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이상재 선생 추모제에 대한 단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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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옥 기자 onark2@newssc.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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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다 못해 처량했다. 필부의 제삿날에도 친척과 가족이 모이면 이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참석했으리라. 행정당국과 사회단체, 군민들의 무관심이 여실히 드러나 서천군민임이 부끄러운 추모제였다. 나소열 군수는 일정관계로 참석하지 않았다는 김종겸 문화관광과장의 전언이 있었다. 추념사도 김 과장이 대독했다. 반면 이찬민 홍성보훈지청장은 먼 길을 달려 참석했다. 우리 군에서는 최재수 교육장, 노희찬 주민생활지원과장, 김종겸 문화관광과장, 송선규 도의원, 전익혁 군의원이 참석했다. 이완구 한산농협조합장과 박근춘 축협조합장도 얼굴을 내비쳤다. 이상재 선생이 누군가. 우리 민족의 가장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하에서 독립운동가, 언론인, 종교인으로 위대한 선각자였다. 교육자로서 청년 운동가로서 온 겨레가 추앙했던 민족지도자였다. 근대사에서 서천이 배출한 인물 중 이상재 선생을 뛰어 넘을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1927년 3월 29일,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한반도가 통곡했던 분이다. 사회장으로 한산 선영에 모실 때 영구행렬이 수십 리에 뻗칠 만큼 온 겨레가 추앙했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였다. 좌·우 이념을 떠나 모두가 존경했던 인물, 최고의 지도자로 꼽던 인물이 바로 월남 이상재 선생이다. 인도에 간디가 있다면 조선에는 월남이 있었다. 월남을 기리고 월남 선양사업을 주도해야할 행정당국과 지역 내 지도자들의 월남 홀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해도 너무 했다. 주민휴게소 준공식이나 축제행사에 가면 이변이 없는 한 군수는 반드시 참석한다. 도의원, 군의원들도 웬만하면 얼굴을 내밀어 존재를 주민들에게 각인시킨다. 미래를 위한 포석이리라. 선생의 추모제가 필부의 기일보다 더 쓸쓸해서야 되겠는가. 선생의 추모제가 주민휴게소 준공행사나 축제보다 더 가볍다는 말인가. 선생의 민족에 대한 공헌과 족적이 왜 이다지도 고향 서천에서 홀대를 받아야 하는지…불가사의한 일이다. 선생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며 “예끼, 고이한 놈들” 일갈 했을지도 모른다. 당일은 토요일로서 군수나 군의원들의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마태복음 13장 55~57)는 성경구절이 딱 들어맞는 추모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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