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은고자료 ▒

목은시고(牧隱詩藁) 제18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8. 00:25

 

 목은시고(牧隱詩藁) 18

 

 

 ()

 

 

 

6 15일에 장난삼아 제()하다.

 


그 옛날 연경 객사에 뿌연 먼지 자욱하고 / 燕山客邸蒸紅塵
등에 땀 흠뻑 흘러 정신이 몽롱할 때면 / 汗流洽背疲精神
시 읊으며 동방의 부소산을 바라봤노니 / 吟詩東望扶蘇山
자하동 골짜기 솔바람 솔솔 부는 사이에 / 紫霞洞壑松風間
높은 노랫소리 느슨한 춤 눈에 삼삼하고 / 高歌緩舞在眼中
모시 적삼 반쯤 젖고 배반은 낭자했었지 / 苧衫半濕杯盤重
그 사이에 몸 갖다두긴 의당 어려웠기에 / 致身其間固難得
나에게 우뚝이 앉아 맘을 태우게 했었네 / 使我兀坐焦心胸
이젠 벼슬 버리고 돌아온 지도 오래이건만 / 投紱歸來亦久矣
명리에 얽매여 언제 본래 뜻 이뤄봤던가 / 檢束何曾償素志
중서에서 술 갖고 폭포 가에 자리 마련해 / 中書携酒挹飛泉
초대한 손들은 모두가 당세의 현자인데 / 邀客盡是當時賢
재주 없는 내가 유독 상좌를 차지했으니 / 我獨非才忝座上
흥겨워서 홍애의 어깨를 만지고도 싶고 /
乘興欲拍洪崖肩
귀에 들어온 물소리는 하도 맑고 시원해 / 水聲入耳淸泠泠
번열을 다 씻으면 내 마음도 편해지겠지 / 滌去煩熱吾心寧
천지가 갈라져서
문득 즐겁지 않은 터에 / 天分地坼忽不樂
늘그막의 세월은 유성처럼 빠르기만 한데 / 老大光景如流星
요즘은 병으로 앉았다 눕다만 하다 보니 / 邇來抱病坐臥多
몸이 아무리 날고 싶은들 어찌한단 말인가 / 身欲奮飛將奈何
비록 작은 여가에 흥취 또한 없긴 하지만 / 雖然小隙亦無興
한번 흘러간 황하는 다시 못 돌아오는 걸 못 보았나 / 不見黃河萬古無回波
만일 나를 찾는 님이 약속을 지켜준다면 / 如有求我迨其謂
풍로 어린 선경에서 함께 너울너울 춤추리 / 洞天風露同婆娑

 

[주D-001]흥겨워서 …… 싶고 : ()나라 곽박(郭璞)의 〈유선(游仙)〉 시에왼손으론 부구의 옷소매를 끌어 당기고, 오른손으론 홍애의 어깨를 어루만지네.[左挹浮丘袖 右拍洪崖肩]” 한 데서 온 말인데, 부구와 홍애는 모두 고대(古代) 선인(仙人)의 이름이다.
[주D-002]천지가 갈라져서[天分地坼] :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뜻하는 말로, ()나라에 의해 원()나라가 멸망한 것을 의미한다.

이날 자하동(紫霞洞)에서 양부(兩府)에 주연(酒宴)을 내렸으므로, 병중에 그 소식을 듣고 기뻐서 짓다.

 


어려운 시국 구제한 건 장상의 공이거니와 / 康濟時艱將相功
성상의 진중한 맘은 옛 임금도 못 미치리 / 聖心珍重古難同
백일 아래 조정 위에서 은혜 널리 베풀어 / 推恩白日朝廷上
자하동 바위 골짝에 주연을 내렸네그려 / 錫宴紫霞巖洞中
땅은 금강산과 서로 다른 경계가 아니요 / 地與蓬山非異境
솔은 두보의 집처럼 맑은 바람이 이는데 /
松如杜閤有淸風
장수와 재상들이
서로 즐거워하는 곳에 / 安危注意交懽處
다만 병든 늙은이 참석 못 함이 한스럽네 / 祗恨無由著病翁

 

[주D-001]솔은 …… 이는데 : 두 보(杜甫)의 〈사송(四松)〉 시에네 그루 솔을 처음 옮겨올 때는, 키가 고작 석 자 남짓했었는데, 이별한 지 어언 삼 년 만에 와 보니, 나란히 선 것이 사람 키만 해졌네.……맑은 바람을 나를 위해 일으키니, 낯을 스친 게 엷은 서리 같구나.[四松初移時大抵三尺 別來忽三歲 離立如人長……淸風爲我起灑面若微霜]”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3
[주D-002]장수와 재상들이[安危注意] :
《사기(史記)》 육가열전(陸賈列傳)천하가 평안할 때는 재상을 주의하고, 천하가 위태로울 때는 장수를 주의한다.[天下安 注意相 天下危 注意將]”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곧 장상(將相)이 한자리에 모인 것을 의미한다.

또 공연(公讌)을 없애고 각각 사사로 주석(酒席)을 열었다는 말을 듣고 인하여 한 수를 이루다.

 


병든 이 몸은 공연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 公讌無由著病軀
어이해 사사 연회로 청아한 놀이 저지했나 / 奈何私會阻淸娛
수많은 갑제들은 서로 오라 불러대는데 / 紛紛甲第相招喚
고독한 서창엔 나 홀로 노래할 뿐이로세 / 兀兀書窓獨咢謳
돌 시내의 여라 넝쿨은 안석에 드리우고 / 石澗松蘿垂几席
얼음덩이와 과일은 쟁반에 서로 비치리 / 氷峯瓜果映盤盂
누가 알았으랴 한밤중 밝은 저 달빛만은 / 誰知夜半唯明月
적막한 곳 번화한 곳을 똑같이 비출 줄을 / 寂寞繁華共一途

 

선인(先人)을 모시고 연로하던 길창군(吉昌君)을 임정(林亭)으로 찾아뵈었을 때, 차린 음식 중에 햅쌀죽[新米粥]이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6월 보름께였다. 그 후에 어떤 이에게 물어보니, 대체로 쌀을 잘 저장하는 법칙이 있어서이지 참으로 햅쌀은 아니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옳은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지금 그 집과 가까운 이웃에 있으면서 마침 이때를 만났으므로, 인하여 이 시를 짓는 바이다.

 


많은 논에 벼를 심어서 우리 백성 길러라 / 水田多稻養吾民
동국은 예부터 해마다 묵은 쌀이 있는데 / 東國由來歲取陳
올벼 늦벼 특성 다름은 의당 자별하지만 /
異宜當自別
저장 법칙 얻으면 유월에도 햅쌀 같다오 / 收藏得法尙如新
송재
의 남긴 경사는 지난날과 같거니와 / 松齋餘慶猶前日
유동의 내 오두막은 그 댁과 이웃하였네 / 柳洞幽居接後塵
늙기도 전에 쇠한 걸 내 홀로 탄식하면서 / 未老已衰吾獨嘆
관작 연치 선인보다 높은 공을 선모하노라 / 羨公爵齒過先人

 

[주C-001]길창군(吉昌君) : 고려 말기에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른 권적(權適)의 봉호이다.
[주D-001]송재(松齋) :
벼슬이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에 이르고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진 권준(權準)의 호이다. 그는 바로 길창군 권적의 아버지이다.

즉사(卽事)

 


화분 속의 꽃나무는 각각 절로 봄이 있어 / 花木盆中各自春
기름진 흙에 물만 주면 사철을 새로운데 / 汲泉膏土四時新
오로지 사람의 기교로 이리 될 수 있나니 / 全憑人巧能如許
해상의 춘목을 못 옮겨 심은 게 한스럽네 / 恨不移栽海上椿

 

[주D-001]춘목(椿木) : 상고 시대 영목(靈木)인 대춘(大椿)이란 나무를 가리키는데, 이 나무는 8000년을 봄으로 삼고, 8000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한다. 《莊子 逍遙遊》

유두일(流頭日)에 세 수를 읊다.

 


상당군 댁 부침개 맛은 참으로 일품이라 / 上黨烹煎味更眞
하얀 유두면에 달고 매운 맛이 섞이었네 / 雪爲膚理雜甘辛
동그란 떡이 치아에 붙을까 염려는 되나 / 團團祗恐粘牙齒
살살 씹으니 절로 온몸이 서늘해지누나 / 細嚼淸寒自遍身

진원에서 나온 물은 흐름 절로 무궁하여 / 水出眞源自不窮
비록 백 번 꺾여도 끝내는 동으로 가는데 / 雖然百折竟趨東
그 어떤 이가 유두음을 맨 처음 만들어서 / 何人創立流頭飮
초심을 보전하여 끝까지 가려고 했던고 / 欲保初心直到終

청량한 젓대 소리가 바람 따라 들려오네 / 笛聲淸亮逐風來
어느 곳에 화려한 자리 온종일 열었는고 / 何處華筵盡日開
귀 막고 세상일 잊지 못함이 한스러워라 / 恨不塞聰忘世事
소년의 미친 흥을 스스로 누르기 어렵네 / 少年狂興自難裁

 

[주C-001]유두일(流頭日) : 명 절(名節)의 하나인 음력 6 15일을 가리키는데, 옛날 풍속에 이날은 일가나 친지들끼리 서로 어울려 물 맑은 계곡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어서 액()을 떨어버리고, 유두면(流頭麪), 밀전병 등의 음식을 만들어 먹고 노닐었다고 한다.

구씨(舅氏) 지정(池亭)에 부쳐 제()하다. 못에 연()이 있다.

 


흰머리 쇠한 얼굴로 정히 퇴휴한 때라 / 白髮蒼顔政退休
붉은 꽃 푸른 잎이 다 풍류롭기만 한데 / 紅粧翠蓋儘風流
병 많은 이 속객은 누가 불쌍히 여길꼬 / 誰憐多病塵中客
아득한 고향 산천 누각에 들지 못한걸 / 渺渺鄕山不入樓

 

[주C-001]구씨(舅氏) 지정(池亭) : 여기서 구씨는 저자의 외삼촌인 김요(金饒)를 가리키고, 지정은 바로 청향정(淸香亭)을 가리키는데, 저자가 일찍이 〈청향정기(淸香亭記)〉를 지었었다.

또 읊다.

 


나는 거적문 닫고 고개 숙이고 앉았으니 / 閉却蓬門低我顔
연래의 흥미는 참으로 청한하기만 한데 / 年來興味儘淸閑
분분도 할사 이날은 서로 부르고 따르고 / 紛紛此日共徵逐
수많은 관원들은 모두 오고 가고 하여라 / 袞袞諸公方往還
태실문 앞 시냇가의 돌다리 밑이요 / 太室門前石橋下
자하동 골짝 소나무 바람 사이로다 / 紫霞洞裏松風間
내 아이 형제 또한 실컷 마시고 취하여 / 吾兒伯仲亦爛醉
저녁 내내 용수산 마주해 시를 읊었다네 / 竟夕對吟龍首山

 

극총 수좌(克聰首座)가 새로 남계원(南溪院)으로 들어가다.

 


수년 동안 행각한 산들은 그림 같을 텐데 / 數年中道山如畫
오늘날 남계원의 풀은 보료 같겠네그려 / 今日南溪草似茵
도인의 안목은 비록 숙명통이라 하지만 / 道眼縱然通宿命
응당 사람 같잖은 늙은 목은을 미워하리 / 應嗔老牧不如人

전설을 듣자니 당년에 토지의 신이 / 聞說當年土地神
능히 주지의 몸을 점지한다 하데그려 / 也能分別住持身
자은 영수의 유가 법칙
을 전수했거니 / 慈恩領袖瑜伽法
어찌 사소한 일로 웃거나 성내려 하랴 / 肯把絲毫笑與嗔

버들골은 깊숙하여 시장과 멀거니와 / 柳洞沈沈遠市塵
천장방 스님은 절로 천진난만하거니 / 天場房釋自天眞
어찌 술 사놓고 자주 부르기를 꺼리랴 / 肯嫌酤酒頻相引
더구나 남계는 또 가까운 이웃이거늘 / 況是南溪又近鄰

 

[주D-001]숙명통(宿命通) : 불교(佛敎) 용어로, 전세(前世)의 일을 환히 꿰뚫어 아는 신통력이 있음을 말한다.
[주D-002]자은 영수(慈恩領袖) 유가 법칙(瑜伽法則) :
자은 영수는 당()나라 때 자은사(慈恩寺)에 거주하면서 법상종(法相宗)을 처음 제창한 고승(高僧) 규기(窺基)를 가리키고, 유가 법칙이란 규기가 제창한 법상종의 교리(敎理)를 말한다.

중 하(仲夏) 이후로 몹시 연꽃을 감상하고 싶어서 하루는 하인을 시켜 가보게 했더니, 운금루(雲錦樓) 연못의 꽃은 없어진 지 오래이고, 광제사(廣濟寺) 연못의 것만 성하게 피었더라고 하였다. 그래서 행차를 명하여 그곳으로 가서 둑을 따라 말 가는 대로 가다가 우연히 임 중랑(任中郞)이 자기 임정(林亭)으로 천태(天台)의 나잔자(懶殘子)를 맞이해 꽃을 감상하고 있는 자리를 만났다. 임공(任公)이 음식을 차려 내와서 함께 벽통음(碧筒飮)을 즐기고 저물녘에야 서로 작별하고 인하여 남계원(南溪院)에 들렀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두 수를 읊어 이루다.

 


비 지나간 연못은 물결 안 일어 고요한데 / 雨過池塘靜不波
버들 그늘 깊은 곳에 인가 만나 들어가니 / 柳陰深處得人家
해는 포도 넝쿨에 성긴 그림자 옮겨 가고 / 日移疎影葡萄蔓
바람은 연꽃으로부터 맑은 향기 보내오네 / 風送淸香菡

상통음
으로 좋은 술 기울이던 걸 배우고 / 學飮象筒傾綠酒
생각은 붉은 비치던 태령에 부치었네 / 寄懷台嶺映丹霞
귀가 길의 이 몸은 어찌 그리 청한하던고 / 歸途身世何蕭爽
남계원서 잠시 쉴 제 해는 벌써 석양일세 / 小憩南溪欲暮鴉

운금루대 그림자 물결에 거꾸로 박혀라 / 雲錦樓臺影倒波
풍류 넘치는 현복군 바로 명가로세 / 風流玄福是名家

세신의 명망은 시서의 교화에 중하고 / 世臣望重詩書澤
군자란 이름은 수륙의 꽃에 드높으네 /
君子名高水陸花
역력한 변천 속에 풀은 반딧불이 되고 /
歷歷廢興螢化草
광활한 읊조림엔 따오기와 놀을 겸했네 /
寥寥賦詠鶩兼霞
인간은 잠깐 새에 묵은 자취 이루는데 / 人間俯仰成陳跡
한 수의 새로운 시는 먹빛이 까맣구나 / 一首新詩字濕鴉

 

[주C-001]벽통음(碧筒飮) : 연 잎에 술을 담아서 연 줄기를 통해 술을 빨아 마시는 것을 말한다. ()나라 정시(正始) 연간에 정각(鄭慤)이 삼복(三伏) 무렵이면 매양 빈료(賓僚)들을 거느리고 사군림(使君林)에서 피서(避暑)를 할 때마다 큰 연잎을 연격(硯格) 위에 올려놓고 여기에 술 서 되[三升]를 담은 다음, 비녀로 잎을 찔러서 줄기의 구멍과 통하게 하여 줄기를 마치 코끼리 코처럼 꼬부랑하게 휘어서 거기에 입을 대고 술을 빨아 마셨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1]상통음(象筒飮) :
()나라 정시(正始) 연간에 정각(鄭慤)이 삼복(三伏) 무렵이면 매양 빈료(賓僚)들을 거느리고 사군림(使君林)에서 피서(避暑)를 할 때마다 큰 연잎을 연격(硯格) 위에 올려놓고 여기에 술 서 되[三升]를 담은 다음, 비녀로 잎을 찔러서 줄기의 구멍과 통하게 하여 줄기를 마치 코끼리 코처럼 꼬부랑하게 휘어서 거기에 입을 대고 술을 빨아 마셨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붉은 …… 태령(台嶺) :
태 령은 천태산(天台山)을 가리킨다. ()나라 손작(孫綽)의 〈천태산부(天台山賦)〉에적성엔 붉은 놀이 일어 표치를 세우고, 폭포는 날아 흘러서 길을 나누었도다.[赤城霞起而建標 瀑布飛流以界道]”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바로 붉게 핀 수많은 연꽃을 적성의 붉은 놀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3]운금루대(雲錦樓臺) …… 명가(名家)로세 :
현 복군(玄福君)은 고려 말기의 문신 권렴(權廉)의 봉호인데, 그가 일찍이 숭교리(崇敎里)의 연지(蓮池) 곁에 누대를 지어 운금루(雲錦樓)라 편액(扁額)을 걸고, 매양 연꽃이 필 때마다 성찬(盛饌)을 마련하여 빈료(賓僚)들을 초대해서 풍류를 즐겼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4]군자(君子)란 …… 드높으네 :
()나라 주돈이(周敦
)의 〈애련설(愛蓮說)〉에물이나 뭍에서 자라는 여러 가지 초목의 꽃 중에는 사랑스러운 것이 매우 많은지라, 진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고……나는 유독 연꽃을 사랑한다.……연꽃은 꽃 중의 군자이다.[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晉陶淵明獨愛菊……予獨愛蓮……蓮花之君子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역력한 …… 되고 :
《예기(禮記)》 월령(月令)유월에는 썩은 풀이 반딧불이 된다.[季夏之月 腐草爲螢]”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6월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주D-006]광활한 …… 겸했네 :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저녁놀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로다.[落霞與孤鶩齊飛秋水共長天一色]”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가을 절기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매미 우는 소리를 듣다. 이날이 입추(立秋)이다.

 


높은 나무 매미 우니 손의 머리 득득 긁어라 / 蟬鳴高樹客搔頭
또 이게 오동나무 잎새 가을이로세 / 又是梧桐一葉秋
순챗국 농어회에 돌아갈 흥취 동해라 /
蓴菜鱸魚歸興動
내 고향 진강 물은 마을 안고 흐르는걸 / 鎭江江水抱村流

돌아갈 흥취 호연해 몇 번이나 머리 돌렸나 / 浩然歸興幾回頭
만리라 강산에 푸른 나무 가을이로세 / 萬里江山碧樹秋
곳곳마다 매미 소리 손의 귀를 놀래켜라 / 處處蟬聲驚客耳
고향의 물고기와 쌀이 절로 풍류로우리 / 故鄕魚稻自風流

담비와 함께 사람 머리 오름
을 몹시 한하여 / 伴貂深恨上人頭
홀로 산림 속에서 가을을 독차지하누나 / 獨向山林占斷秋
가지 잎새에 숨는 품은 은사와 같거니와 / 翳葉藏枝如隱士
바람 이슬을 마심은 청류와도 같고말고 /
風吸露似淸流

 

[주D-001]오동나무 …… 가을이로세 : 오동나무의 낙엽(落葉)이 가장 이르기 때문에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면 가을이 시작된 것을 천하가 다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순챗국 …… 동해라 :
()나라 때 오()의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 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가을바람이 이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자기 고향 오중(吳中)의 순챗국과 농어회를 생각하면서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즉시 수레를 명하여 자기 고향으로 가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담비와 …… 오름 :
옛날에 담비 꼬리와 매미 날개로 고관(高官)의 관()의 장식을 만들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청도(淸道)의 새 태수(太守) 문익점(文益漸)이 떠날 것을 고하다.

 


그 옛날 연경서 분주하던 일 꿈만 같아라 / 燕都夢裏昔驅馳
얼굴 가득 뿌연 먼지에 스스로 슬퍼했었지 / 滿面黃塵只自悲
고생 끝에 돌아와선 뜻이 의리를 좇았고 / 辛苦歸來志從義
태평의 노래들은 기록하여 시로 만들었네 / 太平歌詠錄爲詩
조정의 반열에선 어언 삼품 계에 올랐고 / 朝中袍笏將三品
영남의 강산으론 또 일휘로 나가는구나 / 嶺外江山又一麾
병상에 누웠다 보니 서로 내왕이 적어서 / 偃臥病牀來往少
이미 많은 관직 역임한 걸 전혀 몰랐구려 / 不知揚歷已多時

 

[주D-001]일휘(一麾) 나가는구나 : 일 휘의 휘() 자는 휘척(揮斥)의 뜻이 있으므로, 전하여 조정에서 배척을 받아 지방관이 되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 때 완함(阮咸)이 순욱()의 배척을 받아 시평 태수(始平太守)로 나간 일을 두고 남조(南朝) 시대 송()나라의 안연지(顔延之)의 〈오군영(五君咏)〉에누차의 천거에도 조정엔 못 들어가고, 일휘로 지방관이 되어 나갔네.[屢薦不入官 一麾乃出守]” 한 데서 온 말이다. 《文選 卷21

연꽃을 감상하던 남은 흥취를 스스로 그치지 못하여 한 수를 읊어 이루다.

 


인심이 어찌 사심을 문득 잊을 수 있으랴 / 人心那得頓忘私
조용히 도에 합한 경지에 못 이른 때로다 / 未到從容中道時
부귀공명은 그 누가 결정을 내리는고 / 富貴功名誰定奪
춤추고 노래함은 내가 바로 주인이라오 / 謳吟舞蹈我行移
좋은 달 보내올 제 긴 바람은 멀기만 하고 / 送來佳月長風遠
맑은 향 다 사르니 밝은 해는 길기만 하네 / 炷罷淸香白日遲
연꽃의 참다운 면목을 알려고 할진댄 / 欲識蓮花眞面目
후일에 목은 늙은이 시를 점검할지어다 / 他年點檢牧翁詩

또 짓다. 부평초(浮萍草)를 걷어 내고 물속에 비친 꽃 그림자를 보았다.

해는 붉은 단장 비추어 물속에 밝다던 / 日照紅粧水底明
한림의 시구
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려 / 翰林詩句使人驚
부평초 다 걷어 내니 하늘빛 말끔하여 / 浮萍捲盡天光淨
단청색 안 쓰고도 절로 그림이 나오누나 / 不費丹靑自寫生

 

[주D-001]해는 …… 시구 : 여 기서 한림(翰林)은 한림 공봉(翰林供奉)을 지낸 이백(李白)을 가리키는데, 이백의 〈채련곡(採蓮曲)〉에해는 새 단장을 비추어 물속에 밝고요, 바람은 향그런 소매 날려 공중에 펄럭이네.[日照新粧水底明 風飄香袂空中擧]” 한 데서 온 말이다. () 시의새 단장[新粧]’은 연꽃을 가리킨 것인데, 저자는 이를붉은 단장[紅粧]’으로 바꾸어 쓴 것이다. 《李太白集卷3

이 날 하인을 시켜 연못에 들어가서 부평초를 걷어 내게 하고 보니, 꽃 그림자가 거꾸로 비쳐서 위아래가 한 빛이 되어 매우 사랑스러웠다. 인하여 이태백(李太白)해는 붉은 단장 비추어 물속에 밝다.”는 시구를 생각하면서 즉시 한 수를 채워 이루려고 하였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그만두었는데, 그 후로 수일 동안 삭신이 아파서 혹 읊조리는 때가 있기는 해도 깊이 생각을 하지 못하는지라, 대략 한때의 정경(情景)만을 써서 후일에 추술(追述)할 장본(張本)으로 삼는 바이다. 쇠하고 병든 꼴이 이와 같으니,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무 그늘 아침엔 서쪽 저물녘엔 동으로 / 樹影朝西暮向東
너울너울 제멋대로 창 안을 들어오누나 / 婆娑隨分入窓中
응당 한낮 더위 피치 못함을 가련히 여겨 / 應憐午熱無逃處
북쪽 창 바람을 솔솔 불어다 주는 거겠지 / 細細吹來北牖風

사립 밖의 높다란 수양버들 한 그루는 / 門外垂楊一樹長
응당 하인들을 약간 서늘하게 해주련만 / 也敎騶從得微涼
오두막은 해마다 솔가지 처마가 얇아서 / 草廠歲歲松簷薄
아침 볕 석양 볕을 다 못 견디겠네그려 / 不耐朝陽與夕陽

솔 밑엔 맑은 바람이요 돌 틈엔 샘물이라 / 松下淸風石上泉
더운 날이 있다는 걸 산인은 알지 못한다네 / 山人不識有炎天
두 다리 문지르다 보니 마음 몹시 아파라 /
兩脚心中惡
높은 절벽 다니는 게 바로 지상의 신선인걸 / 踏得懸崖卽地仙

익랑(翼廊)과 대청[]이 이와 같아서 산중(山中)의 흥취가 있다. 병중에 더위를 무서워한 때문에 이 시를 지은 것이다.


또 짓다.

예부터 호걸들이 세파에 함께 분주했으니 / 古來豪傑共奔波
취향으로 세상 피한 사람이 그 몇이던고 / 避世醉鄕知幾家
나는 때문에 죽엽과는 연분이 없거니 /
自分於人無竹葉
그 누가 나에게 연화박사를 하도록 하랴 / 誰敎博士有蓮花
남쪽 못 연 이슬은 밝은 달빛을 쏟아내고 / 南池荷露瀉明月
북쪽 고개 솔바람은 붉은 놀을 불어오네 / 北嶺松風吹紫霞
홀로 읊고 떼 지어 놀던 일 다 적적하여라 / 獨詠群游俱寂寂
꿈 깨고 나니 종 울리고 또 까마귀 우누나 / 夢回鐘動又啼鴉

진작부터 관해엔 풍파가 많음을 알거니 / 早知官海足風波
어찌 남산에다 만년에야 집을 지으리요 /
肯向南山
始家
거울 속의 세월은 머리털이 새하얗고 / 鏡裏光陰頭似雪
취향의 별천지는 눈이 어른어른하누나 / 酒中天地眼生花
가랑비 속에 우산 쓴 게 스스로 가련해라 / 自憐持傘乘微雨
다시는 누에 올라 저녁놀을 못 읊네그려 / 無復登樓詠落霞
누구와 함께 염계의 애련설을 가지고 / 誰把濂溪愛蓮說
새벽부터 저녁까지 서로 마주해 담론할꼬 / 曉窓相對到昏鴉

 

[주D-001]나는 …… 없거니 : 죽 엽(竹葉)은 주명(酒名)으로, 전하여 술을 가리키는데, 두보(杜甫)의 〈구일(九日)〉 시에죽엽은 나에게 이미 연분이 없어졌으니, 국화는 이제부터 피기를 기다릴 것 없네.[竹葉於人旣無分 菊花從此不須開]”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20
[주D-002]나에게 …… 하랴 :
()나라 육유(陸游)의 꿈에 그의 친구가 말하기를내가 경호(鏡湖)에 새로 설치한 연화박사(蓮花博士)가 되었는데, 내가 장차 떠나려고 하니 그대가 잠시 이 직임을 맡아줄 수 있겠는가? 매월 천호(千壺)의 술을 얻는 것도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관해(官海) :
관로(官路)를 이른다. 관로란 본디 승침(升沈)이 일정하지 않아서 마치 풍파가 험난한 바다와 같다 하여 일컫는 말이다.
[주D-004]어찌 …… 지으리요 :
왕유(王維)의 〈종남별업(終南別業)〉 시에중년엔 방외의 도를 꽤 좋아했는데, 만년에야 남산 모퉁이에 집을 지었네.[中歲頗好道
家南山陲]” 한 데서 온 말이다. 《王右丞集 卷3
[주D-005]염계(濂溪) 애련설(愛蓮說) :
염 계는 송()나라 주돈이(周敦
)의 호이고, 〈애련설〉은 그가 지은 문장 이름이다. 〈애련설(愛蓮說)〉에물이나 뭍에서 자라는 여러 가지 초목의 꽃 중에는 사랑스러운 것이 매우 많은지라, 진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고……나는 유독 연꽃을 사랑한다.……연꽃은 꽃 중의 군자이다.[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晉陶淵明獨愛菊……予獨愛蓮……蓮花之君子也]” 하였다.

대서(代書)하여 전라도의 정 안부(鄭按部)에게 답하다.

 


기압 낮아 한창 무덥고 비 오더니 / 氣沈方暑雨
몸이 경쾌해라 가을철로 접어드네 / 身健欲新秋
아득히 먼 전라도 경계를 향하여 / 渺渺全羅境
유유히 흰머리만 긁을 뿐이로세 / 悠悠搔白頭

 

주필(走筆)로 대서(代書)하여 개천(開天)의 행재 선사(行齋禪師)가 차()를 부쳐 준 데 대하여 답하다.

 


동갑 나이로 늙을수록 친하거니와 / 同甲老彌親
좋은 차는 맛이 절로 진미로구려 / 靈芽味自眞
맑은 바람이 겨드랑서 나오니 /
淸風生兩腋
곧장 도가 높은 이를 찾고 싶어라 / 直欲訪高人

 

[주D-001]맑은 …… 나오니 : 노 동(盧仝)의 〈다가(茶歌)〉에다섯 잔 마시니 살과 뼈가 맑아지고, 여섯 잔 마시니 선령과 통하게 되고, 일곱 잔째는 마실 것도 없이, 문득 두 겨드랑이서 맑은 바람 일으킴을 깨닫겠네.[五碗肌骨淸 六碗通仙靈 七碗喫不得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 한 데서 온 말이다.

남계(南溪)의 총 수좌(聰首座)를 희롱하다.

 


성중의 여러 물이 다 이곳으로 내달아서 / 城中衆水此同奔
큰비만 오면 해마다 문 안까지 벌창하니 / 大雨年年漲入門
불탑이 마치 백 척 높이의 돛대 같아라 / 塔似
竿高百尺
뱃사공이 흡사 수정원에 있는 듯하구려 / 篙師宛在水精園

언덕 너머 오이밭은 나락논과 닿아 있고 / 隔岸瓜田接稻田
무성한 고목나무는 푸른 연기 띠었는데 / 扶疎老木帶蒼煙
의연히 문전 번씩 지나치는 이때 / 依然三過門前路
해로
소리 속에 홀로 좌선만 하는구나 / 薤露聲中獨坐禪

밤에 금은기 앎은 탐하기 때문이나 /
夜識金銀是不貪
돈이 있어야 또한 큰 절집에 머무른다오 / 有錢還住大伽藍
남계원의 향불 조용히 피어오르는 곳에 / 南溪香火蕭然處
달마다 관청 양곡 청하는 것도 미담일세 / 月請官糧亦美談

 

[주D-001]문전 …… 이때 : () 임금이 일찍이 홍수(洪水)를 다스리던 8년 동안에 워낙 다급한 나머지 자기 집 문 앞을 세 번이나 그냥 지나쳐 버렸던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큰비가 와서 물난리로 사람들이 몹시 분주함을 농으로 한 말이다. 《孟子滕文公上》
[주D-002]해로(薤露) :
상여(喪輿)가 나갈 때에 부르는 만가(挽歌)를 말한다.
[주D-003]밤에 …… 때문이나 :
두보(杜甫)의 〈제장씨은거(題張氏隱居)〉 시에탐하지 않으니 밤엔 금은의 기를 알아보고, 해치지 않으니 아침엔 미록의 노닒을 본다.[不貪夜識金銀氣 遠害朝看麋鹿遊]”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

영월군(寧越郡)에 부임하는 외사촌 아우 김유돈(金有暾)을 전송하고 천수봉(天水峯) 꼭대기에서 짓다.

 


외삼촌은 지금 얼마 안 계시거니와 / 舅氏今無幾
내 생의 자취도 외롭기 그지없네 / 吾生跡轉孤
고향 산천은 상락과 서로 연했고 / 鄕山連上洛
아침 해는 동해에서 떠오르리라 / 海日出東隅
나는 병들어 사직하길 생각하는데 / 我病思還笏
그대는 강장해 지방관을 나가누나 /
且剖符
어버이 뵈려고 왕래하는 곳엔 / 寧親往來處
돌더렁길이 응당 평탄한 길 되리라 / 犖确化平途

 

봉우리 밑의 연못에 연꽃이 성하게 피다.

 


장송봉 아래 맑은 도랑물 가득 고이어 / 長松峯下貯淸渠
푸른 잎 붉은 꽃이 거꾸로 비치네 / 翠蓋紅粧倒碧虛
길손들은 분분하게 막 말에서 내리는데 / 過客紛紛方縱

스님은 적적하게 홀로 불경을 보는구나 / 居僧寂寂獨觀書
지장사 안에서 시가를 읊조리던 뒤요 / 地藏寺裏吟哦後
천수문 앞에서 기약 없이 만난 처음일세 / 天水門前邂逅初
늙은 목은이 이미 무량의를 알았어라 / 老牧已知無量義
짙은 구름 단비 속에 다시 머뭇거리네 / 密雲甘澍更踟躇

 

[주D-001]무량의(無量義) : 불교 용어로, 일체 제법(一切諸法)이 각각 무량 무수(無量無數)한 의리(義理)를 갖추고 있다 하여 이렇게 일컫는다고 한다.

연 꽃을 감상하느라 오래 앉아 있었더니, 아이들이 성중(城中)에서 쌀을 가져다가 밥을 준비하였다. 오후에는 동서쪽 산에서 비가 묻어오는데, 우리가 앉았는 곳에는 비가 오지 않으므로 매우 즐거웠다. 그러나 하인들이 혹시라도 비가 올까 두려워하여 나를 절집 안으로 맞아들이기에, 거기서 먹고 마시다가 밤에야 돌아왔다. 연꽃의 말을 대신하여 짓다.

 


연꽃이 나를 보고 본래 서로 알았던 듯이 / 蓮花見我如素識
말은 못 하고 제 생각 대신 말해 주길 청하네 / 花不能言請代臆
우리 동방은 인수한 군자 나라였는데 / 東方仁壽君子國
풍속이 바뀌어 모두 성색에 빠졌지만 / 風移俗易迷聲色
나는 진흙 속에 있어도 물들지 않거니 / 我處汚泥亦不染
어찌 속이 통하고 겉이 곧을 뿐이리요
/
豈獨中通仍外直
우리네 청고한 맘은 타고난 바이거니와 / 吾家苦心天所賦
더러울사 감람은 반복무상 그지없어라 / 鄙哉橄欖多反側
선생은 맑은 온화한 바람과 같아서 /
先生霽月光風如
날 사랑함이 염계의 글에서 비롯했는데 / 愛我始自濂溪書
비록 오랜 질병으로 정력은 쇠했지만 / 雖然久病精力衰
시문은 탁월하고 또한 여유가 작작했네 / 有句卓犖還紆餘
그림 그리는 이는 모양이나 그릴 뿐이지 / 丹靑巧手寫眞耳
어찌 나의 뜻이야 방불히나마 전할쏜가 / 何曾髣髴傳吾志
구름 새나온 석양 아래 비가 실실 내려라 / 漏雲殘照雨絲絲
나는 예산에 숨은 군자
를 사랑한다오 / 我愛猊山隱君子
공이 잠깐 머물러서 내 마음 위로하여라 / 公其少留慰吾心
공의 후의로 자주 찾아준 은혜 입었는데 / 荷公厚意頻相尋
오늘 기약 없는 만남은 실로 만행이거니와 / 今朝邂逅實萬幸
광제사 풍미야말로 어디가 이보다 나으랴 / 廣濟風味誰爲深
당두인 나잔 스님은 나의 판사로서 / 堂頭懶殘我判事
묘처를 말하면 모두 경이롭게 여기네 / 談我妙處皆驚異

비록 영산의 사화엔 참여하지 못했지만 / 靈山雖不參四花
문득 뒤에 와서는 친히 기록을 주었다오
/
却爲後來親授記
지금은 시가들의 시문 속에 흘러들어가 / 如今流入詩家中
탈태 환골
로 하늘의 조화와 겨룬다네 / 奪胎換骨爭天工
멀리 동서쪽 산에서 소낙비 묻어올 제 / 白雨遠映東西山
늙은 목은 한가로이 그 사이에 노니누나 / 婆娑老牧游其間
연화장세계
가 다시 그 어드메란 말인가 / 華藏世界更何處
한결같이 청정하니 몸과 마음 한가롭구려 / 一味淸淨身心閑

 

[주D-001]인수(仁壽)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한 자는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자는 동하고, 인한 자는 고요하며, 지혜로운 자는 즐겁고, 인한 자는 장수한다.[智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D-002]진흙 …… 뿐이리요 :
염 계(濂溪) 주돈이(周敦
)의 〈애련설(愛蓮說)〉에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 속에서 나왔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맑은 잔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 속은 텅 비어 통하고 겉은 곧으며, 덩굴도 가지도 벋지 않고,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이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만 있고 가까이 가서 가지고 놀 수는 없음을 사랑하노라.[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 濯淸漣而不夭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可遠觀而不可褻翫焉]”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감람(橄欖) :
인도(印度) 등 열대 지방에 나는 과수(果樹)의 이름이다.
[주D-004]선생은 …… 같아서 :
선 생은 염계 주돈이를 가리킨 것으로,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용릉의 주무숙은 인품이 매우 고상하여 가슴속이 깨끗해서 마치 온화한 바람과 맑은 달빛 같다.[舂陵周茂叔 人品甚高 胸中灑落 如光風霽月]” 한 데서 온 말이다. 무숙(茂叔)은 주돈이의 자()이다.
[주D-005]구름 …… 군자(君子) :
구 름 새나온 석양 아래 비가 실실 내린다는 시구는 일찍이 최해(崔瀣)가 지은 상련(賞蓮) 시의 한 구절이고, 예산에 숨은 군자란 바로 개성(開城) 남쪽 사자산(獅子山) 밑에 은거하면서 예산농은(猊山農隱)이라 자호했던 최해를 가리킨다. 《목은시고》 제16권 〈윤5 9일에 홀로 앉았는데,……후일 지회(池會)의 장본(張本)으로 삼는 바이다.〉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주D-006]당두(堂頭)인 …… 여기네 :
고려 말기에 개성(開城) 광제사(廣濟寺)의 당두로서 천태 판사(天台判事)이기도 했던 선승(禪僧) 나잔(懶殘)이 《묘법연화경(妙法蓮花經)》을 설()한 것을 가리켜 이른 말이다.
[주D-007]영산(靈山)의 …… 주었다오 :
영 산은 불교의 성지(聖地)로서 석가(釋迦)가 일찍이 교법(敎法)을 설했던 영취산(靈鷲山)의 약칭이고, 사화(四花)는 법화(法華)의 육서(六瑞) 가운데 우화서(雨花瑞)의 네 가지 꽃인 만다라화(曼陀羅花), 마하만다라화(摩訶曼陀羅花), 만수사화(曼殊沙花), 마하만수사화(摩訶曼殊沙花)를 가리키며, 친히 기록을 주었다는 것은 석가가 일찍이 영산에서 설법할 때에 연화(蓮花)를 따서 여러 제자(弟子)들에게 보이자, 아무도 그 뜻을 알아듣는 이가 없었는데,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그 뜻을 알아듣고 미소를 지으므로, 석가가 마침내 불교의 진리(眞理)인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묘처(妙處)를 그에게 부촉(付囑)했던 데서 온 말이다. 부촉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에게 정법안장 열반묘심 실상무상 미묘법문 불립문자 교외별전(正法眼藏涅槃妙心實相無相微妙法門不立文字敎外別傳)이 있으니, 이것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주D-008]탈태 환골(奪胎換骨) :
시문(詩文)을 짓는 데 있어 고인(古人)의 뜻을 활용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탈바꿈해내는 것을 말한다.
[주D-009]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
불교에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거주한다는 공덕 무량(功德無量), 광대 장엄(廣大莊嚴)의 세계를 말하는데, 이 세계는 큰 연화(蓮花)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침에 읊다.

 


밤에 누워서는 뼈가 몹시 아프더니 / 夜臥骨酸甚
아침에 읊조릴 땐 마음이 유쾌하네 / 朝吟心快初
번거론 퇴고는 십습과 같거니와 /
煩敲如什襲
학문의 노력은 삼여에 있고말고 / 辛苦在三餘
가시나무는 소나무 길에 나고 / 荊棘生松逕
푸른 이끼는 초가집에 가득한데 / 莓苔滿草廬
남은 생 그지없이 무료함 속에 / 殘齡苦無賴
흐르는 세월을 조용히 보내노라 / 袞袞送居諸

 

[주D-001]번거론 …… 같거니와 : 퇴고(推敲)는 시문의 자구(字句)를 여러 번 반복하여 고치는 것을 말하고, 십습(什襲)은 열 겹으로 싼다는 뜻으로, 즉 매우 소중히 간직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삼여(三餘) :
학문을 하는 데 가장 좋은 세 가지 여가(餘暇)로서 해의 나머지[歲之餘]인 겨울[], 날의 나머지[日之餘]인 밤[], 때의 나머지[時之餘]인 음우(陰雨)를 가리킨다.

억정사(億政寺)의 선진 대선사(禪軫大禪師)를 보내다.

 


고독한 나 또한 은거하려 하는데 / 孤生將避地
억정사는 절로 속진이 없으리라 / 億政自無塵
혁혁한 문벌 가문의 후예로서 / 奕奕衣冠

정처 없는 운수의 몸이 되었네 / 飄飄雲水身
여강은 여행할 만한 곳이거니와 / 驪江可行李
치악산은 바로 가까운 이웃일세 / 雉岳是比鄰
어느 날에나 전원으로 돌아가서 / 何日歸田去
계산에서 새로이 한번 웃어 볼꼬 / 溪山一笑新

 

충주 목사(忠州牧使) 김존성(金存誠), 판관(判官) 김조(金肇)에게 부쳐 올리다.

 


푸른 이끼 버들골에 방문객을 거절하고 / 蒼苔柳洞絶來轅
수년 간 병석에 누워 문 길이 닫았는데 / 臥病數年長掩門
오늘 용두사로 아이가 떠나는 것을 보니 / 今日龍頭小童去
내 문생이 중원에 있음을 비로소 알겠네 / 始知吾黨在中原

중원의 산수는 가장 맑고 시원하거니와 / 中原山水最淸涼
하늘가의 봉화 또한 조용하기만 한데 / 烽火天涯轉渺茫
잘 다스려 공사가 적은 게 더욱 기뻐라 / 更喜臥治公事少
승방에 가서 홀로 노닒도 무어 해로우랴 / 獨游何害到僧房

요즘 세상엔 승방 또한 분주 다사하여 / 僧房近世亦忙奔
수많은 새로운 일이 날마다 번거로우니 / 新事如毛逐日繁
원컨대 마음 갈앉히고 편히 앉았게 하여 / 願使安心且安坐
참선의 향 연기가 천지에 가득게 하기를 / 香煙一
滿乾坤

 

[주D-001]중원(中原) : 충주(忠州)의 고호(古號)이다.

용두사(龍頭寺)의 주지(住持) 생공(生公)을 보내다.

 


더위 무릅쓰고 멀리 용두사로 석장 날려라 / 龍頭冒暑遠飛錫
빗줄기는 바람 따라 어지러이 벽에 뿌리네 / 雨脚隨風亂灑壁
송악산의 구름은 화려한 비단이 붉은 듯 / 松岳之雲錦繡紅
금천
의 물은 흡사 푸른 유리 빛 같으리 / 金遷之水琉璃碧
일찍이 승록 되어 가장 체통 얻었거니 / 曾爲僧錄最

부처 은혜 갚자면 속연을 떨쳐야 하고말고 / 欲報佛恩須拂迹
당에 올라 설법하면 천둥을 떨치거니와 /
升堂說法振雷音
붓 잡고 불경을 써서 묵적도 남기었는데 / 把筆寫經留墨蹟
누런 먼지 도성 거리 꿈을 막 깨고 나서 / 黃埃紫陌夢初醒
붉은 절벽 선경으로 마음 다시 향하였네 / 碧洞丹崖心更適
다만 지금 흙탕길은 여행자의 걱정거리요 / 只今泥濘行者愁
곳곳의 계곡들은 건너기도 어려울 테지 / 到處澗溪難可歷
머지않아 가을바람이 들녘에 불어오면 / 秋風不久吹郊原
이른 벼가 아마도 여관에 채워질 테니 / 早稻可知充館驛
여행 중 음식 이걸로 하면 괜찮겠거니와 / 行廚得此亦不惡
돌아갈 계획 결정했는데 어찌 다시 바꾸랴 / 歸計決矣那復易
여강의 두 언덕엔 전토가 매우 많은지라 / 驪江兩岸田甚多
한산의 고독한 인생 내가 좋아한 바이니 / 馬邑孤生心所懌
거룻배 띄워 가서 스님을 찾고자 하는데 / 扁舟便欲去尋師
서로 만나면 누가 칠 년을 격조했다 말하랴 / 會面誰云七年隔

 

[주D-001]금천(金遷) : 충주(忠州)에 있는 수명(水名)이다.
[주D-002]승록(僧錄) :
승려(僧侶)들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승관(僧官)의 명칭이다.
[주D-003]당(堂)에 …… 떨치거니와 :
부 처의 설법(說法)이 마치 천둥처럼 위엄이 있었던 데서 온 말이다. 《유마경(維摩經)》에 의하면거침없이 불법을 설명하는 것은 마치 사자후와 같았고, 그 강설하는 것은 천둥소리와 같았다.[演法無畏 猶如獅子吼 其所講說 乃如雷震]” 하였다.

천수사(天水寺)에서 거듭 노니는데, 상당군(上黨君) 한공(韓公)이 술을 가지고 찾아 주었다.

 


천수사에 거듭 노니니 흥취 더욱 새로운데 / 重游天水興彌新
술 갖고 찾아라 옥 같은 사람이 왔네그려 / 佩酒相尋有玉人
햇살 비친 연꽃에선 맑은 향이 코에 들오고 / 日照荷香淸入鼻
바람 머금은 솔 그늘은 냉기가 몸을 흔드네 / 風涵松影冷搖身
어찌 꿈속에선들 세상 잊은 적 있었던가만 / 何曾夢裏能遺世
다만 생애는 이미 속진 떠난 것이 기쁘구려 / 祗喜生涯已離塵
노력하여 다시 꼭대기를 반드시 오르련다 / 努力更須登絶頂
늙어 가매 정신 통창케 할 곳 없으니 말일세 / 老來無處暢精神

 

천수사의 서쪽 봉우리에 올라서 사방으로 명산(名山)들을 바라보다.

 


백서
한 시구는 글자가 금방 쓴 것 같아라 / 白書詩句字如新
나무 밑에 일찍이 피서한 이가 왔었구려 / 樹下曾來避暑人
공연히 평상시엔 병든 눈만 놀렸었는데 / 謾向平時游病目
우연히 오늘은 쇠한 몸을 여기에 두었네 / 偶從今日著衰身
천 바위 다퉈 솟아라 구름은 변새에 연하고 / 千巖競秀雲連塞
두 물이 함께 흘러라 비는 먼지를 씻어갔네 / 二水同流雨洗塵
늘그막에 감히 사직을 걱정한다 말하랴 / 老去敢言憂社稷
사면의 명산에 천지신명이 계실 터인데 / 名山四面有明神

 

[주D-001]백서(白書) : 나무 껍데기를 깎아 내고 흰 바탕 위에 쓴 글씨를 말한다.

천수사의 대선(大選)이 수박을 대접하다.

 


의왕
이 빈 땅에다 수박을 심어 가꾸니 / 醫王隙地有西瓜
맛은 단 샘물 같고 빛깔은 눈꽃 같구나 / 味似甘泉色雪華
치아로 검은 수박씨 끊기도 쉽지 않거늘 / 齒決黑犀猶不易
어찌 불속에 연꽃을 심은 적이 있던가 /
何曾火裏種蓮花

 

[주D-001]의왕(醫王) : ()과 보살(菩薩)을 가리킨다. , 보살이 중생(衆生)의 번뇌(煩惱) 병을 치료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이 마치 명의(名醫)가 환자에게 약을 써서 병을 고쳐주는 것과 같다 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2]어찌 …… 있던가 :
몸 은 비록 번뇌 속에 있으면서도 능히 해탈(解脫)하여 청량(淸涼)한 경계에 이르기가 어려움을 비유한 말이다. 《유마경(維摩經)》 불도품(佛道品)불속에서 연꽃이 나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라 하겠거니와, 번뇌 속에서 선을 행하는 것 또한 드물기가 이와 같다.[火中生蓮花 是可謂稀有 在欲而行禪 稀有亦如是]” 하였다.

천수사 못의 연꽃을 읊다.

 


희미한 달 뜬 저녁 연기 낀 아침이어든 / 依依月夕與煙朝
성 남쪽 먼 길을 꺼리지 않고 다니노니 / 不憚城南道路遙
절로 인생은 마치 백로와 같거니와 / 自是吾生如白鷺
공자에게 풍표가 있었음을 어찌 알리요 / 豈知公子有風標

 

[주D-001]절로 …… 알리요 : 풍 표(風標)는 풍채(風采)와 같은 뜻으로, 두목(杜牧)의 〈만청부(晴賦)〉에다시 깊은 물굽이로 배 끌고 들어가니, 문득 팔구 포기 붉은 마름꽃이 피어서, 우아하기는 부인 같고, 수줍기는 소녀와도 같네.……백로가 살금살금 걸어오니, 아득히 풍채 넘치는 공자인 듯, 이 미인들을 엿보고는, 그 아리따운 용모를 좋아한 듯하네.[復引舟于深灣 忽八九之紅芰 然如婦 斂然如女……白鷺潛來兮 邈風標之公子 窺此美人兮 如慕悅其容媚]” 한 데서 온 말인데, 연꽃과 마름꽃은 같은 수초화(水草花)로서 서로 대칭을 이루는 꽃이므로, 두목의 〈만청부〉 내용을 이 시에 인용한 것이다. 《杜樊川集 卷1

이날 밤에 이날의 행적을 기록하다.

 


산사로 글 읽으러 가는 자식을 보내어라 / 送子讀書山寺中
전송하고 천수봉 솔바람 속에 앉았노니 / 祖筵天水坐松風
비 지난 시냇물은 형세가 점점 급해지고 / 雨過溪淵勢漸殺
가을 가까운 봉우리는 빛이 더욱 짙구나 / 秋近峯巒光更濃
나무의 연한 가지는 봉식을 원하거니와 /
木有連枝願封植
옥그릇을 만들자면 절차탁마를 해야지 /
玉如成器在磨礱
밤에 곤하여 누웠으니 생각이 끝없어라 / 夜來困臥思無盡
너는 장차 네 아비 본받기만 전공해야지 / 汝且專攻師乃翁

해질 녘 푸른 들을 말 가는 대로 돌아올 제 / 落日靑郊信馬回
맑은 향기가 어렴풋 사람을 쫓아온 듯하네 / 淸香彷彿逐人來
연못의 푸른 연잎은 천 줄기가 기우뚱하고 / 蓮池翠蓋欹千柄
벼논의 누런 이삭은 한 무더기를 이뤘도다 / 稻壟黃雲作一堆
성곽 등진 좋은 전토
는 누가 사들였는고 / 負郭良田誰得買
꽃 대하니 장구시는 스스로 억제키 어렵네 / 對花長句自難裁
군자가 살면 누추함 없음
을 비로소 알겠네 / 始知君子居何陋
쓸쓸한 역사에 절반은 푸른 이끼로구려 / 驛舍蕭條半綠苔

 

[주D-001]나무의 …… 원하거니와 : 연한 가지란 나뭇가지가 서로 연한다는 뜻으로, 동포 형제(同胞兄弟)가 서로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이른 말이고, 봉식(封植)은 배양(培養)과 같은 뜻이다.
[주D-002]옥그릇을 …… 해야지 :
《예기(禮記)》 학기(學記)아름다운 옥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도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玉不琢不成器 人不學不知道]”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성곽 …… 전토(田土) :
전 국 시대 소진(蘇秦)이 합종설(合從說)로 유세(遊說)하여 종약(從約)을 체결하고 육국(六國)의 재상(宰相) 인장(印章)을 한 몸에 차고 나서 말하기를나에게 낙양의 성곽을 등진 전토 두 이랑만 있었던들, 내가 어찌 오늘날에 육국의 상인을 찰 수 있었겠는가.[使我有
陽負郭田二頃 吾豈能佩六國相印乎]”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좋은 전토를 의미한다. 《史記 卷69 蘇秦列傳》
[주D-004]군자가 …… 없음 :
공 자(孔子)가 일찍이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자 하므로, 혹자가 말하기를누추한 곳인데,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군자가 살거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君子居之 何陋之有]”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용두사(龍頭寺)로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수많은 산 풀 우거진 곳에 아침 해 돋을 제 / 亂山初日草萋萋
높고 낮은 산길에 가는 말을 보내노니 / 山路高低送馬蹄
두 소년이 서로 쫓아서 말을 달리어라 / 兩箇少年相逐去
검은 옷 입은 승통이 정히 데려가누나 / 黑衣僧統政携提

비가 와서 요즘은 길에 괸 물도 많거니와 / 雨作邇來行潦多
들쭉날쭉한 관도는 강가에 비껴 있는데 / 參差官道傍江斜
아마도 오늘은 양주 땅을 경과할 테니 / 計程今日楊州過
삼각산에 머리 돌리면 저녁놀이 붉겠지 / 回首三山映落霞

기억건대 내 어려서 한산에서 글 읽을 때 / 記我韓山幼讀書
아버님은 중국에 어머님은 송도에 계셨지 / 父游中國母松都
당시 일편단심 어버이 생각하던 그 땅이 / 當時一片思親地
내 종신토록 탄탄대로를 열어 주었단다 / 與我終身作坦途

조모께서 당시에 나를 양육하던 마음은 / 祖母當時鞠育心
하늘도 그보단 덜 넓고 바다도 덜 깊으리 / 靑天難闊海難深
몸은 양부에 오르고 나이는 오십인데도 / 身登兩府年知命
아직도 구구하게 한 치 그늘을 아끼노라 / 尙爾區區惜寸陰

용과 돼지의 변화는 배움 속에 있는 거라 / 龍猪變化學中存
이부의 탁월한 견해는 세상이 높이네 / 吏部能言世所尊

오늘 너는 의당 더욱 노력할지어다 / 今日汝當尤努力
우리가 바로 문효공의 자손이란다 / 此身文子又文孫

 

[주D-001]용과 …… 높이네 : 이 부(吏部)는 당()나라 때 벼슬이 이부 시랑(吏部侍郞)에 이르렀던 한유(韓愈)를 가리키는데, 그가 일찍이 자기 아들 부()를 글을 읽히기 위해 성남(城南)으로 보내면서 시를 지어 글 읽기를 권면하였는바, 그 시에서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의 서로 달라진 과정을 말한 가운데나이 서른이 되어 뼈대가 굵어지면, 하나는 용 하나는 돼지가 된단다.[三十骨骼成 乃一龍一猪]”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6 符讀書城南》
[주D-002]문효공(文孝公) :
문효는 저자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의 시호이다.

혜구 대선(惠具大選)이 방문해 주다.

 


예전엔 목은 아들을 데려가더니 / 昔携牧隱子
이제는 익재 손자를 동반하였네 / 今伴益齋孫
자취는 천태사에서 깎이었고 / 跡削天台寺
공은 이씨 가문에 이루었구려 / 功成李氏門
연꽃 바람 향기는 사원에 가득하고 / 蓮風香滿院
소나무 달그림자는 난간에 드누나 / 松月影侵軒
일찍이 놀던 곳 앉아서 세어 보니 / 坐數曾游處
바닷가 마을 유가사가 그곳일세 / 瑜伽海上村

 

설곡(雪谷)의 시권(詩卷)에 제()하다.

 


옥처럼 아름다운 한 송이 연꽃은 / 一朶玉芙蓉
투명도 해라 어찌 그리 깨끗한고 / 瑩徹何灑落
스님은 이것을 애지중지하는데 / 衲子所深藏
나무꾼은 또한 밟아서 뭉갠다네 / 樵夫亦踏著

 

구씨(舅氏)에게 받들어 올리다.

 


청향정기의 먹물 흔적 짙기도 하여라 / 淸香亭記墨痕濃
이게 정녕 꿈속인가 꿈속이 아니던가 / 是夢中耶非夢中
언제나 아름다운 경계에 선뜻 달려가 / 何日翛然墮佳境
지붕 달빛 처마 바람 속에 배회해 볼꼬 / 徘徊梁月與簷風

 

[주C-001]구씨(舅氏) : 저자의 외삼촌인 김요(金饒)를 가리킨다.

고풍(古風) 3(三首)

 


왕자의 교화는 어찌 그리 적막하며 / 王風何寥寥
선비의 풍습은 어찌 그리 분분한고 / 士習何膠膠
전국 때는 서로 삼키고 뱉고 했거니 / 戰國互呑吐
슬프기도 해라 도도한 그 형세여 / 哀哉勢滔滔
물이 아래로 흐르듯 이끗만 좇아 / 趨利水就下
전쟁하는 걸 모두 달게 여겼으니 / 甘心兵刃交
노중련의 동해에 빠지겠다던
/ 仲連蹈東海
천재에 소악을 들은 만 같구나 / 千載如聞韶

한조는 참으로 하늘이 내렸기에 /
漢祖信天授
삼장
으로 인심을 얻었었는데 / 三章得人心
국운이 중간에 비색하긴 했지만 / 雖然運中否
뼈에 사무친 은혜 어이 그리 깊었던고 / 入骨恩何深
그런데 어찌하여 여러 군자들은 / 奈何衆君子
공 없이 은총받은 이가 그리도 많았나 / 冒寵森如林
관녕은 요동에 건너가 있으면서 / 管寧在遼東
백모 일이 지금까지 전한다오 / 白帽傳至今


진의 신하 숫자가 억도 넘었건만 / 晉臣麗不億
송의 사당에서 제사를 도왔는데 / 祼將宋廟中

가문과 조국은 / 家世與宗國
일체여서 서로 달리할 없기에 /
一體無異同
때문에 팽택 영은 /
所以彭澤令
나는 기러기처럼 높이 벗어났으니 /
脫去如飛鴻
유유한 천재 아래 오늘날에도 /
悠悠千載下
북쪽 창에 청풍만 불어오누나 / 北牖來淸風

 

[주D-001]노중련(魯仲連)의 …… : 전 국 시대 제()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이 무도한 진()나라에 분개하여 말하기를진나라가 방자하게 제()를 칭하고 천하에 정사를 편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東海)에 가서 빠져 죽을지언정 그의 백성은 될 수 없다.[彼卽肆然而爲帝過而爲政於天下 則連有蹈東海而死耳 吾不忍爲之民也]”고 한 것을 이른 말이다. 《史記 卷83 魯仲連列傳》
[주D-002]소악(韶樂) 들은 :
소 악은 순() 임금의 음악 이름인데, 공자(孔子)가 일찍이 제()나라에 있으면서 소악을 들어 보고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어버리고 이르기를이 음악이 이렇게까지 좋은지는 미처 몰랐다.[不圖爲樂之至於斯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주D-003]한조(漢祖)는 …… 내렸기에 :
한 조는 한 고조(漢高祖)를 가리키는데, 한신(韓信)이 일찍이 한 고조에게 말하기를폐하의 지혜는 이른바 하늘이 내린 것이요,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且陛下所謂天授 非人力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주D-004]삼장(三章) :
한 고조가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세 조항으로 줄여서 새로 만든 법을 가리키는데, 세 조항의 법은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며,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와 도둑질한 자에 대해서는 그 범죄 정도와 상응하는 처벌을 한다.[殺人者死 傷人及盜抵罪]”는 것이었다. 《史記 卷8 高祖本紀》
[주D-005]관녕(管寧)은 …… 전한다오 :
삼 국 시대 위()나라의 학자 관영이 일찍이 황건적(黃巾賊)의 난리를 피하여 요동(遼東)에 건너가서 20여 년을 있었는데, 그동안 위 명제(魏明帝)로부터 후례(厚禮)의 징소(徵召)가 있었으나 그는 한()나라를 생각하여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항상 검은 두건[皁帽]만을 쓰고 청빈(淸貧)하게 지냈던 데서 온 말이다. 원문(原文)의 백모(白帽)는 조모(皁帽)의 착오이다. 《三國志 卷11 魏書管寧傳》
[주D-006]진(晉)의 …… 도왔는데 :
유송(劉宋)이 동진(東晉)을 찬탈하여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이룩함으로써 진나라의 수많은 옛 신하들이 다시 송나라의 신하가 되었음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7]가문과 …… 불어오누나 :
동 진(東晉) 때에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지냈던 도잠(陶潛)이 유송(劉宋)에 의해 동진이 멸망한 이후로는 특히 유송을 섬기지 않는 뜻에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자연 속에서 시주(詩酒)로 생애를 마쳤던 일을 두고 한 말인데, 북쪽 창의 청풍(淸風)이란 그가 일찍이 무더운 여름날에 청풍이 솔솔 불어오는 북쪽 창 아래 누워서 스스로 희황상인(羲皇上人)이라 자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南史 卷75 隱逸列傳 陶潛》

아이가, 천태 판사(天台判事)가 나를 맞이하여 재차 연꽃을 감상하고자 한다고 말하므로, 기뻐서 기록하다.

 


병든 뒤의 꽃 구경 흥취가 아직 남았는데 / 病後看花興未闌
인간의 세월은 빠르기가 나는 공 같아라 / 人間日月似跳丸
남지의 맑은 물에 연꽃이 반이나 졌다니 / 紅衣半落南池淨
다시 천태의 나잔 스님을 찾아야겠네그려 / 更向天台訪懶殘

 

계림 윤(雞林尹) 장원(河壯元)에게 받들어 부치다.

 


일찍이 청천 군문에 재직한 건 알거니와 / 當日菁川擁碧油
경주 의풍루로 옮겨간 줄은 몰랐소이다 / 不知移向倚風樓
병중의 세상일은 지루하기 그지없는데 / 病中世事悠悠甚
남녘 강산 바라보니 또 가을이 다가오오 / 南望江山又欲秋

 

[주C-001] 장원(河壯元) : 고려 충혜왕(忠惠王) 복위 5(1344) 문과(文科)에 장원한 하을지(河乙沚)를 가리키는데, 그는 강화 만호(江華萬戶), 전라도원수 겸 도안무사(全羅道元帥兼都按撫使) 등을 역임하고 계림 원수(雞林元帥)에 이르렀다.
[주D-001]청천(菁川) :
진주(晉州)의 고호이다.

수일 전에 천수사(天水寺)의 서쪽 봉우리에 올라 그 뛰어난 경치를 사랑하여 시를 지은 것이 있는데, 그 후 천태(天台)의 스님이 집에 왔기에 그 봉우리의 이름을 물어보니 취적봉(吹笛峯)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인하여 사정(思亭) 제영(題詠) 취적봉을 사용한 것이 있는 기억났는데, 그 당시에 한번 물어보기는 했으나 잊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그 일이 크게 깨달아져서 마음속으로 혼자 말하기를그 이름은 전에 들었고, 그 땅은 뒤에 직접 밟아봤으나, 천태의 스님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천수사의 서쪽 봉우리와 취적봉을 하나로 인식하지 못했겠구나.’ 하고는, 이에 느낌이 있어 취적봉 한 편을 짓는 바이다.

 


취적봉이라 취적봉이라 / 吹笛峯吹笛峯
귀로도 듣고 발로도 답사한 한산옹일세 / 耳聞足蹈韓山翁
이 늙은이 평생에 꽤나 일을 좋아하여 / 此翁平生頗好事
읊조림 속에 산이며 바다를 분주했으나 / 馳山走海謳吟中
다만 의기를 가지고 서로 겨루었을 뿐 / 但將意氣與頡頏
어찌 화공과 같이 그려내기를 배웠으랴 / 豈學丹靑如畫工
송악산 절정은 천하가 작아 보이는 곳이라 / 松山絶頂少天下
국운이 하늘처럼 영원하길 축복하거니와 / 上祝國運齊蒼穹
천마산 동쪽으론 가장 산세가 뛰어나서 / 天摩以東最奇特
높은 관에 홀 받들고 왕궁에 조회하는 듯 / 峩冠奉笏朝王宮
용수산은 향로 앞에 궤안이 가로놓인 듯 / 龍巒橫案獸爐前
강토의 역년이 진정 천만년 무궁하련만 / 蘿圖鳳曆垂無窮
누가 알았으랴 한 점 동남방의 진산은 / 誰知一點鎭風門
옛 현인의 남긴 자취에 푸른 이끼 짙고 / 昔賢遺跡苔痕濃
한 그루 고목이 산꼭대기를 덮고 있어 / 一株老樹蓋其頂
더운 날에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올 줄을 / 炎天颯爾來淸風
고인 금인이 다 흐르는 물처럼 떠나거니 / 古人今人若流水
문장 도덕은 모를레라 누가 제일이던고 / 文章道德知誰雄
첫 가을 서늘한 기운이 천지에 가득하고 / 新秋涼氣滿天地
내 낀 물과 백사장 달이 서로 어우러지니 / 煙水沙月相爲籠
몸이 한가하매 이 맘도 따라 한가롭거늘 / 身閑便是此心閑
어찌 관자 동자 이끌고 놀이를 안 갈쏜가 / 胡不佩壺携冠童
제공들은 모두 산수를 몹시 좋아하지만 / 諸公儘有山水癖
처한 지위가 성상을 가까이 모신 자리라 / 所處地位何昭融
오경에 출사했다가 밤 늦게야 돌아오나니 / 五更待漏夜還家
어찌 잠시인들 근심을 풀 길이 있으리요 / 豈有一隙紓忡忡
나는 지금 늙었지만 어찌 즐겁지 않으랴 / 我今老矣胡不樂
공활한 천지 속에 내 퉁소 홀로 불면서 / 吹我洞簫天地空
곧장 삼신산의 한 마리 학을 걸터타고서 / 直駕三山一隻鶴
속세를 초탈해 천지의 원기 속에 노닐거늘 / 超出煙霧游鴻濛

 

[주C-001]사정(思亭)의 …… : 사 정은 공민왕(恭愍王) 때에 벼슬이 추밀원사(樞密院使)에 이른 김희조(金希祖)의 정명(亭名)인데, 민사평(閔思平)의 〈사정찬(思亭贊)〉에그대의 생각한 바를 형용할 만하여라, 덕산이 멀리 취적봉에 연접했구려.[君所思兮可形容 德山遙連吹笛峯]” 한 것을 가리킨 말이다.

몹시 더워서 스스로 위로하다.

 


춘추에 공자가 얼음 없음을 기록했기에 /
春秋聖筆紀無氷
나는 젊어서도 나쁜 기운 떨침에 놀랐네 / 我少猶驚
氣騰
어진 정사에 조리 있으면 어찌 어지러우며 / 德政在綱寧有亂
음양이 궤도를 좇으면 감히 서로 침범하랴 / 陰陽順軌敢相凌
구름 엷은 솔가지는 푸르고도 빼어나고 / 松枝雲薄靑仍秀
바람 잔잔한 시냇물은 파랗고도 맑아라 / 溪水風微綠更澄
병든 몸 섭양하기 어려움은 걱정을 말자 / 不患病軀難攝養
올해는 다 풍년이라고 모두 떠들어 대네 / 共喧今歲儘


구름 같은 가을 벼가 먼 하늘에 가닿아서 / 秋稼如雲接遠天
우리 백성 모두들 좋아라고 춤을 추거니 / 吾民舞蹈儘欣然
얼음덩이 안 내린 거야 해로울 것 없으나 / 頒氷不及庸何害
더위 공포 더욱 깊은 게 스스로 가련하네 / 畏熱尤深自可憐
비대하여 땀 많은 이는 삼복을 걱정하련만 / 曼膚多汗憂三伏
뼈가 아픈 병객은 누운 지 그 몇 해이던고 / 病骨偏酸臥幾年
서늘한 서풍이 한바탕 불어오기만 하면 / 只得西風涼一陣
목옹은 다시 이 마음 졸일 일이 없으련만 / 牧翁無處更心煎

 

[주D-001]춘추(春秋)에 …… 기록했기에 : 공자(孔子)가 지은 《춘추》에 의하면, 노 환공(魯桓公) 24년 정월(正月), 노 성공(魯成公) 원년(元年) 2, 노 양공(魯襄公) 28년 봄에 각각얼음이 없다.[無氷]”고 쓰여 있으므로 이른 말이다.

광제사(廣濟寺)의 연못을 재차 읊다.

 


연꽃 찾는 게 혹 서로 뜸해질까 염려되어 / 相尋直恐或相疎
연못을 마주하여 집을 지으려고 하노니 / 欲向池邊對結廬
바람 자서 향기 풍기면 정신이 깨끗해지고 / 風定聞香應灑落
달 밝아서 그림자 보면 또 운치가 있으리 / 月明看影更紆餘
원공 무숙은 우리의 도를 밝혔거니와 /
元公茂叔明吾道
지자 선사는 불경을 부연 설법했다네 /
智者禪師演佛書
다행히 이 마음도 일찍이 속된 적 없거니 / 幸是此心曾不俗
어찌 성색으로 처음 더럽히려 하랴 / 肯敎聲色累吾初

 

[주D-001]원공(元公) …… 밝혔거니와 : 원 공은 송나라 주돈이(周敦)의 시호이고, 무숙(茂叔)은 그의 자인데, 그는 송대(宋代) 이학(理學)의 개조(開祖)로서 공맹(孔孟) 이후의 도통(道統)을 전하였거니와, 특히 〈애련설(愛蓮說)〉을 지어서 연()을 높이 칭상(稱賞)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지자 선사(智者禪師)는 …… 설법했다네 :
지 자는 천태 선사(天台禪師) 지의(
)의 호인데, 그는 천태종(天台宗)의 개조로서 맨 처음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중심으로 불교를 통일하여 천태종을 완성하고 《묘법연화경》을 강설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 처음 :
《초 사(楚辭)》 이소(離騷)내 충성 안 받아들이니 화 입을까 두려워라, 가서 장차 다시 내 처음 옷을 만들리라. 마름잎 연잎 재단하여 윗옷을 만들고, 연꽃일랑 모아서 아래옷을 만들리라.[進不入以離尤兮 退將復修吾初服 製芰荷以爲衣兮 集芙蓉以爲裳]” 한 데서 온 말이다.

박연폭포가(朴淵瀑布歌). 더위가 혹심하기 때문에 이를 노래하여 물소리를 이목(耳目)에 접하려는 것이다.

 


곧게 꽂힌 푸른 절벽은 천길도 넘는데 / 翠巖壁立千丈
그 위에 작은 못 있어 거울처럼 맑고요 / 上有小淵如鑑光
중앙의 반석 위엔 외로운 솔이 났었더니 / 中安磐石生孤松
솔은 지금 보이지 않고 이끼만 푸르구나 / 松今不見苔痕蒼
천마산 북쪽 낭떠러지 여러 구렁 물들이 / 天磨北崖衆壑水
내달아 여기에 와서 나루터를 이뤘다가 / 奔流到此如津梁
넘쳐흘러 아래로 은하처럼 내리쏟으면 / 溢而下墜懸銀河
물방울 사방으로 흩어져 큰비가 오듯 하니 / 濺沫四
如滂
구경꾼은 잠깐 새에 머리털이 곤두서고 / 游人小立毛髮豎
돌 부딪힌 물소리는 타고 소리 방불해라 / 觸石隱隱如鳴鼉
유월의 무더위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여 / 六月炎蒸不敢逼
땀 나던 살에 소름 일어 자꾸만 문지르네 / 汗膚生粟仍摩

내가 옛날 사왕사에 분향하러 갔을 적에 / 我昔行香四王寺
정오의 독경 여가에 산언덕을 올라가서 / 午梵餘隙登山坡
흐르는 물 굽어보니 미친 흥취 절로 넘쳐 / 臨流狂興自發越
곧장 태백의 짧은 노래 부른 같았고 / 直如太白歌短歌
서응은 내리보아 족히 것도 없었거니 /
下視徐凝不足數
오늘날 장병에 시달릴 줄 누가 알았으랴 / 誰知今日愁沈

누워서 때로 전인의 자취만 상상할 뿐인데 / 偃臥時時想前躅
더구나 이 모진 더위를 어찌한단 말인가 / 況此苦熱無奈何
누가 나를 저 폭포의 곁으로 옮겨 놓아서 / 誰能置我瀑布側
물소리 들으며 앉아서 너울거리는 달빛을 보게 해줄꼬 / 水聲入耳坐見月色來婆娑

 

[주D-001]태백(太白)의 …… : 태 백은 이백(李白)의 자인데, 그의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시에햇빛은 향로봉 비추어 붉은 놀이 생기는데, 멀리 보니 폭포는 전천이 거꾸로 걸린 듯하네. 삼천 척 높이를 곧장 쏜살같이 내리쏟아라, 아마도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닐까.[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挂前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한 것을 이른 말이다. 《李太白集 卷20
[주D-002]서응(徐凝)은 …… 없었거니 :
서 응은 당()나라 사람으로, 그의 〈폭포(瀑布)〉 시에한 줄기가 청산의 빛깔을 둘로 갈라놓았네.[一條界破靑山色]”라고 한 구절이 있었는데, 소식(蘇軾)이 일찍이 이 시를 아주 형편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장난삼아 지은 시에상제가 한줄기 은하수를 내려 보내니, 예로부터 오직 이태백의 시가 있을 뿐이네. 폭포의 내리쏟는 물 응당 하고많지만, 서응에게 주어 악시를 씻게 하진 않으리.[帝遣銀河一派垂古來惟有謫仙詞 飛流濺沫知多少 不與徐凝洗惡詩]”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詩集卷23

동갑(同甲)인 허 정당(許政堂)이 부임하여 당시의 재신(宰臣)들을 두루 알현하고 인하여 내 집에도 들렀는데, 마침 몹시 더워서 내가 곤히 누워 있던 터라 문밖에 나가서 배읍(拜揖)만 했을 뿐, 감히 만류하지 못했다.

 


새로 제수된 정당이 옛 정당을 찾아오니 / 新政堂過舊政堂
직함 바꾼 화려한 명함 가늘고도 길어라 / 改銜華刺細仍長
눈은 어두워 거듭 봐도 글자를 못 알아보고 / 目昏重視難成字
곤한 몸은 막 일어나 와상 내려가기 귀찮네 / 身困初興懶下牀
푸른 버들 파란 연기는 골목에 한들거리고 / 碧柳綠煙搖里巷
푸른 하늘 맑은 태양은 큰 길을 비추누나 / 靑天白日照康莊
누런 옷자락 길에 올라 서서히 가는 곳에 / 黃裾引道徐行處
양천 허씨 남은 복이 아직 다하지 않았구려 / 餘慶陽川尙未央

 

서 경(西京)의 대동강(大同江)에는 물고기가 있어 사시(四時)로 손님 접대를 할 수 있거니와, 겨울에는 동어(凍魚)가 있고 여름에는 건어(乾魚)가 있는데, 건어는 일찍이 이시민(李時敏)의 집에서 그 맛을 보아 알고서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내가 병중에 건어를 구해봐도 얻지 못했는데, 지금 승제(承制)의 집에 건어가 있어 어디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요리하게 하여 먹어보니 완연히 예전의 맛이 있기는 하나, 예전의 것보다는 맛이 훨씬 떨어진다. 인하여 단편(短篇)을 짓다.

 


조천석
아래 유리 빛처럼 맑은 강물엔 / 朝天石下琉璃水
하늘 그림자 속에 물고기들이 노니는데 / 錦鱗游泳天光裏
철마다 그림 배 띄워 노래하고 춤출 때면 / 四時歌舞畫船中
매운 양념 쟁반 가득 생선회는 연하였지 / 辛辣滿盤飛縷膩
섣달이면 한 조각 눈덩이처럼 얼어붙었고 / 臘天凍成一片雪
한여름엔 건어의 맛이 참으로 별미였었네 / 當夏用
眞味別
전재
는 선대에 봉주성으로부터 나와서 / 全齋出自鳳州城
대대로 서경에 벼슬하여 모두 열렬했는데 / 世仕西京皆烈烈
그는 홀로 경전 연구해 고풍을 계승하고 / 獨究遺編繼古風
절의뿐만이 아니라 문장에도 능하였네 / 節義不獨文章工
내 젊었을 때 기꺼이 그와 서로 종유하여 / 我少之時喜相從
좋은 정이 거공과 같을 뿐만 아니었기에 / 情好不啻如

그가 철동산 남당사의 북쪽에 자리한 / 鐵洞山南唐寺北
무인 가문 늙은 장인께 더부살이할 적에 / 入贅武家老婦翁
우리 자제들을 반기어 혹 가서 자노라면 / 喜我子弟或夜宿
술 더 내오고 등불 켜서 아침까지 마셨지 / 添酒挑燈日出東
그때 조반 상의 건어를 처음 맛보았는데 / 其時朝
始一嘗
그 후 삼십 년 세월이 전광석화 같구려 / 今三十年如電光
병중에 입이 써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 病來口苦不能啖
앉아서 그 좋은 맛을 애타도록 생각다가 / 坐想雋味焦心腸
풍편 통해 청탁했으나 끝내 못 얻었더니 / 因風請托竟難得
다 망가진 나야 무어 해로울 것 있을까만 / 摧頹已矣吾何傷
아이가 이걸 구해 온 건 또한 다행이어라 / 渠能致此亦幸矣
뜻과 몸의 봉양이 끝내 변함이 없다마다 / 養志養體終不異
비록 씹는 것은 예전에 미치지 못하지만 / 雖然咀嚼不及前
혀와 이가 아직 남은 것만도 기쁘고말고 / 自喜猶存舌與齒

 

[주D-001]조천석(朝天石) : 평 양(平壤)의 부벽루(浮碧樓) 곁에 있던 바위 이름이다. 옛날 고구려(高句麗) 동명왕(東明王)이 부벽루 아래 기린굴(麒麟窟)에서 기린마(麒麟馬)를 길러 이 말을 타고 기린굴로부터 조천석으로 나와 하늘에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온 것이다.
[주D-002]전재(全齋) :
이시민(李時敏)의 호이다.
[주D-003]거공(蛩) :
짐 승의 이름인 공공거허(蛩蛩巨虛)의 약칭인데, 이 짐승은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으므로, 앞발은 짧고 뒷발만 길어서 잘 달리지 못하는 궐(
)이라는 짐승이 항상 공공거허가 좋아하는 감초(甘草)를 가져다 그에게 먹여 주고 위급한 때를 당하면 공공거허의 등에 업혀서 위기를 면하곤 한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정의(情誼)가 친밀하여 서로 의존하는 데에 비유한다.

즉사(卽事)

 


뼈가 하도 쑤셔서 밤에 한잠 못 붙였거니 / 夜眠不著骨多酸
일찍 일어나서 약간 썰렁함이야 어떠하리 / 早起何傷氣稍寒
한 수의 새로운 시를 막 지어 끝내자마자 / 一首新詩才脫藁
두어 가닥 쇠한 백발 관이 헐렁거리네 / 數莖衰髮不盈冠
풍창 앞에 대 마주하니 거처는 왜 누추하랴 / 風窓對竹居何陋
비 오는 못에 연꽃 보니 흥취는 다하질 않네 / 雨沼看蓮興未闌
읊는 게 그림 그리기 같음을 점차 알겠어라 / 漸覺吟哦如繪事
붉은 연꽃 파란 연잎 푸른 대가 그것이로세 / 紅粧翠蓋碧琅玕

잠깐 잠 붙이려다 허리 아픈 걸 못 견디어 / 不耐腰酸欲暫眠
문득 명아주 지팡이 짚고 청천을 바라보니 / 却扶黎杖望靑天
더위 위엄은 아직 치성해 세력을 타고 있고 / 炎威尙熾猶乘勢
서늘한 맛은 막 생기어 권세를 얻지 못했네 / 涼意方生未得權
푸른 버들은 바람 끌어 파리한 말 불어주고 / 碧柳引風吹瘦馬
푸른 숲은 햇빛 가리어 새 매미 보호하누나 / 綠林遮日護新蟬
오랜 병에 맑은 흥취 넘침이 유독 가련해라 / 獨憐久病餘淸興
꼭 천태 스님과 다시 연꽃을 감상해야겠네 / 須向天台更賞蓮

 

유동(柳洞) 남대문(南大門) 거리에 음료수와 참외와 과일을 차려 놓고 음악을 연주하여 행인들을 접대하고 있다고 가동(家童)이 달려와서 아뢰므로, 이 사실을 노래로써 기록하다.

 


더운 기운 큰 화로가 천지 사방을 푹푹 찌니 / 暑氣洪爐蒸六合
수많은 행인들이 한창 땀을 뻘뻘 흘리다가 / 行路汗流方雜沓
백설 같은 음료를 시원하게 한번 들이켜니 / 爽然一吸白雪漿
오장이 갑자기 맑아져라 바람이 살살 일고 / 五內頓淸風颯颯
띄우고 담근 참외 과일
은 벽옥처럼 서늘해 / 瓜果浮沈碧玉涼
보기만 해도 벌써 창자에 얼음이 쌓이는 듯 / 目視已似氷堆腸
떠들썩한 관현악을 또 갈음하여 연주하니 / 繁絃急管又迭奏
행인들은 성대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누나 / 過者傾耳方洋洋
석양 무렵 종아이가 와서 그 사실 아뢰자 / 蠻童走報日欲昃
우리 아내는 그 말 듣고 희색이 만면하여 / 孟光聞之喜形色
곳집에서 쌀 내다가 쿵쿵 찧어 밥을 짓고 / 出米于廩擣以烹
시장 가서 참외를 꼭 사오라고 주의시키네 / 買瓜于市戒必得
주림과 더위 해소시킴은 인자의 맘이지만 / 除飢解熱仁者心
곤경에서 구제된 이는 응당 깊이 감격하리 / 在困遇救感也深
우리 풍속에 이러한 행사가 있기 때문에 / 所以我俗有此擧
인수 지역
이 그대로 지금까지 전해 온다오 / 仁壽不死傳至今
나는 병으로 다년간 약물을 가까이했지만 / 我病多年近藥物
질병 공격 허약 보충이 서로 오르내렸는데 / 攻邪補虛相甲乙
더운 날엔 찬 음료가 당장 효험이 있으니 / 炎天氷漿立有效
구급방 속에 이 화제를 이어 기록해야겠네 / 備急方中當續筆

 

[주D-001]띄우고 …… 과일 : 삼국 시대 위()나라 조비(曹丕)가 오질(吳質)에게 보낸 편지에참외는 맑은 샘물에 띄우고, 붉은 오얏은 찬물에 담가 놓는다.[浮甘瓜於淸泉 沈朱李於寒水]” 한 데서 온 말로, 피서(避暑) 놀이를 의미한다.
[주D-002]인수(仁壽) 지역 :
태 평성대를 의미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한 자는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자는 동하고, 인한 자는 고요하며, 지혜로운 자는 즐겁고, 인한 자는 장수한다.[智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새벽에 비가 오다.

 


잠에서 깨자마자 뼈 아픈 게 짜증나던 중 / 夢覺方嗔病骨酸
서늘한 아침 비가 약간의 한기를 보내오네 / 颯然朝雨送微寒
누가 알았으랴 쇠도 돌도 녹아내리는 곳에 / 誰知爍玉流金處
한 조각 맑은 얼음이 이 가슴 적셔줄 줄을 / 一段淸氷入肺肝

 

이산(伊山) 이 상사(李上舍) 길상(吉商) 가 우중(雨中)에 찾아와서 장차 서해도(西海道)로 가려 한다고 말하다.

 


이산이 소년 시절 태학에 유학할 적엔 / 伊山少年游璧水
곧장 명성 날려 천자를 섬기려 했는데 / 直欲蜚英事天子
동해에 돌아와선 은거하는 것만 배우고 / 歸來東海學隱淪
녹록하게 미천한 관리 따르길 싫어하여 / 剛厭碌碌隨簪履
머리 숙이고 글 읽어 정미한 뜻 연구하며 / 低頭讀書發精微
성현이 되길 희망해 추향을 함께하노라니 / 希賢希聖同其歸
강교의 빗소리는 부들자리를 엄습하고 / 江郊雨聲襲蒲席
해문의 흰 달빛은 사립짝에 스며들었네 / 海門月色侵柴扉
조정의 고관이 왕명을 받고 나갔을 적엔 / 朝中大官受王命
흉포하고 간악한 자들 다 자취 감췄어라 / 豺狼狐狸跡皆屛
이산이 막중에 앉아서 법률을 적용하여 / 伊山用律居幕中
경중의 권한 발휘해 모두를 바로잡았고 / 爭權輕重咸以正
속 좁은 고관이 혹 꾸짖으며 물리쳐도 / 大官狹中或叱退
이산은 화평한 기색으로 동요됨이 없었네 / 伊山色和無所怪
스스로 말하길 나의 도는 화살처럼 곧거니 / 自言我道直如矢
어찌 세상 따라 응대를 고분고분하랴 하고 / 安用低昻工應對
사직하고 집에 와선 즐거워 근심 잊더니 / 辭歸家居樂忘憂
적을 만나선 당황하여 처자들이 걱정하자 / 遇賊顚沛妻孥愁
이산이 말하길 내가 한집안의 주인인데 / 伊山曰我一家主
너희들을 안 보전코 누구를 허물하랴 하고 / 我不保汝將誰尤
가족 이끌고 북으로 경성을 들어와보니 /
家北來入京邑
궁핍한 생활 고통이 경각에 달렸었는데 / 桂玉熬煎在呼吸
어릴 때의 친구들이 비록 많다고는 하나 / 兒時故舊雖曰多
누가 차리겠다는 시를 노래할꼬 /
何人授粲歌毛什
곧장 서해로 가서 생애를 기탁고자 하나 / 徑從西海寄生涯
척박한 밭 헌 집은 진토에 묻혀 있거니와 / 薄田破屋埋塵沙
백 보나 오십 보나 위태롭긴 마찬가지라 / 還如百步五十步
해적들이 이따금 이웃집을 놀래키겠지 / 海賊往往驚鄰家
인생의 화복은 절로 명수가 있는 법이라 / 人生禍福自有數
이산은 일생을 주어진 환경에 잘 견디건만 / 伊山一生安所遇
비록 하늘이 큰일 맡기려 한달지라도 / 雖然天將降大任
늘그막의 어려움을 내가 대신 호소하노라 / 垂老艱難吾代訴

 

[주D-001]즐거워 근심 잊더니 : 공 자(孔子)가 일찍이터득하기 전에는 분심을 발하여 밥 먹는 것도 잊고, 이미 터득한 뒤에는 즐거워서 근심을 잊어, 늙음이 닥쳐오는 것조차도 모른다.[發憤忘食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호학(好學)의 독실함을 의미한다. 《論語述而》
[주D-002] 누가 …… 노래할꼬 :
《시 경(詩經)》 정풍(鄭風) 치의(緇衣)대감님 검은 옷이 잘도 어울리네, 해지면 내가 또 새로 기워 올리리라. 대감님 조정에서 돌아오시면, 내가 대감님 밥상 차려 드리리라.[緇衣之宜兮敝予又改爲兮 適子之館兮 還予授子之粲兮]”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정()나라 환공(桓公), 무공(武公) 부자(父子)가 연이어 주()나라 사도(司徒)가 되어 직임을 잘 수행하므로, 정나라 사람이 그 덕을 찬양하여 친애(親愛)하는 정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3]하늘이 …… 한달지라도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고, 힘줄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몸을 궁핍하게 하여 하는 일마다 이루지 못하게 하나니, 이 때문에 마음을 경동시키고 성질을 굳게 참아서 능하지 못한 바를 보충하게 된다.[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告子下》

채 수좌(蔡首座)를 보내다.

 


묘각사 골짝의 집으로 이사하여 사는데 / 移居妙覺洞中家
병세가 한창 깊어져 어찌할 수 없어라 / 病勢方深不奈何
수좌의 그림자 가엔 약물이 쌓여 있고 / 首座影邊堆藥物
보문의 소리
속엔 불똥을 떨어뜨리네 / 普門聲裏落燈花
후의를 논하자면 스님이 제일이거니와 / 如論厚意師爲最
매양 날 위해주니 난 절로 존대해지네 / 每向殘生我自多
이번 길 어버이 뵘은 더욱 좋은 일인데 / 此去寧親尤美事
시를 주려니 글자 삐딱함이 부끄럽구려 / 贈詩還愧字橫斜

 

[주D-001]보문(普門) 소리 : 보 문은 《법화경(法華經) 28() 중의 하나인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의 약칭으로서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온갖 재난을 구원하고 소원(所願)을 이루게 하기 위하여 32응신(應身)을 나타내어 설법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므로, 여기서는 《법화경》의 독경(讀經) 소리를 의미한다.

구재(九齋)에서의 예전 일을 추억하다.

 


모진 더위에 조금의 서늘함도 얻을 길 없어 / 苦熱無從得一涼
찐득찐득한 땀 흘러 무쇠 창자 녹아내릴 제 / 瀋流膚汗鐵融腸
자하동 깊은 골짜기의 푸른 소나무 아래 / 紫霞洞裏靑松下
돌 틈의 맑은 샘물은 눈서리처럼 차가웠지 / 石隙淸泉冷雪霜

하과 베푼 당중에는 바람 이슬 서늘할 제 / 夏課堂中風露涼
강운을 애써 읊느라 창자를 검게 태웠네 / 苦吟
韻炭堆腸
선생이 방명 부르고 제생이 응답할 적엔 / 先生唱榜諸生應
적적한 빈 뜰에 달빛이 서리 빛처럼 밝았지 / 寂寂空庭月似霜

매미 소리가 또 초가을을 알리려 하여라 / 蟬聲又欲報新涼
덧없는 인생 회고하니 애가 끊일 지경일세 / 坐念浮生足斷腸
그 당시의 친구들은 하나도 만날 수 없고 / 當日舊游皆不見
거울 속의 흰 머리털만 한탄스러울 뿐이네 / 鏡中堪嘆鬢如霜

 

[주C-001]구재(九齋) : 고 려 때 최충(崔冲)이 설립한 사학(私學)으로, 일명 구재학당(九齋學堂)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국자감(國子監)과 같은 정도의 교육을 실시했다. 최충은 문종(文宗) 때 관직에서 물러난 뒤 후진 양성을 위해 사숙(私塾)을 개설했던 것인데, 생도들이 점차 많이 몰려들자, 학반(學班)을 낙성(樂聖), 대중(大中), 성명(誠明), 경업(敬業), 조도(造道), 솔성(率性), 진덕(進德), 대화(大和), 대빙(待聘)의 구재로 나누어 교육을 실시했던바, 학과(學課)는 구경(九經), 삼사(三史), 제술(製述)을 위주로 하였고, 특히 매년 여름이면 과거(科擧) 지망생들의 과거 응시를 위해 하과(夏課)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어 제 구재에 갔다가 소나무 밑에 앉았다 보니 소나무 그늘이 엷어서 한낮이 되자 열기가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제생(諸生)에게 고하기를자하동(紫霞洞)에 들어가 서늘한 곳에서 부영(賦詠)을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했더니, 제생이 매우 기뻐하면서 길을 인도하였다. 마침내 안심사(安心寺) 앞의 어지러이 흐르는 물가에 이르러 남쪽 언덕에 앉아서 각촉(刻燭)하 고 시제(詩題)를 냈는데, 촛불 눈금이 절반도 타기 전에 소낙비가 내리므로 제생들을 거느리고 안심사로 달려 들어가니, 의관(衣冠)은 다 젖었으나 자못 아름다운 풍취가 있었다. 세 제목의 시를 지었는데, 송풍(松風)이란 시제는 내가 명한 것이고, 재상행(宰相行)이란 시제는 광양군(光陽君) 이 선생(李先生)이 명한 것이고, 취우(驟雨)란 시제는 상당(上黨) 한 선생(韓先生)이 명한 것이다. 맨 처음 말을 끌고 와서 나에게 아뢴 이는 지후(祗候) 민안인(閔安仁)이고, 나를 따른 이는 민령 중리(閔令中理)와 내 자식 종학(種學)이었다. 그리고 상당을 따른 이는 그의 아들 상경(尙敬)과 사위 안경검(安景儉)이고, 우연히 서로 만난 이는 전교 영(典校令) 김가구(金可久), 전법 총랑(典法摠郞) 임헌(任獻), 전교 부령(典校副令) 염정수(廉廷秀)였다. 돌아와서는 그대로 쓰러져서 곤하여 누워버렸는데, 깨어나 보니 어제의 일이 참으로 꿈만 같았다. 이에 노래로써 그 사실을 기록하고 나니, 해가 이미 중천에 올랐다.

 


국가가 글 숭상하여 다방면으로 가르치되 / 國家崇文敎多術
태학을 크게 지으니 태학은 우뚝하였고 / 大作泮宮高
硉矹
인하여 구재를 열어 각각 생도 가르치니 / 仍開九齋各授徒
수많은 유생이 국도에 그득하게 되었네 / 侁侁靑衿盈國都
여름날엔 송악산 기슭에 모두 회합시켜 / 夏天都會松山麓
글 읽고 시 지을 제 반드시 각촉을 하되 / 讀書賦詩須刻燭
전편의 경구들은 세상이 아는 바이거니와 / 全篇警句世所知
토론과 강습 또한 그대로 부지런히 하여 / 討論講習仍孜孜
옛 현인의 남긴 자취를 선양할 만했는데 / 昔賢遺跡可對越
세상 풍속이 점점 경박한 데로 변하였네 / 風移世變成挑撻
지금은 정주학의 가르침이 처음 행해져서 / 如今濂洛敎初行
읊조림으로 곧장 성정을 추구하려 하기에 / 謳吟直欲求性情
사시 경치나 화려히 읊는 건 도외시하는데 / 風花月露置度外
어찌 다시 산과 바다를 분주하려고 하랴 / 肯復馳山兼走海
시구와 뜻 퇴고함은 아는 이가 그 누굴꼬 / 煉句煉意知者誰
사건과 말 사용함엔 본받을 데가 없으니 / 用事用語無所師
그 허물 내게 있기에 속으로 부끄러워라 / 咎實在我內自愧
한단 학보
가 지금이 가장 심하고말고 / 邯鄲學步今爲最
성균관 뜰에 가득 꽃다운 풀들 자랐어라 / 成均滿庭芳草生
백발로 병석에 누워 애틋한 정 못 잊는데 / 白頭臥病難忘情
구재에서 시 읊조림이 또한 이와 같으니 / 九齋賦詠又如此
어떻게 내 평소의 뜻을 다 보상할쏜가 / 何以償吾平昔志
다행한 건 솔바람이 낯에 불어 서늘하고 / 幸哉松風吹面涼
소낙비가 갑자기 시의 광기 재촉함일세 / 白雨忽爾催詩狂
연이어 봉군된 이 중엔 내가 가장 병들었고 / 聯翩封君我最病
우연히 만난 동류는 옥이 서로 비친 듯하네 / 邂逅同風玉相映
두어 수의 재상행을 조용히 읊조리어라 / 沈吟數首宰相行
요순 임금 만들어 태평성대 이루고말고 / 致君堯舜開太平
내가 늙었다 해서 스스로 존대한 게 아니니 / 非吾恃老自誇大
감히 제생에게 다시 가까워지길 청하노라 / 敢請諸生更傾蓋
뛰어난 이 놀이는 태평성대의 으뜸이거니 / 玆游奇絶冠平時
우리 동지들은 내 시를 보아주기 바라노라 / 幸我同志觀吾詩

 

[주C-001]각촉(刻燭) : 초에 눈금을 긋고 촛불이 그 눈금까지 타는 동안에 시()를 짓는각촉부시(刻燭賦詩)’에서 온 말이다.
[주D-001]한단 학보(邯鄲學步) :
전 국 시대 연()나라의 청년이 조()나라 서울 한단(邯鄲)에 가서 한단 사람들의 한아(閑雅)한 걸음걸이를 배우다가 걸음걸이가 아직 익숙해지기 전에 중도에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갈 적에는 자기 고향 본래의 걸음걸이도 잊고 한단의 걸음걸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여 결국은 엉금엉금 기어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남의 것을 본받으려다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것까지 잊게 되는 것을 비유한다. 《莊子 秋水》

더위에 지치다.

 


뜨거운 가을볕은 몸을 태우려 하는데 / 秋陽燥烈欲燒身
써늘한 밤기운은 정신을 차릴 만하네 / 夜氣凄涼可暢神
조화옹의 조종술은 원래 있는 것이지만 / 操縱化工元自在
늙은 몸 지탱하긴 진정 괴롭기만 하네 / 支持老物儘艱辛
난세에 고사 못 됨은 비록 부끄러우나 / 雖慚亂世無高士
청풍이 바로 내 친구임은 다행스럽네 / 却幸淸風是故人
푸른 나무에 매미 우는 걸 점차 보면서 / 漸見玄蟬嘶碧樹
서연의 깊은 곳에서 인륜 도덕 강하노라 / 書筵深處講彝倫

문 닫고 깊이 들앉아 알몸을 드러내어라 / 閉門深坐出陽身
장생 불사 비방이 곧 심신 수양에 있었네 / 鍊藥多生在谷神
학은 가고 누각 비니
맘은 고통스럽고 / 鶴去樓空心苦楚
벌레 울고 등불 흐리니 몹시 비참도 해라 / 蟲鳴燈暗鼻酸辛
시루에 서리 어림은 구로에게서 들었고 /
霜凝火甑聞丘老
댓가지의 이슬방울은 월인이 생각나누나 /
露滴竹枝思越人
비밀한 술법은 지금 다시 얻을 수 없으니 / 秘術而今難更得
난 홀로 읊조리어 독보의 경지에 드노라 / 獨將吟嘯入無倫

 

[주D-001]학은 …… 비니 : ()나라 최호(崔灝)의 〈황학루(黃鶴樓)〉 시에옛사람이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났는지라, 이 땅에는 공연이 황학루만 남았네그려. 황학이 한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흰 구름만 천재에 부질없이 왕래하누나.[昔人已乘黃鶴去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신선(神仙)이 되어 학을 타고 천상(天上)을 날아오르지 못함을 한탄하는 뜻으로 쓴 것이다.
[주D-002] 시루에 …… 들었고 :
구 로(丘老)는 단구(丹丘)의 노인(老人)이란 뜻에서 신선(神仙)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바로 진()나라 때의 선인(仙人) 포박자(抱朴子) 갈홍(葛洪)을 가리킨다. 그가 일찍이 말하기를눈서리는 신기한 화로에 어리게 하고, 영지는 숭악에서 캔다.[凝霜雪於神爐 採靈芝于嵩岳]”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댓가지의 …… 생각나누나 :
월 인(越人)은 춘추 시대의 명의(名醫) 편작(扁鵲)의 본명(本名)인 진월인(秦越人)의 약칭인데, 신인(神人) 장상군(長桑君)이 일찍이 자기 품속에 간직했던 약을 편작에게 주면서 이르기를이 약을 상지수(上池水) 30일 동안 복용하고 나면 눈이 밝아져서 의당 귀물(鬼物)을 환히 보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상지수는 댓가지에 맺힌 이슬방울을 말한다. 《史記 卷105 扁鵲列傳》

요즘에 현달한 벼슬아치로서 일 때문에 패한 이들이 많으므로, 앓는 나머지 홀로 앉아서 애오라지 과두음(蝌蚪吟)을 서술하는 바이다.

 


타고난 모양새는 어찌 그리 잗달은가만 / 稟形眇末何區區
그래도 천지의 정기가 살아 움직이나니 / 天地精氣猶昭蘇
못 속에 잠겨서는 비이슬에 멱을 감고 / 沈潛池沼沐雨露
물 위를 헤엄칠 땐 평지같이 다니누나 / 搖蕩水面如平途
인심은 예부터 학과 양주와 돈을 바라거니와 /
人心自古鶴州錢
얻고 바라서
두 눈이 뚫릴 지경이라네 / 得壟望蜀雙眼穿
개구리로 변화한 거야 어찌 안 위대하랴만 / 將身變化豈不偉
혹 올챙이 적 오늘을 잊어버리진 않을는지 / 恐或理會今日尾

 

[주D-001]인심은 …… 바라거니와 : 옛 날에 어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각 자기 소원을 말할 적에 한 사람은 양주 자사(揚州刺史)가 되기를 원하고, 또 한 사람은 많은 돈을 갖기를 원하고, 또 한 사람은 학()을 타고 하늘에 오르기를 원했는데, 또 한 사람은 말하기를허리에 돈 10만 꿰미를 차고 학을 타고 양주 자사로 가서 세 사람의 소원을 한 몸에 겸하고 싶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모든 소원을 한 몸에 다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농(壟) 얻고 촉(蜀) 바라서 :
후 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일찍이 잠팽(岑彭)에게 내린 글에사람은 참으로 만족할 줄을 몰라서 이미 농을 평정하고 다시 촉을 바라본다.[人苦不知足旣平隴 復望蜀]”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사람의 탐욕이 끝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군자(君子)

 


군자는 무엇을 싫어하는가 하면 / 君子何所疾
죽은 뒤에도 이름나지 않는 거라 / 沒世名不稱

이 때문에 소나무와 잣나무의 / 所以學松柏
눈서리에 굴하지 않음을 배운다네 / 傲被霜雪凌
내 마음은 하늘과 땅에 짝하여 / 吾心配天地
깊고 맑은 못물처럼 담담하기에 / 淡淡如淵澄
곱고 추함도 형체를 못 숨기거니 /
無遁形
더구나 유능하고 못함에 있어서랴 / 況此能不能
백관에게 각각 직무를 임명하여 / 百工各授職
잘 다스리면 백사가 이뤄지려니와 / 允釐庶績凝
혹 한번이라도 직무 수행을 못 하면 / 苟或一曠廢
바로 사람들의 증오를 받게 되리니 / 乃爲人所憎
미관말직에 있는 관리들까지도 / 抱關擊柝者
의당 법도를 좇아서 행해야 하리 / 亦當遵準繩

 

[주D-001]군자는 …… 거라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군자는 죽은 뒤에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衛靈公》

기유년 생원시(生員試)의 동년(同年)들이 모여서 새로 승선(承宣)에 임명된 종덕(種德)을 하례하는데, 나는 옆방에 홀로 우뚝 앉아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우리 집 아이가 새로 승선에 제수되어 / 我家豚犬拜承宣
상사의 동년들이 축하 자리를 마련하니 / 上舍同年設賀筵
좋은 음식 소반 가득 뒤섞여 쌓이어라 / 雋味滿盤堆錯落
늙은이는 옆방서 고기반찬에 배불렀네 / 老生隔壁飽芳鮮
휘장 걷고 나가려다 부끄러워 그만두고 / 褰帷將出羞還止
술잔 들어 마시니 기뻐서 미칠 것 같네 / 擧酒初嘗喜欲顚
다만 제공에게 바람은 효우를 두터이 하여 / 但願諸公敦孝友
충성으로 화육 도와 하늘을 감동시킴일세 / 移忠贊化格皇天

 

상주(尙州)의 서신을 얻다. 권계용(權季容)이다.

 


서신을 뜯어보니 인정에 위배된 듯하네 / 拆見書中似不情
중추에 가솔 데리고 경사로 오려 한다고 /
家秋仲欲還京
그 당시 반열들은 모두 통헌이 되었으니 / 當時班列皆通憲
묻노라 무슨 낯으로 친구들을 보려는가 / 且問何顔見友生

 

즉사(卽事)

 


더위 무서워 누각에 오른 밤이요 / 畏熱登樓夜
바람 쐬며 자리에 누운 가을이로다 / 納涼欹枕秋
읊은 나머지 맛은 아직 남아 있고 / 吟餘味猶在
꿈을 깨니 흥은 걷잡기 어렵구나 / 夢斷興難收
번뇌가 갑자기 사라져 없어지누나 / 煩惱俄消遣
원통
이란 게 어찌 황당한 말이랴 / 圓通豈謬悠
한 등불 새벽까지 밝히고 있자니 / 一燈明到曉
정경이 유수처럼 맑기만 하구나 / 情境淡如流

산하는 다른 나라가 아니건만 / 山河非異境
풍경은 또 새로운 가을이로세 / 風景又新秋
성시도 진정 은거한 곳 같아서 / 城市眞如隱
문장은 점차로 넉넉해진 듯하네 / 文章漸類優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르는데 / 光陰同袞袞
천지는 또한 아득하기만 하구나 / 天地亦悠悠
만고에 멈추는 수레는 없나니 / 萬古無停軌
어느 누가 물러가 쉬려 할쏜가 / 何人肯退休

 

[주D-001]원통(圓通) : 불교 용어인 주원융통(周圓融通)의 약칭으로, ()과 보살(菩薩)의 깨달은 경계를 가리킨다.

햅쌀을 보내 준 우 대부(禹大夫)에게 사례하다. 이름은 현보(玄寶)이다.

 


쌀이 아름다움은 스스로 믿거니와 / 自信長腰美
누가 병든 눈을 번쩍 띄게 하는고 / 誰敎病眼明
매서운 서리는 익기를 재촉했는데 / 霜威催早熟
물의 덕 힘입어 생명을 함께하였네 / 水德與俱生
갑자기 투명한 구슬이 떨어지는 듯 / 欻爾珠璣落
반짝반짝 얼음 눈처럼 깨끗도 해라 / 瑩然氷雪淸
가을바람이 붉은 게에 불어오니 / 秋風吹紫蟹
돌아갈 흥취가 강성에 가득하구나 / 歸興滿江城

 

초나흘 새벽에 읊다.

 


기일이라 조용히 앉아 읊조림을 폐하니 / 端居忌日廢吟哦
단지 가슴속이 우울함을 깨달을 뿐이네 / 但覺胸中鬱不和
밤사이 미친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으니 / 一夜狂風甚無謂
온 들녘 수많은 벼를 어찌할 수 없으리 / 四郊多稼末如何
요순 임금 만들 학술은 아직 길을 모르지만 / 致君學術猶迷路
조상 섬기는 은정은 강물을 터내린 듯하네 / 本祖恩情似決河
다행히 반점이나마 이 양심이 남았기에 / 幸是良心存半點
흥겨워 뜻을 말하니 그게 바로 중화로세 / 興來言志卽中和

 

한 상당(韓上黨)과 내가 장차 천태(天台)의 나잔자(懶殘子)를 방문하려면서 짓다.

 


우화 선사
는 지금 지장사에 머물러 있어 / 芋火禪翁住地藏
연화장세계
에 깨끗한 향기가 풍겨나겠네 / 蓮花世界淨生香
한산의 후학은 가난함이 병과도 같은데 / 韓山後學貧如病
유항 선생은 늙을수록 점차 미쳐가누나 / 柳巷先生老漸狂
실솔당 앞에는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요 / 蟋蟀堂前風細細
낙타교 밑에는 물이 아스라이 흐르거니 / 駱駝橋下水茫茫
어찌하면 함께 연못가의 나그네가 되어 / 何當共作池邊客
진종일 흥미진진하게 소리 높여 읊어 볼꼬 / 盡日高吟興味長

 

[주D-001]우화 선사(芋火禪師) : ()나라 때 형악사(衡嶽寺)의 고승(高僧) 명찬 선사(明瓚禪師)가 성격이 게을러서 남이 먹고 남은 음식만 먹었으므로 나잔(懶殘)이라 호칭했는데, 이필(李泌)이 일찍이 형악사에서 글을 읽을 때 한번은 밤중에 나잔 선사를 방문했더니, 그때 마침 나잔 선사가 화롯불을 뒤적여서 구운 토란을 꺼내 먹고 있었다는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고려 말기 천태(天台)의 스님 또한 호가 나잔이었기 때문에 그를 당나라 나잔 선사에 비유하여 이렇게 일컬은 것이다.
[주D-002]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
불교에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거주한다는 공덕 무량(功德無量), 광대 장엄(廣大莊嚴)의 세계를 말하는데, 이 세계는 큰 연화(蓮花)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주D-003]가난함이 병과도 같은데 :
공 자(孔子)의 제자 원헌(原憲)이 노()나라에서 몹시 곤궁하게 지낼 적에 자공(子貢)이 아주 화려한 수레를 타고 원헌을 방문하여 말하기를, 선생은 어찌하여 이렇게 병()이 들었습니까?” 하자, 원헌이 대답하기를나는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배워서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병이라 한다 했으니, 나는 지금 가난한 것이지 병든 것이 아니라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莊子 讓王》
[주D-004]늙을수록 점차 미쳐가누나 :
여기서 미친다는 말은 도()에 깊이 진취(進取)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인을 시켜 낙타교 밑의 물을 보고 오게 했더니, 건너는 사람의 허리 위에 차더라고 하므로, 이에 쭈그리고 앉아서 또 읊다.

 


예부터 소리 냄새는 진정 감추기 어렵거니 / 由來聲臭苦難藏
묻노라 연꽃은 향기가 그 몇 곡이나 되는고 / 且問蓮花幾斛香
물에 꽂힌 푸른 통은 원래에 똑 곧거니와 / 揷水碧筒元正直
바람 받은 푸른 잎새는 모두가 번득인다오 / 翻風翠蓋儘悠揚
염계의 땅은 깨끗하여 광제라 일컬었는데 /
濂溪地爽稱光霽
화악의 봉우리는 뾰족해 아득히 막혀 있네 /
華嶽峯尖隔渺茫
어떻게 하면 원도랑 태극을 후세에 전할꼬 / 原道何如傳太極
목은 늙은이 두 귀밑엔 흰 털만 기다랗구나 / 牧翁雙鬢素絲長

 

[주D-001]염계(濂溪)의 …… 일컬었는데 : 염 계는 주돈이(周敦)를 가리킨 것으로,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용릉의 주무숙은 인품이 매우 고상하여 가슴속이 깨끗해서 마치 온화한 바람과 맑은 달빛 같다.[舂陵周茂叔 人品甚高 胸中灑落 如光風霽月]” 한 데서 온 말이다. 무숙(茂叔)은 주돈이의 자()이다.
[주D-002]화악(華嶽)의 …… 막혀 있네 :
한유(韓愈)의 〈고의(古意)〉 시에태화봉 꼭대기의 옥정에 난 연은, 꽃 피우면 직경이 열 길에 둘레가 배 같다네.[太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원도(原道) 태극(太極) :
원도는 한유(韓愈)가 지은 문장(文章) 제목이고, 태극은 주돈이(周敦
)가 지은 〈태극도설(太極圖說)〉의 약칭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3(三首)

 


예로부터 공명을 겨루는 곳에선 / 自昔爭名處
그 누가 현자에 양보하려 했던가 / 何人肯避賢
어사대 탄핵은 틀에 박힌 것이요 / 臺評如譯語
국시는 당로자에게 달려 있는걸 / 國是在當權
묵은 자취는 버려짐이 가련하나 / 陳跡憐芻狗
높이 낢은 종이연이 그리웁구나 / 高翔慕紙鳶
취향에다 장차 내 살 집을 짓고서 / 醉鄕將卜築
누룩을 베고 남은 생을 보내련다 / 枕麴送殘年

예의 문명이 혁혁한 고장이라서 / 赫赫衣冠地
나라엔 조정 가득 현자가 있거니 / 盈庭國有賢
누가 몽매함으로써 바름 기르랴 / 誰能蒙養正
손으로 권을 행함
에 스스로 비기네 / 自擬巽行權
분잡스러운 것은 뱀과 새이고 /
擾擾蛇兼雀
구구한 것은 개미와 솔개로다 /
區區蟻與鳶
명성 이뤄 영원히 전하기만 한다면 / 立名垂不朽
죽는 날이 바로 태어난 날이라네 / 死日是生年

목은은 여지없이 꺾여버렸으니 / 牧隱摧頹甚
공명은 후현에게 맡길 뿐이건만 / 功名付後賢
시를 읊는 데는 고율을 참고하고 / 哦詩參古律
글자를 놓는 데는 경권을 쓰노라 / 下字有經權
아득한 건 맑은 가을 하늘 학이요 / 渺渺淸秋鶴
분분한 건 석양에 나는 솔개로다 / 紛紛落日鳶
앓고 나서도 아직 일을 좋아하여 / 病餘猶好事
태평세월을 길이 노래하노라 / 歌詠太平年

 

[주D-001]몽매함으로써 바름을 기르랴 : 《주역(周易)》 몽괘(蒙卦) 단사(彖辭)몽매함으로써 바름을 기르는 것이 성인을 이루는 공이다.[蒙以養正 聖功也]” 한 데서 온 말인다.
[주D-002]손(巽)으로 권(權) 행함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시의에 손순한 다음에야 권도를 행할 수 있다.[巽以行權]”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분잡스러운 …… 새이고 :
옛 날 수후(隋侯)가 출행(出行) 중에 상처입은 큰 뱀을 보고는 약을 발라 주었더니, 그 뱀이 뒤에 명주(明珠)를 물고 와서 수후의 은혜에 보답했다는 고사와, 또 옛날 양보(楊寶)란 사람이, 일찍이 올빼미에게 채여 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 황작(黃雀)을 백여 일 동안이나 잘 보살펴 길러서 날려 보냈더니, 바로 그날 밤에 그 황작이 황의동자(黃衣童子)로 변신하여 옥환(玉環) 4개를 가져와서 양보의 은혜에 보답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淮南子 覽冥訓》 《搜神記》
[주D-004]구구한 …… 솔개로다 :
전 국 시대 장주(莊周)가 죽게 되었을 때 제자들이 그를 후장(厚葬)하려고 하자, 장주가 말하기를나는 천지(天地)를 관곽(棺槨)으로 삼고, 일월(日月)을 쌍벽(雙璧)으로 삼으며, 성신(星辰)을 장식하는 구슬[珠璣]로 삼고, 만물(萬物)을 재송(齎送)하는 물품으로 삼았으니, 나의 장구(葬具)가 어찌 부족함이 있겠는가.” 하니, 제자들이 말하기를저희들은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의 시신을 파먹을까 염려해서입니다.” 하자, 장자가 말하기를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고, 땅속에 있으면 땅강아지나 개미의 밥이 될 터인데, 그것을 저쪽에서 빼앗아다가 이쪽에다 주자고 하니, 어찌 그리 편벽한고.”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莊子 列禦寇》

비가 온 나머지에 쭈그리고 앉아서 짓다.

 


연꽃 향기 솔솔 풍겨 꿈속에도 맑았기에 / 蓮香細細夢中淸
천태로 가서 다시 연꽃을 구경하고픈데 / 欲向天台更目成
비는 동이로 붓듯 해 나그네 꿈 놀래키고 / 一雨盆傾驚客夢
냇물은 병으로 쏟듯 해 인적이 끊어졌네 / 衆川甁瀉斷人行
사물을 완상해도 뜻을 잃지 않는 법인데 / 雖然玩物志不喪
정심 공부가 정밀하지 못함이 염려로세 / 祗是正心功未精
나는 백발이 되도록 아직 거칠기만 하니 / 白盡我頭猶孟浪
군자께서는 즐겨 나와 작반을 해줄는지 / 未知君子肯同盟

 

큰비가 오다.

 


큰비가 밤새도록 내려 하늘이 새는 듯해라 / 大雨通宵欲漏天
사면엔 낙숫물 줄줄 한 등잔 앞에 앉았노니 / 簷聲四壁一燈前
웅장하긴 천군만마 창칼 가는 소리와 같고 / 雄如萬馬磨刀槊
섬세하긴 관현악에 입힌 고란과도 같구려 / 細似孤鸞入管絃
뭇 냇물이 큰 바다 이룸이야 감히 막으랴만 / 敢遏衆流成鉅海
많은 벼가 홍수에 잠긴 게 걱정일 뿐이로다 / 祗憂多稼沒平田
조화옹의 심술은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나니 / 化工用意眞難料
의당 더욱 견고히 나의 궁함을 지킬 뿐일세 / 且守我窮當益堅

 

[주D-001]고란(孤鸞) : 금곡(琴曲)의 이름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분분한 총욕은 그 어느 때나 그칠런고 / 紛紛寵辱幾時休
더구나 덧없는 생은 젊어서 백발인걸 / 又況浮生少白頭
눈서리는 자연히 밝은 해를 만나겠지만 / 霜雪自然逢皎日
진흙은 간혹 맑은 물을 더럽히기도 하지 / 塵泥或者汚淸流
양웅은 적막하다 끝내 각에서 투신했고 /
揚雄寂寞終投閣
두보는 행장 갖고 홀로 누에 기댔었네 /
杜甫行藏獨倚樓
필경에는 다만 충의를 논할 뿐이거늘 / 畢竟祗論忠義耳
예로부터 물의는 몹시 유유하기만 하네 / 由來物議甚悠悠

하늘땅은 아득하여 고금에 뻗치었나니 / 天地悠悠亘古今
휘파람 길이 불어 번거론 심정 틔워나 보자 / 劃然長嘯豁煩襟
사방의 구름 기운은 굳게 잠긴 것 같고 / 四方雲氣似牢閉
수일 동안 빗소리는 괴로이 읊는 듯하네 / 數日雨聲如苦吟
수양버들은 늘어져 골짝 어귀를 가리고 / 楊柳垂絲藏洞口
이끼는 비단을 씻은 듯 뜰에 가득하구나 / 莓苔濯錦滿庭心
후일 종자기가 나올 줄은 기필치 못하지만 / 他年未必鍾期在
홀로 거문고 가져 유수 고산이나 타련다 / 流水高山獨撫琴

 

[주D-001]양웅(揚雄)은 …… 투신했고 : 적 막(寂寞)은 양웅의 〈해조(解嘲)〉에오직 적막함만이 덕을 지키는 집이다.……나는 묵묵히 나의 태현을 홀로 지킬 뿐이다.[惟寂惟寞 守德之宅……默然獨守吾太玄]” 한 데서 온 말이고, ()에서 투신했다는 것은 양웅의 제자 유분(劉棻)이 왕망(王莽)에게 체포되어 치죄(治罪)를 받음에 따라 양웅 또한 여기에 연루되어 옥리(獄吏)가 그를 체포하러 갔을 때, 그는 마침 천록각(天祿閣)에서 교서(校書)를 하고 있다가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할까 염려한 나머지 거기서 그대로 뛰어내려 거의 죽게 되었던 일을 가리킨다. 《漢書 卷87 揚雄傳》
[주D-002]두보(杜甫)는 …… 기댔었네 :
두보의 〈강상(江上)〉 시에훈업을 염려해 자주 거울을 보고, 행장 가지고 홀로 누각 기대노라.[勳業頻看鏡 行藏獨倚樓]”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5
[주D-003]후일 …… 타련다 :
옛 날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는데, 백아가 일찍이 고산(高山)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훌륭하다, 높고 험준한 것이 마치 태산(泰山) 같구나.” 하였고, 유수(流水)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탈 적에는 또 말하기를훌륭하다, 광대한 것이 마치 강하(江河) 같구나.”라고 하여 백아의 생각을 종자기가 다 알고 있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서로를 잘 알아주는 지기(知己)를 의미한다. 《列子 湯問》

익랑(翌廊)

 


익랑보다 뒤뜰이 더 높다 보니 / 翌廊後庭高
빗물이 중앙으로 흘러 들어와서 / 雨水流入中
와상이 배처럼 둥둥 뜨는 가운데 / 牀座如舟浮
쇠하고 병든 늙은이 드러누웠네 / 偃臥衰病翁
당년엔 끊어진 항구에 배를 띄워 / 當年航斷港
창해의 동쪽을 구경하려 했더니
/
欲觀滄海東
늘그막엔 성질이 더욱 우활해져서 / 老境益迂闊
식견이 짧아 시비가 헷갈리누나 / 識短迷異同
머리 숙여 길이 스스로 탄하노니 / 俯首自長嘆
상제가 처음 착한 성을 내렸거늘 / 上帝初降衷

 

[주C-001]익랑(翌廊) : 대문(大門) 좌우쪽에 잇대어 지은 행랑(行廊)으로, 익랑(翼廊)과 같다.
[주D-001]끊어진 …… 했더니 :
한 유(韓愈)의 〈송왕수재서(送王秀才序)〉에양주, 묵적, 노자, 장자, 석가의 학설을 배우면서 성인의 도에 들어가려는 것은 마치 단절된 항구나 웅덩이에 배를 띄워서 바다에 이르기를 희망하는 것과 같은 격이다.[道於楊墨老莊佛之學 而欲之聖人之道 猶航斷港絶潢 以望至於海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혈전 치르고 돌아온 게 바로 초여름인데 / 血戰歸來是夏初
바다 하늘 봉화가 변방을 환히 비추었지 / 海天烽火照儲胥
승첩 소식은 충주에서 방금 진헌했건만 / 捷音蘂闥方來獻
살기는 진주에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네 / 殺氣菁川尙未除
말의 땀이 마르려 할 제 탄핵장 올렸지만 / 馬汗欲乾彈狀上
개의 공도 풀어줬대서 과소평가 어려우리 /
狗功難少發蹤餘
지금의 일 처리는 참으로 흐리멍덩하니 / 如今料理眞蝌蚪
좋고 나쁜 명성을 다 허구에 부쳐야겠네 / 遺臭流芳付子虛

공문서 한 장이 문에 들어오던 처음에 / 公緘一道及門初
대리가 큰소리로 이서를 불러대는지라 / 臺吏高聲喚里胥
조정에서 퇴청해 밥 먹고 조용히 쉬다가 / 退食委蛇自廊廟
뜰 가에서 허둥지둥 답서를 작성하였네 / 答書倉卒在庭除
승천부의 전적은 의당 앞설 곳이 없지만 / 昇天府裏無居右
촉석루 앞 전적도 딴 데 비할 바 아니라오 / 矗石樓前不數餘
강계와 안주의 전공이 또 우월했으니 / 江界安州功又最
원컨대 탄핵한 말들이 모두 허사였으면 / 幸敎彈劾語皆虛

 

[주D-001]개의 …… 어려우리 :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한 처음, 소하(蕭何)의 공()을 제일로 쳤다 하여 제장(諸將)들이 공을 서로 다투자, 고조가 이르기를제군(諸君)들은 사냥하는 법칙을 아는가?……사냥을 함에 있어 짐승을 쫓아 잡는 놈은 사냥개이고, 개를 풀어놓아서 짐승이 있는 곳을 가리켜 주는 자는 사람인데, 제군은 다만 가서 짐승을 잡은 처지일 뿐이니 그 공은 개에 해당하고, 소하는 개를 풀어놓아서 짐승을 가리켜 보여 준 처지이니 그 공은 사람에 해당한다.[諸君知獵乎?……夫獵 追殺獸者狗也 而發蹤指示獸處者人也 今諸君徒能得走獸耳 功狗也 至如蕭何 發縱指示 功人也]”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53 蕭相國世家》

삼 가 성탄일(聖誕日)을 만나서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공(廉公),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 윤공(尹公), 길창군(吉昌君) 권공(權公)이 자문(紫門)에 나아가서 하례(賀禮)를 드리려고 하자, 중관(中官)이 나와서 말하기를조회(朝會)를 정지하고 도로 사근(私覲)을 받을 것이다.” 하였다. 내가 세 대인(大人)을 수행했다가 중관의 얼굴을 보게 되었으므로, 물러와서 스스로 다행하게 여겨 한 수를 읊어 이루는 바이다.

 


견우 직녀 좋은 기약
에 천기가 서늘하니 / 牛女佳期天氣涼
구중궁궐 맑은 새벽 향로도 향기로워라 / 九重淸曉獸爐香
화저에 흐른 무지개 상서
는 아직 겹치고 / 虹流華渚祥猶襲
머리에 신산 자라
은 미칠 듯하네 / 鼇戴神山舞欲狂
상서론 태양은 돋아 천하를 환히 비추고 / 瑞日
曈曈臨海宇
상서론 구름은 뭉게뭉게 궁궐을 둘렀네 / 慶雲靄靄繞宮牆
바라건대 가만히 앉아서 천세를 누리어 / 庶幾坐享千齡旦
어진 풍교를 사방에 좋이 전파하옵소서 / 好播仁風及四方

 

[주D-001]견우 직녀 좋은 기약 : 해마다 음력 7 7일 밤이면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오작교(烏鵲橋)에서 서로 한 번씩 만난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주D-002]화저(華渚)에 …… 상서 :
황 제(黃帝)의 비() 여절(女節)이 일찍이 무지개처럼 생긴 별이 내려와서 화저로 흐르는 것을 보았는데, 이윽고 그 무지개와 교감(交感)하는 꿈을 꾸고 임신이 되어 아들 소호씨(少昊氏)를 낳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제왕(帝王)의 탄생을 의미한다.
[주D-003]머리에 …… :
동해(東海)의 큰 자라가 신산(神山)인 봉래산(蓬萊山)을 머리에 이고 손뼉을 치며 기뻐한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백성들이 매우 기쁜 마음으로 임금을 떠받드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읊다.

 


등불 조금 가까이할 만한 초가을이 좋아라 / 稍欣燈火近新涼
조용히 앉아 마음 맑으니 묘향이 풍겨오네 /
靜坐心淸聞妙香
국화와 더불어 은일이 되고자 하는데 /
欲與菊花將隱逸
버들개지처럼 미친 것이 생각나누나 /
回思柳絮似顚狂
세상 길 아득해 자주 수레에 기름칠해라 / 世途渺渺頻脂轄
성도는 밝디밝건만 나 홀로 깜깜하구려 / 聖道明明獨面牆
병으로 버려진 수년에 괴로이 읊다 보니 / 病廢數年吟更苦
때때로 기발한 시구가 곧 좋은 처방일세 / 時時警句卽良方

 

[주D-001]조용히 …… 풍겨오네 : 두보(杜甫)의 〈대운사찬공방(大雲寺贊公房)〉 시에등불이 비추어 잠 못 이룰 제, 마음 맑으니 묘향이 풍겨오네.[燈影照無睡 心淸聞妙香]” 한 데서 온 말로, 묘향(妙香)은 독특한 향기를 뜻하는데, 전하여 향연(香煙)을 가리킨다.
[주D-002]국화와 …… 하는데 :
()나라 주돈이(周敦
)의 〈애련설(愛蓮說)〉에나는,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이고,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 중의 군자라고 여긴다.[予謂菊花之隱逸者也 牡丹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者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버들개지처럼 …… 생각나누나 :
두보의 〈절구만흥(絶句漫興)〉 시에미친 버들개지는 바람 따라 춤을 추고, 경박한 복사꽃은 물을 따라 흐르누나.[顚狂柳絮隨風舞 輕薄桃花逐水流]”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자주 수레에 기름칠해라 :
수레 비녀장에 기름칠을 하는 것은 장차 출행(出行)하기 위한 것으로, 전하여 어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을 의미한다.

칠석(七夕)

 


천녀가 끝없이 베 짠다는 말만 들었을 뿐 / 徒聞天女不停梭
굵고 거친 베옷으로 두 귀밑이 희었으니 / 大布麤繒兩鬢皤
좋은 솜씨 빌어 얻은들 장차 어디에 쓰랴 / 乞得巧時將底用
재주 부렸자 졸렬해져 조롱만 취하는걸 / 弄來成拙取譏多

 

[주C-001]칠석(七夕) : 음 력 7 7일 밤으로 명절의 하나이다. 이날 저녁에는 은하(銀河) 동쪽에 있는 견우성(牽牛星)이 서쪽에 있는 직녀성(織女星)과 오작교(烏鵲橋)에서 서로 만난다고 하는데, 예로부터 이날에는 걸교전(乞巧奠)을 하는 풍습이 있는바, 걸교전이란 부녀자들이 밀전병과 과일을 차려 놓고 견우, 직녀에게 바느질 솜씨가 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을 가리킨다.

즉사(卽事)

 


이슬 뚝뚝 은하의 밤에 야기는 하 맑은데 / 露滴銀河夜氣淸
소반에 과일 듬뿍 놓고 아침까지 빌어대네 / 盤堆瓜菓到天明
규중의 소녀가 바늘과 실을 손에 쥐고서 / 閨中小女持針線
천오
를 수놓으니 열 배나 정밀해졌구려 /
出天吳十倍精

 

[주D-001]천오(天吳) : 사람의 얼굴에 머리가 여덟 개 달렸다는 해신(海神)의 이름인데, 옛날에 이 천오의 그림을 옷에 수놓아 입기도 했다.

느낌이 있어 읊다.

 


장상이 서로 좋아해 기가 절로 조화되니 / 將相交驩氣自調
기시는 일 전혀 없거늘 더구나 인묘이랴 / 絶無欺蔽況人猫
터럭 불어 흉터 찾는 건 모두 놀라거니와 / 吹毛共駭方求疵
죽기로써 교정 맺는
어여쁨직도 하지 / 刎頸堪憐競結交
구름은 푹푹 찌는 조의 태양을 가리고 / 雲擁炎威蒸趙日
비는 서늘함 끌어 삼한 들녘에 들여오네 / 雨拖涼意入韓郊
천지가 중화를 이루어 즐거움직한 이때 / 天地中和堪樂處
목은 홀로 안달부리는 걸 그 누가 알꼬 / 誰知老牧獨
嘵嘵

 

[주D-001]인묘(人猫) : ()나라 때의 간인(奸人) 이의부(李義府)의 별호이다. 그는 외면(外面)은 아주 유순하면서 속으로는 음험(陰險)한 마음을 품었으므로, 당시에 그를웃음 속에 칼을 품었다[笑中刀]’고도 칭하였다.
[주D-002]죽기로써 교정(交情) 맺는 :
전국 시대 조()나라의 명장(名將) 염파(廉頗)와 명신(名臣) 인상여(藺相如)가 서로 목이 잘리는 한이 있어도 교정은 변치 않겠다는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조(趙) 태양 :
춘 추 시대 노국(潞國)의 대부(大夫) 풍서(
)가 진()나라 가계(賈季)에게 묻기를()의 대부 조순(趙盾), 조최(趙衰) 둘 중에 누가 더 어진가?” 하니, 가계가 말하기를조최는 겨울날의 태양이요, 조순은 여름날의 태양이다.[趙衰冬日之日也 趙盾夏日之日也]” 한 데서 온 말인데, 즉 겨울철의 태양은 사랑스럽고, 여름철의 태양은 두려운 것임을 의미한다. 《春秋左傳 文公7年》

권흥조(權興祖) 판사(判事)를 곡()하다.

 


예천군의 손자가 그 몇이나 남았는고 / 醴泉孫子幾人存
붉은 명정 펄럭펄럭 구원을 향하누나 /
翩翩向九原
병든 백발 늙은이는 상여를 따르지 못해 / 白髮病翁難執

사립문 닫고 우뚝 앉아 홀로 읊조리노라 / 獨吟危坐掩柴門

 

흥우(興雨)

 


천천히 몰아와 사전까지 미치더니 /
興雨祁祁遂及私
가을바람에 곡식들이 벌써 여물었네 / 秋風畦壟已離披
천시와 인사는 서로 화육을 보좌하고 / 天時人事相參贊
국용과 민생은 함께 도와 유지하누나 / 國用民生共夾持
늙은이 신곡 먹으니 입 안은 향기로운데 / 老病食新香齒舌
자고로 이끗 말할 땐 호리를 분석한다지 / 古今言利析毫釐
탕의 희생 자책한
어찌 그리 아득한고 / 湯牲自責何寥闊
조용히 앉아서 다시 운한시를 관찰하노라 / 靜坐更觀雲漢詩

 

[주D-001]천천히 …… 미치더니 :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전(大田)뭉게뭉게 구름 일어, 천천히 단비를 몰아와서, 우리 공전에 흠뻑 내리고, 마침내 사전에도 미치었네.[萋萋 興雨祁祁 雨我公田 遂及我私]”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탕(湯)의 …… :
탕 임금 때에 대한(大旱) 7년이나 계속되자, 탕 임금이 자신을 희생(犧牲)으로 삼아 상림(桑林)의 들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낼 적에 여섯 가지 일로 자책(自責)하기를정사가 간결하지 못한가, 백성이 생업을 잃었는가, 궁실이 높은가, 부녀자의 청탁이 많은가, 뇌물이 행해지는가, 아첨하는 자가 많은가?[政不節歟 民失職歟 宮室崇歟 女謁盛歟 苞苴行歟 讒夫昌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운한시(雲漢詩) :
운 한은 《시경》 대아(大雅)의 편명인데, 이 시는 주 선왕(周宣王) 때에 가뭄이 계속되어 백성들이 모두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선왕이 온 정성을 다 기울여 재앙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므로, 대부(大夫) 잉숙(仍叔)이 온 정성을 다하는 선왕을 아름답게 여겨 부른 노래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원나라는 북방으로부터 일어나 / 元興朔雪中
어렵스레 조정을 세우고 나서 / 艱苦立朝廷
장상이 서로 심력을 단결할 땐 / 將相一心力
온 천하가 천자 위령 우러르더니 / 普天仰皇靈
태운이 다하고 비운이 찾아오매 / 泰極運中否
서로 해쳐 모진 형벌 난무하였네 / 相殘刑發腥
이윽고 남풍이 금미에 불어올 / 南風吹金微
수목 중엔 동청이 많기도 했었지 / 樹木多冬靑
군자가 이에 크게 탄식하노니 / 君子有浩歎
두 귀밑이 이젠 희끗희끗하구나 / 兩鬢今星星

임금은 사총을 밝게 하시어 / 大舜明四聰
결연하게 사흉을 제거하시니 / 決然去四兇

어진 마음이 사방에 입혀져서 / 仁心所浸淫
온 천하가 태평을 노래하였네 / 天下歌時雍
구름 한 점이 잠깐 점철했다가 / 纖雲乍點綴
일월의 광명이 하늘에 빛나자 / 日月光大空
이윽고 하늘이 더욱 맑게 개니 / 俄而愈澄霽
궁전에 맑은 바람이 일어났네 / 玉宇生淸風
군자가 이에 크게 탄식하노니 / 君子有浩歎
담담하게 나의 중을 지키련다 / 淡然守吾中

 

[주D-001]남풍이 …… : 금미(金微)는 고비사막의 북쪽에 위치한 산명(山名)이고, 남풍은 새로 일어난 명()나라를 이른 말이다.
[주D-002]동청(冬靑) :
일 명 여정(女貞)으로 지조를 상징하는 나무인데, 일찍이 송()나라가 망하자, ()나라 사람이 소흥(紹興)에 있는 송나라 왕릉(王陵)들을 모두 발굴하여 유해(遺骸)를 없애 버리려고 할 적에 송나라 의사(義士) 당각(唐珏)이 몰래 그 유해들을 수습하여 난정산(蘭亭山)에 장사 지내고 또 송나라 고궁(故宮)에 있던 동청수(冬靑樹)들을 그 묘 위에 옮겨 심었던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이로써 패망한 전조(前朝)에 대한 감회를 상기시킨 것이다.
[주D-003]순(舜) 임금은 …… 제거하시니 :
사 총(四聰)을 밝게 했다는 것은 순 임금이 사방으로부터 잘 들어서 견문을 넓혔던 것을 가리킨 말이고, 사흉(四兇)은 순 임금 때의 네 악인(惡人)인 공공(共工), 환도(驩兜), 삼묘(三苗), (
)을 가리키는데, 순 임금이 일찍이 공공을 유주(幽州)에 귀양 보내고, 환도를 숭산(崇山)에 내치고, 삼묘를 삼위(三危)로 쫓아내고, 곤을 우산(羽山)에서 죽였다. 《書經舜典》

즉사(卽事)

 


적막하고 외로운 자취 분분한 세상 피해 / 寂寞孤蹤避世紛
단사표음
으로 도 즐긴다 괜히 운운하지만 / 簞瓢樂處漫云云
일생에 탁한 기는 청한 기와 서로 섞이고 / 一生濁氣雜淸氣
두어 조각 흰 구름은 검은 구름과 연했도다 / 數片白雲聯黑雲
지금 세상에도 아직 양경부는 전하거니와 / 今世尙傳良鏡賦
어느 누가 졸옹의 글을 고칠 있으리요 /
何人能改拙翁文
노년에는 곧장 유고를 불태우고 싶어라 / 老年直欲焚遺藁
유자의 관에 모기가 모임을 점차 보겠네 / 漸見儒冠似聚蚊

거울 속의 두 귀밑은 백발이 분분한데 / 鏡中雙鬢白紛紛
의관도 않고 앉았으니 어찌 예라 하리요 / 坐不衣冠豈禮云
붓 잡아 쓰면 때로 소나기 같음에 놀라고 / 把筆有時驚驟雨
창문 앞에 온종일 가는 구름을 본다오 / 倚窓終日看行雲
태자 보익은 절로 황기 초빙에 부합하나 /
翼儲自合來黃綺
선을 권함엔 누가 자문의 후손을 런고 /
勸善誰能後子文
세도가 지금은 옛일을 따르지 않아서 / 世道如今非舊貫
지붕 구석에 모기 소리가 때로 들리누나 / 時聞屋角有鳴蚊

세상에 분란 해결할 노중련이 없으니 / 世有仲連能解紛
적막한 오늘날에 다시 무슨 말을 하리요 / 寂寥今日更何云
높고 깊은들 산해 같은 맘에 어찌 미치랴 / 高深寧及心山海
엎고 뒤집음은 진정 손의 구름 같구려 /
翻覆端如手雨雲
삼협의 성하는 공부의 시구에서 나왔고 /
三峽星河工部句
중주의 포속과 같은 자장의 글이로다 /
中州布粟子長文
착창
은 이미 소년 시절 일로 부끄러운데 / 斲窓已愧少年事
점차 모기에게 산을 지라고 책할 듯하네 / 漸似負山將責蚊

 

[주D-001]단사표음(簞食瓢飮)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밥과 한 표주박 음료수로 누추한 시골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근심을 감당하지 못하는데,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고치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一簞食 一瓢飮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D-002]양경부(良鏡賦) :
양경은 고려 시대의 문신(文臣)으로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에 이른 김양경(金良鏡)을 가리키는데, 그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데다 특히 시부(詩賦)에 뛰어나서 그의 시부가 당시에 양경시부(良鏡詩賦)로 일컬어졌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어느 …… 있으리요 :
졸 옹(拙翁)은 고려 시대 문장가인 최해(崔瀣)의 호인데, 어떤 이가 그의 글을 고친 일이 있어 저자가 일찍이근세에 졸옹의 글을 고친 자가 있었는데, 그의 성씨는 잊어버렸다. 그것을 인하여 단묵경의 회서비에 관한 일을 기록하다.[近世有改拙翁文者 失姓氏 因記段墨卿淮西碑事]”라는 제목의 시를 지은 적이 있다. 《목은시고》 제9권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주D-004]모기가 모임 :
뭇사람이 떼 지어 모여서 마구 떠들어 대는 것을 천시(賤視)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5]태자(太子) …… 부합하나 :
한 고조(漢高祖)가 만년에 태자를 폐하고 척씨(戚氏) 부인의 소생인 조왕(趙王) 여의(如意)를 태자로 세우려고 할 때, 장량(張良)의 계책에 의하여 당시 상산(商山)에 은거하고 있던 네 노인인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
里先生)을 급히 맞아와서 그들로 하여금 태자를 정성껏 보익하게 한 결과 마침내 태자를 바꾸지 않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선을 …… 알런고 :
춘 추 시대 초()나라 약오씨(若敖氏)인 영윤(令尹) 자문(子文)이 죽은 뒤에 그의 씨족들이 모두 정적(政敵)으로부터 멸족(滅族)을 당했는데, 유독 그의 손자인 잠윤(箴尹) 극황(克黃)에 대해서는 초왕(楚王)이 그 조부인 자문이 일찍이 초나라를 잘 다스린 공을 생각하여 이르기를자문에게 후손이 없게 된다면 무엇으로 사람들에게 선을 권할 수 있겠는가.[子文無後 何以勸善]” 하고 그를 끝내 보호해 주었던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 宣公4年》
[주D-007]분란 해결할 노중련(魯仲連) :
전 국 시대에 진()나라가 조()나라 한단(邯鄲)을 급히 포위했을 때 위()나라 사자(使者)인 신원연(辛垣衍)이 진나라를 제()로 섬기라고 조나라에 권하자, ()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이 대의(大義)로써 신원연을 책망했더니, 진나라 장수가 그 소식을 듣고는 군대를 50리 밖으로 퇴각시켰는데, 이때 마침 위나라의 원병(援兵)이 와서 조나라를 구해 주어 한단이 진의 포위를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나라에서 노중련에게 관작을 봉해 주려고 하자, 노중련이 말하기를천하사에게 귀중한 것은 남을 위해 환난을 제거해 주고 분란을 풀어 주고도 취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所貴於天下士者爲人排患釋難解紛亂而無所取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戰國策趙策》
[주D-008]엎고 …… 같구려 :
두보(杜甫)의 〈빈교행(貧交行)〉에손 뒤집으면 구름 되고 엎으면 비가 된다.[翻手作雲覆手雨]”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반복무상한 인정 세태를 뜻한다.
[주D-009]삼협(三峽)의 …… 나왔고 :
일 찍이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낸 두보의 〈각야(閣夜)〉 시에오경의 고각 소리는 비장하기만 하고, 삼협의 성하 그림자는 물 위에 동요하네.[五更鼓角聲悲壯 三峽星河影動搖]”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난리를 상심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杜少陵詩集卷18
[주D-010]중주(中州)의 …… 글이로다 :
중 주는 중국을 가리킨다. 자장(子長)은 한()나라 때 태사령(太史令)으로 《사기(史記)》를 저술한 사마천(司馬遷)의 자이다. 포속(布粟)은 포백숙속(布帛菽粟)의 약칭으로, 이는 의식(衣食)의 주요한 물품으로서 사람마다 익히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평상적이면서도 지극히 유익한 것을 비유하는데, 여기서는 바로 사마천의 문장을 이에 비유한 것이다.
[주D-011]착창(斲窓) :
()나라 때 중서 사인(中書舍人) 양도(陽滔)가 제사(制詞)를 초()하라고 재촉하는 명을 받고 제사를 초하려 할 적에 마침 서고(書庫)의 열쇠를 가진 영사(令史)가 출타 중이어서 제사의 구본(舊本)을 상고할 수 없게 되자, 이에 서고의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구본을 찾아 상고하여 제사를 초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문재(文才)의 졸렬함을 의미한다.

붓을 달려 써서 법천사(法泉寺)의 승통(僧統)에게 받들어 부치다.

 


인명과 석명
을 자세히 설명하는 곳에 / 細說因明與釋名
불교의 현묘한 뜻이 준엄하게 펼쳐지네 / 瑜伽玄旨似雷鳴
어느 때나 만법이 모두 서로 계합하여 / 何時萬法皆相應
비로의 정상을 평지같이 밟게 될런고 /
踏得毗盧頂上平

 

[주D-001]인명(因明) 석명(釋名) : 인 명의 인은 원인(原因) 또는 근거(根據)의 뜻이고, 명은 학술(學術)의 뜻으로서 고대 인도의 논리학인 인명론(因明論)을 가리키고, 석명은 예로부터 불교의 경전(經典)을 해석하는 데 있어 그 명목(名目)의 대의(大意)를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2]비로(毗盧)의 …… 될런고 :
비 로는 부처의 진신(眞身)을 가리키는데, 당 숙종(唐肅宗)이 일찍이 충 국사(忠國師)에게 묻기를무엇이 십신(十身)을 다스리는 것입니까?” 하니, 충 국사가 대답하기를시주(施主)께서는 이미 비로의 정상을 밟아 다니십니다.” 하자, 숙종이 이르기를무슨 말인지 과인(寡人)은 모르겠습니다.” 하므로, 충 국사가 말하기를자기의 청정법신(淸淨法身)을 스스로 알지 못해서입니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십신이란 불교에서 부처와 보살(菩薩)의 몸을 각기 그 공덕(功德)에 따라서 십종(十種)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수정 포도(水精葡萄)를 읊다.

 


두어 송이 주렁주렁 수정이 매달리어 / 數朶離離綴水精
살갗은 투명하고 씨 또한 분명하여라 / 肌膚瑩徹子分明
누가 만곡의 시고 단 맛을 저장했느뇨 / 誰藏萬斛酸甛味
입속에 아름다운 진액이 청신하구나 / 齒舌中間瓊液淸

아래 포도는 검은 수정과 같다는 / 林下葡萄黑水精
급암의 노련한 필치는 새에 빛나는데 / 及菴老筆壁間明

예전처럼 산사의 예배를 드리는 곳에 / 依然山寺行香處
시를 음미하노라니 뼛속까지 맑아지네 / 咀嚼詩聯徹骨淸

한 조각 맑은 얼음과 수정이 / 一段淸氷與水精
미세한 물질 결성하여 투명체 이뤘는데 / 結成微質似空明
좋은 시구 읊조리며 처음 맛보는 곳에 / 高歌白雪初嘗處
달빛 아래 금술잔 또한 맑기도 하여라 / 月下金樽更至淸

여주인지 수정인지 분간할 수도 없는데 / 未辨驪珠與水精
패옥처럼 드리운 걸 밝은 님께 바치나니 / 綴旒環佩奉王明
누가 알랴 높은 구렁에 넝쿨 길게 뻗어 / 誰知絶壑拖長蔓
원숭이 매달리면 풍격 매우 청신한 것을 / 掛得獼猴格甚淸

이것이 수정인가 수정이 아니란 말인가 / 是水精耶非水精
동실동실 낱낱이 어찌 그리 투명도 한고 / 團圓箇箇更通明
홀로 중화의 맛 간직한 게 유독 예뻐라 / 最憐獨得中和味
빙벽은 한갓 청고함만 과시할 뿐이라네 /
氷蘗徒誇苦與淸

일백하고도 사십 개의 수정 포도가 / 一百四十箇水精
손바닥 안에 뒹굴으니 두 눈이 환해지네 / 掌中圓轉眼中明
목옹의 마음속에 방금 띠풀이 찼다가 / 牧翁心地今茅塞
이걸 대하니 한 점 맑은 기가 문득 생기네 / 對此俄生一點淸

 

[주D-001]숲 …… 빛나는데 : 급 암(及菴)은 고려 말기의 학자로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른 민사평(閔思平)의 호인데, 그의 〈총지사차운(摠智寺次韻)〉 시에골짝의 소나무 회나무는 푸른 용 껍질 같고, 숲 아래 포도는 검은 수정과 같구나.[洞中松檜蒼龍甲 林下葡萄黑水晶]” 한 데서 온 말이다. ()은 정()과 통용한다. 《及菴集卷3
[주D-002]빙벽(氷蘗)은 …… 뿐이라네 :
얼음은 깨끗하고 황벽나무는 맛이 쓰므로, 청고(淸苦)한 생활을 잘 감내하는 사람을 일러 빙청 벽고(氷淸蘗苦)라 칭하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마음속에 …… 찼다가 :
맹 자(孟子)가 고자(高子)에게 이르기를산중 오솔길의 사람 다니는 곳이 다니는 동안에는 언뜻 길을 이루었다가 잠시만 다니지 않으면 띠풀이 꽉 차게 되나니, 지금 그대의 마음에 띠풀이 꽉 찼구나.[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則茅塞之矣 今茅塞子之心矣]” 한 데서 온 말인데, 띠풀이 꽉 찼다는 것은 선심(善心)이 막혀서 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孟子 盡心下

군자(君子)

 


군자는 본디 무리를 짓지 않나니 / 君子本不黨
짜고 소금과 매실을 가지고 / 鹽梅異鹹酸
조화시켜 음식의 맛을 이루면 / 調和成味

역아
와도 같이 먹을 수 있거니와 / 易牙可與

혹 한 가지라도 서로 반대가 되면 / 使或一相反
어찌 한갓 속만 상할 뿐이겠는가 / 豈徒傷肺肝
음양이 영장인 인간을 만들어서 / 陰陽成精粹
하나도 빠뜨림 없이 양육하는지라 / 養育無留殘
서로 배반하기도 돕기도 하거니와 / 相乖亦相濟
인간 아닌 건 행여 간예 못 하고말고 / 非類罔或干
안으로 내 한 몸을 반성해볼진대 / 反觀一身內
맘이 넓어야 몸도 서태해지나니 / 心廣體仍胖
어찌해야 천하에 미칠 수 있을꼬 / 何以及天下
천자에게는 육경이 있지 않은가 / 天子有六官

 

[주D-001]짜고 …… 이루면 : 양념을 잘 조화시켜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것을 가지고 나라를 이상적으로 잘 다스리는 데에 비유한 말이다. 《書經 說命下》
[주D-002]역아(易牙) :
옛날에 음식의 맛을 잘 알았던 사람인데, 그가 조리한 음식은 천하 사람이 다 좋게 여겼다고 한다.

가을비

 


새벽녘 낙숫물 주룩주룩 내리는 소리에 / 向曉浪浪簷溜聲
병든 내 두 귀는 청쾌함을 감당 못 하겠네 / 病夫雙耳不勝淸
모진 더위 씻어 내니 술은 처음 깨고요 / 掃除酷熱酒初醒
서늘함 미리 빌리니 시가 문득 나오네 / 探借嫩涼詩忽生
가을 수확은 늙은 농부 뜻에 어긋나련만 / 秋穫殊乖老農意
밤중의 담화는 옛 친구 생각이 나는구나 / 夜談偏動舊游情
어찌 장사가 은하수 끌어올 있으랴 / 何須壯士天河挽
빗물로도 갑병 씻기에 절로 넉넉한걸 / 自足滂洗甲兵


사면의 낙숫물 소리에 천둥소리 겹치니 / 簷聲四面雜雷聲
마음만 맑을 뿐 아니라 눈 또한 맑아지네 / 不獨心淸眼亦淸
광함은 영귀하고파 비파를 쟁그랑 놓고 /
狂欲詠歸鏗爾舍
기는 집양으로 좇아 호연이 생기는구나 /
氣從集養浩然生
등불 밑 십 년 독서는 이미 묵은 자취건만 / 十年燈火是陳跡
한 조각 강산이야 세속의 정이 없고말고 / 一片江山無俗情
가을바람이 장차 불어오기를 기다리며 / 待取西風吹去了
앉아서 이를 문지르며 병사나 담론하련다 /
且須捫蝨坐談兵

 

[주D-001]어찌 …… 넉넉한걸 : 두보(杜甫)의 〈세병행(洗兵行)〉에어찌하면 장사가 은하수를 끌어와서, 갑병을 깨끗이 씻어 영원히 쓰지 않을꼬.[安得壯士挽天河淨洗甲兵長不用]”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광(狂)함은 …… 놓고 :
광 은 뜻만 크고 행실이 뜻에 걸맞지 않음을 가리킨 것으로, 공자(孔子)가 일찍이 증점(曾點)을 광이라 칭했었는데, 공자가 또 일찍이 여러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증점이 쟁그랑 소리와 함께 타던 비파를 자리에 놓고 일어나서 대답하기를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5, 6,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리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子路》
[주D-003]기(氣)는 …… 생기는구나 :
맹 자(孟子)가 일찍이 공손추(公孫丑)의 물음에 답하기를나는 천하의 말을 알아들으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르노라.[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하였고, 또 이르기를호연지기는 의를 모음으로써 생기는 것이라, 의가 갑자기 엄습하여 그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是集義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上》
[주D-004]앉아서 …… 담론하련다 :
동 진(東晉)의 대장(大將) 환온(桓溫)이 관중(關中)을 쳐들어갔을 때, 당시 곤궁한 소년 왕맹(王猛)이 환온을 찾아가 알현한 자리에서 한편으로는 천하의 일을 여유로이 담론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를 문지르면서 방약무인(傍若無人)한 기백을 보였던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단지 국사를 담론하는 데 비유한 것이다.

7 15일에 짓다.

 


승려가 하를 풀고 석장을 날리듯 하여 /
浮屠解夏錫如飛
수많은 산천을 그림자 짝하여 떠돌아라 / 萬水千山携影歸
다만 겨울을 지낼 호구책 그것 때문에 / 只爲過冬糊口計
매양 흙먼지로 선의를 적시게 하누나 / 每敎塵土汚禪衣

해마다 안거에 들어 수행할 수 있는 건 / 年年結夏得安居
민간에서 얻어 온 양식이 넉넉한 때문이라 / 乞米民間儘有餘
서풍이 비를 불어가길 앉아 기다렸다가 / 坐到西風吹雨去
병석 휴대하고 민간 향하여 가겠지 / 又携甁錫向閻閭

시중 불량배들이 서로 재주 과시하느라 / 市中惡少自相誇
긴 몸을 거꾸로 던져 삼대 꺾듯 하더니 / 躑倒長身似折麻
일찍이 봉은사 마당에서 이걸 봤었는데 / 曾向奉恩庭下見
백발의 오늘엔 눈이 어른거려 못 보겠네 / 白頭今日眼昏花

 

[주D-001]승려가 …… 하여 : ()를 푼다는 것은 승려가 음력 4 16일부터 7 15일까지 90일 동안의 하안거(夏安居)를 끝내고 나오는 것을 가리키는데, 안거(安居)는 출입(出入)을 금하고 한 곳에 모여 수행(修行)을 하는 제도이다. 10 16일부터 정월 15일까지 90일 동안의 안거를 동안거(冬安居)라 한다. 석장(錫杖)을 날린다는 것은 승려가 각지를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주D-002]병석(甁錫) :
승려가 돌아다닐 때에 반드시 휴대하는 물항아리와 석장을 말한다.

16일은 순정왕태후(順正王太后) 한씨(韓氏)의 기단(忌旦)이라 왕륜사(王輪寺)에서 재()를 올리게 되었으므로, 도평의사(都評議使)의 공함(公緘)을 받들어 공양(供養)의 비용을 도와서 보태 주고 한 수를 읊어 이루다.

 


아득한 현조가 상나라를 탄생시키니 /
芒芒玄鳥降生商
아들 낳던 당년에 찬란한 빛이 있었네 /
弧矢當年爛有光
백성은 천정의 배필인 줄을 모르련만 / 百姓不知天作合
일인에 경복 있어 나라 길이 태평하리 /
一人有慶國無疆
기자의 남긴 강토는 산하가 웅장하거니 / 箕封遺業山河壯
송악산의 명당은 역수가 무궁하고말고 / 松岳明堂曆數長
부처님 삼매의 힘에 머리 조아리노니 / 稽首梵雄三昧力
성상의 수를 하늘에 짝하도록 붙드소서 / 扶持聖壽配穹蒼

 

[주D-001]아득한 …… 탄생시키니 : 상고 시대 유융씨()의 딸 적간(狄簡)이 제곡(帝嚳)의 비()가 되어 일찍이 목욕을 하다가 현조(玄鳥)의 알을 보고는 이를 삼키고 나서 임신하여 상()나라의 시조(始祖)인 설()을 낳았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주D-002]아들 …… 있었네 :
예 로부터 제왕(帝王)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상서로운 징조가 있었는바, 예컨대 부인(夫人)이 태양이나 달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꾼다든가, 또는 붉은 놀이 궁전을 감싼다든가, 신광(神光)이 방 안을 환히 비춘다든가 하는 등의 일이 있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천정(天定) :
《시 경(詩經)》 대아(大雅) 대명(大明)문왕의 초년에, 하늘이 짝을 지으시니, 그녀의 집은 흡수 북녘, 위수 가에 있었는데, 문왕께서 혼기가 차매, 태사 아가씨 보냈도다.[文王初載 天作之合 在洽之陽 在渭之
文王嘉止 大邦有子]”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일인(一人)에 …… 태평하리 :
일 인은 임금 한 사람을 가리킨 것으로, 《서경(書經)》 여형(呂刑)오직 다섯 가지 형벌을 삼가서, 세 가지 덕을 이룰지어다. 임금 한 사람에게 경복이 있으면, 수많은 백성이 이를 힘입게 되어, 그 태평함이 영원해지리라.[惟敬五刑 以成三德 一人有慶 兆民賴之 其寧惟永]” 한 데서 온 말이다.

홀로 앉아서 읊다.

 


적적한 텅 빈 집에 해는 길기만 하여라 / 寂寂虛堂白晝長
천지간에 한 조각 단잠 자는 고장일세 / 乾坤一片黑甛鄕
두어 소리 새 울고 와상엔 바람이 솔솔 / 數聲啼鳥牀風細
유연한 신세가 태고 시대 접한 듯하네 / 身世悠然墮渺茫

맑고 텅 빈 이 마음 팔면으로 통하여라 / 淸淨虛空八面通
본래 한 물건도 없어 영롱키만 하거니 / 本無一物儘玲瓏
육신을 가지고 서로 장애가 되지 말라 / 莫將形質還相礙
예부터 머리 베기가 바람 베기 같다오 / 斬首由來似斬風

눈 뜨고 찬찬히 보매 한 물건도 없어라 / 瞪目看來一物無
조각구름 외론 새만 허공에 있을 뿐이네 / 片雲孤鳥在天衢
분양
은 본디 너그러운 도량이 있었으니 / 湓陽也有恢恢地
만고 천지에 우뚝한 대장부였네그려 / 萬古乾坤大丈夫

일엽편주에 병든 이 몸 싣고만 싶어라 / 一葉扁舟著病軀
어찌 두 다리로 진흙탕을 밟으려 하랴 / 肯將雙脚踏泥塗
헛되이 삼명 받음은 근거할 데 없거니 / 虛中三命茫無據
오호를 향해 훌쩍 떠난
배우고 싶네 / 欲學飄然向五湖

 

[주D-001]분양(湓陽) : ()나라 때 명장(名將)으로 벼슬이 중서령(中書令)에 이르고 분양군왕(汾陽郡王)에 봉해진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키는데, ()은 분()과 통용한다. 곽자의는 특히 부귀공명을 극도로 누렸는데, 생전(生前)의 복록이 사후(死後)에도 끊이지 않았다.
[주D-002]삼명(三命) :
소국(小國)의 경() 지위를 말한다.
[주D-003]오호(五湖)를 …… :
춘추 시대 월()나라 대부(大夫) 범려(范蠡)가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위해 오()나라를 멸망시켜 공()을 이루고는 바로 물러나 일엽편주를 타고 오호에 떠서 숨어 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나잔자(懶殘子)를 방문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판삼사를 알현하고 / 早興上謁判三司
수레 옮겨 한가히 우화사를 방문하니 / 移駕閑尋芋火師
구슬 같은 빗방울은 대자리에 뿌리고 / 雨似跳珠灑淸簟
일산 같은 연잎은 못물 위에 가득하네 / 荷如傾蓋滿平池
스님은 복지에 몸 두어 세상을 잊었는데 / 致身福地將忘世
나는 위도에서 실각해 시국에 놀란다오 / 失脚危途政駭時
사서 도연명 부르는
옛날 같은데 / 酤酒引陶猶昔日
소년 시절 왔던 곳에 흰 귀밑털 드리웠네 / 少年行處鬢垂絲

 

[주D-001]우화사(芋火師) : ()나라 때 형악사(衡嶽寺)의 고승(高僧) 명찬 선사(明瓚禪師)가 성격이 게을러서 남이 먹고 남은 음식만 먹었으므로 나잔(懶殘)이라 호칭했는데, 이필(李泌)이 일찍이 형악사에서 글을 읽을 때 한번은 밤중에 나잔 선사를 방문했더니, 그때 마침 나잔 선사가 화롯불을 뒤적여서 구운 토란을 꺼내 먹고 있었다는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고려 말기 천태(天台)의 스님 또한 호가 나잔이었기 때문에 그를 당나라 나잔 선사에 비유하여 이렇게 일컬은 것이다.
[주D-002]술 …… :
동 진(東晉)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高僧)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일찍이 도연명(陶淵明)에게 술을 마시도록 허락한다고 하여 도연명이 동림사를 찾아갔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선승(禪僧)과 유자(儒者)가 서로 어울리는 것을 의미한다.

느낌이 있어 읊다.

 


전신
의 뫼고 흩어짐이 어찌 괜한 일이랴 / 錢神聚散豈徒然
예부터 가득참 꺼려 권력을 피했다네 /
忌滿由來善避權
기묘년 이래 눈으로 보기 시작하여 / 以來雙眼在
백발에까지 우뚝 앉아 마음 졸였어라 / 白頭危坐一心煎

석숭의 납촉
은 지금 그 어디에 있느뇨 / 石崇蠟炬今安在
원재의 호초
는 세상에 전하는 바로세 / 元載胡椒世所傳
단표에 넉넉한 낙이 있음을 누가 알랴 / 誰識簞瓢有餘樂
병중에 반성하며 안회 어짊 감탄하노라 / 病中三省嘆回賢

 

[주D-001]전신(錢神) : 금전(金錢)의 힘은 신물(神物)과 같다 하여 돈을 일컫는 말인데, ()나라 때 노포(魯褒)가 일찍이 세인(世人)들의 탐비(貪鄙)한 정태를 풍자하여 〈전신론(錢神論)〉을 지었었다.
[주D-002]예부터 …… 피했다네 :
구 양수(歐陽脩)의 〈논두연범중엄등파정사장(論杜衍范仲淹等罷政事狀)〉에 의하면신이 삼가 생각건대, 범중엄 등은 양부에 들어온 이래로 그들이 권력을 전단한 흔적은 보지 못했고 권력의 자리를 잘 피하는 것만 보았을 뿐입니다.[臣竊思仲淹等自入兩府以來 不見其專權之迹 而但見其善避權也]” 하였다.
[주D-003]기묘년 …… 졸였어라 :
기 묘년은 고려 충혜왕(忠惠王) 복위(復位) 원년이자 저자의 나이 12세가 되던 1339년으로서 이때부터 국가의 다사다난한 일들을 저자가 다 지켜보면서 매우 걱정해왔음을 이른 말이다. 특히 기묘년에는 정승(政丞) 조적(
)이 심왕(瀋王) ()와 모역(謀逆)했다가 복주(伏誅)되었고, 충혜왕은 황음무도한 짓을 극도로 자행하다가 마침내 원사(元使) 두린(頭麟) 등에 의해 원나라로 잡혀간 일 등이 있었다.
[주D-004]석숭(石崇) 납촉(蠟燭) :
납촉은 밀초를 가리키는데, ()나라 때 부호(富豪)였던 석숭은 사치(奢侈)를 매우 숭상하여 심지어는 밀초를 밥 짓는 땔감으로 쓰기까지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원재(元載) 호초(胡椒) :
()나라 때 중서시랑(中書侍郞) 원재는 탐관(貪官)으로서 뇌물을 받은 것이 하도 많아 그가 사사(賜死)된 뒤 그의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할 적에 호초가 무려 800()이나 나왔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단표(簞瓢)에 …… 감탄하노라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밥과 한 표주박 음료수로 누추한 시골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근심을 감당하지 못하는데,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고치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一簞食 一瓢飮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차운하여 이 둔촌(李遁村)에게 받들어 부치다.

 


절뚝 걸음은 지금 더욱 심하거니와 / 蹇步今猶甚
묵은 병도 아직 다 낫지 않았다네 /
未盡平
강산은 괜히 한번 바라볼 뿐이지만 / 江山空一望
풍월은 곧 삼생을 항상 존재하겠지 / 風月是三生
세상 어지러워 맘은 더욱 괴로우나 / 世亂心逾苦
가을 서늘해 곡식은 절로 여물었네 / 秋涼物自成
나물국에 향기로운 쌀밥을 먹으니 / 菜羹調玉粒
친구의 정이 몹시 고맙기도 하여라 / 深荷故人情

 

어 제 이자안(李子安)과 권가원(權可遠)이 북방(北方)에 보낼 표장(表章)을 지어 가지고 와서 나에게 윤색(潤色)해 주기를 청했는데, 내가 앓은 나머지 문사(文思)가 꽉 막혀버렸는지라, 한 수를 읊어 이루어서 답답한 심정을 풀고자 하는 바이다.

 


두 사람의 문장은 모두가 빼어난데 / 二子文章皆秀發
유독 나의 학술은 본디 거칠었거니와 / 獨吾學術本荒疎
누가 알았으랴 저들은 뭇 서책 상고한 뒤요 / 誰知考索群書後
나는 수년을 앓은 나머지 이런 일 만날 줄을 / 自値呻吟數載餘
소년 시절 부순 자못 군박했지만 / 少日斲窓殊窘迫
늘그막에 감관하기는 한가롭기만 하네 / 老年監館似容與
토론하고 윤색할
능력 없어 한스러워라 / 討論潤色恨無力
천명과 인심이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 天命人心安在歟

 

[주D-001] 부순 건[斲窓] : ()나라 때 중서 사인(中書舍人) 양도(陽滔)가 제사(制詞)를 초()하라고 재촉하는 명을 받고 제사를 초하려 할 적에 마침 서고(書庫)의 열쇠를 가진 영사(令史)가 출타 중이어서 제사의 구본(舊本)을 상고할 수 없게 되자, 이에 서고의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구본을 찾아 상고하여 제사를 초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문재(文才)의 졸렬함을 의미한다.
[주D-002]감관(監館) :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를 말한다.
[주D-003]토론하고 윤색할 :
공 자가 이르기를사명을 만드는 데 있어 비심이 이를 초하여 짓고, 세숙이 이를 토론하고, 행인 자우가 이를 수식하고, 동리 자산이 이를 윤색하였다.[爲命 裨諶草創之 世叔討論之 行人子羽修飾之 東里子産潤色之]” 한 데서 온 말인데, 사명(辭命)이란 바로 외국(外國)에 응대(應對)하는 말을 가리킨다. 《論語 憲問》

대재(大哉)

 


한 조각 공중의 땅이 / 一片空中地
절로 때에 미쳐 추이하나니 / 推移自趁時
동서는 나뉘어 한계가 있거니와 / 東西分有限
남북은 이르는 기약이 있고말고 / 南北至爲期
바다새는 날아서 서로 따르는데 / 海鳥飛相及
뱃사공은 누워서 아랑곳 않누나 / 舟人臥不知
위대하여라 사물 관찰하는 곳에 / 大哉觀物處
누구를 좇아 이것을 상확해 볼꼬 / 商確欲從誰

 

영월(寧越)의 아우가 향()과 포()를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멀리 불어온 향기에 문득 놀랐다가 / 忽訝香吹遠
이로 끊기 어려움을 되레 걱정하네 / 還憂齒決難
알괘라 그대는 정사가 한가하여 / 知君政閒暇
아직도 곤궁한 나를 기억했겠지 / 記我尙辛酸
비 그치니 산빛은 수려하고 / 雨罷山光秀
가을 깊으니 달빛은 차가운데 / 秋深月色寒
맘 맑히고 조용히 앉아 읊조리며 / 淸心空坐嘯
의관 정제도 하려 하지 않는다오 / 不肯整衣冠

 

즉사(卽事)

 


서봉의 깊은 숲에선 비둘기가 울어대고 / 西峯深樹錦鳩鳴
아침엔 비가 올 듯하다 또 언뜻 개었네 / 雨氣朝來又乍晴
병은 많아 해마다 내 늙기를 재촉하지만 / 多病比年催我老
태평성대는 왕의 명철함을 힘입었구려 / 太平盛世荷王明
외람히 한림이 되어선 뭇 선비 뫼셨으나 / 叨居翰院陪群彦
공연히 유관을 말하다 신세를 그르쳤네 /
謾說儒冠誤一身
백발이라 사직하고 떠남이 마땅커니와 / 白髮政宜還笏去
게다가 여흥의 산수는 너무도 맑음에랴 / 驪興山水有餘淸

 

[주D-001]공연히 …… 그르쳤네 : 유관(儒冠)도 선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두보(杜甫)의 〈증위좌승(贈韋左丞)〉 시에귀족들은 굶어 죽는 일 없지만, 선비는 신세 그르친 이 많다네.[紈袴不餓死 儒冠多誤身]” 한 데서 온 말이다.

조 용히 앉아서 듣자니, 고양이와 개가 막 서로 싸우려 하는 차에 하녀가 마침 그것을 보고 구해 주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말하기를개나 고양이가 모두 사람이 기르는 동물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서로 친하지 않단 말인가.’ 하고는 묘구투(猫狗鬪) 한 편을 읊어 얻다.

 


개는 서방 금화의 기운을 타고났기에 / 狗稟西方金火氣
몸이 건위에 있으니 어찌 그리 굳센고 / 身居乾位何剛毅
고양이는 범 같으면서도 몹시 연약하지만 / 猫雖如虎甚柔脆
악을 미워할 땐 고슴도치처럼 털을 세우네 / 嫉惡豎毛奮如蝟
문 지켜 도둑 막아 전재를 풍부케도 하고 / 守門司盜
錢財
창고 맡아 쥐 잡아서 미곡을 보호도 해라 / 管庫捕鼠完廩餼
공을 논하자면 한집의 난형난제이거니 / 論功一家難弟兄
상부상조의 처지에 왜 서로 불평하는고 / 相濟相須胡不平
개가 떠나면 응당 도둑이 욕심을 부릴 거고 / 狗去也盜肆其欲
고양이가 떠나면 응당 쥐가 판을 칠 터이니 / 猫去也鼠縱其情
주인은 앉았어도 불안하고 잠도 못 이루어 / 主人坐不安睡不成
혈기가 쇠해지면 어떻게 오래 살 수 있으랴 / 榮衛消耗何以延其生
개여 고양이여 어느 때나 서로 합심할런고 / 狗兮猫兮曷日能同心
백발의 목은이 방금 조용히 읊조리노라니 / 白頭牧隱方沈吟
선선한 긴 바람이 높은 숲에 불어오누나 / 長風颯颯吹高林

 

즉사(卽事)

 


세상에 처한 몸은 부쳐 삶 같은데 / 處世身如寄
시국에 상심함은 꿈에도 걱정일세 / 傷時夢亦憂
돼지는 아직 보내 받지만 /
蒸豚猶見饋
죽은 말이야 어찌 구할 줄을 알랴 /
死馬豈知求
밤이 고요하니 달빛은 문에 나직하고 / 夜靜月低戶
가을이 맑으니 바람은 누에 가득하네 / 秋晴風滿樓
병이 들어 심심 소일하는 곳에 / 病中消遣處
시골 흥취가 참으로 한가롭구나 / 野興儘悠悠

 

[주D-001]찐 …… 받지만 : 선 비를 대접함에 있어 성심으로 하지 않고 형식만 갖추는 것을 뜻한다. ()에 의하면, 대부(大夫)가 사()에게 선물을 보냈을 경우, 사가 집에서 그 선물을 받지 못했으면 반드시 대부의 문에 가서 절을 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나라 대부 양화(陽貨)가 공자(孔子)를 자기 집으로 오게 하고 싶으나 무례하다는 말 듣기를 꺼린 나머지, 사람을 시켜 공자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공자에게 찐 돼지를 보냈던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下》
[주D-002]죽은 …… 알랴 :
전 국 시대 연 소왕(燕昭王)이 현사(賢士)를 구하려고 할 때, 곽외(郭隗)가 소왕에게, 옛날 어느 임금이 천금(千金)을 현상(懸賞)으로 천리마(千里馬)를 구했다가 3년 뒤에야 죽은 말 한 마리의 뼈를 오백금(五百金)에 사들여왔더니, 그 후로 1년도 채 안 가서 천리마 3필을 얻게 되었다는 전설을 말해 준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성심으로 현사를 구하기만 하면 현사들이 절로 오게 됨을 의미한다. 《戰國策 燕策》

즉사(卽事)

 


엷은 구름 맑은 새벽 햇빛은 써늘한데 / 薄雲淸曉日蒼涼
천지간에 홀로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 獨立乾坤顧四方
마음 근원 형체에 얽맴이 두려울 뿐이요 / 只恐心源昧形影
삼라만상 광휘 발함은 당연히 알다마다 / 須知物像動輝光
베개 가득 귀뚤 소리엔 꿈결이 썰렁하고 / 蛩聲滿枕夢魂冷
주렴 밖 제비 지저귐엔 고향이 그리워라 / 燕語隔簾歸意長
본래 가을바람은 연례 행사일 뿐이거늘 / 自是秋風年例耳
어이해 시객의 창자는 이리도 끓는다냐 / 奈何騷客熱中腸

 

민중옥(閔仲玉)이 연도(燕都)의 태학(太學)으로 돌아갈 때 얻은 시권(詩卷)에 발문(跋文)을 쓰고, 인하여 세 수를 짓다.

 


국자감의 하 많은 오백 인 유생 가운데 / 璧水侁侁五百生
동향인으론 설청경이 있을 뿐이었으니 / 同鄕只有雪淸卿
그 당년에 가락과 여흥의 두 수재가 / 當年駕洛驪興秀
반독
으로 능히 성명을 말할 수 있었네 / 伴讀猶能說姓名

그때 명단(名單)이 있었는바, 반독하는 이로는 능히 이 두 사람을 말할 수 있었다.


국자감의 풍물이 황제의 신령을 펼칠 제 / 庠風物暢皇靈
세상에 빛난 문장은 육경과도 같았는데 / 照世文章似六經
한스러운 건 중도에 다시 골짝을 들어와 / 自恨半途還入谷
중국에게 증청을 쓰지 못하게 함이로세 /
不敎中國用曾靑

하남 막부엔 수많은 인재들이 모였는데 / 河南幕府聚群英
참모로는 국자감 유생이 더욱 많았었네 / 借箸尤多國子生
백발로 해동에서 이나 더듬고 있는 곳에 / 白髮海東捫蝨處
혹시나 두 눈으로 태평을 보게 해줄는지 / 儻敎雙眼見昇平

 

[주C-001]민중옥(閔仲玉) : 중 옥은 민선(閔璿)의 자이다. 민선은 첨의 정승(僉議政丞) 민지(閔漬)의 손자이며 찬성사(贊成事) 민상정(閔祥正)의 아들로 일찍이 원()나라 국자감(國子監)에 입학하여 수업(受業)을 하다가 잠시 귀국하여 성친(省親)을 하고 다시 돌아갔다. 이때에 거유(鉅儒)들이 그를 보내면서 지어 준 시를 모은 것이 바로 환학시권(還學詩卷)인데, 저자가 일찍이 이 시권에 발문(跋文)을 썼던 것이다. 《목은문고》 제13권 〈중옥(仲玉)의 환학시권(還學詩卷)에 붙인 발문〉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주D-001]설청경(雪淸卿) :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자세하지 않으나, 아래 구절의 가락(駕洛)과 여흥(驪興)의 수재(秀才)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가락은 김해(金海)의 고호인 만큼 아마도 그 당시 김해 사람으로서 민선과 함께 국자감에서 수업을 했던 사람인 듯하다.
[주D-002]반독(伴讀) :
종실(宗室)의 자제(子弟)들에게 독서(讀書)를 지도하던 직명(職名)이다.
[주D-003]중도에 …… 들어와 :
저 자가 일찍이 원()나라 국자감(國子監)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다가 뒤에 부친상(父親喪)을 당하여 귀국(歸國)한 이후로는 다시 국자감에 들어가 수업하지 못하게 된 것을 이른 말이다. 골짝을 들어왔다는 것은 곧 맹자(孟子)가 일찍이 대유(大儒)인 진량(陳良)의 제자 진상(陳相)이 자기 스승의 도를 배반하고 만이(蠻夷)인 허행(許行)의 도를 배우는 것을 보고 그를 책망하는 말 중에 《시경》 소아(小雅) 벌목(伐木)깊은 골짝으로부터 나와서, 높은 나무로 옮겨 가도다.[出自幽谷 遷于喬木]”라는 시구를 인용하여나는 깊은 골짝으로부터 나와서 높은 나무로 옮겨간다는 말은 들었어도, 높은 나무에서 내려가 깊은 골짝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吾聞出於幽谷遷于喬木者 未聞下喬木而入於幽谷者]”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학문 같은 것이 진취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孟子 滕文公上》
[주D-004]중국에게 …… 함이로세 :
증 청(曾靑)은 회구(繪具)로 쓰이는 동청(銅靑)을 가리키는데, 《순자(荀子)》 왕제(王制)남해에는 우핵과 치혁과 증청과 단사가 있으나, 중국에서 그것을 얻어 재물로 삼는다.[南海則有羽翮齒革曾靑丹砂焉 然而中國得而財之]”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중국에 쓰임을 받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주D-005]이나 …… 곳에 :
동 진(東晉)의 대장(大將) 환온(桓溫)이 관중(關中)을 쳐들어갔을 때, 당시 곤궁한 소년 왕맹(王猛)이 환온을 찾아가 알현한 자리에서 한편으로는 천하의 일을 여유로이 담론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를 문지르면서 방약무인(傍若無人)한 기백을 보였던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단지 국사를 담론하는 데 비유한 것이다.

새벽에 읊다.

 


수일 동안 읊어봐도 좋은 시구 없으니 / 數日吟來好句無
다만 몸이 강호에 있지 않기 때문일세 / 只緣身不在江湖
높은 관직 생활은 한적한 게 아니거니와 / 桓圭袞冕非閑適
좋은 술과 안주는 공연한 연락일 뿐이네 / 旨酒嘉肴謾讌娛
황학루는 비었으나 시는 아직 건재한데 /
黃鶴樓空詩尙健
백구파는 멀어라 계획은 그리 먼고 /
白鷗波遠計何迂
마음속의 한 점 임금을 걱정하는 곳에 / 心中一點憂君處
당당한 대장부임을 스스로 허여하노라 / 自許堂堂大丈夫

내 마음 점검하니 언뜻 있다 없다 하건만 / 點檢吾心乍有無
맑기는 고정 같고 넓기는 강호와도 같네 / 湛如古井闊如湖
어찌 속물이 흥취를 깨뜨리게 할까 보냐 /
寧容俗物能相敗
반가운 손과 함께 즐기기를 자신하노라 / 自信嘉賓可與娛
이전이라 요천은 예전대로 높고 크거니와 /
二典堯天依舊大
칠편이라 추국은 지금까지 오활키만 하네 /
七篇鄒國至今迂
그 누가 알리요 송악산 용수산 아래에 / 誰知鵠嶺龍巒下
감히 현인 바라는 한 늙은이가 있는 줄을 / 敢爾希賢一老夫

불씨 노씨의 적멸과 허무를 잘 알면서도 / 明知寂滅與虛無
또 이 몸 일으켜 오호로 떠나지 않노니 / 又不將身向五湖
공명을 시종 누림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 終始功名天所賦
의리는 평생 동안 날로 즐길 수가 있다네 / 平生義理日爲娛
높이 나는 새는 너른 천지를 안 겁내거니와 / 翮雲不怕乾坤闊
편자 말굽은 먼 길 가기에 어찌 어려울쏜가 / 蹄鐵何妨道里迂
흥이 나면 곧장 광대한 경지에 이르나니 / 發興直趨光大域
증점이 바로 광부였던
문득 가련하구나 / 却憐曾點是狂夫

 

[주D-001]황학루(黃鶴樓)는 …… 건재한데 : ()나라 최호(崔顥)의 〈황학루〉 시에옛사람이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났는지라, 이곳에는 공연히 황학루만 남아 있네. 황학이 한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흰 구름만 천재에 부질없이 유유하구나.……[昔人已乘黃鶴去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주D-002]백구파(白鷗波)는 …… 먼고 :
백구파는 번득이는 물결을 흰 갈매기에 비유한 것으로, 강호(江湖)에 은퇴하지 못하는 것을 탄식한 말이다.
[주D-003]어찌 …… 보냐 :
()나라 때 왕융(王戎)이 매양 완적(阮籍) 등과 죽림(竹林)에서 종유(從遊)할 적에 왕융이 한번은 맨 늦게 오자, 완적이 말하기를속물이 와서 다시 사람의 흥취를 깨뜨린다.”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왕융이 당시 사람들에게 세속을 초월하지 못했다고 일컬어졌기 때문이었다.
[주D-004]이전(二典)이라 …… 크거니와 :
이 전은 곧 요() 임금의 사적이 적혀 있는 《서경(書經)》의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을 합칭한 말인데,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크도다, 요 임금의 임금 되심이여. 우뚝하도다, 오직 하늘이 높고 크거늘 요 임금만이 그를 본받으시니, 하도 넓고 멀어서 백성들이 그 덕을 이름할 수 없도다.[大哉堯之爲君也 巍巍乎唯天爲大 唯堯則之 蕩蕩乎民無能名焉]”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泰伯》
[주D-005]칠편(七篇)이라 …… 하네 :
맹 자(孟子)가 일찍이 제 선왕(齊宣王)에게서 쓰임을 받지 못하고, 다시 양 혜왕(梁惠王)에게 갔으나 혜왕 또한 맹자의 말을 실천할 수 없는지라, 맹자의 말을 오활하여 실정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여기고 써주지 않으므로, 맹자가 마침내 물러가서 제자인 만장(萬章) 등과 함께 시서(詩書)를 정리하고 공자의 뜻을 서술하여 칠편의 《맹자》를 저술한 것을 이른 말이다. 추국(鄒國)은 맹자의 출생지인 추나라를 가리킨다. 《史記 卷74 孟子荀卿列傳》
[주D-006]현인 바라는[希賢] :
주돈이(周敦
)의 《통서(通書)》에성인은 하늘이 되기를 희망하고, 현인은 성인이 되기를 희망하고, 선비는 현인이 되기를 희망한다.[聖希天 賢希聖 士希賢]”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선비를 의미한다.
[주D-007]오호(五湖) :
춘추 시대 월()나라 대부(大夫) 범려(范蠡)가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위해 오()나라를 멸망시켜 공()을 이루고는 바로 물러나 숨어버린 곳이다.
[주D-008]증점(曾點)이 …… :
광 부(狂夫)는 미치광이란 뜻으로 뜻이 매우 커서 행실이 뜻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이른 말인데, 공자(孔子)가 이르기를중도의 사람을 얻어서 함께하지 못할진댄 반드시 광자와 견자로 하겠다.[不得中行而與之必也狂狷乎]”고 하였는바, 뜻이 매우 높았던 증점이 바로 이 광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한 말이다. 《論語 子路》

감악 선사(紺岳禪師)의 시권(詩卷)에 제하다.

 


골몰한 이는 홍진 속의 나그네요 / 汨沒紅塵客
정처 없는 이는 감악의 선사로다 / 飄搖紺岳師
예로부터 작별하긴 어려운 건데 / 由來難作別
우린 서로 몰랐던 게 다행이로세 / 幸是不相知
학이 잠든 소나무는 차가웁고요 / 宿鶴松枝冷
반딧불 앉은 혜초는 시들었으니 / 流螢蕙葉衰
당에 올라 예불을 마치고 나거든 / 上堂拈祝畢
조용히 앉아 내 시를 읽을지어다 / 靜坐讀吾詩

 

승부탄(乘桴嘆)

 


공자가 황황함이여
하늘 뜻 비참하여라 / 宣尼遑遑天意悲
기린이 나와 잡히니 나올 때가 아니었네 /
麟出見獲非其時
사방을 주류하매 자리가 다습질 못했는데 /
東游西歷席不暖
삼천 칠십
은 공연히 따르기만 하였네 / 三千七十空追隨
광에서 두려웠고 위에서 쫓겨나도
자득하여 / 畏匡削衛亦自得
땅의 봉인이 능히 탄식을 하기도 했지 /
儀封有人能齎咨
돌아와서는 잡고 노사를 점검하여 / 歸來把筆檢魯史
만세 법칙 세웠거니 내가 어찌 쇠했으랴 / 立萬世法吾何衰

상사를 섭행할 이미 역량 보였으니 /
攝行相事已可見
가사 제왕이 되었더라면 그 어떠했겠는가 / 使之得位如何其
당시에 탄식이 중유에게 언급됐으니 / 當時一嘆及仲由
용맹은 학문에 있어 농기구 같은 거로세 / 勇也於學爲鎡基
나는 지금 뜻 만족고 자리도 매우 높은데 / 我今志滿位甚高
수년 동안 병치레에 백발이 성성해져서 / 病中數年生二毛
혼미하고 나약한 데다 정력마저 쇠한 채 / 昏迷懶弱欠精力
부질없이 서연에서 요순의 도 진술하노니 / 謾向書筵陳舜堯
우리 임금 왕도 이룸은 천의에 달렸지만 / 王成我后在天意
노신의 충정이야 어찌 그만둘 수 있으랴 / 老臣血懇何能已
앞으로 의당 학문 이뤄 태학에 들어가서 / 會當學成入大學
제유들이 서로 다퉈 난제를 질문하거든 / 諸儒問難爭鋒起
한마디로 조용히 정미한 의리 분석하면 / 片言從容析精微
누가 다시 부자의 승부 탄식을 배울쏜가 / 誰復乘桴學夫子

 

[주C-001]승부탄(乘桴嘆) : 공 자가 일찍이 천하에 현군(賢君)이 없어 도()를 행할 수 없음을 탄식하는 뜻에서 가설적인 말로 이르기를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서 떠나리라. 나를 따를 자는 유인저.[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其由與]” 하자, 자로(子路)는 그 말을 진정으로 알아듣고 기뻐하므로, 공자가 다시 이르기를유는 용맹을 좋아함은 나보다 더하나, 재목을 취할 데가 없도다.[由也好勇過我無所取材]”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公冶長》
[주D-001]공자가 황황(遑遑)함이여 :
황 황은 바빠서 허둥지둥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공자가 도를 행하기 위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천하를 주류(周流)했음을 뜻한다. 《법언(法言)》 학행(學行), , , , 문왕, 무왕은 급급하였고, 중니는 황황했는데, 그 시절이 이미 오래되었다.[堯舜禹湯文武汲汲仲尼遑遑 其已久矣]” 하였다.
[주D-002]기린이 …… 아니었네 :
노 애공(魯哀公) 14년 조에 서쪽으로 사냥가서 기린을 잡았는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의하면, 기린은 인수(仁獸)로서 왕자(王者)가 있으면 나오고 왕자가 없으면 나오지 않는 것이므로, 공자가 그것이 나오지 않아야 할 때에 나와서 잡혀 죽은 것을 상심하여 이르기를누구를 위해서 나왔느냐, 누구를 위해서 나왔느냐?” 하면서 소매를 들어 눈물을 닦았다고 하였다.
[주D-003]사방을 …… 못했는데 :
공 자가 도를 행하기에 급급하여 천하를 주류하느라 매양 이르는 곳마다 앉은 자리가 미처 다스워지기도 전에 또 다른 곳으로 가기에 급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반고(班固)의 〈답빈희(答賓戲)〉에공자의 앉은 자리는 다스울 겨를이 없었고, 묵적의 굴뚝은 검어질 겨를이 없었다.[孔席不暖 墨突不黔]” 하였다.
[주D-004]삼천 칠십 :
공자의 제자는 모두 3000명에 이르렀고, 그중에 육예(六藝)에 능통한 이가 72인이었다고 하므로 이른 말이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주D-005]광(匡)에서 …… 쫓겨나도 :
공 자가 일찍이 위()나라에 갔을 적에 혹자가 위 영공(衛靈公)에게 공자를 참소하자, 영공이 공손여가(公孫余假)를 시켜 병장(兵仗)을 갖추어 공자를 감시하게 하므로, 공자가 불안하여 위나라에 더 머물지 못하고 위나라를 떠났고, 공자가 이곳을 떠나서 진()으로 가던 도중 광()을 지나다가는 또 광 사람들에게 양호(陽虎)로 오인되어 5일 동안이나 그곳에 억류되었던 일을 가리킨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주D-006]의(儀) 땅의 …… 했지 :
공 자가 위()나라에 있을 때, 의 땅의 봉인(封人)이 공자를 뵙기를 청하므로, 종자(從者)들이 공자를 뵙게 해주었더니, 봉인이 공자를 뵙고 나와서는 말하기를여러분들은 부자께서 자리 잃은 것을 무어 걱정할 것 있겠는가.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인지라,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으시리라.[二三子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八佾》
[주D-007]돌아와서는 …… 쇠했으랴 :
만 세의 법칙을 세웠다는 것은 공자가 아무래도 도를 행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노나라에 돌아와서 노사(魯史)를 가져다가 여기에 필삭(筆削)을 가하여 《춘추(春秋)》를 저술한 것을 가리키고, 내가 어찌 쇠했으랴고 한 것은 곧 공자가 젊어서는 주공(周公)의 도를 행하려는 강한 의지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간혹 꿈에 주공을 보았었는데, 늙어서는 그 의지조차 시들어 또한 꿈에 주공을 보지도 못하자, 이를 탄식하여 이르기를심하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이어라, 다시는 꿈속에 주공을 뵙지 못하였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고 한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곧 세상에 도를 행하지는 못했지만 《춘추》를 저술하여 만세의 법칙을 세운 것 또한 도를 행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論語 述而》
[주D-008]상사(相事)를 …… 보였으니 :
노 정공(魯定公) 14년에 공자가 대사구(大司寇)로 상사를 섭행(攝行)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로 난정자(亂政者)인 대부(大夫) 소정묘(少正卯)를 처형하고 나서 그대로 국정(國政)에 참예한 지 3개월 만에 노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던 것을 가리킨다. 《史記卷47 孔子世家》
[주D-009]한 …… 언급됐으니 :
중 유(仲由)는 자로(子路)의 성명으로, 공자가 일찍이 천하에 현군(賢君)이 없어 도()를 행할 수 없음을 탄식하는 뜻에서 가설적인 말로 이르기를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서 떠나리라. 나를 따를 자는 유인저.[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其由與]” 하자, 자로(子路)는 그 말을 진정으로 알아듣고 기뻐하므로, 공자가 다시 이르기를유는 용맹을 좋아함은 나보다 더하나, 재목을 취할 데가 없도다.[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公冶長》

햅쌀[新米]

 


석천 차중문이 / 石泉車仲文
나에게 햅쌀을 보내 주었는데 / 送我以新粒
알알이 희기는 서리 빛 같고 / 粒粒白如霜
영롱한 빛은 이슬방울 같네 / 瑩徹光如濕
밥 지으매 향기는 당에 가득하고 / 蒸來香滿堂
떠 먹으니 입에서 슬슬 녹는구나 / 啖之眞俯拾
잠깐 새에 배를 가득 채웠더니 / 須臾已滿腹
배가 더부룩이 가득 체하는지라 / 氣壅方什襲
일어나서 뜨락을 걸어 다니다가 / 起行遍庭中
피곤해진 뒤에야 잠깐 서 있었네 / 困而後小立
내 식탐은 늙어도 줄지 않으니 / 吾饞老不減
명리에도 의당 급급하였을 테지 / 名利宜汲汲
이를 노래한 건 스스로 경계함이요 / 歌之用自戒
시경의 시를 잇기 위함이 아니라네 / 匪以繼毛什

 

까치가 울다.

 


서쪽 집 나뭇가지 끝에선 까치가 울고 / 鵲鳴西宅樹枝頭
비 올 기미 막 걷히어 천지가 가을이라 / 雨氣初收天地秋
백발 늙은이 바야흐로 기쁨이 동하여 / 白髮老生方喜動
우연히 시구 쓰니 이 또한 풍류로구나 / 偶題詩句亦風流

 

말을 돌려주다.

 


암내 낸 말을 정녕스레 되돌려 주노니 / 風馬丁寧祗復之
내 남새밭 망친 거야 주인이 어찌 알랴 / 損吾園囿主何知
돌멩이 던져 기골을 상하게 하지 말라 / 莫將瓦礫傷肌骨
천상 기린 같은 새끼를 의당 낳을 테니 / 天上麒麟自有兒

 

옛일을 생각하다.

 


우리 국가가 송조의 문명 시대를 만나서 / 國家遭遇宋文明
예악을 서로 닦아 제일의 태평 이뤘으니 / 禮樂交修最太平
조칙 내려 포숭함엔 천어가 친밀하였고 / 制誥褒崇天語密
상국의 보호 아랜 해동 또한 태평하였네 / 朝廷覆燾海封淸
병들어 약물 요구하면 의원을 보내왔고 /
病求藥物來醫老
군의 동태 점검해선 화의 조짐 보고했네 /
閑閱軍容報禍萌
만고에 연마키 어려운 충의가 있었거니 / 萬古難磨忠義在
소중화관
이란 말이 어찌 헛된 이름이랴 / 小中華館豈虛名

 

[주D-001]병들어 …… 보내왔고 : 고 려 문종(文宗)은 신병(身病)으로 매양 송()나라에 표문(表文)을 올려 의약(醫藥)을 요청했으므로, 신종 황제(神宗皇帝) 연간에 특별히 송나라에서 고려에 의원(醫員)을 보내 문종의 병을 진단하여 치료하게 했고, 그 후 예종(睿宗) 또한 송나라에 표문을 올려 의약을 요청한 결과, 조사(詔使) 편에 의원 2인을 보내와서 2년 동안이나 예종의 병을 돌보아 주고 돌아갔으므로 한 말이다. 《宋史 卷487 外國列傳 高麗》
[주D-002]군의 …… 보고했네 :
고 려는 역대로 여진족(女眞族)의 교활함을 송나라에 늘 보고해왔었거니와, 고려 인종(仁宗) 때에는 특히 앞서 송나라에서 온 의원(醫員) 2인이 귀국하는 때를 당해서 인종이 그들에게 이르기를들으니 상국 조정에서 장차 요()나라를 치려고 한다 하나, 요나라는 형제(兄弟)의 나라이니, 그들을 보전해두면 변방의 방패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요, 여진(女眞)은 호랑(虎狼)과 같은 무리들이니, 사귀어서는 안 될 것이다. 원컨대 두 의원은 돌아가 천자(天子)께 아뢰어서 일찍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었다. 《宋史 卷487 外國列傳 高麗》
[주D-003]소중화관(小中華館) :
송 신종(宋神宗) 9년이자 고려 문종(文宗) 30년인 1076년에 고려의 공부 상서(工部尙書) 최사량(崔思諒)이 송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가서 사은(謝恩)하고 방물(方物)을 바쳤는데, 이때 송나라에서는 고려가 문물 예악(文物禮樂)의 나라라 하여 사신을 매우 후히 대접하였고, 특별히 사신의 하마소(下馬所)를 소중화지관(小中華之館)이라고 제()했던 데서 온 말이다. 《東史綱目 卷7

참선(參禪)하던 이가 돌아가겠다고 고하므로, 인하여 송광 화상(松廣和尙)에게 부치다.

 


큰 키에 가사 걸치고 진세를 분주하여라 / 長身霞衲走塵寰
병든 눈으로 누각에 올라 해산을 바라보니 / 病目星樓望海山
서로 더불어 방장으로 향할 맘은 간절하나 / 甚欲相携向方丈
나는 새가 우리에 갇힌 게 유독 가련하네 / 獨憐飛鳥在籠間

 

새벽에 읊다.

 


비바람 몰아쳐라 밤이 하마 어느 때던고 / 風號雨滴夜何其
꿈속에 가을 만나니 마음 더욱 슬프구나 / 夢裏逢秋轉可悲
늙은 아내는 일어나 구름 보고 일기 점치고 / 老婦起占雲向處
병든 나는 해뜰 때까지 가만히 누웠노라니 / 病夫臥到日生時
까치 소리 들려라 기쁜 소식 있을 듯하고 / 忽聞鵲噪有喜事
나는 솔개 바라보니 시경 구절이 생각나네 /
遙望鳶飛思引詩
어린애는 옷을 끌며 밤을 달라 울어대니 / 稚子牽衣啼索栗
개중의 한아한 이 정취를 그 누가 알런고 / 箇中閑雅有誰知

젊은 날엔 수신하며 치국 평천하 바랐는데 / 少日修身望治平
중년에는 욕심 많아 맑은 마음 더럽히었네 / 中年多欲汚虛靈
백발의 말로엔 흡사 물러난 빈객 같지만 / 白頭末路如賓退
전조에 바친 충성은 맹주가 되려 했다오 / 丹懇前朝欲主盟
베개맡의 바람 소리엔 가을 자리가 차갑고 / 一枕風聲秋榻冷
우기 어린 처마 밑엔 새벽 등불이 푸르구나 / 四簷雨氣曉燈靑
일어나 하늘 밖에 나는 뭇 새들을 바라보니 / 起看空外翻群翮
나도 명예 굴레 벗어나서 여생을 보냈으면 / 願脫名韁送此生

 

[주D-001]나는 …… 생각나네 : 자 사(子思)가 일찍이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의 시를 인용하여 이르기를시에 이르기를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고기는 못에서 뛴다.’ 하였으니, 조화의 운행이 위아래에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詩云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한 데서 온 말이다. 《中庸章句 第20章》

장군행(將軍行)

 


장군의 한 몸이 나라의 운명을 관장하여 / 將軍一身國司命
억센 자들을 평정하니 사해가 평온하구나 / 剗平崛
海鏡淨
하늘 아래 두 진영이 큰 북 둥둥 울리어 / 天臨兩陣伐大鼓
장군의 지휘 하에 군대 모습 정돈되었네 / 將軍一麾軍容整
용맹 잔뜩 분발하면 머리털이 곤두서고 / 張膽怒目髮衝冠
기세는 칼날 활촉 소란한 곳을 압도하여 / 氣蓋鋒鏑紛紛間
내 몸 앞뒤로 적들이 끝없이 출몰하건만 / 我前我後敵出入
흡사 높은 산처럼 우뚝이 홀로 섰으니 / 巍然獨立如高山
용맹하여라 장군은 고금에 당할 자 없어 / 勇哉將軍古無敵
혁혁히 능연각에 그 초상 그려 붙였네 / 圖形赫赫凌煙閣
다만 맘속으로 이려를 사모하려 했었지 / 直欲潛心慕伊呂
언제 입 열어 위곽을 말한 적이 있으랴 / 何曾開口談衛霍
예부터 병화는 스스로 지름을 경계하나니 / 由來兵火戒自焚
서로 살륙하는 걸 어찌 다시 말할쏜가 / 相害相殘奚復云
가장 가련한 위의 늙은 복파장군의 / 最憐據鞍老伏波
안중엔 남방 구름에선 솔개가 떨어지고 /
目中鳶墮南方雲
의이 갖고 돌아와선 되레 비방 받음일세 / 歸來薏苡却招謗

명이로다 자고로 임금은 다 명군이고말고 / 命也自古皆明君

 

[주D-001]능연각(凌煙閣) : ()나라 때의 전각(殿閣) 이름인데, 태종(太宗) 연간에 국가에 공로가 가장 큰 신하로 장손무기(長孫無忌), 두여회(杜如晦), 위징(魏徵), 방현령(房玄齡), 이정(李靖) 등 스물네 훈신(勳臣)의 초상을 그려서 이 전각에 걸어 놓게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공신(功臣)에 책록(策錄)된 것을 의미한다.
[주D-002]이려(伊呂) :
()나라의 현상(賢相)인 이윤(伊尹)과 주()나라의 현상인 여상(呂尙) 즉 강태공(姜太公)을 합칭한 말이다.
[주D-003]위곽(衛霍) :
한 무제(漢武帝) 때의 장군(將軍)으로 흉노(匈奴)를 정벌하여 크게 공훈을 세웠던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을 합칭한 말이다.
[주D-004]가장 …… 받음일세 :
후 한(後漢)의 명장인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일찍이 남방(南方)인 교지(交趾)로 정벌을 나가서 적군 수천 급()을 참수(斬首)하고 크게 격파하여 신식후(新息侯)에 봉해졌는데, 이때 군사(軍士)들을 호궤(犒饋)하면서 부하 관속(官屬)에게 이르기를나의 종제(從弟) 소유(少游)가 일찍이 말하기를선비가 세상에 나서 의식(衣食)이나 해결할 만하여 하택거(下澤車)를 타고 관단마(款段馬)를 몰고 선영의 분묘(墳墓)나 잘 수호하며 조용히 지내서 향리로부터 선인(善人)이란 말만 들으면 될 것이요, 넘치는 행복을 구하는 것은 스스로 괴로울 뿐이다.’ 하더니, 내가 이곳에 와서 미처 노()를 멸하기 전에 장열(瘴熱)의 훈증(薰蒸)으로 인하여 솔개가 수중(水中)으로 툭툭 떨어지는 것을 쳐다보면서 내 종제가 평상시에 하던 말을 생각해 보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하였고, 또 그가 교지에 주둔하고 있을 때 의이(薏苡)의 열매를 복용하여 장기(瘴氣)를 이겨 낸 경험이 있어 그곳의 의이를 종자(種子)로 삼기 위해 돌아올 적에 이것을 한 수레 싣고 왔었는데, 그가 죽은 뒤에 혹자가 이것을 남방의 진괴(珍怪)한 보물이라고 천자에게 참소함으로써 끝내 신식후의 봉작이 추탈되기까지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잡영(雜詠)

 


사물 통하여 시절 느껴 정신을 맑히어라 / 感時因物暢精神
늙은 나는 여전히 세상 밖의 사람이로다 / 老我依然世外人
비단 자리 자줏빛
에 이끼는 맘에 들고 / 紫上金鋪苔稱意
방에 흰빛 생겨라 달의 분신이로세 /
白生虛室月分身
오야에서 만나기 어려움은 알지만 /
自知梧野難逢舜
어찌 도원에서만 진을 피할 있으랴 /
豈必桃源可避秦
정흥은 유유하여 거리낄 것이 없으나 / 情興悠悠無所累
다만 두 다리가 홍진 밟는 게 혐의롭네 / 但嫌雙脚踏紅塵

산이 깊어 딱따구리는 사람을 놀래키는데 / 山深啄木鳥驚人
선창에 홀로 읊으니 맛이 절로 순수하네 / 獨詠禪窓味自眞
처마의 흰 구름은 별천지에서 왔거니와 / 簷下白雲來別洞
속의 맑은 물은 통진을 쏟는 듯하네 /
甁中淨水瀉通津
홀연히 내게 들러 한참 동안 얘기 나눠라 / 忽然過我移時語
알아줄 이 누구뇨 온 세상이 미워하는걸 / 識者爲誰擧世嗔
어느 날에나 우리 서로 손잡고 떠나서 / 何日相從携手去
관작을 사절하고 세속 밖에 높이 노닐꼬 / 高游物外謝簪紳

괴이도 해라 신룡은 변화가 하도 많아서 / 怪底神龍變化多
탕 임금 칠 년 대한엔 뇌차를 베고 있었네 / 七年湯旱枕雷車
그러나 욕심이 있어 사람이 제어하지만 /
雖然有欲人能制
때에 적응함 사랑해 내 짐짓 노래하노라 / 祗愛趨時我故歌
구천을 날 때에는 구름이 하 광대할 게고 / 飛九天時雲浩蕩
깊은 못에 숨었을 땐 못 위에 달이 춤추리 / 蟄重淵處月婆娑
홀로 한설 갖고 백규를 삼복하다 보니 /
獨將韓說聊圭復
연래에 늙은 목은 두 귀밑이 희어졌구려 / 老牧年來兩鬢皤

 

[주D-001]비단 자리 자줏빛 : 화려한 자리처럼 펼쳐진 자줏빛 이끼밭을 가리킨다.
[주D-002] 방에 …… 분신이로세 :
빈 방에 흰빛이 생긴다는 것은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빈 방 안에는 흰빛이 있고, 거기에는 좋은 징조가 깃든다.[虛室生白 吉祥止止]” 한 데서 온 말로, 청허(淸虛)하여 욕심이 없으면 도심(道心)이 절로 생겨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달의 분신이란 소식(蘇軾)의 〈증청량장로(贈淸涼長老)〉 시에운산이 빛 바꾸지 않은 것만 괴이할 뿐이지, 어찌 강월이 분신할 줄 아는 걸 알리요.[但怪雲山不改色 豈知江月解分身]” 한 데서 온 말로, 달은 빛을 나누어서 어디에나 비출 수 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3]오야(梧野)에서 …… 알지만 :
오야는 창오산(蒼梧山)의 들을 가리킨 것으로, () 임금이 일찍이 남쪽으로 순수(巡狩)하여 창오산의 들에서 붕()하여 그곳에 장사 지냈던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성군(聖君)을 만날 수 없음을 탄식한 말이다.
[주D-004]어찌 …… 있으랴 :
도 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무릉(武陵)의 한 어부(漁父)가 시내를 따라 끝없이 올라가다가 문득 별천지 같은 도화림(桃花林)을 만나서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진()나라 때 피란(避亂)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陶淵明集 卷6
[주D-005]병 …… 듯하네 :
병 속의 맑은 물이란 승려(僧侶)들이 항상 맑은 물을 병에 담아가지고 다니면서 손을 씻는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는 데서 온 말이고, 통진(通津)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나루를 가리킨다.
[주D-006]뇌차(雷車) 베고 있었네 :
뇌 차는 천둥을 가리키는데, 소식(蘇軾)의 〈차운서요문기설무저천(次韻舒堯文祈雪霧豬泉)〉 시에어찌 알았으랴 샘 속에 저룡이 숨어 있어, 누워서 천둥을 베고 지축을 밟고 있는 줄을.[豈知泉下有豬龍 臥枕雷車踏陰軸]”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가뭄을 의미한다.
[주D-007]그러나 …… 제어하지만 :
《시 경(詩經)》 빈풍(豳風) 낭발(狼跋) 장하(章下)의 범씨(范氏) 말에 의하면신룡(神龍)은 혹 숨기도 하고 날기도 하며, 능히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어 그 변화(變化)를 헤아릴 수 없지만, 사람이 그것을 마치 견양(犬羊)처럼 기를 수도 있나니, 그것은 바로 신룡이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였다.
[주D-008]홀로 …… 보니 :
한 설(韓說)은 한비자(韓非子)의 명문(名文) 중의 하나인 세난(說難)을 가리키는데, 세난은 유세(遊說)하기가 어렵다는 뜻으로서 먼저 인주(人主)의 의도를 잘 알고 유세를 해야만 그의 뜻에 거슬리지 않아서 소기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요지를 적은 글이고, 백규(白圭)를 삼복(三復)한다는 것은 《시경》 대아(大雅) ()흰 구슬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있거니와, 말의 허물은 어찌할 수가 없다.[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 한 것을 남용(南容)이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었던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남용이 백규의 글을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거늘, 공자가 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아 주었다.[南容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 하였다.

노 승제(盧承制)에게 하례하다. 이름은 숭()이다.

 


은하 열수의 해에 과거 급제한 사람
/ 銀河列宿榜中人
이후 십오 년을 조정 반열에 참여해왔네 / 十五年來逐搢紳
포부는 의당 남다른 줄 진작 알았거니와 / 早識頭顱當異列
홀로 왕명 맡아라 이미 상대가 없네그려 / 獨司喉舌已無鄰
치란을 주선함엔 의리를 많이 따랐었고 / 周旋理亂多從義
충사를 분변함엔 시비 혼동이 드물었지 / 別白忠邪少混眞
가장 기쁜 건 목은의 두 눈이 아직 있어 / 最喜牧翁雙眼在
다시 회포 기울여 왕정 돕는 걸 봄이로세 / 更傾懷抱贊經綸

을사년 과거는 지금 십오 년이 되었는데 / 乙巳科今十五年
연해서 과거 맡아 재사들을 선발했네 /
連知三擧選靑錢
우정의 야객은 겨우 뒷자리에 있었고 /
芋亭野客纔居後
성읍의 초옹은 누차 앞자리에 있었지 /
星邑樵翁屢在前
늙어서 안 돌아가니 어찌 속됨을 면할꼬 / 老病不歸寧免俗
친한 이들 끊어져라 다 신선이 돼버렸네 / 追隨已絶盡登仙
문생의 영전 소식을 뉘와 함께 기뻐할꼬 / 門生榮拜誰同喜
홀로 앉아 읊조리며 다시 망연자실하노라 / 獨坐吟詩更惘然

 

[주D-001]은하 …… 사람 : 고 려 충숙왕(忠肅王) 복위(復位) 6년인 1337년에 태어나서 공민왕(恭愍王) 14년인 을사년에 28세로 문과(文科)에 급제한 노숭(盧嵩)을 가리키는데, 그 당시 지공거(知貢擧)는 이인복(李仁復)이었고, 동지공거(同知貢擧)는 바로 저자였다. 은하 열수(銀河列宿)의 해란 최치원(崔致遠)의 가승(家乘) ()에 의하면무협 중봉(巫峽重峯)의 해에 중원(中原)에 들어갔다가 은하 열수의 해에 동토(東土)에 돌아왔다.”고 하였는바, 무협에는 12()이 있으므로 무협 중봉의 해는 12세를 의미하고, 은하에는 28(宿)가 있으므로 은하 열수의 해는 28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최치원이 12세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28세에 본국으로 돌아온 것을 이른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연해서 …… 선발했네 :
세 과거는 을사년인 1365년과 기유년인 1369년과 신해년인 1371년의 세 차례 과거를 가리키는데, 을사년과 기유년 과거에서는 이인복(李仁復)이 지공거(知貢擧), 저자가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었고, 신해년 과거에서는 저자가 지공거, 전녹생(田祿生)이 동지공거가 되었다.
[주D-003]우정(芋亭)의 …… 있었고 :
우정의 야객(野客)은 담양 전씨(潭陽田氏)로 호가 야은(野隱)인 전녹생(田祿生)을 가리키는데, 신해년 과거에서 저자는 지공거가 되고 그는 동지공거가 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우정은 무슨 호칭인지 자세하지 않다.
[주D-004]성읍(星邑)의 …… 있었지 :
성읍의 초옹(樵翁)은 성산 이씨(星山李氏)로 호가 초은(樵隱)인 이인복(李仁復)을 가리키는데, 을사년과 기유년의 두 차례 과거에서 모두 이인복은 지공거가 되고 저자는 동지공거가 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스스로 읊다.

 


유수 같은 세월 속에 머리가 다 희었는데 / 歲月如流白盡頭
병중의 신세는 참으로 유유하기만 하네 / 病中身世儘悠悠
정신이 길러짐은 읊은 나머지 증험이요 / 精神
養吟餘驗
명리에 치달음은 죽은 뒤에나 말리로다 / 名利驅馳死後休
조참은 의당 입상하리란 자부하지만 /
自負曹參當入相
이광이 봉후 됨을 남들은 조롱한다네 /
人譏李廣不封侯
다시 어느 곳에서 길이 읊조려 볼거나 / 更從何處舒長嘯
다만 원룡의 백척루가 있을 뿐이로세 / 只有元龍百尺樓

 

[주D-001]조참(曹參)은 …… 자부하지만 : 한 혜제(漢惠帝) 때의 승상(丞相) 소하(蕭何)가 병이 위독했을 적에 임금이 친히 가서 문병하고 소하 대신 입상(入相)할 사람을 천거하게 하자, 소하가 조참을 천거하였고, 곧이어 조참은 소하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사인(舍人)에게 말하여 행장(行裝)을 준비하도록 재촉하면서내가 곧 승상으로 들어갈 것이다.[吾且入相]”라고 했는데, 잠시 뒤에 과연 궁중의 사자(使者)가 와서 조참을 불러 곧바로 입상했던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39 蕭何曹參傳》
[주D-002]이광(李廣)이 …… 조롱한다네 :
이 광은 한()나라의 대표적인 명장(名將)인데, 그의 부하들은 군공(軍功)으로 인하여 봉후(封侯)된 이가 많았으나, 유독 이광 본인은 흉노(匈奴)를 정벌한 공이 남달리 혁혁했는데도 도리어 봉후가 되지 못했던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54 李廣傳》
[주D-003]원룡(元龍) 백척루(百尺樓) :
원 룡은 삼국 시대 위()나라 진등(陳登)의 자인데, 허사(許汜)가 일찍이 유비(劉備)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기가 한번은 진등을 찾아갔더니 그가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주인 자신은 높은 와상으로 올라가 눕고 손님인 자기는 아래 와상에 눕게 하더라고 말하자, 유비가 말하기를그대의 말이 채택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인(小人) 같았으면 자신은 백척루로 올라가 눕고 그대는 땅바닥에 눕게 했을 것이다. 어찌 와상을 위아래의 차이로만 하였겠는가.”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지기(志氣)가 아주 고상함을 뜻한다.

환암(幻菴)을 받들어 생각하다.

 


광암사를 향하여 환옹을 찾으려고 하니 / 欲向光巖訪幻翁
귓가에 얼핏 솔바람 소리가 들린 듯하네 / 耳邊髣髴聽松風
삼관
은 바로 보아서 미진함이 없거니와 / 三關直指卮無底
백절필동 충심은 물이 동으로 향하듯 했지 / 百折忠心水向東
외론 등불 아래 얘기 나눈 일 늘 생각나고 / 每思夜話孤燈耿
텅 빈 집에 쓸쓸한 읊조림은 견딜 수 없어라 / 不耐秋吟四壁空
후일에 찬화의 법칙을 자세히 논하면 / 他日細論鑽火法
이 늙은이의 사욕도 혹 사그라들는지 원 / 老生私欲倘消融

 

[주D-001]삼관(三關) : 불 교 임제종(臨濟宗)의 일파(一派)인 황룡사(黃龍寺) 혜남 선사(慧南禪師)가 항상 현기(玄機)가 담긴 세 마디 문제, 사람마다 생연이 있는 것인데 상좌의 생연은 어디에 있느냐, 내 손이 어찌하여 부처의 손과 같으냐, 내 다리가 어찌하여 당나귀 다리와 같으냐?[人人盡有生緣 上座生緣在何處 我手何似佛手 我脚何似驢脚]”라는 말을 꺼내서 문인(門人)들을 깨우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이를 삼관어(三關語)라고도 한다.
[주D-002]찬화(鑽火) 법칙 :
《보 살본연경(菩薩本緣經)》에불속에서 얼음을 얻기[鑽火得氷]’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인과(因果)의 법칙으로 보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가리킨 것으로, 수행(修行)에 따라서 그만큼의 결과가 얻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법원주림(法苑珠林)》에서는 인과의 법칙을 일러소리가 조화되어야 메아리가 순조롭고 형상이 곧아야 그림자가 단정하다는 말은 들었으나, 불속에서 얼음을 얻고 콩을 심어서 보리를 얻는 것은 보지 못했다.[竊聞聲調響順形直影端 未見鑽火得氷 種豆得麥]” 하였다.

서송(西松)이 용두사(龍頭寺)로부터 돌아오다.

 


서송은 용두사로부터 돌아오고 / 西松回自龍頭寺
늙은 목은은 봉주당에서 시를 읊네 / 老牧吟於鳳

전각은 절벽 위에 있어 높은 산과 연했고 / 殿踞斷岡連突兀
문은 큰 들을 임하여 아득한 땅 굽어보리 / 門臨大野壓微茫
절경이 호기를 더해줌은 본디 알거니와 / 從知絶景增豪氣
고과로 조상의 덕업 드러냄도 보겠구려 / 高科覲耿光
당시를 자세히 읽은 게 지금 몇 수이던고 / 細讀唐詩今幾首
후일에 입만 열면 문득 문장을 이룰 걸세 / 他年開口便成章

 

고의(古意) 3(三首)

 


단혈에 외로운 봉 새끼가 있으니 / 丹穴有孤雛
날면서 울어라 그 어찌하려는고 / 飛鳴欲何爲
천지는 어찌 그리도 아득한가만 / 乾坤何茫茫
대도는 화이에 두루 입히어졌네 / 大道被華夷
한번
내가 어이 감탄하랴 / 一至我何嘆
다만 이 권아시를 감탄하거니 / 嘆此卷阿詩
지금 사람도 못 할 바는 아니건만 / 今人非不能
근거가 없어 말 짓기가 어렵다네 / 架空難措辭

나는 본래부터 대도를 갔었는데 / 我本行大道
갑자기 가는 길이 깜깜해졌으니 / 忽焉迷所之
여우 살쾡이는 내 앞에서 울고 / 狐狸啼我前
연기 안개는 갈림길에 자욱하네 / 煙霧沈路岐
밝은 태양은 중천에 떠 있건만 / 白日在中天
빛을 발휘하긴 왜 그리 더딘고 / 舒光復何遲
다행히도 내 넘어지진 않았거니 / 幸哉不顚沛
가던 길 바꿔서 장차 무엇하리요 / 改轍將何爲

나에게 하얀 베 한 필이 있어 / 我有一疋素
길이가 두어 자 남짓 되는지라 / 長可數尺餘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시켜서 / 欲倩好畫者
지엽 무성한 낙락장송을 그리고 / 長松丈扶疎
그 가운데 청풍을 갈무리하여 / 中藏以淸風
내 열뇌를 식혀 주도록 하럈더니 / 使我熱惱除
이 뜻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 此志竟莫遂
강가의 초려로 돌아와버렸네 / 歸來江上廬

 

[주D-001]한번 :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황제 요순 시대에는 봉황이 한번씩 이르렀다.[黃帝堯舜 鳳凰一至]”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권아시(卷阿詩) :
《시 경(詩經)》 대아(大雅) 권아(卷阿)봉황새가 울어대니, 저 높은 뫼이로다. 오동나무가 자라나니, 저 볕바른 양지쪽이로다. 오동나무가 하 무성하니, 봉황새 소리 평화롭도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菶菶萋萋 雝雝
喈喈]”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을 따라 꼬부라진 언덕에서 노닐 때, 성왕을 위하여 봉황 같은 현사(賢士)들을 널리 구하라는 뜻으로 노래한 것이다.

유항(柳巷) 댁에서 죽()을 먹다.

 


서쪽 이웃 자주 들름은 성광을 사랑함인데 / 頻過西里愛醒狂
남쪽 누각 마주 앉으니 흥취도 진진하구려 / 對坐南樓發興長
비가 그쳤다 또 오니 산은 빛이 변하고 / 雨歇又來山變色
바람이 불다 그치려니 풀은 향내가 나네 / 風吹欲止草生香
정결한 음식엔 내가 항상 배부르거니와 /
淨潔吾恒飽
종횡무진한 필법은 세상에 당할 자 없네 / 筆陣縱橫世莫當
게다가 벽진 도은자의 설명을 얻어 / 更得碧珍陶隱子
고암의 명의가 우연히 문장을 이루었지 / 杲菴名義偶成章

 

[주D-001]성광(醒狂) : 술 을 마시지 않아도 미친다는 뜻으로, 방달하여 세상을 오시(傲視)하는 것을 말한다. ()나라 때 개관요(蓋寬饒)가 일찍이 평은후(平恩侯) 허백(許伯)의 주연(酒宴)에 참석하여 말하기를나에게 술을 많이 따르지 말라. 내가 바로 술미치광이라오.” 하자, 승상(丞相) 위후(魏侯)가 웃으면서 말하기를차공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미치는데, 하필 술을 마셔야만 미치겠는가.[次公醒而狂何必酒狂]” 한 데서 온 말이다. 차공(次公)은 개관요의 자이다.
[주D-002]게다가 …… 이루었지 :
벽 진(碧珍)은 성산(星山)의 고호로서 벽진의 도은자(陶隱子)는 성산 이씨(星山李氏)인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가리키고, 고암(杲菴)은 공민왕(恭愍王) 10년 동안 광암사(光巖寺)에 거주하면서 공민왕으로부터 일승고암(日昇杲菴)이란 네 글자를 하사받은 선승(禪僧) 승 상인(昇上人)을 가리킨다. 승 상인이 우왕(禑王) 때는 신륵사(神勒寺)에 있었는데, 일찍이 유항(柳巷) 한수(韓脩)가 신륵사에 갔다가 승 상인을 만났던바, 그때 상인이 저자에게서 고암기(杲菴記)를 받아달라고 한수에게 청하였으므로, 한수가 이때 그것을 저자에게 부탁하자, 저자가 막 기문(記文)을 쓰려고 하던 차에 마침 이숭인이 또 오는지라, 저자가 이숭인에게 붓을 주면서자네가 나를 대신해서 말을 해 주게나.” 하니, 마침내 이숭인이 고암(杲菴)에 대한 명의(名義)를 자세하게 설명하여 기문을 이루게 된 것을 이른 말이다. 《목은문고》 제6권 〈고암기(杲菴記)〉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아침에 읊다.

 


단작이 아침에 나무 위에 앉아서 울어라 / 丹雀朝來樹上鳴
주인의 신세는 세상에 분주함 사절했는데 / 主人身世謝營營
짧은 시 쓰고 나니 맘은 왜 그리 쾌한고 / 小詩題罷心何快
좋은 소리 들으니 귀 또한 청신하구나 / 好語聞來耳亦淸
다만 헛된 명성으로 마음 편킨 어려우나 / 只被虛名難自在
혹 남은 생애에 태평이나 보게 해줄는지 / 倘容殘喘見昇平
청산은 난간 앞이요 꽃은 뜰에 피었으니 / 靑山當檻花垂砌
하늘이 병중의 심정을 가련케 여겼음이리 / 天意應憐病裏情

 

한낮에 읊다.

 


쇠한 얼굴 백발에 아직도 광기는 남아서 / 蒼顔白髮尙顚狂
앉아 졸고 거닐며 읊으니 흥취가 진진하네 / 坐睡行吟趣自長
청고한 시율 속엔 풍월이 배회하고요 / 風月徘徊淸苦律
곤히 잠든 속엔 천지가 혼돈 상태로다 / 乾坤混沌黑甛鄕
깊은 잠자던 운몽택은 평생에 넉넉했고 /
沈酣雲夢平生足
갱가 부르던 당우는 지치가 향기로웠네 /
賡載唐虞至治香
은퇴할 뜻 정한 지 지금 이미 오래이거니 / 自信卷懷今已久
그냥 이대로 세월을 보냄도 무방하리라 / 不妨憑此送流光

 

[주D-001]은 …… 넉넉했고 : 두목(杜牧)의 〈억제안군(憶齊安郡)〉 시에평생에 잠이 넉넉했던 곳은, 운몽택 남쪽 고을이었네.[平生睡足處 雲夢澤南州]”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갱가(賡歌) …… 향기로웠네 :
갱 가는 순() 임금과 고요(皐陶)가 군신 간에 권면하는 뜻으로 노래를 서로 이어 불렀던 데서 온 말이고, 지치(至治)가 향기롭다는 것은 곧 성왕(成王)이 군진(君陳)에게 이르기를지극한 다스림은 향내를 풍기는 것과 같아서, 신명을 감동시킨다.[至治馨香 感于神明]”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益稷, 君陳》

우연히 제하다.

 


써내자니 맘은 오히려 괴로운데 / 題出心猶苦
읊어오니 율격은 더욱 엄정하네 / 吟來律轉嚴
짙은 그늘은 버들골에 나직한데 / 窮陰低柳巷
성긴 비는 띠 처마에 뚝뚝 듣누나 / 疎雨滴茅簷
마음은 삼춘의 기러기 같고요 /
心似三春雁
몸은 육일의 두꺼비 신세로다 /
身如六日蟾
누가 알리요 외로이 앉았는 곳에 / 誰知危坐處
흰 귀밑털만 자꾸 더해지는 것을 / 只得鬢霜添

 

[주D-001]마음은 …… 같고요 : 기러기는 봄이면 북쪽으로 날아가는 철새이므로, 떠나고 싶은 심정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몸은 …… 신세로다 :
세 상에 무용지물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세시기(歲時記)》에 의하면, 만년 묵은 두꺼비를 육지(肉芝)라 하는데, 이것을 5 5일에 취하여 말려서 몸에 지니고 다니면 병기(兵器)를 물리칠 수 있는 효험이 있으나, 6일에 취한 것은 쓸모가 없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나라 진여의(陳與義)의 시에육일의 두꺼비라 세상에 쓰이긴 글렀네.[六日蟾
乖世用]” 하였다.

도연명(陶淵明)

 


도연명의 천지는 가없이 광활하여 / 淵明天地闊無涯
풍월을 읊조릴 제 기가 절로 빛났는데 / 弄月吟風氣自華
나는 한 점의 고심이 다 닳지 않았으니 / 一點苦心磨不盡
돌아가잔들 그 어느 곳이 내 집일쏜가 / 歸來何處是吾家

 

스스로 읊다.

 


묻노니 너는 어느 날에나 돌아가려느뇨 / 且問汝將何日歸
노쇠와 가난 질병에 비난까지 받잖는가 / 老衰貧病更遭譏
다만 선왕의 은덕을 갚지 못한 때문에 / 只緣未報先王德
감히 초연하게 떨쳐 일어나질 못한다오 / 不敢超然便拂衣

묻노니 너는 지금 도를 꾀한 게 없기에 / 且問汝今謀道無
도의를 말하려면 문득 분명치 못하나니 / 欲談道義却含糊
다만 우리 부자를 배우지 못한 때문에 / 只緣未學吾夫子
불방심
의 밭이 연중 내내 묵었음일세 / 不放心田終歲蕪

묻노니 너는 지금 그 무엇을 하려느뇨 / 且問汝今何所爲
병든 몸 무력하여 억지로 지탱하면서 / 病軀無力
支持
다만 아직도 일편단심은 남아 있기에 / 只緣尙有丹心在
옛날의 원화성덕시를 잇고자 한다오 / 欲繼元和聖德詩

 

[주D-001]불방심(不放心)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잡아 간직하면 보존되고 놓아 버리면 없어져서 아무 때나 드나들어 그 정처를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마음인저.[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告子上》
[주D-002]원화성덕시(元和聖德詩) :
원화는 당 헌종(唐憲宗)의 연호인데, 한유(韓愈)가 일찍이 헌종의 업적을 기리는 뜻으로, 무려 1024()에 달하는 장편(長篇)의 이 시를 지었던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1

광암사(光巖寺)에 곧 이르게 되어 짓다.

 


새벽바람 쌀쌀하고 햇빛은 희미한데 / 曉風吹冷日光微
인가에 말 세우고 겹옷을 빌려 입고서 / 立馬人家借

늘그막에 어렵사리 눈서리를 밟으니 / 老境艱難踐霜雪
남쪽 고을 가고픈 정 다시 그리워지네 / 南州歸思更依依

냇물은 주야로 쉬지 않고 콸콸 흘러서 / 川流晝夜去沄沄
짐짓 산릉의 아랫마을을 둘러 흐르네 / 故遶山陵陵下村
또 이번 가을바람이 서늘해진 뒤에는 / 又是秋風涼冷後
훌쩍 떠나서 곧장 진원을 묻고 싶구나
/
飄然直欲問眞源

 

[주D-001]가을바람이 …… 싶구나 : 진 원(眞源)은 선도(仙道)의 본원(本源)을 가리킨 것으로, 두보(杜甫)의 〈망악(望岳)〉 시에가을바람이 조금 서늘해지길 기다려, 높이 백제를 찾아서 진원을 물으련다.[稍待秋風涼冷後 高尋白帝問眞源]”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6

환암(幻菴)의 방장(方丈)에 받들어 제하다.

 


환암의 거처는 하 깨끗도 해라 / 幻菴庭宇淨
백발에 거듭 서로 찾아와 보니 / 白髮重相尋
푸른 이끼는 발 디딜 틈이 없고 / 苔色難容足
솔바람 소리는 맘을 깨울 만하네 / 松聲可醒心
산천은 빼어나라 예가 선경인가 / 地靈疑洞府
집은 고요하여 풍경 소리 들리네 / 院靜聽風琴
정과 경계를 모두 잊어버리고 / 情境俱忘了
유연히 시험 삼아 한번 읊노라 / 悠然試一吟

 

백정 선사(柏庭禪師)의 행권(行卷)에 제하다.

 


곧장 근원을 향해 진리를 보고자 했으니 / 直截根源欲透機
백정의 남긴 음향
이 상기도 어렴풋하네 / 柏庭遺響尙依

끝내 지엽이나 찾아 따는 이가 아니라서 / 終非摘葉尋枝者
만수 천산을 그림자 벗 삼아 떠나가누나 / 萬水千山携影歸

 

[주D-001]백정(柏庭) 남긴 음향 : ()나라 때 고승(高僧) 조주(趙州)에게 한 중이 묻기를조사가 서쪽에 온 뜻이 무엇입니까?[如何祖師西來意]” 하니, 조주가 대답하기를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 한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8월 초하룻날 광암사(光巖寺)에서 놀고 밤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 그대로 쓰러져서 아침까지 잤다.

 


새벽닭이 울 때까지 쓰러져 자고 나니 / 頹然就寢曉雞鳴
광암사 간 것이 아스라이 꿈결만 같구나 / 渺渺光巖夢裏行
백발에 높은 가을이라 마음 다시 괴롭고 / 白髮高秋心更苦
청산에 지는 해는 자취 더욱 맑기만 하네 / 靑山落日跡逾淸
공명에게 부탁한
어이 그리 아득한고 / 孔明付托何寥闊
정절은 돌아가자 이미 태평세월이었네 /
靖節歸來已太平
봉화 오른 강향 소식이 하도나 적막하여 / 烽火江鄕今寂寞
평생에 넉넉한 한번 길이 없었지 /
無從一睡足平生

 

[주D-001]공명(孔明)에게 부탁한 : 공 명은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의 자이다. 선주(先主) 유비(劉備)가 병이 위독했을 때 제갈량을 불러 놓고 후사(後事)를 부탁하여 이르기를그대의 재주는 조비(曹丕)보다 10배나 높으니, 반드시 나라를 안정시켜 끝내 대사(大事)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사자(嗣子)가 보필할 만하면 보필해 주고 만일 자격이 안 되거든 그대가 스스로 취할지어다.”라고 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정절(節)은 …… 태평세월이었네 :
정절은 도잠(陶潛)의 사시(私諡)이다. 그가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으로 있은 지 겨우 80여 일 만에 그만두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 전원(田園)으로 돌아가 유유자적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평생에 …… 없었지 :
두목(杜牧)의 〈억제안군(憶齊安郡)〉 시에평생에 잠이 넉넉했던 곳은, 운몽택 남쪽 고을이었네.[平生睡足處雲夢澤南州]” 한 데서 온 말이다.

매미 우는 소리를 듣다.

 


샘물에 달빛 흐르고 나뭇잎 바람에 떨 제 / 細泉流月葉號風
끊기려다 다시 이어라 언뜻 같고 다르네 / 欲斷還連乍異同
여행길에 머리 긁고 섰던 일이 기억난다 / 曾記客程搔首立
산 붉은 단풍 숲 우거진 석양 아래서 / 滿山紅樹夕陽中

가을바람은 천지간에 두루 불어 대지만 / 秋風吹遍地天中
매미 소리는 곳곳마다 반드시 같진 않네 / 未必蟬聲處處同
원한의 첩 쫓겨난 신하는 백발이 되었는데 / 怨妾逐臣頭盡白
호협한 고관대작은 얼굴에 홍조를 띠누나 / 大官豪俠面浮紅

목옹이 길이 휘파람 불어 천지를 떨칠 제 / 牧翁長嘯振乾坤
산은 누각 감싸고 버들은 문을 감쌌는데 / 山擁高樓柳擁門
귀에 들온 매미 소리완 전혀 교감이 없어 / 入耳蟬聲水投石
식은 같은 마음으로
혼자 말을 잊노라 / 心如灰冷獨忘言

 

[주D-001]식은 같은 마음으로 : 《장 자(莊子)》 제물론(齊物論)형체를 진실로 말라 죽은 나무처럼 할 수 있으며, 마음을 진실로 식은 재처럼 할 수 있겠는가.[形固可使如槁木 而心固可使如死灰乎]”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마음이 외물(外物)에 전혀 동요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북정(北庭)

 


북쪽 변새 가을빛에 기럭 소리 구슬픈데 / 龍沙秋色雁聲邊
들쭉날쭉한 해안 길은 몇천 리나 되던고 / 海岸參差路幾千
사신이 머나먼 곳 통래함은 가장 기쁘지만 / 最喜星軺通僻遠
감히 토산물 갖다 작은 정성 바칠 수 있나 / 敢將壤奠效埃涓
앞선 요와 뒷선 송은 서로 달리던 날이요 / 遼前宋後交馳日
북쪽 원과 남쪽 명은 나란히 선 해이로다 / 元北明南兩立年
예로부터 대신은 역량이 많은 바이라서 / 自古大臣多力量
병중에 푸른 하늘 향해 깊이 감개하노라 / 病中深感向蒼天

 

느낌이 있어 읊다.

 


급할 때는 은혜가 더욱 중하거니와 / 倉卒恩逾重
편안하면 형세가 매우 멀어지는데 / 安寧勢甚疎
좋은 약은 위급한 병에 내려 주고 / 靈丹投病極
맛난 음식은 주린 때에 하사하네 / 美食賜飢餘
난세엔 행실을 삼가야 하고말고 / 世亂行須愼
하늘은 높아도 보답이 꼭 있는걸 / 天高報不虛
백발이라 마음 더욱 괴로우니 / 白頭心轉苦
또 고인의 글이나 읽어야겠네 / 且讀古人書

 

고풍(古風)

 


가을 기운은 날로 쌀쌀해지는데 / 秋氣日凄凄
중니는 날로 허둥지둥 떠돌았네 / 仲尼日栖栖
허둥지둥한들 끝내 무엇했으랴만 /
栖栖竟何爲
봉황은 그대로 봉황이었고말고 / 鳳兮仍鳳兮

유안은 발해를 뛰어넘어 갔었고 /
幼安超渤海
정절은 풍진을 떠나 은거했었네 /
靖節離風塵
홀로 서서 몹시 근심하노라니 / 獨立悠悠甚
그립기도 해라 천재의 사람이여 /
懷哉千載人

 

[주D-001]중니(仲尼)는 …… 봉황이었고말고 : 미 생묘(微生畝)라는 사람이 공자(孔子)에게 말하기를구는 어찌하여 도를 행하자고 이렇게 허둥지둥하는가? 말 재주를 부려서 남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丘何爲是栖栖者與無乃爲佞乎]” 하였고, 또 초()나라의 광자(狂者)인 접여(接輿)는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나면서 노래하기를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 그리도 덕이 쇠하였느뇨?[鳳兮鳳兮 何德之衰]”라고 하여, 모두가 난세에 도를 행하려고 애쓰는 공자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憲問, 微子》
[주D-002]유안(幼安)은 …… 갔었고 :
유 안은 삼국 시대 위()나라 관녕(管寧)의 자인데, 그는 일찍이 황건적(黃巾賊)의 난리를 피해 발해(渤海)를 건너 요동(遼東)에 가서 40년 가까이 그곳에 있으면서 시서(詩書)를 강의하고 예양(禮讓)을 가르쳐서 무무(貿貿)한 요동 지방의 풍속을 많이 변화시켰다.
[주D-003]정절(靖節)은 …… 은거했었네 :
정절은 도잠(陶潛)의 사시(私諡)이다. 그가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으로 있은 지 겨우 80여 일 만에 그만두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 전원(田園)으로 돌아가 유유자적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4]그립기도 …… 사람이여 :
황정견(黃庭堅)의 〈자첨적해남(子瞻謫海南)〉 시에팽택은 천재의 사람이요, 동파는 백세의 선비로다.[彭澤千載人 東坡百世士]” 한 데서 온 말로, 천재의 사람이란 바로 팽택 영을 지낸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스스로 읊다.

 


가을 깊은 골목은 더욱 맑고 그윽하여 / 秋深門巷轉淸幽
온종일 작은 누에 기대 시를 읊노라니 / 盡日吟詩倚小樓
광대한 천지는 부질없이 바라만 보고요 / 蕩蕩乾坤空送目
유유한 신세는 괴로이 머리만 긁적이네 / 悠悠身世苦搔頭
깊은 사색은 곧장 무극을 연구하려 하고 / 潛心直欲參無極
장대한 뜻은 되레 부주산을 치받으려네 / 壯志還如觸不周
다행히 중용 읽은 게 익숙해진 때문에 / 賴是中庸讀來熟
막히면 멎고 흐르면 뜨는
분명해졌지 / 分明坎止與流浮

마음이 고요하면 경계 절로 그윽하거니와 / 心靜由來境自幽
더구나 서루에 가득 가을비를 만났음에랴 / 況逢秋雨滿西樓
마음은 예악이 중흥된 즈음에 노닐고 / 心游禮樂重興際
몸은 강산이 다해가는 끝자락에 있네 / 身在江山欲盡頭
처신하는 덴 절로 빈천 견디기 어렵지만 / 處己自難貧且賤
대함엔 누가 중하고 주도하지 않던고 /
待人誰不重兼周
사벽 서늘한 새벽에 청한하게 앉았으니 / 曉涼四壁仍淸坐
들 밖의 찬 구름이 광대히 둥둥 떠가네 / 野外寒雲浩浩浮

 

[주D-001]막히면 …… : 가의(賈誼)의 〈복조부(鵩鳥賦)〉에흐름을 타면 가고, 구덩이를 만나면 그친다.[乘流則逝 得坎則止]”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환경의 순역(順逆)에 따라 진퇴(進退)와 행지(行止)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남 …… 않던고 :
한 유(韓愈)의 〈원훼(原毁)〉에옛날의 군자는 자기를 책망함은 중하여 주도하였고, 남에게 기대함은 경하여 간략하였다.……그러나 지금의 군자는 그렇지 않아서 남을 책망함은 세밀하고, 자기에게 기대함은 간략하다.[古之君子 其責己也重以周 其待人也輕以約……今之君子則不然 其責人也詳其待己也廉]” 한 데서 온 말이다.

송이버섯을 보내 준 민 지후(閔祗候)에게 붓을 달려 사례하다.

 


송악산 바람 이슬이 중추가 가까워질새 / 松山風露近中秋
솔 진액이 형체 이뤄 윤기가 번지르르하네 / 瓊液成形滑似流
늙고 병들어도 식탐은 아직 줄지 않아서 / 老病口饞猶不減
중 찾아 곧장 다시 고상한 놀이 하고파라 / 尋僧直欲更高游

해마다 깊어 가는 가을에 이것을 맛보니 / 年年嘗此欲深秋
유수처럼 빠른 세월을 감당 못 하겠구나 / 不耐光陰迅似流
늘그막엔 정히 구복을 꾀해야 하고말고 / 老境政須謀口腹
훌쩍 떠나서 신선 적송자와 놀아야겠네 / 飄然往與赤松游

청주의 북녘 들 기러기 울던 어느 가을 / 淸州北野雁聲秋
계곡 옆 산비탈에 말에서 내려 있을 때 / 下馬山崖傍碧流
부로들이 국 끓여 와 후히 먹여 주었어라 / 父老作羹來厚餉
지금도 이해에 놀던 일이 기억나누나 / 至今猶記是年游

 

추흥(秋興) 3(三首)

 


풍진은 그 누가 피할 수 있으랴 / 風塵誰避地
노병은 스스로 하늘에 호소하네 / 老病自號天
우리의 도는 오직 문자일 뿐이요 / 吾道唯文字
인생은 우선 먹고 자는 것이로다 / 人生且食眠
귀뚜라미 소리에 뜰 이슬은 촉촉하고 / 蛩聲庭露重
기러기 그림자는 변새 구름에 닿았네 / 雁影塞雲連
내가 가을 슬퍼하는 눈물 흘림은 / 我有悲秋淚
외물에 이끌린 때문이 아니라네 / 非緣外物牽

옛사람은 사직하고 떠나가서 / 古人還笏去
지극한 낙을 억제하지 못했다더니 / 至樂自難裁
천하가 숫돌같이 평정된 이때에 / 天下平如砥
내 맘은 식은 재처럼 썰렁만 하네 / 心中冷似灰
이끼는 누항을 온통 뒤덮고 / 苔痕埋陋巷
달빛은 영대에 가득하여라 / 月色滿靈臺
아스라이 먼 저 요순 시대를 / 渺渺唐虞遠
어느 때나 만회할 수 있을꼬 / 何時挽得回

공자의 쇠함
만 오래 탄식했거니 / 久歎吾衰也
맹자의 호연지기 기름
을 어찌 알랴 / 那知養浩然
병석의 밤은 홀로 지내기 어려운데 / 病牀難獨夜
늘그막이라 동년 또한 드물다마다 / 老境少同年
찬 이슬 내려 몸은 막 가뿐해지고 / 露冷身初健
하늘은 높아 바라보다 눈 뚫리겠네 / 天高眼欲穿
다행히 속된 생각 깨끗이 씻기어 / 幸哉塵慮淨
다시 백아의 거문고를 잡아 타노라 / 更撫伯牙絃

 

[주D-001]공자(孔子) 쇠함 : 공 자가 젊어서는 주공(周公)의 도를 행하려는 강한 의지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간혹 꿈에 주공을 보았었는데, 늙어서는 그 의지조차 시들어 또한 꿈에 주공을 보지도 못하자, 이를 탄식하여 이르기를심하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이어라, 다시는 꿈속에 주공을 뵙지 못하였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고 한 것을 가리킨다. 《論語 述而》
[주D-002]맹자(孟子) 호연지기 기름 :
맹자가 공손추(公孫丑)의 물음에 대답하기를나는 말을 알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르노라.[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上》
[주D-003]백아(伯牙) 거문고 :
옛 날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는데, 백아가 일찍이 고산(高山)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훌륭하다, 높고 험준한 것이 마치 태산(泰山) 같구나.” 하였고, 유수(流水)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탈 적에는 또 말하기를훌륭하다, 광대한 것이 마치 강하(江河) 같구나.”라고 하여 백아의 생각을 종자기가 다 알고 있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서로를 잘 알아주는 지기(知己)를 의미한다. 《列子 湯問》

철원(鐵原)의 김 동년(金同年)이 햅쌀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고 인하여 밤 줍던 흥취를 상기하다.

 


팔월이라 바람 높아 기럭은 돌아가려는데 / 八月風高雁欲回
태봉국
의 가을빛이 사람을 좇아 왔구나 / 泰封秋色趁人來
어진 기르려고 삶는
을 그대는 아는가 / 養賢烹處賢知否
괘의 형상은 분명 재상을 받드는 것이라네 / 卦象分明奉上台

산촌의 밤 한창 살쪘을 걸 앉아 생각하노니 / 坐想山村栗政肥
디룽디룽 노란 밤송이 주렁주렁 매달렸으리 / 金丸欲落映離離
어느 날에나 사직하고 훌쩍 그곳에 가서 / 乞身何日飄然去
바구니 가득 주워 깊은 밤에 돌아와 볼꼬 / 拾得滿籠深夜歸

신사년의 동년이 지금 몇이나 남았는고 / 辛巳同年幾箇存
헤어진 뒤론 안부조차 물을 곳이 없거늘 / 分離無處問寒溫
고맙기도 해라 그대는 매양 산중 별미를 / 多君每把山中味
가난한 집 병든 늙은이에게 부쳐주다니 / 寄向病翁蓬蓽門

 

[주D-001]태봉국(泰封國) : 후삼국(後三國)의 하나이다. 신라(新羅) 효공왕(孝恭王) 때 왕족(王族)인 궁예(弓裔)가 철원(鐵原)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國號)를 태봉(泰封)이라고 했으므로, 전하여 철원을 가리킨 것이다.
[주D-002]어진 이 …… :
《주역(周易)》 정괘(鼎卦) 단사(彖辭)성인이 음식을 삶아서 하늘에 제사 지내고, 음식을 크게 삶아서 성현을 기른다.[聖人亨以享上帝 而大亨 以養聖賢]” 한 데서 온 말이다.

 

 

2009-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