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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牧隱詩藁) 제4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7. 20:21

 

목은시고(牧隱詩藁) 4

 

 

 ()

 

 

 

병신년 정월에 제화문(齊化門)을 나와 동쪽으로 돌아가면서 그다음 날에 여행 중의 일을 기록하다.

 


궁전 위에 새벽빛이 정히 어둑어둑할 제 / 觚稜曉色正蒼然
포홀 갖춰 동정에서 함께 연하(年賀)를 올리니 / 袍笏彤庭共拜年
보불이 막 임하자 광채는 해를 움직이고 / 黼黻纔臨光動日
생용이 연주되자 기세는 하늘을 진동하네 / 笙鏞競沸氣浮天
수많은 산악들은 공손히 제실을 부호하고 / 列嶽趨風扶帝室
제후국들은 폐백 받들어 빈연으로 드누나 / 多方奉幣入賓筵
옥당의 나그네는 자주 머리를 돌리어라 / 玉堂有客頻回首
말 위에서 바라보니 머나먼 길 사천 리로세 / 馬上迢迢路四千

 

계문(薊門)의 도중에서

 


산천은 운기를 묻어 감추는데 / 岳瀆埋雲氣
연기와 먼지는 햇빛을 가리누나 / 煙塵暗日華
날이 추우니 들 학은 돌아가고 / 天寒歸野鶴
숲이 어두우니 밤 까마귀 모이네 / 林暝集昏鴉
산에서는 가랑눈을 내려 보내고 / 山送霏微雪
바람은 찬란한 꽃을 꺾는구려 / 風摧爛

가련하여라 동해의 나그네는 / 可憐東海客
필마로 혼자 고향엘 돌아가네 / 匹馬獨還家

 

도중에 스스로 읊다.

 


내 인생이 어찌 세속에 부침할 수 있으랴 / 吾生豈可便浮沈
일단의 공부가 절로 가슴속에 가득하다오 / 一段功夫自滿襟
방초와 청천은 최호의 시구에서 나왔고 /
芳草晴川崔顥句
고산과 유수는 백아의 거문고에서 나왔네 /
高山流水伯牙琴
나그네들이야 어찌 새 향공을 알랴마는 / 路人豈識新鄕貢
고향 친구는 응당 늙은 한림이라 부르리 / 邦友應呼老翰林
세 밤을 자고도 아직껏 임금 생각 그리워 / 三宿猶懷戀君意
종남산 푸른빛이 읊는 중에 들어오누나 / 終南翠色入微吟

안장 위에 걸터앉아 푸른 산을 바라보니 / 橫跨征鞍望碧岑
차가운 봄바람이 봄의 음기를 빚어내네 / 春寒料峭釀春陰
일천 숲엔 이미 화기가 떠오름을 보겠고 / 千林已見浮和氣
온갖 새들은 다 좋은 소리를 지저귀누나 / 百鳥無非遺好音
일은 지나도 아직 남은 건 바로 이 자취인데 / 事過尙留知是跡
명성 이루고 안 물러간 건 무슨 마음인고 / 名成不退問何心
자주 고기 잡아먹는 게 내 고향의 일인데 / 擊鮮數數吾鄕事
주머니의 월금
을 어찌 기다릴 것 있으랴 / 橐底何須使越金

 

[주D-001]방초(芳草)와 …… 나왔고 : ()나라 때의 시인 최호(崔顥)의 〈황학루(黃鶴樓)〉 시(), “맑은 냇물엔 한양의 숲이 역력하고, 꽃다운 풀은 앵무주에 무성하도다.[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고산(高山)과 …… 나왔네 :
옛 날에 거문고를 잘 타던 백아(伯牙)가 고산(高山)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말하기를, “좋다, 험준하기가 태산(泰山) 같구나.” 하였고, 백아가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다, 광대하기가 강하(江河) 같구나.”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주머니의 월금(越金) :
()나라 초기에 육가(陸賈)가 남월왕(南越王) 위타(尉佗)에게 사신갔다가 위타가 준 천금(千金)을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자식 5형제에게 나눠 주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고죽음(孤竹吟). 노룡현(盧龍縣)에서 짓다.

 


고죽국의 임금을 아무도 아는 이가 없어 / 孤竹之君人不識
내 지금 노래 지으니 마음 몹시 슬퍼라 / 我今作歌心惻惻
저 나뭇가지 멀리 뻗고 저 흐름 맑았으니 / 彼柯斯遠彼流淸
나무와 물의 근원을 진정 헤아릴 만하네 / 木水本源端可測
자조
가 가훈을 몸소 실천하지 않았다면 / 子朝家敎不躬行
자식이 어떻게 저 큰 명성을 세웠으리오 / 有子何能樹大名
형 원과 아우 치가 서로 각기 마음 다하여 / 兄元弟致各盡心
피해 문왕께 가니 천하가 태평했는데 /
避紂歸文天下淸
삼천의 용사 앞에 치의 혀를 가지고 /
三千虎賁一寸舌
주나라 누르고 은나라 지탱하려 했으니 / 欲柅周興柱殷側
빛나는 큰 의리가 일월과도 겨룰 만해라 / 炳然大義爭日月
깃발 황금 도끼
는 안색조차 없었는데 / 白旄黃鉞無顔色
그 고풍이 만고에 간악한 꾀를 소멸시켜 / 高風萬古消黠奸
노만도 제후국 위나라로 생을 마치었네 /
老瞞終身藩魏國
아득한 천지가 지금 그 몇천 년이런고 / 乾坤茫茫今幾周
하수는 주야로 흘러흘러 쉬지를 않는데 / 河水日夜流不休
그 충혼과 의기는 여전히 우뚝하여 / 忠魂義氣尙崢嶸
하수와 태산이 마르고 닳기에 이르리라 / 河可枯兮山可平
저문 날에 일엽편주로 하수를 건너와서 / 扁舟日暮渡河頭
남긴 자취 방문하니 이내 마음 상하누나 / 訪問遺蹤傷我情
등잔 앞에 앉아서 고죽음을 읊고 있노니 / 燈前坐詠孤竹吟
천리와 인심은 고금이 다 같은 것이로다 / 天理人心無古今

 

[주D-001]자조(子朝) : 《사기(史記)》 주()에 의하면, ()나라 때 고죽국(孤竹國)의 임금 묵태초(墨胎初)의 자()인데, 그가 곧 백이(伯夷)ㆍ숙제(叔齊)의 아버지였다.
[주D-002]주(紂) …… 태평했는데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 “백이(伯夷)가 주()를 피하여 북해(北海) 가에 가서 살다가 문왕(文王)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말하기를,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요. 내가 들으니, 서백(西伯)은 노인을 잘 봉양한다고 하더라.’ 하고 문왕에게로 돌아갔다.”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上》
[주D-003]삼천(三千)의 …… 가지고 :
삼 천의 용사란 곧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할 적에 혁거(革車) 300대와 호분(虎賁) 3000명을 거느리고 갔다는 데서 온 말이고, 한 치의 혀란 곧 무왕이 은나라를 치러 갈 적에 백이ㆍ숙제가 무왕의 말고삐를 끌어당기며 간하기를, “아비가 죽어서 장사도 지내기 전에 전쟁을 하는 것을 효()라 할 수 있겠는가, 신하로서 임금을 죽이는 것을 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을 이른 말이다. 《孟子 盡心下》 《史記 卷61 伯夷列傳》
[주D-004]흰 …… 도끼 :
백 거이(白居易)가 당 태종(唐太宗)의 공덕을 칭송하여 지은 〈칠덕무(七德舞)〉 시(), “태종은 십팔 세에 의병을 일으키어, 흰 깃발 황금 도끼로 양경을 평정하였네.[太宗十八擧義兵 白旄黃鉞定兩京]”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천자의 군사를 뜻한다.
[주D-005]노만(老瞞)도 …… 마치었네 :
노 만은 삼국(三國) 시대 위()의 조조(曹操)를 가리킨다. 그의 소자(小字)가 아만(阿瞞)이었으므로 노만이라 칭하는데, 간계(奸計)가 뛰어나기로 유명했던 조조는 후한(後漢) 말기에 천자(天子)로부터 구석(九錫)을 받고 위왕(魏王)에 봉해진 후, 충분히 황실(皇室)을 찬탈할 힘은 있었으나, 자신을 주 문왕(周文王)에 비유하고 끝내 찬탈을 감행하지 않았던 데서 온 말이다.

유관(楡關)에서 잠깐 쉬는데, 한송 선사(寒松禪師)가 술을 사 왔다.

 


차가운 눈보라가 유관에 가득 몰아쳐서 / 寒風吹雪滿楡關
수염엔 고드름 얼고 말은 가지를 않는데 / 氷結疎髥馬不前
다행히 우리 선사께 삼매의 솜씨가 있어 / 賴有吾師三昧手
주머니에서 취향의 별천지를 끌어내누나 / 破囊擎出醉鄕天

 

천민진(遷民鎭)에서

 


죽 연한 산이 창해로 들어가는데 / 連山入滄海
비탈 위엔 길이 높고 낮고 하여라 / 崖上路高低
주는 걸 받고는 조사가 느슨해지고 / 得贈誰何緩
군대 항오는 좌우가 가지런하네 / 陳兵左右齊
주나라 사람은 석서를 노래하고 /
周人歌碩鼠
제나라 손은 닭울음을 흉내냈네 /
齊客解鳴鷄
위하여 이곳 장수에게 묻노니 / 爲問千夫長
내가 몇 번이나 서쪽으로 갔던가 / 吾轅幾度西

 

[주D-001]주(周) …… 노래하고 : 석서(碩鼠)는 《시경(詩經)》 위풍(魏風)의 편명인데, 이 시는 주()나라 때 위국(魏國) 사람이 임금의 학정(虐政)에 못 견디어 멀리 타국(他國)으로 살러 가려면서 부른 노래이다.
[주D-002]제(齊) …… 흉내냈네 :
전 국 시대에 제()나라 맹상군(孟嘗君)이 진()나라에 갇혀 있다가 요행으로 탈출하여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을 때, 관법(關法)에 닭이 울기 전에는 손을 내보내지 않게 되어 있는데, 이때 마침 맹상군의 문객(門客) 중에 닭울음을 잘 흉내 내는 자가 있어 그가 닭울음을 흉내 내자 다른 닭들이 모두 울어 마침내 관문(關門)이 열리게 되어 그곳을 탈출했던 데서 온 말이다.

행점(杏店)의 도중에 눈보라가 치다.

 


오만 구멍 부르짖어 성난 바람 몰아치니 / 萬竅呼號風怒起
털모자 여우 갖옷은 물을 뿌린 듯하고 / 毳帽狐裘如潑水
잠깐 새에 눈보라가 공중을 몽땅 휩싸니 / 須臾雪勢欲包空
바다와 산은 분주히 어둠 속으로 돌아가네 / 海岳奔走歸溟濛
흐릿해진 수레바퀴엔 긴 고드름 드리우고 / 糢糊車轂垂長氷
말굽은 옥잔 같고 갈기엔 구슬이 주렁주렁 / 玉杯馬蹄珠綴

구릉과 골짜기는 깎아 놓은 듯 편평하여라 / 丘陵坑坎平如削
지척에서 넘어지는 것 어이 그리 잦은고 / 咫尺倒顚何數數
평생에 가장 좋아한 건 절집에서 잠잘 때 / 平生最愛僧窓眠
송죽엔 바람 불고 하늘엔 구름 가득할 제 / 松竹蕭蕭雲滿天
화롯불에 얼굴 발갛게 비추며 차를 달이어 / 煎茶爐火照面紅
조금 마시고 모기 소리로 조용히 읊음일세 / 淺斟低唱飛蚊同
이런 낙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나뿐이니 / 已知此樂天下獨
암곡에서 소요하며 늙는 것이 합당하거늘 / 便合逍遙老巖谷
누가 멀리 달려와 벼슬하길 배우게 했나 / 誰敎遠走學爲官
요컨대 세간의 행로 어려움을 알아야겠네 / 要識世間行路難

 

큰 바람 속에 횡천채(橫川寨)에 들러 단가(丹家)에서 묵었는데, 여기에는 본국(本國)의 횡천현(橫川縣) 사람이 살고 있었다.

 


대하의 서쪽 가요 소하의 동쪽이라 / 大河西畔小河東
횡천에 말 세우니 생각이 끝이 없네 / 立馬橫川思不窮
고향 이름과 같으나 종족은 서로 다르고 / 鄕井有名宗族別
의관 제도는 달라도 말씨는 똑같구나 / 衣冠異制語音同
수년 동안은 천지가 온통 사양길이요 / 數年天地斜陽路
사면엔 먼지 일어라 온종일 바람일세 / 四面塵沙盡日風
단가에 들어 자니 본래 아는 이 같아라 /
宿丹家如舊識
호월이 한 집이란 걸 비로소 알겠구려 / 始知胡越一家中

 

십삼산(十三山)

 


일찍이 십주기를 읽고 나서 / 嘗讀十洲記
길이 삼신산 바람 그리워했네 / 永懷三島風
세월은 윤월이 된 데 놀랐고 / 流年驚閏月
신녀는 기봉 전해 오는데 / 神女
奇峯
운우는 신선 꿈이 희미하고 /
雲雨迷仙夢
세월은 계절 변천이 느꺼워라 / 星霜感歲功
어찌하면 화려한 비파를 갖고 / 何當携錦瑟
구학에다 내 종적을 의탁해 볼꼬 / 丘壑寄吾蹤

 

[주D-001]운우(雲雨)는 …… 희미하고 : 초 양왕(楚襄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서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여인이 와서 양왕에게 침석(枕席)을 같이 해 달라고 하므로, 양왕이 그와 하룻밤을 지냈더니, 그다음 날 아침에 그 여인이 떠나면서 양왕에게 말하기를, “저는 무산(巫山)의 양지쪽 언덕에 사는데, 매일 아침이면 구름이 되고 저녁이면 비가 됩니다.”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해주(海州)

 


발해의 남긴 풍속은 다 아득하기만 한데 / 渤海遺風儘渺茫
말 타고 석양에 외로운 성을 구경하노니 / 孤城跋馬看斜陽
촌 노인은 스스로 번화한 땅이라 믿는데 / 村翁自托繁華地
서울 손은 처음 적막한 시골에 놀라도다 / 京客初驚寂寞鄕
술잔엔 한기 들어라 산 빛이 가까웁고 / 寒入酒杯山色近
성첩엔 습기 스며라 물소리가 길구려 / 氣侵樓堞水聲長
유람거리가 이로부터 더욱 뛰어나니 / 游觀從此尤奇絶
푸른 봉우리 흰 구름이 하늘 한쪽이로세 / 靑嶂白雲天一方

 

구거음(驅車吟)

 


칼처럼 예리한 찬바람이 얼굴을 깎아라 / 寒風刮面刀劍利
나의 홑옷 위협하여 쉴 새 없이 불어 대네 / 欺我衣單吹不止
절벽 사이 계곡으론 길이 실낱처럼 나서 / 緣崖絶磵路如線
일천 산속을 뱀처럼 구불구불 돌아가네 / 蛇行詰曲千山裏
눈 쌓인 초겨울에 수레를 몰아 들어가니 / 方冬積雪驅車入
비뚤어진 그릇같이 좌우로 늘 기울어서 / 左傾右側如欹器
끌채 상하고 굴대 부러져 꼼짝을 못해라 / 轅傷軸折不移步
온종일 어렵사리 한 치 땅을 갈 뿐이네 / 盡日崎嶇行寸地
하지만 수레는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 尙緣吾轂不丹朱
만번 미끄러져도 적족의 수치는 없고요
/
萬跌猶無赤族恥
구당협 태항산이 어찌 험하지 않으랴만 / 瞿塘大行豈不惡
조시에서 명리를 다투기보단 평온하다네 / 穩於名利爭朝市

 

[주D-001]내 …… 없고요 : 화 려한 수레는 본래 권세가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타는 것인데, 권세가 있고 지위가 높은 자는 자칫하면 적족(赤族)의 화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양웅(揚雄)의 〈해조(解嘲)〉에()은 나에게 화려한 수레를 타게 하려 하나, 한번 미끄러지면 내가 적족의 화를 당하게 될 줄은 모른다.” 하였다.

정자하(亭子河)에 들러 백리(白里)에서 잤는데, 다음 날 아침에 스님의 힐책을 받았다.

 


얼굴 붉히며 장저(長沮) 걸닉(桀溺) 만나라 / 赧面逢沮溺
인생은 나루를 자주 물었었지 / 吾生數問津

부질없이 고향 생각을 말하지만 / 謾言思土俗
점차 고향 사람을 좋아하지 않네 / 漸不喜鄕人
자는 방엔 창지도 바르지 않고 / 夜宿窓無紙
아침밥엔 맛좋은 반찬도 없구려 / 朝飡飯少珍
미친 중은 새로 머리를 길렀으니 / 狂僧新長髮
교활한 성질은 길들이기 어려우리 / 黠性自難馴

 

[주D-001]얼굴 …… 물었었지 : ()나라의 은자(隱者)인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이 함께 밭을 갈고 있을 때 공자(孔子)가 그곳을 지나다가 자로(子路)를 시켜 그들에게 나루를 물어보게 했더니, 그들은 공자더러 어지러운 세상에 왜 은거하지 않고 천하(天下)를 주류(周流)하느냐는 뜻으로 빈정대면서 나루를 가르쳐 주지 않았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微子》

용주산(龍州山)을 바라보다.

 


나그네 길 눈보라 속에 달은 지려 하는데 / 征鞍風雪月將闌
머리 돌려 연도를 바라보니 꿈속만 같구나 / 回首燕都似夢間
뜻 장대했던 옛날엔 자주 북으로 갔었다가 / 壯志昔年頻北上
벼슬이 싫증난 오늘에야 동으로 돌아가네 / 倦游今日始東還
한 자쯤 석양 아래 객사를 찾아 들어가니 / 一鞭紅日投孤店
두어 점 푸른 산이 옛 관소임을 알겠도다 / 數點靑山認故關
진강의 뿌연 안개 광활함을 멀리 생각하니 / 遙想鎭江煙水闊
눈에 어머님 얼굴을 대한 듯하구나 / 眼中髣髴對慈顔

 

왕경(王京)

 


물색은 아득하여 한계가 없는데 / 物色茫無際
하늘이 이를 한림에게 붙여 주었네 / 天敎屬翰林
고향에 돌아올 땐 봄과 짝했는데 / 還鄕春作伴
술을 대해선 달이 친구가 됐구려 / 對酒月知音
홀로 오랜 세월 객지 생활을 하다가 / 獨抱多年影
처음으로 만리의 마음 돌리었네 / 初回萬里心
친구들이 서로 맞아 위로를 하니 / 親朋爭迓勞
후한 뜻이 남금보다도 중하구려 / 厚意重南金

 

집에 돌아오다.

 


인끈 던지고 돌아오니 일이 하나도 없어라 / 投紱歸來萬事空
인간의 지극한 낙 그 무엇이 이와 같을꼬 / 人間至樂有誰同
모친 앞의 채색옷은 아침 해에 번득이고 / 堂前綵服翻朝旭
시렁 위의 묵은 책은 낮 바람에 쬐이도다 / 架上陳篇曝晝風
어린애는 옷을 끌며 옛정을 펴는 듯하고 / 穉子牽衣如敍舊
아내는 모시 마름질하여 또 일을 재촉하네 / 老妻裁紵又催功
돌아보니 사해가 온통 깜깜한 먼지 속인데 / 回頭四海煙塵暗
구름 밖에 높이 나는 건 한낱 기러기로세 / 雲表高飛一箇鴻

필마로 집에 돌아오니 흥이 절로 넘쳐라 / 匹馬還家興有餘
남강의 봄 물결엔 돈어가 올라올 걸세 / 南江春浪上豚魚
선생이 스스로 관부에 가길 싫어하거니 / 先生自厭入官府
태수가 어찌하여 시골집을 찾아올쏜가 / 太守何曾來里閭
이웃 노인은 술통을 들고 자주 찾아오고 / 隣叟叩門頻

산승은 글자 물으러 멀리 편지를 보내오네 / 山僧問字遠投書
이제부턴 여생의 계책을 세울 수 있으니 / 只今可作終身計
한 조각 청한함 속에 만사가 그만이로다 / 一段淸閑萬事除

 

흥취를 풀다.

 


원유에 대해선 진작 부가 있었고 /
遠游曾有賦
소은에 대해선 시를 지었었네 /
小隱又題詩
우리의 도는 재목 아닌 나무이고 / 吾道不材木
세상 인정은 밑 없는 술잔이어라 / 世情無底巵
밝은 달밤엔 청아하게 시를 읊고 / 淸吟明月夕
꽃 떨어질 땐 술에 실컷 취하노니 / 爛醉落花時
다만 한스러운 건 증광이 심하여 / 只恨曾狂甚
남에게 잘못 헛된 명성 얻음일세 / 虛名謬見知

 

[주D-001]원유(遠游)에 …… 있었고 : ()나라 굴원(屈原)이 자신의 방직(方直)한 행실이 세상에 용납되지 않아서 참녕()에 시달려도 호소할 곳이 없자, 이에 선인(仙人)과 함께 이르지 않은 곳이 없이 천지를 두루 돌아다니는 내용을 소재로 하여 〈원유편(遠游篇)〉을 지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소은(小隱)에 …… 지었었네 :
()나라 왕강거(王康
)의 〈반초은(反招隱)〉 시에, “소은은 산림에 은거하고, 대은은 조시에 은거하도다. 백이는 수양산에 숨었고, 노담은 주하사에 숨었었네.[小隱隱陵藪 大隱隱朝市伯夷竄首陽 老伏柱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증광(曾狂) :
광은 곧 뜻은 성인(聖人)과 같이 크면서도 행실이 뜻을 따르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데, 바로 증자(曾子)의 아버지인 증점(曾點)이 광이란 호칭을 받았으므로, 증광이라 한 것이다.

선산에 성묘(省墓)하다.

 


선산에 올라 성묘를 한 지가 / 拜掃松楸地
세월이 또한 이미 오래되었네 / 星霜亦已多
묵은 뿌리엔 봄이 잎을 틔우고 / 宿根春吐葉
새 나무엔 비가 가지를 더하네 / 新樹雨添柯
한림원은 스스로 꿈이 없었건만 / 鼇禁自無夢
녹문
은 그 누가 들러 주리오 / 鹿門誰見過
아직 혐의로운 건 조정의 손이 / 尙嫌天上客
서찰 보내 내 안부 묻는 거로세 / 書札問如何

 

[주D-001]녹문(鹿門) : 산명(山名)인데, 후한(後漢) 때 은사(隱士)인 방덕공(龐德公)이 처자(妻子)를 거느리고 녹문산에 들어가 약초(藥草)를 캐며 은거했었으므로, 전하여 은사가 사는 곳을 비유한다.

송경(松京)에 돌아오다.

 


한산에 가선 어머니를 배알하고 / 謁母韓山下
대궐 뜰에선 임금께 조회하노니 / 朝王魏闕前
악란
할 곳이 있음은 알거니와 / 握蘭知有地
읍죽
할 이치는 어찌 없을쏜가 / 泣竹豈無天
충효는 의당 이렇게 해야 하나 / 忠孝當如是
행장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오 / 行藏非偶然
때마침 당 위의 제비를 보니 / 時看堂上燕
집 짓느라 좋은 자리 더럽히네 / 補壘汚華筵

 

[주D-001]악란(握蘭) : 옛날에 상서랑(尙書郞)이 손에는 난초를 쥐고 입에는 향()을 머금고서 대궐 뜰을 추주(趨走)하며 일을 아뢰었던 데서 온 말로, 즉 임금의 좌우에서 일을 보는 측근의 신하를 가리킨다.
[주D-002]읍죽(泣竹) :
삼국 시대 오()나라의 효자(孝子) 맹종(孟宗)이 한겨울날 대숲에 들어가서 평소 자기 어머니가 즐기는 죽순(竹筍)이 없음을 슬피 울며 탄식하자, 갑자기 눈 속에서 죽순이 나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흥취를 풀다.

 


세월은 참으로 별안같이 빠르고 / 光陰眞瞥眼
화복은 본래부터 형체가 없는데 / 倚伏本無形
감춘 옥을 파는 건 값 때문이요 / 玉韞沽因價
난초가 태워짐은 향기 때문일세 / 蘭焚禍在馨
바다가 깊으매 용은 스스로 뛰고 / 海深龍自躍
숲이 성하매 범은 더욱 사납도다 / 谷密虎彌獰
봄바람 속에 울긋불긋한 꽃들은 / 紅紫春風裏
성하게 피었다 이내 떨어지누나 / 繁開旋見零

세상일을 어떻게 다 헤아리랴 / 世事那容算
까닭 없이 내 마음 느꺼워지네 / 無端感我情
종이 연은 바람에 기세를 빌리고 / 紙鳶風借勢
토우는 비에 형체가 없어진다오 /
土偶雨亡形
농을 얻고는 촉까지 얻으 말라 /
得隴休思蜀
유씨를 일으킨 영씨에 있었네 /
興劉定在嬴
유연히 한바탕 웃음 짓노니 / 悠然成一笑
천도란 매우 분명한 것이라오 / 天道甚分明

봉황은 태평한 땅에서 춤추고 / 鳳舞盤安地
용은 세워진 나라에 일어나네 / 龍興鼎定都
이미 투서기기할 일이 없는데 / 已無投器鼠
어찌하여 호가호위를 걱정하랴 / 何患假威狐
뇌우는 예전 때를 깨끗이 씻고 / 雷雨洗舊染
장대한 계획은 산하를 붙들도다 / 山河扶壯圖
그 누가 중흥송을 지을런고 / 中興誰有頌
나의 문장 졸렬함이 부끄럽네 / 愧我僅操觚

 

[주D-001]토우(土偶)는 …… 없어진다오 : 토 우는 흙으로 만든 인형인데, 나무로 만든 인형인 목우(木偶)가 토우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서안(西岸)의 흙으로 만들어진 인형이니, 8월에 비가 내려서 치수(淄水)가 이르면 그대는 없어지게 될 것이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戰國策 秦策》
[주D-002]농(隴)을 …… 말라 :
욕 심이 끝없음을 비유한 말로,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가 잠팽(岑彭)에게 칙명으로 이르기를, “두 성()을 함락시켰으면 다시 군대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촉로(蜀虜)를 쳐야 한다. 사람은 몹시 만족할 줄 몰라서 농()을 평정하고 또 촉()까지 바라게 된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유씨(劉氏)를 …… 있었네 :
영씨(嬴氏)인 진 시황(秦始皇)이 무도함으로 인하여 유씨인 한 고조(漢高祖)가 일어나게 되었음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4]투서기기(投鼠忌器) :
돌을 던져 쥐를 잡고 싶으나, 곁에 있는 그릇을 깰까 봐 꺼린다는 뜻으로, 즉 임금 곁의 간신(奸臣)을 제거하려 해도 임금에게 누가 미칠까 두려워함의 비유로 쓰인 말이다.
[주D-005]호가호위(狐假虎威) :
여우가 범의 위력(威力)을 빌어 다른 짐승을 위협한다는 뜻으로, 즉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6]중흥송(中興頌) :
후한(後漢) 때에 유창(劉蒼)이 지은 〈광무수명중흥송(光武受命中興頌)〉과 당()나라 때 원결(元結)이 지은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 등이 있다.

조서(詔書)를 읽고

 


황급한 사변은 정세를 살핌이 중요하고 / 事變蒼黃要察情
지공무사는 사물마다 권형에 붙임일세 / 至公隨物付權衡
군왕은 스스로 임기응변의 지혜가 있고 / 君王自有臨時智
천자는 이제 멀리 보는 안목이 돌아왔네 / 天子方回視遠明
시호의 굴 텅 비고 요망한 기운 걷히어라 / 豺虎穴空妖霧捲
광활한 바다의 성난 파도도 잔잔해졌네 / 鯨鯢海闊怒濤平
조서를 읽고 나서 두 줄기 눈물 줄줄 흘리며 / 詔書讀罷雙垂淚
천지를 향해 재생의 은혜에 사례하노라 / 又向乾坤謝再生

 

병가(病暇) 중에 스스로 읊다.

 


객지 생활에 병이 난 지 오래되어 / 僑居仍病久
병가 올리고 한가함 많이 얻었네 / 謁告得閑多
자리 서늘해라 나무엔 바람이 일고 / 榻冷風生樹
뜰이 텅 비니 참새는 잔디를 밟누나 / 庭空雀踏莎
정신은 스스로 기른다 하거니와 / 精神聊自養
약방문이야 내 어찌한단 말인가 / 和劑乃吾何
수일 동안은 더욱도 다행스러워라 / 數日尤多幸
친구들이 자주 들러 주네그려 / 親朋數見過

 

이부(吏部)에 숙직하면서 짓다.

 


천관랑은 청현하기가 여러 낭의 으뜸이라 / 天官淸絶冠諸郞
오늘에 거듭 들어와서 길이 감탄하노라 / 今日重游感嘆長
선발 법칙 정밀하니 손은 의당 오그라들고 / 選法自精宜縮手
성은을 못 갚으니 매양 애가 끊기려 하네 / 聖恩難報輒摧腸
처마 밑의 소나무에선 찬바람이 일고 / 簷虛松樹生寒籟
산 곁의 가을 구름은 그림 담장에 드누나 / 山近秋雲入畫牆
숙직하면서 우연히 시 한 수를 쓰노라니 / 夜直偶題詩一首
벼슬살이와 고향 생각 둘 다 아득하구려 / 宦情羈思兩茫茫

 

적후행(赤猴行)

 


금려
영서옹천에서 생장하여 / 黔驢永鼠生瓮天
자연스레 길이 울고 멋대로 달리었네 / 長鳴恣走如自然
공작이 소뿔에 받힐 줄도 몰랐었는데 /
不知牛角抵孔雀
더구나 저 맹호가 침을 줄줄 흘림에랴 / 況彼猛虎垂饞涎
기어다니는 적후는 여의봉을 놀리어 / 姍赤猴弄如意
하늘 위의 여러 신선들을 경도시켰으나 / 驚倒天上諸神仙
상제는 노하지 않고 되레 옳게 여겼으니 / 上帝不怒反謂是
작은 기예도 하늘에 통할 줄 누가 믿으랴 / 誰信小技猶通玄
금계 한 소리에 아침 햇살이 돋아 오르니 / 金鷄一聲扶桑暾
하늘땅이 평온하고 풍경은 곱기도 해라 / 乾淸坤夷風景姸
내 옛날 상제 곁에서 천장을 나눠 얻고는 / 帝傍我昔分天章
봉황을 타고 장차 높이 날려 하였으나 / 翳以鳳凰將高騫
전쟁 먼지가 해 가리고 운기가 비리어서 / 干戈蔽日雲氣腥
돌아와 노룡과 함께 깊은 못에 숨었노라니 / 歸與老龍蟠九淵
산속의 요괴들은 스스로 멀리 피하건만 / 山中魍魎自遠避
북두 사이엔 백기가 항상 얽히어 있구나 / 斗間白氣常纏綿

 

[주C-001]적후행(赤猴行) : 적 후는 신화 소설(神話小說)인 《서유기(西遊記)》 중의 가장 주요 인물인 손오공(孫悟空)을 가리키는데, 그는 일명이 손행자(孫行者)이고, 또는 제천 대성(齊天大聖)이라 자칭하기도 했다. 그는 하늘이 낸 일개 신통 광대(神通廣大)한 석후(石猴)로서 72()의 법술(法術)이 있어, 일찍이 천궁(天宮)에 올라가서 큰 소란을 벌였으나 뭇 신선들이 그의 용맹을 당할 자가 없었고, 뒤에는 불경(佛經)을 취하러 천축(天竺)에 가는 당승(唐僧)을 호위하여 연도(沿道)에서 허다한 요귀(妖鬼)ㆍ악마(惡魔)들과 싸워서 법술로 그들을 다 물리치기도 했다 한다.
[주D-001]금려(黔驢) :
금 주(黔州)의 나귀란 뜻으로, 졸렬한 기능(技能)을 비유한 말이다. 금주에는 본디 나귀가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나귀를 싣고 들어가 그곳 산 밑에 풀어 놓았더니, 호랑이가 처음에는 나귀의 큰 체구와 큰 울음소리로 인해 그를 대단히 무서워했으나, 그 후 나귀와 점차 가까워진 다음 나귀의 발길에 한 번 채여 보고 나서는, 나귀에게 그 밖의 다른 기능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마침내 나귀를 물어 죽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柳河東集 卷19
[주D-002]영서(永鼠) :
영 주(永州)의 쥐란 뜻으로, 이 역시 소견이 좁음을 비유한 말이다. 옛날 영주의 어떤 사람이 자기가 자년(子年)에 태어났으므로 자()는 곧 쥐의 신()이라 하여 쥐를 대단히 사랑해서 고양이와 개를 기르지 않고 창고와 푸줏간을 모두 쥐에게 맡겨둔 채 마음대로 먹고 자라게 하였으므로, 쥐들이 그 집을 낙원(樂園)으로 여기어 멋대로 쏘다니며 잘 먹고 지냈었는데, 뒤에 그 주인은 다른 고을로 이사를 가고, 다른 사람이 그 집에 들어와 본 결과, 그 쥐들이 예전처럼 극성을 부리므로, 마침내 새 주인이 그 쥐들을 다 잡아 죽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柳河東集 卷19
[주D-003]옹천(瓮天) :
항아리의 안을 천지(天地)로 생각한다는 뜻으로, 소견이 아주 좁음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4]공작(孔雀)이 …… 몰랐었는데 :
두 보(杜甫)의 〈적소행(赤霄行)〉에, “공작은 소에게 뿔이 있는 줄을 몰라서, 찬 샘물을 마시려다 소뿔에 받히도다.[孔雀未知牛有角 渴飮寒泉逢觝觸]”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위대한 재능을 품은 사람이 소인(小人)에게 곤욕을 당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杜少陵集 卷14
[주D-005]백기(白氣) :
흰빛의 운기(雲氣)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병란(兵亂)의 조짐이라 한다.

동년(同年) 사공실(司空實)의 운에 차하여, 사명을 받들고 가야산(伽耶山)으로 가는 권 사관(權史官)을 보내다.

 


내 마음은 산수 속에 매달리면서 / 我心懸丹崖
내 자취는 먼지 속에 묻혀 있노니 / 我跡埋紅塵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매 / 俯仰天地間
일천 곳집의 한 개 좁쌀 같거늘 / 一粟在千囷
정신과 형체가 세상과 서로 밀착이 되어 / 神形與世作膠漆
오만 일 온갖 근심이 함께 날로 새롭구려 / 萬事百憂俱日新
임천에 소요하는 게 어찌 좋지 않으랴만 / 林泉逍遙豈不好
소보(巢父) 허유(許由) 같은 이도 요순의 신하였다네 / 巢許亦是唐虞臣
가야산의 경관은 천하에 가장 뛰어나고요 / 伽耶之山最奇絶
고운
은 천재에 누구도 짝할 이 드물어라 / 千載孤雲罕疇匹
나는 그를 따르려 하나 따를 수가 없어 / 我欲從之竟未能
그가 남긴 계원필경만 부질없이 읽었네 / 空讀遺編桂苑筆
청컨대 그대는 고운의 자취 자세히 찾아 / 請君細訪孤雲蹤
돌아와서 때 묻은 내 가슴을 씻어 주게나 / 歸來洗我塵泥胸
아 고운이여 고운은 천재의 학이라 / 孤雲孤雲千載鶴
떠나는 그대 보느라 높은 누각 기대었네 / 目送君歸倚高閣

 

[주D-001]고운(孤雲) : 신라(新羅) 말기의 학자요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의 호인데, 그는 일찍이 가야산(伽耶山) 해인사(海印寺)에 은거하여 유선(儒仙)이란 호칭이 있었고, 저서에 《계원필경(桂苑筆耕)》 등이 있다.

진주(晉州) 이 판관(李判官)을 보내고 겸하여 동년(同年) 전 기실(全記室)에게 부치다. 2(二首)

 


듣자 하니 두류산은 매우 좋아서 / 聞說頭流好
푸르름이 막부의 이웃이라 하나 / 靑爲幕府隣
우선 공사가 적도록 노력할 뿐 / 但令公事少
어찌 자주 나가 놀기를 좋아하랴 / 豈善出游頻
괴이한 말은 진(晉) 들은 듯할 게고 / 怪語如聞晉
유민들은 아직 진(秦) 피해 있으리 / 遺氓尙避秦

그대는 그들 종적을 찾아보겠나 / 君能蹤跡否
온 천하가 정히 풍진의 속이로세 / 四海正風塵

전 기실은 나의 망년 친구로 / 記室忘年友
높은 명성이 천하에 드문데 / 名聲天下稀
강루는 자리 가득 서늘할 게고 / 江樓涼滿座
죽합엔 푸르름이 옷을 적시리 / 竹閤翠沾衣
홍시엔 서리가 막 흠뻑 내리고 /
霜初重
물고기는 가을에 정히 살찌겠네 / 白魚秋正肥
맑은 놀이가 응당 끝없을 테니 / 淸游應未艾
남녘 바라보며 가는 사람 보내노라 / 南望送人歸

 

[주D-001]괴이한 …… 있으리 : ()나라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한 어부(漁父)가 한없이 시내를 따라 올라가다가 갑자기 도화림(桃花林)을 만나서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광활한 하나의 별천지(別天地)가 있고 그곳에는 남녀 노인들이 아주 평온하게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선세(先世)에 진()나라의 난리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살고 있다면서, ()나라 이후로 한()과 위진(魏晉) 시대가 있었음을 전혀 알지 못하므로, 그 어부가 그 사실을 일일이 갖추어 말해 주자, 그들이 모두 놀라 탄식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陶淵明集 卷6

남 대번 사윤(南大藩司尹)의 국시권(菊詩卷) 끝에 제하다. 5(五首)

 


된서리로 온갖 풀이 시들 때에 / 嚴霜悴百草
고운 것은 두어 가지 국화뿐이라 / 粲粲數枝菊
미물일망정 내 회포 감동케 하여 / 微物感予懷
가을이 오면 날로 서로 따른다오 / 秋來日相逐

사람마다 국화를 심고 구경하지만 / 人人種菊看
기필코 국화를 다 알진 못한다오 / 未必能知菊
마시며 남산을 마주하노라니 / 把酒對南山
유연함에 따를 바를 잃었네그려 / 悠然失所逐


도연명 후론 국화 사랑한 적다는 / 頗怪周子言
주자의
이 자못 괴이하여라 / 陶後鮮愛菊
같은 때의 다른 고인을 본다면 / 同時見古人
지난 자취를 굳이 따를 것 없어라 / 往躅不須逐

밭이 있어 차조를 심을 만하고 / 有田可種秫
집이 있어 국화를 심을 만하니 / 有屋可種菊
어떻게 하면 도연명을 본받아서 / 何當師淵明
돌아가 명리 쫓는 세상 사절할꼬 / 歸去謝馳逐

다섯 말의 때문이 아니요 / 不爲五斗米
길의 국화 때문도 아니로다 / 不爲三逕菊

집에 돌아가는 데에 뜻이 있어 / 志在歸去來
성화 같음을 누가 능히 따르랴 / 飛電誰能逐

 

[주D-001]술 …… 잃었네그려 :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도연명(陶淵明) …… :
주자(周子)는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周敦
)를 높여 이른 말인데,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 국화를 사랑한 이가 도연명 이후로는 또 있었단 말을 거의 못 들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다섯 …… 아니로다 :
도 연명이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으로 있을 때, ()의 독우(督郵)가 그곳 시찰을 나오게 되어, 아전이 도연명에게 의관을 정제하고 독우를 뵈어야 한다고 말하자, 도연명이 말하기를, “나는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향리(鄕里)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 하고, 팽택 영의 인끈을 풀어 던지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는데, 〈귀거래사〉 가운데세 길은 묵어 가고 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도다.[三逕就荒 松菊猶存]” 한 데서 온 말이다.

차운하여, 휴가를 내서 어버이를 뵈러 가는 원외랑 정우(鄭寓)를 보내다.

 


말발굽은 눈을 밟아서 술잔보다 더 클 제 / 馬蹄踏雪大於杯
머나먼 곳 달려가자면 또한 유쾌하겠네 / 馳向天涯亦快哉
어버이 나이는 팔십에 또 일곱이나 되니 / 八十親年今又七
어찌 다른 일로 마음을 쓸 수 있으리오 / 豈容他事上心來

 

선부(選部)에 출사하여 스스로 읊다.

 


아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대신하여 / 嗚呼天工人代之
높고 낮은 관원을 각각 제자리에 앉히고 / 庶官布列陳高卑
수많은 별들이 북신을 장중히 옹호하듯 / 端如列宿拱北辰
수직과 봉공이 모두 타당함을 이루어라 / 守職奉公俱得宜
경은 민은 별이요 왕은 해를 살피나니 /
卿月民星王省歲
길흉의 조짐이 있음을 알 자가 그 누군가 / 休咎有徵知者誰
출세 늦음을 한탄한 자들이 서로 다투어 / 嘆老嗟卑競馳逐
남을 모함하여 곧장 위태롭게 만들려고 / 排擠直欲令人危
숨겨진 흠을 찾아 혹 헐뜯기도 하건마는 / 吹毛求疵或相詬
숨어서 남 모략하는 건 더욱 가소로워라 / 匿影射人尤可嗤
예로부터 천작은 귀하기 비길 데 없으니 / 由來天爵貴無比
제명이 한번 가해지면 천하가 알게 되고 / 帝命一加天下知
호의호식은 의당 한세상에 넉넉커니와 / 膏粱文繡足一世
자손들도 복 받아 때때로 광영이 있다네 / 子孫蒙祉光于時
아 여기에 이르기가 어찌 그리 어려우랴 / 嗚呼踵此豈艱甚
털끝만 한 사심도 부리지 않는 것뿐이로세 / 只是不逞纖毫私
털끝만 한 사심이야 해로울 것 없다 말을 말라 / 纖毫私無曰何害哉
상제께서 크게 성내면 변명하기 어렵다오 / 上帝赫怒難爲辭

 

[주D-001]경(卿)은 …… 살피나니 : 《서 경》 홍범(洪範), “임금은 해를 살펴야 하고, 경사들은 달을 살펴야 하고,……백성들은 별과 같다.[王省惟歲 卿士惟月……庶民惟星]” 한 데서 온 말인데, 임금이 해를 살핀다는 것은 곧 임금의 잘하고 못한 데 대한 징험은 1년을 두고 나타나기 때문이라 한다.
[주D-002]천작(天爵) :
존 경할 만한 덕의(德義)가 있는 것을 이른 말이니, 이것이 곧 자연의 귀()인 것이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인의 충신하고 정성스레 선을 좋아하는 것은 천작이고, 공경대부는 인작이다.[仁義忠信 樂善不倦 此天爵也 公卿大夫 此人爵也]” 하였다. 《孟子 告子上》

해조음(解嘲吟)

 

 

이해에 기씨(奇氏) 이 일어나자, 군신(君臣)이 서로 정신을 분발하여 경화(更化)를 힘쓴 결과, 중관(中官)이 각사(各司)에 전지(傳旨)하여 직언(直言)을 구하므로, 나는 비천(鄙淺)함을 헤아리지 않고 십수사(十數事)를 갖추 진술하여 모두 시행되는 은혜를 입었으니, 정방(政房)을 혁파하라는 것이 그중의 한 가지 일이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나에게 이부 시랑(吏部侍郞)이 제수되었는데, 연말에는 백관(百官)의 근만(勤慢)을 고사하여 전최(殿最)를 매겼으니, 이부가 실로 그 직임을 관장했던 것이다. 그러자 같은 반열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웃으며 말하기를, “이 시랑은 그 자리를 스스로 요구한 것이다.”고 하므로, 이에 단가(短歌)를 지어서 그것을 해명하는 바이다.


노루 보고 그물 진다
는 속담도 있거니와 / 見獐負網有古語
내가 웃다 빠진 턱을 어찌 남에게 물으랴 / 我自脫
奚問他
쓸개가 몸보다 커서 뭇 계책 진술했는데 / 膽大於身吐群策
우연히 늘 적중하니 응당 헐뜯음 당하리 / 偶爾屢中應被訶
인정은 분분하여 가지런케 하기 어려우나 / 人情紛紛信難整
천명은 혁혁하여 끝내 치우침이 없다네 / 天命赫赫終無頗
선목을 아뢰었으니 소리 높여 노래하리라 / 奏罷選目當高歌

 

[주D-001]기씨(奇氏) : 누이동생이 원 순제(元順帝)의 황후(皇后)가 되었던 기철(奇轍)이 세력을 믿고 권세를 끝없이 부리던 중, 공민왕(恭愍王) 5(1356)에 마침내 반란(叛亂)을 음모하다가 발각되어 주살(誅殺)당했던 사건을 가리킨다.
[주D-002]노루 …… 진다 :
노루를 보고서야 그물을 짊어진다는 뜻으로, 일이 아주 다급해서야 허둥지둥 준비를 서두름을 이른 말이다.

스스로 탄식하다. 정유년(1357) 정월

 


물 끓듯 시끄럽게 시비가 분분하여라 / 沸似蜩雜是非
나는 듯이 빠른 총마를 모두가 미워하네 / 摠嗔驄馬疾如飛
채찍 멎고 세밀히 들어 보면 기쁨직하나 / 停鞭細聽雖堪喜
장계를 자세히 보면 감히 행여 어길쏜가 / 案狀詳看敢或違
납촉이 다 타도록 긴 밤을 지내기도 하고 / 蠟燭燒殘過永夜
첩황을 두루 찾느라 해가 저물기도 하네 / 貼黃尋遍掛斜暉
익재
의 감식안을 누가 능히 벗어나랴 / 益齋藻鑑誰能遁
가만히 앉아 응양군 지휘 듣는 걸 보노라 / 坐見鷹揚聽指揮

정세운(鄭世雲)을 가리켜 한 말이다.

 

[주D-001]익재(益齋) : 이제현(李齊賢)의 호이다.
[주D-002]응양군(鷹揚軍) :
여기서는 위의 자주(自註)에 나오는 정세운(鄭世雲)이 응양군 상장군(鷹揚軍上將軍)을 지냈으므로 이른 말이다.

연도(燕都)를 회상하며

 


회상컨대 연도엔 팔방 끝까지 다 모이어 / 回首燕都拱八埏
당시에 혁혁한 뭇 현인들이 달려들었네 / 當時赫赫走群賢
동문의 조도연엔 수레가 몇 량이었던가 / 東門祖道車幾兩
동이 가득 하사주는 일 두에 만 전이었지 / 內醞盈尊斗十千
적막하게 홀로 가니 그 누가 위로해 줄꼬 / 寂寞獨歸誰見慰
먼 길에 외로이 읊으며 혼자 마음 졸였네 / 蒼茫孤詠自相煎
이제는 참 즐거움 이룬 게 가장 기뻐라 / 如今最喜成眞樂
백발의 어머니 얼굴은 정히 노년이라오 / 鶴髮慈顔政老年

 

전선(銓選)의 자리에서 홀로 읊다.

 


부귀를 누가 가까이 옴을 꺼렸던가 /
富貴何人嫌苦逼
현우 간에 예로부터 그 명칭을 사랑하는데 / 賢愚自昔愛標題
어버이 높여 다른 사람 이름자를 지워라 / 尊親抹却他名字
그의 큰 담력은 본래부터 골계와 같았네 / 大膽由來似滑稽

시랑(侍郞) 허유(許猷)가 부() 자만 만나면 매양 지워 버렸다.

 

[주D-001]부귀(富貴)를 …… 꺼렸던가 : 북 주 무제(北周武帝)가 양소(楊素)의 민첩한 문장 솜씨를 가상히 여겨 이르기를, “부귀를 얻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라.” 하자 양소가 대답하기를, “()은 부귀가 가까이 오는 것을 두려워할 뿐 부귀를 도모할 마음은 없습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강촌(江村)을 회상하며

 


버들로 문정 이루고 대로 숲을 이루어 / 柳作門庭竹作林
띳지붕과 서로 비춰 강가에 곁했는데 / 茅茨相映傍江潯
배 끌고 잉어 낚아 달빛 아래 돌아오고 / 拏舟釣鯉回明月
짚신 신고 스님 찾아 먼 산을 오르기도 / 躡蹻尋僧上遠岑
말 맨 버들 소 우리엔 봄풀이 부드럽고 / 馬柳牛欄春草軟
물수리 백로 물가엔 저녁 구름 짙어라 / 鶖梁鷺渚暮雲深
은거하고 싶은 흥취가 갑자기 일어나서 / 飄然忽起滄洲興
몇 번이나 집 생각에 부질없이 읊었던고 / 幾度思家謾苦吟

 

이부(吏部)에서 우연히 짓다.

 


조정의 인재 등용은 공정함을 귀히 여기니 / 朝廷立政貴無私
전형의 자리 매우 엄격해 청탁이 드물구나 / 銓席深嚴請謁稀
줄을 이어 승천하니 누가 오래 적체되리요 / 魚貫迭遷誰久滯
악서
를 서로 올리니 혹은 높이 영전도 하네 / 鶚書交薦或高飛
찬바람 쌀쌀히 불고 눈은 아직 남았는데 / 寒風颯颯雪猶在
부슬부슬 가랑비 내려 봄이 또 돌아오누나 / 小雨霏霏春又歸
선목 아뢴 그 어느 날엔 문하를 내려가서 / 奏選何時下門下
문 닫고 편히 누워 세상 시비를 잊어 볼꼬 / 閉門高臥忘是非

 

[주D-001]악서(鶚書) : 후 한(後漢) 때 공융(孔融)이 예형(禰衡)을 천거하는 표문(表文), “사나운 새 수백 마리가 수리 한 마리만 못한 것이니, 예형이 조정에 선다면 반드시 볼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鷙鳥累百 不如一鶚 使衡立朝 必有可觀]” 한 데서 온 말로, 추천서(推薦書)와 같은 뜻이다.

새로 좨주(祭酒)에 임명되어 문묘(文廟)를 참알하다.

 


국가에 조금의 공도 없는 서생이 / 書生無寸效
화려한 높은 지위에 오르고 보니 / 高步上華聯
좨주의 작질은 삼품이고요 / 祭酒秩三品
급제한 지는 지금 오 년이로다 / 登科今五年
천세의 일지
는 궁구하기 쉬우나 / 易窮千歲日
사시의 운행
은 말하기 어려워라 / 難述四時天
숨죽이고 더욱 깊이 삼가노라니 / 屛氣增深惕
거룩한 영령이 진정 늠름하구려 / 英靈正凜然

 

[주D-001]천세(千歲) 일지(日至) :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하늘이 비록 높고, 별들이 비록 멀리 있으나, 진실로 기왕의 자취에서 찾는다면 천세의 일지를 가만히 앉아서 알아낼 수 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下》
[주D-002]사시(四時) 운행 :
공자(孔子)의 덕()을 일러, 사시 일월(四時日月)의 서로 교대하여 운행하는 천도(天道)와 같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中庸章句 第30章》

집을 빌리다.

 


이웃 공부관 댁에 집을 빌리어라 / 借屋隣工部
겸관으로 합문까지 욕되게 했네 / 兼官玷閤門
높은 분이 자주 나에게 들러 주니 / 高軒頻見過
맑은 자리엔 매양 뜻이 통하누나 / 淸坐輒忘言
묵은 샘물에선 눈이 늘 생겨나고 / 古井泉生雪
큰 소나무엔 은 같은 달이 걸렸네 / 長松月掛銀
스스로 알건대 세속 거리낌 없어 / 自知無俗累
산촌에 누운 것과 아주 똑같구려 / 絶似臥山村

 

휴가를 내어 한산(韓山)으로 어버이를 뵈러 가는 도중에 느낌이 있어 읊다.

 


갑자기 높이 오른 게 이 어찌 내 마음이랴 / 欻爾飛騰豈我心
오늘 아침 나도 몰래 눈물이 옷깃 적시네 / 今朝不覺淚沾襟
계원에 이름 적음은 비길 데 없는 영화요 / 題名桂苑榮無比
성균관 좨주 된 데는 감개가 다시 깊구나 / 祭酒芹宮感更深
침석의 바람 차가워라 대숲 곁에 자리했고 / 寢席風寒依竹展
축수 잔 물결 다스워라 꽃 앞에서 잔질하네 / 壽觴波暖對花斟
가련하여라 거울 속의 외로운 난새 그림자여 / 可憐鏡裏孤鸞影
채의로 춤추는 당전엔 거문고 가득 달빛이리 / 舞彩堂前月滿琴

 

낙제(落第)한 강호문(康好文)과 함께 가다.

 


날아가는 기럭처럼 성친하러 남으로 가는데 / 省親南去似飛鴻
훌륭한 선비와 함께 가니 정취가 똑같네 / 佳士聯鞍野趣同
고관대작은 의당 조모 사이에 잊겠지만 / 軒冕自當忘蚤暮
시서는 더욱 궁통을 관섭하지 않는다오 / 詩書尤不管窮通
푸른 산 푸른 물은 시를 읊는 속에 있고 / 靑山綠水吟哦裏
한가한 들 화초는 눈 흐린 시야에 있도다 / 野草閑花眊
철연을 갈았던 옛사람
을 내 기억하노니 / 記取昔人磨鐵硯
삼가서 붓 던지고 종군일랑 하지 말게나 / 愼無投筆去從戎

 

[주D-001]철연(鐵硯) 갈았던 옛사람 : 오 대(五代) 시대 진()나라 상유한(桑維翰)이 처음 과거(科擧)에 응시하려 했으나, 주사(主司)에게 상()과 상()이 동음(同音)이라 하여 응시를 거절당하자, 어떤 사람이 그에게 굳이 과거를 볼 것이 아니라 다른 길로 벼슬길을 구하라고 권하므로, 그는 개연히 〈일출부상부(日出扶桑賦)〉를 지어서 자기의 뜻을 나타내고, 또 철연(鐵硯)을 만들어 남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 벼루가 뚫어지면 내가 다른 길을 통해서 벼슬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는 끝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의지가 견고하여 본업(本業)을 끝내 바꾸지 않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집에 당도하다.

 


높은 데 올라 사방을 바라보니 / 登高縱雙眺
흰 구름이 먼 봉우리서 나오네 / 白雲生遠岑
우리 어버이가 그 밑에 계신데 / 吾親在其下
어찌하여 벼슬을 한단 말인가 / 奈此頭上簪
늙은 아내는 맛좋은 음식 만들고 / 老妻視甘旨
어린애는 말소리 예쁘기도 해라 / 騃稚嬌語音
이 또한 나날을 위로할 만하니 / 亦足慰朝夕
이것으로 내 마음이 편안해지네 / 所以寬我心
지난겨울엔 처자랑 길을 떠나 / 去冬婦兒行
서로 이끌고 송경으로 돌아가니 /
還松京
곁에서 시중들던 한 작은 누이는 / 侍側一小妹
꿈속에도 항상 놀란 듯하였네 / 夢寐常若驚
오늘 밤이 바로 어떤 밤인고 / 今夕是何夕
즐거울사 내 마음 쾌적도 해라 / 樂哉適我情
북당 앞에는 원추리가 자라고 / 堂前萱草長
당 위에는 술동이가 향기롭구나 / 堂上酒瓮香
내가 삼품 관직에 오름을 알고 / 知我拜三品
내게 열 잔의 술을 연속 권하네 / 酌我連十觴
모친 얼굴에 희색이 넘쳐흐르니 / 慈顔溢喜氣
맘 속으론 오히려 송구스러워라 / 內顧猶悚惶
공명이란 정해진 분수가 있는 것이나 / 功名有定分
어버이 건강할 때 이루었으면 / 願及親

 

교외(郊外)에 나가다.

 


풀이 자라라 새로 비가 내렸고 / 草長新過雨
강이 움직여라 조수가 돌아오네 / 江動欲回潮
들에선 절의 경쇠 소리를 듣고 / 野聽浮屠磬
교외엔 자사의 행차가 이어지네 / 郊聯刺史鑣
산이 많으니 푸른빛은 연하였고 / 山多靑冉冉
구름이 머니 흰빛은 아득하여라 / 雲遠白迢迢
내 흥취는 알아줄 사람 없는데 / 情興無人會
봄바람에 말발굽만 씩씩하구나 / 春風馬足驕

 

도중에

 


당상의 세월은 이제 모친이 백발인데 / 堂上光陰白髮生
새벽에 말 먹여 또 외론 길을 떠나노니 / 征駒曉秣又孤征
몸은 모친 시봉 못하여 북당을 생각하고 / 身違溫淸思萱舍
맘은 번화를 연연하여 옥경을 꿈꾸어라 / 心戀繁華夢玉京
넓은 들 모자 차양엔 구름 그림자 지나고 / 野闊帽簷雲過影
깊은 산 가죽신 밑엔 물소리가 들리누나 / 山深靴底水流聲
고향 떠나기 더뎌라 마음 아직도 괴로워 / 遲遲去魯心猶苦
열흘 동안 새로운 시를 전혀 짓지 못했네 / 旬日新詩謾不成

 

여름날에 제공(諸公)과 함께 금종사(金鍾寺)에서 노닐다. 2(二首)

 


높은 누각은 하늘이 낮게 보이는데 / 危樓霄漢低
내 두건 벗고 한가히 배회하노니 / 徙倚岸吾幘
자리 밑엔 경룡이 서리어 있고 / 席底蟠鏡龍
여염집은 만리나 떨어져 있네 / 閭閻萬里隔
고승은 연꽃을 마주하여 있고 / 高僧對蓮花
그윽한 새는 낮의 적막을 깨누나 / 幽鳥破晝寂
부끄러워라 나는 시서나 즐길 뿐 / 愧我耽詩書
공자의 옛 자취는 아득키만 하네 / 寥寥仲尼跡
토론이 허망한 것은 한스러우나 / 討論恨孟浪
배반이 낭자한 데엔 감사하노라 / 杯盤謝狼藉
서쪽 절벽에 갑자기 그늘 생겨라 / 西崖忽生陰
석양이 높은 절벽 반쯤에 걸렸네 / 斜日半高壁
시를 써서 이 놀이를 기록하려고 / 題詩記玆游
다시 시냇가의 돌을 쓸고 있구나 / 更掃溪邊石

이미 금종사 누각을 사랑하고 / 已愛金鐘樓
다시 금종사 나무를 사랑하노니 / 更愛金鐘樹
허공에 매달린 창문의 발에서 /
懸虛空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일어나네 / 朝夕生煙霧
쳐다보면 붉은 태양이 피해가고 / 仰看赤日避
굽어보면 나는 구름이 지나가누나 / 俯見飛雲度
더구나 그윽한 샘물 소리 들으니 / 況聞幽澗泉
한없이 뛰어난 운치를 느끼어라 / 悠然發奇趣
참으로 깊은 명상을 이룰 만하여 / 眞堪追冥搜
곧장 신선의 고장에 이르고 싶네 / 直欲到玄圃
우스워라 저 산 아래 사람들은 / 笑彼山下人
뿌연 먼지가 백우전에 불어 대누나 / 紅塵吹白羽
머리 위의 옥관자를 문지르면서 /
頭上簪
다시 한 번 속으로 반성하노라 / 亦復內自顧

 

찬목암(鑽木菴)의 시운(詩韻)에 차하다. 2(二首)

 


그대의 좌선은 이미 여유가 있거니와 / 坐禪君已髮容間
힘써 배워도 난 아직 대에 오른 고기라네 / 力學吾猶魚上竿
그대는 초봄마다 시축을 보내 주는데 / 每辱春初詩軸疊
나는 중하에 벼룻물 마른 게 부끄럽구려 / 却慚夏仲硯池乾
가을바람엔 석장 맞아 자주 들르게 하고 / 秋風錫杖邀頻過
겨울밤엔 등감을 함께 구경하고 싶으니 / 冬夜燈龕擬共看
모든 스님의 선기 휘두름을 배우지 말고 / 莫學諸方把雷電
때때로 도를 묻거든 너그러이 대해 주오 / 時時問道幸相寬

이 몸은 천지간에 싸라기 같은 존재라서 / 此身如粒兩儀間
사방 벽엔 책뿐이요 장대 위엔 독비곤(犢鼻褌)일세 / 四壁圖書犢鼻竿
문장은 서한을 본받아 완산하게 이루건만 / 文擬西京成緩散
시는 동야가 아니라 바싹 마른 게 한스럽네 / 詩非東野恨枯乾
남주의 귤과 유자는 깊은 가을에 생각나고 / 南州橘柚秋深憶
북극성은 한밤중에 바라보노라 / 北極星辰夜半看
흥취 발동하여 찬로를 따라가고 싶어라 / 有興欲從鑽老去
회산의 빈관은 본래부터 너르지 않던가 / 檜山賓館本來寬

또 자탄(自嘆)을 읊다.

속진 속에 몸 단속 못한 것이 한스러워라 / 檢身深恨走塵間
손뼉 치며 낚싯대 잡을 줄 진작 알았었네 / 撫手曾知把釣竿
내 옛날 북녘에 노닐 때 가을빛 짙더니 / 我昔北游秋色老
이젠 기러기 남녘 가고 낙엽 소리 퍼석퍼석 / 鴈今南去葉聲乾
동봉
의 예악이야 그 누가 능히 의논하랴 / 東封禮樂誰能議
중서성의 의관만 부질없이 보기 좋구려 / 西掖巾簪謾好看
시위소찬이 부끄러우나 아직 못 떠나니 / 縱愧素飧猶未去
잠시도 이 마음 풀기가 어렵네그려 / 此心難得暫時寬

 

[주D-001]대에 오른 고기라네 : ()나라 때의 시인(詩人) 매요신(梅堯臣)이 일찍이 《당서(唐書)》를 편수할 적에 자기 아내에게 말하기를, “내가 《당서》를 편수하는 일은 마치 원숭이가 포대(布袋)에 담긴 것과 같다.” 하자, 그 아내가 대답하기를, “당신이 벼슬을 하는 것 또한 메기가 대나무에 올라간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한 고사에서 온 말로, 즉 벼슬길에 몸이 얽매여 자유롭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장대 위엔 독비곤(犢鼻褌)일세 :
독 비곤은 쇠코잠방이를 가리킨다. ()나라 때 완함(阮咸)은 길 남쪽에 살고, 다른 완씨(阮氏)들은 길 북쪽에 살았는데, 북쪽에 산 완씨들은 다 부유했고, 남쪽에 산 완씨는 빈곤했던바, 한번은 7 7일에 북쪽의 부유한 완씨들이 모두 좋은 비단옷들을 밖에 내다가 포쇄(暴曬)하자, 완함은 거친 베로 지은 쇠코잠방이를 장대에 걸어 마당 가운데 내다가 포쇄했던 고사에서 온 말로, 아주 빈곤함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3]완산(緩散) :
시문(詩文) 등이 평담(平淡)하여 기구(奇句)가 없음을 이른 말이다.
[주D-004]동야(東野) :
()나라 때의 시인 맹교(孟郊)의 호인데, 소식(蘇軾)의 〈평어(評語)〉에 의하면, “맹교의 시는 차고, 가도의 시는 파리하다.” 하였다.
[주D-005]동봉(東封) :
()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임종(臨終) 직전에 〈봉선문(封禪文)〉을 지어서, 무제(武帝)에게 동쪽으로 가서 태산(泰山)에 봉선(封禪)하여 공업(功業)을 현창시키도록 청했으므로, 뒤에 무제가 그의 말대로 태산에 가서 봉선을 행했던 것을 이른 말이다.

전중(殿中)에 입배(入拜)한 철원 부사(鐵原府使) 정공(鄭公)을 하례한 교주(交州) 김 안부(金按部)의 시운(詩韻)에 차하다.

 


조선의 이 예빈에 대해선 / 朝鮮李禮賓
큰 기개를 내가 훌륭히 여기는데 / 倜儻我所賢
김 안부의 시권을 휴대하고 / 携持按部什
찾아와서 나에게 전해 주기에 / 叩門來相傳
읽어 보니 나는 밥 먹는 걸 잊었고 / 諷之忘我食
나는 또한 자는 것도 줄어들었네 / 亦復減我眠
철원은 옛날의 태봉국으로 / 鐵原古泰封
편평한 초원에 찬 연기 잠겼는데 / 平蕪鎖寒煙
손 꼽히는 훌륭한 자사가 / 屈指賢刺史
정중한 대궐 잔치를 받았네 / 榮陽秩初筵
군왕이 불러들여 등용하니 / 君王召入用
해치관
이 섬돌 앞에 섰네그려 / 豸冠當陛前
덕정은 사람들 입에 전해지니 / 德政在人口
시편에 쓰는 건 군더더길 뿐일세 / 贅哉書諸篇

 

[주D-001]해치관(獬豸冠) : 옛날 법관(法官)이 쓰던 관명(冠名)이니, 여기서는 곧 철원 부사(鐵原府使)로 있던 정공(鄭公)이 법관으로 등용되었음을 의미한다.

실직(失職)하여 늙은 어버이를 봉양하러 돌아가는 정 원외랑(鄭員外郞)을 보내다.

 


그대 집은 진강 남쪽에 있고 / 君家鎭江南
나의 집은 진강 북쪽에 있어 / 我家鎭江北
두 집의 집 뒤는 다 산이어서 / 兩家屋上山
서로 바라보면 검은 점 하나 같은데 / 相望一點墨
오래전부터 왕래가 서로 끊어져 / 往來久已廢
일엽편주가 시름 빛을 띠었다오 / 扁舟帶愁色
그대는 부친 두고 멀리 나왔고 / 君有父遠游
나는 모친 두고 곁을 떠났었네 / 我有母離側
이 때문에 객지에서 자나 깨나 / 所以寤寐間
멍하니 길이 탄식을 했었는데 / 怳然長嘆息
그대는 지금 우연히 체직됐으니 / 君今偶遞職
누가 하늘을 앎이 없다 할쏜가 / 誰謂天無識
부끄러워라 나는 지성이 없어서 / 愧我無至誠
십 년 동안이나 돌아가지 못하네 / 十年歸不得
소리 높여 벌단편을 읊조리고 / 高吟伐檀篇
사직소 올려 스스로 본받고자 하노니 / 上章欲自效
의당 그대 돌아간 길을 찾아서 / 當尋子歸路
그 길이 묵길 기다리지 않으련다 / 不待生荊棘

 

[주D-001]벌단편(伐檀篇) : 벌 단은 《시경》 위풍(魏風)의 편명인데, 이 시는 한 시인이 때를 만나지 못한 현자(賢者)가 집이 몹시 가난하나 항상 부지런히 노력하여 스스로 떳떳하게 살아 가는 것을 보고 이를 아름답게 여겨 부른 노래인데, 여기서는 또한 높은 자리에 앉아 하는 일 없이 국록만 먹는 파렴치한 소인들을 경계하기도 하였다.

처음으로 간의(諫議)에 제수되어 입직(入直)하다.

 


일찍이 간원제명기가 있단 말 들었더니 / 曾聞諫院有題名
오늘은 망연히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네 / 今日茫然感愧生
천고에 양성은 높은 의리가 있었거니와 / 千古陽城高義在
나로 하여금 또한 위현성을 생각케 하네 / 令人還憶魏玄成

 

[주D-001]간원제명기(諫院題名記) : ()나라 사마광(司馬光)이 지은 문장 이름인데, 그 내용은 바로 송 진종(宋眞宗) 때에 처음 간관(諫官)을 설치하였고, 인종(仁宗) 때에 와서는 간관 전곤(錢昆)이 이전에 간관 지낸 사람들의 이름을 목판(木板)에 써서 비치해 두었었는데, 그 후 사마광이 오랜 뒤에는 그 글자들이 지워질까 염려하여 이것을 다시 돌에 새기고 그에 관한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주D-002]양성(陽城) :
당 덕종(唐德宗) 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낸 사람인데, 그는 특히 명신(名臣) 육지(陸贄)가 폄척당할 적에 상소(上疏)를 올려 배연령(裴延齡)의 간녕(
)함과 육지의 무죄함을 극론(極論)했었다.
[주D-003]위현성(魏玄成) :
당 태종(唐太宗)의 명상(名相)인 위징(魏徵)을 가리킨다. 현성은 그의 자이다. 위징 또한 태종에게 직간(直諫)을 많이 했었다.

대간(大諫) 손정(巽亭)에게 바치다.

 


양방의 연속 급제로 훌륭한 명성 이었고 / 兩榜聯翩綴美名
선군의 나이가 오히려 선생보다 적었는데 / 先君年尙少先生
지금 다시 어깨 겨룬단 시구 부끄러워라 / 如今更媿磨肩句
어린애의 건방진 기습을 충분히 보겠도다 / 足見兒童項領成

 

달을 마주하여 흥취를 풀다.

 


가을 하늘에 은하수도 맑아라 / 高秋河漢澄
금물결이 바로 이런 것이로다 / 金波政如此
비로소 알괘라 천지의 사이가 / 始知天壤間
호연지기 하나뿐이라는 것을 / 浩然一氣爾
이 몸은 하나의 빈 배와 같이 / 此身一虛舟
둥둥 떠서 만리를 향해 가면서 / 泛泛適萬里
드높이 태소 가운데에 노닐어 / 高游太素中
물욕의 누를 깨끗이 씻었노라 / 淨洗物欲累
조용히 읊으매 흥취가 적잖으니 / 微吟興不淺
혹 달관자와 궤도가 같을런가 / 達者或同軌

차지 않은 달이 가장 사랑스러라 / 最愛月未滿
차고 나면 반드시 이지러지나니 / 旣滿缺必至
내일 밤의 환락을 점치지 마소 / 勿卜來夜歡
뜬구름이 가려 덮기 십상이라네 / 浮雲易爲祟
오늘 밤엔 어이 그리 깨끗한고 / 今夕何澄肅
모든 산천이 밝은 빛을 입었구려 / 山川得光被
모든 생물이 적막히 잠들었는데 / 群動寂不聞
고상한 사람 홀로 잠 못 이뤄라 / 高人獨無睡
맑은 경치는 절로 오래기 어려워 / 淸景自難久
망연히 내 마음을 쏟게 하누나 / 茫然注吾意

 

손정(巽亭)의 시운(詩韻)에 차하다.

 


그 옛날 국자감 유생들이 / 夙昔靑衿子
서로 이어 조정에 들어와서 / 聯翩錦帳郞
때를 얻어 함께 힘을 발휘하며 / 得時俱展力
태양의 빛을 같이 우러르노니 /
近日共瞻光
예악은 주나라 왕실을 열었고 / 禮樂開周室
문장은 공자의 당에 올랐어라 / 文章躡孔堂
국가 형편은 어이 그리 실한고 / 國容何濯濯
왕업은 정히 찬란하기만 하네 / 王業正煌煌
모두가 경륜 있는 인재들인데 / 具是經綸器
와상의 높낮이
를 누가 논하랴 / 誰論上下牀
성서의 좋은 놀이에 참여하여 / 勝游叨省署
미친 흥취로 술잔과 친하였네 / 狂興狎杯觴
다행히 태평성대를 만나서 / 幸際風雲代
애오라지 문필 마당에 놀건만 / 聊嬉翰墨場
재주로 보면 초야가 마땅할 뿐 / 揆才宜草野
조정에 바칠 좋은 계책 없어라 / 無策獻巖廊
한 해가 이제 저물어 가서 / 歲月今云暮
천지의 기운이 약간 서늘한데 / 乾坤氣稍涼
간서는 허술히 작성 못하나니 / 諫書難草草
관의 종이는 서리보다 희구려 / 官紙白於霜

공자는 승전 벼슬을 하였고 /
乘田夫子吏
자운은 집극랑을 지냈었는데 /
執戟子雲郞
적막이란
을 어디에 쓰리요 / 寂寞言何用
온량
의 도가 더욱 빛났었네 / 溫良道益光
증삼은 같이 앉아 자리 피했고 /
曾參同避席
자로는 인도하여 당에 올렸네 /
子路導升堂
쇠퇴한 성현 사업은 아득하나 / 墜緖雖茫渺
사문은 아직도 찬란하도다 / 斯文尙煒煌
풍운지회는 벼슬길을 열었고 / 風雲開宦路
세월은 책상을 둘러 흐르누나 / 歲月繞書牀
본래의 뜻은 과거 급제뿐인데 / 素志唯登第
요행히 허명을 얻기 시작하여 / 虛名幸濫觴
수년 동안에 자주 작질 바뀌어 / 數年頻改秩
서액에서 재차 직무를 수행하네 / 西掖再逢場
실컷 마실 제 바람은 술을 깨 주고 / 痛飮風吹酒
크게 읊노라니 해 그림자 옮겨라 / 高吟日轉廊
고인들은 참으로 질탕했는데 / 古人誠跌宕
우리 무리는 어찌 쓸쓸할쏜가 / 我輩豈荒涼
호쾌한 취흥을 맞설 자 없으니 / 醉興豪無敵
참으로 눈서리를 이길 만하네 / 眞堪傲雪霜

 

[주D-001]태양의 …… 우러르노니 : 벼슬하여 임금을 가까이서 모심을 이른 말이다.
[주D-002]와상의 낮이 :
삼 국 시대 위()나라의 고사(高士) 진등(陳登)이 자기 집에 찾아간 허사(許汜)의 인품을 몹시 경멸한 나머지, 자신은 큰 와상으로 올라가 눕고, 허사는 아래 와상에 눕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허사가 일찍이 유비(劉備)와 함께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갔을 적에 허사가 진등의 인품을 평하여 말하기를, “일찍이 하비(下邳)에 들러 진등을 만났는데, 진등이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다가, 자신은 큰 와상에 올라가서 눕고, 나는 밑에 있는 와상에 눕게 하더라.”고 하자, 유비가 말하기를, “그대는 국사(國士)의 명망을 지녔는데도……아무런 채택할 만한 말이 없었으니, 이것이 바로 진등이 꺼리는 바이다. 만일 나 같았으면 나는 백척루(百尺樓) 위에 눕고 그대는 맨땅에 눕도록 했을 것이다. 어찌 와상의 위아래 차이만 두었겠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7 魏書 陳登傳》
[주D-003]공자(孔子)는 …… 하였고 :
승전(乘田)은 춘추 시대 노()나라의 가축(家畜) 사육하는 일을 관장하던 관명(官名)인데, 공자가 일찍이 그 벼슬을 지냈었다.
[주D-004]자운(子雲)은 …… 지냈었는데 :
자 운은 한()나라 양웅(揚雄)의 자이고, 집극랑(執戟郞)은 곧 시랑직(侍郞職)을 가리키는데, 삼국 시대 위()나라 조식(曹植)이 양수(楊修)에게 보낸 글에, “양자운은 선조(先朝) 때의 집극(執戟)하던 신하였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적막(寂寞)이란 :
양웅(揚雄)의 〈해조(解嘲)〉에, “적막을 주인으로 삼는다.” 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6]온량(溫良) :
진 항(陳亢)이 자공(子貢)에게 묻기를, “부자(夫子)는 어느 나라에 가시더라도 반드시 정사에 참예하시니, 스스로 구한 것인가, 아니면 맡긴 것인가?” 하니, 자공이 말하기를, “부자께서는 온후하고 선량하고 공손하고 검소하고 사양함으로써 얻으신 것이다.[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學而》
[주D-007]증삼(曾參)은 …… 피했고 :
일 찍이 증자(曾子)가 공자를 모시고 앉았을 적에 공자가 이르기를, “선왕(先王)들은 지덕(至德)과 요도(要道)가 있어 천하를 순히 다스리니, 백성들이 이 때문에 화목하여 상하(上下)가 서로 원망함이 없었다. 네가 그것을 아느냐?” 하니, 증자가 자리를 피해 일어나면서 말하기를, “불민(不敏)한 제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한 데서 온 말이다. 《孝經開宗明義章》
[주D-008]자로(子路)는 …… 올렸네 :
공 자가 자로를 나무란 뒤로 문인(門人)들이 자로를 불경(不敬)스럽게 대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자로는 당에만 올랐고, 실에는 아직 들어오지 못했다.[由也升堂矣未入於室也]”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말한 당과 실은 곧 입도(入道)의 차례를 의미한다. 《論語 先進》

앞의 운을 차하여 흥취를 풀다.

 


상산에서 영지 먹던 늙은이는 / 商山茹芝老
유가의 사나이를 보필하였고 / 羽翼劉家郞

강호인이 성상을 움직일 적엔 / 江湖動星像
천하가 모두 엄광인 알았네 / 天下知嚴光

예로부터 은거하는 선비가 / 自古隱淪士
혹 천자의 당에도 오르나니 / 或登天子堂
출처만 고상하게 하면 되는데 / 但令出處高
사필은 어이 그리 찬란했던고 / 史筆何煌煌
도류
는 세상을 경멸하여 / 陶劉玩世客
한평생을 술에 의지해 / 身世寄槽牀
우주를 제멋대로 희롱하면서 / 宇宙旣縱意
금서를 벗 삼고 술을 즐겼는데 / 琴書仍引觴
적막하여라 백대 뒤의 오늘은 / 寥寥百代下
취향을 누가 독점한단 말인가 / 醉鄕誰擅場
나 또한 늦게야 세상에 나서 / 我生亦

갓끈 펄럭이며 조정을 걷노라니 / 飄纓步周廊
원숭이 울고 여라의 달 밝을 제 / 猿吟蘿月白
띳집은 지금 처량키만 하리로다 / 茅宇今凄涼
명성 이루거든 맹세코 떠나서 / 名遂誓將去
서리에 옷 젖길 안 기다리련다 / 莫待霑衣霜

 

[주D-001]상산(商山)에서 …… 보필하였고 : 영 지(靈芝) 먹던 늙은이란 곧 한 고조(漢高祖)의 부름을 거절하고 상산에 은거하여 영지를 캐 먹으면서 〈자지곡(紫芝曲)〉을 불렀던 상산의 사호(四皓) 즉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里先生)을 가리키는데, 이들이 뒤에 장량(張良)의 계책에 의해 한실(漢室)에 들어가서, 그 당시 태자(太子)였던 혜제(惠帝)를 폐하고 척 부인(戚夫人) 소생인 조왕 여의(趙王如意)를 태자로 바꿔 세우려던 고조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끝내 태자를 잘 보필하여 즉위(卽位)케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강호인(江湖人)이 …… 알았네 :
강 호인이란 바로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 엄광(嚴光)을 가리킨다. 엄광은 광무제(光武帝)와 소년 시절의 친구 사이로서, 광무제가 등극(登極)한 이후로는 성명(姓名)을 바꾸고 은거하다가, 한번은 광무제의 간절한 부름을 받고 대궐에 들어가서 수일 동안 광무제와 단 둘이 노닐던 중 하루는 함께 누워서 엄광이 광무제의 배 위에 발을 얹었었는데, 그다음 날 태사(太史)가 아뢰기를, “객성(客星)이 제좌(帝座)를 매우 급하게 범했습니다.”고 하자, 광무제가 웃으면서 이르기를, “나의 친구 엄자릉(嚴子陵)과 함께 누워 있었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자릉(子陵)은 엄광의 자()이다.
[주D-003]도류(陶劉) :
()나라 때의 고사(高士) 도잠(陶潛)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유령(劉伶)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특히 술을 즐기기로 유명하였다.

정혜사(定慧寺)의 호대 선사(瑚大禪師)를 보내면서 암() 자를 얻다.

 


기봉
은 중인 이상에 가차가 없거니와 / 機鋒不借中人上
도운
은 북두 이남에 견줄 이가 없어라 / 道韻難磨北斗南
우리 선사의 참다운 활계를 알려면은 / 欲識吾師眞活計
강바람 소나무 달 사이의 한 암자라오 / 江風松月一茅菴

여름 눈이 북으로 날리는 곳에 신을 벗고 /
屐留夏雪長吹北
기러기도 가지 않는 남쪽에 석장 세워라 / 錫卓秋鴻不到南
어찌하여 다시 총령을 넘어가려 하는고 / 何用更過蔥嶺去
헤아릴 제 천하를 암자보다 작게 여기네 / 算來天下小於菴

예전에도 온 게 아닌데 지금 어찌 감이랴 / 昔也非來今豈去
우연히 북에 왔다 다시 남으로 갈 뿐이니 / 偶然從北却還南
제공은 애써 서로 전송일랑 하지를 말고 / 諸公不用勤相送
우선 내 말을 갖고 졸암에게 물어들 보소 / 且擧吾言問拙菴

 

[주D-001]기봉(機鋒) : 기는 수행(修行)에 따라 얻은 심기(心機)를 가리키고, 봉은 심기의 날카로운 활용(活用)을 말한 것으로, 기봉은 곧 선사(禪師)가 다른 사람을 교도(敎導)할 때의 예민한 활용을 의미한다.
[주D-002]도운(道韻) :
도인(道人)의 정취를 말한다.
[주D-003]여름 …… 벗고 :
달 마대사(達磨大師)의 고사로, 달마대사가 죽어 웅이산(熊耳山)에 장사 지낸 지 3년이 지났을 때, 위사(魏使)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사신갔다 돌아오다가 총령(葱嶺)에서 달마를 만났는데, 달마가 이때 신 한 짝만 손에 들고 홀로 가면서내가 서역으로 간다.”고 말하였다. 송운이 와서 그 사실을 임금에게 말하고 사람을 시켜 달마의 탑()을 열고 관()을 꺼내 보니, 거기에도 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안렴사(按廉使)로 성()에 들어가는 안 소감(安少監)을 보내면서 전 기거(田起居)의 운에 차하다.

 


수레 깃발이 거듭 바닷가 성을 들어가니 / 重過海上城
사람을 만나거든 내 이름 들어 말해 주오 / 逢人爲說鄙夫名
가을이 오매 농어의 흥취를 견디지 못해 / 秋來不耐鱸魚興
풍진 속에 머리 긁는 파리한 사람이라고 / 搔首風塵大瘦生

 

[주D-001]농어의 흥취 : ()나라 때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을 지내다가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 오중(吳中)의 순챗국과 농어회를 생각하면서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어찌 수천 리 밖에서 벼슬에 얽매일 수 있겠는가.” 하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중추운(中秋韻)을 사용하여 구일(九日)의 모임에 제공(諸公)을 초청하다.

 


중추절은 이미 지나가고 / 中秋亦已過
중구일이 지금 또 다가오는데 / 重九今又至
유인이 깨진 술잔을 씻노라니 /
幽人洗破斝
크게 한스러운 건 곤궁함일세 / 大恨窮作祟
차마 국화의 가지로 하여금 / 忍令黃花枝
괜히 이슬만 젖게 할 수 있으랴 / 空見露華被
평생을 뜻대로 삶이 귀중하니 / 平生貴任情
그대는 취하고 난 또한 졸으리 / 君醉我亦睡
용산의 놀이
를 저버리지 말고 / 莫負龍山遊
고인의 뜻을 깊이 기약하세나 / 深期古人意

 

[주D-001]유인(幽人)이 …… 씻노라니 : 유인은 은사(隱士)를 가리킨 말인데, 소식(蘇軾)의 시에, “백의에게 술 보내니 도연명은 춤을 추며, 급히 풍헌을 쓸고 깨진 술잔을 씻었네.[白衣送酒舞淵明急掃風軒洗破斝]” 하였다.
[주D-002]용산(龍山) 놀이 :
()나라 때 맹가(孟嘉)가 중구일(重九日)에 환온(桓溫)이 베푼 용산의 연석(宴席)에서 자기 모자(帽子)가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것도 알지 못한 채 풍류(風流)를 한껏 발휘했던 데서 온 말이다.

9 16일에 입직(入直)하여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하다. 이날 밤에 왜적(倭賊)이 흥천사(興天寺)에 침범하였다.

 


벼슬 얻으면 학문 더욱 게을러지고 / 宦成學逾怠
지위 높으면 교만이 절로 생기어라 / 位崇驕自至
거짓된 마음이 이미 주가 되었기에 / 僞心旣作主
곧은 도리를 되레 빌미처럼 여기네 / 直道反如祟
아침엔 약사발을 그만두게 하고 / 朝停奉藥盌
밤에는 직려의 이불을 덮노니 / 夜擁直廬被
평상시에 그 허물을 생각하느라 / 尋常思厥愆
자고 먹는 게 불안하기 그지없네 / 芒刺飮與睡
누가 알리요 금성에 머물면서도 / 誰知禁省遊
아직껏 은거할 뜻 품고 있는 걸 / 尙抱桑樞意

어둔 밤이나 안개 낀 아침이면 / 昏夜或霧朝
왜구들이 매양 몰래 침범해 오니 / 倭寇輒潛至
어떻게 알리요 마왕의 군대가 / 安知魔王軍
바로 절집에 빌미가 될 줄을 / 乃與浮屠祟
슬프기도 하여라 우리 창생들도 / 哀哀我蒼生
이 해독을 오랫동안 입어 왔는데 / 此毒亦久被
오늘 밤엔 흥천사를 침범했다는 / 今宵犯興天
하리의 보고가 내 잠을 깨우누나 / 吏報驚我睡
국가 우환을 상께서 진념하시니 / 艱虞上所念
무엇으로 성상의 뜻을 위로할꼬 / 何以紓聖意

 

동년(同年) 이 주서(李注書)와 더불어 밤에 술을 마시면서 차운하다.

 


선온주 잔에 물결 일고 밤은 정히 긴데 / 宣醞如波夜正長
주서와 서로 마주해 등불 앞에 앉아서 / 注書相對共燈光
성중의 고사는 지금도 예전과 같은지라 / 省中故事今猶昔
나도 모르게 한바탕 거나하게 취하였네 / 不覺頹然醉一場

 

윤월(閏月)에 윤중구(閏重九)의 모임을 만나다.

 


벼슬살이에 겸하여 시골 정취도 많아라 / 官況仍將野趣長
시와 술로 중양 보낸 게 그 몇 번이런고 / 詩壇酒席幾重陽
무심코 다시 우산의 눈물을 떨어뜨리며 / 無心更落牛山淚
또 전장에 나간 장군의 안부를 묻노라 / 且問將軍戰馬場

 

[주D-001]우산(牛山) 눈물 : 춘추 시대 제 경공(齊景公)이 우산에서 노닐다가 북쪽으로 제나라 국성(國城)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어떻게 이 아름다운 곳을 버리고 죽는단 말인가.” 하고, 눈물을 흘렸던 데서 온 말이다.

비 온 뒤에 붉게 물든 단풍 숲이 사랑스러워 차운하여 시를 짓다.

 


비 지난 가을 산엔 떨어진 잎새도 많은데 / 雨過秋山葉落多
비단 위에 또 꽃을 더한 게 가장 예쁘구나 / 最憐錦上更添華
단풍 숲의 시구는 지금까지 회자되거니와 / 至今膾炙楓林句
이월 꽃보다 붉다는 비로소 증험하였네 / 始驗紅於二月花

 

[주D-001]단풍 …… 증험하였네 : 두목(杜牧)의 〈산행(山行)〉 시에, “수레 멎고 앉아서 석양의 단풍 감상하노니, 단풍 든 잎새가 이월 꽃보다 더 붉구나.[停車坐愛楓林 霜葉紅於二月花]” 한 데서 온 말이다.

임 중서(林中書)의 청계배성시(淸溪拜星詩)를 읽고 그 운에 차하다. 이름은 현()이다.

 


이 마음 밖에 다시 하늘은 없는 것이니 / 此心之外更無天
화복의 말은 다 실없는 자가 전한 것일세 / 禍福皆由妄者傳
성덕이 만일 온 세상을 도야할 수 있다면 / 盛德若能陶一世
태평을 왜 굳이 외로운 연기에 물을쏜가 / 太平何必問孤煙
산하는 절로 원기를 붙들기에 넉넉커니와 / 山河自足扶元氣
성월은 언제 옛 궤도 잃은 적이 있었던가 / 星月何曾失舊躔
마음 맑히는 게 가장 수를 기를 수 있나니 / 最是淸心堪養壽
우선 임관에 가서 성상의 수나 빌어야지 / 且憑琳館祝堯年

 

[주D-001]외로운 연기 : 도교(道敎)에서 성두(星斗)에 제배(祭拜)할 때에 사르는 향연(香煙)을 가리킨 것이다.
[주D-002]임관(琳館) :
도교의 사원(寺院)을 가리킨다.

삭방 병마사(朔方兵馬使)의 막부(幕府)로 가는 양 판관(梁判官)을 보내면서 차운하다.

 


유관으로 십 년 동안은 신주를 달렸는데 / 儒冠十載走神州
필마로 종군하는 것도 웅대한 놀이로세 / 匹馬從戎亦壯游
위하여 묻노니 윤비가 지금도 있다던가 / 爲問尹碑今在否
그대 보내면서 고인의 시름이 우러나네 / 送君怗起古人愁

 

[주D-001]윤비(尹碑) : 고려(高麗) 중기에 명장(名將) 윤관(尹瓘)이 여진(女眞)을 정벌하여 700여 리의 땅을 개척하고, 구성(九城)을 쌓고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던 것을 가리킨 말이다.

그믐날에 빗소리를 듣다.

 


가을은 떠나가고 겨울이 오려고 하니 / 白藏欲去玄冥來
한밤중의 교체가 어이 그리 엄격한고 / 夜半禪代何嚴哉
중천 옥대엔 구름 깃발 안개 장막 펼치고 / 雲旗霧帳中天臺
우사는 또한 비 내려 먼지를 맑게 씻어라 / 雨師亦復淸塵埃
하늘이 그를 위해 천둥 벽력 한 번 쳐서 / 天公爲之一笑開
뭇 신들에 직무 주어 각각 일을 맡게 하면 / 群神授職各有司
폐하지도 침범치도 않아 생물이 양육되네 / 不曠不侵生物

내가 이젠 시를 지어 비 귀신 조롱하노니 / 我今作詩嘲雨師
눈이 장차 내리거든 그대는 무엇을 할꼬 / 滕六將至君何爲

 

휴가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입직(入直)하여 손정(巽亭)이 은퇴하기를 청했다는 말을 듣고 차운하여 짓다.

 


시에 능하기로 천하에 알려진 남손옹은 / 四海能詩南巽翁
선풍도골이 왕자교 적송자를 압도하네 / 仙風道骨壓喬松
사림에게 벼슬살이가 없을 수는 없으니 / 士林不可無冠冕
내 또한 공을 따라 한 지방관을 얻고 싶네 / 我欲追公借一封

 

자신을 책망하다.

 


스스로 책망하노니 이 간의는 / 自責李諫議
사람됨이 후안무치도 하여라 / 爲人多厚顔
한림원의 직학사에다 / 翰林直學士
사관의 편수관을 지내고 / 史館編修官
더구나 지제고까지 역임하여 / 況復知制誥
직임이 모두 청한하였거늘 / 職任俱淸閑
시위소찬을 부끄러워 않는 데다 / 旣不愧尸祿
또 사직할 것도 생각지 않으니 / 又不思掛冠
군자들은 더럽게 여겨 비웃고 / 君子所鄙笑
소인들은 영광되게 여기는구나 / 小人所榮觀
다만 가슴속의 마음 하나만은 / 只有方寸地
비환을 잊은 지 이미 오래라오 / 久已忘悲歡

 

진주(晉州) 지방 행락(行樂)의 아름다움을 얘기한 정 정언(鄭正言)의 말을 듣고 인하여 환유(宦游)하고픈 흥취를 일으키다.

 


진양의 산수는 이름을 들은 지 오래인데 / 晉陽山水久知名
수많은 화려한 산과 계곡 기상이 맑으리 / 競秀爭流氣像淸
막부에 해가 길면 앉아 읊기 좋을 텐데 / 幕府日長宜坐嘯
그 누가 나를 위해 꾀를 잘 이뤄 줄런고 / 何人爲我好謀成

 

다시 안() 자 운에 차하다.

 


저 하늘은 어이 그리 아득한고 / 彼天何渺茫
도척은 수하고 안자는 요절했네 / 壽跖而夭顔
이 마음은 어이 그리 반복하는고 / 此心何反復
몽시라야 벼슬을 얻는다 하누나 /
夢尸乃得官
까마득히 그 까닭을 몰라야만 / 冥然昧所以
내 마음 한가함을 안 놓친다오 / 不放吾心閑
치의 나무가 잠루보다 높고 /
寸木高岑樓
신이 위에 오르기도 하여라 /
鮮屨登弊冠
순수한 도는 오래전에 부서지고 / 大樸久已破
조룡
으로 겉모양만 다투누나 / 雕龍竟爭觀
담박함은 뭇사람이 버린 바이니 / 淡泊衆之棄
마음 같은 이와 함께 즐기련다 / 庶與同心歡

 

[주D-001]몽시(夢尸)라야 …… 하누나 : ()나라 때에 혹자가 은호(殷浩)에게 묻기를, “장차 벼슬을 얻으려면 꿈에 관()을 보고, 장차 재물을 얻으려면 꿈에 분()을 보게 되는 것이 무슨 까닭인가?” 하니, 은호가 대답하기를, “벼슬은 본디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이기 때문에 장차 벼슬을 얻으려면 시체(尸體)를 보게 되고, 돈은 분토(糞土)에 근본하기 때문에 장차 돈을 얻으려면 꿈에 더러운 분을 보게 되는 것이다.”고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77 殷浩列傳》
[주D-002] 치의 …… 높고 :
맹 자(孟子)가 이르기를, “그 근본을 헤아리지 않고 끝만 가지런히 하려고 들면 한 치의 나무도 높은 누각보다 더 높게 할 수 있다.”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에서 말한 한 치의 나무란 바로 식색(食色)을 비유한 것이고, 높은 누각이란 바로 예의(禮義)를 비유한 것이다. 《孟子告子下》
[주D-003]신이 …… 하여라 :
재능 있는 사람은 쓰이지 못하고, 용렬한 자들이 득세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4]조룡(雕龍) :
마치 용()을 새기는 것처럼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써서 문장(文章)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이른 말

다시 안() 자 운을 차하여 율시(律詩) 한 편을 짓다.

 


어서 건너라 뱃사공이 불러 대니 /
招招舟子涉
넓고 몸집 사람이 타누나 /
俁俁碩人顔
풍속은 임금의 교화를 따르고요 / 風俗隨王化
가요는 악관에 모두 진열하였네 / 歌謠列樂官
아름다워라 아송이 지어짐이여 / 美哉雅頌作
국가가 무사한 이때에 미쳐서는 / 及此國家閑
충전 같은 괴자는 깎아 없애고 / 怪字刪蟲篆
할관자 같은 기서는 삭출해야지 / 奇書黜鶡冠
재주 많은 게 귀중할 바 아니요 / 多才非所貴
묘리를 우선 관찰해야 하거니와 / 妙理最宜觀
빈풍
의 뒤를 계승하고자 하면 / 欲繼豳詩後
애오라지 억조와 함께 즐겨야지 / 聊同億兆歡

 

[주D-001]어서 …… 불러 대니 : 《시 경》 패풍() 포유고엽(匏有苦葉), “뱃사공이 어서 타라 부르지만, 다른 사람 다 가도 나는 안 갈라네. 나만이 안 건너가는 것은 나와 맘 맞는 벗을 기다려서라오.[招招舟子人涉卬否 人涉卬否 卬須我友]”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남녀(男女)의 음란한 행실을 꾸짖은 노래이다.
[주D-002]맘 …… 타누나 :
《시 경》 패풍 간혜(簡兮), “맘 넓은 그 사람은 몸집도 큰데, 궁전 앞뜰에서 춤도 잘 추누나.[碩人俁俁 公庭萬舞]”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임금이 훌륭한 인재를 높은 자리에 등용하지 않고 천한 악관(樂官) 벼슬에 두므로, 마치 임금의 은택을 기리는 것처럼 말하여 그 욕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에 거두어 감춘 노래이다.
[주D-003]빈풍(豳風) :
《시 경》 빈풍(豳風) 칠월(七月) 시를 가리키는데, 이 시의 내용은 바로 주()나라 어린 성왕(成王)이 농사(農事)의 어려움을 전혀 모르므로, 당시에 성왕을 도와 섭정(攝政)하던 주공(周公)이 옛날 주나라의 선조(先祖) 후직(后稷)이 처음 빈() 땅에 나라를 열고 백성들에게 농사를 장려하여 모두 잘 살게 했던 일을 죽 열거해서 성왕을 경계시킨 것이다.

(), () 두 선생의 시를 읽고 그 운에 차하다.

 


젊어서 벼슬 시작해 지금 백발 되었으니 / 束髮宦游今白髮
상소하여 사퇴함은 이미 때를 안 것인데 / 上章乞退已知時
어이해 쓸데없이 미인 얘기를 많이 하여 / 如何剩着紅顔語
제공에게 두어 수의 시가 나오게 했는고 / 惹得諸公數首詩

 

우연히 읊다.

 


아무는 충성되고 아무는 거짓되고 / 某也忠某也詐
아무는 정직하고 아무는 간사하다 /
某也直某也回
아 이 두어 마디 말이 크게 분명하여 / 於戲數語大明白
천지를 뒤흔들어 바람 천둥을 불러오니 / 振盪天地呼風雷
눈으론 볼 수 있고 귀론 들을 수 있는데 / 有眼可見耳可聞
못 보고 못 들은 체한 건 무슨 마음인고 / 如盲如聵何心哉
내 처음 간원 들어가 등에 땀이 흘렀어라 / 我初入院汗流背
물의가 깊이 배척함을 부를까 염려하여 / 恐招物議深摧排
헌릉의 대답
은 감히 꾀할 바가 아니었고 / 獻陵之對非所謀
화미의 탄핵
또한 비웃을 바가 아니었네 / 畫眉之劾非所咍
몸을 던져 곧장 뭇사람의 입을 담당하여 / 橫身直欲當衆口
시시비비에 관한 언로를 열려고 했건만 / 是是非非言路開
끝내 한 가지 일도 시정에 보탬이 없었고 / 竟無一事補時政
재상들은 삼태성같이 빛나기만 하였네 / 宰相赫赫明三台
손옹이 이끗 근원을 흐르도록 인도하매 / 利源巽翁導之流
제자들은 황하같은 세력을 막으려 했으니 / 諸子欲塞黃河來
아 나의 병이 어찌 하늘의 뜻이었으랴 / 嗚呼我病豈天意
의당 화기를 길러서 춘대에 올라야겠네 / 當養和氣登春臺

 

[주D-001]아무는 …… 간사하다 : 이 말은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이 지은 〈사간원제명기(司諫院題名記)〉에 나온다.
[주D-002]헌릉(獻陵) 대답 :
헌 릉은 당 고조(唐高祖)의 능이고, 당 태종(唐太宗)의 후비인 문덕황후(文德皇后)의 능은 소릉(昭陵)인데, 태종이 문덕황후를 몹시 그리워하여 소릉을 바라보기 위해 원중(苑中)에 층관(層觀)을 지어 놓고 일찍이 위징(魏徵)을 데리고 함께 올라가서 소릉을 바라보던 중, 위징은 눈여겨 바라보다가 말하기를, “신은 눈이 어두워서 볼 수가 없습니다.” 하자, 태종이 소릉을 손으로 가리켜 보여 주므로, 위징이 말하기를, “신은 폐하(陛下)께서 헌릉을 바라보시는 줄로 알았습니다. 소릉은 신이 진작 보았습니다.” 하니, 태종이 눈물을 흘리고 이내 그 층관을 헐어 버렸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新唐書卷97 魏徵列傳》
[주D-003]화미(畫眉) 탄핵 :
()나라 때 경조 윤(京兆尹) 장창(張敞)이 본디 위의(威儀)가 없는 데다 또 자기 부인(婦人)을 위해 눈썹먹으로 눈썹을 그려 주기까지 하여 장안(長安)에 그 소문이 자자했으므로, 유사(有司)가 그 사실을 상주(上奏)한 결과, 임금이 장창에게 그 일을 묻자, 장창이 대답하기를, “신이 들은 바에 의하면, 규방(閨房) 안에서 부인과의 사사로운 일로는 눈썹 그려 준 것보다 더 지나친 일도 있었습니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즉사(卽事)

 


머리 위의 관건이 뭇사람과 다른지라 / 頭上冠巾異衆流
항간의 아녀자들이 주에 가길 희망하네 / 街童巷婦望歸周
어느 때나 사람 안 보는 곳에 떨어져서 / 何時倒落無人見
뒤의 가을날 번천처럼 조용히 거닐꼬 /
細履樊川雨後秋

 

[주D-001] 갠 …… 거닐꼬 : 번천(樊川)은 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의 호인데, 두목의 〈만청부(晴賦)〉에, “비 갠 가을날은 새로 목욕을 한 듯한데, 전원을 빙 둘러 조용히 거니노라.[雨晴秋容新沐兮折繞園而細履]” 한 데서 온 말이다.

느낌이 있어 읊다.

 


당당하게 장부가 조정 반열에 서서 / 堂堂丈夫立朝著
정사와 이론을 세움에 차례가 있어야 하리 / 立政立言須有序
의리만 바루고 이끗 꾀한단 말을 / 正義不謀利
옛날의 군자에게서 들었거니와 / 聞諸古君子

어찌하여 재부를 가지고 계책을 삼아 / 奈何財賦便爲策
관저
의 아름다운 뜻을 구명하지 않는고 / 不究關雎有美意
모두 보게나 우리 추나라의 / 請看我鄒國
일개 전국 시대 선비는 /
一箇戰國士
임금 얻어 정사하는 바로 진심이라 /
得君行政是眞心
감히 입을 열어 일을 말하지 않았네
/
不敢開口談此事
이끗 근원 한번 열리면 형세가 물 같아서 / 利源一開勢如水
만리를 세차게 흘러 끝내 그치기 어렵다오 / 奔流萬里終難止
끝내 길에서 늙은
또한 천명이거늘 / 卒老于行亦天命
어찌 도를 폐하여 나의 뜻을 어길쏜가 / 豈可廢道違我志
간관의 이름으로 대부 반열에 올랐으니 / 以諫爲名列大夫
아 뜻을 굳게 세워 요순 시대를 본받아서 / 嗚呼立志追唐虞
우하고 불하고 인하여 도유해야지 /
一吁一
仍都兪
어이해 팔뚝 뽐내며 이의를 낸단 말인가 / 奈何攘臂吐異議
다만 염려된 건 후일에 역사를 더럽히어 / 祗恐他年穢靑史
덮으려면 더 드러남을 내 부끄러워함이니 / 欲蓋彌彰吾益恥
반드시 은하수 끌어다가 허물을 씻으련다 / 滌愆須挽銀河水
이 본심이 처음부터 그러한 게 아니라오 / 不是本心初偶爾

 

[주D-001]의리만 …… 들었거니와 : ()나라 때의 대유(大儒)인 동중서(董仲舒)가 말하기를, “그 의리만 바루고 이끗을 꾀하지 않으며, 그 도만 밝히고 공을 계교하지 않는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관저(關雎) :
《시경》 주남(周南) 수편(首篇)의 이름인데, 이 시의 내용은 곧 주 문왕(周文王)과 후비(后妃)의 덕을 찬미한 것이다.
[주D-003]추(鄒)나라의 …… 않았네 :
전국 시대 추나라의 맹자(孟子)가 인의(仁義)만을 말하고 이끗을 말하지 않았음을 이른 말이다.
[주D-004]끝내 길에서 늙은 :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맹자는 변론을 좋아하여 공자의 도를 밝혔으되, 수레를 타고 천하를 돌아다니다 끝내 길에서 늙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우(吁)하고 …… 도유(都兪)해야지 :
도유는 찬성의 뜻을 나타낸 말이고, 우불(
)은 반대의 뜻을 나타낸 말인데, 요순(堯舜) 시대에 임금이 신하들과 정사(政事)를 의논할 때에 쓰였던 말이다.

즉사(卽事)

 


금성의 낭관들은 모두 옥 같은 사람이라 / 錦省郞官盡玉人
무능한 내가 좋은 자리 함께하기 부끄럽네 / 自慚樗散忝芳茵
깊은 술잔의 황봉주를 유쾌히 기울이니 / 深杯快倒黃封酒
내리쓰는 붓에 때론 신이 붙는 듯하구나 / 落筆時時似有神

시월의 가벼운 추위가 언뜻 몸에 부딪혀 / 十月微寒乍著人
황봉주 늘 기울이며 겹요에 앉았노라니 / 黃封屢倒坐重茵
끝없이 충성심이 우러나 발동하여라 / 無端惹得忠肝動
머리 위엔 분명하게 귀신이 있네그려 / 頭上明明有鬼神

 

목은시고(牧隱詩藁) 4 2-2

 

 

 ()

 

 

 

[]을 읊다.

 


푸르른 송악산에 저문 구름 노랗더니 / 松山蒼翠暮雲黃
눈 내리기 시작할 땐 이미 석양이었네 / 飛雪初來已夕陽
밤중에 들어서 언제 갰는지 모르겠으나 / 入夜不知晴了未
새벽엔 은하수에 찬 별빛이 반짝이누나 / 曉來銀海冷搖光

연말의 선사[餽歲]에 대하여 읊다.

 


군국에서 세시 때면 예물을 바치는데 / 郡國歲時須禮物
조정의 대성에서 그 권한을 가지었네 / 朝廷臺省執權綱
분사의 재상도 혜택을 골고루 나누거늘 / 分司宰相猶均惠
지방관과 낭관이 감히 홀로 먹을쏜가 / 作郡郞官敢獨嘗
자줏빛 게와 붉은 새우에 바다 기러기요 / 紫蟹紅蝦幷海鴈
산비둘기와 꿩에다 또 노루까지 겸했네 / 班鳩錦雉又林獐
고귀한 집은 편지만 공경히 받을 뿐이니 / 朱門不過書祗受
머나먼 역로에 먼지 날린 게 애석하구나 / 可惜飛塵驛路長

 

스스로 읊다.

 


머리 위의 관건은 무리에서 빼어나는데 / 頭上冠巾逈出群
성에서 근무 파하니 이미 석양이로세 / 省中衙罷已斜曛
황봉주 기운은 아직도 뼛속이 훈훈하니 / 黃封酒氣猶熏骨
간초를 작성하여 임금님께 고해야겠네 / 諫草成來控大君

 

즉사(卽事)

 


대신은 당일에 국가 안위가 부쳐졌건만 / 大臣當日寄安危
후일 만전의 좋은 계책 다 펴지 못했네 / 善後良圖未盡施
남전의 가루 먹는
은 본디 있으나 / 飧玉藍田雖有法
창해에 돛 거는 때인들 어찌 없으리오 / 掛帆滄海豈無時
찬 이슬 맞은 국화는 마치 젖은 돈 같고 / 菊花露冷金錢濕
바람 받은 소나무는 푸른 일산이 기운 듯하네 / 松樹風微翠蓋欹
억지로 읊조리니 읊조림 절로 괴로워라 /
筆偶吟吟自苦
출처를 고인 가운데 누구를 따라야 할꼬 / 古人出處欲從誰

 

[주D-001]남전(藍田)의 …… : 고대(古代)에 장수(長壽)를 위하여 옥 가루를 먹었다 하는데, 《위서(魏書)》 이선열전(李先列傳)에 의하면매양 고인(古人)의 옥 가루 먹는 법을 부러워하여 남전(藍田)을 찾아가서 몸소 옥을 캐었다.”고 하였다.

취하여 짓다.

 


내가 병으로 오랫동안 휴가한 게 / 我病久在告
실상은 병이 아니라 권도였다네 / 非病也權也
손옹은 우리 아버지의 친구로 / 巽翁父之執
평생에 참다운 유학자였으니 / 平生實儒者
시를 읊으면 자연의 기교를 뺏고 / 吟詩奪天巧
말을 하려면 남김없이 쏟아 내며 / 欲言必傾寫
정밀한 대구는 옛날에도 적어서 / 精對古所少
선시는 도잠 사영운에 흡사하네 / 選詩逼陶謝
성 서쪽엔 두어 이랑 땅이 있어 / 城西數畝地
곡식 밭이 그 대사를 둘러 있도다 / 種田繞其榭
일찍 일어나 금성엘 나가노라면 / 早興赴錦省
관 위에 별빛이 내리비치는데 / 冠上星光射
높이 읊으면 긴 채찍이 곤두서고 / 高吟竪長鞭
오묘한 말은 강물처럼 쏟아 나오네 / 妙語懸河瀉
의리를 지켜 한번 남과 어긋나자 / 持義一違人
발끈 노하여 전원으로 물러갔는데 / 勃然退田舍
천지 같은 임금의 깊은 은혜로 / 主恩天地深
놓아주려 하지 않고 적극 만류해 / 留之不肯捨
비서부 높은 지위에 승천시키니 / 高遷祕書府
화려한 명성이 조야에 퍼지네 / 華問播朝野

 

새봄에 흥취를 풀다.

 


동녘 바람이 성곽에 들어오니 / 東風入城郭
봄 시름이 눈에 가득 생기어라 / 滿眼生春愁
만물은 때를 따라 변천하고요 / 萬物逐時變
심정은 광경과 함께 흐르누나 / 情與光景流
시구로 마음을 풀기 위하여 / 陶寫以詩句
온종일 쉬지 않고 읊조리노니 / 竟日吟不休
비록 심력의 소비는 될지라도 / 雖然費心力
점차 내 근심 풀림을 느끼겠네 / 稍覺寬我憂
마누라의 말 또한 기쁨직해라 / 婦言又可喜
새 술에 용수를 질렀다 하네그려 / 新酒已入

홀로 마시매 깊은 정취가 있어 / 獨酌有深趣
온갖 질병이 이제 다 낫겠구나 / 百疾今其瘳

 

왜적(倭賊)이 한주(韓州)를 침범했다는 소식을 듣고 휴가를 청하여 어머니를 뵈러 가는 도중에 세 수를 짓다.

 


처음 듣고는 꿈인가 의심했다가 / 初聞疑是夢
떠나려 하니 코끝이 시큰하구나 / 欲去鼻辛酸
우리 집 편지는 밤새에 왔는데 / 家信夜來至
대궐 하직하고 이제야 돌아가네 / 陛辭今始還
객지 벼슬살이는 모친이 바란 바요 / 宦游親望久
고향 귀성은 성은이 후한 때문일세 / 歸省聖恩寬
출처는 천명에 달려 있는 것인데 / 出處在天命
공연히 마음만 수고롭게 하누나 / 徒勞方寸間

허둥지둥 성궐을 나오다 보니 / 蒼黃出城闕
따르는 하인 또한 몇이 안 되네 / 僕從亦蕭條
풀 언저리엔 뜬 연기가 뿌옇고 / 草際浮煙淡
하늘가엔 가는 길이 하 멀어라 / 天邊去路遙
맘은 바쁘나 거리를 줄이긴 어렵고 / 心忙難縮地
발은 아픈데 다리를 자주 만나네 / 足疾屢逢橋
부석을 빌릴 수도 있을런가 / 鳧舃或可借
왕자교는 아득하기만 하네그려 / 遙遙王子喬


서울 생활은 어버이 뜻이 아니요 / 京輦非親意
강호에 있자면 왕은을 저버리네 / 江湖負主恩
문안은 자주 꿈속에 드렸거니와 / 問安頻入夢
난을 들으니 다시 넋이 빠지누나 / 聞難更銷魂
벼슬이 높으니 친구는 줄어들고 / 官大少朋從
몸은 외로워라 형제가 없네그려 / 身孤無弟昆
자당께선 참으로 탈이 없으신지 / 慈堂定無恙
천지간에 두 줄기 눈물만 흐르네 / 天地淚雙痕

 

[주D-001]부석(鳧舃)을 …… 하네그려 : 후 한(後漢) 때 섭현 영(葉縣令)으로 있던 왕교(王喬)가 신술(神術)이 있어 매월 삭망(朔望) 때마다 거기(車騎)도 없이 조정에 나오므로, 임금이 그를 괴이하게 여겨 태사(太史)로 하여금 그를 몰래 엿보게 한 결과, 그가 올 때마다 동남쪽에서 쌍부(雙鳧)가 날아오므로 그물을 쳐서 이를 잡아 놓고 보니 바로 신[] 한 짝만이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여기 원문에 왕자교(王子喬)라 한 것은 착오이다. 왕자교는 일찍이 신선이 되어 갔다는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 진(太子晉)을 가리킨다.

삼각산(三角山)을 바라보며

 


세 봉우리가 태초 때부터 깎여 나왔는데 / 三峯削出太初時
하늘 가리킨 선인장은 천하에 드물구나 / 仙掌指天天下稀
무성한 솔 그림자엔 해 달 빛이 스며들고 / 松影扶疎橫日月
짙고 옅은 바위 빛엔 연기 안개 섞이었네 / 巖姿濃淡雜煙霏
어깨 솟구친 나그네는 나귀 타고 가는데 /
聳肩有客騎驢去
신선 된 어떤 이는 학을 타고 돌아가는고 / 換骨何人駕鶴歸
젊어서부터 이미 참다운 면목을 알거니 / 自少已知眞面目
사람들이 등 뒤엔 옥환이 살쪘다 말하네 / 人言背後玉環肥

 

[주D-001]선인장(仙人掌) : 중 국 화산(華山)에 있는 봉우리 이름인데, 삼각산(三角山)을 화산이라고도 부르므로 거기에 빗대어 한 말이다. ()나라 최호(崔顥)의 시에, “무제의 사당 앞엔 구름이 흩어지려 하고, 선인장봉 위에는 비가 처음 개었도다.[武帝祠前雲欲散 仙人掌上雨初晴]” 하였다.
[주D-002]어깨 …… 가는데 :
소식(蘇軾)의 시 〈증사진하충수재(贈寫眞何充秀才)〉에, “또 보지 못했나,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이 눈썹 찌푸리고 시 읊으며 산처럼 어깨 솟구친 것을.[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 한 데서 온 말이다.

도중에 읊다.

 


푸른 하늘에 나는 새가 있더니 / 靑天有飛鳥
훌쩍 가고 그림자 이미 없어졌네 /
去影已滅
나는 한창 말을 몰아 가다가 / 我馬方驅馳
긴 강물을 건너가기 어려워 / 長江難可越
배 불러 놓고 잠깐 서 있노라니 / 呼舟立少時
심화가 정히 부글부글 타누나 / 心火政烈烈
평생을 험난한 길에 막히어서 / 平生得坎止
행장을 일찍이 결정 못했는데 / 行藏未嘗決
변고 만나선 천진을 증험하느라 / 遇變驗天眞
가죽끈이 번이나 끊어졌네 /
韋篇曾三絶
세상길은 이보다 심한 것이니 / 世道甚於斯
돌아가서 명철 보신이나 하련다 / 歸來保明哲

 

[주D-001]가죽끈이 …… 끊어졌네 : 공자(孔子)가 만년에 《주역(周易)》을 좋아하여 하도 많이 읽은 때문에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주역》을 많이 읽고 점치고 한 것을 의미한다.

밤에는 평택(平澤)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다.

 


땅거미에 물 건너 조그만 마을 들어가니 / 渡水黃昏入小村
숲 그늘은 어둑하고 사립문은 닫혀 있네 / 樹林陰翳掩柴門
새벽에 이부자리서 밥 먹고 길을 나서서 / 五更蓐食登前路
돌아보니 먼 봉우리에 아침 해가 돋누나 / 回首遙岑上曉暾

 

도중에

 


달려가는 건 오직 나의 말이요 / 駸駸惟我馬
흔들리는 건 오직 내 마음일세 / 搖搖惟我心
머나먼 대지는 망망하기만 하고 / 茫茫大地遠
한산 봉우리는 아득하기만 하네 / 渺渺韓山岑
내 평생에 이 길목을 걷는 동안 / 吾生涉此路
세월은 어찌 그리 막힘이 없는고 / 歲月何侵尋
지난 일 손꼽아 셀 수 있거니와 / 屈指可歷數
어려움이 몽땅 지금에 몰리었네 / 艱苦叢在今
내가 옛날에 보았던 물건들은 / 舊時所見物
원근에 죽 늘어선 숲들인데 / 遠近森成林
어이해 담담하여 빛이 없는고 / 胡爲淡無色
너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노라 / 爲爾長哀吟

 

유구(幽丘)의 북령(北嶺)에 당도하여 태부인(太夫人)을 만나서 되돌아오다가 온수현(溫水縣)에 이르러 묵다.

 


이부자리서 밥 먹고 길을 나서서 / 蓐食登前途
내 말이 한창 앞으로 달릴 적에 / 我馬方駸駸
내가 말하길 이 고개에 오르면 / 謂言陟此嶺
한산 봉우리가 한눈에 보인다 했더니 / 一望韓山岑
귀부인 수레가 골짜기서 나오기에 / 魚軒出谷來
피하여 숲 쪽으로 얼굴을 돌렸는데 / 避之面深林
하인이 갑자기 내려와 절을 하니 / 長鬚忽下拜
놀람과 기쁨을 감당하기 어려워라 / 驚喜兩難任
허둥지둥 엎드려 모친을 배알할 제 / 蒼黃伏地謁
등엔 땀이 흐른 채 목멘 소리로 / 背汗
喉音
천천히 웃으면서 말을 했으니 / 徐徐笑且語
모친 마음을 상할까 두려워서였네 / 實恐傷母心
화복은 절로 문이 없으려니와 / 禍福自無門
모이고 흩어짐은 황금에 달렸는데 / 聚散在黃金
이 뜻이 깊고 어두운 게 아니니 / 此意匪幽昧
이 이치를 반드시 추심해야겠네 / 此理須追尋
나는 모친 뜻을 위로하려 하는데 / 我欲慰母意
모친은 내 병을 먼저 경계하시니 / 我病母先箴
마치 얻음이 있는 듯 기쁨이 넘쳐 / 欣欣若有得
환난을 만난 것도 깨닫지 못했네 / 不覺患難侵
어머니의 성스러움은 이러하거늘 / 有母聖如是
옷 걸친 우마 같은 내가 부끄럽네 / 愧予牛馬襟
모친 맞아 봉양할 주부가 있으니 / 迎養有主饋
거문고를 타는 안락하시리이다 / 順矣如鼓琴


또 절구(絶句) 한 수를 짓다.

모자가 서로 헤어진 정은 볼 수가 있으나 / 母子分離情可見
광음이 교체하는 기수는 피하기 어려워라 / 光陰代謝數難逃
어버이 따라서 다시 송경을 향해 가노니 / 隨親更向松京去
천지의 큰 은혜가 바로 이 한 만남이로세 / 天地洪恩此一遭

 

[주D-001]모친 …… 안락하시리이다 : 《시 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처자가 서로 좋아하여 화목하는 것이 거문고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妻子好合 如鼓瑟琴]”라는 구절에 대하여 공자(孔子)부모는 그것을 안락하게 여길 것이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中庸章句 第15章》

송산(松山)을 바라보며

 


철없는 아이는 모친 뒤에 따르고 / 癡兒在母後
늙은 모친은 자식 앞에 계시어 / 老母在子前
걷고 또 걸어 경읍엘 들어가니 / 行行入京邑
백성 편케 이끄는 하늘이 보이네 / 引逸有蒼天
낳아 주신 모친을 자식이 봉양함은 / 母生子當養
성현의 법칙 천륜을 준행함이니 / 彝倫遵聖賢
반성하매 감개함이 그지없어라 / 撫躬感無已
이제부턴 지난 허물 씻어야겠네 / 從玆洗往愆
저기 저 높다란 팔선궁은 / 巍巍八仙宮
영원히 나라를 안정시키리니 / 鎭國惟永年
우리 모자가 서로 보전되도록 / 母子得相保
신령이 장차 복을 내려 주리라 / 庶將神貺傳

 

도성에 들어가다.

 


하늘빛 태양빛이 함께 길고 평온하니 / 天光日色共舒長
십만의 민가에 기쁜 기색이 넘쳐흐르네 / 十萬家中喜氣揚
숙배하고 돌아오매 마음 다시 유쾌함은 / 肅拜歸來心更快
백발 노모가 고당에 계시기 때문이라오 / 白頭老母在高堂

 

부상음(扶桑吟)

 


부상의 동쪽에서 여섯 용이 해를 받들고 / 六龍捧日扶桑東
한밤중엔 바다에 목욕해 파도가 붉은데 / 夜半浴海波濤紅
영대
태사가 뜨는 해를 공경히 인도하여 / 靈臺太史政寅賓
중국과 오랑캐가 왕춘을 함께하였네 /
華夏蠻貊同王春
서생이 누선에 올라 선약을 청탁한
/ 徐生樓船托仙藥
이역이 아니라 광진을 도피키 위함이었네 / 不有異域逃狂秦
들으니 왜놈도 글을 읽을 줄 안다 하는데 / 似聞椎髻知讀書
그 서책은 곧 갱회의 나머지가 아니리니 / 竹簡不是坑灰餘
삼분 오전
이 일월처럼 게시되어 있거늘 / 三墳五典日月揭
어이해 민속이 미친 개 같을 수 있단 말가 / 豈有民俗狂如猘
해마다 우리 변방은 왜놈에게 침략당하는데 / 連年我邊被腥

깨진 솥 한 줌 좁쌀까지 침을 흘린다네 / 破鐺握粟垂饞涎
우리 집은 진강의 어귀에 자리 잡고 있어 / 吾家住在鎭江口
대창살 부들자리가 강 연기 머금었는데 / 竹窓蒲席含江煙
나졸이 달려와서 남촌이 격파됐다 하기에 / 邏人馳報南村破
온 가족이 쏜살같이 북녘으로 올라왔네 / 擧室北行如一苛
절규하는 미련한 백성들 참으로 가련해라 / 愚氓嗷嗷誠可憐
곤궁한 노약자들 하늘에 슬피 호소하누나 / 老幼赤立哀呼天
산더미 같은 큰 고래의 괴물이 많은 데다 / 長鯨嵯峨海怪多
동해는 예부터 긴 바람 파도도 거세었지 / 東溟自昔長風波
계림에는 이견대가 우뚝이 서 있건만 / 鷄林突兀利見臺
천추의 지난 자취가 이끼만 남았네그려 / 千秋往躅空莓苔
사람들이 자가 상책인 줄을 몰랐다면 / 人如不知走上策
왜놈들이 어찌 감히 미쳐 날뛸 수 있으랴 / 椎髻安敢猖狂哉

 

[주D-001]여섯 …… 받들고 : 태양의 신이 수레를 탈 적에 여섯 용을 수레에 채운다는 신화적(神話的)인 전설(傳說)에서 온 말로, 여섯 용은 또한 천자에 비겨 말한 것이다.
[주D-002]영대(靈臺) :
천문 성상(天文星象)을 관측하는 대()를 말한다.
[주D-003]중국과 …… 함께하였네 :
왕춘(王春)은 《춘추》 은공(隱公) 원년 조(), “원년 봄, 왕의 정월[元年春 王正月]이라.” 한 데서 온 말로, 즉 중국이나 사방의 오랑캐들이 모두 중국의 한 천자(天子)를 떠받듦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4]서생(徐生)이 …… :
서 생은 진 시황(秦始皇) 때의 방사(方士) 서복(徐福)을 가리키는데, 그가 일찍이 진 시황의 명에 의해 동남동녀(童男童女) 각각 3000명씩을 배에 싣고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선약(仙藥)을 구한다 칭탁하고 동해(東海) 가운데로 들어가서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5]갱회(坑灰) :
진 시황이 선비들을 다 생매장하고 경적(經籍)을 모두 불태웠던 이른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이른 말이다.
[주D-006]삼분 오전(三墳五典) :
고서(古書)의 이름으로, 삼분은 삼황(三皇)의 책이고, 오전은 오제(五帝)의 책이라 한다.
[주D-007]이견대(利見臺) :
경 주(慶州) 해안(海岸)에 세워진 대명(臺名)인데, 속설(俗說)에 의하면, 왜국(倭國)이 자주 신라(新羅)를 침범하자, 문무왕(文武王)이 이를 걱정하여, 자신이 죽으면 용()이 되어 나라를 수호하고 도적을 방비하겠다고 맹세한 나머지, 임종시에 유언하기를나를 동해(東海) 가에 장사하라.” 하였으므로, 신문왕(神文王)이 그 유언대로 장사를 지내고, 뒤에 그를 추모하여 그곳에 대()를 쌓고 바라보았더니, 과연 큰 용이 바다 가운데 나타나 보이므로, 이를 인하여 그 대를 이견대라 명명했다 한다.
[주D-008]주(走) 자가 상책(上策) :
고어(古語), “서른여섯 계책 중에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다.” 한 데서 온 말로, 즉 다급할 때는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다.

육언(六言)으로 스스로 읊다.

 


이루니 이백에겐 상대가 없거니와 /
詩成白也無敵
떨어지니 미인을 어찌할거나 /
花落虞兮奈何
한가로운 세월도 관여하지 않거니 / 不管閑中歲月
꿈속의 풍파를 그 누가 다툴까 보냐 / 誰爭夢裏風波

산색은 사람에게 있어 영걸이 되고 /
山色在人爲傑
시냇물은 성인의 청자(淸者)와 흡사하네 / 溪流似聖之淸
예로부터 인한 사람은 적이 없나니 / 古來仁者無敵
나는 태평성대에 난 것이 기쁘구나 / 我喜生於太平

연기 다스우니 풀밭엔 푸른빛 뜨고 / 煙暖草茵浮翠
햇빛 쪼이니 화려한 꽃은 불그레하네 / 日烘花錦凝丹
나는 경치에 푹 빠진 사람이 아니거니 / 不是流連光景
어찌하여 나의 심정을 다 토로하리오 / 胡然嘔出心肝

 

[주D-001]시(詩) …… 없거니와 :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시에, “이백의 시는 상대할 자가 없으니, 기발한 시상이 무리에 뛰어나네.[白也詩無敵飄然思不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꽃 …… 어찌할거나 :
우 미인(虞美人)은 항왕(項王)의 총희(寵姬), 항왕이 해하(垓下)에서 한군(漢軍)에게 크게 패하여 슬피 노래하기를, “오추마가 가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며, 우 미인아, 우 미인아 너는 어찌할거나.[騅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何]” 한 데서 온 말인데, 꽃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우 미인의 죽음을 의미한다.
[주D-003]산색(山色)은 …… 되고 :
()나라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사람이 영걸함은 땅이 영기를 발함 때문이다.[人傑地靈]”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성인(聖人) 청자(淸者) :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백이(伯夷)는 성인 가운데 청()한 분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下》

즉사(卽事)

 


해 떨어진 황혼이라 길은 어둑어둑한데 / 日落三商路欲迷
기울어진 달빛이 시내 서쪽에 비치누나 / 一痕斜月在溪西
풀 이슬에 옷 젖는 건 꺼릴 것도 없고요 / 不嫌草露霑衣濕
흥이 나니 거문고 들고 혜강(康)을 찾고파라 / 有興携琴欲訪

 

[주D-001]혜강(康) :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그는 특히 거문고 타고 시 읊기를 즐기었고, 그가 창제(創製)한 거문고 즉 혜금()도 세상에 전한다고 한다.

달을 읊다.

 


그 옛날 팔구 세 때 학당에서 수학할 적엔 / 憶年八九學堂游
거울 같고 갈고리 같단 말 많이 외웠는데 / 似鏡如鉤誦不休
중년에야 참으로 즐거운 곳을 알고 보니 / 中歲始知眞樂處
금빛 약동하고 구슬 잠긴 악양루일세 /
躍金沈璧岳陽樓
달 밝은 밤 못가의 누대에 오래 앉았으니 / 坐久池臺唯月明
이 속의 이 신세가 십분 맑구나 / 箇中身世十分淸
세속의 더러운 생각 일어날 길이 없거늘 / 無從惹起塵間意
다시 무슨 마음으로 일 생김을 염려하랴 / 更把何心念事生

 

[주D-001]금빛 …… 악양루(岳陽樓)일세 : ()나라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아득한 연기 말끔히 걷히고, 하얀 달빛이 천리 멀리 비출 때면, 물결 위의 달빛은 금빛이 약동하고, 고요한 달그림자는 흰 구슬이 가라앉은 듯하다.[長煙一空 皓月千里 浮光躍金 靜影沈璧]” 한 데서 온 말이다.

직려(直廬)의 즉사(卽事)

 


중관이 안 나와서 왕명을 전하지 않으니 / 中官不出口宣稀
긴긴 날 깊은 궁중에 물시계만 더디구나 / 長日深宮漏刻遲
한가로워라 은대의 새로 임명된 학사는 / 閑殺銀臺新學士
낮잠을 깨자마자 다시 시를 쓰네그려 / 午眠纔罷更題詩

 

혹독한 더위를 만나서 부채에 쓰다. 2(二首)

 


저 흰 학의 날개를 걸터타고서 / 駕彼白鶴翎
훨훨 날아 옥경에 조회를 가자면 / 飄然朝玉京
푸른 하늘엔 바람 이슬 많으리니 / 靑冥足風露
뼛속까지 시원함을 감당 못하리 / 徹骨不勝淸

욕심 비우면 마음 항상 고요하고 / 欲少心常靜
몸 한가하면 흥취 절로 자라나네 / 身閑趣自長
한 집안도 조그만 천지와 같나니 / 一家天地小
분수에 따라 염량을 보내야 하리 / 隨分送炎涼

 

여름날의 즉사(卽事)

 


무더위 속에 날 찾아오는 이 적어 / 溽暑經過少
조용히 앉아서 장음 단음을 읊다가 / 靜居長短吟
우연히 사물의 변화를 관찰하니 / 偶然觀物化
또한 다시 내 마음을 밝히게 되네 / 亦復明我心
개미 떼는 소나기 속에 달아나고 / 蟻陣跳白雨
꾀꼬리는 녹음 속에 북질을 하누나 / 鶯梭懸綠陰
집이 참으로 사랑스러우니 / 吾廬信可愛
내가 바로 진나라 도잠이로다 / 卽是晉陶潛

 

[주D-001] 집이 …… 도잠(陶潛)이로다 : 도잠의 〈독산해경(讀山海經)〉 시에, “새들도 의탁할 곳 있음을 기뻐하나니, 내 또한 나의 집을 사랑하노라.[衆鳥欣有託 吾亦愛吾廬]” 한 데서 온 말이다.

가의전(賈誼傳)을 읽고

 


신서 한 권 저술한 게 가생을 그르쳤어라 / 一卷新書誤賈生
재능 깊이 감췄으면 한의 공경 되었으리 / 玉韜金甲漢公卿
남쪽에 의기 투합한 사람 있음을 힘입어 / 南游賴是知音在
타고 상강을 건너 굴평을 조문하였네 / 舟過湘流弔屈平

 

[주D-001]남쪽에 …… 조문하였네 : 한 문제(漢文帝) 초기에 가의(賈誼)가 재능의 뛰어남을 인정받아 박사(博士)에서 일약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승천되었다가, 그의 재능을 시기하던 소인(小人)들로부터 참소를 입고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좌천되어 가서는 스스로 몹시 실망한 나머지, 일찍이 초()나라의 현신(賢臣) 굴원(屈原)이 참소를 입고 쫓겨나서 스스로 몸을 던져 자결했던 상강(湘江)을 건너가 〈조굴원부(弔屈原賦)〉를 지어 굴원을 조문했던 데서 온 말이다. ()은 굴원의 자이다.

박 중서(朴中書)의 시권(詩卷)에 제하다. 이름은 현()이다.

 


잔잔한 가을 물처럼 마음 본디 텅 비었고 / 秋水無波心本虛
찬란한 문장은 임금님 조서에 빛나누나 / 粲然奎璧映天書
문장의 흘러나옴은 한도 끝도 없어서 / 文章流出無窮盡
조서를 이룰 땐 수시로 오색이 펼쳐지네 / 裁詔時時五色舒

시적을 항복시키려고 진영 먼저 열고서 / 欲降詩敵壁先開
천하에 술하고만 가장 친밀하게 사귀어 / 四海神交麴秀才
한 번 읊고 한 잔 마시기가 응당 잦은데 / 一詠一觴應數數
가을바람이 국화주 잔 불어 움직이누나 / 秋風吹動菊花杯

 

삭방(朔方)의 만호부(萬戶府)에 부임하는 정 지사(鄭知事)를 보내며

 


시서 잘하는 원수가 세류영을 열더니 / 詩書元帥柳營開
의마의 재주
지닌 참군을 다시 얻었네 / 更得參軍倚馬才
장백산 앞에는 산수가 좋기로 유명하니 / 長白山前水泉好
아마도 항복한 되가 관문 두드리고 오겠지 / 遙知降虜款關來

산을 벽 삼고 물을 성 삼아 살기만 탐할 뿐 / 壁山柵水欲偸生
요 임금 천하가 태평한 줄은 모를 터이니 / 不識堯天有太平
잘 말하게 우리 왕이 일을 좋아한 게 아니라 / 好說吾王非好事
너희들 위해 항복받을 성을 쌓는다고 말일세 / 爲渠來築受降城

 

[주D-001]세류영(細柳營) : ()나라 때 장군(將軍) 주아부(周亞夫)가 세류(細柳)에 진영(陣營)을 두었던 데서 전하여 장군의 진영을 의미한다.
[주D-002]의마(倚馬) 재주 :
()나라 때 원호(袁虎)가 말 앞에 기대서서 즉시 일곱 장에 걸친 장문(長文)을 초한 고사에서 온 말로, 문재(文才)가 뛰어나서 글을 민첩하게 짓는 것을 의미한다.

동북면(東北面)으로 가는 한 만호(韓萬戶)를 보내면서 월() 자를 얻다.

 


장백산은 높다랗고 / 長白山穹窿
철령관은 우뚝하여 / 鐵嶺關
峍屼
몇천 리를 가로로 뻗치어서 / 橫亘幾千里
천연의 요새를 넘을 수 없는데 / 天險不可越
해단
의 잡종이 조수들과 함께 살면서 / 奚丹雜種鳥獸居
궁시를 갖고 날뛰며 돌격을 일삼도다 / 弓矢翩翾事馳突
대지를 훑어보면 크게 탄식하고말고 / 流觀輿地發浩嘆
쓸쓸한 가을 풀에 윤갈이 묻혔으니 말일세 / 秋草蕭蕭埋尹碣
집현전 학사를 상장군으로 삼아서 / 集賢學士上將軍
이 지방에 보내며 친히 부월 내리었으나 / 分閫此方親授鉞
사람 아끼는 조정이 어찌 큰일 벌이길 좋아하랴 / 我朝愛人豈好大
미친 개 같은 한 지방을 참을 수가 있으리오 / 可忍一方狂似穎
전쟁이란 예로부터 기관을 신중해야거니와 / 兵端自古愼機牙
아무리 작아도 백성 고통을 먼저 살펴야지 / 民寞宜先察毫髮
엄격과 자애를 병행함이 영중의 직무이니 / 秋霜春日營中天
변새 아래 원통한 죽음이 없게 해야 하네 / 塞下無令有寃骨
그리고 곧장 동해 바다의 물결을 몰아다가 / 直須倒捲東溟波
좋은 술로 변화시켜 항상 푸짐하게 하여 / 變作綠
終不竭
억만 사람을 모두 한마음으로 심취시켜서 / 沈酣億萬爲一心
대대로 우리 왕을 일월처럼 받들게 한다면 / 世奉我王如日月
뜻밖에 저들 스스로 강한시를 지어서 / 不防自製江漢詩
말 타고 달려와서 대궐에 바칠 거로세 / 走馬來獻黃金闕

 

[주D-001]해단(奚丹) : 해는 동호종족(東胡種族)의 하나이고, 단은 거란족을 가리킨다.
[주D-002]윤갈(尹碣) :
고려 중기의 명장(名將) 윤관(尹瓘)이 일찍이 여진(女眞)을 평정하여 함주(咸州), 영주(英州) 등 아홉 고을에 성()을 쌓고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던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강한시(江漢詩) :
강한은 《시경》 대아(大雅)의 편명인데, 이 시는 바로 윤길보(尹吉甫)가 주 선왕(周宣王)이 소공(召公)을 명하여 회이(淮夷)를 평정한 큰 업적을 찬미한 노래이다.

강릉 존무사(江陵存撫使)로 나가는 남손정(南巽亭)을 보내면서 차운하다.

 


남손정 옹은 온 세상이 기이하게 여기니 / 南巽亭翁世共奇
백화가 만발할 때 노송이 우뚝 선 격일세 / 老松孤立百花時
뜬구름 같은 관직엔 몸을 임시 부치었고 / 浮雲冕紱身如寄
젊은 시절에 좋은 방책은 이미 아뢰었었네 / 早歲琅玕腹已披
옥대 두른 영화는 천 리 길에 빛나거니와 / 玉帶榮華千里道
좋은 경치는 금낭에 몇 편 시나 들어갈꼬 / 錦囊光景幾篇詩
성상의 은혜가 동해의 물처럼 광대하니 / 聖恩浩浩東溟水
백성 시름 다 씻어 눈썹 찌푸리지 않으리 / 洗盡民愁不上眉

선비란 평생에 뛰어난 것을 자부하는데 / 士也平生自負奇
이 태평성대를 만난게 다행도 해라 / 幸哉逢此太平時
벌여 있는 성좌들은 원래 서로 호응커니와 / 星分列座元相應
활짝 갠 하늘엔 구름 헤칠 필요도 없으리 / 雲卷重霄不用披
기국 사람 하늘 걱정
은 목은의 방책이요 / 杞國憂天牧隱策
두보의 서사체는 손정의 시에 나오누나 / 杜陵敍事巽亭詩
강릉 땅엔 뛰어난 경치가 다 모여 있으니 / 江陵絶景牢籠盡
상쾌히 읊노라면 눈썹 찡그릴 일 있으랴 / 快意長吟肯皺眉

 

[주D-001]기국(杞國) …… 걱정 : 옛날 기()나라 사람이 언젠가는 하늘이 떨어지리라고 몹시 걱정하여 침식(寢食)을 폐하기까지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쓸데없는 걱정을 비유한 말이다.

달을 대하여 느낀 것을 읊어서 청풍(淸風) 정 사간(鄭司諫) () 에게 부치다.

 


지난해엔 봉황지서 달밤에 산보를 했는데 / 去年踏月鳳凰池
올해엔 각각 천애에서 달구경을 하누나 / 今年望月各天涯
작년에서 금년까지가 번쩍 한순간이어라 / 去年今年一瞬息
하늘의 저 달은 다시 올 기약이나 있건만 / 此月在天來有期
사람은 다 왕자교 적송자가 아닌데 / 人非喬與松
더구나 다시 이별까지 많음에랴 / 況復多別離
맑은 밤에 옷 걸치고 마당 가를 걷노라니 / 攬衣庭際步淸夜
나로 하여금 길이 그대를 생각케 하누나 / 悠然起我長相思
괴이해라 섬토는 끝까지 서로 보전하고 / 怪汝蟾
老相守
가을바람에 계수 가지도 흔들리질 않네 / 不受金風吹桂枝
혼돈이 파괴된 지 지금 그 얼마인데 / 混沌旣破今幾時
세도가 어떻게 순박할 수만 있으리오 / 世道安得無醇

이 마음은 나고 듦이 있고요 / 此心有出入
저 달은 차고 기욺이 있나니 / 彼月有盈虧
차고 기울고 먹힘은 해와 달도 못 면하거늘 / 盈虧薄蝕日月尙不免
인생의 취산과 비환을 의심할 것 있겠나 / 聚散悲歡奚復疑

 

[주D-001]섬토() : 전설(傳說)에 나오는 달 속의 두꺼비와 토끼를 이른 말이다.

남원(南原) 이 사간(李司諫) 보림(寶林) 에게 부치다.

 


대방은 고군이라 인사도 많을 터인데 / 帶方古郡人事稠
사간 선생은 재능이 남보다 뛰어나니 / 司諫先生才力遒
봉황이 장차 울게 영천의 황패요 /
鳳鳥將鳴穎川霸
우도를 우선 시험한 무성의 자유로세 /
牛刀且試武城游
멀리 알괘라 달빛이 빈 방에 가득할 제 / 遙知月色滿虛室
홀로 거문고 타면 맑은 흥취 넘치겠지 / 獨撫瑤琴淸興溢
꿈속 같은 비단 휘장 속 고상한 놀이엔 / 錦帳高游如夢中
술 마시며 극담하면 누가 갑을을 겨룰꼬 / 引杯劇談誰甲乙

 

[주D-001]봉황(鳳凰)이 …… 황패(黃霸) : ()나라 때 황패가 영천 태수(穎川太守)가 되어 많은 선정(善政)을 펴서 영천이 잘 다스려지자, 봉황(鳳凰) 등 서조(瑞鳥)가 영천에 많이 날아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漢書 卷89 黃霸傳》
[주D-002]우도(牛刀)를 …… 자유(子游)로세 :
공 자(孔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 재(武城宰)로 있을 때 공자가 무성에 갔다가 현가(絃歌) 소리를 듣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르기를,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리요.[割鷄焉用牛刀]” 한 데서 온 말로, 큰 재능을 작은 고을에 씀을 비유한 말이다. 《論語 陽貨》

면주(沔州) 곽 원외랑(郭員外郞) 충룡() 에게 부치다.

 


면주 사군은 일개 봉액 입은 선비로서 / 沔州使君一縫掖
군문의 홍말액은 전혀 알지도 못하나 / 不識軍門紅抹額
충의로운 마음은 구름 위에 치올라서 / 忠肝義膽薄層雲
맨손으로 범과 들소를 잡으려고 하는데 / 欲搏虎兕雙手赤
더구나 이젠 부절 받아 해변 성에 나가서 / 況今分竹海邊城
만백성의 안위가 모두 나의 책임임에랴 / 萬口安危皆我責
적의 배가 갑자기 나는 듯이 빨리 달려 / 賊船忽至疾如飛
바람 돛이 푸른 강 하늘을 가로질러와서 / 風帆截斷江天碧
번갯불처럼 번쩍번쩍 칼날을 휘두르며 / 電光閃閃揮劍鋒
언덕을 내려 외치면서 그대로 돌격하니 / 下岸叫呼仍突擊
아녀자들은 허둥지둥 달아나고 넘어지며 / 倉黃兒女走且僵
오리 갈매기 구별 않고 수택에 숨어들 제 / 不辨鳧鷖藏藪澤
사군은 막 밥을 먹다 밥상 밀치고 일어나 / 使君方食推
머리털이 곤두선 채 군사들을 호령하여 / 髮上衝冠呼伍佰
몸소 궁시를 메고 말 위에 뛰어올라서 / 身佩橐鞬躍上馬
창을 비껴들고 벼락같이 앞으로 나가매 / 橫槊直前如霹靂
군중이 모두 일당백의 용기를 얻어서 / 軍中勇氣一當百
적의 예봉을 꺾고 요해처부터 차단하니 / 折得賊鋒先截隘
장군의 뛰어난 재능 창졸간에 발휘함을 / 將軍錯愕驚異才
태사는 죽 연결지어 사책에 기록했네 / 太史牽聯書史冊
권하노니 그대 힘써 앞의 공적 이어서 / 勸君努力繼前績
성주가 앉아서 오랑캐 감복시키게 하소 / 聖主垂衣致苗格

 

[주D-001]홍말액(紅抹額) : 군용(軍容)을 나타내기 위하여 붉은 깁으로 이마를 싸매는 것을 가리킨다.

꿈에 동경(東京)의 전 판관(田判官)을 보았는데, 새벽에 귀성(歸省)을 하겠다는 부리(府吏)가 있으므로, 인하여 이 시를 부치다.

 


어찌하여 한 줄 서신도 부치지를 않는고 / 如何不寄一行書
멀리 이별한 지 어언 반년이 넘었네그려 / 遠別無端半歲餘
꿈속에 그대 만나 자주 다정함 표했거니 / 夢裏見君頻款款
응당 그대 또한 꿈속에 나를 만났으리라 / 定應君夢亦逢予

 

남전 선사(南田禪師) 부목(夫牧) 를 보내며

 


연화사 장로는 일찍 남전에서 도를 길러 / 蓮花長老牧南田
가만히 앉아 서쪽서 온 달마의 선을 깨쳤네 / 坐破西來達磨禪
한번 웃고 서로 만남은 참으로 우연인데 / 一笑相逢眞偶爾
이 이별이 되레 슬픈 게 하도 부끄러워라 / 多慚此別却悽然
법신은 긴긴 세월 귀모의 에 나타나고 / 法身浩劫龜毛地
행색은 하늘 등져 나는 기러기에 부쳤네 / 行色斜陽鴈背天
모두 말하길 성상이 친히 말씀 내리시어 / 摠說玉音親賜語
후일 경사에 다시 머무르라 했다 하누나 / 異時京輦更留連

 

[주D-001]귀모(龜毛) : 귀모는 불교(佛敎)의 용어로, 본래 없는 것인데도 있다고 굳이 믿는 것을 이른 말이니, 귀모의 땅이란 바로 어리석은 중생(衆生)의 세계(世界)를 의미한다.

밀성(密城) 이 정언(李正言) 석지(釋之) 에게 부치다.

 


난 그대 수염과 탁 트인 흉금을 좋아하는데 / 我愛李髥襟宇曠
폄적당하여 지금 밀성 장관이 되었으니 / 見謫今爲密城長
정사는 의당 계책 짜서 구황을 꾀해야지 / 政當畫策謀救荒
어찌 시나 읊으며 비방 피하길 도모하랴 / 豈肯吟詩圖避謗
다리 밑의 물고기는 희기가 은빛 같으니 / 橋下白魚白似銀
낚시로 낚아 올려 화려한 잔칫상 차리고 / 纖綸鉤上登錦茵
손 대하여 한 잔 하면 정취가 한아하리니 / 一樽對客多閑雅
다시 가을바람에 햅쌀 나기를 기다리세나 / 更待秋風玉粒新

 

복주 판관(福州判官) 정 정언(鄭正言) 천겸(天謙) 에게 부치다.

 


금성에서 상종한 건 한바탕 꿈속 같아라 / 錦省相從一夢中
인생의 모이고 흩어짐은 곧 낙화풍일세 / 人生聚散落花風
기구한 나는 유독 세속을 따를 수 있건만 / 崎嶇我獨能隨俗
진솔하기론 아무도 공에게 못 미친다오 / 眞率人皆不及公
자주 지방관 나가다가 머리는 희어 가는데 / 屢佩銅魚頭欲白
술잔에만 의지하니 낯은 오히려 붉구나 / 祗憑尊蟻面猶紅
대기만성이란 옛말이 허언이 아니거니 /
成大器非虛語
자천서 낚시질하던 팔십옹
을 기억하노라 / 記取滋泉八十翁

 

[주D-001]낙화풍(落花風) : 송 지문(宋之問)의 〈유소사(有所思)〉 시에, “낙양성 동쪽의 복사꽃 오얏꽃은, 이리저리 날아서 뉘 집에 떨어지는고. 규방 안의 아녀자는 안색을 애석히 여겨, 떨어진 꽃을 보고 길이 탄식을 한다.……옛사람은 낙양성 동쪽에 다시 오지 못하는데, 지금 사람은 꽃 떨구는 바람을 다시 대하네. 해마다 꽃은 흡사하게 도로 피건만, 해마다 사람은 달라져만 가누나.[洛陽城東桃李花 飛來飛去落誰家 幽閨兒女惜顔色坐見落花長歎息……古人無復洛城東 今人還對落花風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한 데서 온 말로, 인생의 덧없음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2]자천(滋泉) 낚시질하던 팔십옹(八十翁) :
강태공(姜太公)이 일찍이 반계(磻溪)의 자천에서 낚시질을 하며 지내다가 나이 80세가 되어서야 주 문왕(周文王)에게 등용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순흥 부사(順興府使) 최 시어(崔侍御) 안영(安穎) 에게 부치다.

 


시어 선생은 마치 가을 물처럼 맑은지라 / 侍御先生似秋水
맑은 광채가 중인의 미혹을 씻으려 하네 / 淸光欲洗衆人迷
어찌하면 다시 서로 손잡고 노닐어 볼꼬 / 何當更作聯裾客
내 가슴속엔 만 곡의 진흙이 쌓여 있다오 / 我有胸中萬斛泥

 

안 상시(安常侍) () 에게 부치다.

 


안씨
가 일어나서 사문을 진흥시켰는데 / 三安繼起振斯文
백씨 중씨는 다 죽고 계씨만 생존하였네 / 伯仲俱亡季氏存
수요는 하늘에 달렸으니 다시 묻지를 말고 / 壽夭在天休更問
안심하고 모친 받들면서 세월을 보내게나 / 安心奉母送寒溫

 

[주D-001] 안씨[三安] : 고려 말기에 안석(安碩)의 아들 5형제 중 학문이 뛰어났던 축()ㆍ보()ㆍ집() 3형제를 가리킨다.

동경(東京) 전 판관(田判官) 야은(野隱) 에게 부치다.

 


신라 천 년의 왕기가 멸절되고 이제는 / 新羅王氣千年滅
고려의 동번이라 부절 받들고 갔네그려 / 作國東藩奉符節
예로부터 막빈은 재주가 뛰어났거니와 / 自古幕賓才出群
더구나 지금 읍자들은 매우 수다함에랴 / 況今邑子紛如髮
그대는 막료로서 높이 나는 새와 같아 / 知君參佐鳥雲飛
일 처리와 읊조림을 서로 의지할 테지 / 劃諾坐嘯相倚依
봄누에가 고치를 지을 때에 이르거든 / 待見野蠶春作繭
비로소 순 임금 정사에 잘 부응했다 일컬으리 / 始稱深副舜垂衣

 

양주요(梁州謠). 양주(梁州) 임 사군(任使君)에게 부치다.

 


객이 남녘으로부터 멀리 와서 / 客來南天遙
나에게 양주요를 전해 주었네 / 遺我梁州謠
지난해엔 여름 비가 심히 내려 / 去年夏雨苦
사방 들이 다 농사를 실패하니 / 四野無春苗
농부들은 낯빛이 매우 처량하고 / 農夫色甚哀
집에 들면 찬 재처럼 썰렁하였네 / 入室空寒灰
옛날엔 관창에 곡식이 묵었더니 / 官倉昔紅腐
지금은 먼지만 날릴 뿐이라네 / 今也生塵埃
늙은 할아비가 슬하의 손자를 / 老翁膝下孫
천금같이 애지중지하다가 / 愛重如千金
하루아침에 그를 재화로 여겨 / 一朝作貨視
보내고 나서는 길이 슬퍼했다네 / 旣送長悲吟
성곽을 두른 청산은 갑절이나 선명하고 / 靑山繞郭倍鮮明
문항은 썰렁하여 곡소리도 안 나는데 / 門巷蕭條無哭聲
두어 집 아전들이 세습 관직 염려하여 / 數家群吏念世職
없는 것을 쥐어짜서 접대품을 마련하고 /
刮龜毛辦供億
빈 뜰에 열 지어 사군께 절하고 나서 / 空庭羅拜朝使君
어려움 호소하니 어찌 들을 수 있으랴 / 告訴艱難那可聞
사군은 차마 양주 곡식을 먹지 못하고 / 使君不忍食梁粟
산승에게 편지 보내 두어 곡을 얻어서 / 書與山僧得數斛
노파의 기국편
을 소리 높여 읊조리니 / 高吟老坡杞菊篇
북해의 한찬전
보다 월등히 뛰어났네 / 遠過北海寒餐氈
사군은 일찍이 천관의 관속이 되어서 / 使君曾作天官屬
눈동자가 반짝반짝 사람을 환히 비췄고 / 眸子照人光可燭
엄숙한 말은 광인의 말이 아니었기에 / 風霜口吻非其狂
간악한 자가 보고 놀라서 도망쳤었네 / 奸夫望之驚走藏
끝내 소인 등용으로 뜻을 펴기 어렵자 / 招得營營意難寫
훌쩍 떠나 남쪽의 지방관이 되었는데 / 翩然南游跨五馬
그 지방은 또한 전염병을 만났으니 / 南游又逢歲札

조물주의 사람 놀리는 일을 어찌하랴 / 造物戱人知奈何
양주곡이 내 마음을 몹시 슬프게 하누나 / 梁州曲令我心惻惻
누가 너희들에게 옷을 주고 밥을 줄꼬 / 誰與汝衣誰汝食
사군의 백성 돌보는 뜻이 하도 깊으니 / 使君撫字深復深
후세에 양주에는 임씨 성이 많으리라 / 後世梁民多姓任

 

[주D-001]그를 재화로 여겨 : 유종원(柳宗元)의 〈동구기전(童區寄傳)〉에, “월인(越人)은 은정(恩情)이 부족하여 아들이나 딸을 낳으면 반드시 그를 재화(財貨)로 여겨서, 아이가 7, 8세 이상만 되면 부형(父兄)이 그 아이를 팔아서 이익을 노린다.” 하였다.
[주D-002]노파(老坡) 기국편(杞菊篇) :
노 파는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가리킨다. ()나라 시인 육귀몽(陸龜蒙)이 일찍이 집의 앞뒤에 구기자(枸杞子)와 국화(菊花)를 심어 놓고 봄ㆍ여름으로 그 지엽(枝葉)을 채취해 먹으면서 〈기국부(杞菊賦)〉를 지었으므로, 소식 또한 육귀몽의 〈기국부〉를 모방하여 〈후기국부(後杞菊賦)〉를 지은 것을 가리키는데, 그 대략에 의하면, “나는 바야흐로 구기자를 양식으로 삼고, 국화를 마른 양식으로 삼아서, 봄에는 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먹으며, 가을에는 꽃과 열매를 먹고, 겨울에는 뿌리를 먹으련다.[吾方以杞爲糧 以菊爲糗 春食苗 夏食葉 秋食花實冬食根]” 하였다. 《東坡全集 卷33
[주D-003]북해(北海) 한찬전(寒餐氈) :
북 해는 한()나라 때 흉노(匈奴)에 사신갔다가 북해에 억류되었던 소무(蘇武)를 가리키는데, 한찬전이란 곧 흉노가 소무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억류시켜 놓고 먹을 것을 단절시켜 버리므로, 소무가 추운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백설(白雪)과 전모(氈毛)를 씹어 먹으면서 어렵게 생명을 유지했던 데서 온 말이다.

백부(伯父)께 부쳐 올리다.

 


화복은 원래 서로 순환하거니와 / 禍福元相倚
비환 또한 혹 서로 찾아오나니 / 悲歡亦倘來
한 마음이 만일 정해짐이 있다면 / 一心如有定
만사를 어찌 재단하기 어려우랴 / 萬事豈難裁
국화와 만남을 가장 좋아하는데 / 最愛黃花約
구일에 피는 걸 잘 알고 있으나 / 偏知九日開
동쪽 울타리가 이젠 적막하기에 /
東籬今寂寞
멀리 생각하며 홀로 배회한다오 / 緬想獨徘徊

 

[주D-001]동쪽 …… 적막하기에 : 동쪽 울타리란 곧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엄광사(嚴光寺)의 원 선사(圓禪師)에게 부치다.

 


궁년의 묵은 불엔 나잔의 토란을 먹고 / 窮年宿火懶殘芋
온종일 향불 밑엔 지자의 불경을 읽누나 / 盡日淸香智者書
밀성의 수염 좋은 태수에게 당부하노니 / 寄語密城髥太守
술병 들고 절에 가는 것도 무방할 걸세 / 不妨携酒到精廬

 

[주D-001]묵은 …… 먹고 : 나 잔(懶殘)은 당()나라 때 형악사(衡岳寺)의 고승(高僧)인 명찬(明瓚)의 별호이다. 명찬은 성격이 게으르고 남은 밥이나 채소를 먹기 좋아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나잔이라 칭했다고 하는데, 명상(名相) 이필(李泌)이 소싯적에 일찍이 형악사에서 글을 읽다가 나잔을 비범한 사람으로 여기어 한밤중에 들어가 뵈었더니, 나잔이 화롯불을 뒤적여 토란을 꺼내 먹으면서 이필에게 이르기를, “신중히 하여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십년 재상(十年宰相)이 될 것이다.”고 했다 한다.
[주D-002]지자(智者) :
()나라 때의 고승(高僧)으로 뒤에 천태종(天台宗)의 개조(開祖)가 된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
)의 별호이다.

마니산 기행(摩尼山紀行)

 



새벽에 흥왕사(興王寺)에 들렀는데, 이날 금탑(金塔)을 옮기었다.

보탑품을 이리저리 훑어보면서 / 流觀寶塔品
금선의 노래를 낭랑히 읊어라 / 朗詠金仙歌
달린 데 없이 본디 허공에 떴는데 / 浮空本無蔕
한을 하직하며 눈물 줄줄 흘렸다네 /
辭漢淚如波
이 두 가지가 다 허탄하기만 하니 / 兩途俱幻誕
사람에게 깊은 탄식을 일으키누나 / 令人發深嗟
삼가 생각건대 문묘의 뜻은 / 恭惟文廟意
먼 후세에 좋은 계책 내린 건데 / 燕翼垂不劘
충신은 본디 임금을 사랑하지만 / 忠臣固愛主
비밀한 법술이 잘못된 게 많도다 / 祕術多差訛
비참한 구름이 새벽빛 가리우며 / 悲雲擁曉色
산모퉁이에서 성하게 일어나는데 / 鬱然興山阿
나그네는 자주 머리를 돌리면서 / 有客屢回首
말을 몰아 앞 언덕으로 올라가네 / 驅馬登前坡

재궁(齋宮)
에 차운하다. 2(二首)

향 피우고 조용히 앉아 머리 기울여 읊으니 / 焚香淸坐側吟頭
텅 비고 밝은 한 방은 작기가 거룻배 같구나 / 一室虛明小似舟
가을 빛을 가장 좋아해 문 열어 받아들이고 / 最愛秋光開戶入
다시 산 그림자 맞이해 뜰 가득 머물게 하네 / 更邀山影滿庭留
때 없어 몸 가뿐하니 봉황 타기를 생각하고 / 身輕無垢思騎鳳
기심 없어 맘 고요하니 갈매기를 친하고파라 / 心靜忘機欲近鷗
단약 만들어 신선되기를 구할 필요 없다오 / 不用鍊丹求羽化
육착
만 제거하면 그게 바로 유유자적인 걸 / 掃除六鑿便天遊

무릉은 무슨 일로 애써 신선을 구했었나 /
茂陵何事苦求仙
다만 이 봉래산 때문에 혹 그러했던가 / 祗是蓬萊亦或然
산은 구름과 함께 뜨니 절로 끝이 없고요 / 山與雲浮自無際
바람은 배를 몰아 가니 앞설 자가 없도다 / 風吹船去莫能前
금인의 방울 이슬은 소반에 떨어지고 /
金人一滴盤中露
청조는 바다 위의 하늘을 외로이 날았네 /
靑鳥孤飛海上天
어떻게 하면 그대로 참성에 제사를 하여 / 何似塹城修望秩
앉아서 사람마다 태평세월을 누리게 할꼬 / 坐令人享大平年

악부(樂府) 접련화(蝶戀花)에 차운하여 앙산정(仰山亭)에서 읊다.

수일 동안 앙산정 아래를 두루 거닐면서 / 數日仰山亭下步
곧장 지팡이를 짚고 / 直欲扶

석양을 좋이 보내고자 하노니 / 穩送斜陽暮
본래 산 좋아하여 시골 정취 이룬 것이지 / 自是愛山成野趣
내가 감히 이 산 앞에 거주코자 해서이랴 / 吾生敢擬山前住
흥취가 외론 구름 나는 새와 함께 떠나니 / 興與孤雲飛鳥去
다만 이 강산에 / 只恨江山
이토록 말할 사람 없는 게 한스럽네 / 如此無人語
시의 시름 천만 가닥을 집어 일으키어라 / 拈起詩愁千萬緖
조용히 읊는 곳에 하늘 낮고 귀신이 우누나 / 天低鬼泣沈吟處

차운하다.

아침에 앙산정 아래를 이리저리 배회할 제 / 朝來徙倚仰山亭
골짝마다 안개 짙어 비 올 기미 보이다가 / 萬壑煙昏雨意成
갑자기 해풍 불어 짙은 안개 반쯤 걷히니 / 忽被海風吹半捲
개중의 참모습을 절로 이름짓기 어려워라 / 箇中眞態自難名

가을바람에 낙엽지고 물결도 출렁이는데 / 西風木落水揚波
우연히 강도에 와서 좋은 경치 만끽하네 / 偶向江都管物華
중니의 떼는 타자니 구름과 함께 멀어지고 /
乘仲尼桴雲共遠
강락의 나막신 신으니 길이 더디질 않네 /
着康樂屐路非

푸른 바다 만리엔 하늘 그림자 아득하고 / 蒼溟萬里天浮影
신선 고장 삼추엔 계수 꽃이 떨어지누나 / 紫洞三秋桂隕花
상계에도 예로부터 관부가 많다고 하니 /
上界由來足官府
어느 때나 단약 만들어 여기서 살아 볼꼬 / 鍊丹何日此爲家

차운하여 산 위에서 짓다.

산하가 이와 같이 험고하니 / 山河險如此
장하기도 해라 우리나라여 / 壯哉吾有國
꼭대기엔 오색 운기가 흐르고 / 絶頂雲氣流
절벽에선 높은 고목을 굽어보네 / 傾崖俯喬木
바람 앞에서 길이 휘파람 부니 / 臨風發長嘯
울리는 소리가 암곡을 진동하네 / 餘響振巖谷
소문의 놀이
를 잇고자 하노니 / 欲繼蘇門遊
석수는 지금 한창 푸르렀으리 /
石髓今正綠
해와 달은 두 수레바퀴와 같고 / 日月兩轂輪
우주는 한 칸의 집이 되었도다 / 宇宙一間屋
이 단이 천연으로 된 게 아니라면 / 此壇非天成
정히 누가 쌓았는지 모르겠구려 / 不知定誰築
향 연기 오르매 별은 나직해지고 / 香升星爲低
녹장
이 들 제 기운 막 엄숙해지네 / 章入氣初肅
다만 신명의 보우에 보답함일 뿐 / 祗以答神貺
어찌 스스로 복을 구해서이랴 / 何曾自求福

차운하다.

긴 바람이 나에게 불어 요대에 올라가니 / 長風吹我上瑤臺
넓은 바다 먼 하늘이 만리나 트이었네 / 海闊天遙萬里開
털고 깨끗이 씻을 필요도 없이 /
不用振衣仍濯足
신선의 생학이 구름 타고 오는 듯하구나 / 似聞笙鶴駕雲來

산을 내려오면서 관솔불을 읊다.

낭떠러지 길은 실처럼 좁은 데다 / 懸崖路如綫
달빛 어두워 오르기도 어려운데 / 月黑難夤緣
다정도 할사 산 아래 사람들이 / 殷勤山下人
날 데리러 꼭대기까지 올라와서 / 候我登危巓
다섯 사람 열 사람씩 줄을 지어 / 伍伍與什什
손으로 관솔불 들어 비추어 주네 / 手把松明燃
실바람에 나무 열매는 떨어지고 / 風輕珠落顆
구름 끼니 별자리는 듬성한데 / 雲密星散躔
내 앞사람은 이미 땅에 들어섰고 / 我前已入地
내 뒷사람은 아직 하늘에 있구나 / 我後猶在天
이 몸이 마치 난새를 탄 듯이 / 此身如跨鸞
신속하게 붉은 구름 헤쳐 오니 / 飄迅凌紫煙
기쁜 마음은 얻음이 있는 듯하나 / 心忻若有得
애석한 건 말로 전하지 못함일세 / 惜哉非言傳

새벽에 재궁(齋宮)을 출발하다.

만 길의 높은 제단에 밤기운 하도 맑아 / 萬丈玄壇夜氣淸
녹장 아뢰자마자 희로애락을 다 잊었네 / 綠章才奏澹忘情
돌아가는 안장엔 장생복을 가득 실어서 / 歸鞍滿載長生福
우리 님께 바치어 태평성대 이룩케 하리 / 拜獻吾君作大平

전등사(傳燈寺)

납극
신고 산에 오르니 흥취 절로 맑은데 / 蠟屐游山興自淸
전등사의 늙은 중이 나의 행차 인도하네 / 傳燈老釋道吾行
창밖의 먼 산들은 하늘 끝에 벌여 있고 / 窓間遠岫際天列
누각 밑의 긴 바람은 물결을 일으키누나 / 樓下長風吹浪生
천문역법은 예전 태사가 까마득한데 / 星歷蒼茫伍太史
구름 연기는 삼랑성에 참담하기만 하여라 / 雲煙慘淡三郞城
정화궁주의 원당
은 누가 다시 세울런고 / 貞和願幢誰更植
벽기
에 쌓인 먼지가 내 마음 상하게 하네 / 壁記塵昏傷客情

선원사(禪源寺)를 거듭 지나다가 도중에 해운당(海雲堂)을 바라보다.

높다란 고운 색채가 남기 빛에 잠기어라 / 岧嶢金碧鎖嵐光
팔부의 용천
은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네 / 八部龍天信渺茫
조그만 방이 있어 조용히 앉았을 만하니 / 獨有小窓堪靜坐
저게 바로 행촌거사의 해운당이로세 / 杏村居士海雲堂

갑곶(甲串)을 건너 통진현(通津縣)의 인가(人家)에서 자다.

배에서 내려 말을 타고 산비탈을 따라 / 下船騎馬傍山崖
저문 날에 멀리 숲 밖의 인가를 찾았네 / 落日遠尋林外家
야학같이 거침없음을 자부하던 내가 / 自擬昻昻如野鶴
어이하여 저녁 까마귀를 따른단 말인가 / 奈何行色趁昏鴉

 

[주D-001]한(漢)을 …… 흘렸다네 : 위 명제(魏明帝) 경초(景初) 원년에 한 무제(漢武帝)가 일찍이 건장궁(建章宮)에 건조(建造)해 놓은 금선 승로반(金仙承露盤)을 위도(魏都)인 낙양(洛陽)으로 옮겼는바, 처음 이 승로반을 뜯어낼 때는 승로반이 절단되면서 굉음(轟音) 10리 밖까지 들렸고, 승로반을 수레에 실을 적에는 금선(金仙)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이 고사를 두고 당()나라 이하(李賀)가 일찍이 〈금동선인사한가(金銅仙人辭漢歌)〉를 지었었다.
[주D-002]문묘(文廟) :
고려 문종(文宗)을 가리키는데, 그는 특히 불교를 독신하여 흥왕사(興王寺) 등 많은 사찰을 세웠고, 유학(儒學)도 장려했었다.
[주D-003]재궁(齋宮) :
마 니산(摩尼山) 꼭대기에 있는 참성단(塹城壇)에 제()를 지내기 위하여 세운 재궁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참성단은 옛날에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하던 곳이라 하는데, 조선(朝鮮) 시대까지도 그대로 이 단()에서 성신(星辰)에 제사했었다.
[주D-004]육착(六鑿) :
불교(佛敎)의 용어로, 즉 인간을 미혹하게 하는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의 여섯 가지 근원을 말한다.
[주D-005]무릉(茂陵)은 …… 구했었나 :
무릉은 한 무제(漢武帝)의 능호(陵號), 전하여 한 무제를 가리키는데, 한 무제가 일찍이 신선을 구하려고 애를 썼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6]금인(金人)의 …… 떨어지고 :
한 무제가 동선인(銅仙人)의 수장(手掌)으로 승로반(承露盤)을 받드는 형상을 20() 높이로 만들어 세운 데서 온 말인데, 이 이슬에 옥설(玉屑)을 타서 마시면 장생(長生)할 수 있다고 하여 이것을 만든 것이다.
[주D-007]청조(靑鳥)는 …… 날았네 :
청 조는 선녀(仙女)인 서왕모(西王母)의 사자(使者)이다. 한무고사(漢武故事) “7 7일에 갑자기 청조가 궁전(宮殿) 앞에 날아 앉자, 동방삭(東方朔)이 말하기를, ‘서왕모가 오려고 한다.’ 했는데, 잠시 후에 과연 서왕모가 오자, 두 청조가 서왕모를 양쪽 곁에서 모셨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8]읊는 …… 우누나 :
두보(杜甫)의 시 〈이백에게 부치다.[寄李十二白]〉에, “붓 내려 쓰면 비바람을 놀래키고, 시를 이루면 귀신을 울리도다.[筆落驚風雨詩成泣鬼神]”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9]중니(仲尼)의 …… 멀어지고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나는 떼를 타고 바다에 뜨리라.”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멀리 바다에 떠 가는 배를 두고 한 말이다. 《論語公冶長》
[주D-010]강락(康樂)의 …… 않네 :
강락후(康樂侯)에 봉해진 남조(南朝) ()나라의 사영운(謝靈運)이 등산(登山)하기를 매우 좋아했는데, 그는 나막신을 신고서 산에 오를 때는 나막신 앞굽을 빼고, 내려갈 때는 나막신 뒷굽을 빼곤 했었다.
[주D-011]상계(上界)에도 …… 하니 :
옛 선인(仙人)이 천상(天上)에도 관부(官府)의 일이 많다고 한 데서 온 말인데, 그래서 한유(韓愈)의 시에는, “상계의 진인도 관부의 일이 많다 하니, 어찌 일 없는 신선처럼 난봉 몰고 종일토록 서로 따라 노닒만 하겠는가.” 하였다.
[주D-012]소문(蘇門) 놀이 :
()나라 때 완적(阮籍)이 일찍이 소문산(蘇門山)에서 은사(隱士) 손등(孫登)을 만나 여러 가지 말을 해 보았으나, 손등은 한마디도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완적이 길게 휘파람을 불며 내려오는데, 산 중턱쯤 내려왔을 때 산 위에서 마치 난()ㆍ봉()의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는데, 그것은 바로 손등의 휘파람 소리였더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13]석수(石髓)는 …… 푸르렀으리 :
석 수는 선가(仙家)에서 500년 만에 한 번 나온다고 하는 돌의 진액(津液)으로, 사람이 이것을 복용하면 장생(長生)한다고 하는데, ()나라 때 왕렬(王烈)이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갈라진 바위 틈에서 이 진액을 채취해 먹고 혜강(
)에게도 조금 주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14]녹장(綠章) :
옛날에 도사(道士)가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청등지(靑藤紙)에다 주사(朱砂)로 쓴 축문(祝文)을 가리킨다.
[주D-015]옷 …… 없이 :
()나라 좌사(左思)의 〈영사(詠史)〉 시에, “천 길 산등성이서 옷을 털고, 만리 흐르는 물에서 발을 씻으리.[振衣千仞岡 濯足萬里流]” 한 데서 온 말로, 즉 속세(俗世)를 초월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16]납극(蠟屐) :
()나라 완부(阮孚)가 나막신에 밀을 칠하여 반질반질하게 해서 신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17] 태사(伍太史) :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태사(太史)였던 오윤부(伍允孚)를 가리키는데, 그는 대대로 태사국(太史局)에 벼슬을 하던 집에서 태어나 충렬왕 때에 판관후서사(判觀候署事)를 거쳐 뒤에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에 이르렀다.
[주D-018]삼랑성(三郞城) :
전등사(傳燈寺)에 있는데,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단군(檀君)이 세 아들을 시켜서 이 성을 쌓았다고 한다.
[주D-019]정화궁주(貞和宮主) 원당(願幢) :
()은 기() 비슷한 것으로 절에는 흔히 석당(石幢)을 세우는데, 이 원당은 곧 충렬왕 원비(忠烈王元妃) 정화궁주가 부처 앞에 원하는 바가 있어 공덕(功德)을 바치기 위해 당을 세운 것이다.
[주D-020]벽기(壁記) :
()나 기문(記文) 같은 글들을 새겨서 벽에 걸어 놓은 것을 가리킨다.
[주D-021]팔부(八部) 용천(龍天) :
불가(佛家)의 용어로, 팔부중(八部衆) 가운데 용중(龍衆)과 천중(天衆)을 가리킨다.

청량산(淸涼山)으로 돌아가는 관 선사(觀禪師)를 보내다.

 


내가 평생에 석가모니는 알지 못하나 / 平生不識釋迦文
속세를 떠난 고승을 사랑할 뿐이로세 / 只愛高僧遠世紛
다시 듣건대 청량산 산수가 좋다 하니 / 更說淸涼山水好
갈건 쓰고 어느 날 최 고운을 찾을런가 / 葛巾何日訪孤雲

선사가 가는 길에 청룡사를 들른다 하니 / 知師飛錫過靑龍
나를 위해 연회옹께 안부를 전해 주오 / 爲報平安宴晦翁
세상일이 사람 미혹시킴을 반성해야지 / 世故溺人須省取
부소산 아래는 또 가을바람이 불겠네 / 扶蘇山下又秋風

 

연화 선사(蓮花禪師) 부목(夫牧) 에게 부치다.

 


본성을 바로 문자를 쓰지 않으니 /
直指人心不用文
대장경의 제목은 모두 분분하기만 해라 / 藏經題目儘紛紛
선정에서 나오면 다른 일이 없을 테니 / 小窓出定無餘事
앉아서 먼 하늘 만리 구름을 대하겠네 / 坐對長空萬里雲

 

[주D-001]본성(本性)을 …… 않으니 : 선종(禪宗)에서 문자(文字)에 의하여 교()를 세우지 않고 본성을 바로 보아서 오도(悟道)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수 상인(脩上人)에게 부치다.

 


연회산인은 지금 어떻게 지내는고 / 宴晦山人今若何
몸과 마음을 이미 삭가라에 부쳤구려 / 身心已付爍迦羅
청풍의 태수는 전혀 하는 일이 없으니 / 淸風太守渾閑事
조계의 한 곡조 노래를 배워 부르겠네 / 學唱曹溪一曲歌

 

[주D-001]삭가라(爍迦羅) : 불교 용어로, 마음이 견고하여 전동(轉動)함이 없는 것을 이른 말이다.

청풍(淸風)의 정 사간(鄭司諫)에게 부치다.

 


행장은 잘못되었으니 무어라 말하리요만 / 行藏誤矣謂何哉
화복은 수다하여 혹 올 수 있는 거라오 / 禍福紛然是倘來
그대 꿈은 아직 화려한 놀이에 놀라련만 / 君夢尙驚遊錦帳
내야 어찌 은대에 들 생각이나 했으랴 / 吾生豈意入銀臺
내 몸 가벼이 허락한 걸 이미 한하노니 / 將身已恨輕相許
입이 있어도 모름지기 열지를 말아야지 / 有口還須噤不開
나는 목안의 중간에서 늙으려고 하노니 / 木鴈兩間吾欲老
당시 구구하게 버들로 술잔 만든 일세 / 區區當日杞爲杯

 

[주D-001]목안(木鴈) 중간 : 장 자(莊子)가 산중(山中)을 가다가는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가 있으나 쓸모가 없다 하여 사람이 그것을 베지 않은 것을 보았고, 또 자기 친구 집에 들어가서는 기러기가 잘 울지 못한다 하여 죽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그의 제자가 묻기를, “어제 산중의 나무는 재목이 못 된 이유로 제 목숨대로 다 살 수 있었고, 오늘 이 집의 기러기는 재능이 없기 때문에 죽었으니, 선생은 어느 쪽에 처하시겠습니까?” 하니, 장자가 말하기를, “나는 재목이 된 것과 재목이 되지 못한 것의 중간에 처하겠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화()를 면하기 위해서는 유용(有用)과 무용(無用)의 중간에 있어야 함을 뜻한 말이다. 《莊子 山木》
[주D-002]버들로 술잔 만든 :
고 자(告子)가 말하기를, “()은 마치 버들[杞柳]과 같고, ()는 마치 술잔[杯棬]과 같은 것이니, 인성(人性)으로 인의(仁義)를 하는 것은 마치 버들을 구부려서 술잔을 만드는 일과 같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내 마음에 없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孟子 告子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