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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경신에 묘각동(妙覺洞) 권 판합(權判閤)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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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경신일에 밤새도록 떠들어 대라 / 歲杪庚申徹夜喧
관현악과 등불 아래 취하여 정신이 없네 / 管絃燈火醉昏昏
아이들은 화롯가에서 윷놀이를 하는데 / 圍爐兒子樗蒲戲
백발의 늙은이는 스스로 높은 체하누나 / 白髮衰翁妄自尊
갑인년에 음악 소리 끊어져 조용했거니 / 甲寅遏密寂無喧
교산에 눈물 뿌리다 눈이 멀어지려 하네 / 淚灑喬山眼欲昏
기억하건대 깊은 밤 남창 아래 앉아서 / 曾記南窓深夜坐
등 앞에 서로 대할 땐 내가 가장 높았었지 / 一燈相對衆中尊
이때 풍류를 아는 승려(僧侶)로서 나를 찾아와 문병(問病)하고 함께 자고 간 이가 많았다.
묘각사 빈 뜰엔 새들이 요란히 지저귀고 / 妙覺庭空鳥雀喧
산퇴라는 은 글자는 벽 사이에 희미하네 / 山頹銀字壁間昏
조석으로 울리는 종경 소리 때로 듣노니 / 時聞鐘磬鳴朝暮
어찌 세속 먼지를 세존께 이르도록 하랴 / 肯使塵埃到世尊
[주D-001]갑인년에 …… 조용했거니 : 제 왕(帝王)의 죽음을 이른다. 요(堯) 임금이 죽었을 때, 백성들이 마치 부모상(父母喪)을 당한 것처럼 여겨 3년 동안 온 세상에 음악 소리가 끊어져 조용했다는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1374년인 갑인년에 공민왕(恭愍王)이 죽었을 때를 가리킨다.
[주D-002]교산(喬山) : 옛날에 황제(黃帝)를 장사 지냈던 지명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공민왕의 능(陵)을 가리킨다.
유 개성(柳開城) 구(玽) 이 우엉과 파와 무를 섞어서 담근 침채(沈菜)와 장(醬)을 보내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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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뭇 맛을 만들어 사람을 유익케 하니 / 天生衆味益吾人
뼈와 살을 흠뻑 채워서 진수를 길러 주는데 / 浹骨淪肌養粹眞
제조하길 교묘히 하면 더욱 유력하거니와 / 製造巧來尤有力
읊조림도 배부른 뒤엔 신처럼 발동한다네 / 吟哦飽後動如神
봄에 씨 뿌리면 형상이 처음 터 나오고 / 春風下種形初茁
가을에 뿌리 거두면 몸통에 진액이 찬다오 / 秋露收根體自津
공부의 한 연구를 수시로 되풀이해 읊으며 / 工部一聯時三復
가난치만 하진 않았던 금리를 회상하노라 / 回頭錦里不全貧
[주D-001]공부(工部)의 …… 회상하노라 : 공 부는 일찍이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낸 두보(杜甫)를 가리키는데, 두보의 〈남린(南隣)〉 시에, “금리 선생은 오각건을 쓰고, 전원에서 토란 밤 거두어 가난치만은 않네.[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不全貧]”라고 한 구절을 가리킨다.
한 정당(韓政堂)에게 종이를 내오라 하고, 인하여 내가 아프기 전에 매양 술을 내오게 해서 마셨던 일을 기억하여 이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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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같이 깨끗한 저생과 순진한 국생은 / 楮生玉潔麴生醇
모두 다 서원의 문하들인데 / 摠是西原門下人
종이에 먹 뿌려라 때론 붓끝에 비가 오고 / 霑灑時時筆端雨
깊이 취해라 나날이 항아리 속의 봄이로세 / 沈酣日日瓮中春
서로 만나 반가움은 황연히 예전 같거니와 / 相逢靑眼怳如舊
자못 기쁨은 백두로 새로움을 면한 거로세 / 頗喜白頭能免新
근래에 세속 변태가 심하다고 누가 말했나 / 誰道近來多世變
점차 풍속을 다시 진솔로 향하게 해야겠네 / 漸敎風俗更趨眞
[주D-001]옥같이 …… 문하들인데 : 저 생(楮生)은 닥나무로 만든 종이를 의인화한 것이고, 국생(麴生)은 누룩으로 빚은 술을 의인화한 것이며, 서원(西原)은 청주(淸州)의 고호(古號)로 즉 한씨(韓氏)의 관향이므로, 한 정당(韓政堂)의 집에 있는 종이와 술을 해학적으로 일컬은 말이다.
[주D-002]항아리 속의 봄이로세 : 술을 가리킨다. 이백(李白)의 〈기위남릉빙(寄韋南陵氷)〉 시에, “당상엔 삼천 명의 구슬신 신은 손이요, 항아리 속엔 백 곡의 금릉춘이로다.[堂上三千珠履客 瓮中百斛金陵春]” 한 데서 온 말인데, 금릉춘은 바로 술 이름이기도 하다.
[주D-003]백두(白頭)로 …… 거로세 : 옛 속담에,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사귀었어도 서로 지기(知己)가 되지 못하면 새로 사귄 사이나 다름없고, 길을 가다가 일산을 맞대고 처음 서로 잠깐 만났더라도 서로 의기가 투합하면 예전부터 사귄 친구와 같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곧 오래 사귄 친구이면서 서로 의기도 투합하는 지기임을 의미하는 말이다.
권 판합(權判閤)의 남루(南樓)에 제(題)하다. 이곳은 졸옹(拙翁)의 집인데, 판합은 바로 그 사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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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는 덴 땅의 형세 따랐고 / 結構隨形勢
여기에 배회하여 성령을 길렀네 / 盤桓養性靈
여염집은 높은 용마루에 연했고 / 閭閻接煙棟
탑묘에는 풍경 소리가 울리는데 / 塔廟語風鈴
우물은 뜰 앞으로 파랗게 흐르고 / 井水階前碧
높은 산은 책상 위에 푸르구나 / 雲山几上靑
천추에 언명보는 / 千秋彦明父
우뚝한 하나의 문성이었네 / 落落一文星
[주C-001]졸옹(拙翁) : 고려 시대 학자이면서 문장가였던 최해(崔瀣)의 호이며, 자는 언명(彦明)이다.
산거(山居)에 대하여 그리움이 있어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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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에 있는 별장을 / 別墅山深處
밝은 달밤에 찾아갔다가 / 相尋踏月明
취해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 醉眠天已白
닭고기 기장밥에 옹두가 맑구나 / 鷄黍瓮頭淸
산굽이엔 나무 숲이 무성하고 / 山曲樹林暗
들 다리 밑엔 시냇물이 맑아라 / 野橋溪水明
옷이 다 젖는 것도 안 꺼리노니 / 不嫌衣盡濕
이슬이 십분 맑기 때문이라네 / 露氣十分淸
봄 적삼으로 푸른 산을 오르고 / 輕衫凌積翠
짧은 노로 달빛 물결을 치노니 / 短棹擊空明
인경을 스스로 분간키 어려워라 / 人境自難辨
방촌의 마음이 절로 맑아지누나 / 靈臺方寸淸
[주D-001]옹두(瓮頭) : 막 익은 술을 말한다.
뜨락을 청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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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어 겨우 공사를 마치고 / 作室成纔落
지방관 되어 가서 못 돌아왔더니 / 分符去未回
비바람은 비록 가릴 만하건만 / 雨風雖可庇
빙설은 문득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 氷雪却成堆
쓸고 나니 금세 시야가 말끔하고 / 灑掃俄淸眼
신기해라 이내 모습이 일신되었네 / 新奇旋奪胎
비로소 알겠도다 방촌의 자리엔 / 始知方寸地
물욕을 먼저 꺾어야 하는 것을 / 物欲要先摧
이랑(二郞) 집에서 아침에 만두를 보내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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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은 둥글어 하얗게 어린 눈빛 같은데 / 外面團圓雪色凝
속에 맺힌 기름은 새벽에 거듭 찐 거로세 / 流膏內結曉重蒸
굳이 많은 술을 다시 마실 필요 없어라 / 不須更酌如澠酒
나는 평생 마신 게 두어 되에 불과한 걸 / 我飮生來僅數升
군자의 지킴[君子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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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지킴이 가장 큰 것이라 / 君子守爲大
지킴이 아니면 몸을 보전 못하고 / 身非守不全
털끝만큼이라도 미진함이 있으면 / 一毫或未盡
아득한 저 하늘에 거슬리나니 / 邈然違彼天
순순히 법도를 제대로 실천하여 / 循循蹈規矩
빙연에 임하듯 두려워해야 하리 / 戰戰如氷淵
당조에 재상 권력을 쥐었다가도 / 當朝秉鈞衡
한번 기울면 재앙이 미치나니 / 一傾災禍延
슬기로운 이는 유종의 미 거두어 / 智者善其後
국운이 끝내 어긋나지 않는다네 / 國步終不愆
군자가 조금만 스스로 더럽히면 / 君子少自汚
사관의 붓이 그대로 기록하리니 / 史筆仍牽聯
가장 큰 지킴을 힘써 행하여 / 勉哉守爲大
즐거움 속에 천수를 마쳐야 하리 / 樂以終天年
[주D-001]빙연(氷淵)에 …… 하리 :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민(小旻)에,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 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한 데서 온 말이다.
군자의 섬김[君子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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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섬기는 일이 큰 것이니 / 君子事爲大
어버이가 아니면 어디서 나왔으랴 / 非親何以生
하늘에 근본해 만물이 이루어지고 / 本天品類遂
조상에 근본해 인륜이 밝혀졌네 / 本祖彝倫明
근원 없는 물은 마르기가 쉽거니와 / 無源水易涸
뿌리 없는 나무는 꽃이 어떻게 피랴 / 無根樹何榮
이 때문에 생각을 두렵게 가지어 / 所以慄厥懷
어버이 섬기는 데 마음을 다한다오 / 事親當盡情
순 임금은 아비 고수를 감화시키되 / 舜帝化瞽瞍
측은한 마음과 정성을 병행하였네 / 懇惻交精誠
그 누가 알리요 부자의 사이는 / 誰知父子間
지극한 성정이 천도 운행 같은 줄을 / 至性如天行
털끝만큼도 감히 게으르지 않고 / 一毫莫敢怠
어버이 잘 섬기면 천하가 태평하리 / 事親天下平
[주D-001]하늘에 …… 밝혀졌네 : 《예기(禮記)》 교특생(交特牲)에, “만물은 하늘에 근본이 있고, 사람은 조상에 근본이 있다.[萬物本乎天人本乎祖]” 하였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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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동쪽 묘각사 서쪽에 병장이 가려 있어 / 屛障房東妙覺西
한 구역 풍월이 조용한 삶에 넉넉하구나 / 一區風月足幽棲
거듭 오니 몸이 아직 건장함은 다행이나 / 重來自幸身猶健
이틀 밤 희미한 꿈은 누가 가련히 여기랴 / 再宿誰憐夢欲迷
눈 녹은 누대 아래선 마판의 말이 들레고 / 樓下雪消喧櫪馬
긴긴 밤 등잔 앞엔 이웃 닭소리 들려오네 / 燈前夜永叫隣鷄
다생의 습기를 갈아 없애기 어려운지라 / 多生習氣難磨盡
새로운 시 뱉어내니 마치 골계와 같구려 / 吐出新詩似滑稽
[주D-001]다생(多生)의 습기(習氣) : 다생은 불교 용어로, 중생이 선악의 업(業)을 지음으로 인하여 윤회(輪廻)의 고통을 받아서 생사(生死)가 서로 이어지는 것을 말하고, 습기는 곧 번뇌를 가리킨다.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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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옹은 늙을수록 건강하여 / 崔翁老彌健
튼튼한 치아를 스스로 자랑하되 / 自誇牙齒牢
단단한 물건도 대번 씹어 깨뜨려서 / 一嚼破梗物
마치 봄 얼음을 녹이듯 하고요 / 有如春氷消
해마다 아들을 낳았는데 / 年年懸桑弧
큰 아이는 매우 예쁘게도 운다네 / 大兒啼甚嬌
빠른 걸음은 나는 새와 같아서 / 飛步疾如鳥
몸을 떨쳐 높은 다리를 달렸고 / 挺身走危橋
평생에 약을 먹지는 않았어도 / 平生不服藥
신선과 기가 서로 교합하였네 / 氣與神仙交
회산은 당대의 걸출한 문호로서 / 檜山當時傑
문하에 수많은 호걸이 따랐었네 / 門下趨群豪
최옹은 한 번 무릎을 꿇고 앉으면 / 崔翁一屈膝
닭이 울 때까지 밤새도록 앉았다가 / 夜坐鷄膠膠
잠에서 깨지 못한 내가 미우면 / 嗔我睡未醒
때로 범패 소리를 크게 외쳐 대고 / 梵唄時大號
벌떡 일어나 문을 나가곤 하건만 / 徑起出門去
온 나라에서 누가 그를 불러 주랴 / 擧國誰見招
돌아오면은 배부르게 밥을 먹고 / 歸來飽喫飯
나와 함께 이리저리 배회한다네 / 與我同逍遙
12월 25일 을사에 문생(門生)이 주연(酒宴)을 베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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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세 번 주관하고 귀밑이 희어졌어라 / 三主春闈鬢二毛
뻔뻔스레 그 당시 뭇 호걸과 어울리었네 / 強顔當日逐群豪
유자라지만 문장이 천루함은 잘 알거니와 / 爲儒自揣文章陋
도를 견득한 지위는 어찌 일찍이 높았으랴 / 見道何曾地位高
성시는 분분해라 구름 비가 소란스럽고 / 城市紛紛鬧雲雨
시골집은 적적해라 쑥만 무성히 자랐네 / 田廬寂寂長蓬蒿
앓고 난 뒤에 문생의 술잔 가득 받고서 / 病餘滿酌門生酒
현릉에 눈물 뿌리며 성조께 감사하노라 / 淚灑玄陵謝聖朝
못가엔 예로부터 봉모가 있었거니와 / 池上由來有鳳毛
수많은 영재들은 한 시대의 호걸이로세 / 森森玉笋一時豪
높은 작급엔 못 올랐으나 명성은 다 높고 / 未躋峻級名皆重
화려한 자리 함께 여니 형세는 최고로세 / 共敞華筵勢最高
붓 놀리는 문단에선 눈이 달빛 같거니와 / 弄翰詞林眼如月
말 타는 벼슬길엔 세상 걱정이 크다마다 / 揚鑣宦路目應蒿
봄이 오면 거듭 주연 열기를 희망하노니 / 春風準擬重開宴
늙고 병들어 해마다 조회는 못 나간다오 / 白髮年年病不朝
[주D-001]성시(城市)는 …… 소란스럽고 : 두보(杜甫)의 〈빈교행(貧交行)〉에, “손 뒤집으면 구름되고 손 엎으면 비가 된다.[翻手作雲覆手雨]” 한 데서 온 말로, 즉 인정세태(人情世態)의 반복무상함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못가엔 …… 있었거니와 : 봉모(鳳毛)는 일반적으로 뛰어난 재사(才士)를 일컫는 말인데, 옛날 중서성(中書省)의 못이 임금의 처소와 가장 근접해 있다 하여 봉황지(鳳凰池)라 이름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붓 …… 같거니와 : 진 (晉)나라 때의 고승(高僧) 지도림(支道林)이 말하기를, “북인들의 글 보는 것은 마치 드러난 곳에서 달을 보는 것과 같고, 남인들의 학문은 마치 들창 구멍으로 태양을 보는 것과 같다.[北人看書如顯處視月 南人學問如牖中窺日]” 한 데서 온 말로, 즉 안목이 넓음을 의미한다.
화 엄종(華嚴宗)의 대선(大選) 경여(敬如)가 묘각사(妙覺寺)에 있으면서 동파(東坡)의 시(詩)를 가지고 천태(天台)의 원공(圓公)에게 가서 가르침을 듣고, 나를 찾아온 김에 또 이렇게 물으므로, 그가 사문(斯文)을 사모할 줄 아는 것을 기쁘게 여겨 시를 지어 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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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 골짝의 운림은 멀기만 한데 / 華谷雲林遠
천태와는 도로가 서로 통하였네 / 天台道路通
동파의 시는 장교를 많이 설했고 / 坡詩多藏敎
소사에는 유자의 풍도가 절반일세 / 蕭寺半儒風
익히 읽노라니 등불똥이 떨어지고 / 熟讀燈花落
높이 읊으니 기왓장 눈이 녹누나 / 高吟瓦雪融
사문들을 이미 두루 찾아 만나고 / 斯文尋已遍
다시 이 백발 늙은이를 찾아왔네 / 更訪白頭翁
[주D-001]장교(藏敎) : 불교의 경(經)ㆍ율(律)ㆍ논(論)ㆍ삼장(三藏)의 교리(敎理)를 통틀어 이른 말이다.
[주D-002]소사(蕭寺) : 양 무제(梁武帝)가 절을 짓고 소자운(蕭子雲)을 시켜 비백체(飛白體)로 소(蕭) 자를 크게 써 붙이게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불사(佛寺)를 가리킨다.
저녁밥을 먹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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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술을 급히 불러 마시고 / 解酲呼正急
취한 꿈 깨고 나니 허망도 해라 / 醉夢覺來空
문을 여니 갠 하늘은 푸른데 / 開戶晴天碧
붓을 빼 드니 저녁 해가 붉구나 / 抽毫夕照紅
향기론 밥은 씹어 먹기가 썩 좋고 / 飯香堪咀嚼
더운 국은 금세 주독이 풀리네 / 羹熱旋消融
몸이 더욱 강건해짐을 깨닫노니 / 漸覺身彌健
오로지 잘 익혀 먹은 공이로다 / 全憑爛煮功
우연히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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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는 꿇어앉아 신을 신기었으나 / 留侯跪進履
한나라 보익할 노인을 맞이했고 / 翼漢招老人
강후는 문서 뒷면을 무서워했으나 / 絳侯畏牘背
유씨를 편케 하여 명성을 남겼으니 / 安劉播芳塵
유후 강후는 급한 때를 만나서도 / 遭時有緩急
조용하게 경륜을 내서 펼치었네 / 從容吐經綸
그러나 의기양양한 후인들은 / 揚揚後來者
당장 중요한 자리에 올랐다가 / 立登要路津
갑자기 혹 어려운 일을 만나면 / 一朝遇錯節
둔한 재주로 머뭇거리기만 하나니 / 鈍器徒逡巡
아 뜻 있는 선비들이여 / 嗟哉有志士
큰 띠에 내 말 좀 기록하게나 / 敢請書諸紳
[주D-001]유후(留侯)는 …… 맞이했고 : 유 후는 한 고조(漢高祖)의 모신(謀臣)인 장량(張良)의 봉호이다. 장량이 일찍이 하비(下邳)의 흙다리 위[圮上]에서 황석공(黃石公)이 다리 밑으로 떨어뜨린 신을 주워다가 그에게 신겨주고 그로부터 태공(太公)의 병서(兵書)를 받아 익힌 다음, 한 고조의 모신이 되어 마침내 진(秦)나라를 멸하고 한업(漢業)을 세웠고, 그는 또 뒤에 한 고조가 태자(太子)를 바꾸려고 할 적에 그 일을 방지하기 위해 책략을 써서 상산의 네 노인[商山四皓]을 초빙하여 태자를 보익(輔翼)하게 함으로써 끝내 한 고조가 태자를 바꾸지 못하게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강후(絳侯)는 …… 남겼으니 : 강 후는 한 고조의 공신(功臣)인 주발(周勃)의 봉호이다. 한 고조가 죽은 뒤에 여 태후(呂太后)의 족속(族屬)들이 대단히 득세하여 왕실인 유씨(劉氏)가 위태롭게 되었을 때, 주발은 군권(軍權)을 장악하고 여씨(呂氏)들을 모조리 섬멸하여 왕실을 편안하게 만들었고, 그는 또 뒤에 모반(謀反)하려 한다는 무고를 입고 정위(廷尉)에게 넘겨져 그 사실을 조사받을 때, 미처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 몰라 옥리(獄吏)에게 천금(千金)을 주자, 옥리가 옥사(獄事) 문서의 뒷면에다 ‘며느리인 공주로 증거를 대라.[以公主爲證]’는 문구(文句)를 써서 주발에게 보여 줌으로써 마침내 그 원옥(冤獄)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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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입은 거라곤 해진 적삼뿐인데 / 病裏掩形唯弊衫
겨울 하늘에 가랑비 내림을 자주 보겠네 / 冬天頻見雨纖纖
시 속엔 승 자가 없어 말이 다 속되지만 / 詩無僧字語皆俗
얼굴엔 선풍이 있어 마음은 비범하다오 / 貌有仙風心不凡
술동이 놓고 산 구경하는 게 정히 좋은데 / 政好看山對尊酒
어찌 구름돛 달고 바다를 건널 것 있으랴 / 何須濟海掛雲帆
이사한 집은 본디 속세를 초월한 곳이라 / 移居自是超塵世
다락 아래 여러 산봉이 다 주렴에 들어오네 / 樓下諸峯盡入簾
[주D-001]어찌 …… 있으랴 : 이백(李白)의 〈행로난(行路難)〉에, “장차 긴 바람에 파도 헤쳐갈 때가 오거든, 곧장 구름 돛 걸고 창해를 건너가리라.[長風破浪會有時 直挂雲帆濟滄海]” 한 데서 온 말이다.
밤[栗]을 보내 준 철원(鐵原)의 김 동년(金同年)에게 받들어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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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라 산성에 밤꽃이 향기롭더니 / 山城五月栗花香
가을 열매 주렁주렁 언뜻 서리 맞았네 / 秋實離離乍著霜
응당 이 노인이 손수 친히 주워가지고 / 應是老人親拾得
병든 내게 새 맛을 만끽하게 한 거로세 / 剩敎病客快新嘗
쪼개어 보니 분명히 속살은 희었는데 / 剝來的的肌猶白
구워 내니 동실동실 빛이 다시 노랗구나 / 燒罷團團色更黃
후일 동유 길에 우연히 만날지도 모르니 / 他日東遊如邂逅
그대 위해 잘 먹어서 쇠한 창자 보하리라 / 爲君細嚼補衰腸
새로운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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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한 전차를 크게 검열하여라 / 大閱兵車盛
춘추 시대 전쟁의 초기 같구려 / 春秋兵甲初
민간은 의당 스스로 조용커니와 / 里閭當自靜
하늘 그물은 본래부터 성기다오 / 天網本來疏
종묘사직은 편안한 즈음이요 / 宗社安榮際
시서는 쇠잔해진 나머지로다 / 詩書潦倒餘
어떡하면 다시 밭 갈고 우물 파서 / 何當更耕鑿
길이 읊으며 시골집에 누워 있을꼬 / 長嘯臥田廬
[주D-001]하늘 …… 성기다오 : 악(惡)을 지은 자는 하늘의 징벌(懲罰)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의미로서 《노자(老子)》 제73장에,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성기긴 해도 놓치지 않는다.[天網恢恢疏而不失]” 한 데서 온 말이다.
내시(內侍) 박창령(朴昌齡)이 영해(寧海)에서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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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는 동해를 굽어보고 있고 / 寧海臨東海
부상은 푸른 산을 마주했는데 / 扶桑對碧岑
일부러 나쁜 소식을 전하려고 / 謾傳波浪惡
문득 은자의 처소로 향했구려 / 却向薜蘿深
병장은 가업으로 전해 오거니와 / 屛障傳家業
굳은 지조는 객심을 감동시키네 / 氷霜動客心
어찌하면 그대를 더불어 가서 / 何當携子去
먼 데 바라보며 한 번 읊어 볼꼬 / 望遠一高吟
이 시중(李侍中)이 편지와 함께 보낸 야생동물 한 마리를 받고 즉각 받들어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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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 한창 바삐 선비를 맞으니 / 侍中方握髮
빈객들이 정히 문에 가득할 텐데 / 賓客政盈門
늘 먹여 주는 정은 어이 그리 후한고 / 屢饋情何厚
서로 만나면 말은 다숩기도 하지요 / 相逢語甚溫
맑은 바람은 중서성에 불어오는데 / 淸風吹鳳閣
석양은 형제의 위급함을 비추었네 -초은(樵隱)이 죽었음을 말한 것이다. / 落日照鴒原
일찍이 노닐던 곳을 회상하노니 / 回首曾游處
승선이 그 몇 사람이나 남았는고 / 承宣幾箇存
[주D-001]초은(樵隱) : 이인복(李仁復)의 호인데, 그가 바로 이 시의 제목에 나오는 시중(侍中) 이인임(李仁任)의 형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조균(趙鈞) 백화(伯和)를 읊다. 김공 수(金公隨) 형의 외손(外孫)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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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은 오권 가운데 중량이요 / 鈞爲五權重
화는 곧 왕도를 행하는 거로세 / 和則王道行
말세에는 이단 사설이 일어나서 / 叔世邪說興
말을 부수고 저울대를 꺾었다네 / 剖斗仍折衡
성인의 도는 태양같이 밝아서 / 聖道皎如日
삼라만상이 실정을 못 숨기나니 / 萬象無遁情
가린 구름이 머지않아 벗겨지면 / 浮雲蔽不久
천지가 모두 광명하게 되리라 / 天地皆光明
어린아이가 시장엘 가더라도 / 童子適市中
물건값이 의당 절로 균평하리니 / 物價當自平
균으로 통해서 바르게 매매하면 / 鈞通無折閱
이게 바로 왕도를 이룬 것이니 / 是曰王道成
균이여 스스로 포기하지 말게나 / 鈞乎無自棄
중절은 곧 명성에서 비롯된다네 / 中節由明誠
[주D-001]오권(五權) : 권은 중량(重量)의 단위로, 수(銖)ㆍ냥(兩)ㆍ근(斤)ㆍ균(鈞)ㆍ석(石) 등 다섯 종류의 단위를 가리키는데, 24수(銖)가 1냥(兩)이고, 16냥이 1근(斤)이고, 30근이 1균(鈞)이고, 4균이 1석(石)이다.
[주D-002]말을 …… 꺾었다네 : 《장자(莊子)》 거협(胠篋)에, “말을 부숴버리고 저울대를 꺾어 버려야만 백성들이 서로 다투지 않게 된다.[剖斗折衡 而民不爭]”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중절(中節)은 …… 비롯된다네 : 중 절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 “희로애락이 발하기 이전을 중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 한다.[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 한 데서 온 말이고, 명성(明誠)은 곧 ‘선을 밝혀서 몸을 성실히 하는 것[明善誠身]’을 이른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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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에 요통으로 잠을 편히 못 자고 / 夜深腰痛睡難安
불돌로 허리 눌러 마음 약간 편해졌는데 / 瓦片熨來心稍寬
동창에 달 떠오르고 닭이 또 울어대자 / 月上東窓鷄又叫
생사의 관문을 벗어난 듯 상쾌해지누나 / 爽然如脫死生關
병중에 오이 장아찌가 꿀처럼 귀했는데 / 病裏醬瓜如蜜稀
노년에 당내 누이를 약간 의지한 터라 / 老年堂姉小相依
새벽에 하녀를 시켜 장아찌를 보내올 제 / 凌晨赤脚擎來送
쓸쓸한 객사에 해가 사립문을 비추누나 / 旅舍荒涼日照扉
정 첨서(鄭簽書)와 광암사(光巖寺)에 함께 가서 놀기로 약속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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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의 호기엔 풍채가 도리어 청수한데 / 圓齋豪氣却淸癯
목은의 쇠한 용모는 오활하기까지 하네 / 牧李衰容更闊迂
계원과 약계에선 우연히 서로 만났었고 / 桂苑藥階曾邂逅
풍월 읊는 자리에선 몇 번이나 불렀던고 / 風燈月榻幾招呼
태산의 사면에는 그 누가 개밋둑이었나 / 太山四面誰丘垤
아름다운 옥 앞엔 내가 사이비 옥이었지 / 美玉前頭我碔砆
섣달 눈에 광암사 길 응당 미끄러우리니 / 臘雪光巖應路滑
봄이 오면 환옹을 함께 찾지 않으려는가 / 春風同訪幻翁無
[주C-001]정 첨서(鄭簽書) : 당시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로 호가 원재(圓齋)인 정공권(鄭公權)을 가리킨다.
[주D-001]계원(桂苑)과 약계(藥階) : 계 원은 과거장(科擧場)을 가리킨 말이고, 약계는 남조(南朝) 때 제(齊)나라 사조(謝脁)의 〈직중서성(直中書省)〉 시에, “작약은 뜰에서 나부끼고, 푸른 이끼는 섬돌을 타고 오르네.[紅藥當階翻蒼苔依砌上]”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중서성(中書省)을 가리킨다.
[주D-002]환옹(幻翁) : 속명(俗名)은 혼수(混脩)이고 호가 환암(幻菴)인 고려 말기의 선승(禪僧)을 가리킨다. 그의 시호는 보각(普覺)이다.
정 첨서가 방문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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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이 문생의 술을 대하노라니 / 謾對門生酒
내 문생 시절 돌이키기 어려워라 / 難回牓長車
한가히 지내니 자못 적적했기에 / 閑居殊寂寂
혼자 마셔도 또한 기쁘기만 하네 / 獨飮亦遽遽
도는 가까워 몸 밖에 있지 않건만 / 道近非身外
바람은 추워라 바로 겨울이로세 / 風寒政歲餘
의당 자주 서로 종유하게 되리라 / 相從宜更數
나는 이미 토지와 집을 사놓았다네 / 我已買田廬
정공의 큰 저택은 남산을 마주해 있으니 / 鄭公甲第對南山
앉아서 구름 연기 보면 흥이 그지없으리 / 坐閱雲煙興未闌
꽃이 피면 다시 날 데려간다 약속했으니 / 更約花時携我去
무쇠 같은 말굽으로 높은 산을 오르겠지 / 馬蹄如鐵上巑屼
한림원에서 그대는 봉황이었고 / 翰林君鸑鷟
태학에서 나는 곧 명령이었는데 / 泮水我螟蛉
붉은 충심을 우리 함께 품었건만 / 共抱忠心赤
끝내 도골이 푸르러진 게 부끄럽구려 / 終慚道骨靑
[주D-001]도골(道骨)이 푸르러진 게 : 옛 날 장자문(蔣子文)이란 사람이 술과 여색(女色)을 절제 없이 즐기면서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뼈는 이미 푸르러졌으니, 죽으면 응당 신(神)이 될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선골(仙骨)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곧 노쇠해졌음을 의미한다.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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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밤비가 새봄 가까운 때에 내리니 / 蕭疏夜雨近新春
새벽 골목길 흙탕물이 사람을 더럽히네 / 閭巷泥深曉濺人
만사는 예로부터 머리털처럼 분잡하거늘 / 萬事由來紛似髮
더구나 오래도록 병이 몸을 안 떠남에랴 / 多年況復病纏身
사문의 흥하고 망함은 부자께 들었거니와 / 斯文興喪聞夫子
당세의 편코 위태함은 대신을 의지해야지 / 當世安危倚大臣
잠시 붓대에 의탁해 큰 회포를 쏟아내고 / 暫托管城傾磊落
작은 창 밝은 곳에서 의관을 정제하노라 / 小窓明處整冠巾
[주D-001]사문(斯文)의 …… 들었거니와 : 공 자(孔子)가 광(匡) 땅에서 위태로운 일을 당하여 이르기를, “문왕이 이미 작고하였으니, 도가 나에게 있지 않겠느냐? 하늘이 이 도를 망치려고 했다면 나 같은 사람이 이 도에 참예할 수 없었겠거니와, 하늘이 이 도를 망치지 않으려고 한다면 광 땅 사람이 나를 어찌하겠느냐.[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일을 기록하다. 이날에 사위를 들이는 대가(大家)들이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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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은 처음부터 막아야겠거니와 / 情欲當防初
천명은 항상 중용의 도에 있나니 / 天命常在中
예 만들어 혼인을 신중히 하는 게 / 制禮謹大婚
인륜의 처음과 끝이 되는 거로세 / 人倫所始終
처음으로 주남 편을 읽고 나서 / 載讀周南篇
멀리 문왕의 풍화를 생각해 보니 / 緬想文王風
금슬로써 숙녀와 사랑을 하고 / 琴瑟友淑女
인지로써 성공을 거두었었네 / 麟趾收成功
기러기 울고 얼음이 안 녹았으니 / 鳴鴈氷未泮
소녀는 지금 집에 있는 중이로세 / 季女方在宮
우리나라가 처가살이를 하는 건 / 我國出秦贅
오랑캐 풍속이 동방에 물든 거라네 / 夷風被大東
남자는 재능 있고 여자는 정결하며 / 男才女又潔
자식은 효도하고 신하는 충성함이 / 子孝臣皆忠
함괘와 항괘의 괘상에 나타났으니 / 咸恒示卦象
가도가 더욱 높아지는 바이로다 / 家道尤所隆
그대는 보았나 음양이 화합하면 / 君看陰陽和
만물의 탄생이 절로 무궁한 것을 / 物生自無窮
[주D-001]금슬(琴瑟)로써 …… 거두었었네 : 《시 경》의 주남(周南) 편은 모두 문왕(文王)과 그 후비(后妃)의 덕화(德化)를 찬양한 노래인데, 그중 가장 첫머리 관저(關雎)에서는 문왕이 요조숙녀(窈窕淑女)인 후비와 만나서 금슬로써 서로 사랑하는 것을 노래하였고, 주남 편 맨 끝의 인지지(麟之趾)에서는 문왕과 후비가 인후(仁厚)하기 때문에 역시 인후한 자손을 많이 두었음을 노래한 것이므로 한 말이다.
[주D-002]기러기 …… 안 녹았으니 : 《시 경》 패풍(邶風) 포유고엽(匏有苦葉)에, “기럭기럭 기러기는, 해 돋을 때 쓰는 것이요, 신랑이 아가씨 데려가려면, 얼음이 녹기 전이라네.[雝雝鳴鴈 旭日始旦 士如歸妻 迨氷未泮]”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당시 신랑 집에서 신부집에 청혼할 때는 산 기러기를 이른 아침 해돋이에 보내는 것이 상례(常禮)였고, 또 예식은 얼음이 녹기 전인 정월이나 2월경에 올리는 것이 상례였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3]우리나라가 …… 거라네 : 오랑캐란 바로 서융(西戎) 지역인 진(秦)나라를 가리키는데, 진나라의 풍속은 부잣집 자식이 장성하면 분가(分家)를 하고, 가난한 집의 자식이 장성하면 처가살이를 나갔으므로 이른 말이다. 《漢書 卷48 賈誼傳》
[주D-004]함괘(咸卦)와 …… 나타났으니 : 함괘의 괘상(卦象)은 음양(陰陽)이 서로 잘 교감(交感)하는 상이고, 항괘(恒卦)의 괘상은 강유(剛柔)가 질서 정연하여 항구 불변(恒久不變)하는 상이다.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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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은 비가 많고 다스운 봄 같아서 / 今冬多雨似春暄
길 마르길 기다려 유촌을 가려 하는데 / 欲候路乾行柳村
갑자기 눈꽃이 창문 밖에 흩날리더니 / 忽見玉霙飄戶牖
이내 은빛 바다가 천원에 벌창하누나 / 已敎銀海漲川原
돌솥엔 찻물 끓어라 시율은 청신하고 / 茶鳴石鼎淸詩律
강교엔 매화 피어라 사립을 꼭 닫았네 / 梅發江郊掩蓽門
북정을 되돌아보니 바람 정히 급하여라 / 回望北庭風正急
적막한 변경에 해가 곧 저물려고 하누나 / 寂寥區脫日將昏
경복(敬僕)이 남리(南里)에 가 있는데 불러도 오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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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손 두 어린애가 남리에 가 있는데 / 仲孫二雛在南里
조모가 칠일 동안 자나 깨나 생각타가 / 祖母七日思不已
이른 새벽에 특별히 하인을 보냈더니 / 淸晨特遣蒼頭去
이사한 집에 금기할 것이 있다 하누나 / 却道移居有宜忌
이 해는 저물었고 새봄이 가까워 오니 / 歲云暮矣靑春近
좋은 날 가려 오면 해로울 건 없지마는 / 涓吉歸來不害事
조모의 목마른 사랑은 어찌할 수 없어 / 祖母渴愛無奈何
해맑은 얼굴 마주본 듯 눈에 선하다네 / 眉目皎皎如對視
계림택주는 바로 아이의 외가댁이라 / 鷄林宅主是母家
전부터 은의를 다해 아이를 보호했으니 / 護惜由來盡恩義
비록 금기라곤 하나 뜻인즉 후하고말고 / 雖然拘忌意則厚
또 말리고 또 말리고 다시 또 말리기에 / 且止且止復且止
조모는 서운해 하면서도 깊이 감격하여 / 祖母惘然又深感
길이 이렇게 내 아이 보호해주길 원하네 / 願保我兒永如此
늙은 할아비는 그 말 듣고 더욱 기쁘니 / 祖翁衰病聞益喜
이것을 기록해서 후일 가승에 전하련다 / 筆之他日傳諸史
절구(絶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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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엷고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었는데 / 雲薄斜暉已近西
청향 그윽한 연침엔 진유서가 걸려 있네 / 淸香燕寢鎭帷犀
군현에 도호가 많은 게 가련키도 하여라 / 可憐郡縣多逃戶
절벽의 빙설 속에 새가 둥지를 정하누나 / 氷雪深崖鳥擇棲
병풍 친 방 앞엔 푸른 장막 길기도 한데 / 屛障房前翠幕長
시끄럽게 담소하며 미친 호기를 겨루고 / 紛紛笑語鬪豪狂
대궐에선 섣달 그믐날에 나례를 베풀어 / 九重除日供儺禮
아동들이 전해 외쳐서 불상을 물리치네 / 侲子傳呼辟不祥
중원의 호걸은 곧 정료위의 관원이라 / 中原豪傑定遼官
사막에 위엄 펼치면 만 리가 써늘한데 / 沙漠宣威萬里寒
정조에 맞춰 와서 임금님께 축수 올려라 / 趁取正朝來獻壽
우리 왕은 방금 한의 예의를 중히 여기네 / 我王方重漢衣冠
[주D-001]진유서(鎭帷犀) :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휘장의 네 끝에 다는 서각(犀角)을 가리킨다.
[주D-002]도호(逃戶) : 부역(賦役)을 도피해서 외지(外地)에 유랑하여 호적(戶籍)이 없어진 백성들을 가리킨다.
[주D-003]절벽의 …… 정하누나 : 새는 본디 나무를 가려서 보금자리를 만드는 법인데, 위태로운 곳에 둥지를 정했으므로, 이는 곧 정처 없이 유랑하는 백성들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4]나례(儺禮) : 역귀(疫鬼)를 쫓아내는 의식이다.
산수화 병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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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혼돈 밖에서 고안되었고 / 意匠鴻濛外
정신은 아득한 선경에 노닐었네 / 神游縹渺間
윤회하는 이 몸은 은둔을 해야기에 / 多生應避地
한 번 보니 산으로 가고만 싶구나 / 一見欲歸山
절벽의 계곡은 샘물 소리 급하고 / 絶澗泉聲急
깊은 낭떠러지엔 돌들이 험준한데 / 深崖石勢頑
시골 사람이 숲 밖으로 걸어가니 / 野人林表去
기상이 스스로 맑고 한가롭구나 / 氣像自淸閑
금릉(金陵)을 받들어 생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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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이 돌고 돌아 혜성을 출현시키니 / 天運循環出彗星
금릉의 왕기가 천자의 신령을 펴게 했네 / 金陵王氣暢皇靈
문치 숭상하니 황간노는 쓸 필요 없고 / 右文不用黃間弩
귀순을 해라 모두 백하정으로 돌아왔네 / 向化皆歸白下亭
예라 흐르는 물은 돌이키기 어렵거니와 / 已矣難回是流水
우연히 서로 만남은 부평초와 같은 걸세 / 偶然相値似浮萍
전조의 한림이던 나는 그지없이 꺾이어 / 前朝內翰摧頹甚
슬피 서산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린다오 / 悵望西山涕泗零
[주D-001]혜성(彗星) : 살별 이름인데, 이 별이 출현하는 것은 곧 병란(兵亂)이 일어날 전조(前兆)라 한다.
[주D-002]금릉(金陵)의 …… 했네 : 금 릉은 곧 지금의 남경(南京)을 가리킨다. 전국 시대 초 위왕(楚威王)이 그곳에 왕기(王氣)가 있다 하여 금(金)을 묻어서 왕기를 진압하였으므로, 인하여 금릉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때에 마침 명(明)나라가 이곳에 도읍을 정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문치 …… 없고 : 황간노(黃間弩)는 옛날 쇠뇌 이름으로, 즉 천하가 통일되어 더 이상 전쟁할 필요가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주D-004]귀순을 …… 돌아왔네 : 백하정(白下亭)은 금릉(金陵)에 있는 역정(驛亭) 이름으로, 즉 온 천하가 다 명(明)나라로 향하였음을 의미한다.
법첩(法帖)을 구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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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한 데서 어찌 얻은 것이 많을쏜가 / 博古何曾拾得多
겨우 두서너 명가를 손꼽을 정도라네 / 令人屈指數名家
근체의 무쇠처럼 강한 해서가 가장 예쁘고 / 最憐近體楷如鐵
전서엔 뾰족뾰족 창이 있음을 또 깨닫겠네 / 更覺寒芒篆有戈
매가 치솟고 말이 놀람은 왜 그리 우뚝한고 / 鷹峙馬震何突兀
난봉이 표박함은 모두 비껴 그은 획이로다 / 鸞漂鳳泊儘橫斜
우군은 황정경의 글자를 아끼지 않고서 / 右軍不惜黃庭字
홀로 산음에 가서 흰 거위를 바꿔왔다네 / 獨向山陰博白鵝
[주D-001]박고(博古) : 고서화(古書畫)나 고기물(古器物) 등을 널리 수장(收藏)하고 감상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매가 …… 놀람 : 힘찬 서법(書法)을 형용한 말이다.
[주D-003]난봉(鸞鳳)이 표박(漂泊)함 : 이 또한 서법의 기묘함을 형용한 말이다.
[주D-004]우군(右軍)은 …… 바뀌었다네 : 우 군은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낸 진(晉)나라 때의 명필(名筆)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왕희지는 본래 거위를 매우 좋아했는데, 산음현(山陰縣)의 한 도사(道士)가 거위를 많이 기르고 있었으므로, 왕희지가 한 번 가서 구경을 하고는 매우 좋아하여 거위를 사려고 하자, 도사가 말하기를, “《도덕경(道德經)》을 써주면 거위를 많이 주겠다.” 하니, 왕희지가 흔연히 써주고 그 거위를 가지고 왔던 고사에서 온 말인데, 일설(一說)에는 왕희지가 써준 것이 《황정경(黃庭經)》이라고도 한다. 이백(李白)이 명필 하지장(賀知章)을 보내며 쓴 〈송하빈객귀월(送賀賓客歸越)〉 시에도 왕희지의 고사를 인용하여, “산음의 도사를 만일 만난다면, 응당 황정경을 써주고 흰 거위와 바꾸겠지.[山陰道士如相見 應寫黃庭換白鵝]”라고 하였다.
자 고 일어나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우연히 《소학(小學)》에서 인용한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닭이 울면 낯을 씻고 머리를 빗는다.[初鳴盥櫛]” 한 말을 기억하고, 인하여 주 문공(朱文公)의 《소학》에 대한 규모(規模)와 절목(節目)의 구비(具備)됨을 생각한 나머지, 여덟 구를 읊어 이루어서 자손들을 경계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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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소학을 나눔은 각각 때를 따름이지만 / 學分大小各因時
적덕은 꼭 기초가 있어야 함을 알아야 하리 / 積德須知必有基
입교 명륜은 우주 안에 가득히 채웠고 / 立敎明倫彌宇宙
가언 선행은 아주 세밀히 분석하였네 / 嘉言善行析毫釐
한산의 늙은 목은은 지금 아비가 되었고 / 韓山牧老方爲父
중국의 주 문공을 스승으로 삼은 바이라 / 齊國文公是所師
자손들에게 고하노니 의당 근본을 힘써서 / 告爾子孫宜務本
조용히 도를 따르고 굽은 길 따르지 말거라 / 從容中道莫趨岐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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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심고 가을에 거둠은 절로 때가 있으나 / 春種秋收自有時
늙은 농부의 정력은 농기구에 달려 있다오 / 老農精力在鎡基
두 대를 이은 문장은 참으로 요행이거니와 / 文章再世眞僥幸
삼한의 예악은 정히 평온하게 다스리었네 / 禮樂三韓政保釐
부로들은 당년에 성왕을 기꺼이 받들었는데 / 父老當年欣戴聖
조정에선 오늘날 군대를 거듭 일으키누나 / 朝廷今日重興師
농사지어 배부르게 먹고 장수를 누리어라 / 耕田鑿井躋仁壽
남풍에 두 갈래 보리 나온 걸 꼭 보게 되리 / 會見南風麥兩岐
[주D-001]두 갈래 보리 : 한 줄기에 두 개의 이삭이 달린 보리를 가리킨다. 이는 곧 풍년이 들 조짐이라 하는데, 후한(後漢) 때 장감(張堪)이 어양 태수(漁陽太守)로 있을 적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유거(幽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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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떤 사람이 날마다 한가하랴만 / 世上何人日日閑
백발의 내 문 앞엔 서로 따르는 이 없어라 / 白頭門巷絶追攀
천지 사이엔 절로 운우의 손이 있거니와 / 乾坤自有雨雲手
송백은 끝내 도리의 모양과 같지 않다오 / 松柏終非桃李顔
읊조릴 땐 창공에 솟은 산이 우뚝하고요 / 吟裏碧空山偃蹇
꿈속에선 밝은 달 비친 물이 졸졸 흐르네 / 夢中明月水潺湲
유거의 흥미를 스스로 다 세기 어려워라 / 幽居有味自難數
때론 둥지로 날아가는 한 쌍의 새도 본다네 / 時見一雙飛鳥還
주역 읽던 당년엔 시무를 알자는 거였는데 / 讀易當年要識時
노쇠해진 근기를 어찌 다시 장성케 하랴 / 摧頹那復壯根基
매양 하루하루를 아무 일도 없이 지내지만 / 每於一日謝無事
또 백관의 잘 다스려짐을 가상히 여기노라 / 且向百工嘉允釐
유자와 관리는 응당 서로 적이 아니거니와 / 儒吏固應非是敵
무당과 의원은 스승 삼길 부끄러워 않는다오 / 巫醫終不恥相師
읊조리며 돌아오면 절로 봄바람이 있거늘 / 詠歸自有春風在
양주가 갈림길에서 울었던 게 가소롭구나 / 可笑楊朱泣路岐
[주D-001]운우(雲雨)의 손 : 인정세태(人情世態)의 반복무상함을 비유한 말이다. 두보(杜甫)의 〈빈교행(貧交行)〉에, “손 뒤집으면 구름되고 손 엎으면 비가 된다.[翻手作雲覆手雨]”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송백(松柏)은 …… 않다오 : 이백(李白)의 〈공후요(箜篌謠)〉 시에, “꽃이 피면 반드시 일찍 떨어지나니, 복사꽃 오얏꽃은 소나무만 못하도다.[開花必早落 桃李不如松]” 하였다.
[주D-003]무당과 …… 않는다오 : 한 유(韓愈)의 〈사설(師說)〉에, “무당이나 의원과 악사(樂師) 등 백공(百工)들은 서로 스승으로 삼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데, 사대부(士大夫)의 족속들은 혹 스승이니 제자니 하는 자가 있으면 무리 지어 모여서 그들을 비웃는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읊조리며 …… 있거늘 : 공 자(孔子)의 제자 증점(曾點)이 공자의 물음에 대하여 자기 뜻을 말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다 이뤄지거든 관자(冠者) 5, 6인, 동자(童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리면서 돌아오겠습니다.[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주D-005]양주(楊朱)가 …… 게 : 전 국 시대에 위아설(爲我說)을 제창했던 양주가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남쪽으로도 갈 수 있고, 북쪽으로도 갈 수 있다 하여 울었던 데서 온 말인데, 그것은 곧 사람도 마음을 쓰기에 따라서 선인(善人)이 될 수도 있고, 악인(惡人)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 것이었다.
이태백(李太白)을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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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선의 풍채는 천지 사이에 환히 빛나라 / 謫仙風彩照堪輿
침향정 시 지을 적엔 흥취가 유여하였네 / 醉賦沈香興有餘
성조의 대궐 안에선 독보적인 존재였는데 / 獨步盛朝靑瑣闥
신선 비술의 자하거까지 거듭 만들었구려 / 重營祕術紫河車
봉을 토한 화려한 글은 총애가 얽히었고 / 艶詞吐鳳紆新寵
호협한 기상은 고래 타고 하늘로 들어갔네 / 豪氣騎鯨入大虛
여자와 술 좋아한 것은 말하지 말지어다 / 莫道婦人幷酒耳
아 그게 바로 허물 보면 인을 아는 거로세 / 知仁觀過一欷歔
[주D-001]적선(謫仙) : 인간 세계에 귀양온 신선이란 뜻으로, 뛰어난 문재(文才)가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당(唐)나라 때 하지장(賀知章)이 이백(李白)을 처음 만나서 그의 글을 보고는 바로 적선이라 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침향정(沈香亭) …… 유여하였네 : 이 백(李白)의 〈청평조사(淸平調詞)〉에, “모란꽃과 경국지색이 둘이 서로 좋아하여, 군왕의 웃는 얼굴로 구경함을 길이 얻었네. 봄바람에 끝없는 한을 풀어 녹이며,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섰구나.[名花傾國兩相歡長得君王帶笑看 解釋春風無限恨 沈香亭北倚闌干]”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당 명황(唐明皇)이 침향정에서 양 귀비(楊貴妃)와 함께 꽃구경을 하며 즐기는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주D-003]자하거(紫河車) : 도가(道家)에서 제련(製煉)하는 선약(仙藥)으로서 이를 복용하면 장생불사한다고 하는데, 이백의 〈고풍(古風)〉 시에, “나는 자하거를 만들어서, 천재에 풍진을 떨쳐버렸네.[吾營紫河車千載落風塵]”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봉(鳳)을 …… 글 : 봉 을 토했다는 것은 양웅(揚雄)이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하고 나서, 자기가 봉황(鳳凰)을 토하여 《태현경》 위에 날아 앉는 꿈을 꾸었다는 데서 온 말로, 대단히 뛰어난 문사(文詞)나 문재(文才)를 칭송하는 말이고, 화려한 글이란 바로 이백의 〈청평조사(淸平調詞)〉를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5]호협한 …… 들어갔네 : 이백이 고래를 타고 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6]허물 …… 거로세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사람의 허물은 각각 그 무리에서 나오는 것이니, 허물을 보면 인을 알 수 있느니라.[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 한 데서 온 말로, 예를 들면, 군자(君子)는 항상 너무 인자하고 후한 데서 허물이 생기고, 소인(小人)은 항상 너무 야박하고 잔인한 데서 허물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論語 里仁》
엄자릉(嚴子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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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춘산의 꽃과 새가 정히 한창일 적에 / 富春花鳥政依依
몸이 뜬구름과 함께 옷 떨치고 들어갔네 / 身與浮雲却拂衣
하늘의 객성은 천자의 좌석을 범하였고 / 天上客星臨法座
물가의 밝은 달은 낚시터에 비추었도다 / 水邊卿月照漁磯
청풍은 만고에 미세한 흐림도 다 없애고 / 淸風萬古微陰盡
백설곡은 천추에 뛰어난 노래로 전하누나 / 白雪千秋絶唱稀
명리 속에 골몰하여 이제 이미 늙었으니 / 汨沒利名今已老
무한 광대한 우주에 그 누구와 함께할꼬 / 悠悠宇宙與誰歸
[주D-001]부춘산(富春山) : 절 강성(浙江省) 동려현(桐廬縣)에 있는 산 이름인데,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등극한 뒤로 그의 소년 시절 친구였던 은사(隱士) 엄광(嚴光)이 광무제의 간곡한 부름에도 거절하고 이곳에 은거하여 몸소 농사를 짓고 낚시질을 하면서 생애를 마쳤다. 엄광의 자는 자릉(子陵)이다.
[주D-002]하늘의 …… 범하였고 : 광 무제의 간청에 의해 엄광이 한번은 대궐에 들어가 광무제와 함께 옛일을 이야기하고 같이 자면서 광무제의 배 위에 발을 얹기까지 했는데, 그 이튿날 태사(太史)가 객성(客星)이 어좌(御座)를 매우 급하게 범했다고 아뢰자, 광무제가 웃으면서 이르기를, “나의 친구 엄자릉(嚴子陵)과 함께 누웠었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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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량한 것은 왕찬의 집이요 / 凄涼王粲宅
적막한 것은 자운의 정자로다 / 寂寞子雲亭
서책 시렁엔 벌레가 그물을 치고 / 蟲網文書架
풍로의 뜨락엔 개똥불이 날으네 / 螢流風露庭
강산은 등잔 아래서 세어가는데 / 江山燈下數
세월은 베개맡에서 경과하누나 / 歲月枕邊經
백발의 나이에 생각이 끝없어라 / 白髮思無盡
어느 때나 곧장 천녕으로 갈꼬 / 何時直往寧
[주D-001]처량한 …… 집이요 : 삼 국 시대 위(魏)나라의 왕찬(王粲)이 일찍이 동탁(董卓)의 난리를 피하여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의지해 있을 적에 강릉(江陵)의 성루(城樓)에 올라가 〈등루부(登樓賦)〉를 지어서 고향 집에 돌아가고픈 간절한 생각을 서술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객지 생활을 의미한다.
[주D-002]적막한 …… 정자로다 : 적 막(寂寞)이란 곧 한(漢)나라 양웅(揚雄)이 세상에 나가지 않고 홀로 조용히 지내면서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한 데 대하여, 혹자가 도(道)가 깊지 못하여 녹위(祿位)가 없는 게 아니냐고 그를 조롱하자, 그는 〈해조(解嘲)〉를 지어 말하기를, “나는 참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갈 수 없으므로, 묵묵히 나의 태현만을 홀로 지키는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고, 자운(子雲)은 양웅의 자인데, 자운의 정자란 곧 양웅이 일찍이 글을 읽었던 곳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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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잔한 백발에 해는 또 세밑이 되었는데 / 白髮蹉跎歲又除
늘그막의 학력은 도리어 천박하기만 하네 / 老年學力轉空疏
백성에 은택 입힘은 평소의 뜻 못 이뤘으나 / 澤民未副平生志
도를 구하는 덴 오직 성리서를 의탁하노라 / 望道唯憑性理書
송악산의 오색구름은 천기와 합하였고 / 松岳五雲天氣合
도부 붙인 일만 가호엔 햇볕이 화창하네 / 桃符萬戶日光舒
길 말라 깨끗한 모래 언덕이 점차 보이니 / 路乾漸見沙堤淨
동쪽 집에서 절뚝발 당나귀를 빌려야겠네 / 準擬東家借蹇驢
기억하건대 해마다 좋은 벼슬을 제수받고 / 記得年年有美除
등에 흠뻑 땀 흘리며 재능 없음을 개탄했지 / 汗流洽背嘆才疏
현자에게 양보하여 이름은 피하려 하지만 / 避賢直欲逃名網
일을 두려워하니 언제 간서는 올린 적 있나 / 畏事何曾拜諫書
일찍 이 흔들림을 한탄한 이는 한씨 유였고 / 早恨齒搖韓氏愈
몸이 귀히 될 줄 미리 안 이는 위공 서였네 / 前知身貴魏公舒
명년 봄에 사퇴하고 시골집으로 내려가면 / 明春乞退田廬去
반랑처럼 삼봉에서 당나귀 거꾸로 타련다 / 潘閬三峯倒跨驢
인간의 근심과 즐거움은 교묘한 득실이니 / 人間憂樂巧乘除
변을 만나 당황함은 견식이 옅은 탓이로다 / 遇變蒼黃見識疏
감히 주공을 향해 예악을 배울 수 있으랴 / 敢向周公師禮樂
다만 맹자를 좇아서 시서나 논술해야겠네 / 但從孟子述詩書
골짝의 흐르는 물은 누가 터서 인도하랴만 / 谷中流水誰疏導
하늘가의 뜬구름은 절로 말고 펴고 하누나 / 天際浮雲自卷舒
내 쇠잔한 인생은 진세를 오시한 게 아니라 / 不是殘生傲塵世
백발에 병은 많고 나가자도 나귀도 없다네 / 白頭多病出無驢
[주D-001]도부(桃符) : 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을 가리키는데, 인가(人家)에서 정초(正初)가 되면 이것을 문 위에 붙였다고 한다.
[주D-002]길 …… 빌려야겠네 : 두보(杜甫)의 〈핍측행증필사요(偪側行贈畢四曜)〉 시에, “동쪽 집 절뚝발 당나귀를 빌려 주마 했으나, 길이 미끄러워 감히 타고 조참을 못 가겠네.[東家蹇驢許借我 泥滑不敢騎朝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일찍 …… 한씨 유(韓氏愈)였고 : 한유(韓愈)가 일찍이 자기 조카인 십이랑(十二郞) 한노성(韓老成)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나이 40도 안 되어서 시력은 흐릿하고, 머리털은 희어지고, 치아는 흔들리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몸이 …… 위공 서(魏公舒)였네 : 진 (晉)나라 때의 재상 위서(魏舒)가 소년 시절에 일찍이 야왕현(野王縣)에 갔을 때, 그날 밤에 주인의 아내가 아이를 분만했는데 밖에서 거마(車馬) 소리가 들리더니, 자기들끼리 서로 묻기를, “아들이냐, 딸이냐?” 하니,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아들인데, 15세가 되면 무기(武器)에 다쳐서 죽겠다.” 하자, 또 묻기를, “거기에 자는 사람은 누구냐?” 하자, 대답하기를, “위공 서(魏公舒)이다.” 하였다. 위서는 이 말을 듣고 그로부터 15년 뒤에 다시 그 주인을 찾아가서 그때 낳은 아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뽕나무 가지를 치다가 도끼에 다쳐 죽었다.”고 하므로, 위서는 그제야 자기가 의당 삼공(三公)이 될 줄을 미리 알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41 魏舒列傳》
[주D-005]반랑(潘閬)처럼 …… 타련다 : 송 (宋)나라 때의 시인 반랑의 시에, “세 봉우리 산이 하늘에 솟음을 몹시 사랑해, 머리 돌려 쳐다보니 당나귀를 거꾸로 탔네. 옆 사람이 껄걸 웃어라 그야 웃거나 말거나, 나는 끝내 이곳에 집을 옮겨서 살으련다.[高愛三峯揷大虛 回頭仰望倒騎驢 傍人大笑從他笑 終擬移家向此居]” 한 데서 온 말이다.
유동(柳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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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골에 하늘빛이 말끔하니 / 柳洞天光淨
띠 처마에 햇볕이 활짝 퍼졌네 / 茅簷日色舒
누대에 오르니 먼 산은 희미하고 / 登樓山隱約
산속을 걸으니 숲은 무성하구나 / 步屧樹扶疏
덧없는 세상에 몸은 누가 되건만 / 浮世身爲累
그윽한 삶에 흥취는 여유가 있네 / 幽居興有餘
나는 구름 때로 암굴에서 나올 제 / 飛雲時出岫
머리 쳐들고 시골집을 바라보노라 / 矯首望田廬
섣달 그믐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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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현사들은 병풍을 구중궁궐에 바치고 / 屛障群英進九重
오경엔 징과 북 소리가 하늘을 진동하네 / 五更鉦鼓振晴空
황문의 아동들은 소리를 서로 전창하여 / 黃門侲子聲相應
열두 신을 시켜 악귀들을 내쫓는구나 / 十有二神追惡凶
등간은 본디 불상스러운 걸 잡아먹거니와 / 騰簡由來食不祥
급히 못 가고 뒤처진 흉귀는 먹힐 뿐이네 / 諸凶急去後爲糧
명일 아침 대궐에 삼산의 수를 바치거든 / 明朝鳳獻三山壽
인풍이 사방에 움직임을 앉아서 보게 되리 / 坐見仁風動四方
[주D-001]황문(黃門)의 …… 내쫓는구나 : 후 한(後漢) 때에 납일(臘日) 하루 전날마다 대나의(大儺儀)를 거행하여 역귀(疫鬼)를 몰아냈는데, 그 의식은 대략 다음과 같다. 10세 이상, 12세 이하인 중황문(中黃門)의 아동(兒童) 120인을 선발하여 이들을 금중(禁中)의 역귀 쫓는 아동으로 삼고, 그들로 하여금 서로 소리를 외쳐서 열두 신(神)의 이름을 불러 모든 흉악한 귀신들을 잡아먹게 하도록 했다고 한다. 《後漢書 禮儀志》
[주D-002]등간(騰簡)은 …… 뿐이네 : 등 간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잡아먹는 귀신 이름인데, 역시 중황문의 아동들이 외치는 말 가운데, “등간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잡아먹으라.……이상 열두 신으로 하여금 너희 악귀들을 뒤쫓게 하리니……너희들 가운데 급히 떠나지 못하고 뒤처진 자는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대궐에 …… 바치거든 : 임금에게 축수하는 것을 이른다. 삼산(三山)은 삼신산(三神山)의 준말로, 삼산의 수란 바로 삼신산처럼 장수하기를 축원하는 말이다.
서경(西京)의 임 영공(林令公)이 새끼 노루를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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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달은 누대 앞의 경치인데 / 風月樓前景
크고 작은 환난으로 분주하누나 / 奔馳大小難
몇 해나 내게 야물을 나눠줬던고 / 幾年分野物
나는 병이 많아 벼슬을 버렸다네 / 多病倒儒冠
천지간에 봄이 처음 움직이니 / 天地春初動
강산에 눈이 점차 녹아 가누나 / 江山雪欲殘
태평하여 아무 일도 없거든 / 太平無一事
발돋음하여 공이 오길 기다리리 / 蹺足待公還
섣달 그믐날 밤샘을 하면서 당시(唐詩)의 운을 사용하여 짓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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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은 잡아맬 길이 없거니와 / 白日無由絆
황하는 다시 돌아오질 않는다네 / 黃河不復回
덧없는 인생은 나는 새 같거니 / 浮生一飛鳥
절로 가는 게지 그 누가 재촉했나 / 自去更誰催
끊어진 줄은 이을 수도 있고요 / 絃斷猶能續
무너진 물결은 돌이킬 수도 있건만 / 波頹亦可回
세월은 머무르게 할 길이 없어라 / 無由駐光景
바삐바삐 모질게도 재촉을 하네 / 袞袞苦相催
막다른 음기는 한창 성하려 하고 / 窮陰方欲盛
봄기운은 또 돌아오려 하는데 / 淑景又將回
등잔불과 함께 쓸쓸히 앉았노라니 / 燈影共牢落
둥둥둥 북소리가 또 재촉을 하네 / 鼕鼕更鼓催
기미년 정월 초이튿날 대궐에 들어가서 숙배(肅拜)하고, 그다음 날에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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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금문에 들어간 게 마치 꿈속 같아서 / 昨入金門似夢間
새벽 창의 흥겨운 정을 붓끝에 부치노라 / 曉窓情興寄毫端
겸공한 마음은 신하들의 절을 받지 않고 / 謙恭不受群臣拜
가엾게 여긴 정은 백성들을 기쁘게 했네 / 惻怛能敎百姓懽
오색찬란한 태양은 전각을 굽어 비추고 / 五色日華臨殿閤
구중궁궐의 봄빛은 의관들에 모이었지 / 九重春色集衣冠
중관이 분부 전해라 하사한 술을 마시고 / 中官傳旨傾宮醞
반쯤 거나해 돌아오니 천지가 너르데그려 / 半醉歸來天地寬
회포를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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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과 사욕은 털끝 하나 차이뿐이라서 / 道情私欲髮容間
매양 아이들을 위해 곡진히 타이르노라 / 每爲兒曹叩兩端
우리 도는 천명에 달려 흥폐가 있거니와 / 吾道關天有興廢
인생은 가는 곳마다 희비가 섞여 있다오 / 人生到處雜悲歡
까칠한 머리털은 자주 거울에서 보게 되고 / 蕭疎鬢髮頻看鏡
아득한 강산은 벼슬을 그만두고 싶게 하네 / 縹渺江山欲掛冠
그 누가 알리요 시서에 남은 힘이 있어서 / 誰識詩書有餘力
점차 흥겨운 정취가 늙을수록 넓어지는 걸 / 漸敎情興老來寬
만 겹 푸른 산 두어 칸 집에 몸 의지하니 / 萬疊靑山屋數間
돌고 도는 세월은 아득하여 끝이 없구나 / 循環歲月杳無端
중년에는 다행히 태평한 운수를 만났는데 / 中年幸値升平運
말로에는 친구와의 즐거움을 찾기 어렵네 / 末路難尋故舊歡
조정에선 현사 맞느라 머리털을 쥐거니와 / 廊廟招賢方握髮
향린의 싸움 말림엔 갓끈만 매고 갈쏜가 / 鄕鄰救鬪肯纓冠
그 누가 출처를 관심거리가 되게 했던고 / 誰敎出處關心曲
병중에 새로운 시 지어 애써 자위하노라 / 病裏新詩強自寬
[주D-001]조정에선 …… 쥐거니와 : 주 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도와 섭정(攝政)할 때에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빠짐없이 만나기 위해, 한 번 머리 감을 때 세 번이나 머리털을 쥐고 나가고, 한 끼니 밥 먹을 때 세 번이나 밥을 뱉고 나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나라에서 현사를 예우함을 의미한다.
[주D-002]향린(鄕鄰)의 …… 갈쏜가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 “지금 가령 한 집안 사람이 싸우는 자가 있어 그 싸움을 말리려면 설령 머리털을 풀어 헤친 채로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리더라도 괜찮겠거니와, 향린에 싸우는 자가 있을 경우 머리털을 풀어 헤친 채로 갓끈만 매고 가서 싸움을 말린다면 그것은 미혹된 행동이니, 향린의 싸움에는 나가지 않아도 괜찮다.[今有同室之人鬪者 救之 雖被髮纓冠而救之可也 鄕鄰有鬪者 被髮纓冠而往救之則惑也雖閉戶可也]”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난세(亂世)를 당해서 은거하는 사람은 세상일에 급히 나설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孟子 離婁下》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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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 때마다 배부르게 밥 먹고 / 頓頓飽喫飯
때때로 한가히 구름을 바라보네 / 時時閑望雲
늘그막에 외딴 지경 차지하고서 / 衰遲占絶境
적막함 속에 석양을 마주하여라 / 寂寞對斜曛
뱃속엔 제자백가를 다 들이고 / 腹裏容諸子
붓끝으론 만 군사를 소탕하네 / 毫端掃萬軍
솔과 잣은 먹을 마음이 없고 / 無心啖松柏
밭두둑만 안중에 분명하구나 / 畦壟眼中分
또 짓다. 3수(三首)
병든 이 몸을 그 누가 알아주랴 / 病軀誰比數
새해인데도 찾아오는 이 적구려 / 新歲少經過
지팡이 끌고 혹 마실도 돌거니와 / 拖杖參隣近
시 읊을 땐 의당 길이 노래한다네 / 哦詩當嘯歌
산 언덕은 저녁노을에 잠기고 / 山陵沈暮靄
전사엔 맑은 물결이 넘실대누나 / 田舍灩晴波
가려 해도 한사코 더디기만 해라 / 欲去遲回甚
스스로 결단한 일임에 어찌하랴 / 其如自斷何
조신들은 오래전부터 멀어졌고 / 朝冠久已阻
들 중들만 혹 서로 찾아 주는데 / 野衲或相過
무생의 경계는 범범히 보아버리고 / 泛覽無生戒
태고의 노래는 소리 높여 읊노라 / 高吟大古歌
흰 구름은 치악산에서 나오고 / 白雲生雉巚
밝은 달은 여강 물결을 비추는데 / 明月照驪波
어느 날에 일엽편주로 떠날거나 / 何日扁舟去
어찌할 수 없음을 스스로 알겠네 / 自知無奈何
주머니 속에 돈은 자주 다하지만 / 囊底錢頻盡
담장 머리에 술은 혹 가져온다오 / 牆頭酒或過
지경 깊으니 장사꾼 말은 없으나 / 境幽無市語
해 떨어지면 초동 노래 들리누나 / 日落聽樵歌
새로운 일들은 꽃다운 풀 같은데 / 新事似芳草
옛 친구는 유수처럼 흘러가버렸네 / 舊交如逝波
자취 감추고 방금 유유자적하거니 / 卷懷方自適
먼지 낀 속세가 나를 어찌하리오 / 塵世奈吾何
[주D-001]무생(無生) : 불교 용어로, 열반(涅槃)의 진리는 불생불멸(不生不滅)한다 하여 이렇게 일컫는다.
말린 작은 물고기를 보내 준 김 삼사(金三司)에게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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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바다는 하 커서 가이없고 / 東海大無岸
말린 고기는 바늘같이 가는데 / 乾魚細似針
천리 먼 길을 부쳐왔기에 / 寄來千里遠
깊이 싼 봉함을 뜯고 보니 / 開了一封深
밥을 도와 맛을 냄은 물론이요 / 佐飯能生味
시를 쓰매 읊조림도 안 막혀라 / 題詩不礙吟
앓고 나서 가난 타령 하다 보니 / 病餘謀口腹
어느덧 풍월이 사림에 가득하네 / 風月滿詞林
전일(前日)의 일을 추기(追記)하여 유항(柳巷)에게 기록해 바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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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곁에 명함만 내고 사람을 만나지 못해 / 傍門投刺不逢人
길거리의 동풍에 먼지만 눈에 가득했는데 / 陌上東風滿眼塵
무엇이 그만 하랴 북애의 동이에 술 있어 / 誰似北崖尊有酒
금병 앞에 둘러앉아 겹요까지 깔았었지 / 錦屛圍坐又重茵
몸이 얽매이지 않는 게 고상한 사람이지 / 身無所繫是高人
예로부터 산림에도 저자 먼지 섞였었네 / 自古山林雜市塵
풍광을 손꼽아가며 함께 흘러가노라니 / 屈指風光共流轉
뭇 꽃들은 비단 같고 풀은 요와 같구려 / 群花如錦草如茵
평생에 속박 안 받는 사람을 자부했거니 / 平生自負不羈人
일처리를 어찌 티끌 분석하듯이 할쏜가 / 處事何曾似析塵
취한 가운데 홀연히 우리 서로 헤어져서 / 醉裏忽然分馬去
돌아오니 석양빛이 비단 요에 비치데그려 / 歸來斜日照文茵
[주D-001]문 곁에 …… 깔았었지 : 고 려 우왕(禑王) 3년인 1377년 정월 3일에 저자가 유항(柳巷) 한수(韓脩)와 함께 여러 집을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당시 평장사(平章事)였던 북애(北崖)의 우제(禹磾)를 방문하여 그의 영접을 받고 들어가서 권하는 술에 거나하게 취해 돌아왔던 일을 말한 것이다. 《柳巷詩集》
막내아들 참군(參軍)과 큰손자 맹유(孟㽥)에게 경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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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창에 떠오른 붉은 햇살 눈부실 때면 / 潑眼南窓日色紅
참군의 밥 먹는 숟가락에 바람이 나누나 / 參軍喫飯匙生風
늙은이는 일 없으니 잠이나 즐길 뿐이지만 / 老翁無事政耽睡
아이들은 글 읽는 데 의당 공을 들여야지 / 稚子讀書宜著功
귀천은 절로 밝은 천명을 받음에서 나뉘고 / 貴賤自分貽哲後
현우는 원래 어려서 기르는 데 달렸느니라 / 賢愚元在養蒙中
너희들은 의당 분촌의 시간을 아껴 써서 / 汝曹當把分陰惜
가문 일으킨 문효공을 저버리지 말지어다 / 莫負起家文孝公
[주D-001]문효공(文孝公) : 문효는 이색(李穡)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의 시호이다.
정월(正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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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기옥형의 의제가 새로워졌으니 / 璿璣玉衡儀制新
요순 시대 중성이 응당 일치하지 않으리 / 堯舜中星應失眞
일년 삼백육십 일은 이미 해가 바뀌었고 / 朞三百六已改歲
스물네 절기로는 봄이 아직 안 돌아왔네 / 氣二十四未回春
천지와 일월 이외엔 남은 땅이 없거니와 / 乾坤日月無餘地
악독과 산하엔 티끌 한 점도 안 끼었도다 / 岳瀆山河絶點塵
격양가 부르던 노인은 나이 한 살 더 먹고 / 擊壤老人添得齒
천명을 즐기어 자기 몸 잘도 보전하누나 / 樂夫天命保吾身
탕반에 일신이라 기록한 것을 향하여 / 擬向湯盤記日新
진이라 명명한 무극을 탐구코자 하노니 / 直探無極強名眞
그 누가 알리요 얼음 눈 가득 쌓인 땅이 / 誰知氷雪崢嶸地
본래는 화려한 꽃 만발하던 봄이었음을 / 自是煙花爛熳春
달팽이 뿔에 이름 못 올림을 한하거니 / 恨不藏名蝸角地
어찌 남의 수레 밑에 무릎을 꿇었으랴 / 何曾屈膝馬蹄塵
후일의 사필이 응당 나를 몹시 기롱하리 / 他年史筆譏應甚
백발이 성성해서야 벼슬을 내놓았다고 / 白髮蕭蕭始乞身
인간과 물색이 근래에 더욱 새로워져서 / 人間物色近來新
눈에 띄는 것마다 거짓과 참이 분분하네 / 觸目紛紛贋與眞
한결같이 기심 잊어라 노쇠한 시절이요 / 一味忘機衰老日
사방이 모두 무사해라 태평한 봄이로세 / 四方無事大平春
성역을 가자면 응당 천 리나 되거니와 / 欲趨聖域應千里
선풍에 묻노니 상전벽해는 그 몇 번인고 / 爲問仙風更幾塵
진퇴가 초목과 같음을 스스로 알았노니 / 進退自知同草木
용사가 숨은 데서 몸 보전을 배워야겠네 / 龍蛇蟄處學存身
[주D-001]선기옥형(璿璣玉衡) : 천체(天體)를 관측하는 데 사용하는 기계인 혼천의(渾天儀)를 말한다. 구형(球形)의 표면에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그리고 사각(四脚)의 틀 위에 올려놓고 이를 회전시키면서 천체를 관측하였다.
[주D-002]중성(中星) : 28 수(宿)가 사방에 분포하여 일정한 궤도로 운행하다가 차례대로 매월 중천(中天)의 남방(南方)에 도달하는 별을 가리키는데, 《서경》 요전(堯典)의, “일월성신을 역상한다.[曆象日月星辰]”는 구절의 성(星)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주D-003]탕반(湯盤)에 …… 것 : 탕 임금의 반명(盤銘)에 이르기를, “참으로 어느 날 한 번 새로워졌으면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질 것이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진(眞)이라 명명한 무극(無極) :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무극의 진과 이오의 정이 묘하게 합하고 엉겨서 건도는 남자를 이루고 곤도는 여자를 이룬다.[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한 데서 온 말이다.
회포를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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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에 병도 많은데 아직 영화를 탐하니 / 一身多病尙貪榮
천지에 머리 조아려 이 생을 사죄하노라 / 稽首乾坤謝此生
강가엔 전토가 있어 거센 물결 임해 있고 / 江上有田臨洶湧
산중엔 길이 없어 험준한 곳 밟아 오르네 / 山中無路躡崢嶸
매와 물수리가 노려봐라 가을 하늘은 높고 / 鷹瞵鶚視霜天迥
범과 용이 다 피곤하니 천하는 태평하구려 / 虎困龍疲海宇淸
또 동녘 바람 광대히 불어오는 걸 보니 / 又見東風吹浩蕩
늘그막의 문장 기세가 다시 방종하누나 / 老年詞氣更縱橫
일찍이 천조에서 세상 영화를 사절하고 / 曾向天朝謝世榮
바다 산 깊은 곳에 남은 생을 부쳤으니 / 海山深處寄餘生
소싯적엔 봉이 뛰어라 한유를 본받았는데 / 少年躍鳳曾師愈
중년엔 용을 새겨서 어찌 종영을 벗 삼으랴 / 中歲錭龍肯友嶸
세상일은 구름 연기 흩어지는 것 같고요 / 世事煙空更雲散
좋은 시는 밝은 달 맑은 바람과 어울리네 / 詞華月白又風淸
억지 소리와 바른 의리가 서로 침탈하니 / 強辭正義相凌奪
혀 있는 장의가 끝내 연횡을 주장했다오 / 有舌張儀竟主橫
생기 넘치는 초목은 몇 번이나 무성했나 / 欣欣草木幾回榮
떨어진 잎 마른 싹은 다시 살지 못한다네 / 敗葉焦芽不再生
뼈에 새긴 시서는 자못 방종해졌는데 / 刻骨詩書殊跌宕
머리 위의 세월은 자꾸만 흘러가누나 / 壓頭歲月謾崢嶸
황벽이 있어 고생 견딤은 그 누가 알랴만 / 誰知有蘗能爭苦
얼음도 없이 홀로 맑음은 내 멋대로라오 / 自擅無氷却獨淸
삼첩으로 한 편의 운어를 이루고 나니 / 三疊一篇成韻語
밥 짓는 연기 피어올라 산을 가로지르네 / 炊煙矗矗映山橫
[주D-001]범과 …… 태평하구려 : 항 우(項羽)와 한 고조(漢高祖)가 서로 오랜 싸움에 지친 나머지 전쟁을 중지하고, 홍구(鴻溝)로부터 그 서쪽은 한(漢)나라로 정하여 한 고조가 차지하고, 그 동쪽은 항우가 차지하여 초(楚)나라로 정했던 데서 온 말이다. 한유(韓愈)의 〈과홍구(過鴻溝)〉 시에, “용과 범이 피곤하여 천원을 서로 나누니, 억만창생의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네.[龍疲虎困割川原 億萬蒼生性命存]” 하였다.
[주D-002]봉(鳳)이 …… 본받았는데 : 이한(李漢)이 지은 〈한창려집 서(韓昌黎集序)〉에서 한유(韓愈)의 학문을 평하여, “기이하기는 마치 교룡이 하늘을 나는 듯하고, 성대하기는 마치 범과 봉황이 뛰는 듯하다.[詭然而蛟龍翔 蔚然而虎鳳躍]”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용(龍)을 …… 벗 삼으랴 : 용 을 새긴다는 것은 곧 미사여구(美辭麗句)로 문장을 꾸미는 것을 비유한다. 양(梁)나라의 종영(鍾嶸)이 일찍이 《시품(詩品)》 3권을 저술하여 한위(漢魏) 이래의 시인(詩人) 103인의 우열을 상ㆍ중ㆍ하 삼품(三品)으로 논평하였는데, 이 책의 성격상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과 병칭(竝稱)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4]혀 …… 주장했다오 : 전 국 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특히 연횡설(連橫說)을 주장했던 장의(張儀)가 일찍이 초(楚)나라에 갔다가 억울하게 초나라 재상의 구슬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매를 수백 대나 맞았는데, 가까스로 풀려나서는 자기 아내에게 말하기를, “내 혀가 아직 있는가 봐다오.” 하니, 아내가 웃으면서 혀가 있다고 하자, 장의가 말하기를, “그러면 충분하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5]황벽(黃蘗)이 …… 멋대로라오 : 고약(苦藥)인 황벽나무를 먹고 얼음을 마신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아주 청고(淸苦)한 생활을 가리킨다.
안주(安州)의 박 원수(朴元帥)에게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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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는 천 리나 먼 곳인데 / 安州千里遠
한 봉함 깊이 서신 싸서 보냈네 / 信字一封深
노루 고기는 고마운 선물이었고 / 野鹿分嘉惠
기러기는 좋은 소식 전해 주었네 / 霜鴻落好音
산수는 끝없이 막히어 있고 / 悠悠隔山水
세월은 쉴 새 없이 흘러가는데 / 袞袞送光陰
장성 같은 장수가 변방에 있어 / 自有長城在
병중에 새로운 시를 읊조리노라 / 新詩病裏吟
새벽에 일어나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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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햇살이 성긴 창에 오르니 / 淸旭登疏櫺
텅 빈 방 깨끗하여 빛이 나누나 / 虛室淨生光
묻어놓은 불은 재 밑이 따뜻하고 / 宿火灰底溫
화로의 향연기는 벽에 가득한데 / 爐煙滿壁香
묵은 병은 몸을 떠나지 않아서 / 沈痾未去體
약물이 아직 침상맡에 있도다 / 藥物猶在牀
듣건대 변방 급보가 왔다 하니 / 似聞邊報來
전쟁이 묘당을 번거롭게 하누나 / 甲兵煩廟堂
마음이 진실로 정한 데가 있으니 / 寸心諒有定
생애는 더욱 상심할 만하지만 / 生涯轉堪傷
유유히 천명을 즐기면서 / 悠悠樂天命
군자는 의당 스스로 힘써야지 / 君子當自強
뭇 새들은 다스운 봄에 지저귀고 / 百鳥喧春陽
온갖 꽃엔 이슬방울이 퍼졌으니 / 群花敷露華
성색을 스스로 사가 없이 해야만 / 聲色自無私
천하가 바야흐로 한집이 되리라 / 天下方一家
고상한 사람은 즐기는 바가 있어 / 高人有所樂
석양이 되도록 즐겁게 노닐면서 / 游豫至日斜
귀로는 좋은 소리를 듣고 / 耳以聞好音
눈으로는 진기한 꽃을 구경하고 / 目以悅奇葩
속으로는 온갖 바름을 지키고 / 內以守衆正
겉으로는 뭇 사설을 물리치나니 / 外以攘群邪
예악이 참으로 천하에 충만되면 / 禮樂信充塞
군자는 의당 기뻐서 춤을 추리라 / 君子當婆娑
정월 초이튿날에 곡성백(曲城伯)의 부중(府中)에 가서 매화와 철쭉이 일시에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는 물러나서 그것을 잊지 못하여 3수를 이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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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눈 앞에서 비단 무더기를 이루어 / 氷雪前頭錦作堆
암향과 농염이 교묘히 서로 어울리누나 / 暗香濃艶巧相陪
몇 사람이나 능히 일시에 볼 수 있을꼬 / 幾人能得一時看
삼달존 노인만이 유독 아울러 심었네 / 三達尊翁獨竝栽
섣달 다한 계산에 아직 빙설이 쌓였으니 / 臈盡溪山氷雪堆
꽃 마음은 세속과 멀어 절로 벗이 없구려 / 芳心絶俗自無陪
어찌 봄 경치 다투는 철쭉꽃을 혐의하랴 / 肯嫌躑躅爭春色
고상한 사람이 뜻대로 심어줌을 입었거늘 / 已被高人縱意栽
기영회 자리엔 화려한 비단이 쌓였건만 / 耆英會上綺羅堆
후진은 잠시도 모실 기회를 못 얻었다가 / 後進無由得暫陪
요락을 이겨 낸 국화를 함께 감상하노라니 / 共羨黃花耐搖落
늦게 옮겨 심은 푸른 꽃술이 가련하구나 / 自憐靑蘂晚移栽
[주D-001]삼달존(三達尊) 노인 : 삼달존은 천하를 통틀어 높여야 할 세 가지로서 즉 작(爵)과 치(齒)와 덕(德)을 말하는데, 이 세 가지를 갖춘 노인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바로 곡성백(曲城伯) 염제신(廉悌信)을 가리킨다. 《孟子公孫丑下》
[주D-002]기영회(耆英會) : 송 (宋)나라 때 문언박(文彦博)이 서경 유수(西京留守)로 있으면서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를 모방하여 부필(富弼)ㆍ사마광(司馬光) 등 13인의 학덕(學德) 높은 노인들과 함께 만든 모임인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이르는데, 여기서는 역시 염제신 등 원로들을 가리켜 한 말이다.
[주D-003]늦게 …… 가련하구나 : 두 보(杜甫)의 〈탄정전감국화(歎庭前甘菊花)〉 시에, “처마 앞의 감국은 옮긴 계절이 늦어서, 푸른 꽃술을 중양절에도 딸 수가 없구나.[簷前甘菊移時晚 靑蘂重陽不堪摘]”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감국이 늦게야 옮겨져 얼른 뿌리박지 못함으로써 제때에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을 은연중에 현사(賢士)가 일찍 적재적소에 등용되지 못하여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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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창치 못한 새로운 시 힘들여 읊조려서 / 新詩梗澁費吟哦
종이에 쓰다 보니 글자 또한 삐딱하네 / 寫向華牋字又斜
후일이 오기 전에 장 덮개가 되고 말리 / 不待他年漫醬瓿
다만 지금 제자들이 모두 다 명가라서 / 只今諸子盡名家
귀래편(歸來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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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리라 / 歸來篇
돌아가려면서 못 돌아간 게 지금 몇 해인고 / 欲歸未歸今幾年
공과 명성 이루고 몸이 물러나지 않으면 / 功成名遂身不退
예로부터 온전히 신명 보전한 걸 못 보았네 / 自古未見能圖全
분양은 우뚝하여 천고 이래 으뜸이라 / 汾陽突兀掩千古
곧장 일월과 함께 중천에 환히 빛났으니 / 直與白日懸中天
그 당시 조용히 앉아 노기를 접대할 적에 / 當時靜坐待盧杞
마음 졸였던 걸 지금도 상상할 만하구려 / 至今可想心中煎
범려의 오호에는 밝은 달이 걸렸었고 / 范蠡五湖掛明月
도잠의 삼경에는 찬 연기가 희미했네 / 陶潛三逕迷寒煙
어찌 일호나마 마음에 누됨이 있었으랴 / 何曾一毫累靈臺
응당 세인을 위해 화의 조짐을 없앴으리 / 應爲世人消禍胎
돌아가자 돌아가자 / 歸來兮歸來
깨끗한 긴 강물은 거울같이 절로 맑고 / 長江鏡淨自澄澈
철벽처럼 선 높은 산은 그대로 우뚝한데 / 高山壁立仍崔嵬
진기한 새 지저귀는 곳엔 나무 그늘이 짙고 / 珍禽叫呼樹陰合
물고기 헤엄치는 곳엔 하늘빛이 탁 트였네 / 錦鱗游泳天光開
스님과 서로 손잡고 절에 들기도 하고 / 野僧携手入寺去
도롱이 입고 계우의 뒤를 따르기도 해라 / 溪友踵跡披簑回
술을 마시자면 어찌 짝 없을까 걱정되며 / 飮酒何嘗患無偶
나그네 어찌 일찍이 안 오길 기약했으랴 / 有客何嘗期不來
소요하며 세월 보내면 됐지 또 무얼 바라랴 / 逍遙卒歲復何望
문묵으로 운대에 오른 걸 의당 만족해야지 / 文墨自足登雲臺
그대는 보았나 전쟁 공신의 여러 자손들을 / 君看汗馬諸子孫
가득참은 예로부터 기르기 어려운 거라네 / 盛滿自古難栽培
인생의 수명은 의당 길고 짧음이 있는데 / 人生乘化有脩短
백발의 나이에 어찌 돌아가지 않을쏜가 / 白頭何不歸去來
돌아가야지 지체 말고 어서 돌아가야지 / 歸來歸來莫留滯
여강의 봄물이 진한 포도주처럼 푸르리라 / 驪江春水葡萄醅
[주D-001]분양(汾陽)은 …… 만하구려 : 분 양은 당(唐)나라 때의 명장(名將)으로 벼슬이 태위 중서령(太尉中書令)에 이르고, 분양군왕(汾陽郡王)에 봉해진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킨다. 곽자의가 병이 깊어졌을 때 백관(百官)이 문병을 하러 가면 매양 시녀들을 물리치지 않았다가, 간신(姦臣) 노기(盧杞)가 문병하러 갔을 적에는 시녀들을 바로 물리치고 안석(案席)에 기대어 노기를 접대하므로, 노기가 간 뒤에 가인(家人)이 괴이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곽자의가 말하기를, “저 노기는 외모는 더럽고 마음은 음험한데, 좌우(左右)에서 그를 보면 반드시 웃을 것이니, 그가 만일 뒤에 권력을 잡는다면 우리 가족은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新唐書 卷223 盧杞列傳》
[주D-002]범려(范蠡)의 …… 걸렸었고 : 춘추 시대 초인(楚人) 범려가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섬겨 마침내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는 월나라를 하직하고 일엽편주(一葉片舟)를 타고 오호(五湖)에 떠서 영원히 떠나 버린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도잠(陶潛)의 …… 희미했네 : 도잠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길은 황폐하가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있도다.[三逕就荒 松菊猶存]”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계우(溪友) : 속진(俗塵)을 피하여 산간 계곡(山間溪谷)에 사는 벗을 말한다.
[주D-005]운대(雲臺)에 오른 걸 : 공신(功臣)이 된 것을 뜻한다. 후한의 명제(明帝) 때에 공신들을 추념(追念)하기 위하여 공신 28인의 초상(肖像)을 그려 운대에 걸었던 데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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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비친 매화가 십분 맑고 고상하여 / 梅花照眼十分淸
새 시 가지고 곡성 댁에 올라가려 하는데 / 欲把新詩上曲城
버리고 또 만들다 보면 마음만 고통스럽고 / 改罷又爲心謾苦
잘못된 걸 바로잡으면 글자가 고르질 않네 / 訛來更正字難平
번열을 씻어 없애라 차가운 모습 빼어나고 / 濯除煩熱氷姿秀
얌전한 태도 빚어라 고결한 정취 이루었네 / 醞釀幽閑雪意成
감히 광평의 창자를 무쇠라고 말할쏜가 / 敢道廣平腸是鐵
남은 향기 소매 가득해 꿈속에도 놀란다오 / 餘香滿袖夢中驚
[주D-001]광평(廣平)의 …… 말할쏜가 : 광 평은 당 현종(唐玄宗) 때의 명상(名相)으로 광평공(廣平公)에 봉해진 송경(宋璟)을 가리키는데, 당나라 시인 피일휴(皮日休)의 〈도화부 서(桃花賦序)〉에, “내가 일찍이 재상 송 광평(宋廣平)의 바르고 강직한 자질을 사모해왔으니, 그의 철석(鐵石) 같은 심장으로는 아마도 완곡하고 애교 넘치는 말을 하지 못할 줄 알았었는데, 그의 매화부(梅花賦)를 보니, 통창하고도 풍부하고 고와서 남조(南朝)의 서유체(徐庾體)를 얻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절구(絶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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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는 절로 술수가 많은 것이라 / 造化自多術
조화의 권한을 훔치려고 하건만 / 將偸造化權
만물은 각각 종류가 다른 법인데 / 物生各異品
인간과 하늘이 무슨 상관 있으랴 / 何關人與天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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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등잔 앞에 오경의 쇠잔한 꿈을 꾸면서 / 五更殘夢一燈前
하늘 가득 눈 내리는 소리를 누워 듣노니 / 臥聽蕭蕭雪滿天
도를 희망하나 아직도 귀착지는 희미하고 / 望道尙迷歸宿地
전원이 있어 한갓 귀거래사나 읊을 뿐이네 / 有田空詠去來篇
솔 위의 외로운 학은 응당 말이 없거니와 / 松棲獨鶴應無語
바위굴 속의 스님은 홀로 좌선을 하누나 / 巖竇孤僧自坐禪
오직 미인이 낮은 소리로 노래하는 곳에선 / 唯有紅綃低唱處
산꼭대기 접어든 오솔길은 알지 못하리 / 不知樵逕入危巓
봄바람이 눈을 불어 사립문을 두드리매 / 春風吹雪打柴扉
홀로 앉아 큰소리로 식미를 읊조리노니 / 獨坐高聲詠式微
격조 낮아 좋은 시구 없음은 자신하지만 / 自信格卑無好句
길 미끄러워 위기가 많음을 누가 알리오 / 誰知路滑足危機
처마 사이엔 매화가 조각조각 떨어지는 듯 / 簷間片片梅花落
문밖엔 아스라이 버들개지가 나는 듯하네 / 門外茫茫柳絮飛
이는 다 진부한 말이니 힘써 버려야 하나 / 摠是陳言宜務去
다른 말도 매양 서로 어긋난 게 혐의롭구려 / 却嫌他語每相違
눈 속에 두어 집이 강마을 임해 있는데 / 雪裏數家臨水村
밥 짓는 연기 아득해라 또 황혼이로세 / 炊煙漠漠又黃昏
돌아가 쉬어서 고인의 자취 잇고 싶은데 / 歸休欲繼古人跡
칙명을 내려라 다시 성상의 은혜 입었네 / 敕賜更蒙明主恩
주렴을 교묘히 뚫고 들어옴은 간첩 같고요 / 巧入簾櫳如細作
천지를 널리 싸안음은 강제로 삼킨 듯하구나 / 闊包天地似強呑
봄바람에 응당 여강 물이 벌창해지거든 / 春風應漲驪江水
일엽편주에 편히 앉아 곧장 문에 닿으리 / 穩坐扁舟直到門
[주D-001]미인이 …… 못하리 : 송 (宋)나라 도곡(陶穀)이 일찍이 당 태위(黨太尉) 집의 기녀(妓女)를 사서 데려가던 도중 정도(定陶)를 지나다가 설수(雪水)로 차를 끓이면서 그 기녀에게 이르기를, “당 태위 집에서는 응당 이런 맛을 몰랐을 것이다.” 하자, 기녀가 대답하기를, “당 태위는 추솔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운치가 있겠습니까. 다만 소금장(銷金帳) 아래서 좋은 술과 안주에 미인의 노랫소리 들으면서 천천히 조금씩 마시는 재미가 있을 뿐이랍니다.”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식미(式微) : 《시 경》 패풍(邶風)의 편명인데, 이 시의 내용은 약소국인 여(黎)나라 임금이 오랑캐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위(衛)나라에 가서 구원해 주기를 기다리며 오랜 세월을 보냈으나, 끝내 군사를 풀어 나라를 찾아줄 뜻이 보이지 않으므로, 이에 종신(從臣)들이 그 임금에게 돌아갈 것을 권한 노래이다.
[주D-003]진부한 …… 혐의롭구려 : 한 유(韓愈)가 이익(李翊)에게 답한 편지에 의하면, 삼대(三代)와 양한(兩漢)의 글이 아니면 감히 보지 않고, 성인(聖人)의 뜻이 아니면 감히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글을 쓰는 데 있어서는 오직 진부한 말들을 버리려고 힘쓰다 보니, 세상과 서로 어긋나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7일에 봉록(俸祿)을 반사(頒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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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대궐에서 장관이 반열을 주관하니 / 省宰押班閶闔深
좌우의 문무백관이 수풀처럼 모이었네 / 左文右武簇如林
때는 인일을 당하여 왕명을 반사하거니 / 時當人日頒王命
밥은 백성의 하늘이니 상제가 살피리라 / 食是民天簡帝心
춤추듯 내리는 눈발은 가장 기쁘거니와 / 最喜六花如舞蹈
만 석이 성쇠를 좌우함은 그 누가 알랴 / 誰知萬石足浮沈
내 나이 오십하고도 두 해를 더했는지라 / 行年五十仍餘二
임금 은혜 손꼽아 세니 눈물이 옷깃 적시네 / 屈指君恩淚滿襟
눈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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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엔 겨울이 오히려 다숩고 / 近歲冬猶暖
새봄에는 눈이 또 내리누나 / 新春雪又來
옥루는 자리를 따라 우뚝하고 / 玉樓從座聳
흰 띠는 수레를 좇아 돌아오네 / 縞帶逐車回
고각은 멀리 바라보기 어려우나 / 高閣難遙望
빈 처마는 홀로 짝하기 좋구려 / 虛簷好獨陪
나귀 등의 흥취는 가련도 해라 / 可憐驢背興
편히 앉아서 깊은 술잔 기울이네 / 穩坐倒深杯
은자가 문 닫고 들어앉았는데 / 幽人閉戶坐
함박눈이 하늘 가득 내리누나 / 密雪滿空來
다숩던 겨울을 깨끗이 쓸어가고 / 淨掃冬溫去
응당 따뜻한 봄을 재촉하겠지 / 應催春暖回
매화 떨어 진 건 세속이 좋아하지만 / 落梅知俗好
부러지는 대는 누가 받쳐줄쏜가 / 折竹有誰陪
공연히 날리는 버들개지에 비겼더니 / 謾擬因風絮
되레 바다에 나간 편주와 같구려 / 還如就海杯
누추한 시골에 봄이 오려 하는데 / 陋巷春將至
새해에는 손이 일찍 찾아왔네 / 新年客早來
흰옷 입은 선녀는 한만하게 노닐고 / 素娥游汗漫
흰 학은 빙빙 돌아 나는구나 / 白鶴弄低回
밤이 되면 홀로 듣기에 알맞으나 / 入夜偏宜聽
갠 날의 감상은 누구와 짝할꼬 / 賞晴誰與陪
평생을 두고 고심하여 읊는 곳에 / 平生苦吟處
어찌 다시 은잔을 셀 것 있으랴 / 肯復數銀杯
[주D-001]옥루(玉樓) : 눈 덮인 누대(樓臺)를 이른다. 송(宋)나라 유사도(劉師道)의 〈설(雪)〉 시에, “삼천 세계는 은으로 빛을 이루었고, 십이 누대는 옥으로 층을 만들었구나.[三千世界銀成色 十二樓臺玉作層]” 하였다.
[주D-002]흰 띠는 …… 돌아오네 : 한 유(韓愈)의 〈영설증장적(詠雪贈張籍)〉 시에, “수레를 따라서는 흰 띠가 나부끼고, 말을 좇아서는 은잔이 흩어지네.[隨車翻縞帶逐馬散銀杯]” 한 데서 온 말인데, 흰 띠는 곧 눈 쌓인 도로의 수레바퀴 자국을 비유한 말이고, 은잔은 역시 눈 쌓인 도로의 말발굽 자국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3]나귀 등의 흥취 : 눈 내리는 날 나귀 등에 앉아서 시 읊는 흥취를 말한다. 소식(蘇軾)의 〈증사진하수재(贈寫眞何秀才)〉 시에서 성당(盛唐) 시대의 시인(詩人) 맹호연(孟浩然)의 시 짓는 모습을 일러, “그대는 또 못 보았나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이, 눈썹 찌푸리고 시 읊으며 산 같은 어깨 으쓱댄 것을.[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皺眉吟詩肩聳山]”이라 하였고, 당 소종(唐昭宗) 때의 재상 정계(鄭綮) 또한 시를 잘 지었는데, 혹자가 정계에게, “상국(相國)은 근래에 새로운 시를 지었는가?”라고 물으니, 정계가 대답하기를, “시사(詩思)가 파교(灞橋)의 풍설(風雪) 속 나귀 등 위에 있는데, 여기에서 어떻게 시를 얻겠는가.”고 하였다.
[주D-004]매화(梅花) 떨어진 건 : 눈이 내리는 모양을 하얀 매화 꽃잎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
대 설(大雪). 동년(同年)인 원수(元帥) 정원재(鄭圓齋)가 술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는 또 잘 지은 시를 외웠는데, 그 시에, “만년에 이름은 더욱 중해지고, 신년이라 예는 다시 번거롭구려. 세속 행태 따르긴 부끄러우나, 애써 일어나 후문을 배알하였네. 계곡의 눈은 흥을 일으킬 만하고, 산정은 시끄러움을 피할 만하니, 원컨대 공을 따라 도를 배우면서, 인사를 거문고와 술에 부치고 싶네.[晚歲名逾重 新年禮更煩 尙慚隨俗態 強起謁侯門 溪雪聊乘興 山亭可避喧 願從公學道 人事付琴尊]” 하였으니, 끝 구절에 대해서는 내가 감히 감당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 자신의 입장을 피력함에 있어서는 모두가 사실적인 기록으로서 야박한 풍속을 일깨우고 후생(後生)을 개도(開導)할 만한 말이었다. 그래서 나의 비졸(鄙拙)함을 헤아리지 않고 문득 5수를 짓고, 또 그에게 재차 짓기를 요구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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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옹은 사는 것이 쓸쓸한지라 / 牧翁居索寞
원상이 자주로 예를 베푸네 / 圓相禮頻煩
왕자의 우레는 좌중을 놀래키는데 / 王子雷驚座
원생은 눈 속에 문을 꼭 닫았네 / 袁生雪擁門
강산엔 나는 새도 끊어졌는데 / 江山鳥飛絶
여항엔 말 울음소리 들레누나 / 閭巷馬來喧
백화가 만발하길 손꼽아 기다려서 / 屈指花如海
화려한 집에 또 주연을 베푸세나 / 華堂更置尊
설창이 뼈에 사무치게 청결하여 / 雪窓淸到骨
마음속의 번뇌를 깨끗이 씻었네 / 心地滌餘煩
더구나 공이 술을 가져왔거니 / 況有公携酒
어찌 내 문을 그대로 닫아둘쏜가 / 寧容我閉門
번화함은 똥을 쓸듯이 제거하고 / 繁華從糞掃
적막 속에 시끄러운 속진 피했으니 / 寂寞避塵喧
다시 기약하세나 밝은 달 맞아서 / 更約邀明月
술잔에 든 그림자 함께 보기로 / 相看影入尊
정초가 되면 방문이 분분하거늘 / 歲日紛投刺
남은 생에 감히 번거로움 꺼리랴 / 餘生敢憚煩
동년은 오래전에 벼슬을 버리고 / 同年久還笏
눈 속에 특별히 나를 찾아왔구려 / 踏雪特敲門
공은 깊이 숨은 용사와 같은데 / 公似龍蛇蟄
나는 떠들어 대는 참새와 같아라 / 吾如鳥雀喧
아득히 죽음으로 향하는 마당에 / 渺然乘化處
서로 마주해 술잔이나 기울이잔다 / 相對倒芳尊
담소하면서 어찌 썰렁함을 꺼리랴 / 笑語寧嫌冷
흉금은 이미 번거로움 떨쳐버렸네 / 襟懷已去煩
쇠잔한 나이에 자주 집을 옮기어 / 殘年頻徙室
밤이면 홀로 문을 닫지도 않건만 / 獨夜不關門
등불에 부딪치는 나방만 보일 뿐 / 但見燈蛾撲
말 들레는 소리는 듣기 어려운데 / 難聞櫪馬喧
원재가 나의 늙음을 애석히 여겨 / 圓齋惜吾老
눈 속에 또 술을 가지고 왔네그려 / 冒雪更携尊
시를 읊으면 기가 단촉함을 알겠고 / 吟詩知氣短
일을 만나면 문득 마음이 번거롭네 / 遇事便心煩
난세라 자주 거울만 들여다보고 / 亂世頻看鏡
남은 생은 홀로 문을 굳게 닫았네 / 殘生獨掩門
버들가지는 응당 싹이 트려 하고 / 柳絲應欲動
계곡물은 점차 소리를 들레리라 / 澗水漸成喧
정조에 조하하던 날을 회상하노니 / 回首朝正日
백수준에 향기가 어리었었지 / 香凝白獸尊
[주D-001]원상(圓相) : 호가 원재(圓齋)인 정공권(鄭公權)이 재상 지위에 있다 하여 이렇게 호칭한 것이다.
[주D-002]왕자(王子)의 …… 놀래키는데 : 왕 자는 곧 한(漢)나라 때의 직신(直臣)으로 자가 자공(子贛)인 왕준(王尊)을 가리킨다. 왕준이 일찍이 동평왕(東平王)의 재상이 되었을 때, 동평왕의 태부(太傅)가 왕 앞에서 《시경》 상서(相鼠) 시를 강설(講說)하자, 왕준이 태부에게 말하기를, “베로 메운 북[布鼓]을 가지고 뇌문(雷門)을 지나지 말라.”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뇌문은 곧 회계(會稽)의 성문(城門)을 가리키는데, 뇌문 위에 걸린 북은 소리가 커서 낙양(洛陽)까지 들릴 정도이므로, 소리가 나지 않는 포고(布鼓)를 가지고 그 앞을 지나다가는 오히려 조소와 모욕만 당할 뿐이기 때문에 그곳을 지나지 말라는 뜻이니, 즉 법도(法度)가 없는 동평왕에게는 그런 시를 강설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 말이다. 전하여 여기서는 다만 왕준의 뛰어난 기개를 찬양하여 정공권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3]원생(袁生)은 …… 닫았네 : 원 생은 후한(後漢) 때의 명상(名相) 원안(袁安)이다. 원안이 벼슬길에 나가지 전에 일찍이 낙양(洛陽)에 대설(大雪)이 내려서 낙양 영(洛陽令)이 몸소 나가 민가(民家)를 순행할 적에, 다른 집들은 다 눈을 치웠는데 원안의 집 문밖에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으므로, 그 집에는 사람이 이미 굶어 죽은 줄로 알고 사람을 시켜 눈을 치우고 문을 열고 살펴보게 한 결과, 원안이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4]밝은 …… 보기로 : 이 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 시에, “꽃 사이에서 한 병의 술을 가지고, 친구 하나 없이 홀로 술을 마시면서,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와 합하여 세 사람 되었네.[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난세(亂世)라 …… 들여다보고 : 태평성대가 오기 전에 늙어버릴까 염려하는 뜻에서 한 말이다. 두보(杜甫)의 〈강상(江上)〉 시에, “훈업에 대해선 자주 거울을 보고, 행장에 대해선 홀로 누각 기대 생각하네.[勳業頻看鏡行藏獨倚樓]” 하였다.
[주D-006]백수준(白獸尊) : 백 호준(白虎樽)으로, 뚜껑을 백호(白虎)로 장식한 술 그릇을 가리키는데, 당(唐)나라 때에 와서 태조(太祖)의 휘(諱)를 피해 이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진서(晉書)》 예지(禮志)에 의하면, 원단(元旦)의 조하(朝賀) 때에는 백수준을 전정(殿庭)에 베풀어놓고서 만일 직언(直言)을 올리는 자가 있으면 이 백수준의 술을 마시게 했다고 한다.
수록가(受祿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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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강은 나라의 혈맥이요 / 紀綱國血脈
봉록은 백성의 기름인데 / 俸祿民膏脂
동방엔 법을 세워 내려받은 바가 있기에 / 東方立法有所受
정월 칠일 칠월 칠일에 은총을 내리도다 / 正七七七頒恩私
태산은 흔들어도 판어는 바꾸지 못하듯 / 泰山可搖判不移
뭇 신하의 봉록은 기약 어긴 적 없어라 / 群臣仰給無愆期
창관이 문서 살피어 차례를 고찰하고 / 倉官按籍考次第
대궐뜰 아래 곡식을 산처럼 쌓아놓으니 / 八列庭下堆如坻
대갓집 건장한 노복은 서로 팔뚝을 뽐내고 / 大家豪奴競攘臂
곡식 지고 창고문 나와 성화같이 달리네 / 負出倉門星火馳
튼튼한 수레 힘센 소가 함께 떠들어 대고 / 車攻牛健共叫噪
게다가 징과 북소리까지 서로 어울리어라 / 助以鉦鼓聲相隨
집집마다 주식 장만해 또 서로 위로하여 / 家家酒食又相勞
한때의 기상은 참으로 태평키만 했으니 / 一時氣象眞恬煕
반열 한중간 오품으로 대제를 겸대했던 / 班心五品帶待制
해로는 을미년 바로 그 시절이었네 / 歲在乙未維其時
이젠 봉군이 된 데다 또 병들어 누웠으니 / 迄今封君又臥病
나라에 추호의 보답도 못함을 잘 알거니와 / 報國自知無寸絲
만일 그 쌀알을 낱낱이 다 세려고 든다면 / 若敎粒粒可枚數
뛰어난 수학가도 끝까지 추심하길 꺼리리 / 巧曆亦憚窮尋推
다만 붉은 피와 같은 충심 하나가 있어 / 只有一心赤如血
일언 일동으로 임금의 위태로움 붙드노니 / 吐辭擧足扶君危
임금의 위태롬은 부당한 상벌에 달렸는데 / 君危何在在賞罰
권력 한 번 잃으면 끝내 적이 되고 만다오 / 大柄一失終倒持
신하의 몸 살지운 건 임금의 봉록인데 / 臣身肥腯是君祿
차마 편히 먹고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나 / 可忍退食徒委蛇
한 톨의 쌀이 한 가지 일만큼 중하거니 / 一粒重似一事重
감히 청컨대 배불리 먹고 깊이 생각하세나 / 敢請鼓腹時沈思
깊이 생각하면 절로 등에 땀이 흐르건만 / 沈思自有汗洽背
처자들은 잘 먹고 입어 한창 유희하누나 / 妻子飽煖方游嬉
[주D-001]태산(泰山)은 …… 못하듯 : 절 대로 변동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판어(判語)는 곧 옥사(獄事)를 판결한 문자(文字)를 가리키는데, 당나라 때 이원굉(李元紘)이 옹주 사호참군(雍州司戶參軍)으로 있을 적에 때마침 권세가 천하를 진동하던 태평공주(太平公主)가 전답(田畓)에 물을 대는 수차(水車)를 한 농민에게서 강제로 빼앗으려고 한 일이 있었으므로, 이원굉이 그 수차를 농민에게 돌려주었더니, 장사(長史) 두회정(竇懷貞)이 크게 놀라서 대번 그 판어를 고치자, 이원굉이 그 판어의 뒷면에다 크게 쓰기를, “남산은 옮길 수 있어도 판어는 흔들 수 없다.[南山可移判不可搖]”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원재(圓齋)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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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끌어맞춰 겨우 시 다섯 수를 짓느라 / 捏合纔成五首詩
새벽 창 아래 앉아 공연히 애써 생각하였네 / 曉窓危坐謾沈思
옥쟁반에 분명 밝은 구슬이 달리는 듯해라 / 玉盤的的明珠走
뛰어난 시풍 원재가 바로 나의 스승이로세 / 洒落圓齋是我師
스스로 한하건대 당년에 시를 안 배웠으니 / 自恨當年不學詩
풍화 월로 계절의 경치를 연구하려 했으랴 / 風花月露肯尋思
설옹이 홀로 예산의 학파를 계승하였거니 / 雪翁獨繼猊山派
원재는 집안에 스승 있는 게 가장 기쁘구려 / 最喜圓齋家有師
늘그막에 뜻을 말하면 절로 시를 이루니 / 老年言志自成詩
붓 가는 대로 쓸 뿐 어찌 깊이 생각하랴 / 信手何曾更三思
원경에 백속까지 겸했다고 비웃지 마소 / 莫笑元輕幷白俗
종사의 시처럼 간삽함을 몹시 꺼린다오 / 苦嫌艱澁似宗師
[주D-001]설옹(雪翁)이 …… 기쁘구려 : 설 옹은 원재(圓齋) 정공권(鄭公權)의 아버지로 호가 설곡(雪谷)인 정포(鄭誧)를 가리키고, 예산(猊山)은 고려 시대의 대문장가로서 호가 예산농은(猊山農隱)인 최해(崔瀣)를 가리키는데, 즉 정포의 시문(詩文)은 최해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정공권은 또한 자기 아버지인 정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2]원경(元輕)에 백속(白俗) : 당인(唐人)들이 시풍(詩風)을 비평한 말로, 소식(蘇軾)의 〈제유자옥문(祭柳子玉文)〉에, “원진의 시는 경박하고, 백거이의 시는 비속하며, 맹교의 시는 한빈하고, 가도의 시는 수척하다.[元輕白俗 郊寒島瘦]”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종사(宗師)의 시처럼 간삽(艱澁)함 : 종사는 당 헌종(唐憲宗) 연간의 시인 번종사(樊宗師)를 가리키는데, 그의 시문은 특히 기괴하고 껄끄러워 유창하지 못했으므로, 그 당시에 그의 시체(詩體)를 삽체(澁體)라고 일컬었던 데서 온 말이다.
당시(唐詩) 중에서 ‘늙는 걸 두려워하나 몸은 완전히 늙었다.[畏老身全老]’는 시구를 읽었는데, 나는 그것을 다행 중의 다행으로 여기므로 이를 부연하여 3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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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늙는 걸 두렵다고 했는데 / 古人稱畏老
지금 나는 그것을 매우 기뻐하네 / 今我喜之深
도로엔 소매가 서로 닿을 듯하고 / 道路如連袂
조정엔 선비들이 함께 모이어라 / 朝廷共盍簪
교대로 와서 한창 뒤를 이으매 / 迭來方繼踵
서로 마주하여 마음을 논하노니 / 相對政論心
머리 흰 사람이 그 몇이나 있는고 / 有幾能頭白
내가 지금 시험 삼아 한번 읊노라 / 吾今試一吟
남은 늙음이 다가옴을 두려워하나 / 所畏老之至
지금 나는 기쁘기가 그지없다오 / 今吾喜也深
소년도 무릎 꿇고 신 신기기 어려운데 / 少年難跪履
중년에 어찌 벼슬을 그만두려 하랴 / 中歲肯抽簪
우환을 만나선 자주 뼈가 녹거니와 / 遇患頻消骨
가득참 유지하긴 맘이 몹시 쓰이거늘 / 持盈苦用心
다행히도 나는 수역에 올랐으니 / 幸哉躋壽域
행복한 기분으로 또 길이 읊노라 / 手額又長吟
늙는 걸 두려워함은 인정이지만 / 畏老人情耳
그 근원은 깊고 얕음이 있나니 / 根源有淺深
나뭇가지 하나는 뱁새의 집이요 / 一枝斥鷃舍
삼신산은 큰 자라의 비녀로다 / 三島巨鼇簪
모든 중생도 원기를 지녔거니와 / 蠢動含元氣
허령함 속엔 도심이 실려 있다네 / 虛靈載道心
그 가운덴 장수도 요절도 없기에 / 箇中無壽夭
목은이 두 번 세 번 거듭 읊노라 / 牧隱再三吟
[주D-001]무릎 …… 어려운데 : 한 (漢)나라 장량(張良)이 일찍이 하비(下邳)의 흙다리 위에서 황석공(黃石公) 노인을 만났을 때, 그 노인이 짐짓 다리 밑으로 신을 떨어뜨리고는 장량에게 신을 주워 오게 하고 또 자기 발에다 신을 신기게까지 했으나, 장량은 두말없이 무릎을 꿇고 앉아 그에게 신을 신겨주었던 데서 온 말이다.
스스로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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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풍도는 팽택 영을 사모하고 / 高風慕彭澤
병이 많기는 문원 영과 흡사하네 / 多病似文園
초초한 생활은 왜 그리 고달픈고 / 草草生何苦
흐릿도 해라 눈은 어두워만 가네 / 梅梅視欲昏
맘과 형체가 서로 부림을 받는데 / 心形自相役
부귀를 어찌 다시 논할 것 있으랴 / 富貴復何論
혹시라도 사직하여 윤허를 받거든 / 倘得乞骸骨
강가의 우리 마을로 돌아가련다 / 歸來江上村
섣달 눈이 아직 언덕에 쌓였는데 / 臈雪猶堆岸
봄바람은 이미 전원에 들어왔네 / 春風已入園
버들 마을엔 푸른 그늘 짙어가고 / 柳村將綠暗
매화의 달빛은 또 황혼이로다 / 梅月又黃昏
예악은 함부로 의논키 어려우나 / 禮樂難輕議
문장은 의당 자세히 논해야겠네 / 文章要細論
썩은 선비는 괜히 홀로 괴로워하며 / 腐儒徒自苦
백발로 황량한 마을에 누웠노라 / 白首臥荒村
적막 속에 때론 젓대소리를 듣고 / 寂寞時聞笛
즐겨 노닐며 날로 전원을 거니네 / 遨遊日涉園
이미 세상일 걱정하기 귀찮은데 / 已嫌憂耿耿
어찌 정신없이 취함이 해로우랴 / 豈害醉昏昏
가훈을 전하고픈 뜻은 있으나 / 有志傳家訓
국론을 결단할 마음은 없어라 / 無心斷國論
땅을 갈 만한 봄비가 내린 뒤에는 / 一犂春雨後
살구꽃 핀 마을로 들어가련다 / 去入杏花村
[주D-001]팽택 영(彭澤令) : 진(晉)나라의 은사(隱士)로 일찍이 팽택 영을 지냈던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주D-002]문원 영(文園令) : 한(漢)나라의 문장가(文章家)로 일찍이 효문원 영(孝文園令)을 지냈던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키는데, 그는 평소 소갈병(消渴病) 등을 앓았다.
[주D-003]매화의 …… 황혼이로다 : 임포(林逋)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 달빛 아래 일렁이누나.[疏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예악(禮樂)은 …… 어려우나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8장에, “천자가 아니면 예를 논의하지 못하며, 법도를 제정하지 못한다.[非天子不議禮 不制度]”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문장(文章)은 …… 논해야겠네 :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시에, “어느 때나 한 동이 술을 마시며, 거듭 함께 문장을 자세히 논해 볼꼬.[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살구꽃 핀 마을 : 술집을 가리킨다. 두목(杜牧)의 〈청명(淸明)〉 시에, “묻노니 술집이 그 어드메 있느뇨, 목동이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借問酒家何處在 牧童遙指杏花村]”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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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무문이라는 말이 바로 격언이거늘 / 至敬無文是格言
세상 인정 따르자니 예가 번거로워라 / 緣情逐世禮頻繁
봄에는 아직 광암사를 가지 못했으나 / 春來不踏光巖路
꼭 한산군이 감히 배은한 건 아니라네 / 未必韓山敢背恩
요즘 세상 인정은 차마 말할 수 없어라 / 近世人情不忍言
경박하기가 도리어 번다한 이슬 같은데 / 輕浮却似露華繁
목은 늙은이 졸렬한 생애는 가련도 해라 / 可憐牧老生涯拙
채소 보내 준 지주의 은혜를 잊기 어렵네 / 菜把難忘地主恩
빈사와 선탑에 잠시 할 말을 잊었노니 / 鬢絲禪榻蹔忘言
처신이 간솔해야 번다함을 다스린다오 / 居簡方能御得繁
사직하고 면벽이나 하는 게 소원이건만 / 甚欲乞身長面壁
도리어 임금 은혜 못 갚은 게 부끄럽구려 / 却慚猶未報君恩
[주D-001]지경무문(至敬無文) :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검소한 것을 귀히 여기는 경우가 있으니, 지극히 공경하는 곳에는 문식하지 않는다.[有以素爲貴者 至敬無文]”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봄에는 …… 아니라네 : 광암사(光巖寺)는 개성(開城)의 무선봉(舞仙峯) 밑에 있는 절 이름인데, 여기가 바로 공민왕(恭愍王) 현릉(玄陵)의 재궁(齋宮)이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빈사(鬢絲)와 선탑(禪榻) : 빈 사는 흰 귀밑머리를 말하고, 선탑은 선승(禪僧)의 좌선(坐禪)하는 걸상을 말하는데, 두목(杜牧)이 늘그막에 젊은 시절을 회상하여 쓴 〈제선원(題禪院)〉 시에, “큰 술잔 한 번 저어 가득한 잔 텅 비웠더니, 십 년 청춘이 공도를 저버리지 않는구려. 오늘은 흰 귀밑털이 선탑 가에 이르니, 차 연기가 낙화 바람에 가벼이 날리는 듯하구나.[觥船一棹百分空 十歲靑春不負公 今日鬢絲禪榻畔 茶煙輕颺落花風]” 한 데서 온 말로, 즉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한 것이다.
이른 봄의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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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생활에 또 새해를 맞아서 / 幽居又新歲
홀로 앉아 정결히 향을 사르노니 / 獨坐淨焚香
난간 앞 소나무는 가장 반갑거니와 / 最幸松當檻
이끼가 방에 들어옴은 어찌 꺼릴쏜가 / 寧嗔蘚入房
절벽 얼음은 가끔 절로 떨어지는데 / 崖氷時自落
창에 비친 해는 누굴 위해 더딘고 / 窓日爲誰長
기사 기심 잊는 걸 깊이 믿으니 / 頗信忘機事
도리어 짧은 시를 지을 수 있구려 / 還能賦短章
지경 외지니 뭇사람 만나지 않고 / 境絶屛群動
마음 맑으니 신묘한 향내 나건만 / 心淸聞妙香
윤회의 고통 속에 죄업이 남아서 / 多生餘業障
육사가 문자 속에 갖추어 있네 / 六事具文房
흐르는 세월에 형용은 변하지만 / 苒苒形容變
한가한 가운데 기미는 진진하니 / 悠悠氣味長
봄바람이 점점 다숩게 불어오거든 / 春風吹漸暖
다시 영귀장이나 읽어야겠네 / 更讀詠歸章
동쪽으로 동해를 내려다보니 / 東界臨東海
명산에서 뭇 향기를 풍기누나 / 名山聳衆香
높은 봉우리는 조도를 임해 있고 / 危峯臨鳥道
깎아지른 절벽엔 승방이 걸려 있네 / 絶壁掛僧房
캄캄한 풍진을 몹시 싫어하기에 / 苦厭風塵暗
도로가 먼 것은 개의치 않는다오 / 非關道路長
가고 머묾에 마음만 괜히 괴로워 / 去留心謾苦
써내니 절로 문장을 이뤘네그려 / 寫出自成章
[주D-001]기사(機事) …… 걸 : 자 공(子貢)이 초(楚)나라를 유람하고 진(晉)나라로 가면서 한수(漢水)의 남쪽을 지나다가 한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은 밭이랑에 물을 주기 위해서 우물을 깊이 파놓고 물동이를 안고 우물물을 퍼내오곤 하였다. 이 광경을 본 자공이 그 노인에게 용두레를 사용하면 힘을 덜 들이고도 많은 물을 퍼낼 수 있다고 일러 주자, 그 노인이 처음에는 성을 벌컥 냈다가 이내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우리 스승에게서 들어 보니, 기계란 것이 있으면 반드시 꾀를 부리는 일이 있게 되고, 꾀를 부리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꾀를 내는 마음이 생긴다고 하였다.[吾聞之吾師 有機械者必有機事 有機事者必有機心]”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莊子 天地》
[주D-002]육사(六事) : 불교 용어로,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키는 여섯 가지 근원, 즉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를 가리킨다.
[주D-003]영귀장(詠歸章) : 공 자(孔子)의 제자 증점(曾點)이 공자의 물음에 대하여 자기의 뜻을 말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5, 6인,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공권(公權)이 화답을 하여 자기 하인에게 주어 보내면서 주의시키기를, “반드시 답서(答書)를 받아오라.”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받들어 바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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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누워 괴로이 읊조리노라니 / 病榻吟哦苦
시 담은 통이 번거로이 오가누나 / 詩筒往復煩
첫새벽부터 붓 적셔 시를 쓰고 / 凌晨斜點筆
밤이 되면 느즈러이 문을 잠그네 / 入夜懶關門
책상엔 깨끗한 구슬이 떨어지고 / 几淨珠璣落
바람은 들레는 고취 소리 전하누나 / 風傳鼓吹喧
높은 수레 응당 재차 왕림하리니 / 高軒應再枉
좋은 술이 아직 동이 가득 있다오 / 綠蟻尙盈尊
병중에 회포 쓴 게지 어찌 고시를 흉내 내랴 / 病裏言懷豈效詩
단장취의하는 덴 증자 자사를 사모하노라 / 斷章取義慕曾思
임기응변의 술은 한없이 해낼 수 있나니 / 臨機制變多多辦
늙은 장수는 원래 군사를 잘 부리는 걸세 / 老將元來善用師
[주D-001]깨끗한 구슬 : 본디 아름다운 시문(詩文)을 비유하는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상대방 시문을 찬미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2]단장취의(斷章取義)하는 …… 사모하노라 : 단 장취의란 원작자(原作者)의 본의(本意)와는 관계없이 옛 시문 등에서 자기가 필요한 장구(章句)만을 따다가 자기의 뜻대로 해석하여 쓰는 것을 가리키는데, 바로 증자(曾子)의 《대학장구(大學章句)》과 자사(子思)의 《중용(中庸)》에서 《시경(詩經)》 등의 글을 인용하는 데 있어 특히 이런 방식을 많이 사용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염 정당(廉政堂), 한 첨서(韓簽書)와 광암사(光巖寺)의 현릉(玄陵)에 함께 가서 행례(行禮)하기로 약속하고, 밤새도록 앉았다가 날이 밝은 뒤에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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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서로 이어 승선에 임명됐더니 / 三人相次拜承宣
굼뜬 내가 아직껏 앞자리에 앉았구려 / 蹇步如今尙在前
젊어선 일찍 벼슬 떠나기를 희망했는데 / 少壯自甘曾去位
노쇠해선 어찌 전원으로 못 돌아가는고 / 老衰胡不便歸田
겹겹의 주망은 삼계를 두루 비추건만 / 重重珠網含三界
적적한 산릉은 구천에 꽉 막혀 있구나 / 寂寂山陵閉九泉
비석 위의 두어 줄 글을 아직 못 새겼으니 / 碑上數行猶未刻
탁본이 유전할 날이 정히 어느 해일런고 / 流傳石本定何年
[주C-001]염 정당(廉政堂), 한 첨서(韓簽書) : 염 정당은 당시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이었던 염흥방(廉興邦)을 가리키고, 한 첨서는 당시 벼슬이 첨서밀직(簽書密直)이었던 한수(韓脩)를 가리킨다.
[주D-001]겹겹의 …… 비추건만 : 주 망(珠網)은 불교 용어로, 제석천(帝釋天)의 궁전 위에 치는 보주(寶珠)로 만든 그물을 가리키는데, 이 보주들은 그 숫자가 무량(無量)하고 또 빛이 매우 영롱하여 이중 삼중으로 서로서로 비추어 막힘이 없이 광명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삼계(三界) 역시 불교 용어로, 즉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준말이다.
다시 원재의 시운(詩韻)을 사용하여 애오라지 회포를 서술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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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갓 적막함이나 지킬 뿐이거늘 / 寂寞徒能守
감히 고견한 데를 늘 번거롭히랴 / 高堅敢輒煩
양웅의 집에는 구름이 깊숙하고 / 雲深揚子宅
중니의 문에는 하늘이 탁 트였네 / 天豁仲尼門
신심이나 계합하면 그만이지 / 只把身心契
어찌 여러 말을 할 것이 있으랴 / 寧容口吻喧
춘풍이 불면 기수에서 목욕하고 / 春風浴沂處
서로 손잡고 술이나 마시자꾸나 / 握手對芳尊
출처를 사전에 결정하기 어려워 / 出處難前定
사람의 마음을 번거롭게 하누나 / 令人內自煩
옥은 끝내 함에 넣은 게 부끄럽고 / 玉慙終韞櫝
난초는 우연히 문에 당함을 꺼리네 / 蘭忌偶當門
외로운 학이 어찌 고요함 꺼리랴 / 獨鶴寧嫌靜
뭇 벌레가 이미 떠듦을 멈추었네 / 群蟲已息喧
원재는 다행히 기호가 나와 같아서 / 圓齋幸同嗜
우리 술잔에 화기가 넘치는구려 / 春色灩金尊
기호가 다르면 끝내 부합키 어려워 / 異好終難合
외로운 충정이 스스로 번거롤 뿐이네 / 孤忠祗自煩
전모를 씹으며 한절을 굳게 지니고 / 齧氈持漢節
비파를 잘 타서 제문을 향하였도다 / 工瑟向齊門
천운이 순환함은 진작 믿어왔거니와 / 久信艱爲泰
조용함이 들렘보다 나음도 알았노니 / 明知靜勝喧
늙은 나이에 고락을 모두 잊고 / 老年忘苦樂
밤낮으로 구준이나 대할 뿐이로세 / 日夕對衢尊
뼈에 사무친 한빈함은 바로 동야의 시이니 / 刻骨酸寒是野詩
우연히 얻은 게 깊은 생각 있음을 알아야 하리 / 須知偶得雜深思
말 위의 퇴고한 모습은 진정 그림 같았으리 / 敲推馬上眞如畫
때마침 비가 내려 도성 거리 깨끗이 씻었네 / 淨洒天街有雨師
근래에 해동의 풍아다운 시를 말하자면 / 海東風雅近來詩
유독 계림의 중사를 회상하게 되는데 / 獨向鷄林憶仲思
다행히 원재가 그 문하에서 나왔기에 / 賴是圓齋出門下
모두들 유약을 사사하자는 말을 한다오 / 摠言有若可爲師
지금 사람이 모두 당시를 배운다 말하지만 / 今人盡說學唐詩
누가 일찍이 묘한 곳을 애써 생각했던고 / 妙處誰曾更苦思
풍월은 가이없고 천지는 넓기만 하거니 / 風月無涯天地闊
돌아가 찾으면 큰 스승이 얼마든지 있으리 / 歸求落落有餘師
[주D-001]적막함이나 지킬 뿐이거늘 : 양웅(揚雄)의 〈해조(解嘲)〉에, “묵묵히 홀로 나의 태현이나 지키리라.[默然獨守吾太玄]”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고견(高堅) : 안연(顔淵)이 공자(孔子)의 도(道)가 무궁무진함을 깊이 깨닫고 감탄하여 말하기를,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다.[仰之彌高 鑽之彌堅]”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주D-003]옥(玉)은 …… 부끄럽고 : 재 능이 있으나 쓰이지 않음을 뜻한다. 자공(子貢)이 묻기를, “아름다운 옥이 여기에 있으니, 함에 넣어 깊이 간직해야 합니까, 좋은 값을 받고 팔아야 합니까?”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반드시 팔아야 할 것이다.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주D-004]난초는 …… 꺼리네 : 재 능 있는 선비가 성질이 너무 강직하여 윗사람에게 용납되지 못함으로써 부득불 제거당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삼국(三國) 시대 촉한(蜀漢)의 선주(先主)가 장유(張裕)를 처형하려 할 때에 제갈량(諸葛亮)이 선주에게 표(表)를 올려 그의 죄를 사면하기를 청하니, 선주가 답하기를, “향기로운 난초도 문 앞에 당해 있으면 부득불 제거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전모(氈毛)를 …… 지니고 : 전 모는 모직물을 가리키고, 한절(漢節)은 한나라 천자(天子)가 수여한 정절(旌節)을 가리킨다. 한나라 소무(蘇武)가 무제(武帝) 때 흉노(匈奴)에게 사신갔다가 선우(單于)로부터 흉노에 항복하라는 회유와 협박을 받고도 끝내 굴복하지 않으므로, 선우가 마침내 소무를 큰 움 속에 가두고 음식을 주지 못하게 하자, 때마침 눈이 왔는지라, 소무는 눈 위에 누워서 눈과 전모를 씹어먹고 목숨을 부지하면서도 끝까지 한나라의 정절을 지니고 다녔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굳은 충절을 의미한다.
[주D-006]비파를 …… 향하였도다 : 자 신이 세상과 서로 맞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유(韓愈)가 일찍이 진상(陳商)에게 답한 편지에서, 어떤 사람이 피리[竽]를 좋아하는 제 선왕(齊宣王)의 문에 비파를 가지고 가서 벼슬하기를 구했으므로, 끝내 벼슬을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시대에 맞지 않는 난해한 문장을 즐겨 쓰던 진상에게 충고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구준(衢尊) : 여 러 갈래로 통하는 큰 길거리에 놓아둔 술동이를 말한다. 《회남자(淮南子)》 무칭훈(繆稱訓)에, “성인(聖人)의 도는 마치 큰 길거리에 술동이를 놓아두어 지나는 사람마다 자기 양대로 마셔서 각각 적당함을 얻게 하는 것과 같다.”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임금의 은혜를 의미한다.
[주D-008]뼈에 …… 시이니 : 동 야(東野)는 맹교(孟郊)의 호인데, 소식(蘇軾)이 일찍이 당인(唐人)의 시풍(詩風)을 제유자옥문(祭柳子玉文)에서 평론하기를, “원진의 시는 경박하고, 백거이의 시는 비속하며, 맹교의 시는 한빈하고, 가도의 시는 수척하다.[元輕白俗 郊寒島瘦]”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9]말 위의 퇴고(推敲) : 당 (唐)나라 가도(賈島)가 하루는 나귀를 타고 도성 거리를 나갔다가,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이란 시구를 짓고는 손짓을 하면서 퇴(推) 자를 쓸까, 고(敲) 자를 쓸까 하고 수없이 고심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시문의 자구(字句)를 아름답게 연마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10]계림(鷄林)의 …… 나왔기에 : 계림은 경주(慶州)의 고호(古號)이고, 중사(仲思)는 경주 이씨(慶州李氏)인 이제현(李齊賢)의 자인데, 원재(圓齋) 정공권(鄭公權)이 바로 이제현의 문인(門人)이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11]모두들 …… 한다오 : 공자(孔子)의 제자 가운데 유약(有若)의 모습이 유독 공자와 비슷하다 하여, 공자가 작고한 뒤에 제자들이 공자를 사모하는 뜻에서 유약을 스승으로 삼고 생전의 공자를 섬기듯이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앞의 운을 사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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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졸한 문장으로 누차 왕명을 받들었으니 / 鄙拙文章屢奉宣
몇 번이나 수로 앞에서 친히 아뢰었던고 / 幾回親奏獸爐前
세시에는 거마들이 명전에 조회를 드리고 / 歲時車馬朝明殿
저녁 종이 울리면 부처에게 공양을 하네 / 昏旦鐘魚集福田
벽 향해 가부좌하니 마음은 물같이 맑고 / 向壁加趺心似水
눈여겨 비문 읽으니 눈물은 샘솟듯 하누나 / 讀碑凝睇淚如泉
봄바람 가을 달 속에 얽힌 무궁한 한들을 / 春風秋月無窮恨
천 년이요 또 만만 년 길이길이 부쳐주리 / 付與千年又萬年
[주D-001]수로(獸爐) : 대궐 뜰에 비치된 짐승 모양의 화로를 말한다.
스스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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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제 교만한 태도를 어찌 감히 부리랴 / 驕態我今何敢宣
인정과 세도가 모두 예전 같지 않은 걸 / 人情世道摠非前
십 년 동안 삼도부를 이루지 못했거니와 / 十年未就三都賦
육국 상인이 어찌 두 이랑 토지만 하랴 / 六印何如二頃田
말은 석양 노을 속의 꽃다운 풀을 밟고 / 馬踏斜陽靄芳草
원숭이는 폭포 쏟는 절벽에서 울어대네 / 猿啼絶壁掛飛泉
평탄한 길 깊은 골짝을 두루 유람하고도 / 坦途深谷曾遊遍
돌아갈 마음 미처 못 이룬 게 또 몇 년인고 / 未遂歸心又幾年
나이 들어선 의당 울적함을 풀어야 하기에 / 老大須敎壹鬱宣
새벽 창 앞에 거울 보며 속으로 말을 하네 / 鏡中心語曉窓前
화려한 누각 밝은 달은 주렴 나직이 비추고 / 畫樓明月低珠箔
띳집의 푸른 이끼는 돌더렁 밭을 둘러쌌네 / 茅屋蒼苔擁石田
덕을 갚기란 진정 새가 바다 메우기 같건만 / 報德眞同鳥塡海
마음 씻는데야 하필 호포천을 필요로 하랴 / 洗心何必虎跑泉
평생의 출처는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고 / 平生出處皆無用
백발만 쓸쓸해라 정히 늙은 나이로구려 / 白髮蕭蕭政老年
[주D-001]십 년 …… 못했거니와 : 삼 도부(三都賦)는 진(晉)나라의 문장가인 좌사(左思)가 10년 동안 고심하여 구상한 끝에 완성했다는 촉도부(蜀都賦)ㆍ오도부(吳都賦)ㆍ위도부(魏都賦)를 가리키는데, 이 문장이 천하에 명문(名文)으로 알려져서 호사가들이 그것을 서로 다투어 전사(傳寫)하는 바람에 낙양(洛陽)의 종이값이 폭등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주D-002]육국 …… 하랴 : 전 국 시대 낙양(洛陽) 사람 소진(蘇秦)이 합종설(合縱說)을 가지고 연(燕)ㆍ제(齊)ㆍ초(楚)ㆍ조(趙)ㆍ위(魏)ㆍ한(韓) 여섯 나라의 임금들을 차례로 설득하여 언약을 얻고 이어 자신이 종약장(縱約長)이 됨과 동시에 여섯 나라의 상인(相印)을 한 몸에 차서 부귀가 극에 달하자, 소진이 말하기를, “나에게 일찍이 낙양의 부곽전(負郭田) 두 이랑만 있었더라면 내가 어찌 오늘날 여섯 나라의 상인을 찰 수 있었겠는가.”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덕을 …… 같건만 : 아 무리 노력해도 은덕에 대한 보답은 다할 수 없음을 뜻한다. 옛날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의 딸이 동해에 빠져 죽어 정위(精衛)라는 새로 변화해서는 자기가 빠져 죽은 것을 원망하는 뜻에서 항상 서산(西山)의 목석(木石)을 가져다가 동해를 메웠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4]호포천(虎跑泉) : 진 (晉)나라 때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 뒤에 있었던 샘 이름인데, 전설에 의하면,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일찍이 백련사(白蓮社)의 여러 현사(賢士)들과 함께 상방봉(上方峯) 꼭대기까지 올라가 노닐면서 물이 너무 멀리 있음을 걱정했더니, 호랑이가 돌밭을 발로 긁어 파서 샘물이 나오게 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장차 광암사에 가려면서 느낌이 있어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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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과의 약속대로 나가기 위해 / 欲赴東亭約
인하여 상당을 불러 함께 가노니 / 仍招上黨行
국가의 은혜는 끝내 찬란하건만 / 國恩終爛熳
우리의 도는 절로 외롭기만 하네 / 吾道自伶仃
산 달은 승사의 창에 썰렁하고 / 山月僧窓冷
솔바람은 객실을 맑게 불어주니 / 松風客室淸
속세의 생각 일어날 수 없거니와 / 不容塵念起
선문의 말은 또한 정녕도 하여라 / 禪語更丁寧
환옹은 매우 청결한 사람이라 / 幻翁淸者也
젊어서부터 이미 기심을 잊었으니 / 自少便忘機
시와 술은 서로 종유하는 날 즐기고 / 詩酒相從日
강산은 홀로 다닐 때 유람하노라 / 江山獨往時
회상하니 남은 습기는 끊어졌는데 / 回頭餘習斷
손꼽아 세니 옛 친구는 드물구려 / 屈指舊交稀
나는 새벽종이 울리기도 전에 / 不待晨鐘動
하염없이 스스로 슬프기만 하구나 / 悠悠只自悲
온 세상도 너르다 하기 어려워라 / 世界難爲闊
내 신심이 본디 절로 관대하기에 / 身心本自寬
진세에 묻혀도 물들지 않거니와 / 處塵無可染
속세를 떠나긴 또 뭐가 어려우랴 / 出世亦何難
바람 거센 날에 하늘은 말끔하고 / 風急天容淨
솔숲 깊은 곳에 달빛은 차가운데 / 松深月色寒
선사의 면목을 자세히 살펴보니 / 細看師面目
나와 다른 것은 의관뿐이로구려 / 異我但衣冠
[주D-001]동정(東亭) : 염흥방(廉興邦)의 호이다.
[주D-002]상당(上黨) :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진 한수(韓脩)를 가리킨다.
[주D-003]환옹(幻翁) : 속명(俗名)은 혼수(混修)이고 호가 환암(幻菴)인 고려 말기의 선승(禪僧)을 가리킨다. 그의 시호는 보각(普覺)이다.
[주D-004]습기(習氣) : 불교 용어로, 즉 번뇌(煩惱)를 가리킨다.
느낌이 있어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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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는 왕도 패도를 겸하였고 / 制度兼王霸
강토는 태곳적부터 전해 오는데 / 輿圖亘古今
계책 짠 손 안엔 천둥이 일고 또 멎고 / 掌中雷起滅
걸어다니는 곳엔 해가 떴다 졌다 하네 / 胯外日升沈
백발의 몸을 끝내 어디에 쓰랴 / 皓首終安用
등잔 아래서 홀로 읊조릴 뿐이네 / 靑燈獨自吟
봄바람이 때로 광대히 불어오건만 / 春風時浩蕩
빙설은 아직 산숲에 가득하구나 / 氷雪滿山林
일손 놓은 건 나뿐이 아니거니와 / 縮手非唯我
상심되는 건 어찌 지금뿐이리오 / 傷心豈獨今
남쪽 하늘은 아스라이 새파란데 / 南天靑漠漠
북극은 어두워 침침하기만 하네 / 北極黑沈沈
충정으로 간한 이는 볼 수가 없고 / 兔角披心諫
쭈그리고 읊는 이는 많기만 해라 / 牛毛抱膝吟
강산에 봄기운이 발동하려 하니 / 江山春欲動
고운 화초는 시단에 맡겨야겠네 / 紅綠屬詞林
글 읽을 땐 옛날의 일을 참고하고 / 讀書參往昔
세상 다스릴 젠 현세를 참조하는데 / 濟世照來今
외로운 달은 하늘 중심에 걸렸고 / 孤月天中掛
뭇 산들은 안개 속에 잠겨 있어라 / 群山霧裏沈
상양은 비 올 기미를 타서 춤추고 / 商羊乘雨舞
귀뚜라미는 가을을 기다려 우누나 / 蟋蟀候秋吟
홀로 서서 입 다물고 있는 곳에 / 獨立含聲處
숲에 까마귀 가득함을 누가 알랴 / 誰知鴉滿林
[주D-001]상양(商羊)은 …… 춤추고 : 장차 큰비가 오려하면 상양이라는 새가 일어나 춤을 춘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원재의 운에 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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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여 거듭하니 그치긴 어려우나 / 因重勢難止
간략치도 않고 번거롭지도 않네 / 非簡亦非煩
복괘와 구괘는 구맹의 땅이요 / 復姤句萌地
건도와 곤도는 도의의 문이로다 / 乾坤道義門
진나라 잿더미는 비록 면했으나 / 秦灰雖獨免
노성한 이라야 잡설들을 물리치리 / 老道却群喧
어진 이 기르는 말을 읽어보게나 / 請讀養賢語
기미를 아는 건 술동이에 있다네 / 知幾在酒尊
당우의 시대로부터 끊어 정하여 / 斷自唐虞際
번잡한 것들을 모두 제거했는데 / 芟夷亂與煩
공왕은 공벽을 열어 발견하였고 / 共王開孔壁
채씨는 주문에서 전수받았네 / 蔡氏授朱門
봉황이 날아와 한창 춤을 추니 / 噦噦方來舞
잡새들 소리는 이미 끊어졌는데 / 啾啾已絶喧
다만 부족함은 의제가 소략하여 / 獨嫌儀制略
술그릇에 준 자를 안 쓴 거로세 / 酒器不書尊
진정이 밖으로 감발된 것인데 / 感發眞情外
어찌 귀에 들림이 번거로우랴 / 何曾入耳煩
성음은 모두 음률에 적중하고요 / 聲音皆中律
경위는 절로 문이 나뉘어졌는데 / 經緯自分門
오묘한 이치를 어디에서 강론할꼬 / 要妙從誰講
음란한 소리만 세상 따라 시끄럽네 / 哇淫逐世喧
생각에 사특함 없다는 한 구절은 / 思無邪一句
희준을 대함보다 월등히 낫고말고 / 絶勝對犧尊
노사는 참으로 조정의 기록이라 / 魯史眞朝報
보아오매 매우 번잡한 듯하구려 / 看來似甚煩
기린 잡고 바야흐로 붓 놓았고 / 獲麟方絶筆
이적 받아들이고 문장 내쫓았네 / 進狄却麾門
그러나 한마디 도움이 부족하여 / 尙欠一辭贊
여러 전이 요란스레 떠들게 했네 / 徒敎諸傳喧
옥천은 일찍 여러 전을 폐기하여 / 玉川曾束閤
끝내 퇴지의 존경을 받았었다오 / 竟致退之尊
내 시가 어찌 장지화의 시와 같을쏜가 / 吾詩豈似志和詩
흥이 나면 읊을 뿐 생각지를 않는다오 / 遇興吟來不復思
유독 비낀 바람과 가랑비를 사랑하노니 / 獨愛斜風幷細雨
푸른 도롱이 삿갓 쓴 거나 본받고 싶네 / 綠簑靑蒻欲相師
여흥의 누대 위는 시 읊기 아주 좋아서 / 驪興樓上好吟詩
연래에 남쪽 바라보며 생각 많이 했노니 / 南望年來費我思
감호를 하사하면 돌아갈 계획 결단하여 / 敕賜鑑湖歸計決
달밤에 낚시 드리우고 어부와 짝하련다 / 月中垂釣伴漁師
청풍 고을 그 당시 기행시를 지을 적엔 / 淸風當日紀行詩
여흥을 지날 때마다 묘한 시상 떠올랐네 / 每過驪興發妙思
결정한 마음 없거든 나를 따라 가세나 / 決定無心從我去
광암사에는 지금 환암 스님도 있잖은가 / 光巖今有幻菴師
거슬러 올라가 고인의 시를 논하고 외며 / 尙論猶誦古人詩
지척에서 바라보며 나날이 생각하노니 / 咫尺相望日日思
어떻게 하면 소년처럼 촛불 잡고 노닐꼬 / 安得少年游秉燭
전부터 밤의 담소는 스님 찾음보다 나았지 / 從來夜話勝尋師
[주D-001]인하여 거듭하니 :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팔괘가 열을 이루니, 상이 그 가운데 있고, 인하여 거듭하니, 효가 그 가운데 있다.[八卦成列 象在其中矣 因而重之 爻在其中矣]”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복괘(復卦)와 …… 땅이요 : 복 괘는 일양 시생(一陽始生)의 동지(冬至)에 해당하고, 구괘(姤卦)는 일음 시생(一陰始生)의 하지(夏至)에 해당하므로, 음양 한서(陰陽寒暑)의 계절을 의미한다. 구맹(句萌)은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계춘의 달에는……굽은 것은 다 나오고, 곧게 펴진 것은 모두 죽죽 자란다.[季春之月……句者畢出 萌者盡達]” 한 데서 온 말인데, 구(句)는 초목(草木)의 싹이 막 나올 때 굽어 있는 상태를 말하고, 맹은 싹이 조금 더 나와서 곧게 펴진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음양 한서에 따른 초목의 성장 진행의 상태를 읊은 것이다.
[주D-003]건도(乾道)와 …… 문(門)이로다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주역은 지극한 것이로다. 대체로 주역은 성인이 덕을 높이고 업을 넓히는 바이니, 지혜는 높이는 것이요, 예는 낮추는 것이라, 높이는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요, 낮추는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다. 하늘과 땅이 위치를 베풀어놓음으로써 주역이 그 가운데 행해지는 것이니, 이루어진 본성을 잘 보존하는 것이 도의의 문이다.[易其至矣乎 夫易聖人所以崇德而廣業也 知崇禮卑 崇效天 卑法地 天地設位而易行乎其中矣 成性存存 道義之門]” 한 데서 온 말이다. 《周易繫辭上》
[주D-004]진(秦)나라 잿더미 : 진 시황(秦始皇)이 저지른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말한다.
[주D-005]어진 이 기르는 말 : 《주 역》 대축괘(大畜卦)의 괘사(卦辭)에, “집에서 먹지 않으면 길하다.[不家食吉]” 하였고, 단사(彖辭)에, “집에서 먹지 않으면 길하다는 것은 어진 이를 기르는 것이다.[不家食吉 養賢也]” 하였고, 이괘(頤卦)의 단사(彖辭)에는, “천지는 만물을 기르고, 성인은 어진 이를 길러서 만민에 미치게 한다.[天地養萬物 聖人養賢以及萬民]” 하였다.
[주D-006]기미를 …… 있다네 : 한 (漢)나라 때 초 원왕(楚元王)이 글을 좋아하여 일찍이 노(魯)나라의 신공(申公)ㆍ목생(穆生)ㆍ백생(白生) 등 세 선비와 더불어 부구백(浮丘伯)에게서 시(詩)를 배웠다. 초 원왕이 즉위해서는 신공ㆍ목공ㆍ백공 세 사람을 중대부(中大夫)로 삼았던바, 그중 목생은 술을 마시지 못하므로, 원왕이 주연(酒宴)을 베풀 때마다 항상 목생을 위하여 단순[醴]을 준비했고, 그 후 원왕의 아들 이왕(夷王)과 손자 왕무(王武)가 즉위해서도 항상 단술을 준비했는데, 뒤에 단술 준비하는 것을 한 번 잊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목생이 물러가서 말하기를, “떠나야겠다. 단술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왕의 뜻이 태만해진 탓이니, 지금 떠나지 않으면 초인(楚人)이 장차 내 목에 칼을 씌워 저잣거리에서 조리를 돌릴 것이다.” 하고, 마침내 병을 칭탁하고 떠나 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7]당우(唐虞)의 …… 제거했는데 : 공자(孔子)가 《서경(書經)》을 산정(刪定)함에 있어 번잡한 것들을 모두 산삭하고 요전(堯典)ㆍ순전(舜典)으로부터 시작하여 정리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8]공왕(共王)은 …… 발견하였고 : 한 무제(漢武帝) 말기에 노 공왕(魯共王)이 궁실(宮室)을 넓히기 위해 공자의 구택(舊宅)을 헐다가 갑자기 종경(鐘磬)과 금슬(琴瑟) 소리가 들리자, 감히 다시 헐지 못하고, 그 벽 안에서 《고문상서(古文尙書)》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고문 경전(古文經傳)을 발견한 일을 가리킨다.
[주D-009]채씨(蔡氏)는 …… 전수받았네 : 채씨는 곧 주희(朱熹)의 문인(門人)인 채침(蔡沈)을 가리키는데, 그가 특히 스승의 명을 받아서 《서경집전(書經集傳)》을 지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10]봉황이 …… 추니 : 《서경》 익직(益稷)에, “생과 용을 간간이 쓰니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고, 소소를 아홉 번 연주하니 봉황도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笙鏞以間 鳥獸蹌蹌 簫韶九成 鳳凰來儀]”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1]다만 …… 거로세 : 《서경》에서는 특히 고대(古代) 종묘(宗廟)의 주기(酒器) 가운데 준(尊)이 기록되지 않았음을 이른 말이다.
[주D-012]진정(眞情)이 …… 것인데 : 《시경(詩經)》의 시들이 모두 시인(詩人)의 진정에서 느껴 발로된 것이라 하여 이른 말이다.
[주D-013]생각에 사특함 없다 : 《시 경》 노송(魯頌) 경(駉)에, “생각에 사특함이 없으니, 말이 잘 달리게 하길 생각하도다.[思無邪 思馬斯徂]”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는 본디 노 희공(魯僖公)의 덕을 찬양한 노래인데, 공자가 일찍이 이르기를, “《시경》 삼백 편 중에 한마디로 덮을 수 있는 말이 있으니,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였다.
[주D-014]희준(犧尊) : 고대(古代)에 종묘(宗廟)의 제사 때 쓰던 소의 형상으로 만든 술 그릇을 말한다.
[주D-015]노사(魯史)는 …… 기록이라 : 노 사는 곧 공자가 노나라의 기존 역사에 필삭(筆削)을 가하여 새로 정리한 《춘추(春秋)》를 가리키는데, 송(宋)나라 때 왕안석(王安石)은 《춘추》를 학관(學官)에 배열시키지 못하게 하고, 이를 헐뜯어 “여러 조각이 난 조정의 기록이다.[斷爛朝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6]기린 …… 놓았고 : 노 (魯)나라 애공(哀公) 14년 봄에 서쪽으로 사냥을 나가서 기린을 얻자, 공자가 성왕(聖王)이 없는 세상에 인수(仁獸)인 기린이 나타나서 잡힌 것을 매우 마음 아프게 여겨 “서쪽으로 사냥하여 기린을 얻다.[西狩獲麟]”라는 말로 《춘추》의 집필(執筆)을 끝냈던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17]이적(夷狄) …… 내쫓았네 : 양 웅(揚雄)의 《법언(法言)》에, “공자의 문하에서 이단의 글을 읽는 자가 있으면 쫓아 버리지만, 오랑캐 땅에서 이단의 글을 읽는 자가 있다면 그를 받아들이겠다.[在門牆則摩之在夷狄則進之]” 한 데서 온 말인데, 오랑캐 땅에 있는 자라면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곧 그는 가르쳐 인도할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18]한마디 도움 : 공 자가 노나라 역사에 필삭(筆削)을 가하여 《춘추》를 저술함에 있어 그 문장이 너무나 훌륭하였으므로, 공자의 제자 가운데 특히 문학(文學)으로 이름이 높았던 자하(子夏)도 공자의 문장에 감히 한마디 말도 도울 수가 없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67 仲尼弟子列傳》
[주D-019]여러 전 : 공자의 《춘추》를 해석한 《좌씨전(左氏傳)》ㆍ《공양전(公羊傳)》ㆍ《곡량전(穀梁傳)》 등 삼전(三傳)을 가리킨다.
[주D-020]옥천(玉川)은 …… 받았었다오 : 옥 천은 당(唐)나라 때 시인으로 호가 옥천자(玉川子)인 노동(盧仝)을 가리키는데, 한유(韓愈)의 〈기노동(寄盧仝)〉 시에, “선생의 사업은 헤아릴 수도 없는데, 오직 법률로써 스스로 자기 몸 단속했네. 춘추 삼전은 다 시렁에 올려 폐기하고, 춘추경만을 가지고 시종을 연구하였네.[先生事業不可量 惟用法律自繩己 春秋三傳束高閣 獨抱遺經究終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21]장지화(張志和)의 시(詩) : 장지화는 당(唐)나라 때의 은사(隱士)인데, 그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삿갓 쓰고, 푸른 도롱이 입었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굳이 돌아갈 것 없네.[靑篛笠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 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22]감호(鑑湖)를 하사하면 : 감호는 호수 이름인데, 당 현종(唐玄宗) 개원(開元) 연간에 비서감(祕書監) 하지장(賀知章)이 치사(致仕)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현종이 그에게 특별히 감호 한 굽이를 하사했던 데서 온 말이다.
밤에 앉아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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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지니 뭇 까마귀는 숲에 이미 가득한데 / 日落群鴉已滿林
천애의 외로운 학은 저문 구름이 깊어라 / 天涯獨鶴暮雲深
평생에 등잔 앞의 담화를 몹시 좋아하건만 / 平生酷愛靑燈話
노병으로 친구들과 다시 모일 길이 없구려 / 老病無從更盍簪
남은 눈 석양 아래 냇물은 숲 둘러 흐르고 / 殘雪斜陽水遶林
높은 산 깎아지른 절벽은 깊기도 하여라 / 危峯削立斷崖深
춘풍이 불거든 다시 나란히 말 타고 가서 / 春風更約聯鞍去
들에 핀 꽃 꺾어서 머리 위에 꽂아나 보세 / 折得野花頭上簪
얽매인 정 모두 잊고 도림에 들어갔거니 / 情執都忘入道林
탁 트임과 깊숙함을 그 누가 구분하리요 / 誰分洞達與幽深
전일과 같은 괴로운 생활을 스스로 꺼리어 / 自嫌苦澁如前日
임금이 하사한 꽃도 머리에 꽂지 않는다네 / 君賜花枝亦不簪
[주D-001]임금이 …… 않는다네 : 성 격이 매우 청백하여 화려한 것을 몸에 붙이기 싫어함을 뜻한다. 송(宋)나라의 명상(名相) 사마광(司馬光)은 어려서부터 화려한 의복 입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여겼는데, 뒤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희연(聞喜宴)을 베푸는 자리에서도 유독 사마광만이 어사화(御賜花)를 꽂지 않으므로, 동년(同年)이 말하기를, “임금이 하사한 꽃은 꽂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하자, 그제야 사마광이 처음으로 꽃 한 가지를 머리에 꽂아보았다고 한다.
염동정(廉東亭)과 함께 현릉(玄陵)을 참배하고 밤에 돌아오면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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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차탁용의 은혜가 무리에서 뛰어났으니 / 不次恩榮迥出群
근래의 슬픈 감정을 다시 어떻게 말하랴 / 近來悲感復何云
실바람에 수양버들은 봄비를 머금었고 / 風輕細柳含春雨
눈 다한 먼 산은 저문 구름에 막히었네 / 雪盡遙山隔暮雲
내 스스로 꺾였으니 저 재상 어디에 쓸꼬 / 我自顚隮焉彼相
하늘은 한창 간사하게 사문을 망치는구나 / 天方廻遹喪斯文
향 사르고 강신주 부어 쌍쌍이 절 올리고 / 焚香澆酒雙雙拜
말을 타고 돌아오니 날은 또 황혼이로세 / 馬上歸來日又曛
[주D-001]저 …… 쓸꼬 : 공 자(孔子)의 제자 염유(冉有)가 계씨(季氏) 밑에서 벼슬을 하면서 계씨를 도와 노(魯)나라의 부용국인 전유(顓臾)를 치려고 하자, 공자가 염유에게 이르기를, “위태로운데도 지켜주지 않고 넘어지려 해도 붙들어주지 않는다면, 장차 그런 보상(輔相)을 어디에 쓰겠느냐.[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矣]”라고 하여, 그에게 계씨를 올바르게 보필하지 못함을 나무란 데서 온 말이다.
국청사(國淸寺)의 비문(碑文)을 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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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서리에 쬐고 닳고 이끼가 끼었지만 / 日炙霜磨剝綠苔
예천의 큰 필법은 천태산을 비추누나 / 醴泉大筆照天台
문전의 거마들은 베짜는 북처럼 분잡한데 / 門前車騎紛如織
아손인 우리들만 머리 거듭 돌리네그려 / 只有兒孫首重回
동정(東亭)은 예천(醴泉)의 외손(外孫)이고, 나는 예천의 손서(孫壻)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1]예천(醴泉)의 …… 비추누나 : 예 천은 고려 때에 벼슬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르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진 권한공(權漢功)을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국청비문(國淸碑文)을 썼는데, 중국의 천태산(天台山)에도 명찰(名刹)인 국청사(國淸寺)가 있었으므로 여기에 비유한 것이다.
목암(牧菴)의 시권(詩卷)에 제(題)하다. 이름은 각겸(覺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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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낮은 산 깊은 곳에 길이 비껴 났는데 / 亂山深處路橫斜
해 저물어 소 떼 양 떼 보니 절로 인가를 알겠네 / 日暮牛羊自識家
여기가 바로 노옹의 참다운 경계일러라 / 此是老翁眞境界
맑은 연기 향기로운 풀이 하늘에 닿았구려 / 淡煙芳草接天涯
자 식들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왔는데, 나는 저녁밥 먹은 것이 한창 배가 불러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술과 음식을 가지고 이 밀직(李密直) 댁으로 갔더니, 마침 공(公) 또한 홀로 앉아 있었으므로, 흔연히 서로 권하여 마시고 달밤에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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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늙은이는 진정 초승달처럼 허약한데 / 牧老眞同六日蟾
병든 몸 억지로 부축하고 광암사를 갔노니 / 扶衰力疾向光巖
정중히 초대한 자리엔 바람이 모자에 불었고 -염상(廉相)을 말한 것이다. / 丁寧招喚風吹帽
우연히 만나 즐길 땐 달이 소매에 가득하네 -이상(李相)을 말한 것이다. / 邂逅歡娛月滿衫
본디 나의 생활은 담박함을 달게 여기는데 / 自是吾生甘淡泊
누가 시고 짠 세상맛을 많이 보게 했는고 / 誰敎世味足酸醎
우리 함께 저 무공파를 이어 잔뜩 취해서 / 不妨共繼無功派
입을 봉한 듯 말 잊는 게 해롭지 않을 걸세 / 泥醉忘言口似緘
[주D-001]무공파(無功派)를 …… 취해서 : 당 (唐)나라 때 은사(隱士) 왕적(王績)의 자가 무공(無功)인데, 그는 천성이 술을 매우 좋아하여 일찍이 두강(杜康)과 의적(儀狄) 이래 술을 잘한 사람들을 모아서 보(譜)를 만들고 또 〈취향기(醉鄕記)〉를 지었으므로, 여기서는 곧 왕적처럼 술이나 마시고 취하자는 뜻으로 한 말이다.
이튿날에 또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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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암사에 머리 돌리니 아득하기만 하여라 / 回首光巖轉渺茫
황교 위에 달리는 기마는 석양빛 띠었네 / 黃橋歸騎帶斜陽
덧없는 인생 한 번 취하기란 진정 어려워 / 浮生一醉眞難得
늙도록 외로이 읊으며 마음만 상할 뿐이네 / 垂老孤吟祗自傷
산색은 티끌 떨추어라 봄눈이 다 녹았고 / 山色落塵春雪盡
달빛은 물과 같아 새벽하늘 하도 멀구나 / 月華如水曉天長
피곤한 몸 실컷 자니 청신한 맛 넘치어라 / 身疲睡足多淸味
이게 다 임금 은혠데 감히 행여 잊을쏜가 / 摠是君恩敢或忘
적적한 광암사에 또 한 봄은 찾아왔건만 / 寂寂光巖又一春
되돌아오매 하루 종일 만나는 이 적어라 / 歸來盡日少逢人
골짝에 흐르는 물은 동해를 따라 내려가고 / 洞中流水趨東海
현릉 아래 주위 산들은 북극성을 옹위하네 / 陵下回峯拱北辰
조정 가득한 고관들은 환암을 다 알거니와 / 靑紫滿朝知幻叟
요나라 사신은 은주를 부처에게 바치누나 / 銀朱獻佛有遼賓
빈사와 선탑은 거듭된 윤회 속의 일이거니 / 鬢絲禪榻多生事
어찌 전신과 후신을 물을 것이 있겠는가 / 豈問前身與後身
이날 요사(遼使)가 은주(銀朱)를 보시하였다.
세인들은 모두 분분하게 급히 달리건만 / 世上紛紛疾走多
나 홀로 천천히 걸으니 참으로 한가롭네 / 獨行緩步儘婆娑
누가 알랴 풍월 실어 노래 부르는 곳이 / 誰知風月謳歌處
여기가 바로 천지간의 안락한 집인 줄을 / 自是乾坤安樂窩
도를 행해온 연래에는 냇물을 탄식하고 / 體道年來嘆川水
늙어 가매 기쁜 낯은 뜰 나무에 부치었네 / 怡顔老去寄庭柯
나쁜 평판은 개미에 불과할 뿐이거니 / 譏評不過蚍蜉耳
견백동이의 궤변이 나를 어찌할쏜가 / 堅白異同如我何
나의 여생을 흰 구름에 부치려 하는데 / 欲把殘生寄白雲
물거품 같은 세계에 또 석양이 되었네 / 浮漚世界又斜曛
목옹은 아직 동서를 분주하고 있거니와 / 牧翁尙作東西走
환옹이야 어찌 안과 밖을 구분하리오 / 幻老寧敎內外分
조용히 앉으면 심향이 천지에 가득 차고 / 靜坐心香滿天地
높이 읊으면 시격이 속진을 벗어난지라 / 高吟句格出塵氛
두 길의 고요함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 兩途寂寂如流水
서로 마주하니 절로 무리에 초월하누나 / 相對悠然自離群
[주D-001]은주(銀朱) : 주사(朱砂)의 일종이다.
[주D-002]빈사(鬢絲)와 선탑(禪榻) : 빈 사는 흰 귀밑머리를 말하고, 선탑은 선승(禪僧)의 좌선(坐禪)하는 걸상을 말하는데, 두목(杜牧)이 늘그막에 젊은 시절을 회상하여 쓴 〈제선원(題禪院)〉 시에, “큰 술잔 한 번 저어 가득한 잔 텅 비웠더니, 십 년 청춘이 공도를 저버리지 않는구려. 오늘은 흰 귀밑털이 선탑 가에 이르니, 차 연기가 낙화 바람에 가벼이 날리는 듯하구나.[觥船一棹百分空 十歲靑春不負公 今日鬢絲禪榻畔 茶煙輕颺落花風]” 한 데서 온 말로, 즉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한 것이다.
[주D-003]도(道)를 …… 탄식하고 : 공 자가 일찍이 냇가에서 흐르는 물을 보고 이르기를,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도다.[逝者如斯夫 不舍晝夜]” 한 데서 온 말인데, 잠시도 쉬지 않고 오고 가고 하는 것이 바로 도체(道體)의 본연(本然)이기 때문에, 이른 말이었다. 《論語 子罕》
[주D-004]늙어 가매 …… 부치었네 :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술병과 잔 가져다 스스로 따라 마시고,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얼굴을 펴노라.[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나쁜 …… 뿐이거니 : 한유(韓愈)의 〈조장적(調張籍)〉 시에, “개미가 큰 나무를 흔들려고 하니, 자기 역량 모르는 게 가소롭구나.[蚍蜉撼大樹可笑不自量]”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심향(心香) : 불교 용어로, 마음의 정성을 공불(供佛)하는 분향(焚香)에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거울을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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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바탕은 원래 서로 막히건만 / 硬質元相礙
맑은 마음은 본디 절로 신령하여라 / 淸心故自靈
기가 닿으면 흔적이 생긴 듯하지만 / 氣侵如有跡
물건이 지나면 형체가 어찌 남으랴 / 物過肯留形
내 머리 흰 것만을 기뻐할 뿐이요 / 祗喜吾頭白
반겨주는 속안은 만나기 어렵구나 / 難逢俗眼靑
가련한 건 수시로 안면을 돌리면은 / 可憐時背面
밝던 것이 문득 깜깜해지는 거로세 / 皎皎却冥冥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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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발이 해외로 전해질 줄 누가 알았으랴 / 衣鉢誰知海外傳
규재의 한마디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 圭齋一語尙琅然
근래에 물건값이 모두 뛰어올랐는데도 / 邇來物價皆翔貴
유독 나의 문장만 값을 받지 못하는구나 / 獨我文章不直錢
중원에는 호걸이 예로부터 많았거니와 / 中原豪傑古來多
운명과 시기에는 어쩔 수가 없었는데 / 命也時哉不奈何
유독 기러기만은 스스로 멀리 날거니 / 獨有冥鴻飛自遠
한쪽 막힌 탕의 그물엘 들어가려 하랴 / 肯從一面入湯羅
반산의 절의와 문장은 / 半山節義與文章
안목이 높아 천지간에 홀로 우뚝했는데 / 高視乾坤獨擅場
다만 이 맑은 물 밑에 진흙이 깔려 있어 / 只是水淸泥在底
우연히 한 번 흔들매 광채 없이 흐려졌네 / 偶因一擾濁無光
[주D-001]규재(圭齋)의 한마디 : 규 재는 원(元)나라의 학자로 한림학사 승지(翰林學士承旨)를 지낸 구양현(歐陽玄)의 호인데, 공민왕(恭愍王) 3년(1354)에 저자가 원나라에 가서 회시(會試)에 응시했던바, 당시 독권관(讀券官)이던 구양현이 저자의 대책문(對策文)을 보고는 대단히 칭상(稱賞)하면서 이갑(二甲) 제이명(第二名)으로 발탁하고 말하기를, “도통(道統)이 해외(海外)로 갔다.”고 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한쪽 …… 그물 : 탕 (湯) 임금이 밖에 나갔다가, 어떤 사람이 그물을 사면(四面)으로 쳐 놓고 천지 사방의 금수(禽獸)들을 모두 자기 그물로 들어오게 해 달라고 축원하는 것을 보고, 탕 임금이 그 그물의 삼면(三面)을 터버리고 다시 축원하기를, “왼쪽으로 갈 놈은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갈 놈은 오른쪽으로 가고, 내 명을 따르지 않는 놈은 내 그물로 들어오너라.”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반산(半山) : 북 송(北宋) 시대 정치가요 문장가였던 왕안석(王安石)의 호이다. 그는 신종(神宗) 때에 재상이 되어 정치를 개혁하고자 하여 청묘법(靑苗法) 등 여러 가지 신법(新法)을 일으켜 시행하였으나, 여러 명신(名臣)들의 배척을 받아 끝내 효력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찰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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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한 찹쌀밥을 둥글게 뚤뚤 뭉쳐라 / 粘米如膠結作團
생꿀로 버무리면 빛깔이 알록달록하고 / 調來崖蜜色爛斑
여기에 다시 대추 밤 잣을 곁들이면은 / 更敎棗栗幷松子
입에 달고 맛있음을 더욱 느끼게 하네 / 助發甛甘齒舌間
삼한 땅엔 오늘 밤에 달이 한창 둥근데 / 三韓今夜月團團
구름이 달빛 얼룩지울까 가장 걱정일세 / 最怕微雲作錦斑
이는 농가에서 풍년을 점치는 것일 뿐 / 只爲農家占歲稔
미인 비추는 은촛불이야 어찌 없을쏜가 / 豈無銀燭照雲鬟
이상 두 수의 시는 모두 우리 동방(東方)의 풍속을 읊은 것이어서 중국 사람은 알 수가 없으니, 후일에 중원(中原)의 친구가 내 시를 읽어보면 의당 일소(一笑)에 부칠 것이다.
한유항(韓柳巷)이 장차 광암사에 가려고 나에게 와서 박 첨서(朴簽書)와 함께 가겠다고 고하였다. 그런데 나는 염 장원(廉壯元)과 함께 이미 가서 행례(行禮)하였으므로, 이 시를 지어 그를 희롱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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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사르고 재배하니 눈이 캄캄하여라 / 再拜焚香眼欲昏
사방 산의 푸른 솔은 절을 에워싸았네 / 四山松翠擁祇園
환옹이 만일 공이 왜 늦었냐고 묻거든 / 幻翁若問公何晚
우리들이 장원에게 양보했다 말하게나 / 報道吾曹讓壯元
잡영(雜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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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용봉 고기에 정신없이 취하는데 / 烹龍炰鳳醉昏昏
나 홀로 샘물 길어다 채원에 물을 주네 / 獨挹寒泉灌菜園
필경은 양을 잃었으니 냉소할 만하여라 / 畢竟亡羊堪冷笑
오늘은 명나라가 원나라를 대신했구려 / 帝明今日代皇元
이상은 스스로 상심한 말이다.
남은 생은 읊조림으로 조석을 보내노니 / 餘生吟嘯送朝昏
높은 재주로 토원 향하길 어찌 생각하랴 / 肯慕高才向兔園
다만 이 선왕의 은혜가 뼈에 사무치기에 / 只是先王恩刻骨
쓸데없는 생각이 때로 백성에 미친다네 / 有時閑念到黎元
이상은 본국(本國)을 두고 한 말이다.
사립문 반쯤 닫힌 황혼 녘 달빛 아래 / 半扃柴戶月黃昏
팽택 영은 돌아와 날로 정원을 거닐면서 / 彭澤歸來日涉園
여산을 슬피 바라보며 눈물만 뿌리노니 / 悵望驪山空洒淚
하늘 높이 솟았어라 조원각이 우뚝하네 / 倚天高閤聳朝元
이상은 연도(燕都)를 두고 한 말이다.
기에는 청명하고 혼탁함이 있거니와 / 氣有淸明與濁昏
하늘은 만물을 포함한 하나의 명원일세 / 天包萬物一名園
봄가을이 왕래하면서 영췌를 다투나니 / 春來秋去爭榮悴
정영은 본원으로 돌아감을 믿어야 하리 / 須信精英返本元
이상은 기화(氣化)를 두고 한 말이다.
[주D-001]필경은 양을 잃었으니 : 옛날에 양자(楊子)의 이웃 사람이 양(羊)을 잃어버리고는 그 무리들을 이끌고 함께 양을 쫓았으나, 갈림길이 많아서 끝내 양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단순히 나라를 잃은 데에 비유했을 뿐이다.
[주D-002]높은 …… 향하길 : 토원(兔園)은 한(漢)나라 때 양 효문왕(梁孝文王)의 원명(園名)인데,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효문왕의 부름을 받고 토원에 가서 시부(詩賦)를 짓고 연음(宴飮)했던 일을 가리킨다.
[주D-003]조원각(朝元閣) : 조 원각은 당(唐)나라 때 여산의 화청궁(華淸宮) 안에 있던 각명(閣名)이다. 현종(玄宗)이 특히 이곳을 자주 찾았는데, 뒤에 현종은 이 조원각에 도가(道家)의 현원황제(玄元皇帝)가 강림(降臨)했다 하여 강성각(降聖閣)으로 이름을 바꿨다.
두 사람은 나의 정해년 동방(同榜)이기 때문에 인하여 이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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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 급제자 중에 그 몇이나 남았는고 / 丁亥科中有幾人
추밀원의 학사로 두 명신이 있을 뿐이네 / 鴻樞學士兩名臣
가정의 우마주는 쇠하기 이를 데 없으니 / 稼亭牛馬走衰甚
다시 말 나란히 타고 봄 구경가길 기약하세 / 更約聯鞍尋早春
[주D-001]가정(稼亭)의 우마주(牛馬走) : 가 정은 목은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의 호이고, 우마주는 우마를 관장하는 하인(下人)이란 뜻으로, 즉 자신을 가리키는 겸칭(謙稱)인데, 한(漢)나라 사마천(司馬遷)이 일찍이 자기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보낸 답서(答書)의 서두(書頭)에 자기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직명인 태사공(太史公)을 들어 ‘태사공 우마주(太史公牛馬走)’라고 칭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옛일을 감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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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은 동해를 향하여 흐르는데 / 川流向東海
검은 구름은 중천을 가리누나 / 雲密蔽中霄
일찍이 가랑비 뿌린단 말 들었고 / 毛雨曾聞洒
이미 봉성 사라짐을 기뻐하노라 / 蓬星已喜消
제공들은 바야흐로 현달하는데 / 諸公方袞袞
화주는 참으로 요원하기만 하네 / 華冑信遙遙
낙직이며 중화의 송을 / 樂職中和頌
누가 능히 성조에 바칠런고 / 誰能獻盛朝
전막은 푸른 바다에 임하였고 / 氈幕臨蒼海
종산은 높은 하늘에 닿았으니 / 鍾山接絳霄
점차 화기가 서로 합하게 하면 / 漸敎和氣合
응당 화의 조짐이 사라지리라 / 應使禍胎消
초한의 분쟁은 괴롭기만 하였고 / 楚漢紛爭苦
요순의 예의는 요원하기만 해라 / 唐虞揖讓遙
어느 때나 천하가 통일이 되어 / 何時天下一
월상씨의 내조를 또 보게 될꼬 / 踵跡越裳朝
영지는 누런 땅에서 나오고 / 靈芝出黃壤
감로는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라 / 甘露墜玄霄
북극은 얼음이 풀리기 어렵고 / 北極氷難釋
남쪽은 눈이 이내 녹아버리네 / 南天雪旋消
감통하는 기틀은 절로 은밀하지만 / 感通機自密
다스리는 형세는 왜 그리 요원한고 / 疆理勢何遙
하늘 뜻은 인력으로 될 바 아니니 / 天意非人力
주거가 정히 조정으로 모여들리라 / 舟車政會朝
[주D-001]봉성(蓬星) : 요성(妖星)의 이름인데, 이 별이 나타났다 하면 흉년(凶年) 등의 재변이 속출한다고 한다.
[주D-002]화주(華冑)는 …… 하네 : 자 칭 명문(名門)의 후예라고 말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화주는 명문의 후예라는 뜻인데, 당(唐)나라 하창우(何昌寓)가 이부 상서(吏部尙書)로 있을 적에 민(閔)씨 성을 가진 사람이 찾아와서 벼슬을 구하므로, 하창우가 그에게 누구의 후예냐고 물으니, 그가 자건(子騫)의 후예라고 대답하자, 하창우가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요원한 명인의 후예로다.[遙遙華冑]”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낙직(樂職)이며 중화(中和)의 송(頌)을 : 한(漢)나라 때 익주 자사(益州刺史) 왕양(王襄)이 왕포(王褒)를 시켜 한나라의 덕을 칭송하는 중화(中和)ㆍ낙직(樂職)ㆍ선포(宣布) 등의 송시(頌詩)를 짓게 하고 동자(童子)들을 시켜서 이를 노래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전막(氈幕) : 모전(毛氈)으로 만든 장막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북쪽 오랑캐들의 옥사(屋舍)를 이른 말이다.
[주D-005]종산(鍾山) : 곤륜산(崑崙山)의 별칭이다.
[주D-006]월상씨(越裳氏)의 내조(來朝) : 교지(交趾)의 남쪽에 월상국(越裳國)이 있었는데,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도와 섭정(攝政)한 지 6년 만에 천하가 태평해지자, 월상국의 임금이 흰 꿩을 가지고 중역(重譯)을 거쳐 주(周)나라에 내조(來朝)했던 일을 말한다.
[주D-007]주거(舟車)가 …… 모여들리라 : 지 극한 성인(聖人)이 천하를 다스리면, 그 명성이 만맥(蠻貊)에게까지 미쳐서, 배와 수레가 미치는 곳, 인력(人力)이 통하는 곳, 하늘이 덮어 주는 곳, 땅이 실어 주는 곳, 일월(日月)이 비추는 곳, 상로(霜露)가 떨어지는 곳에 사는 모든 사람은 성인을 높이고 친애하지 않을 자가 없다는 데서 온 말로, 성왕(聖王)이 천하를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中庸章句 第31章》
이 이산(李伊山)이 우무[牛毛]를 보내오고 또 내 시운에 화답해 준 데에 받들어 사례하는 뜻에서 억지로 저속한 말을 엮으면서, 장차 서로 왕래하는 즐거움이 있게 된 것은 스스로 기쁘지만, 그 안정(安靜)을 구하는 데 있어서는 또한 감히 기필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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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은은 깊기가 뼈에 사무치고 / 國恩深到骨
도학은 세밀하기 터럭 같은데 / 道學細如毛
자네는 곤궁해도 마음이 즐겁고 / 子困心猶樂
나는 노쇠하여 지위가 높아졌네 / 吾衰位已高
높은 산은 척촌을 서로 다투고 / 山崖爭尺寸
바닷가는 온통 쑥대밭뿐인데 / 海岸盡蓬蒿
서로 왕래하기 쉬움은 기쁘지만 / 但喜過從易
소란스러움은 면할 길이 없으리 / 無緣免驛騷
16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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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조물주는 절로 무정한 것이라 / 由來造物自無情
어제는 잔뜩 흐렸다 오늘은 활짝 개었네 / 昨日濃陰今日晴
풍백이 다만 일을 요량하는 게 더디어서 / 風伯祗應遲見事
밤중에야 불어 헤쳐 달빛을 보내왔으리 / 夜深吹送月華明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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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추위는 차갑고 귀밑머리는 성근데 / 春寒惻惻鬢毛疏
남창에 조용히 앉으니 흥취가 넘치누나 / 靜坐南窓興有餘
문 닫고 있자니 절로 세배 오는 이 없어 / 閉戶自無新歲謁
붓 빼들고 혹 친구에게 회답이나 쓰노니 / 抽毫或答故人書
일생의 궁벽한 땅엔 봄기운이 발동하고 / 百年地僻春光動
오악엔 구름 걷혀 햇볕이 화창하여라 / 五嶽雲開日色舒
합당한 건 내 여생에 성덕이나 노래하며 / 只合殘生歌聖德
성은 깊은 가운데 시골집에 누웠음일세 / 九天雨露臥田廬
연래에 친구들은 점차 서로 멀어지고 / 年來舊故漸相疏
파리한 몸 지탱하여 병석에 누웠노라니 / 瘦骨支持臥病餘
죽은 뒤엔 감히 천자의 뇌사를 기대하랴 / 身後敢期千字誄
뱃속엔 공연히 오거의 책을 실었네그려 / 腹中空載五車書
덕장의 북산이문은 자주로 등장하나니 / 德璋北嶽移頻勤
정절의 동쪽 언덕엔 홀로 휘파람 부르리 / 靖節東皐嘯獨舒
회상컨대 남양은 지금 적적하기만 하니 / 回首南陽今寂寂
누가 공명의 초려를 이어서 일으킬런고 / 何人繼起孔明廬
나는 오래전부터 내 거칢을 좋아하노니 / 吾生久矣愛吾疏
한 번 변하면 남긴 음식도 남이 안 먹으리 / 一變人將不食餘
소싯적에 발명한 것은 대학에서 나왔고 / 小日發明從大學
늘그막에 연구한 것은 뭇 서책을 통하였네 / 老年考索有群書
마음은 고요한 물처럼 절로 맑기만 하고 / 心如止水自澄澈
몸은 뜬구름과 함께 거두고 펴고 하노라 / 身與浮雲時卷舒
병이 많아 사직하는 건 보통의 예이거니와 / 多病乞歸常例耳
용문산 아래에 서재가 또한 있지 않은가 / 龍門山下有精廬
[주D-001]뇌사(誄辭) : 죽은 사람의 생전의 공덕(功德)을 칭송하는 말이다.
[주D-002]덕장(德璋)의 …… 등장하나니 : 자 신이 일찍 벼슬길에서 은퇴하지 못했음을 한탄한 말이다. 덕장은 남제(南齊) 때의 문인(文人)인 공치규(孔稚珪)의 자인데, 그가 일찍이 북산(北山)에 은거했다가 뒤에 훼절하여 벼슬길에 나간 주옹(周顒)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서 맹렬히 기롱하고 풍자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정절(靖節)의 …… 부르리 : 정절은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사시(私諡)이다. 그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동쪽 언덕에 올라 길이 휘파람 불고, 맑은 물에 임하여 시를 짓기도 한다.[登東皐以舒嘯臨淸流而賦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남양(南陽)은 …… 일으킬런고 : 공명(孔明)은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의 자로, 그가 소열제(昭烈帝)를 만나기 전에 일찍이 고향인 남양의 초려(草廬)에 은거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5]한 번 …… 먹으리 : 남들로부터 인품을 매우 천시당함을 의미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즉사(卽事)를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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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뜻 농후함이 산빛보다 더 짙어라 / 山色不如歸意濃
우뚝 앉아 읊노라니 해가 벌써 석양일세 / 沈吟兀坐日高舂
가을바람엔 일찍이 장두초를 읊었거니와 / 秋風曾詠牆頭草
추운 겨울엔 항상 계곡의 솔을 생각하노라 / 晚歲常懷澗底松
채택이 불우했을 땐 당거가 비웃었지만 / 蔡澤呻吟唐擧笑
굴원은 쫓겨나서 초사의 우두머리 되었네 / 屈原放逐楚詞宗
곤궁한 생활에 절로 춘풍 화기가 있긴 하나 / 簞瓢自有春和氣
다만 정미처가 아직 한 겹 막힌 게 한이로다 / 只恨精微尙一重
애들은 천진난만하게 한창 콜콜 자는데 / 衆雛爛熳睡方濃
아침부터 밭갈고 밤늦도록 방아를 찧네 / 直自朝耕到夜舂
울 밑엔 어찌 국화 심을 줄을 알았으랴만 / 籬落何曾知種菊
산림처사도 원랜 솔 심는 걸 안 배운다오 / 山林元不學栽松
번화의 물욕은 아예 상대할 바 아니지만 / 繁華物欲非渠敵
박실한 가풍이야 바로 우리 종족이라네 / 朴實家風是我宗
조만간에 맹약 지켜 함께 담소 나누려니 / 早晚尋盟共談笑
돌아가는 길엔 운수가 멀리 겹겹이리라 / 歸途雲樹遠重重
신기가 화평하니 흥미 또한 진진하여라 / 神氣和平興味濃
청풍과 옥수는 저들끼리 서로 부딪치네 / 淸風玉樹自相舂
문장은 손 가는 대로 썼다 이어 불태우고 / 文章信手仍焚草
작록엔 마음 없으나 또 소나무를 꿈꾸네 / 爵祿無心更夢松
진의 산간처럼 잔뜩 취함도 무방커니와 / 泥醉何妨晉山簡
높은 명성은 한의 임종을 잇고만 싶어라 / 高名欲繼漢林宗
황려의 봄물은 포도주 빛처럼 새파란데 / 黃驪春水葡萄綠
강가의 긴 절벽은 그 몇 겹이나 되는고 / 石壁緣江知幾重
[주D-001]가을바람엔 …… 읊었거니와 : 장 두초(牆頭草)란 담장 꼭대기에 난 풀을 가리키는데, 주견이 없이 오로지 세정(世情)에 따라 수시로 이러저리 태도를 바꾸는 사람을 비유한 것으로, 양빈(梁斌)의 《번신기사(翻身紀事)》에, “지금 세상 사람들의 태도는 마치 담장 머리의 풀 하나가 바람이 불면 양쪽으로 넘어지는 것과 같아서[牆頭一棵草 風吹兩邊倒] 오로지 몸 보전에만 급급하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저자가 앞서 〈영장상초(詠牆上草)〉 시를 지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추운 …… 생각하노라 : 계 곡의 솔[澗底松]이란 재덕(才德)은 높은데도 관위(官位)는 낮은 사람을 비유한 것으로, 진(晉)나라 좌사(左思)의 〈영사시(詠史詩)〉에, “무성한 건 계곡 밑의 소나무요, 축 늘어진 건 산꼭대기의 어린 싹인데, 저 한 치쯤 되는 줄기로, 이 백 척 소나무 가지를 덮는구나.[鬱鬱澗底松離離山上苗 以彼徑寸莖 蔭此百尺條]”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채택(蔡澤)이 …… 비웃었지만 : 전 국 시대 연(燕)나라의 변사(辯士) 채택이 불우했던 시절에 당시 상(相)을 잘 본다고 이름이 높았던 당거(唐擧)를 찾아가서 상을 봐달라고 요청하자, 당거가 채택의 여러 가지 기괴(奇怪)한 상모(狀貌)를 찬찬히 뜯어보고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성인(聖人)은 상에 관계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마 선생이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가 싶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굴원(屈原)은 …… 되었네 : 전 국 시대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이 소인(小人)들의 참소에 의해 조정에서 쫓겨난 뒤 이소(離騷) 등 여러 시부(詩賦)를 지어 우국충정을 남김없이 토로하고, 끝내는 멱라수(汨羅水)에 투신 자결하였는데, 그 후로 시부를 짓는 사람들이 모두 굴원을 종사(宗師)로 삼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5]소나무를 꿈꾸네 : 삼 국 시대 오(吳)나라의 정고(丁固)가 일찍이 자기 배 위에 소나무가 나는 꿈을 꾸고는 남에게 말하기를, “송(松) 자를 파자(破字)하면 십팔공(十八公)이 되니, 18년 뒤에는 내가 공(公)이 될 것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뒤에 그 말대로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진(晉)의 …… 취함 : 진나라 때 산간(山簡)이 술을 매우 좋아하여 항상 술과 음식을 배에 싣고 고양지(高陽池)에서 술을 있는 대로 다 마시고 곤드레가 되어 돌아가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7]높은 …… 임종(林宗) : 임 종은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인 곽태(郭太)의 자인데, 곽태는 박학(博學)으로 명성이 높아서 제자(弟子)가 수천 명이나 되었고,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서는 당시 제일가는 고사 이응(李膺)과 깊이 사귐으로써 명성이 마침내 경사(京師)를 진동시켰다.
유항(柳巷)과 함께 광암사(光巖寺)에 가서 노닐기로 거듭 약속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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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청사의 서쪽은 길이 꼬불꼬불 났는데 / 國淸西畔路縈迂
첩첩 산과 편평한 숲이 그림보다 좋다오 / 疊嶂平林畫不如
눈 녹은 천원은 어이 그리 맑고 고운가만 / 雪盡川原何淨麗
바람에 날리는 귀밑털은 쓸쓸키만 하여라 / 風吹鬢髮更蕭疏
흥이 나서 홀로 감은 하늘을 오르는 새요 / 興來獨往沖天鳥
늙어서 함께 놀 이는 나무 타는 고기로다 / 老去同游緣木魚
가만히 보니 봄기운이 점차 화창해져서 / 坐見春光漸駘蕩
꽃과 버들이 다 아름다운 기운 함께하네 / 傍花隨柳共扶輿
내 인생 본래 우활함을 스스로 믿었기에 / 吾生自信本來迂
늘그막에 불문을 향해 사여를 묻노라 / 老向空門問四如
글 읽을 제 뜻 독실히 할 건 이미 저버렸고 / 已負讀書須志篤
붓 잡으면 재주 없는 한탄이 또 부끄럽네 / 更慚當筆嘆才疏
향 피우고 조용히 앉아선 향로를 바라보고 / 焚香靜坐看金鴨
중의 죽 얻어먹을 땐 목어 소릴 기다리네 / 隨粥徐行趁木魚
늙은 목은의 풍류를 그 누가 그려낼런고 / 老牧風流誰畫得
황교 위의 초저녁 달이 남여를 비추누나 / 黃橋新月照藍輿
소년 시절엔 광간하고 노년엔 우활하여 / 少年狂簡老年迂
칭찬과 훼방 모두 잊고 태연자약하노라 / 譽毁都忘却自如
매양 오십이 참으로 잠깐임을 생각다 보니 / 每念五旬眞足瞥
비로소 삼일간 못 만남도 오래임을 알겠네 / 始知三日以爲疏
구름 깊은 광암사엔 밤에 학 소리 들리고 / 雲深巖寺夜聞鶴
비 걷힌 증지에선 봄에 물고기를 잡아라 / 雨卷甑池春捕魚
지금부턴 다시 밤에 촛불 잡고 노닐어서 / 更欲從今游秉燭
곧장 호기가 천지에 가득 차게 하고 싶구나 / 直敎豪氣滿堪輿
[주D-001]늙어서 …… 고기로다 :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물고기를 있을 수 없으므로, 전하여 친구가 없음을 뜻한다.
[주D-002]사여(四如) : 《금 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에, “일체유위의 법칙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나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할 뿐이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 亦如電 應作如是觀]”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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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과 근심 걱정이 교묘히 서로 침범하니 / 功名憂病巧相侵
흰 머리털이 연래엔 비녀에도 차지 않누나 / 白髮年來不滿簪
게을리 두레박틀과 함께 부앙을 같이하고 / 懶與桔槹同俯仰
맹세코 세속 따라서 부침을 편리케 하련다 / 誓從鄕里便浮沈
차가운 소리는 비를 보내 천석에 뿌려오고 / 寒聲送雨來泉石
맑은 그림자는 바람 따라 달숲에 흩어지네 / 淸影隨風散月林
마음속의 열기를 제거하길 안 기다리고도 / 不待滌除心地熱
기미가 십분 깊어지는 걸 이미 알았네그려 / 已知氣味十分深
[주D-001]두레박틀과 …… 같이하고 : 《장 자(莊子)》 천운(天運)에, “그대는 유독 두레박틀을 보지 못하였는가? 잡아당기면 올라가고, 놓아두면 내려간다.[且子獨不見夫桔槹者乎 引之則俯 舍之則仰]” 한 데서 온 말로, 즉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여 조금도 남을 거역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연산가(燕山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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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서 산이 와서 화개를 의지하여 / 山從西來倚華蓋
화이를 진압해서 한 도회를 이루었네 / 勢壓華夷一都會
진인이 사막 안에서 우뚝하게 일어날 제 / 眞人崛起沙漠中
북풍은 남녘 정벌의 깃발을 불어 대는데 / 北風吹動征南旆
천산의 날린 눈이 장기 바다로 떨어지니 / 天山飛雪落瘴海
더위먹은 병이 소생되어 해롭지도 않아라 / 暍死少蘇無有害
이 산은 우뚝하게 한 가운데 자리하여 / 是山巍巍居其中
구름 위에 빼어나서 크기가 밖이 없는데 / 秀出雲霄大無外
무성한 오동이 산 남쪽에 가득 자라니 / 梧桐萋萋滿朝陽
봉황이 날아와서 날개를 치며 우는구나 / 鳳鳥飛來鳴翽翽
털옷은 점점 드물어지고 비단을 중시하며 / 衣毛漸稀重蜀織
우유를 숭상하나 생선회도 겸하여 먹네 / 飮湩雖尙兼吳膾
추운 겨울에 때로는 비와 천둥을 겸하여 / 冬寒時有雨兼雷
용문산 남쪽에 급한 여울을 만들어 내니 / 龍門以南激湍瀨
누가 알았으랴 하늘 뜻이 남방을 돌보아 / 誰知天意眷南方
종산 꼭대기에 자연의 바람을 불어 대서 / 鍾山山上呼天籟
연산 기슭의 먼지를 몽땅 쓸어 제거하여 / 掃去燕山山下塵
중원을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맑힌 줄을 / 中原一淸無纖壒
푸른 연꽃 봉우린 여전히 씻은 듯 깨끗하니 / 依然翠濕濯芙蓉
산 아래 행인들은 공연히 한 번 개탄하지만 / 山下行人徒一慨
곧바로 동해에서 연산을 바라보노라면 / 直從東海望燕山
나는 슬프지 않고 황하도 띠처럼 작아뵈네 / 我鼻不酸河似帶
[주D-001]화개(華蓋) : 별 이름으로, 천황대제성(天皇大帝星) 위의 구성(九星)을 가리키는데, 대제좌(大帝座)를 덮어 가리고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산으로 돌아가는 총공(聰公)을 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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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이 강가의 산에서 글을 읽을 제 / 仲子讀書江上峯
고승은 밥 먹은 뒤에 종을 울리지 않았네 / 高僧飯後不鳴鐘
오늘날 중서성에선 선비들을 경도시키고 / 省垣今日欹冠玉
당년의 과거장에선 문장을 겨루었었지 / 場屋當年戰筆鋒
이게 다 어리석음 깨우친 처음의 소득이니 / 摠是擊蒙初有得
그 덕 갚자면 끝내 그만한 대가가 없으리 / 如將報德竟無從
어떤 이가 만일 선사의 간 곳을 묻는다면 / 有人若問師歸處
바위 앞에 물 흐르고 솔에 눈 덮인 곳이라네 / 水繞巖前雪壓松
[주D-001]고승(高僧)은 …… 않았네 : 중 이 속객(俗客)을 잘 대우했음을 뜻한다. 당(唐)나라 때 왕파(王播)가 젊어서 가난하여 양주(揚州)의 혜조사(惠照寺)에 가서 재식(齋食)을 얻어먹고 지낼 적에 중들이 왕파를 싫어하여 밥을 먹고 난 뒤에야 종(鐘)을 쳤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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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지금은 가고 없지만 / 古人今已矣
우리 도야 무슨 손상될 것 있으랴 / 吾道更何傷
비이슬은 장춘오에 흠뻑 내리고 / 雨露藏春塢
먼지는 언월당에 잔뜩 끼었네 / 塵埃偃月堂
봉황은 곧 덕을 보아 내려올게고 / 鳳凰將覽德
벌과 전갈은 독침이 절단나리라 / 蜂蠆絶垂芒
유독 광암사 가는 길만이 / 獨有光巖路
한적한 들 정취가 진진하구나 / 蕭條野趣長
[주D-001]장춘오(藏春塢) : 송(宋)나라 때 문인(文人) 조약(刁約)의 실명(室名)인데, 조약은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관각 교리(館閣校理) 등을 지내고는 홀연히 벼슬을 그만두고 윤주(潤州)에 집을 짓고 그곳에 은거하면서 이를 장춘오라 하였다.
[주D-002]언월당(偃月堂) : 당(唐)나라 때 간신(姦臣) 이임보(李林甫)의 당명(堂名)인데, 이임보는 대신(大臣)을 중상모략하려면 반드시 이 언월당에 들어가서 계략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주D-003]봉황(鳳凰)은 …… 내려올게고 : 가의(賈誼)의 〈조굴원부(弔屈原賦)〉에, “봉황은 천 길 높이 하늘을 날다가, 성군의 훌륭한 덕을 보고 그곳에 내리도다.[鳳凰翔于千仞兮 覽德輝而下之]” 한 데서 온 말이다.
보제(普濟)의 부도(浮屠)를 건립할 일로 화주(化主)들에게 공양(供養)을 권하는 글에 제(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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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의 분신은 사방에 흩어져 나가고 / 舍利分身散四方
적막한 정원에는 달빛만 황량하구나 / 寂寥庭院月荒涼
문인들이 각각 천산 꼭대기에 있거니 / 門人各踞千山頂
누가 부도 앞에 한 줌의 향을 사를꼬 / 誰爇浮屠一瓣香
유항 댁에 들러 술을 마시고 취해 돌아와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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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 밑 낮은 처마에 봄 그늘이 아득한데 / 春陰漠漠柳低簷
반쯤 취해 돌아오니 흥이 절로 더하누나 / 半醉歸來興自添
빌려 묻노니 어떤 사람이 이 맛을 알런고 / 借問何人知此味
적막한 천재 이전의 도잠 한 사람뿐이리 / 寂寥千載一陶潛
동풍이 광대하게 띠 처마에 들어오니 / 東風浩蕩入茅簷
늙은 목은의 봄 시가 나날이 더해지누나 / 老牧春詩日日添
원기는 널리 유행하여 쉬지를 않는지라 / 元氣周流曾不歇
화창함이 새와 물고기에도 미침을 알겠네 / 已知和暢及飛潛
반쯤 거나하여 창 아래 밝은 처마 기대니 / 半酣窓下倚晴簷
유구한 천지 사이에 흰 귀밑이 더하누나 / 天地悠悠雪鬢添
억양으로 임금 법칙 세운 걸 비로소 믿겠네 / 始信抑揚皇立極
고명이 원래 침잠과 서로 다르지를 않다오 / 高明元不異沈潛
[주D-001]고명(高明)이 …… 않다오 : 《서경》 홍범(洪範)에, “숨어 가라앉는 이는 강건함으로 다스리고, 고상하고 밝은 이는 부드러움으로 다스린다.[沈潛剛克高明柔克]” 한 데서 온 말이다.
최인호(崔仁浩)가 회산(檜山)에서 소요를 당하고 와서 급함을 알리므로, 우연히 절구(絶句) 4수를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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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전해 온 아상은 후문을 압도커니와 / 傳家亞相壓侯門
큰 키에 예모가 온화하다 모두들 말하는데 / 摠說長身禮貌溫
취성의 일발 위기에 간담이 서늘한 이때는 / 膽落鷲城如一髮
다만 온종일 정신없이 취함이 마땅하리라 / 只宜終日醉昏昏
아픈 나머지 지팡이 짚고 특별히 찾아와서 / 病餘扶杖特敲門
주육을 대접할 제 낯빛도 매우 온화하여라 / 酒肉相邀色甚溫
귀밑을 돌며 앵앵거리는 모기만이 있을 뿐 / 獨有飛蚊鳴遶鬢
적적한 산정에 날은 또 황혼이 되어가누나 / 山亭寂寂欲黃昏
묘당의 높은 곳에서 훌륭한 모습 접했거니와 / 廟堂高處接芳塵
동갑에 친한 친구가 또 그 몇이나 되던고 / 同甲同盟更幾人
그러나 병중에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으니 / 不向病中曾一顧
회산은 참으로 인간의 도리가 없다 하겠네 / 檜山眞箇蔑彝倫
회산은 사리에 밝아 스스로 티가 없거늘 / 檜山氷鑑自無塵
어찌 재물 때문에 남에게 굽히려 하리오 / 肯爲圖財枉了人
다만 이는 하인이 한을 깊이 품은 소치거니 / 祗是蒼頭深挾恨
누가 다시 평번하여 모륜을 풀어 줄런고 / 平反誰復釋毛倫
[주D-001]평번(平反)하여 …… 줄런고 : 평번은 원죄(冤罪)를 재삼 세밀히 조사하여 무죄(無罪)로 하거나 감형(減刑)해 주는 것을 말하고, 모륜은 곧 어떤 사건의 터럭같이 미세한 내막을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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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가운데 얼어터진 건 절반이 이끼밭이요 / 庭中凍裂半苔痕
시렁 위의 먼지 낀 책은 다시 익히지 않네 / 架上塵編不復溫
이른 봄 시 흥취의 괴로운 고민을 만나서 / 苦被早春詩興惱
홀로 명아주 지팡이 끌고 사립을 나가노라 / 獨携黎杖出柴門
강머리의 봄물은 새로 흠뻑 불어났고 / 江頭新水漲新痕
눈은 동풍에 다 녹아 날 이미 다스우니 / 雪盡東風已向溫
어느 날에나 산 아래 길에 돛을 내리고 / 何日落帆山下路
폭건 차림에 흥겹게 용문산을 들러 볼꼬 / 幅巾乘興過龍門
만 길의 누런 먼지에 두 눈물 줄줄 흐르고 / 黃塵萬丈淚雙痕
천기는 언뜻 서늘했다 다시 다숩곤 하는데 / 天氣乍涼還乍溫
산수화 병풍을 나날이 마주하여 있노라니 / 山水屛風日相對
짚신에 베 버선 신고 운문사로 향한 듯하네 / 靑鞋布襪向雲門
[주D-001]산수화 …… 듯하네 : 두 보(杜甫)의 〈봉선유소부신화산수장가(奉先劉少府新畫山水障歌)〉 시에, “약야계요 운문사로다. 나만 홀로 어이하여 진흙 속에 있을꼬. 짚신과 베 버선 차림이 이제부터 시작일세.[若耶溪 雲門寺 吾獨胡爲在泥滓靑鞋布襪從此始]”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산수 속에서 노니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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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드랑이엔 한 끝의 거친 베를 안아 오고 / 掖抱一端疏布來
머리엔 한 말 남짓의 현미를 이고 오니 / 頂戴斗餘粗糲回
위로는 부모가 있고 아래는 아녀가 있어 / 上有父母下兒女
민간 풍경이 봄 누대에 오른 듯 평화롭네 / 民間風日似春臺
천관에게 봉록 받아가라 독촉을 하여라 / 督促千官請俸來
일찍이 이 말을 그 몇 번이나 들었던고 / 曾聞此語幾時回
백관의 온갖 직무는 그대로 안 폐했는데 / 百工庶績仍無廢
나만 홀로 쓸쓸히 어사대에 앉았네그려 / 獨坐寥寥御史臺
근년 같은 어려움은 미처 보지 못했건만 / 艱難未見似年來
노경의 풍족한 삶은 몇 번이나 있었던가 / 老境豐穰問幾回
베를 짜는 집집마다엔 등불이 켜져 있고 / 杼軸家家照燈火
생황 부는 곳곳엔 누대들이 떠들썩하네 / 笙簧處處咽樓臺
[주C-001]조미(糶米) : 옛날 국가에서 춘궁기(春窮期) 때면 기민(飢民)들에게 꾸어주었던 환곡(還穀)을 가리킨다.
20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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