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와 물가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다. 보통 경기가 오르면 물가도 따라 오르는 반면, 경기가 둔화되면 물가도 떨어진다. 그런데 때때로 둘이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경우가 있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키워드)이 그것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나 나타났던 예외적인 현상인데, 최근 세계 경제가 30년 만의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떨고 있다.
◆구조적 원인은 세계 경제의 3중고
최근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는 것은 ①세계 경제의 소비 엔진인 미국의 경기 부진과 ②세계의 공장인 중국 등 개도국의 인플레 압력 ③국제 유가 급등의 삼중고(三重苦) 구조에 기인한다.
미국에서는 16년 만에 최악의 주택 경기 침체에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인한 신용경색 여파로 경제성장률이 올해 2.7%에서 내년엔 1%대로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IMF 전망).
지난 10월 IMF가 발표한 내년 세계 경제전망을 보면 미국과 EU(유럽연합), 중국의 물가상승률을 오히려 올해보다 낮게 봤으나, 이는 11월의 예상치 않은 국제유가 급등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 양동욱 해외조사실장은 “IMF 전망치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은 모델에 의한 것인 데에서도 기인한다”면서 “다음달 IMF가 내놓을 수정치에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0월에 3.5% 상승했던 미국 소비자물가(전년 동기 대비)는 11월에는 4.3%로 껑충 뛰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그 동안 미국이 주도하던 ‘부채 의존 성장’이 서브프라임 쇼크로 제동이 걸리고, 중국 등 개도국은 ‘인플레이션 수출국’으로 변하면서 지난 5년간 세계 경제가 구가해 오던 고성장-저물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책 대응의 딜레마
문제는 이 같은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고물가를 잡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고금리인데, 서브프라임 쇼크에 따른 경기 부진을 우려하는 미국과 유럽 등이 금리를 올리기가 어렵다. 중국은 인플레이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금융긴축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뚜렷하지 않다.
한국은행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대선 후보들이 하나 같이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확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소비자물가가 올해의 2.5%에서 내년엔 3.3%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돼(한은 전망) 금리를 낮추기 어려운 형편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그 동안 부풀었던 세계 경제의 버블이 조정되는 의미가 있어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상황은 오일쇼크 때에 비하면 파괴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오문석 상무는 “미국 경기 경착륙(硬着陸) 가능성이 크지 않고 과거에 비해 세계 경제가 석유에 의존하는 비중도 떨어져 오일쇼크 때와 단순비교는 무리”라고 말했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 침체하의 인플레이션, 즉‘저성장 고물가’상태를 의미한다. 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이다. 70년대 오일쇼크 때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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