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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牧隱詩藁) 제2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7. 20:04

목은시고(牧隱詩藁) 2

 

 

 ()

 

 

 

천수절일(天壽節日)에 신() ()이 본국(本國)에서 표문(表文)을 올리러 온 배신(陪臣)과 함께 대명전(大明殿)에 입근(入覲)하다.

 


크게 열린 명당에 새벽빛이 차가운데 / 大闢明堂曉色寒
깃발은 높이 화려한 난간에 펄럭이누나 / 旌旗高拂玉闌干
구름 걷힌 보좌엔 천자의 말씀 들리고 / 雲開寶座聞天語
봄 가득한 금잔은 성상의 기쁨 받드옵네 / 春滿金巵奉聖歡
천지 사방이 일가 되니 요 임금 시대요 / 六合一家堯日月
만세 삼창을 불러라 한나라 문명일세 / 三呼萬歲漢衣冠
모르겠다 내 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 不知身世今安在
아마도 푸른 하늘에 난새를 탄 게 아닐까 / 恐是靑冥控紫鸞

 

 

 

동문(東門)에서 가군(家君)을 송별하다.

 


만리 밖에 원유함은 부모 생각 때문인데 / 遠游萬里爲思親
어버이 동으로 가시니 코가 절로 시큰하네 / 親却東還鼻自辛
천지 사이의 한 몸은 온통 꿈만 같은데 / 天地一身渾似夢
풍진은 사면에 어두워 심신을 상하누나 / 風塵四面暗傷神
학문은 어디에나 아직도 길을 헤매고 / 書林底處猶迷路
벼슬길은 끝없어 시험 삼아 나루를 묻네 / 宦海無涯試問津
노력하여 스스로 일초의 시각을 아껴서 / 努力分陰當自惜
좋이 공업을 태평한 시대에 세우리다 / 好將功業樹昌辰

 

새로 숭덕사(崇德寺)에 우거하다.

 


천거 만마가 득실거리는 구가의 머리에 / 千車萬馬九街頭
지척의 절간이 경계가 절로 그윽하여라 / 咫尺祇林境自幽
뜰에 비친 구기는 홍색이 뚝뚝 듣는 듯 / 枸杞暎堦紅欲滴
시렁 가득 포도는 푸른빛이 흐르는 듯 / 蒲萄滿架翠如流
절간에서 밥 얻어 먹음은 전생의 일이요 / 僧窓寄食前生事
객지에서 어버이 생각은 밤중의 시름일세 / 客枕思親半夜愁
손꼽아라 돌아간 수레 이젠 당도했는지 / 屈指歸軒今到未
진강
의 이슬비는 고깃배에 가득하겠네 / 鎭江煙雨滿漁舟

 

[주D-001]진강(鎭江) : 저자의 고향인 한산(韓山)에 있는 진포(鎭浦)를 가리킨다.

상서(尙書) 태겸선(泰兼善)에게 전해 올리다.

 


옥수의 풍치가 세상에 비쳐 새로워라 / 玉樹風標照世新
홀로 서탑 걸어서 맑은 풍치 풍기누나 / 獨懸徐榻播淸塵
문은 양한을 초월하여 묘리까지 담론하고 / 文超兩漢仍談理
글씨는 선진을 이어 신의 경지에 들었네 / 筆繼先秦更入神
명성 자자한 장원이라 대책에 뛰어났고 / 名重狀元工射策
작질 높은 종백이라 조복이 엄연하네 / 秩崇宗伯儼垂紳
먼 데서 붕우가 찾아옴은 이제부터라 / 朋來自遠從今始
동방의 해외인이 문 앞에 서있네그려 / 門立扶桑海外人

 

[주C-001]상서(尙書) 태겸선(泰兼善) : 태겸선은 원()나라 사람으로 벼슬이 예부 상서(禮部尙書)에 이르렀던 태불화(泰不華)를 가리킨다. 겸선은 그의 자이다.
[주D-001]서탑(徐榻) 걸어서 :
고사(高士)를 정중히 대우함을 뜻한다. 후한(後漢) 말기의 고사 진번(陳蕃)이 특별히 교의(交椅) 하나를 걸어 두었다가 역시 고사인 서치(徐穉)가 내방(來訪)할 때만 그 교의를 내려서 앉게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백부(伯父)께 받들어 부치다.

 


어젯밤 서풍이 뜰 나뭇가지에 불어오니 / 西風昨夜入庭柯
머리 돌려 고향 그리는 생각을 어찌하랴 / 回首思鄕可若何
남포의 순채는 취한 자리에 날 터이고 / 藍浦蓴絲飛醉席
진강의 추색은 어부의 도롱이에 가득하리 / 鎭江秋色滿漁蓑
제형은 무고하니 기쁜 마음 한량없고 / 弟兄無故歡情足
부로들과 종유하니 즐거운 일도 많으리 / 父老相從樂事多
유독 한스러움은 나그네 심정 나쁜 데다 / 獨恨遠游心況惡
누런 먼지 눈에 들고 말도 안 통함일세 / 黃塵
目語音訛

 

중추(中秋)에 박중강(朴仲剛)에게 부치다.

 


중강은 머리에 산인의 관을 높이 쓰고 / 仲剛頭戴山人冠
추풍에 노도 치고 서산에도 노닐면서 / 秋風鼓
游西山
어옹 초부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어라 / 漁翁樵父共談笑
험난하고 평탄함을 편한 대로 따라 하네 / 坎止流浮隨所安
더구나 또 중추의 달은 낮처럼 밝아서 / 況復中秋月如晝
청초히 우뚝 서서 인간을 초월하누나 /
然獨立超人間
졸렬한 한산자는 뛰어난 자취 상상하여 / 韓山拙子想遐躅
종유하고 싶어도 험난한 길이 걱정이라 / 欲往從之憂路難
이슬 내린 깊은 밤에 늘상 잠 못 이루고 / 夜深露冷耿無寐
멍하니 난간에 기대 서쪽을 바라본다오 / 悵然西望憑欄干
만리나 먼 곳에 밝은 달은 하나이건만 / 雖然萬里一明月
서로 손잡고 배회하지 못한 게 한이로세 / 恨不握手同盤桓
본디 세상사는 절로 모순이 있는 법이라 / 由來世事自矛盾
새로운 시 짓고 나서 부질없이 탄식하네 / 新詩賦罷空長嘆

중강(仲剛)의 운에 차()하다.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물리치고 / 涼風吹暑去
오만 숲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니 / 紅樹尙交加
꿈꾸는 것은 오직 고향 마을이요 / 入夢唯鄕曲
맘에 걸리는 것은 바로 국가일세 / 嬰心是國家
풀 무성하니 난초는 더욱 향기롭고 / 草深蘭更馥
서리 짙으니 국화는 오히려 피었네 / 霜重菊猶花
세상 맛을 이제 처음 보았으니 / 世味初嘗鼎
한가로이 차나 마셔야겠네 / 悠哉且飮茶

귀근(歸覲)하는 집현(奇集賢)에게 받들어 보내다.

 


집현 학사는 사람 가운데 용이라 / 集賢學士人中龍
신채가 스스로 춘풍처럼 온화하네 / 神采自是春風容
의관은 이어져라 옛 음덕을 누리고 / 衣冠綿綿食舊德
문벌은 혁혁해라 조선을 군림하네 / 門閥奕奕臨箕封
남은 복이 모인 곳에 이인을 낳으니 / 流慶所鍾生異人
금지옥엽
이 끝없는 봄이로다 / 金枝玉葉無邊春
금마문 붉은 섬돌 아래에 노닐면서 / 遨遊金馬赤墀下
거천 척오
의 남다른 은총을 받다가 / 去天尺五承殊恩
어버이 생각을 하루도 차마 잊지 못해 / 思親不忍一日忘
구름 나는 곳을 멀리 바라보니 /
白雲飛處遙相望
북당 앞의 원추리는 봄빛을 띠었네 / 堂前萱草浮春光
인생의 부귀는 하늘을 찌를 듯한데 / 人生富貴可熏天
입신해서 충효 온전히 함만 귀히 여겨 / 只貴立身忠孝全
대궐에 홀 바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니 / 彤庭還笏便歸去
따르는 수레 줄을 이어 구름 같구려 / 從車絡繹如雲煙
교외에 마중 나온 기병은 셀 수도 없고 / 郊西迓騎定無數
노약자들 모두 나와 앞다퉈 구경하리 / 老弱空巷爭先睹
푸른 얼굴이 황금 띠에 서로 비추일 제 / 蒼顔照耀黃金帶
아마 채색옷 입고 덩실덩실 춤을 추겠지 / 想見翩翩綵衣舞
이는 삼한의 성사로 천추에 전해지련만 / 三韓盛事傳千秋
아 나는 가고파도 머리만 긁적일 뿐이네 / 嗟我欲往空搔頭
술잔 들어 헌수하는 일 늦추지 말게나 / 擧觴獻壽幸毋緩
천자의 부름으로 오래 못 머무를 걸세 / 天子召還難久留

 

[주C-001] 집현(奇集賢) : 고려(高麗) 말기의 권신인 기원(奇轅)을 가리킨다. 누이가 원 순제(元順帝)의 황후(皇后)가 되자, 원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에 발탁되었고, 고려에서는 덕양군(德陽君)에 봉해졌다.
[주D-001]금지옥엽(金枝玉葉) :
제왕(帝王)의 겨레를 나무에 비유하여 찬미한 말이다.
[주D-002]거천 척오(去天尺五) :
하늘과의 거리가 일척 오촌(一尺五寸)이라는 뜻으로, ()나라 때 위씨(韋氏)와 두씨(杜氏)가 매우 영달(榮達)하였으므로 그들을 일러 거천 척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 구름 …… 바라보니 :
객 지에서 고향의 어버이를 생각하는 것을 이른다. 당나라 때 적인걸(狄仁傑)이 병주 법조참군(幷州法曹參軍)으로 가 있을 적에 일찍이 태항산(太行山)에 올라가 고향을 바라보다가 흰 구름이 나는 것을 보고는우리 부모가 저 밑에 계신다.”고 말하고, 어버이를 생각하며 탄식했던 데서 온 말이다.

눈 온 뒤에 다시 중강의 운을 사용하다.

 


웅장한 뜻은 누가 제일임을 알거니와 / 壯志知誰最
곤궁한 시름은 나를 범하지 못하네 / 窮愁不我加
날 추우니 자주 술을 마시고 / 天寒頻飮酒
해 저무니 집 생각이 갑절 나누나 / 歲暮倍思家
홀로 연산의 눈을 마주해 앉아서 / 獨對燕山雪
멀리 대유령의 매화를 생각하네 / 遙懷庾嶺花
그윽한 삶이 더욱 맛이 있구나 / 幽居尤有味
돌솥에 차 달이기 좋기도 해라 / 石鼎好煎茶

제야(除夜)

 


해마다 제야엔 역귀 몰아내기 좋아하여 / 年年除夜喜驅儺
아동과 섞여 앉아 담소가 떠들썩했는데 / 雜坐兒童笑語譁
객지 생활 흥미 없음을 이제야 알았네 / 始覺遠遊無興味
적막한 승탑에 불똥만 뚝뚝 떨어지누나 / 寂寥僧榻落燈花

 

동사생(同舍生)과 함께 짓다.

 


객지의 고단한 그림자는 절로 외로웁지만 / 遠遊孤影自零丁
태학의 유생이라 기백은 상기 맹렬한데 / 挾冊橋門氣尙獰
풍채 비범한 그대는 봉황의 자질이요 / 毛羽不凡君
鸑鷟
모양 바꾸려는 나는 명령과 흡사하네 / 神形欲變我螟蛉
해마다 푸른 봄풀은 맘을 상하게 하고 / 年年春草傷心碧
밤마다 구름 낀 청산은 꿈에 들어오누나 / 夜夜雲山入夢靑
후일에 잘 봉양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 未識他年榮養否
지금 부모 떠나 있는 게 한스러울 뿐이네 / 只今深恨阻趨庭

 

[주D-001]명령(螟蛉) : 나방류의 유충(幼蟲)인데, 나나니벌이 이것을 데려다 길러서 제 새끼로 변화시킨다는 전설이 있으므로, 전하여 여기서는 남의 도움으로 인품과 학문이 진취되는 것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2]푸른 …… 하고 :
부 모를 몹시 그리워하는 뜻으로, 부모 밑에서 자식이 자라는 것을 따뜻한 봄볕 아래서 풀이 자라는 것에 비유한 데서 온 말이다.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에, “어머니의 바느질하는 옷은 유자가 입을 옷이로세. 한 치 풀의 마음을 가지고 삼춘의 햇볕에 보답하기 어려워라.[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 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 하였다.

스스로 읊다.

 


문채(文彩) 빛난 오당에게 돌아가고 싶어라 /
斐然吾黨欲歸歟
추향은 반드시 시작에서 밝혀야 하네 / 趨向須明發

터진 옷 꿰맨 곳엔 모친의 손때가 남았고 / 衣綻尙餘慈母線
책이 많아 고인의 글은 다 읽기 어려워라 / 帙多難盡古人書
봄인데도 나그네 담요엔 이가 득실거리고 / 春來客榻氈猶蝨
바람이 보낸 고향 배엔 먹을 생선이 있네 / 風送鄕船食有魚
말발굽의 먼지를 향해 절하지 않으니 /
不向馬蹄塵作拜
고상한 뜻이 한거보다 나은 게 기쁘구나 / 高情幸喜勝閑居
아득해진 성인의 학문을 얻을 수 있을까 / 聖學茫茫可得歟
천 리 길을 가려고 문을 나선 처음일세 / 欲行千里出門初
여상의 비바람
은 등잔 앞의 꿈이고요 / 藜床風雨燈前夢
태학의 세월은 책상 위의 서책이로다 / 槐市光陰案上書
처음엔 가을 하늘 나는 매가 되려 했더니 / 始擬橫秋如鷙鳥
점차 대나무 오르는 메기임을 알았네 / 漸知緣竹有鮎魚
때로 일어나는 분화와의 싸움을 끝내고 / 時時罷却紛華戰
새 봄엔 하락에 자리 잡아 살고 싶어라 / 河洛新春願卜居

 

[주D-001]문채(文彩) …… 싶어라 : 공 자(孔子)가 진()에 있을 때에 이르기를, “돌아가야겠다. 오당(吾黨)의 소자(小子)들이 뜻만 크고 일에는 소략하여 빛나게 문리(文理)는 성취되었으나 스스로 재단할 줄을 모르는구나.”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공자가 사방(四方)을 주류(周流)했으나 도()를 행할 수 없음을 알고는, 문인들이 뜻이 지나치게 커서 과중(過中)한 결점이 있으므로 그들을 바로잡아서 도에 진취하도록 하려는 뜻에서 한 말이다. 《論語 公冶長》
[주D-002]말발굽의 …… 않으니 :
()나라 때 반악(潘岳)과 석숭(石崇)이 당시의 권신(權臣) 가밀(賈謐)을 섬기면서 아첨하여 매양 가밀이 나오기를 기다려서 서로 그 수레의 먼지를 바라보며 절을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한거(閑居) :
가밀을 아첨으로 섬기던 반악이 일찍이 〈한거부(閑居賦)〉를 지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4]여상(藜床) 비바람 :
여 상은 명아주의 줄기로 엮어 만든 침상을 가리킨다. ()나라 위응물(韋應物)의 시에, “어찌 알았으랴 눈보라치는 밤에, 다시 여기서 침상 맞대고 잘 줄을.[寧知風雪夜 復此對床眠]” 한 데서 온 말로, 형제(兄弟)나 친구와 헤어진 후 오랜만에 서로 만나서 기쁨의 정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5]대나무 오르는 메기 :
메기는 몸이 미끄러워서 대나무를 오를 수 없을 것 같으나, 주둥이로 댓잎을 물고 펄쩍 뛰어서 대나무를 잘 올라간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곤란한 환경을 극복하고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비유한 말이다.
[주D-006]분화(紛華)와의 싸움 :
공 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일찍이 말하기를, “나가서는 번화하고 성대함을 보고서 기뻐하고, 들어와서는 부자의 도를 듣고 즐거워하여,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싸움을 일으켜 스스로 결정짓지 못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23 禮書》

어버이를 뵈러 서천(西川)에 가는 동사생(同舍生)을 보내다.

 


들녘은 날이 개어 청명한데 / 郊原明霽色
이 사람 서천으로 갈 날을 정하였네 / 之子卜西游
파릉협은 원숭이 우는 달빛이요 / 巴峽猨聲月
연산은 기러기 그림자 가을일레 / 燕山鴈影秋
부모 뵙는 그대는 무슨 한이 있으랴만 / 覲親君底恨
나그네 신세인 나만 유독 시름겹구려 / 作客我偏愁
친구들이 응당 서로 생각할 테니 / 朋舊應相憶
돌아올 기약을 지체하지 말게나 / 歸期莫滯留

 

섭공소(葉孔昭)와 함께 청산백운도(靑山白雲圖)를 두고 짓다. 사명(四明)경상(敬常) 조교(助敎)의 아들이다.

 


아득한 풍진 속에 은근히 마음 상하는데 / 風塵漠漠暗消魂
홀로 섰는 천지간에 날은 저물어 가누나 / 獨立乾坤日欲昏
한 번 바라보고 알괘라 산 밑의 길은 / 一望便知山下路
명아주 지팡이 끌고 운문 가기 좋겠구려 / 好携藜杖過雲門

 

[주C-001]경상(敬常) 조교(助敎) : 경상은 원()나라 섭항(葉恒)의 자이다.

가을날에 회포를 쓰다.

 


쓸쓸한 가을비가 서늘함을 보내오니 / 秋雨蕭蕭送薄涼
창 아래 앉아 있는 흥미가 진진하여라 / 小窓危坐味深長
벼슬살이 나그네 신세 모두 잊어버리고 / 宦情羈思都忘了
한 심지 향불 아래 한 잔 차를 마시네 / 一椀新茶一炷香

 

차운(次韻)하여 회당(檜堂)에게 주다.

 


수년 동안을 함께 나그네 되어 / 數年俱作客
천리 밖에서 고향을 생각할 제 / 千里共思鄕
푸른 나무는 자주 비를 겪었고 / 綠樹頻經雨
국화는 다시 서리를 띠었구나 / 黃花又帶霜
시는 사공의 띳집에서 짓고요 /
詩成巳公屋
술은 두가의 담장을 넘어오네 /
酒過杜家牆
그 어느 날 송악산 길목에서 / 何日松巒路
서로 만나 석양까지 즐겨볼거나 / 相尋到夕陽

 

[주D-001]시는 …… 짓고요 : 두보(杜甫)의 〈사상인모재(巳上人茅齋)〉 시(), “사공의 띳집 아래서 새로운 시를 지을 만하네.[巳公茅屋下 可以賦新詩]”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
[주D-002]술은 …… 넘어오네 :
두 보의 〈하일이공견방(夏日李公見訪)〉 시에, “담 너머로 술집 주인을 불러, 시험 삼아 술이 있나 물었더니, 담장 머리로 막걸리 넘겨주어, 자리 펴고 흐르는 물 굽어보네.[隔屋喚酒家 借問有酒不 牆頭過濁醪 展席俯長流]”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3

시랑(侍郞) 성의숙(成誼叔)을 알현하다. 이름은 준()으로 선군(先君)의 동년(同年)이다. 을미년에 중서 참정(中書參政)에 임명되었다.

 


해외에 사는 동년의 아들이 / 海外同年子
오늘 그 문전에 이르렀는데 / 門前此日身
동심은 아직 변하지 못했고 / 童心猶未化
중국 말은 서툴기만 하여라 / 漢語摠非眞
학업은 자주로 면려해 주고 / 學業頻相礪
진기한 음식은 늘 내려 주네 / 盤飡每賜珍
가정의 친필 한 폭을 바치니 / 稼亭書一幅
스스로 정신 모아 완상하누나 / 賞玩自凝神

내가 선인(先人)의 수간(手簡)을 바치니, 공이 그 절묘함을 매우 탄복하고 좌석의 빈객들에게 자랑삼아 말하였다.

 

박사(博士) 홍중의(洪仲誼)를 알현하다. 이름은 의손(義孫)인데, 누천(累遷)하여 감찰어사(監察御史), 좌사 도사(左司都事)를 역임하고, 강서성 원외랑(江西省員外郞)으로 나갔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진실하여라 화려함은 전혀 없고 / 無華甚
투명함은 뼛속까지 말갛네그려 / 玲瓏徹骨淸
행산에선 일찍 인재 선발 맡았고 / 杏山曾掌選
과방(科牓)에는 으뜸으로 이름 적혔네 / 桂牓首題名
생채는 밥상의 좋은 반찬이요 / 生菜盤中美
맑은 물결은 자리 밑에 비치누나 / 晴波榻下明
용문에 자취 오름은 부끄러우나 / 龍門慙忝跡
동합에 친구 얻음은 다행이로세 / 東閤幸同盟

그의 집이 바다에 임해 있었고, 내가 그의 여러 아들과 함께 공부하였다.

 

성 시랑(成侍郞) 댁에서 여정심(余廷心) 선생을 뵙고 물러 나와서 기록하다. 선인(先人)의 동년으로서 우방(右牓) 제이명(第二名)으로 급제하였고 글을 잘한다는 명성이 있다.

 


맑은 풍치가 참으로 옥수다워라 / 淸標眞玉樹
젊은 나이로 경림에 빼어났었네 /
早歲秀瓊林
대각에서는 문장이 절묘하였고 / 臺閣文章妙
강산에 대해선 흥미가 깊었도다 / 江山興味深
선체의 시는 고체에 끼일 만했고 / 選詩參古體
고원에선 임금의 뜻을 기록했네 / 誥苑寫天心
소우차성이란 시구가 생각나서 / 小雨遮城句
머리 돌려 동해 가를 바라보노라 / 回頭東海潯

선생이 가정(稼亭)에 제()한 글에소우차성(小雨遮城)’이란 시구가 있다.

 

[주D-001]젊은 …… 빼어났었네 : 경림(瓊林)은 원명(苑名)인데, 송대(宋代)에 진사(進士) 급제자에게 이 경림원에서 잔치를 내린 데서 온 말로, 진사시(進士試)에 고등(高等)으로 급제한 것을 의미한다.

섭공소(葉孔昭)의 강남(江南) 시 사절(四絶)에 차운하다.

 


천원의 꽃나무엔 홍색 남색이 물들었는데 / 川原花樹染紅藍
다리 밖에 노는 이는 술이 반쯤 거나하네 / 橋外遊人酒半酣
내 집은 푸른 버들 깊은 곳에 주재하는데 / 家在綠楊深處住
우연히 꾀꼬리 따라 시내 남쪽 들렀노라 / 偶隨黃鳥過溪南

씻은 듯한 연잎에 푸른 연기 떠 있어라 / 新荷如拭綠浮煙
지관의 훈훈한 바람 오월의 하늘이로세 / 池館薰風五月天
창밖에 촉촉이 내린 가랑비 하 좋아서 / 自喜小窓微雨足
약초 밭에 김매고 또 와서 잠을 잔다오 / 藥畦鋤了又來眠

풍경이 서늘하여 더운 기가 걷히고 나니 / 雲物凄淸暑氣收
연꽃의 이슬 차가워라 강 가득 가을일세 / 芙蓉露冷滿江秋
문득 생각하니 거룻배에 술만 실어 간다면 / 便思載酒扁舟去
게 농짝 누런 감귤은 바로 거기 있잖은가 / 紫蟹黃柑不外求

갑자기 아침 내내 바람 불고 가랑눈 내려라 / 風吹小雪忽崇朝
깊은 방에 앉았노라니 술기운이 사라지네 / 深坐幽齋酒力消
묻노니 매화는 꽃을 곧 터뜨리지 않으려나 / 爲問梅花將動未
맑고 얕은
에 높은 풍치가 있으리라 / 水淸淺處想高標

 

[주D-001] 맑고 얕은 : ()나라 임포(林逋)의 〈소원소매(小園小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그윽한 향기는 황혼 달빛 아래 부동하도다.[疏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데서 온 말이다.

한풍(寒風) 세 수()를 섭공소와 함께 짓다.

 


찬바람이 서북에서 불어오니 / 寒風西北來
나그네가 고향 생각 간절하여 / 客子思故鄕
시름겨이 긴 밤 함께하노라니 / 悄然共長夜
등불 빛이 내 침상을 흔드누나 / 燈光搖我床
옛날의 도는 이미 멀어졌고 / 古道已云遠
뜬구름
만 나는 걸 보겠네 / 但見浮雲翔
슬프도다 뜰아래 소나무는 / 悲哉庭下松
저문 해에 더욱더 푸르나니 /
逾蒼蒼
원컨대 교의를 돈독히 하여 / 願言篤交誼
금옥의 바탕을 잘 보전하세나 / 善保金玉相

찬바람이 서북에서 몰려와서 / 寒風西北來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불어 대니 / 日夜吹不休
구름 흩어져 하늘은 탁 트이고 / 雲飛碧空闊
숲에서는 바람 소리 들리누나 / 樹木聲颼颼
아침 일찍 관아에 공사가 있어 / 早衙有公事
갖옷 껴입고 말 몰아 가노니 / 策馬披重裘
무부가 관도에서 벽제(辟除)를 하매 / 武夫喝官道
온갖 근심으로 마음졸이어라 / 心中焦百憂
어찌하면 대낮까지 잠을 자고 / 何如日三丈
쑥대머리로 천천히 일어나 볼꼬 / 徐起猶蓬頭

찬바람이 서북에서 불어와서 / 寒風西北來
점차 짙은 구름 모인 걸 보니 / 漸見層陰結
앉아서 알괘라 바람세 거칠어 / 坐知風勢闌
또 이 눈을 내리려나 보구려 / 又是天欲雪
잠깐 새에 만학이 춤을 추어라 / 須臾舞萬鶴
변화가 참으로 한순간이로세 / 變化眞一瞥
문 닫고 홀로 조용히 읊노라니 / 閉戶獨微吟
길에서는 수레 굴대가 부러지네 / 途中車軸折
혹 초석의 거문고 소릴 들으면 / 時聞楚石琴
향 연기 또한 매우 맑기도 하네 / 焚香更淸絶

 

[주D-001]뜬구름[浮雲] : 《문자(文子)》 상덕(上德), “해와 달은 밝고자 하나, 뜬구름이 가려서 어둡게 한다.” 한 데서 온 말로, 간녕()한 무리들이 임금의 총명을 가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만학(萬鶴) 춤을 추어라 :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초석(楚石)이 거문고를 타다. 초석의 이름은 법진(法珍)인데, 고려(高麗) 사람으로 연경(燕京)에서 태어났다.

 


초석은 한 고승으로서 / 楚石一高僧
거문고 속에 옛 뜻이 깊어라 / 琴中古意深
매양 명월 아래 자리하여 / 每當明月榻
다시 청풍에 옷깃 정제하고 / 更整淸風襟
한가로이 옛 곡조를 타면서 / 悠然操古調
황연히 기심을 잊은 듯하네 / 怳若忘機心
문왕 시대는 이미 멀어졌으나 / 文王去已遠
얼핏 유음을 들은 듯하네 / 髣髴聞遺音

 

[주D-001]문왕(文王) …… 듯하네 : 구양수(歐陽脩)가 일찍이 그의 친구인 손도자(孫道滋)의 거문고 타는 솜씨를 칭찬하여 말하기를, “깊은 근심과 원대한 생각은 순() 임금과 문왕, 공자(孔子)의 유음(遺音)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봉성(鳳城)을 나가다.

 


황제가 즉위한 지 십팔 년 만에 / 皇帝龍飛十八春
빛나게 오만 광경이 모두 새로워져서 / 赫然萬目俱更新
고기직설
현신들이 천도를 삼가 밝히어 /
皐稷契效寅亮
온 세상을 요순의 백성으로 올려놓았네 / 躋世唐虞堯舜民
인재를 성취시켜 빠짐없이 수록해서 / 磨光刮垢無不錄
크고 작은 인재가 서로 무리를 이루니 / 黃鍾瓦缶相成倫
자천 신야
의 자취는 쓴 듯이 없어지고 / 滋泉莘野迹如掃
괴구() 우각
은 훌륭한 명성을 전하누나 /
牛角流芳塵
하늘이 소신을 동쪽 나라에 내었기에 / 天敎小臣生東坰
기질을 변화시켜 훌륭하게 진취하고자 / 變化氣質希螟蛉
책을 지고 태학에 와서 유학을 했으나 / 負笈來游壁水下
수년 동안 학문을 제대로 닦지 못하고 / 數年聽瑩絃誦聲
오늘 아침 빈 주머니로 고향을 향하여 / 今朝垂
故山去
말에 올라 유유히 봉성을 나가는구나 / 騎馬悠悠出鳳城

 

[주D-001]고기직설(皐夔稷契) : 요순 시대의 네 현신(賢臣)인 고요(皐陶)ㆍ기ㆍ후직(后稷)ㆍ설을 합칭한 말이다.
[주D-002]자천(滋泉) 신야(莘野) :
자 천은 위수(渭水)를 가리키는데, 강태공(姜太公)이 일찍이 위수 가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주 문왕(周文王)에게 초빙되어 주나라를 도와 왕업(王業)을 이루었다. 신야는 유신국(有莘國)의 들을 가리키는데, 이윤(伊尹)이 일찍이 유신의 들에서 농사를 짓다가 역시 탕() 임금의 초빙을 받고 상()나라를 도와 왕업을 이루었다.
[주D-003]괴구() 우각(牛角) :
괴 구는 풀끈[草繩]으로 칼자루를 감은 것을 가리키는데, 전국 시대 제()나라 풍환(馮驩)이 매우 빈곤하여 칼 한 자루만을 지니고 맹상군(孟嘗君)의 식객(食客)으로 있으면서 대우가 부족함을 불만스럽게 여겨 칼자루를 치며 불만을 노래하자, 그의 뜻대로 다 들어주었더니, 그가 뒤에 맹상군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 원문의 철(
)은 구()의 착오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우각은 춘추 시대 위()나라 영척()이 매우 빈곤하여 제나라에 가서 우각을 두드리면서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노래하자, 마침 환공(桓公)이 그 노래를 듣고 그를 비범한 사람으로 여겨 재상으로 등용했던 데서 온 말이다.

연산가(燕山歌)

 


연산 남쪽엔 구름이 잔뜩 쌓이었는데 / 燕山之陽雲如堆
나는 용 춤추는 봉이 연이어 오누나 / 龍飛鳳舞源源來
장성은 거용관에서 중간이 단절되었고 / 長城中斷居庸關
춘풍 추월 변함이 없는 건 헌원대로다 / 春風秋月軒轅臺
소왕이 갔으니 이제는 그만이라 / 昭王一去亦已矣
황금대는 천재에 먼지만 쌓일 뿐이로세 / 黃金千載空塵埃

세상이 크게 변하여 삼광 오악이 합하매 / 天旋地轉光嶽合
좋은 땅 측량하여 명당을 크게 여니 / 土圭日影明堂開
사방에선 산해의 물품들을 운반해 오고 / 四方漕廥蓄山海
만국의 옥백은 천둥같이 달려오누나 / 萬國玉帛馳風雷
덕에 있고 험고함에 있지 않다
들었노니 / 吾聞在德不在險
백만 대를 전하도록 어찌 이를 의심하랴 / 傳世百萬何疑哉
시황 명황은 궤도를 밟았으니 / 秦皇唐明共一轍
여산이 바로 화의 빌미가 아니로다 / 不是驪山爲禍胎

바람 앞에 홀로 섰자니 마음은 아득한데 / 臨風獨立意蒼莽
날 저물자 거마 소리만 떠들썩하구나 / 日暮車馬爭喧

 

[주D-001]소왕(昭王)이 …… 뿐이로세 : 전국 시대 연 소왕(燕昭王)이 처음 곽외(郭隗)를 위하여 황금대(黃金臺)를 짓고 천금(千金)을 들여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초치(招致)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덕에 …… 않다 :
전 국 시대 위 무후(魏武侯)가 배를 타고 서하(西河)의 중류(中流)를 내려가면서 장군(將軍) 오기(吳起)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아름답다, 산하(山河)의 험고함이여. 이것은 위국(魏國)의 보배로다.” 하니, 오기가 대답하기를, “덕에 있는 것이요, 험고함에 있지 않습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 시황(秦始皇) …… 아니로다 :
진 시황은 일찍이 여산(驪山)까지 각도(閣道)를 내어 극도로 사치스런 생활을 하다가 죽어서는 또 여산에 묻힘으로써 나라가 끝내 멸망하였고, 당 명황(唐明皇)은 여산에 행궁(行宮)을 두고 양 귀비(楊貴妃)와 그곳에서 수시로 즐기다가 끝내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만나게 되었는데, 소식(蘇軾)의 〈여산(驪山)〉 시에, “당 명황은 잘못된 전철을 경계하지 않고, 도리어 여산이 화의 빌미라 원망했네.[上皇不念前車戒 却怨驪山是禍胎]” 한 데서 온 말이다.

도중(途中)에서

 


나그네의 회포는 행장과 함께 가벼운데 / 客懷仍與客裝輕
훈훈한 바람이 솔솔 소매 가득 불어오네 / 颯爾薰風滿袖生
한 조각 먹구름이 비를 몰고 지나가니 / 一片黑雲携雨去
말 머리의 산 빛이 한층 더 분명하구나 / 馬頭山色轉分明

 

통주(通州)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다.

 


누문에 종 울리고 새벽빛이 밝아 와서 / 鐘動樓門曉色明
홀로 파리한 말 몰아 길 물어 출발할 제 / 獨鞭羸馬問前程
반공중의 흰 탑엔 구름 그림자 보이고 / 半空白塔見雲影
한 굽이 푸른 강엔 노 젓는 소리 들리네 / 一曲碧江聞棹聲
동북쪽 산은 왕기를 머금어 웅장하고요 / 東北山含王氣壯
서남쪽 땅은 제도를 향하여 편평하구려 / 西南地拱帝都平
도화수
벌창한 물엔 돛을 높이 내걸고 / 檣烏接翅桃花漲
봉성 가는 외국 상인을 편안히 보내누나 / 穩送番商入鳳城

 

[주D-001]도화수(桃花水) : 복숭아꽃이 필 무렵에 봄비가 내리고 눈이 녹아서 불은 강물을 가리킨다.

관도(官道)의 버들을 읊다.

 


봄 지나서 온갖 꽃은 쓴 듯이 자취 없고 / 春歸百花掃無迹
버들만 나그네 길 향해 푸르름 드리웠네 / 柳向客程垂暗綠
꾀꼬리 울음 한바탕에 새벽이 밝아 오니 / 鶯啼一聲天欲曉
일천 버들에 명주 같은 안개 자욱하도다 / 千樹空濛霧如縠
장정과 단정
엔 말굽 먼지 뿌옇게 일고 / 長亭短亭馬蹄塵
성긴 가지는 먼 골짜기 바람 끌어오누나 / 疎枝引風來遠谷
포장 수레는 팽택의 문에 비치지 않고 /
巾車不暎彭澤門
비단 닻줄은 수나라 강둑에 매지 않는데 /
錦纜不繫隋江曲
어찌하여 황금 같은 실을 아끼지 않고 / 如何不惜黃金絲
해마다 꺾이어서 사람을 따라가는고 /
年年被折隨人歸
하늘이 나그네 눈을 안 쓸쓸하게 하느라 / 天敎客眼不蕭索
내가 올 때의 옷을 의연히 비추게 하니 / 依然暎我來時衣
후일 내가 부귀하여 고향에 돌아가거든 / 佗年富貴歸故鄕
다시 말 머리에 개지를 눈처럼 날리리라 / 更向馬頭如雪飛

 

[주D-001]장정(長亭) 단정(短亭) : 큰 숙사(宿舍)와 작은 숙사를 가리킨다. 옛날에 10리마다 장정을 두고, 5리마다 단정을 두었다.
[주D-002]포장 …… 않고 :
()나라 때 팽택 영(彭澤令)을 지낸 도잠(陶潛)이 일찍이 문전(門前)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자호하였고, 또 포장 친 수레를 타고 가끔 산책을 하곤 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비단 …… 않는데 :
수 양제(隋煬帝)가 일찍이 통제거(通濟渠)를 뚫어 하수(河水)의 연안까지 둑을 쌓아 어도(御道)를 만들고 길 옆에는 버들을 죽 심었으며, 비단 닻줄과 상아(象牙) 돛대로 장식한 배를 타고 놀이를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해마다 …… 따라가는고 :
()나라 때 장안(長安) 사람들이 손을 송별하려면 반드시 파교(灞橋)에 나가 버들가지를 꺾어 주어 작별했던 데서 온 말이다.

한낮이 서늘하다.

 


두 언덕 실바람에 버들 그림자 옮기고 / 兩岸微風柳影移
한낮의 서늘함에 홑적삼 또한 좋아라 / 單衫更好午涼吹
무우의 높은 흥취
가 끝없이 일어나니 / 舞雩高興悠然起
나그네 시 얻기 흡족함을 누가 알리요 / 誰識征夫恰得詩

 

[주D-001]무우(舞雩) 높은 흥취 : 무 우는 옛날 노()나라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제단(祭壇) 이름인데, 공자(孔子)의 제자인 증점(曾點)이 일찍이 자기 소망을 말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거든 관자(冠者) 5, 6, 동자(童子) 6, 7인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가(詩歌)를 읊으면서 돌아오고 싶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아침 일찍 출발하다.

 


이른 새벽에 길 물어 출발하니 / 凌晨問前路
새벽빛이 완전히 밝지 않았네 / 曉色未全分
달빛 아랜 말 위의 꿈 이어지고 / 帶月馬頭夢
숲 너머엔 사람 소리 들리누나 / 隔林人語聞
편평한 숲엔 들안개 연하였고 / 樹平連野霧
실바람은 시내 구름 일으키네 / 風細起溪雲
이미 삼하현을 지나왔는데 / 已過三河縣
일편단심은 임금께만 향하누나 / 丹心
在君

 

도중(途中)

 


실바람에 밭둑길 먼지는 날리지 않고 / 微風陌上不驚塵
나그네 여정엔 갈건 하나가 가벼워라 / 客路飄然一葛巾
버들 밖의 술집에선 자주 손을 부르고 / 柳外酒
頻喚客
한낮에도 촌 저자는 인적이 고요하네 / 日中村市闃無人
폐해진 무덤 옹중엔 봄 경치 저물었고 / 廢丘翁仲春光老
평야의 우양들에겐 푸른 풀이 새로워라 / 平野牛羊草色新
연계 산천의 광경은 퍽이나 좋아서 / 燕薊山川光景好
금낭
에 시 적어 담는 붓이 신들린 듯하네 / 錦囊收拾筆如神

 

[주D-001]옹중(翁仲) : 무덤 사이에 세워 놓은 석인(石人)을 가리킨다.
[주D-002]금낭(錦囊) :
()나라 때의 시인(詩人) 이하(李賀)가 명승지를 구경하면서 시를 짓는 족족 써서 해노(奚奴)를 시켜 비단 주머니에 넣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어양현(漁陽縣)

 


적적한 어양현에 이르러 / 寂寂漁陽縣
내가 이제 한 번 활짝 웃노라 / 吾今一破顔
세속은 와신상담의 고통을 알겠고 / 俗知嘗膽苦
땅은 차가운 불모지와 연접했네 / 地接不毛寒
고각 소리는 개원 이후에 나왔고 / 鼓角開元後
좋은 강산은 지정 연간이었도다 / 江山至正間
폐흥 존망을 흐르는 물은 알겠지 / 廢興流水在
말 세우고 흐르는 물소릴 듣노라 / 立馬聽潺湲

 

[주C-001]어양현(漁陽縣) : 당 현종(唐玄宗) 때 안녹산(安祿山)이 맨 처음 이 고을에서 반기(叛旗)를 들고 군대를 일으켰다.
[주D-001]개원(開元) :
당 현종의 연호인데, 그다음 연호인 천보(天寶) 연간에 안녹산의 반란이 일어났다.
[주D-002]지정(至正) :
원 순제(元順帝)의 연호이다.

천보가(天寶歌). 계문(薊門)을 지나다가 느낌이 있어 짓다. 스스로 징험한 것을 기록하였다.

 


천보의 성할 때는 어이 그리 풍창했으며 / 天寶盛時何昌
천보의 난리 때는 어이 그리 어두웠던고 / 天寶亂時何矇曨
침향정 안에는 봄빛이 무르녹을 적에 /
沈香亭中春色濃
어양에선 북소리가 세차게 울려 퍼졌네 /
漁陽鼙鼓聲
鼕鼕
마외의 아래는 붉은 먼지가 날리고 /
馬嵬山下飛塵紅
천자의 칼과 패옥은 쟁글쟁글 울리었네 / 天子劍佩鳴瑽瑽
삼풍 십건
은 몸 단속하기에 달렸거니와 / 三風十愆在省躬
연안은 짐독이니
반드시 끝을 삼가야지 / 宴安鴆毒須愼終
명황이 일념으로 공경을 도타이 했으면 / 明皇一念常篤恭
가 어찌 감히 흉패한 짓을 했으랴 / 此胡安敢行狂凶
인사를 하늘이 망친 게 아님을 알리로다 / 乃知人事非天窮
오왕의 궁전을 보지 않았던가 / 不見吳王宮
서시와 함께 취하여 정신없이 즐길 때 / 西施半酣歌吹濛
월병이 강 건너니 파도도 안 일었다네 / 越兵自渡江無風

 

[주D-001]침향정(沈香亭) …… 적에 : 당 현종(唐玄宗)이 양 귀비(楊貴妃)와 함께 침향정에서 목작약(木芍藥) 꽃을 완상하면서 이백(李白)을 불러 시를 짓게 하고 즐겼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어양(漁陽)에선 …… 울려 졌네 :
안녹산(安祿山)이 어양에서 처음 반군(叛軍)을 일으켜 북을 치며 쳐들어간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마외(馬嵬)의 …… 날리고 :
안녹산의 난 때 당 현종이 서촉(西蜀)으로 몽진(蒙塵)하던 도중 마외역(馬嵬驛)에 당도하여 민심(民心)을 수습하기 위해 부득이 이곳에서 양 귀비를 죽였던 일을 의미한다.
[주D-004]삼풍 십건(三風十愆) :
세 가지 나쁜 풍습과 그 세목(細目)인 열 가지 허물을 말한다. 세 가지 나쁜 풍습은 무풍(巫風)ㆍ음풍(淫風)ㆍ난풍(亂風)인데, 열 가지 허물 가운데 항무(恒舞)ㆍ감가(酣歌)는 무풍에 소관되고, 순화(殉貨)ㆍ순색(殉色)ㆍ항유(恒遊)ㆍ항전(恒畋)은 음풍에 소관되며, 모성언(侮聖言)ㆍ역충직(逆忠直)ㆍ원기덕(遠耆德)ㆍ비완동(比頑童)은 난풍에 소관된다. 《書經 伊訓》
[주D-005]연안(宴安) 짐독(鴆毒)이니 :
짐독은 짐새의 깃을 담근 독주(毒酒)인데 이것을 마시면 사람이 죽는 것이므로, 《춘추좌씨전》 민공(閔公) 원년 조(), “안일에 빠지는 것은 짐독과 같은 것이니,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 되[此胡] :
안녹산이 본디 돌궐계(突厥系)의 잡호(雜胡) 출신이므로 그를 가리킨 말이다.

옥전(玉田)의 도중에서

 


고인은 어찌하여 행장을 애써 염려했나 / 古人何苦念行藏
성시나 임천이 모두가 아득하기만 하네 / 城市林泉總渺茫
파리한 말 게으른 아이와 먼 길 가노라니 / 瘦馬倦童仍遠道
사방의 산 먼 들판에 또 석양이 걸리었네 / 亂山遙野又斜陽
외로운 길엔 선인의 지팡이 빌리고프나 / 孤征欲借仙人杖
사흘을 지나도 제자향이 그립기만 하구나 / 三宿猶懷帝子鄕
타국에서 공 세움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 異域立功雖信美
임금의 의상 깁고 싶음
을 어찌하랴 / 何如願補舜衣裳

 

[주D-001]순(舜) 임금의 …… 싶음 : 임금을 잘 보좌하고 싶은 뜻을 의미한다.

술을 대하여 노래하다.

 


연새에 먼지 날려 반공중이 새까만데 / 燕塞吹塵半天黑
황량한 마을 객사엔 가시나무도 많네 / 荒村客舍多荊棘
나그네는 날 저물어 말 안장을 풀고서 / 行人日暮卸鞍馬
얼굴 가득 풍진 속에 길이 한숨짓노니 / 風塵滿面長太息
소년 시절 지기는 본디 한없이 컸건만 / 少年志氣本磊落
종횡으로 성취 못해 심정이 북받치누나 / 縱橫不就肝膽激
때로 막걸리 마시며 소리 높여 읊노니 / 時斟白酒更高吟
이 몸이 꼭 산골에서 늙지는 않으리라 / 未必將身老巖壑

 

 


부슬부슬 한바탕 비에 나그네가 흥겨워서 / 一雨蕭蕭客興多
읊는 채찍 높이 들어라 갈 길은 멀기만 하네 / 吟鞭高竪去程

구름은 짙고 옅고 성기었다 또 빽빽해지고 / 雲濃雲淡疎還密
바람은 가고 오고 가지런했다 또 비껴 부네 / 風去風來整復斜
시내 저편 당나귀 있는 곳은 어드메인고 / 溪隔靑驢是何處
밭둑 너머 송아지 뵈는 데는 우리 집인 듯 / 隴分黃犢似吾家
갠 빛이 갑자기 높은 숲 밖에 펼쳐지매 / 晴光忽上長林表
신경으로 머리 돌려 태양을 바라보노라 / 回首神京望日華

 

마상(馬上)에서 고향 사람 진사(進士) 왕계(王桂)를 만나다.

 


평주의 서쪽으로 백여 리쯤 되는 곳에 / 平州之西百餘里
날 저물고 뿌연 먼지 하늘가에 날릴 제 / 日暮黃塵際天起
나그네 갑자기 고구려 친구를 만나니 / 征夫忽見高句麗
친구는 바로 왕씨 집의 아들이로다 / 故人乃是王氏子
평생에 멀리 왕 우군의 필법 사모하여 / 平生遠慕王右軍
붓끝으로 난정기를 능가하려 했는데 / 筆鋒欲掃蘭亭記
어찌하여 만리 먼 길에 말을 타고서 / 胡爲萬里跨征鞍
먼 길의 위태롭고 험난함을 꺼리지 않나 / 不憚道途危且艱
공명은 참으로 수가 본래 정해진 것이라 / 功名有數信天定
난 이미 삼 년을 타관의 차가움 맛보았네 / 我已三載嘗覉寒
꽃잎이 조각조각 바람 속에 흩날리니 / 飛花片片風中擧
궂은 땅 좋은 자리를 생각할 것 있으랴 / 糞壤錦茵何足慮
서로 잠시 만난 것이 또 하늘 한쪽이라 / 相逢又在天之涯
마상에서 한 번 웃고 동서로 헤어지누나 / 馬上一笑東西去

 

도자산(道者山)을 바라보다.

 


아침 일찍 노룡현을 출발하여 / 夙駕盧龍縣
멀리 도자산을 바라보노라니 / 遙看道者山
얕은 숲에선 새들이 지저귀고 / 淺叢禽自語
좋은 풀은 말이 주저할 만하네 / 芳草馬宜班
조각달은 푸른 솔 밖에 비추고 / 片月蒼松外
외로운 구름은 절벽 새에 떠 있네 / 孤雲翠壁間
여기에 내 집을 짓게 해 준다면 / 倘容吾卜築
약을 캐서 젊음을 멎게 하련만 / 採藥駐年顔

 

저녁에 유림관(楡林關)에서 묵다.

 


닭 소리 개 소리 쓸쓸한 두어 집 마을에 / 蕭條鷄犬數家村
서늘한 저녁 바람에 나그네 난간 기대니 / 落日涼風客倚軒
산 빛은 창에 가득코 뜰 풀은 푸른데 / 山色滿窓庭草綠
주민들은 아직도 장군을 말하는구나 / 居人猶說薛將軍

 

[주D-001] 장군(薛將軍) : ()나라 때 요동(遼東), 천산(天山) 등 여러 곳의 정벌(征伐)에서 큰 공을 세웠던 장군 설인귀(薛仁貴)를 가리킨다.

정관(貞觀) 연간을 읊다. 유림관에서 짓다.

 


진양의 공자
가 호객들과 교의를 맺어 / 晉陽公子結豪客
풍운의 장한 회포가 팔방에 가득 찰 제 / 風雲壯懷滿八極
혁연히 한 번 일어나 천과를 휘두르니 / 赫然一起揮天戈
수나라 제방의 버들이 무색해졌네 /
隋堤楊柳無顔色
이미 은주를 이어서 무공을 이루었으면 / 已踵殷周成武功
의당 우하를 본받아 문덕을 펴야 하리 / 宜追虞夏敷文德
이룬 걸 지키는 덴 안정이 가장 중한데 / 持盈守成貴安靖
큰 일 큰 공 좋아하여 반측을 자행했네 / 好大喜功多反側
삼한은 기자가 신하 노릇 안 한 땅이니 / 三韓箕子不臣地
도외로 치지하여도 또한 될 법했는데 / 置之度外疑亦得
어찌하여 금옥 같은 무력을 동원해서 / 胡爲至動金玉武
재갈 물려 친히 거느리고 동토엘 나왔나 / 銜枚自將臨東土
용맹한 군대는 요동의 달밤에 행군하고 /
夜擁鶴野月
깃발들은 신라의 새벽 비에 젖었어라 / 旌旗曉濕鷄林雨
삼한을 주머니 속의 물건으로 여겼으니 / 謂是囊中一物耳
눈이 백우전(白羽箭) 빠질
을 어찌 알았으랴 / 那知玄花落白羽
정공이 죽고 나자 언로가 막히었으니 / 鄭公已死言路澁
풍비를 무너뜨렸다 세운 가소롭네 / 可笑碑蹶復立

머리 돌려 정관 연간을 세 번 외치니 / 回頭三叫貞觀年
하늘 끝서 슬픈 바람이 쓸쓸히 불어오네 / 天末悲風吹颯颯

 

[주D-001]진양(晉陽) 공자(公子) : 진양은 옛 당국(唐國)이므로 전하여 당()나라를 가리키고, 공자는 당 고조(唐高祖)의 공자인 당 태종(唐太宗)을 가리킨다.
[주D-002]수(隋)나라 …… 무색해졌네 :
당 태종에 의해 수나라가 멸망했음을 의미한다.
[주D-003]눈이 백우전(白羽箭) 빠질 :
당 태종이 30만 대군을 친히 거느리고 고구려(高句麗)를 쳐들어왔을 적에 당시 안시성주(安市城主)로 있던 고구려의 명장(名將) 양만춘(楊萬春)의 화살에 눈을 맞아 부상당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4]정공(鄭公)이 …… 가소롭네 :
정 공은 당 태종의 명신(名臣)으로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진 위징(魏徵)을 가리킨다. 위징이 죽었을 적에 당 태종이 친히 비문(碑文)을 짓고 써서 비석을 세워 위징을 매우 사모했는데, 얼마 후에 앞서 위징이 천거한 두정륜(杜正倫), 후군집(侯君集)이 죄를 얻어 찬축(竄逐)되거나 복주(伏誅)됨으로 인해 위징을 의심하여 비석을 무너뜨렸다가, 또 뒤에 그 일을 뉘우치고 비석을 다시 세웠던 데서 온 말이다.

염장(鹽場)을 지나다.

 


소금 가마는 바닷가에 접해 있고 / 傍海上
소금 굽는 집은 산 앞에 의지했는데 / 鹽戶依山前
파도는 백설 같은 바닷물 몰아와서 / 波濤卷白雪
아침저녁으로 푸른 연기 나누나 / 旦夕生靑煙
이름 팔아 관액보다 갑절 비싸고 / 沽名倍官額
이익 도거리는 상선으로 보내지네 / 漁利輸商船
성조에서 법 고치길 중난케 여겨 / 聖朝重更法
이 폐단이 오래도록 전해 왔는데 / 玆弊久相傳
작일에 조서를 내리시어 / 昨日詔書下
두루 생민의 편리를 돕게 하였네 / 普與生民便
생각건대 천자께서 성스러우시고 / 恭惟天子聖
더구나 어진 승상까지 얻었는지라 / 況得丞相賢
천지간에 조금의 가리움도 없어 / 乾坤無纖翳
바람과 햇빛이 맑고 고우니 / 風日涵淸姸
멀리서 알겠네 노인과 어린이가 / 遙知老與稚
요순 시대에 취하여 춤을 추리라 / 醉舞唐虞天

 

남신점(南新店)에서

 


문장으로 어찌 공명을 세울 수 있으랴 / 文章可是立功名
바싹 야윈 유자가 스스로 가소로워라 / 自笑儒冠大瘦生
양자는 태현경(太玄經) 지어 부질없이 자부했고 / 楊子著書空自負
마경은 제주했지만
끝내 무얼 이루었나 / 馬卿題柱竟何成
사람 마음은 봄 산의 빛과 같지를 않고 / 人情不似春山色
나그네 꿈은 밤비 소리에 놀라 깨도다 / 客夢偏驚夜雨聲
장성을 지나면 일기 의당 좋을 터인데 / 過了長城風日好
그 누가 나의 해변 행차를 그려 줄런고 / 何人畫我海邊行

 

[주D-001]마경(馬卿) 제주(題柱)했지만 : 마 경은 한()나라 때의 문장가로 자가 장경(長卿)인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키는데, 그가 일찍이 고향인 성도(成都)를 떠나 장안(長安)으로 갈 때에 승선교(昇仙橋)를 지나면서 다리의 기둥에 쓰기를, “고거사마(高車駟馬)를 타지 않고는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 한 데서 온 말이다.

한낮이 맑게 개다.

 


십 리에 펼쳐진 구름 연기 그림 속 같아라 / 十里雲煙圖畫中
햇볕과 들 빛 가리어 가랑비 내리다가 / 日光野色雨溟濛
한낮에 바람이 가랑비를 불어서 가니 / 午天小雨風吹去
수많은 청산들이 나와 함께 동으로 가네 / 無數靑山與我東

 

서주(瑞州)에서

 


우연히 좋은 곳 만나 나그네 회포 풀리어 / 偶逢佳處客懷開
시냇가에 말 세우고 푸른 이끼에 앉으니 / 班馬溪邊坐綠苔
바닷가에 내린 비는 흰빛을 날리어 가고 / 海雨半邊飛白去
만 겹의 높은 산은 푸른빛을 보내오누나 / 雲山萬疊送靑來
기구한 세상길엔 몸이 응당 분주커니와 / 崎嶇世路身應徧
쓸쓸한 유관은 또한 뜻을 돌리지 못하네 / 零落儒冠志不回
우문의 삼급 물결에서 용으로 변화하면 /
龍化禹門三級浪
후일에 반드시 뜻밖의 명성을 얻으리라 / 他年須趁一聲雷

 

[주D-001]우문(禹門)의 …… 변화하면 : 우 문은 우 임금이 개착(開鑿)한 용문(龍門)을 가리킨다. 용문의 폭포는 3단계로 되어 있는데, 수많은 고기들이 그 아래에 모였다가 그 3단계를 다 뛰어넘어간 고기는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과거 급제(科擧及第)의 뜻으로 쓰인다.

우박행(雨雹行)

 


빗속에 나는 우박 크기가 오얏 같아라 / 雨中飛雹大如李
별안간에 어느 곳에서 내려온단 말인가 / 瞥然適從何處至
선봉으로 벽력이 천지를 진동하더니 / 先鋒霹靂動天地
바람이 갑자기 중간에서 일어나누나 / 風伯忽爾從中起
허둥지둥 달려 마을 남쪽 집에 이르매 / 蒼黃走到村南家
한 가닥 석양이 정원수에 밝게 비추더니 / 一縷夕照明庭柯
잠깐 사이에 강산이 씻은 듯 말끔해지고 / 須臾江山淨如洗
상서로운 별 오색 운기가 밝게 포열하네 / 景星慶雲昭森羅
이 걱정으로 하룻밤을 잠 못 이루었거니 / 憂來一夕不能寐
더구나 세상길은 풍파가 더욱 많음에랴 / 何況世路多風波

 

새벽에 바닷가를 출발하다.

 


쇠잔한 놀은 붉은빛 날려 강물에 떨어지고 / 殘霞飛丹落江水
묵은 안개는 푸른빛 말아 섬에서 생기네 / 宿霧卷碧生洲嶼
잠깐 새에 노수는 타고 바다에 떠서 / 回頭魯叟乘桴浮
연기인 듯 아닌 듯 간 곳을 모르겠구려 / 若煙非煙不知處

 

[주D-001]노수(魯叟)는 …… 떠서 : 노수는 공자(孔子)를 가리킨 말인데, 공자가 일찍이 탄식하여 이르기를, “()가 행해지지 않으니, 나는 떼를 타고 바다에 뜨리라.” 하였으므로, 여기서는 곧 바다에 뗏목 탄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함께 온 중이 시내를 건너다가 말에서 떨어져 신 한 짝을 잃었으므로, 장난삼아 짓다.

 


계곡 물은 흘러 바다로 드는데 / 山溪流入海
말이 누워서 용이 되려고 하네 / 馬臥欲化龍
정신없어 주장을 갑자기 놓쳐 버리니 / 拄杖茫然忽落手
가사는 다 젖고 봄 구름은 짙기만 하네 / 袈裟盡濕春雲濃
갈대 꺾은 늙은 황은 역시 장난스럽고 / 折蘆老胡亦戱劇
석장 날린 아라한은 신통타 일컬어졌지 / 飛錫羅漢稱神通

묻노니 짝은 어디에 있는고 / 借問隻履在何地
응당 총령의 동쪽 땅엔 있지 않을걸세 / 定應不在蔥嶺東

굳이 다시는 석두의 길을 밟을 없어라 / 不須更踏石頭路
서강 바람을 입에 마실 있을 테니 / 自有一吸西江風

 

[주D-001]갈대 …… 일컬어졌지 : 중 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인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처음 중국을 나올 때 갈대를 꺾어 타고 장강(長江)을 건넜다는 전설과, 옛날 신승(神僧)이 석장(錫杖)을 날려 구름을 타고 다녔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아라한은 곧 도가 높은 승려를 뜻한다.
[주D-002]묻노니 …… 않을걸세 :
달 마대사가 죽어 웅이산(熊耳山)에 장사 지낸 지 3년이 지났을 때, 위사(魏使)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사신갔다 돌아오다가 총령(葱嶺)에서 달마를 만났는데, 달마가 이때 신 한 짝만 손에 들고 홀로 가면서내가 서역으로 간다.”고 말하였다. 송운이 와서 그 사실을 임금에게 말하고 사람을 시켜 달마의 탑()을 열고 관()을 꺼내 보니, 거기에도 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굳이 …… 있을 테니 :
《전 등록(傳燈錄)》에 의하면, 등은봉(鄧隱峯)이 마조(馬祖)를 하직하고 떠나면서 석두 희천 선사(石頭希遷禪師)에게로 가겠다고 하자, 마조가석두가 있는 곳은 길이 미끄럽다.”고 한 고사와, 또 방거사(龐居士)가 마조(馬祖)에게 도를 물었을 때 마조가네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 입에 들이마시기를 기다려서 너에게 일러 주겠다.”고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새벽에 길을 가면서 바다를 바라보다.

 


밤새 바람 불어 장맛비를 그치게 하니 / 一夜風吹積雨聲
아침엔 바다 기운이 십분 말끔하여라 / 朝來海氣十分淸
넘어가는 조각달은 산머리에 걸려 있고 / 半環落月山頭耿
두어 점 남은 별은 들 밖에 반짝이누나 / 數點殘星野外明
신기루가 막 걷히니 아침 해는 빨갛고 / 蜃閣初收紅日曉
어부의 등불 꺼지니 푸른 하늘 말끔하네 / 鮫燈已滅碧天晴
신선 모습 아득해라 어느 곳에 있는고 / 神仙縹渺知何處
동으로 누선 바라보며 만고의 정 느끼네 / 東望樓船萬古情

 

마상(馬上)에서

 


세월은 또 방초 시절이 되어 / 歲月又芳草
강호엔 흰 구름이 하 많은데 / 江湖多白雲
인생은 정처 없이 떠돌아서 / 人生蓬不定
오늘도 나그네 길 저물어 가네 / 客路日將曛

 

목은시고(牧隱詩藁) 2 2-2

 

 

 ()

 

 

 

판교(板橋)에서

 


판교의 강가에 풀은 연기처럼 푸르고 / 板橋江畔草如煙
찬 조수 다 빠져서 한낮이 다 되었는데 / 落盡寒潮近午天
언덕 너머 작은 배는 불러도 대답 않고 / 隔岸小舟呼不應
어부들이 고기 판 돈 서로 나눠 가누나 / 漁人分去賣魚錢

 

해주(海州)에서

 


아득히 편평한 냇물은 다하여 가고 / 漠漠平川欲盡
먼 길에 방초는 서로 따라오도다 / 迢迢芳草相隨
머리 돌려라 광릉이 그 어드메뇨 / 回首廣陵何處
후일 나의 시에서 점검하리라 / 他年點檢吾詩

맑은 물 푸른 숲에 땅은 깨끗하고 / 白水靑林地淨
외론 구름 지친 새에 하늘은 길어라 / 孤雲倦鳥天長
나그네의 심사가 하도 지루하여 / 客裏悠悠心事
석양 아래 말 세우고 시를 읊노라 / 哦詩立馬斜陽

 

산길

 


바로 눈 밑에 산 숲이 활화처럼 펼쳐져서 / 眼底林巒活畫開
높은 고개에 올라 보니 흥이 진진하구려 / 試登高嶺興悠哉
땅 가득 그늘 짙어라 해는 벌써 한낮이요 / 濃陰滿地日三丈
공중에 얽힌 소로엔 구름이 몇 무더기런고 / 細路盤空雲幾堆
연기빛 둘린 산은 푸른 봉우리가 점점이요 / 山帶煙光靑點點
하늘빛 담은 시내는 파란빛 돌아 흐르네 / 溪涵天影碧洄洄
인간의 어느 곳이나 좋은 경계가 많으니 / 人間到處多佳境
땅을 가려 집 짓고 내 장차 돌아가련다 / 卜築吾將歸去來

석벽(石壁) 채리(寨里)를 지나다. 2(二首)

 


좁은 길 천 굽이나 얽히어 / 細路縈千曲
구차히 구불구불 가노라니 / 聊爲詰屈行
높은 봉우리엔 붉은 햇살 오르고 / 高岡紅日上
깊은 골짝에선 흰 구름이 나오네 / 深谷白雲生
절벽은 연기 머금어 예스럽고 / 石壁含煙古
시냇물은 비를 얻어서 울리누나 / 溪流得雨鳴
아마도 마을 집이 멀지 않나 보다 / 村家知不遠
숲 밖에 밭 가는 사람이 있네그려 / 林外有人耕

험한 길 따라 높은 고개 오르니 / 崎嶇登峻嶺
또다시 아주 깊은 숲이 나오네 / 亦復窮深林
두견새는 울음을 다하지 못하고 / 子規不盡淚
푸른 산은 마음이 한량없어라 / 靑山無限心
서로 더불어 바위에 걸터앉으니 / 相將踞白石
어느새 푸른 그늘이 옮기어 가네 / 忽爾移綠陰
즐거워라 갈 곳이 그 어드메뇨 / 樂哉何所去
속된 맘 씻는 게 스스로 만족하구나 / 自足淸塵襟

 

촌가(村家)

 


시골집은 비록 쓸쓸하지만 / 村家雖索寞
손을 보고 문득 기뻐하누나 / 見客便欣然
밤술은 석 잔이 무난하고 / 夜酒三杯穩
새벽밥은 한 반찬이 간편하네 / 晨餐一味便
작은 샘은 돌 밑에서 나오고 / 小泉生石底
꽃다운 풀은 뜰 앞까지 났구려 / 芳草到堦前
마을 앞에 지나는 이 적어서 / 門巷經過少
농부는 농사에만 전력하누나 / 農夫政力田

 

서강(西江)

 


한편에 날린 비가 산꼭대기를 지나가니 / 一邊飛雨過山椒
여울물이 갑자기 상앗대 반쯤 불어났네 / 忽覺沙灘漲半篙
해 저문 빈 터에 사람 묵을 곳이 없기에 / 日落丘墟無處宿
사공은 배 대 놓고 삯을 비싸게 부르누나 / 舟人艤岸索錢高

 

한데서 자다.

 


해는 지고 모랫벌은 멀기만 한데 / 日落平沙遠
압록강 머리에 배를 끌어 대니 / 拏舟鴨綠頭
달빛은 호지의 꿈에 쇠잔하고 / 月殘胡地夢
하늘은 한관의 시름을 다하였네 / 天盡漢關愁
들풀엔 유독 밤이슬이 많고 / 野草偏多露
시내 바람은 가을을 당겨 오는 듯 / 溪風欲借秋
밤이 다하자 채색 놀이 움직이더니 / 夜闌雲錦動
높은 누각이 우뚝하게 보이누나 / 突兀見高樓

압록강(鴨綠江)을 건너다.

 


훈풍은 나그네 길에 불어오고 / 熏風吹客路
지는 해는 고향을 비추는구나 / 落日照鄕關
가랑비엔 물결 소리 급해지고 / 小雨波聲急
모래톱엔 풀빛이 차가워라 / 平沙草色寒
북으로 가면 만리와 통하고요 / 北征通萬里
동으로 가면 삼한과 연접하네 / 東去接三韓
고거사마(高車駟馬)
가 지금 어디 있느뇨 / 駟馬今安在
내 삶이 얼굴 가득 부끄러워라 / 吾生愧滿顔

 

[주D-001]고거사마(高車駟馬) : ()나라 때의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고향인 성도(成都)를 떠나 장안(長安)으로 갈 때에 승선교(昇仙橋)를 지나면서 다리의 기둥에 쓰기를, “고거사마(高車駟馬)를 타지 않고는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양책역(良冊驛)

 


작은 여관은 황량하여 인마가 희소한데 / 小館荒涼人馬稀
사방 산 깊은 곳엔 석양이 비끼려 하네 / 亂山深處欲斜暉
괴이하다 역리는 마치 서로 아는 듯이 / 怪來郵吏如相識
쌀밥에 푸른 꼴로 나그네를 위로하누나 / 白飯靑芻慰遠歸

 

소 먹이는 것[牧牛]을 읊다.

 


편평히 연이은 사초밭에 잠깐 안개 걷히어 / 平莎綿綿乍收霧
시골 아이 소 끌고 시냇가 숲으로 향하니 / 村童牽牛向溪樹
소는 꽃다운 언덕의 풀을 뜯고 / 牛行芳草坡
수양버들 나루의 물을 마시네 / 牛飮垂楊渡
시골 아이는 졸고 소는 또한 배불러라 / 村童亦睡牛亦飽
피리 불며 돌아갈 제 날은 저물어 가네 / 吹笛歸來日將暮
해마다 이른 봄에 묵정밭 새로 일구자면 / 年年新菑趁春扈
소 발굽 벗어지고 땀이 비 오듯 하는데 / 牛蹄欲脫汗如雨
애써 갈고 거두어도 항아리가 안 차건만 / 辛勤耕穫不滿

봄바람에 취하여 노래하고 춤을 추네 / 猶向春風醉歌舞
내 인생은 어려운 행로를 익히 겪었기에 / 吾生慣作行路難
수레처럼 편안한 네 등을 부러워하노니 / 長羨爾背如車安
어느 때나 숲 속에서 주역이나 읽으면서 / 何時林下讀周易
도롱이 삿갓 쓰고 비바람 추위 잊어 볼꼬 / 蓑笠不知風雨寒

 

푸른 벌레[靑蟲]를 읊다.

 


벌레여 벌레여 누에같이 작은 벌레여 / 有蟲有蟲小如蠶
천지의 깊은 곳에 몸뚱이를 길러 냈건만 / 養出軀幹天地深
가을 매미와 함께 더러운 곳 벗어나서 / 不與玄蟬蛻汚濁
맑은 바람 이슬만 마시고 살진 못하누나 / 淸風湛露爲腹心
형형색색 오만 사물이 가지런치 않으나 / 形形色色萬不齊
부모 같은 천지의 마음은 어디에나 같기에 / 父乾母坤同一忱
이 때문에 성인이 천지의 화육을 도와서 / 所以聖人贊化育
필부필부가 모두 자족하게 하는 거란다 / 匹夫匹婦皆自足

 

신안역(新安驛)에서 묵다.

 


청산에 해는 아직 안 걸렸는데 / 靑山日未斜
푸른 숲엔 바람이 정히 많아라 / 綠樹風正多
신안역에서 베개 베고 누워서 / 欹枕新安驛
몸이 어데 있는 줄도 몰랐는데 / 不知身在何
메조밥은 어느새 이미 익었고 /
黃粱忽已熟
손의 꿈은 남가로 날아갔도다 /
客夢飛南柯
역의 아전 또한 나쁘지 않아서 / 郵吏亦不惡
막걸리를 잔 가득 따라 올리네 / 白酒進叵羅
조용히 읊으매 흥이 끝없는데 / 微吟興無極
달빛은 정히 한가롭구려 / 月色政婆娑

 

[주D-001]메조밥은 …… 익었고 : ()나라 때 노생(盧生)이 도사(道士) 여옹(呂翁)의 베개를 빌려 잠을 잤는데, 메조밥을 한 번 짓는 동안에 부귀공명을 다 이룬 꿈을 꾸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잠시 동안 잔 것을 의미한다.
[주D-002]손의 …… 날아갔도다 :
당 나라 때 순우분(淳于棼)이 자기 집 남쪽에 있는 회화나무 밑에서 술에 취해 잠을 잤는데, 꿈에 대괴안국(大槐安國) 남가군(南柯郡)을 다스리어 20년 동안 부귀를 누리다가 깨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이는 또한 꿈의 뜻으로 쓰인 말이다.

 

장림역(長林驛)

 


장림역에서 잠깐 쉬면서 / 小憩長林驛
옷깃 풀고 서늘한 낮바람 쐬노니 / 開襟納午涼
다발 꼴은 말을 먹여 건장케 하고 / 束芻扶馬壯
잔 술은 사람 얼굴을 붉게 빛내네 / 杯酒照人光
집은 낡았으나 산은 여전히 가깝고 / 屋古山仍近
뜨락이 텅 비니 해는 절로 길구나 / 庭空日自長
사람들이 일찍이 임금님 주필하여 / 人言曾駐蹕
쉬던 곳이 높은 산에 있다 말하네 /
舍在高岡

 

숙주(肅州)

 


해는 처마에 옮기고 바람은 누에 가득한데 / 日轉簷牙風滿樓
문밖의 푸른 그늘이 벌써 가을을 알리네 / 綠陰門外已先秋
인간 세상은 본래에 맑고 시원한 곳이라 / 人間自是淸涼地
나그네 옷소매에 땀 흐르는 게 부끄럽구려 / 却愧征衫白汗流

 

부벽루(浮碧樓)

 


어제 영명사를 들렀다가 / 昨過永明寺
잠시 부벽루에 올랐었네 / 暫登浮碧樓
텅 빈 성엔 한 조각 달이요 / 城空月一片
예스런 돌엔 천추의 구름이로다 / 石老雲千秋
기린말이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 麟馬去不返
천손이 어느 곳에서 노니는고 / 天孫何處遊

길게 읊으며 바람 부는 언덕에 서니 / 長嘯倚風磴
산은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누나 / 山靑江水流

 

[주D-001]기린말[麟馬]이 …… 노니는고 : 천 손(天孫)은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고구려(高句麗)의 시조(始祖)인 동명왕(東明王)을 가리키는데, 그가 일찍이 기린말을 기르다가 뒤에 기린말을 타고 하늘에 조회(朝會) 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도중에

 


말 위엔 푸른 산이 가깝고 / 馬上靑山近
스님 곁엔 소나기가 내리네 / 僧邊白雨來
강가의 풍경이 하도 좋아서 / 過江風景好
흥취가 또한 끝이 없구려 / 情興亦悠哉

 

영해부(寧海府)로 돌아가는 신석보(申碩甫)를 송별하다. 이름은 언()이다.

 


회오리바람은 어찌 이리 부는고 / 飄風何發發
흰 구름 또한 아득하기만 한데 / 白雲亦茫茫
이 사람은 은거할 생각이 있어 / 之子有遐想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누나 / 超忽歸故鄕
새 임금이 한창 선비를 중시하여 / 新王方重士
대각에 난봉이 모두 모였는데 / 臺閣集鸞鳳
어찌하여 자기 일만을 숭상하고 / 如何尙其事
망아지는 곡식도 먹는고 /
白駒不食場
단양 고을은 나의 고향으로 / 丹陽我鄕曲
경치가 동방의 으뜸이거니와 / 雲物冠東方
공명은 그런대로 이루었으니 / 功名苟云可
건강할 때에 땅 가려 집 짓고 / 卜築及康

우리 함께 관어대에 올라가서 / 共上觀魚臺
해돋이의 빛을 한 번 마셔야겠네 / 一吸扶桑光

 

[주D-001]자기 일만을 숭상하고 : 은거(隱居)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주역(周易)》 고괘(蠱卦) 상구(上九), “왕후를 섬기지 않고, 자기 일만을 숭상한다.[不事王侯 高尙其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흰 …… 먹는고 :
《시 경》 소아 백구(白駒), “귀여운 흰 망아지가 내 밭 곡식 먹었다 핑계 대고, 발과 고삐를 묶어 놓고서, 이 아침을 길게 늘이어, 귀한 우리 이 손님을 더 놀다 가시게 하리라.[皎皎白駒 食我場苗
之維之 以永今朝 所謂伊人 於焉逍遙]”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어진 사람이 왔다가 돌아가려고 할 때 조금이라도 더 놀다 가게 하려는 주인(主人)의 아쉬운 정을 노래한 것이다.

수원부(水原府)에서 유 선생(兪先生)의 운에 차하다. 휘는 사렴(思廉)이고, 자는 치부(恥夫)이다.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와서 / 先生官罷去神州
산수 속에 소요한 지 또 일 년이 되었네 / 高嘯林泉又一秋
아직도 풍운이 길이 꿈속에 들어오는데 / 尙有風雲長入夢
어찌 눈서리를 머리에 가득 내리게 하랴 / 肯敎霜雪便渾頭
우연히 소나기를 만나 자주 절에서 놀았고 / 偶乘白雨多遊寺
매양 청산을 좋아하여 홀로 누에 기대었네 / 每愛靑山獨倚樓
방일한 태도는 이미 세속을 놀라게 했으나 / 逸態已敎流俗駭
시편은 응당 후인을 위해 남겨 두리라 / 詩篇應爲後人留

 

유 선생의 운을 사용하여 부윤(府尹) 오 간의(吳諫議)에게 바치다. 휘는 식()이다.

 


평생에 오랫동안 형주 알기를 바라 왔더니 / 平生久願識荊州
한수 가을 길에서 만날 줄 어찌 기약했으랴 / 傾蓋何期漢水秋
홀로 괴어라 산빛은 주렴에 가득하고 /
拄笏山光滿簾額
거문고를 타라 해 그림자는 상두에 옮기었네 / 彈琴日影轉床頭
맑은 마음은 절로 한 사발 물을 대한 듯하고 / 淸心自對一盂水
호방한 기상은 백척루에 오른 듯하여라 /
豪氣如登百尺樓
기억건대 천자께 조회하고 돌아간 뒤로 / 記取朝天歸去後
시내 소리가 선정의 명성과 함께 머물렀네 / 溪聲獨與政聲留

 

[주D-001]형주(荊州) : 여 기서는 당 현종(唐玄宗) 때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명망이 높았던 한조종(韓朝宗)을 가리킨다. 이백(李白)이 일찍이 한조종에게 편지를 보내서제가 듣건대, 천하의 담론하는 인사들이 서로 모여 말하기를, ‘태어나서 꼭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질 필요는 없고, 다만 한 형주를 한번 알기를 원할 뿐이다.’ 합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홀(笏)로 …… 가득하고 :
()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천성이 매우 방일하여, 일찍이 환충(桓冲)의 참군(參軍)으로 있을 적에 직무에 대한 환충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곧장 수판(手版)으로 턱을 괴고서 말하기를, “서산(西山)에 아침이 오니, 상쾌한 기운이 있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홀은 곧 수판을 가리킨다.
[주D-003]호방한 …… 듯하여라 :
삼 국(三國) 시대에 허사(許汜)가 일찍이 유비(劉備)와 함께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갔을 적에 허사가 진등(陳登)의 인품을 평하여 말하기를, “일찍이 하비(下邳)에 들러 진등을 만났는데, 진등이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다가, 자신은 큰 와상에 올라가서 눕고, 나는 밑에 있는 와상에 눕게 하더라.”고 하자, 유비가 말하기를, “그대는 국사(國士)의 명망을 지녔는데도……아무런 채택할 만한 말이 없었으니, 이것이 바로 진등이 꺼리는 바이다. 만일 나 같았으면 나는 백척루(百尺樓) 위에 눕고 그대는 맨땅에 눕도록 했을 것이다. 어찌 와상의 위아래 차이만 두었겠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7 魏書 陳登傳》

12 20일에 도성을 출발하여 명년 정월에 학궁(學宮)으로 돌아왔다.

 


유곡에서 나와 교목으로 옮겨라 / 遷喬出幽谷
환학
하려고 멀리 어버이 하직했네 / 宦學遠辭親
눈보라 길은 머나먼 삼천 리요 / 風雪三千里
학궁엔 생도가 오백 인이로다 / 橋門五百人
새 봄에 유예재(游藝齋)에 들어가니 / 新春入游藝
화락한 기운이 명륜당에 넘치네 / 和氣溢明倫
한갓 비비고 서로 기다리는데 / 刮目徒相待
등창 앞엔 흰 눈이 가득 내리누나 / 燈窓暗素塵

난경의 분학을 따라 떠났다가 /
京分學去
바닷가에 어버이 뵙고 돌아왔네 / 瀚海省親回
오랜 이별로 마음 응당 괴로웠으나 / 久別心應苦
처음 만나매 뜻이 절로 펴졌네 / 初逢意自開
행단에는 봄이 시작되려 하는데 / 杏壇春欲動
괴시에는 눈이 아직도 내리누나 / 槐市雪猶來
어찌 주린 창자를 얼어 죽게 하랴 / 肯使飢腸凍
새벽종이 월대에서 울리는구려 / 晨鐘動月臺
예전 친구가 이젠 얼마 안 남아서 / 舊識今無幾
서로 만나매 기쁨은 한량없건만 / 相逢喜自多
회포를 논함엔 쑥스러워 움츠리고 / 論懷却羞澁
말을 토해 내면 모두가 어긋나네 / 吐語摠差訛
쌓인 눈은 부귀한 집에 빛나고 / 積雪明朱戶
술동이엔 푸른 물결이 넘치누나 / 芳樽灎綠波
남방에 전쟁 무기 아직 못 씻었으니 / 南方兵未洗
저 은하수라도 끌어 오고 싶어라 / 有志挽天河

 

[주D-001]환학(宦學) : 환은 벼슬하는 것을 말하고, 학은 육예(六藝) 등의 학문을 익히는 것을 말한다.
[주D-002]눈 …… 기다리는데 :
선비들이 헤어졌다 다시 만나면 그동안에 학식(學識) 같은 것이 얼마나 늘었는가를 서로 주의하여 살피는 것을 말한다.

당사(唐史)를 읽고 2(二首)

 


비록 궁중은 파리하게 되더라도 / 縱使宮中瘦
도리어 천하를 살찌게 해야 하리
/
還令宇內肥
충성된 말은 약석과 같았었고 / 忠言如藥石
성대한 모임은 예의의 모임 같았네 / 盛會似衣裳
궐하엔 넘어뜨린 비석을 세웠고 /
闕下仆碑立
요동에선 화살 비껴 잡고 돌아갔네 /
遼東撚箭歸
아침에 당사를 읽고 생각해 보니 / 朝來讀唐史
충성된 간언이 지금은 드물구나 / 忠諫至今稀

언월
이 마음속에 응집했으니 / 偃月凝心曲
큰 죄악을 손으로 막을 수 있으랴 / 滔天可手障
솔바람은 몽진 길에 불어왔고 / 松風吹輦路
사막의 달빛은 조당에 비치었네 / 沙月照朝堂
번진엔 봉식의 제도를 따랐고 / 藩鎭從封殖
천자의 정벌은 발양을 계속했네 / 天戈繼發揚
가련하여라 국가의 큰 권병을 / 遙憐太阿柄
누가 환관에게 쥐어 주었던고 / 誰倒與中瑭

 

[주D-001]궁중(宮中)은 …… 하리 : 당 현종(唐玄宗) 때 한휴(韓休)가 직간(直諫)을 많이 하자, 좌우 신하들이 현종에게한휴가 입조한 이후로 폐하께서 편할 날이 없습니다.” 하자, 현종이나는 여위더라도 천하가 살찔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궐하(闕下)엔 …… 세웠고 :
당 태종의 명신(名臣)으로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진 위징(魏徵)이 죽었을 적에 당 태종이 친히 비문(碑文)을 짓고 써서 비석을 세워 위징을 매우 사모했는데, 얼마 후에 앞서 위징이 천거한 두정륜(杜正倫), 후군집(候君集)이 죄를 얻어 찬축(竄逐)되거나 복주(伏誅)됨으로 인해 위징을 의심하여 비석을 무너뜨렸다가, 또 뒤에 그 일을 뉘우치고 비석을 다시 세웠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요동(遼東)에선 …… 돌아갔네 :
화 살을 비껴 잡는다는 것은 본디 당 현종의 한쪽 눈이 약간 사시(斜視)였던 때문에 그의 엽도(獵圖)에 화살을 한쪽으로 비껴 잡은 형상을 취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당 태종(唐太宗)이 일찍이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쳐들어왔다가, 안시성주(安市城主) 양만춘(楊萬春)이 쏜 화살에 눈 하나를 잃고 애꾸가 되어 돌아갔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4]언월(偃月) :
당 현종 때의 간신(奸臣) 이임보(李林甫)의 당명(堂名)인데, 이임보가 매양 대신(大臣)을 죄에 얽어 넣으려면 반드시 이 당에 거처하면서 중상(中傷)할 방법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학 궁(學宮)에 돌아간 다음 해 정월 그믐에 선고(先考)의 부음(訃音)을 받고 분상(奔喪)하여 고향에 돌아와서 자당(慈堂)을 모시고 상제(喪制)를 마치니, 때는 계사년 늦은 봄이다. 동년(同年) 주인성(朱印成)이 시를 지었으므로 그 운에 차하다. 3(三首)

 


답답한 마음 풀려고 억지로 조용히 읊노니 / 欲陶堙鬱微吟
강물과 봄 시름 그 어느 것이 깊고 얕을꼬 / 江水春愁誰淺深
술 끊음은 이미 세속의 웃음거리 되었으나 / 止酒已爲流俗笑
거문고를 타 보니 성현의 마음을 알겠도다 / 援琴方見聖賢心
매양 이표를 보노라면 근심이 맺힐 듯하고 / 每觀李表憂如結
아시
를 읽을 적엔 눈물이 옷깃에 가득했네 / 嘗讀莪詩淚滿襟
다만 이 정회가 어느 날엔들 그치리요 /
此情懷何日已
필경엔 단사가 또한 황금을 이루리로다 / 丹砂畢竟亦成金

내 생은 방종하여 부질없이 읊기만 하는데 / 吾生跌宕謾長吟
홍진 속에 깊이 안 빠진 게 또한 기쁘구려 / 更喜紅塵脚未深
하늘이 사람 놀림은 참으로 박상이거니와 / 造化戱人眞薄相
공명은 예로부터 처음 마음을 저버렸다오 / 功名自古負初心
봄바람은 운우의 꿈을 불어 흩어 버리고 / 春風吹散雨雲夢
강 달은 때묻은 흉금을 깨끗이 닦아 주네 / 江月洗空塵土襟
유독 문장의 여습만은 그대로 남았기에 / 獨有文章餘習在
금성(金聲)에서 옥진(玉振) 이르길
길이 생각하노라 / 永懷振玉與聲金

조용한 속에 천지를 내 읊조림에 부치니 / 靜裏乾坤付我吟
연래에 점차로 도근이 깊어짐을 깨닫겠네 / 年來漸覺道根深
행장 한 가지 일은 제일의 관심거리라서 / 行藏一事最關意
비바람 치는 오경에 부질없이 고심을 하네 / 風雨五更空苦心
지팡이 기대 서니 운산은 그림같이 밝고 / 倚杖雲山明似畫
주렴 걷으니 강물은 옷깃처럼 둘러 흐르네 / 捲簾江水抱如襟
용광로 밖으로 초연히 나가고 싶어라 / 超然欲出洪爐外
남화의 대장간 펄펄 쇠를 기억한다오 / 曾記南華冶躍金

 

[주D-001]이표(李表) : ()나라 이밀(李密)의 진정표(陳情表)를 말한다. 이밀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개가(改嫁)하여, 늙은 조모(祖母)의 손에 양육되었다. 뒤에 진 무제(晉武帝)가 조서(詔書)를 내려 그를 태자 세마(太子洗馬)로 부르자, 그는 천성이 본디 매우 효성스러운 데다 마침 조모의 병까지 간호하고 있던 터라, 90세가 넘은 조모의 곁을 잠시도 떠날 수 없다는 간절한 내용의 진정표를 올려서 벼슬을 굳이 사양했다. 《晉書 卷88 孝友列傳 李密》
[주D-002]아시(莪詩) :
《시경》 소아(小雅) 육아(蓼莪) 시를 가리키는데, 이 시는 효자(孝子)가 집이 가난하여 부모를 잘 봉양하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하여 부른 노래이다.
[주D-003]단사(丹砂)가 …… 루리로다 :
한 무제(漢武帝) 때 방사(方士) 이소군(李少君)이 무제에게 말하기를, “()에 제사를 지내면 단사를 황금(黃金)으로 만들 수 있고, 그 황금으로 음식(飮食) 그릇을 만들어 쓰면 장수(長壽)할 수 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12 孝武本紀》
[주D-004]박상(薄相) :
명목(明目)을 맹목(盲目)으로 변화시키는 따위의 환술(幻術)을 이르는데, 또는 유희(遊戱)의 뜻으로도 쓰인다.
[주D-005]금성(金聲)에서 옥진(玉振) 이르길 :
금은 종()이고, 옥은 경()인데, 팔음(八音)을 연주할 때에 먼저 종을 쳐서 소리를 시작하고, 마지막에 경을 쳐서 소리를 거두는 것이므로, 전하여 사물(事物)을 집대성(集大成)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6] 용광로 …… 기억한다오 :
남 화(南華)’는 《장자(莊子)》의 별칭인데, 《장자》 대종사(大宗師), “지금 대장장이가 쇠를 녹이는데, 쇠가 펄펄 뛰면서나는 반드시 막야검(
)이 되겠다.’고 한다면 대장장이는 반드시 그것을 상서롭지 못한 쇠로 여길 것이다. 또 지금 누가 사람의 모습을 지녔다 해서나는 반드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면 조화옹(造化翁)도 반드시 그를 상서롭지 못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한결같이 천지(天地)를 큰 용광로로 삼고 조화옹을 큰 대장장이로 삼는다면 어디에 간들 안 될 것이 있겠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

진변(鎭邊) 이 상국(李相國)에게 올리다. 휘는 여경(餘慶)이다.

 


바닷가의 성에서 변방 근심 깊이 나눠라 / 分閫憂深海上城
호령 엄하여 군리들은 아무 소리 없구려 / 令嚴軍吏寂無聲
홍추의 인망은 높아서 삼공에 접근하고 / 鴻樞望重三台近
위엄은 전국에 행해져 만리가 평온하네 / 鰈域威行萬里平
깃발에 이슬 젖어라 관도 버들은 가늘고 / 露濕旌旗官柳細
하늘 높이 솟은 봉화엔 진운이 환하구나 / 天低烽火陣雲明
응당 봄바람에 개가 부르며 돌아가거든 / 凱旋應趁春風去
주나라 소호의 명성을 계속하여 취하리 / 繼取周家召虎名

 

[주D-001]진운(陣雲) : 마치 전진(戰陣) 모양과 같이 생긴 구름을 가리킨다.
[주D-002]소호(召虎) :
주 선왕(周宣王) 때 사람인데, 선왕의 명을 받아 회이(淮夷)를 평정하여 큰 공훈을 세웠다

청명(淸明)에 눈이 오므로 백부(伯父)의 운을 차하다. 3(三首)

 


찬 제비가 날아와서 바람을 못 견디어라 / 凍燕飛來不耐風
눈발이 텅 빈 초당에 냉기를 불어오누나 / 雪華吹冷草堂空
흰 모시를 재단한 게 쑥스럽기만 하여라 / 裁成白紵還羞澁
청명은 해마다 같은 줄 잘못 알았네그려 / 誤認淸明歲歲同

시내 다리 저녁 바람에 서 있던 그 옛날엔 / 憶昔溪橋立

매화꽃이 수없이 찬 공중을 비추었는데 / 梅花無數暎寒空
깊은 봄에 문득 버들꽃을 만들어 보이니 / 春深却作楊花看
물태는 때에 따라 절로 이동이 있음일세 / 物態隨時自異同

피부가 눈빛같이 고운 일만의 옥비 / 雪色肌膚萬玉妃
요대에서 잔치 파하고 해가 저물어 갈 제 / 瑤臺宴罷欲斜暉
응당 인간 세상의 봄 경치 좋음을 알고 / 應知人世春光好
청명일을 가려서 학을 타고 내려왔겠지 / 趁取淸明駕鶴歸

 

[주D-001]옥비(玉妃) : 설화(雪花), 즉 눈송이의 별칭이다.

밤에 앉아서 느낌이 있어 7(七首)

 


초당의 등불 앞에 번잡한 생각 끊으니 / 草堂燈火絶煩囂
밤에는 서책 섭렵의 노고를 모두 잊네 / 入夜都忘涉獵勞
문득 당시를 보고선 이백(李白) 두보(杜甫)와 견주고 / 忽得唐詩參李杜
다시 진사를 보고는 이사(李斯) 조고(趙高)를 베노라 / 更將秦史斬斯高

천하가 분분하게 많은 입이 시끄럽지만 / 天下紛紛衆口囂
어느 누가 우리 백성 노고를 종식시키랴 / 何人能息我民勞
창해의 웅장한 파도를 누워서 보노라니 / 臥看滄海風濤壯
만 길 높이 구름 같은 돛을 걸고 싶구나 / 擬掛雲帆萬丈高

장부의 지기는 본디 세상 걱정이 많나니 / 丈夫志氣本囂囂
천지를 다시 창조함을 어찌 수고롭게 여기랴 / 再造乾坤豈是勞
기둥 데서 이미 팽구의 화가 싹텄으니 /
擊柱已萌烹狗禍
이교(橋) 아래 소서가 높은 비로소 알겠네 /
始知
下素書高

거마가 분분하게 밤낮으로 시끄러워라 / 車馬紛紛日夜囂
공업을 이룬대도 역시 수고롭다 하겠네 / 縱成功業亦云勞
세간 만사는 참으로 바둑판과 같으니 / 世間萬事眞棋局
바둑을 두지 않는 것이 가장 묘수라오 / 妙手無如不著高

빽빽한 푸른 숲에 새와 원숭이 울어 대라 / 森森綠樹鳥猿囂
창려의 오르내리는 노고를 시험하려 했네 / 欲試昌黎陟降勞

꼭대기에 오르는 게 도리어 가소로워라 / 上了最尖還大笑
평지에서 높은 산 바라보는 게 나았을걸 / 不如平地望嵩高

풍소가 다 없어져서 다시 들레지 않으니 / 盪盡風騷更不囂
용호를 아로새김에 공연한 애를 쓰도다 /
雕龍畫虎是徒勞
문은 서한 것이 아니면 예스럽지 못하고 / 文非西漢未爲古
시는 건안체(建安體)라야 바야흐로 고상하다오 / 詩到建安方是高

사립 밖에 손 거절하니 누가 감히 들레리오 / 却掃柴門誰敢囂
한가함 속에 예전의 노고를 더욱 깨닫겠네 / 閑中尤覺昔年勞
지난밤의 가랑비 바람에 몰려가고 나니 / 夜來小雨風吹去
봄 밭에 싹이 점점 자란 게 다시 기쁘구나 / 更喜春畦芽漸高

 

[주D-001]기둥 …… 싹텄으니 : 기 둥을 쳤다는 것은 한 고조(漢高祖)가 막 천하를 평정했을 때 군신(群臣)이 모여 술을 마시면서 서로 공()을 다툰 끝에 취하여 함부로 소리를 지르며 칼을 뽑아 기둥을 치곤 했던 일을 가리키고, 팽구(烹狗)는 본디 《오월춘추(吳越春秋)》에서 나온 말인데,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이 잡혀 죽을 적에 《오월춘추》를 인용하여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구나.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사냥개는 삶김을 당한다.[死 良狗烹]’ 했으니, 천하가 이미 평정된 지금은 내가 응당 삶김을 당할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이교(橋) …… 알겠네 :
이 교는 흙으로 쌓은 다리를 가리킨다. 장량(張良)이 일찍이 이교에서 이상노인(
上老人), 즉 황석공(黃石公)으로부터 《소서(素書)》를 받아 공부했었는데, 한 고조가 천하를 평정한 이후에 장량만은 유독 조용히 은퇴하여 화를 면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빽빽한 …… 했네 :
한 유(韓愈)가 일찍이 형산(衡山)의 주봉(主峯)인 구루산(岣嶁山) 꼭대기에 신우비(神禹碑)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직접 올라가 애써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마침내 구루산 시를 지어아무리 찾아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고, 빽빽한 푸른 숲에 원숭이만 슬피 우누나.[千搜萬索何處有 森森綠樹猿猱悲]”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용호(龍虎)를 …… 쓰도다 :
문사(文辭)를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말한다.
[주D-005]건안체(建安體) :
한 말(漢末)의 건안(建安) 연간에 시문(詩文)으로 이름을 떨쳤던 이른바 건안 칠자(建安七子)인 공융(孔融), 진림(陳琳), 왕찬(王粲), 서간(徐幹), 완우(阮瑀), 응창(
), 유정(劉楨) 및 조식(曹植) 부자(父子)의 시체(詩體)를 말한다.

4월에 과거에 응시하려고 서울로 가던 도중 수원(水原)에 들렀다가, 뒤에 백부(伯父)의 증행시(贈行詩) 운을 받들어 차해서 부쳐 올리다.

 


바람은 나그네 소매 가득 먼지를 불어오고 / 客裏風吹滿袖塵
고원의 봄 꾀꼬리 소리는 멀기만 하구나 /
聲遠故園春
이제부터는 인간의 길과 점차 가까워지니 / 從今漸近人間路
도리어 청산이 나와 안 친할까 두렵구려 / 却恐靑山不我親

좋은 꿈이 먼저 거둥길 먼지를 따르어라 / 好夢先歸輦路塵
성에 가득한 도리는 정히 봄을 과시하네 / 滿城桃李正誇春
알건대 백부의 시는 예언이 하도 많으니 / 懸知伯父詩多

과거에 급제하면 노친께 경하를 올리리다 / 趁取花時慶老親

 

수원(水原) 팔탄촌(八呑村)에서 동당시(東堂試)의 기일을 기다리면서 여러 가지 흥이 일어 3(三首)

 


청산은 담담하여 빛이 없고요 / 靑山淡無色
녹수는 냉랭하여 광채 없어라 / 綠水冷無光
군자가 바야흐로 뜻한 바 있어 / 君子方有志
천자의 당에 올라가려 하는데 / 欲登天子堂
눈앞에는 일이 하도 광대하고 / 眼前事浩浩
머리 위엔 하늘이 창창하구나 / 頭上天蒼蒼
이 때문에 감히 기필치 못하여 / 所以不敢必
하룻밤에도 수없이 애태우노라 / 一夕九回腸
힘쓸지어다 스스로 책려하노니 / 勉哉自策礪
시관은 뛰어난 이를 등용하겠지 / 主司登畯良

새가 날아 나의 눈을 놀래키고 / 鳥飛驚我目
새가 울어 나의 넋을 놀래키네 / 鳥啼驚我魂
평소에 수많은 고기와 새들은 / 平生群魚鳥
조용히 본원으로 돌아가는데 / 寂然歸本元
어찌하여 지킴이 안정되지 못해 / 奈何守不定
문득 이 존존의 도에 어두운고 / 忽此迷存存
이욕이 동함을 분명히 아는지라 / 明知利欲動
장차 이를 발본색원하려 하나 / 拔本將塞源
속된 기습을 면할 수 없는지라 / 未能免夫俗
술잔 대하여 큰소리로 노래하네 / 浩歌對山樽

산이 깊으니 소나무 연기 뿌옇고 / 山深松浮煙
바다 가까우니 고기 밥상 걸어라 / 海近魚滿盤
송아지는 밭둑 머리에 누워 있고 / 村犢隴頭臥
농부는 머리에 관을 쓰지 않았네 / 野人頂無冠
여종 아이는 새로 물 길어 와서 / 小婢新汲水
술 거르고 밥 많이 들라 권하는데 / 漉酒勸加飡
밥 많이 먹는 게 어찌 안 좋으랴만 / 加飡豈不好
내 마음이 지금 편치가 않구나 / 我心方未寬
내일은 스스로 쓰이길 구할 텐데 / 明當自求售
비루하여라 네 맘엔 편안하겠지 / 鄙哉於汝安

 

[주D-001]존존(存存) : 자기가 지닌 덕을 끝까지 잘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초장(初場)

 


독사의 방을 하직하고 단기로 막 나오니 / 單騎初辭獨士房
숭문관 아래에는 여러 서생들이 모였구려 / 崇文館下集諸郞
길에서는 정해년 삼장의 장원을 만났는데 / 路逢丁亥三場首
하늘에 길상 나타난 걸 속으로 축하하였네 / 默賀皇天表吉祥

 

중장(中場)

 


황하가 천상에서 중원으로 쏟아져 내리니 / 黃河天上落中原
천둥 같은 그 형세를 누가 감히 잡으리요 / 勢似奔雷誰敢捫
갑자기 잉어가 날아서 그곳을 통과하여라 / 忽有鯉魚飛得過
거센 물결 용문이 여기가 바로 천문일세 / 龍門蕩蕩是天門

 

종장(終場)

 


동방의 세상 교화는 참으로 유구하여라 / 東方世敎儘悠悠
기자가 봉해진 지는 또 그 몇 해이던고 / 箕子封來又幾秋
홍범의 구주가 태양같이 밝아 있기에 / 禹範九疇明似日
창생들이 영원토록 큰 행복을 누리누나 / 蒼生萬古倚洪休

 

민 동자(閔童子)의 시운에 차하여 흥왕사(興王寺)에 제()하다. 동자의 이름은 경생(慶生)이다.

 


붓끝에 바람 일고 글 짓는 법도 새로운데 / 落筆生風句法新
꽃다운 나이 겨우 십삼 세 남짓 되었구나 / 妙齡才過十三春
지난날 과거장에서 나와 서로 만났더라면 / 棘圍前日如相遇
내가 장원하기 어려웠던 걸 알겠네그려 / 知我難爲第一人

저물께 절에 드니 새로운 흥취 발하여라 /
入招提發興新
들꽃과 지저귀는 새가 늦봄을 마주하네 / 野花啼鳥對殘春
내 인생은 다만 산 찾는 버릇이 있으니 / 吾生只有尋山癖
자주 와서 주인 찾는 걸 싫어 말게나 / 莫厭頻來問主人

 

한산(韓山)으로 돌아가던 도중 덕수원(德水院)에서 비에 길이 막혀 회포를 쓰다.

 


성을 나오기 전부터 비가 동이로 퍼붓더니 / 未出城時雨瀉盆
성을 나서자 이미 청탁을 분간키 어려워라 / 出城涇渭已難分
뛰어난 흥취는 그 옛날 승창에서 느꼈는데 / 昔年興逸僧窓看
깊은 시름 소리는 오늘 여관에서 듣는구나 / 今日愁深旅館聞
벽 너머 천둥 벼락엔 샘에 돌이 떨어지고 / 隔壁疾雷泉落石
처마 가득 한기엔 나무에 구름이 생기누나 / 滿簷寒氣樹生雲
남북의 잦은 여정 길을 꺼리지 않는 것은 / 征鞍不彈頻南北
절반은 어버이 절반은 임금을 위해서라네 / 半爲吾親半爲君

 

사평도가(沙平渡歌)

 


사평 나루 머리에 물이 산 중턱에 오르니 / 沙平渡頭水半山
사평의 옥각은 온통 물결 사이에 잠기고 / 沙平屋角沈波間
여강의 상류에서 큰 나무를 띄워 내린 건 / 驪江上流泛大木
흩날리는 쑥대처럼 눈에 잘 띄지도 않누나 / 如飄蓬兮未及矚
행인들은 수일 동안 나루 끊긴 걸 걱정해 / 行人數日愁斷渡
마음은 불타듯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는데 / 心如火焚淚盈目
날이 개자 풍백 향하여 삼가 사례 올리고 / 天晴拜謝向風伯
비 멎고 물결 잠잠해 깊은 골짝을 나왔네 / 雨止波停出深谷
행인들이 배 끌고 정히 출발하려 할 때에 / 行人牽舡政欲行
마침 나의 행차 이름은 공연한 게 아니로세 / 我行適至非徒然
대천을 건넌 좋음은 역상에 나왔거니와 /
利涉大川著易象
신명이 부호해 줌은 끝내 하늘에 달렸다오 / 神所扶矣終關天
하늘이 우리를 낸 것은 꼭 쓰기 위함이요 / 天生我輩必有用
비색한 운을 구제함은 어진 이라야 하기에 / 拯屯濟否須英賢
물가에서 탄식하고 감히 다행으로 여기어 / 臨流三嘆敢自幸
사평 나루의 노래 한 편을 읊조려 쓰노라 / 沙平渡歌題一篇

 

[주D-001]대천(大川)을 …… 나왔거니와 : 대천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利涉大川]’는 말이 《주역》의 수()ㆍ동인(同人)ㆍ고()ㆍ대축(大畜)ㆍ익()ㆍ환() 등의 괘()에 모두 나오므로 이른 말이다.

완산(完山) 남루(南樓)의 조촐한 술자리에서 안부(按部) 최중연(崔仲淵)에게 바치다.

 


산천 군림한 누각 경치 이미 뛰어난 데다 / 樓壓溪山已絶奇
한편에 내린 소나기가 다시 시를 재촉하네 / 半邊白雨更催詩
게다가 한 잔 술을 선생과 함께 기울이니 / 一杯又與先生共
정히 미치광이 소생의 흥취가 발할 때로세 / 政是狂生發興時

 

어사(御史) 전녹생(田祿生)의 시운에 차하다. 2(二首)

 


비분강개함이 뛰어난 이는 전 어사이고 / 慷慨絶倫田御史
둘도 없이 거칠고 게으른 자는 신랑이라 / 疎慵無比李新郞
준마를 따르려 하나 진정 미치기 어려워라 / 欲追騏驥眞難及
왕개미의 자량치 못함
이 부끄러울 뿐이네 / 却媿蚍蜉不自量
그대는 조복 입고 임금 보좌하길 기하는데 / 君政曳裾期補袞
나는 이제 끌며 상송 노래를 배운다오 / 吾方振履學歌商
세간의 출처가 모두 마치 꿈만 같아서 / 世間出處渾如夢
보내온 시를 다시 서늘한 저녁에 읊노라 / 更詠來詩立


훼방도 내 소관 아닌데 칭찬이 어찌 기쁘랴 / 毁非關己譽何喜
재주가 남만 못한 데다 덕 또한 부족하네 / 才莫如人德更涼
달은 유독 정이 있어 나를 채에서 따르고 / 月獨有情從我蔡
산은 속되지 않아서 일으킨 상이로다 / 山多不俗起予商
출처를 갖추 맛보아 계획할 줄을 알거니와 / 備嘗出處知爲計
비록 날고파도 이미 스스로 헤아리었네 / 縱欲飛騰已可量
내 헛된 명성이 좌중을 놀래킬 만한 것은 / 賴有虛名足驚座
익재 선생 문하의 장원랑인 때문이라오 / 益齋門下壯元郞

 

[주D-001] 신랑(李新郞) : 신랑은 과거(科擧)에 막 급제한 사람을 이르는데, 여기서 이 신랑은 이색(李穡) 자신을 가리킨 말이다.
[주D-002]왕개미의 자량(自量) 못함 :
한유(韓愈)의 〈조장적(調張籍)〉 시에, “왕개미가 큰 나무를 흔들려 하니, 제 힘 헤아리지 못함이 가소롭네.[蚍蜉撼大樹 可笑不自量]”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신 …… 배운다오 :
증 자(曾子)가 위()나라에 있을 때 3일 동안 밥을 먹지 못하기도 하고, 10년에 옷 한 벌도 지어 입지 못했으며, 뒤축도 없는 신을 끌면서 《시경》 상송(商頌)을 노래하면 그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마치 금석(金石)의 악기를 연주한 것 같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莊子 讓王》
[주D-004]나를 채(蔡)에서 따르고 :
공 자(孔子)가 이르기를, “진채(陳蔡)에서 나를 따랐던 제자들이 지금은 모두 문하에 있지 않다.” 한 데서 온 말인데, 공자가 일찍이 진채에서 액()을 만났을 적에 공자를 따랐던 제자는 안연(顔淵), 민자건(閔子騫) 등 십철(十哲)이었다. 《論語先進》
[주D-005]내 …… 상(商)이로다 :
상은 자하(子夏)의 이름인데, 그가 일찍이 시()를 논하다가 학문의 방도를 깨달았으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나를 흥기시킨 사람은 상이로다. 비로소 더불어 시를 논할 만하다.”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八佾》

곡산가(鵠山歌)

 


장강이 광대히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 長江沄沄入滄海
바닷가의 청산은 빛을 바꾸지 않누나 / 海上靑山色不改
강촌에서 어찌 관록의 영화를 꿈꾸리요 / 江村豈夢軒冕榮
책을 읽을 만하고 밭을 농사지을 만하네 / 有書可讀田可耕
근래에는 왜선이 날로 쳐들어와서 / 邇來倭舶日入寇
봉화가 곧장 동쪽 끝까지 환히 비추니 / 烽火直照扶桑明
주민은 수역의 고통에 이마를 찌푸리고 / 居民蹙頞戍役苦
산 넘어뜨린 풍파에 방어(魴魚) 꼬리 붉어지네 / 風波倒山魚尾

곡산에 주둔한 군대는 더욱 장난 같아 / 鵠山之屯尤戱劇
노약한 병졸들 참담하여 생기도 없어라 / 老兵弱卒慘無色
나는 너희들이 해낼 수 없음을 아노니 / 吾知爾輩無能爲
찻길 막는 사마귀는 필적이 아니라오 / 拒轍
螂非匹敵
임금 걱정은 예부터 포의에게 있거니와 / 憂君自古在布衣
벼슬아치가 어찌 국가 계책 게을리하랴 / 肉食何曾懶謀國
어부는 좋은 고기 잡아 강천에 외치더니 / 漁人得雋叫江天
칼 끝에 바람 일어라 눈발처럼 잘게 회 치고 / 斫膾風生縷如雪
또 막걸리 불러와 함께 거나하게 취하여 / 且呼白酒共沈酣
손뼉 치며 곡산 달 아래 길이 노래하노라 / 拍手長歌鵠山月

 

[주D-001]방어(魴魚) 꼬리 붉어지네 : 《시 경》 주남(周南) 여분(汝墳), “방어 꼬리 피곤하여 붉어져라, 왕실은 타는 듯이 모질도다.[魴魚尾 王室如燬]” 한 데서 온 말인데, 방어는 본디 피곤하면 꼬리가 붉어진다는 말이 있으므로, 이 시는 곧 은()나라 주()의 인민(人民)에 대한 혹독한 사역(使役)을 괴로워하여 노래한 것이다.

회포를 서술하다.

 


처음 급제해선 삼관에 종사하고 / 釋褐游三館
벼슬할 때 백관 속에 끼었는데 / 參官側百寮
공부는 끝내 차례를 뛰어넘었고 / 功夫終躐等
풍채는 남의 위에 오르려 했네 / 風彩欲揚翹
망녕되이 선업 잇기를 생각하여 / 妄意承先業
이 몸 이끌어 대조에 세웠노니 / 將身立大朝
비록 하늘의 명이 있기는 하나 / 雖然有天命
다만 남들이 조롱할까 염려되네 / 只恐衆相嘲

 

간소하게 술을 마시며

 


해가 어느덧 저물어 가니 / 年光奄云暮
귀뚜라미가 와상 밑에 들어오네 /
蟋蟀入床下
은자는 향기로운 난초를 캐어 / 幽人採芳蘭
장차 어진 이에게 주려면서 / 將以贈遠者
한가하게 남산을 마주하여 / 悠悠對南山
때로 다시 깨진 술잔을 씻네 / 時復洗破斝
세상길은 한창 갈래가 많은데 / 世路方多岐
가을 벼는 전야에 가득하구나 / 秋禾滿田野

 

[주D-001]귀뚜라미가 …… 들어오네 :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 “시월이 되면 귀뚜라미가 내 와상 밑으로 들어온다.[十月蟋蟀 入我床下]” 하였다.

흐르는 물을 보며 느낌이 있어

 


흐르는 물 보며 길이 감탄하고 / 臨流發長嘆
또다시 험난한 길을 탄식하노니 / 亦復嗟
蹭蹬
의당 가는 것이 이와 같거니와 / 逝者如斯夫
가고 옴은 감응으로 말미암도다 / 往來由感應
나는 천지간의 일개 작은 몸으로 / 而吾眇然身
여기에 적잖은 흥취를 느끼었네 / 乘此不淺興
글을 읽음은 모두 묵은 자취인데 / 讀書皆陳迹
수많은 서적은 다 어디에 쓰리요 / 何用三十乘
진리에 어찌 많은 말이 필요하랴 / 爲理豈多言
묘처를 누가 나에게 알려 줄런고 / 妙處誰見贈
중니께서 물을 자주 일컬었는데 /
仲尼亟稱水
이 이치를 바로 내가 증명하였네 / 此理乃吾證

 

[주D-001]가는 …… 같거니와 : 공자(孔子)가 냇가에서 이르기를,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도다.”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주D-002]중니(仲尼)께서 …… 일컬었는데 :
전국 시대에 서자(徐子)가 맹자(孟子)에게 묻기를, “중니께서 물을 자주 일컬어 이르기를, ‘물이여, 물이여.’ 하였으니, 물에서 무엇을 취하였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下》

향거(鄕擧)에 응시하려고 서울로 가는 도중에 짓다.

 


묻노니 나는 어느 곳을 가느뇨 / 問余何所適
첩첩산중에 한 필 말을 탔는데 / 匹馬亂山中
숲이 빽빽하니 깃든 새가 많고 / 樹密多棲鳥
하늘 넓으니 가는 기러기 보이네 / 天長見去鴻
관록 구하는 학문은 부끄러우나 / 頗慙干祿學
우선 글 읽은 공이나 시험하련다 / 且試讀書功
얻고 잃는 걸 내가 왜 걱정하랴 / 得失吾何患
지공무사한 형평이 있는 것을 / 衡平有至公

 

춘추(春秋)를 읽다.

 


기린 얻던 당일에 눈물이 옷깃 적셨는데 /
獲麟當日涕霑襟
노나라 빌려 왕법 밝힌
필력 심오하여라 / 借魯明王筆力深
삼전
의 이동을 내 이미 폐했노라 했으니 / 三傳異同吾已廢
정 이천의 마음이 바로 성인의 마음이로다 / 伊川心是聖人心

 

[주D-001]기린 …… 적셨는데 : 애 공(哀公) 14년 봄에 기린을 얻자, 공자가 성왕(聖王)의 상서인 기린이 성왕도 없는 세상에 나왔다가 잡힌 것을 보고는 주도(周道)가 일어나지 못함을 매우 상심한 나머지 《춘추(春秋)》를 짓기 시작하여, “14년 봄에 서쪽으로 수렵하여 기린을 얻다.[十有四年春 西狩獲麟]”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춘추》를 마감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노(魯)나라 …… 밝힌 :
공자가 노나라의 기존 역사를 빌려 존왕(尊王)의 의리를 밝혀서 《춘추》를 저술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삼전(三傳) :
《춘추》를 해석한 《좌씨전(左氏傳)》ㆍ《공양전(公羊傳)》ㆍ《곡량전(穀梁傳)》을 합칭한 말이다.

향시(鄕試)에 느낌이 있어

 


재주 없이 요행으로 봄 과시에 장원하여 / 非才徼倖魁春闈
땀 흐르는 붉은 낯으로 남의 기롱 받누나 / 汗流赤面遭人譏
예로부터 농을 얻으면 촉을 바라나니 / 由來得隴又望蜀
약한 말이 굴레 못 이김을 어찌 생각하랴 / 豈念弱馬難任

선배들이 조정 가득 숲처럼 늘어선 데다 / 滿朝前輩森如林
글 읽고 문장 익힌 게 모두 정금과 같아서 / 讀書習文皆精金
사석 같은 네 문장은 결코 취하지 않거늘 / 汝之沙石斷不取
함부로 나아가서 때로 다시 읊조리네 / 妄進時復長嘔吟
어머니 이미 늙고 자식은 나 하나뿐인데 / 慈顔已老我一身
늦기 전의 영효를 어찌 남에게 사양하랴 / 榮孝及時何讓人
빙어와 동순
도 오히려 효성에 감격했는데 / 氷魚冬
尙感格
신명이 어찌 계수나무 한 가지를 아끼리요 / 肯靳一枝丹桂新
저 밝은 하늘이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 天昭昭兮在頭上
나를 계도하여 좋은 자리에 앉게 하였네 / 迪我啓我游文茵
비록 명이 있긴 하나 스스로 책려해야만 / 雖然有命可自勵
필력이 때때로 귀신을 놀라게도 하리라 / 筆力有時驚鬼神

 

[주D-001]농(隴)을 …… 바라나니 :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가 장군 잠팽(岑彭)에게 내린 글에,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병통이라, ()을 평정하면 다시 촉()을 바라게 된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사람의 탐욕이 끝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빙어(氷魚) 동순() :
빙 어는 진()나라 때 벼슬이 태보(太保)에 이른 효자(孝子) 왕상(王祥)이 어려서부터 효성이 매우 지극했는데, 어느 추운 겨울날 그의 계모(繼母)가 생선을 먹고 싶어 하므로, 왕상이 강에 나가 얼음을 깨려고 하자 갑자기 얼음이 저절로 깨지면서 잉어 두 마리가 뛰어나왔던 고사에서 온 말이고, 동순은 삼국 시대 오()나라에서 벼슬이 사공(司空)에 이른 효자 맹종(孟宗)이 어렸을 적에 어느 추운 겨울날 대숲에 들어가서 그의 어머니가 즐기는 죽순(竹筍)이 없음을 슬피 탄식하자 갑자기 눈 속에서 죽순이 나타났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내가 경사(京師)에 회시(會試)를 보러 가려고 하는데, 마침 나라에서 판서(判書) 김희조(金希祖)를 경사에 보내어 동궁(東宮) 책립을 하례하게 하므로, 내가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함께 가는 도중에 짓다.

 


오래도록 조용히 앉아 천하를 다스리매 / 萬年垂拱御楓宸
끝없는 큰 은택에 해가 자주 새로워지네 / 鴻澤無邊鳳曆新
황제가 조서 내려 또 황태자를 책봉하니 / 渙號又端天下本
하례의 정은 해동 사람이 유독 중하구려 / 賀情偏重海東人
풍사 몰아치는 요해엔 눈보라 흩날리고 / 風沙遼海吹飛雪
화기 어린 요 임금 뜰엔 소춘이 지났도다 / 干羽堯階過小春
스스로 가소로운 건 양왕의 토원 문객 / 自笑梁王
園客
재주 없이 한나라 조정 신하 된 거로세 / 無才堪作漢庭臣

고려의 거자는 참다운 재사라 할지라도 / 高麗擧子縱眞才
다만 운남성과 서로 상대가 될 뿐인데 / 只與雲南作對來
더구나 나는 글 못해 남들이 낮게 여기니 / 況我不文人共鄙
운이 설령 좋더라도 남들이 응당 시기하리 / 雖天有命衆應猜
밝은 달 좇아 계수나무 거듭 꺾으려는데 / 欲從明月重攀桂
황화는 괴나무에
을 이미 보았네 / 已見黃花又著槐
더구나 이 겨울 추위가 초피 모자 엄습하니 / 況此冬寒襲貂帽
서릿바람이 동량 같은 인재를 길러 내겠네 / 風霜養出棟樑材

 

[주D-001]소춘(小春) : 음력 10월의 별칭이다.
[주D-002]양왕(梁王) 토원(園) 문객(門客) :
토원은 한()나라 때 양 효왕(梁孝王)의 원명(園名)이고, 문객은 양 효왕의 문하에서 노닐었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 말인데, 여기서는 이색 자신이 제후국(諸侯國)의 신하이므로 자신을 사마상여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3]황화(黃花)는 …… :
괴화(槐花)가 노랗게 활짝 피는 음력 6, 7월 무렵이면 과시(科試)를 치른 데서 온 말로, 지난 하기(夏期)의 과시를 가리킨 말이다.

서경(西京)

 


서경의 풍경이 세월 따라 변천하여 / 西京風色歲華移
온 도의 산천들이 시를 짓기에 좋구나 / 一道山川好賦詩
천자는 태자 세워 국본 바루는 날이요 / 天子建儲端本日
국왕은 표문 올려 머리 조아린 때로다 / 國王拜表叩頭時
강물이 얼려 하니 고기는 다퉈 모이고 / 江氷欲合魚爭聚
진흙길 막 마르니 말은 잘도 달려가네 / 泥路初乾馬政馳
만일 동궁의 찬선으로 나를 명한다면 / 贊善東宮如有命
예천의 남긴 법칙을 본받아 볼거나
/
醴泉遺則或相師

 

[주D-001]동궁(東宮)의 …… 본받아 볼거나 : 예 천(醴泉)은 고려(高麗) 때 벼슬이 도첨의 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르러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진 권한공(權漢功)을 가리킨다. 바로 이색(李穡)의 처조부(妻祖父)이기도 한 그가 일찍이 원()나라에서 동궁 찬선(東宮贊善)에 임명된 적이 있으므로 이른 말이다.

안주(安州)의 강가에서

 


평안도 북쪽 웅번으로 형세 가장 강하고 / 安北雄藩勢最
물은 대동강 물과 아울러 길이 흐르는데 / 大同江水並流長
바다는 서벽과 연하여 남국으로 통하고 / 海連西壁通南國
산은 동린에 솟아 북방으로 들어가누나 / 山聳東隣入北方
푸른 나무 역루에선 일찍이 피서를 했고 / 綠樹驛樓曾避暑
띳지붕 관사에선 잠시 향을 불살랐었지 / 黃茅吏舍暫焚香
소싯적엔 몇 번이나 시 읊으며 지났던고 / 少時幾度吟詩過
오늘 아침에 또 팔구의 단장을 읊조리네 / 八句今朝又短章

 

의 주참(義州站) 동쪽 상방(上房)에서 자는데, 한밤중에 불이 구들 틈새를 따라 도벽지(塗壁紙)에 타오르는 통에 바람이 일고 방 안이 환해지므로, 깜짝 놀라 깨어 불이 난 것으로 여기고 옷을 벗은 채 알몸으로 표문(表文)을 안고 달려 나갔더니, 도벽지가 다 타자 불이 절로 꺼졌다. 그래서 잠깐 사이에 관리(官吏)의 직무 수행은 의당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증험하였는데, 다만 후일에 어떠할지는 알 수가 없다. 시 한 편을 읊조려서 그 사실을 기록하는 바이다.

 


군자는 관직 수행이 가장 중대한 일이라 / 君子居官守爲大
많고 적은 풍파가 관직 사회에서 나오지만 / 多少風波生宦海
나의 직은 지금 일개 서장관일 뿐이거늘 / 我今一箇書狀官
상주문 간수만 알 뿐 그 밖을 어찌 알랴 / 只識齎擎豈知外
관인이 불을 내서 혹 상주문이 불탔다면 / 館人失火或延燒
사신 된 이만 때로 조롱을 받을 뿐 아니라 / 不獨使者時相嘲
다시 돌아가 표문 고치긴 어려운 일이요 / 回車改表非易事
조소와 욕설이 조정을 발칵 뒤집었으리 / 姍笑醜詆傾王朝
평생에 글 읽어서 예모를 익혀 왔건만 / 平生讀書習禮貌
임관 처음부터 예모 꺾임을 달게 자초했네 /
便摧甘自招
자다 놀란 정신은 아직 안정이 안 됐으나 / 夢驚神志尙未定
이런 생각을 낸 것은 성의 정심 때문일세 / 發念及此由誠正
아 위태롭고 또 위태로웠도다 / 嗚呼危哉復危哉
서장관이 화근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 誰知書狀爲禍胎
문지기나 야경꾼을 누가 쉽다 말했던고 / 抱關擊柝誰曰易
한밤중엔 왕이 와도 열어 주지 않는다오 / 王來半夜猶不開
어떻게 하면 무사히 표문 도성에 올리고 / 何當無事進都省
양고기 안주에 황금 술잔 유쾌히 기울일꼬 / 買羊快倒黃金杯

 

지난 무자년에는 이 정승(李政丞) 능간(凌幹), 이 밀직(李密直) 공수(公秀) 을 모시고 천수성절(天壽聖節)의 진하(進賀)차 갔었는데, 지금은 회시(會試)를 보기 위해 서장관이 되어 사은표(謝恩表)를 받들고 역마를 타고 급히 경사에 가게 되었으므로, 동팔참(東八站)의 노상(路上)에서 이 정승, 이 밀직 두 분을 생각하며 읊어 단장(短章)을 이루다.

 


학처럼 청수한 몸 가을 하늘에 우뚝해라 / 長身瘦鶴聳秋空
충선왕이 토번에서 지극한 충성 알았고 /
忠宣吐蕃知至忠
얼음보다 맑고 황벽보다 쓰디쓴 생활
/ 壺氷讓淸蘗讓苦
총재 지위에 이름을 음공이라 칭하였네 / 位至
宰稱陰功
천자께서 이르기를 우리 중궁 가문은 / 天子曰我奇中宮
대대로 동방에 현달하여 거공이 많으니 /
世顯東方多鉅公
경사에 와서 만나 얘기를 나누거라 /
可來京師一會晤
형제의 정은 통하기 어렵다고 했었네 / 兄弟之情難不通

공들은 비록 외씨이나 매우 서로 화목하여 / 公雖外氏甚和睦
바람이 범 따르고 구름이 용 따르듯 했네 / 如風從虎雲從龍
두 분이 나란히 말 타고 중원에 달려갈 제 / 二公聯騎馳中原
나는 채찍 잡고 따라가 학궁에 유학했는데 / 執鞭我欲游橋門
수년 간 노력 끝에 벼슬을 얻게 되었으니 / 辛勤數年得釋褐
나에 대한 두 분 은혜는 천지와도 같다오 / 二公嘉惠同乾坤
서장관 반열은 차사의 다음으로 높아서 / 書狀班高次使輔
삼품 역관은 스스로 높은 체하기 어렵고 / 譯語三品難自尊
내 자리 밑에 앉는 것이 정례가 있었으나 / 坐吾坐下有定禮
때때로 형제처럼 자리를 서로 사양했었네 / 時時辭讓如弟昆
인하여 오늘 이렇게 된 것을 생각건대 / 因思今日能致此
두 분 은혜를 의당 마음 깊이 새겨 두고 / 二公炯炯宜心存
좋은 옥에 기록하여 후세에 남겨야겠네 / 寫之琬琰垂將來
사람치고 어찌 본원을 잊을 수 있으리요 / 人而可以忘本元

 

[주D-001]충선왕(忠宣王)이 …… 알았고 : 고 려 충선왕이 일찍이 원()나라에 있을 적에 원나라로부터 미움을 받아 토번(吐蕃)으로 귀양 가 있었는데, 이때에 이능간(李凌幹)이 역졸(驛卒)을 통해서 금()을 뇌물로 바쳐 충선왕과 그의 호종신(扈從臣)들의 토번 생활을 편하게 해 주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2]얼음보다 …… 생활 :
청고(淸苦)한 생활을 일러맑은 얼음을 마시고 쓰디쓴 황벽나무를 먹는다.’고 이르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천자께서 …… 했었네 :
천 자는 원 순제(元順帝)를 가리키고, 기 중궁(奇中宮)은 바로 고려 기자오(奇子敖)의 딸로 원 순제의 비()가 된 기 황후(奇皇后)를 가리키는데, 여기서 형제(兄弟)의 정을 말한 것으로 보아 기 황후와 이능간 등과는 서로 내외종형제(內外從兄弟) 사이였던 듯하다.

요양(遼陽) 길에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영위가 / 人言丁令威
학이 되어 요동에 왔다
하니 / 化鶴歸遼村
나는 동해의 고기와 같이 / 我如東海魚
용이 되어 용문에 오르려는데 / 化龍登禹門

이것을 생각하나 기필을 못해 / 念玆未可必
기가 죽고 마음까지 번거롭네 / 氣縮仍心煩
평생에 얻고 잃는 것을 잊고 / 平生忘得喪
조용히 본원을 지켜 왔는데 / 湛然存本元
오늘 밤은 이 어떤 밤인고 / 今夕是何夕
만나는 일마다 광언이 나오누나 / 觸事聊狂言

 

[주D-001]정영위(丁令威)가 …… 왔다 : ()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 정영위가 영허산(靈虛山)에서 선술(仙術)을 배우고 뒤에 학()으로 변화하여 자기 고향인 요동에 가서 성문(城門)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나는 …… 오르려는데 :
잉어가 황하의 상류에 있는 용문(龍門)의 여울목을 거슬러 뛰어오르면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즉 과거 급제를 뜻한다.

창의참(彰義站)에서 느낌이 있어 한 편을 읊다.

 


준마가 많기로 여기가 천하제일이라 / 駿馬之多此第一
요서 요동의 말이 감히 필적 못하는데 / 遼西遼東無敢匹
씩씩한 갈기의 말이 뜰 안에 가득하여 /
霧鬣滿庭中
문밖에 오는 놈을 서로 차고 물어뜯네 / 門外來者蹄相齧
안온함과 미친 듯한 태도가 각각이니 / 穩步狂馳各有態
그 누가 안목 갖추어 분별을 해내리요 / 何人具眼能分別
내가 자후의 글에서 진문을 읽었는데 / 我從子厚讀晉問
그때의
이 여기에 나열되어 / 其時一章此焉列
채색 구름 펼친 듯이 오색이 선명하고 / 雜彩雲披五色明
힘차게 달린 네 발굽 번개처럼 빠르네 / 流光電邁四蹄決
이제야 어슴푸레 여기에 옮겨질 뿐이니 / 如今恍惚移於斯
눈으로만 스쳤을 뿐 마음이 있었다 하랴 / 敢曰心存徒目閱
끝내 말 타는 자가 뜻대로 하지 못함은 / 卒之騎者不如意
우리 유자가 의리와 이끗에 미혹되어 / 有似我儒迷義利
시기에 따라 진실한 취사를 잃어버리고 / 臨機取舍失其眞
옛 군자 희망하는 마음 저버림 같도다 / 謾負心希古君子
아 군자들이여 안목을 굳게 믿지 마소 / 嗚呼君子莫恃眼
안목의 높낮이는 학문에 달렸을 뿐이네 / 眼力高低由學耳

 

[주D-001]자후(子厚)의 …… 장[一章] : 자 후는 당()나라 때의 문장가인 유종원(柳宗元)의 자이다. 진문(晉問)은 유종원이 지은 글의 편명(篇名)이다. ()은 곧 제요씨(帝堯氏)의 고도(故都)인 당()이기 때문에 풍속이 아주 순후하였고, 유종원이 또 이 고장 사람이었으므로, 오자(吳子)라는 가설 인물을 통하여 진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유종원이 여기에 대답한 것이다. 모두 일곱 장[七章]으로 되어 있는 가운데, 여기에서 말한 한 장은 진의 명마(名馬)를 논한 세 번째 장을 가리킨 것이다. 《柳河東集 卷15

밤에 길을 가다.

 


눈 가득한 산천은 눈에 환히 비치는데 / 雪滿山川照眼明
조회 가는 마음 급하여 밤길을 가노라니 / 朝王心急更宵行
서장관 갖옷 얇음을 누가 불쌍히 여기랴 / 誰憐書狀衣裘薄
두 어깨가 꽁꽁 얼어 소름이 이는구나 / 凍合玉樓方粟生

 

대령(大寧)에 들러 최 염사(崔廉使)에게 올리다.

 


온화함과 엄격함으로 그 명성 우뚝해라 / 春和霜凜聳聲名
일찍이 바닷가 성에서 안렴사(按廉使) 역임했네 / 按部曾經海上城
대성에선 서로 추천하여 고로로 칭하였고 / 臺省共推登故老
여염에선 진작부터 신명함을 탄복했도다 / 閭閻久已服神明
동국엔 가문 일으켜 경성이 나타났고 / 起家東國景星出
중원에선 말 타고 천하를 바로잡았네 / 攬轡中原妖霧晴
재상 문하에 나 같은 천인을 용납해 줌은 / 賓閤定容牛馬走
선인과 일찍이 서로 지기였기 때문일세 / 先人早歲辱同盟

 

북경(北京)에서

 


내 고향 계림의 숙정사가 / 鄕里鷄林肅政司
특별히 나그네 맞아 큰 술잔을 권하니 / 特邀行李勸深巵
따뜻한 봄의 화기는 그 안에서 나오고 / 陽春和氣從中出
북풍한설 찬바람은 밖으로 불어 대네 / 朔雪寒風向外吹
거자가 지닌 회포는 하늘이 알겠거니와 / 擧子有懷天在上
세인의 욕심 많음은 바다처럼 끝없어라 / 世人多欲海無涯
술 취하자 크나큰 탄식을 풀 길이 없어 / 醉來浩歎難傾寫
한밤중에 붓 빼들고 이 시를 기록하네 / 夜半抽毫紀此詩

 

산길

 


산길은 비탈을 따라 미끄럽고 / 山路緣崖滑
계곡 바람은 모자에 스쳐 차갑네 / 溪風撲帽寒
희미하겐 변새 밖에 연접하였고 / 微茫連塞外
아득히는 구름 끝에 들어가도다 / 縹渺入雲端
득실은 과연 그 누가 주관하는고 / 得喪知誰管
안위로써 매양 스스로 위로하네 / 安危每自寬
후일에 만일 기행록을 읽어 보면 / 他年讀行錄
다만 코가 찡할 것이 염려로세 / 只恐鼻生酸

 

통주(通州)에서

 


한 강물이 바다를 향해 광대히 흘러라 / 一水沄沄向海流
어느 때나 내 고을에 이를는지 모르겠네 / 不知何日到吾州
내 고향 진강 가엔 또 원산이 있으니 / 鎭江有箇圓山在
봄 조수 따라 나의 배 띄우기 좋으리라 / 好逐春潮動我舟

남국의 진귀한 보물이 제도에 들어오니 / 南國珠犀入帝都
수많은 그림 배가 네거리를 비추누나 / 畫舡無數照通衢
궁중에는 근일에 군사 기밀이 한가하여 / 宮中近日軍機少
벽 위에 산해도를 새로 단장하였네그려 / 壁上新粧山海圖

나는 본디 고려의 일개 천한 재목으로 / 我本高麗一鄙材
고한 속 해계의 길이 어찌 괜한 일이랴 / 苦寒偕計豈徒哉
중국에서 증청 쓰는 걸 진작 알았기에 / 早知中國曾靑用
짐짓 문장 가지고 조대에서 일어났다오 / 故把文章起釣臺

 

[주D-001]해계(偕計) : ()나라 때 군국 현읍(郡國縣邑)에서 학문과 덕행이 있는 사람을 천거하여 계리(計吏)와 함께 태상(太常)으로 올려 보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거자(擧子)가 회시(會試)를 보기 위해 경사(京師)에 가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증청(曾靑) :
복용하면 장수한다는 선약(仙藥)을 말한다. 또는 매우 푸른빛을 띤 회구(繪具)에 쓰이는 동정(銅精)을 가리키기도 한다.

옛날에 우거(寓居)했던 숭덕사(崇德寺)의 승방(僧房)에서 여러 가지 사물을 읊다.

 


분상차 먼 하늘 밖까지 갔다가 / 奔喪天外去
회시를 보려고 눈 속에 돌아오니 / 偕計雪中回
나그네 길은 구름과 연하여 멀고 / 客路連雲遠
승방의 창은 해를 향해 열리었네 / 僧窓向日開
수년 세월이 한바탕 꿈 같아라 / 數年如一夢
만리 먼 길을 또 거듭 왔구려 / 萬里又重來
조용히 앉아서 춘추를 읽노니 / 坐讀春秋傳
어느 때나 정공 애공에 이를꼬 / 何時到定哀

예전엔 나를 밀쳐 보내지 않았고 / 昔不推吾去
지금은 나를 불러오지도 않았네 / 今無喚我來
조용한 거처는 그대를 의탁하련만 / 幽居將子托
뛰어난 포부는 누구에게 토로할꼬 / 奇抱向誰開
주역을 읽다간 때로 끊어지고 /
玩易時三絶
글을 보는 날로 백회를 거듭하네 /
觀書日百廻
다만 왕래가 적음으로 인연하여 / 只緣來往少
극도의 즐거움이 도리어 슬퍼지누나 / 樂極却生哀

온 좌중이 떠드는 말은 전혀 없고 / 滿座無譁語
토로하는 회포는 다 고향 생각일세 / 開懷盡故鄕
향기는 맑아라 백자향을 불사르고 / 淸香燒柏子
맛은 진해라 뽕나무 열매를 먹네 / 醇味啜桑郞
달빛은 바야흐로 맑아졌는데 /
窟方淸朗
조선 땅은 정히 아득하기만 해라 / 鯷岑政渺茫
새벽까지 조용히 시가를 읊으면서 / 微吟天欲曉
운명은 저 푸른 하늘에 부치노라 / 有命付蒼蒼

 

[주D-001]주역(周易)을 …… 끊어지고 : 공자(孔子)가 만년에 《주역》을 좋아하여 매우 많이 읽었던 관계로,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글을 …… 거듭하네 :
소식(蘇軾)이 안돈(安惇)을 보낸 시에, “옛글 백 번 읽기를 싫어 아니하여, 익히 읽고 깊이 생각하면 절로 알게 되리라.[舊書不厭百回讀 熟讀深思子自知]” 하였다.

박중강(朴仲剛)을 생각하다.

 


산남의 객지 벼슬살이 이미 해가 지나니 / 山南游宦已經秋
치아와 머리털이 이젠 예만 같지 못하리 / 齒髮如今似舊不
향당에선 한때에 순박하다 칭했었는데 / 鄕黨一時稱木

십 년의 전쟁으로 깊은 근심에 지쳤도다 / 干戈十載困沈憂
늙은 내시 무릎 꿇려라 좌석엔 바람 일고 /
老璫屈膝風生座
깨진 거울 묻혀라 달만 누에 가득하네 /
破鏡埋光月滿樓
동해 가의 밀성 고을에 머리를 돌리어라 / 回首密城東海畔
양친 사모하는 마음 어찌 행여 그칠쏜가 / 兩親思戀豈曾休

 

[주D-001]늙은 …… 일고 : 이백(李白)이 문제(文才)로써 당 현종(唐玄宗)에게 총애를 받던 중, 일찍이 임금을 모시고 주연(酒宴)을 받는 자리에서 이백이 취하여 환관 고력사(高力士)에게 강요하여 자기 신을 벗기게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2]깨진 …… 가득하네 :
()나라 때 태자 사인(太子舍人) 서덕언(徐德言)이 일찍이 진 후주(陳後主)의 누이 낙창공주(樂昌公主)와 결혼했는데,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서덕언이 공주와 끝까지 함께하기 어려움을 예측하고 동경(銅鏡)을 절반으로 쪼개어 한 조각을 공주에게 주면서그대 같은 재색(才色)으로 나라가 망하면 의당 권호(權豪)의 집에 들어갈 터인데, 정연(情緣)만 끊이지 않는다면 서로 다시 만날 수도 있으리니, 이것을 신표로 삼았다가 후일 정월 보름날에 이것을 도시(都市)에 내다 팔아 다오.” 하고 서로 헤어졌다. 그 후 과연 정월 보름날에 서덕언이 도시에 나가서 그 거울 조각을 얻어 자기의 것과 서로 맞추어서 공주의 것임을 확인하고는 그 거울에, “거울과 사람이 함께 떠났다, 거울만 돌아오고 사람은 안 돌아오니, 항아의 그림자는 다시 볼 수가 없고, 공연히 밝은 달만 휘영청 빛나네.[鏡與人俱去鏡歸人不歸 無復姮娥影 空留明月輝]”라고 써서 보냈더니, 공주는 과연 그때 월국공(越國公) 양소(楊素)의 집에 가서 살고 있다가 이 시를 얻어 보고는 밥도 먹지 않고 울기만 하므로, 양소가 그 내막을 알고 마침내 서덕언을 불러서 공주를 다시 돌려주었던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부부(夫婦)의 이별을 의미한다.

취하여 노래하다.

 


취중에 노래하는 것이 객기인가 천화인가 / 醉中歌客氣耶天和耶
나도 모르는 것을 어찌 남에게 물으랴 / 我自不知奚問他
광대한 푸른 하늘은 사해를 두루 비추고 / 靑天蕩蕩暎四海
달 속의 계수는 한창 너울너울 춤을 추니 / 月中桂影方婆娑
나는 난새를 타고 넓은 하늘에 올라가서 / 我欲乘鸞凌汗漫
광한궁 천리에 섬아
를 따르고자 하노라 / 廣寒千里追纖阿
옥토끼가 방아 찧은 약을 구하지 않고도 / 不索玉
杵中藥
만고에 안 죽는 건 달 속의 선녀 항아로다 / 萬古不死唯姮娥
곧장 극선을 따라 훌륭한 자취 계승하여 / 直從
詵繼芳躅
붉은 계수 한 가지를 두 손으로 꺾어 갖고 / 丹桂一枝雙手摩
훌쩍 날아 돌아오면 옷에 향기 가득하여 / 翩然歸來香滿衣
옥당의 높은 곳에서 한림학사라 일컬으리 / 玉堂高處稱鑾坡
정성스레 계수를 모란꽃 밭에 옮겨 심어 / 殷勤種向牧丹地
뭇 꽃을 압도하여 서로 못 겨루게 하고 / 壓倒不使爭春葩
임금의 조서 아름답게 윤색하여 반포하면 / 敷詞演誥潤天章
천하에 입힌 덕택이 희와와 가지런하리 / 光被天下齊羲媧

 

[주D-001]광한궁(廣寒宮) 천리에 섬아(纖阿) : 광한궁은 달의 궁전[月宮殿]이고, 섬아는 달의 신[月神]이다.
[주D-002]극선(詵) :
진 무제(晉武帝) 때 사람으로 일찍이 현량 대책(賢良對策)에서 천하제일(天下第一)을 차지했는데, 뒤에 무제가 그를 옹주 자사(雍州刺史)로 보내면서 묻기를, “()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이 현량 대책에서 천하제일을 차지한 것은 마치 계림일지(桂林一枝)와 곤산 편옥(崑山片玉)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였다.
[주D-003]희와(羲媧) :
상고 시대 성왕(聖王)인 복희씨(伏羲氏)와 여와씨(女媧氏)를 합칭한 말로, 태평성대를 의미한

즉사(卽事)

 


녹명가
불러 파하고 연산을 향해 가노라니 / 鹿鳴歌罷向燕山
씩씩한 말 잘 달리고 변새의 날은 차가워라 / 驕馬蹄翻塞日寒
나는 다만 한 치의 마음이 고정과 같아서 / 只有寸心如古井
깊고 고요하여 파도가 이는 곳이 없다오 / 湛然無處動波瀾

 

[주D-001]녹명가(鹿鳴歌) : 녹 명은 《시경》 소아의 편명으로, 이 시는 본디 임금이 신하들에게 연회(宴會)를 베푼 자리에서 연주하던 악가(樂歌)인데, 특히 당()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군현(郡縣)의 장리(長吏)가 향시(鄕試)에 급제한 거인(擧人)들을 초치(招致)한 자리에서 이 시를 노래하여 그들의 전도(前途)를 축복하였다.

느낌이 있어

 


천지와 계란 두 가지 중에 / 天地與鷄卵
내가 지금 무엇을 구별하랴 / 我今何所擇
산하는 계란 노른자와 같고 / 山河如內黃
허공은 계란 흰자와 같으니 / 虛空如外白
그 사이에 날개 돋은 사람은 / 羽化於其間
봉래산의 신선만이 아니로다 / 匪獨蓬萊客
천지의 호연한 한 기운 속에 / 浩然一氣中
혼이 있으면 백도 있거니와 / 有魂斯有魄
형체야 어찌 길이 보존되랴만 / 形質豈長存
명성은 인한 데서 나오나니 / 聲名出仁宅
나는 나의 인에 편히 처할 뿐 / 我且安我居
애써 남보다 총명할 것 없어라 / 無勞耳生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