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교회 정장로 장로 | ||||||||||||||||||||||||||||||||||||
40년 이웃 사랑 | ||||||||||||||||||||||||||||||||||||
| ||||||||||||||||||||||||||||||||||||
서남옥 기자 onark2@newssc.co.kr | ||||||||||||||||||||||||||||||||||||
| ||||||||||||||||||||||||||||||||||||
| ||||||||||||||||||||||||||||||||||||
아버지의 삶 자체가 곧 가훈
모두 증상을 이야기하고 약 조제를 의뢰하는 전화들이다. 약방을 직접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계속 이어진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기자가 말 붙일 틈이 없다. 약방 안에는 달여진 약들이 택배로 부쳐질 것을 기다리며 차곡차곡 쌓여 있다. 바로 옆 칸에서는 10여 개의 약탕기가 부지런히 약을 달이는 중이다. 약값 또한 매우 저렴해 시중가의 절반 정도다. 정장로를 만나기 전 ‘한약방에서 얼마나 돈을 남기길래 연 4,000만원의 돈을 기탁하나’ 생각했던 것이 내심 부끄러워진다. 매년 추석과 설 두 차례 1,950만원씩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기탁하고 한산면에는 독거노인을 위한 ‘양지의 집’을 14호 지어 무료 입주시키고 있는 정 장로.
검정고무신을 신고 책을 보자기에 싸서 둘러메고 다니던 시절이다. 용원씨는 아버지의 이웃을 위한 나눔이 아깝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정장로가 45년전 대전에서 한약사 공부를 마치고 배치된 곳이 서천군이었다. 당시에는 서천보다 한산이 더 커서 장날이면 사람으로 가득 차는 것을 보고 한산에 정착했다한다. “아버지가 기독교에 귀의하지 않았다면 이웃사랑의 정신적 동기가 미흡했을 것”이라는 것이 용원씨의 짐작이다. “30년 전 시작한 새벽기도회를 빠진 날이 손꼽을 정도”라며 “흔들림 없는 아버지의 신앙이 흐트러짐이 없는 생활로 이어진다”고 전한다. 정 장로의 삶에는 이웃사랑을 가르친 예수가 녹아들어 있다. “왜 기탁금액이 1,950만원인가” 묻자 “13개 읍·면에 5가정씩 선정해 30만원을 기탁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돌아온다. 용원씨는 군청에 일괄 기탁하기 전에는 각 읍·면을 찾아다니며 기탁했으나 아버지 연세도 있고 대상자 선정·전달도 어려워 군에 일괄 기탁하자고 제의해 2000년부터는 일괄 기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장로는 수익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참살이와 건강이 최대 화두인 것을 생각할 때 전화만으로 증상을 이야기하고 약 조제를 의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정장로에 대한 완벽한 신뢰의 표현이다. 용원씨는 “아버지가 약방을 경영하는 40여년간 마케팅, 홍보도 없이 묵묵히 일하며 그 흔한 달력을 단 한번도 인쇄해 돌린 적이 없는데 전국에서 찾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고 한다.
벽에 걸린 국민훈장증(목련장)이 오히려 이들 부자의 마음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진다. | ||||||||||||||||||||||||||||||||||||
|
||||||||||||||||||||||||||||||||||||
2008년 01월 14일 |
'▒ 한산자료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35년 세월 간직한 호암 떡방앗간 (0) | 2008.02.04 |
---|---|
한산면 ‘하늘농장’ 프리지어를 닮아가는 농군부부 (0) | 2008.01.21 |
하늘에서 내려다 본 우리 고장의 문화재 한산모시관 전경외.. (0) | 2007.12.28 |
한산중 나기홍 교사, ‘TJB문화재단 교육상’ 수상 (0) | 2007.12.28 |
한산 애니고 한해 모든 작품 한자리에 전시 (0) | 2007.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