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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외채 급증, 환란 전 닮았다?

천하한량 2007. 10. 25. 16:34
단기외채 급증, 환란 전 닮았다?
외환보유액 54% 넘어 'IMF 기준 위험수위' 근접
전문가들 "외채 성격에 차이·자금이탈 가능성 낮아"



우리나라의 전체 대외 채무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외환 위기 직전 수준까지 치솟았다. 외국은행 지점에 대해 단기외채 차입 자제를 요청하고, 투기성 외환 거래에 대해 누차 경고했지만 소용없었다.

급기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일부 은행을 대상으로 선물환 시장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단기외채 증가의 원인을 면밀히 파악해 보겠다는 것이다.

환란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과도한 단기 외채였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악몽 재연'을 우려한다. 지나친 우려일 수도 있지만 환란 당시와 닮아있는 점도 적지 않다. 무작정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환란 직전과 유사하다?

수치 상으로 보면 "다시 환란이 오는 것 아니냐"고 할 법도 하다. 1997년9월말 당시 만기 1년 미만의 단기 외채는 805억달러. 전체 대외 채무(1,774억달러)의 45.3%였다.

94년말(384억달러)와 비교하면 3년여간 단기 외채가 두 배 이상 급등했다. 이 자금들이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실탄(외환보유액)이 바닥이 나고 말았다.

올 6월말 현재 단기 외채는 1,379억달러. 전체 채무의 44.3%로 환란 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2005년말(659억달러)의 두 배를 넘어섰으니, 증가 속도는 오히려 빠른 셈이다. 방어할 실탄이 풍부해 외환위기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이 54%를 넘어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위험 수위라고 판단하고 있는 60%에 상당히 근접했다. 강한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일시에 이탈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을 일대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기우만은 아니다.

그래도 많이 다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유사할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우선 단기 외채의 성격자체가 다르다. 환란 이전에는 종금사 등 국내 금융회사들이 단기 외채를 마구 끌어다 장기로 대출해줬다. 이른바 '미스매치(기간 불일치)'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업체의 대규모 선물환 매도 등 환위험 회피(헤지)나 무위험 재정거래(낮은 금리로 달러를 들여와 금리 차익이나 선ㆍ현물 환율 차익을 내는 거래)가 단기 외채 급증의 주요 원인이다.

조선업체 등 국내 수출기업들이 환율하락(원화 강세)을 예상하고 선물환을 대량 매도하고, 이를 매입한 외국은행 지점들이 환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본점 등에서 단기 외화를 차입하고 있다. 이들은 달러를 판 돈(원화)으로 국내 채권을 사들여 금리 차익을 얻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급격한 자금 이탈 가능성이 당시보다 현저히 낮다. 최근의 단기차입은 기본적으로 본ㆍ지점간 거래가 많기 때문에, 한꺼번에 돈을 회수해갈 확률이 희박하다.

경상수지 적자 위에서 늘어난 환란 전 단기채무와는 달리, 지금은 경상흑자로 밀려들어온 달러의 환차익실현과정에서 단기채무가 증가한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갈만큼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때는 아니다. 과도한 단기 외채는 대외지급능력을 떨어뜨리고 환율과 금리 급변동 등 금융시장을 교란시킬 소지가 충분하다.

문제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팀장은 "과거에 비해 당국이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고 있다는 것 외에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