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혼상제집 ▒

제례에 관한 질의응답

천하한량 2007. 7. 27. 20:11

이 자료는 『대구향교』에서 발행한
『문답으로 알아보는 생활예절』을 참고로 만들었습니다.

 

제례  

 추석의 유래는 ?

  • 일반적으로 추석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해 신라시대의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라시대에 나라 안의 부녀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한달동안 길쌈을 하여 마지막 날인 8월 15일에 승부를 가려 진 편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회소곡'을 부르며 밤새도록 노래와 춤을 즐겼는데, 이 길쌈놀이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 '가배' 오늘날 한가위의 '가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뜻은 가운데(中) 또는 반(半)이라는 의미라 한다. 따라서 한가위는 가을의 반, 중추(中秋)의 한국식 표기이다.
    그리고 이맘때쯤이면 봄여름동안 땀흘려 기른 농작물이 여물어 수확을 한다.

    예로부터 가을 수확을 하면 감사의 뜻으로 조상님께 먼저 햇곡식을 올리는 천신(薦新)을 했는데, 상례적으로 추석날 천신을 했었다. 그래서 차례상에 올리는 제수는 햅쌀로 만든 메,떡,술 등과 오색 햇과일로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9천년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이미 아주 오랜 옛날부터 추석뿐 아니라 제사풍습이 우리문화의 근간으로 깊이 자리잡아 왔다.

    그리고 이 제사의 대상은 일차적으로는 조상님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우주의 주재자이신 삼신(三神) 상제(上帝)님께 제사를 지냈다.

    이것을 신교(神敎) 신앙이라 하는데, 서기전 2333년에 조선을 개국한 제 1세 단군임금도 상제님께 제사[天祭]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환단고기]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10월 상순에는 모두가 나라의 큰 축제에 참여하였다.

    이때 둥근 단(圓丘)을 쌓아 하늘에 제사 지냈는데, 땅에 제사 지낼 때는 네모지게 쌓았으며(方丘), 조상에 제사지낼 때는 각목(角木)을 썼다.
    제천(祭天)할 때는 임금(韓)께서 반드시 몸소 제사지냈으니, 그 예가 매우 성대하였음을 가히 알 수 있으리라........
    이에 온 나라에서 제사를 받들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도 제천(祭天)행사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추석이나, 조상제사는 바로 이러한 신교문화의 맥을 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이 우주 만유에는 모두 신(神)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민간신앙의 형태로 남아 있는 당산제, 성황제, 산신제, 용왕제, 풍어제 등도 모두 신교신앙의 자취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은 예전에 비해 제사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형식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여전히 이 지구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상님 제사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

   기제사(忌祭祀)와 차례[茶禮]의 차이점은?

  • 먼저 기일에 모시는 것은 기제사라 하고, 명절날 모시는 것은 차례라고 하는데 어떻게 다른 것일까? 차례[茶禮]는 매월 음력 초하루, 보름, 명절, 그리고 조상님 생일날 등에 낮에 지내는 간략한 제사를 말한다.
    차례는 다른 말로 다례(茶禮)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차례상에 술을 올리지만 예전에는 차(茶)를 올렸다하여 다례(茶禮), 혹은 차례[茶禮]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는 설, 추석, 한식에만 차례를 지내고 있는데 설과 추석에는 대부분의 집안에서 다 모시고, 한식은 일부 가정에서 묘제(墓祭)형식으로 지내고 있다.

    기제사(忌祭祀)와 차례[茶禮]의 차이점을 보면, 기제사는 그날 돌아가신 조상님과 그 배우자만 지내는 반면 차례는 자기가 제사를 받드는 모든 조상을 다 지낸다. 또 기제사는 밤에 지내고 차례는 낮에 지낸다.
    기제사와 차례 이외에 시제(時祭)가 있는데 이는 조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라 묘사(墓祀)라고도 한다. 조상신은 4대까지만 기제사를 지내고 그 이상의 조상은 함께 묘제를 지낸다.

정말로 조상님이 직접 오셔서 음식을 드실까?

  • 그러면 제사나 명절날 그렇게 정성껏 제수를 마련하여 올리는데 정말로 조상님이 오셔서 그 음식을 드시는 걸까? 아니, 과연 하늘에 조상님이 참으로 계시는 것일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생일(生日)이 있다. 우리의 생일이라는 것은 천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육신을 가지고 지상에 다시 태어난 날을 말한다. 반면 제삿날은 지상의 삶을 정리하고 천상에 다시 태어난 날, 즉 천상의 생일인 것이다.

    조상님들은 육신은 없지만 천상에서 계속 살아가고 계시는 것이다. 제사를 모시는 것은 돌아가신 날을 기리는 것이지만 또한 천상의 생일을 축복해 주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천상의 조상님들은 제삿날이 되면 즐거운 마음으로 후손들이 차려주는 제삿상을 받으러 오신다.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제삿상에 올린 음식에 깃든 기운을 섭취하신다. 제사음식이 다른 음식보다 약간 푸석푸석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첨언하여, 이러한 조상 제사문화는 같은 동양문화권내에서도 한국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동양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유교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은 일단 국가적 차원에서 종교활동이나 제례문화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제삿날이 되면 시골이나 일부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조용히 모실뿐 문화혁명 이후로는 거의 사라졌으며, 설날 때 중국인들이 고향을 찾아 대대적으로 이동하는 것도 단지 신년이라는 의미에서 가족들과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의미가 더 크다.

    일본은 제삿날이나 명절이 되면 공도묘지에 가서 납골묘에 안치된 유골을 닦아드리거나 비석을 닦아드리고 꽃을 올리는 풍습은 있지만 제사의식은 없다. 단지 일본은 대부분이 불교신앙이라 집안에 불단을 모시는 경우가 많고, 일부는 '신주'라 하여 국조인 천조대신과 지방신을 모시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 민족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조상님을 잘 모시는 민족인 것이다. 그리고 후손이 조상님을 잘 모시는 만큼 조상님들도 천상에서 늘 자손들을 보살피고 자손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계신다.

음식준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 명절이나 제사때 올리는 음식은 조상님 대접이라 제일 좋은 걸로 구입하고, 음식을 준비할 때도 지극한 정성을 드려야 한다.

    왜냐햐면 조상선영신들은 마치 옆방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자손들이 하는 모든 행위를 하늘에서 텔레비젼을 보듯이 다 알고 계신다. 더욱이 신명은 행동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까지 훤히 꿰뚫어 본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 바로 내 옆에서 하나하나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이나 속이지 신명을 속일 수 있겠는가.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고, 누가 보든 안 보든 지극한 정성을 다해야 조상님들도 더욱 좋아하며 흠향을 하시는 것이다.

성묘(省墓)는 왜 할까?

  • 명절이면 집에서 차례를 모시고 나서 가족들이 함께 성묘를 간다. 집에서 조상님께 차례를 모시는데 산소에까지 가서 다시 성묘를 모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묘(省墓)란 말 그대로 묘를 살핀다는 의미이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신라말. 당시 승려이자 풍수지리학자였던 도선(道詵)대사는 왕융(王隆, 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에게 어느 곳에 집을 지으면 장차 왕이 될 큰 인물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에 왕융이 그 곳에 집을 지었는데 그 뒤 왕건이 태어났고, 도선대사의 예언대로 이후 고려왕조를 일으켰다.

    그 이래로 풍수지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게 높아지면서 도선의 풍수지리를 신주 모시듯이 모셨고 집집마다 명당자리에 조상묘를 쓰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좋은 자리가 있으면 이미 묘가 들어서 있는데도 근처에 다른 사람들이 묘를 쓰고 또 쓰는 등 투장(偸葬)이 성행하였다.

    이 때문에 후손들은 자손된 도리로서 마땅히 자기 조상님의 묘가 무사한지 수시로 가서 살펴보며 묘를 수호했는데 여기서 성묘가 유래하였다.

    오늘날에는 설날, 추석, 한식 때 성묘를 가는데 그날 이외에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물밥은 왜 올릴까?

  • 집집마다 틀리지만 제사나 차례를 모실 때 물밥을 따로 마련하는 경우가 있다.

    물밥이란 판수가 굿을 하거나 물릴 때 다른 신명에게 준다고 물에 말아서 던지는 밥을 말한다.

    그런데 제사나 차례를 모실 때도 제삿상 옆에 물에 말아서 마루 같은데 따로 놓아두는데 이것을 물밥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물밥은 왜 올리는 것일까?

    지상에서의 고아는 부모가 없는 사람이지만, 천상의 고아는 자손이 없는 조상신명이다.

    자손이 있는 신을 황천신이라 하고, 자손이 없는 신을 중천신이라 하는데, 자손이 있는
    황천신은 후손들이 명절이나 제사 때 상을 차려드리므로 오셔서 흠향하실 수가 있다.

    하지만 대가 끊어진
    중천신들은 얻어먹을 데가 없다. 그래서 황천신을 따라온 중천신들은 얻어먹을 데가 없다.

    그래서 황천신을 따라온 중천신을 위해 물밥을 두는 것이다. 신도세계에 대해 깊은 혜안이 있었던 우리 선조들은 갈 곳 없는 신명들까지 챙기는 세심한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사상에 비해 얼마나 조촐한가. 중천신들은 남의 집에 그런 물밥이나 얻어먹으며 외롭게 떠돌아다니니 그 한이 오죽이나 크겠는가.

    명절이나 제사때 한 많은 중천신들을 위해 마루에 작은 상이라도 마련해두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조상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는 것!

  • 현재 내가 존재하는 것은 조상님의 지극한 공덕과 은혜로 인함이다. 내 생명의 근원이 바로 조상님임을 깨달아야 한다. 황천신은 삼신이 되어 자손을 타내는데, 보통 쓸 자손 하나를 타내는데 60년간을 공(功)을 드린다 한다. 60년이면 2대이다. 2대동안 천상 조상님들이 무한한 공부를 들인 끝에 태어난 것이 바로 우리들이니 그 얼마나 귀하게 그리고 어렵게 태어난 몸인가.우리 몸뚱아리는 바로 조상님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또한 조상님이 남긴 유체(遺體)가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손된 도리로서 나의 천지인 부모님, 조상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심은 바로 천지의 도리이며 천지의 근본 예인 것이다.

    요즈음은 관광지나 콘도에서 차례를 모시는 사람도 있고, 제사상을 통째로 파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이 보면 가슴치며 통탄할 일이 아닌가.

    조상님들은 자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마음을 어떻게 쓰는지 까지 다 보고 계신다.

    정성을 들이는 그 마음에 조상님도 고마워하고, 또 그만큼 자손을 위해 공을 들여주신다.

    내 생명의 뿌리이신 부모님, 조상님께 깊이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번 추석 때는 더욱 정성껏 차례를 올려보자................

저는 몇 해 전 할머님을 여의었습니다. 저희 집에 서는 음력으로 제사를 모시고 있는데, 별세하신 날이 공교롭게도 윤5월 초하룻날이어서 제사를 모실 때 음력으로 며칠을 잡아야 하는 지요?

  • 질의하신 기제일은 윤5월 초하루라 하셨는바, 윤5월이라도 5월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므로 5월에 기일로 모셔야 합니다. 다시 윤5월이 올 때까지는 본5월 초1일 새벽 자정이 지난 후 3시 이전에 지내시면 됩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제사를 옮기려고 합니다. 제사를 옮기는 절차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 기제사를 모시던 분을 다른 곳으로 옮겨올 때의 절차에 대하여 문의를 하셨습니다만, 전통예절에서 기제사를 옮기는 방법은 따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민간 풍습으로 나오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분의 제삿날에 마지막 제사를 현재 모시던 곳에서 한 번 더 모시면서 축문을 읽고 난 후에 "아버님 내년부터는 장남인 ㅇㅇ이 집에서 제사를 모시게 되었으니 내년부터는 그곳으로 잡수러 오십시오"라고 고한 후, 다음날 뚜껑이 있는 그릇에 쌀을 가득 담아 뚜껑을 덮어 보자기에 싼 후 서울로 올라 오면서 "아버님 가십시다"라고 고하고 그대로 가지고 올라와 그대로 다른 곳에 두었다가 그 이듬해 제사 때 그 쌀로 밥을 지으면 절차는 끝납니다. 한꺼번에 많은 분을 옮길 때는 설이나 추석차례후 옮기면 되고 이때 가져간 쌀은 처음지내는 제사에만 사용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는 방식이 예로부터 우리 사회에 전해져 오는 풍습입니다.

음력 5월 30일에 돌아가신 분인데 금년은 5월 29일까지만 있으니 30일 기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돌아가신 해는 30일이 말일이었으나 금년은 29일이 말일이면 말일날 만 지내면 됩니다. 즉 29일 00시부터 밤 23시 이전으로 지내시면 됩니다.

여자들도 제사에 참여합니까?

  • 네, 당연히 합니다. 예서(禮書)에 보아도 주부가 아헌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차례를 지낼 때 강신례를 하는데 향을 사르고 술을 모사기에 붓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이것을 강신분향(降神焚香), 강신뇌주(降神뇌酒)라고 합니다. 향을 사르는 분향은 향긋항 향을 태워 하늘에 계실지도 모르는 조상의 신령이 향기를 타고 오시라는 상징적인 행사이고, 술을 모사기에 붓는 뇌주는 향그러운 술을 땅바닥에 부어 적셔서 지하에 계실지도 모를 조상의 혼백을 모시는 절차인 것입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벌초, 금초를 하는데 금초가 무슨 뜻인가요? 그리고 벌초하러 산소에 가서 인사를 먼저하는지요? 아니면 벌초를 먼저 하는지요?

  • 벌초란 무덤의 잡초를 베어서 깨끗이 한다는 뜻으로 금초도 같은 뜻입니다. 즉, 금초(禁草)란 풀이 자라나는 것을 금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벌초, 금초란 성묘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묘 가서는 먼저 인사를 올리고 벌초를 하는 것입니다.

기제사를 돌아가신 날 첫새벽(자정이 지난 후)에 지내다가 여건이 맞지 않아 초저녁에 지내려고 하는데 어느날 초저녁에 지내야 하는지요?

  • 기제사는 돌아가신 날 첫새벽(자정이후)에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하의 경우처럼 초저녁에 지내려면 돌아가신 날 초저녁에 지내야 합니다.

축문중 모일간지(某日干支)는 기제일 당일의 일진인지 기제일 다음날(사망일) 일진을 적용하는지요?

  • 귀하의 질의 내용 중 귀하가 알고 계신 기제일이 사망일 전일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제일은 사망일 당일입니다.  축문에 휘일부림(諱日復臨 :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 이란 말이 있듯이 기제사는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그러니 축문일진에는 당연히 돌아가신 날 일진을 써야 합니다.

장남이 선고의 기제시 병으로 병원에 입원중이라 부득이 장손이 제사를 모실 때 지방이나 축문에 현고 운운(顯考云云)함이 옳은지 자기로서는 조고(祖考)이니 현조고운운(顯祖考云云) 함이 옳은지요?

  • 제주가 신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더라도 다른 자손이 있으면 당연히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다른 자손이 지내더라도 입원한 큰아들의 명의로 지내는 것입니다.  장남이 입원하여 장손이 대신 제사를 지방이나 축문에 '효자 ㅇㅇ는 병으로 입원했기 때문에 아들 ㅇㅇ를 시켜 아버님 신위께 아뢰나이다'로  고쳐 쓰면 됩니다.

기제를 지낼 때 초헌, 아헌, 종헌때마다 정저를 하는지요, 아니면 유식 때에만 정저를 하는지요?

  • 기제를 지낼 때의 정저는 유식 때 합니다. 즉 주인이 첨작을 하고 주부가 삽시정저를 하는 겁니다.

 불행히도 아들이 먼저 죽어 손자가 유아로서 부가 제주가 되어 장례 또는 기제사를 지낼 때 절을 하는지 안하는지 궁금합니다.

  • 자 선망(子先亡)으로 부(父)가 상주 또는 주제(主祭)할 때 분향은 하나 불배(不拜)입니다.

조상의 묘지에 성묘를 하려고 하는데 여러 분의 묘지가 있습니다. 어느 분의 묘지부터 성묘를 해야 하는지요? 그리고 성묘를 명절을 앞두고 미리 하려고 하는데 예절에 맞는지요?

  • 조상 묘지의 성묘와 차례의 순서는 원칙적으로 웃대조상, 남자조상, 여자조상의 순서여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명절 날에 피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성묘를 미리 앞당겨 하거나 명절에 가까운 다른 날에 지내는 것도 안지내는 것보다 낫습니다.

 제 처가 무남독녀 외동딸이어서 돌아가신 장인, 장모는 아들이 없습니다. 이처럼 아들이 없는 경우에 사위인 제가 장인, 장모의 제사를 지내도 됩니까?

  • 사위가 장인 장모의 제사에 제주가 되어 제사를 지낼 수 없습니다. 혈손인 딸이 있으니 딸이 지내는 것입니다. 귀하의 부인인 딸이 제주가 되어 지내다가 귀하의 아들인 외손이 장성하면 외손이 지냅니다.

제수 진설시 수저 위치가 신위의 어느편에 놓여야 하는지요?

  • 제상에 제의 음식을 차리는 것을 '제수진설'이라 하는데 옛 예서에 보더라도 제수진설이 통일이 되지 못하고 각양각색입니다.  그러나 각 예서의 진설도를 보면 반(飯 :밥)과 갱(羹 :국)을 산사람의 경우와 반대로 놓았습니다. 그리고 수저는 그 사이에 놓았는데 이것은 좌우의 균형을 고려한 합리적인 진설법이라 보아 수저는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게 놓는 것이 아니라 반과 갱의 사이에 놓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됩니다.

금년에 세일사(묘제)를 지내려 하는데 세일사를 지내는 조상께도 명절 차례를 지내는 것입니까?

  • 세일사란 1년에 한 번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기제를 지내지 않는 5대조 이상을 지내는 것입니다. 즉 매년 음력 10월에 좋은 날을 정해 기제를 모시지 않는 5대조 이상의 조상 산소에 가서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일사를 지내는 조상은 기제나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습니다.

차례, 기제사시 초헌관에 대하여 문의합니다. 장손이 있으면 당연히 장손이 초헌관이 되지만 장손은 기독교를 믿기에 제사에 불참합니다. 그럴 경우 어찌해야 하나요?

  • 차례나 기제사 시 초헌관은 당연히 장자나 장손이 합니다. 이처럼 제사를 장 자손이 지내는 것은 가통을 중시 해서입니다. 그러나 귀하의 질의처럼 종교적인 갈등 때문에 장자손이 제사를 못 모신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차손이 초헌관이 되어 제사를 모실 수밖에 없습니다.

국과 밥의 위치와 삽시때 숟가락의 방향를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 반(飯:밥), 갱(羹:국)의 진설방법은 반서갱동(飯西羹東)이라하여 반은 서쪽에, 갱은 동쪽에 진설합니다. 즉 제주가 보아서 좌측에 반을 진설하고 갱은 우측에 진설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가 식사할 때 국은 오른쪽, 밥은 왼쪽에 놓고 먹습니다. 신은 음계(陰界)이기에 반대가 됩니다. 글래서 신이 앉은 자세에서 반이 오른쪽, 갱이 왼쪽이 됩니다. 그러니 제주가 보아서는 반이 좌측이 되고, 갱이 우측이 되는 것입니다. 삽시때는 숟가락의 오목한 부분이 동쪽으로 향하게 꽂습니다. 또한 반, 갱의 진설은 과일의 진설과 같이 가례(家禮)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음력 10월에 시제를 지내려고 하는데 어느 날이 좋을까요?

  • 음력 10월에 지내는 시향, 즉 세일사는 각 문중에서 협의하여 정하는 것입니다. 정해진 날이 없으면 예로부터 정일(丁日)과 해일(亥日)이 제일(祭日)이니 음력 10월중 정일과 해일을 택하여 정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음력 10월 보름 이전의 날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사 제수를 진설시 이서위상(以西爲上)이라 함은 신위 본위인가요, 참사자 본위인가요? 그리고 조율시이는 참사자의 왼쪽 아니면 오른쪽인지요? 겸하여 홍동백서의 좌우구별에 대하여 답해 주시고 제례 참사 시간이 종래는 망일(亡日)의 첫새벽 영시, 즉 삼경 이후에 행사하였는데 가정의례준칙법 시행 후에 대개의 가정에서 전일초경(8시경)에 행사하고 있는데 이는 착오가 아닌지요?

  • 이서위상(以西爲上)이란 죽은 사람은 동쪽과 서쪽에서 서쪽이 상석이라는 뜻입니다. 제사를 모실 때 신위를 가장 높은 자리인 북쪽에 모십니다. 여기서 북쪽은 자연의 동서남북의 북쪽이 아니라 신위가 놓인자리를 무조건 북쪽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북쪽이 결정되었으니 동쪽과 서쪽도 결정됩니다. 조율시이는 서쪽이 상석이기에 서쪽부터 진설하는 것이고, 홍동백서는 말 그대로 붉은색 과일은 동쪽에, 흰색의 과일은 서쪽에 놓으라는 것입니다. 기제사를 전일 초경에 지내는 것은 잘못입니다. 망일(亡日) 첫새벽(子時에서 丑時사이)에 지내는 것입니다. 초경에 지내려면 망일 초경에 지내야 합니다.

여러 윗대 조상의 지방을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 지방을 모시는 순서는 어느 쪽부터 모시면 됩니까? 그리고 여러분을 한꺼번에 모실 경우에 메와 갱을 내외분이 한 그릇씩 올려도 되는지요?

  • 조상의 위패나 지방을 모시는 순서는 이서위상(以西爲相)의 방법으로 모십니다. 즉 가장 윗조상을 서쪽에 모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순서대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며 모시면 됩니다. 아무리 많은 분을 합사하여 제상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메와 개아 잔반, 시접은 한분 한분 따로 올려야 됩니다. 아무리 내외분이라 하더라도 따로따로 올리는 것입니다.

작년에 부모님이 돌아가시어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제사를 작은 집에서 모시다 금년 추석부터 장손인 제 집에서 차례를 지내려고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차례는 어떻게 지내는지요?

  • 기제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 그날 돌아가신 조상과 그 배우자에게만 지내는 것이지만, 차례는 명절에 기제를 받드는 모든 조상에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례는 기제를 지내는 모든 조상의 제상을  내외분마다 따로 차리되 한 번의 절차로 지냅니다. 따라서 교의, 제상, 제기 등은 조상마다 내외분씩 따로 차리되 향안, 주가, 소탁 등은 하나람 있으면 됩니다. 옜날에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당에서 차례를 지냈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가정에 사당이 없어 집에서 차례를 지낼 경우 4대봉사를 하는 집안에서는 제상 차리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4대의 지방을 모셔 놓고 한꺼번에 제상을 차려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럴 경우라도 시접, 잔반, 송편(추석의 경우)은 각 위마다 따로 올려야 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부인이 두 분이신데 제사 때 지방 쓰는 법과 제사차림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 자손 입장에서 왼쪽 첫줄에 할아버지, 오른쪽으로 가면서 가운데에 큰할머니, 그리고 오른쪽 끝에 작은 할머니를 써서 모시고, 제사상에도 그런 순서로 잔, 시접, 메 갱을 각각 놓아야 하고 다른 제수와 진행절차는 같습니다.

아내의 제사가 돌아오는데 아들이 어리면 누가 제주가 되어야 하나요?

  • 원래 아내 제사의 제주는 남편이 합니다. 그러나 아들이 장성하고 남편이 나이가 많이 들었을 경우는 아들이 제주가 될 수 있습니다. 위 질문의 경우 아들이 어리니 당연히 남편이 제주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조까지 기제로 모시는데 사정에 의하여 조부 이상은 묘제로 모시고자 하는데 가능한지요? 그리고 종손이 아니더라도 제사를 모실수 있는지요?

  • 가능 합니다. 집안회의를 열어 묘소에서 세일사로 모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맏자손이 아니더라도 제사를 받들 수가 있습니다.

장형이 돌아가시고 장조카가 어리면 제사는 어떻게 지내야 되는지요?

  • 장형수 중심으로 장형님 댁에서 장조카 명의로 제사를 지내야 됩니다.

맏며느리를 맞이하고 나서 조부의 첫제사를 맞는데 자부의 참제의식을 알고 싶습니다.

  • 아헌때 헌작을 시키고 네 번 절을 하도록 지도 하십시오.

기제사 때 제주 외에 헌작할 사람이 없을 때나, 여러 형제가 있어 아헌, 종헌, 차례하고도 또 헌작하고자 할 경우의 행례를 알고 싶습니다.

  • 내외간이 살면서 제사를 지낼 때는 남편이 초헌, 부인이 아헌, 또 남편이나 자녀 중에 종헌을 하면되고, 형제가 많아 헌작할 사람이 많으면 부인이 양보하여 형제가 차례대로 하고, 또 할 사람이 있으면 사신전에 또 잔을 올리면 됩니다.

각종 간행물에 보면 한식, 추석, 설날 등에 조상을 받드는 예를 '제사'라고 하는 데가 있는가 하면 '차례'라고도 하는데 어떤 것이 맞습니까?

  • 제사(祭祀)와 차례(茶禮)는 지내는 경우와, 상 차림, 지내는 절차등이 엄연히 다릅니다. '祭'(제)자를 쓰는 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사(忌祭祀)와 제사 받드는 한계가 지난 웃조상(五代祖上以上)의 세일사(歲一祀·墓祭)와 조상의 사당을 모시는 경우의 시제(時祭)라고 해서 춘하추동 4계절의 가운데 달에 지내던 제사만을 말합니다. 기타의 설날, 동지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사다에 참배하는 정지삭망참(正至朔望參)고 기타 명절에 계절식을 받들어 올리는 속절즉헌이시식(俗節則獻以時食)은 차례(茶禮)라고 합니다. 제수(祭羞), 상차림도 제사에는 메(제사밥)와 갱(제삿국)을 쓰지만 차례에는 메와갱을 쓰지 않고, 계절특식을 쓰는 것입니다. 설차례를 '떡국차례'라 하고 추석에는 송편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지내는 절차는 제사는 술을 세 번 올리고 반드시 축문(祝文)을 읽는 삼헌독축(三獻讀祝)이고, 차례는 술을 한번만 올리고 일반적으로 축문을 읽지 않는 단헌무축(單獻無祝)입니다. 이제 제사와 차례를 구분해서 말해야 되고, 지내는 절차와 상차림도 격에 맞게 해야 되겠습니다.

한식과 추석의 차례를 산소에서 지내듯이 설차례도 산소에 가서 지내도 됩니까?

  • 원래의 차례는 장자손(長子孫)이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 당에서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했었는데 근래 사실상 사당을 모신지 않는 경향이 많아지면서 기왕에 성묘(省墓)를 하는 길에 지내는 습속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한식이나 추석은 일반적으로 마른(乾) 음식으로 상차림을 하고 춥지 않으니까 산소에서 지내는 것이 당연시되었지만, 설 차례는 떡국을 올려야 하므로 식어서는 아니 될 것이고, 날이 추워 산소에서 지내기가 쉽지 않아 집에서 위패, 사진, 지방을 모시고 지내는 것이 관례로 되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결혼했습니다. 친정에서는 조상의 제사에 여자도 참사했기 때문에 시댁의 제사에 참사하려고 했더니 "배우지 못했다"고 걱정을 들었습니다. 여자는 시댁 제사에 참사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 며느리는 그 집의 혈손이 아니라 제사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큰 잘못입니다. 제상에 술을 세 번 올리는데 둘째 잔인 아헌(亞獻)은 며느리인 주부(主婦)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삽시정저(揷匙正著)라고 메(제삿밥)에 숟가락을 꽂고 시접에 젓가락을 바르게 걸치는 일도 주부가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제사때의 자손들의 배석(配席)에 신위의 우측앞인 西 쪽이 여자손의 자리입니다. 오히려 딸보다 며느리가 상석입니다. 그런데 왜 여자가 참사하지 못한단 말씁입니까? 반드시 참사해야 합니다.

부모님이다 돌아가셔서 제사를 지내는데, 아버지는 공무원 서기관을 지내셨기 때문에 지방에 '顯考書記官 000課長俯君 神位'(현고서기관 000과장부군신위)라고 씁니다. 아버지는 벼슬을 쓰면서 어머니는 '孺人'이라고 쓰려니까 잘못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써야 합니까?

  • 귀하뿐 아니고 많은 분들이 고심하는 부분입니다. 고례(古禮)에는 부인들도 남편의 직급에 따라 봉작(封爵·벼슬을 줌) 했으니까 당연히 지방에 봉작된 명칭을 썼지만 현대는 일체 부인의 봉작제도가 없으니까 어떻게 쓸지 난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은 서기관으로서 중앙 부처의 과장인데 부인은 유인(孺人)으로 쓴다는 것은 더욱 곤란한 일입니다. 원래 유인(孺人)은 최말직(最末職)인 정9품과 종9품의 벼슬아치의 부인에게 봉작하는 직첨이지만, 선비로서 벼슬하지 못한 '學生'의 부인들에게도 '孺人'을 쓰도록 양해·묵인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남편이 벼슬을 못했을 때 그 부인에게 쓰는 명칭입니다. 서기관이면 대개 5품관(正郞級)으로서 그 부인은 '공인(恭人)'의 직첩을 받을 수 있으나 직첩을 받지 못했으니까 ''으로 쓸 수도 없습니다. 남편의 벼슬이름을 '서기관'이라 쓰는데 부인을 벼슬이 없는 이의 아내같이 유인(孺人)이라 쓰면 실례이고, 직첩을 받지 못했으니 공인(恭人)이라 쓸 수도 없으니 부인(夫人)이라 쓰는 것이 무난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제사에 어머니를 함께 지내고, 어머니의 제사에 아버지를 함께 지내기 때문에 1년에 두 번제사를 지내게 되는 데, 저는 부모님의 제삿날이 한날이라 1년에 한번밖에 못지냅니다.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는데 1년에 두번지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 참으로 효성스러운 일입니다. 古禮에 의하면 음력으로 9월 15일에 이제라고 해서 부모의 제사를 지내는데, 그 유래는 어떤 이가 아버지의 생신이 9월 15일인데 그 날을 그냥 보내기가 죄송스러워 제사를 지낸 일이 유래가 됐습니다. 미루어 굳이 1년에 두 번을 제사 지내고 싶으면 아버지의 생신날을 택해서 그 날도 제사를 지내면 죄송한 마음을 덜 수 있지 않겠습니까? 9월 15일에 이제를 지내는 방법도 좋을 것입니다

저의 큰 형님은 백부에게로 양자 나갔습니다. 당연히 조 부모와 백부모의 제사는 큰형님이 지냅니다만 저의 부모님 제사도 큰형님이 장자라면서 당신이 지냅니다. 예법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비록 생가의 큰아들이라 하더라도 양자 나갔으면 생가의 큰아들노릇을 못합니다. 귀하의 질문의 경우 백부에게로 출계해서 조부모와 백부모의 제사를 받드는 것은 조부모의 장손(長孫)이고 백부모의 장자(長子)가 된것입니다. 남의 뒤를 이었으면 생가의 뒤를 이을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둘째아들이 장자(長子)가 되어 부모의 제사를 받들어야 합니다.

저의 큰형님의 큰아들이 저의 부모님과 큰형님 내외분의 제사를 모시다가 죽었습니다. 죽은 조카의 아들이 어리기 때문에 저의 큰형님의 둘째아들인 작은조카가 저의 부모님과 자기의 부모의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장자손(長子孫)이 어려서 작은 자손이 지낼 바에야 저의 부모님 제사는 작은 아들인 제가 지내고 싶고, 작은 조카의 부담도 덜어줄 겸 모셔오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 효성스러운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법에 어긋나는 효도는 오히려 불효가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는 장자손이 지내는 법이고 그것은 가통(家統)을 중시 해서입니다. 죽은 조카의 아들이 어리더라도 당연히 그 이름으로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합니다. 귀하의 작은조카가 자기의 어린 조카인 장손의 이름으로 지낸다면 장성할 때까지 대행하는 것이니까 나쁠 것이 없고, 바람직합니다. 만일 작은조카가 자기의 이름으로 지낸다면 귀하는 그것을 장자손의 이름으로 지내도록 바로 잡으시고, 작은조카의 부담을 덜어 주고 싶으면 제사 비용을 보태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가통을 무시하고 제사가 형편을 쫓아 왔다갔다하면 마침내 제사지낼 사람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茶禮)는 글자로 보아 '茶'를 올려야 할텐데 우리나라의 제례에 茶를 쓰지 않고 술을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차례'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되었고, 중국에서는 간략한 명절의 제례에 葉茶를 올렸기 때문에 약식화된 간략한 제례를 葉禮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茶가 대중화된 상용음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茶를 쓰는 대신 술(淸酒)을 쓰면서도 제례의 명칭은 '葉禮'라고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제사때 주가(작은 상)위의 술병옆에 정화수를 담은 현주 병을 놓습니다. 제상에 올리지도 않는 정화수를 왜 준비합니까?

  • 우리나라에 술이 들어오기 전에는 조상을 받드는 제사에 우물에서 첫새벽에 뜬 정화수를 지금의 술대신 썼었습니다. 비록 술이 들어와서 술을 쓰지만 古禮에 사용했던 방법을 기려서 정화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전통제례의 축문식을 보면 연호(年號)를 쓰게 되었는데 근래에 보면 연호를 쓰지않고 간지(干支)로 그 해의 세차(歲次)만 씁니다. 전통의례를 행하면서 왜 연호를 쓰지 않습니까?

  • 1910년,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기전에는 우리나라의 연호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국권을 빼앗기니까 우리나라에는 연호가 없어 굳이 연호를 쓰려면 일제(日帝)의 연호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마 적의 연호를 쓸 수 없어 연호를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는 광복했고, 우리의 연호 '단군기원'이 있으니까 '維 檀君紀元0000年' 이라고 써야 합니다. 비록 공식으로는 '西紀'를 쓰지만 제례에는 우리의 연호인 '檀君紀元'을 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성균관의 석전에서도 '檀君紀元'을 쓰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기제사는 음력으로 돌아가신 날에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양력을 쓰고 있고, 또 양력이 더 정확하니까 양력으로 날짜를 찾아서 지내는 것이 더 합리적이 아닙니까?

  • 전통적으로 음력으로 해왔고, 현재도 음력이 없어진게 아니고 존속하니까 음력으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귀하의 의견처럼 음력은 3년에 1개월이 틀리고 달의 大小도 일정하지 않아 문제점이 많은데, 양력은 4년에 1일만이 틀리며 그것도 2월에 국한해서 못박았고, 달의 大小도 일정하기 때문에 양력이 더 정확한게 사실입니다. 기제사란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이기 때문에 음력이든 양력이든 그 달의 그 날짜에 지내면 되겠지만 보다 계절 적으로 걸맞는 양력으로 지내더라도 망발은 아닙니다.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며칠 후면 49일이 됩니다. 주위에서 49일제(祭)를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전통예절에도 49일제가 있습니까?

  • 일반적으로 말하는 49일제란 '제(祭)'가 아니고 '재(齋)'입니다. 즉 죽은지 49일만에 지내는 제사란 말이 아니고 불교에서 사람이 죽어 49일이 되면 '일곱번의 생사를 거쳐 각 과보를 감지하고 三界·六道에 가서 태어난다'고해 7일씩 7번이 되는 49일에 불교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례절차인 제례로서는 '49일제'가 없고 불교의 종교의식으로 '49일재'가 있습니다. 혼동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제가 아니고 재이므로) 49일재는 가정에서 치르는 것이 아니고 사찰에서 불교의식으로 치릅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생전에 손자 보시기를 무척 기다리셨는 데 돌아가신 후에야 제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어떤 방법으로 이 사실을 알려드려야 합니까?

  • 륵하신 효성입니다. 어찌 아들을 낳은 일 뿐이 겠습니까? 집안에서 있었던 큰 일은 조상에게 고하는 절차가 '유사즉고(有事則告)'라고 정해져 있습니다. 원래는 사당을 뫼신 큰집에서 고하는 축문(告문)을 지어 고했는데 현대는 사당이 안계시지만 조상의 위패(신위)를 임시로 뫼시고 간략한 제수를 차린 다음 사실대로 고할 수 있습니다. 귀하의 경우도 기제사를 지낼 때같이 신위를 뫼시고 간략한 제수를 차린 다음 아이를 데리고 "누구의 아내 00성씨가 0월 0일 아들을 낳았기에 고하며 뵈옵니다"고 고하시면 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이 가까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옷을 지어 태우고 잔치를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古禮에 의하면 돌아가신 父母의 생신에 관한 의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제인데 일반적으로 음력 9월 15일에 사당에서 父母의 위패만 모시고 지내는 제사로써 원래의 유래는 처음 '이제'를 지낸이의 아버지의 생일이 9월 15일이었다는 데에 연유합니다. 또 하나는 사당에 '생신제고사(生辰祭告사)'를 하는 것인데 사당에 뫼신 모든 신위의 생신제로써 李退溪 선생은 禮가 아니라 했고, 金沙溪 선생과 宋尤庵 선생은 인정의 발로라고 했습니다. 효성이 지극한 자손이 조상의 생신에 잊지 않고 의식을 갖는 일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명한 분의 탄신 百주 행사를 사회적으로 치르기도 하는데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의 회갑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인정 상 차마 어려운 일입니다. 마땅히 '이제' 지내듯이 위패(신위)를 뫼시고 가까운 친척이 모여 제사를 지내며 추모한 다음 함께 음복하면 자연히 추모하는 경건한 잔치로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복을 지어 태우는 일은 속설(俗說)일 수는 있으나 전통의례에는 없는 일입니다.

근래 방송이나 신문잡지등의 보도에 보면 제상을 진설하는데 있어서 西쪽에 밤, 東쪽에 대추를 놓는 방법과 대추 밤 감 배의 순서로 놓는 방법이 섞여서 소개됩니다. 전통의식을 배워서 하고싶어도 어떤 방법이 옳은지를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시원한 해답을 주십시오.

  • 매우 절실한 문제입니다. 사실 제례에 있어서 가가례라는 양상이 두드러진 부분이기도 합니다. 대추 밤 감 배, 즉 조율이시(棗栗枾梨)의 순서를 주장하는 경우의 이유는 대추는 씨가 하나니까 임금이고 밤은 한송이에 세톨이 들었으니까 3정승이고 감은 씨가 여섯 개니까 6판서고 배는 씨가 여덟 개니까 8도 관찰사에 해당해 벼슬의 높이에 맞춰 임금 정승 판서 관찰사의 순으로 놓는다고 합니다. 이 주장이 옳다고 가정하면 개인의 제사에 임금을 상징하는 대추를 쓴다는 것이 불경스러우며, 官制가 바뀌면 그 비유가 맞지 않을 수도 있어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밤을 西쪽 대추를 東쪽에 놓고 붉은 것을 東쪽 흰 것을 西쪽에 놓는다는 동조서율(東棗西栗)과 홍동백서(紅東白西)의 주장은 한문적인 논리에 의한 것입니다. 밤은 서쪽의 나무(栗)라고 쓰며, 두렵다(慄)는 뜻이 있고, 신주(神主)도 밤나무로 깎으므로 음(陰), 즉 서(西)쪽에 해당되고, 대추의 붉은 색은 하늘 즉 양(陽)을 뜻하며 혼례에 폐백을 대추로 하는 의미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한다는 뜻이므로 동서남북(東西南北)중 양(陽)방은 東쪽이고, 또 東쪽에서 해가 뜨므로 부지런하다는 의미와 합치해 대추는 東쪽에 해당되며, 제사음식은 현란한 색깔을 피하므로 붉은 대 추가 놓인 東쪽에서부터 붉은 색의 과실을 놓고, 흰밤이 놓인 西쪽에서부터 흰색의 과일을 놓는다는 紅東白西가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의 주장을 비교할 때 東棗西栗, 紅東白西가 棗栗枾梨보다 더 논리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수 진설법을 보면 머리와 꼬리가 있는 생선등을 어떻게 놓는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는 동두서미(東頭西尾)라 하고, 어떤 이는 서두동미(西頭東尾)라고 합니다. 또 생선을 놓을 때 등과 배를 어느 쪽이 신위 쪽을 향하게 놓는가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맞는 것입니까?

  • 분명히 말해서 권위있는 예서(禮書)에는 고기나 생선을 놓는 위치는 정해졌지만 머리와 꼬리, 등과 배를 어느 쪽을 향하게 한다고 정해진 곳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원칙이 없이 놓을 수도 없는 문제라 여러가지 속설(俗說)이 있어 다르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비록 예서(禮書)에는 정해진 데가 없지만 전통예절의 총 본산인 성균관의 석전대제에서는 동두서미(東頭西尾), 즉 머리가 東쪽이고 꼬리가 西쪽이 되게 진설합니다. 그 이유는 신위가 北쪽에 계시니까 東西로 길게 놓아야 할 텐데 東이 陽方으로 위이기 때문에 머리를 東쪽으로 가게 놓는 관습이 정립된 것으로 믿어집니다. 등과 배는 배가 신위쪽으로 가게 놓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등은 뒤이며 밖이고 배는 앞이며 안이므로 앞과 안쪽을 신위쪽으로 하는 것이 타당해서입니다. 또 등을 보이면 나가는 것이고 배를 보이며 들어오는 것이므로 배를 신위쪽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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