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자료 ▒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

천하한량 2007. 8. 7. 19:07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

 

드리드 중심의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회화를 소장하고 있는 회화미술관이다.
1819년 왕립미술관으로 처음 개관할 시에는 300여점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은 역대 스페인 국왕들이 소장했던 수 천 점의 명화를 포함하여
수 만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의 외벽은 백색같이 희였고 안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모두 3개였다.
중앙에 있는 문은 ‘벨라스케스의 문’이고,
왼쪽에 있는 문은 ‘고야의 문’이고,

오른쪽에 있는 문은 ‘무릴로의 문’이다.
모두 스페인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이름을 붙였다.


벨라스케스의 문으로 들어섰을때 나를 처음 대면해준 명화는

네덜란드 작가 보스(Bosch, 1450~1516년경)의 작품이었다.

세편의 페널화로 된 ‘쾌락(快樂)의 정원’은 보스의 작품 중 가장 불가사의하다.
이 그림은 서양미술 전체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는가 하면

다양하게 해석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림의 이야기는 왼쪽 페널인 이브가 창조된 지상낙원의 정원부터 시작된다.
가운데 페널에는 투명하고 커다란 방울에 갇힌 연인들의 모습이 있다.

이는 ‘육욕의 죄’를 저지르고 있는 인간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행복은 유리와 같아서 빨리 부서진다.”는 플랑드르의 속담이 연상되는 것 처럼
인간이 안고 가는 쾌락(快樂)과 방종(放縱)에 대한 경고였는지 모른다.

 

벨라스케스(Velazquez, 1599~1660)의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궁정의 시녀들’ 은
17세기 궁정(宮廷)의 생활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삼차원적인 작품이다.
등장인물의 공간 배열이나 차별화된 색감의 조절은 관람자의 심리를 몰고 다녔다.
화려하고 세밀한 리얼리즘으로 묘사한 ‘불카누스 용광로’ 또한
빛의 신성함을 잘 표현한 명화(名畵)다운 그림으로 기억되어 진다.

 

프라도 미술관의 자랑이자 최초의 근대화가인 고야(Goya, 1746~1828)는
‘카틀로스 4세의 가족’,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옷 입은 마야와 나체의 마야’ 등을 남겼다.
고야의 작품은 프라도미술관에만 130여점이나 된다고 한다.
마야(마야-Maja)는 에스파냐의 멋쟁이 여자를 말하는데, 마야의 두 그림은
알려진 만큼이나 예술적 성취면에서 그다지 높게 평가할 점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예술적인 고뇌를 사랑했던 고야는 평민 출신의 궁정화가 였다.

그러던 그는 수석 궁정화가에서 민중의 화가로 눈을 돌렸고,

인생의 후반기를 어둠의 빛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모든 빛이 어둠에서 생성되는 것처럼 고야의 그림도 그렇게 변해간 것일까?   

우연의 일치였을까? 프라도의 정면을 바라보고 서있는 그의 석상도 검은 색이었다.

 

그의 눈을 통하지 않고서는 스페인의 혁명기(1790~1825)를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그의 작품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에 등장하는 처형수의 눈빛은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작가의 시각,

그리고 시선이 멈추어 지는 공감(共感)의 초점,

나는 이러한 그림의 요소들이 명화로 불리워지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은 양민들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장면을 담은 것이다.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반 프랑스 폭동에 나폴레옹 군대가 에스파냐를 점령하고

진압하는 사건이 그림의 배경이다.

 

1808년 5월 3일 어두운 밤,

전쟁의 공포 속에서 끌려온 평범한 시민인 듯한 사형수가 자비를 탄원하고 있다.

나포레옹 군대가 긴 장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길 참이다.

손을 번쩍 든 겁에 질린 사형수의 하얀 위 옷은 곳 피로 물들 것이다.

고야는 이 그림을 통하여 전쟁의 반기를 세상에 알린 것이다.

 

명화의 산책은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를 비롯한 이탈리아 회화,

플랑드르회화(14~16세기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에서 꽃피운 예술),

프랑스와 독일의 회화까지 현란하게 이어졌다.

마치 흐르른 강물처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다  다시 멈추어 섰다.

관람 마감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내 생에 이렇게 장대한 미술관은 처음이었다.

화폭에 박혀버린 시선(視線)을 쉽게 떼고 돌아설 수 없었다.

시간(時間)이 멈추어 섰다.

14, 15, 16, 17, 18세기....

프라도 미술관은 시간(時間)의 보고(寶庫)였다.

 

드리드의 마지막 밤이 서서히 깊어가고 있다.

가여운 헬륨 빛 가로등이 한 뼘 땅 위를 비추는 호텔 옆 어느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마드리드를 정리한다.

남들은 이 곳이 정열적으로 다가와 불꽃처럼 사라졌는지 몰라도

내겐 너무나 조용히 다가왔다 서운하게 사라지는 밤이었다.

 

나는 내일이면 다시 돈 키호테처럼 모험의 길을 떠나야 한다.

그는 충실한 말 로시난테를 타고 편력(遍歷)의 길을 나섰지만,

나는 아베(AVE, '새'라는 뜻의 고속열차)를 타고 떠나려한다.

라만차의 풍차가 있는 푸른 벌판을 향하여…

 

 

 

* 프라도미술관(바로 위 사진은 EnCyber 인용)

 

* 프라도미술관 안내 팜프렛

 

  * 쾌락의 정원(Painted: 1500.ORIGINAL SIZE: 81.1" X 151.9")

 

  * 쾌락의 정원(부분)

 

  * 궁정의 시녀들(Painted around 1656-57.ORIGINAL SIZE: 125" X 108.6")

 

 * 궁정의 시녀들(부분)

  

 

  * 불카누스 용광로(Painted 1630.ORIGINAL SIZE: 87.79" X 114.17")

 

  * 옷을 벗은 마야(Painted 1797 / 98. ORIGINAL SIZE: 38.18" X 74.80")

 

  * 옷을 입은 마야(Painted 1797-98.ORIGINAL SIZE: 37.52" X 74.80")

 

  *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Painted: 1814.ORIGINAL SIZE: 104.72" X 135.82")

 

<그림사진 출처 : http://www.spanisharts.com/prado/prado.htm>

 

 

우슬초(http://blog.chosun.com/hyssop22) 자료

 

"...우리는 거대한 작품을 그리고 있는 벨라스케스 자신을 화면에서 찾을 수 잇다.

그리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뒷벽에 있는 거울에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앉아있는 왕과 왕비의 모습이 비춰져있다.

그러므로 중앙의 한무리들은 화실을 방문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앙의 인물은 두 시녀를 좌우에 거느리고 있는 왕의 어린 딸 마르가르타 공주이다.

시녀 중 한사람은 공주에게 다과를 주고 있고 다른 시녀는 국왕 부처에게 절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녀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심심풀이로 궁 안에 데리고 온 두 사람의 난쟁이

(못생긴 여자와 개를 놀리고 있는 소년)의 이름도 알고 있다.

 

배경에 있는 심각한 얼굴의 어른들은 방문객들이 얌전하게 구는지 살펴보는 것 같다.

이 그림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을 알 수는 없으나

나는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에 이미 벨라스케스는 현실의 한 순간을 화면에 담았다고 상상하고 싶다.

왕과 왕비가 앉아있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공주를 불러 들렸는데

왕이나 왕비가 벨라스케스에게 그가 그릴만한 모델이 왔다고 말을 했을 것이다.

 

지배자가 한말은 언제나 명령으로 간주되므로,

이 지나가는 말은 벨라스케스에 의해 현실화되어

이 같은 걸작이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