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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풀린 식품값 ‘식량 위기’ 오나

천하한량 2007. 10. 24. 23:30
고삐풀린 식품값 ‘식량 위기’ 오나
밀·우유등 주요품목 ‘수직 상승’…중·러 가격동결 나서
“풍부한 식량공급 시기 지났다” 재해 겹쳐 위기감 확산
한겨레 이본영 기자
» 소비자물가 상승률
오는 28일 대선을 앞둔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달 초 소비자단체들과 수퍼마켓 수백곳이 토마토 불매운동을 벌였다. 아르헨티나인들의 필수품인 토마토 1㎏의 가격이 1.5~2페소(약 700원)에서 몇달 새 18페소로 뛰었지만, 정부가 토마토값이 3.99페소밖에 안된다고 공표하자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는 지난달 이탈리아에서 밀값 폭등으로 파스타 가격이 오르자 13개 소비자단체가 불매운동과 항의시위를 벌인 것을 떠올리게 한다.

12월 총선을 눈 앞에 둔 러시아에서는 24일 주요 판매·생산자들이 빵·치즈·우유·계란·식용유 가격을 이달 15일 수준으로 내리고 연말까지 동결한다는 협약을 정부와 맺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물가 인상, 특히 식품가격 인상이 우려스럽다”며 소비에트 정부 시절에나 시행하던 가격통제가 불가피한 이유를 밝혔다. 돼지고기 등 식품가 앙등으로 인플레 우려가 커지자 중국 정부가 지난달 주요 상품 가격 동결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식료품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뛰자, 각국이 비상한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가팔라진 가격 곡선은 곡물에서부터 유제품, 커피 등 주요 식품군을 망라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한다.

최근 밀과 우유는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고, 쌀과 커피는 10년 만에 가장 비싼 수준에 이르렀다. 육류 가격도 올해 일부 국가에서 50% 이상 뛰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970년대 식량부족 사태 이후 식량 걱정을 안하던 나라들에까지 우려가 확산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24일 보도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앞으로 10년간 식료품 가격 상승률이 지난 10년간 평균가격 대비 20~50%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큰 타격은 생산이 수요에 못미치는 ‘식량 적자국들’에 가해진다. 식량농업기구는 고유가에 따른 운송비 인상까지 겹쳐 내년에 ‘식량 적자국들’의 곡물 수입액이 2002년의 두 배인 28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기구는 지난 16일 ‘세계 식량의 날’에 낸 보고서에서, 현재 8억5400만명인 세계 기아 인구가 매년 400만명씩 늘고 있다고 밝혔다.

수입은 늘리고 수출은 제한하려는 국제적 움직임도 곡물가격을 더욱 띄우고 있다. 인도는 밀 수입을 확대해 비축분을 늘리고 있다. 1977년 밀값 인상에 따라 ‘빵 인티파다(봉기)’를 겪은 이집트는 빵 제조업에 대한 보조금을 늘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밀과 보리의 수출관세를 올리고 수출쿼터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식량 수출지역이나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소비자 불만은 높아간다. 과잉생산을 막으려고 경작지의 10%에는 곡물 재배를 금지하던 유럽연합은 의무휴경제 시행을 중단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올해 파스타·빵 소비가 7.4%, 쇠고기 소비는 4.1% 줄었다. 영국 상업농그룹의 헨리 펠 회장은 “우리는 풍부한 식량 공급 시기로부터 크게 부족한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 식료품 가격 오름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가뭄 등 자연재해가 부채질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오연료 생산을 위한 작물 수요가 증가하고,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에서 육류 소비가 증가하는 등의 구조적 원인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1칼로리의 고기 생산에는 곡물 4칼로리가 필요하다. 세계은행은 수요 증가에 맞추려면 2000년부터 2030년까지 곡물은 50%, 육류는 85% 생산이 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농업보조금이 개발도상국의 농업 투자를 위축시켜 식량 위기를 부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