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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배럴당 100달러 가시권

천하한량 2007. 10. 26. 15:16
고유가 충격이 전 세계를 엄습하고 있다. 불과 한 달전만 해도 국제 석유시장은 두바이유 배럴당 70달러,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80달러선도 충격으로 받아들였지만 25일(현지시간 기준) 각각 80달러, 90달러를 돌파했다.

이 때문에 유가 100달러(배럴당) 시대가 가시권에 들어왔고 20여년만에 세 번째 ’오일쇼크’가 닥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2년전 국제유가가 대급등(Super-spike) 시대에 돌입했다며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예언했을 때 콧방귀를 뀌었던 경제전문가들도 이젠 이를 대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 수급+투기+지정학적 요인 합작품

25일 국제 석유시장에서 WTI 12월 인도분 선물가격은 장중 90.60달러까지 치솟은 뒤 90.46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고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 역시 1988년 거래 시작 이후 가장 높은 87.45달러를 기록했다.

미국내 원유와 석유제품 재고가 줄었다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주간 석유재고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동절기 수급우려가 크게 확산되며 WTI와 브렌트유 선물의 상승폭이 각각 3.36달러, 3.08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도입 원유의 기준인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도 배럴당 2.14달러나 뛴 80.53달러로 처음 80달러선을 돌파했다.

국내외 분석기관들은 특정한 재료에 주식시장 만큼이나 민감하게 반응하며 요동치는 최근 국제 석유시장의 동향은 펀더멘털, 즉 석유 수급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우선 미국의 경기 후퇴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달러화의 약세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는 점이 큰 부담이다. 금융연구원은 지난 21일 보고서에서 국내 총생산(GDP)의 6.5%에 이른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미국 달러화가 고평가돼있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진단을 근거로 내년에도 달러화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헤지펀드들이 ’가치보전’의 수단으로 달러화 표시 금융자산 대신 석유 등 원자재를 투기 대상으로 삼을 개연성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지정학적 요인도 유가폭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석유법 제정을 계기로 이라크의 석유공급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석유법을 둘러싼 이라크내 분쟁으로 상당기간 뒤로 미뤄진 반면, 터키는 쿠르드 반군 소탕을 명분으로 역시 석유 산지이자 유럽지역 공급용 석유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이라크 북부에서의 군사작전을 강화할 조짐이다.

특히 미국이 이날 이란의 핵심 군부대인 혁명수비대를 테러세력으로 규정하고 강도높은 새 제재안을 내놓으면서 중동지역의 불안이 고조되는 형국이다.

◇ 배럴당 100달러 가시권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주요 에너지 분석기관들이 조만간 배럴당 100달러(WTI 기준) 돌파를 기정 사실화할 만큼,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2년전 골드만삭스가 국제유가가 대급등(Super-spike) 시대에 돌입했다며 배럴당 105달러선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을 때 세계가 ’설마’했던 분위기와는 영 딴 판이다.

릴와누 루크먼 전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은 “OPEC이 없었다면 유가는 100달러, 120달러 또는 그 이상으로 치솟았을 것”이라며 석유시장의 상황이 간단하지 않음을 내비쳤고 차키프 헬릴 알제리 석유장관은 국제유가가 장중 90달러를 처음 돌파했던 지난 20일 “내년 초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발언, 100달러 돌파가 가시권에 들어왔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일찌감치 초고유가를 예견했던 투자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던 서방의 주요 에너지분석기관들도 이제 경우에 따라 유가가 100달러 안팎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한 시나리오로 상정해놓고 있다.

런던 소재 세계에너지센터(CGES)는 지난 22일 전망에서 석유시장의 고유가 기조가 지속될 경우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이 내년 2.4분기 평균 100달러, 연평균 96달러가 될 것으로 점쳤고 미국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소(CERA)는 지난달 24일 내놓은 전망에서 공급 부족이 지속되면 내년 3.4분기 WTI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 두바이유는 95.5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다.

◇ 대급등시대..2∼3년내 200달러(?)

그동안 고유가의 주요인을 주로 중국 등 신흥 산업국의 수요 증가세에서 찾던 것과 달리, 국제 석유시장에 ’공급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독일 에너지감시그룹(EWG)는 지난 22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앞으로 원유 생산이 매년 7% 가량 줄면서 지난해 하루 8천100만 배럴에 이르던 생산량이 2020년에는 하루 5천800만 배럴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서방 에너지소비국을 대표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오는 2012년 세계 석유수요가 하루 9천58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 점을 감안하면 각종 에너지 절약책과 신재생 에너지 활용, 원자력 등으로의 에너지 전환 등을 고려해도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가장 큰 생산지인 가와르 유전이 조만간 고갈되는 등 석유자원이 빠르게 소진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공급 위기와 달러 약세가 겹치면 국제유가가 2∼3년내 배럴당 200달러까지도 갈 수 있다는 극단적 비관론까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