지극한 도[至道]를 가리킨다. 황제(黃帝)가 일찍이 공동산(空同山)으로 신선(神仙) 광성자(廣成子)를 찾아가 지극한 도를 묻자, 광성자가 이르기를 “저 지극한 도는 끝이 없건만 사람들은 끝이 있다고 여기고, 그 도는 헤아릴 수 없건만 사람들은 다함이 있다고 여긴다. 내 도를 얻은 자는 위로는 황(皇)이 되고 아래로는 왕(王)이 되며, 내 도를 잃은 자는 살아서는 일월(日月)의 광명을 볼 뿐이고 죽어서는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장차 그대를 무궁(無窮)한 도의 문(門)으로 들여보내어 무극(無極)의 들판에서 놀게 하고자 한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莊子 在宥》
[주D-003]도의(道義) …… 뿐이네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이루어진 성을 잘 보존하는 것이 도의의 문이다.[成性存存 道義之門]” 한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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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중에는 세속 정태를 따르고 / 忙中隨俗態
고요함 속엔 천심을 관찰하여라 / 靜裏見天心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가는데 / 歲月悠悠過
강산은 조용조용 읊조리노니 / 江山細細吟
장차 대우의 수레를 타려다가 / 將乘大禹載
또 중니의 금조를 타기도 하네 / 且操仲尼琴
늘그막이라 생각은 줄였으나 / 老境少思慮
해마다 흐리고 비온 날이 많구려 / 連年多雨陰
처음 날 때 끼친 명을 받거니와 / 初生荷貽命
하고픈 마음 따르는 게 기쁘다오 / 所欲喜從心
학습은 추향을 삼가야 하겠지만 / 學習愼趨向
억양은 읊조림에 기교가 있어야지 / 抑揚工詠吟
이끼는 시골 수레바퀴 자국을 덮고 / 閑苔埋巷轍
오랜 비는 거문고를 눅눅케 하누나 / 久雨潤牀琴
이 또한 천명을 즐기는 일이거니 / 是亦樂天耳
날마다 흐린들 해로울 게 있으랴 / 何妨連日陰
생명 있는 건 다 외물을 추구하나니 / 有生皆逐物
큰 요점은 마음을 편케 함에 있다네 / 大要在安心
몹시 슬픈 것은 굴평의 사부요 / 惻惻屈平賦
길이 근심한 것은 양보음이로다 / 悠悠梁甫吟
군신 사이의 교의가 교칠 같고 / 君臣交似漆
처자들끼리 의가 서로 화합하면 / 妻子合如琴
우리의 도가 일월처럼 빛날 텐데 / 吾道皎日月
옅은 그늘인들 어디서 생길 건가 / 何從生薄陰
[주D-001]대우(大禹)의 수레를 타려다가 : 우(禹) 임금이 천하의 홍수(洪水)를 다스릴 적에 땅에서는 수레를 타고, 물에서는 배를 타고, 진흙탕에서는 썰매를 타고, 산에서는 나막신을 신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益稷》
[주D-002]중니(仲尼)의 …… 하네 : 공자(孔子)가 일찍이 위(衛)나라로부터 노(魯)나라에 돌아와서 때를 만나지 못해 도(道)를 행할 수 없음을 상심(傷心)하여 금조(琴操)인 의란조(猗蘭操)를 지어 탔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처음 …… 받거니와 : 소 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고하기를 “왕께서 처음 일을 시작하시니, 아, 마치 막 태어난 자식이 처음 나서부터 선을 하면 절로 철한 명을 끼쳐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늘이 철을 명할지, 길흉을 명할지, 오랜 국운을 명할지는 지금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데에 달렸습니다.[王乃初服 嗚呼 若生子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今天其命哲 命吉凶 命歷年 知今我初服]”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召誥》
[주D-004]하고픈 …… 기쁘다오 : 공자가 이르기를 “내가 칠십이 되어서는 마음에 하고 싶은 바를 따라서 하여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았노라.[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주D-005]몹시 …… 사부(詞賦)요 : 굴 평(屈平)은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을 가리키는데 평은 그의 자이고, 호는 영균(靈均)이다. 그가 일찍이 소인들의 참소를 입어 조정으로부터 쫓겨나 택반(澤畔)에서 읊조리고 다니다가 우사 번민(憂思煩悶)을 이기지 못하여 끝내 멱라수(汨羅水)에 투신 자결했는데, 그의 저서로는 애절한 충분(忠憤)과 우사 번민을 담고 있는 〈이소(離騷)〉를 비롯하여 〈구가(九歌)〉, 〈천문(天問)〉, 〈어부(漁父)〉 등 많은 사부가 전한다. 백거이(白居易)의 〈우연(偶然)〉 시에는 “초 회왕은 간사하고 영균은 곧았으니, 버림받음이 마땅한데 왜 그리 슬퍼했는고. 한 문제는 명성하고 가의는 어질었으니, 장사에 유배되어선 탄식할 만도 했네.[楚懷邪亂靈均直 放棄合宜何惻惻 漢文明聖賈生賢 謫向長沙堪歎息]” 하였고, 또 그의 〈측측음(惻惻吟)〉에는 “몹시 슬프고 또다시 슬프어라, 쫓겨난 신하가 향국으로 돌아왔네.……진흙탕의 강현(絳縣) 노인처럼 머리는 반백이요, 염장 속의 영균처럼 얼굴은 시커매졌네.[惻惻復惻惻 逐臣返鄕國……泥塗絳老頭斑白炎瘴靈均面黎黑]” 하였다. 《白樂天詩集 卷12》
[주D-006]길이 …… 양보음(梁甫吟)이로다 : 〈양 보음〉은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이 일찍이 태산(泰山) 아래 양보산(梁甫山)에서 지은 가사(歌辭)이다. 그 내용은 곧 제 경공(齊景公) 때 안영(晏嬰)이 천하 무적의 용력(勇力)을 지닌 공손접(公孫接),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 세 용사(勇士)에게 기계(奇計)를 써서 그들에게 복숭아 두 개를 주어 서로 다투게 하여 끝내 모두 자살하도록 만들었던 일을 몹시 안타깝게 여겨 노래한 것이다. 《晏子 諫下》
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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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안개가 그대로 비를 이루니 / 曉霧仍成雨
서늘한 바람이 가을을 당긴 듯한데 / 涼風欲借秋
푸른 소나무는 빈자리에 썰렁하고 / 碧松虛榻冷
푸른 이끼는 뜰 안에 그윽하구나 / 蒼蘚小庭幽
뜻을 세우는 덴 대인의 학문이요 / 立志大人學
죽을 때까지 군자는 근심하는 건데 / 終身君子憂
참으로 녹록함이 스스로 부끄러워라 / 自慚眞碌碌
진흙탕에서 땀만 줄줄 흘리네그려 / 泥濘汗交流
[주D-001]뜻을 …… 학문이요 : 대인(大人)의 학문이란 곧 대학(大學)의 도리를 가리킨 것인데, 공자가 이르기를 “나는 열다섯 살에 대학의 도에 뜻을 두었다.[吾十有五而志于學]” 하였다. 《論語爲政》
[주D-002]죽을 …… 건데 : 맹자(孟子)가 군자(君子)는 순(舜) 임금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종신토록 근심하는 것은 있으나, 갑자기 닥쳐온 환난 같은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下》
송광사(松廣寺)의 부목 화상(夫目和尙)이 왜(倭)를 피해 영대사(靈臺寺)에 있으면서 차(茶)를 부쳐 준 데 대하여 받들어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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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에 봉화 오르고 전쟁 먼지 불어댈 제 / 烽火天涯吹戰塵
벽라 넝쿨 깊은 곳에 문득 몸을 숨기었네 / 薜蘿深處却藏身
응당 매이고 벗어남이 원래 다름없기에 / 秪應縛脫元無二
늙은 나 또한 유연히 진리에 맛붙였다오 / 老我悠然味道眞
우중(雨中)에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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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소슬하고 닭우는 소리 요란한데 / 風雨蕭蕭雞亂鳴
오경의 등잔불은 창문을 환히 비추누나 / 五更燈火照窓明
사람마다 시의를 알아 절개를 지킨다면 / 人人守節知時義
세도가 어찌하여 태평을 잃는단 말인가 / 世道何曾失太平
모진 더위 추위를 사람마다 원망하나니 / 暑雨祁寒人怨咨
서민이란 예부터 참으로 어리석고말고 / 小民從古信嗤嗤
달이 별을 좇는 곳에 천상을 살피나니 / 月從星處觀天象
길흉은 본래에 절로 때가 있는 거라네 / 休咎由來自有時
금옥이 녹아내릴 듯 하늘이 타는 듯하니 / 金流玉爍欲燒天
목마른 공작도 날아와 샘물을 마시겠네 / 孔雀飛飛渴飮泉
이 빗소리가 더위를 식혀 주지 않는다면 / 不是雨聲消暑氣
인간에 더위 먹어 죽은 사람 끝이 없으리 / 人間暍死浩無邊
[주D-001]달이 …… 살피나니 : 서 민(庶民)은 별[星]에 해당하는데, 동북방에 있는 기성(箕星)은 바람을 좋아하고, 서남방에 있는 필성(畢星)은 비를 좋아하는바, 치민관(治民官)에 해당하는 일월(日月)의 행보는 사시(四時)에 따라 각각 궤도(軌道)를 달리함으로써, 달이 동북방의 기성으로 들어가면 바람이 많이 불고, 서남방의 필성으로 들어가면 비가 많이 오게 되는 것이므로, 치민관의 입장에서는 달이 별을 따르는 곳을 보아서 서민의 욕망을 어떻게 따라 주어야 할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는 데서 온 말이다. 《書經 洪範》
[주D-002]목마른 …… 마시겠네 : 두 보(杜甫)의 〈적소행(赤霄行)〉에 “공작은 소에 뿔이 있는 줄 알지 못하고, 목말라 샘물 마시다 소뿔에 받히누나. 푸른 하늘과 선경을 왕래해야 하는데도, 파란 꼬리 황금 무늬 욕됨을 피치 않는구려.[孔雀未知牛有角 渴飮寒泉逢觝觸 赤霄玄圃須往來 翠尾金花不辭辱]”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4》
고풍(古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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땔나무를 어떻게 취해야 하나 / 取薪如之何
둥지 있는 가지는 취치 말아야지 / 勿斯有巢枝
봉황새가 혹 멀리 날아가는 것은 / 鳳鳥或遠逝
사람이 인자하지 못한 때문일세 / 只爲人不慈
인한 마음으로 인한 정사를 펴면 / 仁心出仁政
천하가 태평성대를 이루리라 / 天下成雍煕
오동은 산 양지쪽에 자라기에 / 梧桐生朝陽
따사로운 태양이 더디 가나니 / 白日行遲遲
천재 아래서 그 누구와 더불어 / 誰與千載下
다시 권아 시를 지어 노래할꼬 / 更賦卷阿詩
아름다운 옥은 새기지 않아야 하고 / 美玉當不琢
지극히 공경함엔 문식이 없나니 / 至敬當無文
인륜은 스스로 질서가 있거니와 / 彝倫自有序
기강은 명군에게서 말미암는다네 / 綱紀由明君
솔개는 날고 물고기는 뛰나니 / 鳶飛與魚躍
사람 성취시킴을 어찌 다시 말하랴 / 作人何更云
미루어 행하여 먼 데까지 미쳐서 / 推行迺及遠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게 했으니 / 庠序討典墳
천추를 마치 하루와 같이 / 千秋如一日
나로 하여금 방훈을 생각케 하네 / 使我思放勳
문식을 많이 함은 본디 싫어하지만 / 彌文固所厭
너무 질박함도 어찌 행할 수 있으랴 / 朴略寧可行
굽은 것 바로잡음도 너무 지나치면 / 矯枉或太過
이것이 곧 권형을 폐하는 행위라네 / 是爲廢權衡
근본을 힘쓰는 건 농사에 있으나 / 務本在農畝
임금 신하가 함께 농사를 짓는다면 / 君臣將幷耕
이 의리는 끝내 옳지 못한 것이라 / 此義竟不可
성현의 가르침이 매우 분명하였네 / 聖賢謨甚明
그러나 터럭은 가죽에 붙으나니 / 雖然毛附皮
삼가서 경중을 나누진 말아야 하리 / 愼勿分重輕
[주D-001]권아(卷阿) 시 : 《시 경》 대아(大雅) 권아에 “봉황새가 울어대니, 저 높은 뫼이로다. 오동이 나서 자라니, 저 볕바른 산 양지쪽이로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한 데서 온 말이다. 봉황은 현사(賢士)를 비유한 것으로, 이 시는 곧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을 따라 꼬부라진 언덕에서 노닐 때, 천하가 태평한 때문에 성왕이 즐겁게 노래하며 노는지라, 소공이 성왕을 위해 아무리 태평한 때일지라도 항상 스스로 경계하고 현사들을 사방에서 구해 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노래한 것이다.
[주D-002]아름다운 …… 없나니 :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소박한 예를 귀히 여기는 경우가 있으니, 지극히 공경하는 곳에는 문식하지 않으며,……천자의 홀은 새기지 않는다.[有以素爲貴者 至敬無文……大圭不琢]”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솔개는 …… 말하랴 : 《시 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거늘, 물고기는 못에서 뛰도다. 즐거울사 우리 님이여, 어찌 사람을 성취시키지 않으랴.[鳶飛戾天 魚躍于淵豈弟君子 遐不作人]”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문왕(文王)의 덕이 모든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을 찬미한 노래이다.
[주D-004]미루어 …… 하네 : 방훈(放勳)은 요(堯) 임금의 별호인데, 요 임금이 일찍이 설(契)을 사도(司徒)로 삼아서 백성들에게 인륜(人倫)을 가르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근본을 …… 분명하였네 : 전 국 시대 초(楚)나라의 유학자인 진량(陳良)의 제자 진상(陳相)이 신농씨(神農氏)의 학설(學說)을 행한다는 허행(許行)에게 도취되어 허행의 말을 맹자(孟子)에게 전해 말하기를 “어진 이는 백성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인데, 지금 등나라에는 창름과 부고가 있으니, 이것은 곧 백성을 괴롭혀서 자신만을 봉양하는 행위인데, 어찌 어질다 할 수 있겠는가.[賢者與民幷耕而食 饔飱而治 今也 滕有倉廩府庫 則是厲民而以自養也 惡得賢]” 하자, 맹자가 여기에 대하여, 윗사람의 할 일과 백성의 할 일이 따로 있고, 마음을 쓰는 사람과 힘을 쓰는 사람이 따로 있어, 마음을 쓰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는 것이고, 힘을 쓰는 사람은 남에게서 다스림을 받는 것이므로,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사람은 결코 농사까지 손수 지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던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주D-006]터럭은 가죽에 붙으나니 : 《춘 추좌전(春秋左傳)》 희공(僖公) 14년 조(條)에 “가죽이 있지 않은데, 터럭이 장차 어디에 나붙겠는가.[皮之不存 毛將安附]”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곧 윗사람과 백성의 관계가 마치 가죽과 터럭의 관계와 같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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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으로 신하들에게 휴가를 내렸는데 / 聖恩休沐賜群臣
두 귀밑털 쇠잔하고 몸은 병들었네 / 雙鬢飄然病在身
하늘가의 갠 구름은 조각조각 흩날고 / 天際晴雲飛片片
못 안의 새 물결은 비늘처럼 출렁이네 / 池中新水漾鱗鱗
서연의 강의 그침은 유로를 우대함이요 / 書筵輟講優儒老
밥 먹을 때도 생각한 건 성은의 보답일세 / 食頃關懷報主人
한 와상 맑은 바람에 앉아 졸 만하여라 / 一榻淸風聊坐睡
담박함은 어디서나 내 참을 기를 만하네 / 澹然無處喪吾眞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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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은 구름은 고루 펴져 하늘을 가렸는데 / 薄雲均布蔽靑天
연기 자욱한 깊은 숲엔 비둘기가 우누나 / 深樹鳩鳴鎖碧煙
자리 곁엔 몇 년이나 약물을 친했던고 / 榻上幾年親藥物
궁중에선 수일 동안 서연을 중지하였네 / 宮中數日輟書筵
이미 공부에게서 처음 국화 옮겨 왔거니 / 已從工部初移菊
이젠 염계와 함께 연을 사랑하고 싶어라 / 欲向濂溪共愛蓮
정식과 한향에 대해 난 게으르고 졸하니 / 淨植寒香吾懶拙
평론일랑 후세의 어진 이에게 부쳐야겠네 / 評論付與後來賢
묵은 구름 갈라지고 태양이 나와 운행할 제 / 宿雲解駮日行天
수많은 집 아침 짓는 연기가 땅에 가득한데 / 萬屋朝炊滿地煙
더위 식히는 누대에선 가는 갈포옷 헤치고 / 消暑樓臺披細葛
서늘함 주는 과일들은 화려한 자리에 널렸네 / 納涼苽果展華筵
누추한 시골에 몸 담아 뜨락의 풀을 보고 / 棲身陋巷看庭草
갠 하늘에 머리 들어 악련을 바라도 보네 / 矯首晴空望岳蓮
다만 나는 일생에 학력이 전혀 없는지라 / 祗是一生無學力
단표의 어진 안회를 감히 감탄도 못 하리 / 簞瓢不敢嘆回賢
나는 평소 세상 물정에 너무나 어두워서 / 吾生坐井喜觀天
주방에 혹 먹을 게 떨어져도 상관 않는데 / 遮莫庖廚或斷煙
마을 친구는 술병 들고 자주로 찾아오고 / 里友携壺頻叩戶
산승은 석장 놓고 문득 자리를 올라오네 / 山僧釋杖便登筵
선풍은 다만 뜰 앞의 잣나무에 있거니와 / 禪風秪在庭前柏
환상세계는 절로 연화세계에서 나온다오 / 幻境自生池上蓮
그 누가 알랴 고요함 속의 마음 자리는 / 誰識靜中方寸地
응당 불초함과 어짊이 따로 없다는 것을 / 也無不肖也無賢
[주D-001]이미 …… 옮겨 왔거니 : 공 부(工部)는 곧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낸 두보(杜甫)를 가리키는데, 두보의 〈탄정전감국화(嘆庭前甘菊花)〉 시에 “뜰 앞의 감국을 늦은 때에 옮겨 심어서, 푸른 꽃을 중양에도 딸 수가 없네그려.[庭前甘菊移時晚 靑蘂重陽不堪摘]”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3》
[주D-002]이젠 …… 싶어라 : 염계(濂溪)는 주돈이(周敦頤)의 호인데, 그가 평소에 연(蓮)을 가장 사랑하여 〈애련설(愛蓮說)〉까지 지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3]정식(淨植)과 한향(寒香) : 정식은 주돈이의 〈애련설〉에서 연(蓮)을 일컬어 “우뚝이 깨끗하게 서 있다.[亭亭淨植]” 한 데서 온 말이고, 한향은 곧 국화(菊花)의 향기를 의미한다.
[주D-004]누추한 …… 보고 :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가 일찍이 창문 앞의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므로,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자기의 의사와 일반이다.[與自家意思一般]” 하였다.
[주D-005]갠 하늘에 …… 보네 : 악 련(岳蓮)은 곧 화악(華岳)의 연화봉(蓮花峯)을 가리키는데, 두보(杜甫)의 〈제정현정자(題鄭縣亭子)〉 시에 “정현이라 시냇물 가의 정자에서, 높은 창에 기대 서니 새로운 흥이 발동하네. 구름 끊어진 악련은 큰 길을 굽어보고, 갠 하늘의 궁 버들은 장춘궁에 어둑하구나.[鄭縣亭子澗之濱戶牖憑高發興新 雲斷岳蓮臨大路 天晴宮柳暗長春]” 하였다. 《杜少陵詩集卷6》
[주D-006]단표(簞瓢)의 어진 안회(顔回) : 안회가 누추한 시골에서 대그릇밥 한 그릇, 한 표주박 음료수로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도 낙도(樂道)의 정신을 변치 않았다는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D-007]선풍(禪風)은 …… 있거니와 : 당(唐)나라 때 한 승려(僧侶)가 고승(高僧) 조주(趙州)에게 묻기를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조주가 말하기를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고 했던 선어(禪語)에서 온 말이다.
[주D-008]환상세계(幻相世界)는 …… 나온다오 : 환상은 불교(佛敎)에서 실체(實體)가 없는 무상(無相)한 형상을 이르는 말로, 환상세계란 곧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를 가리키고, 연화세계란 바로 석가(釋迦)의 진신(眞身)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정토(淨土)를 가리킨다.
지후(祗候) 민안인(閔安仁)이 제가(諸家)의 시고(詩藁)를 모아서 장차 졸옹(拙翁)의 《동인지문(東人之文)》을 이으려고 하므로, 내가 그것을 매우 기뻐하여 단가(短歌)를 지어서 그 일을 성취하기를 권면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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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방엔 우뚝한 영걸들이 많아서 / 東方磊落多英雄
문장의 기염이 푸른 하늘에 닿았는데 / 文章氣焰摩蒼穹
아름다운 시문들을 후인에게 남겨 주고 / 遺芳賸馥霑後人
눈에 발자국 남기고 기러기 날듯하니 / 爪留泥上如飛鴻
명가들의 전집을 쉽게 얻을 수 없어라 / 名家全集不易得
아름다운 금옥이 모래 속에 묻혀 버렸네 / 良金美玉沙石中
고운 이후론 문장가들이 하도 많아서 / 孤雲以來多作者
문자 싸움을 용이 들에서 싸우듯 하니 / 筆戰有如龍鬪野
중원에서 우리를 소중화라 흠모하여 / 中原歆羨小中華
일성처럼 밝아서 광휘가 서로 비치었네 / 日星晃朗光相射
더구나 익재는 집대성을 이루었으니 / 況有益齋集大成
하 많은 오언 칠언이 다 찬란하거니와 / 千百五七皆精英
변려체인 사륙문 또한 체격을 얻어서 / 騈驪四六亦得體
진정표의 공덕 칭송은 아주 화평하였네 / 陳情頌德和而平
졸옹의 호기는 절로 당적할 자가 없어 / 拙翁豪氣自無敵
삼한의 높은 율격을 다 주워 모았으되 / 拾盡三韓高律格
같은 때 제현의 것은 뽑지를 않았으니 / 同時諸賢不入選
아마 동시대 사람보다 고인을 중히 여겼던 듯 / 似重耳聞輕目擊
만년에는 여강옹과 함께 그곳에 머물러 / 晚年留與驪江翁
곧장 강물과 더불어 끝없이 흘러갔는데 / 直與江水流無窮
늙은이는 돌아가고 젊은이가 계승하니 / 老者仙去少者繼
나는 각문 지후의 고풍 좇음을 아끼노라 / 我愛閣門追古風
각문 지후는 배우는 힘이 여유가 있어 / 閣門學力有餘地
몸이 책벌레처럼 문자에 붙여 살면서 / 身如蠹魚寄文字
제현의 시문 두루 찾아 구름처럼 모아서 / 旁求博采如雲屯
늙은 내 눈 놀래켜라 동이가 헷갈리네 / 驚我老目迷同異
나는 지금 병든 나머지 심력이 쇠하여 / 我今病餘心力衰
콩 보리도 분간 못 하는 백치가 되었는데 / 不分菽麥成白癡
감히 대롱 속으로 표범 무늬를 엿볼쏜가 / 敢從管中窺豹斑
실낱같은 기식만 아직 안 끊겼을 뿐이네 / 氣息不絶如抽絲
곧 서늘한 가을바람이 하늘에 가득하여 / 且待秋風涼滿天
정신이 상쾌하고 기거가 온편해지거든 / 精神爽快興居便
내 의당 붓을 잡고 대략 비점을 치리니 / 便當執筆略批點
그대 집에선 다시 이것을 전하려 할는지 / 君家更肯謀流傳
[주C-001]지후(祗候) 민안인(閔安仁)이 …… 하므로 : 민 지후 안인은 곧 고려 말기에 각문 지후(閣門祗候)로 있었던 민안인을 가리킨 것으로, 그가 일찍이 졸옹(拙翁) 최해(崔瀣)가 편찬한 《동인지문(東人之文)》을 모방하여 무려 백여 질(帙)에 달하는 제가(諸家)의 일고(逸稿)를 모아 시문(詩文)들을 뽑아서 《속동인지문(續東人之文)》을 편찬하려고 했던 데서 온 말인데, 그는 끝내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한다.
[주D-001]눈에 …… 듯하니 : 눈 위에 남긴 기러기 발자국은 눈이 녹음에 따라 바로 사라지듯, 인생도 그와 같이 덧없음을 비유한 말인데, 소식(蘇軾)의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 시에 “인생이 가는 곳마다 그 무엇과 같을꼬, 응당 눈 위에 발자국 남긴 기러기 같으리. 눈 진창에 우연히 발자국을 남겼지만, 기러기 날아가면 어찌 다시 동서를 알리오.[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蹈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詩集 卷3》
[주D-002]고운(孤雲) : 신라 말기의 학자이며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의 자이다.
[주D-003]대롱 속으로 …… 엿볼쏜가 : 대롱 구멍으로 표범을 보면 표범의 무늬 전체를 보지 못하고 겨우 그 일부분의 무늬만을 볼 수밖에 없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식견(識見)이 좁음을 비유한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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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 동안 뭇 음기가 천지간에 꽉 차서 / 數日群陰塞兩間
우중에 베개 베고 청산을 꿈꾸었더니 / 雨中欹枕夢靑山
갑자기 만리 먼 하늘이 씻은 듯 맑아져 / 忽然萬里天如洗
한 마리 새 외론 구름이 함께 왕래하누나 / 獨鳥孤雲共往還
산딸기가 익어서 나무꾼이 이것을 따왔으므로, 인하여 등암사(燈巖寺)의 길을 가던 일을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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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빨갛게 익어 산빛이 찬란할 제 / 覆盆爛熳映山明
등암사의 길을 가던 일이 기억나누나 / 記得燈巖路上行
갑작스런 소낙비로 옷은 다 젖었지만 / 暴雨忽來衣盡濕
십분 맑은 흥취가 평생에 으뜸이었지 / 十分淸興蓋平生
[주C-001]등암사(燈巖寺) :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천등산(天登山)에 있던 절 이름인데,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출생한 곳이라고 한다.
인하여 등암사로부터 감로사(甘露寺)에 와서 묵은 일을 기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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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사 앞의 강물은 하도나 맑았는데 / 甘露寺前江水明
거울 같은 강물에 때로 거룻배가 보였지 / 鏡中時見小舟行
석양에는 다시 스님의 차도 마셨더니 / 晚來更啜僧窓茗
오늘에 백발이 날 줄을 어찌 헤아렸으랴 / 豈料如今白髮生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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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로 조정 반열에서 애써 시를 읊노니 / 白頭朝列苦吟詩
유유한 이 신세가 심하도다 쇠함이여 / 身世悠悠甚矣衰
장백산 앞에는 사막이 아득하고요 / 長白山前沙漠漠
대명전 가에는 잡초가 무성하여라 / 大明殿上草離離
누가 남으로 가서 새 임금 세우게 했나 / 誰敎南渡開新主
중흥을 칭송하자도 좋은 말이 없구려 / 欲頌中興無好辭
고금의 역사가 다만 이와 같을 뿐이거니 / 古往今來只如此
천명 즐긴 팽택이 다시 무얼 의심했으랴 / 樂天彭澤復奚疑
[주D-001]천명 …… 의심했으랴 :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지낸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자연의 조화에 따라 죽음으로 돌아가리니, 천명을 즐기는데 다시 무얼 의심하랴.[聊乘化以歸盡樂夫天命復奚疑]” 한 데서 온 말이다.
서쪽 이웃에서 나를 초청했으나, 더위에 지쳐 가지 못하고 한 상당(韓上黨)에게 바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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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이웃 손 좋아함은 바로 가풍이요 / 西隣好客是家風
진솔한 선비들은 낙양 안에 가득한데 / 眞率衣冠滿洛中
높은 연세에 다시 왕성함이 가장 기뻐라 / 最喜高年今更盛
즐거운 일이 절로 무궁함을 잘 알겠네 / 深知樂事自無窮
두어 그루 늙은 버들은 삼경에 서 있고 / 數株老柳當三徑
백 척의 높은 솔은 반공중에 기대섰네 / 百尺長松倚半空
몹시 한스러움은 병든 몸이 아직 피곤해 / 苦恨病餘身尙困
문정에 달려가려 하나 땀이 줄줄 흐름일세 / 欲趨庭下汗珠融
유항 선생은 빙옥같이 청결하거니와 / 柳巷先生玉映氷
길창군의 가문은 대대로 잘 계승하는데 / 吉昌門戶世相承
산 중턱 빗방울은 구름이 막 엷어지고 / 半山雨點雲初薄
땅 가득 이끼 위엔 해가 이미 떠올랐네 / 滿地苔痕日已升
시는 동파 같고 또 산곡과도 같고요 / 詩似東坡還似谷
술단지는 북해 같고 또 민수와도 같으리 / 樽如北海又如澠
인후한 마을이 좋아 내가 능히 가렸거니 / 里仁爲美吾能擇
노년엔 도가 안 이뤄진다고 누가 말하랴 / 誰道殘年道不凝
[주D-001]삼경(三徑) : 한(漢)나라 때 은사(隱士) 장후(蔣詡)가 정중(庭中)에 좁은 길 셋을 내고 송(松), 국(菊), 죽(竹)을 심었던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은자(隱者)의 문정(門庭)을 가리킨다.
[주D-002]시는 …… 같고요 : 동파(東坡)는 소식(蘇軾)의 호로서 그는 특히 시를 잘했고, 산곡(山谷)은 황정견(黃庭堅)의 호로서 그 역시 시를 잘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술 단지는 …… 같으리 : 북 해(北海)는 후한(後漢) 말기에 북해 상(北海相)을 지낸 공융(孔融)을 가리킨다. 공융은 성품이 관후하고 빈객을 좋아하여 집에 빈객이 항상 붐볐던바, 그는 항상 탄식하여 말하기를 “좌상에는 빈객이 항상 가득하고, 술 단지에는 술이 항상 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걱정이 없겠다.” 하였다. 민수(澠水)는 춘추 시대 제(齊)나라의 물 이름인데, 《춘추좌전(春秋左傳)》 소공(昭公) 12년 조(條)에 “술은 민수의 물처럼 많고, 고기는 언덕처럼 쌓였다.[有酒如澠 有肉如陵]” 한 데서 온 말로, 모두 술이 아주 푸짐함을 의미한다.
가랑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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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엷은 구름에 부슬부슬 비가 내려 / 薄雲斜日雨凄凄
나무 그늘 들쭉날쭉 시냇물은 벌창하네 / 樹影參差水漲溪
한바탕 서늘한 바람이 병골을 소생시키니 / 一陣涼風蘇病骨
행인 벽제하고 사제를 달리는 기분일세 / 還如喝道向沙堤
[주D-001]사제(沙堤) : 당(唐)나라 때 재상(宰相)들만 전용(專用)했던 도로를 가리키는데, 특히 길바닥에 모래를 깔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팥죽을 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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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구름 찌는 햇볕이 불같이 뜨거워서 / 火雲蒸日熾如焚
줄줄 흐르는 땀방울에 두 눈이 캄캄하니 / 瀋汗交流兩眼昏
곧장 팥죽 가져다 더위 독을 풀어본댔자 / 直把豆湯消暑毒
소나무 아래 물 흐르는 집만은 못하구려 / 不如松下水流門
깊고 조용한 대궐엔 더운 기운 하찮지만 / 禁宇沈沈暑氣微
시립한 신하들은 옷에 땀이 흠뻑 젖는데 / 群臣侍立汗霑衣
푸른 사발 팥죽에다 벌꿀을 타서 마시니 / 豆湯翠鉢調崖蜜
써늘한 기분 살 속에 와닿음을 깨닫겠네 / 便覺氷寒欲透肌
묻노니 승사에는 예전같이 또 있는지 / 借問僧窓似舊無
당시의 팥죽은 보드랍기 양유 같았었네 / 當時豆粥軟如酥
나는 순챗국과 양유를 두루 맛보았지만 / 蓴羹羊酪嘗來遍
흥미는 그대로 산중의 파리한 신선일세 / 興味依然山澤癯
일찍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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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깨고 나니 삭신이 갑절 쑤시고 아파서 / 夢餘肌骨倍酸辛
엎치락뒤치락하며 새벽까지 잠 못 이뤘네 / 轉展無眠竟達晨
누대 아래 두어 산봉은 푸른 병풍 비껴 있고 / 樓下數峰橫翠障
문 앞의 다섯 버들은 좋은 이웃 접했구려 / 門前五柳接芳隣
예로부터 연작이 어찌 홍곡의 속을 알쏜가 / 由來燕雀安知鵠
공연히 저구가 기린 오게 한다 말만 하네 / 謾道雎鳩可致麟
늘그막엔 한가로워 속된 생각이 적어지니 / 老境悠悠塵慮少
때로 단정히 앉아서 다시 인을 구하노라 / 有時端坐更求仁
천심은 인애하여 이 백성을 깨쳐주기에 / 天心仁愛牖斯民
현성의 남긴 풍도로 일신을 도모하건만 / 賢聖遺風畫一新
석양이라 태양은 가리어져 볼 수 없는데 / 晚景未瞻豐蔀日
조복은 아직까지 속거의 먼지를 띠었네 / 朝衣猶帶屬車塵
부슬부슬 빗소리는 상탑을 에운 것 같고 / 雨聲颯颯如圍榻
푸릇푸릇한 산빛은 자리에 뚝뚝 듣는 듯 / 山色葱葱欲滴茵
늙은 나는 평생에 병든 몸을 지탱하느라 / 老我平生支病骨
실추된 도를 찾으려도 길이 아직 어둡구려 / 欲尋墜緖尙迷津
바다와 산 깊은 곳에 외로이 매여 있자니 / 海山深處繫孤蹤
주남에 머물러 꼼짝 못 하는 태사공일세 / 留滯周南太史公
국법을 고쳐 제맘대로 대성인을 거스르고 / 變法甘心違大聖
불순한 자 표창해 제멋대로 간웅을 쓰누나 / 褒疑信手進奸雄
뒤집은 구름 엎은 비는 집에 돌아온 뒤요 / 翻雲覆雨歸來後
밝은 달 맑은 바람은 읊조리는 가운데로다 / 明月淸風嘯詠中
그 당시 벽진의 초은 노인이 / 當日碧珍樵隱叟
붓을 쥐고도 끝내 공 못 이룬 게 가련하구나 / 可憐携筆竟無功
병이 많다 보니 중년에 늙은이가 다 되어 / 多病中年成老翁
당시의 미친 흥취가 허공에 떨어져 버렸네 / 當時狂興墜虛空
쇠한 모습 흰머리만 드리웠을 뿐 아니라 / 衰容不但頭垂白
부끄러워 얼굴 또한 길이 붉히게 하누나 / 慚色長敎面發紅
뜰 가득한 이끼 위엔 빗물이 촉촉이 젖고 / 苔蘚滿庭仍浥雨
난간 앞의 나무숲엔 절로 바람이 이누나 / 樹林當檻自生風
천근이랑 월굴을 누구를 좇아 물어 볼꼬 / 天根月窟從誰問
안락와 안에는 조화의 묘가 있었네그려 / 安樂窩中有化工
[주D-001]문 앞의 …… 접했구려 : 다 섯 버들은 본디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자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저자의 이웃에 바로 저자의 친구인 유항(柳巷) 한수(韓脩)의 집 앞에 서 있는 버드나무를 도잠의 오류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주D-002]저구(雎鳩)가 …… 한다 : 저 구는 《시경(詩經)》 주남(周南)의 첫째 편인 관저(關雎)에 나오는 물새 이름이고, 기린은 역시 주남의 마지막 편인 인지지(麟之趾)의 기린을 가리키는데, 관저는 곧 문왕(文王)과 후비(后妃)의 인후(仁厚)한 성덕(聖德)을 노래한 것이고, 인지지는 곧 문왕과 후비의 인후한 덕화에 의하여 수많은 자손 종족(子孫宗族)들 또한 모두 인후하다는 것을 노래한 데서 온 말이다. 〈시서(詩序)〉에 “인지지는 곧 관저의 응험이다.[麟之趾關雎之應也]” 하였다.
[주D-003]석양이라 …… 없는데 : 태양이 가리어졌다는 것은 곧 혼암(昏暗)한 임금을 은밀히 비유하여 이른 말인데, 자세한 내용은 《주역(周易)》 풍괘(豐卦) 육이(六二) 효사(爻辭)에 나타나 있다.
[주D-004]조복(朝服)은 …… 띠었네 : 속거(屬車)는 곧 임금을 시종하는 종거(從車)의 뜻으로서 즉 임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주D-005]주남(周南)에 …… 태사공(太史公)일세 : 한 무제(漢武帝) 때 태사공 사마담(司馬談)이 일찍이 주남 땅인 낙양(洛陽)에 머물러 있다가 봉선(封禪)의 일에 참의(參議)하지 못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에서는 조정의 일에 참예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史記 卷130 太史公自序》
[주D-006]뒤집은 …… 비 : 두 보(杜甫)의 〈빈교행(貧交行)〉에 “손 뒤집어 구름 만들고 손 엎어 비 만들어라, 수다스런 경박한 태도를 어찌 셀 것이나 있으랴.[翻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한 데서 온 말로, 세상 인정(人情)의 변하기 쉬움을 의미한다. 《杜少陵詩集 卷2》
[주D-007]벽진(碧珍)의 초은(樵隱) 노인 : 벽진은 성주(星州)의 옛 이름이고, 초은(樵隱)은 본관이 성주인 이인복(李仁復)의 호인데, 이인복은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의 명신(名臣)으로 벼슬이 검교시중(檢校侍中)에 이르고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에 봉해졌다.
[주D-008]천근(天根)이랑 …… 있었네그려 : 안 락와(安樂窩)는 송(宋)나라 소옹(邵雍)의 실명(室名)으로, 전하여 소옹을 가리키는데, 소옹의 〈관물음(觀物吟)〉에 “이목 총명한 남아의 몸으로 태어났으니, 천지조화의 부여가 빈약하지 않고말고. 월굴을 탐구해야만 물을 알 수 있거니와, 천근을 못 오르면 어찌 사람을 알 수 있으랴. 건이 손을 만난 때에 월굴을 보게 되고, 지가 뇌를 만난 때에 천근을 보게 되나니, 천근 월굴이 한가로이 왕래하는 곳에, 삼십육 궁이 온통 봄이로구나.[耳目聰明男子身 洪鈞賦與不爲貧 須探月窟方知物 未躡天根豈識人 乾遇巽時觀月窟 地逢雷處見天根天根月窟閒往來 三十六宮都是春]”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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꿇어앉은 늙은이가 워낙 기심이 없기에 / 老翁危坐政灰心
새들이 날아와서 마구 덤벼드는 듯하네 / 鳥雀飛來似見侵
원래 뜰 가에서 자주 먹이는 얻어 먹지만 / 自是庭除頻得食
네 본성이 산림 좋아하는 걸 내가 아노라 / 知渠本性愛山林
산비둘기 우는 곳에 푸른 그늘 무성한데 / 山鳩啼處綠陰多
가랑비 바람 따라 벽라 넝쿨에 뿌리누나 / 微雨隨風灑薜蘿
무엇보다 이 좌망이 참 즐거움이거니 / 最是坐忘眞樂事
백발로 다시 중화를 강구할 것 없고말고 / 白頭無復講中和
또 읊다.
낙숫물 소리 속에 흰머리 득득 긁어라 / 簷溜聲中搔白頭
괴로이 읊는 시 생각이 점점 그윽해지네 / 苦吟詩思轉幽幽
칠 년의 탕약 수발은 누가 나를 위했던고 / 七年湯藥誰爲地
만리의 강산은 절로 누대에 들어오누나 / 萬里江山自入樓
감히 공명의 부탁 받은 데야 비기랴만 / 敢擬孔明承付託
원량 따라 돌아가 쉬는 거나 배우련다 / 直從元亮學歸休
문 앞의 버들은 무심하기 이를 데 없어 / 門前楊柳無情甚
비 연기에 젖은 채 가을을 맞으려 하누나 / 和雨和煙欲到秋
절목이라 산과 냇물 다하려는 머리에 / 折木山川欲盡頭
한 언덕 한 구렁이 모두 맑고 그윽하니 / 一丘一壑儘淸幽
거문고 서책 조용해라 바람은 자리에 일고 / 琴書靜好風生座
수묵화는 희미해라 달은 누각에 가득하네 / 水墨稀微月滿樓
문장이 참으로 잗닮은 스스로 우습거니와 / 自笑文章眞瑣碎
이 신세가 의당 덧없다는 건 누가 알런고 / 誰知身世是浮休
서연에 강의 파하니 게으르기 그지없어 / 書筵輟講疎慵甚
빈 대청에 누웠으니 가을처럼 썰렁하구나 / 偃息虛堂冷似秋
젊어 상국에 벼슬할 땐 머린들 숙였으랴만 / 少年游宦肯低頭
늙어 벽촌에 있자니 유폐당한 것 같구려 / 老蟄荒陬似被幽
세월은 유유하여 촛불 깜빡이듯 무상한데 / 歲月悠悠如轉燭
강산은 아득하여 누각을 오르고만 싶구나 / 江山渺渺欲登樓
시 읊자면 매양 삼 년 만에야 얻어지거늘 / 吟詩每向三年得
시구 연마를 어찌 하룬들 쉴 수 있으리오 / 鍊句何曾一日休
많이 끄적거린 시구는 무미 담박키만 하니 / 塗抹多來淡無味
화악의 매가 가을 횡행하는 걸 누가 알랴 / 誰知華嶽隼橫秋
[주D-001]좌망(坐忘) : 도가(道家)의 용어로, 즉 물아(物我)를 서로 잊어버리고 도(道)와 일치(一致)하는 정신세계를 가리킨다.
[주D-002]중화(中和)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 “희로애락이 발하기 이전을 중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 한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發而皆中節 謂之和]”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공명(孔明)의 …… 데 : 공 명은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의 자인데, 촉한의 선제(先帝) 유비(劉備)가 병이 위독했을 때 제갈량을 불러 놓고 후사(後事)를 부탁하여 이르기를 “군(君)의 재주는 조비(曹丕)의 10배나 되니, 반드시 나라를 안정시키고 마침내 대사(大事)를 평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사자(嗣子)가 보필할 만하면 보필해 주고, 자격이 되지 못하거든 군(君)이 스스로 취할지어다.”라고 했던 것을 이른 말이다. 《三國志卷35》
[주D-004]원량(元亮) …… 배우련다 : 원량은 도잠(陶潛)의 자이다. 도잠이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으로 있다가 갑자기 벼슬을 그만두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 전원(田園)으로 돌아갔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절목(折木) : 십이지(十二支)의 동방(東方) 즉 인(寅)에 해당하는 성차(星次)인 석목(析木)의 착오인 듯하다.
[주D-006]화악(華嶽)의 …… 걸 : 화 악은 중국 화산(華山)을 가리키는데, 두보(杜甫)의 〈위장군가(魏將軍歌)〉에 “위 장군의 우뚝한 골격 긴장한 정신은, 화악의 높은 봉우리에 가을 매를 본 것 같네.[魏侯骨聳精爽緊 華嶽峯尖見秋隼]”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웅건 장대(雄健壯大)한 기상을 의미한다. 《杜少陵詩集 卷4》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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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호걸들 수레 나란히 하여 마구 달려라 / 群豪幷駕政橫馳
번화한 거리 바람 없고 해는 길기도 한데 / 綺陌無風白日遲
평상시에 일 없는 이는 응당 나뿐이거늘 / 縮手平居應獨我
당세에 낯 쳐들고 감히 스승 노릇을 하랴 / 抗顔當世敢爲師
산림에 길이 은거하는 소보는 없거니와 / 山林長往無巢父
예악을 중흥시킴은 오직 후기에 있다네 / 禮樂重興在后夔
출처를 이제 와서 누가 다시 생각하랴 / 出處至今誰復念
때로 거울 속의 흰 귀밑털을 볼 뿐일세 / 鏡中時見鬢垂絲
인의의 길 가운데 법칙대로 달리노라니 / 仁義途中不失馳
때로는 빨리 가기도 더디 가기도 하는데 / 有時行速有時遲
공력 쌓는 건 삼동의 학문에 있을 뿐이지만 / 積功只在三冬學
교훈 전함엔 의당 백세의 스승이 되어야지 / 垂敎當爲百世師
남들과 있을 땐 온화하여 원만해야 하고 / 群處雍容須蕩蕩
홀로 있을 땐 엄숙하여 조심조심해야 하리 / 獨居齋慄要夔夔
마음으로 헤아리면 그지없이 분명하거늘 / 本然權度分明甚
누가 갈림길에 곡하고 물들인 실 울었던고 / 誰哭岐途泣染絲
소년 시절 중국에서 분주히 쏘다닐 적엔 / 少年中國事驅馳
부귀공명이 더딘 게 몹시 한스러웠더니 / 富貴功名苦恨遲
내 조국이 외침 자주 입음을 만나서부턴 / 自値版圖多被盜
문득 시골 학교에서 홀로 스승이 되었네 / 便從鄕校獨爲師
삼묘는 이미 순 임금 방패 춤에 감복했고 / 三苗已格舞干舜
백관들은 경쇠 치는 기에게서 화합했는데 / 庶尹方諧擊石夔
다시는 멀리 놀고자 하나 어찌할 수 있으랴 / 更欲遠游那可得
아침 흑발이 쓸쓸한 저녁 눈으로 변한 걸 / 蕭蕭暮雪變朝絲
[주D-001]소보(巢父) : 요(堯) 임금 때의 고사(高士)인데, 요 임금이 일찍이 그에게 천하(天下)를 양여(讓與)하였으나 받지 않았고, 깊은 산속의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주D-002]후기(后夔) : 순(舜) 임금 때에 음악(音樂)을 관장했던 신하이다. 장형(張衡)의 〈동경부(東京賦)〉에 “백이는 몸을 일으켜 의례를 돕고, 후기는 앉아서 악공을 지휘했다.[伯夷起而相儀 后夔坐而爲工]” 하였다.
[주D-003]누가 …… 울었던고 : 갈 림길에 곡(哭)한다는 것은 곧 전국 시대에 위아설(爲我說)을 제창했던 양주(楊朱)가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행인(行人)의 의사에 따라 남쪽으로도 갈 수 있고 북쪽으로도 갈 수 있음을 슬피 여겨 울었던 데서 온 말인데, 그것은 바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유에 따라 선(善)을 하면 선인이 되고 악(惡)을 하면 악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 것이고, 물들인 실을 울었다는 것은 곧 역시 전국 시대에 겸애설(兼愛說)을 제창했던 묵적(墨翟)이 실을 물들이는 것을 보고는, 그 염료(染料)에 따라 노랗게도 물들일 수 있고 검게도 물들일 수 있음을 슬피 여겨 울었다는 데서 온 말인데, 그것은 바로 사람의 습관(習慣)에 따라 성정(性情)의 선악(善惡)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 《淮南子 說林訓》
[주D-004]삼묘(三苗)는 …… 감복했고 : 《서 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순 임금이 일찍이 문덕을 크게 펴고 방패와 깃을 들고 두 섬돌 사이에서 춤을 추었는데, 그런 지 70일 만에 완악한 묘족이 감복하였다.[帝乃誕敷文德 舞干羽于兩階 七旬有苗格]”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임금의 훌륭한 덕화(德化)를 의미한다.
[주D-005]백관(百官)들은 …… 화합했는데 : 순 임금의 악관(樂官)인 기(夔)가 순 임금에게 아뢰기를 “아, 제가 경쇠[磬]를 치고 두드리니, 온갖 짐승들이 다 함께 춤을 추었고, 백관들이 진실로 화합하였습니다.[於 予擊石拊石 百獸率舞 庶尹允諧]” 한 데서 온 말로, 이 또한 임금의 훌륭한 덕화를 의미한다. 《書經 益稷》
[주D-006]아침 흑발이 …… 변한 걸 :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 시에 “그대는 못 보았나 고당의 밝은 거울에 백발을 슬퍼하는 것을, 아침엔 푸른 실 같더니 저녁엔 눈빛 이뤘네.[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朝如靑絲暮成雪]”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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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새벽에 향 사르고 작은 시편 얻으니 / 淸曉焚香得小詩
반쯤 갠 산빛이 정히 농후한 때이로세 / 半晴山色正濃時
두어 소리 새는 울고 뜰 이끼 푸르러라 / 數聲啼鳥庭苔綠
나같이 청한한 신세가 또 어디 있을꼬 / 似我淸閑更有誰
연래엔 사물 대할 때마다 흥미가 새로워 / 觸物年來興味新
바람 소리 비 올 기미도 정신을 상쾌히 하네 / 風聲雨氣爽精神
무더위 속에도 응당 청량한 땅이 있나니 / 炎蒸也有淸涼地
그게 바로 일개 백발의 일 없는 사람일세 / 一箇白頭無事人
강산 만리라 내 고향엔 돌아가지 못하고 / 江山萬里未歸來
백발로 홍진 속에 술 한 잔의 생애로세 / 白髮紅塵酒一盃
묻노니 물외에 초연한 게 참이냐 아니냐 / 且問忘形眞箇未
인간의 가는 곳마다 바로 봄 누대인 걸 / 人間到處是春臺
[주D-001]무더위 …… 사람일세 : 백 거이(白居易)의 〈한열(旱熱)〉 시에 “붉은 구름 흩어져 비 안 내리니, 뜨거운 햇볕 참으로 무서워라. 가만히 앉았어도 땀을 뿌리는데, 문밖 나가기가 어찌 용이하랴.……어떻게 알랴 북창 아래 늙은이 누워 있는 곳에 바람 솔솔 부는 걸. 푸른 용의 비늘 대자리를 깔고, 흰 학의 날개로 활활 부채질하니, 어찌 오직 몸만 서늘할쏜가, 겸하여 마음 또한 무사하다오. 누가 더위를 괴롭다 말했는고, 원래 청량한 땅이 있거늘.[彤雲散不雨 赫日吁可畏 端坐猶揮汗 出門豈容易……安知北窓叟 偃臥風颯至 簟拂碧龍鱗 扇搖白鶴翅 豈唯身所得 兼示心無事 誰言苦熱天 元有淸涼地]” 한 데서 온 말이다. 《白樂天詩後集 卷4》
[주D-002]봄 누대[春臺] : 《노자(老子)》 제20장에 “세속의 중인들은 화락하여 푸짐한 잔칫상을 받은 듯, 다스운 봄날 높은 누대에 올라 사방을 전망하듯 즐거워한다.[衆人煕煕 如享太牢 如春登臺]” 한 데서 온 말이다.
운룡음(雲龍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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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검은데 빗줄기는 하얗고 / 雲黑雨脚白
구름이 희면 산 모습은 푸르러라 / 雲白山容靑
구름은 말이 없다고 말들을 하니 / 人言雲無心
검고 흰 것은 누가 시킨 것일까 / 黑白誰所令
신룡은 하늘을 날아 변화를 잘하거니와 / 神龍矯矯善變化
상제가 있는 곳은 어찌 그리도 아득한고 / 上帝之居何渺冥
용인지 구름인지 과연 누가 주장을 하여 / 龍邪雲邪誰主張
음양이 모으고 흩으면서 바람 천둥을 내는고 / 陰陽聚散生風霆
요 임금 십 년 홍수와 탕 임금 칠 년 대한에 / 唐堯十年湯七年
한 번 가물고 홍수진 게 공연한 것 아니라 / 一乾一溢非徒然
성인이 천지의 공을 참예하여 도왔거니 / 聖人參贊天地功
어찌 필부필부의 마음을 애타게 했으랴 / 豈使匹婦心中煎
홍수와 가뭄의 독이 몹시도 치성했기에 / 襄陵爍玉毒甚盛
요와 탕이 만고에 신성으로 일컬어졌으니 / 堯湯萬古稱神聖
천명이요 사람에 관계된 게 아닌 줄 알겠네 / 乃知天數非關人
정사 바로 세워 우리 백성 편케 할 뿐인데 / 只得立政安吾民
우리 백성 편안함은 성정 좇아줌에 있나니 / 吾民之安在循性
구중궁궐에 가만히 앉아 군신을 등용하여 / 垂衣拱手登群臣
백신이 직무 다하게 하면 용이 복종하리라 / 百神受職龍其馴
[주D-001]백신(百神)이 …… 하면 : 백신은 온갖 신령을 말한 것으로,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예로써 교제를 행함에 따라 상제의 명에 의해 온갖 신령들이 그 직분을 다한다.[禮行於郊 而百神受職焉]” 한 데서 온 말이다.
동갑(同甲) 허 정당(許政堂)을 하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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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급제랑 조반에서 일찍 뛰어났는데 / 雁塔蛾班早出群
나는 그때 유학하러 연경으로 갔었네 / 吾方負笈走燕雲
내가 먼저 재부에 올라 자못 부끄럽더니 / 先登宰府頗爲愧
정당을 함께 받았으니 무얼 다시 말하랴 / 同拜政堂何更云
오목은 가을 만나 풍년들 조짐 있거니와 / 五木逢秋稱有實
삼한은 예부터 사문을 중히 여기고말고 / 三韓自古重斯文
연래에 동갑 모임엔 비록 뜸했었지만 / 年來甲會雖疎闊
축하의 자리 금술잔은 십분 권해야겠네 / 賀席金盃勸十分
[주D-001]오목(五木)은 …… 있거니와 : 오 목은 오곡(五穀)의 풍흉(豐凶)을 미리 점칠 수 있는 다섯 종류의 나무를 가리킨 것으로, 즉 화(禾)는 대추나무나 냇버들[棗或楊], 도(稻)는 버드나무나 냇버들[柳或楊], 대맥(大麥)은 복숭아나무[桃], 기장[黍]은 느릅나무[楡], 대두(大豆)는 홰나무[槐]로, 이 오목이 무성한지를 보아서 이듬해의 풍흉을 점친다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제민요술(齊民要術)》에 이르기를 “오목은 오곡의 조상이니, 오곡의 풍흉을 알고자 할진댄 먼저 오목을 살펴보아서 그중 무성한 나무에 해당한 곡식을 이듬해에 많이 심으면 틀림없이 풍년이 든다.[五木者 五穀之先 欲知五穀 先視五木 擇其木盛者 來年多種之萬不失一]” 하였다.
천장방(天場房)의 자은 수좌(慈恩首座)가 참외를 보내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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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풀은 반딧불이 되려 하는데 / 腐草將螢化
참외는 참 잘도 가꾼 듯하네 / 甛瓜似玉成
처음 맛본 건 좌객을 인해서인데 / 初嘗因座客
일찍 익은 건 정원사가 놀랍구나 / 早熟駭園丁
당분은 끈적끈적 치아에 달라붙고 / 崖蜜粘牙軟
차디찬 수분은 뼛속까지 시원하네 / 巖氷澈骨淸
자은 수좌가 내 마음을 잘 알고 / 慈恩相應法
다시 나를 위해 정중히 보냈구려 / 更爲我叮嚀
[주D-001]썩은 …… 하는데 :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유월에는 썩은 풀이 변하여 반딧불이 된다.[季夏之月 腐草爲螢]”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음력 유월을 가리킨다.
두 간의(諫議)가 함께 승선(承宣)에 제수된 것을 하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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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씨 조씨가 나란히 간의대부로 있다가 / 王趙聯翩諫大夫
같은 날 홍추에 들어가 미담을 이루었네 / 美談同日入鴻樞
까마득한 고려 왕조 사백여 년 동안에 / 寥寥四百餘年內
함께 승선 제수된 것도 전에 없던 일일세 / 共拜龍喉亦所無
큰 체격에 자질 좋은 이는 연형의 자제요 / 脩長質美年兄子
똑똑하기로 이름 높은 이는 문하생이로세 / 精悍名高門下生
목은 늙은이 지금 적막함을 비웃들 마소 / 莫笑牧翁今寂寞
추상에 승천된 일만도 영광스럽다마다 / 直遷樞相也光榮
승선방 안에는 문성들이 한데 모여서 / 承宣房裏聚文星
대성의 위풍이 바깥 조정을 떨치는데 / 臺省威風振大庭
유독 초은의 손자와 목은의 자식만은 / 獨有樵孫幷牧息
되레 도필이 되어 성상을 보좌하누나 / 却携刀筆佐千齡
[주D-001]연형(年兄) : 동방 급제자(同榜及第者) 즉 동년(同年)을 높여 일컫는 말이다.
군자(君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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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어떠한 즐거움이 있기에 / 君子有何樂
종신토록 스스로 유연 자득하는고 / 終身自油油
우뚝하게도 기상이 거대하여 / 巍然氣像大
충분히 속류를 압도할 만하나니 / 足以厭凡流
날이 개면 갑자기 말라 버리는 / 非如無源水
저 근원 없는 물과 같지 않아서 / 天晴忽焉收
곤륜산 꼭대기로부터 흘러내려와 / 盈科放四海
구덩이 채우며 바다에 이른다오 / 發自崑崙頭
아 저들은 그 무슨 마음으로 / 嗟哉彼何心
끊어진 항구에 배를 띄우려 하나 / 斷港將行舟
[주D-001]끊어진 …… 하나 : 한 유(韓愈)가 왕훈(王塤)을 보내는 서(序)에 “학자는 반드시 그 말미암는 바를 삼가야 하나니, 양주, 묵적, 노자, 장자, 불씨의 학문을 말미암아서 성인의 도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끊어진 항구나 못에 배를 띄워서 바다에 이르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學者必愼其所道 道於楊墨老莊佛之學而欲之聖人之道 猶航斷港絶潢 以望至於海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책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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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책망하고 다시 책망하여라 / 自嘖復自嘖
스스로 책망함을 언제나 그칠런고 / 自嘖何日已
재주는 박한데 헛된 명성 낚았고 / 才薄釣虛名
공은 작은데 높은 관작에 올랐네 / 功微躋膴仕
말을 하려면 머뭇거리게 되고 / 將言仍囁嚅
행하려 하면 실천하기 어려워라 / 欲行難踐履
전패하는 건 곧 넘어지는 이리요 / 顚沛載疐狼
불안하긴 세 번 날개 편 꿩이로세 / 耿介三狊雉
군자가 어찌 그런단 말인가 / 君子豈其然
끙끙대노니 나는 그만이로다 / 沈吟吾已矣
[주D-001]전패(顚沛)하는 …… 이리요 : 전 패는 곧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는 것을 이르는데, 《시경》 빈풍(豳風) 낭발(狼跋)에 “늙은 이리가 앞으로 가다간 제 턱 밟아 엎어지고, 곧 뒷걸음치다간 제 꼬리 밟아 넘어지네.[狼跋其胡 載疐其尾]”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불안하긴 …… 꿩이로세 : 산 량(山梁)은 산에 있는 다리를 가리키는데,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공자가 이르기를 ‘산량의 암꿩이 제때로구나, 제때로구나.’ 하자, 자로가 꿩을 잡아다가 먹이를 주니, 세 번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山梁雌雉 時哉時哉 子路共之 三嗅而作]” 한 데서 온 말이다.
보광사(普光寺)의 형(兄)에게 받들어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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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는 강해에 연달으고 / 烽火連江海
풍진은 시조에 캄캄한데 / 風塵暗市朝
어찌하면 한 등불 아래 얘길 나눌꼬 / 何當共燈話
내 귀밑은 벌써 쓸쓸한 백발이라오 / 我鬢白蕭蕭
이 남곡(李南谷)이 판사(判事), 지부(知部)에 제수된 것을 하례하다. 자는 석지(釋之)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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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수염 붉은 뺨이 유림을 비추어라 / 白鬚紅頰照儒林
풍채가 진정 풍전에 임한 옥수 같도다 / 風采眞如玉樹臨
흥겨워서 시를 쓰면 속기가 없거니와 / 遇興題詩無俗氣
지방관 가는 곳마다엔 민심을 위로했네 / 分憂到處慰民心
동문의 비바람 속엔 의복을 적시었고 / 東門風雨衣巾濕
남곡의 거문고 서책은 세월이 오래여라 / 南谷琴書歲月深
갑자기 형부 장관 된 것을 혐의치 말고 / 一起莫嫌知讞部
꼭 판결 잘해서 오늘을 다시 빛내주게나 / 須敎善斷更光今
[주D-001]풍전(風前)에 임한 옥수(玉樹) : 두 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종지는 맑고 깨끗한 아름다운 소년인데, 술잔 들고 백안으로 청천을 바라보면, 깨끗하기 바람 앞에 선 옥수와 같아라.[宗之蕭灑美少年擧觴白眼望靑天 皎如玉樹臨風前]” 한 데서 온 말이다. 종지(宗之)는 당 현종(唐玄宗) 때의 풍류 문인(風流文人) 최종지(崔宗之)를 가리킨다.
잡흥(雜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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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저물자 별실에 솔가지로 불 지피니 / 日斜別室燎松枝
향기가 바람 따라 온 좌석에 불어오네 / 香氣隨風滿座吹
옛날 산중의 글 읽던 곳과 흡사하여라 / 恰似山中讀書處
이젠 두 귀밑에 백발 드리운 걸 어찌할꼬 / 奈何雙鬢素絲垂
기억하노니 산중에 더위 한창 극심할 때 / 記得山中酷熱時
맑은 샘 흰 바위 가에서 홀로 시 읊었지 / 淸泉白石獨吟詩
찌는 듯한 더위 먼지 자욱한 도성 거리엔 / 九街塵土蒸如火
천 수레 일만 말이 온종일 달리는구나 / 萬馬千車盡日馳
수레 먼지 뿌리는 땀이 거리에 가득한데 / 車塵汗雨滿通衢
내 홀로 강산모설도를 마주하여 있어라 / 獨對江山暮雪圖
후일에 참으로 이런 생활을 누리더라도 / 異日縱能眞致此
응당 머리 돌려 이 송도를 생각하겠지 / 也應回首憶松都
구구한 열뇌 속엔 죽고 삶이 끝없건만 / 熱惱區區萬死生
흰 구름 나는 곳엔 신선 피리 소리 들리네 / 白雲飛處紫鸞笙
먼지 하 난들 다시 어디로 좇아 나오랴 / 何從更有纖塵在
무위 경지에 초연함이 지극히 맑고말고 / 超出無爲却至淸
누추한 시골 도시락 밥이 가장 즐거웁고 / 陋巷簞瓢樂最深
탕의 정벌 순의 선위는 똑같은 인이라네 / 湯征舜受一仁心
그러나 노자 장자는 천하를 아주 잊어서 / 雖然莊老忘天下
청정으로 백성 편케 함이 고금에 으뜸일세 / 淸淨安民蓋古今
[주D-001]구구한 …… 끝없건만 : 열 뇌(熱惱)는 타는 듯한 고뇌(苦惱)를 가리킨 것으로, 《법화경(法華經)》에 “우리 무리는 삼고 때문에 생사의 우리 안에서 모든 열뇌를 받아 미혹되어 앎이 없는 것이다.[我等以三苦故 於生死之中 受諸熱惱 迷惑無知]”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누추한 시골 도시락 밥 : 안자(顔子)가 누추한 시골에서 대그릇밥 한 그릇, 한 표주박 음료수로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도 낙도(樂道)의 정신을 변치 않았다는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D-003]탕(湯)의 …… 선위 : 탕 임금은 하걸(夏桀)을 정벌하여 천자(天子)가 되었고, 순 임금은 요 임금으로부터 제위(帝位)를 선양(禪讓) 받은 것을 이른 말이다
이[蝨]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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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기운 틈새가 참으로 천지처럼 넓어서 / 衣縫眞如天地寬
평생에 의기양양 배회하기 만족하건만 / 平生得意足盤桓
몸을 편케 할 뿐 숨기는 꾀는 부족하여 / 安身只欠藏身術
섬섬옥수 고운 손을 피하기 어렵네그려 / 玉手纖纖避却難
벼룩[蚤]을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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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옷과 이불에 이 생명 붙이어 / 早向衣衾寄此生
팔짝팔짝 뛰어라 한 몸뚱이 가볍건만 / 躍然跳躑一身輕
재빨라서 안 잡힌다고 자랑하지 말라 / 休誇捷疾能逃害
때로는 펄펄 끓는 물소리 요란도 하지 / 湯火時時沸有聲
닭[雞]을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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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산속에 있지 않고 인가에 깃들어 / 生不山林在里閭
때를 알고 의리 지키며 세월을 보내어라 / 知時守義送居諸
가장 예쁜 건 비바람 치는 깜깜한 날도 / 最憐風雨天沈黑
일각인들 언제 남고 모자람이 있었던가 / 一刻何曾有欠餘
개[犬]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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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마와 호우는 각각 쓰임이 있었지만 / 馬健牛豪各有施
문 지켜 도둑 막는 덴 개가 제격이고말고 / 守門防盜犬爲宜
편지 전하고 불을 꺼 인의도 알았거니와 / 傳書救火知仁義
해진 덮개의 가르침은 만고에 드리웠네 / 弊蓋遺謨萬古垂
[주D-001]건마(健馬)와 호우(豪牛) : 건마는 잘 달리는 말을 가리키고, 호우는 털이 긴 소를 가리키는데, 목천자(穆天子)에게 이 소가 있었다 한다.
[주D-002]편지 …… 알았거니와 : 편 지를 전했다는 것은 진(晉)나라 때 오(吳)의 육기(陸機)가 일찍이 홀로 낙양(洛陽)에 임관(任官)해 있을 적에 황이(黃耳)라는 총명한 개가 있어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었던바, 마침 고향 소식이 오랫동안 끊겼던 터라, 편지를 써서 죽통(竹筒)에 담아 황이의 목에 걸어 오(吳)에 있는 자기 집에 전하라고 일렀더니, 황이가 과연 오랜 시일에 걸쳐 머나먼 길을 가서 그 편지를 고향 집에 전하고 다시 고향 집의 답서(答書)까지 가져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불을 껐다는 것은 역시 진(晉)나라 때 광릉(廣陵) 사람 양생(楊生)이란 자가 개를 매우 사랑하여 길렀던바, 어느 겨울철에 한번은 그가 술이 잔뜩 취하여 큰 늪가에 드러누워 잠이 들었을 때 마침 들불이 일어나서 양생 곁으로 번져오자, 그 개가 양생을 빙빙 돌며 부르짖어도 깨나지 못하므로, 개가 마침내 물 웅덩이에 수차 제 몸을 담가 와서 양생의 주위에 있는 풀밭을 흠뻑 적셔줌으로써 끝내 양생이 화재(火災)를 면하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해진 …… 드리웠네 : 공 자(孔子)가 기르던 개가 죽자, 자공(子貢)에게 죽은 개를 묻게 하면서 이르기를 “나는 들으니 ‘해진 휘장을 버리지 않는 것은 말을 묻기 위해서이고, 해진 수레 덮개를 버리지 않는 것은 개를 묻기 위해서이다.[敝帷不棄 爲埋馬也 敝蓋不棄 爲埋狗也]’라고 했는데, 나는 지금 가난하여 수레 덮개가 없으니, 개를 묻을 때에 거적자리라도 충분히 덮어 주어 그 머리가 흙 속에 빠지지 않게 하라.”고 한 것을 이른 말이다. 《禮記 檀弓》
이 미 벼룩, 이, 닭, 개를 읊고 나서 스스로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생성(生成)함으로써 각각 품부(稟賦)받은 것이 이러하거니, 어떻게 하면 봉황(鳳凰)의 울음소리를 듣고 기린(麒麟)의 인후한 모습을 보아서 내 가슴속을 유쾌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탄식하면서 이에 봉명(鳳鳴), 인지(麟趾) 두 편을 읊어 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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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이 춤 추어라 순 임금 음악 연주했고 / 鳳之儀虞之樂成
봉황이 울어대매 주나라 덕이 밝았는데 / 鳳之鳴周之德明
순 임금 문왕이 멀어지자 하늘이 깜깜해져 / 舜文遠矣天沈沈
효경이 울어대고 자주 비오고 흐리어라 / 梟獍飛鳴多雨陰
자주 비오고 흐려 사람을 걱정시키고 / 多雨陰愁人心
때론 뜨거운 가뭄에 금석도 녹아 흐르네 / 有時爍玉仍流金
어찌하면 오동나무가 다시 무성해져서 / 安得梧桐更萋萋
봉황이 날아와 깃들게 할 수 있으려나 / 直敎鳳鳥飛來棲
기린의 인후한 모습은 여러 공자들이요 / 麟之趾惟公之子
기린의 노닒은 주나라의 태평이었는데 / 麟之游惟周之治
주공 공자가 다시 나오지 않으매 / 周孔不再生
천하가 무지하여 합종연횡으로 치달려라 / 天下貿貿馳從橫
춘추는 잘게 조각난 일개 조보가 되었고 / 春秋破爛一朝報
주례는 육국의 음모로 변화하게 되었네 / 周禮六國陰謀成
어찌하면 남풍에 재물이 절로 풍성해지고 / 安得南風物自阜
기린들이 교외의 숲에서 노닐게 할거나 / 直敎麟也游郊藪
[주D-001]봉황(鳳凰)이 …… 연주했고 :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소소를 아홉 번 연주하니, 봉황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簫韶九成 鳳凰來儀]” 한 데서 온 말인데, 소소는 곧 순 임금의 음악 이름이다.
[주D-002]봉황이 …… 밝았는데 : 《시 경(詩經)》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이 울어대니, 저 높은 뫼이로다. 오동이 나서 자라니, 저 볕바른 언덕이로다. 무성한 오동나무에 봉황의 울음소리 평화롭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于彼朝陽 菶菶萋萋 雝雝喈喈]” 한 데서 온 말이다. 또 《국어(國語)》 주어(周語)에는 “주나라가 일어날 무렵에 기산에서 봉황이 울었다.[周之興也 鸑鷟鳴於岐山]” 하였다.
[주D-003]효경(梟獍)이 …… 흐리어라 : 효 는 어미새를 잡아먹는 올빼미를 가리키고, 경은 아비새를 잡아먹는 악조(惡鳥)의 이름이다. 주공(周公)이 어린 조카 성왕(成王)을 도와서 섭정(攝政)하고 있을 때 형인 관숙(管叔), 채숙(蔡叔)으로부터 주공이 성왕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들었고 성왕 또한 주공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공이 주실(周室)의 위태로운 상황을 성왕에게 친히 경고한 내용으로 《시경》 빈풍(豳風) 치효(鴟鴞)의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올빼미야, 올빼미야, 이미 내 자식 잡아먹었거니, 내 집까지 헐지 말지어다.……하늘이 흐리고 비오기 전에, 뽕나무 뿌리를 캐어다가, 문을 튼튼히 얽어 두면, 지금 너 같은 하민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랴.[鴟鴞鴟鴞 旣取我子 無毁我室……迨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牖戶 今女下民 或敢侮予]” 하였다.
[주D-004]기린의 …… 공자(公子)들이요 : 《시 경》 국풍(國風) 주남(周南)에 “기린의 인후함이여, 어진 공자들이로소니, 아 상서로운 기린이로다.[麟之趾 振振公子 于嗟麟兮]”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문왕(文王)과 후비(后妃)가 인후(仁厚)한 때문에 그 자손들 또한 인후함을 기린에 비유하여 부른 노래이다.
[주D-005]기린의 …… 태평이었는데 :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태평성대의 상서(祥瑞)를 일러 “봉황과 기린은 모두 교외의 숲에서 노닐고, 거북과 용은 왕궁의 못에 있다.[鳳凰麒麟 皆在郊藪 龜龍在宮沼]”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춘추(春秋)는 …… 되었고 : 조보(朝報)는 곧 조정(朝廷)의 기록(記錄)이란 뜻인데, 송(宋)나라 때 왕안석(王安石)이 공자(孔子)의 《춘추》를 헐뜯어 ‘조각조각 잘려진 조정의 기록[斷爛朝報]’이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7]주례는 …… 되었네 : 전 국 시대 동주(東周)의 낙양(洛陽) 사람 소진(蘇秦)이 강태공(姜太公)의 병서(兵書)인 《음부(陰符)》를 읽고 종횡술(從橫術)을 터득하여 합종설(合從說)로 산동 육국(山東六國)의 왕(王)들을 설득해서 끝내 육국의 종약(從約)을 체결하여 스스로 종약장(從約長)이 되고 육국의 상인(相印)을 한 몸에 찼던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음모(陰謀)라고 한 것은 특히 《전국책(戰國策)》에서 소진을 가리켜 “강태공 《음부》의 모략을 터득했다.[得太公陰符之謀]”고 한 말을 가지고 음부지모(陰符之謀)를 줄여서 일컬은 것이다.
[주D-008]남풍(南風)에 …… 풍성해지고 : 순 (舜) 임금이 일찍이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가(南風歌)〉를 지어 노래한 데서 온 말인데, 그 〈남풍가〉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노염을 풀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하리로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하였다.
하 안부(河按部)가 차(茶)와 절인 어물[鮑]을 부쳐 준 데 대하여 받들어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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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향기는 병든 치아에 풍겨오고 / 茶香吹病齒
해물 맛은 쇠한 창자를 보해 주네 / 海味補衰腸
머나먼 남쪽 하늘을 바라보노니 / 南望靑天闊
영중에는 절로 세월이 한가하겠지 / 營中歲月長
우연히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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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 소리는 중이 서 있는 곳이요 / 溪聲僧立處
푸른 산빛은 새가 지저귀는 때로다 / 山色鳥啼時
시골 흥취가 심히도 한가로워라 / 野興悠悠甚
이 시가 정히 그림이나 다름없네 / 丹靑定是詩
꽃다운 풀은 성하고 시드는 날이요 / 芳草榮枯日
뜬구름은 나타나고 사라지는 때로다 / 浮雲起滅時
금석처럼 마음 굳게 가지는 것을 / 操心似金石
오직 이 두어 편의 시에 부치노라 / 寄向數篇詩
천고를 압도할 생각은 있으나 / 有意傾千古
한때를 뒤덮을 마음은 없거니 / 無心蓋一時
붓은 뽑아서 진 자를 기록하고 / 抽毫書晉字
시구는 연마해 당시를 배우노라 / 鍊句學唐詩
[주D-001]붓은 …… 기록하고 : 동 진(東晉)의 도잠(陶潛)이 평소 문장(文章)을 지을 때마다 반드시 모두 연월(年月)을 기록하였는데, 동진 안제(東晉安帝) 의희(義煕) 연간까지는 동진의 연호를 쓰고, 송 무제(宋武帝) 영초(永初)로부터 이후로는 연호를 쓰지 않고 간지(干支)만 썼던 일을 가리킨다. 《南史隱逸傳》
여름날이 서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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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빈 대청에서 나뭇가지 바라보니 / 曉向虛堂獨眄柯
푸른 그늘 실바람에 새소리 들레어라 / 綠陰風細鳥聲多
삼복은 내내 무더위라고 누가 말했던가 / 誰言三伏皆蒸溽
뼈와 넋이 청랭하여 사심 절로 끊이는 걸 / 骨冷魂淸自絶邪
군자의 기분 좋아함을 늘 길이 탄식하노니 / 君子陽陽每永嘆
현자가 악관에 숨어 있는 게 가련하여라 / 可憐賢者隱伶官
따스한 햇볕 쬐며 만족해하던 처마 밑에 / 負暄簷下甘心處
차가운 달이 나오니 정히 추위를 느끼겠네 / 桂海氷生政苦寒
한 몸이 스스로 현황을 갖춘 천지이기에 / 一身天地自玄黃
중화를 길러 얻으니 기미가 진진하여라 / 養得中和氣味長
여름 갈포 겨울 갖옷이 그런대로 쓸 만한데 / 夏葛冬裘聊足用
기쁨과 두려움을 내 마음속에 두려 하랴 / 肯將氷炭置吾腸
[주D-001]나뭇가지 바라보니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술잔 가져다가 스스로 술 따라 마시고, 뜰 나뭇가지 바라보며 즐거운 기색 짓노라.[引壺觴以自酌眄庭柯以怡顔]”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군자(君子)의 기분 좋아함 : 《시 경(詩經)》 왕풍(王風) 군자양양(君子陽陽)에 “군자님은 기분이 좋아서, 왼손에다 생황을 들고, 오른손으론 날 방중악으로 부르니, 아 참말로 즐거웁도다.[君子陽陽 左執簧 右招我由房其樂只且]”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현자(賢者)가 세상에 도(道)를 행할 수 없음을 알고 낮은 악관(樂官)의 자리에 숨어 녹사(祿仕)하면서 거짓 만족한 체하는 것을 보고 그의 친구가 이를 아름답게 여겨 노래한 것이다.
군자(君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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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가 살거니 무슨 누추함이 있으랴 / 君子居何陋
중원에서 구이를 기대하였거니와 / 中原望九夷
무진에 나라 세운 지는 하 오래고 / 戊辰垂統遠
기자는 팔조의 교법을 남기었네 / 箕子敎條遺
세가 훈신들은 자리에 많이 있고 / 閥閱多居位
문장은 시 읊기를 중히 여기도다 / 文章重咏詩
점친 햇수를 응당 초과하리니 / 卜年應過曆
성조께서 남긴 계책 있으니 말일세 / 聖祖有謀貽
[주D-001]군자(君子)가 …… 기대하였거니와 : 공 자(孔子)가 일찍이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자 하므로, 혹자가 말하기를 “누추한 곳인데, 어떻게 사시겠습니까?[陋如之何]”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군자가 살거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君子居之何陋之有]” 한 데서 온 말인데, 군자거지(君子居之)에 대해서는 ‘군자가 그곳에 가서 살거니’와 ‘군자가 사는 곳이거니’의 두 가지 해석이 있는바, 저자(著者)는 후자의 뜻을 취한 듯하다. 《論語 子罕》
[주D-002]무진(戊辰)에 …… 오래고 :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 의하면, 단군(檀君)이 제요(帝堯)와 같은 해 무진년에 즉위(卽位)했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단군이 처음 조선(朝鮮)을 세운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기자(箕子)는 …… 남기었네 : 기자가 조선(朝鮮)에 와서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등 팔조(八條)의 교법(敎法)을 만들어서 백성들을 교화시켰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점친 …… 초과하리니 : 주 (周)나라가 처음 향국 연수(享國年數)를 점쳐본 결과는 700년으로 나왔는데, 실제 향국 연수는 무왕(武王) 기묘년으로부터 동주군(東周君) 임자년까지 873년이나 되어, 점쳐서 얻은 연수 700년보다 무려 173년이나 초과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선공(宣公) 3년 조(條)에 “성왕이 겹욕에 도읍을 정하고 댓수를 점치니 삼십이요, 햇수를 점치니 칠백이었다. 이는 하늘이 명한 바이다.[成王定鼎于郟鄏 卜世三十 卜年七百 天所命也]” 하였다.
최 안동(崔安東)에게 받들어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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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속엔 서쪽 창의 촛불이요 / 風雨西窓燭
강산은 두어 수의 시편이로다 / 江山數首詩
백발의 병도 많은 이 나그네는 / 白頭多病客
천리 멀리 그대 몹시 생각한다네 / 千里苦相思
[주D-001]비바람 속엔 …… 촛불이요 : 당 (唐)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야우기북(夜雨寄北)〉 시에 “어찌하면 서쪽 창의 촛불을 함께 갈기면서, 문득 파산의 밤비 내리던 때를 얘기해 볼꼬.[何當共剪西窓燭 却話巴山夜雨時]”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멀리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뜻으로 쓰인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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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열 가운데 자취 이미 깎이어 / 削跡班行裏
필묵 사이에 몸 숨기고 있노라니 / 藏身筆墨間
성문에는 아직 구상유취일 뿐인데 / 聖門猶乳臭
벼슬길은 오히려 한심하기만 하네 / 宦路尙心寒
예악을 거듭 일으키는 날이건만 / 禮樂重興日
구름 연기는 만 겹의 산이로다 / 雲煙萬疊山
예부터 스스로 결단키 어려웠어라 / 古來難自斷
늙은 나는 다시 눈물 줄줄 흘리네 / 老我更汍瀾
벌에 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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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독한 벌에 쏘이어 / 小童逢毒螫
이웃이 놀라도록 몹시 울어대더니 / 啼甚欲驚隣
아픈 기운은 이내 멎었는데도 / 痛處俄還止
어리광 소리는 아직 짜증을 띠었네 / 驕音尙帶嗔
세정은 괴로운 일이 참 많거니와 / 世情多苦楚
병든 몸은 하도 쑤시고 아파대니 / 病骨足酸辛
과연 어느 게 무겁고 가벼울는지 / 未識誰輕重
유연히 한 번 웃음 짓노라 / 悠然一笑新
잡록(雜錄) 7수(七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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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서쪽은 사막 변새에 접하고 / 海西沙接塞
강 동쪽은 달 밝은 물결이로다 / 江左月明波
천지는 어찌 그리도 아득한고 / 天地何寥闊
슬프기도 해라 장사의 노래여 / 悲哉壯士歌
한림원에는 꽃다운 풀이 나고 / 玉署生芳草
현릉에는 석양빛이 걸려 있네 / 玄陵掛落暉
구 년 동안 근심과 질병 속에 / 九年憂病裏
정황은 선왕에 대한 그리움뿐일세 / 情況苦依依
안목 갖춘 스님은 보기 드무나 / 具眼浮屠少
몸 태우면 사리는 흔히 나오네 / 燒身舍利多
지금도 강엔 달이 비추고 있건만 / 至今江有月
심해에 물결 없음을 누가 믿으랴 / 誰信海無波
은총은 남달리 후하게 입었건만 / 榮寵非他及
떠도는 신세라 몸담을 곳도 없네 / 流離無處藏
나이가 많으나 얼굴은 윤택하고 / 年高顔更澤
시어가 묘하니 글자도 향기롭구나 / 語妙字生香
습관이 되면 본성처럼 이뤄지나니 / 習矣至成性
몸 바루기부터 가르쳐야 하고말고 / 敎之從正身
삼가서 소학을 소홀히 말지어다 / 愼無輕小學
가장 중요한 게 명륜편에 있다네 / 最要在明倫
말수가 과묵함은 초수를 본받고 / 寡語師樵叟
견문이 많음은 역옹을 숭앙하노니 / 多聞祖櫟翁
문장이나 정사에 있어 / 文章與政事
중국과 으뜸을 진정 겨룰 만하네 / 中國可爭雄
젊어 미친 기백은 자못 맹랑했고 / 少狂殊孟浪
늙어 병든 것도 풍류가 있었는데 / 老病亦風流
목은은 공연히 악명만 남긴 채 / 牧隱空遺臭
이젠 쓸쓸한 백발의 가을이로세 / 蕭蕭白髮秋
[주D-001]장사의 노래[壯士歌] : 전 국 시대의 자객(刺客) 형가(荊軻)가 연(燕)나라 태자(太子) 단(丹)을 위해 진왕(秦王)을 죽이려고 떠날 적에 역수(易水) 가에서 “바람이 쓸쓸하니 역수는 차가워라, 장사는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고 노래한 것을 가리킨다.
[주D-002]강(江)엔 …… 있건만 : 당(唐)나라 때 선승(禪僧) 현각(玄覺)의 〈증도가(證道歌)〉에 “강 위에 달은 비추고 소나무 바람은 맑게 분다.[江月照松風吹]”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깨달음의 경지를 묘사한 것이다.
[주D-003]심해(心海)에 물결 없음 : 심해는 불교에서 중생(衆生)의 심체(心體)를 비유한 말로, 팔식(八識)이 중생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이 마치 바다에 파도가 이는 것과 같다 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4]초수(樵叟) : 호가 초은(樵隱)인 이인복(李仁復)을 가리킨다.
[주D-005]역옹(櫟翁) : 호가 역옹인 이제현(李齊賢)을 가리킨다.
[주D-006]젊어 …… 있었는데 : 당송(唐宋) 시인들의 시에 소광(少狂)이나 노병(老病) 등의 자구(字句)가 많이 쓰인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흥취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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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과 스승의 직임을 형용해 볼진댄 / 君師職任可形容
인재를 고무시켜 반드시 따르게 함일세 / 鼓舞人材帥必從
공자는 안자를 주조해 성도를 밝히었고 / 孔子鑄顔明聖道
한황은 옹치를 봉해 공의 큼을 기록했네 / 漢皇封齒記功宗
광활한 천지 새에 버들개지 같은 이 몸 / 乾坤闊遠如飛絮
얼음 눈 희끗희끗한 노송 같은 이 백발 / 氷雪糢糊似老松
한 점 붉은 마음을 스스로 반성하려 하나 / 方寸赤心當自省
다만 십분 농후한 사욕이 혐의로울 뿐이네 / 祗嫌私欲十分濃
[주D-001]공자(孔子)는 안자를 주조해 : 양웅(揚雄)의 《법언(法言)》에 “혹자가 묻기를 ‘사람을 주조할 수 있는가?’ 하니, 양웅이 말하기를 ‘공자가 안연을 주조하였다.’고 했다.[或曰人可鑄與 曰孔子鑄顔淵矣]” 한 데서 온 말로, 인재를 배양하는 뜻으로 쓰인다.
[주D-002]한황(漢皇)은 …… 기록했네 :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평정한 처음에 대공신(大功臣) 20여 인을 봉하고 나니, 기타의 제장(諸將)들이 불만을 품고 날마다 공(功)을 서로 겨루다가 끝내 모반(謀反)을 하기에 이르자, 장량(張良)의 계책을 써서 고조에게 평소 공은 많으면서도 숙원(宿怨)이 깊었던 옹치(雍齒)를 먼저 봉하여 시방후(什方侯)로 삼음으로써 마침내 제장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던 데서 온 말이다.
절구(絶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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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풀 무성하여 절로 뜰에 비치어라 / 芳草蒙茸自映階
작은 서재에 짙은 그늘 땅에 가득하거늘 / 濃陰滿地小書齋
누가 다시 밟게 했는고 조회가는 길에 / 誰敎更踏朝天路
나날이 바람 먼지 그득한 도성 거리를 / 日日風塵漲九街
서연에 시강하려고 옥 섬돌을 올라가니 / 侍講書筵上玉階
엄숙함에 떨리어 마음 절로 청정해지네 / 竦然嚴肅得心齋
돌아오매 문정 조용한 게 다시 기뻐라 / 歸來更喜門庭靜
거리 가득한 빈객을 언제 거절해봤던가 / 賓客何曾拒滿街
궁중의 혹독한 더위로 강연을 중지하고 / 酷熱宮中輟講筵
늙은 신하는 뜻에 따라 시구를 얻노라니 / 老臣隨分得詩聯
이끼는 땅 가득코 산빛은 뚝뚝 듣는데 / 靑苔滿地山光滴
머리 위에 포열한 건 절로 하늘이 있구려 / 頭上安排自有天
춘풍 속 화려한 자리에 취해 꿈들 꾸는데 / 醉夢春風玳瑁筵
산야에서 화려한 시구 얽는 게 부끄러워라 / 自慚山野綴華聯
이제는 늙고 병들어 아무 일도 없거니 / 如今老病身無事
작은 정성으로 천심이나 감동시키고 싶네 / 祗把微誠欲動天
홀로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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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읊으니 뜻에 다시 꼭 맞아라 / 獨吟情更適
높은 흥취가 늙어갈수록 깊어지네 / 高興老來深
세월은 두어 가닥 백발을 부르고 / 歲月數莖髮
강산은 한 치의 마음에 어렸는데 / 江山方寸心
문장 짓는 건 비단베를 짜듯 하고 / 屬文如織錦
시구 가리긴 모래에 금을 일듯 하네 / 揀句似淘金
잘못 한가함 속의 힘만 허비하노니 / 枉費閑中力
타고난 재주가 한림에 부끄럽구려 / 天才愧翰林
풍월은 읊자하니 괴롭기만 하고 / 風月吟來苦
강산은 앉아 있으니 더욱 깊어라 / 江山坐更深
나는 먼지는 외면을 차단하는데 / 飛塵遮外面
뛰어난 경계는 중심에 들어오네 / 絶境入中心
흠결 없는 옥이라고 자부하건만 / 自負無瑕玉
도리어 펄펄 뛰는 쇠와 같구려 / 還如躍冶金
회포를 부침은 끝내 얕지 않아라 / 寄懷終不淺
천지가 서림을 감쌌으니 말일세 / 天地繞書林
체세는 공과 졸로 나뉘거니와 / 體勢分工拙
정회는 깊고 얕음이 있나니 / 情懷有淺深
굳이 많은 힘 허비할 것도 없이 / 不須多費力
다만 마음을 논하는 게 중요하리 / 祗是要論心
늙은 솔은 일산을 기울인 듯하고 / 松老欲傾蓋
밝은 달빛은 황금을 부순 듯하네 / 月明還碎金
단청의 솜씨로 형용할 수 없는 / 丹靑所未到
그윽한 흥취를 산림에 부치노라 / 幽興寄山林
[주D-001]펄펄 뛰는 쇠 : 《장 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의하면, 자래(子來)가 말하기를 “지금 위대한 대장장이가 쇠를 녹이는데[大冶鑄金], 그 쇠가 펄펄 뛰면서 ‘나는 반드시 막야검(鏌邪劍)이 되겠다.’고 한다면 대장장이는 반드시 그 쇠를 상서롭지 못한 쇠라고 여길 것이다.”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유능하다고 여겨 쓰이기를 급급하게 여기는 데에 비유한 말이다.
금강산(金剛山)의 유나(維那)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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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이요 또 아홉의 암자들이 / 八十九蘭若
잠깐 새 성화처럼 머리에 스쳐라 / 奔馳指顧中
무엇하러 또 글을 짓는단 말인가 / 若爲新潤筆
기러기 그물 벗듯 나는 빠지려네 / 漏網似冥鴻
[주C-001]유나(維那) : 도유나(都維那)의 준말로, 절에서 여러 스님의 일을 맡아 보는 지사(知事)의 직(職)을 가리킨다.
염동정(廉東亭)이 강 대언(姜代言)을 하례한 시운(詩韻)에 차(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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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안의 두 눈은 본디 저울과 같았거니 / 興安兩眼是權衡
더구나 빙옥 같은 풍채를 대했음에랴 / 況對氷光與氷精
목은은 동홍이라 지금도 부끄럽거니와 / 老牧冬烘今尙愧
그대는 시관 이름에 누 안 끼친 게 다행일세 / 幸君無累主司名
[주D-001]흥안(興安)의 …… 대했음에랴 : 흥 안은 고려 말기에 벼슬이 시중(侍中)에 이르고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에 봉해진 이인복(李仁復)을 가리키는데, 공민왕(恭愍王) 6년(1357)에 그가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고시(考試)를 주관했을 때 동정(東亭) 염흥방(廉興邦)이 장원 급제(狀元及第)했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동홍(冬烘) : 당 (唐)나라 때 정훈(鄭薰)이 일찍이 고시(考試)를 주관했을 적에 안표(顔標)를 안진경(顔眞卿)의 후손으로 잘못 알고 그를 장원(狀元)으로 뽑자, 당시에 한 무명씨(無名氏)가 시를 지어 그를 풍자하기를 “주사의 머리는 너무나도 동홍이라서, 안표를 안 노공 후손으로 잘못 알았네.[主司頭腦太冬烘 錯認顔標作魯公]”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견식이 오활하고 천루한 선생이나 시관(試官)을 가리킨다.
재 추소(宰樞所)의 공함(公緘)을 잘못 뜯어보았으니, 이는 공함을 가져다 준 자가 완산군(完山君)을 한산군(韓山君)이라고 잘못 말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비록 맹랑하다 치더라도 나 또한 어찌 죄가 없을 수 있겠는가. 세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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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는 완과 한을 잘못 들을 수도 있겠지만 / 耳聞猶可完韓誤
눈으로 보았으면 의당 안팎이 똑같은 건데 / 目覩宜將外內均
눈 감고 앉아 뜯은 담에야 자세히 살폈으니 / 瞑坐拆開方審睇
병든 사람 흐리멍덩한 정신이 가련도 해라 / 可憐怳惚病中人
예와 시를 힘써 익혀 명장의 풍도 있어라 / 閱禮敦詩名將風
예로부터 원수는 유자 중에서 나오고말고 / 古來元帥出儒中
유독 가련한 건 성균관이 이젠 적막해져서 / 獨憐泮水今蕭索
적의 머리 바쳐 공 아뢸 사람이 없음일세 / 獻無人更奏功
늙은 목은은 시서도 아직 정하지 못하거니 / 老牧詩書尙未精
어찌 혀를 놀려 병사까지 논할 수 있으랴 / 何曾掉舌更談兵
내가 아직 역임 못 한 건 오직 원수뿐이라 / 歷揚所欠唯元帥
매양 공함을 볼 때마다 눈이 번쩍 뜨이네 / 每見公緘眼倍明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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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나무 등걸처럼 우뚝이 앉아 / 靜坐枯株兀
생각에 잠기니 해는 길기만 한데 / 沈思白日長
거미는 때로 문 앞에 걸려 있고 / 蜘蛛時掛戶
참새는 혹 와상을 오르기도 하네 / 鳥雀或登牀
후미진 곳이라 산빛은 푸르르고 / 僻陋山橫翠
무더위라 비는 서늘함 보내 주누나 / 炎蒸雨送涼
노년의 진정한 사업을 말하자면 / 老年眞事業
아득히 요순 시대를 상상할 뿐이네 / 渺渺想虞唐
화마(畫馬)에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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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앞에 선 놈은 의장 세운 말 같고 / 臨風如立仗
물에 멱감는 놈은 배를 띄운 듯한데 / 浴水似浮舟
그중에 한 필은 더욱 절묘하여라 / 一匹尤稱妙
천금으로도 구하기가 쉽지 않겠네 / 千金不易求
몸을 대신한 건 진나라 사슴이요 / 代身秦有鹿
자취를 이은 건 진나라 소였었지 / 繼跡晉之牛
사원은 마치 손바닥처럼 편평한데 / 沙苑平於掌
잠깐 새에 서리 이슬 가을이로세 / 回頭霜露秋
[주D-001]몸을 …… 사슴이요 : 진 시황제(秦始皇帝)가 죽고 이세 황제가 즉위한 후, 조고가 용사(用事)를 하던 중, 조고가 군신(群臣)을 꼼짝 못하게 하고 자기가 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먼저 한 가지 시험을 베풀었던바, 즉 조고가 이세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馬]입니다.” 하자, 이세가 웃으면서 “승상이 잘못 안 게 아닌가?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구려.” 하고, 다른 좌우의 신하들에게 묻자, 혹자는 사슴인 줄을 알면서도 조고의 뜻에 아첨하기 위해 말이라 말하고, 혹자는 사실대로 사슴이라 말하기도 했는데, 끝내 사슴이라고 말한 자는 뒤에 모두 조고의 흉계(凶計)에 의해 처벌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자취를 …… 소였었지 : 진 선제(晉宣帝) 사마의(司馬懿)가 일찍이 “우씨가 사마씨를 대신하여 황제의 자리를 이을 것이다.[牛繼馬後]”는 참설(讖說)을 보고는 우씨(牛氏)를 몹시 꺼린 나머지 마침내 그의 장수(將帥) 우금(牛金)을 짐살(鴆殺)했었는데, 뒤에 공왕비(恭王妃) 하후씨(夏侯氏)가 끝내 소리(小吏) 우씨와 간통하여 원제(元帝)를 낳아 진(晉)나라의 뒤를 잇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6 元帝紀》
[주D-003]사원(沙苑) :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지명인데, 말을 목축(牧畜)하기에 아주 알맞은 곳이라고 한다.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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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접어 시 엮는 걸 일정으로 삼노라니 / 疊紙編詩作日程
문득 꾀꼬리 울음 두세 소리가 들리누나 / 忽聞黃鳥兩三聲
책 베고 환약 만듦은 응당 한적하겠지만 / 枕書丸藥應閑適
어찌 시 읊조려 태평을 송축함만 할쏜가 / 那似吟哦頌太平
문밖의 이끼는 때를 얻어 한창 푸르른데 / 門外莓苔得意靑
우중에 하루 종일 바람 난간 기대앉아서 / 雨中終日倚風櫺
마음 타고 입술 마르도록 괴로이 시 읊어 / 心焦吻燥吟詩苦
써 내니 기쁜 마음에 몸도 절로 편안하네 / 寫出欣然體自寧
흥겨워서 시 읊자면 붓은 절로 따르거니와 / 遇興吟詩筆自隨
성음이나 격률은 둘 다 여유롭기만 하네 / 聲音格律兩委蛇
한 점의 아와 속과 높낮이를 맞춤에 있어 / 一星雅俗高低處
공평히 사물과 부합시킬 이가 과연 누굴꼬 / 稱物持平果是誰
시의 평판은 예로부터 문자 놀림이 많아서 / 評詩自古舞文多
백의 속됨 원의 경함이 큰 기롱 입었기에 / 白俗元輕被大訶
나는 두릉의 낭묘의 도구를 배우고프나 / 欲學杜陵廊廟器
다만 신세가 분주함 속에 늙음이 걱정일세 / 只愁身世老奔波
청고함과 부화함은 두 시가의 풍격인데 / 淸苦浮華是兩家
풍화와 빙벽은 셀 수도 없이 많은지라 / 風花氷蘗似恒沙
평담함을 좇아서 고고함을 이뤄보려고 / 欲趨平淡成枯槁
새벽부터 석양까지 꼼짝 않고 앉았노라 / 坐到晨鍾又暮鴉
[주D-001]꾀꼬리 …… 한적하겠지만 : 두 보(杜甫)의 〈봉간엄명부(奉簡嚴明府)〉 시에 “주렴 걷으니 자던 백로가 일어나고, 환약 짓노라니 꾀꼬리가 울어대네.[鉤簾宿鷺起 丸藥流鶯囀]” 한 것과 왕안석(王安石)의 시에 “푸른 산에 이를 문지르며 앉았고, 꾀꼬리 울 적에 책 베고 잠을 자네.[靑山捫蝨坐黃鳥枕書眠]” 한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주D-002]백(白)의 …… 입었기에 : 소식(蘇軾)이 일찍이 맹교(孟郊), 가도(賈島), 원진(元稹), 백거이(白居易)의 시를 평하여 “맹교는 한빈하고, 가도는 수척하고, 원진은 가볍고, 백거이는 속되다.[郊寒島瘦元輕白俗]”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두릉(杜陵)의 낭묘의 도구 : 낭 묘(廊廟)의 도구란 곧 묘당(廟堂)에 앉아서 천하를 다스릴 만한 재상(宰相)의 자격을 가리킨 것으로, 두보(杜甫)의 〈자경부봉선현영회(自京赴奉先縣詠懷)〉 시에 “살아서 요순 같은 임금을 만났기에, 차마 영원히 하직할 수 없거니와, 지금 낭묘의 도구로 말하자면, 큰 집 짓는 데 어찌 재목 없다 할쏜가.[生逢堯舜君不忍便永訣 當今廊廟具 構廈豈云缺]”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卷4》
[주D-004]청고(淸苦)함과 …… 많은지라 : 부 화(浮華)는 화려함과 같은 뜻으로, 청고함과 부화함은 곧 두 가지의 시풍(詩風)을 가리키는데, 풍화(風花)는 화려한 시문(詩文)을 짓는 데 있어 필수의 자료가 되는 경물(景物)이고, 빙벽(氷蘗)은 청고한 생활을 일러 ‘맑은 얼음을 마시고 쓰디쓴 황벽나무를 먹는다.[氷淸蘗苦]’는 말에서 온 것으로서 청고한 시문을 짓는 데 있어 필수의 자료가 되는 물건이므로, 여기서는 곧 청고한 시나 화려한 시를 지을 수 있는 자료는 수없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5]평담(平淡)함을 …… 이뤄보려고 : 평 담은 꾸밈이 없이 아주 자연스러운 시풍(詩風)을 가리키고, 고고(枯槁)는 역시 소박하고 평온 담박한 시풍을 가리키는데, 원(元)나라 유훈(劉壎)의 《은거통의(隱居通議)》 시가(詩歌)에 의하면 “도연명과 위응물의 시는 적막하고 고고하여 마치 떨기의 난초나 그윽한 계수나무 같아서 산림 속에나 어울릴 뿐이요 조정 위에는 둘 수가 없다.[陶淵明韋蘇州之詩 寂寞枯槁 如叢蘭幽桂 宜于山林而不可置於朝廷之上]”고 하였다.
점심을 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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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국수는 향기론 육수에 미끄럽고 / 白麪香湯滑
쇠한 창자엔 찬 기운이 서리어라 / 衰腸冷氣纏
찬 오이채는 조금씩 먹기 알맞고 / 苽涼宜少嚼
연한 부추 잎은 또 살짝 데쳐졌네 / 韮軟且微煎
오미 중 단맛은 곡식에서 나오고 / 五味甘生稼
삼시 중 하늘서 열을 받는 때로다 / 三時熱稟天
맹광이 병든 나를 불쌍히 여겼어라 / 孟光憐老病
점심이 이에 맞음을 절로 느끼겠네 / 自覺午湌便
[주D-001]오미(五味) 중 …… 나오고 : 오 행(五行) 중에 “물은 짠맛을 만들고, 불은 쓴맛을 만들고, 나무는 신맛을 만들고, 쇠는 매운맛을 만들고, 곡식을 생산하는 흙은 단맛을 만든다.[潤下作鹹 炎上作苦 曲直作酸 從革作辛 稼穡作甘]”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洪範》
[주D-002]맹광(孟光) :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 양홍(梁鴻)의 아내 이름인데, 그녀가 현처(賢妻)로 이름이 높았으므로, 전하여 어진 아내에 비유한 것이다.
꿈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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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 바위 일만 구렁을 꿈속에 다녔는데 / 千巖萬壑夢中行
창 밑 쇠잔한 등불은 어두웠다 밝았다 하네 / 窓下殘燈翳復明
선경에는 본디 속세의 누가 없으려니와 / 玉扃自來無俗累
선서는 또한 남들과 논평하기 어려우리 / 蘚書難以與人評
도원서 배 돌려 온 나그네는 적적하고요 / 桃源寂寂回舟客
상역에 약 캐러 온 이는 아득하기만 하네 / 桑域遙遙採藥生
단지 마음속을 청정하게만 하면 그만이지 / 只向心中淸淨了
굳이 내 뜻을 산림에 부칠 필요 없고말고 / 雲山未必寄吾情
[주D-001]선서(蘚書) : 이 끼로 쓰인 글씨를 말한다.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일찍이 숭산(嵩山)에서 노닐다가 저물녘에 이르러 절벽(絶壁) 위에 이끼로 쓰인 ‘신청지동(神淸之洞)’이라는 글을 발견하고 그다음 날 다시 찾아가 보니 이미 없어졌더라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선경(仙境)을 의미한다. 소식(蘇軾)의 〈송범경인유낙중(送范景仁游洛中)〉 시에 “이끼 글씨는 선경을 표방하고, 일산 같은 솔가지는 천단산에 늘어졌네.[蘚書標洞府 松蓋偃天壇]”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15》
[주D-002]도원(桃源)서 …… 적적하고요 : 도 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동진(東晉)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武陵)의 한 어부(漁父)가 일찍이 시내를 따라 한없이 올라가다가 갑자기 도화림(桃花林)이 찬란한 선경(仙境)을 만나 들어가서 그곳 사람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수일 후에 그곳을 떠나서 배를 얻어 타고 다시 수일 전에 갔던 길을 되돌아왔는데, 그 후로는 다시 그 도화림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陶淵明集卷6》
[주D-003]상역(桑域)에 …… 하네 : 상 역은 곧 동방(東方)을 가리키고, 약을 캐러 온 사람이란 바로 진 시황(秦始皇) 때에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배에 싣고 삼신산(三神山)의 불사약(不死藥)을 캐기 위하여 우리 동방에 나왔다고 하는 서복(徐福)을 가리킨다. 《史記卷6 秦始皇本紀》
20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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