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으로 묻힌 한산 蓮亭池(연정지)
우리문화유산이 너무나 빠르게 개발의 미명하에 지금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음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 연꽃 향기는 코를 찌르고 버드나무 흔드는 바람은 얼굴에 불어와 그 경치는 연꽃이요 그 상쾌함은 바람일쎄......중략.....>
이 글은 조선순조29년(1829년)7월4일 우리고장 한산군수 柳仁根(유인근)의 蓮亭記(연정기)로 정자에 실려 있었던것으로 당시 蓮亭池의 풍경을 묘사한 글이다
한산면 邑城안에 있었던 연정에 대하여는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연정과 연지가 퇴락과 개발의 미명아래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다만 글로써 존재를 확인할 수 밖에 없다
이곳 연지는 언제부터 조성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연지에 서 있는 정자의 창건연대는 고려공민왕3년 (1370년) 창건되었다고 당시 연정 상량문에 기록되었음을 글만이 사실을 전할뿐이다
한산지방은 백제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고을이 형성되면서 문화가 발달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한 고장이다
그 연지와 정자가 서있던 장소는 오늘날 한산모시시장과 한산소방대,유림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20년전까지만 해도 연지가 있었지만 매립되어서 지금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요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연지에 연꽃이 만발하고 연지주위에 버드나무가 많이 늘어서 있었던것을 기억할 것이다
한번 고향을 떠난 사람이 고향을 다시 찾아 오기란 무척 힘든것 처럼 사라진 문화유적인 연정과 연지는 다시 찾을 길 없는 안타까움만 남겨 놓고 있다
당시의 연정과 연지의 풍취를 기록으로나마 회상하며 음미해 보자
-- 蓮 亭 記 --
韓州(한주-지금 한산의 옛이름) 고을 관청에서 약간 떠러진 곳에 연정이 못가에 나라가듯 서있다 연정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부르게 된 것이다
어느날 太守(태수- 군수)가 더위에 시달려 땀을 휘두르며 , 석약이 될 무렵 올라오니 층계의 사다리는 첩첩이 높앗고 정자바닥은 넓어 진실로 호서지방의 이름난 지역이라. 연꽃 향기는 코를 찌르고 버드나무 흔드는 바람은 얼굴에 불어와 그 경치는 연꽃이요, 그 상쾌함은 바람일쎄 , 가이 시를 읊을만하고 술을 마실만 하구나
동서남북으로 벌려있는 뭇봉우리는 인사하고 서 있는듯 하다
앞에는 연못이 맑아 앝게 보이고 뒤에는 관청이 깊은곳에 완연하게 있고 좌우에 마을의 집들은 빗살처럼 있는데 거친 城 안 밖에는 물논이 아득히 보이고 들판의 가득한 푸른구름속에 이미 별이 나오고 하얀 냇물에 하늘은 맑게 비쳐있다
등불 촛불은 밝아 밤은 고요한데 홀연히 글 읽는 소리 들려와 太守(태수-군수) 기뻐하여 불러보니 아이들 둘 셋이 홋적삼을 입고 거친신 (짚신, 나막신)바쁘게 온다
그들로 하여금 당나라 詩 두어구절 외우게 하니 갓쓴 아이 청장년 같고 舞雩(무우- 기우제 지내는 제단)아래에서 풍유를 즐기고 沂水(기수-목욕하여 마음과 몸을 씻는 중국풍속)의 모양 이로다
(무우, 기수는 공자의 제자들이 즐겨 찾던곳)
한마당 웃고 말하며 관아에 돌아오니 맑은듯 더위를 잊고 밤은 이미 깊었는데 연꽃 향기 옷에 배인다
순조 29년(1829년) 7월 4일
한산태수(군수) 유 인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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