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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 진 팔준도 전(集賢殿進八駿圖箋) -성삼문(成三問)-

천하한량 2007. 8. 11. 03:57
집현전 진 팔준도 전(集賢殿進八駿圖箋)

성삼문(成三問)

하늘이 도와 임금을 내시니 성인은 천 년의 운수를 맞추셨고, 땅에서 쓰이는 것은 말[馬] 같은 것이 없으며, 신물(神物)은 한 시대의 재능을 바쳤기로, 감히 새 그림을 만들어서 예감(睿鑑)에 올리옵니다.
그윽이 생각하오면, 왕자의 작흥(作興)에 있어어도 역시 축산(蓄産)에 힘입어 성공하였습니다. 촉한(蜀漢)의 왕은 적로(的盧)를 타고서 능히 단계(檀溪)의 액을 면하였고, 금(金) 나라 태조는 자백(赭白)을 타고서 곧장 흑수(黑水)의 깊은 물을 건너갔으니, 진실로 큰 업이란 돌아갈 데가 정해져 있사오매, 미물(微物)도 또한 그 힘을 분발하는 것이옵니다.
우리 태조(太祖)께옵서 용맹은 하늘에서 타고나시고 덕은 오직 날로 새로우시매, 고려의 운수가 끝날 무렵에 외부의 적이 자주 틈을 노리니 나라를 위하여 적개심을 품고 백성 보살피기를 상처입은 것을 대하듯 안쓰러워하셨습니다. 의기(義旗)를 한번 돌이키자 백성은 화난을 면하게 되었고, 신과(神戈)를 사방으로 휘두르매 삼한(三韓)은 청명한 세상을 이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원근(遠近)이 지극한 인(仁)을 당적(當敵)할 길이 없었지만 근골(筋骨)은 먼저 크나큰 임무에 부지런하셔서, 친히 시석(矢石)을 무릅쓰시매, 몸은 상처에 피곤하였습니다.
이 시절을 당하여 세상에 이름난 인재만 용의 비늘에 붙어 절개를 다한 것이 아니오라, 기르는 짐승 같은 천물(賤物)까지도 제 몸을 바쳐 수고를 맡을 것을 알아서, 혹은 사냥터를 달리기도 하고, 혹은 싸우는 진중을 출입하여 주선(周旋)하는 데 힘을 다하고 걸음걸이는 사람을 따르는데, 그 크고 건장한 체격은 이미 익숙한 모습을 볼 만하고, 달리는 곳에는 앞설 놈이 없어 참으로 사생(死生)을 의탁할 만하더니, 마침내 그 장기를 발휘하여 큰 업을 이룩하는 데 도움되었으니, 어찌 영걸(英傑)만이 유독 능연각(凌煙閣)에 오르리오. 권기(權奇)로 소릉(昭陵)에 참열하게 된 것을 믿을 만하옵니다.
삼가 생각하오면, 도(道)는 생성(生成)에 흡족하시고, 공은 조화(造化)에 참예하시고, 선대의 뜻을 잘 계승하시고 선대의 일을 잘 기술하시어 삼가 수성(守成)만 하시고, 선대의 공을 계승하시고 선대의 정책을 드러내어 창업(創業)이 쉽지 않음을 생각하시며, 사랑은 견(犬)ㆍ마(馬)에게도 버리지 않으시고, 신의는 돈(豚)ㆍ어(魚)에까지 미치며, 특히 윤음(綸音)을 내리시어 도찬(圖贊)을 지어 올리게 하셨습니다.
신 등은 모두 조전(雕篆)의 기술로써, 외람되게 문한(文翰)의 직을 맡아온즉, 하물며 이 칭송이야. 바로 직분이옵기로 삼가 사적에 실린 것을 상고하고 겸하여 부로(父老)의 말을 채택하여, 화사(畵師)로 하여금 모형을 그리게 하고 졸한 글을 엮어서 공적을 기록했사오니, 터럭이 꼬부라진 한혈(汗血)은 완연히 당시의 용모와 같고, 늠름한 자태와 높은 공로는 거의 뒷사람의 안목을 놀라게 할 것이며, 상서로움은 하도(河圖)와 더불어 나란히 가고 노래를 지으면 천마가(天馬歌)를 누추하다며 차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한가한 틈이 나시오면 한 번 보아 주시옵소서. 그 덕을 칭찬하고 그 힘을 칭찬하지 않은 것은 선니(宣尼 공자(孔子))의 말씀을 따랐고, 아들에 전하고 손자에게 전하여 길이 성조(聖祖)의 공을 살필 수 있사옵니다.

[주D-001]권기(權奇) : 보통과 달리 뛰어남, 비상함, 훌륭한 말이 잘 달림을 형용한 말이다.《한서》 〈예악지(禮樂志)〉 ‘천마가(天馬歌)’에, “뜻이 호방하고 정신이 권기하다[志俶儻精權奇].” 하였다.
[주D-002]돈(豚)ㆍ어(魚) : 신의가 대단하다는 말이다. 《주역(周易)》 〈중부(中孚)〉에, “신(信)이 지극하여 돼지나 고기도 감복하게 된다[信及豚魚].”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