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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행(短歌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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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생각건대 선왕께서 즉위하신 처음에 / 恭惟先王日之昇
신이 대책 올려 처음으로 이름 날렸고 / 臣用對策初飛騰
그 명년에 경사에서 마침 회시가 있어 / 明年京師適會試
계리와 함께 눈서리 무릅쓰고 갔는데 / 偕計不知霜雪凝
내 이름은 황금방 가운데 나열되었고 / 名從黃金榜中列
내 발은 옥당 한림 자리에 올라갔었네 / 足向白玉堂上登
찬란하기론 온갖 꽃의 골짜기인 듯 / 爛兮萬花谷
깨끗하기론 한 가닥 얼음 같았어라 / 淸兮一段氷
늘어선 수많은 영재들이 다 이러했으니 / 群英森立有如此
나는 요행일 뿐 참으로 능한 게 아니었네 / 我獨徼倖非眞能
창 부수고 땀 흘림은 요행히 면했거니와 / 斲窓流汗雖幸免
농장을 잘못 씀은 항상 가슴에 새겼었지 / 弄璋錯寫常服膺
동해에 돌아와선 누워서 일어나지 못해 / 歸來東海臥不起
예리한 재능 숨겨 교만 자부 다 잊은 채 / 藏鋒斂鍔忘驕矜
바야흐로 적막함 속에 세월을 보내는데 / 方將寂寞送日月
상께서 불차탁용으로 높은 반열에 올렸네 / 主恩不次班高升
오래되매 자연히 녹록한 존재 되었는데 / 久而自然成碌碌
녹록함이 도리어 무리의 증오를 받았고 / 碌碌還爲吾輩憎
나는 실로 무리를 압도할 마음 없었건만 / 我實無心壓吾輩
무리들이 스스로 가을 파리처럼 움츠렸지 / 吾輩自退如秋蠅
지금은 와병중이요 일어나도 절뚝발이라 / 如今臥病起又躄
다시 학과 함께 대부 수레를 못 타기에 / 不復與鶴軒中乘
명성 겨루는 이 없고 비웃던 이도 그쳐서 / 爭名者絶笑者止
바야흐로 깊고 맑은 고정처럼 담담하구려 / 淡如古井方泓澄
옛 놀이를 회상하며 한번 탄식을 발하니 / 回思舊游發一嘆
붓끝에서 문득 바람 천둥이 이는 듯하네 / 筆下忽爾風雷興
[주D-001]계리(計吏)와 …… 갔는데 : 계 리는 각 지방 관서(官署)에서 해마다 회계 장부(會計帳簿)를 조정(朝廷)에 올리던 벼슬아치를 가리키는데, 옛날에 각 지방 군현(郡縣)의 장관들이 그 지방에서 인재가 될 만한 사람들을 조사하여 뽑은 다음, 그 계리한테 딸려서 도성(都城)으로 올려 보내 응시(應試)하도록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창 부수고[斲窓] : 당 (唐)나라 때 중서 사인(中書舍人) 양도(陽滔)가 일찍이 제사(制詞)를 초(草)하라고 재촉하는 명을 받고 제사를 초하려 할 적에 마침 서고(書庫)의 열쇠를 가진 영사(令史)가 출타 중이어서 제사의 구본(舊本)을 상고할 수 없게 되자, 이에 서고의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구본을 찾아 상고하여 제사를 초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문재(文才)의 졸렬함을 가리킨다.
[주D-003]농장(弄璋)을 잘못 씀 : 예 로부터 남의 득남(得男)을 축하하는 데는 본디 농장(弄璋)이라고 써야 하는데, 당(唐) 현종(玄宗) 때 재상이었던 이임보(李林甫)가 일찍이 남의 득남을 축하하는 글에 “농장의 경사가 있었다고 들었다.[聞有弄麞之慶]”고 잘못 쓰자, 객(客)이 그것을 보고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무식함을 의미한다.
[주D-004]학(鶴)과 …… 타기에 : 춘추 시대 위 의공(衛懿公)이 학을 매우 좋아하여 심지어는 대부(大夫)의 수레를 타는 학도 있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고관(高官)의 자리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9월 그믐날에 팔구시(八句詩)를 가지고 적전(籍田)에 있는 한 상당(韓上黨)의 별장을 방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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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병든 게 아득해라 지금 몇 해이던고 / 一病悠悠今幾年
문득 가을이 다했다니 뜻이 아득해지네 / 忽聞秋盡意茫然
정다운 사람이 정히 상교 밖에 있기에 / 可人政在桑郊外
필마 타고 국화의 시냇가를 찾아가노라 / 匹馬相尋菊澗邊
다행히 이 마음이 물아를 잊었거니 / 幸是此心忘物我
다시 어느 곳에서 신선을 찾으리요 / 更從何處覓神仙
기약 없이 왕래하긴 진정 어려운 일이니 / 往來邂逅誠難事
특별히 찾아가서 괴론 마음 위로하련다 / 特地敲門解倒懸
일 년의 사분지 일만 지나면 바로 명년이라 / 四分之一是明年
헤어진 지 수일에 벌써 망연자실하였네 / 數日乖離已惘然
장애물 걷어 절로 안팎 없음은 알거니와 / 障撤自知無內外
꿀이 달거니 누가 속과 가를 분변하리요 / 蜜甛誰復辨中邊
문장은 반드시 다 뛰어날 바는 아니지만 / 文章未必皆邦傑
산야는 예부터 바로 지상의 신선이라네 / 山野由來卽地仙
필마로 놀러 나감은 일을 좋아함이 아니라 / 匹馬出游非好事
잠시 서로 대해 그리운 맘 위로하려는 걸세 / 暫時相對慰懸懸
[주D-001]상교(桑郊) : 고대에 제후(諸侯)의 부인(夫人)이 누에를 기르던 서교(西郊)의 상전(桑田)을 가리킨다.
[주D-002]꿀이 …… 분변하리요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이르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도를 얻는다면 마치 꿀을 먹는 것과 같아서 속과 가가 모두 달 것이다.[若有人得道 猶如食蜜 中邊皆甛]” 한 데서 온 말이다
도중(途中)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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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해라 누구와 서로 말을 할꼬 / 寂寞誰相語
쓸쓸하게 나 홀로 노닐 뿐이네 / 蕭條我獨游
하늘은 높아라 푸른 산 태양이요 / 天高靑嶂日
들은 넓어라 흰 구름 가을이로세 / 野闊白雲秋
한 물은 사람 등 뒤에 비껴 흐르고 / 一水橫人背
세 봉우리는 말 머리에 우뚝 섰네 / 三峯直馬頭
솔 빛이 작은 고개에 푸르러라 / 松光浮小嶺
생각하니 길창루가 여기 있었지 / 想見吉昌樓
상당군(上黨君)의 별장에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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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창루 연못 위의 언덕으로 / 吉昌池上岸
오솔길이 산을 따라 굽게 났는데 / 細路曲緣山
비록 담장 밖에 있기는 하나 / 縱在垣牆外
참으로 지척 사이나 똑같구려 / 眞同咫尺間
소매 펄럭이며 솔 아래 앉았다가 / 袖風松下坐
신에 이슬 털며 달밤에 돌아왔네 / 鞋露月中還
남은 땅을 내게 살도록 내준다면 / 隙地如容卜
후일 내 한가로운 몸을 붙이련만 / 他年着我閑
태평의 참다운 기상을 / 太平眞氣像
상당군이 새롭게 써놓았네그려 / 上黨寫來新
벼는 쌓여서 사람이 막 한가롭고 / 稻積人初歇
문은 없는데 개도 짖지를 않누나 / 門無犬亦馴
벽의 흙은 속까진 아직 안 말랐고 / 壁泥乾未透
뜨락의 풀은 무성하게 어우러졌네 / 庭草茂相因
유포가 바로 이 어느 곳이뇨 / 柳浦是何處
연파 속엔 두건을 응당 벗어야지 / 煙波應岸巾
증지봉(甑池峯) 머리에 잠깐 서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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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고 땅은 낮아 해와 달이 밝은데 / 天地高低日月明
증지봉 꼭대기에 이 선생이 잠시 올라 / 甑池峯上李先生
유연히 홀로 서서 긴 휘파람 부노라니 / 悠然獨立舒長嘯
세상 걱정하는 한 치 마음을 누가 알꼬 / 誰識憂時一寸情
고궁의 성긴 나무는 잎새가 전혀 없어 / 故宮疎木葉全無
나무 밑 인가들이 반 구석쯤 드러났네 / 木下人家半露隅
경릉이 일찍이 머무른 곳이라 하는데 / 聞說慶陵曾駐蹕
이젠 깨진 초석이 가을 풀에 묻혔구려 / 至今破礎沒寒蕪
평야의 중심 가로지른 한 줄기 산이여 / 平野中橫獨葉山
천록이 바로 천간이란 걸 누가 알리요 / 誰知天錄是天慳
도읍 옮김은 예부터 쉽지 않다 하거니 / 移都自古稱非易
어찌 범상한 이목으로 알 수 있었으랴 / 豈在凡庸耳目間
[주D-001]경릉(慶陵) : 고려 충렬왕(忠烈王)의 능호(陵號)로서 충렬왕을 가리킨다.
[주D-002]천록(天錄)이 바로 천간(天慳) : 천록은 하늘의 장부(帳簿)에 기재된 것이란 뜻이고, 천간은 하늘이 아낀다는 뜻으로, 전하여 범상한 인간의 눈으로는 찾을 수 없는 명지(名地) 등을 가리킨다.
돌아오는 길에 천마산(天磨山) 등 여러 산을 바라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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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의 뭇 산들 빼어난 기운 장하여라 / 左手群山秀氣長
높은 관에 홀 받들고 대궐을 향하였네 / 峩冠奉笏向明堂
왕국을 부지하는 건 끝내 유술이거니 / 扶持王國終儒術
대당 때처럼 중흥을 노래하고 싶구나 / 欲頌中興如大唐
[주D-001]대당(大唐) …… 싶구나 : 당 현종(唐玄宗) 천보(天寶) 연간에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현종은 촉(蜀)으로 몽진하고 황태자가 즉위하여 군사를 지휘해서 난리를 평정하였는바, 당나라를 중흥시킨 공적을 찬양한 것이 바로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인데, 〈대당중흥송〉은 원결(元結)이 짓고 안진경(顔眞卿)이 써서 오계(浯溪)의 마애(磨崖)에 세웠다고 한다.
다음 날에 한 수를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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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놀이가 퍽이나 청쾌했으니 / 高游頗蕭洒
행색은 그림도 그만하기 어려우리 / 行色畫難如
스스로 새들과 어울리려 했거니 / 自擬群於鳥
고기와 나 함께한 걸 누가 알랴 / 誰知我與魚
강산은 이 사직을 붙들어주건만 / 江山扶社稷
신세는 못 구부린 병신만 같아라 / 身世似籧篨
한나절 동안 한가로웠던 흥취가 / 半日悠悠興
다음날 새벽까지도 남았네그려 / 晨興尙有餘
또 읊다.
가을 강산에 기러기 하늘 가로질러 날 제 / 江山秋色鴈橫天
필마로 외로이 읊으니 선골이 되는 듯했지 / 匹馬孤吟骨欲仙
스스로 증험컨대 정심 공부가 아직 미숙해 / 自驗正心功未熟
어제 간 곳이 꿈속에도 아직 삼삼한 걸세 / 夢餘行處尙森然
[주D-001]고기와 나 함께한 걸 : 장 자(莊子)가 혜자(惠子)와 함께 호량(濠梁) 위에서 노닐 적에 장자가 말하기를 “피라미가 조용히 헤엄을 치니, 이것이 바로 물고기의 낙(樂)이다.” 하자, 혜자가 말하기를 “자네가 고기가 아닌데 물고기의 낙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니, 장자가 말하기를 “자네가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낙을 모른다는 것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천지자연에 동화함을 의미한다. 《莊子 秋水》
초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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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에 추위가 잠깐 이르니 / 冬初寒乍至
새벽에 일어나기 전보다 더뎌라 / 晨起比前遲
관청 일을 보듯 급급히 서둘러 / 汲汲如公事
유유히 시골 정취를 읊노라니 / 悠悠賦野詩
노란 국화는 그대로 옛 자태인데 / 黃花猶古態
푸른 산은 새로운 모양을 띠었네 / 碧嶂有新姿
정과 경계를 모두 잊은 까닭에 / 賴是忘情境
쑥대머리 괴고 게을리 누웠노라 / 蓬頭懶更支
연화지(蓮花池). 손씨(孫氏)가 살았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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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지 가요 푸른 산 앞에 자리했던 / 蓮花池上碧山前
손씨의 옛 집터엔 풀이 하늘 가닿았네 / 孫氏遺居草接天
한 굽이 여강이 내 손에 들어오기만 하면 / 一曲驪江入吾手
은퇴하여 앉을 방석 없음을 왜 걱정하랴 / 乞身何患坐無氈
[주D-001]앉을 방석 없음 : 두보(杜甫)가 장난삼아 정건(鄭虔)에게 준 시에 “재주 높단 명성 누린 지 삼십 년에, 방문객이 추워라 털방석도 없네.[才名三十年 坐客寒無氈]”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3 戲簡鄭廣文兼呈蘇司業》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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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아비 군대 일킨 죄는 오히려 가볍고 / 子弄父兵罪猶薄
쥐 잡자도 그릇 꺼린단 말은 음미할 만하네 / 投鼠忌器言可繹
학이 구고에서 울면 소리가 하늘에 들려 / 鶴鳴九皐聲聞天
밝은 태양이 곧장 내 충심을 비추느니라 / 白日直照吾心赤
피부로 느낀 참소는 사람 그르치기 쉬워 / 膚受之譖誤人易
자칫하면 절벽에서 실족한 격이 되나니 / 失脚懸崖才咫尺
인생은 거동을 허둥지둥 급하게 말아야지 / 人生擧趾莫倉卒
한번 헛디디면 지킨 바를 바꾸게 되고말고 / 一跌能令所守易
위 하늘 아래 못이 이의 상에 나타났으니 / 上天下澤履著象
백성의 뜻 정해질 때 백성이 힘 다한다네 / 民志定時民致力
노마는 예로부터 감히 나이도 못 세거늘 / 路馬由來不敢齒
군대 일으켜 누가 임금 측근 쫓게 했던고 / 興甲誰敎逐君側
개미 구멍이 천 길 제방을 무너뜨리고 / 蟻穴可空千丈堤
횃불이 천 년 칠흑 밤을 깨기도 하는걸 / 爝火可破千年黑
글 읽어서 힘 얻은 걸 그 누가 알아주랴 / 讀書有力誰得知
백발의 늙은이 홀로 마음만 슬플 뿐이네 / 白髮老翁心惻惻
[주D-001]자식이 …… 죄 : 한 선제(漢宣帝) 때 발해군(渤海郡)에 흉년이 들어 도적이 자주 일어나자, 선제가 공수(龔遂)를 발해 태수(渤海太守)로 삼고 그를 불러 이르기를 “발해에 난리가 나서 내가 매우 걱정스러운데, 그대는 어떻게 도적을 지식(止息)시켜 나의 뜻에 부응하려는가?” 하니, 공수가 대답하기를 “바닷가가 하도 멀어서 성왕(聖王)의 풍화(風化)를 입지 못한 데다 그 백성들이 굶주림에 지쳐 있는데도 관리가 그들을 구휼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내 폐하(陛下)의 적자(赤子)들로 하여금 조그마한 땅에서 폐하의 군사를 움직이게 한 것일 뿐입니다.”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백성들의 반란(叛亂)을 의미한다. 《漢書卷89 循史傳 龔遂》
[주D-002]쥐 …… 말 : 해 (害)를 제거하고자 하나 꺼리는 바가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가의(賈誼)의 치안책(治安策)에서 속어(俗語)의 “돌을 던져 쥐를 잡고자 하나 그릇이 깨질 것을 꺼린다.[欲投鼠而忌器]”라는 말을 인용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임금의 측근(側近)을 제거하기 어려움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3]학(鶴)이 …… 들려 : 《시경(詩經)》 소아(小雅) 학명(鶴鳴)에 “아홉 언덕 깊은 곳에서 학이 울거든, 그 소리가 멀리 하늘까지 들리도다.[鶴鳴于九皐聲聞于天]”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어진 이의 정성은 가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주D-004]피부로 느낀 참소 : 자 장(子張)이 밝음[明]에 대하여 묻자,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점차로 젖어 들 듯한 참소와 피부로 느끼게 하는 절박한 하소연이 먹혀들지 않는다면 밝다고 이를 것이다.[浸潤之譖膚受之愬 不行焉 可謂明也已矣]”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顔淵》
[주D-005]위 …… 다한다네 : 《주 역(周易)》 이괘(履卦) 상사(象辭)에 이르기를 “위의 하늘과 아래의 못이 이괘의 상이니, 군자가 그것을 인하여 위아래를 분변해서 백성의 뜻을 안정시킨다.[上天下澤履君子以 辨上下 定民志]” 한 데서 온 말로, 즉 상하 존비(上下尊卑)의 질서를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6]노마(路馬)는 …… 세거늘 : 노(路)는 임금의 수레를 말한 것으로, 노마는 임금의 수레를 끄는 말을 가리키는데,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노마의 나이를 헤아리면 처벌을 받는다.[齒路馬有誅]”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군대 …… 했던고 : 춘 추 시대 진(晉)나라 대부(大夫) 조앙(趙鞅)이 진양(晉陽)의 군대를 일으켜 임금의 측근으로서 악인(惡人)이었던 순인(荀寅)과 사길석(士吉射)을 쫓아냈는데, 《춘추》에서는 임금의 명령이 없이 독단한 일이라 하여 그것을 반란[叛]으로 규정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春秋公羊傳 定公13年》
[주D-008]개미 …… 무너뜨리고 :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에 “천 길의 제방이 개미의 구멍 때문에 무너진다.[千丈之隄 以螻蟻之穴潰]”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작은 일을 신중히 하지 않아서 큰 재앙을 빚게 됨을 비유한다.
오래 앉다.[久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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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앉으면 주린 뼈 쑤심을 금할 길 없어 / 久坐不禁飢骨酸
걷노라니 쑤시진 않으나 전혀 편친 않아서 / 踏來酸止未全安
억지로 몽당붓 쥐고 새로운 시구 쓰다가 / 強拈敗筆題新句
문득 고관 만나선 접시를 닥닥 긁어 먹네 / 忽値高軒拭小盤
담장 밑의 국화는 노랗고도 보드랍고요 / 牆下菊花黃更嫩
지붕 머리 소나무는 푸르고도 차갑구나 / 屋頭松樹碧仍寒
병든 몸이 하늘 뜻 아니라 감히 말하랴만 / 病軀敢道非天意
세간의 행로 어려움을 알아야 하고말고 / 要識世間行路難
[주D-001]접시를 …… 먹네 : 두보(杜甫)의 〈귀래(歸來)〉 시에 “국자 씻어 새 술을 따라 마시고, 머리 숙여 작은 접시 닥닥 긁어 먹네.[洗杓斟新醞低頭拭小盤]”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3》
새벽에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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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광활한 천지 사이에 나오고 / 日生天地闊
티끌은 분잡한 거리에서 이는데 / 塵起里巷喧
세월의 재촉 받음은 다 똑같거니 / 共被年光促
야기가 보존됨을 그 누가 알랴 / 誰知夜氣存
꿈속에도 오히려 요란스러워라 / 夢中猶擾擾
분수 밖에 모두 분주 다사하거늘 / 分外儘奔奔
나는 청명한 곳에 조용히 앉아서 / 靜坐淸明處
다만 늘 문을 닫고 있을 뿐이네 / 祗從長掩門
어젯밤엔 뼈가 더욱 쑤시고 아파 / 夜眠尤骨痛
새벽까지도 마음이 두근거리네 / 曉起尙心驚
어찌 어젯밤같이 항상 아프다면 / 豈有如疇昔
이 목숨을 오래 지탱할 수 있으랴 / 而能久此生
등불 켜고 급히 번민을 삭이고자 / 呼燈排悶急
벽에 기대서 시를 읊어 이루는데 / 倚壁賦詩成
작은 여종이 잔뜩 성질을 부리며 / 小婢最嗔恚
내 삭신 밟자 닭이 처음 우는구나 / 踏肌雞始鳴
슬프기도 해라 이 늙은 물건의 / 哀哉此老物
고통스러움을 그 누가 알아줄꼬 / 苦痛有誰知
오랜 병이라 의약은 폐했거니와 / 久病廢醫藥
젊은 날에 예와 시는 배웠었기에 / 早年聞禮詩
읊조릴 땐 맘은 절로 촌스럽지만 / 吟哦心自草
남 대해선 겉을 꾸미지 못하노라 / 應接貌難梔
서리 이슬은 날로 쓸쓸해 가는데 / 霜露日悽惻
아득하여라 우리 도의 쇠함이여 / 悠悠吾道衰
[주D-001]야기(夜氣) : 사람이 사물(事物)과 접촉하기 전인 새벽녘의 청명(淸明)한 기운을 말하는데, 전하여 본연(本然)의 양심(良心)을 가리킨다. 《孟子告子上》
조균(趙鈞)이 선관(膳官)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다가 또 해면해 주기를 요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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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 구했다 해면 구했다 편안만 도모하긴 / 求官求免計便安
아무리 영웅호걸이라도 매우 어렵다마다 / 縱是英豪亦甚難
그를 위해 두어 자 쓰는 건 아깝지 않으나 / 不惜爲渠書數字
존중하는 상공에게 감히 청탁을 하겠는가 / 相公尊重敢相干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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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의 근해는 바로 왜구들의 마당이라 / 沔州近海是倭場
농촌 들이 연래에 또 모두 황폐해졌기에 / 田野年來又盡荒
우리 하인이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다가 / 我有蒼頭久棲息
지금 백발 나이에 타지로 유망하려 하네 / 今垂白髮欲流亡
백성의 고락이야 어찌 물을 게 있으랴만 / 輿情休戚更何問
호구의 성쇠는 더욱 마음이 아프고말고 / 戶口盛衰尤可傷
소인은 땅을 생각한단 건 공연한 말이라 / 謾說小人懷土耳
때로 석서를 노래하며 길이 탄식하노라 / 時歌碩鼠嘆嗟長
[주D-001]소인은 …… 건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살 땅을 생각한다.[君子懷德 小人懷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里仁》
[주D-002]석서(碩鼠) : 《시 경(詩經)》 위풍(魏風)의 편명이다. 그 시에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기장을 먹지 말지어다. 삼 년 동안이나 괴롭히고도, 그래도 나를 봐주지 않누나.[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하였는데, 이 시는 위(魏)나라 사람이 임금의 학정(虐政)에 못 견디어 멀리 타국으로 떠나려면서 부른 노래라 한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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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사이에 나만 유독 곤궁하긴 하지만 / 天地之間獨我窮
어찌 일찍이 의리가 내 몸에 쌓여서이랴 / 何曾義理積吾躬
문을 닫고 새로운 일 듣고 싶지 않아서 / 閉門不欲聞新事
붓 들고 무단히 고풍을 읊조려 쓰노라니 / 落筆無端賦古風
물색은 절로 너르나 시 품격은 군색하고 / 物色自寬詩格窘
도심은 끝내 엷고 세속 인연만 농후하네 / 道情終薄世緣濃
맑은 새벽 밝은 창 아래 분향하고 앉으니 / 明窓淸曉焚香坐
한 단계의 공부가 고요한 가운데 있구려 / 一段功夫在靜中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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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한 우리의 도를 나 홀로 가노라니 / 吾道砥平吾獨行
푸른 하늘 밝은 태양이 밝게 비춰주네 / 靑天白日照人明
요순의 예악은 직책 나누어 맡겼거니와 / 唐虞禮樂分官守
공맹의 시서는 성정 통하기에 그만일세 / 孔孟詩書達性情
악물을 변화시켜 악어는 바다로 옮기고 / 化惡鰐魚從海徙
화기를 불러라 봉황은 뫼에서 울었었지 / 召和鳳鳥在岡鳴
한집안의 태평함을 누가 능히 알쏜가 / 一家位育誰能識
야기를 보존한 때에 낙이 절로 생기누나 / 夜氣存時樂自生
[주D-001]악물(惡物)을 …… 옮기고 : 한 유(韓愈)가 일찍이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나갔을 때 그곳 악계(惡溪)에 사는 악어(鱷魚)가 백성들의 가축을 마구 잡아먹어서 백성들이 몹시 고통스럽게 여겼다. 이에 한유가 마침내 제악어문(祭鱷魚文)을 지어서 악계의 물에 던졌더니, 바로 그날 저녁에 그 물에서 폭풍과 천둥이 일어났고, 그로부터 수일 뒤에 그 물이 다 말라 버려서 악어들이 마침내 그곳을 떠나 60리 밖으로 옮겨감으로써 다시는 조주에 악어의 걱정이 없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화기(和氣)를 …… 울었었지 : 《시 경(詩經)》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새가 울어대니, 저 높은 뫼이로다. 오동나무가 자라니, 저 볕바른 곳이로다. 무성한 오동나무에, 봉황새 노래 화평하도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菶菶萋萋雝雝喈喈]”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바로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을 따라 굽이진 언덕에서 노닐 때 성왕을 위하여 노래한 것이다.
초겨울이 약간 추워서 인하여 산사(山寺)를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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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산엔 새 끊기고 눈만 공중에 가득고 / 千山鳥絶雪漫空
만 구렁엔 용 울어라 바람이 솔에 들 제 / 萬壑龍吟風入松
절벽 아래 승방에는 향불 꺼져 썰렁한데 / 石壁僧房香火冷
아침 해 돋을 때부터 석양까지 앉았으리 / 半窓朝日坐高舂
[주D-001]천 산엔 …… 가득고 :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 시에 “일천 산엔 나는 새가 끊어지고, 일만 길엔 사람 왕래가 전혀 없네.[千山鳥飛絶 萬逕人蹤滅]” 하였다.
[주D-002]만 구렁엔 …… 제 : 원 문의 용음(龍吟)은 본디 젓대 소리를 형용한 것으로, 이백(李白)의 〈금릉청한시어취적(金陵聽韓侍御吹笛)〉 시에도 “바람이 불어 종산을 감아 도니, 일만 구렁이 다 용의 울음소리로다.[風吹繞鍾山 萬壑皆龍吟]” 하여, 용의 울음을 젓대 소리에 비유했으나, 여기서는 소나무에 부는 바람 소리를 형용한 것이다.
새벽에 안개가 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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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안개가 성곽을 몽땅 삼키자 / 曉霧沈城郭
가인이 내게 그 소식 알려줬건만 / 家人報我知
이불 쓰고 앉아서 나가지 못하고 / 蒙頭坐不出
병든 눈 흐림도 나수기 어려워라 / 病眼翳難醫
표범은 깊은 골짝에 숨었을 게고 / 隱豹藏深谷
새들은 옛 나뭇가지를 잃었으리 / 飛禽失故枝
조금 다니고 많이 누워 있는 곳엔 / 少行多臥處
다만 새 시나 읊는 것이 알맞겠네 / 只合詠新詩
[주D-001]표범은 …… 게고 : 표범은 자기 털의 문채를 더럽히지 않고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안개가 끼거나 비가 올 때에는 굴 속에만 숨어 있고 먹이를 먹으러도 나오지 않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조사 종파도(祖師宗派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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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꽃송이로 한 종파 드리우니 / 枯花垂一派
눈 속에 서서 하나로 셋을 깨쳤네 / 立雪反三隅
과거에도 부처가 의당 있었거니와 / 過去佛猶在
미래에 부처 될 이도 하 많고말고 / 未來人有餘
살아서는 천자의 지위에 있었는데 / 生居天子位
죽어서는 조사의 그림에 실리누나 / 死載祖師圖
다만 마음속에 거리낌만 없다면 / 只得心無累
-원문 빠짐- / □□□□□
[주D-001]마른 …… 드리우니 : 마 른 꽃송이란 석가(釋迦)가 일찍이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說法)할 적에 법좌(法座)에 올라 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말없이 대중을 보자, 아무도 여기에 응하는 이가 없었는데,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부처의 참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으므로, 석가가 가섭에게 이르기를 “정법안장 열반묘심 실상무상 미묘법문(正法眼藏涅槃妙心實相無相微妙法門)이 있으니, 이제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하여, 마하가섭이 선종(禪宗)의 초조(初祖)가 된 것을 의미하고, 한 종파를 드리웠다는 것은 달마 조사(達摩祖師)가 인도(印度)로부터 처음 중국(中國)에 들어와서 석가의 이 심법(心法)을 중국에 전하여 중국 선종의 초조가 된 것을 의미한다.
[주D-002]눈 …… 깨쳤네 : 중 국 선종의 제2조(第二祖)인 혜가(慧可)가 처음에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로 달마 조사(達摩祖師)를 찾아가서 눈 속에 앉아 가르침을 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으므로, 드디어 자기 왼팔을 칼로 끊어 굳은 의지를 보여서 마침내 허락을 받고 크게 깨달아서 끝내 중국 선종의 제2조가 된 것을 의미한다.
[주D-003]살아서는 …… 있었는데 : 부처는 법문(法門)의 주인이며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함에 있어 자유자재한 묘용(妙用)이 있다 하여, 부처 또는 조사를 법왕(法王)이라 일컬은 데서 온 말이다.
해가 나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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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하여 한창 답답하다가 / 霧沈方鬱鬱
해가 나오니 또 기쁘기 그지없네 / 日出又欣欣
처음엔 강산을 분간하기 어렵더니 / 嶽瀆初難辨
조금씩 점차로 모양이 드러나누나 / 毫釐漸可分
멀리 떨어져 계신 그리운 님에게 / 相思隔雲樹
훤근을 바치고픈 뜻 간절하여라 / 有意獻暄芹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데 / 歲月不吾與
요순 문무의 시대는 아득기만 하네 / 渺然□舜文
[주D-001]훤근(暄芹)을 바치고픈 뜻 : 훤 근은 다스운 햇볕과 미나리를 합칭한 말이다. 옛날 송(宋)나라의 한 농부가 항상 누더기옷만을 입고 겨울을 지내고는 다스운 봄날을 당하여 따뜻한 햇볕을 쬐면서 천하에 너른 집, 다스운 방과 솜옷이나 여우갖옷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고 자기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등 쬐는 따뜻함을 아무도 알 사람이 없으니, 이것을 우리 임금님께 바치면 큰 상(賞)을 받게 될 것이다.” 하자, 그 마을의 부자(富者)가 그에게 말하기를 “옛사람이 미나리를 아주 좋아한 이가 있어 그 마을의 부귀한 자에게 미나리가 맛이 좋다고 말하자, 그 부귀한 자가 미나리를 먹어본 결과, 맛이 독하고 배가 아팠다더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미력(微力)이나마 임금을 위하려는 충성(忠誠)에 비유한다.
연라자도(煙蘿子圖)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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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리고 펴고 하길 기계 작동처럼 하여 / 屈伸俯仰如機關
사지 육체 땀 흘리고 오장을 흔들어대네 / 支體汗流搖肺肝
우리들의 양생법은 그리 어렵지 않나니 / 我輩養身非甚艱
배부르게 안 먹고 편하게 안 거처함일세 / 食無求飽居無安
옳은 듯한 그릇됨을 어찌 분간키 어려우랴 / 似是之非辨豈難
의리와 혈기는 애당초 끝이 서로 다른걸 / 義理血氣初兩端
누가 나의 뼈를 이토록 쑤셔대게 하는고 / 誰敎我骨多辛酸
해와 달이 빨리 달린 것만이 가장 기쁘네 / 最喜日月雙跳丸
해와 달이 서로 갈음하여 왕래하거니 / 雙跳丸迭往還
어느 누군들 천지 사이에 길이 존재할쏜가 / 何人長存天地間
[주C-001]연라자도(煙蘿子圖) : 연라자는 옛날에 선도(仙道)를 배웠다는 선인(仙人)의 이름인데, 일반적으로 은사(隱士)를 가리키기도 한다.
[주D-001]구부리고 …… 흔들어대네 : 도가(道家)에서 몸과 수족(手足)을 구부리고 펴고 하면서 탁한 기를 뱉어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어 몸을 단련하는 양생법(養生法)을 가리켜 한 말이다.
[주D-002]배부르게 …… 거처함일세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군자가 먹는 것은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는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에는 민첩하고 말은 삼가서 하며, 도가 있는 이에게 가서 질정한다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이를 것이다.[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學而》
홀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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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읊으니 참으로 뜻에 맞아라 / 獨吟眞適意
욕심 줄이면 선심을 보존하고말고 / 寡欲可存心
단풍 잎새엔 바람 서리 급해지고 / 黃葉風霜急
흰 구름은 깊은 구렁에 잠기었네 / 白雲丘壑深
옳고 그름은 그 누가 결정하는고 / 是非誰定奪
노쇠함만 절로 점차 찾아오누나 / 衰老自侵尋
사퇴하는 건 어려운 일 아니거니 / 乞退非難事
걱정 많은 이 맘을 하늘은 알겠지 / 天知耿耿心
택주(宅主)가 보개(寶蓋)에 예배(禮拜)하고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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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개를 당년에 석가 세존께 바쳤을 때에 / 寶蓋當年獻世尊
위령의 변화가 하 넓어 말하기 어려웠지 / 威靈變化浩難言
한 자루도 안 편 것은 다른 뜻이 아니라 / 不張一柄非他事
인간 만복의 근원을 만들기 위함이라네 / 爲作人間萬福原
백보를 장엄하게 대천세계에 펼쳤어라 / 百寶莊嚴遍大千
드높은 공덕이 절로 가없이 넓었네 / 巍巍功德自無邊
누가 알리요 한 점 원만히 깨우친 곳에 / 誰知一點圓明處
인천의 번뇌의 인연을 멀리 초탈한 줄을 / 迥脫人天有漏緣
묘원과 공적이 스스로 당당하기만 하면 / 妙圓空寂自堂堂
범인과 성인이 똑같이 한 도량에 드나니 / 凡聖同歸一道場
비록 눈 속에 팔 끊는 이는 못 되더라도 / 縱不雪中人斷臂
소량을 향하는 마음은 응당 다시 없겠지 / 已無心更向蕭梁
[주C-001]보개(寶蓋) : 불가(佛家)에서 불(佛)과 보살(菩薩)의 높은 법좌(法座) 위에 비치하는, 보옥(寶玉)으로 장식한 천개(天蓋)를 가리킨다.
[주D-001]묘원(妙圓)과 공적(空寂) : 모 두 불교(佛敎) 용어로서, 묘원은 수묘 원만(殊妙圓滿)의 뜻으로 절대적인 진실상(眞實相)을 가리키고, 공적은 제법상(諸法相)을 멀리 초탈한 적정(寂靜)의 상태를 가리킨다. 양 무제(梁武帝)는 본디 불법(佛法)을 독실히 신봉하였는데,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중국에 처음 들어와서 양 무제를 만났을 때, 무제가 달마에게 이르기를 “짐(朕)이 즉위한 이래 불사(佛寺)를 짓고 불경(佛經)을 쓰는 등 많은 일을 하였으니, 무슨 공덕(功德)이 있는가?” 하자, 달마가 대답하기를 “아무런 공덕도 없소이다.……맑은 지혜가 묘원하면 체가 스스로 공적해지나니, 이것이 바로 공덕이요, 세상에서 구할 것이 아닙니다.[幷無功德……淨智妙圓 體自空寂 如是功德 不以世求]”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눈 속에 팔 끊는 이 : 중 국 선종(禪宗)의 제2조(第二祖)인 혜가(慧可)를 가리킨다. 혜가가 처음에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로 달마 조사(達摩祖師)를 찾아가서 눈 속에 앉아 가르침을 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으므로, 드디어 자기 왼팔을 칼로 끊어 굳은 의지를 보여서 마침내 허락을 받고 크게 깨달아서 끝내 중국 선종의 제2조가 된 것을 의미한다.
[주D-003]소량(蕭梁)을 …… 없겠지 : 소량은 소씨의 양나라란 뜻으로 양 무제(梁武帝)를 가리킨다. 그는 불법을 독실히 신봉했으나 방법이 어긋났으므로 이른 말이다.
밤에 큰비가 내리므로 등불을 켜고 이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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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봄비처럼 많이 내려서 / 冬雨如春雨
낙숫물 소리에 꿈이 문득 깨었네 / 簷聲夢忽回
등불 켜자 그윽한 흥취 발했는데 / 呼燈發幽興
붓 잡으니 재주 없어 부끄러워라 / 把筆愧微才
적적한 선탑과도 서로 연잇고 / 寂寂連禪榻
아득한 조대와도 멀리 닿았으리 / 茫茫接釣臺
그 옛날 구경했던 찬 소맷자락 / 記曾觀冷袖
춤추던 궁전은 이미 황폐해졌네 / 舞殿已塵埃
[주D-001]그 옛날 …… 황폐해졌네 : 찬 소맷자락 춤추던 궁전이란 바로 두목(杜牧)의 〈아방궁부(阿房宮賦)〉에 나오는 ‘무전 냉수(舞殿冷袖)’란 말에서 온 것인데, 여기서는 무얼 가리키는지 자세하지 않다.
절구(絶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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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고 비 내리고 긴 밤은 유유한데 / 風號雨滴夜悠悠
한 점 등불과 백발을 마주해 앉았노라니 / 一點靑燈對白頭
흡사하여라 그 옛날 광암사의 선탑 가에 / 恰似光巖禪榻畔
소슬한 솔바람 산 가득 가을이던 그때랑 / 松聲蕭瑟滿山秋
새벽에 일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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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등 밤비 속에 잠 못 들고 읊었더니 / 夜雨燈殘吟不眠
새벽이 오매 눈빛이 산천을 두루 덮었구려 / 曉來雪色遍山川
금년에도 여강에 갈 약속을 또 저버렸으니 / 今年又負驪江約
도롱이 삿갓 외론 배는 아득한 데 떨어졌네 / 簑笠孤舟墮渺然
처마에 드리운 고드름은 찬 빛을 내는데 / 簷垂玉筯冷生光
다만 이 초겨울이라 그리 길지는 않거니 / 只是冬初不甚長
해가 한낮이 되면 응당 절로 떨어지련만 / 白日正中應自落
깊이 들앉은 늙은이 시상은 얼 지경일세 / 老翁深坐凍詩腸
꿈에 선관이 나를 돌아보고 좋아했어라 / 我夢仙官顧我懽
옥경의 바람과 달은 그지없이 차가운데 / 玉京風月不勝寒
삼생을 읊조려도 못다 한 문장을 쓰느라 / 三生吟嘯難磨盡
이슬 방울에 주사 갈아 붓끝에 적시었네 / 滴露硏朱染筆端
시인의 정 끈끈하여 읊기에 연연하여라 / 人情宛轉儘經營
막으면 되레 걱정되어 심중이 불평한데 / 深距還憂却失平
붓을 잡아 때때로 편지를 쓰게 된 것은 / 把筆時時書尺牘
다만 중외에 문생들이 있기 때문이라네 / 只緣中外有門生
바람 소리 땅을 진동코 하늘은 드높은데 / 風聲動地碧天高
나무 위에 누가 다시 표주박을 걸었는고 / 樹上何人更掛瓢
귀를 막고 덧없는 세상일 이미 잊고서 / 塞耳已忘浮世事
고요함 속에 멀리 나는 봉황을 생각하네 / 靜中遐想鳳飄飄
성입 심통 경지야 내가 감히 바라리요 / 聲入心通我敢希
형색이나 분간하려도 오히려 희미한걸 / 欲分形色尙稀微
한황의 한 곡조를 풍패 땅에 남기었거니 / 漢皇一曲留豐沛
큰 바람에 구름 절로 나는 걸 상상켔네 / 坐想大風雲自飛
여흥에 가는 길이 아직 더디고 더뎌짐은 / 驪興行色尙遲遲
다만 저 광암사의 타루비 때문이라네 / 只爲光巖墮淚碑
두어 줄 비문을 이제 새길 수 있다 하니 / 見說數行今可刻
얼음이 녹은 때엔 내 호연히 돌아가련다 / 浩然歸志泮氷時
흰 구름 나는 아래 저기가 내 고향인데 / 白雲飛下是松楸
번쩍번쩍 흐르는 세월이 꿈속만 같아라 / 夢裏流光似轉頭
만 리라 해문에 봉화는 이제 끊어졌건만 / 萬里海門烽火絶
모르겠다 언제나 돌아가서 쉬게 될는지 / 不知何日得歸休
용화지 주변은 조시 거리와 멀리 떨어졌고 / 龍化池邊遠市塵
매년 여름 장마 땐 자리가 젖을 지경인데 / 年年夏潦欲侵茵
백씨 중씨가 서로 전한 뜻은 응당 알지만 / 須知伯仲相傳意
단지 애석한 것은 연꽃 주인이 바뀐 걸세 / 只惜蓮花易主人
당일에 상종하던 이가 반은 고인이어라 / 當日相從半古人
유유한 세상일이 근래에 더욱 새롭구려 / 悠悠世事近來新
우리 집의 담담함은 예전보다 더 심하여 / 吾家冷淡依前甚
슬픔과 기쁨 다 없애고 한낱 참뿐이라네 / 掃盡悲歡一味眞
바람세 한창 거센 때 밤 또한 차가운지라 / 風勢闌時夜更寒
등잔 앞에 아녀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았네 / 燈前兒女坐成團
영재는 시서의 밭에서 기르길 좋아하면서 / 英材樂育詩書圃
운명은 알기 위해 천지반을 자주 찾누나 / 星命頻尋天地盤
옛날에도 그 정묘한 백설을 창화했었고 / 要妙古猶賡白雪
지금도 먼 나라에서 단안이 나오거니와 / 遐荒今亦出丹矸
지기지우는 꼭 다 만나는 건 아니라서 / 知音未必皆相會
천 겹의 산과 바다에 행로가 어렵다네 / 山海千重行路難
[주D-001]옥경(玉京) : 도교 용어로, 천제(天帝)가 사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2]삼생(三生)을 …… 쓰느라 : 삼 생은 불가(佛家)의 말로, 전생(前生), 금생(今生), 내생(來生)을 가리킨다. 소식(蘇軾)의 〈차운승잠견증(次韻僧潛見贈)〉 시에 “다생의 화려한 말들을 다 없애지 못해, 아직도 끈끈한 시인의 정이 있네그려.[多生綺語磨不盡 尙有宛轉詩人情]”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바람 …… 걸었는고 : 요 (堯) 임금 때의 은사(隱士) 허유(許由)가 일찍이 기산(箕山) 아래 영수(潁水) 북쪽에 은거하면서 손수 농사를 지어 먹고 손으로 물을 움켜 마셨는데, 어떤 사람이 표주박 하나를 주어 그것을 나무에 걸어 두었더니, 바람이 불 때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자, 마침내 그 표주박을 내버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4]성입 심통(聲入心通) : 《논 어(論語)》 위정(爲政)의 “나는 나이 육십에 귀가 순해졌다.[六十而耳順]”에 대한 주(注)에 “소리가 들리면 마음에 깨달아져서 막히는 바가 없는 것이니, 앎이 지극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것이다.[聲入心通 無所違逆 知之之至 不思而得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한황(漢皇)의 …… 상상켔네 :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자기 고향인 풍패(豐沛)에 가서 부로(父老)들을 불러 주연(酒宴)을 베풀고 그 자리에서 대풍가(大風歌)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 노래에 “큰 바람이 일어나매 구름이 흩날렸어라, 위엄이 온 천하에 떨쳐 고향에 돌아왔도다, 어찌하면 용맹한 사람을 얻어서 사방을 지킬꼬.[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歸故鄕 安得猛士兮守四方]”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광암사(光巖寺)의 타루비(墮淚碑) : 타 루비는 원래 진(晉)나라 때 양양 태수(襄陽太守)로 선정(善政)을 베풀었던 양호(羊祜)의 덕을 사모하여 그 지방 백성들이 현산(峴山)에 세운 비(碑)를 가리키는바, 이 비를 바라보는 이는 모두 눈물을 떨어뜨렸다 하여 두예(杜預)가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광암사는 운암사(雲巖寺)로도 불리는 개성(開城) 봉명산(鳳鳴山)에 있던 사찰인바, 공민왕(恭愍王)과 그의 비(妃) 노국공주(魯國公主)의 원찰(願刹)인 관계로, 저자가 일찍이 이 절의 비문(碑文)을 짓고 한수(韓脩)가 글씨를 썼으므로, 특히 공민왕을 슬피 사모하는 뜻에서 이 비를 타루비에 빗대어 한 말이다.
[주D-007]천지반(天地盤) : 옛 날에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진행 상황을 가지고 길흉 화복(吉凶禍福)을 점치던 방법 가운데 하나인 천반(天盤)과 지반(地盤)의 응용 방법을 가리킨다. 그 점치는 법에 의하면, 두 목반(木盤)을 사용하되, 위의 것은 천상(天上)의 십이진(十二辰) 분야(分野)가 있어 이를 천반이라 하고, 아래의 것은 지상(地上)의 십이진 방위(方位)가 있어 이를 지반이라 하는바, 이 두 목반을 서로 포개 놓고 천반을 전동(轉動)시켜서, 점칠 간지(干支)와 시진(時辰)의 부분을 얻어 내서 길흉을 판단한다고 한다.
[주D-008]옛날에도 …… 창화(唱和)했었고 : 백 설(白雪)은 양춘(陽春)과 함께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고아(高雅)한 악곡(樂曲) 이름인데,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問)〉에 “양춘곡, 백설곡에 대해서는 온 국중에서도 그것을 이어서 창화할 자가 수십 인에 불과하다.[其爲陽春白雪 國中屬而和者 不過數十人]” 하였다.
[주D-009]지금도 …… 나오거니와 : 단 안(丹矸)은 단사(丹砂)와 같은 뜻인데, 《순자(荀子)》 왕제(王制)에 “멀리 남해(南海)에서는……증청(曾靑)과 단안이 생산되지만, 중국(中國)이 그것을 얻어서 재화(財貨)로 삼는다.[南海 則有羽翮齒革曾靑丹干焉 然而中國 得而財之]” 하였다.
[주D-010]지기지우(知己之友)는 …… 어렵다네 : 이 백(李白)의 〈공후요(箜篌謠)〉에 “다른 사람들 가슴속에는, 산과 바다가 그 몇천 겹인고. 친구하자고 선뜻 말은 하지만, 얼굴 대하면 구의봉과 똑같다네.[他人方寸間 山海幾千重 輕言託朋友 對面九疑峯]”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처세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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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한창 쑤시는 바람에 잠을 막 깨었는데 / 臂酸方劇夢初殘
어젯밤엔 허벅지 쑤신 게 몹시 짜증났었지 / 疇昔深嗔大腿酸
이 몸에 온갖 고통 모인 건 진작 알았거니와 / 久信此身叢衆苦
이 세상엔 어려움 많은 게 또한 가련하여라 / 更憐斯世本多艱
신선 얘기는 다 제인의 거짓말을 의탁하나 / 神仙共託齊人詐
부귀한 이는 범숙의 추위를 돌보아야 하리 / 富貴無輕范叔寒
다행히 좌망 얻음을 즐거운 일로 삼으니 / 幸得坐忘爲樂事
창 가득 아침 해가 얼굴 비춤이 반갑구나 / 滿窓朝日喜浮顔
천지가 깨끗이 씻겨 먼지 하나 없는지라 / 淨洗乾坤絶點塵
푸른 하늘 밝은 해가 의관을 환히 비추네 / 靑天白日照簪紳
반관은 일찍이 뜰 앞의 풀을 기억거니와 / 反觀曾記庭前草
청축은 오직 해상의 춘나무에 의탁하네 / 請祝唯憑海上椿
마음 닦는 공부는 거울처럼 연마하였고 / 心地功夫磨似鏡
시가의 재료는 땔나무같이 쌓였는지라 / 詩家材料積如薪
병중에 또 처마 고드름 떨어지는 걸 보고 / 病中又見簷氷墜
꽁꽁 언 붓 잡으니 신통한 말이 나오는걸 / 凍筆拈來語有神
[주D-001]제인(齊人)의 거짓말 : 진 시황(秦始皇) 때에 제(齊)나라 사람인 방사(方士) 서불(徐巿)이 동해(東海)의 삼신산(三神山)에 들어가 선인(仙人)을 구하겠다고 왕명을 받들어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인을 데리고 동해로 들어간 일과, 또 한 무제(漢武帝) 때에 역시 제나라 사람인 방사 소옹(少翁) 또한 방술(方術)로써 무제에게 총애를 받았던 등의 일을 가리킨다.
[주D-002]범숙(范叔)의 추위 : 범 숙은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범수(范睢)를 가리키는데, 그의 자가 숙(叔)이다. 범수가 일찍이 수가(須賈)와 함께 위상(魏相) 위제(魏齊)를 섬기다가 뒤에 진(秦)나라에 들어가 재상(宰相)이 되었는데, 그 후 위나라에서 진나라가 곧 위나라를 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는 수가를 진나라에 사신(使臣)으로 보냈다. 범수는 이때 포의(布衣) 차림으로 위장을 하고 객관(客館)에 가서 수가를 만났는데, 수가는 범수가 진나라 재상이 된 줄을 미처 모르고 깜짝 놀라며 말하기를 “범숙이 어찌 이렇게도 추워 보이는가?” 하고는, 친구의 정을 생각하여 즉시 명주 솜옷[綈袍] 한 벌을 내주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좌망(坐忘) : 도가(道家)의 말로, 물아(物我)를 둘 다 잊어서 도(道)와 합치하는 정신 세계를 가리킨다.
[주D-004]반관(反觀)은 …… 기억거니와 : 반 관은 사물(事物)을 가장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이른 말이고, 뜰 앞의 풀이란 바로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가 일찍이 뜰 앞의 풀을 제거하지 않으므로, 혹자가 그 까닭을 묻자, 대답하기를 “자가의 의사와 마찬가지다.[與自家意思一般]”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청축(請祝)은 …… 의탁하네 : 청축은 임금에게 축수 드리기를 청하는 것을 이른 말이고, 춘(椿)나무는 8000년을 봄으로 삼고 8000년을 가을로 삼는다는 장수하는 나무로서, 장수를 축복하는 데 쓰는 말이다.
강남 진헌사(江南進獻使) 이 재상(李宰相)은 가관(加官)됨으로 인하여 재비(宰批)가 있었고, 나와 한 첨서(韓簽書)는 현릉비(玄陵碑) 때문에 모두 구직(舊職)에 복관되었으므로, 명일에는 의당 사은(謝恩)을 해야 하기에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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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이 대국 섬김은 예절의 떳떳함이요 / 以小事大禮之常
초상 제사 경건히 함은 효의 돈독함이라 / 愼終追遠孝之篤
구중궁궐의 조서가 하루아침에 내리자 / 九重宣麻一朝下
태평성대의 화기가 동방에 떠오르누나 / 太平和氣浮暘谷
이공의 충직함은 전조를 경동시켰는데 / 李公忠直動前朝
나라 위해 거센 파도에 가변 배를 띄우네 / 爲國駭浪浮輕橈
깨끗한 마음은 일월을 꿰뚫는 충성이거니 / 靈臺皎皎貫日月
승진의 은총 입은 건 요행이 아니고말고 / 進荷寵光非幸徼
부끄러워라 내 문장은 억지로 얽은 거라 / 愧我文章強補綴
병든 뒤로 기가 약해 정화가 시들었건만 / 病餘氣弱精華凋
상당군의 필력이 문득 금상첨화 이루니 / 上黨筆力却添花
수척의 거북 좌대가 연하 속에 헌칠하네 / 龜趺數尺明煙霞
재상들은 선왕의 은혜에 깊이 감격하여 / 廟堂深感先王恩
세월이 오래될수록 정성이 더욱 간절해 / 愈久愈遠誠彌加
말하길 수년째 비문을 다 새기지 못한 건 / 迺曰數年不畢刻
다만 사방에 전쟁이 연달은 때문이라며 / 只爲四境多兵戈
밥 뱉고 머리털 쥐어 뭇 계책 수합하고 / 吐哺握髮屈群策
밤새껏 우러러 생각해 아침을 기다리네 / 仰思待旦永終夕
삼 인이 함께 제수된 건 유자의 영광이라 / 三人同拜儒者榮
병든 뒤의 광영에 신은 기쁘기 그지없네 / 病後光華臣喜極
현릉 때의 정당이 지금 몇이나 남았던고 / 玄陵政堂幾人存
구 년 만에 재차 받음은 진정 큰 은혜로세 / 九年再拜眞殊恩
신이 처음 교명 듣고 붓으로 노래하면서 / 臣初聞命筆以歌
성상의 수가 천지와 같길 축수 드리노라 / 上祝聖壽同乾坤
[주C-001]강남 진헌사(江南進獻使) 이 재상(李宰相) : 강남 진헌사는 당시 남경(南京)에 도읍한 명(明)나라에 가는 진헌사를 말하고, 이 재상은 바로 당시 문하 평리(門下評理)로 진헌사가 되어 명나라에 가던 이무방(李茂芳)을 가리킨다.
[주C-002]재비(宰批) : 재상(宰相)들이 임금에게 주청(奏請)하여 윤허(允許)를 받은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1]밥 …… 수합하고 : 재 상이 쉴 새 없이 현사(賢士)들을 예접(禮接)하여 선언(善言)을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이 노(魯)나라에 봉해지자, 주공이 백금을 경계하여 이르기를 “네가 노나라에 가거든 노나라 임금이란 것으로 선비들에게 교만을 부리지 말라. 나는 문왕(文王)의 아들이요, 무왕(武王)의 아우요, 성왕(成王)의 숙부로서 천하에 재상이 되었음에도, 머리 한번 감을 때 세 번씩 머리털을 거머쥐고 나가고, 밥 한번 먹을 때 세 번씩 밥을 뱉고 나가서[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 선비를 만나면서도 오히려 천하의 선비를 놓칠까 염려했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韓詩外傳 卷3》
[주D-002]밤새껏 …… 기다리네 : 주 공(周公)이 우(禹), 탕(湯), 문왕(文王), 무왕(武王)의 일들을 겸해서 시행하던 가운데 혹 서로 합치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밤새도록 우러러 생각하다가, 다행히 사리를 터득하게 되면 당장 시행하기에 급급하여 앉은 채로 아침을 기다렸다는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下》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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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복 입고 조정에 나가니 광채가 찬란해 / 束帶趨朝爛有光
행인들이 주목하며 서로 소곤소곤 말하길 / 行人屬目共商量
비록 백발에 얼굴 또한 몹시 검어졌지만 / 雖然白髮顔黧甚
아마도 그 옛날 이 정당인 듯하다 하네 / 似是當年李政堂
오늘날 조정에서 훌륭한 인재 등용할 제 / 今日朝廷登俊良
버려진 인재 기용하여 반열이 넘치는데 / 拾遺起廢溢班行
눈빛은 반짝반짝 키는 그대로 왜소하니 / 眼睛閃爍身仍短
반드시 그 옛날 이 정당이 분명타 하네 / 必是當年李政堂
돌아보니 현릉은 더욱 아득하기만 한데 / 回首蒼梧轉渺茫
사찰의 단청 빛은 깨끗하여 광채가 나네 / 招提金碧淨生香
비문 보려면 삼가서 얼른 지나치지 말라 / 觀碑愼勿悤悤過
전조의 일개 이 정당이 쓴 거란다 하네 / 一箇前朝李政堂
숙배(肅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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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가 하늘 같아 만물이 봄을 맞은 듯 / 聖主如天萬物春
겨울철 고리 나무에 잎 피는 새벽이로세 / 冬間苦李發榮晨
제때 아니라서 재이라 쓸까 두렵거니와 / 不時只恐書災異
실지 없이 조관 앞장서기는 부끄러워라 / 無實深慚壓搢紳
능침 규모야 한당 때에 견주기 어렵지만 / 陵室漢唐難比擬
경연에선 요순의 도를 정히 논열한다네 / 經筵堯舜政敷陳
성과 원에 신진 사류가 아무리 많다 한들 / 雖然省院多新進
성대한 덕이 어찌 부왕의 신하를 바꾸랴 / 盛德何曾改父臣
광암사(光巖寺) 도중(途中)에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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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 문신이 상의 특별한 은총 입어 / 兩箇詞臣荷異恩
군인의 길 인도 받아 궁문을 나와서는 / 黃裾引道出宮門
곧바로 능 아래 달려가 재배를 드리고 / 直趨陵下成雙拜
잠시 뜰 안에 들어가 한 마디를 나눴네 / 暫入庭中接一言
문체는 생소하여 뜻 표현 다 못했지만 / 文體生疎意難盡
필법은 단정하여 어이 그리 존귀한고 / 筆鋒端正勢何尊
그 누가 알랴 후일 명성이 전하는 곳에 / 誰知異日流名處
소나무 밑 와비엔 이끼가 끼었을 줄을 / 松下臥碑生蘚痕
밤에 돌아와서 피곤하여 그대로 누워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두 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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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이 오거서 읽을 계획 저버렸더니 / 謾負讀殘書五車
근래에 비로소 뱃속 텅 빈 걸 깨닫겠구려 / 邇來方覺腹空虛
괴로운 마음 안 놓여라 개미 싸움을 듣고 / 苦心耿耿聞鬪蟻
묵은 자취만 마냥 돌아라 맷돌 나귀 배우네 / 陳跡團團學磨驢
산을 나온 조각구름에 하늘은 광대하고 / 出岫片雲天浩蕩
창 절반쯤 아침 햇살에 숲은 무성하여라 / 半窓初日樹扶疎
조용히 읊다 우연히 유연한 곳 얻었으니 / 微吟偶得悠然處
벼슬 내놓고 언제나 옛집으로 돌아갈꼬 / 還笏何時返故廬
아침 해는 바다 하늘에 두둥실 떠오르고 / 出日團團海上天
곡봉은 우뚝 솟아 구름 연기를 진압하네 / 鵠峯高峙壓雲煙
국토 경계는 삼천 리를 가로로 뻗쳤거니 / 封疆橫亘三千里
종묘사직은 길이 억만년을 이어지리라 / 宗社綿延億萬年
큰 은총 입은 노쇠한 나는 홀로 기쁜데 / 獨喜老衰蒙異渥
높은 자리 호걸 가득함은 모두 쳐다보네 / 共瞻豪傑滿華聯
예로부터 끝없이 탐하는 게 마음이건만 / 由來隴蜀心中地
기심을 잊은 때문에 절로 태연해지누나 / 只賴忘機自坦然
[주D-001]괴로운 …… 듣고 : 심기(心氣)가 허약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병증(病症)을 앓던 진(晉)나라 은사(殷師)가 일찍이 와상 밑에 개미가 움직이는 소리를 소가 싸우는 소리로 잘못 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묵은 …… 배우네 : 소 식(蘇軾)의 〈송지상인유여산(送芝上人游廬山)〉 시에 “돌고 도는 게 맷돌 끄는 소와 같아, 걸음마다 묵은 자취만 밟노라.[團團如磨牛步步踏陳跡]”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멀리 떠나지 못하고 한 곳에 계속 잡혀 있음을 의미한다. 《蘇東坡詩集 卷35》
관디[冠帶]를 갖추어 예를 거행하고 합좌(合坐)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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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년 동안 근심과 질병이 서로 들볶아서 / 九年憂病苦相煎
고관대작 공명은 아득한 데 떨어졌는데 / 黃紙功名墮渺然
어찌 뜻했으랴 갑자기 성대한 은총 입어 / 豈意一朝霑茂渥
또 양부를 따라 높은 자리에 오를 줄을 / 又從兩府躡華聯
바람은 휘장을 불어 하늘을 펼쳐내고요 / 風涵翠幕褰天宇
태양은 금잔에 비쳐라 술샘이 넘실대네 / 日映金杯灩酒泉
묵묵히 세보매 동료가 몇이 안 남았으니 / 默數同僚無幾箇
백발의 정상이 또한 참으로 가련하구나 / 白頭情態亦堪憐
이날 영안궁(永安宮)으로 이어(移御)하는 어가(御駕)를 호종(扈從)하였다. 고(故) 재신(宰臣) 유방계(柳方啓)의 구택(舊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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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길은 궤도를 상고할 수 있고 / 日行躔可攷
천체 운행은 상이 항상 드러나나니 / 天運象恒垂
정사를 함엔 체통을 보아야 하고 / 發政須相體
거처를 옮김은 절로 때가 있는걸 / 移居自有時
용수산은 조망의 재료가 되려니와 / 龍巒承顧眄
책력은 무궁한 국운을 원하고말고 / 鳳曆願扶持
왕의 조공하는 큰 예절 닦으노니 / 大禮修王覲
태평은 다시 의심할 것 없으리라 / 升平更不疑
이날 조공(朝貢) 바칠 물품(物品)을 감봉(監封)하였다.
저물녘에 이르러 태후(太后)와 근비(謹妃)가 이어(移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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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들이 별처럼 만 점이나 반짝이어라 / 蠟炬如星萬點光
도성의 밤빛이 정히 어둑어둑한 때로세 / 天街夜色政蒼蒼
찬란한 왕후의 수레 천천히 거둥하는데 / 翟軒有爛徐來下
문모를 꼭 닮은 분이 바로 읍강이라네 / 文母前身是邑姜
[주D-001]문모(文母)를 …… 읍강(邑姜)이라네 : 문 모는 문덕 높은 어머니[文德之母]란 뜻에서 문왕(文王)의 후비(后妃)인 태사(太姒)를 가리키고, 읍강은 무왕(武王)의 후비인 강씨(姜氏)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공민왕(恭愍王)의 비(妃)인 태후(太后)와 우왕(禑王)의 비인 근비(謹妃)를 문왕, 무왕의 비에 견주어 말한 것이다.
보 원고(寶源庫)에 합좌(合坐)하였는데, 보원고는 고(故) 정승(政丞) 한공(韓公) 휘 악(渥)의 고택(故宅)이다. 선왕(先王)께서 일찍이 임어(臨御)했던 곳이요, 내가 처음 밀직(密直)을 제수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다시 여기에 와서 합좌하니, 감회가 있어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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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 경보가 자주 바다 구석 경동시키던 / 邊報頻頻動海隅
저문 해에 신 색이 추밀에 제배되었는데 / 歲闌臣穡拜鴻樞
당시의 기염은 여러 사람을 압도했지만 / 當時氣焰壓諸子
오늘은 다른 사람도 대부는 전혀 없구려 / 今日官階無大夫
재차 정당에 임명됨은 나뿐만이 아니라 / 再任政堂非獨我
후일 다른 선비도 혹 나 같은 이 있으리 / 後來縫掖或猶吾
정호에 용은 가고 오호궁만 떨어졌거니 / 鼎湖龍去烏號墜
천지간의 한 썩은 선비를 그 누가 알랴 / 誰識乾坤一腐儒
[주D-001]정호(鼎湖)에 …… 떨어졌거니 : 오 호궁(烏號弓)은 황제(黃帝)의 궁명(弓名)이다. 황제가 일찍이 형산(荊山) 아래서 솥[鼎]을 다 주조하고 나서 용(龍)을 타고 승천할 적에 함께 따라 올라간 군신(群臣)과 후궁(後宮)이 70여 인이었고, 여기에 함께 따라가지 못한 소신(小臣)들은 모두 용의 수염을 잡고 있다가 용의 수염이 빠지는 바람에 모두 떨어졌으며, 황제의 활도 떨어졌다. 이에 백성들이 그 활을 안고 울부짖었다 하여 그 활을 오호궁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이미 돌아간 선왕(先王)을 몹시 사모하는 뜻에서 한 말이다.
우 정당(禹政堂)에게 나아가 하례하자, 우 정당이 막 나에게 술을 대접하던 차에 오 밀직(吳密直)이 또 와서 인하여 함께 두어 잔을 마시고 이미 취하였으므로, 들어가 우 사재(禹四宰)를 알현한 자리에서는 술을 사양하고 차(茶)만 달라 하여 마시고 석양에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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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에 술이 거나하니 흥이 절로 진진해 / 白髮微酣興自長
퇴조하여 가는 길에 맑은 광채가 나누나 / 退朝歸路淨生光
그 누가 알랴 우리들의 풍류 넘치는 곳에 / 誰知吾輩風流處
늙은 정당이 젊은 정당의 집에 들른 줄을 / 老政堂過少政堂
승선이 매양 원관의 주연을 마련할 때면 / 承宣每辦院官筵
흑립 차림의 오공이 금전을 내주었는데 / 黑笠吳公出錦纏
오늘 한번 즐긴 건 참으로 뜻밖의 일이라 / 今日一懽眞邂逅
인생의 만나고 헤짐은 다 하늘의 소관일세 / 人生聚散摠關天
북애의 그윽한 곳에 거주하는 우 평장은 / 北崖深處禹平章
새로 봉작을 받아 임금의 은총 입었는데 / 新得分茅荷寵光
내 하례 길이 너무 늦은 걸 성내지 마소 / 入賀莫嗔遲太甚
나는 지금 예전대로 출근길이 바쁘다네 / 我今依舊趁朝忙
[주C-001]우 정당(禹政堂) : 당시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오른 우현보(禹玄寶)를 가리킨다.
[주C-002]우 사재(禹四宰) : 당시 평장사(平章事)였던 우제(禹磾)를 가리킨다.
[주D-001]금전(錦纏) : 주연(酒宴)에서 가무(歌舞)하는 기녀(妓女)들에게 상(賞)으로 주던 물품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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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암사가 천길만길 하늘에 비치어라 / 光巖照天千丈餘
들쭉날쭉 단청 빛에 종어는 울리는데 / 參差金碧鳴鐘魚
뭇 신하들 정성 다해 삼보를 받들어서 / 群臣瀝血奉三寶
현릉이 극락세계에 나시길 축복드리네 / 上祝玄陵生淨居
멀리 중원에서 사온 한 조각 빗돌에다 / 買來中原一片石
공적 새겨 대지와 함께 길이 전하려는데 / 鐫功永示齊黃輿
누가 알았으랴 명실이 교묘히 서로 맞아 / 誰知名實巧相稱
문학이 글 짓고 첨서가 글 쓰게 될 줄을 / 製文文學書簽書
후일 눈물 떨구게 될 일은 그만두고라도 / 他年墮淚且不問
골짝이 적적하여 인적 드문 걸 어이할꼬 / 洞壑寂寂人稀疎
사천대의 신하가 산릉 자리 가리던 날이 / 司天臺臣卜地日
동혈이란 밀어를 분부하던 처음이로세 / 同穴密語宣傳初
당시에 신 색 또한 제점으로 있었는데 / 當時臣穡忝提點
십 년이요 또 오 년을 길이 흐느껴 왔네 / 十有五載長欷歔
돌은 이지러지고 산은 무너질 수 있지만 / 石可爛兮山可崩
눈물은 마르지 않고 미려같이 흐르리 / 淚眼不枯如尾閭
[주C-001]광암가(光巖歌) : 광 암은 개성(開城)의 광암동(光巖洞)에 있던 광암사(光巖寺)를 가리킨다. 이 사찰(寺刹)은 특히 공민왕(恭愍王)과 그의 비(妃) 노국공주(魯國公主)의 원찰(願刹)로 유명한데, 공민왕 때 이 절에 광통보제선사(廣通普濟禪寺)라는 사액(賜額)을 내렸었고, 또 공민왕이 생전에 일찍이 이 절에 비(碑)를 세우기 위해 미리 중국에서 구해 온 빗돌이 있었던바, 공민왕이 승하하자 이 절에 장사를 지내고, 우왕(禑王) 때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그 비 또한 세우게 된 내력을 노래한 것이다. 이 비문(碑文)은 저자가 짓고, 글씨는 한수(韓脩)가 썼다.
[주D-001]종어(鐘魚) : 사원(寺院)에서 종(鐘) 치는 나무를 가리키는데, 그 모양이 마치 경어(鯨魚)와 같으므로 이렇게 일컫는다고 한다.
[주D-002]삼보(三寶) : 불교 용어로, 즉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를 합칭한 말인데, 불보는 여러 부처를 가리키고, 법보는 부처의 교법(敎法)을 가리키고, 승보는 부처의 교법대로 수행하는 승려들을 가리킨다.
[주D-003]사천대(司天臺)의 …… 처음이로세 : 노 국공주가 죽어서 광암동(光巖洞)에 산릉(山陵) 자리를 정하여 장례를 지내려고 할 적에 공민왕이 사천대의 관원(官員)인 우필흥(于必興)에게 이르기를 “공주의 능(陵)을 약간 동쪽으로 당겨 쓰고 한 중앙을 쓰지 말라. 후일에 나를 그 서쪽에 장사 지내야 한다.”고 했던 것을 이른 말이다. 《목은문고》 제15권 〈광통보제선사비명(廣通普濟禪寺碑銘)〉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주D-004]제점(提點) : 고려 때 서운관(書雲觀)의 한 벼슬이다.
[주D-005]미려(尾閭) : 큰 바다 밑에 있는, 해수(海水)가 쉴 새 없이 새어 나간다는 곳을 말한다.
재추소(宰樞所)에서 진헌(進獻)할 말[馬]을 고열(考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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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의 위엄이 동해의 구석까지 미치어 / 天子威加東海隅
진헌할 좋은 말을 해관이 고열하누나 / 奚官考閱進名駒
눈빛은 반짝반짝 별이 떨어진 것 같고 / 眼光的歷如星墜
골상은 비범해라 세상에 다시없는 걸세 / 骨相權奇絶代無
이미 변방에서 길러온 것은 잘 알거니와 / 已信儲精來月窟
장차 황도의 거리 달리는 걸 보게 되리라 / 行看弄影踏天衢
구방고의 상술을 누가 전해 얻었는고 / 九方皐術誰傳得
수수방관만 하는 썩은 선비가 부끄럽네 / 縮手傍觀愧腐儒
[주D-001]해관(奚官) : 말 기르는 일을 맡은 관명(官名)이다.
[주D-002]구방고(九方皐) :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 때 사람인데, 말[馬]의 상(相)을 아주 잘 보았다고 한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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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무거워 참으로 모기가 산 진 것 같아라 / 任重眞如蚊負山
예로부터 우리 도는 전하려도 어려웠었지 / 古來吾道欲傳難
때에 따라 행하고 그침은 호리의 사이거니 / 時行時止分毫際
언제나 가르침 얻어 맘을 너그럽게 해 볼꼬 / 何日得敎方寸寬
무수한 흰 구름에 무수한 산이 있거니 / 無數白雲無數山
돌아가려면 어딘들 못 간다 하랴마는 / 欲歸何處更云難
다만 내 마음이 외물을 용납지 못하기에 / 只緣方寸不容物
홀로 섰으니 천지의 너름을 어찌 알쏜가 / 獨立那知天地寬
도연명은 국화 따며 남산을 바라봤거니 / 淵明採菊望南山
세간의 행로 어려움이 참으로 우습구나 / 笑殺世間行路難
방에 드니 다행히 술은 그대로 있거니와 / 入室幸哉仍有酒
본래 무릎 둘 만한 집도 넓다 하잖던가 / 自來容膝亦云寬
[주D-001]때에 …… 그침 : 《주 역(周易)》 간괘(艮卦) 단사(彖辭)에 “간은 그친다는 뜻이니, 때가 그칠 만하면 그치고, 때가 행할 만하면 행하여 동정이 그때를 잃지 않아야만 그 도가 광명해진다.[艮止也 時止則止 時行則行 動靜不失其時 其道光明]”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도연명(陶淵明)은 …… 바라봤거니 :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따면서,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에는 도잠의 유유자적한 기상이 절로 풍겨나오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방에 …… 하잖던가 : 도 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어린애 손잡고 방으로 들어가니, 술독에 술이 가득한지라……남쪽 창에 기대어 오만한 마음 부치니, 무릎 놀릴 만한 작은 집도 편안함을 알겠네.[携幼入室 有酒盈樽……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한 데서 온 말이다.
10월 13일에 판밀직(判密直) 배공(裵公) 언(彦) 이 한밤중에 사행(使行) 길을 출발하자 재추(宰樞)들이 그를 전송하려 했는데, 좌시중(左侍中)은 송별 장소를 뒤따라가다가 미처 못 가고 홀로 돌아오므로, 내가 십천로(十川路)에서 시중을 만나 함께 합좌소(合坐所)로 돌아와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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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국 조회는 더욱 신중해야 하리 / 王覲尤當愼
지척 사이에 위엄이 굽어 임했네 / 威臨咫尺間
천자국 조회에 맘 절로 급박하니 / 朝天心自迫
송별의 예는 생략함 직하고말고 / 祖道禮堪刪
은혜가 중해 몸은 잎처럼 가볍고 / 恩重身如葉
나라는 안녕해 형세가 태산 같네 / 邦寧勢似山
밤길 떠나매 역로의 길은 하 먼데 / 宵征驛程遠
한 걸음 한 걸음 아반을 향해 가누나 / 步步向蛾班
[주D-001]아반(蛾班) : 아 미반(蛾眉班)의 준말로, 중국 조정의 반열을 가리킨다. 당대(唐代)의 제도에 의하면, 중서성(中書省), 문하성(門下省), 어사대(御史臺)의 관원이 황제에게 조회할 때 좌우로 줄을 나누어 마주 선 모양이 마치 나비 눈썹처럼 보이므로 이렇게 일컫는다고 한다.
재추(宰樞)가 연회(宴會)를 베풀어 축수를 올려서 신궁(新宮)을 하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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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은 영안궁과 아주 가까이 자리하여 / 新宮密邇永安宮
여염집들을 굽어보아 면세도 웅장한데 / 俯視閭閻面勢雄
재배하고 축수 올리매 봄은 자리 가득하고 / 再拜壽觴春滿座
반공중에 선악 울려라 달은 봉우리 임했네 / 半懸仙樂月臨峯
태평은 기상 있어 종용하기 그지없건만 / 太平有象從容甚
늘그막이라 큰 은총 입을 맘은 없었는데 / 垂老無心寵渥豐
수일 동안 서연의 시강에 참여한 나머지 / 數日書筵叨侍講
하사한 삼종 음식이 제공에게 비추누나 / 賜來三味照諸公
밤에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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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경화가 모자 차양 눌러 올라라 / 一朶瓊花壓帽簷
은두꺼비가 너울너울 그림자 희롱하네 / 婆娑弄影有銀蟾
돌아오니 내 집은 맑기가 물과도 같은데 / 歸來門戶淸如水
또 이 백성 걱정하는 것은 범중엄이로세 / 又是憂民范仲淹
[주D-001]경화(瓊花) : 여기서는 둥근달을 꽃에 비유한 말이다.
[주D-002]또 …… 범중엄(范仲淹)이로세 : 범 중엄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묘당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 그 백성을 걱정하고, 강호의 먼 곳에 있으면 그 임금을 걱정하는지라, 이는 나가서도 걱정, 물러가서도 걱정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어느 때에 즐거울 수 있겠는가? 그는 반드시 천하의 걱정은 남보다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남보다 뒤에 즐긴다고 할 것이다.[居廟堂之高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是進亦憂 退亦憂 然則何時而樂耶其必曰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한 데서 온 말이다.
합좌(合坐)했다가 헤어지려 하는 차에 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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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이 먼저 나가고 제공이 해산할 제 / 侍中先出散諸公
가랑비가 바람 따라 문득 공중에 뿌려라 / 微雨隨風乍映空
말을 달려 돌아오니 정원은 조용한데 / 馳馬歸來庭院靜
두어 잔 들이켜니 얼굴이 불그레해지네 / 數杯傾盡面浮紅
저물녘에 배공(裵公)을 대신하여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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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녘엔 비가 막 급히 내리더니 / 日晚雨方急
깊은 밤에는 바람이 또 불어 대네 / 夜深風又鳴
푸른 등불은 벽의 절반쯤 비추는데 / 靑燈照半壁
홀로 앉으니 쓸쓸한 정 그지없어라 / 兀坐難爲情
사신은 나라의 명령을 받들고 / 行人奉國命
만 리 먼 길을 막 출발했으니 / 萬里初起程
역창에 졸인 맘으로 잠 못 이루고 / 驛窓耿無夢
내 몸 가벼움을 비로소 깨달아서 / 始覺身爲輕
가벼운 몸은 애석할 것 없거니와 / 身輕不足惜
명철한 군왕께 누 될까 염려겠지 / 恐累吾君明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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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우기가 등잔불을 엄습하더니 / 夜來雨氣襲燈光
새벽엔 낙숫물 소리가 초당에 가득하네 / 曉起簷聲滿草堂
시월도 탈 없이 벌써 열엿새가 되었으니 / 陽月無嫌行旣望
달은 차츰 이지러지는 게 바로 상도일세 / 陰精有蝕是惟常
왕풍의 예악은 어찌 그리도 쓸쓸한고 / 王風禮樂何蕭索
객창의 강산은 절로 아득하기만 하네 / 客枕江山自渺茫
고금의 달인들은 다 출처를 경시했는데 / 今古達人輕出處
우리 무리만 부질없이 미칠 듯하는구나 / 只如吾輩謾顚狂
15일 오후에 햇빛이 구름을 뚫고 나와서 남쪽 창이 매우 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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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구름 새나오고 빗방울은 성기어 / 日光穿漏雨疎疎
창 그림자 막 나뉘니 흥취가 넘치었는데 / 窓影初分興有餘
문득 관리가 와서 서명해주길 요구하니 / 忽被吏人求署字
종래의 맑은 경계가 온데간데없네그려 / 向來淸境墮空虛
인경을 모두 잊고 한결같이 진에 들거니 / 人境俱忘一味眞
다시 어디로 좇아 티끌을 찾을 수 있으랴 / 更從何處覓纖塵
누가 알랴 사물 접함이 되레 거울 같아서 / 誰知接物還如鏡
형체 그림자 서로 따라 백태가 새로움을 / 形影相交百態新
분발(分發)이 없어 홀로 앉아서 회포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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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 나가려고 일찍 의관 정제했는데 / 有意趨朝早整冠
분발이 오지 않아서 가려 해도 어렵구나 / 門無分發欲行難
한 등잔 불똥 떨어져라 바람 소린 급하고 / 一燈花落風聲急
온 들녘 구름 낮아라 새벽 기운은 차갑네 / 四野雲低曉氣寒
단청으로 보불 받들기를 어찌 아끼리요 / 豈惜丹靑供黼黻
창합에 낭간 바친 게 아직도 놀라운걸 / 尙驚閶闔叫琅玕
병든 나머지 소원은 몸 편케 하는 거라 / 病餘所願安身耳
때로 그윽한 회포를 붓끝에 부칠 뿐이네 / 時把幽懷寄筆端
[주C-001]분발(分發) : 조보(朝報)를 발행하기 전에 각 관아의 하인들이 그 요점을 종이 쪽지에 적어서 관원들에게 돌리는 것을 말한다.
[주D-001]단청(丹靑)으로 보불(黼黻) 받들기를 : 순 (舜) 임금이 우(禹) 임금에게 이르기를 “내가 해와 달과 별과 산과 용과 꿩을 무늬로 만들고, 종묘의 술 그릇과 물풀과 불과 흰쌀과 보와 불을 수놓아서 다섯 가지 채색을 다섯 가지 빛깔로 물들여 옷을 만들고자 하거든, 그대는 그것을 밝게 만들라.[日月星辰山龍華蟲 作會 宗彝藻火粉米黼黻絺繡 以五采彰施于五色 作服 汝明]”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임금을 잘 보좌하는 것을 의미한다. 《書經 益稷》
[주D-002]창합(閶闔)에 …… 게 : 창 합은 대궐문을 가리키고, 낭간(琅玕)은 옥돌의 일종으로, 한유(韓愈)의 〈착착(齪齪)〉 시에 “구름 헤치고 창합에 부르짖어, 뱃속을 열어서 낭간을 바치련다.[排雲叫閶闔 披腹呈琅玕]”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세상을 다스리는 훌륭한 방책에 비유한 것이다. 《韓昌黎集 卷2》
상색(上色)의 답서(答書)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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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서장 올리고 늦도록 출사 안 하자 / 先生投狀懶趨衙
상색이 모래알 같은 글씨로 답서 보냈네 / 上色回書細似沙
거울 대해 앉으니 수염은 눈빛을 띠었고 / 對坐鏡中鬚帶雪
창 아래서 답서 뜯으니 눈은 어른어른하네 / 拆開窓下眼生花
도당의 예우 등급은 각각 차이가 있고요 / 都堂禮數同而異
관청의 공문서는 바르고 비뚤기도 하누나 / 案牘行移整復斜
규모가 대체를 보존한 게 오히려 기뻐라 / 尙喜規模存大體
태평성대를 발돋움하여 기다릴 만하구려 / 政堪蹺足運亨嘉
어제 술을 가지고 가서 어 판서(魚判書)에게 사례하고 난방(煖房)을 겸하였는데, 그 이웃에 사는 우 정당(禹政堂)이 또 법주(法酒)와 자해(紫蟹)를 가지고 왔기에 함께 약실(藥室)에서 마시고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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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시켜준 은혜에 술 갖고 사례하여 / 携酒殘年謝再生
난방의 잘한 기도로 충정을 드러내노니 / 煖房善禱表中情
허명한 약실엔 온갖 물건이 진열되었고 / 虛明藥室分群物
깜빡이는 등잔불은 이경까지 비추누나 / 呑吐燈光照二更
명성은 어사대에 떨쳐라 풍채는 빼어나고 / 聲振柏臺風采秀
그림자는 유동에 오니 달빛은 하 밝아라 / 影歸柳洞月華淸
인간의 만남이란 공연한 일이 아니기에 / 人間會合非徒爾
한번 흥겹게 취하니 만사가 그만이로세 / 一醉陶然萬事輕
[주C-001]난방(煖房) : 옛날 민간 의식(儀式) 가운데 하나로서, 집을 새로 지어서 입주하거나 새로 이사한 사람에 대해서 그 이웃 사람들이 주연(酒宴)을 준비하여 그 집에 가서 함께 연음(宴飮)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1]난방의 잘한 기도 : 춘 추 시대 진(晉)나라 대부(大夫) 조무(趙武)가 저택을 준공했을 때 다른 대부들이 그 집에 가서 축하를 했는데, 장로(張老)가 “아름답도다, 규모가 큼이여. 아름답도다, 꾸밈이 화려함이여. 제사(祭祀) 때는 여기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상사(喪事) 때는 여기에서 곡읍(哭泣)을 하고, 연례(宴禮)에는 여기에 국빈(國賓)과 종족(宗族)을 모으게 될 것이다.”라고 송축(頌祝)의 말을 하자, 주인인 조무가 답사(答辭)에서 “무(武)가 여기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여기에서 곡(哭)하고, 여기에 국빈과 종족을 모아서 연례를 할 수 있다면, 이는 내 목숨을 온전히 누린 다음 선대부(先大夫)가 묻힌 구원(九原)으로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북면(北面)하여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렸는데, 군자(君子)가 이 일을 두고 평론하기를 “장로는 송축하는 말을 잘했고, 조무는 기도하는 말을 잘했다.[善頌善禱]”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禮記 檀弓下》
그 명일에는 나갔다가 늦게야 돌아왔는데, 어공(魚公)이 술을 가지고 와서 대접하므로, 곤드레가 되게 취하여 미친 듯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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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온갖 질병 모인 걸 어찌 한하랴 / 我生何恨病叢身
의원 노인이 들러 술이 자리에 가득거니 / 醫老相過酒滿茵
크게 취해 난폭한 말 많음을 어찌 꺼리랴 / 大醉肯嫌多亂語
여생엔 다만 명신에게 감사함이 마땅하리 / 殘年只合謝明神
남산의 솔은 고목이라 바람 소리 급하고 / 南山松古風聲急
동쪽 고개엔 구름 걷혀 달빛이 새로운데 / 東嶺雲收月色新
우스워라 돌아와 다시 통음을 하노라니 / 自笑歸來還痛飮
등 심지는 반쯤 토하여 봄빛을 더해주네 / 燈花半吐座添春
영빈관(迎賓館)의 누상(樓上)에서 진헌사(進獻使) 이 평리(李評理)가 시를 지어 남기고 작별하여 떠나자, 재추(宰樞)들이 그 시에 차운하여 절하고 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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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리라 기자의 봉지 태평한 오늘날에 / 箕封千里太平年
사대의 충성 영원히 지니길 맹세코말고 / 事大忠心誓永肩
산과 바다 머나먼 길 달리길 꺼리지 마소 / 莫憚馳驅山海遠
근래엔 봉명 사절을 유생에게 맡기잖는가 / 邇來將命屬儒先
우림위의 기사들이 장군을 옹위하고서 / 羽林騎士擁將軍
사슴 떼가 숨은 산림 속으로 달려들어라 / 馳入山林麋鹿群
단번에 오종 잡는 거야 물을 거나 있으랴 / 一發五豵何更問
누대의 가취 소리엔 가던 구름도 멎는걸 / 樓中歌吹遏行雲
[주D-001]오종(五豵) : 새끼 돼지 다섯 마리를 말하는데, 《시경(詩經)》 소남(召南) 추우(騶虞)에 “무성한 저 쑥대밭에, 다섯 새끼 돼지를 단번에 쏘아 잡네.[彼茁者蓬 壹發五豵]”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누대의 …… 멎는걸 : 노랫소리가 하도 아름다워서 무심(無心)한 구름도 가던 길을 멈추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목 이상(睦二相)이 여러 원수(元帥)들과 함께 길을 출발하는데, 나는 다리에 힘이 없어 말을 탈 수 없으므로 배송(拜送)하지 못하고 홀로 두 수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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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상의 위엄은 병신년부터 비롯했는데 / 睦相威稜始丙申
충의로운 마음이 조신들을 감동시켰네 / 忠肝義膽動朝臣
스스로 노년에 다시 일전을 하겠다는데 / 自言垂老更一戰
지금 나이 칠순이 된 걸 그 누가 알랴 / 誰識行年今七旬
상보는 새매가 날듯 전군을 지휘하고 / 尙父鷹揚專節制
장군들은 호시탐탐 정신을 분발할 텐데 / 將軍虎闞奮精神
백발의 목은은 말을 타기가 어려워서 / 白頭牧隱難騎馬
서글피 바라볼 뿐 배송할 길이 없구려 / 悵望無由拜路塵
일본국은 우리나라 동편에 경계하였고 / 搏桑國界我東邊
이견대는 바다 하늘에 높이 솟았는데 / 利見臺高控海天
황룡은 일찍이 해돋이서 뛰었다거니와 / 聞說黃龍曾躍日
흘러 전해 온 백치는 몇 해나 되었는고 / 流傳白雉幾經年
섬 오랑캐의 침범을 누가 능히 막으랴 / 島夷竊發誰能遏
국왕이 속박되어 스스로 권력 잃었다네 / 國主羈囚自失權
배신이 권력 잡으면 삼 세에 그치나니 / 執命陪臣三世耳
천도의 운행 조화는 또한 분명하고말고 / 蒼蒼運化亦昭然
[주D-001]목상(睦相)의 …… 비롯했는데 : 목 상은 고려 말기의 무신(武臣)으로 벼슬이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른 목인길(睦仁吉)을 가리키는데, 공민왕(恭愍王) 5년인 병신년(1356)에 기철(奇轍)이 역모를 꾀했을 때, 당시 목인길이 대호군(大護軍)으로서 밀직(密直) 강중경(姜仲卿)과 함께 장사(壯士)를 매복시켰다가 철퇴로 기철을 격살(擊殺)하여 모반을 평정했던 일을 말한다.
[주D-002]상보(尙父)는 …… 지휘하고 : 상 보는 주(周)나라 강태공(姜太公)의 존호인데, 《시경(詩經)》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오직 태사인 상보가, 새매가 날듯 떨치어, 저 무왕을 도와 싸워서, 큰 상나라를 쳐 이기니, 세상이 바로 청명해졌네.[維師尙父 時維鷹揚 涼彼武王 肆伐大商 會朝淸明]”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목인길을 강태공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3]이견대(利見臺)는 …… 솟았는데 : 이 견대는 경주(慶州)의 동쪽 해안에 있는 대명(臺名)인데, 속설(俗說)에 의하면, 왜국(倭國)이 신라(新羅)를 자주 침범하자, 문무왕(文武王)이 이것을 근심하여 죽으면 용(龍)이 되어 나라를 수호하고 왜적을 방어하겠다고 맹세한 나머지, 그가 죽을 때에 유언하기를 “나를 동해(東海) 가의 물속에 장사 지내라.” 하였으므로, 신문왕(神文王)이 그 유언대로 장사를 지내고 추모하는 뜻으로 대(臺)를 쌓고 바라보았더니, 큰 용이 바다 가운데 나타나므로, 이것을 인하여 이 대를 이견대라 이름했다고 한다.
[주D-004]황룡(黃龍)은 …… 뛰었다거니와 : 신라 진평왕(眞平王)이 월성(月城) 동쪽에 새로 궁궐을 짓게 했다가 누런 용이 그곳에서 나타난 것을 보고는 왕이 이 집을 고쳐서 절로 만들고 이름을 황룡사(黃龍寺)라고 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주D-005]흘러 …… 되었는고 : 백치(白雉)는 일본(日本) 천황(天皇)의 기원(紀元)으로서, 곧 일본국의 역사(歷史)를 가리킨다.
[주D-006]배신(陪臣)이 …… 그치나니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배신이 나라의 권력을 잡으면 삼 세에 망하지 않을 나라가 드물다.[陪臣執國命 三世希不失矣]”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일본이 국왕을 제쳐 놓고 신하가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論語 季氏》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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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례로 위급한 때를 당하였으니 / 變禮當危急
진정표 올려 성명을 의뢰해야지 / 陳情恃聖明
어찌 다른 의론을 낼 수 있으랴 / 豈容生異議
작은 정성을 천자께 올릴 뿐이네 / 祗欲達微誠
초여름엔 표문을 지어 올리었고 / 夏孟文成表
초겨울엔 사신이 이미 떠났거니 / 冬初使發程
병든 나머지 심력은 천단하지만 / 病餘心力短
눈을 닦고 태평성대를 바라련다 / 揩目望升平
왕대비는 팔순 나이를 누리면서 / 文母膺眉壽
명나라를 섬기기에 전심하시되 / 專心事大明
아름다움 숨기어 내직을 잘 닦고 / 含章修內職
변을 만나선 충심을 표달하시니 / 遇變表中誠
들어가 고함은 비록 늦어졌지만 / 入告雖遲晚
임시 조치엔 또한 법칙이 있으니 / 權宜有法程
천자께서 만일 회오만 하신다면 / 天聰如一悟
천하 태평을 기대할 수 있고말고 / 蹺足海波平
[주D-001]변례(變禮)로 …… 의뢰해야지 : 1374 년에 공민왕(恭愍王)이 갑자기 시해(弑害)되자, 충숙왕비(忠肅王妃)인 명덕태후(明德太后) 홍씨(洪氏)의 명에 따라 우왕(禑王)이 즉위하고 나서 바로 명(明)나라에 표문(表文)을 올려서 우왕의 서명(署名)을 청하고, 또 사신이 직접 천자를 알현하여 공민왕의 시호(諡號)와 작명(爵命)을 주청하였으나, 명나라에서는 앞서 공민왕 말기에 고려의 반신(叛臣) 김의(金義)가, 공마(貢馬)를 가지고 귀국하던 명나라 사신을 죽이고 북원(北元)으로 도망친 일과 공민왕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의문 등으로 인하여 고려의 소청(所請)을 수년이 지나도록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이에 우왕이 다시 진정표를 올리고, 왕대비인 명덕태후 또한 팔순(八旬)의 노령으로 직접 진정표를 올리곤 하던 때의 일을 가리키는데, 우왕과 대비의 이 표문은 저자가 다 지었다.
상림원 깊은 곳엔 오색구름 농후하고 / 上林深處五雲濃
용수산 빛은 안중에 가득 들어오는데 / 龍壽山光滿眼中
때로 듣자니 매 부리는 소리 성급하여 / 時聽呼鷹聲正急
만리 멀리 긴 바람을 불러일으키누나 / 颯然萬里起長風
묘당엔 일이 없어 깊은 술잔 마시다가 / 廟堂無事酒杯深
휴가 얻어 돌아와 홀로 읊조리노라니 / 休沐歸來獨自吟
갑자기 듣건대 산중의 모영이 말하기를 / 忽聽山中毛穎語
노쇠하여 구획이 맘대로 안 된다 하네 / 老衰區畫不如心
세상일과 사람 마음을 다 알 만하기에 / 世事人情摠可知
우연히 이 두 편의 시를 써내었거니와 / 偶然題出二篇詩
강산에 해 떨어지고 이해도 저물어라 / 江山日落歲云暮
천지는 본디 조금의 사사로움도 없다오 / 天地自來無少私
[주D-001]갑자기 …… 하네 : 모영(毛穎)은 붓을 가리키는데, 한유(韓愈)의 〈모영전(毛穎傳)〉에 ‘모영이 늙어서 직무를 수행할 수가 없어 물러났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붓이 몽당붓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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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아이의 늦잠 때문에 말 먹일 꼴이 없어 / 家僮懶起馬無芻
휴가 얻어서 잠시 조회 멈추고 쉬노라니 / 休沐停朝暫輟趨
송 지어서 성주를 노래함은 마땅하지만 / 作頌政當歌聖主
논 지어서 어찌 다시 잠부라 명명할쏜가 / 著論寧復命潛夫
화롯불 식어갈 제 읊조림은 오히려 깊고 / 爐灰漸冷吟猶苦
창 햇살 다스워지니 병은 소생할 듯하네 / 窓日微溫病欲蘇
가장 기쁜 건 용수산이 문밖에 둘러 있어 / 最喜龍巒擁門外
운연과 마주해 꼼짝 않고 앉았는 거로세 / 雲煙相對坐如株
[주D-001]송(頌) …… 마땅하지만 : 한(漢)나라 때 문재(文才)가 뛰어났던 왕포(王褒)가 선제(宣帝)의 부름을 받고 대궐에 들어가서 〈성주득현신송(聖主得賢臣頌)〉을 지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논(論) …… 명명할쏜가 : 후한(後漢) 때 왕부(王符)가 난세(亂世)를 만나서 강직한 지조(志操) 때문에 세상에 용납되지 못함을 분개하게 여겨 당시의 폐정(弊政)을 통절히 논하여 이를 ‘잠부론(潛夫論)’이라 이름한 데서 온 말이다.
동정(東亭)에게서 배[梨]를 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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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강의 붉은 관복이 팔방을 비추던 그때 / 直講緋衫照八關
연석 앞의 평계는 산더미처럼 쌓였었지 / 筵前平桂積如山
태평 재상의 풍채가 어제인 듯 선한데 / 太平風采森如昨
이십여 년이 한바탕 꿈속만 같네그려 / 二十餘年一夢間
기억건대 나는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이 / 記我囊空無一錢
일찍이 분수에 따라 이 연석 마련한 건 / 也曾隨分辦玆筵
다만 친구의 많은 도움을 힘입었는데 / 只緣朋友多相助
더구나 그 당시엔 큰 풍년도 들었음에랴 / 況是當時大有年
자식이 금년에 시종신 자리에 올랐는데 / 豚犬今年忝侍臣
처가는 몰락하고 아비 집은 가난하거늘 / 妻家破碎父家貧
아침에 신 과일 구하려고 하소연을 하니 / 朝來告訴求酸物
존전에서 몸에 땀 흐름을 면하려 한다네 / 欲免尊前汗洽身
[주D-001]평계(平桂) : 옛날에 생강(生薑)과 함께 육고기의 양념으로 반드시 쓰였던 육계(肉桂)를 가리킨 듯한데, 평(平) 자를 무슨 의미로 썼는지 자세하지 않다.
[주D-002]태평 재상(太平宰相) : 저자가 일찍이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을 지목하여 일컬은 말이다. 《목은문고》 제15권 〈고려국(高麗國)……염공(廉公)의 신도비〉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느낌이 있어 짓다. 재추(宰樞)들이 각각 반당(伴當) 1명씩을 내어 조전(助戰)하는데, 나는 낼 반당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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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인아 친척에 은택 입힌 것 없거니 / 平生無澤及姻親
급한 때에 어느 누가 대신해주길 원하랴 / 倉卒何人願代身
더구나 싸움터는 바로 죽는 땅이거니와 / 況是戰場爲死地
한집안과 이웃의 차이를 알 만도 하네 / 可知同室與比鄰
중년엔 질병으로 공연히 약만 먹었는데 / 中年疾病徒嘗藥
만년의 공명은 땔나무 쌓기와 똑같구려 / 末路功名似積薪
광암사를 돌아보니 흐린 햇살 어둑한데 / 回首光巖煙日暗
잠시 은총 입었던 일로 코가 시큰해지네 / 暫時榮寵鼻酸辛
오경에 꿈이 깨자 지난 생애에 감개하여 / 五更夢斷感生涯
우뚝이 앉아 등불 켜고 필묵을 손에 쥐니 / 兀坐呼燈筆墨隨
두 눈이 어른거려 글자 쓰기는 어려우나 / 兩眼昏花難寫字
희로애락 갈등 속에 우선 시를 써보련다 / 一心氷炭且題詩
돛 걸고 창해를 건널 때가 혹 있으려나 / 掛帆蒼海有時濟
푸른 산에서 술 대해 온종일 생각해봐도 / 對酒碧山終日思
필경엔 양을 잃고 쓴웃음만 지을 뿐이요 / 畢竟亡羊堪冷笑
늘 깨어 있는 데서만 미위를 분변하겠지 / 只惺惺處辨微危
풍월이나 읊는 것이 바로 나의 생애인데 / 吟風弄月是生涯
비방 듣는 건 본디 이름 또한 따랐었지 / 得謗由來名亦隨
전편을 세상에 전할 만한 건 전혀 없고 / 未有全篇可傳世
한갓 운자만 다는 걸 어찌 시라 하리요 / 徒能押韻豈爲詩
범범히 본 것이 혹 좋은 데가 있기도 하지만 / 流觀或復參佳處
우연히 얻은 게 고심한 것 능가함은 뉘 알랴 / 偶得誰知勝苦思
후일에 야사나 이루는 걸 어찌 꺼리랴만 / 異日肯嫌成野史
지금은 국가 안위를 주관할 뜻 전혀 없네 / 祗今無意管安危
[주C-001]반당(伴當) : 왕자(王子)나 공신(功臣) 및 당상관(堂上官)을 우대하여 지급하던 사환(使喚)을 가리킨다.
[주D-001]한집안과 …… 하네 : 맹 자(孟子)의 말에 한집안 사람이 서로 싸우는 자가 있으면 의관(衣冠)도 미처 차리지 못한 채로 급하게 가서 말리는 것이 옳지만, 이웃 사람이 서로 싸우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그냥 방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어도 괜찮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下》
[주D-002]만년의 …… 똑같구려 : 한 무제(漢武帝) 때 급암(汲黯)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폐하께서 신하들을 등용한 것은 마치 땔나무를 쌓는 것과 같아서 뒤에 오는 자가 윗자리에 있게 됩니다.”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땔나무를 쌓자면 나중에 쌓는 것이 반드시 위로 올라가듯이, 나중에 벼슬한 사람이 중용(重用)되어 전임자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주D-003]돛 …… 있으려나 : 이 백(李白)의 〈행로난(行路難)〉에 “긴 풍랑 부숴 헤치고 나갈 기회가 오거든, 곧장 구름 돛 걸고 큰 바다를 건너련다.[長風破浪會有時 直挂雲帆濟滄海]”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장부(丈夫)의 큰 포부를 한번 펴보려는 뜻에서 한 말이다. 《李太白集 卷2》
[주D-004]양을 잃고[亡羊] : 도망친 양을 잡으려고 쫓다가 갈림길이 많아서 마침내 양을 잃어버리고 탄식만 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진리(眞理)를 깨닫기 어려움을 비유한 것이다. 《列子 說符》
[주D-005]미위(微危) : 순 (舜) 임금이 우(禹) 임금에게 선위(禪位)할 때에 이르기를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은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惟精惟一 允執厥中]”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大禹謨》
[주D-006]비방 …… 따랐었지 : 한유(韓愈)의 〈답유정부서(答劉正夫書)〉에 “나만 불행하게도 유독 후배를 접견한다는 이름이 있어, 이름이 있는 곳에 비방이 또한 돌아온다.[愈不幸 獨有接後輩名 名之所存 謗之所歸也]” 하였다.
송산(松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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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의 산하가 곡봉을 감싸 안았는데 / 百二山河擁鵠峯
견여 타고 곧장 팔선궁을 올라서 보니 / 肩輿直上八仙宮
남강은 매우 밝은데 서강은 어둑하여 / 南江明甚西江暗
지척 새에 흐리고 맑음이 절로 다르네 / 咫尺陰晴自不同
냇가의 첨성대는 멀리 하늘에 가닿았고 / 川上星壇迥接天
사근사 절집은 썰렁하여 인적이 없네 / 沙根蓮宇冷無煙
당시엔 백 번 절해도 몸에 땀 안 났는데 / 當時百拜身無汗
오늘은 견여 탄 신세 또한 가련하구나 / 今日扶輿亦可憐
[주D-001]백이(百二) : 진(秦)나라 땅이 매우 험고(險固)하여 진나라 군사 2만 인으로 제후(諸侯)의 군사 100만 인을 당해내기에 충분하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요새(要塞)의 험고함을 의미한다. 《史記 卷8 高祖本紀》
[주D-002]팔선궁(八仙宮) : 고려 김관의(金寬毅)의《편년통록(編年通錄)》에 의하면, 송악산(松嶽山)을 일러 팔진선(八眞仙)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여기에 팔선(八仙)을 모신 궁관(宮觀)이 있었던 듯하다.
동문(東門)에서 합좌(合坐)하여 회암(檜巖)의 산수(山水)를 시찰하러 가는 조 오재(曺五宰), 권 좌사(權左使)를 전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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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산 앞의 땅을 오지라 부르거니와 / 天寶山前號奧區
사람들은 이 땅이 다 옥토라고 하는데 / 人言此地儘膏腴
두 강물은 합류하여 풍기가 저장되고 / 兩江襟抱儲風氣
뭇 산들은 빙 둘러서 국도를 호위하네 / 列嶽盤旋護國都
예부터 비서가 있어 육록이라 하는데 / 自古有書名六錄
지금 그 어드메가 분명히 삼소일는지 / 在今何處的三蘇
본디 세대교체는 하늘이 내리는 법이니 / 由來運世皆神授
단청 가져다 억지로 그림 그리지 마세나 / 莫把丹靑強作圖
[주D-001]육록(六錄) : 신 라 말기의 고승(高僧) 도선(道詵)의 풍수지리(風水地理)에 관한 예언서인《비기(祕記)》를 가리킨다. 이 책의 내용이 옥룡자십승지지비결(玉龍子十勝之地祕訣), 십승지지외론보신산수지소(十勝之地外論保身山水之所), 옥룡비결(玉龍祕訣), 옥룡자기(玉龍子記), 옥룡자시(玉龍子詩), 옥룡자청학동비결(玉龍子靑鶴洞祕訣) 등 6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렇게 일컬은 것이다.
[주D-002]삼소(三蘇) : 고 려 때 개경(開京) 주위에 있던 세 산을 가리킨다. 지리도참사상(地理圖讖思想)에 의한 지리쇠왕설(地理衰旺說)에 따라 국가의 기업(基業)을 연장시키려고 좌소(左蘇)인 백악산(白岳山), 우소(右蘇)인 백마산(白馬山), 북소(北蘇)인 기달산(箕達山)에 각각 궁궐을 짓고 왕(王)이 순행 유주(巡行留駐)했었다.
대서(代書)하여 법래(法來)에게 받들어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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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앞에 병 많은 나그네가 앉아서 / 窓間多病客
산 너머에 두어 줄 편지 보내노니 / 山後數行書
풍설 속에 읊기는 응당 괴롭지만 / 風雪吟應苦
산봉우리들은 그림도 그만 못하리 / 峯巒畫不如
촌락은 정토에 죽 펼치었거니와 / 村墟森淨土
향화는 절집에 응당 썰렁하리니 / 香火冷精廬
승록의 직무가 끝내 얽맬 테지만 / 僧錄終相制
돌아오는 걸 너무 뜸하게 마소나 / 歸來莫太疎
회암(檜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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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이라 동방의 빼어난 기운 모인 가운데 / 木覓東方秀氣中
회암사의 푸른빛이 갠 하늘에 기대었네 / 檜巖蒼翠倚晴空
조정에서 이처럼 어진 정사를 행하거니 / 朝廷若是行仁政
예악이 끝내 예전 풍도를 회복하고말고 / 禮樂終然復古風
해와 달은 밝디밝게 불전을 임해 있고요 / 日月明明臨佛殿
하늘땅은 광대하게 왕궁을 둘러 있도다 / 乾坤蕩蕩繞王宮
백발의 문학은 연래에 절뚝발이 되었는데 / 白頭文學年來躄
감천부나 짓자 해도 필력 또한 궁하구려 / 欲賦甘泉筆力窮
[주D-001]감천부(甘泉賦) : 한 무제(漢武帝) 때 양웅(揚雄)이 지은 문장 제목이다. 양웅이 일찍이 천자의 부름을 받고 대궐에 들어갔다가 뒤에 천자를 따라 감천궁(甘泉宮)을 다녀와서 감천부를 지어 올리자, 천자가 그것을 보고는 아주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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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통이 한창 심한 밤에 나이 한 살 더 먹고 / 腰酸方劇夜添籌
일찍 일어나 조회 나가니 머리가 하얗구나 / 早起朝天雪滿頭
궁문에서 시각 기다릴 땐 근심이 많지만 / 待漏宮門心耿耿
시구를 쓰노라면 흥취 또한 한량없어라 / 揮毫詩句興悠悠
창오산의 흐린 햇빛은 바라만 볼 뿐이요 / 蒼梧煙日空瞻望
도성 거리 풍진 속엔 부질없이 머무르네 / 紫陌風塵謾滯留
나라의 은혜 다 갚고 그제야 물러가자면 / 報了國恩方乞退
응당 강수 한수도 서쪽으로 흐르게 될걸 / 定應江漢亦西流
염 시중(廉侍中)을 배알하고 인하여 동정(東亭)의 집에 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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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나이로 부자 사이를 분주하다 보니 / 白首遨遊父子間
한산의 늙은 목은은 진정 청한한 몸일세 / 韓山牧老儘淸閑
송악산과 용수산 빛이 서로 연접한 데서 / 鵠峯龍岫光相接
우연히 새 시 얻으니 희색이 만면하여라 / 偶得新詩喜溢顔
백 년 세월이 한순간 취몽과도 같거니 / 百歲光陰醉夢間
잠시의 한가함인들 그 몇이나 얻을쏜가 / 幾人能得暫時閑
겹겹 두른 강산에 돌아갈 길 헷갈리어라 / 江山萬疊迷歸路
앉아서 병풍 대하니 낯에 땀이 흐르누나 / 坐對屛風汗我顔
사소한 의리 이끗엔 비록 헷갈리더라도 / 毫忽雖迷義利間
끝내 대덕은 한계를 넘지 않게 해야지 / 終敎大德不踰閑
취중에는 얻고 잃음을 모두 잊을 만하니 / 醉中得喪俱忘了
상제의 조화로 안회 주조했다 말을 마오 / 謾道洪爐帝鑄顔
[주D-001]끝내 …… 해야지 :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은 드나듦이 있더라도 괜찮다.[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張》
[주D-002]상제(上帝)의 …… 마오 : 양 웅(揚雄)의《법언(法言)》에 의하면, 혹자가 말하기를 “사람을 주조할 수 있는가?[人可鑄與]” 하니, 대답하기를 “공자가 안연을 주조했었다.[孔子鑄顔淵矣]”고 하였는바, 주조란 곧 인재양성을 의미하는데, 두목(杜牧)의 〈도일대윤……정상삼군자(道一大尹……呈上三君子)〉 시에 “북두 사이 붉은 기는 옥에 묻힌 용천검이요, 천상의 조화로는 상제가 안연을 주조했네.[斗間紫氣龍埋獄 天上洪爐帝鑄顔]”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분발(分發)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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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안개로 사방을 분간 못 하는데 / 曉霧難分色
목빙은 장차 형체를 이루려 하네 / 木氷將具形
고심하여 밝은 태양만 생각하고 / 苦心思白日
눈 끝까지 푸른 하늘만 향하는데 / 極目向靑冥
만물은 봄의 화기를 머금었고 / 萬物含和氣
뭇 인재는 큰 마당에 모이었으니 / 群材簇大庭
태평성대를 이룰 수만 있다면 / 太平如可致
내 또한 죽어서 내 편안하련만 / 吾亦歿吾寧
백 리에 구십 리가 절반이거니 / 百里半九十
행로의 어려움을 그 누가 알랴 / 誰知行路難
늘그막에 거듭 조정엘 들어가니 / 殘年重入省
친구는 혹 함께 벼슬하길 바라네 / 舊識或彈冠
무쇠벼루는 세월을 보낼 만하고 / 鐵硯堪消日
가죽옷은 추위를 막을 만도 해라 / 毛衣足禦寒
평생에 절개 지킬 줄을 잘 알거니 / 平生知守節
굳이 가을 난초 찰 필요가 있으랴 / 不必佩秋蘭
누추한 시골에 한 해가 다해가는데 / 陋巷將窮歲
높은 마루에서 잠시 차를 마시노니 / 高軒暫啜茶
집은 가난한 데다 시장까지 멀고 / 家貧兼市遠
학문은 퇴보하고 나이만 더하네 / 學退但年加
산빛은 처음으로 눈을 머금었고 / 山色初含雪
바람 소리는 모래를 말려 하는데 / 風聲欲捲沙
온몸에 부끄러운 땀을 흘리면서 / 通身流愧汗
백발로 조정을 향하여 가는구나 / 白髮向東華
[주C-001]분발(分發) : 조보(朝報)를 발행하기 전에 각 관아의 하인들이 그 요점을 종이 쪽지에 적어서 관원들에게 돌리는 것을 말한다.
[주D-001]목빙(木氷) : 비나 눈, 서리 등의 액체가 나무에 붙어서 추위를 만나 그대로 얼어서 얼음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 또한 괴이(怪異)한 일로 친다.
[주D-002]내 …… 편안하련만 :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살아서는 내가 하늘을 순히 섬기고, 죽어서는 내가 편안하리라.[存吾順事沒吾寧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무쇠벼루는 …… 만하고 : 오 대(五代) 시대 진(晉)의 상유한(桑維翰)이 진사(進士)에 응시했을 때 시관(試官)이 그의 성(姓)인 상(桑) 자가 상(喪)과 동음(同音)이란 것을 꺼리어 그를 빼 버렸으므로, 혹자가 그에게 굳이 진사 급제를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달리 벼슬을 구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자, 그가 분개하여 〈일출부상부(日出扶桑賦)〉를 지어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고, 또 무쇠 벼루[鐵硯]를 주조하여 남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 벼루가 다 닳거든 마음을 바꿔 다른 길로 벼슬을 구하겠다.” 하고는, 그 후로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끝내 진사에 급제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문필(文筆)의 공부가 깊어짐을 의미한다.
[주D-004]평생에 …… 있으랴 : 난초를 찬다는 것은 고결(高潔)한 지취(志趣)를 의미한 말로,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강리와 벽지를 몸에 걸쳐 입고, 가을 난초를 꿰어서 허리에 찬다.[扈江離與辟芷兮 紉秋蘭以爲佩]” 한 데서 온 말이다.
흥취를 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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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내 마음이 바로 무궁한 천지련만 / 天地無窮方寸心
몸은 창해 일속 같아 뜨고 잠김 맡기어라 / 身如海粟任浮沈
태극이 원래 둘이 아님을 그 누가 알리요 / 誰知太極元無二
시편에 마음 부쳐 조용히 읊조릴 뿐이네 / 寄向詩篇細細吟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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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녹은 낙숫물이 등잔 앞에 떨어지니 / 雪消簷溜滴燈前
하늘 가득 비 자욱이 내리는가 싶구나 / 疑是濛濛雨滿天
겨울 길 질척임을 스스로 괴이케 여기며 / 自怪冬間泥路滑
백발에 관디 차리고 조반으로 향해 가네 / 白頭冠帶向朝聯
여진 천호차관(女眞千戶差官)이 곧 합좌소(合坐所)를 알현하려 하는 차에 나는 몸이 피곤해서 먼저 나와 도중(途中)에 한 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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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차관이 묘당을 알현차 내방하니 / 女眞差官謁廟堂
좋은 요리에 향기로운 술 준비했건만 / 廚人供具酒生香
날이 흐리매 병든 삭신이 더욱 아파서 / 天陰病骨偏酸痛
조용히 함께 먹고 마시질 못하네그려 / 不得從容共一嘗
한 첨서(韓簽書)가 장차 현릉(玄陵)의 삭제(朔祭)를 거행하려면서 누추한 내 집을 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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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산은 적적해라 그 몇 해나 지냈던고 / 喬山寂寂幾經春
삭망으로 향화 올림이 달마다 새롭구려 / 朔望行香逐月新
예는 정문을 다 갖춰 신도를 감동시키고 / 禮備情文感神道
명은 공덕을 진술해 신하들에게 보이네 / 銘陳功德示臣鄰
무선봉 밑엔 흐르는 물이 가득 고이고 / 舞仙峯下瀦流水
사자림 사이엔 한 점 티끌도 없다마다 / 獅子林間絶點塵
종소리 울릴 때에 삼헌을 마치고 나서 / 趁取鐘聲三獻畢
음복주 마시자마자 몸이 훈훈해질걸세 / 纔傾福酒便醺身
[주D-001]교산(喬山) : 본디 황제(黃帝)의 장지(葬地)인데, 여기서는 곧 공민왕(恭愍王)의 능인 현릉(玄陵)을 가리킨다.
전토(田土)를 사급(賜給)하여 현릉(玄陵)의 원당(願堂)인 광통보제사(廣通普濟寺)에 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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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람되이 문필 가지고 현릉을 보좌하여 / 叨持文墨佐玄陵
관각이며 도당을 차례 넘어 뛰어올라서 / 館閣都堂不次升
형촉으로 광휘 더해 군왕께 보답했더니 / 螢燭增輝酬大造
공신 책록으로 하찮은 재능 기록했었지 / 山河誓冊記微能
은혜 갚는 전토는 삼보에 보시하거니와 / 報恩田土施三寶
도 배우는 기관은 결코 이승이 아니라네 / 學道機關非二乘
다시 원컨대 보제사 중은 내 뜻을 알아서 / 更願居僧體吾意
우리 임금껜 수를 백성에겐 복을 빌어주오 / 壽吾君上福黎烝
[주D-001]형촉(螢燭)으로 …… 보답했더니 : 형 촉은 반딧불과 밀초를 가리킨 것으로 즉 미력(微力)을 의미하는데,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구자시표(求自試表)〉에 “반딧불과 밀초의 미약한 빛이나마 해와 달의 광휘에 보태고 싶다.[螢燭末光增輝日月]”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삼보(三寶) : 불교 용어로, 즉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를 합칭한 말인데, 불보는 여러 부처를 가리키고, 법보는 부처의 교법(敎法)을 가리키고, 승보는 부처의 교법대로 수행하는 승려들을 가리킨다.
[주D-003]이승(二乘) : 불교의 두 가지 교법(敎法)인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을 가리킨다.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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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엔 의당 한적해야 할 텐데 / 老境宜閑適
성대라서 우활한 사람 등용하니 / 淸時用闊迂
고향 사람들은 소식을 통해오고 / 鄕人通信字
조회하는 말은 도성 길을 달리네 / 朝馬踏亨衢
안개는 자욱해 봉우리가 잠기고 / 霧重群峯隱
하늘은 낮아 외기럭 소리 들려라 / 天低一鴈呼
시 읊으면 그윽한 흥미 넉넉하니 / 吟詩足幽味
담박함이 맛진 고기보다 낫고말고 / 淡泊勝膏腴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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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흐르는 세월에 나날을 보내면서 / 流年袞袞送居諸
백발의 유생이 초려에 높이 누웠노라니 / 白髮儒生臥草廬
깎아 버리고 일찍이 석과만 남기었기에 / 剝去昔曾餘碩果
회복해오매 이제는 은둔함을 보겠구려 / 復來今可見潛虛
봄은 다만 굳은 얼음 속에서 생기거니와 / 春生祗在堅氷內
양은 태극의 처음에 동함을 이제 알겠네 / 陽動方知太極初
성쇠는 때가 있나니 반드시 스스로 힘써 / 消長有時須自彊
곧장 화기가 천지에 가득하도록 하였으면 / 直敎和氣滿堪輿
[주D-001]깎아 버리고 …… 남기었기에 : 《주역(周易)》 박괘(剝卦
[주D-002]회복해오매 …… 보겠구려 : 《주역》 박괘(剝卦)의 바로 다음에 나오는 복괘(復卦
이 판사(李判事) 원필(元弼) 가 공사(公事)를 자문해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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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외로운 신하는 충심을 품고서 / 白髮孤臣抱赤心
홀로 도필 휴대하고 촌음을 아끼노니 / 獨携刀筆惜分陰
이 목은에게 공사일랑 자문하지 마소 / 休從牧隱咨公事
조정의 뭇 어진 이 숲처럼 많질 않은가 / 廊廟群賢立似林
젊어서 내 일찍이 총재관이 되었을 때는 / 黑髮吾曾忝宰官
대의를 홀로 결단함도 어려움 없었더니 / 大疑獨決亦無難
앓은 나머지 이젠 맘과 힘이 다 쇠하여 / 病餘心力消磨盡
시위소찬 같아서 고기 먹기 부끄럽다네 / 肉食深慙似素餐
흐린 기운은 한낮까지 아직 안 걷히고 / 日午群陰尙不開
텅 빈 당의 사면에는 이끼만 푸르른데 / 虛堂四面澁蒼苔
늙은이만 홀로 앉았고 아내가 없으니 / 老翁獨坐無中饋
손 마주해 무슨 수로 술을 마신단 말인가 / 對客何從擧酒杯
여진 천호차래관(女眞千戶差來官)이 토산물(土産物)을 진헌(進獻)할 제, 상(上)이 화원(花園)의 팔각전(八角殿)에 나가서 그 예(禮)를 받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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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에 연해서 동여진을 기록하였거니 / 國史聯書東女眞
해마다 방물 싣고 멀리 손되어 오누나 / 歲輸方物遠來賓
일심으로 귀화하여 송악을 향해 오니 / 一心慕化向松嶽
팔각전서 조회받아 비단자리 펼쳤네 / 八角受朝鋪錦茵
통역엔 기쁨이 넘쳐 서로 막힘없거니와 / 重譯懽然無擁蔽
단신의 오랜 여행엔 온갖 고난 겪었으리 / 獨行久矣備艱辛
국제간 교류에 도리 있어 때는 무사한데 / 交鄰有道時無事
임정에 햇살 비추니 소춘 시절 비슷하네 / 日照林亭近小春
[주D-001]소춘(小春) : 음력 10월 또는 8월의 별칭으로 쓰인다.
어 제 명을 받들어, 회암(檜巖)의 산수(山水)를 둘러보고 온 권 좌사(權左使)를 위하여 주연(酒宴)을 베풀어 주려고 하던 차에 마침 사평순위부(司平巡衛府)에서 조 오재(曺五宰) 및 권공(權公)을 초청하여 대대적으로 음악을 연주하고 연회를 베풀면서 또 사자(使者)를 달려 보내어 나를 초청하였으므로, 깊은 밤까지 매우 즐겁게 마시고 놀다가 술이 너무 과할까 염려되어 도망쳐 나왔더니, 새벽까지도 취기(醉氣)가 아직 있다.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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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터 보는 중대한 일을 현신에게 맡기고 / 胥原重事屬賢臣
도당에 명하여 그에게 주연 베풀라 했는데 / 分命都堂爲洗塵
연회석에 옥술잔 날릴 줄을 어찌 뜻했으랴 / 豈意會同飛玉斝
노래와 춤으로 다시 화려한 자리 감싸누나 / 更敎歌舞擁文茵
깊은 밤 촛불 아랜 미인들이 우글거리고 / 夜深銀燭紅粧亂
바람에 날린 눈발 아랜 백발이 새로웠네 / 風動瓊花白髮新
술 피해 도망쳐온 것이 마치 꿈만 같아라 / 逃酒歸來如夢裏
그 흥취 기억하려도 이미 진경이 아니로세 / 欲追情興已非眞
합좌(合坐)했다가 과음으로 피곤해서 먼저 나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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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취하여 왜 그리 방종했던고 / 大醉情何縱
깨고 나니 몸이 다시 피곤해지네 / 初醒體更疲
조정에 앉으니 몸이 활발치 못해 / 坐朝難自在
휴가 얻어 오니 참으로 만족해라 / 請假儘委蛇
도령은 팽택을 사직하여 떠났고 / 陶令辭彭澤
산공은 백접리를 거꾸로 썼는데 / 山公倒接䍦
내가 본받을 이는 정히 그 누굴꼬 / 吾師定誰是
우선 돌아가기 이전을 볼 뿐이네 / 且看未歸時
[주D-001]도령(陶令)은 …… 떠났고 : 도령은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지낸 도잠(陶潛)을 가리키는데, 그는 팽택 영이 된 지 겨우 80여 일 만에 사직하고 전원(田園)으로 돌아가버렸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산공(山公)은 …… 썼는데 : 산 공은 진(晉)나라 산간(山簡)을 가리키고, 백접리(白接䍦)는 일종의 두건(頭巾)이다. 산간이 난세(亂世)를 당하여 양양(襄陽)을 다스리면서 자주 고양지(高陽池) 가에 나가서 술에 대취(大醉)하여 백접리를 거꾸로 쓴 채 백마(白馬)를 타고 돌아오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 “지는 해 현산 서쪽으로 넘어가려 할 제, 백접리 거꾸로 쓰고 꽃 아래서 비틀거리니, 양양의 아이들은 모두 손뼉을 치면서, 길거리 막고 서로 다퉈 백동제를 노래하네. 옆 사람이 애들에게 무슨 일로 웃느냐 하니, 곤드레 취한 산간 노인이 몹시 우습다 하네.[落日欲沒峴山西 倒著接䍦花下迷 襄陽小兒齊拍手 攔街爭唱白銅鞮 傍人借問笑何事 笑殺山翁醉似泥]” 하였다.
합좌(合坐)하여 들어가서 동지(冬至)의 하례(賀禮)를 정지하기를 주청(奏請)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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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통이 바야흐로 자에서 열리고 / 天統方開子
양이 생기니 또 작은 봄이로다 / 陽生又小春
관문 닫음은 하늘을 섬기는 일이요 / 閉關思順帝
표문 물림은 신민 노고 염려함일세 / 却表恐勞民
처음을 삼가는 건 명주에 말미암고 / 謹始由明主
화기를 기르면 대신을 보존하나니 / 保和存大臣
진실로 측은한 마음을 미룬다면 / 苟能推惻隱
옛 나라이나 명이 오직 새로우리 / 邦舊命維新
[주D-001]천통(天統)이 …… 열리고 : 주(周)나라가 자월(子月)인 음력 11월, 즉 동짓달로 세수(歲首)를 삼고 이를 천통으로 삼았다는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동짓달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주D-002]양(陽)이 …… 봄이로다 : 동지(冬至)에 일양(一陽)이 생겨나므로, 작은 봄이란 약간 다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3]관문(關門) …… 일이요 : 《주 역(周易)》 복괘(復卦) 상사(象辭)에 “우레가 땅속에 있는 것이 복이니, 선왕이 그것을 인하여 동지일에 관문을 닫아서 장사치들이 다니지 못하게 하며, 임금이 사방을 시찰하지 않느니라.[雷在地中復 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 하였는데, 이는 일양(一陽)이 처음 생기는 때에 성인이 복괘의 상을 관찰하여 천도(天道)에 순응해서 그 미약한 양(陽)을 조용히 기르기 위한 것이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4]옛 나라이나 …… 새로우리 : 《시 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에 “주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지만, 그 명이 오직 새로웠도다.[周雖舊邦 其命維新]”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주나라가 비록 오래전부터 생긴 나라이지만, 문왕에 이르러서야 덕이 천하에 입혀짐으로써 비로소 천명(天命)을 받게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조정에서 퇴청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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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청하여 남쪽 산마루 우뚝한 데 오르니 / 退朝南嶺上崔嵬
다리 밑에 뭇 산들이 활화처럼 펼쳐지네 / 脚底群峯活畫開
한산 가는 노정이 분명하여 셀 만도 한데 / 馬邑去程明可數
백발로 이리 분주함은 또한 웬 까닭인고 / 白頭奔走亦何哉
홀로 앉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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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클어진 머리털에 두 눈은 쑥 들어가서 / 鬅鬙鬢髮目愁胡
꼼짝 않고 앉은 꼴이 대토주와 똑같은데 / 兀坐眞同待兔株
갑자기 좋은 시 얻어 한번 길이 읊조리니 / 忽得好詩舒一嘯
호연히 돌아가고픈 흥이 강호에 가득구나 / 浩然歸興滿江湖
[주D-001]대토주(待兔株) : 주(株)는 마른 나뭇등걸을 가리킨 것으로, 본디 수주대토(守株待兔)의 고사(故事)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다만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자기의 모습을 마른 나뭇등걸에 비유했을 뿐이다.
팥죽[豆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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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풍속이 동짓날엔 팥죽을 짙게 쑤어 / 冬至鄕風豆粥濃
사발에 가득 담으면 빛이 공중에 뜨는데 / 盈盈翠鉢色浮空
여기에 꿀을 타서 목구멍을 적셔 내리면 / 調來崖蜜流喉吻
음사를 다 씻고 뱃속도 윤택게 하고말고 / 洗盡陰邪潤腹中
하늘도 맑은 여염집에 새벽빛 농후할 제 / 天淨閭閻曉色濃
계집애는 머리 빗고 붉은 단장 엷게 하네 / 小娥梳洗淡粧紅
집집마다 서로 보내는 게 풍속을 이루어 / 家家相送成風俗
백발의 늙은이는 낙이 그 가운데 있다네 / 白髮衰翁樂在中
문 닫고 깊이 들앉으니 도미가 농후해라 / 閉戶深藏道味濃
백자와 천홍을 한창 배태하는 중이로세 / 胚胎百紫與千紅
다만 평소부터 조용히 도를 음미해야지 / 只從平日能涵泳
천지가 원래 고요한 가운데서 나왔나니 / 天地元來出靜中
[주D-001]음사(陰邪)를 다 씻고 : 옛 날 풍속에 동짓날이면 팥죽을 쑤어 먼저 사당(祠堂)에 올리고, 또 여러 그릇에 담아서 각 방과 장독간, 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었는데, 팥은 빛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특히 팥죽에는 음귀(陰鬼)를 몰아내는 효험이 있다고 여겨 집안 곳곳에 팥죽을 담아 놓았다가 먹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백자(百紫)와 천홍(千紅) : 온갖 꽃들이 한창 피는 봄의 경치를 말한 것이다.
제공(諸公)과 함께 술을 가지고 판삼사(判三司)를 방문하여 난방(煖房)을 베풀어 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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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삼사사는 거대한 공을 세운 신하로서 / 判三司事大功臣
늠름한 위풍이 조관들을 경동시키는데 / 凜凜威風動搢紳
이령의 남쪽 비탈은 꾸불꾸불 서리었고 / 梨嶺南崖盤詰曲
청성의 고택은 우뚝 높다랗게 솟았구려 / 淸城故宅聳嶙峋
원림은 길이 주인 없길 기필 못하거니와 / 園林未必長無主
토지는 예로부터 절로 신명이 있고말고 / 土地由來自有神
늙은 나도 일행 따라 축수 잔 올리어라 / 老我隨行斟壽酒
천고에 분양의 좋은 이웃을 접했네그려 / 汾陽千古接芳鄰
[주C-001]난방(煖房) : 옛날 민간 의식(儀式) 가운데 하나로서, 집을 새로 지어서 입주하거나 새로 이사한 사람에 대해서 그 이웃 사람들이 주연(酒宴)을 준비하여 그 집에 가서 함께 연음(宴飮)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1]분양(汾陽) : 당(唐)나라 때의 명장(名將)으로 많은 공훈을 세우고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진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당시 판삼사사(判三司事)였던 최영(崔瑩) 장군을 곽자의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이날 비가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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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가랑비 속에 길은 미끄러운데 / 雨細無聲路滑泥
오늘 이 술병은 공을 위하여 찬 거라네 / 酒壺今日爲公提
도롱이 다 적시며 저물녘에야 돌아오니 / 簑衣濕盡歸來晚
구름 깊은 유동엔 닭이 홰에 오르려 하네 / 柳洞雲深雞欲栖
7일에 상(上)이 신경(新京)에 행행(行幸)하는데, 신(臣) 색(穡)은 도성(都城)에 남아서 병 때문에 행차의 모습도 바라보지 못하고 엎드려 읊조리다가 인하여 한 수를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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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효한 상의 마음이 성(誠)으로부터 밝아서 / 上心仁孝自誠明
선왕의 새 도읍 정한 걸 실천코자 하여 / 欲踐先王卜洛行
짐짓 신경을 향해 유적을 찾아가시거니 / 故向新京訪遺跡
예로부터 명승지는 헛소문이 아니고말고 / 由來勝地匪虛名
산 형세는 아담하여 개경과 비슷하고요 / 山形端小如扶素
물 형세는 감아 돌아 예성강과 접하였네 / 水勢縈紆接禮成
당일의 시종신이 지금 몇이나 남았는고 / 當日侍臣今有幾
도성에 남은 늙고 병든 한 서생뿐이로다 / 留司老病一書生
[주C-001]신경(新京) : 고려 때 경기(京畿) 장단군(長湍郡) 임진현(臨津縣) 북쪽에 위치한 백악(白嶽)을 가리키는데, 공민왕(恭愍王)이 일찍이 여기에 행행하여 천도(遷都)할 땅을 시찰했었고, 그 당시에 이미 천도의 공사(工事)도 했었다고 한다.
[주D-001]성(誠)으로부터 밝아서 : 《중 용장구(中庸章句)》 제21장에 “성실함으로부터 밝아짐을 성이라 하고, 밝음으로부터 성실해짐을 교라 하나니, 성실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실해진다.[自誠明謂之性 自明誠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 한 데서 온 말로, 성실함으로부터 밝아진 경지는 천도(天道)와 똑같은 성인(聖人)의 덕을 가리킨다.
이 날 정오(正午)에 햇빛이 구름을 뚫고 새어 나와서 서남쪽이 비로소 개니, 행행하는 즈음에 응견(鷹犬)이 재주를 발휘한다면 천안(天顔)이 기뻐할 것을 상상할 만하다. 신 색은 병 때문에 도성에 그대로 남았는데, 또 문밖에도 나갈 수가 없으므로, 홀로 앉아서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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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허부 지을 비상한 재주만 공연히 품고 / 謾抱奇才賦子虛
도리어 병 때문에 내 집에 드러누웠네 / 却因多病臥吾廬
햇빛은 구름 뚫고 나와 흐린 빛 걷혀가고 / 日光穿漏陰將散
산빛은 분명도 해라 안개 벌써 사라졌네 / 山色分明霧已除
매는 곤새 붕새와 함께 하늘을 날 게고 / 鷹與鵾鵬落雲漢
개는 여우 토끼 쫓아 들판에 가득하리 / 犬從狐兔滿郊墟
어가가 잠깐 머물러 천안이 기뻐할 텐데 / 六飛小駐天顔喜
그 누가 붓 가지고 그 광경 대서할런고 / 珥筆何人得大書
[주D-001]자허부(子虛賦) :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제후(諸侯)의 유렵(遊獵)에 관한 일을 서술하여 지은 문장 제목인데, 무제(武帝)가 이것을 보고는 크게 칭탄(稱歎)했었다.
서곡음(瑞谷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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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화의 북쪽은 산들이 에워싸는 듯하고 / 昌和之北山如圍
서곡엔 솔 가득해 푸르름을 이루었는데 / 松滿瑞谷成翠微
그 가운데 두어 이랑 절집이 있었더니 / 其中數畝浮屠宮
이젠 향화 끊기고 종경 소리도 드물어라 / 蕭然香火鐘磬稀
옛날 신경의 터닦기 미처 덜 끝났을 때 / 新京攻位未云畢
철성의 두 형제와 내가 서로 의지하여 / 鐵城兄弟吾相依
삼 인이 서로 바싹 다가앉아 담소하면서 / 三人談笑更促膝
가끔은 밤새 앉아 아침을 맞기도 했으니 / 夜坐往往迎朝暉
당시의 풍류를 참으로 상상할 만하여라 / 當時風流可想見
무략과 문재가 기의 기틀을 함께했었지 / 虎略文才同氣機
중씨의 전사함은 세상이 놀란 바거니와 / 仲氏陣亡世所駭
계씨는 병사했으니 나는 뉘와 함께할꼬 / 季氏病歿誰與歸
못난 나만 유독 오십의 나이에 올라서 / 散材獨登知命年
특별한 은총 재차 입어 재상부를 열었네 / 再承異渥開黃扉
병이 오래간들 또한 무슨 해롤 것 있으랴 / 雖然病久亦無害
어이해 아직도 낚시터를 찾지 못하는고 / 奈何尙不尋魚磯
선왕은 돌아가고 하늘은 아득하기만 한데 / 鼎湖弓墜天茫茫
다행히 우리 성상이 바야흐로 임어하시네 / 幸我聖上方垂衣
[주D-001]철성(鐵城)의 두 형제 : 고 려 말기의 상신(相臣)으로 벼슬이 문하 시중(門下侍中)에 이르고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에 봉해진 이암(李嵒)의 아들 4형제 중 끝으로 두 아들인 음(蔭)과 강(岡)을 가리키는데, 음은 무신(武臣)으로서 일찍이 공민왕(恭愍王) 8년 홍건적(紅巾賊)의 제1차 침입 때에 안우(安祐), 이방실(李芳實) 등과 함께 적을 크게 무찔러 그 공으로 상장군(上將軍)에 승진되었으나, 그 후 공민왕 10년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안주(安州)의 싸움에서 전사(戰死)하였고, 강은 뛰어난 문사(文士)로서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고 공민왕 때 이부 낭중(吏部郞中), 지신사(知申事) 등을 역임하고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에 이르렀으나, 36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신(臣) 색(穡)은 삭신이 아파서 말을 타기가 어려운지라, 아마도 행행했던 어가(御駕)가 곧 돌아올 터인데도 길가에 나가 어가를 맞이하여 배알할 길이 없으므로, 서글픈 나머지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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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남쪽 하룻밤의 안부가 그 어떠하신지 / 城南一夜問如何
이미 도인 보내서 어가를 바라보게 했네 / 已遣都人望翠華
병 많은 소신은 병석에 읊으며 누웠는데 / 多病小臣吟臥榻
소년의 여러 장수는 행궁을 옹위했으리 / 少年諸將擁行窩
소매에 공교히 젖은 건 겨울 하늘 눈이요 / 巧霑衫袖冬天雪
생소에 찬란히 비친 건 봄날의 꽃이로다 / 爛映笙簫春日花
태평성대 참다운 기상을 알고자 할진댄 / 欲識太平眞氣像
타년의 칠덕무와 노래를 가지고 봐야지 / 他年七德舞仍歌
봄날의 꽃[春日花]이란 남경별곡(南京別曲)을 사용한 것이다.
[주D-001]칠덕무(七德舞)와 노래 : 칠 덕무는 당 태종(唐太宗)이 지은 무곡(舞曲) 이름인데, 여기에는 또한 칠덕가(七德歌)도 딸려 있다. 칠덕은 무(武)의 일곱 가지 덕을 말한 것으로, 금포(禁暴), 집병(戢兵), 보대(保大), 정공(定功), 안민(安民), 화중(和衆), 풍재(豐財) 등이다.
정오(正午)에 이르러 눈이 내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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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 깃발 종고 소리가 행궁을 옹위하고 / 羽旄鐘鼓擁行宮
신민들 흔연스런 빛은 안팎이 똑같은데 / 喜色欣欣內外同
등륙이 날아올라서 응당 강림했으리니 / 滕六有騰應降格
때로 춤추는 학이 하늘 가득함을 보겠네 / 時看舞鶴滿長空
문에 거적을 늘어뜨린 한 이랑 초막집에 / 弊席垂門一畝宮
홀로 읊는 높은 흥취가 그 뉘와 같을꼬 / 獨吟高興有誰同
생각건대 아마 남산 아래 행차했을 땐 / 似聞淸蹕南山下
용수산의 푸른빛이 창공에 비치었으리 / 龍首蔥蘢映碧空
추국공은 당년에 제의 설궁엘 들어가서 / 鄒國當年入雪宮
요순을 말했을 뿐 세속에 뇌동하려 했던가 / 獨陳堯舜肯雷同
가련하여라 목은은 세속 붙좇기에 능하여 / 可憐老牧工趨俗
뱃속의 시서 또한 이미 텅 비어 없어졌네 / 腹裏詩書亦已空
[주D-001]등륙(滕六) : 설신(雪神)의 이름으로, 전하여 눈을 가리킨다.
[주D-002]춤추는 학[舞鶴] : 눈이 펄펄 날리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주D-003]추국공(鄒國公)은 …… 들어가서 : 추 국공은 추국아성공(鄒國亞聖公)에 봉해진 맹자(孟子)를 가리키고, 설궁(雪宮)은 제 선왕(齊宣王) 때의 별궁(別宮) 이름인데, 제 선왕이 설궁에서 맹자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현자도 이런 낙이 있습니까?[賢者亦有此樂乎]”라고 묻자, 맹자가 윗사람은 항상 백성들과 우락(憂樂)을 함께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孟子 梁惠王下》
[주D-004]뱃속의 …… 없어졌네 : 한 유(韓愈)의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 시에 “사람이 능히 사람이 될 수 있음은, 뱃속에 시서가 있기 때문인데, 시서는 부지런해야 소유할 수 있고, 그리 못 하면 뱃속이 텅 비게 되느니라.[人之能爲人由腹有詩書 詩書勤乃有 不勤腹空虛]” 하였다.
허리가 아파서 쭈그리고 앉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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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리매 병든 삭신이 몹시도 아파서 / 天陰病骨劇酸辛
안마하는 여종아이를 마냥 짜증나게 하네 / 摩挫長敎小婢嗔
교외에 나가서 몸소 어가는 영접 못 하고 / 未向近郊躬接駕
구차히 시골집서 두건도 안 쓰고 있자니 / 聊從陋巷頂無巾
구름 낀 고목나무엔 바람 소리 끊어지고 / 陳雲古樹風聲絶
눈 내린 텅 빈 마을엔 밤빛이 새롭구려 / 小雪空村夜色新
홀로 앉아 읊노라니 우국충정 끝없어라 / 獨坐獨吟情不盡
묘당의 높은 자리서 백성 근심하는 때로세 / 廟堂高處政憂民
날이 흐릴 제 홀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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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리면 천지가 작아 보이고 / 陰黑乾坤小
청명하면 지기가 호방해지거니와 / 淸明志氣豪
세상일 걱정은 골수에 사무치고 / 憂時深到骨
도를 행하긴 터럭같이 미세하네 / 體道細如毛
들 밖엔 바람이 막 잠잠해지고 / 野外風初定
구름 새엔 해가 높이 솟았는데 / 雲間日已高
점차로 알겠네 두 눈이 캄캄하여 / 漸知雙目暗
다시는 추호를 분석지 못할 줄을 / 無復析秋毫
성 원(省院), 대각(臺閣), 고원(誥院)이 일찍이 구정(毬庭)에서 열악(閱樂)을 베풀 적에 승선(承宣)이 명을 받들고 뒤에 이르자, 시신(侍臣)이 북면(北面)하여 그를 맞이하므로, 승선이 시신으로 하여금 막외(幕外)로 나가서 맞이하게 하고자 하니, 시신이 말하기를 “우리들도 명을 받들었으니, 사리상 나가서 맞이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이에 승선 중에는 심지어 복명(復命)만 하고 들어가지 않은 자가 있기까지 하였으니, 김 좌사(金左使)가 승선이 되었던 때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었다. 그 후로는 현릉(玄陵)이 분부를 내려 재상(宰相)도 승선을 맞이하도록 하였으니, 더구나 시신이겠는가. 지금은 우리 아이 종덕(種德)이 명을 받들고 갔는데, 오늘은 또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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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의 남쪽에 자리한 기다란 초창에서 / 毬庭南畔草廠長
음악 구경하는 신하들 광채도 찬란하네 / 閱樂群臣爛有光
예수는 근엄해라 모두 왕명을 받들었고 / 禮數謹嚴皆奉命
반항은 정숙해라 향기가 풍길 듯한데 / 班行肅穆欲生香
법제는 때에 따라 달라짐을 잘 알거니와 / 明知法制隨時異
조정 권한은 전보다 강하다 모두 말하네 / 共說權綱比舊強
소대사의 말미암기는 화가 가장 귀하니 / 小大所由和最貴
분촌을 서로 다퉈 의기양양치 말았으면 / 莫爭分寸氣揚揚
[주D-001]소대사(小大事)의 …… 귀하니 : 유자(有子)가 말하기를 “예의 쓰임은 화함이 귀중한 것이니, 선왕의 도가 이것을 귀하게 여겼는지라,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이것을 말미암아서 하였다.[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學而》
함양(咸陽) 대이부(大姨夫) 민 판사(閔判事)의 집이 왜노(倭奴)에게 겁략(劫掠)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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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이라 작은 고을은 깊은 산속에 있어 / 咸陽小縣亂山深
바다는 멀고 낭떠러지도 만 길이나 되는데 / 海遠懸崖更萬尋
도적은 천둥 같아 귀를 가리기 어려웠고 / 寇似疾雷難掩耳
몸은 활 맞은 새 같아 아직도 마음 놀라라 / 身如傷鳥尙驚心
골짜기 안에 인적 없음은 문득 알겠거니와 / 谷中頓覺無煙火
세밑에 비바람 맞음은 어찌 견딘단 말인가 / 歲抄那堪窘雨陰
다행히 둘째 아들이 영친연을 올렸으리니 / 幸有二郞能綵舞
기쁨의 눈물이 옷깃 적셨음을 멀리 알겠네 / 遙知喜淚已霑襟
[주C-001]대이부(大姨夫) 민 판사(閔判事) : 바로 저자에게 큰동서가 되는 판사(判事) 민근(閔瑾)을 가리킨다.
[주D-001]천둥 …… 어려웠고 : 사람이 미처 방비할 수 없는, 돌연히 일어난 사고를 말한다.
종학(種學)이 시신(侍臣)으로서 관디[冠帶]를 갖추고 반항(班行)을 따라 음악을 구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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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처럼 말끔한 구정 무대에 일제히 들어 / 毬庭鏡淨入臺齊
서로 기예 겨루는 모양은 골계와도 같은데 / 競技呈才似滑稽
내 자식도 반항 따라 음악 사열 참예하니 / 豚犬隨行參閱樂
붉은 비단 조복에 문서대가 찬란도 해라 / 紫羅朝服帶文犀
12월 12일에 부임(赴任)하자, 낭사(郞舍)에서 주식(酒食)을 베풀어 주므로 약간 거나하게 마신 다음, 차자방(箚子房)에 들어가 주장(奏狀)을 써서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는 물러 나와 두 시중(侍中)을 배알하고 또 마시어 크게 취해서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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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로 거듭 와서 조정에 다시 오르니 / 白髮重來登省堂
부재가 요행 만나 땀이 줄줄 흐르누나 / 不才僥倖汗翻漿
사은의 재배에는 정성이 더욱 격동되고 / 謝恩再拜誠彌激
흥겨워 읊조림엔 풍취가 절로 진진하네 / 乘興孤吟趣自長
총재의 깊은 술잔은 바다처럼 크건마는 / 冢宰深杯如海大
선생의 작은 양은 순풍에도 흔들거리네 / 先生小器便風狂
술이 깨자 지는 달은 창문에 나직한데 / 醒時落月低窓戶
한 조각 백성 걱정을 감히 못 잊겠구나 / 一段憂民不敢忘
[주C-001]차자방(箚子房) : 고려 때 인사 행정(人事行政)을 맡아보던 관청 이름으로, 정방(政房), 또는 지인방(知印房)이라고도 일컬었다.
이백유(李伯由)의 아버지를 천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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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 이씨로 이름이 백유란 이가 있으니 / 完山李氏名伯由
부자간에 효성이 참으로 여유가 있구려 / 父子孝情有餘裕
아들은 사직하여 아비를 영광되게 하고 / 子焉辭職榮其父
아비는 부임하여 모친을 위로코자 하네 / 父欲□參慰其母
한집이 이렇듯 성대히 효양을 힘쓰거니 / 一家蔚然敦孝讓
재물 쟁탈하는 세상 풍속을 왜 걱정하랴 / 何患爭奪財不阜
한산의 목은은 역사의 기록을 관장하여 / 韓山牧隱領史事
예양 풍속 일기만을 붓 잡고 기다렸는데 / 禮俗之興操筆竢
완산엔 종이가 있어 넓고 또한 길거니 / 完山有紙闊且長
내 그 종이 다 쓰련다 어찌 그만둘쏜가 / 我欲盡涅烏可已
[주D-001]완산(完山)엔 …… 길거니 : 완산은 전주(全州)의 고호(古號)인데, 전주는 예로부터 한지(韓紙)의 고장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부계(浮階)에서 의식(儀式)의 예행 연습이 있는데, 몸이 피곤해서 참예할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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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관원들 크게 취해 조복을 갖추고 / 千官爛醉具朝衣
구정으로 예를 연습하러 가려고 하는데 / 欲向毬庭習禮歸
백발의 정당은 방금 피곤해 누웠노라니 / 白髮政堂方困臥
송악산 새벽빛이 벌써 희미해졌네그려 / 松山曉色已熹微
임금 은총 당일에 못난 재주 기억해주어 / 主恩當日記微才
매양 구정에서 예를 연습하고 돌아왔는데 / 每向毬庭習禮回
새벽 술기운 골수에 훈훈히 젖은 채로 / 卯酒陶然醺骨髓
석양에 나란히 말 타고 좋이 돌아왔었지 / 夕陽聯騎好歸來
우리 해동 천고의 태평성대의 해를 만나 / 海東千古太平年
자월에 의식 베풂은 봉천의 뜻 보임일세 / 子月陳儀示奉天
우물 속에 생긴 양은 참으로 한 실마리라 / 井底陽生眞一線
이를 부지해 곧장 순건으로 가려 한다오 / 扶持直欲到純乾
[주D-001]자월(子月)에 의식 베풂 : 자월은 월건(月建)이 자(子)에 해당하는 동짓달을 가리킨 것으로, 즉 동짓달에 팔관회(八關會)를 거행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주D-002]우물 …… 실마리라 : 복 괘(復卦)에서 동지(冬至)에 일양(一陽)이 처음 생기는 것을 말하는데,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동짓달에……수천이 움직인다.[仲冬之月……水泉動]” 하였고, 《일주서(逸周書)》에는 “동짓달에 미세한 양이 황천에서 움직인다.[周月 微陽動于黃泉]” 하였다.
[주D-003]순건(純乾) : 순양(純陽)인 건괘(乾卦
종학(種學)이 소회일(小會日)에 고원(誥院)에 주식(酒食)을 베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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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가 대성의 반열을 뒤따라 들어가서 / 外制追隨臺省班
앞으로 죽 나눠 서서 의관을 정제하였네 / 近前分立整衣冠
예부터 금중엔 화려한 자리가 성대하건만 / 由來地禁華筵盛
빈가에는 소찬도 어려움을 비로소 믿겠네 / 始信家貧素食難
상서론 구름은 성대히 전각을 에워싸고 / 藹藹慶雲籠殿閣
상서론 햇살은 떠올라 배반을 비추누나 / 曈曈瑞日照杯盤
대관루 아래에 동서로 나눠 절을 올려라 / 大觀樓下東西拜
술기운은 새벽 추위를 꼭 녹이게 하지 / 酒氣須敎壓曉寒
[주C-001]소회일(小會日) : 고려 때 개경(開京)에서는 팔관회(八關會)를 11월 15일에 열었던바, 팔관회의 바로 전날을 소회일, 그 당일을 대회일(大會日)이라고 했다.
[주D-001]외제(外制) : 고려 때 한림원(翰林院), 보문각(寶文閣)의 관원이 아닌 다른 관원이 겸임한 지제고(知制誥)를 일컫던 말이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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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건대 당년에 곤드레가 되게 취하여 / 記得當年醉似泥
분잡하게 행랑 서쪽에서 몰려 들어가니 / 紛紛闌入自廊西
대신은 공연히 공함만 보내왔을 뿐이요 / 臺臣謾把公緘送
이미 중문에선 일제히 일을 아뢰었었네 / 已見中門奏事齊
앞서는 시신 뒤에는 승선으로 보좌한 게 / 侍臣前道後承宣
후에서 토까지 연이어 팔 년을 달리었고 / 猴兔聯馳正八年
밀직사 삼사엔 인하여 빈자리 채우다가 / 密直三司仍代匱
백시의 해를 만나서는 몸에 병을 얻었네 / 行逢白豕病纏綿
병중에 봉군되어 시위소찬은 부끄러우나 / 病裏封君愧素餐
정당에 거듭 제배되니 희색은 만면하여라 / 政堂重拜喜浮顔
누가 두 다리를 아직껏 무력하게 하는고 / 誰敎兩脚猶無力
성대히 벌인 의장을 앉아서 상상할 뿐이네 / 坐想鉤陳玄武間
[주D-001]앞서는 …… 달리었고 : 후 (猴)는 지지(地支)의 신(申)에 해당하고, 토(兔)는 지지의 묘(卯)에 해당하므로, 즉 공민왕(恭愍王) 5년인 병신년(1356)부터 공민왕 12년인 계묘년(1363)에 이르기까지 모두 8년 동안을 저자가 시신(侍臣)과 승선(承宣)의 직임에 있었음을 이른 말이다.
[주D-002]백시(白豕)의 해 : 천간(天干)의 경신(庚辛)이 방위로는 서(西)에 해당하고 색깔로는 백(白)에 해당하므로 백은 곧 신(辛)을 뜻하고, 시(豕)는 지지(地支)의 해(亥)에 해당하므로, 즉 공민왕 20년인 신해년(1371)을 가리킨 말이다.
부계(浮堦)에서 하례(賀禮)를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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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에서 크게 외쳐 배무하고 일어나서 / 大喝毬庭拜舞興
재신들은 술 따라서 강릉으로 축복하고 / 宰臣斟酒祝岡陵
광대들이 외쳐 불러 선랑들이 들어오고 / 諸臺振吼仙郞入
양부의 음악 연주엔 화기가 진진하여라 / 兩部鏗鏘和氣凝
풍운이 방금 회합함은 이미 믿었거니와 / 已信風雲方會合
짐짓 해와 달도 둥그러지고 돋게 하누나 / 故敎日月更恒升
이 태평의 기상을 누가 능히 그려낼런고 / 太平有像誰能畫
조정 의례 기록하자도 무능함이 부끄럽네 / 欲志朝儀愧不能
[주D-001]배무(拜舞) : 조정의 하례 의식(賀禮儀式) 때 백관(百官)이 무릎을 꿇어 절하고 발을 구르며 춤추는 의식을 말한다.
[주D-002]강릉(岡陵) : 임 금에게 축복하는 말로서,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하늘이 당신을 편안하게 하사, 흥하지 않음이 없게 한지라, 마치 산인 양 언덕인 양, 높은 뫼나 큰 능인 양 흥성하고, 마치 냇물이 흐르고 흘러, 보태지 않음이 없는 것 같네.[天保定爾 以莫不興如山如阜 如岡如陵 如川之方至 以莫不增]”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선랑(仙郞) : 고려 때 이속(吏屬) 중 잡류직(雜類職)의 하나이다. 귀족 가문의 자제(子弟)로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에게 이 직을 임명하여 호종(扈從)의 일을 맡아보게 했다고 한다.
[주D-004]양부(兩部) : 음악을 연주하는 데 있어 입부(立部)와 좌부(坐部)를 합칭한 말이다.
[주D-005]풍운(風雲)이 방금 회합함 : 명군(明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조우(遭遇)함을 이른 말이다.
[주D-006]해와 …… 하누나 : 이 역시 임금에게 축복하는 말로서, 《시경》 소아 천보에 “당신은 둥그러져 가는 초승달 같고, 막 떠오르는 태양 같으며, 영원한 남산과도 같아서, 이지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으며, 무성한 송백과도 같아서, 모두가 당신을 끝없이 흥성하게 하네.[如月之恒 如日之升 如南山之壽 不騫不崩 如松柏之茂 無不爾或承]” 한 데서 온 말이다.
법 천대사(法泉大師)의 시를 얻었는데, 거기에 “이미 지난 일은 다 무익한 것이지만, 장차 오는 일 또한 알 만하고말고.[已去皆無益 將來亦可知]”라는 구절이 있으니, 이것이 비록 자신의 일을 말한 것이지만, 실로 내 마음과 꼭 일치했다. 내가 조정에 이름을 올린 뒤로부터 요행히 별 일 없이 늘그막에 이르렀지만, 해온 일들을 되돌아보건대 털끝만큼도 위로 국은(國恩)에 보답한 것이 없으니, 어느 날 갑자기 이 몸이 아침 이슬처럼 죽고 나면 그 나쁜 이름을 남긴 것이 장차 어떠하겠는가. 문득 그 운을 사용하여 생각한 바를 기술하노라. 법천대사의 이름은 종림(宗林)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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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은 방금 도를 중히 여기는데 / 高僧方重道
소자는 정히 시세만 붙좇고 있네 / 小子政趨時
학력은 보탬 없어 부끄럽거니와 / 學力慚無補
청정한 마음이야 생각도 없는걸 / 禪心在不思
함정 범함은 응당 자업자득이지만 / 觸機應自得
문장 짓는 건 뉘에게 알리려는고 / 弄筆欲誰知
어느 날에나 뜬구름 그림자처럼 / 何日如雲影
바람 따라 가는 대로 내버려 둘꼬 / 隨風任所之
대회일(大會日)에 밤에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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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새벽에 약 받들고 낭청을 마주하여 / 淸晨奉藥對郞廳
쭉 마시니 참으로 성령을 기름직했기에 / 一啜眞堪養性靈
중서가 능히 술 권하는 것도 두려워 않고 / 不怕中書能勸酒
각문 통해 대관루 뜰로 서둘러 들어갔네 / 閣門催入大觀庭
정당문학이 출사하여 근무하는 청사에 / 政堂文學省磨廳
평장과 섞여 앉아라 은총을 입었네그려 / 雜坐平章荷寵靈
다시 팔관회 참여해 친히 축수 올릴 땐 / 更向八關親獻壽
백발 노인의 풍채가 구정에 그들먹했지 / 白頭風彩滿毬庭
감귤 싸고 꽃 꽂은 데다 밥까지 내리어라 / 懷橘簪花賜飯廳
백성에게 덕택 부어줌이야 본디 알았었지 / 從知德澤酌生靈
수많은 관원들 음복하고 집에 돌아가고는 / 千官飮福還家去
다만 밝은 달빛이 너른 뜰을 비출 뿐이네 / 只有銀蟾照廣庭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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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관 양회에 위의를 성대히 베풀 적에 / 八關兩會盛威儀
한 점 문성이 자미를 가까이 모시다가 / 一點文星近紫微
곤히 누웠다 닭 우는 소리에 문득 놀라라 / 困臥忽驚雞又唱
모르겠구나 이 신세가 꿈인지 생시인지 / 不知身世夢耶非
[주D-001]팔관 양회(八關兩會) : 팔관회(八關會)의 전날을 소회(小會), 당일을 대회(大會)라 하여 두 번에 걸쳐 의식을 거행하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문성(文星)이 …… 모시다가 : 문성은 문재(文才)를 주관한다는 별 이름으로, 전하여 문재(文才)가 높은 사람을 뜻하고, 자미(紫微)는 제왕성(帝王星)의 이름으로, 전하여 대궐 또는 제왕을 가리킨 것인바, 즉 문신으로서 임금을 가까이서 모셨음을 의미한다.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 두 시중(侍中)이 서쪽 이웃의 길창공(吉昌公)을 방문하자, 길창공이 자기 외손(外孫)인 한 상서(韓尙書)를 시켜서 나를 초청하였으나, 내가 한창 피곤하여 나가지 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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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의 대회 때에 조정 반열 주관하면서 / 毬庭大會押朝班
피곤해 절하기 어려움 몹시 걱정했는데 / 身困深憂跪拜難
더구나 이 초연은 한창 질서가 있거늘 / 況是初筵方有秩
어찌 연소자가 편안키 구함을 용납하랴 / 寧容隅坐却求安
고금에 세 달존은 다 귀히 여기거니와 / 古今三達尊爲貴
천지간의 한 유생은 곤궁하기 그지없네 / 天地一儒生甚酸
고상한 모임 뫼시지 못해 망연자실한 듯 / 高會未陪如自失
의관 정제하고 온종일 창 앞에 앉았노라 / 倚窓終日整衣冠
[주D-001]초연(初筵)은 …… 있거늘 : 《시경(詩經)》 소아(小雅) 빈지초연(賓之初筵)에 “손님들이 잔치에 처음 모임에, 좌우로 앉은 모습 가지런하거늘.[賓之初筵 左右秩秩]”이라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잔치하는 처음에 위의(威儀)가 정중함을 의미한다.
[주D-002]고금에 …… 여기거니와 : 세 달존(達尊)은 천하 사람이 다 똑같이 존중해야 할 세 가지 덕목(德目)인 작위[爵]와 연령[齒]과 덕(德)을 가리킨다.
태조(太祖)가 팔관 양회(八關兩會)를 설치한 뜻이 어디에 근본했는지 모르겠으나, 혹자는 말하기를《주림전》의 ‘팔사를 금한다.’는 말에서 비롯되었다.[載於珠琳傳關八邪也]”고 한다. 그다음 날에 눈이 오므로 기뻐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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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이랑 신대에 분향하고 치성하여 / 佛殿神臺一瓣香
빚어낸 화기가 하늘땅에 가득한지라 / 釀成和氣滿玄黃
그래서 나는 눈이 시절을 알게 했으니 / 故敎飛雪知時節
풍년의 상서로운 조짐을 벌써 보았네 / 已見豐年兆吉祥
끝없는 은빛 바다는 파도가 울툭불툭 / 銀海無涯波起伏
구슬 꽃은 간 곳마다 송이가 높낮아라 / 瓊花到處朶低昂
악부에 올려 먼 후세에 전하려 하거니 / 欲添樂府傳來世
누가 태평성대를 소강 시대라 말하랴 / 誰道昌辰僅小康
[주C-001]팔사(八邪) : 불교 용어로, 여덟 가지 사특한 것을 가리키는바, 즉 사견(邪見), 사지(邪志), 사어(邪語), 사업(邪業), 사명(邪命), 사방편(邪方便), 사념(邪念), 사정(邪定)을 말한다.
[주D-001]누가 …… 말하랴 : 소 강(小康)은 조금 편안한 세상이란 뜻으로,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의하면, 요순(堯舜) 시대를 일러 가장 태평한 시대라는 뜻에서 공도(公道)를 천하가 함께한다는 의미로 대동(大同) 시대라 하고, 우(禹), 탕(湯), 문왕(文王), 무왕(武王), 성왕(成王), 주공(周公)의 시대를 일러 대동보다는 못하나 조금 다스려진 세상이라 하여 이를 소강 시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영월(寧越)의 서신을 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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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이 우뚝하게 군재를 에워싼 속에서 / 四面崔嵬擁郡齋
매양 파발군 통해 충주 괴산을 들른다네 / 每因馳傳過忠槐
다시는 강호를 향해 떠나갈 필요 없어라 / 不須更向江湖去
하늘 가단 봉화가 절벽을 비춘다니 말일세 / 烽火連天照斷崖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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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가득 아침 햇살에 방 안은 환하건만 / 滿窓朝日室中明
맘속은 꾸불꾸불 아직도 불평스럽더니 / 肝膽輪囷尙不平
붓 잡고 종횡무진 내 뜻대로 써내리자 / 把筆縱橫隨意掃
푸른 하늘 가을 매처럼 상쾌도 하여라 / 快如秋隼碧天晴
구정의 두 대회에 반열 따르긴 피곤했지만 / 毬庭兩會困趨班
삼일간 조회 정지는 예제가 관대하고말고 / 三日停朝禮制寬
묻노니 은혜에 감격함은 누가 가장 클꼬만 / 且問感恩誰最甚
병든 나머지 허리 다리는 아직도 아프구나 / 病餘腰脚尙微酸
흰 구름 푸른 산이 병풍 속에 가득하여 / 白雲靑嶂滿屛風
흐리고 개는 변화가 지척 안에 있건마는 / 變化陰晴咫尺中
부끄러운 건 환신만 상대해 앉았을 뿐 / 自愧幻身相對坐
멍하니 진짜 주인옹을 찾기 어려움일세 / 澹然難覓主人翁
[주D-001]환신(幻身) : 불가(佛家) 용어로 육신(肉身), 즉 형체를 가리킨다. 이 육신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 임시로 서로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실체(實體)가 없는 것이 마치 환(幻)과 같다 하여 이렇게 일컫는다.
법래(法來)가 돌아와서 나를 방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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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이라 십팔일에 법래가 찾아와서 / 仲冬十八法來來
사면이 텅 빈 당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네 / □□虛堂一笑開
산 북쪽 솔바람 속엔 밤눈 소리를 듣고 / 山北松風聞夜雪
성 남쪽 토란 불엔 식은 재를 뒤적이다가 / 城南芋火畫寒灰
공중 날아라 공의 석장 날림은 늘 부럽고 / 凌空每羨公飛錫
바다 이뤄라 내 술잔 잡음은 하 부끄럽네 / 就海多慚我執杯
벽 뚫어서 창을 내면 -원문 빠짐- / 鑿壁開窓可□□
몸 숨기려 하필 높은 산 들어갈 것 있으랴 / 藏身何必入崔嵬
[주D-001]토란 …… 뒤적이다가 : 당(唐)나라 때 형악사(衡岳寺)의 선승(禪僧)인 명찬(明瓚)이 일찍이 화롯불에 토란을 구워 먹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선승을 의미한다.
[주D-002]공중 …… 날림 : 옛날 고승(高僧) 은봉(隱峯)이 오대산(五臺山)을 유람하고 회서(淮西)로 나가서는 석장(錫杖)을 던져 공중을 날아서 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이리저리 행각(行脚)하는 승려를 가리킨다.
[주D-003]바다 …… 잡음 : 큰 술잔을 일러 해배(海杯)라 칭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송엽(松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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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이 바람 따라 산 가득히 떨어져서 / 松葉隨風落滿山
나무꾼 애가 주워서 석양에 돌아왔기에 / 樵童拾向夕陽還
목옹이 담요 속에 솜 넣듯 깔아 놓으니 / 牧翁却作重氈用
이윽고 이부자리서 다순 기가 생기누나 / 煖氣俄生袵席間
좌 시중(左侍中)을 배알하여 술을 마시고, 다음에는 삼재(三宰)를 배알하여 종학(種學)에게 팔관회(八關會)의 육(肉)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고서 또 술을 마시고, 사재(四宰)를 배알해서도 앞에서와 같이 사례하고 또 술을 마셨는데, 모두 한 첨서(韓簽書)와 동행했었다. 그런데 돌아올 적에 첨서는 어버이께 저녁 문안차 신택(新宅)으로 가기 위해 작별하고 가므로, 홀로 돌아오는 도중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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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옹이 병 무릅쓰고 공후들을 알현하매 / 牧翁扶病謁公侯
간 곳마다 술자리 베풀어 굳이 만류하니 / 到處杯盤被挽留
고기는 기름이 지글지글 대궐의 진미요 / 肥肉泣脂如禁臠
술 향기는 뼈에 스며라 참으로 풍류로세 / 香醪醺骨儘風流
푸른 하늘은 광대히 부귀한 집 굽어보는데 / 靑天蕩蕩臨金穴
백발은 쓸쓸히도 두 어깨가 삐쭉이 솟았네 / 白髮蕭蕭聳玉樓
자식 사랑 깊은 정은 절로 마지못하려니와 / 愛子深情難自已
어버이께 저녁 문안 효성은 쉴 수 없고말고 / 孝親昏定不能休
우연히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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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쌀로 찐 떡은 판이 크고도 두툼한 데다 / 白米純餻板大肥
정결하여 참으로 신명께 제향할 만하여라 / 潔精眞可饗神祇
흡사 제육을 높낮은 관원이 함께 나눠 먹고 / 端如膰肉尊卑共
복 빌고 돌아오면서 담소하던 때와 똑같네 / 丐福歸來笑語時
설(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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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가운데 두어 조각 눈발이 날아와서 / 飛雪庭中數點來
겨울 다숨 소멸시켜 온갖 요기 꺾이었네 / 已消冬煖百邪摧
깊은 움 우물 속엔 봄의 화기 움직이는데 / 陽和密窖重泉底
초목은 그 어느 때나 껍질 트고 나올런고 / 草木何時甲拆開
강 하늘 그 어디에 도롱이를 걸칠 만할꼬 / 江天何處可披簑
한 굽이 여강만이 단가 속에 들어오누나 / 一曲黃驪入短歌
그 누구가 당시에 대안도를 찾아갔던고 / 誰訪當時戴安道
자유는 일평생을 분파 속에 늙어갔다네 / 子猷終歲老奔波
[주D-001]그 누구가 …… 늙어갔다네 : 대 안도(戴安道)는 자(字)가 안도(安道)인 진(晉)나라 때의 처사(處士) 대규(戴逵)이고, 자유(子猷)는 왕휘지(王徽之)의 자이다. 대규와 왕휘지는 서로 각별한 친구 사이였는데, 산음(山陰)에 살던 왕휘지가 어느 날 밤에 큰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섬계(剡溪)의 친구 대규가 생각나서 즉시 거룻배를 타고 밤새도록 가서 다음날 아침에야 섬계에 당도했던바, 대규의 집 문 앞까지 이르러서는 흥(興)이 다했다 하여 그의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되돌아와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대규는 조정의 부름을 받고도 끝내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고, 왕휘지는 참군(參軍) 등을 거쳐 황문 시랑(黃門侍郞)에 이르렀으므로, 여기서는 곧 저자 자신을 벼슬에 얽매인 왕휘지에 비유한 것이다.
어 제 판서(判書) 정달가(鄭達可), 정윤(正尹) 이광보(李光輔), 판사(判事) 권희안(權希顔), 간의(諫議) 이자안(李子安), 삼사(三司) 이호연(李浩然)이 각기 육식(肉食)을 가지고 와서 나를 대접하고 화기애애하게 한껏 즐기고 떠났는데, 잠이 깨어 보니 밝은 달이 창에 가득하므로 한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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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분한 인간 세상이 다 황당무계한지라 / 人世紛紛儘謬悠
하늘이 우리들에게 풍류를 주관하게 했네 / 天敎我輩擅風流
한 술동이 서로 대하니 정은 다함이 없고 / 一尊相對情無極
만사를 다 잊으니 경계는 절로 한적한데 / 萬事都忘境自幽
눈 내린 밤에 술 취함이야 왜 걱정할까만 / 雪落肯憂成酒困
달 밝으니 되레 시상 일으킬까 의아롭네 / 月明還訝惹詩愁
흥미는 예전대로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데 / 依然興味難容說
더구나 내 생애 이미 백발이 되었음에랴 / 況是吾生已白頭
광보(光輔)에게 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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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의 타관살이에 생각은 유유하지만 / 客游東國思悠悠
당시의 제일류라고 스스로 믿어왔거니 / 自負當時第一流
시주로써 따르는 이는 모두 호걸들이요 / 詩酒追隨盡豪傑
사시 풍광 읊조릴 땐 또한 청한도 하지 / 風花比興更淸幽
벽옥을 말 안 함은 비방이 두려워서라 / 懶談碧玉畏切謗
한가히 퉁소 불어서 시름이나 흩는다네 / 閑捻紫簫吹散愁
이미 늙은 몸으로 어찌 안 돌아가고프랴 / 豈不懷歸身已老
바다 서쪽 끝에 고향 산천이 아득하구려 / 鄕山縹渺海西頭
[주D-001]벽옥(碧玉)을 …… 두려워서라 : 옛 날 초(楚)나라 화씨(和氏)가 산중에서 옥박(玉璞)을 얻어 여왕(厲王)에게 바치자, 여왕이 이것을 옥인(玉人)에게 살펴보게 한 결과 옥인이 돌이라고 하므로, 여왕이 화씨가 임금을 속였다 하여 화씨의 왼쪽 발을 베었고, 그 후 무왕(武王)이 즉위함에 미쳐 화씨가 그 옥박을 무왕에게 바쳤으나, 역시 돌이라 하여 무왕이 또 화씨의 오른쪽 발을 베었다. 그 후 문왕(文王)이 즉위함에 미쳐서는 화씨가 그 옥박을 안고 초산(楚山) 아래서 3일 밤낮을 통곡하자, 문왕이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물으니, 화씨가 대답하기를 “나는 두 발 벤 것이 슬퍼서가 아니라, 보옥(寶玉)인데도 돌이라 취급하고, 곧은 선비인데도 속인다고 한 것을 슬퍼한다.”고 하므로, 문왕이 이것을 다시 옥인에게 알아보게 한 결과, 과연 보옥을 얻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충성된 말이 도리어 비방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韓非子 和氏》
안 첨서(安簽書)가 동년회(同年會)를 만들었으므로, 내가 장원(狀元) 성역암공(成易菴公), 임 우윤(任右尹)과 함께 연석(宴席)에 나갔는데, 이 지부(李知部)는 오지 않았다. 취해 돌아와서 두 수를 읊어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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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여 인 가운데 지금 몇이나 남았는고 / 九十餘人今幾人
송당의 갈고 흔적이 티끌로 변화하였네 / 松堂羯鼓化爲塵
우리 서로 모일 곳은 첨서 댁뿐이거니 / 盍簪只有簽書宅
창화의 토지신께 위하여 감사드리노라 / 爲謝昌和土地神
요란한 관현악 소리는 주인을 옹위하고 / 急管繁絃擁主人
가무하는 적삼 부채는 향기를 풍기는데 / 舞衫歌扇動香塵
시 써서 기녀의 손씻이에 대신하고프나 / 題詩欲當纏頭錦
신들린 듯한 필치가 그 언제 있었던가 / 下筆何曾如有神
[주D-001]송당(松堂)의 …… 변화하였네 : 송 당은 고려 말기의 문신(文臣) 김광재(金光載)의 호인데, 그가 충혜왕(忠惠王) 2년인 신사년(1341)의 성균시(成均試)를 관장했을 때 저자가 이 시험에 합격했었던바, 이때에 이르러서는 그때의 동년(同年)들이 거의 다 죽고 없으므로 한 말이다. 갈고(羯鼓)는 북의 일종이다. 당 현종(唐玄宗)이 일찍이 2월 초승에 버들개지와 살구꽃이 곧 터져나오려는 것을 보고는 고역사(高力士)를 시켜 갈고를 가져다가 둥둥 두드리게 하면서 스스로 춘광호(春光好) 한 곡조를 지어 노래하고 나서 돌아보니, 버들개지와 살구꽃이 이미 다 터져나왔더라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훌륭한 인재를 양성한 데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2]창화(昌和) : 안 첨서(安簽書)가 사는 동리(洞里)의 이름이다.
이 지부(李知部)를 희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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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 문서 산 같아 사람을 누를 지경이요 / 訟牒如山欲壓人
분분한 고소인들 말굽엔 먼지가 일 테지 / 紛紛告訴馬蹄塵
때론 손뼉 치며 병법도 쾌히 담론하거니 / 有時抵掌談兵去
귀신 같은 높은 관을 어찌 두려워했으랴 / 肯怕高冠似鬼神
분발(分發)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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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도 하여라 오늘은 한가히 있게 되어 / 幸哉今日得閑居
또다시 향불 사르고 옛글을 읽노라니 / 且復焚香讀古書
내 맘대로 다시 전주에도 참여하거니와 / 快意更參箋註外
마음 씻는 건 기기의 나머지에 있다오 / 洗心元在氣機餘
문 밀고 들온 산빛은 가랑눈을 머금었고 / 山光排闥含微雪
창에 당한 햇빛은 먼 하늘을 굴러가는데 / 日色當窓轉大虛
분발이 오지 않으니 깊이 앉았기 좋아라 / 分發不來深坐好
덧없는 생이 우연히 내 집 사랑하게 되었네 / 浮生偶得愛吾廬
술에 지쳐 아침 내내 문을 나가지 못하고 / 酒困終朝懶出門
우뚝이 홀로 앉아 다시 말까지 잊노라니 / 兀然危坐更忘言
단사표음은 늘 한가함 속에 즐기려 하나 / 簞瓢每擬閑中樂
관현악 소린 아직 꿈에도 요란함에 놀라네 / 絃管猶驚夢裏喧
공연히 여생에 성인 경지 찾으려 하지만 / 謾向殘年尋聖域
대도가 천원에서 나오는 걸 어찌 알리요 / 何知大道出天原
문호에 당한 용수산은 매우 분명도 한데 / 龍巒當戶分明甚
마음은 식은 재 같아 다시 안 다스워지네 / 心似寒灰不復溫
[주D-001]기기(氣機) : 음양(陰陽)이 서로 조화를 이룬 기틀, 즉 음양 두 기운이 형평(衡平)을 이룬 상태를 말한 것으로,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의 ‘형기기(衡氣機)’란 말에서 온 것이다.
[주D-002]대도(大道)가 …… 걸 : 동중서(董仲舒)가 말하기를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오나니, 하늘이 변하지 않으면 도 또한 변하지 않는다.[道之大原出於天 天不變道亦不變]”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마음은 …… 다스워지네 : 《장 자》 제물론(齊物論)에 “형체를 진실로 말라 죽은 나무처럼 할 수 있으며, 마음을 진실로 식은 재처럼 할 수 있겠는가.[形固可使如槁木 而心固可使如死灰乎]”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마음이 외물(外物)에 의해 전혀 동요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과정마(過庭馬)가 이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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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몸이 은총 입어 조관들을 인솔하고 / 病餘承寵押群賢
부계의 보좌 앞에서 축수를 드리었는데 / 獻壽浮堦寶座前
태복이 명 받들어 과정마를 반사하여라 / 太僕頒來過庭馬
참으로 구중궁궐을 훨훨 날을 것만 같네 / 眞堪鳳躍九重天
세상에 말 상 잘보는 구방고가 없기에 / 世無相馬九方賢
만 필 말이 공연히 눈앞에 있을 뿐이니 / 萬疋徒然在眼前
비록 당나귀라도 달리기만 잘한다면은 / 縱使如驢猶健步
조회 때마다 미끄러운 땅을 걱정 않으리 / 不愁泥滑每朝天
조정엔 불초자 없고 초야엔 현자 없거니 / 朝無不肖野無賢
의관 예모가 전만 못하다고 누가 말하랴 / 誰道衣冠不及前
늘그막에야 다시 반사한 말을 타노라니 / 老去更騎頒賜馬
밝디밝은 태양이 푸른 하늘에 비추누나 / 明明白日照靑天
[주C-001]과정마(過庭馬) : 지방 고을에서 대궐에 바치는 말을 가리킨다.
[주D-001]구방고(九方皐) :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 때 사람인데, 말[馬]의 상(相)을 아주 잘 보았다고 한다.
문 밀직(文密直)이 방문하여 충정왕조(忠定王朝)의 일을 말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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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는 예부터 지혜로 미칠 바 아니거니 / 天道由來非智能
제의 관중 당의 위징이 정말 가련하여라 / 可憐齊仲與唐徵
광암사는 적막하여 인적도 없는 오늘에 / 光巖寂寞無人迹
당년의 일개 중을 누가 세준단 말인가 / 誰數當年一箇僧
[주D-001]제(齊)의 …… 가련하여라 : 춘 추 시대 제 양공(齊襄公)이 매우 무도하였기에, 그의 아우인 규(糾)와 그 다음 아우인 소백(小白)이 자기들에게까지 화(禍)가 미칠까 염려하여 모두 외국(外國)으로 도망가 있다가, 양공이 시해(弑害)됨에 미쳐 아우인 소백이 형 규와 싸워서 이기고 본국에 돌아와 즉위하였으니, 그가 바로 환공(桓公)인데, 관중(管仲)은 앞서 형 규를 섬겼던 사람으로서 다시 환공을 섬기었고, 위징(魏徵)은 처음에 당 고조(唐高祖)의 태자(太子)인 이건성(李建成)을 섬겼다가, 태자가 자기 아우인 진왕(秦王) 세민(世民)과 권력을 다투다가 패하여 죽자, 세민, 즉 당 태종(唐太宗)을 다시 섬기어서, 관중과 위징이 똑같이 정통(正統)을 위배하여 훼절(毁節)한 사실이 있다. 여기서는 충숙왕(忠肅王)의 둘째 아들인 공민왕(恭愍王)이 당연히 즉위했어야 할 때에 충혜왕(忠惠王)의 서자(庶子)인 충정왕(忠定王)이 먼저 즉위하여 정통이 무시되었던 일에 빗대어서 한 말이다.
[주D-002]광암사(光巖寺) : 이 절은 공민왕(恭愍王)의 원찰(願刹)이므로, 전하여 여기서는 바로 돌아간 공민왕을 가리킨다.
[주D-003]일개 중[一箇僧] : 여기서는 공민왕 때에 국사(國師)로서 가장 활약이 많았던 선승(禪僧) 나옹(懶翁)을 가리킨 듯하다.
최 사공(崔司公)이 와서 나의 복직(復職)을 하례하다. 이름은 공철(公哲)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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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홍건적의 형세 매우 맹렬했을 때 / 辛丑紅軍勢甚狂
사공이 용맹 고취해 조정에 명성 높았지 / 司公鼓勇聞都堂
복파는 쓸 만한데 어찌 끝내 물러나랴 / 伏波可用寧終退
대수는 말 없었거니 자못 견줄 만하네 / 大樹無言儘可方
늙은 나는 몸이 아직 병든 게 부끄러워라 / 頗愧老生身尙病
점차 항복한 장수 사기 저상함과 같은걸 / 漸如降將氣難揚
추운 날에 다시 텅 빈 대청에 앉았노라니 / 天寒更向虛廳坐
가난해서 담아둔 말술 없는 게 한스럽네 / 恨殺貧無斗酒藏
[주D-001]신축년 …… 높았지 : 공민왕 10년(1361)인 신축년에 홍건적(紅巾賊)이 대거 침입했을 때 당시 무신(武臣) 최공철(崔公哲)이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로 출전하여 적을 방어하고 공신(功臣)에 책록되었던 일을 가리킨다.
[주D-002]복파(伏波)는 쓸 만한데 : 후 한(後漢)의 명장(名將)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나이 62세의 노령으로 다시 전쟁에 나가려고 하자, 임금이 그의 연로함을 안타깝게 여겨 윤허하지 않으므로, 마원이 짐짓 몸소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서 이리저리 가볍게 몸을 놀리어 아직도 쓸 만하다는 것을 보였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노장(老將)의 뛰어난 용맹을 의미한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주D-003]대수(大樹)는 말 없었거니 : 후 한 광무제(光武帝) 때 장군(將軍) 풍이(馮異)는 성품이 매우 겸손하여, 평소 전공(戰功)을 남보다 많이 세우고도 논공(論功)할 때에는 항상 홀로 큰 나무 밑으로 물러가 있었으므로, 군중(軍中)에서 그를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 호칭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장수의 겸손함을 의미한다. 《後漢書 卷17 馮異列傳》
종백(宗伯) 홍 상서(洪尙書)가 방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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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촌주가 가문을 크게 일으켰는데 / 德山村主起家門
너무 높아져서 되레 반감손을 낳았네 / 崇極還生反鑑孫
안사공신은 의당 후손이 있으리라거니 / 安社功臣當有後
대평은 예로부터 이게 바로 공언일세 / 臺評自古是公言
수재(壽齋)와 양파(陽坡)가 모두 안사공신(安社功臣)이 되었다.
[주C-001]종백(宗伯) 홍 상서(洪尙書) : 종백은 좌주(座主)의 아들을 가리킨 것으로, 홍 상서는 곧 저자의 좌주였던 홍언박(洪彦博)의 계자(季子)로서 일찍이 판서를 지낸 홍사원(洪師瑗)을 말한다.
[주D-001]덕산 촌주(德山村主)가 …… 일으켰는데 : 남 양 홍씨(南陽洪氏)의 족보(族譜)에 의하면, 덕산 촌주는 바로 남양 홍씨의 시조(始祖)인 홍천하(洪天河)를 가리키는데, 그는 당(唐)나라 때 팔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고구려(高句麗) 영류왕(榮留王) 때 처음 고구려에 귀화(歸化)했다가, 그 후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 때에 태자 태부(太子太傅)가 되고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주D-002]반감손(反鑑孫) : 진 (晉)나라 때 치감(郗鑑)은 일찍이 명신(名臣)으로서 진나라를 잘 섬겼으나, 그의 손자인 치초(郗超)는 역신(逆臣) 환온(桓溫)의 막부(幕府)가 되어 환온의 역모(逆謀)에 매우 밀접하게 가담하여 마치 자기 조부(祖父)를 배반한 것처럼 된 것을 이른 말인데, 여기서는 고려(高麗)의 명신 홍언박(洪彦博)의 손자인 홍륜(洪倫)이 공민왕(恭愍王)을 시해한 사건을 치초의 고사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3]대평(臺評) : 어사대(御史臺)의 탄핵(彈劾), 또는 대간(臺諫)의 평론(評論)을 말하는데, 이때 무슨 말이 있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주D-004]수재(壽齋)와 양파(陽坡) : 수재는 공신(功臣) 홍규(洪奎)의 호이고, 양파는 역시 공신으로 홍규의 손자인 홍언박(洪彦博)의 호이다.
판서(判書) 윤호(尹虎), 이문(理問) 김구주(金久住)가 술을 가지고 방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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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서는 동국의 빼어난 이요 / 判書東國秀
이문은 북정의 관원이로다 / 理問北庭官
진자는 근래 보기 드물거니와 / 晉字近來少
한음은 지금 가장 어렵고말고 / 漢音今最難
자주로 시골구석을 들러주어 / 頻頻過里巷
다정히 술상 베풀어 대접하니 / 款款置杯盤
이리도 기쁜데 왜 안 마시리요 / 喜甚寧辭飮
기쁜 순간 짧음을 꺼릴 뿐이네 / 唯嫌掣電歡
[주D-001]이문(理問) : 고려 시대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에 딸린 관직으로서 죄인(罪人)의 심문(審問)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이문관(理問官)을 말한다.
[주D-002]진자(晉字) : 진대(晉代)의 명필(名筆) 왕희지(王羲之) 등의 서체(書體)를 말한다.
[주D-003]한음(漢音) : 중국어(中國語)를 말한다.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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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의리 다 풍부한 이 몇이나 될꼬 / 恩義兼豐有幾人
남양의 택상이 뭇 신하 중에 으뜸이로세 / 南陽宅相冠群臣
액운 풀고 안녕 보호에 천기가 오묘하니 / 保安解厄玄機妙
수륙재의 향연이 온 누리에 두루 펴지리 / 水陸香煙遍刹塵
자주(自注)에 “좌시중(左侍中)이 태후(太后)를 위해 해액수륙재(解厄水陸齋)를 베풀었다.” 하였다.
[주D-001]수륙재(水陸齋) : 불교(佛敎) 법회(法會)의 일종으로, 승려들이 단(壇)을 베풀고 경(經)을 외우면서 예불(禮佛)하고, 음식을 두루 보시하여 수륙(水陸) 간의 일체 망령(亡靈)들을 제도(濟度)하는 법회이다.
합좌(合坐)하여 간단한 주연(酒宴)을 열었는데, 나는 병 때문에 감히 마시지 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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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 안 나오고 재신들은 희소하고 / 侍中不出宰臣稀
적막한 정원에는 햇빛마저 희미한데 / 庭院寥寥日色微
지인들이 앞에 가득 술을 올리려 하거늘 / 知印滿前將進酒
선생은 아직 숙취를 띤 채로 돌아가노라 / 先生猶帶宿酲歸
한 정당(韓政堂)이 좋은 음식으로 종학(種學)의 고원 주석(誥院酒席)을 도와주었는데, 내가 그 일에 대해 즉시 사례하지 못한 것을 사과했더니, 한 정당이 또 술까지 마시도록 권하므로 굳이 사양하고 회향탕(茴香湯)을 마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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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의 처음 술자리를 누가 도와주었나 / 誰□誥院快初嘗
스스로 은문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하네 / 自道恩門不可忘
가장 한스러운 건 숙취가 아직 안 풀려 / 最恨宿酲猶未解
홀로 차를 불러다가 회향탕을 마심일세 / 獨呼茗飮啜茴香
[주D-001]스스로 …… 말하네 : 당시 정당문학(政堂文學)이었던 한수(韓脩)가 충목왕(忠穆王) 3년인 정해년(1347)에 저자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이 동지공거(同知貢擧)로 주관한 문과(文科)에 급제했으므로, 한수가 이곡을 일러 은문(恩門)이라 한 것이다.
일성군(日城君) 정사도(鄭思道) 에 대한 만사(挽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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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겨우 삼십에 고시관이 되었었고 / 而立之年試席開
늘그막 정당문학은 삼공에 가까웠는데 / 老來文學近三台
봄이 오면 온화한 기색 숨기기 어려워 / 春來和氣難藏得
때로는 문생을 대해 술잔도 들었었지 / 時對門生擧酒杯
학사와 장군은 형세가 서로 현격하거늘 / 學士將軍勢絶倫
사편 한월 두 가지를 한 몸에 겸했는데 / 謝篇韓鉞兩兼身
남문의 붉은 명정 거센 바람에 펄럭여라 / 南門丹旐風吹急
또 이 영재가 한 사람이 줄어들었네그려 / 又是英才減一人
수요와 궁통은 저 하늘에 달린 것이지만 / 壽夭窮通有彼蒼
예로부터 농촉은 마음속에 가득한 건데 / 由來隴蜀滿中腸
나이 육십을 넘었고 관에서 장례 제공하니 / 年過六十官供葬
선생같이만 된다면 응당 무방하고말고 / 得似先生也不妨
[주C-001]일성군(日城君) : 고 려 말기의 문신(文臣)으로 일성군에 봉해진 정사도(鄭思道)를 말한다. 그는 충숙왕(忠肅王) 때 문과에 급제한 이후 밀직 제학(密直提學), 동북면상원수도순문사(東北面上元帥都巡問使) 등 여러 내외직을 역임하고, 우왕(禑王) 때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으며, 또 일찍이 충목왕(忠穆王) 3년인 정해년(1347)에 나이 30세로 성균시(成均試)를 관장하였다.
[주D-001]사편(謝篇) …… 겸했는데 : 한 몸에 문무(文武)를 겸했음을 의미한다. 사편은 남제(南齊) 때의 시인(詩人) 사조(謝脁)의 시편(詩篇)을 가리키고, 한월(韓鉞)은 한 고조(漢高祖)의 무장(武將) 한신(韓信)의 무용(武勇)을 가리킨 것으로, 백거이(白居易)의 〈선무영호상공……용신수사(宣武令狐相公……用伸酬謝)〉 시에 “사조의 편장과 한신의 무용을, 일생에 둘 다 얻은 이는 그대만 한 이 없으리.[謝朓篇章韓信鉞 一生雙得不如君]”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농촉(隴蜀) :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가 일찍이 잠팽(岑彭)에게 내린 글에 “사람은 참으로 만족할 줄을 몰라서 이미 농을 평정하고 다시 촉을 바라본다.[人苦不知足 旣平隴 復望蜀]” 한 데서 온 말로, 사람의 탐욕이 끝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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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골이라 응대의 번거로움 몹시 걱정되어 / 病骨深憂應對繁
대낮까지 우뚝이 앉아 말을 잊고 있는데 / 日高危坐政忘言
맑은 새벽에 장사 치른 자은사의 중이 / 淸晨送殯慈恩釋
금경 발문 써달라고 나를 찾아왔네그려 / 求跋金經叩我門
좌시중(左侍中)이 수륙재(水陸齋)의 소어(疏語)를 지어 주기를 청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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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륙문은 평생에 붓 대기가 어렵고말고 / 四六平生下筆難
당년에 고원에서 남의 비난도 받았었네 / 當年誥院被譏彈
어찌 완벽한 대구를 찾은 적이 있으랴 / 何曾覓對渾無迹
문장 이뤄 충심을 토로코자 할 뿐이지 / 到得成章欲吐肝
해옥의 산가지는 산처럼 우뚝 쌓이고 / 海屋添籌如岳峙
국가 기업 전승은 반석처럼 안전하여라 / 邦基垂統似盤安
시중의 용심은 고래에 보기 드물거니와 / 侍中用意由來少
공업 또한 우뚝하여 구한에 으뜸이로세 / 功業巍然冠九韓
[주D-001]해옥(海屋)의 산가지 : 전설(傳說)에, 해상(海上)의 선인(仙人)이 머무른 곳에는 선학(仙鶴)이 해마다 산가지 하나씩을 물어온다고 하는바, 사람의 장수(長壽)를 축복하는 말로 쓰인다.
어젯밤이 바로 경신일 밤인데, 아침까지 실컷 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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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서 서로 초청해 주연을 베풀었으니 / 里巷相邀共設筵
경신의 비법을 묻노라 그 누가 전할꼬 / 庚申祕法問誰傳
병중에 화복 같은 건 모두 잊어버리고 / 病中禍福都忘了
아픈 허리 찜질하고 아침까지 자버렸네 / 熨罷酸腰達旦眠
[주D-001]경신(庚申)의 비법(祕法) : 경 신일에 밤을 꼬박 새우는 것을 말한다. 도교(道敎)에서, 60일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이 되면, 형체도 없이 사람의 몸에 기생하고 있다는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이 잠든 틈을 타서 몸 밖으로 빠져나가 상제(上帝)에게 사람이 저지른 그동안의 죄과를 낱낱이 고해 바쳐서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를 막아서 천수(天壽)를 다하려는 장생법(長生法)으로 이 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홍(韓弘) 동년(同年)에게 받들어 부치다. 장난삼아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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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사양함은 유여해라 후의를 알거니와 / 讓則有餘知厚意
가난해도 아첨 없는 나는 이미 쇠했다네 / 貧而無諂已殘生
언제나 서로 대해 말을 잊고 앉았어 볼꼬 / 何時相對忘言坐
동산에 달 밝았던 예전 그때같이 말일세 / 依舊東山月色明
영해(寧海)의 김 삼사(金三司) 형이 말린 배[乾梨]를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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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 단 좋은 맛의 말린 배를 얻었는데 / 酸甛雋味得乾梨
늘그막의 내 여생은 작은 시에 부쳤다네 / 老大餘生付小詩
먼 길에 서로 찾는 건 오직 꿈뿐이거니 / 路遠相尋唯是夢
관어대 아래 달 밝은 바로 그 시절일세 / 觀魚臺下月明時
[주D-001]관어대(觀魚臺) : 대(臺) 이름으로, 저자의 외가(外家)가 있는 영해부(寧海府)에 있는데, 동해(東海)의 바위아래 위치하여 노니는 물고기를 셀 수 있다 하여 이렇게 이름했다고 하는바, 저자가 일찍이 관어대부(觀魚臺賦)와 서(序)를 지었다.
임 동년(任同年)이 술을 가지고 방문한 데 대하여 사례하다. 이름은 희좌(希座)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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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평한 들판 못 둑에 좋이 집을 짓고서 / 平野池塘好結廬
기심 잊고 온종일 관어를 즐기네그려 / 忘機終日樂觀魚
가을이라 익은 벼 향기가 코를 스칠 제 / 秋來稻熟香吹鼻
객지에서 새 술 맛본 게 꿈속만 같구나 / 客裏新嘗似夢餘
술병 들고 내 집 찾은 뜻은 알 만하건만 / 挈榼蓬門意可知
재차 조정 들어간 나는 누구를 위해선고 / 再游廊廟果爲誰
위왕의 큰 바가지는 그대 집 물건이니 / 魏王大匏君家物
다시 연석 앞에 술 못이나 만들려무나 / 更向筵前作酒池
[주D-001]위왕(魏王)의 큰 바가지 : 전 국 시대 위왕이 혜자(惠子)에게 큰 박씨 하나를 보내 주어, 혜자가 그것을 심은 결과 닷 섬들이 박이 열렸는데, 그대로는 속이 너무 깊어서 장을 담을 수 없고, 이를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어봐도 너무 넓어서 쓸 수가 없어, 혜자가 마침내 이 바가지를 쓸모가 없다고 여겨 부수어버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단지 큰 바가지의 뜻으로만 쓰였다.
유 항(柳巷)의 문생(門生)이 주석(酒席)을 마련하였으니, 공(公)이 첨서(簽書)에 거듭 제배(除拜)된 것을 하례하기 위한 것이다. 나와 염동정(廉東亭)이 부름을 받고 자리에 나갔는데, 천태 판사(天台判事) 나잔자(懶殘子) 또한 초청을 받고 와서 함께 앉아 묘련사(妙蓮寺)의 삼장법사(三藏法師) 당시의 일을 진진하게 담론하여 마지않았다. 취중(醉中)에 그런 얘기들을 듣고 아직도 구속 유풍(舊俗遺風)이 남아 있음을 즐겁게 여겨, 깨고 난 뒤에 그 사실을 기록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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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의 문생은 한 시대의 웅걸인데 / 丁亥門生一世雄
의발 전수받은 이는 유독 한공이로세 / 得傳衣鉢獨韓公
가련도 하여라 우마주는 너무 쇠하여 / 自憐牛馬走衰甚
매양 주연에서 두 뺨만 붉어질 뿐이네 / 每向尊前雙頰紅
대승의 묘법연화는 불심을 드러내고 / 大乘蓮花表佛心
동정의 풍채는 유림 속에 환히 빛나네 / 東亭風彩照儒林
청성의 훌륭한 문생들은 줄지어 섰으니 / 淸城玉笋森相映
일곱 자 새 시구를 취해 읊조릴 만하네 / 七字新聯可醉吟
삼장법사의 풍채는 묘련사에 빛났는데 / 三藏風儀照妙蓮
첨서의 기발한 시구는 연석을 경동하네 / 簽書警句動賓筵
당시의 부귀가 장안 호걸을 압도했기에 / 當時富貴傾豪傑
전신이 바로 의천 국사라고 말들 한다지 / 共道前身是義天
[주D-001]정해년의 …… 한공(韓公)이로세 : 고려 충목왕(忠穆王) 3년인 정해년(1347) 겨울에 저자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이 동지공거(同知貢擧)로 고시(考試)를 주관했는데, 이때 유항(柳巷) 한수(韓脩)가 문과에 급제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우마주(牛馬走) : 우 마(牛馬)를 관장하는 하인(下人)이란 뜻으로, 스스로 겸사(謙辭)하는 말이다. 사마천(司馬遷)의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 ‘태사공의 우마주[太史公牛馬走]’라고 했는데, 여기의 태사공은 바로 사마천의 아버지인 태사(太史) 사마담(司馬談)을 가리킨 것이므로, 여기서 저자 또한 자기 아버지에 대하여 자신을 우마주라 일컬은 것이다.
[주D-003]대승(大乘)의 묘법연화(妙法蓮花) : 대 승 경전(大乘經傳) 중에서《묘법연화경(妙法蓮花經)》이 가장 미묘(微妙)한 경전이라 하여 이를 ‘대승묘경(大乘妙經)’이라 하므로, 여기서는 곧《묘법연화경》을 강설(講說)하는 천태 판사(天台判事) 나잔자(懶殘子)를 가리켜 한 말이다.
분발(分發)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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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나 등청하는 게 바로 정상인데 / 早起趨衙是故常
다행히 분발이 없어 문방에 누웠노라니 / 幸無分發臥文房
천광 비친 옥루에서 아침부터 읊조리매 / 天光屋漏朝吟苦
물색 어린 시구에 시골 흥취가 들뜨누나 / 物色詩聯野興忙
섣달이라 매화는 곧 망울이 지려 하는데 / 臈月梅花將欲動
세한이라 소나무는 제 모습을 못 감추네 / 歲寒松樹自難藏
앉아 생각하니 오경의 단봉문 앞길엔 / 五更丹鳳門前路
그 당시 흐르는 시각 더디기도 했었지 / 坐想當年刻漏長
재주는 실없는데 은총은 비상하여라 / 揆才無實寵非常
봉류로 만족했던 하나의 자방이라네 / 足矣封留一子房
태평성대에 열심히 읊는 건 기쁘거니와 / 自喜升平詠勤苦
누가 게으른 사람 또한 분주하게 하는고 / 誰敎疎懶亦奔忙
흥겨우면 손 보내고 천수사에 노닐고 / 興來送客游天壽
퇴청하면 중을 찾아 지장사를 가노라 / 朝罷尋僧到地藏
눈 내린 사립짝 안에 다시 우뚝 앉아서 / 雪落柴門更危坐
섬계에 머리 돌리니 하늘만 아득하구나 / 剡溪回首碧空長
[주D-001]봉류(封留)로 …… 자방(子房)이라네 : 봉 류는 유(留) 땅에 봉해진 것을 가리키고, 자방은 한 고조(漢高祖)의 모신(謀臣) 장량(張良)의 자이다. 한 고조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장량은 비록 전투(戰鬪)의 공은 없으나 모책(謀策)의 공이 크다 하여 그에게 스스로 제(齊)의 삼만 호(三萬戶)를 차지하게 하자, 장량이 고조에게 말하기를 “신(臣)이 처음 하비(下邳)에서 일어나서 상(上)과 유(留) 땅에서 서로 만났으니, 이는 하늘이 신을 폐하(陛下)께 준 것이라, 폐하께서 신의 계책을 쓴 것이 다행히 때에 적중했을 뿐이니, 신은 원컨대 유 땅에 봉해지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요, 감히 삼만 호는 당치 않습니다.” 하여, 마침내 유후(留侯)로 봉해진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신하가 공을 이루고 은퇴하는 뜻으로 쓰인다.
[주D-002]눈 …… 아득하구나 : 대 규(戴逵)와 왕휘지(王徽之)는 서로 각별한 친구 사이였는데, 산음(山陰)에 살던 왕휘지가 어느 날 밤에 큰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섬계(剡溪)의 친구 대규가 생각나서 즉시 거룻배를 타고 밤새도록 가서 다음날 아침에야 섬계에 당도했던바, 대규의 집 문 앞까지 이르러서는 흥(興)이 다했다 하여 그의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되돌아와 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대규는 조정의 부름을 받고도 끝내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고, 왕휘지는 참군(參軍) 등을 거쳐 황문 시랑(黃門侍郞)에 이르렀으므로, 여기서는 곧 저자 자신을 벼슬에 얽매인 왕휘지에 비유한 것이다.
느낌이 있어 짓다. 이때 사한(史翰)이 과목(科目)에 관한 일을 의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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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취하기가 기르기처럼 어렵나니 / 取人難似養人難
근본과 끝을 다시 자세히 살펴야 하리 / 本末還須子細看
뛰어난 인재야 누가 알아보지 못하랴만 / 美玉良金誰不識
경박한 위인이 쓸데없이 간청을 하누나 / 浮花浪蕊謾相干
사문은 현릉의 은택을 다 힘입었거니와 / 斯文共荷玄陵澤
온 세상은 선비의 빈한함을 다 놀라거니 / 擧世皆驚白屋寒
아득한 천운을 끝내 기필할 수 있으랴만 / 天運悠悠終可必
사정을 없앤 곳에 마음 또한 편안해지리 / 只無私處且心寬
군자(君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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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세속 밖에 특립독행하여 / 君子立於獨
남과 어울려도 항상 담담하거니 / 群居常湛然
그 뉘와 교칠같이 친밀해지리요 / 誰投膠與漆
불화만 도리어 세상에 넘친다네 / 嫌隙還滔天
주시에선 새의 소리 노래했으니 / 周詩歌鳥聲
벗 찾는 게 어이 그리 어질던고 / 求友何其賢
우리 동배들에게 감히 고하노니 / 敢告我同輩
이것을 힘쓰고 또 힘쓸지어다 / 勉旃仍勉旃
군자는 뜻을 원대하게 가져서 / 君子志其大
현달하여 천하에 도를 행하나니 / 達可天下行
먹는 것을 어찌 작다 하리요만 / 口腹豈曰小
도에 비하면 이것이 가볍고말고 / 於道斯爲輕
이 때문에 신의를 버리지 않아서 / 所以不去信
천륜이 태양처럼 밝아지느니라 / 彝倫如日明
우리 동배들에게 감히 고하노니 / 敢告我同輩
사특함 막고 지성을 보존하세나 / 閑邪且存誠
군자는 화함을 귀하게 여기지만 / 君子和爲貴
마음은 남을 따르는 게 아니라네 / 其心非殉人
금석의 여러 소리가 서로 다르나 / 金石衆音異
조화 이루어 질서를 잃지 않으면 / 克諧無奪倫
소리가 분명하고도 잘 연속되어 / 皦如繹如也
지극히 순조로워 신명에 통하리라 / 至順通明神
우리 동배들에게 감히 고하노니 / 敢告我同輩
거짓을 등지고 참으로 돌아가세나 / 背僞斯歸眞
[주D-001]주시(周詩)에선 …… 어질던고 : 《시 경(詩經)》 소아(小雅) 벌목(伐木)에 “쩡쩡 나무를 찍거늘, 새가 앵앵 울더니, 깊은 골짜기서 날아와, 높은 나무에 올라 앉네. 앵앵 우는 그 울음은, 벗을 부르는 소리로다. 저 새들을 보아도, 서로 벗을 부르는데, 더구나 우리 사람으로, 벗을 아니 찾을쏜가. 신령도 들어 알아서, 끝내 우리 화평하리.[伐木丁丁 鳥鳴嚶嚶 出自幽谷 遷于喬木 嚶其鳴矣 求其友聲 相彼鳥矣 猶求友聲 矧伊人矣 不求友生 神之聽之 終和且平]”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현달하여 …… 행하나니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 “천민인 자가 있으니, 현달하여 천하에 도를 행할 만한 다음에 행하는 자이다.[有天民者 達可行於天下而後行之者也]”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주(註)에 의하면 천민은 이윤(伊尹), 여상(呂尙) 같은 이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孟子 盡心上》
[주D-003]군자는 …… 여기지만 : 유자(有子)가 말하기를 “예의 쓰임은 화함이 귀중한 것이니, 선왕의 도가 이것을 귀하게 여겼는지라,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이것을 말미암아서 하였다.[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小大由之]”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學而》
[주D-004]마음은 …… 아니라네 : 맹 자가 이르기를 “천하에 도가 있을 때에는 도로써 몸을 따르고, 천하에 도가 없을 때에는 몸으로써 도를 따르나니, 도로써 남을 따른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天下有道 以道殉身 天下無道 以身殉道 未聞以道殉乎人者也]”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주에 의하면 도로써 남을 따르는 것은 부녀자의 도리일 뿐이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上》
[주D-005]금석(金石)의 …… 통하리라 : 악 기에는 본디 금(金), 석(石), 사(絲), 죽(竹), 포(匏), 토(土), 혁(革), 목(木)의 여덟 가지 악기가 있는바, 순(舜) 임금이 기(夔)에게 악관(樂官)을 임명하면서 이르기를 “여덟 가지 악기 소리를 잘 조화시켜서 서로 질서를 잃지 않게 하면 신과 사람이 서로 화평해지리라.[八音克諧 無相奪倫 神人以和]”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舜典》
강릉(江陵) 최 상국(崔相國)을 받들어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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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군의 망족은 바로 청하 최씨려니와 / 江陵郡望是淸河
녹야당 지은 이는 예부터 많지 않았네 / 綠野開堂古不多
당세에는 세 가지 구실이 유전했었는데 / 當世流傳三口實
늘그막의 거취는 완연한 일개 승려로다 / 老年行止一頭陀
적막한 절집은 달 뜨는 밤 시냇가요 / 寥寥蕭寺月中澗
아득한 봉래산은 하늘가의 파도 속일세 / 渺渺蓬山天際波
동으로 노닐어 모시고픈 맘은 간절한데 / 甚欲東游陪杖屨
어이해 맘과 일이 절로 어긋난단 말인가 / 奈何心事自蹉跎
[주D-001]녹야당(綠野堂) : 당 (唐)나라 때 명상(名相) 배도(裴度)의 별장 이름이다. 배도가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낙양(洛陽)에 은퇴하여 살면서 오교(午橋)에 별장을 지어 녹야당이라 이름하고 여생을 보냈던 데서, 전하여 재상이 은퇴하여 별장에서 조용히 지내는 데에 비유한 것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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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물을 아교로써 맑히려 하지 말라 / 莫把阿膠投濁流
보석이나 자갈이 다 정토의 물건인걸 / 瑠璃瓦礫付螺鶖
본래 청정하여 몸에 아무런 누가 없거니 / 本來淸淨身無累
어느 곳에 티끌이 잠시나마 머무를쏜가 / 何處纖塵得暫留
[주D-001]흐린 …… 말라 : 아 교(阿膠)는 검은 당나귀 가죽을 진하게 고아서 굳힌 약품(藥品)으로, 여기에는 흐린 물을 맑게 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른 말인데, 작은 양의 아교로는 많은 물을 맑게 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신(庾信)의 〈애강남부(哀江南賦)〉에 “아교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게 할 수 없다.[阿膠不能止黃河之濁]” 하였다.
합좌(合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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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 급보는 분분하게 남북에서 오는데 / 邊報紛紛南北來
묘당의 높은 곳엔 우선 술잔을 기울이네 / 廟堂高處且深杯
안석이 바둑 두던 날과 참으로 똑같아라 / 眞同安石圍棊日
넓은 도량이 어찌 작은 재주 같을쏜가 / 雅量何如小有才
사해가 한집이라 천하가 평정되었고 / 四海一家天下平
산 갈고 시냇물 마시는 게 백성이거니 / 山耕澗飮是蒼生
압록강에 사람 왕래를 어찌 제한할꼬 / 鴨江豈限人來去
양쪽 언덕이 모두 명나라에 속하거늘 / 兩岸如今屬大明
정료위(定遼衛)가 재촉하여 유이문(流移文)을 발송하였다.
[주D-001]안석(安石)이 …… 같을쏜가 : 안 석은 진(晉)나라 사안(謝安)의 자이다.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진(晉)나라를 쳐들어와서 경사(京師)가 진공(震恐)하던 때를 당하여, 사안은 정토 대도독(征討大都督)으로서 부견의 침입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태연하게 앉아서 바둑만 두어 넓은 아량을 보였다는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내 친구 정가종(鄭可宗)이 내부 부령(內府副令)으로 부름을 받고 와서 삼사(三司)의 녹패(祿牌)를 얻고 보니, 이미 관고(官庫)를 봉쇄한 뒤라서 녹봉을 받지 못하고는, 녹패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한마디 말을 요구하므로, 인하여 소시(小詩)를 써서 주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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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푸른 산에서 늙으려 함 때문에 / 子因將老碧山崖
정중히 초빙해다가 녹패를 하사하였네 / 束帛歸來賜祿牌
명 늦춰 현자에 양보함이 현자의 일이나 / 遲命避賢賢者事
앞으로는 모름지기 은퇴할 것 없고말고 / 不須從此卷而懷
설(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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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엔 별빛이 푸른 하늘 가득더니 / 疇昔星光滿碧天
새벽엔 눈이 날리어 산천이 어둑하네 / 曉來飛雪暗山川
옥설과 겨루고자 시탑으로 돌아오고 / 欲爭玉屑歸詩榻
이미 요대 만들어 주연도 감싸 주누나 / 已作瑤臺擁酒筵
두 뺨 위엔 홍조 띠어 희기가 넘치어라 / 頰上雙紅浮喜氣
납제 앞 세 차례 눈은 풍년을 기린다지 / 臈前三白頌豐年
붓 얼어 글씨 쓰기 어려움은 걱정 않고 / 不愁凍筆難書字
목은 노인 소리 높여 또 한 편을 읊노라 / 牧老高吟又一篇
[주D-001]옥설(玉屑) : 본래는 약재(藥材)로 쓰이는 옥가루를 말하고, 또는 내리는 눈을 형용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특히 시문(詩文)의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비유한 것이다.
[주D-002]요대(瑤臺) : 눈이 하얗게 쌓인 누대(樓臺)를 가리킨다.
[주D-003]납제(祭) …… 기린다지 : 동지(冬至) 이후 세 번째 술일(戌日)에 납제를 행하는데, 납제 이전까지 세 차례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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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엔 한가함과 바쁨이 반반인데 / 老境閑忙半
그윽한 삶은 앉고 눕기가 편안하네 / 幽居坐臥便
문풍은 이제 응당 그만이지만 / 文風應已矣
심사는 절로 마냥 자유롭구나 / 心事自翛然
새는 지저귀다 처마 눈에 떨어지고 / 雀啅落簷雪
닭 소리는 용마루 연기에서 나오네 / 雞鳴生棟煙
조회 안 감은 세상 오시함이 아니요 / 懶朝非傲世
고요함 속에 성상께 축수를 하노라 / 靜裏祝堯年
나는 아직도 도성에 머무르는데 / 我尙留京輦
누구는 일찍이 해산으로 갔던고 / 誰曾向海山
힘은 약해 무거운 짐 못 지거니와 / 力微難負重
병은 오래라 한가함 구할 만하지 / 病久可求閑
풍월은 시편 속에 거두어 있고 / 風月詩篇裏
세월은 투병 속에 흘러만 가네 / 光陰藥餌間
생각만 공연히 못 잊을 뿐이어라 / 有懷徒耿耿
그 언제나 사직하고 돌아갈거나 / 何日乞身還
목은 늙은이 시 읊조리는 곳엔 / 牧翁吟嘯處
세월이 북처럼 빠르기도 하여라 / 歲月似飛梭
호기는 본래부터 많지 못했지만 / 豪氣由來少
쇠한 수염은 점차 적어만 가네 / 衰髥漸不多
청운의 꿈은 내 뜻이 아니거니와 / 靑雲非我志
백설가는 누굴 위해 부른단 말가 / 白雪爲誰歌
남쪽 처마에 창 햇살 짤막할 제 / 窓日南簷短
유연히 다시 한번 읊조리노라 / 悠然更一哦
섣달 5일은 충목왕(忠穆王)의 기신(忌辰)이라, 구산사(龜山寺)에서 재(齋)를 설행(設行)하는데, 재추(宰樞)들이 진전(眞殿)의 뜰아래로 들어가서 숙배(肅拜)하고 물러가므로, 신(臣) 색(穡)이 인하여 느끼는 바가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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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에 성대한 구름이 용을 따랐으니 / 當日從龍靄靄雲
당시 이평장이 바로 우리 선군이었네 / 二平章是我先君
중흥의 예악이 이때에 가장 성했는데 / 中興禮樂斯爲盛
구산사 적막한 지 그 얼마나 되었는고 / 寂寞龜山幾夕曛
시냇물은 소리 없고 눈은 솔을 눌러라 / 溪水無聲雪壓松
자하동의 좋은 경계 형세는 겹겹인데 / 紫霞眞境勢重重
구산사 종경 울리는 일 년 만의 자리에 / 龜山鐘磬周年席
문득 구름 모습도 참담함을 느끼겠네 / 便覺雲煙有慘容
기억하건대 당년엔 영당엘 들어가서 / 記得當年入影堂
앞에 다가가 술 따르고 향도 살랐는데 / 近前斟酒又燒香
오늘 아침엔 뜰에서 절만 올리었으니 / 今朝只向庭中拜
예가 변해라 옛것을 지킬 길이 없구려 / 禮變無由守故常
[주D-001]성대한 …… 따랐으니 :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이평장(二平章)이 …… 선군(先君)이었네 : 여 기의 선군은 바로 저자의 돌아간 아버지인 이곡(李穀)을 가리킨다. 이곡이 충목왕(忠穆王) 때에 정당문학(政堂文學)을 거쳐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에 이르렀으므로 한 말인데, 찬성사(贊成事)가 바로 평장사(平章事)의 바뀐 이름이다.
분발(分發)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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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예물 보내는 데 참견하고 / 黃昏參送贄
몸이 피곤해서 문득 달게 잤는데 / 身困便甘眠
일찍 일어나매 삭신이 몹시 아파 / 早起猶酸甚
높이 읊는 것도 이미 망연해졌네 / 高吟已惘然
일기는 차가워 가랑눈이 내리고 / 天寒微有雪
해는 나와서 넓은 하늘에 떴는데 / 日出闊浮天
날 부르지 않은 게 가장 기뻐라 / 最喜無招喚
조용함 속에 좌선이나 하고 싶네 / 冥冥欲坐禪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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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은 원만하여 일정치 않아 / 此心圓不定
움직이면 동서남북 제멋대로라 / 動也任西東
선명하긴 연잎의 이슬방울이요 / 的的荷傾露
아득하긴 바람 쫓는 버들개지지 / 茫茫絮逐風
화로 밑에 무쇠가 녹아 흐른 듯 / 金流在爐底
쟁반 속에 구슬이 달리듯도 하네 / 珠走亦盤中
다만 조용한 자세를 얻기만 하면 / 祗得從容處
사사론 정이 곧 지공하게 되련만 / 私情是至公
한유항(韓柳巷)이 납향(臈享)의 청재(淸齋)에 들어갔는데, 나는 말을 자주 타기 때문에 부정한 것을 부득이 보게 되므로, 감히 직접 가지 못하고 애오라지 졸작(拙作)을 바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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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하느라 방금 홀로 앉았는데 / 齋心方獨坐
부정한 사람이 감히 참견할쏜가 / 染眼敢相干
난 스스로 참석하기 어렵거니와 / 我自難參席
공은 응당 문을 굳게 닫았으리 / 公應固閉關
풍년이 들어 팔사를 통행하거든 / 順成通八蜡
삼한이 두루 취하고 배부르겠네 / 醉飽遍三韓
제사 끝나면 의당 몸소 나와서 / 祭罷當躬勞
함께 산 마주해 시를 읊조려야지 / 哦詩共對山
[주D-001]풍년이 …… 통행하거든 : 팔 사(八蜡)는 음력 12월에 농사에 관련된 여덟 가지 신(神)에게 제사하는 납제를 가리키는데, 옛날에 임금이 세말(歲末)이 되면 각지(各地)로부터 농사에 대한 보고를 받고서 흉년이 든 지방은 납제를 지내지 못하게 하여 백성의 재물을 소비하지 않도록 해주고, 풍년이 든 지방에만 납제를 지내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禮記郊特牲》
20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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