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금에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향기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가 순간 사라진다. 다시 한 모금을 마시자 혀끝에 남았던 약한 단맛이 더해지며 향기가 더 강해진다. 그리고 또 한 잔….
결국 이렇게 과거길 선비가 시험도 포기하고 마셨다는 술, 바로 1500년전 백제의 전통을 이은 한산소곡주다. 한 모금 마시기 시작하면 일어설 줄 모른다고 해서 앉은뱅이 술이란 이름으로도 유명한 한산소곡주.
"창업 10여년 만에 이제 이름이 알려진 셈이죠"
지난 26일 오후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한산소곡주 제조장. 맑은 가을 날씨에 한산에서 만난 소곡주 제조비법의 전승자 나장연(42) 사장의 말이다.
TV 드라마 '서동요'등에 등장했듯 한산소곡주는 1500년전 백제왕실에서 즐겨 음용하던 술이다. 신라의 교동법주, 고구려의 계명주등과 어깨를 나란이 하지만 현재는 최고의 위치에 섰다. '삼국사기'에는 다안왕11년(318년)에 흉년이 들자 민가에서 제조하는 가양주를 금지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왕 37년(635년) 3월에는 조정 신하들과 백마강 고란사 부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경관을 즐기며 소곡주를 마셔 그 흥이 극치에 달했다고 한다. 의자왕 역시 소곡주 애호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한산소곡주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한민국 전통주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2004년 청와대 선물세트로 선정됐고 전통식품 베스트 5선발대회 대상에 이어 지난해에는 충남도 관광자원으로 '백제문화제', 금산의 '인삼캐기 체험'과 전통 민속주 부문에서 '한산소곡주'가 가장 높은 순위로 뽑혔다.
사실 지난 1979년 나 사장의 조모인 김영신 할머니가 소곡주 제조비법으로 무형문화재에 지정됐을 때만해도 나 사장 본인이 소곡주의 전통을 이을 줄은 몰랐다. 서울 동국대 전자과를 다니던 공학도였다 "졸업할 때쯤 할머님의 술을 사겠다고 사람들이 줄을 섰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제조기술을 현대화하면 더 비전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사장의 생각은 적중했다. 1992년 술 발효를 위한 항아리 12개로 시작했지만 점점 규모가 커져 지금은 발효조만 150여개로 늘었다. 연간 200㎘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소곡주는 국내 여느 술과 달리 들국화, 메주콩, 생강 등 재료를 100일간 정성을 다해 발효시켜야 만들어집니다. 보름정도 술을 빚고 나서 따로 향을 섞는 일반 술들과 달리 소곡주는 모든 재료가 고루 발효돼 맛과 향이 나는 것입니다" 나 사장은 1994년 한때 섣불리 소곡주의 맛을 현대화하려 시도했다 실패하기도 했다"소주 맛에 익숙한 젊은층을 위해 소곡주의 단맛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단맛이 사라지니 독특한 향도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더 전통적인 소곡주 맛을 내려고 연구소까지 운영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감세 지원을 받아 소곡주는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았다. 나 사장은 지역 농업인들과 꽃지뫼라는 법인을 만들어 43만여㎡에 유실수를 심어 사계절 꽃피는 동산을 만드는 계획을 진행중에 있다.
또 농업기술센터와 공동으로 소곡주 전용 찹쌀 품종 개발과 공장 근처에 우리밀 누룩공장을 건립, 원료부터 차별화된 대한민국 최고의 전통주를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