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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반토막·행장 사퇴…벼랑끝 미주 韓人은행

천하한량 2007. 12. 24. 20:22
주가 반토막·행장 사퇴…벼랑끝 미주 韓人은행
"외환위기보다 심각…연쇄도산 가능성"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S씨. 그는 2년 전 LA에서 부동산을 사들였다. 당시만 해도 부동산 경기가 성장세를 계속했던 터라 한인은행 한 곳에서 100만달러를 빌려 콘도미니엄(소유권이 있는 공동주택) 구입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그러나 채 1년도 안 돼 부동산 시장은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가격은 떨어졌다.

그는 은행에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했고 조만간 차압될 수밖에 없게 됐다. S씨도 속을 끓이고 있지만 대출을 내줬던 한인은행 대출 담당자도 좌불안석이다. 부실 대출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 사실상 `IMF 위기`

= 한인이 밀집해 있는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지역을 기반으로 한 한인은행은 최근 몇 년 동안 비약적인 성장세를 지속해 왔다. 이른바 4대 한인은행인 한미ㆍ나라ㆍ윌셔스테이트ㆍ중앙은행의 전체 자산은 100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주요 한인은행은 LA 지역에서 커뮤니티 은행(도시나 메트로 권역을 중심으로 영업하는 소규모 은행)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또 대부분 윌셔가의 중심에 대형 본점을 갖고 있다.

이들 은행은 한국에서 건너온 자본을 유치하면서 동시에 한인타운 내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과 자영업 대출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의 주된 요인인 주택 대출과는 무관한 영업 기반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우선 부실 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브레트 라바틴 FTN 미드웨스트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인은행의 경우 고위험 대출 비중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손성원 한미은행장은 "주택경기 침체가 한인 경제권의 침체로 이어지며 은행 여건이 매우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인은행권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영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부동산 침체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한인은행은 메가톤급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은행별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60~65%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은행은 이 비중이 80%에 달하고 있다.

최운화 커먼웰스 비즈니스은행장은 "한국의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한인은행의 연쇄적인 도산 가능성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위기감은 당장 주가에 반영

= 가장 규모가 큰 한미은행은 지난해 말(12월 29일 기준) 22.53달러였던 주가가 최근 8.95달러(12월 21일 현재)로 곤두박질쳤다.

윌셔 스테이트 은행과 중앙은행, 나라은행 등도 대부분 연초에 비해 주가가 반토막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지난주 민수봉 윌셔 스테이트 은행장이 사퇴했다. 사퇴라고 하지만 최근 실적 부진과 주가 급락에 따른 책임을 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LA 한인금융권에서는 "다음엔 누가 경질된다더라"하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대주주들의 이탈 움직임이다. 은행 지분을 갖고 있는 대주주들이 부실 확대와 주가의 추가 하락 전에 지분을 정리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스테이크 런(stake run, 주주 이탈)`이 일어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한 은행의 경우 실제 대주주가 지분을 전격 매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위기에 대한 `위기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위기를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놓을 수 있는 인프라스트럭처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특히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웰스파고 은행, 워싱턴 뮤추얼 등 미국 은행은 물론 일본ㆍ중국계 은행까지 공격적인 영업전략으로 한인타운을 공략하고 있는 것도 변수다. 자칫하면 한인은행은 `한인`이라는 주된 기반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로스앤젤레스 = 김경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